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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도 정선 화절령 ‘첫눈 온 풍경’

    강원도 정선 화절령 ‘첫눈 온 풍경’

    뽀드득 뽀드득~.얼마 만에 들어보는 눈밟는 소린가.산자락에 부딪혀 되돌아 오는 경쾌한 울림에 몸이 날아갈 것만 같다.눈이 올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만 믿고 강원도 정선땅 화절령으로 향했다.오래 전 산골마을 아낙들이 꽃을 꺾으며 걸었다 해서 이름지어진 그 곳.들꽃이 진 자리마다 눈꽃이 화사하게 피어 순백의 정원을 만들어 놓았다.화절령이 처음은 아니지만,이처럼 빼어난 풍경과 마주한 것은 처음이다.여행을 할 때 무엇을 보느냐에 못지않게 언제 보느냐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우는 장면이다.도시의 회색빛에 싫증난 당신이라면,언제고 눈오는 날 화절령을 찾을 일이다. 화절령(花折嶺·960m)은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면을 잇는 고갯길이다.산골 아낙들이 무시로 피어난 진달래 등 야생화를 꺾으며 고개를 넘었다고 해서 붙여졌다.‘꽃꺾이재’ 라는 순우리말 이름도 정겹다. ●들꽃 진 자리에 화사하게 피어난 눈꽃 기능적인 면만 강조해 운탄(運炭)길이라 부르기도 한다.주변 탄광에서 캐낸 무연탄 등을 실어나르던 차도를 일컫는 말로,백운산과 두위봉 등 산자락을 타고 100㎞ 가까이 이어져 있다.그 중 일부가 화절령이다.석탄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버려져 있던 길을 2~3년 전부터 하이원 리조트가 보듬고 살펴서 번듯한 트레킹 코스로 조성해 놓았다.얼레지,진달래,처녀치마 등 봄부터 가을까지 산길을 수놓았던 들꽃들은 고스란히 트레킹 코스의 이름으로 남았고,겨울철 꽃이 진 자리는 눈꽃이 대신하고 있다. 하이원 리조트에서 정비한 등산로와 트레킹 코스는 2.8㎞부터 10.4㎞까지 모두 6개다.이 중 눈이 소담하게 쌓인 겨울철에 특히 어울리는 트레킹 코스는 매립지 주차장과 하이원 골프장 등에서 출발해 도롱이못과 전망대 등을 거쳐 하산하는 2개 코스다.모두 10여㎞ 거리에 3~4시간 가량 소요된다. 화절령길은 해발 1000m 고원지대에 길고 완만하게 이어진 게 특징.강원랜드 호텔 아래 매립지 주차장을 들머리 삼아 산행에 나섰다. 옛길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다.오래된 시간의 크기만큼 호젓한 시간을 내어 준다.눈덮인 운탄길을 걸으며 지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설계하는 것도 좋겠다.운탄길을 만들 때 심었다는 낙엽송들은 어느새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났다.한 때 이 나무들 옆으로 탄더미 가득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지나갔을 터.나뭇가지 하나하나에 맺힌 눈꽃들이 광원들의 시름섞인 담배 연기처럼 보인다. ●화절미인(花折美人) 도롱이못 운탄길 양쪽에 늘어선 낙엽송이 눈에 쌓인 채 가지를 늘어뜨린 길을 2.5㎞ 정도 걷다 보면 고원지대에서 뜻밖에도 자그마한 연못을 만난다.화절령 눈길산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도롱이못이다.탄광의 지하 갱도가 무너져 내리던 와중에 지표가 함몰되면서 생성된 직경 80m 남짓한 연못으로,흰눈에 파묻힌 정경이 설국의 정원에라도 와있는 듯하다.영화 ‘나니아 연대기’를 본 사람이라면 짐작할 터다.숨바꼭질 놀이를 하던 주인공 4남매 중 막내가 옷장에 숨어 있다 조우했던 비현실적인 눈의 세계,나니아가 느닷없이 낙엽송숲 사이에서 튀어 나온 듯한 풍경이란 것을.이런 이국적인 세계에서라면 영화 속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존재들과 만난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겠다. 도롱이못이란 이름의 유래가 애틋하다.안내판에 따르면 탄광 함몰사고가 빈발했던 1970년대 화절령 일대에 살고 있던 광원의 아내들은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연못에 올라 도롱뇽의 생사여부를 확인했다고 한다.활발하게 살아 움직이는 도롱뇽을 보면서 남편 또한 무사할 것이라 믿고는 가슴 한 쪽을 쓸어내리곤 했다는 것.도롱이못이란 이름도 도롱뇽에서 비롯됐다고 안내판은 적고 있다. 이제껏 동화 속 세상과 같은 아기자기한 풍경을 선보였던 화절령은 도롱이못을 지나면서 도도하고 장쾌한 풍광을 펼쳐 낸다.해발 1300m 낙엽송 길을 한 굽이 돌 때마다 두위봉 등 주변 산자락들이 마루금을 좁힌 채 다가서고,그 아래 고즈넉한 산간마을들의 자태가 두 눈에 선연히 맺힌다.다소 힘이 들더라도 백운산 전망대까지는 올라야 한다.가까이는 백운마을에서 멀리 상동지역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겨울이 내려 앉은 고원지형과 백두대간의 전경을 한 눈에 굽어 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 눈길 산행을 하려면 아이젠과 스패츠,지팡이 등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하이원 리조트는 아이젠 등 장비가 없는 내방객들의 산행을 돕기 위해 밸리·마운틴 콘도,하이원 호텔 등에 설피 500쪽을 마련해 뒀다.콘도나 호텔 투숙객은 무료,일반인은 소정의 이용료(미정)를 받을 예정이다.트레킹 종착지인 하이원호텔에서 매립지 주차장을 경유하는 무료 셔틀버스도 운행된다. 하이원리조트 1588-7789.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제천나들목→영월→사북→하이원리조트.영동고속도로가 정체되면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감곡 나들목으로 나와 38번 국도를 타고 곧장 가는 것도 좋겠다. ▲맛집:고한읍내 낙원회관은 ‘맛있는 한우란 이런 것’임을 느끼게 해주는 집.한우를 먹은 뒤 ‘된장 소면’으로 입가심을 하는데,제법 별미다.등심 2만 7000원.591-1700.토박이식당은 생태찌개로 은근히 입소문났다.생태찌개 2만 8000원, 된장찌개 등 6000원.591-7729. ▲주변 볼거리:함백산,만항재,정암사,몰운대,아우라지,민둥산 등. ▲기타 연락처:정선시외버스터미널 563-9265, 정선역 563-7788, 정선군청 문화관광과(jeongseon.go.kr) 560-2361∼3. 글 사진 정선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NOW포토] 추자현, 여성미 물씬 풍기는 흰 드레스 입고

    [NOW포토] 추자현, 여성미 물씬 풍기는 흰 드레스 입고

    제 7회 대한민국영화대상이 4일 오후 서울 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지난해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한국영화 시상식 최초로 여성단독 MC를 맡았던 송윤아는 올해도 단독 진행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이날 추자현이 영화제 시상식 볼거리 중 하나인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한편 대한민국영화대상의 시상은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각본ㆍ각색상, 남우 주연상, 여우 주연상 등 총 19개 부문에 걸쳐 시상한다. 서울신문NTN 조민우 기자 blue@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것이 현대미술? 외면하고 싶은 어떤 실상

    이것이 현대미술? 외면하고 싶은 어떤 실상

     미술전시회 중에는 관람자를 의도적으로 불편하거나 불쾌하게 하는 것들이 있다.애써 외면하고 싶은 어떤 실상,진실에 다가가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다. 우선 갤러리 선컨템포러리의 정지현 개인전 ‘사막정원’을 소개한다.제목부터 심상치 않다.삭막한 모래 언덕에 푸른 정원이 존재할 수는 있는 것일까? 하얀 아크릴 물감이 가득한 캔버스 위에 에어 브러시로 섬세하게 그린 대형 선인장,서랍장, 물고기,대형 꽃들은 모두 회색이다.흑백사진을 프린트한 것 같다.그림자 같다.무채색 위에 그려진 날카로운 붉은 가시와 곰팡이 얼룩 같은 붉은 점,악마의 혓바닥 같은 붉은 꽃술,흰 피부에 베어나온 피 같은 붉은 이슬이 화려하다.얼핏 보면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탄성을 보낼 것이고,예민한 관객들 중에는 가시에 찔린 듯 아픔과 붉은 촉수가 살갗에 닿는 듯한 불쾌함을 느낄 것이다.정지현 작가는 “깨지기 쉽고 불안한 존재들의 팽팽한 긴장감을 환타지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예민한 감각의 작가가 보여주는 존재의 불안감을 맥시멈 느낄 수 있다.20일까지.(02)720-5789. 선컨템포러리를 나와 바로 옆 건물인 국제갤러리에 들르면 사진작가 오형근의 ‘소녀들의 화장법’이 전시되고 있다.오 작가는 1999년 ‘아줌마’ 연작시리즈와 2004년 10대 연기자들의 모습을 담은 ‘소녀연기’연작 시리즈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이번 소녀들의 화장법은 그때보다 한발짝 더 나갔고,위태위태하다.국제갤러리 측은 “작가는 서클랜즈,붙임머리,성형수술이 보편화된 천편일률적인 10대 소녀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 문화를 비판한다.”고 설명했다.그러나 화랑과 작가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어린이도 성인여자도 아닌 소녀들이 화장한 얼굴과 자세는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세련되면 세련된 대로 서글프다.게다가 성적인 이미지가 차고 넘친다.그래서 여성이나 부모로서의 자각이 강한 관람객은 전시내용이 불편하거나 불쾌할 수 있다.작업의 과정도 썩 탐탁하지는 않다는 지적이다.작가는 서울 신림동,동대문,이대,돈암동 등 8곳에서 10대 소녀 527명을 캐스팅했고,이들 중 160여명이 이태원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로 직접 찾아가 스스로 화장을 한 뒤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그러나 초상권 사용을 허락한 부모는 25명에 불과해 25점만 전시됐다.31일까지.(02)735-8449.  아르코미술관과 인사미술공간에서 전시하고 있는 독일 현대미술가 욘복의 영화,오브제,비디오,조각 등이 어우러진 전시 ‘피클 속 핸드백 두 개’는 ‘이런 것도 미술이냐.’는 생각이 스쳐갈 수 있다.피클 속에 핸드백 두개인지,핸드백 두개 속에 피클인지 전시제목도 헷갈리는데,작품들도 마찬가지다.김희진 큐레이터는 “미술의 원초적 즐거움과 창작행위의 의미를 현대의 감각과 감성으로 살린 작업”이라고 말했다.작업은 지난 5월 파주,동두천,서울 등에서 2주 동안 이뤄졌다.영상에는 전선줄이 어지러운 서울 하늘과 지저분한 하천,가난한 골목길이 담겨있다.서울 압구정이나 청담동의 멋진 빌딩은 독일 작가에 의해 거부당했다.전세계적으로 한창 잘나가는 욘복이 만든 영상,비디오 덕분에 함께 작업한 한국의 설치작가들이 세계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다고 하니 참아볼까? 50분짜리 영화를 보다가 비위가 약하면 구토가 나올 수 있으므로 조심!내년 2월8일까지.어른 3000원,어린이 2000원.(02)760-4724.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Local] 세계적 희귀조 따오기황새 공개

