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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트 3국과 고르바초프(사설)

    세계의 관심이 다시 소련의 소수민족분리독립문제로 쏠리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완전 탈소독립을 쟁취하겠다는 리투아니아등 발트 3국과 그것만은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막아야겠다는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싸움이 어떤 식으로 결판이 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다. 그것은 소련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장래는 물론 동서화해와 새 세계질서방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리투아니아의 일방적 독립선언과 고르바초프의 무효화선언및 무력대응시위로 일촉즉발의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는 리투아니아사태는 26일 현지 진주 소련군지휘부와 리투아니아대표간의 극적인 협상개시로 당장의 파국위기는 일단 모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며 사태가 언제 다시 파국으로 치달을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리투아니아사태가 갖는 문제의 심각성은 쌍방이 모두 후퇴하기 힘든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리투아니아는 25일 탈소 독자노선을 선언한 에스토니아등 다른 발트 2국과 함께 스탈린과 히틀러의 불법밀약에 의해 소련에 강제 편입되었으며 고르바초프는 그 불법ㆍ무효성을 인정한 바 있다. 따라서 발트 3국은 국민적 결정에 따른 독립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입장은 다르다. 그러한 목적은 소연방과 다른 공화국,소수민족을 해치지 않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추구되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리투아니아의 독립이 발트 3국의 독립,그리고 15개공화국의 독립이라는 「탈소 도미노」 현상을 불러 소연방의 붕괴를 가져올 위험성을 고르바초프는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소연방의 붕괴는 민주화개혁은 물론 고르바초프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쪽도 물러날수 없다면 결과는 결국 유혈충돌의 파국뿐이다. 그러나 어느 쪽도 그것만은 원하지 않고 있는 것 또한 확실하다. 소련의 무력에 의한 물리적 탄압은 성공할지 모르나 그 다음에 올 사태도 생각해야 한다. 리투아니아도 고르바초프가 있고서 민족운동도 가능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결국 그것은 공멸의 파국밖에 가져올 것이 없다는 사실을 쌍방은 모두 잘 알고 있다. 해결책은 바로 그러한 인식을 기초로 모색될 수 있으며 이미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연방 최고회의도 민족회의를 통해 경제정책의 자주성,외국과의 조약체결및 외교관교환 인정 등 각공화국의 주권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새 연방협정안을 마련하고 있기도 하다. 리투아니아쪽에서도 온건론이 있으며 소연방내에서 사실상의 독립상태를 달성하자는 타협안도 나오고 있다. 쌍방의 노력이 타협에 의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물론 서방세계는 고르바초프의 정치ㆍ경제개혁이 성공을 거두기를 바라고 있다. 동시에 리투아니아등의 민족자결원칙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등 서방세계가 소의 무력개입가능성을 경계하고 리투아니아의 자결원칙은 지지하면서도 그 독립을 당장 승인치 못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생의 길을 찾아야 하며 서방은 그것을 지원해야 한다.
