“살려주세요” 맨발로 도망친 피해자 쫓은 스토커…가짜 스펙에 속아 시작된 53일간의 악몽[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주요 사건들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시리즈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되짚으며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의와 안전의 가치를 깊이 있게 고찰하는 서울신문의 특화 기사입니다. 서울신문은 기사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AI 음성을 이용해 기사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벌건 대낮의 서울의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졌다. 2016년 4월 19일, 평온하던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살려 주세요!”라는 다급한 외침과 함께 한 젊은 여성이 맨발로 아파트에서 뛰쳐나왔고 한 남성이 그 뒤를 무서운 속도로 쫓아왔다. 순식간에 여성의 덜미를 낚아챈 남성은 경비원과 주민들이 보는 대낮 아파트 주차장 한복판에서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
10년 전 그날 발생한 이 충격적인 참극은 단순한 우발적 범죄가 아닌 두 달 가까이 끈질기게 이어진 스토킹이 낳은 예견된 살인이었다.
완벽해 보였던 연인, 그리고 서서히 드러난 기만과 거짓말참혹하게 희생된 고(故) 김정은 씨(당시 31세)는 한 대형 병원의 총괄 실장으로 일하며 어려운 집안의 가장 역할을 도맡아 하던 똑부러지고 정 많은 장녀였다. 가해자 한 모 씨와 김 씨는 2015년 5월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알게 되었고 약 한 달 뒤인 6월경부터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했다. 당시 한 모 씨는 185cm의 훤칠한 키에 자신이 유명 증권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부모님과 남동생 등 가족들은 미국에 거주하는 영주권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교제 초반만 해도 한 모 씨는 매일같이 김 씨의 출퇴근을 데려다주고 바래다주는 등 주변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할 정도로 다정하고 헌신적인 연인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 모 씨의 태도는 변하기 시작했다. 김 씨가 직장 동료들과 있을 때면 수시로 전화를 걸어 “누구와 있느냐”, “남자 직원도 있느냐”고 끊임없이 캐묻는 등 전형적인 감시와 집착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이상함을 느낀 김 씨는 한 모 씨가 근무한다고 했던 유명 증권회사에 연락해 보았고 그곳에 한 모 씨라는 이름의 직원은 애초에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신뢰가 무너진 상황 속에서 거짓말이 발각되었음에도 한 모 씨의 집착은 오히려 더 심해졌고 일반적인 연인 사이라면 이별을 택하거나 신뢰를 회복하려 노력했겠지만 한 모 씨는 극도의 통제 성향을 보이며 잦은 다툼을 유발했다.
시작된 비극, 잠실대교 위에서의 살해 협박과 53일의 공포결국 만난 지 8개월여 만인 2016년 2월, 김 씨는 한 모 씨에게 “생각할 시간을 좀 갖자”며 이별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 모 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우리가 헤어진 지 정확히 12시간이나 흘렀네”라는 소름 끼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며 본격적인 스토킹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모 씨는 과거 수술비 명목으로 김 씨에게 빌려 갔던 340만원을 갚겠다며 직접 만날 것을 끈질기게 강요했다. 돈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모 씨의 차 조수석에 올라탄 김 씨를 태운 채, 한 모 씨는 잠실대교 한복판으로 차를 몰고 가 차를 세우고는 문을 잠가 버렸다. 그리고는 건네주려던 돈 봉투를 쥐고 이 돈은 못 주겠다며 위자료로 생각하라면서 다음과 같은 무서운 협박을 가했다.
“전에 만났던 여자도 너처럼 날 버렸다. 그 여자 가족들까지 죽여버리려고 했는데 아쉽게 실패하고 다리만 부러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을 거다. 나하고 헤어지면 너하고 네 가족들 전부 죽여버릴 거다.”
이 사건 이후 공포에 질린 김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5kg 이상 살이 급격히 빠졌으며 결국 실어증 증세까지 보였다. 작은 소음에도 예민해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이었고 언제 가해자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출근조차 할 수 없었다. 한 모 씨는 “내가 집 앞에서 죽어 있으면 좋겠냐”며 협박성 전화와 문자를 멈추지 않았고, 김 씨와 가족이 함께 사는 아파트 앞에 차를 대 놓고 옥상 등에서 치밀하게 감시를 이어갔다. 심지어 한 모 씨는 정체 모를 동영상을 USB에 담아 미국에 있는 김 씨의 남동생에게 우편으로 보내며 유포하겠다는 협박까지 일삼았다.
