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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찜질방 셋 중 하나, 소방안전 불량

    찜질방 안전불감증은 제천 복합건축물 화재참사 이후에도 여전했다. 전국 찜질방 셋 중 하나는 소방안전시설 불량업소였다. 비상구 폐쇄 등의 지적이 가장 많았다. 소방청은 제천 화재참사를 계기로 지난해 12월 26일부터 지난달 15일까지 전국 찜질방 6474곳에 대한 소방특별조사를 벌였다. 소방안전시설 불량 업소는 2045곳(31.6%)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역별로 불량업소 비율이 가장 높았던 지역은 제천이 속한 충북(59.6%)이었다. 인천(56.6%)과 강원(52.3%)도 찜질방 둘 중 하나는 소방안전시설이 불량했다. 주로 지적된 문제 사항에서도 나아진 점이 없었다. 제천 화재참사 당시 비상구를 불법 개조해 희생자들이 대피하지 못했다. 이번 특별점검에서도 비상구 앞 장애물 방치, 잠금, 유도등 미설치 등 피난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가장 많았다. 전체 지적건수 5704건 중 2364건(41.4%)이었다. 이외에도 소화기가 설치돼 있지 않거나 너무 노후한 경우, 화재감지기 작동불량, 소화펌프 작동불량 등 소화설비 문제가 1337건(23.4%)이었다. 또 발신기가 작동하지 않거나, 수신기의 예비전원 불량 등 경보설비에서도 1322건(23.2%)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소방청은 비상구 폐쇄·방화문 제거 등 220건에 대해서 과태료를 물리고 피난구 유도등을 설치하지 않거나 방화셔터가 작동하지 않는 등 1954건에 대해선 시정명령 조치를 내렸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희생자 마지막 보내던 날…눈물 젖은 밀양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고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합동 위령제가 엄수된 가운데 사망자가 1명 더 늘었다. 4일 밀양시에 따르면 지난 3일 오후 2시 30분쯤 김해 진영읍 청담요양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김모(86·여)씨가 숨졌다. 김씨는 심부전·뇌출혈 등으로 세종병원 3층에 입원했다가 화재 때 다쳐 치료를 받아 왔다. 따라서 현재 희생자는 사망자 41명, 부상자 151명 등 총 192명으로 집계됐다. 앞서 밀양시는 지난 3일 오전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밀양문화체육관에서 ‘희생자 합동 위령제’를 지냈다. 유가족과 시민 등 1000여명은 먼 길을 떠나는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박일호 밀양시장은 추도사에서 “불귀의 객이 되신 분들은 우리의 부모, 형제·자매, 이웃인데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사람이 우선하는 안전한 밀양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유가족 대표 김승환씨는 “좀더 따뜻하게, 좀더 곁에 오래 머물면서 해드리고 싶은 게 더 많았는데 그러지 못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은 세종병원 의료진 3명을 의사자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화재 현장에서 도움을 준 시민과 화재진압·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한 소방관들, 장례지원을 한 밀양시에 감사드리며 앞으로 불필요한 책임추궁은 지양해 달라고 했다. 위령제는 참석자들의 국화꽃 헌화로 마무리됐다. 유가족들은 추도식 동안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영정을 한동안 떠날 줄 몰랐다. 밀양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망자 1명 늘어…총 40명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망자 1명 늘어…총 40명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망자가 1명 더 늘어 총 40명으로 집계됐다.밀양시는 2일 오전 1시 10분쯤 창원경상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김모(81)씨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당뇨와 고혈압 등으로 세종병원 3층에 입원해 있던 김씨는 화재 구조 이후 폐렴 치료를 받다가 이날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 사망자는 40명, 부상자는 151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부상자 3명은 여전히 위독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측은 “검안 등 절차를 거쳐 사망 원인을 확인하고, 정확하지 않을 경우 부검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밀양시와 경남도는 세종병원 화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합동분향소 2곳(밀양문화체육회관, 경남도청 4층 대회의실)을 3일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3일 오전 11시에는 같은 장소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합동위령제를 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포토] 이정미 대표, 밀양 합동분향소 조문

    [서울포토] 이정미 대표, 밀양 합동분향소 조문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28일 경남 밀양시 삼문동 밀양문화체육관에 마련된 밀양 세종병원 화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2018. 1. 28 밀양=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문 대통령, 밀양 화재 현장·분향소 찾아…소방관 격려·유가족 위로

    문 대통령, 밀양 화재 현장·분향소 찾아…소방관 격려·유가족 위로

    합동분향소 방문해 헌화·애도…희생자 37명 영정 하나하나 살펴봐유족들 “내년에는 안전 사회를…”, 문 대통령 “당장 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경남 밀양시 삼문동에 마련된 밀양 세종병원 화재 현장과 방문해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애도하는 한편 소방관을 비롯한 현장수습 요원들을 격려했다. 이날 오전 대통령 전용열차를 이용해 밀양역에 도착한 문 대통령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주영훈 경호처장, 박수현 대변인, 윤건영 상황실장 등과 함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밀양 문화체육관으로 향했다. 검정 양복과 타이 차림에 코트를 입은 문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영접을 받아 분향소 안으로 이동했다. 문 대통령은 국화 한 송이를 들고 37개의 희생자 영정 앞으로 가서 헌화·분향하고 묵념했다. 묵념을 마친 문 대통령은 희생자들의 영정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문 대통령은 희생자 영정 옆에 마련된 좌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족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악수하면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 평소에 주장하신 사람 사는 사회, 그걸 내년에는 좀 더 개선하고 소방관들도 국민을 위해 헌신하게끔 해달라’며 안전한 사회 건설을 당부하는 유족의 말을 경청하고 “내년이 아니라 당장 올해부터 하겠다”고 대답했다. 문 대통령이 헌화·분향하는 동안 애써 침착하게 앉아있던 유족 중 일부는 대통령이 다가오자 울음을 터뜨리면서 안기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의자에 앉아있던 유족들과는 허리를 숙여 일일이 눈을 맞추면서 위로했다. 40분 가까이 유족들과 현장의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한 문 대통령은 화재가 발생한 세종병원으로 이동해 사고 현장을 직접 둘러봤다. 문 대통령은 3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을 방문해 “정부가 안전한 나라를 다짐하고 있는데도 참사가 거듭되고 있어 참으로 참담하고 마음이 아프다. 국민께 참으로 송구스러운 심정이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빌고 유가족과 밀양시민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은 “이번 화재사고는 지난번 제천 화재사고와는 양상이 다른 것 같다”면서 “소방대원들이 비교적 빨리 출동하고 초기대응에 나서서 화재가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막았다. 소방관들이 이번에 최선을 다했다. 결과가 안 좋으면 원망을 듣는 것이 숙명인데 국민이 응원하니 잘하리라 믿는다”고 현장에 있는 소방관들을 격려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건물 안전관리 체계와 관련해 “요양병원과 성격상 큰 차이가 없는 데도 요양병원과 일반병원은 스프링클러나 화재방재 시설의 규제에서 차이가 있고, 바닥면적이나 건물의 연면적에 따라 안전관리 업무에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안전관리 의무 부과와 화재 관리 강화,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점검 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돌아가신 분들의 경우 사인 확인을 위해 검안 절차를 마쳐야 입관이 가능하고, 장례식장을 확보해야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점 등 사후 지원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가 중앙수습본부를 맡고, 행정안전부가 사고수습지원본부를 맡게끔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밀양시가 양 부처를 비롯해 정부 부처와 긴밀히 협력해서 사후 조치에서도 유가족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갖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면서 “병원 안에 있는 환자를 피신시키고 이송하는 과정에서 밀양시민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밀양시민께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프란치스코 교황 “밀양 화재 사망자 안식과 부상자 쾌유 기도”

