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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포토] 제주 4.3 사건 희생자 추념식 참석한 홍준표 대표

    [서울포토] 제주 4.3 사건 희생자 추념식 참석한 홍준표 대표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 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4.3 특별법 국회 통과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제주 청와대사진기자단
  • [서울포토]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추념사하는 문재인 대통령

    [서울포토]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추념사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제주 청와대사진기자단
  • [서울포토] 4.3 사건 희생자 추념식 참석한 여야 정치인들

    [서울포토] 4.3 사건 희생자 추념식 참석한 여야 정치인들

    추미애(오른쪽), 홍준표(오른쪽 두 번째) 대표등 여야 정치인들이 3일 오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제주 청와대사진기자단
  • [서울포토]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서울포토]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3일 오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한 유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주 청와대사진기자단
  • [서울포토] 제주 4.3 사건 유족 손잡은 문재인 대통령

    [서울포토] 제주 4.3 사건 유족 손잡은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4·3 평화공원에서 생존자와 유족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제주 청와대사진기자단
  • [서울포토] 4·3 희생자 추념식, 분향하는 문재인 대통령

    [서울포토] 4·3 희생자 추념식, 분향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헌화·분향을 하고 있다. 제주 청와대사진기자단
  • [서울포토] 묵념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서울포토] 묵념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헌화 분향을 한 뒤 묵념하고 있다. 제주 청와대사진기자단
  • [서울포토] 제주 4.3 사건 희생자 추념식 참석한 문 대통령 부부

    [서울포토] 제주 4.3 사건 희생자 추념식 참석한 문 대통령 부부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4·3 평화공원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제주 청와대사진기자단
  • 문 대통령, “항구적 평화 ·인권 향한 4 ·3 열망 잠들지 않을 것”

    문 대통령, “항구적 평화 ·인권 향한 4 ·3 열망 잠들지 않을 것”

    대통령으로는 현직 두 번째로 제주4 ·3 추념식 참석“국가권력 폭력·희생, 반드시 진상규명 ·명예회복” 약속문재인 대통령은 3일 “저는 오늘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며 “더는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희생자 추념일 추념사에서 이같이 말한 뒤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4·3 추념식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참석 이후 12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는 4·3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하고 4·3위원회를 만들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위령제에 참석해 희생자와 유족·제주도민께 사과했다”며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며 “유해 발굴 사업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끝까지 계속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또 “유족과 생존·희생자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배·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다”며 “4·3의 완전한 해결이야말로 제주도민과 국민 모두가 바라는 화해와 통합, 평화와 인권의 확고한 밑받침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고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아직도 대한민국엔 낡은 이념이 만들어낸 증오와 적대의 언어가 넘쳐난다”며 “이제 아픈 역사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해야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공정한 보수와 공정한 진보가 ‘공정’으로 평가받는 시대여야 한다”며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보수든 진보든 어떤 깃발이든 국민을 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그러면서 “삶의 모든 곳에서 이념이 드리웠던 적대의 그늘을 걷어내고 인간의 존엄함을 꽃피울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 나가자”며 “그것이 오늘 제주의 오름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다.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이라며 “혼신의 힘을 다해 4·3의 통한과 고통, 진실을 알려온 생존·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께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어 “70년 전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고, 이념이란 것을 알지 못해도 도둑·거지·대문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당했다”며 “4·3은 제주의 모든 곳에 서려 있는 고통이었지만 제주는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만 하는 섬이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960년 4월 27일 관덕정 광장에서 ‘잊어라, 가만히 있어라’ 강요하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제주의 청년 학생들이 일어섰고, 수많은 4·3 단체들이 기억의 바깥에 있던 4·3을 끊임없이 불러냈다”며 “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시 되었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분들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신독재의 정점이던 1978년 발표한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 김석범 작가의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3년간 50편의 ‘4·3연작’을 완성했던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4.3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임흥순 감독의 ‘비념’과 김동만 감독의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고(故)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는 세월’, 가수 안치환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 등을 일일이 열거했다. 문 대통령은 “때로는 체포와 투옥으로 이어졌던 예술인들의 노력은 4·3이 단지 과거의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알려줬다”며 “드디어 우리는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가는 과정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지금 제주는 그 모든 아픔을 딛고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부활하고 있다”며 “우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리는 오늘 4·3 영령들 앞에서 평화와 상생은 이념이 아닌 오직 진실 위에서만 바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좌우의 극렬한 대립이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낳았지만 4·3 희생자와 제주도민은 이념이 만든 불신과 증오를 뛰어 넘어섰다”며 “고 오창기님은 4·3 당시 군경에게 총상을 입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3기로 자원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고, 아내·부모·장모·처제를 모두 잃었던 고 김태생님은 애국의 혈서를 쓰고 군대에 지원했다.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다.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제주 하귀리에는 호국영령비와 4·3희생자 위령비를 한자리에 모아 위령단을 만들었다. ‘모두 희생자이기에 모두 용서한다는 뜻’으로 비를 세웠다”며 “제주도민이 시작한 화해의 손길은 이제 전 국민의 것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4·3의 진상규명은 지역을 넘어 불행한 과거를 반성하고 인류의 보편가치를 되찾는 일”이라며 “4·3의 명예회복은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으로 나가는 우리의 미래”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제주는 깊은 상흔 속에서도 지난 70년간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외쳐왔고, 이제 그 가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으로 이어지고 인류 전체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이라며 “항구적인 평화와 인권을 향한 4·3의 열망은 결코 잠들지 않을 것이며, 그것은 대통령인 제게 주어진 역사적인 책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문] 문재인 대통령의 4·3 70주년 추념사

