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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대 이사진 전원 교체/이사장에 박찬현씨

    ◎설립자의 친인척등 측근 배제 문교부는 16일 세종대의 학교법인인 대양학원이 새로 선임한 박찬현이사장(73ㆍ전 문교부장관) 등 새 이사진 7명의 취임을 모두 승인했다. 대양학원은 이에앞서 15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긴급이사회를 열어 지난1일 사임한 주영하 전 이사장(78) 등 이사진 7명 전원을 퇴진시키고 박이사장 등 7명을 새로 선출했다. 세종대 이사진의 전원 교체는 재단이 설립자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존 재단과는 무관한 인물로 교체하라는 문교부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이번에 선임된 이사들은 지난13일 대양학원이 선출한 이사 4명에 대해 문교부가 승인을 거부한뒤 재단측과 문교부가 사전협의를 거쳐 발탁한 것으로 사실상 관선이사의 성격을 띠고있다. 새 이사진은 박이사장을 비롯,이동환(74ㆍ전 내무부차관),김준곤(65ㆍ대학생 선교회이사장),김두호(60ㆍ건국대의료원장),방순원(76ㆍ전 대법원판사),김태경(57ㆍ변호사),고원증씨(전 법무부장관) 등 7명이다. ◎「정상화 대책위」도 결성 한편 서명원 전 문교부장관ㆍ이세중변호사 등 교육ㆍ법조ㆍ언론계 등 각계 인사와 이중화총장ㆍ현은심세종대동문회회장 등 세종대관계자 13명은 이날 하오3시 서울 성동구 광상동 워커힐호텔에서 「세종대 학원정상화 대책위원회」(가칭)를 결성하고 위원장에 서전문교장관을 위촉했다. 대책위원회는 앞으로 세종대의 유급대상 학생을 최소화 시키고 2학기수업을 정상화하는 등의 대책을 수립한뒤 이를 문교부와 재단측에 건의하기로 했다.
  • “북한의 개방·개혁 지원”/탈냉전 조류 통일로 연결

    ◎노대통령 평통 해외지역 회의에 메시지 노태우대통령은 13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90년도 해외지역 회의에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90년대는 우리가 평화통일을 성취하는 연대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북한이 하루속히 개방된 세계로 나와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성원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그들의 개방과 개혁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날 로스앤젤레스 유니버시티 힐튼호텔에서 열린 LA지역 회의에서 현경대평통사무총장이 대독한 이 메시지에서 『북한은 더이상 우리가 적대하거나 경쟁할 상대가 아니며 통일의 그날까지 우리와 공존공영해야 할 같은 민족공동체』라며 이같이 말했다. 노대통령은 『우리는 냉전체제의 붕괴,동구의 민주화및 소련의 개혁등 세계의 변화에 슬기롭게 대응하여 그것을 통일을 이루는데로 이끌어야 한다』고 말하고 『2차대전 종전과 함께 해방을 맞았을 때 우리가 뭉치지 못하고 분열하여 분단의 고통을 초래한 잘못을 또다시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며 민족적 단합을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 평통자문위원들은 『해외동포의 통일의지와 역량결집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는등 3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평통해외지역 회의는 이날 LA지역을 시발로 16일 휴스턴,18일 워싱턴,20일 뉴욕,23일 중남미(아르헨티나·부에노스아이레스),8월1일 일본 도쿄에서 차례로 개최된다.
  • “미래학의 석학” 다니엘 벨 내한 강연

    ◎“정보ㆍ통신이 「제3의 기술혁명」이끈다”/총체적 사회변동 초래,탈공업화 가속/첨단기술 개발 뒤지면 낙오… 국가가 기반 조성토록 미래학의 세계적인 석학인 다니엘 벨 박사가 한국전기 통신공사(사장 이해욱)의 초청으로 내한,9일 하오 서울 힐튼호텔에서 「지금 우리는 제3의 기술혁명을 맞고 있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벨박사는 이날 강연에서 『정보통신분야가 주도하는 제3의 기술혁명은 증기력 도입이나 전기ㆍ화학의 혁신에 의한 이전의 두 기술협명보다 훨씬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러한 기술혁명 대열에서 낙오하는 국가는 정체를 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변화를 수용하고 이행을 순조롭게 하기 위한 사회적 토대를 창출하는 것이 정책수행의 최우선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1960년)「후기산업사회의 도래」(1973년) 등의 저서를 펴낸 벨 박사는 그동안 꾸준하게 미래 정보화사회,즉 탈공업사회에 대한 대변혁을 예고하면서 현제도에 대한 강한 비판과 함께 미래사회를 지향하는 비전을 제시,『앞으로는세계가 하나로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펴왔다. 그는 또 2010년쯤 되면 태평양지역이 세계경제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1919년 미국 뉴욕에서 출생한 벨박사는 뉴욕시립대학을 졸업한뒤 「뉴리더」「포천」 등 잡지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시카고ㆍ콜롬비아ㆍ하버드대학 등에서 30여년동안 사회학 교수생활을 했고,현재 하버드대학 명예교수ㆍ미국 전기통신 및 컴퓨터에 관한 국가자문위원회 위원ㆍ미국 2천년위원회 의장 등을 겸하고 있다. 벨박사의 강연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바로 지금 제3의 기술혁명을 맞고 있다. 이 혁명은 증기력의 도입,전기와 화학의 혁신 등 앞서 있었던 두번의 기술혁명이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 산업화라는 형태로 끼쳤던 것보다 훨씬 큰 영향을 파급시킬 것이다. 제3의 기술혁명의 근저를 이루는 4가지 변화는 ▲기계적ㆍ전기적 시스템의 전자적변화 ▲전도장치나 전파변환장치의 소형화 ▲정보가 숫자로 표시되는 디지틀화 ▲기술혁신을 이끄는 독립프로그램인 소프트웨어 등으로서,이러한 기술혁신은 이미 발명과 혁신의 단계를 지나 혁명의 파급효과가 확산되는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돌이킬 수 없는 대변혁의 시대를 열었다. 우리는 현재의 새로운 변화를 생각할 때 신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장치나 방법인 컴퓨터ㆍ전자통신 등을 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 기술은 사회적 변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수단과 가능성을 제공할 뿐이며 그 선택과 이용은 각 사회가 책임지게 된다. 신기술의 가장 핵심적인 측면은 「하이테크」라는 말이 암시하듯 각각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기존의 모든 사회관계를 재조직하는 총체적 사회변동이라는 점이다. 다음 세대에서는 우리는 컴퓨터에 파묻히게 될 것이며 단하나의 마이크로칩으로 된 컴퓨터가 가정과 직장ㆍ사회를 엄청나게 변화시킬 것이다. 요즘의 컴퓨터는 10억분의1초,또는 1조분의 1초 속도로 계산해낼 수 있으며 심지어 AT&T의 벨연구소에서는 1초에 20억비트를 증폭없이 80마일까지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는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30권 전부를 수초만에 전송할수 있는 속도이다. 통신수단 역시 전화(음성)ㆍ텔리비전(화상)ㆍ컴퓨터(데이타)ㆍ팩시밀리(문서) 등으로 구분하던 개념이 퇴색하고 대신 디지틀 교환방식으로 상호 연결되는 원격전송이라는 단일통합체제로 굳어져 가고 있다. 컴퓨터는 이제 가정ㆍ학교ㆍ직장ㆍ정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어 컴퓨니케이션 사회라는 새로운 말까지 탄생시켰다. 정보통신의 발달과 활용에 따라 도래한 후기산업사회,탈공업사회의 기본적인 활동은 처리ㆍ제어,그리고 정보에 관한 활동 및 인간끼리의 경쟁이다. 후기산업사회의 특징은 「서비스사회」로 압축되며 새로운 종류의 서비스가 계속 생겨나고 확장된다. 확장되는 서비스는 교육ㆍ보건ㆍ사회사업ㆍ사회복지 등과 같이 「인간과 직접관련되는 것」과 분석ㆍ기획ㆍ설계ㆍ프로그래밍 등처럼 「전문적인 것」이 있다. 서비스사회의 확산에 따라 미국의 경우 노동인구의 70% 이상이 전문직ㆍ기술직ㆍ관리직 등 서비스분야에 종사하고 있으며 불과 4%의 농민들이 지금 미국에서 남아돌 정도의 식량을 생산하고 있다. 1990년 당시 농민 비율은 50%였다. 또 통신수단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탈집중화,즉 탈도시화 현상도 가속되고 있다. 이제까지는 수송수단ㆍ자원ㆍ에너지수단 등에 따라 도시가 이뤄졌었으나 앞으로는 통신수단이 사회의 중추적기능이 됨으로써 사람들이 점차 도시를 떠나 일과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사람을 얽매 놓았던 지리적 여건은 더이상 활동의 통제수단이 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통신에서의 혁명은 인간행위의 규모를 점점 더 변화시키고 있는데,국제사회 역시 점점 더 불안한 상호의존적 경쟁체제로 나아가고 있어 어느 한부분에서의 충격이 전체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게 된다. 뉴욕이나 도쿄 증권시장이 곧바로 세계증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좋은 예이다.〈김용원기자〉
  • 김흥수 화백의 「나부좌상」 도난 4달만에 화랑서 찾아(조약돌)