    프란치스코 교황 “밀양 화재 사망자 안식과 부상자 쾌유 기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밀양 화재 참사에 애도를 표명했다. 교황청은 26일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 명의로 발표한 애도 성명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의 밀양 세종병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명 피해가 난 것에 깊이 슬퍼하며, 이번 비극의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연대를 표현한다“고 밝혔다. 이어 ”교황은 특히 사망자들의 안식과 부상자들의 쾌유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서 ”교황은 재난의 희생자들을 돕고 있는 구조 요원들과 행정 당국에도 격려를 전하고, 신이 모두에게 용기와 위안의 은총을 내리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언론은 37명이 사망하고, 140여 명이 중경상을 입은 밀양 세종병원 화재를 주요 국제뉴스로 보도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커버스토리] 소록도, 아픔 품은 100년史… 희망 품는 200년史

    [커버스토리] 소록도, 아픔 품은 100년史… 희망 품는 200년史

    한 세기 가까이 격리·억압의 공간… 섬 전체가 병원… 2009년 소록대교로 삶의 모습 변화… 한센인 511명 평균 나이 75.5세지난 16일 국립 소록도병원 100년사 ‘한센병 그리고 사람, 100년의 성찰’이 발간됐다. 개원 100주년(2016년)에 내지 못하고 두 해를 넘겼다. 풀어낼 이야기가 많아서였을까. 이유를 듣고자 소록도를 찾았다. 지난 19일 찾은 섬은 아무 일 없었단 듯 조용했다. 서울 서초구 호남선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로 5시간 걸려 전남 고흥 녹동버스터미널에 도착한 뒤 차로 15분 정도 이동했다. 이곳은 섬 전체가 병원이다. 예전엔 한센인과 직원들만 오갈 수 있었다. 지금은 소록도 중앙공원과 한센병박물관 정도를 일반인에게도 개방한다. 자원봉사자들에 한해 한센인들이 사는 마을까지 허용한다. 한센병박물관은 병원 본관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2016년 개원 100주년을 기념해 지어진 이곳에선 아직 새 건물의 냄새가 났다. 이곳에서 조명래 학예사에게 대뜸 “(책 발간이) 왜 늦었습니까”라고 물었다. “더 잘하려다 보니 그랬다.” 그가 웃으며 답했다. ●한센인에 대한 학살 ‘84인 학살사건’ 한 세기 가깝도록 소록도는 격리와 억압의 공간이었다. 그만큼 사연도 많다. ‘84인 학살사건’도 그중 하나다. 1945년 해방 직후 치안공백 상태에서 병원 내부 갈등이 직원과 한센인 갈등으로 번졌다. 당시 병원 직원들은 자신들이 끌어들인 외부 치안대와 함께 한센인 84명을 끔찍하게 살해했다. 나중에 밝혀진 희생자까지 공식 사망자만 85명이다.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건 반년 정도가 지나서다. 진상조사가 이뤄졌지만 직원들을 면직하는 데 그쳤다. 제대로 된 피해보상은 없었다. 2002년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시작됐다. 이들이 묻혔던 자리에 ‘애한의 추모비’가 세워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5년에야 이 사건을 직원들에 의한 한센인 학살사건으로 규정했다. 관련 피해보상법은 2007년 마련됐다. 한센인들의 인권보상 이야기는 1996년도에 편찬된 ‘소록도 80년사’에는 담기 어려웠다. 2000년대에 이르러서야 소록도가 우리 사회를 향해 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00년사 편찬에서는 이런 부분이 강조됐다.소록도로 들어가는 첫 관문 ‘소록대교’는 10년 전만 해도 어색한 풍경이었다. 2009년 소록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전남 고흥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야 했다. 배가 운행하는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격리의 상징인 소록도에 연륙교가 놓인 것은 여느 다리가 갖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원래 이곳은 한 번 들어오면 죽어서밖에 나가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젠 누구나 자유로이 이곳을 드나들 수 있다. 박물관 소속으로 이번 100년사 편찬 작업을 한 강의원 소록도병원 주무관은 소록대교를 이곳의 가장 큰 변화라고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소록도는 한센인들만의 공간이었습니다. 소설 제목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말처럼요. 다리가 놓이고 삶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세상을 향해 열리게 됐달까요.”●한센인들을 괴롭히는 건 한센병이 아닌 ‘세월’ 한센인들은 ‘본병객병’이라는 말을 쓴다. 본병(本病)은 한센병을 뜻하고 객병(客病)은 그 이외의 병을 뜻한다. 현재 소록도에서 본병을 앓는 환자는 극히 드물다. 1982년 도입된 병형별 다제요법(MDT)으로 한센병은 거의 종결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높은 완치율을 보였다. 소록도에 가장 환자가 많았을 땐 6254명에 육박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기준 소록도병원에 등록된 한센인은 511명이며 이 중에서 활동성 한센병 환자는 한 명도 없다. 신체변형으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고령으로 노환을 앓는 한센인이 대부분이다. 소록도병원 환자 평균연령은 75.5세다. 이제 한센인들을 괴롭히는 건 본병이 아닌 객병과 세월이다. 소록도에선 환자가 환자를 돌봤다. 환자가 5000~6000명에 이를 때에도 이들을 치료할 의사는 10명도 채 되지 않을 만큼 의료인력이 부족했다. 한센인 중에는 “소록도에 수십년 살았는데 의사선생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증언한 이도 있다. 1949년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녹산의학강습소’는 시험을 통해 우수한 환자를 선발해 2~3년 동안 기초 의학지식을 가르쳐 의료조무원으로 양성했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정식 의사는 아니지만, 소록도에선 이들이 의사 역할을 도맡았다. 1952년 1기 졸업생 16명이 배출됐고 1971년 7기 졸업생은 45명이었다. 여기서 의학을 배운 뒤 섬을 나가 더 공부해서 실제로 의사가 된 사람도 있다. 의학강습소는 당시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커다란 배움의 기회였던 셈이다.●“소록도엔 아이가 없고 무덤이 없다” “소록도엔 두 가지가 없다”는 말이 있다. 아이와 무덤이다. 한센병이 유전된다는 오해로 소록도에선 오랜 시간 정관·낙태수술이 자행됐다. 이 때문에 어린아이가 없다. 또 오랜 섬 생활로 육지 가족과 인연이 끊겨 이곳에서 죽은 이들을 기억해 줄 무덤이 없다. 소록도에서 생을 마감한 한센인 유골은 본관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만령당’으로 간다. 이곳에 안치된 유골은 10년이 지나면 만령당 뒤에 있는 봉분에 합장한다. 매년 10월 넷째 주 목요일에 합동 추도식이 열린다. 조 학예사는 이곳을 소록도에서 가장 뜻깊은 장소로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소록도병원엔 입원하는 사람만 있습니다. 퇴원은 어쩌면 불가능하죠. 한센인은 죽음으로써 이 섬을 떠납니다.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기에, 우리가 기억해 드려야 하는 거죠.” 섬 전체가 병원인 소록도에서 병원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원장이 펴는 정책에 따라 생활양식이 바뀌기 때문이다. “소록도 역사는 원장들의 역사”라는 말까지 나온다. 해방 이후 최초 한국인 병원장이었던 김형태 전 원장은 억압 일색이었던 소록도 분위기를 확 바꿨다. 이때부터 주민자치회가 결성됐으며 직원 지대와 병사 지대를 나누던 철조망이 사라졌다. 차기 원장 때 부활하지만, 이때 한센인들에게 큰 고통을 안겼던 단종수술도 폐지했다. 정관·임신중절수술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건 1990년대 이후다. 김 전 원장 시기 소록도에선 일제의 관리체계가 무너졌으며 민주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과 함께 현역 군의관 조창원 대령이 제14대 원장으로 부임했다.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 나오는 조백헌 대령의 실제 모델이다. 그는 한센병이 다 나은 환자들의 사회복귀를 위해 ‘오마도 간척사업’을 계획했다. 이 사업으로 조성된 330만평의 농토에서 경작하며 살 수 있을 거라 한센인들은 기대했다. 삽·괭이 같은 원시적 도구에 한 달 30원이라는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한센인들은 공사를 이어 나갔다. 그러나 인근 고흥 주민들의 사업 반대와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1964년 7월 사업권이 전남도로 이관됐다. 이에 따라 한센인들의 꿈도 같이 좌절됐다. 공사에 참여했던 한센인들은 6개월간 밀린 임금도 받지 못했다. 소록도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올해의 작가상’에 송상희 선정

