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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서 영화마니아 손짓/국제영화제 새달 24일 개막

    ◎40여국 210여편 상영/캄보디아·스리랑카도 참가/재외한인 영화 특별전도 오는 9월24일부터 10월1일까지 열리는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PIFF)에서는 40여 나라의 작품 210여편이 관객들과 만난다.이는 지난해의 33국,164편에 비해 크게 늘어난 규모이다. 영화제의 얼굴이라 할 만한 ‘아시아 영화의 창’에 초청된 작품은 모두 21편.후샤오시엔의 ‘샹하이의 꽃’,채명량의 ‘구멍’,스탠리 콴(관금붕)의 ‘쾌락과 타락’,이와이 슈ㄴ지의 ‘4월의 이야기’,황지안신의 ‘수면부족’들이 눈길을 끈다. 국내에서 보기 힘든 캄보디아·카자흐스탄·스리랑카 영화도 포함됐다. 아시아 신인 감독들의 무대인 ‘새로운 물결’에는 7국에서 12편을 선보인다.한국영화로는 ‘처녀들의 저녁식사’(임상수 감독),‘둘 하나 섹스’(이지상),‘하우등’(김시언) 등 3편이 들어 있다. 세계의 우수작을 초청하는 ‘월드 시네마’에 등장하는 영화는 40여편으로 지난해의 2배에 가깝다.영화제 조직위원회가 “출품 신청이 1∼2회 때보다 너무 많아 사양하느라 진땀을 뺐다”고밝힐 정도.게다가 유명한 영화제의 수상작들이 많이 포함돼 영화팬으로서는 다양한 작품을 즐길 기회를 보장받은 셈이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원한 하루’(칸영화제 황금종려상),카렌 샤크나 자로프의 ‘보름달 뜬 날’(카를로비 바리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에밀 쿠스트리차의 ‘검은 고양이,흰 고양이’가 주목받는 작품들이다.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중남미의 작품들이 낀 것도 새로운 흐름이다. ‘한국영화 파노라마’가 초청할 작품은 10∼12편.이 가운데 ‘이방인’(문승욱 감독) ‘별이 날다’(민병훈) ‘강원도의 힘’(홍상수) ‘아름다운시절’(이광모) ‘파란 대문’(김기덕) ‘죽이는 이야기’(여균동) ‘정사(이재용)는 이미 결정됐고 나머지는 제작이 진행되는 대로 선택키로 했다.개막작·폐막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밖에 다큐멘터리·단편영화·애니메이션 등을 모은 ‘와이드 앵글’에는 70편이 나오며,‘유영길 감독 회고전’ ‘우리 시대의 다큐멘터리’ ‘재외한인 영화 특별전’등의 특별프로그램도 마련했다. 한편 부산영화제는 올해 처음으로 프리마켓인 PPP(부산 프로모션 플랜)를 개최한다.대상 작품은 김수용 감독의 ‘여명’ 등 한국영화 5편,중국 안휘 감독의 ‘쑈신’ 등 아시아 영화 12편 등 모두 17편이다.
  • 서울국제연극제 참가작 확정/국내외·해외동포 30여편 출품

    ◎수준높은 연극 감상의 기회 오는 31일부터 10월15일까지 서울 대학로 문예회관과 학전블루소극장에서 열리는 ‘98서울국제연극제’ 참가작품과 행사내용이 12일 확정됐다. 22회째를 맞는 이번 연극제는 공식공연과 특별공연,자유참가공연으로 나눠 진행된다. 공식공연작품은 해외초청작 3편과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친 국내작 8편. 해외초청작 가운데 프랑스 예술극단의 ‘롱드르 기자의 지구촌 보고’는 신문기자 알베르 롱드르의 여행기를 통해 20세기 초반 격동의 인류사를 더듬어본 작품.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다리오 포가 극본을 쓰고 직접 연출한 이탈리아 로마현대극단의 ‘와장창’은 복권과 TV쇼에 중독된 사람들,컴퓨터세대 등을 통해 현대사회의 병리현상을 익살맞게 풀어낸다. 슬로베니아 류블리아나 국립극장의 ‘인생의 꿈’은 저주받은 왕국의 예언 때문에 출생직후 감옥에 갇힌 비운의 폴란드 왕자 세지스문도의 이야기를 무대로 옮겨낸 최신작이다. 국내작은 남사당패의 삶을 그린 극단 아리랑의 ‘유랑의 노래’(김명곤 작·연출)와 극단미추의 ‘뙤약볕’,극단 성좌의 ‘아카시아 흰꽃은 바람에 날리고’등 3편이 초연된다. 또 극단 즐거운사람들의 ‘천상시인의 노래’와 ‘탑꼴’(춘추),‘느낌,극락같은’(연희단거리패),‘김치국씨 환장하다’(연우무대),‘땅 끝에 서면 바다가 보인다’(신화) 등이 무대에 오른다. 특별공연으로는 1930년대 강제 이주한 카자흐스탄 교민들의 애환을 담은 카자흐스탄 동포극단인 고려극장의 ‘기억’(연출 이 올레그)과 일본에 귀화했다 말기에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애쓰는 재일교포 마루세 따로씨(한국명 김균봉)의 1인극 ‘진흙의 창’이 공연된다. 자유참가공연에는 극단 학전의 여성국극 ‘진진의 사랑’과 극단 민·광·대의 ‘아가씨와 건달들’ 등 국내작 25편이 참가한다.
  • 김영무 두번째 시집 ‘산은 새소리마저 쌓아두지 않는구나’ 펴내

    ◎어릴적 푸른추억 빌려 병든 지구의 현실 질타 시에서의 향토적 서정은 자칫 한가한 회고 취미로 오해받기 쉽다. 치열한 일상의 현장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영무 시인(54·서울대 영문과 교수)의 경우 시의 언어는 곧 삶의 언어다. 첫시집 ‘색동 단풍숲을 노래하라’에 이어 5년만에 그가 두번째 시집 ‘산은 새소리마저 쌓아두지 않는구나’(창작과 비평사)를 내놓았다. 누구나처럼 시인 역시 유년의 푸른 시절을 그리워한다. “…개울물소리 헤치고,밤길 따라 헛발 디디다가/논둑길 하나 넘으니,눈부셔라! 개구리 울음소리…”(‘남한산성의 밤’) 그 순수의 시대는 물수제비 뜨듯 지나가버렸다. 첨벙첨벙 별똥 떨어지듯 뛰어드는 개구리도,“풀섶 헤치며 도망치던 흰눈썹망초꽃들”(‘남한산성의 망초꽃들’)도 이제 남아 있지 않다. “아름다운 초록별 지구는 지금/십자가에 못박혀” 신음하는 “겨자씨 하나 못 사는 땅”(‘조선교회에 보내는 예수님의 셋째 편지’)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시인은 이처럼 병든 지구의 현실을 ‘금강경의 어법’혹은 예수의 목소리를 빌어 질타한다. 그런 면에서 이 시집은 ‘녹색문학’의 정점을 달린다. 삼라만상은 자신의 고유한 존재방식을 갖고 있다. 그 존재의 길은 세계의 숨은 질서를 이룬다. 그것이 곧 자연의 이법(理法)이다. 시인이 새삼 강조하는것 또한 자연의 섭리에 기초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다. 그런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 바로 ‘과학’이란 제목의 시다. “감꽃 필 때는 올콩을 심고/메주콩은 감꽃 질 때 뿌리느니라//밭고랑 두엄 속 그 캄캄한 아랫목에서/금빛 씨앗들이 때를 알아 눈을 뜨나니”
  • 브루나이 왕국 왕위 계승자/왕세자 빌라 지명

    【반다르 세리 베가완(브루나이) AP 연합】 세계 최고 부자왕국 브루나이의 왕위계승자가 하사날 볼키아 왕의 맏아들인 알 무타디 빌라 왕세자(24)로 10일 정해졌다. 볼키아왕은 이날 보석으로 장식된 단검을 빌라 왕세자에게 건네고 500여년간 왕위를 지켜온 왕가의 공식 후계자로 선포했다. 빌라 왕세자는 흰 큐볼 하나로 21개의 공을 포켓에 떨어뜨리는 스누커 당구광이지만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외교학 학위를 받은 학구파이기도 하다. 왕궁은 독실한 회교도인 동시에 필요한 정도의 현대적 사고도 겸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빌라 왕세자의 앞날이 그리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브루나이가 현재 경제문제에 직면해 있고 망명을 택한 왕의 동생 제프리공과는 가내 분쟁에 휘말려 있기 때문이다.
  • ‘행복의 나라’ 한대수(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5)