온 가족이 끔찍한 고통 속에 있었음에도 경찰에 선뜻 신고하지 못했던 이유는 당시 법의 한계 때문이었다. 사건이 벌어졌던 10년 전 당시 스토킹 행위 자체는 고작 범칙금 8만원짜리 ‘경범죄 처벌법’ 위반에 불과했고, 신고를 해 봤자 제대로 된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 도리어 보복만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단 하루의 방심, 비극으로 끝난 출근길김 씨의 직장 생활을 위해 아버지는 딸의 출퇴근길을 매일같이 동행하며 밀착 보호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위암 수술을 받아 지속적인 운동이 필수적인 상황이었으나 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무려 2개월 동안 운동마저 포기한 채 딸의 곁을 지켰다. 한 번은 아버지가 직접 집 앞을 서성이는 한 모 씨를 만나 타일러 보내기도 했고 이후 한동안 한 모 씨의 연락이 끊기면서 상황이 호전된 듯 보였다.
시간이 흘러 사건 당일인 2016년 4월 19일, 스토킹이 포기 단계에 이르렀다고 안심한 김 씨는 자신 때문에 쇠약해진 아버지에게 오랜만에 운동을 다녀오시라고 권유했다. 아버지가 운동을 하러 집을 나선 오전, 먼발치에서 이 모든 것을 감시하고 있던 가해자 한 모 씨가 양복 차림에 검은 가방을 든 채 아파트로 침입해 김 씨의 집으로 올라갔다. 집 안에서 단둘이 남겨진 약 1시간 동안, 한 모 씨와 김 씨 사이에는 끔찍한 실랑이가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극도의 공포에 질린 김 씨는 살려 달라며 맨발로 아파트 주차장을 향해 도망쳤다. 그러나 한 모 씨는 흉기를 들고 쫓아와 경비원이 말릴 틈도 없이 김 씨의 몸을 여섯 군데나 무참히 찔렀다. 31살의 이 피해자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 구급차 안에서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도주와 검거, 그리고 뻔뻔한 변명으로 가득 찬 가방칼부림 직후 한 모 씨는 자신을 막아서는 주민의 차량을 피해 전력 질주하여 도주했다. 도중 자신이 놓고 온 가방을 챙기기 위해 다시 김 씨의 집으로 올라갔으나 문이 잠겨 버린 탓에 가방을 포기하고 뒷문으로 빠져나가 미리 준비해 둔 번호판 없는 오토바이를 타고 현장을 벗어났다.
사건 발생 24시간 만에 경찰의 추적 끝에 한 모 씨는 현장에서 15km 떨어진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의 한 비닐하우스 옆 풀밭에서 긴급 체포됐다. 체포 직후 기자들 앞에서 한 모 씨는 태연하게 “죽일 생각은 없었습니다”라며 철저하게 고의성을 부정하고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현장에 남겨진 그의 검정 가방은 명백한 계획살인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가방 안에는 손잡이를 압박 붕대로 꼼꼼히 감아 놓은 칼 3자루, 나일론 끈, 넥타이, 등산용 로프, 테이프, 면 수건, 그리고 염산이 담긴 박카스 병 2개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이러한 수많은 살인 도구와 증거 앞에서도 한 모 씨는 “자살하려고 가져갔다”며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검경의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는 “내가 이별을 요구했는데 김 씨가 거부했다”, “김 씨가 먼저 흉기를 들었다”, “너무 사랑했는데 김 씨가 내 사랑을 배신해서 홧김에 죽였다”라며 단 하나의 진실도 없이 피해자에게 모든 원인을 뒤집어씌우는 파렴치한 언행을 일삼았다.
남겨진 유가족의 눈물가해자 한 모 씨는 재판에 넘겨진 후 변호사를 무려 4명이나 선임했다. 한 모 씨 측은 과거 미국 유학 시절 자해를 한 적이 있다며 우울증과 정신 병력을 핑계로 감형을 주장했다.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깊은 죄책감과 슬픔에 빠진 김 씨의 부모님은 매일같이 거리에 나가 시민들에게 서명을 호소했고, 그렇게 모인 탄원서는 무려 3만 8천여통에 달했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가해자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 달라는 탄원서를 매일같이 제출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사형 구형 끝에 한 모 씨의 잔혹한 수법과 계획적 살인이라는 점을 양형 가중요소로 삼아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20년간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한 모 씨는 정신 이상을 주장하며 항소하여 재판을 지연시켰으나 법무부 감정 결과 ‘이상 없음’으로 판명 났고, 2심에서도 무기징역이 내려졌으나 위치추적 부착 명령은 기각됐다. 결국 2017년 9월,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며 한 모 씨에게 무기징역을 최종 확정 지었다.
어느덧 참혹했던 그날로부터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정은 씨는 2016년 4월 19일 하루에 살해당한 것이 아니다. 스토킹이 시작된 그날부터 53일간 서서히 진행된 잔혹한 연쇄 살인의 희생자였다.
“피해자의 부모가 애쓰지 않아도, 서명 하나 탄원서 한 장 더 받으려고 뛰어다니지 않아도 엄정한 법의 처벌이 내려지는 그런 세상이 되길 바란다”
당시 손수 탄원서를 돌리던 김 씨 부모의 애달픈 외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