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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은색 돌연변이형 배추흰나비’ 日서 발견

    검은색 배추흰나비 보셨나요? 보통 백색의 날개를 가진 배추흰나비와 달리 검은색 날개의 배추흰나비가 최근 일본에서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3월 말 교토(京都)부 조요(城陽)시 출신의 회사원 하야시 타쓰야(林達也·46)씨는 자택 부근의 강가를 거닐다가 풀숲에 앉아있는 한 나비를 발견했다. 평소 곤충이나 새 사진을 찍는 일이 취미였던 그는 발견한 나비를 촬영, 집으로 돌아와 나비의 이름과 생태 환경 등을 인터넷으로 조사했다. 그러나 크기 3cm가량의 이 검은색 나비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알아내지 못한 타쓰야 씨는 결국 전문가에게 나비 사진을 의뢰해야만 했다. 사진을 본 오사카시립자연사박물관의 카나자와 이타루(金沢至) 주임학예원은 “원래 흰 날개에 검은 얼룩무늬가 있는 배추흰나비의 성충이 커가면서 돌연변이 현상이 일어난 것 같다.”며 “배추흰나비의 날개가 검은색인 것은 매우 드문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또 기후(岐阜)시 나와(名和)곤충박물관의 나와 테쓰오 관장도 “지금까지 검은색 날개의 배추흰나비는 본 적이 없다.”며 “이번 발견은 매우 운좋은 경우”라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길섶에서] 사과꽃/함혜리 논설위원

    지난해 가을 영주 부석사를 찾았었다. 고속도로에서 국도로 접어들자 길 양옆으로 사과밭이 이어졌다. 빨간 사과들이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요즘 사과꽃이 한창이다. 설레는 마음에 다시 부석사를 찾았다.5월의 싱그러운 햇살을 받으며 피어있는 하얀 사과꽃이 눈부셨다. 소백산 자락의 야트막한 언덕과 산등성이는 온통 흰눈이 내린 것 같았다. 분홍색을 살짝 머금은 하얀 꽃잎은 면사포를 쓴 새색시처럼 아름다웠다. 불어오는 바람에 은은한 꽃향기가 실려와 코 끝을 감돈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 꽃을 대충 솎아줘야 하는데 일손이 달려 열매가 맺은 뒤에 솎아낼 참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 사과가 커지면 봉지를 씌우는데 요즘엔 사람들이 저농약 사과를 찾기 때문에 두 겹으로 씌운단다. 정성들여 키워도 수확 직전에 우박이라도 맞으면 한해 농사는 허탕이 되고 만단다. 그저 꽃이 예뻐서 좋아하고, 사과 맛있다고 할 줄만 알았던 나 자신이 쑥스러웠다. 그래도 사과꽃은 예뻤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 (10) 소백산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 (10) 소백산

    경북과 충북의 경계를 이루며 달리는 소백산 능선은 부드러움이 빼어나다. 해발 1300m의 높은 봉우리들이 연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면서도 설악산의 날카로움보다는 소백산만의 부드러움을 지닌 그런 산이다. 낭떠러지나 급경사 산사면이 거의 발달하지 않아 완만한 산세를 이룬다. 소백산의 부드러움은 지형적인 데서만 기인하는 게 아니다. 백두대간 능선 곳곳에 초원지대가 발달하여 소백산 능선을 더욱 부드럽고 정겹게 만든다. 철쭉꽃 피는 봄날에 이 초원지대에 들어서면 딴 세상에 난 오솔길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남한에는 고산이면서 이처럼 넓은 초원지대를 이룬 산이 드물다. 아고산대 초원을 이루는 한라산을 비롯해 태백산 등 몇몇 산이 있지만, 한라산과 소백산을 제외한 나머지 산들은 초원의 면적이 그리 넓지 않다.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서 소백산은 가장 넓은 고산초원을 가진 산인 것이다. 초원지대에 간간이 섞인 철쭉나무가 꽃을 피우면 장관을 연출한다.5월 말쯤 이때를 맞추어 철쭉제 행사가 벌어진다. 소백산 초원에는 철쭉나무 말고도 초원이라는 환경을 좋아하는 여러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개불알꽃, 고려엉겅퀴, 냉초, 둥근이질풀, 물매화, 산구절초, 산꼬리풀, 산민들레, 왜솜다리, 원추리, 일월비비추, 중나리, 참산부추, 터리풀 같은 풀이 자라고 있고, 구슬댕댕이, 백당나무, 털진달래 등 키 작은 떨기나무들도 자라고 있다. 소백산 초원에 자라는 풀꽃 가운데 노랑무늬붓꽃은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식물이다. 이곳 초원에는 이 식물이 멸종위기종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개체가 자라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의 노랑무늬붓꽃이 자라는 것으로 여겨진다.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와 만주에서만 자라는 희귀식물이며, 꽃을 5월 초순부터 볼 수 있다. 초원뿐만 아니라 숲속에도 귀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숲속에 사는 식물 가운데 이맘 때 꽃을 피우는 모데미풀은 세계적인 희귀종이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한라산에서 금강산까지의 높은 산에서만 자라는 한국 특산식물이다. 이런 희귀식물이 소백산에서는 매우 많은 개체가 자라고 있다. 높은 지대의 습기가 많은 숲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4월 중순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5월 초순이면 숲속을 온통 흰빛으로 물들인다. 소백산은 모데미풀이 가장 많이 자랄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분포영역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바로 이곳 소백산에서 모데미풀이 새로운 종으로 탄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백산에는 모데미풀 외에도 갈퀴현호색, 국화방망이, 꼬리진달래, 나도제비난, 너도바람꽃, 노각나무, 등대시호, 미치광이풀, 병풍쌈, 산마늘, 솔나리, 앉은부채, 왜솜다리, 자란초, 자주솜대 같은 귀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이맘 때 피어나는 개벼룩, 금강제비꽃, 나도옥잠화, 덩굴개별꽃, 두루미꽃, 애기괭이밥, 연령초, 피나물, 홀아비바람꽃 등도 소백산이 귀한 식물을 많이 키워 내고 있는 산임을 증명한다. 금강제비꽃은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돼 이름이 붙여진 한국 특산식물이다. 사는 장소를 보면 제비꽃종류 중에서는 까다로운 습성을 가진 듯한데, 높은 산의 비옥한 땅에서만 발견된다. 잎이 날 때 잎몸과 잎자루가 수직을 이루어 붙고, 잎몸의 양쪽 가장자리가 말려서 나오므로 다른 제비꽃들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꽃이 지고 난 후에 잎이 매우 크게 자라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특성이다. 귀부인 같은 자태를 자랑하는 연령초는 고지대 숲속에서 산다. 줄기가 두 개씩 붙어서 나오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두 포기의 서로 다른 덩이줄기가 땅속에서 마주 붙어서 자라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 포기가 딱 붙어서 자라는 것을 두고, 금실 좋은 부부의 모습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원스레 생긴 잎 가운데서 커다란 흰 꽃이 핀 모습이 아름다우므로, 산행 도중 숲속에서 갓 피어난 꽃을 만나면 반하지 않을 이가 없다. 돌려난 잎이 3장, 꽃의 꽃받침과 꽃잎이 각각 3장인 것도 특이하다. 백합과 식물로 북반구의 고위도 지방에서 볼 수 있다. 백두대간에 자리잡은 소백산은 산역이 넓고, 부드러운 산세가 특별한 산이다. 그곳에 뿌리 내리고 사는 식물들도 종류가 다양하고, 귀한 것들이 많아서 특별하다. 이번 소백산행에서는 철쭉꽃만 보는 꽃놀이에서 한 걸음 나아가, 숲속에 지천으로 피어난 모데미풀, 초원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노랑무늬붓꽃을 만나는 꽃산행을 해보면 좋겠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현진오의 꽃따라산따라] (8) 강원 화천 광덕산

    [현진오의 꽃따라산따라] (8) 강원 화천 광덕산

    광덕산은 한강의 북쪽을 따라 흐르는 산줄기인 한북정맥 위에 솟은 해발 1046m의 산이다. 강원도의 서북쪽 끝을 차지하며 강원도 철원군, 화천군과 경기도 포천군의 경계를 이룬다. 봄꽃이 많기로 이름난 곳이면서도 해발 600m에서 꽃산행을 시작하기 때문에 힘들지 않게 봄꽃 탐사를 할 수 있어 식물동호인들이 즐겨 찾는다. 포천군 이동에서 광덕고개를 넘어 강원도 화천군으로 들어서자마자 왼쪽으로 나 있는 골짜기 일대가 광덕산에서 봄꽃이 많이 자라는 지역이다. 정상의 동쪽 일대로서 행정구역으로는 화천군 사내면에 속한다. 이곳에는 삼각형 모양의 펑퍼짐하고 넓은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는데, 습기가 많고 땅도 기름져 봄꽃이 생육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나도양지꽃 등 60~70종 곳곳에 군락 광덕리 버스정류장에서 탐사를 시작해 골짜기를 따라 해발 900m 지점까지 올라가면서 꼴짜기 주변에 살고 있는 봄꽃들을 관찰하면 좋다. 출발하자마자 귀한 봄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데,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에도 길가 여기저기에 꿩의바람꽃, 나도양지꽃, 병꽃나무, 앉은부채, 회리바람꽃 같은 귀한 봄꽃들이 나타난다. 마을을 벗어나도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큰 길이 정상 쪽으로 계속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 골짜기가 끝이 날 때까지 올라가며 많은 꽃을 볼 수 있다. 나도양지꽃은 주로 강원도 이북의 높은 산에 자라는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양지꽃 종류들과는 달리 겹잎을 이루는 작은 잎이 다시 잘게 갈라지는 특징으로, 양지꽃들과는 서로 다른 속(屬)으로 구별한다. 북방계식물이기 때문에 방태산, 설악산, 태백산 등 강원도 높은 산에서는 곧잘 발견되지만 경기도 이남의 산에서는 매우 드물다. 출발하자마자 계곡 옆 길가에서 무리지어 나타나기 시작해 계곡 중간지점까지 올라가는 동안에 여러 곳에서 군락을 만날 수 있다. 광덕산에서 피는 봄꽃은 대략 60∼70여 종이다. 서울근교에서 봄꽃이 많기로 유명한 천마산이나 축령산에서 만날 수 있는 종류가 40∼50종쯤이니, 이곳에 훨씬 많은 봄식물이 자라고 있는 셈이다. 고깔제비꽃, 금강애기나리, 노랑제비꽃, 덩굴꽃마리, 만주바람꽃, 미치광이풀, 붉은병꽃나무, 붉은참반디, 산민들레, 선괭이눈, 얼레지, 연복초, 조팝나무, 족도리풀, 피나물, 큰괭이밥, 홀아비바람꽃, 회리바람꽃들이 때를 달리하며 골짜기마다 피어난다. 광덕산의 봄꽃 가운데는 금강애기나리, 금강제비꽃, 나도양지꽃, 모데미풀, 백작약, 애기금강제비꽃, 연령초처럼 수도권 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봄꽃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은 나도양지꽃처럼 북방계식물로서 강원도 등지의 높은 산에서 자라는 것들이다. 광덕산 식물 가운데는 유난히 북쪽에 고향을 둔 북방계식물이 많은 것은 광덕산이 위도 상으로 북쪽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북한 쪽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한북정맥이 북방계식물의 이동통로 역할을 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노랑미치광이풀 광덕산에만 서식 애기금강제비꽃은 전국을 통틀어서 생육지가 두 곳밖에 없는 귀한 식물이다. 광덕산과 설악산에서만 자생이 확인된 바 있는데, 일본에만 자라는 일본특산식물로 알려져 오다 불과 몇 해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설악산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자줏빛 꽃이 피는 고깔제비꽃과 잎 모양은 비슷하지만 흰 꽃이 피어 다르다. 광덕산에서만 발견되는 식물도 있다. 이곳에서 발견되어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기록된 이래, 아직까지 다른 곳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는 노랑미치광이풀이 그것이다. 세계적으로 오직 이곳 광덕산에만 자라는 식물이라 할 수 있는데, 검붉은 보랏빛 꽃이 피는 미치광이풀과는 달리 노란 꽃을 피우고, 잎과 줄기의 색깔도 미치광이풀에 비해서 연하다. 두 식물의 꽃빛깔을 합쳐 놓은 것 같은 색깔의 꽃을 피우는 개체들도 발견되므로, 이들을 서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광덕산은 물기가 많은 계곡 부근의 기름진 땅에서 봄꽃이 많이 자란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산이다. 대부분의 봄꽃들이 짧은 기간 동안에 피고 지는 것도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 봄철에 1∼2주 간격으로 찾아가 식물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해 보면 매우 빠르게 숲 속의 주인공들이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는 동안, 나도 모르는 새에 식물들이 보여주는 습성을 이해하게 되고, 생동감 넘치는 봄꽃들의 축제가 내 마음속에 스며들어 벅찬 감동이 되어 뭉클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동북아식물 연구소장
  • [여성 & 남성] 그녀와 그의 우울증 퇴치법

