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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시 흰 개구리 발견

    지난해 말 경북 안동시에서 흰까마귀가 발견된데 이어 2000년 새해 초 안동시 북후면에서 한 농민이 겨울잠을 자는 흰개구리를 발견해 화제다. 강상원씨(37·농업·안동시 북후면)는 지난 1일 오후 북후면 옹천리 마을앞 개울가에서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던 중 물속의 돌무더기 틈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던 길이 17㎝가량의 흰개구리를 잡았다.흰개구리는 눈만 검은색을 띠고 있고 온몸이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색으로 내장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투명한 것이 특징으로,강씨가 현재 집에서 보호중이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 연말 길안면에서 흰까마귀가 발견된데다 새해 벽두엄동설한에 흰개구리까지 발견된 것은 새천년을 맞아 상서로운 징조”라고풀이했다. 안동 김상화기자
  • 대한매일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작(2)

    ◈창 달린방-안은영◈8.숨쉬는 아이성당에서 결혼 축하 곡이 흐른다. 해우,미라의 운동화 끈 묶어준다. 미라:(힘없이)엄마가 거울을 모조리 갖다버렸어. 해우:(미라 쳐다보고 무관심하게)그래?미라:(한숨)거울 보는 엄만 엄마가 아니야. 해우:(장난스럽게)엄마가 아니라니,엄마가 두 개니?세개?미라:(웅크리며)연극대본 보면서 거울 앞을 왔다갔다 하는 엄만 늘 뻔데기같았어. 해우:(운동화 끈 다 묶고)다 됐다.(미라 옆으로 앉는다)미라:(잡풀 뜯어서 연못가에 던지며)엄마는 거울에 꿈이 숨겨져 있대. 해우:(양손으로 잡풀 뜯어서 하늘 위로 날리며)꿈?머리 위를 빙빙 도는 꿈말이니?미라:엄만 사람들이 거울을 보며 꿈을 키워간대.어릴 때 거울 앞에 날 앉히고 머리 땋아주면서 꿈이 뭐냐고 묻더라. 해우:(관심 가득한 얼굴로)뭐라 대답했어?미라:내 꿈은 원래 있던 거야.있었어도 고쳤어야 했어.(잡풀,쥐어 뜯어 연못에 던진다.그러나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해우:(미라 머리 위에 떨어진 풀 떼어내면서)꿈을 고쳐?미라:엄만 내 생일만 되면 연필 한 타스를 선물하면서 꼭 극작가가 되어야한대. 해우:작가? 폼 난다. 미라:서랍에 연필이 가득 채워지고 서랍문을 열고 닫기가 힘들어질수록 엄마거울도 점점 늘어갔어. 해우:(풀물이 밴 손냄새 맡고)근데 거울을 왜 몽땅 치우신거야?미라:깨질까봐. 해우:그래 유리는 깨지기 쉽지. 미라:(연못 가까이 가 들여다보며)아니 꿈이 깨질까봐.아-여기로 빠지고 싶다.저 속은 따뜻할 거 같지 않니?(해우를 끌어당기며)여기로 들어가면 쟤네처럼 웃고만 살 수 있을텐데.(뒤로 물러나 앉으며)엄마 꿈은 거울에 있었나봐. 해우:배우라 생각하는 것도 틀리다. 미라:(연못에 손 담그고)아무도 몰라주는 배우였지.몇 줄 안 되는 대사를 밤새 연습하는 엄만 항상 빨간눈으로 날 봤어. 해우: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 거지. 미라:(손바닥에 물 담아 밖으로 뿌리며 흥분해서)엄마가 무대에 오를 때마다 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어. 해우:흥분됐겠다. 미라:(바지에 손 닦고)나도 처음엔 떨리는 내 가슴이 흥분인 줄 착각했는데피가 마를 것만 같은 염려였어.대사를 엉터리로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어.어쩔 땐 멍하니 무대에 서서 진땀만 흘리고 아무 말도못했어.극이 끝나면 엄만 며칠을 울면서 매일 전화에다 대고 미안하다,죄송하다 죽음 앞에 선 토끼 마냥 뜀박질을 해댔어. 해우:너무 간절하면 엇나가기 쉽잖아. 미라:아니 소질 없이 욕심 하나로 버틴 거지. 해우:(다리 쭉 펴고)욕심?미라:내가 이름난 극작가가 되면 엄만 주연이 되서 누구보다 무대를 빛낼 수 있대.거울 앞에 날 앉히고 내 꿈을 직접 만든거야.난 꿈이란 건 누군가 만들어 주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하는 정답쯤으로 알았던 거야. 해우:(집게손가락 연필로 풀 휘저으며)어렸으니까. 미라:(잡풀 뜯어 자기 머리 위로 올려 날리면서)아니.난 내가 뭘 원하는지도모른 채 거울한테 복종당했어. 서랍에 연필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질 때쯤 난더 이상 아무런 꿈도 이룰 수 없는 걸 알았어. 엄마가 원하는 극작가는 덩그러니 형체만 있을 뿐이구. 해우:넌 뭐든지 잘 할 수 있어. 미라:밤새 토끼 눈으로 거울 앞을 왔다갔다 하는 엄마에게 서랍 통을 던졌어.그제서야 거울도 보호받게 된 거야. 해우:(미라 머리 위의 풀 털어 주면서)보호?미라:엄만 절대 깨질 수 없는 곳에 거울,아니 꿈을 숨겼겠지. 결혼식 때 쓰인 풍선이 해우와 미라의 머리에 내려앉는다. 해우,미라 풍선을 치면서 깔깔댄다. 9.거미줄 뜯어먹기해희,전구를 갈아 끼운다. 전구에 빛 들어온다.흔들리는 전구 빛이 방안을 왔다갔다 한다. 해희,해우 눈이 부신 듯 눈살을 찌푸린다. 해희:(앉으며)성당 안나간 지 오래됐다.결혼식 구경도 하고싶어. 해우:지겨워. 해희:왜?너 결혼 축하 곡 듣는 거 좋아하잖아.미라랑 눈감고 감상하던 니가 웬일이니?해우:발 치워!그리고 미라 얘긴 그만 해. 해희:(신이 난 얼굴로 해우에게 바짝 다가가 앉으며)싸웠니?해우:(등돌리고)그만 하라구. 해희:나도 미라 같은 애 싫더라.귀티가 줄줄 흐르는 게 사람 기를 너무 죽여. 해우:출근 안 해?해희:(시계보고 놀라서)아침빵 돌려야 되는데.(가방 들고 일어서며)미친 것도 아닌데 병원에 가두는 잘난 의사때문에 내가 늘 정신이 빠지는 것 같다니까. 해우:미친사람 덕에 밥 먹고 살면서 투덜대긴. 해희:기분좋은 발레리나 신경 긁지 마라. 해우:발레리나?주제에. 해희:(급히 나간다)해우:(씽크대 서랍을 뒤지고 부탄가스 꺼내며)꼭꼭도 숨겼네. 차츰 제자리를 찾는 전구. 해우:(벽에 기댄 채 까만 봉지에 얼굴을 쳐 박고)으으으으….(호흡 점점 빨라지다 스르르 방바닥에 웅크리고 누우며)으으으으….(가늘고 힘없는 목소리로)엄-마. 부탄가스통끼리 부딪쳐 쇠소리 난다. 10.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정신병원 매점해희:(빵과 우유를 셈하면서 낡고 작은 냉장고에 넣으며)열 여섯 열 일곱…. (앉아서 장부 뒤적거린다)잠시초코파이 아줌마:(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으며)니 묵어라. 해희:벌써 주사 맞았어요? 초코파이 아줌마:(두리번거리며)201호 처녀가 또 의사한테 먹혔다구. 해희:(요구르트를 단숨에 빨고 못 믿는 말투로)에이,의사 선생님이요?초코파이 아줌마:(바지 끌어올리며)그 놈은 영계만 보면 환장을 하구 설쳐. 해희:(빵 뜯어먹다가 가슴치고)캑캑!헛소문 많잖아요. 초코파이 아줌마:그 처년 퇴원하기 틀려 먹었데이,쯧쯧. 해희:아줌마만큼 건강해지면 병원 나가죠.병원은 병고쳐주는 곳이잖아요. 초코파이 아줌마:세상으로 못나가게 수갑채운다.누가 모르는 줄 아나.난 멀쩡 혀.미친년들한테 섞여 살란 께 골치가 아퍼 죽겠다. 해희:아줌마도 머리 아프시다고 뒹굴고 약 먹고 그러셨잖아요. 초코파이 아줌마:(못들은 척)그 처녀,인제 뱅실도 좋은데로 옮기긋지?어?해희:(걱정스런 얼굴로)이상한 말 쏟고 다니지 마요. 초코파이 아줌마:미친년들뿐인데 내가 누구한테 말을 한담. 해희:내가 보기에도 아줌만 멀쩡해. 초코파이 아줌마:(기분 좋아서)맞다,맞다.(한참 까르르 웃다가 겨우 웃음참고)머,멀쩡하제?마,맞제?(바닥에 뒹굴고 웃으며)마,맞제?해희:그만 해요. 초코파이 아줌마:(웃다가 의자와 같이 넘어지며)마,맞나,안맞나?해희:(초코파이 아줌마 일으키며)괜찮으세요?초코파이 아줌마:(웃음이 멈추지 않아 배를 쥐어짜며)아,아이고 배야,해희:밥을 안드시니까 힘도 없죠?초코파이 아줌마:약 탄 밥을 내가 와 묵노. 해희:약이요?초코파이 아줌마:(웃음 딱 멈추고 주위를 째려보면서)간호사년들끼리 짜고약 탄 거 몰랐나?해희:아줌만 의심병만 고치면 돼. 초코파이 아줌마:(해희에게 귓속말)밥 묵으면 이 병원서 썩어 죽는다. 해희:그래서 초코파이만 드세요?초코파이 아줌마:그럼 나보고 뒈지라꼬?해희:(시계보고)내일 봬요.밥에 독약 같은 건 없어요. 초코파이 아줌마:그냥 가는기가?해희:(가방 메고 장난스럽게)아줌마도 우리 집 가시게요?초코파이 아줌마:약속이 틀리네 오늘이 우리 만난 지…(손가락 셈하며)오늘이 그날인디. 해희:그날이요?초코파이 아줌마:까먹었나?해희:뭘요?초코파이 아줌마:내 새끼 찾아야 되는데.내는 여 있으믄 안 된다. 해희:그래서 탈출이라도 하겠다구요?초코파이 아줌마:(주머니 이곳 저곳을 뒤적거려 초코파이를 꺼내주며)이거다 묵어라.모잘라나?(해희의 가방 안에 초코파이 넣으며)됐제?해희:다 뭐예요?초코파이 아줌마:니 줄라꼬 간식 안 묵고 숨캤다. 해희:아이 잃어버렸어요?초코파이 아줌마:와?니가 찾아 줄라꼬?(손가락 셈하며)딱 니만 하것다. 해희:(혼잣말)엄마도 날 찾고 있을까?초코파이 아줌마:(해희의 가방빼앗아들고)어여 가제이. 해희:(목에 두른 스카프를 풀어 초코파이 아줌마의 머리에 감아주며)내가 봐도 아줌만 환자 아니야. 초코파이 아줌마:(웃음 참으며)아무도 몰라보겠제?해희:(속삭이듯)집 가서 밥 해 줄게요. 11.거미줄 뜯어먹기해희와 초코파이 아줌마가 팔짱끼고 들어온다. 해우:(엎드려 잡지보다가 빼꼼 올려보고)누나왔어?늦었네. 해희:젖 드러내고 있는 거 봐서 뭐해.그림의 떡이지. 해우:(잡지 덮고 일어서며 비꼬듯)누구야?초코파이 아줌마:(해우의 손을 잡고)잘 생긴네. 해우:누구냐구?해희:(망설이다가)그냥 아는 분. 초코파이 아줌마:(해희의 가방에서 초코파이를 꺼내 주며)어여 묵어,니 선물. 해우:(초코파이 쳐서 바닥에 떨어뜨리고) 미친 여자 아니야?해희:손님이야. 해우:(어이없어)환자옷 입고 여기까지…. 초코파이 아줌마:(초코파이 줍고)뱅원에서 일하는 아줌마여.옷이 편해서 빌려 입은기다.그자?해희야.맞제?해우:누나가 말하던 초코파이 아줌마야?초코파이 아줌마:(반가워서)니,내 아나?해우:당신이 미쳤다는 것도 알아요. 해희:멀쩡해,니가 보기에도 미친 것 같으니?잃어버린 자식 있는데 찾아야 된대. 초코파이 아줌마:밥 안 묵었제?(씽크대로 가서 그릇을 뒤적거리며)창문 열자,해희야.답답다. 해우:정신병원에나 돌아가요.여긴 창문 같은 건 없으니까. 해희:아줌마,제가 할게요.밥해서 같이 먹어요. 초코파이 아줌마:(사방을 둘러보면서) 답답해서 우째 사노?그래서 니가 허옇게 얼굴이 뜬 기가?둥근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해희,해우,초코파이 아줌마. 해희:아,참!(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내들고)주인집 갔다올게. 해우:안그래도 낮에 변태새끼 몇 번이나 왔다갔어.누나가 언제 쉬는 지도 모르는 띨띨한 놈.그 띨띨이,아줌마 친구하면 되겠다. 초코파이 아줌마:(방긋 웃으며)누군데?내 친구 소개시켜 준다꼬?해희:아니예요. 초코파이 아줌마:내도 같이 가자.내가 친구가 어딨노?소개 시키 도. 해희:식사하세요. 초코파이 아줌마:(실망해서)와?니 애인이가?주인남자,방문 열고 들어온다. 주인남자:냄새 죽인다. 초코파이 아줌마:누고?주인남자:(간드러지게)희야 왔어?초코파이 아줌마:(해희,해우 번갈아보고)희야가 누고?(해희 어깨 치면서)야!니다,해희 니 찾는갑다. 초코파이 아줌마:(정중하게 인사하고)식사 좀 하실랍니꺼?해우:(숟가락을 집어던지듯 상에 내려놓으며)방 값 줘서 보내. 초코파이 아줌마:주인인갑네. 해희:(흰 봉투 주인남자에게 준다)주인남자:(봉투 안에 든 돈 셈하며 씩 웃고)맞네.(간드러지게)앞으로는 날짜지켜. 해희:월급이 늦게 나와서요.죄송해요. 초코파이 아줌마:(흥분해서)하여튼 그 정신뱅원은 똑똑히 된 데가 한군데도없다카잉. 주인남자:같은 직장인가봐. 초코파이 아줌마:(당황해서)아,예 지,지는 의삽니더.바,바빠서 월급도 제때못주고 내가 미안 합니더. 주인남자:희야 월급 챙기랴,환자 보랴 수고가 많습니다. 초코파이 아줌마:약 묵고 주사 맞는 기 힘들지 다른 거는.(놀라 입 틀어막고머리 매만지며)아픈 데 있으믄 말 하이소,내가 봐줄께예. 해우,어이없는 웃음.해희,재미나서 웃음. 주인남자:(설거지하는 초코파이 아줌마 보고 조심스럽게)친척?해희:아,예. 주인남자:(간드러지게)희야,난중에 커피 한 잔 하자구. 초코파이아줌마:해희야,주인님 초코파이 드시라 캐라.
  • [21세기 내고장 역점사업](51) 전남 곡성군

