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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딩크 러 안지 감독 사임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영웅인 거스 히딩크(67) 감독이 러시아 프로축구팀 안지 감독직을 사임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남부 다게스탄 공화국 수도 마하치칼라의 축구클럽인 안지는 22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안지는 히딩크 감독의 사퇴 의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면서 “히딩크 감독의 팀에 대한 헌신에 감사하며 앞으로 그의 앞날에 성공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히딩크 감독의 후임으로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1군 코치를 지낸 르네 뮬레스틴으로 결정됐다. 2012년 2월 1년 6개월의 계약 조건으로 안지 감독직을 수락한 히딩크 감독은 지난 6월 1년간 계약을 연장했으나 최근 사임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히딩크 감독은 이날 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서 “내가 없어도 안지가 스스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을 때 임무가 끝날 것이라고 말해 왔다”면서 “이제 그런 시기가 왔다”고 전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데스크 시각] 대한민국 축구를 정말 사랑한다면/이기철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대한민국 축구를 정말 사랑한다면/이기철 체육부장

    스포츠는 직업이 아닌 바에야 우리 생활의 활력소이자 청량제다. 인간의 한계 극복에 감동하고, 예술 같은 신기에 감탄한다. 또 밍밍한 일상에 진진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며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축구, 특히 국가대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 국민은 일본과의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여전히 목에 핏대를 세운다. 태극 마크를 단 붉은 악마 유니폼에는 우리의 정체성이 스며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우리 사회에서 축구 한 경기 이기고 지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얼마든지 많은데도 말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나 최근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투지를 보이며 선전한 경기는 우리 국민을 하나로 묶어냈다. 어떤 정치인의 사자후보다 더 우렁차다. 그러나 우리 국가대표팀은 언제부턴가 비장함이 묻어나는 경기를 잃어버렸다. 이런 대표팀에 홍명보가 지휘봉을 잡았다. 월드컵 8회 연속 진출이 확정됐지만 지리멸렬한 경기를 본 국민은 큰소리로 그를 감독으로 불러들였다. 홍명보의 감독 선임은 그가 지금까지 축구 지도자로서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데 따른 성과인지, 주장으로 활동했던 2002년 월드컵 4강신화 재현을 갈구하는 역사의 흐름 또는 운명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홍 감독에게는 11개월 앞으로 다가온 브라질월드컵을 지휘할 총사령관의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국민의 기대가 잔뜩 실린 것과는 달리 홍 감독은 어떤 난제라도 풀 수 있는 만능 키를 가진 것이 아니다. 올림픽대표팀 등에서 그의 성공 경험이 국가대표팀 감독의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대표팀 선수 개개인의 역량은 남미나 유럽 선수들보다 한참이나 뒤떨어진다. 홍 감독은 “월드컵에 우리 팀보다 수준이 낮은 팀은 없다”며 걱정한다. 대표팀의 정신상태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동이나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파주트레이닝센터에 들어서는 데서 보듯 비뚤어진 스타 의식에 젖은 연예인처럼 변했다. 국가대표로서 자부심, 나라의 자존심을 세우거나 국민에게 환희와 영광을 돌려주겠다는 의지가 도대체 보이질 않는다. 이런 대표팀을 단박에 업그레이드할 비방은 없다. 우리 선수의 개인기가 11개월 만에 쑥 늘거나, 팀 수준이 갑자기 높아질 리가 없다. 대표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소년부터 학원 축구에 이르기까지 하부구조가 허약한 탓이다. 체질 개선 없이는 한국 축구가 한 단계 더 성숙하기는 요원하다. 브라질월드컵의 성과가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성과가 극히 나쁘다면 또 감독 이야기가 나올 게 뻔하다. 2002년 거스 히딩크 이후 2013년 홍명보에 이르기까지 10년 동안 10명의 국가대표 감독이 교체됐다. 과정이나 경기 내용보다 눈앞의 승부, 즉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결과 지상주의에 축구도 덩달아 매몰된 까닭이다. 같은 기간 일본의 감독 교체는 5차례였다. 우리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5단계가 높은 나라다. 감독 교체는 대증요법이지, 특효 처방이 아니다. 축구협회는 당장의 결과보다는 장기적 마스터플랜을 세워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한다. 우리 국민 태반은 축구 관전평을 한마디씩 내놓는다. 축구에 대한 애착이 크다는 방증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축구를 사랑한다면 K리그 한 경기라도 경기장에 가서 보자.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며 즐기자. 팬이 경기장에서 함께하는 축구. 그게 우리 축구의 빈약한 하부구조를 튼튼하게 하는 첫걸음이다. chuli@seoul.co.kr
  • [U-20 월드컵] ‘리틀 박지성’ 류승우, 이대로만 커다오

    [U-20 월드컵] ‘리틀 박지성’ 류승우, 이대로만 커다오

    ‘리틀 태극전사’의 에이스 류승우(20·중앙대)가 두 경기 연속골을 터뜨리며 16강행 청신호를 밝혔다. 류승우는 25일 터키 카이세리의 카디르 하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2013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동점골을 꽂아넣으며 2-2 무승부에 앞장섰다. 2011년 콜롬비아U-20월드컵 준우승팀 포르투갈을 상대로 승점 1을 챙긴 한국은 1승1무(승점 4)로 B조 2위를 지켰다. 27일 자정 열리는 나이지리아와의 최종전(1승1패)에서 비겨도 조 2위를 확보, 3회 연속으로 16강에 오른다. 류승우가 단연 돋보였다. 선제골을 얻어맞아 0-1로 뒤지던 전반 종료 직전 통쾌한 중거리슛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상대 수비수를 달고 오른발로 때린 슈팅이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골을 넣은 류승우는 벤치로 달려가 이광종 감독과 포옹하며 기쁨을 나눴다. 2002한·일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박지성이 거스 히딩크 감독을 끌어안은 세리머니를 그대로 재현한 것. 류승우는 “박지성 선배님처럼 해보고 싶었어요”라고 수줍게 말했다. 쿠바전 때는 맹장염으로 월드컵 직전에 낙마한 김승준(숭실대)을 위한 ‘하트 세리머니’를 선보였던 그는 이번에도 재치 있는 골 뒤풀이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캡틴 박’의 등번호인 7번을 단 류승우는 유연한 드리블과 넓은 활동폭, 감각적인 슈팅까지 갖춰 ‘박지성의 재림’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 포르투갈에 후반 15분 한 골을 더 내줬지만 후반 31분 김현(성남)의 동점골로 귀중한 승점 1을 챙겼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어려운 시기지만 가진 것 모두 쏟을 것”

    “어려운 시기지만 가진 것 모두 쏟을 것”

