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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 1천만대와 국민 의식수준과(박갑천 칼럼)

    포벽유죄라 했다.값비싼 보물을 지니고 있으면 죄가 없어도 화를 입게 된다는 뜻으로 쓰인다.우나라 임금의 아우 우숙이 값진 구슬을 가지고 있었다.남상거리던 형(임금)이 달라고 한다.일단 거절했던 아우는 화가 두려워 바쳐버린다.「춘추좌씨전」(환공10년조)에 쓰여있다. 이른바 「오를로프의 다이아」라는 것도 그것이다.인도에서 처음 캐냈을때 5백캐럿이었다니 엄청나다.당시 무갈제국왕자가 힌두교사원에 맡기면서 『이걸 가지려고 타울거리는자는 무갈신의 버력을 입으리라』고 했다.그말은 들어맞는다.1751년 이를 도둑질한 프랑스병사로부터 시작하여 나중에 그걸 사들인 러시아의부호 오를로프,그리고 선물받은 에카테리나 여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불행해졌으니 말이다. 좋은일은 그에 맞먹는 좋지못한 측면을 지니는 세상사가 바로 포벽유죄의 원리.자동차도 그렇다.사람들에게 안겨준 축지법선물 못지않게 비극을 곁들여놓고 있지 않은가.50년전인 1948년 전국적으로 1만4천7백대에 지나지 않았을때 자동차사고 사망률은 0.2%에 그쳤다.그것이 지난 94년에는 6.7%로 사망원인 2위자리를 차지한다.값진구슬 지닌죄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 자동차가 새달이면 1천만대에 이르게 되었다.이 소식은 「교통사고율 세계1위」 자리를 내리 지켜온 부끄러움을 한번더 되돌아보게도 한다.차가 불어난만큼 과연 교통문화는 세워나가고 있는 것인가.앞지르기·새치기·난폭운전·음주운전…은 오히려 늘어만 간다 싶은 현실.1가구 1대꼴시대에 걸맞은 질서사회의 겨레인가 자문해보게 하고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질녘이 되어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는 말은 헤겔의 「법률철학」 머릿말 마지막에 나온다.미네르바는 고대 로마의 여신으로 공예·학문·지혜를 관장한다.부엉이는 미네르바의 심부름하는 새로 지혜를 상징하고.그 부엉이가 해질녘에야 활동하듯이 철학은 항상 현실이 성숙한 다음 그를 뒤쫓아 늦게야 나타난다면서 썼던 말이다.우리의 자동차문화에다 굳이 이말을 갖다붙여 본다면 현실은 1천만대에 이르렀건만 해질녘은 아니라는건가,아직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보이지 않는것 같다. 자동차 1천만대를 지닌 겨레다운 모습.뒷귀먹은채 포벽유죄 꼴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어서어서 날게 돼야겠다.〈칼럼니스트〉
  • 인도 함피:상(세계 문화유산 순례:34)

    ◎찬란한 힌두문명의 잔해가 숨쉰다/50만 인구 북적이던 제국의 영화 간곳없고 황량한 폐허… 부서진 사원…/성소 비루팍샤 사원 줄잇는 참배객은 맨발로 해탈의 고행/사자머리에 인간의 몸체 흉몰스런 나라심하상에 머리7개 뱀신 「나가」가… 인도 남부의 거대한 유적도시 함피.14세기 중반 힌두문화가 절정을 이루었던 비자야나가르제국의 수도가 함피다.그 도시의 옛 영화를 찾아가는 길은 힌두교의 방랑승려 사두의 고행만큼이나 험난했다. ○비자야나가르제국의 수도 남인도 카르나타카주 호스펫에서 북동쪽으로 13㎞ 거리다.소형 3륜차 뒷부분에 2인용 좌석을 단 오토 릭샤를 타고 어둑 새벽길을 40분 남짓 달렸다.탈탈거리는 오토 릭샤의 운전사 어깨 너머로 황토빛 바위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1336년 텔루구 부족의 두 왕자 하리하라와 북카가 세운 힌두왕국 비자야나가르가 남긴 「환상의 도시」 함피다.한때 르네상스기의 로마 인구에 버금가는 50만명의 사람들이 살았던 함피는 중세 델리의 전성기에 필적할만큼 번성했다는 것이다.그러나 역사상 유례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비자야나가르제국은 1565년 이슬람세력의 침공으로 멸망하고,함피의 영광은 역사의 어둠속에 묻히고 말았다. ○16세기 이슬람침공에 멸망 함피는 지금은 고작 8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한적한 시골마을로 변했다.그 전경을 보기 위해 함피에서 제일 높은 마탕가 언덕에 올랐다.비자야나가르제국의 젖줄인 퉁가바드라강이 한가운데로 흘렀다.강 유역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40여개의 부서진 사원과 바위무더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더없이 황량한 느낌을 주었다.무려 26㎢에 걸쳐 있는 이 유적군은 지난 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반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함피의 폐허」를 더듬는 기자의 발걸음은 역사의 무게 만큼이나 경건했다. 먼저 함피에서 가장 중요하고 성스러운 사원으로 꼽히는 비루팍샤 사원으로 향했다.제국시절 화려하게 장식한 마차들이 달렸던 함피의 옛시장 바자르 길을 따라 한동안 걷자 높이가 52m나 되는 거대한 9층 고푸람(gopuram)이 나그네를 반겼다.고푸람은 도시나 궁궐 또는 사원의 입구에 세우는 층이 있는 힌두교식 탑이다.온갖 형상의 조각들로 뒤덮힌 고푸람을 뒤로 하고 비루팍샤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사원 안에서는 모두 맨발로 다녀야 했다.발을 내디딜 때마다 인두로 지지듯 뜨거운 땅기운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팜파파티 사원으로도 불리는 비루팍샤 사원은 비자야나가르 왕조 이전 호이살라 시대 말기에 처음 세워졌다.그리고 나서 1510년 툴루바 왕조의 크리슈나 데바 라야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개조됐다.비루팍샤 사원은 전형적인 비자야나가르 건축양식에 따라 널찍한 안뜰을 뒀다.장방형의 경내에는 현란한 만다파(mandapa,홀)와 묘당들이 즐비했다.그중에서 창조의 신인 브라마의 딸 팜파의 결혼을 선포하는 만다파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퉁가바드라강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사원의 노천 베란다를 타고 흘러 들어 부엌을 통해 안마당으로 새나가도록 한 설계솜씨는 신기에 가까웠다. ○비루팍샤 경내엔 묘당 즐비 「비루팍샤」는 파괴의 신인 시바신의 또 다른 이름이다.시바는 브라만교의 경전 「리그 베다」에서는폭풍의 신 루드라의 존칭으로,길상을 뜻하는 형용사였다.그러나 시바는 훗날 토착적 요소와 결합해 대중적 신앙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예배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비루팍샤 사원 안의 지성소에는 시바 링가(Shiva linga)라는 시바신의 남근상을 신주처럼 모셨다.그 주위는 신상에 예배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댔다.그들은 저마다 준비해온 야자를 그 자리에서 내리쳐 쪼갠뒤 야자 물을 머리에 바르거나 입술에 슬쩍 댔다가 신상앞에 흘렸다.그리고 무언가 간절히 빌고 있었다.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일까.그들을 보니 문득 『해탈의 길은 맨발로 면도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는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수직으로 솟은 시바 링가와 신의 불꽃을 담은 신성한 불판,버터기름 타는듯한 누릿한 냄새….남인도 어느 힌두사원에서나 볼 수 있는 물신숭배 의식이다.하지만 마지막 힌두왕조의 옛 터전에서 베풀고 있는 그 의식은 보는 이들을 한껏 주술적인 신비감의 늪으로 빠뜨렸다. 길가에 나뒹구는 돌멩이 하나에서도 신의 현현을느낄수 있는 영혼의 나라 인도.인도는 정녕 신들의 고향이다.인도의 모든 마을에는 사원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다.10억 인도 인구의 80% 이상이 힌두교를 믿는다.아니 믿는다기 보다는 힌두신에 취해 산다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3억이 넘는다는 힌두신들의 어지러운 형상을 머리속에 그리며 햇볕 쏟아지는 광야를 끝없이 걸었다. 광야를 지나 물살 빠르기로 소문난 투루투 수로를 만났다.수로를 지나서 바나나밭을 끼고 돌자 사자 머리에 인간 몸통을 한 흉물스런 나라심하상이 유령처럼 나타났다.나라심하는 보존의 신인 비시누의 네번째 화신이다.1528년 크리슈나 데바 라야의 통치 후반기에 세워진 나라심하상은 높이가 6.7m로 함피에서 가장 큰 조각상이라 했다.마치 연화좌에 올라 요가를 수행하는 요기(yogi)처럼 앉아있는 나라심하의 꼭대기에는 머리가 7개 달린 뱀신 나가(naga)가 버티고 있다.기괴하기 짝이 없었다.나라심하의 왼쪽 무릎위에는 원래 비시누신의 배우자이자 행운과 미의 여신인 락슈미상이 있었다.그러나 무슬림의 약탈로 지금은 여신의 오른쪽 팔 흔적만 남아 있다. □여행 가이드 함피 유적지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교통의 요충지」 호스펫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 제일 편하다.호스펫에서 함피의 중심지인 함피 바자르까지 가는 버스가 상오 6시30분부터 하오 8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요금은 2.50루피(1루피는 우리 돈으로 30원 정도). 오토 릭샤를 이용하려면 50루피의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자전거를 빌리는 것도 경제적이다.호스펫,카말라푸람 등에 있는 자전거 대여점에서 10루피를 주면 하루동안 사용할 수 있다. 함피의 숙소 사정은 여의찮다.세면시설 정도를 갖춘 게스트하우스가 고작이다.그러나 호스펫에는 냉방장치가 된 초보적 단계의 호텔들이 몇군데 있다.호스펫의 숙소들은 모두 24시간제다.
  • 캄보디아 불교계 최고지도자 텝퐁 스님

