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흰머리
    2026-01-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15
  • [현장 행정] 詩 읽는 백발 여중생, 맘 읽은 ‘교장 구청장’

    [현장 행정] 詩 읽는 백발 여중생, 맘 읽은 ‘교장 구청장’

    문맹·졸업 못 한 어르신들 93명 ‘열공’ 교육 과정 마치면 초·중등 학력 인정 “만학의 꿈 이뤄줘 고마워” 눈물바다“70살 흰머리 여중생. 설레는 이 마음을 누가 알까요.” 서울 영등포 늘푸름학교 학생 이문선 할머니가 자작시를 읽기 시작하자 옆자리에 서 있던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이 눈시울을 붉혔다. A4용지 2장 분량의 시를 다 읽은 이 할머니는 “배우지 못하고 살아오면서 학교를 꼭 한 번은 가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며 “제 평생 꿈을 이뤄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채 구청장은 이 할머니의 발언이 끝나자 “취임하고 나서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지난 1일 영등포구청 별관 평생학습센터에서는 특별한 시낭송 대회가 열렸다. 영등포구가 운영하는 늘푸름학교 학생 50여명이 참가한 시낭송 대회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 교실을 가득 메웠다. 글을 모르거나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구민들이 수업을 듣는 늘푸름학교에는 초등학력 64명, 중등학력 29명 등 모두 93명이 재학 중이다. 채 구청장이 늘푸름학교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채 구청장은 지난달 10~11일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갈 때 일일이 인사하며 배웅했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이날 교실을 찾은 채 구청장을 교장선생님이라 부르며 반겼다. 이동숙 할머니는 “늦깎이 학생이지만 초등과정을 다 배우고 나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며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순 없지만 저처럼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 이런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채 구청장은 “오늘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를 들었다”며 “어머님, 아버님의 삶이 녹아 있는 내용이라 더 가슴에 와닿았다”고 화답했다. 늘푸름학교는 2015년 10월 서울시 최초로 초등학교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문해교육 기관으로 지정됐다. 단순히 한글을 깨우치거나 기초 지식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과정을 모두 마치면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영등포구는 현재 초등과정 1~3단계, 중학과정 1단계를 운영하고 있다. 또 학력이 인정되지는 않지만 중학과정으로 연착륙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인 ‘은빛생각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학교가 생긴 2015년 이후 매년 입학생이 늘어나는 데다 어르신들의 참여도가 높아 내년부터는 중학과정 2단계를 신설할 예정이다. 채 구청장은 “어르신들의 배움은 물론 건강과 복지까지 세세하게 챙기도록 하겠다”며 “늘푸름학교 교육이 재미있고 알차게 이뤄질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붓 들 수 있을 때까지 그려야죠…수묵담채화 기법 후세 남기고파”

    “붓 들 수 있을 때까지 그려야죠…수묵담채화 기법 후세 남기고파”

    “한국화, 특히 수묵화가 오랫동안 침체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수묵을 연구하는 화가들이 공부를 게을리해서 노력하지 않은 탓이 크다고 봅니다. 대학에서는 동양화나 한국화 전공 학과가 없어지는 추세입니다. 그래도 나는 우리 고유의 수묵담채화 전통과 기법을 후세에 남기고 싶습니다. 붓을 들 수 있을 때까지 그릴 겁니다.” 길이 57m의 초대작을 그렸다는 오산 홍성모(58) 화백의 화실을 지난 12일 찾았다. 흰머리를 길게 길러 뒤로 묶었고, 빨간색 셔츠와 검정 개량 한복 바지를 입고 나왔다. 악수하며 맞잡은 손에서 작은 굳은살들이 느껴졌다.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그의 화실로 들어서자 안쪽 벽에 걸린 가로 2.75m, 세로 1.7m 크기의 흑백 그림이 반겼다. 무슨 그림인지 묻자 “사자 바위”라고 짧게 답한다. 설명을 듣고 그림을 보니 동그란 눈과 오뚝한 콧날, 수북한 갈기가 엿보이는 게 앞을 내려보는 사자처럼 보였다. 홍 화백은 “적벽강 사자 바위는 채석강과 함께 부안의 명물”이라고 설명해 줬다. 그는 전북 부안 출신이다. 그가 작품 구상을 설명했다. “사자니깐 전반적으로 좀더 거칠게 사납게 표현하려고 합니다. (그림 오른쪽 상단을 가리키며) 빛을 이쪽으로 넣고···.” 이 그림은 부안군의회 포토존에 걸릴 예정이다. 화실의 다른 벽에는 용 비늘 같은 껍질의 소나무와 노란 개나리가 피어난 마을, 살구꽃이 흐드러진 동네 어귀의 그림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길이 57.4m짜리 초대형 그림을 그렸다던데. -계화도에서 줄포만생태공원까지 변산반도 83㎞의 해안 사계절을 담았습니다. 한지에 그린 수묵화로, 길이가 57.4m, 높이가 1.2m입니다. 가로 2.05m짜리 작품 28개를 그려 이었지요. 시작한 지 20개월 만인 지난 6월에 완성했습니다. 그사이 쓰러져 병원에 두 번 실려 갔죠. 지난 7월 부안군에 이 그림 ‘해원부안사계전도’를 기증했습니다. 군청 민원실 1층과 2층 사이 난간 벽에 길게 걸려 있습니다.→이런 초대형 작품을 그리게 된 계기는. -2013년 여름에 위도로 하얀 상사화 스케치를 하러 갔었거든요. 돌아오는 길에 선상에서 변산반도를 바라봤는데 너무 아름다워 이곳을 연작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바다에서 육지 쪽인 채석강을 보면 그야말로 신이 혼자 즐기려고 만든 정원같이 빼어난 절경입니다. 말 그대로 ‘해원’(海苑·바다의 정원)이지요. 이를 그려 기증하겠다고 제안하니 부안군에서 흔쾌히 받아 주었습니다. →부안군이 많이 지원해 줬겠다. -부안군이 곰소항 쪽에 작업실을 마련해 줬습니다. 저는 월~목요일 서울에서 활동하다 금요일 부안에 내려가 일요일까지 작업했습니다. 주말마다 266㎞를 달려 내려갔지요. 해안을 스케치하러 낚싯배를 15번 빌려 타고 나갔지요. 낚싯배 한 번 빌리는 데 30만원, 그건 제 지갑에서 나갔습니다. 겨울엔 줄포만 쪽엔 수심이 얇아 배가 못 들어가니 조개 캐는 아주머니들 태우는 경운기와 트랙터를 얻어 타고 갔지요. 잠은 처음엔 여관방에서 자다가 비용 문제로 찜질방에서 자고···. →작업할 때 가장 큰 애로는. -먹는 것이었습니다. 작업에 열중하다 깜빡 저녁 시간을 놓쳐 밤 8~9시쯤 나가면 식당들이 문을 닫아 먹을 데가 없어요. 또 간장게장이니, 무슨 찌개를 한 그릇 먹으려 해도 1인분은 팔지 않고 2인분 이상만 팔더라고요. 그래서 2인분을 시켜 1인분만 먹고 1인분은 포장해 와서 다음날 먹기도 했습니다. 나중엔 서울에서 출발할 때 도시락을 두 끼 정도 싸 다니기도 했고···. 표구 값만 1000만원 넘게 들었는데, 모두 제 사비로 충당했습니다. →남다르게 깊은 고향 사랑 아닌가. -고교 졸업 후 가출하다시피 고향을 떠났습니다.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태어나 고향에 대한 추억은 아팠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고향이지요. 아름다운 풍광의 고향을 그림으로 남기는 것은 고향에 대한 보은의 마음입니다. 나이가 더 들어 눈이 침침해지고 손이 떨려 작업이 힘들어지기 전에 그림을 남겨 두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게 사진 촬영을 위해 작품을 그리는 포즈를 취해 달라고 하자 직접 붓으로 그림을 그렸다. 붓질 한 번에 산이 솟고, 나무에서 잎이 돋고, 길이 만들어지고, 강이 흘렀다. 그는 작품을 할 때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한다. “스케치를 보고 바로 붓질을 하죠. 그러다가 잘못되면 작품을 고칠 수도 없으니 그대로 종이를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버린 화선지 값만 해도 강남 아파트를 사고도 남을 겁니다.” →심장병 어린이를 많이 도왔다던데. -제가 심장병으로 대학 4학년 때 수업 중에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그때 의사가 ‘수술해도 죽고, 안 해도 죽는다’고 했어요. 동료 학생들이 1000원씩 걷어 모금한 도움으로 심장병 수술을 했고, 그 덕분에 살아났습니다. 그 후 돈이 생기면 단 한 명에게 심장병 수술을 시켜 주자고 결심한 것이 심장병 환자를 돕는 계기가 됐습니다. 1985년부터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까지 13년 동안 어린이 50명에게 심장병뿐만 아니라 언청이 등의 수술을 해 줬습니다. 환자가 있다는 소식만 들리면 바로 찾아 입원시켰습니다. →심장병 어린이를 돕자면 돈이 많이 들었을 텐데. -자랑 같지만 제가 졸업과 동시에 미술대전에서 특선으로 입상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잘나갔죠. 병원비는 그때 작품을 그려 팔고, 크리스마스 카드도 그려서 팔고, 후원금 계좌도 만들고, 그렇게 해서 해마다 병원에 2500만원가량을 한꺼번에 냈습니다. 그런데 IMF가 터지니 그림이 팔리지 않았고, 후원금도 끊겼습니다. 병원에서는 외상 수술비 갚으라고 독촉도 오고···. 그때 병원 외상이 2억원 남짓 했습니다. 금모으기 운동할 때 와이프 몰래 결혼 반지, 아이들 돌 반지까지 모조리 팔아 병원비를 갚는 데 보탰습니다. 그래도 남은 빚은 병원에서 탕감해 줬습니다. 지금은 심장병 수술을 돕는 단체도 많고, 보험도 적용되고 해서 더는 안 합니다. →그림 실력을 타고났나 봐요. -요즘도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하루 최소 2시간씩은 붓을 잡습니다. 대학 다닐 때 서양화를 전공하다가 동양화로 바꿨습니다. 동양화 특히 한국화의 맛과 멋, 선의 묘미를 깨닫는 데 10년이 걸렸습니다. 요즘엔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오른쪽 팔이 아파 들지를 못합니다. 한참 풀어 줘야 움직일 수 있지요. 이것도, 직업병 아닌가요. 하하하. 그의 오른손을 다시 만져 봤다. 가운뎃손가락의 마지막 끝 부분이 한쪽으로 뭉턱 들어갔다. “오랜 시간 붓을 잡고 씨름한 훈장이지요.” 그리고 그 손가락 끝과 손톱은 다른 손가락과는 달리 먹물로 검게 변해 있었다. →강원도 그림을 많이 그렸던데. -IMF 이후 병원 빚을 겨우 갚고 나서, 또 건강이 악화되어 숨어 살려고 강원 영월에 들어갔습니다. 그전에 80년대부터 영월군 청령포를 처음 접했을 때에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기암절벽의 산과 계곡이 전부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그런 풍경에 반해 영월의 폐교에 화실을 마련해 거기서 살았습니다. 할 일이 없으니 정말 그림을 많이 그렸지요. →다음 전시회는 언제 여나. -내년에 열한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림에 스토리텔링을 하는, 약간 색다른 전시를 할까 합니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정자나 경치, 나무 등에 얽힌 역사와 야사 등도 함께 적어서 그림 아래에 붙여 전시할 계획입니다. 요새 시간이 날 때마다 부안에 내려가 이야기를 채록하고 있습니다. 한 100점 정도 전시할 생각인데, 지금 70점 정도 완성했습니다. 글 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홍성모는 누구 - 1961년 전북 부안 출생, 원광대 사범대 미술교육학과 졸업, 동국대 예술대학원 미술학과 졸업(석사), 개인전 10차례,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성균관대 겸임교수 역임, 동국대·원광대 강사 역임 ●작품의 대표적 소장처 - 한국은행 청주지점, 외교부, 국립현대미술관, 가천대 길병원, 싱가포르 대사관, 부안군청
  • [이광식의 천문학+] 세상에 우주를 보여준 ‘망원경 성자’ 존 돕슨 이야기