  • 인구 3백70만중 리투아니아인 80%/오늘의 리투아니아

    ◎단결력 강해 발트3국 독립운동 선도 탈소 독립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있는 리투아니아의 역사는 이웃 강대국인 독일ㆍ러시아의 침략에 대한 저항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중세에는 독일의 정복에 저항,폴란드와 연맹하여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기도 했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4세기에는 현재 백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영토를 상당히 장악,통일된 군주국을 형성시켜 나갔으며 14세기에는 중세유럽의 대표적 제국의 하나로까지 성장했었다. 그러나 리투아니아는 1796년 러시아에 의해 대부분 점령당하는 비운을 맛보아야 했으며 제1차세계대전중인 1915년 9월부터 전쟁말기까지 독일의 발굽아래 지냈다. 독일군이 철수한뒤 리투아니아는 1918년 2월 독립을 선포,독립국가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1939년 8월23일 히틀러­스탈린의 독소밀약으로 다음해 라트비아,에스토니아 등과 함께 소연방으로 합병되는 등 끝없는 약소국의 한을 안고 살아왔다. 리투아니아공화국은 3백70만 국민가운데 리투아니아인들이 80%를 차지,소연방내의 다른공화국보다 응집력이 강해 단결이잘 되고 있다. 리투아니아공화국내에서 소수집단인 러시아(9%),폴란드(8%),백러시아(2%)인들은 공업분야에 종사하고 있어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는 리투아니아인들과 대조를 보이고 있으며 마찰 또한 빚고 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스탈린치하에서 다른 소수민족들과 마찬가지로 강제 이주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지난 41년 지식인 3만명을 포함,4만5천명의 리투아니아인들이 처형되거나 시베리아로 추방된것을 비롯,49년까지 모두 30여만명이 반당분자라는 누명으로 조국을 떠났다. 소련내 리투아니아인들은 3백40만명 정도로 11위를 기록하고 있다. 19세기말부터 리투아니아인들의 해외이주가 본격화되어 미국과 유럽등지에 약 2백만의 리투아니아인들이 조국의 반소ㆍ민족주의운동을 돕고있다. 리투아니아인들의 동질성을 높여주는 또다른 요인은 언어와 종교로,88년 10월 리투아니아의회는 리투아니아어를 공용어로 지정했으며 리투아니아인들은 대부분 카톨릭을 신봉하고 있다. 리투아니아공화국의 영토는 6만5천㎢로 한국의 충정남북도ㆍ전라남북도ㆍ경상남북도를 합한 면적보다 약간 작다. 주산업은 조선ㆍ화학ㆍ제지ㆍ전자ㆍ직물 등이며 감자ㆍ사탕무ㆍ육류 등이 주요 농산물이다.
  • 「통독」을 보는 현지의 시각/아스거 라슨(특별기고)

    ◎“거대 독일”… 명암 엇갈리는 유럽/“EC 통한 평화적 유럽통합의 새 전기” 기대/“독일 중립화 땐 큰 재앙 초래” 우려 목소리도 독일은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유럽의 성쇠에 있어 중요한 지위를 점해 왔다. 정치적ㆍ사회적 대변혁의 음모 뿐만 아니라 심오한 사상도 독일에서 생성됐다. 문화적ㆍ과학적 주요 경향들은 루터 칸트 쇼펜하워 니체 아인슈타인 괴테 마르크스 헤세 베토벤 바흐 등과 같은 사람들로 대표되는 과거 독일제국에서 비롯됐다. 독일은 전후 「경제기적」을 이룩한 나라이면서 또한 2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전쟁 책임이 있는 비스마르크와 히틀러를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유럽에 있어 독일은 경모의 대상이면서 증오의 상징이며 본받을 존재이자 두려운 상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독의 붕괴 이후 지금 유럽에서 논의되고 있는 독일재통일 문제는 주변국가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8일은 전후 서독과 동독을 갈라 놓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1백일이 되던 날이었다. 지난 1백일 동안 독일에서는 숨막힐 정도의 격변이 열광과 두려움 속에서 진행되었다. 열광하게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부패하고 싫증난 동독에 불어닥친 자유화바람 때문이었으며 반면 두려움을 갖게된 것은 거대하고 강력한 독일의 경우 제국주의적 충동에 사로잡혀 왔다는 과거 경험 때문이었다. ○유럽성쇠의 중추역 비록 동독은 지금 피폐된 자국의 경제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만 1천7백만의 동독인과 6천1백만의 서독인이 합치면 유럽대륙에서 인구가 제일 많고 경제적으로도 가장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동독인들이 진실로 그들의 동포인 서독인들과 재통일을 이루고 싶어한다는데는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공산주의의 상징은 동독의 3색국기에서 이미 뜯겨 나갔으며 거의 매일 대규모 시위 군중들은 『공산주의는 영원히 죽었다. 