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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란 모자 썼다고 “유재석 북으로” 비난한 민경욱 투표 복장

    파란 모자 썼다고 “유재석 북으로” 비난한 민경욱 투표 복장

    방송인 유재석이 사전투표장에서 파란색 모자를 썼다는 이유로 ‘북으로 가라’는 글을 올렸다 지운 민경욱 자유한국당(인천 연수구을) 의원의 사전투표 복장이 눈길을 끈다. 민 의원은 13일 자신의 SNS에 흰 티셔츠에 파란 모자를 쓴 채 투표장에 나타난 유재석의 모습이 담긴 한 페이스북 유저의 게시물을 공유했다. 그는 “재석아 너를 키운 건 자유민주국민들이다. 이미 너의 사상을 알고 있었지만 이제 다신 인민국민 날라리들은 꼴도 보기 싫다”면서 “너도 북으로 가길 바란다. 우리도 모두 빨간 모자 쓰고 투표장 GO~”라고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자신은 사전투표장에서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기호 2번으로 읽힐 수 있는 ‘브이’ 포즈를 적극적으로 취하며 인증샷을 찍었다. 네티즌들은 “유재석은 모자도 맘대로 못쓰냐. 내로남불”, “나도 오늘 파란 신발 신었는데, 북으로 가야 하나”며 지적했다. 민경욱 의원이 올렸던 이 게시물은 현재 페이스북에서 삭제된 상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경제·문화 DNA가 흐른다… 종로가 서울, 서울이 종로였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경제·문화 DNA가 흐른다… 종로가 서울, 서울이 종로였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5회 종로(종묘에서 사직까지) 편이 지난 9일 종로구 훈정동 종묘광장에서 사직동 사직단까지 종로 일대에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서울시와 서울신문사가 제작한 서울미래유산 로고가 인쇄된 빨간색과 밤색 스카프로 멋을 내고 도심을 활보했다. 올해 처음 미래투어에 합류한 강영진 해설자는 집결지인 종묘광장과 세운상가 9층 옥상정원 일원에서 오디오 가이드 시스템의 작동이 일시적으로 원활치 않아 육성으로 답사단을 이끄느라 고군분투했다.이날 투어에는 미국에서 온 중년부부와 남매의 손을 잡고 나온 젊은 엄마, 여행 마니아 대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가했다. 40명 정원을 채우는 만원사례를 이뤘다. 그랜드투어가 거듭되면서 매주 월요일 오전 9시부터 시작되는 예약 경쟁도 치열해졌다. 오전 9시 20분쯤 예약한 한 참가자는 “‘대기자5’였다”면서 서울미래유산의 열풍에 놀라워했다.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은 절대 통치자를 과거와 미래의 세계에 각각 연결하는 신성한 영적 공간이다.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와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의 으뜸 사당이요, 사직은 농경사회의 근본인 토지의 신(國社)과 곡물의 신(國稷)에게 제사를 지내는 최고의 제단이다. 종묘사직의 줄임말인 종사(宗社)는 중세 봉건사회에서 국가나 왕조 그 자체였다. ‘좌묘우사’(左廟右社)란 궁궐의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을 두도록 명문화한 것이다. 실제 종묘는 경복궁의 동쪽, 사직단은 서쪽에 있다. 조선 건국의 역사는 1394년 한양 천도 이후 종묘와 사직을 가장 먼저 세우고, 다음으로 경복궁을 건립했으며, 마지막으로 한양도성을 쌓았다. 일제는 한양도성을 헐고, 경복궁의 전각을 뜯어낸 뒤 총독부를 짓고, 제례를 폐지했다. 종묘에서 사직에 이르는 중심 길, 운종가(종로)는 사실상 서울의 최고, 최대 중심가였다. 사대문 안 서울은 남~북 간 육조가(세종대로)와 동~서 간 운종가(종로) 두 개의 큰길로 이뤄졌다. 지금도 두 간선도로가 강북의 뼈대를 이룬다. 종로가 영적 길이라면 육조가는 의전용 길이었다. 1830년에 그려진 ‘조선성시도’를 기준으로 보면 육조가 앞은 황토마루라는 나지막한 언덕이 버티고 앉았다. 광화문 네거리가 아니라 삼거리였다. 율곡로를 잇는 사직로도 1967년 사직터널이 뚫리기 전까지 막혀 있었다. 왕이 사직단에 행차하려면 육조가 공조 터(광화문 현대해상화재빌딩) 뒷길을 따라 서울경찰청 앞을 거쳐야 갈 수 있었다. 도심의 중앙에서 낙산 쪽은 넓고 평평했지만 높고 험준한 인왕산과 무악(안산) 고갯길에 가로막힌 서대문 쪽은 좁고 비탈졌다. 종묘에 비해 사직단 행차는 뜸했다. 20대 경종 이후로 2년에 한 번 정도 행차하는 데 그쳤다.종묘에서 사직에 이르는 동서 간선도로의 특징은 유교 국가 조선의 신성한 종교적 길인 동시에 이덕무가 ‘성시전도시’에서 읊은 것처럼 ‘팔만여 가옥에 세 개의 저자를 낀’ 도성의 저잣거리였다. 운종가 상점은 우산전, 생선전, 사기전(그릇), 상미전(쌀), 면주전, 면포전, 저포전, 지전, 선전(비단), 어물전, 철물전 등 17개 특정 물품을 파는 상점이 진을 쳤다. 종루에서부터 태묘(종묘) 앞까지 2000칸이 넘는 시전행랑이 빌딩처럼 솟았다. 박제가도 ‘온갖 장인이 붐비나니, 온갖 물화가 이문(이익)을 쫓아 수레가 연이었네’라고 한양의 영화를 노래했다. 종묘사직의 한 가운데 자리잡은 탑골(인사동)에는 특이한 문사 집단이 깃들었다. 이름해 ‘백탑파’였다. 사대문 안에 들어오면 사방 어디에서나 보이는 하얀 탑, 원각사지십층석탑은 한양의 랜드마크였다. 연암 박지원을 좌장으로 유금, 유득공, 서상수, 이서구, 이덕무, 백동수, 홍대용, 박제가 등 쟁쟁한 ‘북학파’ 선비들이다. 이들 중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은 정조의 명에 따라 지은 13편의 ‘성시전도시’ 중 한양과 운종가의 거리풍경을 묘사한 걸작을 남겼다. 18세기 탑골을 주름잡은 백탑파는 노론명문가부터 서얼까지 출신 성분이 다양했지만 신분을 떠나 어울렸다. 오늘날 인사동의 예술문화 DNA를 심은 사람들이다. 이들 중 서얼 출신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가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돼 정조의 황금시대를 뒷받침했다. 탑골이라는 지명은 대리석으로 빚은 흰 탑에서 따온 것이고, 인사동은 관인방의 ‘어질 인’(仁)자와 대사동의 ‘절 사’(寺)자를 합쳐 만든 국적불명의 지명이다. 오랫동안 종로가 서울이었고, 서울이 종로였다. 적어도 조선 500년간 한양의 굳건한 중심이었다. 매일 도성의 새벽을 깨우던 운종가는 출판문화의 터전이었다. 책을 빌려주는 세책점이 책 중개인(서쾌), 필사꾼과 함께 유통공간을 형성했다. 1918년 미국인 선교사 쿤즈는 ‘서울에 모두 36곳의 책 대여점이 성업 중인데 독자는 상인, 술집주인, 학생, 노동자와 가정주부’라고 기록했다. 대개 한 집에서 30~ 50책을 대여했다. 탑골과 종루(보신각) 앞에서는 ‘책 읽어주는 노인’ 전기수가 ‘숙향전’, ‘심청전’, ‘설인귀전’ 등을 읽어주고 돈을 벌었다. 훗날 종로에 출판사와 서점, 학원가가 형성된 이유다. 또 개화기 전차, 전기, 빌딩 등 서양문물이 가장 먼저 이식된 첨단유행의 거리였다. 만민공동회와 조선물산장려운동과 삼일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민족저항의 무대였다.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활개를 치던 근대화의 최전선이었다. 백화점, 서점, 빵집, 음악감상실, 빈대떡집, 다방이 시전행랑의 맥을 이었다. 1980년대까지 대중문화와 민주화의 성지였던 종로는 지금은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제야의 종 타종행사가 열리는 서울의 여러 도심 중 한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이원석 연구위원 ●다음 일정 : 홍대(경의선 철길) ●일시 : 6월 16일(토) 오전 10시~낮 12시 ●집결 장소 :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앞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한남동 투표소에 등장한 소지섭 ‘시선강탈’...“이 구역 ‘패션왕’은 나야”