    [이광식의 천문학+] 세상에 우주를 보여준 ‘망원경 성자’ 존 돕슨 이야기

    “이리 와서 망원경으로 토성 고리를 한번 보세요.” “목성 줄무늬와 4대 위성 한번 보실래요?” 밤의 길거리 한 모퉁이에서 이런 말로 호객하는 사람을 만나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더욱이 입성은 허름하고 흰머리를 뒤통수에다 질끈 맨 노인이 그런다면? 그 옆에 서 있는 사람 키만한 망원경 역시 주인을 닮아선지 값싼 페인트칠이 여기저기 벗겨지고 긁힌 자국이 뒤덮고 있어 영 볼품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원경으로 우주를 보여주겠다는 유혹을 쉽게 뿌리치기 어렵다. 하나 둘 망원경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토성 고리와 목성 줄무늬를 보며 감탄하는 사람의 귀에 노인은 우주에 관한 지식을 열심히 속삭인다 . 미국 샌프란시스코 거리와 국립공원들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열정적으로 우주를 보여주고 있는 이 노인이 바로 돕슨식 망원경의 발명자 존 돕슨이다. 그는 평생을 자신이 디자인한 돕슨식 망원경 한 대를 가지고 떠돌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우주를 보여주는 일을 자신의 과업으로 삼았다. ​ 돕소니언이라고 불리는 이 망원경은 아이작 뉴턴이 발명한 반사 망원경을 더욱 단순한 설계방식으로 개량한 것으로, 경통 아래쪽에는 별빛을 모으는 오목거울이 앉아 있고, 위쪽에는 그 빛을 측면의 접안렌즈로 보내는 작은 평면거울이 비스듬히 달려 있다. 이 망원경의 장점은 아주 값싸고 쉽게 만들 수 있어 일반 소형 반사 망원경을 살 돈이면 대형 돕슨식 망원경을 만들거나 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존 돕슨은 이 망원경을 특허등록하지 않았다. 누구나 쉽게 만들어 우주를 보게 하기 위해서였다. 망원경에 관한 그의 소신은 “많은 사람이 보는 망원경이 가장 좋은 망원경이다”라고 일찍이 밝힌 바 있었다. 값싸고 기동성이 있는 이 망원경의 등장은 천체관측을 돕소니언 이전과 이후를 가를 만큼 획기적이었다. 이 디자인은 합판, 호마이카, PVC 옷장 플랜지, 골판지 건축 튜브, 재활용 현창 유리, 카펫과 같은 일반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손쉽게 제작할 수 있는 뉴턴식 망원경이다. 이 유형의 단순한 경위대 마운트는 일반적으로 아마추어 천문계에서 ‘돕소니언 마운트’라고도 한다. 이로써 전에 없는 대구경 망원경이 출현하게 되어 천체관측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돕소니언은 제작과 조작의 단순함으로 인해 오늘날 특히 아마추어 천문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디자인이다.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은 박물관의 관측대에서 다른 태양 망원경과 함께 돕소니언 망원경을 사용한다. 존 돕슨, 어떤 사람인가? 돕슨은 원래 수도승 출신이었다. 이 유니크한 인물의 생애를 간략히 더터보면, 그는 1915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베이징 대학을 설립했고, 어머니는 음악가였으며, 아버지는 동물학 교수였다. 돕슨과 그의 부모님은 1927년에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했다. 돕슨은 대학 연구실에서 근무한 1943년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분교에서 화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돕슨은 우주와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점차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 돕슨에게 하나의 전기가 찾아왔다. 1944년 그는 힌두교의 한 교파인 베단탄 스와미(Vedantan swami) 강연에 참석했다. 돕슨은 “내가 본 적이 없는 세계를 보여주었다”고 회고했다. 같은 해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베단타 공동체 수도원에 합류하여 청빈서약을 하고 라마크리슈나 수도회의 스님이 되었다. “수도원에서 돕슨의 책임 중 하나는 천문학과 베단타 철학을 조화시키는 것이었다. 그 직분은 그에게 망원경 제작에 눈을 돌리게 했다. 그는 망원경에 바퀴를 달아 수도원 바깥으로 끌고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망원경 제작과 수도 생활을 병행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고, 1967년 그는 23년간 몸담았던 수도회를 떠나게 되었다. 수도회를 떠난 돕슨은 이듬해인 1968년 브루스 샘스, 제프리 롤로프와 함께 천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조직 ‘샌프란시스코 길거리 천문학회(San Francisco Sidewalk Astronomers)’를 창립했다. 그리고 망원경 제작과 천문학 대중화, 우주론 강연 여행으로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의 강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87년 7월 25일 미국 버몬트주 스프링필드 부근 산꼭대기에서 한 것이 전설로 남아 있다. 그 산 정상은 스텔라파네(별들의 성지)라는 이름의 관측지로서, 쟁쟁한 아마추어 망원경 제작자, 별지기들이 모인 가운데 돕슨은 이렇게 우주와 인간에 관한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저는 망원경의 크기가 얼마이고, 광학장비가 얼마나 정교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지 않습니다. 이 광대한 세계에서 여러분보다 혜택을 덜 누리는 사람들이 함께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야말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입니다. 저를 줄곧 앞으로 나아가도록 추동하는 유일한 신념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같은 존 돕슨의 철학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망원경을 내놓고 사람들에게 우주를 보여주는 별지기들이 적지 않다. 서울 청계천 같은 곳에서도 가끔 그런 별지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들에게 존 돕슨은 영원한 사표이다. 존 돕슨의 삶과 아이디어는 2005년 다큐멘터리 ‘길거리 천문학자(A Walkway Astronomer)’로 제작되었다. 그는 PBS 시리즈 ‘천문학자들(The Astronomers)'에도 출연했으며, 자니 카슨의 '투나잇 쇼'에도 두 차례 출연했다. ​2004년 크레이터 레이크 연구소(The Crater Lake Institute)는 돕슨에게 천문학의 대중화에 대한 업적을 기려 그해의 공로상을 수여했다. 또한 2005년 스미소니언 연감은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35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했다. 2014년 1월 15일 캘리포니아 버뱅크에 있는 성요셉병원에서 영면. 향년 98세였다.​ 사람들에게 우주를 보여주고자 하는 열정으로 평생을 떠돈 '망원경 성자' 존 돕슨은 한마디로 '사람들이 우주를 많이 볼수록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믿었던 낭만주의자'였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인턴 아니냐고요? 저희 800억원대 주식 가진 사장님들요”

