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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교육청 ‘촌지 근절’ 홍보영상 논란, 왜?

    시교육청 ‘촌지 근절’ 홍보영상 논란, 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내놓은 ‘불법찬조금과 촌지 근절대책’을 규탄하고 전국 50만 교원이 참여하는 자정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교총은 19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교원 망신주기식 언론 이슈화로 인해 깨끗하게 학생교육에만 매진하는 절대 다수의 교육자들을 잠재적 촌지 수수자로 인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50만 교육자들은 최고 1억원의 신고보상금을 내세운 서울시교육청의 이번 대책에 분노와 좌절을 느끼고 있다”며 고발과 감시, 불신조장 위주의 일방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대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희연 교육감의 사과와 실적 쌓기식 정책 중단, 촌지를 주고받는 이 모두를 처벌하는 쌍벌죄 도입 등을 촉구하고 국민권익위원회에 서울교육청의 촌지 대책 개선 권고를 청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일부 언론들은 시교육청이 제작한 ‘촌지 근절’ 홍보영상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동영상은 시교육청이 촌지를 근절하자는 취지에서 제작한 것으로, 시교육청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게재됐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교사들(대역)이 촌지를 주고받는 모습이 희화화됐다는 것. 학교 복도와 교실, 주차장에서 학부모에게 촌지를 받는 교사들이 웃고 있다가 카메라에 들키면 화들짝 놀라는 모습으로 연출된 장면을 지적하고 있다. 이를 보도한 한 언론은 “교사의 비열한 눈빛을 묘사한 동영상을 보고 자괴감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는 한 교사의 인터뷰를 싣기도 했다. 사진 영상=서울특별시교육청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만평서 무함마드를 개로 묘사… 무슬림 ‘공공의 적’

    만평서 무함마드를 개로 묘사… 무슬림 ‘공공의 적’

    덴마크 코펜하겐 총기 난사 사건의 표적으로 추정되는 스웨덴 출신 예술가 라르스 빌크스(68)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희화한 만평으로 줄곧 테러 위협을 받아 왔다. 2007년 8월 일부 스웨덴 신문에 무함마드의 머리에 개의 몸을 붙인 만평을 게재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게재 직후 한 알카에다 연계단체는 빌크스 살해에 10만 달러(약 1억원)의 포상금을 내걸었다. 예멘의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는 2013년 빌크스를 ‘이슬람을 거역하는 범죄자’로 지목하며 그를 공개수배했다. 테러 위협은 계속됐다. 2010년 스웨덴 웁살라대학에서 강의하던 중 한 남성이 그의 머리를 들이받는가 하면 자택은 방화 공격을 겪기도 했다. 같은 해 12월 스톡홀름 중심가에서 발생해 1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한 연쇄 차량 폭탄 테러도 그의 만평이 촉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하드 제인’으로 불리는 미국 중년 여성 테러리스트 칼린 라로즈가 그를 살해하기 위한 테러 음모 가담 혐의로 지난해 1월 미국 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빌크스는 사건이 발생한 14일(현지시간) 크루트퇸덴 문화센터에서 ‘예술, 신성모독,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열린 행사에 연사로 참석 중이었다. 행사는 ‘악마의 시’를 쓴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에게 이란의 혁명 지도자 호메이니가 1989년 사형선고를 내린 것을 기념하고,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을 되짚고자 마련됐다. 덴마크 안보 당국은 이번 사건을 ‘사전에 계획된 테러’로 보고 있다. 그는 AP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표적이었던 것 같다”면서도 “이번 사건으로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부터 스웨덴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이날 행사장에도 경호 요원들이 그의 곁에 있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일베, 단원고 학생 조롱 “친구 먹었다”

    일베, 단원고 학생 조롱 “친구 먹었다”

    극우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또다시 세월호 희생자를 우롱하는 사진이 게재돼 논란이 일고 있다. 2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일베 게시판에 안산 단원고 교복을 입은 남성이 어묵을 들고 일베 회원임을 인증하는 손가락 모양을 취한 사진이 올라왔다. ‘친구 먹었다’는 제목이 붙은 해당 게시물은 삭제된 상태지만,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게시물을 퍼다 나른 페이스북 글에는 ‘바다에서 수장된 친구 살을 먹은 물고기가 오뎅(어묵)이 됐고, 그 오뎅을 자기가 먹었다는 뜻’이라는 설명이 달렸다. ‘오뎅’은 일베 회원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희화화하는 말로 쓰인다. 안산 단원경찰서 관계자는 “단원고 교장이 ‘사진을 올린 이가 누군지 알아봐 달라’고 수사를 의뢰했다”며 “모욕죄나 명예훼손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분노하는 한편, 글쓴이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아이디 ‘세월*******’는 “단원고 학생은 당연히 아닐 것”이라며 “유족을 음해하는 세력의 연출작 같다”고 적었다. 일베는 지난해에도 수차례 세월호 희생자와 단원고 학생들을 비하하는 글을 올려 지탄을 받았다. 지난해 9월에는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농성장에서 피자·치킨 등을 나눠 먹는 ‘폭식 투쟁’을 벌였고, 앞서 7월에는 일베 회원이 단원고 전경을 찍은 사진을 올리며 ‘흉가’라고 표현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LS그룹] 정·재·관·학계 등 사돈지간… 3代 걸친 ‘가문 대 가문’ 혼사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LS그룹] 정·재·관·학계 등 사돈지간… 3代 걸친 ‘가문 대 가문’ 혼사

    LS그룹의 혼맥은 그야말로 정계, 재계, 관계, 학계 등 얽히지 않은 곳이 없는 화려한 재벌가 ‘거미줄’ 혼맥의 전형을 보여 준다. 생존 경쟁이 치열한 재계에서 권력과 명망 있는 인사의 집안과 사돈을 맺고 사업적 필요에 따라 동고동락하는 가문 대 가문의 혼사는 할아버지 때부터 손자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고 구인회 범LG가 창업주의 셋째 동생인 구태회(92) LS전선 명예회장은 부인 고 최무 여사와의 사이에 4남 2녀를 뒀다. 장녀인 근희(72)씨는 이계순 전 농림부 장관의 아들 이준범(74)씨와 결혼해 정계와 첫 혼맥을 맺었다. 이준범 회장은 합성수지업체 화인 회장으로 근희씨와의 사이에 미영(48), 지현(43), 재우(41) 등 3남매를 뒀다. 장남인 구자홍(69) LS미래원 회장은 가문에서 드물게 지순혜(70)씨와 연애결혼을 했다. 두 사람은 1남 1녀를 뒀는데 딸 구진희(38) 채원컨설팅 대표는 평범한 혼사를 한 반면 LS가 장손인 구본웅(36) 벤처캐피털 포메이션8 대표는 유호민 전 대통령 경제수석의 딸 현영씨와 결혼해 두 아들을 뒀다. 스탠퍼드대 경제학과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구 대표는 2012년 미국에서 포메이션8을 창립해 미국 실리콘밸리의 상위 25위권의 기업으로 성장시켜 재벌 3세로서 새 길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차녀 구혜정(67)씨는 이인정(70) 태인 회장과 결혼해 대현(41), 상현(38) 두 아들을 뒀다. 현재 부친과 함께 태인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상현씨는 재벌가 후손답지 않게 2003년 한양대 총학생회장 비운동권 후보로 나서 당선돼 화제가 됐었다. 구자엽(65) LS전선 회장은 2012년 세상을 떠난 부인 김태향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장녀 은희(39)씨는 고 정몽우 전 현대알미늄 회장의 장남이자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손주인 정일선(48) BNG스틸 사장과 결혼해 현대가와 사돈이 됐다. 장남 구본규(36) LS산전 상무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평범한 집안과 혼사를 치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숙환으로 별세한 3남 구자명 전 LS-니꼬동제련 회장은 조영식 경희대 이사장의 차녀 조미연(63) 경희학원 이사와 혼인해 학계로도 혼맥이 이어졌다. 두 사람 사이에는 본혁(38), 윤희(33) 남매가 있다. 구본혁 LS-니꼬동제련 전무는 2003년부터 경영수업을 받고 있으며 윤희씨는 삼표그룹 정도원 회장의 외아들이자 후계자인 정대현 삼표 전무와 결혼해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4남인 구자철(60) 예스코 회장은 홍정원 서미앤투스갤러리 상무와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 딸 원희(35)씨는 구 회장과 경기고 선후배인 박용만 두산 그룹 회장의 자제와 2005년 결혼했으나 5년 만에 이혼했다.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은 문흥린 금릉원예조합 이사장의 딸 문남(85) 여사와 혼인해 3남 1녀를 뒀다. 서울대를 졸업해 락희화학 지배인으로 경영에 나선 지 1년 만에 한 결혼이다. 장남 구자열(62) LS그룹 회장은 청와대 경호실 차장, 성업공사 사장을 지낸 육군 중장 고 이재전 장군의 딸 현주(58)씨와 연을 맺어 은아(34), 동휘(33), 은성(28)씨 3남매를 뒀다. 장녀 구은아씨는 이복영 삼광글라스 회장의 장남인 이우성 이테크건설 전무와 혼인했다. 그는 지난해 3월 사내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글로벌 화학기업인 OCI그룹 이수영 회장과 형제지간이다. 구자열 회장과 서울고, 고려대 동문인 차남 구자용(60) E1 회장은 이상돈 전 중앙대 의대 학장의 딸인 이현주(56)씨와 결혼해 두 딸 희나(31), 희연(26)씨를 뒀다. 장녀 구희나씨는 홍석조 BGF리테일 회장의 장남인 홍정국(33) BGF리테일 상무와 결혼했다. 지난해 11월 등기이사로 선임된 홍 상무는 서울대 경제학과,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부친 홍 회장 누나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로 구 회장은 범삼성가와도 연이 닿는다. 2010년 11월 삼성가와 LS가의 혼사인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홍라희 여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부부,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부부 등이 총출동해 눈길을 끌었다. 3남 구자균(58) LS산전 회장은 평범한 가정의 독고진(56)씨와 결혼해 두 딸을 뒀다. 장녀 구소연(30)씨는 지난해 한양대 원제무 교수의 아들인 국제변호사 원홍식(34)씨와 혼사를 치렀다. 차녀 구소희(29)씨는 영화배우 배용준씨와 혼담이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줬다. 이미 예비장인인 구 회장에게 배씨가 인사까지 한 것으로 전해져 두 사람이 진짜 혼인을 하게 되면 LS그룹은 정·재계는 물론 연예계까지 혼맥이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소희씨는 2012년 학자 집안의 아들과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고 구평회 명예회장의 딸 구혜원(56) 푸른그룹 회장은 이화여대 출신으로 고 주진규 전 푸른상호신용금고 회장과 결혼해 신홍(32), 은진(29), 은혜(27) 3남매를 뒀다. 장남 주신홍씨는 푸른저축은행 과장이다. 고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은 유한선 여사와의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 구은정(54)씨는 김택수 전 공화당 원내총무의 아들인 김중민(58) 스텝뱅크 회장과 결혼해 정계와 연을 맺었다. 외아들 구자은(51) LS엠트론 부회장은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의 딸인 인영(47)씨와 결혼해 두 딸 원경(22), 민기(9)를 두고 있다. 장 회장은 고 장경호 동국제강 창업주의 아들로 LS그룹은 철강계까지 사돈지간이 됐다. 막내딸 재희(48)씨는 김세택 전 덴마크 대사 아들인 동범(47)씨와 결혼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올랑드 대통령, 어찌할거나...” 전 동거녀 트리에르바일레의 회고록 영화화

    좌파인 사회당 소속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61)의 전 동거녀가 쓴 회고록이 영화로 제작된다고 현지 일간지 르파리지앵이 6일 보도했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전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50)가 올랑드에게 복수하고자 쓴 유명 회고록 ‘이 순간에 감사해요’(Merci pour ce moment)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트리에르바일레의 친구이자 프랑스 영화 제작자인 사이다 자와드가 회고록의 영화화 판권을 샀다. 자와드는 정치적 논란을 일으킬 생각이 없다면서 “사랑을 하는 대상이 대통령이라 예외적이긴 하지만 사랑에 빠진 여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회고록에는 6년간 올랑드 대통령과 동거하면서 사실상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한 트리에르바일레가 올랑드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트리에르바일레는 회고록에서 올랑드 대통령은 여배우 쥘리 가예와 12개월간 관계를 맺어오면서도 지난해 1월 연예주간지에서 이 사실이 폭로될 때까지 자신을 속였다고 비난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자신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예를 만나러 가는 사진과 기사가 보도된 뒤 트리에르바일레와 동거 관계를 끝냈다. 트리에르바일레는 또 올랑드 대통령이 “가난한 이들을 ‘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희화화해) 부른다”며 사실은 가난한 사람을 싫어한다고 주장했다. 치과 보험이 없어 제대로 치아 치료를 못 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올랑드 대통령이 비웃었다는 것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가난한 이들을 싫어하고 ‘이 없는 사람’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내 인생 전체에 대한 공격이다”라고 반발했다. 지난해 9월 출간된 회고록은 프랑스에서만 73만 부가량 팔린 베스트셀러다. ⓒ AFPBBNews=News1/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올랑드 대통령, 어찌할거나...” 전 동거녀 트리에르바일레의 회고록 영화화

