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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리뷰] 영웅

    [뮤지컬 리뷰] 영웅

    어둠속에서 점점 커지는 기차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일곱 발의 총성. 스크린에 하나씩 새겨지던 총탄 자국은 북두칠성이 되어 빛을 발한다. 역사적인 하얼빈 의거로 우리 민족의 별이 된 안중근의 운명을 상징하는 뮤지컬 ‘영웅’(연출 윤호진)의 첫 장면은 공교롭게도 2시간40분간 관객이 공연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1막에서 살짝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차곡차곡 인물과 사건을 전개해 나가던 공연은 2막에서 안 의사의 저격과 법정 장면으로 숨 돌릴 틈 없이 시선을 사로잡더니 죽음을 앞둔 안중근(류정한·정성화)이 ‘장부가’를 부를 땐 끝내 총격을 맞은 듯 강한 전율을 느끼게 했다. 객석에선 대형 창작뮤지컬의 신성(新星)탄생을 축하하는 아낌없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안중근 의거 100주년 기념일에 맞춰 지난 26일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영웅’은 지금까지 한국 창작뮤지컬이 거둔 성과를 최대한으로 집대성해 완성도 높은 공연을 선보였다. 실물과 영상을 결합해 만주 벌판을 달리는 기차를 무대위에 재현하고, 독립군과 일본 경찰이 건물 사이를 누비며 긴박한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 등이 돋보였다. 안중근과 동료들이 간절한 소망을 담아 부르는 ‘그날을 기약하며’와 ‘장부가’를 비롯한 뮤지컬 넘버들은 전염성이 강했다. 중국, 일본, 러시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층적인 사건들은 조명과 미닫이문을 활용한 무대 분할로 효과적으로 형상화됐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성취는 무엇보다 과도한 애국주의나 평면적인 선악 구도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안중근을 무결점의 완벽한 영웅으로 묘사하거나 이토 히로부미를 천인공노할 악의 화신으로 그리지 않았다. 감옥에 수감된 안중근과 죽은 이토 히로부미의 환영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긴 여운을 남긴다.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허구의 인물인 설희와 링링은 드라마를 풍성하게 하는 데 필요한 요소이긴 하나 아직 캐릭터가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느낌이다. 이 부분이 좀더 매끄럽게 보강된다면 1막의 지루함과 어수선함이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12월31일까지. 4만~12만원. 1588-789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서울광장]안중근! 우린 아직 그를 모른다/김종면 논설위원

    [서울광장]안중근! 우린 아직 그를 모른다/김종면 논설위원

    중국 혁명의 아버지 쑨원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당시 이런 글을 안 의사에게 바쳤다. “공은 삼한을 덮고 이름은 만국에 떨치나니, 백세의 삶은 아니나 죽어서 천추에 빛나리.” 그런가 하면 저우언라이 전 총리는 “중국과 한국이 함께 벌인 항일투쟁은 바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저격하면서부터 시작됐다.”며 안 의사를 높이 평가했다. 세계의 시선은 물론 그와 같지 않았다. 일본은 ‘야만적인 테러’로 봤고 러시아는 ‘경거망동’으로 규정했으며 미국은 ‘강압에 대한 복수’로 간주했다. 테러리스트의 범주에서 접근한 것이다. 하얼빈 의거를 공동의 적을 응징한 사건으로 본 중국 또한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안중근을 민족주의적인 애국 영웅의 표상으로 그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안중근 인식은 어떤가. 최근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안중근은 우리 곁에 바싹 다가왔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그를 조선침탈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영웅 정도로 기억한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의 지적대로 이는 “중대한 민족적 과오”가 아닐 수 없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를 주창한 혁명적 사상가요,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활약한 의병장이요,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경세가였다. 하얼빈 의거 100주년, 나라 안팎에 안중근 동상이 세워지고 유묵(遺墨)전이 열리는 등 전례 없이 부산하다. 안중근 재평가 작업도 활발하다. 키워드는 ‘동양평화론’이다. 안중근이 옥중에서 쓴 미완의 논설 동양평화론은 한·중·일 3국이 공동은행과 화폐를 사용하는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통해 영구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구체적 해법을 담고 있다. 작금의 동아시아공동체론과도 가닥이 통할 만큼 선구적인 사상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우리 학계의 안중근 연구는 90년대 중반 들어서야 본격화됐다. 변변한 평전 하나 없다.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에서 근대국가를 설계한 영웅으로 1000엔권 화폐인물에 올랐고 출간된 전기만도 수십종에 이르는 것과 대비된다. 기억하고 보존하기에 늦어 버린 역사란 없다. 이제라도 ‘사상가’ 안중근을 바로 세워 나가야 한다. 얼마 전 만난 한 원로작가는 요즘 학교에서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말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입시교육에 치여 애국의 가치를 일깨우는 국민교육이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잘못이라는 얘기다. 공무원이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외면하고 애국가 부르기를 거부하는 게 현실이고 보면 그의 말에 일리가 없지 않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안중근 유묵이야말로 더없이 맞춤한 국민정신교육 텍스트란 생각이 든다. 안중근은 사형언도를 받고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할 때까지 40여일 동안 200여점의 묵서를 썼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이 50여종 된다. 안중근은 유묵으로 말한다.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누가 눈앞의 이익을 보고 의를 먼저 생각하고 나라가 위급할 때 목숨을 바칠 수 있으리오. 안중근 유묵에 담긴 의미만 제대로 새겨도 우리는 금강처럼 단단한 정신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대한국인(大韓國人)의 영예를 누릴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전 국민 안중근유묵따라배우기 운동을 제안한다. 무명지를 끊으며 대한독립의 의지를 불태운 도저한 의인의 정신, 죽어서도 조국 땅에 묻히지 못한 100년의 한(恨)이 지금 안중근 열(熱)로 달아오르고 있다. 식지 말아야 한다. 저마다의 가슴에 ‘안중근 정신’의 성소(聖所)를 마련해야 한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안중근 의사의 생생한 옥중 신문기록

