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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진 “변창흠, 임기 보장된 자리 아니다”

    박용진 “변창흠, 임기 보장된 자리 아니다”

    “LH 의혹 조사에 감사원도 투입해야”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 등과 관련해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용진 의원은 10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변창흠 장관 경질론에 대해 “국무위원은 임기가 보장된 자리가 아니라 정무적인 자리다. 본인의 책임을 아마 국민들이 거세게 제기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다만 여당 내에서 장관 교체 논의가 나오는지 묻는 질문엔 “공식적으로까지는 아직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LH 의혹 진상조사에 검사를 투입하는 방안, 감사원 감사를 병행하는 방안 등에 대한 질문에는 “쥐를 잡는데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가 무슨 소용인가. 얼룩 고양이도 투입해야 할 판”이라며 “감사원도 투입해 국토부와 LH가 제대로 해왔는지, 어떤 게 문제였는지 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편견과 두려움을 넘어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편견과 두려움을 넘어

    천연두 백신은 역사상 최초의 백신으로 예방의학의 문을 열어젖혔다. 1798년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연구 결과를 인쇄물로 발행해 세상에 알려졌지만 18세기 내내 여러 사람이 백신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볼테르는 인구의 20퍼센트가 천연두로 사망했다고 하나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프랑스의 경우 매년 5만명에서 8만명이 이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1805년 백신이 보급되면서부터 그 수는 1만명으로 뚝 떨어졌다. 부아이는 프랑스 대혁명을 전후한 격동기의 사회상을 다양하게 묘사했던 화가다. 백신 접종 장면을 그린 그림도 있어서 흥미롭다. 왕진 의사가 어머니 품에 안긴 아기의 팔에 예방주사를 놓고 있다. 온 식구가 둘러서서 이 광경을 주시하고 있다. 흰 모슬린 드레스를 입은 어머니, 유모, 애완견은 이 가정의 유족함을 보여 준다. 주사를 맞는 아기는 왼쪽에 있는 다른 아기를 바라보고 있다. 수수한 차림의 여인에게 안긴 왼쪽 아기는 손가락으로 제 팔을 가리키고 있다. 주사를 먼저 맞은 아기인가 보다 생각하겠지만 이 아기는 백신을 체취하기 위해 데려온 것이다. 백신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고 운반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의사는 두묘를 지닌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접종을 했다. 이런 아이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발진으로 열이 나는 아이를 데리고 이동하는 것은 아이의 상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었다. 기술적 문제도 하나둘이 아니었고, 사회적 장벽도 높았다. 당시 백신을 둘러싼 논란에는 미신과 편견, 도시와 농촌의 갈등, 계급 문제 등 사회상이 총체적으로 투영돼 있다. 예를 들어 무료 접종을 받게 된 빈민층은 무슨 음모가 있지나 않나 의심하고 두려워했다.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공포도 횡행했다. 우두에서 추출한 백신을 맞으면 미노타우로스(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사람 몸에 황소의 머리를 지닌 괴물)가 될지도 모른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등장했다. 시행착오도 숱하게 있었지만, 백신 보급에 열정적으로 헌신한 의사들이 있었고, 백신을 맞아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늘면서 접종은 자리를 잡아 갔다. 기다리던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아무쪼록 접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코로나 확산도 진정되길 바랄 뿐이다. 미술평론가
  • “아이·교육·문화를 변화시키는 힘” 강동의 새로운 ‘공간 복지’ 실험

    “아이·교육·문화를 변화시키는 힘” 강동의 새로운 ‘공간 복지’ 실험

    “새로운 복지는 공간이다.” 대규모 재건축 사업 후 인구 55만명의 ‘메가 타운’을 앞두고 있는 서울 강동구가 지역 주민의 편의시설을 비롯한 생활 인프라(SOC) 조성에 주력하는 ‘공간 복지’ 시대를 열고 있다. 강동형 공간혁신 사업으로 육아·교육 공간, 문화 시설과 어르신 공간들까지 주민 생활에 가장 밀접한 공간들을 만들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삶이 바뀔 수 있는 공공 공간의 창출을 지속적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강동구는 8일 ‘공간 복지’의 개념을 ‘학교’부터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민선7기 대표 공약 중 하나인 행복학교 사업은 ‘공간이 바뀌면 아이가 바뀐다’는 ‘공간 복지’를 실제 공교육 현장에 적용한 것이다. 복도와 로비, 도서관 등을 더 밝은 분위기로 개선해 학교를 미래 사회 교육에 대응하는 창의적이고 공동체적인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천호중학교의 학부모 김(43)모씨는 “학교가 달라지니 우리 아이가 밝아졌다”면서 “특히 천호중학교 도서관은 갑갑한 가구배치와 어두운 조명 아래 책을 읽어야만 했는데 카페 분위기의 밝은 도서관으로 탈바꿈시키자 학생들이 독서와 여가를 즐기는 곳으로 변했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총 39개 학교가 공간개선(33곳)과 색채개선(6곳)에 참여했으며 올해는 5개교를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다.마을이 함께 키우는 육아 공간인 ‘아이·맘 강동육아시티’도 주민들의 육아 걱정을 덜어주고 있다. 이곳은 영유아들에겐 자유로운 놀이 공간, 부모들에겐 편안한 소통 창구다. 아이들의 놀이 프로그램과 장난감 대여 등 다채로운 방법으로 주민들의 육아를 돕는다. 2019년 5월에 아이·맘 강동육아시티 1호 성내점, 2호 천호점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 7월 3호 강일점과 4호 천호공원점이 문을 열었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시설의 프로그램 운영은 중단됐지만, 천호점과 강일점은 온라인 예약신청 시 비대면 서비스(장난감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구는 추후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운영을 재개할 예정이다. 또 올해까지 아이·맘 강동육아시티 6곳을 권역별로 추가 개소해 영유아 가정의 시설 이용 편의성과 접근성을 높일 계획이다. 이정훈 강동구청장은 “한 연구에 따르면 흰 벽지의 공부방을 파란 벽지로 바꾸었더니 아이들의 집중력이 높아졌고 천장을 높인 연구소에서 창의력이 더 상승했다”면서 “공간은 사람을 바꾼다. 아이들도 바꾸고 교육도 문화도 행복하게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구청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사람이 모이는 공간 이용에 다소 제약이 있어 아쉽지만, 지친 즈민들에게 강동의 공간이 생활의 위안이 되고 행복한 곳으로 기억되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젠더 재난 범죄 …세계 홀린 문학