    ‘칙칙폭폭…,섬진강 기차마을’ 증기기관차는 배 고프던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던 사람들에게 신발을들고 기적소리를 뒤쫓아 마냥 달리던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이 점에 착안해 전남 곡성군이 전국 최초로 기차를 주제로 한 테마공원을만든다.증기기관차에 섬진강변의 들꽃과 바람을 접목시켜 관광상품화하겠다는 것이다.침체된 관광산업을 되살리기 위한 승부수다. 곡성군은 전라선(이리∼여수) 직선화 사업으로 쓸모 없게 된 섬진강변 철로 17.9㎞와 부지 20만1,861㎡을 활용,기차마을과 강변 인근 관광명소,호국 유적지 등을 연계할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기차마을은 2001년 5월 5일 어린이 날에 개장되고 2002년 상반기안에 증기 기관차가 달린다. ?재원 2002년까지 3년동안 민간자본 등 200억여원을 투입한다.내년 예산에확보한 국비 4억원 등 8억2,000만원으로 옛 곡성역사와 주변 부지 등을 정비한다.내년 1월 실시설계와 2월 민간자본 유치 설명회 등으로 60억여원을 모을 계획이다. 2002년에는 민자 30억여원 등 120억여원으로 레저·스포츠 유원지 등을 만든다.2006년까지 투자한 원금을 회수하고 이듬해부터 연간 20억여원의 이익을 낼 것이란 용역결과에 고무돼 있다. ?구간별 개발계획 옛 곡성역∼압록역(13.2㎞) 구간에는 증기 기관차가 다닌다. 옛 곡성역사는 생활사 박물관으로 꾸며 세계 각국의 축소모형 기차와 국내기차 발달사 자료,어려웠던 시절의 농촌 생활상 관련 물품을 전시한다. 또 철로 주변 곳곳에 초가집을 지어 ‘기찻길 옆 오막살이’를 연출한다.집 안팎으로 코스모스·목화·철쭉 등을 심어 60∼70년대 농촌의 정경을 담아낸다. 또 강변에 가족단위 놀이공간 21만여㎡,녹색 생태공원 1만5,000여㎡,먹거리 기차마트 1만여㎡ 등을 조성한다. 특히 철길아래 시퍼런 강물을 이용해 자연형 레저·스포츠 유원지를 비롯,전망 좋은 곳에 계절별 특색을 살린 건강마을을 만든다. 한편 섬진강 2교∼옛 곡성역(4.7㎞) 구간의 철로는 걷어낸다.휴식과 운동장소로,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만들고 길 옆으로 넝쿨 장미를 심어 꽃 터널을꾸민다. ?관광산업 연계 산촌의 전원생활을 만끽하고자 하는관광객을 겨냥해 석곡면 염곡리 노치마을을 녹색 관광마을로 지정해 전략적으로 개발했다. 또 기차마을 인근에 산재한 볼거리를 테마별로 묶어 순환형 관광코스(7개권역 53곳)를 개발중이다. 성륜사·심청공원 등 옥과권과 녹색관광마을의 석곡권,동악산∼형제봉 등산행코스,태안사∼연화사∼도림사∼관음사를 잇는 사찰과 섬진강변을 따라산재한 호국역사 유적지 순례코스 등이다. ?철도청과 협의 군수와 관계 공무원이 철도청을 여러차례 방문해 긍정적인답변을 받아 놓은 상태다.철도청도 경영수익사업으로 폐선로와 부지를 재활용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곡성군의 제안을 반긴다. 철도청은 폐선로와 관련 부지 등을 현물로 출자하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다. 다만 기관차는 빌려주되 증기 기관차가 국내에 없기 때문에 기술적인 자문을 통해 곡성군의 증기기관차 특수제작을 도울 계획이다. 곡성 남기창기자 kcnam@ **高玄錫 곡성군수 인터뷰“2002년 기적소리 울릴것”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환경을 살려 ‘다시 찾고 싶은 곡성’을 만들어 가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고현석(高玄錫) 곡성군수는 ‘섬진강이 흐르는 젊은 곡성 비전 21’을 기치로 내걸고 관광산업 육성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밝혔다. ?곡성은 옛부터 지리산 관광권의 길목으로 섬진강 등 관광자원이 풍부한데도 인근 남원 춘향골과 지리산권 등 유명 관광지에 묻혀 인지도가 낮은 게사실이다. 전라선 개량공사로 남은 폐선로가 섬진강 협곡을 끼고 국도 17호선과 나란히 달린다.경관이 수려한 이 철로 주변에 기차마을과 놀이공간 등을 조성할 경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특색있는 관광지로 발돋움 할 것으로 본다. ?열악한 재정형편상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을 텐데. 총 사업비 200억원중 2000년에 우선 국비 34억원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여기에 군비 4억원을 보태 38억원을 마련,20억원으로 철로 주변 땅(5만평)을 사고 10억원으로 특수기관차를 제작하며 8억원으로 옛 곡성역사를 정비할계획이다.다만 민자를 얼만큼 끌어 모아 기반시설 조성에 쏟아부을 수 있느냐가 사업 성공의 관건이라고 본다.마지막으로 민자 유치가 쉽지 않을 경우민·관 합작형태인 제3섹터 방식도 고려중이다. ?열차 임대는 어떤가. 철도청의 반응을 종합해 보면 철로와 인근 부지,건물 등을 출자할 것으로 본다. 앞으로 곡성군과 철도청이 협의체를 구성해 세부적인 사항을 논의해야 하지만 별다른 걸림돌이 없을 것으로 본다. ?기차 운행 시기는. 내년에 어떻게든 증기기관차를 특별 제작하려고 한다. 국내에는 증기기관차가 없기 때문에 증기기관차 모형의 특수 기관차를 제작해 늦어도 2002년 초에는 열차가 기적을 내뿜으며 달릴 수 있다. 곡성 남기창기자 **전남 곡성군 '효의 대명사' 효녀 심청공원 ‘효녀 심청공원’ 곡성군은 ‘효(孝)의 대명사’로 통하는 ‘심청이’를 통해 무너져 가는 도덕성을 회복하고 효 사상을 다져감으로써 곡성이 ‘효의 본산’임을 알리기위해 이 공원을 만들었다. 지난 3월 문을 연 심청공원은 백제 고찰인 오산면 선세리 관음사 앞 300여평에 조성됐다.우선 효행비 1기와 심청전에 나오는 인물 23명을 장승으로 형상화해 23개를 세웠다. 앞으로 국내 200대 성씨의 문중에서 효행자를추천받아 위패와 영정·족보등을 전시하는 ‘효 박물관’을 이곳에 세울 계획이다. 또 길목인 호남고속도로 옥과 인터체인지에서 심청공원(7.5㎞)까지 흰불두화·흰만리향화·흰진달래 등 3백화(白花)를 심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이어 심청공원에서 관음사(4.7㎞)에는 장승 100기를 세워 장승거리로 조성할 방침이다. ‘심청전’의 원형 작품은 관음사의 창건을 알려주는 연기설화.서기 300년쯤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설화의 주인공인 원홍장을 모델로 해 심청전이 생겨났을 것으로 여겨진다. 대학기관의 고증 결과 중국 진(晉)나라 제후 심공이 동방에서 온 원홍장을부인으로 맞았고 원홍장은 관습에 따라 남편에 맞춰 성을 심씨로 바꿨다는것.당시 흔적과 심청전과의 관계를 확인해 주듯 중국 저장성(浙江省) 보타구에는 안개가 많이 끼어 연꽃처럼 보인다는 연화(蓮花)바다와 심씨촌이 있다.
  • 美공군 6·25 피난행렬에 기총소사