    [Local] 세계적 희귀조 따오기황새 공개

     대전동물원은 28일 세계적 희귀종인 따오기와 황새 가족을 공개했다.이날 공개된 희귀종은 따오기 7쌍과 황새 3쌍으로 다마동물원 등 일본의 3개 동물원으로부터 기증 받은 것이다.‘멸종위기 동식물 국제거래 협약(CITES)’ 1급과 2급에 속해 있다.동물원 측은 열대조류관과 종보존센터 특별전시실에 둥지를 마련,따오기와 황새를 특별관리할 계획이다.사육법은 일본 현지 동물원에서 전수받았다.대전동물원은 중국 3대 동물로 꼽히는 레서판다와 삵,흰올빼미를 추가로 도입하는 방안을 일본 동물원들과 협의 중이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서울현대도예공모전] 우수상 조신현씨

     세라믹 디자인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은 조신현(38) 작가의 ‘느낌으로’는 기법의 독창성과 탁월함 덕분에 대상작으로 심각하게 고려될 정도의 작품이었다. 흰 점토와 검은 점토를 켜켜이 쌓아 면을 만들고,그것을 조각도로 안을 파내 생활도자기를 만든 것이다.흙의 물성을 이해해야 했고,이음새가 터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들어간 작품이다.조형적인 아름다움은 좋았으나 흙을 쌓다 보니 실용도자기로서 너무 무거운 것이 흠이 됐다.  조 작가는 “생활도자기는 일반적으로 형틀(캐스팅)을 만들어서 떠내기 때문에 가볍고 실용적일 수 있지만,다양한 실험을 하기에는 한계가 느껴져 이번 기법을 써봤다.”고 말했다.얼핏 보면 캐스팅으로 떠서 페인트로 칠하면 될텐데 왜 힘든 과정을 거쳤을까 하는 궁금함이 생긴다.조 작가는 그런 방식으로는 도자기에서 지구의 지층을 넘겨다 보는 듯한 깊이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했다.조 작가는 2006년 26회 서울현대도예공모전에서도 특선을 했다.27회에서 작업이 한 단계 올라선 셈이다.조 작가는 “이번 작업은 상당히 재미가 있었다.”면서 “조각으로 옵티컬 패턴을 강조하기 위해 앞으로는 입체 작업을 진행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출산’한 할리우드 스타, 패셔니스타로 거듭난 비법은?

    ‘출산’한 할리우드 스타, 패셔니스타로 거듭난 비법은?

    전세계적으로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할리우드 스타들은 자신의 외모에 관한 한 긴장감을 놓칠 수가 없다. 가령 임신으로 인해 만삭이 되었을지라도 출산 후 피눈물 나는 다이어트로 여전히 변함없는 미모를 유지한다. 대표적인 스타로 딸 애플을 출산한 직후 바로 비키니 화보 촬영을 했던 기네스 팰트로를 들 수 있다. 스타들은 출산 후 어떤 다이어트를 하는 걸까. 임신한 할리우드 미녀스타들의 몸매 관리 비법을 살펴봤다. 두 아이의 엄마인 기네스 팰트로는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청순한 외모와 흰 살결의 다리도 변함없었다. 사실 팰트로는 임신 때마다 체중이 20Kg씩 불었고 망가진 몸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산후 우울증까지 겪었다. 하지만 팰트로는 철저한 산후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출산 전의 늘씬한 몸매를 되찾는데 성공했다. 지난 2월 첫 아이를 출산한 니콜 리치는 색다른 운동을 통해 임신으로 증가한 체중을 감량했다. 출산 후 몸매 관리를 위해 리치가 선택한 운동은 바로 치어리딩이다. 미국의 TV 쇼프로그램 ‘척(Chuck)’에 출연한 리치는 그녀만의 다이어트 비법을 공개했다. 리치는 “치어리딩으로 임신으로 인해 불어난 몸무게를 많이 줄였다. 무엇보다 다이어트를 신나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설명했다. 가수 빅토리아 베컴은 체중 44kg, 허리 24인치로 깡마른 몸매로 유명하다. 베컴이 아이 셋을 낳고도 여전히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비법은 바로 ‘빅토리아표 식단’때문이다. 초밥과 콩, 스낵류가 베컴이 식사 대용으로 먹는 유일한 음식들이다. 심지어 물도 마시지 않고 오직 다이어트 콜라로만 수분을 섭취한다. 아이 셋를 낳은 슈퍼모델 하이디 클룸은 출산 후에도 당당히 패션쇼에 나서며 섹시한 몸매를 과시했다. 클룸의 엄격한 몸매 관리 비결은 아몬드에 숨어있었다. 육식을 피하고 채소 위주로 식사를 하는 클룸은 아몬드를 통해 포만감을 늘려 과식을 피한다. 견과류 중 가장 많은 식이섬유를 포함하고 있는 아몬드는 먹는 양이 적더라도 씹는 과정에서 포만감을 안겨줘 음식을 덜 섭취하게 유도한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횡성 미술관 자작나무숲을 가다

