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독도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케미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무사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6세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508
  • [오늘의 눈] ‘근조 열린우리당’/김상연 정치부 기자

    당신은 불현듯 나타났습니다. 오른손엔 빗자루가, 왼손엔 마우스(mouse)가 들려 있었습니다. 고리타분한 사랑 노래는 쓸어버리겠다고 했습니다. 디지털 연애를 호언했습니다. 숱한 변절로 몹시 상처받은 나는 당신의 거친 구애에 쩔쩔맸습니다. 새로운 사랑이 겁났던 것입니다. 하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창밑을 울리는 당신의 세레나데에 결국 나는 무너졌습니다.‘전국 정당’,‘상향식 정당’이란 노랫말은 나를 아득한 꿈길로 인도했습니다. 그것은 내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사랑한다는 속삭임으로 들렸습니다. 마지막이라고 여긴 사랑이었기에 나는 당신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기로 했습니다.2004년 4월 총선에서 나는 당신에게 152개의 꽃송이를 선물했습니다. 여태 그 누구한테도 퍼준 적이 없는 속수무책의 사랑이었습니다. 꽃다발의 무게를 주체하지 못한 채 헤벌쭉 웃는 당신에게 나는 “귀엽다.”란 말을 해준 것 같습니다. 아, 정말이지 그때 우리의 사랑은 영원을 담보한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당신은 변했습니다. 바쁘다며 날 피하거나, 일방적으로 당신의 말만 늘어놓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사랑한다는 당신의 말엔 견디기 어려운 건조함이 묻어났습니다. 나는 또 한번의 변절을 직감했지만, 도무지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라고 미친듯이 독백하면서 눈물로 밤을 채웠습니다. 당신에게 애써 무서운 표정도 지어보고, 쓰린 마음을 담은 편지도 보내봤습니다. 하지만 별무 반응이었습니다. 더이상 사랑을 지탱하기 어렵게 된 나는 마침내 단장(斷腸)의 심정으로 결별을 고하고 말았습니다. 그제서야 당신은 미안하다며 다시 시작하자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름도 바꾸고 성형수술도 하겠답니다. 아, 이 참을 수 없는 부박함을 제발 내 눈 앞에서 치워주세요.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나요. 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해주세요. 김상연 정치부 기자 carlos@seoul.co.kr
  • 독립문 주변 1만㎡ ‘열린마당’ 조성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문 주변에 1만㎡ 규모의 공원(조감도)이 조성된다. 서울시는 독립문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독립운동가 위패가 있는 독립관, 순국선열 추념탑 등이 위치한 서대문 독립공원(전체 면적 11만㎡)의 역사성을 되살리기 위한 재조성 계획을 확정,12일 발표했다. 전체 계획은 설계디자인 현상공모 당선작인 애림조경기술사사무소(대표 강대균)의 ‘함께하는 생각’을 기본 틀로 하고 있다. 이 당선작은 독립문을 부각하는 데 중점을 맞췄다. 우선 독립문 주변 노후·불량 건물 밀집지역 3792㎡를 포함한 약 1만㎡의 부지를 탁 트인 광장(독립마당)으로 만들어 독립문을 돋보이게 했다. 광장의 나무와 건축물이 14.3m인 독립문의 높이를 넘지 않도록 했다. 독립문과 3·1운동기념탑 사이에는 수경관(연못)과 잔잔한 분수를 조성하고 그 연결로들을 ‘흔적의 길’로 이름 붙여 조성하기로 했다.공원으로 진입할 때에는 3·1운동기념탑이, 나올 때에는 독립문이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서다. 공원 옆 아파트 단지와의 경계에는 외래 수목 대신 소나무를 심고 ‘일본식 조경’‘이란 비판을 받았던 독립관과 역사관 사이에는 전통 정원 양식 ‘생명의 숲’을 만들 계획이다. 또 독립문 좌우의 안산과 인왕산이 풍수지리상 ‘우백호’란 점을 감안해 흰 꽃이 피는 팥배나무, 배나무 등 고유 수종을 심기로 했다. 각종 계단 및 화단으로 조성된 복잡한 공간들을 평탄하게 바꿔 장애인과 노약자, 아이들의 이용이 쉽도록 했다. 또 연못, 분수 등을 조성해 걷기 좋은 길을 만든다. 공원의 바닥은 기품 있는 석재와 잔디 등으로 포장해 자연친화적인 공원의 모습을 만들기로 했다. 예산은 토지 보상비 175억원, 공사비 60억원 등 240억원이 책정됐다. 공원은 문화재위원회 심의, 도시공원위원회 심의, 전문가·독립운동 단체 자문 등을 거쳐 연말까지 기본·실시 설계를 마치고 내년 착공한다. 시는 2009년 8월 광복절에 맞춰 새 공원을 일반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시는 공원 재조성과 별도로 공원 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사적 324호)도 2009년 8월까지 독립운동사(史) 전시·교육의 메카로 새 단장하기로 하고, 낡은 옥사 보수, 전시시설 설계 개선, 조경·배수로 정비 등에 100억원을 투입기로 했다. 시는 80년 이상된 구 서울구치소와 서대문형무소 등의 일부가 지붕 붕괴와 균열의 위험까지 있어 보수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어떻게 하길래 이발 한번에 1만(萬)원

    어떻게 하길래 이발 한번에 1만(萬)원

    지금 미국에선 남성미용이 바야흐로 유행을 이룰 단계가 되고있다. 특히 50대를 넘긴 초로(初老)의 신사들에게 인기를 얻고있는 이 남성미용은 일종의 회춘(回春)제. 해가 갈수록 멀어져가는 젊은 모습을 어떻게해서든 잡아두고 연장시켜보자는 마지막 안간힘인지도 모른다. 외양의 젊음 뿐아니라 내적인 정력도 얼마간 회복시킬수 있다고 선전되고있는 이 남성미용은 일종의 이발업. 이발업에서 발전한 특수이발소가「뉴요크」를 비롯한 미국의 이곳 저곳에서 성업을 이루고있다. 고객은 돈많은 실업가들 늙기전에 젊음 지키자고 주로 돈많은 실업가들이 고객인 이 남성특수미용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이발사 미용사등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문자그대로 전신 미용이다. 머리손질에서부터 얼굴「마사지」, 몸통, 둔부, 허벅지 그리고 다리와 발, 발톱정리는 기본순서. 그밖에 갖가지가 그 과정을 따라가며 베풀어져 비단 젊은 모습을 지킨다는 욕심이 아니더라도 한번 맛을 들이게되면 다시 들르지 않고는 못배긴다. 최근엔 젊은 실업가고객도 상당히 늘고있는데 이들은 미녀의「마사지」맛에 그리고 기왕이면 늙어지기 전 젊음을 지키자는 1석2조의 욕심에서라는것. 이밖에도 이들 특수 이발관의 특징은 대머리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수가발을 제공하고있다는 점이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뉴요크」에 있는「바이달·사순」.「본위트·텔러」건물 2층 전관을 사용하고 있는 이 이발관은 차라리「클럽」이라고 해야할 정도로 넓고 화려하며 호화롭다. 전용「엘리베이터」에 의해 입구에 들어서면, 그러나 가위를 든 흰「가운」의 이발사는 보이지 않는다. 상냥한 아가씨가 안락 의자로 안내한다. 우선 머리가 충분히 길었는가 그리고 고객의 요구가 어떤것인가가 검토되고 그리고 천국이 시작된다는 것. 그들의 명분은 굳이 젊음을 잡아준다는데 매달리지 않는다.『사장에게는 사장답게 정치인에게는 정치인답게 그리고 그들의 개성에 맞는 가장 훌륭한 이발을 해드린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선 정신부터 늙었다는 사실을 잊게하려는 계산. 만약 고객이 수염을 기르고 있으면 특별한 고려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머리「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 수염을 하고 다닌다고 그들은 말한다. 수염이 없는 것이 좋다고 판단할땐 본인의 동의를 구해 수염을 밀어버린다. 머리 손질만 할때 수석 이발사에 의할 경우 15「달러」(약5천원) 일반 이발사에 의할 경우 12「달러」. 그러나 여기에 갖가지「서비스」가 가산될경우 이발 한번에 30「달러」(약1만원)가 거뜬히 오른다. 분명히 5년은 젊어보여 마치 인간재생 공장같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객이 몰려 오는것은 그 돈의 값어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모 회사의 부사장「시들러」씨는 특히 발톱미용에 죽고 못살겠다고 말하면서 돈은 아깝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단 물거품을 일으키는 특수 대야속에 발을 담가 놓고 모든것을「서비스·걸」에 맡기면 나는 천국에라도 오른 기분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어떤 쾌감보다 이들에게 값비싼 만족감을 안겨주는 것은 젊음이 되살아 난다는 사실이다. 화장품판매업으로 거부가 된「투메이」씨는 얼굴에 대한 특수「마사지」는 긴장을 풀어주고 실제야 어떻든 다시 젊음이 소생하는 느낌을 갖게 해 준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들 이발관의 특수 미용을 받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는 확실히 5년쯤 젊어보인다는 것이 보는 사람들의 견해이고보면 그들이 자신을 갖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상에 열거한 이야기 말고도 「뉴요크」에 있는 이들 특수이발「클럽」은「사우나」, 증기탕, 특수별실, 미녀「호스테스」의「마티니·서비스」등 목욕과「마사지」및 휴식 시설등을 갖추고 모든 봉사를 아끼지 않는 일종의 인간재생공장이다. 이들은 또 모든 사람들이 VIP(중요인사)취급을 받으려 한다는 심리를 이용, VIP 단골제를 운용하기도 한다. 이것의 특징은 요금을 연불로 하는것.「서비스」료를 제한 기본요금 2백50「달러」(약 10만원)을 1년에 한번씩 내고 등록을 해두면 일체의 이용에 우대를 받게해준다. 이들에게만 특별히 허락되는 것은 단골을 위한 특수한 방을 이용할수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이방에는 TV, 전축, 받아쓰기 기계, 전화, 태양등과 전용의 「사우나」및「샤워」가 달려있다. 대부분의 사업가 실업인들은 대머리라는 점에서 이들 특수이발관의「서비스」로 인기를 모으는것은 가발이다. 고객의 용모따라 대머리엔 특수가발도 이들이 제공하는 가발은 그러나 일반 가발과는 다른 특수가발. 전체 가발이 아닌 부분가발이 많다. 대머리도 적당히 벗어진 대머리는 정력과 박력의 상징이라는 관점에서 고객의 용모를 최대로 살린다는 것. 이미 가발이 여자만의 전유물이 아닌것이 되고 있는 미국사회에서 가발 덕분에 10년은 젊어 보이게 되었다는 모 석유회사 사장「월렌」씨는 언제나 불편없이 가발을 치장해 주는 이발소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발비 중에서 가장 값비싼 것이 이 가발 이라는것을 그들도 인정한다. 2백「달러」에서 4백「달러」(약15만원)까지 지불해야하지만 일단 하나를 구입하면 오래쓸수있고 가발손질비는 겨우 5「달러」정도이니만큼 대부분의 고객이 미국의 부유한 상류사회의 사장족이라는 점을 생각할때 별로 큰 문제가아니다. 그러나 50대를 넘긴 사장족의 경우엔 대부분이 동정적이고 긍정적이지만 30~40대의 장년들이 이곳을 찾는 데는 비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종업원의「서비스」중에서도 특히 여자 종업원의「서비스」만을 노리며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친 요구로 이발업당사자들을 당황케 만든다는 것.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당사자의 기지로 문제가 처리되며 그것은 개인들의「프라이버시」로 외면해 버리는 수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없다. 노년의 경우도 아름다운여자「마사지」사의 보드라운 손길이 지나갈때엔 감정이 격해지지만 억제력이 강하며, 그 사실 자체만으로 그들은 대사작용이 활발해져 혈색이 좋아지고 젊음을 얼마간 회복할수있다는 색다른 주장을「오프더·레코드」로 펴는 업자도 있다. <외지에서>[선데이서울 70년 12월 20일호 제3권 52호 통권 제 116호]
  • 독립문 주변 1만㎡ ‘열린마당’ 조성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문 주변에 1만㎡ 규모의 공원이 조성된다. 서울시는 독립문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독립운동가 위패가 있는 독립관, 순국선열 추념탑 등이 위치한 서대문 독립공원(전체 면적 11만㎡)의 역사성을 되살리기 위한 재조성 계획을 확정,12일 발표했다. 전체 계획은 설계디자인 현상공모 당선작인 애림조경기술사사무소(대표 강대균)의 ‘함께하는 생각’을 기본 틀로 하고 있다. 이 당선작은 독립문을 부각하는 데 중점을 맞췄다. 우선 독립문 주변 노후·불량 건물 밀집지역 3792㎡를 포함한 약 1만㎡의 부지를 탁 트인 광장(독립마당)으로 만들어 독립문을 돋보이게 했다. 광장의 나무와 건축물이 14.3m인 독립문의 높이를 넘지 않도록 했다. 독립문과 3·1운동기념탑 사이에는 수경관(연못)과 잔잔한 분수를 조성하고 그 연결로들을 ‘흔적의 길’로 이름 붙여 조성하기로 했다. 공원으로 진입할 때에는 3·1운동기념탑이, 나올 때에는 독립문이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서다. 공원 옆 아파트 단지와의 경계에는 외래 수목 대신 소나무를 심고 ‘일본식 조경’‘이란 비판을 받았던 독립관과 역사관 사이에는 전통 정원 양식 ‘생명의 숲’을 만들 계획이다. 또 독립문 좌우의 안산과 인왕산이 풍수지리상 ‘우백호’란 점을 감안해 흰 꽃이 피는 팥배나무, 배나무 등 고유 수종을 심기로 했다. 각종 계단 및 화단으로 조성된 복잡한 공간들을 평탄하게 바꿔 장애인과 노약자, 아이들의 이용이 쉽도록 했다. 또 연못, 분수 등을 조성해 걷기 좋은 길을 만든다. 공원의 바닥은 기품 있는 석재와 잔디 등으로 포장해 자연친화적인 공원의 모습을 만들기로 했다. 예산은 토지 보상비 175억원, 공사비 60억원 등 240억원이 책정됐다. 공원은 문화재위원회 심의, 도시공원위원회 심의, 전문가·독립운동 단체 자문 등을 거쳐 연말까지 기본·실시 설계를 마치고 내년 착공한다. 시는 2009년 8월 광복절에 맞춰 새 공원을 일반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시는 공원 재조성과 별도로 공원 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사적 324호)도 2009년 8월까지 독립운동사(史) 전시·교육의 메카로 새 단장하기로 하고, 낡은 옥사 보수, 전시시설 설계 개선, 조경·배수로 정비 등에 100억원을 투입기로 했다. 시는 80년 이상된 구 서울구치소와 서대문형무소 등의 일부가 지붕 붕괴와 균열의 위험까지 있어 보수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2) 조선의 운명을 바꾼 역관 홍순언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2) 조선의 운명을 바꾼 역관 홍순언