    ‘피고가 평소에 적대시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전에는 별로 그런 사람이 없었는데 최근에 한 명 생겼다.’ ‘그게 누구인가.’ ‘이토 히로부미이다.’ ‘이토 공작을 왜 적대시하는가.’ ‘그 이유는 많다. 즉 다음과 같다.(중략)이상의 죄목에 의해 나는 이토를 살해했다.’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직후 체포된 안중근 의사가 10월30일 하얼빈 일본국 총영사관에서 검찰관 미조부치 다카오에게 받은 1차 신문 조서의 일부다. 안 의사는 이토를 살해한 이유에 대해, 이토가 조선의 왕비를 살해했고, 한국에 불리한 조약을 강제로 체결했으며, 무고한 한국인들을 살해하고, 동양의 평화를 교란시킨 점 등 열다섯 가지의 ‘죄목’을 언급했다. 그리고 ‘만약 이토가 살아있다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도 결국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토가 사망한 이후 일본은 충분히 한국의 독립을 보호하여 실로 한국은 부강해질 수 있을 것이며, 그 밖의 동양 각국의 평화 또한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이기웅 엮음, 열화당 펴냄)는 검찰관 신문조서와 공판시말서에 기록된 안 의사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조국 독립과 동양 평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투철한 의지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책에 실린 ‘검찰관 신문조서’는 일본 관동도독부 뤼순감옥에서 1909년 10월30일부터 이듬해 1월26일까지 모두 11회에 걸쳐 진행된 안중근에 대한 신문기록과 그의 두 동생 안정근, 안공근에 대한 참고인 신문기록이다. 그리고 ‘공판시말서’는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1910년 2월7일부터 14일까지 재판장 마나베 주조 심리로 6회에 걸쳐 열린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유도하에 대한 공판기록을 번역해 실었다.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맞아 초판 발간 10년 만에 새롭게 출간된 이번 개정판에는 안 의사의 공판 관련 자료 및 사진 자료를 추가해 자료집으로서의 외양을 좀 더 충실히 했다. 특히 영국 화보 신문 ‘더 그래픽’이 1910년 4월16일자에 게재한 찰스 모리머 기자의 ‘안중근 공판 참관기’는 외국인의 눈으로 본 공판의 생생한 기록으로서 눈길을 끈다. 영국인 기자는 ‘그는 이미 순교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준비 정도가 아니고 기꺼이, 아니 열렬히, 자신의 귀중한 삶을 포기하고 싶어 했다. 그는 마침내 영웅의 왕관을 손에 들고 늠름하게 법정을 떠났다.’고 썼다. 1만 2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 安의사 저격장소 역바닥에 암호같이 세모표시

    [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 安의사 저격장소 역바닥에 암호같이 세모표시

    │하얼빈·뤼순 박홍환특파원│지난 22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성도 하얼빈(哈爾濱)의 늦가을 밤은 겨울을 재촉하는 찬 바람이 북방에서부터 몰아치고 있었다. 100년 전인 1909년 이날 ‘대한국인’ 안중근은 동양평화를 위협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대신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한다는 큰 뜻을 품고 열차를 이용해 이곳 하얼빈 땅을 찾았다. 사정없이 북풍이 몰아치는 하얼빈역 플랫폼을 밟으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흘 뒤인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 뤼순(旅順)에서부터 장장 40여시간의 기차여행 끝에 두꺼운 코트로 감싼 몸을 하얼빈역 플랫폼에 내려놓은 이토는 안중근이 발사한 브라우닝 권총 3발을 맞고 20분만에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그 짧은 순간 이토는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다시 찾은 역사의 현장에는 작은 ‘암호’ 2개만 그날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하얼빈역 제1플랫폼 바닥에 새겨진 세모와 네모 표시이다. 가로·세로 50㎝의 붉은 색 보도블록 안에 하얀색으로 세모와 네모를 그려넣었다. 세모는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장소이고, 그보다 5m 정도 떨어진 거리에 그려진 네모는 이토가 서 있던 곳이다. 아무런 설명도 없지만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고 역무원이 귀띔했다. ‘암호’로 시작된 하얼빈에서의 안 의사 흔적찾기는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시내 자오린(兆麟)공원 한편에는 안 의사의 상징인 붉은색 단지 인장과 안 의사 친필 유묵인 ‘청초당(靑草塘)’과 ‘연지(硯池)’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안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자신의 유해를 이곳에 묻었다가 국권회복 뒤 고국으로 옮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미 국권이 회복된 지 오래됐지만 유해는 뤼순 감옥 뒤편 어딘가에서 아직도 발굴조차 못하고 있다. 현지 자료는 빈약했다. 그나마 조선족 동포들의 노력으로 작은 전시관이 마련돼 있었다. 하얼빈시 안성제(安升街) 85호 조선민족예술관 2층. 하얼빈시의 재정 지원으로 2006년 개관한 이곳은 의거 장면을 재현한 미니어처 등 400여점의 관련 자료를 통해 안 의사의 넋과 얼을 전승하고 있다.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에서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는 허태열(80) 할아버지는 “안 의사의 순국정신이 민족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전해질 것”이라고 직원들을 격려하며 꼬깃꼬깃하게 접은 100위안(약 1만 7000원)짜리 지폐를 헌금함에 넣었다. 안 의사 의거 100주년에 대해 중국 측은 드러내놓고 기념하길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현지 사회과학원 주최로 열린 토론회 안내문에서도 ‘안중근’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았고, 취재도 어렵게 이뤄졌다. 안 의사가 주창한,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는 ‘동양평화’는 언제쯤 실현될 것인가. 이토를 사살한 안 의사는 하얼빈 일본 총영사관에서 5일간 조사를 받은 뒤 이토가 거슬러 올라왔던 전장 945㎞의 ‘하얼빈~다롄(大連) 철로’를 통해 뤼순감옥으로 이송됐다. 압송되던 안 의사는 이틀동안 만주 벌판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조국의 위기를 걱정했겠지만 잠깐 잠자고 깨보니 벌써 다롄이다. 압송길은 10시간으로 단축돼 있었다. 창춘(長春), 선양(瀋陽)을 거쳐 다롄의 끝자락 뤼순에 도착한 안 의사는 국사범으로 분류돼 간수부장실 옆 독방에 감금됐다. 뤼순감옥에는 안 의사를 비롯해 신채호, 이회영 선생 등 그 곳에 투옥됐던 우리 독립열사들의 자료들을 따로 모아 국제항일열사기념관이 마련돼 있고, 안 의사가 재판받은 관동법원에도 안 의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뤼순 관동법원 유적전시관의 정춘매(38) 주임은 “하루 20~30명이 안 의사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찾아온다.”며 “안 의사 자료를 체계적으로 발굴,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tinger@seoul.co.kr
  • [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 안 의사 동양평화론 재조명

