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히틀러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사법 독립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서민 부담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해병대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장모상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52
  • 먼저 손길 내민 폴란드, 무릎 꿇고 사죄한 독일… 1000년 앙숙, 미래 열다[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먼저 손길 내민 폴란드, 무릎 꿇고 사죄한 독일… 1000년 앙숙, 미래 열다[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어느덧 12월의 마지막 주에 서 있다.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해를 바라보면서 사진 한 장을 마주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으로 세상을 바꾼 것으로 평가받은 ‘빌리 브란트의 무릎 꿇기’다. 1970년 12월 추운 겨울날 서독 총리로는 처음으로 이웃 나라 폴란드를 방문한 브란트는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을 사죄했다. 겨울비에 젖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속죄하는 그의 모습은 ‘20세기 정치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獨, 폴란드 서부 100년 이상 점령 독일과 폴란드는 서로 국경을 맞대고 오랫동안 다툼을 벌인 앙숙지간이었다. 18세기 말부터 독일은 폴란드의 서부 지역을 100년 이상 점령한 채 폴란드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려 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베르사유조약(1919)으로 마침내 폴란드가 독립을 쟁취하면서 독일이 점령했던 영토의 상당 부분이 폴란드로 다시 귀속됐다. 그러자 양국의 적대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독일은 신생 국가인 폴란드를 ‘강도 국가’로, 폴란드인을 ‘늑대’나 ‘들쥐’로 묘사했다. 반면에 폴란드는 수복된 땅이 본래 폴란드 영토였다고 주장하면서 약탈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독일 역사를 부각했다.결국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1939년 ‘독일인의 고유한 영토’ 탈환을 구실로 폴란드를 침공했다. 이렇게 ‘탈환된’ 지역에서는 재독일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폴란드인 6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폴란드 전체 인구의 5분의1에 해당하는 수치다. 잘 알려졌듯이 독일은 아우슈비츠 등에 집단 학살 수용소를 세우고 폴란드계 유대인 200만명 이상을 학살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곳곳에서 수많은 폴란드군 포로와 민간인들이 고문당하거나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 남북으로 472㎞에 달하는 새로운 국경선이 확정됐다. 그 결과 양국의 국경선이 옛 독일 영토 안으로 200㎞ 정도 옮겨지면서 폴란드는 한반도 남한 면적보다 넓은 땅을 패전국 독일로부터 추가로 얻어 냈다. 이곳은 곡창지대이자 공업지대로 철강·석탄의 주요 산지였다. 조상 대대로 이 지역에서 살던 독일인의 추방은 신속하고 조직적으로 진행됐다. 독일인 강제 이주는 포츠담회담에서 연합국이 합의한 일로, 회담에서는 추방을 인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결정했으나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새롭게 폴란드로 귀속된 국경 지대에서 400만명 이상이 강제 이주되는 동안 독일인들은 폴란드인의 잔혹 행위에 속수무책이었다. 이는 나치 정권이 폴란드인 600만명을 살해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보복행위였다.새로운 국경은 양국 모두에서 적개심과 민족주의의 부활을 부추겼다. ‘피추방민협회’를 결성한 독일의 강제 추방민들은 사과와 보상을 요구했다. 서독으로 이주한 이들은 보수당인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의 주요 지지 세력이 됐고, 결코 무시 못할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들이 중심이 돼 실지 회복을 정강으로 내세운 ‘피추방민’ 정당은 1953년 선거에서 5.9%를 득표했고, 서독의 초대 총리인 기독민주당의 콘라트 아데나워는 정당의 핵심 지도자들을 각료로 임명했다. 이들이 극우 세력화해 또다시 나치와 같은 집단이 등장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었다. ●가해자를 움직인 피해자의 용서 이런 가운데 종전 20주년을 맞은 1965년 공산 치하의 폴란드 주교단은 서독 주교단에 서신을 보냈다. 서신은 지난 1000년간 양국 관계사에서 긍정적인 역사적 국면들에 주목했다. 두 나라 관계가 틀어지기 전에 정치·경제·학문적으로 얼마나 서로 의존했는지, 이러한 초경계적 상호작용이 유럽의 평화공존 구축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 기억해 낸 것이다. 서신은 다음과 같은 문구로 마무리됐다.“(양 국민 간의) 끔찍한 과거 때문에 괴로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합시다. 극단을 지양하고 … 이제는 대화를 시작합시다. … 우리는 여러분의 손을 잡고자 합니다. … 우리는 여러분을 용서하며 또한 여러분으로부터 용서를 구합니다.” 나치 독일의 희생자였던 폴란드 가톨릭교회가 가해자를 용서한 것이다. 훗날 ‘감동적인 화해 문서’, ‘폴란드와 독일의 대화를 이끈 편지’, ‘화해의 아방가르드’로 평가된 이 서신은 폴란드와 서독 사이에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다.이러한 화해 분위기는 서독 정부에도 영향을 주어서 1970년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를 방문하고 신동방 정책을 추진하는 발판이 됐다. 하지만 추방민들은 분노했고, 빨갱이들에게 독일의 영혼을 팔아넘긴 매국노라고 브란트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서독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 잘못을 반복적으로 사죄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러자 폴란드도 이에 화답했다. 폴란드의 지식인들은 독일인을 추방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저질렀음을 인정했다. 반체제 세력들은 폴란드 공산당 지도부가 독일에 대한 적대감을 이용하고 국경을 정권 유지 수단으로 도구화했다고 비난했다. 양국의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지성인과 학자들은 서로를 초청해 화해와 공존을 위한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용서라는 선물 폴란드와 독일의 용서와 화해 과정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①가해자에게 응당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정의라며 극단적인 응징이나 보복을 하는 대신 진실을 규명하려고 노력하되 미래를 위한 화해와 치유에 무게를 두는 ‘회복적’ 접근이 중시됐다. ②상호 관계를 개선하고자 서로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불신을 극복하고 연대와 상호 신뢰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두 나라의 역사적 동질성과 같은 유럽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다시 소환했다. 두 나라가 국경을 넘나들던 초경계적 상호 교섭과 연대의 역사적 경험은 ‘함께 살아감’의 가능성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③가해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대도 언급됐다. 나치 치하에서 고통받았던 반나치 저항 운동에 경의를 표하고, 많은 독일인 역시 자신들과 함께 강제수용소에서 희생됐음을 지적했다. ④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인 수백만 명을 강제 추방했음을 인정하면서 자신들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고 고백했다. 서로가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것이다. ⑤피해자의 용서는 마치 선물과 같아서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회개하는 정치의 장으로 가해자를 초대할 수 있었다. ⑥피해국 폴란드는 자신이 받은 고통과 상처를 잊고 치유하기를 희망하면서 양쪽 모두 불행한 과거를 잊자고 제안했다. 용서는 사건 이전의 관계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고통의 기억에서 해방될 때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용서라는 선물을 줄 수 있고, 이렇게 해야 양쪽 모두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⑦화해 과정을 주도한 행위 주체다. 독일과 폴란드에서는 종교인·학자·지식인 등 비정치적 분야의 지도자 간 화해가 선행됐다. 역사의 도구화와 정치화를 비판했던 이들의 노력으로 국가 간 화해를 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논의가 진행됐다. ⑧용서는 대화와 화해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서독과 폴란드는 ‘용서의 편지’ 이후 가해와 피해의 구분을 넘어선 역사 대화를 진행한 결과 총 네 권으로 된 공동 역사 교과서를 편찬할 수 있었다. 갈등 관계에 있는 집단은 역설적이게도 가까이 지내는 이웃으로 오랜 기간 서로 잘 알던 사람들이다. 너무 가까워서 불편한 이웃이었던 양국은 젊은 세대에게 역사 전쟁이 아닌 화해를 목적으로 역사교육을 시행 중이다. 용서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아페시스’(aphesis)인데 이는 ‘빚을 면제해 줌’을 뜻한다. 상대에 대한 분노의 감정에 얽매여 과거에만 머문다면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은 아니다. 따라서 용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빚에서 해방되게 해주는, 그래서 서로 주고받는 일종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용서는 잘못으로 뒤엉킨 삶의 자리에 낡은 감정을 지워 버리고 더 나은 것으로 채우는 선물이다. 강제할 수 없지만 주어지면 좋은 것이 선물이다.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해 무거운 짐을 놓아 버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제 나를 위해 용서하자. 용서할 수 없으면 잊기라도 하자. 중앙대 교수·작가
  • 이질적 영역 아우르며… 새로운 미술 언어 창조한 ‘사진회화 마술사’[이지윤 큐레이터의 은밀한 미술인생]

    이질적 영역 아우르며… 새로운 미술 언어 창조한 ‘사진회화 마술사’[이지윤 큐레이터의 은밀한 미술인생]

