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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미사일 쏘고 11분 뒤 美 ICBM 발사, 의도된 반격?

    北 미사일 쏘고 11분 뒤 美 ICBM 발사, 의도된 반격?

    美, 중국 및 러시아 등과 핵군비 경쟁… 뒤늦은 ICBM 능력 배양 지난 9일 오후 4시 29분. 북한 평안북도 구성 지역에서 북한 단거리 미사일이 상공을 가르며 날아오른 뒤 420여㎞ 떨어진 동해 바다에 떨어졌다. 북한군은 20분이 지난 4시 49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구성에서 또 다른 미사일을 발사했고 이는 270여㎞ 떨어진 동해 원산 인근 바다에 떨어졌다. 북한군이 첫번째 미사일을 발사한 지 11분이 지난 오후 4시 40분(미국 서부 시간으로 9일 오전 0시 40분) 지구 건너편의 미국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3’가 발사됐다.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고 상공으로 솟아오른 이 미사일은 6760㎞를 날아간 뒤 태평양 마셜제도 콰절린 환초의 목표 지점을 명중시켰다.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와 거의 동시에 미국 ICBM 발사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미국의 발사가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차원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일부 외신은 미국과 북한의 미사일 대결이 이뤄진 것처럼 묘사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의 발사는 미국의 시험발사 11분 전, 그리고 9분 뒤 두 차례 이뤄졌다”면서 “북한 군부가 이를 주시하고 있으며 미국의 발사를 위협으로 여길 것”이라고 평가했다.하지만 미 공군 지구권타격사령부(AFGSC)는 이날 ICBM 발사에 대해 “이번 시험 발사는 국제적 사건이나 지역 긴장에 반응하거나 대응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면서 “미국의 핵억지력이 현대적이고 강건하면서도 유연하고 준비돼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라며 북한 미사일 발사와의 연관성에 선을 그었다. 앞서 미 공군은 지난 1일 새벽에도 미니트맨3 시험 발사를 실시한 바 있다. ●北 미사일 발사에 반응해서 미국이 ICBM 대응 발사?…“사전에 계획된 것” 다시 말해서 미국의 이번 ICBM 발사는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줄 수는 있지만 북한을 겨냥해서 발사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미국 ICBM의 성격을 들여다보면 이는 북한을 넘어 미국의 세계 전략 차원에서 사전에 계획된 발사임을 알 수 있다. 사거리가 5500㎞ 이상으로 지상에서 발사하는 탄도미사일인 ICBM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전략폭격기와 함께 3대 전략 핵무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핵 전력의 관점에서 양대 강국인 미국, 러시아는 적이 핵공격을 감행할 경우 남아 있는 핵전력으로 상대방을 보복하는 ‘상호확증파괴’(MAD) 전략에 따라 ‘공포의 균형’을 유지해 왔다. 특히 탈냉전 이후 단일 패권국이 된 미국은 이 같은 균형을 깨기 위해 미사일방어(MD) 체제로 대표되는 ‘방패’ 구축에 나섰다. 하지만 러시아, 중국이 미국의 전략적 우세를 저지하기 위해 ‘창’인 ICBM 전력 확충에 사활을 다하자 미국도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다시 ICBM에 눈을 돌리는 등 핵 군비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현재 ICBM 보유국은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인도, 이스라엘 등 5개국이며 북한이 2017년 시험 발사한 화성 14형 개발에 성공하면 6개국이 되는 셈이다. 다른 핵보유국인 프랑스와 영국은 ICBM 대신 해상에서 발사하는 SLBM을 운용하고 있다.●中-러, 미국 MD 뚫을 ICBM 개발에 진력 미국과 러시아는 냉전 종식과 함께 잇단 전략무기감축협정에 따라 다수의 ICBM을 폐기 처분했다. 최후의 수단으로 실전에서 쓸 확률이 낮아진 핵무기보다 재래식 무기를 첨단화하는게 더 중요시되는 듯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2001년 MD를 구축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조약을 탈퇴한 이후 MD를 뚫는 핵 공격 능력 배양에 전력을 기울여 왔다. 옛 소련 시절과 같은 대국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으로서는 재래식 군사력에서 우세한 미국을 일거에 초토화시킬 위협 수단을 포기할 수 없었다. 특히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다수의 ICBM을 폐기하고 1970년 첫선을 보인 ‘미니트맨3’ 한 종류만 운용하는 반면 러시아는 현재 다섯 종류 이상의 ICBM을 실전 배치하고 있을 정도로 다양한 신형 ICBM 개발에 매진해 왔다. 러시아 ICBM 가운데 1997년 도입된 ‘토폴M’(SS27) 미사일은 지상기반요격미사일(GBI)과 같은 미국 MD체계를 무력화시킬 대표적 무기로 꼽힌다. 사거리 1만 1000㎞의 토폴M은 마하 21(약 시속 2만 6000㎞)의 속력을 자랑하며 재진입체가 예측할 수 없는 궤도로 기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요격이 어렵다. 특히 토폴M의 개량형으로 알려진 ‘야르스’(RS24)는 150~250kt 위력의 핵탄두를 4개 탑재하고 동시에 다양한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도록 설계돼 요격이 더욱 어렵다. 참고로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폭발력이 15kt 수준이다. 러시아는 또 10개 이상의 대형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사상 최대 규모의 차세대 ICBM ‘사르맛’(RS28)의 개발을 완료해 2021년부터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 이밖에 중국은 1999년에 사거리 8000㎞ 이상의 ICBM ‘둥펑31’을 개발해 2006년 실전 배치했다. 중국은 특히 미국과 러시아의 전유물이던 다탄두 탑재 능력을 갖춘 최대 사거리 1만 2000~1만 5000㎞의 차세대 ICBM ‘둥펑41’ 개발에 매진해 왔으며 오는 10월 공개할 예정이다.●美 경쟁국 대비 ICBM 전력 정체에 대한 우려 목소리 높아…핵군비 경쟁 본격화 미국 조야에서는 러시아, 중국이 MD 체계를 회피할 수 있는 초대형 ICBM 완성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자국 ICBM 전력이 상대적으로 정체됐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국의 유일한 ICBM ‘미니트맨3’는 최고 속력 마하 23(시속 2만 8100㎞)에 사거리가 1만 3000㎞로 300kt 핵탄두 3개를 탑재한다. 캘리포니아에서 발사하면 30분 만에 평양을 타격할 수 있다. 미국은 꾸준히 성능 개량을 해 왔지만 배치된 지 40년이 넘으면서 노후화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미국은 향후 20년 내 미니트맨3를 대체할 지상기반핵억제(GBSD)미사일 체계를 도입할 계획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2월 핵태세 검토 보고서를 통해 핵무기의 사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SLBM과 함정에서 발사되는 순항미사일을 활용한 저위력 핵탄두 미사일 개발을 공언하는 등 핵군비 경쟁에 뒤지지 않겠다는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러시아와 1987년 체결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탈퇴해 사거리 500~5000㎞의 중거리 미사일 전력도 개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보면 미국의 최근 ICBM 시험 발사는 중국, 러시아와의 세계적인 핵군비 경쟁에 대응해 실전에서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핵 투발 수단 능력을 강화하는 과정의 일환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에어서울, 오늘(8일) 10시부터 일본 0원 특가 “현재 상황은?”[종합]

    에어서울, 오늘(8일) 10시부터 일본 0원 특가 “현재 상황은?”[종합]

    에어서울(대표 조규영)이 가정의 달을 맞아 8일 오전 10시부터 일본 10개 전 노선에서 유류할증료와 제세공과금만 내고 왕복항공권을 구매할 수 있는 ‘Forever(영원) 특가’ 프로모션을 실시한다. ‘영원 특가’는 항공운임이 0원으로, 유류할증료와 제세공과금만 결제하면 되며 편도 총액이 3만8200원, 왕복 총액이 5만8500원부터다. 노선별 편도 총액은 △오사카, 후쿠오카, 다카마쓰, 요나고, 시즈오카, 도야마, 히로시마 3만8200원~ △도쿄, 삿포로, 오키나와 3만9400원부터다. 탑승기간은 5월 8일부터 7월 20일까지며, 에어서울 홈페이지 회원에 한해 5월 8일 오전 10시부터 5월 14일까지 선착순으로 항공권을 구매할 수 있다. 에어서울 관계자는 “기존에는 일본 소도시 노선에서만 영원특가를 진행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동경, 오사카, 후쿠오카, 오키나와 등 일본 주요 노선까지 모두 포함해서 진행한다”며 “이 기회에 많은 분들이 에어서울의 넓은 좌석을 경험하시며 여행을 떠나 보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에어서울은 오전 11시 현재, 방문자 폭주로 홈페이지 접속 불가 상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2027년 4월 29일 뉴욕은 소행성 충돌로 사라졌다”…모의실험 충격