    ‘올해의 작가상’에 송상희 선정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로 송상희 작가가 선정됐다고 국립현대미술관이 24일 밝혔다.송상희 작가는 역사적 사료를 기반으로 잊힌 것들에 주목하고 이를 현재로 불러오는 영상과 사진, 드로잉 등의 작품을 발표해 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송상희 작가는 현대사회의 어둡고 슬픈 사건들을 고사와 신화를 도입해 재구성하고 다층적인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역사의 표면으로 부상하지 못한 희생자들을 영상, 사진, 드로잉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 냈다”고 평했다. ‘2018 올해의 작가상’ 후보이자 미술관 후원 작가로는 구민자, 정은영, 정재호 등 3인의 예술가와 옥인 콜렉티브가 선정됐다. 수상작과 후원 작가(팀)들의 작품은 오는 2월 1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전시된다. 이들의 신작은 오는 8월 서울관에서 공개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상은 현대미술의 가능성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작가들을 지원·육성하기 위해 2012년부터 마련된 상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지금과 닮은… 성냥불 같던 올드 상하이

    지금과 닮은… 성냥불 같던 올드 상하이

    그림은 한 점인데 뻗어나갈 수 있는 서사는 무한대다. 배경은 1930년대 ‘동양의 파리’라 불렸던 중국 ‘올드 상하이’. 20세기 초 서구 열강의 각축장이자 서양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던 변혁의 중심, 온갖 무역으로 축적한 황금의 도시였다. 유럽식 건축물, 고급 사교 클럽, 백화점, 영화관들로 흥성거렸던 격정의 순간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조덕현(61)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교수가 그 극적인 순간들을 소환한다. 다음달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에픽 상하이’전에서다. ●시공간 넘나드는 1930년대 ‘황금의 도시 ’ 갤러리를 들어서자마자 폭 5.8m, 높이 3.9m의 초대형 화폭에 옮겨진 올드 상하이의 풍경과 인물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제목은 ‘1935’. 그림은 어느 한곳에 시선을 오래 두게 놔두질 않는다.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이 뒤섞여 빚어내는 관계는 상상하는 만큼의 다채로운 서사를 펼쳐내고, 시간은 과거와 현재가 함께 어우러져 비틀려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당대 최고의 상하이 여배우 롼링위(阮玲玉)가 말 등에 올라타 한껏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촬영에 한창인 장면 바로 옆에서 진행되는 장례식의 주인공 역시 롼링위다. 건물 2층에서는 조선에서 태어났으나 상하이로 건너가 중국 영화 황제가 된 김염(金焰)이 아내 진이(秦怡)와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들과 한 풍경에 녹아든 인물은 상하이 영화판에서 일하고 있는 20대 조선인 남성 조덕현과 상하이 여성 소설가 홍이다. 1914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만주로 흘러들어 갔다가 상하이에서 일하게 된 조덕현 작가는 20세기의 풍랑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1995년 고독사한 것으로 설정된 가상의 인물이다. 조덕현 작가는 2015년 일민미술관 전시 ‘꿈’에서 그의 말년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프리퀄’ 격으로 그의 20대 상하이 시절을 불러냈다. 이번 전시의 서사는 조 작가가 상하이 출신 소설가 미엔미엔(홍의 분신)과 합작해 만들어낸 것. 조 작가는 이번 전시의 서사를 이끄는 ‘조덕현’에 대해 “나와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린 인물이지만 지속적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투영해 주는 인물”이라고 했다.●관객들이 스스로 맞춰가는 서사의 퍼즐 왜 그는 한 점의 그림에 이렇게 다양한 시대와 공간, 관계를 중첩해 보여주는 걸까. “제 작품은 하나의 이야기만 제공하는 게 아니고 관람객들에게 여러 관계와 단서를 주고 퍼즐 맞추듯이 짜맞추기를 해 보라는 겁니다. 그림이 펼치는 서사는 100명이면 100명이 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죠. 문학과 영화는 하나의 서사를 공유하는 장르지만 그림은 표현 방식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니까요. 그간 다양한 시공간의 자료를 한데 모으고 이야기를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작업해 왔는데 이는 이전 역사화에서 진화된 형태라고 생각해요.”●화려했지만 격렬한 위협의 시대 매료 한 편의 거대한 역사화 같은 ‘1935’에는 인물들의 드라마뿐 아니라 전쟁과 계층 간 암운 등도 드리워져 있다. 왜 지금 ‘올드 상하이’일까. “1930년대 올드 상하이는 성냥불을 켜면 확 켜졌다 꺼지듯 화려하게 빛나다 사그라든 시대입니다. 지금은 없어진 시공간이지만 삶의 질과 속도가 같은 시대 다른 공간 혹은 다른 시대 같은 공간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도 극적이고 격렬했던 곳이자 시대였죠. 그 극적인 공간에서 펼쳐질 수 있는 서사가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지진, 핵위협 등 사회의 모든 요소가 너무도 격해지고 위협적인 현재의 시대와 닮은꼴 아닌가요.” 극사실주의적인 필치가 특히 돋보이는 다른 대형 회화 ‘꿈꿈’은 이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여기서도 시간과 공간은 경계 없이 뒤엉켜 있다. 수몰되는 ‘올드 상하이’를 배경에 둔 채 지구촌 곳곳의 참상들이 펼쳐져 있다. 1·2차 세계대전 난민, 베트남 보트피플, 팔레스타인 난민, 이탈리아 지진 피해자, 시리아 난민, 미얀마 로힝야족, 중일전쟁 당시 상하이 주민 등 각종 테러와의 전쟁, 재해의 희생자들이 극적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 바로크 회화처럼 곳곳에 배치돼 ‘묵시록’의 풍경을 빚어낸다. ●‘꿈꿈’ 지구촌 곳곳 참상, 화폭에 펼쳐 이번 전시에는 ‘1935’, ‘꿈꿈’ 등 대작 회화 2점을 포함한 회화, 사진, 영상 설치작업 등 신작 18점이 공간에 맞게 부려져 있다. 전시의 동선 마지막인 갤러리 지하 1층에 자리한 영상 설치작업 ‘에픽 상하이’는 1930년대 상하이의 유명 영화 장면과 독거노인 조덕현의 골방 모습을 5면의 거울에 투영해 일파만파로 확장되는 영상의 파편들 사이에서 낯선 시공간을 부유하는 듯한 기묘한 경험을 안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여관 방화’ 희생자들 ‘연기 질식사’…“세 모녀, 신원 확인 어려울 정도”