    살아 있는 현대미술 작가 중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영국의 구상회화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와 독일의 추상회화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일 거다. 리히터는 히틀러가 총리가 되기 1년 전인 1932년 동독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인종차별주의와 독재주의로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대였다. 그는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리얼리즘을 교육하는 동독에서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1955년 ‘카셀 도큐멘타’(5년마다 열리는 미술전시회)에서 잭슨 폴록과 루초 폰타나의 작품을 접하면서 창작을 규제하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1961년 서독으로 이주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직전이었다. 서독으로 이주한 그는 당시 최고 작가들이 모여 있던 뒤셀도르프 국립예술대학에서 팝아트, 누보레알리슴 앵포르멜(informel·추상미술) 등 새로운 미술적 동향을 공부하며 이데올로기의 제한 없이 회화의 물질적·개념적·역사적 의미를 탐구했다. 그는 대중미술부터 순수미술까지, 재현회화에서 추상회화까지 넓은 범주의 미술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미술계에서 대립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영역들을 뒤섞은 작업들을 선보여 왔다. 설치, 조각,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끊임없이 새로운 미술 언어에 대한 탐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런 다양한 영역에 대한 탐구가 90살이 넘어서도 계속 진화하며 변해 가는 새로운 미술 언어를 만들고 있는 작품의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그의 상징적 초기 작업은 ‘뿌연 회화’(blurry painting)다. 이 작업은 잡지, 신문 기사, 가족 사진, 일상의 사진들을 활용한 작품으로 ‘사진 회화’라 불릴 수도 있다. 리얼리즘 기법으로 그려 낸 화면 외곽선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만들어 마치 그가 경험한 혼란스러웠던 독일의 사회적·현실적 상황과 미술계 동향에서 작가로서 취하고자 했던 중립적 태도를 드러낸다. 사진을 재현하는 회화 행위는 주관적 해석을 배제하고 객관적 관찰자 태도를 취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태도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또한 동독의 리얼리즘적 미술 특징을 서독의 국제적 추상주의 맥락 가운데에서 독자적으로 보여 주는 시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작가로서 중립적 위치를 지키고자 했던 리히터는 이 연장선상에서 1967년부터 ‘회색 회화’(grey painting) 작업을 진행한다. 그는 흑백 대비의 강렬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간의 혼합 색채인 회색을 사용한다. 리히터는 회색을 무관심에 대한 발언이자 주관적 의견을 비워 내기 위한 색상이라고 설명한다. 회색 회화는 회색조의 사진 회화로 제시되기도, 단순히 순수하게 색상의 본질을 탐구하는 회화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는 1982부터 1983년까지 2년에 걸쳐 총 12개의 촛불 작업을 남겼다. 리히터 작품 중 가장 주목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사진 회화 특유의 흐리기 기법으로 촛불 회화는 명상적 분위기를 전한다. 그는 촛불 개수와 구도에 변형을 가하며 반복적으로 작품을 그려 냈으며, 심지어는 해골과 함께 촛불 회화를 그려 냈다. 이 지점에서 촛불 연작은 인생의 덧없음을 주제로 했던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니타스 정물화와 미술의 오랜 주제로 다뤄진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정언명령을 상기시킨다. 그는 이 시리즈를 작업하며 ‘명상과 기억, 침묵, 죽음과 관련된 감정을 경험했다’는 말을 남겼다. 독일에서 발생한 수많은 외상적 사건을 연상시킨다. 촛불 회화 연작은 20세기 독일에서 발생했던 수많은 사건들에 대해 예술가가 진행하는 애도 행위로 해석할 수 있다.그의 ‘사진 회화’는 어떤 면에서는 추상화의 한 방법으로 활용돼 진화했다. 그는 카메라 렌즈로 확대한 캔버스의 붓자국을 정밀하게 묘사하기도, 평범한 사진을 극단적으로 확대해 재현한 후 지시하는 대상을 분별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추상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시각적으로는 추상표현적 형태를 취했더라도 그 이면에 사진을 그대로 재현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회화의 전통을 벗어남과 동시에 새로운 추상회화의 영역을 만든 것이다. 리히터가 보여 준 사진 회화는 사진이 등장한 이후 여러 작가들이 행해 온 사진과 회화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시도들과는 차별된다. 회화만의 순수한 무언가를 찾지도, 전형적 추상 형태를 취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진을 그대로 재현해 모더니즘의 전통에 반박했다. 미술계에서 대립항으로 여겨졌던 사진과 회화를 뒤섞어 융합해 내며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이다. 리히터는 1960년대부터 작업의 원천으로 삼기 위해 수집해 온 사진 이미지들을 패널 위에 부착해 정리한 대규모 이미지 기록 작품 ‘아틀라스’를 제작했다. 1972년 처음 전시를 시작하면서 계속 새 자료들이 추가되고, 재배열되며 반복 전시됐다. 이 자료 속 이미지들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가족, 인물, 동물, 주변의 풍경을 찍은 사적 기록 사진과 신문, 잡지, 포르노, 선전용 사진 등 공적 사진이다. 무수하게 모인 사진들, 그가 ‘이미지의 대홍수’라 표현한 ‘아틀라스’에서 이미지들의 개별 성격은 사라진 채 그저 기록물로 존재한다. 실제 그것이 존재했었음에 대한 지표로 작동하는 ‘사진’의 특성, 사진에 내포된 증거로서의 성격으로 인해 ‘아틀라스’는 단순히 이미지 모음이 아닌 동시대적이고 역사적인 사건들을 기록한 대규모 기록물로 변모했다. 이는 작가가 자신이 속한 시대와 사회를 가장 객관적 태도로 제시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정치적 이념이든 회화적 의미이든 중립적 태도를 고수했던 그의 초기 예술적 태도는 작품에 ‘우연’을 개입시킨 작업들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무작위적으로 선택해 배열된 ‘색상표’(Color Chart)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미 상품으로 제작된 수많은 색상의 물감을 색상표 형식을 차용해 작업을 진행한다. 이 시리즈는 1966년 시작돼 ‘18개의 색상’, ‘256개의 색상’, ‘1024개의 색상’, ‘4096개의 색상’ 등 색상들이 계속 추가되며 반복 제작됐다. 리히터는 색상표 각각의 색들을 어떤 것을 지시하지도, 의미하지도 않는 일종의 기성품으로 사용했으며, 색채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우연적 선택의 결과들로 제작된 색상표 연작들은 색상 간의 위계를 해체하고, 관람객들의 해석적 시도를 무위로 돌리는 회화적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이 연작은 색상 간에 백색 여백을 두고 그려진 것과 달리 점차 백색 여백은 줄어들고 색상들이 직접 맞대어지는 화면으로 그려진다. 이는 디지털 사진의 픽셀을 연상시킨다. 이로써 그의 색상표 연작은 사진 회화와 다른 시작점에서 시작됐을지라도 결국 그의 오랜 관심의 대상이었던 사진으로 연결된다.색채에 대한 연구는 그의 또 다른 추상화 양식으로 발전한다. 초기 사진을 활용한 추상화와 다르게 그는 여러 겹으로 쌓은 물감을 스퀴지와 주걱으로 밀어내고 긁어내 우연의 결과로 작품을 완성한다. 물감을 덧칠하고, 긁어내고, 밀어내는 행위를 반복해 오직 여러 겹으로 쌓인 물감의 층위와 물리적 흔적들이 가득한 화면만을 보여 준다. 작가는 사진 추상회화에서 보였던 무언가를 묘사하고자 하는 의지보다는 작가의 주관성이 거의 개입되지 않은 우연한 물질성의 회화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이 지점이 리히터를 리히터로 만드는 순간이 아닌가. 그의 회화는 단순한 채색의 배열이 아닌, 잘 그린 회화만이 아닌 작가의 정신과 사상, 태도, 의식이 만들어 낸 개념적 회화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숨 프로젝트 대표
  • 우크라에 성탄절 휴전 없어…젤렌스키 “러시아 전쟁 실수 인정해야”

    우크라에 성탄절 휴전 없어…젤렌스키 “러시아 전쟁 실수 인정해야”