    [전문] 문재인 대통령의 4·3 70주년 추념사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제주도민 여러분,    돌담 하나,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  통곡의 세월을 간직한 제주에서  “이 땅에 봄은 있느냐?”  여러분은 70년 동안 물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습니다.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4.3을 잊지 않았고  여러분과 함께 아파한 분들이 있어,  오늘 우리는 침묵의 세월을 딛고  이렇게 모일 수 있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4.3의 통한과 고통, 진실을 알려온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들께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제주도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    70년 전 이곳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습니다.  이념이란 것을 알지 못해도  도둑 없고, 거지 없고, 대문도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습니다.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중산간 마을을 중심으로 ‘초토화 작전’이 전개되었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중산간 마을의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고,  마을 주민 전체가 학살당한 곳도 있습니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1, 3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념이 그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학살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한꺼번에 가족을 잃고도  ‘폭도의 가족’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고통은 연좌제로 대물림되기도 했습니다.  군인이 되고, 공무원이 되어 나라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자식들의 열망을  제주의 부모들은 스스로 꺾어야만 했습니다.    4.3은 제주의 모든 곳에 서려있는 고통이었지만,  제주는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만 하는 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말 못할 세월동안  제주도민들의 마음속에서 진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4.3을 역사의 자리에 바로 세우기 위한 눈물어린 노력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1960년 4월 27일 관덕정 광장에서,  “잊어라, 가만히 있어라” 강요하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제주의 청년학생들이 일어섰습니다.  제주의 중고등학생 1천500명이  3.15 부정선거 규탄과 함께 4.3의 진실을 외쳤습니다.    그해, 4월의 봄은 얼마 못가  5.16 군부세력에 의해 꺾였지만,  진실을 알리려는 용기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4.3 단체들이  기억의 바깥에 있던 4.3을 끊임없이 불러냈습니다.    제주4.3연구소, 제주4.3도민연대, 제주민예총 등  많은 단체들이 4.3을 보듬었습니다.    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시 되었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분들도 있었습니다.    유신독재의 정점이던 1978년 발표한,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  김석범 작가의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3년간 50편의 ‘4.3연작’을 완성했던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4.3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임흥순 감독의 ‘비념’과 김동만 감독의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故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는 세월’.  가수 안치환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    때로는 체포와 투옥으로 이어졌던 예술인들의 노력은  4.3이 단지 과거의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가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주도민과 함께 오래도록 4.3의 아픔을  기억하고 알려준 분들이 있었기에 4.3은 깨어났습니다.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리고,  또한 깊이 감사드립니다.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의 승리가 진실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2000년, 김대중 정부는 4.3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하고,  4.3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위령제에 참석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께 사과했습니다.    저는 오늘 그 토대 위에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합니다.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와 함께,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유해 발굴 사업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끝까지 계속해나가겠습니다.    유족들과 생존희생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배·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습니다.    4.3의 완전한 해결이야말로  제주도민과 국민 모두가 바라는  화해와 통합, 평화와 인권의 확고한 밑받침이 될 것입니다.    제주도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    지금 제주는 그 모든 아픔을 딛고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4.3 영령들 앞에서  평화와 상생은 이념이 아닌,  오직 진실 위에서만 바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좌와 우의 극렬한 대립이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낳았지만  4.3 희생자들과 제주도민들은  이념이 만든 불신과 증오를 뛰어 넘어섰습니다.    고 오창기님은 4.3 당시 군경에게 총상을 입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3기’로 자원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습니다.  아내와 부모, 장모와 처제를 모두 잃었던 고 김태생님은  애국의 혈서를 쓰고 군대에 지원했습니다.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습니다.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은 화해와 용서로  이념이 만든 비극을 이겨냈습니다.    제주 하귀리에는  호국영령비와 4.3희생자 위령비를 한자리에 모아  위령단을 만들었습니다.  “모두 희생자이기에 모두 용서한다는 뜻”으로 비를 세웠습니다.  2013년에는 가장 갈등이 컸던 4.3유족회와 제주경우회가  조건 없는 화해를 선언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이 시작한 화해의 손길은  이제 전 국민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들께 호소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엔 낡은 이념이 만들어낸  증오와 적대의 언어가 넘쳐납니다.    이제 우리는 아픈 역사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행한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만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도 4.3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해야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공정한 보수와 공정한 진보가  ‘공정’으로 평가받는 시대여야 합니다.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보수든 진보든,  어떤 깃발이든 국민을 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삶의 모든 곳에서 이념이 드리웠던 적대의 그늘을 걷어내고  인간의 존엄함을 꽃피울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 나갑시다.  이것이 오늘 제주의 오름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국민 여러분,    4.3의 진상규명은 지역을 넘어  불행한 과거를 반성하고 인류의 보편가치를 되찾는 일입니다.  4.3의 명예회복은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으로 나가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제주는 깊은 상흔 속에서도  지난 70년간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외쳐왔습니다.  이제 그 가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으로 이어지고,  인류 전체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입니다.    항구적인 평화와 인권을 향한 4.3의 열망은  결코 잠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통령인 제게 주어진  역사적인 책무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추념식이  4.3영령들과 희생자들에게 위안이 되고,  우리 국민들에겐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되길 기원합니다.    여러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4월 3일  대한민국 대통령 문 재 인    
  • 제주 4.3사건 70주년 추념식, 이효리 ‘바람의 집’ 낭송...희생자 위로