    “너무 우울해요. 어떻게 하죠?” 우울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친구나 연인끼리 우울증세를 상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자신만의 대처법을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 남자들은 주로 운동을 꼽았다. 컴퓨터 게임이나 드라마를 보는 ‘방콕족’도 많았다. 반면에 여자들은 주로 일기나 편지를 쓰거나 책을 읽으면서 우울증을 헤쳐갔다. 술은 우울증 해소에 큰 효과는 없다고 답했다.‘모든 마음병의 근원’이라는 우울증. 그와 그녀의 대처법을 들어봤다. 사건팀 kdlrudwn@seoul.co.kr ■ 여 “일기 쓰고 책 읽으며 마음 다스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죠” 주부 이모(29)씨는 얼마 전 첫아이를 출산했다. 귀여운 아들을 볼 때마다 사랑스럽긴 하지만 임신 전보다 15㎏이나 늘어난 몸무게 때문에 우울하다. 집안일은 많은데 아이가 보챌 땐 혼자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다. 남편에게 화를 내는 횟수도 늘었다. 남편은 혹시 산후 우울증이 아니냐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양육과 가사에 몰두했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한의원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저만의 퇴치법을 찾으려 했지만 안되더군요. 하지만 초기에 병원에 가길 잘했다는 생각히 들어요. 요즘은 아이가 울 때마다 화를 내기보다는 더 예뻐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회사원 박모(28·여)씨는 회사에서 존재감이 없어 우울하다. 동료들처럼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그는 술자리에서 “거기 있었어?”라는 소리를 들을 때 가장 우울하다. 문과 출신인 박씨는 화학 관련 회사에서 메인부서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내에는 그의 업무능력에 대한 평조차 별로 없다. 박씨는 “먼저 동료들에게 이런 상태를 상의하면 ‘넌 무난하니까 회사에 오래 다닐 거야.´라고 성의없이 답한다.”면서 “하지만 나에게는 ‘넌 개성이 없다. 고로 존재감도 없다.´는 말로 들린다.”고 말했다. 그는 주로 친한 몇몇 동료에게 같이 술을 마시자고 부탁한다. 그 결과 위장병만 얻었다. “저는 술을 마셔도 남들처럼 말이 많아지거나 주사를 부리지 않아요. 게다가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도 사람들이 말리지도 않아서 우울증 퇴치 효과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대학교 4학년생인 윤모(26·여)씨는 요즘 취업 걱정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내로라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는 대학 동기들을 보면서 우울증은 점점 심해진다. 그가 면접 때마다 듣는 질문은 “왜 이렇게 학교를 오래 다녔느냐.”는 것이다. 질문이 아니라 흠집을 말하는 듯한 면접관들의 태도에 더 우울해진다. 올해 상반기에만 10여곳에서 떨어졌다. 그녀의 극심한 우울증을 날려준 것은 가족의 힘이었다. 또다시 면접에서 떨어져 밤새 울고 부은 눈으로 학교를 가려고 나서는 길이었다. 윤씨의 어머니는 용돈이라며 흰 봉투 하나를 주셨다. 봉투에는 용돈 5만원과 “딸, 난 우리딸을 믿어. 넌 사랑스러운 딸이니까 잘할 거야. 힘내자.”라고 쓰인 편지가 들어 있었다.“편지와 5만원을 고이 접어 가방에 넣고 다녀요. 우울할 때면 편지를 꺼내서 읽으며 힘을 내죠.” ●“읽고 쓰고 하다 보면 우울증이 조금은 사라져요” 중학교 교사인 이모(31·여)씨는 가장 우울했던 시기로 2004년 8월 캐나다 밴쿠버로 연수갔을 때를 꼽았다. 그녀는 당시에 심한 향수병을 앓았다. 밤마다 찾아오는 향수병에 너무 우울해져 술도 많이 마셨다. 그녀는 “향수병에 술만 먹다가 알코올 중독이 된 후배 이야기를 듣고는 대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기에 온갖 슬픈 감정을 쏟아냈다. 가족의 이름을 펜이 부러질 정도로 하나씩 새겨 쓰고 ‘보고 싶다.´고 울먹였다. 그리고 한국의 많은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그렇게 3개월 정도 밤마다 감정을 쏟아내니 시원하더라고요.” 회사원 최모(28·여)씨는 요즘 회사 생활로 인한 우울증 때문에 탈무드를 꺼내들었다. 새로 부임한 상사 스타일이 너무 고압적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실수해도 상사는 그녀를 바보취급한다. 작은 실수에 소리를 지르는 건 다반사고 자존심까지 뭉갠다. 그는 상사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든다.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의욕마저 상실해가고 있다. 그래서 그녀가 택한 해결책은 탈무드를 읽는 것이다. 한달 새 그녀는 같은 책을 3번이나 읽었다. “현명한 사람들이 고난을 헤쳐가는 방식을 배우고 있어요. 절 괴롭히는 상사에게도 좀 현명해지시라고 선물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대학생 황모(23·여)씨는 토익점수 때문에 우울증을 앓고 있다. 그는 “남들은 이런 문제로 우울하냐고 비웃는데 절대 넘을 수 없는 한계를 느끼는 자괴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영문학도인 황씨는 지금도 매월 토익시험을 보고 있지만 700점대 점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황씨는 “내가 바보인가라는 질문을 수십번 했다.”면서 “취직하려면 900점대가 돼야 한다는데 답답해서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바보같이 이번달에 또 토익시험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더 슬프다.”고 덧붙였다. 이런 그의 대처법은 영어로 욕하기다. 소리칠 용기도 없어 황씨는 책이나 공책의 여백에 끄적거린다.“하지만 효과는 잠시 뿐이에요. 결국은 토익 점수 잘받는 것밖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어요.” ■ 남 “PC게임에 몰두하거나 운동 삼매경” ●“집안에서 뒹구는 게 최고” 케이블TV 방송국에서 PD로 일하는 유모(32)씨는 지난해 입사 시험에 떨어지고 애인이 떠나갈 때 우울증을 앓았다. 방송사 입사시험에서 수십번 떨어졌지만 긍정적인 유씨는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견디고 있었다. 한 언론사의 최종시험을 앞두고 있던 어느날 유씨는 평소 좋아하던 여자후배에게 용기를 내 사랑을 고백했다. 그 후배는 유씨가 최종 관문에 올랐다는 소식에 자기 일인 양 기뻐했다. 하지만 1주일 뒤 유씨는 떨어졌고, 기다렸다는 듯 여자후배는 이별을 통보했다. 그렇게, 짧은 사랑은 끝났다. 유씨의 우울증은 점점 심해졌다.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유씨는 “이러다가 정말 큰일나겠다 싶었다.”면서 “그녀의 배신을 잊기 위해 컴퓨터 게임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며칠간 게임만 한 뒤에야 유씨는 모든 것을 잊고 다시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회사원 박모(31)씨는 최근 ‘싱글 우울증’을 드라마로 이겨내고 있다. 박씨는 싱글을 탈출하기 위해 3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소개팅을 했다. 그러나 모두 퇴짜를 맞았다. 그는 “항상 집에서 가까운 서울 강남역 근처에서 소개팅을 하다 보니 상인들의 눈길을 받기도 한다.”면서 “지난주에는 부모님이 ‘넌 소개팅을 하라.´며 두 분만 일본여행을 가셨다.”고 말했다. 게다가 3월부터 밀려오는 청첩장은 그의 우울함을 부추긴다. 박씨는 “소개팅도 길어야 2시간인데 결혼적령기의 총각이 토요일 늦은 저녁과 일요일 온종일 애인도 없이 혼자 있는 것은 심각하게 우울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택한 대처법은 드라마보기다. 박씨는 ‘멍∼’하니 하루종일 TV만 본다고 말했다. “요즘은 주말에 하루 종일 드라마 전편을 연속 방영해 주거든요. 하지만 가끔은 드라마나 보는 내 신세가 더 우울하기도 해요.” 회사원 우모(31)씨는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전반적인 삶의 기조가 우울하다고 느낀다.4남매 중 막내로 살아 항상 형들에게 맞고 자랐고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 탓에 대학 땐 늘 쪼들렸다. 그 와중에도 밝음을 잃지 않으려 했지만 환경이 준 우울함은 혼자 있을 때 가끔 폐부를 찌른다. 이때 우씨가 택하는 방법은 잠을 청하는 것이다.“잠잘 때만은 모든 걸 잊고 죽은 듯이 뇌를 쉬게 할 수 있잖아요.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자고 일어나면 우울했던 걸 다 잊기도 한답니다.” ●“움직여야 우울증이 달아난다” 대학원생 최모(26)씨는 올해 2월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직전까지 가면서 우울증세를 앓았다. 부모의 부부싸움도 잦았다. 대학원 등록금 납부 마감일을 앞두고 최씨는 부모에게 학비 얘기를 어떻게 꺼낼지 고민스러웠다. 최씨는 “지금은 어느 정도 해결됐지만 그때는 정말 집에 들어가기만 해도 우울했다.”고 고백했다. 현실을 잊기 위해 최씨는 평소 좋아하던 테니스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테니스를 치면 스트레스가 풀리더라고요. 공을 힘껏 때릴 때의 느낌이 정말 통쾌하죠. 그 후에는 샤워하고 모든 것을 다 잊고 자는 거예요. 그러면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혈액형이 A형인 회사원 정모(30)씨는 평소 소심한 성격 때문에 반(半)우울증에 걸려서 산다. 남들이 정씨에게 장난을 걸어와도 마치 그게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들리고 집에서도 부모가 핀잔을 준 걸 마음 속에 상처로 간직한다. 그래도 회사에선 유능한 사원으로 평가받지만 그마저 늘 불안하다고 느낀다. 때문에 집에 돌아와 불을 끄고 침대 위에 앉아 있으면 온갖 우울한 기분이 다 스며든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이 늦든 말든 농구공을 들고 아파트 농구장으로 향하는 것. 림을 보며 공을 던지고, 마치 경기에서 스타가 된 것처럼 혼자 함성도 지르며 승리의 기분을 만끽하면 우울함은 어느새 사라진다. “제 성격을 아니까, 상상 속에서라도 게임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거죠. 가끔 농구를 즐기러 온 다른 사람들이 슬슬 피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게 저한텐 유일한 우울증 해소법인데 어떡하겠어요.” 회사원 홍모(32)씨도 스트레스가 쌓여 우울해질 땐 ‘포레스트 검프’처럼 무작정 뛴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리고, 일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을 때 그냥 집에 누워만 있으면 정말 우울증 환자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자신을 꾸짖던 상사의 얼굴만 떠오르고, 화가 나서 혼자 담배를 피워대던 상황이 그림처럼 반복된다. 그럴 때 집 근처 둑으로 나가 5㎞ 정도를 달리다 보면 심장은 벌떡벌떡 뛰고 머리가 텅 빈 상태가 된다. “뛰다 보면 숨쉬기도 바쁜데 우울할 틈이 없죠. 흠뻑 젖어 솜처럼 변한 몸이 됐을 때 샤워하면 고민도, 우울함도 싹 사라집니다.”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내 손목을 쥐여이다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내 손목을 쥐여이다

