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국민을 설득하는 매력/강미은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정치는 이제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이다.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점점 더 정부권력의 주요 업무가 국민 여론을 설득하는 것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상명하달식의 권위로 찍어 누르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정책을 제안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공감하지 않는 정책을 밀어붙이려다가는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된다.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핵심 메시지가 명확해야 한다. 정책이나 정치인, 상품이 제공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정책 설득이나 상품 마케팅이나 선거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선거에서도 핵심 메시지의 힘이 무섭다. 이명박 당선인은 ‘경제 대통령’을 핵심 컨셉트로 줄곧 밀고 나갔다. 선거 기간 내내 줄기차게 ‘경제 대통령’이라는 큰 컨셉트 아래서 ‘경제, 꼭 살리겠습니다’ ‘경제, 책임지겠습니다’ 등으로 변형한 구호를 만들었다.‘이명박=경제’라는 등식을 확고하게 심어 주었기 때문에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선거는 단순한 메시지가 이기는 게임이다. 슬로건도 단순해야 하고, 캠페인의 핵심 컨셉트도 단순해야 한다. 단순한 컨셉트를 가지고 단순하게 전달해야 한다.
반면에 정동영 후보는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명박 광고에도, 정동영 광고에도, 이명박 후보의 사진이 실렸다.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지 못했다. 정동영은 이미 이마에 ‘노무현’이라고 붙이고 있는 셈이었기에,‘개성동영’도 ‘가족행복’도 먹히지 않았다. 정동영이 뭐라고 말을 하건, 사람들은 오직 그의 이마에 붙어있는 ‘노무현’만 보았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돌풍을 불러일으키는 데도, 핵심이 분명한 그의 메시지가 중심에 있었다. 힐러리 의원이 힘(muscle)이 있다면 오바마 의원은 마력(magic)을 갖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오바마 의원의 마력은 ‘투쟁하는 흑인’이 아니라 ‘화합을 이끄는 흑인’이라는 이미지이다. 오바마의 말은 겸손하면서 흡인력이 있다.
“진보적 미국과 보수적 미국이란 없습니다. 흑인의 미국과 백인의 미국이란 없습니다. 미 합중국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바마의 연설 중 이 구절은 미국인의 마음을 흔들었다. 우리 선거에서도 늘 후보자는 희망과 변화, 통합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 주장에 오바마와 같은 품위도 없었고 독선이 보였기 때문에 평가받지 못했다.
핵심 메시지의 힘을 간과하는 한, 상품 마케팅에서건 정치에서건 승리는 없다. 간결한 한 줄의 ‘힘’이 안 나올 때, 대중들은 그 정치인이 무엇을 설파하고자 하는지 알 길이 없다.‘정치인 ○○○=○○○’라는 간결한 한 줄이 나와야 대중에게 강력한 이미지로 각인된다. 대중들은 30페이지짜리 정책제안서를 읽지 않는다.5분 동안의 긴 설명을 들어 주지도 않는다. 핵심적인 한 줄로 간결하게 담아야 전달이 된다.
정치에서는 한 문장으로 된 슬로건이 대단히 큰 역할을 한다. 미국 클린턴의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stupid!)”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파워 슬로건이다. 레이건의 “당신은 4년 전보다 살기가 나아졌느냐?(Are you better off than 4 years ago?)”는 그에게 승리를 안겨다 주었다. 브라질 룰라의 “행복해지기를 두려워 맙시다.”도 시대정신을 반영한 효과적인 슬로건이었다.
정치는 ‘규정하기’의 게임이다. 나를 규정하고, 경쟁상대를 규정하고, 선거의 의미를 규정해야 한다. 이 ‘규정하기’ 게임에서 유리한 ‘틀’을 선점한 사람이 이기게 된다. 그래서 간결한 한 줄로 핵심을 규정해야 한다. 중요한 메시지일수록 압축해야 한다. 앞으로 새로운 정부가 해나가야 할 많은 일은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성공한다. 국민을 설득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핵심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강미은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