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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년간 외면한 한국군 위안부 300여명…“아픈 과거사 직면할 때”

    70년간 외면한 한국군 위안부 300여명…“아픈 과거사 직면할 때”

    일본군 위안부는 한국군 위안부라는 또 다른 아픈 과거사로 이어졌다. 일본군 장교 출신의 한국군 장교들은 동족과 싸워야 하는 군인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고스란히 심었다. 일본 우익에서는 한국군 위안부를 두고 피장파장의 오류로 왜곡시키기도 한다. 1996년부터 한국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 교수는 이를 반박한다. 그는 “우리 정부가 한구군 위안부라는 아픈 과거사에 대해 진상조사하고 사과할 때”라며 “자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에도 더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1951년 5, 6월부터 전선이 지금의 휴전선 부근으로 교착되며 지난한 장기전이 시작됐다. 이에 한국군은 전선에서 조금 남쪽으로 떨어진 지역에 공식적으로 ‘특수 위안대’를 만들었다. 군의 공식 문서에 확인된 곳만 서울, 강원 강릉, 춘천, 원주, 속초에 이른다. 때로는 최전선에서 교대휴식하는 병사들에게 여성들을 출동시켰고, 섬에 있는 부대에는 따로 위안부를 배치했다. 당시 서울은 행정 복구가 덜 된 데다가 일제시대부터 있던 군부대 시설에 떨어져 있었기에, 서울에서 군 위안부는 민간인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그러나 군이 마을을 빼앗아 주둔하던 속초는 달랐다. 속초 주민들과 주둔하던 미군 폴 팬처는 “시청 인근에 있던 군 위안부 앞에 육군이 줄지어 서 있는 장면을 똑똑히 보았다. 이들은 부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낮에는 밥과 빨래 등 일을 노예처럼 하고, 밤에는 성착취를 당했다”고 증언한다. 위안부는 일반 병사들이 ‘총알받이’를 한다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제5 보급품’이었다. 고위 장교들은 북에서 데려온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 포로를 ‘첩’으로 삼았는데, 병사들이 이를 좋게 볼리도 없었다. 납치된 이북 여성이나 북한군이 점령할 당시 부역했다는 죄목으로 여성들이 위안부로 동원됐다.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장교들은 일반 병사에게 너희들도 북에서 여성들을 데려와 같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자 했다”고 해석한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 ‘사선을 넘고 넘어’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당시 우리 육군은 사기 진작을 위해 60여명을 1개 중대로 하는 위안부대 3, 4개를 운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예비부대로 빠지기만 하면 사단 요청에 의해 모든 부대는 위안부대를 이용할 수 있었다. 5연대도 예비대로 빠지기도 전부터 장병들의 화제는 모두 위안부대 건이었다.……우리 연대는 위안부대는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싸워 공을 세운 순서대로 티켓을 나눠줬고, 훈장을 받았다면 우선권을 줬다.” 한국군 위안부에 대한 육군과 장교들의 기록 한국군 위안부의 규모는 군 공식 기록을 통해 추산할 수 있다. 1956년 육군본부가 후방 지원 업무를 발전시키기 위해 ‘후방전사(인사편)’를 펴내면서 특수 위안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서울 1개 소대와 강릉 3개 소대(총 79명)라는 기록과 서울 3개 소대와 강릉 1개 소대(총 89명)를 적은 표를 종합하면, 서울 3개 소대와 강릉 3개 소대에 약 128명의 한국군 위안부가 있었다. 김 교수는 “여기에 춘천, 원주, 속초 등의 위안부와 1953년 서울에 추가로 설치된 4개 소대를 합하면, 전국 위안부는 약 300명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또한 ‘후방전사’의 ‘특수위안대 실적 통계표’에 따르면 서울과 강릉의 4대 소대에서 위안부 89명이 1952년 한 해에만 20만명이 넘는 군인을 ‘위안’했다. 단순 계산하면 위안부 한 명이 하루 평균 6명 이상의 군인에게 성착취를 당한 것이다. 소대별로 들여다보면 서울 제2소대(중구 초동 105번지)가 그해 8월 1명의 위안부가 상대한 군인수가 한달 평균 269.6명(하루 8.7명)으로 가장 많았다. 1952년 4월과 8월 강릉 제1소대(강릉 성덕면 노암리)에서도 30명의 위안부가 1명당 한달 평균 266.7명(하루 8.6명)을 ‘위안’했다. 1954년 3월에야 특수 위안대는 없어졌다. 김 교수는 “이들은 직업 여성이 아니라 대부분 납치된 여성”이라고 주장한다. 목격자들이 “치장하지 않은 매우 어린 여성으로 보였다”고 증언하고, 한 북파 공작원은 김 교수에게 “자기가 살던 마을에서 여성을 납치해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고 리영희 교수도 1988년 첫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 ‘역정’에서 “낙산사 주변 방공호에서 사병들의 동물적 욕구를 해소케 하는 은전을 베풀었는데, 병사 한명이 자기 고향에서 흘러온 아가씨를 만나 눈물에 젖었다”고 적었다. 복수의 증언자의 소개로 김 교수는 한국군 위안부로 추정되는 여성들을 찾았다. 이들은 “나는 자식들을 키웠을 뿐”이라며 낯선 연구자에게 울음만 토해냈다. 다만 당시 의대생이던 정씨는 국군에게 부역자로 몰려 위안부가 될 뻔했다고 말했다. 피난을 가지 못한 학생들과 인민군을 치료했다는 이유에서다. 정씨는 “○○여대다. ○○여중생이다 하면 모두 빨갱이로 몰려 총살을 당했다. 국군들은 우리를 인민군에게 버림받은 찌꺼기로 여겼다. 친구 3명과 나는 부대 장교 4명에게 배정됐지만 한 군인(남편)의 부탁으로 빠져나왔다. (헤어진 친구 3명에 대해서는) 상상에 맡긴다. 못 다한 얘기는 가슴에 묻은 채 관에 들어가려고 한다”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 원류가 조선시대 기생제?” 한국군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부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특별 위안대의 설치·운영 책임자는 육군본부 후생감(휼병감)이다. 위안대가 만들어진 1951년 무렵 부임한 장석윤 후생감은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10여년을 일본군, 만주국군에서 복무했다. ‘친일인명사전’에 기록된 그의 뒤를 이은 김병길 후병감도 태평양 전쟁 당시 학도병 출신이었다. 김희오 장군은 회고록 ‘인간의 향기’에서 “우리 중대에도 주간 8시간 제한으로 6명의 위안부가 배정됐다. 이는 과거 일본군대 종군 경험이 있는 일부 연대 간부들이 부하 사기 앙양을 위한 발상을 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의 원류는 조선시대 기생제”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정면 반박한다. 조선시대에는 군 위안부가 없었고 일제시기부터 생겨났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조선시대 전통적 기생은 예인에 가까웠다. 그러나 일본이 강화도 조약을 맺고 제물포(인천) 등지를 조차하면서 예인이 지워진 기생이 등장하고 러일전쟁 때 확산됐다. 김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가 없었다면 한국군 위안부는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역사 왜곡도 경계한다.장군들의 회고록에는 위안부에 대한 반성이나 문제의식을 찾기 쉽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1990년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공론화가 한국군 위안부의 ‘불편함’을 일깨웠다. 김 교수는 “상급 장교들은 ‘자신을 왜 일본군 취급을 하느냐’며 위안부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다. 북한 여성을 납치한 군인은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는 일본인과 달리 정이 통한다’고 변명했다. 또 다른 군인은 ‘위안소를 이용하면 빨리 죽는다는 소문이 돌아 나는 이야기만 나눴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고 리영희 교수는 “사실 내가 강릉 부대에 있을 때 위안부를 만났다. 그때는 내가 인권 의식이 부족해서 전쟁 체험담으로 기록을 했는데, 부끄럽다”고만 할 뿐 말을 아꼈다. 군 당국은 한국군 위안부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김 교수가 2002년 연구 결과를 발표하자 외압도 이어졌다. 당시 재직하던 학교를 통해 청와대와 국방부는 ‘조용히 연구하라’고 전했다. 지금도 군은 한국군 위안부에 대해 함구하며 외면하고 있다. 육군 관계자는 서울신문에 “한국군 위안부 관련 진상조사는 한 적이 없다”면서도 “후방전사 인사편에는 특수 위안대 관련 일부 내용이 기술돼 있으나 지금까지 기술된 내용 외에 구체적인 사료나 자료가 없어 추가적인 사실 확인이 어렵다”고 답했다. 또한 “관련 희생자 위령사업 등에 대해 현재 별도의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일본군 경력이 있는 일부 한국군 간부들이 위안부를 설치·운영했다’는 “학계의 주장에 대해서는 육군에서 언급할 사항이 아니”라고 밝혔다. “아픈 과거사 진상조사해야…일본에도 더 당당히 요구할 수 있어”김 교수는 공개되지 않은 군 자료 가운데 진상의 실마리가 숨어 있을 것으로 본다. ‘후방전사’에 따르면 육군본부는 일본군 위안부처럼 한국군 위안부가 일주일 2회 군의관에게 성병 등을 검진받도록 했다. 기초 신상과 정확한 규모를 추정하는 단서가 기록됐을 것으로 본다. 발굴 작업은 김 교수의 은퇴 이후 연구 목표이기도 하다.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는 한국전쟁 당시 벌어진 여러 민간인 학살 사건을 조사했지만 군 위안부는 다뤄지지 못했다. 전쟁 중 만연했던 성범죄도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국민보도연맹 사건, 여순 사건 등 직권조사한 사건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피해자나 유가족이 신청한 사건을 조사했기 때문이다.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이 만들어지기 전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김 교수는 성폭력 사건과 한국군 위안부를 다루자고 제안했지만, 시기상조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김 교수는 지난 5월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연말쯤 꾸려질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기대를 걸고 있다. 김 교수는 “내년부터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정대운 도의원, 광명·시흥 취락구역 개발 정책방향 모색 대토론회