    ‘여관 방화’ 희생자들 ‘연기 질식사’…“세 모녀, 신원 확인 어려울 정도”

    서울 종로구 여관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 희생자 6명 모두 연기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된다는 부검 소견이 나왔다.방화 피의자 유모(53)씨는 ‘왜 자수를 했느냐’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112 신고를 했다”고 답했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2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희생자 6명에 대한 부검을 한 결과 “전형적인 화재로 인한 사망이라는 1차 부검 소견이 나왔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1층 객실에 투숙했다 숨진 세 모녀는 시신이 많이 훼손돼 신원 확인이 어려울 정도인 것으로 나왔다. 경찰은 박모(34·여)씨와 14세, 11세 두 딸의 신원에 대해 “정황상 인적사항은 맞지만, 신원 확인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신이 훼손됐다”면서 “DNA 검사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5일 전남 장흥을 떠나 여행 중이던 박씨 모녀 3명은 국내 다른 여행지를 거쳐 19일 서울에 도착, 서울장여관 105호에 묵었다가 참변을 당했다. 불이 난 시각이 새벽 시간인 점, 시신이 방 안에서 발견된 점 등을 토대로 경찰은 세 모녀가 잠을 자던 중 불길이 덮쳤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박씨 세 모녀를 비롯해 6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이날 경찰은 전날 구속된 피의자 유씨를 상대로 2차 조사를 했다. 유씨는 ‘왜 자수를 했느냐’는 질문에 “‘펑’ 터지는 소리가 나서 도망가다가 나도 모르게 112 신고를 했다. 지금도 멍하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유씨는 정신병력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알 속에서 수백 마리 ‘독거미’가 우글우글

    알 속에서 수백 마리 ‘독거미’가 우글우글

    지난 14일 호주 파충류 공원(Australian Reptile Park) 직원들이 수백 마리 새끼 거미들이 알집에서 기어 나오는 순간을 포착한 영상을 외신 데일리 메일이 소개했다.  파충류 공원 공식 페이스북에 올려진 이 영상 속엔 한 직원이 말랑말랑해 보이는 알집을 칼로 자른다. 이어 핀셋으로 알집을 벌리자 그 속에서 175마리 아기 거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호주 파충류 공원 측은 “해당 거미들은 ‘아기 깔때기 그물 거미’(baby funnel web spider)이며 이런 유형의 거미는 강력한 독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수석 연구원 케인 크리스텐슨은 “이 거미들은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13개 알집에서 태어난 1,300여 마리의 깔때기 그물 거미들 중 일부”이며 “보통 한 알에서 1백여 마리가 태어나지만, 이번처럼 이렇게 많은 아기 거미들이 한 알에서 태어난 건 처음으로 겪어보는 황홀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 공원은 이들 거미로부터 독을 뽑아내는 호주 내 유일한 곳이다. 뽑아낸 독은 거미에게 물린 희생자들을 위한 해독제를 생산하는 데 사용된다. 때문에 이 거미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은 이들에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원 측은 “이 독거미들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악몽’ 같은 대상일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자식처럼 ‘사랑스러운 놈들’일 뿐”이라고 전했다.사진·영상=Best Cooking/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최만진의 도시탐구] 불쏘시개 나라 대한민국

