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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영·김정일회동이후’ 전문가 진단

    ‘정동영·김정일회동이후’ 전문가 진단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 결과를 놓고 한반도 전문가들의 진단이 엇갈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남북 관계 및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전향적인 변화라고 해석하는 낙관적인 시각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므로 성급한 기대를 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신문은 다소 상반되는 진단을 내리는 두 전문가의 기고를 통해 향후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의 앞날을 짚어본다. ■ 이철기 동국대 교수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면담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다. 남북관계에는 일단 청신호가 켜졌다. 다소 소원했던 남북관계를 다시 정상화시키고 남북 당국간의 신뢰감을 김대중 정부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정 장관과 김 위원장간에 합의한 내용 중에는 6·15 공동선언 실천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들도 있다. 장성급회담을 재개해 서해의 평화정착과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고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는 문제들이 논의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서 열릴 8·15 행사에 북한의 비중있는 인사들을 보내기로 한 것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북한측의 특사 파견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고, 광복 60년을 맞는 8·15를 계기로 남북관계는 또 한 차례 질적 발전을 할 수 있는 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은 핵문제에 대해서도 매우 주목되는 발언을 했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며, 한반도 비핵화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힌 대목이다. 이는 북한의 궁극적인 목적이 핵 무장에 있지 않으며 협상을 통해 얼마든지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분명한 입장을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확인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더구나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까지 말한 것은 대미 협상력이 손상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손에 들고 있는 카드의 패를 보여준 것과 같다. 김일성 주석의 유훈은 거역할 수 없는 통치지침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북한이 미국과 협상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이 부시에게 ‘각하’라는 경칭을 사용한 것에서도 간절한 대미협상 의사를 느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북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으나,7월 중에라도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좀더 분명한 입장을 보여주기만 한다면 북한은 6자회담에 곧 복귀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요구는 매우 간단하다. 북한을 협상상대로서 인정하고,6자회담이 대북 압력의 장이 아니라 실질적인 협상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6자회담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문제는 미국이다. 미국은 여전히 딴전을 펴고 있다. 정 장관과 김 위원장의 면담 결과에 대해 미국 정부는 시큰둥한 반응과 폄하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을 시간끌기 정도로 치부하고 있고, 부시 대통령은 탈북자 출신 기자를 백악관으로 초대하면서 딴전을 펴고 있다. 미국의 진심이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지난번 한·미정상회담의 결과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부시의 ‘립 서비스’와 외교적 레토릭에 만족하지 말고, 미국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고 좀더 확실한 다짐을 받아냈어야 했다. 이번 평양 면담으로 남북관계 진전의 계기가 마련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려는 여전히 남는다. 미국이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것을 그대로 놔둘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미국은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남북이 장악하는 것을 원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북간의 급속한 접근에 경계심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미국은 핵문제에 대한 기존 입장을 누그러뜨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북한 핵문제와 남북관계가 안고 있는 딜레마다. 이 딜레마를 푸는 길은 북한이 ‘전략적 결단’을 내리는 것과 남북관계를 미국이 방해할 수 없을 정도로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북한은 남한이 ‘중요한 제안’을 실현할 수 있는 계기와 명분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정 장관과 김 위원장간의 면담과 관련된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들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보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체제보장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미국은 직시해야 한다. 한국 국민들은 점차 북한 핵게임의 진실을 깨달아가고 있다.   ■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동국대 국제관계학 박사▲평화통일시민연대 공동대표▲현 동국대 교수 ■ 박태우 타이완정치大 객좌교수 조간신문들에 대문짝만 한 기사제목들이 1면에 즐비한 시점이다. 북핵이 해결되면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와 함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도 받아들이고 8·15에 금강산서 이산상봉과 화상 상봉도 추진할 것이며, 남북장성급회담을 재개,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 긴장해소 방안을 논의한다는 포괄적 합의를 했다는 기사다. 필자도 민족적인 감정의 소중함과 외세의 개입으로 얼룩진 우리 역사의 비참한 현실을 돌아보면서 민족차원에서 할 수 있는 자주적 역량에 대한 희망적인 기대를 폄하하고픈 마음은 없다. 다만, 한반도의 위기가 단지 몇 시간의 만남에서 합의된 사항으로 인해 모두 해결될 수 있을 것처럼 착시현상이 일어날 위험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북한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그들의 예측을 불허하는 행동과 신뢰성의 문제로 ‘양치기 소년’이 되어 있기에 무슨 말을 하든 국제사회는 그 진의를 믿지 않는 것이 관행화되었다. 같은 민족으로서 우리가 대하는 태도는 국제사회와는 달라야 하는 측면도 있지만, 안보와 직결된 사안에 대한 애매한 태도는 훗날 큰 화근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강화되는 압박 분위기에 상당한 부담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매우 심화되고 있는 식량난으로 주민들의 체제불만이 증가되는 이중고를 풀 묘안을 찾고 있는 상황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고민을 풀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카드가 민족감정에 기반한 정부의 유화적 대북정책일 것이다. 북한이 과거보다는 진전된 입장을 표명하였지만, 기본적 입장을 약간 우호적인 제스처로 포장하고 우리 정부의 대북라인이 민족 공조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한 전략적 접근이라는 인상을 많이 풍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2월10일에 ‘핵 보유 선언’을 공식적으로 한 김정일 정권이 또다시 진부하게 김일성 유언 등을 인용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하는 이중적 태도에서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강화되는 국제 사회의 포위 전술에 대한 대응책으로 미국과의 담판을 성사시키기 위한 수순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16일에 IAEA는 북한의 핵 안전 조치 불이행과 핵무기 보유 선언을 우려하여 모든 핵무기 프로그램이 완전히 폐기되어야 한다는 의장결론을 채택했다.IAEA 이사회는 또 북한의 핵 문제가 NPT 체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면서 북한이 모든 핵무기 프로그램을 ‘신속 투명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완전 폐기하고 IAEA 검증을 가능케 하라고 촉구했다고 언론이 전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점증하는 압력을 의식하고 있는 북한의 지도부는 미국이 북한의 체제와 이념을 존중해야만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기존 입장에서 아무런 진전도 없는 상황이지만, 앉아서 그러한 압력을 감내하기도 버거운 상황일 것이다. 국제정치 구도상 냉정한 힘의 질서 및 외교력의 한계를 알게 된 베트남 사회주의 정권도 결국에는 미국의 현실적인 위상을 인정하고 수교 후에 미국으로부터 경제개발에 최대한 협조를 구하는 노선으로 외교노선의 기본 방침을 대폭 수정한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김정일 정권도 하루라도 빨리 정권의 운명을 걸고 순수한 백성들을 사랑하는 인민 위주의 정치로의 대전환을 위해 과감한 핵 포기 및 개혁·개방노선을 채택해야 한다. 북한 정권이 국제사회로부터 체제보장을 받는 가장 좋은 길이 개혁·개방으로 투명한 국가가 되어서 북한주민들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민주국가가 되는 것임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표면상으로 나타난 알맹이 없는 수사(修辭)성 접근에 대한 위험성을 국민들에게도 잘 알리고 흥분과 근거 없는 낙관론보다는 침착하고 냉정한 분석에 기반한 정책홍보와 대비책 마련을 국민들의 동의를 얻는 방법으로 추진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아마도, 미국 행정부는 이번 김정일 정권의 급작스러운 정동영 장관 면담 및 이 면담을 통해서 밝혀진 북 측의 의도를 접하고서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애매모호한 언질 이외에는 판에 박힌 대남, 대미 유화 제스처를 반복했다는 이상의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 박태우 타이완정치대학 외교학과 객좌교수 ▲영국 헐 대학교 국제정치학 박사▲통상산업부·외교통상부 근무▲현 타이완국립정치대 객좌교수
  • 한·일수교 40주년 특별기획 일본을 다시본다

    서울신문이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새 기획시리즈 ‘일본을 다시 본다.’를 내보냅니다. 특별취재팀의 일본 현지취재와 전문가들의 자문을 토대로 22회에 걸쳐 연재될 이번 기획물은 10년간의 장기불황속에서도 철저한 구조조정과 공공부문 민영화, 나노테크 등 신산업 창출을 통해 실질경쟁력을 높여가나는 일본의 노력을 집중 조명합니다. 독도,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 등 일본 우경화와 ‘힘의 외교’의 실상을 짚고 21세기 진정한 한·일 협력시대를 열기 위한 조건과 미래지향적 지평도 함께 모색합니다.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정치부)·황장석(국제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⑤호찌민의 꿈과 ‘도이머이’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⑤호찌민의 꿈과 ‘도이머이’