    ○…지난 2월16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395 힐튼호텔 1층 로비에서 도난당한 서양화가 김흥수씨(71)의 60호짜리 서양화 「나부좌상」을 4개월만에 서울시내 한 화랑에서 찾았다. 이 그림은 지난달 28일 하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청담미술관(대표 경길호ㆍ36ㆍ여)에 30대 남자가 부친의 유품이라고 가져와 경씨와 흥정을 하다 경씨가 『차를 끓여오겠다』며 자리를 뜬 사이 경찰에 신고하러 간줄 알고 그대로 놓고 달아난 것. 경씨는 그림이 구겨지고 얼룩져 있는 것을 이상히 여기고 화랑협회에 문의한 결과,힐튼호텔측이 지난85년 5백여만원에 구입해 로비에 전시하고 있다 도난당한 것임을 확인,경찰에 신고했다.
  • “북한,한·소 접근에 고립감”/방한 슈테르켄 서독 하원 외교위장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3일동안 북한을 방문한 뒤 내한한 한스 슈테르켄 서독 하원외교위원회위원장은 2일 『북한은 현재 동서독의 통일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한소 정상회담으로 심각한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슈테르켄위원장은 이날 하오 힐튼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이 때문에 북한은 지금 대서방 관계개선 의지를 강하게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슈테르켄위원장은 이날 자신은 어디까지나 개인의원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다고 강조하면서 『한반도 통일을 위해선 남북한 상호 폭력을 포기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마련되는 것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슈테르켄위원장은 이날 회견에 앞서 최호중외무장관과 홍성철통일원장관을 예방,통일 독일의 대한정책과 관련한 공동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 「한국전 기원과 성격」… 「6ㆍ25」 40돌 국제학술회의

