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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 주체적 개혁과 정치권 물갈이/김동성(정경문화포럼)

    ◎부패척결에의 대응… 주인의식 긴요/민주절차인 선거 통해 부도덕 척결 김영삼식 개혁 추진은 현 정권의 정통성을 강화시켜 주면서 신한국건설의 구호가 환상이 아닌 실현가능한 목표라고 국민들은 믿기 시작하는 것같다.그러나 우리 주변의 그늘진 곳에서는 개혁의 방법과 진행과정에 대해 시비하는 목소리가 있다.그리고 많은 논객들이 언론매체를 통해 무심하게 이러한 불평들에 동조하고 있다. 개혁에 대한 비판논리의 핵심은 현 개혁정책이 총체적 프로그램이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개혁대상세력의 설정에 있었서의 불분명성,그리고 법적·제도적장치를 만들지 않은 채 개혁을 진행시킨다는 등이다.그리고 이러한 비판의 소리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수동적으로만 사고해 온 보통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는다.그러나 개혁정첵과 방식은 역사적인 특정시점과 정치체제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소수의 권력 엘리트들이 국가의 목표와 민족의 이상을 정해놓고 특정 정치·경제및 사회 구조와 양식의 변화를 프로그램화하면서 개혁을 진행시켜 갈 수가있다.그러나 이러한 개혁방식은 히틀러나 스탈린의 전체주의적 모형으로 귀착되기가 쉽다. 다음으로 정치,경제,군 엘리트들이 경제성장과 정치적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정권이 설정한 발전 목표로 국민을 동원하면서 개혁을 추진해 나가는 제3세계 군부통치체제에서의 발전모델이 있다.이 경우 이미 설정된 발전방향에 저해된다고 생각되는 민간·사회부문과 반대세력을 개혁이라는 이름하에 탄압하게 마련이다.그리고 그 결과 성장과 질서라는 미명하에 개혁주도 세력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스스로가 사회·경제적 비리와 부패를 구조화시켜 나가게 된다. 현 시점에서의 우리나라 개혁은 반드시 소수에 의해 설계되는 개혁일 필요가 없다.우리의 개혁목표는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경제사회 발전을 꾀하는 과정에서 많은 공직자와 기업가들이 공동체적 이상을 망각하고 탐욕에 빠졌던데에서 일차적으로 기인한 구조적 부패를 척결하자는 것이다. 국민 전체가 썩은 것이 아니다.구조적 부패상황하에 평범한 시민들은 비정상을 정상이라고 믿도록 강요받아 왔던 것이다.따라서 일차적 개혁과정은 국민들로 하여금 무엇이 정상이고 상식인가를 일깨워 주는 정신 개혁으로 충분하다.그리고 현 단계에서의 개혁은 기존의 법률과 제도의 틀속에서도 가능하다.물론 새로운 법적·제도적 장치를 준비해야하나 개혁논의의 초점이 법적·제도적차원에만 집중된다면 이는 현재의 개혁과제를 왜곡시킬 뿐이다. 만일 우리가 개혁의 다음 단계를 생각한다면 이는 정치권의 물갈이에 초점이 맞춰져야만 한다.지금까지의 구조적인 부정부패의 일차적 책임은 공직자에게 있어왔기 때문이다.정치권의 물갈이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으나 민주적절차에 따라야 한다.민주적 절차란 선거와 시민적 감시에 의존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선거에 대비하여,그리고 새로운 공직자의 임명과정에 대비하여 국민들은 공직자의 모든 면을 속속들이 평가하고 있어야 한다.비리에 연류되어온 개인과 그룹,그리고 최근에 드러나고 있는 부도덕한 양심들에 대해 국민들은 망각하지 않고 있어야만 한다.그리고 상식과 정의를설파하는 시민단체들의 활성화와 양심적언론,그리고 정의로온 정치지도자의 유기적 협력관계의 지속만이 성공적 개혁의 관건이 된다. 선출된 공인이든 임명된 공직자든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받는다.그리고 명예를 유지한다.따라서 국민앞에 스스로를 노출하는 것은 괴로움도 아니요,치욕도 아니다.오히려 의무이다.공직을 배경으로 축재한 부는 설령 법망을 피했다하더라도 이를 사회에 환원하여 국민의 재심을 기다리는 것이 순리다. 현 단계에서의 개혁은 김대통령과 부패세력 간의 대결도 아니오,여야간 대결도 아니요,여권내 계파 간의 싸움도 아니다.국민과 일부 부패세력간의 문제이다.앞으로의 개혁향방은 국민의 건전한 상식과 주인의식에 달려 있다.그리고 개혁의 목표와 미래는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뜻과 의도에 따라 정해져야만이 정도인 것이다.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우리 자신의 운명을 누군가가 대신 이끌어 줄 것을 기대하며 살아왔다.
  • 한국전기통신 108년사 한눈에

    ◎「용산전화국내 사료전시관」 7월 개관준비 한창/목제전화기·케이블 등 1,298점 수집/1902년 전화과주사 임명장이 최고/통신발달사 배우고 미래 정보망의 교육장으로 1902년 전화과 주사 임명장·40년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함께 찍은 전송사진등… 한국전기통신 1백8년사를 한눈에 조망할수 있는「한국통신 사료전시관」이 7월 개관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서울 용산전화국내 4백30평 규모로 설치되는 이 사료전시관은 지난 1885년 9월28일 서울∼인천간 전신개통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전기통신역사를 재조명하고 흩어져있던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보존함으로써 21세기 고도정보사회로 가는 토대를 마련하는 장이다. 개관을 앞두고 한국통신은 대대적인 사료수집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수집된 사료는 모두 4백76종 1천2백98점으로 50년이상된 희귀사료가 24종 25점,사료가치가 크면서도 30년이상된 중요사료가 1백53종에 1백99점,30년미만이지만 보존가치가 있는 일반사료가 2백99종 1천74점등이 모였다. 가장 특이한 것은 1940년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만나는 장면및 중국사변 모습을 담은 전송사진과 1902년 궁내부 전화과 주사의 임명장(발령통지서)등이 옛역사를 전해준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만나는 사진과 중국사변사진은 전화선으로 보내온 전송사진으로,당시 동경동맹통신사에 전송기사로 근무했던 박구병씨가 소장하고 있던 것. 또 임명장은 1902년 궁내부(현 청와대)통신사 전화과 정환덕씨의 것으로 이번에 수집된 사료중 가장 오래된것이다. 조선통신법규개요는 23년 발행된 일본어로 된 한국 최초의 전기통신법이며 전화교환수 견습교과서는 25년 만들어진 전화교환수의 교육지침서이다. 빨갛게 녹슬어 있는 해저케이블은 1904년 일본이 대륙을 침략하기 위해 일본∼러시아,일본∼중국을 연결,매설한 것으로 울릉도와 거문도해저에서 발굴된 것이다 또 23년 델빌사의 자석식,30년의 목제전화기인 공전식전화기가 오늘날의 날렵한 전화기와 대조를 이룬다.이외에 1909년 캐나다에서 기증받은 자석식교환대와 국내기술로 개발된 86년 TDX­1A상용시험용 국산전자교환기 등이 옛과 오늘을 비교케 한다. 한국통신 홍보실 김수항사료관리부장은 『이 사료전시관이 개관되면 전기통신의 발자취뿐 아니라 현대통신발달사를 배우고 미래를 상상해볼수 있는 산교육장으로 활용될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수집된 사료를 바탕으로 전기통신박물관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다.
  • 극우파 50여명 검거/독,아지트 60곳 급습

