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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아카시아와 아까시나무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아카시아와 아까시나무

    어릴 적 우리 집 뒤엔 관악산이 있었고 주말이면 아버지는 어린 나를 데리고 산에 올랐다. 너무 어릴 때의 기억이라 그저 아버지와 관악산에 자주 갔었다는 것과 아버지와 손을 잡고 내려오던 산에선 향기로운 꽃향이 났었다는 것, 그 산에는 동그란 잎이 여러 개 달린 가지의 나무가 많았다는 기억만이 어렴풋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초등학교 때 이사 가기 전까지 종종 우리 가족은 산에 올랐고, 부모님은 내가 기억하는 그 나무를 아카시아라고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먹는 꿀이 바로 이 아카시아로부터 나는 것이라는 것까지도. 그때 왜 그렇게 산에 아카시아가 많은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저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살던 것이겠지. 생물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은 의미 없다 생각했다. 아카시아 이름에 관한 의문도 품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해 수목학 수업을 들으며 1900년대 초에 도입돼 1970년대까지 전쟁이 끝나 황폐해진 산을 복구하기 위해 자라는 속도가 빠른 아카시아를 도심의 산에 심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그 나무의 이름이 내가 부르던 아카시아가 아닌 아까시나무라는 것은 꽤나 충격이었다.아까시나무. 관악산을 뒤덮고 있던 향기로운 그 꽃향의 나무는 아까시나무였고 아카시아는 전혀 다른 식물이었다. 둘 다 콩과이긴 하지만 우리 산에 많은 아까시나무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흰 꽃을 피우는 식물이고, 아카시아는 호주와 아프리카 원산의 노란 방울 모양의 꽃이 핀다. 요즘 플라워 디자인용 절화로 많이 이용하는 미모사나무가 바로 아카시아속 식물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이름부터 잘못 불린 아까시나무는 1891년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와 100년이 넘는 지금까지 많은 오해와 편견 속에 지내왔다. 해방 이후 산에 나무가 없어 흙만 보여 붉은 산이라 불리던 우리나라의 산에 1970년대까지 생장 속도가 빠른 이들을 식재해 왔으나 1980년대 이후에 일제의 잔재라거나, 다른 식물의 생육을 방해한다거나, 뿌리가 관을 뚫고 들어간다는 등의 잘못된 이론으로 한동안 우리 숲에 유해한 나무로 인식돼 왔다. 오해를 풀자면, 이들은 일제 식민지 정신을 새기기 위해 심어진 식물도, 일본 원산의 식물도 아니다.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세계적으로 이미 관상용이나 사방 조림용으로 많이 식재되던 종이다.그리고 햇빛을 좋아해 이미 숲을 이룬 곳은 들어가지 못하고, 콩과 식물에 있는 뿌리혹박테리아가 땅에 질소를 공급해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다른 나무의 생육을 방해한다는 건 틀린 이야기이고, 뿌리가 땅속으로 얕게 퍼져나가는 형태라 묘지의 관 깊이까지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관을 뚫는다는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뿌리가 왕성하게 자라 토양을 잡아주면서 산사태를 막아준다. 게다가 이들은 꿀을 만들어 주는 대표적인 밀원식물이다. 우리나라 꿀의 80%가 아까시나무 꿀인데, 그동안의 오해로 아까시나무 개체수가 줄면서 우리나라 양봉업계에 위기가 불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산림청은 2016년부터 아까시나무 조림 사업을 다시 시작했고, 이들 기능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에도 애쓰고 있다. 불과 수십년 만에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를 실현시킨 우리나라 곳곳의 아까시나무, 그 외의 또 다른 식물들, 산림 인재와 기술 등을 바탕으로 우리는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 나무를 심고 있다. 몽골, 중국, 카자흐스탄 등 세계의 산림 관계자들이 우리나라에 와 사막과 도시를 숲으로 만들 기술을 배우고자 하고, 우리는 북한과 협력해 북한 산림을 푸르게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격년 주기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산림 관계자들이 모여 산림 과제와 해결 방안을 도모하는 회의인 아태산림주간이 올해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는 건 그래서 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주 이 회의에서 진행할 세밀화 강의를 위해 들렀던 산림청에서 직원 중 한 분이 몽골 사막 조림 사업 이야기를 하며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식물, 동물과 같이 살아 있는 생물을 다루는 일이란 국경을 넘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로 우리와 이어진 어느 땅이 푸르러진다면 그보다 더 값진 일이 있을까. 먼 훗날 사막에서 숲으로 변할 몽골에서, 미래의 어느 아이가 이 숲의 나무는 언제 누가 심었는지 궁금해한다면 좋겠다. 그러면 누군가 아이에게 먼 옛날 어느 먼 곳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 나무를 심어 주었다고 이야기하겠지. 지금 우리가 보는 저 산의 아까시나무도 수십년 전 누군가 심은 수고와 희망의 씨앗이었음을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한다.
  • 쥐보리를 아시나요

    “‘쥐보리’를 아십니까.” 경북농협은 23∼24일 구미시 선산읍과 청송군 파천면에서 동계 조사료 수확 시연회를 갖는다고 22일 밝혔다. 조사료로 사용하는 쥐보리(IRG) 예취·집초·곤포·랩핑 공정을 시연하고 쥐보리 특성과 재배 기술을 교육한다. 조사료는 소에게 줄 나락을 말한다. 흰색 비닐로 둥글게 포장(랩핑)한 쥐보리 1개에 6만원 정도로 농가 소득증대, 축산농가 사료비용 절감에 도움이 된다. 경북농협과 경북도는 2012년부터 조사료 생산을 권장해 도내 조사료 자급률을 82%로 끌어올렸다. 중부유럽의 해양성 온대지역이 원산인 쥐보리는 우리나라에 유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귀화식물이다. 사료로 도입된 이후 야생 상태로 널리 퍼져 있다. 윤병록 경북농협 경제부본부장은 “농가의 조사료 생산 참여 의욕을 높이고 안정적인 공급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면서 “앞으로 논을 활용한 조사료 재배 확대로 쌀 재고 과잉과 조사료 부족을 동시에 해결하고,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쥐보리를 아십니까”…경북농협 소 사료 수확 시연회