    “한국축구가 제2의 도약을 이룰 수 있도록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 홍명보(44) 신임 축구대표팀 감독이 호기로운 일성을 밝혔다. 24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홍 감독은 취재진에게 “부족한 제가 국가대표 사령탑에 오를 수 있어 영광”이라며 “어려운 시기지만 사명감을 갖고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날 오전 홍 감독을 2014브라질월드컵 본선을 이끌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축구계 안팎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다. 나이가 다소 적은 점을 제외하면 선수나 지도자로서의 경력, 현재 대표팀 구성원이나 차세대 유망주에 대한 파악, 카리스마와 리더십, 현대축구의 흐름에 대한 적응력 등 두루 적합하다는 평가다. 특히 지난해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주도한 박주영(아스널), 기성용(스완지시티),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윤석영(퀸스파크 레인저스), 김창수(가시와 레이솔) 등이 대표팀의 주축을 형성하면서 1년이 채 남지 않은 브라질월드컵 본선 준비에 외국인 사령탑이나 다른 국내파가 허비할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샀다. 허정무 협회 부회장은 “그동안 대표팀 사령탑으로 외국인 감독들을 많이 겪어 왔지만 대부분 단발성으로 끝났다”며 “이제 한국 축구는 그런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홍 감독의 경력이나 역량이 여느 외국인 사령탑에 뒤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홍 감독은 전임 최강희 감독이 꾸려 놓은 대표팀 전열의 핵심을 놓치지 않으면서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 온 선수들을 안착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당장 다음 달 동아시안컵 대회에서 유럽파 없이 국내파만으로 일정한 성과, 특히 일본전 승리를 거둬야 한다. 이렇다 할 변모를 보여 주지 못하면 월드컵 본선까지 남은 기간, 나아가 2015년 호주아시안컵을 준비하는 팀의 면모를 갖추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홍 감독 선임은 지난 19일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이란전에서 대표팀이 0-1로 패한 다음 날 곧바로 기술위원회가 개최되면서 예견됐다. 허 부회장이 2주 전부터 홍 감독과 접촉했음을 숨기지 않았고, 늦어도 일주일 안에 차기 감독을 발표할 것이라고 공표하면서 사실상 홍 감독이 내정됐다는 추측을 낳았다. ‘영원한 리베로’로 불리는 홍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표팀의 주장이자 중앙 수비수로 4강 진출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아드보카트호(號)’의 코치로 합류하면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홍 감독은 2009년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8강에 진출하며 성공적인 사령탑 데뷔전을 치렀다. 이듬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23세 이하(U23) 대표팀을 이끌어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지난해 올림픽 첫 동메달의 쾌거를 일구며 차세대 대표팀을 지휘할 재목이란 낙점을 받았다. 그러나 홍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 제의를 받을 때마다 ‘때가 아니다’라며 물리쳤고, 지난 1월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안지 마하치칼라(러시아)로 지도자 연수를 떠나며 괜한 소문을 피했다. 최강희 감독 후임으로 홍 감독 외에 뚜렷한 적임자가 없었던 만큼 협회는 2018년 러시아월드컵까지 5년 동안 파격적인 계약을 제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2015년 호주아시안컵까지로 정해졌다. 협회는 “짧을 수도 있지만 홍 감독과의 교감을 거친 것”이라고 밝혀 성과에 따라 연장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다만 이번 선임 과정은 비판받을 만하다. 팬들과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면서 투명하게 진행할 수 있는 일들을 ‘위’에서 정해준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밀어붙였기 때문. 애초에 홍 감독과 함께 거론됐다는 세 후보의 면면이나 그들과 어떤 점에서 홍 감독이 차별화됐는지 설명하려는 노력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일들이 브라질월드컵과 이후 홍 감독과 대표팀의 행보에 쏟아질 국민의 성원을 멀어지게 할 요소가 되지 않을까 저어될 따름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위기의 한국축구] 팬들의 독설, 얻는 것은?

    팬이 없으면 스포츠는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축구대표팀을 향한 팬심(心)은 원색적인 비난과 날카로운 인신공격으로 점철돼 있다. 그들은 당연한 권리인 듯 태극전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대표팀은 숙명인 듯 가시돋친 말들을 묵묵히 견뎌낸다. 태극마크의 기본 자질 가운데 ‘의연함’이 으뜸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다. 한 경기가 끝날 때마다 조급하게 성과를 재촉하면서 감독을 흔드는 건 익숙한 풍경이다. 건설적인 비판이나 애정 어린 질책이 아니라 다분히 악의적인 비난이 대부분이다. 선수 기용이나 전술·작전 등 감독 고유의 권한을 침범하는 장면도 다반사다.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놓치거나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선수들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기사에 악성 댓글을 남기는 건 물론,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까지 찾아와 ‘테러’를 감행한다. 축구대표팀은 항상 ‘뜨거운 감자’다. 빛나는 역사를 쓴 거스 히딩크 감독도 2002년 한·일월드컵 직전까지 내내 시달렸고 후임으로 온 쿠엘류, 본프레레, 베어백, 아드보카트 감독 등도 긴 안목의 로드맵을 세우지 못하고 눈앞의 경기에만 연연하다 떠났다. 한국의 냄비 근성에 혀를 내두른 건 당연하다. 얄궂게도 무색무취하다고 깔아뭉갰던 허정무 감독은 조광래 후임 감독이 온 뒤 지략가로 위상이 높아졌고, 조 감독도 최강희 감독이 이어 받은 뒤 그리워하는 팬이 늘었다. 월드컵 ‘4강신화’는 기적인 동시에 저주였다. 축구팬들은 당시와 같은 최고의 경기력과 성적을 기대하게 됐다. 해외 리그에 우리 선수들이 진출, 안방 생중계로 빅클럽의 경기를 보면서 눈높이만 잔뜩 높아졌다. 기형적인 인터넷 댓글 문화까지 결합해 대표팀은 ‘동네북’이 됐다. 김호곤 울산 감독은 “평생을 축구만 해온 사람들에게 모욕적인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 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나. 팬들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일갈했다. 2007년 아시안컵을 지휘한 베어백은 떠나면서 한국 축구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축구팬이라고 주장하는 몇몇은 말도 안 되는 환상에 젖어 있다. 그들은 평소 축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대표팀은 언제나 브라질처럼 플레이하길 원한다. 자국리그는 외면하면서도 세계적인 선수가 나오길 갈망하고, 선수들이 목표점에 다다르지 못하면 범죄자보다 더 혹독하게 비난한다. 그리고 그 행동이 정당하다고 믿는다. 한국 감독으로 경험한 최근 1년은 괴롭기만 했다.” 유감스럽지만 이 독설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오늘의 눈] 누구를 위한 K리그 올스타전인가/조은지 체육부 기자

