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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떨어지는 물보다 더 빠른 죽음… 정방폭포 길목에 들어선 4·3위령공간

    떨어지는 물보다 더 빠른 죽음… 정방폭포 길목에 들어선 4·3위령공간

    폭포는 순간이 없다./멈춤이 없다./멈춤이 없으니/지구의 부속품 중 하나/폭포 아래에는 지구의 명치가 있어서 지구와 같은 시간을 흐르고 지구와 같은 기억을 간직하고 지구와 같은 길이를 짊어지고 지구와 같은 두통을 앓는다.(중략) 폭포 위에서 사람이 죽었다/그건 떨어지는 물보다 더 빠른 죽음이었겠지/그건 쏟아지는 하늘보다 더 파란 죽음이었겠지 순간이 있었다면. 지난해 제10회 제주4·3평화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유수진씨의 ‘폭포’ 일부다. 시에 나오는 폭포는 바다로 바로 떨어지는 서귀포시 정방폭포. 벼랑끝 아찔한 풍광과 함께 해안선이 눈부시고 처절할 정도로 아름다운 이 폭포에서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슬픈 역사가 숨 쉬고 있다. 정방 4·3희생자 위령공간이 조성된 동홍동 298-1번지 정방폭포 일원은 산남지역 4·3 최대 학살터로 알려져 있다. 4·3 당시 서귀포 해안지역 전역에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다. 군부대 정보과에서 취조받던 주민 중 즉결 처형 대상자 대부분이 해안 절벽으로 끌려와 희생 당했으며, 이곳에서 확인된 희생자 수만 255 명에 달한다. 학살 직후 토벌대가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 후 시신을 구별할 수 없어 희생자 상당수의 시신이 수습되지 못하고 행방불명됐다. 토벌대는 이곳 정방폭포와 소낭머리 일대를 주요 학살터로 이용했다. 이곳에서는 서귀리와 서귀면 일대의 주민들 뿐만 아니라 남원면의 의귀리, 수망리, 한남리 주민과 증문면, 안덕면 동광리, 대정면 주민들까지 끌려와 학살됐다. 당시 서귀중학교 학생이었던 송세종(남)이 이곳에서 일어났던 특이한 사건을 증언했다. “당시 어디 여자인지는 모르지만, 임신한 여자가 도망가다가 절벽으로 떨어졌는데 나무에 걸렸어. 그랬더니 군인들이 ‘하늘이 도운 사람이다’하면서 살려보냈다고 해.” 관광객들이 수없이 드나드는 이곳에서 서귀면 105명, 중문면 42명, 남원면 34명, 안덕면 55명, 대정면12명, 표선면 2명 등 모두 255명이 희생됐다. 1949년 2월까지 거의 매일 이곳에서는 총살이 이뤄졌다고 전해진다.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4·3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4·3정신과 가치를 계승하기 위해 이곳 4·3 당시 산남 최대 학살터에 위령공간을 조성했다. 지난달 29일 오전 서귀포시 동홍동 정방폭포 입구 공원에서 ‘정방 4·3희생자 위령공간 제막식’을 가졌다. 제막식에 참석한 오영훈 도지사는 인사말을 통해 제주4·3 유적지 정비를 통해 4·3의 역사를 보존·계승하고 4·3정신의 세계화를 이뤄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오 지사는 “제주4·3의 비극은 섬 곳곳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이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은 아직 부족해 마음이 참 아팠다”며 “오늘 제막식을 통해 정방폭포에 서린 슬픔과 아픔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가폭력으로 3만여 명이 희생되는 참혹한 비극을 겪었지만 희생자의 이야기와 역사의 진실을 전하기 위해 애써온 제주도민의 저력을 믿는다”며 “제주도 곳곳에 퍼져있는 유적지를 잘 정비해 후손들이 4·3의 역사를 잊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실 처음엔 위령공간은 이곳이 아닌 자구리공원 내 25㎡ 부지에 세워지기로 했었다. 하지만 주변 상인들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공사가 중단됐다. 서귀포 최대 학살터임에도 70년 넘도록 추모공간이 없었던 터라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꼭 절실했던 유가족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결국 지난해 하반기 이곳으로 장소를 틀었다. 실제 현장에 가 보니 위령조형물은 결코 혐오시설로 보이지 않았다. 만약 원래의 자구리공원에 위령공간이 들어섰어도 길 건너 멀리서 그 위령공간이 눈에 띄진 않았을 것으로 보였지만, 상인과 주민들의 결사 반대로 서복불로초공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또 한번의 슬픔을 겪은 셈이다. 도 관계자는 “자구리공원에 들어서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지만 지금의 불로초공원에 조성하려던 안(案)도 원래 계획중 하나였다”면서 “막상 이곳에 들어서니까 유족들도 아늑해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정방폭포와 오히려 더 가까워 오가는 관광객들도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서 있었다. ‘이제 승천의 꿈 푸소서/서로 돌아간다고 칠십리 고향마을/굽이치는 파돗길 따라/여기 소낭그늘 덮인 해안마루/수중절벽 병풍처럼 둘러치고/천둥소리 물벼락 치는 곳/통한의 세월 가슴에 묻은 채/살아온 날들/칭원함이야 어찌 다 풀 수 있으리오.’ 희생자의 이름 들 옆에는 김용길 시인이 지은 정방 4·3 추모시가 희생자들의 넋을 이렇게 기리고 있었다.
  • 문 전대통령, 한라산 붉은 겨우살이에 빠졌다

