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희생
    2026-04-14
    검색기록 지우기
  • 삭제
    2026-04-14
    검색기록 지우기
  • 도약
    2026-04-14
    검색기록 지우기
  • 협찬
    2026-04-14
    검색기록 지우기
  • 좌석
    2026-04-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6,711
  • 쿠데타 주역, 민주화 탄압, 현대사 퇴행… “공과 언급할 가치 없어”

    쿠데타 주역, 민주화 탄압, 현대사 퇴행… “공과 언급할 가치 없어”

    유신 체제에 억눌렸던 민주화 열망을 12·12 군사반란에 이은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으로 짓밟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생을 마감하면서 한국 현대사를 퇴행시킨 ‘정치군인’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전씨를 정점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정의사회 구현’을 내걸고 집권했지만, 제5공화국 7년 동안 국민 다수에게 적용되는 정의는 없었다. 소수 군부 엘리트들의 사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정의만 있었을 뿐이다. 정통성과 정당성을 상실한 채 총칼과 ‘체육관 거수기’로 집권한 터라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은 재임 기간 내내 이어졌다.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이나 박종철·이한열 열사 등 정치인과 재야 인사, 학생에 이르기까지 ‘반정부 활동’ 프레임에 걸리면 예외 없이 고문을 당하거나 희생됐다. “뚜 뚜 뚜 땡~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로 시작되는 ‘땡전뉴스’에서 보듯 언론 자유도 말살됐다. 1980년 11월 언론통폐합으로 전국 64개 언론사는 신문사 14개, 방송사 3개, 통신사 1개로 통합됐다. 언론인 1000명 이상이 해직당했다. 새 질서 확립과 불량배 교화를 목적으로 삼청교육대를 창설했으나 그 과정에서 인권이 유린되는 경우도 많았다. 전직 대통령 중 유일하게 ‘공과’란 표현을 쓰기 어려울 만큼 그늘이 짙게 드리운 그를 그나마 평가하는 대목은 단임 실천이다. 전씨는 스스로 “대통령이 헌법과 국민이 정해 준 임기를 마치면 물러난다는 당연한 원칙을 지키는 선례를 우리 헌정사에 처음으로 기록했다”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애초에 4·13 호헌 조치로 5공 연장을 꾀했다는 점에서 앞뒤가 맞지 않으며, 민주화 시위에 밀려 직선제 개헌을 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평가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6월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타오른 6월 항쟁 당시 전두환 정권은 군대를 동원해 반정부 시위대 진압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치적으로 삼고자 했던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둔 데다 국민들의 거스르기 힘든 민주화 열망, 그리고 미국의 압박 등에 마지못해 물러섰고, 6·29 선언을 타협책으로 내놓았다는 것이 학계 다수의 시각이다. 1981년 21.4%에 달했던 물가 상승률이 1982년 7.2%, 1983년 3.4%, 1984년 2.3%로 안정세를 찾았고 경제성장률은 1981년 7.2%, 1982년 8.3%, 1983년 13.4%로 상승세를 탄 점을 두고 전두환 시대의 성과로 꼽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세계경제의 ‘3저(저금리·저유가·저달러) 호황’ 기조에 힘입은 덕분이란 평가가 우세하다. 국제 금리가 내려가면서 외환 문제가 해결됐고 유가·달러화 동반 하락으로 국내 물가가 안정되며 수출이 늘었다는 의미다. 3저 호황이 이어지면서 과소비와 투기 현상이 심화했고, 이런 불안 요인들은 이어진 6공화국 경제를 휘청이게 했다. 설상가상 전씨 개인의 부정 축재로 더 빛이 바랬다. 1997년 특별수사본부 수사 결과 전씨는 재임 중 재벌로부터 70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추징금 2205억원 중 956억원은 지금까지 완납하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 ‘7·30 교육개혁조치’로 과외를 금지시키는 한편 본고사를 폐지하고 학력고사를 도입했다. 공교육을 정상화시켰다는 평가와 과외를 음성화시켰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야간통행 금지 조치 해제와 학원 두발·복장 자율화 등 유화 정책도 펼쳤다. 스크린(Screen)·스포츠(Sports)·섹스(Sex)를 일컫는 ‘3S 정책’은 대표적 우민화(愚民化) 정책이다. 이처럼 철권통치와 인권탄압, 천문학적 비자금 축재 등이 드러났지만 그는 죽는 날까지 뉘우치지 않았다. 궤변으로 정당화하고 적반하장의 말을 내뱉어 공분을 자아냈다. 2003년 KBS 인터뷰에서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폭동”이라고 강변했고, 2017년 회고록에서도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했다. 최초 발포 명령 여부에 대해 끝까지 입을 닫았고, 12·12에 대해서는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공과를 언급할 대상도 되지 못하는 존재인 것은 분명하고, 전두환을 끝내 단죄하지 못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전직 대통령이란 이유로 애도하고 조문한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전두환 시대는 공과라는 표현 자체가 적용이 안 된다고 본다.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했고, 그 과정에서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반인륜적 성격을 가진 정권인 데다 집권 이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면서 “보수, 진보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여지가 없다”고 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단임은 처음부터 본인이 약속했던 일인 데다 등 떠밀리듯 한 걸 평가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고도성장도 ‘3저 호황’이란 국제경제 조건이 조성됐고, 이전부터 이어진 자본 축적의 결과다. 전두환의 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공과 논하기조차 어려운 ‘전두환 7년’

    공과 논하기조차 어려운 ‘전두환 7년’

