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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플러스] 조류독감 포유류까지 확산 우려

    |방콕 연합|태국에서 애완용 고양이가 조류독감으로 죽고 동물원 호랑이가 이 질병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조류독감이 조류에서 포유동물로 확산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태국 카셋삿대학 수의학과 타니랏 산티왓 교수는 20일 기자회견에서 최근 죽은 집 고양이 3마리에서 H5N1형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확인됐다고 밝혔다.타니랏 교수는 또 방콕 인근 촌부리주(州)의 카오 키에우 동물원의 흰 호랑이 1마리도 검사결과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덧붙였다.이 동물원은 지난달 구름무늬 표범 1마리가 조류독감에 걸려 죽은 곳이다.
  • [길섶에서]고무신/심재억 생활레저부 차장

    달빛이 시린 마당 한 편 짚더미에 하얗게 서리가 내립니다.남루한 식솔들,말갛게 번지는 호롱불 밑에서 어깨 다독이며 잠을 청하고,마루 댓돌에는 샘물에 곱게 씻긴 흰 고무신 한 켤레 갸웃하게 놓여 있습니다.어머니의 마늘코 고무신,그 속에서 피어나는 온기는 항상 미덥고 애틋했습니다. 이렇듯 고무신은 한 시절의 반려였습니다.발 크기에 맞춘 지푸라기를 고의춤에 챙겨넣고 장나들이에 나선 어머니가 사오신 ‘9문’짜리 검정 고무신.재생 고무라며 엿장수도 곁눈질하기 일쑤였지만,얼마나 좋았으면 반반한 흙길에서는 벗어들고 냅다 뛰었겠습니까? 닳아 헐렁이는 신발 뒤꿈치에 대어 기운 광목 천과,얼기설기 그 천을 엮어간 바늘 땀을 따라 새삼 어린 시절 추억이 피어납니다.한 날,장마로 불어난 도랑물에 휩쓸려 고무신을 잃어버렸습니다.꼭 아버지의 꾸중이 두려워서가 아니라,그 신발 한 짝이 또한 나일 거라는 생각에 저물도록 물길 따라 오가며 도랑을 뒤지던 날. 그날 밤,아해의 꿈 언저리에 가지런히 짝지어 놓인 검정 고무신.넘치도록 정(情)을 퍼담던 그 고무신,요즘 아이들은 거저 줘도 신지 않습니다. 심재억 생활레저부 차장 jeshim@ 심재억 생활레저부 차장 jeshim@˝
  • 작황부진·웰빙열풍 잡곡값 폭등

    잡곡 값이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지난해 태풍 ‘매미’의 여파로 작황이 크게 부진한 데다 웰빙 열풍으로 오히려 수요는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11일 농산물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 따르면 검은콩·율무·차수수·차조 등은 지난해 이맘 때보다 무려 200∼300% 폭등했다.차수수(70㎏ 기준)는 이날 현재 47만 5000원(작년 이맘 때 16만 1300원),검은콩 49만 5000원(21만원),율무(80㎏) 69만 5000원(31만 2000원),차조는 55만원(27만 6000원)을 기록하고 있다. 흰콩(70㎏)은 31만원(19만 3500원),서리태콩 64만원(33만 8500원),팥(80㎏) 41만 5000원(30만 1500원),녹두(78㎏) 74만원(38만 6800원) 등 큰 폭으로 올랐다. 김규환기자 khkim@˝
  • [토요일 아침에] 대지의 품으로 돌아오라/여연스님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매운 바람과 눈보라가 깊은 산골짜기에 머물며 서걱거리는 영혼을 뒤흔들고 지나간다.세상에서는 본분을 잊은 자들의 이전투구가 판을 치며 중생들의 마음을 할퀴고 있다.천리를 간다는 차진 느낌의 연분홍빛 매화 한 송이도 향기를 잃고 이리저리 천지를 헤매고 있다.자기 영혼을 잃은 자들이 세상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일지암 초당에 머물던 초의 선사가 어느날 지인으로부터 차나무 한 그루를 얻었다.선사는 자연이 준 천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지상에 뿌리 내린 한 그루의 차나무를 보며 날마다 즐거웠다.그리고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오는 자연의 섭리를 생각했다. “소슬한 계절 낙엽들은 분분히 떨어져도/옷깃에 어린 차가운 이슬 원망하진 않네/달이 뜨면 달무리는 수면에 비추어지고/바람 불면 외로운 학 뜨락에서 춤추지/술잔을 기울이며 다정히 이야기 나누고자/만날 약속 정하고도 꿈속에서 다시 찾네/흰 구름과 맑은 이슬을 함께 지니고서/초당 안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렸도다.” 찻잎이 하나둘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도 차나무는 자연을 원망하지 않는다.봄이 되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차의 고운 이파리가 하늘하늘 춤추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초의 선사는 그런 자연의 섭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고 이미 선사의 마음은 봄에 가 있기 때문에 기쁜 것이었다.작고 소담한 것들 속에 우주는 존재한다.그 우주는 모든 우주를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우주적 삶들과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늘 번뇌한다.우리의 삶은 그 번뇌 속에서 희로애락의 가파른 순환 주기에 매몰돼 산다.그래서 나를 너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부처님께서는 108가지 생각에 대해 말씀하셨다.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있을 때 생각들이 일어난다.자아 외부에 있는 것들과 관련된 갈망이 늘 따라 다니는 18가지 생각들이다.이것을 갈망이 따라붙은 36가지의 생각들이라 말한다.이와 같은 과거의 36가지 생각들,미래의 36가지 생각들,현재의 36가지 생각들의 갈망에 따라 늘 따라 다니는 108가지 생각들이다.” 중생들은 바로 이런 갈망 때문에 유혹에 빠지고,떠돌아 다니고,멀리 내던져지고,무엇에 집착하게 된다.108가지의 생각들 때문에 세상은 숨막히게 되고,덮여버리고,실타래처럼 얽히고 어둠에 휩싸이고 밧줄처럼 꼬이는 것이다.자고 나면 누군가가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함께 평생을 살던 사람들이 ‘홧김’에 상대를 죽이고,날이 바뀌면 새로운 ‘비리’가 펼쳐진다. 옛날의 나로 우리로 돌아가고 싶어진다.싸하고 시원한 동치미와 고구마를 나눠먹던 그 시절 우리는 따스한 영혼을 나누고 교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한 잔의 차를 따르자 그 소리를 들었는지 바람결에 문풍지가 흔들린다.문을 여니 영혼을 씻어 내리는 듯한 매화향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어디서 날아 왔는지 멧새 한 마리가 쫑알거린다.일지암 작은 차 밭엔 아직도 흰 눈이 군데군데 쌓여 있다.멀리서 봄이 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손과 마음은 벌써 초당의 무쇠 솥에 가 있다.아침 예불을 끝내고 해가 뜨기 전 소쿠리를 들고 봄비를 가득 머금은 노랑연둣빛의 작고 작은 생명을 지닌 찻잎을 따고,초당의 뜨끈한 구들에 널어 말리면 그 속에서는 천상의 향기가 난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자연의 맛을 음미하며 천상의 향기를 느끼며 그 감미로운 미소 띤 얼굴들을 나누는 일은 참으로 지고지순한 복을 나누는 일이다.대지를 잃어버린 자들이여,자연의 섭리를 잃어버린 자들이여,이젠 세상의 갈망을 버리고 대지의 품으로 돌아오라. 여연스님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
  • 1120만원의 사랑 '하영철’

    지난 2일 오후 남루한 차림의 중년 부부가 도봉구청 사회복지과를 찾았다. “도봉구에서 번 돈입니다.지역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고 싶어요.”라는 짤막한 말과 함께 흰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속에는 깨끗한 수표 1120만원이 들어 있었다.개인이 선뜻 기부하기에는 적지 않은 돈이라 담당공무원이 황급하게 이름,주소,연락처를 물었다.그러나 부부는 “알리고 싶지 않다.오래전부터 남을 위해 쓰려고 적금들었던 돈을 만기가 돼 찾아왔을 뿐이니 좋은 일에 써달라.”며 신원 밝히기를 한사코 사양했다.담당공무원이 간곡하게 기부 사연을 묻자 이들은 도봉구에서 노점상을 하며 어렵게 살아온 삶의 이력을 털어놨다. 노점상으로 생활을 지탱해 나가는 것만도 고맙고 감사해서 좋은 일에 쓰겠다는 각오로 6년 전부터 적금을 들었다고 입을 뗐다.때로는 적금넣기가 버거울 정도로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돈만큼은 먼저 떼어 놓고 손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모은 돈이 1120만원이라는 목돈이 되었고,만기가 되자마자 구청을 찾게 됐다고 설명했다.지금은 노점상을 청산하고 다른 일을 시작했다는 이들은 공무원들의 거듭된 인적사항 요청에 ‘하영철’이라는 이름 석자만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다. 도봉구는 이들 부부의 기탁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도봉구 이름으로 지정기탁,지역 불우이웃을 위해 쓸 계획이다. 최용규기자˝
  • [건강칼럼] 피부 희다고 다 좋을까

    하얀 색은 순수와 깨끗함의 대명사로 통한다.하지만 백반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얀 색은 고통이자 스트레스다.백반증이란 피부색을 결정하는 멜라닌 색소세포가 파괴돼 얼굴이나 목 등 신체 특정 부위에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흰 반점으로 나타나는 피부질환으로,전체 인구의 1%가 이 증상을 가졌으니 흔하다면 흔하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백반증이 건강에는 별 문제가 안되지만 대인기피증과 그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적잖은 고통을 겪는다고 호소한다.이 색소세포가 파괴되는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유전이나 자가면역에 의한 세포의 파괴,스트레스 등 다양한 원인이 작용할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신체 어디에든 생길 수 있지만 특히 손과 발,팔꿈치 등 뼈가 돌출한 부위나 겨드랑이,손목 안쪽 등에 많다.더러는 백반 부위의 털이 탈색돼 머리카락과 눈썹에 백모증이 나타나기도 한다.지금까지는 약물과 자외선을 이용해 치료하는 광화학요법과 스테로이드요법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최근에는 치료효과가 우수한 엑시머레이저를 이용해 좋은 성과를거두고 있다.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인다.미국 FDA가 인정한 엑시머레이저는 백반증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308㎚ 파장의 빛을 증폭시켜 환부에 투사함으로써 피부 깊은 곳에 있는 멜라닌 세포를 자극하는 방법이다.기존의 치료법에 비해 멜라닌 색소가 훨씬 빨리 만들어지는 것이 특징이다.또 정상 피부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멜라닌 색소가 필요한 부위에만 레이저빔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도 일반 광화학요법보다 나은 점이다.치료 기간도 예전보다 절반 이상 줄였다.보통 주 2∼3회 간격으로 한두달 치료받으면 된다. 백반증은 무엇보다 초기에 치료받는 것이 좋다.또 질환을 가진 사람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피하고,꾸준히 관리하는 정성을 가져야 한다.대개의 경우 흰 것은 선(善)이지만,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이상준 아름다운 나라 피부과 성형외과 원장
  • 천안 용정리 양계마을 르포

    조류독감이 발생한 충남 천안 풍세면 용정리 양계마을은 29일 긴급 투입된 방역요원들이 닭을 살처분하는 등 긴장감이 감돌았다.그러나 방역작업에 허술한 구석이 눈에 많이 띄었다. 조류독감에 걸린 닭이 마을에서 처음 발견된 신모씨의 산란계 농장 주변 500m 지점에는 빨간색 줄이 쳐져 있었다.양계농가 11가구와 양돈농가 2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에는 흰 방역복을 입은 시 축산과 직원 50여명이 외부인을 통제하며 방역에 한창이었다.우체원들도 통제선 밖에서 방역요원에게 우편물을 건네주고 돌아갔다. ●28일부터 닭 21만 4000마리 매립 방역요원들은 28일부터 마을의 닭 21만 4000여마리를 바이러스 소독 효과가 있는 생석회와 함께 마대자루에 담아 3,4m 깊이의 구덩이에 파묻고 있었다. 그러나 급하게 방역작업을 하는 탓인지,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났다.초중학교 학생들은 별다른 소독작업을 거치지 않은 채 삼삼오오 마을 바깥의 학원을 다녀왔고,일부 주민은 장을 보러 통제지역을 벗어나기도 했다. 특히 닭의 매립 장소를 정하는 과정에서 주민과 방역당국이 침출수의 안전성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이는 바람에 살처분이 이틀이나 미뤄졌다.또 닭을 묻기만 할 뿐 밀봉하지 않아 조류독감이 재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에 의해 지적됐다. 게다가 통제구역 인근 2차선 도로에 대한 방역작업은 이날 오후에야 시작됐다.이는 차량을 통해 바이러스가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방역요원이나 주민들 가운데 방역용 마스크 대신 바이러스를 막을 수 없는 일반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이조차 착용하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뒤늦은 방역작업…재발 가능성 주민들은 인체 감염의 불안감과 유일한 수입원인 닭을 파묻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풍계면 용정2리의 한 주민은 “아직 건강에 문제는 없지만 동남아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용역직원과 함께 닭을 마대자루에 담던 양계농민은 “소중한 자식을 죽이는 것 같은 심정”이라고 했고,다른 농민은 “우리는 피해자인데 마치 전염병에 걸린 것처럼 보는 사람도 많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양계장을 운영하는 박정길(59·용정 2리)씨는 “닭을 묻으면 보상이 나오긴 하겠지만 노계 한 마리에 100원을 받아서 어디에 쓰겠느냐.”면서 “아예 이번 기회에 양계를 그만두려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그는 “빚이 없어서 그만둘 수라도 있지만 빚을 진 주민들은 그만둘 수도 없고 그저 발만 구르고 있다.”고 밝혔다. 천안 김효섭기자 newworld@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7)연기스님 前상사리(상)