    ◎양국 불교도 「마음의 평화·안정」 노력/“예산부족에 많은 사찰 방치 안타까워” 『불교는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최고 덕목으로 수행하는 종교입니다.한국과 캄보디아의 불교도들이 같은 신앙을 갖고 함께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한다면 두 나라의 우호와 교류는 급속히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캄보디아 불교의 최고지도자 텝 퐁 스님(73)은 프놈펜 시내 왕궁 옆에 자리잡은 우날롬 사원에서 한국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메콩강으로 흐르는 톤 레삽강이 내려다 보이는 풍광 좋은 이 사원은 1443년 건립된 프놈펜 시의 대표적인 사원.현재 100여명의 승려들이 수행생활을 하고 있다. 『캄보디아에는 3천371개의 사찰이 있으며 4만1천여명의 승려들이 9백만 신도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기 2세기,인도에서 전래된 캄보디아 불교는 베트남과 라오스 등 주변 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나 힌두교가 국교였던 앙코르제국(802∼1432년) 시절에는 쇠퇴했다가 앙코르 제국이 망한 다음 15세기부터 다시 국교가 됐다.그러나 지난75∼79년 집권,소위 킬링필드로 유명한 극좌 공산주의자 폴 포트 정권은 자본가 지주 귀족 학자 승려등 2백만명을 학살했다. 『세계 어느나라 국민들도 캄보디아처럼 참혹한 경험을 한 나라는 없습니다.승려 2만5천168명이 처형당하고 사찰은 감옥이나 처형장으로 쓰이고 불상은 깨트려버리고 불경은 불살라졌습니다.나도 승복을 벗기우고 감옥에서 3년8개월동안 강제노역을 했습니다』 79년 말 폴 포트 정권이 망하고 민주적인 헹 삼린 정권이 들어서면서 복원된 불교는 승려수가 폴 포트 정권 이전보다 많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그러나 지방의 많은 사찰에는 불상이 깨어지고 법당에 비가 새는 등 보수가 시급한 실정이나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중 하나인 캄보디아 정부로써는 예산이 없어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60명의 캄보디아 젊은이가 승려가 되기 위해 우날롬 사원을 찾아 삭발을 했다고 밝힌 스님은 『앞으로 불교 전문학교와 비구니 훈련원도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 인서 버스추락 32명 사망

    【뉴델리 AFP 연합 특약】 2일 인도 남부 타밀 나두주 레빈계곡에서 휴가자를 태운 관광버스가 추락,적어도 32명이 사망했다고 인도의 PTI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이날 사고는 타밀 나두주의 여름휴양지 코다이카날을 출발,팔레니 힌두교사원으로 가던중 운전미숙으로 레빈계곡 아래로 추락함으로써 일어났다고 이 통신은 밝혔다. 한편 인도연합뉴스는 이날 사고로 28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 인류학 소장학자 「체험논문」 봇물

    ◎30대 초·중반 「지역연구」학계 주목/「일 지방정치」 「말련 농촌」 「인 전통의례」 등 다양/“탈문헌,현지인의 생활·관습 등 직접보고 듣기 국내 인류학분야의 소장학자들이 세계 각 지역에 대한 연구성과들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와 내년에 대거 내놓을 예정이어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30대 초·중반인 이들의 지역연구는 80년대 중·후반부터 꾸준히 추구한 현지조사 연구의 성과이기 때문에 앞으로 국내 학계의 지역연구분야에 다변화한 전문가들이 등장,기업과 국가단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연구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그동안 지역연구는 정치학·경제학 분야에서 주로 이루어져 왔으나 이는 문헌연구를 위주로 한 것이고 현지에서의 조사는 3개월을 넘지않는 것이 보통이었다.이 때문에 현지인들의 실생활이나 관습에 대한 직접적 체험이 없는 제도적 수준에서만 이루어지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박사학위논문 제출자들을 중심으로 가시화한 인류학계의 연구성과는 대부분 2년여 정도를 현지에서 직접생활하며 현지인들의 삶을 연구하는 현지조사 방법에 입각한 것이어서 세계화 조류와도 부합하는 고무적인 학문적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가장 최근 선보인 소장학자의 연구성과는 지난해 말,미국 스탠포드대학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된 권숙인씨(35·여)의 「현대 일본의 지방정치와 아이덴티티」(서울대 출판부 간행)를 들 수 있다. 일본의 오지인 아지즈지역에서의 현지조사를 통해 중앙집권화하는 현대 일본 사회속에서 지방사회 주민들이 새로운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또 올 상반기에는 말레이지아 클란타주의 한 농촌마을에서 2년정도의 현지조사를 바탕으로한 서울대 홍석준씨(35)의 「말레이지아 농촌의 이슬람화와 사회변동」 연구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된다. 인도의 오지에서 2년이상 현지조사를 실시한 같은 대학 박사과정 정채성씨(35)의 「인도 농촌의 힌두교 전통의례 연구」도 올해안으로 선보인다. 또 서울대 지역종합연구소도 올해 프랑스 남부지역의 축제를 연구한 유정아씨(33)의 인류학 박사학위논문 등 소장학자들의 연구성과를 4편정도 출간할 예정이다. 현재 국내대학과 외국대학에서 인류학 전공으로 현지조사 연구를 행하는 30대 초·중반의 한국 소장학자들은 중국과 일본 지역에 각 10여명을 비롯해 인도네시아·멕시코·호주·베트남·칠레 등 세계 각지에 퍼져있다. 올해말이나 내년에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연구결과를 박사학위 논문으로 내놓을 계획이어서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한 지역 연구성과는 더욱 풍성해질 전망이다. 이러한 현지조사연구의 활성화는 우리 학계의 지역연구가 문헌연구에 의존한 1세대적 연구의 한계를 벗어나 언어와 생활경험을 바탕으로한 2세대 지역연구 단계로 정착돼 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 「위험사회­새로운 근대(성)를 위하여」/독 사회학자 울리히 벡

    ◎현대물질물명은 “이율배반의 존재”/위험성과 근대화,양면성의 「저거노트 수레」/“우리사회의 「안전불감증」 되돌아보는 계기”평 「저거노트(Juggernaut)」는 힌두교의 신인 크리슈나의 이름이다.이 신의 신상을 실은 거대한 수레에 치여 죽으면 극락환생한다는 미신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수레에 깔려 죽었다고 한다.「저거노트의 수레」는 행복과 파멸을 동시에 의미하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다.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 교수(53·루드비히­막스밀리안스대)는 현대 물질문명이야말로 「저거노트」의 빛과 그림자를 그대로 안고있는 이율배반의 존재라고 말한다. 현대 풍요사회의 이같은 문명사적 역설을 날카롭게 지적한 그의 대표적인 저서 「위험사회­새로운 근대(성)를 향하여」(홍성태 옮김,새물결)가 최근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하버마스의 「공공영역의 구조변동」에 이어 2차대전이후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사회과학서로 꼽히는 이 책은 상호연관된 두개의 중심명제로 이뤄져 있다.하나는 현대사회의 위험성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찰적 근대화」에 관한 것이다. 영어의 「위험(Risk)」이란 단어는 원래 17세기 스페인의 항해술 용어에서 나온 것으로,「위협을 감수하다」「암초를 뚫고 나가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산업사회 초기만 해도 위험은 부를 얻기 위해서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난관으로 간주됐다.역사의 무대에 새로 등장한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수많은 모험가들이 나타나고,자본주의의 탐욕스런 시장확보 전쟁이 영웅적 모험담으로 그려지곤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그러나 이러한 「낭만의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근(현)대화과정을 통해 부는 확대재생산되었지만,위험 또한 「우연적인」 것에서 「정상적 개연성」을 지닌 구조적인 것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가까운 예로 핵발전소에 의한 재앙은 84년 체르노빌 참사에서 드러났듯 더이상 묵시론적인 것이 아니라,전형적인 현대사회의 「저거노트」다.지은이는 현대사회에서의 삶을 『문명의 화산위에서 살아가는 것』에 비유한다. 「근대화의 근대화」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성찰적 근대화」론은 『사회가 실제로진화하려면 근대화는 반드시 성찰적이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성찰적 근대화」란 현대 기술과학의 가능성뿐 아니라 그 한계도 함께 인식,과학에 대한 사회적 제어력을 높이는 과정을 지칭하는 것.지은이는 이를 칸트의 명제를 빌어 부연 설명한다.『사회적 합리성 없는 과학적 합리성은 공허하고,과학적 합리성 없는 사회적 합리성은 맹목적이다』 우리는 90년대 들어 발생한 대형사고로 숨진 사람만 1천명이 넘는 「위험사회」속에 살고 있다.이 책은 「안전불감증」에 빠진 우리 사회현실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 인 종교집회 화재… 1백여명 사망