    [최만진의 도시탐구] 불쏘시개 나라 대한민국

    서기 64년에 발생한 로마의 화재는 역사의 숱한 뒷이야기를 남겼다. 소문이기는 하나 폭군 네로 황제가 방화를 하고 리라를 켜면서 화염과 불꽃을 노래했다고 한다. 당시 화재로 200만명이 집을 잃었고 로마시의 3분의2가 잿더미로 변했다고 한다. 네로는 그 원인으로 기독교인들을 지목했고 사자에게 던지는 등의 처참한 박해를 가했다. 이처럼 화재는 큰 시련과 도전을 던져 주는 재해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최근의 제천 화재는 우리에게 또 한번의 좌절을 안겨 주었다. 이는 그 무엇보다도 화재나 건축물의 규모에 비해 인명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또한 드라이비트 건축물의 위험성이 누누이 지적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의한 대형 화재를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드라이비트는 건물 외벽을 단열하고 마감하는 가장 흔한 건축 자재다. 구조는 단열 스티로폼, 충격 보강 및 균열 방지를 위한 유리섬유, 마감재로 이루어진다. 이는 원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 독일에서 빠른 도시 재건을 위해 개발된 시공 시스템이다. 단열성이 뛰어나면서도 저렴하고 손쉽게 시공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 공법은 전 유럽으로 전파됐고, 1970년대에는 미국으로도 수출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좋은 점 많은 드라이비트의 취약점은 바로 화재에 있다. 특히 단열 스티로폼이 거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2010년 해운대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는 이를 실감하게 한다. 당시 4층에서 번진 불길이 스티로폼을 타고 38층 높이의 꼭대기까지 번지는 데는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2015년에도 동일 공법을 사용한 의정부의 한 10층 아파트가 순식간에 전소돼 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를 계기로 현재는 6층 이상의 건축물에서는 난연 및 불연성 외장재를 사용하는 것을 건축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제천 화재 건물은 이 법이 시행되기 바로 직전에 지어져 이를 피해 나갔다. 스티로폼의 또 하나 문제는 화학재료에서 나오는 유독가스다. 불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으로 수분 안에 사람을 질식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실제로 이번 제천 화재의 여성 목욕탕의 많은 희생자들은 이와 같은 건축자재가 내뿜는 유독가스에 중독돼 사망했다. 외장재와 내장재에 난연 혹은 불연 처리가 돼 있었다면 대부분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런데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드라이비트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품 옷과 장식 그리고 자동차를 사는 데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열을 올리면서도 집을 짓는 데는 매우 인색한 편이다. 특히 상가 등의 분양 목적을 위한 건축물을 짓는 데는 최소 투자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으려고 저렴한 시공 방법만을 찾는 데 혈안이 되기가 일수다. 필자에게 집을 짓기 위해 자문하러 온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돈이 부족하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돈이 없는 사람들은 땅도 건물 지을 돈도 없다. 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앞둔 우리는 이제 건축물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건물이 수익과 소득 창출 그리고 재산 증식의 중요한 수단인 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건축물은 우리 모두가 일하고 자고 쉬고 살아가는 기본적인 정주 공간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불난 집들을 TV에서 보면서 네로처럼 탄식할 것이 아니라 내 집 내 건물부터 안전하게 지어야 한다. 이를 간과할 때 우리는 로마의 화재와 같은 큰 재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사랑할수록 커지는 트라우마 “그래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해”

    사랑할수록 커지는 트라우마 “그래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해”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 세월호 침몰…. 너무나 참담한 사건·사고를 접하게 되면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얼마나 절실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2005년 백화점 붕괴 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문수(원진아)와 강두(이준호). 자신들의 목숨은 건졌지만 문수는 동생을, 강두는 아버지를 잃었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바뀐 삶을 짊어지는 것은 오로지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도 남들처럼 살아가지만, 트라우마는 지워지지 않는다. 문수는 사고 당시의 기억을 잃었고, 강두는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잡고 살려 달라던 외침을 잊지 못해 괴로워한다. JTBC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그사이)가 잔잔하게 입소문을 타며 호평을 받고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떠올리게 이 드라마는 1990년대 이후 우리 세대가 겪은 재난과 그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간 영화나 소설, 노래를 통해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거나 남은 사람들의 슬픔을 다룬 경우가 더러 있긴 했지만, 대중성과 소비성이 짙은 TV드라마에서 참사를 정면으로 다루기는 처음이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드라마는 개인의 슬픔에 매몰되지 않는다. 대신 사고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상처를 극복하고 살아가는지를 느리게 보여 준다. 사고 당시의 기억을 깡그리 잊어버린 문수에 대해 강두가 “누구는 속 편하게 다 잊고 사는 것 같아 불공평하다”고 하자 마마(나문희)가 툭 던진다. “야, 그 속이 편한지 니가 어떻게 하니. 우는 소리 크다고 더 아픈 거 아니다.” 전쟁도, 천재지변도 아닌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그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쩌면 이 시대를 대변하는 시대극일지도 모른다. 드라마는 백화점 붕괴 사고로 48명이 희생됐지만, 그 이후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 역시 사고의 피해자임을 암시한다. 함영훈 JTBC 책임프로듀서(CP)는 “가장 가깝게는 세월호 등 큰 참사를 겪은 이후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집단적인 죄책감, 혹은 상처, 안타까움 등의 감정들을 드라마로 충분히 보여 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회적 메시지나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재난 이후 사람들이 각자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극본은 위안부의 삶을 다룬 ‘눈길’을 쓴 유보라 작가가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개인의 감정 변화를 세밀하고 따뜻하게 그려낸 김진원 감독의 연출과 ‘그사이’가 데뷔작인 신인 배우 원진아의 섬세한 연기도 인상적이다. 드라마의 메시지는 5화 끝에서 문수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우리가 진짜 해야 할 일은 기억하는 것이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플랫폼 (김민수)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플랫폼 (김민수)