    좌파인 사회당 소속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61)의 전 동거녀가 쓴 회고록이 영화로 제작된다고 현지 일간지 르파리지앵이 6일 보도했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전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50)가 올랑드에게 복수하고자 쓴 유명 회고록 ‘이 순간에 감사해요’(Merci pour ce moment)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트리에르바일레의 친구이자 프랑스 영화 제작자인 사이다 자와드가 회고록의 영화화 판권을 샀다. 자와드는 정치적 논란을 일으킬 생각이 없다면서 “사랑을 하는 대상이 대통령이라 예외적이긴 하지만 사랑에 빠진 여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회고록에는 6년간 올랑드 대통령과 동거하면서 사실상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한 트리에르바일레가 올랑드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트리에르바일레는 회고록에서 올랑드 대통령은 여배우 쥘리 가예와 12개월간 관계를 맺어오면서도 지난해 1월 연예주간지에서 이 사실이 폭로될 때까지 자신을 속였다고 비난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자신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예를 만나러 가는 사진과 기사가 보도된 뒤 트리에르바일레와 동거 관계를 끝냈다. 트리에르바일레는 또 올랑드 대통령이 “가난한 이들을 ‘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희화화해) 부른다”며 사실은 가난한 사람을 싫어한다고 주장했다. 치과 보험이 없어 제대로 치아 치료를 못 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올랑드 대통령이 비웃었다는 것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가난한 이들을 싫어하고 ‘이 없는 사람’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내 인생 전체에 대한 공격이다”라고 반발했다. 지난해 9월 출간된 회고록은 프랑스에서만 73만 부가량 팔린 베스트셀러다. ⓒ AFPBBNews=News1/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1. 남자 디자이너 그거 괜찮아요…여성들은 왜 그들을 좋아하나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21. 남자 디자이너 그거 괜찮아요…여성들은 왜 그들을 좋아하나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영화 ‘국제시장’에는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1915~2001) 회장과 패션디자이너 고 앙드레김(1935~2010)이 짧게 나왔다 들어갑니다. 이 가운데 앙드레김은 초기 남성 패션 디자인계를 이끌던 당시 모습이 실제보다 한층 희화화된 캐릭터로 영화에서 그려집니다. 다음은 앙드레김을 필두로 한 남성 디자이너의 세계를 다룬 1969년 초의 기사입니다. 남성 패션 디자이너들에 대한 호기심 어린 시선이 기사 문장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21. 남자 디자이너 그거 괜찮아요…여성들은 왜 그들을 좋아하나 -선데이서울 1969년 1월 26일자 돈도 벌 수 있고 잘하면 인기명사급으로 매스컴의 스타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좋은 조건의 남성 직업이 어느 이웃나라도 아닌, 바로 서울 명동에서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 직업의 이름은 바로 ‘패션 디자이너’다. 자영살롱 없어도 월급 4~5만원, ‘선생님’ 소리 들어가며 이달(1969년 1월) 중순 12명의 남성 디자이너가 무더기로 데뷔한 것이 이번 얘기의 실마리다. 30세 전후의 실무 출신(재단-가봉-디자인을 할 줄 아는) 현직 디자이너들인데 23명의 남녀 디자이너가 결속한 ‘코페드’(한국패션디자인작가회의)의 회원들이다. 헬리콥터 기금모금 겸 데뷔쇼로 마련한 합동발표회에서 탄생된 명사 후보들이다. 이들 중 반 이상이 직영의 패션 살롱을 가지고 있는데, 양장점의 전속 디자이너인 경우라도 월급이 4만~6만원에 이른다. ‘선생님’이라는 경칭으로 불리며 독창적인 디자인의 예술성을 간섭 받지 않는다. 그야말로 ’칙사’급 대우다. 직영 살롱인 경우 최소한 월 15만원의 인건비가 든다. 한 벌 1만원에서 5만원까지의 옷을, 적어도 하루 두 벌 만들어 내니까 돈의 회전액이 아무리 적어도 15만~30만원. 이것만으로 보아도 그리 작은 기업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디자이너라는 격 높은 호칭으로 불리는 드레스 메이커를 찾는 여자 손님들은 옷을 옷 자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옷이 좋아야 할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위광(威光)을 위해서 댈 수 있는 살롱의 이름도 필요하다. 여자 손님은 여자 디자이너보다 좋아해… 필수조건은 유식해 보이는 것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던가. 양장점마다 상호보다 더 중요한 전속 디자이너를 고액으로 채용하고 있는 것은 그런 필요의 발명이다. 이를테면 디자이너는 그 양장점의 간판 구실을 한다. 위광의 문제가 최대 관심사인 여성 고객을 끌어 모으는 데는 간판 구실 디자이너에게 몇 가지 특기가 있어야 한다. 매스컴의 스타가 된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대인관계에서 느낌이 좋을 것이 그 둘, 실제로 유식해 보여야 한다는 것이 그 셋, 바느질과 디자인도 좋아야 한다는 것이 그 넷. 여성 디자이너라고 이런 조건을 갖추지 말라는 법이야 없겠지만 남성 디자이너가 더욱 적격이다. 우선 매스컴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필요한 최초, 최선, 희소의 가치를 그들은 지니고 있는 셈이니까. 게다가 이성이라는 점에서 생기는 묘한 상상은 고객과의 대인관계를 무척 원활하게 한다. 그 쪽 분야에서 이미 대성했다고 자타공인하는 남성 디자이너는 앙드레김씨다. 개업 5년에 패션쇼도 10회를 넘겼고 얼마 전에는 미국에 3만 5000달러어치 디자인 수출을 했다고 해서 매스컴의 스타다운 화제를 던졌다. “남자에게 매력 있게 보이려는 게 여성본능” 그러니 장사 잘될 수밖에 명성은 앙드레김씨만 못하지만 살롱을 두 개나 갖고 기업으로 밀고 나가는 디자이너가 이용렬(李勇烈)씨. 이밖에도 몇 명 있는 남성 디자이너에게는 사실 구수한 구설도 많았다. ‘시스터 보이’들이라느니 ‘여성 패트론’이 뒤에 있다느니 하고. 사실이야 어떻든 그동안 이들 남성 디자이너들이 이른바 ‘해사한 여성적인 성격에 미목이 수려하고 살롱 안에는 현학적이거나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해 놓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다분히 외설스런 소문과는 상관없이 영업으로서의 남성 디자이너 소유 살롱에는 위광을 사랑하는 상류사회의 고객들이 들끓고 있다. 최근 명동에 패션 살롱을 연 B씨는 남성 디자이너 붐을 꽤 아카데믹하게 풀이한다. “남자에게 매력있게 보이려는 것이 여성의 본능이란다면 남성 디자이너의 영업이 잘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죠. 아무래도 여성미 제작에는 남자가 더 낫지 않을까요. 여성미를 보는 남자의 직관, 대담성에 여성고객이 끌리는 겁니다” 어쨌든 패션 디자이너라는 것도 어엿한 남성이 가져서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직업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긴 것만은 확실하다. 복장 학원엔 남자수련생이 수두룩, 거의 대학 나온 인텔리 앞서 든 코페드 회원 12명 외에도 서울에는 명함에 디자이너라는 직함을 쓰는 현역 남성 디자이너는 20여명. 각 복장학원에서 패션 디자이너의 대망을 품고 공부하고 있는 수련생까지 합치면 대단한 숫자가 된다. 국제복장학원(원장 최경자)만 해도 지금 디자이너 수련 중인 남성이 60여명. 대학 졸업생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전공과목도 다양해서 정외과, 체육과, 국문과, 공과, 생물학과 등. 공부하는 열의도 여학생보다 대단하다. 대성해야겠다는 결의가 아무래도 여성보다 굳기 때문인 것 같다는 게 최경자씨의 말. 지난번 코페드의 자선 패션쇼의 기획진행도 남성회원들이 전담했다는 얘긴데 10여년간 발표회 뒷얘기에 익은 코페드 자문위원 서수연씨는 남성의 우수한 기획력을 알았다고 말한다. 원래 합동발표회란 것은 작품이 비교를 당하기 때문에 발표자들간에 잡음이 나게 마련이고 대개는 발표 후에 그룹자체가 와해되는 것이 보통. 그런 것이 이번 코페드만은 무사하게 발표도 끝내고 그룹 활동도 계속하겠다고 결의를 굳히고 있다는 상당히 희망적인 서씨의 논평이다. 1968년 무역박람회 패션 콘테스트 특선 경력이 있는 손일광씨( 코페드 회원)도 그런 민완의 디자이너. “한국에도 피에르 가르댕만한 대가가 나올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 젊은 디자이너들은 진짜 예술활동으로서의 작품을 만들고 있거든요”라고 기염이 대단하다. 이런 남성들의 움직임은 여성 디자이너에게는 상당한 위협일 수도 있다. 패션에 관한 한 여성 전용이라고 마음 놓고 있을 시대는 지나갔다는 얘기니까. 어쩌면 몇 년 후에는 여성 디자이너가 희소가치로서 매스컴의 먹이가 되는 희극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1교시 언어이해 - 이은희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1교시 언어이해 - 이은희

