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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 정정 갈수록 혼미/싱 총리 사임

    ◎종교분쟁 불씨… 의회서 「불신임」 가결/정파간 이해 얽혀 제2연정 구성도 난항 비슈와나트 프라탑 싱(자나타 달당) 인도 총리가 종교분쟁의 결과 야기된 7일의 신임투표에서 예상대로 3백46대 1백42로 참패,인도정국의 앞날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싱총리의 소수 국민전선연정은 힌두교사원 건립문제를 놓고 싱과 이견을 보인 바라타야 자나타당(BJP)이 자당 아드바니총재가 지난 10월23일 힌두교사원 건립을 위한 캠페인 도중 체포된 것에 항의,지지를 철회함에 따라 붕괴가 예견됐었다. 지난 총선시 86석의 의석을 획득,제3당으로 부상한 힌두교 부흥주의 정당인 BJP는 이슬람교의 사원이 있는 인도 북부 아요드야시에 힌두교사원을 건립하려 했으나 싱총리는 이렇게 될 경우 힌두교와 이슬람교도의 유혈충돌이 예상된다면서 이를 반대해왔다. BJP와 인도 북부를 중심으로 하는 힌두교 극렬세력은 지난 16세기 이슬람의 무굴제국이 힌두교의 라마신이 태어난 곳인 아요드야시의 힌두교사원을 허물었다면서 힌두교사원 건립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8억5천만 인도인중 12%를 차지(힌두교도는 82%),수적인 열세를 보이고 있는 이슬람교도들은 이것이 허용될 경우 수백곳의 사원에 미칠 파급효과를 우려,극력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의 총선에서 라지브 간디의 국민회의당이 총 5백25석중 1백95석을 차지,과반수의석 확보에 실패하자 네루왕조의 40년 집권을 종식시킨다는 이유로 등장한 현연정은 극좌 공산당에서 극우 BJP까지를 포함하는 이념 및 색깔의 다양성으로 출범때부터 약체로 평가를 받아왔다. 게다가 싱총리의 정적인 찬드라 셰카르,레비 랄 등 50여 의원이 자나타 달당에서 지난 5일 분당함에 따라 싱총리가 신임투표에서 패배,사임하리라는 것은 확실해졌었다. BJP가 싱총리에게 반기를 든 또다른 이유는 싱총리가 하층민에 대한 공직비율을 대폭 늘린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싱총리는 지난 8월7일 그의 지지층을 확대하기 위해 52%를 차지하는 하층민에 할당된 공직비율을 현재의 22.5%에서 49.5%로 늘리겠다는 고용정책을 발표,「있는자」들의 불만과 함께 계층간 유혈충돌을 유발시켰었다. BJP는 그들의 지지계층이 대부분 하층계층에 속함에 따라 싱총리와의 지지기반 충돌로 새로운 고용정책을 대학생등의 기득권층과 함께 비난해왔다. 이제 인도정국의 관심은 싱총리를 이어 누가 대권을 장악하게 될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벤카타라만 대통령은 정국수습을 위해 라지브 간디에게 신정부 구성을 요청했다. 그러나 간디는 이를 거절하고 국민회의당은 사회주의자인 셰카르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혀 셰카르가 주도하는 연립정부 수립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벤카타라만 대통령이 셰카르 정부 출현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어 싱총리가 주장하는 각 정당이 참여하는 대연정의 탄생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정치분석가들은 그러나 설사 셰카르 정부가 탄생한다 하더라도 이는 오히려 싱총리의 연정보다 운신의 폭이 좁은 약체정부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셰카르정부가 출범할 경우 셰카르는 연정구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간디의 정치적 영향력에 크게 좌우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싱총리 정부를 무너뜨린인도의 고질적인 2대 병폐인 종교와 신분문제는 인도 정국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 인 종교분쟁 확산… 정국 혼미/총리퇴진 요구ㆍ오늘 시한부 총파업

    ◎힌두교도,“게릴라전 불사” 경고 【뉴델리 AFP UPI 연합】 힌두교도들의 사원건립 시도를 둘러싼 폭력사태로 인해 인도의 국민전선의회(NFPP) 연립정부가 심각한 정치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가운데 4일 일부 반정부 정치인들이 VP 싱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현 위기사태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NFPP회의에 불참,인도연정의 위기가 더욱 악화될 조짐이다. 이날 싱 총리와 NFPP 소속 1백50여 명의 의원들이 국회 별관에서 시국대책회의를 열고 있는 가운데 데비랄 전 부총리와 싱 총리의 최대정적 가운데 하나인 찬드라 셰카르는 별도의 기자회견을 갖고 싱 총리의 퇴진을 요구했다. 힌두교 사원건립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BJP는 이번 사원분쟁에서 경찰의 발포로 많은 힌두교도들이 사망한 것에 항의,5일 뉴델리에서 하룻동안의 시한부 총파업을 강행할 것이라고 졸리 BJP 대변인이 밝혔다. 또한 이날 아요드야 마을에서 열린 힌두교도 회의에서 강경파 지도자인 비나이카트얄은 정부에 대해 참극을 빚고 있는 힌두교들과의 대치 상황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한뒤 이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신앙심이 깊은 힌두교도들은 무장투쟁을 벌일 수 밖에 없으며 『필요하다면 게릴라전도 불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30일 아요드야 마을에 힌두사원을 건립하기 위해 급진 힌두교도들이 물려들기 시작한 이후 인도 수개주에서 발생한 폭력사태로 2백50명 이상이 사망했다.
