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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끊임없는 비명으로 고통 주는 좀비들...우리 곁에 있었네

    끊임없는 비명으로 고통 주는 좀비들...우리 곁에 있었네

    ‘비명자들 3부작’ 중 두번째 무대비정규직·세월호 등 사회상 반영 영화와 드라마 등 대중문화의 소재로 인기를 끌고 있는 좀비물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극단 ‘고래‘의 ‘비명자들 1’이다. 끊임없는 비명으로 주변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물리적 충격을 가하는 상대에게 같은 강도의 고통을 되돌려주는 비명자들.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져 나가는 ‘비명자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22일부터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개막한 ‘비명자들 1’은 비명자의 탄생 배경을 그린 작품이다. ‘비명자들’ 3부작 가운데 2017~2018년 먼저 무대에 올랐던 ‘비명자들 2’의 프리퀄에 해당한다. 연극은 아프가니스탄 미군 캠프의 파병 군인들이 무대에 오르며 시작한다. 무고한 희생자들이 살해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기업가 2세 출신의 파병 군인 ‘요한’은 그날부터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한국으로 돌아와 ‘비명자’를 처단하며 이야기의 긴장감이 더욱 고조된다. 작품 속 비명자가 좀비를 형상화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대중문화의 좀비물이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처럼 이 작품 역시 비명자들의 정체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비정규직 문제, 세월호 참사, 정치권의 정쟁과 이념 대립 등 너무 많은 것을 담았다는 느낌도 들지만, 빠른 전개와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연출 등은 이를 상쇄한다. 고통을 춤으로 표현한 박이표 안무가의 에너지 넘치는 안무와 박석주 음악감독이 준비한 연주팀의 라이브 음악은 무대를 풍성하면서도 깊이 있게 만든다. ‘비명자들 1’은 ‘2018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내년 예정된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비명자들 3’는 비무장지대(DMZ)를 배경으로 그 경계 위에 살고 있는 비명자 마을의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동영상] 싸움을 거는 것 같은 하카, 뉴질랜드 국민을 하나로 묶어

    [동영상] 싸움을 거는 것 같은 하카, 뉴질랜드 국민을 하나로 묶어

    혀를 내밀며 일제히 발을 구르고 가슴 철렁할 정도로 괴성을 지르며 눈알을 크게 굴리는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전통 춤 하카(haka)가 총기 테러로 슬픔에 빠진 뉴질랜드 국민을 한 데 묶고 있다. 참사가 발생한 지 일주일 동안 뉴질랜드의 학생들이 경쟁적으로 하카 춤 동영상을 올리자 폭주 마니아들까지 가세하는 등 많은 이들이 하카를 통해 슬픔을 이겨내고 단단한 연대 의식을 다지고 있는 것이다. 22일 참사 일주일을 맞아 크라이스트처치의 알누르 모스크 근처에 수천명이 운집한 가운데 추모 행사가 열렸는데 무슬림 사회를 위로하기 위해 마련됐다. 뉴질랜드 전역에서 하카로 무슬림들에 대한 연대의 마음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이슬람의 종교 지도자 이맘인 가말 포우다는 특별히 ‘하카 의식’을 언급했다. 그는 “(테러 후) 뉴질랜드인들이 보여준 눈물과 하카, 사랑, 연민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하카는 마오리족 말로 춤을 뜻하며 전쟁에 나가기 전 용사들이 승리를 기원하며 추던 춤이다. 뉴질랜드 국가대표 럭비팀 ‘올 블랙’이 경기 전 상대의 기를 꺾기 위해 춤을 추던 것이 뉴질랜드 전역으로 확산됐다. 뉴질랜드 학생들은 마오리족 출신이든 아니든 학교에서 하카를 배운다. 매튜 투카키 마오리 이사회 상임이사는 이날 영국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하카는 종종 전쟁 춤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사실 이 춤의 주된 주제는 존중”이라며 “지금은 뉴질랜드 역사에서 특별한 순간이며, 우리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한 순간이다. 많은 하카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확산되는 것 자체가 테러범을 키운 ‘온라인 증오’에 맞서는 강력한 메시지를 준다”고 평가했다. 같은 이사회의 도나 홀 이사는 “이런 장면은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하카는) 우리에게 발생한 일에 대한 영혼의 반응”이라며 “많은 이들이 (테러) 충격에 빠져 있는 지금 같은 때에 이런 ‘사회통합적 대응’은 이 나라를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하카는 호전적인 의미를 버리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른 내용으로 바뀌었다. 마오리족 안에서도 상황에 따라, 또 누가 전수했느냐에 따라 춤사위가 사뭇 다르다. 지역과 부족마다 고유한 하카가 있어 수백 가지로 천차만별이다. 영국 왕실 인사 등 귀빈이 방문할 때 환영의 뜻, 생일잔치나 결혼식, 기념일, 부족장이나 고위직 인사의 장례식 등 다양한 상황에서 하카를 춘다. 마오리족은 폴리네시아에서 건너와 뉴질랜드 역사에 초석을 깔았는데 유럽인의 이주가 본격화한 18세기 말부터 급감했다가 차츰 회복해 지금은 뉴질랜드 인구 450만명 가운데 14% 정도 된다. 한편 다음은 마오리 이사회가 크라이스트처치 희생자 추모를 위한 하카의 가사로 배포한 것이다. 그냥 의미 없이 함성만 지르는 게 아니란 얘기다.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여기는 남미] 2개월간 6000명 피살…최악의 치안 멕시코

    [여기는 남미] 2개월간 6000명 피살…최악의 치안 멕시코

    멕시코의 치안불안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2월 살인사건 희생자가 부쩍 늘어나면서다. 멕시코의 독립 국가기관 '국립공공안전시스템집행실'에 따르면 올해 1~2월 멕시코에선 5803명이 피살됐다. 이는 역대 최고 기록을 갱신한 지난해 동기보다 13% 늘어난 것이다. 과실치사를 제외하면 강도, 보복공격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5649명이었다. 페미사이드는 154건 발생했다. 연초부터 멕시코에선 끔찍한 기록 경신이 이어졌다. 지난 1월 멕시코에선 하루 92명꼴로 피살자가 발생했다. 1월 평균으론 집계를 시작한 이래 나온 최악의 기록이다. 2월도 피로 얼룩진 달이었다. 평균을 내보면 지난 2월 멕시코에선 하루 99.8건꼴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국립공공안전시스템집행실은 "21년 내 가장 많은 살인사건이 발생한 2월이었다"고 설병했다. 국립공공안전시스템집행실의 통계는 멕시코 연방정부의 통계와는 약간의 차이가 난다. 멕시코 연방정부에 따르면 올해 1~2월 발생한 피살자는 4622명이었다. 1월엔 하루 평균 75명, 2월엔 84.1명꼴로 피살자가 발생했다. 현지 언론은 "사건이 보고되지 않았거나 검찰 수사에 착수하지 않은 경우가 누락되면서 통계에 차이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멕시코에서 살인사건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2월 통계만 떼어 보면 멕시코에서 인구 10만 명당 살인사건 희생자는 2015년 1.99명, 2016년 2.33명, 2017년 3.01명, 2018년 3.39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올해 1~2월엔 다시 3.83명으로 뛰었다. 현지 언론은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정부가 지난해 11월 출범했지만 치안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자료사진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軍이 주민 체포 한 달 만에 ‘묻지마 처형’… 여순사건 진실 찾나