    ◎스탈린,49년 3월 김일성 만나 “남침”확정 한국전쟁연구회(회장 김철범)가 주최하고 통일원이 후원한 한국전쟁 40주년기념 국제학술회의가 14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렸다. 「한국전쟁과 한반도의 평화 정착」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한국전쟁의 기원과 미소가 한국전쟁에 미친 영향 등이 집중 토의됐다. 이중에서 한국전쟁은 미소의 갈등으로 빚어진 특수한 내전이면서도 국제전의 양상을 띠었다고 주장하는 존 메릴 미국무성연구관의 논문 「한국전쟁의 기원 대답없는 질문」과 소련이 서유럽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북한을 사주 한국전쟁을 도발했다는 윌리엄 스투웨크 미조지아대교수의 논문 「소련과 한국전쟁의 기원」을 소개한다. ◎6ㆍ25의 기원/윌리엄 스투웨크 미 조지아대교수/크렘린,미ㆍ서구 밀착 저지 겨냥/극동에 긴장 조성… 미 경제난 유도 속셈도 한국전쟁은 주모자인 북한과 주요 군사물자 제공자이자 군사고문단 및 병력의 결정적인 공급자였던 소련,그리고 중국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났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정보다. 그러나 하필 이 시기에 소련이 이같은 모험을 추진할 것을 결정했느냐의 의문이 남는다. 당시 소련은 팽팽한 긴장속에 미국의 핵무기와 잠재된 기동력에 눌려 극도로 취약한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은 49년 가을 마샬플랜의 시행,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결성,서독정부의 출범,미의회의 대서유럽군사원조결의 등 일련의 사태로 미루어 볼때 미국의 관심이 서유럽에 집중됐다고 판단,미국과 서유럽 동맹국들의 단결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국내외 문제의 최종결정권자였던 스탈린은 대외정책에 관한한 공개토론을 허용했다. 49년에서 50년에 걸쳐 프라우다지는 몰로토프,스슬로프와 같은 온건관료층의 견해를 주로 반영했고 이즈베스티야지는 말렌코프,베리야와 같은 강경군국주의자들을 지지했다. 강경파들은 미국경제가 점차 퇴조하고 있으므로 소련이 서유럽에 압력을 가중한다면 미국은 곧 해외원조를 포기하고 서유럽에서 물러날 것으로 믿었다. 반면 온건파들은 서유럽에서의 미국의 영향력 강화와 경제적으로 유리한 여건을 강조,소련의 압력이 오히려 서방국가를 결속시켰으므로 긴장상태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은 온건파의 주장을 받아들여 서유럽에서는 평화정책을 쓰는 대신 극동지역으로 관심을 돌려 팽팽한 긴장상태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국제긴장상태 조성을 통해 ▲국내에서 권력을 유지하고 ▲소련주변 위성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며 ▲유럽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분산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스탈린은 소련의 정책전환에 따라 미국이 아시아 문제에 휘말리게 되면 미국의 경제적 위기가 촉진되고 상대적으로 중국이 소련에 의존하게 되리라는 계산도 했음직하다. 이에 따라 스탈린은 가장 위험성이 높은 북한의 남침 등 여러조치들을 아시아 지역에서 잇따라 시행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남한으로부터 미국이 멀어져 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모험을 할 수 있었다. 49년 한햇동안 미국은 남한주둔 미군을 모두 철수시켰으며 미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50년 1월12일 연설을 통해 미국의 태평양 방위체계에서 남한을 제외시켰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어 1월 중순에는 미하원에서 남한에 대한 경제원조안이 거부됐다. 스탈린은 이같은 상황이라면 남한이 위기에 처하더라도 미국동맹국들의 집단적인 개입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스탈린과 김일성은 49년 3월 김의 모스크바 방문시 북한의 침공을 논의했을 것이다. 스탈린은 마지막 남아 있던 미군이 철수하게 되니 침공계획을 세우라고 격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은 북한 김일성과 군사원조 합의안에는 서명했지만 상호안전보장 조약의 체결은 피했다. ◎6ㆍ25의 성격/존 메릴 미 국무성연구관/초강국갈등서 비롯된 「특수내전」/이해 엇갈린 미ㆍ소ㆍ중의 대리전 양상도 지녀 김일성이 살아있는 한 북한은 결코 그들이 전쟁을 시작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폐쇄체제의 영웅적인 자화상을 훼손하고 평양 당국으로 하여금 1백50만명에 달하는 한국인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을 일으켰다는 죄를 스스로 인정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에 대한 영웅적인자화상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지속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수년동안 평양에서 열리는 반미투쟁월의 경축행사를 계속 지켜보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는가에 관해 북한사람들이 형식주의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들이 전쟁을 시작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자신의 입장을 아주 자신있게 변호하지도 않는다. 평양 당국은 전쟁초기의 며칠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세한 설명을 결코 출판물을 통해서 밝히지 않고 있다. 또 한국전쟁에 관한 학술토의에 참가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인민공화국에서 발간한 한국전쟁사를 유심히 살펴본 비판적인 독자라면 북한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호한 표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평양을 격하하거나 40년전의 엄청난 사건에 대해 그들을 비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짐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특히 그들이 남한과의 신뢰를 구축하고 통일이라는 공동목표를 공유하려면 이러한 태도는 더욱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알 수 있듯이 남한도 나름대로의 짐을 지고 있다는 얘기다. 바로 이 대목에서 시작한 문제,즉 한국전쟁은 침략인가 아니면 민족해방전쟁인가에 대한 해답은 두가지 모두 해당된다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은 그것을 두고 「조전해방전쟁」이라고 부른다. 강제적으로 가로놓여진 경계선이 존재하고 있는 동안 1950년에 국토의 분단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그것을 영구적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드물었을 것이다. 수단과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이승만대통령도 김일성이 남한으로 쳐 들어왔던 것처럼 북진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이 국제전인가 아니면 내전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여기에서도 해답은 양자가 모두 해당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분단은 일본으로 부터의 해방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소련에서 비롯된 것이다. 초강대국의 불간섭과 그에 따른 한국에서의 경쟁적인 양체제의창출은 한국내의 좌익과 우익간 투쟁의 국내적인 측면을 강화했다. 이제 소련이 미묘하게 표명하고 있듯이 한국전쟁은 그 이후 미국과 중국의 개입(현재 우리가 조심스럽게 표명되고 있는 것을 듣고 있듯이 소련의 개입도 있었다)에 따라 국제화의 성격도 띤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은 냉전의 종식과 함께 두개의 한국이 상호 경쟁하는 국내적 성격이 다시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 중국학자가 밝힌 「중국의 6ㆍ25참전 배경」

    ◎김일성,남침2개월전 북경에 통보/모택동,유엔군 38선 넘자 심한 불안감/중국,미 무력위협 견제위해 참전 선언/소의 공군ㆍ물자지원 조건으로 병력 파견 6ㆍ25발발 40주년을 앞두고 한국전쟁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국내외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전쟁을 중국의 시각에서 조명한 논문이 중국학자에 의해 발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전쟁연구회(회장 김철범)주최로 14일부터 이틀간 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리는 한국전쟁40주년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중국국제전략연구소의 적지해연구원이 발표할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결정에 대한 재고찰」이란 제목의 논문은 중국의 한국전 참전배경을 새 시각에서 조명하고 있다. 중국의 한국전 참전은 국민당정부를 후원하는 미국으로부터의 무력개입위협을 견제하기 위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은 1950년6월20일 5천1백만명에 달하는 인민해방군을 주은래 책임아래 1천4백만명을 감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김일성은 50년4월 모스크바에서 평양으로 귀환도중 밀사를북경에 파견,모택동에게 군사적인 수단으로 조국을 통일키로 했다는 사실을 통보했으나 군사계획과 그밖의 상세한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 따라서 중국지도자들은 처음부터 한국전에 개입할 의도는 없었고 김일성의 요청에 따라 인민해방군에 속한 한국계 중국군을 보내는 것만으로 평양을 돕고자 했다. 그러나 모택동은 트루먼이 6월27일 중국본토와 대만사이에 제7함대를 배치하자 미국이 국민당을 구하기 위해 중국내전에 다시 참가하기로 결정할 것으로 믿었다. 이에 따라 7월10일 「미국의 대만 및 한국침략에 대한 중국인민위원회」가 북경에 설치됐고 모택동은 등후아장군으로부터 급속한 남진,보급선 확대,후방의 공백상태등 한국전의 상황을 보고받고 김일성에게 「남진속도를 늦추고 확실한 방어망을 구축하라」는 충고를 했다. 9월초 북동부지역 사령관인 가오강은 한국전 상황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통일할 기회는 이미 지나갔으며 김일성의 군사행동은 처참하게 실패하리라고 확신했다. 이에 모택동은 9월9일 동부군사지구 제10군에게 철도에근접하게 병력을 배치,압록강에 대한 병력보강에 대비할 것을 지시했다. 10월2일 주은래는 당시 인도대사인 파니카를 통해 만약 미군이 북한을 점령한다면 중국은 전쟁에 개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군이 서울을 탈환한뒤 영국외상 포리스트 버빈은 네루를 통해 유엔군이 만약 38도선을 넘어야 할 경우에는 압록강 40마일 앞에서 멈추겠다고 중국지도자들에게 통보했다. 미국은 인도를 통해 전달한 자신의 약속을 두차례나 어겼으므로 중국지도자들은 미국의 맹서는 사기술이라고 믿게됐다. 1천㎞에 이르는 압록강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병력이 필요하겠는가. 더구나 언제 적이 침입해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중국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었다. 50년 10월1일 김일성은 불리한 전황을 알리면서 인민의용군의 즉각 투입을 요청하는 전문을 모택동에게 보내왔다. 그러나 북동부지역 사령관 가오강과 임표는 이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들은 중국경제력의 열세와 군사력의 열세,후방의 취약성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이어 열린 정치국특별확대회의에서 ▲한국은 미국의 세계전략의 취약한 고리이며 ▲전면적인 핵전은 불가능하며 ▲한반도지형은 미군의 기계화부대와 화력운용에 불리하다는 결론에 따라 장기적으로 어느 정도 희생을 치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됐다. 만약 중국이 전쟁을 회피한다는 것은 국민당에 대한 해방전쟁이 몇년 더 지체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10월2일 정치국 특별회의에서 모택동은 소련이 공중지원과 전쟁물자를 원조한다는 조건으로 병력파견을 승인했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전황이 김일성에게 크게 불리해지자 스탈린은 딜레마에 빠지게 됐으며 이러한 딜레마의 탈출구로서 지상은 중국군이,공중은 소련공군이 기꺼이 맡기로 합의했다. 결국 10월13일 모택동은 김일성이 중국으로 후퇴하기 전에 한반도에 군대를 보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압록강을 건너 진격키로 결정했다. 소련은 합의대로 50년말 공군 2개사단(2백대전투기)을 파견,압록강철교와 1백㎞에 이르는 의용군 보급로를 엄호했으며 중국군복을 착용한 이들 소련군조종사는 생포되더라도중국계러시아 소수민족이라고 속였다. 한국전에 투입된 2백30여만명의 중국인민의용군은 당시 중국이 보유하고 있던 전야전군의 66%,전포병사단의 60%,전기갑사단의 1백%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모택동이 중국과 미국의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았거나 모택동이 본토를 석권했을 당시 트루먼이 보다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면 스탈린은 당시 상황으로 봐서 모택동의 결정을 제지했는지도 모른다. 한국전에서 이데올로기는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지난 30년동안 서구의 역사가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중국공산당과 트루먼행정부가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했더라면 중국의 참전이라는 비극은 분명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 “「호화 결혼식」명단공개”/「가족모임」위장 부쩍 늘어