    유신 체제에 억눌렸던 민주화 열망을 12·12 군사반란에 이은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으로 짓밟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생을 마감하면서 한국 현대사를 퇴행시킨 ‘정치군인’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전씨를 정점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정의사회 구현’을 내걸고 집권했지만, 제5공화국 7년 동안 국민 다수에게 적용되는 정의는 없었다. 소수 군부 엘리트들의 사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정의만 있었을 뿐이다. 정통성과 정당성을 상실한 채 총칼과 ‘체육관 거수기’로 집권한 터라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은 재임 기간 내내 이어졌다.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이나 박종철·이한열 열사 등 정치인과 재야 인사, 학생에 이르기까지 ‘반정부 활동’ 프레임에 걸리면 예외 없이 고문을 당하거나 희생됐다. “뚜 뚜 뚜 땡~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로 시작되는 ‘땡전뉴스’에서 보듯 언론 자유도 말살됐다. 1980년 11월 언론통폐합으로 전국 64개 언론사는 신문사 14개, 방송사 3개, 통신사 1개로 통합됐다. 언론인 1000명 이상이 해직당했다. 새 질서 확립과 불량배 교화를 목적으로 삼청교육대를 창설했으나 그 과정에서 인권이 유린되는 경우도 많았다.전직 대통령 중 유일하게 ‘공과’란 표현을 쓰기 어려울 만큼 그늘이 짙게 드리운 그를 그나마 평가하는 대목은 단임 실천이다. 전씨는 스스로 “대통령이 헌법과 국민이 정해 준 임기를 마치면 물러난다는 당연한 원칙을 지키는 선례를 우리 헌정사에 처음으로 기록했다”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애초에 4·13 호헌 조치로 5공 연장을 꾀했다는 점에서 앞뒤가 맞지 않으며, 민주화 시위에 밀려 직선제 개헌을 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평가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6월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타오른 6월 항쟁 당시 전두환 정권은 군대를 동원해 반정부 시위대 진압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치적으로 삼고자 했던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둔 데다 국민들의 거스르기 힘든 민주화 열망, 그리고 미국의 압박 등에 마지못해 물러섰고, 6·29 선언을 타협책으로 내놓았다는 것이 학계 다수의 시각이다. 1981년 21.4%에 달했던 물가 상승률이 1982년 7.2%, 1983년 3.4%, 1984년 2.3%로 안정세를 찾았고, 경제성장률은 1981년 7.2%, 1982년 8.3%, 1983년 13.4%로 상승세를 탄 점을 두고 전두환 시대의 성과로 꼽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 또 한 세계경제의 ‘3저(저금리·저유가· 저달러) 호황’ 기조에 힘입은 덕분이란 평가가 우세하다. 국제 금리가 내려가면서 외환 문제가 해결됐고 유가와 달러 가치 동반 하락으로 국내 물가가 안정되며 수출이 늘었다는 의미다. 3저 호황이 이어지면서 과소비와 투기 현상이 심화했고, 이런 불안 요인들은 이어진 6공화국 경제를 휘청이게 했다. 설상가상 전씨 개인의 부정 축재로 더 빛이 바랬다. 1997년 특별수사본부 수사 결과 전씨는 재임 중 재벌로부터 70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추징금 2205억원 중 956억원은 지금까지 완납하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은 야간통행 금지 조치 해제와 학원 두발·복장 자율화 등 유화 정책도 펼쳤다. 스크린(Screen)·스포츠(Sports)·섹스(Sex)를 일컫는 ‘3S 정책’은 대표적 우민화(愚民化) 정책이다.이처럼 철권통치와 인권탄압, 천문학적 비자금 축재 등이 드러났지만 그는 죽는 날까지 뉘우치지 않았다. 궤변으로 정당화하고 적반하장의 말을 내뱉어 공분을 자아냈다. 2003년 KBS 인터뷰에서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폭동”이라고 강변했고, 2017년 회고록에서도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했다. 최초 발포 명령 여부에 대해 끝까지 입을 닫았고, 12·12에 대해서는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공과를 언급할 대상도 되지 못하는 존재인 것은 분명하고, 전두환을 끝내 단죄하지 못했다는 점을 우리 사회가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수백여 명을 죽였고, 과오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전직 대통령이란 이유로 애도하고 조문한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전두환 시대는 공과라는 표현 자체가 적용이 안 된다고 본다.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했고, 그 과정에서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반인륜적 성격을 가진 정권인 데다 집권 이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면서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정치적 평가가 달라질 여지가 없다”고 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단임은 처음부터 본인이 약속했던 일인 데다 등 떠밀리듯 한 걸 두고 정치적으로 평가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고도성장이란 것도 ‘3저 호황’이란 국제경제적 조건이 조성됐고, 이전부터 이어진 자본 축적의 결과다. 전두환 시대에 발현됐을 뿐 전두환의 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반성없는 전두환 가족·5共 인사…‘2인자’ 장세동 “아무것도 모른다”

    반성없는 전두환 가족·5共 인사…‘2인자’ 장세동 “아무것도 모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유족으로는 부인 이순자 씨와 아들 재국·재용·재만씨, 딸 효선씨 등이 있다. 이들 중 누구도 공개적으로 과오를 뉘우친 적이 없으며 측근들의 인식도 별반 다를 게 없다.23일 전씨 사망 후 자택에는 부인 이씨와 장남과 차남, 그리고 장세동 전 안기부장과 하나회 소속 고명승 예비역 육군 대장 등이 모였다. 3남은 미국에서 귀국 절차를 밟는 중으로 전해졌다. 전씨의 충복이었던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은 연희동 전씨 자택에서 나오면서 기자들이 ‘안에서 어떤 말을 나눴나’라고 묻자 “그런 거 묻는 거 아니다. 물어봐야 난 아무 것도 모른다”라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고인 사망에 대한 소회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모든 사람이 느끼는 바대로”라고 했다.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고인이 사망 전 사죄했느냐’는 질문에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그는 “막연하게 사죄하라는 것은 옛날에 원님이 사람 붙잡아놓고 ‘네 죄를 네가 알 터이니 이실직고하라’는 것과 똑같다”고 했다. 앞서 부인 이씨는 2017년 자서전에서 “5·18 당시 그분은 결코 발포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았다. 내릴 권한 자체가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저희 때문에 희생된 분들은 아니지만, 아니 우리 내외도 사실 5·18사태의 억울한 희생자”라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친동생 경환씨는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전씨의 비자금을 은닉·관리했다는 의심을 받다 지난달 사망했다. 장남 재국씨도 페이퍼컴퍼니 의혹과 관련해 국정감사장에서 사과한 바 있다. 그는 2013년 전씨의 미납추징금 1672억을 자진납부하겠다고 했다가 연희동 자택 공매에 반발해 소송을 했다. 차남 재용씨는 탈세 혐의로 받은 벌금 40억을 내지 않아 노역을 살았다. 그는 2007년 이혼한 뒤 탤런트 박상아씨와 재혼해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목회자의 길을 걷기 위해 신학대학원에 다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전씨의 측근 ‘3허씨’ 중 12·12 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으로 ‘5공 설계자’로 불렸던 허화평 씨는 지난달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하자 유족 측 장례위원을 맡기도 했다. 보안사 인사처장이었던 허삼수 씨도 노 전 대통령 별세 당시에 유족 측 장례위원에 포함됐지만, 그의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기자 출신으로 언론통폐합을 주도했던 허문도 씨는 2016년 별세했다.
  • 파월 2기, 인플레 잡기에 역점…내년 3차례 금리인상 전망

    파월 2기, 인플레 잡기에 역점…내년 3차례 금리인상 전망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 의장이 22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명으로 사실상 연임을 확정한 가운데 인플레이션에 대해 비둘기파인 파월이 이번에는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기간 단축, 기준금리 인상 단행 등 매의 발톱을 드러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연준 부의장으로 지명된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와 함께 참석한 파월은 “고물가는 가족들, 특히 음식·주택·교통 등 필수품의 높은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이들에게 타격을 준다”며 “추가 물가 상승이 고착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의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플레이션 잡기에 사활을 걸겠다는 의미다. 바이든은 이 자리에서 연준의 할 일에 대해 “첫 번째는 최대 고용 달성, 두 번째는 인플레이션을 낮고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라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명으로 연준 의장에 오른 파월은 코로나19 직후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제로금리를 단행하고 대규모 양적완화에 돌입하면서 민첩하게 대응해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지속적인 완화정책으로 지난달 소비자 물가지수는 6.2%로 31년 만에 최대 폭으로 치솟았다. 취업자 수는 팬데믹 이전 최고치보다 420만명이 감소했고 임금은 빠르게 오르는 상황이다. 파월 2기는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물가상승 압력에 대응해야 한다. 파월은 아직 인플레이션을 ‘일시적 현상’으로 보고 강경책인 기준금리 인상 대신 온건한 테이퍼링을 쓰고 있다. 하지만 고물가가 지속되면 물가와 고용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파월이 첫 임기 때 인플레이션은 무시하고 완전 고용에 우선순위를 뒀다면, 두 번째 임기에는 일자리를 희생하고 물가 잡기를 우선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시장에서는 파월이 내년에 최대 세 번까지 금리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날 뉴욕증시의 3대 간판지수 가운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은 하락했다. 파월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강조하자 금리인상 가능성이 부각된 결과다. 블룸버그통신은 “파월 의장이 연준의 107년 역사에서 전례가 거의 없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까다로운 경제 문제에 직면해 있다”면서 “어느 하나라도 실수한다면 경기 팽창을 끝내고 침체를 촉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입 닫고 가버린 전두환 전 대통령…5·18 진상규명은 어떻게

