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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라빠진 감정이 문제로다”/윤남중 새순교회 담임목사(서울시론)

    ◎보리고개ㆍ꿀꿀이죽이 어제 같은데… 「요즘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포악해졌을까?」하고 소위 기성세대들이 모이면 걱정한다. 10대들의 성폭행도 그 도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 각종 범죄형태는 더욱 잔혹해지고 있다. 데모를 했다 하면 투석과 화염병 투척 등 파괴와 피를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듯한 인상을 보인다. 아무리 자기들의 이해관계가 충족되지 않는다 해서 스승을 감금ㆍ삭발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자기학교 총장을 내쫓을 수가 있을까? 왜 그렇게 되었을까? 가정교육이 잘못되었다고 한다. 아니면 학교교육이 잘못되었거나 사회구조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연로하신 분들은 『배가 불러서 그래,사흘을 굶겨 놓으면 자기를 알고 세상을 알게 되어 감히 그런 짓은 엄두도 못낼거야!』라고 탄식한다. 구세대적인 관념일지 모르나 옛날 배곯던 시대엔 감히 오늘날과 같은 행동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우리 민족은 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홍수가 나고 재난이 났다하면 돈과 쌀과 의류를 언론기관에 기꺼이 보내는 인정있는 사람들이다.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도 너도 나도 줄을 이어 주는 것을 보면 분명히 인정이 있는 백성들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파괴적인 인성이 정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제 우리 젊은이들의 눈을 절대빈곤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지구촌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돌려야 할 때이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Food For the Hungry International지부)에서 발행한 자료에 의하면 지금 지구촌에서는 1분간에 24명(그중에 18명이 어린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1시간에 1천4백명,하루에 3만5천명,1년에 1천3백만명,그러니까 서울인구 정도가 먹지못해 굶어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1983년에서 1985년 3년사이에 후진국에서 전체인구의 21%인 5억1천2백만명이 굶주림으로 고통받았다. 현재로는 7억 이상이 굶주리고 있다. 매년 1천8백명에서 2천만명이 배고파 죽어가고 있는데 그중 1천4백만명이 어린아이들이다. 이것은 매일 4만명의 어린이가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3일동안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피해보다 더 많은 셈이다. 이와 같이 빈곤의 가장 잔인한 대가는 어린이들의 생명이 희생되는 것이다. 소득이 점점 줄어가지만 가족들의 규모는 커져만 가고 있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볼때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이 절대빈곤에 있는 사람의 3분의2가량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하루 4만명 굶어죽어 질병과 충분한 영양 및 깨끗한 음료수의 부족으로 만신창이가 되기 때문에 어린이들 가운데 3분의1은 다섯살이 되기도 전에 죽어간다. 살아남은 아이들 가운데 많은 수는 생후 6개월부터 2년 사이의 중요한 시기에 만성적으로 굶주린 결과 신체적으로 손상을 입고 있다. 1989년도 UNICEF(유엔국제아동구호기금) 보고서에 의하면 한 개발도상국가에서 발전이 주춤해지거나 정체된 결과 지난 12개월 동안 적어도 50만명의 어린이가 굶어 죽었다. 이러한 기근지역의 반 이상은 아시아에 분포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숫적인 면에서는 적지만 굶주린 사람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특히 가뭄과 전쟁피해지역은 더 그렇다. 더욱이 이 지역들은 비상식량이나 다른 생필품들이 거의 닿지 못하는 지역들이다. 그래서이 문제로 많은 시골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하여 판자촌과 빈민가에 정착한다. 후진국에서는 전체 3분의2가 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빈민국의 특징은 빈곤과 비위생과 높은 실업상태인데 가난은 장소를 옮긴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문제는 아니다. 가난이 그들보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너무나 배가 고픈 나머지 땅에 기어다니는 생물체는 다 잡아먹는다고 한다. 