    문 전대통령, 한라산 붉은 겨우살이에 빠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라산 붉은겨우살이’에 빠져들었다. ‘한라산 붉은 겨우살이’ 사진 작가로 널리 알려진 정상기(55) 작가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지난달 26일 문 전 대통령의 초대로 대통령 사저와 최근 문을 연 평산책방을 방문했다고 1일 밝혔다. 문 전대통령은 제75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4월 3일 서울신문 인터넷판 ‘전직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4·3 참배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보도) 이 열리는 지난 4월 3일 오후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우연히 VIP 의전실에 내걸린 정 작가의 한라산 붉은겨우살이 사진 작품을 처음 접했다. 그 순간 바로 매료된 듯 보였다. 당시 손종하 한국공항공사 제주공항장은 문 전 대통령이 정 작가의 작품에 관심을 두는 것을 눈치채고 간단히 작가와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이윽고 문 전대통령은 기회가 되면 정 작가를 한 번 만나고 싶다는 깜짝 제안까지 했다. 당시 정 작가는 소식을 듣고 문 전대통령의 제주일정을 마치면 떠나기 전에 만나려고 했으나 문 전대통령이 정식으로 사저로 초대하는 게 예의라며 훗날을 기약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5월 26일 문 전대통령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초대를 받았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그는 대통령 사저인 경남 양산 하북면 평산마을을 한라산붉은겨우살이 #557, #789 두 작품을 들고 찾았다. 그는 한라산붉은겨우살이에 따로 작품명을 붙이는 걸 꺼린다. # 넘버링을 붙이는 이유에 대해 “겨우살이가 오롯이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한라산 붉은 겨우살이 타이틀에 믿음, 혹은 사랑이라는 제목을 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789 작품은 지난해 찍은 최신작이다. 그는 현재 #넘버링 800번대 작품에 막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이 두 작품을 직접 ‘내돈내산’했다는 후문이다.정 작가는 문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들고 온 작품을 설명하며 “한라산붉은겨우살이의 삶이 흡사 제주도 원주민들의 삶과 많은 점이 닮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작품의 흰색은 평화의 섬 제주도를, 나무의 검은 색은 제주도 화산석 현무암을, 그리고 붉은 겨우살이의 열매는 제주도 원주민들의 삶을 표현했다고 전했다. 그런 정 작가의 작품세계는 고스란히 문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고 따스하게 그를 격려해줬단다. 이어 그는 “문 전 대통령은 ‘강한 인내심’이라는 겨우살이 꽃말까지 흡족해했다”고 전했다. 정 작가는 “너무 비밀리에 다녀온 터라 지금도 좀 얼떨떨하다”면서 “따뜻한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지는, 진정성 있는 시간이었다”고 아직까지 여운이 남는 듯 설레는 어투로 말했다. 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긴 시간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정 작가를 평산책방으로 직접 안내까지 했다. 정 작가는 “평산책방은 평일임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책방을 방문한 사람들과 일일이 함께 사진 촬영을 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되뇌었다. 그는 “헤어지는 순간에도 두 손을 꼭 잡아주면서 좋은 작품을 더더욱 기대한다고 격려해줘서 뭉클했다”면서 “꾸밈없는 이웃집 선한 아저씨같은 푸근함이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 들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고백했다. 정 작가의 한라산 붉은 겨우살이는 순백으로 붉게 “백열White Heat”하는 하늘의 영혼을 보는 듯하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Charles Baudelare(1821-1867)는 “궁극의 단순은 자신을 눈에 띄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그 흑백의 단순미가 그렇다. 이제 그의 작품은 제주도의 모든 관공서, 기관을 비롯 유명 연예인들과 국내·외 많은 기업에서 작품을 소장할 정도로 사랑을 받는 작품이 되고 있다. 아트페어시장에서도 일찌감치 완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정 작가는 10여 년 전 정말 우연히 한라산에만 있는 희귀식물인 붉은 겨우살이와 만났다. 모든 산이 온통 흰 눈으로 하얗게 덮인 12월 한라산 영실코스 등반 도중 우연히 카메라에 붉은 겨우살이를 포착한 뒤로 그만의 아름다운 매혹에 깊이 빠져들었고 남들이 찍지 않는 그만의 예술세계를 여는 계기가 됐다. 운명같은 만남이었고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됐다. 그는 해마다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1100고지 이상 눈이 무릎 이상 차는 험한 눈밭을 헤치며 애인을 찾듯 깊은 숲속으로 향한다. 하얀 설국을 헤매는 구도자처럼 수행한다. 그 역시 겨우살이 같은 척박한 삶을 살았기에 더 애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은 힘들었던 청춘을 보상받듯, 이젠 서서히 한라산 붉은 겨우살이처럼 그의 삶도 조금씩 붉게 빛나고 있다.
  • [정재정의 독사만평] 한일 정상, 이제 포항에서 축배를/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정의 독사만평] 한일 정상, 이제 포항에서 축배를/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히로시마 7개국 정상회의에 참가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달 21일 평화기념공원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했다. 늦게나마 원통하게 목숨을 잃은 3만여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2만여 피해자의 고초를 위로한 뜻깊은 행사였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 10여명은 양국 정상의 참배를 지켜보며 감회 어린 표정을 지었다. 윤 대통령의 선도적 노력과 기시다 총리의 적극적 호응으로 한일 관계가 급속히 개선됐기에 일어난 획기적 사건이었다. 필자는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양국 정상의 이런 노력이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참배 등으로 이어지면 한일의 화해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적대 국가 사이의 역사 화해는 일직선으로 단번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정상뿐만 아니라 국민끼리도 두터운 신뢰와 존중을 쌓아야 가능하다. 따라서 역사 화해의 추진에는 국민감정까지 고려한 신중하고 참신한 기획·연출이 필요하다. 아베 정부의 장기 집권 이후 일본의 정부·여당은 역사문제에 관해 한국에 사죄·반성을 표명하기 싫어한다. 이처럼 역사 화해에 피로를 느끼는 상황에서는 양국 정상이 곧바로 제암리를 참배하기보다는 여론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우회 조치를 먼저 취하는 게 좋다. 그 방법의 하나로 필자는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올해 안에 포항제철에 들러 교류·협력의 성과를 함께 경축할 것을 제안한다. 지금부터 50년 전인 1973년 6월 9일 포항제철은 온 국민의 주시 아래 첫 쇳물을 토해냈다. 철강입국을 염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념과 이를 현장에서 추진한 박태준 전 사장의 돌격이 1차 목표를 달성한 감격의 순간이었다. 일본은 여기에 자본과 기술 그리고 노하우를 제공했다. 한국과 일본은 1969년 12월 청구권 자금과 수출입은행 융자 등 1억 6000만 달러를 투입해 첫해 103만t의 철강을 생산한다는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포항제철은 일본으로부터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아 1973년에 1기 계획을 초과 달성했다. 그리고 곧바로 2기 건설에 착공해 1978년 550만t, 1983년 910만t을 생산했다. 포항제철은 축적한 독자 역량을 바탕으로 광양제철도 건설해 1987년 270만t, 1990년 810만t, 1999년 1291만t을 생산했다. 포항제철과 광양제철의 합계 생산량은 1999년 2391만t으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 일본의 철강업계는 포항제철의 비전·의지·노력에 감응해 설계·건설·구매·연수 등에서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포항제철은 일본 철강업을 벤치마킹하며 쉴 새 없이 모방·증산·확장·자립의 길을 달려 50년 만에 일본과의 수직적 분업에서 수평적 분업으로, 비대칭적 관계에서 대칭적 관계로 변신했다. 포항제철의 도약은 한국이 일본과 균등·균질의 국력·위상을 축적하는 과정과 일치했다. 포항제철은 한국과 일본의 교류·협력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실적을 통해 증명한 최상의 성공 사례다. 그런데도 양국의 다수 국민은 국교 정상화 이후 한일 관계를 부정·퇴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하여 친일 몰이와 반일 선동에 쉽게 휩쓸린다. 포항제철의 쇳물 출토 50년을 맞아 양국 정상이 함께 축배를 들면 한일 관계에 대한 국민의 역사인식은 긍정·진취의 방향으로 크게 바뀔 것이다. 그러면 한일은 급속히 역사 화해의 물살을 타게 된다. 한일의 역사 화해는 함께 갈고 닦으며 성취한 역사를 존중하고 계승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건전한 역사인식의 수립에는 남다른 용기와 결단 및 실천이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이 50년 전 포항제철에 함께 불을 지폈듯 양국 정상이 포항제철에서 함께 축배를 들어 역사 화해에 불을 댕기기 바란다. 역사는 두 정상의 공적을 길이 기억할 것이다.
  • 300억대 형제복지원 손배소…피해 회복까지는 ‘산 넘어 산’