  • 인도 종교분쟁 격화/경찰 발포,77명 사상

    【아요드야(인도) AP 로이터 연합】 인도경찰이 2일 아요드야마을의 회교사원을 공격하려던 힌두교도들에게 또다시 발포,최소 10명이 숨지는등 이날 인도 곳곳에서 회교­힌두교도간 유혈충돌이 계속돼 지난달 24일 이래 종교분쟁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2백50여명으로 늘어났다. 목격자들은 아요드야마을의 힌두교 성지위에 세워진 바브리 회교사원을 허물기 위해 이날 또다시 힌두교도 1만여명이 집결,저지하는 경찰에 투석으로 대항하자 경찰은 최루가스등으로 해산을 시도하다 발포에 나서 최소한 10명이 숨지고 67명이 부상했다고 말했다. 이날 이밖에 구자라트주에서도 회교­힌두교도간 충돌로 11명이 또 숨지는등 인도 6개주에서 유혈사태가 빚어져 25명 이상의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지난달 24일 이래 힌두교­회교도간 충돌로 인한 사망자수는 모두 2백57명을 넘어섰다고 PTI통신등 인도언론들이 보도했다.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는 인도 회교도­힌두교도간 유혈분쟁으로 바라티야 자나타당(BJT)이 비슈와나트 프라탑 싱 총리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등 정국혼란도 더욱 심화되고 있다.
  • 인군,힌두교도 6명 사살/싱 총리 인책사의 표명

    【뉴델리 로이터 연합 특약】 비슈완트 프라탑 싱 인도총리는 30일 보안군이 아요다의 한 회교사원을 공격하는 힌두교도 6명을 살해함에 따라 사의를 표명했다. 이날 아요다에서의 폭력사건은 오는 11월7일 의회에서 신임투표를 앞두고 있는 싱총리의 소수정부에 압력을 가중시켰다. 싱총리는 이날 보마이 자나타 달 총재에게 보낸 서한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 종교분쟁 계급충돌 혼미속의 인도 정국/힌두교사원 건립파문 확산

    ◎연정 흔들… 12월에 조기총선 가능성/“하층민 취업 확대” 새 고용책도 논란 인도정국은 성지를 둘러싼 힌두교와 이슬람교(회교)의 종교분쟁으로 혼미를 거듭,지난해 12월 출범한 비슈와나트 프라탑 싱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의 붕괴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인도의 힌두교 부흥주의 정당인 바라타야 자나타당(BJP 인도인민당)이 지난 23일 힌두교사원 건립을 위한 시위를 벌이던 랄 크리샨 아드바니 당총재가 체포된 것에 항의,싱총리가 이끄는 소수정당연합의 국민전선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에 따라 현 정부의 퇴진과 함께 오는 12월 조기총선이 실시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인도를 휩쓸고 있는 종교간 충돌은 BJP가 중심이 된 힌두교도들이 현 이슬람교의 사원이 있는 북부 아요드야에 힌두교사원을 건립하려는 움직임으로 가열되고 있다. 싱총리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유혈충돌을 우려하여 힌두교사원 건립을 반대해 왔다. 그렇지 않아도 10월들어 이미 양측의 충돌로 1백여명이 사망하는 등 지난 1년동안 1천여명이 종교분쟁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BJP가 자당총재의 체포와 관련,24일 파업을 촉구함에 따라 인도주민들의 정상적인 활동이 지장을 받고 있으며 힌두ㆍ이슬람교도의 충돌로 이날에만 1백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8억8천만 인구중 12%를 차지,숫적인 열세를 보이고 있는 이슬람교도들은 아요드야지역에 힌두교사원이 건립될 경우 다른 지역으로의 파급효과등을 고려하여 힌두교사원의 건립을 극력 반대하고 있으나 특히 BJP의 본거지인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힌두교도들이 오는 30일 사원건립을 강행할 것이라고 밝혀 긴장이 고조돼 온 것이다. 인도에서 종교분쟁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며 지난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뒤 이슬람교가 우세한 지역이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한 「전력」이 있다. 이밖에도 인도정부는 최근 하층민에 대한 공직비율 조정으로 진통을 겪어 왔다. 싱총리는 지난 8월7일 52%를 차지하는 하층민에 할당된 공직비율을 현 22.5%에서 49.5%로 늘리는 「모험적인」 새로운 고용정책을 발표,「있는 자」의 비난을 받아왔다. 인도는 3천여년전부터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로 신분을 구분하여 출세 및 생활을 차별하는 카스트(계급)제도를 실시해 왔으며 인도공화국이 수립된 후 헌법상으로는 이 제도가 공식 폐지됐으나 아직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싱총리의 새로운 고용안에 하층민 및 좌파들은 지지를 보내고 있으나 특혜를 누리고 있는 세력들은 이를 반대,계급(신분)간의 충돌로 1백여명이 희생되기도 했다. 극좌공산당에서 극우BJP를 포함하는 이념 및 색깔이 다른 상태에서 라지브간디에 반대,40년의 네루왕조를 종식시킨다는 이유로 출범한 현 정부는 약체로 평가를 받아왔으며 따라서 오는 11월7일 실시될 신임투표에서 싱총리가 제1당인 국민회의당 및 BJP의 반대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신임투표결과에 관계없이 실시될 조기총선에서는 신분 및 종교문제가 핫 이슈로 부각되어 인도의 분열이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어떤 당이 집권하든 인도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고질적인 2대병폐인 종교와 신분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고 있다.