    사비는 순서를 기다린다. 복도의 고요함은 일부러 꾸며진 듯하다. 문이 닫히는 소리. 누군가 사비를 지나쳐 간다. 전에 본 적 없는 얼굴이지만, 그를 향한 적의가 있다. 사비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깜빡 졸았던 걸까. 그의 이름이 들린다. 관료, 학자들. 권위로 데워진 공기가 거북하다. 사비가 의자에 앉고도 그들은, 한참 동안 파일을 뒤적거린다. 넘어갔다가 돌아오고, 다시 구겨지는 문서들. 무작위적인 리듬으로, 자기 역할에 몰입한 자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사비는 그게 잘 안 된다. 침묵을 깨야 한다면, 그만한 무게를 지녀야 한다. 위원이 말한다. “우리는 첫째로 근무자들의 파견지 이탈 건을 조사하기 위해 당신을 불렀어요. 이 문제에 관해 우리는 당신에게 형식상의 협조를 바랄 뿐입니다.”반응할 틈을 주지 않고 다른 위원이 말한다. “둘째로 최근 보고된 인간 반출 사건을 조사할 겁니다. 이 경우 당신의 위치는 썩 좋지 못해요.” 기관의 배려를 기대했던가. 그래도 사비는 동요하지 않는다. 마음 작용의 세부사항들을 잃어버린 지는 이미 오래다. 그는 위원들의 질문에 답한다. 일정한 어조로 이어지는 질문들. 때로는 위원들의 질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탈과 반출. 그것은 사비의 언어가 아니다. 사비와 위원회는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한다. 위원회는 사비를 의심하고 있다. 그가 아는 만큼 말하지 않고, 교묘하게 말을 돌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비는 그들만큼이나 아는 게 없다. 오히려 그에겐 새로운 질문거리만 가득하다. 심문은 계속될 것인가? 사비는 구금되지 않는다. 위원회에 그럴 권한은 없다. 즉석에서 다음 출석을 예고받는다. 서명하고, 가도 좋다는 허락을 얻는다. 그의 뒤로 문이 닫힌다. 이미 어두워진 복도. 그는 천천히 걸어 나간다. 무수히 많은 창문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곳을 지나기가 두려워진다. 그는 골목길을 택한다. 그 길은 비밀스럽다. 불규칙한 계단을 내려가고, 곳곳에서 오래된 그림자들을 본다. 골목이 끝나는 지점은 다른 골목과 맞닿아 있다. 사비는 다른 골목에 들어설 때마다 주변을 살핀다. 담벼락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다. 왼편 불 밝힌 상점에, 진열대 사이로 점원이 보인다. 그녀는 웃고 있다. 웃음은 준비된 기호다. 그녀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미소는 신비한 제안 같아서, 사비는 다른 생각에 물들지 못한다. 달콤하다. 그냥 지나쳐 갈 수는 없다. 진열대에 술병이 빼곡하다. 사비는 화려한 단어들을 본다. 덧붙은 상징들도. 갖가지 색과 형태의 차이를 구별하기 어렵다. 모두 똑같이 중요한 동물들과 도형들. 그는 방향감각을 잃고, 발을 헛디뎌 술병을 모두 깨뜨리게 될 것만 같다. 땀이 맺힌다. 손등으로 땀을 닦는데 불쑥 인사말이 들린다. 사비는 점원의 입을, 눈을 본다. 그리고 미처 감추지 못한 수동성을 엿본다. 그녀의 조화롭지 못한 목소리가 거슬린다. 사비는 짧은 사이 실망을 내비쳤는지도 모른다. 그는 일부러 들릴 듯 말 듯 대꾸한다. 점원은 한발 물러나 웃음으로 돌아간다. 어떻든 그녀는 변함없다. 그녀가 사람이었다면, 사비는 다른 반응을 기대해도 좋았을 것이다. 선택이 한정되어 있고, 외부에서 주입되었더라도 온전히 그녀만의 것으로 머무는 감정들을. 손가락으로 아무 병 하나를 가리킨다. 그녀는 상품을 스캔하고, 가져가 버린다. 사비는 그런 행동이 그녀만큼 시늉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포장이 사비의 손에 들린다.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상점을 나선다. 사비는 단조로운 풍경을 내다본다. 버스가 이미 지나온 길도 다시 훑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느리고, 목적지에 갈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모로를 만나려면 한참 더 외진 곳으로 가야 한다. 그곳은 도시 외곽도 아니고, 마을이라 부르기에도 어중간하다. 기억이 맞는다면 이쯤에서 내려야 한다. 버스가 떠나자 어두워진다. 멀지 않은 곳에 파도가 친다. 사비는 도로를 벗어나 흙길로 들어선다. 길가를 내려다보니 경사가 가파르다. 풀이 자라지 않은 길을 골라 내려간다. 해안이 있고, 움푹 들어간 형태로 숲을 등진 주거지가 보인다. 집은 몇 채 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비는 알 것 같다. 그 집은 모로의 성향과 닮아 있다. 작고, 뽐내지 않는다. 문을 두드려 본다. 모로. 기척이 없다. 사비는 집 주위를 돈다. 창문에 얼굴을 대지만, 안을 볼 수 없다. 사비는 모래사장을 거닐기로 한다. 불을 밝힌 집이 몇 채 보인다. 이편은 어둠이다. 사비는 구두를 벗어 손에 든다. 파도 소리가 불쾌하다.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차갑고 부드러운 감촉. 그는 갑작스럽게 고향의 선율을 느낀다. 단조로운 흐름이다. 어떤 이유로 연상되는 것일까. 선율은 감각에 새겨졌고, 때때로 통증처럼 거기에 있다. 흐릿하게. 불빛 속에 남자가 보인다. 그는 작은 고깃배 옆에 앉아 그물을 손보고 있다. 사비는 그와 눈이 마주친다. 남자는 그물을 놓고 일어선다. “오늘은 너무 늦었는데.” 사비는 그를 살핀다. 심술궂은 눈. 주름들. 그리고 들쭉날쭉한 억양. 하지만 흐릿하게나마 장난기가 비친다. 관리자의 인상이다. 확신할 수는 없다. “그쪽으로 가봤자 아무것도 없을 거야.” 사비는 고개를 돌려 어둠을 본다. 그의 말이 너무나 당연하게 들린다. “초입에 있는 작은 집을 찾아왔는데 아무도 없어서.” 사비는 손가락을 들었지만, 어떤 것도 가리키지 못한다. 남자는 고개를 젓는다. 실수인 것처럼, 그의 뒤로 현관문이 조금 벌어져 있다. 그가 오랜 시간 홀로 지내왔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남자는 그물을 추스른다. “나도 이곳 사람들에 관해 별로 아는 게 없지만.” 그는 사비를 훑는다. 사비의 손에는 술병이 있다. “들어오겠나?” 그를 따라 들어간다. 다른 차원에 들어서는 것 같다. 사비는 아직도 그런 경험을 잘 설명해낼 수 없다. 테이블과 낡은 의자들과 벽에 붙은 계획표. 책장 위에 술병을 놓는다. 사비는 그가 의자를 권할 때까지 기다린다. 남자는 부엌의 작은 문을 열고 그물을 던져 넣는다. 책장의 지저분한 책들이 눈길을 끈다. 사비는 대부분의 책 제목을 알아보지 못한다. “거기 앉아.” 남자는 술을 따른다. 그는 두꺼운 책을 고른다. 그의 손은 책을 옭아매는 성긴 보금자리 같다. 사비는 술잔을 들어 입을 적신다. 책을 들고 있는 남자의 손마디를 살펴본다. 가늘고 긴 손가락에서 노동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짐작과는 다르다. 어쩌면 그는 오랜 세월 학자로서 지내왔을지도 모른다. 무엇에 관한 학자인가. 언어들? 비밀스럽고, 신비 가득한 형태로 눈을 어지럽히며 우리를 넘어서는 의도를 품고 있을 것 같은 바깥 세계의 소란. 막연히 우상화되는 시인들. 남자는 책장을 넘긴다. 미간을 찌푸린 그가 눈을 치켜뜬다. 사비는 어서 그가 무슨 말이든 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남자는 다시 책을 읽는다. 한동안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심각한 그의 얼굴이 곧 부서져 버릴 것 같다. “요즘 이곳은 어때?” 