    젠더 재난 범죄 …세계 홀린 문학

    “‘밤의 여행자’들은 재치 있고, 터무니없기도 하며, 긴장감 넘치고 공포스럽다. 이 에코스릴러는 기후변화가 글로벌 자본주의와 어떻게 뗄 수 없는 관계인지를 흥미롭게 보여 준다.”(지난해 7월 9일 영국 가디언 서평) “‘82년생 김지영’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정확히 지적했고, 정치적 폭발력을 지녔다. 문학적 성숙도와는 별개로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될 작품이다.”(2월 12일 독일 ‘도이칠란트 풍크’ 방송 서평) 2020년대 들어 해외 언론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 문학의 주제는 젠더와 재난, 범죄 등 다양하다. 이들 작품을 관통하는 평가는, ‘간결하고 경쾌한 문체로 내면의 심리를 탁월히 묘사한다’는 점이다. 한국 문학의 다변화를 잘 반영하면서, 번역을 해도 문학성이 충실히 전달돼 호평을 받는다는 분석이 나온다.7일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2월까지 국내 문학 가운데 해외 주요 매체에 가장 많이 소개된 작품은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①·5건)이며, 윤고은 작가의 ‘밤의 여행자들’(②·4건)과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③·3건)이 뒤를 이었다. 2016년 맨부커상 국제부문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와 ‘흰’,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 배수아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도 2건씩 소개됐다. 이 밖에 황석영 ‘수인’, 한강 ‘소년이 온다’, 편혜영 ‘선의 법칙’, 하성란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서미애 ‘잘자요 엄마’, 정세랑 ‘보건교사 안은영’ 등이 해외 언론에 소개됐다.‘82년생 김지영’은 도이칠란트 풍크 이외에도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스, 프랑스 르피가로, 영국 더타임스와 가디언에서 호평을 받았다. 평범한 주부 김지영의 삶을 통해 여성이 가정과 학교, 직장 등에서 받는 불평등과 한국 사회에 내재된 성차별을 다룬 이 소설은 26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 단절, 소외의 감각이 국경을 넘어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보편적 주제라는 방증이다. 우찬제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문장이 짧고 분명해 번역하기 쉽다는 점도 강점”이라고 분석했다.‘밤의 여행자’들은 재난 지역과 관광을 결합한 여행 상품 개발을 맡은 30대 후반 여성 여행사 직원이 동남아에서 재난 관광의 실상을 깨닫게 되는 내용이다. 영국 가디언, 스펙테이터, 더타임스, 미국 퍼블리셔스 위클리에 소개됐으며 5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박혜진 문학평론가는 “코로나19로 실제 재난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재난 상품’이라는 독특한 상상력이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욱 독자의 관심을 끌었다”고 설명했다.‘살인자의 기억법’은 은퇴한 연쇄 살인범이 치매에 걸리고 나서 딸을 구하기 위해 다시 살인을 계획한다는 내용이다. 해외 15개국에 판권이 팔린 이 소설은 영국 가디언, 스위스 데르 번드, 노이에 취르허 자이퉁에서 소개됐다. 김영하 작가는 지난해 독일 추리문학상 등 해외 문학상을 3개나 받았다.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경쾌한 문체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 교수는 “이전의 한국 문학은 분단·전쟁·경제적 갈등 등 한국의 독특한 문제를 다룬 사회적 문제가 주를 이뤘지만, 이젠 팬데믹이라는 독특한 상황에서도 환경·젠더 문제 등 세계인들이 원하는 문학이 자연스럽게 호응을 얻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과거 한국 문학이 재미보다는 한국을 이해하는 코드로 일부 오피니언 리더들이 수용한 것이었다면, 이젠 K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일반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문학 그 자체로서 받아들여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미현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도 “조남주, 윤고은, 김영하 작품은 시대적 특수성과 문학적 보편성을 동시에 반영했고 번역을 해도 문학의 분위기가 잘 살아난다”며 “다양성을 잘 반영하는 문학이 세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해외서 주목받는 K문학 매력은 ‘보편적 재미’…간결,경쾌한 젠더·재난·범죄

    해외서 주목받는 K문학 매력은 ‘보편적 재미’…간결,경쾌한 젠더·재난·범죄

    “‘밤의 여행자’들은 재치 있고, 터무니없기도 하며, 긴장감 넘치고 공포스럽다. 이 에코스릴러는 기후변화가 글로벌 자본주의와 어떻게 뗄 수 없는 관계인지를 흥미롭게 보여 준다.”(지난해 7월 9일 영국 가디언 서평) “‘82년생 김지영’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정확히 지적했고, 정치적 폭발력을 지녔다. 문학적 성숙도와는 별개로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될 작품이다.”(2월 12일 독일 ‘도이칠란트 풍크’ 방송 서평) 2020년대 들어 해외 언론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 문학의 주제는 젠더와 재난, 범죄 등 다양하다. 이들 작품을 관통하는 평가는, ‘간결하고 경쾌한 문체로 내면의 심리를 탁월히 묘사한다’는 점이다. 한국 문학의 다변화를 잘 반영하면서, 번역을 해도 문학성이 충실히 전달돼 호평을 받는다는 분석이 나온다.7일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2월까지 국내 문학 가운데 해외 주요 매체에 가장 많이 소개된 작품은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5건)이며, 윤고은 작가의 ‘밤의 여행자들’(4건)과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3건)이 뒤를 이었다. 2016년 맨부커상 국제부문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와 ‘흰’,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 배수아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도 2건씩 소개됐다. 이 밖에 황석영 ‘수인’, 한강 ‘소년이 온다’, 편혜영 ‘선의 법칙’, 하성란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서미애 ‘잘자요 엄마’, 정세랑 ‘보건교사 안은영’ 등이 해외 언론에 소개됐다.‘82년생 김지영’은 도이칠란트 풍크 이외에도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스, 프랑스 르피가로, 영국 더타임스와 가디언에서 호평을 받았다. 평범한 주부 김지영의 삶을 통해 여성이 가정과 학교, 직장 등에서 받는 불평등과 한국 사회에 내재된 성차별을 다룬 이 소설은 26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 단절, 소외의 감각이 국경을 넘어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보편적 주제라는 방증이다. 우찬제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문장이 짧고 분명해 번역하기 쉽다는 점도 강점”이라고 분석했다.‘밤의 여행자’들은 재난 지역과 관광을 결합한 여행 상품 개발을 맡은 30대 후반 여성 여행사 직원이 동남아에서 재난 관광의 실상을 깨닫게 되는 내용이다. 영국 가디언, 스펙테이터, 더타임스, 미국 퍼블리셔스 위클리에 소개됐으며 5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박혜진 문학평론가는 “코로나19로 실제 재난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재난 상품’이라는 독특한 상상력이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욱 독자의 관심을 끌었다”고 설명했다.‘살인자의 기억법’은 은퇴한 연쇄 살인범이 치매에 걸리고 나서 딸을 구하기 위해 다시 살인을 계획한다는 내용이다. 해외 15개국에 판권이 팔린 이 소설은 영국 가디언, 스위스 데르 번드, 노이에 취르허 자이퉁에서 소개됐다. 김영하 작가는 지난해 독일 추리문학상 등 해외 문학상을 3개나 받았다.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경쾌한 문체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우 교수는 “이전의 한국 문학은 분단·전쟁·경제적 갈등 등 한국의 독특한 문제를 다룬 사회적 문제가 주를 이뤘지만, 이젠 팬데믹이라는 독특한 상황에서도 환경·젠더 문제 등 세계인들이 원하는 문학이 자연스럽게 호응을 얻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과거 한국 문학이 재미보다는 한국을 이해하는 코드로 일부 오피니언 리더들이 수용한 것이었다면, 이젠 K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일반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문학 그 자체로서 받아들여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미현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도 “조남주, 윤고은, 김영하 작품은 시대적 특수성과 문학적 보편성을 동시에 반영했고 번역을 해도 문학의 분위기가 잘 살아난다”며 “다양성을 잘 반영하는 문학이 세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흰 속옷 아니면 학교에서 벗긴다”…상상초월 日학교 교칙[이슈픽]

    “흰 속옷 아니면 학교에서 벗긴다”…상상초월 日학교 교칙[이슈픽]

    “남자가 욕정 느끼니 목덜미 감춰라”, “흰 속옷 아니면 입지마” 일본 중학교의 상상초월 교칙이다. 일본 나가사키현의 국공립 중·고등학교의 60%가량이 학생들의 속옷 색깔을 흰색으로 지정하고 속옷 색을 검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일 NHK 방송에 따르면 나가사키현 교육위원회가 현 내 국공립 중고등학교 총 238곳을 대상으로 학교 교칙에 대해 조사를 벌인 결과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 나가사키현 교육위원회는 속옷 색깔 지정과 속옷을 직접 확인하는 행위는 인권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학교 측에 재검토를 요청했다. 나가사키현 전체 58%에 해당하는 138개교가 속옷 색깔을 ‘흰색’으로 지정하고 있다. 교육청 아동학생지원과는 “학교가 난폭했던 시대에 풍속 보호를 위해 속옷 색을 흰색으로 통일한 것으로 기억한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교칙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계자는 “인권 문제의 관점 및 시대가 바뀜에 따라 그에 맞는 교칙으르 적극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각 학교에서 재검토 해달라”고 당부했다. NHK에서 한 여중생은 “학교 교칙에 따라 속옷 색이 흰색으로 지정되고 정기적으로 속옷 색상 확인이 이뤄지고 있다”며 “체육 시간에 옷을 갈아입을 때 여선생님이 교실에서 속옷 확인을 한다. 속옷은 흰색이 아니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여중생은 “속옷 가게에 따라 흰색이 아닌 색상만 파는 경우도 있어, 흰색 속옷을 고집하는 것은 현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속옷 색깔을 확인하는 것도 싫다”고 덧붙였다. 나가사키대학 교육학부 교수는 “속옷 색에 관해 교칙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한다”며 “속옷을 실제 확인하는 행위도 있다. 방법에 따라 인권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앞서 후쿠오카현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후쿠오카현 변호사회는 “교칙 중에 불합리한 내용이 많고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것도 있다”면서 현 교육위원회 등에 재검토 제안을 했다. 변호사회는 정보 공개 청구를 요구해 각 학교 교칙 자료를 입수해 조사했다. 그 결과 속옷 색상을 흰색 등 특정 색깔로 지정한 학교는 조사 대상의 83%에 달하는 57개 학교였다. 속옷에 관해서는 “규정 위반이면 속옷을 학교에서 벗긴다”, “복도에서 일렬로 줄지어 선 뒤 셔츠를 열어 속옷을 체크한다”는 답변까지 나왔다. 또 여학생이 뒷머리를 귀밑으로 묶어야 하는 이유를 묻자 교사가 “남성들이 목덜미를 보고 욕정을 느끼니까”라고 답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미얀마 19세 ‘천사’의 마지막 메시지 “다 잘될 거야”