    한남동 투표소에 등장한 소지섭 ‘시선강탈’...“이 구역 ‘패션왕’은 나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이하 6·13 지방선거)가 치러진 가운데, 투표소에 방문한 배우 소지섭이 화제가 되고 있다. 13일 배우 소지섭이 6·13 지방선거를 위해 서울 용산구 한남초등학교에 마련된 한남동 제3 투표소에 등장,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날 소지섭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투표소를 찾았다. 하지만 큰 키에 독특한 패션으로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그는 긴 팔 검은색 티셔츠와 반소매 흰 티셔츠를 매치, 검은색 반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특히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흰 양말이 눈길을 끌었다. 힙합 느낌의 패션으로 등장한 그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투표소를 빠져나갔다. 이를 본 네티즌은 “마스크 밖으로 튀어나와 버린 잘생김”, “역시 남다르다”, “투표하는 모습 보기 좋아요”, “지섭이 형 사랑합니다. 항상 파이팅 하세요”, “이 구역 ‘패션왕’은 나야...존경합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소지섭은 최근 종영한 tvN 예능 프로그램 ‘숲속의 작은 집’에 출연했다. 사진=더팩트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민경욱, 유재석 비판 글 공유했다 삭제 ‘투표소 사진이 왜?’

    민경욱, 유재석 비판 글 공유했다 삭제 ‘투표소 사진이 왜?’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방송인 유재석을 비판하는 페이스북 게시물을 공유했다가 삭제했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인천 연수구을 의원은 13일 투표장에 나타난 유재석의 모습이 담긴 게시글을 공유했다. 민 의원은 해당 게시물을 공유하며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으나 원글 내용이 문제가 되고 있다. 해당 글에는 흰 티셔츠에 파란색 모자를 쓴 채 투표장에 모습을 드러낸 유재석의 사진과 함께 “재석아 너를 키운건 자유민주국민들이다. 이미 너의 사상을 알고 있었지만, 이제 다신 인민국민 날라리들은 꼴도 보기 싫다. 너도 북으로 가길 바란다. 우리도 모두 빨간 모자 쓰고 투표장 GO~”라는 글이 적혀있다. 유재석이 더불어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모자를 쓴 것을 비판한 것. 이에 네티즌들은 ”모자 색깔 가지고도 뭐라고 하나? 이 정도면 민간인 사찰급 아니냐“, ”정치에 연예인을 억지로 엮지 마라“, ”유재석이 별다른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정치색을 드러낸 것을 들고 간 것도 아닌데, 북한까지 엮다니...“, ”이런 식으로 선동하는 것은 창피하지 않나?“ 등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민 의원은 비난이 거세지자 해당 게시물의 공유를 취소했다. 한편 13일 진행된 제7회 지방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풋볼선수 출신 ‘아메리칸 마약왕’ 징역 49년 선고

    풋볼선수 출신 ‘아메리칸 마약왕’ 징역 49년 선고

    미국 고등학교 풋볼선수 출신으로 훗날 멕시코 마약조직의 우두머리가 된 남자가 징역 49년에 처해졌다. 12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은 조지아 주 애틀란타 법원이 '아메리칸 마약왕'이라고 불렸던 에드가 밸디즈 비야레알(44)에게 징역 49년과 추징금 1억 9200만 달러(약 2060억원)를 선고했다고 보도했다. 한때 할리우드 영화의 소재가 될 만큼 화제를 모은 밸디즈는 입지전적의 마약왕이다. 텍사스 주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풋볼선수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같은 시기 밸디즈는 경기장이 아닌 거리에서도 마리화나를 판매하며 악명을 얻었고 이후 멕시코로 건너가 거대 마약조직인 ‘벨트란 레이바’에 합류했다. 흰 피부와 파란 눈 때문에 '라 바비'(La Barbie)라는 애칭으로 불린 그는 사업가 행세를 하며 2005년 전후 미 동부지역에 수천㎏에 달하는 코카인을 밀매했다. 특히 그는 멕시코 마약 조직 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 끝에 살아남아 결국 조직의 리더까지 올랐다. 미국과 멕시코 양국의 수배자 명단에 올라 200만 달러(약 21억원)의 현상금까지 내걸렸던 밸디지는 지난 2010년 멕시코 해군에 체포돼 결국 2015년 미국으로 추방됐다. 현지언론은 "밸디즈는 지난해 1월 마약밀매, 돈세탁 등의 혐의를 인정해 재판에 임했다"면서 "한때 그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일명 엘차포)의 핵심참모로도 활약했으며 멕시코 대통령이 가장 잡고 싶었던 인물이었다"고 보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알쏭달쏭+] 사람들에게 “신은 어떻게 생겼을까?” 물었다…결과는?

    [알쏭달쏭+] 사람들에게 “신은 어떻게 생겼을까?” 물었다…결과는?