이제는 통일이 필요하다』고 외치며 비밀경찰에 대한 두려움 없이 동베를린 라이프치히 등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또 전 공산당 지도자들은 전에 없이 비참한 모습으로 TV에나와 『자유선거에서 공산당이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 특권을 누리던 공산당원들은 달아나기에 바쁘며 2백30만에 달하던 당원수는 최근 1백일 동안에 불과 7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동독 공산당의 한 고위관리는 『이달 18일로 예정된 자유총선에서 공산당은 겨우 10% 정도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며 『통독문제는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아닌 가까운 미래의 현실』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문제는 동독인들의 지나친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지난 1백일동안 자신들이 직접 동서독간의 엄청난 경제적 차이를 실감했다. 따라서 통일문제는 이제 시장경제와 혁명의 문제가 될 것이다. ○국제지위변화 불원 오늘의 유럽은 50년 전의 상황과 한가지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것은 서독이 지금 나토와 EC에 있어 주요핵심국가라는 사실이다. 독일이 통일을 이룩했을 경우 또다시 주변국에 대해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주변국인 영국과 프랑스 국민들도 이같은 생각을 하고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의 일부 국민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통일독일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현재의 서독보다 훨씬 막강해진다는 사실이다. 또다른 우려는 통일독일의 국제적 지위와 관련이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독일의 중립화는 유럽에 커다란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견해는 나토동맹국들은 물론 아마 소련까지도 같은 생각일지 모른다. 소련은 20세기 전반기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독일이 유럽의 한부분으로 귀속되지 않으면 몹시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공식적으로 2차대전의 전승4개국인 미ㆍ영ㆍ소ㆍ불 등은 독일사태의 진전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45년이 지난 지금 이것은 단지 형식에 불과하다. 고르바초프는 서독 콜 총리와 회담에서 독일의 재통일은 전적으로 독일국민의 문제라고 확인했다. 통일된 독일은 나토군이 현재의 동독땅에는 주둔하지 않은채 나토에 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EC에도 회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유ㆍ민주적 선거와 함께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통일을위한 전제조건이며 마르크화를 단일통화로 하는 것은 피폐된 동독경제 재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10만명 정도의 동독인들은 지난 몇달동안 서독으로 이주했으며 9만5천명에 이르는 비밀경찰과 10만9천명의 정보원들은 보복을 피해 달아났다. ○탈 이테올로기 시급 서독 콜 총리는 『늦어도 내년에는 독일의 재통일이 이뤄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며 헝가리와 폴란드의 경제지원을 위해 각각 40억달러와 60억달러의 차관을 승인했던 EC는 『동독경제문제는 독일인의 문제』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금세기에 들어 베를린의 주요 쇼핑거리인 「운테르 덴 린덴」은 나치와 공산주의자들이 군화소리로 메아리 졌었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고 유럽은 더 이상 분단된 대륙으로 존재할 수 없다. EC를 통한 유럽통합은 독일통일을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가능케 하고 있다. 이는 또 사회주의의 어둠으로부터 벗어나 서서히 제 갈길을 찾아가야 하는 동구국가들을 포함한 전유럽의 평화적 통합에도 길을 열어주게 될 것이다. 이같은 통합과정이 외부의 간섭 없이 지속되기 위해 유럽은 이제 탈 이데올로기화하고 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갖춰가야 할 것이다.
  • 미ㆍ가 연구소장 소 아르바토프,소 잡지 기고

    ◎“소,군비 과다지출 계속땐 후진국 전락”/현재 국방비는 「안보 적정선」 초과/병기개발 치우쳐 서방과의 경제격차 심화/군조직등 관련법,데탕트 걸맞게 정비해야 소련의 미국문제 전문가로 미국ㆍ캐나다 연구소 소장인 게오르그 아르바토프는 소련의 군사지도자들이 미국의 방위비 지출내용을 왜곡,소련으로 하여금 과도한 군사력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발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다음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노브스티 통신을 번역하여 25일 소개한 아르바토프의 기고문 내용이다. ▷신정치적 사고◁ 새로운 정치적 사고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주요 요소이자 외교정책의 새로운 개념이기도 하다. 