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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강제매각 땐 보복”… 한국 정부에 해결요구

    日 “강제매각 땐 보복”… 한국 정부에 해결요구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4일 0시부터 피고인 일본제철 자산에 대한 강제 매각(현금화) 절차가 가능해지자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해결 책임’을 강조하며 현금화 실행 시 보복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일본제철은 한국 법원에 즉시항고를 제기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징용 피해자) 문제에 관한 한국 대법원 판결과 관련 사법 절차는 명확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일본 기업의 정당한 경제활동 보호의 관점에서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두고 의연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는 압류명령이지만 (절차가 계속 진행돼) 현금화에 이르게 되면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기 때문에 반드시 피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에 조기 해결을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상 등 판결과 관련 있는 정부기관의 수장들은 일제히 기자회견을 갖고 한목소리로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자국 언론에 관세 인상, 송금 규제 강화, 비자 발급 엄격화, 금융 제재, 일본 내 한국 자산 압류,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 소환 조치 등의 가능성을 흘리며 한국 정부를 압박해 왔다. 일본 정부와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일본제철은 이날 “국가 간 정식합의인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배상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한국 법원의 압류명령에 대해 즉시항고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본제철의 즉시항고 제기 시한은 오는 10일까지다. 즉시항고는 집행정지의 효력을 갖기 때문에 매각을 통한 현금화 절차에 소요되는 시간을 늦추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아베 ‘최악의 8월 위기설’ 日정가 확산…과연 극복할수 있나

    아베 ‘최악의 8월 위기설’ 日정가 확산…과연 극복할수 있나

    “아베의 진짜 위기는 8월에 온다. 8월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이 정권의 명운을 결정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악의 수렁에 빠져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올 8월이 어느 때보다 혹독한 시련의 시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일본 정가에 확산되고 있다. 8월에 접어들면 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재확산됐다는 국민적 비난이 거세질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여야 안팎에서 지적을 받고 있는 그의 기자회견 회피 등 ‘현실도피’도 더 이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29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요즘 일본 정가에는 “아베 총리가 ‘마의 8월’에 떨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트위터에는 ‘#사요나라(안녕) 아베 총리’ 해시태그가 확산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코로나19의 제2차 확산의 현실화다. 각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 22일 강행한 관광 활성화 정책 ‘고투(GoTo) 트래블’이 전국적인 코로나19 확산을 촉발했는지 여부가 월초에 판가름난다. 최근 도쿄를 비롯해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등 수도권, 간사이, 도카이, 규슈 등 주요 지역 중심부에 역대 최다 수준의 일일 확진자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아베 정권의 성급한 관광 활성화 정책이 빚은 ‘인재’로 결론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높은 상황이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고투 트래블 정책으로 인해 지방에서 감염자가 증가할 경우 아베 정권이 책임져야 하며, 이는 내각 총사퇴 수준이 돼야 한다”며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지난달 국회 폐회 이후 40일 이상 기자회견을 갖지 않고 있는 가운데 ‘국회 폐회 중 심사’에도 불참하면서 ‘수치스런 도망작전’을 쓴다는 조롱을 사고 있는 아베 총리의 두문불출도 더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 일본 총리가 절대로 불참할 수 없는 원폭 투하 75주기 위령제가 각각 다음달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는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관례다. 그때까지 도쿄 총리관저 등에서 공식 회견을 갖지 않더라도 위령제에서는 기자들의 불편한 질문을 피해갈 수 없다. 정가에서는 “코로나19의 빠른 재확산이 고투 트래블 정책 때문이라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감염 확산이 계속 돼도 고투 트래블 정책을 계속할 것인가“, “정부 판단 미스로 감염이 확대된 것으로 드러나면 어떤 정치적 책임을 질 것인가”, “긴급사태 재선언의 필요성은 없는가“ 등 질문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달 중순 ‘오봉’(한국의 추석과 비슷한 명절) 연휴를 전후로 공직선거법(금품살포) 위반으로 구속기소된 가와이 가쓰유키 전 법무상과 부인 안리 참의원 의원의 재판이 열리는 것도 아베 총리에게는 악재다. 공판 과정에서 검찰이 지난해 참의원 선거 당시 자민당 본부가 가외이 부부에게 제공한 선거자금 1억 5000만엔(17억원)의 사용처에 대해 상세히 밝히면 거액의 지원을 결정한 아베 총리는 곤혹스런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정치 저널리스트 이즈미 히로시는 “코로나19 불안으로 국민들의 마음이 팍팍해지면서 정권 비판과 아베 반대를 더욱 촉진할 조짐이 보인다”며 “8월 초에 있을 오랜만의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가 얼마나 자신의 말로써 국민의 마음을 얻느냐가 ‘마의 8월’ 극복에 열쇠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日도쿄 코로나 신규감염 286명 최다…2차 확산 초비상

    日도쿄 코로나 신규감염 286명 최다…2차 확산 초비상

    일본의 수도 도쿄도에서 16일 코로나19 신규 감염자가 286명 확인됐다. 올 1월 첫 감염자가 나온 이후 하루 발생 규모로 가장 많은 것이다. NHK는 이날 도쿄도 관계자를 인용해 286명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기존 최다치는 지난 10일의 243명이었다. 이로써 도쿄도의 누적 감염자는 8640명으로 늘었다. 도쿄도 확진자는 지난 5월 2일 154명 이후 줄곧 100명을 넘지 않았으나 이달 2일 107명을 기점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되었습니다. 도쿄도는 “무증상이라도 불요불급한 외출을 자제하고 사업자들은 방역 가이드라인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미카모 히로시게 아이치의대 교수는 “검사 수가 증가하면서 신규 감염자가 느는 건 사실이지만, 감염자가 이 정도 속도로 늘어나면 입원 및 중증 환자가 급증해 의료 체계를 압박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15일에는 도쿄도 165명을 비롯해 일본 전역에서 450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왔다. 긴급사태 발효기간인 지난 4월 22일(450명) 이후 거의 석달 만에 최대치다. 이날 밤에 이뤄진 16일 전국 최종 집계 수치는 전날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에 이어 두번째로 큰 경제권역인 간사이지방 오사카부에서도 지난 15일 4월 20일 이후 가장 많은 61명이 확진 판정을 받는 등 재확산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황금색에 파란색까지…日 농촌 지역서 희귀 청개구리 동시 발견