    ◎행사장 가건물서 불길… 5백여명 화상 【오리사(인도) AP AFP 연합】 인도 동부 오리사주의 힌두교 집회에서 23일 화재가 발생,100여명이 숨지고 약 500명이 화상을 입었다고 인도 PTI통신이 보도했다. 같은 인도의 UNI통신은 이 화재로 200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PTI통신은 약 4천명의 힌두교 신자들이 현자인 스와미 니가마난다를 보기 위해 오리사주의 마두반시에서 벌어진 종교의식에 참석하던중 행사장으로 사용됐던 짚으로 지붕을 얹은 가건물에서 갑자기 불길이 발생,이같은 참사가 빚어졌다고 전했다. 희생자 일부는 서둘러 대피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화재가 전기누전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통신은 밝혔다.
  • 게임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 박성환군

    ◎“94년 「정도 6백년」 행사보며 수상”/앞으론 사이버펑크 소재 소설 쓰고싶어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는 과정에서 일어난 고려 유신들과 민중들의 얘기를 게임으로 옮겨보고 싶었어요』 박성환군(22·동국대 인도철학2)은 한국정보문화센터가 주최한 제3회 게임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천도비록」으로 대상을 받았다.박군은 고3때 1회 공모전에서도 한·일간의 정보전을 다룬 어드벤처게임 「뉴로네트워크」(NeuroNetwork)로 장려상을 받았던 실력파. 이번 수상작 「천도비록」은 RPG(롤 플레잉 게임)장르로 시나리오 분량만 A4용지로 120장이나 된다.한양에 있는 네 곳의 명산인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에 악귀가 들렸는데 게이머가 이를 물리친다는 내용이 기둥줄거리.주인공 「이립」을 비롯해 기공달인 「혜산」,지식수준이 높은 현자 「여계」 등 6명의 주요 캐릭터가 등장한다. 『94년 한양정도 6백년 행사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초기 시나리오는 재수시절부터 동네 시립도서관에서 틈틈이 자료를 모아서 썼구요』 재수하면서 이과에서 문과로 바꿔 인도철학과를 지원한 것도 이 시나리오를 준비하다 힌두교,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서다. 『대학에 들어와서 불교학을 제대로 공부해 보니 시나리오에 잘못된 점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불교학백과사전 등 자료를 뒤져 원본의 80% 이상을 수정했지요』이래서 시나리오가 완성되는데는 꼬박 1년 반이나 걸렸다. 박군은 시나리오를 쓸 뿐만 아니라 게임도 무척 즐긴다.시류를 타는 편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장르는 역시 RPG.「워 크래프트」,「커맨드 앤 컨커」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개발업체가 지정되면 제가 만든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게임이 나올 거라고 들었어요.벌써부터 게임이 나오면 갖다 달라고 부탁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학교 노래패의 반주팀에서 미디(midi)시퀀싱도 맡고 있는 만능재주꾼인 박군은 『이번에 상금으로 받은 3백만원도 반주장비와 노트북컴퓨터를 사는데 모두 써버렸다』면서 『앞으로 게임시나리오보다는 사이버펑크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거나 언론사쪽으로 진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 이거룡씨 「인도철학사」 제2부 출간

    ◎B.C.6∼2세기 「인도사상」 해부/당시 불교·정통힌두교 철학적 친화성 초점/“「붓다」 절대성도 우파니샤드 전통위에 존재” 현대 인도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라다크리슈난의 「인도철학사」(한길사 펴냄) 제2부가 소장 인도철학자 이거룡씨(동국대 강사)에 의해 번역·출간됐다. 「인도철학사」는 인도철학사상 예외로 취급됐던 자이나교·불교·유물론 등에 대한 새로운 자리매김을 시도,인도철학을 세계철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고전.1부가 베다와 우파니샤드로 상징되는 아리아적인 사색의 결실이라면,2부는 비아리아적인 요소 즉 인도의 토착적 요소가 강조되던 기원전 6∼2세기의 인도사상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서사시 시대」라고 할 이 시기는 어느 때보다 다양한 학파들이 생겨났으며 일반대중 사이에는 성전서가 널리 유행하는 등 철학적 실험정신이 팽배했다. 이 책은 인도철학을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라는 세개의 축을 중심으로 살핀다.특히 불교와 정통 힌두교 철학간의 친화성을 밝히는데 초점을 맞춘다.라다크리슈난은 불교를 힌두교가 발전 혹은 변형된 것으로 간주한다.그에 따르면 불교와 힌두교는 공동의 토대를 지니며 붓다는 우파니샤드의 전통위에 서있다.나아가 붓다의 사상이 아무리 독창적이라 해도 그 시대의 역사적인 상황을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으며,붓다의 「절대존재」도 우파니샤드의 아트만 또는 브라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인도 사상사를 살펴볼때 불교는 언제나 힌두교 정통학파의 비판대상이 되어왔으며,그 비판의 핵심은 불교의 무아설과 그 근저에 놓인 찰나설이었다.그러나 라다크리슈난은 붓다의 침묵을 우파니샤드의 아트만에 대한 묵인으로 해석함으로써 전통적인 인도 사상가들의 불교이해와는 상당한 편차를 보인다. 자이나교에 대해 라다크리슈난은 어떤 입장일까.그는 우선 자이나교가 불교의 한 분파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불교와 자이나교가 제1원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출가 수행자집단을 지니며 어떤 명분으로든 산 생명을 죽이는 것을 죄악시하는 점은 비슷하다.하지만 자이나교의 개조인 바르다마나는 붓다와는 다른 역사적 인물일뿐 아니라 자이나교는 불교와 완전히 독립적인 종교라는게 그의 해석이다. 이와 관련,이거룡씨는 『세계종교로 발전했으면서도 인도 자체에서는 쇠퇴하고 만 불교에 비해 자이나교는 여전히 인도사람들의 사유체계를 지배하고 있다』며 『이는 자이나교가 힌두교에 가까운 형이상학을 지닌 종교일뿐 아니라 카스트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 “문명권 내부갈등이 분쟁 유발”/로널드 스틸(해외논단)

