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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범 수용소선 김일성사망 은폐·인권실태 보고/정보위(의정초점)

    ◎북,김 사망이전 체제로 회귀조짐/김정일 지도력·건강 취약성 노출/공개처형 말썽나자 “주민들이 요구” 억지 26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는 북한 김정일의 권력세습이 지연되고 있는데 대한 분석과 거의 극한상황에 있는 북한주민들의 인권침해문제를 놓고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미국과 독일의 정보위원회 운영방안을 살펴보고 돌아온 뒤 처음 열린 이날 회의는 국가의 주요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철저한 보안이 필요하다는 여야의 공감대아래 비공개로 진행됐다. 김덕안기부장의 인사말까지 비공개로 된 이날 회의의 논의내용에 대해서는 신상우위원장이 의결을 거쳐 공개 가능한 사안만을 간추려 발표했다.먼저 김일성 사망후 두달이 넘도록 권력승계가 늦춰지고 있는 데 대해서는 『김정일의 승계는 일단 확실해 보이나 상황은 유동적』이라고 요약 됐다.안기부의 분석 결과 김정일이 아직까지 출현하지 않고 있지만 별이상 없이 출범할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북한은 김일성 사망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이전체제로 돌아가려는 흔적이 나타나고있다고 보고됐다.김정일이 김일성의 애도기간을 1백일동안으로 직접 설정하는등 북한의 내부요인들이 체제승계를 늦추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과거 소련·중국등 공산권 국가와 비교해 지나치게 늦어지고 있는 것은 김정일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부담을 안고 승계하는 지도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즉 김일성과 비교해서 훨씬 뒤떨어지는 지도력과 건강상의 이유 때문에 언제 어떤 상황이 전개될 지 유동적이라는 전제가 붙여졌다. 이어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권침해문제와 관련해서는 충격적인 내용이 나오는등 좀 더 깊숙한 논의가 진행됐다.북한 전지역의 45%에 해당되는 지역이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되는 통제구역으로 확대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소개했다.심지어 정치범 수용소에서는 김일성이 사망한 사실조차 은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이들이 우발적인 사태를 야기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할 만큼 내부 상황이 어지럽다는 반증이었다. 이어 발표된 내용은 히틀러의 망령을 다시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비인간적이고 경악스러운 것들이었다.장애자들을 이른바 「재래종 관리소」에 격리 수용,「단종」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했다.이날 회의에서는 또 북한이 주민을 공개처형하면서 이같은 사실을 미리 알리기 위해 공고를 내붙인 이른바 「알림판」을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함흥시 안전부 명의로 된 이 「알림판」은 공개처형 집행 보름전인 지난 92년 11월 1일 공고된 것이다.『살인범죄자의 사형집행을 다음과 같이 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아래 범죄자의 신원,범죄 장소,집행일자,집행장소등이 씌어져 있다.이듬해 10월 13일 국제사면위원회가 이같은 사실을 폭로하자 북한측은 오히려 『주민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고 생떼를 썼다는 것이다. 이같은 안기부의 보고내용에 대해 여야 의원들은 예외없이 『안기부가 성의있게 준비 했다』고 평가 했다.그러나 비밀의 등급을 분류하는 문제와 안기부 예산심의의 한계설정,정보위의 운영방식등을 놓고는 여야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이에 따라 이날 회의에서는 운영규칙 기초소위를 구성,이같은 문제들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 “클린턴 북핵동결 수용은 실수”/영 국제전략전문가 주장

    ◎잠재적 핵개발국 부추겨 핵확산 조장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일부 핵동결 약속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으로써 전세계 핵확산 방지를 위한 노력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고 영국의 저명한 국방전문가들이 18일 주장했다. 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IISS) 연구원인 제럴드 시걸과 데이비드 머싱턴은 권위있는 군사전문지 「제인스 인텔리전스 리뷰」지 8월호 기고문에서 이같이 지적하고 클린턴 대통령의 이러한 태도는 다른 국가의 핵무기 확보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두 연구원은 지난 6월 북한핵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일부 핵계획을 동결하겠다는 북한의 제의를 클린턴이 수용한 것에 언급,그같은 협상전략은 나쁜 행동에 상을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뿐 아니라 이란·알제리·시리아·리비아등 잠재적 핵개발국가들이 같은 행동을 하도록 조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클린턴의 해결방식은 유엔의 패배라 비난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같은 협정이나 유엔등의 국제기구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들은 이제 자신들이 훨씬 위험하고 혼란스런 세계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또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핵확산이 빚어지고 있으며 그같은 현상이 지금껏 용인돼 왔다는 것』이라면서 『지난 6월22일 클린턴 대통령의 발언으로 핵확산 저지를 위한 노력이 소멸됐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클린턴 대통령을 2차대전 발발전의 네빌 챔벌린 영국총리에 비유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한반도에서의 갈등을 막았다는 클린턴 대통령의 주장에서 챔벌린 총리와 같은 잘못된 「우리시대의 평화」가 제시됐음을 분명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챔벌린 총리는 2차대전이 발발하기 전해인 지난 38년 독일총통 아돌프 히틀러를 방문하고 돌아와 자신이 평화를 확보했다고 선언,결과적으로 전쟁을 저지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 모택동 억압정책 20년/중국인 8천만 숨져/WP보도

    【워싱턴 AFP 연합】 중국의 모택동이 집권한후 76년 사망할 때까지의 20여년동안 추진했던 억압적이고도 급진적인 경제정책으로 8천만명이나 되는 중국인이 숨졌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17일 보도했다. 포스트지는 서방및 중국학자들과 자체의 조사원들이 발굴한 문서들이 모택동의 27년 통치가 가져온 사망자수가 종전의 추정치보다 수천만명이나 많을지 모른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전하고 이것이 확인될 경우 모는 사람을 가장 많이 학살한 20세기의 지도자 부문에서 아돌프 히틀러와 요젭 스탈린을 앞지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신문은 2부에 걸친 연속기사의 첫회분에서 한 정부문서는 모치하에서 8천만명이 『비자연사』했으며 그 대다수가 1958년에 시작되었다가 실패한 「대약진」공업화계획때문에 사망했음을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 채명신장군이 말하는 「우리를 지키는 길」