    300억대 형제복지원 손배소…피해 회복까지는 ‘산 넘어 산’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대표적 인권침해 사건인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국가와 부산시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액이 31일 기준 최소 318억원가량에 이른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절반은 첫 기일조차 잡히지 않았고 결론이 난 재판은 한 건도 없다. 국가폭력으로 공식 인정됐지만 피해 회복까지는 수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2021년 5월 이후 현재까지 형제복지원 피해자 중 서울중앙지법과 부산지법 등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사람은 203명(사건 16건)으로 집계됐다. 총소송금액은 318억 724만원이다. 비슷한 소송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지난해 8월에 이어 지난 2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2차 형제복지원 진실 규명을 내린 터라 이 결과를 가지고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진실화해위가 지금까지 파악한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최소 3만 8000여명 규모다. 피해 규모에 비해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 원고 수가 적은 이유는 소송이 제 돈 주고 직접 소송 부담을 떠맡아야 하는 개인 몫으로만 맡겨졌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지난해 8월 진실화해위에서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로 공식 인정했으나 피해자 구제책은 사실상 전혀 없는 상황이라 피해자들에게는 손해배상 소송만이 유일한 권리 회복의 길이다. 소송 진행 과정도 더디다.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고, 권리 청구 소멸시효 문제도 까다로운 쟁점으로 꼽힌다. 특히 국가폭력에 의한 개인의 피해 정도를 법정에서 증명하고 산정해야 한다. 더구나 피해자들이 국가폭력을 인정받는 길은 진실화해위에서 발부받는 피해 결정문이 전부지만 진실화해위에 직접 진실 규명을 신청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만 조사가 이뤄져 기한 내에 신청을 못 한 피해자들은 피해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15살 때 부산역에서 잡혀 형제복지원에 들어간 양지현(52)씨는 외항선 선원으로 일하며 1년에 한 번꼴로 국내에 들어온다. 양씨는 지난 3월 자신이 형제복지원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지인으로부터 ‘뉴스를 보니 진실화해위라는 곳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를 찾는다더라’는 얘기를 처음 전해 들었다. 이미 신청 기한이 한참 지난 뒤였다. 양씨는 “형제복지원 때문에 육지를 떠나 진실화해위의 존재도 몰랐는데, 이 때문에 피해 입증도 어렵게 됐다”고 토로했다. 13살 때 집을 나간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가 형제복지원에 들어간 임종배(59)씨는 소매치기 혐의로 부산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지난 3월 출소했다. 동네 여관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임씨는 형제복지원 피해자에 대한 진실 규명이 이미 이뤄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 같은 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위원회 종결 시기가 내년 5월이고 다른 사건도 밀려 있어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며 현재는 직권조사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국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피해 구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또 다른 국가폭력 사건인 ‘선감학원 사건’이 선례다. 경기도의회는 2016년 ‘경기도 선감학원 사건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마련해 피해자들에게 위로금 500만원과 월 20만원의 생활안정지원금 등을 지원한다. 부산시도 ‘부산광역시 형제복지원 사건 등 피해자 명예회복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2019년에 제정했지만 지난해 11월에야 시행한 ‘의료비 500만원’ 지원이 유일하다. 이마저도 부산시민에게만 적용된다. 이향직 형제복지원서울경기피해자연합회 대표는 “직접 신청한 피해자는 700여명으로 2% 수준”이라며 “명백한 국가폭력이라면 진실화해위가 직권조사를 통해 피해를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 [단독] 300억대 형제복지원 손배소…피해 회복까지는 ‘산 넘어 산’

    [단독] 300억대 형제복지원 손배소…피해 회복까지는 ‘산 넘어 산’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대표적 인권침해 사건인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국가와 부산시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31일 기준 최소 318억원가량에 이른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절반은 첫 기일조차 잡히지 않았고 결론이 난 재판은 한 건도 없다. 국가폭력으로 공식 인정됐지만 피해 회복까지는 수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2021년 5월 이후 현재까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서울중앙지법과 부산지법 등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이들은 203명(사건 16건)으로 집계됐다. 총 소송 금액은 318억 724만원이다. 비슷한 소송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지난해 8월에 이어 지난 2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2차 형제복지원 진실규명을 내린 터라 이 결과를 가지고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진실화해위가 지금까지 파악한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최소 3만 8000여명 규모다. 피해 규모에 비해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 원고 수가 적은 이유는 소송이 제 돈 주고 직접 소송 부담을 떠맡아야 하는 개인 몫으로만 맡겨졌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지난해 8월 진실화해위에서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로 공식 인정했으나 피해자 구제책은 사실상 전혀 없는 상황이라 피해자들에게는 손해배상 소송만이 유일한 권리 회복의 길이다.소송 진행 과정도 더디다.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고, 권리 청구 소멸시효 문제도 까다로운 쟁점으로 꼽힌다. 특히 국가폭력에 의한 개인의 피해 정도를 법정에서 증명하고 산정해야 한다.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 서보민) 심리로 열린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해자 측 대리인은 “수용 기간 내 이뤄진 인권침해 피해뿐 아니라 복지원 퇴소 이후 장기간 사회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은 피해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더구나 피해자들이 국가폭력을 인정받는 길은 진실화해위에서 발부받는 피해 결정문이 전부지만, 진실화해위에 직접 진실규명을 신청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만 조사가 이뤄져 기한 내에 신청을 못 한 피해자들은 피해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15살 때 부산역에서 잡혀 형제복지원에 들어간 양지현(52)씨는 외항선 선원으로 일하며 1년에 한 번꼴로 국내에 들어온다. 양씨는 지난 3월 자신이 형제복지원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지인이 ‘뉴스를 보니 진실화해위라는 곳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를 찾는다더라’는 얘기를 처음 전해 들었다. 이미 신청 기한이 한참 지난 뒤였다. 양씨는 “형제복지원 때문에 육지를 떠나 진실화해위의 존재도 몰랐는데, 이 때문에 피해 입증도 어렵게 됐다”고 토로했다. 13살 때 집을 나간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가 형제복지원에 들어간 임종배(59)씨는 소매치기 혐의로 부산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지난 3월 출소했다. 동네 여관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임씨는 형제복지원 피해자에 대한 진실규명이 이미 이뤄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 같은 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위원회 종결 시기가 내년 5월이고 다른 사건도 밀려있어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며 현재는 직권조사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국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피해 구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또 다른 국가폭력 사건인 ‘선감학원 사건’이 선례다. 경기도의회는 2016년 ‘경기도 선감학원 사건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마련해 피해자들에게 위로금 500만원과 월 20만원의 생활안정지원금 등을 지원한다. 부산시도 ‘부산광역시 형제복지원 사건 등 피해자 명예회복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2019년에 제정했지만 지난해 11월에서야 시행한 ‘의료비 500만원’ 지원이 유일하다. 이마저도 부산시민에게만 적용된다. 이향직 형제복지원서울경기피해자연합회 대표는 “직접 신청한 피해자는 700여명으로 2% 수준”이라며 “누가 봐도 명백한 국가폭력이라면 진실화해위가 직권조사를 통해 피해를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 마조레 호수 보트 전복 희생자들, 알고 보니 伊·이스라엘 정보요원들