    정대운 도의원, 광명·시흥 취락구역 개발 정책방향 모색 대토론회

    경기도의회는 기획재정위원회 정대운(더불어민주당·광명2) 위원장이 25일 광명도서관에서 ‘광명·시흥 취락구역 개발 정책방향 모색을 위한 정책 대 토론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경기도와 경기도의회가 공동주최한 ‘2020 경기도 상반기 정책토론 대축제’의 일환으로 열린 이날 토론회는 광명시의회 한주원 의원(더불어민주당·광명가) 진행으로 경기연구원 도시주택연구실 이외희 선임연구위원이 주제발표를 맡았다. 토론에는 이일규 광명시의원, 손임성 경기도 도시주택실 도시정책관, 김종진 두길지구 도시개발추진위원회 위원장과 원광명·두길지구 지역 주민 등이 참석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광명시흥 특별관리지역 취락정비사업 법제검토를 주제로 광명시흥 보금자리주택 지정과 해체, 광명시흥 특별관리지역 지정과 관리, 광명시흥 특별관리지역 관리계획, 특별관리지역 취락정비 사업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두길지구 도시개발추진위원회 김종진 위원장은 “두길, 원광명지구 취락정비 사업에 대해 시는 조속히 추진을 해야한다”면서 “광명시는 취락정비사업을 반대할 근거가 없으며, 사업이 오랜 기간 지체돼 주민의 생존권과 재산권은 침해받았다. 개발에 있어서는 주민의 땅을 수용하여 통합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일은 없어야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광명지구 조승범 토지소유자는 “공여개발 대안과 원광명 두길마을은 통합개발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광명시의원은 “광명 시흥 특별정비구역 사업 지연에 따른 주민들의 피해와 희생에 책임감을 느끼며 광명시는 더 이상 주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면서 “적극행정을 통해 빠른 시일 내에 이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추진단을 만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 광명시의원은 “이번 토론회에 참여해 사업과 관련한 광명시의 입장을 전달하기로 한 시 관계자들의 불참 통보는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면서 “광명시는 주민들의 의견과는 다른 광역 기반시설이 왜 필요한 것인지, 앞으로 이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시민들에게 설명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이 사안에 대해 지난주에는 국토교통부 공공주택 추진단을 만나 주민들의 피해 상황과 추진의지를 전달했다”면서 “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토론회 오전에 불참의사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광명시에 깊은 유감의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는 더 이상 주민들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며 사업을 지연시켜서는 안되며, 조속히 사업이 추진될 수 있게 정부와 적극적으로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이날 토론회는 코로나19 생활수칙에 따라 무관중,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도민들은 경기도의회 페이스북와 유튜브를 통해 시청할 수 있도록 진행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6.25전쟁 70주년 맞아 추모기도회로 의미 되새겨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이해 계명대가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추모기도회를 가졌다. 25일 오전 11시부터 계명대 성서캠퍼스 아담스채플에서 열린 추모기도회는 정순모 학교법인 계명대학교 이사장, 신일희 계명대 총장을 비롯해 교직원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6.25 참전 용사에 대한 감사와 의미를 되새기며,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기도회와 함께 계명대 김춘해 교수가 아담스채플의 파이프오르간으로 진혼곡인 ‘모차르트 레퀴엠 K.626’을 연주하며 다같이 호국선열의 얼을 기리고, 계명대 성악과 이화영, 하석배 교수가 피아노과 이성원 교수의 피아노 연주에 맞추어 추모곡을 전하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계명대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민간 차원에서 다양한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동계 방학기간 중에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참전국과 지원국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며, 우리나라를 도와준 국가들을 위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 보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에티오피아 봉사활동 기간 중에는 봉사단원들은‘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아직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들과의 만남의 시간을 가지고 감사의 뜻을 전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생존자들은 생생한 당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전했다. 특히, 타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전장을 누비고 돌아왔을 때 에티오피아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 자본주의 국가를 도왔다는 이유로 핍박 받으며 어려운 생활을 이어 갔다는 안타까운 사연으로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임경수 교목실장은 추도사를 통해 “6.25전쟁이 발발한지 올해로 꼭 70년이 됐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안타까운 젊은 피를 많이 흘렸고, 그들의 목숨과 바꿔 오늘의 우리가 있다”며, “그들의 희생을 절대 잊어선 안 될 것이며, 다시는 이 땅에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주호영, ‘볼턴 회고록’ 의혹에 “문 대통령이 설명해야”

    주호영, ‘볼턴 회고록’ 의혹에 “문 대통령이 설명해야”

    “청와대의 성실한 답변 없으면 국회 차원 조사 불가피”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최근 출간한 회고록과 인터뷰 등을 통해 북미정상회담 및 한미 외교 막후에 일어난 비화를 폭로한 것과 관련해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청와대가 (의혹에 대해) 성실히 답변하지 않으면 국회 차원에서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25일 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 대통령은 한미동맹에 기반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도, 참으로 의아스럽고 실망스러운 행태들이 (볼턴) 회고록에 나오고 있다”면서 “‘분식평화’, ‘남북 위장 평화쇼’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제대로 설명하고 답변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약 청와대에서 성실한 답변이 없다면 국민을 대표해 국회 차원에서라도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주 원내대표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젊은 사람이 목숨을 희생했는데, 과연 국군통수권자이고 헌법상 국가를 보위할 책임이 있는 문 대통령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라며 “국민의 전체적 의사에 기반한 안보정책을 추진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종배 정책위의장은 “볼턴 회고록을 통해 공개된 우리 정부의 국민 기만을 비판하면서 진실을 요구했더니, 도리어 우리 당을 향해 ‘토착 분단세력’이라며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고 여권을 비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6.25전쟁 70주년, 한미 국방장관 “피를 나눈 혈맹…평화 지키자”

    6.25전쟁 70주년, 한미 국방장관 “피를 나눈 혈맹…평화 지키자”