    입 닫고 가버린 전두환 전 대통령…5·18 진상규명은 어떻게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하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 규명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씨가 사망하면서 사건 당시 최고권력자의 ‘고백’을 통한 국가 폭력의 실체를 밝히기는 어려워졌으며 결국 진상 규명은 관련 위원회 및 학계의 조사·연구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사건이 일어난 지 41년이 지났지만 5·18 관련 실체적 진실 규명과 국가 공권력의 희생자에 대한 상처 치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동안 국회 특별위원회 청문회와 검찰 수사, 국방부 위원회 조사 등을 거쳤지만 사건의 진상은 완전히 규명되지 못했다. 어떤 조사에서도 당시 최초 발포와 집단발포 명령자를 특정하지 못했고 헬기 사격 책임자, 성폭력 가해자, 암매장 장소 등에 대한 조사도 남아 있다. 전씨와 신군부 관계자들은 줄곧 발포명령을 부정해왔다. 1997년 확정된 5·18 재판에서 전씨와 이희성 계엄사령관, 주영복 국방부 장관, 황영시 육군참모차장, 정호용 특전사령관 등 5명은 1980년 5월 27일 벌어진 ‘상무충정작전(전남도청 무력 진압 작전)’에 관해서만 내란목적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생존해 있는 당시 핵심 관계자가 입을 열지 않는 한 앞으로의 진상 규명은 5·18진상 규명조사위원회를 중심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위원회는 지난해 5월 5·18 40주년을 맞아 실무진 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인 조사 활동에 돌입했다. 위원회는 5·18 당시 최초 발포와 집단발포 책임자 규명, 당시 사망사건, 민간인학살, 행방불명자 규모 및 소재 등을 조사하고 있다. 광주시가 인정한 5·18 행방불명자는 82명으로 이 중 6명은 2001년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의 무명열사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신원이 확인됐다. 최근에는 계엄군의 헬기 사격과 전투기 무장출격 대기 사실이 밝혀졌고 계엄군과 보안사 수사관의 성폭력 등 성범죄 폭로도 이어지면서 진상 규명 범위도 넓어졌다. 위원회는 이 같은 부분에 대해서도 직권조사 개시를 결정하고 진상규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 5·18조사위 “사죄 기회 있었지만 변명 일관…희생자 고통 가중”

    5·18조사위 “사죄 기회 있었지만 변명 일관…희생자 고통 가중”

    “진상규명 지속할 것…신군부 핵심인물들 더 늦기 전에 진실 고백해야”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규명위)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망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면서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이날 “전두환 씨는 지난 41년간 피해자와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고 사죄할 기회가 있었으나 변명과 부인으로 일관했다”면서 “이는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고통을 가중시켜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씨를 포함한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죄의 핵심 인물들에게 출석요구서를 발송했고, 전두환 씨는 지병을 이유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면서 “그의 사망에도 법률이 부여한 권한과 책임에 따라 진상규명을 위한 엄정한 조사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진상규명위는 “신군부 핵심 인물들은 더 늦기 전에 국민과 역사 앞에 진실을 고백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1979년 12월 12일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은 5·18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하고 같은 해 9월 1일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접선거를 통해 1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1997년 대법원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유혈진압과 관련해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죄 등 으로 무기징역 판결이 확정됐다.
  • 광주 시민들 “전두환 편안한 죽음은 대한민국의 불행이자 부끄러움”

    광주 시민들 “전두환 편안한 죽음은 대한민국의 불행이자 부끄러움”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소식에 광주 시민들과 광주 5·18 단체들은 “법적·역사적 책임을 묻지 못했다”며 원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5·18 기념재단과 5월 3개 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전씨가 죽더라도 5·18의 진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씨는 자신이 5·18과 무관하다며 구차한 변명과 책임 회피로 일관해 왔다”며 “계속되는 거짓말과 왜곡으로 국민과 사법부를 기망하고 반성과 사죄는 커녕 5·18 영령들을 모독하고 폄훼하며 역겨운 삶을 살았다”고 지적했다.또 “죽음으로 진실을 묻을 수는 없다”며 “우리는 오월 학살 주범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고 만고의 대역죄인 전두환의 범죄행위를 명명백백히 밝혀 역사 정의를 바로 세워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조진태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도 “살아 생전 본인이 저지른 죄를 사죄받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스스로가 걷어찼다”며 “역사의 심판은 끝나지 않은 만큼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조규연 5·18 구속부상자회장은 “5·18의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전씨가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떠나 원통하다”며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반성하는 마음도 생기게 된다는데 그런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이라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도 사과 한마디 없이 떠난 전씨를 비난했다. 송선태 위원장은 “지난 41년간 피해자와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고 사죄할 기회가 있었으나 변명과 부인으로 일관해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고통을 가중 시켜왔다”며 “전 씨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법률이 부여한 권한과 책임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엄정한 조사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고 강조했다. 신군부 핵심인물들은 더 늦기 전에 국민과 역사 앞에 진실을 고백해야한다고 촉구했다. 광주지역 24개 시민사회단체로 결성된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성명서를 내고 “5·18을 능멸하고 죽은 학살자 전두환의 국가장과 국립묘지 안장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광주는 학살자 전두환의 편안한 죽음에 분노한다”며 “자신의 권력과 이권을 위해 시민들을 학살하고, 반대자들을 감옥에 가뒀던 독재자가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불행이고 부끄러움이다”고 했다. 이 단체는 “민주적 헌정질서 파괴자의 국가장과 국립묘지 안장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면서 “독재자의 재산을 몰수하고, 5·18정신을 대한민국 헌법정신으로 담아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치권은 하루 빨리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것을 합의하고, 여전히 왜곡과 폄훼가 끊이지 않는 5·18의 진실 규명을 위해 나서라”고 요구했다. 지역 주민들도 역사에 죄를 짓고서도 한마디 반성 없이 떠난 모습에 아쉬움과 분노심이 든다는 표정들이다. 시민들은 많은 희생자를 낸 광주항쟁의 책임자를 밝혀내는 일은 영영 물거품이 된게 아닌가라는 허탈감을 보였다. 박모(52)씨는 “역사에 큰 죄를 짓고 간 사람이 아무런 처벌 없이 90살 동안 살다가 간 사실에 분노만 치민다”고 했다. 이모(61)씨는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재판도 시일이 지연되면서 결국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며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역사적 의미는 있지만 법률적으로 5·18 당사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죄에 대해 확정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채 마무리 돼 아쉽다”고 말했다.
  • 사죄 없이 “찬송가 들려” 목회자 된다는 전두환 아들 [김유민의돋보기]

    사죄 없이 “찬송가 들려” 목회자 된다는 전두환 아들 [김유민의돋보기]