    ◎“국민 깨어있어야 불행 막는다”/“유사시 나부터 희생” 각오로 뭉쳐야/군에 따뜻한 애정과 격려 절실한 때/탄광속 학살 등 공산군의 잔학행위 지금도 생생… 북 평화손짓 늘 경계를 최근 북한핵문제로 한반도 정세가 극히 미묘해 지면서 올해 6·25는 예년과 달리 새로운 의미로 다가서고 있다.6·25와 월남전에 참전한 「국군의 산 역사」 채명신 전주월한국군사령관(69·예비역중장)역시 이번 6·25를 맞아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나 않을까 며칠째 밤잠을 설치고 있다.채장군은 황해 곡산 출신으로 46년「같이 일하자」는 김일성의 권유를 뿌리치고 공산치하에서 1년반만에 남하,47년 소위로 임관(육사5기)한뒤 야전을 누빈 맹장.6·25 44돌을 앞두고 자그마한 정원이 깔끔하게 가꿔져 있는 용산구 후암동55 자택에서 채장군을 만났다. ­6·25 개전 당시 상황을 말씀해주십시오. ▲당시 북한병력은 20만여명으로 한국의 2배에 이르렀습니다.공산군은 일요일 새벽 4시 주공격 방면을 의정부·개성일대로 삼고 최신형 T34전차 1백50여대를 집중시켜 남침에 나섰습니다.한국은 이 지역을 7사단이 맡고 있었으나 예하 1개연대는 온양에 위치해 2개연대만이 방어를 하고 있었습니다.더욱이 5월이후 비상경계상태에 있던 군은 전쟁발발 며칠전 경계령을 해제,농촌병사들은 농번기일손돕기를 위한 휴가중이어서 전후방 병력은 평소 절반수준이었습니다.또 연대장 이상급 장교들은 24일 저녁 서울 육군본부 장교클럽 낙성식 축하 댄스파티에 참석,새벽녘까지 술을 마시고 취해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댄스파티에 만취 특히 전방에서 새벽 6시쯤 국방장관에게 전화로 비상을 알리려 했으나 보좌관이 『장관님은 일요일에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전화를 연결시켜 주지 않았으며 육군총장집에서도 『주무시고 있어 깨울 수 없다』고 전화를 끊는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병사들의 사기등 의식은 어땠는지요. ▲전쟁초기 북한군의 사기가 남한에 비해 훨씬 높았습니다.그러나 대한민국의 운이 좋아 미국이 전쟁발발 한달여만에 조속히 참전하게 됐으며 북한이 3일만인 28일 서울을 점령한뒤 이상하게 7월3일까지 더이상 남하하지않고 시간을 허송세월해 아직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 남아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미군의 참전이후 국군도 사기가 충천해 북한을 다시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6·25당시 소대장과 중대장·대대장으로 직접 전투를 벌였는데 공산군에 대해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공산군은 참으로 잔혹했습니다.국군이나 민간인은 물론 동료전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북한군에 밀리다 반격에 나설 당시 대대장으로 죽령점령을 위해 전투를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치열한 격전끝에 죽령을 확보했는데 죽령터널안에서 시꺼먼 연기가 치솟으며 악귀형상을 한 사람들이 엉금엉금 기어나오고 있었어요.처참한 전쟁에 단련된 부대원들도 이들을 진짜 귀신으로 생각하고 깜짝 놀랐습니다.가까이 다가가 확인해보니 이들은 북한군 부상병들이었습니다.터널을 야전병원 겸 유류저장창고로 사용하던 북한군이 후퇴하기 직전 부상병이 잔뜩 있는 그 곳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터널 입구에 있던 부상병들이 살겠다는 의지로 화상을 입고 피범벅이 된채 간신히 기어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전장병들은 통곡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때 북진이 늦어지면 그만큼 동포들이 흘리는 피가 많아진다고 말하던 일이 생각납니다.탄광등에 갇혀 떼죽음을 당한 동포들도 엄청났습니다. ○역사교훈 배워야 ­최근 전쟁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는데 전쟁을 막기 위해 국민들은 과연 어떻게 해야될까요. ▲역사의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는 영세중립국 스위스를 침공하려 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스위스 국민들은 일치단결해 전쟁이 나면 최후의 한사람까지 싸울 것임을 행동으로 히틀러에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한마디로 스위스 국민들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화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경험으로 보아 장병정신무장의 지름길이 무엇입니까. ▲장병들이 의식은 몇시간의 정훈교육이나 높은 계급자의 훈시로 절대 전환되지 않습니다.경험을 얘기하면 4·3폭동때 처음 일선 소대장으로 제주에 부임하자 모든 소대원의 눈빛이 적대감으로 가득 차있었고 중대장은 이미 나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였습니다.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 밤새 기도하다 새벽녘에 『좋다.그들사이로 뛰어들자』고 결심하고 숙소를 소대막사로 옮겼습니다.아픈 병사를 보면 죽을 끓여다 주며 간호하고 잠자다 모포를 걷어차는 사람은 모포를 덮어주고 해서 친동생처럼 병사들을 대했습니다. ○「골육지정」 필요 그 결과 일주일만에 병사들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당시 중대장이 저격병을 보냈으나 몰래 신변보호를 해주던 소대원들이 그들을 먼저 쏴 목숨을 건진 일도 있었습니다.그때 부대통솔은 골육지정임을 깨달았습니다.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전쟁은 병사들이 하는 것이고 병사들은 소대장·중대장을 위해 싸웁니다.그 것이 전력입니다.여순사건을 일으킨 반란군 3천명도 모두 빨갱이는 아니었습니다.주동자들이 그렇게 이끌었습니다.그러나 전제조건이 하나 있습니다.전쟁에서 다친 사람들을 돌봐줘야 합니다.월남전 고엽제후유증환자들이 보상을 받으려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을 냉대하면 누가 전쟁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겠습니까.다치면 나만손해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북한의 핵이 걱정이 아니라 위기때 전방 소·중대장과 병사들이 얼마나 싸워줄 것인가를 염려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김영삼대통령과 김일성주석간의 정상회담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주십시오. ▲며칠전만해도 김영삼대통령에게 험담을 퍼붓던 김일성이 태도를 하루아침에 바꾼 것은 놀랄만한 일입니다.만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입니다.그러나 지금까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해온 김일성이 회담을 갑자기 제의해온 것은 유엔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평화제스처로서 미국으로부터 호의적 반응을 얻어내자는 속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앞으로 진전될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경계를 흩뜨리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채장군은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우리 민족은 모두 망하게 된다』며 국민이 단결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거듭 말했다.또한 요즘 군을 나쁜 존재로 보는 시각에 대해 0.01%만이 잘못된 사람이라면서 언론의 바른 역사인식이 전쟁을 막는데 중요하다고 몇차례씩 강조했다.노장군이 제시한 전쟁방지의길은 로마의 격언이었다.『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 제12차 전직정부수반회의 참관기/김학준

    ◎“북한 핵 갖게 해선 안된다” 한목소리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린 제12차 전직정부수반회의(IAC)에는 영국의 캘러헌 전총리,서독의 슈미트 전총리,일본의 후쿠다 전총리,캐나다의 트뤼도 전총리,호주의 프레이저 전총리,네덜란드의 반아트 전총리,브라질의 사니르 전대통령,잠비아의 라운다 전대통령,코스타리카의 아리아스 전대통령,그리고 한국의 노태우전대통령 등 20여명의 전직 국가원수 또는 정부수반이 참석했다.또 미국의 키신저 전국무장관,미국의 맥나마라 전국방장관,중국의 황화 전외무장관,러시아의 브루텐스 전대통령보좌관 등 10여명의 전직 장관급 인사들이 특별객원으로 참석했다. 이 회의는 세가지 의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오늘날 세계정세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평가」,「새로운 세계적·지역적 국제기구들이 수행해야 할 역할」,「옛 공산권에 있어서 중앙통제경제의 시장경제로의 전환에 따른 문제점들의 해결방안」등이 그것이었다. 이 회의의 특별객원으로 노전대통령을 수행했던 필자에게 이 회의는 하나의작은 유엔총회처럼 비쳤다.지난날 일정한 시기에 각각 자기나라의 국정을 책임맡았던 세계적 정치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깊이있게 토론하는 가운데 해법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회의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등장한 것은 북한의 핵문제였다.제1차 본회의가 열리자마자 의장인 슈미트 전서독총리는 『북한의 핵개발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세계전체에 대해 큰 위협을 주는 심각한 사태』라고 선언한 뒤 노전대통령의 의견을 물었다. 노전대통령은 북한이 핵개발에 집착하는 동기와 북한 핵개발의 현황을 설명한 뒤 대처방안을 제시했다.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외교적 승인과 경제적 협력을 얻어내기 위한 협상수단으로 활용하려고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외교카드론」,그리고 북한이 자신의 체제유지에 대한 위기감에서 생존의 보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하려고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생명보험론」등.외교계와 학계에서 제시되고 있는 다각적인 해석들을 모두 짚어본 뒤 『결국 현재의 시점에서는 국제공조체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북한에 대해 단계적인 제재조처를 포함한 강력한 대응을 보여야 한다』고 매듭지었다. 캘러헌 전영국총리가 전적인 공감을 나타냈다.그는 김일성이 북한주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함과 아울러 대한민국에 대한 「공갈적 협상」을 시도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분석한 뒤,그렇기 때문에 김일성은 핵무기 개발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그는 자신이 가진 정보로는 북한이 아무리 늦게 잡아도 내년 후반기까지는 핵무기를 손에 넣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서방세계의 강경한 공동보조가 긴요하다고 주장했다. 트뤼도 전캐나다총리는 반론을 제시했다.강대국들이 갖고 있는 핵무기에 대해서는 왜 말을 하지 않고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만 흥분하느냐는 취지였다. 이에대해 참석자들의 거의 모두가 반론을 폈다.우선 사르니 전브라질대통령은 김일성체제의 「악마적 성격」을 지적했다.김일성은 히틀러나 다름이 없는 광신적 교조주의자이며 자신이 위급해지면 핵무기도 쓸위인이기 때문에 북한의 핵개발은 반드시 저지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키신저 전미국무장관도 김일성에 대한 강경대응론을 제시했다.베트남협상에 직접 참가했던 자신의 경험담도 섞어가면서 그는 공산주의자와의 대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의 과시」라고 역설했다.『이쪽에서 뭔가 약하게 보이는 자세를 취하면 공산주의자들은 그것을 무자비하게 활용한다』고 경고한 그는 북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반드시 실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황화 전중국외무장관은 중국정부의 공식입장에 맞게 제재반대론을 폈다.김일성의 특이성격과 북한체제의 타성에 비춰볼 때,제재를 가하면 반드시 무리하게 대응할 위험성이 따르게 되므로 계속해서 대화를 통해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프레이저 전호주총리는 남북한과 미­중의 4자회담안을 제시했다.특히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 북한에게 줄 것은 주고 핵개발은 포기시키도록 설득하는 길을 찾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결론은 북한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단계적으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났다.회의 마지막날 발표된 공동성명은 바로 그 결론을 제4항으로 채택했다. 북한 핵 문제는 이 회의의 두번째 의제인 「새로운 세계적·지역적 기구들의 미래 역할」에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노전대통령은 아시아에서 군비경쟁이 치열해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특히 북한 핵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핵 확산의 위험성을 방지하기 위해 아시아에서도 유럽안보협력회의와 같은 회의의 소집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그 전초 단계로 자신이 지난 88년 유엔총회에서 제의했던 남북한 및 미­중­러­일의 6자 회담을 적절한 시기에 개최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연설해 공감을 얻었다.
  • 「극우 게르만」 폭력에 독 이미지 상처(박강문 귀국리포트:6)