    미국이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가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모두 ‘크리스마스 휴전’ 가능성을 일축했다. 지난 12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평화 협상의 첫 단계로서 크리스마스까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15일(현지시간)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 대변인이 “크리스마스 또는 새해 휴전은 우리 의제에 없다”고 밝힌 데 이어 우크라이나도 러시아가 수용하지 않을 휴전 조건을 내걸면서 ‘크리스마스 휴전’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금 전쟁을 중단하면 러시아는 더 강력해져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날 공개된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돈바스에서 이미 봤다”며 “그들은 영토 일부를 빼앗고 한동안 멈췄다가 더 강력한 점령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집무실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우리 땅에 와서 전쟁하는 것이므로 그들이 물러나야 한다”며 “지금 멈추자고 하면 아무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이미 10개월째로 접어든 전쟁 탓에 많은 생명이 희생될 것이라는 지적에 “러시아가 와서 우리 국민을 죽이는데 우리는 ‘다 가져가라. 우린 폴란드로 가겠다’고 해야 하나”라며 “대다수는 남아서 끝까지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이번 침공 전인 2월 23일 기준의 국경선으로 되돌리고 전쟁을 중단하는 방안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두고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보안 보장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면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언급했다. 이는 러시아·미국·영국이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반환을 조건으로 안전 보장을 약속한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옛 소련에서 독립한) 1991년 당시 국경으로 철수하면 외교가 시작될 것”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전쟁 실수를 빨리 인정하면 생명을 더 오래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토에 관해 타협하려는 사람은 없다. 전쟁을 일으킨 이들을 증오하게 됐고 대화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전황에 관해 동부 지역은 현재 매우 힘든 상황으로 세계 2차 대전과 같고, 폭격과 포가 있는 실제 전쟁이라고 전했다.남부 아조우 지역과 자포리자에는 전기도 물도 아무것도 없고, 헤르손은 탈환됐지만 드니프로강 반대편에서 포로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 키이우는 아주 위험하진 않지만, 로켓과 이란 무인기 공격이 시작됐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초기에 승리란 가능한 많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변함이 없다”며 “영토를 지킨다는 것의 유일한 의미는 생명과 목적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집무실에는 미국 할리우드 배우 숀 펜이 행운을 빌며 빌려준 오스카상이 있고, 책상엔 국가 정체성 형성에 기여한 19세기 우크라이나 사상가의 역사 에세이 책과 영국에서 쓴 히틀러와 스탈린에 관한 책이 놓여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매일 아침 6시에 안경을 쓰고 각각의 책을 20여 쪽씩 훑어본다고 설명했다. 한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독일 내 미군 기지에서 훈련하는 우크라이나군의 수를 매달 300명 수준에서 600~800명 규모로 늘리기로 했다. 지난 2월부터 이 기지에서 미군의 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한 우크라이나군은 3100명으로 전투능력을 크게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 유시민 ‘조금박해’ 비판에…조응천 “짠하고 측은”

    유시민 ‘조금박해’ 비판에…조응천 “짠하고 측은”

    조응천 “나라와 국민을 염두에 두고 말을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에 대해 ‘유명해 지려고 내부 총질만 하고 있다’는 취지로 비판한 유시민 전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향해 “(이제는) 짠하고 측은하다”고 받아쳤다. 조 의원은 6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지난달 28일 유시민 전 이사장의 칼럼을 통해 ‘조금박해’가 언론 노출을 노려 외부보다는 내부 공격에 치중하고 있다고 한 것에 대해 “참 서글프다. 유 전 이사장은 조국 사태 이전과 이후에 다른 분 같다는 생각을 자꾸 한다. 예전에 유 전 이사장이 저를 저격했으면 되게 아프고 쫄렸을 것 같은데”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조 의원은 “제가 내 장사하려고 내부총질했다는데 그말에 근거가 있어야 된다. 하지만 그 근거를 찾지 못하겠다”고 덧붙였다. 또 조 의원은 “유 전 이사장 정도 되시는 분이면 진영이 아니고 나라와 국민을 염두에 두고 말을 하고 걱정을 해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여야 관계가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건지 그걸 물어보고 싶다”고 지적했다. 유 전 이사장은 지난달 28일 이태원 참사 유족들의 명단을 동의 없이 공개해 논란이 된 인터넷 매체 ‘민들레’에 칼럼을 기고해 박지현 전 공동비대위원장을 언급하며 “한마디로 오늘의 박지현에게 대중은 관심이 없다. 박지현 씨는 그저 언론에서 시끄러운 정치인일 뿐”이라고 했다. 동시에 “‘조금박해’의 언행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며 “그들은 박지현 씨와 비슷한 착각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내 소신파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유명세를 얻기 위해 민주당 내부 비판을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박지현 “유시민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라” 앞서 박 위원장도 지난달 30일 자신의 SNS를 통해 “유시민 작가는 제가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해가 되는 발언을 했다는데 아니다”라며 “저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망치고 있는 강성 팬덤과 사이버 렉카, 이들에게 포섭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을 비판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박 위원장은 “유시민 작가도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라”며 유시민 작가의 지금까지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으로 자신의 주장을 대신하겠다고 했다. 그가 들려준 유시민 작가의 발언은 ▲국민을 통합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같이 공존해야 한다(2017년 노유진의 정치카페) ▲청년들은 자기들이 답을 찾고 부딪쳐야 바뀌지 기성세대한테 물어봤자 이용만 당한다(2022년 3월 4일 100분 토론) ▲제 소신 중 하나는 가능하면 60세가 넘으면 책임있는 자리에 있지 말자. 65세가 넘으면 때려 죽여도 책임있는 자리에는 가지 말자다(2004년 11월 3일 중앙대 초청 강연) ▲김어준이 쓴소리를 많이 한다고 교통방송의 돈줄을 끊었다. 우리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태도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대했다(2022년 11월 28일 민들레)다. 박용진 의원도 지난달 29일 MBC 라디오에서 “조국 사태 이후 그분(유시민)이 주장한 대로 해서 당이 잘됐나”라고 받아친 바 있다. 박 의원은 이어 “저라고 쓴소리가 즐거운 일이겠는가. 그러고 나면 문자폭탄에 온갖 욕설 등을 봐야 한다”며 “그럼에도 당을 사랑하니까 그 일을 하는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계속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 ‘최틀러’ 별명 4선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별세

    ‘최틀러’ 별명 4선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별세

    카리스마적 언행과 추진력으로 ‘최틀러’(최병렬+히틀러)라는 별명으로 불린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2일 별세했다. 84세. 1938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고인은 부산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뒤 한국일보 기자로 일했다. 이후 조선일보로 옮겨 정치부장, 편집국장, 이사를 지냈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노태우 정부에서 대통령 정무수석, 문화공보부 및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다. 12대에 이어 14·15·16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된 4선 의원으로 2003년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됐다. 한국 정당 최초로 23만명의 대의원단이 참여한 직접 투표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백영자씨와 아들 희준·선준씨, 딸 윤보씨가 있다. 장남 희준씨는 TV조선 앵커, 보도본부장, 편성실장을 지냈다.
  • ‘유대인 혐오’ 카녜이 “나치·히틀러가 좋다”

    ‘유대인 혐오’ 카녜이 “나치·히틀러가 좋다”

    유대인 혐오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미국 힙합 가수 ‘예’(카녜이 웨스트)가 이번에는 극우 가짜 뉴스 방송에서 “나치, 히틀러가 좋다”고 실언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예는 1일(현지시간) 인포워스 사이트 생방송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인포워스는 미국의 대표적 가짜 뉴스 사이트다. 사이트 운영자는 알렉스 존스로, 최악의 총기 참사 중 하나인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날조라고 주장해온 인물이다. 예는 이날 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짜 뉴스를 퍼뜨리기도 했다. 그는 “히틀러는 내가 음악인으로서 사용했던 마이크와 고속도로를 발명했다”면서 “그가 이로운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AFP는 히틀러는 이런 것들을 발명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예는 “모든 인간은 가치 있는 행위를 하기 마련이고 히틀러는 특히 그렇다”면서 “나치를 깎아내리는 것을 멈춰야 한다. 나는 나치를 사랑한다”고 재차 말했다. 예는 이날 검은 복면을 쓰고 출연했다. 그러나 AFP에 따르면 존스는 그를 ‘웨스트’라고 부르며 예의 휴대폰으로 트위터 게시물을 올리는 등 그의 정체를 확실시했다. 이에 유대인계는 즉각 반발했다. 공화당유대인연합(RJC)은 성명에서 “카녜이 웨스트가 히틀러를 칭송한 것을 보면 그를 유대인을 표적으로 삼는 사악하고 편협한 사람으로 칭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라면서 “그를 좋게 봤던 보수주의자들은 지금이라도 그를 배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 ‘그’ 사건 이후…사유리 “지하철에 있는 것 안 만져”

    ‘그’ 사건 이후…사유리 “지하철에 있는 것 안 만져”