이는 또 군부의 역할과 군사력 사용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필자는 기왕에 우리가 옹호해왔던 정치나 전쟁에서의 군사력 이용에 대해 말하려는 것은 아니나 소련은 너무 자주 제국주의적 야심에서 나온 정책을 추구해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스탈린이 1939년 히틀러와 맺은 비밀협정이나 1968년 체코에서 소련과 그동맹국들이 군사력을 사용한 것,그리고 1979년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낸 결정을 비난함으로써 그것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정치적 태도와 개념에 대한 검토는 전쟁위험의 감소와 군사적 독트린 및 전략에 대한 재고를 이끌어내게 유도한다. 새로운 정책은 그같은 거대한 군사력이나 거대한 군비의 지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군사력의 과잉은 결코 안전의 요소가 될 수 없다. 이는 어느 한쪽이 다른쪽에 대한 평가를 할때 군사적 능력만 갖고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군사력은 합당할만큼 충분하면 되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치 않다. 이는 한쪽이 자신을 방어하기에 충분하면 되지 다른 쪽을 자극하는 것이어서도 안된다.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공격하고 제압하기에 충분한 군사력을 유지해서는 안되며 상대방에게 위협을 주거나 자기편의 정치인들이 무모한 행동을 취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도 안된다. ▷열악한 경제사정◁ 빚을 지고 있을 때나 꼭 필요한 물건을 살 돈이 없을때 수입의 범위안에서 필요한 지출을 포기하면서 살아가는 일반 가정주부들의 방식대로 처신해야 한다. 필자는 한 나라도 가정주부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빠른 시일내에 자금회전이 되지 않는 거대한 자본투자나 거대한 관료조직의 유지,아무도 사기를 원하지 않는 겉만 번지르르한 상품이나 또는 과도한 군비에 대한 지출과 같은 모든 사치와 낭비는 포기해야 한다. 필자는 오늘날 우리의 군비지출이 안보 요구와 적정선을 초과하는 것이라 확신한다. ▷과도한 군국주의◁ 경제 과학 심지어 교육과 같은 많은 분야에서 사회주의 사회를 위한 군국주의가 만연돼 있다. 이는 넓게 보면 군국주의가 상당부분을 차지했던 스탈린주의의 자연스런 결과이다. 이와 동시에 이는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나 많은 자유를 가진 고위장성과 무기제조 관련 인사들이 스탈린 사후 시대에 추구했던 정책의 결과이기도 하다. 전국방장관 브레즈네프와 우스티노프 안드레이 그레츠코 같은 군사령관들이 요즘들어 비효과적인 것으로 판명난 그같은 전쟁기구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같은 거대한 전쟁기구를 만들어얻은 이익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먼저 70년대에 데탕트 정책에도 불구,우리는 우리에게 대항하는 전 세계를 겁주는데 성공했다. (놀랍게도 우리의 공식자료에 따르면 소련은 소련을 제외한 전 세계가 보유한 것보다 많은 6만4천대의 탱크를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착취당했으며 경제와 재정이 흔들리고,끝내는 사회적 긴장마저 야기시켰으며 생활수준마저 떨어지게 했다. 이에따라 서방공업국과의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또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난하면서 우리는 미국의 군수산업체로 하여금 냉전을 15년 또는 그 이상 지속되도록 했으며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군축과 비군사적 논의 자체를 지연시켰다. 이같은 모든 사실은 우리가 개방을 시작해야 하고 병력 군사정책 및 방위비 지출에 대처,가능한한 빨리 정직하게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분야에서의 과감한 개혁은 역시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아는 바를 되풀이하면, 85년이래 미군의 병력은 꾸준히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국도 소련과 마찬가지로 더욱 빠른 속도로 병력을 감축해야 하겠지만.) 미국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미국의 방위비는 1989년 불변가격으로 85년 3천2백55억달러였던 것이 86년엔 3천1백19억달러,87년엔 3천18억달러,88년엔 2천9백28억달러,89년엔 2천9백8억달러로 줄어 지난 5년 사이에 금액으로 3백50억달러,비율로는 1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병력의 감축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50만명을 감축하더라도 미국병력보다도 1백50만명이 많다. (오브치니코프 장군은 미국병력에 비해 소련측이 46만명이 많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차제에 우리를 더욱 위협하는 것이 외국의 간섭인지 아니면 점증하는 국제난국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같은 사태가 계속되면 우리는 종국에 가서는 후진국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무슨 법에 의거해 이 나라의 군사력을 거느리고 누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병력을 조직하는 것을 결정하며,또 누가 이에 필요한 자금을 관장하고 지출하는가를 결정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필자는이 모든 질문을 소연방최고회의 구성 및 기능에 관한 문제와 함께 우리들의 의회에 가능한한 빨리 상정,논의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제2차 인민대표대회에서 군사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지만 필자는 이 논의를 최고소비에트회의에서 계속되도록 해 결국엔 법의 채택과 정치적 및 예산결정으로 이끌어 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군의 이익이자 국가의 이익이 될 것이며 나아가 경제나 방위력 향상에도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 「본래적 예술」에 대한 믿음과 기대/김문환 서울대교수ㆍ미학(세평)