    미국 새무얼 헌팅턴 교수의 「문명의 충돌」 개념이 냉전이후 세계질서의 새 패러다임으로 회자되는 가운데 미국 정치주간지 뉴리퍼블릭의 로널드 스틸 논설위원은 이 잡지 최근호에 게재된 글 「되찾은 패러다임」을 통해 앞으로 상이한 문명간의 충돌보다는 각 문명 내부의 갈등이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다음은 이 글의 요지. 냉전의 「옛시절」 우리는 세상을 파악하는 틀인 하나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었다.이것은 우리가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잘 설명해줬다.러시아는 왜 그토록 잔인한가,왜 미국은 아시아에서 싸워야 하는가,왜 수천개의 핵 미사일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가.자유와 공산주의 간의 이데올로기적 투쟁이 당시 우리의 패러다임이었다.이것은 몇년전 소련과 함께 붕괴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성공적으로 봉사해왔다. 그후 잃어버린 옛 것을 대신할 새 패러다임을 엮어내려는 몇몇 시도가 있었다.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공산주의 실패로 더 이상 논쟁을 벌일 이렇다할 사상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역사의 종말」 시대가 온다고말했다.그러나 역사는 이념 이상의 것이다.역사는 치열한 전투로도 이루어지는데 이 점에서 역사는 변함없이 잘 굴러갔다.부시 미국대통령은 잠시 한때 민주주의,자결주의,자본주의를 표방하는 고전적 윌슨주의가 인정많은 미국파워의 날개아래 만개하는 「세계 신질서」를 주창했다.걸프전은 이 새질서가 주조될 용광로가 될 수도 있었으나 불행히도 그런 식으로 사태는 전개되지 않았다.이후 미국은 보스니아,소말리아,르완다 등에서 미래의 환상에 찬물을 끼얹는 혼란이 발발했을때 전연 무력하거나 방관하는데 그쳤다.우리는 반세기 사상 처음으로 기댈 패러다임이 없는 처지가 됐다. 이때 새무얼 헌팅턴이 등장한다.3년전 이 하버드대의 유명한 정치학자는 국가간의 국경선보다는 서로 다른 문명간의 충돌이 미래의 전투지역을 나타낸다고 주장했다.굳이 말하자면 새 패러다임은 이데올로기나 지정학 대신 지문화에 관한 것이다.『인류를 크게 분열시키고 분쟁의 최대 씨앗이 되는 것은 문화일 것』이라고 그는 선언했다.헌팅턴의 포고는 세미나실 뿐아니라 싱크탱크,그리고 정부기관까지 파문이 물결쳤다.그의 주장은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함께 이제 모두가 형제가 되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독실한 신도로 손을 맞잡게 되었다는 행복한 전망을 흔들어 버렸다.이 세상엔 보편적 가치관이란 것은 없으며 세상은 점점 더 비슷해진다기 보다는 각문화가 서로 자기의 문화를 고수하는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여러 문화가 생산적으로 병존한다는 다문화주의는 위험한 착각에 불과하며 각 문화는 각자의 핵심 가치에 순종해야만 살아남는다고 강조된다. 이것의 정치적 메시지는 분명하다.서양은 안에서나 밖에서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그래서 아시아등에선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논제를 「서양 대 그 나머지」란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이란·이라크전 좋은 예 헌팅턴을 반박할 자료는 아주 많다.제1,2차 세계대전은 물론,이란­이라크전등도 같은 문명끼리의 충돌이다.문명의 구분도 인위적인 것에 불과하다.다문화적인 개별 사회들이 내적으로 평화로울수 있다면 여러 문화권으로 이루어지는 세계는 왜 반드시 충돌을 겪어야한단 말인가.그러나 가장 중대한 문제는 그가 헌 때를 말끔히 씻어내지 못한채 새 패러다임을 찾아나섰다는 점이다.그는 국가들이 서로 의심에 사로잡혀 분쟁을 피하지 못한다는 이른바 「현실주의적」 사고를 타기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스스로도 이 현실주의적 논리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그는 현실주의자들의 이 「국가」개념을 단지 「문명」이란 말로 바꿨을 따름이다.결국 그가 처방내리는 정책은 냉전 때와 아주 유사하다.러시아 대신 중국이나 회교도나 힌두가 「다른 편」 「나쁜 편」이 된다.그에겐 아직도 세계는 서양대 나머지의 구도인 것이다. 문명 사이의 갭에 천착해 그 갭들은 어떻게 해도 메울수 없다고 선언하는 대신 헌팅턴은 각 문명의 내부에 내재한 갭을 파헤치는데 자신의 뛰어난 분석력을 활용했어야 했다.그러면 그는 가장 위험한 충돌선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서양문명과 여타 문명이 서로서로 뒤썩인 마당에 회교도와 서구인,일본인과 힌두교인,중국인과 남미인 등 외형적으로 상이한문명권들간에는 분쟁의 전선이 형성되지 않는다. ○상이한 문명간 충돌없어 충돌은 오히려 근대화주의자와 전통주의자 사이에 생기는 것이다.사우디의 엔지니어와 벽지의 율법학자,중국 상해의 사업가와 문맹 농부들 사이이며 가진 자와 못가진 자,혹은 맥도널드 햄버거가 있는 곳과 전통의 벽에 갇혀 있는 곳 사이에 충돌이 있다. 이런 갈등들은 심각하기가 종교에 비할만 하지만 종교적 갈등은 아니다.이 갈등은 문명의 경계를 무시하고 일어나며 세상을 헌팅턴이 말하는 것보다 더 비조직적이고 취약한 곳으로 만든다.이 갈등은 서양 대 그 나머지의 구도라기 보다 모든 문명이 모두 자기 스스로와 맞서는 대결구도이다.〈미 정치주간지 「뉴리퍼블릭」 논설위원/정리=김재영 워싱턴특파원〉
  • 인도철학 전공 이재숙씨 「우파니샤드 Ⅰ·Ⅱ」

    ◎힌두교 대표적 경전 첫 한글번역/난해한 범어­가득찬 상징·은유 “6년 산고”/「이샤 우파니샤드」·「케냐 아파니샤드」·「카타 우파니샤드」 등 모두 18개 실어 인류 최고의 지혜의 산물로 꼽히는 힌두교의 대표적 경전 「우파니샤드」(한길사)가 인도철학 전공학자 이재숙씨(31·한국외국어대 강사)에 의해 국내 처음으로 완역 출간됐다. 「우파니샤드」는 인도의 철학과 종교사상의 원류를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 등 분야에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불멸의 고전.그러나 이 책은 난해한 산스크리트어(범어)로 씌어진데다 작품 전체가 겹겹의 상징과 은유로 가득차 있어 그 사상의 핵심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6년간의 작업끝에 완성된 이번 「우파니샤드」 한글번역판은 그동안 미뤄져 왔던 국내 산스크리트어 문헌번역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우파니샤드」는 현재 200여종이 전해진다.그러나 이 가운데 붓다 이전 즉 기원전 6세기 이전에 씌어진 우파니샤드만을 따로 「초기 정통 우파니샤드」혹은 「베다전통의 우파니샤드」로 분류,그 권위를 인정한다.「베다전통의 우파니샤드」가 순수한 사상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반면 이후에 씌어진 우파니샤드는 특정 종파 혹은 철학의 사상을 진하게 담고 있고 그 성격이 푸라나(신화)나 탄트라(비술:비술)에 가까운 것이 특징.이번에 출간된 「우파니샤드」는 전체 우파니샤드를 대표할만한 핵심적인 내용을 담은 「이샤 우파니샤드」를 비롯,「캐나 우파니샤드」「카타 우파니샤드」「프리샤나 우파니샤드」「문다카 우파니샤드」「만두키야 우파니샤드」 등 「베다전통의 우파니샤드」 18개를 모두 실었다. 『제자가 스승 바로 아래 아주 가까이 앉아 전수받는 지식』이라는 의미인 우파니샤드의 근본철학은 『대우주의 본체인 「브라흐만」(범)과 개인의 본질인 「아트만」(아)은 일체』라는 범아일여의 사상으로 요약된다.우파니샤드 사상은 힌두교뿐 아니라 불교,자이나교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인도에서 생겨난 모든 사상들은 우파니샤드를 자양분으로 해 탄생하고 성장했다.『우파니샤드는 인도사상이라는 거대한 유기체에 젖줄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는 게 이씨의 지적이다. 우파니샤드 철학은 그 자체로 전파되기도 했지만 대개는 불교를 통해 퍼졌다.때문에 불교사상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우리가 흔히 불교용어로 여기는 열반이나 윤회,삼고,업 등도 알고 보면 불교 고유의 것이 아니라 우파니샤드에 이미 등장하는 관념이다.「우파니샤드」는 특정한 작가가 일정한 형식에 의해 서술한 것이 아니다.베다와 마찬가지로 그 문구를 쓴 사람은 「리시」(Rsi)라고 불리는 초월적 투시능력을 지닌 선지자로,신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적은 것으로 전해진다.그러나 「우파니샤드」를 단순히 종교경전으로만 볼수는 없다.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잠자리에 들기전 습관적으로 「우파니샤드」를 탐독했다는 사실은 이 책이 종교를 초월하는 깊은 사상성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 인도네시아 프람바난(세계 문화유산 순례:16)