    ‘세계 다크투어’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옴진리교의 영향을 짚어보며 경각심을 일깨웠다. 지난 30일 방송된 JTBC ‘세계 다크투어’에서 14명의 사망자와 6300명의 부상자가 생긴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 사건과 이를 주도했던 사이비 종교 옴진리교의 모든 것을 조명하며 주체적인 삶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다크 투어리스트들은 프로파일러 표창원 다크가이드의 뒤를 따라 끔찍한 가스 테러 사건이 발생했던 일본 도쿄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출근길 시민들의 목숨을 위협한 ‘사린’ 가스는 맹독성 신경가스로 제2차 세계대전의 학살자 히틀러조차 사용을 꺼릴 정도였다고 해 그 위험성을 체감케 했다. 당시 테러가 발생한 지하철역 근처에 살고 있었던 사유리는 “우리 엄마도 지하철을 타려고 했다”며 어머니가 아슬아슬하게 사건을 피해간 사연을 전해 현실감을 더했다. 사린 테러가 벌어진 지 2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지하철에 있는 쓰레기조차 만지지 않는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사린가스 테러를 주도한 인물은 일본의 사이비 종교인 옴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였다. 작은 요가 교실에서 시작된 옴진리교는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공중 부양 사진을 비롯해 티베트 불교의 최고 수장인 달라이 라마와 만남을 계기로 교세를 확장시켜 나갔다. 이어 목숨을 담보로 한 수련을 비롯해 교감을 빌미로 돈을 갈취하고 마약까지 먹이는 등 기이한 방식으로 착취를 일삼았다. 여기에 아사하라 쇼코를 캐릭터로 만든 도시락을 비롯해 교주가 직접 선거까지 출마하면서 옴진리교는 식생활과 정치 등 일상 곳곳에 스며들었다. 실제로 옴진리교의 선거 활동을 목격했다는 사유리는 아사하라 쇼코의 노래를 부르며 경험담을 고백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아사하라 쇼코가 선거에서 낙선하면서 옴진리교의 분위기는 점차 변화했다. 만 명에 육박하는 신도 수보다 훨씬 적은 표를 얻은 것. 이에 옴진리교는 투표 결과가 조작됐다고 믿었고 사회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며 시민들을 상대로 테러를 자행했다. 심지어 지하철 테러에 이어 헬리콥터를 이용한 공중 테러까지 계획했다고 해 충격이 배가 됐다.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 직후 경찰들은 대대적으로 옴진리교에 대한 수사에 돌입했다. 그 과정에서 옴진리교의 2인자가 살해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지만 경찰들은 추적을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교주 아사하라 쇼코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증인만 171명이 참석했던 아사하라 쇼코와 옴진리교의 치열했던 법정 공방은 사형이라는 최후의 심판으로 막을 내렸다. 아사하라 쇼코의 사망 이후 남은 신도들에 의해 ‘알레프’라는 새로운 종교로 재탄생, 계속해서 청년들에게 마수를 뻗고 있어 놀라움을 안겼다. 이에 표창원 다크가이드는 포교 방식을 설명하면서 “끝까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삶이 훨씬 가치 있다”며 스스로를 해치는 무분별한 믿음을 경계할 것을 강조했다.
  • 박지현, 유시민 비판에 “586, 아름다운 퇴장 준비하라” 응수

    박지현, 유시민 비판에 “586, 아름다운 퇴장 준비하라” 응수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자신을 공개 비판한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향해 “고마운 충고로 새기기엔 정도가 심각하다”며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라”고 맞받았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히틀러와 스탈린이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대했다’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이 같이 요구했다. 그는 “유 전 이사장이 저와 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조금박해’) 의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민주당에 해가 되는 발언을 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으려 한다고 비판했다”며 “유 전 이사장은 제가 참 좋아하는 정치인이다. 응원 말씀이 아직 생생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 박지현 “비판적 토론, 이적행위? 민주주의 아냐” 박 전 위원장은 이 글을 통해 네 가지 항목을 나열하며 유 전 이사장의 말을 반박했다. 그가 적은 주장은 ▲비판적 토론이 이적행위라는 사고방식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당은 박지현이 아니라 강성 팬덤이 망치고 있다 ▲가장 진실해야 할 대변인이 거짓 의혹을 퍼트렸다 ▲민주당을 팬덤 정치의 노예로 만들 수 없다 등 네 가지다. 박 전 위원장은 “비판적 토론이 이적행위라는 사고방식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며 “저는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강성 팬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을 살리기 위해 비판하는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유 전 이사장은 젊은 시절 독재에 맞서 자유를 위해 싸웠지만, 이제는 자신의 의견과 다른 분들을 이적행위자로 몰고 있다. 자신이 싸웠던 독재자와 닮아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라고 일침했다. 박 전 위원장은 “유 전 이사장은 제가 민주당과 이 대표에게 해가 되는 발언을 했다고 했다. 아니다. 저는 민주당과 이 대표를 망치고 있는 강성 팬덤과 사이버 렉카(견인차), 그리고 이들에게 포섭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을 비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민주당에 이익이 되는 발언이다”라며 “민주당과 이 대표에게 해가 되는 것은 국민들로부터 민주당을 고립시키는 강성 팬덤과 그들을 업고 설치는 김의겸 대변인과 장경태 최고위원 같은 분들이다”라고 강조했다. 박 전 위원장은 ”거짓말을 하고도 사과도, 반성도 없는 것이 바로 혐오를 숙주로 자라는 팬덤 정치다“라며 ”제가 존경했던 유 전 이사장만은 팬덤 정치의 노예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유 전 이사장께서도 잘못 뱉은 말을 거두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 전 위원장은 ”유 전 이사장의 발언을 보면서 다시 확신했다“며 ”이제 민주당에서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30여 년 이상 기득권을 누려온 586세대는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해야 한다. ‘역사의 역사’ 저자이시기도 한 유 전 이사장이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그는 이 글 말미에는 유 전 이사장의 과거 발언을 인용하며 주장을 마무리했다. 박 전 위원장이 인용한 유 전 이사장의 발언은 ▲국민을 통합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같이 공존해야 한다(2017년 노유진의 정치카페) ▲청년들은 자기들이 답을 찾고 부딪쳐야 바뀌지 기성세대한테 물어봤자 이용만 당한다(2022년 3월 4일 100분 토론) ▲제 소신 중 하나는 가능하면 60세가 넘으면 책임있는 자리에 있지 말자. 65세가 넘으면 때려 죽여도 책임있는 자리에는 가지 말자다(2004년 11월 3일 중앙대 초청 강연) ▲김어준이 쓴소리를 많이 한다고 교통방송의 돈줄을 끊었다. 우리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태도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대했다(2022년 11월 28일 민들레)다.● 유시민 ”박지현과 조금박해, 마이크 파워 키우려…“ 앞서 유 전 이사장은 지난 28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유족 동의 없이 온라인에 공개해 논란이 된 인터넷 매체 ‘민들레’를 통해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과 이른바 조금박해가 유명세를 타기 위해 자당을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 전 이사장은 ‘박지현과 조금박해는 왜 그럴까’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 같이 지적했다. 유 전 이사장은 박 전 위원장이 지난 7월 KBS 라디오 프로그램 ‘최경영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 발언을 인용하며 비판했다. 당시 박 전 위원장은 ‘박지현이 본인을 이준석이나 김동연 급으로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김남국 의원의 비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언론에서의 마이크 파워나 유명세로 따진다면 제가 그 두 분께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유 전 이사장은 이에 대해 “오늘의 박지현에게 대중은 관심이 없다”며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정치인의 말은 힘을 가질 수 없다. 그저 언론에서 시끄러운 정치인일 뿐이다”라고 했다. 유 전 이사장은 이어 “그런 의미의 마이크 파워를 키우는 게 목표라면, 그 목표를 손쉽게 이루는 방법을 안다”며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 대표와 민주당에 해가 될 말을 하는 것이다”라고 썼다. 유 전 이사장은 “조금박해의 언행은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며 “박 전 위원장과 비슷한 착각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씨줄날줄] 트럼프 키즈/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트럼프 키즈/이순녀 논설위원

    2016년 6월 미국에서 출간된 ‘힐빌리의 노래’는 백인 빈민가정 출신으로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가로 성공한 JD 밴스(38)의 자전적 에세이다. 힐빌리는 미국 남부에 사는 가난하고 보수적인 백인 노동계층을 부르는 멸칭. 러스트벨트(제조업 중심지였다가 몰락한 지역)인 오하이오주의 힐빌리였던 밴스가 약물중독과 폭력이 만연한 불행한 가정환경을 딛고 자수성가한 인생 스토리는 넷플릭스 영화로도 제작될 만큼 화제를 모았다. 특히 주류층이 외면해 온 백인 노동계층의 빈곤과 소외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은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이 때문에 그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백인 노동계층의 지지를 받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정작 밴스는 당시 트럼프를 무능력하고 편협한 인물로 평가절하했다. 대선에서 트럼프를 찍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가 하면 트럼프를 ‘미국의 히틀러’라고 직격했다. 그러나 정계에 입문한 후엔 태도가 정반대로 바뀌었다. 트럼프를 “내 생애 최고의 대통령”이라고 치켜세우고, “선거가 도둑맞았다”는 ‘2020 대선 음모론’에도 동의했다. ‘트럼프 키즈’를 자처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밴스는 지난 5월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데 이어 지난 8일(현지시간) 중간선거에서 10선 하원의원 출신인 팀 라이언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트럼프는 선거 전날 마지막 유세에도 참석해 힘을 보탰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연방 상하원 및 각 주의 주요 공직에 출마한 공화당원 중 300여명이 트럼프 키즈이며, 이들 가운데 160여명이 당선됐다. 트럼프 정부 초기 백악관 대변인을 맡았던 세라 허커비 샌더스(아칸소주 주지사), ‘여자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정치인 마저리 테일러 그린(조지아주 하원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당초 예상했던 ‘레드 웨이브’(공화당 압승)가 실종되면서 공화당 내부에선 트럼프 키즈의 자질 문제가 불거지는 모양새다. 공화당에 몰표를 주지 않은 민심을 트럼프 키즈들이 어떻게 보듬느냐에 따라 트럼프의 대선 재도전 향방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핼러윈 맞아 히틀러 분장했다가 해고당한 美 남성