    만약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떤 외모를 가졌을까? 해외 연구진이 호기심을 해결해 줄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심리학 연구진은 미국의 기독교신자 511명을 대상으로 신의 외모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이들에게 무작위로 조합한 몇 백 장의 얼굴 사진 중 2장을 뽑아 어떤 쪽이 ‘신의 얼굴’에 더 가까운 것처럼 느껴지냐고 물었다. 각각의 실험참가자에게 모두 같은 과정을 수행하게 한 뒤 그 결과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합성했다. 그 결과 미켈란젤로부터 영국의 코미디 영화 ‘몬티 파이튼의 성배’까지 다양한 작품에서 신의 모습이 늙고, 흰 수염으로 가득한 얼굴의 백인 남성으로 그려졌던 것과 달리, 실제 사람들의 상상 속 신의 얼굴은 비교적 젊고, 여성처럼 고운 얼굴선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적인 백인에 비해 다양한 인종이 섞인 듯한 느낌이 훨씬 강했다. 연구에 참여한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조슈아 콘래드 잭슨 박사는 “사람들이 신의 얼굴을 상상할 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정치적 성향(배경)이다. 예컨대 진보적인 사람일수록 더욱 여성적이고 젊으며 애정이 넘치는 느낌의 신을 상상한다면, 보수적인 사람은 신을 백인으로, 또 더욱 권위적으로 상상하는 경향이 짙다”고 설명했다. 사람마다 상상 속 신의 모습은 개인적 특성에 따라서도 달라진다는 분석도 나왔다. 잭슨 박사는 “예컨대 젊은 사람은 신도 젊은 모습일 거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육체적인 매력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신 역시 육체적인 매력이 높은 모습으로 상상할 가능성이 높다. 또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경우 신이 백인보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모습에 더 가깝게 상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사람들의 상상 속 신은 자기중심적인 성향에 따라 달라지며, 이번 연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신의 생각과 신의 외모가 자신과 매우 닮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을 알게 해준 것”이라고 전했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제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 최신호에 실렸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씨줄날줄] 그라피티, 예술 혹은 범죄/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그라피티, 예술 혹은 범죄/이순녀 논설위원

    호주의 문화수도로 불리는 멜버른에서 꼭 가봐야 하는 명소 중 하나가 호시어 레인이다. 좁은 골목 양쪽 건물 외벽마다 빼곡히 그려진 강렬한 원색의 그라피티로 유명한 거리다. 2004년 방영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소지섭과 임수정이 처음 만나는 장소로 등장하면서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다. 2년 전 멜버른을 방문했을 때 찾아가 보니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허름한 뒷골목이 청년 예술가들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에 힘입어 활기찬 관광 명소로 변모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벽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그라피티는 반항기 청소년이나 흑인 등 소수 민족의 저항문화에서 출발해 지금은 현대예술의 한 장르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 ‘검은 피카소’로 불렸던 거리의 예술가 장 미셸 바스키아, 뉴욕 지하철 낙서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팝아티스트 키스 해링의 공이 컸다. 이들의 낙서 예술은 패션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라피티가 현대사회에서 차지하는 예술적 가치를 극명하게 보여 준 사례는 지난 2월 뉴욕 연방법원의 판결이다. 법원은 퀸스롱아일랜드시티에 있는 건축물 ‘파이브 포인츠’를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그라피티 작품들을 훼손한 책임을 물어 건물주에게 총 675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공장 부지였던 이곳은 1990년대 공장 폐쇄 이후 그라피티 성지로 명성을 날렸다. 그런데 새 건물주가 2013년 고급 콘도 건설을 발표한 뒤 한밤중에 건물 외벽을 흰 페인트로 칠해 버리자 그라피티 작가 21명이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그라피티도 법으로 보호해야 할 예술작품”이라며 작가들의 손을 들어 줬다. 그럼에도 그라피티는 여전히 예술과 낙서의 경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라피티 아티스트 정태용씨가 지난 8일 밤 서울 중구 청계천로에 설치된 베를린장벽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림과 글씨를 남겨 원본을 훼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베를린장벽은 독일 베를린시가 2005년 서울시에 기증한 것이다. 정씨는 “전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분단 국가인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고 주장했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홍대와 이태원, 을지로 등을 중심으로 무분별한 그라피티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다고 한다. 현행법상 타인의 건물과 공공시설물에 허가 없이 낙서할 경우 재물 손괴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자유분방한 예술의 중요성 못지않게 사회 질서와 상식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지 않을까. coral@seoul.co.kr
  • [정찬주의 산중일기] ‘매조도’ 그린 다산의 마음

    [정찬주의 산중일기] ‘매조도’ 그린 다산의 마음

    나이 들면서 생긴 현상이다. 작은 것에 눈길이 자주 간다. 비도 보슬비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밤하늘의 별도 희미하고 작은 것을 오래 쳐다보고, 꽃도 화려한 장미보다 자세를 낮추고 지그시 보게 되는 제비꽃이나 큰개불알꽃 등 손톱만 한 들꽃이 더 사랑스럽다. 특히 새벽에 보는 흰 점 같은 작은 별들은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광대무변한 허공에서 고독한 혼처럼 처량하게 떨고 있는 듯해서다. 나는 왜 이런 작은 것들에게 눈길을 주고 있는 것일까. 산중에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있는 내 존재와 동질감이 들어서일까.최근에 이미 발표했던 내 소설 ‘다산의 사랑’을 다시 읽어 본 적이 있다. 다산 정약용의 강진 유배 생활을 그린 소설인데, 나는 소설 속에서 다산의 소실 홍임 모와 어린 딸 홍임에게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새삼 놀랐다. 다산의 실학사상을 기대하고서 내 소설을 보았다면 실망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실학자 다산’이 아니라 ‘인간 다산’을 그리려고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밤하늘의 희미하고 작은 별 같은 다산의 소실과 어린 딸을 그리고자 했을 터. 소설의 후기에도 ‘이 소설이 홍임 모를 위한 맑은 차 한 잔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밝혔을 정도다. 그런데 나는 내 소설을 다시 읽은 뒤 무언가 크게 아쉬움을 느꼈다. 며칠 동안 그 까닭을 찾다가 또다시 홍임 모와 홍임에게 꽂혔다. 다산은 초당에서 본처 홍씨 부인이 보내온 노을빛깔의 치맛자락에 두 폭의 매조도를 그렸다. 한 폭은 강진의 제자 윤정모에게 시집간 본처 딸에게 주려고 그린 것이고, 또 한 폭은 홍임이가 장성한 뒤에 주려고 그린 작품이었다. 이는 다산과 홍임 모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마재의 홍씨 부인은 알지 못했다. 홍임에게 주려고 한 매조도에 자하산방(다산초당 별칭)에서 ‘홍임에게 주노라’라고 밝히지 않고 의증종혜포옹(擬贈種蕙圃翁)이라고 암호문처럼 써 놓았기 때문이었다. 굳이 우리말로 풀자면 ‘혜초 밭에서 씨 뿌리는 늙은이에게 주려고 한다’이다. 내가 아쉬웠던 이유 중에 하나는 다산과 홍임 사이에 얽힌 이 암호문을 풀지 못한 채 소설을 끝내 버린 탓이었다. ‘혜초 밭에서 씨 뿌리는 늙은이’는 누구일까. 늙은이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다산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다산은 왜 자신이 그린 그림을 자신에게 줄 거라는 모순된 글을 남겼을까. 혹시 고생하는 본처가 보낸 치맛자락에 그린 매조도를 소실의 딸에게 준다고 차마 밝히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다산의 마음이 생생하게 전해 오는 듯하다. 또 매조도의 행방은 어떻게 됐을까. 이 부분도 나는 슬쩍 넘어가 버리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나는 개정판을 염두에 두고 빠진 이야기를 보충했다. 실제로 다산은 홍임 모가 재혼하겠다는 소식을 전해 오자 홍임의 매조도를 다른 이에게 주려고 한다. 홍임 모가 재혼한다면 홍임이는 다른 사내의 의붓자식이 되므로 그랬을 것이다. 다산은 해배가 돼 고향인 마재로 돌아온다. 1822년 홍임이가 아홉 살 되던 해 가을이었다. 성균관 동기이자 젊은 시절의 친구 이인행이 다산의 거처인 여유당으로 찾아온다. 정조가 승하한 뒤 다산이 유배를 간 이후 23년 만의 재회였다. 두 사람은 이틀 낮밤 동안 젊은 시절로 돌아가 정담과 토론을 하고 나서 헤어졌다. 다산은 그 가을에 고향 영천으로 내려간 이인행을 ‘혜초 밭에 씨 뿌리는 늙은이’이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홍임의 매조도를 주어 버린다. 이로써 매조도의 행방은 확실하게 막을 내린다. 200자 원고지 46장에 이와 같은 이야기를 다 풀어 놓고 보니 목에 걸렸던 가시가 내려간 듯하고 뿌듯하다. 어설픈 미완성의 작품이 비로소 완성된 것 같은 희열이 차오른다. 이래서 작가들이 한두 번씩 개정판을 내지 않나 싶다. 아래 절에서 새벽 범종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새벽 4시가 조금 지났을 것이다. 나는 또 습관처럼 현관문을 밀고 밖으로 나간다. 밤안개가 옅게 끼었는지 오늘 새벽에는 모든 별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홍임 모와 홍임의 영혼도 캄캄한 허공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만 같다.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달항아리(201407-7)/강민수 · 백자의 숲/이상협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달항아리(201407-7)/강민수 · 백자의 숲/이상협