    ◎“물좀 주소 물좀 주소 목마르오/시대의 갈증 노래했는데…”/68년부터 명동·대학가 활동/통기타·청바지 문화 선도/2집 앨범 “체제전복” 낙인찍혀/75년 渡美… 음악활동 계속/지난달 일시 귀국 에세이 출간/“개인무대 갖는게 작은 소망” 1975년 한 해를 마감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인 12월 어느날 김포공항 대합실.긴 머리에 청바지 차림의 한 청년이 초췌한 모습으로 뉴욕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한국 가요계에 파문을 일으키며 청년문화를 주도하던 가수 韓大洙(50)였다.미국 유학후 숨가쁘게 살았던 한국에서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갔다.자신의 음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땅의 분위기가 한스럽기만 했다.채 피어나기도 전에 꺾여진 꽃처럼 자신의 음악을 가슴에 묻은 채 한대수는 그렇게 훌쩍 한국을 떠났던 것이다. 짧은 활동기간에 비해 뚜렷한 인상을 남긴 이색적인 경력의 싱어 송라이터.통기타와 자유의 청년문화를 생겨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당시 트로트와 사랑타령 일색이던 대중가요를 뿌리째 뒤흔들며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던 가수 韓大洙.그는 왜 한국을 떠나야만 했을까. 어린시절부터 남달리 굴곡이 많은 개인적인 삶을 살았던 그였다.핵 물리학자인 아버지의 실종으로 7살때부터 줄곧 조부모와 함께 살았다.10살때 미국으로 이주해 3년간 미국생활을 한뒤 돌아와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쳤다.17세때 미국에 사는 아버지의 소재가 확인돼 다시 미국으로 옮겨 고교를 다녔지만 적응하지 못한채 방황의 10대를 보냈다.韓씨의 재능은 이때 발견된다.상담교사의 도움으로 시와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나중에 국내에서 히트했던 ‘행복의 나라’‘그날까지’‘옥의 슬픔’같은 노래들이 모두 이때 쓴 것이다.고교졸업후 뉴햄프셔 대학 축산과에 진학했으나 적성이 맞지않아 중퇴,뉴욕 사진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귀국한 게 1968년 초.이때 한국의 가요사는 다시 쓰이게 된다.당시 국내 가요계는 트로트가 지배하던 시기.국내에선 처음으로 싱어 송라이터로 데뷔한뒤 발로뛰는 음악인의 생활로 접어든다.서울 무교동의 ‘세시봉’과 명동의 ‘오비스캐빈’에서 청바지,가죽장화 차림에 통기타 하나들고 포크록을 소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이듬해인 69년 이렇다할 공연무대에 서기엔 아직 무명가수였던만큼 대학가를 돌기 시작했다. 총학생회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공연을 의뢰해 축제기간중 이화여대와 서울대,서강대,부산대 강당공연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이때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인상지워지게 됐다.그리고 그해 겨울 그 유명한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 공연.그때만해도 드라마센터는 고상한 장르의 유명인들에게만 공연이 허용되던 곳.무명의 대중가수가 무대에 오른 것 자체가 화제거리였다.평소 韓씨의 음악에 매료된 팬들이 어렵게 마련한 데뷔 콘서트였다. 벼르고 별렀던 무대였던 만큼 혼신을 다한 공연이었다.이틀 공연 모두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대성공이었다. 74년 군에서 제대하고 나니 유명해져 있었다.자신이 곡을 쓰고 金敏基가 부른 ‘바람과 나’,楊姬銀이 부른 ‘행복의 나라’가 인기곡으로 불려지고 있었다.신세계레코드사에서 앨범제작 의뢰가 들어왔다.그래서 만든 첫 앨범이 ‘멀고 먼 길’이다.너무나도 반가운 제의라 하루만에 녹음을 모두 마쳤다.‘물좀 주소’‘행복의 나라’‘바람과 나’등 수록곡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다.그리고 1년도 채 안돼 시련이 닥쳐왔던 것이다. 75년 가을 두번째 앨범을 만들었다.코리아헤럴드 기자로 재직중일 때였다. 기자로 일하면서 오후엔 남모르게 레코드 취입을 하느라 코피를 쏟기가 일쑤였다.마침내 레코드가 나왔다.이제 자신의 음악을 인정받는 뿌듯함에 마냥 들떠 있었다.기쁨은 채 2주가 못돼 좌절로 바뀌었다.당시 문공부에서 레코드 수거령이 떨어졌다.체제전복적 음악이란 낙인이 찍혔다.첫 앨범 ‘멀고 먼 길’도 함께 묶였다. “‘물좀 주소’등 히트곡들이 대학생들 사이에 번져가면서 정치·사회상 황에 맞물려 당국의 곱지않은 시선을 받았던게 사실입니다.당국이 ‘물좀 주소’에선 물고문을 연상했던 것 같아요.두번째 앨범은 표지가 문제였지요.녹슬은 철조망에 고무신이 걸려있는 모습인데 한국적 정서와 민중을 상징한 것이지요.죄수(철조망)가 흰 고무신을 신으니 박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었지요” 동양방송과 기독교방송 음악프로 출연도 막혔다.어쩔 수 없이 명륜동 자취방에서 직접 노래하고 녹음한 테이프를 만들어 매장에 내다 팔았다.테이프는 열악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이 테이프는 첫 앨범 취입 전부터 하나 둘씩 만들었던 것으로 이렇게 만든 테이프만도 100여개가 넘는다.하지만 그것도 잠시뿐.감시망이 좁혀지면서 테이프 제작도 할 수 없게 됐고 더이상 설 땅이 없어졌다.마침내 미국행을 결심했다. 이후 줄곧 뉴욕에서 살면서 시·사진·음악활동을 계속했다.89년 ‘무한대’,90년 ‘기억상실’,91년 ‘천사들의 담화’ 등 레코드도 세 집을 냈다.종전의 분위기와는 달리 자신의 삶을 담은 노래들이다.지난해 가을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록그룹 10개가 참가한 록페스티벌에도 참가했다.80년 일시 귀국해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약식 공연을 가진지 17년만의 무대였다.그리고 지난달 잠시 귀국해 자전적 에세이집을 냈다.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기록이다. 75년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는 韓씨는 이렇게말한다.“그 시대 정책 자체에 반감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어느 나라나 국가정책과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정신은 엇갈리기 쉽지요.당시 정부의 목적의식을 흐리는 활동이 제재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문화예술인들이 심한 갈증을 느끼는건 당연했구요. 오랫동안 나를 못봐온 팬들을 위해 개인무대를 갖고 싶습니다” ◎사연들/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세상을 더 보자/철조망 유신압제 상징 이유/‘고무신’·‘첫 앨범 잇따라 판금/‘행복의나라’ 희망 메시지 가득한데 68년 귀국후 세시봉과 오비스캐빈에서 시작된 韓大洙의 국내 음악활동은 불과 7년만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귀국전 미국 생활에서 반문화운동(카운터 컬쳐 무브먼트) 경향의 포크록에 심취했던 만큼 국내에서의 활동도 자연스럽게 자유와 젊음으로 대변되는 이 음악으로 시작됐다.미국 고교시절 답답한 생활을 노래에 담은 노래들이 70년대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금지곡이 된 것은 우연의 일치다.대학가를 돌면서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인상지워지고 금지문화의 한 주역이 된 것도 사실상 노래말의 상징성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물좀주소’와 ‘행복의 나라로’는 그의 대표적인 노래.“물좀 주소 물 좀 주소/목마르요 물좀 주소/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놀리면서 밖에 보내네/아 가겠소 난 가겠소/저 언덕위로 넘어 가겠소/여행도중에 그 님 만나 본다면/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물좀 주소).“장막을 걷어라/나의 좁은 눈으로 이세상을 더 보자/창문을 열어라/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또 느껴보자/가벼운 풀밭 위로/나를 걷게 해주세/봄과 새들의 소리/듣고싶고 울고 웃고 싶소/내마음을 만져줘/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행복의 나라로) 유신정권의 압제 아래서 자연스럽게 현실 비유적인 내용으로 인식될 수 있었고 대학가에선 더욱 인기가 좋았다.물은 갈증을 해결하는 그 무엇이며 행복의 나라는 답답한 상황으로부터의 탈출과 희망의 의지가 역력한 상징임에 틀림없다.특히 金敏基 楊姬銀 등 사회성짙은 노래를 주로 불렀던 이들에 의해 불려지면서 자연스럽게 화살이겨냥됐고 마침내 철조망과 흰 고무신을 표지 사진으로 쓴 ‘고무신’ 앨범으로 피할 수 없는 족쇄가 채워진 것이다.‘자유의 길’‘병든 고아’‘술 취한 여자’‘물좀 주소’ 등 노래마다 일일이 검열을 당했고 레코딩까지 허락됐던 앨범 몰수는 韓씨를 떠나게 만들고야 말았다. ◎그의 길 ▲48년 부산출생. ▲64년 부산 경남고교 입학. ▲65년 미국 롱아일랜드 고교로 전학. ▲66년 뉴햄프셔 대학 수의학과 입학. ▲67년 뉴욕 사진학교에서 사진 전공. ▲68년 귀국.작사·작곡가·가수로 데뷔. ▲69년 드라마센터 공연. ▲70년 군입대. ▲74년 첫 앨범 ‘멀고 먼 길’ 발표. ▲75년 두번째 앨범 ‘고무신’ 발표,금지.미국으로 돌아감. ▲89년 ‘무한대’ 발표. ▲90년 ‘기억상실’ 발표. ▲91년 ‘천사들의 담화’ 발표. ▲98년 현재 뉴욕에서 사진작가및 창작활동중.자전적 에세이 출간.
  • 日 차기총리 외교·역사관 ‘우려’/自民 총재 3후보 분석

    ◎오부치­신사참배 의원모임 회장 역임… 맹신자 수준/가지야마­한반도 통일 반대 시사… 미 인종차별 발언도/고이즈미­입각후 전범 사당에 제사… 셋중 진보적인 편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 열도가 차기 총리가 될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로 달아 오르며 이웃나라의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24일 치러질 선거에 출마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외상,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 전 관방장관,고이즈미 쥰이치로(小泉純一郞) 후생상 등 3명의 후보가 저마다 서로 다른 외교정책을 펼 것이기 때문이다. 세 후보들의 행적과 발언들은 향후 일본의 외교정책을 가늠케 해준다. 가장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후보는 고이즈미 후생상.‘후생 국무대신’ 자격으로 태평양전쟁 전범들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지만 입각 전에는 참배하지 않았다. 신사참배에 관한 한 오부치 외상은 맹신자격이다.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가 패전 50주년을 맞아 ‘반성과 사죄’의 뜻을 담은 총리 담화를 내던 95년 8월. 연립 정권이었던당시 자민당 부총재였던 오부치는 ‘모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의 회장에 취임했다. 그러다 97년 9월 외상에 임명되면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단지 ‘외국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무장 투쟁파’,‘강경 보수’로 불리는 가지야마 전 관방장관은 오부치 외상보다 한술 더 떠왔다. 최근의 사례로 97년 8월 관방장관이던 그는 ‘타이완(臺灣) 유사 사태는 가이드 라인이 말하는 주변사태’라고 말했다. 타이완 문제에 일본이 개입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중국의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96년 8월에는 “남북한 통일되면 한국은 피폐해진다”,“(한반도가 통일되면) 일본에 영향이 없을 리 없다. 대량의 난민이 온다. 위장 난민도 있다. 거기에 무기가 공여되면 어떻게 되겠는가”라며 통일을 반대하는 듯한 발언을 내뱉었다. 급기야 당시 金太智 주일 대사에게 사죄했고 당시 한국의 집권당으로부터 ‘언동에 국제감각을 갖추라’라는 따끔한 질책을 받아야 했다. 특히 가이후 내각에서 법무상이었던 90년 9월에는 외국인의 불법 취업과 관련,“(미국에서) 검은 것(흑인)이 들어가 흰 것(백인)들이 쫓겨 나듯” 운운해 미국 언론의 혹독한 비판을 뒤집어 쓴 적도 있다.
  • 갈색 미인 “자외선이 미워”/여름철 선탠 이렇게