    횡성 미술관 자작나무숲을 가다

    찬 겨울바람이 불면서 산자락 골골마다 가득 찼던 단풍들의 붉은 아우성도 잦아들기 시작했다.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군 채 긴 겨울나기에 들어갔고,동시에 숲도 깊은 침잠에 빠졌다.그런데 독특하게도 사람들이 숲에서 떠나는 시기에 제 모습을 드러내는 나무가 있다.자작나무다.불에 탈 때마다 ‘자작자작’ 하는 소리를 내서 이름붙여졌다던가.하얀 몸뚱아리에 햇살이 비칠 때마다 강한 빛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나무.사실 이제야 나타났다기보다 단풍이 벌이는 알록달록한 색의 축제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더 온당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헐벗고 추운 계절일수록 더욱 돋보이는 자작나무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출발지는 강원도 횡성의 ‘미술관자작나무숲’이다.   미술관자작나무숲은 사진작가 원종호(55) 씨가 1991년부터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두곡리 둑실마을에 자작나무 1만2000 주를 비롯한 다양한 나무들을 식재해 조성한 미술관 겸 정원이다. 1990년 백두산을 방문했던 원 관장은 강렬한 흰빛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한편으로 어딘가 쓸쓸하고 애잔한 분위기를 풍기던 자작나무숲에 흠뻑 매료됐고,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자작나무를 테마로 한 미술관을 세웠던 것. 원 관장은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두 가지에 놀랐다고 했다.첫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임에도 방문객 대부분이 자작나무를 처음 본다고 했던 것이고,둘째는 이 나무를 아는 사람의 경우 대단히 열광한다는 것이었다.관심이 없거나 열광하거나,극단적인 두 가지 반응만 있었던 셈이다.   ●빛의 에너지 충만한 정원 미술관에서 받은 첫 느낌은 투박하다는 것.어떤 인위도 배제한 채 자연에 자연만을 더한 때문이다.잘 가꿔진 자작나무 정원을 기대했던 게 잘못일까.빼어난 조형미와는 영 거리가 멀다.그런데 자작나무 숲 사이를 한 바퀴 돌아볼 때의 느낌은 전혀 달랐다.편안했다.그리고 강렬했다.햇살을 받아 더욱 창백해진 몸뚱아리에 무의식적으로 손이 가 닿았다.불가에서 전하는 말을 곱씹어 보자면 어떤 만남에도 우연은 없다던데,자작나무를 찾게 된 것도 어쩌면 항상 곁에서 관심받기를 바랐던 자작나무의 뜻은 아니었을까.   자작나무는 소설가 정비석 선생이 수필 〈산정무한〉에서 표현했듯 ‘아낙네의 살결처럼 흰’ 껍질이 인상적인 나무다.날이 차가워질수록 껍질 속의 수분이 적어지면서 흰빛깔이 더욱 도드라진다.이맘때 나무의 가장 빛나는 나신(身)과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백두산 등 우리나라 북쪽에만 자생하는데,현재 남쪽에 있는 자작나무는 모두 국립산림과학원 등에서 종자를 분양받거나 국외에서 수입해 인위적으로 가꾼 것이라는 게 나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신혼부부들이 화촉을 밝힐 때 사용했던 나무 자작나무는 예부터 우리네 생활 공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신혼 첫날밤 부부가 백년해로를 다짐하면서 태웠던 화촉이 이 나무의 껍질이었고,산간 지역의 서민들은 나무를 쪼개 너와집의 지붕을 이었으며,죽으면 껍질로 싸서 매장했다고 한다.양반가의 자제들이 공부했던 경판이나,경주 천마총의 천마도,그리고 부분적으로는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제작할 때도 자작나무가 쓰여졌다고 한다.나무의 조직이 지나치게 단단하거나 무르지 않아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데 적합했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족적인 풍모를 지닌 나무’ 로 평가받는 자작나무지만,이면에 적잖은 과장이 덧씌워진 것도 사실이다.국립산림과학원 강하영 박사는 “인터넷 등에서 고가에 판매되고 있는 핀란드산 자작나무 수액은 당도나 미네랄 함유량 등에서 우리나라 고로쇠물에 못미친다.”고 지적했다.강 박사에 따르면 핀란드 산 자작나무 껍질에서 생산된다는 ‘자작나무 설탕’ 자일리톨 또한 이 나무의 것만이 아닌 모든 나무가 함유하고 있는 성분이라는 것이다.   추운 곳을 좋아하는 특성상 자작나무 군락지는 대부분 강원도에 몰려 있다.그 중 첫손 꼽히는 곳이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과 태백시를 잇는 35번 국도 삼수령길이다.길 양편으로 크고 작은 자작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낱낱의 빛나는 자작나무들이 모여 만들어낸 눈부신 빛의 정원들이 여행자의 두 눈을 경이로움으로 가득 채운다.군데군데 자작나무 사이를 걸어볼 수 있는 산책로도 조성돼 있다.  팁 하나.삼수령 표지석 왼쪽의 매봉산 풍력발전단지는 반드시 찾아가 볼 것.광활한 고랭지 채소밭과 풍력발전기들이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시원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오르는 길 중간중간 자작나무들이 운치를 더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횡계에도 자작나무 군락지가 많다.영동고속도로 횡계 나들목을 나와 우회전한 뒤 횡계 시가지 초입에서 구 영동고속도로 방향으로 좌회전해 올라가다 보면 왼편에서 자작나무 군락지와 만날 수 있다.언제가도 두어명의 사진작가들과 만날 수 있을 만큼 촬영지로 많이 알려진 곳이다.양떼목장을 지나 횡계 시내로 들어오는 옛길 주변에도 드문드문 자작나무들이 자생하고 있다. 이밖에 진부에서 정선으로 향하는 59번 국도 변 수항리계곡,평창 오대산 상원사에서 홍천군 내면 명개리로 향하는 북대사길,철원의 복주산자연휴양림 등에서도 예쁜 자작나무 군락지와 만날 수 있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영동고속도로→새말 나들목→횡성방향 좌회전→약 4㎞ 직진→두곡리→미술관 이정표.  ▲주변 볼거리:치악산 구룡사,안흥 찐빵마을,횡성온천,횡성자연휴양림 등.  ▲맛집:횡성의 대표 먹거리는 한우.축협에서 운영하는 횡성한우프라자(345-6160),함밭식당(343-2549),통나무집(344-3232)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주천강을 따라 영월쪽으로 가다 만나는 다하누촌에서도 싸고 질좋은 한우를 양껏 맛볼 수 있다.372-6204.  ▲잘 곳:미술관 자작나무숲 내에 펜션이 있다.50㎡(15평) 1박에 15만원을 받는다.jjsoup.com,342-6833.  글·사진 횡성·평창·태백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길섶에서] 첫눈 무효/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지난 목요일 서울 지방에 첫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비록 머리에 흰눈을 잔뜩 얹고 살기는 해도 첫눈 소식엔 옛날처럼 마음이 설레었다. 하지만 내 시야에 눈송이는 보이지 않았다. 진눈깨비나 가는 빗발이 전부였다. 서울이 워낙 넓다 보니 흰눈을 맞은 이도, 나처럼 겪지 못한 이도 있었을 것이다. 주위에는 첫눈 오는 날 만나자던 사연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상대는 작은 일로 다투고 냉각기를 갖기로 한 연인, 이제는 소식 끊어진 친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어떠했나. 첫눈 오는 날 재회하자는 약속대로, 화해할 마음으로 약속시간 약속장소에 나가 여러 시간 추위에 떤 연인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상대방은 첫눈 온다는 예보조차 모른 채 무심하게 보냈을 테고. 그래서 누군가는 그날 눈이 첫눈이었는지를 공인해야 한다. 자, 지난번 눈은 무효로 하자. 그리고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 다시 약속장소에 나가자. 그날도 못 만나면 다음 눈 오는 날에 나가고. 사랑은 어차피 기다림이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가벼워진 毛皮 나이를 벗다

    가벼워진 毛皮 나이를 벗다

    할리우드 최고의 패셔니스타로 꼽히는 린지 로한이 얼마 전 파리에서 톡톡히 스타일을 구겼다. 평소 모피를 매우 사랑하는 그녀를 향해 한 동물보호단체가 밀가루 세례를 퍼부은 것. 이를 보도한 외신은 ‘린지 로한, 모피 걸친 대가를 치르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어쩌랴. 동물보호단체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흰 밀가루를 뒤집어쓸지언정 모피를 욕망하는 사람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으니…. 해마다 유명 모델이나 영화배우들이 ‘모피를 걸치느니 차라리 벗겠다.´는 슬로건 아래 보여주는 고혹적인 알몸도 모피의 매력 앞에선 굴욕을 면치 못하고 있는 듯하다. 올해 모피의 기세는 더욱 등등해졌으니 말이다. 런던, 뉴욕 컬렉션에서 한동안 뜸했던 모피가 대거 등장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귀여운 디자인… 젊은 연령대에 인기 유행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과거 부잣집 마나님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모피는 이제 소득과 연령의 사다리를 성큼 내려와 젊은 여성들을 향해 강한 유혹의 입김을 내뿜고 있다. 상대적으로 지갑이 얇은 소비자들이 몰려드는 인터넷 쇼핑몰의 겨울 효자 상품 목록에서도 모피는 빠지지 않는다. 옥션에서도 최근 1개월간 모피 제품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나 더 팔렸다. 재킷, 코트, 조끼 등 외투부터 모피를 부분적으로 활용한 부츠, 머플러, 니트 카디건 등 다양한 아이템들이 1만~10만원대의 착한 가격대를 입고 모피의 문턱을 낮추는 데 한몫하고 있다. 가격, 디자인, 소재 등 모든 면에서 모피는 젊어질 대로 젊어졌다. 길고 부한 몸집으로 우아함을 뽐내나 거추장스럽던 모피는 레깅스, 청바지, 미니스커트 등과 입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짧고 발랄해졌다. 퓨어리, 진도 등 전문 모피 브랜드는 물론 20, 30대를 대상으로 하는 여성복 브랜드들도 롱코트보다는 짧은 재킷이나 점퍼 스타일의 블루종을 대거 선보였다. 재킷은 복고풍의 영향으로 밑단과 소매가 살짝 퍼지는 A라인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자칫하면 아줌마처럼 보이기에 벨트나 끈으로 허리를 묶어 젊은 감각을 뽐낼 수 있도록 한 디자인이 많다. 모피 블루종은 소매 끝부분과 밑단을 가죽이나 니트로 처리해 팔목 부분과 허리가 가늘어 보이게 했다. 이질적인 소재와 모피를 섞는 것도 이제는 새롭지 않다. 올해의 특징은 서로 다른 질감의 모피끼리 섞은 제품이 많다는 것. 가죽이나 일반 천 제품에 기존의 칼라 부분에 모피를 덧댄 것이 아닌 이질감이 느껴지는 모피를 어깨 견장이나 소매 쪽에 사용해 포인트를 주었다. 모피 위에 스팽글, 비즈, 자수 테이프 등으로 장식미를 가미하거나 리본으로 허리를 묶어 날씬함을 강조하는 디자인이 많은 것도 젊은층을 공략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모피를 입고서도 다운 점퍼를 걸친 듯 귀엽고 발랄하게 보이고 싶다. 이런 욕구를 반영하듯 색상도 화려해졌다. 검정, 회색, 갈색 등 고전적인 색상과 더불어 핫핑크, 바이올렛, 퍼플, 그린, 블루 등 원색을 입은 제품들이 대거 눈에 띈다. ●조끼 하나면 패셔니스타 매장을 장악했다는 표현을 써도 될 정도로 조끼 스타일이 많다는 데서도 ‘모피의 회춘’을 확인할 수 있다. 모피 조끼 바람은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했는데 올 겨울엔 더욱 뜨겁다. 지구 온난화 덕에 날씨가 따뜻해지니 치렁치렁한 모피 코트는 점점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입어서 가볍고 남보기에도 불쌍하게 추워보이지 않을 아이템으로 모피만 한 게 있을까. 더구나 요즘 ‘시즌리스 레이어드룩(계절에 상관없이 겹쳐입기)’이 강세를 띠면서 다소 얇은 옷차림을 보완해주는 동시에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아이템으로 그만인 것이다. 하늘거리는 보헤미안풍의 쉬폰 소재 원피스나 꽃무늬가 들어간 얇은 블라우스 위에 걸친 모피 조끼가 더할 나위 없이 멋져보인다. 예전 같으면 ‘멋내다 얼어 죽을래?’하고 핀잔을 들었겠지만 말이다. 니트 카디건 위에 입어도 손색없고 좀 두꺼운 외투에 입어도 무방하다. 안에 입는 옷에 따라 옷차림의 표정이 달라지니 모피 조끼 하나면 만사해결이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길이가 다소 길어졌고 기모노 형태의 소매가 달린 디자인이 눈에 많이 띈다. 업체들도 코트의 비중은 대폭 줄이고 조끼, 숄, 볼레로 등 소품의 비율을 높이는 등 젊은 여성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 도움말 및 사진제공 : 산드로, 퓨어리, 신원, 옥션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한겨울의 고기 굽기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한겨울의 고기 굽기