    ◎1천년 잠에서 깨어난 힌두신의 거처/부친원수 구애 피하다 돌로 변한 애절한 사연의 「두르가」 여인상/“만인의 연인”으로 추앙 프람바난사원을 돌아보면서 앞서 들른 보로부두르사원을 자꾸 되새김하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둘다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건립연대가 비슷한데다 유적 사이의 거리도 자동차편으로 1시간쯤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 그런데 유적의 성격은 판이하게 달랐다.이는 보로부두르가 불교사원인데 비해 프람바난은 힌두사원이라는,종교적인 차이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닌 듯 했다.보로부두르가 치열한 구도의 길을 상징한다면,프람바난에는 세속적인 사랑이 흘러넘쳤다.또 보로부두르가 장엄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것과 달리 프람바난은 아기자기하고 은근한 아름다움을 풍겼다. 프람바난은 크고작은 200여 찬디(인도네시아 일부지방에서 석탑 모양의 사원을 일컫는 말)로 구성됐다.그중에서도 힌두교 3대신을 모신 찬디들이 특히 돋보였다.나란히 선 찬디 3기 가운데 중간에 가장 우뚝하게 솟은 것이 파괴의 신 「시바」를모신 시바찬디였다.사각형인 밑받침의 한쪽 길이가 34m이고 높이 47m인 이 거대한 찬디에는 동서남북으로 계단이 각각 나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면 석실이 나오고 그안에는 신상이 하나씩 봉안됐다.현지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다는 「두르가」상은 북쪽 석실에 자리했다.두르가는 시바의 여러 신성 가운데 하나를 상정한 여신이다.그러나 이곳의 두르가는 「라라 종그랑」(날씬한 아가씨)이란 별명으로 더 알려져 있다. 불룩 솟은 가슴,가는 허리가 날씬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육감적인 이 여신은 웅크린 소잔등을 밟고 서 있었다.그 모습이 물론 매력적이기는 했지만 그토록 인기를 끈 비결은 라라 종그랑에 얽힌 전설 때문이었다. 옛날 펭깅국 왕자 반둥은 마력을 갖고 있었다.그는 이웃나라 왕을 암살하고자 궁궐에 침입했다가 라라 종그랑공주를 만난다.반둥은 이 「날씬한 아가씨」에게 구애하지만 공주는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어 사실상 거절한다.하루밤새 찬디 1천기를 쌓으면 결혼하겠다는 것.하지만 반둥이 마술을 부려 찬디를 세워나가자 공주는 부녀자들을동원,무너뜨리려 했다.새벽녘 이 사실을 안 반둥은 격노해 공주를 돌로 만들어 버렸다.그리고 이 석상을 1천번째 찬디로 삼았다는 이야기다. 전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적국을 멸망시킨 반둥은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귀국하지만 공주를 돌로 만든 사실이 부왕에게 발각된다.분노한 왕은 아들을 『짐승같은 놈』이라고 꾸짖고는 소로 변하게 했다.라라 종그랑 신상이 밟고 선 소가 바로 반둥왕자라는 것이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구애를 뿌리치려 애쓰다 결국 돌이 된 여인.그 사연이 애달파서인가,현지인들은 프람바난사원을 흔히 라라 종그랑사원이라고 부를만큼 이 신상을 매우 사랑하고 있었다. 라라 종그랑과 작별한 뒤 2층 회랑을 돌았다.그 벽에는 앙코르와트나 보로부두르에서처럼 부조가 쭉 새겨져 있었다.이것이 라라 종그랑 못잖게 프람바난을 유명하게 만든 「라마야나」 릴리프이다. 힌두신화에서 출발한 라마야나 이야기는 동남아 각국에 널리 퍼져 전승설화로,또 대표적인 문학·공연 소재로 자리를 굳혔다.지난 1월에는 인도네시아·태국·중국·싱가포르 등 여덟나라가 참여한 제1회 「국제 라마야나 축제」가 캄보디아 앙코르에서 열려 세미나·공연 등 다양한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방대한 서사시인 라마야나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인도왕자 라마는 모략에 걸려 아내 시타와 함께 숲속에서 산다­마왕 라바나가 시타를 유괴한다­라마는 시타를 찾고자 숱한 모험을 한다­결국 원숭이왕 등의 도움을 받아 라바나를 죽이고 시타를 구한다는 줄거리이다. 이같은 설화는 시바찬디에서 시작해 그 남쪽에 있는 「브라마찬디」의 회랑벽까지 이어진다.인도네시아에는 라마야나 이야기를 새긴 찬디가 많이 있지만 프람바난 것을 예술성에서 으뜸으로 쳤다. 이밖에도 프람바난에는 코끼리 얼굴을 한 「가네샤」와 머리가 넷 달린 「브라마」 등 독특한 신상들과 숱한 동물상들이 찬디 외벽을 가득 메우거나 더러는 단독으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힌두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프람바난은 서기 9∼10세기에 완성됐다.그리고 1천년 가까이 땅속에 묻혔다가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아직 복원이 끝나지는않았다. 프람바난사원을 나와 남쪽 보코언덕으로 발길을 돌리며 다시금 프람바난과 보로부두르를 비교해 보았다.비슷하면서도 서로 이질적인 두 유적에서 인도네시아 문화의 폭과 깊이를 읽었다.보코언덕에 다다르니 어느덧 해질녘이 되었다.프람바난사원위로 물든 석양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여행가이드/족자서 버스이용 30분거리/손전등 꼭 휴대해야 프람바난이나 보로부두르를 가는데는 족자(원래 이름은 「요그야카르타=YOGYAKARTA」이지만 현지인들은 모두 족자라고 부른다)를 거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족자는 우리의 경주처럼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고대 문화유적도시이다.자카르타에서 족자까지의 항공편은 매일 5차례 있어 표구하기는 어렵지 않다. 족자를 중심으로 보로부두르는 북쪽 40여㎞,프람바난은 남쪽 20여㎞쯤 떨어져 있다.버스를 타더라도 족자∼보로부두르는 40∼50분,족자∼프람바난은 20∼30분이면 갈 수 있다.따라서 보로부두르와 프람바난은 하루 관광코스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 지역을 충분히 즐기려면 하루이틀 숙박하는게 바람직하다.이 경우 보로부두르와 프람바난에는 번듯한 숙박시설이 없으므로 족자에서 숙박하는 편이 낫다.게다가 족자의 야시장은 인도네시아를 비롯,동남아 각국의 축산품이 모이는 만큼 한번쯤 구경할 만하다. 프람바난사원을 관람할때는 석실을 자주 드나들어야 하므로 손전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 스리랑카/찬란한 불교 유적… 섬 전체가 박물관

    ◎가는 곳마다 고대도시·궁전터·사원 등 즐비/「천혜의 낙원」… 관광·성지순례 발길 줄이어 인도대륙 남동쪽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의 여성지도자 찬드리카 반다란나이케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12일 우리나라를 찾아와 14일까지 머물며 양국의 경제협력과 관광교류증진방안 등을 논의한다.찬란한 불교유적을 자랑하는 스리랑카는 특히 불교신자가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을 고려해 불교성지순례여행 등을 집중겨냥하고 있다.따라서 이번 대통령일행 방한에는 관광 관계자들이 함께 와 한국관광업계·불교단체 등과 다각적인 접촉을 하고 있다.미국·유럽·동남아·중국·대양주 등에 치우친 우리나라 관광분야에서 스리랑카는 아직 미개척의 먼 나라로 남아 있어 더욱 이채롭다.이를 계기로 스리랑카의 불교여행코스등을 살펴본다. 스리랑카는 섬 전체가 박물관이다.면적 6만5천6백㎢로 남한면적보다 작으며 인구도 1천8백여만명에 불과한 소국이지만 발길 닿는 데마다 찬란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며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마지막 낙원으로 꼽힐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다. 또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은 미화 7백달러정도로 낮지만 의식주를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연의 축복을 받은 땅이어서 인심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이같은 조건에서 불교와 힌두교,그리고 기독교문화가 어우러져 스리랑카는 거대한 섬박물관을 이루고 있다. 가는 곳마다 고대도시와 궁전터·인공호수·공원·사원·수도원·조각 등이 즐비해 여행자의 탄성을 자아낸다. 기원전 3세기에는 당시 수도 아누라다푸라의 명성이 멀리 지중해까지 알려졌으며 기원 반세기 전에는 상할리족 교역대표단이 로마의 시저 황제에게 신임장을 제정했고 기원 300년 무렵에는 중국과 교역할 정도로 일찌감치 번성한 국가를 형성해 그만큼 문화유산이 많다. 기원전 247년에는 스리랑카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일이 발생했다.바로 인도의 독실한 불교도 아쇼카왕이 아들 마힌다왕자를 이 섬에 보내 불교를 전한 것이다.이때부터 상할라왕은 물론 일반에 이르기까지 불교에 귀의해 오늘날까지 줄곧 불교가 번성해왔다. 이 때문에 스리랑카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불교성지가 되어 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불교전파와 비슷한 시기에 힌두교도인 드라비다족이 침입을 시작한 뒤 1천5백년동안 수없이 거듭해 힌두교문화도 크게 자리잡았다. 여기에 17세기초부터 네덜란드와 영국의 지배를 받아 기독교문화가 어우러졌다. ○기원전 4세기에 번성 ◇경이로운 고대문명도시 아누라다푸라=콜롬보 북쪽 2백㎞에 있는 최초의 수도로 기원전 4세기경부터 번성했다.당시의 계획도시로서 사냥꾼·청소부·외국인·이교도의 거주지역이 구분됐고 신분제도에 따른 묘지도 다르며 관개수로가 완벽하다. 6백년 수도의 영광을 누리면서 만들어진 돌기둥과 돌탑이 조용한 녹음속에서 한때의 영광을 말해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리수인 「스리 마하」보리수가 있으며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된 탑 「투파라마 다가바」가 유명하다. ○69개 동굴승원 만들어 ◇최초의 불교전래지 미힌탈레=아누라다푸라 동쪽 13㎞에 있는 바위산유적으로 처음 불교가 전래된 곳이다. 바위산 여기저기에 대탑이나 동굴유적이 많으며 정상까지 1천8백40계단을 올라가면 멀리 아누라다푸라의 대탑이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 마힌다 스님이 사냥중이던 티사왕을 만나 불교에 귀의케 했고 티사왕은 3천명의 승려를 위해 68개의 동굴승원을 만들었다. ○밀림속의 저수지 1천곳 ◇밀림속의 중세고도 폴론나루워=11세기초 남인도 타밀족의 침입을 받자 새로 만든 수도로서 콜롬보 동남쪽 2백여㎞에 있다.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공원과 정원이 많으며 근처에 1천곳 이상의 관개용 저수지가 있다. 남쪽 프라크라마 바후궁전은 1층 중앙홀이 2백평이 넘을 정도로 웅장한데 처음에는 7층이었으나 지금은 2층만 남아 있다. 북쪽의 갈 위하라 석가모니 와불상은 빼놓을 수 없는 명소.부처의 열반상이며 길이가 13m나 된다. ○바위속 궁전에 「미인도」 ◇바위요새궁전 시기리여=천민소생의 맏아들 카샤파가 정실소생의 동생이 왕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반란을 일으켜 부왕을 살해하고 동생을 추방한 뒤 고뇌를 이기기 위해 만든 바위속 궁전으로 섬 중앙에 있다. 부왕이 여기에 궁전을 만들려 했다는 얘기를듣고 스스로 궁전을 완성했다. 벽화 「시기리여 미인도」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의 문화유산」에 들 정도로 값어치가 평가된다.5백명 이상의 미인도가 있었다 하나 지금은 10개가 남아 있다.
  • 가정의학의 김우룡씨 「꿈꾸는 낙타」(저자와의 대화)