    ◎자외선차단제 2시간전 바르고/정오∼하오 3시 시간대 요주의/보습제 바르고 물 충분히 마셔야 본격적인 피서철이다.예년에 비해 거창한 휴가계획은 없더라도 가까운 수영장이나 야외로 나가 태양아래 노출될 기회가 많은 계절이다.그러나 의학적으로 볼때 햇볕은 피부에 관한한 득(得)보다 실(失)이 많다.특히 여성들에게. 유익한 점은 비타민D를 합성시켜 골격을 튼튼하게 한다는 것 뿐이다.그밖에는 피부의 수분을 증발시켜 피부건조와 탄력성을 감소시키고 각질층을 두텁게 만들어 노화를 촉진시킨다.뿐만아니라 환경오염으로 오존층이 파괴되어 지표면에 내리쬐는 자외선 양이 갈수록 급증하면서 피부암과 각막화상,백내장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자외선◁ 자외선은 파장의 길이에 따라 3가지로 구분된다.파장이 320∼400나노미터(㎚)로 가장 긴 UV­A와 290∼320㎚의 UV­B,200∼290㎚의 UV­C.(1㎚는 10억분의 1m) A는 피부의 표피를 통해 진피에 닿아 피부를 검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B는 피부 화상을 일으키는 작용을 한다.C는 생명체를 파괴하는 빛이지만 오존층 때문에 지상에는 전달되지 않으므로 피부와는 무관하다. ▷햇볕화상◁ 말그대로 햇볕에 의해 화상을 입는 것이다.피서지에서 성급한 마음에 무방비상태로 햇에 장시간 노출시켰다 잠자리에 들때쯤 가렵고 따가워 고생한 경험을 한번쯤 갖고 있을 것이다.피부가 빨갛게 되고 심할 경우 통증을 동반한 물집이 생긴다. 예방법은 하루중 자외선이 가장 강할때인 정오부터 하오3시까지의 시간대엔 특히 조심할 것.노출부위에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것은 필수고 긴 상하의에 차양이 큰 모자를 쓰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자외선 차단제는 SPF(자외선 차단지수)가 20∼30이 적당하다.햇볕에 나서기전 2시간전에 미리 발라주되 3∼4시간마다 다시 발라주어야 효과를 볼수 있다. 해변이나 수영장에서는 차단제를 발라도 물에 씻겨나가므로 이보다 더 자주 발라야한다.흰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선 무조건 SPF지수가 높은게 좋은 것으로 알기 쉬운데 지수가 높을수록 피부 자극정도도 높아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것. 선탠후엔 피부가 극도로 건조해지므로 보습제품을 바르고 물을 많이 마셔 피부에 충분한 수분을 공급해주도록 한다.일단 햇빛화상을 입어 화끈거리면 그 부위에 찬물이나 얼음으로 찜질을 해주고 찬 우유를 마시는 것도 증상을 누그러뜨리는 한가지 방법.물집이 잡힐 정도로 심한 햇볕화상엔 멸균소독을 하고 빨리 병원을 찾는게 좋다. ▷일광 피부염◁ 햇볕을 쐰 노출부위에 오톨도톨하게 좁쌀같은 것이 생기고 가렵다가 습진 비슷한 피부염이 되는 증상.햇볕에 대한 알레르기반응이 원인으로 때에 따라선 노출되지 않은 엉뚱한 부위에 나타나는 수도 있다. 이 피부염은 햇볕만 받았다고 생기는 경우는 드물고 복용중인 약물이나 화장품에 함유된 물질이 햇볕과 광화학작용을 일으켜 생긴다.일광 피부염 원인이 되는 약물은 강압이뇨제나 설파제.때문에 고혈압환자가 이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여성의 경우 살빼는 약에 의해 생기는 수가 종종 있다. 이럴때는 약을 끊든지 다른 약을 복용해야 한다.(도움말 삼성서울병원 피부과 박기범 교수,서울중앙병원 피부과 성경제교수)
  • “테이프커팅 가위대신 맨손으로”/환경부 정부기관 등에 요청

    ◎‘종이테이프 찢기’로 대체… 장갑비용 등 절약 앞으로 행정기관의 각종 기념행사에서 흰 면장갑을 끼고 가위로 테이프를 자르는 모습을 구경하기 힘들어질 것 같다. 대신 오색 종이테이프를 맨손으로 찢게 된다. 환경부는 14일 자원절약과 재활용 촉진을 위해 각종 행사의 ‘테이프 커팅’ 때 사용하는 천 테이프를 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재활용도 쉬운 종이테이프로 바꿔 줄 것을 정부기관 및 각종 단체에 요청했다. 이는 지난 6월부터 환경부 및 산하기관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한 결과 경비 절감 등 높은 효과를 얻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종이테이프로 할 경우,특히 값비싼 흰색 면장갑과 가위가 필요없게 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테이프 커팅 때 5명이 참가할 경우 1,500원짜리 면장갑 5켤레,10,000원짜리 가위 1개 등 약 6만원이 소요된다”면서 “종이테이프로 바꾸면 사무실에서 한지를 잘라 쓰면 되기 때문에 이 돈을 다른 곳에 쓸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처음에는 손으로 종이를 찢는다는게 어색했지만 점차 인식이 바뀌고 있다”면서 “지속적으로 계도활동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北 교과서 형편없는 紙質에 놀라/金石香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옥수수껍질 원료로 만든 종이에 인쇄 15일부터 전시할 북한교과서를 처음 보는 순간 감정의 흐름이 뚜렷하게 두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을 느꼈다.아! 이 노릇을 어쩔 것인가? 한참 자라나는 학생들이 이런 종이로 만든 교과서를 써야 하는 것이 도대체 누구 탓인가?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이런 느낌들이 그 하나의 갈래였다.또 하나의 갈래는 우리 국민이 북한사회의 실상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백마디 말을 듣는 것보다 이 책들을 한번 보는 편이 더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이었다.교과서를 만든 종이의 지질을 한번 본다면 굳이 북한의 경제사정이 어렵다거나 북한주민들이 굶주린다는 말을 들을 필요가 없으리라.어쨋든 이번 전시회가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북한교과서를 직접 눈으로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전시하는 북한교과서 입수의 의미는 대략 다음의 세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첫째,북한교과서라고 하면 지금까지 많아야 몇 권 정도씩 들여오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이번에는 인민학교 1학년부터 고등중학교 6학년까지 10개 학년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를 골고루 입수했다.인민학교 교과서는 8과목 17종이나 되고 고등중학교 교과서는 22과목 79종에 달한다.말하자면 북한교과서의 현실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본자료를 이번 기회에 갖춘 셈이라 하겠다. 둘째,북한당국이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와 우리 대한민국의 실상을 왜곡하는 습성을 지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들여온 북한교과서에서도 그 점은 적나라하게 나타난다.수학이나 화학교과서를 들쳐도 머리말에는 김일성·김정일이 “수학은 중요한 과학입니다”처럼 평범한 말을 한 것을 ‘교시’라 하여 굵은 글씨로 강조해 놓았다.그러가하면 인민학교 1학년 국어 ‘내 동생’ 단원을 보면 ‘승리호’ 자동차에 고운 비단과 흰 쌀을 싣고 “미국놈들 때문에 헐벗고 굶주리는 남조선 동무들을” 찾아가는 동생의 모습을 묘사해 놓기도 했다. 셋째,이번에 들여온 교과서는 모두 북한학생들이 쓰던 책이라는 점이 특별히 재미있다.이 점에 특별한 의미를 두는 이유는 교과서 구석구석에 나오는 낙서나 그림을 통해 북한학생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인민학교 1학년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 어린시절’ 표지 안쪽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혁명’이라는 글자를 써두었고 다른 책에는 ‘조국통일’이나 ‘일당백’이라는 낙서를 했는가 하면 탱크 그림을 그린 책도 있다. 고등중학교 3학년 화학교과서의 맨 뒷장을 보면 값 20전이라고 나오는데 20전이라는 글자의 앞 뒤 빈 공간에 “1000,2000딸라,20000억 수딸라”라는 낙서를 해놓아 학생들의 일상생활에서 달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짐작하게 한다.이런 낙서와 그림은 북한학생들의 가치관을 나타내는 자료로서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다. 최근 한달 사이에 북한 잠수함이 동해에 나타나는가 하면 무장간첩의 시체가 발견되었다.우리들은 북한당국의 파렴치함에 놀라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했다.그러나 지금도 북한 땅에서는 펄프가 없어 옥수수껍질 오사리를 원료로 만든 종이에 잘 보이지도 않는 글자를 인쇄한 교과서로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이 산다.이 사실도 함께 기억해야 할 때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 요리에 남녀가 따로 있나요?/이탈리아 문화원장 피라스씨 부부

