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026-01-31
    검색기록 지우기
  • 반복
    2026-01-31
    검색기록 지우기
  • 매물
    2026-01-31
    검색기록 지우기
  • 냄새
    2026-01-31
    검색기록 지우기
  • 러닝
    2026-01-3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421
  • 아테네/관광타운 플라카(아랍서 지중해까지:13)

    ◎그리스혼 번뜩이는 십자가목걸이/토속음식·술 겸해 파는 「타베르나」 곳곳에… 초저녁부터 “불야성” 활주로를 향해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 기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한 도시 혹은 한 나라의 첫인상이 실제의 리얼리티와 얼마나 부합되는지를 필자는 모른다.3박4일 혹은 길어야 4박5일 정도씩 각 나라에 배당된 이번 여행일정으로는 어차피 수박 겉핥기식의 관광유람 밖에는 소득이 없을 것같고 이런때 채택되는 그럴싸한 유적지라든가 뜻깊은 건물 내지 역사적 유물들을 찾는 일에도 필자는 실상 애초부터 흥미를 잃은채 포기하고 있었다.루브르를 하루만에 다 보고 소감을 말하라는 소리와도 그것은 같다.40년을 살고 있어도 서울이라는 괴상한 도시의 그 중심이 어딘지 필자는 아직 그 끄트머리조차 파악을 못하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공중에서는 우선 그 나라의 땅과 산과 마을들의 대체적인 형태와 윤곽이 드러나고 빛깔이 나타난다.자주색에 가까운 지질과 짙고 어두운 녹색의 산야를 완만하고 구불구불한 오렌지 빛깔의 길들이 갈퀴질하듯이 마구 엇갈리고 있던 스페인의 첫 인상은,번드레하게 치장한 마드리드라는 도시와 후지고 매운 지방색이 두드러지던 그라나다를 직접 밟고 접촉했을 때의 그 느낌과도 무관하지 않았다.이스탄불 상공에서는 강과 붉은 벽돌지붕들과 그 틈바구니에서 올라오는 왁자지껄한 소음까지 들렸다.물론 이런 식의 과장은 린드버그가 애 기로 뉴욕에서 파리까지 사상 첫 무착륙비행을 하면서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라고 외쳤을 때의 그런 갈증과 그리움 없이는 어불성설의 것이기는 하다. ○포세이돈 환영이 아테네 상공에서 해신 포세이돈이 거대한 몸을 뒤채는 것을 보았다고 하면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필자 눈에 들어온 에게해의 물빛은 그만큼이나 푸르고 맑았다.기창 하나 가득 부드러운 옥색이 들이닥치면서 없어지지를 않아 처음엔 하늘의 일부인가 했다.여기저기 솜털처럼 희끗희끗한 작은 파도의 흔적이 보였을때야 물이라고 알아봤을 정도다.좀 커보이는 솜털은 아마 요트의 돛이었으리라.아직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방대한 푸른 공간…에게해의 인상은 한마디로 그랬다.영화 「지중해」를 만든 가브리엘 살바토레는 이 잔잔한 바다에서 「망각」을 보았다.아비규환의 전쟁,쓸모없는 욕심,그리고 가차없이 생명을 무너뜨리는 시간이란 것의 망각.아구다가와 수상소설인 「에게해에 바친다」를 쓴 판화가 이케다 마쓰오(지전만수부)는 거기서 서양여자의 자궁을 보았다.거창한 문명을 만들어놓고도 모태 주위에서 한 치를 벗어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인간의 파리와도 같은 집착과 욕망.「그랑 블루」의 뤽 베송은 이색필름 「아틀란티스」에서 그 살아있는 물의 리듬을 보았고 「구세주 알렉산더」를 만든 그리스의 현역 테오도로스 앙겔로폴로스는 아마 도시국가의 번영과 민주주의와 헬레니즘을 제창한 고대 그리스인의 자존심을 거기서 보고 각성을 촉구하는 그런 파격적인 필름을 만들었을 것이다. ○영어안내표기 없어 신화란 무엇인가.자연과 인간을 고리짓는 강인한 생명력의 그 의인화이며 그런 갈망의 변용이 아니겠는가.고대 그리스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외디푸스니 엘렉트라니 하는 인간의 잠재의식과 매몰된 무의식의 깊은곳까지도 샅샅이 천착해 들어갔다.포세이돈이 살아있다는 소리도 따지자면 그런 자연으로서의 바다의 순도거나 그 오염 여부를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실제로 에게해가 다른 대양에 비해 어느 정도나 덜 오염이 되어있는 것인지 구체적인 자료나 수치를 필자는 아는 바가 없다.그렇긴 해도 여태껏 보아온 바다들 중에서는 가장 맑고 순연하다는 확신이 드는 것은 비단 눈으로만 측정된 그 감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초행이라 기왕에 보아왔던 영화나 소설이나 여타의 선입견으로는 우리 보다 훨씬 가난하리라 여겼는데 실제의 아테네는 그렇지도 않아보였다.다소 실망했다면 아마 그 탓이었을지도 모른다.선입견 속의 그리스는 바다를 낀 벼랑들 틈에 다붙은 정갈하고 흰 방형의 돌집들과 검은 천으로 몸을 감싸고 전란과 가난과 외세의 침입이라는 질곡을 끈질기게 견뎌내는 낙천적인 사람들의 굴곡짙은 그 얼굴의 음영이었다.카잔차키스의 소설 「희랍인 조르바」도 그렇고,여성이면서도 저항정치활동을 해온 끝에 집권한 사회당의 문화청장관까지 지내다 얼마전에 작고한 배우 머리나 멜리쿠리가 남편 율스 닷신과 함께 만든 콜걸 얘기의 필름 「일요일은 참으세요」를 봐도 그 이미지는 여축이 없다.이런 이미지에는 「피가 마르는 듯한 햇빛」이라는 식의 일종 말할 수 없이 청량하고 건조한 느낌이 스며있는데,더구나 제대로 된 고대 희랍비극의 영상작품 같은 것에는 그 뉘앙스가 절정에 달한다.「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세계의 중심적인 고뇌를 가장 가까이서 노려보며 고개를 돌리지 않는」그런 느낌의 이미지가 지금의 아테네에서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정도는 아니지만,호텔로 가는 콘스탄티누 거리 양쪽에 에워싸고 밀집한 현대식 호화아파트들의 모습이 우선 그런 기대를 반감시키고 있었다.그나마 낙조가 비쳐드는 건물 틈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면서 스쳐가는 아크로폴리스의 남아있는 신전들이 그 기묘한 실망을 달래주고라도 있었을 것이다. 『거짓말처럼 언덕위에 저런 것이 정말 다 서있네』라고 일행중의 하나가 내지른 탄성처럼,사양길에 접어든 해운업 보다도 순전히 그런 볼거리의 관광자원에힘입어 그리스는 이 정도의 여유나마 지니게된 것처럼 보인다.거리는 깨끗해서 후진데가 거의 눈에 띄지않았고,시민들은 코를 치켜든채 다소 거만한 표정들이었다.음식점이나 길이거나 영어표기가 거의 되어있지 않고 지도를 내보이며 길을 물어도 우선 모른다고 고개를 내젓기가 일쑤며 더구나 게발새발 지껄이는 엉터리 영어같은 것은 처음부터 먹혀들지도 않는다. 전시대의 건물들이 비교적 그대로 남아있는 플라카 지구의 골목들은 아닌게 아니라 그 자존심 높은 그리스인들이 외래객을 위해 따로 특별히 선심이라도 베푼 듯한,그런 신경과 배려가 유감없이 내배있는 곳이었다.우선 상점들과 거기 진열된 물건들이 정교하고 예뻤다.그리스 정교의 표지인 독특한 십자가 목걸이를 주로 파는 액세서리 가게엘 들어섰더니 득의만면하게 그것들을 「작품」이라고 소개했다.어째서 작품이냐니까 손으로 직접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넓적한 은판에다 뒤뷔페 풍의 희화(호화)들을 낙서처럼 간단히 새겨넣은 것들인데,노심초사하는 그런 공정을 한쪽 코너에서 그대로보여주기까지 하고있어 「과연」 하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도리도 없다.자존심과 상술이 교묘하게 결합된 예다.기념품들도 왁자하게 진열되어 있지않고,손가락만한 크기의 납작한 블론즈 제품인 옛 기마상 같은 것도 하나하나의 모양새가 조금씩 다르게 정성이 가 있다.여기에서 만은 가게들도 친절하고 물건 값이 비싸지도 않아 야박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야등 줄줄이 내걸어 토속음식과 술을 겸해 파는 타베르나 라는 카페 비슷한 독특한 음식점들의 모양새와 정취역시 그랬다.걷다보면 같은 길이 또 나올 정도로 사통팔달로 뚫려서 연결이 되고있는 계단과 골목 여기저기에서 심심치 않게 나타나곤 하는 그런 곳들은 빨간 고추같은 야등들을 줄줄이 내걸고 길에다 좌석을 내놓고 있다.채양빛깔이며 장식이며 디자인의 색조가 외래객의 굶주린 정서를 직통으로 파고들기에 모자람이 없다.일행들이 모두 무드파들이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왜 이런 식의 길가 가게를 발전시키지 못했을까 하고 탄식이 나올 정도다.초저녁부터 등불들이 켜지고 그황금빛으로 환한 좁은 길을 메운 쌍쌍들이 흐느적대듯 느리게 흘러간다.야하지도 소란하지도 않은 불야성…이라는 소리가 저절로 떠오른다.역시 군데군데서 마주치는 소극장 윈도의 공연 포스터들을 들여다 본즉 하나같이 심각하고 진지한 장면들을 내걸고 있다.희극의 그것이라도 아테네 사람들의 표정에는 모종의 엄숙함이 노상 곁들여져 있는 것도 같다.뭐라고 토론하는 소리같은 것이 들려와 올려다 본 골목모퉁이 한 술집의 이름이 그 좋은 증좌가 된다.왈 「소크라테스의 감옥」.
  • 차번호판 96년부터 교체/글씨 커지고 차종기호 두자리수로

    일반 차량의 번호판이 96년 1월1일부터 식별하기 쉬운 모양으로 새로 바뀐다. 교통부는 18일 자동차 번호판 개선방안을 발표,외교관·군용차량을 제외한 자동차 번호판의 차종기호를 두자리 수로 바꾸면서 (서울1→서울12) 글자는 현재의 3㎜에서 5㎜로 굵게하고 「가·나…」등 용도를 나타내는 문자체도 명조체에서 견출고딕체로 바꾸고 크기도 5㎜에서 8㎜로,일련번호는 7㎜에서 10㎜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는 서울의 경우 자동차 번호부여 용량이 96년에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현행 번호판은 식별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새로 바뀌는 번호판의 크기와 색깔은 지금과 같이 가로 3백35㎜·세로 1백70㎜의 초록색 바탕에 흰글씨로 새겨진다. 새 번호판은 96년부터 새로 출고되거나 다른 시·도로 차적을 이적하는 차량부터 교체되고 기존의 차량에 대해서는 98년말까지는 모두 새 번호판으로 교체토록 권장키로 했다.
  • 카를로스 판사앞서 시종 여유/테러대부 검거이후

    ◎“나는 영원히 살아있어”… 불어로 농담도/독적군파 애인 변호한 베르제 선임설 지난 70년대와 80년대초 서유럽을 무대로 대담한 테러공격을 자행,각국의 수배를 받아온 국제 테러리스트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일명 카를로스·44)가 16일 본격적인 조사를 받기 위해 파리 치안판사에게 인계됐다. 경찰의 삼엄한 호위속에 이날 법원에 도착한 카를로스는 흰 셔츠에 붉은색 바지차림으로 비교적 뚱뚱한 체구였으며 프랑스어로 농담을 하는가 하면 『나는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라고 말하는등 시종 여유있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앞서 샤를 파스콰 프랑스 내무장관은 이날 프랑스에서 발생한 15명의 사망자를 비롯,전세계적으로 83명의 목숨을 앗아간 각종 테러사건이 카를로스에 의해 저질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한편 영국의 런던 경찰청은 카를로스를 런던에서 발생한 수많은 테러사건의 배후인물로 추정하고 그를 신문하는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라고 영국의 인디펜던트지가 1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런던경찰청이 지난 70년대초 런던에서 발생한 테러사건의 배후에 카를로스가 있었던 것으로 믿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데일리 익스프레스지는 파리의 정보 소식통들을 인용,1면 기사를 통해 카를로스가 자신의 주변인물들을 암살위협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과거 20년에 걸친 암살과 항공기 납치,폭탄공격등 자신의 테러활동 과정에서 아랍정부들이 행한 역할을 공개할지도 모른다고 내다봤다. 이번 재판에서는 특히 카를로스의 여자친구이자 독일 적군파(RAF)요원인 막달레나 코프와 나치독일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 책임자 클라우스 바르비등을 변호한 바 있는 자크 베르제 변호사가 카를로스의 변호를 맡을 것이라고 법원소식통들이 말해 관심을 끌고 있다.
  • 밥집 조리사(외언내언)