    軍이 주민 체포 한 달 만에 ‘묻지마 처형’… 여순사건 진실 찾나

    ‘제주 4·3’ 진압 거부한 군인 대대적 토벌 군 작전 중 반란 혐의 주민 등 1만명 희생 수사 절차·재판 관련 기록 전혀 없어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를 받고 처형된 민간인 희생자들의 재심 재판이 71년 만에 열린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인 여순사건의 진실이 드러날지 주목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는 21일 내란 및 국권문란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장모씨 등 3명의 재심 결정에 대한 재항고심에서 재심개시를 결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당시 적법한 절차 없는 군경의 민간 체포·감금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고 이를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도 이에 부합한다”면서 “원심의 재심개시 결정에 관련 법령을 위반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 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라는 명령을 거부하자 정부가 대규모로 파견한 토벌군의 진압 과정에서 1만여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장씨 등은 반란군을 도왔다는 혐의로 순천을 탈환한 국군에 체포돼 22일 만에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그해 11월 처형됐다. 어떤 절차로 수사와 재판을 받았는지 아무런 기록이 없는 데다 법원 판결문에도 혐의 외에 범죄 사실조차 없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여순사건을 직권조사한 뒤 2009년 군경이 순천 지역 민간인 438명을 반군에 협조·가담했다는 혐의로 무리하게 연행해 살해했다고 결론 냈고, 장씨 등 3명의 유족들은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 결정을 두고 법원에서는 당시 군과 경찰이 장씨 등을 불법으로 체포해 감금했다고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1심은 “판결문에 구체적인 범죄사실 내용과 증거 요지가 기재되지 않았고 순천 탈환 후 불과 22일 만에 사형이 선고돼 곧바로 집행된 점 등에 비춰 장씨 등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없이 체포·구속됐다고 볼 수 있다”며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2심도 “장씨 등은 물론 다른 희생자들에 대한 영장발부 여부를 판단할 만한 자료가 없는 점 등을 보면 불법으로 체포·구속됐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검찰은 “유족의 주장과 역사적 정황만으로 불법 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재항고했다. 다만 이날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전원합의체에 참여한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4명은 재심 결정을 하면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조희대·이동원 대법관은 수사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다는 재심 사유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장씨 등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 재심을 반대했다. 그러나 다수 의견으로 대법원은 재심 결정을 확정 지었고, 재심 재판은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리게 됐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여순사건’ 71년 만에 진실 규명… 대법, 재심 개시 확정

    ‘여순사건’ 71년 만에 진실 규명… 대법, 재심 개시 확정

    김명수(오른쪽 두 번째)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13명이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여순사건’ 재심 개시와 관련한 전원합의체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내란 및 국권문란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민간인 희생자 3명에 대한 재심 개시를 결정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 20세기 최악의 인종청소 전범 카라지치, 유엔 항소심 40년형→종신형

    20세기 최악의 인종청소 전범 카라지치, 유엔 항소심 40년형→종신형

    “전쟁 범죄의 심각성과 피고의 책임을 살폈을 때 1심에서 받은 징역 40년형은 너무 가볍다.” 1992∼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대규모 ‘인종 청소’를 지휘한 장본인인 세르비아계 정치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73)가 유엔 산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항소심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ICTY는 20일(현지시간) 카라지치가 2016년 1심의 40년형 선고에 불복해 제기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그의 항소를 기각하고 오히려 형량을 늘렸다. 카라지치는 유고 연방이 유지되길 원하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내전을 일으켜 이슬람을 믿는 보스니아계, 크로아티아계 주민 등 수십 만명의 학살을 지휘했다. 그는 내전 이후 13년의 도피 생활 끝에 지난 2008년 체포된 뒤 대량학살, 전쟁범죄, 인권침해 등 11개 혐의로 기소돼 2014년 9월 종신형을 구형받았지만 2016년 3월 ICTY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40년형을 선고받았다. 카라지치는 내전 막바지인 1995년 7월 동부 스레브레니차의 네덜란드 평화유지군이 보호하는 안전지대 안에서 8000명의 남성과 소년들을 대상으로 학살을 자행했고, 수도 사라예보에 40개월 이상 포격 공격을 가하고 저격수를 배치해 민간인 1만여명을 숨지게 했다. 짙은색 정장과 붉은색 타이 차림으로 경호원에 이끌려 법정에 나온 그는 이날 주심 판사로부터 종신형을 선고받을 때 거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영국 BBC 등이 전했다. 그는 3심을 요구할 수 없어 확정됐다. 반면 이날 법정을 찾은 피해자들의 친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과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무니라 수바시치는 “그는 마땅히 그럴만하다”며 “난 아들을 다시 보지 못하는데 (카라지치는) 평생 캄캄한 구멍 안에 머물러야 한다. 난 고통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세계와 전범들에게 하나의 메시지가 돼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친구들이 오마르스카 수용소에 끌려가 처형당하는 것을 지켜봤던 사트코 무야지치는 달콤쌉싸래하다고 했다. “만족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살아 이 장면을 지켜보지 못했다. 그래서 진짜로 기쁘다고 말하기 어렵다.” 24년 전 비극의 현장인 스레브레니차의 추모센터에 모여 TV를 통해 선고 장면을 지켜보던 희생자들의 친지들도 손뼉을 치면서 눈물을 흘렸다. 한편 카라지치의 변호인은 보스니아 N1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은 법에 기반하지 않은 순전히 정치적인 판결로 보스니아 화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카라지치가 보스니아 내전 당시 자행된 전쟁 범죄에 ‘도덕적인 책임감’은 느끼고 있으나, 형사적인 책임은 없으며 “이번 판결은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체제인 ‘스르프스카 공화국’에 불리한 판결을 내리라는 서방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라도반 비스코비치 총리 역시 현지 방송에 출연해 이번 판결을 정치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아무도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를 겨냥해 저질러진 범죄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정식 국명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인 이 나라는 현재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로 구성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FBiH), 세르비아계 위주의 스르프스카 공화국(RS) 두 체제로 나뉘어 있다. 이슬람 신자가 주류인 보스니아계 주민이 전체의 절반을 이루고,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계 31%, 가톨릭 신도들인 크로아티아계 15%, 유대인과 집시 등 기타 민족 4%로 이뤄져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아우슈비츠 기념관 “수많은 이들이 스러진 레일 위에서 균형잡기 사진 웬말”