    ◎성과 속이 함께하는 「업의 땅」 인도/생활고에도 비어있는 인도인의 마음/온갖 오욕 씻으려 기도하는 심성 조명 『혼의 힘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곳,지구상에 그런 곳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곳은 바로 인도 땅일 겁니다』 최근 인도기행 산문집 「꿈꾸는 낙타」(행림출판사)를 낸 가정의학 전문의 김우룡씨(40)는 『인도는 고대와 현대,성스러움과 일상이 함께 부대끼고 노래하는 「카르마(업)의 땅」』이라고 규정한다. 한때 신춘문예 열병을 치르는 등 문학에의 꿈을 버리지 못하던 그가 델리행 비행기에 처음 몸을 실은 것은 93년 여름.그후 세차례에 걸쳐 인도를 떠돌던 그에게 영혼의 개안을 안겨준 것은 뜻밖에도 침묵의 사막을 뒹구는 미친 낙타다.『세상에 낙타만큼 순한 얼굴을 한 짐승이 또 있을까요.끝간데 없는 사막의 단조로움….그 사막만을 평생 보고 살아가야하는 낙타의 모랫빛 망막을 상상해 보세요.사막의 낙타는 더위에,또 외로움에 지쳐 곧잘 미쳐버립니다.미친 낙타는 이내 사막의 구릉 너머로 끌려가 네 다리가 잘리죠』 그는 인류문명사의 큰 흐름에서 소외된 모든 존재를 낙타,혹은 「미친 낙타」라는 이름으로 바꿔 부르고 싶다고 했다.세상이 온통 1등만을 향해 달려가고,모두가 탐욕스런 「근육질의 마음」들로 번들거리지만 이 시대에 정작 필요한 것은 꿈꾸는 낙타의 마음,곧 「비어있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눈물겨운 생활고에 시달리는 인도는 서양의 어느 사진작가의 말대로 「지상의 지옥」일지도 모릅니다.하지만 인간의 온갖 오욕을 씻어내기 위해 기도하는 인도인들을 보면 「지옥의 땅에서 천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어요』 자신이 직접 찍은 60점의 흑백사진과 30편의 에세이가 어우러져 있는 이 책은 오늘날 인도가 처한 현실과 인도인의 생활상을 속속들이 보여준다.회교분쟁 지역인 서북인도 카슈미르 주에서 정부군과 회교반군이 벌이는 총격전 현장,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라자스탄의 사막,봄베이의 슬럼가,레닌의 포스터가 그대로 걸려 있는 서뱅갈주의 시골 철도역,바닥에 주저앉아 술을 마시는 헛간같은 술집 등…. 『인도는 결코 가난하지 않습니다.그들의 얼굴표정을 보십시오.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사는 한국인의 얼굴보다 국민소득이 3백80달러 밖에 되지않는 인도인의 얼굴에서 더 큰 여유와 평온이 읽혀지지 않습니까.물질을 이기는 것이 정신입니다』 『인도인의 얼굴에 너나없이 평화가 깃들어 있는 것은 그들의 청정무구한 종교적 심성때문』이라고 진단하는 그는 인도 전국을 걸인 행색으로 떠도는 수십만명에 이르는 사두(힌두교의 방랑승려)들에게서 고통의 흔적을 발견하기 힘들듯,심지어 「불가촉천민」의 얼굴에서 조차 찌든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덧붙인다. 「인도명상기행」(폴 브렌튼),「인도방랑」(후지와라 신야),「델리」(쿠시완트 싱)등 인도 관련책은 거의 다 읽었다는 그는 조만간 인도를 다시 한번 둘러본 뒤 「인도사진집」을 펴낼 계획이다.〈김종면 기자〉
  • 바가바드 기타/함석헌 주석(화제의 책)

    ◎인 하층민의 해탈가능성 인정 「베다」「우파니샤드」와 함께 힌두교 3대 경전의 하나로 꼽히는 철학서.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골육상잔을 일삼는 현실에 회의를 품은 고대 인도국 왕자 아르주나가 스승인 크리슈나에게 고뇌을 털어놓으면서 나눈 대화를 묶은 것으로 모두 7백구의 시로 이뤄져 있다.바가바드 기타는 산스크리트어로 「거룩한 자의 노래」란 뜻. 하층천민의 해탈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도 종교사상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 경전은 영국 식민지에 대한 스와라지 운동을 주도했던 틸라트를 비롯,마하트마 간디·타고르·수리 오로빈도 고슈·라다크리슈난·스와미 비베카난다 등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다. 인도정신의 요체를 엿보게 하는 이 책은 원래 고대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일부였으나 오늘날에는 독자적인 문헌으로 읽혀지고 있다. 「바가바드 기타」는 여러차례 우리말로 번역됐다.그러나 이번 판은 「바가바드 기타」의 참정신에 가장 맞닿아 있는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는 함석헌씨(89년작고)가 상세한 주석을 달고있어 주목된다.그는 「성서」「맹자」「주역」「노자」「장자」「법구경」「코란」등 동·서양의 경전을 폭넓게 인용,특유의 통종교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한길사 2만원.〈김종면 기자〉
  • 캄보디아 앙코르:하(세계 문화유산 순례:2)