    “‘쥐보리’를 아십니까.” 경북농협은 오는 23∼24일 구미시 선산읍과 청송군 파천면에서 동계 조사료 수확 시연회를 갖는다고 22일 밝혔다. 조사료로 사용하는 쥐보리(IRG) 예취·집초·곤포·랩핑 공정을 시연하고 쥐보리 특성과 재배기술을 교육한다. 조사료는 소에게 줄 나락을 말한다. 흰색 비닐로 둥글게 포장(랩핑) 한 쥐보리 1개에 6만원 정도로 농가 소득증대, 축산농가 사료비용 절감에 도움이 된다. 경북농협과 경북도는 2012년부터 조사료 생산을 권장해 도내 조사료 자급률을 82%로 끌어 올렸다. 중부유럽의 해양성 온대지역이 원산인 쥐보리는 우리나라에 유입된 지는 얼마 되지 않은 신귀화식물이다. 사료로 도입된 이후 야생상태로 널리 퍼져 있다. 윤병록 경북농협 경제부본부장은 “농가의 조사료 생산 참여 의욕을 높이고 안정적인 공급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면서 “앞으로 논을 활용한 조사료 재배 확대로 쌀 재고 과잉과 조사료 부족을 동시에 해결하고,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줄 잘 타면 성공한다기에 9살에 입문… 줄 오르면 그저 행복”

    “줄 잘 타면 성공한다기에 9살에 입문… 줄 오르면 그저 행복”

     “줄 하나만 잘 타면 빨리 성공한다는 말만 믿고 아홉 살에 시작했죠. 별 볼일 없데요. 매일 엉덩이만 터지고. 제가 줄판에서 자주 쓰는 말입니다, 그 대사를 할 때마다 가슴이 저립니다. 전통 줄타기 맥을 이으려 홀로 걸어 온 세월만큼이나 제 두 어깨에 무게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흰 바지저고리에 초립을 쓰고, 부채를 펴 들고, 줄에 오르는 순간 모든 것을 잊고 그저 행복합니다. 언제나 하늘과 더 가까운 삶이 있기에.”  국가무형문화재 제58호 예능보유자 김대균(52·줄타기보존회) 줄광대 이야기다. 다음달 1일 경기 과천시 주최로 중앙공원에서 줄타기 체험여행 ‘다줄’이 개최된다. 과천시는 무형문화재 전승을 위해 적극 지원할 생각이다. 나아가 1인당 3000원인 관람료 전액을 관객 이름으로 사회에 기부한다. 전통문화를 계승, 보급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주관하는 줄타기보존회 김 대표를 만나 그의 줄타기 인생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줄타기 입문 계기는.  “1976년 한국민속촌이 있는 용인으로 이사를 왔다. 민속촌 전시가옥에서 부모님이 실제 거주하고 근무도 했다. 당시 인간문화재인 줄타기 명인이자 과천 출신인 김영철 선생님이 그곳에서 상설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어려서부터 줄을 타고 놀고, 뛰어내리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줄타기 공연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줄타기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것을 계기로 입문하게 됐다. 그러던 중 큰 사고를 겪었다. 우리나라 줄타기의 맥을 잇던 김영철 선생님이 과로로 쓰러져 거동할 수 없게 됐다. 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 그때부터 휠체어를 탄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아버지는 내게 기초를 가르치고, 선생님을 모셔 오고 하면서 중간 역할을 맡아 하셨다.”  -줄타기 훈련 과정은.  “균형감이 가장 중요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단계는 균형 잡기다. 처음에는 ‘땅줄’에서 시작한다. 땅바닥에 줄을 놓고 발바닥으로 균형감각을 익힌다. 이때 발바닥이 땅에 닿으면 안 된다. 땅줄에 익숙해지면 줄을 높이 50㎝로 올리고 앞으로 가기, 뒤로 가기, 돌기 등 기본동작을 익힌다. 무난하게 이런 동작을 할 수 있게 되면 균형을 잡는 도구인 부채를 받는다. 긴 장대 무게로 중심을 잡는 서양 줄타기와 달리 동작의 찰나에 부채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여러 과정이 있지만 줄의 탄력을 이용해 하늘을 날며 펼치는 쌍홍제비와 같은 고난도 기술이 백미다. 이런 고난도 기술을 배울 때 줄과 마찰 때문에 엉덩이가 피범벅이 되고 심지어 줄에서 떨어지면 가장 고통스럽고 무섭다. 이 과정을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는 전수생이 많다. 10년간 매년 10명씩 전수생을 뽑았지만 현재 6명만 남았다.”  -처음 줄꾼으로 무대에 선 때는.  “1979년 서울 덕수궁 무형문화재 합동공연이다. 내 이름을 걸고 한 공연은 아니었지만 처음 단독공연을 했다. 성공적으로 마치고 휠체어를 타고 나를 지켜보던 스승님을 끌어안고 울었다. 김대균이란 이름을 걸고 한 첫 공연은 1982년 한국민속촌에서였다. 데뷔 공연을 했던 그날 석가탄신일이라 숱한 관중이 모였다. 관람객들의 큰 호응 속에 공연을 마치고 선생님에게 큰절을 올렸다.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관람객과 함께 호흡하고 장단을 맞추면 신명이 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울산 해수욕장 공연은 후회되면서도 최고의 무대였다. 천하의 줄광대도 바람 앞에는 어쩔 수 없다. 바람이 잦은 바닷가 공연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고사했다. 해수욕장 관계자가 5월엔 괜찮다며 거듭 요청했다. 실제로 그랬다. 안심하고 공연을 준비했는데 행사 당일 날씨가 돌변했다. 바람이 거셌다. 공연 섭외 담당자가 공연을 말렸다. 하지만 관람객들과의 약속인데 취소할 수 없었다. 아슬아슬한 공연이 시작됐다. 해수욕장에서 줄을 타는 광대의 모습에 관람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공연도 20분을 더 했다. 줄타기 인생 30여년 가운데 첫 공연과 더불어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다.”  글·사진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줄 잘 타면 성공한다기에 9살에 입문… 줄 오르면 그저 행복”

    “줄 잘 타면 성공한다기에 9살에 입문… 줄 오르면 그저 행복”