    아우슈비츠 기념관 “수많은 이들이 스러진 레일 위에서 균형잡기 사진 웬말”

    독일 나치가 죽음의 수용소로 이용했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를 보존하는 아우슈비츠 기념관이 수용소로 들어오는 철로 위에 올라가 몸의 균형을 잡으며 사진을 촬영하는 관광객들에게 희생자들을 제발 존중해 그러지 말라고 당부했다. 기념관은 19일(이하 현지시간) 트위터에 관광객들의 사진들과 함께 글을 올려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 간 역사적 상징인 이곳보다 평균대 위에서 걷는 방법을 익힐 만한 더 좋은 장소가 널려 있다”고 지적했다고 영국 BBC가 20일 전했다. 나치는 이곳에서 100만명 가까운 유대인과 주로 폴란드인 등 수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글이 게재되자 기념관의 메시지를 지지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프란세스카란 이용자는 “아주 필요한 글이다. 우리의 사진 찍는 습관은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름 휴가에 찾게 되면 기념관의 사진 촬영 정책을 따르도록 명심하겠다. 여러분이 계속 해왔던 꼭 필요한 일에 감사드린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적었다. 모란 블라이스는 “수많은 무고한 이들이 살해당한 그곳을 사람들이 사진 촬영 장소로나 기억하고 환하게 웃으며 셀피를 찍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2014년 브리애나 미첼이란 10대 소녀가 아우슈비츠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으며 셀피를 찍은 것이 온라인에서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나중에 그녀는 휴대전화를 통해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 2017년에도 샤하크 샤피라란 이스라엘계 독일 작가가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 촬영한 12장의 셀피 사진 뒷배경을 아우슈비츠의 조형물이나 사진 뒷배경으로 바꿔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유대인 밀랍인형 앞에서 손가락 제스처를 하는 사진이나 묘비명 위를 뛰어다니고, 저글링 묘기 등을 하는 사진과 합성하기도 했다. 샤피라는 “사람들이 정말로 하고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 이런 일을 했다고 둘러대 더 호된 질타를 받았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제주 4·3 유족 사연 듣는 유엔 특별보고관

    제주 4·3 유족 사연 듣는 유엔 특별보고관

    20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을 찾은 파비앙 살비올리(가운데) 유엔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 특별보고관이 4·3 유족의 아픈 사연을 듣고 있다. 그는 지난 19일 4·3희생자유족회와 4·3기념사업위원회 공동 주최로 열린 ‘국제 인권 기준에서 본 한국의 과거사 청산’ 심포지엄 참석차 제주를 찾았다. 제주 연합뉴스
  •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130년 만에 살인범 밝힌 ‘DNA 탐정’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130년 만에 살인범 밝힌 ‘DNA 탐정’

    뮤지컬 ‘잭 더 리퍼’는 19세기 말 영국 런던의 얼굴 없는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가 벌인 살인 사건과 그 이면에 숨겨진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2006년 체코에서 초연된 뒤 한국에서는 2009년 공연을 시작해 올해까지 10년 동안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입니다. 낭만적인 음악과 멋진 배우들의 열연 덕분에 잭 더 리퍼 사건은 낭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잭 더 리퍼가 런던을 활보할 당시는 영국 전체가 공포에 휩싸였을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였다는 점입니다. ●빅토리아 여왕 때 런던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대제국을 이루고 있었던 빅토리아 여왕 재위 시절이었던 1888년, 유난히 무덥고 비까지 내린 직후라서 습도까지 높았던 8월 7일 저녁 이스트런던의 화이트채플에서 첫 번째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은 범행이 너무 잔혹해 어느 정신병자의 소행으로 생각했는데,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만 해도 11월 10일까지 3개월 동안 20~40대 거리의 여성 5명이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됐습니다. 이 연쇄살인은 잔혹한 범행 수법과 살인 예고에 옐로페이퍼들의 자극적 보도까지 더해지면서 이전에 벌어졌던 살인 사건들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습니다. 용의자로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이자 왕위 계승 2순위인 클래런스 애번데일 공작인 앨버트 빅터가 지목되자 빅토리아 여왕이 분노에 휩싸여 영국 경시청을 강하게 질타하며 검거 방법을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과학수사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다보니 경찰의 초동수사 부실로 범죄 현장이 훼손되고 지문 확보조차 되지 않다보니 아직까지 ‘콜드케이스’(미제사건)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영국 리버풀 존무어대 약학·생물분자과학연구실, 리드대 유전자·보건·치료연구소 공동연구팀이 새로운 유전자 분석법을 활용한 결과 130여년 전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의 정체를 확실히 밝혀냈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이들의 연구결과는 법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포렌식 사이언스’ 3월호(3월 13일자)에 실렸습니다. ●희생자 숄 묻은 피로 유전자 분석… 학술지 등재 연구팀은 1888년 9월 30일 살해된 네 번째 희생자인 46세의 캐서린 애드도스의 숄에 묻은 피와 정액에서 추출한 DNA를 증폭시키고 미토콘드리아DNA를 분석한 결과 당시 유력한 용의자 중 하나였던 23세의 폴란드계 유대인 아론 코민스키가 범인이 확실하다고 밝혔습니다. 코민스키가 범인이라는 주장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과학적 분석 결과가 국제학술지에 공식적으로 실린 것은 처음입니다. 이번 분석에 따르면 목격자들의 증언과 마찬가지로 범인이 당시 흔치 않았던 갈색 머리칼과 갈색 눈을 가졌다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2014년 사설탐정 러셀 에드워즈가 ‘네이밍 잭 더 리퍼’라는 책에서 코민스키를 살인범이라고 지목했지만 법의학자들은 살인범으로 그를 지목하게 된 분석 과정이 자세하지 않아 신빙성이 낮다고 비판했습니다. CSI 같은 미국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듯이 범죄 현장의 보존과 그를 통한 증거 확보가 범인 검거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증거물이 오래되고 오염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번 연구결과도 신뢰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완전범죄는 추리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얘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dmondy@seoul.co.kr
  • ‘희대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는 누구?…DNA 분석으로 밝혀져