    │하얼빈 박홍환특파원│안중근 의사의 핵심 사상인 ‘동양평화론’이 1세기를 앞선 혜안으로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동북아평화공동체 등 유사한 주장들이 잇따르는 가운데 때마침 정권교체가 이뤄진 일본에서도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이 제기됐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1910년 2~3월 중국 뤼순 감옥에서 집필됐다. 그 해 3월26일 일본 정부의 사형집행으로 당초 구상했던 원고를 완성하지 못했지만, 그는 ▲한·중·일 3국 간의 상설기구인 동양평화회의체 구성 ▲동북아 3국 공동은행 설립과 공용화폐 발행 ▲동북아 3국 공동평화군 창설 등을 역설했다. 의거 100주년을 맞아 국내외에서 그의 동양평화론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지난 21일 오전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유이궁(友誼宮)에서는 하얼빈 사회과학원 주최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재조명하는 국제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안 의사는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는 지역 간의 평화체제를 구상했다.”며 “유럽연합(EU)이 그의 구상과 같은 방식으로 통합을 이뤄낸 것을 보면 그는 1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는 안목을 가졌던 위인”이라고 평가했다. 오페라 ‘안중근’의 극본을 집필한 왕훙빈(王洪彬) 하얼빈시 전 문화국장은 “안 의사의 사상이 한국은 물론 중국과 세계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며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그가 바랐던 동양평화, 나아가 세계평화의 길을 구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안 의사나 그의 총에 사살된 이토 히로부미 모두 동양평화를 주장했지만 결론은 달랐다. 안 의사는 이토를 동양평화를 위협하는 위험인물로 간주, 서슴없이 총을 빼들었다. 이후 전개된 일제의 침략전쟁은 그의 생각이 정확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안 의사는 재판 과정 및 동양평화론에서 이토 사살을 ‘동양평화를 위한 의로운 전쟁’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사형집행 직전에도 동양평화를 외쳤다. 안 의사는 한·중·일 3국이 각각 독립을 유지하면서 서로 협력하는 길을 통해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공동방어할 때 동양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얼빈 사회과학원 관계자는 “사실 지금까지 중국에서는 안 의사의 의거 외에 동양평화론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며 “동아시아의 평화공존에 대한 안 의사의 혜안이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stinger@seoul.co.kr
  • [24일 TV 하이라이트]

    ●유아독존(EBS 오후 3시) 매일 아침마다 엄마와 벌어지는 옷 전쟁은 이제 그만. 자신이 좋아하는, 나만의 스타일로 옷을 입고 싶은 아이들. 그래서 유아독존 아이들은 말한다. “우리 옷은 우리가 만든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이들만의 패션. 올 가을, 패션계에 새바람을 불고 올 파격적인 신인 디자이너들을 만나본다. ●역사 스페셜(KBS1 오후 8시)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바로 그 순간이 녹화되고 있었다. 촬영 필름은 약 150m 길이의 동영상 필름으로, 안중근 의거 당시를 기록하고 있었다. 안중근의 이토 저격 필름은 어디로 사라졌나? 의거 이후 100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그날의 영상, 그 행방을 추적한다. ●수상한 삼형제(KBS2 오후 7시55분) 주범인은 당분간 머물겠다며 집으로 들이닥친 계솔의 등장에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지만 계솔은 옛날에 쓴 각서를 들먹이며 무시한 채 눌러앉는다. 과자는 건강의 이혼사실을 다른 가족들이 알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도우미는 부부동반 모임에서 남편이 새로 주유소를 인수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인연만들기(MBC 오후 7시55분) 상은은 호주로 돌아가겠다고 하지만 옥란은 여준과 상은의 데이트를 다시 한 번 언급한다. 여준은 쇼핑은 질색이지만 어쩔 수 없이 상은을 따라 나선다. 프리허그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상은을 보며 여준은 기막혀하고, 말다툼하다 헤프다는 말에 화난 상은은 여준의 뺨을 때린다. ●그것이 알고싶다(SBS 오후 11시20분) 사랑한다면 혼전 동거도 문제없다는 시대. 아직도 결혼을 약속했기 때문에 성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며, 이를 근거로 국가의 형법이 개입하는 것은 얼마나 타당성을 가질까? 다양한 사례를 통해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존폐 논쟁을 통해 현실적 대안은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 ●김정은의 초콜릿(SBS 밤 12시20분) 혼성 3인조 그룹 ‘에이트’는 슬픈 발라드로 사람들의 감성을 울린 것과는 달리 화려한 입담과 끼를 과시한다. 새 앨범으로 돌아온 발라드 가수 홍경민은 콘서트을 열어 특색있는 레퍼토리를 공개한다. 또 가수 김정민은 부인 루미코와 동반 출연해 에반 에센스의 ‘브링 미 투 라이프(Bring Me To Life)’를 부른다. ●OBS 스페셜(OBS 오후 8시50분) 한국의 전통검을 복원하는 과정이 방송에 최초로 공개된다. ‘칼의 울음’은 현존하는 국내 유일의 제철 전문가 이은철 선생이 전통방식 그대로 철을 생산해 내고, 그 철로 칼을 제작하는 과정을 담았다. 더불어 일본도가 세계적 명성을 얻기까지 그들의 노력들을 짚어 볼 예정이다.
  • [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 재중동포의 안중근 사랑

    [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 재중동포의 안중근 사랑

    │하얼빈·뤼순 박홍환특파원│비록 온전하지는 않지만 중국내 안중근 의사 관련 자료가 이나마 보존되고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재중동포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중동포들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수십년간 안 의사를 연구하거나 안 의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가 하면 서슴없이 안 의사 유적 해설가로 나서 ‘의거 100년’을 지켜냈다. 하얼빈 조선민족사업촉진회 서명훈(78) 명예회장은 20년간 오로지 안 의사만 연구한 대표적인 ‘안중근 전문가’이다. 우연한 기회에 안 의사 관련 서적을 전해받은 1989년부터 안 의사를 연구한 서 회장은 중국내 각종 자료를 토대로 안 의사 행적을 하나하나 실증적으로 입증해 나갔다. 안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5m 거리에서 사살했다는 사실도 그가 밝혀냈다. 서 회장은 “하얼빈시 측과 100년 전 당시 전 세계 언론매체의 보도와 평론 등을 수집해 모두 400여개를 발굴해 냈다.”며 “이를 토대로 거사 100주년 기념일인 26일 ‘중국인 마음속의 안중근’이라는 책을 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얼빈TV 다큐멘터리부 PD인 함명철(56)씨는 중국과 북한의 기록 등을 토대로 ‘의거 하얼빈-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사살의 전말’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안 의사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이동, 거사를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실감나게 그린 이 다큐멘터리는 2006년 하얼빈TV를 통해 헤이룽장성 전역에 방영돼 중국인들에게 안 의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어눌한 우리말로 직접 프로그램 서두에 해설을 넣기도 한 함씨는 “안 의사는 100년 전 동양, 아니 전세계를 진동시킨 위인이었다.”며 “조선 사람들은 안 의사의 정신을 잊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밖에 뤼순의 옛 일본관동법원 유적지에서 유창한 우리말로 안 의사의 얼을 해설해 주는 정춘매(38) 주임이나 하얼빈 조선민족예술관 2층 안중근의사기념관의 당월화(53) 관장 등 숨은 일꾼들을 통해 안 의사의 정신은 100년 동안 식지 않고 대륙에 남아 있었다. stinger@seoul.co.kr
  • 뮤지컬 ‘영웅’서 중국인 소녀역 맡은 전미도씨