    “줄 하나만 잘 타면 빨리 성공한다는 말만 믿고 아홉 살에 시작했죠. 별 볼일 없데요. 매일 엉덩이만 터지고. 제가 줄판에서 자주 쓰는 말입니다, 그 대사를 할 때마다 가슴이 저립니다. 전통 줄타기 맥을 이으려 홀로 걸어 온 세월만큼이나 제 두 어깨에 무게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흰 바지저고리에 초립을 쓰고, 부채를 펴 들고, 줄에 오르는 순간 모든 것을 잊고 그저 행복합니다. 언제나 하늘과 더 가까운 삶이 있기에.” 국가무형문화재 제58호 예능보유자 김대균(52·줄타기보존회) 줄광대 이야기다. 다음달 1일 경기 과천시 주최로 중앙공원에서 줄타기 체험여행 ‘다줄’이 개최된다. 과천시는 무형문화재 전승을 위해 적극 지원할 생각이다. 나아가 1인당 3000원인 관람료 전액을 관객 이름으로 사회에 기부한다. 전통문화를 계승, 보급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주관하는 줄타기보존회 김 대표를 만나 그의 줄타기 인생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줄타기 입문 계기는. “1976년 한국민속촌이 있는 용인으로 이사를 왔다. 민속촌 전시가옥에서 부모님이 실제 거주하고 근무도 했다. 당시 인간문화재인 줄타기 명인이자 과천 출신인 김영철 선생님이 그곳에서 상설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어려서부터 줄을 타고 놀고, 뛰어내리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줄타기 공연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줄타기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것을 계기로 입문하게 됐다. 그러던 중 큰 사고를 겪었다. 우리나라 줄타기의 맥을 잇던 김영철 선생님이 과로로 쓰러져 거동할 수 없게 됐다. 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 그때부터 휠체어를 탄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아버지는 내게 기초를 가르치고, 선생님을 모셔 오고 하면서 중간 역할을 맡아 하셨다.” -줄타기 훈련 과정은. “균형감이 가장 중요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단계는 균형 잡기다. 처음에는 ‘땅줄’에서 시작한다. 땅바닥에 줄을 놓고 발바닥으로 균형감각을 익힌다. 이때 발바닥이 땅에 닿으면 안 된다. 땅줄에 익숙해지면 줄을 높이 50㎝로 올리고 앞으로 가기, 뒤로 가기, 돌기 등 기본동작을 익힌다. 무난하게 이런 동작을 할 수 있게 되면 균형을 잡는 도구인 부채를 받는다. 긴 장대 무게로 중심을 잡는 서양 줄타기와 달리 동작의 찰나에 부채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여러 과정이 있지만 줄의 탄력을 이용해 하늘을 날며 펼치는 쌍홍제비와 같은 고난도 기술이 백미다. 이런 고난도 기술을 배울 때 줄과 마찰 때문에 엉덩이가 피범벅이 되고 심지어 줄에서 떨어지면 가장 고통스럽고 무섭다. 이 과정을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는 전수생이 많다. 10년간 매년 10명씩 전수생을 뽑았지만 현재 6명만 남았다.” -처음 줄꾼으로 무대에 선 때는. “1979년 서울 덕수궁 무형문화재 합동공연이다. 내 이름을 걸고 한 공연은 아니었지만 처음 단독공연을 했다. 성공적으로 마치고 휠체어를 타고 나를 지켜보던 스승님을 끌어안고 울었다. 김대균이란 이름을 걸고 한 첫 공연은 1982년 한국민속촌에서였다. 데뷔 공연을 했던 그날 석가탄신일이라 숱한 관중이 모였다. 관람객들의 큰 호응 속에 공연을 마치고 선생님에게 큰절을 올렸다.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관람객과 함께 호흡하고 장단을 맞추면 신명이 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울산 해수욕장 공연은 후회되면서도 최고의 무대였다. 천하의 줄광대도 바람 앞에는 어쩔 수 없다. 바람이 잦은 바닷가 공연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고사했다. 해수욕장 관계자가 5월엔 괜찮다며 거듭 요청했다. 실제로 그랬다. 안심하고 공연을 준비했는데 행사 당일 날씨가 돌변했다. 바람이 거셌다. 공연 섭외 담당자가 공연을 말렸다. 하지만 관람객들과의 약속인데 취소할 수 없었다. 아슬아슬한 공연이 시작됐다. 해수욕장에서 줄을 타는 광대의 모습에 관람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공연도 20분을 더 했다. 줄타기 인생 30여년 가운데 첫 공연과 더불어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다.” 글 사진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이화여대, 유관순 열사 이화학당 시절 사진 2점 최초 공개

    이화여대, 유관순 열사 이화학당 시절 사진 2점 최초 공개

    유관순 열사 이화학당 재학 시절 친구들과 찍힌 모습“앨범 내력, 사진 촬영 시기, 인물 생김새로 볼 때 유관순 확실”24일까지 대중에 사진 공개 3·1 운동 당시 일제에 맞서 만세 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1902~1920)의 이화학당 시절 사진 2점이 최초로 공개됐다. 이때까지 알려진 유 열사의 모습 중 가장 앳된 모습이다. 이화여대는 21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이화역사관에서 이때까지 발견되지 않은 유관순 열사의 사진 2점을 선보였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은 유관순 열사가 이화학당에 재학하던 때로 추정된다. 첫 번째 사진은 유관순 열사가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한 직후(1915~1916년), 두 번째 사진은 고등과에 재학하던 시절(1918)로 추정된다. 당시 유 열사의 나이는 15~16세로 알려졌다. 사진 검토 작업에 참여한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사학과)는 “두 사진 모두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사진 속 모습으로 연대를 추측할 수 있다”면서 “앨범의 내력과 사진 촬영 시기, 인물 생김새로 봤을 때 유관순이 확실하다”고 말했다.기존에 공개된 유 열사의 사진은 1920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찍힌 옥중 사진과 1918년 보통과 졸업 당시 찍은 단체사진 등 3장이 전부다. 정혜중 이화역사관장은 “이번에 발견한 사진들은 현재까지 알려진 유 열사 사진 중 가장 앳된 모습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또 정 관장은 “이화학당은 창립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 흰 옷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이런 점을 미루어볼 때 촬영일은 5월 31일 이화학당 창립기념일이나 다른 특별한 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사진은 이화여대가 창립 133주년 및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시 ‘이화의 독립운동가들’을 준비하며 이화역사관에서 소장한 사진첩(‘Ewha in the past’)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총 89권에 달하는 이 사진첩에는 1886년 이화학당 창설 시기부터 1960년대까지의 학교 관련 사진이 정리돼 있다. 1권부터 8권까지는 이화학당 창설 시기부터 1945년 해방 이전 이화여자전문학교 시기의 사진이 있는데, 이 중 유관순 열사의 사진은 1번과 4번 사진첩에서 발견됐다. 유관순 열사는 1915~1916년경 이화학당에 편입해 1918년 이화학당 보통과를 졸업했고, 1918년 4월 고등과 1학년에 진학해 1919년까지 학교를 다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헌병대에게 체포됐고, 1920년 9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영양실조와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했다. 이화역사관은 이번에 발견된 사진 원본을 오늘부터 이달 24일까지 4일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화보] 김하늘, 범접할 수 없는 남다른 청바지 핏 ‘시선집중’