    베트남은 이미 외국인들 생각처럼 전쟁의 상흔으로 얼룩진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중국과 함께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베트남정부가 발표한 2005년도 예상 경제성장률은 8.5%다. 지난 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넘어선 다음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해온 베트남이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금년 1월부터 4월까지 베트남은 96억 5000억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2%가 늘어났다.1·4분기 동안 베트남에 유입된 외국자본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늘어난 15억 6000만달러였다. 경제발전에 따른 내수시장의 성장도 두드러진다.1·4분기 베트남의 자동차 내수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가 늘어난 6930대에 달했다. 관광산업 성장도 폭발적이다. 특히 미국 관광객의 숫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가 늘어난 9만 5000명을 기록했다. 총 대신 달러를 들고 돌아온 미국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베트남은 새로운 전선, 수출전선에 무역전사를 대거 투입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베트남은 미국을 2004년도 최대 수출국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베트남은 단순 투자대상국에서 해외 투자국가로 변하고 있다.2억 3000만달러를 해외에 투자한 베트남은 97만달러를 들여 한국에도 농기계부품을 생산하는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2005년 베트남 국가운용계획의 핵심은 8.5%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 국영기업의 구조조정에 맞추어져 있다.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법령을 개정하고 내·외국기업에 통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투자법을 마련 중이다. 2002년 1월 미국과의 무역협정을 발효시킨 베트남은 2006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위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유럽연합(EU)에 이어 일본도 베트남의 WTO 가입에 지지의사를 표했다. 베트남의 변화는 경제분야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4월30일, 항미 승전 30주년을 맞아 베트남 국영TV는 특집 방송의 일환으로 사이공정권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즈엉반민이 생전에 남긴 인터뷰 화면을 내보냈다. 즈엉반민은 2001년 미국에서 죽은 사람이니 그렇겠거니 했던 사람들도 이어지는 인터뷰화면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살아서 활동하고 있는 응우옌까우끼가 국영TV에 등장한 것이다. 응우옌까우끼는 사이공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이미 시장경제가 일상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지만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매우 완고했던 베트남이다. 공산당 일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를 엄연한 국가체제로 삼고 있는 베트남이 종전 30주년을 맞아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또 한 번의 정치적 변화를 예상케 하는 것이다. 지난 뗏(설)에는 20여만명의 재외동포들이 베트남을 방문했다. 여기에는 응우옌까우끼와 열렬한 반공주의 작곡가였던 팜주이 등이 있었는데 이들 다수는 프랑스와 미국의 편에 섰던 사람들이다. “만약 우리가 호찌민사상이 아닌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들은 베트남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올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이공 당 서기장을 지낸 쩐박당은 전쟁 후에 베트남이 비교적 적은 후유증을 앓으며 민족통합을 이루고 도이머이를 통해 경제재건을 이룩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호찌민사상에 있다고 단언했다. “많은 지도자가 있었지만 호찌민만이 베트남의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호찌민의 사상만이 베트남을 다 담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통일은 말입니다, 절대 힘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정신과 문화가 있어야 합니다.” 1975년 개방한 호찌민영묘를 참배한 사람이 지난해 연말 집계로 4000만명에 달한다.1990년 개관한 호찌민박물관을 관람한 관광객의 숫자는 1500만명이다. 지난 한 해 동안 250만명을 불러들인 베트남 관광사업의 성공은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자연이나 기반시설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베트남은 비록 부자나라는 아니지만 자부심을 가진 나라다. 베트남은 그들의 자부심을 문화적 매혹으로 드러내는 데 성공해왔다. 문화는 역사와 정치, 경제, 사회, 무엇보다 인간의 수준과 품격에 관계하는 것이다. 호찌민은 여기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부자는 아니지만 자부심이 있는 나라인 이유를 호찌민박물관 우옌티딘 관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호찌민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호찌민 자체가 문화니까요. 호찌민은 단순히 정치, 사상적인 차원이 아닌 우리의 문화적 차원에서 존재합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어떤 판단을 할 때 생각하게 됩니다.‘호 아저씨였다면 어떻게 했을까.’하고 말이죠.” 호찌민은 죽었지만 그가 추구했던 삶의 양식은 오늘날 베트남 문화의 일부로 수용되어 있다. 베트남인들의 가치판단 과정에서 호찌민의 생애는 어떤 형태로든 관계한다고 우옌티딘 관장은 덧붙였다. “호찌민이 만약 단순히 정치·사상적인 차원에서 존재했다면 이미 잊혀졌을지 모릅니다. 그의 삶은 어떤 정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바쳐진 것이 아니었어요. 인간이 품격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방법으로 정치, 사상을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그것도 독창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호찌민의 그런 면모는 국제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초기부터 나타난다.1924년 6월23일, 제5차 국제공산당대회 제8차회의에서 호찌민은 식민지문제에 무관심한 서구 공산주의자들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서구사회는 공산주의 운동의 요람이기도 했지만 세계에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주의 국가들이기도 했다. “동지들은 식민지 문제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필요하다면 나는 최대한의 기회를 이용해서 이 문제를 제기하고, 반드시 동지들을 각성하게 만들고야 말 것입니다.” 호찌민의 맹렬한 비판은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세계 공산주의 진영의 막강한 지도자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한 무명 아시아청년이 보여준 당돌한 태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도차이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그들은 식민지 문제에 아무런 견해도 없었기에 더욱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프랑스 공산당 총서기장이었던 엠 토레는 훗날, 그 당시 유럽에서 유일하게 식민지문제에 대한 자기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호찌민이었다고 고백했다. 1924년 모스크바에서 독일혁명가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호찌민은 한층 더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인도차이나 사회는 서구와 다르다. 현재 인도차이나의 계급투쟁은 서구처럼 격렬하지 않다. 마르크스는 뛰어난 이론으로 자기 학설을 세운 사람이지만 그 학설은 일정한 역사적 토대 위에서 수립된 것이다. 그런데 그 역사란 어떤 역사인가. 유럽의 역사다. 유럽이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유럽이 인류 전체는 아니다.” 이런 호찌민의 견해는 그가 창당한 베트남공산당에 반영됐다. 그가 직접 기초한 강령과 노선은 레닌 이후 코민테른을 장악한 스탈린이나 그의 정적 트로츠키 어느 쪽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호찌민은 당시 식민지 베트남에서 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제국주의자와 반민족세력을 제외한 모든 계급 및 정파와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호찌민의 대통합노선은 반공주의자들의 폄하처럼 전술적 차원의 ‘술수’가 아닌 확고한 원칙이었다. 호찌민은 많은 혁명가들이 간과하고 있는 통합의 가치와 기능에 대해 깊이 주목했다.1941년,30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온 호찌민이 까오방성의 팍보에서 창건한 반외세 통일전선조직인 베트민. 통합을 지향하는 확고한 원칙 없이 술수적인 차원에서 베트민을 운영하였다면 단일한 항불전선은 결코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단결 단결 대단결, 호찌민은 그 슬로건의 상징이고 증거였다. 단결을 지향하는 호찌민의 지도력은 베트남 통일의 정신적 토대였다. 그러나 소망한다고 해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서로의 운명이 일치한다고 믿을 수 있을 때 단결할 수 있다. 너의 행복이 나의 불행일 때, 나의 행복이 너의 불행일 때 단결은 이루어질 수 없다. 내가 울 때 네가 웃고, 내가 웃을 때 네가 울어야 한다면 절대 뭉칠 수 없다. 그 증거 가운데 하나가 한국보다 50년 전에 호찌민이 벌인 금 모으기 운동이다. 1945년, 호찌민은 독립국가를 출범시켰지만 베트남 경제는 완전히 피폐해 있었다. 프랑스에 이어 베트남을 차지한 일본의 착취는 가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통킹델타와 메콩델타라는 세계의 곡창지대가 있었지만 여기서 나온 쌀과 곡식은 모조리 수탈당했다.1944년에서 1945년까지,1년 남짓한 일본의 통치기간 동안 굶어죽은 베트남인들은 무려 200만명이었다. 그러니 독립을 얻었어도 국고는 텅 비어 있었다. 인민들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었다. 끔찍한 시간은 계속되었고 인민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굶주리며 죽어갔다. 이 참담한 때에 독립정부를 만든 호찌민은 민생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는 두 가지 운동을 궁리해냈다. 금식운동과 금 모으기 운동이다. 일주일에 하루 굶기 운동을 통해 아사자 구제에 나섰고, 호찌민은 그 운동을 제일 앞에서 실천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금 모으기 운동이었다. ‘금 주간’을 선포하고, 가지고 있는 금붙이를 모으자는 호찌민의 호소에 인민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국가재정을 확보하고 굶주리고 있는 동포를 구제하기 위한 이 운동에 각계각층의 인민들이 참여했다. 대를 물려온 반지를 내놓은 농촌의 가난한 부인네, 끼니를 굶으면서도 처분하지 않았던 결혼 패물을 내놓은 중년의 노동자 부부…. 금 기부의 행렬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때 놀랄 만한 기부자들이 나타났다. 참파왕조의 공주 출신인 우옌티템은 황금관과 황금목걸이를 모두 내놓았다. 포쩐짱 왕의 마지막 후예인 우옌티템 공주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으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하노이의 한 부자는 수백 돈이 넘는 금덩어리를 기꺼이 내놓았다. 이때 걷힌 금은 이제 막 출범한 독립정부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재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항불·항미항전의 마지막 시기까지 중요한 밑천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금 모으기 운동의 최대성과는 50년 뒤 한국에서처럼 모아진 금붙이 그 자체가 아니었다.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자는 전국민적 결의와 연대감의 확보,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의 회복이었다. 베트남인민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조국이 목숨을 바쳐서 지킬 가치가 있는 공동체라고 느낄 수 있었다. 호찌민의 지도력은 이러한 통합의 힘을 바탕으로 한 결단과 선택을 통해 발휘되었다.8월혁명 당시 남부베트남혁명위원장을 지낸 쩐반이유는 호찌민의 가장 탁월한 능력을 인내와 결단력으로 꼽았다. “너무 큰 나라와 붙어지내며 세계 최강대국과 싸워야 했던 베트남이 가장 잘하는 일은 우리가 언제 강해져야 하는지, 또 언제 싸워야 하는지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호찌민은 우리가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릴 줄 아는 인내를 가르쳤고, 우리가 싸워야 할 때 주저하지 않는 용기를 심어준 지도자지요.” 변화하는 베트남이 어떻게 호찌민의 정신과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묻는 나에게 남부베트남 혁명의 최고지도자였던 쩐반이유는 이 한마디로 대답했다. “내 안의 불변으로 만변하는 세계에 대응하라(以不變 應萬變).” 이 말은 호찌민이 협상을 위해 프랑스로 떠날 때 후인툭캉에게 주석직 대행을 맡기면서 한 말이었다. 여러 문제점이 뒤따르고 있지만 베트남은 지금 만변하는 세계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호찌민이 지니고 있었던 ‘내 안의 불변’하는 정신을 지키는 데 성공하고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bang80@jowoo.co.kr ●자료 사진을 협조해주신 주한베트남대사관과 베트남통신사(VNA)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애써주신 베트남통신사 부주이흥 서울지국장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사고] ‘일본을 다시본다’ 수교 40주년 기획 새달 연재

    서울신문이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새 기획시리즈 ‘일본을 다시 본다’를 6월 초부터 내보냅니다. 특별취재팀의 일본 현지취재와 자문교수단의 자문을 토대로 밀도있게 짜여질 이번 기획은 10년간의 장기불황속에서도 철저한 구조조정과 신산업 창출을 통해 실질경쟁력을 높인 일본의 노력을 집중 조명하게 됩니다. 아울러 독도문제와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일본의 우경화와 군국주의 움직임 및 ‘힘의 외교’의 실상을 짚어보고 21세기 진정한 한·일 협력시대를 열기 위한 조건과 미래지향적 지평도 함께 모색합니다.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 차장(경제부), 손원천(사진부)·안미현(산업부)·김상연(정치부)·이언탁(사진부)·황장석(국제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협찬 posco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2012 올림픽은 파리서” 유치열기 후끈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2012 올림픽은 파리서” 유치열기 후끈