    “인턴 아니냐고요? 저희 800억원대 주식 가진 사장님들요”

    둘의 앳된 모습을 보면 인턴이겠지 생각하기 쉬운데 사장님들이시다. 뉴질랜드의 온라인 튜터링 기업 ‘크림슨 에듀케이션’의 공동 창업자인 제이미 비턴과 샨드레 쿠셔(이상 23)로 고교 졸업반이던 18세 때 창업해 지금은 1억 6000만달러(약 1800억원) 가치로 키운 회사 지분 45%를 공동 소유하고 있다. 다시 말해 둘의 주식 자산만 7200만달러(약 800억원)로 평가된다. 영국 BBC의 비즈니스 위크가 10대 때 창업한 사장님들을 소개하는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둘을 다뤘다. 실제로 둘이 투자자들을 모을 때도 앳된 외모 때문에 혼돈을 일으켰다. 제이미는 “이런 강의실에 앉아 계신 모든 분들이 저희보다 세 배는 나이가 드셨고, 흰머리와 베이지색 머리인 분들도 많더군요”라며 “우리가 나타나자 그분들은 어시스턴트나 인턴이겠거니 여기시더군요”라고 말했다. 그들의 사업은 전 세계 고교생들이 미국과 영국의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필요한 강사와 멘토를 찾아 연결해주는 것이었다. 오클랜드에서 창업했는데 광고할 돈이 없어 친구들과 교사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서야 겨우 첫 고객과 강사를 연결할 수 있었다. 1년 뒤 100만달러를 모았고 차츰 늘기 시작했다. 지금은 투자 자금만 3700만달러가 됐고 회사 가치는 1억 6000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 세계 2만명 이상이 2400곳 이상의 대학들과 취업 상담사들의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모의 유엔총회에 뉴질랜드 대표 18명 가운데 뽑혀 여행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독일 기차역의 스타벅스 점에서 처음 만났는데 샨드레는 제이미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do-or-die focus)’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제이미는 하버드 등 세계 최우수 대학 25위 안의 모든 대학들 입학 허가를 받은 상태였고, 샨드레는 비슷한학교 성적에도 해외 대학의 문을 두드린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이렇게 해서 해외 우수 대학에 지원하는 방법을 모르는 고교 졸업생들을 상대로 벌이는 사업을 착안하게 됐다. 일단 사업은 벌여놓고 대학도 다녔다. 다만 제이미는 하버드 수학 학위를, 샨드레는 오클랜드 대학에서 공중보건을 전공했다. 지금 샨드레는 반년은 오클랜드 본사에서 보내고, 남은 반년은 23개 도시의 사무실을 방문하며 보낸다. 제이미는 스탠퍼드에서 교육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오클랜드와 캘리포니아를 오가고 있다. 이 회사의 강사들과 멘토진은 유수 대학의 입학 관련 업무를 하다 퇴직한 이들로 주로 구성돼 원서 쓰는 방법과 면접 요령 등을 지도한다. 학생들을 무작정 멘토진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트 웹사이트 이하모니(eHarmony)의 수석 과학자였던 갈렌 벅월터가 고안한 알고리즘을 이용해 이뤄진다. 주로 호주와 뉴질랜드, 중국과 한국,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학생들을 고객으로 거느리고 있어 앞으로는 미국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미국에는 카플란과 프린스턴 리뷰 같은 훨씬 역사가 있는 튜터링 라이벌 업체들과 경쟁해야 한다. 특히 프린스턴 리뷰가 최근 들어 온라인 강화를 외치고 있어 크림슨 에듀케이션과 한판 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제이미는 최고경영자(CEO), 샨드레는 최고운영자(COO)로 역할을 나누고 있는데 오랜 친구 사이지만 서로 편하게 타협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했다. 제이미는 “강의실에서 둘 사이에 거친 설전이 때로는 오간다”고 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천연 한방재료로 머릿결·두피 다스린다…건강까지 스타일링한 자연주의 헤어숍