    ◎‘송아지 고기와 참치요리’ 강좌 열어/부인은 북쪽의 진한 맛 남편은 남쪽 담백한 맛/송아지 고기 대신 돼지 엉덩이살도 무방 “남자가 밥짓는게 남세스럽지 않느냐고요? 이탈리아에선 100년전 얘깁니다”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장 피오렐라 피라스씨(58)의 남편 장 피에르 피라스씨(60)는 끼니때가 다가오면 마음이 분주해진다. 이집 주방 주인이기 때문. 우리나라에도 ‘요리가 취미’라고 말하는 남자들이 더러 있지만 그에겐 ‘취미’가 아니다. 젊을땐 ‘생존의 방책’이었고 어느덧 아내에게 비법을 전수할 정도가 됐단다. “결혼하고 보니 아내는 요리와 거리가 먼 사람이더군요. 살아남으려니 저라도 배워야 했지요. 결혼을 후회했겠다고요? 천만에요. 요리 잘하는 아내를 바랐다면 요리사와 결혼했지요” 두사람은 ‘수학’이 맺어준 인연. 같은 고등학교에서 모르는 문제를 묻고 가르쳐주다 연인으로,부부로 발전했다. 내달 2일이 결혼 32주년 기념일. 피오렐라씨는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76년부터 외교공무원으로 활동해 온 맹렬 직업인. 그가지난 96년 12월 이곳 한국에 발령받아 오게되자 남편은 지질학 교사직도 팽개치고 뒤따라왔다. 늙은 페르시아 고양이 로차를 안고서. “가장인 내가 먼저 와 집도 찾고 채비 갖춘뒤 남편이 ‘아들’을 안고 합류한 거죠” 피오렐라씨의 해설. 넉넉한 몸피에 털털한 차림새까지 꼭 닮은 두사람은 24일 이태원의 이탈리아 음식점 ‘로툰다’에서 ‘부부 이탈리아 요리강좌’를 열었다. 북쪽 출신이라 돼지기름과 비계로 걸게 조리한다는 아내와 남쪽 고향식대로 식물성 기름의 담백한 맛을 살린다는 남편. 둘은 ‘송아지고기와 참치 요리’를 제 방식대로 선보인 뒤 누구 것이 더 맛있는지 참가한 주부들에게 판정받았다. 이제 독자들이 판정할 차례. ▷남편의 송아지고기와 참치◁ △재료=송아지고기,포도주,올리브기름이나 식용유,마늘,후추,소금,로즈마리,부이용(사각 가루다시마),당근,샐러리,홍당무,계란 2개,레몬즙 1큰술,캔참치,멸치. △조리법=①냄비에 올리브기름이나 식용유를 두른뒤 후추,마늘,로즈마리,소금을 뿌린 고기를 넣어 노릿하게 익힌다. 뒤집어서 반대편에도 후추,로즈마리를 뿌려 익힌다. ②고기 1㎏에 반컵 비율로 흰포도주를 부어 끓인다. 중간에 포도주를 한번 더 부어준다. ③물을 붓고 부이용을 넣은뒤 가끔 뒤집어가며 낮은 불에서 고기 1㎏에 30∼35분정도 끓인다. ④익은 고기를 꺼내 약간 식힌뒤 얇게 썰어 야채와 함께 낸다. ⑤소스를 뿌려준다.(*소스 만드는법=계란,올리브기름,물 1큰술,레몬즙을 믹서기에 간다. 올리브기름 반컵과 물을 첨가하고 참치 반캔,멸치 서너개를 넣어 한번 더 간다) ▷아내의 송아지고기와 참치◁ △재료=송아지고기,참치캔,당근,양파,샐러리,밀가루,부이용,월계수잎,칠리후추,다진마늘,마요네즈,소금,버터,식용유. △만드는법=①고기를 밀가루에 치대 칠리후추와 소금으로 간하고 사방에 구멍내 당근·양파·샐러드 썬것,다진마늘,월계수잎 등을 넣는다. ②버터를 넉넉히 녹인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고기를 넣어 높은불에서 겉이 파삭해지도록 익힌다. 냄비는 좁고 속이 깊어야 좋다. 중간에 흰 포도주 한컵을 붓는다. ③고기가 완전히 잠기도록 물을 부은뒤 큐빅다시마와 캔참치를 넣어 속이 연하게 익도록 끓인다. 참치는 고기 1㎏에 400g 비율. ④다 익으면 남편처럼 잘라 낸다. ⑤마요네즈에 참치를 넣어 믹서에 간뒤 고기위에 끼얹는다. *송아지고기 대신 돼지 엉덩이 살을 써도 된다. 재료는 이태원근처 슈퍼마켓이나 이탈리아요리 재료점에서 판다.
  • 北 잠수정 동해 침투­긴장의 선실 수색 17시간

    ◎선실엔 피비린내… 참혹한 시신/산소 용접기로 선체 뜯고 8시간 만에 진입/벽면 곳곳 탄흔… 국산 사이다 페트병 등 널려/조종실서 머리 총상입은 공작원 사체 발견 【동해=특별취재반】 잠수정 안은 처참했다.몸 여기저기에 총을 맞아 유혈이 낭자한 시신들이 뒹굴고 있었다. 26일 상오 2시40분쯤 동해항 북한 잠수정수색 현장. 파도 소리만 간간이 들려오는 적막한 어둠 속에서 수색 작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산소용접기로 잠수정의 뒷부분 승조원 침실 철판을 뜯어내자 시신 5구가 참혹한 모습을 드러냈다.누군가 총을 난사한 듯했다. 군데군데 총을 맞은 자국이 선명했다.벽에도 피가 튀어 얼룩져 있었다. 수색에 나선 지 8시간만에 승조원들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내부수색은 대 테러요원 2명이 맡았다.밖에서도 20여명의 요원들이 수색을 도왔다. 처음 시신을 찾아낸 지 1시간20여분 뒤인 상오 4시쯤.요원들은 공작원들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선실의 해치를 열기로 결정했다. 철판에 구멍을 내 내시경으로 안을 살펴봤다.폭발물을 설치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큰 위험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산소용접기로 해치를 잘라내기 시작했다.용접기의 불똥이 튀고 해치가 떨어져 나갔다. 순간,요원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스쳤다.저격조들은 안쪽으로 총끝을 겨누었다.그러나 안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냉정을 되찾은 요원들은 사다리를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내부에는 국산 사이다 페트병 등 유류품들이 흩어져 있었다.매케한 냄새가 진동했다. 조종실과 지휘통제실로 통하는 폭 70㎝의 좁은 복도를 지나자 역겨운 피비린내가 다시 코를 찔렀다. 조종실에 들어가자 또 다른 시신 4구가 뒤엉켜 있었다.머리에 총탄을 맞고 숨져 있었다. 공작원들로 보였다.승조원 5명을 죽이고 자살한 듯 권총이 이곳 저곳에서 발견됐다.2명은 반코트 차림이었으며 2명은 회색 동내의만 걸치고 있었다. 시신 9구가 흰 헝겊에 싸여 잠수정 밖으로 나온 것은 상오 9시쯤.시신은 대기하고 있던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 3곳으로 실려갔다. 이 때가 상오 11시20분.밤을 새운 수색 작전은 17시간여만에 막을 내렸다. □특별취재반 사회팀=金仁哲 차장 朱炳喆 趙鉉奭 기자 전국팀=趙誠鎬 曺漢宗 기자
  • 그리운 금강산/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신라시대 문장가 崔致遠은 금강산 구룡폭포를 보고 “천길 흰 비단필이 내리 드리운 듯 하고/만섬 진주알이 쏟아지는 듯 하여라”고 읊었다. 고려 공민왕 때 정승 李齊賢은 금강산 깎아 지른 절벽앞에서 “차가운 바람은 바위서리에 풍기고/골짜기에 담긴 물은 깊고 푸르구나/지팡이에 의지하여 벼랑을 바라보니/나는 듯한 처마는 구름을 탄 듯 하구나”고 감탄했다. 조선조의 松江 鄭澈은 “행장을 다 떨치고 석경에 막대 짚어/백천동 곁에두고 만폭동 들어가니/은같은 무지개 옥같은 용의 초리/섯돌며 뿜는 소리 십리에 잦았으니/들을 제는 우뢰러니 보니난 눈이로다/금강대 맨 윗층에 선학이 새끼치니/춘풍 옥저소리에 첫잠을 깨돗던지”(관동별곡)라고 금강산 만폭동과 금강대를 노래했다. 그밖에 金時習 成俔 南孝溫 李珥 金天澤 金壽長 朴孝寬 楊士彦 朴世堂 朴齊家 朴趾源 김삿갓등 수많은 선비들이 금강산에 관한 글을 남겼다. 조선조까지 금강산을 노래한 시들을 모은 책에 오른 이름만도 3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이 묘사한 금강산은 “산위에 산이 있으니하늘에서 땅이 나왔나/물가에 물이 흐르니 물가운데 하늘이로다…”(楊士彦)고 “소나무 소나무 잣나무 잣나무/바위바위마다 둘러서 있고 /물물 산산 가는 곳마다 신구하구나…”(김삿갓)싶다. 또 “일만송이 연꽃이 피어/이슬에 씻은 얼굴을 드러낸 것 같고/일천자루 창을 꽂아/서리 어린 날끝을 세운 것 같다”(朴世堂). 조선조 이후에는 崔南善의 ‘금강예찬’,李光洙의 ‘금강산유기’,李殷相의 ‘금강행’,鄭飛石의 ‘산정무한’등이 금강산송(頌)으로 전한다. 그러나 금강산을 내 마음속에 각인시킨 것은 선인들의 이런 절창(絶唱)이 아니라 서지(書誌)학자 남애(南涯) 安春根이다. 지난 80년대 말 설악산에서 열린 출판관련 세미나를 마치고 찾아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그는 해금강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통일전망대에서 보이는 해금강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온 절경(絶景)을 떠올리기에는 너무 멀었지만 한 실향민의 눈물은 그 가물가물한 풍경을 체험속의 공간으로 끌어 들였다. 지난 93년 타계한 安春根은 고성군 외금강면에 있는 고향 남애리의 이름을 따 호를 지을만큼 고향을 그리워해 유고(遺稿) 수필집으로 ‘언제 고향에 갈 수 있을까’을 남겼는데 드디어 올 가을부터 금강산 관광이 시작될 수 있을 듯 싶다. 금강산을 찾는 유람선이 단순한 관광용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뱃길이 훤히 뚫리고 육로(陸路)까지 열려서 통일의 날도 앞당겨 오기를 바란다.
  • 무용인 趙興東(이세기의 인물탐구:174)