    그림(1)은 성협의 ‘고기 굽기’다. 다섯 명의 사내가 숯불을 괄하게 피운 불판에 둘러앉아서 고기를 구워 먹고 있다. 맨 오른쪽의 사내는 술병을 앞에 두고 한 잔 쭉 들이켜는 참이고, 바로 그 오른쪽의 사내는 왼손에는 구울 고기를 담은 접시를 들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구운 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가고 있다. 입술을 약간 내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익은 고기가 뜨거워 불고 있는 것이다. 다시 그 왼쪽의 젓가락을 들고 고기를 집으려는 사내는 털이 달린 남바위를 쓰고 있다. 또 술 마시는 사내 아래쪽에 있는 사내는 두터운 복건을 쓰고 있다. 아마도 쌀쌀한 날인 듯하다. ●좀 사는 집이라야 쇠고기 구워 먹어 재미있는 것은 흰 건을 쓴 사내다. 상주처럼 보이지만, 그림만으로는 확신이 가지 않는다. 왼손잡이인 듯 왼손에 젓가락을 들고, 오른손에 역시 구울 고기를 담은 접시를 들고 있다. 친구들과 모여서 고기를 굽고, 한 잔 쭉 들이켜는 재미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림(2)는 작자 미상의 ‘고기 굽기’다. 그림 위쪽에 성가퀴가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서울 성곽 안팎의 어디쯤이다. 여자 둘이 끼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림(1)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역시 둥글게 둘러앉아서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것이다. 다만 고급스러운 자리를 깔고 거기에 털가죽 방석까지 깔았으니, 제법 호사스러운 자리인 것이다. 지금은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을 두고 드문 일로 치지 않는다. 하지만 30~40년 전만 해도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은 일상이 아니었다. 고기, 특히 쇠고기는 국을 끓여 먹었지 구워 먹는 것은 좀 사는 집이라야 가능한 일이었다. 필자의 선배 한 분은 쇠고기국조차 군대 가기 며칠 전에 처음 먹었다고 한다. 그렇다 해서 쇠고기 구이 요리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쇠고기 요리, 특히 굽는 요리는 대개 서울의 요리였지, 지방이나 시골의 요리법은 아니었다. 말이 난 김에 쇠고기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쇠고기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소를 부려 농사를 짓고부터일 것이다. 한데 이게 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1123년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송나라 사람 서긍은 한 달을 머무르면서 고려에 대해 보고 들은 것을 정리해서 ‘고려도경’이란 책을 쓴다. 이 책을 보면, 고려 사람들은 불교를 믿기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고, 또 소나 돼지의 도살에도 아주 서툴러 고려 사람들이 요리한 고기를 먹을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푸념을 한다.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는 불교의 자리에 유교가 들어섰으니, 종교적 이유로 쇠고기를 먹지 못할 것은 없었다. 한데, 소는 또 농우(農牛)다. 쇠고기를 많이 먹으면 결과적으로 농사지을 소가 모자라게 된다. 그래서 소를 도살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고, 어기는 사람은 처벌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고기를 먹고자 하는 욕망이 식을 리가 없다. 돈 있고 권세 있는 양반들은 쇠고기를 즐겨 먹었다. 성균관의 유생들은 원래 등록금도 내지 않고 기숙사비도 없고 식사도 공짜다. 그런 유생들의 반찬으로 쇠고기가 빠지지 않고 밥상에 올랐다. 쇠고기를 먹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지만, 그런 법이야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었던 것이다. ●유생들의 식사에 쇠고기 빠지지 않아 보통 소를 잡는 사람을 백정이라 하지만, 그것은 서울을 제외한 곳에서 그렇다. 서울은 성균관의 노비들이 소를 잡아 쇠고기를 판매한다. 성균관의 주위 동네를 반촌이라 하고, 그 동네에 사는 사람을 반인이라 한다. 이들은 고려 때 안향이 성균관에 기증한 노비의 후손이라고 한다. 반인들은 성균관에 딸린 노비로서 다른 곳에 가서 살지 못하고 반촌에서 살며 성균관의 건물을 지키고 관리하는 일과, 성균관에 필요한 모든 육체노동을 담당한다. 이 노동에는 유생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포함된다. 유생들의 식사에 쇠고기가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반인들은 소를 잡아야만 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뒷날 반인들은 소를 잡아 판매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반인들은 성균관에 소속된 노비이기 때문에 성균관에 노역을 제공하면, 당연히 성균관 재정에서 반인들의 먹고 살 물자나 방도를 마련해 주어야만 하였다. 임병양란 이후 성균관 재정이 어려워져 반인들이 먹고 살 길이 없게 되자, 조정에서는 반인들에게 소의 도살과 판매를 독점적으로 허락해 주었다. 반인은 일정한 세금을 바치고 쇠고기 가게를 열게 되었던 바, 그것을 현방(懸房)이라 한다. 현방은 고기를 달아매 놓고 파는 가게란 뜻이다. 현방은 시대에 따라 가게 수가 다른데, 많을 때는 48개, 적을 때는 22개였다. 서울 시내에 쇠고기를 파는 20곳이 넘었다는 것은, 쇠고기의 수요가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또 음식 중에서 쇠고기 요리를 으뜸으로 쳤던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서민들이 즐겨 읽었던 ‘흥부전’을 보자. 흥부는 워낙 가난한 탓에 자식들에게 옷을 다 해 입힐 수 없다. 큰 자루를 만들어 자식들을 쓸어 담고 사람 머리만한 구멍을 뚫는다. 자식들이 머리를 내 놓을 구멍이다. 이러니 한 사람이 뒤가 마려우면 나머지도 모두 뒷간에 따라가야 한다. 한 놈이 일을 보는 동안 다른 놈들이 먹고 싶은 것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먹을 것이 없을수록, 먹지 못할 형편일수록 먹고 싶은 것은 더 많아지는 법이다. 한 놈이 “애고 어머니, 우리 열구자탕에 국수 말아 먹었으면….” 하자, 또 한 놈이 “애고 어머니, 우리 벙거짓골 먹었으면….” 하고, 거기에 또 한 놈이 “애고 어머니, 우리 개장국에 흰밥 조금 먹었으면….” 하고, 또 한 놈이 “애고 어머니, 대초찰떡 먹었으면….” 한다. 먹고 싶은 음식 랭킹 1,2,3위가 고기로 만든 것이다. 대추를 박아 넣은 대추찰떡은 4위에 불과하다. 영광의 1위 열구자탕과 2위 벙거짓골은 무엇인가?열구자탕은 입을 즐겁게 하는 탕이라는 뜻이다. 맛있는 줄은 알겠지만, 이것으로는 어떤 음식인지 알 수가 없다. 알고 보면 별것도 아니다. 열구자탕은 신선로에 채소와 고기를 넣고 끓인 탕이다. 곧 요즘의 신선로다. 벙거짓골은 전립투(氈笠套)라고도 한다. 벙거지가 곧 전립인 것인데, 곧 짐승의 털을 틀에 넣고 꽉 눌러서 만든 모자다. 벙거짓골은 음식을 익히는 그릇이 벙거지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생겨 붙은 이름이다. 요즘 전골을 먹으러 가면, 가운데가 움푹 파인 넓은 쟁반에다 여러 재료를 얹어 익혀 먹는데, 그것처럼 생겼다고 보면 된다. 유득공의 ‘경도잡지’란 책을 보면,“냄비 중에 전립투라는 것이 있다. 벙거지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채소는 가운데다 데치고, 가에서는 고기를 굽는다. 안주나 밥반찬에 모두 좋다.”고 하고 있으니, 바로 그림(1)과 (2)에서 보는 고기 굽는 그릇 바로 그것이다. ●먹고 싶은 음식 랭킹 1·2·3위가 고기 그림(1)과 (2)는 모두 벙거짓골로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장면이다. 박지원의 ‘만휴당기(晩休堂記)’란 글을 보면 벙거짓골로 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이 나온다. 예전에 눈 내리는 어느 날, 나는 작고한 대부 김술부(金述夫) 씨와 함께 화로를 놓고 고기를 구워 먹는 난로회(煖爐會)를 행한 적이 있다. 세속에서는 이것을 철립(鐵笠, 쇠벙거지)이라고 부른다. 온 방안이 연기로 그을고 비린내와 누린내가 사람에게 배어들자 김공은 먼저 일어나서 나를 데리고 북쪽 마루 아래로 나아갔다. 그는 부채를 부치며 말하기를, “이렇게 맑고 시원한 곳도 있네그려. 가히 신선도 부럽지 않으이.” 잠시 뒤에 밖을 내다 보니 여러 하인들이 심부름을 하느라고 처마 밑에 섰는데 너무 추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고, 그 집의 자제들은 떠들다가 끓는 물을 엎질러서 손을 데었다고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 친구들과 어울려 벙거짓골로 고기를 구워 먹었던 추억을 떠올린 것이다. 그림(1)과 (2)는 모두 겨울철인 듯한데, 박지원 역시 겨울에 벙거짓골을 먹고 있으니, 벙거짓골은 원래 겨울의 시식(時食)이었나 보다. 하지만 어디 겨울에만 먹으랴? 친구들이 좋으면 무슨 음식이건 어떤 계절이건 좋지 않겠는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청도 반시, 열매가 주는 선물