    [화보] 김하늘, 범접할 수 없는 남다른 청바지 핏 ‘시선집중’

    배우 김하늘의 화보 비하인드 컷이 공개돼 화제다. 20일 공개된 화보 비하인드컷을 통해 김하늘은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내추럴한 모습으로 남다른 름다움을 발산했다. 사진 속 김하늘은 우아한 미소로 카메라와 눈을 맞추며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가 하면, 밝고 생기 넘치는 에너지를 보여준다. 흰 셔츠와 청바지의 심플한 스타일링만으로도 돋보이는 세련미를 과시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편, 김하늘은 오는 27일 첫 방송을 앞둔 JTBC 새 월화극 ‘바람이 분다’에서 이별 끝에 다시 사랑과 마주하게 되는 수진 역을 맡아 섬세한 표현력과 한층 깊어진 감정연기로 멜로 연기의 진수를 선보일 예정이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독일 ‘석궁 사망 사건’ 사망자들 “중세시대 마니아들로 추정”

    독일 ‘석궁 사망 사건’ 사망자들 “중세시대 마니아들로 추정”

    지난 11일 발생한 독일 석궁 사망 사건과 관련해 수사당국이 사실상 공동자살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dpa통신은 14일(현지시간) 독일 바이에른주 파사우의 한 호텔에서 발생한 3명의 남녀 사망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관이 사망자 두 명의 유언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수사당국은 부검 결과 사망자 간 서로 다투거나 제 3자가 개입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으며 30세 여성 파리나 C가 53세 남성 톨스텐 W와 33세 여성 커스틴 E를 먼저 살해한 뒤 자신도 석궁으로 자살했을 가능성을 보고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발견 당시 E와 W는 침대 위에서 마주 보고 손을 잡고 있었으며 가슴과 머리에 화살을 맞은 채였다. C는 목에 화살이 박힌 채로 같은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경찰은 청부 살인의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간지 빌트는 파사우의 사망자들이 중세 시대 기사와 무기, 연금술 등의 마니아일 수 있다고 전했다. 숨진 남성은 지난 5개월간 중세시대 칼과 도끼, 칼, 옷 등을 판매하는 가게인 ‘밀리테스 컨덕티우스’를 운영했으며, 이 가게에서는 밧줄에 묶인 채 마치 피를 흘린 듯 빨간색 페인트가 칠해진 마네킹이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해당 가게는 검투 레슨 장소를 제공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같은 호텔의 투숙객은 남성은 기다란 흰 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며 두 여성은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며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회상했다. 지난 13일 E의 집에서 두 명의 추가 사망자가 발견됨에 따라 독일 사회는 더욱 충격에 빠졌다. 파사우의 호텔에서 650㎞ 떨어진 니더작센주 비팅겐에 있는 C의 집에서 발견된 두 여성은 각각 19세, 35세로 알려졌으며 C의 파트너인 것으로 추정된다. 수사당국은 두 사람의 사망 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앞서 발견된 세 사람처럼 화살을 맞고 사망한 것은 아니라고 BBC를 통해 전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文대통령 인기 여전하네…민주당 ‘스노볼’ 판매 29분 만에 매진

    文대통령 인기 여전하네…민주당 ‘스노볼’ 판매 29분 만에 매진

    더불어민주당이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3000개 한정 판매한 ‘스노볼’이 13일 판매 시작 29분 만에 매진됐다. 민주당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민주당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된 스노볼은 판매 시작 동시에 접속자가 몰리면서 한때 서버가 다운됐고 민주당 이름 자체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등 주목받았다. 스노볼은 투명한 구(球) 안에 액체를 채우고 눈같이 흰 가루를 넣어 흔들면 가운데 놓인 미니어처 위로 눈이 내리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소품이다. 민주당이 청와대와 협의해 제작한 탁상용 스노볼은 10㎝(4만 3000원)와 8㎝(3만원) 크기의 2종이다. 10㎝ 스노볼은 청와대를 배경으로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반려동물이 자리하고 있고 관저에서 집무실로 첫 출근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8㎝ 스노볼은 문 대통령을 상징하는 ‘달’을 배경으로 대통령 취임 당시 선서 장면을 재현했다. 당원 한정판매였기 때문에 이를 구입하기 위해 최근 민주당에 가입한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원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문 대통령 기념품을 출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내 결집력을 위해 ‘이니(문 대통령의 애칭) 굿즈’를 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노트르담 지붕에 조명탑? 불꽃? 온실?...프랑스인은 불쾌

    노트르담 지붕에 조명탑? 불꽃? 온실?...프랑스인은 불쾌

    불꽃에 온실, 조명탑 등 다양한 건축안 나와…프랑스인 55% “옛날 모습이 좋다”지난달 15일 화재로 무너져 내린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첨탑 재건과 관련해 창의적인 설계 방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가 지난달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 재건 설계를 국제 현상공모에 부치겠다고 밝히면서 첨탑 자체를 다른 디자인으로 세워야 하는지 묻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데 따른 것이다.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디자인전문매체 디진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세계 각지의 건축가들이 제안한 첨탑 재건 구상안을 소개했다. 프랑스의 차세대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마티외 르아뇌르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불길이 타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300피트(약 91m) 높이의 ‘불꽃’이라는 제목의 이미지를 올린 뒤 ‘영원한 불꽃’이라고 명명했다. 탄소섬유 재질의 이 탑을 금빛으로 도금해 화재가 대성당 지붕을 휩쓸던 모습을 형상화하겠다는 아이디어다.르아뇌르는 NYT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19세기에 만들어졌던 첨탑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강조하려 이런 도발적인 아이디어를 냈지만 그 뒤 이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됐다”면서 “불꽃은 성경에도 등장하는 강력한 상징 아니냐”고 말했다. 슬로바키아 디자인회사 비즘 아틀리의 건축가 미칼 코박은 ‘조명탑’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첨탑이 있던 자리에 하늘로 치솟은 조명탑을 세우고, 야간에 흰 빛줄기를 하늘로 쏘아 올리자는 제안이다. 그는 “이는 잃어버린 영혼을 위한 등대”가 될 것이라며 “첨탑을 통해 하늘에 닿으려는 소망을 표출했던 중세 고딕 건축가들의 목표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브라질 건축가인 알렉상드르 판토치는 대성당의 지붕과 첨탑을 모두 종교적 색채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재건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벨기에 출신 건축가 뱅상 칼보는 성당 지붕을 특수 크리스털 유리로 바꾸는 구상안을 발표했다. 크리스털 유리로 첨탑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확보하고 빛을 흡수해 얻은 에너지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러시아 모스크바 건축학교에서 강의하는 알렉스 네로브냐는 고딕 양식 첨탑을 다시 세우고 그 주변을 다이아몬드 형태의 지붕으로 둘러싸는 아이디어를 냈다. 파리 건축사무소 스튜디오 NAB는 성당 옥상을 온실로 바꾸고 화재에서 살아남은 18만 마리의 벌들을 수용할 양봉장을 설계하는 방안을 발표했다.필리프 총리는 지난달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 재건 설계를 국제 현상공모에 부치겠다고 밝히면서 첨탑 자체를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어 세워야 하는지 묻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지 일간지 르피가로가 지난 9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프랑스 국민 55%는 첨탑을 화재 이전의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고 답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울산 태화강 중백로 새끼 3마리 부화