    [오늘의 눈] 누구를 위한 K리그 올스타전인가/조은지 체육부 기자

    선수는 머쓱하고, 팬들은 안타깝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올스타전인지 모르겠다.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올스타전은 이번에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프로축구연맹은 올스타전에 유럽파를 불러들였다. 이청용(볼턴)·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기성용(스완지시티)·윤석영(QPR)은 K리그 챌린지(2부리그)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뛰었다. K리그에서 성장해 유럽으로 진출한 이들이 참여해 준 건 고맙다. 하지만 정작 K리그에서 땀 흘리는 선수들은 ‘병풍’으로 전락했다. 심지어 최우수선수(MVP)에는 독일파 구자철이 뽑혔다. ‘주객전도’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재기발랄한 골 세리머니와 캐넌슈터 선발대회, 이어달리기 등으로 꾸며져 알콩달콩했던 ‘잔치’는 고전이 된 지 오래다. K리그 올스타와 J리그 올스타가 맞붙는 조모컵이 2008년 슬쩍 열리기 시작하더니, 2010년에는 스페인 프로축구 FC바르셀로나를 초청해 K리거와 붙였다. 주전 8명을 빼고 유일하게 한국행을 택한 리오넬 메시는 피곤하다는 말만 연발하다 선심 쓰듯 15분을 뛰었다. 재미도, 의미도 없는 경기에서 들러리가 된 건 K리그 올스타였다. 승부조작 파문으로 조용히 넘어갔던 2011년을 지나 지난해에는 2002한·일월드컵 1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거스 히딩크 감독과 박지성(QPR)의 포옹 세리머니가 재현되는 동안 진정한 주인공이어야 할 K리거들은 또 그림자 신세였다. 올해 K리그는 참 풍성하다. 차두리(FC서울)·이천수(인천)·정대세(수원) 등 스타급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고, ‘올드보이’ 김남일·설기현(이상 인천)·김병지(전남) 등이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내고 있다. ‘꽃미남’ 임상협(부산)·송진형(제주)·이승기(전북) 등은 소녀팬들을 불러모은다. K리그 챌린지(2부리그)와 승강제도 ‘중간 보고’를 할 수 있었다. 으르렁대는 라이벌팀 서포터끼리 응원대결이나 축구 미니게임을 하는 것도 아이디어다. 하지만 서른 살을 맞은 K리그는 지름길만 택했고, 스스로 권위를 갉아먹었다. 우리는 안다. 우리나라엔 ‘FC대한민국’만 있을 뿐 K리그는 걸음마 단계라는 것. 유럽파를 팔지 않고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그러나 이날 경기장은 민망할 정도로 텅 비었다. 선수들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썰렁했다. 국가대표가 실망감을 안긴 데다 평일 오후 7시에 열렸다고 해도 너무 초라했다. 그나마 유럽파가 와서 이 정도라도 온 걸까, 아니면 K리그 골수팬들만 온 것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치열한 고민 없이 해외 빅클럽이나 과거의 향수, 몇몇 해외파에 의존하는 지금의 행태가 반복된다면 K리그에 미래는 없다. zone4@seoul.co.kr
  • [위기의 한국축구] 소집훈련 효율성 높이자

    최강희 감독 역시 선수 선발 잡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콕 찍어 말하면 이동국(전북)을 왜 감싸고 도느냐는 것이 대표적이다. 최종예선 마지막 3연전을 앞두고 부상이나 컨디션 저하를 이유로 기성용(스완지시티)과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박주영(아스널)을 제외한 것을 두고도 말들이 나왔다. 선수 선발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란 점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경기 내용이 좋지 않으면 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예비 엔트리를 정하고 함께 숙의해 내놓은 과정을 잊고 감독에게만 비난이 집중된다. 그리고 경기 도중 선수들의 좋지 않은 움직임을 빌미로 대표선수들을 장기간 합숙시켜 훈련해야 한다는, 시대에 뒤떨어진 처방전을 내놓기에 이른다. 월드컵 예선은 본선행 티켓을 쥐는 게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거기에만 그치면 곤란하다. 본선에서의 전술을 미리 다듬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따라서 다양한 선수를 불러 시험하고 장단점을 검증하는 한편, 본선에서 써먹을 전술에 필요한 자원을 골라내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런데 초유의 ‘시한부 사령탑’인 최강희 감독은 눈앞의 승점 3이 급했다. 해서 최종예선 여덟 경기에 나선 포백 라인은 매번 달라졌다. 무실점은 그중 두 경기에 그쳤고 세트피스 상황에서 다섯 골을 내줄 정도로 흔들렸다. 서형욱 MBC 해설위원은 “1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10차례 정도의 평가전과 그에 앞선 소집훈련으로도 충분히 전력을 가다듬을 수 있다”며 “브라질 본선 대비와 함께 2015년 호주 아시안컵까지 전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동시에 가능하다. 그 뒤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지휘할 후임 사령탑에 성과를 인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기술위원회와 감독이 30여명의 후보군을 선정해 놓은 뒤 특출나게 떠오르는 선수들을 추가하거나 컨디션 난조를 보이는 선수를 제외하는 형식으로 안정성과 내부 경쟁을 동시에 유도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다. 또 본선에 가까워질수록 집중적인 소집 훈련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텐데 거스 히딩크 감독 시절에 대한 향수일 수도 있다. 정윤수 칼럼니스트는 “과거처럼 K리그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도, 그럴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현재 차출 규정만 준수해도 된다. 다만 해외파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계속 출장할 수 있도록 돕고 꾸준히 그들의 컨디션을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16세 이하, 18세 이하 대표팀 등은 그런 틀이 잘 갖춰져 있는데 정작 대표팀 선수들에 대해선 허술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본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체력을 끌어올리는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나아가 영상미팅, 이론미팅 등을 통해 선수 개개인의 전술적 쓰임새를 인지하도록 하고 유기적으로 묶는 노력이 긴요하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포스트 최강희’ 홍명보 유력

    ‘포스트 최강희’ 홍명보 유력

    홍명보(44) 전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내년 브라질월드컵을 지휘할 축구대표팀 차기 감독 1순위로 낙점됐다. 대한축구협회는 19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술위원회를 열고 차기 지도자 후보로 홍 감독을 포함해 4명으로 압축했다. 허정무 협회 부회장은 “기술위에서는 홍 감독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추천했다”면서 “홍 감독과 대표팀 사령탑과 관련해 교감이 있었다”고 밝혔다. 허 부회장은 그러나 홍 감독이 실제로 대표팀 사령탑에 앉을지 속단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허 부회장은 홍 감독 외에 다른 후보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미 잘 알려진 감독들이라고 귀띔했다. 이에 따라 세놀 귀네슈(61) 전 터키 감독, 마르셀로 비엘사(58) 전 아르헨티나 감독 등이 물망에 올랐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허 부회장은 “외국인 지도자는 월드컵 16강 진출 경력을 우선적으로 살폈고, 국내 지도자는 월드컵 출전경험, 선수통솔 역량을 중점적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귀네슈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터키를 4강에, 비엘사 감독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칠레를 16강에 각각 올렸다. 홍 감독은 월드컵 본선에 4번이나 출전해 경험이 풍부하고 월드컵 코치, 올림픽 감독으로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한국판 황금세대’를 조련해 2009년 이집트 20세이하 월드컵 8강,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등 굵직한 역사를 쓰기도 했다. 답답한 경기력과 불화설 등으로 흐트러진 팀 분위기를 추스를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러시아 프로축구 안지에서 연수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미국에 머무는 홍 감독은 22일 귀국할 예정이다. 국내 다른 후보로는 김호곤(62) 울산 현대 감독이 거론된다. 김 감독은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지냈고, 지난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울산을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새 감독은 이날 임기가 만료된 최강희 감독의 후임으로 2014브라질월드컵에서 태극호를 이끈다. 협회는 회장·부회장·기술위원장이 참석하는 회의를 거쳐 이르면 다음 주 초에 차기 사령탑을 발표할 계획이다. 새 감독의 데뷔 무대는 새달 20일부터 한국에서 열리는 동아시안컵이 될 예정이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포스트 최강희’는 홍명보뿐?…다른 후보군은

