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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줌마·아가씨 기자의 달콤살벌한 맛짱] (1) 마카롱 만들기

    [아줌마·아가씨 기자의 달콤살벌한 맛짱] (1) 마카롱 만들기

    요리를 글로 배운 아줌마(오달란 기자)와 빵집 아르바이트 경력 3년에 빛나는 아가씨(김진아 기자)가 요리대결을 펼칩니다. 언제까지 요리사 나오는 방송프로그램을 보며 군침만 흘릴 순 없잖습니까. 비주얼이 좋은 요리를 추구합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습니다. SNS에 올렸을 때 ‘좋아요’를 많이 받으면 좋겠습니다. 맛은 그 다음입니다. 내 아이에게 먹일 수 있는 건강한 음식이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 첫 요리 주제는 이구동성으로 외친 마카롱입니다. 예쁘고 고급진, 그러나 사 먹기엔 너무 비싼 마카롱을 직접 만들어봤습니다. ■ 아줌마 기자 “명색이 주부인데… 짤주머니 힘 조절 실패” 단것에 막 눈을 뜬 딸에게 좀 더 건강한 간식을 먹이고 싶다는 생각에 후배에게 마카롱 대결을 제안했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서울요리학원. 최현석 셰프처럼 앞치마 끈을 꽉 조여 묶으며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솥뚜껑 운전 경력 있는 아줌마가 이기겠지.” ●조리법 정석 따라야 성공… 딸에게 줄 미키 캐릭터 마카롱 도전 마카롱은 상당히 까칠했다. 실패 확률을 줄이려면 조리법의 정석을 따라야 한다. 변형이나 응용은 애초에 포기하는 게 좋다. 얼렁뚱땅 계량도 안 된다. 전자저울과 냄비에 꽂아 쓰는 조리용 온도계, 믹서반죽기 등 도구가 있으면 그나마 쉽다. 분홍색 미키마우스 마카롱에 도전했다. 전적으로 딸의 취향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최근 시중에서도 헬로키티, 라인프렌즈 등 원형을 탈피한 캐릭터 마카롱이 인기다. 반죽을 완성한 다음 후배와 본격 대결이 펼쳐졌다. 연한 분홍색을 내려고 빨간 색소를 약간 넣었다. 반죽을 색소와 섞자 은은한 분홍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후배는 개나리색 마카롱이 고급스럽다며 노란 색소를 찻숟가락으로 하나 가득 넣었다. 색 진한 마카롱은 불량식품 같다. 인공적인 맛이 날 듯하다. 확실히 내 취향은 아니다. ●설탕 많이 들어가 건강한 간식은 아닌 듯 팬에 큰 원 1개와 작은 원 2개를 짜 넣었다. 힘 조절에 실패해 반죽이 균일하게 나오지 않고 마무리가 어려워 뾰족한 봉우리가 남았다. 구우면서도 이 부분이 남아 감점 요인이 됐다. 박지현 서울요리학원 제과제빵 전문 강사는 “짜주머니를 팬 표면과 직각이 되게 세우고 조금씩 짜고 마지막에 손의 힘을 빼면서 살짝 원을 그리며 주머니를 들어올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매끈한 표면의 마카롱을 만든 후배의 손을 들어줬다. 과자 사이에 넣은 필링은 산딸기 페이스트와 설탕을 일대일 비율로 섞어 끓인 새콤한 퓨레와 생크림과 초콜릿을 녹여 만든 달콤한 가나슈를 사용했다. 필링은 도톰히 발라야 통통하게 귀여운 모양을 낼 수 있다. 초보는 필링을 깔끔하게 짜 넣기도 버겁다. 시중에 파는 마카롱은 한 개에 3000원 정도다. 크기 치곤 비싸다. 직접 만들어보니 손이 많이 가고 공정이 까다로워 비쌀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카롱이 건강한 간식은 아니다. 안에 들어가는 필링까지 생각하면 설탕이 어마하게 들어간다. 완성된 마카롱을 아이에게 주니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두 개 주기는 좀 망설여졌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아가씨 기자 “빵집 알바 3년… 홈베이킹은 한 수 위” 과자와 케이크는 모두 밀가루로 만드는 줄 알았다. 대학생일 때 파리바게뜨에서 3년 아르바이트를 했다. 베이킹의 기본은 안다고 생각했다. 어깨너머로 본 것과 실제 만드는 건 상당히 달랐다. ●밀가루 한 숟갈도 안 들어가… 고소한 맛의 비밀은 아몬드 가루 위아래 덮개 역할을 하는 과자 코크(coque)에는 밀가루가 한 숟갈도 안 들어간다. 그 고소한 맛의 비밀은 아몬드 가루였다. 박지현 서울요리학원 강사는 “밀가루로 마카롱을 만들면 쫀득한 식감이 전혀 없다”면서 “구울 때 푹 꺼지기 때문에 오븐에서 꺼내면 마카롱이 아니라 쿠키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홈베이킹 강좌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배운다는 마카롱. 그만큼 과정이 까다로웠다. 무엇보다 힘과 인내심이 필요했다. 무거운 노트북을 넣은 핸드백을 들고 만원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기른 팔뚝 힘을 보여줄 때다. 곱게 체 친 아몬드 가루와 슈가파우더를 계란 흰자에 넣고 섞었다. 뻑뻑했다. 실리콘 주걱을 쥔 오른 팔뚝에 핏줄이 불거졌다. 이탈리안 머랭을 만들 차례다. TV에서 많이 봤다. 거품기로 열심히 흰자를 저어 거품을 만드는 과정이다. 머랭이 담긴 볼을 뒤집어 머리 위에 올렸을 때 아무것도 흘러내리지 않으면 잘된 것이라고 했다. 머랭을 잘 만들어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마카롱 특유의 질감이 살아난다. ●초보는 머랭칠 때 반죽기 이용해야… 화려한 색 찌그러져도 괜찮아 마카롱 레시피의 정석은 이탈리안 머랭이다. 118도로 끓인 설탕물을 흰자에 넣고 열심히 저어 만든다. 흰자에 설탕 가루를 넣어 혼합하는 프렌치 머랭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초보는 망치기 십상”이라며 강사가 말렸다. 이탈리안 머랭은 믹서반죽기를 사용해 만든다. 손으로도 할 수 있는데 전문가도 굉장히 힘이 든다고 한다. 머랭을 망치면 코크가 전혀 부풀지 않는다. 빈대떡처럼 퍼진 마카롱은 먹고 싶지 않았다. 짤주머니에 넣은 반죽을 오븐 팬에 짜는 일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샛노란 색소를 듬뿍 넣은 반죽을 500원짜리 동전 크기로 짰다. “카레 아니냐”는 선배의 견제는 가볍게 무시했다. 마카롱은 뭐니 뭐니 해도 화려한 색이 제격이다. 희끄무레한 파스텔 색은 식욕을 떨어뜨린다. 초보일수록 진한 색을 권한다. 찌그러져도 티가 덜 난다. 선배는 미키마우스 모양의 과자를 만들었다. 마카롱이 500년 동안 원형을 유지한 이유가 뭐겠는가. 마카롱은 동그랄 때 가장 아름답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마카롱 레시피 및 주의점 쫀득하고 고소한 과자와 새콤달콤한 필링을 함께 베어물면 입안 가득 행복감이 퍼진다. 마카롱은 베이킹의 꽃이다. 쿠키나 빵보다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계량이 잘못되거나 반죽 시간이 짧거나 길면 제대로 된 마카롱을 만들 수 없다. 가능하면 저울과 온도계 등 필요한 도구를 준비하고, 레시피를 지키는 게 좋다.  마카롱 30개 분량  ◎재료: 아몬드 가루 150g, 슈거파우더 150g, 계란 흰자A 54~60g, 설탕 150g, 물 50g, 계란 흰자B 55g(일반크기 계란 한 개를 깨면 흰자 양이 20~25g 정도된다)  ◎순서 1. 아몬드 가루와 슈거파우더는 체친다. 흰자A를 섞어 아몬드 페이스트를 만든다. 반죽이 많이 뻑뻑하다. 팔에 힘을 주어 실리콘 주걱으로 꼼꼼히 섞어준다. 2. 설탕과 물을 냄비에 담아 끓여 청(시럽)을 만든다. 조리용 온도계를 사용해 118도까지 올라가면 불에서 내린다. 온도계가 없다면 끓는 청 표면에 거품이 포도알 크기로 일었을 때 스테인리스 깍지로 청을 찍어 불어본다. 비누방울처럼 불어지면 알맞은 농도라는 뜻이다. 청을 끓이면서 베이킹용 믹서 반죽기에 흰자B를 넣고 저속으로 돌려 이탈리안 머랭을 만들기 시작한다. 3. 흰자B를 넣은 반죽기를 고속으로 돌린다. 118도로 끓은 청을 조금씩 반죽기에 흘려넣는다. 뜨거운 청을 머랭에 한꺼번에 부으면 흰자가 익을 수 있으니 주의한다. 4. 머랭이 반죽될수록 광택이 나기 시작한다. 반죽기를 들었을 때 머랭 표면에 뾰족한 뿔이 생길 때까지 반죽한다. 5. 아몬드 페이스트가 있는 볼에 머랭의 반을 넣어 실리콘 주걱으로 비벼가며 섞는다. 나머지 머랭도 넣어 섞으면서 되기를 조절한다. 주걱으로 반죽을 들어 떨어뜨렸을 때 서서히 흘러내리면 적당하다. 6. 반죽을 깍지 낀 짤주머니에 떠 담고 유산지를 깐 오븐 팬에 500원 동전 크기만큼 짜준다. 1시간 정도 말린다. 손으로 표면을 만졌을 때 아무 것도 묻어나지 않으면 140도로 예열한 오븐에 넣어 10분간 굽는다. 7. 취향에 맞게 준비한 딸기잼, 버터크림, 초코가나슈 등의 필링을 안에 샌드한 뒤 뚜껑을 덮어 완성한다. ■도움말 서울요리학원 제공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4] 까치밥, 똘레랑스 그리고 정신건강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4] 까치밥, 똘레랑스 그리고 정신건강