    천연 한방재료로 머릿결·두피 다스린다…건강까지 스타일링한 자연주의 헤어숍

    염색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들이 있다. 염색약만 바르면 따갑고 가려워 견디기 힘든 탓이다. 파마만 하면 부어올라서 손도 못 대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자연주의먹는펌헤어는 이 같은 이들이 기다리던 헤어숍이다. 자극 없는 자연주의 약재와 관리는 물론 뛰어난 스타일링으로 많은 고객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자연에서 찾은 천연 재료들로 염색과 파마를 하고, 한방 약재를 활용해 두피를 관리한다. 검은깨 가루를 사용한 파마와 염색은 미용 현장에서 30년 넘는 경력을 쌓아온 김춘희 대표가 직접 개발한 방법이다. 김춘희 대표는 서경대학교에서 모발 과학 이론과 한방 활용 분야를 4년간 강의해 온 전문가다. 한방 두피 관리 제품인 ‘한방헤어터닉’은 전문 한의사(김영찬 원장)가 개발한 것으로, 13년간 임상실험을 거쳐 효능을 확인했다. 흰머리를 검게 하는 하수오를 비롯해 두피 건강에 좋은 백지와 천궁, 혈액순환을 돕는 박하, 두통을 완화하는 감국 등의 약재를 사용됐다.자연주의먹는펌헤어가 추구하는 ‘두피 건강’은 겉에 바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파마나 염색 과정 중 기다리는 시간에는 검은깨 떡과 흑임자죽을 서비스로 제공한다. 두피와 모발 건강에 좋은 ‘블랙푸드’다. 건강한 음식을 직접 먹으며 머릿결 건강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김춘희 대표는 “건강한 머릿결은 아름다움의 상징”이라며 “모발 건강은 당당하고 건강한 자존감으로까지 이어진다”고 자연주의 헤어 관리의 의미를 설명했다. 건강한 자연주의로 유명하지만 세련된 스타일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스트레스와 잦은 염색 등으로 탈모와 거친 머릿결로 고민이 많은 젊은 고객들에게 스타일과 헤어 관리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한편 두피 관리 제품 한방헤어토닉은 전화(02-776-6797) 및 카카오톡 메신저(rlarlgur1031)로도 상담 후 구매할 수 있다. 다음은 김춘희 대표와의 일문일답. →건강한 자연주의를 헤어 스타일링에 적용할 생각을 하셨나요. -많은 사람이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있잖아요. 머리카락과 두피에도 예외가 아닐 거라 생각했어요. 파마를 하면서 고객에게 무엇을 더 좋게 해드릴 수 있을까 방법을 찾다가 두피에까지 좋은 파마와 염색을 해보자 싶었던 거죠. 모발 쪽은 제가 이제까지 가진 노하우로 개발을 하고, 두피는 우리 인체에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라 한의사 선생님께서 맡아서 개발해 주셨어요. →건강도 건강이지만 스타일로도 입소문을 많이 타고 있습니다. -미용을 오래 하다 보니까 우선 저만이 가지고 있는 스타일이 있죠. 고객의 의견을 반영하고 얼굴형에 맞게 적절하게 적용해서 디자인을 만들어 갑니다. 또 젊은 층의 스타일을 잘 표현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함께하고 있다 보니 좋은 평을 듣게 된 것 같아요. →손님에게 벌금을 받는 특이한 규칙이 있는데, 어떤 것인가요. -파마나 염색을 할 때 당일에 머리를 감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조금 강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당일에 샴푸로 머리를 감으면 잠을 자는 동안 자연스럽게 두피에 나오는 물질이 다 씻겨 나가요. 그렇게 되면 두피가 불안정한 상태가 되거든요. 탈모 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걸 줄이기 위해서 꼭 하루 전에 샴푸를 하시고 오시길 부탁드리는 거죠. →오랜 시간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다져 온 자신만의 미용 철학이 있다면. -하는 것은 확실히 하고 싶습니다. 자연주의를 추구하기 시작했다면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으로 파마를 하고 염색을 하는 데에 그치지 않으려 해요. 겉모습뿐 아니라 내면까지 아름답게 채워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가려 합니다. 정태기 객원기자 jtk3355@seoul.co.kr
  • [열린세상] 노인들의 세상은 어디나 같다/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열린세상] 노인들의 세상은 어디나 같다/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사람 사는 곳은 세상 어디나 같다. 특히 노인들에게는.그들은 외롭다. 사회와 가족에게 밀려나 고령화 사회로 더욱 길어진 여생을 쓸쓸하게 보내야 한다.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처럼 늙어 가면서 함께 웃고, 울고, 놀면서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 주는 친구는 드라마에서나 가능하다. 아내와 남편이 떠나고 거동조차 불편해지면 요양원이나 단칸방 신세가 된다. 그들은 가난하다. 가족 부양으로 주머니가 텅 비어 있다. 쥐꼬리만큼 되는 연금이나 정부 보조금으로는 생계조차 힘들다. 아파도 마음대로 병원에 갈 수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먹을 수도 없다. 여차하면 재정악화로 그것조차 끊기거나 줄어들지 모른다. 통계가 말해 주듯 정부에서 생색내면서 만든 일자리라고 해야 저임금의 단순노무직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오래 버틸 수도 없다. 그들은 무시당한다. 흰머리와 주름살이 이제는 경륜도 품격도 아니다. 자식과 젊은 세대들에게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낡은 아집과 욕심으로 ‘5포 세대’와 ‘헬조선’을 만든 장본인 취급을 당한다. 정치인들 역시 선거 때만 표를 위해 큰절 한 번 얼른 하고 돌아서면 그만이다. 온갖 ‘예찬’을 늘어놓아도 늙음은 서럽고 쓸쓸하다. “나 여기 있다”고 소리쳐 봐야 들리지 않는다. 잊히고, 가난해지고, 사라져 간다. 자연의 법칙이고, 삶의 섭리다. 그래서 일찌감치 시인 예이츠가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의 첫 구절에서 단언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나라가 아니라 어떤 ‘곳’도 없다. 심지어 감옥조차도. 잭 브래프 감독의 영화 ‘고잉 인 스타일’(Going in Style)이나 잉엘만순드베리의 소설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를 보면 ‘아메리칸 드림’을 외치는 미국이라고, 복지 천국을 자랑하는 스웨덴이라고 다르지 않다. 돈이 없어 먹고 싶은 파이 하나 못 사먹고, 간식 금지에 산책 자유조차 없는 노인 요양원에서 나무토막처럼 사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겠다며 뛰쳐나온다. 하물며 노인 절반 가까이(45.6%)가 빈곤에 허덕이는, OECD 회원국 가운데 ‘노인빈곤율 1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은 말해 무엇하랴. ‘고잉 인 스타일’에서 세 노인도 30년 동안 일한 철강회사로부터 퇴직연금을 받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집세 내기도 빠듯하고 신장 투석을 위해 병원도 제대로 갈 수 없다. 그나마 그 연금마저 회사 합병에 따른 적자 보전을 이유로 끊기게 생겼다면. 후지타 다카노리가 말하는 이런 ‘하류노인’은 미국에도, 일본에도 고령화의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우리나라에도 부지기수다. 국민연금 수급액이라고 해봐야 한달 평균이 노후 최저생계비의 3분의1에 불과한 36만 8600원이다. 그마저도 받지 못해 거리를 떠돌거나, 스웨덴의 메르타 할머니가 “감옥보다 못하다”고 말한 노인요양소로 가거나. 아니면 메르타 할머니처럼 차라리 감옥에 가기로 작정하고 강도짓을 하거나. 은행을 털기로 한 ‘고잉 인 스타일’의 세 노인도 그렇게 말한다. “최악의 경우 감옥에 가면 돼. 거기에는 안정된 세끼 식사와 침대까지 있잖아”라고. 감옥을 또하나의 복지시설로 생각하는 노인들은 이미 일본에 많다. 적은 연금으로 사는 것보다 무료 숙식과 말동무가 있으며, 건강관리까지 해주는 감옥에 가기 위한 노인 범죄가 급증해 전체 절도범의 30% 이상을 차지한 지 오래다. 비극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노인 빈곤은 또 다른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노인자살률 1위가 노인빈곤율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고잉 인 스타일’의 세 노인과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의 다섯 노인 모두 어설픈 은행털이로 거액을 손에 쥐는 데 성공한다. 감옥에도 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도, 그들도 그것이 결코 현실이 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의 날카로운 풍자와 유쾌한 반란이 씁쓸하고, 해피엔딩이 공허한 이유다. 그들은 갈수록 길어지는 남아 있는 나날들을 더 가난하고 아프고 슬프게 보내야 할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고, 아직은 누구도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지 못하고 있으니까.
  • ‘사람이 좋다’ 김종진♥이승신, 재혼 12년차 “완벽주의자 VS 덜렁이”

    ‘사람이 좋다’ 김종진♥이승신, 재혼 12년차 “완벽주의자 VS 덜렁이”