    ◎열일곱분 스승의 춤 계승과 극복/전통춤 섭렵… 가장 많은 춤사위 확보/자신만의 춤제 창안 또다른 원형 만들어/내딛는 보폭마다 백태의 곡선 연출/남성적 매력 넘치는 태평무·한량무 일품 흰색 도포차림에 검은 갓,큰 부채로,얼굴을 가린 趙興東의 ‘회상(回想)’은 한 선비가 자신이 지나온 나날을 청허탄회(淸虛坦懷)로 돌아보는 춤이다.82년 대한민국무용제 전야제에서 선보인후 지난해 봄 문예회관 대강당에서 공연되어 화제를 뿌린 이 작품은 일종의 ‘조흥동류 한량무(閑良舞)’로서 해방전에는 신무용의 선각자인 조택원이 춤추었고 ‘몸은 비록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身老心不老)’는 제목으로 정인방이 형상화한 것을 그가 다시 춤사위를 짜고 악을 정리해서 자신의 춤으로 만들었다. ○현대와 궁중무 조화 본래의 ‘한량무’는 굿거리와 자진모리로 구성된데 비해 조흥동의 ‘회상’은 청송곡으로 시작해서 진양조 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를 거쳐 장(壯)과 한(閑)과 원화(怨和)를 춤속에 용해시키고 다시 청송곡으로 환원하는 수미일관(首尾一貫)이 남다르다.백으로 절제된 조명아래서 어느 때는 독수리처럼 날고 어느 때는 강철같은 번뜩임을 보이면서 내딛는 보폭마다 백태(百態)의 곡선을 연출하는 바람에 ‘모든 장면마다 절륜의 명화를 그린다’는 평을 듣는다.‘회상’뿐만 아니라 그는 어떤 춤이든지 우리 몸짓 가운데 힘이 숨어있는 곳을 꿰뚫어 남성무용수만의 정결하고도 선명한 광채를 흩뿌려나간다.춤사위마다의 변화와 춤의 언어가 정확할 뿐만 아니라 우리민족이 다듬어온 정밀하고 유현한 기백을 살아있는 흥취와 멋으로 개발하고 ‘남성춤의 신기원’을 이룩한 것도 조흥동만의 위업일 것이다. 그의 남성적 ‘태평무’는 스승 강선영의 화려한 겹걸음과 잔걸음등 발디딤새의 기교를 살리면서도 현대무용적인 분방함과 궁중무용의 내밀한 품위를 적절히 조화시켜 나간다.특히 발을 들었다 올리고 차듯이 엇비키는 다양한 율동은 리듬과 동작의 틀을 과감하게 깨면서 열박장단 돌림채로 눈부시게 몰아간다.여기에 조한춘의 꽹과리춤을 개작한 ‘진쇠춤’과 ‘장고춤’ ‘살풀이춤’ 역시 수없이 손질되고 다시 짜여져 시각적인 변화와 함께 호남의 기방적 교태미나 영남의 투박한 맛과는 달리 묵고적(默考的) 미선(微線)으로 정중동의 여백을 유려하게 펼치고 있다. 음악과 무용을 하는 이들이 주로 어울리는 서초동의 카페 체루니에 가면 그는 자신의 특기중의 하나인 ‘살풀이’ 한자락을 언제라도 여한없이 춤추어 보인다.와이셔츠에 양복바지 차림이지만 하얀 수건 하나만으로 한을 다스리고 추스르는 그의 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춤의 심장에 한없이 젖어들게하는 매력이 제격이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는 유세를 부리거나 세련된 티를 내지 않고 언제나 조흥동만의 관옥(冠玉)과 미소를 잃지 않는다.그래선지 남을 칭찬하는데 인색한 강선영 김백봉 이매방씨등 까다로운 원로들로부터 ‘조흥동은 춤솜씨도 일품이지만 인간 됨됨이가 반듯한 무용가’라는 총애를 받고 있다. ○누나들이 무복 불 살라 지난 수년간 국립무용단장 춤의 해 운영위원장 한국무용협회이사장등 탁월한 행정가의 면모를 보이는 중에도 ‘무천의 아침’‘환’등의 대형작품을 만들어냈고 굵직한 직함뒤에 가려져있던 안무가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해 보였다.지난해 10년만에 마련한 그의 발표회에 왔던 재미 무용평론가 이병임은 ‘세련되고 정겨운 조흥동의 무대매너는 모처럼 무대에서 귀인을 만났다는 반가움을 준다’고 평한 바 있다. 그는 가장 많은 한국의 전통춤사위를 섭렵한 무용인답게 가장 많은 춤사위를 점유하고 있다.그가 사사한 스승만도 김천흥 한영숙 이매방 은방초 김석출 박송암 스님에 이르기까지 무려 열일곱분이나 되고 유형별 유파나 계보별로도 각양각색의 춤이 망라되어있다.그러나 지난 9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인 ‘태평무’ 이수자가 됨으로써 전통 체득의 긴 여정을 끝내고 지금은 한성준류를 계승하고 있는 강선영에게 정착된 셈이다.그러나 스승에게서 배운 전통춤을 그대로 추기보다 원형을 재해석하면서도 자기식의 춤제를 창출하여 자기 주관을 강하게 주입시킨 또 다른 원형을 만들어내는 것이 조흥동의 춤이다. 조흥동은 숙명적으로 춤출 수밖에 없는 기질로 태어났으나 집안은 예술과는 무관한 봉건적이고유교적인 환경에서 자라났다.경기도 이천의 대농이던 趙泰煥씨(94)는 한학에 능한 학자풍으로 딸 넷을 낳고 백일기도 끝에 얻은 막내아들이라서 ‘눈에 넣어도 아파하지 않을만큼’ 귀하게 키웠으나 그의 유년은 추수때면 동네를 돌던 농악패나 두레패 사당패의 놀이에 흠뻑 빠져있었고 서울에서 경동중고에 다닐 때도 유장한 가락과 우리 춤에 매료되어 집에서 보내온 학비를 모조리 무용수업을 받는데 써버렸다.부모는 공대나 법대에 가기를 원했으나 무용계의 기라성같은 스승들이 모여있던 서라벌예대 무용과에 진학,62년 국립무용단 정기공연에 처음 참여했을때 누나들이 극장에 찾아와 춤꾼이 되어있는 동생에게 실망한 나머지 무복을 불사른 일은 무용계의 일화로 남아있다.당시로서는 남자가 춤추는 것을 같은 학교의 여학생들조차 탐탁해하지 않았고 남성무용수로서의 수모와 설움을 알기 때문에 그는 지금도 배움을 청하는 가난한 춤꾼들을 거절하지 않는다.중견무용수인 김정학 차효영 김남용 문정근등이 그의 제자들이고 가족은 부인 朴商洙씨와의 사에 1남 2녀. ○그윽한 그만의 춤언어 조흥동 춤의 세계는 꾸밀 줄도 수를 쓸 줄도 뒤로 돌아서면 표리가 다른 이중성도 찾아볼 수 없다.그의 춤은 스스로를 위한 축연(祝宴)으로 ‘말없이 자기춤의 실체를 보여준 그를 빼고는 한국무용사를 말할수 없다’는 평론가 정병호씨의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그는 지금도 춤사위 하나하나를 허툴게 다루지 않고 진정한 부드러움과 인간미를 객석에 던지는 ‘무위적정(無爲寂靜)을 지킨다.언제 어디서 다시 태어나도 결국 춤꾼으로 살아갈 그의 운명은 그만의 춤언어로 ‘흐르듯’‘스미듯’‘감추듯’ 혜지의 끝없는 향기를 언제까지나 길어올리게 될 것이다. ㅁ그의 길 ▲1962년부터 국립무용단 공연참가 ▲1963년 중앙대 예술대졸업 ▲1966년부터 조흥동무용학원설립 ▲1968년 제1회 무용발표회 ▲1969·71·86·96년 조흥동창작무용발표회(국립극장) ▲1976년 한국무용협회 이사 ▲1977년 한국문예진흥원 심의위원 ▲1979년 대한민국무용제안무·출연 ▲1982년 한국남성무용단창단 ▲1983년 국립무용단 지도위원 ▲1984년 LA올림픽‘도미부인’주역 1985년 한국무용협회 부이사장 ▲1986년 아시안게임문화예술축전안무 1987년 국립무용단 중남미순회 ▲1990년 국립무용단 상임안무가 ▲1992년 춤의 해운영위원장,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이수자 ▲1993년 국립무용단예술감독·단장 ▲1995년 ‘태평무’보존회 회장 ▲1997년 조흥동 춤의세계 공연 사단법인 한국무용협회이사장,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이사 ‘제신의 고향’(74년)‘이차돈’(75년)‘춤과 혼’(81년)‘젊은날의 초상’(85년)‘강강술래’(92년)‘무천의 아침’(94년) 대학무용콩쿠르안무지도상(76년) 대한민국무용제안무상(81년) 서울특별시문화상(92년)93’최우수예술가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95년)
  • 경찰기마대/李世基 社賓 논설위원(外言內言)