사비는 말을 꺼내는 게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남자는 책을 내려놓는다. “예전에는 좋았지. 지금은 뭐라 말하기 어려워.” 흔해 빠진 의견. “여길 떠나는 자들이 늘었지. 그게 뭘 말해주겠나? 전보다 좋아졌다고는 말할 수 없을걸.” 사비는 마지못해 수긍한다. “자네도 누군가를 찾아왔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런 건 핑계에 불과해. 난 많이 봐와서 잘 알지. 결국엔 떠나는 거야.” “아마 그렇게 되겠지.” “그렇다면 잘 선택한 거야. 여긴 매력을 잃었어. 다신 돌아오지 말게.” 남자는 다시 책을 펼쳐 든다. 사비는 침묵 안에서 흔들린다. 마음을 다잡기 어려워진다. 바깥 그리 멀지 않은 물밑 어딘가에서 불분명한 형체가 지상으로 올라온다. 모래사장에 다다랐을 때 그것은 모습을 드러낸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심해의 생명체가 몸을 비틀며 기어온다. 호흡하는 비늘과 가시들을 과시하면서. 성미 급한 놈이다. 거대한 입속으로 겹겹이 덧난 이빨에는 독이 흐른다. 놈은 모래를 파헤쳐서 구덩이를 만들고 그 속으로 숨는다. 구덩이 위를 지나는 자들을 모두 집어삼키려고. 놈의 입과 뱃속에서 희생자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모로의 흔적도 그곳에 걸려 있다. 대기는 신음으로 가득해 질식해 버릴 것 같다. 사비는 술잔을 내려놓고, 남자의 구겨진 얼굴을 다시 한번 본다. 그는 가끔 입술을 달싹이는 것 말고는 움직이지 않는다. 사비는 자신의 손과 발을 내려다본다. 시간을 체감하는 신체기관이 있다면, 그건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흉물스럽게 늘어졌을 것이다. 확장된 외연으로서 발에 차이고 목을 휘감았을 것이다. 사비는 말한다. “그래도 난 언젠가는 돌아와야 해.” “쉽지 않을 거야.” 사비는 그에게 나약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서 준비해야겠어. 언제 다시 방문하면 될까?” 남자는 손을 내젓는다. 조금 더 기다려 보지만 그뿐이다. 현관을 나선 사비는 바깥 공기에 압도당한다. 사비는 이보다 더 적은 자극을 원한다. 사비의 생각은 몇 차례나 분절된다. 구덩이라니. 잠을 자고 싶다. 잠을 자야만 벌어진 틈을 이어 붙일 수 있다. 그러지 못하면 정신은 점점 파편화되어, 말라죽은 나무의 껍질처럼 떨어져 나간다. 다른 가능성이 물꼬를 튼다. 모로의 작은 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환하다. 아니, 그 집은 모로의 집보다도 좀더 넓고 안락해 보인다. 그럼에도 사비는 그 집이 여전히 모로의 집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사비는 정원을 가로질러 간다. 잘 손질된 정원수. 초인종을 누르자 미소 짓는 점원이 나타난다. 사비는 놀라지 않는다. 그는 초대받은 사람처럼 집 안에 들어선다. 집은 거대한 하나의 침실이다. 사비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녀의 유년 시절과 일상, 갈등과 고민에 관한 이야기 속 세부사항을 통해서 그녀가 가짜가 아니라는 점을 확신하고 싶다. 그러나 그녀는 깊은 상처를 간직한 사람처럼 모든 이야기로부터 달아나 버린다. 그녀는 이미 이 세계의 어떤 이야기에도 관심이 없다. 그녀는 오직 행위의 화신으로, 사비에게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녀가 드리운 그림자 아래에서 근심 따위는 느낄 수 없다. 시간은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한다. 오래도록 평화롭다. 그러나 그녀의 품에서 사비는 결코 잠들지 못한다. 사비는 얌전히 눈을 감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의식이 또렷하다. 그는 속으로 진짜를 흉내 낸 것들을 모조리 비웃고 있다. 사비는 구두를 손에 들고 주거지의 불빛들을 지난다. 움푹한 해안선은 인위적이거나, 자연을 뛰어넘는 힘이 가해진 것처럼 보인다. 사비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힘의 작용. 가령 겨울이 길어지고, 낮 동안의 빛은 더욱 희미해지는 것. 예측할 수 없던 변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땅한 이유를 찾아 나서게 한다. 그러나 사비는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싶다. 고향에서는 더 자주 메시지를 보내왔다. 의구심을 품은 자들은 모두 돌아오라고. 사비는 그래도 아직은 끝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작고 허름한 집이 보인다. 짐승은커녕 곤충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사비는 문틈에 얼굴을 대고 문을 밀어본다. 열릴 듯이 삐걱거린다. 그뿐이다. 절망이 버티고 있는 것처럼. 다른 감정들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인기척이 있다. 보드라운 목구멍을 갓 넘어온 따뜻한 숨결이 거기에 있다. 사비는 창문을 들여다본다. 소용없는 짓이다. 물러서서 구두를 던진다. 창문이 깨지고, 깨진 틈으로 모로를 찾는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사비는 창문을 넘는다. 유리 조각에 옷자락이 긁힌다. 사비는 벽을 더듬으며 나아간다. 울음소리가 벽을 타고 온다. 한쪽 구석이다. 구석에서 소리가 난다. 사비는 다가가 몸을 기울인다. 그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기계 아기가 불가능할 것 같은 방식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본다. 그것은 기다렸다는 듯 울음을 멈추고, 감춰두었던 예리한 날로 그의 목을 긋는다. 사비는 목을 부여잡고, 고개를 숙이고 움직이지 않는다. 이 순간 생동하는 가능성을 모두 외면하기로 하자. 이미 어둠 안에 놓인 눈앞이 캄캄해진다. 사비는 자세를 낮춘다. 바닥에 무릎을 대고 거의 엎드린다. 아기를 섬기려는 것처럼,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댄다. 아기는 울음을 멈춘다. 시큼한 냄새가 난다. 따스하고 보들보들한 감촉이, 놀랍도록 위안을 준다. 손을 떼고 싶지 않다. 파도 소리가 바람에 묻히기도 한다. 사비는 그를 흔드는 손길에 의해 깨어나 돌아본다. 모로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짓누르려는 듯이. 사비도 모로를 본다. “사비. 왜 이렇게 늦었어?” 예상했던 반응은 아니다. “창문을 깨고 들어오면 어떡해.”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어.” 그러나 아기는 없다. 감정들이 고스란히 흘러 나간다. 그는 거울을 보는 것 같다. “일행은?” “혼자야. 모두 흩어졌어.” 모로는 실망을 감추지 않는다. “모로, 아기가 실제로 있어?” “있어.” “어디에?” “내 몸에.” 사비는 모로와 아기를 동시에 생각해 본다. 틀림없다. 그리고 이번에는 모로가 실수한 거라고 소리 지르고 싶다. “어쩌려고?” “데려갈 거야.” “그걸 왜?” “왜라니. 기념해야지.” “기념하기 위한 거라면 다른 걸 가져가. 더 적합한 것으로.” 하지만 사비는 더 적합한 것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냥, 인간들을 내버려 두자.” “이제 와서 그럴 순 없지.” 어떤 말을 해도 소모적일 것 같다. 사비는 문을 열고 내다본다. 