    “북, 싱가포르 성명·남북합의 준수해야”“비핵화 외교 노력 계속 지원”“한미 연합연습 등으로 평화 증진할 것” 한미 국방장관이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기념해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를 지켜온 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기 위한 연합방위태세 유지 공약을 재확인했다. 정경두 국방장관과 마크 에스퍼(Mark T. Esper) 미국 국방장관은 6·25전쟁 개전 시점인 이날 오전 4시에 공개한 공동발표문에서 “북한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과 남북 9·19군사합의 등에 따른 약속을 준수하기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양 장관은 “한미 양국을 대표해 자유와 민주, 번영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장병들의 희생과 용기에 깊이 감사를 드리며, 그분들의 발자취를 기리고자 한다. 또한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를 지켜온 모든 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6.25전쟁 발발 70년이 지난 이후에도 한미동맹이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안보, 안정, 번영의 핵심축(린치핀) 역할을 변함없이 수행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양 장관은 북한을 향해선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과 9·19 남북군사합의 등에 따른 약속을 준수하기를 요구한다”며 “현재와 미래의 도전들에 대응하면서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진화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에스퍼 장관은 6·25전쟁에서 보여준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방위에 대한 미국의 철통같은 공약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한미 국방부는 정보공유·고위급 정책협의· 연합연습 등을 통해 역내 평화와 안정을 지속 증진해 나가는 한편,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외교적 노력을 계속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양 장관은 한미 안보 관계를 강화하고 먼 미래까지 한미 연합군의 전통을 계승해 나갈 수 있도록 양자 협력의 폭과 깊이를 확대해 나가기로 약속했다. 다음은 한미 공동발표문 전문. 오늘 한미는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함께 기념하고자 합니다. 1950년 오늘,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용맹스러운 한미 장병들이 공동의 가치와 목적 아래 함께 뭉침으로써 한미 군사동맹은 피를 나눈 혈맹으로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새로이 출범한 유엔군사령부의 지원 아래, 16개 파트너국 장병들이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부름에 응답함으로써 더욱 강력하게 되었습니다. 70년이 지난 이후에도 한미동맹은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안보, 안정, 그리고 번영의 핵심축(linchpin) 역할을 변함없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정경두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은 한미 양국을 대표하여, 자유와 민주, 번영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장병들의 희생과 용기에 깊이 감사를 드리며, 그분들의 발자취를 기리고자 합니다. 양 장관은 또한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를 지켜온 모든 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기 위한 연합방위태세 유지 공약을 재확인합니다. 한미 국방부는 힘들게 이룩한 한반도 평화를 지키려는 확고한 의지를 견지하고 있으며,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현행 외교적 노력을 계속 지원해 나가고자 합니다. 양 장관은 북한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과 남북 9·19 군사합의 등에 따른 약속을 준수하기를 요구합니다. 6·25전쟁에서 보여준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에스퍼 장관은 대한민국 방위에 대한 미국의 철통같은 공약을 확인하였으며, 양 장관은 현재와 미래의 도전들에 대응하면서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진화시켜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양 장관은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 그리고 항행과 비행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 규칙과 규범 준수의 중요성을 확인하였습니다. 양 장관은 복잡한 범세계 및 역내 안보 변화 속에서 공조의 증진 필요성에 동의하고 다양한 분야의 현안에 대한 협조와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양 장관은 또한, 한미일 및 다자 안보협력을 통해 동북아의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한미 역내 전략의 시너지 창출을 지속 모색해 나갈 것입니다. 한미 국방부는 정보공유, 고위급 정책협의, 연합연습 등을 통해 역내 평화와 안정을 지속 증진시켜 나갈 것입니다. 에스퍼 장관은 한측의 코로나19 대응이 효과성과 투명성에 있어 모범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한미 국방부는 범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에 대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입니다. 한미동맹은 상호 신뢰와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라는 공동의 가치에 기반합니다. 이러한 정신에 따라, 양 장관은 양측의 안보 관계를 강화하고 먼 미래까지 한미 연합군의 전통을 계승해 나갈 수 있도록 양자 협력의 폭과 깊이를 확대해 나가기로 공약하였습니다. 한미동맹이 구호로 외치는 바와 같이, “같이 갑시다! We go together!”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폭우에 싼샤댐 붕괴’ 루머, 또 후베이성 재난 덮치나

    ‘폭우에 싼샤댐 붕괴’ 루머, 또 후베이성 재난 덮치나

    중국 남부 지역에 ‘역대급’ 폭우가 쏟아져 인명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이번 홍수로 세계 최대 규모의 싼샤댐이 무너질 것이라는 루머가 퍼지고 있다. 공교롭게 댐이 있는 곳은 코로나19의 발원지인 후베이성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후베이성에서 또 한 번 재난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며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24일 과기일보 등 중화권 매체에 따르면 최근 중국 정부가 싼샤댐 붕괴 위험을 인지하고 담당부처인 수리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는 소문이 SNS를 통해 퍼지고 있다. 장보팅 중국수리발전공정학회 부비서장은 과기일보 인터뷰를 통해 “싼샤댐이 위험하다는 것은 굉장히 악의적인 루머”라면서 “댐이 붕괴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지난해에도 나왔던 해프닝”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올해 초 감염병 발생 초기에도 정부는 ‘별 문제 아니다’라고 하지 않았느냐”라며 장 비서장의 주장을 반신반의하고 있다. 싼샤댐 붕괴설은 황샤오쿤 중국 건축과학원 교수로 추정되는 SNS 계정에서 시작됐다. 이 계정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한다. 후베이성 이창 아래 지역에 사는 이들은 달아나라”고 경고했다. 이창은 싼샤댐이 있는 곳이다. 누리꾼들은 “전문가가 싼샤댐 붕괴를 경고했다. 바이러스 사태에 이어 후베이성이 재차 타격을 입는 것 아니냐”며 게시물을 퍼나르고 있다. 중국에서는 1975년 8월 태풍 ‘니나’로 동부 허난성의 반차오댐이 무너져 하루 만에 17만명 넘게 사망했다. 이후 중국인들에게 댐이 무너지는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정신적 충격)가 생겨났다. 때마침 지난 17일 쓰촨성의 한 마을이 산사태로 사라져 불안감이 더욱 커진 상태다.싼샤댐은 중국 지도자들의 숙원이었다. 창장(장강)을 관리해 홍수를 예방하고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야말로 수천년간 꿈꿔온 ‘치수’(治水)의 실현이자 조국 근대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1919년 쑨원(1866~1925)이 처음 아이디어를 냈고 1932년 장제스(1887~1975)가 타당성 조사에 나섰다. 마오쩌둥(1893~1976)과 덩샤오핑(1904~1997)도 큰 관심을 가졌다. 1992년 리펑 당시 국무원 총리가 공식 제안해 1994년 건설에 착수했다. 하지만 2009년 완공 뒤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사고 시 초대형 참사가 우려되서다. 댐이 무너져 소양호의 14배에 달하는 393억t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이창에서만 50만명이 수몰돼 희생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한과 광저우, 난징, 상하이에도 피해를 줘 4억명 이상 이재민이 나올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에는 2㎞ 길이의 싼샤댐이 전반적으로 휘어진 것처럼 보이는 구글 위성사진이 공개돼 중국이 발칵 뒤집혔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학살된 민간인 유해 발굴은 땅속에 묻힌 진실 꺼내는 것”

    “학살된 민간인 유해 발굴은 땅속에 묻힌 진실 꺼내는 것”

    현대전에서는 전투요원뿐 아니라 민간인들도 대거 희생되곤 한다. 모든 자원이 투입되는 총력전의 특성상 민간인들 역시 준전시요원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념까지 끼어들면 상대편은 ‘인간’이 아닌 박멸해야 할 ‘악마’로 전락한다. 한국전쟁 당시 전국에서 수많은 민간인 학살사건이 벌어진 이유다. 박선주(73)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는 2005년 출범한 1기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단장을 맡아 거창양민 학살사건, 보도연맹 학살사건 등 전쟁 당시 벌어진 민간인 학살사건 현장들을 두 발로 직접 다니며 희생자들의 유해를 수습했다. 위원회가 공식적으로 활동을 종료한 2010년 이후에도 재능기부나 지방자치단체 의뢰로 10여 차례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여전히 규명되지 않은 민간인 학살사건이 더 많다. 박 교수는 “1기 진실화해위 당시 전국 유족들로부터 민간인 학살 신고를 받아 30개 정도의 집단 희생지를 추렸다. 그러나 위원회 활동 기간 동안 발굴 조사를 진행한 지역은 11개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위원회가 종료된 2010년 시민단체들이 모여 공동조사단을 만들고, 8차례에 걸쳐 자체적으로 유해 발굴이 진행됐다. 이후 충남 홍성, 아산 등 일부 기초단체들도 유해 발굴에 동참했다. 지난해에는 광역단체로는 처음으로 충북도가 관련 예산을 편성했다. 박 교수는 “아산 설화산 인근에서는 208명분의 유해가 쏟아졌고, 이 중 58명 정도는 12살 미만의 아이들, 나머지의 80% 이상도 부녀자들이었다”면서 “1·4 후퇴 때 부역혐의자 가족들에게 ‘도민증을 준다’며 산으로 불러 처형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달 국회가 ‘제2기 진실화해법’을 통과시키면서 아직 규명되지 않은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중앙정부 조사가 10년 만에 재개된다. 박 교수는 “2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하면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유해 발굴이 진행될 것”이라면서 “이후 대전 산내 곤룡골 지역에 국립 위령 시설로 조성될 ‘진실과 화해의 숲’에 유해들이 안치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민간인 학살사건의 규명을 위한 유해 발굴에 대해 “땅속에 묻혀 있던 진실을 지상으로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유해 발굴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 “구천을 떠돈 희생자들의 한을 풀어 주고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해 산 자나 죽은 자나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노력이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147구 참전용사 北·하와이 거쳐 70년 만에 귀환