    ‘희대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는 누구?…DNA 분석으로 밝혀져

    1888년 영국 런던을 공포에 떨게한 희대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 오늘날에 이르도록 진범이 확인되지 않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제사건으로 남았지만 DNA 분석으로 마침내 범인의 정체가 밝혀졌다. 권위있는 법의학 분야 과학기술논문색인(SCI)급 학술지 법의학저널(JFS·Journal of Forensic Sciences) 12일자에 실린 법의학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잭 더 리퍼는 당시 용의선상에 올랐던 폴란드인 이발사 아론 코스민스키(23)로 확인됐다. 잭 더 리퍼는 그해 8월 31일부터 11월 9일까지 런던 동부 화이트채플 지구 뒷골목에서 적어도 5명의 매춘부를 잔인한 방식으로 살해해 악명을 떨쳤다. 당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던 코스민스키는 정신분열증 환자로 특히 매춘부를 혐오하는 여성 혐오증에 빠져 여성들 앞에서 신체 중요 부위를 노출하는 성도착 증세가 있었다. 또한 사건 당시 현장에서 200m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있었다는 목격자의 증언까지 나왔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해 용의 선상에서 벗어났다. 이후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며 요양원에서 1919년쯤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런데 영국 사업가이자 아마추어 탐정으로 오랜 기간 잭 더 리퍼의 정체를 추적해온 러셀 에드워즈는 2014년 출간한 책 네이밍 잭 더 리퍼를 통해 코스민스키를 다시 잭 더 리퍼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후 그는 잭 더 리퍼의 네 번째 희생자였던 캐서린 에드우즈의 사망 현장에서 발견된 피 묻은 실크 숄(어깨걸이)을 2007년 경매를 통해 입수할 수 있었다. 혈흔은 유족과의 DNA 검사를 통해 희생자의 것이 맞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숄에서 함께 발견됐던 잭 더 리퍼의 체액도 이후 오랜 추적 끝에 코스민스키의 여동생과 인척 후손 관계에 있는 한 여성과의 DNA 대조를 통해 코스민스키의 것이 맞는 것으로 밝혀졌다. DNA 검사에서는 범인의 외모 분석도 진행됐는데 범인은 갈색 머리와 갈색 눈동자를 지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사건 당시 유일하게 신뢰를 받았던 목격자의 증언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한편 DNA 분석은 영국 리버풀존무어스대학의 야리 로우헤라이넨 박사와 리즈대학의 데이비드 밀러 박사가 공동으로 진행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뉴질랜드 총기 반납 권고에 37명이 동참...총격 사건 희생자 첫 장례식

    뉴질랜드 총기 반납 권고에 37명이 동참...총격 사건 희생자 첫 장례식

    “한 사람이 총기를 반납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뉴질랜드가 전보다 더 안전한 곳이 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해요.”50명이 사망한 뉴질랜드 총격 사건이 일어난 지 사흘째 되던 18일 저신다 아던 총리가 총기 규제 강화를 예고하며 시민들에게 총기 반납을 권유하자 20만㎡ 농가에서 양과 소를 키우는 존 하트는 곧장 인근 경찰서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반자동 소총을 반납하며 이렇게 말했다. 뉴질랜드 북섬 매스테턴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하트는 “총기는 (농사에서) 여러가지 업무에 유용하지만 사실상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총이 나에게 주는 유용함과 이 총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끼칠 수 있는 위험성은 비교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가디언은 19일 뉴질랜드 전역에서 하트를 포함해 최소 37명의 총기 소유자들이 경찰서에 자신들이 소유한 총기를 반납했다고 전했다. 전날 아던 총리가 내각 회의 후 열흘 안에 구체적인 총기 규제 법안을 내놓겠다고 말한 후 즉각적인 반응이 나온 셈이다. 아던 총리의 발언 몇 시간 전 뉴질랜드 최대 온라인 옥션 사이트 ‘트레이드미’는 반자동 소총과 관련한 물품의 매매를 금지하며 “사람들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고 전했다. 뉴질랜드 사냥 로비 단체 ‘피시 앤 게임 뉴질랜드’도 반자동 소총 사용 금지하고, 군사용 반자동 소총을 가진 시민들로부터 이를 재매입하자는 개선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내놨다. 이들은 애초 군사용 무기로 변형하기 용이한 대용량 탄창을 제한하는 것에도 지지를 표명했다.한편 CNN에 따르면 마이크 부시 뉴질랜드 경찰청장이 20일 총격사건 용의자 브렌턴 태런트(28)가 당국에 제지되기 전 제3의 공격을 위해 이동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당국은 전체 사망자 중 21명의 신원을 확인하고 시신을 유족에게 전달했다. 이날 총격 사건이 일어난 지 5일 만에 수백명의 추모객이 모인 가운데 내전을 피해 뉴질랜드에 왔던 시리아계 아버지와 아들 칼리드 무스타파(44)와 함자(15)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함자의 동생은 다리에 총상을 입고 치료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던 총리도 이날 2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학교를 방문해 희생자에게 관심을 둘 것을 촉구하며 테러범 이름과 사는 곳을 거론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출산을 강요하지 마세요. 우린 충분히 행복합니다”

    “출산을 강요하지 마세요. 우린 충분히 행복합니다”