    울산 태화강 중백로 새끼 3마리 부화

    울산 태화강 철새공원에 둥지를 튼 중백로가 새끼 3마리를 낳았다. 울산시는 태화강 철새공원에 설치한 철새관찰용 CCTV로 중백로 새끼 3마리가 부화하는 모습을 포착했다고 10일 밝혔다. 시에 따르면 철새공원 대나무숲 꼭대기 중백로 둥지에서 지난달 15일 알 3개가 관찰됐다. 암수 중백로가 교대로 알을 품어 지난 5일 새끼 2마리를 부화한 데 이어 8일 나머지 1마리까지 부화했다. 부화한 지 얼마 안 된 새끼는 온몸에 흰 솜털이 빽빽하게 나 있는 상태다. 중백로는 황새목 백로과로 우리나라 대표 여름 철새다. 4월 하순에서 8월 상순까지 3∼5개 알을 낳는다. 알을 품는 기간은 25일가량이며, 새끼가 부화하면 30∼42일간 기르다가 둥지를 떠난다. 태화강 철새공원은 매년 3월 중백로를 포함해 쇠백로, 황로, 중대백로, 왜가리, 해오라기, 흰날개해오라기 등 7종 백로와 철새 8000여 마리가 찾아와 둥지를 틀고 번식하는 철새도래지다. 여름 철새는 10월이 되면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로 날아간다. 울산시 관계자는 “태화강 철새공원이 안전한 서식지와 충분한 먹이를 제공하는 등 철새도래지로써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새끼 부화 장면으로 증명됐다”고 밝혔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최민환♥ 율희, 23살 아기엄마 미모 이 정도 ‘걸그룹은 다르네’

    최민환♥ 율희, 23살 아기엄마 미모 이 정도 ‘걸그룹은 다르네’

    걸그룹 라붐 출신 율희가 미모를 뽐냈다. 10일 율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율희가 흰 티셔츠를 입고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율희는 새하얀 피부와 상큼한 미모를 자랑하고 있다. 율희는 FT아일랜드 최민환과 결혼해 슬하에 아들 재율 군을 두고 있다. 한편 두 사람이 출연하는 KBS2 ‘살림남’에선 지난 8일 최민환이 율희의 아버지가 운영 중인 택배회사 야유회에 함께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최민환의 등장에 직원들은 환호했고, 자연히 율희 아버지의 어깨는 한껏 치솟았다. 사진 = 율희 인스타그램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천변풍경·성북동 비둘기… ‘저항의 아지트’에 깃든 예향