    Ⅰ <첫 번째 문제> 다음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그녀는 하루에 세 문제를 만들었다. 월급에 대비해 그만큼이면 적당한 노동량인 것 같았다. 책을 만지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아주 기뻤다. 읽은 것에 관해 말할 줄 아는 정도의 능력만 있으면 되었다. 한 개의 독해 지문에 세 개의 문제를 만들어 달면 업무가 끝났다.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오래오래 회사생활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회사였다. 그녀의 동료들은 일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읽거나 읽은 것에 관해 생각하는 일을 귀찮아했다. 한 달에 세 문제를 만들까 말까 하는 정도였으며 문제의 수준도 형편없었다. 그녀의 동료들은 일하는 척으로 일과를 보냈다. 대수롭지 않은 것에 관해 큰 목소리로 토의하며 바쁜 척했다. 읽고 생각하기만 하면 되지만, 적혀 있는 그대로를 읽어내는 능력 자체에 문제 있는 사람들로 보이기도 했다. 한때 그녀는 국문과 대학원생이었다. 지도교수가 갑자기 죽은 뒤에 이상하게도 그녀의 꿈이 사라졌다. 그녀는 학업에 품었던 자신의 꿈이 로스쿨 입시용 문항으로 재생산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을 때에는 세 시간 만에 세 문제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인고의 노력을 쥐어짜야 할 때에는 아홉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쉽게 만들어지든 오래 걸려 만들어지든 간에 개개의 문제가 전부 걸작이었다. 어떤 때에는 혼자 풀기 아까운 문제가 나오기도 했는데,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동료들 모두에게 그 문제를 자랑하고 당장 풀어보게 만들기도 했다. 동료들은 마지못해 그녀가 낸 문제를 풀어보았으나 답을 맞히지 못했다. 그녀는 동료들이 지닌 지적 능력의 총합을 초월하는 자신의 창의력을 확인한 양 우월감을 느꼈고, 콧대가 우뚝해져서는 도파민의 폭풍에 정신 잃은 채 기뻐했다. 소용돌이 모양으로 생성된 회전은하와 스케이터의 연속 회전 간의 원리적 유사성에 관한 문제를 출제했을 때에는 그만 김연아 선수에게 그 문제를 선물할 뻔했다. 김연아 선수와 접촉할 방법이 있었더라면 그녀는 당장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김연아 선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금메달리스트의 스케이트 날처럼 날렵한 독해문제를 출제했으니, 한시바삐 문제를 풀어보고, 각운동량보존법칙에 관한 이해를 동원하여 더욱 멋진 연기를 보여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울러 김연아가 그녀보다 훨씬 어린 사람이지만 존경한다는 말을 문제에 실어 전하고 싶었다. 김연아가 팔을 길게 뻗어 회전할 때에 보여주는 느긋한 우아함과, 몸을 움츠렸을 때 운동량이 보존됨에 따라 속도가 높아지면서 생겨나는 간절함은 청년이 생에 대하여 품어야 하는 희망이 어떠한 양상이어야 하는지 물리학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같다고 전달하고 싶었다. 그녀의 대학시절 교수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담아 교수님의 소설로 문학문제를 출제하기도 했다. 헌정 출제의 성격을 완성하기 위해서 교수님의 작품 세계 전반에 대한 이해를 보충하는 <보기>를 달아 심화된 감상을 유도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 타인들의 머리에 더듬이가 생겨난 것을 발견한 주인공의 혼란을 다룬 작품에서 ‘사람의 모습이 갑자기 바뀌었을 리 없다’라는 독백에 밑줄을 치고 ㉠을 단 뒤, 그 ㉠에 관해 아주 많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란 얼마나 허망하고도 희망적인 것인지에 대해 파악하도록 요구하는 문제였다. 그녀는 교수님의 소설과, 자신이 낸 문제를 바라보며 그 희망적인 허망함에 관해 성찰했고, 청년으로서 자신의 무거운 사명을 통감하면서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차곡차곡 쌓인 그녀의 업무량과 비교하여 동료들의 게으름은 크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하루에 세 문제씩 꼬박꼬박 생산해내는 그녀가 미친 기차 같다고 자기들끼리 욕했으며, 방해하기 위해 시끄럽게 굴었다. 그들은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서 촘스키가 글을 참 못 쓴다고 욕을 하거나, 과학 전공자가 아니고서야 과학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위험천만하지 않은가에 관해 토론하거나, 푸코의 저서는 번역이 엉망이어서 출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비난하거나, 문학문제를 출제하기 위해서는 많은 독서가 바탕이 되어야 하므로 주어진 시간 안에 끝낼 수 없는 불가능한 임무라며 불만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값싼 노동력으로 하루에 세 문제씩을 즐겁게 생산하고 있는 그녀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그녀의 동료 중 한 인물, 항상 고려청자색 눈빛을 지니고 있는 우애경이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약간의 실수 때문에 서울대에 못 갔어요. 그 이후로는 모든 게 잘되지 않았어요. 이런 회사에서 문제 내는 일이나 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내가 서울대에 가기만 했어도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데 말이죠.” 그녀는 우애경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 생각이 젊은 시절을 비탄에 빠지도록 만드는 거예요.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실제로 개인에 주어진 잠재력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자신의 잠재력을 직시하고 올바른 전제에서 추론을 시작해야 나의 모습을 검증할 수 있어요. 그것이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학적인 방법입니다.” 그녀는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우애경으로부터 등을 돌린 뒤 다시 문제를 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니 우애경이 시뻘건 얼굴로 식식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다시 출제에 골몰했다. 출제를 하며 우애경에 관해 생각했다. 우애경은 왜 화가 났을까? 어떤 결과에 이르기까지 원인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때로는 그것을 먼 원인과 가까운 원인으로 분류하여 한 줄로 세워볼 수 있다. 그녀는 우애경의 화라는 결과를 가져온 원인들을 물리화학적 원인과 심리적 원인으로 구분하고 생각나는 대로 정리를 해보았다. 일단 생리 중일 수도 있다. 배가 고프거나 몸이 피곤하여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일 수도 있다. 이러한 물리적 상태가 저혈당증을 일으키고, 저혈당증은 다시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초래하여 뉴런 간 화학·전기신호 작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들은 화를 내는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일 뿐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는 못하므로, 설령 이러한 이유가 작동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오로지 먼 원인일 뿐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녀는 우애경의 분노를 초래한 심리적 원인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가능성과 잠재력의 차이를 검토해보라는 말이 기분 나빴을 수도 있다. 그렇게 느꼈다면 그 이유 중에는 아래와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①가능성과 잠재력의 차이를 검토하기 싫어서, ②가능성과 잠재력에 차이가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서, ③그 말을 하는 사람(즉, 이우리)의 표정이나 말투가 기분 나빠서, ④그 말을 하는 사람(즉, 이우리)이 싫어서, ⑤아니면 모종의 의도가 있었는데 그것을 묵살당해서?(이 지점은 상상의 영역이므로 과학적 추론 불가) 위 내용 중 무엇에 해당하든 그것은 화가 나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기분이 찜찜해졌다. 알 수 없는 뭔가가 엄습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엄습하던 무언가의 실체는 다음날 점심시간부터 분명해졌다. 유난히 칼국수가 늦게 나오는 그 식당에 둘러앉아, 그녀의 동료들은 하염없는 잡담을 시작했다. 그녀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깍두기를 먹고 있었다. 잡담은 점점 석연찮은 내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대학 시절 미팅하던 때처럼 남녀가 줄을 지어 앉아 밥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데에서 시작한 잡담이 각자들의 출신대학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우애경이 유부장에게 말하기를, 유부장의 동문들과 미팅했던 것이 학창시절 가장 언짢은 일이었다고 했다. 유부장도 자신의 학창시절에 우애경의 동문들과 미팅했던 적이 있지만 유쾌하지 않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했으나 마주보는 눈빛들은 사실 뭔가를 만끽하는 중인 듯 행복해 보였다. 화제는 갑자기 신촌의 추억을 늘어놓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때껏 잠자코 있던 다른 인물이 배꽃처럼 웃으며 동참하더니 신촌의 추억을 떠들어댔고, 그들의 대화를 끊을 수도 낄 수도 없어서 가만히 듣고 있던 그녀는 칼국수가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끊을 수도 낄 수도 없는 인물로는 그녀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서교동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서울시 서대문구 전체에 관한 추억으로 이야기가 확장되지 않는 한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지 못할 터였다. 서교동의 추억을 지닌 인물이 왠지 모를 경멸 섞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들킬까 봐 몹시 조심했지만 아무래도 들킨 것 같았다. 그녀가 지닌 신촌의 추억이란 극장 앞에서 시외버스를 기다린 것밖에 없었으므로, 그녀는 혹시나 자신에게 어떤 질문이라도 주어질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월미도나 맥아더장군에 관한 화제가 갑자기 나오는 것은 아닐지, 그러다가 그녀가 졸업한 대학에 관한 화제가 등장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다. 하지만 때마침 양푼에 가득 담긴 칼국수가 등장해주었고, 대화는 서대문구 창천동 일대에 관한 이야기에서 그친 채 모두 얌전히 칼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마치 먹는 데에 열중한 것인 양 아무도 그녀에게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날 저녁, 그녀는 회사에 혼자 남아 쓸쓸히 책을 뒤지고 출제를 했다. 김소진의 ‘개흘레꾼’을 다시 읽었고, 학생운동을 하다가 유치장에 갇힌 주인공이, 허름한 차림으로 빵을 사들고 온 아버지를 냉대하는 대목을 발췌하여 문제를 냈다. 개흘레꾼의 주인공은 말했다. ‘아버지는 ㉠테제도, 그렇다고 ㉡안티테제도 아니었다. 나의 아버지는 개흘레꾼이었다.’ ㉠과 ㉡의 의미에 대한 출제를 하다 말고 그녀는 자신의 사원증을 꺼내어 바라보았다. 포토샵으로 다듬은 사진 아래에는 ‘이우리’라는 그녀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녀는 ㉠ 혹은 ㉡에 머물러 자기 자신의 의미가 규정되도록 놓아두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일단 맹렬히 출제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그 결심을 실현하기로 했다. 1. 위 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주인공은 인천을 싫어한다. ②주인공은 우애경에 대한 반격을 결심했다. ③주인공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자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④주인공은 ´개흘레꾼´의 주인공에게 자신의 처지를 이입하여 생각하고 있다. ⑤주인공은 자기의 인생이 남들의 인생에 포함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Ⅱ <두 번째 문제> 다음 상황에 대하여 추론한 것으로 옳은 것은. 그녀는 하루에 아홉 문제를 출제하기로 했다. 세 개의 지문을 뽑아 각각 세 개씩의 문제를 다는 데에 온종일이 걸렸다. 그러기를 일주일이면 혼자서 한 벌의 모의고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모두가 말하길,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 출제 기계라고 했다. 그녀의 유능함에 견주어 우애경은 점점 더 무능해 보였고, 아무나 붙든 채 자기가 수능에서 한 문제만 더 맞았더라면 서울대에 갔을 것이며 이 자리에 있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 우애경을 보며 그녀는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유능한지, 모니터를 향한 거북이처럼 되어버린 자세로 하루에 아홉 문제씩을 생산한 그녀가 얼마나 탁월한 출제자인지를, 시간이 흐르면 그녀의 문제를 풀어본 수많은 학생들이 직접 증언할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애경이 사고를 쳤다. 오전 열시의 고요한 사무실에서 들려오던 그 소리를 모두가 잊지 못할 것이었다. 처음엔 작게 시작한 그 소리가 점점 커졌고, 일본어이긴 했지만 그게 어떤 상황에서의 무슨 말인지는 누구나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소리는 우애경의 컴퓨터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모두가 우애경을 지켜보는 가운데, 우애경은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몰려든 사람들 가운데로 숨었다. 우애경 주변의 남자 사원들이 대단히 당황하더니 화면 가득한 살색 움직임들을 어떻게든 없애려 하다가 끝내는 컴퓨터를 두들겨 패듯 꺼버렸다. 우애경은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이었다. 인터넷 창에 지나가던 배너를 건드렸을 뿐인데 민망한 장면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더라고 했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남자 직원들이었는데, 그들은 우애경의 컴퓨터를 복구하느라 오전 업무시간을 다 써야만 했다. “지나가는 배너를 건들기만 했는데도 저 정도로 감염이 될 수 있나요?” 그녀는 동료들에게 물었다. 모두가 못 들은 척 했다. “지나가는 배너는 왜 건드리죠?” 그녀는 우애경을 향해 물었다. “포르노 사이트 광고였나요, 아니면 일반 광고였는데도 그렇게 된 건가요?” 그녀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못 참는 성격이었다. 우애경은 달팽이관이나 청소골 같은 것이 없기라도 한 양 그녀 쪽은 쳐다보지 않은 채 배실배실 웃고 있었고, 속으로는 민망해 죽겠지만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고 넘어갈 작정인 것 같았다. 그녀는 우애경과 담소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원래들 업무시간에 포르노 사이트에 들어가시기도 하는 건가요?” 정말로 궁금해서 그런 것인데, 우애경과 동료들은 아주 불쾌한 듯, 마치 포르노 사이트 접속으로 오전 업무를 마비시킨 장본인이 그녀이기라도 한 듯 아래위로 노려보더니 탕비실을 향해 우르르 가 버렸다. 그녀는 모두가 떠나 버린 사무실에 앉아 홀로 출제를 했다. 그녀는 정말로 왕따였다. 그녀는 우애경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적어도 질타를 감당하지 못해 괴로운 회사 생활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우애경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우애경의 성격이 갑자기 능글맞고 넉살 좋게 바뀌었다는 것인데, 우애경은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것으로 수치스러운 그 사건을 덮어버렸다. 유부장에게 말하길 “어머, 부장님. 계속 그렇게 야근시키시면 전 또 그 배너 건드려 버릴 거예요” 라고 하거나, 다른 팀 직원에게 말하길 “다들 너무 일만 하면서 침체되어 있기에 내가 야동 바이러스 감염으로 활력소가 되어준 거잖아” 라고도 했다. 우애경은 매일 스스로 그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그동안 몰랐는데, 일본어 공부에 좋은 게 일제 동영상이더군요” 라는 말을 해서 일부 남자 직원들이 즐거워하도록 만들었으며 절묘한 순간에 “일하기 싫은 사람은 내 감염된 컴퓨터를 쓰도록 해” 라는 말을 던져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자 우애경이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만 남고, 살색 가득하던 컴퓨터 화면에 대한 기억과, 우애경이 업무시간에 포르노를 보는 여자라는 인상은 희미해지고 말았다. 종래엔 유부장이 “앞으로 말 안 듣는 사람 있으면 우애경 씨 컴퓨터를 쓰게 할 거야”라고 농담하기도 했는데 그런 말에 모두 웃게 되기까지는 사건 후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우애경은 변죽 좋아 보이도록 성격이 바뀐 것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유능함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우애경은 아무 문제도 생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 이우리를 향해서 발톱을 세운 채 이우리가 하루에 아홉 개씩 낸 문제를 꼼꼼히 살피고, 거기서 오류를 발견해내는 것을 주요 업무로 삼았다. 각운동량보존법칙과 회전하는 나선 은하에 관한 문제에서는 은하의 나선 팔에 관한 설명 부분이 지나치게 길다고 지적했다. 실제 시험에 비해 한 단락 분량이 더 추가된 것이므로 모의고사에 수록하기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지적 때문에 그녀는 우애경과 한 시간을 싸워야 했다. 나선 은하의 나선 팔 부분과 중심부는 각각 산개성단과 구상성단으로서 밀도가 다르다는 점이 은하의 형성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대목이라는 것을, 따라서 줄일 수도 뺄 수도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한참을 다퉜으나 그녀가 진 것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흥분하면 이마에 핏발이 서면서 얼굴이 새빨개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치 뭐라도 잘못해서 당황한 사람처럼 보였고, 동료들은 그녀가 곤란해 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녀가 중력섭동이라든가 산개성단을 구성하는 중원소에 관해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동안 다들 하품을 하고 듣기 싫어했다. 이마에 핏발이 선 이우리가 언성을 높여가며 하는 말들이 알 수 없는 소리라고들 했다. 반면 그에 응수하는 우애경의 논리는 아주 간명한 것이었다. “어찌 됐든 길잖아요. 지문이 너무 길잖아요. 안보여요?” 그녀가 낸 모든 문제에 관해 우애경은 어떻게든 시빗거리를 찾아냈다. 가장 억지를 부렸던 것은 ‘개흘레꾼’이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는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녀는 ‘개흘레꾼’이 한 대학생의 자기 탐구와 심리묘사가 흥미진진한 작품일 뿐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라고 볼 수 없으며, 1990년대 작품이기 때문에 현 시대상황과도 직접 관련이 없다고 대답했다. 우애경은 그에 대해서도 간명하게 말했다.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 자체를 없애야 해요. 경쟁사에서 우리를 불리하게 만들 수 있는 여지를 남기면 안 돼요.” 민주화운동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라는 것과 테제, 안티테제 등의 용어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작품에 관해 출제된 문학 문제가 좌파 이념 전파에 기여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번 사건을 이우리 씨가 잊은 것은 아니겠죠. 이우리 씨가 조심하지 않으면 나라도 나서서 조심할 수밖에 없어요. ‘개흘레꾼’ 문제는 폐기하는 걸로 하죠.” 그녀는 말이 안 나왔다. 혀의 근육 어딘가가 마비되어 버린 것 같았다. 우애경은 마치 그녀의 상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지난번 모의고사에서 그녀는 ‘내가 광우병에 걸려 병원 가면 건강보험 민영화로 치료를 못 받고 그냥 죽을 텐데 돈도 없고 땅도 없으니 화장해서 4대강에 뿌려다오’ 라는 안치환의 노래 가사를 문법적 오류가 존재하지 않는 정답의 선택지로 삼아 어법 문제를 출제한 바 있었다. 모의고사 시행 직후 게시판에 이의제기가 올라왔다. 출제자 중 누군가가 현 정권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지닌 것 같은데 이는 모의고사의 공정성과 적합성에 대한 의심을 하게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시험을 본 학생이 올린 것처럼 적혀 있었지만 회원가입일이 게시일 당일인데다가 모의고사에 응시한 기록도 없는 회원의 글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출제한 문제에 대한 비방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비방이라고 생각했고, 직관적으로 그 글이 우애경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본래 과학 연구에 있어 최초의 가설 설정이란 직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녀는 ‘우애경이 자작 이의제기를 게시판에 올린 것이다’라는 가설을 수립한 뒤 그것을 검증해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유부장은 게시판 사건 때문에 노발대발하였으나 진짜 응시자가 올린 글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며칠 추이를 지켜보자고 하더니 곧 잊어버렸다. 그녀 자신도 잊을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애경은 잊지 않고 있었고, 모두가 잊지 않기를 바라는 듯 그것에 관해 자주 이야기했다. 그녀가 우애경에게 닦달당하고 있을 때이면 어디선가 유부장도 홀연히 나타났고, ‘그러니까 지문이 길어요, 안 길어요. 그것만 대답해요’ 라든가, ‘데모하다 잡혀가는 학생 이야기가 나와요, 안 나와요. 그것만 대답해요’ 라는 말만을 귀에 담아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 시선을 피해 유부장이 우애경의 등허리를 툭툭 치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 우애경은 청자색 눈빛으로 유부장을 응대했다. 두 사람은 왠지 서로를 치켜 주는 것을 의무라고 여기는 듯했다. 학창 시절에 서로의 동문들과 미팅한 추억 말고는 별 공통점도 없는데 왜 그러는지는 이해 못 할 일이었다. 유부장은 ‘이우리 성질을 컨트롤할 사람은 우애경 씨 밖에 없어. 우애경 씨만 믿어’ 라고 했다던데, 그런 뒤 두 사람은 함께 칼 퇴근을 했다는 말도 들려왔다. 