    할머니 셋이서 하는 식당이 점심시간에만 문을 연다. 조용한 동네 길갓집 「열었음」하는 작은 팻말 걸린 현관문 밀고 들어서면 레이스 커튼 드리워진 아담한 거실에 음식이 차려있다.음식은 언제나 세가지. 빵과 고기나 생선,야채과일 샐러드. 어떤 날은 오븐에 구운 양고기나 돼지고기,어떤 날은 생선,어떤 날은 고기다짐을 속에 넣은 우리네 만두 구운것 같은 쉐퍼드 파이. 빵도 매일 모양이 다르다.방금 오븐에서 내온 듯 고기 빵 모두 따끈따끈하다. 맑끔히 닦인 창가 식탁에 자리잡고 중앙에 차려진 음식을 덜어다 드는 우리도 이제 익숙해진 뷔페식이다.할머니들은 다림질 잘 된 흰앞치마 차림으로 차탁에서 차를 따르고 주방을 드나들고 계산도 한다. 워낙 자그마한 식탁이 적게 놓였지만 식당은 언제나 일찍 줄서 있어야 한다. 영국 잉글랜드 동북부 요크시 가까운 길목 동네의 이 식당은 인근뿐 아니라 미국관광객 사이에까지 소문난 식당이다.깔끔하고 음식맛있고 그 분위기가 고향할머니를 대하는 것 같은 행복감을 준다는 것이다. 할머니 셋은 전직 국민학교와 여중학교교사 간호사로 친구이다.정년 앞당겨 퇴직하고 음식 맛있게 하는 특기를 살리고 즐거운 소일로 이 식당을 열었다고 한다.각자가 잘하는 음식 나누어 한가지씩 맡아한다.집은 한 할머니의 사는 집이다. 보사부는 입법예고한 식품위생법시행령 개정안에서 식당 바닥면적 1백50㎡(약 50평)이하되는 음식점에는 조리사를 안두어도 되도록 했다.또 상시 5인이하 근로자를 사용하는 식품제조가공업소는 영업주가 식품위생관리인 교육만 받으면 되도록 했다.조리 솜씨있는 사람 누구나 쉽게 밥집도 차리고 집에서 김치 장아찌 같은 반찬이나 특수음식도 만들어 팔 수 있게 터놓은 것이다. 우리도 음식 잘하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영국 같이 특기 살려 국내외 길손을 즐겁게 하는 일에 많이 나섰으면 한다.과제는 깔끔한 업소에 정갈한 음식 취급이다.
  • 그라나다/알함브라 궁전(아랍서 지중해까지:11)

    ◎스페인 최후의 이슬람궁… 신비 가득/나자리왕조가 13∼14세기 건설… 빼어난 건축술­정교한 세공에 숨막혀 그라나다의 구시가 산타 안나 교회앞에는 세 갈래의 길이 있었다. 『알함브라?』 그러자 수염이 텁수룩한 신부님이 긴 소매 속에서 나온 창백한 손으로 언덕길을 가리켰다.세월과 사람들의 발걸음에 닦이어 빤질빤질 윤이 나는 언덕길에서 흘러내리는 빛의 물살이 다리를 휘청거리게 했다.어디서 어떻게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 알함브라의 신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길 양쪽으로 늘어선 옛날 집들은 지난날의 비밀을 삼킨 채 그 작은 창문들을 조가비처럼 닫고 있었다.오!벽이 익혀온 시간의 열매들이여. 1층의 연쇄상점들 앞을 지나노라니 캐스터네츠소리가 따다따다 귀를 즐겁게 했고,어둠침침한 어느 상점 안에서는 집시풍의 옷을 입은 여인이 부채로 일으킨 바람을 깊숙이 팬 앞가슴 사이로 밀어넣고 있었다. 휘어진 언덕길 끝에 울창한 삼나무숲 사이로 뚫린 또다른 길이 포개질 듯 기다리고 있었다.서늘한 바람이 계곡속에 숨어 있는 여울물소리를 실어왔다.그 소리가 구르는 듯한 기타 선율로 바뀌면서 알함브라의 슬픈 역사에 젖어들게 했다. ○이사벨여왕에 패퇴 알함브라는 「붉다」는 뜻으로 그라나다 동쪽 언덕에 위치한 무어족의 귀족행정도시의 이름이었다고 한다.13세기에 나자리왕조의 시조인 알 아마르가 자신의 왕궁을 그곳에 지음으로써 그것이 찬란한 알함브라역사의 시초가 되었다.주건물의 대부분은 요세프1세(1353∼1391년)와 그의 아들 모하메드 5세시대에 지어졌고,부분장식들은 레콩키스타(7세기부터 이베리아반도에 유입해온 회교도들이 점거하고 있던 국토를 기독교도들이 되찾기 시작한 운동)의 폭풍에 휘말리면서도 계속되었다.미구에 떠나야 할 것을 예감했기에 왕들은 자신들의 자취로서 아름다움을 그 땅에 영원히 심으려 했다. 이사벨여왕과의 싸움에서 패한 최후의 왕 보아부달은 왕궁을 떠나 시에라네바다의 험준한 고갯길에서 궁전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한편 이 왕궁을 접수한 기독교도들은 그곳을 예배당으로 활용하는 한편 이사벨여왕의 손자인 카를로스5세는 궁전안에 르네상스양식의 또다른 궁전을 건축했다.이를 두고 그라나다 출신의 명상시인 가르시아 로르카는 「알함브라궁전은 자신의 내부에 카를로스5세가 있음을 느끼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경사가 가파라질수록 길은 삼나무숲 깊숙이 파고드는 듯 하더니 갑자기 하늘이 파랗게 열리는 곳에 붉은 성벽과 「심판의 문」이 우뚝 솟아 있었다.말발굽모양의 아치에는 코란 5계명을 나타내는 손가락이 조각되어 있었다. 알히베스광장에 쏟아져내리는 햇빛은 눈부시다 못해 얼어붙는 듯 소름이 끼쳤다.짙은 나무그림자에 돌바닥이 검게 패어 있었다.검은 고양이 한마리가 제 몸보다 더 검은 그림자를 끌고 카를로스5세 궁전 담밑을 따라 모퉁이로 사라졌다. 성채·왕궁·정원·여름별장으로 분리해서 파는 입장권 4장을 샀다.그리고 먼저 궁전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첫관문인 메사르홀로 들어섰다.이곳은 기독교도들이 접수한 뒤 예배당으로 활용되면서 기독교식 건축물로 개조되어 본래의 모습이 많이 파괴되었으나 아랍식 문양이 정교하게 세공된 대들보만으로도 그 빼어난 솜씨에 도취되기에 충분했다. 왼쪽의 아치문을 지나 아리야네스(천인화)중정으로 들어갔다.장방형의 긴 못이 중앙에 있는 안달루시안 아랍식 안뜰.속세와 차단된 묵중하고도 투명한 정적이 감돈다.하늘·도금양나무·뜰을 둘러싼 건물의 아치문과 기둥들이 수조의 조용한 물속에 잠겨 행복하고도 덧없는 꿈에 취해 있다.빛과 그늘까지도 그 행복한 꿈에 녹아들어 있다.무엇이 이 꿈꾸는 물의 성채를 침범할 수 있을까.문은 모두 열려 있으나 들어갈 방법을 알지 못하는 세계. ○중앙엔 사자상 분수 왕의 접견실인 대사의 방과 코마레스탑에서 라이온궁전으로 발길을 옮기노라니 등뒤에서 어떤 문이 닫히는 느낌이었다.마치 누군가 되돌아갈 길을 막아버리는 것 같았다. 촛대처럼 가느다란 1백24개의 대리석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는 장방형 회랑으로 들어섰다.햇빛이 눈을 시리게 하는 뜰의 중앙에 열두마리의 사자에게 둘러싸인 하얀 대리석 분수에서 물줄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이곳은 오직 왕 한사람만 드나들 수 있는 하렘이었다.건물 2층에는왕의 후궁들이 거처했다. 그 옛날 왕족인 아벤세라헤스가문의 한 남자가 하렘의 여자에게 접근한 것이 발각되어 목이 잘린 뒤 그 목이 방의 중앙 분수대 위에 놓여져 목에서 흘러내린 피가 사자의 분수대까지 흘러왔다고 한다. 회랑천장의 정치한 세공으로부터 간신히 눈길을 돌려 자매의 방에 들어섰을 때였다.숨이 턱 막히는 현란한 아름다움 속에 깊숙이 갇혀버리는 것 같았다.벽을 따라 천장까지 미끄러져 올라간 눈길 끝에는 신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사실 난 이러한 아름다움과의 대면을 두려워해왔다.릴케의 「비가」 중에는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가까스로 견딜 수 있는 무서움의 시작에 불과하므로/우리가 아름다움을 그토록 찬미함은 파멸하리만큼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파르탈정원을 뒤로 하고 처녀의 탑 앞에 이르른 나는 더이상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회랑에 놓여 있는 의자에 주저앉았다.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여기 이 자리에서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들으며 생을 마감해도 좋으련만…나에게 있어 알함브라와의 만남은 깊은 상처로 남겨졌다.호텔로 터덜터덜 돌아가 다시 너절한 일상과 마주할 일이 버겁기만 했다. 5월3일,지도조차도 던져버리고 혼자서 호텔을 나섰다.알함브라궁전의 코마레스탑에서 바라본 건너편 산기슭의 하얀 동네를 찾아갈 참이었다.그곳은 아랍인 거주지역으로서 길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이방인은 길을 잃기가 십상이라고 한다.일을 저질러보려는 내게 그 미로는 너무나 매혹적인 구실이었다. 택시는 나를 산 니콜라광장에 내려놓고 돌아갔다.조약돌이 다닥다닥 박혀 있는 뜰의 돌벤치에 앉아 관광기념품을 팔고 있는 집시아주머니가 캐스터네츠를 치며 다가왔다.그녀에게서 캐스터네츠 치는 법을 10분쯤 배우고 나서 하나를 샀다. 광장에서 건너다 보이는 알함브라궁전의 전경이 슬프도록 아름다웠다.시에라 네바다산의 눈 덮인 흰 능선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궁전을 감싸고 있었다.서양남자가 광장 한켠에서 이젤을 세워놓고 그 전경을 화폭에 담고 있었다.축대를 걸터듬고 앉아 알함브라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한시간 남짓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친듯이 미로 헤매 니콜라교회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간 곳에 카르멘이라는 정원을 가진 고급저택이 있었다.우체통구멍으로 들여다본 그 집의 파티오엔 핏빛처럼 붉은 칸나꽃이 가득했다. 벽과 벽 사이의 좁은 미로에서 아랍인의 혼이 스며나와 내 손을 잡아끄는 듯했다.이곳의 옛주민들은 레콩키스타로 그라나다가 기독교인들에게 함락되었을 때 최후까지 저항하여 흰 벽과 돌길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고 한다. 방향을 알 수 없을만큼 미로 깊숙이 들어온 듯했다.혼자뿐인 길 위에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려왔다.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았다.흑단처럼 검은 머리를 반듯하게 빗어넘기고 검은 진바지에 흰 티셔츠 차림의 여성이 저만큼서 걸어오고 있었다.무심히 바라본 그녀가 지난밤 넵튠이라는 극장식 타블라오에서 만난 플라멩코 무희라는 것을 알아본 순간,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여러 무희들 중에서 오직 그녀만이 나를 사로잡았다.그녀의 춤에서는 격정과 비애가 동시에 교차하고 있었다.폭발하듯 솟구치는가 하면 검으로 자르듯 끊어지며 다시 폭발하고… 어느 순간 나는 저 춤속에 빠져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그것이 그라나다에서 경험한 두번째 마음의 죽음이었다. 그녀가 내 앞에까지 걸어왔다. 『잠깐,당신은 무용수지요』 그녀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저께 당신의 춤을 봤어요.나는 플라멩코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깊이 매혹됐어요.특히 당신의 춤에』 『고맙습니다』 그뿐 우리는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그녀를 붙잡는 대신 나는 다른 미로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얼마쯤 가노라니 마음이 미어지는 듯 아팠다.몸을 돌이켜 다시 그 장소로 달려가보았으나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사방으로 뚫려 있는 미로 가득히 닫혀 있는 문들뿐이었다.미친듯이 미로를 헤매었으나 나는 어느 문을 두드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눈을 가린 채 손을 맡기고 어디론가 따라가던중 갑자기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왜 그랬을까.하지만 여행이 끝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녀를 찾고 있다.그녀의 이름은 스텔라다.
  • 한우­수입 쇠고기 판별법 개발/농진청,유전자로 식별…48시간 걸려