    천변풍경·성북동 비둘기… ‘저항의 아지트’에 깃든 예향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회 성북동 편이 5월의 첫 주말인 지난 4일 성북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작곡가 채동선이 살던 집~시인 김광섭 집터~시인 조지훈 집터를 차례로 돌고 돌아 석가탄신일을 일주일 앞두고 화려한 연등의 숲을 이루는 길상사에서 시인 백석과 자야의 연가를 떠올렸다. 이어 소설가 이태준의 수연산방~시인 한용운의 심우장~소설가 박태원 집터로 이어지는 코스를 2시간여 동안 더듬었다. 송재민 해설사가 서울미래유산 투어에 첫선을 보였다.성북동은 근현대 문학과 예술의 고향 같은 동네다. 수많은 문인, 예술가가 이곳에 깃들였다. 시인 한용운·김일엽·김기진·김광섭·조지훈·백석의 집터와 사랑이 남았고 소설가 염상섭·이태준·박태원·조정래가 살면서 주옥같은 작품을 창작했다. 작곡가 채동선·윤이상과 화가 김용준·김기창·김환기·박래현·변종하·김향안의 예향이 진동한다. 오세창, 이홍근, 전형필, 최순우, 임종국의 생애가 남았다. 어쩌다 이다지 지독한 문예의 혼이 성북동에 깃들었을까.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북쪽 큰 문 숙정문과 동쪽 작은 문 혜화문 구간 밖 첫 동네 성북동은 누에치기의 풍요를 기원하는 선잠단이 있는 엄숙한 공간으로 역사에 등장한다. 선잠단은 종묘와 사직, 선농단과 더불어 왕실의 주요 제례공간이다. 태종 때 단을 쌓았고, 왕비들이 찾아와서 선잠제향을 지내던 곳이다. 선잠단 옛 터는 복원 중이고, 선잠박물관이 이를 기리고 있다.성북동은 영조 때 도성을 지키는 어영청 소속 군사들에게 논과 밭을 나눠준 북둔(북쪽 진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숲이 우거지고 계곡이 깊어서 농사를 짓기 어려워지자 주민들에게 생포목을 삶아 표백하는 일과 메주를 쑤는 일을 줘 생계를 도왔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있는 ‘성북동포백훈조계완문절목’이라는 책자에 포백(베나 비단)과 훈조(메주)를 관아에 바치던 계(조직)의 운영방식과 노동조건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오늘날 마전터와 ‘메주소리가 북적북적 한다’고 해 붙여진 북정마을 지명의 기원이다. 성안 사람들에게 내다 팔 목적으로 복숭아와 자두를 심었는데 18세기 후반 ‘북둔도화’(北屯桃花)라는 말이 회자할 정도로 도화가 만발, 시인문객과 상춘객의 발걸음이 들끓었다. 이때부터 조선 3대 정원 중 하나로 꼽히는 성락원(城樂園) 같은 별서가 들어섰다. 성락원이라는 이름은 ‘도성의 풍광을 즐기는 동산’이라는 뜻이다. 대개의 별서가 성 안에서 성 밖을 내다보지만 성락원은 거꾸로 성 밖에서 성 안을 들여다보는 특이한 지역성을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가 절정을 이룬 1930년대 성북동에 근대 문예의 새벽이 활짝 열렸다. 작곡가 채동선이 1931년 가장 먼저 성북동에 자리잡았고, 만해 한용운이 1933년 심우장에 거주했으며, 상허 이태준이 수연산방을 신축하면서 문단의 기린아들로 결성된 구인회의 회동이 잦았다. 성북동에 살던 오성 장승업의 맥을 이은 문인화가 김용준이 노시산방(옛 수향산방, 현 수월암)으로 이사 온 건 1934년의 일이다. 음악가-시인-소설가-화가의 순으로 성북동 예술가마을에 입주한 셈이다. 성북동을 찾은 문인, 예술가들의 면면을 뜯어보면 민족주의와 저항성이 유독 강한 게 특징이다. 도성을 등진 성북동의 지형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예술가들이 도성을 떠나 도성 밖으로 피신한 격이다. 만해의 심우장은 아예 도성을 등지고 집을 지었는데, 왜놈의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마치 빼앗긴 나라의 수도 밖으로 망명한 사람들 같았다.성북동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3·1만세 당시 한용운은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을 썼고, 오세창은 독립선언서 인쇄·배포의 총책임자였다. 성락원을 별궁으로 쓴 의친왕 이강도 끝까지 항일의지를 버리지 않은 왕조의 자존심이었다. 임시정부가 이강을 중국으로 망명시키려고 여러 차례 시도할 정도였다. 일본 게이오대학 유학생 염상섭은 비록 불발에 그쳤지만 오사카 독립선언대회의 독립선언서 작성자였다. 1924년 5월 4일자 시대일보에는 ‘성북동에 둔 의열단 근거’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릴 정도로 ‘불령선인’(不逞鮮人)들이 집결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인공 이길용 동아일보 기자도 한용운, 전형필, 이태준과 교류한 뼛속까지 성북사람이었다. 만해가 만년을 보낸 심우장은 ‘조선 유일의 조선 땅’이라고 일컬어졌다. 성북동은 저항의 아지트였다. 이 중 오세창-전형필-최순우는 문화보국의 기치 아래 성북동에 모인 삼총사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미술관 간송미술관(보화각, 북단장)을 선잠단이 있던 북단에 세워 일본과 외국으로 팔려 나가는 우리 문화재 5000여점을 지켰다. 국립박물관에 버금가는 소장목록을 자랑한다. 간송미술관 길 건너 간송의 스승 오세창 집터와 간송의 평생 동지였던 미술사학자 최순우의 옛집이 지척이었다. 오세창의 소장품을 보관했고 사후 부인이 살았던 성북동 128번지 옛집은 허물어 사라졌지만, 바로 옆 최순우 옛집은 2002년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 제1호로 보존되고 있다. 민족문학의 주류를 형성한 ‘구인회’와 문예지 ‘문장’ 그리고 청록파가 성북동에서 탄생했다. 저항의식을 품은 문화예술인들이 대거 성북동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성북동이 식민지문학을 벗어나 한국적인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대안 문화공간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1933년 결성된 구인회는 이태준을 좌장으로 정지용, 이효석, 김기림, 김유정, 이상, 박태원 등 이름 그대로 아홉 명의 예술가가 이태준의 집 수연산방을 근거지로 활동한 순수문학 단체였다. 구인회 주도로 발간된 문장을 통해 청록파’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이 등단했는데 해방 후 조지훈의 성북동 집 방우산장에 모여 발간한 시집 ‘청록집’에서 딴 이름이다. 조지훈은 수필 ‘방우산장기’에서 자신이 기거했던 모든 집을 방우산장이라고 지칭하면서 “마음속으로 소를 한 마리 키우면 직접 키우지 않아도 소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는 뜻에서 붙였다고 설명했다. 조정래는 덕수교회 옆에 살면서 장편 대하소설 ‘한강’을 썼다. 우리나라의 선구적 작곡가 중 한 명인 채동선은 성북동에서 살면서 모두 12편의 가곡을 작곡했는데 그중 8편이 정지용의 시를 가사로 사용했다. 가곡 ‘고향’은 당대 지식인들의 최고 인기곡이었다. 월북한 정지용의 고향이 금지곡이 되면서 채동선의 곡은 이은상의 ‘그리워’, 박화목의 ‘망향’이라는 다른 가사가 붙여져 불렸다. 세계적인 음악가의 반열에 오른 윤이상도 1953년부터 4년여 조지훈의 집 개울 건너편에 살았다. 조지훈의 시 ‘고풍의상’과 박목월의 ‘나그네’에 곡을 붙였다. 김기창과 김환기, 국내 동양화와 서양화의 양대 거두 모두 성북동 사람이었다. 1913년 동년배인 두 사람은 나란히 성북동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운보 김기창은 동반자 우향 박래현과 함께 살던 집 이름을 운보의 ‘운’과 우향의 ‘우’를 각각 따서 지었다. 운우미술관이다. 한국 추상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수화 김환기가 이상의 전 부인 변동림(김향안으로 개명)과 살림을 차린 곳이 수향산방이다. 수화의 ‘수’와 향안의 ‘향’을 따 수향산방이라고 불렀다. 본래 문인화가 김용준의 집이었는데 늙은 감나무가 있다고 해 이태준이 노시산방이라고 명명했던 바로 그곳이다. 집터는 흔적도 없고 수월암으로 변했다. 또 한 명의 서양화단의 거목 변종하도 말년을 성북동에서 보냈다. 그의 작업실은 석은 변종하기념미술관이 됐다. 김환기는 친구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을 인용한 동명의 그림을 남겼다. ‘성북동 비둘기’를 발표한 시인 김광섭은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라고 터전을 잃은 성북동 비둘기의 상실을 노래했다. 이 작품으로 성북동을 대표하게 된 시인이 1961년부터 1967년까지 살았던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집은 빌라로 변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남긴 시인 백석은 연인 자야(김영한)와의 사랑을 맺지 못했고 성북동과도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러나 자야가 ‘무소유’의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 길상사를 통해 영겁의 인연과 불멸의 사랑을 이어 갔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다음 일정: 제3회 창신동 ■ 일시 및 집결장소: 5월 11일(토) 오전 10시 동대문역 7번 출구 앞 ■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동영상] “빈 플래카드 들고 서 있어도 체포, 북한처럼 되면 안되는데“