    달항아리(201407-7)/강민수높이 64cm, 몸체 지름 63cm 단국대 도예과 대학원 졸업. 1998년 국제 공예공모전 입상 백자의 숲/이상협 불탄 목적지는 이해하기 쉽고 나는 도착하는 길이 계절마다 다릅니다 구운 흙은 울기 좋습니다 깨어질 듯 그러했습니다 밖에 누가 있나요 안에 누구 없습니다 나는 나의 작은 균열을 찾는 중입니다 금 간 서쪽 무늬를 엽니다 나는 획의 기울기를 읽는 데 온밤을 씁니다 중심은 맺혔다 사라집니다 나는 안팎이 없습니다 검은 모자 떼가 날아갑니다 불쏘시개로 흰 뼈를 깨뜨리고 경계에서 나는 태어납니다 몇 백도의 불을 견뎌야 차진 진흙 덩어리는 달항아리로 거듭난다. 백자는 구운 흙, 구운 몸이다. 불탄 목적지란 백자를 말하는 것일까? 백자를 불탄 목적지라고 말하는 거라면 이는 비범하다. 불의 고통을 겪었으니 백자는 울기 좋은 몸이다. 백자에 귀 기울이면 소리가 난다. 밖에 누구 있나요? 안에 누구 없습니다. 안과 밖에 아무도 없는데 그런 소리가 들린다.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가면 안팎이 따로 없다. 중심도 있다가 사라진다. 오늘도 나는 한자리에 머무는 데 실패한다. 다만 작은 균열이 생겨나는 백자에는 흘러간 어제와 다가오는 내일이 와서 잠시 머물다 떠날 뿐이다. 장석주 시인
  • 열차에 치인 여인 구조하는데 옆에서 셀피 찍는 젊은이

    열차에 치인 여인 구조하는데 옆에서 셀피 찍는 젊은이

    이탈리아 북부에서 젊은 캐나다 여성이 열차에 치여 크게 다쳐 사람들이 응급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그 옆 플랫폼에서 이를 배경으로 ‘셀피’를 찍고 있는 관광객이 있어 이탈리아 전역을 충격에 몰아넣고 있다. 흰색 버뮤다 반바지를 입고 있던 문제의 젊은이는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까지 그려 보이고 있다. 지난달 26일(이하 현지시간) 피아첸차역에서 응급조치를 취하던 경찰이 이 젊은이를 붙잡아 셀피 사진을 삭제하도록 했다고 영국 BBC가 5일 전했다. 다친 여성은 병원으로 후송됐는데 결국 다리 한쪽을 절단해야 했다. 이탈리아의 많은 신문들이 한 사진기자가 촬영한 문제의 사진을 전면에 대문짝만 하게 싣고 분노를 표시했다. 안토넬라 보라레비란 시사평론가는 “암이 인터넷을 집어삼키고 있다”고 개탄한 뒤 “셀피를 찍고 있는 젊은이가 특별히 나쁜 젊은이는 아니지만 영혼을 꺼버리고 그의 인간성은 “인터넷에 노예가 됐다”고 지적했다. 라디오 진행자인 니콜라 사비노는 인류가 “급하게 종말로 나아가고 있다”고 탄식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간단히 “더 이상 날 놀래킬 것도 없다”고 적었다. 사진을 촬영한 피아센차 지역 신문 리베르타의 조르지오 람브리 기자는 3일 “당신이 예상하지 못한 야만-비극 앞에서의 셀피”란 제목이 붙은 기사에서 자신이 목격한 상황을 전했다. 그는 페이스북에도 기사를 게재하고 다른 제목을 붙였다. 문제의 젊은이가 도덕적 공감 능력의 결여를 보여줬다며 마치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서 개탄하는 듯 “휴스턴, 우린 문제가 있어요”라고 했다. 람브리 기자는 철도 당국에 이 사실을 알렸고 문제의 젊은이는 경찰에 신원을 밝혀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캐나다 여성이 왜 열차에 치였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사고 직후 보도에 따르면 열차 문을 닫는 제어 시스템이 고장나 여성이 기대고 있던 문이 열리는 바람에 열차에서 떨어진 것이 아닌가 추정했다. 그러나 그녀가 역을 빠져나가는 열차 앞에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수많은 숨결로 채운 벽면, 삶이 깃들다