    ‘포스트 최강희’는 홍명보뿐?…다른 후보군은

    한국 축구대표팀이 천신만고 끝에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면서 최강희 감독의 뒤를 이어 본선을 이끌 사령탑에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여러 명의 후보 가운데 가장 유력한 후보는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는 쾌거를 올린 홍명보 전 감독이 유력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측은 “홍명보 전 감독이 아직 내정된 상태는 아니다”라면서 말을 아끼고 있는 상황. 홍명보 전 감독 외에도 김호곤 울산 현대 감독과 세뇰 귀네슈 전 트라브존스포르 감독이 유력한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김호곤 감독은 지난해 울산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려놓으면서 AFC ‘올해의 지도자상’을 수상한 국내파 명장이다. 2004년에는 아테네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8강에 오르기도 했다. 이는 2012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기 전까지 한국이 올림픽에서 기록한 최고 성적이었다. 최강희 감독은 ‘시한부’ 국가대표 사령탑을 맡고 나서도 “후임자는 외국인 감독이 와야한다”고 일관되게 말해왔다. 또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스 히딩크 전 감독처럼 외국인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귀네슈 감독은 외국인 지도자의 대표 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귀네슈 감독은 다양한 국제경험과 한국 축구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터키 1부리그 트라브존스포르에서 사임한 귀네슈 감독은 지난 2000년부터 4년간 터키 국가대표 감독을 맡으면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한 명장이다. 지난 2007년부터 3년 동안 K리그 FC서울을 이끌며 팀을 리그 상위권으로 올려놓기도 했다. 서울의 사령탑을 맡으면서 기성용, 이청용, 박주영 등 당시 최고의 유망주들이 지금의 기량을 선보이게 하는 밑바탕을 만들었다. 한국을 떠날 때는 기성용이 공항까지 따라나와 배웅할 정도로 선수들과의 친분도 두텁다. 두 감독 외에도 아르헨티나와 칠레 감독을 맡았던 마르셀로 비엘사,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준우승으로 이끈 베르트 판 바르빅 감독 등도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국내파로는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을 달성한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도 후보로 꼽히고 있다. 맹수열 기자 guns@seoul.co.kr
  • [2014 월드컵 최종예선] 히딩크의 특급 미드필더 아프메도프 ‘초특급 경계령’

    [2014 월드컵 최종예선] 히딩크의 특급 미드필더 아프메도프 ‘초특급 경계령’

    축구대표팀이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브라질행 굳히기’에 나선다. 최강희호는 11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7차전을 치른다. A조 선두(승점 11·득실차 +6)인 한국이 우즈베크(승점 11·득실차 +2)를 꺾으면 본선행이 사실상 확정된다. 파주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담금질 중인 대표팀은 김신욱(울산)-손흥민(함부르크) 투톱의 4-4-2전술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9일 오후 한 차례 훈련을 하며 컨디션과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태극전사들은 “충분히 이길 수 있다. 8회 연속 월드컵 진출을 믿어 달라”며 투지를 불태웠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대표팀은 상대 전력 분석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즈베크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8위로 한국(40위)에 뒤지고, 상대전적에서도 1승2무7패로 밀린다. 그러나 최근 대결이었던 지난해 9월 최종예선 3차전 때는 2-2로 비기며 만만찮은 전력을 과시했다. 이후 최종예선 3연승으로 기세도 좋다. 가장 경계 대상인 선수는 오딜 아흐메도프(26). 우즈베크 올해의 선수상을 두 번(2009·2011년)이나 받은 멀티플레이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1부리그) 안지 마하치칼라 유니폼을 입고 정규리그, 유로파리그를 뛰며 축구지능이 부쩍 높아졌다. 부상 때문에 지난해 9월 한국전에는 결장했지만 올해 복귀한 뒤 한층 진화한 경기력으로 안지의 주전 미드필더를 꿰찼다.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섰는데 최근 소속팀 안지에서는 오른쪽 공격형 미드필더로 재미를 봤다. 대표팀에서는 공격포지션으로 뛴 적이 없지만 A매치 47경기에서 7골을 넣을 정도로 ‘한 방’까지 갖췄다. 아흐메도프가 어느 위치에 설지 파악되지 않아 대표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강희 감독은 “헤딩력과 패싱력, 파워까지 두루 갖춘 우즈베크의 에이스”라면서 “아흐메도프가 어느 위치에 서느냐에 따라 우리 전술과 중원 조합이 달라질 것”이라고 경계했다. 우즈베크 팀에는 지한파(知韓派)도 수두룩하다.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주장 세르베르 제파로프(31·성남)와 골잡이 알렉산더 게인리히(29·전 수원)가 특히 껄끄럽다. 제파로프는 지난 6일 중국과의 친선경기(2-1승)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날카로운 발끝을 뽐냈다. 앞서 3월 26일 레바논과의 최종예선 6차전에서도 1-0 승리의 골망을 흔들었다. 9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제파로프는 “꼭 이겨서 월드컵 본선에 직행하겠다”고 말했다. 자국 리그 분요드코르의 사령탑을 겸하고 있는 미르잘랄 카시모프 감독 역시 한국팀을 꿰뚫고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포항, 성남을 탈락시켜 K리그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빛고을문학관 후보지 선정 ‘진흙탕 싸움’

    광주 출신 문학인들의 작가 정신을 기리고 문학 체험 공간으로 활용될 ‘빛고을문학관’ 건립을 둘러싸고 관계자들 간 진흙탕 싸움이 그치지 않고 있다. 부지 선정의 적절성 논란과 문학관건립추진위원장의 발전기금 요구 등으로 지역 문학인들이 반발하는 등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14일 광주시에 따르면 지역 문학인들의 전시 및 창작 공간 조성을 위해 국비 32억원과 시비 91억원 등 모두 123억원을 들여 빛고을문학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시는 그동안 빛고을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후보지 공모를 거쳐 지난 3월 21일 60억원을 제시한 동구 명성예식장을 1순위 후보지로 선정했다. 2순위는 동구 히딩크호텔, 3순위는 동구 옛 현대극장이 선정됐다. 문제의 발단은 황하택 건립추진위원장이 최근 한 지역 일간지에 2순위인 히딩크 호텔이 ‘적지’라고 강조하면서 시작됐다. 히딩크 호텔은 3월 8일 후보지 공모 마감 때 78억원을 제시했다가 선정 하루 전 18억원을 내려 60억원을 신청해 논란이 됐으며 지방세 체납 등으로 1순위 후보지에서 탈락됐었다. 그럼에도 황 위원장은 공공연하게 후보지를 바꿀 수 있다는 발언과 글을 발표해 의혹을 부추겼다. 황 위원장은 명성예식장에 문학상 제정을 이유로 30억원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논란이 끊이지 않자 지역의 문인들은 “광주를 대표하는 문학관을 만들려면 추진위원부터 다시 선정해서 논의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광주·전남작가회의와 광주민예총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불미스러운 사태의 당사자인 황 위원장은 즉각 위원장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황 위원장이 문학관 후보지로 선정된 건물주와 부적절한 거래를 시도하는 등 추진위원회의 도덕성과 위상을 땅에 떨어뜨렸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광주시에 대해 “문학관 부지 선정 절차의 부적절함에 대해 건립 추진 전 과정을 특별감사해야 한다”며 “최근의 사태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시민사회나 지역 문화예술계의 대표성을 갖지 못한 일부 인사들이 추진위원이 되고 직접 부지 선정에 나서 최근의 사태와 같은 비상식적인 물의를 일으킨 게 사실”이라며 “콘텐츠 개발과 내실 있는 운영 체계를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추진체를 시급히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광주시는 이에 따라 황 위원장을 상대로 발전기금 명목으로 수십억원을 명성예식장에 요구한 경위 등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시 관계자는 “현재로선 추진위원회가 결정한 1순위 후보지를 대상으로 가격 협상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데스크 시각] 우리 안의 ‘퍼기’/임병선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우리 안의 ‘퍼기’/임병선 체육부장