    21일 방송되는 MBC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서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가수 김종진’ 편이 전파를 탔다. ▲ 한국대중음악의 자존심 ‘봄여름가을겨울’, 신장암 투병 중인 전태관의 근황과 김종진의 감동적인 우애 1988년, 1집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로 데뷔해 30주년을 맞은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57)과 전태관(57). 시대를 앞서가는 첨단 장비 사용과 퓨전 장르를 개척한 20대 청년들이 어느덧 흰머리가 가득한 중년이 됐다. 30년이라는 시간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돈독한 우정을 자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늘 굳건할 것만 같았던 봄여름가을겨울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2012년, 전태관의 신장암 발병. 김종진은 겉으로는 담담하게 전태관을 위로했지만 남몰래 울고 또 울었다. 암투병 중인 전태관이 공연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서 김종진은 홀로 30주년 기념 음반과 공연을 준비하며 전태관의 빈자리를 크게 느낀다. 음악만 신경 쓰던 김종진이 돈과 행사 등 음악 외 모든 것을 책임지던 전태관의 역할도 전부 혼자 해내려니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최근 30년 음악 동지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지난 4월, 아내마저 먼저 암으로 떠나보내며 홀로 암 투병 중인 전태관을 위해 요즘 김종진은 후배 가수들과 헌정 앨범을 준비 중이다. 윤종신, 윤도현, 장기하 등이 참여, 수익금은 모두 전태관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애인처럼, 분신처럼 각별했던 김종진, 전태관의 30년 우정. ▲ 최초 고백! 김종진은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난청에도 꺾이지 않고 완벽한 음을 찾아가는 열정 김종진은 평생 음악을 위해 살았다.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오로지 음악을 위한 일이다. 처음 받은 대학교 장학금으로 기타를 사서 의기양양하게 들어오는 김종진을 보고 어머니는 이후 아들이 음악하는 데 있어서 최고 후원자가 되어 주셨다. 사실 김종진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난청은 음악의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노력했다. 지금도 김종진은 공연 전 밴드 멤버들이 연주하는 소리 하나, 박자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그의 집에는 공연에 사용되는 1930~1960년대 앰프, 기타, 전깃줄 등 더 깊은 소리를 내기 위한 오래된 장비들이 가득하다. 온전히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결핍은 소리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어떤 이의 꿈’, ‘브라보 마이 라이프’ 등 명곡과 매회 열정적인 공연이 만들어졌다. ▲ 깔끔한 완벽주의자 김종진과 덜렁이 아내 이승신의 재혼 라이프 2006년 11월, 김종진과 탤런트 이승신의 결혼 발표는 재혼이라는 이슈로 큰 화제가 됐다. 아들과 딸, 각자 아이를 데리고 시작한 결혼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완벽주의자이자 ‘음악 밖에 모르는 바보’ 김종진과 덜렁이 아내 이승신의 성격 차이와 가출을 감행할 정도로 방황하는 이승신의 질풍노도와 같은 청소년기처럼 숱한 우여곡절 끝에 하나의 가족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제가 (아내에게) 붙여준 별명이 옛날에는 내 사랑 덜렁이, 엄청 덜렁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깔깔 승신’이라고 매사에 깔깔 웃고 그러니까 음악이라는 동굴에 갇혀 있던 저에게 바깥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데구나, 밖으로 나갈 때는 언제든지 나를 맞아 줄 가족이 있고, 즐거운 분위기가 있다는 걸 알게 해줬죠.” - 김종진 인터뷰 中 - 어느덧 결혼 12년 차, 깔끔쟁이 김종진은 아내 몰래 부엌을 청소하고, 자신이 만든 이색(?)건강 쉐이크를 함께 마시며 아내를 따라 운동에 나선다. 대학을 졸업한 아들은 취직해 독립했고, 딸은 일본 유학 중. 아이들의 안부 전화 한 통에 기뻐하고 안도한다. 젊고 열정적이었던 청춘의 시간은 가고, 건강 걱정, 자녀 걱정, 노후 걱정을 해야 하는 중년의 나이. 실패를 딛고 재혼이라는 어려운 난관을 거쳐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만들어가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226년 된 조지 워싱턴 새겨진 희귀 금화…20억원에 낙찰

    226년 된 조지 워싱턴 새겨진 희귀 금화…20억원에 낙찰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1732~1799)의 얼굴이 새겨진 226년 전 금화의 가격은 얼마일까? 최근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지난 16일(현지시간) 헤리티지 옥션이 주최한 경매에서 조지 워싱턴 금화가 174만 달러(약 19억 5000만원)에 낙찰됐다고 보도했다. 여전히 영롱한 금빛을 뽐내는 이 금화는 10달러 짜리로 미국의 독립전쟁이 끝난 후인 지난 1792년 주조됐다. 앞면에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옆 얼굴이 그리고 뒷면에는 미국의 국조인 흰머리독수리가 새겨져 있다. 다만 이 금화는 실제 유통용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다. 1792년 당시 미국 정부는 화폐를 제작, 유통하는 조폐국 창설을 발표했는데 이 과정에서 조지 워싱턴 대통령에게 증정하기 위해 이 금화가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일반 유통 화폐는 앞면에 자유의 여신상, 뒷면에 흰머리독수리로 디자인돼 이듬해 은과 구리로 주조됐다. 헤리티지 옥션 측은 "이 금화는 미국 내에서 화폐 수집가로 유명한 에릭 P 뉴먼이 지난 1942년 구매한 것"이라면서 "미국에서 가장 가치있는 동전 중 하나로 수익금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된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외아들 잃고 임신한 67살 여성 병원 진료거부 당해

    외아들 잃고 임신한 67살 여성 병원 진료거부 당해

    외동자식을 잃고 50~60대의 늦은 나이에 시험관 아기를 임신한 여성들이 병원 치료도 받지 못하고 중국 사회의 냉대에 시달리고 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6일 베이징의 장헝(67)이 시험관 시술로 쌍둥이를 임신하는 데 성공했지만 병원 진료를 거부당했다고 보도했다. 병원은 그녀의 출산이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으며 여론은 흰머리가 난 여성이 아이를 낳으려는 것을 비난했다. 4년 전 외아들을 잃은 장은 입양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고 결국 지난 6월 대만에서 시도한 시험관 시술이 성공했다. 그러나 고혈압을 앓고 있는 장에게 베이징의 대형병원은 임신을 중단할 것을 권유했다. 게다가 보건 당국은 만약 그녀가 치료를 받으려 한다면 그 병원은 당국에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장은 정기적인 병원 진료를 포기해야만 했다. 장은 “나는 사랑하는 아이를 잃었고 또 다른 자식을 원했을 뿐이데 내가 만약 죄가 있다면 무엇을 잘못했는가?”라고 항변했다.  리칭(가명·65)도 20년 전 외동딸을 잃고 다시 딸을 출산했다. 그녀는 “다른 아이를 갖는 것은 자식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같은 경험을 한 사람만이 우리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78~2014년 한 자녀 정책을 편 중국의 외동 숫자는 1억 5000만명으로 추산된다. 100만 가구 이상이 질병이나 사고로 외동자녀를 잃었다.  ‘시두(失獨) 가정’이라 불리는 외동자녀를 잃은 부부는 종종 많은 나이에도 새로운 임신과 출산을 시도한다. 40~60대의 여성들은 임신도 어려울 뿐 아니라 양육도 힘들고 경제적인 압박도 무시할 수 없다. 교통사고로 5년 전 외아들을 잃은 추이(60)는 정부가 장을 도와야 한다며 “이미 임신한 장을 거부하는 것은 그녀를 죽이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웨이하이에서 3살 난 쌍둥이를 키우는 추이는 “남편은 고향인 우한에서 96살 난 부친을 돌보고 있어 매달 며칠씩 아이를 보러 온다”며 “웨이하이는 비싼 유치원 학비가 무료라 여기로 이주했다”고 말했다. 이미 은퇴한 이들 부부는 따로 수입이 없어 연금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추이가 우한에서 55살의 나이로 시험관 시술을 시도했을 때 병원에서는 49살 이상은 시험관 시술을 받을 수 없다며 그녀를 거절했다. 결국 사설병원에서 고통스러운 시험관 시술을 받아야만 했다. 어렵게 아이를 키우는 ‘시두 가정’은 새로운 아이를 포기한 또 다른 시두 가정의 비난도 감수해야만 한다. 추이는 시두 가정이 모이는 온라인 그룹에서 임신을 시도하자 쫓겨나야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56살에 쌍둥이를 출산한 추이는 결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녀는 “남편이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매일 세상을 뜬 아들과만 대화했다”며 “만약 우리가 쌍둥이를 낳지 않았다면 남편은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와우! 과학] 파나마 원숭이도 석기시대 진입…獨연구팀, 영상 공개