    미얀마 19세 ‘천사’의 마지막 메시지 “다 잘될 거야”

    가수·댄서 활동… 태권도 챔피언 경력죽음 각오한 듯 페북에 시신 기증 적어하루 최소 38명 숨져… 최악 유혈 사태시민들 SNS서 유엔에 ‘보호책임’ 촉구“죽기 직전까지 옆에 있는 시위자 챙겨”미얀마 군부가 ‘피의 일요일’ 이후에도 쿠데타 항의 시위대에 강경 진압을 이어 나가면서 지난 3일 하루에만 최소 38명이 사망하는 등 최악의 피해가 잇따랐다. 특히 이날 군경의 총격에 사망한 19세 여성이 ‘다 잘될 거야’(Everything will be OK)라고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채 피를 흘리는 사진이 소셜미디어(SNS)에서 빠르게 공유되며 분노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에인절(Angel)이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진 치알 신의 사연을 전하면서 이 문구가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지 가수, 댄서이자 태권도 챔피언이기도 했던 그는 만달레이에서 시위에 참여했다가 머리에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그와 함께 시위에 나갔던 미얏 투는 로이터에 “경찰이 총을 쏘자 에인절은 ‘총에 맞을 수 있으니 앉으라’고 했다”며 “다른 사람들을 챙기고 보호한 친구였다”고 말했다. 총격이 이어지자 시위대는 흩어졌고, 나중에 페이스북에서 그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쓰러진 사진을 보고 사망 소식을 알게 됐다고 한다. 숨진 에인절이 입고 있던 까만색 티셔츠에는 흰 글씨로 ‘다 잘될 거야’라는 글귀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그는 죽음까지 각오한 듯 페이스북에 자신의 혈액형과 비상 연락처, 그리고 ‘시신을 기증해 달라’는 메시지까지 남겨 안타까움을 더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치알 신과 다른 젊은 시위자들의 죽음은 시민들 사이에서 새로운 폭발을 불러일으켰다”며 “(최루탄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투명 고글을 목에 매달고 도전적인 시선으로 앞을 바라보는 죽기 직전의 그의 모습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됐다”고 했다. 시민들은 이어지는 죽음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시위를 열어 군부에 저항하고 있다. 또 SNS에서 유엔에 ‘보호책임’(R2P·Responsibility to Protect)을 촉구하는 게시물 수천 건을 올리고, 국제사회가 군부에 직접적인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가가 집단학살, 전쟁범죄, 인종청소, 반인륜 범죄 등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해야 하는데 이에 실패할 경우 국제사회가 강제조치를 통해 나서야 한다는 원칙이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다 잘될 거야’ 믿은 19세 여성의 죽음에 미얀마軍 편대비행 ‘위협’

    ‘다 잘될 거야’ 믿은 19세 여성의 죽음에 미얀마軍 편대비행 ‘위협’

    4일 미얀마 두 번째 도시인 만달레이에서는 전날 군부 규탄 시위 도중 군경의 흉탄에 스러진 19세 여성 마 키알 신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총알이 날아와 머리에 박혔을 때 그녀는 ‘다 잘될 거야(Everything will be OK)’란 문구가 흰 글씨로 새겨진 검정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38명 이상이 시위 도중 목숨을 잃어 지난달 1일 쿠데타 발발 이후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날이었다. 이날 장례식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생중계됐다. 하지만 오전 만달레이 상공에는 제트기 다섯 대가 편대비행을 해 민의를 억누르겠다는 군부의 속내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섰다. 의대생들은 군정 규탄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앞세우고 행진했다. 활동가 마웅 사웅카는 로이터 통신에 “우리는 언제든지 총에 맞아 죽을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군사정권 아래에서 살아가는 건 의미가 없다”고 각오를 다졌다.마 키알 신은 소셜미디어에서 ‘에인절(천사)’ 별칭으로 통했다. 지난해 11월 총선에 생애 처음 투표권을 행사했던 그녀는 민의를 짓밟고 정권을 찬탈한 군부에 맞서기 위해 거리에 나섰다가 흉탄에 당했다. 피격 직전까지 함께 있었다는 친구 미얏 뚜는 로이터 통신에 “경찰이 총을 쏘기 시작했을 때 그가 ‘총알에 맞을 수 있으니 앉으라’고 말했다”며 “다른 사람들을 챙기고 보호하려 했던 친구였다”고 돌아봤다. 피격되기 직전 왼손에 콜라 병을 든 모습도 포착됐는데 군경이 무차별적으로 쏴대는 최루탄 가스를 씻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미얏 뚜는 경찰이 총격을 가하자 친구와 헤어졌는데 나중에 ‘한 소녀가 사망했다’는 메시지를 받았지만 친구인지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페이스북에 올라온 친구의 숨진 사진을 보게 됐다. 미얏 뚜는 태권도 수업에서 치알 신을 처음 만났다고 소개했다. 그가 방학 때 태권도복을 입고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이는 사진도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춤추는 동영상들도 올려놓았다. 생애 첫 총선 투표에 나서 아버지와 함께 자랑스럽게 찍은 인증 사진도 올라와 있다. 그리고 붉은 색 수의를 입고 반듯이 누워 있는 사진도 올라왔다. 이 옷은 생애 첫 투표 때 입었던 옷이었다. 붉은 색은 아웅 산 수 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상징색이다. 죽음을 각오한 듯 그는 목에 건 팻말에 자신의 혈액형 B형과 비상 연락처, 그리고 ‘가망이 없으면 시신을 기증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의 죽음이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큰 힘과 격려를 줄 것이라는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미얀마 시위대는 물론 해외 언론인이나 인권단체 관계자들의 추모 글도 넘쳐난다. ‘미얀마의 전사’란 표현도 적지 않다.4일도 미얀마 전역에서 시위가 이어졌다. 최대 도시 양곤의 산차웅구(區)와 파떼인구, 흘라잉구 등에서는 오전부터 수백~1000명 안팎의 시위대가 다시 거리로 나왔다. 전날 양곤의 북오칼라파에서 군경의 총격으로 6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흘라잉구 인세인로에서는 군경이 진압에 나서지 못하도록 시위대가 나무와 쓰레기 봉지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또 시위대 주변에 줄을 친 뒤 그 위에 천이나 전통치마 등을 걸어 저격수나 군경이 ‘조준 사격’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도 했다. 수도 네피도에서도 시위대 해산 과정에 군경이 고무탄을 발사하고, 허공으로 실탄을 쏘아 경고사격을 했다고 보도했다. 부상자 여부 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프런티어 미얀마는 전했다. 미셸 바첼렛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이날 언론에 미얀마 군경의 총격에 희생된 이가 최소 54명이라며, 실제 사망자는 더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쿠데타 이후 1700명 이상 구금됐으며, 최근에는 언론인도 29명 이상 군경에 체포됐다고 언급했다. 그는 미얀마 군부가 시위대에 대한 잔인한 탄압과 살인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총맞은 날 지켜줬다” 레이디가가 펫시터가 전한 ‘그날’

    “총맞은 날 지켜줬다” 레이디가가 펫시터가 전한 ‘그날’