    수많은 숨결로 채운 벽면, 삶이 깃들다

    외국인 노동자부터 노인까지 다른 무늬로 펼쳐지는 삶 그려 ‘12색 물감 세트’ 자본주의 성찰 “추상이 현대인을 이해하는 방식”날개를 펼쳐 날아가는 나비 같기도, 굽이쳐 뻗어나간 산맥의 줄기 같기도 하다. 초월의 이미지를 주는 울트라마린 블루색의 문양들이 캔버스를 빼곡히 채웠다. 이 무늬들은 붓으로 그려넣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누군가의 숨결로 빚어낸 것들이다. 흰 캔버스에 50원짜리부터 500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로 푸른 잉크를 떨어뜨려 날숨으로 불어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경기 안산 중앙시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불어넣은 숨들이 있는가 하면, 탑골공원을 거닐던 노인들이 불어넣은 숨들도 있다. 어떤 숨은 힘차고 리드미컬한 문양을, 어떤 숨은 제자리걸음에 머무르는 무늬를 만들어 냈다. 작품은 최선 작가의 ‘나비’. 혈액과 타액, 동물뼈와 폐유, 재와 땀 등 일상의 재료로 날 선 작업을 해 온 작가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안산, 서울, 부산, 인천, 시흥 등에서 살고 일하는 시민들의 숨결들을, 삶들을 모아 거대한 벽면을 가득 채웠다. 9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플랫랜드’의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곧장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다. 작품 ‘나비’를 이룬 숨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다. 최선 작가는 정치적 성향, 취향 등과 상관없이 정반대의 사람들까지 모을 수 있는 숨들로 살아 있는 존재, 그리고 각자 다른 무늬로 펼쳐지는 삶들을 상기시킨다. 작가가 꿈꾸는 또 다른 프로젝트는 남북한 사람들의 숨을 모으는 것이다. 그는 “남북 관계가 한동안 경색돼 있었는데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뒤섞여 있으면 누가 누군지 짚어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남북한 사람들의 숨결을 한데 불어넣은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금호미술관이 기획한 ‘플랫랜드’는 이렇듯 오늘날 추상이 동시대의 사회와 도시, 현대인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는지 보여 주는 작품들로 엮였다. 김규호, 김용익, 김진희, 박미나, 조재영, 차승언, 최선 등 7명 작가의 회화, 조각, 설치, 영상들이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7개 전시실에 자리해 사회를 보는 저마다의 시각을 제공한다. 전시 제목은 19세기 영국 작가 에드윈 애벗의 소설 ‘플랫랜드’에서 따 왔다. 2차원 세계인 플랫랜드의 정사각형이 3차원, 0차원 등 다른 차원의 세계를 경험하면서 공간과 차원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라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전시장에 나온 추상 작품들 역시 도시의 기성품, 일상의 재료들로 우리가 이 시대의 관습과 규칙, 규범에 포박되고 길들여져 있음을 깨닫게 한다. 박미나의 ‘12 Colors’는 국내에서 많이 소비되는 12색 물감 세트를 여러 브랜드 제품의 색상별로 정직하게 캔버스에 펴발랐다. 물감 회사에서 임의로 정한 무표정한 12색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도 성찰도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온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길섶에서] 그리운 말씀/황수정 논설위원

    담벼락에 몇 년째 이름 모를 넝쿨 꽃이 피었다. 꽃송이를 찍으면 정체를 밝혀 주는 휴대전화앱이 있다지만 모른 척했다. 애면글면 다녀가는 꽃에다 함부로 통성명하자는 건 염치없었다. 고집을 꺾어 오늘은 휴대전화에 물어본다. 아무리 찍어 봐도 먹통. 모란이 아닌데, 모란이라고 우긴다. 얼마나 눈 밝아야 천길 계절의 속사정을 알까. 고향 집에는 내가 아는 꽃만 피었다. 모를 새 없이 이름을 가르쳐 주던 어른들이 언제나 곁에 있었다. 오종종하게 모여 붙은 이것은 물앵두 흰꽃, 가시 찔려도 울지 않는 저것은 탱자 흰꽃, 소복소복 고봉밥을 엎어 놓은 그것은 조팝나무 흰꽃. 봄밤에 누우면 온 동네 향기가 먼저 달려왔다. 뒷집 천리향 봉오리 터졌네, 건너집 치자꽃 그새 폈네, 천날만날 뿌리를 걷어내도 향기 한번 오달지네 저놈의 아카시아. 눈 감고 만리를 보던 할머니 옆에 누우면 나도 천리쯤 봤다. 만리를 건너 주시던 말씀 속에 반나절만 잠겨 보고 싶다. 고까짓 꽃 이름 몰라도 일없다, 마음 녹여 푼푼히만 살거라. 뾰족한 모서리 둥글려 주던 그 오래된 말씀 안에서 쪽잠 한숨만.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와우! 과학] 북극여우 등 흰색 털 동물, 기후변화에 더 취약한 이유

    [와우! 과학] 북극여우 등 흰색 털 동물, 기후변화에 더 취약한 이유

    지구온난화로 인한 생태계 파괴가 날로 심각해지는 가운데, 흰족제비와 같은 흰색 털을 가진 동물들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더 큰 위협을 받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폴란드과학원 연구진이 1997~2007년까지 폴란드 바이알로비에자국립공원에 만년설이 덮여 있는 기간을 추적 조사한 결과, 1997년에는 80일이었던 것에 반해 10년 뒤인 2007년에는 절반인 40일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만년설이 녹아 없어지는 이러한 현상이 흰색 털을 가진 동물들에게 매우 위협적인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흰색 털을 가진 동물들은 만년설을 마치 보호색처럼 이용, 포식자로부터 몸을 숨기는데 사용한다. 하지만 만년설의 양이나 남아있는 날이 줄어들 경우, 이러한 흰색 털 동물들은 여우 또는 까마귀 등 포식자의 먹이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실제로 연구진이 바이알로비에자국립공원에 서식하는 흰족제비의 개체수를 조사한 결과, 조사기간동안 총 20%가 줄어들었으며 남아있는 개체수도 포식자의 무분별한 사냥에 희생될 위기에 처해 있다. 연구진은 “과거 흰족제비나 북극여우처럼 흰색 털을 가진 동물들은 특정 자연환경에서 매우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다. 이들의 흰색 털이 생존에 이득을 가져다줬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흰색 털을 가진 포유류 또는 조류들은 기후변화가 시작되면서 위기를 맞이했다. 만년설이 완전히 녹아 없어지면서 서식지가 녹색 또는 갈색으로 변했고, 이 때문에 포식자의 눈에 쉽게 띄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위기를 맞은 것은 흰색 털을 가진 동물들뿐만이 아니다. 시베리안 햄스터나 꼬리가 흰 산토끼(흰꼬리잭토끼) 등은 눈이 많은 지역이나 계절에 온 몸의 털이 희게 변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역시 흰족제비나 북극여우와 같은 위협에 처해 있다. 연구진은 “지구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흰족제비와 같은 흰색 털의 동물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지인 네이처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최신호에 실렸다. 사진=123rf.com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백지연의 생각의 창] 오후 다섯 시와 여섯 시 사이

