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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의 기후와 여행/이운용 KOTRA 첸나이 관장(굄돌)

    인도는 남북한 면적의 15배 크기다. 넓은만큼 기후도 다양하다. 북쪽 히말라야 일대의 고산 기후,서부 라자스탄의 사막기후,북중부의 건조한 혹서, 남서부의 열대우림 등 여러가지다. 주요도시의 기후를 보면 북위 27도의 수도 델리는 3월부터 6월까지 여름이다. 온도는 평균 42∼43도이며 50도를 넘기도 한다. 이 기간은 비가 없어서 매우 건조하며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희뿌연 모래안개가 온 도시를 덮는다. 영양이 부족한 하층민이 혹서로 사망하는 것도 이 기간이다. 인도인들이 꿈에도 그리는 몬순은 10월에 시작하여 2개월 정도 지속된다. 기온이 38도까지 떨어져 숨통을 터주기는 하나 땀을 많이 흘리게 해 불쾌지수는 더욱 높다. 12월말 3도까지 내려간다. 중서부 해안의 최대 항구도시 뭄바이(구 봄베이)는 북위 19도에 있다. 4∼5월 여름에는 최고 38도,12∼1월에는 최저 18도 정도이다. 6∼8월이 몬순이며 비가 많이 온다. 우리 한국인이 살기 가장 좋은 기후를 가진 지역은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단지인 방갈로이다. 여름에도 35도를 넘지 않아에어콘 없이 생활할 수 있으며 겨울에도 10도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남동해안의 항구도시 첸나이(구 마드라스)는 북위 13도에 있다. 항구도시임에도 불구하고 4∼5월 여름 최고기온이 43도를 오르내린다. 남서해안 도시들이 38도를 넘지 않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인도 대부분 지역의 몬순이 6∼7월인데 반하여 남동해안은 11∼12월이다. 보름간 하루도 그치지 않고 비가 내리기도 하며 도로는 물로 가득찬다. 4∼6월 인도여행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부득이 여행하게 되면 북으로 가지 말고 남으로,그중에서도 남서해안으로 가는 것이 혹서를 피하는 방법이다. 물병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필수다.
  • 한국 등반대 3명 추락사/印 탈라이야 사가르봉

    【뉴델리 AFP DPA 연합】 인도 북부 히말라야산맥의 탈라이야 사가르봉 등정에 나섰던 한국인 등반대원 3명이 숨졌다고 인도 UNI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현지 산악 등반관계자의 말을 인용,6명으로 구성된 한국인 등반대중 3명이 지난달 29일 6,909m의 정상을 200여m 앞두고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떨어지면서 로프가 끊어지는 바람에 골짜기로 추락했다고 전했다. 숨진 등반 대원은 단지 金과 崔,沈씨라고만 알려졌으며 희생자중에는 등반 대장도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다.
  • 고은 신작시집 ‘속삭임’ 출간/40년 이어온 크고 넓은 詩세계

    ◎히말라야 순례 1년만에 71편 선봬/자연과 끝없는 대화통해 자아찾아 “이 길밖에/다른 길 몰랐다/지난 40여년/나는 늘 모자란 울음이었다/오늘은/조그만치 남아 있는 목마름으로 앞산을 본다”(‘어느 날’) 올해는 고은 시인의 시 나이가 불혹이 되는 해,그가 지난해 히말라야를 순례한 뒤 1년만에 ‘속삭임’(실천문학사)이란 신작시집을 내놓았다. “히말라야를 다녀온 뒤 심신이 상해 무위도식하기를 1년여,그 공백 가운데서도 시마(詩魔)는 야릇하게 늘어붙어 하나의 시집을 낳았다. 외침이나 타령이라기보다 속삭임인 듯하다”는 게 그의 말. 고은의 시가 줄곧 우리 문학의 중심에 서왔음을 감안하면 그의 시력(詩歷) 40년은 단순한 개인적 의미를 넘어 문학사적으로도 큰 의의를 지닌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노래섬’‘측백나무울타리’‘히말라야의 학’‘정선 갈래사’‘제주 사라봉의 밤’‘소 찾는 길(尋牛十圖)’‘어느 날’ 등 71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그중에는 지난해 가을 히말라야를 여행하면서 얻은 시편들도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늙은 바람이 분다/긴 시간의 뒤/학 한 마리가 활개칩니다…마침내 북인도 비하르주 마른 숲 언저리에/일제히 내려와 숨차/여기저기 앉았습니다/처음에는 손님이었고/다음에는 서먹서먹 주인이었습니다…”(‘히말라야의 학’) 히말라야,그것은 어느새 시인의 가슴에 둥지를 틀었다. 시인은 자신을 둘러싼 자연과의 끝없는 대화를 통해 궁극의 자신을 찾는다. 그것은 곧바로 순수에의 동경으로 이어진다. 순수가 안겨주는 혹은 순수가 내포하고 있는 지극한 맑음. 거기서 시인은 삶의 본질을 읽는다. 93년의 인도 기행문집 ‘신왕오 천축국전’에서도 보듯 시인에게 있어 ‘떠남의 미학’은 언제나 삶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귀결된다. 고은의 문학세계는 너무 크고 넓어 요령부득이라고들 얘기한다. 거대한 사상적 보폭 때문에 자잘한 삶의 결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다산성(多産性)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도 고은의 시가 ‘큰 시’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의 시편은 늘 새롭다. 섣불리 흉내내기 힘든 삶의 흔적이 묻어 있는 탓일까. 시작생활 40년을 맞아 내놓은 이번 시집은 고은 시인의 시적 발자취를 다시 한번 더듬어 보게 한다. 한때 승려의 길을 걷다 환속한 그는 문단 데뷔 2년 뒤인 60년 첫시집 ‘피안감성’을 내며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다. 60년대 허무의 정서에 뿌리를 둔 작품을 발표하던 그는 70년대 들어 암울한 정치현실에 눈 뜨면서 역사의식이 깃든 시들을 토해낸다. 80년대 후반부터 차례로 내놓은 서사시 ‘만인보’와 ‘백두산’은 고은 문학세계의 방대함과 시적 포괄성을 한 눈에 보여주는 대작들이다. 가파르게 치달아온 고은의 삶,그것은 항상 그의 시세계와 맞닿아 있다.
  • 네팔 카트만두(세계 문화유산 순례:72)