    ◎파리에 들른 여행객 “안가는 게 좋겠죠” 『독일 가 보는 거 괜찮아요?외국인을 막 두들겨팬다는데…』 유럽 여행중 파리에 들른 친지들이 묻는다.『운 나쁘면 당할 수도 있지요』 이 말 들으면 대개 독일행은 포기다. 베를린 파견근무중인 한 한국인은 아주 고약한 경험을 했다.그가 엘리베이터에 여러 독일인과 함께 타고 있는데 한 사람이 『이 안에 동물이 하나 있군』하고 내뱉었다. 독일 유학중인 한국 여학생이 공원에서 살해된 직후에는 독일 땅을 밟는 것이 대단한 모험으로 여겨졌다.이 사건은 뒤에 인종적 박해는 아니었던 것으로 판명되기는 했다. 독일 극우파 청년들의 외국인 학대는 동·서독 통일 후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다.그전에도 더러 외국인 구타 사고가 있었다.기자가 88년 여름 독일에 갔을 때 뮌헨 근교에 살고 있는 화가 김영희씨에게서 그곳 젊은 한국인 개업의가 당한 이야기를 들었다.이 의사가 밤길을 걷다가 독일 청년들에게 이유없이 뭇매를 맞고 식물인간 상태로 귀국했다고 한다. 그뒤 91년 5월이후 3년간 파리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기자는 독일에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그쪽에 따로 특파원이 나가 있었기 때문에 업무로 가 볼 기회가 없었고 휴가 때도 인접국이건만 별로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후 독일은 많은 노력으로 좋은 이미지를 쌓아왔지만 공든 탑을 일부 철부지 젊은이들이 무너뜨렸다. 아마 몇년전부터 동양인들의 독일 방문은 줄었을 것이고 독일의 관광 수입도 그만큼 적어졌을 것이다. 요즘은 동양인 뿐만 아니라 서양인들도 독일 방문을 꺼린다.외신보도로는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 청소년 단체들의 독일 방문 취소 통보가 잇따르고 있다.유럽인들도 자주 관광 여정에서 독일을 빼 버리고 있다는 것이고 독일 대학들의 외국 유학생도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달초 독일 원정중인 스웨덴 축구팀이 탄 버스를 독일 청소년들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공격했다.터키인 등 아시아인만이 아니라 유럽인들도 당할 수 있다는 것이 실증되었다. 잔뜩 구겨지고 있는 대외 이미지에 독일정부는 꽤 신경을 쓰고 있는 듯하다.지난해 가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홍보 관계 국제회의에서 연방 정부 대변인 디터 포겔씨는 연방언론국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하여 독일의 이미지가 많이 훼손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집계에서는 미국 언론의 독일에 대한 보도중 극우파의 난동에 대한 보도 빈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미국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의 독일에 관한 보도중 가장 많은 것이 극우파를 주제로 한 것이며 전체의 30%를 차지했다.경제 기사는 20%로서 두번째로 많다. 포겔 대변인은 독일에 대한 대외적인 평가가 주로 정치적 범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독일인들이 이것을 부당하기는 하지만 어쩔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내 극우파의 움직임이 사소한 것일지라도 독일이 과거에 저지른 과오와 함께 묶여 증폭돼 전달되는 경향이 있고 그것을 기분은 좋지않지만 감수한다는 말이다. 전해지는 말을 듣는 사람이 때로는 실상보다 더 위기감있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이런저런 걱정스런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서도 독일의 많은 교포들은 별 탈 없이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에 가겠다는 이에게는 그래도 한가지 전해들은 충고를 옮기고 싶다.독일인 앞에서는 극우파든 아니든 히틀러나 나치,또는 유태인 학살 등을 입에 올리지 말라는 것이다.그 유명한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독일에서는 상영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 독일인에게서 들었다. 폴란드를 방문한 독일 총리는 유태인 묘역을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우리의 뻔뻔스런 이웃과 대조된다.그런데 이런 국가적 이성도 국민 개개인의 감정과 완전히 합치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나치를 꼭 나쁘게만 볼 수 없다는 사람이 상당히 나왔다.근년 극우파의 발호가 싹틀 만한 토양이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 D데이와 독일인들(임춘웅칼럼)

    1944년 6월6일은 2차세계대전중에 서방연합군이 나치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유럽대륙을 되찾기 위해 프랑스의 노르망디에 상륙작전을 개시한 날이다. 이날은 우리의 해방과도 적지않은 관련이 있어서 우리들도 기억해 둘 만한 날이기도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영국·캐나다·프랑스 등 서유럽국가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역사적인 날이다.우선 나치독일로부터 유럽을 해방시켰다는 의미가 있다.프랑스를 비롯한 대륙국가들은 나라를 되찾았으며 영국은 나치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날이다. 무엇보다 미국에게는 유럽을 해방시킨「십자군」으로서 세계 위에 군림하는 초강국의 위치를 확고히 한 역사적인 시점이다.영광스럽고 자랑스런 역사인 것이다.그래서 지난 6일과 7일 이틀동안 미국의 뉴욕 타임스 같은 신문은 50년전의 같은 날짜 1면기사 전면을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실어 감격을 되새기고 있다. 6일 노르망디에서 벌어진 50주년 기념행사도 그들의 영광된 역사만큼이나장중했다.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 등 19개국 수뇌가 참가했고 생존해있는 4만1천여명의 참전용사가 초대됐다.미국은 항공모함과 최신예 전함들을 오마하 해변에 배치해 미국의 위용을 과시했다. 관심이 가는것은 이처럼 요란한 행사를 지켜보는 독일인들의 감회다.이번 행사에 독일사람이 초대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데 헬무트 콜 독일총리의 코멘트가 흥미롭다.콜총리는 이 행사에 초대되길 기대하지도 않았고 결코 요청한 일도 없다고 밝히면서 미국·캐나다·영국인들이 유럽을 해방시키기 위해 프랑스 해변에서 죽어간 그들 병사들을 추모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논평했다.그런데 그 논평 중에『나치 전체주의로부터 독일인의 해방을 포함해 모든 유럽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라는 대목이 있다. 최근 독일에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차대전이후 태어난 독일인의 64%가 독일의 「항복」을 「해방」으로 보고 있다.이조사를 실시했던 여론조사 전문가는 「64%」가 예상보다 너무 낮았다고 분석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독일인들이 나치즘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패망」이외의 다른대안이 없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독일인들이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어서 얻은 것보다 패배해서 얻은것이 더 많았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패배」를 자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그러나 독일인들은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일단의 군장교들이 히틀러를 암살하려했던 그해 7월20일을 「독일해방의 날」로 기념하려 계획하고 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한시대의 종언이었고 또한 한시대의 시작이었다.나치독일은 서방민주주의 국가로 재탄생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일원이 돼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같은 회원국가들 모두가 「노르망디 상륙」50주년을 자축하고 있던 날 뒷전에서 독일의 오늘과 역사를 되씹는 혼란속에 묻혀 지냈다.역사의 유산은 하루아침에 소멸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그러나 그들은 잘못된 역사를 스스로 반성하고 새출발 하려는 각고의 아픔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역사적 사실을 끈임없이 부정하고 은폐하려는 일본과의 차이점이다.
  • 독,약탈미술품 28점 불 반환/독­불 정상회담