    [백지연의 생각의 창] 오후 다섯 시와 여섯 시 사이

    근 몇 년 동안 페미니즘의 사회적 관심사를 담은 작품 창작과 더불어 고전적 이론서에 대한 관심이 부쩍 활발하다. 청년 세대들이 ‘성의 정치학’(케이트 밀레트)이나 ‘다락방의 미친 여자’(산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와 같은 고전들을 열심히 읽는 모습을 보면 ‘페미니즘 리부트’의 열기가 새삼 실감난다. 여러 책 중에서도 근대 여성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에 스며들어 있는 불안과 분노, ‘괴물’과 ‘미친 여성’의 상징을 고찰한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페미니즘 비평 담론에 주요한 상상력을 제공한다.오랜만에 다시 본 이 책에서 나의 눈길을 여전히 붙드는 부분은 ‘제인 에어’에 관련된 해석이다. 십대 시절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제인 에어’는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와 ‘작은 아씨들’의 조, ‘빨간머리 앤’의 앤이 성장한 듯한 모습을 보여 주는 캐릭터였다. 제인은 예쁘지 않지만 지적이며 독립심이 강한 매력적인 여성이다. 더구나 고아인 제인과 귀족 로체스터의 사랑, 제인의 유산 상속으로 벌어지는 반전은 신데렐라 로맨스의 대중적인 플롯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페미니즘 비평 공부를 하면서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 새롭게 만나는 버사 이야기는 그동안 기억 속에 묻혀 있던 몽환적 존재를 생각하게 했다.다락방에 감금된 미친 여성 버사는 당대 영국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가 억압한 식민지 현실을 상징하기도 하고 상속제도에 얽혀 원치 않는 결혼 생활을 해야 하는 가부장적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기도 한다. 비평가인 길버트와 구바가 무엇보다 공들인 해석의 중심은 제인 에어와 버사 메이슨의 공통점에 있다. 버사는 엄격한 계급사회에서 고아로서 투쟁하며 살아온 제인의 표출되지 않은 분노를 투사하는 인물이다. 제인은 독특한 개성을 지닌 여성이기는 했지만, 큰 틀에서는 당대 사회의 관습과 규범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따르는 여성이었다. 그녀 내면에 숨겨진 결혼에 대한 불안, 신분사회에 대한 비판, 잠재한 광기와 폭력은 버사라는 존재를 통해 작품 속에서 발현됐던 것이다. 최근 5권으로 재출간된 ‘오정희 컬렉션’(문학과지성사ㆍ2017)을 살펴보며 환기하는 것도 여성 존재의 내면 안에 숨은 여러 가지 욕망의 양상이다. 오정희 소설이 주목하는 광기와 불안, 황폐한 일상은 가부장적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역사를 다양하게 보여 준다. ‘유년의 뜰’ ‘중국인 거리’ ‘저녁의 게임’ 등 뛰어난 작품들이 많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야회’(夜會ㆍ1981)다. 이 작품은 어떤 현란한 이론과 비평에도 묶이기를 거부하며, 여성의 삶에 대한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주부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명혜는 어느 날 남편을 따라 한 저택의 사교 모임에 참석한다. 그녀는 아이를 키우는 주부의 일상 속에서 소설을 쓰는 쉽지 않은 시도를 하고 있다. 그녀 마음에 일렁이는 고독과 불안은 “오후 다섯 시와 여섯 시 사이”의 시간에 극대화된다. 가족들의 식사 준비를 하며 무심히 내다보는 바깥 풍경은 “한없이 느린 흐름과 불투명한 긴장” 그리고 “해가 지고 밤이 되기까지의 외로움과 적막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녀가 대저택의 숨겨진 풍경에서 발견한 감금된 미친 남성은 자신의 내면에 일렁이는 불안과 욕망이기도 하다. 밤이 깊어 아이를 업고 길을 걸어나오는 명혜는 술기운에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더러운 모임’이라는 욕지기를 내뱉는다. 그녀의 나지막하면서 싸늘한 이 고백은 오정희의 ‘야회’를 떠올릴 때 독자인 내가 가장 위로받는 구절이기도 하다. 가부장적 삶의 모순 속에 살아가는 여성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현실들을 마주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세계를 끊임없이 꿈꾼다. 소설 속의 명혜는 밤마다 늦도록 불을 켜놓고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려고 분투한다. “흰 종이 위에서는 어떤 것도 유치하고 흔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명혜는 밤마다 책상 앞에 앉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구절에서도 감지되듯이 ‘오후 다섯 시와 여섯 시 사이의 기나긴 흐름을 날아가는 흰 새’는 ‘글 쓰는’ 여성의 내부에만 있는 열망이 아니다. 삶이라는 들끓는 현실을 감당하면서 또 다른 나은 세계를 꿈꾸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있는 상징이다.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박신혜, 촬영차 스페인행 “잘 다녀오겠습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박신혜, 촬영차 스페인행 “잘 다녀오겠습니다”

    배우 박신혜가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촬영차 스페인으로 떠났다.25일 박신혜(29)가 SNS를 통해 스페인 출국 소식을 전했다. 박신혜는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스페인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사진 속에는 비행기에 탑승한 박신혜 모습이 담겼다. 그는 흰 티셔츠 등 편안한 차림을 한 채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이날 박신혜는 오는 11월 방영 예정인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촬영차 스페인으로 떠났다. 박신혜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여주인공 정희준 역을 맡았다.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투자회사 대표인 유진우(현빈 분)가 비즈니스로 스페인 그라나다에 방문하고, 여주인공 정희주가 운영하는 오래된 호스텔에 묶게 되면서 기묘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진=박신혜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한강, 두 번째 맨부커상 불발…폴란드 올가 토카르추크 수상

    한강, 두 번째 맨부커상 불발…폴란드 올가 토카르추크 수상

    소설가 한강(왼쪽)이 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두 번째 수상에 도전했지만 아쉽게 불발에 그쳤다.맨부커상 운영위원회는 22일(현지시간)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공식 만찬 자리에서 올해 수상작으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오른쪽)의 ‘플라이츠’를 선정한다고 밝혔다. ‘플라이츠’는 자신의 절단된 다리를 해부한 17세기 해부학자의 이야기와 19세기 작곡가 프레드리크 쇼팽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심장이 파리에서 바르샤바까지 이동한 사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여행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탐구한 소설이다. 저자인 토카르추크와 번역자인 제니퍼 크로프트에게 총 5만 파운드(약 72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앞서 맨부커상 운영위원회는 지난 3월 한강의 ‘흰’(영문명 ‘The White Book’)을 포함한 전체 108편의 1차 후보를 선정한 데 이어 지난달 다시 6편의 최종후보를 추렸다. 한강의 ‘흰’과 함께 이라크 작가 아흐메드 사다위의 ‘프랑켄슈타인 인 바그다드’, 헝가리 작가 라슬로 크라스나호르카이의 ‘더 월드 고즈 온’, 스페인 작가 안토니오 무뇨즈 몰리나의 ‘라이크 어 페이딩 셰도’,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플라이츠’ 등이 최종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2016년 5월 소설 ‘채식주의자’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던 한강 작가는 두 번째 맨부커 수상의 영예를 기대했으나 최종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속보] 이명박 전 대통령, 법원 도착…구속 62일 만에 모습 드러내