    ◎삶도 죽음도 없는 ‘지혜의 사원’/스와얌부나트 스투파에 새긴 ‘부처의 눈’/만물을 꿰뚫어 보는 ‘all­seeing eyes’/살아있는 여신 쿠마리는 종교 초월 숭앙받고/황금사원 옆에는 영원을 흐르는 바그마티강이… 【카트만두(네팔)=金鍾冕·金明國 특파원】 히말라야의 준봉을 우러러보고 있는 네팔왕국의 수도 카트만두. 네팔 사람들은 지금도 카트만두에 가는 것을 “네팔로 간다”고 말한다. 산간오지의 네팔인들에게 카트만두 분지는 곧 동경의 땅이자 마음의 주인이다. 그곳에는 깍아지른 듯한 계단식 밭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농사 지을 땅이 있고 유서깊은 사원들 또한 즐비하다. 전설에 따르면 카트만두 분지는 원래 하나의 커다란 산정호수였다.그런데 만주슈리 즉 문수보살이 나타나 ‘지혜의 칼’로 산허리를 자르고 물을 퍼낸 뒤 육지로 일궈냈다는 것이다.그때 맨처음 수면 위로 빛을 내뿜으며 떠오른 곳이 바로 카트만두의 성지 스와얌부나트이다. ○룸비니 버금가는 성지 스와얌부나트는 지금부터 2천여년 전에 세워진 불교사원이다.카트만두 시내에서 서쪽으로 2㎞쯤 떨어진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다.사원 입구에 가루다상이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보면 힌두사원도 겸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가루다는 힌두교의 신 비슈누가 타고 다닌다는 상상의 새이다.사원은 온통 야생 원숭이들의 울음소리로 왁자했다.‘멍키 템플’로 불릴 정도다.스와얌부나트로 오르는 길은 300개가 넘는 가파른 돌계단으로 이어져 있다.카트만두의 평균 고도가 1천400m라는 데 생각이 미치니 숨이 더욱 차올랐다. 쏟아지는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허위단심 사원에 올랐다.요란하게 치장된 거대한 탑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네팔 불교에서 룸비니 동산 다음으로 신성시되는 스와얌부나트 스투파였다.솔도파(率堵婆)라고도 불리는 스투파는 불사리를 봉안하거나 절의 장엄함을 나타내기 위해 쌓은 탑을 말한다.하지만 이곳의 스와얌부나트 스투파는 여느 스투파와는 달랐다.무엇보다 눈길을 끈것은 스투파 상단부 4면에 새겨진 사방을 응시하는 부처의 눈이었다.만물을 꿰뚫어 본다는 뜻에서 사람들은 그것을 ‘올 싱 아이즈(all­seeing eyes)’라고 부른다.대승불교에서는 과거겁과 현재겁,그리고 미래겁에 걸쳐 각각 1천명의 부처가 출현한다고 한다.이곳의 스투파는 과거겁의 한 부처인 본초불(本初佛)을 위해 세워진 것이다. 스투파 주변은 참배객들로 북적댔다.특히 부처의 가르침을 좇는 사람들은 스투파의 둘레를 몇번이고 돌고 또 돌았다.스투파를 한바퀴 돌면 불경을 1천번 읽는 것만큼의 공덕을 쌓는 일이라는 게 그들의 믿음이다.스투파 옆에 죽 늘어서 있는 기도용 휠 ‘마니차’ 주위에도 순례자들의 행렬은 이어졌다.그들은 라마교의 진언(眞言)인 ‘옴마니반메훔’이 새겨진 원형의 마니차를 연신 돌려댔다.마니차를 돌리는 것은 불경을 외우는 것과 같은 공덕행(功德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이 수수께끼 같은 사원에 서면 누구라도 성자가 되고 현자가 될 법했다. 스와얌부나트 스투파의 ‘예지의 눈’을 멀리서 다시 보았다.순간 네팔의 살아 있는 여신 쿠마리의 이마에 붙인 티카(tika)가 떠올랐다.쿠마리에게 있어 그것은 삼라만상의 이 법을 훤히 꿰뚫는 ‘제3의 눈’이다.기자는어느새 쿠마리의 자장(磁場)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발걸음은 이미 쿠마리가 살고 있는 쿠마리 바할로 향하고 있었다.카트만두 시내의 남쪽 뉴 로드라 불리는 신생 거리를 지나 바산트풀 광장에 닿았다.쿠마리 바할이 모습을 드러냈다.작은 창이 달린 3층의 낡은 목조건물이 세월의 무게를 전해줬다. ○불경 1천번 읽는 공덕 고대 경전을 보면 쿠마리의 신체조건은 까다롭기 짝이 없다.쿠마리의 신체는 반얀(banyan,벵골 보리수의 일종)나무와 같고,허벅지는 사슴의 그것과 같으며,목은 고둥 같아야 하고,눈꺼풀은 소의 그것과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쿠마리 바할에서는 쿠마리를 볼 수 있지만 사진촬영 만큼은 엄격히 금했다.영화에서나 보던 쿠마리는 실제 어떤 모습일까.사원의 종이 울리고 비둘기 몇마리가 푸드덕 날아오르더니 마침내 2층 창문으로 쿠마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석류꽃같이 빨간 입술에 조붓한 어깨,호리호리한 목선,게다가 기품까지 갖췄지만 표정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쿠마리.아침이슬처럼 잠시 나타났다 이내 몸을 숨겨버리는 쿠마리는안쓰러움 바로 그것이었다.네와르족의 어린 소녀 중에서 선발되는 쿠마리는 힌두교 탈레주 여신의 현신(現神)으로 여겨지지만 종교를 초월해 두루 숭배받는다.나이가 들어 초경을 치르면 쿠마리는 사원을 떠나야 한다. ‘목조의 절’이라는 뜻을 지닌 카트만두에서는 어디를 가도 사원과 마주친다.그 중에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힌두교의 성지 파슈파티 사원이다.카트만두 시내에서 동쪽으로 5㎞ 지점에 위치한 이 황금빛 2층 사원은 힌두교도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정면에는 시바신이 타는 성스러운 소 ‘난디’상이 수호신처럼 웅크리고 있다.이곳은 힌두교의 성인 사두(sadhu)나 요기들에게는 메카와 같은 존재다. 그러나 파슈파티를 한층 성스럽게 만드는 것은 사원을 휘감고 흐르는 바그마티 강이다. 이 강은 흘러 흘러 인도의 강가(Ganga,갠지스강)와 만난다.바그마티 강 역시 강가처럼 가트(ghat,화장장)로 성역시된다. 매캐한 화장 연기속에서 태연히 머리를 감는 여인,식기를 닦는 아낙,의지가지 없이 병들어 누워있는 노인…. 이들에게는 더이상 죽음도 삶도 없다.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 종교의 비의(秘義)만 숨쉴 뿐.바그마티 강은 오늘도 영원을 안고 흐른다. ◎여행 가이드/대여 자전거 이용 편리/통행규제 심해 주의를 카트만두 시내를 여유 있게 둘러 보려면 대여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개조한 오토 릭샤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카트만두 시내의 일방 통행로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자전거도 규제를 받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스와얌부나트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하나는 카트만두 시내 서쪽에 있는 국립박물관 앞을 거쳐 가는 것이고,또 하나는 구왕궁 앞 듀버 광장에서 서쪽으로 비슈누마티 강의 조교(弔橋)를 건너서 가는 것이다.이국정취를 만끽하고 싶다면 후자를 택하는 것이 좋을 듯.카트만두에는 많은 여행사들이 밀집돼 있다.이들은 카트만두 성지 순례 외에 트레킹이나 래프팅 등도 주선해준다.
  • 김욱동 교수 펴낸 “문학 생태학을 위하여”

    ◎문학적 관점서 본 환경오염/베어지는 숲들… 오염되는 바다… 아름다운 녹색 자연 문학으로 지킬 수는 없을까… 1980년대가 ‘탈이념의 시대’였다면 1990년대는 ‘환경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사회생태학·녹색정치학·생태철학·생태윤리 등 사회·인문과학 각 분야에서 불고 있는 ‘녹색 바람’은 이러한 시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그러나 문학쪽에서 만큼은 이 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서양문학가들은 자연을 정복이나 착취의 대상으로 삼아온 서구 세계관에 길들여져 있고,동양문학가들은 주로 경제개발의 피해나 정치 이데올로기 문제에 주목해 왔기 때문이다.서강대 영문과 김욱동 교수가 최근 펴낸 ‘문학 생태학을 위하여’(민음사)는 생태파괴와 환경오염 문제를 문학적 측면에서 다룬 책으로 관심을 모은다. ‘문학 생태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미국의 문학이론가 조셉 W.미커다.그는 이 분야의 고전이 되다시피한 책 ‘생존의 희극’에서 문학이 생태위기 극복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그 중에서도 시는 특히 생태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데 가장 걸맞는 장르라는 것이다.그동안 생태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온 시인들로는 이른바 ‘샌프란시스코 문예부흥’을 주도한 비트 시인 게리 스나이더를 비롯,애드리엔 리치,시어도어 로스케,W.S.머윈 등 미국 시인들이 꼽힌다.특히 스나이더의 작품집 ‘신화와 텍스트’에 실린 시들은 생태시의 전형으로 흔히 인용된다. “숲들이 베어진다/잘려나간다/아합의 숲이,큐벨레의 숲이/…제아미의 소나무도,하이다의 히말라야 삼목(杉木)도/이스라엘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잘려나간다/…루터와 웨이어하우저에 의하여 밀려나간다” 제목이 붙어 있지 않은 스나이더 시의 한 대목이다.이 시는 무엇보다 낯선 고유명사가 많이 등장해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의 주인공으로 더 잘 알려진 아합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요부 이제벨의 남편이고,큐벨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으로 곡물의 결실과 다산(多産)을 관장하는 신이다.하이다는 캐나다와 미국 알래스카 지방에 살아온 인디언 종족의 이름.또 웨이어하우저는 미국의 유명한 목재 가공업자 이름이고, 제아미는 15세기 일본의 전통극 노(能)의 배우 겸 극작가 그리고 비평가로 활약한 인물이다.스나이더가 이렇게 낯선 이름들을 장황하게 늘어 놓는 데는 그 나름의 까닭이 있다.자연파괴나 환경오염이 너무나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왔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스나이더는 “숲을 지키는 것이 곧시인의 임무”라고 단언했다. 이 책의 일관된 주제는 ‘문학의 녹색화’다.왜 녹색인가.녹색의 프리즘을 통해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그것은 한 마디로 인간 정신의 가장 고귀하고 순수한 영역에 속한다.이를테면 풀 한 포기의 아픔을 걱정하는 마음,대지를 어머니의 가슴으로 여기는 마음,물고기의 물길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우주적 연민의 정조로 모든 존재를 성찰하고자 하는 마음 같은 것들이다.이런 문맥에서 볼 때 정현종의 “구름은 실로 우리 살의 씨앗/우리 피의 씨앗”(‘구름의 씨앗’)이라는 시 구절은 한층 귀하게 읽힌다. 이 책에서는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생태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룬다.생태 페미니즘은 가부장 질서를 무너뜨리는 전통적인 페미니즘의 테두리를 넘어 생태 문제에 눈길을 돌린다.생태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발전 단계에서 볼 때 가장 뒤늦게 태어난 이론이다.물론 테오도르 아도르노나 막스 호르크하이머,허버트 마르쿠제 등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가들이나 페미니즘의 대모로 불리는 시몬 드 보부아르에게서도 생태 페미니즘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생태 페미니즘은 1970년대 초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생태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도본이다.‘페미니즘이냐 죽음이냐’라는 제목의 책에서 도본은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여성의 잠재력이 매우 유용함을 역설했다.이 생태 페미니즘이 비평담론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들어서다. 문학 생태학이라는 말은 한편으론 모순어법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러나 순종교배보다 잡종교배를 통해 종종 우량한 후손을 얻을 수 있듯이 문학도 자연과학과의 결합을 통해 창조적인 새 이론을 낳을 수 있다.그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같은 생태위기 시대에 문학 생태학은 더욱 조명받아 마땅하다.“모든 이론은 회색이다.영원한 것은 저 생명의 나무의 녹색뿐이다”라는 독일 시인 괴테의 말은 무척이나 시사적이다.
  • 8천m峯 6번째 등정… 또 세계기록/박영석씨,시샤팡마봉 올라