  • 「신 데탕트」는 어디로 흘러가나/세계 석학 기고

    ◎21세기 국제질서 다극체제로 대변환/미·소,자체문제로 골치… 「세계 경찰역」 포기/곳곳 국지분쟁… 유럽·아랍,「지중해 대립」 가능성/정치적 관심 시들… 종교가 이데올로기화(서울신문 광복 45주년 특집) 우리는 15일 마흔다섯번째 광복절을 맞는다. 해방과 분단의 45주년을 맞는 것이다. 소·동유럽의 개혁으로 세계가 대립과 갈등의 냉전질서를 청산하고 화해와 공존의 새 질서를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맞는 광복절이란 점에서 새롭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 광복절이라 할 수 있다. 소련의 민주화개혁과 시장경제 도입,동유럽의 탈소 독립 민주화 그리고 동서독의 통일과 유럽 통합노력의 가속화등으로 조성되고 있는 구질서 붕괴의 과도기적 유동상황속에 지금 태동하고 있는 새로운 세계질서 내지는 국제정치체제는 어떤 것이 될 것인가. 냉전의 이념적 대결이 사라진 가운데 터진 아랍 민족주의 갈등의 중동사태는 새 질서 형성의 방향을 시험하고 있는 느낌이다. 21세기를 지향하는 새 질서는 과연 세계의 평화와 안정과 번영을 보다 확고히하고 촉진하는것이 될 것인가. 그 연장선상의 동아시아 질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붕괴되고 있는 구질서의 산물인 한반도 분단의 상황도 이제는 끝날 것인가. 광복 45주년 특집으로 새 국제정치·경제질서의 향방과 한반도 주변 열강의 새 역학관계,그리고 한반도형 통일의 바람직하고 현실적인 모델등을 내외 학자·전문가들의 시각을 통해 종합진단하고 전망해본다.〈편집자주〉 1990년은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동서의 대립은 막을 내렸으며 핵의 위협은 사라졌다. 자유의 바람은 어디서나 느껴지고 있으며 전제정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이 보인다. 또 그동안 제3세계를 괴롭히던 기아문제는 적어도 남부아시아에선 해결됐다. 이같은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전망은 그러나 2000년에는 다소 불투명하다. 한 시대의 전환은 물론 어느 정도 평화리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2000년으로의 전환은 지난 45년이후 탄생한 국제질서가 보다 나은 새 세계질서로 새롭게 대체될 것이라는 기대를 약화시켰다. 국제질서의 붕괴,「북­남관계」의 점증되는불평 등에 대한 운명론,갈수록 심화되는 부국의 자기중심주의,게다가 이데올로기 대용으로서의 종교문제 대두 등이 이같은 사실을 말해준다. 국제질서는 기존 강대국들이 더이상 그 무엇이든 책임지려 하지 않음으로써 무너지고 있다. 러시아연방은 소련을 대체했다. 러시아연방은 민주화에 성공했으며 또한 이란·아프가니스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연방내 이슬람 영역은 기회만 제공되면 자치를 이룰 것이다. ○달러화,기축기능 상실 그루지야·아르메니아·백러시아·우크라이나 등은 폴란드의 야심에 맞서기 위해 혹은 이슬람 제국주의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와 연방을 맺고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결합체는 아직 정치적으로 취약하다. 연방 공화국들은 끊임없이 다투고 있으며 이로인해 모스크바 중앙정부는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지경이다. 군주제도의 복귀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나 그것은 앞으로 영원히 논의될 중요한 과제이다. 게다가 새 러시아는 이제 막 경제·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업에 착수했다. 이같은 일련의 상황들로 인해 러시아연방은 2000년에 자신들의 문제에 전념할 수밖에 없으며 여타문제에 관해선 신경을 쓸 수 없는 것이다. 한편 미국은 오랜기간 동안 세계 최대 강국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세기의 전환기를 맞아 미몽에서 서서히 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들 이웃 지역에서 발생한 일에 관해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있다. 2000년에 미국은 세계질서의 개편보다는 더 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경제성장의 침체는 냉혹하리 만큼 지속돼 미국인들의 삶의 수준은 일본이나 유럽인들의 수준에 못미칠 것이며 심할 경우 한국이나 대만 수준에도 이르지 못하게 된다. 더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의 엄청난 외채문제로 달러화가 국제시장에서 신용화폐로서의 기능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또한 국가 정체성의 위기를 안고 있다. 