    한 때 우리 사회에서 ‘똘레랑스(Tolerance)’라는 말이 회자됐었지요. 프랑스 사람들이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이 아닌 타자, 자기 것이 아닌 다른 문화과 관습을 능동적으로 포용한다는 것인데, 저는 오래 전 홍세화씨의 책에서 이 말을 실감나게 접했습니다. 이 말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은 이타적인 삶, 타자를 위한 배려가 부럽기도 했고, 그렇게 너그러운 그들의 삶에 자꾸 낯설게만 투영되는 ‘나’와 ‘내 주변’의 옹색한 현실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의 이런 생각이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유럽의 강대국들이 전세계에 이식시킨 패권적 이념에 길들여진 식민적 속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국을 ‘신사의 나라’로 여기지도 않고, 프랑스 문화가 재밌을지언정 우월하다고 믿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국부(國富)나 인종적 특성이 부러운 게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그들의 열린 자세가 부럽고, 그로부터 발원한 그들의 치열하면서도 자유분방하고, 발랄하면서도 격조가 있는 삶의 자세를 부러워합니다. 아마 그런 그들의 삶이 상당 부분 똘레랑스와 결부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게 필자의 생각입니다.  ●가지지 못한 자의 아름다운 나눔 언제부턴가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매몰되어 살아 왔습니다. 그 정도가 지나쳐 톨레랑스의 가치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문명 밖의 문명’처럼 낯설거나 이질적으로 비치기도 할 것입니다. ‘나만 좋으면 된다’거나 ‘항상 내가 우선’이라는 이 몰염치한 습속은 일제 암흑기와 한국전쟁 등 독하지 않으면 살아 남기 어려운 핍진한 환경을 헤쳐나오면서 체득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바둑의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먼저 내 말을 살린 뒤 상대방의 말을 공격하라)’라는 격언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명도생부터 해야 했으니, 그 참담한 삶 속에서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에서 보듯, 항상 궁핍하고 불안정한 일상 속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챙겨야 했고, 그렇게 아등바등 뺏고, 감추며 살았지만 쌀독은 항상 비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들 했으니, 그런 터수에 언감생심 무언가를 베풀면서 사는 여유를 갖는다는 게 호사이고 꿈일 뿐이었지요. 그렇다고 우리네 삶이 똘레랑스와 전혀 무관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니, 우리 조상들은 유럽의 똘레랑스보다 훨씬 본원적인 베풂을 알았고, 그런 가치를 존중했습니다. 가진 자의 시혜보다 가지지 못한 자의 배려가 더 아름다운 것은 먹고 쓰고 남은 것을 덜어 주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허기와 필요를 덜어야 하는 일이고, 최소한의 자기 몫을 쪼개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고, 그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이는 개국 이래 단 한번도 국통이 끊이지 않았던 장구한 역사가 증언하는 사실입니다. 시골집 뒤란의 늙은 감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까치밥’은 또 어떻습니까.  ●‘오로지 주고자 했던’ 까치밥의 철학 ‘초록이 지쳐 단풍 들더니’ 가을이 깊어져 갑니다. 이슬이 서리로 변하면서 이내 살풍경한 겨울이 되어 온 산야를 흰눈이 뒤덮을 무렵이면 텅 비어 삭막한 풍경 가운데에다 마치 누군가 작심하고 붉은 물감으로 방점이라도 찍어놓은 듯 선연한 붉음이 눈길을 끌곤 했지요. 바로 까치밥입니다. 가을걷이의 마지막은 감을 따 갈무리하는 것인데, 개량되기 전의 예전 감은 겉이 붉어보여도 속살을 베어물면 여간 떫지 않았습니다. 그걸 따모아 항아리나 석작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가 달디 단 홍시가 되면 하나씩 꺼내 먹곤 했던, 요긴한 겨울 군입거리였지요. 요즘의 개량종 단감과 달리 예전의 토종 감나무는 집안의 조왕신 같은 것이어서 크게 키워 비바람을 막고, 시원한 그늘도 드리우며, 먼 동구밖에서 봐도 한 눈에 우리 집임을 아는 장소성까지 부여했으니 감나무가 바로 산이고, 정자이며, 스카이라인이고, 랜드마크였지요. 스무 척, 서른 척 키를 키운 탓에 감을 딸 때면 큰 가지를 타고 올라가 간짓대로 투덕거리곤 했는데, 해거리를 하지 않을 때는 워낙 많이 열려 그걸 따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정신없이 따다 보면 어느 새 가지가 텅 비고, 꼭대기 가지 끝에 잔챙이 감이 서른 개, 마흔 개씩 남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그건 까치밥하자. 그만 내려와라”시며 일을 매조졌지요. 아닌 게 아니라 날이 추워 먹거리가 마땅찮으면 까치가 가지 끝에 내려앉아 남은 감을 쪼곤 했는데, 그래서 까치밥이라고 불렀겠지요. 찬서리에 익어서 더 붉어진 까치밥이 얼음 들어 푸르딩딩한 하늘을 배경으로 매달린 모습을 보노라면 문득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는데, 그런 느꺼운 마음이 미물에게라도 뭔가를 베풀 수 있다는 은전의 여유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까치를 위해 가지 끝에 감을 남겨두는 일은 어떤 강제나 규율도 없이 온전히 스스로 결정하는 있이었는데, 지금보다 훨씬 궁핍하게 살았던 예전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표도 나지 않게 그런 덕성을 실천함으로써 스스로의 체온을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루 하루 끼니 걱정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빈 콩밭에 ‘참새 몫’으로 수수목을 남겨두거나, 대보름날 정성껏 무친 나무새를 이것 저것 바가지에 덜어 소에게 먹일 턱이 없지요. 까치든, 소든 사람에 견주면 하찮은 미물이고 축생인데도 말이지요. 우리의 핏속에는 미물일지라도 곁에 머무는 것이면 무엇이든 챙기고 걱정해주는 미덕이 있었습니다. 제 목구멍으로 무엇을 넘겼는지도 모를 궁핍 속에서 살면서 그런 짓이 가당키나 하냐고 생각한다면 조상들의 정신세계를 더 찬찬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들이 넉넉하지 못한 것도 맞고, 그래서 짜디 짠 자반 한입 못 먹어보고 해를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그걸 그다지 아쉽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말처럼 살림이 요족해 육고기를 줄창 먹고 살았다면 간사한 입맛이 남아 ‘땡기기라도’ 했겠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원래의 삶이 안빈(安貧)에 길들여진 탓에 배만 채울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했지요. ‘사흘 고기맛을 못 보면 소증 난다’는 말은 덜 떨어진 권문세가의 논다니들 말이지, 하냥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살았던 사람들의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까치 같은 미물까지 챙기며 살았으니 그걸 먼 유럽의 똘레랑스와 견준다는 게 오히려 이상합니다. 유럽의 똘레랑스가 관습과 제도의 결과라면, 우리의 나눔은 태생적인 끌림의 결과이니까요. 예전에 흔했던 보시(布施)는 어떻습니까. 불교의 수행법으로, 베푸는 모든 행위를 이르는 보시는 불가에서 이타정신(利他精神)의 정점으로 이해합니다. 더러는 보시를 복을 받기 위해 하는 ‘이기적인 이타’라고도 보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설령 보시를 하면서 되받을 일을 생각했더라도, 그 복이라는 게 실체도 없고, 아무도 담보할 수 없는 불확실한 대가여서 거기에 기대 자기 것을 나눌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보다는 자기 것을 나누면서 스스로 위로받기 위해 ‘복’을 생각했다는 게 현실적이지요. 마찬가지로 까치밥 역시 ‘오로지 주고자 했던’ 아가페적인 나눔의 실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서구의 똘레랑스 정신을 ‘우리는 갖지 못한 포용이자 관용’이라고 부러워만 할 일은 아니지요.  ●정신 건강 혹은 영혼의 안식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까. 프랑스의 똘레랑스는 1789년의 대혁명 이후에 사회적 통합을 위해 주창한 근대화의 기제 속에서 체화된 개념인데, 우리의 그것은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작용하지 않은 자연발생적 정서였고, 또 모르긴 해도 자연의 모든 것에 정령이 깃든다는 원시 토테미즘과도 무관하지 않을 터이니 비록 우리의 정서가 반듯하게 각이 잡혀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단들 제도적 산물인 똘레랑스와 같은 선에서 견준다는 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까치밥을 보면서 궁핍하지만 영혼이 건강하게 사는 지혜를 배웁니다. 지혜라고 했지만, 대단한 사유나 거창한 논리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냥 물이 흐르듯, 아니면 밥 먹고 숨 쉬듯 자연스럽게 마음의 부름에 따르면 되는 일이고, 거기에 대단한 결심이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지요. 필자가 어렸을 때의 경험입니다. 유월 더운 날, 온가족이 나서 산비탈 보리밭에서 보리를 베고 있었지요. 거진 다 베어갈 무렵, 갑자기 까투리 한 마리가 요란하게 꿩꿩 거리며 나대는 게 아니겠습니까. 시골에 흔한 게 꿩이라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았는데, 그 때 할머니가 허리를 펴시더니 “오늘은 여기서 손 털자”고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직 베지 못한 보리가 예닐곱 평이나 남았는데 마치자는 말에 다들 의아해 하자 할머니는 “저 쪽에 새끼를 쳐놨길래 꿩이 저 난리지”라며 “한 이레면 새끼 데불고 나갈테니 그 때 와서 마저 베면 된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으시더군요. 집안 어른 말씀에 가타부타할 수도 없어 그렇게 일을 마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보리밭에 다녀 오신 아버지가 “꿩이 산으로 갔는지 둥지가 비었더라. 내일 가서 남은 보리 정리하면 되겠다”고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돌이켜 생각하면, 할머니는 그 일을 통해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가르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하찮은 꿩이라도 새끼를 거느릴 때는 해코지해서는 안 된다는 공생의 철학이 하나이고, 보리밭 어름에서 꿩이 우짖는 걸 보고 사연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가 둘입니다. 보리야 며칠 뒤에 베어도 축날 일이 없으니 흔쾌히 그리 한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나 아닌 남을 생각하는 일은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할머니와 어머니는 김장김치나 간장·된장 등을 넉넉하게 준비해 이웃들과 나누기도 했는데, 그렇게 나눈 뒤에는 항상 “전답이 넉넉치 않아 가을이라고 거둔 것도 없을텐데, 겅개라도 좀 나누니 맘 편하다”며 기꺼워들 하셨지요. 그래선지 할머니는 그 시절의 여건을 생각하면 무병장수하셨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집안 일을 하시는 등 강건하셨습니다. 그게 어디 제 할머니만의 일이겠습니까. 살림이나 품성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확실히 예전에는 다들 그렇게 나누고, 살피며 살았습니다. 그런 삶은 확실히 건강했습니다. 필자가 낳고 자란 마을이 100여호 쯤 됐는데, 치매를 겪은 노인은 딱 두 사람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더러는 ‘노망’이니 ‘망령’이니 수근대기도 했지만, 삼이웃이 너나 없이 돈독했고, 우애가 깊었지요. 그러니 온 마을이 떵떵거릴 만큼 크게 잘 사는 집은 없었어도 굶주릴 일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오고가다 마주치면 살갑게들 인사를 나눴고, 철부지들이라도 위, 아래를 알았습니다. 쌀독이 비면 아무 집에나 찾아가 손을 벌렸고, 장날이 되어 뭐든 돈을 바꾸면 식량을 곧 되갚았습니다. 농투산이들 사이에 흔한 물꼬싸움을 해도 악다구니가 없었습니다. 늙수그레한 노친네들이 다툴 일 없도록 거중조정을 해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러는 앓거나 다치기도 했지만,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요절한 누구를 빼고는 흉변이랄 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 시절엔 다들 가난을 팔자라고 여겼으니 유리걸식하는 처지만 아니라면 그걸 딱히 불행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차고 넘치지는 않았지만, 욕심이 없으니 많든 적든 자기 처지가 요족하다고 여기며 살았고, 그런 중에 서로 보듬고 나누었으니 심화를 끓이거나 안달복달할 일도 없었지요. ●“당신은 건강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지금이야 ‘칠십 청춘’이라고들 하지만, 예전에는 태어나 육십갑자를 다 채우고 맞는 환갑이 흔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환갑잔치는 놀이판이기도 했지만 혈족들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평생 농삿일로 허리가 굽은 채 환갑을 맞은 마을 어르신이 말합니다. “내가 육십평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한눈 안 팔고 살아 전답도 장만했고, 자식 대학도 보냈는데, 그러느라 허리는 휘고 낯바닥은 감탕이 되었지만 못 살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헤프지도 않았지만, 필요할 땐 인심도 쓰면서 산 덕분에 죽어서 연옥은 면할 듯도 하고…”. 그 어르신은 술로 목을 축인 뒤 말을 이어갑니다. “나야 배우지 못해 세상의 이치를 알 턱이 없지만, 사는 게 별것 아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란 없으니 형제끼리는 우애로, 이웃끼리는 정으로 살믄 될 일이다. 죽고 사는 것이야 인력으로 어쩔 수 없으니 그건 걱정할 것 없고, ‘나 하나 잘하믄 세상이 다 좋은 것이다’고 믿고 살았는데, 진짜로 내가 그렇게 살았는지는 나보다 식솔들과 이웃 지기들이 더 잘 알 일이다.” 건강하게 사는 많은 조건들 중에서 당신은 무엇을 첫 손에 꼽겠습니까.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 주관적인 판단이 있을 뿐이지요. 무섭다는 암도 피하고 싶고, 암 아니라도 안 아프고 살기를 바라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죽을 때까지 자기 몸 자기가 건사하기를 바랄 것이고, 또 어떤 부류는 돈 좀 많이 모아 쭈글거리지 않은 노후를 보내고 싶어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옳고, 부러운 바람이지만 저는 여기에 한 가지만 보태고 싶습니다. 스스로 가진 능력 이상을 거머쥐려는 욕심은 좀 덜고, 가진 것 조금이라도 떼어서 베풀며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그것입니다. 물론 의무감으로 할 일은 아니고, 떼돈 들여 큰 일을 벌이자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어버이가 그러셨듯이 감나무 가지 끝에 까치밥 몇 알 남겨두거나 꿩의 처지를 살펴 보리 베는 일 며칠 늦춰주는 그런 일을 하며 살자는 뜻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자기 배만 채우려 하지 않고 욕심을 덜어내는 일이며, 자기 주장만 하지 않고 이기의 벽을 허무는 일이며, 좀 번거롭더라도 남의 처지나 형편에도 한번쯤 따뜻한 눈길을 주는 배려입니다. 빨갛게 언 발가락을 털어가며 겨울을 나야 하는 까치 등속의 미물에 대해 갖는 측은지심이 어디 불가(佛家)만의 가르침이겠습니까. 그 사소하다 못해 하찮기까지 한 까치밥에서 서구의 똘레랑스에는 없는 ‘우리다운 나눔과 배려’의 원천을 봅니다. 그럴 수 있다면 조금씩 베풀면서 남들의 따뜻한 시선 속에 머무는 것, 그리고 편안한 자기 위안을 얻는 것, 그런 삶이 건강한 삶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정신세계가 강퍅하지 않고 풍요로워서 갈수록 환자가 늘어난다는 우울증이나 착란, 도착 그리고 치매까지도 사회적 유병률이 훨씬 낮아질 것이고, 그런 변화가 우리들 개개인의 건강으로 확인되지 않겠습니까. 병이야 의사가 고치는 것이지만, 병문(病門)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니까요. 베풀며 산다고, 여유롭게 산다고 모든 병마를 피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신의 세계만큼은 훨씬 정갈하고 넉넉해질 것이며, 그렇게 살다보면 흔히 말하는 세상의 번뇌와도 조금은 멀어지게 되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병마도 피할 수 있어 우리의 삶이 더 따뜻하고 안온할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마음의 병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양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jeshim@seoul.co.kr
  • “전국이 다 내 고향”… 생전 뜻 따라 고향 흙 대신 마사토 뿌려

    김영삼 전 대통령이 26일 오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불꽃처럼 타올랐던 88년 인생의 마지막 육신은 장군 제2묘역 우측과 장군 제3묘역 왼쪽 능선에 자리잡았다. 2012년 차남 현철씨가 지관인 황영웅 영남대 교수와 함께 둘러보고 정해둔 곳으로, 풍수지리상 봉황의 왼쪽 날개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발인 예배는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 목사가 집전했으며 유족과 김수한 전 국회의장, 김덕룡 전 의원 등 측근, 정관계 인사 100여명이 함께했다. 40분에 걸친 발인 예배 후 조문은 정오까지 이어졌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의 관을 실은 검은색 링컨 리무진과 유족, 장례식 참석 인사들을 태운 버스들이 국회로 이동했다. 영결식을 마치고 국회를 떠난 운구 차량은 오후 4시 10분쯤 서울 상도동 사저를 들렀다. 동네 주민 100여명은 골목 입구에서부터 도열해 눈시울을 붉히거나 휴대전화 사진을 찍으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합니다’라고 쓰인 검은 플래카드도 내걸렸다. 장손 성민씨가 영정을 들고 약 5분간 집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장남 은철씨 등 직계가족 15명이 뒤를 따랐다. 현관 복도를 지나 왼쪽 안방, 맞은편 식당을 지난 영정은 고인이 손님을 맞이했던 거실에서 제자리로 한 바퀴를 돌았다. 거실 벽면 가운데는 고인이 직접 쓴 ‘송백장청’(松栢長靑) 휘호가 걸려 있었다. 1969년 성북구 안암동에서 거처를 옮긴 이래 고인이 46년간 거주했던 상도동 자택은 고인은 물론 주변인들에게 단순한 집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민주화 운동의 거점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과 함께 민주화 논의의 성지였다. 고인이 차량 초산 테러를 당했던 곳도, 23일간 가택연금을 당했던 곳도 이곳이었다. 이어 운구 행렬은 자택에서 500m가량 떨어진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 앞을 지났다. 생전의 김 전 대통령이 “매일 출퇴근하고 싶다”고 되뇌었다던 곳이다. 방향을 튼 운구 차량은 당초 예정 시간인 오후 4시보다 40분 늦게 동작구 사당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눈발이 날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다. 마지막 의식은 국군 의장대의 받들어총, 조악 연주와 함께 시작됐다. 충혼당 앞에서 열린 안장식은 고인에 대한 경례, 헌화·분향, 운구, 하관, 흙을 관 위에 뿌리는 허토 순으로 이뤄졌다. 250석 규모의 식장 맨 앞줄엔 부인 손명순 여사 등 유족 대표와 김수한·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자리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외 동교동계 인사들, 장의위원, 일반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차남 현철씨가 유족 대표로 헌화했고 정의화 국회의장이 조문객 대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장례 집행위원장 자격으로 헌화했다. 운구는 조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약 150m 떨어진 묘소 예정지까지 10여분간 이뤄졌다. 11명의 의장대가 태극기로 감싼 관을 조심조심 옮겼다. 현철씨는 하관하는 모습을 먹먹한 얼굴로 바라봤다. 뒤늦게 도착한 손 여사는 양쪽의 부축을 받고 맨 앞에 서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하관을 지켜봤다. 허토 의식 후 평소 고인과 친분이 깊었던 고명진 목사가 부활대망예배를 집전했다. 본격적인 허토가 시작되자 현철씨는 무궁화가 그려진 관 상판 위에 흰 국화꽃잎을 두 손으로 수북이 집어 두번 뿌리고 흙을 뿌렸다. 전 국회의장들도 한 삽씩 손을 보탰다. 관이 흙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자 참지 못한 현철씨가 “아버님, 아버님” 소리 내어 흐느꼈다. 손 여사의 충혈된 눈에서도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군악대의 조총 발사, 묵념 속에 참석자들은 각자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고인의 고향인 경남 거제도에서 가져온 흙 대신 일반 마사토가 허토에 사용됐다고 한다. “전국이 다 내 고향”이라고 했던 고인의 뜻을 받들어서다. 관은 유족들이 마련한 것으로 고동색에 윤기가 조금 도는 나무 무늬만 있는 수수한 관으로 알려졌다. 묘소 봉분 앞에는 ‘제14대 대통령 김영삼의 묘’라고 새겨진 3.49m 높이의 목재 임시 묘비가 세워진다. 돌로 제작한 실제 비석은 내년 1월쯤 제막한다. 안장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현철씨는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아버님께서 하늘에서라도 우리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걱정하고 지켜보시리라 생각한다”면서 “아버지의 유언인 ‘통합과 화합’이 우리 사회와 국민 전체에 큰 울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이렇게 추운 날 가시나… ” 참았던 울음 터뜨리며 작별 인사