    “2027년 4월 29일 뉴욕은 소행성 충돌로 사라졌다”…모의실험 충격

    “미국 최대도시 뉴욕은 ‘킬러 소행성’의 충돌로 폐허가 됐다”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한 모의실험에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USA투데이 등 외신이 6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3일까지 미국 수도 워싱턴DC 근교 메릴랜드대(칼리지파크)에서 열린 ‘2019 지구방위회의’(PDC)에서 진행된 소행성 충돌 모의훈련에서 전문가들은 소행성 궤도 변경에 실패하고 말았다. 국제우주인연합(IAA)이 주관하는 이 회의는 2년 단위로 열리는데 그때마다 이같은 모의훈련이 이뤄진다. 가상 속 소행성은 2013년 남프랑스 코트다쥐르(프렌치 리비에라), 2015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를 파괴했지만 2017년 일본 도쿄는 가까스로 충돌을 면했다. 이번 미국 충돌에 대해서는 준비 기간이 8년이었음에도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소행성의 궤도를 바꾸지 못했다. 시나리오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설계한 것으로 4월 29일 워싱턴DC 근교에서 지름 100~300m의 소행성이 발견됐다는 경고에서 시작됐다. 회의에서는 매일 천문학자와 기술자 그리고 비상대응 전문가 등 약 200명이 시나리오에 따라 정보를 받고 결정을 내리며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처음 가상의 소행성은 8년 뒤인 2027년 4월 29일 지구에 충돌할 확률이 고작 1%밖에 안 됐지만, 몇 달 만에 10%로 상승했으며 그 후에는 100%까지 치솟았다. 시뮬레이션에서 NASA는 2021년 문제의 소행성의 위협을 조사하기 위해 근처로 탐사선을 발사한다. 그해 12월 천문학자들은 소행성이 서부 콜로라도주 덴버로 곧장 향하고 있으며 이대로는 덴버가 파괴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미국과 유럽, 러시아, 중국 그리고 일본 등 주요 우주 강국은 소행성의 궤도를 무인우주선 ‘키네틱 임팩터’ 6척을 충돌시켜 소행성의 궤도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런 우주선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고 발사 시점에 대해서도 적절한 시기를 기다려야 해서 발사 기일은 2024년 8월로 정해졌다. 3척의 키네틱 임팩터가 간신히 소행성과 충돌했다. 소행성 본체는 충돌 궤도에서 벗어났지만 거기서 떨어져나온 커다란 파편이 여전히 충돌 위험이 있는 궤도 상에서 미국 동부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는 지름 60m에 달하는 이 소행성 파편의 궤도를 바꾸기 위해 핵 폭탄을 사용하는 것도 검토했다. 이는 2017년 모의훈련에서 도쿄를 구한 방법이었지만, 정치적 논쟁으로 결국 보류됐다. 이제 충돌에 대비하는 방법만이 유일하게 남았다. 충돌까지 6개월이 남은 시점에서 전문가들은 소행성이 뉴욕으로 향하고 있다는 예측밖에 할 수 없었다. 그 후 남은 2개월 동안에는 뉴욕이 파괴되는 것이 확실해졌다.소행성은 시속 6만9000㎞라는 엄청난 속도로 대기권에 돌입해 뉴욕 센트럴파크의 15㎞ 상공에서 폭발했다. 이 폭팔 에너지는 히로시마에 투하됐던 원자폭탄의 1000배에 이르렀다.충돌에 의한 지름 15㎞ 이내 ‘생존 불가’(unsurvivable) 범위에 있는 모든 것이 파괴된다고 과학자들은 지적했다. 맨해튼은 완전히 파괴되고 폭발 지점에서 45㎞ 떨어진 건물의 유리창들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고 그 피해는 폭발 중심지로부터 68㎞까지 확대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번 모의훈련에서 많은 문제가 제기됐다. 당국은 어떻게 10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대피시킬 것인가. 미국은 실제로 허리케인으로 사람들을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시키는 데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다. 또한 비용은 누가 낼 것인지, 임시 거처는 어디에 마련할 것인지, 원자력 발전시설이나 화학 시설 또는 미술품 등을 보호하는 문제도 들 수 있다. 나아가 세상의 종말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이에 대해 이번 모의훈련 시나리오를 설계한 NASA 근지구천체센터(CNEOS)의 폴 초디스 센터장은 “소행성의 충돌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물론 극히 낮다”면서도 “그렇지만 우리는 문제를 밝히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2000자 인터뷰 7]이기태 “북일 정상회담 내년 가능성 더 커”

    [2000자 인터뷰 7]이기태 “북일 정상회담 내년 가능성 더 커”

    일본에서 아키히토 일왕이 4월 30일 퇴위하고 5월 1일 나루히토 왕세자가 새 일왕으로 즉위한다. 새 시대를 맞는 일본 열도는 그 어느 때보다 들떠 있다. 일본 전문가인 통일연구원 평화연구실의 이기태 연구위원에게 30일 일본을 둘러싼 여러 담론에 대해 물어봤다.  레이와 시대에 기대감 큰 일본  Q: 얼마 전 일본에 다녀왔다는데 레이와(令和·새 일왕의 연호) 시대를 맞는 일본 분위기는 어땠나.  A: 활기 넘치더라. 상점에 가봐도 레이와 세일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 간 곳은 오카야마와 히로시마였다. 도쿄 분위기도 그렇다는데 지방에서도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넘쳤다.  Q: 헌법에 ‘상징’으로 명기돼 있는 일왕이어서 정치와는 획을 긋고 있지만, 일본인들이 레이와 시대에 거는 기대가 있을 텐데.  새 일왕도 평화 발신 지속할 것  A: 왕위를 물려준 아키히토 전 일왕이 워낙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했다. 태평양전쟁 피해국을 다니면서 지속적인 ‘위령(慰靈) 외교’를 펼쳤고, 국내에서도 재해·재난 지역에 가서 국민들과 마주했던 모습을 보였다. 새 시대에도 일왕이 평화를 발신하는 분위기는 지속될 것이다. 일본의 경기회복이나 도쿄하계올림픽과 맞물려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를 품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日 납치문제 美 전면협력 얻어내  Q: 아베 신조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어떻게 평가하나.  A: 아베 총리가 가장 의욕을 보이는 게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정상회담이다. 아베는 북한의 비핵화, 일본인 납치문제에 있어서 트럼프와 의견 일치를 봤다. 특히 납치문제에 대해서는 전면적으로 협력하겠다는 트럼프의 약속을 받아냈다. 아베 총리 자신이 다음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겠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11년간 유럽연합(EU)과 함께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해온 북한 인권 결의안을 보류하는 결정을 했고, 외교청서(靑書)에서는 ‘북한에 대한 압력을 최대한까지 높인다’는 표현도 삭제하는 등 북한에 ‘성의’를 보이고 있다.  Q: 북일 정상회담은 언제쯤 가능하다고 보는가.  A: 어려운 질문이다. 첫번째 변수는 국내 정치이다. 7월에 참의원 선거가 있는데 얼마전 중의원 보궐선거에서 패한 바 있다. 여권의 지지율 상승을 위해서 북일 정상회담을 시도해볼 수 있으나, 두달 밖에 남지 않아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올해는 힘들 것 같고, 한다면 도쿄올림픽이 있는 내년이 더 가능성이 있다. 두번째 변수는 비핵화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일본에 제재완화를 요구할 것 같고, 제재완화 이후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금을 청구할 것이다. 북한은 제재완화 설득을 미국에 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미일 공조가 탄탄하기 때문에 비핵화 이전에 섣불리 일본이 나서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Q: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을 두고 국내에서는 일본 훼방설이 돌았다. 일본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가.  A: 훼방이라는 표현은 안 맞지만, 비핵화에 대한 입장이 우리와 다르다. 일본은 제재가 지속되는 가운데 비핵화를, 우리는 대화를 통한 점진적 북핵 해결이라는 입장이다. 그런 엇박자에 따른 불협화음이 아닌가. 우려되는 것은 박근혜 정부 때 한일 양국이 서로의 나쁜 점을 미국에 알리는 ‘고자질 외교’가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한일관계 타개 위한 정상회담 시급  Q: 한일관계를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해결책은 있는가.  A: 정상끼리 만나는 게 가장 좋다. 6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만나자고 일본에 제안했지만 일본은 부정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만나서 시각차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게 필요하다. 아울러 비공식 라인이 강화되어야 한다. 한일의원연맹, 한일 경제인회의는 물론, 청와대와 일본 총리 관저 사이의 채널이 복원되었으면 한다. 황성기 평화연구소장 marry04@seoul.co.kr
  • 한국인 원폭 피해 2세대 8.6% 장애…“유전 될까봐 결혼·출산도 포기했다”