국제기아대책기구 총재 야마모리 데쓰나오 박사가 페루에 갔을때 어느 아기 엄마가 포장용 상자를 잘게 찢어서 끓인물을 아이들에게 먹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 풀기와 펄프 원료가 국물처럼 보였기 때문에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필자의 제자중 월남인 바우 목사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보트 피플들이 바다에서 표류하면서 너무 배가 고파 제비뽑기를 해서 노약자를 잡아먹기로 했는데 그 희생자의 딸이 『제발 아버지의 눈만은… 』하고 절규하더란다.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도 한때 굶주렸던 민족이었다. 50대이상 나이의 사람들은 왜정때보리고개와 강제공출후엔 콩깨묵ㆍ소나무껍질ㆍ풀뿌리 등으로 연명했고 해방후와 6ㆍ25전쟁때 꿀꿀이 죽과 미국에서 보내온 구제물자ㆍ시레이션 등으로 살았던 사람들이다. 잡지나 TV화면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특히 뼈만 앙상하고 머리통은 크고 눈망울이 툭 튀어나오고 눈꼽이 끼고 온몸은 헐었는데 파리떼가 붙었으나 쫓을 기운조차 없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볼때 우리는 가슴이 울렁거리고 목이 메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 전후세대들은 그 참상을 보고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았을때 『이 말라빠진 감정이 바로 문제로다!』라고 탄식한다. 우리들의 냉담ㆍ무관심ㆍ몰인정ㆍ무자비가 생명경시로 치닫고 있지 않은가? 최근들어 전후세대들이 해외여행을 많이 하는데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 등 대개 잘사는 나라들을 보기 때문에 가난과 굶주림을 느끼지 못하고 온다. 오히려 사치와 과소비 풍조를 도입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동남아나 남미와 아프리카 등 앞에서 말한 가난한 나라를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착한 사마리아인 필요 얼마전 일본의 TV대담에서 청소년들을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보다는 동남아나 아프리카 여행을 보내어 해이해진 일본정신을 뜯어 고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바른 자녀교육을 위해서 동정심과 인정을 길러주기 위해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아시아의 기아현장을 구경시킬 필요가 있다. 인간은 물질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이웃이 서로 돕고 사랑하고 협력하는 정신을 자연스럽게 심어 주어야 한다. 불한당에 의해 매맞고 상하고 찢겨 고통당하는 나그네를 보고도 못본체 하고 가버린 레위사람과 제사장보다는 상처를 싸매주고 친절히 돌봐준 착한 사마리아인이 나타나야 할 사회이다. 무엇보다 삭막한 우리 사회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요구된다. 긍휼이란 함께 고통을 경험한다는 뜻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산상보훈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과거에 우방국가에 의해 도움받은 우리가 이제 긍휼을 베풀 때이다. 우리보다 더 가난하고 불행한 나라들을 도와야 할 때이다.
  • 외언내언

    죽지 못해 살아온 세월이었으리라. 일본 대사관앞에서 자살을 기도한 60대 할머니 말이다. 그는 원자폭탄 피해자. 피폭후의 한 많았던 삶을 죽음으로써 항의하며 청산하려 한 것이다. ◆일제때 강제징용된 아버지를 따라 갔던 그는 히로시마에서 변을 당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귀국. 그러나 후유증에 시달린다. 더욱 무서운 것은 유전. 모든 피폭자가 겪어왔듯이 그 또한 뼈없는 아들을 낳기도 하고 살다가 죽는 자녀를 묻어야 했으며 정신질환에 걸린 딸을 데리고 살아야 했다. 호소할 곳도 없는 채 얼마나 원통하고 뼈아픈 삶을 이어 왔던 것인가. 그 누적된 분통이 한꺼번에 터진 자살기도였다. ◆이런 경우가 이노파 한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1945년 8월6일과 9일,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두 도시에 있던 한국인 7만명중 4만여명이 죽었다. 징용되어 간 사람들과 그 가족들. 목숨을 건진 3만명가운데 2만여명이 귀국한다. 그 무서운 후유증을 모른 채. 그들은 앓다가 죽어갔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사람을 1만3천여명으로 치지만 정확한 숫자도 모른다. 자녀에의 「유전」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 스스로 숨기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은 하나같이 비참했다는 것이 공통점. 그나마 국가적인 관심이 가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주의의 외면속에 그늘의 인생을 살아온 슬픈 역정은 「통석지념」정도 말재간으로 풀릴 한이 아니다. 패전후 정신이 없었을 때야 그렇다 치더라도 경제대국이 되면서 바로 마음썼어야 할 「한국의 피폭자」 아니었던가. 그들의 「절규」가 있기 전에. 노대통령 방일을 고비로 보상에의 길이 열리기는 했지만 어찌 「45년 한」까지 푼다고야 하랴. ◆지금의 핵무기는 45년전에 비길 것이 아니다. 양 진영 것이 터졌다 하면 지구는 몇십번 박살이 나고도 남는다. 그 점에서 양 진영의 화해무드는 바람직스러운 것. 하지만 핵무기는 여전히 존재한다. 피폭자의 슬픈 절규속에서도.