    [와우! 과학] 파나마 원숭이도 석기시대 진입…獨연구팀, 영상 공개

    인간이 아닌 영장류 중 새로운 종이 석기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증거가 담긴 놀라운 영상이 공개됐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등 국제 연구팀은 파나마에 있는 코이바국립공원에 사는 영장류 흰머리카푸친(흰목꼬리감기원숭이)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이같은 증거를 발견했다고 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로써 인간이 아닌 영장류 중 태국의 짧은꼬리 원숭이, 서아프리카의 침팬지, 그리고 남미에 사는 검은머리카푸친(갈색카푸친)에 이어 흰머리카푸친이 네 번째로 도구를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이날 영국 과학전문 뉴사이언티스트는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연구팀은 지난 2014년 알리시아 이바녜스라는 이름의 이 팀 연구원이 흰머리카푸친을 관찰하던 중 석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처음 발견한 뒤 본격적으로 흰머리카푸친들의 행동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연구팀은 흰머리카푸친들의 행동을 촬영하기 위해 공원 안에 있는 섬 3곳에 카메라 트랩을 설치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카론 섬에 사는 흰머리카푸친들에게서만 도구 사용 증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이들이 우리 조상들처럼 우연히 석기 시대로 접어들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카론 섬에 사는 흰머리카푸친들만이 도구를 만들게 된 이유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섬에는 땅 위에 흰머리카푸친들을 잡아 먹을 만한 포식자들이 없어 이들 영장류가 다른 섬에 사는 개체들보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이곳저곳을 탐험하며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먹이 역시 다른 섬들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해 이들 영장류는 견과류나 갑각류 껍질을 깨기 위해 돌을 사용할 필요성을 깨우쳤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연구를 주도한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브렌던 배럿 박사는 “우리는 이들 영장류의 행동이 지리적으로 지역화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고 말했다. 흰머리카푸친은 검은머리카푸친과 620만 전쯤 분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인간이 침팬지나 보노보의 마지막 공통 조상과 분리한 시점과 거의 같다. 자세한 연구 성과는 미국 비영리 사립연구기관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CSHL)가 개발·운영하고 있는 출판전 논문 공유 사이트 ‘바이오리시브’(bioRxiv) 6월20일자에 실렸다. 사진=바이오리시브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이하정 눈물, 정준호에 “왜 얼굴이 행복해보이지 않아?”

    이하정 눈물, 정준호에 “왜 얼굴이 행복해보이지 않아?”

    이하정이 남편 정준호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26일 방송된 TV조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내의 맛’에서는 정준호가 이하정을 위해 깜짝 이벤트를 벌이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날 정준호는 아내와 아들을 베트남 호치민의 수영장에 남겨두고 일을 핑계로 숙소로 먼저 들어왔다. 그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연애 때 워낙 바빠서 같이 영화 한편을 본적이 없다. 아내가 좋아하는 영화 한편을 같이 보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는 빔 프로젝터 연결을 한 뒤 셋팅을 완료, 8년 전 엉성한 프러포즈 때 자신이 해줬던 곰탕 라면과 김을 싼 밥을 준비했다. “남편이 영화 배우인데 결혼하고 영화 한 편을 본적이 없다”는 이하정의 말에 “내가 죽일놈”이라고 반성했다. 이하정은 “남편의 마지막 영화가 2016년작 ‘인천상륙작전’이다. 그때 시사회 참석 후 처음 영화를 본 것”이라며 “남편의 이벤트에 정말 고마웠다”고 행복해했다. 영화를 보며 진심을 전하던 중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만 이하정. 이는 결혼 8년만에 처음으로 흘린 눈물이었다. 이하정은 정준호에 대해 “제일 속상한 건 밥을 먹을 때도 다른 사람들 챙기느라 자기는 먹지도 못할때 너무 속상하더라. 이 맛있는걸 느끼지도 못하고 너무 바쁘다”며 “2년 전만 해도 괜찮았는데 나갔다 오면 힘들어하고 체력이 안 되는 것 같더라. 흰머리 보일 때는 마음이 아프더라. 짜증이 나는게 아니라 짠하더라”며 눈물을 흘렸다. 정준호는 “내가 이해가 안될 수 있다. 저렇게 안 살아도 되는데 왜 그럴까라는 생각 할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이어 “나 나름 쉬는 시간이 있다. 매일 아침 365일 운동하는 시간, 그 시간이 나의 휴식시간이고 충전 시간”이라고 말했고, 이하정은 이에 “그런데 왜 얼굴에 행복이 표시나지 않아”라고 반문했다. 정준호는 잠시 할말을 잃었다. 그리곤 이내 “절제 연기”라고 재치있게 답해 스튜디오를 웃음 바다로 만들었다. 결국 두 사람은 따뜻한 포옹과 볼 뽀뽀로 부부의 애정을 다시금 확인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희애 “나에 대한 이미지·선입견 넘어서고 싶었다”

    김희애 “나에 대한 이미지·선입견 넘어서고 싶었다”

    진땀 나는 손에서 끝까지 그러쥐어야 할 기억과 역사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과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문학, 영화 등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거듭 서사에 불러들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오는 27일 개봉하는 ‘허스토리’는 여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은 견고한 진심과 묵직한 정공법으로 왜 ‘그녀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인지 들려준다. 1992~1998년 6년간 23번이나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일본 정부와 싸운 위안부 할머니들의 ‘관부 재판’ 실화를 통해서다. ‘허스토리’ 포스터를 보면 위안부 할머니 역의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와 함께 눈에 들어오는 배우의 낯선 모습이 있다. 우아한 외모와 패션, 카리스마나 기품 있는 역할 등으로 익숙한 김희애(51)의 변신이다. 숏커트에 흰머리, 왕잠자리 안경, 몸매를 가리는 넉넉한 옷 등으로 기존의 이미지를 지운 그를 동료 배우인 김해숙도 못 알아볼 정도였다고. 주름을 가리긴커녕 더 그려 넣고 체중도 5㎏가량 불린 까닭은 영화 속 배역 때문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관부 재판을 이끄는 원고단 단장으로 고군분투하는 여행사 사장 문정숙 역할을 맡았다. 작품을 연출한 민규동 감독은 “김희애라는 배우를 캐스팅하면서 굉장히 욕심이 많았다. 기존의 김희애에게서 연상할 수 없었던 많은 요소들을 이번 작품을 통해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희애에게도 매혹적인 제안이었다. 그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덥석 받아들였다. “여배우라면 외모를 부각시켜야 하잖아요. 하지만 이번 역할은 외형에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가는 자유롭고 당당한 한 인간으로, 할머니들의 든든한 조력자로, 배우로서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어요. 저도 전혀 저같지 않게 보이고 싶었거든요. 제 안에 있는 저에 대한 선입견도 넘어서려 노력했죠.” 하지만 시작하고 보니 고투의 연속이었다. 삶 전체를 휘감은 고통 탓에 살아도 생지옥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독려하고 보듬으며 일본 정부와 싸워야 하는 데다, 부산이 배경이라 부산 사투리는 물론 일본어까지 완벽히 소화해야 했다. 그는 “막상 해보니 제 커리어에서 가장 큰 위기가 왔다. 아주 큰 산 하나 넘었다”고 했다. “일어와 부산 사투리 대사를 제대로 소화해야 한다는 압박이 너무 심해서 촬영 들어가기 석 달 전부터 억양을 다 표시해서 외웠어요. 촬영하다 감독님이 법정 신에서 일본어 대사를 바꾸면 원망까지 하고 악몽도 꾸고요(웃음). 원래 작품할 때 촬영이 끝나도 운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마지막 법정 신을 마치고 분장실에 들어갔는데 눈물이 쏟아졌어요. 다른 서사와는 의미가 달랐던 만큼 이번 역할은 제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죠.” 극 중 법정 장면에서 그는 재판부와 피고인 일본 정부에 할머니들의 증언을 격정적으로 통역하며 관객들의 감정이입과 긴장을 한껏 높인다. 이 역시 일일이 집에서 연습한 것을 녹음해 들어보고 다듬은 결과다. 관부 재판이라는 용어는 그 역시 낯설었다. “영화 찍기 전엔 저도 몰랐어요. 가까운 역사도 모르고 참 내가 주위를 너무 안 둘러보고 살았구나 부끄러웠죠.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존엄과 용기를 잃지 않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점에 빠져들었어요.” “배우를 오래 하고 싶은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다”는 20대를 지나 어느덧 데뷔 36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는 연기를 하면 할수록 감사한 마음과 연기의 정석을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새록새록 난다고 했다. “연극영화과를 나왔지만 배우 생활을 하느라 학교를 거의 못 다녀 연기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요. 그런데 ‘밀회’ 때 함께 한 안판석 감독이 이런 문자를 한번 주셨어요. ‘항상 희애씨가 준비해 온 연기가 제가 생각해 온 것보다 더 좋았다’고요. 제 인생에 가장 큰 칭찬이었죠. 그러면서 안 감독이 조연출 한번 해 보라고 제의하셨어요(웃음). 작품을 남기고 싶거나 감독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순수히 배우고 싶은 마음에 한번쯤은 해 보고 싶어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포토] ‘흰머리 희끗희끗’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포토] ‘흰머리 희끗희끗’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불법 보수단체 지원(화이트리스트) 관련 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토끼 두고 공중전 벌인 여우와 독수리