    팝스타 레이디 가가(35)가 산책 중 총기를 사용한 괴한들에게 납치당했던 자신의 반려견 두 마리를 되찾은 가운데 총격으로 쓰러진 펫시터 라이언 피셔도 의식을 되찾았다. 1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의식을 찾은 라이언 피셔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죽음과 밀접한 곳에서 아직 회복 중이다.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에 감사하다”라고 근황을 전했다. 피셔는 지난 24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영화 촬영을 하는 레이디 가가를 대신해 그의 프렌치불독 3마리를 산책시키다 괴한이 쏜 총에 맞고 쓰러졌다. 당시 괴한은 세 마리의 개 중 두 마리를 납치했다. 흰색 세단을 타고 온 괴한 두 명은 펫시터에게 총구를 겨누면서 “개를 넘겨라”고 요구했고, 펫시터가 저항하자 반자동 권총을 발사했다. 가슴에 총을 맞은 펫시터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서 산소 호흡기를 달고 누워있는 사진을 올린 피셔는 당시 상황을 전하며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자신의 곁에 납치되지 않은 반려견 아시아가 떠나지 않고 지켜줬다고 언급해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피셔는 “당시 충격을 받았음에도 내가 쓰러져 있는 동안 (레이디 가가는) 친구로서 나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정말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전했다.미국 로스앤젤레스(LA) 경찰은 26일 신원을 밝히지 않은 한 여성이 LA 관내에 있는 코리아타운 인근 경찰서에서 가가 측 관계자와 만나 납치됐던 반려견을 돌려줬다고 밝혔다. LA 경찰은 “여성의 신원과 반려견이 발견된 위치는 향후 범죄수사, 여성의 안전 등을 위해 비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가는 반려견들을 되찾는 데 현상금만 50만 달러(약 5억5800만원)를 걸었다. 가가는 반려견들이 납치 당하자 인스타그램에 “개 2마리를 반환한다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50만 달러를 주겠다. 무의식적으로 구입하거나 발견한 경우에도 보상은 동일하다”고 적었다. 이어 “가족(반려견)을 위해 목숨을 건 펫시터는 영원한 영웅”이라고 했다. LA경찰 관계자는 “반려견 2마리를 데려온 여성은 이번 범죄와 연관성이 없다”고 말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길섶에서] 유관순 열사의 유해/이종락 논설위원

    지난주 망우리공원을 다녀왔다. 요즘 평해길(관동대로) 경기옛길을 걸으면서 알게 된 유관순 열사의 합장비를 보기 위해서다. 유관순 열사의 유해만을 묻은 묘는 없다. 충남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열사 생가의 뒷산 매봉산 중턱에 열사의 ‘초혼묘’(招魂墓)가 있지만 시신이나 유골이 든 무덤은 아니다. 1919년 4월 1일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시위를 주동한 열사는 일본 헌병에 체포돼 징역 3년형을 받고 서대문감옥에 수감됐다. 1920년 3월 1일에는 옥중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헌병의 모진 고문 끝에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감옥에서 19세 꽃다운 나이에 숨졌다. 모교인 이화학당에서 시신을 인도해 10월 14일 정동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른 뒤 일제의 삼엄한 경비하에 묘비도 없이 이태원 공동묘지에 매장됐다. 지금의 이태원 이슬람사원 인근이다. 1936년 이태원이 일제의 군용기지로 바뀜에 따라 망우리 공동묘지로 옮겨 오는 과정에서 아무도 유관순 열사의 유해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무연고 분묘로 처리돼 2만 8000기 유해와 함께 화장된 뒤 합장묘에 섞여 있다. 이맘때면 흰 저고리에 흑색 치마를 입은 열사의 빛바랜 사진이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3·1절을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온전한 유해조차 보존하지 못한 죄스러움 때문이다. jrlee@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주방의 재간꾼, 초리소의 매력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주방의 재간꾼, 초리소의 매력

    가끔 사랑에 빠지듯 어떤 식재료에 완전히 꽂히는 때가 있다. 머릿속에 온통 그 재료 생각뿐이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음식을 먹을 때도 ‘어라? 여기에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이 음식에 넣으면 어떨까’ 하는 상념이 떠나질 않는 것이다. 이 정도면 병원을 찾아야 할 것도 같지만 어찌 됐건 요즘은 스페인식 소시지의 일종인 초리소에 푹 빠져 버렸다.초리소는 돼지고기와 지방 그리고 훈제한 고춧가루인 피멘톤을 넣어 만든 소시지를 가리킨다. 고춧가루가 들어가 매콤한 향은 나지만 혀와 입안이 아파 올 정도로 맵지는 않다. 적당히 매콤한 맛이 소시지의 풍미를 한껏 살려 준다. 스페인이 본고장이지만 옆 나라 포르투갈도 한 초리소 하는 곳이다. 포르투갈에서는 초리소를 쇼리수라고 부른다. 16세기 신대륙 발견 이후 교황이 거대한 남미 대륙을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영토로 나눠 버리면서 양국 식문화도 남미에 함께 자리를 잡았는데 이때 초리소도 바다를 건너갔다. 멕시코와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의 여러 나라에서도 초리소를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현지의 여러 가지 식재료가 더해지는 바람에 그 다양성은 본토를 뛰어넘는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도 동네마다 초리소를 만드는 방식이 다른데 바다 건너에서는 오죽했을까. 초리소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크게 건조 정도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흔히 와인 안주로 떠올리는 얇게 썰린 초리소는 딱딱하게 말린 것이다. 말라 있다는 건 씹을 때 턱 근육을 강화시켜 준다는 것 말고도 큰 장점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하고 대개 발효 과정을 거치므로 자꾸 맛보고 싶은 독특한 풍미를 가진다는 점이다.말린 초리소는 얇게 잘라 손으로 집어 스페인산 레드와인과 먹는 게 일반적인 용도로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요리에 쓰임새가 많다. 슬라이스해서 각종 샐러드나 샌드위치 속으로 넣는 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말린 초리소와 열, 기름이 만나면 상당히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진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초리소를 다지거나 썰어 넣은 후 천천히 열을 가하면 초리소에 있던 돼지기름과 피멘톤이 서서히 빠져나온다. 중식당에서 고추기름을 내듯 피멘톤은 기름과 만나 붉고 아름다운 피멘톤 기름을 형성한다. 단지 색깔만 물들인 게 아니라 초리소에 사용된 돼지의 기름과 초리소 자체의 독특한 풍미가 더해지면서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 없는 기름 소스가 탄생한다. 이렇게 만든 기름을 어디다 써야 할지는 이제부터 상상의 영역이다. 기름을 이용한 요리면 어디든 사용할 수 있다. 초리소 기름을 두르고 야채를 볶으면 초리소 야채볶음이, 파스타를 말면 초리소 파스타가 탄생한다. 짭조름하면서도 매콤한 고추와 발효 소시지의 미묘한 풍미는 음식을 한껏 먹음직스럽게 만들어 준다. 마치 마법처럼. 돼지고기를 이용한 식재료지만 해산물과도 궁합이 꽤 잘 맞는다. 초리소를 볶은 기름에 오징어나 주꾸미, 새우 같은 해산물을 볶으면 스페인풍의 해산물 요리가 뚝딱 만들어진다. 우리가 고춧가루를 음식에 많이 사용하듯 스페인에선 피멘톤 가루를 전가의 보도처럼 많이 쓰는데 피멘톤 가루 대신 초리소를 넣으면 음식에 훨씬 더 풍부한 맛을 불어넣을 수 있다.말린 초리소가 있다면 한편엔 말리지 않은 생초리소가 있다. 자체만으로 완전한 음식인 말린 초리소와 달리 생초리소는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발상의 전환을 거치면 재미있는 식재료로 무궁무진하게 활용할 수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생초리소를 보통 구워 먹거나 국물요리에 넣어 먹는다. 국물요리로는 스페인 북부 아스투리아스 지방의 ‘파바다’ 요리가 대표적이다. 흰 콩과 초리소, 염장 삼겹살과 훈제한 피순대인 모르시야를 넣고 푹 끓여 낸 겨울 음식이다. 따로 피멘톤을 첨가하긴 하지만 초리소에서 나오는 특유의 맛이 국물의 풍미를 한층 끌어올려 준다. 생초리소를 활용하는 또 다른 방법은 한계를 깨부수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겉을 감싸고 있는 케이싱을 벗겨 내 보자는 이야기다. 껍질로 감싼 초리소는 그 형태대로만 이용할 수 있지만 껍질이 없는 초리소는 매콤하게 조미된 다진 돼지고기로 활용할 수 있다. 만두 속 안에 넣어 초리소 만두를 만든다든지 프라이팬에 볶아 더 보슬보슬한 식감의 볶음 재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 두드려 얇게 편 다음 삶은 달걀을 감싸 빵가루를 묻혀 튀기면 스페인식 스카치 에그 요리가 될 수도 있다. 스페인 식재료로 꼭 스페인 요리만 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 보자.
  • 잘라도 꺾어도 일어난 그녀의 ‘독립’

    잘라도 꺾어도 일어난 그녀의 ‘독립’