  • 60대 원폭피해자 자살 기도/일 대사관앞서/“피해보상 하라” 음독

    11일 낮12시5분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원폭피해자 이맹희씨(65ㆍ여ㆍ종로구 동숭동 시민아파트 12동209호)가 원폭피해자에 대한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해 중태에 빠졌다. 이씨는 이날 정오쯤 일본대사관 앞으로 걸어오다 갖고 있던 「노태우대통령 앞으로 보내는 호소문」,일본어로 된 「탄원서」 등 유인물 10여장을 행인들에게 나눠준뒤 품속에서 1백㎖짜리 진딧물 구제용 농약을 꺼내 마시고 쓰러졌다. 이씨는 호소문에서 『일제때 강제징용 당한 아버지와 함께 히로시마에 살다 가족들은 대부분 죽고 그때 입은 원폭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시달리고 있다』면서 『자녀 7명까지 후유증이 심해 피부에 종기가 생기고 머리가 모자라는 등 피해를 입고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전쟁이 끝나 우리나라에 돌아온뒤 계속 후유증에 시달려 왔으며 80년 남편이 사망한뒤 10년동안 보사부 등 각계각층에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여러차례 호소했으나 반응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 광도 한인 피폭자 비/김보좌관 보내 헌화

    【도쿄=이경형특파원】 노태우대통령은 26일 하오 귀국하기에 앞서 김종휘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을 히로시마로 보내 한국인 원폭희생자위령비에 헌화하는 한편 히로시마 평화공원에도 헌화했다. 히로시마시는 그동안 우리정부가 요구해온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의 평화공원내 이전문제를 이번 노대통령의 방일에 맞추어 매듭,원폭기념일인 오는 8월6일 이전까지 평화공원내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 독립투사 아들의 할복을 보며(사설)

    아직도 두드러기가 나는 듯한 일장기가 태극기와 함께 어우러져 광화문거리에 펄럭이던 23일,한 독립투사의 아들이 할복을 기도하여 중상을 입었다. 그가 어떤 과정으로 그곳에 이르러 「일왕의 사과」를 외치며 자해를 했는지는 소상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조직화하고 훈련된 세력이나 집단이 각본에 따라 배를 가르는 시늉을 한 것과는 다르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는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의 참모로 활약했던 독립투사 김덕목씨의 아들이다. 그런 조건을 지닌 한국남성이라면 일상을 젖혀두고 일본 대사관앞으로 달려가 시위에 가담할 혈기가 마땅히 있음직하다. 그리고 그런 혈기와 의분때문에 분노의 외침끝에 할복을 기도할 수도 충분히 있어 보인다. 「할복」이라는 저항의 의식은 우리에게 그다지 익숙한 것은 아니다. 그런 죽음을 삶의 마무리를 위한 미학처럼 즐기고 있는 일본인과 우리는 좀 다르다. 그런데도 혼자서 결연히 할복을 기도한 김씨의 분노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걸핏하면 조직폭력배처럼 몰려다니며 한국인 얕보기를 서슴지 않고방자하게 구는 일본의 극우세력이 지금 일본에서는 신이야 넋이야 날뛰고 있다. 일본의 나고야(명고옥) 한국인회관에 방화하고,오사카에서는 폭발물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23일에는 히로시마(광도) 평화공원 울타리 밖에 서있는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가 방화에 의해 불길에 싸였다. 이 히로시마 위령비는,그 서있는 모습 자체가 우리를 가슴아프게 하고,일본의 잔인한 실체에 소름돋는 것을 느끼게 하는 비석이다. 저희들은 전쟁의 원범이면서 「원폭의 비인도성」에 항의하기 위해 공원을 짓고 위령비를 세우고 요란스레 「슬픔」을 과시하는 것이 이른바 「평화공원」이다. 