    뮤지컬 ‘영웅’서 중국인 소녀역 맡은 전미도씨

    올해로 데뷔 4년차인 전미도(28)는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두루 촉망받는 차세대 기대주다. 지난해 뮤지컬 ‘사춘기’로 혜성같이 등장해 연극 ‘신의 아그네스’와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서 연달아 주인공을 꿰찼고, 그 여세를 몰아 올 하반기 최대 화제작인 뮤지컬 ‘영웅’에서도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한다.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다룬 역사물로, 뮤지컬 ‘명성황후’의 제작자인 윤호진 에이콤인터내셔널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오는 26일 개막을 앞두고 만난 그는 앳된 얼굴이나 목소리와 달리 생각은 깊고, 진지했다. “이번 작품에 참여하면서 그동안 안중근 의사에 대해 너무 몰랐구나 싶어 부끄러웠어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영웅이란 건 알았지만 동양평화론 같은 그분의 사상이나 대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저 같은 분들이 이 작품을 많이 보고, 그 분의 삶과 뜻을 되새기면 좋겠어요.” 그가 맡은 배역은 안중근을 짝사랑하는 열여섯살의 중국인 소녀 링링이다. 밝고 명랑한 성격으로 안중근과 동료들로부터 귀여움을 받는 링링은 어느 순간 안중근을 남자로 좋아하게 되지만 감정을 애써 숨긴다. 그러다 안중근을 추격하던 일본군이 쏜 총탄을 대신 맞고 그의 품에서 숨진다. 링링은 물론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다. 그는 “링링이란 허구의 인물을 통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이름없는 독립투사들을 대변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링링 역을 함께 맡은 선배 배우 소냐와 선의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 부담감은 없을까. “이미지도 다르고, 언니랑 저랑 실력차도 많이 나니까 별로 그런 생각 안 했는데 오히려 주변에서 자꾸 부추기시더라고요. 그래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였죠. 중간에 언니랑 한번 툭 터놓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서로가 가진 장단점이 다르니까 각자 자기 색깔대로 편하게 하자고요. 경쟁관계가 아니라 힘을 합쳐 좋은 작품을 만들어가는 동지로서요(웃음).” 초등학생 때 교회 성극을 보고 배우를 꿈꾸게 됐다는 그는 스스로를 “운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연기를 따로 배우지 않았는데도 대학 연극영화과에 한번에 붙었고, 졸업 후 대학로에 나와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무대에 섰다. 그는 빨리 유명해지거나 스타가 되고 싶기보다는 배우로서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나가고 싶다. 동안(童顔) 때문에 실제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주로 해온 그는 언젠가 ‘맨 오브 라만차’의 알돈자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원숙한 여인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안중근의사 친필 유묵 34점 한곳에

    안중근의사 친필 유묵 34점 한곳에

    안중근(1879~1910) 의사는 중국 뤼순 감옥에서 사형이 언도된 1910년 2월14일부터 3월26일 순국까지 최후 40여일간 글씨를 써서 남겼다. 유묵의 수신자는 모두 일본인이다. 이에 대해 안 의사는 옥중에서 쓴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서 “법원과 감옥의 일반 관리들이 내 손으로 쓴 글로써 필적을 기념하고자 비단과 종이 수백 장을 사 넣으며 청구하였다. 나는 부득이 자신의 필법이 능하지도 못하고, 또 남의 웃음거리가 될 것도 생각지도 못하고서 매일 몇 시간씩 글씨를 썼다.”고 밝혔다. ●日 류코쿠대 소장품 3점 국내 첫 공개 지금까지 확인된 안 의사의 친필 유묵은 50여점이다. 이 가운데 34점이 100년 만에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공개된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안중근 의사 의거와 순국 100주년을 기념해 26일부터 내년 1월24일까지 여는 ‘안중근-독립을 넘어 평화로’ 특별전에서다. 이들 유묵은 안 의사의 손때가 묻은 유일한 유품임에도 지금까지 한 곳에서 전시되거나 체계적으로 연구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에 전시되는 유묵 34점은 국·공립박물관 및 개인 소장 국가보물 20점과 미공개 작품 5점, 일본 소장품 7점, 중국과 미국 소장품 각 1점 등이다. 서예박물관은 이들 유묵을 내용별로 정리해 ▲독립·평화 ▲의거·순국 ▲인간 안중근 등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독립투사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동양평양론’을 주창한 사상가, 종교인, 선비로서의 안중근을 복원시킨다. 특히 일본 류코쿠(龍谷)대의 소장품 3점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어서 주목을 끈다. 또 안 의사의 유묵 내용 중 가장 널리 알려진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의 실물(동국대박물관 소장)이 일반에 공개되는 것도 드문 일이다. 서예박물관 이동국 학예사는 “안중근 글씨의 서체 및 서풍은 엄정 단아한 해서와 해행이 주가 되고 있는데, 한 글자 한 글자 모두가 침착 통쾌한 안중근의 성정 기질이 그대로 녹아 있다. 또 유묵의 내용은 안중근의 사상과 실천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안중근 실존의 삶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의거서 순국까지 담은 사진원본도 이번 전시에는 이들 유묵 외에 의거에서 순국까지 5개월간의 과정을 담은 사진 원본 28점과 관련 자료 10점이 함께 공개된다. 1909년 10월20일 이토 히로부미 일행이 뤼순 이룡산에 올라 러시아군 전몰자의 무덤에 참배한 뒤 찍은 사진과 의거 다음날인 1909년 10월27일 하얼빈에 도착한 안 의사의 부인 김아려 여사와 두 아들의 사진은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체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찍은 안중근 의사의 상반신 사진 원본도 전시된다. 전시회 기간 동안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안중근 동양평화학교’특강이 열린다.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김호일 안중근 기념관장, 김우종 중국 하얼빈대 교수,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강사로 참여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톱스타들의 굴욕?…PIFF 말·말·말