    결혼하면 당연한 듯 아이를 낳던 때가 있었다. 1960년대엔 급속한 인구증가를 경제발전의 저해요소라고 보면서 오히려 자녀를 3명으로 줄이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러다가 1970년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자’더니, 1980년대엔 ‘둘도 많다’고 했다.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출산에 목매는 형국이다. 지난해 초혼인 신혼부부 110만 3000쌍 가운데 자녀를 출산하지 않은 부부는 37.5%(41만 4000쌍)로 집계됐다. 2017년 출생아 수는 전년보다 11.9% 포인트 줄어든 35만 7800명. 합계출산율은 1명이 채 안 되는 0.98명(2018년 기준)이다. 이것이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로 이어지고, 고령화사회를 부른다고 비판한다. 결국 화살은 ‘출산하지 않는 이들’에게 돌아간다. [출산은 선택, 육아는 함께] 기획은 어쩌면 그들에 대한 해명일 수도 있다. 무자녀 부부들은 왜 출산을 포기할까. 더불어 한국 사회가 출산을 ‘강요’할 수 있는 사회일까. ● 세상이 저희 부부의 출산만 기다리는 건가요 지난해 결혼한 김영민(가명·32)씨 부부는 반려견 체리와 함께 산다. 부부가 체리를 데리고 산책하던 어느 밤이었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체리를 빤히 바라봤다. 할머니는 다가와 “부부가 개를 키우면 안 된다”고 핀잔했다. 반려견한테 애정을 다 쏟아서 아기는 안 낳게 된다는 논리였다. 한번은 택시기사에게 ‘빨리 아이 낳으라’는 충고도 들었다. 마흔 다 되어 낳으면 자식이 대학 갈 무렵 환갑이라는 거다. 나이 들면 뒷바라지하기 힘드니 젊을 때 낳으라는 이야기였다. 결혼한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환갑을 걱정하다니. 게다가 가족도 친구도 아닌 낯선 이들까지 출산을 종용하는 게 당혹스럽다.영민씨 부부는 현재 출산을 유보한 상태다. 경제적 부담이 한몫했다. 신혼부부라 주택 마련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빠듯하다. “아이 한 명 키우는 데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압니다. 사실 부모님께 받은 만큼 아이에게 해줄 자신도 없어요.” 현실적으로는 매달 들어갈 교육비가 벌써부터 영민씨를 망설이게 한다. 교육부가 지난해 초·중·고교생 1인당 들어간 사교육비를 조사한 결과, 월평균 29만 1000원으로 나타났다. 태어날 아이가 행복할지도 의문이다. 영민씨는 이른바 ‘88만원 세대’다. 청년실업률이 10%를 넘나들고, 취업에 성공해도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시대를 경험했다. 자신이 거쳐온 입시경쟁과 취업경쟁 속에 아이를 밀어 넣을 상상을 하니 아득하다. 영민씨는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기 전에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다. ● 아이를 낳으면 잘 키울 것 같다지만…출산은 ‘선택’ 가족상담사 임혜민(33)씨는 직업상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통 아이의 심리적 문제로 찾아오지만, 부모가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음악치료를 전공한 혜민씨는 아이들과 노래를 듣거나 악기를 연주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속내를 꺼낸다. 부모들은 임씨에게 “선생님은 아이 낳으면 잘 키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녀는 아이를 ‘좋아하는 것’과 ‘키우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봤다. 결혼한 지 4년째인 혜민씨와 남편 심재관(40)씨는 자신들의 삶에 집중하기로 했다. 함께 공연을 관람하고, 요가와 수영을 배운다. 혜민씨가 피아노를 치면 재관씨는 베이스기타를 들어 합주한다. 주말이면 근교로 나가서 캠핑도 즐긴다. 모두 아이가 없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요즘 비혼도 많고, 무자녀 부부도 많습니다. 하나의 룰(4인 가족)만 고집할 필요가 있나요.”(재관씨) “삼대가 한집에 살던 시절에는 엄마가 바쁘면 삼촌과 이모가 돌보고, 그마저 안 되면 첫째가 막내를 봐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이를 낳아도 돌볼 사람이 없으면 키울 수가 없어요. 부모에게 맡기라는 것도 이기적인 거죠.”(혜민씨) 하지만 사회는 오히려 이들의 선택을 ‘이기적’이라고 한다. 저출산의 원인을 비혼주의자와 무자녀 부부에게 돌리는 탓이다. 혜민씨는 최근 면접에서 겪은 일을 털어놨다. “아이가 없어서 일하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했더니, 면접관이 ‘아이가 국력인데 국가 경쟁력에 보탬이 돼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하시더군요.” 아이는 있어도 없어도, 면접 상황이 불편해지기 일쑤다. 특히 기업이 출산과 육아 문제로 여성을 기피하는 실태는 여전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임신·출산·육아휴직 차별 실태조사 보고서’를 살펴보면, 임신·출산 경험이 있는 중소 사업장 노동자(30~44세)의 68.6%가 ‘출산휴가나 배우자 출산휴가 사용 때 차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출산으로 인해 발생하는 업무 공백이나 인건비 부담 때문에 출산하는 여성을 마뜩잖게 본다는 얘기다. ● 근원을 찾을 수 없는 인식…‘아이가 없으면 불행하다’ 윤정희(가명·46)씨와 김은호(가명·51)씨는 1996년 결혼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녀가 없다. 노력을 해도 생기지 않은 경우다. 정희씨는 결혼 초 병원에 다니며 인공수정을 시도했다. 난임 치료는 고된 과정이었다. 직장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 회사도 그만뒀다. 배란을 체크하고, 호르몬 주사를 맞으며 아이가 생기기를 기다렸다. 정희씨를 가장 괴롭게 만든 건 불안감이었다. 이대로 아이가 안 생기면 어떡하지, 노후는 어떻게 준비할까. 집에만 있으니 온갖 잡념이 밀려왔다. 반면 은호씨는 무덤덤했다. ‘없으면 말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런 무심함에 정희씨는 오히려 안심됐다. “남편이 간절히 바랐다면 더 힘들었을 거예요. 일 년이 지나도 임신이 안 되자 결국 둘이서만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두 사람은 자녀 대신 시간과 여유를 얻었다. 부부는 자주 해외여행을 떠난다. 양가 부모를 모시고 열흘간 터키에 머무르면서 효도도 했다. 정희씨는 “아이가 있다면 교육에 도움 되는 곳으로 가지, 맥주 마시러 중국 칭다오에 가는 일은 못 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부부는 끊임없이 불편한 상황에 빠진다. “왜 아이를 안 갖느냐”는 물음이 수시로 달려들었다. 정희씨가 “저는 불임이에요”라고 말하면 상대가 되레 당황했다. 아이가 없으면 불행할 거란 편견도 정희씨 부부를 ‘비정상 가족’으로 만든다.● 낳으면 끝일까. ‘울타리가 없는 아이들’의 세상은 어쩌고 윤현준(가명·50)씨는 아내 박수연(가명·48)씨를 ‘짝지’라고 불렀다. ‘아내’나 ‘와이프’보다 훨씬 동반자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2007년부터 함께 살았지만, 혼인신고는 최근에야 했다. 현준씨는 대학에서 강의하느라, 박씨는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덧 12년이 흘렀다. 자녀 계획은 엄두도 못 냈다. 둘 다 직업적 성취가 우선이었다. “대학에서 만나는 청춘들이 참 싱그럽습니다. 아이를 낳았다면 저렇겠지라는 생각도 하고요. 한때는 아이를 많이 낳아서 축구팀을 만드는 상상도 했는데, 짝지를 만나고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새벽에 집을 나서 밤늦게 돌아오는 아내에게 육아 부담까지 지울 순 없으니까요.” 두 사람이 무자녀 부부를 택한 결정적 계기는 ‘세월호 참사’다. 세월호 희생자 중 현준씨 지인의 아이가 있었다. 덩치 좋던 사람이 며칠 만에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현준씨는 “인간의 고통을 쥐어짜는 소리가 무엇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면서 “아이를 낳으려면 그 아이의 생존과 인권을 보호할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너무 무책임하다”고 성토했다. 누군가는 둘의 삶이 소중해서, 또 누군가는 경제적인 이유로 출산을 유보하고 있다. 또 어떤 이들은 낳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출산을 통과 의례로 인식한다. 혜민씨 어머니는 한번은 ‘사람의 도리’라며 설득했다고 했다. 아이를 낳아서 가족을 이루는 건 마땅한 도리라는 뜻이다. 임씨는 “엄마로서 한 명을 잘 키우는 것뿐만 아니라 가족상담사로서 수많은 가정이 안정감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도 애국”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이 사회를 이롭게 만드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래서 부부는 출산을 ‘선택’의 문제라고 봤다. 혜민씨는 “지금은 무자녀 부부의 삶을 선택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땐 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사람의 가치관은 살아가면서 언제든 변하는 법이다. 재관씨는 “우리 부부가 자녀가 있는 다른 부부들의 삶을 존중하는 것처럼 그들도 무자녀 부부의 선택을 존중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인터뷰한 이들은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미흡하다는 점도 짚었다. 현준씨는 “우리 사회는 개인에게 출산과 육아에 대한 책임을 전가한다”고 비판했다. 수연씨도 “저출산 대책이 쏟아지지만, 정작 미혼모나 보육원 아이들에 대한 정책은 보완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이를 낳는 데만 집착할 게 아니라 ‘울타리가 없는 아이들’을 돕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출산은 선택, 육아는 함께] 기획① “출산을 강요하지 마세요. 우린 충분히 행복합니다”② 나도 육아휴직 쓰고, 칼퇴하고 싶은데…아빠들의 고민③ “저출산이 ‘문제’라니···국가가 너무 염치 없지 않나요?”
  • 광주 민변 “日전범기업 상대 집단 소송”