    산악인 박영석씨(35 동국대OB)가 히말라야 시샤팡마봉(8천12m)등정에 성공,자신이 보유한 8천m급 봉우리 연속등정 세계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해 10월19일 세계 4위봉인 히말라야 로체(8천525m) 정상에 올라 세계 첫 ‘연간 8천m급 5개봉 등정’에 성공한 박씨는 26일 하오 7시 시샤팡마봉에 올랐다고 알려왔다.이로써 박씨는 지난해 4월27일 다울라기리(8천172m)를 시작으로 만 1년동안 8천m이상 봉우리 6개를 차례로 정복하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박씨는 지난해 다울라기리를 처음 오른 것을 시작으로 가셔브룸Ⅰ(8천68m),가셔브룸Ⅱ(8천35m 9월),로체 등 5개봉을 7개월만에 정복해 96년 멕시코의 카를로스 카르솔리오가 세운 ‘한해 4개봉 연속등정’ 기록을 경신,세계 산악계를 놀라게 했었다.
  • 중국 티벳 라싸 포탈라궁:하(세계 문화유산 순례:53)

    ◎불상·경전 가득… 세계적 ‘불교 박물관’/백궁과 홍궁엔 방 모두 1천여개/산자와 죽은자 함께 거처하는 궁전/네팔 등 라마불교 신도들 줄이어 참배 포탈라는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하는 궁전이다.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죽어서도 생전에 살던 포탈라를 떠나지 않았다.이들 산자와 죽은자를 같이 경배하기 위한 순례객의 발길이 늘 포탈라로 이어졌다.티벳은 물론 사천성과 네팔,스리랑카 등에서 온 라마불교 신도들로 붐비는포탈라.달라이 라마가 앉았던 의자에 입맞추는 순례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달라이 라마가 살아서 쓰는 궁전은 백궁이다.백궁은 ‘최상의 행복궁’이나 ‘영원한 생명의 궁’ 따위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달라이 라마는 백궁 가장 높은 층인 ‘영원한 생명의 궁’에서만 잠을 잤다.백궁의 금정에 올라 바라보는 히말라야는 신비로웠다.투명한 코발트 색깔과 어울린 만년설 산자락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종교적 심성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포탈라에는 다른 불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영탑전이 있다.영탑은 달라이 라마의 시신을 모신 탑인데,전각안에 봉안되었다.화장한 뒤 뼈만 모아 넣어두거나 약품처리한 시신을 그대로 넣어두는 경우도 있다.홍궁맨 뒤쪽 아래층의 영탑전에는 5세와 7∼9세,13세 등 다섯 달라이 라마의 영탑이 자리했다.그중에 5세와 13세의 영탑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달라이 라마 시신 모여 그 화려한 5세 달라이 라마의 영탑은 죽은지 5년뒤인 1690년에 조성되었다. 영탑은 기단에 호리병을 올려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14.85m에 이르는 탑신은 동과 은으로 만들고 황금칠을 올렸다.주옥과 산호 따위의 보석을 군데군데 박아놓아 야크기름이 타는 불빛을 찬란하게 반사했다.은이 1만량,황금이11만9천량이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다.13세의 영탑은 1934년에 완성되었으나 역시 찬란했다. 영탑전은 홍궁 다른 공간에도 하나가 더 있다.그 자라는 홍궁 후문께 서편강당 뒤쪽이다.달라이 라마 5세와 10세,11세와 12세의 영탑이 두 방에 봉안되었다.그런데 영탑전과 이웃한 서편강당에서는 1959년까지만해도 달라이 라마의 음성이 들렸다.그 음성은 바로 포탈라에 사는 수백명 승려들에게 들려준 달라이 라마 14세의 설법이었던 것이다. ○황금 11만9천량 사용 포탈라에서 만난 젊은 라마승은 영어로 이런 말을 했다.“이 강당에서는 59년 이후 어떤 행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모든 것이 정지돼 있는 장소다”라고….그래도 포탈라에는 방마다 촛불이 꺼지지 않았다.달라이 라마는 없지만 라마승과 순례자들이 켜놓은 촛불은 그냥 타고 있었다.그렇듯 몸을 불 사르는 촛불에서 오늘의 라마불교를 다시 보았다. 달라이 라마 14세가 망명한 1959년 이후 변화한 공간은 또 있다.백궁의 동쪽 정원이다.운동장처럼 넓은 이 정원에는 절기가 바뀔 때마다 승려와 티벳사람들이 천여명씩이나 몰려들었다.그러면 달라이 라마가 의례히 백궁 발코니로 모습을 드러냈다.종교의식을 베풀고나서 민속놀이를 즐기는 군중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그 정원이 지금은 빈뜰로 남아있다. 백궁과 홍궁을 합뜨려 포탈라는 1천개가 넘는 방을 갖추었다.이 가운데 일반에게 공개하는 방은 30여개 뿐이었다.동쪽 정원에서 3층 정도의 계단을 올라가서 만난 달라이 라마 집무실도 그런 비공개 공간의 하나다.달라이 라마가 정무와 종무를 본 집무실은 명상의 공간이기도 했다. 백궁의 여러방은 ‘영원한 덕의 장소’니 하는 따위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그 여러방을 잇는 복도와 회랑에는 티벳사와 티벳불교사,역대 달라이 라마의 일생을 담은 벽화들이 가득했다.그리고 방마다에는 달라이 라마들이 앉았던 자리를 보존한 가운데 달라이 라마들의 소상을 세워두었다.한쪽 벽에는 닫집을 만들어 불상을 모셨다.또 다른 벽에는 경전함을 덧대어 천정 꼭대기 까지를 불경으로 채웠다.이들 경전은 티벳어,몽골어,만주어 등 소수민족 언어로 되어있다. ○30여개 방만 일반 공개 그 어마어마한 장서들은 라마불교권 학승들을 포탈라로 불러들였다.포탈라로 와서 먼지를 털어가며 경전을 넘기는 학승 모두가 불심에 흠뻑 젖은채 삼매경에 빠져있다.포탈라를 가리켜 흔히 세계적 불상박물관,또는 세계적 불교박물관이라 하는 까닭을 알만 했다.그것은 티벳불교가 정치를 손에쥔 종교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어떻든 포탈라 홍궁에는여러 부처 이름을 딴 방도 곳곳에 널려있다.미륵보살전이나 천수관음보살전,관음보살전과 만다라전이 그것이다.이들 불전에서는 야크기름을 태우는 불빛속에 순례자들의 참배가 계속되었다.그 많은 부처의 상중에서도 티벳불교의 핵심은 관세음보살상이다. 그러나 관음보살전 규모는 의외로 적었다.3구의 관음보살상 가운데 한구는 키가 1m 남짓했는데 7세기쯤에 만들었다고 한다.금물을 입힌 단향목불상이다.티벳인들은 이 보살상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저절로 관세음보살 모양을 하게 된 것으로 믿고 있다. ◎여행가이드/해발 3,700m… 두터운 옷 준비를 티벳은 3천∼7천m에 이르는 고산지대다.포탈라궁이 있는 라싸도 해발 3천700m나 된다.건강한 사람도 도착 첫날은 아무일도 하지 말고 호텔방에서 누워쉬어야 할 정도다. 티벳 여행의 적기는 7·8월 두 달이다.9월부터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산소의 양도 10%가량 줄어들기 때문에 여행길이 더욱 고통스럽다.고산지대임을 고려,두터운 옷 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외국인의 티벳행은 현지 정부의 허가증이 있어야 비행기표를 살 수 있다.사천성의 성도에서만 라싸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다.반면 일주일에 하루(보통 일요일) 2∼3편씩 라싸에서 북경을 가는 비행기가 운행되지만 북경에서 라싸행은 없다.북경-성도 비행기는 왕복기준 2천3백위안이고 성도에서 라싸까지는 2천4백위안이다.북경서 라싸가는 비행기만도 4천7백위안(49만원상당)이 든다. 공까공항에서 라싸와 제2도시인 르카차 등으로 다니는 버스가 있다.포탈라궁은 티벳의 주요 여행코스다.매일 오전만 개방한다는 사실에 맞추어 여행계획을 짤 필요가 있다.
  • 중국 티벳 라싸 포탈라궁(세계 문화유산 순례:52)