    황금색에 파란색까지…日 농촌 지역서 희귀 청개구리 동시 발견

    좀처럼 보기 어려운 황금색 청개구리와 파란색 청개구리가 일본의 한 농촌 지역에서 동시에 발견됐다. 14일 가나가와신문에 따르면, 지난 4일 가나가와현 가이세이정 요시다지마촌에서 7세 여자아이가 황금색 청개구리 1마리와 파란색 청개구리 3마리가 포함된 10마리 정도의 청개구리 무리를 발견했다고 아이아버지인 36세 남성이 밝혔다. 당시 이들 부녀는 비가 그쳤을 때 집 근처 논으로 생태 관찰 실습을 하러 나갔었다. 현지 초등학교 1학년생인 딸아이가 논두렁길 옆 풀 속에서 이들 청개구리를 발견했다는 것이다.그중 황금색 청개구리 1마리와 파란색 청개구리 3마리를 포함한 청개구리 7마리를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고 이 남성은 밝혔다. 특히 이들 청개구리는 몸길이가 각각 1.5㎝ 정도로 개구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이아버지는 딸아이가 황금색 청개구리와 파란색 청개구리가 일반 청개구리와 같은 종인지, 같다면 어떻게 이런 색상을 띄게 됐는지 궁금해해서 인터넷으로 조사하고 히로시마대 연구원에게 직접 이메일로 문의했다고 밝혔다.그 결과, 황금색 청개구리는 이른바 알비노 현상으로 불리는 색소 이상으로 생긴 것이며, 파란색 청개구리는 발생 메커니즘이 아직 완벽하게 해명되지 않았지만 이들 모두 발견하기가 매우 드문 것으로 확인됐다. 이 남성은 또 파란색 청개구리는 사실 지난해에도 발견했었고 올해는 마을 지인도 잡았었다고 말했다. 혹시 마을 논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한 이 남성은 이번 기회에 딸아이가 여러 가지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접근하길 바란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끝으로 이 남성은 파란색 청개구리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얘기도 있어기에 코로나19 확산 속 많은 사람에게 그 모습을 보여줘 기분이 밝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가이세이정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사설] 한국의 WTO 사무총장 도전도 반대하는 일본, 옹졸하다

    일본 정부가 그제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도전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출에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상은 “현재 코로나 대응과 WTO 개혁 등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다각적 무역체제의 유지, 강화를 향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냐가 중요하다”면서 “일본으로서도 선출 프로세스에 확실히 관여해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유 본부장에 대해 아직 명확한 의사 표명을 하지 않고 있지만, 수출규제 문제를 놓고 갈등하는 한국의 WTO 사무총장 후보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본 지지통신은 최근 “일본 정부가 한국에서 사무총장이 나와 국제적 발언력을 높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신문도 “한국 출신 사무총장이 탄생하면 일본의 통상 정책에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일본 정부의 우려를 전했다. WTO에 제소된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문제가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사무총장 선출을 놓고 회원국을 상대로 한 한일 간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유 본부장이 WTO 사무총장에 선출되면 한일 무역분쟁에서 일본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은 일견 이해된다. 일본이 한국의 국제사회 진출에 무조건 딴지를 거는 태도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일본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출에 반대표를 던진 것을 비롯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G7 확대’ 구상에 한국을 포함하는 것에 반대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1년을 넘는 등 아직도 한일 갈등의 출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본으로선 유 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출마에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을 반대하는 일본의 연이은 행태는 아시아의 대표 주자라는 지위를 뺏기지 않으려는 몸부림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의 잇단 한국 견제가 참으로 옹졸하기 짝이 없다.
  • 840억짜리 블록버스터 영화 주연 맡은 ‘AI 로봇’의 정체는?

    840억짜리 블록버스터 영화 주연 맡은 ‘AI 로봇’의 정체는?

    일본에서 개발된 AI 로봇이 세계 최초로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미국 허프포스트 등 해외 언론의 25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 오사카대학 지능 로봇 연구소 연구진이 2015년 처음 공개한 AI 로봇 ‘에리카’는 여성으로 설정된 로봇으로, 상대방의 목소리나 움직임을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대화할 수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로봇이 출연하는 영화는 7000만 달러(한화 약 84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대규모 공상과학 장르로, 가칭 ‘b’로 불리고 있다. 이 영화는 인간의 DNA를 연구하던 한 과학자가 예상치 못한 위험에 빠지면서, 그가 직접 설계한 AI 인공지능 로봇을 돕는 스토리로 알려졌다. 로봇 에리카는 이 영화에서 AI 인공지능 로봇 역을 맡았으며, 상대 배우인 과학자 및 영화 전체를 이끌 감독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대규모 투자는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관객상, 제30회 유러피안 필름 어워즈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유화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2017)를 제작한 미국의 본디트 미디어 캐피털이 맡았으며, 제작은 벨기에와 미국의 프로덕션이 맡는다. 제작사는 지난해 일본에서 에리카가 출연하는 일부 장면을 촬영했고, 2021년 6월경 나머지 분량을 촬영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에리카를 개발한 오사카대학 연구진은 “배우들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만, 에리카에게는 그러한 경험이 없다. 우리는 1대1 테스트를 통해 에리카의 움직임과 감정을 만들고 이를 시뮬레이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에리카는 등장할 당시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로봇’이라는 별명으로 불려왔다. 나이는 23세로 설정돼 있으며, 때와 장소에 따라 헤어스타일과 의상이 달라진다. 개발자인 이시구로 히로시 박사는 과거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로봇도 감정이 필요하다”며 “대화할 때 표정에 따른 감정 표현을 조합함으로써 로봇의 의사소통 능력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규모 상업영화에 AI 로봇이 주인공으로 나선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로봇이 무대에 선 ‘최초’는 아니다. 2015년 로봇 ‘미온’은 독일에서 열린 오페라 무대에 올랐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전 법무상 불법선거 체포에…일본 국민 76% “아베 책임”

    전 법무상 불법선거 체포에…일본 국민 76% “아베 책임”

    6월 정권 지지율도 36.7%로 곤두박질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측근인 전직 법무상이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검찰에 체포(구속)된 가운데 일본 국민 4명 중 3명이 이번 사태에 아베 총리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인식들이 코로나19 부실대응, 검찰청법 개악 시도 등 그동안의 실정과 결합되면서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바닥을 모르고 곤두박질치고 있다. 교도통신이 20∼21일 실시해 발표한 6월 월례 여론조사에서 아베 정권 지지율은 36.7%로 5월 조사 때보다 2.7%포인트가 더 떨어졌다. 이는 2012년 12월 아베 총리 재집권 이후 교도통신 조사 기준 두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기존에는 아베 총리의 친구가 이사장으로 있는 가케학원의 수의학부 신설 관련 비리 의혹으로 정국이 요동쳤던 2017년 7월의 35.8%였다. 아베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49.7%로 전월보다 4.2%포인트 상승했다.응답자의 75.9%는 최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가와이 가쓰유키 전 법무상(중의원) 부부 사건과 관련해 ‘아베 총리에게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 18일 도쿄지검 특수부는 가와이 의원 부부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이들은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역구인 히로시마현 지방의회 의원 등 96명에게 모두 2570만엔(약 2억 9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가와이 의원은 아베 총리 보좌관과 외교특보 등을 지낸 측근 출신으로 지난해 9월 개각에서 법무상에 임명됐으나 금품선거 의혹이 불거지자 50여일 만에 사임했다. 차기 총리로 적합한 인물로는 아베 총리의 라이벌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23.6%의 최고 지지율을 얻었다. 아베 총리는 14.2%로 2위, 고노 다로 방위상은 9.2%로 3위였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아베의 강압조치에 발끈한 日검찰, 측근수사 대규모 검사 투입