    “내 가진 돈은 모두 249원 80전이다. 그중 200원은 조선이 독립하는 날 축하금으로 바치거라. 만일 네 생전에 독립을 보지 못하면 자손에게 똑같이 유언하여 독립 축하금으로 바치도록 해라.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 ●남자현 등 잊힌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1872~1933)이 임종 직전 아들에게 남긴 유언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하다.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으로 망명해 교육운동과 무력투쟁에 앞장선 그는 1932년 일제가 일으킨 만주사변을 조사하기 위해 국제연맹조사단이 하얼빈에 왔을 때 왼손 무명지 두 마디를 잘라 혈서로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는 글을 써서 보낼 만큼 맹렬한 항일 투사였다.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이 연기한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 바로 그다. 책상 앞에 앉은 여성의 왼손 무명지에 흰 천이 감겨 있다. 두루마리 옆 종지에는 혈서를 상징하는 붉은 피가 선명하다. 주먹을 꽉 쥔 오른손과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에서 결연한 의지가 배어 나온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윤석남이 채색화로 화폭에 되살린 남자현의 초상이다. 윤석남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다는 건 나로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라면서 “내가 받았던 강렬한 인상을 그림에 담았다”고 말했다.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윤석남이 그린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을 모은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가 전시 중이다. 저마다 독립운동사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지만 남성 독립운동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조명이 덜 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돌아보는 자리다. 남자현을 비롯해 강주룡, 권기옥, 김마리아, 김명시, 김알렉산드라, 김옥련, 박자혜, 박진홍, 박차정, 안경신, 이화림, 정정화, 정칠성이 그들이다. 1936년 여순감옥에서 옥사한 남편 신채호의 유골함을 안고 있는 박자혜(1895~1943)의 초상에선 남편을 잃은 슬픔과 나라를 빼앗긴 울분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는 민족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와 결혼하기 이전부터 동료 간호사들과 ‘간우회’를 조직해 만세시위와 동맹파업을 시도했던 독립운동가였다. 여성 독립운동단체인 근화회를 조직하고, 원산 신학교에서 교육 계몽사업에 헌신한 김마리아(1892~1944)의 초상은 교단 앞에서 왼팔을 번쩍 치켜든 자세를 취하고 있어 생전에 그가 품었던 진취적인 기상을 생동감 있게 드러냈다. 윤석남은 “얼굴은 실제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묘사했고, 화면 구도와 장면 설정은 인물의 일대기를 토대로 상상해서 그렸다”고 했다. ●화면 구도·장면 설정은 삶 토대로 상상 2011년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고 충격을 받아 채색화와 한국인의 초상에 관심을 갖게 된 윤석남은 2018년 채색화로 그린 자화상을 처음으로 선보였고, 2019년엔 ‘윤석남, 벗들의 초상을 그리다’를 통해 여성 지인 22명의 대형 초상화 연작을 전시했다. 이후 다음 작업을 고민하다 일제강점기에 그려진 초상화에 여성이 거의 없는 현실에 “울화가 치밀어” 여성 독립운동가를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앞으로 2~3년 내 여성 독립운동가 100명의 초상을 완성할 계획”이라고 했다.이번 전시에서는 대형 설치작품 ‘붉은 방’도 만날 수 있다. 종이 콜라주 850여장이 벽면을 가득 메운 공간에 여성 독립운동가를 상징하는 50여개의 나무조각을 세워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영웅들의 삶을 추모한다. 4월 3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코로나 이겨낸 105세 할머니 “묵주 기도, 진 술에 담근 흰건포도 아홉 알”

    코로나 이겨낸 105세 할머니 “묵주 기도, 진 술에 담근 흰건포도 아홉 알”

    “기도, 기도, 기도. 한번에 한 걸음만. 정크 푸드는 말고.” 미국 뉴저지주에 살고 있는 105세 할머니 루시아 드클레르크는 장수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주저할 새도 없이 또박또박 답했다. 그런데 일간 뉴욕 타임스(NYT) 기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되고도 완치된 비결을 보태달라고 주문하자 하나를 더했다. “단지를 채워라. 일평생 매일 아침 흰 건포도 아홉 알을 아흐레 진 술에 담갔다가 마시는 것이라우.” 자녀들과 손주들도 할머니의 습관 중 하나가 알로에 주스를 용기째 들이키는 것과 베이킹 소다로 이를 닦는 것이라고 전했다. 친척들은 할머니가 아흔아홉 살이 될 때까지 틀니를 끼지 않을 정도로 치아 건강이 좋았다고 전했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손녀 숀 로스 오닐(53)은 “우리는 ‘할머니, 뭘 하려는 거에요? 미쳤군요’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지금은 우리가 웃음거리가 됐다. 할머니는 할머니 만의 방식으로 모든 일을 헤쳐나오셨다”고 말했다. 그의 인생 얘기를 하자면 한없이 길다. 1916년 하와이에서 콰테말라와 스페인 출신 부모 아래 태어났다. 스페인 독감과 두 차례 세계대전을 지켜봤고 세 남편과 아들 하나를 먼저 하늘로 보냈다. 두 아들, 다섯 손주, 12명의 증손주, 11명의 고손주를 거느린 다복한 할머니였다. 미국 와이오밍주, 캘리포니아주를 거쳐 큰아들과 함께 뉴저지주에 살다가 아흔 살 넘어 해변에 있는 마나호킨 요양시설에 머무르고 있다. 4년 전 낙상해 다치기 전까지 아주 활동적이었다고 했다. 오닐은 “할머니는 끈기(마침 NASA의 화성 탐사로버 이름이 perseverance)의 대명사”라며 “정신이 똑바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릴적 얘기까지 기억하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5일이 105번째 생일이었는데 하필 그날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화이자 백신을 접종 받은 다음날이었다. 처음에는 무섭다고 했다. 혼자 격리되고 싶어하지 않았고 입소자 120명과 매일 수다를 떨지 못하는 일을 두려웠다. 별 증상이 없었던 할머니는 2주 뒤 묵주를 들고 선글래스와 니트 모자를 쓴 채 자신의 방에 돌아왔다. 오닐은 “105년 먹은 망나니가 코로나마저 걷어찼다”고 표현했다. 필 머피 주지사가 22일 코로나 브리핑 도중 전화로 연결해 “사기를 북돋는 대화”를 나눠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아들 필립 로스(78)는 “많이 걱정했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끈질긴 분”이라며 “늘 지니는 염주 덕”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덮치기 전 요양원에서 매주 묵주 기도를 주도했다. 요양원에서 62명이 감염돼 4명이 목숨을 잃었다.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하느님이 날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드클레르크 할머니보다 더 많은 나이에도 코로나를 이겨낸 할머니가 있다. 얼마 전 국내에도 알려진 프랑스 남동부 툴룽에서 117회 생일을 맞은 앙드레 수녀님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실험기구로 가득찬 화학실험실 이젠 옛 말”...화학실험도 인공지능으로 수행

    “실험기구로 가득찬 화학실험실 이젠 옛 말”...화학실험도 인공지능으로 수행

    ‘화학’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흰 가운을 입은 연구자가 시험관이나 비이커를 이용해 실험하는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런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화학실험도 이제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가상실험을 먼저 한 뒤 실험실에서 검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화학연구원 화학플랫폼연구본부, 화학공정연구본부 연구팀은 인공지능(AI) 기계학습과 알고리즘을 이용해 온실가스를 유용한 화학물질로 바꾸는 가상실험을 실시해 인공지능을 활용하기 이전보다 수율을 10% 이상 높이는데 성공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화학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반응 화학 및 공학’에 실렸다. 메탄은 이산화탄소와 함께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온실가스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온실가스를 포집하거나 다른 유용한 물질로 전환시키려는 시도들을 많이 하고 있는데 특히 화학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으로 바꾸려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에틸렌은 플라스틱, 비닐, 합성고무, 각종 건축자재, 접착제, 페인트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원료로 쓰이고 있다. 특히 메탄에 산소를 투입하지 않고 화학원료로 바꾸는 촉매공정은 기술수준이 높고 부산물이 많이 나와 상용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연구팀은 1000도가 높는 고온, 가스 속도, 압력 등 다양한 조건에서 실시된 실험자료 250개를 수집해 다시 인공지능이 1만 번 이상 가상실험을 수행하도록 했다. 인공지능이 기계학습을 통해 온도, 속도, 압력, 반응기 구조를 미세하게 조절한 조건을 만들어 가상실험을 실시했다.연구팀은 이렇게 얻어진 가상실험 데이터를 인공지능의 ‘인공 꿀벌 군집(ABC) 알고리즘’에 적용했다. 자연에서 꿀벌들은 꿀이 있는 지역을 탐색하고 꿀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구체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들에서 꿀이 많은 곳을 알아내 꿀을 찾고 모은다. ABC 알고리즘은 이처럼 여러 가상 실험조건을 탐색하고 어느 조건에서 어떤 실험결과가 나오는지 구체적 정보를 수집한 다음 그 정보들에서 더 좋은 실험결과가 나오는 조건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3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존보다 수율을 20% 이상 높이는데 성공했다. 장현주 화학연구원 박사는 “공정이 까다롭고 변수가 많은 연구분야에서 250번의 실험 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짧은 시간에 높은 수율의 반응조건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라며 “이번에 개발된 방법은 다양한 화학반응 조건을 가상 환경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화학산업의 중요한 여러 반응에서 바로 응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포토] “대박나소”… 신축년에 태어난 ‘흰 송아지’