    147구 참전용사 北·하와이 거쳐 70년 만에 귀환

    6·25전쟁 70주년 행사가 고국으로 돌아온 147구의 국군전사자 유해와 함께 개최된다. 국가보훈처는 24일 “6·25 참전유공자들의 희생과 헌신을 국민과 함께 기억하고, 유엔참전국의 공헌에 감사하는 70주년 행사를 25일 서울공항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행사는 참전유공자에 대한 경의를 담아 ‘영웅에게, Salute to the Heroes(영웅에 대한 경례)’라는 주제로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다. 70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국군 유해 147구를 맞이하는 행사가 먼저 열린다. 147구는 2018년 북미 정상회담 합의로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로 옮겨졌다가 국군전사자로 판명됐다. 정부는 그동안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과 송환을 협의했고, 이날 하와이에서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기(KC330)를 이용해 성남공항으로 봉환했다. 행사는 배우 최수종과 국방홍보원 정동미 대위의 사회로 진행된다. 147구 중 신원이 확인된 하진호 일병 등 7구와 국내에서 발굴돼 미국으로 송환되는 미군 유해 6구가 가수 윤도현이 부르는 ‘늙은 군인의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입장한다. 헌화·분향 후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유엔군사령관 등이 유해에 참전기장을 수여한다. 이어 147구의 귀환 여정이 담긴 영상을 KC330 동체에 비춰 상영하고 배우 유승호가 장진호 참전용사 이야기를 낭독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등 22개국 유엔참전국 정상들이 처음으로 보내온 메시지도 상영된다. 6·25 당시 공적이 70년 만에 확인된 생존 참전용사 공호영 하사 등 2명과 유족 12명에게 무공훈장이 수여된다. 비무장지대(DMZ) 철조망과 6·25 당시 유엔참전국이 사용했던 수통, 탄피, 철모 등을 녹여 만든 ‘평화의 패’를 참전국 대표로 주한 네덜란드 대사에게 전달한다. 보훈처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12만 2609명의 전사자를 마지막 한 분까지 찾겠다는 국가의 약속을 담은 ‘122609 태극기’ 배지를 참석자 모두가 착용해 경의를 표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어려서는 내가 금정굴을 하루이틀 걸러 다니면서 무섭지도 않은지 거길(굴 위를) 건너뛰고 그랬지요. 그런데 아버지 죽고 나서 한 20여년 동안 한 번도 가지를 않았어요. 그쪽은 쳐다도 안 보고 얼씬도 안 하고 싶더라고요.”(이병순 금정굴유족회 고문)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황룡산 자락에 있는 18m 깊이의 수직 폐광 ‘금정굴’. 한때 ‘금구뎅이’라고 불렸던 영광의 기억도, 동네 꼬마들이 폴짝폴짝 뛰놀던 추억도 온데간데없다. 금정굴은 이제 ‘무덤’이다. 1950년 10월 9일부터 25일까지 고양·파주 지역의 민간인 160여명이 ‘빨갱이’로 낙인찍혀 재판 한 번 받지 못하고 학살당한 채 금정굴에 버려졌다. 70년이 지났지만 희생자들은 한 몸 온전히 누일 곳 없이 떠돌이 신세다. 1995년 유족들이 발굴 작업을 벌여 153구 이상의 유해가 세상에 나왔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만 76명이다. 유해를 모실 곳이 마땅치 않아 지금까지 납골당만 세 차례 옮겼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을 “경찰에 의한 불법적인 집단학살”로 결론 내렸지만, 희생자들의 넋은 위로받지 못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권고했던 평화공원 설립도, 영구적인 유해 안치소 설치도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유족들은 애가 끓는다. 부역 혐의자 가족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금정굴 쪽은 애써 외면했다. 억울한 죽음을 애도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서울신문은 24일 채봉화(74) 금정굴유족회장과 이병순(87) 고문을 만났다. 1950년 10월 9일. 당시 열일곱 소년이었던 이 고문의 뇌리에는 70년 전 모습이 스틸사진처럼 남아 있다. 집 앞에서 두 사람씩 삐삐선(군용통신선)에 묶인 채 이동하는 행렬을 목격했다. 맨 뒤에 아버지 이봉린이 있었다.보리밭 갈다 끌려간 아버지… 유해안치소도 없이 ‘떠돌이 신세’ 한국전쟁이 터지고 3일 만에 수도를 빼앗긴 국군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무렵 이봉린은 능곡국민학교에서 열린 유엔군 환영대회에 나갔다가 치안대에 끌려갔다.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한 시기 ‘농촌위원장’을 맡아 공출량을 계산하는 부역을 했다는 이유였다. “우리 아버지가 일산리 구장(區長)을 했었거든. 동네에서 추켜세우는 사람이잖아. 주변에서 ‘형님이 일 봐야지’ 하니까 맡게 된 건데….” 어머니와 7남매는 잡혀간 아비의 끼니 걱정에 매일 번갈아 수십 킬로 걸어 밥을 날랐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경찰서에서 “(부역 혐의자들이) 문산으로 좌익 심사를 받으러 가서 오늘은 밥을 안 받는다”고 했다. 이 고문은 “문산을 가는 줄 알았지 금정굴로 가는 줄 누가 알았겠느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행렬을 몰래 뒤따랐던 다른 희생자 유족을 통해 이 고문 가족은 진실을 알게 됐다. “아이고, 심사가 뭡니까. 그 구뎅이로 가서 다 쏴죽였어요!” 장남이었던 이 고문은 그 길로 작은아버지, 마을 어른들과 함께 사다리와 밧줄을 챙겨 금정굴로 향했다. 시신이라도 수습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신은 찾지 못했고 피투성이가 된 채 금정굴에 떨어져 “살려 달라”고 외치는 한 사람을 구했다. 총알을 빗맞은 덕에 목숨을 건진 동네 주민 이경선이었다. 금정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씨는 이후 죽을 때까지 고향 땅을 밟지 않았다. 금정굴에서 학살이 처음 벌어진 이날 이봉린을 포함해 46명이 희생됐다.희생자 가족은 공포에 사로잡혀 침묵해야 했다. 그날 밤 이 고문의 집에 들이닥친 경찰은 “시체 가져왔느냐”, “빨갱이 찾으려고 금정굴에 갔다 왔느냐”고 화를 내며 장작 더미며 아궁이 구멍이며 죄다 창으로 쑤셔 댔다. “그날 금정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누가 고발을 했는지 자전거를 탄 태극단 놈들이 서넛 올라오고 있더라고. 길이 엇갈려서 망정이지 거기서 마주쳤다면 우리도 다 죽는 거야. 일곱 사람이 갔었는데…. 그래서 잠자코 살았던 거지.”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 말이라도 하지, 예전에는 아버지가 ‘빨갱이’로 돌아가셨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해….” 채 회장은 45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아버지 채기동은 보리밭을 갈다가 총을 멘 치안대 3명에게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그때 고작 네 살이었던 채 회장은 아버지와의 기억이 없다. 그는 졸지에 과부가 된 어머니와 금쪽같은 외아들을 잃은 할머니의 넋두리로 부친을 기억한다. “우리 엄마가 맨날 그러셨지. 봉화야, 네 아버지 금정구뎅이 가서 죽었다. 남들이 그런다.”채 회장은 금정굴과 가까운 파주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고 45년이 지난 1995년에서야 처음으로 금정굴을 찾았다. 뉴스로 유해 발굴 소식을 전해 듣고 동생과 함께 갔다. 채기동은 6년 동안 강제징용을 당했다가 해방 이후 돌아왔다. 채 회장은 “9척 장신에 원체 기운이 장사라 인근에서 아버지를 당해 낼 사람이 없었다더라”고 했다. “총을 멘 치안대가 당신을 찾으니 도망가라”는 말에도 채기동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당당했다. ‘부역자 가족’의 삶은 매 순간 고통으로 점철돼 있었다. 채 회장은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봇짐 장사를 하려면 도민증이 필요했는데 우리한테는 도민증 허가를 안 내줘서 어머니가 ‘꼼짝없이 죽겠다’며 우셨다”며 “핍박받으면서 세 딸을 키운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고 했다. 채 회장이 끝까지 파주를 떠나지 않은 건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다. 채 회장 가족은 시간이 흘러 아버지에게 부역 혐의자라는 누명을 씌운 마을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됐다. 어머니는 “내가 죽어도 넌 반드시 이 동네에 살면서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두고 보라”는 말을 남겼다.“신도시 주민들은/발 밑이 저승인 사실은 모른 채/오래전 이 마을을 휩쓸고 간/역병보다도 더 고약한 숙청은 모른 채/두개골 정강뼈 쇄골 잘근잘근 밟으며/황솥밭 샛길을 오갈 뿐이다”(손세실리아, ‘뼈무덤’) 용기를 내 세상에 나온 유족들은 긴 싸움을 했다. 승리도 수차례 맛봤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 규명을 결정하면서 “최종 책임은 국가에 있고 희생자 상당수는 도피한 부역 혐의자 가족이거나 이와 무관한 지역 주민이었다”고 했다. 2012년에는 국가 배상 소송에서 승소해 “희생자 2억원, 배우자 1억원, 부모·자식 각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수차례 무산됐던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조례안’도 2018년 고양시의회에서 통과됐다.그럼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희생자가 제대로 된 위령시설 없이 떠돌고 있고 유족이 겪는 고통도 여전하다. 일부 보훈단체 회원들은 아직도 희생자를 ‘토착 빨갱이’라고 부른다. 보수 정당 시의원은 조례 제정을 반대하며 “(희생자들은) 김일성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금정굴 현장에 조성될 계획인 평화공원은 “납골시설이 들어오면 집값 떨어진다”는 일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채 회장은 “지금 희생자들을 임시 안치한 세종추모공원은 너무 멀다. 가까운 곳에 희생자들을 모시고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게 유족들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죄도 없이 잡혀가 죽고, 설령 죄가 있다고 해도 재판 한 번 열지 않고 죽은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고문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한 전쟁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 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빨갱이’ 가족이란 낙인 두려워 금정굴 쪽은 쳐다도 안 봤어요”