    마조레 호수 보트 전복 희생자들, 알고 보니 伊·이스라엘 정보요원들

    지난 주말 이탈리아 북서부 마조레 호수에서 발생한 보트 전복 사고로 숨진 이들이 이탈리아와 이스라엘의 전현직 비밀요원으로 확인됐다고 안사(ANSA) 통신과 영국 BBC 등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28일 오후 7시 20분쯤 승객 21명과 승무원 2명을 태운 관광용 보트가 악천후로 전복되면서 4명이 사망했다. 사고 당시 호수에는 초속 36m의 강풍이 불고 있었다. 사고 초기만 해도 관광객들이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신원 확인 결과 사망자 넷 중 둘은 이탈리아 현직 정보요원, 한 명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전직 요원으로 드러났다. 다른 한 명은 선장의 아내였다. BBC는 이탈리아 요원은 끌로드 알론찌(62), 티치아나 바르노비(53)이며, 이스라엘 퇴역 요원은 시모니 에레즈(50)라고 보도했다. 러시아 국적의 선장 아내 이름은 안야 보즈코바(50)다.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 ‘라스탐파’는 사고 보트의 승선자 대다수가 이탈리아와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속한 비밀요원들이었다고 전했다. 이번 마조레 호수 관광은 당초 일정에 없었다. 두 나라 비밀 요원들은 전날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에서 만나 정보와 문서를 교환한 뒤 헤어질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요원들이 귀국 비행기를 놓치면서 체류 기간이 연장됐고, 예정에 없던 마조레 호수 관광이 추진됐다. 마침 일행 중 생일을 맞은 요원이 있어 선상 파티를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일 폭풍우 경보가 있었지만, 이들은 이를 무시하고 보트에 올랐다. 최대 승선 인원이 15명이었지만 이마저 따르지 않아 모두 23명이 보트에 올랐다. 결국 보트는 출항하자마자 사고를 당했다. 승선자 모두가 물에 빠졌고, 대다수는 해변까지 헤엄쳐 나오거나 다른 배들에 구조됐다. 다섯 사람은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로마 주재 이스라엘 영사관은 이탈리아 당국과 협력해 전직 비밀요원의 시신을 운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조레 호수는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로 알프스 풍광을 병풍처럼 둘러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탈리아와 스위스가 공동 관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 겹겹이 포개진 채… ‘서산 부역 혐의 희생’ 유해 60여구 발굴

    겹겹이 포개진 채… ‘서산 부역 혐의 희생’ 유해 60여구 발굴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30일 충남 서산 부역 혐의 희생 사건 유해 발굴 현장을 공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군경에 의한 민간인 집단 학살을 보여 주는 유골 60여구가 발굴됐다. 유해는 폭과 깊이가 각각 1m 이하인 좁은 교통호를 따라 빽빽한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희생자들은 옆으로 누워 있거나 고꾸라져 있는 모습, 겹겹이 포개져 있는 모습으로 처참했던 상황을 생생히 증언했다. 서산 연합뉴스
  • “외톨이라고 놀려서” 4명 살해한 日총격범…경찰도 사망

    “외톨이라고 놀려서” 4명 살해한 日총격범…경찰도 사망

    일본 나가노현의 시골 마을인 나카노시(市)에서 흉기를 휘두르고 총을 쏴 4명을 숨지게 한 용의자가 범행 이유에 대해 “외톨이라며 놀림당해서”라고 말했다. 30일 마이니치신문과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용의자 아오키 마사노리(31)는 이번 사건으로 숨진 각각 60대와 70대 여성으로부터 “외톨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지난 25일 아오키는 한 여성(66)을 흉기로 찔렀다. 이어 오후 4시 30분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2명을 엽총으로 추정되는 총을 발사해 숨지게 했다. 경찰에 따르면 아오키는 허가를 받은 산탄총 등 4개를 집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범행 현장을 목격한 한 주민은 “도망가는 여성의 뒤를 쫓아온 남성이 흉기로 여성을 찔렀고, 그 뒤 출동한 경찰을 향해 산탄총 2발을 발사했다”고 말했다고 NHK는 전했다. 사건 현장 부근에는 70세 여성 한명이 사망한 상태에서 추가로 발견돼 이 사건의 희생자는 총 4명으로 늘어났다. 아오키는 경찰 조사에서 “출동한 경찰관에게 총을 맞을 것 같아 먼저 총을 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오키는 범행 현장에서 300m 떨어진 자택으로 들어가 밤새 농성을 벌이다 26일 오전 4시 30분쯤 경찰의 설득 끝에 밖으로 나와 체포됐다. 이 집에는 아오키의 어머니 등 여성 2명이 있었으나 무사히 탈출해 경찰의 보호를 받았다. 아오키는 아버지와 어머니, 고모 등과 함께 해당 집에 살면서 부모의 농사를 거들며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아오키는 체포 당시 범행 경위를 묻는 아버지에게 “나는 언제나 외로웠다. 항상 혼자 있어서 주변의 놀림을 당한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 생각을 하던 중 한 여성이 나를 얕보는 것 같아 칼로 찔렀다”고 말했다. 피해 여성 2명은 평소 아오키의 집 주변을 자주 산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들에 따르면 이들은 약 1년 반 전부터 함께 웃고 대화하며 산책을 즐겼다고 한다. 마이니치신문은 범행을 목격한 남성이 “아오키가 경찰관에 총격을 가하기 직전, 평소 보인 적 없는 웃는 표정을 지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아오키와 피해자들 사이 과거에 특별한 문제가 없던 만큼 아오키가 일방적으로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아오키는 나카시 시의회 의장인 아오키 나카미치(57)의 장남이다. 아오키 의장은 26일 의원직 사퇴를 신청했고, 곧바로 사직서가 수리됐다.
  • ‘갱단과의 전쟁’ 엘살바도르의 명과 암…최소 153명 구금 중 사망