    ◎무허 식장 고발ㆍ세무조사등 병행/서울시,새달부터 시행 서울시는 오는 7월1일부터 특급호텔이나 각종 사회ㆍ종교단체 등에서 무허가 호화결혼식을 올리는 신랑ㆍ신부와 혼주의 명단을 지상에 공개하고 이들에게 식장을 빌려주는 업주와 건물주인은 형사고발과 함께 보건위생ㆍ세무조사ㆍ법인감독 등 일제합동점검을 실시키로 했다. 시는 1단계로 이달말까지 홍보와 자율계도를 펴는 한편 본청과 22개구청에 신고창구를 마련하고 다음달 1일부터는 소비자보호단체와 함께 사회저명인사 등 지도급인사를 대상으로 적발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시의 이같은 조치는 부유층의 변칙호화혼례가 과소비를 부추길뿐 아니라 계층간 위화감마저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시가 단속에 앞서 지난 4월부터 각 구청별로 합동단속반을 편성,일제점검을 실시한 결과 호텔의 경우 가족모임형식으로 장소를 제공한 뒤 일반예식장주변 음식점의 10배이상인 1인당 2만∼3만원의 음식값을 받아왔고 각종단체의 회관 등은 회비ㆍ헌금ㆍ찬조비 등 명목으로 수십만원의 사용료를 받고있다는 것이다. 무허가 예식행위를 해오다 적발된 호텔 및 사회 종교단체는 다음과 같다. ◇특급호텔=라마다인올림피아 롯데 신라 힐튼 플라자 조선 앰배서더 서울로얄 프레지던트 코리아나 세종 타워 하이야트 캐피탈 워커힐 스위스그랜드 서울가든 서울팔레스 리버사이드 인터콘티넨를 라마다르네상스 뉴월드 남서울워싱턴 리베라 잠실롯데월드 ◇종교 및 사회단체=한국기독교회관 여전도회관 한국교회 1백주년기념관 천도교수운회관 성균관 한국의집 세종대왕기념관 드림랜드 서부농협예식부 의료보험관리공단 서울대동창회 복지예식장 강서단협예식장 공군회관 해군회관 63빌딩 한국종합전시장
  • 김종휘보좌관 파견/가이후에 결과 설명

    【호놀룰루=이경형특파원】 노태우대통령은 역사적인 한소및 한미간 연쇄정상회담개최를 위한 5박6일간의 방미일정을 끝내고 8일 하오(한국시간) 귀국한다. 노대통령은 이날 도착성명에서 연쇄정상회담의 결과를 다시한번 확인하고 귀국하는 대로 청와대에서 임시국무회의를 주재,한소 정상회담이후의 대응방안을 논의한다. 노대통령은 이보다 앞서 6일 하오 3시(현지시간) 워싱턴을 출발,이날 하오 7시15분(현지시간) 하와이 호놀룰루 히캄공군기지에 도착,숙소인 카할라 힐튼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노대통령은 이곳에서 1박한 뒤 7일 하오 2시(한국시간 8일 상오 9시) 히캄기지를 출발,8일 하오 7시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노대통령은 호놀룰루 출발에 앞서 수행중인 김종휘 외교안보담당보좌관을 가이후 일본총리에게 파견,한소및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토록 할 예정이다.
  • 공직자숙정,투기ㆍ호화생활 내사 여파/호텔ㆍ골프장 “발걸음 주춤”