    한우고기와 수입쇠고기를 과학적으로 가려내는 기술이 개발됐다. 농촌진흥청 농업유전공학연구소가 개발한 판별법은 유전자구조의 차이에 착안해 개발했다.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소 역시 품종에 따라 유전자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판별에 걸리는 시간은 48시간.1g의 쇠고기에서 DNA를 추출,「프라이머」라는 결합인자와 합성해 증폭시킨다.그러면 1개의 DNA가 1억∼10억개로 늘어나 식별이 쉬워진다. 증폭된 DNA를 수용액에 넣어 1시간가량 전기를 통하면 DNA가 크기별로 움직이는데 이 때 사진을 찍으면 수입쇠고기에서는 중간에 흰 띠가 나타난다.한우고기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한우에 없는 유전자가 외래 소에는 있기 때문이다.
  • 낙천적인 스페인사람들/마드리드(아랍서 지중해까지:10)

    ◎돈키호테 후예들 거리마다 북적/“내일을 걱정하는 자는 이방인”…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흥청 스페인식 상상력? 그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대야를 투구로,빗자루를 창으로 삼아 불의와 대적하는 기사(돈키호테). 아리아를 부르는 앵무새,탬버린에 맞추어 황금달걀을 백개나 낳는 암탉,사람의 생각을 알아맞히는 원숭이,기분나쁜 추억을 잊게 해주는 찜질약,먹으면 보기 싫은 사람을 눈에 안 보이게 하는 물약 등을 잔뜩 싣고 마콘도마을에 나타난 집시들(백년동안의 고독). 연인이 언니와 결혼하는 것을 보고도 말없이 두 사람의 결혼케이크를 만드는 티타,그녀가 케이크반죽 속에 떨어뜨린 눈물 때문에,케이크를 먹고 난 모든 하객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리고 구토를 한다(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여자의 얼굴은 옆모습과 앞모습이 어우러져 있고,유방은 옷 밖으로 튀어나와 목덜미에 붙어 있다.무릎을 포갠 한쪽 다리는 치마이자 그녀가 앉아 있는 소파의 다리이기도 하다(피카소). 멀리 하얀 바다와 깎아지른 단애가 있고,돌상자에 뿌리를 박은 죽은 나뭇가지에 시계가 빨래처럼 걸려 있다.돌상자모서리에 걸려 있는 또다른 시계는 지금도 계속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중이다(달리). ○스페인 부의 집결지 이들이 보여주는 황당무계한 초현실적 세계인식.스페인에 가면 일부러 무엇을 보려고 애쓰지 않고,스페인식 상상력을 몸으로 느껴본다는 것이 내 전략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방법까지도 이미 스페인 자신이 말해주고 있었다.고야의 판화 중에는,두 눈을 가린 백작부인이 이상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자기의 왼손을 사기꾼같은 남자에게 내맡기고 있는 그림이 있다.음흉한 속셈을 간신히 감추고 있는 남자에 반해,그의 떨거지들은 그녀의 미래가 송두리째 자기들의 수중에 들어와 있는 것에 대해 짓꿎은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고야는 그녀의 도도한 모험에 대해 이런 제목을 붙여놓고 있다. ­그녀는 「예」라고 말한다.그리고 자신의 손을 낯선 사람에게 내맡긴다. 오후 다섯시에도 햇빛은 베일 듯 강렬했다.푸에르타 델 솔(태양의 문)로 가는 길이었다.길 양쪽에 즐비한 상점들은 마드리드가 스페인 부의 집결지라는 것을 과시하는 듯했다.고급상품들이 진열된 진열장 앞엔 행인들의 발이 줄줄이 묶여 있었고,매장 안엔 손님들이 북적거렸다. 마침 걸치고 있는 옷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참이어서 여성용 의류상점으로 들어갔다.소매없는 셔츠 하나를 고르고 그것을 입어보는 데는 적지않게 시간이 걸렸다.거침없이 어깨와 팔을 드러내놓고 거리로 나오니 태양이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듯했다. ○인생의 즐거움 만끽 「아하!」여행중 내내 꼭꼭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저절로 벙싯 열렸다.벼랑끝까지 따라가보리라.눈을 가리고 모험을 할 바에는 스페인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남은 문제는 무엇에 대해 「예」라고 대답하느냐였다.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맞았다. ­친구여,스페인에서는 날 찾지 마라.몸은 곁에 있어도 마음은…아니,몸도 마음도 연기처럼 증발해버리더라도 부디 찾지 말기를. 그들은 시무룩하게 내 행색을 흘겨보았다. 푸에르타 델 솔은 끝이 빤한 아주 작은 광장이었다.그곳을 중심으로 10개의 방사선 도로가 뻗어나가는 까닭에 턱없이 사람들이 붐빈다는 것 외에 그럴싸한 입상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시민들이 약속을 할 때 징표가 된다는 마드리드의 문장인 곰상이나 시계탑조차도 인파에 묻혀버린 모양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어깨를 맞비비고 있는데,벽을 쌓듯 둘러선 사람들 사이로 꿈꾸듯 나른한 선율이 흘러나왔다.「아랑페이스 협주곡」「알함브라의 추억」.오래전부터 내 마음을 길 위로 이끈 선율이었다. 그들은 플루트·기타·베이스로 이루어진 3인조 악사들이었다.그밖에 굶주림과 외로움을 함께 해온 개가 있었다.기타 케이스에 떨어져 있는 두 장의 지폐와 몇닢의 동전들이 부끄러울 지경으로,연주는 진지했고,그 선율은 순수했다.선율에서 묻어나는 집시의 우수가 해 저무는 들녘쪽을 가리켜 보이는 듯했다. 나는 생각했다.집에 있는 플루트를 들고 저들을 따라나서도 좋지 않을까.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낯선 얼굴들뿐이었다.일행들은 저만큼 마요르광장쪽으로 가고 있었다. 펠리페3세가 1617∼1619년 사이에 완성한이 광장은 사방이 4층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세번이나 화재가 발생해 개조를 한 끝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옛날에는 왕가의 의식과 종교재판의 화형식이 이곳에서 행해졌고,그후엔 투우와 야외연극,성인식,정당대회 등이 열리는 장소로도 널리 쓰여왔다고 한다. 광장에선 네덜란드축제가 열리고 있었다.높이 뜬 노란 애드벌룬이 중앙에 있는 펠리페3세의 동상을 내려다보며 축제의 현수막을 펄럭였고,각종 행사가 벌어지고 있는 천막 앞에는 구경꾼들이 몰려 있었다.꽃씨와 구근을 파는가 하면,통나무로 나막신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고,한편에선 6인조 밴드가 네덜란드 민속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광장 둘레에 즐비한 카페에는 관광객과 시민들이 음료를 마시며 축제를 멀찍이서 바라보았고,다른 한편에선 거리의 화가들이 즉석에서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 손님이 없어 무료하게 앉아 있는 화가에게로 다가갔다. 『1960년대만 해도 스페인은 서부유럽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였다.언제부터 이런 눈부신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는가』 『1975년 프랑코체제가 무너진 이후 스페인엔 자유선거,자유시장,자유언론이 가능해졌다.이제 당신은 이 도시 어디에서도 그의 기억을 되살릴 수 없을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메손에서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얘기하기를 즐긴다고 하는데,그러고도 어떻게 다음날 일을 할 수 있는가』 『일 때문에 우리는 인생의 즐거움을 희생시키지는 않는다.대화·음식·가족·우정을 중요시하는 것이 우리의 풍습이다.우리는 하루를 두번 산다.낮과 밤의 생활.내일을 걱정하는 것은 이방인의 생각이다』 카페마다 사람들이 북적거려 빈 의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그들이 가진 가장 큰 컵으로 맥주를 시켰다.광장을 둘러보고 돌아온 K가 내 앞에 놓인 커다란 맥주잔을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너 그거 다 마실 수 있어?』 『그럼.그리고 또 마실 건데』 해가 저물고 있었다.도시의 각 가정에선 여인들이 거울 앞에서 몸단장을 하고 있을 법했다.라벤더향기가 코끝을 스쳐가는 듯했다. 그런데 내 앞엔 무슨 건수가 일어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동료는 내가 다 못마실 맥주에돈을 낭비하는 것마저 아까워하는 판이었다. 일행들이 아르고 데 쿠치예로스거리에 있는 「엘 쿠치」레스토랑으로 갔을 때였다. 『우리 오늘밤은 이곳 사람들이 하는 식으로 밤새도록 이집 저집 찾아다니며 마셔보면 어떨까요?』 ○카페 빈자리 없어 나는 일행들의 염려를 묵살하고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트리스에게 음식이름을 늘어놓았다.생야채 혼합 샐러드,흰 강남콩과 생소시지,왕새우 철판구이,오징어튀김,정어리 소금절임,가다랭이 토마토졸임,석류소스를 친 피망구이,어패류와 고기를 함께 익힌 밥,그리고 맥주 10병이었다.밤새도록 먹기 위한 나의 이 과도한 주문은,『그걸 어떻게 다 먹으려고 그래?』하는 핀잔과 함께 대폭 수정되었다. 일을 좀 저질러보려고 몸살을 아무리 앓아도,분별력 있는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매우 간소한 우리의 식탁 옆에서는 마드리드의 젊은이들이 떡 벌어지게 차려놓고 유쾌한 담소에 여념이 없었다.그런데도 웨이트리스는 연방 그들의 자리로 새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한편에선 퇴근후 바를 순회하는 사람들이 카운터에 선 채로 올리브를 안주삼아 가볍게 한잔씩 하고 있었다.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예」라고 대답할 태세가 갖추어져 있음에도,손을 잡아줄 그 무엇이 좀처럼 나타나주지 않았다.그것은 분별력 있는 동료들 탓이기보다,그림 속의 백작부인처럼 눈을 가리지 않은 내 탓인지 몰랐다.나 자신의 분별력이 결코 눈을 감지 못하는 탓이었다. 하지만 그라나다에서 나는 마침내 일을 저질렀다.
  • 북한 상류층 의생활 한눈에/미도파백화점

    ◎중국서 구입… 2천여점 전시/상계점서 1일부터 보름간 「북한여성들에게도 유행 패션은 있다」.지난 5월 귀순한 여금주양(21)은 북한사회에서 선택받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평양의 경우 좁고 긴치마를 입거나 머리를 길게 기르는 등 그 사회에서의 유행첨단을 걷는 젊은 여성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미도파백화점은 8월1일부터 15일까지 보름동안 서울 상계점 8층 마들플라자에서 북한주민들의 의생활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북한 의생활 및 복제전시회」를 개최키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통일원 후원의 이 「북한 의복전」에는 남녀 성인의류 아동복 제복 잡화등 모두 2천여점이 선보이며 이들은 평양제1백화점에서 판매되거나 실제 주민들이 입던 옷이 대부분.중국어주하며 북한국경지역을 자유로이 드나드는 조선족 보따리장수들을 통해 구입했다고 백화점측은 설명했다. 미도파 백화점측은 또 『검정치마 흰저고리로만 인식돼 있는 북한의 의생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소수지만 상류층이 입고 있는 다양한 옷 등을 소개함으로써 국민들이 북한의 현상황을 점칠 수 있도록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전시가 끝나면 전시품들은 모두 통일원측에 기증돼 통일전망대등에 재 전시할 예정이다.
  • 평양시내 40㎞ 운구… 2백만 광적 애도/김일성 장례식 이모저모