유럽에서 건너온 미국인들은 2000년에는 대다수 큰 도시에서는 물론 25개주에서 소수인종으로 전락하게 되며 흑인과 스페인계가 대다수 지역을 지배한다. 미국은 또 사회복지를 위해 군비를 삭감,해외주둔기지를 철수시키고 대외적으로 안보는 아무 위협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뒤를 잇지 못한다. 일본인들은 미국인들이 했던 역할을 떠맡으려 하지 않고 있으며 또한 할 수도 없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일본의 그런 역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유럽과 북미는 일본을 불신하며 동시에 시기한다. 2000년에 있어 이들이 아시아를 대하는 공식 독트린은 보호주의다. 그러나 일본은 국제적으로 정치적 야심을 꾸미진 않으며 자신들의 가치관과 문화가 모든 국민에게 적합하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세기의 전환기를 맞아 일본 경제의 우월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위도상 북부에 위치한 산업화된 부국과 남부에 위치한 미개발 빈국 사이의 균열은 점점 상호 관련이 없어진다. 좁은 땅덩어리에 높은 임금 때문에 일본은 그들의 사업을 해외로 확장,한국 대만 등은 물론 중국·동유럽에서 라틴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해외기업을 소유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세계 각국은일본의 기술은 물론 노하우,심지어 경영철학까지도 손쉽게 얻을 수 있어 일본은 곧 추월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추세는 일반화되어 「남부」국가들 사이에서도 분열현상이 나타난다. 라틴아메리카는 연대감을 잃는다. 예를 들어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등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데 반해 안데스산맥 인근국가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마찬가지로 인도는 기아문제와 인구증가문제를 해결한 반면 아프리카는 구제불능의 상태에 빠진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름뿐인 민주정부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부패가 만연,발전을 못하고 있다. 이슬람지역은 회교 정통주의 정권이 지나치게 명령과 평등을 강조하고 있으며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진정한 발전이 저해당하고 있다. 2000년의 문턱에서 중동지역은 또한 내부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터키,이라크,시리아 등은 종교적 색채가 덜한 정권이 들어서서 현대화를 꾀하는 데 반해 여타 다른 국가들­특히 산유국들­은 세계의 에너지원인 기름을 무기로 지탱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부는 더이상 부가 아니며 그들은 삶의 수준을 어떻게 향상시키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가중되는 경제혼란을 이슬람 가치의 찬양을 통해 모면하고 있을 뿐이다. ○폴란드,권위주의 회귀 1990년대를 통해 선진국들은 제3세계의 정신적 가치를 받아들였다. 사회분석가들은 미국과 서유럽내의 가난과 부랑자들의 만연이 80년대의 실업위기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타대륙으로부터 이민의 유입과 냉혹한 경쟁으로 인해,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연금에 의존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군중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2000년대 선진국이 직면한 문제는 미개발된 타대륙을 원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따라서 통합유럽의 수도인 브뤼셀에서뿐만 아니라 워싱턴에서도 주요 정치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같은 사태 발전은 지중해지역에 새로운 분쟁을 야기했다. 유럽에서는 주요 국제현안이던 동서대립이 중단됐다. 2000년 유럽의 분쟁은지중해에서 일어나게 되며 이때 유럽은 기술적 이점을 활용하는 데 반해 아랍은 수적 우세와 과격성을 내세우게 된다. 또다른 분쟁지역은 팔레스타인 문제와 이스라엘­아랍분쟁이 계속되는 중동지역이다. 같은 지역의 이라크,시리아,회교정통국가들간의 충돌도 피할 수 없을 듯 보인다. 1990년 발발했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사건은 이러한 전망의 예행연습이었다. 만일 이같은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최신 무기로 무장한 나라가 승리할 것이며 그때 이란은 호메이니 때와는 달리 이슬람국가를 일방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는다. 중국도 90년대말쯤에는 주요 관심사항으로 부각된다. 