    제주 4.3사건 70주년 추념식, 이효리 ‘바람의 집’ 낭송...희생자 위로

    가수 이효리가 제주 4.3 사건 70주년 추념식에 참석해 희생자를 위로했다. 3일 오전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주 4.3사건 70주년 추념식에 가수 이효리가 참석, 이종형 시인의 ‘바람의 집’을 낭송했다. 이날 이효리는 검은색 정장 차림에 화장기 없는 수수한 모습으로 무대에 섰다. 그는 제주 4.3 추모시 ‘바람의 집’을 차분하게 읽어나가며 희생자의 넋을 기렸다. ‘바람의 집’은 이종형 시인 작품으로, 1947년 발생한 제주4.3사건 희생자들의 아픔을 추모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효리의 ‘바람의 집’ 낭독 후, 가수 이은미가 무대에 올라 ‘찔레꽃’을 부르며 추모 공연을 이어갔다.이은미의 공연 이후 이효리는 이산하의 ‘생은 아물지 않는다’를 다시 낭독했다. 이날 추모식을 찾은 가수 루시드폴은 자작곡 ‘4월의 춤’을 불렀다. ‘4월의 춤’은 지난 2015년 12월 루시드폴이 발매한 곡으로, 제주도에서 일어난 4.3 사건을 추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루시드폴은 앨범 발매 당시 ‘4월의 춤’을 작곡한 이유에 대해서 “4.3 평화공원을 다녀온 후 충격이 남아서 앨범 작업으로 이어졌다. 동네마다 적혀있는 비석을 보고 가깝게 느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편 대중 가수가 추념식 본행사에 참여하는 건 지난 2014년 4.3 희생자 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래 처음이다. 이날 추념식은 행정안전부 주최, 제주특별자치도 주관으로 제주 4.3평화공원 일대에서 ‘슬픔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내일로’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사진=MBC 김혜민 기자 khm@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 제주 4·3희생자 추념식 참석

    문재인 대통령, 제주 4·3희생자 추념식 참석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리는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다.4·3 항쟁 생존자와 유족 등 1만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슬픔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내일로’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날 행사에서 문 대통령은 추도사를 통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다. 문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더는 이념 때문에 희생되는 사람들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4·3 희생자의 배·보상 추진, 유해 발굴 및 유전자 감식 등 제주 4·3 항쟁으로 인한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국가의 책임도 약속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4·3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4·3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에서) 보고서가 나왔는데 그것만으로 진상규명과 배·보상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국회의원들이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며 “그와 관련한 말씀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4·3 항쟁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공약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제주 4·3 추념식에 12년만에 대통령 참석