    ◎예약 잇단 취소… 업소마다 울상/조촐한 전문음식점은 때아닌 호황 공직자에 대한 사정활동이 강화된 이후 고급호텔과 고급술집ㆍ음식점등 사치성 유흥업소와 골프장 등을 찾는 공직자들의 발길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이 때문에 광화문ㆍ과천등 관공서주변이나 강남 유흥가일대에서는 호화스러운 고급술집이나 음식점 대신 규모가 작은 한식집 또는 전문음식점 등에서 간단한 식사만하고 헤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30여개의 크고 작은 방이있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M룸살롱의 경우 손님의 50%가량이 공무원ㆍ사회지도층 인사들이었으나 최근에는 하루에 한 건 정도 이같은 손님이 찾을 뿐 발길이 끊어졌다는 것이다. 성북구 성북동 초대형 D음식점에서는 평소 대형룸6개를 포함,30여개의 방에 저녁시간이면 80%정도 손님이 들었으나 최근들어 10%가량 줄어 들었다. 종로구 익선동 O관광요정의 경우 공직자접대 20%,외국관광객 80%정도의 비율로 손님이 들었으나 최근에는 전적으로 외국관광객들에게만 의존하고 있다. 용산구 이태원동 D중국음식점 영업부장이신일씨(45)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정치인이나 고급공무원들이 하루 3∼4팀 정도 이곳을 찾았으나 이달들어서는 거의 없는 실정』이라면서 『최근 정부의 과소비 사치풍조 추방운동 때문에 공직자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호화업소출입을 자제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라호텔에서는 지난달 모두 10건의 공직자들이 참석하는 대형 연회가 있었으나 이달들어서는 단 한건도 열리지 않았고 예약도 없는 실정이다. 힐튼호텔 연회장도 이달중순 현재 50여건의 크고 작은 연회예약이 들어와 있으나 공직자들이 예약했던 것은 거의 취소됐다. 이 호텔직원 최모씨(27ㆍ여)는 『일부 공직자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예약한 파티계획을 취소하고 있으며 가족모임등 불가피한 경우에만 예약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순 문을 연 성북구 종암동 M호텔은 다소 가격이 싼 장점을 내세워 각종 접대모임이나 연회등을 잔뜩 기대했었으나 공직자들이나 지도층들이 전혀 찾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N컨트리 구락부의 경우 휴일 평균 고객80∼90팀 가운데 10여팀 정도는 공무원들이 끼어 있었으나 최근에는 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이곳의 영업대리 유호동씨(34)는 『공무원들이 출입을 자제하다 보니 자연히 이들을 접대하기 위한 손님들도 줄고 있다』면서 『이때문에 일반골프객들의 예약이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군 원당읍 H컨트리클럽의 경우 휴일이면 평균 5백20∼5백30명정도 내장객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3백90명 안팎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공직자및 관련인사들의 호화업소출입이 줄면서 한식ㆍ일식ㆍ양식등 조용하고 아담한 전문음식점들이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호황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강남구 삼성동 B레스토랑지배인 김모씨(41)는 『최근 호화스러운 곳보다는 조용한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업소들이 오히려 영업이 잘되고 있다』면서 『이같은 고객들의 취향에 맞게 이달초부터 내부수리를 한뒤 아담하고 실속있게 꾸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KBS보도프로 정상화/기자 2백명 복귀/내일부터 2TV뉴스 부활

    한국방송공사(KBS)는 12일 보도본부기자 2백여명이 정상출근,제작에 참여함으로써 뉴스프로그램이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보도미술부 일부 사원들도 제작에 협조,모든 TV뉴스에 자막을 넣어 방영하도록 했다. 이에따라 회사측은 잠정폐지됐던 2TV의 상오8시55분및 하오10시45분 뉴스를 14일부터 부활시키기로 했으며 26개 지방국의 1TV 하오7시뉴스 가운데 5분짜리 지방뉴스도 정상화하기로 했다. 회사측은 또 20분으로 단축방송되던 1TV 하오9시뉴스를 30분간 방송하도록 했으며 1개 채널로 통합방송되던 AM라디오 3개 채널 가운데 제2라디오를 분리,방송하기로 했다. 방송정상화로 이날 하오7시30분 서울 힐튼호텔 특설링에서 열린 프로권투 WBA페더급 한국의 박찬목 대 베네수엘라의 안토니오 에스파라스고사와의 타이틀전이 1TV로 생중계됐으며 13일 군산에서 열릴 WBA미니멈급 타이틀전도 생중계될 예정이다. KBS사원 2천여명은 이날 정상출근했으나 제작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고 실ㆍ국별로 정상화에 대해 논의했다.
  • 국군조직법 개정안 세미나… 이석복준장 주제발표

    ◎“현대전 수행위해 군제개선 불가피”/3군 통합전력 향상… 국방자원 관리에 효율적 국방부는 10일 하오 서울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여야정치인ㆍ언론인ㆍ학자 그리고 현역 및 예비역 장성 등 관련 인사 6백여명을 초청,「한반도 안보환경 전망 및 국군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상우교수(서강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에서 차영구박사(국방연구원)는 『90년대 안보환경변화와 군구조개선』,이석복준장(국방부)이 『군구조개선의 필요성과 주요내용』 유재갑박사(국방대학원)가 『국군조직법 개정과 문민통제』,이승우교수(경원대)와 강경근교수(숭실대)가 『국군조직법개정과 합헌론』등의 주제로 발표를 했다. 합참 전략기획국 이석복준장의 주제발표내용을 요약한다. 국방부가 장기국방태세 발전방향의 연구에 착수,한국의 장기적인 안보환경을 분석하고 우리환경에 맞는 군구조개편작업에 착수한 것은 88년 8월18일부터이다. 국방부는 「한국방위의 한국화」라는 대명제를 달성하기 위해 현대전이 요구하고 있는 지휘반응의즉시성과 육ㆍ해ㆍ공군의 통합전력발휘를 보장하고 2천년대 태평양시대의 중심국가로 부상하고 통일위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른바 「8ㆍ18계획」을 입안하기 시작했다. 현재 세계 각국의 군구조는 대략 자문형합참의장제ㆍ통제형합참의장제ㆍ합동군제ㆍ통합군제ㆍ단일군제 등 5개의 대표적 유형으로 구분되어 있다. 각 국의 군제는 문화적ㆍ정치적ㆍ역사적 배경과 전략환경ㆍ가상적군ㆍ국경의 형태ㆍ무기체계에 따라 해양국형과 대륙국형으로 나눌 수 있다. 대체로 서양문화권은 한 지휘관에게 권한을 집중시키지 않는 합동군제로 발전하고 동양문화권은 능률성을 추구하는 통합군제를 채택해 왔다. 현재 한국군이 채택하고 있는 자문형 합참의장제는 1924년 영국에서 수상을 자문하기 위한 제도로 미국은 2차대전이 끝난 47년 채택했다가 58년 통제형 합참의장제로 개선하고 영국은 64년 육ㆍ해ㆍ공군 합동문제인 국방참모총장제로 발전시켰다. 공군이 독립하고 항공모함전단이 구성된 40년도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 밖에 없으며 대부분의 공산국가와 이스라엘ㆍ터키ㆍ대만 등의 나라에서는 지휘관 한 사람에게 군정ㆍ군령권이 모두 주어진 강력한 국방참모총장제도나 단일 참모총장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군장성과 학자ㆍ교수 등 40여명의 「8ㆍ18」 연구위원들은 전세계의 군구조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조사 연구한 결과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반도국가인 우리의 현실에 맞는 군제로 육ㆍ해ㆍ공군 3군본부는 그대로 둔 통제형 합참의장제와 합동군제가 타당할 것으로 판단했다. 모델로서 이스라엘 서독 영국 미국 군제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한국적 여건에 맞는 군제를 마련했다. 첫째,북한의 군사전력인 기습전과 우리의 짧은 전장을 고려할 때 전ㆍ평등체제를 별도로 유지했을때 전환기의 혼란은 전쟁의 승패와 직결됨으로 이스라엘과 미국과 같은 전ㆍ평시단일체제를 선택하고,둘째 국방비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 영국ㆍ서독과 같이 합참주도의 군사력 건설소요제기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자원이 없는 우리현실에 유리하다고 보고,셋째 작전의 즉응성과 권력집중방지를 위해서는 미국처럼 3군의 작전부대를 합참에서 직접 지휘하되 군정권은 각 군총장이 행사케 함으로써 상호균형과 조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최종 완성된 군제를 개괄해 보면 대통령과 국회에 책임을 지고 있는 국방장관이 군정ㆍ군령을 통괄하되 군정은 각군 총장을 통하여 행사하고 군령은 장관에게 군령분야를 보좌하는 합참의장을 통하여 행사하는 체제이다. 군구조가 개선되면 현대전이 요구하는 육ㆍ해ㆍ공군 통합전력이 발휘되며 국방자원관리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주한미군이 철수한 이후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이룰 수 있는 요체가 된다. 1차대전까지의 전쟁양상은 지상군이 비교적 단순한 전력으로 승리하면 전략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고 해상전도 병참선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지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항공기의 출현과 유도탄개발ㆍ전자수단의 무기화,원폭ㆍ수폭 등 무기체계의 발달로 육ㆍ해ㆍ공군 3군이 병립하고 각군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한편 전시에는 상호의존적ㆍ간섭적 형태로 변화하게 되었다. 현대전에서는지상군ㆍ해군ㆍ공군은 단일작전지휘관의 강력한 지휘통솔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장기국방태세 발전방향연구는 국력의 신장과 함께 안보환경변화에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2천년대 태평양시대 중심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민족사적 위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주국방태세를 확립하는 데 있다.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감축이 가시화되고 있는 현재 새로운 군제도의 정착 소요기간을 4∼5년으로 고려할 때 한ㆍ미연합사령부 지휘체제안에 안정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국방자원관리의 효율화와 3군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시급한 일이다.
  • “북방정책 목표는 통일에 둬야”/안병준교수,학술회의서 주장