    ◆워싱턴 최철호특파원◆미군 제트기들이 한국전 당시 피난민 속에 숨어 침투하는 북한군을 막기 위해 민간인 복장의 피난민에 공격을 가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AP통신이 29일 보도했다. AP통신은 비밀해제된 미 군사문서와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도로 곳곳이피난민들로 북적거렸던 1950∼51년 상당수의 피난민들이 미군 제트기의 공격을 받고 숨졌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주민들의 말을 인용,“지난 51년 1월 20일미 공군의 폭격과 기총소사로 동굴에 숨어있던 주민 300여명이 숨졌다”고말했다.주민들은 당시 4대의 비행기가 동굴 입구에 폭탄을 투하했다고 증언했다.영춘면 동굴 폭격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영춘면에서 서쪽으로 97㎞떨어진 둔포에서도 피난민 300여명이 미 공군의 폭격으로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생존자로 미국 당국에 탄원서를 제출한 홍원기씨는 “피난민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왜 기관총을 쏘았는지 미국 정부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홍원기씨는 지난 10월 19일 백악관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주민들이 미군 전투기에 손을 흔들어주기 위해 집밖으로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작전에 참가했던 미 공군 조종사들도 임무를 수행한 뒤 작성하는 ‘작전후 보고서’에서 가끔 공격 목표에 의심이 들었다고 밝혔다.이들은 비밀해제된 문서에서 당시 공중 정찰 비행기의 지시를 받고 기총소사를 가한 한국인들이 피난민들로 보였다고 말했다. 제9전투비행단과 35전투비행단의 작전후 보고서를 보면 미군 조종사들은 적군 외에 남한 어선과 가옥,학교,마을 전체에도 기관총과 폭탄 공격을 가했다. 최근 AP통신과 인터뷰를 가진 일부 조종사들은 무고한 양민들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들었다고 털어놨다.제35전투비행대 조종사 4명은 50년 7월 20일 작전후 보고서에서 “유성 남쪽 4.8∼6.4㎞지점에서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을 기총소사했다”고 밝혔다.작전후 보고서는또 “공중 정찰 비행기가 하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을 향해 발사할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당시 F-80 제트기를 타고 작전을 수행했던 제35전투비행단 소속의 장교들은과거 불안했던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그러나 50년 당시 제35전투비행단 사령관이었던 레이 랜캐스터씨는 작전명이 ‘모기’였던 공중 정찰 비행기의판단을 항상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랜캐스터씨는 “한번은 ‘모기’ 조종사가 출격을 지시했지만 단번에 적군이라기보다는 피난민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지시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hay@]
  • 성업公 인사·경영 혁신… 변신 성공

    우리나라 부실채권 정리기관인 성업공사 직원들은 올 초부터 분홍빛 바탕에 불꽃무늬 명함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따딱한 느낌의 흰 명함을 화사한 분홍빛으로 바꿔 공기업의 권위적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한 파격적인 시도였다. 올해부터 인사제도가 대폭 개편됐다.총 직원 1,538명 가운데 비계약직이 400명 가량에 그칠 뿐 1,100여명은 연봉계약직이다.전 직원의 70% 가량을 계약직으로 바꾼 것이다.또 매일 아침 사장 주재로 열리는 임원회의를 결재시간으로 활용해 결재 단계를 대폭 간소화했다.업무추진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 것은 물론이다. 성업공사의 발빠른 변신은 올 1월 정재룡(鄭在龍)사장이 부임하면서부터시작됐다.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행정고시 10회에 합격한 정 사장은재경부 차관보를 역임한 정통 경제관료 출신.현 정부의 새로운 경제철학을담은 ‘DJ노믹스’ 발간업무를 총괄한 거시경제 기획통이다.공기업 사장으로 옮기자마자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정 사장의 개혁이 진정으로 평가받은 것은 지난 1년간의 경영 실적이 남달랐던 까닭이다.새로운 마케팅기법의 도입 등으로 올해 네 차례 실시된 국제입찰에서 한때 채권가액 대비 30%에 그쳤던 매각가액을 40∼50%로 껑충 올려놓았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굄돌] 박물관에 가면