    제주 4·3 추념식에 12년만에 대통령 참석

    “이념의 희생자 더는 나와서는 안 된다” 강조할 듯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다. 현직 대통령이 4·3 추념식에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12년 만이다.문 대통령은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리는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다. 4·3 항쟁 생존자와 유족 등 1만5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슬픔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내일로’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날 행사에서 문 대통령은 추도사를 통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다. 문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더는 이념 때문에 희생되는 사람들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4·3 희생자의 배·보상 추진, 유해 발굴 및 유전자 감식 등 제주 4·3 항쟁으로 인한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국가의 책임도 약속할 것으로 보인다.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4·3 항쟁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공약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이 치러지기 전인 지난해 4월 제주를 방문해 4·3 항쟁 유족들을 만나 “대통령으로서 4·3 추념식에 참석해 국가적인 추념 행사로 (4·3 추념식의) 위상을 높이겠다”고 말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희생자 유족 신고를 상설적으로 받고 가족 품에 돌아가지 못한 유해를 국가가 유전자 감식을 지원해 가족 품에 안기게 하겠다”며 “수형자들에 대한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으로 수형인 명부 삭제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백지연의 생각의 창] 4·3 항쟁, 존엄한 삶의 기록

    [백지연의 생각의 창] 4·3 항쟁, 존엄한 삶의 기록

    얼마 전 학생들과 함께 수업시간에 4·3 항쟁과 관련된 작품으로 현기영의 ‘마지막 테우리’(1994)를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십대 청년들에게 4·3의 이야기가 어떻게 읽힐까 내심 궁금했는데 다채롭고 깊이 있는 논의들이 많이 나와서 보람을 느꼈다. 4·3 항쟁에 대한 역사적 환기뿐만 아니라 문명 비판적 상상력,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성찰, 애도와 속죄의 문제 등 다양한 해석들이 등장해 귀를 기울이고 들었다.그동안 현기영의 대표작으로는 4·3을 처음으로 소설화한 ‘순이 삼촌’(1978)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지막 테우리’는 ‘순이 삼촌’에서 시작된 4·3의 서사적 기록이 도달한 문학적 현재화의 성과를 보여 주는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도의 평화로운 목장이 배경이 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테우리(목동) 고순만 노인이다. 드넓은 초원에서 소를 키우고 보살펴 왔던 고순만은 4·3의 참극을 온몸으로 겪은 증인이다. 친구 현태문과 함께 유일하게 살아남은 그는 남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비밀을 갖고 있다. 4·3 때 토벌대에 협박당해 뜻하지 않게 한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된 그는 이후 지울 수 없는 죄책감 속에서 살아왔다. 초원에서 소를 돌보며 살아온 그에게 4·3의 참극은 애지중지했던 소들과의 관계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적어도 이만의 인간과 이만의 마소가 비명에 죽어 초원의 풀 밑으로 돌아간” 야만의 시간은 초원이 품고 있는 4·3의 고통스러운 역사였다. 지난 시대의 역사를 뒤로한 초원은 포클레인과 골프 잔디로 뒤덮이기 시작한 개발 과정 속에서 또 다른 풍파를 겪는 자연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것은 “오름마다 봉화가 오르고 투쟁이 있었던” 해방 공간의 의미와 더불어 평화와 생태의 공간을 열어 가야 할 4·3의 현재적 의미를 일깨운다.올해 4·3 항쟁 70주년을 맞아 해방과 상생의 역사적 맥락을 조명하려는 노력들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마지막 테우리’에서도 항쟁의 현재적 의미가 심도 있게 다뤄지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4·3을 특정 지역에서 벌어진 희생의 기록으로 한정하지 않으려는 역사적 관점이다. 한 예로 재일 시인 김시종은 자신의 디아스포라적 삶을 통해 4ㆍ3의 현재적 의미를 되묻고 있다. ‘경건히 뒤돌아보지 말라’(‘창작과비평’ 2018년 봄호)에서 그는 4·3 항쟁이 남긴 희생과 참극, 역사적 민중봉기의 의미를 찬찬히 떠올린다. 항쟁 당시 무장봉기의 중간연락원으로 돌아다녔던 그는 도망치는 과정에서 자신을 숨겨 준 친척의 죽음과 수많은 사람의 참사를 겪었다. 그에게 4·3 은 오랜 시간 동안 쉽게 말할 수 없었던, 자신의 생존과 관련된 고통스러운 과거였다. 김시종 시인은 아직도 4·3 관련 희생자 규모가 온전히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서 “희생자를 경건한 기분만으로 추모하는 것은 희생자들의 풀지 못한 원한을 더욱 응고시키는 행위”라고 절박하게 호소한다. 살아 있는 역사는 박제된 기념비로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그의 말대로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기록 속의 희생자들은 단정하거나 신성한 형태로 재현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썩을 대로 썩어서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추악한 육체를 드러내고 목숨이 끊어진, 성불 못할 원한을 가진 시체”는 현재적으로 되물어야 할 4·3의 의미를 거듭 환기한다. ‘마지막 테우리’에서 고순만 노인의 지난 시절이 울림을 주는 이유 역시 그가 기억을 잊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에게 초원은 고통의 기억만이 아닌, 한때 마소와 사람들이 어울려 흥청거리며 변화를 꿈꾸던 해방 공간이었다. 어느덧 황혼을 향해 기울어 가는 자연의 처연한 풍경 앞에서 그는 ‘행복이라는 것도 인간이란 것도 믿지 않았던’ 지난날을 돌아본다. 그러나 순식간에 불어온 강풍과 구름, 휘몰아치는 눈보라 앞에서 그는 자연의 변화무쌍함, 목숨의 소중함을 생생하게 실감한다. 살기 위해 마른 소똥을 주워 모닥불을 피우고 몸을 녹이는 그의 모습은 ‘살아 있음’이라는 존엄한 현실 앞에서 겸허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깊은 감동을 남긴다. 그것은 고통의 기록을 관통해 소설이 새롭게 만나게 하는 역사의 현재적 모습이다.
  • “치유와 화해 증진하는 기회되길”… 교황의 위로 메시지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인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으로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다. 2013년 3월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국내 사안에 대해 메시지를 보낸 건 이번이 네 번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3 희생자 추념일을 하루 앞둔 2일 “이 행사가 치유와 화해를 증진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교황은 “모든 남녀가, 형제적 연대와 항구한 평화를 바탕으로 하는 세상을 건설하는 데 새로운 각오로 투신하기를 바란다”며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을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轉求·성모 마리아나 성인을 통해 바라는 바를 간접적으로 하느님에게 드리는 기도)에 맡기고 여러분이 희망을 굳게 간직하도록 늘 함께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이후 국내의 비극적 사건마다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 아픔에 동참해 왔다. 그동안 교황은 주한 교황청대사관을 통해 청원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위로 메시지, 지난해 12월 한국 사형 집행 중단 20주년 기념 메시지, 올 초 밀양 세종병원 화재 희생자 위로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천주교 제주교구 4·3 70주년 특별위원회는 “4·3 희생자와 유족에게 보내는 첫 교황의 메시지로, 전 세계에 4·3을 알리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오늘 동백꽃 배지 다는 文대통령 “이념의 희생 더 없어야” 메시지