    노무동원 피해 14만…소송은 1000명뿐 25일~새달 5일 광주시청서 서류 접수 일제강점기 해외 동원 노무자 등 강제 징용 피해자를 모아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한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추진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19일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향후 소송 계획과 일정 등을 밝혔다. 민변과 시민모임은 “징용피해 배상을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 지난해 대법원 판결은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일본 기업과 정부가 합리적 협의마저 완강히 거부하는 만큼 정당한 권리행사를 위해서라도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국무총리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보상 및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따르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22만 4835건 가운데 66%인 14만 7893건이 노무동원 피해자다. 그러나 소송에 나선 피해자들은 15건의 손해배상 소송 원고를 모두 합쳐도 1000명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변과 시민모임은 이에 따라 우선 피해자로 확정받은 노무동원 피해자 또는 유족 가운데 광주와 전남에 주소를 둔 소송인 모집에 나선다. 군인·군무원·학도병 동원 피해자와 일본 기업을 상대로 별도 소송을 진행하는 원고는 제외한다. 민변과 시민모임은 광주시청 1층에 접수창구를 마련해 오는 25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신청서류를 받고, 필요하면 기간을 연장할 계획이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심의 결정통지서,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위로금 등 지급결정서, 문서와 사진 등 피해 사실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를 1통씩 준비하면 된다. 현재 이 지역 생존 피해자는 540여명으로 파악된다. 이들 단체는 지난해 10월 30일 대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손해배상 청구 시효를 고려해 다음달 29일 안에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현존하는 일본 전범기업은 모두 341개로 알려졌다. 민변 관계자는 “피해자 대다수가 소송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권리의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한일 양국 정부로부터 사실상 권리행사를 방해받았다”며 “인간 존엄성마저 빼앗긴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은 불가피하게 정당한 권리행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민변과 시민모임은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방치한 채 한일 우호나 관계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은 즉각 사죄와 배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동영상] 리더십 부각된 아던 뉴질랜드 총리 “테러범 이름 언급 않겠다”

    [동영상] 리더십 부각된 아던 뉴질랜드 총리 “테러범 이름 언급 않겠다”

    “그는 테러 행위로부터 많은 것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그 중 하나가 악명이라면, 여러분은 내가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앗살라 알라이쿰(평화가 여러분에게)!!” 뉴질랜드 총기 난사 이후 신속하게 사태를 수습하려고 애쓰며 열정적으로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로하면서 리더십이 재평가받고 있는 저신다 아던(38) 뉴질랜드 총리가 19일 감동적인 의회 연설을 남겼다. 아던 총리는 테러 공격을 일삼은 남성이 나쁜 방식으로 이름을 떨치려 했을 수 있다며 그의 이름을 절대 입밖에 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테러 공격이 발생한 지 나흘 만에 웰링턴에서 의회 특별 모임을 열어 연설을 통해 “목숨을 빼앗아간 이들의 이름보다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이름들을 말씀드리는 게 옳은 일이다. 그는 테러리스트이며 범죄자이며 극단주의자다. 하지만 내가 말할 때 그는 이름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 아던 총리는 이날 의회 만남에 앞서 무슬림 커뮤니티 지도자들을 만나 슬픔을 위로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녀는 아울러 크라이스트처치의 총기 난사범이 생중계로 내보냈던 동영상이 더 이상 퍼져나가지 못하도록 소셜미디어들이 협력해 달라고 호소했다. 아던 총리는 “그들이 편집 기능을 행사하면서도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 플랫폼들이 여전히 존재할 수 있도록 방관하거나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한 뒤 “그들은 분명히 편집인이며 우편배달부가 아니다. 책임은 지지 않고 수익만 내는 사례가 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뉴질랜드의 법을 모두 총동원해 테러리스트들과 맞설 것이며 무슬림 커뮤니티가 겪은 슬픔을 모든 뉴질랜드인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22일을 무슬림의 날로 선포하자고 제안했다. 원래 이슬람 관습은 주검을 빨리 정화해 매장하지만 신원 확인이 늦어지고 검시 등의 과정이 지체돼 아직 희생자는 한 명도 장례 절차를 밟지 못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마오리족 갱단도 ‘하카춤’ 췄다…뉴질랜드 총격테러 희생자들 추모