    지난달 26일 먼저 세상을 떠난 ‘군사 쿠데타 동료’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유족과 달리 23일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 유족은 과오를 인정하지 않았다. 부인인 이순자씨와 아들 재국·재용·재만씨, 딸 효선씨 중 어느 누구도 전씨가 미납한 추징금을 납부하겠다거나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사죄하지 않았다. 부인 이순자씨는 2017년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를 내고 “정략적인 역사 왜곡 앞에서 나는 몇 번이고 전율했다”라며 “당시 수사책임자인 동시에 정보책임자였던 그분은 결코 발포 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았다”라며 전씨의 쿠데타를 두둔했다.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죄 재판을 받으러 광주를 오갈 때에도 전씨와 동행하면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노태우씨는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1997년 대법원에서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받았고 16년 만인 2013년 추징금을 완납했지만 전두환씨는 2200억 원의 추징금에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며 1020억 원 정도를 납부하지 않았다. 전두환씨 장남 재국씨는 “온 가족이 돈을 모아 부친(전두환)의 추징금을 완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연희동 자택이 공매에 넘어가자 이에 반발하며 소송을 통해 본채를 사수했다. 또한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나 국정감사에 불려 나와 사과하기도 했다.하루 일당 400만원…황제노역 논란“전두환, 아들 신학 공부에 기뻐해” 전두환씨의 차남 재용씨는 양도소득세 포탈 등의 혐의로 처벌받으면서 부과된 40억원의 벌금을 내지 않고 ‘황제 노역’을 하다가 비난을 받았다. 전재용씨는 2006년 12월 경기도 오산시 임야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다운계약서를 작성하고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15년 8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원을 선고받았다. 전씨는 벌금 40억원에서 불과 1억4000만원(3.5%)만 납부하면서 원주교도소에서 약 2년8개월간 하루 8시간씩 노역을 했고 지난해 2월 출소했다. 하루 일당이 400만원인 셈이라 당시 논란이 됐다. 그리고 지난 3월 극동방송 ‘만나고 싶은 사람 듣고 싶은 이야기’에 출연해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원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며, 이 소식에 아버지 전두환씨가 굉장히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전재용씨는 “교도소에서 2년8개월이란 시간을 보내게 됐다. 처음 가서 방에 앉아 창살 밖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찬송가 소리가 들렸다”라며 “종교방에 있던 분이 노래를 너무 못 불렀는데도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 찬양, 예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목회자의 길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전씨는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더니 생각하지 못한 만큼 너무 기뻐했다”라며 “아버지는 ‘네가 목사님이 되면 네가 섬긴 교회를 출석하겠다’고도 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꼭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강조했다. 광주사태 가해로 국민 지탄…아들의 사죄 이러한 유족의 행보는 지난달 별세한 노태우씨 유족과 대비되는 것이기도 하다. 노태우씨의 아들 재헌씨는 부친을 대신해 여러 차례 5·18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혔다. ‘삼가 옷깃을 여기며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분들 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노재헌씨는 2019년 8월 23일 두 전직 대통령의 직계가족 중 유일하게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사죄했다. 지난해 5월 29일에는 5·18 40주년 기념 배지를 달고 광주 남구 양림동에 위치한 오월어머니집을 찾았다.재헌씨는 오월어머니집 방명록에 ‘오늘의 대한민국과 광주의 정신을 만들어주신 어머님들과 민주화운동 가족 모든 분들께 경의와 존경을 표합니다’고 적었다. 같은해 6월23일에는 CBS라디오와 인터뷰에서 ‘5·18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치유와 화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사과를 해야 되고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일어나지 말아야 될 5·18과 관련해 항상 마음의 큰 짐을 가지고 계셨다”며 “특히 병상에 누운 뒤부터는,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이 오면서 참배를 하고 사죄의 행동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고 저한테도 고스란히 마음의 짐이 됐다”라고 말했다.
  • 5·18 진상규명 ‘첩첩산중’...남은 가족들 반성 없어

    5·18 진상규명 ‘첩첩산중’...남은 가족들 반성 없어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을 계기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규명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전 전 대통령을 제외한 남은 가족들도 반성이나 사과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와 12·12 및 5·18 사건 검찰 수사,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및 특별조사위원회 등을 거쳤지만 진상규명은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다. 실체적 진실 규명과 국가 공권력의 희생자들에 대한 상처 치유는 현재진행형인 상황이다. 1980년 5월 당시 최초 발포와 집단발포 명령자를 특정하지 못했고 헬기사격 책임자, 성폭력 가해자, 암매장 장소 등에 대한 조사도 남아 있다. 전두환 신군부는 자위권 발동을 내세우며 발포명령자를 부정해왔고, 1995∼1997년 이어진 검찰수사에서도 발포 명령자를 기소하지 못했다. 전두환 등 피고인 5명은 5월 27일 이른바 ‘상무충정작전’인 전남도청 무력 진압 작전에 개입한 일에 대해서만 내란목적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을 뿐이다.우선 1980년 5월 20일 오후 10시 30분 광주역에서 계엄군의 첫 발포, 이튿날인 21일 오후 1시께 옛 전남도청 앞에서의 첫 집단 발포의 명령자가 누구였는지는 광주학살의 책임 소재를 가릴 핵심이다. 생사도 확인되지 못한 행방불명자를 재조사하고, 이들의 암매장 장소를 찾는 한편 유해 발굴과 수습에 대한 조사도 중요하다. 광주시가 인정한 5·18 행방불명자는 82명으로, 이 가운데 6명은 2001년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의 무명열사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신원이 확인됐다. 최근에는 계엄군의 헬기 사격과 전투기 무장출격 대기 사실이 밝혀졌고, 계엄군과 보안사 수사관의 성폭력 등 성범죄 폭로도 이어지면서 진상규명 범위도 넓어졌다. 1988년 국회 청문회에 대비해 군 보안사와 국방부 등 관계 기관들이 구성한 4·11 연구위원회의 진실왜곡과 조작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도 과제다. 결국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무소속 최경환 의원 대표 발의)에 따라 구성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얼마나 진실규명의 성과를 낼지가 관건이다. 지난해 5월 5·18 40주년에 맞춰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실무진 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인 조사 활동에 돌입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는 없는 실정이다. 한편, 전두환 씨가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전면 부인하고 발포 명령을 정당화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씨는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광주 시민사회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 목소리도 높다.이 가운데 전 전 대통령의 유족인 부인 이순자씨와 아들 재국·재용·재만씨, 딸 효선씨 등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한 역사적 과오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고수해 비난을 샀다. 부인 이씨는 지난 2017년 3월 출간한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12·12, 5·17, 5·18에 대한 편집증적 오해와 정략적인 역사 왜곡 앞에서 나는 몇 번이고 전율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씨는 5·18에 대해서는 ”당시 수사책임자인 동시에 정보책임자였던 그분은 결코 발포 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았다“며 발포 책임을 부인했다. 12·12에 대해서는 ”최규하 대통령이 1980년 7월 말 광주사태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남편에게 후임이 되어줄 것을 권유했다“며 정권 찬탈이 아니었다고 강변했다. 전씨의 5·18 관련 언급에 대해서도 ”국회 청문회 등에서 사과한 것은 5·18 당시의 정보책임자로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는 의미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이씨는 전 전 대통령이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죄 재판을 받으러 광주를 오갈 때에도 동행하면서 사과 요구 등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자리에서도 사과 요구에 답하지 않았다. 유가족은 전 전 대통령이 미납한 추징금과 관련해서도 끝까지 뻔뻔한 태도를 고수했다. 지난 2013년 검찰이 미납 추징금 관련 비자금 수사를 벌이자 장남 재국씨는 일가족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미납 추징금을 자진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정부가 추징금 환수를 위해 연희동 자택을 공매에 넘기자 이에 반발, 소송전을 벌였다. 결국 대법원에서 자택 중 본채에 대해서는 공매에 넘길 수 없다는 결정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장남 재국씨는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나 국정감사에 불려 나와 사과하기도 했다. 차남 재용씨는 양도소득세 포탈 등의 혐의로 처벌받으면서 부과된 40억원의 벌금을 내지 않고 ’황제 노역‘을 하다가 비난을 받기도 했다.
  • [이재갑의 감염병 이야기]잠깐 멈출 수 있는 용기/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이재갑의 감염병 이야기]잠깐 멈출 수 있는 용기/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이후 여러 차례 잠깐 멈춰야 할 때가 있었다. 시민들은 정부의 정책에 호응해 마스크 착용과 함께 거리두기를 잘 지켜 왔다. 지금까지 어려움은 있었지만 파국 없이 버텼던 힘은 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의료진, 방역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희생 덕분이었다. 연일 위중증 환자가 최고치를 경신하고 신규 확진자도 3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11월 2일 단계적 일상회복을 시작하면서 방역 당국은 확진자가 하루 5000명 발생해도 의료체계가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중환자 치료 역량을 어느 정도 보완하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위중증 환자 증가세는 생각보다 더 가파르다. 단계적 일상회복 이전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함께 접촉 빈도가 늘어나면서 미접종 고위험군 감염자가 증가한 영향이 크다. 백신 효과가 델타변이로 인해 예상보다 빨리 떨어지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국내외 자료를 살펴보면 백신 효과는 고위험군에서 접종 후 4~5개월부터 본격적으로 감소한다고 한다. 이미 수도권 중환자 병상은 80% 이상 가동 중이다. 일부 중환자는 비수도권으로 이송되기 시작됐다. 여러 대학병원 응급실에는 병상을 기다리는 중환자들이 늘고 있다. 병상 확보를 위한 행정명령을 내렸지만 병상 준비와 인력 재배치에 몇 주는 걸리기 때문에 앞으로 3~4주는 의료진이나 환자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확충하기로 한 병상 규모보다도 더 빠르게 위중증 환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령층을 포함한 고위험군의 추가 접종(부스터샷)을 서둘러야 한다. 추가 접종을 먼저 시작한 이스라엘이나 싱가포르는 위중증 환자 비중이 다시 감소했고 의료체계 정비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 특히 요양원과 요양병원, 정신의료기관에서 집단 발병이 다시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달 안에 고위험 시설에 대한 접종을 끝내야 하고 12월까지는 고령층과 고위험군 접종도 일정 수준 완료해야 한다. 12~17세 예방접종도 강조하고 5~11세 예방접종도 앞당길 필요가 있다. 추가 접종으로 인한 중증환자 감소까지는 1~2개월이 필요하다. 그 전까진 현재 유행 규모를 의료체계가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억제해야 한다. 특히 수도권 병상 고갈이 심각하기 때문에 수도권 유행부터 통제하는 게 관건이다. 어쩔 수 없이 거리두기 강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접촉 빈도 특히 미접종자의 접촉 빈도를 낮추어야 한다. 다중이용시설은 백신 미접종자의 출입 범위를 4명에서 2명 이하로 더 낮추고, 사적모임 허용 범위도 한동안 다시 줄여야 한다. 방역패스 적용 대상 시설도 고위험 시설 전체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18세 미만 방역패스 면제도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위기에 강한 나라라는 단어를 쓰기 싫었다. 이 말을 다시 꺼내야 하는 게 속이 쓰리다. 그럼에도 지금의 위기를 국민들과 함께 잘 이겨 냈으면 좋겠다.
  • 제주 4·3 희생자 2530명, 재심 받을 듯