그녀는 자신이 원했던 바대로, ㉠테제에 의해서나 ㉡안티테제에 의해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대체 자기 자신은 이 회사의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 길게 빠졌다. 우애경과 싸우느라 흥분해서 문제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아홉 문제를 꼬박꼬박 출제하리라 결심했지만 그걸 못 채우는 날이 늘어갔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모의고사 회차가 거듭되면 훌륭한 문제에 관한 학생들의 칭송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응시생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이 바로 탁월한 출제 덕분이라고 생각하려 했으나 유부장은 그것이 자기 공이라고 했다. 모의고사의 성공은 곧 마케팅의 성공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개판으로 문제를 만들어 놓는다 해도 나는 전국 최다 응시생을 끌어모을 수 있어.” 그녀는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을 위한 선택을 함부로 할 리가 없으니, 응시생이 늘어간다는 것은 결국 훌륭한 교육물이라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말이지 않겠느냐고 했다. 유부장은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우리 회사는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야.” 그녀는 그렇다면 무얼 하는 회사인 거냐고 반문했다. 유부장은 좌중을 둘러본 뒤 선언했다. “교육 콘텐츠를 파는 곳이야.” 진정 훌륭한 모의고사, 참된 독해력과 사고력 증진의 기회를 제공하는 모의고사 등등을 운운하며 보다 열정적으로 문제를 만들어 이 세상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그녀를, 유부장은 구경하듯 바라보았다. “마케팅 비용이 문항제작비의 이십 배는 돼. 마케팅이 훨씬 어렵고 중요한 거라고. 이우리 씨의 생사 또한 마케팅에 걸려 있는 거야.” 유부장은 벽에 붙은 포스터광고를 가리켰다. ‘명문대 출신 엘리트가 만든 모의고사!’ 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당신을 법조인으로 탄생시켜줄, 업계 최고의 역작’이라는 글씨가 시뻘겋게 붙어 있었다. “응시생들은 절박한 상황이지. 어떻게든 기득권층이 되겠다는 욕심으로 가득해. 욕심으로 눈 먼 애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먹고살 거야.” 그녀는 유부장에게 따지고 들었다. 진정한 법조인이 되기 위해 그 길을 선택한 수많은 청년들이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유부장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진정한 법조인이 되고 싶은 애들이 몇 명이나 되겠어. 있다 할지라도 그놈들은 알아서 혼자 공부해. 나한테 속아 넘어갈 놈들이 아니란 말이다. 사설업체 모의고사 같은 건 안 본다고.” 동료들은 매일 놀고만 있었고, 자신들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도 이우리가 꼬박꼬박 만들어놓은 문제들이 있으니 걱정 없다는 말까지 했다. 이우리는 대체 이 회사에서 무엇인 걸까? 아무래도 자신의 정체가 진짜 출제기계인 것은 아닌지, 그래서 기계처럼 문제만 뽑아내면 이우리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녀는 모두가 그렇게 여기는 것만 같아 괴로웠다. 빈 사무실에 앉아 밤늦도록 출제를 하고 있을 때, 대표이사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남아있는 사람은 이우리 씨밖에 없군.” 대표이사는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내가 퇴근하는 척 나가고 나면 모두가 집에 가 버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 대표이사는 텅 빈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누가 남아 있나 체크하러 나는 돌아왔지. 역시 이우리 씨 말고는 믿을 사람이 없어.” 대표이사는 무릎이 날깃날깃 닳은 트레이닝복을 그녀에게 자랑했다. “이건 내가 젊었을 적에 입던 옷이야. 나는 긴장을 늦출까 봐, 내가 가장 어렵던 시절의 옷을 버리지 않았어. 오늘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이 옷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이우리 씨밖에 못 보게 되었군.” 대표이사는 반짝이는 대머리를 기울여 그녀의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양자역학에 관해 출제를 하고 있었네.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브라운 운동과 러더퍼드의 금박막 실험이라. 흥미로운데. 풀어봐야겠어. 나는 자네가 낸 문제의 팬이야. 힘내라구.” 대표이사는 격려하는 표정으로, 그녀의 등도 아니고 옆구리도 아니고 겨드랑이도 아니고 오른쪽 가슴도 아닌 애매한 어딘가를 톡톡 치고는 떠났다. 팬이라는 말에 기뻐하다 말고 그녀는 모호한 기분에 휩싸였다. 정확히 어디인지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됐든 함부로 만져지면 안 되는 것 같은 부위에 대표이사의 손길이 남아 있었다. 찜찜한 그 부위를 괜히 긁적이며, 그녀는 대표이사가 청년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입는다는 늘어난 트레이닝복을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그녀가 자신의 청년기를 떠올리면 어떤 장면을 가장 먼저 생각할까. 그녀는 절박한 마음으로 취업을 모색하던 백수시절을 떠올렸다. 어디든 취직만 된다면 일단은 살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 시절이 생각난 것 때문에 그녀는 공지영의 ‘부활 무렵’이라는 단편소설로 문학 출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부활 무렵’에서, 병아리는 알을 뚫고 나가려 안간힘을 쓴다. 사투를 지켜보던 아이들은, 병아리가 살아갈 힘을 얻으려면 스스로 뚫고 나오게끔 놓아두어야 한다고 배웠다 했다. 하지만 주인공인 아이들 엄마는 알 껍질을 조금 뜯어내어 준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하든. 한 번만 살게 해주면 앞으로 어떻게든 사는 거야.” 대표이사의 칭찬에 힘입어 그 소설의 구절이 생각났고, 겨드랑이가 좀 찜찜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멋진 출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에게 뻔한 미래란 없다. 청년이란 미시세계의 전자처럼 입자이자 파동인 존재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양자역학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도 존재하니 말이다. 위 상황에 대해 추론한 내용으로 옳은 것은? ①이우리는 대표이사와 자신의 계급 차를 망각하는 우를 범했다. ②부하직원들은 그들의 상사인 유부장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와 같다. ③이우리는 자신의 업무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④대표이사가 이우리의 몸 어딘가를 만진 것은 곧 다른 데도 만질 것이라는 예고이다. ⑤회사의 인물들이 품은 동상이몽은 결국 매한가지로 거대하고도 알 수 없는 것을 지탱하고 있다. Ⅲ <세 번째 문제> 다음 상황에 대하여 파악한 것으로 적절한 것은. 그녀는 하루에 열두 문제를 출제하기로 했다. 대표이사가 그녀를 알아봐 주는 한 유부장이나 우애경이 그녀를 어떻게 괴롭힌들 상관없었다. 하루에 열두 문제라면 한 주 동안 모의고사 2회분이 생산될 양이었고, 우애경이 검토하고 흠을 잡기에도 벅찰 분량이었다. 그녀는 묵묵히 일하다 보면 모두가 자신을 인정할 거라는 생각은 버렸고, 본인이 하루에 열두 문제를 출제하고 있으며 그것은 어떤 것들인지에 관해 누가 듣든 말든 마구 이야기해대기 시작했다. 말을 많이 하느라 점심시간이면 밥을 거의 먹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부석부석 말라갔고, 밥을 씹어 삼킬 힘조차 아껴서, 문제를 내는 데에만 에너지를 썼다. 잠도 거의 자지 않았고 때로는 어차피 돌아와야 하는 것이 귀찮아서 집에 가지 않은 채 밤을 새우곤 했다. 그녀는 자신이 낸 아름다운 문제들과, 자신을 바라보는 우애경의 표정에서 희열을 느꼈다. 열두 문제를 내고 나면 뉴런 다발들이 걸레처럼 비틀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우애경을 이겼다고 생각했다. 우애경의 눈 속에서 청자색이 옅어진 것을 본 그녀는 우애경을 때려눕히고, 옥수수처럼 흩어진 이빨을 주워 모아 목걸이를 해 걸기라도 한 것처럼 뿌듯해했다. 어느 날의 점심시간, 그녀는 유부장에게 조언했다. “계란을 많이 드세요.” 유부장은 반찬투정을 했다. “흰자는 괜찮은데 노른자가 메스꺼워서 나는 계란을 안 먹어.” 그녀는 드디어 원인을 찾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사십년 생애 내내 계란을 멀리 하셨나요?” 유부장은 무심히 말했다 “그랬지. 내가 싫어하는 것 몇 가지가 있지. 계란, 콩. 두부.” 그녀는 식습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주된 콜린 공급원인 계란과 콩을 멀리하시니, 체내에선 아세틸콜린 합성이 원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것도 사십년째이니 결핍이 심각하리라고 예상되어요. 밤에 잠은 잘 주무시나요.” 유부장은 그녀에게 의학 상담이라도 하는 듯 진지해졌다. “잠은 쉽게 드는데 새벽에 곧 깨서는 전혀 못 자곤 해.” 그녀는 무릎을 탁 쳤다. 아세틸콜린 부족증상과 일치하고 있었다. 그녀는 유부장에게 자신이 출제한 문제를 꼭 풀어보라고 권했다. 치매의 발생과 뇌 내 아세틸콜린의 관계에 대한 문제였다. “요즘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시는 것 같아 유부장님의 뇌 내 아세틸콜린 감소폭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부디 콩을 드세요.” 그녀는 유부장을 보며 말했다. 유부장은 국에서 콩나물을 건져내고 있었다. “난 콩이 싫어.” 그녀는 유부장의 전두엽기능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덕 원칙이 대단히 흐려진 상태인 걸로 보아서 전전두엽에 기능이상의 뉴런들이 많이 분포하고, 거기에 아밀로이드 침전물이 생겨나고, 그것 때문에 아세틸콜린 수치가 상당히 낮아지고, 낮아진 아세틸콜린 수치는 다시 전전두엽의 기능이상을 야기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중인 것 같았다. 유부장은 어느 날, 그녀가 낸 문제들을 일괄 검토하고 싶으니 원본파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녀는 수백 개의 문제를 유부장에게 주었다. 얼마 후, 이영준이라는 강사가 그 문제들을 묶어 저서를 출간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영준이 말하길, 잠을 줄여 만들어낸 토끼 같고 알토란 같은 문제들을 수험생에게 바친다고 했다. 그녀는 대체 어떻게 왜, 그녀가 출제한 수많은 문제들이 강사가 출제한 문제로 둔갑하였는지를 알고 싶었다. 유부장은 별로 당황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녀를 훈계했다. “이우리 씨는 이 회사에서 월급 받고 문제를 낸 사람이고, 그 문제를 어디다 어떻게 쓸지는 몰라도 돼. 그건 회사가 결정하는 거야.” 그녀는 주변을 수소문해서 사건 경위를 알아냈다. 이영준 강사는 계약을 해제한 뒤 경쟁사로 옮겨갈 계획을 품고 있었다. 유부장은 인터넷 스타강사인 이영준을 붙들어야 했고, 저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싱어송라이터인 가수가 사랑받는 것처럼, 직접 출제한 문제로 강의하는 엘리트 미남 강사라면 더욱 사랑받을 터였다. “그건 저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거예요.” 그녀는 바쁜 척, 그녀 같은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척 사무실을 누비는 유부장을 따라다니며 말했다. “저작권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어요. 하나는 저작재산권, 다른 하나는 저작인격권. 저는 이 회사의 직원이므로 제 생산물의 재산권이 이 회사에 귀속되는 것만은 맞습니다. 하지만 저작인격권마저 유부장님이 침해하실 수는 없어요.” 사과받고 싶은 나머지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 인격권을 침해하신 점, 사과 바랍니다.” 하지만 유부장은 들은 척도 않았고, 거래처에 간다며 나가버렸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유부장은 기억력이 심히 나빠진 것 같았다. 그녀가 자신 몫으로 매달 나오는 사원복지비를 전혀 쓰지 않았던 것은 그녀가 왕따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으니 청구하는 방법을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관리팀 김미영 대리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무슨 소리냐며 반문했다. “꼬박꼬박 사원복지비 십 만원씩 쓰셨던데 무슨 소리예요? 유부장님이 이우리 씨 복지비 신청을 대신 해주시던데요? 제가 영수증 다 갖고 있어요.” 관리팀 김미영 대리와 함께 그녀는 그간 자신이 제출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수십 장의 영수증을 살펴보았다. 밤 열한시 삼십분에 강남역 근처에서 맥주를 마셨다든가, 백화점에서 초밥을 먹었다든가, 동반인 1인과 함께 영화를 보고, 어린이용 문구세트를 샀다든가, 향수를 사고, 햄버거세트를 먹었다든가, 디저트카페에서 타르트를 먹은 일 따위가 영수증에 씌어 있었다. 김미영 대리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유부장님이 매번 자기 계좌로 금액을 청구하시기에 좀 의아하긴 했어요.” 그녀는 왜 자기 명목의 금액을 유부장이 사용한 것인지 따져 물었다. 유부장은 청각장애가 있기라도 한 양 빤히 보기만 했는데,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인 것처럼도 보여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여러 번 천천히 쉽게 또박또박 말해보기까지 했다. 한참 후에나 유부장은 씩 하고 웃으며 겨우 말했다. “미안, 나는 기억이 나질 않네. 이우리 씨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그런 뒤 유부장은 거래처에 간다며 휑하니 나가버렸다. 그녀는 허탈했고, 그리고 진짜로 자신이 뭔가 착각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기까지 했다. 그다음에는 다시 그 이야기를 할 기회가 오지 않았다. 유부장은 며칠 지방 출장을 가 있었고, 유부장이 돌아왔을 때에는 그녀가 모의고사 마감을 해야 해서 미처 싸울 틈이 없었다. 열흘쯤 지난 뒤에 사원복지비 이야기를 꺼내려 하니 마침 유부장이 활짝 웃고, 다정해 보이기도 했기 때문에 차마 그 치사한 일에 대한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저작인격권 침해라는 더 중요한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그것부터 해결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말했다. “부디 콩을 많이 드시고 착하게 사세요.” 그녀는 밥을 먹는 유부장을 바라보았다. 유부장은 들은 건지 만 건지 콩나물은 건져둔 채 국물만 마셨다. 저작인격권 침해에 관해 유부장은 끝내 이렇게 말했다. “아, 정말 짜증 나게 하네. 이우리 씨, 잘 들어. 월급 매달 제날짜에 받았어, 못 받았어?” 그녀는 월급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했다. “네가 말하는 그것까지의 대가가 네 월급이야. 알았어?” 유부장은 내친김에 더 뻔뻔해지기로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영준 강사한테 교재를 넘긴 건 널 위한 일이기도 했어. 이영준이 고객을 끌어모아서 돈 벌어올 거고, 그러면 그 고객들이 네 모의고사에 응시할 거야. 결국 그 이익은 너에게로 돌아갈 거고 말이야. 난 오로지 회사를 위해서 한 일이었다고.” 사과를 받지 못한 그녀는 대표이사를 찾아갔다. 대표이사는 자기 방을 찾아온 그녀를 아주 반가워했고, 대학 시절 미처 말 걸어보지 못했던 추억의 여인을 바라보듯 아련하게 미소 짓고 손수 음료도 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하소연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인격권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그녀가 눈물지을 때에는 티슈를 내어주기도 했다. 그녀는 대표이사가 맞장구까지 치면서 자기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에 마음이 좀 풀렸고, 울고 난 뒤에는 정신과 상담을 한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대표이사는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이우리 씨가 그런 마음으로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다니 가슴이 아프네. 그동안 몰라주어서 그게 참 미안하다.” 그러나 대표이사는 선량하고 무력한 듯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하지만 회사에는 위계질서가 있는 거야. 사원인 너의 불만을 대표인 내가 직접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면 내가 임명한 중간 관리자인 유부장의 권한을 무시한 게 돼.” 대표이사는 콧물을 닦고 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천천히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생각해 볼 테니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내겐 곧 중요한 회의가 있다.” 그녀는 다 털어놓고 난 뒤의 후련함과,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으므로 여전히 석연치 않은 기분을 안은 채 자리로 돌아왔다. 컴퓨터 앞에 앉아 그녀는 생각했다. 대표이사가 말한 ‘나중에’는 오늘의 나중인지, 아니면 미래의 다른 어떤 날을 의미하는 것인지? 다른 어느 날이라면 가까운 미래인지 설마 먼 미래를 의미하는 말인지? 그 ‘나중에’가 오늘 저녁을 의미하는 것일까 봐 그녀는 밤 열시가 되도록 앉아 있어 보았다. 그때껏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무얼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허망한 희망을 품고 아주 천천히 출제를 했다. 어느 순간 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대표이사였다. “이우리 씨.” 돌아보니 대표이사는 멋쩍은 듯 웃음을 띤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은 등 뒤로 감춘 채였다. 그녀는 순간, 자신의 가슴 속에서 희망이 반짝이는 것을 느꼈다. 대표이사는 씩, 하고 웃었다. 무릎이 허연 트레이닝 복을 입은 채였다. “일단 집에 가긴 갔는데, 이우리 씨가 생각나서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지.” 대표이사는 혀를 살짝 내밀고 웃었는데, 그런 모습을 처음 봐서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어렵던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젊을 때 타던 찌그러진 소형차를 몰고 왔다고 했다. 이따 한번 구경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데 표정이 좀 이상해 보였다. 그녀는 대표이사에게도 치매가 시작된 것은 아닌지, 혹시 대표이사도 사십팔년째 콩이나 계란을 배제한 식생활을 하는 건 아닌지 잠시 생각했다. 의아해하며 대표이사를 바라보는 가운데, 대표이사는 새삼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더니 그녀의 턱 앞에 손을 불쑥 내밀었다. 따뜻한 김이 끼쳤다. 손바닥에 커다란 감자 두 알이 놓여 있었다. “야근하느라 배고프지? 이거 먹어.” 대표이사는 그녀의 책상에 감자 두 알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감자의 온기가 남아있는 손을 그녀의 등 위에 올려놓았다. 아주 짧은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의 손바닥이 그녀의 7번 경추부터 꼬리뼈까지를 훑어 내려갔다. 그녀는 그 손바닥에서 몸을 떼어냈다. 반사적으로 말이 흘러나왔다. “저는 감자 안 먹습니다. 사장님이나 드세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돌아보았더니 대머리까지 전부 빨개진 대표이사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감자 준 직원이 이 회사에 있는 줄 알아? 나 아무한테나 이러는 사람 아니야.” 대표이사는 잠시 입을 앙다물더니 다시 말했다. “감자 싫으면 그럼, 초밥 사다줄까? 초밥 먹을래?” 그녀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돌처럼 굳어버린 채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대표이사는 등 뒤에서 식식거리더니, 쿵쿵대는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때가 왔다. 흐와스코의 소설에는 격리되어 철교 건설에 투입된 일꾼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건설기간 동안 그들의 모든 일상은 오로지 노동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들의 꿈은 단 한 가지, 건설현장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대하던 그 마지막 날, 그들이 만든 다리를 떠나며 일꾼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눈물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때 나는 그 다리가 이미 추억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그 철교를 건너는 사람들은 그 다리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모를 것이다.’ 그녀는 소설 속의 인물들이 흘린 눈물과 알 수 없이 아파오는 마음에 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에 관해 마지막 문제를 내고 싶었지만 그 눈물의 의미를 정확히 표현하는 것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눈물’의 의미와 위 글의 인물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그들의 청춘 전부가 바쳐진 다리를 자신의 창작물처럼 여기고 있다. ②가장 본질적인 것까지 쥐어짜 노동했던 일에 관해 슬픔을 느끼고 있다. ③자신들의 청춘과 자신이 만든 다리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④박탈당한 청춘에 대한 애착이 말 못할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있다. ⑤드디어 노역에서 놓여났다는 기쁨보다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한 청춘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 선택지는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⑥피 같고 살 같고 자식처럼 여겼던 대상이 고작 철교였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그제야 흐르는 눈물이다. ⑦그들의 미래란 두고 온 날들보다 나을 것이 없으리라는 예감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다. ⑧그들의 청춘이 누군가의 인생 속에서 부품이고 도구였다는 것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다. ⑨가장 중요한 것을 침해당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기억할 수조차 없으므로 흐르는 눈물이다. ⑩정작 울어야 할 자들이 울지 않기 때문에, 대신하여 흘려주는 눈물이다……. 그녀는 알 수 없이 굴러 떨어진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를 버려둔 채 자리를 떠났다. <끝>
  • 누드화보 선보인 카다시안, 패러디 사진 ‘폭소’