    오늘 동백꽃 배지 다는 文대통령 “이념의 희생 더 없어야” 메시지

    문재인 대통령의 가슴에 3일 동백꽃이 핀다. 청와대는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문 대통령이 이날 4·3 사건 희생자들을 기리는 동백꽃 배지를 착용한다고 2일 밝혔다.동백꽃은 4·3 사건의 상징이다. 70년 전인 1948년 4·3 사건 당시 무고한 목숨들이 동백꽃 떨어지듯 송두리째 낙화해 차가운 땅으로 소리 없이 스러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제주 4·3 평화재단이 청와대에도 동백꽃 배지를 전달해 비서관급 이상에게 배포했다”고 말했다.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한 청와대 참모 일부도 이 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7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3일에는 문 대통령과 참모들이 일제히 동백꽃 배지를 단다. 청와대는 4·3 사건 70주년 기념식 준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날 발표할 대통령 추념사에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하는 이들이 더는 없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을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 제주 4·3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과거 국가가 제주 도민에게 저지른 폭력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분단 우려하며 5·10선거에 저항… 그 역사도 4·3”

    “분단 우려하며 5·10선거에 저항… 그 역사도 4·3”

    “남북 분단을 우려하며 ‘5·10 단독선거’에 저항하고 통일독립국가를 꿈꿨던 사람들의 역사가 ‘제주 4·3’입니다.”양정심(49) 제주 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학술위원장은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하루 앞둔 2일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1948년 4월 3일 봉기를 일으켰던 이유는 5·10 단독선거를 막기 위해서였다”면서 “제주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단독선거를 저지시킨 지역”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국가의 폭력성을 입증하려면 희생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지만, 이는 제주 4·3을 ‘절반의 역사’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왜 봉기를 했는지는 이야기되지 못한 채 위로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제주에서 태어난 그는 제주 4·3을 주제로 국내 첫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살당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죽어간 사람일까’라는 의문 때문에 연구하게 됐다고 한다. 그가 2005년 ‘제주 4·3 항쟁 연구’라는 박사 논문에서 저항의 역사를 기록한 이유다. 그는 1997년 ‘제주 4·3 제50주년 범국민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 운동에 나섰다. 1999년 ‘제주 4·3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그동안 공산주의자들의 폭동과 반란으로 폄훼됐던 제주 4·3은 대한민국의 역사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특별법을 근거로 2003년 발간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는 제주 4·3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으로 규정한다. 그는 “사회 전체가 변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공식 역사는 ‘폭동’에서 ‘희생’으로 바뀌었다”면서 “미래 세대는 바뀐 역사를 배우며 자라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년이 흘러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그는 추가 진상 조사와 희생자 배·보상 등이 담긴 특별법 재개정과 제주 4·3 정명(正名) 찾기 운동을 하고 있다. 정명 운동은 제주 4·3의 성격 규정, 가해자 처벌 문제와 연결돼 있기에 민감하다. 제주 4·3을 바라보는 시선이 폭동, 학살, 희생, 항쟁 등으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제주 4·3 특별전을 보면서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면서 “너무나 많은 죽음과 아픔 앞에서 이게 항쟁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는 감상에 빠진 것도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그는 “배제됐던 저항의 역사를 드러냄으로써 제주 4·3을 다양한 담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역사학자로서의 제 소명”이라고 덧붙였다. 제주 4·3은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 시기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지만, 보수 정부의 대통령들은 4월 3일에 제주를 찾지 않았다. 그는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제주 4·3 추념식 방문은 유족들에게 큰 힘이 됐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로 유족들을 위로하고 국민에게 감동을 줄지 기대가 된다”고 전했다. 글 사진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빨갱이로 몰아 학살, 그 불명예… 제주의 봄은 여전히 시리다