    문관인 정사(正使)는 공식적인 국서를 전달하고 답서를 받으면 그만이지만, 역관은 배후에서 절충하는 일을 맡았다. 절충하는 과정에는 유창한 외국어가 기본이었지만, 때로는 금품도 오가고, 여러 해 동안 오가며 맺어둔 인맥도 중요했다. 사신들은 일생에 한 두번 가기 때문에 인맥을 쌓을 기회가 없었지만, 역관들은 대여섯 번, 이상적이나 오경석 같은 역관들은 열 번이 넘게 파견되었으므로 각계에 인맥이 형성되었고, 제자들에게 그 인맥을 소개했다. 인맥을 통해 조선과 중국 사이의 외교 현안을 해결한 역관으로는 홍순언(洪純彦)이 가장 유명하다. ●공금 털어 구한 여인이 明 예부시랑의 후처로 홍순언은 젊었을 때에 뜻이 컸고 의기가 있었다. 한번은 북경으로 가는 길에 통주에 이르러, 밤에 청루에서 놀았다. 자태가 특별히 아름다운 한 여자를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하여, 주인할미에게 부탁하여 한번 놀아보자고 청하였다. 순언이 그 여자의 옷이 흰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묻자,“첩의 부모는 본래 절강 사람인데, 서울에서 벼슬하다 불행히 염병에 걸려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나그네 길이라 관(棺)이 여관집에 있지만 첩 한몸뿐이라 고향으로 옮겨 장사지낼 돈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제 몸을 팔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을 마치고는 목메어 울며 눈물을 떨어뜨렸다. 순언이 불쌍히 여겨 장사지낼 비용을 물으니,“삼백금이면 됩니다.”라고 하였다. 곧 돈자루를 다 털어 주었지만, 끝내 그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여자가 순언의 이름을 물었는데도 이름을 말해주지 않자,“대인께서 성명을 말씀해 주지 않으신다면 첩도 또한 주시는 것을 감히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홍씨라는) 성만 말해 주고 나왔다. 동행 가운데 물정 모르는 짓이라고 비웃지 않는 자가 없었다. 여자는 나중에 예부시랑 석성(石星)의 후처가 되었다. 석성은 순언의 의로움을 높이 여겨, 우리나라 사신을 볼 적마다 반드시 홍역관이 왔는지 물었다. 순언은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공금의 빚을 갚지 못한 것 때문에 잡혀서, 여러 해 동안 옥에 갇혀 있었다. 이때 우리나라에서 종계변무(宗系辨誣) 때문에 전후 열댓 명의 사신이 중국에 다녀왔지만, 아무도 허락받지 못했다. 임금이 노하여 교지를 내렸다. “이것은 역관의 죄이다. 이번에 가서도 또 허락받지 못하고 돌아온다면, 수석 역관 한 사람을 반드시 목 베겠다.” 역관 가운데 감히 가기를 원하는 자가 없자, 역관들이 서로 의논했다.“홍순언은 살아서 옥문 밖으로 나올 희망이 없다. 그가 빚진 돈을 우리들이 갚아 주고 풀려나오게 하여 그를 중국으로 보내는 게 좋겠다. 그는 비록 죽는다 해도 한스러울 게 없겠지.” 모두들 가서 그 뜻을 알리자, 순언도 기꺼이 허락했다. 선조 갑신년(1584)에 순언이 황정욱을 따라서 북경에 이르러 바라보니, 조양문 밖에 비단 장막이 구름처럼 펼쳐 있었다. 한 기병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홍판사가 누구시냐고 물었다.“예부의 석시랑이 공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부인과 함께 마중 나왔습니다.” 조금 뒤에 보니 계집종 열댓 명이 부인을 에워싸고 장막 안에서 나왔다. 순언이 몹시 놀라 물러서려고 하자, 석성이 말했다.“당신이 통주에서 은혜 베푼 것을 기억하십니까? 내 아내의 말을 들으니 당신은 참으로 천하에 의로운 선비입니다.” 부인이 무릎을 꿇고 절하기에 순언이 굳이 사양하자, 석성이 “이것은 보은(報恩)의 절이니, 당신이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였다. 그러고는 크게 잔치를 베풀었다. “조선 사신이 이번에 온 것은 무슨 일 때문입니까?” 하고 석성이 물었다. 순언이 사실대로 대답하자 “당신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했다. 객관에 머문 지 한 달 남짓한 동안에 과연 조선 정부가 청한 대로 허락되었다. 석성이 주선한 것이다. 순언이 돌아올 때에 부인이 자개상자 열 개에 각각 비단 열 필을 담아 주며,“이것을 첩의 손으로 짜 가지고 공께서 오시길 기다렸습니다.”라고 말했다. 순언이 사양하며 받지 않고 돌아왔지만, 깃대를 든 자가 압록강까지 와서 그 비단을 놓고 갔다. 비단 끝에는 모두 ‘보은(報恩)’ 두 글자가 수놓여 있었다. 순언이 돌아오자 나라에서는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에 기록하고 당릉군(唐陵君)에 봉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사는 동리를 보은단동(報恩緞洞)이라 하였다. 그의 손자 효손(孝孫)은 숙천부사가 되었다. ●조선 왕실의 계보를 바로잡다 정명기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홍순언의 이야기는 39가지 책에 조금씩 다르게 전한다. 그 가운데 서사구조가 분명한 ‘국당배어’‘연려실기술’의 기록을 위에 소개했다. 홍순언의 이야기 가운데 왕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종계변무를 해결했다는 점이다. 공민왕이 피살되자 이인임이 나이 어린 우왕을 세웠는데, 명나라 사신 채빈이 본국에 돌아가 공민왕 피살사건을 보고하면 재상인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까 염려하여 중도에 살해하였다. 정도전·권근·이첨 등의 친명파를 몰아내고 권력을 누렸지만, 이성계가 최영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유배보냈다. 이성계의 정적인 윤이와 이초가 명나라로 망명해 ‘이성계가 친원파 권신 이인임의 후사(後嗣)’라고 모함했다. 명나라는 이 말을 그대로 믿고 ‘태조실록’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기록했다. 이성계가 정적 이인임의 후사라고 기록된 것은 조선 왕실의 가장 큰 모욕이었으므로, 태조뿐만 아니라 대대로 사신을 보내 바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명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수정해 주지 않았으므로 가장 큰 외교 현안으로 남아 있었다.1584년에 황정욱이 ‘대명회전’ 수정판의 조선관계 기록 등본을 가져오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종계변무’라는 용어는 ‘왕실의 계보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홍순언은 조선 왕실이 종계변무를 본격적으로 해결할 준비를 하면서 역사에 정면으로 등장했다. 선조실록 5년(1572) 9월11일 기사에 “주상이 중국 사신을 접견할 때에 종계(宗系)의 악명(惡名)을 바로잡는 일에 관해 먼저 대략 말하고, 이어 단자(單子)로써 자세히 기록해 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다. 통사 홍순언 등을 시켜 한어(漢語)로 번역해 단자를 만들어 예조에 주어 아뢰도록 했다.”고 했다. 국서는 한문으로 된 문어체라서 친근감이 없었지만, 단자는 구어체였으므로 간절한 마음이 전달될 수 있었다. 그러나 종계변무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12년 뒤인 선조 17년 11월1일 실록에서야 “종계 및 악명 변무주청사 황정욱과 서장관 한응인 등이 칙서를 받아가지고 돌아왔다.”고 했다. 선조는 그 사실을 종묘에 고한 뒤 죄수들을 사면했으며,“정욱과 응인 및 상통사 홍순언 등에게 가자(加資)하고, 노비와 전택(田宅), 잡물을 차등 있게 하사했다.” 종계변무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광국공신(光國功臣)에 봉했는데, 홍순언에게 2등 당릉부원군을 봉했다.19명 가운데 실무자급인 역관은 홍순언 한 사람만 포함되었다. ●39가지 야담과 소설로 전하는 홍순언 이야기 당릉군에 봉군된 홍순언은 왕궁을 지키는 종2품 우림위장(羽林衛將)까지 승진했는데, 사간원에서 두어 차례 탄핵하였다.“출신이 한미한 서얼이라서 남에게 천대받는다.”는게 이유였는데, 선조는 그가 공신으로 가선대부까지 받았으니 결격사유가 없다고 옹호했다. 역관 홍순언의 능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다시 발휘되었다. 명나라에 원군을 청하러 사신이 가며 그도 따라갔고, 선조와 고관들은 그에게서 반가운 소식이 오기만 기다렸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은 그를 믿고 조선 정세를 파악했으며, 선조가 이여송을 만날 때에도 그가 통역했다. 석성이 과연 홍순언이 구해준 여자와 혼인한 덕분에 조선에 원군을 보냈는지, 역사 자료만 가지고 확인할 수는 없다. 야담이나 야사에서는 여인이 몸을 팔게 된 이유도 달리 나오고, 석성의 벼슬도 달라지며, 그가 해결해 준 현안도 달라진다. ‘청구야담’에는 홍순언이 병술·정해년(1586∼1587) 사이에 북경에 갔다가 청루 문 위에 “은 천 냥이 없으면 들어오지 못한다.”고 쓴 것을 보고는 중국 탕아들도 값이 비싸서 들어갈 생각을 못하는데, 그는 “부르는 값이 그만큼 비싸다면 반드시 뛰어난 미인인 것”이라 생각하고 수천냥을 털어 그 여자를 샀다고 한다. 이미 종계변무가 해결된 뒤이니, 이 책에서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에 원군 요청의 임무를 띠고 홍순언이 파견되었으며, 병부상서 석성이 해결해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종계변무는 외교적 사안이니 예부에서 담당하고, 원군 파견은 군사적 사안이나 병부에서 담당한다. 석성의 벼슬은 그에 따라 달라진다. 홍순언은 공금을 횡령해 청루의 여자를 산 협객인데, 결과적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에 살이 덧붙어 야담과 소설이 39종이나 되고, 박치복이라는 시인은 5언 264구의 장편서사시 ‘보은금(報恩錦)’을 지었다. ●곤담골에 천인 백정교회가 들어서다 그가 살던 동네에는 지금 롯데호텔이 서 있고, 그 앞에 ‘고운담골’ 표지석이 있다.‘보은(報恩)’ 두 글자가 수놓인 비단을 기념해 동네 이름이 보은단골인데, 고운담골, 곤담골로 바뀌었다. 고운담골을 한자로 쓰면 미장동(美牆洞)이다. 임진왜란이 300년 지난 1892년에 무어 선교사가 조선에 왔다가 조선어를 익히기도 전에 곤담골에 이사하여 교회를 시작했다. 그는 조선인을 야만시하던 권위적 선교사와 달라 인목(仁牧)으로 불렸는데, 백정까지도 교회에 나오게 하여 곤담골 ‘백정교회’라는 이름을 얻었다. 서얼 출신 역관이라 천대받던 홍순언의 동네에 백정교회가 세워진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육지 속 섬마을 ‘예천 회룡포’