    ◎콜,“교환품 아닌 순수한 선물” 【뮐루즈(프랑스) AP 로이터 AFP 연합】 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30일 2차대전중 히틀러군대가 프랑스에서 약탈한 미술품들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에게 반환했다. 콜총리는 이날 프랑스동부의 국경도시 뮐루즈에서 이틀일정으로 열린 전후 제63차 독·불정상회담 첫날회담에서 베를린장벽 붕괴이후 동독의 한 박물관에서 발견된 28점의 프랑스 미술품을 정당한 소유권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해줄 것을 미테랑대통령에게 요청했다. 콜총리는 이날 만찬석상에서 황혼녘 파리서부의 눈덮인 루베시엔느가 풍경을담고 있는 클로드 모네의 1870년대 작품 「무제」1점을 상징적으로 미테랑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콜총리는 모네의 작품을 전달하면서 이들 미술품들은 「믿을 수 없는 여행을 한 끝에」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미테랑대통령은 미술품 반환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라고 반기면서 『나는 이런 귀중한 작품을 갖고 있는 어떤 나라가 이들 작품을 소유자에게 돌려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화답했다. 지난 89년 베를린장벽 붕괴후 동독의 한 박물관에서 발견된 프랑스 미술품 28점에는 모네를 비롯,쿠르베,르누아르,들라크루아,고갱,쇠라,세잔의 회화와 코로,밀레,마네의 스케치 등이 포함돼 있다.
  • 가짜 돈(외언내언)

    요즘 1만원짜리 변조지폐 때문에 전국 경찰에 비상이 걸렸다.지난 6일 대전에서 처음 발견됐을때만 해도 당국은 단순한 장난정도로 간주해서 관할 경찰서 단위의 수사를 했으나 전국 곳곳에서 무려 90여장이 잇달아 나돌면서 보통문제가 아님을 알게 된 것 같다.게다가 컬러복사기로 만들어진 것 등 1백달러짜리 위조·변조지폐도 각각 한장씩 신고돼 경찰을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경찰은 1만원권 변조지폐의 경우 앞 뒷면으로 나눠서 이면지를 붙이는 수법으로 만들어진 점으로 보아 동일범소행이거나 아니면 모방범죄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1만원권은 원면을 소재로 하고 있어서 물에 불리면 칼같은 것으로 어렵잖게 두장으로 가를 수 있기 때문에 더이상 모방범죄심리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범인들은 하루빨리 잡아야 할 것이다.가짜 돈을 만드는 사람은 형법207조에 따라 무기 또는 2년이상 징역형,죄질이 매우 나쁘면 사형에까지 처해질 수도 있는 중죄인이라 체포에 국민들의 협조가 기대된다. 진짜가 있어서 가짜가 존재하게 되는이치에 따라서인지 돈을 위조 또는 변조하는 못된 짓은 인류가 금속등의 주조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함께 있어왔던 일로 사가들은 보고 있다.그리스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는 뛰어난 조각솜씨로 가짜 금화를 만들어 스파르타 사람들을 속였다고 기록돼 있고 로마의 폭군 네로는 연회비용을 마련하느라 금이던 화폐소재에 구리를 섞어서 마구 만들어 인플레를 유발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독일의 히틀러도 영국경제를 교란시킬 목적으로 파운드화를 대량 위조했지만 미처 쓰질 못하고 패망했다. 이 가짜 파운드화는 진짜보다 더 정교하다고 해서 화제가 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그러나 위폐범에 대한 형벌은 각국이 공통으로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우 엄해서 대원군시절에는 사주를 뿌리뽑기 위해 범인들은 모두 참수형에 처했으며 영국의 헨리1세는 범인들 손목을 잘랐다는 기록이 있다.1만원권 변조범들이 알고 뉘우쳐야 할 사실일듯 싶다.
  • 전쟁과 반전쟁/이재근(서울광장)

    「제 3의 물결」「권력이동」등의 매혹적인 저서로 잘 알려진 앨빈 토플러는 최근 저서 「전쟁과 반전쟁」에서 전후로부터 탈냉전시대로 이어진 이 시대의 일반적인 「전쟁 불감증」을 강한 어조로 경고한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부족들은 서로 증오의 살육전을 벌이고 있고 지구는 황폐화되고 있으며 전쟁이 전쟁을 낳는 또다른 암흑시대가 전개되고 있다고 토플러는 지적했다.그는 1945년 「평화」가 마련된 이후 전세계에 걸쳐 일어난 전쟁과 내전은 1백50여회나 되고 민간인을 제외한 군인만도 7백20여만명이 희생됐다고 적었다.제1차 세계대전 기간동안 전체 전사자수가 약 8백40만명임에 비추어,놀랍게도 세계는 45년이후에도 세계대전을 다시 한번 치른 셈이 된다는 게 토플러의 분석이다.실제로 45년부터 90년까지의 모두 2천3백40주중에서 지구상에 전쟁이 전혀 없었던 주간은 단 3주에 불과하다.그러므로 45년이후의 그 오랜 기간을 전후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적당치 않다고 토플러는 말한다.한반도의 현실은 더욱 그러하다. 동서독통일과 남북한통일문제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이 전쟁과 반전쟁의 차이라 할수 있다.남북한통일은 누구에게나 지상명제이겠지만 그 성취과정에는 반전쟁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동서독에는 그것이 없었다.세계전쟁의 끝에서 분단이 됐고 동족전쟁의 미완으로 분단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고 보면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반전쟁은 통일의 기본전제가 되지 않을수 없다.우리에게 있어 언제나 통일과 안보가 표리관계를 이룰 수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전쟁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피할수만은 없는 속성을 갖고있다.그것은 어느날 아침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갑자기 일어날수 있다.그래서 전쟁의 우발성과 파괴적 비인간성을 놓고 트로츠키는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했다.무서운 말이다. 지금 한반도에는 이상하게도 전쟁의 망령이 끊임없이 어른거리고 있다.북한핵,팀스피리트,스커드미사일,패트리어트 배비,판문점,휴전선,전진배치,북의 남침 시나리오,반격 격멸시나리오,서울 불바다론,평양 초토화작전등이 모두 한반도에깊게 드리워진 전쟁의 그림자들이다. 지난 4월 82회 생일을 맞은 북한주석 김일성은 그무렵 주석궁에 앉아 전쟁과 평화를 얘기했다.『북한에는 핵무기가 없다.물론 제조할 생각도 없다』고 했고 『전쟁이 일어나면 모두 큰 피해를 입는다.이만큼 해놓고 왜 전쟁을 하는가.전쟁을 원하는 자들은 제정신이 아니다』면서 「서울 불바다」운운은 잘못된 것이라고 「해명」도 했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그의 말은 맞다.그러나 『전쟁은 좋은 것이다.그래서 나는 전쟁을 해야하겠다』고 예고하며 전쟁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전쟁은 그것이 터지기 전에는 어디까지나 「평화」인 것으로 머물며 그 가혹한 살상과 파괴의 발톱을 감추고 있다. 전쟁광 아돌프 히틀러는 「평화주의자」였다.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야심과 환상은 정권을 잡기전 일찍이 옥중에서 기술한 「나의 투쟁」 구석구석에 배어있는 데도 그는 항상 자신을 평화주의자로 위장했다.33년 1월 총리에 지명된뒤 의회 시정연설에서 그는 『나만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현재의 유럽과 독일은 평화스럽다.제국과 독일사이의 현안들은 모두 평화적인 교섭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것들 뿐이다.물론 독일은 유럽 어느 국가에도 전쟁을 유발시킬 사유가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고 다짐했다.저돌적인 히틀러의 출현을 지켜보던 유럽인들은 이 한마디에 안심했다.히틀러의 숨겨진 호전성을 간파하여 전쟁위험을 역설하던 영국의 처칠이 오히려 전쟁 모험주의자로 몰려 진짜 평화주의자들의 공격대상이 되었다.전쟁은 터졌고 이제 히틀러는 표변하여 『평화를 떠드는 자가 꼭 평화를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지꺼렸다. 서울 불바다 발언이 잘못됐다는 말을 믿고자 하는게 우리 입장이다.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렇지만 여전히 서울 불바다론의 속내와 의혹은 사라지지 않는다.그가 평화를 말하니까 더 그렇다.이 단계에서 제정신을 갖고 거듭 지적컨대 모든 전쟁은,한 사람의 광적인 지배야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그리고 지금 한반도의 휴전선 북쪽에는 거금 44년전에 전쟁을 일으켰던 한 사람이 살아있다는사실을 알아야 한다.우리는 그가 그 자신의 말대로 「제정신」을 갖고 있기를 바란다.
  • 미 정부문서보관소/분가작업 한창