    빨갱이로 몰아 학살, 그 불명예… 제주의 봄은 여전히 시리다

    1949년 1월 17일 제주 조천 북촌마을. 한 무리의 군인들이 마을을 덮쳤다. 집집이 총구를 겨누며 남녀노소 주민들을 끌어내 북촌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내몰았다. 어린 학생들에게 빨갱이 가족을 찾아내라고 채근하던 군인들은 주민 수십명씩을 인근 너븐숭이로 차례로 끌고 가 400여명을 학살했다. 가옥은 모두 불태웠다. 이날 북촌마을을 지나던 군인들이 무장대의 기습 공격으로 2명이 사망하자 보복한 것이다. 북촌리 양민 집단학살 사건은 4·3 최대의 참극이었다.제주 4·3이 3일 70주년을 맞는다. 70년 전 해방정국의 좌우 이념 혼란기, 제주에서는 수만명의 주민이 무자비한 폭력에 희생당했다. 4·3은 서슬 퍼런 독재 권력에 눌려 오랜 세월 금기였으며 진실은 은폐되고 왜곡됐다. 발단은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발생한 경찰의 발포 사건이다. 기마 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다쳤지만 경찰이 그냥 지나쳤다. 군중이 돌멩이를 던지며 항의하자 경찰이 발포, 민간인 6명이 사망했다. 제주도민들은 같은 달 10일 민관 총파업으로 항의했고, 미군정은 파업 참여자를 잡아 가두는 등 탄압에 나섰다.급기야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 350여명이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 등을 외치며 경찰지서 12곳을 습격하는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5·10 총선거가 무산됐고, 11월 17일에는 제주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이후 토벌대와 무장대의 무력 충돌로 7년간 학살극이 벌어졌다. 토벌대는 무장대에 협조한다며 양민들을 학살했고, 무장대도 협조하지 않은 마을 주민들을 살해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뒤로는 보도연맹 가입자나 입산자 가족 등을 잡아들인 뒤 집단 수장하거나 총살, 암매장하는 일이 잇따랐다.4·3의 광기는 멈췄지만 연좌제가 도민들의 숨통을 조였다. 침묵의 금기는 1978년 소설가 현기영이 북촌리 학살 사건을 다룬 소설 ‘순이 삼촌’을 발표하면서 깨졌다. 4·3의 참혹함이 드러나자 제주에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은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한 후 1999년 12월 ‘제주 4·3 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03년 10월 4·3 진상보고서가 확정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처음 사과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여간은 달랐다. 이명박 정부는 4·3 진상조사보고서 수정 등을 시도했고 2011년부터 국비 지원을 끊어 유해 발굴 사업을 중단시켰다. 박근혜 정부는 4·3 추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했지만 보수단체 등의 반발에 2015년 희생자 재심사에 나서기도 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추념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을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희생자와 유족 추가 신고가 지난 1월 시작됐고, 유해 발굴 작업도 다음달부터 학살 현장이었던 제주공항 등에서 재개된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달 28일 대국민 담화에서 “4·3은 분단과 정부 수립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도민이 무고하게 희생당한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라며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과거사 아픔을 치유하고, 제주가 세계 평화와 인권의 중심으로 거듭나는 4·3의 역사적 행보에 국민들이 함께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4·3의 완전 해결을 위한 우선 과제는 4·3 특별법 개정이다. 유족과 제주도 등은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요구한다. 개정안에는 ▲공권력에 의한 억울한 희생에 대한 배상과 보상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은 군사재판의 무효화 ▲수형인에 대한 명예 회복 ▲트라우마 치유센터 건립 등이 담겼다. 제주도는 3일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에서 열리는 70주년 추념식에서 4·3의 고통을 노래한 ‘잠들지 않는 남도’를 합창한다고 2일 밝혔다. 2016년과 지난해 정부 측 요구로 추모 합창곡에서 제외됐었다. 오전 10시 도 전역에 1분간 추모 묵념 사이렌이 처음 울린다. 도는 추념일을 지방공휴일로 지정했다. 현재 4·3 공식 희생자는 1만 4232명(사망자 1만 244명, 행방불명자 3576명, 후유장애자 164명, 수형자 248명)이며 유족은 5만 9426명이다. 2003년 발간된 정부의 4·3 진상보고서는 “인구 동향 등의 자료를 고려하면 4·3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총 2만 5000~3만명이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4·3은 7년간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가량이 희생된 현대사의 비극이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힐링 여행지’ 제주의 치유되지 못한 아픔 4·3