    【본 로스토크 AP 로이터 연합】 독일경찰은 3일 국내 3개주에서 극우분자들의 은거장소로 보이는 아파트 60군데 이상을 급습해 50여명을 검거하고 탄약·문서·컴퓨터디스켓과 아돌프 히틀러의 흉상등 나치 상징물들을 압수하는등 신나치주의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검거작전을 벌였다. 경찰은 이날 노르트 라인베스트팔렌,작센,작센 안할트등 옛동서독 지역에 걸친 대대적인 검거작전에서 50여명의 극우분자들을 일시 구금하고 태동단계에 있는 새로운 테러 조직을 적발했다고 작센주 검찰이 밝혔다.
  • 미,65년 베트남참전 결정/“존슨의 역사인식오판 때문”

    ◎“개입 유리” 한국전교훈 상기/하버드대 콩교수 「전쟁의 유추」 저서 화제 미국인들에게 있어 베트남전쟁은 아직도 매우 고약한 상처로 남아있다.어떤 연유로 미국이 갯펄과도 같은 이 전쟁의 수렁에 깊숙이 빨려들어가게 됐는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도 아직 없는 상태이다.하버드대의 유엔 풍 콩교수가 최근 펴낸 「전쟁에 있어서의 유추­한국·뮌헨·디엔비엔푸와 65년의 베트남 참전결정」은 이러한 베트남전에의 개입과정과 배경을 정책결정권자인 대통령의 역사인식의 차이,즉 역사적 유추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색다른 관심을 끌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 대통령들의 중요 정책결정이 과거의 유사 사례에서 얻어진 그들의 「인식의 틀」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그리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거의 비슷한 베트남상황에 대해 아이젠하워와 케네디대통령은 극구 개입을 꺼린 반면 존슨대통령은 참전을 선택한 상반된 경우를 비교 열거하고 있다. ○과거사례에 집착 결론으로 말하자면 존슨의 참전결심은 한국전쟁과 뮌헨협정이라는 두 역사적사실을 앞의 두 대통령과 다르게 유추·인식한 결과였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이 책에 따르면 54년 월맹군이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군을 대패시켰을때 미국이 나서느냐 마느냐로 고민하던 아이젠하워는 바로 한해전에 끝난 한국전쟁을 상기했다.거기서 그는 그때처럼 동맹국들이 동참을 해주어야만 군사행동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그러나 영국이 참전을 거부했다. ○주월대사 부추겨 61년 월맹이 사이공정부를 거의 전복시켜가자 케네디대통령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이때 그는 영국의 말레이시아 공산폭동 진압사실을 반추했다.여기서 얻은 교훈에 따라 케네디는 직접개입을 자제하고 영국인 전문가들을 초청해 후일을 도모하다 암살되고 말았다. 존슨도 아이젠하워처럼 한국전쟁을 상기했지만 이 전쟁의 교훈을 다르게 해석했다.그는 49년 미국의 애치슨라인조정이 바로 한해뒤 북한의 남침으로 이어져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던 점에 주목했다.그때 베트남주재 헨리 로지대사도 38년 영국과 프랑스가 히틀러에게 굴복하고 체결한 뮌헨협정이 곧 2차대전으로 연결됐던 사실을 지적하며 참전을 부추겼다.존슨은 또 한편으로 한국전쟁의 특별한 교훈,즉 예기치않은 중국의 개입을 떠올렸다.그리고는 전면전을 피해 공중폭격,소규모 지상군투입등 제한전을 펼치다 마지못해 전면전으로 휩쓸려 들어갔다는 것이다. ○볼은 끝까지 반대 이 책은 베트남전이 진퇴양나의 이길 수 없는 전쟁임을 예측하고 존슨과 장관들에게 프랑스군의 디엔비엔푸전투 패배를 상기시킨 국무부의 조지 볼을 영웅으로 부각시키고 있다.반면 한국전쟁의 유추에 집착,베트남의 상황이 중국이 전혀 개입할 수 없는 내전상태라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던 존슨을 비판하고 있다. 이같은 월남전의 인식심리학적 분석을 통해 저자는 역사적인 유추가 국제적 사안의 의사결정에 지대한 역할을 하며 보다 유용하게 활용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려 애썼다.
  • 독재자 프랑코 재평가작업/탄생 1백돌 맞아 책 6종 출간