    누드화보 선보인 카다시안, 패러디 사진 ‘폭소’

    미국의 섹시스타인 킴 카다시안 웨스트(34)가 최근 미국 패션지인 ‘페이퍼 매거진’ 표지에서 화끈한 누드화보를 선보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유명 사진작가와 함께한 이번 표지 화보는 킴 카다시안의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를 그 어느 때 보다도 극대화 시켜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진 공개와 동시에 현지에서는 그녀의 사진을 희화화 한 패러디 사진이 수도 없이 쏟아져 관심을 입증했다. 킴 카다시안은 이번 화보에서 전신의 까무잡잡한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오일 메이크업을 선보였는데, 일부 네티즌은 이를 유명 도넛 업체의 ‘글레이즈드 도넛’을 연상케 한다며 비교 사진을 제작해 올렸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유독 돋보이는 킴 카다시안의 엉덩이를 복숭아로 표현하거나, 심지어 말에 비유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지나치게 반짝거리고 매끈한 몸매는 긴 소시지가 끼인 샌드위치로 비유되거나, 볼록한 엉덩이는 ‘구글’ 로고의 일부로 ‘변신’하기도 했다. 국내 네티즌들도 “꿀 발라 놓은 듯한 뒤태”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편 카다시안은 “전설적인 사진작가인 장 폴 구드와의 작업은 일생일대의 기회”라며 “옷을 벗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며 당당하게 밝혔다. 미국의 프로듀서 겸 래퍼인 카니예 웨스트와 2012년 약혼한 킴 카다시안은 곧 첫 아이를 출산할 예정이며, 이번 화보는 만삭이 되기 전 지난 여름에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타일러·이국주 성평등 우수 캐릭터 선정