    신윤복의 그림 ‘손목’이다. 그림부터 꼼꼼하게 살펴보자. 장소는 으슥한 후원이다. 왜냐고? 오른 편에 허물어진 담장이 있지 아니한가. 담장 위에 풀까지 듬성듬성 자라 있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양반가의 으슥한 후원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양반가인가. 아낙네의 손을 잡아끄는 사내의 얼굴을 보자. 아직 수염도 안 자란 앳된 사내다. 그런데 사내는 사방관을 쓰고 있다. 지난번 ‘우물가의 사랑’에서도 말했지만, 사방관은 점잖은 양반네들이 주로 실내에서 쓰는 관이다. 집 주변은 쓰고 돌아다닐 수 있지만, 그렇다 해서 먼 곳으로 나들이할 때 쓰는 것은 아니다. 이 젊은 사내는 지금 후원 으슥한 곳에서 여자를 꼬드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는 누구인가. ●“봄의 생명력은 곧 성적인 힘이다” 여자의 신분 처지를 아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여자의 입성이다. 위에는 흰 저고리를, 아래는 푸른 치마를 입었다. 이 역시 앞의 ‘우물가의 사랑’에서 나온 옷차림이다. 삼회장은 어림도 없고 다만 고름만 자주색으로 했을 뿐이다. 여기에 신발을 보라. 짚신이 아닌가. 입성으로 보아 보잘것없는 양반가의 계집종인 것이다. 하기야 입성을 따지지 않아도 후원에서 남정네에게 손목을 잡힌 사람이라면 알 만하지 않은가. 아무리 간 큰 양반이라 해도 같은 양반 부녀자의 손목을 이렇게 거만한 얼굴로 덥석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여자는 앳되고 고운 얼굴이고, 손목을 잡히자 엉덩이를 뒤로 잔뜩 빼고 얼굴에는 수줍음이 가득하다. 손목을 잡는다는 것은 성적 행위의 시작을 알리는 징표다. 남녀의 사랑은 결국 성행위로 이어지기 마련인데, 그 단계는 어떤 동물보다도 복잡하다. 얼굴을 바라보고 눈을 맞추다가 손을 잡고 어깨에 손을 올리고 껴안고 가슴에 손을 대고, 그리고 최후로는 관계를 맺는다. 즉 손을 잡는 행위는 최후의 행위에 도달하기 위한 최초의 행위다. 말하자면 그것은 애정의 시작이요, 상징이다. 예컨대 이미 상대에게 익숙해진 연인들이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을 보라.‘우물가의 사랑’에서 소개했던 고려가요 ‘쌍화점’은 예외 없이 손목을 잡는 것으로 사랑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그 첫 부분을 모아서 읽어보자. 쌍화점에 쌍화 사러 가고신댄 회회아비 내 손목을 쥐여이다 삼장사에 불 혀러 가고신댄 그 절 사주 내 손목을 쥐여이다. 두레우물에 물을 길러 가곡신댄 우물 용이 내 손목을 쥐여이다 술 팔 집에 술을 사러 가고신댄 그 집 아비 내 손목을 쥐여이다 과연 사랑은 손목을 잡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다시 그림을 보자. 그림의 오른쪽 하단과 왼쪽에는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피우고 있다. 봄은 일시 죽었던 천지에 다시 생명의 기운을 돌게 하는 계절이다. 봄이 되면 처녀 총각이 바람이 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그림의 오른쪽 상단의 화제를 옮기면 이런 뜻이 된다.“빽빽한 잎사귀 푸른 빛을 쌓아가고/ 무성한 잎사귀에 붉은 꽃잎 조각조각 떨군다(密葉濃堆綠,繁枝碎剪紅)” 봄의 생명력은 곧 성적인 힘이다. 꽃은 식물의 성기다. 그런 고로 그림 속에 붉은 봄꽃을 그린 것은 성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신윤복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자, 이제 배롱나무 옆에 있는 거대한 괴석을 보자. 괴석을 정원에 두는 것은 오래된 풍습이지만, 이렇게 거대한 괴석은 쉽게 보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그림 속에서 괴석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크다. 거기다 괴석은 땅에 뿌리를 박고 위로 치솟아 있다. 직선으로 솟은 것이 아니고, 왼쪽 뿌리 부분이 옆으로 불룩 나와 있다. 그리고 괴석의 윗부분의 몸체는 무언가 흰 액체가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이 나게 그려 놓았다. 이미 눈치 챘겠지만, 이것은 남성의 성기다. 그렇다면 이 그림의 의미는 분명하다. 이 그림의 꽃과 괴석은 각각 여성과 남성의 성욕을 상징하는 것이다. ●서얼의 탄생을 알리는 그림 현실로 돌아오면, 양반 남성이 자기 집안의 계집종을 건드리는 것은 허다하게 있는 일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자란 그렇게 해서 나는 것이었다. 즉 양반 남성이 정식 아내가 아닌 양인의 여성과 관계하여 자식을 낳으면 서자가 되고, 만약 관청이나 사가의 여성과 관계하면 얼자가 된다. 그 둘을 합쳐서 서얼이라 한다. 조선시대의 무수한 서얼들은 바로 그렇게 세상에 나왔던 것이니, 이 장면은 바로 그 서얼의 탄생을 알리는 그림이기도 한 것이다. 양반들은 계집종을 건드리는 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성여학이 지은 ‘속어면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떤 선비가 계집종을 건드리는 데 능란했는데, 어느 날 아내에게 들키고 말았다. 선비는 계집종을 건드리고 그 흔적을 감추고자 하였으나,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오래된 친구에게 그 고충을 토로하였다. “한밤중에 종년을 덮치는 것보다 재미있는 것이 없지만, 마누라에게 들킬까봐 이게 가장 큰 걱정이야.” “묘한 방법이 있으니, 한 번 시험해 보지 그래.” “그래, 제발 좀 일러 주어.” “계집종을 건드리는 데 열 가지 격식이 있어. 첫째, 굶주린 범이 고깃덩이를 탐하는 격이니, 계집종을 건드리겠다는 마음을 먹는 단계지. 둘째, 해오라기가 물고기를 엿보는 격이니, 목을 빼고 계집종을 몰래 살피는 단계지. 셋째, 늙은 여우가 얼음 아래 물소리를 듣는 격이니, 마누라가 잠이 들었는가를 살피는 단계지. 넷째, 매미가 허물을 벗는 격인데, 이불 속에서 몸을 빼는 단계지. 다섯째는 영리한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격이니, 여러 방법으로 계집종을 희롱하는 단계지. 여섯째는 푸른 매가 꿩을 덮치는 격이니, 재빨리 계집종을 덮치는 단계지. 일곱째는 옥토끼가 약을 찧은 격이니, 그 환희의 순간을 형용하는 단계지. 여덟째는 용이 여의주를 토하는 격이니, 비유컨대 정(精)을 토하는 단계지. 아홉째는 소가 달을 보고 헐떡이는 격이니, 피곤하여 숨을 몰아쉬는 단계지. 열 번째는 지친 말이 집으로 돌아오는 격이니, 몰래 자기가 자던 방으로 돌아오는 단계지.” ●수신 교과서 ‘소학´은 남녀 분리 강조 다음날부터 선비는 이 방법을 써서 다시는 들키지 않았기에 마음속으로 무척 다행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다시 신윤복의 그림 ‘봄날’을 보자. 나뭇가지에는 연녹색 잎이 솟아나오고 있다. 그림 왼쪽의 남자와 여자를 보자.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은 철릭이다. 주로 무관이 입던 옷이니, 이 남자는 무반에 속한 양반으로 보인다. 여자는 짚신을 신고 앞치마를 두르고 봄날 나물을 캐러 갔으니, 양반이 아닌 계집종이거나 민간의 여염집 여자다. 그런데 웬일인가. 사내가 나물바구니에 슬쩍 손을 대고 있지 않은가. 사내의 얼굴을 보라. 벌겋다. 이 사내는 낮술에 취해 있다. 봄날 어디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가 아는 계집종(혹은 동네 여자)을 만났다. 캔 나물을 보자며 말을 붙이고 손을 바구니에 댄다. 여자가 해사하게 웃고 있으니 싫지 않은 눈치다. 이 둘은 이미 감정의 교환이 일어난 상태다. 남녀의 일은 이렇게 해서 시작된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철석같이 믿고 따랐던 수신교과서 ‘소학’은 남자와 여자의 분리를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물건을 건넬 때도 직접 주고받지 않는다. 남자가 물건을 내려놓고 가면 여자가 와서 그것을 집어가야 한다는 것이 ‘소학’의 주문이다. 한데 어떤가. 이 그림을 보면 양반은 후원에서 계집종의 손을 덥석 잡고, 낮에 술을 마시고 길거리에서 나물 뜯는 아낙네의 바구니에 손을 대면서 수작을 건다. 어떤 것이 양반의 리얼리티인가.‘소학’의 지시를 따라 사는 것이 양반의 실제 모습의 한 축이라면, 그 축이 배제했던 욕망의 지시대로 사는 것도 한 축이다. 다만 나는 후자가 보다 인간의 모습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 도덕은 사라질 수 있지만, 인간의 욕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그것을 말하고 있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100% 한국산 로켓의 꿈이 영글어간다