    비판적 합리주의라고 불리는 현대사상의 한 맥을 주도한 칼 포퍼의 「개방사회와 그의 적들」이라는 저서는 그가 히틀러에 의한 오스트리아 침공소식을 처음 접했던 1938년으로부터 1943년 사이에 씌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플라톤 등을 다루면서 『전쟁이나 그밖의 어떤 현대적인 사건들중 어느 것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은 그러한 사건들과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였으며 문제들 중에는 전쟁이 승리로 끝난 후에 발생될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비판적 합리주의 공감 그러한 문제들의 예로 우리는 전체주의ㆍ권위주의ㆍ인종차별주의ㆍ부족주의 또는 그의 포괄적인 술어를 빌린다면 역사(결정)주의를 지적할 수 있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나 헤겔에 이어 마르크스를 비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그에 따르자면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이 좀더 좋고 좀더 자유로운 세계를 만들어보려는 끊임없는 위험스러운 투쟁을 벌이는 사이에 만들어진 실수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그의 이론에 대해서는 엄격한 합리적 비판이 요구된다는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이어 『그 이론이 지닌 놀라운 도덕적 호소력과 지적 매력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쓰고 있다. 작은 지면에 「개방사회와 그의 적들」의 집필동기를 이렇게 늘어놓는 것은 차마 함부로 비교될 것은 못되지만 이른바 민중예술에 대한 필자의 심정이 그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대학생활은 1962년부터 시작되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에서 제대한 1964년 여름부터이다. 이때 대학들은 이른바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운동,또는 6ㆍ3사태로 들끓었고 그 열풍이 지나간 2학기의 캠퍼스는 그야말로 마른 잎들만이 뒹구는 들녘과 같았다. 이 메마른 대지에 다시 싹을 틔우려는 여러가지 노력들중의 하나가 문화운동이었고 그 한가지 표현이 탈춤인 셈이었다. 향토의식 초혼굿이라는 행사가 그 대표적인 활동이었던 바,필자도 예컨대 연암 박지원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에서 북곽선생이라는 역을 맡아 다가오는 추위와 맞서보기도 하였다. 1969년 서울신문의 서울문예평론 모집에 당선되었을 때,그 내용이 민속극을 다루는 것이 되었던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 마지막 귀절에서 필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정을 통한 긍정의 세계관,갈등과 모순을 날카롭게 의식하면서도 그것을 멋스럽게눙쳐 몸으로 받아치는 실감,모든 잡다한 것을 하나로 뭉뚱그려 너ㆍ나의 대립을 초극한 우리만을 있게 해주는 우리 민속극의 활개짓을 「오늘ㆍ여기」에서 펼쳐주는 창작적 민속극의 출현이다』라고 쓴 바 있다. 25살 청년의 치기가 아직도 묻어나지만 이러한 주장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대학가를 풍미한 마당극의 출현을 마치 예감한 듯 싶기도 하다. 필자 스스로는 교회를 거점으로 삼은 창작적 민속극(판소리 포함)에 좀더 관심을 보이면서도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그 비슷한 작업들도 비교적 열심히 구경한 셈인데 어느날 그만 벽에 부딪치고 만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그것은 김지하의 「비어」를 읽었을 때였다. 대학시절의 인연도 작용하면서 그의 작품들에서 창작적 민속극의 가능성을 가장 확실하게 읽어내던 필자로서는 대연각 화재사건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고관」이라는 소품에서 비롯 그것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될 위인들의 죽음일지언정 그 죽음이 한낱 분풀이를 위한 우스개감으로만 다뤄질 때 섬뜩한 느낌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동기의 순수성은 인정 그러면서도 그후 「민중의 소리」가 그의 작품이라고 소문이 났을 때 필자는 아직 만일 그것이 그의 작품이라면 그가 시인이기를 포기했거나,아니면 그것이 전혀 그의 작품이 아니거나 둘중의 하나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1976년 독일에 유학했을 때 그곳에서는 이 「민중의 소리」를 김지하의 작품으로 믿어 의심치 않아 이를 일어ㆍ영어ㆍ독어 등으로 번역하여 노벨문학상 후보작으로 추천하는 운동이 열성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필자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필자의 대답은 한결같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단지 위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거나 아니면 필자를 사이비 내지 사쿠라로 매도하기까지 한 일도 있다. 