    |파리 함혜리특파원| 요즘 파리 시내를 다니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상징물이 ‘파리 2012’ 로고다. 파리의 상징 에펠탑을 비롯해 의사당, 파리 시청, 콩코드 다리, 알마 다리 등에는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마크와 파리의 올림픽 유치 후보 도시를 알리는 대형 로고가 밤낮으로 빛을 발한다. 거리의 가로수, 지하철 티켓, 주차카드, 영수증 등에서도 ‘파리 2012’ 로고를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파리는 2012년 올림픽 개최지를 놓고 런던(영국), 뉴욕(미국), 마드리드(스페인), 모스크바(러시아) 등과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2012년 개최지를 결정하는 제 115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7월 6∼11일)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인들은 이번에는 반드시 파리가 개최지로 선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림픽 ‘해트트릭’ 겨냥한 세번째 도전 프랑스 파리는 올림픽 유치전에서 이미 두차례 고배를 마셨다. 지난 1986년 로잔 총회에선 바르셀로나에,2001년 모스크바 총회에선 베이징에 아깝게 패했던 만큼 모든 사람들은 이번만은 ‘꼭’ 승리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만약 파리가 오는 7월 싱가포르에서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면 프랑스는 1900년,1924년 올림픽에 이어 세번째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다. 프랑스가 국가 최대의 사업으로 추진 중인 ‘2012 파리’의 캐치프레이즈는 ‘게임을 향한 열정(L’Amour des Jeux)’이다. 스포츠, 축제, 우정 그리고 나눔을 향한 프랑스인 특유의 열정을 보여주는 표어다.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시장은 “게임을 향한 열정은 프랑스인들의 올림픽 경기에 대한 특유의 깊은 사랑을 반영한다. 올림픽은 경쟁, 스포츠맨십, 그리고 윤리적 가치의 최고 구현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올림픽 개최를 위한 최적지” 자신 파리시는 매년 44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국제적 관광도시인데다 올림픽 개최를 위한 시설의 95%가 이미 완공돼 있어 올림픽 개최를 위한 최적지라고 자신한다. 파리 북부 생드니에 있는 스타드 드 프랑스, 서부의 파르크 데 프렝스, 롤랑 가로스 경기장 등 대부분의 대형 경기장은 이미 지어져 있으며 전 관람인구의 65%를 수용하게 된다. 새로 건설될 수영장, 사이클 경기장, 사격 경기장, 슈퍼 돔은 파리지역 주민들을 위한 체육시설로 남게 된다. 파리시는 시 북부 17구의 바티뇰 지역에 45㏊에 이르는 선수촌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1993년 이래 개발된 도심공원을 끼고 있어 10㏊의 녹지 공원을 포함하는 이 지역에 1만 500여명의 선수를 포함한 1만 7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 들어선다. 북부와 서부에 위치한 두개의 주요 경기장 구역으로부터 10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한 선수촌 지역은 환경보전과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개념을 도입해 건설된다. 올림픽 이후에는 파리시민을 위한 주거·상업시설과 여가를 위한 장소로 전환될 예정이다. 선수촌이 들어설 바티뇰에는 전시관을 갖춘 높이 75m의 파리올림픽 상징 조형물이 설치돼 하루 300명 이상의 관람객을 맞고 있다. 바티뇰에 있는 2012 파리올림픽 상징조형물을 찾은 주민 필립은 “가장 아름다운 스포츠 제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서 열리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퓌토에서 왔다는 마리 프랑스는 “2012년 올림픽 개최지가 결정되는 날이 마침 결혼기념일과 겹친다.”며 “파리가 반드시 개최지로 선정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정부와 기업 똘똘 뭉쳐 유치 총력전 2012 파리올림픽위원회는 파리시와 프랑스 정부, 일드프랑스 지역(광역 파리), 프랑스국가올림픽위원회를 주축으로 설립된 이익단체.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아래 장 프랑수아 라무르 청소년·체육부 장관, 앙리 세랑두 프랑스 국가올림픽위원회(NOC) 회장, 장 폴 위종 일드프랑스 지역의회 대표, 베르트랑 랑뒤레 일드프랑스지역 지사, 장 클로드 킬리 IOC위원, 축구스타 지네딘 지단 등이 유치를 지지하고 있다. 기업들의 참가 열기도 대단하다. 프랑스 재계는 ‘파리 2012 기업모임’을 결성,2012 파리올림픽위원회를 후원하고 있다. 파리올림픽 기업모임은 아코르, 에어버스, 에어프랑스, 카르푸,EDF, 프랑스 텔레콤, 르노, 르 갸르데르 등 가장 성공적인 프랑스 기업 가운데 17개의 세계적인 기업들로 구성돼 있다. 전세계 250만명의 직원들을 포함하고 있는 이들 기업들을 주축으로 산업 전반에 걸쳐 중소기업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파리 올림픽 유치에 아낌없는 지지와 후원을 이끌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파리 2012 기업모임 대표인 르 갸르데르의 아르노 르 갸르데르 회장은 “프랑스 재계는 파리시의 올림픽 유치를 돕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같은 지지 활동이 2012 파리올림픽 위원회의 올림픽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끌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파리올림픽 유치 성공을 위한 프랑스인들의 열망은 뜨겁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85%(25세 미만은 96%)가 파리 올림픽 개최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림픽 유치로 경제 활성화 전망 이같은 지지는 파리가 2012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할 경우 프랑스 전역에 걸쳐 미치게 될 경제·사회적 영향을 간접적으로 설명한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은 파리가 올림픽을 유치할 경우 약 4만 2000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며 350억 유로에 이르는 추가 수입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게다가 2012년 이후 프랑스 전국에 걸쳐 400만명의 신규 스포츠업 종사자가 생기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림픽유치위원회도 올림픽 개최 전후로 10만여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올림픽 개최가 미래지향적인 도시 발전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장 피에르 카페 파리시 도시개발 담당 부시장은 “올림픽 선수촌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가장 엄격한 기준을 도입, 도시재개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21세기 파리가 갖게 될 대표적인 건축 유산물이 될 것이며, 바티뇰 지역의 재건과 경제활성화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크리스티앙 소테 파리시 경제발전담당 부시장은 “올림픽 개최를 통한 경제·사회적 이익이 엄청난 반면 파리시민의 추가 부담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파리시는 올림픽 개최에 총 42억유로가 투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22억유로는 기업이 부담하고,20억 유로는 민간·공공 합작기금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lotus@seoul.co.kr ■ 올림픽유치위원장 필립 보디옹 |파리 함혜리특파원| “파리 올림픽 유치를 위해 온 국민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같은 힘의 집결은 파리와 파리 근교 도시의 개발계획에 힘을 실어 줄 뿐 아니라 세대간·문화간 격차를 줄임으로써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2012 파리 올림픽위원회의 핵심 조직인 올림픽유치위원회 필립 보디옹 (50) 위원장은 “파리에서 1890년 열린 만국박람회가 에펠탑과 트로카데로 광장,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건설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올림픽은 도시 재건이라는 과제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게 도와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올림픽 개최를 위한 관광 및 스포츠 인프라 건설, 건설경기 활성화 등을 통해 올림픽 개최이전에 6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올림픽 이후에도 7년간 4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며 이같은 경기 활성화는 경제난에 따른 각종 사회갈등을 봉합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개최지로서 파리의 강점에 대해 보디옹 대표는 ▲국민 모두가 열정적으로 올림픽 개최를 희망하고 있고 ▲올림픽 개최 계획이 매우 효율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높으며 ▲올림픽 개최 이후에도 물리적·정신적 유산을 통해 올림픽 정신을 효과적으로 계승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꼽았다. 특히 모든 경기장과 선수촌이 10분 안에 연결되는 이동의 용이성과 선수들의 안전 등은 지난 3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평가단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IOC평가단 실사기간 중 노동계의 총파업 단행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큰 영향은 없었다.”며 “노동계도 프랑스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해결에 올림픽 유치가 결정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라는데 공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디옹 위원장은 프랑스 국립행정대학원 ENA 출신으로 외무부, 총리실 산하 외교자문단, 대통령 기술고문단 등을 거쳤으며 외무부 재직시절인 1987년에는 ‘1992 올림픽유치위원회’의 사무장으로 활동했다. “개최도시 선정에 확신한다.”는 그는 “2012 파리올림픽은 파리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역동적이고, 매력적이며, 영감을 주는 21세기의 도시로 재탄생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野 “친미·반미 이분법적 사고”

    동북아균형자론과 노무현 대통령의 ’국내 친미주의자’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와 국방위는 18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이종석 NSC(국가안정보장회의) 사무차장을 각각 출석시켜 동북아균형자론 등 현 정부 외교정책의 허점을 따졌다. 특히 야당은 노 대통령의 ‘친미주의자’ 발언을 “친미·반미의 이분법적인 사고”라며 강력 비난했다. 여야는 북한인권 문제를 놓고도 시각차를 보였다. ●균형자론 및 친미주의자 발언 야당 의원들은 능력과 효과에 대해 다시 의문을 제기했다. 국방위 소속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인기영합적 외교를 경계하면서 “차리리 ‘탈미친중(脫美親中)’이 더 솔직한 게 아니냐.”고 추궁했다. 송영선 의원도 갈등조정 능력을 강조했고, 통외통위 박계동 의원은 “자기 힘의 과대 평가로 보인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국방위 소속 열린우리당 박찬석 의원은 “균형자론은 누구의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 번영을 위한 것”이라면서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균형자론의 근본 취지”라고 정부를 거들었다. 통외통위 김원웅 의원은 “야당도 큰 차원에서 뜻을 모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방위에선 노 대통령의 ‘친미주의자’ 발언을 놓고 한나라당은 건전한 비판을 친미주의라고 했다면서 발끈했고, 열린우리당은 굳건한 외교정책 수립을 당부했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국가 미래를 위해 건전한 비판을 하는 사람을 친미주의라고 한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면서 “친미·반미의 단세포적인 이분법으로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은 “한·미 동맹에 금이 가도록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며 “극우파나 지나치게 친미적인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도 굳건하게 외교안보 정책을 수립해달라.”고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국방위에선 NSC의 위상과 관련해서 야당의 파상 공세가 이어졌다. 한나라당은 NSC가 자문기구임에도 불구하고 ‘대일 독트린’을 공표하는 등 국가 외교·안보정책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것은 ‘월권’이라고 주장했다. 권경석 의원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NSC 상임위원장 자격으로 ‘대일 독트린’을 발표한 것과 관련,“자문기관의 상임위원장이 어떻게 대외정책을 발표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반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야당의 주장을 ‘정치공세’라고 일축했다. 안영근 임종인 의원 등은 “(작계 5029는) NSC가 대처를 잘했다.” 등의 발언으로 NSC를 옹호했다. ●북한 처형 동영상 공개 통외통위에서는 북한의 공개처형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상영됐다.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은 지난달 북한 함경북도 회령에서 진행된 공개처형 장면을 ‘몰래카메라’ 형태로 찍은 동영상을 10여분간 상영했다. 그는 “판사가 사형을 선고하면 항소권한 없이 즉시 형이 집행된다.”고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폭로했다. 상영 전 열린우리당이 남북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이유로 비공개를 요구해 한동안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공개 처형과 관련,“야만적 행동에 통일부가 그냥 넘어간 것은 유감”이라며 정부를 비난했다. 박준석 김준석기자 pjs@seoul.co.kr
  • 동북아 균형자론 그 이상과 현실은