    스님을 처음 뵌 것은 1968년 겨울이었습니다.연기라는 스님이 계신다는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지리산 남쪽에 있는 화엄사(華嚴寺)로 가보라는 어느 스님의 말씀만 믿고서였지요.그 해 겨울 산벚꽃 꽃잎만한 함박눈이 내리던 노고단 준령을 넘어서 화엄사까지 왔을 때 각황전(覺皇殿) 뒤 아름드리 소나무들의 늠렬한 푸른 빛깔들은 함박눈을 맞으며 선정에 들어 있더군요. 그때 저는 함부로 마셔버린 사상의 술에 취하여 스물 한 살 밤과 낮이 길 없는 혼돈으로 몹시 흔들리고 있었고,마음은 까닭을 알 수 없는 분노의 황토물에 젖어서 어둡고 쓸쓸했습니다.말이 사상이지 사실은 어설픈 어릿광대의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았지요.스님을 다시 찾아가는 올겨울에도 눈이 내렸습니다.꼭 서른여섯 해 만입니다.스물한 살 푸르렀던 나이가 어느새 함박눈을 뒤집어 쓴 머리칼로 변했습니다. ●연기스님의 지극한 효행 형상화 36년 전 그때 저는 연기 스님이란 분이 화엄사에 계신 줄 알고 찾아갔었지요.각황전 석등 앞에서 눈을 쓸고 있는 노승께 연기 스님을 뵈러왔다고 하자 그 노승은 나를 잠시 바라보시더니 각황전 뒤 108 돌계단을 올라가면 기다리고 계실 거라 했습니다.어떻게 제가 찾아올 줄 알았는지 궁금했지요.함박눈을 맞으며 돌층계를 오르면서 연기란 분이 어떤 스님인지 자못 궁금했습니다.층계를 다 올라왔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다만 매우 특이한 모습의 3층 석탑 한 기(基)와 석탑 맞은편에 석등 하나가 분분하게 흩날리는 함박눈 속에 앉아 있었을 뿐입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 석탑이나 석등보다 높다란 언덕 주위에 빙 둘러서 있는 수백년 된 소나무들의 붉은 몸피와 짙푸른 솔가지들의 층층마다 내리고 있는 눈송이들의 정취가 더 숨막히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잠시 뒤 저는 속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도 했습니다.천천히 탑 주변을 한바퀴 돌다보니 안내판이 있었습니다.사사자3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국보 제35호,경주 불국사의 다보탑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 걸작품이라는 것,효대(孝臺)로도 불리는 이 석탑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 스님이 그의 어머니께 바친 효행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그제야 저는 연기라는 스님이 화엄사에 계시니 가서 만나보라던 어느 스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눈을 쓸다 말고 능청스럽게 연기 스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실 거라 했던 그 노승의 말씀에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지요. 피식 웃었지요.하지만 더는 의심의 원 안으로 걸어들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그냥 겨울 지리산을 만나보았다는 것만으로 자위하며 돌아오려 했는데,워낙 눈이 많이 내리는 바람에 화엄사 객실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그 다음날도 눈은 그치질 않았지요.꼬박 이틀을 객실에서 보내는 동안 자연스럽게 연기라는 스님에 관한 얘기와 화엄사의 내력을 얼마만큼이나 알게 되었지요.그런데 연기 스님이나 화엄사 둘 다 전설 또는 신화적인 요소를 많이 지녔다는 것,우리나라 역사 속의 저 무수한 사찰들 중에서 화엄사만큼 중요한 인물들이 중첩으로 관련된 곳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습니다.눈을 쓸던 그 노스님이 얘기로 전해주었거나 보여준 몇 가지 문헌들을 종합해 볼수록 혼란스럽기도 했고,신비스러운 면도 있었습니다. ●起·緣起·烟起… 생몰연대와 업적 달라 우선 연기라고 발음되는 이름이 셋이었습니다.제비 연()자를 사용하는 연기(起),인연 연(緣)자를 쓰는 연기(緣起),연기 연(烟)자를 쓰는 연기(烟起)였습니다.한 사람이 세 가지 이름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세 사람이 각각 저마다의 이름을 사용했으며,각각의 생몰연대와 업적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그런데도 언제부터인가 세 사람의 이름을 둘러싸고 온갖 억지가 벌어지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세 사람 모두를 누군가가 꾸며낸 가공 인물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제가 그때 그 노스님의 말씀 중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던 것은 화엄사상(華嚴思想)에 관련된 스님들의 이름이었습니다.연기존자(起尊者),자장율사(慈藏律師),원효(元曉),의상(義湘),연기조사(緣起祖師),도선국사(道善國師),의천(義天)을 비롯한 화엄학승들이 수행한 통일신라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핵심 사찰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구례 화엄사라는 사찰에이토록 명망이 드높았던 승려들의 이름이 거론되는지,그 승려들의 생몰연대와 업적이 확연하게 다른데도 불구하고 같은 시대,같은 업적을 놓고 경합을 벌이듯 거론되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모습의 그 효대와 효대의 주인공인 연기 스님이라는 분과 그 분 어머니도 비구니였다는 얘기가 전설인지 아니면 신화인지,혹은 사실이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그런데 36년 전 겨울에 있었던 그 일은 제가 눈 덮인 화엄사 길을 탈출하듯 빠져나온 뒤로 한동안 잊어버렸습니다.저 살기 바빠서였습니다.그러다가 다시 화엄사와 효대를 찾게 된 것은 1993년 무렵부터였습니다.식구들과 함께였거나 혼자일 때도 있었습니다.벌써 20년도 더 지나 있었고,각황전 석등 앞에서 눈을 쓸던 노스님도 육신을 벗고 고해의 바다를 건넌 지 오래였지만 효대 주변 솔숲엔 천년의 바람소리가 한결로 푸르렀고,어머니를 바라보는 연기 스님의 자세는 지리산과 한 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씩 차례로 물어 들어갔습니다.화엄사는 언제,누가 창건하였는지,중창자는 누구였는지,각황전 자리에 있었다는 장륙전(丈六殿) 벽면을 장식했던 돌에 새긴 화엄경은 어떤 종류였는지도 물었지요. 그러나 그보다는 화엄경과 화엄사상이 먼저 영향을 끼친 것이 신라인지 아니면 백제인지가 더 궁금했습니다.이 의문은 원효와 의상 두 사람 중에서 의상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화엄경을 배워왔는데,유학하지 않은 원효가 화엄사상을 어떻게 배울 수 있었는지,왜 백제시대의 화엄사상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지,정복지 백제 땅을 다스리기 위해 화엄십찰을 짓고 화엄사상을 펼치는 과정에서 전라도 주민들로부터 어떤 도움을 왜 받아야 했는지는 지금도 여전히 궁금합니다.그리고 연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세 사람의 정체는 과연 누구인지,그들이 이룩한 업적은 어떤 것이며 왜 그런 일을 하며 살아야만 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효대의 주인공이신 연기 스님은 세 분의 연기 중 과연 어떤 분이신지,그 연기 스님이 우러러 보고 있는 맞은편의 그 스님상이 과연 연기 스님의 어머니이신지,어머니가 맞다면 왜 출가한 사문인 아들을 따라서절에 오게 되었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장엄하면서도 슬픈 화엄사의 내력 스님.화엄사를 창건한 연대가 544년 무렵이었고,창건자는 연기조사(緣起祖師) 또는 연기(緣起)라고 적고 있는 기록을 틀렸다고 할 만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문제는 역시 연기라는 이름입니다.지금의 화엄사에서는 세 분의 연기 스님을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창건자는 연기(起)이고,중창자는 연기(緣起)이며,본격적인 화엄사상도량으로 키운 이는 연기(烟起)라는 것이지요.제비 연()자 연기는 인도에서 오신 스님이며,인연 연(緣)자 연기는 의상 스님이거나 지금의 전라남도 고창군 흥덕면 출신 황룡사 승려로서 755년 2월 황룡사에서 신라의 흰 종이에다 먹으로 주본(周本) 80화엄을 사경했던 스님이며,연기 연(烟)자 연기는 화엄사를 크게 확장한 도선(道善) 국사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스님.과연 스님은 이 세 분의 연기 중 어느 분이십니까? 저는 감히 효대의 주인공이 지닌 신비를 풀어낸다면 세 연기의 비밀과 함께 화엄사의 아름답고 장엄하면서 조금은 슬픈 내력도 자연스럽게풀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이날까지 이 신비가 신비로 남아 있는 것은 화엄사와 효대가 지닌 역사의 중요성 때문이라고 여깁니다.즉,화엄사는 신라와 백제의 주요 국경도시인 구례(求禮) 땅에 정략적인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 2004 승부를 건다/탁구간판 유승민

    14일 서울 강남의 한 체육관.아직 앳된 티에 머리에 염색을 한 청년이 탁구대 앞에서 흰 탁구공을 쉴새없이 때리고 있었다.한겨울인데도 푸른색 유니폼은 어느새 땀에 흠뻑 젖었다.그러나 얼굴에는 즐거운 표정이 가득했다.유승민(사진·22·삼성카드)에게 탁구는 친구이자 애인이다.탁구공 ‘짬밥’만 벌써 15년째다. ‘탁구 신동’으로 각광을 받으며 태릉선수촌에 입성한 지 어느새 9년.2000시드니올림픽에 이어 두번째로 오는 8월 ‘꿈의 무대’인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한다.그러나 올해는 사뭇 각오가 남다르다.최근 국제탁구연맹(ITTF) 랭킹 10위에 오르면서 한국 남자탁구의 에이스 자리를 굳혔다. 가장 어려운 상대는 세계최강 중국 선수들.종종 뒷심 부족으로 역전패하곤 했다.지난해 12월 그랜드파이널스에서 세계 2위 왕리친을 꺾는 등 ‘공화증(恐華症)’을 어느 정도 넘어섰지만 세계 1위 마린을 선두로 한 ‘만리장성’은 여전히 높은 벽이다.그래서 요즘 중국 선수들을 겨냥,몸쪽 공 공략과 막판 집중력 높이기에 힘쓰고 있다.심리훈련도 시작했다.시드니올림픽 복식에서 중국에 패하면서 4위에 그친 악몽을 떨쳐내기 위해서다. 경기대 스포츠경영학과 2년생인 그는 초등학교 교사인 여자친구와 인터넷 서핑을 즐기는 ‘N세대’.가끔씩 친구들과 서울 강남역 근처 유흥가로 ‘원정’을 가는 평범한 ‘20대 청춘’이다.그러나 말투나 분위기는 천상 30대를 앞둔 관록의 선수다.유승민은 “어릴 때부터 10살 이상 많은 (김)택수형,(이)철승이형의 조언을 들어서인 것 같다.”면서 “친구들도 ‘애어른’이라고 놀리지만 놀땐 다른 애들과 똑같다.”고 밝게 웃었다. 이제까지는 탁구 신동이라는 명성을 증명해 보이지 못했다.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러나 ‘무소’처럼 정상을 향해 꾸준히 발걸음을 옮기는 ‘성실함’을 갖췄다.88서울올림픽 때 유남규가 거둔 단식 금메달의 쾌거를 다시 기대케 하는 이유다.유승민은 “올림픽 금메달은 평생의 목표”라면서도 “아테네올림픽을 후회하지 않을 대회로 만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두걸 기자 douzirl@
  • [서울隨想]아름다운 삶의 모습

    입김이 얼굴에 서리는 차가운 출근길이다. 건널목 넓이에 비해 신호가 짧아 서둘러 건너서 건너편 버스정류장에 섰다. 나는 맨몸으로 건너도 숨이 가쁜데 예순 중반쯤 된 할머니가 인근 농수산물 시장에서 푸성귀며 과일들을 사서 손수레에 가득 싣고 허겁지겁 건너온다.미처 건너기 전에 빨간불이 켜져 달려오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정류장에서 숨을 채 고르기도 전에 자기가 탈 버스가 오자 이내 다른 사람들 꽁무니에 붙어 짐을 버스에 실으려 한다.용케 마음 좋은 기사를 만나면 할머니가 제대로 오르기까지 기다려주는데 매정한 운전기사는 짐을 버스에 올리기 전에 문을 닫고 휑하니 떠나 버린다. 할머니는 다시 짐을 추슬러 놓고 달려가는 버스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서 있다. 야속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체념과 출근시간에 그런 짐을 싣겠다는 자신의 행위가 지당하지 않다는 생각에선지 원망도 서두름도 없이 또 다음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 몇 대를 놓쳐도 타지 못하니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부러 버스를 세우고 짐을 들어 실어주기도 한다.나도 어떤 때는 건널목에서 같이 걸으며 수레를 밀어 주기도 하고 그냥 떠나려는 버스를 붙들어 주기도 한다. 추운 날씨에도 상기된 얼굴과 흩날리는 반백의 머리카락,재빠른 걸음걸이가 아직 건강해 보이나 손수레에 실린 물건들이 그의 고달픈 생활을 금방 읽을 수 있게 한다. 어느 골목길 모퉁이에다 작은 좌판을 내고 매일 아침마다 그렇게 장을 봐다 약간의 이익을 남기며 사는 모양이다. 자가용에 화물차와 오토바이가 넘치는 요즘이지만 그 할머니에겐 그런 것으로 아침 시장길을 잠깐이나마 도와줄 아들이나 영감님도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아침 일찍 손수레를 밀고 나와 장을 보고 장사를 하는 그 모습이 딱하면서도 아름답기 그지없다.어쩌면 고생하며 기른 자식들이 기댈 만하고 제발 그일을 그만두라고 말리는데도 힘있을 때까지 일하겠다는 신념으로 그렇게 고생을 하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고달픈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그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용감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 아침에 읽은 신문에서 본 가난이 빚은자살이나 범죄자의 비극들이 원망스럽고 사치족과 낭비족들의 행태가 미워지기만 한다. 버스에 오르기만 하면 직장까지 편안히 오갈 수 있고 책상 앞에 편안히 앉아 일을 하고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도 그것마저 싫어 매일 출근을 부담스러워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세상은 소수자의 희생에 의해 건설되어 가고 셋방살이 지하층에서도 인재들이 크는 것은 그런 할머니나 어머니들의 사랑과 헌신에 의한 것이라 생각할 때 그 할머니의 고된 모습이 생기롭다.바람결에 흩날리는 흰 머리카락은 하나의 삶을 위한 강인한 깃발이다. 추운 날씨에 할머니의 좌판 옆에 피운 난롯불에 얹힌 주전자에서 한결 따뜻한 김이 폴폴 솟아오르고 많은 서민들이 드나들며 날마다 매상이 올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강석호 수필가 문학평론가
  • [길섶에서] 눈 이야기