    제주 4·3 희생자 2530명, 재심 받을 듯

    해방공간의 대표적인 국가폭력 사건인 1948년 제주4·3사건의 희생자들이 재심이 받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22일 대검찰청에 4·3사건 수형인 명부상 2530명에 대한 유죄판결의 직권 재심 청구를 지시했다. 법무부는 이날 “대검찰청에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의 권고 취지를 존중해 관련 법률에 따라 신속히 직권재심을 청구하는 등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줄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이날 법무부에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특별법에 따라 ‘수형인명부상 2530명에 대한 유죄판결의 직권재심 청구’를 법무부 장관에 권고했다. 법무부는 이 권고를 즉각 수용해 대검에 재심 청구를 지시한 것이다. 대검은 법무부 지시에 따라 빠른 시일 내 재심 청구에 나설 전망이다. 이미 대검은 법무부와 협업해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을 광주고검 산하에 설치하는 등 직권 재심을 준비해 왔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부는) 4·3사건으로 제주도민들이 오랜 기간 겪어온 아픔을 깊이 공감하고,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2020년 11월 국회 논의 중이던 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검사가 직권재심청구를 할 수 있도록 수정법률안을 제출했고, 국회는 이 의견을 상당 부분 반영해 법안을 가결시켰다.
  • “칼부림에 도망” “신변보호 허점”…경찰 믿을 수 있나[이슈픽]

    “칼부림에 도망” “신변보호 허점”…경찰 믿을 수 있나[이슈픽]

    “흉기난동 현장에서 경찰이 도망가면 국민들은 누가 지킵니까.” “신변보호도 소용없다니, 이런 경찰에게 안전을 맡길 수 있나요.” 최근 경찰의 부실한 현장 대응으로 희생자들이 잇따라 발생하며 시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과 서울 신변보호 여성 사망 사건이 알려지며 “경찰을 믿을 수 없게 됐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에 경찰은 연이어 고개를 숙여야 했다. 22일 서울경찰청은 서울 중구 오피스텔에서 발생한 스토킹·살인 사건과 관련해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다”며 대응 실패를 인정했다. 앞서 지난 19일 오전 11시 30분쯤 서울 중구 한 오피스텔에서 피의자 김모(35)씨가 전 연인이었던 30대 여성 A씨를 흉기로 살해했다. A씨는 김씨가 “죽여버리겠다”며 협박한 뒤로 스토킹처벌법에 따라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상태였고, 사건 당일 스마트워치로 두 차례 긴급 호출을 했으나 경찰은 정확한 위치를 잡아내지 못하는 112 시스템의 기술적 한계로 첫 호출 이후 12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당시 김씨는 이미 달아난 상태였으며 A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이에 대해 서울경찰청은 “청장을 비롯한 서울경찰 모두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국민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고인과 유족,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일은 경찰이 보다 정교하지 못하고 신속·철저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것”이라며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던 중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것에 대해 엄중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전날에는 김창룡 경찰청장이 인천 남동구에서 발생한 층간소음 흉기 난동 사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했다. 인천 논현경찰서 한 지구대 경찰관들은 지난 15일 오후 5시 5분쯤 인천시 남동구 한 빌라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당시 제대로 현장 대응을 하지 못해 전 국민적 공분을 샀다. 특히 가해자가 흉기를 휘두르자 출동 경찰관이 지원 요청을 이유로 현장을 이탈한 사실이 알려지며 “경찰이 범행 현장에서 도망가도 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큰 상태다. 부실 대응 경찰관들을 엄벌해달라며 피해 가족이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은 이틀 만에 20만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피해자 가족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경찰의 직무유기, 살인미수 방조 등을 보면 이들이 범인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건 신고자인 60대 남성의 아내는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청장은 전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경찰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자 소명인데도 위험에 처한 국민을 지켜드리지 못한 이번 인천 논현경찰서 사건에 대해 피해자와 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경찰은 인천 논현경찰서장을 직위해제 조치했고, 이미 대기발령 중인 현장 출동 경찰관 2명에 대해서는 사건 직후 감찰 조사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이틀 연속 고개를 숙인 경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장 대응력 강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이 TF에서는 지역 경찰과 신임 경찰관 교육체계 개편, 장비 실용성 강화와 사용 훈련 강화, 법 제도적 기반 확충 등 종합적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아울러 범죄 피해자의 신변보호를 내실화하기 위해 스마트워치 위치확인 시스템도 개선할 예정이다. 이날 지휘부 화상회의를 주재한 김 청장은 “경찰이 위험에 처한 국민의 안전을 제대로 지켜드리지 못했다”며 “소극적이고 미흡한 현장 대응으로 범죄 피해를 막지 못한 점에 대해 피해자와 그 가족,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재차 사과했다.
  • “역사기록 말살”…톈안먼 민주화시위 홍콩판 ‘분서갱유’