    아베의 강압조치에 발끈한 日검찰, 측근수사 대규모 검사 투입

    자신의 측근이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부인과 함께 체포되면서 가뜩이나 코로나19 부실대응 등으로 위기에 놓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더 큰 타격을 입게 된 가운데, 검찰의 수사 강도를 극대화시킨 장본인이 다름 아닌 아베 총리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을 장악해 보려 했던 그의 무리수가 결과적으로 검찰을 자극해 정의를 바로 세웠다는 것이다. 일본 검찰 내 최고의 엘리트 조직인 도쿄지검 특수부는 지난 18일 가와이 가쓰유키(57) 중의원과 부인 가와이 안리(46) 참의원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역구인 히로시마현 지방의회 의원 등 96명에게 모두 2570만엔(약 2억 9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안리 의원은 이 선거에서 같은 당의 거물 정치인을 제치고 당선됐다. 남편 가와이 의원은 아베 총리 보좌관과 외교특보 등을 지낸 측근 출신으로 지난해 9월 개각에서 법무상에 임명됐으나 금품선거 의혹이 불거지자 50여일 만에 사임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두 사람은 도쿄지검이 아니라 지역 관할인 히로시마지검에 의해 체포 및 기소돼야 한다. 그럼에도 도쿄지검이 전격적으로 이 사건에 뛰어든 것은 아베 총리가 올 1월 구로카와 히로무 도쿄고검 검사장을 차기 검찰총장에 임명하기 위해 정년 연장 무리수를 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21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당초 법무성과 검찰청은 정년에 여유가 있는 하야시 마코토 나고야고검장을 차기 검찰총장으로 내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구로카와 검사장의 정년을 연장하라는 지시가 정권 차원에서 내려왔고, 이는 그를 차기 검찰총장에 앉히려는 의도로 읽혔다. 그러자 법무성과 검찰청에는 검찰 중립성 훼손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일었다. 도쿄신문은 “가와이 부부 사건 수사의 고삐를 절대로 늦춰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검찰 내에 강해진 것은 이 무렵부터였다”고 전했다. 그 결과 도쿄지검과 오사카지검이 대규모 인력으로 히로시마지검을 지원하게 됐다. 도쿄신문은 법무성 간부의 말을 인용해 가와이 전 법무상이 아베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측근인 만큼 그를 엄정하게 처리해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외부에 보여줄 수 있다는 얘기가 검찰 내부에서 제기됐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와 인력 지원 등에 힘입어 히로시마지검은 3월부터 방대한 관련자 조사와 압수수색에 나설 수 있었다.도쿄지검 특수부 부부장 출신 와카사 마사루 변호사는 가와이 부부를 히로시마지검이 아닌 도쿄지검 특수부에서 체포한 것과 관련해 닛폰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앞으로 가와이 부부가 재판에서 철저하게 혐의를 부인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검사 수가 많은 도쿄지검이 적임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검찰 수뇌부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정권의 정년연장 특혜에도 불구하고 구로카와 검사장이 상습 마작이 들통나 사퇴한 점을 언급하며 “검찰은 이번 사건을 엄정하게 처리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결국 아베 총리가 무리한 검찰 장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측근에 대한 수사 강도를 한층 더 높였으며, 그것이 자신에게 커다란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 결과를 맞았다는 것이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日아베 측근 국회의원 부부, 선거 금품살포 혐의 체포

    日아베 측근 국회의원 부부, 선거 금품살포 혐의 체포

    법무상(한국의 법무장관)까지 지낸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측근이 자기 아내를 국회의원으로 만들기 위해 불법적인 선거운동을 했다가 아내와 함께 체포됐다. 코로나19 부실 대응과 검찰청법 개악 시도 등으로 지지율이 바닥에 떨어진 아베 총리는 한층 더 타격을 받게 됐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18일 가와이 가쓰유키(57) 중의원과 부인 가와이 안리(46) 참의원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일본 사법제도의 체포는 한국의 구속과 비슷한 개념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역구인 히로시마현 지방의회 의원 등 약 100명에게 2550만엔(약 2억 9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안리 의원은 이 선거에서 같은 당의 거물 정치인을 제치고 당선됐다. 이들은 참의원 선거에 앞서 지난해 4월 실시된 히로시마현·히로시마시 지방선거를 전후로 지방의원들의 사무실이나 집에 찾아가 ‘격려’, ‘축하’ 등 명목으로 10만~30만엔(114만~343만원)씩 현금을 뿌린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현금을 준 시점이 참의원 선거를 3개월 정도 앞두고 있던 때라는 점에서 지역민들의 표 단속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가와이 부부의 체포는 가뜩이나 지지율 하락이 심각한 아베 총리에게 새로운 타격이 될 전망이다. 특히 검찰은 자민당 본부가 당시 선거 때 가와이 부부에게 제공했던 자금 1억 5000만엔이 금품 살포에 이용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금액은 자민당이 다른 후보에게 지원한 금액으 10배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수사 확대 여부에 따라서는 자민당 중앙당도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가쓰유키 의원은 히로시마현 의회를 거쳐서 1996년 중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된 이후 현재 7선째다. 아베 총리 보좌관과 외교특보 등을 지낸 그는 지난해 9월 개각에서 법무상에 임명됐으나 금품선거 의혹이 불거지자 50여일 만에 사임했다. 그는 법무상 발탁 당시에도 큰 논란을 일으켰다. 폭력과 갑질횡포의 대명사로 알려져 온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지역구 활동을 하면서 자신보다 거의 스무 살이나 많은 운전기사를 구둣발로 걷어차 다치게 한 사실, 선거기간 중 자기 직원에게 상대 후보의 홍보 포스터를 찢어 버리라고 지시한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고 오만불손한 태도 때문에 그의 사무실을 그만둔 직원이 100명은 족히 될 것이라는 주변의 증언 등이 이어지면서 자민당 안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안리 의원은 히로시마현 의회 4선의 지방의원 출신이다. 야당은 정권에 대한 집중 공세에 나섰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후쿠야마 데쓰로 간사장은 “아베 신조 총리의 공천 책임이 매우 무겁다”고 비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과음, 현기증, 전염병에도 좋다?-인단/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과음, 현기증, 전염병에도 좋다?-인단/손성진 논설고문