    도심의 눈은 겨울의 골칫거리일지 몰라도,눈이 내리는 것은 원래 서설(瑞雪)이다.하얀 눈이 쌓인 고궁이 훨씬 운치있고,병풍처럼 드리워진 겨울산도 눈에 덮이면 한결 자태가 고와보인다.그 눈도 한밤에 내리면 고요의 바다다.그래 김광균 시인은 ‘설야(雪夜)'에서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처마 밑에 호롱불 야위어 가며/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라고 읊었을 게다. 평범한 일상사도 눈 내린 기억과 겹치면 넉넉해지면서 추억이 되는 법인지….지금은 일반의 기억에서 멀어졌지만,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한 날 아침도 눈이 내렸다.그때 ‘설야'를 인용하며 기자칼럼을 썼는데,휴지통에 버려진 아픈 기억이 있다.합의의 의미를 담는다고 쓴 것이 눈 내린 서정에 잔뜩 취해 아마 중학생 작문수준에 머물렀던 모양이다.또 하나,누구나 한번쯤 겪는 첫사랑의 추억도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밤의 기습적인 입맞춤이어서 더더욱 달콤한 게 아닐는지….설사 집사람의 ‘잔소리를 듣게 된다.’고 해도 나에겐 진한 눈 이야기이다. 양승현 논설위원
  • 18세기 문예계 큰 스승 강세황의 詩·書·畵·評/새달 29일까지 예술의전당서 특별전

    표암(豹菴) 강세황(1713∼1791)은 시서화 삼절(三絶)의 문인예술가이자 서화비평가였으며 김홍도·이인문·신위 등을 키워낸 18세기 조선 문예계의 큰 스승이었다.아호인 표암은 태어날 때부터 등에 흰 얼룩무늬가 표범처럼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표암은 32세부터 30년 동안 일체의 벼슬을 단념하고 안산 초야에 묻혀 학문과 예술에 전념했다.그는 안산시절 체득한 충만한 자의식과 72세 때 사신으로 연경에 다녀온 이후 고양된 안목으로 18세기 조선의 사회 문화 전반을 휩쓴 변화의 기운을 표출했다.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18세기 예술의 큰 스승-표암 강세황의 詩ㆍ書ㆍ畵ㆍ評’전은 표암의 시서화평에 담긴 정신세계를 ‘문인예술가’라는 측면에서 살핀 대규모 기획전이다. 표암은 서양화법을 최초로 도입했으며 중국에서 들어온 남종문인화의 조선화 내지 토착화를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지금까지 표암은 주로 화가로서 연구돼 왔고 전시도 회화를 중심으로 이뤄졌다.시인이나 서예가로서의 면모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다.표암의 시서화평 모두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제는 푸른 솔은 늙지 않는다는 뜻의 창송불로(蒼松不老).표암이 죽기 직전 오도송처럼 남긴 절명구다.전시에는 초상,글씨,산수인물,사군자 및 초충화훼,서화평과 교유관계를 보여주는 작품 등 5개 분야 114건의 작품이 나와 있다.이중 표암이 79세 작고하던 해에 쓴 ‘표암유채첩’은 연행(燕行) 이후 일변된 모습을 보여주는 말년 최고의 득의작이다.골기(骨氣)가 뚜렷이 드러난 이 작품은 19세기 ‘완당바람’의 전조를 느끼게 한다.표암의 글씨는 중국에서조차 ‘미하동상(米下董上·미불보다는 아래이지만 동기창보다는 위이다)’이라든가 ‘천골개장(天骨開場·천품이 글씨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이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필력이 뛰어나다. 표암의 생애는 초기 학습기(32세 이전),안산시절(32∼61세),출사와 연행(61∼79세) 등 세 시기로 나뉜다.이 가운데 특히 안산시절과 연행은 표암의 예술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가장 중요한 시기로 꼽힌다.표암은 평생 중국과 조선의명작·화보에 대한 임모(臨模)와 방작(倣作)을 통해 그 작품들을 자신의 것으로 하고자 했다.이번에 공개된 ‘방석도필법산수도’‘방공재춘강연우’‘표옹서화첩’ 등에서는 그런 근거들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표암은 안산에 칩거하면서 시나 서화를 주고받거나 시회(詩會) 등을 통해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표암의 교유관계는 성호 이익을 중심으로 한 여주이씨 일문과 안산15학사,유경종을 중심으로 한 진주 유씨 가문으로 요약된다.이들은 대부분 현실정치와는 거리가 먼 기호남인이나 소북계 인사들로 현실에 구애됨이 없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들이었다.전시에서는 ‘강내한수친연송시첩’‘단원아집’‘무이구곡도’‘현정승집’‘섬사편’ 등 안산시절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한편 표암의 셋째아들 관이 쓴 ‘계추기사’는 표암 초상화의 제작내력,표구 제작과정 등을 적은 초상화 제작일기로 눈길을 끈다.전시 기간중인 2월7일에는 표암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도 열린다.서울대 안휘준 교수가 ‘표암과 18세기 조선의 문예동향’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2월29일까지.(02)580-1511. 김종면기자 jmkim@
  • [씨줄날줄] 포로된 국군포로

    국군포로가 또 포로가 됐다? 6·25 전쟁으로 포로가 돼 고향을 잃은 것만 해도 억장이 무너지는데,50년도 더 지난 지금 또다시 인질로 붙들렸다니…. 분단의 아픔과 좌절,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을 그린 소설 ‘광장’에서 작가 최인훈은 이렇게 마무리한다.“흰 바닷새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마스트에도,그 언저리 바다에도.아마,마카오에서,다른 데로 가버린 모양이다.” 희망도,기착지도 보이지 않았던 피해자는 이렇게 사라져 버렸다. 최 작가가 이 소설을 쓴 시점은 이념과 분단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고,그래서 그 아픔이 가슴에 와 닿았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최 작가가 이런 모습을 그렸다면 어땠을까. 우리의 정부,통일부가 앞으로 탈북자에 대한 초기 정착금 지급액을 전체 지급액의 4분의1에서 5분의1로 낮추고 나머지는 3년 분할에서 5년 분할로 지급키로 하는 내용의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령’을 입법 예고했다.취지는 자본주의 경제에 취약한 탈북자들이 목돈을 까먹지 않도록,사기 당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취지는 좋다.또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생각이 탈북자들을 미리 보살피겠다는 ‘예방적 배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탈북자들을 등치는 사기꾼이 설치니까 뒤늦게 ‘아는 척’하는 것으로 보여 불쾌하다. 현재 중국에서 떠돌고 있는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가 수십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언젠가는 이들의 귀국이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정착금을 노린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국군포로들의 탈북과 귀국에 개입하고 있는 브로커들은 수천만원에서 억대의 돈까지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포로가 됐던 것만 해도 서러운데 이제 와서 또 몸값까지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광장'의 시대는 지났다.국군포로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이들을 두번 죽이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이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국군포로가 무슨 노예나 물건인가? 이들의 아픔을 방치하는 국가는 ‘비열한 장사꾼’이고,브로커는 인신매매범보다 더 한 ‘인간 사냥꾼’이다. 김경홍 논설위원
  • 원작 돋보이는 외화 2편

    원작 덕분에 더 돋보이는 외화 2편이 나란히 찾아온다.오는 16일과 20일 잇따라 개봉하는 ‘런어웨이(Runaway Jury)’와 ‘페이첵(Paycheck)’은 세계적 베스트셀러 원작소설의 후광을 업은 액션스릴러물이다. ‘런어웨이’는 ‘타임 투 킬’‘펠리칸 브리프’‘의뢰인’ 등의 추리소설을 히트시킨 존 그리샴의 작품.또 ‘페이첵’은 ‘블레이드 러너’‘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을 발표해 전설적인 SF소설가로 꼽히는 필립 K 딕의 단편소설이다.원작의 글맛이 스크린에 어떻게 녹아들었을지 기대해 봄 직하다. 런어웨이 더스틴 호프먼·진 해크먼·존 쿠삭 등 선굵은 스타들의 포진이 무엇보다 눈에 띈다.어이없는 총기난사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여자가 시민에게 총기를 함부로 판매한 무기회사를 상대로 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다.하지만 문제의 무기회사는 소송에 패한 적이 없다.재판에 참석할 배심원들을 배후에서 교묘하게 조종하는 배심원 컨설턴트 랜킨 피츠(진 해크먼)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배심원 컨설턴트란,배심원들을 움직여 재판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일종의 로비스트.법정스릴러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극을 끌어가는 핵심소재를 따지면 영화는 좀더 특별해진다.피고와 원고 당사자들이 사건 자체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게 아니라,재판을 유리한 쪽으로 이끌기 위해 배심원들을 놓고 밀고당기는 신경전을 벌인다. 더스틴 호프먼의 역할은 무기회사 전직 간부까지 확보하는 등 사회질서 회복을 위해 애쓰는 양심적인 변호사 웬델 로.하지만 배심원들을 ‘요리’하는 데 고도의 노하우를 가진 피츠를 감당하기가 힘들다.스릴러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양념이 음모이론.영화는 두사람의 대결구도에 제3의 캐릭터를 던져넣어 지능게임의 재미를 안긴다.배심원인 이스터(존 쿠삭)의 여자친구인 말리(레이철 와이즈)가 피츠와 로 양쪽 모두에게 1000만달러의 거액을 주면 배심원들을 매수해 소송을 이기게 해주겠다며 접근해온다.이스터는 배심원단의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는 핵심멤버. 드라마의 치밀함이나 화끈한 반전은 기대할 수 없다.그러나 배심원들의 이면세계와 ‘배심원 컨설턴트’라는 이색직업을 들여다보는 재미는 색다르다.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더스틴 호프먼과 진 해크먼 두 중견배우의 원숙한 연기도 원작의 자존심을 살리는 데 큰 몫을 했다. 페이첵 할리우드로 진출해 ‘페이스 오프’‘미션 임파서블’‘윈드토커’ 등 화제작을 잇따라 내놓은 우위썬(오우삼) 감독의 새 영화.지성파 배우 벤 애플렉과 최근 ‘킬 빌’에서 날렵한 사무라이 액션을 선보였던 우마 서먼이 손을 잡았다.할리우드 최고 흥행감독으로서의 입지를 다진 감독은 필립 K 딕의 미래소설에 속도감과 스펙터클이 어우러진 특유의 액션을 버무려 SF액션스릴러의 성찬을 차려냈다.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어떨까,행복할까?’ 영화는 노골적으로 이런 화두를 던지며 드라마를 풀어나간다.영화 속의 세상은 기계문명의 발달 정도가 아찔할 수준이다.신기술 개발에 매달리는 천재공학자 마이클 제닝스(벤 애플렉)는 프로젝트가 완성될 때마다 기업보안을 위해 기억제거 프로그램으로 기억을 삭제당한다.3년간의 장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뒤 거액을 받기로 했으나,얼마 뒤 기억만지워진 채 그가 스스로 돈을 포기했다는 어처구니없는 통보를 받는다. 영화는 음모론을 일찍부터 드러내며 디스토피아적 메시지를 확장해간다.애플렉은 내용이나 형식에서 음모론의 중심에서 한 발짝도 멀어지는 법이 없다.그가 나오지 않는 화면이 거의 없을 정도.그가 비밀을 푸는 데 주어진 단서는 버스표,스프레이,오토바이 열쇠 등 전혀 연관성이 없는 19개의 물건이 전부다.애인이었던 레이철(우마 서먼)의 도움을 받아 제닝스는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둘 맞춰나간다. 누군가에 의해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애플렉의 심리묘사와 액션 장면은 팬들을 설레게 할 만하다.선굵은 액션에 이런저런 치장없이 ‘날 것’의 연기를 보여주기는 처음인 듯하다. 그러나 너무 큰 기대는 갖지 않는 게 좋겠다.우연의 남발 탓에 지능게임을 즐기기엔 답답하고,그렇다고 통 큰 액션을 즐기기엔 양이 차지 않는다.주인공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결정적 장면에서 느닷없이 흰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우위썬 스타일’은 이번에도 변함없다. 황수정기자 sjh@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타원형 감옥의 외부-백민석 소설 목화밭 엽기전과 그 맥락