    ◎워싱턴 건물 비좁아 메릴랜드 “제2둥지”/6만㎥분량 자료 보관… 선반길이 8백32㎞/사료 부식막게 포장상자 특별주문 제작 미국「정부문서보관소」는 건국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2백여년에 걸친 미국사의 방대한 자료와 기록을 보관하고있는 곳으로 유명하다.이 보관소가 최근 분가를 위한 이삿짐 나르기에 한창이다. 수도 워싱턴에 위치한 이 보관소는 그동안 엄청난 분량의 사료에 비해 협소한 공간,시설 부족등으로 보관상 어려움을 느껴오다 메릴랜드주 칼리지 파크에 최첨단시설을 갖춘 제2보관소가 마련됨에 따라 살림살이를 덜게된 것이다. 새로 건축된 제2문서보관소는 9개의 연구실을 갖춘 최첨단시설을 자랑하고 있으며 한꺼번에 5만8천㎥분량의 자료를 보관할수 있다.사료를 보관하는 선반의 길이가 8백32㎞에 이르며 고도의 보안장치를 통해 이를 관리한다.또 사료의 부식을 막기위해 7단계의 공기여과장치가 설치돼있다.사료보관 창고는 물건에 따라 실내온도를 달리하고 있다.컬러영화필름 보관구역은 섭씨 영하 3.9도를 유지하며 종이 기록이나 지도의 보관구역은 섭씨 21도를 유지하도록 한다.습도는 항상 30∼45%사이를 벗어나지 않도록 한다. 새 보관소는 이와함께 앞으로 사료가 늘어날 것에 대비,규모를 확장할수 있도록 설계돼있다. 이번에 제2보관소로 옮겨질 사료중에는 미국은 물론 전세계의 관심을 끌었던 사건들에 관한 자료나 기록이 많이 눈에 띈다.독립전쟁(1775∼1783년)및 남북전쟁(1861∼1865년)관련 기록과 사진,25대 윌리엄 매킨리대통령(1897∼1901년)의 취임연설장면을 찍은 사진필름,루스벨트대통령의 노변담화를 담은 테이프,케네디대통령이 암살될 당시 타고있던 승용차의 앞유리,닉슨의 사임을 몰고왔던 워터게이트사건의 도청 녹음테이프등 미국의 역사를 돌이켜 볼수있는 것들이 다수 포함돼있다. 이밖에도 UFO나 외계인을 찍은 사진,2차대전중 나치 포로수용소의 수용자 명단,히틀러의 정부였던 에바 브라운의 앨범등을 비롯해 1천1백만장의 각종 지도와 건축도안,7백만장의 사진,11만2천2백74권의 영화필름,20여만개에 달하는 음성및 녹화테이프도 있다. 사료 운반작업은치밀한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향후 3년간 6백80만달러의 비용이 소요되고,동원되는 차량수도 모두 1천1백33대에 달한다.운반될 사료의 포장규모도 올림픽경기를 치를수있는 수영장 6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다. 문서보관소측은 특히 사료의 운반과정에 크게 신경을 쓰고있다.대부분이 낡고 오래돼 운반도중에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이미 20세기 이전의 지도나 문서들은 누더기처럼 해졌거나 심하게 변색된 상태다. 운반계획은 5년전부터 추진됐는데 모든 과정이 치밀하게 계획됐으며 사료의 부식을 막기위해 빛과 산성분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포장상자가 특별히 고안됐다.
  • “북한은 뇌물 판치는 요지경”/브라질 기자 방북기 요약

    ◎촬영금지구역도 담배두갑에 OK/외국인 관광땐 「판문점긴장」 연출도 브라질의 유력시사주간지 「이스투 에」지는 2일자 최신호에서 레난 올리베이라기자가 지난달 북한을 방문한뒤 쓴 「북한,붉은 베고니아꽃들」이라는 방문기를 특집기사로 실었다.올리베이라기자의 기사를 요약했다. 토요일인 12일 하오2시쯤 평양시내 한 이발소안.라디오에서는 김일성우상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쉴새없이 흘러나왔다.이때 한 술취한 행인이 들어와 외투를 벗어 던지다가 베고니아꽃(일명 김정일화)화병을 쓰러트렸다.이어 행인이 라디오에 대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꺼버리라고 외쳤다.그러자 한 손님이 벌떡 일어나 『경찰을 불러! 위대한 지도자를 욕하고 있어』라고 소리쳤다.그뒤 라디오를 끄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북한은 판문점을 관광상품으로 만들었다.북한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올때마다 쇼를 연출한다.관광버스가 도착하면 북한군인들은 콘크리트벽 위로 달려가 무서운 얼굴로 남쪽을 응시한다.판문점주변을 구경한 관광객들은 분계선 뒤쪽의 강당에서 주체사상교육을 받는다.이때 군인들은 콘크리트벽에서 소리없이 빠져나와 막사로 돌아가 다음 관광버스가 올때까지 대기한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오는 기차는 국경지역에서 창문을 가린다.창밖의 모습을 사진찍다 들키면 카메라를 압수한다고 열차경비원이 경고했다.그러나 경비원에게 일제 마일드세븐 담배 두갑을 주면 어디서든 촬영이 가능하다.평양시내에서도 기념사진은 지정장소에서만 찍게돼있으나 눈감아주는 조건으로 마일드세븐 다섯갑에서부터 초콜릿 몇개 또는 미화 1백5달러를 요구한다. 주민들은 외국인 출입이 금지된 극장에만 간다.놀라운 것은 공장이나 관청에서 얻은 관람권을 식량표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한 우체국직원은 『아내의 출산이 가까워 쌀을 좀더 사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평양의 백화점에는 플라스틱구두·우산·선글라스등이 눈에 많이 띄었으나 식품부에는 고기부스러기만이 있었다. 북한에는 8가지 종류의 화폐가 있다.파란색과 붉은색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국가 관광객들을 위한 것이고 호박색은 북한주민용이지만 호박색 지폐로는 살것이 없다. 수돗물은 3일에 한번씩 나오고 건물은 전력부족으로 난방시설이 없다.공공교통수단인 수입전차나 지하철은 중심가에만 있다.지붕이 나무로 된 버스는 기름부족으로 제대로 운행되지 못해 주민 대부분은 걸어다닌다. 국립박물관에는 역사 전시물보다 김일성 우상화 작품이 더 많았다.그림중에는 김일성이 세계를 손에든 모습도 있었다.북한관광은 히틀러로 분장한 찰리 채플린의 영화 「독재자」를 보는 느낌이었다.
  • 「갑술경장」의 기운/안공혁 신용보증기금 이사장(굄돌)