    “어려서는 내가 금정굴을 하루이틀 걸러 다니면서 무섭지도 않은지 거길(굴 위를) 건너뛰고 그랬지요. 그런데 아버지 죽고 나서 한 20여년 동안 한 번도 가지를 않았어요. 그쪽은 쳐다도 안 보고 얼씬도 안 하고 싶더라고요.”(이병순 금정굴유족회 고문)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고봉산 자락에 있는 18m 깊이의 수직 폐광 ‘금정굴’. 한때 ‘금구뎅이’라고 불렸던 영광의 기억도, 동네 꼬마들이 폴짝폴짝 뛰놀던 추억도 온데간데없다. 금정굴은 이제 ‘무덤’이다. 1950년 10월 9일부터 25일까지 고양·파주 지역의 민간인 160여명이 ‘빨갱이’로 낙인찍혀 재판 한 번 받지 못하고 학살당한 채 금정굴에 버려졌다. 70년이 지났지만 희생자들은 한 몸 온전히 누일 곳 없이 떠돌이 신세다. 1995년 유족들이 발굴 작업을 벌여 153구 이상의 유해가 세상에 나왔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만 76명이다. 유해를 모실 곳이 마땅치 않아 지금까지 납골당만 세 차례 옮겼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을 “경찰에 의한 불법적인 집단학살”로 결론 내렸지만, 희생자들의 넋은 위로받지 못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권고했던 평화공원 설립도, 영구적인 유해 안치소 설치도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유족들은 애가 끓는다. 부역 혐의자 가족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금정굴 쪽은 애써 외면했다. 억울한 죽음을 애도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살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서울신문은 24일 채봉화(74) 금정굴유족회장과 이병순(87) 고문을 만났다. ●“묶여서 끌려가던 행렬 속 아버지, 금정굴 저승 가는 길이었네” 1950년 10월 9일. 당시 열일곱 소년이었던 이 고문의 뇌리에는 70년 전 모습이 스틸사진처럼 남아 있다. 집 앞에서 두 사람씩 삐삐선(군용통신선)에 묶인 채 이동하는 행렬을 목격했다. 맨 뒤에 아버지 이봉린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3일 만에 수도를 빼앗긴 국군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무렵 이봉린은 능곡국민학교에서 열린 유엔군 환영대회에 나갔다가 치안대에 끌려갔다.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한 시기 ‘농촌위원장’을 맡아 공출량을 계산하는 부역을 했다는 이유였다. “우리 아버지가 일산리 구장(區長)을 했었거든. 동네에서 추켜세우는 사람이잖아. 주변에서 ‘형님이 일 봐야지’ 하니까 맡게 된 건데….” 어머니와 7남매는 잡혀간 아비의 끼니 걱정에 매일 번갈아 수십 킬로 걸어 밥을 날랐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경찰서에서 “(부역 혐의자들이) 문산으로 좌익 심사를 받으러 가서 오늘은 밥을 안 받는다”고 했다. 이 고문은 “문산을 가는 줄 알았지 금정굴로 가는 줄 누가 알았겠느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행렬을 몰래 뒤따랐던 다른 희생자 유족을 통해 이 고문 가족은 진실을 알게 됐다. “아이고, 심사가 뭡니까. 그 구뎅이로 가서 다 쏴죽였어요!” 장남이었던 이 고문은 그 길로 작은아버지, 마을 어른들과 함께 사다리와 밧줄을 챙겨 금정굴로 향했다. 시신이라도 수습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시신은 찾지 못했고 피투성이가 된 채 금정굴에 떨어져 “살려 달라”고 외치는 한 사람을 구했다. 총알을 빗맞은 덕에 목숨을 건진 동네 주민 이경선이었다. 금정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씨는 이후 죽을 때까지 고향 땅을 밟지 않았다. 금정굴에서 학살이 처음 벌어진 이날 이봉린을 포함해 46명이 희생됐다. 희생자 가족은 공포에 사로잡혀 침묵해야 했다. 그날 밤 이 고문의 집에 들이닥친 경찰은 “시체 가져왔느냐”, “빨갱이 찾으려고 금정굴에 갔다 왔느냐”고 화를 내며 장작 더미며 아궁이 구멍이며 죄다 창으로 쑤셔 댔다. “그날 금정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누가 고발을 했는지 자전거를 탄 태극단 놈들이 서넛 올라오고 있더라고. 길이 엇갈려서 망정이지 거기서 마주쳤다면 우리도 다 죽는 거야. 일곱 사람이 갔었는데…. 그래서 잠자코 살았던 거지.”●“유해 발굴’ 뉴스 보고 45년 만에야 금정굴을 찾았어.”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 말이라도 하지, 예전에는 아버지가 ‘빨갱이’로 돌아가셨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해….” 채 회장은 45년의 세월 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아버지 채기동은 보리밭을 갈다가 총을 멘 치안대 3명에게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그때 고작 네 살이었던 채 회장은 아버지와의 기억이 없다. 그는 졸지에 과부가 된 어머니와 금쪽같은 외아들을 잃은 할머니의 넋두리로 부친을 기억한다. “우리 엄마가 맨날 그러셨지. 봉화야, 네 아버지 금정구뎅이 가서 죽었다. 남들이 그런다.” 채 회장은 금정굴과 가까운 파주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고 45년이 지난 1995년에서야 처음으로 금정굴을 찾았다. 뉴스로 유해 발굴 소식을 전해 듣고 동생과 함께 갔다. 채기동은 6년 동안 강제징용을 당했다가 해방 이후 돌아왔다. 채 회장은 “9척 장신에 원체 기운이 장사라 인근에서 아버지를 당해 낼 사람이 없었다더라”고 했다. “총을 멘 치안대가 당신을 찾으니 도망가라”는 말에도 채기동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당당했다. ‘부역자 가족’의 삶은 매 순간 고통으로 점철돼 있었다. 채 회장은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봇짐 장사를 하려면 도민증이 필요했는데 우리한테는 도민증 허가를 안 내줘서 어머니가 ‘꼼짝없이 죽겠다’며 우셨다”며 “핍박받으면서 세 딸을 키운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고 했다. 채 회장이 끝까지 파주를 떠나지 않은 건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다. 채 회장 가족은 시간이 흘러 아버지에게 부역 혐의자라는 누명을 씌운 마을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됐다. 어머니는 “내가 죽어도 넌 반드시 이 동네에 살면서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두고 보라”는 말을 남겼다.●아직 끝나지 않은 금정굴 사건 “신도시 주민들은/발 밑이 저승인 사실은 모른 채/오래전 이 마을을 휩쓸고 간/역병보다도 더 고약한 숙청은 모른 채/두개골 정강뼈 쇄골 잘근잘근 밟으며/황솥밭 샛길을 오갈 뿐이다”(손세실리아, ‘뼈무덤’) 용기를 내 세상에 나온 유족들은 긴 싸움을 했다. 승리도 수차례 맛봤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 규명을 결정하면서 “최종 책임은 국가에 있고 희생자 상당수는 도피한 부역 혐의자 가족이거나 이와 무관한 지역 주민이었다”고 했다. 2012년에는 국가 배상 소송에서 승소해 “희생자 2억원, 배우자 1억원, 부모·자식 각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수차례 무산됐던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조례안’도 2018년 고양시의회에서 통과됐다. 그럼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희생자가 제대로 된 위령시설 없이 떠돌고 있고 유족이 겪는 고통도 여전하다. 일부 보훈단체 회원들은 아직도 희생자를 ‘토착 빨갱이’라고 부른다. 보수 정당 시의원은 조례 제정을 반대하며 “(희생자들은) 김일성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금정굴 현장에 조성될 계획인 평화공원은 “납골시설이 들어오면 집값 떨어진다”는 일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채 회장은 “지금 희생자들을 임시 안치한 세종추모공원은 너무 멀다. 가까운 곳에 희생자들을 모시고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게 유족들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죄도 없이 잡혀가 죽고, 설령 죄가 있다고 해도 재판 한 번 열지 않고 죽은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고문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한 전쟁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6·25 참전 소년·소녀병도 국가유공자 되나