공산체제가 와해된 이후 설립된 불안정한 민주정부는 진정한 통치력을 확보하지 못하며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또다시 옛날처럼 분열된다. 해안에 위치한 지역들­특히 상해와 홍콩­은 각광받은 도시로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겠지만 내륙도시는 발전이 부진하게 된다. 중국인에게 자유란 희망이 없는 곳을 떠나 새 삶을 이룰 수 있는 것을 의미하겠지만 그같은 희망이 어디서나 나타나지는 않는다. 90년대 10년간 유럽에는 균형이 존재했었다. EC 12개국으로 유럽연방이 이루어졌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도 동참했다. 그러나 유럽의 외교적 활동은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에 정지된다. 유럽은 이제 한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없게 됐다. 2000년에 브뤼셀의 정부는 아무 결정권이 없는 하나의 관료체제가 될 뿐이며 또 이러한 상황은 10년은 더 계속된다. 이 기간은 유럽이 내부적인 정치행태를 공고히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게다가 유럽동맹은 소련과 동유럽의 재건을 도와주느라 바쁠 뿐이다. 이 기간동안 유럽은 말뿐이지 진정 세계질서에 관심을 갖지는 못한다. 동독의 서독으로의 경제통합은 불과 4∼5년 만에 이루어졌다. 체코와 헝가리의 사회·경제적 회복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달성됐다. 농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 나라들은 공산주의가 남긴 대규모 농장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었고 사유화가 이루어지자 서유럽의 소규모 농장들과 경쟁해서 이겼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손실이었다. 유럽동맹의 농업문제는 전보다 나빠졌다.이제 2000년에는 적은 농업규모를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잉여농작물에 대해 계속 보조금이 지급되어야 하나 아니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살던 곳에 머물라고 돈을 주어야 하나. 이러한 문제들은 동유럽국가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바웬사대통령의 반독재통치정부이후 폴란드는 민주주의를 회복하려 하지만 바웬사는 여전히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다원적 민주주의 발달 루마니아에선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해 계속 정권이 바뀐다. 불가리아의 상황은 그래도 좀 낫다. 그러나 90년대 정치적인 안정은 이루었으나 경제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유럽은 다시 두개로 나뉘어진다. 그 정도가 완화는 되었으나 여전히 격차가 있는 이 양자 사이에 이민이 계속된다. 폴란드와 루마니아에서는 권위주의체제로의 복귀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 또한 여전하다. 2000년의 새로운 세계에 있어선 또한 인간의 정신자세에 변화가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문제를 영원히 해결해준다는 어떠한 혁명적 이데올로기도 통용되지 못하며 대부분의 사회에 있어 다원주의적 민주주의가 비교적 덜 나쁜 정부로 인식된다. 또한 국민들은 정치에 점점 무관심해지고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며 동시에 정치적인 유토피아에 대한 회의론이 증대된다. 공산주의 독재정권의 붕괴는 마르크스 이데올로기의 붕괴에 뒤이은 필연적 결과일 뿐이며 2000년에 마르크스 이론은 고려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동시에 학자들과 일반인들은 공히 「혁명은 독재를 낳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또한 혁명은 역사를 후퇴시키며 또다른 문제를 낳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불평등은 선동연설이나 기적에 대한 확신 또는 속죄양을 내세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돼 2000년에 혁명을 부르짖는 게릴라그룹은 없어진다. 이데올로기가 내세운 유토피아가 거부되는 현상은 왜 다원적 민주주의가 인본주의 정치의 상징이 되는가 하는 것을 설명해준다. 많은 사람들은 진짜 민주주의를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때 시민이 아니라 놀란 노예였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성문화된 권리나 보장이 자유와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발견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어진다. 2000년 시민들은 정치가를 믿지 않으며 그들의 목적은 단지 선거에 당선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선거에 기권하는 유권자는 늘어나고 이로인해 민주주의에 불만을 갖는 목소리는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다. ○내세·구원문제 눈돌려 그러나 민주주의의 이상적인 목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수많은 종교적 정서에 자신을 의지하게 된다. 