    [포토] “대박나소”… 신축년에 태어난 ‘흰 송아지’

    경북 영천시 대창면 대창이 하재수씨 농가에서 ‘흰 송아지’가 탄생했다. 하 씨는 22일 “흰 소띠의 해에 흰 송아지가 태어나 길조다. 올 한해 우리 가정과 마을, 영천시도 대박 나는 한 해가 될 것” 이라며 “귀한 흰 송아지, ‘백우’를 정성스럽게 키우겠다”고 말했다. 2021.2.22 영천시 제공
  • 개털이 빨갛고 파랗네? 러시아 폐공장 화학물질 오염 우려

    개털이 빨갛고 파랗네? 러시아 폐공장 화학물질 오염 우려

    러시아에서 털이 파랗고 빨갛게 변한 들개 무리가 잇따라 발견됐다. 20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주 제르진스크시의 한 폐공장 근처에서 털이 변색된 들개가 연이어 포착됐다고 전했다. 이달 초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370㎞ 떨어진 제르진스크시의 한 폐공장 인근에서 털이 파랗게 변한 들개 7마리가 발견됐다. 흰 눈을 배경으로 어슬렁거리는 파란색 개는 배설물마저도 파란색이었다. 듬성듬성 갈색 털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파란색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들개 무리가 발견된 폐공장은 사이안화수소산과 플렉시글라스(특수 아크릴 수지) 제품을 만들던 곳으로 6년 전 폐업했다. 대규모 화학 생산 시설이었던 공장 인근에 파란색 개가 무리 지어 나타나자 화학 폐기물 오염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대해 공장 파산관리자는 “황산구리 중독일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들개 무리를 진찰한 지역 동물병원 수의사 역시 “화학 물질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화학 화상의 자극적 징후는 없어 무독성으로 평가된다”는 소견을 내놨다. 주 수의학감시위원회는 정확한 변색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파란색 개들의 혈액과 배설물 샘플을 채취, 니즈니노브고로드국립대학교 로바체프스키 화학연구소에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개털을 파랗게 만든 주범은 ‘프러시안블루’로 드러났다.프러시안블루는 진한 파란색의 합성염료로, 철-사이안화물(Fe-cyanide)을 이용해 만들어진다. 사이안화물(cyanide)이란 이름은 파란색이라는 의미의 ‘사이안(cyan)’에서 유래됐으며, 이 때문에 사이안화수소산을 ‘청산’ 이라고 부른다. 개들이 시안화수소산 관련 제품을 생산하던 폐공장에서 뒹굴다 독성 염료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단 개들은 몇 마리가 스트레스 증세를 보이긴 하지만 모두 건강에 큰 이상은 없는 상태다. 주 당국은 앞으로 20일간 개들을 보호관찰할 예정이다.파란색 개 사태가 마무리될 무렵, 제르진스크의 또 다른 공장 근처에서 비슷한 논란이 불거졌다. 이번에는 빨간색 개들이 공장 옆에서 발견됐다. 제르진스크 외곽에 있는 공장은 폭발물과 탄약을 제조하는 방산업체 ‘크리스탈’ 소유로 알려졌다. 앞서 발견된 파란색 개와 마찬가지로 듬성듬성 다른 색의 털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마찬가지로 공장 화학 물질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현지언론은 보고 있다. 제르진스크시는 과거 세계에서 환경 오염이 가장 심각한 도시 10곳 중 한 곳으로 꼽혔을 만큼 화학 폐기물 문제가 심각하다. 냉전 시기 구소련의 화학무기 제조공장이 밀집해 있던 군수산업 도시로, 1930년~1998년 사이 30만t 규모의 화학 폐기물이 부적절하게 처리됐다. 개중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사린가스와 납, 페놀 등 오염 물질이 포함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포토] 영천 농가서 ‘흰 송아지’ 태어나

    [포토] 영천 농가서 ‘흰 송아지’ 태어나

    경북 영천의 한 축산농가에서 ‘흰 송아지’가 태어났다. 주민들은 올해 신축년(辛丑年) 흰 소띠의 해를 맞아 좋은 일이 생길 조짐이라고 반긴다. 2021.2.20 영천시 제공=연합뉴스
  • 정조 군사정책 상징 ‘호렵도 팔폭병풍’ 고국 품에서 공개

    정조 군사정책 상징 ‘호렵도 팔폭병풍’ 고국 품에서 공개

    미국에서 환수한 18세기 후반 궁중회화 ‘호렵도(胡獵圖) 팔폭병풍’이 1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됐다. ‘오랑캐(胡)가 사냥하는(獵) 그림’이라는 뜻의 호렵도는 청나라 황제가 사냥을 즐기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해 9월 뉴욕 경매에서 매입한 이 병풍은 지금까지 알려진 호렵도 중 가장 예술적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렵도 팔폭병풍은 가로 3m 92㎝, 높이 1m 47㎝의 대작이다. 스산한 가을 분위기의 산수, 화려한 가마를 타고 길을 나서는 황실 여인들, 푸른 바탕에 흰 용이 새겨진 복식 차림의 청 황제와 다양한 자세의 기마인물들, 호랑이와 사슴을 향해 활을 겨누거나 창과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사냥꾼들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묘사했다. 호렵도는 조선 정조(1752~1800) 때부터 제작됐다.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을 연이어 겪으며 청에 대한 반감과 배척 의식이 강했지만 정조 4년(1780) 건륭제 칠순 잔치에 사절을 보내면서 관계가 호전되고, 청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정병모 경주대 초빙교수는 “호렵도는 정조의 북학 정책과 아울러 군사 정책을 상징적으로 엿볼 수 있는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호렵도를 처음 그린 화가는 단원 김홍도로 알려져 있지만 기록으로만 전한다. 문화재청은 “현재 남아 있는 호렵도 병풍은 대부분 민화풍인데 반해 이번에 돌아온 호렵도는 수준높은 궁중화풍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호렵도 연구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자유의 손짓, 희망 깃발 꽂아라