    “역사기록 말살”…톈안먼 민주화시위 홍콩판 ‘분서갱유’

    홍콩에 대한 중국 당국의 통제가 날로 강화되는 가운데 홍콩 내 공공도서관에서 톈안먼 민주화시위와 관련된 서적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현지 독립언론이 22일 보도했다. 홍콩프리프레스(HKFP)는 자체조사를 통해 지난 12년간 홍콩 공공도서관에서 톈안먼 민주화시위 관련 서적 29종이 치워졌다고 밝혔다. 톈안먼 민주화시위란 1989년 6월 4일 학생·노동자·시민들이 중국 공산당에 민주화를 요구하며 베이징 톈안먼(천안문) 광장에서 연좌시위를 벌인 것으로, 당시 중국 정부는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무차별 발포를 했고, 탱크와 장갑차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톈안먼 민주화시위는 아직까지도 중국 내에서 검열과 보도통제가 되는 사안이다. HKFP는 기사 제목에서 ‘톈안먼 학살’이라고 지칭했다. HKFP가 공공도서관에서 치워진 것으로 파악한 29종의 도서 중 26종은 중국어 서적이며, 3종은 영어 서적이다. 이중에는 1989년 톈안먼 시위 주역 중 1명으로 시위 이후 프랑스로 도피해 현재는 미국에 거주 중인 펑충더가 쓴 ‘톈안먼 저널’도 있다. 펑충더는 홍콩 독자들이 자신의 책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놀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HKFP에 “내 책의 독자들은 중국 공산당이 민주화 운동을 어떻게 탄압했는지, 저항시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핵심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며 “홍콩 공공도서관에서 그 책이 사라진 것은 중국이 홍콩을 50년간 변화시키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깨고 자유를 쥐어짜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두가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밖에도 톈안먼 시위 희생자의 어머니가 쓴 3종과 톈안먼 시위 참가 후 미국으로 도피한 이들이 쓴 책,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가 톈안먼 시위 관련 기록물을 편집한 5종 등을 공공도서관에서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됐다.지련회는 1990년부터 매년 6월 4일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촛불행사를 진행해온 단체로, 당국이 홍콩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며 압박하는 가운데 지난 9월 자진해산했다. 지련회가 운영해온 톈안먼 추모기념관도 당국의 단속 속에 문을 닫았으며, 지련회의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는 모든 게시물이 삭제된 뒤 폐쇄됐다. 지련회의 각 온라인 계정에는 톈안먼 민주화 시위 당시의 사진과 영상, 유족의 증언을 비롯해 30여년간 진행한 촛불집회를 포함한 1000여개의 영상이 있었으나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공공도서관에서 치워진 지련회의 책 중 보도사진책을 편찬한 막호이와는 HKFP에 “책이 치워졌다는 것은 일부 사람들이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당시 뉴스 보도가 어땠는지를 대중이 알기를 당국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내가 편찬한 책은 당시 신문 1면을 모은 것으로 편집되지 않았고, 심지어 중국 관영매체 인민일보의 1면도 포함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책을 금하는 것은 마치 1989년 시위가 결코 존재하지 않았고, 중국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았거나 홍콩에서는 누구도 거기에 참여하지 않은 양 홍콩인들의 기억에서 모든 역사적 기록을 말살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지련회의 책이 절판됐고 서점에서도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공도서관에서 치워진 책 외에도 톈안먼 민주화시위와 관련한 도서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열람·대출 절차가 제한되거나 까다롭게 지정된 것으로 파악됐다. HKFP에 따르면 현재 공공도서관들이 보유 중인 톈안먼 시위 관련 책은 120종이지만 그중 26종만 진열돼 있거나 대출이 가능한 상황이며, 나머지 94종은 별도로 요청해야 이용이 가능하거나 외부로의 대출이 금지됐다. 또 공공도서관에 비치된 톈안먼 시위와 관련한 서적 총 부수는 2009년 6월 당시 1162권이었고, 당시 홍콩 당국은 이용자들의 요청에 따라 250권을 추가 주문해 이후 1412권까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올해 공공도서관에 비치된 관련 서적의 종류가 29종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비치된 부수 역시 392권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또 이용자들이 관련 서적 이용을 요청하면 30분 이상 기다려야 해당 도서를 검색할 수 있다고 HKFP는 도서관 직원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이용요금을 내고 관련 서적 대출을 예약할 수도 있지만, 약 일주일 정도 기다려야 한다. 이 매체는 “중국에서는 지난 30년간 톈안먼 시위 관련 정보가 엄격히 검열됐다”며 “홍콩이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후 톈안먼 시위 추모행사와 기록물 출간 등의 자유는 홍콩이 자유를 수호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여겨져왔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문화체육관광부 격인 홍콩의 관광문화국은 HKFP의 문의에 “낡거나 연구가치가 상실된 자료는 정기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한다”면서 “공공도서관의 자료들이 홍콩 법률을 준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검토를 할 것이며, 국가보안법 위반이 의심되는 자료는 서비스를 중단하고 있다”고 답했다.
  • [사설] 신변보호 외침에도 여성 희생 못 막은 한심한 경찰

    [사설] 신변보호 외침에도 여성 희생 못 막은 한심한 경찰

    지난 주말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던 30대 여성이 서울 중심가의 오피스텔에서 흉기에 찔려 숨졌다. 숨진 여성은 경찰이 지급한 스마트워치로 두 차례나 긴급 호출을 했으나 도움을 제때 받지 못했다. 스마트워치의 위치 추적에 혼선을 빚은 경찰은 신고 후 12분이나 지난 뒤에야 현장에 도착했고, 보호를 요청한 여성은 이미 치명상을 입은 뒤였다. 경찰은 “시범 운영 중인 새 위치 추적 시스템의 한계로 초동 대응이 늦어졌다”며 시스템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지만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은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더군다나 숨진 여성은 그동안 여러 차례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 사실 등을 경찰에 알렸지만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은 것 말고는 별다른 보호 조치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 15일 인천에서 발생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에서 출동 경찰관 2명이 어설프게 대응한 것으로 드러나 시민들의 분노와 허탈감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가 관할 경찰서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데 이어 출동한 경찰관의 엄벌을 촉구하는 국민청원 글에 하루 만에 1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동의했다. 기강해이도 심각하다. 인천의 한 경찰서에서는 음주운전 혐의를 받는 간부가 근무 시간을 조작하려 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대구에서는 20대 경찰관이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도주하다가 다른 경찰관에게 붙잡히기도 했다. “이런 경찰에 민생 치안을 맡길 수 있냐”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수사권 조정 이후 권한은 커졌지만 경찰 기강은 더 해이해졌다는 국회 국정감사에서의 지적을 김창룡 경찰청장을 비롯한 수뇌부가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렸는지 묻고 싶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안 수요는 더욱 커지고 있다. 경찰은 이번 두 사건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준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 ‘공산당 싫다’던 정용진, 황교익 치킨계급론 묻자 “가세연 보세요”