    국립중앙박물관은 서울 도심에 있어 찾아가기 쉽고,그곳에 가면 천년의 세월을 지나온 우리 나라 최고의 명품들을 가까이에서 불 수 있어 나는 가끔이곳을 찾는다.경북궁 안,옛 중앙청 건물 터 옆에 있는 박물관에 들어가 오늘은 일층에 있는 고려자기실로 먼저 들어간다.이 방에 들어오면 고요한 아름다움에 휩싸인다.다양한 모양의 접시,함,합,매병 등을 보며 이런 것들을사용하였던 그 당시 사람들의 살았던 모습은 어떠했을까 상상해 본다. 나는 지금 ‘청자상감 매화 버드나무 학 무늬 매병’을 바라보고 있다.매병의 둥근 어깨 아래에 매화의 흰 꽃은 따고 싶도록 탐스럽고 바람불어 왼쪽으로 기울어진 대나무 가지 아래로 흰 학이 어떤 것은 목을 움츠린 채 서있고,어떤 것들은 멀리 하늘로 날아간다.도자기 안에 넉넉한 자연이 들어있다.그러면서도 그릇 모양과 그 안에 새겨진 무늬의 조화가 기막히다. 맞은 편에는 조선 분청사기 백자실이 있다.15세기 세종 조에 절정을 이룬분청사기들의 당당함을 바라보고 이조 백자 항아리 앞에 서면 무언가 가슴속에 큰것을 얻은 듯 기쁘다. 이제 지하 일층에 있는 회화실로 간다.혹시 그 동안 유물들이 바뀌지는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은 김홍도의 새로 걸려진 화조화들을 보는 순간 충족된다.이제 막 붓을 놓은 것 같은 북산 김수철의 ‘능소화’를 볼 수 있고,겸재정선의 ‘장동팔경첩’도,붉은 색의 호화로운 궁중 잔치그림도 구경할 수 있다.또,우리 서예사의 거장 이광사,윤순,김정희 선생의 행서들이 나란히 걸려 있어 명품을 보는 즐거움이 더해간다.갈 때마다 특별히 내게 말을 걸어와,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있는 곳.박물관에 가면 나는 늘 행복해진다. [정혜란.서양화가]
  • 산타클로스의 유래

    크리스마스 이브에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다 준다는 산타클로스.그산타클로스는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우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산타클로스라는 말은 서기 270년 소아시아 지방 리키아의 파타라시 출신 세인트(聖) 니콜라스에서 비롯됐다.자선심이 많았던 성 니콜라스 대주교(大主敎)는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풀었는데그의 자선행위에서 지금의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가톨릭에서 성인으로 숭배하는 그의 라틴어 이름은 상투스 니콜라우스.아메리카 신대륙에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은 그를 ‘산테 클라스’로 불렀는데 이 발음이 그대로 미국어화했고 19세기 크리스마스가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착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건네주는 할아버지상이 형성됐다. 이와 달리 터키 지중해 연안 미라에 살던 세인트 니콜라스의 선행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세인트 니콜라스는 노예로 팔리게 된 한 소녀를 구한 선행으로 아이들의 수호성도로 불리게 됐고 그를 기념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관습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북유럽엔 두마리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탄채 굴뚝 속으로 들어오는 전설이 있고 미국에선 선물을 갖고오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요즘의 산타클로스는 이 두가지 전설이 합해진 것이다.산타의 모습도 늙은 난쟁이,동굴에 사는 거인 등 나라마다 달랐으나 지금처럼 빨간 코트와 긴장화에 흰 수염,발그스레한 볼을 한 모습은 1931년 미국의 일러스트레이터 해돈 선드블롬이 코카콜라 광고를 위해 그린 그림에서 탄생한 것이다. 김성호기자
  • 서울대공원 안희석씨 만화책‘동물세상’발간

    서울대공원의 동물사육사 안희석(安喜錫·57)씨가 최근 동물의 생태를 재미있게 엮은 만화책 ‘동물세상’을 발간했다.이 책에서 안씨는 자신이 지난 85년부터 15년동안 사육사로 근무하면서 얻은 재미있는 동물이야기를 청소년들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만화형식으로 꾸몄다. 흰코뿔소의 경우 서식지와 몸의 특징,영역지키기와 습성 등이 삽화와 함께흥미롭게 설명돼 어린이들이 책을 읽으며 코뿔소에 대한 지식과 함께 자연스레 동물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사천 마곡리서도 美機에 13명 희생”

    6·25전쟁 당시 미군 전투기에 의해 60여명의 마을 주민들이 사살된 경남사천시 곤명면 조장리 부근 마곡리에서도 미군 전투기에 의해 주민 13명이사살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마곡리 양민학살피해대책위(위원장 姜英春)는 10일“인근 조장마을에서 폭격이 있던 다음날인 50년 7월30일 정오쯤 미군 전투기가 마을 앞 제방에 모여 있던 주민 150명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해 그 자리에서 13명이 숨지고10여명이 부상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미군기로 보이는 비행기 5대가 마을 주위를 순찰하고 간 직후 전투기 4대가 날아와 사격을 했다”며“당시 주민들은 흰 옷을 벗어 흔들며 사격 중지를 외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피해 주민들은 이날 대통령과 국방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사천 이정규기자 jeong@
  • 참을수 없는 겨울 가려움증 로션·오일로 촉촉하게

    겨울이 오면 몸 이곳저곳을 긁적이는 사람이 늘어난다. 따뜻할 땐 괜찮다가 춥고 건조해지면서 피부에 여러가지 귀찮은 문제들이 생기기 때문.피부는 추위와 이로 인한 건조함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 인체 부위다.우선 습기를 빼앗기면서 거칠어진다.비늘같은 흰 각질이 일어나고 가려움증도 잘 생긴다.특히 나이가 들수록 피부지방분이 적어 더 건조해지고 건성습진이라는 피부염도 잘 생긴다. 평소 피부질환이 있는 사람은 증상이 잘 악화된다.서울대병원 피부과 서대헌 교수는 “은백색 반점이 온몸에 퍼지는 건선(乾癬)은 찬공기에 노출되고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더 심해진다”며 “건선환자는 피부관리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아토피성 피부염도 건조한 기후와 모직옷 등의 피부마찰로 증세가악화된다.보푸라기가 많은 옷은 입히지 않는게 좋다. 류마티스 환자도 추위에 노출되면 손가락 끝이 푸른색을 띠다가 다시 충혈되면서 아픈 ‘레이노드’증상을 보일 수 있다.외출시 반드시 장갑을 껴야 한다. 최근엔 난방이 잘돼 많이 줄었지만 동상이나 동창도 안심할 수 없다. 동상은 영하의 추위에 인체조직이 어는 현상이다. 동상 부위가 얕으면 수시간내에 회복되지만 깊을 경우엔 조직이 완전히 괴사돼 발가락 등을 절단할 때도 있다.가벼운 동상에는 섭씨 40도 정도의 따뜻한 물에 담가 동상부위를 덥혀주면 회복에 도움이 된다. 동창은 추위에 노출됐을 때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겨 나타난다.영상의 날씨에도 추위에 특별히 과민한 사람에게 잘 생긴다.노출부위가 붉어지고 붓는 증상이 특징이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겨울철 피부 트러블을 줄일 수 있을까.성균관대의대 삼성서울병원 양준모 교수는 “피부를 되도록 추위에 노출시키지 말고 수분을유지하는 게 겨울철 피부관리의 원칙”이라고 말한다. 우선 피부 건조를 막기 위해선 잦은 목욕과 비누칠은 금기다.특히 뜨거운 온탕목욕이나 사우나를 매일 하면 피부보호막을 손상시켜 가려움증을 유발하고 피부노화를 촉진시킨다. 목욕은 1주일에 2∼3회,샤워정도로 하면 적당하다.때밀이수건으로 문질러대는 것은 피부 보호막인 각질을 없애 그야말로‘긁어 부스럼’만 만든다. 목욕후에는 기름기가 있는 로션이나 오일 등 보습제를 쓰는게 좋다.특히 건조한 피부를 갖고 있는 사람,50대 이상 노년층은 보습제 사용이 필수적이다. 반드시 목욕후 물기가 마르기전에 발라야 목욕으로 인한 피부건조를 예방할수 있다.손·발바닥이 갈라질 때는 연고나 영양크림을 발라준다. 흔히 피부가 가렵다고 소금물이나 식초로 씻어내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오히려 피부에 자극을 주어 상태를 악화시킨다. 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피부 외용제 사용에도 신중해야 한다.피부외용제는 남용시 부작용이 가장 많은 대표적인 약제다. 임창용기자 sdragon@
  • ‘법조삼성’ 전주 덕진공원서 동상 제막