    핼러윈 맞아 히틀러 분장했다가 해고당한 美 남성

    미국 위스콘신주(州)에서 지적장애가 있는 한 남성이 핼러윈을 맞아 과거 독일 나치 정권 지도자인 아돌프 히틀러 분장을 했다가 직장에서 해고됐다고 AP 통신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매디슨 어린이 박물관에서 일하는 이 남성은 지난달 29일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캠퍼스 인근 거리에서 히틀러로 분장한 후 핼러윈 전 주말을 즐겼다. 당시 이 남성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소셜미디어(SNS)에 퍼지고 일부 언론에도 보도되자 비판 여론이 일었고, 이에 매디슨 어린이 박물관은 1일 그를 해고했다. 이 박물관은 성명을 내고 “그를 계속 고용하는 것은 우리 박물관이 지향하는 가치와 어긋나며 방문객에게도 환영받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우리는 반유대주의와 편견, 차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박물관은 이 남성이 과거 외상성 뇌 손상을 입어 인지장애를 앓고 있다고도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가 히틀러 분장을 통해 히틀러를 조롱하고 풍자하려고 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지 경찰은 처벌 대상은 아니라고 밝혔다. 반유대주의를 비판하는 단체 ‘스톱 안티세미티즘’(StopAntisemitism)는 “역겹다”며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 “카녜이 히틀러 숭배했다” 폭로도, 연예계 큰손 아리 이매뉴얼에겐

    “카녜이 히틀러 숭배했다” 폭로도, 연예계 큰손 아리 이매뉴얼에겐

    미국 힙합 스타 겸 패션 디자이너 예(옛 이름 카녜이 웨스트)가 유대인 혐오 발언으로 연예계에서 퇴출되고 패션계에서 손절되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그가 평소에 아돌프 히틀러를 숭배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예와 동업한 적이 있다는 연예계 관계자는 27일(현지시간) CNN 방송에 과거 그가 했다는 히틀러 숭배 발언을 공개했다. 이 관계자는 “그는 히틀러가 그렇게 큰 힘을 축적할 수 있었던 게 얼마나 놀랍냐면서 히틀러를 칭송하곤 했다”면서 “그는 ‘히틀러와 나치가 독일 국민을 위해 성취한 모든 위대한 것’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고 말했다. 예는 또 나치즘의 경전 격인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을 읽었다는 것을 대놓고 자랑했으며, 특히 선전선동 측면에서 히틀러와 나치에 경의를 표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예는 종종 히틀러에 심취한 상태에서 주변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고, 측근들도 그가 히틀러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특히 그는 2018년 자신의 새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했는데, 원래는 앨범 타이틀을 ‘히틀러’로 지으려 했다고 다른 소식통이 CNN에 밝혔다. 이들 소식통은 예의 보복을 우려해 익명 보도를 요구했다. 예는 이와 관련한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고 CNN은 전했다. 세계적 힙합 스타로 연예계 셀럽인 킴 카다시안의 전 남편이기도 한 예는 최근 세계적 스포츠·의류 브랜드와 협업하며 패션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끊이지 않는 돌출 행동을 일삼다가 최근 유대인 혐오 발언을 한 것이 논란이 되면서 아디다스 등 유명 브랜드로부터 줄줄이 계약을 해지당했다. 세계적 음반사인 유니버설뮤직도 25일 웨스트의 음반사인 ‘굿뮤직’과 계약이 지난해 종료됐다고 밝히며 “우리 사회에 반유대주의를 위한 자리는 없다. 우리는 반유대주의와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그의 고향 시카고 사람들도 등을 돌리고 있다. 이날 시카고 언론에 따르면 시카고 도심 서편(웨스트룹)의 신흥번화가 풀턴 마켓의 한 건물 벽에 그려져 있던 예의 상반신 벽화가 온통 검은색 페인트로 덧칠됐다. 전날 누군가 벽화에 검정 페인트를 칠하는 것을 목격한 한 주민이 소셜미디어에 동영상을 올렸고, 벽화를 그린 화가 제이슨 피터슨은 그 뒤 검정색 페인트가 덧칠된 벽화 사진과 함께 “우리에게 더 나은 롤모델이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다. 4.3m 높이의 벽화는 애초 시카고 웨스트룹 출신 예의 성공을 축하하고 그의 뿌리를 강조하기 위해 그려져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시카고 NBC방송은 전했다. 예는 지난 26일 사용 제재가 풀린 인스타그램에 ‘러브 스피치’라는 제목으로 할리우드 최대 에이전시 ‘엔데버’ 최고경영자(CEO)인 유대계 아리 이매뉴얼(61)에게 쓴 편지 형식의 글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예는 이 글에서 “난 하루 아침에(최근 얼마 동안의 일이었는데 과장 어법인 듯하다) 20억 달러(약 2조 8000억원)를 잃었지만 아직 살아 있다. 이건 (혐오 발언이 아닌) 사랑의 발언이다.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신도 당신을 사랑한다. 내가 누군지 결정하는 건 돈이 아니다. 사람들이다”라고 주장해 15시간여 만에 140만여명의 공감을 얻어냈다. 아리 이매뉴얼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람 이매뉴얼 전 시카고 시장(현 주일 대사)의 삼형제 중 막내로 할리우드를 장악하고 있는 유대계 자본의 상징이다. 아리 이매뉴얼은 지난주 경제전문매체 파이낸셜 타임스(FT) 기고문을 통해 각 기업에 예와의 관계 단절을 촉구했다고 시카고 선타임스는 전했다.
  • ‘나치 학살’ 희생자 집단 매장지, 80년 만에 발견…“두개골 총상 흔적”

    ‘나치 학살’ 희생자 집단 매장지, 80년 만에 발견…“두개골 총상 흔적”

    폴란드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고문에 희생된 11명이 묻힌 집단 매장지가 발견됐다. 폴란드 연구진은 동부의 작은 마을인 예드바브네 인근 숲에서 고문의 흔적이 역력한 폴란드인 11명의 유해가 있는 매장지를 발견했다. 연구진은 본래 2차 세계대전 당시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자(父子)의 시신을 찾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집단 매장지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인류학자와 역사탐사그룹으로 이뤄진 해당 연구진에 따르면, 집단 매장지에 매장돼 있던 시신 대부분은 손이 뒤로 결박돼 있었고, 사망 뒤 아무렇게나 던져진 것으로 보인다. 유해 곳곳에 총에 맞거나 고문을 당한 흔적이 있었고, 일부 유해의 두개골에서도 총상의 흔적이 확인됐다. 해당 매장지에서는 히틀러의 군대가 사용했던 소총인 마우저의 총알이 다량 발견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특징들로 미루어 봤을 때, 유골의 주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당 지역을 점령한 독일 나치의 고문 등으로 숨진 희생자라고 결론지었다. 집단 매장지가 발견된 숲은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죽음의 숲’으로 불리는 곳이다. 과거 나치가 이 숲에서 많은 사람을 잔인하게 학살했기 때문에다. 당시 예드바브네에 주둔하던 독일 경찰도 무고한 민간인을 이 숲으로 끌고와 고문하고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예드바브네 시장은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이 숲은 거주지역과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짐승처럼 끌고 가 살해하기 쉬웠다”고 설명했다. 앞서 수개월 전 같은 지역에서 나치 희생자 4명의 유해가 발견되기도 했다. 연구진은 “예드바브네 및 주변 지역 주민 중 과거 나치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이 있다면 유전자 검사를 위한 샘플을 제공해달라고 부탁했다.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전했다.한편, 예드바브네는 일명 ‘예드바브네 학살’로 불리는 끔찍한 유대인 학살 사건이 발생한 곳으로 유명하다. 예드바브네 학살은 1941년 7월 10일, 나치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예드바브네 마을에서 폴란드인들이 유대인 약 1600명을 헛간에 가두거나 고문해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두고 “나치의 강요로 폴란드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유대인을 살해했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현재의 많은 역사학자는 폴란드인의 자발적인 학살로 보고 있다.
  • 에코, 애트우드...세기의 지성이 보여주는 통찰력