    지난 4일은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의 탄생 1백주년이 되는 날이었다.17년전에 죽기까지 스페인을 40년동안 통치한 그의 생애와는 달리 별 뚜렷한 기념행사는 없었다. 그러나 최근 각기 다른 관점에서 프랑코의 생애를 다룬 책이 5∼6종 나왔다.이는 아직도 프랑코에 대한 왈가왈부가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무언의 금기로 되어 있는 분위기에서 상당히 건강한 변화로 여겨지고 있다. 파시스트인 프랑코는 스페인을 피비린내 나는 내란으로 몰아넣은 끝에 집권했다.그 비극은 회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고 이제 프랑코와 그의 통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국민화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들이다.그러므로 프랑코에 대한 책들은 조용히 읽히고 있을 뿐 이를 토론 주제로 삼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죽은지 꽤 됐지만 그의 막강했던 권력의 그림자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도 침묵케 하는 한 원인이다.그의 긴 통치기간 혜택을 입은 축들이 적지 않고 이들의 영향력도 사그라지지 않았다.그의 사망일인 11월20일에는 해마다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지지자들이 마드리드 시내 새 정부 청사 앞에 있는 프랑코의 기마상 앞에서 추모시위를 하고 있다.프랑코재단이라는 것이 있으며 이 재단은 아직도 프랑코 철권정치가 시작된 1936년 이후의 문서들을 역사학자들에게마저 공개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프랑코 관련 저서들에 대해 몇몇 저자들 사이에서는 상호비판이 벌어져 흥미를 끌고 있다. 마누엘 바스케스 몬탈반이 쓴 「프랑코 장군 자서전」은 심하게 비판을 받고 있는 책 가운데 하나다.이 책은 사실과 픽션의 혼합물이며 전개방법이 독특하다.반프랑코 운동가였던 폼보라는 인물이 프랑코 자서전을 쓰는 임무를 받는다.폼보는 이에따라 1인칭을 써서 프랑코로서 말하다가 자신의 코멘트도 덧붙이곤 한다.몬탈반은 『내가 한 것처럼 프랑코에게 연단을 제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자랑한다.저자의 프랑코에 대한 시각은 비판적이다. 역사학자이며 「내란중의 프랑코­정치적 전기」의 저자인 하비에르 투셀은 바스케스 몬탈반의 책에 대해 『잘 씌어진 책이긴 하지만 프랑코가 자신과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말한 것 가운데 중대한 오류들이 많아 독자를 오도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밖에 「프랑코의 심리학적인 전기」(곤살레스 지음)는 아무런 역사적 연구없이 씌어졌으며,프랑코 지지자가 쓴 「1975년­프랑코 사망의 해」(비스카이노)는 찬양일변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 역사학자가 쓴 「프랑코­역사 속의 모습」(페인)은 불편부당하게 쓴 책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으나 마누엘 바스케스 몬탈반은 이 책의 그러한 성격에 불만을 터뜨린다.그는 저자 스탠리 페인에게 『어떻게 당신은 프랑코나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인물에 대해 불편부당할 수 있는가』하고 묻고 『나는 어느날 아이들이 역사책에서 프랑코를 「군사지도자이며 정치가」라고 한 것을 읽게 될 것이 끔찍하다』면서 『프랑코는 독재자로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도청 정당화 안된다/문호영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국민당이 지난 15일 폭로한 부산지역기관장 회식모임은 중립내각과 각 후보자들의 공명선거의지를 훼손시킨 행위임에 틀림없다.비록 대화형식이 사담에 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전·현직 고위공직자들로서 자중했어야 했다.때문에 이들에 대한 징계조치가 내려졌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은 목적을 위해 그것도 정치공세를 위한 폭로를 목표로 미리 치밀한 계획아래 고성능 장비를 동원,도청행위를 했다는 사실이다. 도청은 동기가 어떻든 또한 결과의 긍정·부정을 떠나 비난받아 마땅한 비인도적인 행위다.「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김언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도청은 고문·미행같은 단어들과 함께 히틀러·스탈린 등을 떠오르게 하는 과거권위주의 독재시대의 몸서리쳐지는 낡은 유물이다. 도청은 우리에게 그렇게 낯설기만 한 것은 아니다.전에도 여러차례 도청당했다는 주장이 나와 문제화됐었다.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도청의 실제여부를 차치하고 심정적으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쪽에 서려고 했었다.도청은 늘 기득권을 지키려는 힘을 가진 세력에 의해 자행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독재를 거치는 동안 어느틈엔가 우리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국민당이 밝힌 도청은 오히려 권력을 담당하고 있는 쪽이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입에 침이 마르도록 공작정치를 비난해온 정당이 스스로 도청을 이용한 공작정치를 한 것이다.도청이 이제는 어느 일방의 전유물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일반도 얼마든지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수단이 됐다는 점에서 당혹과 우려를 금할 길 없다.도청이 보편화되어 우리들의 사생활이 위협받게 된다면 끔찍한 일이다. 국민당은 공당이다.불법 범죄단체나 하는 짓으로 여겨졌던 도청같은 행위를 통해서만 비로소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만큼 허약한 정당이 아니다.따라서 자신들이 관에 의해 탄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있어 좀더 떳떳한 방법을 택했어야 옳았다. 국민당은 관권개입의 현장을 들춰냈다는 자기도취에 앞서 도청이라는 반문명적,반지성적행위에 대한 국민적 의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반성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마치 교회 헌금을 내기 위해 도둑질이 묵인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 “흘러간 역사”/구소 사회주의미술전

    ◎35∼65년 포스터·유화 등 2천여점 돌이켜보면 예술이 아니라 한편의 코미디같지만 불과 몇년 전까지만해도 소련에서 당연한 것으로 통용되던 예술인 이른바 「사회주의·현실주의」(Sotsrealism)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은 이색 전시회가 최근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모스크바 포토센터에서 열린 이 전시회에는 소위 사회주의의 영광을 주제로 한 사진·유화·포스터·도자기 등 총2천여점이 출품됐다. 소츠리얼리즘(Sotsrealism)은 쉽게 말해 사회주의의 영광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한 목적예술로 1960년대까지는 문학·예술의 한장르로 존재했다.이번 전시회에는 소츠리얼리즘의 전성기로 불리는 35년부터 65년 사이의 작품들이 출품됐다. 접시에 그린 스탈린 초상화는 말쑥한 옷차림에 완벼하게 손질된 콧수염의 멋쟁이 모습이다.붉은색 접시 가장자리에는 소비에트권력과 산업전사들의 공적을 기리는 공장·항공기·집단농장·빌딩등이 그려져있다. 2차대전때의 선전용 포스터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색채를 쓰고 만화스타일을 즐겨 쓴 데니의 작품은 관객들의발길을 끌었다.강한 「소비에트 주먹」(소매끝에 별이 그려져있다)이 히틀러의 목을 움켜쥐고있다. 전시회 총책임자인 지노비예르 알렉세예비치(46)는 전시회의 목적에 대해 『우리가 이런 작품들로부터 해방된 것은 신의 은총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이들은 쉽게 잊거나 버릴 수 없는 우리의 역사이다.그래서 개인소장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다시 보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 독 경찰,극우시위대에 발포/자위권 발동… 폭동 강경진압

    ◎신나치단체 불법화/공민권 박탈도 검토/한인소년 첫 피습 【베를린 로이터 AFP 연합】 독일 경찰은 구동독지역의 라이프치히시에서 27일 밤 수백명의 청년들이 일으킨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포했으며 이로인해 청년 한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28일 발표했다. 이번 폭력사태는 유리창을 돌로 깨뜨린 청년과 자동차 앞유리를 방망이로 부순 청년 등 2명을 경찰이 체포하면서 발생했는데 폭력사태의 와중에서 경찰 24명과 14명의 청년이 부상했으며 16∼29세의 청년 41명이 체포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본=유세진특파원】 독일정부는 27일 극우세력의 외국인 공격에 대한 본격적인 첫 제재조치로 신나치당인 민족주의전선(NF)을 불법화하고 악명높은 반외국인 폭력배 8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그러나 16살난 한국 소년이 구타당하는등 외국인에 대한 극우세력들의 공격은 멈출줄 모르고 있다. 경찰은 이날 슈투트가르트에서 4명의 독일청년들이 「하이 히틀러」와 「외국인은 물러가라」고 외치면서 16살짜리 한국소년을 곤봉과 자전거 체인으로 구타하고 달아났다고 발표했다. 【베를린 AFP 연합】 독일정부가 외국인들에 대한 테러를 일삼는 극우주의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제재조치에 나선 가운데 독일의 루돌프 자이터스 내무장관은 극우주의자들에 대해 참정권 등 공민권 박탈을 고려하고 있다고 독일의 일간 빌트지가 28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 조치의 헌법 18조 위반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독일 최고법률기관인 연방헌법재판소가 우선 상세한 검토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자이터스장관은 헌법재판소가 합헌판정을 내릴 경우 27일 단행한 신나치당인 민족주의전선(NF)의 불법화에 이어 신나치 지도인사 등에 대한 더욱 강경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한편 NF에 대한 불법화 조치가 실시된 후 독일 경찰은 수 개의 도시에서 극우주의자들에 대한 검거활동에 들어가 54명을 체포했으며 극우주의자들이 열기로 한 2개의 집회를 금지시켰다.
  • “히틀러망령 번져온다” 유럽국 전율