    타일러·이국주 성평등 우수 캐릭터 선정

     ‘비정상회담’(JTBC)에 출연 중인 타일러(미국)와 개그우먼 이국주가 성평등 우수 캐릭터로 선정됐다. 성평등 우수 프로그램으로는 ‘슈퍼맨이 돌아왔다’(KBS)와 ‘궁금한 이야기 Y-미혼부 사랑이 아빠편’(SBS), ‘미생(5회)’(tvN)이 선정되었다. 성불평등 프로그램으로는 ‘개그콘서트’(KBS)와 ‘SNL코리아’(tvN)가 신고됐다.  서울YWCA는 7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함께 개최한 ‘TV 속 성평등 및 성불평등 캐릭터를 찾아라’ 공모전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공모전은 시민의 관심과 참여를 독려, TV에 대한 비판적 시청을 통해 성평등 의식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기획됐다.  타일러는 ‘비정상회담-‘일도 아이도 포기 못하는 나, 정상인가 vs 비정상인가’편에서 “우리는 남자에게 일과 아이를 선택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여자에게만 일과 육아를 선택하라는 말을 하니, 이것은 불평등하다”고 발언, 성고정관념에 대한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한 점에서 가장 성평등한 대사를 한 캐릭터로 선정됐다.  개그우먼 이국주는 출연한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사회통념적으로 여성에 대해 기대하는 미의 기준에 맞춰 예뻐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나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매력적인 여자가 되는 것이 중요해요”라고 밝혀,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 편견을 깨는 주체적이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 우수 성평등 캐릭터로 꼽혔다.  특히 ‘궁금한 이야기 Y’는 우리나라에서 미혼부가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 법적 제도의 미흡성을 지적하고 한부모 가정에 대한 평등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함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미생’은 직장 내 성차별 문제와 워킹맘의 비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했다는 점에서 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됐다.  ‘개그콘서트’(KBS)와 ‘SNL코리아’(tvN)는 여성 출연자를 외모로 구분짓고, 획일화된 미적기준에 따라 외모를 비하하거나 희화화하는 모습이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 성불평등 프로그램으로 지적받았다.  이번 공모전은 5월부터 10월까지 방송된 드라마, 오락, 시사, 교양, 광고 등의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남녀 고정관념을 벗어나 건강하고 평등한 남성과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 멋진 캐릭터 혹은 대사, 프로그램을 찾고 성불평등 프로그램과 캐릭터를 신고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8월 25일부터 10월 31일까지 진행된 공모전에는 총 257명이 응모, 1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이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서울YWCA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함께 ‘2014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 사업을 진행하면서 TV, 인터넷, 광고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고, 미디어교육을 비롯한 다각적인 성평등 미디어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김주혁 선임기자 happyhome@seoul.co.kr
  • 푸틴에 ‘볼기짝’ 맞는 오바마 풍자 그림 화제

    푸틴에 ‘볼기짝’ 맞는 오바마 풍자 그림 화제

    미국 중간 선거 패배가 예상돼 레임덕 위기에 놓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더욱 열받게 만들 작품이 공개됐다.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는 러시아의 젊은 예술가 그룹이 푸틴을 영웅화시킨 그림과 만화를 공개해 화제가 되고있다. 지난 31일(현지시간) 부터 모스크바에서 열린 이 전시회의 타이틀은 '노 필터'(No Filters)로 푸틴을 찬양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예술가들은 푸틴을 찬양하기 위해 이와 대비되는 '특별한 조연'이 필요했던 것 같다. 국제무대에서 푸틴과 사사건건 부딪치는 오바마 대통령이 바로 그 주인공. 이를 풍자한 대표적인 그림이 마치 아이를 혼내듯 오바마의 엉덩이를 때리는 푸틴의 모습이다. 푸틴이 이 그림을 본다면 입가에 미소가 번질지 모르지만 오바마는 적어도 아랫 입술을 살짝 씹을지도 모르겠다. 풍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곰을 탄 푸틴과 당나귀를 탄 오바마를 대비시켰으며 백악관에 앉아 졸고있는 오바마를 상대로 셀카를 찍는 푸틴의 모습도 그림으로 남겼다. 미국언론은 희화화된 자국 대통령의 그림을 짐짓 아무일 아닌 것처럼 받아 들이면서도 "푸틴은 LGBT(성적소수자)를 차별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적 행동을 하고있다" 면서 은근한 비판에 나서기도 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시의성 돋보였던 커버스토리/유채윤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옴부즈맨 칼럼] 시의성 돋보였던 커버스토리/유채윤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10월 발행된 서울신문의 중심에는 매우 돋보이는 기획 커버스토리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대북 삐라’ 살포를 주제로 삼은 18일자 커버스토리와 여러모로 사회적 이슈를 일으키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탐구한 25일자 커버스토리가 눈에 띄었다. 사실 10월 첫 두 주간의 커버스토리는 국회의원 보좌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라든가 가을 생선 전어를 주제로 다룸으로써 잔재미는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느슨한 느낌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초반에 제공되었던 생활 정보 위주의 커버스토리를 보완하기 위해 후반에는 세태를 아우르는 주제를 가진 커버스토리를 제작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대북 삐라를 주제로 한 18일자 커버스토리는 지난 9월 후반부터 서울신문 지면에서 꾸준히 등장해 온 관련 기사를 테마화해 흥미와 가독성을 높인 기획 기사였다. 지난 10일자 신문 2면에 실린 ‘北,“전단 살포 땐 파국”… 정부, 민간단체에 자제 요청’, 11일자 신문 1면에 실린 ‘北, 대북전단 향해 고사총 발사… 軍, 대응사격’, 그리고 관련 전문가 칼럼 등 다양한 콘텐츠가 서울신문 내에서 조명되었고, 그 중요도를 그대로 살려 커버스토리를 제작했다. 특히 삐라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세대들에게 재미를 느끼게 하려는 시도가 매우 성공적이었다. 예를 들어 ‘“월북하면 100억” 달콤한 유혹… ‘USB에 한국 가요’ 문화적 충격’이라는 기사에서는 70, 80년대의 흥미로운 시각 자료를 여럿 이용해 대학생과 청소년들도 관심을 갖고 읽을 수 있는 내용을 만들었다. 또한 ‘하늘로 간 삐라, 위험한 초대장’의 그래픽 자료는 애드벌룬 내부에 수소 주입, 시한장치 장착, GPS 장착 등 삐라 살포 방식을 주요 살포 단체와 함께 설명해놓아 신기했다. 한편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를 주제로 한 25일자 커버스토리는 기획 기사로 다루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빅데이터 분석 기법으로 심층성을 보완했다고 생각한다. 먼저, 일베는 몇 년 전부터 백분토론, 시사돌직구 등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여러 신문 매체에서 종합적으로 다뤄졌다. 특히 ‘여성 비하·노무현 희화화· 세월호·국민 등 정치 클릭· 극우 보수? 안티 진보일 뿐!’, ‘극우 요람’도 태초엔 진보였다’ 등 기사는 이미 ‘일베의 사상’ 등 비평 서적과 여러 관련 논문으로 발행돼 인터넷에 공공연히 유통되고 있는 정보다. 일베인들을 인터뷰한 ‘“폭식 퍼포먼스로 투쟁 참의미 찾았음” “일게이는 팩트로 승부…언론 앞섰노.”’ 신선했지만 왜 이제와 작성됐는지 의문이 생겼다. 지난 9월 초 일베 회원들이 광화문에서 폭식농성을 한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서울신문 지면에는(온라인 기사 제외) 집회에 대한 기사가 작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다룬 대북 삐라 커버스토리의 경우와 같이, 지속적인 관련 기사들이 먼저 작성되고 커버스토리가 만들어졌다면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독자들의 관심을 더욱 끌 수 있었을 것 같아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베가 꾸준한 분석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건강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기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일베가 일본의 재특회처럼 대형 오프라인 단체가 될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에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커버스토리의 주제로 선정될 때에는 그 기사의 시의성이 더욱 확실하게 드러났으면 좋겠다.
  • 행복한 장수 비결은 덕이지요

    행복한 장수 비결은 덕이지요

    노년의 풍경/김미영 외 지음/글항아리/352쪽/2만 5000원 ‘100세 시대’라는 말이 현실이 된 요즘 웰빙과 웰다잉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것이 잘 늙어가는 것, 즉 ‘웰에이징’이다.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 노년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보다 평균수명은 훨씬 짧았지만 우리 선조들은 노년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 ‘노년의 풍경’은 늙음이라는 오래된 고민을 중심으로 우리 선인들의 사유와 지혜를 들여다본다. ‘노인의 열 가지 좌절이란 대낮에는 꾸벅꾸벅 졸음이 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으며, 곡할 때에는 눈물이 없고 웃을 때에는 눈물이 흐르며, 30년 전 일은 모두 기억되어도 눈앞의 일은 문득 잊어버리며, 고기를 먹으면 배 속에 들어가는 것은 없이 모두 이 사이에 끼며, 흰 얼굴은 도리어 검어지고 검은 머리는 도리어 희어지는 것이다.’(성호 이익) 노년은 이렇듯 신체의 파멸과 쇠퇴를 가져오며 비탄에 빠지게 한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으로는 장수(長壽)에 대한 바람으로 인해 행복의 지표로 받아들여졌다. 조선시대 행복 지표로 오복(五福)을 들었는데 오래 사는 복인 수(壽)를 첫째로 내세운다. 오래 사는 것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최대의 복으로 여겨졌지만 목숨의 길고 짧음이 하늘의 뜻에 달려 있는지라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장수를 기원했다. 십장생도를 담은 병풍을 두고, 수(壽)를 기하학적으로 형상화해 가리개, 베개, 수저통 등의 생활용품에 자수를 놓거나 새겨 놓고 항상 가까이했다. 하지만 마냥 오래 산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건강이 뒤따르지 않으면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조선의 왕 중에서 83세의 장수를 누린 영조(1694~1776)는 수라상 대신 밥과 김치, 약간의 장류로 구성된 간소한 밥상으로 소식을 했고 술도 마시지 않았으며 비단 대신 명주로 만든 이불을 사용했다. 70세까지 장수한 퇴계 이황(1501~1570)은 평소 두서너 가지의 음식과 잡곡밥으로 식사를 했으며 몸과 마음의 조화를 중시했다. 퇴계는 활인심방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정신의 약인 ‘중화탕’(中和湯)을 장생의 처방으로 제시했다. 여기에는 ‘마음에 거짓을 없애라, 시기하고 샘내지 말라, 마음을 맑게 하라, 욕심을 줄여라, 부드럽고 순해져라, 겸손하고 화목하게 살라, 만족하라, 어진 마음을 간직하라, 분노하지 않도록 경계하라, 탐욕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이 들어간다. 조선의 명재상이자 청백리의 귀감이었던 황희(1363~1452) 정승은 좀처럼 화를 내는 일이 없었으며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며 항상 웃음으로 남을 대했다. 그는 90세까지 건강하게 살았다. 건강한 장수를 위해서는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여유로움을 지녀야 한다는 얘기다. 축복받은 장수의 삶은 어떤 것일까. 전통적인 오복에 따르면 ‘적절한 부유함을 갖추고(富), 큰 질병과 시름 없이(康寧), 덕을 쌓으면서(攸好德), 장수를 누린 뒤(壽) 고통 없이 편하게 숨을 거두는 것(考終命)’이다. 맹자에는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는 세 가지를 지위, 나이, 덕망이라고 했다. 종합하면 덕을 쌓으며 장수를 누리는 것이야말로 축복받은 장수에 이르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총 8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 장마다 다양한 인물, 그림, 풍속, 고전작품 등을 곁들인 책은 여러 분야에서 사회적 명성을 얻은 거장들의 노년을 사는 방식에도 주목한다. 오랜 기간 관직에 머물며 왕을 보좌한 황희와 신개, 일찍이 은퇴하고 낙향해 자연 친화적 삶을 즐기며 노년을 보낸 김상헌과 이현보는 노년을 지내는 방식에 여러 가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노욕(老慾)을 경계하며 자신이 설 자리를 객관적으로 살피는 미수 허목(1595~1682)의 태도는 노년에 대한 성찰의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노인의 사업’과 ‘노령의 인사’라는 두 편의 글을 남긴 여현 장현광(1554~1637)은 사람이 태어나 장성하는 것은 무에서 유가 되는 것이고, 노쇠하고 나이 드는 것은 유에서 무로 돌아가는 것으로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니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나이 듦을 탄식하거나 희화화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지를 고민했던 그는 노년을 비록 몸은 쇠하지만 도(道)가 완숙될 수 있는 시기로 보았다. 그는 사무를 멈추고 억지로 몸을 쓰지 말고 음식을 가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대신 성정을 기르고 심기를 보양해 도의 경지로 들어가 남은 해를 보내는 것이 노인의 사업이라고 썼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커버스토리] “폭식 퍼포먼스로 투쟁 참의미 찾았음” “일게이는 팩트로 승부…언론 앞섰노”