    ◎히말라야운산의 웅대한 ‘티벳성전’/7세기 통일티벳왕,아내 당 공주 맞아 대역사/높이 117m 폭 110m 길이 360m 13층 왕궁 중국 서장 자치구 티벳의 첫도시 랏사를 ‘태양의 도시’라 했다.만년설이 뒤덮인 히말라야산맥의 산자락에 둘러싸인 해발 3천700m의 고지라 태양이 가가워서 그랬을까.사천분지와 티벳고원을 지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나무 한 그루,풀 한 포기 없는 척박한 산맥과 히말라야의 설산이 펼쳐졌다.랏사는 그런 산자락에 둘러싸인 작은 평지위에 있다.평지 가운데 작은 산 위에서는 포탈라의 황금빛 지붕이 번쩍였다. 티벳 공까공항서 랏사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40여분이 걸렸다.산 허리를 깍아 어렵게 닦아놓은 구절양장(구절양장)의 길가 바위에는 불상들을 새겼다.그리고 5색의 타르초 깃발 너머로 티벳불교의 상징물인 코르텐(종탑)들이 시야로 들어왔다.포탈라는 멀리서 보면 거대한 설산에 안겨 있다.그러나 랏사로 들어오면 포탈라는 모든 것을 압도했다.과연 세계 10대 건축물다운 포탈라는 마포르산(홍산)언덕 위에 솟아 있다.13층에 높이 117m,폭은 110m,동·서의 길이가 360m나 된다. ○해발 3,700m 고지 위치 포탈라궁 건물 정상은 황금을 입힌 전통양식의 구리기와 지붕 5개로 이루어졌다.그리고 건물 앞에 평평한 공간을 배치했다.순금으로 도금한 번쩍이는 지붕 금정을 늘상 이고 있는 포탈리궁에서는 랏사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지난 1천여년동안 티벳인들의 정신과 육체,삶과 영혼을 지배하던 권위와 신비가 담긴 영력의 장소이기도 했다.전체 넓이가 36만㎡에 이르는 궁은 남쪽 출입구를 제외하고 성벽과 담으로 둘러싸여 바깥세상과 차단됐다.남쪽문을 나서면 곧바로 연결되는 계단이나 서쪽의 가파른 비탈길로 오를수 있다. 궁궐이 있는 마포르산 밑으로는 티벳군 총사령부의 벙커다.그리고 한변이 10여m를 넘는 대형 걸개그림 탱화를 보관해두는 거대한 창고도 마포르산 밑에 마련했다.뒷 정원격인 용왕담에는 물결이 잔잔하다. 포탈라궁은 우리 신라시대인 7세기에 건설됐다.티벳의 역사와 티벳인들의 기원을 담은 성전이자 궁궐이다.인도불교가 티벳에 들어온 것은 5세기 무렵이다.그 인도불교는 티벳 토속의 원시무속 종교인 본교와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였다.그리고 나서 티벳 특유의 종교로 자리매김한 라마불교의 역사도 이 궁에 서려 있다.그런 곡절속에 포탈라의 주인은 세속 권력의 챔피언인 황제에서 라마불교의 일인자인 달라이 라마로 바뀌었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의 거처이자 라마불교의 사원이 됐다.포탈라란 이름은 본래 ‘관음의 성지’란 뜻이다.이 궁은 티벳 각 부족과 지역을 통일,강력한 티벳왕국(토번)을 세운 송첸캄보가 631년에 지었다.처음 1천간 규모로 지었는데,당시 당나라 황실의 문성공주를 아내로 맞기 위해 이 궁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그러니까 포탈라궁은 세속의 티벳왕궁이었던 것이다. ○세계 10대건축물 명성 그러나 각 부족과 지방 분열로 왕권의 공백이 생기면서 세속권력까지 장악한 라마불교의 지도자가 궁을 접수했다.그뒤 왕궁이란 기능말고도 사원 기능을 추가하고 랏사 중심지에서 떨어진 산속 드레풍사원(철봉사)에 살던 달라이 라마가 들어왔다.달라이라마 5세때인 1645년 일이다.오랜 분열과 내전,벼락등으로 폐허화한 포탈라를 접수한 달라이 라마 5세는 궁의 성벽과 성루등을 재건했다. 달라이 라마 5세가 궁을 재개한 것은 정교합일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신권뿐 아니라 세속권력마저도 장악한 달라이 라마는 1690년 오늘날 사원으로 쓰는 홍궁을 따로 착공,1693년 완성했다.그리고 오늘날 라마교의 상징인 5개의 금정을 추가로 세웠다.궁의 외벽은 흰색과 붉은색을 칠해 백궁과홍궁을 구분했다.그래서 백궁은 달라이 라마가 사람을 만나고 정무를 돌보고 생활하는 공간으로 쓰게 됐다.또 홍궁은 지금까지 사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궁에는 대불만도 1천구가 봉안됐다.작은 불상까지 합하면 수만점이 넘을 것이란 추산이다.여느 부처상과 달리 포탈라궁의 부처상은 화려했다.흥미로운 현상은 역대 달라이 라마의 소상이 더 눈에 띄거니와 달라이 라마의 소상을 모신 각이 불상을 모신 불전에 비해 훨씬 많다는 점이다.이는 라마 불교의 특색이기도 하다.부처가 달라이 라마로 환생한 것이라고 믿는 환생설을 바탕으로 달라이라마를 생불로 추앙하고 있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 거처·사원 홍궁사원의 중카바와 역대 달라이 라마 소상들은 한결같이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쓰고 있다.중카바는 역대 달라이 라마의 뿌리로 달라이 라마 2세가 그의 직계 제자다.지금 미국에 망명중인 달라이 라마 14세를 비롯한 모든 달라이 라마들이 그의 법통을 이은 후계자인것이다.중카바는 14세기에 라마교를 개혁하고 이른바 격로파를 창시한 인물이다.그러니까 아마교를 오늘의 모습으로 완성한 이가 그다. 중카바가 이끈 격로파의 승려들은 노란색 고깔모자를 썼다고 한다.그래서 황모파 또는 황교파라고 하는 이들은 라마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이들 중카바와 역대 달라이 라마들의 지위가 부처에 버금갈정도로 신격화한 것도 결로파 세력이다.포탈라 홍궁에서 만난 중카바와 달라이 라마 소상들은 라마교가 어떤 유형의 종교인가를 한번 더 확인시켜 주었다.
  • 인도 엘로라(세계 문화유산 순례:48)