    런던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버킹엄궁전의 근위병 교대식과 함께 화이트홀 정문에 서있는 두명의 기마위병(騎馬衛兵)을 볼수 있다. 위병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감색윗옷에 빨간 머리장식의 헬멧을 쓴 로열호스가드와 빨간윗옷에 흰 머리장식의 헬멧을 쓴 라이프 가드맨이 그들이다. 교대하는 기마부대는 하이드파크에서 출발하여 버킹엄 궁전을 거쳐 화이트홀 안뜰에 집합하는데 이 행진 자체가 큰 구경거리다. 이들은 아이들이 아무리 심한 장난을 쳐도 절대로 미동하지 않는다.그들의 무표정은 임무때문이며 고압적인 위엄을 과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버킹엄의 근위병은 관광객과 사진을 찍기도 하고 아이들의 망가진 장난감을 고쳐주기도 한다. 그들은 주로 ‘보비(bobby)’나 ‘필러(peeler)’로 불리며 이는 1829년 런던 경찰을 처음 조직한 로버트 필경(卿)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찰은 일제때의 ‘순사나리’ 때문인지 한동안 일반에게 ‘반갑잖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오죽하면 우는 아이에게 ‘울면 순사가 잡아간다’고 엄포를 놓았겠는가.경찰은 왠지 귀찮고 떨떠름하여 지금도 적당히 거리를 두려는 선입감이 강하다. 오늘부터 서울에도 영국의 버킹엄궁전앞을 당당하게 활보하는 근위병같은, 멋진 기마경찰관이 등장하게 됐다. 우리의 기마대는 지난 45년 수도경찰 창설이후 시위나 환영집회등 특별행사에서 ‘전시효과’로 나선 적이 있고 95년 한강주변의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서울경찰 한강안전순찰대’ 발대식을 가진바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공원을 찾는 시민들이 늘어나자 경찰청은 경찰기마대를 서울올림픽공원·남산공원등에 투입한다는 것이다. 방범예방과 함께 질서위반자를 계도단속하고 미아나 가출인도 보호하게 된다. 또 친숙한 경찰상을 심어주기 위해 공원에 오는 어린이들에게 말을 태워주는 시간도 갖는다. 사회가 편안하면 경찰은 민중의 선량한 친구지만 사회안녕이 흔들리면 경찰의 임무때문에 위압과 긴장을 고조시킬 수밖에 없다. 모처럼 부드럽게 다가온 경찰의 이미지를 친근한 ‘보비’로 정착시키기위해 시민은 기본적인 질서와 예의를 먼저 지킬줄알아야겠다.
  • 흰계란이 더 좋다/갈색보다 영양많아/북제주 축산기술硏 등 연구

    【제주=金榮洲 기자】 소비자들이 선호하고 있는 갈색계란이 흰색계란 보다 영양분이 적고 갈색 닭은 체중이 무거워 사료비가 더 많이 들고 내병성(耐病性)도 떨어져 산란계로서는 부적합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도 북제주군은 10일 축산기술연구소와 수의과학연구소 등 전문기관의연구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흰색닭은 갈색닭에 비해 유전적으로 살모넬라균에 대한 저항력이 강했다. 흰색닭은 소화기계통 질병인 가금티프스병 감염률이 1.5%인 반면 갈색닭은 78.5%였다. 또 흰자나 노른자에 함유된 단백질,지방,회분 등의 영양성분도 흰색계란이더 많았다.특히 갈색닭은 흰색닭보다 체중이 20∼125g 무거워 사료비가 10% 가량 더들어 비경제적이다.
  • 디지털시대의 글쓰기/脫문자사회의 철학적 규명

    ◎문자의 역사와 미래 에세이로 분석 【金鍾冕 기자】 마샬 맥루한이 ‘활자시대의 종말’을 선언한 지 30여년,컴퓨터와 영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연 글쓰기의 미래는 있는가.문자와 글쓰기로 이루어진 ‘구텐베르크적 문화’로부터 컴퓨터와 디지털 코드로 대변되는 이른바 ‘텔레마틱 문화’로의 이행기에 우리의 사고와 가치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이러한 물음에 대해 우리는 체코 태생의 유태인 철학자 빌렘 플루서의 ‘디지털시대의 글쓰기’란 책으로부터 적잖은 암시를 얻을 수있다.플루서의 주요저서로 꼽히는 ‘디지털시대의 글쓰기’(윤종석 옮김,문예출판사)가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이 책은 ‘책 없는 세상’에 관해 다루지만 단순히 책의 종말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플루서는 이 책에서 현대적인정보 테크놀로지를 토대로 한 인간의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새로운 철학을 펼쳐보인다.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에 관한 철학적 해명작업을 시도해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플루서는 ‘텔레마틱 유토피아’란 개념을 내놓아 디지털사상가로도 불린다.텔레마틱이란 텔레커뮤니케이션(Telekommunikation)과 정보학(Informatik)을 합친 신조어로,그가 주장하는 텔레마틱 유토피아는 자동조절장치에 의해 작동되는 미래의 정보통신 사회를 가리킨다.플루서는 이 책에서 문자와 글쓰기 행위에 대해 현상학적으로 분석하는 한편 문자의 역사와 미래를 지적이고 화려한 비유가 숨쉬는 한편의 철학에세이로 풀어간다.그에 따르면 문자이전 그림의 시대는 전(前)역사,문자의 시대는 역사,문자이후 디지털코드의 시대는 탈(脫)역사의 시기다.탈역사 혹은 포스트역사란 문자의 지배가 끝나는 상황으로 알파벳적인 선형적·단선적 사고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카오스 상태를 말한다.그것은 정치적으로는 텔레마틱과 사이버네틱에 의해조절되는 사회다.요컨대 우리는 이제 점(點)단위로 사고하며 ‘계산적’으로 사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여기서 플루서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과 역사의 구조변혁이다.뉴미디어들의 대화적 네트워크화에 대한 그의 이념이나 텔레마틱 사회에 대한 모델 역시 이같은 변혁을겨냥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대화편 ‘파이드로스’에서 당시로서는 뉴미디어인 문자에 대해 살아있는 정신의 직접적인 교류에 방해가 된다고 비판했다.문자에 대한 플라톤의 이같은 비판에서 우리는 문자를 통한 지식의 대중화와 당시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귀족적 보수주의를 읽어낼 수 있다.이러한 보수적인 문자관과 오늘날 뉴미디어를 거부하고 문자의 형태를 고집하는 휴머니즘적 문화비판론이 같은 맥락이라는 점은 매우 역설적이다.플루서는 뉴미디어를 거부한 채 문자만을 고집하는 이들에 대해 “종이를 파먹는 흰 개미같은 존재들”이라고 비아냥거렸다.하지만 그 역시 문자문화와 글쓰기의 종말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버리지 못했다.그는 생전에 컴퓨터 대신 낡은 타자기로 글을 썼다.그에게는 여전히 ‘휴머니즘적 에세이스트’란 말이 어울린다.
  • 外資 유치로 失業 극복을(우홍제 칼럼)

    중국의 개방·개혁정책을 이끈 鄧小平은 “검은 고양이든,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말로 경제대국을 지향하는 실용주의적 정책추진의 당위성을 강조했다.이른바 유명한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다. 6·25동란이후 최악의 국난(國難)인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하루 빨리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지금 외국인투자에 의한 외자(外資)유치를 최우선의 정책수단으로 정해 놓고 있다.정부는 외국인에 대해 거의 모든 업종을 개방하고 각종 행정규제철폐·기업인수합병 걸림돌 제거 등 외자유치를 강화하기 위한 법적·제도적장치를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그동안 외국인 투자가들이 받아온 ‘규제왕국’의 그릇된 이미지를 씻겠다는 각오다. ○고용창출·수출증대 효과 그렇지만 이러한 정부 정책마련 못지않게 외국기업에 대해 알게 모르게 몸에 밴 일반의 배타적 감정이나 인식과 관행들이 완전히 뿌리 뽑혀서 한국이 기업하기 편한 나라라는 피부적 느낌이 있어야만 외자유치가 활성화할 것이다.외국인 투자는 외채(外債)와 달리 원리금 상환 부담이전혀 없는 외국돈이 들어와 고용을 창출하고 수출을 늘리며 기술이전의 효과를 얻게 한다. 영국의 경우 전체 제조업체의 25%가 외국기업이고 이들이 국내 총생산의 19%,수출 40%,고용의 13%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돼있다.지난 70년대 후반 경제파탄으로 IMF관리를 받는 수모를 겪었던 영국이 외자유치로 위기를 넘겨 경제회생에 성공한 것은 널리 알려진 것이다.캐나다는 국내총생산의 절반이상을 외국의 다국적기업들이 맡고 있다. 이처럼 국경없는 무한경쟁의 세계화시대에서는 내국인기업과 외국인기업과의 차별적 시각은 별 의미가 없다.국내 재벌기업이 외화를 해외로 빼돌리거나 방만한 부채경영으로 국가경제를 망칠 때 같은 국민이라는 이유로 애써 보호해야할 필요가 있는가.외국기업에는 무조건 배타적 민족감정으로 사시(斜視)의 태도를 취하는 외국인혐오증환자를 결코 애국적이라 할수 없다.IMF때문에 외국차에겐 휘발유를 안 판다는 식의 발상도 애국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인식변화·유치운동 필요 공장을 세우고 새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을 늘리며 부가가치를 높이면서 우리경제를 살찌우는 기업은 어느 국적을 가지고 있든 관계가 없다.흰 고양이냐,검은 고양이냐를 따지는 것만큼이나 무익한 일이다.외국인투자에 대한 인식변화와 함께 범(汎)국민적 유치활동이 요청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면 국제적인 신인도도 높아져 국가경제 운용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외국기업에 대한 정부규제철폐는 그 파급효과가 국내기업에도 확산될수 있으므로 국내 생산시설의 해외이전같은 산업공동화의 제동역할도 할 것이다. 또 증권시장에 들어오는 외국돈은 단기투기성의 핫머니성격이 강해서 상황이 변하면 썰물처럼 빠질수 있지만 투자유치된 외국기업은 쉽게 철수하기 어려울뿐 아니라 한국의 상황악화를 바라지 않는다.자기 자산가치 폭락등의 손실을 보기 때문이다.이런 이유로 외국투자기업들은 국제적 현안에 대해 현지 국가에 유리한 입장을 취하게 마련이다.외자유치의 국제정치적 이점이다. 실업대책과 관련,정부는 공공사업집행과 같은 한국판 뉴딜정책보다는 외국인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 같다.이를 두고 정부 실업대책이 혼선을 보이는 게 아니냐는 일부 견해도 있다.그러나 실업대책이 택일적(擇一的)으로 경직될 필요가 없다고 본다.앞날의 성장잠재력을 위해서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는 공공사업은 즉시적인 실업구제의 효과가 있는만큼 당초 계획대로 무리없이 추진하고 외국인투자에 의한 실업해소의 정공법(正攻法)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말聯총리의 준비론 주목 그렇지만 우리가 원한다고 외자유치가 쉽게 될리 없다.우리처럼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동남아 각국이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경쟁을 벌이는 터여서 더욱 그러하다.태국·필리핀 등 각나라가 역시 외자유치를 경제정책의 최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외자유치를 위해서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자존심을 굽힐 준비가 돼있다”고 말한 것으로 외신은 전한다.새정부출범 이전 말레이시아는 한국과 경쟁했던 세계굴지의 미국 실리콘제조업체 다우코닝사의 28억달러 투자유치에 성공했다.외자유치의 분발이 더욱 촉구되는 시대다.
  • 美 콜로라도州 메사 베르데(세계 문화유산 순례:67)