그 공원에서 침략당한 나라의 백성이라는 이유로 보다 더 억울하고 슬픈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위령의 대열에서도 쫓겨나,한데다 세워둔 비석이 바로 그 비석이다. 우익이라는 세력이 그 비석을 걸핏하면 불질러 벌써 3년째 불탔다. 당연히 해야할 사과 좀 하라는데 길길이 날뛰며 폭거를 저지르고 다니는 극우세력이 있다는 건,일본이라는 나라의 도덕적 불감증의 발로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하는 것은 일부의 그런 잘못된 폭력집단의 행패가 아니다. 기회가 있을 때면 일본의 지도층들이 이 집단을 은근히 활용한다는 사실이다. 매우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은,일본정부가 대한문제로 약간 곤혹스러운 지경이다 싶으면 영락없이 나타나 행패를 하고,그러면 위정자측에서는 대단히 조심스럽다는 듯한 모양으로 『…우익세력의 여론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운운하며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23일 하오에는 또 동경에 있는 한국신문 지사에 우익청년들이 몰려와 반일 감정에 부채질하지 말라고 소란도 피웠다. 거대한 각본에 의한듯 역할분담을 하는 이런 일본의 태도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상처를 난도질한다. 한국을 우호적으로 동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일본에 더 큰 흠이 된다. 일본은 그것을 국민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우리는 우리대로 무모한 자해행위같은 것은 참는 것이 좋겠다. 냉철하게 대응하고 지속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김씨의 울분에 동감하면서 빠른 쾌유를 비는 것도 그 때문이다.
  • “보통사람 오신다” 차분한 대통령맞이/노대통령 방일 앞둔 일 표정

    ◎교포들,현수막등 내걸고 환영준비/궁중만찬선 「손에 손잡고」 연주 계획/한인 원폭희생자비 방화 등 일극렬파 극성 여전 ○…노태우대통령 방일을 맞는 일본에서는 전반적으로는 환영무드가 일고 있으나 좌ㆍ우익 과격파 단체등이 각각의 톤으로 방일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어 경시청당국은 연일 2만여명의 경찰병력을 동원,노대통령 일행이 통과할 주요 간선도로변의 맨홀을 점검,봉인하고 교통규제를 실시하는 등 있을지도 모르는 좌ㆍ우익 과격파의 테러에 대비,24시간 비상경계체제를 펴고 있다. 당국은 아키히토(명인)국왕의 과거역사 사죄발언에 반대하는 우익과격파의 테러는 물론,천황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기독교단체 등 좌익단체들도 노대통령 방일이 자기들의 주장을 알리는 호기가 될것으로 판단,각종 테러를 자행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노대통령 방일을 맞는 재일동포사회의 환영분위기도 전두환 전 대통령때와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달라져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하고 있다.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때는 한국국가원수의 첫 일본방문인데다 당시의 국내분위기가 재일동포 사회에까지 이어져 다소 긴장된 가운데 일견 요란한 듯한 환영행사가 많았으나 이번에는 『보통사람 대통령을 보통의 기분으로 따뜻이 맞이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주류를 이뤄 전에 비해 차분해진 느낌. 