    ◎불­힌두­자이나 3교 34개 석굴 웅대/6∼11세기에 걸쳐 2㎞ ‘신전’ 교별로 대역사/부처좌상·힌두여신상·마하비라상 등 안치 아잔타 석굴이 섬세한 벽화로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다면 엘로라의 석굴은 웅장한 조각으로 사람들을 압도한다.아잔타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행은 엘로라로 향했다.아잔타에서 엘로라까지는 약 66㎞ 거리.인도산 택시 ‘앰배서더’에 몸을 실었다.엘로라로 가는 데칸고원 길은 미시령 고개 만큼이나 굽이굽이 이어졌다.차창 밖으로 보이는 데칸의 산허리는 레구르 토양 탓인지 온통 검붉은 빛이었다.길가에 듬성듬성 볼품없이 서있는 ‘베니얀 트리’ 또한 원숭이 볼기처럼 불그죽죽해 묘한 조화를 이뤘다.2시간 남짓 달렸을까.완만하게 경사진 바위언덕 위로 거대한 일자형의 동굴 무더기가 보였다.엘로라 유적이었다. 엘로라에는 모두 34개의 석굴이 장장 2㎞에 걸쳐 늘어서 있다.아잔타 석굴이 불교석굴로만 이뤄진데 비해 엘로라 석굴은 불교와 힌두교,그리고 자이나교 석굴이 섞였다.불교석굴은 맨 오른편 1굴에서 12굴까지로 인도에서 불교가 점차 빛을 잃어가던 6세기 무렵부터 8세기초에 걸쳐 조성됐다.이 불교석굴들에 이어 6∼9세기경에 건립된 힌두교 석굴이 13굴에서 29굴까지 자리잡았다.30굴에서 34굴까지는 8∼11세기에 걸쳐 자이나교도들이 만든 석굴로 추정된다. ○1번∼12번굴 불교석굴 엘로라의 불교석굴은 10굴만 빼고는 모두 승려들이 거주하면서 예배하는 공간을 갖춘 비하라식으로 되어있다.특히 5굴은 너비가 35.6m,길이가 17m나 되는 엘로라 최대의 비하라 석굴이다.24개의 기둥으로 떠받쳐진 석굴 내부의 닫집인 감실에는 부처의 좌상과 관음보살,다라보살,미륵보살 등이 가득했다.석굴안에는 조명시설이 없어 구석구석을 관찰하기가 쉽지 않았다.다행하게도 굴 입구에는 알류미늄 판으로 햇빛을 반사시켜 안을 살펴볼 수 있도록 배려한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그 몫은 으레 추레한 행색의 인도 노인들 것이었다.비록 가난하지만 신이 정해준 운명의 길을 아무런 저항없이 걸어가는 그들의 얼굴에는 정신적 풍요가 넘쳤다. 엘로라의 불교석굴들에서는 아잔타석굴에서와는 달리 불교만의 독특한 색깔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불상을 중심으로 힌두교의 여러 신들이 모셔져 있는가 하면 불상을 비슈바카르만,즉 천지창조의 주역인 힌두신으로 숭배하는 경우도 있었다.힌두교의 영향을 특히 많이 받은 불교석굴은 제6굴이다.석굴 문에 새겨진 힌두교의 강가 여신과 야무나 여신이 이방인을 맞았다.제단의 좌불상 옆에서는 힌두 여신 사라스바티도 만났다.부처와 힌두 여신의 ‘행복한’ 공존….그 옛날 신들이 함께 어울린 서양 헬레니즘 시대의 제신습합현상이 연상됐다.인도에서 불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엘로라 불교석굴은 종교야말로 ‘영혼의 나라’ 인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읽게 하는 단서임을 분명히 해주었다. ○카이라시시원 규모웅장 비교적 단순한 구조와 장식을 지닌 불교석굴과는 달리 힌두교 석굴은 웅대하면서도 고도의 기교를 살린 화려한 조형미가 두드러졌다.그 중의 백미는 카이라사나타 혹은 카이라시 사원으로 불리는 16번굴이었다.8세기 중엽 라쉬트라쿠타 왕조에 의해 공사가 시작돼 150여년에 걸쳐 만든 이 사원은 깊이가 83m,폭이 46m,높이가 35m에 이른다.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면적의 2배,높이는 1.5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당시 인도사람들의 평균수명이 30세 전후였다고 하니 적어도 수대에 걸친 대역사였음에 틀림없다.이 석굴은 전체가 하나의 바위덩어리를 깎아 만든 모놀리스다.더욱 경이로운 것은 바닥에서부터 위로 깎아 올라가며 만든 것이 아니라 천정에서부터 바닥으로 쪼아 내려오면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3층으로 된 건물 바깥벽에는 힌두교 신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온갖 형상의 부조물들이 장식돼 정신이 아뜩했다.특히 눈길을 끈 것은 힌두교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를 형상화한 부분이었다.‘라마야나’에 나오는 악마 라바나는 히말라야에 있는 시바신의 거주지 카이라시 산을 통째로 들어올려 역발산기개세를 뽑낸다.이에 시바신의 아내인 파르바티는 화들짝 놀란다.그러나 시바신은 라바나가 치켜든 산을 한쪽 발로 지긋이 내리눌러 그를 꼼짝달싹 못하게 한다는 내용이다.힌두사원의 조각들은 이처럼 시바신의 위업이나 ‘링가 워십’,곧 남근숭배를 다룬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자이나교 석굴 조각미 정교 카이라사나타 사원에서 북쪽으로 500m쯤 가면 자이나교 석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북쪽 끝에 주로 몰려 있는 자이나교 석굴은 힌두교 석굴처럼 힘찬 느낌을 주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정교한 조각미를 엿보게 했다.자이나교 동굴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것은 32번 동굴이다.베다신화의 주신인 인드라의 회의장으로 알려진 이곳에는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라가 안치됐다.마하비라의 상은 부처의 형상과 같았지만 반가부좌에 아무런 옷도 걸치지 않은 점이 달랐다. ◎여행가이드/현지 호텔 1곳뿐… 육식식단·술집낀 식당 이용을 엘로라로 가기 위해서는 봄베이 북동쪽에 위치한 관광기지 아우랑가바드를 기점으로 삼는 것이 가장 편하다.아우랑가바드에서 엘로라까지는 30㎞ 거리로,상오 6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지방버스편이 있다.요금은 8루피.엘로라의 버스정류장은 16번 동굴인 카이라사나트 사원앞 광장에 있다.이 사원앞 광장에서 북쪽으로 나 있는 포장된 길은자이나교 동굴들이 모여있는 북쪽끝과 연결된다.엘로라의 숙소사정은 그다지 좋지 않다.‘카이라스’라는 이름의 호텔이 단 한개 있다.이곳에서는 육식식단을 갖춘 술청 낀 식당도 이용할 수 있다.
  • “장애 한계 극복 한다”/시각장애인 히말리야 등반대 발대식

    시각장애인으로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에 도전하는 히말라야 아일랜드 피크(6천160m) 원정대(대장 이태균·38) 발대식이 26일 하오 서울 강동구 상일동 한국 시각장애인 복지회관에서 열렸다. 원정대는 시각장애인 9명을 포함,전문산악인 12명,현지인 30명,임원 4명 등 55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시각장애라는 인간한계를 극복하자는 차원에서 등반을 계획했으며 등반에 반드시 성공,한국인들의 기개를 만천하에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원정대는 다음달 20일 출국,한달간의 일정으로 네팔과 티벳 접경지역의 아일랜드피크 등정에 나선다. 이들은 서울 강북구 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에 훈련캠프를 차리고 북한산 인수봉과 도봉산 등지에서 한달에 걸친 암벽등반 훈련을 마쳤으며 장도에 오르는 다음달 20일까지 설악산에서 2차 훈련을 갖는다.
  • TV 추석특집 ‘함량미달’/비디오로 출시된 영화들 재탕·삼탕

    ◎오락프로 억지웃음 짜내기 여전/시청자우롱 안일한 제작 개선해야 올 추석연휴에도 어김없이 재탕·삼탕 영화가 판을 쳤는가 하면 ‘명절연휴용’ 연예인들로 가득한 오락프로를 보며 쓴웃음만 짓고 말았다. ‘혹시나…’하는 기대를 갖고 TV를 대한 시청자들은 이번에도 ‘역시…’하는 실망감을 감출수 없었던 것.이는 해마다 설날·추석 등 명절연휴만 되면 질리도록 반복되는 얘기지만 시청자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야할 의무가 있는 방송사로서는 자체적으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다. 시청자들의 불만이 가장 컸던 부분은 KBS·MBC·SBS 등 공중파 방송 3사가 ‘대단하게 선전하며’ 내놓은 영화들이었다.대부분 명절때마다 방영됐거나 이미 비디오 등을 통해 소개된,영화팬들이라면 대부분 섭렵한 것들로 신선하고 작품성있는 영화를 원하는 시청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너무나도 함량미달인 내용물이었다. 이번 연휴기간동안 공중파TV 4개 채널이 선보인 영화는 방화·외화와 만화를 포함해 50여편.그러나 이 가운데 TV에 첫 선을보인 영화는 ‘쥐라기 공원’‘컷스로트 아일랜드’‘은행나무 침대’ 정도이며 그나마도 비디오를 통해 이미 잘 알려진 작품들이다.‘동방불패’나 ‘로보캅’시리즈,방화‘투캅스’ 등은 명절때마다 시간때우기로 등장,시청자들을 짜증나게할 정도.이밖에 다른 영화들도 ‘추석특선’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수준 이하였다. 만화영화도 마찬가지.MBC가 방영한 ‘홍길동’이나 SBS가 내보낸 ‘붉은 매’는 이미 시청자들이 줄거리를 꿰고 있는 것들이다. 우리 가정에 TV가 보급된 이래 명절때면 어김없이 펼쳐지는 ‘연예인잔치’또한 올해도 역시 별다른 내용없이 억지웃음을 자아내는 연예인들의 어줍잖은 몸짓만 본채 끝나 버렸다. 4개 채널 어디를 돌려봐도 출연자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이었다.으레 등장하는 ‘올스타 총집합’류의 프로그램은 그렇다 치더라도 인기가수 한사람이 한꺼번에 두세개 채널에 동시 출연,시청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모습또한 여전했다.프로그램 포맷도 틀에 박힌 정형을 벗어나지 못해 결국 시청자들의 정서와는 무관한‘그들만의 잔치’로 일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KBS가 마련한 ‘세계 한민족축전 기념 열린음악회’나 ‘가요무대­고향가는 길’,MBC의 ‘독일공연­망향의 노래’,SBS의 ‘히말라야의 망향기’ 등이 나름대로 한가위의 의미를 살린 정도. 물량공세 보다는 차라리 몇편 안되더라도 작품성있는 영화를 선정,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브라운관을 마주한 시청자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게 방송사의 도리가 아닐까.또 쇼·오락프로의 경우에도 출연진은 물론 기본 포맷에 대한 부단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시청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 낮은곳에 펼친 천상의 사랑/영면한 성녀 테레사 수녀 일대기