    육지 속 섬마을 ‘예천 회룡포’

    뭍을 그리워하는 섬이라고 해야 할까, 물길과 몸을 섞고 싶은 뭍이라고 해야 할까. 금방이라도 인연을 단절할 듯 뭍의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이를 두고 버선발을 닮은 안동 하회마을에 비유해, 금방이라도 가지에서 똑 떨어질 것 같은 호박을 닮았다고 했다. 경북 봉화군 북쪽 선달산과 옥석산에서 발원한 낙동강의 제1지류 내성천이 영주와 안동 등을 지나 남녘을 향해 흐르다 경북 예천땅에 접어든다. 난데없이 앞길을 막아선 예천의 명산 비룡산에 부딪친 내성천이 350도 태극무늬 모양으로 돌아나가며 거대한 모래사장을 만들어놓고, 그 위에 마을을 하나 얹어 놓았는데,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완벽한 물돌이동이라 평가받는 회룡포(回龍浦)다. 말 그대로 비룡산을 부여잡은 용이 몸을 외로 꼬며 돌아나가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곳. #비룡산 전망대 오르면 회룡포가 한눈에 내성천과 회룡포의 진면목을 한눈에 보려면, 장안사가 있는 비룡산 중턱의 회룡대에 올라야 한다. 솔 향기 그윽한 장안사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경남 기장과 황해도 개성, 그리고 예천 등에 세운 같은 이름의 절집 3곳 중 하나. 고려시대에는 문인 이규보가 머무르며 ‘장안사에서’란 절창(絶唱)을 지어낸 유서 깊은 도량이다. “장안사에 머무르며 산에 이르니 번뇌가 쉬어지는구나/하물며 고승 지도림을 만났음이랴/긴 칼 차고 멀리 나갈 때는 나그네의 마음이더니/한 잔 차로 서로 웃으니 고인의 마음일세/맑게 갠 절 북쪽에는 시내의 구름이 흩어지고/달이 지는 성 서쪽 대나무 숲에는 안개가 깊구려/병으로 세월을 보내니 부질없이 졸음만 오고/옛동산 소나무와 국화는 꿈 속에서 잦아드네.” 장안사 뒤편 산길을 따라 400m쯤 걸어 회룡대에 올랐다. 바닥색을 닮은 황톳빛 내성천이 희디 흰 모래사장, 그리고 짙푸른 하늘과 희롱하며 흘러가고 있다. 마을 왼편으로 한때 유일한 뭍과의 연결통로였던 ‘뽕뽕다리(공사장에서 쓰는 구멍뚫린 철판을 연결해 만든 다리)’의 모습이 아련하다. 제방 옆길에는 나무를 심어 산책로를 조성해 놓았다. 회룡포 마을 주민수는 20명가량. 우리네 농촌이 그렇듯 55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대부분이다. 경주 김씨 동성만 모여 사는 것이 이채롭다. #세금 내는 나무 황목근과 석송령 회룡포 인근 금남리 금원마을에는 세금 내는 팽나무가 있다. 황목근(黃木根)이란 어엿한 이름도 갖고 있다.5월이면 누런 꽃을 피운다 해서 성을 황, 근본 있는 나무라는 뜻에서 이름을 목근이라 했다. 무려 1만 2899㎡나 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부자나무. 나이는 약 500세로 추정된다. 천연기념물 제400호. 황목근 보존회에서 대납의 형태로 일년에 9000원가량 종합토지세를 낸다. 감천면의 석송령(石松靈·천연기념물 제294호)은 나이 600세로 황목근의 형뻘된다. 토지대장에 자신의 이름으로 땅 6000여㎡를 등재해 놓고 있다.1년에 1만여원가량 세금을 낸다. 역시 석송령 보존회에서 대납하고 있다. #늙은 회화나무 아래 삼강주막 회룡포를 돌아본 후 풍양면 삼강리의 삼강(三江)주막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유장하게 흘러가는 낙동강 700리 길에 마지막 남은 주막.1900년 전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 등 삼강의 합수머리에 있다 해서 삼강주막이라 불린다. 이 시대 마지막 ‘주모’ 유옥연 할머니가 2005년 89세를 일기로 세상과 이별하면서, 이젠 덩그러니 빈집으로만 남았다. 일제 강점기 때만 해도 삼강주막이 있는 삼강나루터는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부산과 대구 등에서 서울로 향하는 과객과 장사치들, 그리고 온갖 물산들로 북적댔다. 특히 부산에서 올라온 소금배, 내륙에서 내려온 미곡선 상인들이 활발하게 물물교환하던 곳이었다. 그러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다리가 놓이고, 제방이 생기면서 인적이 뚝 끊겨 버렸다. 고 유옥연 할머니는 16살 되던 해인 1932년 이 마을 배봉송(50년전 작고)씨와 결혼한 뒤 70여년간 삼강주막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담배를 즐겨 피웠던 유 할머니는 말년에 간혹 찾아오는 마을 주민과 관광객들을 상대로 막걸리와 멸치 안주 등을 팔며 생활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여간 안타깝지 않다. 200년 된 회화나무가 굽어보고 있는 삼강주막은 흙바람 벽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서 있었다. 방은 2개. 수많은 과객들이 발고랑내 풍기며 잠을 청했을 봉놋방은 장정 예닐곱이 앉아 술추렴했을 마루와, 주모가 사용했음 직한 작은 방은 시커먼 검뎅이가 묻은 부엌과 각각 연결돼 있다. 주막과 회화나무 사이 너른 공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국밥과 술로 요기를 했을 게다. 경상북도에서는 삼강주막을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금년 중 완공이 목표다. 삼강주막 옆에 있던 뱃사람 숙소 등도 함께 복원할 계획. 옛 정취는 고스란히 살리되, 과유불급하지 않는 지혜를 발휘하길 바란다. 예천군청 문화관광과 (054)650-6391. 글 사진 예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이것만은 꼭 챙기세요!! ●2007 예천 곤충바이오 엑스포(www.insect-expo.co.kr)가 11∼22일 예천읍 일대에서 열린다. 곤충의 산업적 이용 가능성을 재확인하고, 어린이들에게는 신기한 곤충의 세계를 보여줄 이색 행사다. 주행사장인 공설운동장에 곤충생태관과 곤충놀이관,3D영상관 등이 설치되고, 특별행사장인 곤충산업연구소에는 곤충생태원, 유리온실 등이 만들어져 곤충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다.(054)650-6291∼8. ●예천 천문과학문화센터 100여명이 숙박을 겸해 별을 관측할 수 있는 곳. 감천면 덕율리에 있다. 낮시간에는 인근 관광명소를 둘러보는 보조프로그램도 마련해 두었다.654-1710. ●진호국제양궁장 예천 출신 양궁선수 김진호의 세계대회 제패를 기념해 세운 국제 규모의 양궁장. 예천읍 청복리에 있다. 일반인에게 무료 양궁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반드시 예천군청 홈페이지나 전화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www.yecheon.go.kr,650-6411∼2. ●금당실 마을 전통가옥과 7.2㎞에 달하는 돌담길 등 옛 정취를 맛볼 수 있는 마을. 용문면 상금곡리에 있다. 돌담길에 무시로 핀 과꽃 등이 인상적이다. 마을 정원 격인 금당실 쑤(소나무숲)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지친 걸음 쉬어가기에도 맞춤하다.654-2222. ●가는 길 금당실 마을과 석송령, 곤충바이오엑스포 행사장 등을 찾기 위해서는 중앙고속도로 예천 나들목, 회룡포와 삼강주막, 황목근 등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점촌 나들목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 [Let’s Go]‘또 다른 매력’ 하와이 크루즈