도쿄(동경)도내에 있는 재일거류민단본부에는 며칠전부터 「대통령 방일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민단 기관지 한국신문은 22일자 컬러판별쇄로 노대통령의 인물소개와 함께 「21세기의 한일관계 구축」「동포문제는 전후처리차원에서」등의 특집을 실었으나 전에 비해 절제된 분위기. ○…일본정부와 언론ㆍ재일동포사회의 이같은 환영분위기와는 달리 자칭 1백30개단체,1천6백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는 우익단체연합회 전애회의와 재일한국청년동맹 등 좌ㆍ우익단체들은 전국 각지의 전철역 등지에서 방일반대전단을 돌리는 등 노대통령 방일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전단에서 『언제까지나 과거에 집착,일본을 모욕한다면 한일기본조약을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한일합방은 역사의 추세였으며당시 한국정부에 통치ㆍ외교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일본경찰은 연일 2만명의 경찰병력을 동원,24시간 경비태세를 펴고 있는데 특히 과격 게릴라와 테러리스트들이 사정이 긴 화약류를 이용하거나 원격조정장치를 사용하는 등 활용범위가 넓어지고 있음을 고려,3백여군데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경비범위를 전두환 전대통령때의 주요 시설물로부터 1m이상에서 이번에는 3m이내로 확대했다. 또 10대의 헬기와 29대의 순시선을 노대통령의 방문여로에 배치. ○…일본 국내청은 노대통령을 맞아 아키히토(명인)일왕이 24일 저녁에 베푼 궁중만찬에서 노대통령내외를 위해 요리와 음악ㆍ여흥 등에서 이례적으로 여러가지 특별서비스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궁내청에 따르면 궁중만찬의 경우 국왕이 손님을 만찬장으로 맞아들일때 일본음악인 「친애」가 연주되는 것이 관례이지만 노대통령이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역임했음을 고려,이번에 한해 올림픽 주제가의 하나였던 「손에 손잡고」를 연주키로 했다는 것. 당국은 이밖에 궁중행사의 경우 보통 국왕 한사람에게만 붙이도록 돼있는 통역을 표현의 차이로 인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노대통령에게도 한국인 통역을 따로 두기로 했으며 보통 국빈에게 제공되는 국화문양의 국왕전용 승용차(닛산ㆍ프린스 로얄)대신 가까운 곳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져도 끄떡없는 외무성의 특별장비차를 제공키로 했다.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나고야(명고실) 오사카(대판)등지에서 극우극력분자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방화ㆍ테러사건이 빈발하고 있는 가운데 23일에는 히로시마(광도)평화공원부근에 세워진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의 대좌에 놓여있던 추모용 종이학이 방화로 불에 탔다. 이들 종이학은 수학여행온 학생들이 바친 것으로 이날 상오 1시20분쯤 불이 붙고있는 것을 통행중인 트럭운전사가 발견,소화기로 진화했다. 이날 방화로 위령비자체에는 피해가 없었다. 경찰은 이 사건이 노대통령의 방일을 반대하고 있는 극렬분자들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 소,SS­18 곧 실전배치/핵탄두 10개…히로시마 원폭의 4백배

    ◎불국방 의회 답변 【파리 연합】 소련은 금년중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4백배 위력을 가진 신형 SS­18(모델5) 대륙간 미사일을 배치할 것으로 보인다고 장피에르 슈베느망 프랑스 국방장관이 밝혔다. 슈베느망 국방장관은 최근 프랑스 국회 답변을 통해 소련이 올해 7백50kt의 폭발력을 가진 탄두 10개를 운반할 수 있는 신형 SS­18(모델5)미사일을 배치할 것이며 사정 1만 1천km의 이 대륙간 미사일은 지난 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4백배 위력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슈베느망 장관는 레일이동식 SS­24 및 차량운반용 SS­25미사일에 새로 추가된 SS­18미사일이 사정 1만 1천km의 목표물에 불과 2백50미터이내의 오차를 가진 정교한 최신 미사일이라고 설명했다. 슈베느망 장관은 소련이 이밖에 SS­18 모델J라는 또다른 신형미사일을 이미 개발했으며 우주공간에서 발사되는 이 신형J미사일은 히로시마 투하 원폭의 1백만배에 해당하는 20메가톤급의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미소간의 전략무기제한협상(START)은 기존 핵무기 감축에 성과를 거두긴했으나 상대적으로 핵무기의 정밀화와 파괴력 강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일 야구전당에 명성 남긴 장훈(특파원리포트)