    ◎1910년 마케도니아 출생… 28년 인도로/신의 부름 받고 ‘빈민의 어머니’ 되기로/50년 ‘사랑의 선교회’ 설립… 본격 구호/79년 노벨평화상… 89년 첫 심장마비 동화속의 신데렐라와 같았던 다이애나 영국왕세자비의 비극적 죽음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세계인들은 다시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지고 있다.‘살아있는 성녀’로 추앙받던 테레사 수녀(87)가 타계한 것이다.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그녀는 금세기 최고의 ‘사랑과 봉사의 사도’였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영원한 촛불’로 스스로를 불태워온 테레사 수녀는 ‘사랑의 선교회’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데 헌신했다.그녀는 보통사람들이 꺼려하는 빈민굴이나 나환자촌 등 고통의 현장을 찾아 그들에게 사랑의 손길로 봉사했다.그녀는 자신의 자선활동은 “신의 부름”이라고 말했다. 테레사 수녀는 그녀의 헌신적 봉사로 7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그녀에게 “세계의 진정한 시민”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테레사 수녀는 1910년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피에(당시 알바니아 영토)에서 태어났다.비교적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테레사 수녀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됐다.청소년기의 가난한 삶은 그녀를 ‘주님 곁으로’ 인도,카톨릭 청소년단체에 가입했고 이때부터 선교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녀는 29년 인도의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로레타 수도원의 예비 수녀로 들어갔다.인도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은 목격한 그녀는 그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새로운 인생목표를 설정하고 캘커타의 슬럼가에 ‘사랑의 선교회’를 만든후 본격적인 구호활동을 시작했다. 로마 가톨릭교회 수녀로 사랑의 교회 원장직을 맡아왔던 그녀는 89년 심장마비를 처음 겪은후 91년과 93년에는 동맥 이상으로 두차례의 수술을 받기도 했다.그러나 테레사 수녀는 심장박동기를 달고 세계를 돌며 각국 지도자들과 국민들에게 고통받는자들에 대한 구호와 사랑의 중요성을 설파했다.그러나 그녀의 건강은 더욱 악화돼 지난해 말에는 심장병에 말라리아와 폐렴 등의 합병증으로 2분동안이나 심장활동이 정지하기도 했다.지난 3월 그녀는 죽음을 예감한듯 원장직을 니르말라 수녀에게 넘겨 주었다. 테레사 수녀는 체제와 이념의 벽을 뛰어넘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사랑과 구호를 실천했다.그러나 일부에서는 비판도 없지않다.최근 영국의 한 방송은 사랑의 선교회측이 출처가 의심스러운 기금도 받고 있다고 비난했다.여권신장론자들은 그녀가 현대적인 모든 피임에 반대한데 반발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도 그녀의 위대한 사랑속으로 용해되어 왔다.하얀 천에 푸른띠가 있는 옷을 입고 사랑을 실천하던 조그만 체구의 테레사 수녀는 이제 우리곁을 떠났다.그러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봐왔던 그녀의 위대한 사랑과 희생정신은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김규환 기자〉
  • 안방에서 올라보는 히말라야/가셔브룸 원정대 아이네트에 홈페이지

    ◎위성장비 이용 등반과정 인터넷 생중계 만년설이 덮인 히말라야 설경을 우리나라 산악인이 인터넷으로 생생하게 소개한다. 인터넷 서비스업체 (주)아이네트는 최근 한국대학산악연맹이 파견한 원정대(대장 이상돈)의 히말라야 가셔브룸 Ⅰ,Ⅱ봉 등반과정을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한다고 밝혔다. 이번 인터넷 중계는 원정대가 노트북 컴퓨터와 디지털 카메라,위성전화 등을 이용해 히말라야 현지에서 등반사진과 일지를 위성으로 전송하고 이를 아이네트가 인터넷망을 통해 송신,인터넷 홈페이지 ‘아이월드‘에 마련된 ‘가셔브룸 원정대’(http://www.iWorld.net/Events/gasherbrum·사진)코너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하는 과정을 거친다. 지난달 4일 출발한 한국대학산악연맹 원정대는 현재 가셔브룸Ⅰ봉 해발 7천400m,가셔브룸Ⅱ봉 해발 7천300m 부근에 캠프를 설치했으며 오는 9월쯤 정상을 정복할 예정이다. 이번 위성인터넷 전송시스템을 담당한 아이네트의 이동수부장은 “히말라야 등반 인터넷 중계는 아이네트의 안정적인 인터넷 기간망과 네트워크 관리를 기반으로 구현한 첨단 미디어의 결합이 이룩한 개가”라고 말했다. 파키스탄 카라코람산맥에 위치한 히말라야 가셔브룸Ⅰ,Ⅱ봉은 각각 해발 8천68m,8천880m다.
  • 제국의 종말/존 키(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서구 식민주의의 종식 ‘홍콩 반환’/20세기후반 가장 극적인 경제성장의 촉진제 “1997년 6월30일,중국에의 홍콩 반환과 함께 제국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바스코 다 가마가 아시아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지 정확하게 500년만이다.30년대 초까지만해도 세계인구의 절반이 미국,영국,프랑스,네델란드 식민통치의 신민으로 돼있었다.그후 두세대가 지난후 동양에서 서구 제국들은 모두 소멸했다.그 과정을 지나오면서 한때 고요,신비,정체 등의 수식어로 빈정거림을 받던 동양은 현대적이고 역동적인 모든 것의 대명사가 되었다.그 사이에 무엇이 발생했는가? 500년 식민통치의 유산들은 무엇인가?“ ‘제국의 종말(Empire's End)’의 저자인 역사학자 존 키(John Keay)는 중국에의 홍콩 반환을 진정한 의미의 서구 식민주의의 종식으로 규정지으면서 그 참의미를 규명해나가기 위해 이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극동의 역사­식민주의 전성기로부터 홍콩까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저자는 동양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홍콩의 반환과 서양 제국주의 지배의 종말을 단순히 ‘승리와 패배’,‘성공과 실패’,‘상승과 하강’과 같은 이분법적 기준을 적용시키지 않았다.그는 백인들이 지난 300여년 동안 우수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극동문제들 장악해온 것이 사실임을 지적하면서도 백인들의 우월성이라는 개념 자체에는 의문을 제기한다.왜냐하면 백인들의 우월성이 동양을 변화시킬수 있었던 요체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이같은 제국의 일원으로서 미국의 경우 비록 후발주자이지만 유럽인들의 식민지 매카니즘에 조금도 손색없는 식민주의를 감행했음을 지적했다. ○홍콩이 ‘마지막 거점’ 저자는 동아시아에서 탄탄하던 제국 지배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시기를 1930년대,영국이 조차중이던 산동반도의 위해위를 중국에 반환했을때로 보고 있다.그때를 기준으로 40년후인 70년대,과거와 같은 제국의 위력은 하나도 남지 않았으며,60년후인 오늘날에는 ‘마지막 거점(Last Post)’인 홍콩을 돌려줌으로써 제국의 종말이 오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제국의 종말에 대한 통상적인 의미의 해석을거부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역사적으로 영어 사용권에서의 제국의 종말은 로마제국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가 없었다.즉 제국은 문명과 합리성을 대표하는 용어였고 그 멸망은 상대적으로 야만과 미신으로 가득찬 세계의 도래를 의미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에서의 제국의 멸망은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해왔다.식민세력이나 그 신민들이나 어느 누구에게도 궁극적으로 대재앙은 아니었다.야만적인 행동이 나타난 것도 아니었다.오히려 동아시아 또는 동남아시아에서의 탈식민화는 20세기 후반 가장 극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촉진제가 되었던 것이다.서구에서도 식민지 해체의 경험이 보다 평화적이고 통합적이고 번영된 유럽 공동체를 이루는 계기를 만드는데 기여했다는 주장이다.결국 제국의 마지막 거점은 서구의 경제질서와 자유 양심이 적극 수용되고 동양의 자긍심과 민족주의적 야망이 커가면서 그 존립기반을 상실하게된 것이다. 홍콩 반환과 관련,저자는 비관주의자들의 두가지 지적을 소개했다. 첫째는 중국이 홍콩 반환과 관련된 84년의 공동선언을 지킨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또한 그들이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가치를 충실하게 신봉하는 국가들의 박수를 받으며 기꺼이 홍콩을 중국에 이양했고 또 아시아에 최선봉의 민주주의사회를 이룩,그들 주민의 뜻으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수 있는 사회를 건설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그래서 제국은 영광의 팡파레 없이 사라져가도 적어도 ‘마지막 거점’의 숭고한 위업은 간직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동양서 서구제국 소멸 이같은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 이 책은 전체 3부,15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나부끼는 깃발’이라는 제목하에 식민지배가 절정에 달했던 1930년대의 상황을 인도네시아,중국 해안지방,인도지나반도,필리핀,말레이반도 등을 중심으로 기술했다. 2부는 ‘반기’라는 제목으로 1930년부터 1945년까지의 동양 각 신민지의 상황을 나타냈다. 3부는 ‘깃발의 하강’을 제목으로 1945년부터 1976년까지를 대상기간으로 잡고 있다.그러나 실질적인 종말의 시점은홍콩의 중국으로의 반환때로 잡았다. 이 책의 저자 존 키는 주로 인도를 포함한 동양 역사에 관한 서적을 집필해왔다.그의 저서로는 ‘명에로운 회사­영령 동인도회사’,‘인도네시아 ­사방에서 메로키까지’,‘서히말라야의 탐험가들 1820­1893’등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영국의 스코틀랜드에 거주하며 역사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뉴욕의 스크리브너(Scribner)간,397쪽,30달러.
  • 불자들 청정국토 가꾸기 나섰다