    6·25 참전 소년·소녀병도 국가유공자 되나

    강대식 의원 개정법안 대표발의재일학도병과 형평성 문제제기“헌신·희생에 합당한 예우해야”미래통합당 강대식(대구 동을) 의원이 6·25 전쟁 70주년을 앞두고 6·25 참전 소년·소녀병을 예우·지원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강 의원은 24일 6·25 참전 소년·소녀병을 국가유공자에 포함하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국가유공자단체에 6·25 참전 소년·소녀병전우회를 추가하는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단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다고 밝혔다. 6·25 전쟁 당시 병역의무대상이 아닌 17세 이하 소년·소녀들은 자원 또는 강제로 징·소집돼 대한민국 수호에 공헌했다. 그럼에도 비슷한 연령대인 재일학도의용군인의 경우 모두 국가유공자로 예우하고 있는 것에 비해 6·25 참전 소년·소녀병은 전사자·전상자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국가유공자로 인정하고 있어 형평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강 의원이 발의한 국가유공자법 개정안은 6·25 참전 소년·소녀병을 국가유공자에 포함해 보상 및 교육·취업·의료 지원 등에 있어 예우를 갖추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가유공자단체법 개정안은 이들을 위한 위령제, 추모비 건립 등 보훈 활동을 지원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강 의원은 “6·25 전쟁 당시 꽃다운 나이에 목숨 바친 소년·소녀병들이 백발의 노인이 다 됐고, 이제 2000여명도 채 되지 않는다”며 “21대 국회에서는 이들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합당한 예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야가 한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가유공자법·국가유공자단체법 개정안에는 곽상도, 김상훈, 김승수, 김용판, 류성걸, 서정숙, 신원식, 양금희, 유의동, 윤재옥, 윤창현, 이명수, 이종배, 전주혜, 조수진, 조태용, 추경호, 홍석준 의원이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여기는 호주] 또 시작된 ‘화장지 공포’…코로나 2차 확산에 사재기 확산

    [여기는 호주] 또 시작된 ‘화장지 공포’…코로나 2차 확산에 사재기 확산

    호주 내에 코로나19가 한동안 안정 상태를 보이다가 멜버른에서 다시 2차 확산 조짐이 보이면서 화장지등 생필품 사재기가 다시 시작되었다고 호주 언론이 보도했다. 최근 ABC뉴스등 현지 언론은 빅토리아 주 멜버른에서 발생하고 있는 코로나19 2차 확산 조짐을 연일 보도하는 중이다. 지난 23일(이하 현지시간) 그렉 헌트 연방 보건 장관은 “빅토리아주 내 멜버른을 중심으로 코로나19 2차 유행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고 있으며 통제가 되지 않으면 잠재적으로 큰 유행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멜버른에서는 지난 1주일 사이에 연속적으로 두자리수의 확진자가 나왔고, 한 달만에 사망자가 나오면서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지난 17일(21명), 18일(18명)으로 시작해 20일에는 25명까지 증가했고 23일(17명), 24일에는 다시 20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23일에는 한 달 만에 80세 노인이 사망했다. 이는 빅토리아 주내에서는 20번째, 호주 전체에서는 103번째 희생자다. 24일 현재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총 7512명이다.이번 2차 감염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 새로 발생한 확진자들 중 일부가 정확한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깜깜이 환자’라는 것. 현재 빅토리아 주 정부는 멜버른 내 흄, 캐이시, 브림뱅크, 모어랜드, 카디니아, 데어빈 6개 지역을 코로나19 감염 위험지역으로 분류해 이지역에 여행경보를 내린 상태이다. 이들 멜버른 지역에 2차 감염 소식이 전해지면서 멜버른 지역에서는 화장지 등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지난 23일 멜버른 남부 스프링베일에서는 한 여성이 무려 12개의 화장지 팩을 사재기 하는 모습이 포착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이 여성은 5개의 묶음 화장지를 차에 실고 다시 마트로 가서 7개의 묶음 화장지를 구입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대형마트 울워스는 “지난 23일부터 멜버른을 중심으로 화장지등 생필품 구매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며 “사재기를 하지 않으면 평상시처럼 물건을 구입할 수 있으니 제발 사재기를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시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텅빈 마트 내 생필품 코너 사진을 올리며 “지난번 사재기로 구매 제한, 긴 줄서기를 경험하고도 다시 사재기를 하다니 미개하다”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김경태 시드니(호주)통신원 tvbodaga@gmail.com
  • 그라운드에선 무릎 꿇는데… 하늘에선 ‘인종차별 철폐’ 비웃는 현수막

    그라운드에선 무릎 꿇는데… 하늘에선 ‘인종차별 철폐’ 비웃는 현수막

    23일 새벽(한국시간)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시티와 번리의 30라운드 경기가 열린 맨체스터 에티하드 스타디움. 킥오프 직후 경기장 하늘 위에 돌연 ‘백인 목숨도 소중해. 번리’(White Lives Matter Burnley)라고 적힌 현수막이 휘날렸다.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에 희생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전 세계로 번진 구호 ‘흑인 목숨도 소중해’(Black Lives Matter)를 비꼬려는 의도가 명백한 현수막을 매단 비행기가 상공을 선회한 것. EPL은 현재 모든 선수가 유니폼에 ‘흑인 목숨도 소중해’ 구호를 넣고 뛰는 한편, 킥오프 전 무릎 꿇기 퍼포먼스로 인종차별 반대 메시지를 알리고 있는 중이다. 이날도 맨시티와 번리 선수들은 무릎을 꿇었다. 번리 팬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돌발 사태에 번리 선수들의 멘탈이 흔들렸을까. 번리는 0-5로 참패했다. 번리 주장 벤 미는 경기 후 “정말 부끄러웠다. 하늘에서 그런 광경이 펼쳐져 우리 선수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번리 구단도 성명을 내고 “모욕적인 현수막을 매단 관련자들을 강력 규탄하고 EPL과 맨시티에 사과한다. 사법당국의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한 손엔 투자 당근 든 EU, 中에 홍콩보안법 철회 요구