    동북아 균형자론 그 이상과 현실은

    지난달 22일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자임한 이후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동북아 균형자론은 한 마디로 ‘강대국들끼리의 힘 겨루기를 수수방관하다가는 옛날처럼 고스란히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우리가 능동적으로 평화 조정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정의해도 무리가 없다. 이를 놓고 정치권과 학계 등에서는 “항구적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옹호에서부터 “국가안보를 담보로 한 과대망상적 모험”이라는 비판까지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를 감안한 듯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이 14일 열린우리당의 정책간담회에 참석해 당정간 조율에 나서기도 했다. 동북아 균형자론을 둘러싼 양측 주장의 허실을 비교·분석해 본다. ■ 해법과 반론 동북아 균형자론을 취재하면서 기자는 얼마간 약소국의 비애를 체감해야 했다. 균형자론을 둘러싼 격렬한 찬반 논쟁은,‘세계 초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하면 절멸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고 하는 명제가 여전히 미완의 과제임을 웅변한다. 무섭게 국력을 키워가는 중국,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 세계 초강국 미국, 여기에 핵 보유를 선언한 북한까지, 지금 동북아의 긴장지수는 상승 일로에 있다. 동북아 균형자론은 이처럼 위태로운 지정학적 현황에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지론이 화학결합을 하면서 돌출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동북아 균형자론은 99% 노 대통령의 구상으로서 대통령후보 시절부터의 지론”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발상과 현실성은 별개 문제다. 낙관과 우려를 면밀히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평화애호도 국력… 힘이 전부 아니다” 비판이 제일 먼저 쏠리는 부분은 과연 한국이 세력 균형자 역할을 할 힘이 있느냐는 것이다. 예컨대 미·일 군사축이 중·러 축과 갈등을 빚을 때 가운데서 조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과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비롯한 정부측 인사들은 ‘세력 균형자’가 아니라 ‘인식과 가치의 균형자’ 역할을 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한다.19세기의 영국처럼 국방력에 의존한 균형자가 아니라, 경제력과 문화수준, 그리고 역사상 주변국을 침략하지 않은 평화 애호국이라는 명분 등 신개념의 연성국력(soft power)으로 균형자 역을 하겠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비판자들은 다시 “가치와 인식의 균형자라는 말은 비현실적인 허언”이라고 공박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럼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 등의 충돌 가능성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기존 구도에만 안주하자는 것이냐. 대안이 무엇이냐.”는 반론에는 딱히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한미일 협력 훼손땐 국제적 고립 우려” 논쟁은 균형자론이 한·미 동맹을 훼손할 것인지 여부로 이어진다. 비판자들은 “균형자론은 결국 한·미·일 3각 안보협력 체계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의미하며, 결정적인 안보 위기상황에서 자칫 어느 쪽으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고립을 자초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이에 정부측은 “균형자론은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CSCE(유럽안보협력회의)와 같은 다자간 안보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다자간 안보체계를 지향한다면서 한·미 동맹의 강도는 불변할 것이란 주장은 궤변이란 비판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균형자론의 측면에서는, 한·미 동맹이 전보다 느슨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인정했다. 논쟁은 균형자론이 결국 국익에 해가 될 것인지 여부로 귀착된다. 정부측은 “국가간 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현실에서 이런 문제로 미국이 한국에 불이익을 줄 것처럼 지적하는 것은 과민반응”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미군이 절대 안떠날 것”이라는 냉전시대식 낙관은 국가적 재난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북핵 교착땐 장기표류 가능성 균형자론은 궁극적으로 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연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에는 동북아 각국 정상이 직접 만나 회담하는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단기적 상황은 열악하다. 무엇보다 북핵 문제가 1년 가까이 교착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북핵 문제 때문에 균형자론이 한발짝도 못나가고 있다.”며 “북한이 안 나오니 중국도 머뭇거리고, 러시아도 소극적”이라고 했다. 게다가 최근엔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까지 겹쳐 상황이 악화일로다. 때문에 균형자론이 결국 노 대통령 임기 중에 별다른 실효를 내지 못하고 장기 표류하는 최악의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문정인 동북아위원장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은 14일 열린우리당 정책간담회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해 “동북아 지역의 협력과 통합을 위한 촉진자”라고 규정했다. 궁극적 목표는 주변국과의 신뢰를 통해 동북아지역의 ‘다자간 안보체제 구축’을 모색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문 위원장은 “한국의 균형자 역할이란 19세기 세력균형을 통해 유럽의 패권을 추구했던 전통적 의미의 균형자론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오히려 ‘평화를 위한’ 균형자론을 강조했다. 여기에는 한국이 당시 영국과 같이 동북아 세력균형을 위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국력도 없고 세력균형을 주도하거나 우위를 점하려는 목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힘의 균형’이 아니라 정책의 목표를 ‘평화’에 둔 외교”라는 것이 문 위원장의 부연설명이다. 문 위원장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밝힌 ‘동북아 균형자론’이 진화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즉 ▲한·미동맹과 안보협력 강화를 통한 ‘동북아 세력 균형자’에서,▲동북아의 갈등이 재현되지 않도록 ‘협력과 평화를 만드는 균형자’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선도적’인 역할이 강조되는 한편 동북아 국가들과의 ‘사전 협력관계’가 중요해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구상의 배경에는 ‘중국 부상론’을 중심으로 대립과 반목이 강해지는 동북아 질서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는 것이 문 위원장의 판단이다. 문 위원장은 “현재 중국의 팽창을 세력전의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제,“패권국가의 신장속도가 원만해지고 도전국가가 패권국가의 꼬리를 밟는 접점에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동북아 지역의 전략적 불안정 구조를 우려했다. 다음은 일본과 중국의 불안한 관계를 지목했다.“일본이 미국의 힘에 편승하면서 군사력을 증강하고 미국도 전향적으로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을 지원하는 등 구조적인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다.”고 걱정했다. 때문에 동북아 지역의 불안정 구조를 최소화하는 것이 국가 이익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동북아 균형자론’은 불가피하다고 거듭 역설했다. 구혜영 김준석기자 koohy@seoul.co.kr ■ 한·미군사동맹 이상기류 없나 한·미 군사동맹의 ‘이상 기류’로 비춰칠 만한 민감한 문제들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주한미군의 한국인 군무원 감축, 한·중 군사외교 강화, 전시예비물자(WR SA) 프로그램 폐지, 자이툰 부대원 감축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정부는 한·미동맹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며 펄쩍 뛴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제2차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국방부 안광찬 정책실장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의 한·미간 군사현안들은 각각의 문제일 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이툰부대원 270명 감축 문제의 경우 우리가 이라크주둔 미군측에 통보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한반도 배치 WRSA 프로그램 폐지도 2000년부터 논의돼 온 사안이다. 국방부가 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이 협상력 제고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 안에는 일부 언론이 한·미 관계를 의도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국방부 신현돈 공보관은 최근 WRSA 관련 내용을 정부가 은폐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이례적으로 ‘안보 상업주의’라는 다소 자극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입장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사안들이 양국간 알력의 산물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실제 정부 안에도 균형자론을 다소 불안하게 보는 이들도 없지 않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최근 군 수뇌부 이·취임식 연설에서 “한국이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는 데 군이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했지만, 이번에 군문을 떠난 한 수뇌부는 “글쎄, 큰 실수는 없어야 할텐데…걱정이 된다.”며 균형자론에 대해 우려를 보였다. 국가 안보의 최후 보루인 군의 경우 아직도 균형자론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셈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시론] 동아시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삼성 한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론] 동아시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삼성 한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의 균형자 역할론은 한국이 미국과 헤어져 중국을 짝사랑하는 얘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곡이다. 균형자를 하겠다는 것은 특정한 한 외세와의 짝사랑에 우리 미래를 걸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떤 세력을 버리고 다른 세력을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논리를 떠나 모두와의 공존을 위해 필요한 자율적 비전을 갖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힘이 없어 균형자 역할은 턱도 없다는 냉소도 근거없다. 국제정치학이론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한가지가 아닌 적어도 세가지 종류의 균형역할 개념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강대국들이 서로간의 견제와 균형을 이룩하는 것으로서, 둘 이상의 강대국 관계 자체에 내재하는 생리를 가리킨다. 두번째는 한 나라에 의한 일방적 지배를 견제하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들이 연합을 통해 최강국을 견제하는 경우다. 세번째의 균형개념은 두 강대국이나 진영이 각축하고 있을 때, 제3의 국가가 지정학적 중간자로서 상대적 약자에게 힘을 보탬으로써 두 진영간의 힘의 배분에 의미있는 영향을 끼치는 경우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환경에서 우리에게 적실한 개념은 세번째 경우다. 우리가 한반도 주변 4강에 준하는 역할을 하기는 물론 어렵다. 그러나 중국대륙의 동해안선을 사이에 두고 형성되어 있는 동아시아 대 분단체제의 지정학적 중간에 위치한 존재로서 한반도는 어느 한편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에 더 위협적인 세력이나 그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우리에게 덜 위협적인 상대적 약자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은 갖고 있다. 이마저도 부정하는 것은 자기비하를 넘어 자학적인 논리다. 모겐소와 왈츠 같은 이들의 권력균형론에 의하더라도, 강대국 관계가 내포한 균형의 논리는 안정이 아닌 불안정으로 통할 수 있다. 패권자는 권력남용과 예방적 군사주의를 통해서, 그리고 도전국가는 기존질서에 도전하는 행태로 인하여 안정자가 아니라 불안정자로 기능하게 된다. 강대국의 균형이란 말하자면 권력투쟁이며, 심오한 불안정화의 속성을 갖는다. 이와 달리 권력투쟁의 논리에서 자유로운 지정학적 중간자로서 그들의 권력투쟁을 완충시키려고 노력하겠다는 한국의 균형자론은 분명 유의미하다. 그것은 결코 과대망상이 아니다. 한국의 균형자 개념이 한·미동맹과 모순된다는 주장도 잘못이다. 한반도 안보에는 불변하는 실존적 명제가 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의 갈등심화는 우리에게 치명적이며, 이를 완충시키면서 그 두 세력과 다같이 평화적 공존을 모색하는 지혜가 우리의 생존번영 전략의 중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이 중간자로서 처해있는 지정학적 취약성을 보완하기보다는 그것을 심화시킬 때, 한·미동맹의 존재론적 근거는 희석된다. 한국이 충실한 하위파트너로 행동하는 것이 미국이 바라는 최대치이겠지만, 그것을 충족시킬 수 없다고 해서 미국이 한·미동맹을 파기하지는 않는다. 한반도가 중국에 대한 일방적 동맹으로 기울지 않게 예방하는 효과만으로도 한·미동맹은 미국에 의미있다. 장차 군사대국화를 실현한 일본이 미·일동맹체제에서 자율성을 높여갈 때, 미국의 일본관은 착잡해질 것이다. 그 역시 미국에 한반도가 갖는 의미를 더할 수 있다. 부단히 변모하는 동아시아 역학관계 속에서 수십년 후의 미래에까지도 어느 한나라가 한국안보를 책임질 수 있다는 기대에 기초한 안보전략이야말로 무책임하고 위험하다. 단기적으로도 우리가 균형 자세를 갖지 않고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유리한 주변정세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균형외교를 통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은 한국의 균형자적 역할의 더 발전된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이삼성 한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광기의 외교’ 에 국제 고립…日 뒤늦게 ‘허둥’

    |도쿄 이춘규특파원|미국과 밀착, 한동안 국제무대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일본외교가 역사교과서 왜곡파동과 주변국과의 영유권 분쟁 등을 계기로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패전 60주년을 맞아 ‘힘의 외교’를 강화한 것이 “능력을 과신, 국제현실을 도외시했다.”는 반성론마저 나온다. 일본측은 중국의 반일시위 격화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지방에서 시작된 반일시위가 9일 수도 베이징으로 옮겨온데다 일본대사관 일부 기물파손 사태까지 발생하자 기업활동 타격 등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10일에도 광저우(廣州)·선전 등지에서 반일시위가 열려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마치무라 노부타카 일본 외상은 10일 왕이(王毅) 주일 중국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대규모 반일시위는 ‘극히 유감’이라는 뜻을 전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양국의 관계개선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분위기다.17일 베이징에서 열릴 중ㆍ일 외무장관 회담을 관계회복의 실마리로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정치권도 중국·한국과의 외교갈등 해소에 본격 나서는 기류다. 자민당 다케베, 공명당 후유시바 간사장 등 연립여당 간사장들이 이달말 중국과 한국을 연쇄방문, 관계개선을 추진할 예정이다. 한·일의원연맹 일본측 회장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도 이달말쯤 방한, 냉각된 한·일관계 개선을 모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8일자에서 동아시아가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본이 왜곡 역사교과서 승인을 중단하고 일제 점령 피해자들에게 더 많은 배상을 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한국과 중국은 물론 러시아에 이어 믿었던 미국까지도 ‘관련국간 합의’를 강조하며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위 진출 노력에 찬물을 끼얹자 일본 외교관계자들은 “미국과의 비공식대화에서 들은 얘기”라고 애써 평가절하하면서도 허둥대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미국측이 어떠한 사전 통보도 없었다는 점을 당혹해하고 있다. 이러다간 일본의 상임위 진출은 물건너 가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아울러 미국이 9일 중국과 차관급협의를 정기 개최키로 합의했다고 발표하자 미국이 일본 중시의 동아시아 외교정책을 수정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taein@seoul.co.kr
  • 브레이크 고장난 일본…우경화 누가 이끄나