    [속보] 이명박 전 대통령, 법원 도착…구속 62일 만에 모습 드러내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3월 22일 구속 수감된 지 62일 만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낮 12시 25분쯤 서울 동부구치소를 출발해 12시 59분쯤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했다. 재판은 오후 2시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다. 이 전 대통령은 검은색 양복과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는 매지 않은 차림이었다. 구속 당일에는 회색 톤의 넥타이를 착용한 바 있다. 손에 들고 있는 서류봉투는 이날 공판에서 발표할 입장문을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 양복에 수용자 신분을 알리는 표식 같은 것은 붙어 있지 않았다. 수갑도 차지 않았다. 호송차에서 내릴 때에는 교도관들의 부축을 받았다. 수감되기 전보다 다소 살이 빠진 듯했지만, 얼굴은 약간 부은 듯했고, 머리숱이 적어진 듯했다. 변호인들은 이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당뇨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이 전 대통령은 구속 당일 자정쯤 논현동 자택에서 가족 및 측근들과 인사를 나누고 서울 동부구치소로 들어갔다. 그 이후 검찰 조사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이날 공판이 열리는 시각,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9주기 추도식이 열린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개국 시기·위치도 다른데… ‘가야=임나’로 변질시킨 일본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개국 시기·위치도 다른데… ‘가야=임나’로 변질시킨 일본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6월 1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국정과제에 가야사 연구와 복원도 넣어 주세요”라고 말했다. 가야사를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설정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가야사 등 고대사 전공자들이 반발했다. 이들은 “대통령이 역사의 특정 시기나 분야에 대한 연구나 복원을 지시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고 역사를 도구화하는 발상”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옹호하는 사람들은 “어떤 연구를 수행할지 고대사연구자 자신들만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전문가의 오만”이라고 반박했다. 반발의 핵심 요인으로 현재 가야사 연구자들 다수가 가야를 임나와 같은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임나는 가야의 별칭? 가야사 연구가인 홍익대 김태식 교수는 ‘미완의 문명, 700년’에서 “요컨대 대가야를 중심으로 파악되는 5~6세기의 후기 가야 연맹을, 왜에서는 무슨 이유에선가 임나(任那)라는 명칭으로 불렀다. ‘가야=임나’라는 것이다. 일본 소학관(小學館)에서 간행한 ‘일본대백과전서’는 ‘임나’(任那·미마나)에 대해서 “조선의 고대 국명. 임나라고 읽는데 별명은 가야”라고 설명하고 있다. 가야가 어느 순간 임나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더욱이 ‘가야=임나’라고 보는 시기가 5~6세기라면 문제가 간단치 않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고대 야마토왜가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라는 식민통치기구를 두고 지배했다는 ‘4세기 말~6세기 말’과 겹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한·일 고대사에 대해서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많은 300여편의 논문과 30여권의 학술저서를 낸 고(故) 최재석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야=임나설’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그는 ‘고대한일관계사연구’에서 “일본인들은 그들의 역사 조작에 방해가 되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조작으로 몰고, 가야와 임나가 동일국이라는 증거는 하나도 제시함이 없이 말로만 가야와 임나는 동일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가야와 미마나가 전혀 별개의 나라라는 증거는 있을지언정 같은 나라라는 증거는 아무 데도 없다”고 비판했다.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가야와 임나를 동일국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런 사료적 근거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가야는 임나가 아니라는 반론 김 교수는 “왜에서는 무슨 이유에선가”라고 넘어갔지만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하는지 그 근거를 밝히는 것이 역사학이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 측 기록인 ‘일본서기’에도 가야를 임나라고 표현한 기사는 한 군데도 없다. 억지해석만이 난무할 뿐이다. ‘낙랑군=평양’이라는 사료적 근거가 전무한 것처럼 ‘가야=임나’라는 사료적 근거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최 교수의 비판은 기본적인 의문으로 이어진다. 최 교수는 같은 책에서 “이러한 일본인들의 주장에 어찌하여 한국 사학자들도 무조건 동조하며 가야와 임나가 동일국이라고 주장하는지 모르겠다. 또 일본인들은 가야와 임나의 관계에 대하여 논할 때는 보통 가야와 임나가 동일국이라고 주장함과 동시에 일본이 가야를 지배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또 어찌하여 한국의 고대사학자들은 후자인 일본이 가야(한국)를 지배하였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침묵을 지키면서 전자인 가야와 임나가 동일국이라는 대목에만 관심을 가져 이것을 받아들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최 교수의 이 말이야말로 현재 ‘가야=임나’를 주장하는 남한 사학계의 이중적 태도를 잘 지적한 것이다. 또한 정부는 돈만 대고 연구는 자신들에게 맡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속내를 미리 간파한 혜안이기도 하다. ●계림은 신라의 별칭 임나는 과연 가야의 별칭일까. 이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가야사 전체의 모습이 흩어지게 되어 있다. 임나가 가야의 별칭이라는 말은 가야가 곧 임나라는 말이다. ‘가야=임나설’이 사실로 성립할 수 있을지 역사학적 방법론에 따라서 살펴보자. 가야와 깊은 관계가 있는 나라는 신라다. 그런데 “계림은 신라의 별칭이다”라는 말에는 아무도 시비하지 않는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 ‘탈해 이사금 9년(서기 65년)조에는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나무 사이에서 금궤짝이 나무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 금궤짝에서 한 아이가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고 하고 “시림을 계림(鷄林)으로 고치고 국호로 삼았다”는 것이다. 신라인들 스스로 신라를 계림으로 여겼다는 뜻이다. 중국 당나라의 정사(正史)인 ‘신당서’(新唐書) 고종(高宗) 상원(上元) 원년(674)조에는 “유인궤(劉仁軌)를 계림도(林道) 행군대총관으로 삼아 신라를 정벌하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라·당 전쟁 시기(670~676)의 기사인데, 당나라도 신라를 계림으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계림이 신라의 별칭’이라는 말에는 아무도 시비하지 않는다. ‘임나가 가야의 별칭’이라는 명제도 마찬가지일까. ●가야와 임나는 모든 것이 다르다 ‘임나가 가야의 별칭’이라는 말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가야’가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와 같은 나라라는 뜻이다. 임나를 가야의 별칭이라고 말하려면 몇 가지 핵심적인 사실들이 일치해야 한다. 개국연대와 멸망연대가 일치해야 하고 개국시조와 망국시조가 일치해야 한다. 또한 나라가 있었던 지리적 위치도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표>에서 보는 것처럼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가야와 ‘일본서기’의 임나는 이 모든 것이 다 다르다. 아니 다르다기보다는 ‘일본서기’의 임나에는 개국연대, 망국연대, 개국시조, 망국시조 같은 내용이 일절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최 교수가 “가야와 임나가 동일국이라는 증거는 하나도 제시함이 없이 말로만 가야와 임나는 동일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나카 미치요의 주장 ‘가야=임나설’의 진원지가 일본 메이지(明治)시대 한국을 점령해야 한다는 논리인 정한론(征韓論)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 사실 여부는 중요하다. 1882년 일본군 참모본부는 ‘임나고고’(任那稿考)와 ‘임나명고’(任那名稿)라는 책을 간행했다. 학술기관도 아닌 일본군 총사령부에서 왜 느닷없이 고대 ‘임나’에 관한 역사서를 간행했을까. 이듬해인 1883년에 일본군 참모본부 소속의 간첩인 사코 가케노부 중위는 만주에서 광개토태왕릉비 탁본을 가져왔다. 일본군 참모본부의 간첩 손을 먼저 탔기 때문에 위조 논쟁이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는데, 특히 2면 하단과 3면 상단이 집중적으로 훼손된 가운데서도 ‘임나가라’(任那加羅)라는 용어는 뚜렷이 남아 있어 의혹을 던져 주고 있다. 임나가 가라와 동일국이라고 명시적으로 주장한 인물은 정한론자(征韓論者)였던 나카 미치요(1851~1908)였다. 나카 미치요는 일본 도쿄제국대 출신들이 주축인 사학회에서 만들던 ‘사학잡지’(史學雜誌·1896)에 가라고(加羅考)를 실어 ‘임나가 가라’라고 주장했다. 임나가 가야이므로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는 것은 침략이 아니라 과거사의 복원이라는 논리다. 나카 미치요는 가라고에서 “숭신천황(崇神天皇) 말년에 가라(加羅) 왕자(王子)인 도노아아라사등(都怒我阿羅斯等)이 내조(來朝)하여 수인(垂仁)천황 시절에 본국으로 돌아갈 때 그 나라에 임나(任那)라고 하는 이름을 내렸는데, 이때부터 임나(任那)는 가라(加羅)의 별호가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서기 720년에 편찬한 ‘일본서기’는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기로 마음먹고 연대부터 속인 기이한 역사서라서 대단히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 ‘일본서기’ 수인(垂仁)기 2년(서기전 28)조에는 일왕 수인이 의부가라(意富加羅)의 왕자에게 선왕 숭신(崇神)의 이름을 국명으로 하라고 말했고, 이에 따라 나라 이름이 미마나국(彌摩那國)이 되었다는 기사가 있다. 나카 미치요는 미마나(彌摩那)라는 소리글자를 임나(任那)라는 뜻글자로 바꾼 것인데, 이때는 서기전 28년으로 가야가 생기기 70년 전의 기사이다. 따라서 이 기사는 ‘가야=임나’로 보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나를 가야로 둔갑시켜 한국 침략 논리로 사용했던 ‘가야=임나설’이 일본학계뿐만 아니라 남한학계에도 통용되어 ‘임나는 가야의 별칭’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기현상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 “전두환에 분노” 기념비 가림막에 불지른 60대 입건