    한 손엔 투자 당근 든 EU, 中에 홍콩보안법 철회 요구

    EU “中, 경제대국 걸맞은 책임 지녀야” 리커창 “원대한 수준의 투자협정 기대” 유럽연합(EU)이 중국과의 화상 정상회의에서 ‘채찍과 당근’을 함께 제시했다.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 철회를 요구하면서도 중국에 숨통을 틔워 줄 전면적 투자협정을 반드시 체결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22일(현지시간)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화상 회의를 가진 데 이어 시진핑 국가주석과도 면담했다. 지난해 12월 EU 지도부가 출범한 뒤 처음 이뤄진 공식 정상회담이다. 최근 EU가 “중국이 코로나19와 관련해 ‘세계가 감염병에 대응할 시간을 벌어 주려고 희생했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렸다”고 비판해 양측 간 갈등이 불거진 상황에서 진행됐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회담에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강행하면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재고를 촉구했다. 지난 19일 유럽의회는 홍콩보안법이 실제 시행되면 EU가 중국을 유엔 최고법정인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 제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EU 고위 관리는 “우리는 중국과 협력할 준비가 됐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이 세계 2위 경제대국에 걸맞은 책임을 짊어지길 원한다”면서 “감염병 사태로 일부 EU 국가들의 불만이 커졌다”고 AP통신에 전했다. 그럼에도 양측은 연내 포괄적인 투자협정을 체결하기로 한 기존 합의를 재확인했다. 그간 EU는 중국에서 사업하는 유럽 기업들이 EU에서 활동하는 중국 기업과 같은 수준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며 대책 마련을 주장해 왔다. 중국도 머지않아 자국 내 미국 기업이 대거 빠져나갈 수 있다고 보고 새 자본 찾기에 나선 상태다. 투자협정 마련에 대한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다. 리커창 총리는 “양측 지도부는 원대한 수준의 협정을 체결하기를 기대한다. 가능한 한 빨리 공정한 경쟁에 합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70년 만에 먼 길 돌아온 국군전사자 유해…공중급유기로 귀국

    70년 만에 먼 길 돌아온 국군전사자 유해…공중급유기로 귀국

    美 하와이서 147구 국군전사자 유해 70년 만에 귀환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로 신원 확인예우 차원에서 최초로 다목적 공중급유기로 이송참전조종사 손자가 F15K 엄호 비행6·25전쟁 국군전사자 147구의 유해가 70년 만에 먼 길을 돌아 고국으로 돌아온다. 박재민 국방차관을 단장으로 구성된 정부 봉환유해인수단 48명은 지난 21일 공군의 최신 공중급유기 시그너스(KC330)편으로 출국해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DPAA)로부터 국군전사자 유해를 인계받아 귀환 중이다. 이번에 봉환되는 147구의 국군전사자 유해는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 DPAA로 이송해 한미 간 공동감식 결과 국군전사자로 판정됐다. 앞서 북미는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로 북한에 묻힌 유해 송환에 합의했다. 봉환 유해는 북한의 개천시 및 운산군, 장진호 일대에서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발굴된 유해 208개 상자와 미국으로 송환됐던 유해 55개 상자 중 2차례의 한미 공동감식 결과 국군전사자로 판정됐다. 이에 따라 147구의 국군전사자는 70년만에 먼 길을 돌아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인수식 행사는 한측에서는 박 차관과 허욱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6·25전쟁 70주년 사업단장과 하와이 총영사가 참석했다. 미측에서는 필립 데이비슨 인도태평양사령관과 DPAA 부국장, 현지 참전용사와 UN사 참모장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국방부는 “코로나19 방역대책이 철저히 준수되는 가운데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행사는 인도태평양사령관과 국방차관의 추념사를 시작으로 인계·인수 서명식에 이어 유해인계의 순으로 진행됐다. 유해인계는 성조기로 관포되어 있던 유해 1구에 대해 유엔사령부 참모장이 유엔기로 교체하고, 마지막으로 국방차관이 태극기로 관포해 유해발굴감식단장에게 전달함으로써 마무리됐다. 봉환되는 유해는 다목적 공중급유기 KC330을 타고 24일 오후 4시쯤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해 공군 전투기 6대의 엄호 비행을 받으며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앞서 정부는 전사자 예우 차원에서 최초로 공중급유기로 유해를 송환하는 방안을 결정했다. 국방부는 “6대의 엄호기는 6·25전쟁 당시 참전했던 부대의 후예들인 101·102·103 3개 전투비행대대 소속 전투기 F5 2대, F15K 2대, FA50 2대를 혼합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F15K 조종사 중 강병준 대위는 6·25전쟁 참전 조종사 고 강호륜 예비역 준장의 손자로, 대를 이어 영공 방위 임무를 수행 중이다. 박 차관은 “6·25전쟁 발발 70년이 된 시점에서 이루어진 이번 유해송환은 한미 동맹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숭고한 소명을 다하기 위한 한미간 공동 노력의 결실”이라고 밝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6·25 70년 백선엽 앞에 무릎꿇은 해리스 대사 조각 선보여

    6·25 70년 백선엽 앞에 무릎꿇은 해리스 대사 조각 선보여

    오는 25일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백선엽 장군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의 만남을 담은 조각 작품이 선보인다. 백 장군은 6·25 전쟁 다부동 전투 승리의 주역으로 지난 2018년 그의 99세 생일잔치에 해리스 대사가 참석해 휠체어를 탄 백 장군 앞에서 무릎은 꿇은 채 생일을 축하했다.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조각가 방주혁씨의 부조 작품은 6·25전쟁 70주년 관련 행사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조각가 방씨는 지난 2017년 경기 의정부에 있는 미군기지 캠프 레드 클라우드에 미2사단 제23연대장인 폴 프리맨 대령의 대형 조각상을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당시 방씨는 반미 시위로 주한 미2사단 100주년 콘서트가 파행되자 프리맨 대령의 조각상을 자비로 제작해 기증했다. 프리맨 대령은 6·25전쟁에서 경기 양평에서 치열하게 펼쳐졌던 지평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인공이다. 방씨는 23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백선엽 장군의 생일에 해리스 대사가 무릎을 꿇었던 장면은 한미동맹을 상징한다”며 “공산주의에 희생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전신상도 제작해서 웜비어의 부모에게 기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에 여행을 갔다가 강제 억류된 뒤 갑자기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지난 19일 3주기를 맞아 흉상을 제작한 바 있다. 미국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부친도 6·25 참전용사다. 방씨는 펜스 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 부친의 얼굴 부조 헌정패를 제작해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기념일에 해리스 대사에게 헌정할 계획이기도 하다. 폼페이오 장관의 부친인 웨인 폼페이오는 6·25 한국전쟁에서 해군 무전병으로 복무했으며 지난 4월 30일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 강경화 외교장관이 조전을 발송해 애도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방역당국 “코로나19, 확산이냐 억제냐…마지막 기회일 수도”

    방역당국 “코로나19, 확산이냐 억제냐…마지막 기회일 수도”

    방역당국은 국내 코로나19 상황이 현재 확산이냐 억제냐를 가르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면서 방역 수칙을 철저히 준수해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23일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코로나19 상황에 대해 “감소 추세를 이어가면서 (확산) 억제에 성공할지, 아니면 다른 국가들처럼 다시 증가세로 갈지를 가르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면서 “엄중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세계보건기구(WHO)는 전날 일일 신규 확진자가 약 18만 명으로 최고치라고 밝혔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환자 수가 900만 명을 넘어 곧 1천만 명 이상이 될 것”이라면서 “더 경각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최근 세계 각국이 코로나19에 따른 봉쇄 조치를 점차 완화하면서 확진자 증가세가 다시 가팔라지는 상황이다. 중국 베이징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해 주변 지역으로 감염이 전파됐고,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등 서남아시아 등지에서도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해외유입 사례가 늘면 국내 감염 확산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도 있다. 부산 감천항에 정박 중인 러시아 국적 화물선 승선원들이 전날 무더기로 확진 판정을 받은 것도 이 같은 추세에 따라 벌어진 일일 수 있으며, 이들로 인한 추가 감염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수도권 집단감염이 방문판매업체를 통해 대전을 넘어 충남과 전북으로 확산하고 있다. 권 부본부장은 “지난달 수도권 클럽 등을 중심으로 한 코로나19 유행이 이어지면서 (현재) 수도권 외 지역까지도 연결고리가 이어진 상황”이라면서 “코로나19의 최장 잠복기, 적어도 14일간은 전국적으로 감소세가 유지되도록 방역당국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순간 방심하고 풀어지면 코로나19는 언제든 다시 반등할 수 있고, 반등한 코로나19는 고위험군의 희생을 필연적으로 불러일으킬 것”이라면서 “코로나19는 가을 이후엔 유행에 더 유리한 조건을 갖게 되는데, 그 이전인 지금이 코로나19를 최대한 눌러 놓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박관열 의원, 동북권지역 규제연계형 특별지원 등 도정질문