    ◎불교산악인연합회 오늘 창립… 각종 보호운동 계획 산을 사랑하는 불자들이 신심을 나누며 청정국토를 가꾸기 위해 모인 전국불교산악인연합회(회장 손현수)가 1일 조계종 제5교구 본사 충북 보은 법주사에서 5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된다. 전국불교산악인연합회는 청정국토를 보호하는데 앞장선다는 활동목표로 산림법회,한 산악회 한 산지키기운동,자연생태계보존,청정국토 가꾸기 운동,사찰 주변의 골프장 건립반대운동,장학사업,사회복지활동 등을 펼 계획. 지난해 4월25일 부산 불교산악회 사무실에서 부산·대구·성남·서울 등 4개지역 대표자들 모임을 시작으로 창립준비를 해온 전국불교산악인연합회는 지난해 10월20일 월악산 미륵사지에서 1천5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기인대회를 갖고 본격적인 준비를 해왔다. 이들은 『부처님도 히말라야 산에서 큰 깨달음을 이루고 진리와 광명을 비추었다』며 『불자라면 누구나 산악인이라는 원칙아래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 숨쉬는 산하를 만들기 위해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인천·성남·영주·마산·의정부·속초 등 11개 지방산악단체가 연합으로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50여개 사찰소속 산악회와 신행단체 단위 산악회등이 가입의사를 밝혀 회원들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연합회 손현수회장은 『지금까지 불교계에서는 산행과 관련된 전국적인 단체가 없어 종단 내외적인 청정국토 가꾸기 사업이 부분 행사에 머물러왔다』며 『전국불교산악인연합회는 조직적으로 운영,불교계의 불이익에 대응하고 포교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히말라야 등반 60대 숨져/베이스캠프서 심장마비로

    【카트만두 AFP 연합】 히말라야 등산에 나선 한국인 김주태씨(66)가 해발 8천91m의 네팔 안나푸르나봉 베이스캠프에서 고산병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네팔의 한 여행사 관계자가 15일 밝혔다.
  • 부처님 오신날 아침에/조오현 백담사 회주·시인(특별기고)

    ◎청정한 지혜등불 밝히자 백담사 산문의 새벽은 좀 늦이감치 찾아옵니다.동해의 해돋이를 맨 먼저 내려다보는 설악이기는 하나,해뜨는 반대쪽 산자락이라 더욱 그렇습니다.그리고 워낙 골이 깊은지라,먼 아랫마을에서 홰를 치며 울어댈 닭 울음소리도 듣지 못한채 새벽을 맞고는 합니다.그럼에도 새 잎들이 피어난 연녹색 숲이 마치 햇살이라도 받은양 안개구름 사이로 눈부신 새벽입니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날」이라서 산문의 새벽이 더욱 싱그러운지도 모릅니다.2541년전 불타가 고타마 시다르타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날입니다.태어나면서 오른 손은 올리고 왼 손은 내렸다고 합니다.며칠전 전파가 가물가물 날아온 산골 텔레비전에서 서울 시청앞에 세워 놓은 그 탄생불을 보았습니다.고타마 시다르타는 대강 그런 모습으로 태어나서 세간 사람들 틈에 자리 잡았을 것입니다. 그 때에 갓난아기 시다르타는 「하늘 위 아래서 나 홀로 우뚝하다.(천상천하유아독존)」는 말로 첫 입을 열었다고 합니다.불타의 전기격인 「서응경」에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그 한마디는 바로 모든 속박으로 부터 벗어나고자 한 자유선언입니다.또 고통으로부터 해방의 의지를 드러낸 외로운 인간선언이기도 했습니다.시다르타의 자유선언에서 자유는 19세기 서양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이들이 주창한 자유와는 사뭇 다릅니다.이는 형이상학의 자유인데,불가에서는 자재라고도 말합니다.그 자유를 얻은 이상은 시다르타가 서른 다섯살을 먹던 해에 생각하는 고행을 통해 실현되었습니다.고행 6년만의 깨달음,곧 정각에 이어 해탈에 도달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유롭고 막힌데가 없는 자재무애한 길에 접어드셨습니다.고타마 시다르타는 드디어 깨달은 이를 일컫는 불타(부다)가 된 것입니다.그런데 올해 「부처님 오신날」에 바라본 사바의 세상은 막힌 데가 너무 많습니다.그래서 만화방창한 계절을 뒷걸음질 쳐 어두운 그림자만 던져주고 있습니다.그야말로 삼 가닥이 뒤엉키듯 비리가 난마를 이루고 있습니다.국정마저도 넉 달째 표류한다는 이야기도 들리고,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이미 체험했습니다.곳곳이 막혔으니,필연적 현상일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즐거울 리가 없고,신바람이 날리 만무합니다.즐거움이 없는 세상을 살게 되었습니다.이를 불락이라고 합니다.범어로 나라카,곧 지옥을 뜻하는 말입니다.「삼계 모두가 고통인데,어찌 즐거워할수 있을까」라는 구절이 불타의 전기에 나옵니다.그렇듯 불타의 시대에도 고통과 어둠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바세계 어두운 그림자만 그가 히말라야 산록 작은 왕국 카필라성을 떠나 고행을 자초하고 나선 것도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찾기 위해서 였습니다.그가 태어나면서 약속한 다른 또 하나의 말이 있습니다.「이 생애에서 인천을 이롭게 하리라」는 말이 그것입니다.인간을 하늘보다 더 여긴 인간주의 흔적이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민주주의 시대가 아니어서 가만히만 앉아 있어도 왕위를 물려 받을 세습왕국의 태자 시다르타는 그런 마음으로 왕국을 떠났습니다. ○비리,권력과 돈에서 연유 그러니까 시다르타는 용기있는 자유인이었던 것입니다.오늘의 세태를 보면 자유로워야 할 부분 우선 몇가지를꼽을수 있습니다.권력과 명예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우선 생각해 봅니다.그리고 돈을 많이 챙기려는 물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권력과 명예를 누리는 정치와 돈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하룻밤을 자고 나면 날마다 터지는 비리는 모두 권력과 돈에 연유하고 있음을 익히 보았습니다. 지금 고도경제사회에서 무소유의 삶을 강조한다는 것은 사실상 무리입니다.그러나 넘치는 욕심은 금물이 분명합니다.우리는 지금 있고(유) 없음(무)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행법이 절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오늘 등불을 밝힐 불자들이시여! 그 봉축 등에다 과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지극히 청정한 지혜의 불을 댕기시기 바랍니다.
  • 작가 송기원,청산거사의 일대기 「청산」 펴내