    |도쿄 이춘규특파원|현직 각료가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망언하고, 전직 총리가 ‘일왕은 국민통합의 중심’이라고 말하는 등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경화를 이끄는 일본판 ‘네오콘’의 추동세력은 누구인가. 정부와 집권 자민당에 골고루 포진해 있는 ‘전후세대’가 주축이라는 데 별 이견은 없다. 무엇보다 우경화에 제동을 걸었던 사민당 등 혁신세력이 중의원·참의원 선거에서 잇달아 참패하며 지금 일본은 브레이크 없는 페달과 같은 상태다. ●고이즈미 내각, 네오콘 전방위 포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2001년 4월 취임 이래 매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 한국·중국 등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킨 핵심 인물이다. 지난해에는 러시아와 영토분쟁 중인 북방 4개섬을 직접 시찰, 분쟁을 선도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집권 4년간 몇차례 개각을 단행하면서 강경보수 매파인 ‘네오콘’을 내각과 정당에 전방위로 배치했다. 내각 서열 1위 총무상인 아소 다로는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던 것”이라는 등 망언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우익단체인 ‘일본회의 국회의원간담회’ 회장도 맡고 있다. 내각 서열 3위 마치무라 노부다카 외상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두둔했다.2001년 후쇼사 교과서가 처음으로 검정을 통과할 때 문부과학상이었다. 마치무라 외상은 올 초 직업외교관 최고위직인 외무성 사무차관에 대북 강경파인 야치 쇼타로 전 관방부 장관보를 기용, 외교실무라인의 보수색채를 강화했다. 이들 강경라인이 최근의 ‘실력외교’를 실무적으로 이끌고 있다. 일본 교육을 총괄하는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은 ‘일본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모임’ 대표 출신으로 취임 후 “역사교과서에 군대위안부나 강제연행이란 말이 줄어 다행”이라는 망언을 했다. 급기야는 29일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망언을 퍼부었다. 산업정책을 맡은 나카가와 쇼이치 경제산업상은 “종군위안부에는 강제성이 없었다.” “반일적 교과서에서 배우는 어린이들이 맡을 차세대는 괜찮은가.”라는 망언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네오콘의 총본산 자민당 당직자 자민당은 네오콘들의 본거지이다. 차기 총리후보 1순위로 지목되는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는 ‘북한 때리기’를 통해 성장한 인물이다. 강경 네오콘의 주축이다.“자위대는 군대다. 누가 총리가 되든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야 한다.”고 호언하고 있다. 다케베 쓰토무 간사장은 “일본은 천황의 나라”라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30∼40대의 ‘젊은 우파의원’들은 전범국의 책임을 철저히 외면하면서 신사참배 강행 등 일본사회의 우경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들 당정의 핵심세력은 대부분 전범국으로서의 부채의식이 없는 ‘전후세대’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A급 전범 용의로 투옥까지 됐던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인 아베 간사장 대리, 아소 총무상, 나카가와 경제산업상 등 2∼3세 정치인들은 “선조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힘의 일본 외교’를 지향하고 있다고 외교소식통들은 분석했다. 아울러 고도성장기에 자라면서 ‘일본이 최고’라는 의식이 강해 경제력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도 아시아 일원이 아닌, 즉 140여년만에 다시 탈아(脫亞)를 외치며 ‘세계의 강국 일본’을 꿈꾸고 있다. ●뒤에서 미는 우익본류, 전전세대 한·일의원연맹 일본측 회장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자민당의 신헌법기초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우경화의 상징인 개헌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모리 전 총리는 총리 때인 지난 2000년 9월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다케시마(독도)는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서도, 국제법상으로도 명확하게 우리나라의 고유 영토”라고 망언해 물의를 빚었었다.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직접적인 표현으로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입장을 밝힌 인물이다. 그는 아울러 고이즈미 총리의 친위부대 역할을 하는 강경 우파 ‘모리파’의 수장이다. 자민당 신헌법조사위원회의 전문분야 소위원장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는 “천황은 국가원수”,“일본도 이제 보통국가가 될 때가 됐다.”,“방위군 보유” 등의 발언으로 전후세대들을 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taein@seoul.co.kr
  • 日 ‘전방위 외교전쟁’ 왜?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이 패전 60주년을 맞아 한국과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주변국은 물론 미국과 EU(유럽연합) 등 주요국들과 ‘전방위 외교마찰’을 빚고 있다. 사안마다 심각한 내용이다. 따라서 무차별적인 외교갈등이 지속되면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일본이 국제무대에서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이 왜 이처럼 ‘고립외교’를 각오하면서 강력한 힘의 외교, 실력외교를 밀어붙이는 것일까. 패전 후 지금까지 “참을 만큼 참았다.”는 국민정서가 깔려 있다는 게 중론이다. ●대중국 무기금수 해제 EU와도 대립 고이즈미 총리는 27일 중국에 무기수출을 재개하려는 EU 움직임에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일본을 방문 중인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의 회담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다. 시라크 대통령은 널리 알려진 지일파여서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미국과는 미국산 쇠고기수입의 재개 여부로 미국의 무역보복설이 심상찮다. 주일미군 재배치를 둘러싼 일본측의 언론플레이도 미측을 자극하고 있다고 도쿄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일본 정부고위관계자가 미국의 각종 이전협상 제안내용을 언론에 흘려, 해당 지자체나 시민단체가 반발하도록 유도해 주일미군 재배치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양국 정상의 상호방문이 3년반 동안 중단된데다 동중국해 가스전과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영유권 등을 둘러싼 분쟁이 한창이다. 최근에는 중국의 반일감정이 격해지면서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 서명운동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러시아와는 북방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ㆍ러시아명 쿠릴열도)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일본방문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북한과는 납치피해자 요코다 메구미씨 유골의 가짜 논란 등으로 관계가 지극히 냉각된 상태다. ●2차대전 전의 옛 영광을 꿈꾸는가 고위 외교소식통은 일본의 이같은 전방위적 ‘외교전쟁’에 대해 “2차대전 패전 후 미국의 필요에 의해 일왕제를 존속시킨 것이 뿌리”라면서 “일왕을 중심으로 단결,2차대전 전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의지가 패전 60주년을 맞아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시대변화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일본사회의 주역은 전후세대다. 전쟁의 참상과 책임을 모르는 이들은 “다른 나라처럼 할 말도 하고, 군대 보유도 하면서 보통국가가 되어야 한다.”며 경제대국에 맞는 대접을 원한다. 아베 신조 자민단 간사장 대리가 대표적 인물이다. 또 90년대 초반부터 경제거품이 꺼지면서 자존심이 구겨지자 ‘외교갈등을 감내하더라도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올인하는’ 전략을 택했다는 분석도 있다. 언론들도 이러한 갈등 국면에서 무조건적으로 일본 정부편을 드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28일자에서 한국 중학교의 국사교과서가 독도관련 기술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도쿄신문은 사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대일비판 담화에 대해 “사실 오인도 있다.”고 주장했다. taein@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3)세계지도서 사라진 이름 ‘동해’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3)세계지도서 사라진 이름 ‘동해’

    세계지도의 90% 이상이 동해(East Sea) 대신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하고 있다.‘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를 불러왔는데 동해가 아니라 일본해란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지금 한국의 관심은 온통 독도로만 쏠려있을 뿐, 정작 동해에 관해서는 독도에 쏟는 관심의 1할도 주지 않는다. 이런 작금의 상황을 냉철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20세기 이전의 대다수 외국지도는 ‘동해’‘한국해’‘조선해’‘오리엔탈해’ 등으로 표기했다. 문제는 1929년에 발간된 국제수로기구(IHO: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의 ‘해양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에 일본해로 등재되면서 발생했다. 몇십 쪽에 불과한 얇은 책자가 동해의 운명을 바꿔버린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졌을까. ●세계지도 90%이상 일본해 표기 국제수로기구는 국제간 수로 부문 협력체제를 모색하고, 수로 관계자료의 국제적 조정을 수행하는 기구. 바다 지명에 관한 건도 수로기구 관할이다.1921년 설립된 이래 74개국이 가입해 있으며 한국은 1957년, 북한은 1987년에 가입했다.‘해양의 경계’는 세계 해양지명의 표준화 교본으로 지명에 관한 한 ‘바이블’과 같다. 이 책에 기초하여 세계 각국이 자체 해도를 만들고, 더 나아가서 관광지도·특수지도 등 2차 지도들을 만들어 낸다. 이 영향력은 교과서는 물론 신문·방송에까지 확대된다.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 뜻과 무관하게 여기에 ‘일본해’로 등재됐고, 그 명칭이 전 세계에 유포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 전에도 16세기 이래 일본을 찾은 서구인들에 의해 일본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만 한국해, 동해 등과 혼용됐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쓰는 일본해 명칭은 국제기구의 공인을 받아 이전과는 격이 다른 차원에서 사용되고 있다. 식민지의 또 다른 아픔이다. 일제는 물리적인 영토 탈취에 머물지 않고 지명에까지 제국주의의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한반도 곳곳에서 창씨개명이 자행돼 마을, 도읍, 거리 이름이 모조리 바뀌어 오늘날까지 잔재를 남기고 있으니 일본해의 세계화도 제국주의 음험한 유산에 다름 아니다. ‘해양의 경계’는 1929년에 초판이 나온 이래 3판이 1953년, 그리고 거의 반백년 만인 2007년에 개정판이 나올 예정이다. 문제는 3판까지 전부 일본해로 명기되어 있다는 점. 주권을 강점한 일본이 제국의 힘으로 이를 관철시켰으며,1953년 한국전쟁의 와중에 3판을 밀어붙였다. 제국주의가 힘으로 관철시킨 명백한 과오이다. 당시 세계수로국을 지배하던 영국, 러시아,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열강의 입김이 책자 곳곳에 강하게 배어 있다. 문제는 냉엄한 국제법의 현실이다. 한국인이 한반도에서 수천년간 동해로 불러왔다고 아무리 증거물을 내밀어도 제국주의적 패권에 의해 형성되어 오늘에 이른 국제적 힘의 질서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2007년 개정판 동해 부분 ‘공란’ 고구려 호태왕 비문에 동해가 분명히 적시되어 있으니, 이것만 해도 서기 414년의 일이며, 삼국사기에는 이미 BC 37년에 동해가 등장한다. 우리 옛 지도나 외국인이 그린 옛 지도에 등장하는 무수한 증거들, 그리고 풍부한 서지학적 증거들이 속속 제시되고 있으나 현실은 여전히 1929년의 표준화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제 아비를 아비라 못 부르는’ 현실이 바로 국제 해양질서다. 우리끼리야 영구히 동해로 부를 것이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일본해가 공용화되다시피 하고 있으니 ‘식민의 바다’는 아직도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통상적인 한국인들의 정서와 국제질서 사이에는 극대한 간극이 존재한다. 아직도 바다는 제1세계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동해 표기는 1965년의 한·일어업협정에서도 문제가 됐다. 한국측에서 ‘수준 낮은’ 협상단이 파견됐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을 빚은 끝에 각자 명칭으로 쓰기로 합의하였다. 이때에도 동해표기는 합의를 보지 못한 어정쩡한 단계로 남아 지금의 분란을 예고했다. 한국 정부는 1992년에 동해 영문표기를 ‘East Sea’로 결정하고, 국제사회에 대해 단일명칭으로 합의할 때까지 ‘동해/일본해’의 병기를 요구하고, 그 해 유엔지명표준회의 및 97년 제15차 IHO총회에서 동해 표기문제를 공식 제기했다. 2007년판 ‘해양의 경계’ 를 준비하면서 2002년에 초판본을 회람시켰는데 한·일간에 이견이 팽팽하자 동해 부분은 아예 백지인쇄를 했다. 즉, 국제법상 동해 표기문제는 아직도 미완의 장인 셈이다. 우리의 입장은 당연히 동해 단독 표기이다. 그러나 국제기구에서는 양국간에 논란이 있는 지명에 관해서는 병기를 권장한다. 가령 영국명으로만 표기되다가 프랑스에서 논란을 제기한 영국해협(English Channel)을 ‘La Manche’로 병기하여 해결한 사례도 있다. 동해 단독표기가 정답임은 분명하지만 지명 분규에 관한 양국의 협의가 이루어지기까지 잠정적으로 ‘동해/일본해’ 병기를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일본이다. 일본은 강력하고 체계적으로 ‘일본해’를 전 세계에 강요하고 있다. 병기는커녕 오로지 일본해 단독표기만을 고수한다. 독도의 예에서 보이는 염치 없고, 전례도 없는 후안무치한 밀어붙이기를 동해 명칭에서도 자행하는 중이다. 일본학 석학으로 지난해 영면한 아미노 요시히코(網野善彦) 같은 이도 ‘일본’이라는 명칭 자체가 가상의 전제로부터 출발했음을 비판하면서, 일본해 따위의 명칭이 성립할 수 없음을 역설하지 않았던가. 일본해 명칭은 마테오 리치가 1602년에 제작한 세계지도 ‘Mappamondo’에 처음 등장한다. 한국인들이 동일 해역을 동해라 부른 지 1600년 후에야 사용한 이름이다. 세계 지리학계에서는 ‘역사성과 대표성’을 지명 결정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럼에도 일본은 2000년 이상을 사용해 온 동해를 밀어내고 제국주의적 힘의 논리로 밀어붙여 일본해를 세계 만방에 선전하는 중이다.17세기에서 19세기 후반 사이에 일본에서도 조선해라는 명칭이 다수 쓰였다. 일인 학자 카스노의 ‘일본해연구’(1975)에 의하면 1815년 경부터 서양인들이 일본해를 많이 썼으며,19세기까지 일본서해, 타라해, 조선해 등 다양한 이름이 존재했다고 밝힌 바 있다. ●1602년 세계지도 일본해 첫 등장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은 어떤가. 국제적 외교야 외교통상부 관할이지만 동해 연구·조사자료의 축적과 실제적으로 국제수로기구를 상대하는 중추는 해수부 해양조사원이다. 이곳 곽인섭 원장은 “쉽게 해결될 싸움이 아니므로 체계 있고 일관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한다. 국제분쟁 현장에서 뛰어온 오순복 과장도 “경험으로 미뤄 일본의 대응은 전 세계적이며 국제사회 로비도 엄청나다.”며 고개를 젓는다. 동해 표기 해도를 만들어 전 세계에 뿌리내리게 하는 이들이야말로 한·일간 새로운 영토싸움의 주역들이다. 길거리에서 고함 지르고 일장기 태운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싸움판의 예산이 얼마냐고 물으니 연간 1억원 내외란다. 고작 1억원! 세금은 제대로 쓸 데 써야하지 않을까. 독도는 그래도 어느 정도 자료축적도 돼 있고 이론적 기반도 갖춰 가지만 동해는 참으로 고난의 연속이다. 작금의 시마네현 폭거로 빚어진 독도에 대한 열정의 반의 반이라도 동해에 쏟아야 한다. 독도와 동해문제는 별개이지만 긴밀한 내적 연관성을 지니며, 일본의 해양침탈 의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양자는 불가분이다. 동북공정이 문제되니 고구려재단을 만들고, 독도 문제가 불거졌다고 대뜸 독도특별법이니, 독도재단 만들기 따위의 단말마적 대응이 이어지는 현실을 보노라면 도대체 동네싸움을 하려는 것인지, 원대한 국가정책적 대응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 일본의 논리는 어떨까. 일본측은 일본해 명칭이 일본의 확장주의와 식민화의 결과라는 주장을 거부한다. 한국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정한 사안을 두고 강변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한반도를 강점한 가운데 시마네현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일본의 일처리 방식은 이렇듯 식민지배에 관한 뉘우침이나 반성 없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상생의 사태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北 ‘조선해’ 주장… 남북공동대응 필요 이 문제가 불거지면 일본은 예의 1602년판 마테오리치 지도 등을 증거로 제시한다.‘일본해/동해’ 병기 주장도 세계 해양명칭의 혼란을 이유로 거부하는 그들 아닌가. 관계국의 합의를 얻을 때까지 과거의 합의를 답습해야 하므로 일본해 명칭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론은 계속된다. 동해는 한반도의 남해, 서해, 동해의 연속선상에 있는 방향 표시이므로 국제 명칭으로 부적당하다는 주장이다. 심지어는 우리가 황해를 ‘West Sea’로, 동중국해를 ‘South Sea’로 변경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일본해만 문제 삼아 ‘East Sea’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만을 고의로 ‘표적삼았다.’는 의문을 갖게 한다고도 말하는 그들이다. 희망은 없는가. 우리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일관되게 ‘조선해’나 ‘조선 동해’를 주장해 온 북한의 줄기찬 노력도 평가해야 한다. 남북 공동대응이야말로 둘이 아니라 셋도 되고 넷도 되어 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간의 힘이다. 전 세계 사이버 전장에서 동해되찾기, 독도영유권, 역사교과서 왜곡시정 등의 전투를 치르고 있는 ‘사이버 독립군’ 반크(www.prkorea.com) 같은 존재가 유독 빛나 보인다. 일본해만 쓰던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동해 병기로 돌아선 것도 이들의 공로다. 사재를 털어 동해표기 옛 지도를 전 세계에서 수집해 온 이들의 희생도 기려야 한다. 일본의 국가팽창주의가 아무리 힘으로 밀어붙인다 해도 시민의 힘을 꺾을 수는 없는 일. 갈등이 심해지면서 불행하게도 강화될 수밖에 없는 국가주의의 병폐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양국의 양심적인 시민들이다. 을사늑약 100주년에 과거 반성은커녕 해묵은 갈등이 동해에서 재연되고 있으니 한·일 양국의 선량한 백성에게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이번 시마네현 폭거를 계기로 독도뿐 아니라 동해표기, 나아가서 예상되는 중국과의 갈등까지 먼 바다를 내다보는 대응책으로 해양전략의 차원을 끌어올릴 것을 국가 및 우리사회에 다시 한번 촉구한다.
  • [월드이슈-삐걱거리는 미-러 관계] 부시, 러 에너지정책도 불만… 실리외교 주도권 다툼