    [Let’s Go]‘또 다른 매력’ 하와이 크루즈

    와이키키 없는 하와이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하와이에서 와이키키 해변을 지우면, 그 뒤에 가려졌던 또 다른 하와이를 만나게 된다. 화산이 만들어 놓은 검은 아름다움, 원초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매력적인 세계다. 하와이가 가진 또 다른 매력을 십분 느끼게 해주는 것이 크루즈 여행이다. 다소 생소한 여행 장르이긴 하지만 여러가지 번거로움이 뒤따르는 패키지 프로그램에 비해 한결 여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7박 8일동안 프라이드 오브 아메리카호를 타고 하와이의 속살을 들여다보았다. 오하우 호놀룰루 항에서 마우이와 하와이, 그리고 카우아이를 잇는 장장 1500㎞의 여정이다. 글 하와이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첫째날. 저녁 8시 출항 진주만 등 호놀룰루 시내 유적지를 둘러본 다음 프라이드 오브 아메리카(Pride Of America)호에 올랐다. 오하우를 출발해 하와이(흔히 빅 아일랜드란 애칭으로 불린다)와 마우이, 그리고 카우아이 등 4개 섬을 8자 형태로 돌아보는 코스다. 먹구름에 파묻힌 호놀룰루항을 빠져 나온 배가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검은 파도가 성벽처럼 단단한 배 옆면에 부딪히며 비췻빛 포말로 스러져 간다. 칼날처럼 휘어진 초승달과 유람선이 내뿜는 검은 연기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별들이 ‘Starry Starry night’를 만들어 낸다.‘타이타닉’을 들먹이지 않아도 그대로 영화의 한 장면이다. 전전반측의 첫날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둘째날. 오전 8시 빅 아일랜드 힐로 입항 →오후 6시 출항 하와이는 호놀룰루가 있는 오하우 등 8개의 주요 섬과 10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면적이 가장 큰 곳은 빅 아일랜드. 제주도의 8배에 달한다. 밤을 도와 달린 배가 빅 아일랜드의 힐로에 닻을 내렸다. 진한 청색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바다 너머로 뭉게구름과 야자수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나니 마우 가든, 아카카 폭포 등 상하의 나라에 온 것을 실감케 하는 풍경을 지나 화산(Volcano)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화산지역이다.27개에 달하는 분화구 중 가장 큰 것은 지름 4㎞의 킬라우에아 분화구. 거대한 운석에 맞은 듯 움푹 패어있다.‘펠레(화산의 여신)의 궁전’이라 불리는 분화구 주변에 흘러 내린 노란색 유황은 마치 옐로 카드처럼 언제 있을지 모를 마그마의 분출을 경고하는 듯하다. 분화구 주변 길을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흰 연기가 곳곳에서 솟아오르고 있다. 연기 아래로는 필경 주황색 용암이 들끓고 있을 터. 그 척박한 땅에서도 먹을 게 있을까. 공작새처럼 긴 꼬리를 가진 하얀 열대조(Tropic Bird)가 먹이를 찾아 비행하고 있었다. 분화구 길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면 용암이 바다를 메워 거대한 반도를 만들어 놓은 ‘카우 사막’과 만난다. 검은 아스콘을 물에 반죽해놓은 듯, 용암이 흘러내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손을 대보면 사각거리는 소리가 난다. 바짝 태운 달고나를 만지는 듯한 느낌이다. 셋째날. 오전 6시 마우이 카훌루이 입항 하와이 크루즈는 아침에 기항을 하고 저녁에 출항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낮동안은 섬을 돌며 관광과 다양한 레포츠를 즐기고 밤에 항해를 하는 것. 섬에 상륙하지 않고 선내에서 하루를 보내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수영장과 자쿠지 탕에 몸을 담근 채 열대의 태양을 만끽할 수도 있고, 선내 어디에선가 항상 열리고 있는 각종 이벤트에 참가할 수도 있다. 선탠용 의자에 몸을 파묻고 독서를 즐기는 승객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여유롭다. 열대과일 음료 하나쯤 옆에 있다면 제대로 된 그림. 넷째날. 오전 9시 할레아칼라 화산행, 오후 7시 출항 마우이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버스를 타고 이 섬의 자랑 할레아칼라 화산에 올랐다. 높이 3055m. 백두산과 서울의 남산을 합쳐놓은 높이쯤 된다. 둘레 33.5㎞, 지름 14㎞로 세계 최대 분화구다. 산정으로 향할수록 비릿한 담뱃잎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집들이 지붕에 굴뚝을 이고 있다. 고지대여서 밤은 물론 낮에도 제법 춥기 때문에 집집마다 벽난로를 설치해놨다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다. 머리위에 있던 구름이 어느새 버스를 두껍게 휘감았다.10여분쯤 달렸을까. 구름 뒤에서 짙푸른 하늘이 뛰쳐 나왔다. 비행기가 구름대를 뚫고 최고도로 상승했을 때의 풍경 그대로다. 차에서 내려 걷다 보니 구름위에서 산책을 하는 듯하다. 다운 힐(자전거를 타고 산자락을 내려오는 액티비티)을 즐기는 사람들이 은검초(이 지역에만 서식하는 식물로 사람의 손이 닿으면 죽어버린다)가 핀 검붉은 화산지대를 새처럼 내려간다.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는 듯하다. 하와이가 내뿜는 매력의 절반 이상은 화산의 몫. 외딴 행성에 온 듯한 분위기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천문관측소를 지나 할레아칼라 분화구에서 절정에 달했다. 크루즈 여행의 백미라더니 과연 명불허전이다. 킬라우에아 화산이 거칠고 남성적이라면 할레아칼라 화산은 우아하고 현란한 여성미를 뽐낸다. 미려한 선을 그리며 봉긋 솟아 오른 분화구내 산봉우리며, 형형색색으로 반짝거리는 곱디고운 토양 등이 여간 아름답지 않다. 표면이 달과 흡사해 우주조종사들의 훈련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실핏줄처럼 가는 탐방로를 따라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개미보다도 작아 보인다. 분화구에서 트레킹을 하려면 사전에 국립공원측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이 멋진 곳을 체험하지 못하고 30분 정도밖에 머무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다섯째날. 오전 7시 빅 아일랜드 코나 입항. 오후 6시 출항 프리스타일 크루즈가 가진 장점 중 하나는 기항지마다 색다른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두 번째 들른 빅 아일랜드의 코나는 관광보다 액티비티를 즐기기에 적당하다. 바다거북과 함께 하는 90달러 대의 스노클링에서 400달러 대의 헬리콥터 투어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영어에 능통하다면 현지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액티비티도 고려할 만하다. 가격이 선내 프로그램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전문 기술이 필요한 윈드 서핑 등은 경험이 없으면 선택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재미만점의 액티비티는 일찍 판매가 끝나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해둬야 한다. 여섯째날. 오전 8시 카우아이 나우윌리윌리 입항 유람선이 닿으면 주민수가 5%가량 상승할 만큼 사람이 적은 카우아이는 섬 전체가 울창한 수목에 뒤덮여 정원의 섬이라 불린다. 야자수 등을 제외한 섬 전체 나무의 98%가 외국에서 들여온 수종들이다. 이곳의 신비로운 풍경에 매료된 영화제작자들은 섬 곳곳에서 ‘쥐라기 공원’ 등 수많은 영화들을 촬영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와이메아 협곡을 찾았다.‘섬 속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불리는 곳. 지각변동과 풍화작용이 빚어낸 대자연의 모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로빈슨가(家)에서 소유한 사유지라는 것이 이채롭다.1864년 2만 2000달러에 하와이 왕가로부터 사들였다고 전해진다.1000달러에 매입한 니하우섬 또한 로빈슨가 소유다. 순수 혈통의 하와이 원주민들 외에는 출입할 수 없다.230명가량의 섬 주민들이 물질문명과 담을 쌓은 채, 자신들만의 전통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일곱째날. 오후 2시 출항 이제껏 밤에만 움직였던 배가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머문 시간에 항해를 시작했다. 빛이 해안절벽을 비춰 만들어낸 예술작품, 나팔리 해변을 보기 위해서였다.27㎞ 구간에 펼쳐진 나팔리 해변은 땅거미가 드리울 때라야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슈퍼스타는 항상 공연 끝자락에 등장하는 법. 카우아이는 여행객들을 위한 마지막 비경을 안배해 두고 있었다.2시간 남짓한 항해 끝에 나팔리 해안절벽들이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칼날처럼 얇고 촘촘한 산자락에 투영된 빛이 극명한 음영의 대비를 이루며 탄성을 자아냈다. 북극해를 연상케 하는 거친 파도위로 하얀 실같은 여러 갈래의 폭포와 동굴, 해안절벽 등이 숨막히게 이어졌다.1시간 남짓 계속된 빛과 해안절벽의 현란한 쇼가 끝나면서 크루즈 여행도 막을 내렸다. 글 하와이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하와이 크루즈 여행 팁 ▲하와이는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한다. 빗물이 지하 암반 등을 통과하면서 정화되는 기간은 무려 25년. 현재 마시는 식수가 25년 전에 내린 빗물인 셈이다. ▲선내 식당 등의 에어컨이 다소 차게 느껴질 만큼 세다. 긴소매 옷이나 방풍 재킷 등을 준비하면 여러모로 유용하게 쓰인다. ▲선내 대부분의 시설들은 기본적으로 무료다. 단, 주류나 별도의 음료를 주문하려면 돈을 내야한다.‘Lasy J 스테이크 하우스’ 등 식당 세 곳도 유료. ▲매일 출입문에 게시되는 승선 시간을 반드시 확인하고 지켜야 한다.‘코리안 타임’은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항상 수경을 지참할 것. 별도의 장비없이도 열대어와 바다거북 등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보증금 명목으로 본인 신용카드에서 300달러가량 선 공제하는 경우도 있다. 선내 사용 금액이 이 액수를 넘을 경우에만 청구된다. ▲승객 한명 당 하루 10달러의 팁이 과금된다.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별도의 팁은 필요치 않다. ▲선내 TV 20번 채널→Ships News Flash→Onboard Account View를 차례로 누르면 자신이 쓴 액수를 확인할 수 있다. 하선 전에 사용 내역을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차를 렌트해 둘러볼 만한 곳이 많다. 국내 운전면허증도 통용되나, 가급적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 가는 것이 좋다. ▲예카투어 등 ‘대한항공 하와이 연합사’들은 ‘하와이 4개 섬 크루즈 9일’상품을 판매하고 있다.339만∼579만원. 액티비티 참가비용은 본인부담. 매주 토요일 출발.www.yecatour.com / www.flycruise.kr,(02)516-2277. ●프라이드 오브 아메리카호는 2005년 6월에 취항한 8만 1000t급 호화 유람선. 객실 1073개에 2144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다. 길이는 280.59m. 고급 호텔에 견줄 만한 일품요리는 물론, 수영장 등 선내 시설물에서 벌어지는 각종 게임과 이벤트, 파티 등을 즐길 수 있는 ‘바다 위 복합 문화공간’이다.
  • 피부 화상 예방 30분 투자로 ‘OK’

    피서 행렬이 꼬리를 잇는 이제부터는 자외선과 전쟁을 치러야 한다. 자외선은 비타민D의 체내 합성을 돕는 이점도 있지만 색소 침착과 노화 촉진 등의 부작용이 문제이다. 과도한 자외선 노출이 피부암의 원인인 점도 부담스럽다. 자외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자외선의 정체 태양광선은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으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가장 심각하게 피부를 괴롭히는 자외선은 파장에 따라 UVA,UVB,UVC로 나눈다.UVA는 지표에 도달하는 자외선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에너지는 적지만 파장이 길어 피부 깊숙이 침투, 피부 노화를 촉진한다.UVB는 파장은 짧지만 에너지가 커서 피부 표면에 화상을 입힌다.UVC는 파장이 짧아 대부분 오존층에서 차단된다. 하루 중 오전 10시∼오후 3시 사이에 가장 강한 자외선은 여름이 겨울보다 6∼7배나 강하며, 높은 산이나 해변은 고도와 수면, 모래 등에 의한 반사 때문에 다른 곳보다 훨씬 자외선량이 많다. 그런가 하면 자외선의 50%는 흐린 날에도 지상에 영향을 미치며, 물에 젖은 피부는 자외선 투과량이 훨씬 많다. ●자외선과 피부 -일광화상=일광화상은 자외선에 노출된 뒤 4∼6시간의 잠복기를 거쳐 발생,24시간쯤 후에 가장 심해진다. 화상을 입으면 피부가 붉게 부풀고, 물집이 잡히며, 피부가 벗겨지게 된다. 아주 심한 경우에는 오한, 발열 같은 전신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색소침착=자외선에 노출된 피부가 검어지는 현상이다.‘즉시색소침착’과 ‘지연색소침착’으로 나누는데, 즉시색소침착은 자외선에 의해 멜라닌이 산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광선 노출 수분 내에 나타났다가 며칠 지나면 없어진다. 문제는 지연색소침착. 자외선에 노출 후 72시간 쯤 후에 생기며, 각질세포 전 층에 멜라닌 색소가 크게 늘어나 피부색을 변화시킨다. -광노화=광노화는 연령에 따른 자연노화와 달리 자외선이 피부 섬유층을 파괴, 탄력을 떨어뜨려 주름을 만드는 현상이다. 이런 광노화는 표피가 얇아지는 자연노화와 달리 표피를 두껍게 해 가죽처럼 피부를 뻣뻣하게 만든다. 노출 부위인 얼굴이나 뒷목, 손등 등의 피부가 다른 부위에 비해 두텁고 뻣뻣한 것은 자외선에 의해 콜라겐과 엘라스틴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청바지 자외선 90~100% 차단 청바지는 90∼100%, 올이 촘촘하고 짙은 색 옷은 최고 30%까지 자외선을 막아준다. 의류의 자외선 차단 효과는 ‘UPF’로 표시하는데, 보통은 UPF 30이상이면 충분하다. 딱 맞는 옷보다 헐렁한 옷이, 흰색보다는 어두운 색의 옷이 자외선 차단 효과가 크다. 흰 티셔츠의 자외선 차단지수는 SPF 5∼9 정도지만 검은색 티셔츠는 SPF 15∼20 정도다. 모자와 양산도 유용한 자외선 차단 장비이다. 일반 양산은 70%, 자외선 차단 양산은 90% 이상 자외선을 걸러준다. 자외선 차단용 양산을 구입할 때는 UV코팅 표시가 돼 있는지 확인하는 게 좋다. 모자의 경우 챙의 넓이에 따라 자외선 차단효과가 달라진다. 폭 7.5㎝인 모자의 자외선 차단 효과는 이마가 SPF 20 정도, 코 SPF 7, 목 SPF 5 정도이다. 또 모자는 눈에 닿는 자외선의 50% 정도를 차단해 준다. ●외출 30분전 차단제 바르면 효과 -자외선 차단제=자외선 차단제에 표기돼 있는 ‘SPF’는 피부 화상의 주범인 UVB 영역의 자외선 차단 효과를 표시하는 단위이다. 또 SPF와 함께 표시되는 ‘PA’는 자외선 A의 차단 효과를 나타내며,+∼+++로 구분한다. 자외선 차단 성분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피부 표면에 균일하게 흡착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도포 후 최소한 30분이 지나야 한다. 따라서 자외선차단제는 외출 30분 전에 충분한 양을 발라주어야 한다. 아름다운나라 피부과 이상준 원장은 “얼굴 뿐 아니라 가슴, 손등, 팔도 자외선에 항상 노출되므로 외출 전에 미리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것이 피부를 지키는 지름길”이라고 조언했다. ●기미·잡티 조기치료가 중요 -자외선 부작용 치료=특히 멜라닌 색소가 많이 나타나는 기미, 잡티는 조기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미나 잡티 치료에는 일반적으로 ‘멜라도파’와 ‘레이저 토닝’ 등의 시술을 적용한다. 멜라도파는 진피층에 미백성분을 전달하는 방법이다. 이 미백성분은 멜라닌 색소세포의 착색을 막는 것은 물론 이미 착색된 색소를 제거하기도 한다. 피부 깊숙이 있는 색소 세포를 파괴하는 레이저 토닝은 색소 침착과 기미에 효과적이다. 통증이 없어 짧은 시간에 집중 시술이 가능하며, 딱지가 생기지 않아 뿌리가 깊은 진피형 기미에도 부담없이 적용할 수 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도움말:아름다운나라 피부과·성형외과 이상준 원장
  • 또 테러?… 가슴 쓸어내린 美