    미국 CNN은 8일 오후 5시 30분쯤부터 알렉스 퍼거슨(72)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의 은퇴 발표를 ‘브레이킹 뉴스’로 전했다. 영국 맨체스터를 연결하고 전문가를 불러 좌담을 하는 등 3시간 가까이 법석을 떨었다. 그 시간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모든 뉴스는 무시되다시피 했다. 구단 홈페이지가 그의 은퇴를 공식 발표한 시점이 영국이나 유럽의 출근시간대임을 감안해도 풋볼이나 농구, 아이스하키에 매달리는 미국의 뉴스채널로선 다소 생뚱맞은 일로 비칠 만했다. ‘저들이 언제부터?’ 궁금증마저 일었다. 그러나 CNN이 퍼거슨의 이름값에만 도취됐을까? 아니라고 본다. 그의 존재감은 이미 피치(‘그라운드’의 영국식 표현)를 벗어나 있다. 다른 분야에서도 본받아야 할 스포츠 리더십에 대한 열광과 환대, 그 의미를 간파한 결과가 아닐까. 오는 20일 0시 호손 스타디움에서 킥오프하는 웨스트브로미치와의 2012~13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최종전이 끝나면 ‘퍼기 영감’의 불그스레한 얼굴, 한 경기를 치를 때마다 껌 10개씩을 씹어대는 그의 입 근육 움직임을 더 이상 피치에서는 바라볼 수 없게 된다. 한 팀에서만 27년을 사령탑으로 지낸다는 것이 지구촌 전체가 하나의 망으로 얽힌 21세기에 가당키나 한 일일까. 그 숱한 도전과 깎아내리기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헤어드라이어’로 대표되는 온갖 부정적인 별칭들을 거느린 퍼거슨이 진정한 명장으로 각인되고 조명되는 것은 팀의 작동 원리를 진정으로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팬들의 응원 열기나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의 몸짓 하나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내고 이를 팀의 전술, 나아가 구단의 마케팅 전략에까지 연결할 줄 아는 능력 덕도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스포츠 리더십이 상대적으로 더 주목받고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미국 대학농구의 전설 존 우든(1910~2010년)이 첫걸음을 뗐다. 가깝게는 거스 히딩크 전 대표팀 축구 감독이나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세계적인 선수로 길러낸 ‘구루’(영적인 스승)의 존재값으로 국내 팬들의 머릿속에 매겨졌다. 그 요체는 다른 분야의 지도자들에게서 쉽게 찾기 힘든 수평적 리더십이 아닐까. 올해 만 72세인 그가 20대 초반 선수들에게도 천진난만한 미소를 날리는 모습은 여느 사령탑이 쉽사리 본뜨기 힘든 덕목이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의문. 우리는 왜 그와 같은 지도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가? 여러 종목에서 근접하는 이름들을 되뇔 수 있지만 이름 석 자를 크게 외칠 수 있는 이는 적다. 체육계만이 아니다. 정치권이나 재계를 봐도 큰 그림자를 확인하기 어렵다. 수평적인 소통이 강조되는 시대라 그렇다고 변명하기엔 멋쩍은 일이다. 더 근본적으로 되새길 일은 우리 스스로 그런 지도자를 키워내지 못할 정도로 협량한 사회를 만들지 않았는가 하는 자책이다. 퍼거슨이란 명장도 극성스럽기로 악명 높은 영국 축구팬들이 참고 오랜 시간 어우러져 퍼올린 지혜의 소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의 눈과 귀가 어두워 그런 지도자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을까. 좋은 숲에서 좋은 나무가 자란다. 먼 나라의 명장을 떠나 보내는 이들에 대해 시샘을 느낀다면 그 단순한 교훈부터 되새길 일이다. bsnim@seoul.co.kr
  • “박지성을 롤모델 삼으라”… 영건들에 호통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32·퀸스파크 레인저스)과의 각별한 인연으로 한국 팬들에게 친숙하다. 그는 2005년 5월 28일 PSV에인트호번(네덜란드)에서 활약하던 스물 넷의 박지성에게 손수 전화를 걸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을 권했다. 박지성은 “1년만 더 뛰어 달라”는 거스 히딩크 에인트호번 감독의 만류를 뿌리치고 ‘꿈의 무대’에서 새로운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퍼거슨 감독은 ‘유니폼 판매용’이란 조롱 속에서도 “박지성은 우리가 원하던 선수다. 장차 라이언 긱스, 로이 킨을 대체할 것”이라고 믿음을 보였다. 그는 박지성을 애지중지했다. 박지성이 지난해 여름 퀸스파크 레인저스(QPR)로 이적하기 전까지 퍼거슨 감독은 7년 동안 굳은 믿음을 보였고 박지성은 최고의 몸놀림과 부지런함으로 이에 보답했다. 특히 AC밀란과의 2009~10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전 때는 퍼거슨 감독의 신뢰가 절정에 달했다. 그는 “박지성에게 안드레아 피를로를 막아 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는 킥조차 못 하도록 피를로를 막아 줬다. 이타적이고 제대로 훈련받은 선수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박지성은 환상적으로 해냈다”고 극찬했다. 앞서 첼시와의 2007~08시즌 챔스리그 결승 엔트리에서 박지성을 제외한 뒤에는 “내 커리어 사상 가장 힘든 결정이었다. 그는 환상적인 경기력을 보여 왔기 때문”이라고 애제자를 다독였다. 성실한 자세와 프로 정신을 높이 사 젊은 맨유 선수들에게 “박지성을 롤모델로 삼으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벤치 워머’로 전락한 박지성이 지난해 QPR로 떠나자 퍼거슨 감독은 직접 쓴 편지를 전하며 사제의 정을 나눴다. 그는 “내 손자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박지성이었다. 그를 다른 팀으로 보내자 아직도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프로축구] 유니폼 노리는 차미네이터 vs 더 커서 오라는 라이언킹