    한국 법조계에서 ‘삼성’(三聖)으로 칭송받아온 세명의 법조인을 기리는동상이 고향인 전북에 세워진다.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1887∼1964)선생과 서울고검장을 지냈던 화강(華剛) 최대교(崔大敎·1901∼1992)선생,그리고 서울고등법원장을 역임해던 ‘사도 법관’ 바오로 김홍섭(金洪燮·1915∼1965)선생 등이 주인공들. 전북 출신 각계대표 30여명으로 구성된 한국법조삼성기념사업회는 3일 오전 10시30분 전주 덕진공원에서 동상 제막식을 갖는다.사업회는 김삼룡(金三龍·전북애향운동본부 총재),진기풍(陳錤豊·원로 언론인),이강국(李康國·전전북도례회 의장),김영신(金泳新·전 전북변호사회장),이치백(李治白·언론인)씨 등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기념사업회는 “국내 법조계의 큰별들인이들 법조 3인의 삶과 정신을 기리고 후대들의 귀감으로 삼기 위해 동상을건립했다”고 말했다.동상의 조각과 비문은 조각가 임석윤(林錫閏)씨와 중견시인 고은(高銀)씨가 썼다. 김병로 선생은 순창이 고향으로 초대 대법원장을 지냈으며,건국초기 무질서 속에서도 강직한 성품으로 사법부의 위상을 지켜왔다.익산 삼기 출신의 최대교 선생은 서민들의 변론에 앞장선 강직한 법조인으로,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 암살사건과 49년 임영신(任永信) 상공부장관 기소사건을 맡아 소신있게 처리한 것으로 유명하다. 김제 금산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김홍섭 선생은 재직기간 평생을 흰 고무신을 신고 단무지 반찬 한가지로 끼니를 대신할 만큼 청빈한 법관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어왔다. 전주 조승진기자 redtrain@
  • 임승관 차장검사 문답

    서경원(徐敬元) 전의원의 밀입북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임승관(林承寬) 1차장은 21일 “지난 89년 수사팀이 2,000달러에 대한 환전표를 공소사실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사기록에서 누락시켰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다음은 일문일답. ■당시 주임검사였던 이상형(李相亨)경주지청장을 재소환,조사하는 이유는. 지난 18일 대구 모처에서 조사를 했지만 2,000달러 환전표를 수사기록에 누락시킨 이유가 명확히 해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 전의원이 1만달러를 흰 종이에 포장해서 전달했다는 사실은 물증이 있나. 물증이 없다.방양균(房羊均) 보좌관의 진술에만 의존해 수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에는 없지만 안기부에는 있을 수 있지 않은가. 우리가 알아 본 결과안기부에도 방 보좌관의 진술서가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정 의원은 자신이 방 보좌관을 상대로 조사한 1만달러에 대해 방 보좌관이 89년 1월 독일에서 받아온 것으로 별건이라고 주장하는데 두 사건의 시점이 분명히 다르다. ■서 전의원이 소지한 5만달러 중 처제에게 맡겼다가 환전한 3만9,300달러에 대한 물증은 있나. 2만달러에 약간 못미치는 액수에 대한 환전표가 있다.나머지 돈은 진술에만 의존해 수사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종락기자
  • “기독교 상·장례는 신학적 오류”

    기독교인들은 상·제례에서 절차와 용어의 상당부분을 전통유교 의식을 따르고 있으면서 그것이 서양 기독교 의례인줄 착각하는 등 신학적 오류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오세종 암사감리교회 담임목사는 지난 17일 대한불교 조계종 불교어산작법학교가 마련한 ‘한국종교의 사생관과 상장예법’에서 ‘한국개신교의 영혼관과 장례절차’를 발제하고 이같이 주장했다. 오목사가 지적한 한국 기독교계의 신학적 오류는 상·장례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드러난다.오목사는 이같은 유형으로 임종한 시신을 거둘 때 쓰는 나무판자를 기독교인들도 재래적인 용어인 칠성판(七星板)이라고 부르며 시신을 가릴 때 병풍을 사용하는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입관하고 난뒤 시신앞에 병풍이나 흰 휘장을 친 다음 그 앞에 작은 상을 놓고 그위에 고인의사진을 중심해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거나 꽃을 꽂는 것도 그중 하나.작은상을 놓고 사진을 놓는 것은 유교의 상례에서 혼백(魂帛)을 대신하는 유교적습속으로 서양에는 그런 의식이 없다는 것. 입관이 끝난뒤상복을 입는 의식도 유교적 성복(成服)절차의 유습과 절차가 같다.산소에 시신을 매장하고 돌아와서 유교는 우제(虞祭)를 지내는데 한국기독교인들도 장례 당일 집으로 돌아와 예배를 드리는 풍습이 있다는 것.또유교의례에는 삼우제(三虞祭)가 있는데 한국 기독교인들도 장례후 3일째 되는날 산에 가는 습속이 있으며 많은 기독교인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삼우제’라는 말을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목사는 “한국 기독교 상·장례의식은 외형적 의례의 절차에 있어 임종에서부터 추도식에 이르기까지 서양 기독교 의식 절차보다 재래 유교적 절차와 유사한 점이 많다”면서 “이는 그 의례속에 있는 사상·신학적인 부분이이해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앞으로 의례신학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김성호기자
  • 참고인 진술·정황증거에 나타난 실체

    지난 88년 당시 평민당 김대중(金大中)총재가 서경원(徐敬元)의원으로부터북한의 공작금 1만달러를 받았다는 검찰 발표는 검찰과 안기부의 공조 조작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참고인의 진술과 정황 증거 등을 종합하면 안기부가 89년7월10일쯤 서 의원의 비서관 방양균(房羊均)씨로부터 “흰 종이에 1만달러를 싸 갖고 가는 것을 봤다”는 자백을 받아내 검찰에 넘겼으며 이를 바탕으로 검찰이 7월28일 서 의원으로부터 ‘1만달러 제공’ 진술을 얻어냈을 가능성이 짙다.검찰과 안기부가 짜맞추기 수사를 한 것이다. 방씨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당시 안기부가 서 의원이 1만달러를 솔 담뱃갑2개 크기로 포장해 김 총재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을 강요했으며 고문을 이기지 못해 허위자백했다고 밝혔다.수사는 정형근(鄭亨根) 당시 대공수사국장이 총괄했다.방씨는 자신을 직접 고문한 김모씨를 최근 만나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방씨 진술대로라면 ‘1만달러 수수 공작’은 안기부에서 시작돼 검찰이 마무리한 셈이다.정형근 의원이 ‘1만달러 수수’ 부분은 검찰이 밝혀낸 것이라고 한 발언과도 배치된다. 더욱이 당시만 하더라도 대공업무과 관련해서는 검찰과 안기부는 탄탄한 공조를 유지했다.안기부가 수사해 송치한 공안사건을 수사하다 송치내용과 다른 점이 발견되면 검찰이 반드시 안기부와 협의 또는 조정을 거치는 게 관례였다.검찰 관계자는 “사건의 중대성에 비추어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 책임자가 당연히 검찰의 수사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며 조율가능성을 내비쳤다. 서 전 의원과 방씨는 안기부뿐 아니라 검찰에서도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방씨는 자신이 당시 안모검사에게 안기부의 수사가 조작됐다고 하니까 ‘사형을 면해줄 테니 시인하라’고 회유했다고 진술했다.서 전 의원의 보좌관이었던 김용래(金容來)씨와 김씨의 친구인 안양정(安亮政)씨가 당시 검찰에제출한 진술서와 2,000달러 환전영수증이 누락됐다는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것도 검찰의 공작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수사검사팀은 안기부와의 합작 수사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따라서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좀더 진행되어야 ‘공작’의 실체가 명백히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주병철기자 bcjoo@ *“어느선까지 소환”고민하는 검찰 검찰이 깊은 시름에 빠졌다.지난해 대전 법조비리사건에 이어 조폐공사 파업유도 및 옷로비 의혹사건에 대한 특별수사로 자존심을 구긴 검찰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 1만달러 수수 공작’사건으로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검찰 내부에서는 심각한 위기라는 탄식의 소리와 함께 ‘이번 기회를 통해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치권의 논리로 검찰이 수사 검사를 수사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앞으로 수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만도 제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재수사’라는 칼을 뽑아든 것은 당시 수사에대해 조작 의혹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검찰 수사 발표에서 빠져서는 안될 서경원(徐敬元)전 의원의 보좌관 김용래(金容來)씨와 조흥은행 영등포지점 외환담당 대리 안양정(安亮政)씨 등 참고인의 진술과 물증의 누락 확인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이 같은상황에서 그대로 덮을 경우 검찰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할 것이라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검찰은 특히 당시 수사검사를 어떻게 조사할 것이며 어느 선까지 소환해야하는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검찰 수뇌부는 계속해서 회의를 열어 대책을숙의하고 있다. 당시 안기부에서는 정형근(鄭亨根)수사국장,안응모(安應模)1차장,徐東權(서동권)·박세직(朴世直)안기부장이 수사 보고라인이었다.검찰에서는 서울지검 安鍾澤(안종택)·이상형(李相亨)검사,안강민(安剛民)공안1부장,김기수(金起秀)1차장,김경회(金慶會)검사장,김기춘(金淇春)총장라인이었다. 이와 관련,안기부에서는 당시 안응모 1차장,검찰에서는 안강민 공안1부장까지 소환하는 것이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적지않다. 주병철기자
  • 김원기씨가 밝힌 사건진상