    마오리족 갱단도 ‘하카춤’ 췄다…뉴질랜드 총격테러 희생자들 추모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 뉴질랜드 남섬 최대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이슬람사원(모스크) 두곳에서 일어난 총격테러의 사망자수가 51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사건 현장 인근 곳곳에 마련된 추모소에는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17일 호주 데일리텔레그래프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이날 첫번째 테러 현장이었던 마스지드 알누르 모스크 앞 경찰 저지선 근처에는 원주민인 마오리족으로 구성된 뉴질랜드 최대 갱단 블랙파워 회원 십여명이 모여 전통춤 하카를 선보였다.이날 이들 회원은 추모소를 찾은 수많은 시민에게 둘러싸인채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강렬한 춤사위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사건 발생 나흘째를 맞으면서 유족들은 희생자의 시신을 넘겨받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이슬람교 관습에 따르면 사망자는 24시간 이내에 수의를 입혀 매장해야 한다. 마이크 부시 뉴질랜드 경찰국장은 “시신 인도 전 사망 원인과 신원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며 “하지만 우리도 문화·종교적 필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고위 종교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아 희생자 명단을 작성하고 이를 가족에게는 공유했으나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다. 희생자 대다수는 파키스탄과 인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터키, 소말리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등 이슬람권 출신 이민자나 난민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익명을 원한 블랙파워의 한 회원은 “희생자 명단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쳤는지를 설명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갱이라고 부르는 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여기 공동체와 함께 살고 있다”면서 “당신이 무슨 옷을 입든, 피부색이 무엇이든, 혹은 어떤 종교를 가지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이 회원은 이번 테러에서 드러난 백인 우월주의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존재해왔다면서 사람들은 이들(백인 우월주의자들)을 의식해서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이 갱단의 또 다른 회원인 셰인 터너는 우리(회원들)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도 슬프고 내일도 슬플 것”이라면서 “지금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카는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위한 것으로 그들에게 힘을 줬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사건의 용의자인 호주 국적의 브렌턴 태런트(28)는 범행 직전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등에게 보낸 선언문에서 이민 정책 등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여기는 남미] 부부싸움한 60살 남편, 발코니로 부인 던져 살해

    [여기는 남미] 부부싸움한 60살 남편, 발코니로 부인 던져 살해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페미사이드사건이 또 발생했다. 해마다 수백 명 피해자가 발생하면서 사회적 반성이 요구된다는 목소리는 날로 커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주 경찰이 부인을 발코니에서 집어던져 살해한 혐의로 60살 남자 루벤 미뇨를 긴급체포했다고 현지 언론이 17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경찰에 따르면 문제의 남자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주 엔세나다라는 도시에 살고 있다. 17일 오전 남자는 부인 로사 곤살레스(54)와 심한 부부싸움을 했다. 격렬한 부부싸움을 벌이다 화를 참지 못한 남자는 부인을 주택 3층 발코니까지 끌고 아래로 던져버렸다. 길에 떨어진 부인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남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시신을 보고 911에 신고한 건 행인들이었다. 출동한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치고 현장이 한바탕 시끄러워지자 뒤늦게 남자는 경찰을 만났다. 남자는 "부부싸움을 했다. 화를 참지 못한 부인이 스스로 발코니에서 뛰어내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부인이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그 뒤로 쿵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부인이 투신한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경찰은 그의 진술을 그대로 믿고 사건을 자살로 처리하려 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여자의 몸에서 나온 폭행의 흔적이 결정적 증거였다. 경찰에 따르면 사망한 부인의 팔 등에는 방어를 하다 난 상처가 남아 있었다. 누군가 목을 힘껏 잡은 자국도 선명했다. 관계자는 "감식을 하지 않아도 (남편을 용의자로)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시신에 남은 흔적이 뚜렷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남자를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현장에서 긴급체포했다. 아르헨티나는 최근 페미사이드사건이 급증,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아르헨티나 의회에 보고된 한 민간단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아르헨티나에선 페미사이드사건으로 여성 273명이 목숨을 잃었다. 32시간마다 1명꼴로 페미사이드 희생자가 발생한 셈이다. 페미사이드 피해자의 68%는 18살 이하였다. 페미사이드로 졸지에 엄마를 잃고 홀로 남겨진 자식은 339명이었다. 사진=부에노스 아이레스 경찰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서울포토] ‘철거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기억·안전 전시공간’으로

    [서울포토] ‘철거된’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기억·안전 전시공간’으로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서울시 관계자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 및 미수습자 분향소를 철거했다.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철거는 2014년 7월14일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이후 약 4년 8개월 만이다. 분향소 자리에는 ‘기억·안전 전시공간’이 조성돼 다음 달 12일 시민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천막이 철거돼 있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뉴질랜드 참극에 풋살 골키퍼 엘라얀도 희생, A리그 묵념, 크리켓은 취소

    뉴질랜드 참극에 풋살 골키퍼 엘라얀도 희생, A리그 묵념, 크리켓은 취소

    뉴질랜드 풋살 대표팀의 골키퍼 아타 엘라얀(33)이 총기 난사 참극에 희생됐다.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 크라이스트처치의 마스지드 알누르 모스크에서 기도를 올리던 그는 호주 국적의 브렌턴 태런트(28)가 난사한 다섯 정의 총기에서 발사된 흉탄에 스러졌다고 뉴질랜드축구협회(NZF)가 확인했다. NZF의 풋살 육성 매니저인 조시 마케츠는 쿠웨이트 출신으로 뉴질랜드 풋살 대표팀인 ‘풋살 화이츠’의 19경기에 출전한 엘라얀이 희생자 50명에 포함돼 있다며 “우리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고인은 풋살 화이츠 스쿼드와 풋살 커뮤니티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위대한 남자였다. 우리의 지금 감정을 어떻게 요약해야 할지 모르겠다. 처절하게 그리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앤드루 프래그넬 NZF 최고경영자(CEO)는 “풋살 커뮤니티와 슬픔을 함께 한다. 풋살인들은 매우 끈끈한 집단이라 아타의 죽음 소식이 이 게임에 관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절망을 안겼다.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한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프로축구 웰링턴 피닉스는 웨스트팩 스타디움에서 열린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와의 A리그 경기를 앞두고 엘라얀과 다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다만 17일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뉴질랜드와 방글라데시의 크리켓 경기는 방글라데시 선수들이 참극이 일어나기 몇 분 전 현장을 떠나 화를 모면했지만 정신적 충격이 상당해 취소됐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뉴질랜드 총기 참극에 묵념조차 올리지 않은 EPL, EFL, FA 향해 “위선적”