    일제강점기에 자주 등장한 광고가 인단(仁丹) 광고다. 일본 삼하남양당(森下南陽堂)에서 개발한 약으로 창업자 모리시타 히로시가 1895년 대만에 군인으로 출병했다가 현지인들이 복용하는 것에서 착안해 감초, 계피, 생강 등 13가지 약재로 제조한 생약이다. 원래 붉은색이었는데 은으로 감싼 은립(銀粒) 형태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름에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첫째인 어질 인(仁)을 사용한 것은 처음부터 중국을 겨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신약(神藥)으로 대대적으로 광고하며 중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907년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재료를 보면 소화제나 지사제에 가까웠지만 인단은 두통, 현기증, 멀미, 악취, 과음, 흉통, 복통, 과식, 소화불량, 전염병 예방 등 거의 모든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광고되고 있다. 심지어 정력이나 말라리아 치료에도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이런 과대광고에 더해 독특한 맛과 향은 일본에서 판매 수위에 오를 만큼 엄청나게 팔려나갔다. 싸한 맛의 은단은 중장년층이 주로 이용하지만 당시에는 “항상 인단 잡수시는 아동들은 이러하게 희희하고 낙락하다”는 문구와 건강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넣은 광고를 게재하는 등 어린이들까지 공략했다. 인단의 상표는 나폴레옹이 쓰던 모자와 견장이 붙은 대례복을 입은 남성의 모습이다. 지금도 일본 모리시타 인단 회사는 상표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다. 상표 속 남성은 만주군 총사령관이나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을 모델로 삼았다고 하나 사실은 일본이라는 상징체계의 정점, 즉 천황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비록 상표 속의 인물이 천황은 아닐지언정 인단의 상표는 명백하게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일본 제국의 위력을 상징한다는 것이다(권보드래ㆍ‘인단-동아시아 제국 상징’). 일본 제국주의의 세력이 확장하는 것과 같은 추세로 인단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대만, 하와이, 동남아시아, 인도, 남아프리카,에티오피아, 우간다 등 세계 각국으로 진출했다. 국내 제약업체들이 청심보명단이나 팔보단 같은 인단 모방 약품을 발매했고 광고도 흉내 냈다. 광복 후에는 일제 유사품들이 밀수입되다 관세 당국의 철퇴를 맞기도 했다. 1946년 고려은단이라는 회사에서 인단과 맛, 효능이 비슷한 은단(銀丹)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개성에서 창업한 고려은단은 6·25 때 부산으로 회사를 옮겼다가 서울로 올라왔다. 은단은 구중청량제나 구취제거제, 금연 보조제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담배 냄새를 없애려는 남성들이 애용했는데 중고생이 은단을 갖고 있으면 흡연을 하는 것으로 의심받았다.
  • 일본 시청직원에 국민지원금 10만엔 ‘강제 기부’ 요구

    일본 시청직원에 국민지원금 10만엔 ‘강제 기부’ 요구

    코로나19 위기 대응 차원에서 일본의 모든 국민에게 1인당 10만엔(약 114만 7000원)씩이 ‘특별정액급부금’라는 이름으로 지급될 예정인 가운데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소속 공무원들에게 해당 금액을 주민 지원기금으로 기부하도록 해 논란을 빚고 있다. 27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효고현 가사이시(인구 약 4만 2800명)는 최근 ‘모두가 조성하는 코로나19 대책기금’을 만들면서 약 600명의 시청 직원들이 각자의 특별지원금 10만엔을 기부하는 것을 전체로 기금 예산을 편성했다. 코로나19 관련 주민생활 지원이나 영세자영업자 대책 등에 사용될 이 기금의 전체 규모는 7750만엔으로, 6000만엔은 시청 직원들의 기부금으로 조성하고 나머지 1750만엔은 시 간부와 시의회 의원의 급여·보수 삭감을 통해 충당하기로 했다. 니시무라 가즈히라 시장은 지난달부터 “이렇게 어려운 때 가시이시가 하나가 돼야 한다”며 모든 시청 직원들에게 “정부에서 나온 10만엔을 반드시 기금에 넣어 달라”고 호소해 왔다. 니시무라 시장은 아사히에 “기부에 강제성은 없다”고 말했으나 직원들은 ‘강제기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산에 편성된 금액이 6000만엔이 전 직원이 참여하지 않고서는 만들 수가 없는 금액인 데다 다음달 직원들의 수당에서 공제된다고 이미 통보가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가사이시 외에 이시카와현 시카마치정(인구 약 1만 8700명)에서도 10만엔 특별급부를 이유로 올 6월부터 내년 3월까지 소속 공무원들의 월급을 5%씩 삭감하는 방안이 확정됐다. 이를 통해 조성된 돈으로 국가 지급 10만엔 외에 2만엔을 추가해 총 12만엔을 주민들에게 주기 위해서다. 물론 상당수 공무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히로시마현 유자키 히데히코 지사도 현 소속 공무원들은 각자 받은 10만엔을 부족한 재정 보충을 위해 현에 기부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가 내부 비난이 빗발치자 철회하기도 했다. 국가에서 주는 10만엔을 공무원도 고스란히 다 받아야 하는가는 이 방안이 처음 발표됐을 때부터 논란이 돼 왔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부 전 지사는 “경제가 어려워져도 급여가 전혀 줄지 않는 국회의원, 지방의원 및 공무원들은 10만엔을 받을 수 없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인으로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 다카스 가쓰야도 “경제 지원에도 우선순위가 필요하다. 공무원의 경제사정 악화는 맨 마지막 단계에서 일어난다”고 공무원 제외론에 힘을 보탰다.그러나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많은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는데 그들의 사기를 꺾어서는 안 된다”, “어차피 앞으로 공무원들도 앞으로 급여 삭감 대상이 될 테니 이번에는 지급해 줘야 한다”, “공무원 배우자의 수입 삭감도 감안해야 하는 것 아니냐” 등 다양한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정치인들도 다양한 형태로 반응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각료 및 차관급 인사들이 전원 10만엔을 받지 않기로 한 가운데 제2야당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는 “10만엔을 수령한 뒤 일본골수은행 등에 기증할 것”이라며 “정치인들이 받지 않는 게 옳다는 풍조를 만들어내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 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 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지도자로서의 철학이나 좌우명이 있다면. “제 스타일을 보여 주고 거기에 맞추라고 하기보다는 선수들의 장점들을 발굴해 조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감독 자리에 있지만 그걸 누린다기보다는 감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서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고교 시절부터 은사로 꾸준히 인연을 이어 온 김철용 감독과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고교 랭킹 1위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들이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부친상에도 난 경기를 뛰어야만 했다…수많은 시련에도 배구는 못 놓겠더라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지도자로서의 철학이나 좌우명이 있다면. “제 스타일을 보여 주고 거기에 맞추라고 하기보다는 선수들의 장점들을 발굴해 조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감독 자리에 있지만 그걸 누린다기보다는 감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서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고교 시절부터 은사로 꾸준히 인연을 이어 온 김철용 감독과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고교 랭킹 1위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들이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 -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단독인터뷰] 정규리그 1위 이끈 여자배구 레전드 이도희의 배구인생