    ◎터키인 이어 베트남·동구인도 피습/“외국인이 복지 축낸다” 인식이 문제 독일에서부터 터지기 시작한 극우테러가 스웨덴등 유럽 각국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여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유럽각국들은 특히 독일에서 있었던 터키계 여성3명의 피살사건에 경악을 금치못하며 이같은 극우테러가 자기나라로까지 번질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문제의 심각성은 그같은 극우테러가 어제 오늘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뿌리가 생각보다 깊다는데 있다.독일은 나치의 본고장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에 확산지로 등장한 스웨덴 또한 극우테러가 처음이 아니다.스웨덴에서는 지난해에도 제3세계 출신 이민자 6명이 총격을 받아 죽거나 다쳤으며 2년전에도 5명이 총격을 받았다. 스웨덴당국은 총격사건에 대한 제보에 1백만 크로네(약17만2천달러)라는 거액의 상금을 내걸고 범인 색출에 힘써 왔으나 아직 한명도 잡지못했다.이들 사건은 각각 개별적으로 일어났지만 한 집단의 일원들이 저지른 것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경찰은 보고있다. 이번에 스웨덴에서 일어난유태인 묘지 훼손사건은 지난 90년5월 프랑스에서도 발생,이 나라가 온통 소용돌이에 휘말린 적이 있다.사건의 첫 발생지는 프랑스 제2의 도시인 마르세유시 북쪽 1백㎞쯤 떨어진 카르팡트라라는 소도시의 공동묘지였다. 경찰 조사결과 이때도 묘석이 깨지고 땅속 깊숙하게 파헤쳐져 크게 훼손된 묘가 34개나 됐으며 모두 유태인의 것이었다.한 노인의 시체는 관에서 꺼내 여러조각으로 자른뒤 우산대에 찔러 꿰어놓은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됐었다. 이 사건 며칠뒤에는 파리근교 클리시숲의 유태인묘지에서 32개의 묘석이 까뭉개지고 그위에 빨간 나치식 문장이 휘갈겨지는 테러가 있었다. 사건이 나자 여론의 표적은 즉각 프랑스의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과 장 마리 르팽당수에게 쏠렸다.인종차별주의자로 유태인·아랍인및 아프리카인의 추방과 이민규제강화를 주장하는가 하면 히틀러와 나치즘을 찬양하는 르팽당수의 유태인혐오증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일과 스웨덴 등지의 극우폭력 테러에서 그렇듯 이 사건도 수사가 장기화되다 결국 미궁으로 빠지고 말았다. 이처럼 유럽 전역에 불고있는 극우배타주의 바람은 최근들어 불경기가 심화돼 자국민들의 실업자가 늘고있는데다 많은 세금으로 마련된 복지혜택을 이민들이 축내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같은 극우폭력에 대해 터키의 유력지 후리예트와 밀리예트는 『날로 가열되는 독일의 인종차별 현상이 통독 후유증으로 유발된 사회심리적 결과』라고 분석한뒤 『유사한 폭력 사태의 재발을 막기위해 범인들을 체포해 본보기로 처벌하라』고 독일정부에 촉구했다. 같은 터키의 사바지도 『히틀러의 망령이 발트해 연안마을에 나타났다』면서 『이번 살육행위에 대해 독일인들은 수치심과 두려움을 느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탈리아의 스탐파지는 『이제 공격 목표가 터키인들로부터 베트남인및 동구출신 슬라브인및 정치적 망명자들과 모든 이민 근로자들로 본격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프랑스의 리베라시옹지는 인종차별적 폭력사태의 확산에 독일 정치인들이책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 신나치 폭력/“헌정 위협”… 응징여론 비등

    ◎독 검찰,「터키인아파트 방화」 강력수사 배경/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테러 부추겨/갈수록 흉포·대형화… 방치못할 지경 독일연방검찰이 23일 발생한 독일최악의 극우테러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직접 수사에 나선 것은 이른바 「신나치주의」로 대표되는 극우폭력이 독일의 사회안정과 헌정질서의 기반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판단때문이라할 수 있다. 극우세력의 폭력사태가 갈수록 기승을 더하고 있음에도 불구,연방검찰은 그동안 『통일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에서 비롯된 우발적 사건이며 그 배후에 조직적 범죄단체가 개입돼 있지 않다』는 논리로 수사를 피해온게 사실이다. 극우폭력사건은 지난 8월 로스톡에서 극우세력들이 외국인숙소를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난 뒤부터 급격히 과격해지기 시작했다.발생건수도 8월 4백16건에서 9월에는 1천62건으로 급증했으며 인명피해를 부르는등 사건내용도 흉폭·잔인해졌다.올해 극우폭력사건은 모두 1천8백여건이 발생해 16명이 목숨을 잃었다.이때문에 독일은 국내외에서 많은 비판에 직면했고 독일이이 문제에 진지하게 대처하고 있음을 보이기 위해 보다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드세졌다.최근에는 경찰이 경화기와 탄약등을 비축한 극우세력들의 땅굴까지 찾아내 그 위험성에 대한 경종을 울려주었다. 이처럼 극우폭력이 기승을 부리게 된 까닭은 독일통일 비용이 엄청나게 지출됨에 따라 독일경제가 어려움에 빠짐으로써 일부의 좌절감이 히틀러시대의 향수로 변모한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그러나 이에 대한 독일정부의 안이한 대처방식도 극우폭력을 간접적으로 부추겼다고 할 수 있다.독일정부는 서서히 확산되는 신나치주의를 도외시한채 독일로 몰려드는 외국난민들만 억제하면 된다는 입장을 취해 외국인들에 대한 극우 세력의 배척을 부추긴 셈이 되고 말았다.콜정부가 난민유입을 억제하는 새 난민법의 제정을 위해 야당인 사민당과 협상을 벌이는 동안 극우세력들은 꾸준히 조직을 확대·강화해온 것이다. 독일의 정보소식통들은 현재 독일내의 극우세력이 약6만명에 이르고 있으며 이가운데 1만여명이 직접 폭력에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특히 스킨헤드족들이 신나치주의에 흡수돼 극우폭력의 신봉역할을 하고 있다.최근에는 극우폭력에 일부 군인들이 가담하는등 경찰과 군내부에도 극우세력이 침투했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정확한 실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23일의 묄른사건은 특히 독일내 최대 소수민족의 터키인을 그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난민뿐만 아니라 외국인 전체에 대한 극우세력의 공개적인 선전포고가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 오도 「외국인차별 입법」 추진/극우정당서 서명 운동