    [월드이슈-삐걱거리는 미-러 관계] 부시, 러 에너지정책도 불만… 실리외교 주도권 다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01년 11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사저인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을 방문한 뒤 미·러는 ‘적대적 관계’에서 ‘동반자적 관계’로 바뀌었다. 미국이 탄도탄요격미사일협정(ABM)을 일방적으로 폐기했음에도 대테러전을 계기로 가까워진 부시와 푸틴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24일(현지시간)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측은 이란과 시리아 등 중동정책과 러시아내 인권 등의 문제로 충돌하는 양상이다. ●화해냐 반목이냐 대부분의 정상회담은 실무진이 각종 현안에 대한 합의점을 미리 도출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테러조직에 ‘견착식 지대공 미사일’의 밀매를 막는 협정 이외에는 이렇다 할 결과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상호 신뢰관계를 해칠 만한 ‘입씨름’만 치열하게 오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슬로바키아로 가기에 앞서 “푸틴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러시아는 법치와 민주주의를 새롭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푸틴이 민주주의를 실천한다고 말할 때에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지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슬로바키아 언론에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러시아의 현실과 역사에 부합해야 하며 러시아는 14년 전 국가와 국민을 위해 그같은 민주주의를 채택했다.”고 맞받아쳤다. 왜 미국이 러시아의 내정에 간섭하느냐는 항변이다. 2001년 6월 슬로베니아에서 열렸던 미·러 정상회담 당시 서로를 치켜세우던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그러나 우회적인 화법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양측은 대테러 공조라는 기존의 틀을 재확인하면서 일부 이견을 표출하는 정도에서 회담을 마칠 것으로 예상된다. ●실리외교 공방전 푸틴은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면서도 틈틈이 미국의 독주를 견제했다. 바그다드 침공 이전에 러시아는 이라크와 400억달러 규모의 5개년 경제협력 협정을 추진했고 이란과는 2년 전에 핵시설 협력을 위한 10개년 계획에 합의했다. 미국이 추구하는 ‘힘의 외교’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론 중동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과 경제적 끈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이란에 대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라는 부시의 ‘경고’에 푸틴이 “이란은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반박한 것도 ‘실속외교’의 전형이다.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이란과 북한의 핵 개발 중단이나 대테러 전쟁의 지속을 위해 여전히 러시아의 ‘강력한’ 도움이 필요하다. 오랜 우방인 프랑스·독일과 관계개선을 꾀하더라도 러시아가 보였던 만큼의 지지를 단시일 내에 얻어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미국이 러시아의 미사일 시스템 수출이나 푸틴의 일당 독재체제로의 ‘회귀’ 움직임 등에 마냥 침묵할 처지도 아니다. 부시 대통령은 2기 취임사에서 ‘자유의 확산’을 강조했다. 러시아가 유전·가스개발에 외국업체 참여를 배제한 것은 국제 자유무역의 질서를 흔든 것이며 우크라이나 선거에 개입한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게 미국의 시각이다. 물론 미 석유업체의 불만이 부시에게 쏟아졌고 그 화살이 다시 러시아로 향한 측면이 강하지만 그동안 러시아에 빼앗겼던 실리외교의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데스크 시각] 이제는 ‘톨레랑스’다/한종태 국제 부장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2004년 한해도 이제 몇시간 뒤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개인적으로도 좋은 일보다는 힘든 일이 많았기에 2004년은 뇌리에서 잘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그렇기에 2005년 을유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톨레랑스’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진보·보수간의 이념적 갈등에다 빈부격차, 여야간 극한 대결, 노사 대치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게 요즈음이어서다. 더 이상 안 볼 것처럼 서로 평행선만 달리고 있는 꼴이다. 국제적으로도 연일 계속되고 있는 테러와 대(對)테러, 그리고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국가간의 첨예한 이해충돌은 일상화돼 있는 형국이다. 톨레랑스의 사전적 의미는 ‘나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과 행동이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우선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과 행동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남을 인정해야 자신도 인정받게 되고, 결국 공동체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역지사지(易地思之)와도 통한다. ‘하버드 비즈니스리뷰’는 올 초 ‘2004 경영자를 위한 획기적인 아이디어’에서 국가의 지속적인 성장에 필요한 세가지 요소로 3T를 꼽았다. 기술(Technology), 재능(Talent), 관용(Tolerance)이 그것이다. 그러나 개인적 생각으론 기술과 재능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담아내는 용광로와 같은 관용이 있어야만 한단계 업그레이드가 이뤄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관용의 또 다른 표현은 개방(Openness)이라고 한다. 다른 의견을 가진 남을 존중하는 것, 다시 말해 의식의 개방을 말한다. 개방과 관용이 세계 역사 발전에서 주춧돌 역할을 해왔음은 익히 알 수 있다.15세기 포르투갈 항해사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도 관용과 개방이 넘실거린 당시 사회분위기에 힘입은 것이다. 하지만 올 한해 우리 눈에 비친 것은 관용·개방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 같다.4대 개혁법안 처리를 둘러싸고 힘의 논리와 저항의 논리로만 일관하는 정치권이 그렇고, 국가보안법 폐지와 반대를 일방적으로 외치며 이념투쟁의 전위대가 돼버린 듯한 사회단체들이나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을 놓고 벌인 정부와 공무원노조의 볼썽사나운 모습도 그렇다. 끝간데 없이 추락하는데도 여전히 먹이싸움만 하는 경제 구성원들의 행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나라 밖 사정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에서 비롯된 관련 국가간의 갈등도 어느 해보다 지구촌을 짜증나게 만들었다. 중·일 양국의 긴장 파고는 높아만 가고, 서방진영과 러시아간의 갈등도 예사롭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사실상 내전으로 치닫고 있는 이라크 사태도 빼놓을 수 없다. 국가든, 단체든, 개인이든 서로 자기 이익을 앞세운 일방적 주장만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제 을유년 새해에는 국내외적으로 이런 묵은 갈등과 대립을 털고 새로운 모습을 기대해본다. 물론 새 모습의 키워드는 관용과 개방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전 출입기자 송년 만찬에서 “(일을)하면 할수록 국민과 함께 더불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세상 일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잘 하는 대통령의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좀 더 노력하겠다.”고 밝힌 것은 곱씹어 볼 만하다.‘나’보다는 ‘우리’를 더 중시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물론 실천이 담보돼야 하는 게 전제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톨레랑스’를 힘차게 외쳐보자. 메아리가 울려 퍼지도록. 한종태 국제 부장 jthan@seoul.co.kr
  • 서울신문 선정 2004년 10대뉴스