    톱스타들의 굴욕?…PIFF 말·말·말

    박중훈 “국민배우가 아닌 군민배우”배우 박중훈이 자신은 ‘국민 배우’가 아닌 ‘군민 배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지난 9일 제18회 부일영화상 시상식의 사회를 맡은 박중훈은 이날 진행에 앞서 자신이 ‘국민 배우’라고 소개되자 이같이 말한 것.박중훈은 “오늘 여기 계신 분들이 어떤 분들인데, 제가 감히 ‘국민 배우’로 들이댈 데가 아니다.”라며 “내년에는 ‘도민 배우’ 정도는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부일영화상 시상식에는 임권택 감독을 비롯해 신성일, 김추련 등 원로배우들과 안성기, 강수연, 김혜자 등 중견 배우들이 대거 참석했다.신성일 “조금만 젊었어도…”부일영화상 각본상 시상자로 무대에 선 배우 신성일은 백발의 머리카락과 수염을 기르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이유는 최근 안중근 서거 100주년 기념으로 제작되는 드라마 ‘동방의 빛’(가제)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역을 맡았다는 설명.신성일은 “제가 박중훈 나이만큼만 젊었어도 안중근 역을 맡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 상대역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이병헌, 기무라타쿠야, 조쉬하트넷 몰랐다”한편 영화 ‘나는 비와 함께 간다’의 여배우 트란 누 엔케는 한국 일본 미국의 톱스타 이병헌, 기무라타쿠야, 조쉬 하트넷을 몰랐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9일 오후 8시 30분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기자회견에 참석한 트란 누 엔케는 “프랑스에서만 활동 하다 보니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인지 잘 몰랐다.”며 “차라리 몰랐던 것이 연기하는 데 더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NTN 조우영 기자 gilmong@seoulntn.com / 사진 = 강정화,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시론] 나로우주센터 녹색·관광산업과 연계를/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론] 나로우주센터 녹색·관광산업과 연계를/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나로호 발사가 절반의 성공으로 마무리됐지만, 내년 5월 예정된 두 번째 발사는 반드시 성공을 거둬야 한다. 위성의 궤도 진입은 성공하지 못했으나 로켓이 화염을 뿜으며 우리가 만든 우주센터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은 대한민국이 우주입국을 계속 지향할 것이라는 선언적 의미를 가진다. 이제 우주입국의 서막은 올랐고, 2018년 예정인 순국산 우주발사체 KSLV-2의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이번 정기국회에서 심의할 내년도 예산편성에 제대로 반영하는 등 장기적 기획이 뒤따라야 한다. 우주개발은 많은 예산이 투여되기 때문에 ‘국민과 함께하는 우주개발’이 되지 않으면 꾸준히 진행될 수 없다. 국민 세금으로 이뤄지는 사업인 만큼 범국민적 격려와 관심이 필수적이다. 국민들의 우주개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면 고흥의 나로우주센터가 국민들을 맞이하는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6월에 개관한 우주센터의 우주홍보관은 엊그제까지 3개월만에 약 6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 높다. 홍보관은 로켓이 실제 발사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이 있는 등, 미국 플로리다와 일본 다네가시마 우주홍보관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자녀들의 현장학습에 안성맞춤이다.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다녀간 이유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로켓이 발사된 곳이라 흥미도 있었겠지만, 우주발사대가 있는 곳 치고는 교통이 대단히 편리하기 때문이다. 일본 다네가시마 우주발사대는 비행기를 타고 들어가야 하지만, 우리는 차량 접근이 가능하다. 게다가 득량만을 끼고 있는 청정지역이라 최근 방문한 일본 로켓 개발의 주역인 고다이 히로부미도 남해안 특유의 빼어난 경관을 보고 감탄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녹색관광산업과도 연계시키면 전 국민이 한번쯤은 들르게 되는 관광명소가 될 것이고 우주강국을 향해 나아가는 선진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높이는 본산이 될 것이다. 특히 고흥지역은 태양광 발전시설 등이 있어 신재생에너지 관련시설의 견학은 물론 친환경 녹색 에너지의 체험을 할 수 있고, 우주센터를 친환경 에너지, 녹색관광산업과 연계하면 우주센터를 방문하는 국민들이 늘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국민과 함께하는 우주개발’의 목표를 얻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경제 발전에도 기여하게 되어 님비(Nimby)현상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우주선진국 대부분이 그렇지만, 우주센터는 우주개발의 산실로 기능해야 한다. 앞으로 로켓 개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엔진 연소시험대도 설치해 순국산로켓 개발의 꿈을 실현해 나가야 하겠고, 관측용 로켓의 발사를 통해 기술개발과 축적의 장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지난 8월25일 대한민국 최초의 나로호 발사를 국민과 함께 지켜보면서 몰랐던 것을 알게 된 사실도 많다. 인공위성을 발사한 나라의 최초 발사 성공률이 27%에 불과하다는 것과,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패의 뼈아픈 과정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현실도 절감했다. 그러면서 성공적 발사를 위해 수차례의 연기는 당연한 것이라는 상식도 배우게 되면서 지구력과 인내력도 학습했다. 단박에 성공하면 더 말할 나위없이 좋겠으나, 우주라는 극한 환경 그리고 마이너스 180도에 가까운 액체산소를 관리해야 하는 기술적 어려움은 우주개발에 대한 국민의 깊은 이해와 지지가 절실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하토야마 일본 脫관료정치 2제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관료주도의 정치를 탈피하기 위한 개혁에 한층 속도를 내고 있다. 부처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한 ‘직소함’도 설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관료들의 기자회견 금지는 알권리의 벽에 부딪혀 방향을 틀었다. ●자민당 정권 대형사업 ‘제동’ 일본 정부는 22일 부처들의 낭비적인 사업이나 문제점, 의견 등을 해당 공무원으로부터 직접 듣기 위해 총리관저 및 부처에 ‘직소함’으로 불리는 ‘메야스바코(目安箱)’를 두기로 했다. 메야스바코는 에도막부가 서민의 불만과 진언을 직접 수렴, 정치에 반영하던 제도다. 직소함의 담당은 내각부와 행정 제도의 개선을 총괄하는 행정쇄신위원회에서 맡기로 했다. 정부는 일정 기간 직소함을 통해 의견이나 진정을 모은 뒤 이후 드러나는 불필요한 은폐에 대해서는 관계자를 문책할 방침이다. 하토야마 정권은 자민당 정권에서 추진되던 각종 대형사업에 제동을 걸고 있다. 국토교통성의 경우 얀바댐의 건설을 중단시키는 등 140곳의 댐 건설에 대한 필요성 여부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문부과학성은 국립미디어예술종합센터의 설립을 중지시켰다. 정부 측은 “ 헛된 예산의 사용을 막고 행정의 개선을 모색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사실관계 회견·브리핑은 허용 하토야마 정권이 탈관료정책의 하나로 출범과 동시에 내놓은 ‘관료의 기자회견 금지’ 조치를 1주일만에 수정했다. 국민의 알권리 제한이라는 거센 비판에 직면함에 따라 정권의 이미지를 고려한 것이다. 또 갑작스러운 시행 탓에 기상청·경찰청 등 청장급 관료뿐만 아니라 재외 공관들이 예정된 기자회견을 취소하는 바람에 혼란도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치적 입장이 담길 가능성이 큰 사무차관의 정례기자회견은 원칙대로 금지하되, 사건·사고·외교교섭 등의 사실관계 기자회견이나 브리핑 등은 허용하기로 했다. 사무차관의 기자회견은 각료의 허가 아래서만 가능하다. 하토야마 총리도 최근 “사무차관의 정례회견은 금지하는 것이 좋다.”면서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의사표시는 괜찮다.”며 사실상 원칙 완화를 시사했다. 히라노 히로부미 관방장관도 “각료의 허가나 지시에 따라 회견하는 것은 인정한다.”며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 hkpark@seoul.co.kr
  • [서울광장] 안중근 의사 재발견/노주석 논설위원