    26일 오전 10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예배. 고인의 누이들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말 한마디만 하고 가, 맨날 사랑한다고 했잖아. 한번만 하고 가, 우리 오빠 보고 싶어.” 차남 현철씨를 비롯한 유족과 측근들은 침통한 얼굴로 서로를 껴안았다. 찬송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가 울려 퍼지자 흐느낌이 예배당을 메웠다. 가족 인사를 하는 현철씨도 여러 차례 목이 메었다. 현철씨는 “왜 이렇게 추운 날 하나님께서 아버님을 데려가시려고 하시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민주화가 다시 불타는 조짐을 보이는 이 시점에 아버님을 통해 이 땅에 진정한 통합과 화합이란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 주셨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쇠약한 부인 손명순 여사는 매서워진 날씨 탓에 예배엔 참석하지 못했지만 영결식에 맞춰 서울 상도동 자택에서 국회로 이동했다. 휠체어를 탄 손 여사는 영결식 맨 앞줄 한가운데 앉아 남편과의 작별 의식을 치렀다. 그 오른쪽으로 장남 은철, 차남 현철씨, 1·2·3녀인 혜영, 혜경, 혜숙씨가 나란히 앉았다. 손 여사는 검은 코트로 몸을 감싸고 흰 십자 무늬가 있는 검은 담요를 무릎에 덮었다. 고인에 대한 묵념 순서에서 눈을 지그시 감은 손 여사의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사, 추도사가 낭독되는 동안 유족과 측근들은 애써 의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고인의 생전 영상이 나오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마침내 왔습니다”라는 김 전 대통령의 카랑카랑한 육성이 울려 퍼지자 현철씨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싸며 오열했다. 손 여사는 멍한 표정으로 허공만 응시했다. 헌화, 분향에서 손 여사는 휠체어에 탄 채 흰 국화를 영전에 바쳤고 현철·은철씨, 나머지 가족들이 뒤를 이었다. .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1500년 봉분 사잇길, 거스른 시간에 위로가 흘렀다

    1500년 봉분 사잇길, 거스른 시간에 위로가 흘렀다

    대구시가 새 관광상품을 내놨다. 이른바 ‘명품관광코스’다. 대구의 대표 관광지를 기본 삼아 대중교통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들을 지역별, 테마별로 묶은 것이다. 대구명품관광코스는 모두 세 개다. 팔공산힐링코스, 모노레일 도심관광코스, 그리고 안동·경주와 연계된 광역관광코스 등이다. 그 가운데 만추의 서정 가득한 팔공산힐링코스를 돌아봤다. 팔공산힐링코스는 팔공산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을 연계한 4개의 코스로 나뉜다. 동화사 중심의 1코스와 불로동 고분군, 도동측백나무숲, 평광동사과마을로 구성된 2코스, 누구나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설이 전해 오는 갓바위 부처 중심의 3코스, 그리고 수태골과 팔공산 케이블카로 이어지는 4코스 등으로 팔공산의 맛과 멋을 한껏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한데 일반 관광객의 경우 코스를 따라 돌기보다 개별 여행지를 ‘콕 집어’ 도는 게 더 경제적이지 않을까 판단된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불로동 고분군(사적 제262호)이다. 5~6세기 고(古)신라 때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938년 일본 학자가 발견한 이후 1964년 경북대박물관이 추가 발굴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삼국시대 토기 360점이 출토됐고 철촉·철모와 금속·옥석류 등 187점이 발굴됐다. 현재 남은 봉분은 212기다. 213, 214호 고분은 최근 멸실돼 사라졌다. 근대 이후 공동묘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 군데군데 일반 묘가 남아 있다. 고분은 앞에 돌로 번호를 새겨 뒀다. 번호 대신 이름이 적힌 것은 공동묘지에서 이장하지 않은 묘다. 큰 봉분은 지름 20m, 높이 4m에 이른다. 작은 봉분은 어른 키보다 낮은 경우도 있다. 고분 사이로 오솔길이 나 있다. 1500년은 족히 넘는 시간이 머무는 공간 사이를 자박자박 걷는 맛이 각별하다. ‘죽은 왕들의 도시’ 경북 고령의 고분군에 견줄 만하다. 실제 고령 고분군과 경주 대릉원, 그리고 불로동 고분군의 형성 시기가 비슷하다고 한다. 대구를 대표하는 대가람인 동화사는 493년 창건됐다. 당시 이름은 유가사였으나 832년 중창할 때 절집 주변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해 동화사로 고쳐 불렀다. 가장 큰 볼거리는 통일약사여래대불이다. 300t 원석으로 제작됐다. 1992년 완공된 약사여래대불은 높이가 17m로 미얀마 정부가 기증한 부처님 진신사리 2과가 모셔져 있다. 보물 제1563호로 지정된 대웅전도 웅장하다. 성보박물관의 사명대사 초상(1505호), 봉황문 앞 절벽의 마애여래좌상(243호) 등 동화사 경내에 있는 11점의 보물만 찾아봐도 훌륭한 테마여행이 될 듯하다. 단산지는 숲으로 둘러싸인 호젓한 저수지다. 물가를 따라 3.5㎞ 거리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단산지 입구에 조성된 봉무공원은 배구, 테니스, 배드민턴 등 체육 시설을 갖춘 레포츠 공원이다. 나비생태학습관도 있어 대구 시민이 즐겨 찾는다. 신숭겸장군유적지는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이 전사한 파군재(破軍峴) 일대에 조성돼 있다. 신숭겸은 927년 팔공대첩 당시 후백제군에 포위된 왕건을 돕기 위해 그의 옷으로 갈아입고 싸우다 대신 전사했다. 왕건은 이 틈을 타 장졸로 변장한 뒤 포위망을 벗어났다. 이후 왕건은 신숭겸이 전사한 자리에 순절단(殉節壇) 등을 지어 그의 명복을 빌었다. 이경숙 문화관광해설사는 “팔공산(八公山)이라는 이름도 팔공대첩 때 여덟 공신이 전사했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전했다. 북지장사는 대구에서 처음으로 불교가 유입된 절집으로 알려져 있다. 남지장사와 더불어 동화사의 말사를 이루고 있다. 북지장사는 소박한 절집도 일품이지만 무엇보다 들머리가 빼어나다. 1.3㎞ 정도 솔숲이 이어져 있는데, 흔히 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로 꼽힌다. 숲길 위엔 ‘솔갈비’(갈잎·소나무잎의 현지 사투리)가 가득하다. 산길 전체가 연한 초콜릿으로 뒤덮인 듯하다. 침엽수가 떨군 낙엽이 활엽수 못지않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요즘 팔공산 일대는 단풍이 절정이다. 파군재에서 파계사 삼거리, 동화사 삼거리를 거쳐 다시 파군재로 돌아오는 여정이 으뜸으로 꼽힌다. 이 밖에 모노레일 관광코스는 지난 4월 개통한 모노레일(도시철도 3호선) 경유 지역을 중심으로 구성된 도심관광코스다. 앞산전망대와 수성못 등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야경투어코스, 대구사격장과 이월드 등 활동적인 코스로 구성된 체험여행코스, 서문시장과 안지랑곱창골목 등 대구의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미식여행코스 등으로 세분화된다. 대중교통으로 대구를 여행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광역관광코스는 대구 인근의 경주, 안동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코스다. 근대에서 신라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대구~경주 시간여행코스, 도시와 바다를 아우르는 대구~경주 풍경여행코스, 삼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엮은 대구~안동 역사여행코스, 다양한 체험거리로 가득한 대구~안동 체험여행코스 등 총 4코스로 구성됐다. 대구 남쪽의 도동서원(사적 488호)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다. 한훤당 김굉필을 향사하는 서원이다. 우리나라 5대 서원의 하나로 꼽힌다. 도동서원은 소수서원 등 전국 9개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지난 9월 현장 실사를 거쳐 내년 6월에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이미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기 때문에 공식 등재는 기정사실처럼 여겨지고 있다. 1604~1605년쯤 세워진 도동서원은 원형이 잘 살아있다. 한국전쟁 등 모진 풍파에 시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청 등 지속적인 수리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400년 전 모습 그대로다. 서원에서 꼭 봐야 할 게 몇 가지 있다. 송은석 문화관광해설사가 꼽은 것들이다. 먼저 서원 들머리의 은행나무다. 키 25m, 둘레 8.7m의 노거수다. 도동서원이 들어설 때 함께 식재됐으니, 400여 성상을 한자리에 서서 서원의 역사를 지켜본 셈이다. 늙은 나무가 주는 풍경의 깊이는 크기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다. 둘째는 건물 곳곳에 숨겨진 거북이, 용머리 등의 석물들이다. 석공들이 장난삼아 새겨 놓은 것들이라고 한다. 엄숙한 서원에서 해학적인 조각들을 보는 게 참 이채롭다. 셋째는 중심 건물인 중정당의 기단부 돌들이다. 모양도 빛깔도 제각각이다. 도동서원을 지을 당시 전국의 유생들이 서원 건립에 보태라며 보내온 돌을 건축자재로 썼기 때문이다. 이들의 정성이 여태껏 건물을 떠받들고 있는 셈이다. 넷째는 환주문(喚主門)이다. 내 안의 주인을 부르는 문이란 뜻이다. 이 문을 드나들며 자신 내면에 있는 천부의 심성을 늘 일깨우라는 주문을 담고 있다. 한데 출입문 노릇을 하는 것에 견줘 높이가 지나치게 낮다. 169㎝밖에 되지 않는다. 머리에 갓이나 유건 등을 썼을 경우 열에 아홉은 머리를 숙여야 한다. 자신을 낮추라는 이 뜻, 누구라도 금방 눈치챌 터다. 다섯째는 상지(上紙)다. 중정당 기둥 윗부분을 흰 창호지로 둘렀다. 동방오현 중 수장을 모셨다는 자부심의 표현으로, 국내 서원 가운데 유일한 형태라고 한다. 여섯째는 문종이다. 보통 한국은 문 안쪽에, 일본은 문 바깥에 문종이를 붙인다. 한데 중정당 강당 쪽으로 난 문의 경우 문종이가 밖에 붙어 있다. 이 탓에 왜색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송 해설사는 “문종이에 대한 우리의 기준 가운데 하나가 중요한 쪽을 향해 붙인다는 것”이라며 “중정당의 경우 학습 공간이 생활 공간보다 중요하다는 뜻에서 강당 쪽, 그러니까 문밖에 문종이를 붙였다”고 설명했다. 글 사진 대구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3) →가는 길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도동분기점에서 익산포항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팔공 나들목으로 나온다. 중앙고속도로의 경우 금호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로 갈아타야 한다. 도동서원을 먼저 보겠다면 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 나들목으로 나와야 한다. 이어 1093번 지방도로를 따라 구지·창녕 쪽으로 가다 18번 지방도, 1번 지방도를 번갈아 타면 된다. →맛집 산중(982-0077)은 들깨를 재료로 만든 음식들로 이름난 집이다. 팔공산 케이블카 오르는 길에 있다. 왕거미식당(427-6380)은 ‘뭉티기’(소고기 육회)와 ‘오드레기’(소 대동맥)를 잘한다. 대구 중심의 국채보상로에 있다. 규모가 적은 데다 사람들이 몰리는 까닭에 예약은 받지 않는다.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41] 불화(佛畵)에 담긴 일제강점기 사회상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41] 불화(佛畵)에 담긴 일제강점기 사회상