    |워싱턴 이도운특파원|18일(현지시간) 저녁 뉴욕시는 테러 공포에 빠졌다. 맨해튼 중심가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한 탓이다. 테러 공격에 전전긍긍하던 뉴욕과 미국 전체는 테러 가능성 여부를 둘러싸고 한동안 긴장에 휩싸였다. 사고는 이날 저녁 6시쯤 맨해튼 41번가와 렉싱턴 애비뉴의 그랜드 센트럴역 근처에서 발생했다. 폭발의 원인은 지하에 매설된 스팀 파이프가 터진 것으로 경찰에 의해 밝혀졌다.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은 “사회기반시설 노후의 문제였을 뿐”이라면서 “테러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이 사고로 최소한 1명이 숨지고 30명 이상이 부상했다. 사고 당시 현장에서는 거대한 폭발음이 났으며, 이어 흰 연기가 주변 건물을 완전히 뒤덮었다. 또 스팀과 함께 진흙덩이, 아스팔트 등이 함께 튀어올라 주변 지역을 온통 흑갈색으로 물들였다. 이 때문에 인근 그랜드 센트럴 역과 하얏트 호텔 등 주변 건물에서 주민들이 급히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대피 도중 많은 이들이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흘리는 등 맨해튼이 일순간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CNN은 전했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아다오라 우다지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폭발 당시 지진이 일어난 듯 흔들렸고 순식간에 수백명의 주민이 거리로 뛰쳐나오면서 지역 전체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인근 지역을 지나는 지하철 운행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맨해튼의 상업 및 주거용 건물의 난방 및 냉방용으로 사용되는 스팀 파이프를 관리하는 콘에디슨 회사는 1924년에 매설된 스팀 파이프에 찬물이 섞여 들어가면서 폭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dawn@seoul.co.kr
  • 「미스·인천(仁川)시청」민인기양-5분데이트(109)

    「미스·인천(仁川)시청」민인기양-5분데이트(109)

    매끈하고 흰 피부, 조용 조용한 목소리, 차분한 몸가짐이 사뭇 청초한 느낌의 민인기(閔仁基)양은「미스·인천시청」으로 뽑힌 아가씨. 48년생으로 인천에서 상업을 하시는 아버지 민병택(閔丙澤)씨(48)의 2남3녀중 맏이. 인천 인성(仁聖)여고를 거쳐, 대구의 경북(慶北)대학을 1학년 다니다 중퇴했다. 인천시청에 근무하기는 꼭 10개월째. 현재 시장 비서실에서 일하고 있다. 『시장님이 자상하시고, 동료들이 모두 친절해서 직장일은 무척 재미가 있어요』라고. 토요일이면 여자 동료들과 주로 극장구경을 다니고, 주일이면 독실한「크리스천」으로 교회 장로님이신 아버지를 따라 일가 총동원해서 교회에 간다. 여학교때부터 취미로 모으기 시작한 우표는 3백여장에 이르렀고, 틈이 나는 때는 책을 보거나 수를 놓는등 조용한 일로 시간을 보낸다. 틈틈이 수를 놓아 만든 수예품도 결코 적지 않다고. 좋아하는 음식은 구수한 김치찌개. 월급은 그녀의 표현대로 『아주 조금타지만 적금도 들고, 동생들 용돈도 집어준다』는 알뜰한 아가씨다. 『아침 8시면 출근을 했다가, 저녁 7시에나 퇴근을 하고,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가고, 이런 생활을 하니 별돈이 들 필요가 없어요』 월급은 적지만 전혀 곤란을 느끼지 않는다는, 태평스런 얼굴이다. 결혼을 한다면 아무리 적은 월급이라도 잘 쪼개어 쓸 수 있을 듯하다고 자신만만이다. [선데이서울 70년 11월 22일호 제3권 47호 통권 제 112호]
  • 중국판 ‘네스호 괴물’ 공개돼 논란 가열

    중국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아얼타이산(阿爾泰山) 커나쓰(喀納斯) 호수에 살고 있다고 전해져온 괴물의 자취가 찍힌 영상이 공개돼 괴물의 실존 여부를 놓고 해묵은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영국 더 타임스 인터넷판은 18일 호수를 찾은 한 관광객이 찍은 영상으로 인해 영국의 네스호의 괴물과 비견되는 중국 괴물의 존재에 대한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고 보도했다. 지난 5일 한 관광객이 찍은 이 흐릿한 영상에는 15개의 괴생물체가 호수 표면 아래에서 빠른 속도로 움직여 수면에 흰 거품이 일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비디오를 방송한 최대 관영 방송 CCTV(中國中央電視臺)는 “전설로 전해져온 괴물의 흔적이 찍힌 가장 선명한 영상”이라면서도 “미확인 물체가 나타난 것이 호수 괴물에 대한 미스터리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며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주민 상당수는 양, 암소, 말 등을 끌고가서 먹어치우는 괴물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괴물을 봤다는 증언도 약 100여년 전부터 계속 내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신문은 이 괴물이 호수에 서식하는 대형 연어일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까지 보고된 가장 큰 연어는 러시아에서 잡힌 2.1m짜리에 불과해 10~15m에 달하는 이 괴물의 정체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20년 이상 괴물의 존재를 탐구해 온 신장 환경보호연구소의 위안궈잉 교수는 “이번 비디오는 실제로 괴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괴물은 붉은 올챙이같이 생겼지만 크기는 10~15m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괴물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들은 괴물은 전설속의 일일 뿐이며 착시현상일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승원 토굴살이] 시인과 농부

    [한승원 토굴살이] 시인과 농부

    ‘시인과 농부’를 가끔 듣는다. 이 곡은 익살과 기지가 넘치는 데다 경쾌한 춤곡풍이어서 그윽하고 아름답고 즐겁다. 작곡자 주페는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에서 태어나 빈에서 극장 전속 작곡가와 지휘자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의 음악에는 빈이라는 멋스러운 도시의 분위기와 이탈리아풍의 아름다운 정서가 서려 있다.‘시인과 농부’는 오페라의 서곡인데 그것을 감상함에 있어서는 시인과 농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명쾌한 곡이므로 즐겁게 감상하면 된다. 그런데 젊었을 적에 이 곡을 처음 들으면서, 농사일로 늙어온 농부와 감수성 예민한 늙은 시인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 나름의 치기어린 사유(관념)를 대입하면서 들어 버릇했다. …푸른 들판 논두렁에서 한 시인과 한 달관한 늙수그레한 농부가 마주앉아 농주 잔을 나누며 자연과 세상살이의 희로애락을 이야기한다. 농부는 시와 철학을 공부한 적이 없지만, 농사짓고 살아오면서 하늘의 뜻과 땅의 질서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잘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것들을 자기도 모른 사이에 터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농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시이고 철학이다. 농부의 햇볕에 그을린 거무튀튀한 얼굴과 힘든 작업으로 인한 마디 굵은 나무껍질 같은 손은, 그 자체가 시이고 철학이다. 시인은 그것들을 가슴으로 느끼고 환희를 맛보며 농부와 탄성어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 때 시인은 말 아닌 몸으로 시를 쓰는 것이다…. 내가 이 음악을 이렇게 감상해 버릇한 것은, 그 곡에 붙어 있는 ‘시인과 농부’라는 표제 때문이다. 한번 그 표제에 걸려 속아 넘어가고 나자, 속았음을 알아차린 뒤에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같은 방법으로 그것을 즐겨 듣곤 한다. 물론 나는 지금 그것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개, 어떤 사물의 진짜 아닌 가짜 얼굴(가면)과 그것에게 붙여진 이름에 걸려서, 자기 나름의 상상을 하고 순수하게 꿈꾸고 즐거워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최면에 잘 걸리는 동물이다. 모든 얼굴과 그에 따른 이름은 고정관념을 가지게 한다. 사람들이 자기나 자기 아들딸의 이름을 소문난 작명가들에게 지어달라고 맡기고, 기업체들이 상호와 상품의 이름과 상표(brand) 치레를 하고 열심히 광고하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멋들어진 환상(고정관념 혹은 착각)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더러운 정치가들은 깨끗한 얼굴 만들기, 그럴 듯한 자기선전 표어 만들기에 광적으로 심혈을 기울이고 돈을 퍼붓는다. 그의 참모들은 그의 아름다운 가면(이미지)을 만들기 위하여, 그로 하여금 방송에 나가서 서정시 한 편을 정감 있게 암송하게 하고, 고전적인 노래 하나를 애창곡이라고 하면서 애처롭게 부르게 하고, 거부감 없는 색깔의 양복과 거기 알맞은 넥타이를 매게 하고, 위호주머니에 흰 수건을 찌르게 하고, 머리 스타일을 부드럽게 바꾸게 하고, 늘 생긋 미소 짓게 하고, 강한 말씨와 호소하는 말씨를 적당히 섞어 쓰게 하고, 그윽한 사랑의 눈빛을 가지게 한다. 그 가면으로 인해 인기가 상승하면, 이익단체들과 대중이 얼싸안고 얼씨구절씨구 광기어린 춤을 추며 부르짖는다. 굴원의 어부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무리(군중)가 다 취해 있을지라도 나 홀로 깨어 있어야 한다(衆人皆醉我獨醒)’ 예로부터 개인은 영리하지만, 무리는 어리석었다. 그리하여 중국에서 애초에 그 ‘무리’라는 뜻의 글자를 만든 사람은, 그것을 아주 재미있게 표현해 놓았다. ‘여기저기를 저돌적으로 돌진하면서 늘 들이받은 까닭으로, 머리에 피(血)를 묻히고 있는 돼지(豕)들이 무리(衆)’라고.呵呵呵. 한승원 소설가
  • 감동? 애석? 동반자살 연인 ‘영혼’ 웨딩마치