    한국인 원폭 피해 2세대 8.6% 장애…“유전 될까봐 결혼·출산도 포기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9.5% 달해 1·2세대 모두 “사회적 차별 경험”“아들 결혼할 때 여자 집에서 내가 원폭(원자폭탄) 맞았다는 걸 알게 된 거라. 그래서 파혼했다. 그다음부터는 원폭 맞았다는 얘기를 안 했고 아들은 다른 여자한테 장가갔다.”(원폭 피해자 1세·80대 남성) “딸은 결혼을 안 한다고 해요. 원폭 피해가 유전될 수 있다고 절대 안 한다고요. 그래서 결혼에 관심도 없어요.”(원폭 피해자 2세·60대 여성)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노출된 한국인 피해자들의 고통이 대물림되고 있다. 원폭 피해자 1세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까지도 피폭의 영향이 유전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결혼을 단념하거나 출산을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폭 피해자의 자녀란 이유로 파혼당한 일도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25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자 1·2세대 모두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다는 인식이 높았다. 이 때문에 피해 사실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세대 피해자의 23.0%는 장애가 있었고, 36.0%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으며 이들의 월평균 가구 수입은 138만 9000원이었다. 장애와 가난은 2세대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2세대 피해자 8.6%가 장애가 있다고 답했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9.5%였다. 이는 우리나라 35~74세 일반인의 장애인구 비율이 5.9%, 전체 인구 대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비율이 3.5%인 것과 비교할 때 월등히 높은 수치다. 피해자 2세인 70대 남성은 “온몸이 가려워서 병원에 갔더니 ‘상세불명의 피부병’이라고 진단했다”며 “자반증이 온몸에 다 있고,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다리 피부에 부스럼이 났다”고 토로했다. 원폭 피해 1·2세는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피해자 자녀 등의 피폭 영향에 대한 정부 차원의 역학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피해자 2세인 50대 여성은 “실태 조사라도 잘돼서 우리의 고충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정부에서도 지금까지 무관심했지만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두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기준 원폭 피해자로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생존자는 2283명이다. 1945년 당시 한국인 원폭 피해자 규모는 7만명으로, 이 중 4만명이 피폭으로 사망했고 생존자 중 2만 3000명이 귀국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가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것은 처음이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괴산 출신 스포츠스타 고향 홍보 한마음

    괴산 출신 스포츠스타 고향 홍보 한마음

    충북 괴산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스포츠스타들이 괴산 홍보에 나선다. 괴산군은 전 레슬링 국가대표 안대현(58)씨, 전 수영 국가대표 지상준(47)씨, KGC인삼공사 배구단 감독 서남원(53)씨, 기계체조 국가대표 김한솔(25)씨 등 4명을 홍보대사로 위촉했다고 5일 밝혔다. 이들은 괴산에서 열리는 58회 도민체전과 지역홍보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사리면 출신인 안씨는 서울 아시안게임 은메달(1986년), 서울올림픽 동메달(1988년) 등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국위를 선양했다. 현역 은퇴 후 개인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불정면이 고향인 지씨는 배영 한국 신기록을 56회 달성하며 한동안 한국수영의 간판스타로 불렸다. 베이징 아시안게임 금메달(1990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1994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1위(1995년), 제5회 아시아 수영선수권대회 1위(1996년) 등 입상경력도 화려하다. 현재 수영지도자로 후배양성에 힘쓰고 있다. 문광면에서 태어난 서 감독은 GS칼텍스 배구단 코치, 대한항공 점보스 코치,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배구단 감독 등을 역임하며 뛰어난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부모가 괴산으로 귀촌한 김씨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게임(2018년)에서 마루운동 금메달, 도마 은메달, 단체전 동메달 등을 따낸 현역 최고의 기계체조 선수다. 이차영 군수는 “도민체전 성공 개최를 위해 뜻을 함께 해준 스포츠 스타분들께 감사드린다”며 “뛰어난 재능과 참신한 이미지로 도민체전과 괴산 홍보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58회 도민체전은 오는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간 괴산종합운동장 및 종목별 경기장 일원에서 펼쳐진다. 도내 11개 시·군 4500여명이 참가한다. 괴산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배울 건 배워야지…’ 일본 택시 기사들의 수준 높은 질서정신

    ‘배울 건 배워야지…’ 일본 택시 기사들의 수준 높은 질서정신

    일본 택시 기사들의 놀라운 질서 정신이 화제다.  지난 22일 일본 히로시마 택시 기사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뉴스플레어, 라이브릭 등 여러 외신이 전했다. 히로시마의 한 지하철 역 앞. 많은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기 위해 역 앞 택시 대기용 주차장에 정차돼 있다. 주차장 맨 앞 줄 앞엔 1~9번까지 번호가 넘버링돼 있다.  맨 앞 첫 줄 대기라인은 8번, 9번 공간에만 차가 대기하고 있고 1~7번까지는 손님을 태우고 어디론가 떠난 상태다. 놀라운 건 바로 뒷 라인에 정차한 어떤 택시도 앞으로 이동하지 않고 느긋하게 자기 라인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나머지 8번, 9번 택시가 손님을 태우고 출발하자 맨 앞 라인은 텅 비어 있는 상태가 된다. 그 순간, 두 번째 라인에 대기하고 있던 9대의 택시들이 앞으로 서서히 나오는 모습이다.  그리고는 맨 앞 라인에 맞춰 질서 정연하게 정차하고 대기한다. 누구 하나 서둘러 먼저 나오지 않고, 앞 라인 9대의 택시들이 손님과 함께 모두 사라지는 걸 확인한 후 차례대로 질서정연하게게 나온 것이다. 영상을 보는 내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어떤 경찰관도, 어떤 주차관리자도 없이 오로지 택시 기사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이룬 놀랍고도 경이로운 순간이다. 과연 어떤 나라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단 말인가. 진정 선진국 다운 모습이다.  정말로 ‘배울 건 배워야’ 할 거 같다.사진 영상=1,056,453 Views 유튜브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 美원폭에 日 항복했지만… 광복 직전 ‘독립작전’은 이미 시작됐다