    ◎독어 사용않으면 격리교육·이민제한 【빈 로이터 연합】 독일에 이어 오스트리아에서도 외국인 이민제한과 독일어를 사용하지 않는 학생들에 대한 학교에서의 격리교육등 외국인 차별조치가 극우세력들에 의해 적극 추진되고있다. 오스트리아의 극우 정당인 자유당(FPOE) 지도자 예르크 하이더는 21일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당대회에서 이른바 「오스트리아 우선주의」탄원을 위한 서명운동 전개에 전폭적인 지지를 획득했다. 이에따라 앞으로 이 탄원이 투표에 부쳐져 입법화될 경우,오스트리아는 외국인이민을 받지않거나 독일어를 사용하지 않는 학생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격리 수업을 받게하는등 외국인 차별조치가 공식화될 수 있게됐다. 2년전 히틀러의 고용정책을 찬양해 정부 지도자들을 격분시켰던 하이더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민법의 수정은 조국에 대한 모든 오스트리아인의 권리및 국가적 주체성 보전을 위한 것이며 『외국 이민들에게는 인권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이더는 오스트리아가 현재 외국인으로 넘쳐 있다고 말하고 서명 목표를 1백만명으로 잡고 있다고 밝혔다. 하이더의 탄원서는 10만명의 서명을 얻으면 의회에 상정될 수 있다.
  • 외언내언

    『우리는 외국인습격에 적극 참가하고 있다.망명을 핑계삼아 밀려오는 외국인들은 독일경제의 기생충이다.실업은 물론 범죄와 에이즈만연도 그들 때문이다.박멸해야 한다.국민도 지지하고 있다.공격할 때마다 박수를 치지않는가』히틀러생일인 지난 4월22일 독일국가당이란 국수주의당을 만든 당수 디벨(31)의 주장이다.◆「독일인을 위한 독일,제4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최종목표라고 내세운다.옛동독을 대표하는 국수주의당으로 일어섰다며 외국인을 추방하고 옛독일국경을 회복하는 한편 동독인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이 행동지침이라고 강조한다.히틀러사진과 게르만주의 구호를 걸어놓고 매일같이 애꿎은 외국인배척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디벨은 또 이렇게 고백한다.『나는 동독태생이다.어려서부터 자동적으로 공산주의를 배웠고 당원이 되었다.그땐 그것이 독일인의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기 위한 최선의 사상이라 생각했다.통일후 국가사회주의(나치스)를 알게 되었고 이것이야말로 인민의 사상이라 직감했다.진리는 계급투쟁이 아니라 인종투쟁에 있다』◆통일독일을 휩쓸고 있는 신나치스운동의 많은 것을 시사하는 주장이요 고백이다.공산주의는 가난과 혼돈을 먹고 자란다지만 나치스의 국가사회주의도 마찬가지인 모양.공산주의붕괴후 가난과 혼돈의 동독지역을 중심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히틀러의 희생자인 폴란드에서 그의 마인 캄프(나의 투쟁)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옛동구와 소련지역에까지 나치스의 망령이 범람하는 것은 무슨 역사의 조화인가.◆신나치스감독의 독일헌법 옹호청에 따르면 독일극우파는 73개당 4만여명이며 머리 깎은 스킨헤드 행동대는 불과 4천여명.수적으로 크게 걱정할 것 못된다지만 문제는 묵인하고 방조하는 국민적 분위기.최근의 여론조사는 젊은이 25%의 동조를 보여주고 있다.미국과 러시아도 우려하고 나설 정도라니 정말 예사롭지가 않다.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인가.
  • 독일 극우파 난동 “몸살”/“이민족배척” 전국 확산

    ◎외국인수용소 조직적 습격·방화/경찰과 시가공방 1주째… 사태악화일로 독일이 통일후 최악의 신나치주의자들의 위협에 당면했다.구동독 북단 소도시 로스토크시에서 일주일째 계속되고 있는 신나치주의자들의 조직적인 외국인 숙소에 대한 공격으로 스킨헤드족(빡빡머리)과 이를 저지하는 경찰사이에 시가전이 매일밤 벌어지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 하오9시쯤 1백50명의 신나치주의자들이 대부분 루마니아와 베트남인들이 거주하는 11층 망명자 수용소를 화염병과 돌멩이를 던지며 공격할때만 해도 흔히 있는 스킨헤드족들의 일과성 난동으로 여겨졌었다.그러나 스킨헤드 공격은 연일 해가 진후 계속돼 숙소가 불에 타고 28일 현재 경찰관 1백50여명이 부상했으며 수도 본과 작센주등 전국으로 번지고 있어 독일통일후 최악의 사태로 발전하고 있다. 로스토크 외국인 수용소는 첫날 스킨헤드족 습격으로 2백30명의 루마니아인들이 서독지역으로 대피했으며 지난 24일밤에는 2층에 불이 붙어 3개층이 전소,5층에 있던 1백여명의 월남인들이 소방관들의 도움으로겨우 몸만 빠져나왔다.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외국인들이 모두 대피했는데도 스킨헤드들은 매일밤 불탄 아파트앞 공터에 모여 반외국인 집회를 갖고 시가행진을 벌여 경찰과 공방전을 벌이는데다 이를 구경하는 시민들이 스킨헤드족들의 구호를 따라 부르며 경찰의 진압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방정부는 로스토크사태가 악화되자 28일 베를린과 함부르크에서 경찰관을 보강하고 외국인에 대한 테러는 살인죄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조사결과 이번 난동은 신나치주의자들이 통일후 처음으로 전국적인 연계를 맺고 조직적으로 벌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을 시작한 9월1일에 대대적인 궐기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는 과연 독일이 문명국인가 하는 의문을 던져주고 있으며 또다시 고질적인 독일의 국수주의와 게르만 우월주의가 도지지 않나 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이 때문에 독일의 평화애호단체 회원 1만명은 29일 로스토크시에서 스킨헤드족들에 대항,「인종차별중지」모임을 열기로 했으며 31일에는베를린에서 또다시 대규모 반인종차별 궐기대회를 준비하고 있어 스킨헤드족과의 충돌이 우려되고 있다. 독일의 극우단체 76개조직들이 이번 난동에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들 조직회원 4만여명 가운데 상당수가 계속 로스토크로 모여들고 있어 많을 때는 집회참가인원이 1천여명에 이르고 있다.
  • 고르비/구소 쿠데타 1년맞아 독지회견