     감로탱(甘露幀)은 외래 종교인 불교를 한국인들이 얼마나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신앙했는지 보여 주는 불교회화이다. 전생에 지은 죄에 따라 육도윤회(六道輪廻)에 고통받는 중생이 구제 과정을 거쳐 극락에 이른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감로탱화, 감로왕도라고도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과거-현재-미래가 인과관계로 연결되는 3단으로 그려졌다. 아래부터 지옥도와 아귀도에서 헤매는 중생도 단이슬(甘露)이 상징하는 풍성한 음식이 베풀어진 의식을 거치고 나면 부처가 머물고 있는 세계로 올라설 수 있음을 상징한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감로탱은 산천에 떠도는 외로운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수륙재나 조상을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우란분재에서 쓰였다. 이렇듯 독창적인 그림이 불교가 극심한 탄압을 받던 조선시대에 꽃을 피웠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감로탱 가운데 제작 연대가 가장 빠른 것은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에 있는 약산사 감로탱(1589)이다. 각각의 감로탱은 하단의 육도윤회상이 조성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 기록화이자 풍속화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역사적 의미가 뚜렷한 감로탱 가운데 서울 돈암동 흥천사 감로왕도가 있다.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무덤 정릉의 원찰 흥천사는 1939년 감로왕도를 새로 봉안했다. 공주 마곡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계룡산파 화맥(畵脈)의 대표적 화승 보응 문성과 그의 제자 병문이 참여했다. 두 화승은 기존의 도상을 현실에 맞게 재해석한 것은 물론 당시 핵심적 사회상을 서양화법으로 담아냈다.  두 화승 가운데 병문의 족적은 흥미롭다. 병문은 일제강점기부터 사회주의 문화예술 운동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 현대미술의 1세대 조각가로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를 주도한 김복진과도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1949년 출범한 ‘불교미술연구회’에는 미술부장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6.25전쟁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흥천사 감로왕도가 그려진 당시는 중일전쟁이 한창이었고, 1941년 미국 진주만을 공격하기 직전이었다. 보응 문성과 병문은 이 언저리의 시대상을 먹선으로 분할한 31개의 화면에 담았다. 전투함이 돌진하고 전투기가 날아가는 가운데 엄청난 위력을 가진 포탄이 여기저기서 터지는가 하면, 기세등등한 육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상대 진영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다.  일제가 남산에 세운 조선신궁과 침략의 본거지 통감부의 모습도 사실적으로 담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설치된 통감부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총독부로 바뀌었으니 당대의 모습은 아니다. 자동차 여행, 기차가 다니는 어촌, 코끼리 서커스단, 전당포, 전신주 공사, 전화 거는 모습, 스케이트 타는 모습 등 새로운 문물의 양상도 보인다.  흥천사 감로왕도는 최근까지 전쟁 장면이 담긴 몇몇 장면은 호분칠을 하고 흰 종이로 가려놓기도 했다. 하단의 오른쪽 맨 아래 장총을 둘러메고 일렬로 행진하는 일본군의 모습은 호분칠이 짙어 종이를 떼어내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럼 모습은 흥천사 감로왕도를 한때 친일적인 사회상을 담은 불화(佛畵)로 분류하게 만든 이유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당대의 새로운 사회상을 가감없이 투영한 이 그림을 20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불교회화의 하나로 적극 재평가하고 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정현용 기자의 밀리터리 인사이드] 위용… 화염… 국군 무기의 무시무시한 파괴력

    [정현용 기자의 밀리터리 인사이드] 위용… 화염… 국군 무기의 무시무시한 파괴력

    모든 무기는 인명을 살상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군용 무기를 볼 때 많은 이들이 위압감을 느끼게 됩니다. 차가운 금속 위주의 현대 무기 느낌은 ‘서늘하다’는 표현 이상일 겁니다.무기에 반감을 가진 분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 군도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수많은 첨단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실제 훈련 현장에서 화력 시범을 보일 때는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폭음 때문에 보는 이는 물론 직접 장비를 다루는 우리 장병들도 바짝 긴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무기에 ‘아름답다’라는 표현을 붙여보기로 했습니다. 언뜻 보면 무기와 아름답다는 표현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여기 사진들을 보면 여러분의 생각이 바뀔 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방부의 ‘대한민국 국군 플리커’(www.flickr.com/photos/kormnd)에서 공감을 받은 사진을 공개합니다. 우선 제5포병여단이 보유한 M270 MLRS(대구경 다련장) 전투사격 훈련 모습을 볼까요. 자욱한 연기와 화염이 차량과 묘한 대조를 이루는데요. 이 장비는 1분 안에 무려 12발의 로켓을 발사할 수 있습니다. 사거리가 32km로 가장 짧은 기본형 ‘M26’ 로켓 한 발에만 무려 644개의 자탄(子彈)이 들어 있어 ‘강철비’(steel rain)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기본형 로켓 한 발로도 축구장 3개 크기의 면적을 초토화시킨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화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강원 철원군 육군 6사단 포병연대 장병들이 대대전술 훈련 중 105mm 견인포를 발사하는 모습도 눈에 띄네요. 장병들은 무척 고생스러운 훈련이지만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는 견인포의 불꽃은 장엄함을 넘어 아름다움으로 다가옵니다. 최초의 여군 포병장교 홍지혜 소위가 사격지휘장교 임무를 수행한 훈련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서북도서를 방어하는 해병대 2사단의 전차 ‘M48A3K’ 사격훈련 모습도 인상적인데요. 1970년대 말부터 보급된 노후 전차입니다. 군은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신형 전차 교체 작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전차들이 서북도서를 방어하는 주력전차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일부는 수리용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니 하루빨리 예산을 확보해 점진적인 교체 작업이 이뤄져야 하겠습니다. 공군 종합전투훈련 ‘소링 이글(Soaring Eagle) 훈련’ 모습도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하얀 솜사탕 같은 구름 위를 지나는 전투기들이 작은 모형처럼 보이는데요. 지난해 처음으로 전력화된 국산 경공격기 FA50이 F15K, KF16, F4, F5 등 다른 전투기와 편대를 이뤄 호흡을 맞추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각각의 전투기 크기가 달라 한눈에 구분이 될 것 같은데요. FA50에서 공대지 미사일인 AGM65G(매버릭)을 발사하는 순간도 포착됐습니다. 올해 북한이 자체 개발했다고 선전한 경비행기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겠죠? 앞으로는 미국에서 들여올 F35A와 국산 차세대 전투기가 가세해 더욱 멋진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더불어 F15K 조종사들과 정비요원들의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통해 영공을 수호하느라 땀 흘리는 공군 장병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공중급유기 도입 사업이 지난 6월 유럽 에어버스D&S의 A330 MRTT로 결정됐습니다. 사진은 지난해 공군 KF16의 공중급유 훈련 모습입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는 훈련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우리가 흔히 ‘사열’이라고 하면 지휘관이 장병의 사기와 훈련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줄을 세워놓고 경례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전차나 장갑차가 주 전력인 기계화사단에서는 독특한 ‘기계화 장비 기동사열’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사진은 K1A1 전차, K9 자주포, K21 보병전투차량이 참가한 육군 20사단 기동사열입니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열을 맞춰 기동하는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장관이라고 하겠습니다. 눈이 오면 장병들은 설상 위장을 하게 되는데요. 육중한 전차도 예외는 아닙니다. 꼭 병사가 흰 옷을 차려입은 듯 설상 위장을 한 육군 30사단 K1A1 전차의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최정예 부대라고 하면 ‘특전사‘를 빼놓을 수 없지요. 외부에 공개된 훈련 내용만 해도 무시무시한 수준인데요. 사진은 얼음물 속에서 진행하는 설한지 극복훈련입니다. 체감온도 영하 30도 이하의 강추위에도 얼음물에 들어가 K7 소음기관단총을 겨누는 특전사 장병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북한군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비한 화생방 훈련을 받는 장병도 연막탄과 대비를 이뤄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서해 해상기동훈련도 눈길을 끕니다. 을지문덕함을 비롯한 해군 2함대 함정이 종렬진(함대가 일렬로 늘어선 형태)으로 전술기동·사격훈련을 진행하는 모습이 거대한 장벽을 연상하게 하는데요. 앞으로도 국민들의 바람처럼 대양해군으로 힘차게 뻗어나가길 기대합니다. junghy77@seoul.co.kr
  • [길섶에서] 갈대와 저어새/이경형 주필

    한강 하구를 따라 펼쳐진 갈대밭에 가을비가 내린다. 이틀 동안 비를 맞은 갈대는 수수처럼 붉다. 바싹 마른 갈대는 습기를 품으면서 빛깔의 명도가 높아졌다. 검붉은 색인데도 투명해 보인다. 가뭄 끝에 내린 가을비의 푸근함처럼 각박한 세상의 사람들도 서로 보듬어 주면 너그러워질까. 우리네 삶도 사랑이라는 물기를 머금으면 풍성해질까. 강물이 빠르게 빠진다. 썰물의 속도만큼 개펄은 그 넓이를 더해 나간다. 개펄과 강물의 어름에는 오리들이 떼를 지어 먹이를 찾고 있다. 몽골이나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검은 색깔의 청둥오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들과 떨어져 몸집이 흰 놈이 강가 옅은 물에서 검은색의 긴 부리를 처박고 열심히 지그재그로 휘젓고 있다. 저어새였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다. 쌍안경으로 숨을 죽이고 관찰했다. 한참을 물속을 부리로 저어 댔으나 계속 허탕이었다. 드디어 넓적한 주걱 부리를 물 밖으로 쳐들고 뭔가를 삼켰다. 저어새가 아침 식사 한 끼를 때우는 것도 손쉬운 일은 아닌가 싶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이라고 특별히 저어새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경형 주필 khlee@seoul.co.kr
  • 붙는 옷 날씬한 아빠… ‘깔’맞춤 멋쟁이 오빠

    붙는 옷 날씬한 아빠… ‘깔’맞춤 멋쟁이 오빠

    옷장을 열었는데 소매와 목깃이 낡은 검은색 코트, 유행 지난 패딩점퍼뿐이라면 퇴근길에 남성복 매장에 한 번 들러보자. 몇 년 새 확 달라진 외투들이 당신을 맞을 것이다. 마네킹이 입은 옷을 쓸어보니 캐시미어가 섞인 반질반질한 코트가 분명한데 발열, 방풍 기능이 있어 아웃도어 의류만큼 방한성이 좋다고 직원은 설명한다.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이 보편화된 덕에 정장 재킷 대신 입을 수 있는 누빔(퀼팅) 재킷도 다양하다. 거위털을 넣고 누벼 어지간한 추위에도 입을 수 있다. 격식을 갖추는 자리나 나들이 길에도 두루 입고 싶다면 길이가 좀 더 긴 패딩코트를 고르면 된다. 40~50대 중년 남성은 겨울옷차림에 조금만 신경 쓰면 센스 있는 ‘꽃 중년’으로 거듭날 수 있다. 남성 대부분은 나이가 들수록 배가 나오면서 체형이 달라진다. 흔히 뱃살을 감추고 편하게 입으려고 큰 치수의 옷을 선택하는 실수를 범한다. 이지은 LF 신사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는 “몸에 달라붙는 느낌의 옷을 입는 것이 훨씬 날씬하고 키가 커 보인다”면서 “붙는 옷이 불편하다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며 적당히 타이트한 옷이 오히려 활동하기 편하다”라고 말했다. 재킷은 넉넉하고 밋밋한 스타일보다 허리 부분이 몸쪽으로 약간 들어가고 일반 재킷보다 허리선이 위에 잡힌 옷을 입으면 날씬해 보인다. 얼굴이 커 보이고 볼록한 배에 시선을 모으는 3버튼 재킷보다 2버튼 재킷을 입는 것이 낫다. 젊어 보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옷 색깔을 맞추는 것이다. 꽤 많은 중년 남성이 젊어 보이려고 노랑, 빨강, 초록처럼 밝은색을 코디하곤 한다. 과한 원색은 활기를 주기보다는 촌스러워 보이기 십상이다. 화려한 색은 무채색 옷에 포인트 색상으로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빨강 대신 채도가 낮은 와인색을 입거나 초록보다 다소 어두운 풀색을 선택하면 세련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외투의 안감이나 재킷의 끝단에 포인트 컬러나 무늬가 있는 아이템을 고르면 은근한 멋이 난다. 외투 안에 입는 옷으로는 단색의 터틀넥 니트가 제격이다. 단정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셔츠를 입어야 한다면 보온성을 위해 니트스웨터를 함께 입는다. 흰 셔츠에 검은색 라운드 또는 브이넥 니트를 입으면 무난하다. 격자무늬 셔츠를 입었다면, 셔츠의 포인트 색상과 같은 색의 넥타이로 옷차림을 완성한다. 셔츠 위에 니트 아이템을 겹쳐 입으면 굳이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된다. 카디건이나 지퍼로 여닫는 니트스웨터를 셔츠 위에 걸칠 수도 있다. 아저씨 티를 내고 싶지 않다면 카디건 단추를 모두 채우지 말고 한두 개만 채우도록 한다. 같은 이유로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리는 것도 피한다. 양현석 브루노바피 디자인실장은 “재킷을 연회색이나 베이지처럼 밝은색으로 골랐다면 스웨터나 카디건은 감색이나 검정처럼 짙은 색으로 입어 밋밋한 느낌을 줄이고, 반대로 재킷 색이 어두우면 안에 입는 옷은 밝은색을 택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액세서리로 겨울옷차림에 활기를 더할 수 있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소재와 색상을 사용하는 게 포인트다. 스웨이드 구두와 니트 머플러, 행커치프를 붉고 노란 색 계열로 통일하면 된다. 가끔은 과감하게 ‘젊은 오빠’ 스타일에 도전해 보자. 이현정 갤럭시 디자인실장은 “젊은 느낌을 강조하고 싶다면 주황, 빨강, 갈색 등의 스웨이드 재킷이나 무스탕, 길이가 짧은 바지 또는 발목으로 내려올수록 통이 좁아지는 테이퍼드 팬츠로 세련된 분위기를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포토] 흰 연기 내뿜으며 ‘추락 중?’

    [포토] 흰 연기 내뿜으며 ‘추락 중?’