    [서울광장] 안중근 의사 재발견/노주석 논설위원

    지난 2일은 ‘대한국인’ 안중근의사 탄생 130주년이었다. 다음달 26일은 의거 100주기다. 우리에게 ‘10·26’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10·26사태’로 각인돼 있지만 10·26은 본래 100년 전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자랑스러운 ‘하얼빈 의거일’이었다. 중국 저우언라이 총리가 “중국과 조선인민의 진정한 연대는 안중근 의거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말한 바로 그날이다. 한국인 사업가가 중국 하얼빈의 명동 격인 중앙대로에 11일 동안 세웠던 안 의사의 동상을 국내에 들여왔다. 2006년 1월 저명한 중국인 조각가에게 의뢰해 만든 동상은 공안당국의 지시에 의해 철거됐다. 이후 3년 동안 숨어 있다가 이번에 햇빛을 보았다. 동상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를 놓고 갑론을박 중이다. 사유지에 세운다면 꺼릴 것이 없겠지만, 공공장소에 세우기를 원한다. 서울시내 44개의 공공 동상은 ‘동상·기념비·조형물의 건립기준 등에 관한 규칙’을 통과한 것들이다. 전문가들이 작품성 등을 따져봐야 하겠지만 ‘한·중 합작’ 동상을 공공장소에 세우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입지는 청계천이나 서울광장, 서울역 어디라도 좋을 것이다. 지난해 어느 시사주간지가 자랑스러운 한국인을 조사했더니 1위는 세종대왕, 2위는 이순신 장군, 3위는 백범 김구가 차지했다. 역사 속 인물로 박정희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광개토대왕, 도산 안창호, 다산 정약용이 10위 안에 들었다. 안 의사는 근근이 공동 13위에 이름을 올렸다. 오히려 국가보훈처가 조사한 보훈 인물 중 백범에 이어 2위로 뽑혔다. ‘국민 속의 안중근’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토를 저격한 ‘독립투사’의 이미지가 강해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자쯤으로 비치게 한 탓이다. 안 의사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 같다. ‘동양평화론’과 이토를 처단한 대의가 잊혀지고 있다. 동양평화론은 한국과 중국, 일본 3국이 공동군대를 편성하고 공동화폐를 발행하자는 선각자적인 정치사상이다. 국제주의적 민족주의 개념이다. 유럽통합 방식을 100년 전에 주창한 것이다. 안 의사는 학교를 두 개나 세운 육영사업가이며, 200여점의 붓글씨를 남긴 명필이다. 최초의 해외 독립군부대인 ‘대한의군 참모중장’ 신분으로 독립전쟁을 수행한 전쟁영웅이다. 나라 안팎에서 ‘안중근 재발견’이 활발하다. 왜 안중근인가. 뤼순 감옥에서 쓴 ‘안응칠 소회’에 오롯이 담겨 있다. “슬프다! 천하대세를 멀리 걱정하는 청년들이 어찌 팔짱만 끼고 아무런 방책도 없이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옳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생각다 못해, 늙은 도적 이토의 죄악을 성토하여, 뜻있는 동양청년들의 정신을 일깨운 것이다.” ‘안중근전쟁, 끝나지 않았다’를 옮겨 엮은 열화당 이기웅 대표는 “위대한 스승 안 의사의 말씀은 그 시대 청년들에게 머물지 않고, 시대를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도 매서운 죽비로 다가온다.”라고 평했다. 그렇다. 안 의사는 사표(師表)가 없는 이 시대의 스승될 자격이 차고 넘치는 분이다. 이 땅의 청년들은 안 의사의 당당함과 논리를 배워야 한다. 불멸의 민족혼을 본받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안 의사의 원혼은 100년째 중국 뤼순감옥 사형수 무덤 주위를 떠돌고 있다. 독립된 고국에 묻어달라던 ‘백년원(百年寃)’을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재발견은 유해찾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씨줄날줄] 태황제(太皇帝)밀사/박정현 논설위원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 태황제로 높여 불렸다. 그가 묻힌 경기도 남양주 홍릉(洪陵)의 비석에는 ‘대한 고종 태황제 홍릉’이라고 한자로 새겨져 있다. 한일합병 뒤 일제는 고종을 ‘덕수궁 이태왕’, 순종을 ‘창덕궁 이왕’으로 낮춰 부르도록 했다. 일제는 부러 고종이 무능했다고 폄하했다. 하지만 고종이 실제로 항일독립운동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자료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고종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를 구출하기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밀사를 파견했다는 기밀문서가 발견됐다.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일본 총영사가 1910년 일본 정부에 보낸 보고서는 고종을 안 의사 의거의 배후로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일본 외무성 자료로 소장돼 있다. 고종의 밀사 2명은 블라디보스토크 거류민회에 참석해 “태황제 폐하의 칙명을 받고 폐하의 친새가 찍힌 밀서를 갖고 옥중에 있는 안 의사를 구해내 러시아의 재판에 맡기려 왔다.”고 말한 것으로 기밀보고서는 전한다. 밀사들은 30대의 대한제국 관리 출신의 송선춘과 조병한으로 파악된다. 고종이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해 일제로부터 양위 압력을 받은 점을 감안하면 놀랄 일이 아니다. 고종이 구출하려 애썼던 안 의사는 중국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중국 신문과 잡지는 안 의사 의거를 신속히 보도하고 사설과 시사평론을 통해 안 의사의 영웅적 애국정신과 동양평화사상을 찬양했다. 상하이에서 발행된 신문은 안 의사 의거와 관련된 54개의 기사와 사설 평론을 게재했다가 폐간되기도 했다. 천두수(陳獨秀)·장제스(蔣介石) 등도 안 의사를 높이 평가했다. 이런 사실은 서명훈 하얼빈시 조선민족사업촉진회 명예회장이 모은 당시의 중국 신문과 잡지 400여편에서 밝혀졌다. 그는 지난 주 하얼빈에서 개최된 관훈클럽 주최 안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자료들을 공개했다. 자료들이 없었다면 안 의사가 중국 지도층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줬는지도 묻힐 뻔했다. 올해는 안 의사 의거 100주년. 이벤트성 기념 행사보다는 안 의사 관련 사료를 발굴해 내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사진으로 만나는 한일병합의 역사

    사진으로 만나는 한일병합의 역사

    내년 한일병합 100년을 앞두고 한일병합 전후 조선의 정치와 사회상 등을 담은 사진집이 출간됐다. 조선통신사 연구 권위자인 재일사학자 신기수(1931~2002) 선생이 생전 수집한 사진 600여장을 엮은 ‘한일병합사 1875-1945’(이은주 옮김·눈빛출판사 펴냄)이다. 1987년 일본에서 먼저 출간됐던 것으로 이후 절판됐다가 이번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운요호 사건이 있던 1875년부터 한일합병 이후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고난과 투쟁의 시간을 사진으로 생생히 증명하는 한편 의병항쟁, 항일무장투쟁, 만세운동으로 이어지는 민족의 투쟁상을 보여 준다.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의 시신이 본국으로 송환되는 장면, 일제 수탈의 결과로 나타난 토막민들의 생활상, 1923년 제주도~오사카 항로가 열린 후 일본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 노동절 행사에 참가한 재일조선 여성 등 주목할 만한 사진들이 포함됐다. 사진은 대부분 일본인이 촬영한 것이다. 19세기 후반 카메라와 필름이 일본에 수입되자 조선 침략의 선두에 총과 함께 카메라가 동원됐다. 저자는 1987년 초판 서문에서 “일제강점기의 사진이 절대적으로 적은 이유는 해방 이후 일본에 불리한 사진과 자료들이 소각됐기 때문”이라며 “이 책은 이웃 일본은 우리에게 어떠한 존재였는지, 지금 다시 한번 되묻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책 말미에는 일본이 쓰레기장에 방치한 윤봉길 의사의 유골을 조선 청년들이 발굴하는 과정을 담은 글도 수록됐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안중근 의거 中의 반일 애국주의 교과서”