    “얼마나 사랑했으면….젊은 연인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을까요?” 중국 대륙에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잇따라 강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은 20대 젊은 연인의 ‘영혼 결혼식’을 올려 주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영혼 결혼식’의 주인공은 중국 중부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서 살았던 양양(陽陽·가명·24)씨와 롄롄(戀戀·가명·23)씨.이들 남녀는 지난 10일 롄롄씨가 먼저 강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은 뒤 뒤따라 양양씨도 강물로 뛰어들어 숨지자,이들 부모님이 저승에서라도 부부의 연을 맺어 잘살라고 ‘영혼’ 결혼식을 올렸다고 무한만보(武漢晩報)가 13일 보도했다. 지난 10일 낮 양양씨의 집에 전화벨 소리가 급박하게 울렸다.가족중 한 사람이 전화를 받으니 양양씨가 그의 여자친구와 함께 강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는 급보였다. 신발을 신는둥 마는둥 달려간 양양의 가족들은 강 제방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그와 그의 여자친구 신발을 보고는 망연자실한 채 한동안 우두망찰했다.시간이 조금 지나 정신을 차린 양양의 가족들은 그제서야 울음보를 터뜨렸다.이날 오후 4시쯤 공안(경찰)당국은 양양씨와 그의 여자친구 롄롄씨의 시신을 건져 올렸다. 이어 11일 아침 셴타오황허(仙桃皇河) 장례식장에서 목숨을 끊은 양양씨와 롄롄씨는 일가 친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을 다하도록 ‘영혼’ 결혼식을 치렀다.이날 양양씨와 롄롄씨 두 사람의 ‘영혼 결혼식’이 진행된 셴타오황허 장례식장.장례식장의 중앙에는 양양씨와 롄롄씨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고 ‘침통하게 추도한다.’는 글이 쓰여진 흰 천이 힘없이 축 처져 있어 조금은 살풍경한 모습이었다. 특히 이 ‘영혼’결혼식에는 이들 남녀의 일가친척 외에도 ‘좀처럼 보기 힘든’ 결혼식을 보기 위해 주변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오전 9시 정각,장례식장에서 ‘영혼’ 결혼식이 시작되면서 ‘결혼 행진곡’이 흘러 나왔으나 ‘하객’들은 즐거워하기는 커녕 모두 울부짖거나 침통한 표정을 지어,‘영혼’ 결혼식임을 알려주는 듯했다.곧이어 사회자가 애잔한 추도사를 하고 두 남녀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장중한 음악이 흐르자 ‘하객’들은 이들 부부와 마지막 이별식을 가졌다. 이들 ’하객’들과는 달리 구경꾼의 표정은 어쩌면 ‘감동’한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애석’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해 하는 모습이어서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이들 두 남녀가 무엇 때문에 이승을 버리고 저승으로 동반했는 지에 대해서는 공안 당국도 이들의 부모도 끝내 밝히기를 꺼려해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다만 양양씨의 부모가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1000만위안(약 12억원) 이상의 재산가인 것으로 밝혀졌을 뿐이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朴, 장준하선생 유족에 사과

    朴, 장준하선생 유족에 사과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가 11일 1970년대 대표적 민주인사였던 고 장준하 선생의 미망인을 만나 ‘역사적 화해’를 모색했다. 지난해 10월 타계한 ‘재야 민주화운동의 대부’인 고 홍남순 전 변호사의 빈소를 찾은 데 이은 민주화세력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행보다. 박 후보는 이날 오전 서울 일원동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고인의 미망인 김희숙(82) 여사를 찾아갔다. 장준하 선생은 광복군 장교출신으로 월간 사상계를 창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적 라이벌로 1975년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에서 의문사를 당했다. 이날 만남에는 고인의 장남 호권씨와 친분이 있는 서청원 캠프 상임고문과 김 여사의 며느리가 동석했다. 대화를 이어가는 50분 내내 박 후보는 김 여사의 두 손을 꼭 잡았다. 박 후보가 위로의 말을 전하자, 김 여사는 “말하고 싶은 3가지를 적어놨다.”면서 “사과의 진정성을 보여주시고, 과거 고통받았던 분들에 대한 보답은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 달성으로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어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개인적 욕심없이 헌신해달라. 과거는 과거지만 다시는 우는 사람이 없게 해달라.”며 눈물을 비쳤다. 박 후보는 “장 선생님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열정을 갖고 계셨던 분이다. 아버지와 방법은 달랐지만, 두 분 모두 개인보다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셨다.”고 위로했다. 이어 “선진국을 만드는 게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아픔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헤어질 무렵, 김 여사는 박 후보의 손을 잡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미국에 있는 막내아들 생각이 난다. 딸처럼 여길 테니 힘들어도 이야기할 곳이 없으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했다. 박 후보는 미소로 화답했다. 박 후보는 이날 김 여사에게‘화해와 사과’를 상징하는 흰 장미와 붉은 장미 다발을 건넸다. 나올 때에는 고인이 쓴 책 ‘돌베개’를 받았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서구식 식사 즐기면 유방암 위험 2배↑

    “서구식 식사를 많이 하면 유방암에 잘 걸린다.” 고기와 단 것 위주의 서구식 식사를 하는 아시아 여성들이 채소에 기초한 식사를 하는 여성들보다 유방암에 걸릴 위험성이 2배나 높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BBC 방송은 10일(현지시간) “팍스 체이스 암센터의 연구원들이 1500명의 중국 여성을 연구 조사, 아시아 여성에게는 서구식 식단이 위험하다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고 보도했다. 아시아 여성들이 유방암에 걸리는 비율은 서구 여성들보다 낮지만 최근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유방암은 서구에서는 여성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암 가운데 하나다. 비만이 그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폐경기 이후의 과체중 여성들이 유방암에 걸릴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신체용적지수(BMI)가 25 이상인 경우 그 위험성이 아주 높다.BMI는 체중을 신장의 제곱으로 나눈 비만도 지수로,22가 표준이다. 팍스 체이스 암센터 연구원들은 “서구식 식사를 가급적 피하고 체중 관리를 잘하면 폐경기 이후의 여성들도 유방암에 걸리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기-단 것´ 식단엔 각종 고기와 생선은 물론 사탕과자, 푸딩, 흰 빵과 우유도 포함된다. `채소-콩´ 식단에는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각종 채소와 콩으로 만든 제품, 신선한 생선이 포함한다. 중국 항암협회(CACA)에 따르면 중국 대도시에서 1990년대 유방암 발병률은 37%, 사망률은 38.9% 각각 늘었다. 식단 변화와 함께 환경적인 요인들도 그 원인으로 지적됐다. 서구 과학자들은 비만이 유방암 발병 비율을 10% 정도 높이는 것으로 평가했다. 100건의 연구결과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폐경기 이후의 여성들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32) 유일의 ‘ㅡ’자형 영천 자천교회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32) 유일의 ‘ㅡ’자형 영천 자천교회

    경북 영천시의 보현산 자락에 자리잡은 한옥형태의 자그마한 자천교회(화북면 자천3리·경상북도지방문화재 문화재자료 452호). 남아 있는 유일의 ‘一’자형 교회로 교회건축사에선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 예배 공간을 갖추고 있다. 건축의 독특함에 얹어 영남지역 교회사에서도 중요한 교회. 교인이 고작 30명 남짓하지만 1903년 건립된 뒤 이 지역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했던 신앙 요람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경동노회에 소속되어 한때 주일예배 때 300여명이 예배당에 모일 만큼 교세가 컸던 교회. 하지만 6·25전쟁 직후 인근의 상송교회가 분가한 데 이어 입석교회가 독립했고 1970년대 목회자의 신앙 문제로 화북교회(합동)로 또 한 차례 갈라진 상처를 갖고 있다. 오랜 풍상 속에 교세는 형편없이 사그라졌지만 경북 동부와 동북지방 복음의 씨앗을 싹틔운 신앙 요람으로 끊임없이 회자된다. ■ 신점균 자천교회 담임목사 “성장과 발전도 필요하지만 초심을 살린 신앙열정을 키워나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지난 2001년 자천교회에 부임해 6년째 신자들의 예배와 신앙을 묵묵히 이끌고 있는 신점균(52) 담임목사. 교인 30명의 작은 교회지만, 초기의 변함없는 모습과 믿음을 간직한 신앙 요람을 지키는 것에 매우 만족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지은 지 100년을 넘긴 교회가 400여개 있지만 옛 모습을 온전하게 지키고 있는 교회는 열 손가락을 꼽을 정도입니다. 이 교회들은 대부분 교세가 보잘것없이 쇠락했지요. 하지만 이 교회들이야말로 초기 교회의 신앙을 되살릴 수 있는 중추입니다.” “1907년 한국사회와 교회에 큰 변혁을 몰고왔던 평양대부흥운동의 큰 뜻은 회개”라고 거듭 강조하는 신 목사. 그는 대형화, 물량화로 치닫는 교회들은 선교에 앞서 개인적인 회개를 생각해야 하며 그 첨병역할을 ‘때묻지 않은 초기 교회’들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인들이 적어 교회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소외감을 느끼지만 반면에 자부심이 큽니다. 자천교회 같은 초기의 작은 교회들이 순수한 신앙을 토대로 교류한다면 기독교 문화와 영성 차원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100년을 견뎌낸 기와지붕 자천교회의 역사는 미국인 선교사와 서당 훈장의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은 바로 ‘영남지방의 어머니교회’라는 부산 초량교회를 세운 미국 북장로교 소속 배위량(W.M.Baird) 선교사의 처남인 안의와(J.E.Adams) 목사와, 경주의 작은 마을 선비 출신인 자천교회 설립자 권헌중 장로. 배위량 선교사의 뒤를 이어 영남지역 선교 책임을 맡아 대구에 들어온 안의와 목사는 경북 동부와 동북지역 선교여행에 나섰다고 한다. 같은 시기 경주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서당 훈장 권헌중은 일제의 착취와 압박을 피해 고향을 떠나 대구로 가던 길이었다. 각자 다른 목적으로 길을 떠났던 두 사람이 만난 게 1897년 지금의 영천시와 청송군의 경계지인 노귀재에서다. 서당 훈장의 식견 때문이었을까. 권헌중은 상당히 열린 의식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안의와 목사에게 감화를 받아 대구로의 이사를 포기한 채 이삿짐을 내려놓고 영천 자천리에 초가삼간을 구입해 세운 게 자천교회의 모태이다. 초가 사랑방을 예배당겸 서당으로 써 낮에는 한문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성경을 공부했는데 당시 교인이라야 서당에 다니는 문동들과 권헌중을 따라온 노비와 머슴이 전부였다. 앞장서 상투를 자르고 데리고 있던 노비들의 문서를 불태워 자유의 몸으로 해방시키는 등 개방적이었던 권헌중에게 감화된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교회 건물을 키워야 했다.1903년 기와지붕을 얹은 목조 건물로 다시 세웠는데 지금의 자천교회는 당시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당시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반대에 부닥쳐 교회를 세우기까지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니었다. 결국 주민들에게 면사무소를 지어주고서야 교회를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기와지붕을 인 목조 예배당에 들어서면 일(一)자형 공간이 완연하다. 동네 목수들이 천장이며 보, 기둥들을 모두 만들었다고 하는데 울퉁불퉁한 목재들이 아주 투박하게 놓이고 이어졌지만 모양새와는 다르게 아주 탄탄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아치형 공간을 만들어 선교사석과 설교자석을 두고 바로 앞에 강대를 놓았는데 남녀가 따로 앉아 예배를 보도록 신자석 가운데 칸막이를 쳤다. 남녀 신자석을 갈랐던 초기 교회들에서 대부분 휘장으로 공간을 구분한 것과는 달리 아예 나무 칸막이를 만들어놓은 게 특이하다. 물론 남녀 신자들은 서로를 볼 수 없고 설교자만 남녀 신자들을 모두 볼 수 있도록 한 장치이다. 일제시대 철거된 채 예배가 진행되어 오다가 지난 2005년 복원공사를 거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출입문도 왼쪽은 남자, 오른쪽은 여자 신도가 따로따로 드나들도록 각각 냈는데 여자 신도 출입문을 2개나 만든 것은 당시 여 신도들이 더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신자석 뒤쪽에 두 개의 방을 낸 것도 이 교회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 남녀 신자들이 따로따로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도 하도록 방을 낸 것인데 역시 일제시대 때 없어졌던 것을 2005년 발굴조사를 거쳐 복원해 놓았다. 교회 안에서 ‘남녀칠세부동석’의 풍습을 살리면서 신앙을 이어가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지금도 간혹 고령의 신자들은 부부가 함께 와서도 예배를 볼 때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는다고 한다. 예배당 지붕을 넓고 평평한 ‘우진각’ 형태로 얹은 것도 특이하다.‘우진각’ 지붕은 전통 한옥의 대문에 흔하지만 독립 건물에 쓰여진 것은 흔치 않다. 건물 네 면에 지붕면을 만들어 귀마루(내림마루)가 용마루에서 만나도록 한 것인데 일(一)자형 예배공간을 넓게 쓰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 같다. 영천지역은 6·25전쟁 중 격전지로 유명한 곳. 모든 집들이 포화를 맞아 폐허가 되다시피했는데 교인들이 평평한 교회 지붕에 올라 흰 횟가루로 십자가를 그리고 ‘CHURCH(교회)’라 표시해 폭격을 피했다고 한다. 당시 영천 화북면 지역에선 이 자천교회와 교회 바로 옆 한옥만 폭격을 받지 않은 채 지금까지 남아 있다. 예배당 건물과 골격은 옛 모습 그대로지만 초기 교회에 있었던 성물은 신자석 뒤쪽 방 한 귀퉁이에 보존해 놓은 작은 강대상이 전부.1930년대 영천군의 ‘세번째 부자’로 통했던 자천우체국장 김영대의 어머니가 헌금한 당시 돈 70원으로 일본에서 ‘야마하’ 대형 풍금을 들여와 찬송 반주에 썼다지만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 당시 교인들은 이 풍금에 맞춰 ‘삼천리반도 금수강산’과 ‘만왕의 왕’이란 찬송을 즐겨 불렀다고 한다. 그 때만 하더라도 찬송가가 보급되지 않아 한지에 찬송을 붓글씨로 크게 써 흑판에 걸어놓고 불렀다. 마을에 찬송이 울려 퍼지자 ‘독립운동가들이 부르는 불온한 노래’로 여긴 일경이 금지곡으로 막아 이후 해방 때까지 불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서울의 한 신자가 헌금을 해 종과 종각을 지어놓았지만 일제의 강출로 모두 철거되었다. 노귀재에 우연히 뿌려진 한 알의 ‘복음씨앗’이 어려움 속에서 신앙의 꽃을 활짝 피워냈던 자천교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의 광풍에 휩싸여 교적부며 회의록 등 초기 교회의 모든 자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교회사에선 선 굵은 복음의 요람지로 우뚝 서 있다. 그렇게 이어진 신앙내력 때문일까.1930년대 교회에 풍금을 들여놓게 한 천석꾼 김영대의 아들(2007년 작고)이 2006년 교회 앞 한옥 4개동과 대지를 교회에 증여하는 역사가 생겼다.6·25전쟁 중 교회 앞에 있어 폭격을 피할 수 있었던 바로 그 한옥이다. 교회측으로선 여간 반갑고 은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 옆 텃밭을 더 매입해 예배당을 중심으로 한 문화재 관람과 수련장, 한옥체험의 장을 묶는 성역화 사업을 차분하게 진행하고 있다. kimu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통무용음악 집대성하는 대금산조 명인 이생강 선생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통무용음악 집대성하는 대금산조 명인 이생강 선생