    8일(현지시간) 개막한 두바이 에어쇼에서 영국의 에어쇼 팀이 ‘보잉 스티어맨 75’를 타고 묘기를 펼치고 있다. 이번 두바이 에어쇼는 12일까지 계속된다.ⓒ AFPBBNews=News1/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이시티안과, 흰 지팡이의 날 기념 부산시각장애인 참가

    아이시티안과, 흰 지팡이의 날 기념 부산시각장애인 참가

    부산에 위치한 아이시티안과가 흰 지팡이의 날을 기념해 열린 부산시각장애인 복지대회에 참여했다고 4일 밝혔다. 지난 달 29일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부산광역시지부의 주최 하에 부산 서구 구덕실내체육관에서 부산시각장애인 복지대회가 열렸다. 부산광역시가 특별 후원하고 부산일보, CJ헬로비전, 부산MBCM, KBS부산방송총국, 부산경남대표방송KNN, 국제신문 등이 후원한 이 날 행사는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가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지정한 흰 지팡이의 날(the White Cane Day)을 기념해 개최됐다. 흰 지팡이의 날은 지난 1980년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가 시각장애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적인 관심과 배려를 이끌어내려는 취지에서 공식 지정한 날로 매년 10월 15일을 전후해 세계 각국에서 관련 행사들이 펼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시각장애인의 사회적 보호와 안전 보장, 자립을 상징하는 흰 지팡이는 시각장애인 외에는 사용을 금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비롯해 그 가족과 자원봉사자 등 900여명이 참여한 이날 행사에서 부산 아이시티안과는 시각장애인들을 독려하고 복지증진에 함께 할 것을 약속했다. 한편 아이시티 안과는 지난해부터 부산시각장애인협회와 연계를 맺은 이후 꾸준한 후원활동을 펼치고 있는 부산에 위치한 병원이다. 아이시티안과는 개원 2주년을 맞이한 지난해에는 경주에서 시각장애인협회와 함께 사랑의 걷기 운동을 진행하는 등 시각장애인복지에 앞장 서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해외여행 | 태국-어둑한 마음에 볕을 러이Loei의 마법

    해외여행 | 태국-어둑한 마음에 볕을 러이Loei의 마법

    어쩔쏘냐. 삶이 내 뜻대로만 흘러갈 수 없으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불안에 흔들릴 때도 있는 법이다. 문제는 가슴에 쌓인 덩어리들을 어떻게 내보내냐는 것이다. 먹먹함에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찾아오면 그대 러이를 찾아가길. ‘겨우?’ 의심이 갈 법한 소소한 의식들이지만 당신을 구름처럼 가볍게 할 능통한 명약이 그곳에 있다. 태국 동북부 산악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러이는 방콕에서 약 500km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는 약 7시간이나 걸리는 지역이지만 태국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하면 1시간이면 충분하다. 가장 여행하기 좋은 시즌은 겨울이다. 라오스, 버마(현재 이름은 미얀마) 등의 국가와 근접해 있기 때문에 여러 양식의 문화를 한꺼번에 접할 수 있다.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버마를 견제하기 위해 라오스 왕자와 아유타야 공주가 혼인을 통해 손을 맞잡고 이 지역을 상징적인 평화의 지역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건축물에 전통 아유타야 방식은 물론 라오스식 건축 양식이 섞여 있단다. 물론 지역 주민들 또한 라오스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다고. ●단사이Dan Sai 단사이는 피타콘 페스티벌이 열리는 단사이는 러이 지방의 소도시다. 30분~1시간 안팎의 자전거 투어로 마을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데, 마을 병원에서 시작해 피타콘 뮤지엄까지 이어지는 길은 가이드가 함께해 골목길을 거쳐가기 때문에 러이 사람들의 생활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다. 자전거 투어는 1회에 약 15~20달러면 충분하다. ▶러이의 마법 주문 1 무서운 표정 하지 말아요 음모라도 꾸민 듯이, 해가 바뀌자마자 안 좋은 일들이 겹쳤다. 보드를 타다가 생애 처음으로 뼈가 부러져서 한달 넘게 깁스를 했다. 출장으로 떠난 유럽에서 휴대폰을 분실했고, 지인과는 끝장까지 볼 요량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이번엔 또 무슨 불행이 기다리고 있을까. 자조 섞인 기대감으로 시작한 여행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내리쬐는 태양, 내 마음에도 태양의 흑점처럼 부글부글 화가 끓고 있었다. 방콕에서 국내선을 타고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러이에서 나 못지않게 화난 얼굴을 한 피타콘Phi Ta Khon 마스크를 만났다. “귀신의 형상을 한 피타콘은 이 마을의 상징이자 나쁜 기운을 의미합니다. 매년 6월에는 피타콘 페스티벌이 사흘간 크게 열리는데,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설명을 들으며 왓 폰 차이Wat Phon Chai 마을의 피타콘 박물관Phi Ta Khon Museum으로 들어서자 사람 상반신만한 크기의 피타콘 마스크가 표독스러운 표정을 하고 노려보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 6월27일경에 사흘간 열리는 피타콘 페스티벌은 마을 주민들은 물론 태국 전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큰 축제다. 피타콘 마스크를 쓴 이들이 마을 사람들을 놀리듯이 행진하고, 사람들은 환호하며 어울리면서 평화와 안녕을 기원한단다. 축제가 가까워지면 마을 학교에서 모인 아이들은 피타콘 마스크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 아이들이 만든 피타콘 마스크는 정의 앞에서 호되게 당할 것만 같이 순수함이 숨어 있다. 진짜 무서운 귀신을 그려 주겠다, 마음먹고 붓을 집어 들었다. 뾰족뾰족 날이 선 손놀림으로 완성한 마스크는 내 심정 그대로다. 포악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붓을 내려놓자 마음은 한결 평안하다. 쌓여 있던 화가 마스크로 옮겨 간 것일까. 외지인들의 방문에 마을 사람들은 피타콘 페스티벌을 맛보기로 보여 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타콘 코스튬을 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한다. 허리춤에서 흔들리는 방울 소리와 마스크의 현란한 색깔이 와글와글 펼쳐지는 동안 신기하게도 엉켜 있던 마음이 설렁설렁 풀어지고 있었다. ▶러이의 마법 주문 2 위로의 말이 상냥해 고민을 직접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문제는 더욱 쉬워진다. 이곳엔 ‘자꾸안’이라 불리는 정신적 지주가 있다. 자꾸안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존재다. 사람들은 질병이 생기거나, 집안에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 자꾸안을 찾아와 고민과 희망을 전하고 자꾸안은 그것을 기도를 통해 신에게 전달한단다. 나중에 소원이 이루지면 다시 돌아와 자꾸안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는 것이 예의다. 자꾸안의 집에 들어가 마련돼 있는 종이에 소원을 적었다. ‘좋은 일이 생기게 해 주세요.’ 어차피 못 알아볼 테니 그동안 고민했던 것들을 주절주절 덧붙였다. 자꾸안에게 통역사가 간단히 내용을 전하자 잘 전달하겠다는 자꾸안의 답이 되돌아온다. 잘될 거라는 격려와 함께. 자꾸안의 집을 나서는데 괜히 발걸음이 가볍다. 명확한 답을 받은 것도 아니건만 잘될 거란 말이 든든하다. 마을 사람들도 이런 마음일 테다. 고민을 들어주고 격려를 받는 것만으로도 지친 마음은 재생의 힘을 얻는다. ▶러이의 마법 주문 3 비움의 길, 성인을 따라가는 길 불교인구가 95%에 달하는 태국에서는 단기간 출타를 하는 것이 낯선 풍경은 아니다. 태국의 왕 또한 왕이 된 후,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 약 15일을 보냈다. 큰 일을 앞두고 마음을 정진하기 위해, 혹은 건강을 위해 잠시 동안 출가한단다. 기간은 본인이 정할 수 있다고. 우리나라의 템플스테이가 범인의 신분으로 며칠 동안 불교를 체험할 수 있는 단기 프로그램이라면, 태국의 것은 정말 스님이 되었다가 다시 세속의 범인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침 피타콘 뮤지엄 주변에서 출가를 앞둔 이들을 위한 의식이 열렸다. 오늘의 주인공은 젊은 청년 한 명과 중년의 남자 두 명이다.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인 듯 바글바글한 절 뒤뜰에는 들뜬 목소리들이 가득하고, 태국 최신 가요일 법한 음악이 크게 울려 퍼진다. 새하얀 옷을 차려 입은 주인공들은 가만히 식을 기다리고 있다. 연꽃 한 송이를 들고,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천으로 가리고서. 각자 다른 이유로 출가를 결심했겠지만 모두 결연한 표정이다.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과는 다르게 어쩐지 비장한 느낌마저 든다. 연이은 불행에 지쳤던 때라 의식을 기다리는 이들을 보며 괜한 기대감이 생겼다. 한 번쯤 시도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스쳐간다. 이때까지 있었던 문제들은 마음속에 쌓아두고 있는 것들이 많아서 생긴 것이 아니었을까. 불교의 이야기대로 마음을 비울 수 있다면 좀 더 행복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의식을 기다리는 이들도 마찬가지 기대를 품고 있을 터였다. 주인공들과 마을 사람들이 탑돌이를 시작한다. 온갖 축복의 말들이 쏟아진다. 행운을 의미하는 작은 동전들을 사방팔방에서 하늘로 던지고, 꽃가루까지 날린다. 그야말로 완전한 축복의 순간. 햇빛을 가리는 넓은 차양으로 호위를 받는 세 명의 주인공들은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걸었다. 복작복작한 가운데서도 이들에게서는 형형하게 빛이 나는 것만 같다. 그들의 여정에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기를. 덕분에 나도 힘을 얻는다.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 방법은 놀랄 정도로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치앙칸Chiang Khan 치앙칸은 메콩강 줄기를 따라 들어선 치앙칸에서는 새로운 차원의 태국 여행이 가능하다. 치앙칸을 둘러싼 자연을 느끼는 에코투어리즘이 유명하기 때문. 무엇보다 치앙칸의 명물은 ‘햇빛’인데, 일출과 일몰 시간이 되면 하늘이 오색으로 물든다. 메콩강에 비치는 노을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치앙칸에는 정갈하게 보존된 2~3층 높이의 전통 가옥들이 긴 골목을 형성하고 있는데, 마치 전통양식을 살려 보존해 둔 일본 골목을 찾아온 것처럼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많고 소박하게 즐길 수 있는 유흥거리가 많아 태국의 대학생들이나, 유럽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 이곳의 매력에 빠져 길게 머무르는 여행자들도 많다고. 직접 만든 작은 소품들을 파는 숍, 파삿 체험을 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이태원 골목에 숨어있을 법한 예쁜 카페 등이 주를 이룬다. 뻔한 기념품이 아니라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물건이 많기 때문에 주머니가 넉넉하다면 과감히 지를 것을 추천한다. 강 주변의 레스토랑에는 저녁 늦은 시간까지 주홍빛 전등 밑으로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흘러나온다. 강 쪽으로 난 산책로에 서면 언제이건 여유롭고 조용하게 메콩강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마음을 쉬게 하고 싶은 사람에게 양손 엄지 척. 꼭 가보시라. ▶러이의 마법 주문 4 메콩강에 흘려 보낸 마음 출가 의식 때 우연찮게, 혹은 필연적으로 손에 날아들었던 행운의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치앙칸으로 이동했다. 흑점처럼 타오르던 마음은 여정이 계속되면서 이미 작은 불길로 잦아든 지 오래다. 동행인들은 치앙칸에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넓은 메콩강 위에 나쁜 기운들을 쏟아낼 수 있을 거란다. 태국 전통 가옥들이 오밀조밀 들어선 치앙칸에 도착하자마자 골목길 안쪽의 작은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간다.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플로팅 오브젝트를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태국어로 ‘파삿 로이 코Pasard Loy Kror’라고 불리는 플로팅 오브젝트는 태국인들이 나쁜 일이 생기면 행하는 의식에 사용되는 것이다. 파삿에 촛불을 켜고 강 위에 흘려 보내면서 나쁜 기운도 같이 흘려 보내는 것. 태국 사람들은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면 파삿을 만들어 강으로 나선단다. 재료는 모두 자연에서 난 것이다. 대나무 줄기를 꺾어 틀을 잡고 대나무 잎으로 바닥을 만든다. 그리고 왁스 꽃으로 장식하고 사방에 작은 초를 꽂아 완성한다. 파삿을 완성하면 모두 동그랗게 둘러앉아 간단한 의식을 치른다. 등 뒤로 명주실을 크게 돌려 원을 만들고 짧은 기도를 한 뒤 등 뒤의 실을 무릎 앞으로 넘겨 가져온다. 나에게 있었던 나쁜 기운이 원을 따라 파삿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조심조심 양손으로 바삿을 들고 메콩강으로 간다. 자칫 우습게 보일 수도 있는 의식이었다. 누군가 ‘이 까짓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애타던 자에게는 이 과정과 행위들이 더없이 황홀한 순간이었다고 하면 믿으시려나. 강 위에 파삿을 띄우는 행위는 상상하는 것보다 더 뭉클한 것이었다. 공들여 만든 나의 파삿에 촛불을 켜고 메콩강의 흙빛 물 위에 올린 뒤 밀어냈다. 그때부터다. 찬찬히 마음이 해방감에 젖어 들었다. 정말로 파삿 안에 나의 나쁜 기운이 담긴 것처럼 말이다. 파삿을 물에 띄우고 나면 다시 보지 말아야 한다는 법칙에 따라 시선을 돌렸다. 멀리 누군가 띄운 걱정들이 어둑어둑한 강 물 위에서 반짝이며 흔들흔들 떠다니고 있었다. ▶러이의 마법 주문 5 비운 자리엔 반짝이는 행운을 담아 마음을 비웠으니 좋은 기운을 채울 차례다. 이른 새벽 숙소 앞에 작은 바구니를 들고 자리를 잡았다. 새벽마다 공양을 하는 스님들에게 보시하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보시는 일상과 같다. 매일 새벽마다 사람들은 골목길을 따라 앉아 스님들을 기다린다.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이런 풍경에 여행자도 동참할 수 있도록 보시할 음식과 전통 옷을 준비해 주기도 한다. 지금까지 참여했던 많은 의식들이 모두 나쁜 기운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면, 보시는 행운을 얻기 위한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스님에게 보시를 하면서 좋은 기운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주황색 승복을 걸친 맨발의 스님들이 자박자박 걸어온다. ‘좋은 일이 생기게 해 주세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흰 쌀밥 한 줌, 과자 한 봉지를 바구니에 담는다. 스님들은 때때로 멈춰서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며 행복을 기원해 준다. 새벽의 고요함 속에 중얼중얼 서로의 축복을 기원하는 순간이다. 이 경건한 의식은 쉬웠지만, 더없이 뿌듯한 것이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치앙칸에서의 보시가 마음을 정갈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면 반나파낫 타이담 문화마을Ban Na Pa Nat Taidam Cultural Village에서의 체험은 마음속에 반짝이는 기쁨을 채우는 시간이었다. 치앙칸에서 한 시간 거리인 반나파낫 타이담은 직조 기술로 유명한 마을. 100여 년 전 라오스에서 이곳으로 옮겨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때문에 태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그중에서도 집집마다 창과 문에 걸어 놓은 각양각색의 모빌이 가장 눈에 띈다. 색색의 실을 얇은 대나무 가지에 꼬아 만든 모빌은 ‘행운’을 의미한다. 행운이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에 창과 문에 걸어 둔단다. 벼가 자라는 시기, 농사일이 한가해지면 이곳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천을 짜거나 모빌을 만들며 시간을 보낸다. 덕분에 보통의 시골마을이 초록 일색이라면 이곳은 노랑, 빨강, 분홍 등 생기 넘치는 색이 가득하다. 실로 만든 공예품일 뿐인데 마음을 빼앗긴 것은 그 때문이다. 작은 나무에 걸려 바람에 흔들리던 모빌은 그 존재만으로도 즐거운 기운이 넘쳤고, 그 기운이 나에게도 전해졌던 것이다. 괜히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가 절로 나올 지경이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행운을 가져다 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놀라운 행운이 나를 가득 껴안았다. 여행 중 잃어버린 귀한 물건을 공항에서 찾았던 것. 올 초부터 이어졌던 불행의 또 다른 연장선상이 될 뻔했던 분실 사고가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해결된 것이다. “이건 정말 대단한 행운이야.” 함께했던 사람들이 축하의 인사를 건넬 때, 같이 기도했을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득 찼다. 그리고 짧은 여행에서 참여한 의식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미신 같거나, 소박했을지언정 절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순간들이. ▶travel info AIRLINE태국 수도인 방콕에서 러이행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자동차로는 7시간이 걸리지만, 비행기를 이용하면 1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다. 타이항공, 녹에어, 에어아시아 등이 러이행 국내선을 운행하고 있다. Restaurant란창 가든 바 & 레스토랑LanChang Garden Bar & Restaurant단사이 마을 인근의 모던 태국식 레스토랑. 생선, 고기, 야채 등 다양한 태국 요리를 선보이는데 기름지지 않고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의 까다로운 입맛도 사로잡은 곳이다. 아주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플레이팅에도 세세하게 신경을 쓰는 등 정찬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Muang Loei, Loei, Thailand 42000 +66 42 833 733 www.facebook.com/pages/LanChang-Garden-Bar-And-Restaurant Hotel푸파남 리조트 & 스파Phu Pha Nam Resort & Spa시내와 조금 떨어진 숲 속에 위치하고 있다. 목조건물로 내부 인테리어에서도 나무의 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창밖으로 푸른 숲의 기운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1층에 자리한 레스토랑은 나무에 둘러쌓인 큰 테라스가 있어 여유롭게 아침을 즐기기에 좋다. 다만 모기를 조심할 것. 음식은 기교 없이 담백하다. 태국 음식이 낯선 사람이라도 부담없이 도전 해 볼 수 있다. 252 Moo 1, Koakngam, Amphur Dansai, Loei 42120, Thailand +66 42 078 078 www.phuphanam.com 더 올드 치앙칸 부티크 호텔The Old Chiang Khan Boutique Hotel치앙칸에서는 메콩강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숙소를 정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곳은 메콩강 방향으로 난 숙소인데다, 100년 역사의 태국 전통 건물을 호텔로 만들었다. 손때 묻은 전통 가옥이 주는 넉넉함은 물론 일출이 시작되거나 노을이 지는 때, 호텔 곳곳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있으면 평화로운 기분이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 현대식이 아니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자잘한 것들이 있지만 그쯤은 이곳이 주는 기쁨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다. 치앙칸 골목이 시작되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 야시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288, Chiang Khan, Chiang Khan District, Loei 42110, Thailand +66 42 822 119 www.theoldchiangkhan.com Stupa프라 탓 스리 송 락Phra That Sri song Rak 1560년대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과 라오스 비엔티안 지방의 스리 사타나카나헛 왕국이 평화 협정을 맺고 만들었다는 사리탑이다. 사리탑은 신발을 벗고 입장할 수 있는데, 한낮에는 바닥이 뜨거우니 양말을 꼭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탑돌이를 할 때는 시계 방향으로 돌지만, 이곳에서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몸의 왼쪽에 있는 심장을 사리탑과 더 가깝게 두기 위해서다. 큰 수트파 사방으로는 마을 사람들이 만든 대나무 공예품들이 쌓여 있다. 그것이 이곳 마을 사람들이 스투파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Temple왓 너라밋 위파타사나Wat Neramit Wipattasana대리석으로 지은 태국 방콕의 마블템플에서 모티브를 얻어 20여 년 전 만들어진 사원이다. 러이의 특산품인 분홍 대리석을 썼다. 치앙센 양식과 수코타이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부처상은 은혜로운 미소와 함께 자비 넘치는 표정으로 완성됐다. 러이 지방 아티스트가 8년에 걸쳐 벽을 따라 그렸다는 벽화에서부터 중앙에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나는 부처상까지, 꼼꼼히 둘러볼수록 그 정성이 남다르다. 명상하는 사원이므로 여행자 또한 발소리와 목소리를 죽여 승려들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글·사진 차민경 기자 취재협조 태국관광청 www.visitthailand.or.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박나래 “술자리 이성 유혹? 100번 대시하면 30명 사귈 수 있어”