    ‘공산당 싫다’던 정용진, 황교익 치킨계급론 묻자 “가세연 보세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산당이 싫다’는 게시물을 쓴 후 연일 ‘콩이 싫다’는 댓글을 남기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보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을 언급했다. 정 부회장은 2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SSG랜더스 유니폼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인천상륙작전 기념 유니폼”이라며 SSG랜더스 유니폼을 직접 착용한 사진을 올렸다. 정 부회장이 입은 유니폼에는 ‘LANDERS(상륙자들) 1950’이라는 문구가 프린팅됐다. 정 부회장은 이어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이것조차도 불편러(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적었다. 이는 정 부회장이 ‘공산당 싫다’라는 발언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이를 우회적으로 반박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또 한 누리꾼이 “황교익이 ‘부자는 치킨을 안 먹는다. 음식에 계급이 있다’고 한다. 댓글 부탁한다”고 요청하자 정 부회장은 “가세연 보세요”라고 답했다. 앞서 황씨는 19일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놓고서 ““대한민국 국민 누구이든 ‘공산당이 싫어요’ 하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라면서 “우리 다 같이 민주공화정의 시민답게 살자. 저는 재벌자본주의가 싫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가세연 측은 19일 방송에서 이 내용을 주제로 삼고 “(황씨는) 자본주의가 싫다 하면 공산주의가 되니 ‘재벌자본주의’라고 했다. 들어 본 적이 없는 단어”라고 일갈했다. 이어 황씨가 주장한 ‘치킨 계급론’을 언급하며 “자기가 뭔데 부자가 치킨을 먹든 말든”이라고 지적했다. 황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자는 치킨 안 먹는다. 물론 어쩌다가 먹을 수는 있어도 맛있다고 찾아서 먹지 않는다“며 ”먹는 것에 계급이 있냐고? 있다. 자본주의 대한민국“이라고 말한 바 있다.한편 정 부회장은 앞서 SNS에 ‘미안하다, 고맙다’는 문구를 남겨 논란을 낳은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세월호 희생자 관련 발언을 연상시켜 오해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며 방명록에 “너희들의 혼이 100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는 추모글을 썼다. 일각에선 고인을 모독한 것이라고 비판했으나, 정 부회장은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쏘리(Sorry)”, “땡큐(Thank you)” 등 영어로 표현해 꾸준히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엔 비판을 의식한 듯 정 부회장은 “난 원래 가운데 손가락으로 안경을 쓸어올린다. 길고 편해서”라며 “그런데 우리 홍보실장이 오해받을 일 하지 말란다. 자기 힘들다고”라고 토로했다. 이어 “50년 넘는 습관도 고쳐야 한다. 이제 제일 짧은 손가락으로 올릴 거다”라고 적었다.
  • 몹쓸짓 끝에 세상 떠난 아홉살 소녀의 원혼 62년 만에 풀려

    몹쓸짓 끝에 세상 떠난 아홉살 소녀의 원혼 62년 만에 풀려

    미국 워싱턴주에서 가장 오래 된 미제 사건으로 손꼽히는 사탕 팔던 소녀 실종 사건의 범인 정체가 62년 만에 규명됐다. 1959년 3월 6일(이하 현지시간) 스포케인 시의 외곽 웨스트 센트럴에서 일어난 아홉 살 소녀 캔다스 캔디 로저스 실종 및 성폭행 변사 사건은 미국 전역을 통틀어서도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악성 콜드 케이스’였다. 스포케인 경찰은 지난 19일 로저스의 옷에서 발견된 정액으로부터 추출한 DNA 유전자 정보와 1970년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존 리 호프의 것을 대조했더니 정확히 일치했다고 밝혔다고 허프포스트 등 현지 언론들이 일제히 20일 보도했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호프는 육군에 복무 중이면서 걸스카우트와 비슷한 캠프 파이어 걸스에 기부할 돈을 모으기 위해 캠프파이어 민트를 팔던 로저스를 유인해 강간하고 목 졸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1961년 한 여성을 묶고 목을 졸라 살해하려 한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받고 수감되는 바람에 군에서 불명예 제대했고 수사망도 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교도소를 나온 뒤 그는 방문판매상과 벌목공으로 일하는 등 어렵게 지내다 서른한 살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작 스토멘트 스포케인 경찰서 경사는 전날 성명을 통해 “이 사건은 우리 콜드케이스의 에베레스트산이며 우리가 극복하지 못할 것처럼 보였지만 누구도 잊을 수는 없는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로저스는 실종된 지 열엿새째에 집 근처 숲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1200명 정도가 대대적인 수색에 나선 뒤였다. 수색에 동원된 공군 헬리콥터 한 대가 고압선을 건드린 뒤 스포케인강에 추락하는 3명의 공군 병사가 목숨을 잃었고, 다른 두 병사만 목숨을 건졌다. 범인인 호프와 같은 기지에서 근무하던 공군 병사들이었는데 애꿎게 희생됐다. 형사들에게는 몇년 동안 “수백건의 제보와 단서들이 제공됐지만 모두 막다른 골목에 부닥친 것처럼 느껴졌다”고 스포케인 경찰서는 성명에 적었다. 수사관들의 집념과 첨단 분석 기법이 62년 만의 사건 해결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연초에 용의자 명단 가운데 이미 세상을 등진 호프와 역시 세상을 떠난 그의 두 형제로 좁힐 수 있었다. 경찰은 호프의 딸을 접촉해 DNA 샘플을 제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로저스의 옷에 묻어 있던 샘플과 아주 밀접하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이에 따라 로저스의 무덤이 있던 공동묘지에 함께 묻힌 호프의 무덤을 다시 발굴해 유전자 분석을 했고, “전체 인구 가운데 무작위로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의 유전자를 선택했을 때보다 2500경 높은 확률로 일치한다”는 결론이 지난달 말 통보됐다. 하지만 로저스의 일가친척들이 현재 생존하고 있는지 여부는 경찰이 확인하지 못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 이재명 “北 도발 용인 안해, 반드시 책임 물을 것”…연평도 전사자 묘역 참배

    이재명 “北 도발 용인 안해, 반드시 책임 물을 것”…연평도 전사자 묘역 참배

    “민간인 지역 불법 도발 상응하는 책임져야”부인 김혜경 연평도 장병 묘역 동행北, 2010년 휴전 이후 韓영토 첫 직접 공격민간인 2명 포함 4명 사망, 19명 부상 참사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21일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일방적인 도발에 대해서는 용인하지 않겠다”면서 “민간인 지역에 대한 불법 도발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의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을 참배한 다음 기자들과 만나 “희생된 장병들이 정말 꽃다운 청춘들인데 안타깝게도 이런 일들을 당한 점에 대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전·충남북을 방문하고 있는 이 후보는 이날 부인 김혜경씨와 함께 연평도 포격전에서 전사한 장병의 묘역을 찾아 헌화했다. 이 후보는 “제가 그날(연평도 포격전 발발일인 11월 23일)은 별도로 이렇게 방문하기 어려워 그때 당시 희생된 여러분들을 저희가 기억하기 위해 미리 왔다”고 말했다.북, 선전포고 없이 대연평도 일방포격시설·가옥 불타… 北 “남한 탓” 북한의 천안함 피격 사건 8개월 만에 발생한 연평도 포격전은 북한이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쯤 아무런 선전포고 없이 인천 옹진군 연평면의 대연평도를 향해 포격해 우리 군이 북한 영토를 향해 대응사격을 가한 사건이다. 한국 전쟁 휴전 협정 이후 처음으로 남한 영토를 직접 타격해 민간인이 사망한 최초의 사건이기도 하다. 당시 하교하던 연평초등학교 학생들은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됐고 주민 1700여명이 긴급 대피했었다. 북한의 일방적 공격으로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 등 4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을 입는 등 2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또 북한의 포격으로 인해 연평도의 시설과 가옥이 파괴돼 큰 재산 피해를 입었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도발 행위를 규탄했으나 북한은 남한이 원인 제공을 했다며 남한 탓으로 돌렸다.
  • 이재명 대선후보, 대전 연평도 전사자 묘역 참배…“北 일방 도발 용인 않을것”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21일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일방적인 도발에 대해서는 용인하지 않겠다.민간인 지역에 대한 불법 도발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의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을 참배한 뒤 기자들과 만나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고,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희생된 장병들이 정말 꽃다운 청춘들인데 안타깝게도 이런 일들을 당한 점에 대해,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충남북을 방문 중인 이 후보는 이날 부인 김혜경 씨와 함께 연평도 포격전에서 전사한 장병의 묘역을 찾아 헌화했다. 그는 ”제가 그날(연평도 포격전 발발일인 11월 23일)은 별도로 이렇게 방문하기 어려워 그때 당시 희생된 여러분들을 저희가 기억하기 위해 미리 왔다“고 말했다.
  • ‘노빠꾸’ 정용진, 일본 김밥 올리며 “공산당이 싫어요” 