    토끼 두고 공중전 벌인 여우와 독수리

    미국에서 토끼를 사냥한 여우가 독수리에게 토끼를 뺏기지 않으려고 끝까지 공중전을 벌이며 버틴 사진이 화제가 됐다고 온라인 예술잡지 보어드판다가 지난 24일(현지시간) 소개했다.20년 가까이 자연 사진작가로 활동한 케빈 에비는 최근 미국 워싱턴 주(州) 산후안 제도에서 흰머리수리와 붉은여우의 놀라운 공중전을 목격하고 카메라에 담았다.붉은여우가 토끼를 사냥하자마자, 흰머리수리가 그 토끼를 뺏으려고 발톱으로 움켜쥐었다. 에비는 붉은여우가 토끼를 놔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붉은여우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붉은여우는 흰머리수리와 20피트(약 6m) 높이에서 8초간 토끼를 두고 공중전을 벌였다. 하지만 공중에서 흰머리수리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결국 토끼를 문 입을 벌렸다. 붉은여우는 바로 땅에 떨어졌고, 흰머리수리는 토끼를 움켜쥐고 유유히 날아갔다. 에비는 붉은여우가 흰머리수리와 공중전 뒤에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고 전했다.에비는 “흰머리수리가 다른 독수리나 왜가리과 조류인 그레이트 블루 헤론, 소 등에게 먹이를 뺏는 것을 봤지만 그런 도둑질은 결코 보지 못했다”며 “매우 독특한 경험이었고, 모든 동물은 말해줄 이야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에비는 지난 21일 자신의 리빙 와일더니스 블로그에서 8초간의 공중전을 사진 12장으로 생동감 있게 전달했다. 에비의 사진작품을 본 사람들은 경탄했고,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노트펫(notepet.co.kr)
  • 뛰는 여우 위에 나는 독수리의 먹이 쟁탈전, 승자는?

    뛰는 여우 위에 나는 독수리의 먹이 쟁탈전, 승자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모습이 포착됐다. 2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는 미 워싱턴 주 샌환섬국립역사공원에서 배고픈 어린 여우와 굶주린 흰머리독수리가 먹잇감 토끼를 놓고 지상 6m에서 벌인 극적인 공중전을 소개했다. 사진작가 케빈 에비는 며칠 전 붉은 새끼 여우 최소 여덟마리가 초원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여우들은 일몰 직전에 사냥을 시작했고, 한 여우가 토끼 발을 가까스로 낚아챘다. 몇몇 여우는 토끼를 쫓으며 자신들의 소굴로 몰았다. 약 15분 후 붉은 여우가 토끼 한마리를 입에 물고 초원을 가로지르고 있을 때, 흰머리독수리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독수리는 빠르게 다가와 토끼를 문 여우를 들어올렸다. 에비는 “그 장면은 예상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여우가 토끼를 떨어뜨려 독수리가 저녁거리를 쉽게 얻을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놀랍게도 독수리에 낚인 여우는 잡은 토끼를 입으로 꽉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 몸을 앞뒤로 흔들며 세차게 저항했다”고 목격담을 설명했다. 독수리는 몸부림치는 여우를 결국 놓아주었고, 땅에 떨어진 여우는 무사히 독수리를 따돌리고 토끼를 다시 차지할 수 있었다. 보통 여우가 사냥하는 먹잇감은 작은 곤충이나 열매, 들쥐인데 이날 만큼은 토끼를 잡아 적에게 뺏기지 않으려는 용기를 보였다. 그는 “대머리 독수리는 1.6km 떨어진 곳에서 물고기나 다른 새를 발견하고 1분 이내로 날아가는 숙련된 사냥꾼이지만 다른 동물이 확보한 식량을 힘으로 취하는 절취기생(kleptoparasitism)이기도 하다”며 “어린 여우와 토끼를 쉽게 들어올렸지만 식량을 훔치는데는 실패했다”고 전했다. 사진=리빙와일드너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젊은데 흰머리, 원인은 스트레스

    아이들이 집 안팎에서 사고를 치면 부모들은 “너 때문에 흰머리가 는다”고 푸념하곤 한다. 나이에 비해 흰머리가 많은 사람들은 유전 때문일 수 있지만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할 경우 흰머리가 느는 경우도 있다. 미국 앨라배마 버밍엄대 생물학과, 국립보건원(NIH) 산하 인간게놈연구소, 국립암연구소, 메릴랜드대 의대 공동연구팀은 나이에 비해 흰머리가 많거나 갑자기 새치가 늘어나는 것은 인체 외부의 자극 때문에 면역시스템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플로스 바이올로지’ 3일자(현지시간)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검은색 털을 가진 생쥐들에게 생명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 정도의 약한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주입하거나 다양한 형태의 스트레스를 가한 뒤 털의 색깔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외부에서 균이 침입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선천적 면역시스템이 작동하는 동시에 털 색깔이 연해지면서 회색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털 색깔이 바뀐 생쥐들의 RNA 상태와 배열을 분석했더니 털과 피부 색깔을 결정하는 유전자에도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외부 자극에 대응하기 위한 인체 방어시스템의 작동으로 일어나는 일종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병을 오래 앓는 환자의 경우 머리색이나 안색이 변하는 것도 이 같은 원리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멜리사 해리스 앨라배마대 교수는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피부 색소를 통제하는 유전자가 면역시스템 작동에도 관여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연구 결과”라며 “모발이나 피부 색소 변화로 건강 상태를 진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스트레스 받으면 흰머리 증가…메커니즘 찾았다(연구)

    스트레스 받으면 흰머리 증가…메커니즘 찾았다(연구)

    일이나 인간관계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 탓에 흰머리가 늘었다고 느낀다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스트레스가 흰머리를 늘리는 메커니즘이 실험 쥐를 대상으로 한 최신 연구에서 밝혀졌기 때문이다. 새치는 유전 때문에 막을 수 없다는 가설은 최근까지도 논쟁이었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서는 신체가 질병이나 충격 등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영향이 중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선 면역체계가 방어 반응을 보였는데 머리 색을 만드는 모낭 세포에 변화를 일으켜 머리카락이 흰색이나 회색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머리 색을 제어하는 유전자와 감염 균과 싸우도록 신체에 신호를 보내는 유전자 사이의 이런 놀라운 관계를 밝혀낸 이들은 미국 앨라배마대학과 버밍엄대학 연구진이다. 연구진은 이런 메커니즘이 머리 색뿐만 아니라 피부색까지 바꿔 백반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마이클 잭슨이 생전 앓았던 희소 질환이 바로 이것이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신체가 공격을 받으면 세포는 ‘인터페론’이라는 화학 신호를 내보낸다. 인터페론은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방어체계 전반을 강화하기 위해 세포에 변화를 일으킨다. 그런데 이 방어체계가 뜻밖의 부작용을 일으켜 머리 색을 만드는 세포의 스위치를 꺼버린다는 것이다. 이 발견으로부터 머리카락이나 피부의 색소를 제어하는 유전자는 선천성 면역체계를 제어하는 기능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것은 백반증과 같은 색소 이상과 선천성 면역체계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심상성 백반증은 피부색이 곳곳에 엷게 변하는 증상으로 인구의 0.5~1%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플로스 바이올로지’(PLOS Biology) 최신호(5월 3일자)에 실렸다. 사진=hootie2710 / 123RF 스톡 콘텐츠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사람 형상의 하수오 발견한 남성, 알고보니…