    지난 89년 서경원(徐敬元) 전 의원의 밀입북 사건 당시 평민당 총무였던 국민회의 김원기(金元基)상임고문은 16일 “사건발생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서 전 의원으로부터 1만달러를 받았다는것은 조작치고는 아주 유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어 “이 사건은 개인의 실정법 위반사건이 정권의 필요에 의해 공안정국으로 발전된 것”이라며 ‘공작 의혹’을 제기했다. 김 고문이 밝힌 사건의 진상은 다음과 같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김대중총재 및 평민당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문익환(文益煥)목사 방북사건과 동의대 사건,임수경양 방북사건의 연장선상에서 서경원 방북사건을 왜곡,날조해 김총재와 평민당을 탄압하고 나아가 여소야대 정국 반전용으로 발전시켰다.문목사 사건 이후 서의원은 자신의 방북사실을 극히 일부에게 언질했고 이 사실을 이길재(李吉載·당시 평민당 대외협력위원장)의원이 나에게 알려왔다.이 사실을 접하고 지체없이 김총재댁으로 찾아가보고했다. 김 총재는 기막힌 사건이라고 하면서 서의원으로부터 직접 사실을확인한 후 자수시키라고 지시했다. 김총재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당시 안기부장이었던 박세직(朴世直)의원에게 직접 자수시키는 게 낫다고 판단했고,이에따라 내가 박부장에게 곧바로전화를 걸어 ‘중대 사안이 있으니 만나자’고 했으나 박부장은 출장중이라며 2∼3일 후에 만나자고 했다.그후 남산 공관으로 서의원을 데리고 가 박부장을 직접 만났고,서 의원은 방북 경위를 설명했다.박 부장은 이에 대해 김대중총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현역의원이고 자수했기 때문에 불구속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기부는 공관에서 며칠 지난뒤 수사관을 시내 호텔로 보내 서 의원과 만나게 해 수사를 진행했다.이때 ‘김대중 총재 친서 전달설’ ‘밀입북 자금전달설’ 등 날조한 사실을 공안세력이 유포했다.그로부터 김총재와 평민당을타깃으로 해 국민에게 각인된 반공 이데올로기를 악용,용공으로 몰아갔다.1만달러 수수설은 당시 전세를 구할 돈도 없어 의원회관에서 숙식하던 서의원의 경제상태에 비춰볼 때 상상조차 힘들다. 박찬구기자 ckpark@ * 서경원 밀입북사건 쟁점 뭐가있나 ‘서경원(徐敬元) 밀입북사건’을 둘러싼 명예훼손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그러나 당사자들이 당초 검찰의 수사기록을 번복하는 진술을 하고 있어 진상규명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1만달러 수수여부 이번 사건의 최대 핵심 사안이다.검찰은 89년 수사발표에서 서의원이 88년9월초 여의도 평민당 총재실에서100달러짜리 지폐 100장을 흰종이에 싸 김총재에게 건넸다고 실토했다고 밝혔었다.서의원이 받은 5만달러 중 1만달러를 제외한 4만달러는 처제에게 3만9,300달러를 맡겼고 나머지 700달러는 본인이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서 전 의원은 최근 검찰조사에서,강압에 못이겨 당시 김총재에게 1만달러를 줬다는 허위자백을 했다며 진술을 번복했다.서 전 의원은 이와함께문제의 1만달러 가운데 2,000달러는 88년9월5일 귀국 당일 당시 김용래 보좌관을 통해 환전했다고 진술했다.김보좌관도 서 전 의원과 같은 진술을 했으며 당시 환전을 담당한 조흥은행 안양정씨도 이를 검찰에서 확인해 줬다. 만약 김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서 전 의원이 이미 2,000달러를 환전해 간 사실이 맞다면 많아야 8,000달러밖에 남지 않아 김대통령에게 1만달러를 줬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이럴 경우 1만달러 수수설은 뒤집어질 가능성이크다. ■불고지 김대통령이 서 전 의원을 방북사실을 보고받은 시기가 ‘4월’이냐‘6월’이냐이다.검찰은 서의원이 89년4월쯤 김총재에게 밀입북한 사실과 한겨레기자와 인터뷰한 사실을 보고하자 김총재가 보도를 중단하도록 지시한 점을 시인했다고 밝혔다.그러나 국민회의 김원기(金元基) 상임고문(당시 평민당 원내총무)은 “서 전 의원의 방북보고를 이길재(李吉載) 당시 대외국장으로부터 들은 것은 6월”이라면서 “이를 총재에게 곧바로 알렸으며 총재가신고하라고 해 당시 박세직(朴世直) 안기부장에게 알렸다”고 말했다. ■고문 여부 검찰은 당시 서의원을 결코 고문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그러나 서 전 의원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안기부뿐 아니라 검찰에서도 구타하고유도신문을 했다고 주장했다. ■향후 수사전망 검찰은 김대통령의 1만달러의 행방이 이 사건의 결정적인단서라고 판단,당시 서 전 의원이 환전한 영수증과 은행직원 증언 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진술이 엇갈리는 만큼 물증확보가 관건이라는 판단이다. 검찰은 주변조사와 함께 당시 검찰의 수사기록을 정밀히 분석하고 있으며필요하다면 당시 수사검사 등도 소환한다는 내부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주병철기자
  • [굄돌] 민화그리기

    우리집 11월 달력에는 민화가 있다.출렁이는 물 위에 산들이 줄지어 서있고 양쪽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우뚝 서있다.왼쪽 나무에는 오색 구름이 드리워진채 흰 달이 밝게 빛나고 오른쪽 나무 위에는 붉은 해가 빛난다.그 아래 단에는 세 그루의 예쁜 꽃나무가 괴석과 함께 피어있어 온 방을 환하게 비추어준다. 민화는 우리 겨레 모두가 사랑했던 그림이다.한 집에 예닐곱 정도의 민화가 붙혀졌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이 그려졌고 사용되었는지 짐작할 만하다.우리 선조들은 집에 화초를 가꾸듯 가까이 민화를 보면서 살았나보다.하지만 지금은 그 맥이 끊어져 개인 수장가들이나 몇몇 박물관 혹은 골동품 가게에서나 볼 수 있고 대개는 책을 통해서 감상할 수 있을 뿐이다. 난 아이들과 미술시간에 민화를 그리기로 했다.각자 인쇄된 민화를 가지고와서 자신의 종이 위에 확대해서 옮겨 그리는 것이다.전통적으로 사용되었던 한지 대신 구하기 쉬운 켄트지로 천연 안료 대신 수채화 물감을 쓰기로 했다.연필로 밑그림을 그린 후에 먹선으로 그위에 다시 그린다.교실에는 먹의향기가 퍼지고 아이들의 손들이 분주해 진다.처음에는 떨리는 손으로 먹선을 긋던 아이들도 점차 익숙하게 선을 긋는다.자신은 그림을 못그린다고 슬며시 나에게 말 걸어왔던 아이도 오늘은 멋지게 민화를 그리고 있다.채색 까지는 몇시간씩 걸리지만 아이들은 모두 재미있게 그리면서 서로의 것을 칭찬해준다. 그 옛날에도 옆에서 그리는 화공의 솜씨를 칭찬하며 손벽치고 즐거워 했겠지.누구는 꽃과 나비를,누구는 봉황을 그려달라고 부탁했을테고.다 된 그림을 벽에 붙이기 시작했다.아이들의 그림들 속에서 잉어는 파도위를 뛰어오르고,용은 구름 속에서 꿈틀댄다.나비들은 떼지어 꽃 위를 날고,해태 두 마리는 어슬렁거리며 바위 위로 기어 오른다.흔들리는 연꽃 사이로 날아드는 새들은 연밥을 쪼아 먹고 그아래 물고기들이 바삐 움직인다. 교실 전체가 생동감에 넘친다.아이들은 신기해 하면서 좋아 떠든다.완성된민화들을 각자 자기 방에 걸어놓을 것이다.자신의 손으로 그린 우리 그림이얼마나 정겹고 반듯하며 아름다운지를 마음속에 간직 하면서. [정혜란 서양화가]
  • [대한광장] 노근리와 보상