    [커버스토리] “폭식 퍼포먼스로 투쟁 참의미 찾았음” “일게이는 팩트로 승부…언론 앞섰노”

    호남과 여성 등에 대한 비하와 인신공격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는 지난 9월 서울 광화문광장 ‘폭식 퍼포먼스’를 계기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진보는 물론 일부 보수 세력까지 “방법이 과했다”고 질타했다. 일베 회원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신배(29·회사원)·김선규(34·별정직 공무원)·박혜리(19·여·대학생), 강민재(23)씨 등 4명의 ‘일게이’(일베 게시판 이용자)를 직접 만났다. 그들의 요청에 따라 가명 처리했다. →일베를 처음 접한 계기는. 이신배(이하 이) 2011년 말 수업 중 ‘지역감정’에 대한 조별 과제를 하려고 검색을 하다가 처음 접했다. 지역감정에 대해 회원 간 의견 교환이 활발하고 콘텐츠도 재밌었다. 김선규(이하 김) 6년 전 정치외교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었는데 특히 정치 게시판에 흥미로운 글들이 많아 보였다. 박혜리(이하 박) 지난해 겨울 시작했는데, 유머 글을 보려고 들어갔다. ‘디시인사이드’를 하다가 일베로 넘어갔다. 강민재(이하 강) 전부터 ‘웃대’(유머사이트 ‘웃긴 대학’) 등 유머 커뮤니티에 자주 들렀다. 지난해 (일베로) 넘어왔다. →게시글들 중 어떤 걸 좋아하나. 이 전문적이고 재밌는 글들이 많다. 어떤 사람은 ‘인체의 신비’를 만화 시리즈물로 옮겼는데, 인체에서 뇌가 명령을 내리면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그렸다. 김 교육이나 정보기술(IT) 관련 글에 관심이 많다. 다른 사이트에서 새누리당 관계자의 웃는 옛날 사진을 세월호 정국 때 희희낙락하는 것처럼 꾸민 일이 있었는데, 그런 잘못을 (일베에서) 바로잡기도 했다. 박 일상에 대한 글을 올린다. (일베 규정상 사이트 내에서 ‘여성임을 공개하거나 암시하는 것’은 금지돼 있기 때문에) 여자 인증하면 안 되니까 남자인 척하고 ‘김치녀’에 대한 글을 올렸다. →일베를 이용하는 이유가 뭔가. 김 상당수는 ‘카더라’ 식 비방보다 괜찮은 글을 올린다. 일베 회원들은 근거나 데이터 등 ‘팩트’를 가지고 비방한다. 언론보다 앞선 경우도 많다. 지난 대선 때 큰 반향을 일으킨 ‘문재인 의자’를 생각해 보라. 박 ‘레벨 업’(레벨을 올리는 것)이 재밌다. ‘오, 고렙(높은 레벨)이다’ 식으로 알아주면 쾌감을 느낀다. 강 일베를 알고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광우병 파문으로 엄청 욕을 먹었는데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지 않았나. →일베의 문제점은 없나. 이 ‘김치녀’ ‘삼일한’처럼 여성을 비하하는 건 좀 심했다. 김 ‘홍어’ ‘까보전’ 등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글들은 좀 사라져야 한다. 그런 것만 사라지면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괜찮은 인터넷 커뮤니티라고 생각한다. 강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희화화로 비난을 받았는데, 잘못된 행동이란 건 ‘일게이’들도 안다. 우리도 한국 사람이다. 다만 일베의 개그 코드가 원래 좀 그렇다. 또 ‘홍어’랑 결부시키면 호응이 뜨거우니까 렙(레벨) 올리고 베스트 게시판에 가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여성을 비하하고 혐오하는 분위기가 불편하지는 않나. 박 불편하다. 그래도 규칙이니까 지키려고 노력한다. 너무 남자친구에게 얻어먹으려고만 하는 친구들을 보면 김치녀를 싫어하는 남자 마음도 이해는 간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희화화는. 이 옛날부터 싫어했다. 말만 하다 끝난 대통령이다. 오죽 못났으면 같은 편한테도 당했겠나. 악질일지언정 유능한 대통령이 좋다. 강 일베 내에서처럼 ‘고인 드립’(고인을 비하하는 애드리브)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홍어, 광주 까는 건 솔직히 잘못인 건 안다. 하지만 이미 상징처럼 굳어 버렸다. →‘강간 모의’ 등 반사회적 행동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이 욕먹을 짓을 많이 하긴 했다. 일베에 자정 능력이 있었으면 더 멋진 커뮤니티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김 커뮤니티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글로 노는 공간이다. 확대해석할 필요 없다. 박 안 좋은 짓 하고 분탕 치는 사람들이 많은 건 인정하는데, 소수 때문에 다수가 욕을 먹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폭식 퍼포먼스’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 현장에 가보진 않았다.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런 식으로 표현하면 안 되는 거였다. 박 가진 않았지만 잘했다고 생각한다. 도를 넘은 퍼포먼스에 대해선 말이 많지만 퍼포먼스의 참의미를 일깨워 줬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강 엄청 웃겼다. 일베가 그렇게 대규모로 나간 게 처음이라 종일 사이트에 붙어 있었다. 세월호 사건이 정치화되고, 시민들이 이용해야 할 광화문광장이 불법으로 점거돼 거슬렸다. 처음엔 한두 명이 농성장에 갔다가 나쁜 소리 듣고 사이트에 올리고 그랬다. 왜 그런 거 있잖나. 동생이 맞고 오면 화나는 거. 그런 생각들로 나간 거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커버스토리] 여성 비하·노무현 희화화 · 세월호·국민 등 정치 클릭 · 극우 보수? 안티 진보일 뿐!

    [커버스토리] 여성 비하·노무현 희화화 · 세월호·국민 등 정치 클릭 · 극우 보수? 안티 진보일 뿐!

    24일 서울신문과 데이터 시각화 전문업체인 뉴스젤리가 올 1월부터 지난 15일까지 일간베스트저장소의 ‘일베’(일간베스트)와 ‘정베’(정치베스트) 게시글과 댓글을 분석한 결과 ‘일베’에서 가장 많이 노출된 키워드는 ‘게이’(게시판 이용자·3만 9684회)였고, 비속어인 ‘새끼’(3만 5240회)가 뒤를 이었다. 여성 비하 의미로 쓰이는 ‘김치’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노무’ 등은 각각 8위, 10위에 올랐다. 임준원 뉴스젤리 대표는 “비속어나 고인을 희화화하는 단어 등 일베의 부정적인 면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예상대로 많이 추출됐지만 그와는 별개로 또래들이 공통적으로 관심을 갖는 분야와 관련된 ‘취업’ ‘수능’ ‘월드컵’ 같은 어휘도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일베’ 게시판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단어 5위가 ‘일본’이란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일베 전문가인 문화인류학자 이길호씨는 “‘일본’이라는 공간이 워낙 많은 ‘떡밥’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일베 사람들은 지진이나 방사능으로 피해를 입은 일본인을 조롱하는 한편 일본인들이 재난에 따른 시스템의 일시적 실패를 ‘성숙한 시민문화’로 만회한다고 찬양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도 “남성 의존적인 한국의 ‘김치녀’와 비교해 일본의 ‘스시녀’는 남자 말을 잘 들으면서도 금전적으로는 남자들에 기대지 않는다며 치켜세우는 방식의 대화가 일베 내에서 자주 일어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결과”라고 말했다. ‘정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키워드는 ‘대통령’(1만 4602회)이었고, 국민(1만 797회), 정치(9856회), 세월(세월호를 뜻함·8647회) 순으로 나타났다. 정 교수는 “과거에 등장했던 노골적인 반여성적 단어들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정치적으로 세월호 이슈와 관련한 단어들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치킨’, ‘피자’ 등 평범한 음식 이름이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 농성장이 있는 ‘광화문(광장)’과 함께 언급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베’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 10위에 ‘문창극’이 등장한 것은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일베 내에서도 치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 교수는 “친일 성향이 문제가 돼 사퇴하고, 현 정권의 지지율 하락에도 영향을 미친 사람이 문창극”이라면서도 “오히려 이러한 점 때문에 일베가 적극 옹호해야 하는 사람으로 정의돼 자주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일베가 ‘보수’ 성향이라는 의견에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보수’라기보다는 ‘진보’ 세력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일종의 ‘안티(Anti) 진보’이며, 실제 ‘보수’라는 이념적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아니라 보수로 ‘가시화’된 세력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일베는 기본적으로 극우 성향을 띠기도 하지만 외국의 극우 세력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며 “공격 대상이 주로 외부가 아닌 내부의 적이라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일베에서는 인종 혐오보다도 내국인인 여성, 전라도, 진보 세력에 대한 혐오가 중점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모바일융합학과 교수는 “이들 중 일부는 ‘폭식 퍼포먼스’처럼 조직적으로 바깥에 나왔지만 대다수는 컴퓨터 앞에서 암약하는 ‘키보드 워리어’”라면서 “극우적인 요소들은 이들의 유머 코드에 재료로 등장하는 것일 뿐 이들은 특별한 이념적인 정체성을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길호씨는 “일베는 기본적으로 ‘시스템과 자기 존재 간의 간극을 메우는 과정’”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는 “일베 이용자들은 자기 자신을 ‘이 시스템 내에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여긴다”며 “여성·전라도·진보 세력들은 시스템 내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들이라고 보기 때문에 혐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기득권의 끝없는 탐욕… 여전히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

    기득권의 끝없는 탐욕… 여전히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

    한국 현대사회를 들여다보기에 근대는 좋은 거울이 된다.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의 근대에서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문제들이 똬리를 틀어 지금의 정치·사회적 갈등과 대립의 근원이 됐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근대사회의 폐부를 날카롭게 찌른 당시의 희곡들이 현대 연극계에서 꾸준히 되살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립극단은 한국 근대극 재조명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극작가 오영진(1916~1974)의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를 택했다. 일제와 미군정에 머리를 조아리며 욕망을 채워 온 이중생의 파멸을 그린 작품으로, 친일 반민족주의의 청산과 새 시대에 대한 갈망을 해학과 풍자 속에 꾹꾹 눌러 낸 블랙 코미디다. 일제강점기에 자신의 아들 하식과 하인의 아들 용석을 지원병으로 내보내며 일본으로부터 이권을 얻은 이중생은 해방 후엔 딸 하연을 미국인의 정부로 보내 가며 치부를 한다. 그러나 일이 꼬여 탈세와 배임, 공금 횡령 등의 혐의를 받게 된 그는 재산을 지키기 위해 가짜 자살극을 꾸민다. 최근 한국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출가인 김광보 연출은 재해석이나 변형 없이 원작을 그대로 무대에 옮기는 정공법을 택했다. 무대 세트부터 인물들의 특성, 대사까지 고스란히 살렸다. 기득권의 속물근성에 대한 희화화는 현대의 관객에게도 통렬한 쾌감을 안겨 준다. 이중생의 전 재산이 무료 병원 건립에 쓰이기로 결정되자 병풍 뒤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이중생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서 탐욕스러운 기득권의 전복이 주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한편으로는 당시의 세대 갈등을 지금의 한국 사회와 비교해 바라볼 여지도 준다. 러시아에서 돌아온 아들 하식이 이중생에게 “아버지 같은 사람이 떠밀다시피 보낸 젊은이가 소련 놈 밑에서 강제 노동을 하고 있다”고 쏘아붙이는 대목은 한국 사회가 떠안고 있는 세대 갈등과 포개진다. 원작은 이중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친일 반민족주의와 속물주의의 청산, 새로운 시대의 도래라는 주제 의식을 또렷하게 새겼다. 지금의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이중생들을 떠올리며 씁쓸함을 느낄 수 있다. 국립극단은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김우진의 ‘이영녀’, 유치진의 ‘토막’, 김영수의 ‘혈맥’ 등으로 근대극 재조명 시리즈를 이어 갈 계획이다. 오는 28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만~5만원. 1688-5966.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KB사태’가 남긴 문제점] (중) 정부의 ‘낙하산 근절 의지’ 시험대