    ◎「3천안타 위업」 영구기록으로 【도쿄=강수웅특파원】 「하리모토 이사오」(장본훈). 그의 한국이름은 장훈이다. 일본 히로시마(광도)출생,오사카(대판)의 나니와(랑화)상고를 거쳐 도에이(동영)에 입단. 야구선수 23년간의 통산 3천85안타는 일본프로야구사상 최고의 기록으로 남는다. 82년부터는 야구해설자. 부인과 딸 둘을 두었으며 올해 49세이다. 이 장훈선수가 지난 24일 제30회 야구체육박물관 경기자표창 위원회에 의해 야구전당에 헌액되었다. 1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야구담당 기자들에 의한 투표결과 중학ㆍ고교ㆍ프로야구에서 투수로 활약한 사나다 슈죠(진전중장ㆍ66)씨와 프로야구사상 유일하게 3천안타를 기록한 장훈씨의 야구전당 헌액이 결정됐다. 이날 투표에는 표창위원인 야구기자 2백32명중 2백20명이 참가,투표지 1장에 10명이내의 후보자를 연기형식으로 적어냈다. 전당헌액결정은 유효투표수의 75%이상인 1백65표의 획득이 필요한 엄격한 것이었다. 이 투표에서 사나다씨는 1백84표,장씨는 1백69표를 얻었다. 이들 2명의 선정으로 야구전당에 헌액된 선수는 35명으로 늘었으며 특별표창자까지 합쳐 모두 99명이 되었다. 이 두사람에 대한 표창식은 오는 7월25일 올스타 제1차전 시합전에 거행될 예정이다. 좌타자인 장선수는 『오른손의 악력을 기르기 위해 매일 2천번이상을 한손으로 스윙연습했다. 팔이 저리더라도 계속했다. 그렇지 않는한 프로에서 밥을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고 수상결정후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그의 배트조작은 프로데뷔와 함께 「천하일품」이라는 평가를 얻는다. 5살때에는 피폭의 경험도 겪었다. 히로시마 원폭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으나 불안은 항상 따랐다. 그의 고난과 역경은 육체에 한하지 않았다. 재일 한국인으로서 차별을 받아가며 자랐다. 『부당한 차별을 어린 마음에 참을 수만은 없어서 때로는 완력에도 호소했다』 그를 앞에 놓고 괄시하는 일은 줄었지만 뒤에서 수군대는 것은 여전했다. 프로선수로서는 이점도 되었던 「넉살좋고 대담함」은 이런 배경속에서 길러졌다. 불고기집을 경영하던 모친(작고)이 『인간은 모두 평등한 거야』라던 말씀이 항상 마음의 지주가 되었다. 고대 한일문화교류사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은 일방적인 문화의 전수자였다. 개인을 놓고 볼때 한국인은 일본인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사실을 여러 곳에서 느끼게 된다. 그러나 지금의 국력차이는 어떠한가. 일본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1천달러를 넘어 세계 제2위의 수준에 있다. 최근의 일본경기는 사상 유례가 없는 호경기로 일본인들의 입은 저절로 벌어진다. 한국경제문제에 밝은 동경공업대학의 와타나베 도시오(도변이부)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일본의 직장은 아래쪽이 강합니다. 개인적으로 특출한 사람은 많지 않으나 부족한 점을 아래쪽에서부터 토론과정을 거쳐 보완해 가지고 상사에게 전달합니다. 상향식 의사결정구조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위쪽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고 아래쪽은 허약합니다. 위사람의 한마디로 모든 계획은 다시 수정되고 진로를 변경하는 일이 많지 않습니까』와타나베 교수의 말은 이른바 저력의 형성 면에서 한국은 뒤져있으며 이것이 오늘과 같은 국력의 격차를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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