    [단독인터뷰] 정규리그 1위 이끈 여자배구 레전드 이도희의 배구인생

    프로배구 여자부 현대건설 이도희(52) 감독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여자배구의 전설이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 공격수 손아귀에 빠르게 안착시키는 볼 배급력으로 인해 ‘컴퓨터 세터’로 불렸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배구계의 오랜 격언대로 이도희를 보유한 팀은 긴 연승과 연속 우승을 만끽했다. 일신여상은 그가 고3이던 1985년까지 119연승을 했다. 실업팀 호남정유(현 GS칼텍스)는 92연승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주장을 맡은 국가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국제 대회 사상 첫 금메달을 안았다. 2006년부터 흥국생명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2017년 4월 현대건설 지휘봉을 잡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시즌 만인 2019~20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서울신문은 26일 경기 용인 현대건설 배구단 체육관에서 이 감독을 만나 그의 배구 인생을 들었다. ― 현대건설을 9년 만에 정규 1위로 이끈 비결은. “제가 팀을 이끌었다기보다 팀 분위기가 좋아서 1위를 한 것 같다. 평소 훈련 중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배구는 조직력이 중요한데 서로 맞춰 가면서 끈끈해졌다.” ― 감독님만의 선수 지도 철학이 있는가. “감독인 나의 스타일을 강요하기보다는 선수들 각자의 장점을 발굴하려고 노력한다. 선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은 한다. 선수들이 배구를 하면 스트레스에 굉장히 많이 노출되는데 선수들 얘기를 경청하면서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려고 도와준다. 배구가 재밌다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한다. 선수 시절에 내가 싫었던 건 웬만하면 강요하지 않으려고 한다. 반대로 하기 싫었지만 도움이 됐던 것들은 이해를 시키려고 하는 편이다.” ― 올시즌 유일한 이적생인 고예림 선수가 ‘새 직장’ 현대건설이 다른 점으로 소통을 많이 하는 점을 꼽더라. “선수들이 저하고도 얘기를 많이 하지만 훈련 시간에 선수들끼리 대화하는 시간을 준다. 수비와 세터 간 호흡은 어떤 식으로 맞출 건지, 어느 위치에서 수비할 건지 등을 얘기한다.” ― 감독 두 번째 시즌 때 11연패를 당하며 부진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분석해 보니 포지션 간 조직력이 안 맞았다. 보통 공격은 레프트와 라이트가 하는데 우리는 레프트 공격이 많이 약했다. 우리 팀에는 공격에 능한 양효진 센터가 있으니 공격을 센터와 라이트 외국인 선수 중심으로 하고 나머지는 어중간한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범실을 줄이기로 했다. 그게 양효진의 최우수선수(MVP), 정지윤의 신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 하루 일과를 설명해주시면. “주중에는 오전 8시 30분 스태프 미팅을 마치고 오전 훈련을 하고, 점심먹고 오후 훈련을 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내 자신을 돌아본다. 혹시나 실수를 하지는 않았는지 선수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선수들이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 운동 외에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 있나. “훈련 시간 중간에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책을 많이 보는 편이다. 고전도 많이 읽는다. 최근에는 패스트와 한중록을 읽었다. ―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격언이 있나. “항상 겸손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 어느 위치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 감독님을 두고 주변 사람들이 차가워보인다는 얘기를 하더라. “저는 정적인 사람이다. 여행보다는 책 읽기, 돌아다니기보다는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굉장히 단호하다. 과거 일에 끙끙 앓고 미련 두기보다는 앞으로 계속 가는 스타일이다. 정에 이끌리지는 않는다. 꽤 오랫동안 나름대로 주변 사람들 말도 들어보면서 묵묵히 숙고(熟考)한 뒤에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고 그 뒤로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만약에 잘못되면 그건 내가 책임져야하는 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차가워 보인다는 얘기를 듣지 않나 싶다.”― 고교시절부터 함께한 김철용 감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두 분의 첫 만남이 궁금하다. “제가 일신여중으로 스카우트 됐는데 김철용 선생님도 제가 고등학교 갈 때 일신여상에 부임하셨다. 고3 언니들이 전국체전이 끝나고 실업팀으로 간 뒤인 중학교 3학년 2학기 중반부터 고등학교 체육관에 올라가서 연습을 했는데 그때 선생님을 처음 뵀다.” ― 김철용 감독은 당시 A속공을 가장 잘하는 1학년 이도희를 공격수에서 세터로 전향시켰다고 하던데. “사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세터를 시키려고 했는데 제가 하기 싫다고 했다. 세터들이 워낙 욕을 많이 먹으니까 하기 싫었다. 중학교 때는 신장이 큰 편이라 항의가 받아들여졌는데 고등학교 올라가니 배구 선수 치고는 신장이 170cm로 작은 편이라 안 먹혔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때도 공격수였는데 당시 주전 세터였던 임혜숙 언니가 1학년 중반쯤 국가대표팀에 차출돼서 나가는 바람에 세터 자리가 비었고 그때 김철용 감독님이 세터를 시켰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선생님이 시키면 하는 거였다. 제가 1학년때 고3 언니들이 좋은 경기력을 갖고 있었다. 토스를 초보자가 하는데도 언니들이 받아주고 잘 때려주니까 계속 이겼던 것 같다.” ― 초등학교 1학년때 육상 선수를 하다가 10살 때 배구를 시작하셨다. 배구를 시작한 배경은. “키가 커서? 어렸을 때는 잘 뛰고 그랬나보더라. 몸이 약한 편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말랐는데 부모님이 몸이 약하니까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지 않겠냐고 해서 하게 됐다. 제가 막내라 아버지가 저를 되게 예뻐하셨다. 아버지가 처음에는 운동하는 걸 별로 안좋아하셨는데 학교 선생님이 설득했다. 그뒤 부모님이 뒷바라지를 잘 해주셨다.” ― 김철용 감독과 이도희 감독 본인의 스타일을 비교한다면. “김 감독님은 훈련의 종류와 양이 많은 것으로 이름 높은데 저도 훈련은 충실히 해야 한다고 본다. 김 감독님의 좋은 점들을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요즘에 맞게 적용해 보려는 부분들이 있다.”― 화려한 커리어에도 은퇴를 여러 번 결심했다 번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은퇴를 결심한 건 언제인가. “실업 4년차였을 때 고교랭킹 1위로 왼손잡이에 점프력도 좋고 몸도 빠른 후배가 들어왔다. 1, 2년차 때 선배 언니가 위에 있을 때는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뛰고 내가 밖에서 기다릴 때는 마음이 힘들더라. 세터는 팀에서 포지션이 한 자리라 주전 세터와 호흡을 많이 맞추다 보면 나머지 세터는 자연스레 훈련장 바깥으로 빠지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 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김철용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1년만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똑같이 훈련을 시켜 주셨다. 그런데 선생님이 원하는 플레이에 후배보다 제가 더 맞았던 거 같다.” ― 1991년 3월부터 1995년 1월 선경에 패하기 전까지 4년 2개월 동안 92연승을 했다. “1991년 슈퍼리그 첫 우승 때 제가 6년차였고 장윤희, 김호정, 홍지연, 이정선 등 고교 4총사가 3년차였다. 박수정이 1년차로 엄청 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전성기가 온 것 같다. 제가 나간 뒤에도 주전 공격수들이 그대로 남았고 1999년까지 9연패를 했다.” ― 선수 시절 겪은 후보의 설움이 이제 선수를 지도하며 도움이 되는지. “사실 옛날 얘기를 안 하려고 한다. 자꾸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대신 선수 말을 듣는 편이다. 후보는 몸이 안 풀린 상황에서 들어가서 주전보다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잘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독려한다.” ― 1992년 MVP를 받고 세 번째 우승을 거둔 1993년 다시 은퇴를 고민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아프셨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소원이 죽기 전에 삼남매 가운데 누군가 결혼하는 걸 보는 거였다. 얼른 은퇴하고 선 봐서 결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김철용 선생님이 국가대표팀 감독이 됐고 주변에서 “네가 도와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시안게임 있는 그 시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1994년 8월 국제 그랑프리 경기가 열릴 때 부친상을 당한 슬픔에도 경기에 나섰는데. “그랑프리는 한국, 필리핀, 태국에서 일주일씩 돌아가며 경기를 한 뒤 4위 안에 들면 중국 상하이 결승에 가는 방식이었는데 아버지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선수들이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뛰었다. 출국을 앞두고 있어 임종은 지켰지만 장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와주셔서 그런진 몰라도 그때 성적이 좋았다. 필리핀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독일을 다 이겨서 1등을 했다. 저는 대회 MVP도 받았다.” ― 가족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제가 주장이었고 이틀 뒤 경기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엄마랑 오빠가 가서 경기하라고, 아버지도 그걸 원하실 거라고 얘기했다. 또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 줘서 출전했다. 제가 몰입을 잘하는 편이라 경기할 때는 잊어버렸다가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잠을 잘 못 잤다. 한국에 돌아와서 김철용 선생님이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가주셨다. ― 두 달 뒤 열린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바로 브라질로 가서 세계선수권대회 4위를 했다. 돌아와서 시즌을 치렀다.” ― 1991년 태릉선수촌에서 당한 무릎 연골 부상도 은퇴를 앞당겼다. “그때 무릎 연골이 몇㎝ 찢어져서 굉장히 많이 붓고 물도 찼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참고 치료를 받으면서 경기에 나갔다. 그 다음해 소속팀에서 일본에서 수술을 안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하면 시즌을 못 치르니까 그냥 돌아오기도 했다.” ― 1994년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된 이유는. “자기 만족이 컸다. 어렸을 때 여대생으로 캠퍼스를 누비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면 대학 가서 공부도 하고, 은퇴쯤에는 공부 많이 해서 교수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공부를 해보니까 쉽지 않아서 석사까지만 했다.” ― 1995년 3월 슈퍼리그를 끝으로 은퇴했다가 6개월 만에 복귀하고 1996년 슈퍼리그 6연패 달성 후 다시 은퇴했다. “당시 엄청 울었다. 1996년에는 애틀랜타올림픽이 있었다. 대표팀에 12명을 뽑는데 김철용 선생님이 나까지 일단 13명을 뽑아 놓으셨다. 끝내 안 들어갔다. 대학 생활을 했고 1997년에 결혼을 했다.” ― 그런데 1999년 11월 한시적으로 복귀하고 2000년 3월 또 은퇴를 했다. “감독, 코치님들과 선수들이 팀 10연패를 위해서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때 큰애가 3살이었다. 주전 세터가 아니었는데도 운동을 안 하다가 하니까 힘들었다. 결국 10연패는 하지 못했다. 그땐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어도 노장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서른한 살이라 후배들을 위해서 얼른 자리를 비켜 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 요즘 여자배구 인기가 상한가다. “이전에도 여자배구는 인기가 많았다. 고교 시절엔 남학생들에게 선물과 팬레터도 많이 받았다. 물론 선생님들이 점검하고 건네 주시긴 했지만. 그때는 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로서 인기가 많았다면 지금은 운동도 잘하면서 외모도 예쁜 셀럽으로서 인기가 많은 것 같다.” ― 여자프로배구 사상 최초 여성 코치이면서 또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과 함께 여성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과거에는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모든 훈련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남자 지도자가 남자 파워로 때려 줘야 제대로 훈련이 된다고 여기는 측면이 있었다. 프로화가 되면서 파트별로 코치, 트레이너 등이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상파 3사 해설위원을 거쳤는데. “김철용 감독님이 2006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고 저를 (코치로) 불렀다. 1년 정도 하고 그만뒀다가 2년 뒤 다시 코치가 됐는데 그사이 방송 해설을 하면서 팀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키운 것 같다.” ― 흥국생명이 이다영을 데려갔다. 이다영이 부진할 때 믿고 기용해 리그 최고 세터 수준으로 키운 걸로 아는데. 현대건설 팬들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큰 것 같다. “아쉽지 않다고 얘기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FA는 전적으로 선수 본인의 선택이고 그 선택을 존중한다. 거기 가서도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애정을 갖고 그 선수를 키웠기 때문에 그 선수가 좋은 선수가 성장하길 바란다. 팬들의 그런 비판은 2018~2019 시즌에 이다영 선수가 힘들어할때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최근 이다영의 대체자인 세터 이나연 영입도 화제였다. “아직까지 평가를 내릴 수는 없는 단계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건 좀 있다. 이 선수가 얼마나 따라올지, 이 선수가 내가 얼만큼 발전 시킬 수 있을지가 문제다. 이 선수랑 같이 훈련해보면서 이 선수가 갖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보이게 하는 게 제 역할이다. 단점은 안 보이게 하면서 장점 부각되게 하는게 제 역할인 거 같아서. 이나연 선수는 자신감이 필요하지 않을까”. ― 이다영 선수는 당연히 포함 될테니 이다영 선수를 빼고 코치 시절부터 통틀어서 감독님 밑을 거쳐간 세터 중에 기억에 남는 세터를 말해달라. “염혜선 선수는 굉장히 열심히 하는 선수여서 좀 더 잘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효희 도로공사 코치는 선택이 굉장히 좋은 선수여서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사실 흥국생명 이영주 선수가 기억에 남는다. 공격수 였다가 세터로 전향한 선수였다. 프로팀에서 제일 처음 가르쳤던 선수라서 구질도 좋고 그래서. 운동을 좀 더 오래 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은 김다인 선수가 제 밑에서 올해 3년째 훈련을 하고 있는데 이 선수가 잘 성장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수원시청에서 뛰던 김주하는 결혼 뒤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온 감독님과 닮았다. 감독님도 수원시청에서 뛰셨다. “코로나19로 포스트시즌을 치르지 못하면서 리베로 김주하 선수를 선보이지 못하고 끝난게 아쉬웠다. 김연견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대체자가 필요했는데 이영주는 너무 어렸고, 고유민은 리베로 자리를 부담스러워해서 레프트 백업으로 원위치했다. 그래서 김주하 선수에게 부탁을 했고 흔쾌히 허락을 해줬다. 김주하는 우리 팀의 주전 리베로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훌륭한 자원이다. 수원시청에서 선수생활을 했는데 이번 시즌 개인사로 작년에 그만둔 것 같더라. 몸이 좀 많이 아팠는데 몇개월 쉬고나니까 괜찮아졌다고 하더라. 김주하 선수는 체력이라든지 고질적인 부상이 있다. 충분히 체력 보강을 해야 시즌때 아프지 않고 시즌을 마칠 수 있다고 많이 얘기를 했다.” ― 앞으로 꿈은. “거창한 꿈은 없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새 시즌에도 선수들과 재미있게 좋은 경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아베 선거법 위반 고강도 수사 위기…측근검사 낙마 후폭풍 우려