    ‘노빠꾸’ 정용진, 일본 김밥 올리며 “공산당이 싫어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개인 소셜미디어(SNS)에 ‘공산당이 싫다’라고 게시물을 쓴 이후 연일 ‘난 콩이 싫다’ 식의 댓글을 남기며 이목을 끌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 15일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관련 발언을 이어갔다. 신세계그룹은 백화점과, 면세점 등 중국발 매출이 큰 사업으로 알려져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19일 ‘공산당’ 발언으로 주주 피해 및 소비자 반감이 나온다고 지적한 뉴스를 공유한 뒤 “콩콩 그래도 콩콩콩콩 콩콩콩”이라고 적었다. 일본식 김밥 후토마끼 사진과 함께 “하나만 먹어도 배부른 후토마끼 먹음. 난 오늘도 콩콩콩콩 콩콩콩”이란 글을 올렸다. 20일 현재 후토마끼 사진과 뉴스를 공유한 게시물은 계정에서 삭제됐지만 이를 공유한 게시물이 여러 게시판으로 퍼졌다. 정 부회장은 지난 15일 붉은색 모자를 쓴 남성 2명과 붉은색 지갑을 든 사진과 함께 “뭔가 공산당 같은 느낌인데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피자는 잭슨 피자. 난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글을 올렸다. 자신의 사진과 함께 “난 콩이 상당히 싫습니다 #노빠꾸”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콩’은 공산당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표현으로 노빠꾸는 ‘남들이 뭐라 하든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노백’(No Back)을 소리 난 대로 쓴 말이다. 등받이에 ‘DUO BACK’이라고 적힌 의자 사진을 올리며 “Duo를 no로 바꿔야겠다 콩콩콩콩콩콩 콩콩콩”이란 글을 올리기도 했다. 중국 내 파장을 우려하는 반응이 나오자 정 부회장은 17일 공산당 언급으로 중국인들의 불매 운동 가능성을 언급한 기사를 캡처한 사진과 함께 “난 콩이 상당히 싫다”는 글을 다시 한번 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초, 중, 고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다”면서 “반공민주주의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라는 국민교육헌장의 일부 내용을 인용했다.‘미안하다. 고맙다’ 반복하다 삭제 그동안 정 부회장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문구를 반복해서 써 논란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며 방명록에 “너희들의 혼이 100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고 쓴 추모글을 패러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따랐다. 과거 문 대통령 측은 이 표현에 대해 “미안한 것은 이 나라의 어른으로서 살려내지 못한 때문이고 고마운 것은 우리 사회가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것을 새로 깨닫고 거듭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부회장의 표현에 고인 모독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이후에도 정 부회장은 사진을 올리고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을 영어로 “Sorry”, “Thanks you”라고 썼다. 현재는 이런 문구들이 삭제된 상태다. 비판이 계속되자 정용진 부회장은 “난 원래 가운데 손가락으로 안경을 쓸어올린다. 길고 편해서”라며 “그런데 우리 홍보실장이 오해받을 일 하지 말란다. 자기 힘들다고”라고 썼다. 이어 “50년 넘는 습관도 고쳐야 한다. 이제 제일 짧은 손가락으로 올릴 거다”라고 썼다. 문구에 대한 비판이 지속되자 사실상 오해이지만 그만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황희두 정치유튜버는 “최근 논란이 된 일론 머스크처럼 그런 사람을 꿈꾸는 건지 모르겠고, 개인이 어떤 정치색을 가지든 상관없지만 기업 오너가 대놓고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기싸움을 하고 조롱하는 건지 무서울 지경이라는 반응도 있다”고 전했다. 김어준은 자신이 진행하는 TBS ‘뉴스공장’ 오프닝에서 “재벌이 일베를 하면 어떻게 되느냐? 그냥 일베다”라고 저격했다. 신세계 측은 해당 SNS글이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일상적인 말에서 비롯된 오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뮤지컬 박정희’를 제작한 가로세로연구소는 자신들을 팔로우하고, 뮤지컬을 보러온 정 부회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가로세로연구소는 “정용진 부회장 너무 멋있다”라며 “앞으로 이마트만 이용하겠다. LG트윈스만큼 SSG랜더스를 사랑하겠다. 백화점을 간다면 신세계백화점만 가겠다”고 제안했다.
  • [여기는 남미] “다리에 시신 9구가 걸려 있어요”…멕시코서 충격 신고

    [여기는 남미] “다리에 시신 9구가 걸려 있어요”…멕시코서 충격 신고

    주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시신 전시 사건이 멕시코에서 발생, 경찰에 수사에 착수했다. 멕시코 사카테카스주(州)의 지방도시 쿠아우테모크의 교량에서 난간에 매달려 있는 시신 9구가 발견됐다고 현지 언론이 18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매달리진 않았지만 현장 인근 아스팔트 바닥에서 발견된 변사체를 포함하면 발견된 시신은 모두 10구다. 멕시코 경찰은 "이제 막 수사에 시작된 상황"이라면서 말을 아꼈지만 익명의 관계자는 "발견된 시신은 모두 남자였다"고 말했다. 교량 난간에 달려 있는 시신은 출근이 막 시작된 이날 오전 6시쯤 처음 발견됐다. 시신들은 옷이 반쯤 벗겨진 채 난간에 달려 있었다. 현지 언론은 "신고를 받은 경찰과 기자들이 현장에 몰려들기 시작했지만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이 이미 시신을 목격한 뒤였다"고 보도했다.  주민들은 공포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주민은 "경찰이 시신을 수습하는 데만 꼬박 4시간 이상이 걸렸다"면서 "너무 무서워 이젠 낮에도 외출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밤마다 도시가 무법천지로 변한다"면서 "오토바이 소리,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없어 밤이 되면 집에서도 극도의 공포감을 느낀다"고 했다.  경찰은 교량에 매달려 있던 시신들을 범죄카르텔 간 전쟁의 희생자로 보고 있다.  익명을 원한 경찰 관계자는 "범죄카르텔의 극악 행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면서 "세를 과시하기 위해 시신을 전시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이 이런 말을 한 근거는 비슷한 사건이 최근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의 사건은 지난 15일 프레스니요에서 발생했다. 육교 난간에 달려 있는 시신 3구가 발견됐다. 육교 아래에는 달려 있다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시신 1구가 뒹굴고 있었다.  유족들은 "용의자를 검거해 엄중 처벌하지 않는 한 비슷한 범죄가 반복될 것"이라면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지만 수사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살인 전문가들의 소행이다 보니 범죄현장에 증거를 남기는 경우도 드물다"면서 "아직까진 결정적인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진=아스테카TV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