    美원폭에 日 항복했지만… 광복 직전 ‘독립작전’은 이미 시작됐다

    “일본은 오늘 정오를 기해 미국에 항복한다.” 1945년 8월 15일 일왕 히로히토(1901~1989)가 떨리는 목소리로 종전을 선언했다. 광복을 기뻐하는 국민의 만세 소리가 거리에 가득했다. 그러나 이날 저녁 중국군으로부터 일본의 항복 소식을 전해 들은 김구(1876~1949)는 크게 낙담했다. 그는 회고록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일본의 항복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었다.” ●일본 항복 받아낸 미국의 ‘리틀보이’ 이날 히로히토가 발표한 종전 방송은 “짐은 제국정부(일본)로 하여금 미·영·소·중 4국에 대해 공동선언을 수락할 뜻을 통고하게 했다”로 시작한다. 히로히토가 말한 ‘공동선언’이란 1945년 7월 26일 발표한 독일 포츠담 선언을 가리킨다. 연합군이 일본에 항복을 권고한 이 선언에는 전후 일본 처리 문제 등이 담겼다.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이미 연합군에 항복했다. 포츠담 선언 당시 일본은 혼자서 연합군과 싸우고 있었다. 사실상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 일본이 항복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을 뿐이다. 결국 미국은 일본 도심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코드명 ‘리틀보이’가, 9일 나가사키에 ‘팻맨’이 투하됐다. 10일 일본은 스위스에 있던 국제연맹(유엔의 전신) 본부에 포츠담 선언 수락 의사를 전달했다. 일본이 항복한 직접적 이유는 원자폭탄이라고 할 수 있다. 히로히토가 발표한 종전 방송에도 “적국은 잔학한 원자폭탄을 사용해 수많은 국민들을 살상하고 있다. 그 참상의 범위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더이상 교전을 계속한다면 결국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하고 인류의 문명까지 파멸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폭탄의 위력을 짐작할 만한 구절이다. 민중운동가 함석헌(1901~1989)은 원자폭탄 투하 뒤 찾아온 광복에 대해 “도둑같이 뜻밖에 왔다”고 했다. 그만큼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뉴라이트’ 계열의 일부 학자는 “우리의 광복은 미국의 원자탄 두 발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우리는 미국의 폭탄이 없었다면 나라를 되찾지 못했을까. ●독립단체 “광복 위한 결정적 시기 온다” 확신 1930년대 후반부터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은 일제가 패망하고 한국이 독립하는 ‘결정적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느꼈다. 1941년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며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이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을 상대로 국외 무장운동 세력과 연합군이 한반도에 진격하고 동시에 국내에서도 폭동과 무장봉기에 나서면 충분히 독립을 쟁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2년 윤봉길(1908~ 1932)의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 뒤 중국 각지를 떠돌다가 1940년 충칭에 터를 잡았다. 김구는 이때부터 한국광복군을 훈련시키며 국내에 진입할 준비를 했다. 광복군은 지청천(1888~1957)을 총사령관으로 1940년 9월 결성된 임정 최초의 정규군이다. 초기에는 장교 30여명으로 이뤄진 ‘사병 없는 부대’였다. 1942년 김원봉(1898~1958)이 조선의용대 300여명을 이끌고 합류한 것이 큰 힘이 됐다. 광복군은 1945년 4월쯤 340여명, 같은 해 8월 700여명 정도였다. 아무리 많아도 1000명을 넘지는 않았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견해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군은 군속을 포함해 최대 750만명으로 추산된다. 임정이 일대일로 맞붙어 이길 상대가 아니었다. 일부 언론에서 “원자탄이 없었어도 김원봉 등 걸출한 혁명가들이 일본을 몰아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우리의 역량을 지나치게 과장한 것이다.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수석 연구위원은 “광복군의 규모와 전투 능력을 아무리 높게 쳐도 일본을 몰아내기는 어려웠다. 광복군은 그저 항일투쟁의 상징적 존재였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일본군 750만… “광복군이 몰아내긴 힘들어” 그렇다고 임정이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체념에만 빠져 있었을까. 아니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승전국 지위를 확보해 우리 스스로 독립을 얻어내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44년에는 버마(현 미얀마) 임팔전투에 참가해 1945년 7월 일본군이 패배해 철수할 때까지 영국군을 도왔다. 1945년 8월 중국에 있던 미국 정보기구 육군정보전략본부(OSS)에서 광복군 38명이 특수요원 훈련을 마치고 국내 잠입을 기다렸다. 미군과 함께 한반도 진공 작전도 추진했다. 역사소설 전문 이원규(72) 작가는 “일본이 일주일만 늦게 항복해 광복군이 한반도에서 독립전쟁을 수행했다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1943년 1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전후 일본 처리 문제를 두고 국제회담이 열렸다. 여기서 장제스(1887~1975) 중국 국민당정부 총통은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1874~1965) 영국 총리의 반대를 물리치고 한국의 독립을 명문화했다. 김구 등 임정 수뇌부의 간절한 청원을 받아들인 것이다. 애초 한국은 카이로 회담의 논의 대상이 아니었지만 장제스가 예외 조항까지 만들어 우리를 도왔다. 독립을 갈망하는 우리 민족의 염원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인도의 독립운동가로 훗날 총리가 되는 자와할랄 네루(1889~1964)는 한국을 “아시아 식민지 국가 가운데 열강에게 독립을 보장받은 유일한 나라”라고 부러워했다. 장 연구위원은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않았어도 일본은 소련의 참전 등으로 결국은 패했을 것이다. 어찌됐든 당시 한반도는 (임정의 다각적 노력 등이 맞물려) 광복을 맞이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연합국 덕에 해방? 독립노력 폄하해선 안돼” 일부 학자들은 “연합국이 해방을 가져다줬다”고 말한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일제를 이길 힘이 없었고 국제사회도 임정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제패를 꿈꾸며 전 세계로 세를 넓혀 가던 강대국 일본을 우리 혼자 막지 못했다고 해서 독립을 위한 선조들의 노력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연합국이 임정을 승인하지 않았던 것은 일본이 항복한 뒤 전리품을 더 많이 차지하려는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한시준(65)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해방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어느 나라보다도 오래 그리고 치열하게 일제와 싸웠다. 대한민국은 임정이 중심이 된 독립운동 세력의 길고 긴 투쟁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광복 이후 우리를 기다린 것은 ‘한반도 분단’이었다. 당시 소련은 8월 9일 일본에 선전포고한 뒤 거침없이 한반도로 진격했다. 당시 미군은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어 한반도로 바로 들어오기 어려웠다. 결국 미국은 소련에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에 나눠 들어오자”고 제안했다. 당시 임시로 친 철조망이 지금까지도 한반도를 반으로 갈라놨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우리가 좀더 주도적으로 독립을 얻어냈다면 해방 이후 한반도 분단과 전쟁, 이념 갈등 등은 없었을 수도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우주를 보다] 히로시마 원폭 10배…베링해서 폭발한 우주암석 포착

    [우주를 보다] 히로시마 원폭 10배…베링해서 폭발한 우주암석 포착

    지난해 12월 베링해 상공에서 대형 폭발한 우주 암석의 모습이 위성을 통해 포착됐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미 항공우주국(NASA)은 테라(Terra) 위성이 촬영한 당시 우주 암석의 폭발 모습을 영상으로 공개했다. 얼마 전 뒤늦게 일반에 알려져 큰 파장을 일으킨 이 우주 암석은 지난해 12월 18일 정오 경 대기권에 초속 32㎞로 진입하며 화구(火球·fireball)가 돼 캄차카반도 인근의 베링해 상공 약 25.6㎞ 권역에서 폭발했다.폭발력은 17만3000t으로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무려 10배에 달했다. 지난 2013년 러시아 첼랴빈스크 상공에서 폭발해 세계적으로 알려진 화구 폭발 사건에 이어 지난 30년 사이 두 번째로 큰 폭발이다. 문제는 이같은 사실을 대부분 알지 못했다는 것으로, 만약 화구가 도시 등 사람이 밀집한 지역 위에서 폭발했다면 상상하기도 힘든 참사를 낳을 수도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화구 폭발은 미 군사위성이 먼저 포착해 NASA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NASA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흰 구름을 배경으로 오렌지색으로 빛나는 화구가 폭발하는 모습이 담겨있으며 그 경로는 짙은 갈색의 연기로 보인다. 영어로 '파이어볼'이라 부르는 화구는 유성 중에서도 크고 밝은 것을 의미한다. NASA 행성방어 담당 과학자 린들리 존슨은 "이렇게 밝고 큰 화구는 100년에 2~3차례 정도 발생할 정도로 희소하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시민구단 대구FC 광저우 혼쭐냈다

    시민구단 대구 FC가 몇 년 전만 해도 돈자랑에 여념이 없던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를 혼쭐냈다. 안드레 감독이 이끄는 대구는 12일 DGB대구은행파크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F조 2차전 홈 경기를 3-1 완승으로 장식했다. 시민구단이 두 차례나 대회를 제패한 광저우를 제압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1만 2000여석은 매진됐고, 선수단은 개장 2연승으로 팬들의 성원에 보답했다. 초반엔 높은 점유를 바탕으로 한 광저우의 공세가 매서웠지만, 대구는 전열을 정비해 반격에 나섰다. 전반 24분 김대원이 하프라인에서 넘어온 세징야의 긴 패스를 크로스로 연결하자 골문 앞의 에드가 오른 다리를 내밀어 집어넣었다. 43분에도 왼쪽에서 김대원이 세징야에게, 다시 중앙을 파고들던 에드가에게 공이 배달되자 에드가가 오른발로 골문을 열었다. 에드가는 멜버른과의 1차전 동점 골에 이어 대회 두 경기 연속 골에 멀티 골을 기록했다. 후반 시작과 함께 둘을 교체한 광저우는 8분 교체돼 들어간 웨이스하오의 오른쪽 측면 돌파에 이은 크로스를 안데르송 탈리스카가 왼발로 마무리했다. 약간 밀렸던 대구는 김대원이 34분 페널티 지역 왼쪽에서 상대 수비를 맞고 나온 공을 강한 오른발 슛으로 연결했으나 살짝 빗나가자 아쉬움을 삼켰지만 2분 뒤 비슷한 위치에서 다시 오른발 슛을 골문에 꽂아 승리를 매조졌다. 2연승(승점 6)을 달리며 조 선두로 오른 대구는 다음달 10일 산프레체 히로시마(일본)와 원정 3차전을 치른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동영상] 골 세리머니로 광고판 넘다가 추락 ‘안델손’, 후반전 반전