    자유의 손짓, 희망 깃발 꽂아라

    14년 전 처음 베를린 여행을 왔다. 그때 가장 오래 머물렀던 지역이 크로이츠베르크였다. 당시 120유로(16만여원) 하던 미테의 호텔비를 열흘 동안 낼 재간이 없어서 이틀 만에 친구 집으로 옮겨왔다. 독일 친구는 넓지 않은 공간인데도 흔쾌히 잠잘 곳을 내주었고, 그 집에서 염치없이 일주일을 머물렀다. 창문 밖에는 100년 넘은 교회가 보였고 주말에는 바로 귀에 대고 치는 듯 엄청나게 큰 종소리가 들렸다. 크고 작은 종들이 번갈아 가며 쉴 새 없이 울릴 땐 골이 흔들릴 정도였다. 귀를 막아도 엄청 큰 종소리에 잠을 깼고 베를린에 있다는 걸 실감했다. 지금 사는 집에선 종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지만 가끔 거리에서 교회 종소리를 들으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싱그러운 새소리와 함께 엄청난 울림으로 나를 깨우던 베를린의 종소리. ●베를린을 대표하는 진짜 문화, 그라피티 베를린에 있다는 걸 실감 나게 해 준 또 하나는 그라피티였다. 건물 벽과 공원 담벼락은 물론 지하철 계단과 전봇대, 철도 다리까지 그라피티가 빼곡했다. 서울에서 보던 그라피티와는 차원이 달랐다. 당시 유럽 여행이 처음이었던 나는 날것 그대로의 자유가 느껴지는, 언더그라운드의 상징인 그라피티에 흠뻑 매료됐다. 지워지고 벗겨진 벽에 계속 덧대지고 칠해진 그라피티만큼 멋져 보이는 것이 없었다. 낡은 것은 낡은 대로, 지저분한 것은 지저분한 대로 모두 다 개성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베를린을 대표하는 진짜 문화라고 느꼈다.미테에서 처음 갔던, 지금은 사라진 타헬레스도 그라피티 천지였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타헬레스의 건물 벽면에는 사람의 얼굴과 함께 큰 글자가 그려져 있었다. ‘HOW LONG IS NOW’, 분명 뭔가를 묻는 말이지만 물음표는 없는 문장. ‘지금은 얼마나 오래가는가’, ‘지금은 얼마나 긴 것일까’ 정도로 해석될 이 유명한 문구를 당시에는 뜻도 모른 채 보일 때마다 따라 읽었다. 건물 벽면 가득 써 있는 그 문장은 미테 어디서나 선명하게 보였다. 1990년 통일 직후, 동베를린의 중심가에 있던 타헬레스는 예술가들이 무단 점거해 사용했던 예술 공동체 공간이었다. 당시 동베를린에 살던 사람들이 서베를린으로 대거 옮겨가면서 동베를린에는 빈 건물이 많아졌다. 이런 빈 건물을 예술가들이 무단점거해 사는 ‘스콰트’(Squat) 운동이 벌어지면서 타헬레스는 베를린의 전설이 됐다.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 사람들은 이미 타헬레스는 변질됐고 더이상 반예술적인 저항의 공간이 아니라는 말을 했지만, 유럽 초짜 여행자의 눈에는 여전히 멋진 공간이었다. 타헬레스를 방문한 사람들이 남긴 낙서들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됐고 내부는 그 역사를 보여 주는 현장이었다. 반항적이고 발칙한 이미지도 많았다. 강렬하고 급진적인 자유의 낙서를 나는 타헬레스에서 처음 보았다. 2012년까지 남아 있던 타헬레스는 이후 몇 년간을 다시 빈 채로 남아 있다가 2019년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20년 넘게 역사를 이어 온 타헬레스는 이제 사라졌다. 그 부지는 함부르크 하펜시티의 엘필하모니를 완공한 헤르조크 앤드 드뫼롱 건축팀이 맡아 현재 새로운 랜드마크로 짓고 있다.●크로이츠베르크로 떠나는 그라피티 순례 베를린 어딜 가나 그라피티가 넘쳐났지만 그중에서도 크로이츠베르크는 더했다. 동네 전체가 그라피티의 전당 같았다. 코트부서 토어 지하철 역을 올라오는 계단부터 낙서와 컬러풀한 색과 선의 벽화들이 동네를 지배하고 있었다. 사이즈도 비교가 안 되게 컸다. 건물 꼭대기에 그려진 글자들은 어딜 가나 보였고, 거대한 벽을 가득 메운 그림은 탄성을 자아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데까지 올라가서 그렸는지, 저런 건 대체 누가 그리는 건지 궁금했다. 베를린에서 손꼽히는 유명 그라피티 작품은 모두 크로이츠베르크에 있었다. 한번은 친구 집에서 나와 스칼리처 거리 모퉁이를 돌다가 건물 벽 앞에서 우뚝 서버렸다. 거대한 흰 벽에는 우주복을 입은 비행사가 달 위에 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었다. 그렇게 큰 그림을 본 적이 없었다. 그 벽화는 내가 갔던 2007년도에 막 그려진 것으로, 프랑스의 유명한 스트리트 아티스트인 빅토르 애슈의 작품이었다. 사이즈만 세로 22m, 가로 14m에 달하는 그 벽화의 제목은 ‘Astronaut Cosmonaut’(애스트로넛 코즈모넛). 각각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비행사를 뜻하는 제목이었다. 냉전과 우주 탐험, 서브 컬처에 관심이 많았던 애슈는 당시 베를린을 냉전의 상징으로 보았고, 러시아와 미국 간의 우주 경쟁을 빗댄 우주비행사를 벽화로 그렸다. 우주에서 길을 잃은 비행사를 노래한 데이비드 보위의 곡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으며, 완성된 벽화에는 다른 이야기도 숨어 있었다. 벽화가 그려진 건물 맞은편에 깃대가 설치된 자동차 대리점이 있는데, 밤에 불이 켜지면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의 그림자가 벽면에 투영되면서 마치 우주비행사가 땅에 깃발을 꽂는 듯한 모습이 되는 것이다. 거대한 우주비행사의 모습만으로도 충격적인데, 이런 숨은 이야기까지 더해져 스트리트 아트에 흥미를 더했다. 애슈의 이 작품은 베를린에서 손꼽히는 대표 벽화로 지금도 유명하다.●브라질 쌍둥이 작가의 명소, 옐로맨 그라피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스트리트 아트’라는 말이 따라오고 혼용돼서 많이 쓰인다. 둘 다 벽에 그리고 도시의 한 서브컬처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우선 그라피티는 글자 기반, 스트리트 아트는 그림이나 디자인의 형태를 띤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그라피티는 불법, 스트리트 아트는 합법적이라는 것. 스트리트 아트는 주최자의 승인하에 작가에게 그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우리나라의 많은 소도시에 유행처럼 번진 벽화도 스트리트 아트, 즉 거리예술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라피티가 불법이다 보니 작가들은 몰래, 주로 밤에 작업을 한다. 이름이나 사인도 남기지 않으며 익명으로 활동을 많이 한다. 이에 반해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은 기꺼이 자신의 이름을 남긴다. 명성에 따라 프로젝터와 크레인 등의 대형 장비를 이용해 최적의 환경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그렇게 그려진 벽화는 도시 개선을 위한 이미지나 디자인으로 활용된다. 애슈의 우주비행사와 함께 손꼽히는 베를린의 벽화 중엔 오스 제미오스의 ‘옐로맨’(Yellow Man)이 있다. 브라질 출신의 쌍둥이 형제 작가가 그린 이 옐로맨은 2005년에 그려진 것으로 큰 코와 작은 귀, 넓은 입을 가진 노란 얼굴과 극도로 얇은 팔다리의 모습이 특징이다. 이는 제미오스 작품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한데, 이 거인은 작가의 페르소나인 동시에 특정 인종이나 민족을 넘어선 보편적 인간을 의미하고 있다. 이 쌍둥이 형제는 가난한 그라피티 작가로 시작해 지금은 전 세계의 유명 갤러리와 작업하는 인기 작가가 됐다. 뱅크시, 셰퍼드 페어리 등과 함께 세계에서 주목받는 거리 예술가로 인정받는다. 지난해에는 서울에서도 단독 전시회를 가져 우리에게도 친숙해졌다. 작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벽화를 본다 하더라도 이 작품은 누구에게나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이다. 16년이 지난 지금 ‘옐로맨’의 옷은 바래고 빨간 구두는 다른 낙서에 가려졌다. 하지만 영구적이지 않은 점이 거리예술의 아름다움인 것처럼, 이 노란 남자도 언젠가는 영원히 사라지는 숙명을 따를 것이다. ●하루아침에 지워진 도시 랜드마크 벽화 그라피티의 도시답게 베를린에서는 이 유명 벽화들만 찾아다니는 관광 투어도 갖춰져 있다. 최근엔 소수의 인원이 조깅을 하면서 벽화를 찾아다니는 로컬 투어도 생겼다. 뛰든, 걷든 찾아가기만 하면 보이는 벽화들은 야외에 전시된 갤러리 작품처럼 그려져 있으니, 코로나19로 록다운이 연장된 시대에도 늘 열려 있다.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 벽화도 있다. 크로이츠베르크의 큐브리 스트라세에 그려져 있던 블루(Blu)의 작품이다. 세계적인 거리예술가인 블루는 2007년과 2008년에 창문이 없는 건물의 측벽에 두 개의 대형 작품을 남겼다. 한쪽 벽면에는 금색의 시계를 수갑처럼 차고 넥타이를 매만지고 있는 얼굴 없는 남자가, 다른 벽면에는 서로의 가면을 벗기려고 손을 뻗치고 있는 두 명의 얼굴이 있다. 이 대형 작품들은 단숨에 베를린 스트리트 아트 신의 아이콘이 됐고, 여행객을 태운 관광버스들은 이 랜드마크 앞에서 속도를 늦췄다. 오버바움 다리를 지날 때 선명하게 보이던 이 벽화들은 그러나 2014년 11월 하루아침에 없어졌다. 이 벽화가 그려진 건물 앞의 빈 공터를 사들인 부동산 개발업체가 이 유명 작품이 보이는 전망을 이용해 비싼 빌라를 지어 팔려고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이 부동산 업자들에게 이용당하는 걸 알게 된 블루 작가 팀은 결국 크레인을 동원해 작품을 모두 새카맣게 칠해 버렸다. 처음엔 가운뎃손가락을 들고 있는 희미한 욕 사인을 남겨 두었지만 후에 이것 또한 지워졌다. ‘Reclaim your city’(너의 도시를 되찾아라)라고 쓰여 있던 문구는 되찾지 못한 ‘너의 도시’(your city)만 남았다. 이는 해마다 치솟는 집값과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자유롭지 못한 베를린을 보여 주는 일화이기도 하다.다행히 아직 많은 그라피티와 벽화들이 도시에 남아 있다. 무너진 장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부터 유명 그라피티 작가들의 벽화, 그리고 대문 앞에 그려진 무명의 낙서에 이르기까지 가장 솔직하고 거침없는 예술이 베를린의 거리에서 시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dongmi01@gmail.com
  • “1987년, 단일화 간절함에 부르르” …‘나와 백기완’ 정치인들의 추모법