    강 경 석 1.기율과 충동의 사이 백민석의 소설들은 낯설다.그래서 그는 활동 초기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아왔다.그러나 그런 만큼 오해와 풍문속에 내버려져 있기도 했다.그에 관한 논의들 대다수가 “긍정과 부정의 양 극단에 서”(하상일)있다는 지적은 여기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작가 백민석은 과장된 지지와 일방적 폄하 사이에서도 소설적 기율에 대한 자의식과 하위문화적 충동 간의 길항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어 문제적이다.이는 그의 소설을 전위주의(avant garde)나 키치적 신세대론으로 소급하게 만든 흔한 실마리이기도 했다.그러나 이 길항이 가지는 가시적 면모들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그보다는 하위문화소들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 작가가 무엇을 배치해 놓았는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그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90년대적 공통감각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 혹은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261면)진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그의 소설들이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범주로의 손쉬운 편입을 수락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들은버려지고 배제된 것들(abjection) 말하자면 “병원 수술실에서 나온 적출물더미”(74면)의 잡종교배를 통해 태어났다.하위문화적 기시감으로 얼룩진 “적출물더미”들이 작중현실을 대신하면서 이들을 단순한 상징이나 알레고리로 보이게끔 만들지만,백민석의 서사전략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는 비유적 세계의 너머에 있다. 우리가 길어 올리고자 하는 주제들은 모두 그의 네 번째 장편 ‘목화밭 엽기전’(이하 엽기전)을 경유한다.‘헤이,우리 소풍 간다’(이하 헤이)로부터 본격화된 백민석의 소설 작업은 자못 활력적이었다.그리고 그 도정의 옥매듭을 이루는 작품이 바로 ‘엽기전’이다.이후 출간된 소설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하 장원)이나 장편 ‘러셔’도 이 텍스트의 장력 바깥은 아니다.‘엽기전’은 백민석의 성공과 실패를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창이다. 2-1.기생(寄生)과 평질변이의 공간들 벤야민은 카프카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그것을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초점이 있는 타원과 같다.”라고 썼다.이처럼 ‘엽기전’ 또한 두 개의 초점을지닌 타원 구조를 띠고 있다.그러나 카프카의 작품이 현대사회의 알레고리적 재현이라면 ‘엽기전’은 그 ‘재현’의 재현이다.은폐된 두 개의 초점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적절한 축척의 개략도 한 장을 준비하기로 한다. 주인공 한창림은 대학 강사이다.그에게는 수학과외 교사를 하는 아내 박태자가 있다.과천에 살고 있는 이들은 비교적 분명한 사회적 신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괴한 작업에 몰두한다.그것은 미소년들을 자신들의 집 지하실로 납치해 스너프필름을 찍는 일이다.이는 시종 “흰 연기”(281면)에 비유되는 공포스러운 존재 “펫숍삼촌”의 사주에 의한 것이다.‘펫숍의 영어표기 pet에’는 ‘성애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으며 거기에서는 “도착적인 냄새”(128면)가 난다고 설명되듯 그가 한창림 부부에게 돈을 지불한 뒤 얻는 것은 관음증적 쾌락이다.이야기는 박태자의 제자이기도 했던 소년 윤수영이 이들 부부에게 납치·살해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생면부지의 한 회계사를 양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폭행하게 되고,그 때문에 오장근 형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일이 “질서에서 어긋나”(188면)자 펫숍삼촌은 박태자를 살해한다.한창림은 오장근과 펫숍삼촌에 대해 복수를 꿈꾸지만 결국 실패하고 체포된다.이 파국의 막바지를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그는 “모자이크 처리가”(280면)된 “목화밭”을 발견한다. 물론 이상과 같은 개략도만으로 우리의 목적지가 금세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도착적 수사들을 일단 괄호치고 나면 텍스트는 의외로 쉽다.그것은 실존공간에 틈입한 우발적 폭력이 파국의 빌미로 된다는,매우 익숙한 플롯을 배면서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같은 맥락에서 “햇빛 때문에” 한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뫼르쏘(‘이방인’)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한창림과 뫼르쏘가 행사한 폭력은 부조리한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다.“양담배”나 “햇빛”은 사후에 조작된 것일뿐 폭력의 본질적인 동기는 아니기 때문이다.요컨대 ‘엽기전’은 지식인 주인공의 지리멸렬한 일상이 폭력적 충동 앞에 느닷없이 노출된 상황과 이질적이고 도착적인 수사들의 짜깁기로 구성되어 있다.이 발견을 열쇠로 삼아 텍스트에 좀더 가까이 가 보자. 우선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전(傳)이라는 이름의 작품 형식표지 때문이다.이것은 한 인물의 인생유전을 시간의 흐름에 입각해 서술하는,동아시아 고전문학의 대표적 형식 중 하나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적 굴절을 거듭해왔다.인물의 궤적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박씨부인전’‘홍길동전’ 혹은 ‘라울전’(최인훈)‘유자약전’(이제하)과 같이 인물 지시와 이어지게 마련이었다.필경 전 형식을 새롭게 전유하면서 그 스타일이 고안되었을 ‘한씨연대기’(황석영)도 사례에 포함시킬 만할 것이다.그러나 엽기(獵奇)는 인물이 아니라 어떤 사태를 지시하는 말이다.그로테스크(grotesque)의 일본식 번역어일 가능성이 높은 이것은,최근 폭발적인 유행과 함께 하나의 문화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그러므로 ‘엽기전’은 엽기라는 문화적 표상들의 탄생과 성쇠를 기록한 형식이다.그러나 텍스트에 파종된 엽기들은 발생·성장·소멸이라는 시간적 체험과는 무관하게비선형(非線型)적으로 뒤엉켜있다.이런 측면은 자연스레 공간적 상상력을 유도한다.텍스트의 문면에 돋을새김 된 모티프들이 “동물원”“펫숍 건물”“지하작업실”“서울랜드”“목화밭”“과천” 등의 공간 표상들임은 시사적이다.지하분묘(grotta)의 벽에 표현된 반인반수의 기괴한 신체들로부터 파생,매스미디어적 운반을 거치면서 그로테스크는 엽기로 굴절되었거니와 엽기는 먼 기원에서부터 이미 공간 자질(지하분묘/일그러진 신체)을 보유했던 것이다.그런 면에서 ‘엽기전’의 전(傳)은 교란부호 내지 착란이다.그것은 엽기가 전(傳)이라는 선형(線型)적 시간에 뿌리내리면서 빚어진 형질변이의 결과여서,결국 의식의 ‘적출물더미 하치장’을 표상하는 공간 기호로 작동한다.이것의 대표적 작중 용례는 일상의 표면에 묻힌 한창림 부부의 “지하작업실”일 것이다.이곳에서는 마치 무의식 속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설정 자체는 나체의 주술사가,흰 피부의 사내애와 벌이는,섹스의 향연이다.신께 제를 올리는 것이다.제물은 섹스이고,체액이고,신체이다.(212면) 재갈과 가죽 끈으로 포박당한 희생자는 끊임없는 린치의 반복앞에 저항할 힘조차 잃고 있다.한창림 부부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상황을 연출하면서 마치 마계의 제사장처럼 행동한다.악마숭배의 제의적 모티프는 하위문화의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헤비메탈 밴드의 라이브 공연장은 가장 적절한 참조 대상이다.이들은 “무시무시한 대형 두개골 모형이 놓여 있고,사방에 스티로폼으로 만든 시체 조각 뼛조각들”(‘장원’146면)이 널린 무대에서 연주하곤 했다.그들은 관중을 향해 “날엉덩이”까지 흔들어대는 퍼포먼스를 서슴지 않는다.작가가 여기에 깊은 공감을 보이는 이유는 “모든 가식을 뚫고 자신과 현실을 직시하는 추잡한 날엉덩이의 미학”(‘장원’ 147면)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은 한창림의 지하작업실과 유사한 공간 자질을 갖는다.성스러운 신의 전당들이 지상으로부터 영원을 향한 상승 이미지라면,엽기전적 공간은 지하로 숨어든 하강 이미지이며,그것은 서구 고딕(Gothic)소설들이 공간적 배경으로 흔히 채용했던 폐쇄공간들(외딴 성,숲속의 저택 등)과도 통한다.한창림의 지하작업실이 “서울랜드와 동물원이 지어질 때 고립”(18면)되었다고 진술되면서부터 이들과 일정한 상호텍스트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오트란토 성’(H 월폴) 같은 작품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지하실이나 비밀통로,폭력적인 남성형상 등의 모티프들이 두루 겹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엽기전’이 일반적인 공포물이나 고딕소설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소재주의에 함몰된 비약이다.상호텍스트성이 아무런 매개도 없이 동질성으로 전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이를 과장하다보면 최인훈의 ‘웃음소리’나 박인홍의 ‘벽 앞의 어둠’,또는 이승우의 몇몇 근작조차 고딕소설의 일종으로 배분해야 지 모른다. ‘오트란토 성’이 봉건 이념의 종식을 징후적으로 포착한 경우라면,‘엽기전’은 근대 자본주의의 세포단위인 부르주아 핵가족의 내파(內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내력부터 다르다.이 앞뒤 사이에 가로놓인 역사의 심연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인데,그렇다고 텍스트에 드러난 고딕적 요소를 일방적으로 부정할 수만은 없다.그것은 ‘신체 상해’의 문학적 상관물들이 동시대의 한국문학에서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이것이 도시 체험의 축적에서 유래하는 일탈의 감각과 깊이 연루된 것이고 보면 우리 사회 일각에서 나타나는 포스트모던 징후의 하나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그런데 테리 이글턴 같은 경우는 여기서 더 나아가 포스트모던 자체를 오히려 “고딕의 뒤늦은 부흥”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그에 따르면 고딕이란,“편파적 시선에 의해 내던져진 괴기스러움의 그림자이며,허구 속에 안전하게 봉인된 팬터지이자 분노이기도 한,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다.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의 포스트모더니티를 과장하는 일도,서구적 맥락에서 고딕을 규정하는 일도 아니다.고딕환상물들이나 하위문화 양식들이 다양한 방향의 역사적 분절과 매체 전이를 경험하면서도 “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기원적 동질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앞에서 말한 ‘재현(가상)의 재현’이란 무엇이 될 수밖에 없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더 중요하다.‘무의식”이라는 표현에서 예상되는 것처럼 하위문화적 충동의 1차적 재현이란 이미 “안전하게 봉인된” 저항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백민석이 수행하고 있는 ‘재현의 재현’ 전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다.버려지고 배제된 “적출물더미” 혹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들”(166면)은 “지하작업실”이나 “펫숍건물”에서 벌어지는 린치행위들(악마적 희생제의)과 함께 표면적으로는 위반의 정치학을 구사하면서도,내면적으로는 “사회체계”의 안전망 안에서 자기보존의 영속적 지위를 획득한 것들이다.그것은 또,하위문화 기제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데,‘엽기전’은 이 점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그리하여 텍스트는 반항의 에네르기를 통제하는 봉인,“과천의 위생 처리된 맨홀 뚜껑”을 해체하는 일대 모험을 감행한다.이때부터 텍스트 전개의 중심축은 지하작업실의 은폐된 사실들이 표층으로흘러넘치면서 발생하는,파국을 향해 이주한다.한창림이 지하작업실을 불태우는 장면(234면)은 그 전환점이다.이 상상적 봉인해체 작업을 통해 백민석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이 얼마나 안일한 기초 위에 축조된 것인가를 묻는다.한창림은 이를 “몰락”(232면)이라고 말한다.이것은 그의 목소리를 빌려 미리 암시된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얼마나 세상의 위협적인 눈들로부터 폭넓게 노출되어 있는지 깨닫곤 놀랐다.사람들은 다만 망상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자기가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 같았다.(68면) 첫 장편 ‘헤이’의 “퐁텐블로”나 ‘엽기전’의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낸 과천”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을 외화시킨 인공낙원이다.그리고 이 공간들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작업은,그 전제에서부터 “사회체계”의 기초를 탐색하는 작업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그것은 ‘엽기전’의 전략을 논리적 비약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럴 듯하다.이러한 종류의 탐색 작업은 늘 집 또는 가족의 문제와 관계 맺는다.근대문학의 전통이 끊임없이 물어왔고 또 동시대의 문학적 상상력들이 여전히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백민석 또한 가족이라는 공간에 대해 묻는다.그곳은 “우리의 지옥”(‘헤이’,244면)이다. 2-2.집의 포자(布子)들과 두 갈래의 초월 근대적 가족 이미지의 거처(topos)로 기능해온 ‘집’은 백민석에게 와서 다시 씌어진다.그는 가족 이념의 내파를 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오버랩시키는 실존주의 모티프를 통해 보여준다.임신 중인 박태자가 “가족 없이도(…)그럭저럭 결혼까지 하며 제법 꾸려져왔”(142면)던 자신의 삶을 강변하며 아버지의 방문을 거절하는 장면,그리고 화장실에서 사산(死産)하는 장면.이 두 장면의 연속배치는 결정적이다.자신의 기원을 부정하면서 재생산의 고리마저 끊어낸 ‘집’(또는 가족)이란 그 자체로 전복적인 하위문화 공간이자 “지옥”이다.이것은 매우 급진적인 강렬도에 의해 지탱되고 있어서 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아무도 이타카(Ithaca)의 회복을 욕망하지 않는다.이런 점에서 백민석의 인물들은 기억의 서사를 추구하는 윤대녕의 주인공들과 대조적이다.그곳에는 어떤 기억이나 회상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부조리한 충동은 거의 언제나 우발적인,비가역적 동시성의 소산이기 때문이다.기억의 돌출은 기껏해야 한창림이 자기 어머니를 떠올릴 때처럼 파편적 이미지로 던져지거나(154면),박태자의 경우처럼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암페타민의 환각”(99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행위가 작가의 궁극적 주제를 직접 매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이는 작가가 한창림과 박태자의 교차진술을 통해 작중 상황을 반복 객관화시키면서 더욱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주인공의 욕망이 작가론의 직접적 상관물로 환원될 수 없다는,일견 단순한 사실이 지금껏 무시되면서 ‘엽기전’은 냉소나 허무주의적 저항담론의 일방통행로에 갇혀 버렸다.물론 ‘헤이’와 같은 초기작의 경우,하위-충동의 허무주의를 준거점으로 삼으면서 결국 세대론적 인정투쟁에 희생된 측면이 없지 않다.그러나 충동의 무정부적 방출을 일삼는 주인공이란 하나의 설정일 뿐이지 궁극은 아니다.이들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은 마치 스크린 속에서 만난 괴기사건을 독자들에게 전달,‘재현의 재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는 듯 담담하다.작중인물들에 대한 연민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근본적으로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우호적이지 않다.그러므로 허무주의적 세계관 또한 출발점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헤이’ 이후 작가에게는 단 두 가지 길밖에 없었다.출발점의 진화를 위해 망설임없이 밀고나가는 길,그리고 부조리한 충동들의 존재근거를 되짚는 길이 그것이다.앞의 것은 “목화밭”으로 가는 길이고 뒤의 것은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이 친구를 보라’로 이어지는 자전적 소설의 길이다.그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이다.“목화밭”으로 가는 길 끝에서 한창림 부부가 몰락한다는 것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자칫 이 끔찍한 존재들의 실패담이 무책임한 냉소로 비칠 수 있겠지만,하위문화의 봉인된 저항이 늘 그런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태생적 한계에 의해 몰락하는 것뿐이다.그것은 기원 혹은 자신의 존재근거(집)를 스스로 거절하면서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백민석은 이것을 “괴물들”의 숙명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숙명’이라는 말에 이미 전제된 것처럼,한창림 부부의 몰락은 단지 기성질서나 사회체계의 견고함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충격적 절차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아니 좀더 일반론적으로 말해서,주인공의 몰락은 늘 체제에 대한 굴복을 뜻하고 마는가.우리는 그 반대의 사례들을 분명히 알고 있다.쥘리앙 쏘렐((적과 흑))의 몰락이 단지 타락한 욕망의 몰락일 뿐이며 이동혁((객지))의 실패가 영웅주의의 실패에 불과한 것처럼,한창림의 파멸은 가상의 식민지 위로 흘러넘친 그 무정부적 충동의 패배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엽기전)에서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결정적 토대는,기억의 환원작용을 철저히 단속하면서 “훗날,그의 기억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끔”(234면) 집이라는 상징을 소각시켜 버린 데에 있다.그것은 다만 지하작업실의 끔찍한 린치와 패악들을 포장하는 초월적 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위-충동의 공간으로 전락한 집(獵奇傳)은 단순한 상징이기를 멈추고 마치 암세포나 포자식물들이 그렇듯 확산 증식한다.지하작업실에서 “섹스”와 “신체”가 “제물”(212면)이 된다는 진술은 그래서 설명 가능해진다.근대적 주체 재생산의 전제가 되는 남녀간의 성적 교환을 악마적 제의로 탕진하면서,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등치시켰기 때문이다.이 공간이 지닌 능력은 통상적 상상을 넘는 것이어서,거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에 필적한다.이 “지하작업실의 깜깜한 자궁”(91면)에서 길러져 나온 포자들이란 비정상적 과정을 통해 탄생한 비정상적 존재들이며 체계의 관리망 안에서 “도착적”으로 왜곡된 인공 “수컷성”의 담지자들이기도 하다.“학교 안의 새끼 수컷들”(69면)이나 “동물원의 독방에 갇힌 만드릴 육식원숭이”(175면),“정신병원의 조울증 환자들”(138면) 등은 바로 그 증식의 사례들이다.지하작업실의 포자들은 훈육시설 즉 사회체계의 관리 시스템에서 기생한다. 이것은 빅토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어두컴컴한 실험실이 괴물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자궁으로 기능한다는 지적(G 스피박)을 연상시킨다.그러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년)이 여행(모험)의 구조를 통해 비정상적 존재(괴물)의 정신적 성숙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면,‘엽기전’에는 성숙 혹은 교양(Bildung)의 과정이 삭제되어 있다.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조화로운 가족서사에 대한 강렬한 향수(괴물은 빅토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요구하지만 거부당한다)를 지닌 반면 후자는 가족서사 자체를 히스테리에 부쳐버린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이것은 전(傳)이라는 시간적 형식이 왜 엽기라는 그로테스크의 변종과 만나면서 공간화 되는지를 부연한다.가족은 주체의 인큐베이터이며 성숙이란 그 시간적 진화 과정이다.텍스트는 전통적인 소설의 중심축이라 할 성숙의 문제를 수락하지 않음으로써 시간성의 장력으로부터 이탈하려 한다.이 텍스트가 읽기의 습속에 저항하는 것은,한편으로 비선형적이고 공간적인 그래서 공시적 사유방식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서사의 절연과 접합된 공시적 사유방식은 의미심장하다.근대적가족 이미지가 학교나 군대와 같은 훈육시설들의 이미지와 함께 자본주의에 의해 수행되는 상징조작의 일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었다는 성찰과 맞닿으면서,90년대에 등장한 이른바 신세대 작가들은 가족의 문제를 자신들의 중심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집단적 주제로부터 ‘엽기전’은 그러나 조금 더 전진해있거나 약간 비켜 서 있다. 약간의 비약이 허락된다면,분단 이후의 한국소설사는 가족의 균열을 중요한 축으로 설정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이것은 주로 결손의 문제와 연루되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이데올로기 갈등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는 아비부재에 집중되어 있었다.이것은 김소진에 이르기까지 승계되었다.이 전통은 근원적 실향의식과 친족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산해왔다.그러나 90년대의 풍속 주체들은 그것을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이들의 공과를 떠나서라도,가장 급진적인 작가로는 배수아가 적임일 것이다.그는 동요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이미 파산선고를 내린 듯이,“어머니”를 새로운 해체대상으로 설정한다.그러므로 결손의 모티프를 구사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아비부재가 아니라 어미부재로 나타난다.그러나 “어머니,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아이가 아니겠어요”(‘부주의한 사랑’)라고 외치는 배수아의 “아이들”마저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강렬한 향수야말로 이 도저한 거부의 진정한 추동력인 셈이다.‘엽기전’을 동시대의 유사한 징후들 속에서도 분별하게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텍스트는 가족서사의 부정적 연혁을 작성하면서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음각(陰刻)하고 마는 평균적 해체작업에 만족하지 못한다.그 거부의 의지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혹독한 양상을 띤다.텍스트는 가족서사에 대해 “너무나 흔해서 얘깃거리조차 안”(48면) 된다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주인공들의 이러한 진술 자체가 텍스트의 궁극적 주제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이것은 잠정적으로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라 부를 만한,근대적 가족제도의 구체적 질곡을 겨냥하는 것으로 보인다.작가는 이것을 요약하기 위해 “수컷성”이라는 특유의 조어를 반복 사용하고 있다. 그 외피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란 심층에서 남성적 지배질서를 지속시키려는 “사회체계”의 작동 방식을 함축한다.‘아버지와 아들의 경쟁’으로 상징되는 오이디푸스적 세계 안에서 성숙이란 결국 남성적 성숙에 다름 아니며,이는 근대적 가족 제도를 경쟁 이데올로기의 기초로 삼는 자본의 요구이자 동력이기도 하다.텍스트의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수컷성”이란 “영역싸움”“패권주의”“위계질서” 등으로 예시되는데 이것들은 경쟁 구조의 자기보존 양식을 말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이 질서에 붙들린 존재들은 어떠한 준거로도 윤리적 판단대상이 될 수 없다.이 세계에서는 선악의 이분 구도 따위가 처음부터 허락되지 않는다.충동적 가상들(수컷성)만이 거주하는 끔찍한 세계이기 때문이다.이는 전작(前作) ‘불쌍한 꼬마 한스’에서 오이디푸스적 성숙의 발생학을 탐사했던,백민석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꼬마한스는 프로이트의 주력 개념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전형적 사례이다.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에 대한 공포를 낳고,그것이 다시 말(言)에 대한 공포로 전이되어 꼬마 한스의 신경증을 구성한 것이다.백민석의 주인공들도 공포의 기척 앞에서 실어증을 경험하곤 한다. 한창림은 공포에 전율할 때마다 “누군가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박아넣은 것”같다고 느낀다.이 공포감은 “사회체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이는 백민석의 끈질긴 문제의식 중 하나인데,표현의 추상성을 넘어 은연중 역사적 환기력을 구체적으로 회복한 경우는 그에게 ‘엽기전’이 처음일 것이다.그는 ‘엽기전’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이 소설을 구상한 건 이곳 안양 평촌으로 이사오고 나서,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그게 94년이니까 벌써,칠 년 전의 일이다.(…) ‘뭔가 된’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97년의 일이다.그저 엮어 놓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컸던 것이다. 97년은 국내 경제를 준 공황시대로 내몰았던 IMF 외환위기 사태 혹은 신자유주의의전경화가 본궤도에 오른 시점이다.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엽기전’은 자본주의 사회체계의 가공할 위력에 대한 충격적 확인을 내면화한,우리들의 보고서다.한창림 부부와 그 혈육들이 하나같이 실업자이거나 비정규직이라는 것과 “뷰티풀 피플”의 남편이 파산한 사업가로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운 예증이 된다.“퐁텐블로”나 “과천”이 보여주는 위장된 혹은 상상적 안온함은 생산자본이 투기자본에 압도된 ‘거품경제’ 만큼이나 “텅 빈”,그리고 아슬아슬한 것이다.그가 작중현실로 설정하고 있는 하위문화적 충동의 세계가 그러한 것처럼 그것은 파국의 예감을 이기지 못한다.작품 구상 단계의 모호함이 명료한 의지를 얻게 된 것도,무정부적 충동의 발산에 기울어 있던 작품세계가 일정한 전환점을 획득한 것도 모두 동시대 감각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엽기전’은 우리 시대의 집단신경증(부조리한 충동)이 자본주의의 세계적 관철 혹은 “수컷성”의 일방통행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이는 백민석이 의도적으로 성숙의 문제를 삭제한 결과이다. 그런데 성숙의 문제를 괄호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가능한 일인가.하위문화적 충동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는 이런 의문들이 도사리고 있다.성숙은 블랙홀의 심처와 같이 끊임없는 소환의 인력을 발산한다.성숙의 저 끝 간 곳은 초월의 영역일 것이며 이것은 텍스트 내부에서 두 갈래의 길을 연다.하나는 수컷성의 최상층을 차지하는 “펫숍삼촌”을 제거함으로써 빅 브라더(‘1984’)에 필적하는 질서의 지배자 혹은 신적인 관람자(펫숍은 모든 것을 알고,또 본다)가 되는 길이며,다른 하나는 무정부적 충동을 끝까지 밀고나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편의상 앞의 것을 상승초월,뒤의 것을 하강초월이라고 이름 붙여 본다면,텍스트는 이 두 개의 극점을 지닌 일종의 타원 구조를 갖고 있다.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모두,두 개의 극점이 발산하는 인력 사이에서 진동하는 존재들이다.이는 일반적인 성숙의 서사와 그 음각인 ‘프랑켄슈타인’류의 ‘하위-충동’ 서사를 양 극점으로 삼는 구조이기도 하다.앞에서 벤야민의 카프카론을 예시했던것도 이 때문이다. 하위문화적 충동의 포자들은 소설적 기율(또는 성숙의 플롯)에 기생하면서 ‘엽기전’이라는 변종을 만들어낸다.이 변종의 변종성은 텍스트 내부의 공간 배치,확산에 의해 이루어지며 두 갈래로 나뉘어 각각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의 공간으로 작동한다.이들의 공동 거처는 “제2정부종합청사”“서울랜드”,“동물원”이 있는 공간 과천으로 설정되어 있다.이곳은 “수도권에서 가장 살기 좋은 시로 뽑힌”(165면) 곳이며 그 이유는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냈기 때문이다.이곳은 그러므로 엄연한 실재이기를 그치고 ‘헤이’의 “퐁텐블로”처럼 중간계급적 이상의 재현물로 전도된다.“냄새”나는 “적출물더미”들을 은폐하면서 보편적 행복을 가장하기 때문이다.여기서 “나쁜 냄새”란 “수컷성”의 기화작용 혹은 확산을 말하는 것이다.이데올로기의 상징 조작이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할 때 “살기 좋은” 계획도시 과천의 지하에서는 배제의 프로그램이 가동 중이었던 것이다. 이 배제의 희생물이 되지 않으려면 초월적 수컷이 되는 수밖에 없다.실제로 “펫숍삼촌”의 수컷성은 배제 프로그램(사회체계)을 넘어서 있다.“세상의 눈은 그걸 볼 수가 없”(125면)는 상승초월의 영역에 놓이는 것이다.“어디에도 없으면서 어디에나 있는”(117면) “펫숍 공간”은 삼촌이라는 이름의 친숙성과 결탁하면서,체계로부터 자유로워진다.그에 반해 한창림의 엽기전 공간은 “뷰티풀 피플(사업실패로 와해된 가족 형상)”과 함께 프로그램의 희생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다.그들의 충동은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들은 그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166면)들이다.영역 싸움과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한 수컷들인 셈이다.‘엽기전’은 “흰 연기”(281면)로 표상되는 “펫숍삼촌”의 신적인 수컷성(상승초월)과 결국은 거름이 되고 말,야수의 수컷성(하강초월) 사이에서 전율하고 있는 텍스트다. 2-3.타원형 감옥에서 목화밭으로 ‘야수적 하강’과 ‘비교(秘敎)적 초월’의 두 갈래 길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갖고 뻗어나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동일한 장소-표면에서다시 만나기도 한다.그것은 타원 구조의 양 극점이 자신의 몸을 뒤틀어 다시 만나는 뫼비우스의 띠이다.그 장소란 린치의 장소-표면이다.거기에서는 감시와 처벌,혹은 임의적인 폭력이 끊임없이 미끄러진다.등장인물들의 모든 탈출 기도가 수포로 돌아가는 이유는 텍스트의 세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벗어날 수 없는 순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마치 버튼만 누르면 언제라도 반복재생되는 스크린처럼,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감옥이자 부서지지 않는 벽들이다. 작중 공간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펫숍공간은 가까이 다가가 “정체를 머릿속으로 짜맞춰보다가는,금세 덩치나 안전문이 떠올라 스스로 사고를 정지해버리”(123면)도록 만들면서 영역침범을 가로막는다.이것은 감시의 내면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태어나기 전의 공간”(122면)인 펫숍에 구체적 형상을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벽,“시멘트벽”이다.텍스트 내에서 하강의 경험적 한계인 한창림의 지하작업실 또한 피범벅의 벽들이다.거기서는 린치의 흔적이 끊임없이 번지고 미끄러지지만,벽면들에 안전하게 둘러싸인 채이다.그러므로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은 주인공들의 폭력적 도주를 이끄는 강한 유혹이자 인력의 중심이면서,동시에 막혀 있는 어떤 것이다.“사회체계”의 어두운 핵심으로 직핍하는 길은 아무 데도 없다.저항도 발악도 체계의 허가 범위 안에서 이루어질 뿐이다.이 출구 없음은 그들이 중심 혹은 주체가 아니라 ‘만들어진 존재’ 즉 “사회체계”로부터 호출받은 타자들이기 때문이다.그들은 한갓 게임속의 평면 캐릭터에 불과한 자신의 실존을 증언한다. 그도 아내도 이 사회에서,날 때부터 운명지어진 존재들이었다.(…)괴물스러운 위력이 얼마나 막강하든,바깥에 존재(타자성-필자)하는 한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가 없다…… 그래서 괴물은 장난감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잠들어 있던 괴물을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 놓곤,재미로 쫓아다니며 괴롭히고,종국엔 괴물이 왔던 곳,사회 체계의 바깥으로 다시 쫓아보내는 악취미의 희생물로 전락하는 것이다.(261면) 그들이 줄곧 “내면 없는” 존재로 진술되는 이유가 그것이다.그들은 오직 표면만을 가질 뿐이며 마치 “뷰티풀 피플” 공간에 진열된 “웃는 플라스틱”(인형)들처럼 속이 텅 빈 존재들이다.신체상해 혹은 “린치”는 텍스트의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수도 없이 자행된다.“텅 빈 목소리” 혹은 “사색하지 않는”과 같은 수사들이 끈덕지게 달라붙는 린치 장면들.‘엽기전’의 등장인물들에게 있어 내면이란 기껏해야 히스테리나 조울증·분노 등으로 표면화된다.신체는 하나의 표면이고 그 내부는 또 다른 해부학적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참혹한 인식이 텍스트를 무심히 곁눈질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이 피비린내 나는 일상 어디에도 사색이란 물건은 없다.”(134면) 이것은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이 막힘 혹은 “육중한 안전문”,“지표면”과 같은 일종의 벽면(표면)으로 제시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이것들은 끊임없는 표면들의 연속체로 구성되어 있다.“펫숍의 공간 구조는 자연스레,네 번째 공간,다섯 번째 공간,여섯 번째(…)갈수록 안전문은 육중해지고 접근 불가능해”(123면)지는 것이며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바닥없는 심연으로 사라지는” 것이다.그것은 그들이 스크린의 격자에 갇힌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견고한 감옥의 구조 안에서,한창림은 윤수영을 린치하고,펫숍삼촌은 한창림을 공포로 길들인다.여기서 초월의 전망은 ‘성숙한 깨달음’을 통해 생성되는 것도 아니고,절망적 추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그것은 차라리 두 극단의 장력이 이루어내는 벡터 운동의 산물이다.실제의 공간 과천을 주무대로 배치하면서 실제의 실제성을 마음껏 왜곡하고 있는 ‘엽기전’은 표층 차원의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현실주의의 산물이 된다.여기서의 현실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벡터운동이라고 했듯 생성과정 중인 어떤 것이다.그것은 근대적 가족이념의 이데올로기적 침윤 혹은 수컷성의 영역 분쟁으로 요약할 만한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기괴하게 드러낸다.“현실을 직시하는 날엉덩이의 미학”은 여기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텍스트는 현실을 괄호안에 묶는 팬터지도 아니고 은연중에 독단적 현실을 들이대고 마는 낡은사실주의도 아니다.텍스트는 생성과정 중인 현실 자체이며 끊임없이 포자 증식하는 전경화된 공간 표면들의 연쇄이다.이것이야말로 비가역적 동시성의 산물이다.이 찢어지지 않을 것 같은 혹은 “육중한 안전문” 같은 표면들은 박태자가 늘상 바라보는 “텔레비전 화면”이기도 하다.이 표면들의 연쇄는 단지 화소조합에 불과했던 한창림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들면서 파국을 맞이한다.이때 자신의 근원적 종속성을 지각한,이 불길한 주연배우의 두 눈 앞에 “목화밭”이 출현한다.“목화밭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3부 제목) 한창림은 파국의 절정을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마치 우연인 듯,이 거대한 감옥의 바깥을 본다.그것은 초월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표면들의 완고함 앞에서,마치 자유의 계시인 것처럼 나타난다.그것은 언어적 해석의 대상이 아니다.너무나 낯설어서 오히려 공포감을 일으키는 어떤 것이다.텍스트는 그것을 “목화밭”이라고 부르지만,이미 통상적 기호로는 지시할 수 없는 대상이다.마치 최초의 인간이 자신의 세계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떼듯,“목화밭”이라고 우연히 발음된 것뿐이다.그것은 숭고(崇高)한 대상이다.체계에 붙들린 어떤 의미도 허락하지 않은 채 그저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그는 알 수 없었다.어째서 여기가 목화밭인가? 씨는 아직 뿌리지도 않았는데,언제부터 목화밭인가? 그는 볼 수도 없었다.둔덕 전체에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있었다.(…) 그는 목화밭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그는 삽을 놓고,두 손을 들어 눈을 가린 다음 울기 시작했다.누군가 그의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넣은 것 같았다.커다란 쇠뭉치를 그의 입에 처넣은 것 같았다.(280면) 파멸의 순간에 우발적으로 그리고 모호하게 던져진 ‘그것’은 그러나 ‘엽기전’을 허무주의로부터 구원하면서 동시에 미래로 운반해간다.이것은 획기적이다.백민석은 언어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다만 하나의 자족적인 사물을 생성시키고자 한다.그는 텍스트 위에 어쩌면 자기 자신과도 전혀 무관한 자유를 창조하려한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어느 누구의 승리도 견인하지 않는다.우리는 모두 참패한 것이다.작가도 독자도 또 그 사이의 주인공들도 이 무시무시한 자유의 숭고한 출현을 그저 흔적의 형태로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그것은 “모자이크” 너머의 현실,진정한 현실이다.“목화밭”이라는 우발적이고도 가난한 기호가 ‘진짜 현실’의 숭고한 출현을 계시하고 있다.존재의 근본적 종속성을 깨닫는 순간 “아주 작은 한 구멍”으로 그것도 “모자이크”에 가려진 채로 그것은 나타났다.부서진 몸을 이끌고 나타난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처럼 자신의 가난함을 최대치로 드러내면서,이 타원형 감옥의 외부로부터 자유의 기억이 도래하는 것이다.그것은 “자유라는 이름의 형벌”(사르트르)일지도 모르지만,그 형벌은 해방의 약속과 함께 하는 형벌이다. 3.어쩌면 위험하기도 한 미래 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들과 스크린 속의 괴물들은 서로를 되비추는 거울에 불과하다.‘엽기전’은 결국 한창림의 실패담이 우리 자신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어쩌면 우리들 관객조차도 스크린의 표면에 붙들린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인간은 누구도 예외없이,아직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아도르노의 말처럼,우리는 하나이면서도 여럿인,전지구적 자본주의·수컷성의 경쟁 이념·패악의 은폐전략인 가족로망스·안전처리된 저항의 초월적 가상들에 중독된 채로,우리 자신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망각한 것인지 모른다.이 중독성은 그 바깥을 사유하지 못한다.‘엽기전’은 바로 이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을 껴안으며,동시에 가상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뛰어넘으려는,우리들 모험의 기록이다.동시대의 소비적 재현들이 보여주는 무분별한 질주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청신하게 환기시키는 것,이 거대한 감옥에 길들지 않은 ‘고통스러운 자유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것은 ‘엽기전’이 ‘재현의 재현’을 전략적 준거로 삼으면서 얻어진 결론이며,어떠한 질서에도 구속되지 않으려는 간고한 투쟁의 결실이다. 그러나 ‘목화밭 엽기전’이 도달한 자유의 가능성은 매우 아슬아슬한 역학 장(場) 속에 놓여 있다.그는 알레고리적 재현 전략이 갖고 있는 근본적 허무감과 형이상학적 환원주의를 힘들게 벗어나면서,90년대의 평균서사를 딛고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 중 하나를 열었다.그러나 또 다른의 수준의 위험 앞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해체와 전도의 전략은 얼마든지 동어반복에 떨어질 수 있다.이제는 자신의 전제들조차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가 출발한 전제들에 동의하지 않은 채로는 텍스트를 거의 읽을 수 없을 만큼 부자유스럽다.특히 그의 유난한 반인간주의가 그렇다.그가 그려내는 인간의 모습은 모두 알 수 없는 장력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들이다.이것은 주체를 구조의 효과로 소급시키는,전형적인 구조주의식 사유법이다.반인간주의야말로 진정한 인간주의의 전제조건일 테지만,그것은 주장되고 선언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그것은 반인간주의가 지니는 미학주의적 성격 때문이다.계몽이성을 독단으로 몰아붙이면서,그 자리에 광기와 착란을 대신 들어앉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물론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숨쉬고 있는 n개의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살려내는 가운데,그것은 소멸해갈 것이다.미래를준비할 시간은 아직 필요하지 않은가. 지면 관계상 당선자의 양해 아래 원고 일부를 줄였습니다. ■당선 소감 먼저 심사를 맡아주신 두 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그 분들은 내게 조그마한 오솔길 하나를 터 주셨다.다만 성실한 보행객이 되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당선 소식을 접했을 때 당황했다.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세상을 보는 눈과 귀는 여태 어둡고 그것과 반드시 겹쳐져 있을 문학도,몸과 마음에서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그러나 이왕 엎질러진 물이니 헐거운 공부와 삶을 조금씩이라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그것이 이 무책임을 모면하는 유일한 길이겠다. 이런 자리에서 문학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일은 내 깜냥도 깜냥이려니와 풋내기로서 주제넘은 짓이다.그러나 한 시대와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역동적 협업으로서의 ‘문학’이라는,큰 그림 하나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이 협동작업의 작은 일원으로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내게는 스승 아닌 분이 없다.은사님들은 물론이고 선후배 친구들,가족들까지도 모두 스승이었다.나는 그저 한 장의 백지가 된 것처럼 그들의 말없는 가르침에 어두운 귀를 기울였던 것뿐이다.그들의 빛나는 존재감이 나를 이리로 오게 했다.그래서 오늘의 이 고마운 자리는 영광이 아니라 갚지 못할 부채다.이 또한 잊지 않으려고 한다. 우선 고생하시는 부모님과 하나뿐인 내 여동생 경희에게 공을 돌린다.모자란 글줄이나마 더듬더듬 쓰는 법을 가르쳐준 인하대 국문과의 선생님들,선후배 동료 분들께는 소주라도 한 잔 올려야 할 것이다.학부 시절을 내내 함께 했던 청하 동인들에게는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아득하다.그리고 어려울 때마다 마음 뉠 곳을 마련해준 나의 든든한 후원자 금희에게는 사랑과 고마움을 함께 전해야 하리라. 약력 1975년 대구 출생. 인하대 국문과 대학원 재학 ■심사평 강정구씨의 ‘세상을 떠도는 목어들’은 차창룡의 시 세계를 풍자의 범주 안에 넣고 차창룡만의 특별한 풍자의 양식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 글이다.텍스트의 고유한 경험을 최대한 되살리는 방식으로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평론의 길이라면 강정구씨는 평론의 ABC를 안다고 할 수 있다.다만 문학의 고유한 경험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경험이지 주제의 그것이 아니다.주제를 가지고 경험의 세계를 휘젓다 보니 글이 겅중거리고 성길 수밖에 없다.김용하씨의 ‘비윤리적 세계의 재현과 윤리적 풍경의 기원’은 시적 직관을 통해 순간적으로 구현되는 창조적 공간으로서 시를 이해하고 그 창조적 공간에서만 가능한 인간 삶의 근원적인 조화의 경험을 읽겠다는 의욕이 두드러진 글이다.그러나 하나의 형식에 끈덕지게 매달렸다는 것이 개성의 표지가 될 수도 있지만,글을 도식적으로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이원동씨의 ‘떠도는 가족,주변부 삶을 보듬는 결곡한 서사’는 공선옥의 소설을 길동무처럼 따라 읽으면서 공선옥 소설의 존재의의를 설득력있게 부각시킨 글이다.그럼으로써 이 글은 독자에게는 개안을,작가에게는 위안을,그리고 글쓴 이 자신에게는 텍스트와 더불어 살아보는 경험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텍스트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큰 미덕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글이다. 강경석씨의 ‘타원형 감옥의 외부’는 백민석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와 미학적 경험 사이의 상관관계를 폭넓게 조망한 글이다.생의 적출물의 의미,폭력적 충동의 존재 형식,고딕의 정치적 무의식,가족 이념의 내파,세계의 남성적 지배와 타원형 감옥 구조,디지털 화소조합으로서의 삶의 경험 등등 현대성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망라하는 한편 문학의 글쓰기가 그 주제들과 동일체를 이루면서 또한 해체·변형을 행하는 가운데 도출되는 미학적 경험의 굴곡을 잘 보여주고 있다.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김인환 정과리
  • ‘하얀 고기’ 치즈/골다공증에 좋고 숙면에도 큰 도움