    [동영상] “빈 플래카드 들고 서 있어도 체포, 북한처럼 되면 안되는데“

    “우리가 북한처럼 되기 전에 이런 일을 멈추고 싶었다. 시위에 가담하지도 않았다. 난 그들이 경찰서로 날 끌고 갈지 알아보고 싶었다.” 카자흐스탄의 비디오 블로거 아슬란 사굿디노프(24)는 경찰이 몰려오기 전에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메이데이 시위를 주도했던 이 젊은 활동가는 6일 고향인 서부 오랄 시의 아바이 광장에 선 채로 플래카드를 들어 보였다. 현지 뉴스매체인 우랄스카야 네델야 제작진이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플래카드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았으며 그는 어떤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현지 경찰은 어쩔줄 몰라했다. 촬영 영상을 압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시 치안을 책임지는 예르볼 쿠셰코프는 누구도 체포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누군가와 휴대전화로 상의하더니 달라졌다. 결국 교통순찰차에 태워 연행했다. 사굿디노프가 왜 구금되는지 묻자 경찰은 “나중에 따져볼 것”이라고만 말했다. 그는 경찰서에서 메이데이 시위 때 일을 심문 받고 몇 시간 뒤 풀려났다. 7일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은 지난 3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물러난 뒤에도 가두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물러난 독재자의 이름을 따 수도 이름을 바꾸겠다고 결정한 것이 시위에 불을 댕겼다. 국민들은 전직 대통령과 그 가족의 영향력이 온존해 다음달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질지 우려하고 있다. 경찰과 법원은 시위를 해산시키는 데 열중하고 있으며 징역형으로 엄벌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진실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는 슬로건 아래 마라톤 대회를 연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당국의 단속을 빠져나가면서 항의를 계속하고 있다. 장치평론가 도심 삿파예프는 페이스북에다 “정치적 조크이다. 흰 종이와 흰 옷도 이제 곧 무기로 분류될 것이다. 하얀 종이를 사더라도 허가를 얻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페이스북 이용자는 “다음번에는 화장실 롤휴지를 들고 거리로 나서기만 해도 체포될 것이라고 농을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웃 키르기스스탄뿐만 아니라 러시아, 벨라루스의 독립 미디어들도 이 소식을 관심있게 다뤘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우리 함께 사는 이 세상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우리 함께 사는 이 세상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메이데이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잔디밭에는 색색 끈을 매단 장대가 세워져 있다. 아이들이 끈을 잡고 장대 주위를 돌며 춤을 춘다. 보호자로 따라 나온 어른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린이들이다. 손잡고 원을 그리며 뛰어노는 아이들, 깃발, 북, 훌라후프를 들고 있는 아이들, 모두 흥겨운 분위기다. 빨강, 파랑, 흰옷이 초록색 잔디밭과 어우러져 상큼하다. 화가는 수채 물감을 사용해 빠르고 가볍게 붓질을 했다. 바탕을 완전히 메우지 않고 흰 점이 보이게 내버려 두어 빛이 하얗게 부서지는 것 같은 효과를 냈다. 메이데이는 고대 농경 사회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례에서 비롯됐다. 북부 유럽에서는 이 축제 때 메이폴을 세우는 풍습이 있었다. 게르만족은 마을 공터에 장대를 세우거나 생나무를 이용해 꽃과 잎으로 장식하고 그 주위를 돌며 풍작을 기원하는 춤을 추었다. 중세 때 북방 민족이 영국에 침입하면서 메이폴은 영국으로 건너갔다. 17세기에 영국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하면서 메이폴은 다시 대서양을 건넜다. 하지만 청교도들은 이교도적 흔적이 있는 메이데이를 썩 즐기진 않았다. 19세기 말 희미해져 가던 메이데이가 되살아났다. 19세기 후반 사회·정치적 세력으로 떠오른 노동자들은 집단행동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을 얻어 냈다. 여가 생활과 함께 부활한 메이데이는 더이상 풍작을 비는 의식이 아니라 도시민들이 공원, 교회, 학교 운동장에 모여 즐기는 행사가 됐다. 노동자들이 여가를 갖게 된 것은 인류 역사에서 획기적인 일이다. 19세기 중반 산업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에 시달렸다. 1870년대에 노동자들이 조합을 결성하고 조직적 운동에 나서게 됐을 때 세운 목표는 임금 인상이 아니라 노동시간의 단축이었다. 1886년 미국의 노동자들은 5월 1일을 기해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총파업에 나섰고, 이로부터 메이데이에 노동절의 의미가 추가됐다. 20세기 초에 여러 화가들은 메이데이를 소재로 삼았다. 이 그림도 축제를 즐기는 광경인 동시에 노동절을 기념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미술평론가
  • 文 미니어처 넣은 ‘스노볼’…與, 취임 2주년 맞아 첫 출시

    文 미니어처 넣은 ‘스노볼’…與, 취임 2주년 맞아 첫 출시

    더불어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 미니어처가 들어가 있는 ‘스노볼’을 민주당 당원들을 상대로 한정 판매한다고 7일 밝혔다. 여당이 대통령 관련 굿즈(상품)를 판매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스노볼은 투명한 구(球) 안에 액체를 채우고 눈같이 흰 가루를 넣어 흔들면 가운데 놓인 미니어처 위로 눈이 내리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소품이다. 민주당이 청와대와 협의해 제작한 탁상용 스노볼은 10㎝(4만 3000원)와 8㎝(3만원) 크기의 2종이다. 10㎝ 스노볼은 청와대를 배경으로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반려동물이 자리하고 있고 관저에서 집무실로 첫 출근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또 8㎝ 스노볼은 문 대통령의 성(姓)을 상징하는 ‘달’(moon)을 배경으로 대통령 취임 당시 선서 장면을 재현했다. 스노볼은 3000개 한정 판매로 오는 13일부터 15일까지 민주당 공식 홈페이지에서 구입할 수 있다. 단 공직선거법 제90조상 민주당 당원만 구입 가능하다. 민주당이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을 맞아 당원을 상대로 롱패딩 등 기념품을 판매한 적이 있지만 문 대통령 기념품을 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아내의 맛’ 홍현희♥제이쓴, 자연인 도전 “힐링→중노동”