    진주만에 대한 일본의 기습공격에 따른 미·일전쟁이 발발한 뒤 2개월여 재미 일본인 사회를 주시하고 있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2년 2월19일 미 본토 서해안 일대의 일본계 이민들의 수용소행을 명령했다.일본 이민들은 피땀흘려 일구어놓은 가옥 재산을 버리고 수용소에 들어가야 하는 비운을 맞았다. 그리고 50여년 후 청문회를 거치고 미 정부의 사과와 보상을 받았다. 일본계 이민의 수용소행은 재미 한인정치가 한길수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것이기 때문에 나도 한길수에 관한 논문에서 이 문제를 조금 다룬 일이 있었다.미국 정부의 보상은 만시지탄이 없지는 않았지만 썩 잘한 것이었다.그런데보상을 받은 사람 중에 매우 머쓱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수용소로 들어가 자치에 맡겨진 일본인들은 미국파와 모국파로 갈라지고 유혈 살인사건까지 발전하기 일쑤였다.모국파들은 몰래 들여간 라디오를 들으면서 일본의 승리와 패전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곤 하였다.또 목창과 빗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군사교련에 열중하였다.자기들끼리 지역감정으로 서로 다투었는데 북쪽에 수용된 사람은 남쪽을 ‘카리니가’(캘리포니아에서 온시컴한 흑노)라고 욕했고 또‘티비리리’(폐병앓이처럼 흰 놈들)로 욕을 먹기도 했다.어떤 의미에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축소판이었다.전쟁 개시 전의 모든 일본어 신문들,특히 하와이의‘닛푸지지’나 LA의‘라후신포’는 일본 국내의 군국주의 옹호 신문논조와 다를 바가 없었고 재미 한인 독립운동을야유하고 경멸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청문회는 아무 지적도 없이 일본 이민들의 고통에만 초점을 맞춘 느낌이 있다.한국의 ‘노근리학살사건’ 사후책에서도 그렇기를 바라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즉 사건발생 이후 일부 유가족 성원의 언행이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갔었다 해도 피해자 등록을 막는다든가 차별하지 말고 모두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공무원들에게 지시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너무 분격하여 적을 지원한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고 이를 사찰당국이 알고 있다고 가정해 노파심으로 말하는 것이다.보상 추진은 노근리에만 국한하지 말고영동군 일대로 확대하여야 될 것으로 믿는다. 당시 북쪽 신문에 보도된 노근리를 포함한 영동지방의 학살 희생자수는 8월10일자에 영동 일대의 2,000여명과 19일자 노근리 400여명으로 되어 있지만노근리 굴다리에 국한하면 희생자수는 100명 안팎이고,당시 영동군에서 더많은 희생자가 있었을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즉 대전 해방과 영동 공격을 지휘한 제1군단의 김재욱 군사위원과 최종학 정치(문화)위원의 이름으로 8월2일 이 사건을 휘하 부대에 시달한 문서가 있기 때문이다. 문서는 노근리를 의미하는 철도 밑 굴다리에서 미군이 양민 100명 가량 학살했고 또다른 굴다리에서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선포했다.죽은 어머니의 가슴에 매달린 아기도 보았고 시체 밑에서 3∼4일 동안 숨을 죽이고있다가 살아난 양민 10명 중 몇몇은 도착한 인민군에게 복수해줄 것을 애원했다고 적었다.또 8월8일자의 명령 시달에는 (영동의) 미군이 인민군의 식량조달을 방해할 목적으로 민간인들을 강제 피란시키고 식량을 운반시키고 있으며 빈집에 남긴 식량과 된장,간장,일대 우물 개천 등에 독극물을 살포했다고 했다.특히 7월30일 황간에서 하천의 물을 마신 제3연대 군인이 피해를 받았다고 주의를 환기시켰다.강제 피란행은 생존자의 증언과도 부합된다. 한·미조사단은 당연히 당시의 인민군 주장도 샅샅이 조사하여야 될 것이다.증언 채집에 있어서도 세심한 객관적인 사실을 채취해줄 것을 당부한다.가능하면 북한의 영동작전 관련자들을 초청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자기들도 저지르고 영상물에까지 담은 학살사건이 한 두가지가 아닌,즉자기 선전에만 급급하지 않고 건설적인 자료를 제공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의 조사 시작에 전폭적인 신뢰를 두고 싶다.그리고 한국의 조사활동도 뼈 있는 기개와 어른다운 공평성으로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줄 것으로믿는다.언론도 달아오른 쟁개비처럼 한때의 보도로 끝내지 말고 인내성 있게꾸준히,그리고 신중하게 보도해주기를 기대한다. [方善柱 한림대 객원교수 재미사학자]
  • [의열 독립투쟁] (9)장진홍 의사

    1927년 10월18일 11시20분경 대구시 중앙통에 위치한 조선은행 대구지점에허름한 옷차림의 한 청년이 나타났다.청년은 곧바로 창구 앞으로 다가가 들고온 보자기를 풀어 네개의 상자 가운데 한 개를 창구로 내밀면서 창구의 직원에게 “이것은 벌꿀인데 우리 여관에 든 손님이 지점장님께 전해달라고 한선물입니다”고 디밀었다. 군대에서 포병대 근무경력이 있는 창구직원 요시무라(吉村)는 상자에서 화약냄새가 나는 것을 느끼고 급히 상자를 열었다.아니나 다를까!상자 안에는도화선에 불이 붙은 폭탄이 들어있었다.깜짝놀란 요시무라는 도화선을 끊고청년으로부터 보자기를 빼앗아 다급하게 나머지 상자를 열었다. 연락을 받고 황급히 달려온 10여명의 순사들이 도화선을 끊으려고 하였으나이미 때는 늦었다. 곧이어 폭탄 하나가 터짐과 동시에 뒤이어 두개의 폭탄이 연속적으로 굉음을 내면서 폭발하며 천지를 뒤흔들었다.이것이 저 유명한장진홍(張鎭弘)의사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사건이다.폭탄을 전한 청년은장의사가 심부름을 보낸 덕흥여관 종업원 박노선(朴魯宣)으로 이 사건과 별다른 관련은 없다. 장의사는 1895년 6월6일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문림리에서 아버지 장성욱(張聖旭)과 어머니 순천(順天) 김씨 사이에서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본관은인동(仁同),호는 창려(滄旅).장의사는 어려서부터 담력이 크고 의협심이 강했다.칠곡소재 인명학교(仁明學校)를 졸업하고 1914년 조선보병대에 입대해군사지식을 배운 장의사는 1916년 고향에서 대한광복회에 가입했으나 일경의감시가 심해 1918년 만주로 망명했다. 동지인 이국필(李國弼)과 함께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로 건너가 조선인 청년 100여명을 규합해 군사훈련을 실시했으나 1917년 러시아혁명의 여파와 일본군의 시베리아출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귀국하였다.1919년 3·1 의거가 일어나자 장의사는 일제의 만행을 세계 여론에 호소하기 위하여 동생 진환(鎭煥)으로부터 600원을 받아 전국 각지를 돌며 일제의 만행사실들을 조사,수집하였다.이 해 7월 미국 군함이 인천항에 입항하자 장의사는 경북출신조선인 하사관 김상철(金相哲)에게 이를 영문으로 번역,세계 각국에 배포해줄 것을 부탁했다. 한편 장의사는 일제 통치기관에 폭탄을 투척,일제의 만행을 응징키로 결심하고 대한광복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지 이내성에게서 일본인 무정부주의자이자 폭탄제조 전문가인 호리키리 시게미쯔로(堀切茂三郞)를 소개받아 폭탄제조법을 배웠다. 1927년 8월에 직접 제조한 폭탄의 성능실험을 마친 장의사는 동지들과 경북도청·경북 경찰부·조선은행 대구지점·식산은행 등에 폭탄을 투척하기로하고 10월16일 폭탄 여섯개를 제조했다.이튿날 6개의 폭탄 가운데 5개를 가지고 대구로 향한 장의사는 조선은행에서 가까운 덕흥여관에 숙소를 정하였다.18일 오전 10시40분 장의사는 여관의 사환을 불러 “이것은 조선꿀인데조선은행·도청·식산은행·경찰부 순서로 배달해달라”고 부탁하였던 것이다. 이어 11시40분경 조선은행 대구지점에서 굉음과 함께 폭탄이 터져 일본인순사 4명과 은행원 1명,행인 1명 등 모두 6명이 부상을 입고 조선은행 대구지점 유리창 60여장이 깨졌다.그 순간 두루마기 차림에 파나마모자를쓰고네 대의 금니를 한 모습으로 변장하고 있던 장의사는 말쑥한 양복 차림에 흰 운동화로 갈아신고 상주에서 안동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다부원고개를 넘고 있었다. 사건 직후 일본경찰은 철저한 보도통제 속에 범인색출에 나섰으나 단서조차 잡지 못하였다.일본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지자 장의사는 일본으로 건너가 막내동생 의환(義煥)에게 몸을 의탁하고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히로시마(廣島)등을 왕래하며 1년반 동안을 지냈다. 한편 이 사건의 수사가 미궁으로 빠져들 무렵 엿장수로 변장,장의사 고향집 부근에서 탐문수사를 벌이던 한 형사가 장의사가 오사카에서 안경공장을 경영하는 동생집에 숨어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일본경찰은 조선인 여자첩자를 오사카로 파견,장의사 동생부부에게 접근하여 마침내 장의사가 2층에 숨어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1929년 2월14일 밤 동생 장의환의 안경공장에서는 술자리가 벌어졌다.일본경찰에 매수된 한 조선인 첩자가 안경 1만5,000개를 산다며 계약금조로 30원을 내놓은 것이었다.오랜만에 목돈이 생긴 장의환이 벌인 술자리에는 조선인첩자를 포함해 김해중으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하던 장의사도 참석하였다. 술이 몇 순배 돌면서 취기가 무르익자 갑자기 일본경찰이 들이닥쳤다.장의사는 순간적으로 일어나면서 전등을 손으로 쳐서 깨뜨리고 창문으로 뛰어내렸으나 아래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형사들마저 피할 수는 없었다. 현장에서 체포돼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장의사는 단독범행을 주장하며 심문하는 일경에게 “일본이 조선을 해방시켜주지 않으면,너희 일본도 망할 날이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취조하던 조선인경찰에게는 “나의 죽은 혼이라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라고 호통을 쳤다. 대구고등법원에서 사형언도가 확정된 장의사는 사형이 집행되기 전날인 1930년 7월31일 옥중에서 자결 순국하였다.장의사의 순국소식이 옥중에 퍼지자재소자들은 ‘조선독립만세’,‘장진홍만세’를 외쳤고 이에 당황한 교도소측은 서둘러 장 의사의 사인이 뇌일혈이라고 발표하였다. [김순석 독립기념관 전시부 연구원] *장진홍 의사 후손들 근황 장진홍 의사는 후손으로아들,딸 각각 3형제를 두었는데 아들은 모두 어려운 형편 속에 살고 있다.세아들 가운데 장남만 보통학교 4년 중퇴를 했을 뿐나머지 두 아들은 모두 무학자이다. 96년 83세로 작고한 장남 형옥(衡玉)씨는 생전에 부친 장의사의 기념사업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나 경제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별다른 성과는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차남 형술(衡述·81)씨는 구미시 옥계동에 살고 있는데 연로해서 현재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다.또 대구에 살고 있는 3남 형태(衡泰·73)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행상 이발소를 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장남 형옥씨는 7남3녀를 두었는데 현재 8명이 생존해 있다.장손 상규(相圭·63)씨는 칠곡에서 전자제품 하청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IMF 사태 후 모기업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연쇄부도를 맞아서 살고 있는 집마저 근저당이 설정된 상태. 장의사의 후손 가운데 그나마 그럭저럭 살고 있는 사람은 세 딸이 고작이다.세 딸 가운데 위로 두 딸은 모두 작고하였고 현재 막내딸 형필(衡必·70)씨만 구미에서 살고 있다. 현재 장의사 추모단체나 기념사업회는 특별히 구성된 것이 없고 낙동강 기슭에 서있는 추모비 하나가 고작이다.장의사는 62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추서받았으며 묘소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128번)에 마련돼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소비·향략문화는 이제그만… 신촌 대중문화 메카로 재도약