    박관열 의원, 동북권지역 규제연계형 특별지원 등 도정질문

    경기도의회 기획재정위원회 박관열 의원(광주2, 더민주)은 6월22일 제344회 정례회 제2차 본회의 도정질문에서 경기도 동북권 미래먹거리 문제해결, 특별한 희생으로 고통받는 규제연계형 특별지원, 광주물류단지 개발, 남한산성 관광 활성화, 참전유공자 명예수당 추가지원 등에 대해서 도지사에게 질의했다. 특별한 희생으로 고통받는 동북권지역의 규제연계형 특별지원에 대해서는 올해 ‘제2차 경기도 지역균형발전 기본계획’에 따라 가평, 양평, 연천, 포천, 여주, 동두천 등 도내 낙후지역 6개 시군에 5년간 4,123억원이 투자됐는데 다른 지역보다 규제가 많은 광주가 제외된 이유에 대해 질의했다. 동북권 지역의 제도개선 및 규제합리화를 위하여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 ‘개발이익환수에 관한 법률’ 등 규제법률 개정 건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동북권 도민의 희생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도차원의 적극적인 행정을 요청했다. 이에 도지사는“중규모 이상의 산업단지나 공업단지의 건립이나 상수원이 유입되는 않는 지역에 대한 규제완화 등 규제 합리화가 중요한 과제이며 지역 국회의원과 도가 협의해서 실현 가능한 규제합리화 방안을 마련하여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규제 1등급 지역의 도시가스 보급률은 경기도 도시가스 보급률의 평균에도 못 미치고 있어 도시가스 보급률 개선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도지사는 “현재 촌락 지역에 대해서 도시가스 배관망 사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 태양광 발전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또한 그 동안 지역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 물류단지 개발이 이루어졌다고 지적하면서 올해 3월 개정된 ‘물류시설의 개발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도내 물류단지 지정시 시·군의 의견이 반영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세계 최고의 관광지가 되기 위해서는 접근성 확보와 근교 명소와 연계한 관광 개발이 필요하며 국가보훈대상자가 전국에서 최고로 많은 경기도에서 실질적인 예우수준에 맞는 참전명예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박관열 의원은 “경기 동북권은 규제완화와 동시에 첨단산업 분야 시설 건설과 청년 일자리 창출에 가장 적격한 지역이며”라 하고 “친환경, 첨단산업단지로 개발하여 신성장 산업과 고급인력을 유인해 새로운 일자리을 창출하는 모범사례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태우 장남 “父, 5·18에 무한책임…‘내가 희생되는 게 낫다’”

    노태우 장남 “父, 5·18에 무한책임…‘내가 희생되는 게 낫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인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은 23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아버님께서 (1987년) 6·29민주화선언 며칠 전 가족들에게 ‘다시는 광주(사태)같은 일이 일어나면 안 되고 차라리 내가 희생되는 게 낫다’는 비장한 뜻을 밝힌 기억이 난다”고 했다. 노 원장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6·29 선언에 광주 5·18의 정신이 씨앗이 돼 녹아있다고 생각하고, 아버님도 6·29 선언을 하겠다고 말씀하시며 ‘이제 더이상 우리 국민들의 뜻을 물리적이거나 강압적인 힘으로 제압할 수는 없다. 그런 때는 지났다’고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아버님은 항상 본인이 역사에 대해서는 무한책임을 갖고 있다고 생각을 했고, 5·18과 관련해서 어떤 역할을 하든지간에 책임을 회피하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5·18을 둘러싸고 북한국이 개입됐다든지 하는 사실이 아닌 엉터리 뉴스를 통해서 국론이 분열되는 것에 안타깝다는 표현을 많이 하셨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와 올해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노 원장은 “사실 아버님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이 오면서 참배를 하고 사죄의 행동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는데 지난해 어느 날 갑자기 ‘더이상 미루지 말고 참배하러 가자’는 생각이 떠올라 무작정 내려갔다”며 “사죄에 대한 아버님의 말씀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대신 저와 저희 가족이 나서서 치해와 화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사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대놓고 바람까지 재는 北 “대남전단 살포 지역 풍향 관측 중”

    대놓고 바람까지 재는 北 “대남전단 살포 지역 풍향 관측 중”

    “청와대까지 전단 날아갑니까” 北, ‘주민들 문의 쏟아내’ 주장한국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엄정 대응 방침을 천명한 가운데 정작 북한은 대남전단을 뿌리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과 장소를 찾기 위해 바람 방향까지 공개적으로 재고 있다며 알렸다. 23일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에 따르면 송철만 기상수문국 부국장은 대남전단 살포에 적합한 장소와 시간을 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최근 접경지대 지형을 확인하고 풍향을 세분화해 실시간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분노의 민심’ 삐라 소나기 부을 시각”대남전단 살포 위한 기상예보 완비 주장 대남전단 실효성 묻는 질문들은 공개 안해 기상수문국은 남한의 기상청에 해당하는 기관이다. 송 부국장은 대남전단 살포에 나설 경우 기상예보를 정확히 통보해주기 위한 체계도 완비했다며 “분노의 민심이 어린 삐라 소나기를 쏟아부을 그 시각이 오면 우리도 자기의 할 바를 다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주민들이 기상수문국에 전화를 걸어 전단 살포와 관련한 질문을 쏟아내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주요 문의 내용은 ‘북남공동연락사무소 자리에서 삐라를 살포하면 청와대까지 날아갈 수 있는가’, ‘접경지대 어느 장소가 삐라 살포 투쟁을 전개하는데 가장 적중한 곳인가’, ‘접경지대 기상 일보를 수시로 알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을 비방하는 대남전단이 청와대가 있는 서울 한복판까지 날아가 터질 수 있는지를 묻고 대남전단에 공감하는 주민들의 의지가 높다는 것을 계획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남한에 미칠 대남전단 살포의 실효성을 묻는 질문들은 공개하지 않았다.20일 ‘文얼굴에 담뱃재’ 전단 실물 공개22일 전단 1200만장, 풍선 3천개 준비 북한은 남북 통신연락선 차단과 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세 번째 보복 조치로 대남전단 살포를 예고했었다. 지난 20일에는 문재인 대통령 얼굴에 담뱃재·담배꽁초와 함께 비방하는 문구를 담은 대남전단 실물을 공개했고, 22일에는 전단 1200만장 인쇄를 마치고 풍선 3000개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정확한 살포 시점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탈북민 단체가 전날 밤 대북전단 살포를 했다고 밝힌 만큼 시기적으로 당겨질 가능성은 있다. 수백만명의 희생자를 낳았던 한국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 전후로 대남전단을 뿌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여정 “탈북자 쓰레기들, 최고 존엄을”“조국 배반한 들짐승보다 못한 똥개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4일 노동신문 담화에서 탈북민들의 대북전단 살포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 5월 31일 ‘탈북자’라는것들이 전연 일대에 기어나와 수십만 장의 반공화국 삐라를 우리 측 지역으로 날려보내는 망나니 짓을 벌려놓은 데 대한 보도를 봤다”며 “사람 값에도 들지 못하는 쓰레기들이 함부로 우리의 최고 존엄까지 건드리며 ‘핵문제’를 걸고 무엄하게 놀아댄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글자나 겨우 뜯어볼까 말까 하는 그 바보들이 개념 없이 ‘핵문제’를 논하자고 접어드니 서당개가 풍월을 짖었다는 격이라 해야 할 것”이라며 “조국을 배반한 들짐승보다 못한 인간 추물들이 사람 흉내를 내보자고 기껏 해본다는 짓이 저런 짓이니 구린내 나는 입건사를 못하고 짖어대는 것들을 두고 똥개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제1부부장은 “똥개들은 똥개들이고 그것들이 기어다니며 몹쓸 짓만 하니 이제는 그 주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때”라며 비난의 화살을 한국 정부에 돌렸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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