    으레 원단에는 지난해의 다사다난을 거울삼아 저마다의 소망을 담은 일년지계를 호기있게 세우곤 한다.하지만 지척의 시계조차 트이지 않는 이 시대의 불확실성 앞에서는 마음가짐만 사뭇 신중해질 뿐,거친 밑그림이나마 선뜻 그려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이럴 때는 온고지신의 혜안을 부릅뜨고 금세기의 개띠 해에 있었던 여러 시행착오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고 넘어가는 것도 상계일 수 있겠다. 당장 금세기 첫 개띠 해인 1910년에 경술국치라는 쓰라린 상처를 더듬게 된다.더욱이 UR협상안 발효를 단 일년 앞둔 지금,선진열강의 치열한 개국공세를 맞아 당시의 상황이 재현되는듯 하여 격세지감이 무색하기만 하다.1934년 갑술년에는 전 인류를 공포와 도탄에 빠트렸던 2차세계대전의 주범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했으며,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맞은 1946년 병술년에는 그 자신이 개띠인 영국의 명재상 윈스턴 처칠이 소련권과 서방세계 사이에 「철의 장막」이 가로막혀 있다는 연설을 통해 지란했던 냉전시대의 도래를 세계만방에 알렸다. 이어 1958년 무술년에주한미군의 핵무기도입 발표 공개가 한반도에서의 전쟁재발위기를 고조시키는등 금세기 중반까지 개띠 해의 세계는 대립과 반목의 역사로 얼룩져 있다.여기에 1970년 경술년에 이 땅에 새 농촌을 건설하겠다는 농촌근대화 10개년계획이 발표된 것과 아울러,1982년 임술년에는 미국산 쌀 도입에 따른 뇌물수수설에 연루되어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일도 있었다. 물론 개띠 해라고 좋은 일이 없었을까만은,주로 암울했던 과거의 궤적을 좇아봄으로써 새해의 액땜을 대신하고자 한다.부디 이번 개띠해만큼은 지난날처럼 위로부터 강요되는 일방적 개혁이 아니라,밑으로부터의 자생적 신바람이 위로 부터의 건강한 개혁 의지와 보기좋게 어우러져 진정한 「갑술경장」의 기운이 온 나라를 휩쓰는 호시절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보탠다.
  • 「제3제국 흥망」 명성/미작가 샤이러 별세

    【보스턴 AP 연합】 히틀러 정권의 연대기인 「제3제국의 흥망」으로 세계적 명성을얻은 작가 윌리엄 L 샤이러가 28일 밤 타계했다.향년 89세.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 겸 소설가인 샤이러는 지난 5일 심장질환으로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오다 28일 밤 숨졌다고 그의 딸 인가 딘 여사가 밝혔다. 1904년 2월 시카코에서 태어난 그는 「제3제국의 흥망」을 비롯,「베를린 일기」,「특파원 일기」,「비스마르크의몰락」 3권짜리 비망록등을 남겼다.
  • UR 충격 극복을/이종철 국립민속박물관장(굄돌)

    세상이 온통 쌀시장 개방으로 어수선하다.1백26만가구 5백70만 농민의 생업권이 달린 문제일 뿐더러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뿌리깊은 국민적 정서까지 얽혀 있어 쉽게 풀릴 수 없는 난제중의 난제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 느끼는 것은 일부 철딱서니 없는 신문이 주먹만한 활자크기로 불난데 부채질하고 과격 충동을 유발하는 듯한 비겁함을 보인 제목들이다. 「속고 또 속아」「쌀 사수」니 하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 표제를 들고 나왔다.신문을 경영하고 만드는 창조적 신문쟁이들과 일부 국민들은 「겉으론 반대,속으론 불가피」를 일찍이 예견하였을 것이다.차라리 화장하고 분바른 명분보다는 짚멍석에 질퍽앉아 대안을 강구하고 변화에 대한 대응전략으로 국민의 아픔을 달래주어야 했다. 관리와 정치인은 어떠했는가.그 해박한 지식과 경륜을 가지고 쌀시장 개방이 가져올 파국을 준비했던가.관세,비관세,무역장벽을 완화,철폐하고 자유무역체제를 구축하자는 결의인 우루과이라운드가 불러올 전대미문의 지진과 과학기술,무역,문화,지적소유권,예술문화등의 개방에 따른 정책대안을 만드는데 얼마나 고민했던가. 국민으로부터 돌팔매를 맞을 각오를 하고 국제정치의 냉혹함과 수출타격에 따른 제3의 원유파동에 대하여 사전설득과 이해를 구하는 일에 악역을 역할분담하며 몸과 마음을 던져 뛰어 들어보았던가.무책이 상책이듯이 입다물고 있거나 공염불 같은 절대불가를 앵무새처럼 외치다 민주의 씨앗을 뿌린 문민정부로서 국민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는 정부에 찬물을 끼얹는 방해꾼 노릇을 하고 있지 않는가 필자를 포함하여 모두가 겸허히 반성해야 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우월한 힘을 가진 상대가 있는 협상에서 대선공약인들 무슨 힘이 있겠는가.오직 국민적 힘을 업고 국민모두가 냉엄한 국제경제 세계에 뛰어 들 수 밖에 없다.동일한 역사적 전쟁의 경험,전통적 배달문화,단일언어를 가진 민족문화를 가진 위대한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국민모두가 이 아픔을 분담해서 극복하는 마음을 다질 때이다.우리는 최근 1백년간 과거 조상들이 살았던 6천년의 문화에 문명적 폭풍을 일으키는 대변동을 시험받고 있다.언어,생활양식,생각 등 문화체계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60세기 간직한 고유한 역사적 문화적 분위기가 퇴색되는 민족문화정서,동질성 파괴,인간타락의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덴마크는 독일에서 30분,소련에서 1시간30분이면 히틀러,스탈린이 무력으로 전국토를 정복할 수 있는 국가이지만 그들은 어떠한 힘도 단결된 국민정신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 독일/러시아/터키/트로이 보물 소유권 타툼

    ◎소군 2차대전중 베를린서 약탈/독 반환요구… 터키 “우리가 주인” 독일과 러시아 및 터키 3국은 요즘 세계적으로 희귀한 약탈 문화재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이 소련에서 약탈해간 앰버룸(호박 방)과 소련군이 독일에서 뺏어간 고대 트로이 보물의 맞교환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그런가하면 트로이 보물의 진짜 주인인 터키 당국이 유물 반환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어 「현대판 트로이」분쟁이 재연될 조짐이다.고대 트로이는 기원전 2300년쯤 존재한 것으로 믿어지는 신비의 왕국으로 트로이의 황금 유물은 호머의 유명한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의 배경이 됐었다. 한편 궁전의 방 하나를 완전히 호박(보석)으로만 장식된 앰버룸은 2차대전중 상트 페테르부르크 외곽까지 점령했던 히틀러군대에 해체되어 독일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을뿐 아직도 그 소재가 명확치 않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그동안 수많은 전문가들이 러시아·독일 등지에서 잃어버린 이 앰버룸을 찾기위해 수색작업을 폈으나 모두뜻을 이루지 못했다. 재정러시아의 호사스런 모습을 보여주는 앰버룸은 사방 14m,높이 5m의 방 전체를 22개의 거대한 보석세공품으로 단장,현재 약 2억6천만 마르크(1천3백억원)를 호가하는 보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소련군은 2차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베를린의 박물관·미술관·도서관·문서보관소등에서 트로이 보물 8천여점과 5천여점의 회화,1천5백여점의 드로잉,5백만권의 서적을 약탈해간 것으로 알려졌다.그 대부분은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푸슈킨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특히 이 가운데 19세기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이 발굴,베를린 박물관에 보관해 놓았던 트로이 보물은 최근 양국간의 전리품반환 협상과정에서 모스크바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러시아 정부는 지난 90년 체결된 독소친선조약에 따라 이 예술품과 독일군이 옛소련에서 약탈해간 20여만점의 문화재를 교환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그러나 독일군이 소련에서 뺏어온 예술품 대부분은 전쟁와중에 파괴되거나 개인에게 팔려나간 상태라서 독일정부는러시아가 요구하는 맞교환협상에 응할수 없는 곤경에 처해있다. 통독후 독일정부는 앰버룸을 찾기위해 옛동독의 지하요새가 있는 트리머버그 지역을 비롯,바이마르의 2백여 곳을 수색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 변화하는 사회(통독 3년… 장벽은 아직도:4·끝)