    [프로축구] 유니폼 노리는 차미네이터 vs 더 커서 오라는 라이언킹

    이동국(오른쪽·34·전북)과 차두리(왼쪽·33·FC서울)의 인연은 생각보다 길다. 차두리는 오랜 유럽 생활을 끝내고 서울에 입단하면서 상기된 얼굴로 “가장 만나보고 싶은 선수는 이동국 형이다. 함께 그라운드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유니폼을 맞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이동국은 “K리그 초년병이 감히 16년차 선배와 유니폼 교환을 하려 한다”며 맞받아쳐 폭소를 자아냈다. 마침내 둘이 만난다. 어린이날인 5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지는 K리그 클래식 10라운드에서다. 이날 열리는 7경기 가운데 최고의 대결임은 물론이다. 고교 시절 차두리는 선수이면서 이동국의 팬이었다. 배재고 2학년 때인 1997년, 포항제철고 3학년인 이동국과 전국고교축구 결승에서 격돌했다. 이동국의 선제골과 차두리의 동점골에 이어 이동국의 연장 골든골이 터졌다. 이동국은 우승컵과 함께 득점왕(6골), 최우수선수(MVP)를 휩쓸었다. 이듬해 이동국은 차범근 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아 1998년 프랑스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깜짝 발탁됐다. 차 감독이 아들의 경기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이동국을 발견하고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던 것. 차두리는 그때만 해도 기대주에 지나지 않았다. 4년 뒤인 2002년 한·일월드컵 때는 둘의 희비가 갈렸다. 이동국은 히딩크호에서 내렸고, 차두리는 올랐다. 대회가 끝난 뒤 차두리는 유럽으로, 이동국은 상무로 떠났다. 그러나 그 뒤에도 둘의 만남은 이어졌다. 2004년 아시안컵 대표팀으로 쿠웨이트와 8강전에서 3골을 합작, 4-0 승리를 이끌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는 동병상련도 경험했다. 나란히 아드보카트호에서 탈락, 월드컵 꿈을 접었다. 그러다가 남아공월드컵에서 차두리는 오른쪽 수비수로 변신해 강한 몸싸움으로 ‘차미네이터’ 신드롬을 일으킨 반면, 이동국은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단독 골찬스를 놓친 뒤 냉랭한 눈초리를 받으며 쓸쓸하게 귀국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월드컵에서는 이동국이 더 아팠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뛰는 곳은 K리그 그라운드. 이동국이 경력에서 훨씬 앞선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에 함께 진출한 전북과 서울 모두 K리그에서 중위권으로 처져 있다. 전북은 최근 2승1무2패로 리그 6위이고 서울은 최근 2연승으로 기세를 올리고 있지만 순위는 9위에 그치고 있다. 이동국의 ‘창’과 차두리의 ‘방패’가 팀 순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상)

    [명사가 걸어온 길] 평생을 민중의 아이콘으로 살다 백기완(상)