    박나래 “술자리 이성 유혹? 100번 대시하면 30명 사귈 수 있어”

    ‘예능대세’ 개그우먼 박나래가 격주간 패션 매거진 <그라치아>와 만났다. 평소에 패션에 관심이 많기로 유명한 박나래. 특히 신진 디자이너들의 옷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이유를 묻자 “제가 키 크고 예뻤으면 이렇게까지 신경 안 쓰죠. 그런 애들은 그냥 청바지에 흰 티셔츠만 입어도 태가 나잖아요. 그게 너무 화나요(웃음). 저는 제 신체적인 콤플렉스를 스타일링으로 커버하는 편이에요. 원래 희극인들이 패셔너블해요. 흔히 업신여긴다고 하잖아요.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면 무시당해요. ‘무대 위에서는 망가지는데 무대 밖에서는 패셔너블한 프로’란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신경 쓰는 편이에요.”라고 말했다. 애주가이기도 한 박나래는 자신의 집에 ‘나래바’를 만들어서 지인들과 술을 즐긴다고. “저희 집 ‘나래바’에 오시면 제가 기가 막힌 술안주를 해드릴 수 있어요. 메인은 묵은김치찜이에요. 야키소바, 케사디야, 고르곤촐라피자, 낙지볶음, 골뱅이무침, 통삼겹살구이도 잘해요. 어제도 손님이 와서 한 상 대접했죠.” 술 자리에서 이성을 유혹하는 방법도 공개했다. “솔직해요. 재는 게 없어요. ‘나 오늘 너 마음에 들어. 어떡해? 나 오늘 집에 들어가, 말아?’ 이러는 거죠. 다들 웃거든요? 그럼 ‘웃지 말고 나 진심이야. 술에 이온음료 탄다? 물보다 흡수가 빠르잖아’ 이러는 거죠. 그 다음엔 약간 관심 없는 척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 말로 계속 추근대기만 하면 얼마나 싫겠어요. 갑자기 눈이 마주치면 내가 먼저 피하거나, 화장실 갈 때 짧은 스킨십, 말할 때 무릎을 치며 리액션하면 남자들이 홀딱 넘어와요.“ 성공률은 얼마나 되는지 물었더니 약 30%라고. “낮아 보이죠?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아요. 10번 대시하면 3번 사귀는 거잖아요. 그런데 전 100번 대시해요. 그러니까 30명을 사귈 수 있죠. 내가 위너 아니에요? 보통 여자들은 100번 대시 안 하거든요.” 연애에서도 위너, 예능에서도 위너인 박나래의 재기 발랄한 인터뷰는 11월 5일 발행되는 <그라치아> 11월 2호 (통권 제 66호)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2)이화여대 앞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2)이화여대 앞

    한때는 얼룩무늬 복장의 죄수들을 쇠뭉치 공과 체인으로 발목을 묶었다. 익숙한 할리우드 영화의 풍경이다. 무쇠공과 체인(ball & chain)은 굴레와 속박을 의미한다. 그리고 ‘ball & chain’은 1960년대를 풍미한 위대한 아티스트 제니스 조플린의 대표곡이기도 하다. 1943년 텍사스 출신인 조플린의 유일한 출구는 음악, 특히 블루스였다. 그녀가 세상의 주목을 받은 것은 1967년 여름 ‘몬트레이 팝 페스티벌’. 노래는 절규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 위대한 아티스트는 늘 외톨이였고 여성적이기를 거부했다. 결국 1970년 스물일곱에 약물중독으로 세상을 떠난다. 널리 알려진 베트 미들러 주연의 영화 ‘로즈’(1979)의 주인공이 바로 제니스 조플린이다. 아는 사람은 안다. 조플린이 얼마나 여성적인 것에서 벗어나고자 그토록 몸부림쳤는지를. 그런 조플린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서울시내 딱 한 군데 있다. 이화여대 입구다. 삼십 년 가까이 문을 열고 있는 카페 ‘볼 앤 체인’이 주인공이다. 나는 조플린이 그렇게 벗어나고자 했던 ‘볼 앤 체인’이 상징하는 바가 곧 한국에서 이화여대가 차지하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볼 앤 체인’은 여성의 숙명적 억압과 굴레를 상징하는 동시에 여성적인 것을 거부하려는 몸짓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화여대는 그런 존재다. 2006년 700만명이 본 영화 ‘타짜’에서 김혜수가 일갈한 “이대 나온 여자”란 말이 주는 그 특별나고도 묘한 의미를 탄생시킨 공간이다. 기성세대에게 이대는 온갖 판타지의 대상이었다. 지금과 달리 70~80년대 이 대학은 금남의 공간. 흔적조차 사라진 학교 정문 이화교를 건너려면 경비 아저씨가 달려 나와 호통을 치는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공개 특강이라도 있다는 포스터가 붙으면 주제 불문, 강사 불문, 친구들끼리 담합해서 강의를 빼먹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특강 후 어떻게 한번 엮어볼 요량에 여학생들을 잘 살필 수 있는 자리를 꿰차고 앉는다. 강의 내용은 당연히 뒷전이다. 그리고 어쩌다 이대생 포섭(?)에 성공하면 정문 앞 그린하우스 제과로 모셔 그 비싼 생크림을 대접하며 작업에 열심이었다. 철길 옆 커피숍 ‘심포니’도 잊히지 않는다. 그 시절 흔치 않던 사이폰으로 내리던 커피를 마시며 창너머로 이화교를 오가는 여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저녁 무렵 학교 앞 풍경은 한 폭의 그림, 캠퍼스를 나서는 여학생들을 기대감 속에 기다리는 더벅머리 남학생들의 북적거림 속에 이화교는 저녁 노을만큼이나 붉게 설렜다. 그러나 이 땅의 남성들에게 판타지의 대상이었던 여대는 정작 그 속에 몸담고 있던 이대생들에게는 달리 해석된다. 많은 이대생들은 졸업할 때쯤이면 한결같이 말한다. “난 이대가 싫어.” 그런 그녀들도 정작 딸아이는 이대에 넣기 위해 안달한다고 한다. 이처럼 이대 입구는 기성세대들에게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권위주의 시대,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대학이 시위에 충혈되어 있던 시절, 여대들은 늘 고요했지만 이대생들은 시위에 동참했다. 그러나 정권이 놀랄 만한 대형 집회는 열리지 않았고 100여명에 이르는 단골 데모대가 이화교에서 확성기를 들고 “군부독재 타도”를 외쳤다. 이대 시위는 전통적으로 서대문경찰서가 담당한다. 그래서 서대문서에 배속된 전경들은 이대 시위가 있는 날은 외박도 미룬 채 앞다투어 달려 나갔다. “폭력경찰 물러가라”는 여대생들의 고함조차 그들에게는 외려 매력적인 노랫소리로 들렸다는 게 전경으로 그 시절을 경험한 친구의 말이다. 그래서 이대생들이 던진 계란에 얼굴을 맞은 날은 오히려 운수 좋은 날로 치며 내무반의 자랑거리로 통했고 단골로 시위 진압에 나갔던 그 친구는 이대생과 결혼해 지금 잘 살고 있다. 이처럼 이대 입구는 때로는 남성들에게 적잖은 욕망의 공간이 된다. 설레는 마음으로 미팅하던 ‘파리 다방’, 기차꼬리를 밟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에 기적이 울리면 일부러 천천히 걷던 이화교, 이름조차 우스꽝스러웠던 ‘여왕봉 다방’은 또 어땠던가. 80년대 초 나는 이대 입구에 있던 ‘미스티’라는 카페를 들락거렸다. 무엇에 이끌려 자주 찾았는지 모르겠다. 지하 카페에 들어서면 낯익은 단골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 카페에서 이대 미대 출신의 저명 서양화가 황주리, 가수 남궁옥분 등을 가까이 봤다. 쌀쌀맞기 그지없던 이십대 후반쯤의 젊은 여주인이 들려주던 ‘리 오스카’의 ‘비포 더 레인’과 ‘더 로드’를 들었으며 핑크 플로이드가 들려주는 ‘더 월’의 기괴하고도 데카당스한 분위기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어제 같다. 그뿐인가. 카페 주인이 유난히 섹시했던 ‘템프테이션’은 2차로 들르는 단골 카페. 하지만 바텐을 선점한, 있어 보이는 세브란스 의대생 때문에 기껏 먼발치에서 여주인의 예쁜 얼굴을 훔쳐보곤 했었다. 그 시절 우리는 이대 주변 카페의 섹시한 주인이나 아르바이트생은 무조건 이대 미대생이라고 우기곤 했었다. 후문에 있던 카페 ‘섬’도, ‘벼락맞은 대추나무’도 그 시절 자칭타칭 히피(pseudo hippie)들의 아지트였다. 인근에서 카페나 소극장 등을 꾸려가던 낭만 히피들은 영업이 끝난 새벽 1시쯤이면 ‘섬’에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독주를 마셨으며 누군가는 구석에 숨어 대마초를 돌려가며 피웠다. 혼돈스러운 주점이었다. 정문 언덕 ‘가미 분식’도 잊어서는 안 된다. 도대체 맛이라고는 알 수 없는 주먹밥을 시키는 이대생을 앞에 두고 맛있다며 우동 국물과 함께 억지로 먹었다. 그래도 이 집이 이대생들에게 뭉칫돈을 장학금으로 내놓고 있다는 것은 훗날 아내에게서 들었다.70~80년대 이 일대를 주름잡았던 그 많던 술집과 카페들은 거의 다 사라지고 지금은 ‘딸기골 분식’ 등 몇몇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을 방황했던 젊음들이 또렷이 기억하는 글귀가 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지금은 없어진 카페 ‘섬’에 걸려 있던 흰 광목에 검은 묵필로 커다랗게 쓴 정현종의 시 ‘섬’이다. 이처럼 기성세대에게 이 일대는 과거를 생각하게 하는 마력의 공간이 된다. 너무나 변해 흔적조차 찾을 길 없지만 이대역에서 정문 쪽으로 내려가는 500여m의 거리는 80년대 젊음들이 통음했던 술집이 있고 꽤 많은 여관들이 골목 안 깊숙이 숨겨져 있었다. 이른바 80년대 낭만 히피들의 ’나와바리‘였던 셈이다. 세월은 장소와 함께 간다. 이 글을 쓰는 순간 나는 또 한 시대가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 젊음의 빛이 모두 소진되고 있음을 느끼고, 나의 젊은 시절이 단 한 조각도 더이상 남아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20대만 가질 수 있는 설렘과 뜨거움, 무모함 등과 함께 이대 입구는 이 땅의 중년에게 그런 존재이고 장소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런 의미도, 상징도 없이 그저그런 거리로 전락한 이 조악하고 지독히도 상업적인 거리를 우리는 정녕 잊지 못한다. 그래서 수많은 중년들이 이따금 이대 입구를 찾게 되고 그래서 아직 남아 있는 ‘볼 앤 체인’의 남루한 간판을 훔쳐보고 ‘오리지널 분식’에 들러 오징어 튀김만을 질겅질겅 씹게 된다. 그 오징어의 짠맛에는 우리가 미처 못다 불렀던 청춘의 노래들이 담겨져 있다. 아, 그런 풍경 속에 스물 몇 살의 우리가 있다.
  • [포토] 시선 빼앗는 흰 눈썹…아예 가슴 드러낸 채