    “1987년, 단일화 간절함에 부르르” …‘나와 백기완’ 정치인들의 추모법

    민중운동과 통일운동의 살아있는 역사였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15일 별세한 후 역사의 일부를 함께한 정치인들의 추모가 쏟아지고 있다. 그들의 사연 있는 추모에는 과거의 백 소장이 뚜렷했지만 마지막 백 소장의 모습은 희미했다. 백 소장이 1980~90년대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 통일운동의 전면에 서고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요구로 대선후보로도 나섰기 때문에 당시 학생운동을 이끌던 정치인들의 추모에는 그때의 이야기가 주로 담겼다.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민주당 한 의원은 16일 통화에서 “선생님은 대학을 돌아다니시면서 대중강연을 정말 많이하셨다”며 “그때 강연을 듣고 나면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대학생으로서 정의로운 길을 어떻게 갈 것인지 한 줄기 빛을 보는 심정이었다. 그때의 경험이 있던 많은 의원들이 추모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인영 “1987년 전대협 출범 때 강연 잊지 못해” 실제 86그룹의 리더이자 1기 전대협 초대 의장을 지낸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전날 빈소를 직접 조문한 뒤 “1987년 전대협이 출범할 때 그 자리에 오셔서 강연해 주셨는데,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들린다”며 “선생님 영전에 마음속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장산곶매로 부활하셔서 평화와 통일로 가는 우리 겨레의 앞날에 길잡이가 되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추모했다.백 소장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열린 13대 대통령 선거에 학생·노동자·민중의 요구를 받아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한 후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다. ●‘···옥색치마 휘날리며’ 읽고 편지 부친 송영길 고등학교 3학년 때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라는 책을 읽고 편지를 백 소장께 부쳤다는 송영길 의원은 “1987년 겨울, 대학로에서 뵈었던 선생님의 모습은 35년의 시간을 훌쩍 건넌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은 후 맞는 첫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선생님은 양김의 단일화를 목이 쉬도록 주장하셨다”며 “노여움과 간절함, 절박감에 부르르 떨리던 사자후를 기억한다. 그러다 목이 메이면 한동안 침묵으로 청중들의 소름을 돋게하던 그 절망스런 표정을…. 저는 잊을 수 없다”고 적었다. 김원이 의원도 1987년 대학교 1학년 시절 백 소장을 댁에서 직접 만난 이야기를 꺼내며 “1987년 대통령 선거. 열정과 건강한 몸 하나만으로 백기완 선생님을 도와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결국 불출마를 선언하셨지만...”이라며 고인을 기렸다.백 소장은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에도 민중후보로 추대된 바 있다. 1991년 고려대 총학생회장 지낸 허영 의원은 “온몸으로 민중해방의 길을 걸어오셨다”며 “제가 뽑은 제 생애 첫 대통령이셨다”고 했다. 1994년 성균관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박용진 의원은 “오늘 아침 그분의 선거운동원으로 뛰었던 92년 대선의 겨울과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각성을 호소하던 명연설들의 장면이 떠올랐다”며 고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조희연 “늘 야단 맞을까봐 조마조마” 86그룹의 선배 세대인 서울대 77학번인 유기홍 의원은 “백기완 선생을 처음 본 건 1978년 4월 성공회 서울성당에서”라면서 “‘제1회 민족문학의 밤’ 행사에서 시를 힘차게 낭송하던 청년 백기완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후 제가 의장을 맡았던 민청련, 한청협에서 지도위원을 역임하는 등 함께 활동했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저는 백 선생님과 대화를 할 때면, 언제나 ‘야단 맞을까봐’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며 “왜냐하면 우리말을 제대로 쓸 줄 모르고 미국말을 한국말처럼 사용한다고 매번 주의를 받고 때로는 야단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핸드폰이라는 말이 나오면 왜 손전화라고 하지 않느냐고 야단치시고, ‘화이팅’ 하면 ‘아자아자’ 또는 ‘지화자’라고 말하라 야단치셨다”고 설명했다. 백 소장은 1986년 ‘권인숙 부천 성고문 진상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된 바 있다. 당사자인 권인숙 의원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규탄대회를 여시려다 감옥에 갇히시기도 했다”며 “80년대 말 몇 번 뵙고 제 결혼식에도 오셨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가깝게 안부를 묻지 못하고 지냈다”고 고인과의 인연을 꺼내놨다. 그러면서 그는 “제가 경험한 사람 중 가장 특별한 연설능력을 가지신 분이셨다”며 “논리력, 선동력, 이야기하듯 엮어내는 구수한 문장력과 멋진 목소리가 엄청난 조화를 이루었고 87년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왔을 때 많은 지지자와 함성을 모으셨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권영길 “백기완은 혁명을 꿈꾸는 로맨티스트”1997년 2002년 2007년 진보후보로 대선에 출마하며 백 소장의 뒤를 이은 민주노동당 권영길 전 대표는 “저는 백기완 선생님을 혁명을 꿈꾸는 로맨티스트라고 늘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전 대표는 이날 라디오에서 “선생님은 자본주의의 지배로 소외되고 탄압받고 하는 민중들을 고통해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큰 사상을 갖고 있고 그것을 몸으로 거리에서 실천해온 분”이라며 “그래서 단순히 민주화 운동가다. 단순한 통일운동가라고 하는 건 백기완 선생님에게 너무 폭 좁은 그런 예우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 소장의 별세한 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주목한 추모가 계속되자 마지막까지 진보운동을 함께한 권 전 대표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 권 전 대표는 “이제 길거리로 쫓겨나서 생존권 투쟁하고 있는 해고노동자들을 누구에게 기댈 것인가.. 이런 걱정이 먼저 앞선다”며 “노동자, 농민, 힘없는 사람들의 버팀목인 백 선생님께서 가셨으니 이걸 어떻게 하느냐는 슬픔과 걱정이 태산같이 밀려온다”고도 했다.정의당 의원들은 진보정치의 맥락을 담아 고인을 추모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역사가 곧 자기의 거울이라며 빗으로 머리를 빗는 것조차 삼갔던 꼿꼿한 혁명가의 의기를 기억한다”며 “수많은 진보 정치인, 운동가, 지식인들이 선생의 둥지에서 태어나 진보정당의 초석이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민초들이 생존을 다투는 현장에는 늘 선생님이 계셨다”며 “백기완 선생님은 민중들의 광장을 지키는 하얀 수호신이셨다”고 덧붙였다. 이은주 의원은 “전설 속의 선생님이 내 삶 속으로 들어오신 건, 내가 지하철노동자가 되었을 때부터였다”며 “내가 나갔던 모든 투쟁의 현장에 검은 두루마기, 흰 민복의 회오리 머리칼을 휘날리며 선생님은 항상 그곳에 계셨다. 언제까지나 늘 그곳에 계실 거라 생각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진보정치 3세대 장혜영, 다시 읊는 ‘묏비나리’ 진보정치 3세대로 불리는 장혜영 의원은 20년 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리프트가 추락한 후 장애인들이 벌인 이동권 투쟁을 백 소장의 ‘묏비나리’ 시에 비유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그는 “맨 첫발. 딱 한발 떼기에 목숨을 걸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의 모태가 되는 선생의 시, 묏비나리의 첫 두 줄”이라며 “늘 삶의 모순을 드러내는 싸움의 현장에 계시던 백기완 선생을 다시금 추모한다. 그리고 맨 첫발, 딱 한발 떼기에 목숨을 거는 그런 정치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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