    에코, 애트우드...세기의 지성이 보여주는 통찰력

    세계적인 소설가들의 오랜 생각을 보여주는 책들이 출간됐다.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는 물론,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통찰력이 반짝인다. ‘에코의 위대한 강연’(열린책들)은 움베르토 에코가 밀라노에서 매년 열리는 인문학축제인 ‘라 밀라네지아’에서 강의한 내용을 묶었다. 에코는 첫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성공을 거둔 뒤 철학과 미학, 대중문화 비평 등 소설과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다 2016년 별세했다. 이 축제를 좋아해 세상을 뜨기 전까지 거의 매년 강의했다. 강연집은 미와 추의 본질, 절대와 상대, 불, 실존과 허구, 역설과 아포리즘, 거짓, 불완전성 등 12개 주제를 다룬다. 무거운 주제들을 파헤치는 에코의 발걸음은 종횡무진이다. 각종 명화와 영화, 성경과 신화, 문학 작품과 광고 문구 등을 들어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아들을 바치라는 신의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였던 아브라함, 히틀러가 그린 정물화의 추함, 거짓말에 관한 칸트의 어리석은 말, 비밀결사 장미십자회, 보잘것없는 음악을 예찬한 프루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해박한 지식으로 풀어낸다. 책의 전체 주제를 관통하는 글은 서문 격에 해당하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다. 거인과 난쟁이는 기존의 것을 지키려는 자들과 혁신을 추구하는 자를 가리킨다. 에코는 문화적 혁신이 대부분 과거의 거인에게서 왔고, 난쟁이인 우리가 치열하게 맞서면 혁신을 이끌고 미래를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마거릿 애트우드가 2004년부터 2021년까지 쓴 62편의 글을 모은 ‘타오르는 질문들’(위즈덤하우스)은 ‘시녀 이야기’, ‘그레이스’, ‘증언들’과 같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작품을 쓰기까지의 일화, 그리고 그가 평생 헌신한 문학, 환경, 인권, 페미니즘을 주제로 쓴 글이 담겼다. 어린 시절 환경 운동가이자 곤충학자인 아버지와 퀘벡의 숲에서 보낸 일, 유명 작가가 되기까지 거처를 옮기고 다양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린 경험, 밭을 일구고 탐조하며 보내는 여가 등이 생생하다. 영미 문학사에 대한 지식과 독창적인 해석, 눈에 띄는 여성 작가들에 대한 애정도 듬뿍 담겼다. 출판사 측은 “서평, 서문, 강연 형식의 글은 탁월한 작법 이론을 바탕으로 한 문학비평의 모범”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사회 변화에 맞춰 모두 5부에 걸쳐 글을 실었는데, 당시 미국 또는 전 세계 상황을 고려해 읽어도 좋을 법하다. 예컨대 1부인 2009년 미국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공격과 이라크 전쟁, 미국발 금융 위기가 일어난 시기의 글이다. 2부는 2010~2013년 오바마 정부 때이고, 마지막 5부는 2020~2021년이다. 애트우드는 코로나19가 세계를 덮친 시기를 날카롭게 조명하고,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적 문제를 질문하고 답한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도쿄 로즈’로 몰려 희생된 도구리 다키노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도쿄 로즈’로 몰려 희생된 도구리 다키노

    2차 세계대전 때 태평양 전장에서 싸운 미군 병사들이 ‘도쿄 로즈’라고 얘기하는 여성이 있었다. 전장에서 매일 밤 그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는 고혹적이었으며 영어 발음은 유창했다. 그녀는 미군 함정들이 모두 격침될 것이며 부대들은 일본군에 말끔히 청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틈틈이 미국에서 유행하는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지금으로부터 73년 전인 1949년 10월 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법원은 반역 혐의로 기소된 이바 도구리 다키노(일본명 이구코 도구리)에게 유죄를 선언하고 징역 10년형에 벌금 1만 달러를 부과했다. 하지만 적어도 미국 언론이 묘사한 것과 같은 ‘도쿄 로즈’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일간 마이애미 헤럴드가 지난 8일 보도했다. 도구리는 1916년 7월 4일 로스앤젤레스의 일본인 교포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0년 UCLA를 졸업했는데 동물학 학사학위를 땄다고 연방수사국(FBI) 기록에 나와 있다. 이듬해 아픈 이모를 간호하고 약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이주했다.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서였다.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던 날에 진주만 공격이 발발했다. 일본 당국은 오도가도 못하는 도구리에게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라고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자 적국 시민으로 간주돼 이모 집안은 식량 배급에서 제외됐다. 미국 정부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포로수용소로 보냈는데 도구리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부모와 연락이 끊기고 생활비도 지원받을 수 없게 되자 그녀는 라디오 도쿄의 타피스트로 취업했다. 도구리는 나중에 미군 병사들을 겨냥한 선전 쇼 ‘제로 아워’(Zero Hour)에 고정 출연하게 됐다. 자신을 “고아 앤”이라거나 “고아 애니”라고 소개하며 선전문을 읽거나 매일 밤 20분정도 음악을 틀어줬다. 이 일을 하고 한달에 받은 돈은 150엔정도였다. 도구리는 1945년에 포르투갈계 필리페 다키노와 결혼했다. 사실 그녀는 미군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마이크를 잡아 미군 병사들에게 ‘도쿄 로즈’란 별명이 붙은 14명의 여성 가운데 한 명이었을 뿐이다. FBI 문서에 따르면 종전 후 두 미국 기자가 악명 높은 도쿄 로즈를 추적해 결국 도구리가 그 여성이란 점을 밝혀냈다. 두 기자는 2000달러를 줄테니 인터뷰를 통해 “하나뿐인” 도쿄 로즈였음을 자백하라고 권했지만 나중에 결국 돈을 건네지 않았다고 일간 워싱턴 포스트(WP)는 보도했다. 이 인터뷰는 미국인들에게 악명 높은 일본군 선전 앞잡이로 도구리를 각인시켰다. 다른 여성들의 신원은 종전 뒤에도 철저히 감춰졌는데 도구리만 기자들의 거짓말에 속아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는 바람에 미국민들의 미움을 사게 됐다. 하지만 FBI와 육군첩보전사단이 일본에서 수사한 결과 도구리가 선전전 확대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실제로 도구리는 선전전의 목적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했다. 연합군 포로들이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주거나 의미없는 말장난을 하는 등 잡담에 치중했다. 그녀의 방송 멘트는 이랬다. “여러분이 타신 배는 전부 가라앉아 버렸어요. 집에 어떻게 돌아가실 건가요?” “커다란 배를 타고 있으면 쾌적하겠죠. 그렇지만 곧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타깝네요. 오늘은 날씨도 좋은데 얼마나 많은 수병들이 목숨을 잃었을까요?” “지금쯤 당신들의 아내와 연인은 다른 남자와 잘 지내고 있을 거예요.” “당신이 여우 구멍(개인호)같은 곳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당신 아내나 연인은 분명 외로워할 거예요. 그런 여성에게는 분명 유혹자가 나타나죠. 첫 데이트에서 키스까지 했을까요?” 그녀는 또 함께 방송하던 연합군 포로들의 식량과 약품을 구해준 일도 있었다고 WP는 전했다. 미군 병사들도 그녀의 방송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내용에 코웃음 치며 그저 영어 좀 하는 여성의 나긋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일 뿐이었다. 적어도 미국 언론이 묘사한 것 같은 ‘도쿄 로즈’는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1946년 수사 때 도구리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증거와 녹음이 파괴돼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게 있었더라면 한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가 나중에 다시 기소돼 유죄 판결 받는 일은 없을지 모른다.미국 국적을 말소한 적이 없기 때문에 도구리는 귀국하기 위해 여권을 신청했고, 그 바람에 ‘도쿄 로즈’의 저주가 시작됐다. 공산당 색출에 앞장섰던 라디오 진행자 월터 윈첼과 다른 사람들이 고발해 당국의 조사가 시작됐고, 이번에는 자신을 인터뷰했던 기자 한 명이 수사에 협조했는데 그에게 위증을 종용했다는 혐의가 더해졌다. 샌프란시스코 대배심은 적국을 도운 반역 혐의에 유죄를 평결했다. WP에 따르면, 재판에서 ‘제로 아워’의 옛 동료가 그녀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가 나중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본인이 법정에 설 것이라고 위협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고 취재진에게 밝혔다. 도구리는 미국에서 반역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일곱 번째 인물이 됐다. 10년형 가운데 6년만 복역했다. 그녀는 나중에 WP 인터뷰를 통해 “난 그들이 다른 누구를 발견해 그 일을 마무리지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들 모두 만족해했다”고 말했다. “그것은 어느 것을 고를까, 어느것을 고를까 알아맞혀 보세요 하는 식이었는데 그게 나였다(It was eeny, meeny, miney and I was ‘moe’).” 그의 남편은 재판에 변호하러 왔다가 다시는 미국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서명하도록 강요받았다. 나중에 부부는 이혼했다. 그녀는 복역 뒤에 시카고에서 조용히 살다 1977년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의 사면을 받았다. 미국 국적도 회복했다. 2006년 9월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도구리와 비슷하게 나치 독일의 선전전에는 ‘호호 경’(Lord Haw-Haw)이라 불린 외국인이 있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윌리엄 조이스인데 가족과 함께 아일랜드로 돌아왔다가 1932년 영국 파시스트동맹에 가입했다가 나중에 축출돼 자신의 파시스트 정당을 창당한 뒤 전쟁 직전 독일로 옮겨왔다. 나치 당의 영어 선전방송에 출연해 완벽한 영국식 억양을 구사하며 “독일이 부른다, 독일이 부른다”라고 외치며 방송을 시작한 것으로 유명했다. 영국군 병사들에게 탈영하라고 권하고 유대인들 때문에 전쟁이 벌어진 것이라고 탓하는 방송을 했다. 전쟁 막바지에 조이스는 마지막 방송을 통해 “하일 히틀러, 그리고 안녕”이라고 고별사를 늘어놓았다. 영국 첩보요원은 독일의 한 마을에 숨어있던 그를 체포해 반역 혐의로 1946년 1월 3일 교수형에 처형했다. 도구리처럼 역사의 장난에 희생된 힘없는 개인의 사례로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이라크 공보장관 무함마드 사이드 알사하프를 들 수 있다. 그는 ‘바그다드 밥’으로 불렸는데 멍청하게만 보이는 선전 노력 때문이었다. 미군 탱크들이 바그다드를 향해 진격하는데도 사하프는 매일 텔레비전 브리핑에 나와 미군이 이라크에서 달아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어틀랜틱이 보도했다. 오죽했으면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그는 대단한 인물”이라고 이죽거린 뒤 “누군가는 우리가 그를 기용해 거기 내세웠다고 비난한다. 그는 클래식이었다”고 비아냥댔다. 그는 티셔츠, 머그 컵, 팝송, 움직이는 피규어 인형에 조롱거리로 등장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밈으로 나타난다. 사하프는 끝내 자신의 직위를 물러난 뒤 종전 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도쿄 로즈’의 뒤를 이어 수많은 ‘후배’들이 전쟁마다 배출됐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붙잡혀 억지로 마이크를 잡은 미국 여성 ‘평양 샐리’와 ‘서울 수(Sue)’, 베트남전쟁 당시 북베트남의 선전방송을 맡은 ‘하노이 한나’와 ‘하노이 제인’, ‘하노이 폰다’, 걸프전 때 사담 후세인 정권의 마이크를 잡은 ‘바그다드 베티’ 등이다.
  • ‘히틀러 비유’ 뿔난 트럼프, CNN에 ‘4억7500만불’ 명예훼손 소송