예를 들어 회교도들에게 이슬람적인 신념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인간을 다스리는 것은 신에게 부여된 능력이지 인간에게 부여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신념은 세계의 서구화에 직면,이슬람 특유의 정치를 표현하게 된다. 게다가 그것은 이 세계에 침투해 있는 모든 악에 맞서 도덕적인 저항을 하게 된다. 2000년대 문턱에서 이같은 태도는 특이한 것은 아니다. 인도에서는 힌두교가 국가의 정치성을 표현했다. 산업화된 아시아국가에서는 불교가 다시 번성하고 그것은 1천년 일상생활의 사소한 문제에 맞서 정신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된다. 일본은 매우 종교적인 나라는 아니지만 전통적인 신도가 새롭게 번성하게 된다. 정치성에 관한 관심이 종교의 유일한 동기는 아니다. 이미 90년대 후반에 많은 사회에선 물질적 욕구에서 얻는 상대적 불만족이 다른 기대를 발생시켰다. 그래서 내세와 영원한 구제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기독교사회에 있어선 신비주의가 새로운 경향이 됐다. 종교지도자들은 사회정의나 제3세계를 위해서 보다는 개인의 구원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종교분파는 급속하게 증가하고 신과의 교감이 다시 깊은 관심사항이 된다. 2000년의 세계는 인간의 사고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그러한 시대인 것이다. □기에르메 ▲1934년 파리 출생 ▲파리대학 졸 ▲정치학박사(비교정치학) ▲파리정치대학교수(현재) ▷저서◁ 「비교정치론」 「반민주 민중론」 「민주실천의 사회학」 「민주주의의 역설」
  • 네팔,정치범 4백명 석방/공산계의원 2명도 국왕,시위희생자에 조의

    【카트만두 AFP 연합】 네팔당국은 민주화 시위과정에서 체포됐던 학생들과 정치인 4백여명을 석방했다고 국영 라디오 네팔 방송이 14일 보도했다. 석방자중에는 야당세력들이 판차야트(무정당의 의회)체제 종식투쟁을 시작했던 지난 2월18일 시위대에 대한 경찰 발포로 여러 사상자가 발생한바 있는 치트완시에서 방화협의로 체포된 공산당계 의원2명도 포함되어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이들 2명의 의원과 시위 참가자 54명은 정부차량 및 사무실에 대한 방화,약탈협의로 재판계류중이었다. 【카트만두 AFP AP 로이터 연합】 비렌드라 네팔국왕은 14일 민주화 시위에 대한정부의 유혈강경 진압 및 이에따른 정치개혁에 언급,『네팔정치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있다』고 밝히고 강경진압으로 숨진 희생자들에게 조의를 표명했다. 비렌드라국왕은 이날 국영 네팔TV와 네팔라디오를 통해 발표한 힌두교 신년사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우리는 국민의 뜻을 존중하고 국민의 여망을 이행하는 전통을 존중해 왔다』고 말하고 이에 따라 네팔의 미래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자신이 이미 약속한 헌법개정에 관해 언급하는 가운데 가까운 장래에 설립될 개헌위원회는 보고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른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고 있는 사회계층과 논의를 가질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개헌위에 야당대표자들을 포함시킬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비렌드라국왕은 『모든 네팔인들이 민주주의의 규범을 올바로 이해하고 존중함에 따라 네팔민주주의의 가치 및 이상이 영구히 지켜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20세기 마지막 남은 「절대군주」/네팔 비렌드라 국왕은 누구

    ◎하버드대 출신… 72년 즉위 후 전권 장악 50일 가까운 민주화 시위로 사면초가에 빠져들고 있는 네팔의 비렌드라 국왕(44)은 세계유일의 힌두교 국가 국왕이자 마지막 남은 절대 군주중 한사람이다. 네팔 최초의 서구식 교육을 받은 통치자 이기도 한 그는 지난 10여년 동안 갖가지 소요사태로 시달려 왔으며 지난 2월중순부터 시작된 다당제 민주화 시위는 유혈사태로 번지고 있어서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2차대전 종전직후인 45년 12월28일에 태어난 그는 5살때 국내혁명으로 이웃나라 인도로 피신하는 비운을 맛보았으며 이때 그가 경험한 혼란은 그뒤 그의 인생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55년에 즉위한 그의 부왕 마헨드라의 명으로 59년부터 64년까지 5년 동안 영국 이튼학교에서 수학했으며 그뒤 일본의 도쿄대학과 미국하버드대학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72년1월 부왕인 마헨드라가 사망하자 네팔 「샤」왕조의 10대 국왕으로 즉위,행정ㆍ입법ㆍ사법에 걸친 절대권력을 잡았다. 