    [포토] 시선 빼앗는 흰 눈썹…아예 가슴 드러낸 채

    27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파나마 패션위크에서 디자이너 차진(Chajin)의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런웨이를 걷고 있다.ⓒ AFPBBNews=News1/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리는 패밀리”…흰담비 가족에 입양된 ‘새끼 고양이’

    “우리는 패밀리”…흰담비 가족에 입양된 ‘새끼 고양이’

    “나는 고양이인가, 흰담비인가.” 흰담비 가족에 입양된 새끼 고양이의 사연이 알려져 네티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흰담비는 족제비과 포유류로, 페럿(ferret)이라 불리기도 한다. 일본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은 흰색 또는 옅은 갈색이나 회색의 털을 가진 새끼 흰담비 사이에서 함께 몸을 부비며 생활하는 새끼 고양이 ‘코마리’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코마리는 다른 새끼 흰담비들에 비해 몸집이 약간 크지만, 비슷한 털 색깔과 생김새 때문에 언뜻 보면 흰담비로 착각이 들 정도로 닮았다. 문제는 코마리 역시 흰담비 가족에 입양된 뒤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에 사는 한 가족은 유기묘인 코마리를 데려와 이름을 지어주고 흰담비와 함께 생활하게 했는데, 코마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흰담비와 비슷한 몸집으로 보이려 몸을 웅크리거나 심지어는 같은 취침 공간에서 잠을 자고 먹이를 먹고 있다. 코마리의 주인은 “생후 5개월가량 된 유기묘가 상자에 버려진 채 발견됐고, 나는 이 새끼 고양이를 데려다가 흰담비와 함께 키우기 시작했다”면서 “시간이 지나자 코마리의 몸집이 점점 커져갔는데, 이제는 ‘형제’가 된 새끼 흰담비들과 몸집을 맞추려는 듯 한껏 웅크린 채 생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새끼 흰담비들 역시 코마리를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서로 몸을 부대끼거나 기대어 잠을 자는 등 남다른 우애를 보였다. 이들 동물가족의 사진은 SNS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를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작은 해먹에 코마리와 흰담비가 함께 들어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사진이다. 비록 종(種)은 다르지만 처음부터 한 가족이었던 것처럼 지내는 이들의 모습에 네티즌들은 감동을 표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15] 선어회와 활어회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15] 선어회와 활어회

     십수 년 전 일본 도쿄에서 운 좋게 지인을 따라 정부 청사 근처의 호젓한 곳에 있는 고급 횟집을 간 적이 있다. 일본 관료들이 진짜 전통식 회를 즐기고 싶을 때 마음먹고 찾는 곳이란다. 단아한 분위기에다 꽤 비싼 집인 것 같아서 은근히 맛에도 기대가 됐다.  깔끔하게 모양을 낸 전채요리를 후루룩 먹고 나자 막 바로 주인공인 생선회가 큰 접시에 담겨져 나왔다. 그런데 회 두께가 거의 소고기 등심 스테이크처럼 두껍고, 겉에서 은빛 윤기도 나지 않았다. 머뭇거리다 한 점을 입 안에 넣고 찝는 순간 물컹하면서 퀴퀴한 냄새마저 났다. 아마 한국에서 이런 일을 겪으면 우리는 당장 주인을 불러 “어제 팔다가 남은 회를 손님 상에 내놓느냐”고 항의했을 만하다. 이게 본래 일본식 회란 말인가. ● 일본식 회는 3~4일 낸장 숙성... 독특한 감칠맛 특징 대체로 일본인은 활어에 대나무 꼬챙이 등을 꽂아 즉시 피를 뺀 뒤 냉장 숙성시킨 선어회를 좋아한다. 도톰하게 썬 횟감을 축축한 물수건에 싸서 3~4일씩 보관하기 때문에 독특한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횟감을 다루는 것을 마치 예술 행위처럼 여긴다. 반면 우리는 갓 잡아서 바로 먹는 활어회를 제대로 된 회로 여긴다. 솔직히 복잡한 과정은 없다.  우리 선조들도 술안주로 가끔 회를 먹었다. 고려 때 이색부터 조선 때 이항복, 정약용 등은 시에 인용하기도 했다. 위험하긴 하지만 붕어 등 민물고기까지 회로 먹었다. 물론 섬 국가이자 대양과 접해 있는 일본은 각종 어류가 더 흔했다. 아주 오랫동안 육식을 금기했기 때문에 생선이 거의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그렇다면 이웃한 두 나라 사이에 왜 이렇게 기호에서 차이가 날까. 논리적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 일본 막부시대 운송수단 열악해 영주 밥상까지 수일씩 걸려 일본은 19세기에 막부 정권이 무너지기 전까지 사실상 군사력이 바탕인 영주(성주) 중심의 연맹국 형태였다. 음식 문화의 다양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의 음식 형태에 여러 기법을 동원해 집중한다. 반면 한국에선 왕권 국가로서 왕의 건강을 위해 맛이나 모양보다 약리 작용을 중시하는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 음식 모양만 보면 식재료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자칫 볼품없어 보인다. 중국은 황제국이라며 주변의 이질적 문화도 흡수해 화려하고 다양한 음식 향연의 꽃을 피운다. 고급스런 전통 음식은 권력자나 집안 어른의 입맛을 기준으로 발달하기 마련이다.  고대 일본에서는 좋은 생선이 잡히면 이를 손에 들고 영주의 밥상을 차리는 성까지 사람이 뛰어서 가야 했을 것이다. 고구려 등 한반도로부터 유입된 말이 아직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생선이 쉽게 상하는 것을 방지하려면 아예 물수건에 싸서 숙성시키는 게 낫다. 횟감을 미리 얇게 썰어서도 안 된다. 숙성된 회를 먹어 본 영주가 “맛있구나”라고 했다면, 그때부터 이런 회가 맛있는 생선회가 된다. 사실 잘 숙성된 회는 달달하면서도 살살 녹는 맛이 있기는 하다. 퀴퀴한 냄새도 익숙해지면 풍미가 된다. ● 한반도선 날 생선 거의 안먹어 어부들 즉석에서 활어회 먹던 습성 남아 반면 한반도의 왕들은 독성이 남아 있는 날 생선을 거의 먹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배를 탄 어부들은 갓 잡은 생선을 된장에 찍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을 것이다. 결국 우리에겐 쫄깃쫄깃한 활어회가 참맛이 된다. 중국 황제도 고소한 튀김 요리 등에 둘러싸여 날 생선을 먹었을 리가 없다. 춘추시대 공자가 생선회를 좋아했다고 하지만, 그건 옛말처럼 여겼을 것이다.  늦가을에는 광어, 참돔, 방어가 고소하게 살이 찌는 제철이다. 펄떡펄떡 뛰는 횟감의 껍질을 발라내고 흰 살만 얇게 썰어서 초고추장이나 와사비(고추냉이 뿌리) 간장에 찍어 먹으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또 횟감을 6~7시간 냉장시키면 단백질 구조가 깨지면서 풍미와 감칠맛이 짙어지는 숙성 회(싱싱회)도 된다. 요즘엔 이를 즐기는 식객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본래 일식 횟집의 본고장은 서울 무교동과 북창동 등이었다. ● 무채 독성 흡수 기능... 스키다시 일본엔 없는 우리식 상차림 한편 지레짐작 탓에 오해하는 편견이 있다. 생선회 접시에 깔린 무채는 그냥 모양 좋으라고 나오는 게 아니다. 무는 식품의 독성 물질을 제 몸으로 흡수하는 효능을 지녔다. 따라서 날 생선의 독성을 무가 빼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독성을 고스란히 흡수한 이 무채를 먹어선 안 될까. 무는 독성을 빨아들인 뒤 스스로 비독성 물질로 바꾸기 때문에 생선회와 곁들여 먹어도 괜찮다. 메밀국수와 무즙을 함께 먹는 이치와 같다. 다만 국내 횟집에서는 무채를 아무도 먹지 않기 때문에 다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 미심쩍으면 먹지 않는 게 낫다.  또 생선회가 나오기 전 상에 깔리는 스키다시(결들이 음식)는 정작 일본에는 없는 우리식 상차림이다. 1960~1970년대 부산에 대규모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근로자들의 주머니 사정도 넉넉해지자 비싼 사시미(회)를 찾기 시작했다. 이때 튀김, 조림, 구이, 무침 등 여러 반찬을 눈으로 봐야 섭섭하게 여기지 않는 습성이 횟집 문화를 바꾼 것이다. 결국에는 손을 대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마땅치 않은 허례는 버려야 한다.   <붕어회> 조선의 문신, 학자 서거정   서리 내린 차가운 강에 붕어가 통통 살쪄 회칼 휘두르니 흰 살점이 실날처럼 흩날리네 젓가락 놓을 줄 몰라 접시가 이내 텅 비었네 두보 시의 은빛 회가 자주 생각나누나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임’ 마중 나선 길… 얼굴이 붉어지다