    ◎곳곳 전군 수십대 배치… 경비 대폭 강화/김성애·평일모자 TV서 모습 안보여 김일성의 장례식은2백여만명에 이르는 평양주민들의 광적인 애도 속에 치러졌다고 북한 방송들이 보도. 이날 상오 10시께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의사당(주석궁)을 출발한 운구행렬은 금성거리∼영웅거리∼보통문∼천리마거리∼통일거리∼옥류교∼김일성광장 등 평양시 일원의 40㎞의 시가지를 지나 주석궁으로 되돌아가 영구는 다시 이곳에 안치됐다.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이날 릴레이식 녹음중계로 사이사이 조곡을 내보내면서 운구행렬이 지나는 연도의 근로자와 군인 및 학생들의 울부짖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도. 남녀 아나운서들은 『하늘과도 같고 태양과도 같은 수령님,우리들의 효도를 받지 못하고 그렇게 간단 말입니까』라며 울음을 터뜨려 말끝을 제대로 잇지 못하기도. 이날 영결식에는 오진우인민무력부장,강성산정무원총리,이종옥·박성철·김영주·김병식부주석,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 등 장의위원 전원이 참석,김정일의 건재를 과시. 김일성의 시신이우리의 장례풍속과는 달리 다시 주석궁에 되돌아옴으로써 특수처리된 그의 시신은 영구보존될 것으로 관측됐다. ○…북한은 이날 장례식 식순과 운구행렬의 코스는 물론 장지까지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으며 해외홍보 TV용 장례장면도 검열을 거쳐 하오 3시가 넘어서야 첫송출. 이와 관련,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이날 『운구행렬에 사용된 관이 주석궁에서 김일성 시신을 담고 있던 수정관이 아닌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 ○…운구되기에 앞서 수정관 속에 안치된 김일성의 시신앞에는 공화국영웅메달과 노력영웅메달등 생전에 그가 받은 각종 훈장과 메달들이 놓여있었고 시신옆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 명의의 화환이 배치. 김정일은 당정군간부들을 대동한채 식장에 들어서 곧바로 김일성시신앞으로 가 조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참배.이 순간 엄숙히 서있던 참석자들은 큰 슬픔과 비애에 젖어 가슴을 저미며 흐느꼈다고 북한TV가 보도했으나 김성애·김평일 모자의 얼굴은 끝내 비치지 않아 주목. ○…김일성 영구가 평양시내 주요 시가지를 지나는 동안 연도에는 주민들이 몰려나와 『수령님 못 가십니다』를 외치며 길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대성통곡했다고 북한방송들이 보도. “인민의 심장속 영생” ○…북한방송들은 이날 중계방송을 마치며 『김일성 수령의 심장은 비록 고동을 멈추었으나 수령은 인민들의 심장속에 영생할 것』이라며 앞으로 김정일을 혁명무력의 최고지도자로 받들어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수할 것이라고 강조. 또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 「당신만 있으면 우리는 이긴다」를 비롯한 김정일 찬양가요를 집중적으로 방송해 영결식 시작전 조곡 일변도의 애도분위기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목. ○…미국 CCN방송은 이날 하오 북한방송국이 그들의 의도대로 촬영,편집한 녹화실황을 장시간에 걸쳐 방송. CNN방송에 따르면 영결식을 마친 뒤 김주석의 시신이 들어있는 검은 관은 붉은 천으로 절반이 덮인 채 흰꽃으로 지붕을 단장한 검은 리무진 위에 놓여 출발. 운구행렬이 김정일의 배웅과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주석궁 정문을 빠져나가자 국가장의위원 등 상당수의 북한 당정군 고위 간부들은 손으로 눈물을 닦기도. ○…북한은 김일성의 장례식을 앞두고 경비강화를 위해 지난 17일까지 평양시내 요소요소에 전차를 배치했다고 일본 요미우리(독매)신문이 한국 정부소식통을 인용해 19일 보도. ○…운구행렬의 길 양쪽으로는 평양교외및 지방에서 올라온 시민들이 늘어서 통곡하면서 애도하는 모습들. 한 외교관은 광장곳곳에 종이조각들이 너저분하게 흩어져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운구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이곳에서 밤을 지샌 것같다고 전언. ○…김일성의 장례식은 거창하게 치러질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을 뒤엎었다. 평양에서 취재활동을 하고 있는 한 중국기자는 서울신문 북경지국과의 전화통화에서 『오늘 영결식은 주석궁을 출발한 운구차량이 천리마거리와 창광거리를 거쳐 김일성광장까지 간 후 다시 주석궁으로 되돌아오는게 전부였다고 전언. ◎단동·연길·도문서 본 북표정/북상사원 「조문귀국」 차량 이어져/“TV속 김정일 다리 절고 있었다” 김일성주석의 영결식인 19일 요란한 평양의 추도분위기와는 달리 단동·연길·도문등에 머무르고 있는 상사원등 북한의 요원등은 조용한 가운데 북한직영 음식점 등에 모여 자체 추도식을 갖고 업무를 준비하는등 정상을 되찾아가는 모습. 또 평양·회령 등에 있는 북한의 국영상사들도 전화나 팩시밀리를 통해 중국측 무역담당자들과 중단된 무역업무를 논의하는등 사실상 업무를 재개. 단동에서 북한과 무역업무를 해온 김모씨(42·단동시 신안가)는 『22일 북에서 사람이 나와 철강재 등을 인도해 주겠다고 전화로 통보해 왔다』고 전언. 단동시와 연길시에 남아있는 국가상업부소속 협동무역회사·고려무역회사 직원들도 19일 『그간 무역이 이뤄지지 못해 안됐다.내일부터 사업을 다시 논의하자』고 정상적인 무역활동 재개를 중국측 상대방에 통보.도문에 무역사무실을 두고 있는 한 조선족 무역업자도 북한의 거래업체(국가직영)에서 21일부터 정상업무를 재개하며 사업논의를 위해 22일쯤 상담원들을 파견하겠다고 전해왔다고 설명. 단동시 중국국제여행사 양기선 부경이도 『북한측이 김주석사망 이후 단절됐던 단동∼평양간 단체여행코스의 재개를 통보해 왔으며 여행단의 입북도 이미 허가했다』며 『오는 24∼25일쯤부터 2백∼5백명에 이르는 대규모 관광단의 입북이 순차적으로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썰렁한 신의주쪽 모습과는 달리 신의주가 내려다보이는 단동시의 압록강공원과 철교에는 쌍안경을 이용해 북한쪽을 살피는 여행객들로 만원.또 압록강을 오르내리는 중국측 유람선도 관광객들의 요구에 따라 신의주쪽에 다가서서 항해하는 모습. 한편 단동과 도문등 북한과의 접경지대에서는 북한의 중앙TV를 시청한 조선족들이 이날 영결식장에 나타난 김정일이 약간 저는등 거동이 불편한 모습이었다며 김정일의 와병설에 관심을 기울이는 표정.
  • 이스탄불/처녀의 탑(아랍서 지중해까지:8)

    ◎바다위 돌탑… 안개에 싸여 “섬뜩”/아테네때 조망대로 건립… 콘스탄티누스대제의 딸이 뱀에 물려죽은 전설 간직 이스탄불의 서안에 있는 돌마바체궁전 앞에서 그 탑을 처음 보았을 때 마음이 이상하게 섬뜩했다.탑은 이스탄불의 동안인 위스퀴다르지역의 바다 한가운데 희뿌연 안개를 휘감고 솟아 있었다. 궁전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의 설명에 의하면 터키말로 「KizKulesi·처녀의 탑」으로 불리는 그 탑은 본래 아테네의 알키비아데스에 의해 살라케해안의 조망대로 세워졌으나 1857년이후 지금까지는 등대로 이용되어왔다고 한다.하지만 그 설명은 내 마음을 스친 섬뜩한 신비감과는 무관한 듯했다. 그뒤 탑은 두번다시 내 앞에 자태를 드러내지 않았다.마치 바닷속으로 자취를 감춘 듯. 우리가 탁심거리의 패스트푸드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이 도시에 와서 무기같은 것이 내 속에서 깨어나는 것을 느껴요.저것이 눈앞에 보이는 것인가 하고 보노라면,그 너머에서 또다른 환영이 어른거려요.시공의 음영속으로 마음이 휙휙 감기는 기분이랄까」 내 얘기는 일행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사실 내 얘기는 주변분위기와 아주 동떨어진 것이었다. ○1백40년간 등대로 터키의 젊은 남녀들은 튀김닭이나 감자칩을 씹으며 콜라컵에 꽂힌 스트로를 빨면서 미국팝송에 맞추어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창밖으로 붉은 색의 이층버스와 노란색의 택시들이 줄지어 지나다녔고,어느 빌딩의 외벽에 설치된 실물모양의 대형넥타이는 이제 이스탄불이 더이상 코란을 정신적 지주로 삼지 않는다는 전시같았다(물론 지금도 이슬람은 여러 민족의 피가 뒤섞인 터키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유일한 동질성이다). 케말 아타튀르크는 연합군으로부터 자주권을 챙취한 뒤 서구화에 박차를 가했다.그는 이슬람계파에게 재갈을 물린 반면 라틴알파벳의 표기를 의무화했고,여성들에게 피선거권을 부여했다. 케말이 사망한 지 56년이 지난 오늘 대부분의 터키국민들은 그가 회교정통파들에게 맞서 자본주의경제이념을 받아들임으로써 터키의 경제사정이 다소나마 나아졌다고 믿고 있었다. 「돈이 조금 더 많아지면 그만큼 생활이나아지는 것이다」 대낮에도 탁심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그러나 정작 상점안에는 주인들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엘레신호텔의 수납일을 보는 타신씨에 의하면 최근들어 이스탄불을 찾는 관광객이 급격히 줄어들어 불경기라고 했다.쿠르드족의 폭탄테러로 3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뉴스 때문이다. 로터리에 옹기종기 모여 서 있는 젊은이중 한 사람에게 테이프가게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친절하게 안내까지 해주고 나서 양품점의 상호가 찍힌 카드를 내밀었다.필요하면 연락해달라고 사뭇 신사답게 돌아선 그가,일행들이 터키의 민속음악테이프를 고르는 꽤 긴 시간 상점앞에 서 있었다. 탁심거리를 메운 인파중에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 시골청년이라고 한다.말쑥하게 차려입은 그들은 두리번거리며 관광객을 찾고 있었다.상점에 손님을 끌어다주고 받는 약간의 돈이 그들의 벌이였다. 이 거리에서 고도 이스탄불의 자취를 느끼게 하는 것은 협궤를 오가는 백년 나이의 전차뿐이었다. 그런데카데시로 불리는 전찻길주변으로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어느 샛길에서 「처녀의 탑」이 돌연 우리 앞에 나타났다. ○탁심가 인파 가득 저녁식사후 영화칼럼을 쓰는 L씨의 제의로 터키영화를 보기로 했다.영화관을 찾는 일은 마치 미로를 더듬는거나 다름없었다.길을 묻고 또 물어 골목 깊숙이 파묻혀 있는 영화관에 찾아가보기를 서너차례,그렇게 어렵게 찾아간 영화관에서는 「필라델피아」 「피아노」 「쉰들러 리스트」같은 미국영화 일색이었다.그중에 아무거나 한 편을 보아도 좋으련만 L씨는 한사코 터키영화여야 한다고 우겼다. 길도 꼬불꼬불,L씨의 막무가내의 고집까지도 가세해 선자리가 어딘지 알 수 없는 깊숙한 미로 한복판… 언제부턴가 영화간판들,불이 환하게 밝혀진 텅빈 로비,행인들이 주고받는 이방의 언어,어둠속에서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고양이들이 실제이면서 환영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생시가 아니라 꿈속 같다.나의 몽롱한 의식속으로 한 남자가 푸른 물길 저편에서 노란 노를 저어오고 있었다.그는 자주빛 소파에 앉은 채로 노를저어왔다.나는 그 괴상한 포스터 앞에서 한동안 발이 묶여 있었다.내 의식은 그가 노를 저어오는 푸른 물빛으로 물들었다. 블루,블루,여기는 어디일까.그로부터 얼마 뒤였다.우리가 여러번 지나친 골목 한가운데서 짙은 블루 색조의 영화포스터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Kiz Kulesiasi klari(처녀의 탑으로)」 농염한 키스신을 클로즈업시킨 그 영화의 제목이었다. 갈라타다리를 건너거나 해안을 지나칠 때마다 줄곧 찾아도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린 듯 다시는 나타나지 않던 탑. 그럴 법했다.그것은 미로 깊숙한 데서 길을 잃어버릴 때만 나타나는 전설이었다. 콘스탄틴대제에게는 몹시 사랑하는 딸이 하나 있었다.왕은 그 딸이 뱀에게 물려 죽게 된다는 얘길 듣고 딸을 탑으로 피신시켰다.왕은 그 탑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므로 뱀이 접근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그러나 뭍에서 가져간 과일바구니 속에 숨어 있던 뱀이 물어 공주는 목숨을 잃었다. 오스만시대에 나무로 재건축된 이 탑은 화재로 타버린 뒤 아메드3세때 돌로 다시 복구되었다. 영화관안은 물이 가득 찬 수조를 연상시켰다.커튼도,의자도,바닥도 모두 청색이었다.아들의 부축을 받고 머리 흰 노인이 천천히,아주 천천히 푸른 통로 사이로 걸어왔다.관객은 열 사람 남짓했다. 청색커튼이 미끄러지듯 양쪽으로 갈라지며 하얀 스크린이 나타났다.바깥세계와 전혀 다른 시간이 열린 것이다.40대의 남자가 거룻배를 타고 등대로 가고 있다.바다에는 비바람이 불어 파도가 뱃전을 때린다.남자는 오래된 탑의 모형을 소중하게 들고 있다.사공이 남자를 등대에 내려주고 뭍으로 돌아간다.남자는 등대꼭대기에 있는 어느 방으로 들어간다.오래전부터 비어 있은 듯 그 방에 있는 모든 것 위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다.녹이 슨 철침대,침대옆 벽에 걸려 있는 등대지기의 제복·모자,침대아래 놓여 있는 신발·벽거울·책상과 걸상… 모든 것이 등대지기가 살아 있을 때 그대로다. 남자는 모형을 책상위에 내려놓고 서랍을 열어본다.오래전 날짜의 소인이 찍힌 엽서 한장과 일기장. 남자가 일기장을 펼치자 내레이션이 깔린다(터키말이므로 뜻을 알 수 없다.그러나짐작컨대 그의 딸에 관한 얘기인듯).남자는 일기장을 반쯤 읽다 말고 자기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본다.거울에 나타난 얼굴은 그가 아니라 오래전에 사망한 등대지기다.두려움에 사로잡힌 채로 남자는 등대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는 등대지기의 환영을 계속 뒤쫓는다.환영을 쫓는 사이 남자는 환생한 등대지기로 바뀐다. ○오스만때 재건축 그러자 그의 발길은 저절로 탑의 구석에 있는 하나의 방으로 이끌려간다.그 방의 문에는 녹슨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자물쇠를 부수고 남자는 안으로 들어간다.그 방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기미가 역력하다.푸른 시트가 덮여 있는 커다란 침대,촛농이 흐른 두개의 촛대,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그림.나신의 처녀가 횃불을 높이 쳐들고 어두운 바다를 비추고 있는데,나신의 남자가 등대를 향해 기를 쓰고 헤엄쳐가고 있다. 뭍에서는 등대지기의 딸이 어머니 몰래 집을 나와 거룻배를 타고 등대로 간다.그녀는 등대로 올라서자 횃불을 켜들고 바다를 비춘다.마치 남자가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남자는 바다를 헤엄쳐 등대에 이르러 그녀의 방으로 들어간다.처녀는 이전에 그래왔듯이 촛대에 불을 붙인다. 딸과 아버지의 정사. 등대지기의 제복을 입고 남자는 집(등대지기집)으로 돌아간다.그의 아내가 남편의 옷을 벗기고 목욕을 시키다가 분통을 터뜨린다.집을 나가서 그동안 무얼 하다가 이제서야 돌아오느냐고.아내는 분을 참지 못해 뜨거운 물 한바가지를 그의 국부에다 끼얹는다. 그후에도 두 사람은 등대에서 만나 정사를 계속한다.어느날 딸에게 생긴 남자 때문에 둘은 심하게 다투던중 촛불을 쓰러뜨려 방이 불에 탄다. 등대는 그후부터 어둠에 잠기고 다시는 불을 밝히지 않는 등대가 된다. 청색커튼이 열릴 때처럼 그렇게 천천히 일마즈 귀니감독의 이름 위로 닫혔다.
  • 피서철 어린이 고무신 인기/물에서 마음껏 뛰놀수 있고 실용적