    소비와 향락의 분출구로 신촌을 감지하는 우리에게 그곳은 빽빽이 들어선 비디오방 노래방 PC방만큼이나 숨 막히는 질식감으로 다가온다.온갖 대화가 오가지만 진정한 대화를 찾을 길 없는 의사소통의 부재공간으로 신촌이 읽히기도 한다. 신촌에서 두가지 이색 이벤트가 막을 올린다.낮은 울타리가 28일부터 사흘동안 개최하는 제3회 신촌문화만들기와 ‘99 좋은 콘서트-시월에 눈 내리는 마을’. 신촌문화 만들기가장 눈에 띄는 것은 행사기간 내내 운행하게 될 ‘테마가 있는 버스’.국민회의 정동영의원,전 탁구국가대표 현정화,이장호감독,탤런트 정애리,김만오 신촌 지하철역 DJ,고인경 파고다학원 회장,첼리스트 배일환 등 각계를 대표할만한 문화예술인사 30여명이 신촌거리와 연세대를 오가며 버스안에서 시민들과 대화를 갖는다. 28일 신촌 현대백화점 뒷골목의 창천 어린이놀이터에선 제2회 신촌 단편영화제가 열린다.공모를 통해 출품된 작품 외에도 송일곤의 ‘소풍’,조은령의‘스케이트’,임창재의 ‘눈물’등 국내외 우수 단편영화들이 상영된다. 28일과 29일에는 ‘마임이 있는 거리’가 펼쳐져 푸른 신호등이 켜짐과 동시에 질서 화해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아름다운 몸짓을 만들어낸다. 29일 신촌의 카페 ‘민들레영토’앞 야외무대에선 한스밴드와 이탈리아에서유학하고 돌아온 성악가들이 함께 하는 퓨전콘서트가 열린다. 사흘동안 매일 오후2시에는 이곳 카페에서 재즈평론가 김진묵과 대중음악 평론가 강인중,신국원 총신대 신학과교수 등이 참여하는 재즈와 팝,포스트모던에 대한 담론들이 전개된다.(02)333-1316 시월에 눈내리는 마을시월의 마지막 밤에 내리는 흰 눈.여기에 ‘춘천가는 길’의 김현철,‘처음 느낌 그대로’의 이소라,‘그집 앞’의 윤종신이 들려주는 감미로운 음악.31일 오후6시 연세대 노천극장의 8,000석 규모의 객석과 무대에는 온통 하얀 눈이 내린다.대형 인공제설기 50대가 동원돼 시월의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연출되기 때문이다.(02)3446-3332임병선기자
  • [김삼웅 칼럼] 秋史의 ‘秋思’를 기리며

    시간의 입체성을 말한 이는‘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루스트였던가.어김없이 계절은 바뀌고 세월은 흐른다.잃어버린 시간은 찾을 길 없고 오는 시간 또한 막을 길이 없다. 아침 저녁의 바람결이 상큼하고 한낯의 햇볕도 한층 엷어졌다.늦은 밤 돌담의 귀뚜라미 소리 제법 청량하고 가끔 구름 사이로 나타나는 청자빛 하늘이너무 곱다. 어느 무명씨의 시조 한 편 . 강호에 비 내리듯 마음은 설레고 내 마음은 저절로 저 먼 곳에 떠 있어라 그려도 애닮다마는 하는 수가 없구나. 폭우와 폭염과 폭풍이 심했던 지난 여름의 변덕 속에서도 곡식과 과일은 무르익고 청초한 가을 꽃이 산과 들녘을 수놓는다.그리고 나뭇잎의 색조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가을의 조락이 깊어간다. 이맘 때면 누구보다도 가을을 앓는 추사(秋史:金正喜)와 그의 시를 생각하게 된다.추사의‘추사(秋思)’란 시는 그의 아호와 시제(詩題)가 같은 음이어서인지 옛사람들에게도 많이 읽혔다. 어젯밤 총총한 별,싸늘한 서리남쪽의 가을 생각 끝없이 자아낸다.하늘 바람 사람 말이모두다 가르침이요 글씨 쓰고 시 짓는 데 반드시 법도가 있다네 기러기 한 번 울자 이렇게 한 해가저물다니 잎사귀마다 가을 재촉하는 듯 떨어지기 바쁘네 흰 구름 붉은 단풍 나그네 마음 흔들어 햅쌀 밥에 게장 먹는 고향이 꿈에도 그리워라. (정후수 역) 추사가 이 시를 쓴 것은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이다.‘햅쌀 밥에 게장 먹는’고향을 그리며 깊어가는 가을날에‘가을 생각(秋思)’을 읊은 추사의 처지가 애닯다.누구인들 저문 계절의 애수가 엷을까만 귀양살이 9년을 넘긴 추사의 심사는 남달랐을 터이다.그래서 가을의 노래가 많다.‘추일만흥(秋日晩興)’도 그중의 하나. 가을꽃 수도 없이 뜨락 머리에 환히 피었으니 산집(山家)에 가장 좋은 가을이 돌아옴을 알겠구나 석류꽃 지고 국화 피기 전에 구경거리 계속해주니 장원홍(狀元紅·붓꽃)이 모든 풍류를 도맡았구나. 시인 묵객치고 국화 좋아하지 않는 이 있을까만 추사도 무던하여 그의 문집에는 국화를 노래한 시가 꽤 된다.역시 이맘 때의 작품으로‘중양황국(重陽黃菊)’이 있다. 망울 맺은 노란국화 초지(初地)의 선(禪)인듯이 비바람 치는 울타리 가에 고요한 인연을 의탁했네 시인을 공양하여 최후까지 기다리니 백억의 잡화 속에 널 먼저 꼽을밖에. 뒤꼍의 가랑잎 구르는 소리에 가을은 깊어가고 흐르는 세월과 함께 인생도역사도 흘러간다.4세기 초 중국에 귀화한 인도의 학승 나가르주나는‘중론(中論)’이란 글에서 시간의 논리를 정리했다. 만일 과거 시간으로 인하여 미래와 현재가 있다고 한다면 미래와 현재는 과거의 시간 속에 있으리라. 이제 두달여 지나면 새 천년의 새벽이 열린다.그러고 보니 이 가을도 2000년대의 마지막 추절(秋節)이다.신동엽의 시집‘아사녀’에는‘산에 언덕에’란 빼어난 시가 있다.추사를 기리면서 깊어가는 가을날에 못잊을 송가로 부르면 어떨지.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 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 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국향(菊香) 짙은 만추에 가을걷이 끝난 농부와 함께 추사(秋史)의 ‘추사(秋思)’를 기린다. 김삼웅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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