    ‘힐링 여행지’ 제주의 치유되지 못한 아픔 4·3

    연간 1500만명이 찾는 아름다운 섬 제주는 삶에 지친 내·외국인의 마음을 달래주는 명실상부 ‘힐링 여행지’다. 그러나 평화로워 보이는 관광도시 제주에는 깊은 생채기인 4·3 사건이 치유되지 못한 채 오래도록 그늘져 있다. 올해 70주년을 맞은 ‘제주 4·3’은 아직 진상 규명과 희생자 파악도 다 끝나지 않아 정식 명칭조차 없다. 국민의 3분의1은 이 사건을 모른다고 말했다. 제주도민들이 사회에 “대한민국의 역사인 제주 4·3을 기억해 달라”고 외치는 이유다.3일 서울·제주 등 전국 20개 도시에서 ‘제주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라는 주제로 제주 4·3 70주년 추모 행사가 시작된다. 서울에서는 3일부터 7일까지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분향소 추모제가 진행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6월까지 특별전을 연다. 오는 7일 오후 6시 30분 광화문에서는 국민 문화제가 거행된다. 이 문화제에는 유가족 150여명을 비롯한 제주도민 500여명이 상경해 직접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행사 상징은 동백꽃이다. 제주에 붉은 동백꽃이 떨어지는 4월 무렵, 함께 스러진 수만명의 목숨을 기리는 의미를 담았다. 사건 발생 70년이 지났지만 ‘제주 4·3’은 아직 이름없는 역사다. ‘대량 학살’, ‘폭동’, ‘항쟁’ 등 다양한 가칭이 있지만 공식 명칭은 없다. 이 사건은 2000년에야 ‘제주 4·3 특별법’을 통해 진상조사 위원회가 발족했다. 위원회가 정부에 ‘제주 4·3사건 진상보고서’를 제출한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도민에게 이 사건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에는 “이 보고서는 사건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유족들의 명예회복에 중점을 두어 작성되었으며, 4·3사건 전체에 대한 성격이나 역사적 평가를 하지 않았다. 이는 후세 사가들의 몫”이라고 적혔다. 일각에서는 하루빨리 정식 명칭을 만들어야 한다는 ‘정명 운동’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사건의 성격이 당시 시대상과 얽혀 복잡한 까닭에 이를 포괄해 명명하기 쉽지 않다. 도민들도 자칫 자신의 가족을 잃은 이 비참한 사건이 이념 논리로 해석될까 조심스러워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박찬식 4·3범국민위 운영위원장은 “제주 4·3은 하나의 시선, 한가지 프레임으로만 봐서는 안 되는 복합적인 문제”라면서 “유가족 중에는 한 가족 안에 희생당한 민간인과 토벌한 무장대 사망자가 동시에 있을 정도로 이 사건은 역사적 문제와 맞닿아 있는 공동체적 비극”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제주 4·3은 우리 사회의 잊힌 이야기다. 제주 4·3평화재단이 지난해 진행한 전국민 제주 4.3 인식조사 결과, 제주 4·3이 일어난 시기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9%가 ‘한국전쟁 발발 이후’라고 답했다. ‘한국전쟁 발발 전’이라고 제대로 응답한 사람은 28.3%에 불과했다. 나머지 22.7%는 “모른다”고 답했다. 제주4·3 특별법 제정 사실조차 모르는 국민은 36.7%이었다. 제주 4·3 특별법이 정의한 제주 4·3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7년 3·1절 행사를 구경나온 어린아이와 여성 등 6명이 경찰의 실수로 사망하자, 이에 분노한 주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가 시대의 희생자가 됐다. 당시 이 움직임은 좌우 이념 논쟁과 5·10 단독선거 반대 등 사회적 이슈와 얽혀 정치적 싸움처럼 비쳐졌다. ‘빨갱이’를 솎아낸다는 명목 등으로 이뤄진 군·경의 민간인 학살과 방화로 당시 제주도민(약 25만명)의 10분의1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제주 4·3의 희생자 수는 아직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다. 지난해까지 제주 4·3 위원회가 확정한 희생자는 1만 4232명이며 위원회가 추정하는 사망 인원은 약 3만명이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제주4·3’ 그날의 아픔 민중음악으로 달랜다