    ‘갱단과의 전쟁’ 엘살바도르의 명과 암…최소 153명 구금 중 사망

    엘살바도르 정부가 ‘갱단과의 전쟁’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이로인한 성과와 더불어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 29일(현지시간) 영국언론 가디언은 엘살바도르 인권단체의 보고서를 인용해 지난 1년 동안 최소 153명이 구금 중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엘살바도르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 중 하나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다. 지난 2018년 한해에만 10만 명 당 50명 이상의 살인사건 피해자가 발생할 정도. 이같은 상황이 반전된 것은 지난해 3월 27일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다. 전날 하루 만에 무려 62건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부켈레 대통령은 치안불안의 주범으로 현지 갱단인 마라 살바트루차‘(MS-13)와 ’바리오18‘ 지목하고 소탕작전 개시를 선언했다. 비상사태 하에서는 체포·수색영장이나 명확한 증거 없이도 일반인에 대한 구금이나 주거지 등에 대한 임의 수색이 가능하다. 또한 시민 집회·결사의 자유와 통행의 자유도 일부 제한된다. 이는 곧 성과로 이어져 무려 6만 8000여 명의 갱단 조직원들이 무더기로 체포돼 투옥됐다. 이처럼 갱단원들이 무더기로 감옥에 갇히자 거리는 평화로워졌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이같은 강도높은 단속으로 인해 수많은 인권침해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이번에 현지 인권단체 '크리스토살'은 총 107페이지 분량의 상세한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발표하고 최소 153명이 구금 중 사망했다고 비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폭력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수감자만 29명이었고, 또한 46명 역시 폭행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됐다. 크리스토살 측은 "75명의 희생자 대부분 고문, 구타, 목 졸림의 흔적이 발견됐다"면서 "이외에도 다른 사망한 수감자에게도 폭행의 흔적이 보였지만 '자연사' 등으로 분류돼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크리스토살 측은 질식, 골절, 열상 등의 징후가 있는 시신 사진과 영안실 보고서를 입수했으며 일부는 영양실조로 인한 사망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사망자의 절반은 18~38세 남성으로 일부 수감자는 전기 고문도 당했다고 덧붙였다.크리스토살 측은 "엘살바도르 현 정부 하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관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인권단체의 비판은 일고있으나 엘살바도르 국민들의 여론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지난해 연말 여론조사 결과 국민 88%가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 이후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현지언론은 갱단의 대대적인 단속이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켈레 대통령의 재선을 보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 양손 뒤로 꺾이고 뒤에서 총살, 충남 서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발굴 현장 공개

    양손 뒤로 꺾이고 뒤에서 총살, 충남 서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발굴 현장 공개

    좁은 교통호 따라 유해 60여구 이상 발굴양손 뒤로 꺽이고 신발 신은채희생자 대부분 부역혐의로 희생 충남 서산의 ‘부역 혐의 희생사건 유해 발굴’ 현장에서 73년 전 집단학살 정황을 추정할 수 있는 완전한 형태의 유해(유골) 60구 이상과 유품 등이 발굴됐다. 당시 인민군이 전투를 대비해 좁은 교통호를 따라 발굴된 일부 유해에서는 당시 희생자들에게 고개를 숙이게 한 후 머리 뒤를 쏘는 총살 상황으로 추정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30일 서산시 갈산동 봉화산 교통호 인근에서 지난 10일부터 진행한 유해 발굴 현장을 공개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약 60m 구간 3개 구역으로 나눠 진행된 이번 유해 발굴 현장에서 총 60~68구의 유해가 발굴됐다.유해는 폭과 깊이가 각각 1m 이하인 좁은 교통호를 따라 빽빽한 상태로, 굵은 다리뼈와 척추뼈, 갈비뼈까지도 완전하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진실화해위는 이 같은 형태로 발굴된 유해들은 당시 희생자들에게 고개를 숙이게 한 후 머리 뒤를 쏘는 총살로 추정했다. 한 유해는 교통호 바닥을 향해 고꾸라져 있는 상태에서 양팔은 뒤로 꺾인 채 신발을 신은 상태로 발견됐다. 주변에는 M1추정 탄피도 확인됐다.일부 유해 다리 사이에는 다른 유해가 안치돼 2중, 3중 위아래로 중첩된 모습으로 드러났다. 유해 주변에서는 백색의 4혈 단추·고무줄 바지 끈·반지 등의 유품과 총살 흔적인 탄피도 나왔다. 이번 유해 발굴 관련 사건인 ‘서산·태안 부역 혐의 희생사건’은 1950년 10월 초~12월 말경까지 경찰과 해군에 의해 최소 30여 곳에서 부역 혐의로 몰아 적법한 절차 없이 집단 학살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최소 1865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판단했으며, 희생자 대부분은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갔던 20 ̄40대의 성인 남성과 여성도 일부 포함됐다.
  • “케냐 이단 교주, 굶어도 안 죽는 신도는 킬러 고용해 죽여”

    “케냐 이단 교주, 굶어도 안 죽는 신도는 킬러 고용해 죽여”

    “굶어 죽는 데 오래 걸리거나 금식을 포기하려는 신도들은 킬러를 고용해 죽였다.” 키투레 킨디키 케냐 내무장관은 26일(현지시간) 열린 상원 특별위원회에서 지방 도시 말린디에서 10개의 집단 무덤을 더 발견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동남부 해안 도시 말린디 샤카홀라 숲에서 ‘기쁜소식 국제교회’를 운영해 온 사이비 종교 지도자 폴 은텡게 맥켄지(50)는 지난달 15일을 ‘종말의 날’로 예언하며 “예수를 만나기 위해 굶어 죽으라”고 강요해 신도들을 집단 아사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케냐 당국은 맥켄지를 같은 날 체포했으며 지난 10일 그의 구금 기간을 3주 더 연장했다. 지난 8일 경찰이 법원에 제출한 문서에 따르면 일부 시신에서는 장기 적출 흔적도 발견됐다. 킨디키 장관은 맥켄지가 무장 갱단을 고용해 굶어 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신도들과 단식에 대한 마음을 바꾸고 탈출하려는 신도들을 철삿줄이나 둔기로 살해했다고 밝혔다. 이어 무덤을 파는 사람들은 굶어 죽어가는 신도들 옆에 임시 구조물을 세우고 잘 짜인 식단을 운영하며 음식을 배불리 먹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킨디키 장관은 “희생자 대부분은 굶어 죽었고 다른 신도들은 철사로 목이 졸려 죽었다. 둔기로 맞아 죽은 사람도 있었다. 부검 결과 일부는 두개골과 갈비뼈에 금이 간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킨디키 장관은 맥켄지가 대량 학살을 저지르기 위해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계획을 세웠다고 보고, 정부 조사단이 이를 증명하고 국제범죄법에 따라 맥켄지를 기소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맥켄지가 지난 3월을 비롯해 2017년 이후 4차례 체포됐으나, 그때마다 솜방망이 처벌만 받고 풀려났다며 사법부를 비판했다. 맥켄지는 올해 초 부모가 두 자녀를 굶기고 질식시켜 살해한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체포됐지만 보석으로 풀려났다. 신도들의 친척들은 맥켄지가 석방된 후 샤카홀라 숲으로 돌아와 세상의 종말 날짜를 오는 8월에서 지난달 15일로 앞당겼다고 말했다. 현지 수사 당국은 집단 매장지에서 발굴된 시신들에 대한 감정을 통해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 장기 적출, 강제 아사에 대한 조사도 진행하고 있다.지금까지 교회 인근 샤카홀라 숲에 있는 30여개에 이르는 집단 매장지에서 발굴된 사망자는 241명으로 집계됐고, 91명이 금식 중 구조된 가운데 아직 수백명이 현지 적십자에 실종 신고된 상태다. 한편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은 “인권 침해 가능성이 있는 현지 교회들과 이단에 대한 규제 강화 노력을 약속한다”면서 이번 사건 조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 43년 전 오늘 ‘송암동’의 총성, 전우원과 전재수