    [동영상] 골 세리머니로 광고판 넘다가 추락 ‘안델손’, 후반전 반전

    지난해 K리그1 FC서울에 임대돼 뛰면서 등록명 ‘안델손’으로 불렸던 안데르송 로페즈(26·콘사도레 삿포로)가 골 세리머니를 벌이다 큰일 날 뻔했다. 안데르송은 9일 시미즈 S 펄스와의 J1리그 시즌 첫 홈 경기 전반 19분 스즈키 무사시가 선제골을 넣었지만 전반 36분 동점 골을 내줘 1-1로 맞선 전반 종료 직전, 골망을 출렁인 다음 기쁨에 겨워 서포터들에게 가려고 광고판을 훌쩍 뛰어넘었다. 하지만 광고판 뒤는 그라운드보다 무려 3m 가까이 낮았다. 순식간에 그는 중계 카메라에서 사라졌다. 동영상을 보면 그 역시 뛰어넘자마자 자신의 실수를 알아챈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동안 쓰러졌고 경기는 중단돼 구단 의료진이 화들짝 놀라 달려와 그를 살폈다. 천만다행으로 안데르송은 다치지 않았다.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와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들어올렸다. 오히려 후반 4분과 20분, 그리고 4분 뒤 세 골을 추가해 5-2 완승을 이끌고 홈 팬들에게 리그 복귀 신고를 확실히 했다. 쇼난 벨마레와의 시즌 첫 경기, 우라와 레즈와의 경기에서 무득점으로 침묵한 분풀이를 이날 했다. 구단 역사에 한 경기 네 골을 터뜨린 이는 안데르송이 유일하다. 그는 경기 뒤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에 귀화해 일본 국가대표로 뛰고 싶다고 밝혔다. 브라질 헤시피 출신인 그는 스포르트 헤시피, 상조제, 인테르나시오나우 유스팀을 거쳐 아바이 FC에서 2013년 11월 성인 무대에 데뷔한 뒤 마르실리우 디아스와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에 임대된 뒤 일본 J리그 산프레체 히로시마를 거쳐 서울 유니폼을 입은 뒤 홋카이도 콘사도레 삿포로에 임대됐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금요일의 서재]만화 ‘드래곤볼’ 속에 ‘경영’, ‘제국주의’ 숨어 있다고?

    [금요일의 서재]만화 ‘드래곤볼’ 속에 ‘경영’, ‘제국주의’ 숨어 있다고?

    토리야마 아키라의 만화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손오공의 맞수 ‘프리더’를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어떨까. 자신의 종족을 이끄는 실력 있는 뛰어난 경영인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미국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캐릭터로도 분석할 수 있다면? 완결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기 있는 ‘드래곤볼’을 나름의 시각으로 분석한 신간 2권이 눈에 띈다. 한 권은 드래곤볼에서 ‘경영’을 배울 수 있다 주장하고, 다른 책은 드래곤볼이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그저 재미로만 읽었던 만화책을 이런 식으로 분석한 게 놀라울 따름. 이번 주 금요일의 서재에서는 드래곤볼을 다른 시각으로 살펴본 신간 두 권을 묶었다. ●손오공→손오반, CEO 세대교체 실패사례=‘드래곤볼에서 경영을 배우다’(더봄)는 드래곤볼을 경영으로 풀어낸다. ‘초베스트셀러 만화로 즐기는 난생처음 경영학’이란 부제답게, 만화 장면에 관련 이론을 적용한다. 조직개발 전문가인 저자는 어린 시절 즐겨보던 만화 드래곤볼을 성인이 된 후 다시 읽어보고 재밌는 점을 발견한다. 만화 주인공들이 강한 적을 상대하고자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보니 기업 간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경영 전략이 보인 것이다. 예컨대 주인공 손오공을 기업의 CEO라고 해보자. 드래곤볼 연재가 길어지면서 토리야마 아키라는 지속적인 어린 독자 유입을 위해 주인공의 2세를 등장시키기로 한다. 손오공보다 훨씬 강하고 가능성도 큰 손오반이 등장한다. 손오공은 죽고, 손오반이 전체 극을 이끈다. 그러나 독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드래곤볼 7개를 모아도 죽어버린 손오공을 살릴 수 없도록 했지만, 하루만 이승으로 올 수 있도록 설정이 바뀐다. 저자는 이를 ‘세대교체’로 설명한다. 갑작스런 리더의 부재는 조직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체계적인 승계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하며, 충분한 경험 시간의 확보가 필요하다. 저자는 적을 쓰러뜨리면 더욱 강한 적이 계속 등장하고, 치열하게 수련을 쌓지 않으면 도태되는 드래곤볼의 배경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경쟁 기업과 지속적인 혁신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지금의 비즈니스 환경과 매우 비슷하다고 말한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거나, 어제의 적과도 이익에 따라 과감하게 손을 잡는 글로벌 경쟁시대의 역학 관계는 강한 적을 상대하고자 적군과 아군이 손을 잡는 드래곤볼 캐릭터들의 선택과 유사하다. ●드래곤볼 배경 2차대전, 손오공 일본 상징=드래곤볼이 단순한 만화의 수준을 뛰어넘어 비즈니스와 조직에 주는 영감과 통찰력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앞선 책이 주장하지만, ‘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아이네아스)는 드래곤볼이 일본 제국주의 요소를 아주 많이 담고 있다고 반박한다. 드래곤볼은 지금까지 16세기 중국 소설인 ‘서유기’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판타지로 여겨졌다. 그러나 저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역사를 소환하고, 전후 일본인의 자기정체성, 그리고 범아시아주의에 대한 일본인의 욕망을 여러모로 분석했다. 저자는 드래곤볼의 주인공인 손오공이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한다고 설정했다. 베지터, 라데츠, 네퍼, 버독 같은 사이어인도 마찬가지다. 서구 제국주의로 프리더, 도도리아, 자봉을 각각 미국, 영국 프랑스로 놨다. 예컨대 프리더의 경우 초반에 캐리어를 타고 다니는데, 이는 휠체어를 탄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을 연상케 한다. 프리더가 행성 베지터를 에너지 볼로 파괴하는 장면은 어떤가.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모습과 아주 흡사하다. 이렇게 보면 손오공의 맞수이자 같은 종족인 베지터는 일본사회의 엘리트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그는 미국을 상징하는 프리더에게 무참히 패배한 이후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 엘리트로 풀이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사이어인은 위기를 넘어 초사이어인이 되는데, 그 모습은 백인과 흡사하다. 일종의 백인을 지향하는 ‘클리셰’인 셈인데, 금발의 파란 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내세우던 이상적인 모습의 독일 아리아인을 상징하는 게 과연 우연이냐고 저자는 묻는다. 저자는 독자들이 만화 속에 일본 제국주의와 태평양 전쟁의 피해자인 그들 국가의 시각이 담겼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이에 반해 일본이 과거 세대의 죄를 지워가며 어떻게 과거를 기억했고, 또 기억하려 하는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이 반박하기 어려울 정도로 딱딱 들어맞으니 묘한 기분이 들 정도다. 다른 시각으로 본다는 일은 이처럼 재밌지만,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던지기도 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시민단체,미쓰비시중공업 한국자산 강제집행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자들이 배상 책임을 이행하지 않는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자산을 강제 집행하기로 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4일 성명을 내고 “미쓰비시 측이 교섭에 응하지 않아 빠른 시일 안에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상표·특허 등 자산을 압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압류 절차 진행에는 시민모임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소송 변호단(이상갑·김정희 변호사), 미쓰비시 히로시마 징용 피해자 소송 변호단(최봉태·김세은 변호사),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가 동참한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에 동원돼 미쓰비시중공업에서 강제 노역했던 피해자들은 1·2·3차로 나눠 소송을 진행 중이며 양금덕씨 등 1차 소송 원고 5명은 지난해 11월 29일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확정받았다. 이 판결 이후 근로정신대 및 징용 피해자 소송 변호인단이 미쓰비시 측에 2월 말까지 판결 이행을 협의하기 위한 교섭을 요구했고 지난달에는 일부 원고들이 직접 도쿄를 방문해 미쓰비시 측의 성의 있는 답변을 촉구했다. 시민모임은 “미쓰비시 측이 판결 이행을 거부하는 사이 고령인 원고들이 잇따라 별세하고 있다”며 “미쓰비시 측은 교섭 요청에 응하지 않은 만큼 확정판결을 근거로 강제집행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특파원 생생 리포트]“학자금 갚아줍니다”...직원들 부채상환 나선 日지방기업들 ‘인력난 고육책’