    백기완(80)은 거리에 있었다. 1973년 유신헌법 개정 투쟁 때도,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때도 그는 늘 대오의 맨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지금도 거리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서울 중구청이 대한문 앞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분향소를 철거할 때도 백발의 백기완은 새벽같이 나와 천막을 지켰다. “피눈물 흘리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있는 곳이 나의 삶터”라고 말하는 백기완. 스스로 “늙었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에 호통치고 노래 부르기를 멈추지 않는 그는 여전히 젊다. 백기완의 삶과 예술을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백기완을 거리로 이끈 것은 가난과 분단이었다. 1933년 황해도 은율 산자락에서 태어났다. 땅 한 뼘 갖지 못한 아버지는 돈이 없었다. 배가 고팠다. “돼지기름 덩어리 한 조박(조각의 황해도 사투리)을 날로 먹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다. 일제의 잔학한 수탈이 계속되던 때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왜놈들이 집에 와서 놋그릇을 뺏어갔어요. 쌀도 뺏고 밥그릇도 뺏고, 나도 울고 엄마도 울고. 그런데 엄마가 그만 울래요. ‘사내 새끼가 자꾸 울면 키가 안 큰다. 어서 커서 엄마 원수를 꼭 갚아 달라’고. 그때부터 민족의식이 싹 텄던 것 같아요.” 1946년 백기완은 아버지를 따라 맨발로 서울에 왔다. 도시는 냉정했다. 설렁탕 집에서 일을 하다가 “식은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그에게 서울은 “주먹으로도 안 되고 참아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는 곳”이었다. 가진 게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저항심리가 그에게 민중 의식을 심어줬다고 했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학교는 꿈도 못 꿨다. 충무로 책방에서 주인 몰래 영어 사전을 외우다 쫓겨나기를 거듭했다. 그의 할아버지(백태주)에게서 항일투쟁 때 도움을 받았던 백범 김구(1876~1949)와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을 지낸 조소앙(1887~1958) 선생이 학교에 보내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마다했다. 아버지는 “백범에게 밥을 얻어먹으면 백범 같은 사람밖에 안 된다. 깡패가 되든 거지가 되든 혁명가가 되든 혼자서 크라”고 했다. 1950년 전쟁으로 나라가 찢어졌다. 어머니는 여전히 은율에 있었다. 남쪽에서 참전한 작은형은 “북쪽에 계시는 어머니를 겨냥해서는 단 한 방도 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늘에 대고만 빵빵 쏜다”는 편지를 남기고 전장에서 숨졌다. 형의 유해를 찾으러 강원도에 갔다가 사격을 당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 뛰면서 다짐했다. 언젠가 나라의 허리를 내 손으로 잇겠다고. 전쟁이 끝났다. 국토는 폐허였다. 백기완은 ‘나라가 온통 퇴폐와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고 여겼다. “우리 생명을 심자”며 젊은 날을 나무심기와 농민운동에 바치기로 했다. 1953년부터 꼬박 7년. 그때는 불덩어리 같았다고 했다. 젊은이들의 주머니를 털어 1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다. 뜨거운 청춘이 되살아나는 듯 백기완은 인터뷰를 멈추고 거친 목소리로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불렀다. “바라보라 붉은 산 햇빛에 탄다/ 저 산을 푸르게 마음도 푸르게/ 저 산을 푸르게 조국도 푸르게/ 영치기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치기 영차차 영치기 영차차 우리는 선봉이다 자진녹화대” 100만 그루의 나무는 이 땅에 생명이 되었을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승만 독재가 강화되면서 그는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했다. 싸움은 반 세기 넘게 이어졌다. 그는 ‘가대기 형(兄)’ 이야기를 했다. “가대기 형은 서울역에서 막일하던 지게꾼이었어요.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그냥 가대기 형이라고 불렀어요. 싸움을 잘했지만 주먹쟁이는 아니었어요. 내가 가난한 친구들이랑 주먹다짐을 하고 나면 이렇게 얘기했죠. ‘싸움은 있는 놈, 나쁜 놈들이랑 하는 거야. 없는 놈들끼리 싸워봤자 서로 코만 터져’ 그 말이 내 인생의 길라잡이가 됐어요.”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백기완에게 ‘나라를 반으로 가른 미국의 앞잡이’였다. 정권을 바꿔가며 30년 넘게 이어진 독재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는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새 길을 내자”며 4·19 혁명에 참여했다. 이승만 정권은 무너졌다. 그러나 이듬해 5·16 군사 반란이 터졌다. 그가 “독재자의 야욕과 자본주의의 폭악이 결합된 극악한 체제”라고 부르는 ‘박정희 18년’의 시작이었다. 1972년 유신헌법이 나왔다. 1974년 1월에는 긴급조치 1호가 나왔다. 1973년부터 ‘유신헌법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 운동’을 벌이던 백기완과 고 장준하(1918~1975) 선생은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2년 뒤 풀려났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그때를 꼽았다. 유신은 그에게 ‘반통일, 반평화, 반균등, 반자유, 반문화, 반예술, 반역사, 반진보’였다. “유신 타파 운동을 하다 집에 들어와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어요. 탕탕탕, 누가 현관문을 부수고 구둣발로 들어와 이불을 확 베끼더라고. ‘너희 집 안방에 강도가 구두를 신고 들어와서 이불을 벗기면 좋겠어. 빗자루로 쓸어 이 새끼야’ 그랬더니 나를 짓이기며 질질 끌고 가요. 기가 막혔습니다. 내 생각대로 목숨을 걸고 떳떳하게 살았는데 그렇게 끌고 가면 되겠어요. 온몸이 노여움으로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그는 끌려가면서 아내에게 “여보, 나 기다리지 마. 훗날 내 무덤에 이름 모를 꽃이 피면 그게 해방 통일의 꽃일 거야”라고 외쳤다. “지금 들으면 어쭙잖은 얘기처럼 생각되기도 하는데, 그때는 죽기 살기로 싸울 때였으니 진지했어요. 거의 반 죽어서 감옥에 있는데 아내에게 편지가 왔어요. 새벽녘 추위가 더 매서운 법이니 견디어 내시라고.” 그러나 1975년 기다리던 아침이 오는 대신 믿고 따르던 장준하가 죽었다. 장준하는 그에게 “모든 통일은 좋다. 제국주의와 독점자본주의의 틀을 뒤집는 첫 걸음이 통일이다”고 알려준 스승이었다. 그는 “야비한 학살”이라고 했다. 여섯 달을 내리 울었다. 지난달 26일 장준하 선생 사인 진상조사 공동위원회가 “머리에 둔기를 맞고 숨졌다”는 사인을 발표할 때 백기완은 다시 울었다. 1979년 유신 체제가 끝난 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또 다른 군사 정권이었다. ‘반동분자’ 백기완은 다시 끌려갔다. 모질게 맞았다. 손톱이 뽑혔다. 정신을 잃으면 물바가지가 날아왔다. 독재는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죽기 살기로 시를 쓰며 버텼다. 그때 쓴 ‘묏비나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작곡돼 대표적인 민중가요가 됐다. 맨 첫발/ 딱 한발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중략)/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백기완은 민중후보로 대통령 후보에 추대됐다. 야권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백기완이 단일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민주화는 눈앞의 신기루였다. 백기완이 선거 이틀 전 단일화를 외치며 후보를 포기했지만 ‘양김’은 끝내 각자의 길을 갔다.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민중을 위해 싸운 100여년을 승리로 매듭지을 기회를 날렸다. 피눈물이 그치지 않았다”고 했다. 1992년 말 다시 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문민’(文民)의 간판을 내걸고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총칼을 앞세운 독재는 사라졌지만 백기완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를 거치는 사이 독재의 폭력은 신자유주의로 횡포로 바뀌고 있었다. 노동 현장을 찾아다녔다. 자본의 낯은 겉으로만 번지르르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가장 극악하게 노동을 탄압한 정권”이라고 했다. 정도는 달랐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상품으로 만들어 돈으로 환산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없애야 한다. 신자유주의에서 민중이 해방되는 것이 역사적 과제”라고 했다.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비바람과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여름 한때 없이 떨어지는 가랑잎을 ‘개죽’이라고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깨뜨릴 생각은 않고 그 속에서 출세, 돈벌이, 명예, 행복만 좇다가 개죽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젊은이들이여, 개죽이 되지는 마시오. 개죽으로 사느니 마음껏 자라다가 거름이라도 되는 게 나아요.” 그가 이번 정부에 가장 우선해 요구하는 것이 노동 문제다. “지난해 한진중공업 노조에서 최강서라는 젊은이가 서른넷에 목숨을 끊었어요. 유서에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5년을 더 기다릴 수 없다.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고 적었어요. 사실상 학살이나 다름없었어요. 장례식에 갔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들이 ‘아빠 왜 안 오냐’면서 사탕을 먹고 있어요. 울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데 앞이 안 보입디다. 하지만 나는 앞이 안 보인다고 주저앉지는 않아요. 그대로 주저앉는 건 자본주의에 져서 인간성을 포기하는 겁니다.” 백기완은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유신 잔재’라는 거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유신에 대한 거부와 비판이 한마디도 없다”고도 했다. 그는 다시 ‘장산곶매’ 이야기를 했다. “장산곶매는 일찍이 애미 애비를 잃고 너무나 배가 고팠습니다. 올빼미와 까마귀를 찾아가 밥 한 술을 빌다가 부리와 발톱을 빼앗겼죠. 땅 속으로 가면 쥐들이 쫓아오고, 바깥으로 가면 사람들이 보약이라며 달려들고. 그렇게 벼랑까지 쫓기다 보니 앞에는 끝도 없는 바다, 뒤에는 사람과 쥐새끼예요. 장산곶매는 벼랑 끝에서 넓은 바다와 하늘을 보며 깨친 바가 있어 힘이 약한 짐승은 잡아먹지 않고 일년에 두 번 나쁜 놈 하고만 싸우기로 합니다. 장산곶매가 싸움을 떠나는 날 밤이면 숲에서 ‘딱, 딱’ 하는 소리가 나요. 부리질로 제 둥지를 ‘딱, 딱’ 까부수는 소리. 집에 집착하면 온몸으로 싸울 수가 없어요. 싸움을 할 때는 목숨을 걸어야 돼요.” 2009년 백기완은 “한평생 하는 일들이 죄다 실패였다. 다시 실패의 어두움 속으로 반딧불이를 찾아 뛰어드는 느낌”이라고 했다. 어둠 속에 뛰어드는 그는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다. 백기완은 둥지가 없다. 백기완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하편에 계속).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백기완은 ▲1933년 황해도 은율 출생 ▲1953년 농민운동 시작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운동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으로 징역형, 1981년 3·1절 특사로 석방 ▲1987년 민중후보로 대선 출마 뒤 단일화 주장하며 사퇴 ▲1988년 통일문제연구소 개소 ▲1992년 민중후보로 다시 대선 출마, 낙선 ▲1999년 계간 ‘노나메기’ 창간 ▲2002년 대한축구협회 요청으로 월드컵대표팀에게 강연, 히딩크 감독과 인연 ■주요 저서 항일 민족론(1986) 장산곶매 이야기(1994)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2009) 시집 이제 때는 왔다(1985), 젊은 날(1990) 극본 대륙(1998)
  • [프로축구] “500경기 출전 노병? 난 이제 시작”

    [프로축구] “500경기 출전 노병? 난 이제 시작”

    “경기 전이나 지금이나 500경기째 출전에 큰 의미는 없습니다. 그저 팀이 이겨서 행복할 뿐이죠.” 프로축구 전북의 골키퍼 최은성(42)이 지난 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2라운드 울산과의 홈 경기에 선발로 나와 프로 통산 500경기 출전 기록을 작성했다. 한 살 위의 김병지(전남), 지난해 포항에서 은퇴한 김기동(41)에 이어 세 번째다. 전반 42분 울산 한상운에게 동점골을 내줬지만, 이후 몸을 날리는 선방으로 위기를 넘겨 전북의 2-1 승리를 뒷받침했다. 최은성은 “500경기는 가족들이 밀어준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1997년 프로에 첫발을 디딘 뒤 2011년까지 14년 동안 대전의 터줏대감이었다. 그러다 ‘폐기’ 처분을 받았다. 나오니 갈 곳이 없었다. 손을 내민 건 전북. 연봉을 백지위임한 최은성은 죽어라고 뛰었다. 후배들 못지않게 몸도 짱짱하게 다듬었다. 지난해 34경기에 나와 36실점, 팀은 준우승. 축구 인생의 화려한 2막이 열렸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에 띄어 태극마크를 단 그는 이운재(은퇴), 김병지에 이어 대표팀의 ‘넘버 3’였다. 주전들의 ‘스파링 파트너’로 최선을 다했다. 최은성은 지난해 22번 대신 10년 전의 23번을 다시 달고 올 시즌을 뛴다. “23번은 변신의 계기였던 번호”라는 풀이다. 그러나 이날은 구단에서 특별 제작한 500번을 등에 달고 나왔다. 최은성은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데 내가 그 말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했다. 한편, 10일 창원에서 경남은 이재안의 결승골을 끝까지 지켜 부산을 1-0으로 꺾고 시즌 첫 승과 함께 부산전 홈 4연승 휘파람을 불었다. 대구는 안방에서 전남과 1-1로 비겼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9∼10일 치러진 2라운드 7경기에 모두 12만 8056명이 입장했다고 밝혔다. 경기당 평균 1만 8294명이며 지난 2∼3일 개막전의 경기당 평균 1만 1661명보다 57% 늘어났다. 최병규 기자 cbk91065@seoul.co.kr
  • 기상레이더센터 등 성과 기상청의 ‘히딩크’ 크로퍼드 단장 이임