    청도 반시, 열매가 주는 선물

    열매의 생물학적 의미는 ‘식물의 꽃이 수정한 후 씨방이 자라서 맺힌 것’이며 사회적 의미는 ‘이루어 놓은 결과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열매는 반드시 꽃이 피어야 하고 수정을 해야 열매를 맺는다. 꽃을 보는 것도 아름다운데 그 열매까지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이 나무여서, 꽃 피고 열매를 주는 나무처럼 고마운 자연의 선물이 또 있을까 싶다. 나무도 열매를 달기 위해 사계절을 열심히 걸어간다.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지만 열매를 달기 위해 나무도 사람 못지않게 바쁘게 살고 있다. 나무는 휴식의 추운 겨울을 보내고 나면 봄에 새잎을 달고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열매를 달아 가을이면 잘 익은 열매를 만들어낸다. 나무는 위대하다. 그래서 그 열매가 단 것이다. 그 중에서 한국인과 가장 친숙한 감나무는 더더욱 그러하다. 감나무는 우리나라의 가을을 대표하는 나무다. 가을과 함께 열매와 잎이 함께 붉게 물이 드는 감나무를 옛사람들은 五絶(오절), 오상(五常), 오색(五色)을 가진 나무로 대접했다. 감나무의 五絶(오절)은 壽(수), 無鳥巢(무조소), 無蟲(무충), 嘉實(가실), 木堅(목견)이다. 이는 나무가 오래 살며, 새가 집을 짓지 않으며, 벌레가 일지 않으며, 그 열매가 달기가 으뜸이고, 나무가 단단하다는 뜻이다. 오상(五常)은 文(문), 武(무), 忠(충), 孝(효), 節(절)로 낙엽 든 감나무 잎에는 글을 쓰니 文이고, 나무가 단단하여 화살촉으로 사용하니 武고, 열매의 겉과 속이 같이 붉어 표리부동하지 않으니 忠이고, 열매가 부드러워 노인들도 드실 수 있으니 孝고, 열매가 서리가 내릴 때까지 나무에서 견디니 節이다. 오색(五色)은 黑(흑), 靑(청), 黃(황), 赤(적), 白(백)으로 나무는 검고, 잎은 푸르고, 꽃은 노랗고, 열매는 붉고, 말린 곶감에 흰 가루가 날린다는 것이다. 나무와 열매에서 이처럼 五絶(오절), 오상(五常), 오색(五色)을 찾아낸 것은 옛사람들의 감나무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는 것이다. 특히 그 열매인 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깊은 뜻을 둔 것이 열매의 위대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러고 보니 예로부터 감나무의 열매들은 다 따지를 않았다. ‘까치밥’이라 하여 꼭 몇 개씩 남겨 두었다. 나무가 준 열매를 사람만 먹지 않고 까치들에게도 나눠주었다. 이를 두고 김남주 시인은 ‘홍시 하나 남겨 둘 줄 아는/조선의 마음이여’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씨가 없는 열매, 청도 반시 감나무에서 감이 풍성하게 익어가는 풍경은 우리나라 시골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가을 풍경이지만 경상북도 청도군은 ‘반시’라는 특산품인 특별한 감으로 가을마다 ‘열매가 주는 선물’을 톡톡히 받고 있는 고장이다. 반시(盤枾)는 떫은 감을 대표하는 품종이다. 곶감을 만드는 길쭉한 모양의 ‘둥시’와 달리 생긴 모양이 쟁반처럼 납작하다고 해서 ‘반시’라 한다. 그러나 그 반시가 ‘청도 반시’가 되면 전혀 색다른 감이 된다. 놀랍게도 청도 반시에는 씨가 없다. 반시에 씨가 없는 것은 청도가 전국에서 유일하다. 육질이 연하고 당도도 높은데 씨까지 없다보니 먹기에도 편하고 가공에도 편리해 청도 반시는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받는 감이 되었다. 왜 청도 반시에만 씨가 없을까? 그건 청도가 청정지역이라는 것을 말한다. 청도군은 지리적으로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다른 지역에서 자라는 다른 감꽃의 꽃가루가 찾아오지 못한다. 또한 감꽃이 피는 5월에 안개가 많이 발생하여 꽃가루를 나르는 곤충들이 활동을 잘 하지 못해 자연스레 씨 없는 반시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청도 반시를 다른 지역에 심으면 씨가 있는 반시가 달린다. 그러니 청도 사람들에겐 반시가 얼마나 고마운 열매의 선물이겠는가. 청도는 예로부터 감의 고장이다. 조선 명종 1년(1545년) 이서면 신촌리 ‘세월 마을’이 고향인 박호가 평해군수로 재임하다가 청도로 돌아올 때 중국에서 전래되었다는 감나무를 가지고 와 청도의 감나무에 접목한 것이 이곳 토질과 기후에 맞아 ‘세월 반시’가 되었고 청도의 전역으로 널리 퍼지게 되면서 ‘청도 반시’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감나무 재배면적만 1,361ha에 이르고 생산량도 18.6천여 톤으로 전국 생산량의 20%에 달한다. 수령이 450년이 된 감나무도 있고,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100년 이상 된 감나무가 왕성하게 열매를 달고 있다. ‘뿌리 깊은 감나무’가 주는 열매를 선물 받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청도군이 주최하는 ‘청도 반시 축제’가 올해는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청도천 둔치에서 열리는데 ‘청도 반시 100배 즐기기’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감의 영영가는 대단하다. 비타민A, B1 ,B2, C와 미네날Ca, P, Fe, K가 풍부한 건강식품이며 숙취를 없애고 설사를 멈추게 한다. 거기다 갈증 해소, 치질, 고혈압, 감기 예방에 효과가 크며 감꼭지를 달여 마시면 딸꾹질을 멈추게 하며, 감잎은 비타민C가 풍부하여 감잎차를 만들어 먹는다.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는 열매인 것이다. 나무의 열매에서 사람의 열매로 나무가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나무의 선물인 열매의 이름값을 하는데 부족하다. 옛말에 ‘감나무 밑에 누워도 삿갓 미사리를 대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아무리 좋은 기회라 하더라도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감의 고장 청도는 ‘감꼬치에 곶감 빼 먹듯’ 하지 않고, ‘감나무 밑에 누워서 홍시가 익어 떨어지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풍부한 감을 통해 여러 가지 상품을 만들고 있는데 그 중에서 천연염색인 ‘감물 염색’과 감으로 만든 와인 ‘감그린’이 열매에서 새로운 열매를 만드는 대표적 작업이다. 감이 익으면 홍시가 되지만 풋감은 감물의 좋은 재료가 된다. 풋감에서 감물이라는 천연염료를 만들어 감의 붉은 색, 우리나라 가을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다. 여러 가지 천에다 물을 들여 감물천을 만들고 그 천으로 옷을 비롯하여 생활에 필요한 감물 제품을 만들어 청도군 내 곳곳에서 판매를 하고 있다. 감이 붉게 익는 계절에 청도를 찾아가면 나무에는 감이 익고 곳곳에서 감물을 들이는 서정적인 풍경과 만난다. 감물 염색 체험장도 있어 감으로 자신의 가을 색깔을 빚어낼 수도 있다. 청도는 청도 반시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감와인을 만들었다. ‘감그린’이란 황금색의 화이트 와인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공식 만찬주에 선정되기도 한 감와인은 ‘와인터널’이란 색다른 명소도 가지고 있다. 감으로 만든 와인은 100% 서리 맞은 청도 반시를 이용해 발효시켜 1년간 숙성시켜 만든다. 포도로 만든 레드와인에서만 맛볼 수 있는 타닌 맛을 더욱 풍부하게 가지고 있어 인기다. 특히 ‘감그린’와인은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에 있는 ‘와인터널’의 연평균 13~15도의 온도에서 붉은 감빛이 황금빛으로 숙성된다. 일제강점기 경부선 철도에 만들어졌던 110년의 역사를 가진 터널에 감와인을 숙성, 저장하고 판매매장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감이 주는 열매로 와인이란 새로운 열매를 만든 것이다. 글·사진 삶과꿈 편집부
  • [어린이 책] 어둠의 공포 극복하는 ‘미미‘의 재치