    ‘임’ 마중 나선 길… 얼굴이 붉어지다

    길은 대개 과정일 뿐 여행 자체는 아닙니다. 하지만 길 스스로 목적지가 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특히 단풍철에 그렇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단풍 절승지로 꼽히는 곳들은 거개가 산자락 깊숙이 숨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곳은 자가용으로 돌아보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요즘 같은 단풍철엔 당연히 차들이 밀릴 겁니다. 그렇다고 자연이 벌이는 색채의 축제를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가을로 들어선 길들을 짚어 봤습니다. 44번, 46번, 56번 국도를 번갈아 타고 설악산, 한계령 등 강원의 단풍 명소들을 휘휘 돌아봤습니다. 그 길의 끝은 모두 바다입니다. 단풍 못지않게 고운 동해 바다의 별빛도 가슴 가득 담아 올 수 있었답니다. ① 옛 미시령 휴게소에서 굽어본 풍경. 설악의 산군들이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고 있다. 56번 지방도에서 벗어나 ‘미시령 옛길’로 접어들어야 이 같은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② 흰 수피의 자작나무들이 순백의 세상을 펼쳐 놓은 인제 원대리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11월부터는 입산이 통제된다. ③ 밤에 찾은 양양 낙산해변. 총총 뜬 별이 단풍만큼이나 곱다. ④ 단풍으로 이름난 화암사. 절집 앞은 수바위다. 길가 풍경은 철따라 달라진다. 세상에 둘도 없는 경승지를 지나는 길이라도 느낌이 각별해지는 때는 분명 있다. 그래서 저마다 가슴에 길 하나 둘 정도는 새겨 두게 마련이다. 언젠가 꼭 찾을 거라 기약하며 말이다. 44번 국도가 그렇다. 경기 양평에서 시작해 강원 홍천·인제 등을 거친 뒤, 한계령을 넘어 양양까지 이어지는 도로다. 특히 가을이면 붉게 물든 단풍으로 가슴 저린 풍경을 선사한다. 총길이는 얼추 137㎞. 마음먹고 달리면 4시간 안팎에 주파할 수 있지만, 풍경 보며 가자면 1박 2일로도 부족하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출발할 경우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해 동홍천 나들목으로 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주말이면 차들로 몸살을 앓는 양평 구간을 우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도 밀리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사정이 다소 나은 편이다. 동홍천 나들목을 나와 속초·인제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곧 44번 국도다. 여기서 한계 삼거리까지 왕복 4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인제를 지나는 동안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꼭 들러야 한다. 새하얀 수피의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이다. 38선휴게소 지난 뒤 인제38대교 못미처 오른쪽으로 원대리 방면 이정표가 나온다. 작은 길이라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니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갈림길에서 원대리 자작나무숲까지는 8㎞쯤 떨어져 있다. 숲의 공식 명칭은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규모로 25㏊(약 7만 6000평) 산자락에 70여만 그루의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숲 초입의 산림 감시초소가 들머리다. 예서 ‘속삭이는 자작나무숲’까지는 3.2㎞ 거리. 꼬박 1시간 30분 정도 발품을 팔아야 한다. 하지만 임도를 따라가는 길이 넓고 평탄해 그리 힘들 건 없다. 숲에 들면 동공이 확장되고 입은 떡 벌어진다. 수많은 자작나무들이 순백의 세상을 펼쳐 내고 있다. 나라 안 어디서든 쉬 보기 힘든 풍경이다. 한 줄기 바람이 숲 사이를 훑고 지날 때면 나뭇잎 부비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린다. 그래서 숲의 이름도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다. 다시 44번 국도로 복귀해 한계교차로까지 내처 달리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속초·고성으로 나가는 46번 국도, 오른쪽은 한계령 지나 양양으로 가는 44번 국도다. 예서 한계령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나라 안에서 가장 유명한 단풍길이 시작된다. 내설악의 기암괴석과 현란한 빛깔의 단풍이 수채화처럼 어우러져 있다. ‘일반 국도’란 이름이 무색할 만큼 ‘특별한’ 풍경들이 쉼 없이 이어진다. 이 길 중간쯤의 한계령 휴게소는 풍경 전망대다. 설악의 산군들과 그 너머 양양 일대가 한눈에 들어 온다. 가수 양희은이 노래 ‘한계령’을 통해 ‘잊어버리라, 내려가라’ 주문했지만 도저히 잊기 힘들고, 아무래도 내려가기 싫은 풍경들에 넋을 놓고 만다. 한계령 휴게소에서 양양 방면으로 가다 첫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필례약수 방향이다. 이쪽 단풍도 빼어나다. 외려 이 일대 풍경을 첫손 꼽는 현지인들도 많다. 단풍은 24일쯤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한계 교차로에서 미시령 옛길 쪽으로 방향을 잡아도 멋들어진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44번 국도가 기암괴석과 단풍의 앙상블이라면, 미시령 옛길은 설악의 우람한 암릉들과 마주할 수 있는 구간이다. 한계 교차로에서 좌회전, 46번 국도로 갈아탄 뒤, 다시 용대교차로에서 56번 지방도로를 바꿔 타고 가다 도적소 교차로에서 ‘미시령 옛길’ 이정표를 보고 빠져나가면 된다. 오래전 미시령 옛길은 단풍철이면 밀려드는 차들로 몸살을 앓던 도로였다. 하지만 2006년 미시령 터널이 뚫리고 ‘7번 군도’란 이름으로 물러앉은 뒤엔 단풍철에도 썰렁한 곳으로 바뀌고 말았다. 쓸모를 잃고 버려졌다 해서 풍경마저 바뀌랴. 미시령의 굽이굽이 고갯길이 보여 주는 장쾌한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 길 끝자락에 예쁜 절집 화암사가 있다. 설악산 코앞에 있으면서도 열에 아홉은 모르고 지나친다는 숨은 단풍 명소다. 고성군 토성면의 강원도세계잼버리수련장 인근에 있다. 절집은 금강산 1만 2000봉의 남쪽 첫 봉우리라는 신선봉 아래 터를 잡았다. 개창 시기는 신라시대까지 올라가지만 가람 내 대부분의 전각들이 중창 등의 과정을 거치는 바람에 고색창연한 맛은 덜하다. 가을이면 절 뒤편 화암폭포에서 단풍이 빠른 속도로 퍼져 10월 하순이면 절을 완전히 끌어안는다. 미시령 옛길을 내려서면 델피노 골프장 왼쪽으로 화암사 이정표가 있다. 성인대, 수바위를 돌아오는 4㎞짜리 원점회귀 산행 코스가 인기다. 금강산 첫 봉우리에서 설악의 산군들을 바라보는 맛이 각별하다. 코스가 어렵지 않아 2시간 남짓이면 돌아볼 수 있다. 글 사진 속초·양양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33)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고 동홍천 나들목으로 나가 속초·인제·신남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44번 국도를 따라가다 한계 교차로, 용대 교차로에서 각각 46번 국도와 56번 지방도로로 바꿔 타고 가면 미시령, 곧장 가면 한계령이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44번 국도에서 빠져나간다. 38 휴게소와 인제 38대교 사이 남전계곡 가는 길로 들어서면 된다. 11월부터는 겨울철 산불조심 기간이어서 입산이 통제된다. 정확한 통제 기간은 인제국유림관리소(460-8036)에서 확인할 수 있다. 56번 국도는 원래 동홍천 나들목에서 좌회전해 구성포 교차로에서 올라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단풍철엔 양양 쪽에서 수도권 쪽으로 되짚어 나오며 들르길 권한다. 그래야 이 일대를 원형으로 돌아보는 여정을 꾸릴 수 있다. 구룡령 옛길 산행은 대개 업 힐과 다운 힐 두 가지로 나뉜다. 갈천리 마을회관 쪽에서 정상을 향해 오르거나, 그 반대로 내려간다. 산행 시간은 2~3시간 정도 소요된다. 홍천 쪽 명개리에서 올라 양양 쪽으로 내려설 수도 있지만 전 구간을 종주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잘 곳:속초 쪽엔 델피노 골프 & 리조트(1588-4888), 한화리조트 설악(1588-2299) 등 유명 리조트들이 많다. 양양에선 낙산 해변 쪽에 깔끔한 숙소들이 많다. 바닷가 쪽의 이른바 ‘오션뷰’ 객실은 1만원 이상 비싸다. →맛집:속초 시내 여러 포구마다 횟집촌이 형성돼 있다. 장사항 횟집촌이 그중 호젓하다. 설악산 울산바위 인근 학사평 일대에 김영애할머니순두부(635-9520) 등 순두부집들이 몰려 있다. 양양에선 ‘섭’(홍합을 이르는 현지 표현)을 넣고 조리한 전골, 칼국수 등이 별미다. 수라상(671-5857)이 널리 알려졌다. 양양군청 인근에 있다.
  • 88세 아버지가 딸에게 바치는 노래… ‘백마강’ 구슬피 울렸다

    88세 아버지가 딸에게 바치는 노래… ‘백마강’ 구슬피 울렸다

    “아빠, 지금도 그때 부르던 기억 나요? 노래하실 수 있어요?” 21일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두 번째 단체상봉에서 북측 최고령자 리흥종(88)씨는 즉석에서 노래를 불렀다. 딸 이정숙(68)씨가 아버지의 기억을 끄집어내자 리씨는 또렷한 목소리로 젊은 시절 자주 부르던 ‘백마강’ 곡조를 뽑았다. 딸은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래가 끝나자 딸이 말했다. “아빠, 어떻게 가사도 다 기억해. 아빠 노래 잘 하시네!”, 추억에 잠긴 딸은 “엄마가 나 서너 살 때 나를 팔에 놓고 노래를 불러 주셨어. 아빠 생각나면 나를 안고서 이 노래를 했다고. 내가 아빠한테 지금 그 노래 불러줄까? 여기 가만히 귀에다 대고 해 드릴게, 지금” 하고 말했다. 그러나 리씨는 “북에서는 그 노래 하면 안 돼” 하며 거절했고, 딸은 노래 부르기를 포기했다. 곡명은 끝내 알 수 없었다. 북측 상봉단인 리한식(87)씨는 흰 종이에 연필로 어머니 권오희(92)씨와 65년 전 함께 살았던 경북 예천의 초가집을 그렸다. 리씨가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남측 이복동생 이종인(55)씨가 “형님이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보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리씨는 목에 걸었던 이름표를 벗어 자 대신 쓰면서 한 획 한 획 정성스레 초가집을 그려 나갔다. 온 정신을 집중하며 그림을 그리는 아들을 권씨는 가만히 지켜봤다. 40분 만에 초가집의 기둥과 담벼락, 초가의 음영, 마루의 무늬, 댓돌까지 생생하게 그려낸 리씨의 그림에 동생들은 탄성을 질렀다. 남측 최오순(94)씨는 초코파이를 직접 뜯어 시동생인 정규현(88)씨에게 건네 주며 “잡숴 봐요”라고 말했다. 북한 최고 수학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고(故) 조주경씨의 아내 림리규(85)씨는 아들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현재 아들 조철민씨는 북한 명문대인 김책공업종합대학 수학과 교수다. 이산가족들은 서로에게 말을 걸고 추억을 더듬으며 흘러간 세월을 되돌리려는 듯 애틋한 모습이었다. 이날 건강 악화로 행사 불참자도 발생했다. 북한 측 염진봉(84)씨는 변비 등 건강 악화로 오후 단체상봉에 불참하고 숙소에서 치료를 받았다. 앞서 낮 12시부터 시작된 공동중식에서 남측의 사촌동생 김혜미자(76)씨를 만난 북측의 김태숙(81)씨는 혜미자씨와 동행한 증조카 재홍씨에게 연신 “필요한 거 있으면 다음 상봉에 가져다 줄게”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북측의 친형 김주성(85)씨를 만난 남측 동생 주철(83)씨 가족은 전날 두 번의 상봉행사에도 불구하고 이날 중식 상봉에서도 연신 눈물을 흘리며 대화를 나눠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동생 주철씨는 주성씨의 북측 딸 성희씨에게 “아버지 잘 모셔야 한다, 그래야 다시 본다”고 당부했고 성희씨 역시 눈물을 흘리며 “삼촌도 건강하셔야 다시 만난다, 꼭 다시 만나자”라고 말했다. 북측 가족들 중 일부는 남측에서 제공한 음식을 보며 “처음 본다”고 신기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무화과와 귤을 보며 “처음 먹어 본다”는 반응이 대체적이었다. 일부는 귤 껍질을 까지 않고 그냥 먹으려는 모습을 보여 남측 가족들이 껍질을 까주기도 했다. 이날 점심 메뉴는 크림과자, 남새합성(야채모둠), 색찰떡, 닭편구이, 청포종합랭채, 은정차(녹차) 등이었다. 술과 음료로는 들쭉술, 대동강맥주, 배향단물(배맛 주스), 인풍포도술 등이 제공됐다. 남측 가족 중 한 할머니가 금강산호텔 2층에 마련된 오찬 장소에 들어서다 노란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북측 여성 안내원을 보더니 “곱다”며 연신 등을 쓰다듬었다. 남측 가족들은 음식을 가져다주는 여성 안내원들에게 같이 사진 찍기를 부탁하며 “언제 이런 미인하고 사진을 찍겠느냐”며 미모에 대한 칭찬을 연발했다. 한편 북한이 전날 우리 측 기자들의 노트북을 무리하게 검열한 것과 관련, 23일 남측의 2차 상봉 취재단의 방북부터는 우리 당국이 제공하는 새 노트북을 받아 취재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에 대해 기자단은 북한이 이전과 다르게 언론을 향해 무리하고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 반면 정부는 이 같은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왕초보 명기자의 우왕좌왕 운전기] 중고차로 뚜벅이족 탈출

    [왕초보 명기자의 우왕좌왕 운전기] 중고차로 뚜벅이족 탈출

    나는 오수생(五修生)이다. 면허 시험에서 네 번이나 떨어졌단 얘기다. 도로 연수만 30시간을 넘게 받았다. 학원은 물론 아빠 도움, 친구 도움도 받았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도로 위로 나왔다. 이젠 깜빡이 신호 없이 내 앞에 끼어들려는 덩치 큰 차에도 그리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정도는 됐다. 그래도 아직 주차는 어렵다. 가끔은 누구 말마따나 나도 내가 무섭다. 어렵사리 면허를 따고 보니 5년차 월급쟁이의 초라한 통장만 눈앞에 놓여 있다. 차는 사고 싶은 데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자의 좌충우돌 자동차 일기를 공개한다. 초보 운전자의 눈으로 초보 운전자가 참고할 만한 정보를 꼼꼼히 캐물었던 기록이다. “중고차 매매 단지 잘못 찾아가면 끌려가서 맞는대! 여자 혼자 가면 위험해.” 과장하지 않고 대화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중고차를 알아보겠다고 하니 과거 중고차 매매 시장에 몸담았던 친구는 남자 둘이 가도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며 잔뜩 겁을 줬다. 그만큼 속기도 쉽고 좋은 딜러도 드물다는 얘기다. ● 흰색·은색·검은색 차종이 인기 지난해 중고차 거래 건수는 모두 346만건으로 신차 판매량(167만대)의 두 배를 넘어섰다. 적잖은 시장인데 어쩌다 이 같은 불명예를 뒤집어썼을까. 오해일까 진실일까. 어쨌든 그들의 화려한 화술에 홀라당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면 단호한 태도와 기초 지식은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차는 일찍이 보류했다. 세상의 모든 차는 한 바퀴 구르면 중고차가 아니었던가. 물론 ‘돈’이 제일 큰 이유였다. 중고차는 신차보다 확실히 저렴하다. 새 차에 비해 세금도 비교적 적고 계약 이후 출고일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 SK엔카 영등포직영점에서 만난 정현우 SK엔카 차량평가사는 초보 운전자에게 가장 좋은 차는 출고 만 2년인 차라고 귀띔했다. 2년이면 엔진 미션 등 본체 부품 동력 보증기간이 3년 남는다. 센서류, 냉각장치, 스위치류 등 일반 보증도 1년여가 남는다. 보증 기간 기준은 각각 5년에 10만㎞, 3년에 6만㎞다. 타이어와 같은 소모품은 아예 보증이 제외돼 잘 살펴야 한다. 싸고 좋은 차를 사고 싶다고 물었다. 정 평가사는 단호했다. 싸고 좋은 차는 없다는 게 중고차 시장의 진리란다. 정 평가사는 “중고차를 살 때는 예산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중고차 금액이 시세보다 싸다고 느껴지면 일단 의구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같은 중고차여도 주행거리가 길거나 사고가 났거나 쌀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단 얘기다. ● 12월~2월이 중고차 매입 적기 그래도 싸고 좋은 차를 놓칠 순 없다. 차는 부동산과 같은 개념이다. 차로 돈을 빌릴 수 있고 되팔 수도 있다. 내 ‘재산’이 되는데 꼼꼼히 고를 수밖에 없지 않나! 연식이 늘어나면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12월에서 2월이 구입 적기다. 12월에는 이미 감가 분위기가 반영돼 연초와 가격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얘기다. ● 엔진·동력 계통 수리 이력 꼼꼼히 살펴야 흰색, 은색, 검은색 차종이 인기 차종이다. 튀는 색보다 얌전한 색이라야 되팔 때도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정비 이력을 꼼꼼히 살펴 엔진이나 동력 계통의 수리 이력이 있다면 구입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삼박자’가 찜찜하다면 더욱 그렇다. 삼박자는 보닛과 좌우 펜더, 앞 지지패널을 교환한 차를 일컫는 업계 은어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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