    43년 전 오늘 ‘송암동’의 총성, 전우원과 전재수

    43년 전 오늘 낮 광주 송암동에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렸다. 광주에서 목포나 나주로 나아가는 길목인 효천역 주변이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전재수 군이 1980년 계엄군의 총격에 놀라 숨을 곳을 찾다가 형이 사준 고무신을 되찾으려고 돌아서다 흉탄에 스러진 날이다. 이 사건이 왜 중요하나면 계엄군이 시위나 저들의 말마따나 폭동에 가담하지도 않은 민간인, 그것도 전재수, 방정남 같은 어린 아이들까지 무자비하게 살육해 인도주의적 범죄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대량 학살의 최고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 씨가 지난달 31일 광주를 처음 찾아 광주시 북구 운정동 5·18 광주민주묘역에 잠든 영령들을 위로했던 모습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날 마침 야속하게도 비가 내려 묘비가 젖는 것을 본 우원씨가 옷을 벗어 닦아주던 묘비의 주인공이 바로 전재수 군이었다. 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알아보니 황일봉 광주부상자동지회 부회장은 “할아버지가 이런 어린 학생들까지 무참히 죽였다는 사실을 우원 씨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전재수 군의 묘비를 안내했다”란 답을 들려줬다. 전재수 군의 억울한 죽음은 하반기 개봉을 타진하고 있는 논픽션 시네마 ‘송암동’(이조훈 감독)에 잘 그려져 있다. 서울과 광주에서 각각 지난 15일과 18일 한 차례 특별 상영했고, 다음달 2일(금) 저녁 8시 CGV용산 6관, 다음달 3일 광주극장에서 한 차례씩 더 볼 수 있다. 영화와 광주, 특히 송암동 학살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며 펀딩도 할 목적으로 특별 상영이 기획됐다. 송암동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되는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조훈 감독은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2020)을 연출하며 송암동 학살을 알게 돼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와 함께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몸서리처지는 진실을 쫓게 됐다. 워낙 학살 주장을 뒷받침할 영상이나 사진 등 물리적 증거가 부족하고 전언 증거만 있어 본인이 가장 잘하는 다큐멘터리 대신 드라마로 꾸미고 중간중간 광주 청문회 자료들을 덧댔다.시민군으로 총기를 회수하는 일을 하던 최진수 씨는 일행 다섯과 함께 희생자 시신을 운반하는 일을 마친 뒤 총기를 회수하러 송암동 동네를 찾아온다. 영화는 최진수가 트럭에서 맨발로 내려 마을 주민들과 대화하러 다가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시민군들과 공수부대원들이 마주치며 파도처럼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친다. 당시 특전사는 송암동에서 사살된 이가 6명에 불과하다고 거짓 보고하고 청문회에서도 위증했다. 진상규명위가 4명,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당시 공수부대원 가운데 양심적인 이들이 제보해 수십명의 희생자가 추가돼 지금도 계속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시민군은 애초에 교전할 생각도 없는 이들이었다. 최진수 씨 등이 피신한 집안 어르신이 “왜 우리집에는 총탄이 안 날아오느냐”고 해 최씨가 바깥을 내다보는 장면이 나온다. 공수부대원들이 전투교육사령부 교도대 소속 계엄군들, 다시 말해 아군과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수부대원 9명이 죽자 군인들은 눈이 뒤집혀 마을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때리고 끌고 가고 총을 쏜다. 집단 처형하듯 20여명의 뒤에서 권총을 쏴 사람들을 거꾸러뜨리는 충격적인 장면도 나온다. 이 감독은 지난 8일 서울 용산 CGV 아이파크몰에서 시사회를 가진 뒤 기자간담회 도중 “그 해 5월 21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의 집단 발포에 시선을 집중해 왔지만 외곽에서 벌어져 잘 드러나지 않은 송암동 학살의 진상을 규명할 필요성도 못지 않다”고 말했다. 영화 말미에 “오인 교전이 그냥 착오가 아니라 (의도된) 사건이란 제보가 있다”고 소개하는데 이 감독은 이 대목을 집중 조사하는 후속작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록과 증언을 토대로 드라마를 꾸미고 증언자의 심리적 깊이와 주변인들과의 교감까지 전달한다. 소리로 주변을 전하고 갇힌 공간에서 배우들이 주고받는 대사와 눈길 등이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23년 차 다큐멘터리스트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드라마란 한계도 분명한데 조금만 마음의 문을 열면 그의 외침에 귀기울이게 될 것이다. 진상규명위는 활동 기한이 3년이라 올해 가을쯤 조사를 마무리하고 보고서 작성에 집중, 내년 여름쯤 끝나게 된다. 위원회는 여순사건 등 다른 진상 규명이 미흡했던 역사적 참극과 병합해 활동 기한을 연장하려 한다.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며 이 영화를 통해 그 길을 여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탰으면 한다.
  • 김기현 “尹, 지난 정권 짝퉁외교와 격다른 명품외교”

    김기현 “尹, 지난 정권 짝퉁외교와 격다른 명품외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22일 윤석열 대통령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과 관련해 “외교가 국내 정치의 도구였던 지난 정권의 짝퉁외교와는 격다른 명품외교가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주재한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윤 대통령이 G7 정상회의에 참석해서 주요국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국제사회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2023년 한국과 일본 두나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장기간 단절된 한일관계가 우리 대통령의 통큰결단으로 정상화를 이루고 셔틀외교도 복원됐다”며 “안보협력과 경제협력은 물론이고 78년간 그늘 속에서 외면받고 있던 재일교포들의 아픔까지 양국이 위로하는 감동드라마도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무엇보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가 히로시마에 있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하는 모습은 한일 양국 국민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줬다”고 말했다. 또한 김 대표는 “한·미·일 3국 정상회담으로 안보·경제 협력을 확인해 3국 간 전략적 공조를 보다 강화하고 협력을 심화하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이와 함께 “정상화하는 한일관계, 한·미·일 3국 관계로 인해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게 되자, 민주당이 다급한 탓인지 대통령 외교 행보를 두고 닥치고 비난에 혈안”이라며 “민주당은 있는 대로 보고 듣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 진실과는 아무 상관 없이 믿고 싶은 대로만 믿어버리는 사이비 종교 같은 구태를 아직도 습관적으로 반복 중”이라고 비판했다.
  • 계속되는 ‘푸틴의 홍차’…러시아 독살정치 실체 [김유민의 돋보기]