    [특파원 생생 리포트]“학자금 갚아줍니다”...직원들 부채상환 나선 日지방기업들 ‘인력난 고육책’

    日지방기업, 직원 대학 학자금 대신 갚아줘신규 대졸자 채용 난항에 고육책으로 떠올라교토부 등 지자체도 거들어 지역 활성화 나서직원들이 대학에 다닐 때 빌렸던 학자금을 대신 갚아주는 일본 지방기업들이 늘고 있다. 히로시마를 거점으로 하는 유통그룹 이즈미, 홋카이도를 기반으로 하는 이토구미 토건 등이 최근 직원 학자금 상환 혜택을 도입해 젊은 사원들에게 적용하고 있다. 도쿄, 가나가와, 지바, 사이타마 등 수도권에서 떨어진 곳에서는 신규 대졸자를 뽑기가 어려운 현실 속에 인재 유치를 위한 고육책이다.2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이즈미는 올 봄 입사하는 신입사원들부터 학자금 상환 지원제도를 적용한다. 상환해야 하는 학자금 대출이 있는 직원들에 대해 입사 3년차, 5년차, 7년차 시점에 각각 10만엔(약 100만원)씩 총 30만엔을 여름 상여금에 얹어 주는 식이다. 입사 내정자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대졸사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160명 정도가 이를 신청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학생들이 직장을 고르는 기준으로서 복지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제도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학자금을 대신 갚아주는 제도는 종합 결혼서비스 기업 노바레제, 다이와증권그룹 등 도쿄에 본사를 둔 기업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미요시 부동산(후쿠오카), 코프삿포로(삿포로), 후지슈퍼(에히메) 등 지방에 본사를 둔 기업의 움직임이 한층 두드러진다. 이토구미의 경우 지난해 4월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이 제도를 마련했다. 입사 1년 이상이면서 근무태도가 우수한 직원들에게 매월 1만엔씩 급여에 추가해 지급한다. 최대 상한선은 200만엔이다. 회사측은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기업설명회 참석자가 늘었다”며 “인력난 극복에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에 말했다.지방에 기반을 둔 기업들의 인재 구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만성적인 일손 부족에 수도권에서도 일할 곳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일본생명이 지난해 7~9월 전국 약 36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48%의 기업이 “신규 졸업자 채용이 어렵다”고 답한 가운데 지역별로 편차가 컸다. 수도권이 포함된 간토 지방는 42%인 반면 수도권에서 먼 고신에쓰·호쿠리쿠와 홋카이도 지방은 각각 58%, 59%에 달했다. 지난해 4월 취업정보업체 마이나비 조사에서도 2019년 대졸 예정자 중 대도시 등을 고집하지 않고 자기 지역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비율은 51%에 불과했다. 2013년 실시됐던 동일한 조사의 60%대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기업들의 움직임을 지원해 지역의 활력을 유지하려는 지방자치단체도 늘고 있다. 교토부의 경우 직원의 학자금 상환을 지원하는 기업들에 대해 부담금의 절반을 보조하고 있다. 학자금 대출지원 사업을 하는 일본학생지원기구에 따르면 이곳을 통해 대학 등록금을 빌린 학생은 2017년 기준 129만명에 이른다. 전국 학생의 37%에 해당한다. 1인당 대출액은 평균 343만엔 정도다. 약 16만명은 3개월 이상 대출 상환이 밀려 있다. 3개월 이상 연체가 되면 신용정보기관이 이름이 등록돼 신용카드 발급이나 주택담보대출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하자… 임정, 마침내 日에 선전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하자… 임정, 마침내 日에 선전포고