    서울신문 선정 2004년 10대뉴스

    ■ 국 내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헌재 기각 3월12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등 야3당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저지 속에 찬성 193표로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했지만 후유증은 심각했다. 탄핵 반대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고 이에 맞서 찬성 시위도 끊이질 않았다.60여일간 계속된 탄핵 논란은 5월14일 헌법재판소가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써 마침표를 찍게 됐다. ●대학수능시험 사상 최대 부정행위 적발 대규모 부정행위로 얼룩진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도덕불감증과 점수 만능주의가 결합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었다. 전국적으로 모두 374명이 입건되고 수험생 312명의 성적이 무효처리되는 등 사상 최대의 부정행위로 기록됐다. 광주에서 적발된 휴대전화 부정은 고교 선·후배가 공모한 대물림 범죄였다. 청주에서는 웹투폰 기법을 악용한 현직 학원장이, 부산에서는 아들의 대리시험을 알선한 학부모가 구속되기도 했다. ●17대총선 여대야소· 세대교체 4·15 총선은 한국 정치사에 묵직하고 또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열린우리당은 46석 미니정당에서 152석 과반수 제1정당으로 올라서 ‘참여정부 집권 2기’에 안정 의석을 확보하면서 여대야소(與大野小) 정국으로 전환시켰다. 새 정치, 깨끗한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에 힘입어 기존 정치인들은 대폭 물갈이되고 초선 의원이 187명이나 국회에 입성했다. 민주노동당도 의원 10명을 배출, 진보의 첫걸음을 내딛고 정치 제도권으로 진입했다. ●성매매 특별법 시행 지난 9월23일 0시부터 시행된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는 피해자가 있는 엄연한 범죄’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전국 집창촌이 된서리를 맞았고, 업주와 종업원이 생존권 보장을 주장하며 대대적인 시위를 했다.‘2차’를 가볍게 여기던 남성들이 줄줄이 입건되고, 일부 여종업원은 살길이 막막하다며 자살을 기도했다. 집창촌이 개점휴업 상태가 되면서 해외원정 성매매 상품이 등장했다. 혹자는 “경기도 나쁜데…”라며 부작용을 지적, 파문을 일으켰다. ●행정수도 이전 위헌결정 헌법재판소가 10월21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8대1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의 핵심 공약이었던 수도 이전 사업은 중단됐고, 충청권 주민들이 격렬하게 반발하는 등 진통이 뒤따랐다. 헌재가 위헌결정의 논리로 든 관습헌법을 놓고 정치권과 학계는 물론 시민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정부는 신행정수도후속대책위를 구성, 후유증을 줄이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이라크 파병과 김선일씨 참수 지난 6월23일 가나무역의 직원이던 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돼 살해된 사건은 많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나는 죽고 싶지 않다.”고 절규했던 김씨는 끝내 참혹한 시신으로 고국 땅을 밟아야 했다. 김씨의 죽음은 추가 파병의 정당성 논란을 불러왔다. 앞서 지난 2월 이라크 추가 파병 동의안은 거센 찬반 양론 속에서 국회를 통과했다. 자이툰부대원 3600여명은 지난 8월부터 평화 재건 활동을 벌이고 있다. ●내수 침체·장기 불황·청년 실업 내수시장은 지독한 불황 그 자체였다. 직격탄을 맞은 유통업계는 연중 세일로 ‘내수 지피기’에 나섰지만, 닫힌 지갑을 끝내 열지 못했다.10원짜리 아동복도 팔리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소비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자태도지수는 올 4·4분기 39.3을 기록해 98년(34.9) 이후 가장 낮았다. 내수 경제의 ‘세포’인 자영업자들도 휴·폐업과 업종 전환으로 생존을 모색할 정도였다. ●황우석 교수 인간배아 복제 성공 황우석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지난 2월 세계 최초로 ‘인간 복제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국보급 과학자’로 우뚝 섰다. 이 연구는 뇌질환·당뇨병·심장병 등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배아복제 연구는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가 선정한 올해의 ‘10대 뉴스’ 3위에 오르기도 했다. 황 교수는 현재 줄기세포를 활용한 치료법 개발과 무균돼지 생산 등에 주력하고 있다.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연쇄살인마 유영철(34)은 지난해 9월부터 여성과 노인 등 21명을 잔인하게 살해해 온 국민을 경악케 했다. 그는 정부수립 이후 가장 많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로 기록됐다.7월18일 체포된 뒤 “100명을 죽이려 했는데 빨리 잡혀 아쉽다. 시신의 일부를 먹었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쏟아낸 그는 12월13일 1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살인 행각은 인간의 야만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무동기 증오범죄’의 전형이 됐다. ●고속철도 개통 4월1일 ‘단군 이래 최대의 역사(役事)’라는 고속철(KTX)이 개통됐다. 대형 제트기 이륙속도와 맞먹는 속도인 시속 300㎞로 주파하는 고속철은 국민들의 생활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고속철 개통은 여행시간 단축뿐 아니라 공간개념까지 바꿔놓았다. 때마침 시행된 주5일 근무제와 맞물려 지방화 시대를 열었다. 인구의 지방분산, 기업의 지방이전, 지방 관광산업 활성화 등 국토의 균형 개발에 영향을 미쳤다. ■ 국 외 ●부시 재선과 미국 일방주의 강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미국의 제43대 대통령에 재선됐다. 존 케리 민주당 후보와 접전을 펼쳤으나 미국민의 과반인 51%는 ‘전시 사령관’에 힘을 몰아줬다. 미국의 일방주의를 우려하며 케리의 승리를 바라던 국제사회의 기대와는 달랐다. 재선된 부시가 유럽 등에 화해의 손짓을 보내지만 일방주의적 외교행태를 멈출지는 미지수다. 힘의 절대적 우위를 강조하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움직임이 변수다. ●지구촌 1년내내 테러 몸살 미국의 대테러전 속에서도 이라크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테러가 끊이지 않는 등 스페인과 러시아, 이집트 등 전세계가 테러로 몸살을 앓았다. 총선을 사흘 앞둔 3월11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기차역에서 동시다발적인 폭탄테러가 발생,1400명의 사상자를 냈다. 스페인은 총선 후 이라크 파병군을 철수시켰다.9월1일 러시아 북오세티아공화국의 베슬란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인질극은 330여명의 사망자를 낸 유혈 진압극으로 끝났다. ●고유가와 달러 약세 고유가는 회복세에 접어든 세계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국제유가는 10월25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배럴당 55.6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라크 사태 악화, 중국 등의 수요 증가, 투기 극성 등이 주 원인이었다. 이후 하락세로 반전했으나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합의와 이라크 사태 등 불안요소는 여전하다. 여기에다 미국정부가 경상수지·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약달러를 용인하며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가 급락했다. ●후진타오 시대 본격 출범 후진타오(胡錦濤)시대의 출범은 실용적인 제4세대 지도부의 전면 등장을 상징한다. 평화적 세대교체를 통해 중국 정치가 개인적 카리스마에 의존하기보다 법과 제도의 의한 보다 합리적인 통치체제로 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9월 중국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군사위 주석에 올라 당·정·군의 권력을 장악한 후진타오는 친정체제 구축 강화와 함께 지속적인 경제발전, 빈부격차 해소 등 균형발전이란 당면 과제를 어떻게 달성할지 주목받고 있다. ●아라파트 사망과 중동 평화분위기 기대 팔레스타인 독립 투쟁의 상징이던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11월11일 프랑스의 군병원에서 사망, 중동의 정치지도가 크게 바뀌었다. 그의 죽음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무장투쟁이 격화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지만 아라파트의 뒤를 이어 새 수반이 될 것으로 유력시되는 마흐무드 압바스는 무장투쟁 포기를 촉구하는 등 아라파트와는 차별화된 온건노선을 내걸어 중동 평화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기상이변과 교토의정서 내년초 발효 8월과 9월 4개의 허리케인이 미국 플로리다주를 강타했고,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시아에서는 홍수로 1000여명이 숨졌다. 중국 남부지방은 50년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물부족 사태를 겪었다. 올해 기상재해로 인한 피해액은 전세계적으로 900억달러에 달한다. 지구촌이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11월 러시아가 이산화탄소·메탄 등 온실가스 감축을 규정한 교토의정서를 비준함으로써 내년 2월16일 발효된다. ●이라크 주권 이양과 포로 성학대 파문 연합군 임시행정처가 6월 이라크 임시정부에 주권을 이양, 이라크의 민주화 일정이 시작됐지만 1년 내내 테러와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인 고 김선일씨를 비롯해 30여명의 외국인이 이라크에서 납치, 살해됐고 개전 이후 사망한 미군 숫자는 1300명을 넘어섰다. 이라크 민간인은 최소 1만 4000명이 희생됐다. 이런 가운데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군이 포로를 무차별 구타하고 성학대한 사실이 드러나 전세계의 분노를 샀다. ●일본 열도 ‘욘사마’ 열풍 배용준이 ‘욘사마’란 극존칭과 함께 일본 열도를 ‘한류 열풍’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했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요 촬영지엔 일본 여성팬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의 일본 방문 때면 공항과 호텔이 마비될 정도였다. 일본 내에서는 ‘욘겔계수’(총수입에서 욘사마 관련 상품 구매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욘플루엔자’(욘사마 열병)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욘사마’가 한·일 경제에 3조원의 파급 효과를 낳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EU통합 가속 유럽연합(EU)은 5월1일 폴란드·헝가리·슬로바키아·체코·슬로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몰타·키프로스 등 동유럽 10개국을 새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이로써 EU는 25개 회원국의 동·서유럽을 포괄하는 대표기관이 됐다.10월29일 25개국 정상들은 로마에서 회원국 전체에 적용되는 헌법안을 채택했다. 터키 및 기타 동유럽국가들의 추가가입을 심사중이어서 국내총생산에서 미국을 넘어서는 거대 유럽의 탄생을 앞두고 있다. ●화성 스피릿 안착 1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쌍둥이 탐사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니티가 잇달아 화성 표면 착륙에 성공한 뒤 과거 화성에 물이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화성 표면 사진들과 광물 분석 자료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화성에 물뿐 아니라 생명체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에 자극받아 유럽과 러시아, 중국, 일본 등이 앞다투어 우주탐사 경쟁에 뛰어들면서 ‘제2의 스타워스’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 여야 “더 협상은 없다” 접점없는 마이웨이

    여야 “더 협상은 없다” 접점없는 마이웨이

    “더이상 협상은 없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17대 국회가 침몰하고 있다. 개원과 함께 스스로 내걸었던 ‘상생 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국가보안법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상정을 둘러싼 여야간 정쟁은 기싸움 수준을 넘어섰다. 서로에 대한 멸시와 냉소는 물론이고 동료 의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내팽개친 채 연일 ‘이전투구식 설전(舌戰)’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고도 여야는 13일 “참을 만큼 참았다.”며 각자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단독으로 연말 ‘반쪽 임시국회’를 강행한 반면 한나라당은 “할테면 해보라.”며 법사위 점거 농성을 계속했다. 열린우리당은 이날 오전 상임중앙위원회의와 원내대책회의를 잇따라 열어 전체 상임위를 단독 강행키로 하고, 이번 임시국회 회기내 처리를 목표로 정한 61개 민생·개혁 법안에 대한 심의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가 이날 여당 단독으로 소집됐고, 통일외교통상·문화관광위 등 일부 상임위의 전체회의 또는 법안심사소위가 여당 및 민주노동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또 한나라당이 계속해서 임시국회를 거부할 경우, 새해 예산안도 여당 단독으로 심의해 처리키로 했다. 열린우리당은 특히 한나라당의 국보법 폐지 당론 철회 요구를 일축하고, 국보법 폐지안 상정을 계속 시도키로 해 또한번 물리적 충돌을 예고했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의 법사위 점거와 관련,“여당으로서 한나라당의 의사진행 방해에 끌려다니거나 방치할 수 없다.”고 말해 특단의 대책을 강구중임을 시사했다. 국보법 처리문제와 맞물린 ‘이철우 의원 파문’과 관련해서도 열린우리당은 ‘고문·조작 의혹 국정조사’ 방침을 재확인하고,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을 과거사 조사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하는 등 칼날을 곧추 세웠다. 한나라당도 이날 주요 당직자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어 국보법 폐지 등 4대 법안에 대한 합의처리 약속을 요구하며 임시국회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 국보법 개폐와 관련한 당론을 빠르면 이번 주에 마련해 “당론도 없이 반대만 한다.”는 열린우리당의 공격을 차단키로 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국회 파행의 근본적 이유는 여당이 오로지 보안법 폐지 등 4개 분열법을 밀어붙이는 데 올인하기 때문”이라며 “그런데도 여당은 국회 파행을 자기들이 하고도 엉뚱하게 책임을 야당에 몰고, 일부 언론이 이를 잘못 보도해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는 “여당이 임시국회 소집도 단독으로 하고 진행도 단독으로 한다는 것은 수의 힘으로 4대 법안과 예산안 등을 단독으로 강행처리한다는 힘의 정치 선언”이라고 규정하고 “오만한 태도를 벗어나 지금이라도 수에 의한 단독처리 강행 방침을 철회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철우 의원 파문’과 관련해서도 한 핵심 당직자는 “이 의원이 현재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과거 운동권에서 행했던 자신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며 “이 의원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솔직히 고백하지 않는다면 국정조사를 통해서라도 밝혀야 한다.”고 강경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씨줄날줄] 체니와 파월/이목희 논설위원