    계속되는 ‘푸틴의 홍차’…러시아 독살정치 실체 [김유민의 돋보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배신자와 정적을 독살한다는 의혹으로 악명이 높다. 구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소속 요원이었던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2006년 영국에서 홍차를 마시고 사망한 이후 ‘푸틴의 홍차’는 푸틴의 정적 제거를 뜻하는 단어가 됐다. 숨진 리트비넨코는 KGB 후신 연방보안국(FSB)이 독성물질 연구소를 비밀리에 운영 중이며, 우크라이나 대선 때 유셴코 후보 독살 기도의 배후라고 폭로한 바 있다. 러시아군의 체첸 주민 학살을 고발한 언론인 폴리트코프스카야도 2004년 차를 마신 뒤 의식을 잃었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2년 뒤 자택 인근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배후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리트비넨코는 푸틴을 비판하다 영국으로 망명했으나 호텔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시신에서 방사성 독극물이 다량 발견됐다. 사건 발생 10년 만인 2016년 영국 당국은 러시아 연방보안국 요원들이 그를 독살했고 푸틴 대통령이 관여됐을 수 있다고 결론냈다. ‘푸틴의 홍차’는 계속되고 있다. 반정부 인사로 최근 러시아를 떠난 언론인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는 지난달 29~30일 독일 베를린에서 주최한 한 회의에 참석했다가 독극물 중독 증상을 보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 병원은 푸틴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신경작용제 ‘노비촉’ 중독 증상으로 치료를 받았던 곳이다. 뿐만 아니라 자유러시아재단(FRF) 대표인 나탈리아 아르노 역시 독일에서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호소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지 10년이 된 그는 페이스북에 “프라하로 이동했는데 호텔 방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날카로운 통증과 낯선 증상을 겪었다”고 말했다. 독일 당국은 21일(현지시간) “이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고, 비평가들은 푸틴 정부의 소행으로 추정하지만 크렘린궁은 부인하고 있다.홍차 마신 뒤 ‘털썩’…독살 시도 20년 넘게 장기독재하고 있는 푸틴은 2010년 미국과 러시아 스파이 맞교환 당시 인터뷰에서 “배신자들은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8년에는 영국 솔즈베리의 쇼핑몰에서 러시아 출신 이중간첩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이 독극물 중독 증세로 쓰러졌다가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미국은 그해 8월 러시아가 ‘노비촉’을 사용해 스크리팔을 독살하려 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러시아 야권의 핵심 인사로 푸틴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수십 차례 투옥된 나발니 역시 2020년 모스크바로 향하던 항공기 안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로 의식을 잃고 옮겨졌다 회복했다. 나발니 측은 아침에 공항에서 유일하게 차를 마셨으며, 차에 독성 물질이 섞인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나발니에 위협을 느낀 푸틴은 나발니를 일찌감치 반역자로 규정하고 피선거권을 박탈, 나발니의 정계 진출을 막아 버렸다. 사기·법정 모독 등의 혐의로 징역 1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나발니는 2017년 4월에도 모스크바 시내에서 한 포럼에 참석했다 나오다 괴한이 얼굴에 약물을 뿌리면서 눈 동공과 각막 손상을 입어야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푸틴 대통령이 (독살 사건들에) 얼마나 관여했는지, 어떤 지휘 체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러시아 안팎외 많은 희생자들은 크렘린이 이런 사건을 필요악으로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포에 의해 통치되는 체제는 공포 속에서 유지된다.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맹독성 신경작용제인 VX로 살해당한 것도 같은 예다.
  • “尹대통령·기시다, 과거사 문제 해결 말 위주서 행동으로 실천”

    “尹대통령·기시다, 과거사 문제 해결 말 위주서 행동으로 실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21일 정상회담은 지난 3월 16일 도쿄, 5월 7일 서울 개최에 이어 2주 만에 이뤄진 세 번째다. 일본으로서는 히로시마에서 개최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초청국인 한국 정상을 만난 것이지만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사상 처음으로 공동 참배하며 한일 관계 역사에 중요하게 기록될 순간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령비 참배 후 회담장에서 마주한 두 정상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 관계 개선을 위한 서로의 노력에 감사를 전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 서울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해 “가혹한 환경에서 고통스럽고 슬픈 경험을 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밝힌 것과 관련,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며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 준 기시다 총리의 용기와 결단은 매우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윤 대통령을 제 고향 히로시마에서 맞이했다”며 이번 G7 정상회의 참석에 사의를 표했다. 이어 그는 “두 달 사이 세 번째 회담”이라며 “우리 두 정상 사이의 관계 개선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윤 대통령은 회담에서 히로시마를 오가는 (항공기) 직항로 재개,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의 원활한 운영, 공급망과 첨단기술 협력 진전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G7 정상회의 개최가 “성공적”이었다고도 평가했다. 또 두 정상은 법치에 기반한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를 강조하고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양국이 상호 연대와 협력으로 다양한 글로벌 어젠다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현지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일 정상의 위령비 공동 참배에 대해 “한일 양국이 그동안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 위주로 해 왔다면 이번에는 실천한 것”이라며 “그러나 과거사 문제가 일단락됐느냐는 것은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느냐. 역사라는 것은 긴 세월 동안 축적된 것이고 거기에 쌓인 문제들이 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 과정에 있고 좀더 미래지향적으로, 실천적으로 그리고 좀더 속도를 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양국 정부가 갖고 있다”고도 했다. 이번 히로시마 정상회담은 한일 정상 간 셔틀외교가 언제든 성사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으로도 풀이된다. 특히 상호주의에 따라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의 이번 히로시마 방문에 대한 답방 성격으로 한국을 찾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도운 대변인은 두 정상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기회가 닿는 대로 앞으로도 정상 간 셔틀외교를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 피폭 한인 위한 평화의 상징… 민단 주도로 1970년 건립

    피폭 한인 위한 평화의 상징… 민단 주도로 1970년 건립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 처음으로 함께 참배한 ‘한국인 원자폭탄 희생자 위령비’는 피폭된 한국인들의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 세워진 평화의 상징이다. 태평양 전쟁 말기였던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국은 히로시마에 역사상 최초로 원자폭탄 ‘리틀보이’를 투하했다. 히로시마에는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된 이들을 포함해 약 14만명의 조선인이 살고 있었는데 이 가운데 5만명이 원폭 피해를 봤다. 이후 민단 히로시마본부가 주도해 당시 250만엔의 비용을 마련해 1970년 4월 10일 위령비가 건립됐다. 히로시마시의 반대로 공원 밖에 만들어졌지만 재일 한국인과 뜻있는 일본인들이 공원 안 이전 운동을 벌여 1999년 7월 21일 공원 안에 세워졌다. 높이 5m, 무게 10t의 검은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위령비 옆에는 한국어, 영어, 일어로 ‘위령비의 유래’를 새겨 놓은 별도의 비석이 있다. 비석에는 ‘원폭 투하로 히로시마 시민 20만 희생자 수의 1할에 달하는 한국인 희생자 수는 묵과할 수 없는 숫자’라며 ‘원폭의 참사를 두 번 다시 되풀이 않기를 희구하면서 평화의 땅 히로시마의 일각에 이 비를 건립했다’고 적혀 있다. 이 위령비 앞에서 1970년부터 매년 8월 5일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 원폭 피해자 2세인 권준오(73) 민단 히로시마본부 원폭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민단에서 한 달에 한 번 위령비를 청소하고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폭이 투하된 또 다른 지역인 나가사키에도 희생된 한국인들을 위한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나가사키에서도 1만여명의 한국인이 희생됐는데 현지 우익 등의 반대로 원폭 투하 76년 만인 2021년에야 위령비가 세워질 수 있었다.
  • 韓 원폭 희생자 위령비, 한일정상 첫 공동 참배