    4부. 광복의 여명 : 충칭 시기 ② 일본의 패망1910년 한반도를 차지한 일본은 1931년 중국 만주를, 1937년 중국 대륙을 침략하며 제국주의 팽창 야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까지 점령한 뒤 “독일과 중동에서 만나겠다”며 버마(현 미얀마)·인도 전선까지 세력을 확대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마지막 정착지인 중국 충칭에서 당·정·군 체제를 갖춘 뒤 ‘전쟁 괴물’이 된 일본의 패망을 기다렸다. 해방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찾아왔다.●임정, 1945년 2월 28일 독일에도 선전포고 1937년 7월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영국과 미국은 자신들이 선점한 중국 내 이권을 빼앗길 것을 우려했다. 일본에 석유 수출을 금지했다. 이후 일본은 제조업 가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1941년 12월 미국의 해군기지인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석유금수 조치를 풀어 보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당시 두 나라 간 군사력 차이를 감안할 때 진주만 공습은 무모한 결정이었다. 미국은 즉각 일본과의 전면전을 선언하며 ‘태평양전쟁’(1941~1945)에 나섰다. 이 전쟁은 임정이 바라던 일이기도 했다. 광복군을 양성해 뒀다가 일본이 중국, 미국과의 전쟁에 나서면 이들을 도와 독립을 쟁취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정은 일제가 진주만을 공격한 직후 주석 김구(1876~1949)와 외무부장 조소앙(1887~1958) 명의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선전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가 3000만 한인과 정부를 대표해 중국과 영국, 미국 등 여러 나라와 함께 일본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일본을 격패시키고 동아시아를 재건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기에 민주진영의 최후 승리를 미리 축하한다.” 임정은 독일에 대해서도 선전포고했다. 1945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국 회의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이 회의에 참가하려면 3월 1일 이전에 독일에 선전포고를 해야 해 하루 전인 2월 28일 발표했다.●中 통제받은 광복군, 9개 조항 행동준승 논란 1940년 9월 태어난 광복군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도움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이 지원하던 또 다른 한인 부대였던 조선의용대 대원 상당수가 1941년 3~5월 본진을 이탈해 화베이 지역으로 떠나자 국민당 정부는 당황했다. 같은 해 11월 중국은 광복군에 대한 지원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한국광복군 행동준승’이라는 9개 조항을 전달했다. 중국 중앙군 참모총장의 명령과 통제를 받아 광복군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었다. 독립운동사 전문가인 이현희(1937~2010) 전 성신여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이 준승은 광복군이 사실상 중국의 고용군이 된다는 것으로 매우 굴욕적인 군사협정이었다. 중국이 임정을 어떤 존재로 여겼는지 의심스럽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 영토에서 활동하는 외국 군대를 통제하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당시 한인 독립운동 세력이 중국으로부터 충분히 신뢰를 얻을 만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기에 어느 정도 간섭이 불가피했다는 반론도 있다. 임정은 중국의 준승 명령에 분개해 청사를 중국에서 미국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자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 이승만(1875~1965)과 협의하기도 했다. 결국 중국은 우리 측의 지속적인 요구로 1944년 8월 광복군 통제권을 임시정부에 돌려줬다.●광복군, 한지성·문응국 등 임팔전투 투입 일본은 1942년 1월 영국의 식민지 버마를 침공했다. 인도에 주둔해 있는 영국군이 즉각 대응에 나섰는데, 이를 버마 전투(1942~1945)라고 한다. 영국군은 영어와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다. 광복군은 영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인면전구공작대’를 꾸렸다. 인도와 버마 전선에서 활동하는 공작부대라는 뜻이다. 이들은 1943년 8월 영국군 총사령부가 있던 인도 캘커타에 도착했다. 한지성(1913~?)과 문응국(1921~1996) 등 9명이었다. 공작대는 영국군에게서 심리전 교육 등을 받고 1944년 초 임팔전선에 투입됐다. 임팔은 인도와 버마의 접경지역으로 열대밀림 산악 지대다. 광복군은 1945년 7월 일본군이 버마에서 완전히 패해 철수할 때까지 1년 넘게 영국군을 도왔다. 1945년 9월 이들은 충칭의 광복군 총사령부로 무사히 복귀했다. 한지성의 증언이다. “우리 공작대는 언제고 전투할 수 있도록 무장한 뒤 적(일본군)과 가장 가까운 진지에서 일본어로 방송을 했다. 선전문을 제작해 살포하고 일본군 문건을 번역하며 포로를 심문했다.”광복군은 미군과 함께 한반도 진공 작전도 추진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SS·1942~1945)과 함께 한반도와 일본 본토에서 지하공작에 나서는 것이었다. OSS 특수훈련을 받은 광복군 대원을 국내에 잠입시켜 여러 활동에 나서기로 했는데, 이를 ‘독수리 작전’이라고 불렀다. 1945년 4월 OSS 요인들이 충칭의 임정 청사로 찾아와 작전 내용을 상세히 설명했고 김구는 이를 승인했다. 영화 ‘군함도’(2017)에서 독립운동 인사를 구출하고자 일본 나가사키현 하시마섬(군함도)에 잠입한 박무영(송중기 분)이 광복군 소속 OSS 요원이다.OSS는 같은 해 5월부터 광복군 내 엘리트들을 차출해 군사훈련을 시켰다. 대표적인 이들이 훗날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1920~ 2011)과 사회운동가로 활약한 장준하(1918~1975)다. 이들은 일본군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영해 광복군에 합류했다. 김준엽은 1987년 개헌 당시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조문을 삽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장준하는 박정희(1917~1979)의 독재에 반대하다가 1975년 의문사했다. ●승전국 지위 확보·강대국 간섭없이 독립 목표 임정은 미군의 지시로 국내에 진격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8월이 되자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히로시마(6일)와 나가사키(9일)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8일에는 소련이 선전포고를 하며 만주국을 점령했다. 당시 일본 측 기록을 보면 일본군은 나가사키 원폭 투하보다 소련 참전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주변의 모든 나라가 적이 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본은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광복군의 국내 진공 작전도 결국 무산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당시 임정은 한반도에 잠입해 2차 세계대전 승전국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면 강대국의 간섭 없이 한반도 독립을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며 “일본이 일주일만 늦게 항복해 광복군이 한반도에 참전했다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일부 학계에서는 광복군이 미군과 공동 작전에 참가했더라도 그 수가 워낙 적어 승전국 지위를 확보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본다. 그래도 임정이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 일본과의 전쟁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외세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고자 노력했다. 광복군의 국내 진공 작전을 무의미하다고 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의 패망이 다가오던 1944년. 임정은 좀더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새 나라의 밑그림을 그려야 했다. 1943년 ‘카이로선언’(미·영·중이 일본 문제 논의)으로 조선 독립을 보장받은 시기였기에 이를 반영해 헌법을 개정했다. 주석(대통령) 중심제를 기본으로 하되 의원내각제를 가미해 절충적 정부를 구성했다. 교육과 직장, 노약자 부양을 요구할 권리를 보장하고 파업권도 명시했다. 사회민주주의 형태의 국가다. 이는 1941년 임정이 조선민족혁명당과의 합작을 앞두고 좌우를 아우르기 위해 내놓은 ‘건국강령’의 영향이 컸다. 건국강령을 지은 이가 ‘사민주의자’ 조소앙(1887~1958)이다.●조소앙의 삼균주의, 건국 이념 기초로 작용 일본 메이지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1919년 3·1운동 뒤 중국으로 망명해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다. 1919년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린 만국사회당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임정을 정식 국가로 승인해 줄 것을 호소했다. 1930년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한독당은 1940년 5월 우파 통합정당의 이름으로 계승돼 임정의 여당이 됐다. 그는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가 모두 균등해지려면 정치와 경제, 교육의 세 가지 조건이 동등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삼균주의인데, 훗날 건국강령의 이론적 기반이 됐다.●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 한국전쟁 때 납북 해방 뒤 김구와 함께 한독당을 이끌었고, 1948년 12월 우리나라 최초의 좌파 정당인 사회당을 창당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전국 최고득표율로 당선됐지만 6·25전쟁 때 납북됐다. 만약 임정의 ‘1944년 헌법’대로 해방 정부가 꾸려졌다면 지금쯤 우리는 독일이나 스웨덴을 모델로 한 사민주의 국가에 살고 있을 것이다. 조석곤 상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1948년 제헌헌법은 건국강령의 경제조항을 계승하고 있다. 그것은 장기간에 걸쳐 이룬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충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박상하 국제정구연맹 회장 74세로 별세

    박상하 국제정구연맹 회장 74세로 별세

    25년 동안 국제정구연맹(ISTF) 회장을 역임하며 정구와 한국 체육 부흥에 힘쓴 박상하 회장이 지난 5일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94년 ISTF 회장에 처음 선임된 박상하 회장은 2015년 만장일치로 6회 연임에 성공하며 올해까지인 임기를 채우는 중이었다. 그가 연맹을 이끄는 동안 22개였던 회원국수는 90개로 늘었고, 미국과 유럽에서도 세계대회가 열리게 됐다. 고인은 1994~1998년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맡았고,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때 한국 선수단 단장을 맡았다. 2000년에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부위원장으로, 2011년에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특별위원으로 활동했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발인은 9일 오전 6시 30분. (02)3410-3151.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셰일가스 채굴하려 히로시마 원폭 기술 쓰겠다는 중국

    셰일가스 채굴하려 히로시마 원폭 기술 쓰겠다는 중국

    중국이 셰일가스를 채굴하기 위해 원자폭탄에 쓰이는 기폭장치 기술을 이용할 계획을 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자오퉁(西安交通)대 장융밍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10여 년의 연구 끝에 강력한 충격파를 이용한 채굴 공법을 개발했다. 이 채굴 공법은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기폭장치에 쓰인 기술과 같은 원리다. 어뢰처럼 생긴 기폭장치를 지하로 내려보낸 뒤 강력한 전류를 발생시키면 플라스마 형태의 이 전류가 엄청난 충격파를 주위로 내보내 암반을 깨뜨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핵무기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이 연구팀은 실험실 연구를 마친 후 오는 3월이나 4월 쓰촨(四川) 지역에서 이를 실제로 적용할 계획이다. 화학물질이 섞인 물을 대량으로 사용해야 하는 기존 수압파쇄공법과 달리 이 공법은 환경 측면에서도 더 나은 공법이라는 게 중국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중국은 31조 6000억㎥ 규모의 셰일가스를 보유해 세계 최대의 매장량을 자랑한다. 미국과 호주가 보유한 셰일가스를 합친 양의 2배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이다. 하지만 2017년 중국의 셰일가스 생산량은 60억㎥에 그쳤다. 셰일가스를 적극적으로 채굴해 수출까지 하는 미국과 달리 중국 내 전체 천연가스 생산량의 6%에 불과한 수치이다. 이처럼 중국의 셰일가스 생산이 저조한 것은 지하 수백m에 매장된 미국의 셰일가스와 달리 중국 셰일가스의 80%가 지하 3500m의 깊은 땅속에 있는 까닭에 기존의 수압파쇄공법으로는 채굴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셰일(Shale·혈암)은 지하에 넓고 얇게 형성된 진흙 퇴적암층으로 원유와 천연가스를 함유하고 있다. 수압파쇄 공법은 시추공을 뚫은 후 모래와 화학물질이 섞인 물을 고압으로 뿜어내 암반을 깨뜨려 가스 등을 퍼 올리는 공법을 말한다. 그런데 땅속 3500m에 있는 셰일가스에 이 공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압력의 물을 뿜어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기술로는 이를 감당할 펌프와 파이프를 만들 수 없다. 이 때문에 장융밍 교수팀은 10여 년의 연구 끝에 강력한 충격파를 이용한 채굴 공법을 개발한 것이다. 문제는 이 공법을 이용하다가는 자칫하면 큰 재난을 부를 수 있는 탓이다. 지하에서 강력한 충격파를 발생할 경우 인공 지진을 만들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데다 연구팀이 새 공법을 시험할 쓰촨 지역은 2008년 8만 7000명의 사망자와 37만명의 부상자를 초래한 쓰촨 대지진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인근에는 중국 최대의 수력발전 댐인 싼샤(三峽)댐과 세계 최대 규모의 화력발전소 등이 있어 셰일가스 채굴 당시 발생할 충격파로 인한 인프라 시설 붕괴 등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NCT 127 “감격스런 첫 단독콘서트… 성장하는 모습 보여줄 것”