    [‘KB사태’가 남긴 문제점] (중) 정부의 ‘낙하산 근절 의지’ 시험대

    KB사태를 가까이서 지켜본 한 금융권 인사는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결사항전을 결심한 데는 (회장후보추천위원인) 사외이사들의 지지를 얻어 정정당당하게 회장으로 뽑혔다는 자존심도 크게 작용했다”면서 “정권이나 현직 모피아(재무부+마피아)들에게 빚진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니까 억울함이 더 컸던 것”이라고 전했다. 임 전 회장은 행정고시 20회로 정통 모피아로 분류된다. 자신을 ‘차원이 다른 모피아’로 생각하는 임 전 회장은 이번 사태를 ‘서로 다른 줄을 잡고 내려온 두 개의 낙하산이 부딪친 결과’라는 세간의 해석에 몹시 불쾌해한다. 하지만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이 정권과 연관이 없었다면 회장에게 그렇게 강하게 반기를 들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KB금융지주 이사회는 19일 서울 중구 명동 KB지주 본사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어 후임 회장 인선 절차 등을 논의했다. 경영 공백 최소화를 위해 최대한 빨리 인선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다음달 중순까지 최종 후보 1명을 추려 오는 11월 14일로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에서 선임할 계획이다. 현직에서 물러난 한 모피아는 “KB사태의 출발점은 정치권에서 다른 사람을 심기 위해 (임 전 회장을) 흔든 데 있다”면서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임 전 회장) 자신도 모피아를 배경으로 그 자리에 앉은 만큼 후배(신제윤 금융위원장)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비켜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낙하산 윤리’라는 희화화된 표현 밑바닥에는 낙하산을 당연하게 여기는 인식이 깊숙이 배어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눈먼 떡고물(주인 없는 금융사 수장 자리)을 먹으려는 정치권과 관료집단의 이런 인식과 행태를 뿌리뽑지 않고서는 KB사태 재발을 막기 어렵다”면서 “낙하산 인사를 원천 차단하는 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하고 정부는 (차기 회장 인선 작업에) 일절 입김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KB회장 후임 인선이 박근혜 정권의 낙하산 근절 의지를 시험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국내 금융지주사 체제는 은행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은행장은 (회장에게) 휘둘리려 하지 않으려 하고 회장은 그룹을 장악하려 한다”면서 “이런 특성을 감안하면 회장이 행장을 겸하는 게 낫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은행 못지않게 증권, 보험 등 비(非)은행업도 균형 있게 키우자며 도입한 게 지주사 체제인데 정착 과정에서 삐걱댄다고 회장과 은행장을 겸직시키는 것은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우리금융과 KDB금융지주가 회장·행장 겸직 체제이지만 ‘민영화’와 ‘무늬만 지주사’라는 각각의 특수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윤 교수는 “어차피 국내 지주사들의 규모가 크지 않다는 현실론 측면에서 겸직 체제가 낫다는 것일 뿐, 반드시 그것이 정답이라는 얘기는 아니다”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회장과 행장의) 책임과 권한을 분명하게 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회장과 행장을 따로 둘 경우 회장에게 은행장을 포함한 자회사 사장단 인사권을 확실히 주고 그 대신 책임도 철저히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자면 이사회가 ‘경영진 거수기’나 ‘정권 방패막이’ 역할에서 벗어나 경영 감시와 견제라는 제 기능을 해야 한다. 국민은행 노조는 이번 사태의 또 다른 책임자인 사외이사들이 회장 인선 작업을 맡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성낙조 노조위원장은 언론에 거론된 차기 회장 후보들에게 “(낙하산 고리를 끊으려면) 내부 출신이 회장이 돼야 한다”며 회장직을 고사해줄 것을 요청하는 자필 편지를 일일이 보내기도 했다. 안미현 기자 hyun@seoul.co.kr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총기난사 임병장 “계획적” vs “우발적” 법적 공방

    총기난사 임병장 “계획적” vs “우발적” 법적 공방

    18일 동해안 22사단 일반 전초(GOP) 총기 난사 사건 피의자 임모(22) 병장에 대한 첫 공판에서 임 병장이 공소사실 대부분을 인정했다. 하지만 앞으로 재판에서 ‘왕따’ 등 병영 내 집단 따돌림으로 인한 우발적 범행인지, 아니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인지를 놓고 군 검찰과 변호인 측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이날 오후 강원 원주 육군 제1여전군 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서 군 검찰은 상관 살해, 살해 미수, 군무이탈 등에 대한 1차 공판이 열렸다. 군 검찰은 “(임 병장이) 소대 동기 등이 별명을 부르거나 후임이 자신에게 경례하지 않은 것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오다 자신을 희화화한 그림을 본 뒤 격분해 소초원 모두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수류탄을 던지고 소총을 발사한 것”이라고 밝혔다. 임 병장은 공소사실을 인정하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대체로 맞는 것 같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반면 임 병장의 변호인 김모 변호사는 “초소의 그림을 보면 피고인을 악의적으로 상징하는 것들이 가득 차 있다. (임 병장은)선임과 간부들이 자신을 놀려 스트레스를 받고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면서 “이 같은 따돌림이 사건을 야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재판은 유족 10명을 비롯해 수류탄 파편상을 입고 지난 8월 만기 제대한 김모(23)씨 등 40여명이 참관했다. 유가족 대표인 권모씨는 “임 병장 부모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같은 아들과 동료들인데 안타깝다. 자식들도 모두 용서하고 땅에 묻혔다. 유가족들은 임 병장을 용서하려 한다. 임 병장의 목숨은 살리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변호인의 주장에 대해 “다만 왕따 문제로 사건의 본질을 몰고 가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2차 공판은 다음달 23일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다. 원주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사설] 정치권 불신 자초하는 정쟁성 막말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12일 소집한 국회 상임위원장 회의는 막말이 한국정치의 고질임을 일깨운 현장이었다. 공회전하는 국회를 정상화하려고 소집했건만, 설훈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새정치민주연합)의 작심한 듯한 ‘대통령 연애’ 발언으로 끝내 파투나고 말았다. 여야가 이후 설 의원을 징계해야 하느니 마느니 설전을 주고받으며 세월호법으로 인해 꼬인 정국은 더욱 뒤엉켰다. 막말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상대에 대한 비방과 저주다. 하지만 기껏 열혈 지지층으로부터 잠시 환호를 얻을지 모르나 궁극적으로 공멸을 부르는 언술이다. 그런 맥락에선 “(세월호 사고 당일)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연애했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문제는 그게 아니라면 더 심각한 게 있다”고 말해 근거 없는 항간의 뜬소문을 교묘히 부추긴 설 의원의 말도 마찬가지다. 상임위원장 회의가 난장판이 된 그날 씨름 관련 세미나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의원들 입씨름 대신 씨름대회를 열어 보라”는 조롱까지 들었다지 않는가. 정치권이 국민적 희화화의 대상으로 전락했음을 뜻하는 사례다. 이에 김 대표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지만, 어찌 보면 정치권의 자업자득일 게다. 의원들이 대통령을 상대로 “당신은 국가의 원수(怨讐)”라고 말장난하고,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을 ‘노숙자’로 비하하는 판이니 말이다. 국회가 저잣거리의 술안주인 양 조롱당하는 것은 정치인의 위신을 떠나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서 불행한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견의 차이는 늘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막말과 허위 사실에 기반을 둔 인신공격으로 인해 의견의 평행선이 감정의 평행선으로 치달아선 안 될 말이다. 그래서는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며 이견을 좁혀가는 차원 높은 숙의민주주의는 언감생심이다. 문제는 진영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막말 정치’의 뿌리가 너무 깊다는 점이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야당 시절 의원들이 환생 경제라는 연극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육시럴 X’등 막말을 쏟아냈지 않는가. 사이버 공간에선 전·현직 대통령을 겨냥, ‘노구리’, ‘쥐박이’, ‘닭X’ 등 욕설이 일상화됐다. 이 같은 ‘막말 공화국’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정치권의 대오각성이 절실하다. 여든 야든 막말은 상대를 향해 내뱉지만, 결국 자신을 해치는 부메랑임을 깨닫기 바란다. 이런 우리 정치사의 엄연한 교훈조차 망각하는 의원들을 유권자가 기억했다가 표로 응징해야 한다.
  • [씨줄날줄] 삼성·LG의 반세기 전자전/정기홍 논설위원

    “구 회장, 우리도 전자사업 할라꼬 하네.”(이병철 삼성 회장) “(전자사업이) 남으니까 할라꼬 하제.”(구인회 LG 회장) 1968년 말, 두 회장이 야외에서 담소를 나누던 중 삼성의 전자사업 진출 언급에 구 회장이 벌컥 화를 냈다. 동석했던 이 회장의 장남 맹희씨는 자신이 쓴 ‘묻어둔 이야기’에서 당시 어색했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동향(경남)에다 사돈(구 회장 3남-이 회장의 차녀) 간인 둘의 관계는 이후 틀어졌다. 구 회장은 이어 장남 자경(현 LG 명예회장)씨를 불러 “그쪽에서 그래 하겠다면 우짜것노. 자식을 주고받은 처지인데. 나도 (삼성의) 설탕 사업을 할락하면 못할 거 있나. 하지만 사돈이 하는 사업에는 손대지 않을 끼다”라고 못박았다. 삼성의 전자사업 진출 과정엔 곡절이 많았다. 전자사업의 진출이 구체화되자 당시 금성사(현 LG전자)를 중심으로 업계의 반대가 심했다. 설상가상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이 회장 간의 사이도 원만하지 않았다. 이 회장은 박 대통령을 집요하게 설득한 끝에 1969년 삼성산요전기를 만들고, 1970년에 삼성NEC를 설립했다. 맹희씨의 얘기다. “아버지께서 전자와 자동차를 놓고 저울질했고, 전자는 생산품 1g당 부가가치가 17원인데 자동차는 3원 조금 넘는다며 전자를 택했다”고 전했다. 일반사업은 삼성이 1938년 삼성상회(현 삼성물산)를, LG가 1947년 락희화학공업(LG화학)을 세워 9년 앞섰지만 전자사업은 LG(1958년)가 삼성(1969년)보다 11년을 앞섰다. 금성사는 1959년에 국내 첫 라디오를 생산했고 냉장고, 흑백TV 등 대부분의 품목에서 ‘국산 1호’를 기록했다. 삼성의 ‘전자 2등’은 오래갔다. 1972년 들어서야 흑백TV를 독자 생산한다. 하지만 ‘이코노TV’가 인기몰이를 하며 단번에 LG를 위협했다. 반도체와 ‘애니콜 휴대전화 신화’로 큰돈을 번 것은 그다음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엊그제 독일 가전전시회에 참가한 LG전자의 간부 연구원이 삼성전자의 가전 매장에서 세탁기 도어의 연결부(힌지)를 힘줘 눌러 파손해 구설수에 올랐다. LG 측이 문제의 4대를 사면서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삼성 측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조금 과한 느낌이지만 업계에 따르면 연구원들의 경쟁사 매장 점검은 종종 있다고 한다. 두 기업은 단순한 외형 규모를 차치하고 ‘세계 최강’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맞수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전자업계 아성이던 일본의 소니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누가 예견했겠나. 전자사업 진입을 놓고 다투었던 두 선대 회장은 세상을 떠났다. 세월도 반세기가 흘렀다. 아이들은 다투면서 크고, 기업도 맞수와 싸우며 진화한다고 한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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