    ◎“러시아민주화 끝까지 지켜볼터”/“CIS갈등 해소안되면 보수회귀 우려” 고르바초프 구소련대통령은 군부 강경파의 쿠데타기도 1년을 맞아 독일 디 벨트지와 회견을 갖고 러시아의 장래,그의 정치권 복귀에 관한 입장등을 밝혔다. ­19일로 쿠데타 1년을 맞았다.소감은. ▲구질서로의 회귀가 목적이었던 쿠데타는 공산당의 민주화에 제동을 걸었고 의욕적 개혁정치인들에게 타격을 주었으며 소연방 청산을 가져다 주었다.공화국들은 그후 주권국가로 독립했고 상호 정치·경제·사회적 유대가 단절되지는 않았으나 과거보다 협조가 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새로운 쿠데타 가능성과 있다면 누구인가. ▲가장 크다면 군부지만 그보다는 사회불안과 국가간 갈등이 더 큰 위험이며 일단 뇌관이 점화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발전할 것이다.극단주의자들은 33년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혼란기에 권력을 장악,과거회귀를 노린다. 역사의 교훈은 러시아 민주주의와 개혁이 함께 발전,현 난국과 극단주의자들의 도발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드골이 68세때 대통령이 됐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정치일선 복귀 의사인가. 또한 가능성은. ▲내가 여러번 밝혔듯이 지금 물러나서 타이가(삼림지대)에 묻혀 지내지는 않을 것이다.개인적으로는 어려운 러시아를 떠나 따뜻하고 안락한 나라를 찾아갈수도 있다.그러나 나는 끝까지 이곳에 남아 사회와 정치발전 과정에 참여,우리가 목표한 민주제도 건설의 그날까지 운명을 같이하겠다.나는 러시아에 민주주의가 꽃핀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나는 러시아의 지속적인 민주개혁정책에 일조를 하기 바랄뿐 아직 대통령직 복귀는 생각 않는다.러시아가 안정되거나 파탄에 직면하면 그때 결단하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고르비재단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잘 알려진 쇼스타고프스키가 책임지고 각 정파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치문제 중심으로 세미나를 열고 있다.이데올로기 색채는 전혀 없다.세미나엔 위원들과 교수가 참석,당면 난제 해결을 위한 역사고찰에서 사고 전환에 이르는 문제점들을 논의한다. ­비밀경찰의 지난 비리를 고발 못하도록 법률로 제재하고 있는데과거청산이 가능한가. ▲진정한 의미의 과거청산이라면 계층간 반목을 첨예시키는 밀고와 인권유린악법등 스탈린주의의 소산부터 개선해야 한다.지금 사람들이 저마다 비밀경찰색출에 나선다고 오류가 바로 잡히겠는가.
  • 외언내언

    1936년 8월9일 하오,베를린 올림픽스타디움.히틀러총통을 비롯한 10만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자그마한 선수가 스타디움에 모습을 나타냈다.바짝 마른 몸매,가무잡잡한 얼굴,박박 깎은 머리를 약간 옆으로 젖힌 이 선수가 힘차게 테이프를 끊는 순간,10만관중은 모두 일어서 박수를 보냈고 히틀러는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나치독일의 동맹국인 일본의 「손 기테이」선수에게 월계관을 씌워주었다.◆그러나 「손 기테이」는 손기정이란 이름의 자랑스런 한국청년이었다.일장기를 가슴에 단 채 시상대에 오른 그는 올림픽마라톤제패의 기쁨보다는 나라 잃은 슬픔이 복받쳐 눈물만 흘렸다.그로부터 56년이 지난 바로 그날 1992년 8월9일(한국시간 10일 상오1시30분)손기정의 후배선수들이 또 다시 올림픽금메달고지에 도전한다.◆한국선수들은 1948년 런던대회때부터 당당하게 태극기를 앞세우고 올림픽에 출전해 왔으나 마라톤에서는 단 하나의 메달도 따내지 못했다.그러나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차지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관측이 나오고 있다.92년 세계마라톤 10걸중 황영조선수가 3위에 올라있고 김재용선수와 김완기선수가 각각 6,7위에 랭크돼 있기 때문.◆마라톤은 코스와 날씨,그날의 컨디션여하에 따라 변수가 많은 경기이긴 하지만 불 같은 투지로 최선을 다한다면 금메달고지를 정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3명의 선수들도 그동안 훈련을 충실히 쌓았기 때문에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이들중 한명이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할 경우 한국인으로는 손기정에 이어 두번째의 올림픽금메달리스트가 되고 태극기를 가슴에 단 최초의 마라톤 영웅이 된다.또 한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첫금메달(사격의 여갑순)과 마지막금메달을 함께 차지하는 진귀한 기록도 보유하게 된다.베를린의 영광이 바로셀로나에서 재현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포화속 단전·단수… 보스니아는 생지옥/탈출이민이 밝힌 유고참상

    ◎가족·재산잃고 맨몸으로 독일행열차에/5천여 부녀자·노약자등 전화에 치떨어 내전중인 유고서 처음으로 서구로 집단 소개돼 일행 1백10명과 함께 28일 아침 베를린중앙역에 도착한 보스니아 난민 슈테판 부릭씨(55)는 허탈과 안도감이 교차되는 그런 표정이었다.보스니아의 보산스키 보니시 근교에서 농사를 짓다 내전으로 아들과 동생 그리고 모든 재산을 빼앗긴채 딸과 부인만을 데리고 맨몸으로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 부릭씨는 유고내전의 참상과 탈출순간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세르비아군은 보니시 주택에 큰 피해를 주지않는 선에서 사격을 가해 주민들이 시동쪽에 몰리게 만들었다.그들이 노리는 것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주려는 것보다 회교도를 시외곽으로 내쫓는 것이며 대부분 회교도인 보니시민들이 시쪽으로 밀려나자 갑자기 집중사격을 가해 시민들을 시에서 완전히 추방해 버렸다.회교도들이 보니시서 완전히 밀려난 것은 지난주 수요일.세르비아군은 회교도가 남기고 간 재산과 주택에 세르비아인을 정주시키고 있으며 이는 히틀러의 유태인 추방정책을 그대로 본뜬 것이었다. 세르비아가 28일 보스니아 영토 4분의3을 세르비아소속이라고 선언한 것도 이같은 타민족 추방에 의한 영토확대정책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서 주초 전격적으로 진행된 보스니아 난민 수송작전으로 5천6백23명의 부녀자·어린이·노약자들이 유고전 이후 처음으로 독일에 집단 소개됐다.이들은 1년4개월간 계속된 전쟁에 지치고 35도를 넘는 불볕 더위속에 탈진한 모습들이었다. 난민열차가 본을 떠난 것은 지난주 금요일과 일요일로 크로아티아의 칼로박역에 모여 있는 보스니아 북동부 노비시서 쫓겨난 회교도들을 독일로 데려오는 것이 목적. 노비시는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등 3개국이 접경한 산악 3각지대로 세르비아군의 보스니아,크로아티아 공격 전초기지.이때문에 세르비아군은 이 지역을 봉쇄,3개월째 급수·전기를 단절해 주민들이 지하실에서 사투를 벌여야만했다.이같은 사태가 독일이 난민들을 전격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계기가 됐으며 프러시아식의 정확하고 빈틈없는 소개작전이 은밀히계획됐다. 지난주 노비시민들은 토요일인 26일 상오8시30분까지 카로빅시 체육관에 집결하라는 연락을 받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난민들은 이곳서 2∼3일을 지내며 열차를 기다렸다.지난27일 아침10시25분. 첫번 열차로 독일로 갈 난민 8백33명이 15대의 버스에 나눠타고 역으로 향했다.체육관엔 예상인원의 2배가 넘는 8천여명이 집결,큰 혼잡을 이루었으며 4천여명이 계속 모여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열차에는 식당칸이 연결돼 있어 지친 난민들에게 식수와 빵을 공급했으며 의료진이 부상자와 탈진한 어린이·노약자들을 돌보았다. 지칠대로 지친 난민들은 적십자사요원들의 지시에 순종했다.어른들은 시름에 잠겨 말없이 천장과 차창을 바라보았으며 어린이들은 차에 오르자 곧 잠이 들었고 금세기 3번째 전쟁을 겪는 노인들은 망연한 표정들이었다. 『애기가 열이 나요.누가 좀 도와 주세요』두번째 칸에 탔던 30대부인의 고함이 무거운 객차분위기를 흔들어 놓았다.의료책임자가 달려와 어린이를 4번째 객차 의료칸 침대로 옮겨 진찰했다.부상당한 부위가찌는듯한 더위로 악화,열이 올랐으며 아무것도 없어 자식을 도울 수 없었던 부인은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자식옆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5개 난민열차는 중부유럽을 관통,22시간을 달려 목적지인 뉘른베르크·베스트팔렌·칼스루헤등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갈때까지 살아야 할 이국땅에 내려 놓았다.
  • 분리된 체코­슬로바키아 갈길