    「그때를 아십니까」.60·70년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다 가죽구두와 운동화에 밀려 사라져 버린 고무신이 최근 일고 있는 갖가지 우리 것 찾기와 신토불이 움직임속에서 도시의 유치원생을 비롯한 유아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아이들이 신고 있으면 앙증맞으면서 친근감을 주는 고무신은 본격 장마철과 피서철로 접어든 요즘 유치원의 유아캠프준비물 목록에 포함되는등 수요가 늘고 있다. 색상도 검정·흰색외에 보라·파란색및오팔과 같은 무지개 광택이 나는 것등으로 다양해지고 앞코가 오똑해 불편한 여아용 고무신 보다 신고 벗기에 편한 뭉툭한 남아 고무신이 더 사랑받고있다. 이같은 고무신의 유행은「가난하기 때문에 값싼 신발을 사준다」는 부끄러운 의식을 전혀 가질 이유가 없이 경제적으로 풍족한 요즘 젊은 부모들의 소박한 아이멋내기소품으로 애용된다는 분석이다. 15,16일 유아원의 여름캠프때 준비품으로 고무신을 포함시킨 서울 강남구 개포동 신양유치원 원장 조원희씨는 『잘 벗겨지는 슬리퍼나 물에 젖기 쉬운 운동화보다 계곡등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놀기에는 고무신이 실용적이며 발도 다치지 않아 준비물에 넣었다』고 말했다.신체균형을 잡기 힘든 어린아이들이 슬리퍼를 신고 뛰어놀다 한발로 다른발의 슬리퍼 뒷부분을 밟아 넘어지는 등의 사고를 예방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아들(6)딸(4)에게 각각 검정·흰 고무신을 사줬다는 임성숙씨(32·서울 마포구 연남동)는『어렸을때의 시골생활이 떠올라 정감도 있는데다 아이들이 편하게 신고 노는 것같아 좋다』고 말한다.아이들이 신다 작아진 고무신을 깨끗히 씻어서 진열장에 두고 추억이 깃든 인테리어 용품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 북 에너지·식량난 심각/주체경제 “깜깜”

    ◎이란·러시아,원유공급 중단… 중국만 유지/공장가동 40%대로 “허덕”… 수송난 이어져/무역규모 절반으로… 석유 사들일 외화 바닥 『당이 내놓은 혁명적 전략이 구현되면,모든 사람이 흰 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려는 인민의 세기적 숙망이 빛나게 실현된다』 의·식·주 문제로 북한에서 주민소요가 잇따르자 북한 노동당은 지난 4월 6일 열린 최고 인민회의 9기 7차 회의에서 이같은 비전을 제시했다.국가 최고 의결기구인 최고 인민회의에서도 쌀밥과 고기국이 거론될 정도로 북한의 경제상황은 어렵다. 식량을 수입하려 해도 외화가 없다.에너지 부족으로 절반 이상의 공장이 문을 닫았다.외채부담은 위험수위를 넘긴지 이미 오래이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85∼89년 평균 5백10만t이었으나 농민들의 생산의욕 감퇴·영농자재의 부족 등으로 90년 4백81만t,91년 4백42만t,92년 4백26만t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배급식량 3백50g 이를 메우기 위해 91년 1백30만t,92년 83만t을 수입했으나 절대부족량은 91년 35만t,92년 1백24만t,93년 1백50만t(추정)으로 늘고 있다.이 때문에 92년의 주민 1인당 배급량은 성인이 하루 필요로 하는 6백∼6백50g의 절반 밖에 안 되고,노약자(3백g)와 엇비슷한 3백50g에 불과했다. 동구권 붕괴 이후 무역규모가 절반으로 떨어져 외화란도 극심하다.중국과 러시아가 원유 등 주요 물자를 국제가격의 절반으로 공급하던 「우호가격」이 사라지고,경화결제를 요구하고 있어 어려움은 더욱 크다.당·정·군이 각기 외화벌이 사업을 펼치는 등 원시적인 「외화돌격대」까지 운영하고 있으나 연체된 이자마저 갚지 못한다. ○대외신용 백17위로 92년의 외채 총액은 97억달러로 국민총생산(GNP) 대비 46%에 달한다.국제기구에서 규정한 위험 수준 (40%)을 훨씬 웃돈다.따라서 대외신용도는 세계 1백19개국 중 1백17위이다.지난 84년 합영법 제정 이후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합영·합작기업을 1백여개 설립했으나 절반 정도(대부분 조총련계 투자)만 간신히 공장을 돌리고 있을 뿐이다. 2년 전 북한을 방문했던 남한의 한 기업인은 식량1억달러와 원유 1억달러어치만 있으면 북한을 당장의 위기에서 구출할 것 같다는 보고서를 관계당국에 냈었다.거꾸로 말하면 2억달러가 없어 위기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2백억 없어 위기” 에너지란도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중국만 변함없이 북한에 매년 1백10만t의 원유를 공급하고 있을 뿐이며 이란이나 러시아로부터의 공급은 92년부터 거의 끊긴 상태이다. 원유 수입량은 90년 2백52만t에서 91년 1백89만t,92년 1백52만t으로 급격히 줄고 있다.92년에 도입된 1백52만t은 북한의 정제능력(승리화학 2백만t,봉화학공장 1백50만t) 3백50만t의 43.4%에 불과하다. 기름부족은 제한송전을 불러일으키고 또다시 공장가동률 저하(93년 40%로 추정) 및 수송난 등으로 이어져 92년 8월부터는 북한주재 외교관에게 매월 배급하는 유류를 종전 1백51ℓ에서 12.5ℓ로 줄였다. ○군사비비중 늘어나 이처럼 어려운 데도 1인당 군사비부담은 90년 2백28달러에서 91년 2백32달러,92년 2백48달러로 해마다 커진다.1인당 GNP의 26%를 군사비에 쏟아붓는 셈이다. 「주체」경제의 실상은 비참하다.
  • 조선왕조때도 없던 일이…/「울음바다 평양」을 보며/이문구

    북녘 김형에게 계속되는 불볕 더위에다 북한 주민들의 딱한 모습까지 겹친 요즈음 얼마나 답답하십니까.하지만 저도 답답한 심정을 이기지 못하여 붓을 들었으니 양해 해 주시기 바랍니다. 따지고 보면 김일성의 사망이야 말로 그리 뜻밖의 일도 놀라운 일도 아닐 뿐 아니라 아쉽고 섭섭한 일도 아니었습니다.살만큼 살다가 갈 때가 되어서 간것 뿐이니까요.더욱이 향년 여든둘은 누가 뭐래도 호상이 아닐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물론 이쪽에서도 그의 죽음에 일말의 아쉬움을 느낀 사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요.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처럼 합의를 봤던 남북 정상회담이 무산된 데에 대한 아쉬움,다시 말하면 「죽으려면 일찌감치 죽든지 아니면 좀더 있다가 정상회담이나 하고 죽든지」했어야 옳다는 평론적인 여운이 흐른 것 뿐이었고,지상의 약속보다 지하의 예약에 따라 영결종천 할 수 밖에 없었던 인생의 한계 내지 일종의 자연현상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쪽 사람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저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느닷없이 왠 기미년(1919년)고종황제의 인산장면이 다나오나 하고 착각을 했었습니다.흰저고리와 검정치마가 그렇고 남녀노소 없이 땅바닥에 부복하여 호천고지하는 호곡이 그러했습니다.그렇지만 그것은 소년소녀의 붉은 목도리와 그네들 앞에 버티고 선 것이 대한문이 아닌 높이 36m짜리 황금칠을 한 만수대 언덕의 김일성 동상이었기에 역사책에서 본 제국시대의 흑백사진이 아니라는 것을 이내 알 수가 있었습니다.한결같이 체통도 없이 인사불성이 되어 가슴을 쥐어뜯거나 이마를 땅에 짓찧어가며 몸부림치고 울부짖는 꼴도 또한 황제의 인산에 없는 장면이었습니다.따라서 저 사람들도 과연 김씨 이씨 박씨 정씨 최씨 등 2백49성의 하나로 이쪽 사람들과 똑 같이 김치하고 밥먹는 한 동포란 말인가 하고 의심하기에 모자람이 없었습니다.그들의 본적지가 모두 김일성과 같이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의 만경대라고 하더라도 그토록이나 낯선 몰골로 일사불란하게 발작하여 실성할 수가 있을까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우리에 갇혀살면서 「당신이없으면 우리도 없다」는 「주체성 없는」구호가 입에 발리도록 주체사상 교육으로 세뇌당한 49년 세월을 접어 생각하면 이해를 못할 바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주체사상 교육의 본질이 저마다 타고난 주체성을 제거하고 객체성으로 대체해 우상에 대한 종속물로 처리함과 아울러 집단적인 성형수술을 겸행하여 얼굴없는 인간으로 개조함에 있었으니,오늘날의 집단적인 히스테리야말로 주체사상 교육의 성공적인 결과라고 할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당신만 있으면 우리도 이긴다」고 받들어온 김정일의 재산상속을 기정사실화 하고 「슬픔을 힘으로 바꾸어 또다른 한 분의 탁월한 수령으로 오늘의 비통을 용기로 바꾸자」는 구호를 제창하게 된 것도 주체사상 교육을 가장한 「객체사상 교육」의 성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쪽도 갑자기 초상난 집에 상주가 어리석거나 줏대가 없으면 으레 집안싸움이 일어나기 십상입니다.하물며 그쪽에서 졸지에 신을 잃은 사람들의 허망과 허탈감인즉 오죽하겠습니까.쑤셔놓은 벌집이 따로 없을 것입니다. 짐짓 꿀벌의사회를 생각해 봅니다.꿀법이 새 여왕벌의 등장과 함께 분봉할 때는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습니다.외부의 자극을 받아 흥분하면 주인도 못 알아보고 덤비는 것이 꿀벌의 자기방어 본능입니다.그러나 일부러 자극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그럭저럭 자리를 잡아 여왕벌을 비롯하여 수벌과 일벌도 조용히 제 일에 매달리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구태여 고종황제 인산 때의 조문객이 만세운동으로 돌아섰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없을 줄 압니다.동해와 서해에 새로운 「보트 피플」의 출현도 바라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분봉이 안정되면 꿀을 물어나르듯이 그쪽 나름의 개방과 개혁을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 심근경색증/김일성 돌연사 계기 발병원인·예방책을 알아보면