    ◎한ㆍ소정식 수교땐 중국도 대한접근/정책혼선 막게 전문기관 설립토록 동유럽에 지각변동을 초래한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아시아의 오지인 네팔ㆍ몽고에 이르기까지 이제 그 개혁물결의 파장을 넓혀가고 있다. 이와 때맞춰 활기차게 추진되고 있는 한국의 북방정책도 사회주의국가들의 변혁과 88서울 올림픽이라는 호재가 어우러져 이들 국가와 수교관계를 맺는 결실단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한국과 공산권국가들과의 관계정상화를 맞아 서울대부설 소련ㆍ동구연구소(소장 이인호교수)가 「소련ㆍ동구의 변화와 한국의 대응」이란 주제로 20,21일 이틀간 서울 힐튼호텔에서 학술회의를 개최,주목되고 있다. 이 회의에서 안병준교수(연세대)가 21일 발표한 「북방정책의 평가와 향후방향」이란 제목의 논문을 요약,정리한다. 북방정책의 내용과 방법은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하여 「정경분리」에서 「정경연계」로 전환되고 있다. 원래 공산국가들은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정경분리를 선호했고 주로 한국과의 경제관계만을추구했으나 한국은 정치와 경제를 연계시켜 그들이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해 남북관계개선과 긴장완화에 기여할 것을 촉구해왔다. 지난해 동구 및 소련의 변화로 인해 공산국가들이 한국과의 수교에 응하게 되어 교차승인이 성립되고 있으며 한국은 경제진출에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방정책의 성과를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공산국가들이 한국을 실질적으로 승인했다가 법적으로 승인하고 있는 점이다. 현재 알바니아를 제외한 모든 동구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했거나 할 예정이며 소련과도 수교가 성사될 전망이다. 원래 공산국가들은 한국에 대해 경제교류를 우선적으로 원했고 한국도 미국ㆍ일본 및 서구에서 일고 있는 보호주의 경향으로 또다른 시장이 필요했기에 경제교류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공산국가들과 무역 투자 기술협력을 확대해가고 있으며 한국의 대공산권국가 교역량은 지난 87년의 21억달러에서 지난해에는 42억달러로 급신장하고 있다. 또한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과 공산국가간에 체육 문화 및 인사교류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소련과는 연구소와 대학간에 학술ㆍ체육교류협정이 체결되고 있다. 북방정책의 성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련 동구 중국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도움이 되고 한국의 통일정책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의 수교관계를 맺거나 경제 및 문화교류를 하고 있는 공산국가들은 평화와 안정을 지지하고 나아가서 북한에 대해 취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을 이해할 뿐 아니라 공식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체제의 변혁 및 신데탕트(화해),한국의 경제력,서울올림픽,진취적인 한국의 북방정책 등이 이러한 성과를 얻는데 기여했다. 한국이 중국 동구 소련과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사회주의체제가 개혁 또는 변혁됐고 그결과 동서간에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데탕트가 냉전을 종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해의 천안문사건이후 국내정치가 보수화했기 때문에 김일성과 제휴해 사회주의 고수를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이 한국과 정식수교관계를 갖게 되면 중국도 이런 방향으로 노력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공산국가들은 88올림픽에 참가,한국의 경제력에 대해 목격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들은 한국과 교류함으로써 경제적인 이익을 획득할 수 있고 한국의 경험을 배울 수 있게 됐다. 지난 88년 노태우대통령이 중국 소련 및 다른 공산국가들과 관계개선을 위한 「7ㆍ7선언」을 발표한 뒤 한국이 취해온 북방정책은 공산국가들이 한국과의 접촉을 쉽게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북방정책이 이처럼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북방정책은 북한에 대한 통일정책과 미국에 대한 안보협력,그리고 통상정책과 잘 조정된 체계적 전략이 결여돼 있는 실정이다. 또한 정책을 연구,기획,조정,평가하는 활동을 제도화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정치적인 시각에서 북방정책을 공작적으로 취급하는 면이 있고 언론과 기타관계자들은 과도한 보도와 과시적인 행동으로 불필요한 경쟁을 표출,북방정책 당사자들간에 반목과 혼선을 빚고 있는 점도 지적된다. 또한 중국 소련 동구국가들과 접촉하는데 있어서 전문가와 깊은 지식을 갖춘 인력이 부족하다. 북방정책의 중요성만 강조됐으며 이에 상응하는 연구 훈련 및 토론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고 보다 효과적인 북방정책을 앞으로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략적 사고와 정책결정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북방정책은 전쟁을 억지하고 긴장을 완화해 궁극적으로 남북대화와 통일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전략에 근거해야 할 것이다. 정부에서는 국가안보회의가 본연의 임무를 활성화해야 할 것이며 민간에서는 국제민간경제협의회(IPECK)가 강화되고 종합적인 연구소와 연수계획이 시급히 보강돼야 한다.
  • 박철언장관 사표 제출/어제 강총리에/민자내분 일단 수습국면 전환