    한 조각 입에 넣으면 고소하면서 때론 새콤한 맛이 혀를 부드럽게 감싸는 치즈.이러한 ‘맛’ 덕분에 치즈가 우리네 식탁에도 점차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하지만 치즈는 고칼로리 식품.‘다이어트’가 화두인 시대에 그다지 달갑지 않다. 그러나 치즈는 열량이 높다는 이유로 외면하기엔 영양면에서 너무 훌륭한 식품이다.우유를 발효시켜 응고시킨 다음 숙성시킨 것이 치즈.따라서 치즈에는 우유에 들어있는 단백질·칼슘·비타민 등이 응축돼 있다.숙성 과정을 거쳐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소화도 잘된다.우유를 10분의1로 응축시켜 만들었기 때문에 적은 양만으로도 같은 영양을 얻을 수 있어 경제적이다.게다가 ‘젖당 소화 효소’가 없어 우유를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치즈는 4000여년 전 아라비아의 한 상인이 사막을 지나던 중 발견했다고 전해진다.지니고 있던 양 우유가 여행 중 발효됐던 것이다.흔히 치즈는 서양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원산지는 중앙아시아다.장기간 보존이 가능한 덕분에 점차 그리스,로마를 거쳐 유럽으로 전파됐다.현재 전세계에 존재하는 치즈는 2000여 종이며 그 중 800여 종이 생산·판매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전래된 제호(우유에 칡뿌리 가루를 타서 쑨 죽)가 치즈의 기원으로 추측된다.우리의 음식 맛을 가늠하는 기준은 ‘장 맛’.서양에서는 치즈가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치즈는 단백질이 듬뿍 들어있는 재료를 발효시켜 만든다는 점에서 된장과 닮았다.오래 묵힐수록 냄새가 강해진다는 점도 비슷하다.‘서양의 된장’격인 치즈.그 영양도 된장에 뒤지지 않는다. ●콩보다 단백질 함유량 훨씬 높아 치즈는 ‘하얀 고기’라 불릴 정도로 단백질이 풍부하다.우유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아미노산의 구성이 이상적이다.게다가 숙성과정에서 유산균이나 렌네트 효소와 흰 곰팡이,푸른 곰팡이로부터 생긴 효소가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해 흡수율이 매우 높다.콩을 ‘밭에서 나는 고기’라고 부르지만 단백질 함유량은 치즈가 콩보다 훨씬 높다. 단백질은 각종 육류에도 풍부하다.하지만 육류를 과식하면 핵산 유도체인 퓨린이나 요산등이 만들어져 신장병이나 통풍을 유발하게 된다.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에는 퓨린 함량이 26∼50㎎이 들어있으나 우유,치즈,오리알에는 0∼25㎎ 정도만 들어 있다. 치즈는 숙면에 좋은 식품이기도 하다.치즈에는 수면을 돕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을 만들 수 있는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뿐만 아니라 치즈에 들어있는 필수 아미노산인 메티오닌은 간장의 활동을 돕고 알코올 분해를 촉진한다.술을 마실 때 치즈와 함께 먹으면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흡수율 높은 칼슘 공급원 흔히 칼슘하면 뼈있는 생선을 떠올린다.칼슘이 아무리 많이 들어 있어도 흡수율이 낮으면 소용없는 법. 치즈에는 칼슘의 흡수를 돕는 비타민D가 함께 들어 있다.또 뼈를 강화하려면 양질의 단백질이 필수다.칼슘은 분자 또는 입자로서 그것을 굳히는 매개체가 필요하다.이때 단백질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덕분에 치즈는 최고의 칼슘 공급원이 되는 것이다.잔뼈 생선의 칼슘 흡수율은 10∼20%에 그치지만 치즈는 흡수율이 60∼70%에 이른다.때문에 골다공증예방에 좋은 식품이다. 뼈의 성장에 칼슘이 필요하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같은 비율의 인이 있어야 이상적이다.치즈에는 칼슘과 인이 엇비슷한 비율이어서 뼈의 성장에 좋다. ●적당량의 치즈는 다이어트 효과 치즈의 영양가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지방을 걱정해 꺼리는 사람들이 있다.그러나 치즈 속 지방은 소화되기 쉬운 유화 상태이다. 또 치즈 속에는 비타민 B2가 풍부해 지방 연소가 쉽게 된다.비타민 B2는 지방을 체내에서 산화 분해하여 열량으로 바꾼다.비타민 B2가 부족하면 아무리 칼로리 섭취를 억제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다.따라서 적당량의 치즈는 일종의 다이어트 효과를 볼 수 있다.지방이 여전히 걱정된다면 구입하기 전 제품의 지방 비율을 확인하면 된다.일반적으로 크림 치즈의 지방 비율이 높다. 치즈에는 비타민 A가 녹황색 채소보다 오히려 많이 들어 있다.비타민 A는 몸의 저항력을 키워 면역성을 높여 우리 몸을 병으로부터 보호한다.또 피부와 점막의 건강을 유지하는 역할도 해 비타민 B와 더불어 피부 미용에 도움이 된다.비타민A와 B는 성장 촉진 인자이기도 하다. 치즈는 동물성 식품이면서도 알칼리성 식품이다.따라서 성인병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또 치즈는 골다공증 예방과 더불어 대장암 발생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뇌졸중 예방 등에도 효과가 있다. ■ 도움말 김일두 계명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윤여창 건국대 축산식품생물공학과 교수,이영미 앤치즈 대표 나길회기자 kkirina@ 치즈 어떻게 먹을까 널리 알려진 것처럼 치즈와 잘 어울리는 음료는 와인이다.와인이 없거나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맛이 강하지 않은 생과일 주스와 함께 먹어도 된다.또 자극성이 강한 커피를 마실 때 치즈를 곁들이면 위벽 등 소화기관 보호 효과를 볼 수 있다.치즈의 복합적인 맛이 커피와 잘 어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빵과 함께 먹을 때에는 흰 빵보다는 호밀 빵이 좋다.호밀에는 지방을 배출하는 성분이 있다. 또 치즈에는 비타민 C가 부족하기 때문에 과일과 같이 먹으면 영양 균형을 찾을 수 있다.단 치즈가 저장 식품이기 때문에 이와 비슷한 말린 과일이 궁합이 맞는다.치즈를 잘 먹지 못하는 사람은 치즈를 갈아서 스파게티나 샐러드 등에 뿌려 먹으면 된다. 치즈는 크게 자연 치즈와 가공 치즈로 나뉜다.가공 치즈는 두 가지 이상의 자연 치즈를 혼합·가열해 미생물과 효소의 작용을 정지시켜 맛을 조절하고 저장하기 쉽게 만든 것이다.통조림 과일보다 생과일이 맛있는 것처럼 맛·영양면에서 자연 치즈가 낫다고 할 수 있다. 집집마다 장맛이 다르듯 치즈 맛도 다양하다.때문에 다른 사람이 권해주는 치즈가 내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다.따라서 여러 치즈를 시도해보면서 내 입에 맞는 치즈를 찾아야 한다.나폴레옹 1세가 이름을 지었다는 ‘카망베르’나 치즈의 여왕이라 불리는 ‘브리’,톰과 제리에 나오는 ‘에멘탈’ 등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부터 먹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나길회기자
  • 만두전골 한끼식사로 술안주로도