    신적(神笛)이다.‘귀신을 일으키고 거친 바다를 잠재우는 신라의 소리’라고 했다. ‘만파식적’ 설화에 등장한다. 제31대 신라 신문왕(神文王)은 아버지 문무왕(文武王)을 위해 동해안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추모했다. 그러자 죽어서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金庾信)이 합심, 용을 시켜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그런데 이 대나무는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하나가 됐다. 왕은 이 기이한 소식을 듣고 하루는 현장에 나갔다. 이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의 이치를 물었다. 용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성음(聲音)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왕은 곧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불었더니, 나라의 모든 걱정과 근심이 해결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이 피리를 국보로 삼고는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고 이름지었다. 삼국통일 이후, 흩어져 있던 유민들의 민심을 통합해 나라의 안정을 꾀하려 했다는 전설이다. 이처럼 대나무는 3죽(竹)이라고 해서 대금·중금·소금 등 우리 고유의 전통악기의 재료로 사용돼 왔다.‘笛(적)’은 가로 부는 관악기를 가리킨다. 시인 복효근의 ‘어느 대나무의 고백’의 내용도 눈길을 끈다.‘∼내게서 대쪽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내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속에/터질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흰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제 때에 이냥 베어져서/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거나∼/흉흉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바람소리에/어둠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올해로 음악인생 65년째 대금산조의 최고 명인 죽향(竹鄕) 이생강(70·중요무형문화재45호) 선생. 다섯살 때부터 소금(小)을 배웠으니 사실상 올해로 음악인생 65년째를 맞은 셈. 그 세월만큼이나 대나무 악기에 관한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는다. 지난 4월5일 북악산 개방행사때에는 노무현 대통령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감동적인 대금산조를 연주,39년 동안 잠자던 북악산의 정기를 새삼 일깨우기도 했다. 그는 얼마전 우리 음악사의 중요한 획을 하나 더 그었다. 한국 전통무용음악을 집대성한 ‘춤의 소리’(신나라뮤직) 전집음반 50장을 한꺼번에 내놨다. 본인의 평생 숙원사업이기도 하지만 이 전집에는 산조춤, 화관무, 부채춤, 살풀이, 승무, 농악 등이 총망라돼 있어 우리나라 전통 무용음악의 100년사를 담은 ‘대백과사전’이라는 점에서 실로 의미가 크다. 아울러 이번을 시작으로 나머지 350장(최종목표 400장)의 음반을 더 내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늦어도 2∼3년 안에 완결짓겠다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주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위치한 연구실(죽향대금산조 원형보존회)에서 그를 만났다. 괄괄한 목소리에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내뱉으면서 “우리나라의 난다긴다는 예인들은 대부분 전라도 사람들인데 그곳에 가서 대금을 배울 때 경상도 사투리를 함부로 쓸 수 있었겠느냐.”고 하면서 누가 말을 시키면 “그저 대금을 입에 대고 소리만 냈다.”며 웃는다. 얼굴이 50대로 젊어 보인다고 하자 “대금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복식호흡을 하게 된다.”며 나름대로의 비결을 귀띔했다. 20여평 남짓한 연구실 벽면에는 온갖 상장이며 지나온 발자취의 업적이 쭉 내걸려 있었다. 아들 이광훈이라는 이름도 눈에 들어왔다. 중앙대 국악과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자신의 뒤를 잇고 있다면서 “저기봐, 대통령상도 받았어, 아주 잘해.”라며 잠시 자랑끼를 발동한다. 친손자와 외손자들도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금과 가야금 등에 소질이 많다고 부연했다. “11세 되던 1947년, 전주에 계신 스승(한주환)을 만나면서 대금을 본격적으로 배웠지요. 판소리든 민요든 한국의 전통공연은 음악과 무용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종합예술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일제시대 때 우리 문화말살 정책으로 우리 것이 중단되고, 또 6·25때 16개국이 참전하면서 서양음악이 거칠게 들어왔어요. 그래서 국악공부에 더욱 오기가 생겼습니다.” 6·25로 인해 부산으로 피란온 당대 국악의 대가들과 자주 접한 것은 그에게 큰 행운이었다. 어떨 때는 하루 동안 열심히 뛰어 일곱분의 스승에게 찾아가 ‘한수 한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일취월장, 자신감을 얻은 그는 서양의 7음계를 우리 5음계에 접목시켜가면서 ‘대니 보이’‘엘 콘도 파사’ 등의 팝송과 재즈를 넘나들며 대금의 음역을 계속 넓혀나갔다. 그랬더니 얼마후에는 악보도 없이 ‘눈물젖은 두만강’‘목포의 눈물’ 등 우리의 전통가요까지 자유자재로 불 수 있게 됐다. 결국 그는 다섯살 때 선친에게 단소와 피리를 배우는 것을 시작해 11세 때 한주환 선생을 비롯, 퉁소의 전추산, 피리의 오진석·임동석, 태평소시나위의 김문일 등 여러 스승에게 배우면서 스스로 ‘이생강류’라는 독특한 음악세계, 즉 전통과 현대를 크로스오버하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민속악예술대학 설립이 숙원사업 그의 명성이 세계 무대에 알려진 것은 1960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세계민속예술제. 이때 단원의 악사로 참가했으나 춘향역을 맡은 주연 무용수 안나영씨가 갑자기 맹장수술을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혼자 13분 동안 최초의 대금독주로 시간을 때운 것. 이때 객석에서는 동양적 음향에 반했다며 많은 찬사를 쏟아냈다. 그러던 1968년 멕시코올림픽 참가공연을 계기로 여기저기에서 초청을 받아 40여개국 순회공연까지 가졌다. “군대생활요? 27사단 정훈부 군예대에서 돌아가신 코미디언 이주일씨와 같이 근무했어요. 나중에는 피리명인 정재국씨와 함께 근무했는데 서로 ‘정악’(피리)과 ‘민속악’(대금산조)을 가르쳐주며 생활했습니다. 무형문화재는 정씨가 먼저 됐지요.” 나이 70을 넘기면서 그에겐 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 하루속히 자신을 뛰어넘는 제자를 길러내는 것(서울 국악예고와 중앙대 국악대 강의)이고 각종 공연활동과 음악강연을 틈틈이 하면서도 ‘춤의 소리’ 백과사전을 마무리짓는 일이다. 이 사업이야말로 먼저 가신 스승에게 보답하는 길이요, 후배들에게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사명감이다. 오래전부터 단소와 단소교본을 만들어 왔는데 ‘국민1인 1국악기 갖기’운동에도 앞장설 생각이다. 또한 전통 가무악을 전수할 민속악예술대학을 설립하는 것도 숙원사업. 궁중음악은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교육되고 있으나 민속음악은 그러지 못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화합번영과 자긍심을 위해서라도 민속악의 대금소리는 계속 울려퍼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거듭 강조한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7년 일본 도쿄 출생. 해방후 부산 정착.▲42∼60년 이덕희·지영희·전추산·오진석·방태진·한주환 등에게 피리, 단소, 퉁소, 소금, 태평소, 대금 등을 익힘.▲59년 임춘앵 여성국극단에서 음악반주.▲6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세계민속예술제 참가공연.▲77년 첫 대금산조 개인 발표회. 이후 16차례 개인발표회.▲88년 서울 올림픽폐회식 때 대금독주.▲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 지정. ▲2005년 음악인생 60주년 기념공연(세종문화회관). ▲07년 6월 ‘춤의 소리’ 전집음반 50장 제작. 현재 죽향대금산조원형보존회를 운영,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 # 수상경력 전주 대사습대회 장원(78년), 신라문화재 대통령상(84년),KBS국악대상(84년), 한국국악대상(02년), 서울시 자랑스런 시민상(94년), 대한민국 국민상(97년) # 주요 작품 한국 전통무용음악을 집대성한 ‘춤의 소리’(07년, 신나라뮤직) 전집음반 50장 외에 400여 종의 앨범제작.
  • [여름아! 반갑다] 전문가 추천 해외여행 베스트10