    ◎바이온사원 바위마다 「크메르의 미소」가…/돌탑 37기 사면에 3∼5m 「큰얼굴」 새겨/야외수영장 「스라스랑」은 둘레 3,500m/밀림속 옛 사원은 「고」나무에 뒤덮여 폐허로 앙코르 와트를 나와 북쪽으로 1.5㎞쯤 떨어진 「앙코르 톰」으로 발길을 돌렸다.앙코르 와트가 단일 사원건물인 데 비해 앙코르 톰은 크메르제국 때 1백만 백성이 살았다는 왕성터다.성곽은 거의 남지 않았지만 그 중앙에 「크메르의 미소」로 유명한 바이온사원이 버티고 서서 그 옛날의 영화를 일깨워준다.3층인 사원은 울퉁불퉁 아무렇게나 쌓은 듯한 돌탑을 머리에 이고 있다. 1층 회랑에 들어섰다.이곳에도 앙코르 와트의 벽면조각 못잖은 릴리프가 벽을 뒤덮고 있다.다른 점은 바이온의 부조는 당시 백성의 생활상을 주로 묘사했다는 것이다.원숭이가 나무 열매를 따는 아래로 승려행렬이 지나가고,그 옆에는 쪼그려 앉은 사람이 새고기를 굽는다.곁에 있는 이는 꼬치구이를 사러온 손님인가 보다.그런가 하면 집안에서는 아낙네가 해산하느라 용을 쓴다.릴리프의 예술성을 우리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와 비교할 순 없겠지만 단원보다 5백여년 앞서 그같은 작품을 돌에 새긴 크메르인은 대체 어떤 민족이었을까. 3층에 올라서니 여기저기서 「큰바위 얼굴」이 미소로 맞는다.3∼5m 높이인 돌탑들은 결코 울퉁불퉁한 게 아니었다.그 자체가 조각품이다.돌탑 하나하나에는 동서남북 4면에 「큰바위 얼굴」이 하나씩 새겨져 있다.돌탑은 원래 54기였으나 지금은 37기만 남았다고 하니 바이온에는 아직도 1백50가량의 「큰바위 얼굴」이 남은 셈이다.눈을 지그시 감은 이 「큰바위 얼굴」들은 두툼한 입술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띠고 있다.세상은 그 신비한 표정을 「크메르의 미소」라고 하지 않던가. 이 얼굴의 주인공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하나는 앙코르 톰을 완성한 자야바르만 7세(1181∼1215?)를 꼽는다.크메르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인 자야바르만7세는 힌두교 대신 불교를 받아들여 바이온과 「타프롬」 등 불교사원들을 지었다.그러면서 자신의 얼굴을 돌탑에 남겼다고 보는 것이다.반면 『왕의 초상이 아니라 관세음보살상』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자야바르만7세는 백성을 매우 사랑했다고 한다.바이온 1층 회랑에 서민의 생활상을 새긴 까닭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나 「달도 차면 기운다」고 왕의 치세에 힘입어 찬란한 문화의 불꽃을 피운 크메르제국은 2백여년후 샴족(태국민족)에 쫓겨 사라진다.앙코르 톰 건설에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탓일까.그뒤 앙코르는 밀림 속에서 4백여년동안 길고 긴 잠을 잤다.그리고 나서 1861년에야 프랑스탐험가 앙리 무오에게 발견돼 세상에 그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그 깊은 잠의 흔적을 타프롬사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앙코르 톰 동쪽 밀림에 있는 타프롬은 자야바르만7세가 폐위된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사원이다.한때 딸린 식솔이 1만2천명이나 됐다지만 타프롬은 위대한 자연에 밀려 영화의 흔적을 이미 잃었다.지금 사원은 지상으로 1백∼2백m 뿌리를 뻗어나간 열대수종 「고」나무에 뒤덮여 온통 무너지고 허물어졌다.거대한 뿌리에 휘감긴 사원은 마치 억센 손아귀에 잡혀 짜부러진 종이상자꼴이었다.접착제를 사용하지않고 수십m 높이의 대형석조건물을 세운 크메르인의 신기도 대자연의 심술에는 이처럼 무기력을 드러내고 말았다. 왠지 서글퍼지는 마음을 달래며 발길을 재촉했다.앙코르 톰의 동서 양쪽에는 거대한 바라이(인공호수)가 남아 있었다.당시 1백만 인구를 먹여살릴 만큼 활발했던 농업을 뒷받침한 저수지다.또 아직도 세계최대의 야외수영장으로 꼽힌다는 3천5백m 둘레의 「스라 스랑」,벽돌건물의 대표적 걸작인 「프라삿 크라반」사원,앙코르에서는 유일하게 언덕 위에 자리잡은 초창기 사원 「프놈 바켕」등 어느 유적 하나 놀랍지 않은 게 없었다. 앙코르유적지를 순례하면서 숱한 크메르인을 만났다.지금의 「캄보디안」이 아니라 9∼15세기를 산 「크메」(크메르인이 자처하는 민족이름)들이다.그들은 왕이나 장군·병졸이기도 하고,농부·주부·장사꾼·어부이기도 했다.그 쇠약해진 민족이 안타깝다는 마음에서 말을 건넸다. 『이 위대한 문명을 창조한 당신들을 존경합니다.그런데 당신들이 남긴 문명은 지금 어디로 이어졌나요.문화는 물과 같아 괴어서 넘치면 다시 새길로 흐른다는데…』 그러나 대꾸는 없었다.돌벽 속에서 그들은 1천년쯤 해온 일을 묵묵히 계속할 뿐이었다. ◎여행 가이드/국내선 하루 7회 운항/달러 선호… 1불짜리 유용/쌀국수·생선요리 별미 우리나라에서 캄보디아로 직접 가는 항공기노선은 없고 동남아 다섯 나라의 공항에서만 캄보디아로 연결된다.베트남의 호치민(옛 사이공),태국의 방콕,말레이시아의 콸라룸푸르,홍콩,싱카포르등이다.입국비자는 프놈펜의 포첸통공항에서 미화 20달러로 구입하면 된다.체류허용기간은 30일. 프놈펜에서 앙코르유적이 있는 시엠립까지는 국내선을 이용한다.국내선은 비행기편이나 좌석을 지정하지 않는 「오픈 티켓」제이므로 도착하는 순서대로 탑승시킨다.하루 일곱편쯤 있어 바로 탈 수 있다.앙코르유적지 안에서도 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데 대중교통수단이 없어 택시나 영업용 오토바이 등을 이용해야 한다. 태국 방콕에서 앙코르까지 자동차로는 8시간쯤 걸린다.시간여유를 갖고 태국·캄보디아의 풍물을 즐기길 원한다면 육상여행도 고려해봄직 하다. 캄보디아의 화폐단위는 리엘로 환율은 미화 1달러가 2천5백리엘쯤이다.공항이용료·앙코르입장료 등 공식적인 요금을 달러로 받는등 현지에서 달러를 선호하기 때문에 굳이 리엘로 환전할 필요는 없다.주의할 점은 고액의 여행자수표(TC)는 환전이 어렵다는 것과 웬만한 거래는 1달러단위로 이루어지므로 1달러짜리를 많이 갖고 가는 게 좋다는 것. 음식은 비위생적인 것이 많으므로 음식·식당선택에 조심해야 한다.안남미계통의 쌀로 지은 밥은 푸석푸석한 느낌을 주지만 쌀국수로 만든 요리는 우리 입맛에 맞는 편이다.또 생선이 싱싱해 입맛을 돋운다.치안은 우리 생각과는 달리 평온한 상태이고,앙코르주변에서 북한인활동은 달리 없다고 한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텔겸 식당이 딱 한군데(바라이호텔) 있는데 새로 지어 깨끗한데다 안주인의 음식솜씨가 상당하다.매번 열가지 안팎의 우리 반찬을 가정식으로 내놓는데 그 맛이 국내 웬만한 식당보다 낫다.한끼에 미화 7달러.숙박료는 25달러다.
  • 캄보디아 앙코르:상/앙코르사원(세계 문화유산 순례:1)

    ◎힌두신에 바친 세계최대 석조신전/“죽은자의 땅” 해지는 서쪽에 정문/머리일곱 뱀신 「나가」 7대양 상징/넓이 2㎢·정교한 부조장식… 7대 불가사의 위대한 존재는 정녕 신인가,인간인가. 인간이 만든 신의 도시 「앙코르」. 신은 우주와 인간을 창조했고,인간은 다시 앙코르를 지어 신에게 바쳤다. 그 앙코르는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은 경지에 있었다. 앙코르는 캄보디아 역사상 가장 번성한 나라 크메르제국(서기 802∼1432년)의 왕도였다.아직 우리에겐 앙코르보다 「킬링 필드」로 더 기억되는나라 캄보디아를 찾아가는 여정은 짧았다.여객기가 태국 방콕을 떠난지 한시간이 채 안됐는데도 기내방송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포첸통공항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곧바로 국내선 청사로 가 시엠립으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탔다. 시엠립공항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인 「앙코르 와트」로 직행했다.사람들은 「앙코르」(도시라는 뜻)보다는 「앙코르 와트」란 단어에 더 친숙하다.그러나 역사도시 앙코르는 「와트」(사원)말고도 「앙코르 톰」(거대한 도시, 또는 성벽의 도시)과 주변 밀림 속에 산재한 여러 사원등 많은 유적을 품에 안고 있다. 앙코르 와트에 도착해 정문 앞에서 차를 내렸다.3백여m 저쪽에 「세계 7대불가사의」니 「세계 최대의 사원」이니 하는 거대한 석조물이 시야로 들어왔다. 한국의 가을만큼이나 높고 푸른 하늘 아래 검은빛을 띤 사원은 의연했다. 좌우로 길게 늘어선 단층형 건물 뒤로는 산봉우리처럼 솟은 높고낮은 상륜(불탑의 뾰족한 끝 부분)들이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나그네와 와트(사원)사이엔 아직 해자가 가로놓여 있다.해자란 성을 외적으로부터 방어하고자 설치한 인공 물길이지만,이 해자는 앙코르 와트의 신계와 속세를 구분짓는 경계선이다.폭 2백m,둘레길이 5.5㎞에 이르는 인공물길은 차라리 강이었다. 해자를 건너기 위해 돌다리를 밟았다.한걸음 한걸음 「신의 세계」를 향해….돌난간에 형상화한 사신 「나가」가 방문객을 맞았다.난간은 몸통이며 중간중간 치솟아 부채살처럼 퍼진 부분은 나가의 머리다. 그 머리에는 코브라 7마리를 돋을 새겨 넣었다. 이는 힌두교 신앙을표현한 것이다.일곱 코브라는 7대양을 의미하고 난간인 몸통은 인간과 신의 세계를 잇는 교량을 뜻한다니 신의 나라에 들어가는 인간을 인도하는 셈이다. 앙코르 와트는 12세기에 수르야바르만 2세가 지은 힌두사원으로 힌두 3대신의 하나인 「비시누」신을 모셨다. 크메르제국의 신앙 특징은 신왕합일에 있었다. 왕은 살아 있는 신으로 군림하다 죽어 사원에 묻히면 그 주신과 하나가 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앙코르 와트는 「죽은 자의 땅」이다. 해가 지는 서쪽 문으로 정문을 삼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리를 건너 만난 사원은 3층 구조물로 길이가 동서로 1.5㎞,남북 1.3㎞에 넓이가 2㎢쯤이나 됐다.막상 맞닥뜨린 사원은 과연 세계 최대라는 사실을 실감나게 했다.그러나 감탄도 1층 회랑에 한걸음 들어서면서 금방 잊어버렸다.벽면을 가득 메운 정교한 돋을새김의 릴리프(부조)때문이다. 회랑을 왼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갔다. 파노라마가 펼쳐진 듯한 작품은 크게 두가지.하나는 사원을 세운 수르야바르만 2세의 승전을 기념한 내용이요, 다른 하나는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를 도설한 것이다.굳이 그 내용을 구분해 볼 필요도,자세한 설명을 들을 이유도 없으리라. 한장면 한장면이 모두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면서 다가왔다. 한쪽에는 천국과 지옥을 그렸다. 라마신이 살아 생전 선악을 판단한 뒤 악한 자를 지옥으로 떨어뜨린다. 바로 이어지는 지옥도에는 불꽃이 타올랐다. 그 위에서 악인이 버둥거리고 옆에서는 지옥사자가 한 죄인의 몸에 대못을 박아버린다. 그리고 뜨거운 물에 던져지는 악인….너무 생생한 지옥을 구경했다. 이어서 창을 든 군인들이 나타났는데,더러는 코끼리.사자에 올라탄 장군도 보이고 발밑에는 사상자들이 널브러졌다.벽면을 따라 한참을 가야 이에 맞선 적군이 그만큼의 숫자로 등장한다.이 한 장면에 새긴 군인이 모두 3천명이어서 「3천명의 군인」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부조를 새긴 회랑의 벽은 총길이 8백4m,폭 2m나 됐다. 그만한 크기의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어도 세계적 예술품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하물며 돌을 쪼아 그 많은 장면을 연출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웠다.불쑥 이런 생각이 든다. 『얼마나 많은 조각가를 동원해 몇년동안이나 새겨야 이같은 작품을 완성할까?』라고. 2층 회랑에 올랐다.이번에는 춤추는 여신 「압사라」가 곳곳에서 반겨준다.반듯한 이마에 길면서도 큰 눈,도톰한 입술이 한결같이 미인이다.거기에 잘룩한 허리와 속살 비치는 옷맵시를 했으니 또한 육감적이다.압사라는 앙코르유적 어디에서나 보이지만 앙코르 와트 2층에만도 1천5백여 군상이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똑같은 모습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머리에 쓴 관이나 헤어스타일,춤추는 동작들이 서로 다 달랐다. 사원 꼭대기인 3층은 그 옛날 왕과 고위사제들만이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하늘 높이 솟은 5개의 원추형 탑이 뿌리박은 사원의 핵심부분이다.중앙탑을 올려다 보며 문득 『여기서 저 탑 꼭대기까지가 파리 노트르담사원 높이와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다 얼른 고개를 저었다.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인간이 만든 신의 집 꼭대기에 오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이처럼 실감나는 곳이 또 있을까.앙코르 와트는 멀리서 보면 웅장했고,가까이서 보면 빈틈없이 정교했다. 그것은 바로 경이였다.
  • 인 바지파이 총리 사임/과반의석 확보실패로