    NCT 127 “감격스런 첫 단독콘서트… 성장하는 모습 보여줄 것”

    데뷔 2년 6개월 만에 첫 단독콘서트를 연 NCT 127이 감사한 마음과 포부를 밝혔다. NCT 127은 26~2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첫 단독콘서트 ‘네오 시티 : 서울 - 디 오리진’(NEO CITY : SEOUL - The Origin)을 열고 이틀간 2만 4000여 관객을 만났다. 27일 공연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NCT 127 멤버들은 콘서트에서 펼쳐놓을 퍼포먼스 등 무대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밝혔다. 태용은 “연습생 때부터 꿈꾸던 일이 현실이 됐다. 기대도 되고 설렌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정글짐 안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무대도 있고 리프트가 15도 기울어진 상태에서 퍼포먼스를 하기도 한다”며 콘서트에서만 볼 수 있는 화려한 퍼포먼스를 자랑했다. 유타는 “정우와 제가 댄스 배틀 하는 부분이 있는데 올드스쿨 분위기와 연결된다”며 색다른 분위기의 무대를 소개했다. 전날 열린 1일차 공연에는 SM엔터테인먼트 선배 가수인 동방신기의 유노윤호, 엑소의 시우민, 레드벨벳 멤버들이 와서 NCT 127를 응원했다. 마크는 “시작 전에도 오셨는데 끝나고 나서 좋은 조언도 많이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든든한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태용은 특히 유노윤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윤호형이 연습생 때부터 저희를 계속 봐주셨고 군대에 계실 때도 모니터 해주셨는데 직접 와주시니 긴장됐던 마음이 오히려 사그라들었다”고 덧붙였다. NCT 127은 데뷔한 지 불과 2년 반만에 모든 아이돌들의 꿈의 무대인 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도영은 “부담감보다는 저희와 팬들끼리 만나는 첫 번째 공간이라는 점에서 많이 설?고 감격스러웠다”고 전했다. NCT 중국팀인 웨이션V 활동으로 이번 콘서트에 참여하지 않는 윈윈을 제외하고 9명의 멤버가 무대에 섰다. 다만 발목 부상으로 춤을 보여줄 수 없는 해찬은 발라드곡 무대에만 함께했다. 태용은 “막내 해찬이가 빨리 나아서 더욱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다”며 이어질 해외 공연에 대한 기대도 당부했다. 재현은 “앞으로 더 큰 곳에서 더 많은 팬분들과 만나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서울 콘서트로 2019년 활동을 화려하게 시작한 NCT 127은 다음달부터 일본 오사카, 히로시마, 이시카와, 홋카이도, 후쿠오카, 나고야, 사이타마 등 7개 도시에서 14회 공연을 펼친다. 글·사진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아하! 우주] “소행성-지구 충돌, 히로시마 원폭 8만배 위력일 것”

    [아하! 우주] “소행성-지구 충돌, 히로시마 원폭 8만배 위력일 것”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소행성 탐사선 오시리스-렉스(OSIRIS-Rex)가 최근 지구와 달 소행성이 한 프레임에 보이는 사진을 전송해 눈길을 끈 가운데, 해외 언론은 오시리스-렉스가 탐사 중인 소행성 ‘베누’와 지구의 충돌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영국 메트로 등 해외 언론의 11일 보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다음 세기 안에 베누와 지구가 충돌할 가능성은 2700분의 1 정도로 예측하고 있다. 지금부터 불안해 할만한 위협은 아니지만 충돌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충돌 위력에 대한 예측과 계산이 이뤄졌다. 현재 전문가들은 지름이 500m 정도인 베누가 지구와 충돌할 경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8만 배 위력을 내뿜는 폭발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45년 히로시마 원폭 당시 폭발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1.6㎞내의 모든 것이 완전히 파괴됐으며, 7만 여 명이 초기 폭발로 사망했다. 미국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 소속 물리학자인 커스틴 호울리는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 결과는 매우 무서울 것”이라며 “베누과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은 현재까지 2700분의 1이지만, 만약 궤도에 대한 더욱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한다면 그 확률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과학자들은 베누와 지구의 충돌이 잠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NASA는 베누가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그저 지구를 가깝게 지날 가능성이 더 높으므로, 즉각적인 ‘최후의 준비’는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구와 충돌 가능성이 있는 베누는 소행성이지만 태양계 생성의 굴곡진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 태양계의 형성과 진화, 나아가 생명의 기원인 유기물의 출처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를 탐사하는 오시리스-렉스는 소행성의 궤도를 돌며 연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표면까지 하강해 로봇팔을 쭉 뻗어 샘플을 채취해 지구로 가져올 예정이다. 2020년에는 표면의 샘플을 60g이상 채취하며 이듬해에는 다시 지구로 귀환한다. 지구 도착은 2023년 9월로 샘플을 담은 캡슐은 낙하산을 이용해 미국 유타 주에 떨어진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전차-마포종점의 추억/최병규 체육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전차-마포종점의 추억/최병규 체육전문기자

    서울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 서대문으로 향하는 새문안길 오른편, 야트막한 언덕길 경희궁 터의 서울역사박물관 앞에는 낡은 전차 한 대가 생뚱맞게 서 있다. 등교 시간에 쫓겨 마루에 팽개치고 간 도시락을 들고 부리나케 쫓아온 어머니. 이미 정거장을 출발한 381호 전차 안의 큰아들을 향해 이것 보란 듯 ‘보자기 변또’를 창가에 대고 흔든다. 도시락보다는 포대기에 싸인 채 어머니 등에 업힌 젖먹이 동생을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는 까까머리 중학생 아들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하다. 약간은 우스꽝스런 등장인물과 설정이지만 이 조각상들은 1960년대 서울시내 전차역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났을 법한 풍경을 담아 볼수록 정이 간다.정식 명칭은 트램(노면전차)이지만, 위의 설정샷을 한 번이라도 직접 목격하고 실제로 타 본 50대 중반 이상의 이들에게는 그냥 ‘전차’다. 전차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99년. 살아 있다면 올해로 꼭 120살이다. 대한제국 시절 전기 도입 사업의 한 방편으로 설치돼 서울 시민들의 환대 속에 운행되다가 1968년 폐선 절차에 들어간 뒤 그해 11월 영영 모습을 감췄다. 아주 어린 시절 할머니 손에 꼭 붙들린 채 남산골을 떠나 서대문까지 걸어간 뒤 당시 마포 살던 고모님 댁에 데려다준 것도 어쩌면 위의 381호 전차였을지 모르겠다.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로 시작되는 노래 ‘마포종점’의 노랫말은 ‘~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로 끝난다.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된 때는 서울의 전차가 사라진 1968년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서울 한 곳에서만 전차가 달렸지만 상대적으로 일찌감치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만 해도 전차가 다니는 도시는 손에 다 꼽기도 쉽지 않다. 구간 최장 1, 2위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비롯해 위로는 삿포로, 아래로는 가고시마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웬만한 지방 도시에는 전차가 달린다. 심지어 도쿄와 오사카, 교토 등 대도시 외곽에도 규모는 작지만 전차 노선이 엄연히 존재한다. 홍콩이나 미국 샌프란시스코, 호주 멜버른, 포르투갈 리스본의 전차는 관광 수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효자’다. 지난해 초 국회는 ‘트램’(전차)의 도로 통행을 가능하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내에서 사라진 전차가 꼭 50년 만에 부활을 예고한 셈이다. 10월에는 한국철도기술연구원에서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무가선 저상트램 실증노선 선정 사업’을 공모해 현재 수원과 성남을 비롯한 5개 지자체가 ‘국내 1호 트램 보유 도시’가 되기 위해 뜨거운 물밑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트램의 가장 큰 매력은 다른 교통수단에 견줘 상대적으로 돈이 덜 들어간다는 데 있다. 건설 비용은 지하철의 6분의1, 운영비는 지하철에 비해 25%, 경전철의 60% 수준이다. 반면 수송 인원은 1편성당 버스의 3배나 된다. 전기만 이용하는 터라 공해도 없다. 문제는 지역의 교통 실정에 맞는 타당성을 먼저 따지는 일이다. 지자체장의 인기와 성과 때문에 지역경제를 말아먹은 경전철이 생각나서다. ‘국내 1호 트램 도시’ 발표는 이달 말~2월 초. 또 다른 ‘마포종점’은 어디에 들어설까. cbk9106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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