    ◎흡연·고혈압·콜레스테롤이 주범/하루 담배 1갑 피면 위험률 2배 높아져/발병땐 30%가 급사… 운동·식사요법이 최선 북한당국이 김일성주석의 직접적 사인으로 밝힌 심근경색증은 흡연,고혈압,콜레스테롤이 3대 주범으로 꼽히며 이밖에 비만,스트레스,운동부족등도 주요 요인으로 알려지고 있다.심장전문의들은 심근경색증이 일단 발병하면 환자3명당 1명꼴로 응급실에 도착 전 사망할 만큼 급사율이 높기 때문에 예방이 최선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연세대의대 조승연교수(심장혈관센터)는 『평소 흡연,고혈압,콜레스테롤만 피할 경우 심근경색은 거의 1백%까지 막을 수 있다』면서 실제로 이들 3대 위험인자 뿐만 아니라 비만이나 스트레스등도 사전에 얼마든지 예방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흡연은 심근경색증의 으뜸 요인.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에 담배를 1갑 피우는 사람이 비흡연자에 비해 심근경색의 위험성이 2배 이상,하루에 2∼3갑 피우는 사람은 3배이상 높아진다고 경고하고 있다.또 흡연자에게 심근경색이 생겼을 경우 비흡연자에 비해 소생가능성도 떨어진다.이밖에 심근경색이 유발된 이후에도 계속 흡연할 경우 2번째 심근경색이 생길 확률이 훨씬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의 경우 한림의대 춘천성심병원 가정의학과팀이 지난 91년 1월부터 93년 9월까지 급성심근경색증환자 3백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흡연자가 비흡연자보다 심근경색 발병위험이 3.4배 높게 나타났다.특히 담배를 하루 1갑 피우는 사람은 그 미만인 경우보다 발병율이 2.2배 높은 것으로 드러나 WHO의 연구결과를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들어 중장년층사이에 심근경색증 환자가 급증하는 것은 고콜레스테롤때문이라는게 전문의들의 일치된 견해이다.고콜레스테롤은 영양과잉,특히 동물성식품의 과다한 섭취에서 원인을 찾을수 있다. 가톨릭의대 김철민교수(순환기내과)는 『정상인의 이상적인 혈중 콜레스테롤치는 2백㎎/㎗』이라고 전제,『2백∼2백39㎎/㎗인 경우 심근경색증의 위험이 2배 높아진다』고 경고했다.그는 또 콜레스테롤치가 2백40㎎/㎗ 이상이면 극히 위험한 상태이므로 20세 이후에는 적어도 5년마다정기 검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콜레스테롤을 줄이는데는 약물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식사요법.가급적 동물성 식품을 피하고 운동을 하면 효과적이다.콜레스테롤이 많은 동물성 식품은 육류나 유제품을 비롯해 계란노른자위,간·췌장·콩팥등의 동물장기,새우나 굴,소시지나 핫도그등의 가공된 고기,오리·거위고기등.특히 붉은색을 띤 고기는 동맥경화를 촉진하는 대신 닭가슴살,돼지 흰살등 흰고기는 비교적 고콜레스테롤의 위험이 낮다.또 닭 껍질은 먹지 말고 전유로 만든 유제품 보다 저지방탈지 유제품을 섭취하는게 바람직하다.이와달리 땅콩등의 콩류,과일,야채,호도등은 단백질이 풍부하면서도 콜레스테롤이 낮은 식품이다. 이밖에 서울대의대 서정돈교수(순환기내과)는 심근경색증의 또다른 주범으로 비만에서 오는 고혈압을 들었다.즉 국민의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남녀노소 없이 비만인이 늘고 있고,비만은 고혈압을 유도하며 이는 다시 동맥경화를 일으켜 심장으로 향하는 피가 굳거나 제대로 흐르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심근경색을 부른다는지적이다. 그는 『50세의 남자의 경우 수축기혈압이 1백60이고 콜레스테롤이 2백50이면 앞으로 6년동안 심근경색에 걸릴 위험이 정상인보다 10.8배 높다』는 미연구결과를 인용,『중장년층은 이들 위험인자와 과로·스트레스를 조심하면서 1년에 1회이상 심전도검사를 받을 것』을 권고했다.
  • 강수연의 뇌쇄적 OB광고 주부들 하소연

    ◎요염한 모습… “남편 자극받을까 걱정”/“예쁜것도 죄인가”… 새광고 제작 돌입 『예쁜 것도 죄인가』. 동양맥주의 「OB 아이스」 맥주 광고에 출연하고 있는 영화배우 강수연이 「곤혹」(?)을 치르고 있다. 강수연은 현재 「아이스」의 TV광고에 출연하면서 섹시한 미모와 매혹적인 목소리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술 한잔의 유혹」을 하고 있다. 문제는 밤 10시이후의 심야에 나오는 강수연의 뇌쇄적인 광고에 대해 젊잖은 주부들의 항의가 방송사와 OB측에 빗발치고 있다는 것이다. 주부들의 하소연 내용은 대부분 『너무나 섹시하고 예쁘다』는 것이다.여기에 『저렇게 요염한 여자가 술을 권하니 남편들이 어떻게 넘어가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는 호소어린 항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은은한 흑백의 화면속에서 어깨가 들어나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눈 웃음을 치며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은 주부들로 하여금 옆에 있는 남편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게 할만큼 「뇌쇄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있는」 하소연에 때문에 「너무나 효과있는 광고」를 만들어 낸 OB측은 고민 끝에 광고를 새로 제작해서 내보내기로 했다. OB측은 어차피 오랫동안 내보낼 광고가 아니고 계절에 따라 변화를 시도해야할 바에는 남편의 술 취향과 브랜드 선택에 영향력이 큰 주부들의 하소연(?)을 전적으로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OB맥주측은 현재 나가고 있는 강수연의 섹스어필하는 광고는 7월 정도로 끝내고 8월부터는 강수연을 전혀 다른 이미지로 분장시켜 선보일 계획이다. 새로운 광고에서 강수연은 검정 안경을 쓰는 등 지성적이고 보다 「일상적」인 분위기의 여성으로 변신할 것으로 보인다.젊잖은 주부들에게도 친근하고 30∼40대 가장들에게도 환영을 받으며 미혼 남성들에게도 친근한 이웃집 아가씨의 분위기를 연출하기위한 것이다. 이 광고를 위해 OB측은 광고대행사를 통해 유럽등에서 광고제작에 한창이다. 조선맥주의 「하이트」와 치열한 광고전쟁을 벌이고 있는 OB측이 이번에는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광고를 내놓아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게될지 기대된다.
  • 이스탄불/보스포루스 해협(아랍서 지중해까지:7)

    ◎동·서양 분기점… 이질문화 한품속에/이스탄불시를 양분… 기독·이슬람교 격전의 역사 간직 보스포루스. 탁한 암록색 물빛의 길이 30㎞,폭 0.6∼3㎞의 좁은 해협,그것은 바다라기보다 강에 가깝다.어원을 보더라도 Bous(ox:황소) Poros(ford:여울),황소여울이다. 제우스와 여사제 이오(IO)는 연인사이다.아내 헤라의 집요한 추적을 비켜나보려고 제우스는 이오를 황소로 변하게 한다.헤라는 그 사실까지도 눈치채고 등에를 이용하여 황소로 변한 이오를 괴롭힌다.황소는 괴로움에 못이겨 근처의 여울 속으로 뛰어드는데…이오가 몸을 던진 물이 바로 보스포루스다. 이 해협은 터키 최대의 도시인 이스탄불을 동양과 서양으로 갈라놓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을 분할하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한 도시가 동양과 서양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동양과 서양이라는 대칭적 이질문화를 하나의 품속에 끌어안고 있는 이스탄불은 어떤 도시일까? 이스탄불에 도착하자마자 떠오르는 궁금증이 그것이었다.「내가 지금 아시아에 있는가,유럽에 있는가?」 지도를 입수함으로써 그 궁금증은 싱겁게 풀리는가 했는데…사실은 그게아니었다. ○부를 나르는 물길 보스포루스 서안 돌출부에 그리스의 메가리아인들이 비잔티움 도시를 세운 것은 BC660년이었다.그들은 집터를 정하기 전에 점술가에게 물어보았다.「눈먼 사람들이 사는 땅의 반대편에」라는 대답을 듣고,그들은 보스포루스 서안 일대를 탐사하던중,경관이 빼어난데도 불구하고 거주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아름다운 터를 발견했다.그때 해협 건너편 땅엔 마케도니아인들이 이미 부락을 이루어 살고 있었으므로,메가리아인들은 이렇게 풍광이 수려한 땅을 몰라본 저들이 바로 「눈먼 사람들」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따라서 자신들이 발견한 곳이 바로 점술가가 점지한 땅이라고 확신하며,그들은 도시를 세웠다. 그것이 바로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양과 서양이 나누어지게 된 시초였다. 그후 비잔티움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에게 점령되었다가 알렉산더대왕이 페르시아를 패퇴시켜(BC334)아나톨리아를 장악함으로써 다시 그리스의 영토로 귀속되었다.대왕의 사후,맹주들에 의해 통치되던 비잔티움은 BC278년 갈라티아인들의 공격에 무릎을 꿇었고,그뒤 마케도니아인들을 쳐부순 로마제국의 출현으로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황제 셉티무스는 비잔틴문화를 재건한다는 기치를 내세우고 도시를 둘러싼 성벽을 확장하고,소피아성당 주변과 도로를 정비했다.뒤이어 왕위를 계승한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고 새 수도의 이름을 콘스탄티노플ㅈ라 했다.황제는 트로이의 영화를 재현한다는 포부를 세우고 성벽을 서쪽으로 2.8㎞나 확장하고,자신이 그리스도교인임에도 이교도들의 사원을 보수하는 한편 소피아 성당을 대대적으로 넓혔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양과 서양이 격돌한 것은 14세기 중엽이었다.발칸에까지 진출하여 위세를 떨치던 오스만튀르크제국은 메흐메트 2세가 즉위한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이곳에 「이슬람교도가 많은 도시」라는 뜻의 이스탄불이란 새 이름을 붙였다. 그후 이스탄불은 오스만제국의 수도가 되어 이슬람문화권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19세기에 들어서 오스만제국이 쇠퇴함에 따라 이스탄불은 또다시 발칸을 둘러싼 열강들의 분쟁지가 되었다.1차 세계대전때 독일편이었던 터키는 패전후 1918년까지 연합군의 통제를 받던중,케말 아타튀르크의 혁명으로 새 공화국이 탄생되기에 이르렀다. 중앙아시아의 회교국가로서 자주권을 선언한 뒤에도 터키는 유럽공동체의 항구적인 회원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한국전쟁중에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했고,1952년에는 그들의 막강한 군사력 때문에 NATO의 회원국으로 영입되었다.냉전이 종식되자 터키는 걸프전때 연합전선을 펼쳤던 NATO로부터 차갑게 되면당했다. 보스포루스는 과거에도,오늘날에도 이스탄불과 터키에게 막대한 부를 실어다주는 푸른 물길이면서,동시에 그들의 역사앞에 항시 하나의 질문으로 존재해왔다. 「우리는 아시아에 속하는가,유럽에 속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보스포루스를 통과하는 여행자인 나에게까지도 역사와 무관한,정신의 뿌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자 확인으로,이스탄불을 떠날 때까지 마음속에서 맴돌았다.엘레신 호텔. 4월20일 이스탄불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열흘 남짓 뜨거운 사막에서 지내는 동안 증발되었던 마음의 물기가 일시에 되살아났다.여로의 쓸쓸함,애달픔.몸이 으스스 떨리면서도 비릿한 비냄새,축축한 바람이 싫지 않았다. 차가 마르마라 해안에 있는 예쉴쿄이 국제공항을 벗어나 유럽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동안,나는 마음속으로 주머니를 불룩하게 만든 터키의 리라화를 가늠해보고 있었다.1달러에 2만9천리라,1백50달러에 4백35만리라.방금 떠나온 요르단 디나르화에 비해 끗수가 네자리나 더 많아진 것이다. ­이걸로 혹시 보스포루스 해협이 굽어보이는 언덕 어디쯤 오스만 시대에 지은 작은 집 한채 정도 살수 있지 않을까. ○구로동 골목 연상 그러나 차창 밖으로 휙휙 스쳐가는 노변풍경은 나를 황당한 공상에서 깨어나게 했다.겉만 말끔했지 상자곽처럼 보이는 저층의 아파트들,그 사이사이에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석탄더미,고철더미,그리고 산비탈에 빽빽이 들어찬 우중충한 가건물들.그것은 비잔티움이나 오스만이 연상시키는 고풍스런 우아함과는 거리가 아주 먼,어딘지…. 『여기는 서울의 구로동하고 흡사하군요』. 익살이었지만 S씨의 그 말은 활기찬 고도 이스탄불의 속얼굴,오늘의 터키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함축하고 있었다. 회교국들 중에서 최초의 여자 수상이 된 탄슈 칠레르는 취임과 동시에 터키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우리는 더이상 걷지 않을 것입니다.우리는 이제부터 뛰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이끄는 정부는 국내외로부터 밀려오는 거센 도전에 시달리고 있었다.인플레,일자리를 찾아 이스탄불·앙카라·이즈미르등 대도시로 밀려드는 유민들,구소련의 붕괴이후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웃 회교국들의 무력증강,10년이 넘도록 계속되어온 쿠르드족 분리주의자들과 게릴라전 등등. 아마도 우리는 3박4일의 짧은 일정에 쫓기는 여행자들로서는 이스탄불의 「구로동」을 이런 식으로 스쳐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터키인들이 게체콘두(밤에 지어졌다는 뜻.오스만법에는 밤에 짓기 시작해서 동틀때 완성된 집은 아무도 부술수 없다고도 함)라고 하는 그 집들은 이스탄불 중심가에서 불과 45분거리밖에 안되지만 관광객들이 흔히 지나다니는 길목으로부터 그 얼마나 먼 동네인가. 어느새 창변 풍경이 바뀌고 있었다.안개 자욱한 보스포루스 바다,갈매기떼의 환영을 받으며 항구로 입항하는 크고 작은 선박들,그 너머로 붉은 지붕에 흰 벽의 그리스풍 건물들,백양나무숲,돔과 미나레트들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스카이라인이 펼쳐졌다.가슴이 뛰기 시작했다.사해의 짜디짠 물맛이 이제는 꿈이 된 반면,꿈이었던 이스탄불이 현실이 된 것이다. 호텔 엘레신은 신시가 베이올루의 중심지인 탁심 뒷거리에 있었다.이웃에 있는 마르마라나 셰라톤 호텔에 비하면 작고 보잘것없는 시설을 갖춘 곳이었다. 숙박계를 쓰고 604호의 키를 받아든 순간이었다.이스탄불이라는 미지를 해독할 수 있는 최초의 사인.저울의 추처럼 생긴 키를 받아듦으로써 나는 마음을 스쳐간 환영의 무게를 손에 느꼈다.머나먼 장안에서 비단을 싣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타슈켄트,카라쿰,자그로스산맥을 넘어서 바그다드,그리고 마침내 이스탄불에 당도한 옛대상.동양과 서양,기독교문명권과 이슬람문명권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격돌의 현장.이곳의 이니셜은 저울과 추 일법했다. ○이니셜 “저울과 추” 짐을 방으로 옮겨주려고 로비에 나타난 포터.옛 술탄의 왕자같이 수려한 용모.아마도 그는 전생에서 너무나 놀고 지냈기 때문에 차생에서 남의 무거운 짐을 옮겨주는 일을 하게 되지나 않았는지? 원도어식의 자그마한 승강기가 음악을 싣고 내려왔다.허밍으로 멜로디를 쫓고 있는 사이에 승강기가 멈추었다.문을 열고 복도로 나오자,우리는 복도끝의 전면 거울속에 그림자처럼 담겨 있었다.갑자기 시간이 겹으로 느껴졌다.그리고 내 앞에 나타난 미지의 문.열려라,참깨! 짙은 청색 시트로 덮여있는 가지런한 트윈 침대,하얀 반투명 커튼,머리맡에 놓인 하얀 갓전등…창가로 가서 커튼을 열어본다.오래된 건물의 옥상에서 하얀 비둘기 한마리가 빗속을 가로질러 어디론지 날아간다.맞은편 건물의 지붕밑 방에는 오래전에 사람의 인적이 끊긴듯 책상과 의자 하나가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채 놓여있다.아니다.다시 보니 머리 까만 계집아이가 혼자서 마룻바닥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공깃돌 놀이를 하고있다.창밖엔 비가 내리고 있다. 꿈을 꾸는 것일까.분명히 몸은 여기 있는데,의식은 전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너 화장실에 좀 들어가봐.비눗곽이 참 예쁘다』 등 뒤에서 날아온 K의 목소리에,맞은편 건물의 빈 방에서 계집아이가 얼굴을 돌리고 이쪽을 바라본다.
  • 「오자와전략」 와해… 제2정계개편 가속/일 새연정 탄생배경과 전망