    ◎1,500년전 절벽위에 세운 ‘인디언 도시’/4,000개 공동주택·종교시설 23곳… 관개설비까지/전성기때 7,000명 거주… 암굴주거지 600곳 압권 【메사 베르데(美 콜로라도주)〓金在暎 특파원】 사막같은 황야에선 뭐니뭐니 해도 녹색이 가장 그리운 색이다.‘녹색의 대지(臺地)’란 뜻의 지명 ‘메사베르데’에는 불모의 땅에 지친 백인 개척자들이 불현듯 눈앞에 나타난 녹색 고원에 대고 지른 반가운 환호성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백인들은 시적(詩的)인 땅이름만 남기고 금방 자리를 떠버렸다.반면 이곳의 원주민 인디언들은 이름 대신 800년의 손때가 절인 삶과 문명의 유산을 남겼다.백인들은 메사 베르데의 녹색을 눈에서 사막의 잔상을 씻어내는 청량제 쯤으로 여긴 셈이나 인디언들은 이 녹색 대지에다 사막의 살아있는 저쪽 피안(彼岸)을 세웠던 것이다. 미 콜로라도주 남서부 밑바닥에 소재한 메사 베르데 인디언 유적은 콜로라도,뉴멕시코,아리조나,유타 등 4개주 접경지역에 펼쳐졌던 아나사지(Anasazi)문명에 속한다.미국의 인디언 문화는 크게 태평양 연안,대분지,대초원,남서부 사막,동부 수목지 등 5개로 대별하며 남서부 문화 가운데 아나사지 문명은 부족의 명맥이 끊겼음에도 특히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1888년 카우보이가 발견 반 불모지의 사막성 땅에 불쑥 솟아오른 암석대지인 ‘메사’는 몸체가 암석 절벽이고 위 봉우리는 평평한 고원으로 산 아닌 산이다.뉴멕시코,아리조나주에서 콜로라도주로 북상하는 도중에 많이 만나며 그중 뉴멕시코 북서쪽 끝 산 후안 분지에 많다.인디언 영화에 흔히 나오는 이 메사들은 특징은 막철분을 으깨 바른 것 같이 생생한 주황색 빛의 절벽인데 주변의 사막성 황무지와 어울려 위협적으로 보인다. 메사 베르데는 콜로라도주를 움켜쥔 록키산맥의 끝자락으로 조금만 더 북상하면 4천m 고봉들이 곳곳에 솟아있다.메사 베르데란 이름은 1600년대 중·남아메리카에서 북상해온 스페인 정복자들이 선사했다.메사의 치렁치렁한 녹색 뒷머리를 보고 영탄조를 발한 이들도 막상 북쪽의 전면을 보고는 이 고원에 오르는 것을 단념했다.해발 2천m의 고지대지에서 그대로800m 단층애를 이룬 메사 전면이 너무 가파라서 그 안엔 탐험하더라도 어떤 유적이나 고대사회가 있을 성 싶지 않았던 것이다. 소나무,전나무 등의 녹색 잎이 물결치고 있는 메사 베르데는 거대한 산악지형이다.북에서 남으로 기울어진 이 지형은 십여개의 가파른 협곡 사이 몇곳에 평평한 메사가 놓여 있다.면적은 서울 2배가 넘는다.1888년 12월,잃어버린 소를 찾아 메사를 헤매던 2명의 카우보이들에 의해 1300년 이후 600년동안 잠자고 있던 아나사지 인디언 유적이 발견됐다. 그러나 드넓은 메사에서 인디언의 삶터는 아주 조그만 부분에 불과했다.입구에서 10㎞는 족히 들어간 다음에 첫 흔적이 있고 35㎞는 더 가야 샤핀 메사의 주 근거지가 나온다.푸에블로 인디안의 메사 베르데 유적은 서기 500년부터 800년 동안 줄기차게 이어진 것으로 석기,역사기록 전무의 선사적 특징은 변동이 없으되 주거지 유형의 변화가 일목요연하게 잡혀진다.물을 담을 만큼 촘촘한 바구니를 유카 실로 엮었던 초기에는 지하에 방을 내고 나무잎과 흙으로 지붕을 인 움집에서살았다. 토기를 굽기 시작한 800년 무렵부터의 중기는 지상 가옥으로 변하면서 마을이 이뤄지고 집을 잇대어 짓는 단체구조로 발전했다.메사 베르데의 토기는 흰 바탕에 검은 무늬의 특이한 배합으로 눈길을 끈다.1100년부터는 진흙으로 겉마감한 ‘아파트형’ 아도비 흙집에 단체로 거주하는데 크게는 50개의 방이 갖춰져 있다. ○사다리 타고 창문 통해 출입 메사 대지의 대대적인 개간과 관개시설,공동주택,종교적 공동시설 등은 메사 베르데 문화의 절정기를 말해준다.전성기 때는 인구가 7천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그러나 유적 측면에서는 단연 말기에 지어진 암굴(岩窟) 공동주택이 압권이다.메사 안에는 4천개소의 유적이 파악되고 있는데 그중 고원 밑 노천굴에 세워진 주거지만 600개에 달한다.굴의 벽을 천정,바닥 등으로 활용하는 암굴주거 시설은 대부분 방 수가 5개 이하지만 제일 큰 ‘클리프 팰리스(절벽궁전)’는 217개의 방에 종교적 의식이 거행되던 원형의 반지하실인 ‘키바’(Kiva)가 23개나 있다.바닥을 몇개의 테라스로 층을 나눴으며방도 다층구조를 가졌다.인디언 풍습대로 방은 1평 남짓 작은 것으로 창문과 나무 사다리로 출입했다. 롱 하우스는 방이 150개,스푸르스 하우스는 114개에 달하며 가파른 소다 협곡을 마주하고 있는 35개 방의 발코니 하우스는 10미터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메사 베르데의 전체면적은 211㎢로 190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이 유적은 80년대 들어서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적인 문화유적으로 보존되고 있다. ◎여행 가이드/콜로라도 산맥 끝자락 4개주 교차점에 위치 메사 베르데는 콜로라도,뉴멕시코,아리조나,유타주 등 콜로라도산맥 하단부 4개주가 직각으로 만나는 교차점의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아리조나주 북부 그랜드캐년에서 연방국도 160번을 타고 350㎞ 북동쪽에 있으며 뉴멕시코 앨버커키에서는 300㎞,콜로라도 덴버에서는 550㎞ 떨어져 있다. 인근에 콜로라도주 남동부의 상당히 큰 도시인 코르테즈와 두랑고가 있다.
  • 民權단체 등장과 반작용(秘錄 南柯夢:6)