    외국인 최초로 한국 정부의 고위 공무원에 임용됐던 케네스 크로퍼드(69) 기상청 기상선진화추진단장이 3년 6개월의 임기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기상청은 28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청사에서 크로퍼드 단장의 이임식을 연다. 기상청은 2008년 여름 6주 연속 틀린 예보를 내고 ‘오보청’이라는 비판을 받자 기상 과학 선진국의 전문가 영입에 나섰다. 그 결과 2009년 8월 대통령의 2배에 이르는 연봉 26만 달러(당시 3억 2500여만원)에 크로퍼드 미국 오클라호마대 교수가 스카우트됐다. 당시 그는 ‘기상청의 히딩크’로 불릴 만큼 큰 기대를 모았다. 크로퍼드 단장이 남긴 성과 중 대표적인 것은 기상레이더센터의 설립이다. 이를 통해 기상청(11개)과 국방부(9개), 국토해양부(3개)가 부처별 목적에 따라 각각 운영하던 레이더 기상관측 자료의 공동 활용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관측 사각지대가 3개 기관 평균 53% 해소됐다. 크로퍼드 단장은 ‘일 중독자’라는 평을 들었다. 그를 오랫동안 보좌한 김금란 기상선진화담당관은 “노트북PC를 항상 옆에 끼고 다니며 틈만 나면 자료를 모으고 메모를 했다”면서 “취미를 물었더니 첫째도 일, 둘째도 일이라고 답하더라”고 했다. 기상청의 단기예보 정확도는 2008년 88.3%에서 지난해 92.1%로, 중기예보는 77.0%에서 81.3%로 올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한국 싹쓸이하면 미안해서 어쩌지

    한국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상 주요 부문을 석권할까. ●선수상… 이근호 챔스리그 활약 압도적 29일 오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만다린오리엔탈호텔에서 열리는 2012 AFC 시상식에 이근호가 올해의 선수 후보에, 김호곤 울산 감독과 홍명보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올해의 감독 후보에 올라 있다. 한국은 또 올해의 협회(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여자 부심(김경민), 올해의 남자 대표팀(올림픽대표팀), 올해의 클럽(울산), 올해의 남자 신인(문창진) 등 7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감독상… 김호곤 vs 홍명보 올해 한국 축구는 런던올림픽 동메달에 이어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19세 이하(U-19) 아시아청소년선수권을 제패하는 등 그 어느 해보다 위상을 떨쳐 역대 최다 수상을 점치게 하고 있다. 한국은 2년 전에는 남자 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허정무), 남자 신인(기성용), 여자 주심(홍은아), 클럽(포항) 등 5개 부문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은 바 있다. 올해의 선수 후보에 이름을 올린 이근호(27·울산)는 AFC 챔피언스리그와 2014년 브라질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쳐 경쟁자 알리 카리미(이란), 정즈(중국)를 제치고 수상이 유력한 것으로 점쳐진다. 올해의 감독 역시 한국인 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관심은 홍 감독과 김 감독 중 누가 받을지에 눈길이 집중되는 모양새다. 이근호는 지난 27일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 가운데 김 감독 역시 28일 오후 쿠알라룸푸르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 감독이 올해의 감독에 뽑히면 1995년 박종환(일화), 1997년 차범근(국가대표팀), 2002년 거스 히딩크(국가대표팀), 2003년 고(故) 차경복(성남), 2009년 허정무 감독 등에 이어 역대 여섯 번째 수상의 영광을 안는다. 울산은 올해의 클럽 후보에도 올라 있어 3관왕을 노린다. ●내년 챔스리그행 티켓 4장 환원 한편 AFC 특별위원회는 지난해 승부 조작 징계로 기존 4장에서 3.5장으로 줄어들었던 프로축구 K리그의 내년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4장으로 환원하기로 했다. 두 라운드만 남은 28일 현재 수원(승점 73)이 최소 4위를 확정한 가운데 포항(승점 71)이 뒤를 쫓고 있다. 포항은 리그 순위와 관계없이 FA컵 우승으로 이미 출전권을 확보했다. 따라서 이번 결정으로 수원이 4위로 시즌을 마치더라도 지난 2월 포항처럼 플레이오프를 거치는 수고로움을 덜게 됐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하프타임]

    히딩크 “시즌 끝나면 감독직 은퇴” 한국 축구를 한·일 월드컵 4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66) 감독이 28일 네덜란드 일간 ‘드 텔레그라프’와의 인터뷰에서 “올 시즌이 끝나면 감독직을 그만둘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 러시아 프로축구 안지 마하치칼라의 사령탑에 올라 리그 2위를 차지하고 있는 히딩크 감독은 “안지에 합류할 때도 오래 머물 의도는 없었다. 나는 66세이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향후 거취에 대해서는 “어린 선수나 젊은 지도자에게 조언과 가르침을 주는 고문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모르겠지만 블랙홀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신사적 골 아드리아누 출장 정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매너 없는 골로 빈축을 산 루이스 아드리아누(샤흐타르 도네츠크)가 결국 징계를 받았다. UEFA는 28일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아드리아누에게 한 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다. 아드리아누는 다음 달 6일 홈에서 열리는 유벤투스와의 대회 조별리그 E조 6차전에 나갈 수 없다. 아드리아누는 지난 20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노르셸란과의 E조 5차전에서 상대 선수가 쓰러져 잠시 경기가 중단됐다 재개된 뒤 팀 동료가 상대 골키퍼에게 넘겨 주는 공을 가로채 슛, 골인시켜 비신사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 [책꽂이]

    ●아랍 민주주의, 어디로 가나 (김종도·박현도 엮음, 모시는사람들 펴냄) 지난해 아랍 지역 민주화 운동은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이 운동을 두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는 10여 차례에 걸쳐 세미나를 열었고 그 결과를 책으로 묶었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서술했기 때문에 중동 사정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까지 얻을 수 있다. 1만 5000원. ●홍명보의 미라클 (국영호·전광열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한국 축구 사상 첫 올림픽 메달 획득을 이끈 홍명보 감독의 리더십을 탐구한 책. 때가 되면 나오는 그저 그런 책이 아니라 홍 감독과 수년을 함께 보낸 국가대표 선수들과 스태프, 그의 멘토라 할 수 있는 거스 히딩크 감독, 딕 아드보카트 감독, 핌 베어벡 감독의 생생한 증언을 고스란히 담았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수많은 일화와 뒷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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