    ◎“어떻게든 정권잡고 보자” 자민 집념/자민분열·외교정책 달라 단명점쳐 일본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위원장이 새 총리로 선출됐다.사회당 출신 총리의 등장은 일본정치의 흐름이 일단 비군사적 국제공헌을 지향하는 호헌파 중심으로 바뀌게 됐음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다. 사회당 총리는 지난 47년 「가타야마 내각」 이후 전후 일본정치사에서 두번째이며 이번 총리선출을 계기로 자민당이 사실상 분열상태에 빠지는등 일본정국은 제2정계 개편으로 움직이고 있다. 무라야마 총리의 선출은 그러나 단순히 일본정치의 「사회당 시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무라야마정권은 전후 일본정치를 지배해왔던 자민당과 사회당의 연립정권이다.자민당 지도부는 총리후보로 고노 요헤이(하야양평) 총재 대신 무라야마 위원장을 옹립하기로 결정했으며 자민당의 지지를 배경으로 「무라야마 총리」가 탄생했다. 자민당 지도부가 무라야마 위원장을 지지하기로 결정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 신생당대표간사가 지배하는 연립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할수 있다. 오자와는 자민당 집행부 결정에 대항,가이후 도시키 전총리를 총리후보로 내세웠다. 가이후 전총리는 그러나 연립여당과 자민당 개혁파등의 지지를 받았으나 사회당내 중도·우파들의 지지까지는 얻지못해 패배했다.가이후 전총리의 패배는 그동안 일본정치의 막후 실력자로 군림하며 권력집중형 보수양당제로의 정계개편을 추진해왔던 오자와의 이른바 「오자와 전략」의 패배라 할수 있다. 오자와는 군사면을 포함,적극적인 국제공헌을 할수 있는 이른바 「보통국가」의 실현을 위한 정치구조를 지향하고 있다.그러나 「오자와 전략」이 일단 패배함으로써 일본정치는 사회당과 자민당의 호헌파,신당사키가케등을 중심으로한 비군사적 국제공헌을 지향하는 「비둘기파」세력이 정권전면에 나서게 됐다. 그러나 자민당과 사회당은 안보·외교등 기본적인 국가정책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정권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기도 한다.자민당은 특히 가이후 전총리를 지지한 개혁파들을 중심으로 탈당할 세력이 있을 것으로 보여 재분열 될 가능성이 있다.오자와는 이러한 과정에서 보수세력의 결집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라야마 정권의 등장으로 일본의 외교정책이 어떻게 변할지 주목된다.사회당내에는 미·일안보조약을 반대하는 세력도 있지만 미·일,한·일관계등 기본적인 외교정책에는 큰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다만 북한과의 관계가 보다 좋아질 가능성은 있다.◎일총리 올른 무라야마 누구/팔자 흰눈썹 인상적인 화합형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신임 일본총리는 일본 사회당 출신으로는 지난 47년 가타야마(편산)총리 이후 47년만에 처음으로 총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정치인. 지난 24년 3월 3일 규슈의 오이타(대분)현에서 어업을 하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고학으로 메이지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오이타시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향리에서 노조지도자로 일해왔다. 그는 지난 72년 중의원의원에 당선된 뒤 7선을 거듭해 왔으며 연금과 복지문제등을 중심으로 의정활동을 펴왔다. 그는오이타시 의원으로 출마할 때도 주위의 간곡한 권고로 출마했으며 지난해 국회대책위원장을 끝으로 정계를 은퇴하려 했으나 좌·우파의 추대로 야마하나위원장을 이어 사회당 위원장에 올랐다.그는 경력에서 보듯이 서민적인 풍모를 풍기는 대중정치인으로 화합에는 남다른 능력을 발휘했으며 이같은 성품이 위상이 약화되고 있는 사회당의 지도자로서 난세를 맞고 있는 일본 정국에서 총리에까지 오르도록 한 비결. 사회당내 온건좌파 그룹의 지도자인 그는 우파에 비해 다소 북한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부인 요시이에여사와의 사이에 1녀를 두고 있다.
  • 새는 다시 오는데…/김정(일요일 아침에)

    어설펐던 70년대 어설프게 서울이라는데서 살림을 시작한 사람들이라면 으레 겪기 마련이듯이 정붙이고 살 집을 찾을때까지 꽤 여러번 이사를 했다.이사의 횟수가 두자리수로 넘어갈 때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살 집을 찾던끝에 북한산 자락에 집을 정한게 80년대 끄트머리였다.집 자체 보다는 바라보기 좋은 산이 앞에 있어 굳이 택했던 집터가 알고보니 바로 공사장의 코앞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도시계획에 들어있었던 걸 전혀 모르고 산자락의 녹음과 새소리를 온통 내것 인줄 알고 지낸게 불과 3년이었다.그제서야 황황히 집을 팔고 떠난 사람의 미심쩍은 표정이며 내 분수에 과분하다 싶은 자연의 혜택이며가 다시 짚어 보아졌다. 이미 글렀다는 생각을 한자락 깔고서도 동사무소로,구청으로 도시계획의 정확한 내용을 알아보러 쫓아다녔다.그러나 아무도 정확한 내용은 일러주지 않고 계획단계일 뿐이라고 발뺌들을 했다.큰산을 가로질러 고가도로를 만들거라는 소문이 있는가하면 집앞 바로 2∼3m에서 길이 날거라는둥 소문은 무성한데 확실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그런 중에도 단지안의 주민들 태도는 두갈래였다. 나라에서 한다고 하면 당하는 수밖에 없다는 체념파와 설마 이런 큰 산을 헐어내고 그런 짓을 하겠느냐는 회의파가 그것이었다.그러나 그 두갈래 태도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일치하는 점 하나는 자신들이 나서서 어째보지는 않고 누가 나서면 뒤는 따라가는 시늉을 하겠다는 것이었다.난생 처음 탄원서라는 걸 써서 구청으로,건설본부로,심지어는 무섭다는 청와대까지 보내 보았다.답장은 한결 같았다.아직 확실한 계획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흐지부지 1년여가 지나는동안 아직 오지않은 일을 걱정하여 이미 주어진 것을 잃을 이유은 없다는 신통(?)한 생각을 해내고 주어진 것만이라도 적극적으로 누리기로 작정하였다.드물긴 해도 꿩도 날아오고 이름모르는 노란새 까만새들도 내려앉는 빈터에 빵부스러기나 잡곡들을 뿌려주면서도 작정했던대로 즐겨지지는 않고 슬며시 부아가 치미는 건 어쩔수가 없었다.이 새들은 다 어디로 가며 저 나무들은 다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조바심에약을 쳐 주느라고 거랬는지 그해에는 생전 본 적도 없는 벌떼들이 베란다 끝 바깥벽에 커다란 벌집까지 지어 놓았다.빨랫대에 흰 빨래를 탁탁 털어 널 수 있어 좋고,볕바른데 장독대를 내놓을 수 있어 좋고,비가 오면 산냄새가 나서 좋고 눈오면 나무 꼭대기의 눈이 좋다고 은근히 뽐내며 살던데 대한 벌이라도 내린건가?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의 어느날,단 하룻밤 사이에 소문도 없이 산위의 소나무들은 난데없이 뽑히고 불도저 소리가 요란했다.그제서야 여기저기 하소연한들 가는 정권은 가서 모르고 오는 정권은 새로 와서 모른다는 식이 되고 말았다. 우선 무엇보다도 끔찍한 일은 그렇게 푸르고 다정한 산의 이마를 함지박 파내듯 들어낸다는 사실이었다.교통체증을 줄이기 위한 도로확보라는 화급한 명분에 밀려 몇백년이 걸려도 생겨나지 않을 산 하나를 숟가락으로 수박 속 파내듯 통째로 파내 버리다니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그후로 2년여동안 계속된 폭파와 굴착으로 새들은 모두 집을 잃고 정수리가 허옇게 드러난 산은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먼지만 날려 보냈다.장독 뚜껑도 열어놓지 못하고 빨래도 탁탁 털어 널지 못한건 고사하고 방안에 앉아서도 지진이 난것마냥 흔들어대는 폭파음에 놀라는 것도 지칠 무렵인 올봄부터 신기하게도 새들이 다시 오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산 깨부수기는 대충 끝난 모양이었다.터진 이마빼기 사이사이로 나무들도 무너진 모습으로나마 푸른 잎을 내보내고 그 푸른 잎위에 작은 새가 내려 앉기도 하는 것이었다.2층의 할머니는 기다렸다는듯이 빈터에 인분을 듬뿍 묻고 호박을 심고 간장독·된장독 뚜껑을 열심히 열어놓고 있었다.한꺼번에 무너진 자연앞에서 놀란 가슴으로 날아갔던 새들이 조금씩 돌아와 주는 것이 대견하고 반가워 틈날때마다 나무꼭대기를 올려다 보며 중얼거린다. 『작은새야 고맙다.어디론가 가버릴 생각말고 어서 내려 앉아봐.그러나 어쩌랴? 핵무기가 어쩐다면서,전쟁이 날거라면서,사재기를 해샀는다는 이런 인간들 앞으로 다시 와 달라는 부탁이 염치없이 들리겠지만 올수만 있다면 가끔 나무끝에 앉아주렴』
  • 미서 「대체혈액」 개발/텍사스대 연구팀