왜 나는 아무런 물증도 없이 그런 소리를 했을까? 그것은 결국 본래적 예술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많은 청년들이 밖에서 「피ㆍ피ㆍ피」를 외치는 와중에 명동성당의 한 부속건물에서 이루어진 문학강연에서 김지하 시인이 「살림」론을 차분하게 강연했을 때 필자는 그에게서 여전히 이러한 믿음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역설한다. 『오늘날 우리는 생물학적인 죽음만이 아니라 정치ㆍ사회적인 죽임에 의해 희미해져가는 삶을 되살리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문학도 그러한 살림의 일환이다. 그러나 살림은 규모가 있어야 한다』 ○신명과 품위의 조화를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민중예술을 주도하던 몇몇 일꾼들이 「현장」을 떠날 때,때마침 이른바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이는 개혁의 물결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그것 봐라』 하는 음성이 제법 크게 들려온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동기」마저 그릇되었다고 질타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예술과 현실정치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가지지만 칼 포퍼의 심정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바로 그 핵심적인 인물들의 자성에 힘입어 우리가 공허하지 않으면서 신명과 품위가 조화된 본래적인 예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는 순진한 관객일 뿐이다.
  • 통독 겉으론 “찬성”… 속으론 “불안”(특파원리포트)

    ◎영ㆍ불ㆍ폴란드 등 주변국,「제2의 나치」 출현 우려 【파리=김진천특파원】 「괴물과 보물이 함께 낚이는 바다」­이는 2차대전이 일어나기전 청년장교 드골이 독일을 두고 한 말이다. 낚싯줄을 드리우자니 괴물이 걸릴까 두렵고 거두자니 보물이 아쉬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난처한 입장. 드골은 당시 날로 비대해 가는 독일에 대한 유럽사람들의 마음을 이같은 어부의 심정에 비유하고 있다. 동서냉전시대의 종료신호와 함께 통독문제가 클로즈업 되고 있는 요즈음 독일을 보는 유럽인들의 시각 또한 50여년전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27일자로 발행된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동ㆍ서독 통일문제에 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럽사람들은 통독에는 찬성하면서도 통일된 독일의 존재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통독에 대한 찬ㆍ반의사를 묻는 질문에 프랑스 사람들은 61%가,영국사람들은 45%가 찬성의견을 보여 반대의견이 각각 15%,30%인 것에 비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독일의 분단해소에 긍정적인 생각을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들 응답자의 절반은 통일된 독일이 앞으로 유럽을 지배하게 될 것으로 염려하고 있으며 폴란드의 경우는 69%나 됐다. 겁내는 이유에 대해 영국 사람들은 파시즘의 부활(53%),프랑스는 거대한 경제력(55%),폴란드는 영토확장기도(54%) 때문이라는 의견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표현은 달라도 이들의 염려에는 「거대한 하나의 독일」 출현에 따른 위협이 공통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유럽 전체의 장래가 독일문제에 크게 좌우되며 주변국가들의 앞날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독이 합치면 인구는 8천만명,경제력은 멀지않아 EC회원국 나머지 11나라의 생산력에 거의 절반을 따라잡는 실력이 된다. 유럽 최대의 영토에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는 그야말로 「대국」이 탄생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중립화 통일방안이 조심스레 거론되기도 하지만 이같이 막강한 민족국가에 중립이란 개념을 적용시키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는 지적이 따른다. 