    ‘히틀러 비유’ 뿔난 트럼프, CNN에 ‘4억7500만불’ 명예훼손 소송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을 히틀러에 비유해 비방했다며 CNN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4억7500만 달러(약 6793억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플로리다 주 포트로더데일 지방 법원에 CNN을 상대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CNN이 지난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에 대해 ‘인종주의자’, ‘러시아의 하인’, ‘히틀러’라고 부르는 등 거짓 비방을 통해 조 바이든 당시 대통령 후보에게 패배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이다. 이들은 29쪽 분량의 소장에서 CNN이 거대한 거짓말(The Big Lie)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비방한 점을 핵심적인 고소 사유로 제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11월부터 대선 결과가 조작됐다고 주장해왔는데 CNN이 이같은 그의 주장을 ‘거대한 거짓말’ 전술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이 용어가 과거 히틀러가 자서전 ‘나의 투쟁’에서 유대인 혐오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사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CNN의 경우 지난해 1월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거대한 거짓말’이라는 단어를 7700번 이상 사용해 보도했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이들은 다른 언론사에 대해서도 이번 건과 비슷한 류의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트럼프 전 대통령은 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과 지속적으로 대립각을 세워왔다. CNN 등은 그가 2020년 대선 불복으로 지난해 1월 발생했던 극렬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를 부추겼다고 비판했다. 그는 러시아 대선 개입 의혹을 제기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퇴임하며 백악관에서 국가 기밀문건을 반출한 혐의와 선거 개입 의혹 등으로 미 연방수사국(FBI)으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다.
  • 전직 대통령 vs 언론, 싸우면 누가 이길까…6800억 소송 건 트럼프

    전직 대통령 vs 언론, 싸우면 누가 이길까…6800억 소송 건 트럼프

    전직 대통령과 유력 언론사의 법정 싸움, 누가 이길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유력 언론사 중 한 곳인 CNN을 상대로 수천억 원 대의 소송을 제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 연방지방법원에 “CNN이 원고(트럼프)에 대해 언제나 가증스럽고, 허위이며, 명예 훼손적인 ‘인종주의자’, ‘러시아의 종’이라고 했고, 결국에는 ‘히틀러’라는 딱지를 붙였다”는 내용의 소장을 냈다. 이어 “CNN은 부정적인 정보를 강조하고 긍정적인 정보는 무시하는 행태를 넘어, 원고를 정치적으로 패배시키려는 목적으로 시청자와 독자들을 상대로 자신(CNN)의 영향력을 이용해왔다”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29페이지 분량의 소장을 통해 “CNN은 오랫동안 원고를 비판해 왔지만, 2024년 대선에 다시 출마할 것을 두려워하면서 최근 몇 달 동안 공격을 강화했다”고 주장했다. 뉴욕포스트는 “트럼프의 소장에는 CNN이 트럼프와 히틀러를 비교한 여러 사례가 나열돼 있다”면서 “이번 소송은 트럼프가 플로리다의 자택에 정부 기록물을 보관한 것에 대해 법무부가 수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시작됐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CNN에 4억 7500만 달러, 한화로 약 6835억원의 손해보상도 청구했다. 언론과 끊임없이 갈등 빚는 트럼프 전 대통령 트럼프가 CNN을 포함한 주력 언론과 갈등을 빚은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2020년 대선 불복 이후 의회 난입사태를 거치면서, 극우 지지층을 선동하는 트럼프의 언행을 두고 언론의 비판이 이어져 왔다. 블룸버그 통신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불복을 선동해 사실상 폭도들을 부추기는 과정을 두고, (현지 언론이) 이를 광범위하게 히틀러에 비유했다”면서 “특히 트럼프는 이민자를 비판하는 모습 탓에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왔다”고 전했다. 한달 앞으로 다가온 중간선거, 예측 불허  한편, 트럼프와 공화당은 오는 11월 치러지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비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통상 중간선거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심판 성격이 강한 만큼 집권당에 불리하지만, 최근의 중간선거 흐름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달 30일 선거 예측 사이트인 ‘파이브서티에잇’은 민주당이 상원을 차지할 가능성을 무려 68%로 전망했다. 조지아주와 네바다주 등 격전지에서도 민주당 현직 의원들이 공화당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를 찍은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NBC방송 조사)이 이런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45%로, 지난달 같은 조사보다 3%포인트 올랐다.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2%로 지난달보다 3%포인트 내렸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했지만, 트럼프 지지율은 퇴임 직후인 지난해 4월(32%) 이후 가장 낮은 34%를 기록했다. 지난 8월과 5월에는 36%였다. 
  • [2030 세대] 여왕이 없는 나라/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2030 세대] 여왕이 없는 나라/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

    영국 1파운드 동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전이다. 작고 두툼해서 손으로 쥐어 보면 누구나 그 매력을 알 수 있다. 흔히 ‘금화’라고 불리는 그 묵직한 느낌이다. 2017년부터 매력의 1파운드는 보통의 1파운드로 바뀌었다. 영국 동전의 또 다른 재미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변하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그것도 끝이 났다. 영국은 잘 알다시피 몇 남지 않은 입헌군주국가이다. 마키아벨리는 늘 그렇듯이, 칼끝처럼 꿰뚫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변화는 언제나 또 다른 변화를 위한 홈을 남긴다.’ 무언가를 애써 고치면 그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따른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혜를 바탕으로 입헌군주제를 주장한 이들이 있다. 작가 C S 루이스는 ‘헐뜯기보단 진단하고, 찬미하기보단 분별하라’고 했다. 그는 군주제를 옹호했다. 군주제를 부정하긴 쉽다. 하지만 인간이 왕을 섬기지 못한다면 백만장자, 운동선수, 영화배우를 섬길 것으로 보았다. 영국의 보수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도 ‘섬김’의 대상을 고민했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평화를 위협한다. 하지만 이를 억눌러선 안 된다. 충성을 바칠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국왕이라 보았다. 좀 극단적인가? 하지만 입헌군주제를 보수주의자들만 옹호한 것은 아니었다. 스크루턴의 논리는 그보다 50년 전 좌성향 작가 조지 오웰이 먼저 꺼냈다. 오웰은 국왕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위험한 감정을 배출시킬 배기 밸브’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파시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충동을 왕실이 해소한 것이, 영국이 히틀러나 스탈린을 면한 이유의 하나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루이스도 윗글을 1943년에 썼다. 절대군주를 열망하며 쓴 글은 아니란 것이다. 영국 총리는 아직도 일주일에 한 번씩 국왕을 찾아가 국정에 대해 보고하고 자문을 구한다. 기자도 보좌관도 없는 자리에서 총리와 국왕은 둘만의 대화를 나눈다. 운이 좋게 태어났다 해서 혜택을 누리는 건 불공정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자를 믿고 섬겨야 할까? 우리는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사람을 가리킬 때 흔히 ‘정치적’이라고 한다. 이 말은 이제 경멸을 담은 욕이 되었다. 반대로 좋아하는 영어단어 중 하나는 ‘dignity’(품위, 격)이다. 영국 여왕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말이다. 처칠, 클린턴, 만델라도 여왕을 만났다. 그녀는 역사였다. 영국 동전엔 단아한 젊은 여성의 옆모습이 새겨져 있다. 시간이 흐르며 점점 목은 짧아지고 턱밑에 조금씩 살이 붙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머리 스타일만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균형을 잡아 주고 그 균형은 아름다운 비례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우리 세대에 더이상 영국 여왕을 만날 일은 이제 없어졌다.
  • 히틀러 콧수염 자랑한 美 의회 난동 가담자에 징역 4년형