    추운 날씨엔 따끈한 국물만 한 게 없다.국물이 있는 음식 가운데 특히 겨울철엔 만두 전골이 입맛을 돋운다.전골의 불판(화격자)으로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것은 덤이다.만두 속엔 숙주나물·부추·돼지고기·두부 등이 들어있어 영양의 균형도 맞췄다.아이들의 한 끼 식사나 어른들의 안주로 좋은 음식이다. 손님들의 방문이 잦은 요즘엔 만두 전골이 주부들로부터 인기다.반찬이 적당하지 않거나,모자랄 때 전골 냄비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준비도 물론 비교적 간단하다. 모두 둘러 앉아 전골을 끓여 먹으면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면 세밑 정도 더욱 훈훈해질 것이다. 이런 전골은 전쟁터에서 급하게 먹던 음식에서 비롯됐다고 한다.옛날 전투를 하던 군사들이 머리에 썼던 벙거지 모양의 전립을 벗어 고기와 생선을 넣고 끓여 먹은 데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인동 장씨 동정공파의 종가 맏며느리인 이홍님(46)씨는 가문에 전해오는 만두 전골 조리법을 알려줬다.경북 영주시에 사는 그는 “꿩으로 빚은 만두가 좋지만 꿩고기가 귀하니 만큼 전골엔김치 만두가 어울린다.”고 말했다.흰살 생선도 있으면 같이 넣어도 좋다고 덧붙였다. ●재료 김치 만두(냉동 만두),쇠고기(양지머리) 300g,팽이버섯 2봉,미나리·대파·가래떡 약간씩,당근 ½개,국간장 3큰술,다진 마늘 1큰술,고춧가루 2큰술,참기름·후춧가루 약간씩 ●조리법 (1) 끓는 물에 쇠고기를 넣고 푹 고아서 뽀얀 국물이 우러나면 고기는 건져 편육으로 썬다.국물은 기름을 걷어낸 뒤 국간장으로 간을 한다.(2) 썰어 놓은 고기에 고춧가루·간장·마늘·참기름·후춧가루로 간을 해 무쳐 놓는다.(3) 미나리는 깨끗이 씻어 4㎝ 길이로 썰고,굵은 파도 같은 크기로 썰어 준비한다.(4) 당근·팽이버섯도 씻어 손질한다.당근과 가래떡은 엷게 썰어둔다.(5) 전골 냄비에 만두·미나리·파·팽이버섯·썬 가래떡·당근을 예쁘게 담고 육수와 양념한 고기는 끓이면서 넣어 먹는다. ■ 장소 협조 맛샘요리학원 글 이기철기자 chuli@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 ●이홍님씨는 인동 장씨 동정공파 34세손 종가의 맏며느리.끊임없이 찾아오는 가문의 대소사를 거푸 치르면서 우리의 전통 음식을 두루 섭렵했다.14년 전 ‘즐거우면서도 수입이 있는 일’을 찾다가 요리에 본격 뛰어들었던 그는 요즘 경북 영주에서 잘 나가는 요리 강사로 꼽히고 있다.생활요리·제과·제빵 등을 강습하는 한편 향토음식연구회 고문도 맡아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 개발에 힘쏟고 있다.
  • 고추 매운맛은 건강지킴이