    “불 끄지마. 제발!” 잠이 채 들지 않은 아이의 방. 불을 살짝 끄고 나가려는 엄마를 향한 간절한 호소다. 어릴 때는 깜깜한 밤에 혼자 누워있으면 붙박이 문을 열고 괴물이 튀어나올 것만 같고, 그 괴물이 어둠 속에서 숨어서 노려보고만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어린이같은 상상력이라고 해도 되돌아보면 등에 땀이 밴다. ‘이젠 밤이 무섭지 않아’(위르크 슈이거 글, 에바 무겐트할러 그림, 살림어린이 펴냄)의 주인공 미미는 어둠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재치있는 상상력으로 현명하게 극복해 나간다. 한밤에 불을 끈 방은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달빛이나 전구에 환하게 빛나거나, 완전히 깜깜하거나. 미미는 침대 옆 벽에 환한 빛을 흰 털이 반짝는 하얀 곰이 말 없이 앉아있거나, 옆집 피아노 소리에 맞춰 춤추고, 화장실에서 칫솔질한다고 상상한다. 어둠 속 빛과 친숙해진 미미는 하얀 곰을 여행 보내는 성숙함을 보인다. 그러나 하얀 곰이 사라진 깜깜한 어둠에는 검은 곰이 나타난다. 검은 곰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대신 미미는 “이젠 밤이 무섭지 않아. 착한 아이들은 밤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밤은 나쁜 짓을 하는 도둑에게나 무서운 거야.”라고 혼자 말하며 어둠을 이겨나간다. 미미는 심지어 엄마에게 ‘밤의 비밀’을 털어놓기까지 한다. 유난히 어두움을 싫어하는 어린이들에게 좋은 동화책이다.95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한국의 토종] (16) 반달 가슴곰

    [한국의 토종] (16) 반달 가슴곰

    단군신화에도 등장하는 ‘곰’은 우리 민족과 반만년 가까이 함께 해온 이 땅의 모신(母神)과 같은 존재다. 특히 ‘반달가슴곰’은 70만년 전의 지층에서 그 화석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고조선 건국 이전부터 한반도에 살던 ‘토종동물’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오래 전부터 백두대간 전역에서 서식해온 반달가슴곰이 지금은 생존 흔적이 발견되는 것만으로도 뉴스가 될 만큼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2000년말 지리산서 발견 된 뒤 복원나서 반달가슴곰은 곰인형을 일컫는 일명 ‘테디 베어’의 모델인 불곰과 달리 전체적으로 온몸이 윤기 나는 검은 색인데, 유독 앞가슴에 반달 모양의 V자형 흰 무늬가 있는 게 두드러진 특징이다. 반달가슴곰의 소멸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그 아픔을 같이 한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이른바 ‘해로운 동물을 없앤다.’ 는 명목 하에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을 펼치면서 우리의 토종동물들을 남획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멸종위기종복원센터의 지형우(39) 대외협력팀장은 “당시 공식적으로 기록된 반달가슴곰 포획량만도 1000마리에 이르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두 배가 넘는 2000마리 이상이 잡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의 싹쓸이 포획에도 불구하고 산간지역 등지에서 곧잘 눈에 띄었던 토종 반달가슴곰의 개체 수가 급격히 준 것은 불과 수십년 사이의 일이다. 전 국토를 초토화한 6·25전쟁으로 서식지가 줄어든데다 ‘몸보신용’ 사냥감으로 내몰리면서 멸종위기에 처한 것.1972년 수렵금지 조치 이후에도 밀렵이 성행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 많은데, 지금도 지리산 곳곳에서 ‘올무’와 ‘창애’ 등 사냥도구를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다행히 8년 전인 2000년 말 멸종된 줄로만 알았던 반달가슴곰이 지리산 자락에서 발견되면서 야생 반달가슴곰에 대한 전방위적인 보호는, 물론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한 인위적 복원의 필요성이 본격 제기됐다.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은 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2004년 백두대간의 끝자락인 연해주에서 데려온 반달가슴곰 6마리를 지리산에 방사하면서 본격적인 신호탄을 쏴 올렸다. “삐~!삐~!” “이쪽 방향에 있는 것 같은데요. 들리시죠? 이 소리.” 지리산에 방생한 반달가슴곰의 발신기에서 나오는 신호가 위치추적기에 잡히자 복원센터 현지연(29·여)연구원이 환하게 웃으며 수신기를 들어 보인다.2인1조로 이뤄진 탐사조는 매일 9시간여 동안 수신 안테나를 들고 반달가슴곰의 위치 및 이동경로, 서식지 등을 점검한다. ●27마리 방사·6마리 야생 적응훈련 중 현재 지리산에 방사된 27마리 외에 6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자연학습장에서 야생 적응훈련을 받고 있다. 복원센터 이배근(39) 복원팀장은 “최소 50마리는 되어야 자생이 가능하지만, 복원의 성공 여부는 단순히 숫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반달가슴곰이 스스로 자연교배를 하고 대(代)를 이어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과천서울대공원 역시 멸종위기종복원센터와 함께 반달가슴곰의 서식지와 보존기관으로 지정됐다. 서울대공원 동물연구실은 토종동물들을 번식시키기 위해 종(種) 다양성 유지 및 과학적인 개체관리, 유전자 분석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대공원은 또 반달가슴곰의 직접 방사를 위한 훈련 환경이 미비하다는 판단에 따라 사육기술 및 질병발생 관계, 번식, 생태 등 다양한 특성을 연구해 자료화하고 있다. 방사할 반달가슴곰을 멸종위기종복원센터까지 ‘공수’하는 일도 서울대공원 몫이다. 모의원(54) 서울대공원 동물원장은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서울대공원은 미시적인 측면에서 복원사업을 진행하며 상호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사된 지리산 반달가슴곰들이 간간이 ‘돌발행동’을 해 물의를 빚기도 한다. 꿀과 애벌레를 좋아하는 곰이 토종꿀을 채취하는 한봉(韓蜂)단지를 훼손하기도 하고, 등산객들 앞에 갑자기 나타나 겁을 주기도 한다. 이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는 피해보상을 위해 보험에 가입하고 전기펜스도 설치하는 등 적극 대처하고 있다. 이배근 팀장은 “곰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 내려가는 일이 없기 때문에 등산로를 벗어나지 않으면 곰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면서 “곰 서식지를 의미하는 삼색 경고 플래카드를 보면 신속히 대피해달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등산객들이 버린 쓰레기가 후각이 예민한 곰들의 자연적응을 어렵게 하는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글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새영화] 렛 미 인

    [새영화] 렛 미 인

    그간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는 수없이 제작되고 또 진화되어 왔다. 하지만 스웨덴 영화 ‘렛 미 인’(Let The Right One In·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손·13일 개봉)은 기존의 흡혈귀 영화들과 결을 달리한다. 학교에서 툭하면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소년과 초대받지 않으면 인간의 영역에 침입할 수 없는 뱀파이어 소녀. 이 둘의 외로움의 정서는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이 작품을 단순히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는 것은 공포물이 주는 긴장감 속에서 서로 의지하는 소년과 소녀의 로맨스가 충분히 공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주변이 온통 흰눈으로 둘러싸인 스웨덴의 한 시골 마을. 못된 아이들의 괴롭힘에 시달려 방안에 틀어박힌 12살 소년 오스칼(카레 헤레브란트)은 우연히 아파트 공원에서 창백한 소녀 이엘리(리나 레안데르손)와 마주친다.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기로 결심한 소년과 소녀. 하지만 이엘리와 그녀의 아버지가 이사온 뒤 마을에는 괴상한 살인사건이 줄을 잇는다.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채 숨져 있는 남성의 시체가 발견되는가 하면, 늦은 밤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가던 행인 역시 목에 이빨 자국이 남은 시체로 발견된다. 오스칼은 이엘리가 용기를 북돋워준 덕에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맞선다. 덕분에 그의 학교 생활은 점차 나아지지만, 마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살인사건들과 이엘리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하나씩 밝혀진다. 결국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은 뱀파이어라는 사실이 탄로난 이엘리는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 갈게’라는 쪽지를 남긴 채 오스칼의 곁을 홀연히 떠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흡혈귀를 상투적인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이질적인 개체로 상징해 서정적인 공포를 표현했다는 점이다. 간간이 등장하는 잔인하고 충격적인 장면이 간담을 서늘하게 하지만, 서로가 세상의 전부인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은 그래서 더욱 슬프게 다가온다. 스웨덴 출신인 알프레드손 감독은 눈덮인 스톡홀름을 배경으로 자극적인 화면편집이나 음향효과 없이도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며 팽팽한 긴장감을 잘 살려냈다. 특히 눈물이나 땀 대신 피눈물과 피땀을 흘리고, 태양빛에 전신이 노출되면 순식간에 불타버리는 뱀파이어 신화를 일상적 소재로 끌어들여 드라마의 흡인력을 더했다. 영화의 제목은 인간이 ‘들어와도 된다’고 허락하지 않으면 인간의 영역에 침입할 수 없는 뱀파이어의 규칙을 의미한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생소한 스웨덴산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부천·시체스 국제판타스틱영화제, 트라이베카영화제 등 13개 세계 영화제 상을 받는 저력을 과시했다.15세 이상 관람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기고] ‘한계’를 극복한 미국인들의 힘/조경란 소설가