    바츨라브 하벨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이 그의 전임자들이 그러했듯 임기를 채우기도 전에 퇴임했다.지금까지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은 공산주의 출신들이건 민간출신들이건 끝까지 대통령직의 임무를 끝낸 사람이 없다. 하벨의 표상이라고 할 수있으며 체코슬로바키아를 건국한 마자릭은 대통령임기를 2년 남겨놓고 1935년 퇴임 해야만 했으며 그 뒤를 이은 베네스는 두 번씩이나 임기전에 그만두었다.즉 베네스는 38년 히틀러의 압력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했으며 10년후에 그는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 함으로써 다시 물러나는 비운을 맞았다.그 이후의 대통령들도 제대로 임기를 채운 사람은 없으며 이를테면 크레멘트 고트발트는 사망으로 인해,후자크는 공산당이 붕괴하는 바람에 사임을 당했다. 이같은 체코슬로바키아 국가원수의 불행한 역사는 이 나라가 건국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있는 불안한 상황을 대변해 주고 있다.중부유럽 한가운데 가로놓여 서쪽은 독일 바이에른주로부터 동쪽은 우크라이나와 접경하고 있으며 체코와 슬로바키아라는 전혀 이질적인공화국으로 구성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나라의 지정학적인 불안요소를 가늠할 수 있다.이제 두공화국이 분리하게 됨으로써 체코공화국은 좋던 싫던 서쪽의 강국 독일과 긴밀한 관계를 맺게 돼 프라하에서의 독일영향력이 증대될 것이다. 반면 슬로바키아는 역사적인 관계로 인해 오스트리아와의 유대를 종전보다 더욱 강화할 것이다.오스트리아 빈은 프레스부르크의 슬로바키아정부가 서구와 협조하는 창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지역의 장래는 새로 독립한 슬로바키아가 전체국민의 11%가 되는 헝가리계 주민들을 어떻게 처우하느냐에 달려있다.연방국가였을 때는 헝가리 민족 비율이 3%밖에 안돼 문제가 없었으나 슬로바키아가 독립함으로써 헝가리민족은 가장 큰 소수민족그룹으로 부상했으며 민주화이후 동구를 휩쓸고 있는 민족주의가 슬로바키아에서도 잠재하고 있다. 프레스부르크의 정치지도자들은 민족문제를 잠재우고 슬로바키아가 우크라이나와 서구와의 중간다리역할을 하도록 해야하는 사명을 안고있다.중부유럽과 그 주변의 정치상황이 변하고있다.
  • 외언내언

    「G7(세븐)」이라고 부른다.그냥 「서미트」(SUMMIT=정상)라고도 한다.6일 열린 선진7개국그룹 정상회담을 이르는 말이다.미·영·불·독·이·일·가 등 선진7개국과 EC의 정상들이 1년에 한번씩 모여 세계의 정치·경제·안보문제등을 논의하는 회의다.◆세계문제일반에 관한 연례국제회의로는 1백75개회원국의 유엔총회가 있고 보다 구체적이며 책임있는 논의를 할 수 있는 상설회의요 기구인 안전보장이사회도 있는데 무슨 옥상옥의 중복되는 국제회의인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오늘의 달라져버린 국제여건에서 보면 더욱 그런면이 없지않다는 생각도 든다.◆그러나 회의창설당시는 사정이 달랐다.금년이 18회째인 이 회의가 처음 열린 것은 75년 프랑스 랑뷔에에서였다.당시 슈미트 서독총리와 지스카르 불대통령의 제창에 의한 것이었다.주된 목적은 73년의 1차석유쇼크로 인한 세계경제위기타개책 모색에 있었으며 성과도 컸었다.◆그것이 회를 거듭하면서 변질되어 한때는 구소련등 공산권에 대응하는 서방정상들의 단합대회 같은 정치적 성격의 것이 되었던 적도 있었다.하나 소련의 붕괴와 탈냉전을 맞아 이번엔 구소련의 정치·경제민주화개혁 지원이 주된 관심사가 되는 금석지감의 변화속에 있다.작년의 런던회의땐 고르바초프 구소대통령이 초청되어 「G7+1」이 되더니 옐친이 참석하는 금년엔 러시아를 더한 「G8」을 만들자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각국정상과 대표단 1천8백여명에 보도진 6천여명이 모인 뮌헨은 독일남부의 유서깊은 고도.2차대전 직전인 38년 독의 히틀러와 영의 체임벌린,불의 달라디에,이의 무솔리니에 의한 당시의 유럽G4회담이 열렸던 곳이기도.체코의 스테덴지방을 독에 양보한 영·불의 유화책이 히틀러의 침략을 고무시킨 역사적 교훈의 현장으로 유명하다.또다른 소국희생의 강대국이익추구를 경계하는 것은 공연한 노파심일까.한반도와 아시아이익의 대변을 자청하고 나선 일본의 속셈을 의심하는 것은 지나친 불신일까.
  • 「콜럼버스축제」 한창/복원한 산타마리아호 뉴욕항 입항(특파원코너)