    100% 한국산 로켓의 꿈이 영글어간다

    |모스크바 박건형특파원|올 연말 남도에서 바이코누르의 감동이 재현된다.12월 전남 고흥 외나로도에 위치한 나로우주센터에서 국내 연구진과 러시아가 함께 개발한 최초의 발사체 ‘KSLV-1’(Korea Space Launch Vehicle-1)이 과학기술위성 2호를 싣고 발사된다.KSLV-1이 성공적으로 발사되면 한국은 러시아, 미국, 프랑스, 일본, 중국, 영국, 인도,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9번째로 위성자력발사 능력을 갖춘 ‘스페이스 클럽’에 가입하게 된다. ●올 12월 나로우주센터서 발사 계획 KSLV-1은 상단부와 하단부로 나뉘어 각각 한국의 항공우주연구원과 러시아의 ‘흐루니체프’사가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국내에서 맡은 KSLV-1의 상단부는 지난 4월초 개발이 완료돼 시험 단계에 들어갔다. 오는 7월 흐루니체프에서 지상시험용 로켓엔진(Ground Test Vehicle)을 인도받은 후 10월이면 비행용 엔진까지 도착한다. 이어 12월까지 테스트를 마치면 발사준비가 완료된다. 지난 9일 박종구 교육과학기술부 2차관, 백홍렬 항공우주연구원장 등 한국 대표단과 함께 러시아측 진행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모스크바 외곽에 자리잡은 흐루니체프사를 찾았다. 국영기업인 흐루니체프사 역시 러시아의 다른 우주관련 시설과 마찬가지로 방문 45일 이전에 명단을 통보해야 출입이 가능할 정도로 철저하게 통제되는 곳이다. 마중을 나온 흐루니체프사 블라디미르 네스체로프 사장 등 6명의 경영진은 시종일관 웃음을 띠며 공장 내부를 안내했지만, 계약금액 등 일부 문제에 있어서는 양측간에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기도 했다. 네스체로프 사장은 공장견학에 앞서 “루블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계약금액의 15% 정도를 손해보고 있다.”면서 “한국측이 이같은 손실을 최소화하도록 도와달라.”고 밝혔다. 국제 계약 관례상 어처구니가 없는 발언이었지만 흐루니체프측은 절실한 모습이었다. 이에 대해 백 원장은 “어려움을 잘 알고 있지만, 확정금액 계약이었고 항우연도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기관인 만큼 도움을 줄 수 없다.”면서 “이 문제는 장기적인 협력관계 구축으로 풀어가자.”면서 조심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한국과 러시아는 KSLV-1 사업을 추진하면서 달러로 계약을 맺었고, 이 때문에 달러 가치가 상승할 때는 한국 내에서 환차손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백 원장은 “현재 루블의 대달러 가치가 급상승하고 있어 실제 러시아측의 손해는 15%를 훨씬 넘을 것”이라고 밝혔다. ●핵심 엔진기술 러시아가 극도 보안 지켜 흐루니체프사 공장은 바이코누르 및 모스크바 임무센터(MCC) 등 대부분의 러시아 우주시설과 마찬가지로 낮고 허름한 건물들로 이어져 있다. 본사 공장은 높이 40m에 길이는 무려 1.5㎞에 달하는 하나의 통건물로 이뤄져 있다. 흐루니체프측은 “본사 공장은 모스크바에서 단일 건물로는 가장 긴 규모”라며 “비슷한 규모의 공장이 러시아 전역에 걸쳐 몇 개 더 있다.”고 밝혔다. 공장 내부에는 라인 왼쪽에 KSLV-1호 관련 조립이 진행되고 있으며 중심부에는 구소련의 우주정거장 미르 실물모형이 전시돼 있었다. 오른쪽에서는 흐루니체프의 차세대 로켓인 ‘앙가라’와 국제우주정거장(ISS)의 러시아 모듈 ‘자르야’의 개량 모델, 대형 위성 발사체 ‘프로톤 M’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현재 제작 중인 ‘프로톤 M’은 인도에서 위성 발사를 위해 주문한 것으로 세계 최초의 액체 산소·수소 로켓이다.1965년부터 운용된 프로톤은 현재까지 300회 이상 발사됐으며 50회 이상 성공적으로 위성을 궤도에 올려놨다. 앙가라는 2010년쯤 첫 발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성공할 경우 1965년 이후 가장 획기적으로 발전한 로켓이 탄생하게 된다.KSLV-1 라인에는 가장 왼쪽에 검정색 연료 및 산화제 탱크가 자리잡고 있었다. 가운데에는 지상시험용 로켓엔진(GTV), 오른쪽에는 연소시험용 하드웨어 로켓 상단부(페어링)를 조립 중이다.GTV 연료탱크는 발사 전 가득 채우면 130t 분량이 들어간다. GTV 로켓 엔진부분은 철저히 비공개로 조립된다. 공장 내부에서도 흰 천으로 둘러싸여 극히 일부 관계자만 접근할 수 있다. 수십m에 달하는 발사체 중, 로켓 엔진부분은 채 1m가 되지 않는다. 백 원장은 “한국이 로켓 발사체를 모두 우리 기술로 만들기 위해서는 저 엔진 부분이 관건”이라며 “엔진을 살 수만 있다면 우리도 그대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의 기술력이 있지만, 핵심인 만큼 아무에게도 팔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로켓 엔진 부분은 흐루니체프도 자체 제작하지 않고, 자회사인 에네르고마시에서 공급받는다. 흐루니체프 관계자는 “엔진을 제작할 수 있는 부분은 보다 확실한 보안을 위해 별도 자회사로 설립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흐루니체프측은 ISS에 추가하기 위해 제작 중인 ‘자르야’ 개량 모델에 한국측의 참여를 요청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정경택 과장은 “러시아측이 한국의 ISS 공동참여를 바라고 있지만, 이는 돈이 목적인 만큼 아직까지 받아들일 계획이 없다.”면서 “일본이 ‘기보’ 모듈에 5조원을 투입했고, 앞으로 5조원이 추가로 들어가는데 이같은 금액을 한국이 감당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 과장은 “우주실험의 경우 얼마 안 되는 금액을 지급하는 것만으로 대행할 수 있는 만큼 당분간은 이같은 방식을 이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kitsch@seoul.co.kr ■용어클릭 ●KSLV-1 사업 ‘한국 기술력으로 한국 땅에서 로켓을 쏜다.’는 목표로 지난 2002년부터 추진됐다.2009년까지 5025억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한국의 항공우주연구원과 러시아 국영기업 흐루니체프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최종 목표는 100㎏급 소형위성을 지구저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올 12월 나로우주센터에서 과학기술위성 2호를 싣고 발사된다. 한국과 러시아 공동으로 발사체 시스템 설계가 이뤄졌으며 2단으로 구성된 로켓 중 상단은 한국에서, 하단부와 엔진은 흐루니체프가 각각 담당하고 있다. ■흐루니체프社 네스체로프 사장 인터뷰 “한국, 몇년내 우주강국 될 것” |모스크바 박건형특파원|“30여년간 우주개발 분야에 몸담은 사람의 입장에서 최근 몇 년간 한국의 성장속도를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주개발의 성장속도에 관한 올림픽 종목이 있다면, 한국은 올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분명 금메달을 딸 겁니다. 이런 종목이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입니다.” 흐루니체프를 이끌고 있는 블라디미르 네스체로프(59) 사장은 모스크바 본사를 방문한 한국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몇 년 내에 명실상부한 우주강국의 위치에 오를 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러 우주협력에서 흐루니체프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일정에 맞춰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1978년 러시아 연방우주군에 입대하면서 우주산업과 관련을 맺은 네스체로프 사장은 1992년부터 항공우주청에서 궤도 투입 및 지상인프라구축 담당 부국장과 국장을 역임했으며 2005년 11월 흐루니체프 사장으로 임명됐다. 러시아연방상과, 붉은 별, 조국발전상 메달을 수상한 러시아 우주산업 분야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네스체로프 사장은 “KSLV-1 사업은 한국의 첫 번째 발사체인 만큼 절대 실패가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로켓 기술은 자동차나 항공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한 분야이고, 우리는 그동안의 노하우를 총동원해 나타날 수 있는 문제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어떤 나라도 첫 번째 발사체를 성공적으로 쏜 사례가 없다.”면서 “한국이 첫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흐루니체프사는 KSLV-1 사업에 흐루니체프사의 차세대 로켓인 ‘앙가라’ 기술이 일부 적용됐다는 점에 높은 기대를 걸고 있다. 앙가라의 하단부 1단은 KSLV-1 1단에 그대로 적용된다. 네스체로프 사장은 “올 연말 KSLV-1이 성공적으로 발사된다면 인도나 중국 등 로켓에 관심을 갖고 있는 수많은 나라들이 앙가라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서 “이는 흐루니체프가 1965년 프로톤을 개발한 이후 로켓 분야에 있어 가장 획기적인 변화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kitsch@seoul.co.kr ■흐루니체프는 국제우주정거장 프로젝트 주도 흐루니체프는 1916년 1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가 항공우주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설립한 ‘루소-발트’ 공장이 모태다.1951년 발사체 설계를 전담하는 설계국 ‘살륫’이 설립됐고,1959년부터 1993년까지 대형로켓 ‘프로톤’과 우주정거장 ‘살륫’,‘미르’ 등을 제작하는 등 우주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1993년 ‘루소-발트’와 ‘살륫’을 합병해 흐루니체프가 설립됐고, 이후 유럽, 인도, 한국 등과 협력관계를 구축하며 본격적인 외화벌이에 나서고 있다. 특히 즈베즈다 후속 모듈을 개발하는 등 2010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중인 국제우주정거장(ISS) 프로젝트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개발한 프로톤의 개량 모델 ‘프로톤M’은 ISS로 가장 많은 화물을 실어나르고 있으며 전세계 국가들의 위성 발사를 상당수 대행하고 있다. 반면 소유스호 개발사인 에네르기아사는 유인우주선 분야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역할이 분화돼 있다. 국영기업으로 요직은 모두 러시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러시아 전역에 걸쳐 367만 7000㎡(110만여평) 규모의 공장과 발사대를 보유하고 있다. 연간 예산은 15억달러, 직원수는 3만 5000명에 달하는 초대형 기업이다.
  • 전직 지자체장 프리미엄?

    전직 지자체장 프리미엄?

    ‘4·9 총선’에서 자치단체장을 지낸 후보가 대거 금배지를 달았다. 부산에서는 전직 기초단체장 출신 3명이 모두 당선됐다. 이들은 한나라당 텃밭인 부산에서 친박연대 또는 무소속 연대로 출마해 당선, 자치단체장 출신의 경쟁력을 입증했다. 연제구에서는 민선 구청장 3선을 지낸 박대해(친박연대) 당선자가 구청장 재직시 죽음의 하천이었던 온천천을 생태하천으로 되살리는 등 추진력을 보여 지지를 이끌어 냈다는 평가다. 동래구에서 한나라당 오세경 후보와 맞붙어 승리한 ‘친박 무소속연대’의 이진복 당선자는 동래구청장을 지냈다. 이 당선자는 구청장 때 점퍼 차림과 흰 운동화를 신고 현장을 누벼 ‘운동화 청장’이란 애칭을 얻었다. 수영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유재중(친박 무소속연대) 당선자도 수영구청장을 두차례나 지냈다. 전북 전주 덕진구에서는 전북도의원과 무주군수 3선을 지낸 김세웅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무주군수 때 태권도공원과 기업도시 유치 등 추진력을 보인 것이 지지를 받았다는 평가다. 전북 정읍시에서도 무소속 유성엽 전 정읍시장이 당선됐다. 인지도와 조직면에서 앞선 유 당선자는 6선의 김원기 전 국회의장 후계자인 기자 출신 장기철 민주당 후보를 여유있게 따돌렸다. 주승용 전 여수시장은 여수을에서 재선에 무난히 성공했다. 주 당선자는 여천군에서 민선 도의원을 시작으로 민선 여천군수, 초대 통합여수시장을 거치는 동안 내리 무소속으로 나서 당선됐다. 광역지자체 부단체장 출신들도 금배지를 달았다. 이들은 ‘부 단체장 자리를 총선 출마용 경력관리 자리로 여긴다.’며 중도 사퇴 후 출마에 따가운 비판을 받아 왔다. 경북 김천시에서는 이철우 전 경북도 정무부지사가 김천시장 3선 관록의 박팔용 후보를 물리쳤다. 전남 해남·완도·진도에서는 김영록 전 전남도 행정부지사가 지난 1월 공직을 사퇴,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당 후보를 여유있게 누르고 당선됐다. 그러나 제주 서귀포시에서는 민선 관선 남제주군수, 민선 서귀포 시장을 지낸 한나라당 강상주 후보가 민주당 김재윤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울산 울주군에서도 남구청장 재선 경력의 이채익 후보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으나 울주군 출신인 무소속 강길부 현 의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영남대 이용호 교수(법학과)는 “재선,3선을 거치면서 쌓은 높은 인지도와 주민 접촉 등 평소 텃밭을 꾸준히 일군 것이 풀뿌리 출신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전국종합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송파 “장애인이 행복한 도시로”

    송파구가 ‘장애인이 살기 좋은 도시’를 공언하고 나섰다. 송파구는 10일 ‘장애인의 날’(20일) 주제를 ‘공감(共感)’으로 삼고 다양한 장애인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최근 서울시가 2011년에 완공되는 송파구 문정지구를 ‘무장애 1등급 도시’로 만들기로 한 데 발맞춘 조치이다. 우선 공공시설에 장애인 관람석을 지정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장애인 관람석 지정 설치·운영 조례는 ‘각 공연장 등의 관람석 수의 100분의 1 이상을 장애인을 위한 최적 관람석으로 지정하고, 장애인의 좌석선택권 보장을 위해 위치를 다양하게 배치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송파구민회관(8석), 송파여성문화회관(5석), 청소년수련관(3석), 서울놀이마당(18석) 등 지역 공공시설 공연장에 장애인석을 마련한다. 15일에는 김영순 구청장과 간부들이 장애인 체험을 한다. 장애인 시설의 올바른 설치와 관리를 유도하기 위해서다.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다니는 지체장애 체험, 눈을 가리고 흰 지팡이를 사용해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각장애 체험을 할 예정이다. 장소는 구청 광장→KT 앞→석촌호수 동호 입구 주변으로, 체험 후 설문지를 작성해 정책에 반영할 방침이다. 또 16∼19일에는 송파구민회관, 성내천 물빛광장에서 ‘송파장애인축제’를 펼친다. 장애를 극복하고 장애인 체육·수화 통역 발전을 위해 노력한 개인과 단체에 표창할 예정이다.16∼17일에는 송파구민회관에서 송파장애인인권부모회와 방산고 특수반 학생 20여명이 직접 음료과 쿠키를 제공하는 일일카페를 연다. 이밖에 초·중·고등학교 등을 대상으로 한 장애체험 현장교육반을 연중 내내 운영하고, 장애인의 건전한 여가 활용을 위해 축구, 게이트볼, 배드민턴 등 7개 종목에 대한 장애인 생활체육교실을 개설할 계획이다. 김 구청장은 “연례행사식 장애인 축제를 지양하고, 일년 내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 가는 공간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오늘의 눈] 황야에서 우주를 꿈꾸다/박건형 미래생활부 기자