    [기고] ‘한계’를 극복한 미국인들의 힘/조경란 소설가

    올 초에 일주일가량 보스턴에 머문 적이 있다. 하버드대학에서의 일정이 끝나면 오후나 저녁에는 대학가 주변 서점이나 오래된 식당 같은 데서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구태여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사람들은 온통 대선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때는 아직 민주당 경선이 끝나지도 않은 때였고 내 짐작으로는 선거 날짜가 먼 것처럼 보이는데도 대선 후보자들, 자신들이 지지하는 당에 대한 토론의 열기가 뜨거웠다. 그 토론의 가장 중심에 있는 주제가 바로 ‘젊은 흑인 후보자 오바마’라는 것도 신기했다. 4년 전 ‘아이오와’라는 미 중부 도시에서 43대 대선을 지켜보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뜨겁고 ‘참여적인’ 분위기였다. 밤에 숙소로 돌아올 때면 나는 이 ‘열기’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자문하고는 했다. 지난 9월부터는 대산문화재단과 UC버클리의 후원을 받아 캘리포니아에 머물게 되었다. 캘리포니아라면 미국 내에서도 민주당 지지 성향이 전통적으로 강한 지역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학에서 일을 도와주는 직원들은 말할 것도 없이 오바마를 지지하고,10월 말이 되자 대학가 주변의 거의 모든 상점에서는 오바마 상반신이 든 포스터를 깃발처럼 내걸기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알바니’라는 마을의 100주년 기념 거리 축제에 갔을 때 가장 붐볐던 상점도 오바마 얼굴이 프린트된 흰 티셔츠를 파는 곳이었다. 그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티셔츠를 입히고 손에 오바마 지지 깃발을 든 부모들이 거리에 가득했다. 지금껏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가려는, 어딘가에 새로운 길이 있다고 믿는 열망으로 가득 찬 그런 표정으로. 이방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엄숙하고 진지한 대통령선거가 아니라 마치 축제를 준비하고 그것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들떠 보였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이야기 나눌 때면 곧 그들 역시 어떤 한 문제, 즉 ‘인종’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자신없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표현대로 ‘deep-seated problem’, 즉 고질적인 문제. 한국에서 온 방문학자 중에 한 정치부 기자와 가끔 우리, 타인들이 보는 미 대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서로 엇갈린 의견도 있긴 했지만 한 가지 일치했던 점은 과연 미국인들이 ‘흑인’ 후보자를 대통령으로 뽑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그것이 그들이 가진 가장 큰 ‘한계’처럼 보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고질적인 문제도 진정한 변화를 갈망하는 대다수의 국민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일주일가량 지나 돌아온 서울에서, 사상 최대의 유권자들이 몰린 제44대 미 대선 투표 결과를 지켜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 젊은 층과 히스패닉계의 참여가 두드러졌던, 미국 건국 232년만에 최초로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킨 가장 큰 힘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변화를 주창하는 목소리는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 언제나 힘이 실렸던 것은 아니다. 진정한 변화를 위한 끊임없는 투쟁은 몹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시작’만이 아닐 것이다. 어떤 어려운 일을, 희망을 갖고 시작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지속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이번 오마바의 승리는 ‘미국을 바꾸고 세계를 변화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고 했다. 우리가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여전히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우리 경제와 어쨌거나 깊은 관련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한 미국인들의 새로운 선택이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어느 예술가는 한계란 갖고 있는 게 아니라 그렇게 여겨서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것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모이면 한계는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보지 못한 길을 위해 한계를 극복하려는 열망들. 그것이 또한 ‘문학’이 할 수 있는 역할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세계인들’,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일을 만들어낸 그들의 희망의 열기와 그것을 지속하려는 끊임없는 의지를 기대해본다. 조경란 소설가 <미국 UC 버클리대 한국작가 레지던스프로그램 참가 중>
  •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47세 검은 케네디 ‘노예 해방’ 완결짓다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47세 검은 케네디 ‘노예 해방’ 완결짓다

    “숯처럼 까만 아버지에 우유처럼 하얀 어머니…” 소년 오바마는 혼란스러웠다. 미국 절반이 흑백결혼을 금지하던 시절이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답은 찾을 수 없었다.‘흑백결혼’이란 단어가 괴기스럽고 추하게 느껴졌다. 혼란은 오래 갔다. 상처는 덧났다. 백인 가정에서 자란 흑인. 미국인도, 아프리카인도 아닌 정체성. 모든 게 모호했다. 위안이 필요했다. 당연한 듯 술과 마리화나에 손을 댔다.“술에 취하면 내가 누군가 하는 의문을 잠시 지울 수 있었다.”고 했다.“매일 아침 눈 뜨면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고도 했다. 방 안엔 안주 담은 그릇이 뒹굴고 재떨이엔 꽁초가 넘쳤다. 모든 게 황량했던 시절이었다. 흔한 마약쟁이로 일생을 보낼 뻔했던 이 흑인은 5일(현지시간) 미 합중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세계 언론은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환호하는 지지자들 속에서 오바마의 검은 얼굴엔 흰 미소가 번졌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5일(현지시간) “혼란스럽고 고단했던 날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은 1961년 8월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프리카의 케냐 출신 유학생이었고 어머니는 대학에 갓 입학한 18세 소녀였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단 한 사람의 축하객도 없었다. 하와이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혼혈과 외지인이 많았던 하와이는 본토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아버지 버락 후세인 오바마 1세는 케냐 루오족 출신이었다. 서부 빅토리아 호숫가의 작은 마을에 살았다. 오바마의 할아버지는 영국인 지주 집에서 요리사로 일했고, 오바마 1세는 염소를 몰았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아들을 식민지의 영국학교에 꼬박꼬박 출석시켰다. 그런 오바마 1세에게 일생일대 기회가 찾아왔다. 케냐가 독립하기 전날, 미국 유학 프로그램에 선발됐다. 오바마 1세는 하와이 대학에 입학했다. 거기서 어눌하고 수줍음 많던 스탠리 앤 던엄을 만났다. 금세 사랑에 빠졌고 곧 아기를 가졌다. 어머니 던햄은 학교를 중퇴해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했다. 그러나 이별의 시간은 빨리 다가왔다. 새로운 장학금을 받아 아버지가 하버드로 떠났다. 어린 엄마와 흑인 아들은 하와이에 남겨졌다. 오바마가 두살 때였다. 어머니는 새삶을 살았다. 학교에 복학하고 인도네시아 유학생 롤로 수토르와 재혼했다. 여섯살 오바마는 새아버지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떠나게 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오바마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네 친구 에디 뿌르완또로는 오바마의 어린 시절을 기억했다.“사룽(인도네시아인들이 허리에 두르는 천)을 뒤집어 쓰고 해가 질 때까지 함께 닌자놀이를 했다.”고 했다.“서로 다른 신을 믿지만 그래도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를 줄곧 기도했다.”고도 했다. 열 살 되던 해, 오바마는 호놀룰루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아들이 미국에 있는 학교에 다닐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호놀룰루에선 오바마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바마를 진정한 미국인으로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듣는 사람들이다. 오바마는 외할머니를 ‘투트(Toot)’라 부르며 따랐다. 하와이 원주민 말로 할머니를 뜻하는 ‘투투(tutu)’를 변형한 애칭이다. 숨가쁜 대선 레이스가 계속되던 지난달 23~24일, 오바마는 외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선거운동을 중단했다. 하와이로 급히 날아갔다. 캠프 안팎에서는 이런 행보가 선거에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놓고 저울질이 한창이었지만, 오바마에게는 그저 ‘투트’가 소중했다. 오바마는 지난 3일 조용히 숨을 거둔 외할머니를 “미국의 수많은 ‘조용한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기렸다. 선거 전문가들은 “오바마의 외가쪽 이력이 백인 보수층의 거부감을 무너뜨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실제 대선전에서도 외할머니는 오바마의 큰 우군이 됐던 셈이다. 1979년, 고등학교를 마친 오바마는 로스앤젤레스 옥시덴털칼리지에 입학했다.2년 뒤엔 컬럼비아대로 편입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그는 “당시 수도승처럼 공부만 했다.”고 회고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공동체 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한다.“흑인을 조직해 풀뿌리부터 변화시키리라.”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친 그는 시카고에서 운동가 생활을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곳곳에서 한계에 부딪혔다. 더 많은 지식, 한 단계 높은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1988년, 오바마는 하버드대 로스쿨에 입학했다.“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도서관에서 판례와 법전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던 그는 1990년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 편집장에 선출된다. 학술지 역사 104년 만에 첫 흑인 편집장이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일찌감치 흑인사회의 리더로 각인됐다. 당시 오바마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미국이 진보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1996년 오바마는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일리노이주 주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했다.1998년에 재선,2002년에는 3선에 성공했다. 그 사이 2000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패배하는 아픔도 겪었다.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그해에는 일리노이주 민주당 대의원으로도 선출되지 못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선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었다. 4년 뒤 2004년 대선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존 케리 당시 민주당 후보가 보스턴 전당대회 기조연설을 요청했다. 케리는 “우연히 선거 행사장에서 오바마의 연설을 듣고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오바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무명에 가깝던 이 흑인 정치가는 이날 연설 이후 전국적인 스타가 됐다. 그리고 흑인으로는 다섯번째로 연방 상원 입성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다시 4년이 지난 2008년 이 ‘검은 케네디’는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금융위기로 흔들리는 ‘미국호’의 새로운 조타수가 됐다. 그는 “아직 미국에는 꿈꾸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있으면 희망은 남아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계 흑인 몽상가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전설속의 ‘푸른 장미’ 유전공학으로 탄생