    “안중근 의거 中의 반일 애국주의 교과서”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하얼빈 의거는 조선의 독립 의지와 일본의 침략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올해 100주년을 맞아 안중근 의거가 한·중·일 등 국제사회에 미친 영향을 재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안중근 의거의 국제적 영향’을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연다. 손염홍 건국대 교수가 미리 배포한 발표문 ‘안중근 의거와 중국의 반제 민주운동’에 따르면 안중근 의거 직후 중국 혁명파와 입헌파의 평가는 엇갈렸다. 그러나 5·4운동이 끝나고 신민주주의 혁명기에 들어가면서 안중근 의거는 반일 애국주의 교육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교과서로 활용돼 다양한 방식으로 중국 혁명에 계속 영향을 미쳤다. 특히 박은식이 1914년에 발간한 ‘안중근’ 전기는 안중근 의거가 단순히 한국의 원수를 갚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동양의 평화를 위한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한·중이 연대해 반제 항일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사상적 기초가 됐다고 손 교수는 분석했다. 안중근은 1907년 가을부터 1909년 10월까지 러시아 한인사회를 두차례 순방하며 동의회와 동의단지회를 결성하는 등 러시아지역 항일운동을 주도했다.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러시아에서의 안중근의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재해석’에서 “안중근의 거사는 한인단체들이나 한민학교의 연설회, 연극 등의 행사에 단골 주제로 등장해 러시아 지역 한인들의 항일의식과 독립의지를 고취시켰다.”고 했다. 안중근 의거에 대해 일본 사회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이규수 순천향대 교수는 “일본 언론계는 안중근에 대해 ‘미친 개’라는 표현을 주저하지 않았고, 안중근으로 상징되는 조선인의 저항에 대해서도 ‘괴물’ ‘마물’이라는 극단적인 멸시감을 유포했다.”면서 “이토 공을 죽인 한국을 멸망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언론의 비호를 받으면서 더욱 확산되었고, 이후 한국 강점을 주장하는 논리로 발전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안중근 의사의 업적에서 그가 주창한 ‘동양평화론’을 빼놓을 수 없다. 안중근은 뤼순 감옥에서 자서전을 탈고한 뒤 ‘동양평화론’ 집필을 시작했으나 끝맺지 못했다. ‘안중근 의거와 동양평화론의 현대사적 의의’를 주제로 발표하는 윤경로 한성대 교수는 ▲뤼순의 개방 ▲한·중·일 3국 평화회의 구상 ▲공동은행 설립 ▲공동 군단 설립, 교육 ▲상공업 발전 ▲로마 교황으로부터 3국 독립보장 등을 동양평화론의 핵심으로 요약했다. 윤 교수는 “오늘의 유럽공동체(EU)와 같은 아시아 경제공동체를 100년 전에 이미 구상했던 것은 참으로 놀라운 탁견이자 예지”라면서 “안중근 의거와 동양평화론은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를 위한 평화운동이며, 이 점이 안중근 의거의 현대사적 메시지”라고 말했다. 심포지엄에서는 이 외에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가 ‘안중근 의거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기조연설하고, 장석흥 국민대 교수가 ‘안중근 의거의 국제성과 그 영향’을 주제로 발표한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 방광석 고려대 교수, 윤선자 전남대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여하고, 신용하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주도로 종합토론이 이어진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임정 90주년-발자취 되밟다] (하) 답사 이후의 과제

    [임정 90주년-발자취 되밟다] (하) 답사 이후의 과제

    │충칭(중국) 박록삼특파원│2009년은 항일독립운동과 관련된 역사에서 의미있는 해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 꼬박 100주년이 되며, 3·1만세운동으로 민족의 기개를 떨친 것과 중국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수립한 지 90주년이 된다. 이뿐만 아니다 백범 김구가 총에 맞아 서거한 지 60주기가 되는 해이며 반민특위가 결성되며 좌절된 것 또한 꼬박 60년째를 맞고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의 독립정신 답사단이 지난 11일부터 19일까지 임시정부 발자취를 더듬었던 행사의 의의가 더욱 각별한 이유다. 하지만 현장을 직접 둘러보며 느낄 수 있었던 감동의 무게와 심장의 울림만큼이나, 현실의 처참함과 안타까움 역시 컸다. 답사단은 가는 곳마다 자취 없어진, 혹은 실제와 동떨어진 엉뚱한 현장을 목도하기 일쑤였다. ●사라지는 독립운동 역사의 현장 상하이(上海)는 임시정부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곳이었고, 만 13년 동안 무려 열 두 차례 이상 임정 청사를 옮겼다. 옮긴 곳마다 모두 지번의 기록이 있건만 실제로 남아 있는 곳은 맨마지막의 청사였던 푸칭리 4호뿐이다. 난징(南京)에서는 광복군의 또다른 모체가 된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한인특별반)에 소속된 김원봉 계열의 민족혁명당 인사들이 함께 모여 살던 호가화원(胡家花園)은 빈민가로 바뀐 지 오래였다. 재개발이 한창 진행되며 쓰레기 냄새가 가득할 뿐이었다. 중국 국민당 총통 장제스와 백범이 독대하며 요인 암살 등 테러에서 체계적 군대 양성의 필요성의 의견을 나눴던 난징의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장제스 관저)는 방문 자체가 불허됐다. 또한 충칭(重慶)에서 1940년 9월17일 창설된 광복군 총사령부는 미원(味苑)식당으로 바뀌었다. 아주 작은 비석 하나 남겨져 있지 않았다. 독립운동을 하던 이들이 묻혔던 화상산 한인묘지와 조선민족혁명당계열 인사 등이 거주하던 손가화원(孫家花園)은 몽땅 헐리고 대규모 아파트가 위로 치솟고 있다. 류저우(柳州) 유후공원에서도 광복군의 또다른 배경이었던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가 결성됐지만 어떠한 표지도 없다. 그저 옛 사진을 더듬어 짐작할 뿐이었다. ●엉뚱한 곳에 표지가 있는 곳도 우리 정부의 엉성한 일처리로 엉뚱한 곳에 기념 표지가 있는 곳까지 있었다. 현장에 대한 직접적 기억을 갖고 있는 독립운동가 및 자녀들이 고령이 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치밀한 현장 조사를 통해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과제다. 치장 임강가 43호(옛 지명)는 청사이면서 이동녕 임정 주석 등이 머문 곳이지만 당시 자리와는 상관없이 엉뚱한 곳에 표지석 하나가 걸려 있을 뿐이다. 또한 충칭의 화상산 한인묘지공원에서는 답사단 전체가 전혀 다른 묘지구역에서 김정륙 임정기념사업회 부회장의 모친 묘 등 한인들이 묻힌 흔적을 찾아 보기도 했으나 묘지는 없어진 지 오래였다. 조선민족혁명당이 자리잡은 충칭 호가화원 역시 아파트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임정 의정원 의원인 김의한의 아들이자 독립유공자인 김자동(81) 임정기념사업회장은 “이동녕 주석의 거처 등 임정청사는 강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야 한다.”면서 “보훈처 등에서 제대로 현장 조사도 하지 않고, 관련 서류도 들춰 보지 않은 채 엉터리로 일을 치른 것”이라고 안일한 행정에 대해 비판했다. 김 부회장 역시 “더 늦기 전에 좀더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조사작업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안중근 의거 100년/박정현 논설위원