    ◎수혈때의 질병전염 위험 제거 미텍사스대학(UT)의학연구원들은 인간혈액보다 질병감염 위험성 제거등 몇몇 측면에서 훨씬 유리한 수혈용 새 대체혈액을 개발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들은 이 대체혈액이 수혈중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바이러스나 B형 간염에 감염될 가능성을 제거하며 혈액형이나 교차시험법을 요하지 않을 뿐아니라 저장수명이 인간혈액의 10배인 최소 1년이나 된다고 밝혔다. 「하이퍼스몰러 옥시리플리트 헤모섭스티튜트」(Hypersmolar Oxyreplete Hemosubstitute)란 이름으로 특허등록된 이 새 대체혈액은 샌 안토니오 소재 UT 보건과학센터의 연구교수이자 오스틴 소재 UT 생체의학공학교수인 토머스 런지가 개발했다. 그는 『한 개인이 에이즈유발 HIV바이러스나 B형 간염에 걸렸는지 여부를 규명하는데 1백80일이 소요되나 인간혈액은 약 42시간안에 사용되어야 하며,따라서 수혈은 이같은 질병감염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흰 색깔의 이 미소류제(Microemulsion)대체물은 헤모글로빈과 같은 방법으로 산소와 느슨하게 연결하고 인간혈액과 거의 같은 양의 산소를 방출하는 퍼풀루오러케미칼(수소를 플루오르로 치환한 화합물)의 작용을 통해 체내에 산소를 공급해준다. 새 대체혈액은 UT보건과학센터에서 염소를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거쳤으나 인체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임상실험도 실시되지 않았다.
  • 바그다드·암만/고도 바그다드(아랍서 지중해까지:4)

    ◎라시드가엔 압바스왕조 체취 “물씬”/“세계최초 대학” 무스탄시리아 흑벽돌 건물은 정적속에 잠자는듯 「한번 티그리스 강물을 마신 사람은 다시 티그리스로 돌아오게 된다」 바그다드에는 이런 속설이 있다.이것은 그동안 이 도시를 침탈한 많은 정복자들이 자신들의 권토중래를 호언하는 뜻으로 퍼뜨린 말인지,혹은 단순히 바그다드의 매력만을 강조한 말인지 알 수가 없다.바그다드에는 많은 침입자들의 발자국이 남아있다.1258년 몽골군의 침략으로 압바스왕조의 화려했던 수도 바그다드는 모조리 불타버렸고 1393년엔 다시 티무르 세력에 의해,1534년엔 오스만 터키군단에 의해 파괴당한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바그다드에 와서 압바스왕조의 화려한 문화를 고스란히 만나겠다는 사람은 분명 실망할 것이다.그러나 바그다드 중심부에 자리잡은 라시드거리에 가보면 압바스시대의 다양한 흔적을 만날수가 있다. 라시드거리는 압바스시대의 건물들과 풍물이 비교적 잘 보존된 유일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1359년 건축된 대상숙(대상숙)칸 마르잔,세계최초의대학이라 일컬어지는 무스탄시리아대학건물,구리 주전자등 전통 생활용품을 직접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 몰려있는 바자,그밖에 민속박물관과 14세기에 건축된 모스크도 있다. ○침입자들에 파손 대상숙 칸 마르잔은 1935년 복구되어 한때 박물관으로 쓰였으나 지금은 고급레스토랑으로 일반에게 개방되고 있었다.마침 점심때라 이왕이면 유서깊은 식당의 분위기와 맛을 음미하자는 생각으로 칸 마르잔을 찾아 들어갔다.침침한 계단을 내려가니 거대한 극장같은 홀 내부가 나왔다.마치 오늘의 극장식당 같은 구조를 갖고 있었다.식탁은 많은데 손님은 두세팀 뿐이고 머리에 하얀 캡을 쓴 종업원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메뉴를 청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그러나 종업원은 친절했고 인내심있게 기다려 주문을 받아갔다.이 식당은 바그다드 명물로 알려져 고위층들사이에는 외국의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 곳으로도 이용되는 모양이다.그런데 식탁에 오른 까밥과 코르사,채소 샐러드의 맛에는 심오한 역사의 풍취같은 것은 없고 서민들 식당에서맛본 음식들과도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다만 식당내부의 풍경에는 볼거리가 많았다.캐러밴의 숙소이자 거래처로 사용되던 시절에는 1층에 방이 스물두개,2층에 스물세개나 있었다고 한다.악사들이 연주하는 무대도 별도로 있는데 지금도 큰 연회가 있을때에는 음악이 연주된다.이 건물의 역사를 보관하고 알려주는 방이 한쪽 구석에 두개 마련되어 있는데 그곳에 대상들이 사용하던 카펫,구리로 만든 촛대와 주전자,복장등이 진열되어 있었다.그러나 대부분 복제품이 분명했다. ○음식점으로 사용 식사를 끝내고 종업원들의 정중한 전송을 받으며 밖으로 나왔는데 햇빛이 유난히 뜨거웠다.칸 마르잔에서는 아마 그곳을 찾아오는 모든 손님에게 귀빈대우를 해주는 모양이다.어쨌거나 기분은 좋았다.식당에서 몇걸음 걷지않았는데 검은 차드르를 둘러 쓴 노파가 앞길을 막고 앉아 두손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이런 모습을 처음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중심가의 큰거리에서는 볼수 없지만 시장골목에서는 구걸하는 사람과 흔히 마주치곤 했다.대부분 여인들이다.이들은 차드르를 썼지만 형식일 뿐 얼굴을 모두 드러내고 있다.처음에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구걸이 허용되나하는 의문을 느꼈다.그러나 차츰 생각이 바뀌었다.그래도 구걸의 자유가 허용되는걸 보면 아직 이 사회에는 따뜻한 구석이 있다는 걸 알수 있었다.상오에 호텔에서 나올때 아리따운 가이드 아가씨가 시내관광에 동행하겠다고 나섰다.여행사 가이드가 아니고 물론 문화부소속 직원이다. 『보여줘야 할 곳과 보여줄 수 없는 곳』이 그들에겐 분명있는 모양이다.보여줄 수 없는 것이 뭘까? 그런 궁금증을 느꼈는데 그 의문 한가지가 풀린 것 같았다.그 아가씨는 차에 좌석이 모자라 동행을 포기하고 말았었다. 시장골목에서 슈하다 다리쪽으로 걸어나오면 유명한 무스탄시리아대학 건물이 있다.입구에는 터번을 쓴 노인이 책상 하나를 놓고 지키고 있었다.이곳은 유료관람으로 입장권을 팔았다.그러나 넓지 않은 뜰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고 아치형 출입구가 유난히 많은 흙벽돌건물은 정적속에 잠자고 있었다.이 대학은 압바스왕조 37대 칼리프인 알 무스탄시르 빌라(1226∼1242년)에 의해 세워졌는데 당시엔 코란을 강의하는 신학대학이었으나 지금은 같은 이름으로 이라크 제일의 종합대학이 되어있다.건물도 물론 별도로 지어 사용하고 이곳은 다만 유적으로 남겨놓았을 뿐이었다.바그다드에 처음 왔을때 호텔에서 만났던 전직 주한대사 가잘씨는 동행했던 딸 로라가 바로 유서깊은 무스탄시리아 대학생이라고 우리에게 자랑했다.로라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겨준 아가씨였다.그녀는 예쁘고 특히 머리가 우수했는데 내가봤던 누구보다 로라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라시드거리의 시장에는 없는 물건이 없었다.시장은 넓은 구역을 차지하고 있고 현대식 전자제품 가게에서 전통 향료 가게까지 그 구색도 아주 다양했다.곡물가게에는 쌀과 밀이 가득 쌓여있고 특히 대추야자 열매를 비롯,이름도 알수 없는 여러종류의 열매를 팔고 있는게 흥미로웠다. ○상점엔 손님없어 구두가게의 구두들은 하나같이 검은색 뿐인데 품질은 썩 좋지 않았다.옷가게에 걸린 옷들도 가짓수는 많지만 여행자의 눈을 끌만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그러나 일차 생활용품들이 비교적 풍부하게 있다는 사실은 조금은 뜻밖이었다.황금사원이 있는 바그다드 북부지역 거리에는 금은방과 고급 잡화점들이 즐비하다.거기에도 금과 은,각종 가죽제품과 안경,의류들이 풍부하게 있었다.특히 금이 많았고 가격도 싼 편이었다.이라크 관리들은 경제봉쇄 4년째 접어들어 경제가 말이 아니라고 침통하게 말했었다.그것은 외교용 엄살이었을까? 시장에 가득 쌓인 곡식과 잡화를 보고 이런 의문을 느꼈다.그러나 자세히 보면 가게와 상인은 많은데 손님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걸 알 수가 있다.검은옷과 차드르를 두른 여인들이 드문드문 가게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물건을 흥정하거나 사는 모습은 보기어렵다.돈이 없는 것이다.이라크는 인플레가 한창인데 그렇다면 그많은 돈은 어디로 갔을까? 그걸 당장 알수 없지만 서민들의 주머니가 비어있다는 증거는 여러곳에서 확인되었다.바빌론 가는 길에 우리를 안내했던 카셉은 자기봉급이 4백20디나르라고 말해줬다.이것은 1달러 조금 넘는 돈이다. 그런가하면 마수르호텔의 나이트클럽에는 3달러짜리 입장권을 여러장 사서 친구와 걸프랜드까지 데려와 1달러짜리 맥주를 맘껏 마셔가며 새벽까지 춤을 추는 젊은이들도 있었다.그들의 거침없고 분방한 행동은 자본주의 사회의 부유한 자제들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었다.계급은 어디에나 있다는걸 여기서도 실감할수 있었다. ○이교도 입장 막아 황금사원은 바그다드에 많이 남아있는 여러 모스크가운데서도 독특한 건축양식과 두명의 이맘(회교 고승)이 묻힌 시아파의 성지로 가장 잘 알려진 곳이다.바그다드 북부에 있는 이 사원의 금빛 찬란한 두개의 돔과 네개의 첨탑은 멀리서도 잘 바라다보인다.1515년에 세워진 이 사원에는 무사 알 가딤과 무하마드 알 자와드,이 두명의 이맘의 무덤을 찾는 참배객이 늘 그치지 않는다.우리가 찾아갔던 저녁나절에도 사원입구가 있는 광장에는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다.입장전에 입구 땅바닥에 입을 맞추고 들어가는 열성파도 눈에 띄었다.아무나 들어가는줄만 알고 입구로 다가서는데 흰 터번을 쓴 건장한 중년이 널찍한 손바닥으로 가슴을 막아버린다.이런저런 시비끝에 이교도는 입장사절이란 취지를 전달받았다.회교,특히 시아파가 매우 배타적이란 말은 들었지만 막상 입구에서 거절당하자 그들과 우리사이에 건너 뛸수 없는 높은벽이 가로놓여 있는걸 실감했다.바그다드 주요 일간지인 줄부리아신문의 기자는 호텔로 와서 인터뷰를 청하면서 다짜고짜 물었었다.『바그다드에 오신 목적이 뭡니까?』라고.그때 답변이 궁해 한참 망설였던 기억이 떠올랐다.종교적 일체감을 확인하기 위해? 정치적 동지의 투쟁에 동참하기 위해? 다만 관광만을 즐기려는 목적으로? 그 어느쪽도 물론 아니다.답변은 자연 길어지고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입장을 거부당하고 황금사원을 떠나면서 내 마음은 다시 그때처럼 착잡해졌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