    전설속의 ‘푸른 장미’ 유전공학으로 탄생

    ’불가능’을 뜻하는 푸른 장미의 꽃말이 ‘기적’으로 바뀌게 될 것 같다. 현재 일본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 플라워 엑스포에서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고 있는 꽃이 있다. 바로 전설 속에 존재하는 ‘푸른 장미’다. 장미는 원래 푸른 장미가 없다. 푸른색을 만들어내는 색소가 없기 때문. 지금까지 볼 수 있었던 푸른 장미는 흰 장미를 색소로 인공적으로 물들인 것으로 순수한 푸른 장미는 전설 속 존재로 여겨졌다. 이번에 전시된 푸른 장미는 일본 산토리 사와 호주 플로리진(Florigene) 사가 유전공학기술을 이용한 13년 공동연구 끝에 2004년 세계 최초로 탄생시킨 것이다. 연구팀은 팬지꽃에서 푸른 색소를 만들어내는 델피니딘(delphinidin)이라는 유전자를 추출해 장미에 주입했다. 그러자 장미가 스스로 푸른 색소를 만들어 순수한 푸른 장미가 나타났다. 시행착오를 거치던 중 세계 최초로 푸른 카네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푸른 장미는 지난 1월 상품 판매가 법적 승인을 받아 내년 가을부터 일반에 판매될 예정이다. 산토리 측은 “상품명과 가격은 아직 미정이다. 고가이기 때문에 선물용 등 고급수요를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사진=국제플라워엑스포 서울신문 나우뉴스 문설주 기자 spirit0104@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말 한마디 못하고 사탕수수로 연명”

    좌익게릴라 조직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에 8년 동안 인질로 붙잡혀 있던 오스카르 리스카노(62) 전 콜롬비아 의원이 탈출했다. 지난 7월2일 잉그리드 베탕쿠르 전 콜롬비아 대통령후보와 미국인 군수업자 3명이 탈출에 성공한 이후 넉달 남짓 만이다. 리스카노 전 의원은 자신을 감시하던 게릴라 분대 두목과 함께 탈출한 뒤 서부 칼리의 한 군기지에서 26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가졌다. 낡을 대로 낡은 검은색 티셔츠에 진흙이 잔뜩 묻은 트레이닝 바지차림의 리스카노 전 의원은 “탈출한 지 사흘 만에 군초소를 발견했다. 아프다.”며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덥수룩한 흰 수염에 앙상하게 마른 얼굴의 그는 “8년 동안 갇혀 있으면서 게릴라들과 대화가 전면 금지된 생활을 했다.”면서 “말에 조리가 없다면 양해해 달라.”고 했다. 정글 속에선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사탕수수, 야자순으로 연명하는 생활을 했다고 했다. 그는 탈수와 영양실조 증세를 보여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함께 탈출한 28세의 감시원 ‘이사이아스’는 정부군에 투항해 보상금 40만달러를 받고 여자친구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하게 됐다. 리스카노 전 의원은 2000년 8월 콜롬비아의 지방자치단체 선거 직전 고향인 칼다스지방에서 FARC에 납치됐다. 콜롬비아 국방부는 아직도 주지사와 경찰 간부 등 20여명의 고위 정부요인이 FARC에 억류돼 있다고 밝혔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 (35) 경남 고성군 연화산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 (35) 경남 고성군 연화산

    우리나라는 보전가치가 높은 산들을 자연공원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자연공원법에 의해 지정되는 이들 공원은 관리주체에 따라 국립공원, 도립공원, 군립공원 등으로 나뉘고 각각 국가, 도, 시·군이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도립공원은 국립공원 다음 가는 경관과 생태계를 간직한 산들로 전국에 24개가 지정되어 있다. 고성 연화산은 양산·밀양·울주에 걸쳐 있는 가지산과 함께 경상남도가 지정한 2곳의 도립공원 가운데 하나다. 도립공원 연화산의 최고 자랑거리는 천년고찰 옥천사다. 연화산이 옥천사요, 옥천사가 곧 연화산이라 할 만큼 연화산과 옥천사는 떼어 생각할 수 없다. 신라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로서 조선시대에는 한지 제작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청담스님이 출가한 삭발본사로도 유명하다. 옥천사라는 이름은 경내에 있는 옥천(玉泉)이라는 샘에서 유래되었다. 한국의 100대 명수에 올라 있을 정도로 이름난 샘으로서 사시사철 샘물이 마르지 않고 흘러나온다. 옥천사는 연화산 정상 남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백련암, 청연암, 연대암 등의 부속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산세가 연꽃 닮았다고 ‘연화산´ 연화산은 해발 528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옥천사를 중심으로 능선들이 둘러쳐져 있고 울창한 숲을 간직한 계곡들이 있어 도립공원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산세가 연꽃을 닮아 연화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옥녀봉, 선도봉, 망선봉 등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능선 곳곳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당항포 쪽의 남해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연화산의 숲은 소나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소나무숲이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곳곳에 굴참나무숲, 느티나무숲, 서어나무숲 등이 발달해 있으며, 개서어나무, 당단풍나무, 때죽나무, 말채나무, 비목, 산벚나무, 졸참나무, 쪽동백나무 등의 큰키나무가 자라고 있다. 숲의 중간층을 이루는 떨기나무로는 진달래, 가막살나무, 개옻나무 등을 꼽을 수 있다. 연화산에는 귀한 식물이 많이 살고 있지는 않지만 어느 계절에 가도 여러 가지 꽃들을 관찰할 수 있다. 봄에는 고깔제비꽃, 얼레지, 현호색이 많다.3월 중순이면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얼레지가 꽃을 피워 장관을 연출한다. 이밖에도 각시붓꽃, 금붓꽃, 좀땅비싸리, 좀씀바귀, 진달래, 철쭉, 흰털괭이눈 등을 봄철에 만날 수 있다. 이맘때 연화산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옥천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차나무다. 지름 3~5cm의 하얀 꽃이 잎 사이에서 피어난다.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아 보면 향기가 좋다. 차나무는 어린 잎을 차로 먹기 위해 남부지방에서 재배하는 상록 떨기나무로 원산지는 티베트와 중국 쓰촨성이다. 오래 전 중국에서 들여와 심었던 것이 산에 퍼져 자라는 것이므로 우리나라 자생식물은 아니다. 식물학적으로 엄밀하게 말하면 귀화식물의 일종인 셈이다. 남부지방의 백양사, 쌍계사 등 사찰 주변에서 야생 상태로 자라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차나무 외에 아직까지 꽃을 피우고 있는 가을꽃으로 개쑥부쟁이, 고마리, 뚝깔, 벌등골나물, 산구절초, 산국, 억새, 이고들빼기, 참취, 한라돌쩌귀 등이 있다. 꽃과 열매를 동시에 달고 있는 며느리배꼽도 만날 수 있는데, 둥근 잎 사이에서 나온 열매자루에 작은 열매들이 모여 달린 모습이 재미있고, 남색으로 익는 열매색깔도 눈길을 끈다. ●옥천사에서 1박2일 템플스테이 해볼까 고마리는 참으로 늦게까지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8월부터 피기 시작한 꽃이 11월까지 간다. 습기가 있는 도랑, 하천변, 강변, 숲가장자리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한해살이풀이다. 줄기는 덩굴지며 1m까지 자라고 밑을 향한 거친 가시가 나 있다. 꽃은 연분홍색이 많지만 흰 꽃을 피운 개체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꽃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꽃잎처럼 생긴 5장의 꽃받침잎이 예쁘다. 꽃받침잎의 끝만 붉은빛이 돌아서 더욱 예뻐 보인다. 꽃받침잎 안쪽에 보일듯 말듯하게 돋아난 8개의 수술도 아름답다. 고만이라고도 부르는 친숙한 풀로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다. 수질정화 작용을 해주는 고마운 풀이라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이도 있으나 근거는 전혀 없다. 빨갛게 익어가는 가막살나무와 보리수나무 열매도 만날 수 있다. 둘 다 먹을 수 있는 열매지만 보리수나무 열매가 더 맛이 있다. 덜 익은 보리수나무 열매는 떫은 맛이 나지만 서리를 맞은 후에 잘 익은 열매는 맛이 달다. 전국에 흔하게 자생하는 토종나무로서 불교와 관련 있는 보리수나무와는 아주 다른 식물이다. 절에서 열매로 염주를 만드는 나무도 석가모니와 관련 있는 보리수나무는 아니고, 피나무의 일종인 보리자나무로서 중국에서 들어온 외래식물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관련 있는 보리수나무는 뽕나무과 무화과속 식물로 우리나라에는 자생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무화과, 모람, 인도고무나무 등이 같은 속(屬)에 속하는 나무들이다. 이번 주말 도립공원의 의미를 되새기며 연화산을 찾아보면 어떨까. 차의 재료 정도로만 알고 있는 차나무의 꽃을 비롯하여 늦가을 남쪽 꽃들을 관찰하며 가을을 만끽해 보자. 옥천사에서 1박 2일로 운영하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함께하는 것도 좋겠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배만 보고 찔렀다”

    “배만 보고 찔렀다.”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투숙객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정상진(30)은 태연하게 말했다.2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D고시원에서 실시된 현장검증에서였다. 정상진은 이날 오전 10시쯤 강남경찰서 형사들과 현장에 나타났다. 검은색 모자를 눌러쓰고 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정상진이 모습을 드러내자 현장에 있던 고 박정숙(52)·민대자(51)·이월자(50)씨 유족들은 “살인마”,“살려내라.”며 오열했다.이날 현장 검증은 1시간 남짓 진행됐으며, 정상진은 피해자 9명을 해치는 장면을 뉘우치는 기색 없이 하나하나 재연했다.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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