    올해 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대회를 빛낸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봉중근이 있다. 한국을 폄하하는 거친 발언을 서슴지 않는 스즈키 이치로의 타선을 봉쇄한 그는 단숨에 안중근 의사로 패러디됐다. 네티즌들은 위인전 ‘의사 안중근’의 겉표지를 봉중근의 얼굴로 바꿨다. 이치로는 이토 히로부미와 동일시됐다. 봉중근의 승리를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비할 바 아니라는 지적도 없지 않았지만 일본을 이긴 통쾌함에 묻히고 말았다. 올해는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는 해다. 오는 10월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일본 제국주의 수뇌였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지 꼭 100년 되는 날이다. 100주년을 맞아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중국에서 만들어져 8월15일에 하얼빈역에 도착한다. 동상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감옥이 있는 뤼순까지 이동한 뒤 서울 백범기념관으로 옮겨진다. 뤼순에서는 대규모 전시관이 때맞춰 문을 열 예정이고, 국내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상징인 ‘대한국인’ 손도장 찍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안중근 의사가 아니라 안중근 장군으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안중근 의사가 대한독립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적장을 사살한 것이라고 밝힌 재판기록에 근거해서다. 안중근 의사는 190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멀지 않은 러시아-북한 접경 마을 연추하리에서 러시아 지역 최초의 의병조직을 조직했다. 이듬해 2월에는 동료 11명과 함께 왼쪽 무명지를 끊어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맹세했다. 그 의지를 태극기에 ‘대한독립’ 네글자로 새겼다.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斷指同盟)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1년 연추하리에 비석이 세워졌고, 비석은 인근 장소로 이전됐다. 하지만 이전지역이 국경안 민간통제구역에서 300m 떨어진 곳이어서 러시아 당국의 허가 없이는 출입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비석에는 1909년 2월 당시의 국호가 대한제국이었음에도 대한민국으로 잘못 표기돼 있다.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맞아 허술한 관리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아울러 그의 동양평화사상을 남북화해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로 이어가기를 기대해 본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 中 뤼순감옥에 ‘안중근 전시관’ 들어선다

    中 뤼순감옥에 ‘안중근 전시관’ 들어선다

    안중근 의사의 항일 투쟁역사를 생생히 보여 주는 대규모 전시관이 그가 순국했던 중국 뤼순(旅順)감옥에 들어선다. 9일 광복회 등에 따르면 안 의사 의거 100주년인 오는 10월26일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다롄시(大連市) ‘뤼순 일아(日俄)감옥 구지(舊地) 박물관(옛 뤼순감옥)’ 내에 안중근 전시관이 문을 연다. 뤼순감옥은 안 의사가 1909년 중국 하얼빈역에서 한반도 침탈의 수장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고 체포돼 순국할 때까지 5개월 간 수감됐던 곳으로 중국 정부도 이 곳을 항일운동 관련 주요 국가 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박물관내 2개 동에 들어서는 전시관은 모두 600㎡ 규모로 안 의사의 항일운동 투쟁과정을 보여 주는 전시실과 그가 일제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처형장, 그의 항일운동 정신을 기리는 추모공간으로 나뉘어 꾸며진다. 전시실에는 안 의사의 독립운동 관련 사료와 기사를 비롯해 흉상과 훈장, 필사 형식의 그의 유묵(遺墨)이 전시되며 추모실에는 안 의사의 일대기를 동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는 스크린과 조화 공간이 마련된다. 다만 중국 정부가 외국인 이름을 딴 전시관 설립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탓에 전시관의 공식 명칭은 열사의 이름 대신 ‘국제항일열사전시관’으로 불리게 된다. 전시관은 안 의사 순국 99주년이자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맞이해 광복회와 중국 다롄대가 공동 추진한 것으로 그의 독립운동 정신과 평화사상을 기리는 추모공간을 넘어 향후 항일운동 역사 및 교육 탐방코스로 활용될 전망이다. 광복회와 다롄대는 10월24일 안 의사 전시관 개관식을 가질 예정이며, 이틀 뒤인 26일에는 이 곳에서 ‘하얼빈 의거 100주년’ 기념 행사도 열린다. 연합뉴스
  • [환경&에너지] “우드펠릿 1t 쓰면 이산화탄소 1.5t 저감효과”

    [환경&에너지] “우드펠릿 1t 쓰면 이산화탄소 1.5t 저감효과”

    │센다이(미야기현) 유진상특파원│“우드펠릿이 청정 환경연료로 각광받게 될 날이 오게 될 겁니다. 일본에서 우드펠릿을 연료로 사용한 지는 꽤 오래됐지만 정부 차원에서 지원에 나선 것은 최근입니다.” 일본 삼림총합연구소 구보야마 히로부미 주임연구원(임업박사)은 우드펠릿 현황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구보야마 연구원은 일본 내에서 우드펠릿 박사로 통한다. 그가 소속된 삼림총합연구소는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산림과학원에 해당한다. 그는 “양질의 원목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관리가 중요하다.”면서 “특히 간벌은 나무가 성장함에 따라 햇볕을 골고루 받도록 솎아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신중히 작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나무는 수령이 많아지면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줄어들어 베어낸 뒤 어린 나무를 심어야 생산성도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일본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의무 감축국으로, 늙은 나무를 솎아 내고 어린나무를 심는 것도 친환경사업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일본도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름연료를 대신할 대체 에너지 보급이 시급한데 우드펠릿이 방안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현재 지방정부인 미야기현청에서 우드펠릿 원료로 쓰이는 부산물의 수거율을 높이기 위해 2012년까지 시범사업을 통해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50% 감축하는 목표를 세웠다.”면서 “앞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한 청정연료로 우드펠릿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드펠릿 1t을 대체연료로 사용하면 1~1.5t의 이산화탄소가 저감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풍력이나 조력 발전소 등의 생산 라인을 갖추는데 적게는 3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도 걸린다. 하지만 우드펠릿 생산시설은 투자비가 저렴하고 설치도 단기간에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이미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 등 삼림자원이 풍부한 나라에서는 친환경 연료로 보편화돼 있다. 북미와 유럽지역의 경우, 연간 우드펠릿 생산량이 650만t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js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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