    ◎우경화 추세속 외국인 테러 잇따라/구동독 땅 재산분쟁으로 갈등 심화 독일인들은 지금도 인종주의라는 말에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다.어쩌면 히틀러 통치시절 인종주의의 쓰라린 경험을 맛본 독일인들로선 당연한 반응인지 모른다.그런 가운데 최근 독일에선 점차 세를 얻어가고 있는 「과거로의 회귀」 움직임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이른바 신나치주의가 대두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만큼 독일에선 지금 사회전반의 우경화추세속에 외국인에 대한 테러가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달 함부르크 시의회선거는 극우정당의 세력신장을 뚜렷이 보여주었다.지난 91년 선거에서 1.2%의 지지밖에 얻지 못한 공화당과 독일민족연맹 등 2개 극우정당이 이번엔 7.6%의 지지를 얻어 2년새에 6배가 넘게 신장된 세를 과시했다.함부르크 선거결과가 보여준 극우파의 세력신장및 사회의 전반적 우경화는 통일 4년째로 접어든 독일이 겪고 있는 대표적인 사회변화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아직도 외국인 혐오에 따른 잇따른 테러사건이 갖는 문제의 심각성을 그리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 것 같다.쾰른(지난해 11월)에서의 방화사건 이후 독일 전역에서 외국인에 대한 테러를 규탄하는 시위가 잇따랐지만 외국인에 대한 테러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독일인들이 『테러를 저지르는 자들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통일 4년째로 접어든 오늘의 독일사회는 갈등과 반목으로 가득차 있다.동·서독인간의 대립,고용주와 근로자간의 갈등 등 여러 불화의 요소들은 독일사회 구석구석에서 쉽게 찾아진다.이같은 갈등은 지금 독일사회에 범죄증가와 사회불안등 많은 부작용들을 빚어내고 있다.분출구를 찾아헤매던 이같은 갈등이 통일후 찾아온 경기침체와 겹쳐 외국인들을 희생양으로 한 외국인혐오증세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신나치주의의 대두와 함께 지금 독일사회의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구동독지역의 부동산소유권을 둘러싼 싸움이다.1백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통일이 되자 빼앗긴 옛 재산을 되찾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지난 3년간 주택·농토·공장 등 2백60만건이 넘는 부동산소유권 반환요구소송이 제기됐는데 이 가운데 해결된 것은 겨우 22%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45년의 분단기간 10배이상 뛴 부동산가격으로 빼앗긴 옛 재산을 되찾으려는 원소유주들은 갑자기 횡재를 한 격이 됐지만 문제는 하루아침에 오랜 삶의 터전을 빼앗기게 된 동독지역의 현소유주들이다.원소유주들이 부동산을 반환받거나 반환이 불가능할 경우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데 비해(1백25억마르크의 보상기금이 조성되는 96년부터 최고 95만마르크까지 보상이 가능하다) 날벼락을 맞게 된 구동독지역의 현소유주들이 보상받을 길은 어디 한군데도 없는 것이다.이들에게 보상을 해줄 책임이 있는 구동독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고 이들을 도외시하고 있기는 통일독일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문제가 아니라도 구동독지역의 부동산소유권을 둘러싼 갈등은 구동독지역에의 투자유치를 저해하는 최대장애요인으로 등장,독일정부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독일정부는 이같은 재산권을 둘러싼 분쟁으로 20억마르크의 투자가 사라져버리거나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추계하고 있다. 게다가 반환은 불가능하고 보상만 해줄 수 있는 구소련점령군에 빼앗긴 재산에 대해서도 콜정부는 구소련이 이를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고 말했으나 최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짐으로써 다임러 벤츠사가 1천2백만평의 토지반환소송을 내는등 구소련군에 압수된 재산의 반환소송이 줄을 잇고 있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구동독지역의 부동산소유권을 둘러싼 다툼의 해결이 어려운 것은 모든 당사자들을 다 만족시킬 수 있는 해결책마련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지금까지 제기된 소송들이 해결될 때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지 현재로선 전혀 알 수 없으며 이 문제의 공정한 해결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 독 표현주의 화가 재조명 작업/히틀러때 박해받은 「화폭」

    ◎강렬한 원색… 탐미주의 경향/칸딘스키 등 유명… 불 현대미술관서 4백점 전시 예술의 생명력은 영원한 것인가.독일에서는 요즘 극우세력이 기승을 떨치고 있는 가운데 1차대전 당시 히틀러치하에서 정치적 박해를 받은 표현주의 화가들에 대한 재조명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인상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20세기초 이래 독일에서 일어난 이 예술운동은 「자연」보다는 작가의 「정신적 체험」을 바탕으로 강렬한 원색을 사용,선이나 윤곽의 표현력을 유별나게 강조했다. 표현주의 그룹에 속한 일단의 화가들은 그러나 미술사에 빛나는 자신들의 업적과는 달리 적극적인 현실참여로 인해 해외로 망명을 떠나거나 자살하는 경우가 많았다.그래서 프랑스·독일등 유럽화단에서는 뒤늦게나마 이들의 공적을 추모하는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파리 현대미술관에서는 나치점령시절(1905∼14) 몰수당한 표현주의 예술인들의 작품을 발굴,이 가운데 그림·조각·판화 4백여점을 전시하는 등 이들에 대한 재평가작업에 들어갔다. 그런가하면 독일에서도이 유파에 소속된 대부분의 젊은 화가들이 1914년 1차대전 발발과 동시에 「늙은 유럽」 재건을 위해 참전한점을 높이 평가,이들의 유작·유품 발굴에 나서고 있다.최근 나치 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베를린 비밀경찰책임자가 1933년 작성한 메모에는 『거추장스런 퇴폐주의화가 바실리 칸딘스키를 제거하라.그의 타락한 정신세계는 전체 인민들에게 해악을 끼친다』고 적혀 있다.나치당국의 끈질긴 추적을 받은 칸딘스키는 친지들의 도움으로 파리로 망명했다.베를린에서 당시 암울했던 삶을 소재로 작품활동을 해온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는 추방된 스위스에서 1938년 5월 자살했으며 표현주의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던 뮌헨파의 마르크와 아우구스트 마케도 남의나라 프랑스 전선에서 생을 마감했다. 반면 이번에 현대미술관의 한 전시실을 가득 메울정도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한 에밀 놀데는 나치에 협력한 장본인.독일 홀스타인지방 농부의 아들인 그는 표현주의에 참여하기 전까지 풍경화를 주로 그려 「엘베강의 예인선」「가을바다」 등의 걸작을 남겼다.미술사에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표현주의는 1905년 에리히 헤켈,키르히너 등 당시 드레스덴(구동독)에 거주하던 일단의 젊은 건축가들로부터 비롯됐다.이들은 부모의 강권에 못이겨 건축학을 택했지만 미술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처음에는 자신들의 모임명칭을 「다리파」(교파)라고 불렀다.다리는 이들의 전공과는 또다른 예술의 세계를 안내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이유에서였다.마침내 다리파는 베를린 근교의 허름한 건물로 옮겨와 공동예술작업을 하게 되지만 새로운 회원들이 참여하면서 현대미술사에 획기적인 여러 운동으로 진전,제1차대전후 나치가 대두할 때까지 유럽의 예술계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다.예술의 추상성을 내세우는 「신뮌헨 미술가협회」,「푸른기사의 화가들」 등이 바로 그들이다. 또한 색채의 자유로운 표현을 내세운 반 고흐,고갱 등은 야수주의를 지향하게 된다. 다리파의 창립멤버들은 사회적 변혁을 추구하는 한편으로 「자연」에 대한 탐미주의에 빠져들었는데 헤켈의 「갈대숲에서 목욕하는 사람들」,페흐슈타인의 「하늘 가득히」 등의 누드작품들은 그당시의 시점에서 보면 다소 타락한 작품들이었다.이런 퇴폐주의는 나치치하의 인종우월주의와 맞물려 결국 박해를 자초하고 말았다.
  • 시민운동 중심의 정치개혁/이호철 소설가(특별기고)