    사람 형상의 하수오 발견한 남성, 알고보니…

    중국의 한 남성이 사람의 형상을 한 거대한 뿌리채소를 발견해 화제가 됐다. 최근 중국 쓰촨성 충칭 뉴스 채널은 지난 5일 광둥성 선전시 공사현장에서 남성 시에가 길이 80cm, 무게 12kg의 덩이줄기 채소를 발견했다고 전했다. 시에는 “큰 작물에 발부리가 걸려 넘어져서 이를 파냈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생전에 이런 것을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마치 내겐 ‘보물’처럼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음력 설 연휴를 맞아 고향인 충칭으로 돌아온 시에는 자신이 챙겨온 뿌리채소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들 그에게 하수오의 뿌리같다는 공통된 의견을 제시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던 시에는 지역 TV방송국에 연락을 했고, 방송국 측의 도움으로 전문가의 소견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전문가의 답변은 기대와는 달랐다. 약제학 전문의 양민은 “그것은 고구마다. 뿌리만 봐도 틀에 넣어 만들어진 것이 거의 확실하다”며 나쁜 소식을 전했다. 그는 “하수오는 매우 천천히 자라는데 이는 하수오가 될 수 없다. 또한 뿌리에 비해 잎들이 불균형적으로 얇다. 뿌리와 같은 크기로 자라는데 수 십년이 걸릴 것”이라며 “고구마를 틀에 넣어 키운 다음 하수오로 속여 판매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하수오는 동의보감에 ‘원기회복에 뛰어나 오랫동안 먹으면 흰머리가 검게되고 130살까지 장수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효능이 뛰어나 3대 명약 중 하나로 손꼽힌다. 사진=충칭뉴스채널캡쳐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위대한 노인, 위대한 유배인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위대한 노인, 위대한 유배인

    “대한민국의 노인들은 유배인이다. 대한민국 모든 곳이 유배지다”라고 친구가 비꼬아 댔다. 양로원이나 요양원은 물론 탑골공원 등 노인들이 운집한 공간만을 한정한 줄 알았지만 모든 곳이 유배지라는 지적은 다소 충격적이다. 치매를 하고, 몸이 고장 나면서부터가 아니라 사회적 기준이 ‘노인’이 되는 순간부터 모두 유배인이 된다는 말이다. 노인층 빈곤율과 자살률이 세계 1위인 대한민국에서 맞는 지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유배인은 극악무도의 죄인이다. 그렇다면 노인들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노후 대비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가족만을 위해 지난 세월을 험하게 살아온 죄밖엔 없다. 그 때문에 지독히도 가난하고, 자살도 가장 많이 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그것이 무슨 삼족을 멸할 죄라도 된다는 것인지. 더욱이 대한민국은 ‘효’를 제일 가치로 여기는 나라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이런 비참한 나라가 됐으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 제목이 제목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언젠가 ‘녹색평론’에 실렸던, 서울대 학생들한테 부모가 언제 죽으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63세라고 했다는 기사가 다시 생각난다. 그 이유는 은퇴해 퇴직금 남겨 주고 바로 죽는 게 좋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필자도 곧 63세다. 그러니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긴장한다고 해서 달라지거나 해결될 일은 없다. 달게 사약을 받아야 할 판이다. 돈이 없으면 굶어 죽고, 돈이 있으면 맞아 죽는다는 말이 결코 우스개가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광인들을 일정 기간 배에 태워 이곳저곳을 항해시켰다. 정상인들의 거주지 정화를 위해 광인들을 분리하고 유배 보내기 위해 ‘광인들의 배’가 활용됐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노인들이야말로 그 ‘광인들의 배’를 탄 사람들이다. 그 배에는 행복한 노후를 기대하는 노인, 병 때문에 앞가림을 못 하는 노인, 빈털터리가 된 노인, 여전히 조국과 민족을 걱정하는 노인, 손자들의 장성을 낙으로 여기는 노인 등등 여러 부류의 노인들이 타고 있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유배의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당나라 시인 유희이는 “들어라 한창 나이 젊은이들아(寄言全盛紅顔子) / 얼마 못 살 늙은이를 가엾어 하라(應憐半死白頭翁) / 노인의 흰머리가 가련하지만(此翁白頭眞可憐) / 그도 지난날엔 홍안의 미소년이었노라(伊昔紅顔美少年)”며 노인을 대신해 시를 쓰기도 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불안과 공포에 떠는 노인들을 대신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어찌해야 할 것인가? 방법은 노인들끼리 분노하고, 연대할 수밖엔 없다. 분노하고 연대해 ‘광인들의 배’에서 스스로 내려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그들이 그 배에서 내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서 가정과 작은 공동체로 그들을 복귀시켜야 한다. 최근 ‘외로움’ 문제를 담당하는 장관이 영국에 생겼다고 하지 않는가. 사회적 단절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해롭다는데 바로 그 장관이 하는 일이 노인들을 정상인들과 어울리게 하는 일이다. 우선 노인들 스스로가 선거나 시위 때 동원되고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기 존엄성을 지키고 주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위대한 유배인들이 있듯이 그래서 위대한 노인들이 돼야 한다. 또한 그럴 수 있도록 국가나 지자체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 노인 질병 그 자체만을 지원할 것이 아니라 가족과 작은 공동체를 회복시키고 노인들을 거기에 복귀시키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문재인 정부가 노인들을 위해 할 일이다.
  • 흰머리·주름 있어야 모델로 채용…러 모델 에이전시

    흰머리·주름 있어야 모델로 채용…러 모델 에이전시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미국의 시인 새뮤얼 울먼(1840~1924)이 그의 나이 78세가 되던 해에 쓴 ‘청춘’이라는 시의 첫 소절이다. 시집 출간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인천상륙작전의 명장 맥아더 장군이 늘 애송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그런데 러시아의 한 모델 에이전시에 소속된 모델들은 이 시의 내용처럼 인생을 사는 듯하다. 이들 모델은 하나 같이 모두 일반적으로 패션 업계에서 내세우는 젊은 모델들과 달리 흰머리와 주름이 있는 60~80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온라인 미디어 브라이트사이드는 러시아 옴스크 출신 사진작가 이고르 가바르가 2011년 블로그로 시작해 2014년부터 모델 에이전시가 된 ‘올두시카’(Oldushka)를 소개했다. 여기서 올두시카는 영어의 ‘올드’(old)와 ‘할머니’를 뜻하는 러시아어 ‘바부시카’(babushka)의 합성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에이전시의 채용 조건이 성형 시술이나 수술을 전혀 받지 않은 나이 들어 보이는 만 45세 이상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것. 모든 모델을 직접 캐스팅한다는 가바르 대표는 초기에 주로 60세 이상의 사람들을 발굴했지만, 최근 뽑은 세르게이 아르티카(Сергей Арктика)라는 이름의 남성은 만 45세다. 왜냐하면 이 모델은 외모가 실제 나이보다 늙어 보였기 때문. 그 때부터 ‘만 45세 이상’이라는 조건이 생겼다는 후문이다. 공개된 사진들은 올두시카에 소속돼 러시아의 여러 패션지와 의류 브랜드의 광고에 등장한 모델들이다. 이들을 보면, 나이 들어가는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네티즌들은 “아름답다!” “빨리 나이 들고 싶을 정도다”, “주름도 흰 머리도 걱정할 필요 없는 것 같다” 등 호평을 보이고 있다. 사진=올두시카/인스타그램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