    韓 원폭 희생자 위령비, 한일정상 첫 공동 참배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공동 참배한 것에 대해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 대해 추모의 뜻을 전함과 동시에 평화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기시다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이날 열린 한일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한일 정상 부부는 이른 오전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참배한 뒤 곧바로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일 정상이 함께 한국인 위령비에 참배한 것은 처음이고, 한국 정상으로서도 첫 참배다. 윤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결과를 토대로 한일 간에도 경제안보를 비롯한 글로벌 어젠다에 대한 협력이 더욱 심화되기를 기대한다”며 “저와 기시다 총리의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양국 관계의 발전 방안은 물론 글로벌 이슈의 대응 방안에 대해 상호 연대와 협력 방안을 심도 있게 서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는 윤 대통령의 한국인 위령비 참배에 대해 “한일 관계에서도,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약 35분간 진행된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외교·안보 분야를 비롯해 경제, 산업, 과학기술, 문화예술, 인적 교류 등 제반 분야에서 양국 관계가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고 이도운 대변인이 전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지난 7일 서울 회담 이후 2주 만의 개최다. 이 대변인은 “두 정상이 한일 관계의 가슴 아픈 과거를 직시하고 치유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동북아,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서의 핵 위협에 한일 정상과 두 나라가 공동으로 동맹국인 미국과 함께 대응하겠다는 의지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이날 위령비 참배 현장에는 박남주 전 한국원폭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권준오 한국원폭피해특위 위원장 등 10명의 한국인 원폭 피해 동포가 함께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이들 원폭 피해 동포의 국내 초청을 지시했다고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전했다.
  • “원폭 참사 되풀이 않기를”…한일 첫 참배 히로시마 한국인 위령비는

    “원폭 참사 되풀이 않기를”…한일 첫 참배 히로시마 한국인 위령비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 처음으로 함께 참배한 ‘한국인 원자폭탄 희생자 위령비’는 피폭된 한국인들의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 세워진 평화의 상징이다. 태평양 전쟁 말기였던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국은 히로시마에 역사상 최초로 원자폭탄 ‘리틀보이’를 투하했다. 히로시마에는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된 이들을 포함해 약 14만명의 조선인이 살고 있었는데 이 가운데 5만명이 원폭 피해를 봤다. 이후 민단 히로시마 본부가 주도해 당시 250만엔의 비용을 마련해 1970년 4월 10일 위령비가 건립됐다. 히로시마시의 반대로 공원 밖에 만들어졌지만 재일 한국인과 뜻있는 일본인들의 공원 안 이전 운동을 벌여 1999년 7월 21일 공원 안에 세워졌다. 높이 5m, 무게 10t의 검은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위령비 옆에는 ‘위령비의 유래’가 한글, 영어, 일어로 적혀있는 별도의 비석이 있다. 비석에는 ‘원폭 투하로 히로시마 시민 20만 희생자 수의 1할에 달하는 한국인 희생자 수는 묵과할 수 없는 숫자’라며 ‘원폭의 참사를 두 번 다시 되풀이 않기를 희구하면서 평화의 땅 히로시마의 일각에 이 비를 건립했다’라고 적혀 있다. 이 위령비 앞에서 1970년부터 매년 8월 5일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 원폭 피해자 2세인 권준오(73) 민단 히로시마본부 원폭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민단에서 한 달에 한 번 위령비를 청소하고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폭이 투하된 또 다른 지역인 나가사키에도 희생된 한국인들을 위한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나가사키에서도 1만여명의 한국인이 희생됐는데 현지 우익 등의 반대로 원폭 투하 76년 만인 2021년에야 위령비가 세워질 수 있었다.
  • 고양이 18마리 불태운 ‘잔혹 승려’…2년간 고양이 80마리 죽여 [여기는 동남아]

    고양이 18마리 불태운 ‘잔혹 승려’…2년간 고양이 80마리 죽여 [여기는 동남아]

    최근 태국의 한 승려가 고양이 최소 18마리를 잔인하게 학대하고 불에 태워 죽인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17일 차청사오 지역 경찰은 동물 학대 혐의로 승려 프라킴(23)을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태국 매체 타이랏(ThaiRath)은 전했다. 또한 동물 자선단체 왓치독태국(Watchdog Thailand)은 조사 결과 승려는 지난 2년간 80마리가 넘는 고양이를 잔인하게 학대해 죽이고 일부 사체를 먹기도 했다고 밝혔다. 최근 프라킴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새 집을 찾고 있는 고양이 4마리를 입양하겠다고 A씨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A씨가 고양이를 데리고 사찰을 찾았을 때 동료 승려들은 “고양이를 맡기지 말라”면서 “그는 동물을 전혀 사랑하지도 않고, 최소 5마리의 고양이를 때려죽이고 불에 태우는 것을 목격했다”고 알렸다. 승려들은 프라킴이 2년 전 승려 서품을 받은 이후 계속해서 고양이를 입양했지만 모두 사라졌다고 밝혔다. 프라킴은 총 80마리의 고양이를 입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동료들은 덧붙였다.  워치독태국 관계자들은 사원을 찾아 프라킴의 다음 희생자가 될 뻔한 고양이 두 마리를 그의 거처에서 구출했다. 또한 프라킴의 숙소 뒷마당에 묻혀있던 고양이 사체 18마리를 발견했는데, 모두 불에 새까맣게 탄 상태였다. 더군다나 고양이를 때려죽인 다음 사체를 먹는 동영상을 발견해 충격을 주었다. 경찰은 프라킴의 숙소 곳곳에서 고양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그를 동물 학대 혐의로 체포했다. 동료 승려들은 “프라킴이 승려복으로 고양이를 싸맨 뒤 움직임이 멈출 때까지 땅에 대고 반복해서 때려죽였다”고 밝혔다. 또한 문신 바늘로 죽은 고양이들의 피부를 뚫었다고 덧붙였다.  해당 사원의 수도원장은 “프라킴의 동물 학대 사실을 전혀 몰랐다”면서 “그가 승려복을 입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 尹 “위령비 공동 참배, 기시다의 용기로 기억될 것”

    尹 “위령비 공동 참배, 기시다의 용기로 기억될 것”

    히로시마서 한일 정상회담 개최“한일, 글로벌 어젠다 협력 더욱 심화를”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공동 참배에 대해 “평화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기시다 총리의 용기있는 행동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원폭 희생자 위령비 공동 참배 후 열린 한일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앞서 서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해 “가슴 아프다”고 말한 것과 관련,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준 기시다 총리의 용기와 결단은 매우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이어 그는 “한일 간에도 경제, 안보를 비롯한 글로벌 어젠다에 대한 협력이 더욱 심화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모두발언에서 앞서 두 정상이 함께 한 위령비 참배에 대해 “양국관계와 세계평화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지난 7일 서울 개최 후 2주만에 윤 대통령의 G7(주요7개국)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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