비렌드라 국왕은 집권이후 그의 부왕이 도입한 「판차야트」체제(전통적인 촌락회의 형태)의 정당성을 강조,『비록 민주주의가 가장 최선의 통치형태이긴 하지만 규제가 없으면 붕괴되기 쉬운 제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후 비렌드라는 지난 79년 7주간에 걸친 학생들의 반왕정폭동으로 집권후 최초의 시련에 봉착했다. 그는 개혁주의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사상 최초로 「판차야트」존속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나 국민들은 그에게 절대적인 통치권을 부여해 주고 있는 「판차야트」체제에 55%의 찬성표를 던졌다. 독실한 힌두교 신자들로 부터 비슈누신의 화신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외부세계에는 경건한 이미지를 심어왔다. 지난 88년 자신의 43회 생일을 맞아 30명의 정치범을 포함한 1백77명의 죄수들을 사면하기도 했던 그는 네팔의 제2인자인 아이수와랴 왕비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그의 가족들은 대규모 사업체를 경영,부유하게 살고있어서 국민들의 비난을 받고 있으나 자신은 평범하고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김현철기자〉
  • 인서 대형 폭발사고/힌두교행사중…33명 사망/사고지역엔 통금령

    【암리차르(인도)AP UPI연합】 힌두교도들이 전통종교 행사를 벌이고 있던 인도펀잡주 바틸라시내의 한 야채시장에서 3일 시크교 분리주의자들이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강력한 폭탄이 폭발,최소한 33명이 사망하고 65명이 부상했다고 경찰이 발표했다. 바틸라시의 한 경찰 간부는 사람들로 붐비는 이 야채시장에서 이날 하오 3시쯤(현지시간)폭탄이 폭발한 직후 성난 힌두교도들이 시크교도들과 유혈 충돌을 일으키고 인근 파출소를 공격하는 등 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고 「사태수습」을 위해 무기한 통금이 선포됐다고 말했다.
  • 네팔「30년왕정」붕괴위기/유혈 시위로 번진 민주화운동

    ◎정당활동 금지·경제난에 국민반기/“공안 정국 한계”…개혁요구 드세질 듯 지난 2월18일 불법화된 재야단체들의 주도로 다당제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작된 네팔의 민주화 시위는 지난31일 경찰이 시위군중에게 발포,2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한 가운데 우파디아야 외무장관이 사의를 표명함으로써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1월 비합법재야단체인 자유네팔의회당(NCP)이 사회·경제문제의 해결과 전통적이 촌락회의형태인 판차야트의 해체등을 요구하면서 점화된 네팔의 민주화운동은 자유네팔의회당이 7개 공산주의 노선 정당들과「네팔민주회복운동」(MRD)이란 연합체를구성,공동투쟁키로 처음합의함에 따라 가속화됐다. 비렌드라 현국왕의 조부인 트리부반왕의 왕권회복을 기념하여「민주주의의 날」로 명명된 국경일인 지난 2월18일 군중들이 행사행렬에 돌을 던짐으로써 촉발된 이번 시위를 통해 지금까지 34명이 사망하고 3백여명이 부상했으며 약 5천여명이 체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 60년이후 모든 정당활동이 금지된채 판차야트 제도에 기초,국왕이 절대적인 군주권을 행사해오던 네팔의 해묵은 정치적 갈등이 경제위기와 맞물리면서 폭발한 것이다. 지난 51년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한 네팔은 59넌 헌법이 제정되고 네팔의회당 주도의 내각이 구성됐으나 왕권약화와 급진적인 정책에 불만을 품은 마헨드라 당시 국왕(비렌드라 현국왕의 부)이 60년 현왕쿠데타로 왕권을 강화하고 의회를 해산,무정당왕정체제를 구축했다. 이에 대한 거센 반발은 79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로 발전했고 80년에는 판차야트 존속여부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까지로 이어졌으나 국민투표결과 54%가 존속 찬성쪽에 표를 던짐으로써 당시의 민주화 운동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후 85년 또 한차례의 민주화 운동이 있었으나 현비렌드라국왕은 카트만두시의 반정부 폭탄테러 사건을 빌미로 공안정국을 강화,역시 무위로 끝났다. 그러나 최근의 사태는 그 이전과 상황이 크게 다르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즉 세계 유일의 힌두교 군주국이며 문맹률이 높고 정치적 관심이 낮았던 이왕국의 국민들이 인접국 인도와의 무역마찰로 빚어진 경제위기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데다 동구등 전세계를 휩쓴 민주화 바람에 자극받아 정치적 자각을 하기 시작했으며 더이상 국왕의 통치를 신정으로 여기지 않는등 왕권에 대한 시각이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의 경제적 압력은 네팔의 수출입 업무를 거의 마비시켜 식량 및 연료부족 현상까지 초래하고 있다. 인도는 네팔이 지난 88년 인도와 불편한 관계인 중국으로부터 대공화기를 수입하는등 친중국 자세를 보이자 인도­네팔 국경경로를 봉쇄한데 이어 지난해 3우러 시효가 끝난 「무역 및 통행에 관한 협정」의 갱신을 거부하는 등 대네팔 제재조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게다가 네팔의 후견인을 자처해온 인도는 현재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있는 「네팔민주회복운동」을 공공히 지지하고 나서 인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네팔정부의 운신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현지 관측통들은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네팔이 국민들의 점고하는 민주화 개혁 요구를 수렴하지 않고 힘으로 찍어 누르려 할 경우 피플스 파워에 의한 왕정 붕괴의 위험을 안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인­파키스탄 정면충돌 가능성/확산일로의 카슈미르 종교 분쟁