    [오늘의 눈] 황야에서 우주를 꿈꾸다/박건형 미래생활부 기자

    한국 최초의 우주인 탄생을 지켜보기 위해 찾은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누르는 끝없이 펼쳐진 황야에 자리잡고 있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인데도 좀처럼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막 고개를 들기 시작한 풀들은 황토사막에 묻혀 존재조차 확인키 어렵다. 바이코누르는 ‘역사의 도시’다.1957년 10월4일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됐고,1961년 4월12일에는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호를 타고 우주를 다녀왔던 곳이다. 도시 곳곳마다 스푸트니크 1호의 모형을 비롯해 각종 우주선과 로켓이 전시돼 있다. 건물 벽엔 가가린과 최초의 여성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슈코바의 대형 벽화가 걸려 있다. 언제 우주를 호령했느냐는 듯 지금은 매우 낡고 녹슬었지만, 한때 옛 소련인의 꿈과 영화를 안고 날아올랐던 위엄만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50년 가까이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지 않아 조금은 퀴퀴한 냄새를 풍기지만, 바이코누르는 여전히 진행 중인 ‘미래의 도시’였다. 해마다 두차례 이상 국제우주정거장(ISS)을 향해 소유스호가 발사되고, 수많은 우주인들이 탄생한다. 우주왕복선의 잇단 실패로 지난 20여년간 미국의 우주산업이 침체기를 맞은 것과 대조적이다. 가가린은 바이코누르를 출발하기 전날 밤 서부영화 ‘사막의 흰 태양’을 관람했다고 한다. 광활한 서부를 호령하던 카우보이를 보면서 미지의 우주로 떠나는 자신의 모습을 느꼈는지 모른다. 러시아인의 자랑인 바이코누르는 이제 한국인들에게도 두고두고 기억될 역사의 한 장소가 됐다.“대한민국과 함께 우주로 가겠다.”고 했던 이소연씨의 다짐과 함께 말이다. 대한민국의 우주개척시대는 이제 시작이다.40년 이상 늦었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40년은 우주를 개척하기에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고, 우리가 알아가야 할 우주는 무한하기 때문이다. 바이코누르(카자흐스탄)에서 박건형 미래생활부 기자 kitsch@seoul.co.kr
  • 우주 향한 ‘한국의 날’ 밝았다

    |바이코누르(카자흐스탄) 박건형특파원|“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의 꿈을 안고 우주에 왔노라고 말하고 싶다.” 소유스호 발사를 하루 앞둔 7일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내 우주인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30)씨는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또 “남북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이번 비행을 보며 북한 어린이들도 꿈과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개인으로서 비행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첫 우주인으로서 국민과 함께 우주로 갈 것이다.”라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우주를 향한 ‘한국의 날’이 밝았다.8일 오후 8시16분27초, 이소연씨가 우주를 향해 마침내 날아오른다.2006년 4월 우주인 후보 접수를 시작한 지 2년 만이다. 기자회견장에는 러시아의 ‘우주영웅’ 알렉산드르 볼코프의 아들이자 이번 비행의 선장인 세르게이 볼코프(35), 비행 엔지니어인 올레그 코노넨코(44), 예비우주인 고산(32)씨가 동석했다. 이씨는 기자회견에서 “성공적인 발사를 기대하며 비행 뒤에는 한국 우주항공산업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주정거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와우’라고 소리칠 것 같다. 우주에 가족, 친구는 물론 고산씨와 우주인 지원자들 사진을 가져간다.”고 덧붙였다.‘여성이라 불편하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나는 여성이 아닌 전문 우주인”이라고 일축했다. 이씨는 또 “인류 최초의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이 우주비행에 성공한 12일 한국음식으로 우주정거장에서 만찬을 열 것”이라며 “그 날 노래도 부를 생각이지만 제목은 아직 비밀”이라고도 밝혔다. 공식 기자회견에는 한국과 러시아는 물론 AP,AFP 등 100명이 넘는 외신기자들이 몰렸다. 이씨는 인터뷰 직후 관례에 따라 ‘사막의 흰 태양’이라는 영화를 관람했다.1961년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호를 타고 우주로 떠나기 전날 관람했다는 서부영화다. 한편 고산씨는 이씨가 소유스에 탑승하는 발사 2시간 전까지 교체우주인으로서 임무를 다한다. 길이 51.3m, 무게 310t의 소유스호는 전날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발사대에 세워져 마지막 성능 테스트를 마쳤다. 이씨가 우주공간에서 33회 지구를 선회하며 벌일 실험장비와 개인 물품도 모두 실렸다. 예정대로라면 10일 오후 8시 국제우주정거장(ISS)과 도킹한 뒤 18가지 실험과 화상연결을 시도하고 19일 오후 3시52분에 카자흐스탄 북부 초원지대로 귀환한다. 귀환 때는 ISS에 머물던 미국 여성 우주인 페기 왓슨, 러시아 우주인 유리 말렌첸코가 동행한다. kitsch@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3) 봄날의 과부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3) 봄날의 과부

    신윤복의 그림 ‘봄날의 과부’처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그림을 기법 차원에서만 독해한다면 그림을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다. 사실 이 그림은 사회사적 독해를 요한다. 먼저 그림부터 꼼꼼히 챙겨 보자. 이 그림이 만들어내고 있는 공간. 기와를 얹은 담장이 에워싸고 있는 마당이다. 담장은 장방형의 돌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기와를 덮었으니, 예사 집이 아니다. 권세 깨나 있고 돈 좀 주무르는 그런 집안이 분명하다. 그림 왼쪽 상단에는 담장 너머 흰 꽃, 붉은 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다. 배나무 꽃인가, 벚나무 꽃인가, 배롱나무 꽃인가. 어쨌든 좋다. 이런 꽃으로 계절이 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의 짝짓기 그림에 담은 신윤복의 파천황적 발상 봄은 생명의 계절이고, 생식의 계절이다. 곧 봄은 생명을 잉태하는 계절인 것이다. 하여 그림 아래 부분의 마당에서 개 두 마리가 짝짓기를 하고 있다. 그림에 개의 짝짓기라니, 조선시대에 신윤복이 아니면 불가능한 파천황적인 발상이다. 한데 짝짓기를 하는 것은 개만이 아니다. 개로부터 시선을 조금 위로 올려보면 참새 두 마리가 짝짓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또 그 위로 참새 한 마리가 더 있어 파닥거린다. 바야흐로 봄은 짝짓기의 계절인 것이다. 식물의 꽃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식물의 성기가 아닌가. 꽃이 피고 수정이 되어 열매를 맺는 것은 식물의 짝짓기 행위다. 생명력이 충만한 봄은 어디서 왔는가. 당연히 담장 밖에서 왔다. 담장을 넘어오는 붉고 푸른 꽃이야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봄은 개구멍에서도 온다. 개 두 마리는 바로 담장 아래의 개구멍으로 들어온 것이다. 참새들이야 저 허공을 통해서 왔을 터이고. 그런데 담장 안은 어떤가. 이제 시선을 오른쪽 두 여인네로 옮겨보자. 두 여자는 비스듬히 누운 나무에 기대어 서 있다. 그런데 그 나무가 문제다. 나무는 소나무로되, 이미 꺾어진 소나무고, 살아 있다는 증거는 아래쪽의 빈약한 잎을 단 가지 둘뿐이다. 소나무는 죽어가고 있다. 집 밖은 생명력이 충만한 봄인데, 여기 돌담 안의 집은 죽어가고 있는 풍경이다. 이제 여자 둘을 보자. 오른쪽 여자는 삼회장저고리를 제대로 차려 입고 있고, 머리를 길게 땋아 댕기를 묶고 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귀한 집의 규수다. 왼쪽 여자는? 구름 같은 가체를 올리고 있는데, 옷은 모두 흰색, 즉 소복이다. 이 여자는 결혼을 한 여자이고, 또 상중에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남편이 죽은 여인이다. 왜 신윤복은 과부를 그림에 배치했는가 궁금하다. 여자 둘의 시선은 개의 짝짓기에 가 있다. 그런데 둘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처녀의 표정은 쌀쌀맞고 차갑고 무심하다. 하지만 과부는 배시시 웃는다. 무언가를 안다는 눈치다. 과부의 웃음에 신윤복의 의도가 있다. 신윤복은 과부의 소외된 성욕을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성적 욕망 철저히 억압한 가부장제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여성은 젊어서 남편이 사망했을 경우, 재혼, 곧 개가의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고려시대에는 남편이 죽어도 여성은 개가, 삼가(三嫁)할 수 있었고 이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선 건국 이후 성리학의 가부장적 윤리관은 여성의 재혼을 윤리적 타락으로 규정했다. 성종 때 ‘경국대전’의 편찬을 완료하면서, 남성의 가부장제는 마침내 법으로 여성이 개가해서 낳은 자식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좋은 벼슬자리를 얻을 수 없도록 제한하였다. 이런 판국이었으니, 양반가의 여성은 사실상 재혼의 길이 막혔던 것이다. 이런 조치와 함께 남성의 가부장제는 남편이 죽고도 재혼하지 않은 여성을 절부(節婦)라 부르고, 남편을 위해 자기 신체를 자해하거나, 대신 죽거나, 남편이 죽었을 때 즉시 따라죽은 여성을 열녀라고 불러 정문을 내리는 등 사회적 명예를 부여하였다. 이런 정책이 강하게 추진되어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여성의 수절은 양반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퍼졌다. 양반 상인 할 것 없이 남편이 죽으면 예사로 수절하였고, 남편을 따라 목숨을 끊는 경우가 속출하였다. 신윤복의 이 그림은 이런 사회적 배경을 깔고 있는 것이다. 젊은 여성이 수절할 경우 그 내면의 성욕을 처리할 방법이 묘연하였다. 조선조의 가부장제는 여성의 성을 출산과 쾌락으로 분리하고, 후자를 음란함으로 규정하였다. 따라서 남편이 죽은 뒤 홀로 남은 여성의 성은 출산이 배제된 성이기에 쾌락만이 남았고, 그것은 자동적으로 음란함이 되었다. 홀로 된 여성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 발설할 수가 없었으니, 이것은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가한 가장 큰 폭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남성은 이와는 반대로 아내가 죽으면 속현(續絃)이란 그럴 듯한 말로 재혼을 할 수 있었고, 기생제도와 축첩제도 등을 통해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성적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사실 개가를 금지하는 것은, 한 남성이 자신이 죽은 뒤에까지 여성의 성을 독점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곧 조선의 가부장제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억압하고, 남성의 성적 욕망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욕은 사라지지 않고 다만 변형될 뿐 가부장제가 아무리 여성의 성욕을 억압하는 담론을 유포해도 여성의 성욕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성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변형될 뿐이다. 박지원의 ‘열녀함양박씨전’의 서문은 한평생 밤이면 동전을 굴리면서 지새운 과부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과부는 이렇게 말한다.“무릇 사람의 혈기는 음양에 근본을 두고 있고, 정욕은 혈기에 모이며, 생각은 고독한 가운데서 생겨나고, 아프고 슬픈 감정은 생각하는 데서 우러나겠지. 혈기가 때로 왕성하면 어찌 가부라고 정욕이 없겠느냐? 가물거리는 호롱불 아래 그림자를 조문(弔問)하며 외로운 밤 지새기가 괴롭고, 게다가 처마에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든지 창에 달빛이 환히 들어올 때, 오동잎 하나 뜰에 날리고, 외기러기는 하늘에서 울고 가고, 멀리 닭의 울음소리 들리지 않고, 어린 종년은 쿨쿨 코를 고는데 혼자 잠 못 이루는 이 고충을 누구에게 하소연하겠느냐?” 어떤가. 과부의 성욕을 억압하는 것이 어떤 형벌인지 짐작이 가는가. 양반가의 이 여인은 자신의 성욕을 억압하는 데 성공했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았고 별의별 일이 다 벌어졌다. 조선후기의 문헌인 ‘기문’이란 책에는 과부의 이야기가 둘 실려 있는데, 매우 흥미롭다. 한 과부가 계집종을 데리고 수절하며 사는데, 계집종 역시 남편을 잃고 수절하였다. 어느 날 동네에 송이버섯 장수가 왔다. 과부는 송이버섯이 남성의 성기와 같이 생긴 것을 보고는 계집종을 시켜 값을 따지지 않고 모두 사오게 하였다. 용도야 뻔하다. 두 여자는 송이를 ‘덕거동’이라 부르고 욕망이 솟을 때마다 덕거동으로 욕망을 달랬다. 이야기는 이어지지만 여기서 멈추자. 또 다른 이야기 역시 과부의 것이다. 어느 날 과부가 이웃에 사는 기생이 잘 생긴 사내와 온갖 성희(性戱)를 즐기는 것을 보고 치솟아 오르는 욕망을 누를 길이 없어 집으로 돌아와 자위 행위에 빠진다. 이게 너무 심하여 마침내 말을 못하게 되었다. 이웃에 사는 할미가 무슨 일로 찾아왔다가 여자가 벙어리가 된 것을 보고는 한글로 필담을 한 끝에 자초지종을 알아내고는 동네의 장가를 들지 못한 사내를 불러와 짝을 맺어준다. 사내와 한바탕 거창한 방사를 치른 후 과부는 다시 말을 하게 되었다. 적지 않게 전하는 이런 이야기의 존재는 과부의 성적 욕망이 은폐될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조선의 가부장제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억압하고 은폐하는 데 성공했을 뿐, 그 내면의 욕망을 소멸시킬 수는 없었다. 신윤복의 그림은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소복을 입은 과부가 개의 짝짓기를 보고 배시시 웃는 그 장면은 그 젊은 과부의 내부에도 성적 욕망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이야말로 조선시대 최고의 그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이 같은 신윤복의 그림을 베낀 모방작도 더러 남아 있다. 신윤복의 그림의 영향력이 대단했던 것이다. 물론 수준은 원작에 한참 못 미친다. 작자 미상의 ‘봄날의 과부 모방작’만 해도 전반적으로 필치가 원작에 비해 자연스럽지 못하고, 개의 짝짓기 장면이 아주 천박하게 느껴지는 등 전반적인 수준이 확연히 떨어짐을 알 수 있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큰어머니의 손