    ◎청와대4자회동 16일께 성사될듯 장기화조짐을 보이던 민자당내분은 13일 김영삼최고위원에 대한 공격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박철언정무1장관이 사표를 제출함으로써 수습국면에 들어섰다. 박장관은 이날 상오 강영훈국무총리에게 정무1장관직 사퇴서를 제출한뒤 하오 기자회견을 갖고 『옛날에도 그랬지만 현재도 나라와 당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서라면 직책에 연연치 않겠다는 것이 평소의 마음가짐』이라면서 『지금 이 시점에서도 역시 그런 소신을 밝히는 것이 나라와 국민에 대한 나의 도리라고 생각해서 사퇴서를 제출했다』고 사퇴이유를 밝혔다. 박장관은 그러나 전국구의원직 사퇴문제에는 언급치 않았으며 이에따라 의원직은 그대로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강총리는 금명 박장관의 정무1장관직 사퇴서를 노태우대통령에게 전달하게될 것이라고 총리실관계자가 전했다. 이와관련,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은 박장관의 사표처리문제에 대해 『노태우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대한 당내의견 조정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강총리의 의견도 들어본뒤 결정할 것』이라고 말해 사표가 당장 수리되지 않을 것임을 비쳤다. 이대변인은 강총리가 언제 청와대에 들어올 것인가라는 물음에 『적어도 오늘(13일)은 대통령의 다른 일정 때문에 어렵다』고만 밝혀 강총리가 박장관의 사표를 노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시기는 이번 사태에 대한 민자당내 계파간의 수습방안 합의와 연계되어 있음을 시사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노대통령의 박장관 사표처리는 노대통령과 김영삼·김종필최고위원 및 박태준최고위원대행등 「4인 청와대회동」후에 이뤄질 것이라고 말하고 『청와대 회동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이번 사태와 관련된 제반문제에 대한 당내의견 조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대통령이 박장관의 사퇴서를 수리할 경우 박장관은 당헌상 당연직으로 갖고 있던 당무위원직에서도 물러나게 된다. 이날 박장관의 사퇴서 제출에 대해 김영삼최고위원은 『코멘트하고 싶지 않다』고 유보적 자세를 보였으나 김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박장관이 의원직까지 사퇴해야만 문제가 마무리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그러나 민자당내 각 계파간에는 박장관의 장관직사퇴로 당내분을 매듭짓자는데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해가고 있으며 김종필최고위원이 14일 상오9시 김영삼최고위원을 상도동으로 방문,박장관의 사퇴로 문제를 마무리 하는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이에따라 이번 사태를 마무리짓기 위한 노대통령과 두 김최고위원·박태준 최고위원대행간의 청와대회동은 16일쯤 성사될 전망이다. 이에앞서 김종필최고위원ㆍ박태준최고위원 대행은 박장관 합석하에 이날 상오 서울 힐튼호텔에서 회동,전날 자신과 김영삼최고위원간의 회동결과를 토대로 당내분수습방안을 협의했다.
  • 남북한 IPU대표단 교환방문 의견일치/니코시아총회 접촉

    사이프러스의 니코시아에서 열리고 있는 제83차 국제의원연맹(IPU)총회에 참석중인 한국대표단(단장 박정수민자당의원)은 7일 사이프러스 힐튼호텔에서 북한대표단(단장 김국훈)과 만나 남북한 IPU대표단간의 상호교환방문에 관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9일 국회에 통보해 왔다. 한국대표단은 남북한 IPU대표간의 상호교환방문절차나 시기문제는 추후 적절한 절차에 따라 결정짓기로 했다고 밝혔다.
  • 첫 서울취항… 메틸알코올 나눠마셔/소기승무원 1명 사망ㆍ3명 입원

    지난달 30일 우리나라에 첫 취항했던 소련 국영 아에로플로트항공 승무원 가운데 4명이 호텔 객실에서 메틸알코올을 물에 타 마셔 1명이 숨지고 1명은 중태,2명은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4일 하오 6시쯤 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 힐튼호텔 325호실에 투숙중이던 블라디미르 마슬로프씨(36)가 심한 복통과 구토증세를 일으켜 서울 종로구 한국병원으로 옮겼으나 5일 0시10분쯤 숨졌다. 이에 앞서 숨진 마슬로프씨와 함께 투숙했던 알렉사노레 보리소프(31),빅토르 리콜리네(30),세르게이 나브로프씨(32) 등 3명도 3일 자정쯤 같은 증세로 한국병원에 입원했다가 6일 상오 10시쯤 서울 강동구 풍납동 중앙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리콜리네씨는 중태다. 보리소프씨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일 저녁 서울 이태원에서 3달러를 주고 알코올 3병을 산뒤 호텔객실로 돌아와 넷이서 함께 이 알코올을 물에 타 나누어 마신뒤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심한 복통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보리소프씨는 『소련에 있을 때도 가끔 알코올을 물에 타 마셔왔다』고 말했다. 이들의 치료를 맡은 중앙병원 내과과장 홍창기씨(53)는 『3명이 모두 시각장애를 일으키고 있으며 피 속에 산이 많이 포함된 산혈증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메틸알코올을 마신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숨진 마슬로프씨도 죽기전에 완전히 시력을 잃었으며 부검결과,사인이 알코올중독으로 판명됐고 식도와 위,십이지장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이들이 인체에 치명적인 공업용 메틸알코올을 너무 많이 마셔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이들에게 메틸알코올을 판 업소를 찾고있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낮 12시48분 아에로플로트소속 SU599 일류신62­M 정기여객기편으로 동료승무원 11명 및 승객 51명과 함께 김포공항에 도착한 뒤 그동안 서울 힐튼호텔에 머물렀었다. 숨진 마슬로프씨는 소련에서 떠나기전부터 몸이 아팠으나 한국에 오고싶어 이를 숨기고 자원,오는 도중 줄곳 기내에서 누워있었다. 한편 아에로플로트 첫 취항의 소련측 대표로 왔던 민항성 제 1차관 보리스 E 파니코프씨도 이날 하오 2시50분쯤 김포공항 1청사 귀빈실에서 출국대기중 고혈압으로 쓰러져 공항의료실에서 응급치료를 받을 뒤 출국했다.
  • 남북 군축 적극 전개/김영삼 위원 연설