    아베 선거법 위반 고강도 수사 위기…측근검사 낙마 후폭풍 우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갖은 무리수를 써가며 다음번 검찰총장을 시키려고 애썼던 구로카와 히로무(63) 도쿄고검 검사장이 상습도박으로 물러나면서 향후 강도 높은 검찰 수사에 대한 위기감이 총리관저(한국으로 치면 청와대)와 자민당에 확산되고 있다. 구로카와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졸지에 사라진 가운데 검찰이 정권과의 유착에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불식시키기 위해 한층 엄격한 자세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칼 빼든 일본 검찰 의도는? 2018년 아베 총리가 직접 연관된 모리토모학원 부당지원 및 공문서 조작 사건의 수사를 무력화시키는 등 아베 총리의 친위대장을 자처해 온 구로카와 전 검사장은 산케이신문 기자 등과 여러 해 동안 내기 마작을 해 온 사실이 주간지 보도로 드러나 지난 22일 물러났다. 아사히신문 계열 시사잡지 주간아사히는 26일 인터넷판에서 “아베 총리와 가까운 사이인 가와이 가쓰유키(57) 전 법무상과 그의 아내 가와이 안리(47) 참의원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구로카와 검사장을 잃은 것은 아베 정권에 막대한 타격”이라고 전했다.가와이 부부는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 과정에서 이뤄진 불법행위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남편은 당시 아내의 당선을 위해 지역구인 히로시마현 지방의회 의원들에게 득표 활동을 부탁하며 현금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아내는 선거 운동원에 대해 법적 상한을 넘어서는 과도한 보수를 지급한 혐의가 드러나 비서관 등이 기소된 상태다. 선거자금 몰아주기·벚꽃 모임 자금 출처 등 쟁점 그러나 수사 범위가 넓어지면 이번 일이 단순히 가와이 부부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아베 총리를 비롯한 자민당 수뇌부의 우려가 있다. 지난해 선거전 때 중앙당이 가와이 의원에게 지원한 선거자금이 1억 5000만엔(약 17억원)으로, 동일 지역구에 출마한 같은 당 다른 후보의 10배에 달하는 등 수상한 대목들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직 검찰 간부는 주간아사히에 “당에서 지출된 1억 5000만엔에 대해 검찰이 얼마나 깊숙이 파헤칠지가 향후 최대 관건”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국가재정을 사적인 용도로 이용했다고 지적받는 ‘벚꽃을 보는 모임’ 파문과 관련해 검찰에 고발된 것도 구로카와의 부재를 더욱 아쉽게 만드는 대목이다. 지난 21일 일본의 변호사와 법학자 등 662명은 ‘벚꽃을 보는 모임’ 의혹과 관련해 아베 총리와 후원회 간부 2명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도쿄지검에 고발했다.‘벚꽃을 보는 모임’은 매년 4월 도쿄 신주쿠교엔에서 여는 정부행사로 아베 총리는 여기에 자기 지역구민 등을 대거 초청하는 등 특별대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18년 지역구 주민들이 참가한 최고급 호텔 전야행사에 참가비를 대신 지불한 혐의도 있다. 검찰 간부 출신 인사는 “아베 총리는 구로카와가 없어서 내심 가슴 졸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아베 총리를 감싸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언론인 다나카 요시쓰구는 “아베 정권은 이미 빈사상태이지만, 그렇다고 자민당이 코로나19 위기 속에 총리를 억지로 끌어내리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제1차 아베 정권(2006~2007년) 종료 때처럼 총리가 스스로 그만두도록 손을 쓸 텐데 그게 바로 자민당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日아베 또 타격…측근인 前법무상, 불법선거 혐의 사법처리 수순