    큰어머니는 자식을 낳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 어머니는 꽃다운 나이에 무슨 상처로 아버지의 작은댁으로 오게 되었던 것일까. 그렇게 우리 육 남매는 태어나보니 어머니가 두 분이었다. 내 어머니는 큰언니 진학을 위해 중학교가 있는 마을로 나가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다. 올망졸망 어린 것들은 아버지와 큰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산더미 같은 빨래를 하고 나면 큰어머니는 뻑뻑한 무릎을 펴지 못하셨다. 겨울에 시린 손끝은 언제나 빨갰고, 봄엔 가뭄에 논 갈라지듯 툭툭 다 터져 있었다. 그럴 때마다 손가락 마디마디 감겨 있던 흰 반창고. 끝없는 농사일과 집안일, 어린것들 뒤치다꺼리에 손은 더 두껍고 딱딱해졌고, 거스러미가 일지 않은 데가 없었다. 큰어머니는 알갱이를 다 따낸 옥수수 속대처럼 깔끄러운 손으로 우리 등을 자주 긁어주셨다. 거친 손은 아랑곳않고 우리는 그저 시원해서 좋았다. 운동회 때다. 큰어머니는 쪽진 머리에 무슨 일이 있을 때면 한복을 입으셨다. 점심도 김밥 대신 깻잎 장아찌나 도라지 무침, 고사리 같은 걸 싸오셨다. 그게 싫어서 엉뚱한 핑계로 내가 심통을 부리면 달래느라 쩔쩔매셨다. 큰어머니의 품은 어미 새처럼 따뜻하기만 했건만 그땐 그걸 몰랐다. 한시도 손을 못 놓고 사시더니 57세에 뇌졸중으로 말이 어눌해지셨다. 잠시 일어나시는 듯했지만 병이 재발해 겨우 화장실 출입만 하시다 67세에 돌아가셨다. 우리들은 회한에 오열했지만, 아버지는 화난 사람처럼 잔뜩 인상만 쓰고 계셨다. 가까스로 눈물을 참고 계셨던 거다. 목욕을 시킬 때면 마지막으로 한 대 철석 때리는 것으로 마무리하시던 손, 겨울 새벽녘 구들장 온기가 식을세라 아궁이 가득 불을 지피고 들어와 목까지 이불을 덮어주시던 손, 봉숭아물을 들여주시던 늦여름 삭은 나무 등걸 같은 그 손이 너무 그립다. 그리고 홀로 억장 무너져 내렸을 그분의 삶에 가슴이 저민다. 다시 뵐 수만 있다면 이젠 내가 등을 긁어드리고 싶은데…. 그러나 마흔의 큰어머니 손처럼 시원하게 긁으려면 아마 수년은 더 찢기고 금 가야 할 것이다. 원채남 _ 엄마로, 아내로만 살아오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 중랑 문학대학에서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글을 쓰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고 합니다. 딸아이를 재우고 늦은 밤 책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봄/이윤학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봄/이윤학

    봄/이윤학 흰 나비가 바위에 앉는다 천천히 날개를 얹는다 누가 바위 속에 있는가 다시 만날 수 없는 누군가 바위 속에 있는가 바위에 붙어 바위의 무늬가 되려 하는가 그의 몸에 붙어 문신이 되려 하는가 그의 감옥에 날개를 바치려 하는가 흰나비가 움직이지 않는다 바위 얼굴에 검버섯 이끼가 번졌다 갈라진 바위틈에 냉이꽃 피었다
  • [20&30]경찰 체포전담반 추진… 다시 떠오르는 ‘백골단의 추억’

    [20&30]경찰 체포전담반 추진… 다시 떠오르는 ‘백골단의 추억’

    봄 기운이 완연한 요즘,30대 직장인들의 술자리에는 ‘벚꽃 구경’과 함께 ‘백골단’이 단골 메뉴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경찰이 불법 시위 엄단 조치의 하나로 발표한 ‘체포 전담반’이 90년대 중반까지 시위 현장에서 흰색 헬멧을 쓰고 대학생들을 잡아들이던 ‘백골단’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봄과 함께 시작되곤 했던 대학가 시위와 ‘백골단’을 둘러싼 30대들의 추억을 들어봤다. 90학번인 조모(37)씨는 봄만 되면 등줄기가 욱신거린다. 실제 상처가 남아 있다기보단 그저 화인처럼 남아 있는 곤봉 폭행의 상흔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1학년이던 90년은 수업에 들어갈 시간조차 없었다. 매일 현장 노동자들이 파업 진압에 픽픽 쓰러지고, 농민들은 시장 개방에 비쩍 말라갔다. 책을 든다는 게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시절 조씨에게 ‘백골단(白骨團)’은 공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1991년 봄.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학과 동료를 위해 법원 마당에서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시위대 앞에 전·의경들이 서 있었고, 경찰 기동대장은 해산을 요구했다.“평화시위를 해산할 이유가 없다.”고 호소한 지 10여분 뒤. 청재킷과 흰 운동화, 몽둥이를 든 백골단이 전·의경 머리 위로 날아오르듯 확 튀어나오더니 시위대를 마구 팼다.“몸집이 참 큰 사람들이었죠. 그저 공포였습니다. 철거예정지에 가면 가끔 조폭들과 연계해 나타나기도 했죠. 대학생들이 왜 정치적인 사건에 개입하냐고 말들 많지만, 배우는 학생들이 주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게 21세기가 원하는 협동심과 리더십을 공유한 사람이 되는 길이죠.” 직장인 이모(36)씨도 봄만 되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벚꽃놀이 갈 생각에 설레는 게 아니라 대학 새내기 시절인 91년 봄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해 4월 초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학교 앞 집회에서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다. “매일 집회가 계속 됐죠. 쩌렁쩌렁 울리는 스피커 굉음과 강의실까지 스며드는 최루가스가 절 그냥 놔두지 않았어요. 집회가 시작되면 친구들이 하나둘씩 강의실을 빠져나갔습니다. 그 힘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강씨 사망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성균관대생 김귀정씨도 을지로 골목에서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숨졌다. 이후 대학생들의 분신이 이어졌고, 매일 대규모 집회가 서울시청 주변에서 열렸다.“서울시청 광장을 놓고 백골단·전경과 매일 싸웠죠. 지금 생각하면 다른 장소도 많은데 왜 꼭 서울시청 광장만 고집했는지 모르겠어요.” 이씨는 91년 봄부터 초여름까지 청바지·청재킷에 하얀 헬멧을 쓴 백골단과 명동, 시청, 종로, 을지로 거리에서 숨바꼭질을 계속했다.“백골단은 전·의경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 ‘전투력’을 보유했죠. 한마디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다니는 경찰이 바로 백골단이었습니다. 두꺼운 진압복을 입은 전·의경은 그저 특정 장소를 지키는 일에 주력했지만, 백골단은 검거가 목적이었죠. 백골단에 잡히지 않으려고 얼마나 뛰었던지….” 최근 경찰이 체포 전담반을 꾸린다고 하자 이씨는 가슴이 벌렁거린다.“지금이 대체 어떤 때입니까. 진짜 과거의 백골단을 다시 만든다는 얘기는 아니겠죠?” ●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포의 대상´ 통일운동가 황선(34·여)씨도 씁쓸한 추억담을 털어놨다.92학번인 황씨는 같이 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백골단에 의해 숨지거나 다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참 많이 닦아냈다고 돌아본다.“87년 민주화 이후에 집회시위는 어느 정도 안정적이고 평화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백골단의 모습은 변한 게 없었죠. 당연히 집회 참가자들은 더욱 분개했고 갈등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민운동가 안진걸(37)씨도 백골단에 대한 ‘추억’ 아닌 ‘추억’을 생각하면 아직도 한숨이 나온다. 안씨는 백골단이 단순히 시위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포의 존재’였다고 말한다.“무작정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달려드는 백골단이 누가 시위대고 누가 시민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냥 몽둥이를 휘두르는 거죠. 이유도 모른 채 다치는 시민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디 한군데 하소연할 때도 없었습니다.” 96학번인 대학생 황모(31)씨는 백골단의 끝물을 맛봤다.97년 노동절 집회 때 한양대 근처에서 당한 토끼몰이식 폭행을 아직 잊지 못한다. 당시 집회는 80년대와는 달리 선배의 강압 없이, 자기 생각대로 나가든 말든 결정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경찰은 96년 있었던 한총련 집회 뒤 또다시 강경 진압을 남발했다. 집회에 갔다가 여자 후배 한 명과 함께 백골단에 쫓겼고 여자 후배를 멀리 피신시킨 뒤 자신만 집중 폭행을 당했다.“백골단은 시위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생겼던 조직입니다. 해외에도 시위대를 곤봉으로 때리는 경찰들이 있지만 이들은 최소한의 방어선을 유지하다 시위대가 흥분해 주변 시민을 위협하면 그제서야 곤봉을 듭니다. 무조건적인 체포와 폭력진압을 위주로 하는 백골단과는 성격이 다르죠.” 중학교 교사가 된 96학번 이모(31·여)씨는 같은 대학, 같은 학번 노수석씨를 기억한다.96년 초 새내기였던 이씨는 선배들의 권유로 등록금 투쟁에 나섰다. 이씨는 “당시에도 등록금은 치솟고 있었고, 신입생 때는 무엇이든 참여하고픈 생각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남대문에 다다르자 ‘등록금 투쟁’ 구호는 ‘정권 타도’로 바뀌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느낄 무렵 최루탄이 터졌다. 이씨는 남자 동기의 손을 잡고 서울역 방향으로 무조건 뛰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백골단이다. 남대문엔 골목이 많다. 큰길로 뛰어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비규환이었다.“대부분 서울역으로 뛰었죠. 하지만 나중에 들으니 노수석씨를 비롯한 몇몇이 골목으로 뛰었다는 거예요. 골목은 목격자도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르는데….”결국 노씨는 백골단에 폭행당해 숨진 채 발견됐다. 학원강사를 하고 있는 유모(32)씨는 백골단하면 촌스러운 청재킷이 떠오른다.96년 여름, 신분증 검사도 떠오른단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측은했다고 말했다.“연세대에서 8월 사태가 있었죠. 그리고 교문을 들어갈 때면 신분증 검사를 해야 했어요. 당시에는 정말 무서웠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위에서 시킨다고 폭력까지 휘둘렀던 백골단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백골단으로 불리는게 너무 싫었어요” 90년대 초반 광주에서 ‘백골단’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던 전남지방청 소속 한모(44) 경사에게도 그 시절의 기억은 아픔으로 남아 있다.“누가 하고 싶어서 했겠습니까. 당시엔 초임 경찰관 가운데 덩치가 좋고 날렵한 사람들이 대거 검거전담반으로 차출됐죠. 백골단으로 불리는 게 너무 싫었는데…. 진압복도 입지 않은 채 대학생들이 휘두르는 쇠파이를 막느라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습니다. 더이상 그런 아픔은 없어야 겠죠.” 회사원 이모(32)씨는 98년 말부터 2001년 초까지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의경으로 복무했다. 그가 기억하는 백골단은 시위를 진압하는 ‘최후의 수단’이다.“의경 입장에서는 하얀 헬멧과 청재킷만 봐도 힘이 났죠.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대학생들 앞에서 ‘이젠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백골단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이씨에게 대학 시절 백골단은 무섭고 혐오스러운 존재였지만, 전·의경 복무 시절 시위 현장에서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갑자기 시위와 관련된 모든 이론이 싫어졌어요. 어떤 생각도 뛰어넘은 평화주의자가 되고 싶었죠.” 사건팀 nomad@seoul.co.kr ■ 백골단을 아시나요? “백골단이요? 알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백골부대를 모르는 사람 있나요.” 백골단이 한창 활동하던 80년대와 90년대 초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코흘리개 시절을 보낸 아이들은 벌써 어엿한 대학생과 직장인이 됐다. 그들에게 백골단은 그저 생소한 이름이었다. 갓 대학을 졸업한 회사원 김모(25·여)씨는 백골단을 백골부대의 다른 이름으로 알았다.“백골단, 유명한 부대잖아요. 여자인 저도 아는 걸요. 해골 부대 마크 있고…. 철원에 있잖아요. 백마부대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부대 중 하나 아닌가요.” 백골단은 80∼90년대 활동했던 사복 시위 진압대라고 알려주자 김씨는 몹시 당황했다.“그런 진압대가 있었나요. 처음 들어봅니다. 아무리 그 당시 유치원생이었지만 우리 근대사의 일부분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너무 부끄럽네요. 인터넷에서 좀 찾아봐야겠어요.” 새내기 대학생 정모(19)씨도 백골단을 부대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글쎄요. 왠지 군대쪽에 관련된 거 같긴 한데…. 학교 다닐 때 백골단에 대해 배운 적이 없고, 아직 대학 입학한 지 얼마 안돼 잘 모르겠네요.” 정씨는 기자로부터 백골단의 의미를 알게 되자 되레 의아해했다.“정말 그런게 있었나요. 진짜 조선시대 이야기 같습니다. 당당하게 경찰복을 입고 진압하지 왜 치사하게 사복을 입고 진압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직장인 최모(26)씨도 백골단은 금시초문이었다. 최씨는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모습을 담았던 영화 ‘화려한휴가’를 본 뒤 관련 책 등을 읽어봤지만 백골단은 난생 처음 듣는 단어였다. “사복경찰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봤는데 그들이 백골단이란 이름으로 움직인 조직원들인지는 몰랐습니다. 고작 20여년밖에 안 된 일인데 정부가 교묘히 국민을 탄압했다는 사실에 그저 화가 나네요.”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2) 조선후기 춘화 세 폭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2) 조선후기 춘화 세 폭