    “전두환에 분노” 기념비 가림막에 불지른 60대 입건

    5ㆍ18 민주화 운동 38주년인 지난 18일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축석고개 입구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필이 새겨진 기념비를 덮은 가림막에 불을 지른 60대가 경찰에 입건됐다.20일 포천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18일 오후 7시 4분쯤 소흘읍 이동교리 국도 43호선 축석고개 입구에 있는 ‘호국로’ 기념비를 덮은 하얀 천에 불을 붙인 혐의(재물손괴)로 장 모(61)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기념비 주변에 거주하는 장씨는 이날 오후 술에 취한 상태로 주변 슈퍼마켓에서 라이터 기름을 산 뒤 기념비를 덮고 있던 천에 뿌린 뒤 불을 붙였다. 불로 기념비를 덮었던 흰 천 일부와 천 위에 덧붙여져 있던 ‘학살자 전두환 죄악 증거비’라고 쓰인 현수막이 불에 타 떨어져 나갔다. 경찰 조사에서 장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분노를 느껴 불을 붙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7년 세워진 기념비에는 전 전 대통령의 친필 글씨로 호국로(護國路)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앞서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지난 17일 포천진보시민네트워크와 민중당 당원 등 10여 명은 축석고개 입구에서 기념비 철거 기자회견과 하얀 천으로 기념비를 가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들은 기념비를 ‘학살자 전두환 죄악 증거비’라고 명명하고 당장 철거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연장 승부 끝에… 권성열 생애 첫 우승

    연장 승부 끝에… 권성열 생애 첫 우승

    필드에서 항상 밝은 미소를 짓던 권성열(32)이 주먹을 뿔끈 쥐더니 크게 포효했다. 주변 선수들이 축하한다고 물을 뿌리자 흠뻑 젖어서는 자리에 주저앉아 한동안 흐느꼈다. 지켜보던 선수들마저 눈시울을 붉혔다. 힘들었던 시간이 머릿속에서 지나가는 듯했다. 2013년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 데뷔해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권성열이 생애 첫 우승을 거뒀다.권성열은 20일 인천 스카이72 하늘코스(파72)에서 열린 KPGA 코리안투어 SK텔레콤오픈(총상금 12억원)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1개를 묶어 3언더파 69타를 쳤다. 최종 합계 13언더파 275타로 마무리한 권성열은 고향 선배인 류현우(37)와 연장 두 번째 홀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지난해 티업 지스윙 메가오픈 공동 5위가 최고 성적이었던 무명 선수의 반란이었다. 선두에 2타 차 뒤진 공동 5위로 출발한 권성열은 3·9·10·15번홀에서 버디를 낚았다. 보기는 12번홀 딱 한 차례였다. 18번홀에서 7.7m짜리 버디 퍼트를 넣으면 바로 우승이었지만 아쉽게 홀컵을 돌아나와 연장전에 돌입했다. 18번홀에서 펼쳐진 연장 첫 번째 경기에서는 류현우가 버디 찬스를 잡았지만 짧은 퍼트를 놓쳤다. 결국 두 선수 모두 파를 기록했다. 가슴을 쓸어내린 권성열은 겉옷까지 벗고 연장 2번째 홀에 나서 침착하게 버디 퍼트를 시도했고 공은 살짝 돌아 홀에 빨려 들어갔다. 류현우는 앞서 파에 그쳐 승부는 그대로 끝났다. 권성열은 “그저께 꿈에서 흰 바지와 빨간 티셔츠를 입고 우승을 해서 오늘 그렇게 입었는데 현실이 됐다”며 “이렇게 물세례를 맞을 수 있다는 게 정말 믿기지 않는다. 혼자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릴 정도로 너무 하고 싶었던 우승”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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