    ◎“성전도 불사” 회교도,연대투쟁 다짐/인도서 분리 요구… 48ㆍ65년에도 “전쟁” 힌두교 국가인 인도에서 유일하게 회교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자무­카슈미르주에서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종교분쟁이 재연돼 유혈사태로 치닫고 있다. 게다가 인접 회교국인 파키스탄 정부가 2월2일부터 1주일간을 카슈미르 순교자를 위해 기도하는 「연대주간」으로 설정하고 오는 2월10일 상하양원 합동회의를 소집,카슈미르 분리요구 결의안을 채택 할 예정이며 과격 회교도들은 대인도 성전선포를 요구하고 나서는 등 인도ㆍ파키스탄간의 외교 분쟁및 교전으로까지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발단은 지난해 7월 해임된 반회교 강경주의자 작모한이 지난 19일 인도 중앙정부에 의해 주지사로 재임명된데서 비롯됐다. 이에 반발한 주정부 각료들이 즉각 총사퇴하고 20일 1만여명의 회교도들이 카슈미르주의 주도인 스리나가르시 중심가에 모여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에 맞서 정부 보안군은 시위군중에 발포,상당수의 사상자를 냈다. 관리들의 부정 부패 및 회교도들에 대한 차별 정책에 환멸을 느낀 회교도들의 분리독립 또는 파키스탄에의 편입요구 시위는 통행 금지령에도 아랑곳 없이 끊이지 않아 11일째인 30일 현재 사망자수만 1백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카슈미르 종교분쟁의 기원은 지난 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교도가 90% 이상인 파키스탄이 힌두교도가 82%인 인도와 분리,독립된 회교 공화국을 수립했으나 카슈미르주는 인도 지배하에 놓이게 돼 분쟁의 불씨를 남겼다. 그후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은 카슈미르주의 귀속문제를 둘러싸고 48년과 65년 두차례의 전쟁을 치렀고 갖가지 국경분쟁에 휘말려 왔다. 유엔측이 이 지역의 장래문제를 주민투표에 부쳐 그 결과에 따르도록 하자는 해결책을 제시했으나 인도측의 거부로 이뤄지지 못했다. 6백만명의 카슈미르 주민중 64%가 회교도여서 투표 결과는 뻔하고 중국및 파키스탄과 접경한 카슈미르가 전략적으로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투표를 통해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인도측의 입장이다. 지난 87년 선거에서 대규모 선거 부정으로 인해 패배를 맛본 야당회교연합전선(MUF) 소속 선거운동원들은 선거를 통한 혁명이 무의미하다고 판단,대부분 국경넘어 파키스탄으로 건너갔다가 20여개의 민병대 단체요원들로 복귀,분리운동의 선봉에 나서 과격한 무력투쟁에 정열을 쏟고 있다. 인도 정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파키스탄이 사주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파키스탄 정부는 일단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카슈미르해방전선 등 지하민병대 조직들이 파키스탄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회교 반군들로부터 손쉽게 무기를 공급받고 있고 파키스탄 정부도 이번 사태를 최대한 이용할 움직임이어서 앞으로 사태 진전이 장기화되고 심각해 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파키스탄은 지난 71년 동파키스탄 주민들이 자치를 요구한 내전발발 당시 인도가 군을 투입시켜 동파키스탄을 방글라데시로 독립시킨데 대한 구원을 갖고 있다. 인도 정부는 회교 분리주의자들을 진압,소요를 종식시키기 위한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하는 한편 더 많은 학교와 영구직장을 마련하고 관광산업을 진흥시키겠다고 약속하는 등 강온정책을 병행하면서 이번 사태 해결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으나 42년전 인도 독립이래 최대의 시련이 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아름다운 선상호텔이 많아 관광객들이 지상낙원으로 부르기까지 하는 카슈미르는 관광객들이 뿌리는 외화가 주수입원이지만 택시운전사들도 『시급한 문제는 관광산업진흥이 아니라 독립』이라고 말할 정도로 회교도들의 분리욕구가 팽배해 있는 실정이다.〈김주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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