    서울 명동의 한 라면집.라면을 맵게 끓이기로 소문난 이집의 ‘빨계떡라면’을 20·30대의 젊은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먹고 있었다.이주희(32·여)씨는 “매운 음식을 먹고나면 시원한 느낌이 듭니다.”고 말했다. 서울힐튼호텔의 중식당 타이판도 매운 음식을 잘하기로 소문났다.이휘량 조리장은 “사천 요리를 주문할 때 ‘맵게 해달라.’는 사람들 대부분이 젊은 여성”이라며 “칠리 고추를 수입,고추 기름을 직접 뽑아쓴다.”고 소개했다. 이렇듯 매운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불경기에 매운 음식이 더욱 잘 팔린다고 한다.세계 최장수국인 일본은 수년전부터 ‘살빼기에 좋다.’며 고춧가루통을 갖고 다니면서 맵게 먹는 것이 유행할 정도였고 고춧가루가 담뿍 든 한국 김치도 인기가 높다. 하지만 한·양방 전문가들은 “매운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위경련·위염·위궤양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열이 많은 임산부가 매운 음식을 많이 먹으면 아기가 태열에 시달릴 우려도 있다고 주의를 줬다.매운 맛을 즐기는 우리 국민들이 먹는 고춧가루의 양은 하루 20g정도.사실 매운 맛을 내는 식품은 고추 외에도 많다.고추가 도입되기 이전엔 주로 산초로 매운 맛을 냈다.또 마늘·양파·생강 등도 차이는 있지만 맵다.이들 매운 맛은 미생물에 대한 항균력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고추는 몸이 찬 사람에 좋아 고추의 매운 맛은 태좌(胎座·씨가 붙어있는 부위)에 주로 있는 캅사이신(capsaicin)이 낸다.지용성의 무색 결정성 알칼로이드인 캅사이신의 함량이 높을수록 맵다.캅사이신은 신경의 단위인 뉴런을 자극해 고통을 주기 때문에 맛이 아니라 통감(痛感)이라는 게 양방의 시각이다. 반면 한방에선 매운 맛을 단 맛·짠 맛·신 맛·쓴 맛과 함께 5미(五味)로 인식하고 있다.매운 고추를 먹다보면 열과 땀이 난다.이유는 캅사이신이 부신수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잘 되게 해 간이나 근육에서 글리코겐의 분해를 촉진해 에너지를 생산한다.그래서 우리가 매운 것을 먹으면 열과 땀이 난다. 한방에서 고추는 체질적으로 몸이 찬 사람들에게 권하는 음식이다.김양진 신명한의원장은 “고추는 특히 추위를 많이 타거나 손발이 찬사람,소화 장애를 자주 겪는 사람에게 아주 좋은 식품”이라고 말했다. ●다이어트 효과… 많이 먹으면 위장병 고추가 살빼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근거가 없지는 않다.지방 세포에는 지방을 축적하는 흰색 지방 세포와 지방을 열로 전환하는 갈색 지방 세포가 있는데,캅사이신은 갈색 지방 세포에 작용해 몸속의 지방을 태워 분해한다. 주종재 군산대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쥐를 대상으로 동물실험을 한 결과,캅사이신의 지방 감소 효과가 30%에 이른다는 것을 확인했다.이완희 CJ뉴트라 임상상담 영양사는 “그러나 매운 음식으로 다이어트한다는 것은 위장병을 부르기 쉽다.”며 위험성을 경고했다. 불경기에 매운 음식이 잘 팔리는 것도 이유가 있다.매운 맛이 열을 발산하게 해 시원하게 하고 뇌의 자연 진정제인 엔도르핀이 분비돼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까닭이다. 매운 맛을 자꾸 찾게 되는 것도 바로 엔도르핀이 분비되기 때문이며,인간을 제외한 잡식성 동물은 고추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한의학적으로 매운 맛은 기운을 발산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마음 속에 쌓인 울적함과 답답함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지구력 향상 비타민 A·C풍부 매운 맛은 소금을 적게 먹게 만드는 감염(減)효과도 있다.또 지구력을 향상하고,종양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며,가려움증을 치료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고추는 또 비타민A·C도 풍부하다.홍고추 100g에 비타민A는 1100IU(국제단위)가,비타민C는 50㎎에 이른다. 비타민C는 사과의 40배,귤의 2배에 이르며 항산화 성질이 있는 캅사이신 때문에 쉽게 산화되지 않아 조리과정에서 파괴도 적다. 고추 끝이 둥글며 과피가 두꺼워야 고춧가루가 많이 나온다.씨가 적으며 꼭지가 단단히 붙어있는 것이 좋다. ■ 도움말 최춘언 전한국식품과학회 회장,한영숙 성신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유리나 울산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이기철기자 chuli@ ■매운맛 내는 식품 어떤게 있나 매운 맛도 다양하다.고추는 말할 것도 없이 산초·후추·생강·고추냉이·겨자·마늘·양파 등이 있다.무나 파에도 매운맛이 나기도 한다. ●산초 고추가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이전에 매운 맛을 낸 것은 산초.초피나무의 열매인 산초로 과거엔 김치의 매운 맛을 냈다고 한다.매운 맛의 주 성분은 산쇼올로 혀끝이 아린 듯한 느낌이다. ●생강 한약재이기도 한 생강은 열대 아시아가 원산지인 향신료다.달콤하면서도 상쾌한 향과 매운 맛을 갖는다.매운 맛 성분은 진저롤과 쇼가올.외국에선 마른 생강을 과자 등에 넣어 쓰지만 우리는 생 것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 ●후추 양식에서 빠지지 않는 게 후추.고기의 부패를 방지하는 효능 때문에 육식을 많이 하던 민족들이 사용하던 향신료였다.매운 맛의 주성분은 피페린.후추에는 검은 후추와 흰 후추가 있는데 검은 후추가 매운 맛이 더 강하다. ●고추냉이 생선회와 초밥의 맛을 돋우는 고추냉이(와사비)는 단 듯하면서 신선한 방향을 지니고 있다.매운 맛의 주성분은 이소티오시안산알릴이다.겨자과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많이 재배된다. ●마늘·양파 마늘과 양파의 매운 맛도 뺄 수 없다.마늘과 양파는 자극적인 냄새와 감칠맛이들어 있어 동·서양 요리에 두루 쓰인다.양파에는 단 맛도 있다. 이기철기자 ■우리나라 고추 얼마나 매울까 매운 맛의 세기는 스코빌 단위(SU)로 나타낸다. 1912년 미국 텍사스농대에서 후추를 연구하던 약리학자 스코빌이 창안한 방법으로 미국 향신료 무역협회(ASTA) 등이 채택하고 있다. 이는 캅사이신 등의 시료를 알코올에 녹인 다음,설탕물로 희석하면서 5명의 시험자가 맛을 보는 방법.5명 모두 매운 맛을 느끼지 않을 때의 희석배수를 단위로 나타낸 것으로 스코빌 단위가 높을 수록 매운 맛이 강하다. 하지만 스코빌 단위는 개인차가 있고 주관적인 것어서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고추 캅사이신의 스코빌 단위는 1600만으로 후추(피페린)의 160배,생강(진저롤)의 200배나 맵다. 우리나라 고추는 재래종의 캅사이신 함량이 100g당 2.29g이고,개량종은 1.32g으로 재래종이 더 맵다.이와 관련,아와이 가즈오(岩井和夫) 일본 교토대학 명예 교수가 쓴 ‘고추,매운 맛의 과학’에서 “한국 고추의 스코빌 단위는 1만”이라고 언급했다. 가장 매운 고추는 아프리카 우간다의 것으로 스코빌 단위가 12만7000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 반가워 땡땡/佛대표만화 땡땡 24권 국내 첫 완간 10대 소년기자의 좌충우돌 모험그려