    지난 6개월 사이에 정치권 전체가 무척이나 꾀죄죄해졌다.양금에다 장군출신들 거물들이 득시글거리던 지난 날이 슬그머니 그리워지기 조차(?)한다.그때는 정치권이라는게 멀리멀리 끼리끼리 권위(?)가 있었고,한사람 한사람의 알갱이들도 제법들 굵었다.아니,포장덕분이었는지 몰라도 굵어보였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정치권 자체가 통틀어서 꾀죄죄해졌다.대통령에 출마했던 정치인이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고,재야출신 국회의원이 코미디쇼에 나오기도 한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어쩌다가 정치권이 이 지경으로까지 권위가 떨어지고,정치인들이라는게 홀랑 발가벗고 거리바닥에 나서게 되었는가.문민시대,민주화라는 것이 과연 이런 것인가. 사실,지난 6개월은,과거 30년간 3명의 장군출신 대통령들 아래에서 굳어진 갖가지 관행들이 김영삼대통령 특유의 과단성에 와르르 허물어져가는 과정이었다.그리고 지금과 같은 속도로 개혁이 지속된다면,앞으로 5년동안에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환골탈태의 변화를 맞이하게 될것이고,그 변화의 핵심국면인즉,필자가 보기에는 재래형 정치권의 붕괴인 것이다. ○전세계적 공통현상 그리고 이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 뿐이 아니라,전세계적인 공통현상이다.그 단적인 증거가 구소련이나 동구권 사회주의권의 붕괴이다.그 체제가 온존되어 있을 때는 현 북한에서 보는 것 처럼 지도자는 하느님같은 권능으로 우람하게 군림하고 있었다.그런 나라들의 정치인들은 옛날의 제왕들이었다.오죽하면 브레즈네프같은 자는 더러 심심하면 일언지하 모스크바 중심가의 교통을 막아버리고,혼자서만 시속 2백㎞로 달리는 드라이브재미까지 맛보았겠는가.텅 빈 중심가를 혼자서만 최고속도로 달리는 그 맛이야말로,권력맛으로는 최고의 맛이었을 터이다.동독의 호네커도 말년에는 자동차 수집광으로 떨어져 있었다.그렇게 끝머리에는 미친 사람들로 떨어진 자들이 최고권력자로 군림,한때는 정치권의 권위를 양껏 자랑했던 것이다.바로 그 원흉이 스탈린이었고,히틀러였다. 그러나 오늘은 전세계적으로 정치권의 가치가 날로 하락해가는 추세이다.닉슨은 왕년에 워터게이트사건으로 권좌에서 물러났고,일본권력의 2인자였던 가네마루는 지금 쇠고랑을 차고 재판을 받고 있다.그뿐인가,이탈리아에서는 전총리 4명을 포함해서 1백50명의 국회의원이 오직용의자로 모조리 조사를 받고 있다.심지어 46년부터 오늘까지 7차에 걸쳐 총리를 역임했던 기독교민주당의 안드레오티(74)까지 수사대상으로 떠오르면서 마피아와 결탁되어 있었다는 혐의마저 받고있다.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정치권의 권위하락은 일반적인 추세이다.그리고 일단 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왜냐.요컨대 사람이란,본원적으로는 시계포의 수리공이나 총리나 결국은 그게 그거로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특별히 엄청나게 잘난 사람이란,따로 없다.도리어 어떤 특정인만이 특별히 엄청나게 잘난 사람이 되어 있는데서,여러가지 문제들을 야기시킨다.이를테면 그 잘난 사람 주위에 똘마니들,떨거지들이 몰려들게 마련이고,준마피아단이 형성되고,불법·폭력이 자행되는 것이다.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기본시각이다. 그렇다면,지난 6개월동안 이정도의 과단성으로 밀어붙인 김대통령은 잘난사람인가.물론 잘난 사람임에 틀림없다.그래서 90%대의 미증유의 인기도를 누리고 있지 않은가.그러나 그에게는 앞으로 4년6개월이라는 분명한 임기가 있다.바로 이 임기야말로 그이로 하여금 무한정 잘난 사람으로 무한정으로 떨어져갈 길을 미리부터 차단시키는 장치인 것이다.그이는 그 맡겨진 기간안에 최선의 일을 해내야 한다.그이는,『대통령 자리는 참으로 무겁고 고뇌스럽고 외롭고 고통스런 자리란 것을,취임전에는 5분의 1도 몰랐다』고 하지 않던가.그리고 또 말한다. 『나는 5년간 최선을 다할 것이다.대개 상오7시30분이면 본관에 나온다.자는 시간 빼고는 일한다.혼신의 힘을 다해,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다.어떻게 하면 조국을 살리고,제2의 건국을 해 선진국에 들어가겠는가에 매달려 있다』 그리고 4년6개월 뒤에는 깨끗이 그 자리서 물러나게 될것이다.일개 시정인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바로 이 점이야말로,민주주의의 진수요,민주체제 활력의 근거이다. ○생활자결집 국가로 바야흐로 세상은 정치인,정치권이 별것이 아닌 세상,의정단상에서혼자만 잘났다고 소리소리 지른다고 해서,옛날처럼은 알아주지 않는 세상으로 접어들고 있고,그런 선량이 촌스럽게 우스꽝스러운 피에로로 둔갑되고 있는 세상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이때까지 유권자들은 그때그때 투표만 할 뿐이고,그밖에는 구중궁궐과도 같은 정치와의 거리(거리)에 각자가 절망하고 체념상태에 있었는데,이제는 권력의 행사가 만인 앞에 투명해지면서,생활자결집의 국가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뜻이 될것이다.어디까지나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삶이 전면에 나옴으로써,지난날의 과도한 국가주도형정치,애오라지 국회중심의 정치에서 서서히 벗어나,여러갈래의 시민참여,시민운동 중심으로 옮아가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21세기를 앞둔 전세계적인 공통추세인 글로벌한 정치 분권화흐름의 일환으로도 볼수가 있을 것이다.요컨대,자발적인 시민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곧장 정치참가에의 일반적인 통로가 된 세상으로 접어들었고,시민의 손을 통한 진정한 정치개혁의 터가 잡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6개월간의새 정부업적 평가를 두고 갖가지 관점과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거니와,필자가 보기에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이제 마악 커다란 이행기로 들어선 만큼,지나치게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고도 넉넉한 마음으로 지켜보며 제각기 자신들의 할 몫이 무엇인지 챙겨보아야 할 것이다.
  • 새 망명법/독일인의 이중가치 표출(특파원코너)

    ◎“외국난민 수용해야” 머릿속은 관대/경기침체 중압감에 “유입규제” 입법 지난 26일 본의 교통사정은 엉망이었다.망명법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시내중심부를 차단,많은 공무원들이 출근을 하지 못했다.시민들은 평소 20분도 안걸리는 거리를 1시간도 더걸리게 돌아가야 했다.시위대를 뚫고 의회로 들어가려던 의원들은 페인트 세례를 받았고 대다수 의원들은 라인강 건너편에서 보트나 헬리콥터를 이용,의회에 도착했다.그래도 이날의 시위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으며 시위도 의사표현의 한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독일은 이처럼 관대한 측면도 갖고 있다. 대다수의 독일인들은 정부의 망명법개정에 대해 「단견」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히틀러 통치시절 80여만명의 정치망명자를 외국으로 내보낸 독일은 그 속죄를 위해서도 외국으로부터의 정치망명자들에게 관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결과는 독일국민의 3분2 이상이 새 망명법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6일의 망명법개정은 독일이 더이상 관대한 국가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이후의 경제부진은 독일을 가치관의 혼란속에 빠뜨린 것같다.머리속의 생각은 관대한 망명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겪게된 경제침체로 생각과는 다른 행동을 강요하고 있다. 독일의 망명법개정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도 영향을 미칠게 틀림없다.이제까지 전체 유고난민의 절반이상을 독일이 받아들였다.앞으로는 다른 나라로 난민들이 몰릴수 밖에 없고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연쇄적으로 난민유입을 규제하는 방안을 강구하게 될것이다.이미 프랑스와 벨기에가 그같은 방침을 표명했고 EC도 비회원국 외국인들을 공동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독일은 지금 여유를 잃은 장태다.독일경제가 호황을 구가했을 때는 외국난민들에게 관대할 수도 있었다.그러나 통일후의 경제침체로 「코가 석자나 빠진」상태에서 외국난민을 받아들일 여유가 어디 있느냐는게 지금 독일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이다.반세기에 가까운 경제호황 끝에 처음으로 불경기를 맞는 독일인들의 이같은 초조함을 전혀 이해할수 없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그들 스스로의 지적처럼 26일의 망명법 개정이 눈앞의 사태에만 매달린 단견임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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