    日아베 또 타격…측근인 前법무상, 불법선거 혐의 사법처리 수순

    일본 검찰이 아내를 국회의원으로 만들기 위해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가와이 가쓰유키(57·중의원 의원) 전 법무상에 대한 사법처리 수순에 들어갔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3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벚꽃을 보는 모임’ 파문 등에 더해 코로나19 부실 대응까지 겹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베 총리는 한층 더 타격을 받게 됐다. 가와이 전 법무상은 아베 총리의 보좌관 등을 지낸 측근 인사다. 요미우리는 “검찰이 지난해 7월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 가와이 가쓰유키 의원이 자신의 부인인 가와이 안리(46)의 당선을 위해 지방의회 의원들에게 득표 활동을 부탁하며 현금을 건넨 혐의를 포착,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형사입건할 방침을 굳혔다”고 전했다. 가와이 안리 의원은 지난해 선거 당시 지역구인 히로시마에서 거물 정치인을 제치고 당선, 부부의원이 됐다. 요미우리는 “검찰이 최근 가와이 부부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며 “코로나19 위기가 지속되고 있고 현재 국회가 개회 중인 점 등을 감안해 입건 시기는 신중하게 결정할 방침”이라고 했다. 가와이 부부는 지난해 4월 실시된 히로시마현·히로시마시 지방선거를 전후로 지방의원들의 사무실이나 집에 찾아가 ‘격려’, ‘축하’ 등 명목으로 10만~30만엔(114만~343만원)씩 현금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현금을 준 시점이 참의원 선거를 3개월 정도 앞두고 있던 때라는 점에서 지역민들의 표 단속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가와이 안리 의원은 선거 운동원에 대한 과도한 보수 지급 혐의가 드러나 비서관 등이 기소된 상태다. 가쓰유키 의원은 히로시마현 의회를 거쳐서 1996년 중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된 이후 현재 7선째다. 아베 총리 보좌관과 외교특보 등을 지낸 그는 지난해 9월 법무상에 기용됐다. 그러나 발탁 당시부터 큰 논란을 일으켰다. 폭력과 갑질횡포의 대명사로 알려져 온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지역구 활동을 하면서 자신보다 거의 스무 살이나 많은 운전기사를 구둣발로 걷어차 다치게 한 사실, 선거기간 중 자기 직원에게 상대 후보의 홍보 포스터를 찢어 버리라고 지시한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고 오만불손한 태도 때문에 그의 사무실을 그만둔 직원이 100명은 족히 될 것이라는 주변의 증언 등이 이어지면서 자민당 안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비등했다. 결국 아내의 선거법 위반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약 50일 만에 사퇴했고 급기야 사법처리를 목전에 두게 됐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핵잼 사이언스] 역사상 최악의 ‘퉁구스카 대폭발’ 원인 찾았다

    [핵잼 사이언스] 역사상 최악의 ‘퉁구스카 대폭발’ 원인 찾았다

    지구 역사상 최악의 사고 중 하나로 꼽히는 러시아 '퉁구스카 대폭발’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가 발표됐다. 1908년 6월 30일 오전 7시경 중앙시베리아 퉁구스카 지역에 우주 물질이 떨어지면서 2000㎢ 규모의 숲이 황폐화됐다. 당시 전문가들은 60~190m 크기의 우주 물질이 지구 상공 5~10㎞ 상공에서 폭발한 것으로 추측했다. 8000만 그루에 달하는 나무가 소실될 정도로 큰 폭발이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라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전문가들은 퉁구스카 대폭발의 원인으로 소행성 또는 메탄가스 폭발, 운석 충돌 등을 꼽았지만, 정확한 원인은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당시 폭발력이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85배에 달한다는 사실만이 명확한 ‘진실’이었다. 하지만 110여 년이 지난 현재, 러시아 시베리아 연방대학 연구진은 당시 퉁구스카를 강타한 우주 물질의 정체가 유력한 가설 중 하나로 꼽힌 소행성이며, 해당 소행성은 천체 대부분이 철(iron) 성분으로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연구진은 당시 지구로 떨어진 소행성의 정확한 성분을 파악하기 위해 철, 바위, 얼음 등 각기 다른 세 가지 성분의 물질을 지름이 200m, 100m, 50m 규모로 나누어 시뮬레이션했다. 이후 이러한 물질들이 지구 대기권을 통과한 뒤 어느 정도의 폭발력을 가지는지 비교했다. 이중 가장 먼저 보기에서 제외된 것은 얼음 성분이었다. 연구진이 추정한 궤도와 폭발력을 얻기 위해서는 매우 빠른 속도가 필요했는데, 얼음은 이 과정에서 지구에 도달하기 전 완전히 녹아 없어져 버린 것. 두 번째로 바위 역시 ‘생존’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행성이나 혜성 등에서 떨어져나온 파편인 운석은 대체로 바위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바위 역시 고속으로 낙하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압력에 의해 부서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연구진은 112년 전 지구에 떨어져 대폭발을 일으킨 물질이 철 성분을 다량 함유한 소행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렸다.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통해, 당시 지구를 강타한 철 성분의 소행성은 지름이 100~200m이며, 3000㎞ 정도를 초당 최소 11.2㎞로 이동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연구진은 “퉁구스카 대폭발은 크레이터가 거의 생기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물체가 철 성분이 많은 물체가 매우 뜨거워진 상태에서 고속으로 떨어지면서, 내부의 철 원자가 승화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유럽 전역에서 한밤중에 밤하늘이 밝게 빛나는 일시적인 백야 현상이 관찰됐는데, 이 역시 철 성분과 대기층의 먼지가 만난 광학효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영국 왕립천문학회 월보(Monthly Notices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ty)에 실렸다. 사진=123rf.com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핵잼 사이언스] 역사상 최악의 ‘퉁구스카 대폭발’ 원인 찾았다