    ‘아내의 맛’ 홍현희♥제이쓴, 자연인 도전 “힐링→중노동”

    홍현희♥제이쓴 부부가 지리산을 찾아 ‘자연인’으로 변신한다. 7일 방송되는 TV조선 ‘아내의 맛’ 46회에서 홍현희♥제이쓴 부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으로 적신호가 켜진 건강 회복을 위해, 자연으로 들어간다. ‘희쓴 부부’는 대세 부부답게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운동은 고사하고 인스턴트로 끼니를 해치우는 일상을 보냈던 상황. 급기야 건강 전문 ‘프로 자연러’ 개그맨 이승윤의 추천을 받아 지리산 산골 행을 감행했다. 이후 ‘희쓴 부부’는 깊은 산속에 위치한 자연인 하우스를 전격 방문, 꼬불꼬불한 장발과 흰 턱수염으로 남다른 포스를 풍기는 자연인과 대면했다. 그리고 범상치 않은 하루가 예고된 가운데, 자연인 체험의 첫 시작으로 지리산 자연인의 집 구경에 나섰던 것. 무엇보다 입구부터 높이 쌓여있는 생소한 약재와 값비싼 담금주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희쓴 부부’는 시중에서는 쉽게 구하기 힘든, 그야말로 자연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템’ 발견에 질문을 쏟아내며 놀라움을 내비쳤다. 본격적인 자연에서의 첫 끼를 위해 자연인을 따라 산행을 떠난 홍현희♥제이쓴 부부는 평소 먹기 힘든 찔레, 씀바귀 등 야생 산나물을 날 것으로 맛보는 색다른 시식회를 가졌다. 그리고 청정 자연 속에서 자란 산나물 채취는 물론, 직접 뜯어온 산나물을 씻고 불을 피우는 등 평생 해본 적 없는 자연인 라이프를 경험했다. 그러나 끝내 희쓴 부부는 언뜻 보면 ‘힐링’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중노동’에 가까운 자급자족의 자연인 삶에 녹다운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결국 고생한 희쓴 부부를 위해 자연인은 요리에 나섰고, 채취한 산나물 중심의 비빔밥과 제철 두릅 전으로 무심하게 뚝딱 차려준 자연 밥상에 부부는 감동했다. 희쓴 부부를 빠져들게 만든, 건강과 맛을 챙긴 제대로 된 ‘자연인의 자연밥상’은 무엇일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제작진은 “매번 이색적인 도전에 나서 ‘아내의 맛’을 보는 재미를 안겨주고 있는 홍현희♥제이쓴 부부가 이번엔 지리산에서 찾은 ‘자연의 맛’을 선보인다”며 “달라진 홍현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리얼 채식 먹방을 기대해달라”고 전했다. 7일 화요일 밤 10시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중국 쇼핑몰서 태권도장 vs 무술학원 난투극…승자는?

    중국 쇼핑몰서 태권도장 vs 무술학원 난투극…승자는?

    중국의 대형 쇼핑몰 한복판에서 태권도장 직원들과 다른 무술도장 직원들이 집단 난투극을 벌여 공안이 출동했다. 4일 중국 장쑤성 공안에 따르면 지난 2일 창수시에 있는 쇼핑몰 완다광창에서 태권도장과 다른 무술도장 직원들이 서로 뒤엉켜 싸우는 난투극이 벌어졌다. 공안은 이 쇼핑몰에서 영업 중인 태권도장과 무술도장 직원들이 홍보 광고물을 뿌리는 과정에서 말다툼이 벌어진 끝에 난투극이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공안은 현장에서 15명을 붙잡아 ‘공공질서 소란죄’로 형사구류 조치했다. 주 상하이총영사관 관계자는 “현지 공안 측에 직접 문의한 결과 형사구류된 이들 중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일부 누리꾼들이 싸움 장면을 촬영해 웨이보에 올리면서 이번 난투극은 중국 온라인 상에서도 화제가 됐다. 특히 이 동영상들에는 흰 도복을 입은 태권도장 직원들이 난투극 상대에게 맞고 바닥에 쓰러진 장면이 나와 중국 누리꾼들 사이에서 태권도가 실전에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무술이라는 비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시냇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쓴 시/신위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시냇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쓴 시/신위

    시냇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쓴 시 / 신위 수레 대신 천천히 걸어 꽃을 찾아 나서네 황씨네 넷째 딸 집에 꽃이 막 피어나네 시 쓰겠노라 종이와 붓 찾지 말게 시냇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써 나가리니 尋花緩步當經車 黃四孃家花發初 覓句不須呼紙筆 溪邊怡好細沙書 - 추사의 절친 자하 신위의 시입니다. 꽃 핀 세상 이곳저곳을 걷다 문득 마주한 모래밭 위에 손가락으로 한 구절의 시를 쓸 수 있음이 얼마나 따뜻하고 우아한 일인지요. 남쪽 바닷가 마을에 꽃들 지천으로 피어납니다. 마음만 먹으면 손가락으로 시 한 구절 남길 모래밭 찾을 수 있습니다. 마음 어두운 당신, 오월엔 당신의 영혼을 위로할 작은 모래밭 하나를 찾아 길 떠나는 것 어떻겠는지요. 꽃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 오월의 기쁨 아니겠는지요. 산밭에 바람 불고 흰 보라 무꽃들 나비 부르는 시간에 씁니다. 곽재구 시인
  • 사슴은 이렇게 싸웁니다

    사슴은 이렇게 싸웁니다

    사슴 두 마리가 뒷다리로 서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캐나다 앨버타의 한 공원에서 촬영된 영상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3일 소개했다. 영상에는 흰꼬리사슴 두 마리가 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담겼다. 사슴들은 뒷다리로 선 채 앞다리를 서로의 얼굴과 몸을 향해 마구 휘두른다. 앞다리를 휘두르는 모습이 마치 권투하는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퍽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상대에게 강한 펀치를 날리는 두 사슴. 결국 얼굴에 정통으로 한 방을 맞은 사슴이 한발 물러난 후 열심히 도망친다. 영상을 촬영한 누리꾼은 사슴들 중 그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흰꼬리사슴은 미국 전역의 삼림 지역과 캐나다,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그리고 페루와 볼리비아와 같은 남아메리카에서 발견되는 중형 크기의 사슴이다. 궁둥이와 넓적다리의 안쪽, 꼬리의 밑쪽의 흰색이 특징이다. 사진·영상=FatalImpactOutdoors/유튜브 영상부 seoultv@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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