    여름 휴가철이 성큼 다가왔다. 해마다 이맘때면 늘 고민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과연 어디로 가야 좋을까. 국내인 경우야 나름대로 정보를 가지고 있어 그렇지만 해외로 가는 사람에겐 이래저래 고민이 많다. 여행사에 근무하는 전문가들에게 질문을 던졌다.“올 여름은 어디가 좋으냐고.” 그 중 베스트 10을 골랐다. 정리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동양의 하와이-일본 오키나와 북해도와 더불어 일본 여름 여행의 ‘강추’코스이자, 신혼부부들에게 각광을 받는 지역이다. 연중 쾌적한 기후를 보이는 아열대 기후에 속해 ‘동양의 하와이’라고 불린다. 관광대국 일본의 대표 관광지답게 각종 해양 스포츠와 최고급 리조트 등 관광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다. 시내관광의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기적의 1마일’이라 불리는 고쿠사이도리를 비롯, 다양한 볼거리들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해 준다.02)2021-2010. ● 광활한 푸른 초원-중국 네이멍구 넓게 펼쳐진 푸른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린다…. 생각만해도 일상의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 하다. 광활한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내몽고로 떠나는 것은 어떨까. 마치 한 폭의 풍경화 속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것이라 단언한다. 단순 관광에 싫증난 여행객이라면 한번쯤 찾아봐야 할 곳이다.02)3455-0006. ● 지구 최대의 폭포-빅토리아 대자연의 신비가 넘쳐나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 초원에서 만나는 야생의 동물들과 웅장한 빅토리아폭포를 만나 보자. 빅토리아 폭포는 짐바브웨와 잠비아 국경을 흐르는 잠베지 강이 만들어낸 세계 최대의 폭포. 우기가 끝난 3∼7월에 수량이 풍부해져 폭포에서 품어져 나오는 물안개의 환상적인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폭포 주변에서는 번지 점프를 비롯, 래프팅, 카누 등 레포츠가 여행객들을 맞는다.02)2003-2003. ● 가슴으로 느낀다-백두산 7,8월에 꼭 다녀와야 할 여행지는 단연 백두산이다.1년 중 가장 쾌청한 날씨를 보이며, 동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맑은 천지를 선사하는 최적의 시기이기 때문. 고구려 유적지와 압록강 유람 등을 병행할 수 있어 더욱 값지다.02)2192-8827. ● 눈과 빙하가 있는 곳-캐나다 캘거리 장마에 뒤이어 찾아 온 찜통더위. 연일 무더운 날씨가 계속될수록 시원한 곳을 찾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아직도 눈과 빙하로 덮여 있는 곳은 어떨까. 생각만으로도 온 몸의 땀이 씻겨져 내리는 듯하지 않은가.1년 내내 흰 눈으로 덮여 있고, 직접 빙하까지 밟아볼 수 있는 곳에서 더위를 날려보자. 시원한 여행지, 캐나다 캘거리는 여름철 ‘강추’ 여행코스다.02)3455-0002. ● 가족단위 여행지-괌 괌은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휴양지다. 서울에서 4시간 거리에 있어 이동에 따른 피로가 덜한 데다, 다양한 해양 스포츠와 워터파크 등 최고의 시설을 갖춘 리조트들이 즐비하기 때문. 각종 쇼핑이나 게임, 라스베이거스 쇼, 수족관 등 다양한 볼거리도 갖추고 있어 자유여행으로도 매력적인 곳이다.02)2021-2040. ● 형제의 나라-터키 한국전 참전국이자,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더욱 친숙해진 형제의 나라 터키는 일상의 스트레스와 따분함에서 벗어나게 해줄 태양과 바다, 산, 그리고 호수가 있는 천혜의 낙원이다. 또 1만년에 걸쳐 20여개의 문명이 탄생한 화려한 역사의 보고이기도 하다. 잠시 머물더라도 많은 과거의 유산을 만날 수 있다.02)2192-8829. ● 색다른 유혹-중국 장강 크루즈 크루즈 여행은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장르. 시간과 비용 부담이 큰 미주, 지중해 등 장거리 노선에만 취항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루즈 여행만의 편안함이나 색다른 맛은 여행객들에게 있어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이제 가까운 곳으로 눈을 돌려보자. 중국의 장강은 아마존강과 나일강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긴 강. 수심도 깊어 대형 크루즈 선(船)이 지나다니기에 무리가 없다. 삼국지의 배경이 된 장강삼협(長江三峽)은 장강 크루즈의 대표적 관광지. 구당협, 무협, 서릉협 등 세 개의 협곡으로 이루어졌다. 총 길이는 193㎞. 웅장함과 험준함, 기묘함과 고요함이 함께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낸다.02)2021-2020. ● 중국 최고의 명산-황산 ‘황산(黃山)에 올라가면 천하(天下)에 산(山)이 없다.’. 중국의 절대 비경 황산은 중국 10대관광지의 하나로,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자연유산이다. 계곡에는 크고 작은 채지(彩池, 색채가 아름다운 연못)가 가득하다. 그 중 화경지(花鏡池)는 영화 ‘와호장룡’의 촬영지. 울창한 수풀림과 부드럽게 흔들리는 대나무가 청량한 느낌을 준다.02)2003-2100. ● 화려한 팔색조-홍콩 활기찬 낮 풍경, 화려한 밤 풍경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멋을 만들어 내는 홍콩은 자유여행자들을 위한 대표 여행지다. 관광은 물론, 가족여행, 쇼핑, 맛 기행 등의 테마를 모두 만족시켜주는 곳. 여러 항공사가 취항해 각자의 취향대로 다양한 일정을 구성할 수 있다.02)777-3900.
  • [프라이버시]언제나 흰고무신 김기영(金綺泳)감독

    [프라이버시]언제나 흰고무신 김기영(金綺泳)감독

    언제나 흰 고무신, 어디서나 흰 고무신이다. 「파티」석상에도 그렇고 촬영 현장에서도 흰 고무신이다. 늘 보아야 김기영감독이 흰 고무신 아닌 구두를 신는 일이란 거의 없다. 「터틀네크·셔츠」에 양복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흰 고무신이다. 「스포츠」 형 머리에 그런 차림을 한 김감독을 얼핏 보기엔 한마디로 「괴짜」「그로테스크」한 인상이다. 6척 가까운 키에 80kg은 좋이 될법한 거구로 『히히히…』웃을땐 그 웃음소리를 듣는이로 하여금 소름마저 쪽 끼치게 한다. 그런 김감독이 제3회 서울신문 문화대상을 타려고 지난 10월 14일밤 시민회관 무대에 나왔을때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의 눈길은 일제히 그의 발에 쏠렸다. 『아하!구두구나…』『어럽쇼,「넥타이」도 맸네』그는 영화부문에서 감독상의 영예를 차지했지만 3년만에 1편의 영화를 만들어내기가 고작인터라 아마 상을 타본 일도 거의 없을게다. 막상 상을 타러 나오는 마당에 구두는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그를 둘러싼 축하인사가 우선 『야-이거 구두를 신었군요』 어색하게 그의 큰 발을 떠받치고 있는 구두는 새구두라서 그런지 걸음걸이마저 어설프게 두발을 모으고는 피식 웃었다. 영화에 집착하는 그의 성미는 아무렇게나 남발하지 않는 고집으로해서 날림을 모른다. 촬영을 시작하기전에 배우들의 연기지도를 며칠씩 하는것으로도 유명-. 따라서 「3년에 1편」설이 나올 법하다. 노상 울지 않고 철따라 우는 꾀꼬리인가? 「꾀꼬리」치고는 우악스럽고 「들소」라야 마땅한데 어쨌든 그는 서울신문 문화대상을 탄후로는 「흰 고무신」아닌 「구두」나들이로 전향했다. [선데이서울 70년 11월 8일호 제3권 45호 통권 제 110호]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불멸의 보초가 ‘전선야곡’의 신세영(Ⅰ)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아∼ 그 목소리 그리워//들려오는 총소리를 자장가 삼아/꿈길 속에 달려간 내 고향 내 집에는/정안수 떠놓고서 이아들의 공 비는/어머님의 흰 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아∼ 쓸어안고 싶었소.//방아쇠를 잡은 손에 쌓이는 눈물/손등으로 씻으며 적진을 노려보니/총소리 멎어버린 고지 위에 꽂히며/마음대로 나부끼는 태극기는 찬란해/아∼ 다시 한 번 보았소.’ -전선야곡(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신세영 노래,1951년 10월 발표). ‘불멸의 보초가’로 현재까지도 병영 막사에서 군가보다도 많이 불린다는 이 노래,‘전선야곡’은 대표적인 전쟁가요다. 전 국토의 4분의3이 전쟁터로 변하고 온 국민을 전장으로, 피란민으로 내몰았던 6·25 한국전쟁. 당시 나온 노래로 특히 ‘전선에서 그리는 고향 어머니’에 대한 심경을 고스란히 담은 이 노래는 온 국민들의 소맷자락을 적셨다. 특히 길가다가도 느닷없이 징집되어 전쟁터에 나선 바람에 정작 어머니 얼굴조차 뵙지 못보고 고향을 떠난 이들도 적지 않았던 탓. 때문에 ‘어머님의 흰 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하는 부분에서는 특히 가슴이 복받쳐 올라 부르는 이도, 듣는 이도 함께 소리 내어 울었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현재 대한가수협회 원로가수회장을 맡고 있는 신세영(82)씨. 이 ‘신세영’이란 예명은 당시 최고 여가수들이었던 신카나리아의 ‘申’, 장세정의 ‘世’, 이난영 이름의 ‘影’자를 한 글자 씩 조합해 만든 이름.1948년 대구 오리엔트레코드사를 통해 데뷔곡 ‘로맨스 항로’를 발표한 데 이어 ‘영 너머 고갯길’,‘바로 그날 밤’,‘무영탑 사랑‘ 등을 잇달아 발표했던 그는 해방 이후 현인에 이어 두 번째로 가수가 된 인물. 음반을 찍어낼 물자와 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누구나 쉽게 음반을 낼 수 없었던 탓으로 그만큼 가수 또한 귀했다. 이 노래는 그에게 대표곡 이상으로 의미가 각별하다. 취입했던 바로 그날 어머니가 운명하셨기 때문. 그래서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더욱 목이 메었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많은 희생을 강요했다. 그 역시 이 노래를 발표한 이듬해 국방부 정훈국 공작대에 소속되어 북진하는 국군의 작전을 따라 최전방 덕천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에게 포위, 이틀 만에 탈출하는 등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이때 생사를 함께 한 7사단 군예대원 중에는 가수 손인호씨도 있었다. 본명 정정수.1925년 광산업을 하는 부친 정자경과 포목점을 운영했던 모친 김옥경 사이 3남매 중 외아들로 부산 동래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대구로 이사했다. 운동신경이 뛰어나 복싱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가수가 되기 위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콩쿠르에 참여하면서부터 점차 노래실력으로 두각을 나타내던 1945년 초, 해방을 불과 얼마 앞둔 시점에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징집된다. 이후 만주 봉천을 거쳐 항구 전선에 투입되는데 이때 그는 B29의 폭격을 받아 대부분의 동료들을 잃고 그 역시도 피투성이가 된 채 병원으로 이송, 생사의 갈림길에서 감격적인 일본 패망 소식을 듣는다. 이 무렵 그는 정신대의 참혹상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더구나 그 주인공 중 한 여성을 최근 서울의 한 방송국에서 다시 재회하는 감격을 맛보기도 했다. 1981년 신세영씨는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틈틈이 한국을 오가다가 3년 전에는 아예 비자를 반납했다.‘묻혀도 한국 땅에 묻혀야 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