그래서 유럽국가들은 독일의 통일에 찬성하면서도 갖가지 전제조건을 달아 실제로는 반대하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실례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독이 이루어진다면 이를 지지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그는 이와 함께 『독일의 통일을 추구하는 모든 정책은 유럽의 전후질서의 테두리안에서 취해져야 한다』(89년 12월7일 고르바초프와의 회담)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통독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 몰타 미소정상회담 뒤에 열렸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도 『현재의 유럽국경선을 변경하는 어떠한 상황변화에도 반대한다』고 못박았다. 유럽사람들을 더욱 조급하게 만드는 것은 EC(유럽공동체)통합작업과 통독과의 관계이다. 서독이 통일문제에 신경을 쓰느라 EC통합작업에 게을러 질 경우 92년말로 잡고 있는 통합완성시기가 제대로 지켜지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서독이 빠진 EC통합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NATO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서독 없이 NATO의 존재가치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독의 시위군중들 사이에서는 통독의 구호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실시될 자유총선에서는 통일을 실질적으로 앞당길 수 있는 결과가 빚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에 앞서 양독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부터 통독을 위한 정지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내달초에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지도자회의에서 동ㆍ서독 정상이 만날 예정이며 그리고 곧이어 한스 모드로브 동독총리가 서독을 방문키로 되어 있다. 히틀러의 독일이 제2차세계대전을 도발함으로 해서 독일은 드골의 정의대로 「괴물」로 등장했었으나 요즈음의 유럽지도자들은 「유럽일가」 또는 「유럽연방」속에서 통일독일이 「보물」 역할을 해주길 고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괴물이 될지 보물이 될지 전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심정이다.
  • 루마니아 방문 소 외무/임정수반 방소 초청

    【부쿠레슈티 로이터 AP 연합】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소련 정부 각료로는 최초로 루마니아 신정부 지도자들과 회담을 갖기 위해 6일 부쿠레슈티에 도착,1일간의 공식 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셰바르드나제 장관은 이날 이달안에 일리에스쿠 임시정부 수반에게 모스크바를 방문해 달라는 고르바초프의 초청장을 전달했다. 이번 회담에서 제기될 가장 까다로운 의제 가운데 하나는 지난 40년 스탈린과 히틀러가 체결한 비밀의정서에 따라 루마니아로부터 소련에 합병된 몰다비아 공화국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외언내언

    흔히,점쟁이는 지나간 일은 잘 맞힌다고 말한다. 한사람의 삶이라는 것에는 여러가지 사실들이 담겨 있어서 점쟁이 말에 적용시켜 보면 그럴 듯하게 맞을 만한 요소가 있게 마련이다. 상당한 지식인이나 문명비평가들 중에는 지내놓고 예언을 증명하려고 드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때 그럴줄 알았다. 그래서 누구누구한테 그런 말을 했었다』고 역설한다. ◆『히틀러 무솔리니는 어차피 국민에게서 유리되어 있던 존재이므로 조만간 죽어갈 운명이었다. 나는 그걸 예견하고 있었다』느니,『박대통령에게 유신독재 같은 것을 빨리 단념해야 당신도 살고 국가도 산다고 내가 충고를 했다가 눈 밖에 났다』느니 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어도 그런 생각을 했었음에 틀림이 없다. ◆독재자와 민심과는 본디부터 유리된 관계다. 그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독재권력이 비참하게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예측을 했거나 작은 목소리로 예언했다고 해서 별로 뜻있는 일은 아니다. 그 잘못되어 가는일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서만 책임을 나눠 질 수밖에 없다. 지내놓고 자신의 간파능력을 자만하는 일은 아무 소용이 없다. ◆누구라도 자기 시선으로 「자기앞의 삶」을 예측할 자유와 능력은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예측되는 사태에서 잘못되는 일을 막거나 줄이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가 하는 점이다. 냉소적인 얼굴로 고담준론이나 하면서 지난날의 예언을 자만하는 지도급 지식인보다는,성실하게 책임을 다하는 이름없는 시민이 더욱 소중하다. ▲1990년 아침. 새해라기 보다는 저무는 세기의 마무리를 위한 시대의 출발이라는 분위기가 더 진하다. 세기와 세기를 잇는 세대의 다소 혼돈되고 그러면서도 거대하게 다가오는 새로운 세기에의 두려움 때문에 들떠있는 새해 아침이다. 이 현란한 역사의 매듭 위에 숨쉬고 있음이 고맙다. 바르게 예측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한해가 되기를 빌며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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