    ◎국선도 단전행공의 긴 여정 생생히/지은이의 수련·문우들 직접체험 소재로/도의 근본 망각 비력에 미혹되지 말아야 『평생 저자거리의 진흙탕에서 뒹굴어온 제게 단전행공 수련은 뜻하지 않은 해빙을 가져다 줬어요.국선도가 원래 자기와의 싸움이라 강팍하고 맺힌게 많은 사람일수록 잘 견디는데다 풀리는 것도 많다더군요.이번 책은 그 빚을 갚는 기분으로 썼어요』 지난해 장편 「여자에 관한 명상」으로 위악적인 젊은 날을 쏟아냈던 작가 송기원씨가 이번엔 국선도의 시조 청산거사의 일대기 「청산」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냈다.지난 7년간 단전호흡 수련을 했던 지은이의 체험,또 주변 문우들의 직접체험이 소재가 됐다. 『소설에서 청산에게 영감을 받아 전기를 집필하게 되는 「나」는 제 친구 시인이 모델이예요.민중교육지 사건으로 해직선생이던 시절 이산저산을 떠돌다 글속에서 처럼 실제 청산을 만난 인물이지요.청산의 부인,출판사 주간 등도 모두 선도수련의 흠향을 맛본 실존인물들입니다』 소설속 청산의 일대기는 한 인물의 수련기이자 국선도의 골격과 세계관 완성과정을 동시에 보여준다.해선암에서 발품 팔던 열세살 동자아치가 우연히 만난 스승을 따라 입산,통과해 나가는 국선도 단전행공의 기나긴 여정이 생생하게 펼쳐진다.부모잃고 할아버지와 친척집에 얹혀 눈치밥먹던 소년은 십수년에 걸쳐 정각도,통기법,선도법의 삼단계 수련을 거치면서 잔뜩 주눅들고 비틀린 성정을 싸워 이기고 스스로 세상의 진흙속으로 몸을 던지게 된다.이 수련과 환속의 기간은 분단전쟁,반공국시,광주민주화투쟁 등으로 이어져온 한국의 비극적 현대와 맞물린다. 『아직도 봤다는 사람이 나타나는 미완의 동시대인물 청산의 삶을 소설화하게 된데는 많은 이들의 오해와 편견이 안타까워서 였어요.단전호흡같은 형태로 대중화한 요즘에도 도하면 현대와는 동떨어진 신선놀음이라 여기거나 정반대로 도 정신은 망각한 채 비력에만 미혹되는 이들이 많지요.하지만 이는 도의 근본목적이 아닙니다.자기안의 신성을 깨달은 이들은 이를 세속의 만인과 나눠 가져야지요』 삭발한 머리에 등산모를 눌러쓰고 인사동에서 기자와 만난 송씨는 맑은 기운이 가득한 양볼에 시종 미소가 흐르는 개구장이같은 모습이었다.이 소설 쓰느라 지난 1년간 계룡산 갑사에 틀어박히다시피 했던 지은이는 짐을 벗어부친 채무자처럼 홀가분한 모습으로 다음 「구도지」를 밝혔다. 『오는 5월4일자 인도의 리시켓행 비행기표를 끊어뒀지요.히말라야산맥 아래의 채식마을인 이곳에서 한 2년간 살다오려 해요.아무것도 하지않고 아무 목적도 없이.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몸도 마음도 다 풀려난 자유인이 될지도 모르지요….』
  • MBC­TV 「산」 불 샤모니 촬영현장 르포

    ◎깎아지른 알프스빙벽서 “슛… 컷…”/해발 3,275m 가쁜 숨 몰아쉬는 스탭·연기자들…/제작비 26억 투입… 2대 걸친 한집안 역사 그려 『자일을 꼭 잡아.놓치면 죽는단 말야』 『자,카메라 슛』 『컷! 좋았어.다시 한번 갑시다』 MBC­TV 특별기획드라마 「산」의 촬영현장인 프랑스 샤모니의 그랑몽테 봉우리 정상.연출을 맡은 정운현PD의 칼날같은 목소리가 해발 3275m에서 부는 살을 에는듯한 바람을 가른다. 15일 상오10시쯤 시작한 촬영샷은 감우성·김현아의 그랑조라스(4천200m)등정장면.열흘 가까이 계속된 촬영으로 다들 지친 표정이다. 고난도 장면은 스턴트맨들이 대역을 하지만 빙벽 등정은 연기자들에게 너무 힘든 장면.『발목을 삐거나 손바닥·무릎이 까지는 것쯤은 부상도 아니예요.너무 힘들어요.그렇지만 촬영을 거듭하면서 점차 산을 이해할 수 있게 됐고 묘한 희열도 느꼈어요』산처녀처럼 얼굴이 가무잡잡하게 그을린 김현아의 말이 그동안의 어려움을 보여주는듯 했다. 『전문 산악가이드들의 도움을 받지만 워낙 촬영이 어려워 하루에두세컷 찍기도 힘들다』는 정PD의 말처럼 아름다운 알프스의 설경을 구경할 틈도 없이 연기자와 스탭은 깍아지른듯한 빙벽에 몸을 기댄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하루하루 촬영스케줄을 맞춰나가기에 바쁘다. 상오10시30분쯤.본격적인 정상 등정장면 촬영을 위해 걸어다니기도 힘든 가파른 등성이에 헬기가 간신히 내려앉아 연기자와 스탭·카메라 장비들을 부지런히 실어날랐다.헬기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눈보라가 세차게 얼굴을 때렸다. 총 20부작으로 기획,3월 방송될 「산」은 말그대로 산악드라마.2대에 걸쳐 산과 함께 살아온 한 집안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설악산·도봉산 등 국내 명산과 히말라야·알프스의 설원을 배경으로 그려낸다.이를 위해 네팔의 카투만두와 쿰부 에베레스트 및 안나푸르나 지역 등에서 이미 45일간 산과 싸웠으며,알프스 지역에서는 이달말까지 촬영을 계속한다. 26억원이라는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돼 기획단계부터 관심을 모은 이 드라마에는 감우성·김상중·김현아·최종환·박세준 등이 출연하며,암벽등반 전문가 정승권씨를 비롯해프랑스의 전문 산악카메라맨들과 스턴트맨 20여명도 참여했다. 드라마 전편에 펼쳐질 대자연의 파노라마와 함께 미답의 세계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산악인들의 사랑과 우정이 시청자들에게 독특한 재미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 중­인「국경병력 감축」서명/강택민·고다 회담…신뢰구축 협정 체결

    ◎테러대처 공조·직항해로 개설 등 3개항도 【뉴델리 AFP DPA 연합】 중국과 인도는 29일 국경지역 병력 감축과 군비 축소 등을 골자로 한 신뢰구축 협정을 체결했다. 인도 PTI통신은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의 인도 공식방문 이틀째인 이날 양국이 국경 주둔 병력을 「최소 수준」으로 줄이고 군비를 축소하는 한편 국경지역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중단키로 하는 협정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사상 처음 인도를 방문 중인 강주석은 데베 고다 인도 총리와 회담을 마친 뒤 전기침 외교부장과 쿠마르 구즈럴 인도 대외문제담당장관이 이 협정에 서명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양국은 또 이날 ▲테러 및 마약거래 공동대처 ▲무역증진을 위한 양국간의 선박직항로 개설 ▲홍콩주권 반환 후 홍콩주재 인도영사관 유지 등 양국 관계개선을 위한 3개 협정을 추가로 체결했다. 중국과 인도는 지난 62년 국경에서 물리적 충돌을 빚은 후 국경문제가 불씨로 남아 관계를 개선하지 못한 채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강주석의 인도방문은 지난 62년 양국이 히말라야를 놓고 벌인 국경분쟁에서 중국측이 막대한 손실을 입고 일방적인 휴전을 선언한 뒤 정확히 34년1주일만에 이뤄진 것이다. 중국은 인도 북동부 아루나찰 프라데시주 등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지난 93년 이후에도 6차례나 회담을 가졌으나 4천60㎞에 달하는 산악 국경지대의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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