    ◎신대륙발견 5백돌 기념행사 풍성/불꽃놀이 장관에 1백만군중 탄성 단 3척의 작은 범선단을 이끌고 서양인으로서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자신의 항해업적이 5백년후 1백만명 이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4만여척 선박행렬의 축하속에 재현되리라고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492년8월3일 스페인의 팔로시항을 떠나 10월12일 오늘의 중미 산살바도르섬에 처음 도착했던 콜럼버스는 당초의 목표였던 인도의 향로를 구하진 못했지만 세계역사의 진로를 바꿔놓은 업적을 남겼다.콜럼버스가 없었다면 미대륙의 발견은 1세기 또는 2세기 뒤가 됐을지 모르고 그때부터 개발이 시작된 미대륙은 오늘의 모습과는 아주 달랐을지도 모른다. 신대륙발견 5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콜럼버스 기념축제는 지난 2일 시작돼 오는 7일까지 1주일동안 계속되는데 축제의 절정은 역시 4일 있었던 미독립기념일에 맞춰 뉴욕항에서 펼쳐진 「항해작전」(Operation Sail). 「항해작전」은 당시 콜럼버스가 이끈 산타마리아호,니나호,핀타호를 그대로 본뜬 3척의 범선이 뉴욕항에 입항하면서 시작됐다.항해작전에는 3척의 콜럼버스 선단을 필두로 세계각국에서 참가한 34척의 대형범선과 2백여척의 대형선박,4만여척의 소형요트들이 참가했다. 이번 범선초청행사는 지난 62년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뉴욕세계박람회를 축하하기 위해 전세계에 퍼져 있는 범선들을 뉴욕항에 초청한 이후 4번째인데 그 규모에 있어서는 과거 어느때와도 비교가 안되는 사상최대의 범선퍼레이드로 기록될것 같다.지금까지 최대기록으로 알려진 미국독립 2백주년기념 범선축제때도 16척의 대형범선과 2백여척의 소형요트만이 참가했을 뿐이다. 세계 24개국에서 초청된 각종 선박중에는 길이가 4백피트에 3개의 대형 돛대를 단 러시아의 세도프호와 뉴욕시가 최근 구입한 벽돌담을 허물만큼 강력한 물기둥을 뿜는 소방선등이 포함돼 있다.이밖에 참가선박중에는 칠레의 3백72피트짜리 에스메랄다호도 끼어 있는데 이 배는 지난 73년 엘살바도르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킨 독재자 피노체트가 이 배를 정치범들의 고문장소로 이용해 더욱 유명해진 선박이다. 2백95피트짜리 이글호도 화제감이다.나치독일의 히틀러해군이 건조한 이 배의 본래 이름은 호스트베셀호.나치정권을 위해 초기에 목숨을 잃은 베셀의 이름을 그대로 딴 것이었으나 종전후 전재배상의 일환으로 미국이 이 배를 인수했고 지금은 미해안경비대가 이름을 바꿔 이용중이다. 고대식 함포를 장착한 스토밀호도 얘깃거리다.이 배는 지난 86년 「자유의 여신상」재정비 기념행사때도 초청됐었으나 항해도중 엔진고장을 일으켜 2주나 지각했던 기록을 갖고 있다.그러나 이번에는 사고없이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이날 선박행렬은 뉴욕항외곽 베라자노다리를 출발,「자유의 여신상」을 지나 허드슨강을 거슬러 조지 워싱턴다리에 이르는 11마일 해상에서 펼쳐졌다.선박행렬에 소방선들이 대거 참가한 것은 퍼레이드중 5색 물기둥을 뿜기 위한 것으로 이날 행사에서도 아름다운 축하 물기둥을 유감없이 내뿜었다. 선박축제 외에도 각종 기념공연과 거리행렬등 행사가 다채로운데 4일밤 맨해턴중심 메이시백화점 앞에서 펼쳐진 불꽃놀이도 장관. 구경거리를 좋아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다름이 없다.사상최대의 선박쇼를 보기위해 이날 나선 뉴욕시민들은 자그마치 1백만명이 넘은 것으로 주최측은 추산하고 있다.조지 부시 대통령등 주요인사들이 참관한 거버너스 아일랜드(GovernorsIsland)일대는 물론 뉴욕항 주변과 맨해턴의 고층빌딩 옥상은 온통 구경인파로 뒤덮였다.
  • 체코연방 양분 가능성 높다/총선이후 공화국의 장래 불투명

    ◎슬로바키아공 정당들 “독립” 공약/시장경제도 개편… 국가연합될듯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존속여부와 경제개혁 장래를 결정할 연방의회 및 체코와 슬로바키아공화국의회 총선이 5·6일 이틀간 실시돼 동구 마지막 다민족국가 장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투표가 끝난뒤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어느 정당도 절대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체코지역에서는 민주국민당(ODS)이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슬로바키아지역에서는 독립을 주장하는 슬로바키아 민주운동(HZDS)이 민족주의 분위기에 힘입어 우세를 보이고 있어 연방와해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번 총선은 민주화이후 90년에 이어 두번째 실시된 선거이지만 지난번 선거가 공산주의 포기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성격이었던 만큼 54년만의 첫 민주의회선거라 할 수 있다. 이번 선거는 41개 정당이 후보를 내세운 혼전상을 보였지만 최대쟁점은 연방해체와 시장경제개편 강행문제. 1천1백30만 유권자중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체코지역에서는 바크라브 크라우스재무장관이 이끄는 자유우파 ODS가 가장 유력하며 전공산당인 좌파연합은 급속한 시장경제도입 부작용에 대한 불만을 이용,지지도가 높았다. 슬로바키아에서는 연방해체론자인 메치아르 전슬로바키아수상이 이끄는 HZDS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역시 독립을 공약한 슬로바키아 기민당(KDH)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메치아르 전수상은 프라하중앙정부가 슬로바키아를 푸대접해온데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을 이용,큰 호응을 받았다.그는 HZDS가 승리하면 슬로바키아를 독립시켜 체코와 대등한 입장에서 국가연합을 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체코출신 정치지도자들은 슬로바키아가 독자의 길을 걷게 되면 체코가 국제법상의 모든 권리와 조약을 승계,슬로바키아는 무에서 재출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체코측은 경제력이 뒤진 슬로바키아가 떨어져 나가면 체코의 유럽공동체·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이 빨라져 독일·오스트리아와 접경한 지리적 이점으로 중부유럽 중심세력으로의 합류가 수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체코연방 해체는 유고에서처럼 민족분쟁을 야기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체코와 슬로바키아인들은 역사적으로 전투를 벌인 일이 없을 뿐더러 2차세계대전때도 유고의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가 히틀러의 부추김을 받아 살육전을 벌인 것과는 달리 평화공존을 유지했다. 연방해체의 정치공방 다음으로 쟁점이 된 문제는 경제개혁방안.슬로바키아측 메치아르는 시장경제도입의 후유증을 줄이기 위해 체코측 크라우스재무장관이 추진중인 급격한 사유화정책을 중단하고 자본가에게만 유리한 세제를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체코측 정치인들은 메치아르가 선거에 승리해 연정에 참여할 경우 민주화이후 경제개혁을 수포화할 것이기 때문에 연정자체를 거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투표결과 가장 큰 득표율을 보여 차기 수상으로 예상되는 크라우스 ODS총재는 연방유지와 시장경제 개혁은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메치아르가 유권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 슬로바키아가 독립하더라도 합스부르크시대의 헝가리·오스트리아와 같은 밀접한 정치유대를 맺고 기존의 민주화정책을 추진할 것을 제시했다. 체코연방은 1918년 체코와 슬로바키아공화국이 합병해 구성되어 히틀러가 38년 뮌헨조약에 의해 슬로바키아를 독립시켰으나 45년 종전후 다시 연방화,동구민주화이래 민족주의 물결을 타고 독립운동이 재연되었으며 이번 총선이 그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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