    [핵잼 사이언스] 역사상 최악의 ‘퉁구스카 대폭발’ 원인 찾았다

    지구 역사상 최악의 사고 중 하나로 꼽히는 러시아 '퉁구스카 대폭발’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가 발표됐다. 1908년 6월 30일 오전 7시경 중앙시베리아 퉁구스카 지역에 우주 물질이 떨어지면서 2000㎢ 규모의 숲이 황폐화됐다. 당시 전문가들은 60~190m 크기의 우주 물질이 지구 상공 5~10㎞ 상공에서 폭발한 것으로 추측했다. 8000만 그루에 달하는 나무가 소실될 정도로 큰 폭발이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라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전문가들은 퉁구스카 대폭발의 원인으로 소행성 또는 메탄가스 폭발, 운석 충돌 등을 꼽았지만, 정확한 원인은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 당시 폭발력이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85배에 달한다는 사실만이 명확한 ‘진실’이었다. 하지만 110여 년이 지난 현재, 러시아 시베리아 연방대학 연구진은 당시 퉁구스카를 강타한 우주 물질의 정체가 유력한 가설 중 하나로 꼽힌 소행성이며, 해당 소행성은 천체 대부분이 철(iron) 성분으로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연구진은 당시 지구로 떨어진 소행성의 정확한 성분을 파악하기 위해 철, 바위, 얼음 등 각기 다른 세 가지 성분의 물질을 지름이 200m, 100m, 50m 규모로 나누어 시뮬레이션했다. 이후 이러한 물질들이 지구 대기권을 통과한 뒤 어느 정도의 폭발력을 가지는지 비교했다. 이중 가장 먼저 보기에서 제외된 것은 얼음 성분이었다. 연구진이 추정한 궤도와 폭발력을 얻기 위해서는 매우 빠른 속도가 필요했는데, 얼음은 이 과정에서 지구에 도달하기 전 완전히 녹아 없어져 버린 것. 두 번째로 바위 역시 ‘생존’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행성이나 혜성 등에서 떨어져나온 파편인 운석은 대체로 바위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바위 역시 고속으로 낙하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압력에 의해 부서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연구진은 112년 전 지구에 떨어져 대폭발을 일으킨 물질이 철 성분을 다량 함유한 소행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렸다.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통해, 당시 지구를 강타한 철 성분의 소행성은 지름이 100~200m이며, 3000㎞ 정도를 초당 최소 11.2㎞로 이동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연구진은 “퉁구스카 대폭발은 크레이터가 거의 생기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물체가 철 성분이 많은 물체가 매우 뜨거워진 상태에서 고속으로 떨어지면서, 내부의 철 원자가 승화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유럽 전역에서 한밤중에 밤하늘이 밝게 빛나는 일시적인 백야 현상이 관찰됐는데, 이 역시 철 성분과 대기층의 먼지가 만난 광학효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영국 왕립천문학회 월보(Monthly Notices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ty)에 실렸다. 사진=123rf.com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속보] ‘아베 마스크’ 영세 납품업체 특혜 의혹

    [속보] ‘아베 마스크’ 영세 납품업체 특혜 의혹

    일본 정부가 모든 가구에 배포를 추진한 천 마스크 납품업체와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아베노마스크’(아베의 마스크)로 불린 천 마스크는 일부 오염되거나 이물질이 부착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배포가 중단됐는데, 4개의 납품업체 중 하나인 ‘유스비오’가 후쿠시마현에 거점을 둔 영세한 업체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계약 과정에 의문이 제기됐다. 30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오구니 히로시 입헌민주당 간사장대리는 지난 28일 열린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해당 업체 경영자가 “누군가의 친구였던 것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일본 정부는 나머지 3개 납품업체는 일찍 공개했지만 유스비오만 유독 늦게 공개해 떳떳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키웠다. 주간지 ‘슈칸아사히’는 유스비오 사장이 2018년 탈세로 인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판결을 받은 인물이라고 최근 보도하면서 계약 경위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일본 前문부상, 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에서 여성 성추행

    일본 前문부상, 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에서 여성 성추행

    일본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문부과학상(장관) 출신의 집권 자민당 중진 의원이 성폭력 피해자 지원단체에 갔다가 그곳에 있던 여성을 성추행해 물의를 빚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국회에서 사과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30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2015~2016년 아베 총리 밑에서 문부과학상을 지낸 바 있는 하세 히로시(58) 중의원 의원과 비서 등 10여명은 지난 22일 학대나 성폭력 등 피해를 본 10대 여성 지원단체 ‘콜라보’(도쿄 신주쿠구)를 시찰 명목으로 방문했다. 하세 의원은 콜라보가 여성들을 위해 마련한 무료 카페에 들어갔다가 자신의 앞에 있던 10대 여성에게 “좀 비켜봐”라고 말하며 좌우에서 양손으로 허리를 만졌다. 이에 콜라보는 24일 여성에 대한 신체접촉은 물론이고 상처입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에 사전 약속했던 것보다 많은 남성 방문단이 온 것 등에 대한 항의문을 트위터에 올렸다. 콜라보는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을 지원하는 장소에서 자신들의 가해적 행위에 대한 자각이 너무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하세 의원은 “그런 행위를 했는지 전혀 기억에 없다”면서도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매우 죄송한 일이며 마음 깊이 사과드린다”고 홈페이지에서 말했다. 이 일은 29일 국회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도 문제가 됐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렌호 참의원 간사장이 하세 의원의 성추행에 대해 아베 총리를 추궁했고, 이에 아베 총리는 “대단한 민폐를 끼쳤다. 기분을 상하게 해 드린 데 대해 자민당 총재로서 사과드린다”고 했다. 프로레슬러 출신의 하세 의원은 극우성향 인물로 2009년 역사왜곡 교과서를 높이 평가해 물의를 빚었고 위안부 만행에 대해 사과한 ‘고노 담화’의 수정을 요구한 적도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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