    민자당의 김영삼최고위원은 2일 하오 서울 힐튼호텔에서 국제학술원 초청강연을 갖고 「민자당 창당과 북방외교」란 주제로 연설했다. 김최고위원은 이날 강연에서 『남북간의 상호교류와 경제협력은 물론 군축협상도 본격화해 수년내에 남북 평화공존시대가 도래되도록 하겠다』면서 『3월19일로 예정된 소련방문은 민간외교차원을 넘어 집권당의 최고위원으로 책임있는 입장에서 북방외교의 영역을 넓히고 통일외교로 이어지는 발판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최고위원은 이에 앞서 이날 하오 국회에서 박종근 노총위원장 일행의 예방을 받고 노총의 건의사항을 설명들었다.
  • 북한­일본­서울 오가며 3각거점구축/서순은형제간첩 어떻게 활동했나

    ◎학연ㆍ혈연 이용,정치권 파고들어/인물 동향ㆍ군사 정보등 수집 보고/형은 컨트리클럽 대표로 재계 인사에 접근 국가안전기획부가 28일 발표한 서순은ㆍ순택형제의 간첩사건은 이들이 30여년동안이나 수사당국에 적발되지 않고 임약해 왔으며 특히 북한 재일공작지도부의 「거점책」이 직접 국내에 침투했다가 검거된 최초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안전기획부에 따르면 서순택은 김학근(68)이 총책으로 있는 재일관동지역 대남공작지도부의 「거점책」으로 김정일 등 북한지도부의 지령에 따라 「북한기지」「일본공작지도부」「서울」을 삼각거점으로 35년동안 암약해 왔다. 문제의 관동지역 대남공작지도부는 김일성이 「봉화산 그루빠」라는 조직명칭을 붙여줄 정도로 절대적 신임을 받아 온 일본내 최대 대남공작조직이라는 것이 안기부의 설명이다. 서순택이 「조총련」중앙의장인 한덕주(83)에게 포섭되어 대남공작활동을 한 대목 또한 한덕주가 대남 지하공작에 직접 관여하고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서순택이 형 순은을 포섭하여 형제간첩으로 활동한것은 북한이 학연ㆍ지연은 물론 심지어는 혈연 등 모든 연고관계를 이용하여 집요하게 대남우회침투공작을 추진해 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은 또 문부식ㆍ예춘호 등 지명도가 있는 정치인을 공작대상으로 선정,정치권의 상층부에 접근을 기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순택은 60년12월 「조총련」동경본부 조직부 부부장 등 핵심간부로 활동하다가 중앙의장 한덕주에게 포섭된 뒤 「재일대남공작지도부」총책 김학근에게 인계되어 북한노동당에 입당하고 65년2월 대남공작에만 전념하기 위해 「조총련」에서 이탈해 「민단」으로 위장전향했다. 그는 60년대에는 이른바 「알까기식」의 대남지하당을 조직하는 공작에 주력하다가 69년12월 총책인 김으로부터 국내지도층 인사들과 교분이 넓은 셋째형 순은을 포함,부산상고 및 동아대 동창기반을 이용한 「대남고급정보 수집공작」으로 전환하라는 지령을 받고 70년1월 국내에 침투,활동한 공로로 3차례에 걸쳐 북한의 국기훈장과 공로메달을 받았다. 70년12월 순은이 도일하여 회사운영자금지원을요청하자 총책인 김과 접선시켜 노동당에 현지 입당시킨 뒤 공작금으로 5백만엔을 주고 포섭했다. 그뒤에는 그를 이용해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 주요인사를 비롯,예비역장성 등 군부의 주요인물 동향을 수집,보고해 왔다. 72년10월 「유신선포」,74년8월 「문세광사건」으로 신변에 위험을 느끼게 되자 일본에 들어갔다가 82년5월 입북하여 김정일 등을 면담,김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82년8월부터 다시 국내에 드나들면서 5공화국 출범이후의 권력실세판도와 5공화국 핵심인물 신원정보 등을 북에 보고하는 한편 정치ㆍ군사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형으로 하여금 「예비역장성친목모임」을 구성하도록 기도했다. 87년12월 총책인 김으로부터 『남조선에 직접 침투하여 위장업체를 설립하고 합법활동의 토대를 구축한 다음 형과 함께 여야정당의 상층부를 통해 고급정보를 수집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이에따라 88년3월 국내에 다시 침투,힐튼호텔 구내식당에서 13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한 동아대동창생 문부식씨(61ㆍ당시 민주당 하동ㆍ남해지구당위원장)로부터 『전국구 국회의원을 시켜줄테니 선거자금 5억∼6억엔(한화 30억∼36억원)을 낼 수 있는 재일교포를 소개시켜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이같은 사실을 총책인 김에게 보고한 결과 『민주당에 침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나 시일이 촉박하므로 다음 기회에 대비,계속 유대관계를 공고히 하라』는 지령을 하달받았다. 89년12월에는 부산상고 동창생으로 정치ㆍ경제계에 교분이 두터운 전외환은행 동경지점 차장 이동우씨(61)와 동업형식으로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고려아카데미텔 816호실을 임대해 한국케라모스라는 위장업체를 설립하고 올 1월11일 사업자등록까지 마쳐 합법활동거점을 구축해 왔다.
  • 교포 3세 지위 논의/한ㆍ일 양국 실무회담

    한일 양국은 27일 상오 서울 힐튼호텔에서 김정기 외무부아주국장과 다니노 사쿠타로(곡야작태랑) 일본 외무성아주국장이 참석한 가운데 재일동포 3세의 법적지위문제에 대한 실무회담을 열었다. 이날 회담에서 우리측은 재일한국인들이 일본에 거주하게 된 역사적 배경등을 고려,다른 외국인들과는 달리 교포 3세 이하에게는 영주권을 자동으로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일본측은 재일한국인 문제는 다른 재일외국인들과 형평에 맞게 다뤄야 하며 정치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힐튼호텔 로비 억대 그림 도난

    지난16일 상오4시쯤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힐튼호텔 1층 로비에 걸려있던 김흥수화백의 시가 1억2천만원짜리 여인상 유화가 도난당했다. 「나부좌상」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호텔측이 지난85년 6월에 사들인 것으로 범인은 1층 로비 화장실 옆 복도에 걸려있던 이 그림을 장애자 화장실로 옮겨 액자를 부순 뒤 그림만을 챙겨 달아났다. 경비원 김대동씨(27)에 따르면 이날 새벽3시쯤 경비순찰을 할 때는 그림이 그대로 붙어 있었으나 1시간 뒤에 다시 가보니 그림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경찰은 부서진 액자에 지문이 남아있지 않고 도난당한 그림이 시중 화랑에서 높은 시세로 호가되고 있는 점으로 미뤄 이 분야에 밝은 전문털이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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