    ‘제주4·3’ 그날의 아픔 민중음악으로 달랜다

    “나는 턱이 없어 삼켰어/이 미친 세월을 나는 삼켰지/나는 총이 없어 살았어/내 이름은 진아영/아 나의 상처를 감싸주던 하얀 무명천/아 이젠 아픔을 나는 풀어야겠어”(연영석, ‘내 이름 진아영’)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환기하는 노래를 불러온 민중가수 10팀이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공동으로 추모음반 ‘서울 민중가수들이 띄우는 노래’를 지난 30일 발표했다. 제주 4·3 70주년 범국민추진위원회가 제작한 이 음반에는 김성민, 류금신, 문진오, 손병휘, 안석희, 연영석, 우리나라, 이씬, 이수진, 임정득이 참여했다. 연영석이 노래한 ‘내 이름 진아영’은 4·3 당시 토벌대의 총격에 아래턱을 잃고 평생 얼굴을 무명천을 감싼 채 살아야 했던 진아영 할머니의 삶을 모티브로 학살의 현장을 재현했다.김성민은 ‘가매기 모른 식게’로 까마귀도 모르게 숨어서 제사를 지내야 했던 희생자들의 넋을, 이씬은 ‘잃어버린 마을’을 통해 학살로 인해 집터만 남은 채 사라져버린 곤을동, 다랑쉬마을을 기린다. 손병휘의 ‘붉은 섬’은 돌림노래 같은 구조를 통해 제주에 켜켜이 쌓인 폭력의 역사를 되짚고, 비슷한 역사를 지닌 오키나와까지 끌어안았다. 그동안 제주 4·3을 음악으로 다룬 창작물은 민중가요 중에서도 많지 않았다. 안치환, 최상돈의 노래나 2014년 기타리스트 성기완이 주축이 돼 만든 헌정앨범 ‘산 들 바다의 노래’ 정도가 꼽힌다.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제주 4·3을 노래하는 것은 민중가수들에게 오래도록 미뤄둔 숙제 같은 것이었다”면서 “70년이 흐른 뒤 나온 10곡의 노래들은 그동안 무엇이 끝나고 무엇이 남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이어 받아 되묻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3일 오후 6시 30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추모음반 발매 기념 작은음악회를 개최한다.앞서 가수 안치환도 지난 29일 신곡 ‘4월 동백’을 공개했다. 그가 제주 4·3을 노래한 건 1987년 작사·작곡한 ‘잠들지 않는 남도’ 이후 31년 만이다. 4월에는 동백이 피지 않지만, 제주 화가 강요배의 ‘동백꽃 지다’ 시리즈와 제주 출신 뮤지션 최상돈의 노래를 통해 4·3 사건의 상징적인 꽃이 된 동백을 모티프로 삼았다. ‘이등병의 편지’를 쓴 김현성도 ‘안부-펜안하우꽈’를 발표했다. 김현성은 “오랫동안 기억을 말살당한 4·3을 온전히 복원해 진상규명과 희생자 유족들에 대해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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