    뉴질랜드 총기 참극에 묵념조차 올리지 않은 EPL, EFL, FA 향해 “위선적”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와 풋볼리그(EFL), 그리거 축구협회(FA)까지 뉴질랜드 총기 난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데 동참하지 않아 이중 잣대를 지녔다는 입길에 올랐다. 130여명이 숨진 2015년 11월 파리 테러 때는 검정색 완장을 차고 프랑스 국가를 연주하는 등 애도의 묵념을 가졌는데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두 모스크에서 벌어져 50명이 숨지고 48명이 다친 총기 난사 참극 이후 주말 경기에 앞서 묵념의 시간을 갖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왓퍼드, 스완지시티, 울버햄프턴, 밀월이 FA컵 8강전을 홈에서 치렀는데 FA는 BBC 스포츠에 “묵념을 올릴지 안할지는 클럽의 결정에 따른다. 우리는 만약 묵념을 올리겠다는 구단이 있으면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풀럼은 17일 리버풀을 불러들인 리버풀과의 경기에 앞서 관중들이 1분 동안 환호했는데 지난달 세상을 떠난 풀럼 직원을 추모하는 뜻에서였다. FA 인종평등 위원회 의장을 지냈던 변호사 유뉴스 루낫은 위선적이며 이중잣대라고 비판했다. 루낫은 BBC 스포츠 인터뷰를 통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어떤 일이 벌어졌건, (인명 피해) 규모가 작냐 크냐에 관계 없이 축구는 늘 커밍아웃을 해왔고 묵념을 올려왔다. 1분 동안 묵념이라도 올리는 것이 옳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이런 종류의 일을 결정할 고위 임원들이 어떤 롤모델이 될 것이냐를 잘못 선택하기 때문”이라며 “스포츠, 특히 축구에서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무슬림 숫자가 적어서 그렇다. 우리가 무슬림들을 대변한다는 걸 보여주고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완벽한 기회였는데 놓쳤다. 풀럼은 추모를 했지만 뉴질랜드에서 일어났던 일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EPL 사무국은 BBC 스포츠의 코멘트 요청에 대해 지난 15일 참사 직후 트위터에 올린 대로 “이 끔찍한 사건에 영향받은 모든 이들과 함께 한다”고 밝혔다. EFL 사무국은 아직 이렇다 할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파리 테러가 일어난 다음주 화요일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친선경기를 벌였는데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2016년 7월 프랑스 니스의 바스티유 기념일에 모여든 군중을 향해 탱크로리가 돌진해 86명이 죽고 300명 이상이 다쳤을 때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 앞 아치는 프랑스 삼색기를 표현하고 프랑스 국민들과 연대하겠다는 뜻을 보여주기도 했다. 퀸스파크 레인저스(QPR) 선수들은 지난 2015년 1월 이슬람 무장 괴한이 프랑스의 풍자만화 잡지 찰리 헤브도와 여자 경찰관, 유대인 시장을 공격해 사람들이 희생됐을 때도 묵념을 올렸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잠시만 집으로 가자”… 광화문 광장 품고 진실 찾아 떠난 세월

    “잠시만 집으로 가자”… 광화문 광장 품고 진실 찾아 떠난 세월

    손바닥만한 작은 영정 받아든 유가족들 “안전한 국가로 만들어달라” 마지막 당부 영정 실은 버스 광장 한바퀴 돈 뒤 시청行 서울시 청사 지하 4층 서고에 임시 보관 “분향소 철거, 끝이 아닌 진실규명의 시작” “우리 아들 딸들아, 저 조그만 사진 틀 안에서 예쁘게 웃고 있는 아가들아. 엄마 아빠 가슴에 안겨 이제 잠시만 집으로 가자. 이곳에서 밥을 굶고, 머리를 자르고, 눈물과 절규로 하루하루를 보낸 우리 엄마, 아빠들 지켜보느라 고생이 많았다. 집에 가서 예쁘게 단장하고 다시 오자. 우리를 지켜준 모든 분들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집에 가자.” 17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천막. 장훈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진혼사를 읽어내려가자 유가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이어 안산 단원고 학생들부터 희생자 289명의 이름이 하나씩 불리고 유가족들은 힘겨운 발걸음으로 분향소 앞으로 나와 사진을 받아들었다. 손바닥 만한 액자 속 가족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마지막 인사를 건넨 유족들은 영정을 천으로 닦은 뒤 검은 상자에 조심스럽게 담았다. 이날 이안식을 시작으로 18일까지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천막은 모두 철거된다. 2014년 7월 처음 설치된 이후 4년 8개월 만이다. 5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 온 영정들이 1시간 30분에 걸쳐 모두 떼어지는 동안 노란색 옷을 입은 시민들은 영정 하나하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안식이 끝나고 영정을 담은 상자를 태운 버스는 수많은 눈물과 아픔이 있던 광화문 광장을 한 바퀴 돈 후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장훈 운영위원장은 추모 낭독에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못 했는데 광화문 분향소를 정리한다는 것이 가족들에게는 힘이 든다”면서 “하지만 광화문광장은 시민의 공간임을 잘 알기에 이안식을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은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야 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국가는 국민을 지켜야 한다”며 다시 한번 안전한 국가를 소망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추모 발언에서 “광화문 광장 내 세월호 천막은 촛불 항쟁의 발원지이자 중심지”라며 “분향소를 닫는 것이 끝이 아니라 진실을 마주할 때까지 행진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천막을 철거해야 한다고 한 언론, 폭식 투쟁했던 ‘일베’ 회원, 옆을 지나가며 욕설을 퍼붓는 태극기 부대도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이안식에 앞서 종교인들도 가족들을 위로했다. 명진 스님은 “아이들이 하늘의 별이 되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음을 알려줬다”며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이 광장에서 울었던 모든 날들, 꿈꾸고 희망했던 모든 것을 가슴에 담아 기억하는 날”이라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 세월호 천막은 참사 3개월 만인 2014년 7월 14일 처음 설치됐다. 당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단식농성을 시작한 유가족들이 광화문에서 동시에 단식에 돌입하면서 만들어져 시민들에게 참사와 진상규명 필요성을 알리는 거점 역할을 해왔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46일간 단식 농성 벌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같은 해 8월과 9월에는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 회원들이 단식을 조롱하며 농성장 코앞에서 음식을 먹는 ‘폭식투쟁’을 벌이는 등 유족들에게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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