    혜원 신윤복의 유명한 그림 ‘사시장춘’이다. 먼저 그림을 살펴보자. 왼쪽에 배치한 나무는 좁고 길며 검은 가지가 무성하기 짝이 없다. 그 무성한 가지들은 장지문을 가리고 있다. 장지문 앞 좁은 마루에 단정히 놓인 것은 신발 두 켤레다. 왼쪽의 검은 가죽신은 남자의 것이고, 오른쪽의 붉은 가죽신은 여자의 것이다. 오른쪽에는 댕기머리를 드리운 어린 계집종이 쟁반에 술 한 병과 술잔 둘을 들고 방 앞으로 가고 있다. 계집종이 문을 열고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낮은 목소리로 “아씨 술 대령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고, 안에서는 “마루에 놓고 가거라.”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시장춘-계곡과 숲은 음모와 성기 상징 이 그림은 그냥 보아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림의 오른쪽 상단을 보자. 주름진 계곡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계곡 위에 약간 검은 색으로 다시 숲을 배치하고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왜 난데없는 계곡인가. 물론 그림이야 상상이 자유로운 예술장르다. 피카소의 그림이 존재하는 사물을 그린 것이라 생각하는 태도는 사실 곤란하다. 살바도르 달리처럼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해도 얼마든지 그릴 수 있다. 하지만 화폭 속의 모든 것들은 나름의 존재 이유를 갖는다. 눈치 빠른 독자는 이 그림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미 짐작했을 것이다. 왼쪽의 빽빽하고 검은 나뭇가지는, 말하기 무엇하지만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바, 애써 말하자면 그것은 남자의 음모다. 그렇다면 오른쪽의 계곡과 계곡 위의 숲은? 당연히 여성의 성기다. 좁은 마루 위에 놓인 남자와 여자의 신발은 장지문 건너 남녀가 이제 막 사랑의 행위에 들어가려고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집종이 가져오는 것은 술이고, 두 사람은 술잔에 그 사랑의 묘약을 부어 마신 뒤 환희에 빠질 것이다. 성적 환희는 봄이다. 그래서 장지문 옆의 기둥에 ‘사시장춘(四時長春)’ 곧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늘 봄이라고 써놓았다. 아니 그런가. 이 그림은 신윤복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춘화첩의 맨 첫 장이다. 이제까지 말한 남자, 여자의 이런저런 접촉은 최후에는 필연적으로 성관계로 이어진다. 앞서 춘화를 보는 여자 둘을 그린 그림을 설명하면서 말한 바 있지만, 춘화는 조선후기, 특히 18세기 후반부터 조선사회에 유통되기 시작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춘화는 조선후기의 성 풍속을 아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자료가 된다.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를 보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이 책에 실린 인간의 성적 행위와 관련된 풍부한 도판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아무리 정밀한 언어적 묘사도 한 장의 그림만 못하다. 아직 충분히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알려진 춘화로서 볼 만한 것은 역시 신윤복과 김홍도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것이다. ●달빛 아래서-자유분방한 개방된 성 그려 이제 김홍도 작으로 알려진 춘화를 하나 더 보자. 그의 작품 ‘달빛 아래서’다. 감상자의 시선은 당연히 그림 왼쪽에 쏠리겠지만 오른쪽을 먼저 보자. 버드나무가 연녹색 잎을 무성하게 드리우며 그림 중앙 하단에서 사선을 그리며 오른쪽 상단으로 뻗어 있다. 그리고 보름달이 버드나무 가지에 걸려 있다. 초록색 풀밭에 남자와 여자는 자리를 깔고 사랑을 나누고 있다. 좁고 어두운 방안이 아니다. 버드나무에 걸린 만월이 흰 빛을 무한히 쏟아내어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숲 속의 사위가 훤하다. 숲속의 풀밭 위에서 이루어지는 성행위라니…. 놀랄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사랑은 원래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성은 인간 남녀의 교섭이기도 하지만, 애당초 자연과 인간의 교섭이기도 한 것이다. 현대는 성적으로 개방된 시대라 하지만, 그 개방은 ‘음침한’ 개방이다. 성은 어두운 밀실에서 이루어질 뿐이다. 자기만의 공간을 소유하지 못한 남녀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호텔과 모텔, 여관을 찾는다. 돈을 지불함으로써 겨우 얻어낸 밀폐된 공간에서야 비로소 안심을 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반면 김홍도의 그림은 인간이 문명의 이름으로 팽개친 자연 속에서의 성을 그려내고 있다. 이런 야외에서의 성관계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야외에서 남녀가 성관계를 갖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다. 송세림(1479∼?)의 ‘어면순’에 실린 이야기 한 토막을 들어보자. 관서 지방에 비지촌(非指村)이 있다. 옛날 어떤 사람이 누에 치는 계절에 뽕을 찾아다니다가 한 부잣집에 몰래 들어갔더니, 뽕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몰래 나무 아래로 들어갔더니, 길게 자란 삼이 빽빽하였고, 그 나무 주위는 평탄하여 사람이 왕래한 흔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그곳이 아이들이 와서 노는 곳이겠지 하고, 나무에 올라가 숨어서 뽕잎을 따는 데 열중하였다. 한참 뒤 사내 하나가 바깥에서 헐레벌떡 오더니 곧장 뽕나무 그늘로 들어왔다. 그 사내는 우두커니 서 있다 왔다 갔다 하다가 서너 차례 휘파람을 불고는 숨을 지키며 누구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윽고 나이 스물 쯤 된 아리따운 미녀가 술 한 병에 안주 찬합을 들고 발소리를 죽이며 그 사내놈이 있는 곳으로 잰 걸음으로 다가왔다. 사내는 술을 마시기도 전에 먼저 미녀와 그 일을 시작하고 한 바탕 즐거움을 누렸다.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만, 너무 야하기에 여기서 더 언급할 것은 못된다. 어쨌든 위의 이야기에서 보듯 남자와 여자는 은밀히 만나 뽕나무 아래 삼밭에서 관계를 갖는다. 이뿐이 아니다. 민요에도, 사설시조에도 있다. 전남지방에 전하는 도령타령을 보자. 대명천지 밝은 날에 어느 누가 보아줄까 들어나 가세, 들어나 가세, 삼밭으로 들어나 가세 적은 삼대는 쓰러지고 굵은 삼대 춤을 춘다 삼은 높이 자란다. 숨기에 안성맞춤이다. 삼밭에서 남녀가 일을 벌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삼밭에서의 사랑을 증언하는 사설시조가 1728년에 편집된 ‘청구영언’에도 실려 있으니, 대개 조선시대 삼밭과 같은 야외에서 남녀의 성행위가 예사로 여겨졌던 것이다. 어디 작품을 읽어보자. 이르랴 보자, 이르랴 보자, 내 아니 이르랴 네 남진(남편)더러 거짓 것으로 물 긷는 체하고 통일랑 나리와(내려서) 우물 전에 놓고 또아리 벗어 통조지에 걸고 건넌집 작은 김서방을 눈개야 불러내어 두 손목 마주 덤석 쥐고 수군수군 말하다가 삼밭으로 들어가서 무슨 일 하던지 잔 삼은 쓰러지고 굵은 삼대 끝만 남아 우우 하더라 하고 내 아니 이르랴 네 남진더러 저 아이 입이 보드러워 거짓말 마라 우리는 마을 지섬이라 실삼 조금 캐더니라 모르는 말이 더러 있지만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 그냥 덮어두자. 이 작품의 내용인즉 이렇다. 어떤 여자가, 친구가 물 길러 가는 체하면서 평소 알고 지내던 김서방을 불러내어 삼밭으로 들어가서 일을 벌인 것을 알고 네 남편에게 일러주겠다고 하자, 그 여자는 그런 말은 네가 지어낸 것이고, 사실은 삼을 조금 캐러 들어간 것일 뿐이라고 대답한다. 누가 옳은 것인지 그 시비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 나는 오직 이 작품에서 자연이 인간의 성적 공간이 되고 있다는 데 흥미를 느낄 뿐이다. ●추억-노년의 성적 욕망 강하게 표현 그림 하나를 더 보자. 김홍도의 것으로 알려진 ‘추억’이라는 작품이다. 초가집이다. 방안에 살림살이라고는 거의 없다. 남자와 여자 둘이 앉아 옷을 벗고 중요한 일을 하기 직전이다. 남자는 머리가 다 벗겨지고 흰 수염이 듬성듬성하다. 여자는 머리를 올리고 옷을 제대로 차려 입었지만,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다. 보다시피 둘 다 노인인 것이다. 노인이 된다 한들 성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더 강렬해질 수도 있다. 사람들은 노인의 성을 배제하고 노인의 성을 추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성적 욕망은 더러운 것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지배와 폭력, 강요로 나타나지 않는 한 성적 욕망의 존재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전근대 사회에서 그려진 이 그림이야말로 바로 그런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북극해 가장 두꺼운 빙하도 녹았다”