    ◎독립협회 결성에 ‘魚頭鬼面의 무리’ 비난/高宗의 해산령에도 활동 계속하자/徐載弼 등 주동자 17명 투옥/李承晩은 탈옥미수로 사형선고/하야시日公使 上奏로 특사 석방 ‘남가몽’의 저자 정환덕(鄭煥悳)이 경북 영천(永川)에서 처음 상경한 것은 1897년 가을,나이 40때였다.이 때는 갑신정변이 일어난지도 13년이 지나 세상은 온통 개화사상으로 들떠 있었다.1894년 일제는 동학란을 구실로 청일전쟁을 일으켰고 김홍집 등 개화파를 시켜 갑오개혁을 단행했다.그리고 이듬해는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바로 그 다음해가 정환덕이 상경한 때였다. 정환덕은 상경하기 두달 전 길몽(남가몽)을 꾸었다.황학사의 한 암자에서 수도하고 있는데 하루는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더니 “공부 더 할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1896년 徐載弼이 결성 “광무 원년(1897년) 7월 16일 밤 황학사(黃鶴寺) 동편 운수암(雲樹庵)의 동대(東臺)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흰 도포를 입은 산신령이 청려장(靑藜杖·명아주 대로 만든 지팡이)을 짚고 내려와 마루에좌정한뒤 말하기를 ‘자네가 수학(象數學-易學)에 마음을 쏟은지 벌써 7년이나 되었으나 글의 요령(참뜻)이 어떠한 것인지 알지 못하고 글만 줄줄 읽어온 것으로 안다.그러니 글의 행간에 숨겨진 뜻을 해득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더니 산신령이 청려장을 짚고 돌연 “나라가 망했다”고 개탄하는 것이 아닌가. “슬프게도 금수강산이 벌써 다른 사람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니 애석하도다! 이런 때를 당하여 비록 주(周)나라 800년을 일으킨 강태공(姜太公)이 나타나도 안되고,한(漢)나라 4백년을 보좌한 장자방(張子房)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아무 쓸데가 없다.하물며 자네가 약간의 역학을 배웠다 하여 큰 운수(大數)를 잡을 수 있다고 자신하겠는가.헛되이 정력을 대수에만 집착하지 말고비록 작은 운수(小數)에 지나지 않다 하더라도 잡는 것이 좋을 것같다.너의 신상에는 앞으로 십년간 통운(通運)이 있으니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말라.시국의 변화를 따라 잘 대처하면 자신과 처자를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꿈을 꾸고 선뜻 서울에 올라와 보니독립협회 회원들이 아우성을 치며 거리를 누벼 장안은 온통 난장판이었다. “사람같지 아니한 무리(匪類),즉 어두귀면(魚頭鬼面)의 무리들이 작당을 하여 단체를 만들고 이름을 독립협회라 하고 광화문 앞에 모여서 밤낮으로 선동하고 있었다.이 때문에 소란상태가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문안이나 성밖을 막론하고 온 서울의 인심이 점점 물끓듯 하여 장차 군자는 설땅이 없을 것같은 조짐이 보였다.” 독립협회는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미국으로 망명한 서재필이 11년만에 귀국,1896년 7월 2일 결성한 단체였다.우리나라 최초의 민권당(民權黨)이요,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지금 많은 역사가들이 독립협회를 찬양하고 있으나 당대의 절대 다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예컨대 정성우(鄭惺憂)라는 선비는 상소하기를 “갑신정변때 망명했던 역당들이 갑오 6월의 난을 일으켰으며,다시 을미 8월의 대역(大逆)을 양성한 것이다.소위 개화의 무리들이 외국으로 망명하였다가 환국,둔갑해서 말을 바꾸기를 부국강병이라 하고 외국인을 불러들여 대변(大變)을 일으켰다.흉도(兇徒) 서재필이 외신(外臣)이라 자칭하며 국권에 간여하고 있는 것은 무슨장난이며 독립신문이라는 것은 정부를 훼방하는 글 뿐이요,의리를 저버린 것이다.이것은 다만 나라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다”고 통렬히 비난하였다.그러니 ‘남가몽’이 독립협회 회원을 ‘비도’라 했다해서 상식에 어긋나는 말은 아니었다. “이때에 황상폐하(고종)께서는 특별히 교서를 내리시어 ‘지금 너희들이 이같은 어려운 시대를 당하여 죄망에 걸리어 스스로 알지 못하는 곳에 빠져들고 부득이하게 핍박되어 평시와 다르게 되었으나 내가 마땅히 용서해주고 놓아줄 것이다.각자 돌아가 농사짓는 자는 농사짓고 장사하는 자는 장사에 부지런히 힘써 생업에 안착한다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고 경고하여 깨우쳤다.” ○영은문 헐고 독립문 건립 그러나 독립협회 회원들은 해산하지 않고 한결같이 사단을 야기하였다.이에 고종과 순종이 크게 진노,직접 광화문루 위에 올라가 교시를 내려 말하기를 “짐(朕)이 너희 무리들의 범죄를 풀어서 놓아주고 각자 돌아가 생업에 안착할 의사를 누차 깨우쳐 주었으나 듣지 않으니 너희 무리들은 도무지 정치 밖에 있는 백성으로 국민이 아니다.사세가 부득이하니 너희들을 차별없이 소멸시키고 말겠다” 하고 대포를 성루에 높이 달아매고 위력을 보이니 독립협회 회원들은 해산하고 말았다. “내가 서울에 갔을 때는 차차 평온해지고 시골도 점점 진정상태에 접어들고 있었다.그러나 남은 재앙이 이어져 수해와 기근이 겹치게 되고 도적이 날뛰어 천재(天災)와 시변(時變)이 해마다 일어나지 않는 때가 없었다.겉으로는 조금 안정을 되찾는 듯했으나 안으로는 점점 비상시국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서재필은 먼저 사대주의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웠다.이어 모화관의 편액을 독립관으로 바꿔 달았다.봄부터 독립관에서는 치열한 토론회가 열렸는데 모두가 전직 판서·참판·승지 등 고위층들로 가마를 타고 나타나 앞마당은 거마로 꽉 찼다.또한 토론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라 발언권을 얻어도 말이 나오지 않아 그냥 연단에 서있다 내려가는 사람도 많았다. 하루는 토론 주제가 “길에 가로등을 달아 도적을 없앱시다.”였다.한 사람이 일어서서 “가로등이 비치면 도적이 은신할 데가 없으니 매우 유용합니다”고 주장했는데 반대론도 만만치 않았다.어떤 사람은 “도적이 어디 길에서 도적질 합디까.남의 집 캄캄한 다락이나 곳간에서 도적질하기 때문에 가로등을 세워봐야 소용없습니다”고 하였고,다른 사람은 “가로등으로 밤도둑은 막을 수 있으나 밤에 등불을 켜고 남의 집에 들어가는 명화적(明火賊)에게는 가로등이 소용없고 또 청천백일하에 선량한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낮도둑(부정부패 관리)에게는 백촉,천촉,억만촉의 등불을 켜도 막을 수 없습니다.여러분!”이라고 소리쳤다. ○법무대신 韓圭卨이 감형 때마침 회장에 몰래 숨어들어와 있던 내부협판(內部協判·내무부 차관) 김중환(金重煥)이 이를 듣고 곧장 고종에게 달려가 “독립협회에서는 국왕을 비롯한 모든 정부요인들을 절국대도(竊國大盜)라 몰아붙이고 있습니다”라고 과장했다.고종은 대로하여 해산령을 내렸고 그래도 해산하지 않고 이듬해 여름까지 세번이나 직소를 올리자 어용단체 황국협회(皇國協會)로 하여금 몽둥이로 독립협회원을 두들겨 패고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 이때 독립협회 주동자는 18명이었는데 윤치호를 뺀 17명 모두가 서소문 감옥에 갇혔다.그중에서도 이승만(李承晩)은 가장 과격한 분자라 사형선고가 내려졌으며 한번 탈옥하다가 붙잡혀 들어왔으므로 꼭 죽어야 될 신세였다.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한규설(韓圭卨)이 법무대신이 되더니 그를 감형하였고,1904년 일본공사 하야시(林權助)가 고종에게 상주(上奏)하여 특사로 풀려났다.하야시는 훗날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살려내리라는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 사야할 옷 품목 정하고 가라/코디가 제안하는 세일매장 활용법

    ◎치수 아는 것 기본/기본형 고를 것/잡화류에 주목을 ‘90∼70% 인하’‘가격포기’….IMF 한파로 부도맞거나 자금사정 어려워진 브랜드 의류들이 너도나도 ‘폭탄세일’에 나서고 있다.할인폭에 혹해 구경나가 보지만 대부분 유행 한참 지난 디자인이거나 맞는 치수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싼게 비지떡’이라고 발길을 돌리기 쉬운데 세일매장에서 옷 고르는 데도 ‘노하우’가 필요하다.의상 코디네이터 김선영씨가 제안하는 세일매장 ‘100배 이용법’을 소개한다. △무엇을 살 것인지 확실히 정한뒤 매장에 가라=세일매장의 물건은 매대에 수북이 쌓여 있거나 걸려 있어도 뒤죽박죽인게 보통이다.이 곳을 ‘옷 한벌사야지’하며 기웃거렸다간 머리만 아프거나 충동구매에 휩싸이기 십상.흰색 폴로 티,화려한 슬리브리스 원피스 식으로 아이템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둔다. △자기 치수를 확실히 알고 가자=입어보지 못하게 하는 곳이 많기 때문.브랜드옷은 특히 사이즈가 작게 나오는 곳이 많기 때문에 정상 매장에 가서 한번 입어보고 가는 것도 센스.철 지난자사(自社) 옷을 상시 판매하는 이코노 숍은 파격세일보다 할인폭은 좀 작지만 입어볼 수 있고 사이즈도 잘 갖춰져 있어 고민을 덜어준다. △기본형을 고를 것=할인매장의 옷은 이월상품이 대부분이라서 촌스러워 보이는 디자인도 많다.유행 타는 아이템들은 위험.두고두고 입을 수 있는 기본형을 선택하자.가장 안전한 것은 티셔츠류.박스형 흰 티나 검은 티,흰 면남방 등이 무난하다.바지라면 일자형 청바지나 데님바지,자켓은 너무 짧거나 길지 않고 힙선 정도 길이에 허리에 다트 하나 들어간 디자인으로 검은색,흰색,회색,갈색 등이 기본.요즘은 웬만한 유행은 한 해 지나도 이어지는데다 유행이랄 것 없이 개성따라 입는 추세라 상대적으로 싼 티나 블라우스 등에선 모험도 해봄직하다. △잡화류에 주목하라=구두,핸드백 등은 이렇다할 유행이 없는데다 색상도 검정,브라운,흰색 정도라 특히 세일매장을 권할만 하다.로퍼,스트랩슈즈,운동화 등을 아주 싼 값에 ‘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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