    사례 하나.샤를 드골 프랑스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절대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그런 드골 대통령은 재임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소설가 앙드레 말로에게 자신의 인기를 이렇게 자랑한 적이 있다.“내 라이벌은 ‘땡땡(Tintin)’ 하나뿐이여∼!” 사례 둘.1982년 벨기에 천문학회는 목성과 화성 사이에서 발견된 소행성에 ‘에르제(Herge) 행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자국 만화가 ‘에르제’(본명 조르즈 레미,Georges Remi,1907∼1983)의 75회 생일을 기념하자는 천문학자들의 의견을 수용한 것이다. 사례 셋.지난 1월말 열린 세계적인 만화축제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 개막식은 프랑스 남서쪽 보르도 인근의 소도시 앙굴렘의 ‘마렝고 광장’을 벨기에 만화가 에르제의 이름을 따 ‘에르제 광장’으로 바꾸면서 시작되었다.“프랑스가 ‘허구의 아들’로 입양한” ‘땡땡’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프랑스의 자존심 ‘땡땡’,국내 최초로 완간 동그란 얼굴에 닭벼슬 머리,키 140㎝의 10대소년 기자 땡땡은 프랑스가 전세계에 자랑하는 문화영웅이다.프랑스 일간지 ‘르 주르날 드 디망쉬’에 따르면 프랑스 가정의 절반이 땡땡 시리즈를 소장하고 있고,50여개 언어로 전세계 60여개국에서 3억부 이상 팔렸다. “땡땡은 디즈니의 모든 캐릭터를 합친 것보다도 의미있다.”(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는 말이 허풍처럼 들릴 수 있지만,미국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이를 그대로 긍정한다.“땡땡은 내 작품 세계에 디즈니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 ‘프랑스의 자존심’ 땡땡이 최근 국내의 솔 출판사를 통해 24권 전량이 최초로 번역·완간됐다.1980년대 중반 월간 소년만화잡지 ‘보물섬’을 통해 부분연재되거나,90년대 중반 출판이 시도됐었지만 전편이 완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지난 99년에는 MBC에서 ‘틴틴의 대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 21편이 방영되기도 했다. ●프랑스 초등학교에서 교재로도 쓰여 ‘땡땡의 모험’ 시리즈는 소년 기자 땡땡이 흰강아지 밀루와 함께 동서고금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겪는 모험담형식이다.콩고 이집트 티베트 페루 등 유럽인들에게 이국적인 지역들을 주무대로,나중에는 바다밑,극지,사막,심지어 달까지 악당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간다.조지 루카스가 “영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는 ‘땡땡의 모험’을 원형으로 했다.”고 고백할 정도.여기에 각국의 지리·역사·문화·과학 등을 재미있게 녹여내 프랑스 초등학교에서는 교재로도 사용된다.팔레스타인 문제,남미의 정치·경제적 상황,영국의 인도 식민지 문제 등 20세기 세계사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 담겨 있다. 땡땡은 1929년 당시 21세의 젊은 만화가 에르제가 벨기에 가톨릭계 보수 일간지인 ‘20세기’의 어린이잡지인 ‘르 프티 벵티엠’의 편집장을 맡으면서 시작되었다.필명인 에르제는 본명의 머리글자 ‘GR’를 거꾸로 해 불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벵티엠’을 통해 ‘소비에트에 간 땡땡’으로 처음 시작한 땡땡 시리즈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인기가 높아졌다.1930년 첫 출판 당시 고작 5000부가 팔렸던 ‘소비에트에…’는 지난 81년 재출간때는 3개월 만에 10만부가 팔려 나갔다.에르제는 1930년부터 1976년 ‘땡땡과 카니발 작전’까지 벨기에의 카스테르만 출판사를 통해 23권의 땡땡 시리즈를 내놓았다.24권인 ‘땡땡과 상어호수’는 원작을 토대로 만든 애니메이션에서 스틸 컷을 뽑아 만든 것이다. ●‘땡땡 스타일’의 핵심은 명료성 에르제는 생전 ‘소심하다’느니 ‘결벽증 환자’라는 놀림을 살 정도로 ‘명료성’에 집착했다고 한다.미려하고 깔끔한 외곽선을 얻기 위해 종이에 구멍이 뚫릴 때까지 선을 반복해서 긋곤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에르제의 ‘명료성’은 작화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이야기 전개방식,칸 구성,인물 창조 등 곳곳에서 보여지는 특유의 명료함은 ‘땡땡 스타일’이라는 별명을 낳았다. 1969년 미국이 유인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키기 15여년 전에 그려진 ‘달 탐험 계획’(1953년)과 ‘달나라로 간 땡땡’(1954년)을 보면 왜 유럽 과학자들이 동호회까지 만들어가며 땡땡 시리즈에 열광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정확한 과학기술 지식을 바탕으로 보여주는 달 착륙 과정은 지금보아도 실감이 날 정도.이것 말고도 로켓,수륙양용전차,가변익 비행기,잠수함 같은 복잡한 기계들을 정확한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상상,만화적이지만 정교한 그림으로 묘사해냈다. ●땡땡의 정치적 성향? 땡땡은 종종 서구중심적·제국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초기작인 ‘소비에트로 간 땡땡’에서처럼 구소련을 부정선거와 납치,고문이 자행되는 나라로 그리는가 하면,‘서구가 미개한 동양을 개화시켰는데도 은혜를 모른다.’는 식으로 동양 식민지인들의 독립운동을 폄하하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것은 에르제의 한계라기보다는 당시 유럽인들의 한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히려 땡땡 시리즈는 뒤로 갈수록 ‘푸른 연꽃’(1946년)에서처럼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변화된 시선을 담아낸다.일본의 남만주 기차선로 폭파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푸른 연꽃’은 제국주의로 경도되는 일본과,그를 지지하는 서구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다. 땡땡은 ‘티베트에 간 땡땡’(1960년)에서는 중국인 친구 창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한다.달라이 라마는 “서구인들이티베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소중한 책”으로 ‘티베트에…’를 소개하기도 했다.기본적으로 땡땡은 다른 문화의 소중함을 이해·포용하려고 노력하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다. 사실 땡땡의 ‘색깔’은 프랑스 국회에서도 공식적인 격론을 벌이는 문제다.국민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캐릭터인 만큼 각당의 ‘영입 경쟁’이 치열한 것.프랑스 우파 제1당인 공화국 연합당은 “특출한 애국심과 역사관으로 볼 때 땡땡은 우리 당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이에 맞서 온건 좌파인 사회당은 “중국인 소년 창을 구하고 동지로 삼는 반인종주의적 행동으로 볼 때 땡땡은 사회당”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쨌든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들의 땡땡에 대한 의견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세르의 한 마디로 통일되는 듯 싶다.“고마워요,에르제.” 채수범기자 lokavid@
  • 추다르크 VS 강효리/ 추미애의원 “강금실 장관은 좋은 라이벌”

    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인 추미애 의원이 3일 요즘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는 강금실 법무장관과 관련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추 의원은 기자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강 장관과 비교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정치인한테는 라이벌이 있는 게 좋은 것이다.내가 흰 옷을 입었을 때 다른 사람이 옆에 있어야 흰 옷이 보이는 것 아니냐.”고 선뜻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그러면서 “전에는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과 그런 말이 있었는데,정치인한테는 라이벌이 없는 게 오히려 불행한 것”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어 “나보고 (강 장관에 비해) 여성성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내가 여성성을 남편한테만 보여주면 되지,전 국민에게 확인시켜 줄 필요가 있느냐.”고 말해 폭소를 불렀다. 그는 “강 장관과는 전부터 아는 사이로 1997년 시사저널에 강 장관이 인터뷰하는 사람으로,나는 인터뷰 대상으로 만난 일이 있다.”면서 “강 장관이 나보다 사법연수원 1년 선배(사시 23회)”라고 소개했다.‘강 장관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는잠시 머뭇거리다가 “좋은 사람이죠.”라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그는 “97년 대선 유세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 옷이 낡아보였는지 ‘옷 사입으라.’며 돈을 준 일이 있다.”면서 “김 전 대통령은 평소 고르게 애정을 주는 편인데,나한테만은 각별히 마음을 쓴다는 것을 느꼈다.”고 회고했다.또 “경선에서 조직표의 지지 없이 2위를 했을 때의 심정은 전라도 말로 짠했다.”고 말했다. 추 의원은 열린우리당과의 재통합론에 대해 “(열린우리당 사람들이) 반성하고 개별적으로 돌아오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당 대 당 통합은 노선이 다르므로 안 된다.”고 잘라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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