    북극해의 가장 두껍고 오래된 빙하마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녹고 있다는 우울한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립 눈얼음자료센터(NSIDC)는 18일(현지시간) 미항공우주국(NASA)의 위성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연구진은 “얼음 두께는 바다 빙산의 장기적인 보존상태를 말해 주는 지표”라면서 “그런데 현재 상태는 좋지 않다.”고 로이터통신에 밝혔다. 특히 가장 오래되고 두꺼운 빙하 속까지 녹아 비어 있는 것으로 드러나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나타냈다. 월트 메이어 연구원은 “빙하 속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비어 있다.”고 밝혔다. 북극에서 6년 이상 녹지 않았던 가장 단단한 빙하마저 극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2월부터 지난 2월까지 북극에서 사라진 오래된 빙산의 면적은 250만㎢로 50%가 감소했다. 이처럼 단단한 빙하가 녹고 새로 얇은 얼음층이 형성되는 것은 바람이나 따뜻한 수온에 더 취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극해 빙하가 녹아 상승하는 해수면 폭은 남극이나 그린란드의 빙하만큼 크지는 않다. 그러나 흰 빙하가 어두운 바닷물로 바뀌면서 햇볕을 흡수해 지구온난화를 부추기게 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加연구팀 “피부톤 따라 성적 매력 달라진다”

    加연구팀 “피부톤 따라 성적 매력 달라진다”

    남녀의 피부톤에 따라 이성에게 어필되는 성적 매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근 토론토대학(University of Toronto) 연구팀은 “여성은 흰 피부톤이, 남성은 어두운 피부톤이 이성에게 더 많은 성적매력을 어필한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호감도 높은 2000장의 광고사진 속 남녀 모델을 분석했다. 그 결과 백인 여성의 피부가 백인 남성 보다 15.2% 더 하얗게 나오고 흑인 여성의 피부가 흑인 남성보다 11.1% 덜 검게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밝은 피부톤을 가진 여성일수록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더 많은 옷을 껴입고 얌전하게 행동하려는 경향을 보였으며 그렇게 할수록 남성들의 주의를 더 많이 끄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여성의 밝은 피부톤과 남성의 어두운 피부톤이 이성에게 선호되는 것은 피부톤에 따른 도덕적 이미지가 달리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것. 여성의 피부가 흴수록 순결·순수·얌전함과 같은 이미지를 내포하기 쉽고 남성의 어두운 피부톤은 성(性)에 대한 신비로움을 자극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연구팀은 남성들에게는 다소 까만 피부를 가진 스페인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보다 하얀 피부의 영국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가, 여성들에게는 잡티없는 하얀피부의 다니엘 크레이그보다 그렇지 않은 조지 클루니가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밝혔다. 사회학자인 샤이언 바우만(Shyon Baumann)은 “우리들에게는 여성들이 어떻게 보여야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이상적인 관념이 있다.”며 “무의식적으로 피부톤과 이상적인 관념을 연결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진=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페넬로페 크루즈·키이라 나이틀리·조지 클루니·다니엘 크레이그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멀리 가는 향기

    멀리 가는 향기

    이성표의 그림과 함께 어우러진 정채봉의 생각하는 동화. 독자 여러분을 영원한 마음의 고향, 동심童心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향원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마음이 청정한 사람이면 누구든 이곳에서 아름다운 향기를 대할 수 있다는 말이 전해져 오는 정자였다. 어느 날 어진 임금께서 길을 가다가 이 정자에서 쉬게 되었다. 이때 미풍에 얹혀 슬쩍 지나가는 향기가 있었다. 기가 막힌 향기였다. 임금은 수행 신하들을 불러서 부근에 피어 있는 여러 꽃을 꺾어 오도록 했다. 신하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향기가 좋기로 소문난 꽃들을 한 가지씩 가지고 왔다. 모란, 난초, 양귀비…. 그러나 임금은 꽃을 하나하나 코에 대어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임금은 궁으로 돌아가서 향 감별사를 불렀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향원정이라고 하는 정자에서 일찍이 대해 본 적 없는 아름다운 향기를 만났었다. 경은 지금 곧 그곳으로 가서 그 향기가 어디의 어느 꽃의 것인지를 알아오도록 하여라.” 향 감별사는 그날부로 향원정에 가서 머물렀다. 날마다 코를 세우고 임금을 황홀케 했다는 그 향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향기는 좀체로 나타나지 않았다. 간혹 바람결에 묻어오는 향기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향 감별사가 아니더라도 쉽게 알아맞힐 수 있는 향기였다. 작약꽃이며, 수선화며 찔레꽃의 향기들. 여름철이 지난 뒤 향 감별사는 실망하여 일어났다. 그러나 얼른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는 시름없이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서서 먼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처마 끝의 풍경처럼 세상만사를 놓아 버리고 하늘가를 떠가는 흰 구름에 마음을 실었다. 그 순간이었다. 코를 스치는 향기가 있었다. 향 감별사로서도 평생 처음 대해 보는 아름다운 향기였다. ‘아, 이 향기가 임금님을 황홀케 한 향기로구나.’ 향 감별사는 서둘러서 바람이 불어오는 서녘을 향해 걸었다. 들판을 지나서 산자락을 헤매었다. 강나루를 돌아 마을을 뒤졌다. 그러나 좀체로 그 향기를 가진 꽃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 사흘째 해가 저문 저녁때였다. 꽃을 찾아내지 못한 향 감별사는 힘없이 향원정으로 돌아왔다. 굳이 알아내야겠다는 욕심을 포기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뒤편 개울에서 몸을 씻고 정자에 앉았다. 솔바람이 소소소 지나가자 둥근달이 떠올랐다. 저만큼 떨어져 있는 바위로부터 도란거리는 새소리를 그는 들었다. ‘저 작은 새는 이 고요한 달밤에 누구와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 새가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 향 감별사의 눈에 풀 한 포기가 비쳤다. 그것은 이제껏 헛보고 지냈던 바위틈에 있었다. 향 감별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빛 속을 걸어 바위 가까이 다가서 보니 풀이 좀 더 잘 보였다. 그런데 서너 갈래의 풀잎 사이로 고개를 숙이고 숨는 희미한 점이 있어 그를 안타깝게 했다. 이때였다. 먼 하늘 깊은 곳에 있는 별빛인지, 가늘고 맑은 바람이 한 줄기 흘러왔다. 그러자 보라, 풀숲 사이에 작은 꽃이 갸우뚱 고개를 내밀다가 들킨 향기를. 바로 그 황홀한 향기가 아닌가. 향 감별사는 임금 앞에 돌아가서 아뢰었다. “그 향기는 화관이 크고 아름다운 꽃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또 멀고 귀한 곳에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굳세게 살고 자기 빛을 잃지 않은 작은 풀꽃이 지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 향기는 보는 이의 마음이 청정할 때만이 제대로 깃들 수 있기 때문에 좀처럼 만나기가 어려울 뿐입니다.” - <월간샘터> 중에서 -
  • “봄 향기 맡으며 우이령 달려요”

    “봄 향기 맡으며 우이령 달려요”

    강북구 우이동 삼각산을 오르내리는 ‘우이령 마라톤대회’가 다음달 20일 40년 동안 통행이 금지된 우이령에서 펼쳐진다. 우이령에는 산개나리, 은방울꽃, 용담 등 토종 봄꽃이 건각(健脚)들을 반길 것으로 기대된다. 11일 강북구에 따르면 올해 대회에는 외국인이 대거 참가, 국제 마라톤대회의 면모를 갖출 것으로 기대된다. ●은방울꽃 산개나리 등 토종꽃 잔치 서울신문과 강북구가 공동으로 마련한 ‘4·19기념 삼각산 우이령마라톤대회’가 올해로 3회를 맞았다. 마라토너들은 4월20일 오전 9시30분 우이동 덕성여대 운동장을 출발, 꽃향기 가득한 우이령길을 누빈다. 우이령은 예부터 ‘소귀 고개’로 불렸다. 고개에서 가까이 보이는 우이암에 우뚝 선 흰바위가 소의 귀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우이령은 서울 우이동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를 잇는 6.8㎞ 비포장길이다. 북한산국립공원의 ‘삼각산’과 도봉산을 가르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혜화문∼아리랑고개∼양주∼연천∼평강∼함흥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었다. 평양에 사는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치르러 올 때 넘는 사연 많은 길이다. 그러나 지금은 마라톤대회 등 특별한 날에만 활짝 열린다.1968년 1월21일 김신조 등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이 길을 지나간 뒤 지금까지 인적이 끊긴 길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생태환경의 보고(寶庫)로 이름도 알지 못할 많은 야생화가 수도없이 피고 진다. ●22일까지 선착순 접수 삼각산우이령마라톤대회는 하프(21.0975㎞)와 10㎞,4.19㎞ 등 3개 코스에서 진행된다. 하프 코스는 덕성여대∼국립4·19묘지∼삼각산문화예술회관∼가오사거리∼교통광장∼우이령∼유격교를 반환점으로 다시 우이령을 거쳐 덕성여대로 되돌아 온다. 언덕이 가파르지는 않지만 기분좋을 정도로 종아리가 금방 뻐근해지고 등에 땀이 맺히기 때문에 일반 마라톤에서 느끼지 못하는 묘미를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수유영어마을의 외국인 남녀 교사와 미군부대 장병들이 상당히 많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단체 참가의사를 전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회에서 관심을 모으다 무산된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현풍 강북구청장의 달리기 대결이 또 한번 성사될지 기대를 모은다. 오 시장은 철인3종 경기에 출전할 정도의 체력을 지녔고, 김 구청장은 고령(68세)이지만 ‘삼각산 도사’로 불릴 정도다. 지난해 오 시장은 4㎞쯤 달리다 공식일정 때문에 완주하지 못했다. 참가자에게는 자전거 20대,400만원 상당의 상품권, 고급양말 등 다양한 경품과 기념품이 제공된다. 완주자는 고급 빵과 맥주를 공짜로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원활한 대회 진행을 위해 참가신청은 오는 22일까지 대회 홈페이지(www.gangbukmarathon)에서 선착순 2500명을 접수한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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