    히틀러 콧수염 자랑한 美 의회 난동 가담자에 징역 4년형

    지난해 1월 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의회 난동에 가담한 이들 가운데 가장 특이한 인물로 손꼽히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티모시 헤일쿠사넬리(32)다. 그는 뉴저지주 출신으로 그곳 해군 무기보관소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도 히틀러를 흉내내는 콧수염을 기르고 자랑스럽게 사진을 찍어 여기저기 올렸다. 워싱턴 DC 지방법원의 트레버 맥파든 판사는 22일(현지시간) 헤일쿠사넬리에게 제기된 연방 범죄 혐의 다섯 건 모두에 유죄를 인정하고 실형을 선고했다. 배심원단은 지난 5월 이미 그의 유죄를 평결했다. 맥파든 판사는 그가 의회 난동에 가담한 것말고도 “여러 건의 위해 요소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는 연방방위군으로 11년 정도 복무하고도 나치를 찬양하는 듯한 얼빠진 행동을 했는데도 버젓이 해군 시설에서 근무해 왔다. 더욱이 의회에 난입하는 과정에 정부 요원인 양 신분을 위장했다. 맥파든 판사는 그가 성차별, 인종차별에다 유대인 혐오 발언 등을 한 오랜 이력이 있는데도 의회 난동에 가담한 뒤에야 처음으로 책임을 지게 됐으며, 그것도 처음에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고 개탄했다. 미국 법무부도 이날 선고 공판을 앞두고 여러 쪽의 문서를 통해 그를 조건부 석방하면 안된다고 재판부에 촉구했다. 웃기는 일 중의 하나는 그가 자신을 변호한답시고 자신은 의회 건물인지 모르고 진입했다고 법원에서 진술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의회 난동 당시 한 경찰관을 밀치고 다른 시위 참가자의 진입을 도왔다. 그 경관은 정복 유니폼을 입고 있어 혼동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헤일쿠사넬리는 판사에게 보낸 성명을 통해 의회 난동 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했다. “유니폼을 더럽혔고 나라를 불명예로 추락시켰다. 의회와 경찰 성원에 대해 깊은 사과를 드려야 한다. 은총을 바란다. 추악한 짓을 저질렀다고 말씀드린다.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다.” 이렇다 할 범죄 전력이 없는 그는 “다시는 내 얼굴 볼 일이 없을 것이다. 보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난동 후 얼마 지나지 않을 때 체포돼 수감됐는데 보석을 신청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34명의 직장 동료들은 그가 “유대인과 소수자, 여성들을 박해하려는 극단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항소심 과정에 헤일쿠사넬리는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은 총에 맞는 것이 당연하며 “히틀러였다면 그 일을 끝냈을 것”이란 발언도 서슴찮았다. 캐스린 피필드 지방검사는 그가 혼자만의 “내전을” 치렀으며 난동 참가자들에게 “전진, 전진, 전진을 외쳤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조국에서 제2의 내전이 일어나야 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닉 스미스 변호인은 헤일쿠사넬리의 추악한 발언에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다”면서도 다른 수감자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들었다며 감옥에 보내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연방 검찰은 지금까지 의회 난동과 관련해 870명 이상 체포돼 이 가운데 265명이 사법 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고 밝혔다. 헤일쿠사넬리는 군대 종사자로서 단죄를 받은 일곱 번째 사례라고 BBC는 전했다.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후회하지 않는 인생/미술평론가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후회하지 않는 인생/미술평론가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오스트리아 빈은 문화와 예술이 꽃피는 도시였다. 작곡가 말러와 쇤베르크,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미술가 클림트를 비롯한 숱한 인재들이 활동했다. 이들을 떠받드는 예술 수집가와 음악 애호가, 사교계가 있었다. 지금은 거의 언급되지 않지만, 카를 몰은 빈 미술계의 핵심 인물이었다. 클림트의 친구였던 몰은 클림트가 보수적인 기성 화단에 맞서 분리파를 결성할 때 힘을 합쳤고, 분리파 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신진 예술가들의 전시회를 조직하고 홍보했으며, 예술을 일상생활로 확장한다는 목표를 지닌 빈 공방의 설립에도 관여했다. 몰은 1905년 반고흐의 첫 번째 빈 전시회를 조직하고 그의 작품 ‘예술가 어머니의 초상’(1888)을 사서 자기 서재에 걸었다. 그는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다. 클림트처럼 화려하고 파격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았지만 세련된 풍경화와 실내 그림, 정물화를 남겼다. 그의 그림을 통해 20세기 초 빈 중산층 가정의 모습과 빈의 이곳저곳을 볼 수 있다. 고요한 서정과 조화로운 아름다움이 지배하는 세계. 그는 왜 잊혔을까? 몰은 나치 동조자였다. 그는 평생 유대인을 혐오했고 히틀러를 칭송했다. 그의 딸도 마찬가지였고, 나치당원이었던 사위는 나치 법원의 고위직에 있었다. 1945년 4월 10일 소련군이 빈에 진주했다. 12일 그의 집에 소련군이 난입해 약탈을 자행했다. 그날 밤 몰은 딸, 사위와 함께 독약을 나눠 마셨다. 몰은 작별 편지에 이런 말을 남겼다. “잠들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인생이 허용한 아름다움을 다 가졌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평론집 ‘생트뵈브에 반대한다’에서 작가의 전기에 의존해 작품을 해석하는 실증주의 비평을 비판하고 작품과 작가의 생애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루스트의 이런 견해는 현대 형식주의 비평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작품과 작가의 생애를 어떻게 완전히 분리할 수 있단 말인가. 동료 화가들이 활동을 금지당하고, 더러는 수용소에 끌려가 죽음을 맞고, 히틀러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이 광장에서 불태워지는 가운데 태연히 후회하지 않고 살았던 사람. 그의 단정한 풍경화를 들여다보며 마음이 복잡해진다.
  • [나우뉴스] “일본은 2060년 ‘먼지’ 될 것”…재일 중국총영사관 트위터 논란

    [나우뉴스] “일본은 2060년 ‘먼지’ 될 것”…재일 중국총영사관 트위터 논란

    일본 주재 중국총영사관의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일본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예측한 전문가의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되고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31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관은 지난 9일 트위터에 “일본은 지금까지 경제 대국이었다. 그러나 2060년 중국이나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규모 면에서 일본은 먼지(티끌, ゴミ)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일본어 게시물을 올렸다. 현지에서 해당 게시물이 논란이 되자 주오사카 중국총영사관 측은 이를 삭제했다. 이후 같은 계정의 트위터에 “(문제가 된 게시물은) 전문가가 작성한 미·중·일의 향후 40년간 국내총생산(GDP) 예측을 인용한 것으로 당관의 주장이 아니다”라고 해명하며 “다만 오해를 피하고자 관련 내용을 삭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의 게시물을 본 일본 현지인들은 “국가의 공식 대변인 또는 계정으로서 이런 식의 발언은 부적절하다”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주오사카 중국총영사관이 공식 SNS 계정을 통해 다른 국가를 조롱하거나 비꼬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코로나19 발원국을 두고 논란이 있었던 지난해 8월에는 “여보세요, 미국씨, 들려요? 사실은 그쪽에서 #코로나가 나오건 아닐까?”라는 게시물을 올려 비난을 받기도 했다. 국가가 관리하는 공식 SNS 계정이 일본을 비난하거나 비꼬는 용도로 사용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쟁이 시작된 후 나흘이 지난 2월 28일, 주일 러시아 대사관은 공식 SNS에 일본어로 “일본은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두 번이나 나치 정권을 지지했다. 이전에는 히틀러 정권을,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정권을”이라고 올렸다. 주일 러시아대사관 측은 이로 인해 비난에 휩싸였지만, 이후에도 SNS에 “우크라이나 정권이 자포리자 원전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병사들에게 유독물질을 사용했다” 등의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담은 게시물을 올렸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어로 공식 SNS를 운영하는 재일대사관은 해마다 늘고 있다. 신문은 “대부분 일본과의 교류, 문화, 관광 정보를 소개하는데, 중국과 러시아 등 일부 국가의 재일 대사관 또는 총영사관은 자국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투고하는데 SNS를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