    ◎새 총리에 「연합전선」 고다 지명 【뉴델리 AFP 로이터 연합】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인도총리가 28일 전격 사임함으로써 인도 최초의 힌두교 민족주의 정권이 출범 13일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힌두교민족주의 정당인 바라티야자나타당(인도인민당·BJP)의 지도자인 바지파이 총리는 이날 의회신임투표에서 불신임될 것이 확실시되자 사임의사를 밝힌뒤 즉각 샨카르 다얄 샤르마 대통령에게 사의를 전달했으며,샤르마 대통령은 바지파이 총리의 사표를 수리했다. 바지파이 총리는 『대통령이 내 사표를 수리했다』고 말하고 『자유를 다시 찾게돼 기쁘다』고 덧붙였다.비지파이 총리는 지난 4­5월에 걸쳐 실시된 총선에서 BJP가 최다 의석을 확보함에 따라 지난 16일 인도 제10대 총리에 취임했으나 의회 절대 과반수의석 화고에 실패함으로써 의회신임투표에서 불신임될 것이 확실해지자 사임했다. 햐르마 대통령은 이날 바지 파이 총리의 사표를 수리한지 수시간뒤에 연합전선의 지도자 디브고다를 새총리로 지명하고 그에게 인도의 차기정부 구성을 위촉했다.
  • 인도에 「코끼리 운전교습소」 등장

    ◎현운전사 부랑아·술주정꾼 많아/마구잡이 매질 등 잔학행위 일쑤/3개월 교육후 면허증… 코끼리학대땐 벌점도 인도에 세계최초로 코끼리를 제대로 몰기위한 「코키리운전교습소」가 생겨 화제를 뿌리고 있다. 「조심! 인근에 코끼리 운전 교습소,통행불허」인도 남서부 케랄라주에 있는 코끼리 교습소 문밖에 걸려있는 이 붉은 색 팻말부터가 이곳을 지나는 자동차 운전자 및 통행인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코끼리는 인도의 도로에서 흔히 볼 수있는 동물이며 봄베이나 뉴델리 같은 대도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물론 인도에서 코끼리를 모는데는 면허증이 필요없다.그러나 한 동물복지그룹과 케랄라주에 의해 세워진 이 교습소는 그와 같은 관행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있다.『우리는 신세대 코끼리 운전사 창조를 목표로 하고있다』는 것이 케랄라주 산림위원회 수의사 겸 코끼리 전문가 패니커씨의 설명이다. 패니커씨에 따르면 현재 인도에서 코끼리 운전사들은 대부분 부랑아나 술주정뱅이들로 이들은 길거리에서 노숙하면서 술에 취해 코끼리들을 몰아가면서 마구잡이로 때리는 일이 많다.뿐만아니라 코끼리들을 쇠사슬로 묶어 도로옆에 방치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햇볕에 노출시키거나 막대끝에 꽂혀있는 갈고리로 사정없이 때리기도 한다. 이 양성소는 새로운 코끼리 운전 면허증 제도를 통해 이같은 잔학행위를 근절하려 하고있다.즉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면허증에 벌점을 부여하고 동물학대 행위에 대해서는 면허정지등과 같은 처벌을 내린다는 계획이다. 현재 7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이 교습소는 몽둥이가 최고의 선생이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종래의 믿음을 고치려 하고있다. 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있는 비제이 쿠마르씨(22)는 『우리는 코끼리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판별하고 성격을 이해하는데 한달이 걸렸다』고 말했다.그는 『그러고 나서 우리는 코끼리들이 우리의 명령에 익숙해질 때까지 명령을 반복했다.물론 코끼리들이 잘 했을 때는 먹을 것을 줬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은 3달동안 교습을 받고나면 앞으로 나가기,속력내기,감속하기등 코끼리운전의기본기들을 어느정도 숙달해 졸업장을 받게된다. 인도에서는 코끼리가 목재등을 운반하기 때문에 꽤나 쓸모있는 짐승으로 여겨지고 있다.코끼리는 또한 호화스런 종교의식에도 동원된다.멋들어지게 치장한 코끼리들이 힌두교의 신상을 짊어지고 행렬에 참가할 때는 하루 3천루피(6만5천원)까지의 노임을 받을 수 있다.이 돈은 목재를 운반할 때와 비교할 경우 10배가 넘는다. 이렇게 돈을 잘 버는 놈들이지만 지금까지는 학대받으며 살아온 것이 코끼리들이다.갓 개교한 인도의 코끼리운전사 양성소가 코끼리에 대한 학대관행을 얼마나 개선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유상덕 기자〉
  • 라오내각 총사퇴/인도정국 어디로/“정정 불안”연정구성 진통 클듯

    ◎「자나타」 제1당에도 견제 심해 집권 불투명/좌파·국민당 “특정종파 반대” 협조거부 시사 총선에서 패배한 인도국민회의당의 나라시마 라오 총리가 사퇴를 선언함에 따라 앞으로 인구 9억3천만명의 인도를 누가 이끌어 갈 것인지에 촉각이 쏠리고 있다. 아직 개표가 끝나진 않았으나 중간개표와 출구여론조사 등을 종합할때 집권당인 국민회의당은 전체의석 5백45석중 1백30∼1백40석을 차지,제3당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야당인 힌두 민족주의 계열의 바라티야 자나타당(BJP·인도인민당)이 1백80∼1백90석을 얻어 제1당으로 부상하고 국민전선­좌파전선(NF­LF)은 1백40∼1백50석을 차지,제2당으로 약진할 전망이다. 라오 총리내각이 사퇴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BJP와 NF-LF는 즉각 샨카르 다얄 샤르마 대통령으로부터 차기정부구성에 관한 위촉요청을 받기를 원한다고 각각 밝히는 등 집권경쟁에 돌입했다. BJP와 NF­LF는 자신들이 과반수인 2백73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군소정당들과 무소속의 지지를 끌어들여 연립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주장하고 있다.표면상으로는 제1당이 된 BJP가 연립정부를 구성해 집권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에 대한 견제가 워낙 심해 집권가능성은 아직 불투명하다.인도의 많은 정치인들은 BJP가 전체 인구의 12%에 해당하는 회교도들에 대해 지나치게 편파적인 견해를 갖고있을 뿐만 아니라 힌두교의 부활을 주장하는 등 특정종파 지향적이어서 BJP의 집권을 막는데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NF-LF의 핵심인물로 NF­LF가 집권할 경우 총리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좌파전선 당수 죠티 바수는 『힌두 민족주의자들의 당인 BJP가 권력을 장악해서는 안된다』며 반대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정치분석가들은 NF­LF는 BJP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이번 총선에서 참패한 국민회의를 지지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국민회의당도 BJP가 주축이 되는 연립정부 구성에 반대하고 있다.국민회의당의 프라나브 무헤리 외무장관은 『우리는 어떤 것이든 선택할 수 있다.그러나 우리는 비종파적인 세력들에 의한 집권을 선호한다』면서 BJP를 제외한 다른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의사를 분명히 했다.국민회의당은 만약 NF­LF가 라오 총리의 자유시장 경제개혁을 그대로 추진한다면 NF­LF를 지지하는 문제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탈 비하리 바즈파이 BJP당수는 BJP집권에 대한 이같은 거부감을 의식한듯 『인도는 종교국가가 아니다.인도는 항상 비종교적인 나라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유화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긴 하다.지난 77년 집권한 최초의 비국민회의 정부였던 자나타당 정권때 18개월간 외무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나는 연립정부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며 자신의 집권경험을 강조하기도 했다. 어느 당도 과반수를 얻지 못한 이번 총선으로 인해 인도는 차기 연정구성에 커다란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물론 연정구성후에도 불안한 정정을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유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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