    ‘매의 둥지에 앉았던 비둘기’-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을 이렇게 묘사했다.AP통신은 ‘떠나는 파월, 세계가 아쉬워하다’를 헤드라인으로 뽑았다. 할렘 출신으로 입지전적 경력을 쌓아온 인물. 흑인 최초 합참의장·국무장관. 파월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다. 오런 해러리가 쓴 ‘콜린 파월 리더십’이라는 책에서 그는 변화무쌍한 지도력을 가졌다고 묘사되어 있다. 파트너십을 중시하면서도 상대를 분노케 해 나은 결론을 도출하는 기술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능수능란한 파월도 결국 ‘매의 둥지’를 변화시키는 데 실패했다. 온건파 파월의 퇴장은 우리에게 안타까운 일이다. 동시에 기회도 제공한다.1기 부시행정부 대외정책 라인은 딕 체니 부통령이 이끄는 매파와 파월의 비둘기파로 양축을 이루었다. 이들간 힘의 균형은 9·11테러 후 이미 무너졌다.“나는 왕따가 아니다.”라는 변명을 파월 스스로 할 정도에 이르렀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대부 체니의 득세는 워싱턴 권력가 실상이 반영된 것이다. 한국 정부로서는 미 국무부가 백악관·국방부와 동일한 목소리를 낸다면, 비록 그것이 강경노선이더라도 대화하는 데 편한 측면이 있다. 체니파(派)의 속성을 철저히 연구하고, 인맥을 활용하면 2기 부시행정부와 더 잘 지낼 수 있다. 미국 부통령은 대통령선거가 끝나면 잊혀지는 자리다. 주요 정책에는 간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체니는 예외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 재임시절 국방장관을 지낸 체니는 부시 현 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이다. 민주당은 “공화당의 보스는 체니”라고 비꼬기도 한다. 새 국무장관과 백악관 안보보좌관에 지명된 콘돌리자 라이스와 스티븐 해들리는 체니의 영향력 아래 있다. 특히 체니가 북핵문제를 부통령실로 옮겨 직접 다룰 가능성이 있다고 미 정부 관계자들은 전했다. 체니측이 대북특사 파견을 검토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체니보다 융통성이 있는 라이스 및 해들리와 대화통로를 다양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부통령실 인사들과 관계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강경파는 단순하다.’는 진리는 미국에서도 통할 것이다. 체니측의 움직임이 북한에 대한 일방적 ‘채찍’이 아니라 ‘당근’으로 나타나도록 우리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美 ‘힘의 외교’ 탄력 받을듯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퇴진은 미국 정부내 파워게임에서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가 승리한 것을 의미한다. 파월 장관과 함께 리처드 아미티지 부장관 등 국무부 내의 대표적인 온건론자들이 대부분 빠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 체제의 국무부는 강경론의 수장인 딕 체니 부통령의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라이스가 떠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자리에도 체니 부통령의 측근이었던 스티븐 해들리 부보좌관이 승진할 가능성이 크다. 부시 2기 행정부 대외정책의 최우선적인 관심사는 중동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이 마무리되지 않았고, 야세르 아라파트의 사망으로 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이 새로운 현안으로 등장했다. 네오콘 세력은 냉전 이후 미국의 국제전략을 ‘중동의 혁명’ 또는 ‘중동의 민주화’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라크 문제가 정리되면 미국은 이란과 시리아 등 다른 중동의 반미 이슬람 국가들을 대상으로 중동전을 확대할 것으로 워싱턴의 싱크탱크들은 전망한다. 이 때문에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 핵 문제의 경우 부시 정부에 ‘부차적인’ 사안이거나 아니면 중동문제에 집중하기 위해 신속히 처리해야 할 현안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물론 한반도 정책에서도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적인 강경정책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 그러나 미국의 대외 정책이 부시 대통령이 마음 먹은 대로 추진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일방주의 정책의 ‘힘의 기반’인 군사력의 운용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이라크 개전 이후 지적돼온 대로 현재의 미군 병력은 ‘너무 넓은 전선에 너무 얇게’ 전개돼 있다. 까닭에 미국기업연구소(AEI)의 토머스 도넬리 선임연구원은 부시 행정부가 충분한 병력과 우방과의 관계 강화를 추구하는 현실적인 대외정책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파월 장관의 퇴진이 미국으로서는 큰 손실이었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무장관이 라이스라는 요인을 고려하면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에선 크고 작은 변화가 올 수 있다. 소련 전문가인 라이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옛 소련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과 러시아는 현재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동유럽과 중동,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전략적으로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dawn@seoul.co.kr
  • [아라파트 사망] 아라파트는 누구

    [아라파트 사망] 아라파트는 누구

    야세르 아라파트(75)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중동지역의 역학관계를 떠받치던 한 축이었다.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상징이자 정신적 지주며, 실질적 지도자로서 활동하며 ‘영원한 1인자’의 자리를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았다. 반면 점령자 이스라엘에는 ‘테러집단의 선봉’이었고 중동의 현상유지를 시도하던 미국엔 예측하기 어렵고 다루기 힘든 골칫덩어리이자 ‘시한폭탄’이었다. 그러나 오랜 투쟁으로 다져진 그의 지도력과 카리스마, 협상과 함께 폭력을 포기하지 않는 저돌적인 실천력, 수많은 경험에서 체득한 중동 미래에 대한 비전과 균형감각은 아랍권과 이스라엘간의 대립과 증오를 조정하고 완화시키는 완충 역할을 떠맡게 했다. 팔레스타인 민중을 이스라엘과의 ‘성전’을 향해 하나로 묶어 싸우게 한 것도 그였지만 하마스 등 극단적인 팔레스타인 무장 저항세력의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을 막아온 것도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때문에 그의 ‘퇴장’은 팽팽한 힘의 균형을 잡아주고 떠받치던 한 축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미국과 이스라엘도 그를 평화의 걸림돌로 지목하면서도 사태 악화를 막는 보루로 인정해 왔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아라파트는 1929년 8월24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부유한 이슬람 수니파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카이로대학을 나와 쿠웨이트 등에서 토목기사로 일했지만 국토를 빼앗긴 채 유랑민 신세가 된 민족의 운명을 자각하고 해방운동에 뛰어든다. 1958년 마흐무드 압바스 등과 함께 이스라엘 투쟁단체인 파타운동을 창설하면서 해방운동의 핵심에 서기 시작했다.1960년대 들어 이스라엘이 점령 중이던 가자지구에도 침투, 본격적인 투쟁을 벌이던 파타운동은 1969년 아라파트에 의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로 변신했고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최대기구로 자리잡게 했다. 그는 PLO 창설과 함께 의장을 맡았으며,1987년 무장 강경투쟁에서 협상전략으로 선회했다. 정규전은 물론 항공기 납치, 요인 암살, 테러 등 유혈 폭력투쟁을 벌였고 이스라엘군의 체포를 피해 인생의 대부분을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튀니지 등을 떠도는 유랑자로 지내왔다.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노벨평화상 수상 그러면서도 뛰어난 언변과 외교력으로 1974년 유엔에서 PLO를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조직으로 인정받게 했다.1994년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예리코 지역의 자치를 규정한 오슬로 평화협정을 이스라엘과 합의했다. 이 공로로 그해 12월 이츠하크 라빈 당시 이스라엘 총리, 시몬 페레스 현 이스라엘 노동당 당수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마지막까지 굴곡의 연속이었다. 평화협정의 파트너인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95년 11월 극우파에 의해 살해되면서 중동의 충돌은 격화했다.2000년 7월 ‘캠프 데이비드’ 협상이 재개됐지만 무위로 끝나면서 2개월 뒤 제2차 팔레스타인 봉기가 이어졌다. 그를 ‘걸림돌’로 여긴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2001년 12월부터 최근까지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의 자치정부 청사에서 연금상태를 감수해야 했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힘의 미국’과 부시-(3) 美의회와 한미관계] 美의회 ‘北인권문제’ 거론 가능성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상·하원 선거결과는 우리나라에 크고작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의 양원 지배가 더욱 공고화돼 대북 공세가 강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지만, 오히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의 협상을 시작할 경우 이를 뒷받침해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 관련 의원들 대부분 당선 ‘지한파’ 의원이라고 할 수 있는 에드워드 로이스(민주·캘리포니아) 한미외교협회 미국측 회장과 마이클 카푸아노(민주·매사추세츠)·비토 포셀라(공화·뉴욕)·찰스 랭겔(민주·뉴욕)·하비에르 베세라(민주·캘리포니아) 등 ‘코리아 코커스’ 소속 의원들이 대부분 재당선돼 한·미 의원외교의 교두보는 탄탄해졌다. 또 북한인권법안 입법의 주역인 샘 브라운백(공화·캔자스) 상원의원과 짐 리치(공화·아이오와) 하원의원 모두 압도적인 표차로 지역구민의 재신임을 받아 상·하원에서 대북한 공세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의 대 한반도 정책에 영향력이 큰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 의원 20명중 선거에 나섰던 4명이 모두 당선됐다. 대통령에 출마한 존 케리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만 패한 셈이다. ●강성화된 미 의회,“내년 동북아 초점” 공화당의 상·하원 지배가 공고해지면서 의회가 대외관계에서 보다 강경한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커졌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최근 의회관계자들을 접촉해 보니 “내년에는 의회가 동북아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예고하더라.”고 전하면서 “이라크에 집중됐던 의회의 관심이 한반도와 중국으로 옮겨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주미대사관 관계자는 “북한 핵 문제의 해결이 계속 지연될 경우 의회가 강력한 대응을 주문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행정부의 북한인권법 이행 과정에서도 보다 적극적이고 강력한 접근을 요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의회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감정적’ 충돌을 할 경우 한반도 문제 등 대외현안에도 예기치 않은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다. 또 이번 대선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복음주의자 단체들이 북한인권 문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제기하도록 의회에 압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 후임으로 거론되는 댄 포스 주유엔대사도 대표적인 복음주의파다. ●“공화당 지배 도움될 수도” 국제경제연구소(IIE)의 마르커스 놀란드 선임연구원은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 것이 북핵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놀란드 연구원은 “케리 후보가 당선됐을 경우 공화당이 지배하는 의회는 북한과의 협상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 협상을 하겠다고 나서면 의회가 썩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화당 소속이지만 온건론자인 상원의 리처드 루가(인디애나) 외교위원장과 척 헤이글(네브래스카)의원 등은 대외정책에 있어 의회내 균형추 역할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da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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