반드럽게 깔린 살굿빛 사장과 바다 위로 드넓은 하늘의 풍광이 우연처럼 놓인 것 같다. 관리자의 집은 생각보다 멀지 않다. 고깃배는 보이지 않는다. “모로. 관리자를 만났어? “아니. 그는 통 잠들질 않아.” 그래서 모로는 여태껏 사비를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관리자는 찌푸린 눈으로, 어째서 그것이 기념이 되느냐고 묻겠지만. 물러서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사비는 그에게 이해를 구하지 않고, 그와 멀어져야 한다. 그가 현실의 무미건조함에 사로잡혀 있을 때, 사비는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수평선까지 배 한 척 보이지 않는다. 관리자는 그 작은 배를 타고 어떻게 플랫폼까지 가는 것일까. 사비는 문을 열어 둔다. “그가 거절할 수도 있어.” “넌 그저 꿈에서 깨어나 배를 기다리면 돼.” “이게 얼마나 대책 없는 짓인지 알고는 있는 거야?” “플랫폼에서 만나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모로는 보이지 않는다. 사비는 동작을 되감는 것처럼 자리로 돌아가 눕는다. 눈을 감고 하늘을 본다. 이해할 수 없는 거짓이다. 인간의 생에 남겨진 일이라고는 끊임없는 불만족뿐이다. 그런 그를 일부러 고통과 마주하게 할 필요는 없는데. 기념이라고? 사비는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본다. 게다가, 인간은 우리의 고향에선 살아남을 수 없다. 감각이 환경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지만 사비는, 모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모로는 사비의 첫 작품이다. 모로는 사비와 같으면서도, 그의 바깥에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모로는 흉내에 불과한가? 모로를 볼 때면 사비의 심정은 늘 복잡하다. 그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지만 막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모로는 자유롭다. 그건 사비가 줄 수 없는 매혹적인 개념이다. 고깃배가 가까워진다. 사비는 몸을 일으킨다. 관리자가 배에서 내린다. 그의 허리까지 물에 잠긴다. 배 안에는 손님이 있다. 그는 몸 대부분을 가리고 있다. 생김새는 물론 그의 형태마저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 먼 곳에서 왔으리라. 손님은 땅에 발을 딛는다. 체구가 크다. 사비는 사구에 올라선다. 그러나 손님은 사비를 의식하지 않고 사구를 돌아나간다. 그는 사비가 그랬던 것처럼, 휴식도 없이 곧바로 어떤 목적을 좇는다. 관리자가 사비에게 손짓한다. 사비는 그를 도와 배를 끌고 올라온다. “인사를 나눴나?” 사비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답하는 대신에 눈으로 먼 곳을 좇는다. “뭐, 상관없겠지.” 관리자가 앞서 배를 끌고 간다. 사비는 고물을 민다. 경사진 모래언덕이 난감하다. 사비는 배를 홀로 떠받들고 있는 것 같다. 닳고 부서지고 덧댄 흔적을 본다. 사비로서는 짐작조차 못 할 물밑의 진실을 견디는, 볼품없는 배다. 사비는 때때로 뒤를 돌아본다. 모래사장에는 깊은 족적이 남는다. 관리자는 모래도 털지 않고 그대로 현관을 넘는다. 그는 부엌의 작은 문을 열고 그물을 던져 넣는다. 먼지 앉은 잔에 술을 따르고, 계획표에 문자들을 휘갈겨 쓴다. 사비는 문틀을 붙잡고 관리자의 집 안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는 계단에 버티고 서서 말한다. “우릴 플랫폼에 데려다줘.” 관리자는 반응하지 않는다. “가능한 한 빨리 떠나는 게 좋겠어.” 그 말은 관리자에게 닿기도 전에 허물어진다. 사비는 문턱을 넘는다. 그와 동시에 부엌의 작은 문이 닫힌다. 하지만 관리자는 부엌을 돌아보지 않는다. 관리자의 널찍한 등은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옆에서 본 그는 매끈한 석상이다. 사비는 그를 찔러보고 싶다. 사비는 부엌으로 다가간다. 작은 문 너머로 속삭이는 소리, 고약한 획책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굴욕감이 드는 순간, 사비는 성급하게 문고리를 돌린다. 방 안에는 그물과 비린내와 모래가 뒤엉겨 있다. 굴욕을 만회할 수는 없다. 관리자는 펜을 놓고 돌아선다. “곧 출발할 수 있겠어.” 관리자는 계획표를 보란 듯이 손바닥으로 친다. 사비로서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관리자가 묻는다. “규모는?” “나와 내 동료 모로, 그리고 아기 하나.” 관리자는 술을 한 모금 삼키고 말한다. “인간?” “작은 인간.” “인간은 안 돼.” 가라앉은 관리자의 말투에는 파고들 틈이 없다.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얼마 전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아까 배 타고 들어오는 손님 봤지. 방침이 바뀌었어.” 방침. 애초에 그런 건 없었다. “어디서 온 손님인데?” “무례한 질문이야. 더 나은 질문을 해봐.” 사비는 그가 계속 말을 이어 가도록 내버려 둔다. “이제 단 하나의 인간도 바깥으로 나갈 수 없어. 모두 모아놓고서, 조용히 끝낼 거야. 원래 그랬던 것처럼. 그게 그가 하려는 일이야.” 생각보다 일찍 다가온 절멸 소식이 놀랍다. 그리고 그것이 벅찬 화려함 가운데 섬광처럼 오는 게 아니라 배를 타고 천천히, 거적때기를 뒤집어쓰고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당혹스럽다. 사비는 미소 짓는 점원을 떠올려 본다. 인간이 아닌 것들은? 그들은 함께 사라지거나, 새로운 주인이 되겠지. 아마도 이 계획에서 기계들은 고려되지 않았을 것이다. 감정들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머물게 하는 능력은 인간 고유의 것일까. 그렇더라도 이제는 그것의 모방만이 넘쳐나겠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다.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도 모를 거야.” “인간은 안 돼.” 그 말은 하나의 구호처럼 들린다. 관리자는 거의 즐기고 있다. 짧고 단단한 문장에 부딪혀 박살 나 버리는 다른 빈약한 문장들. 탈취와 도주의 이미지들이 의식에 흘러가도록 내버려둔다. 사비는 이보다 더 큰 말썽에 휘말릴 자신이 없다. 관리자는 벌써 이 일을 문제 삼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책을 고른다. 그가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것은 실제로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관리자는 무한히 여유롭다. 그러나 사비는 그렇지 않다. 사비는 시간을 구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다. 사비로서는 관리자와의 불균형 상태를 극복할 수 없다. 작은 인간의 무게가 그만큼 그를 누른다. 몇 가지 짧은 생각이 든다. 작은 인간이 기계로 변환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은 얼마 없다는 사실. 그리고 손님의 행방. 관리자가 손짓하며 사비의 주의를 끈다. 그는 사비가 마주 앉기를 바란다. 팔걸이가 있고, 등받이가 짧은 의자를 권한다. 그리고 사비에게 술잔을 건넨다. 사비는 한동안 의자에 꺼질 듯이 파묻혀 있다. 그는 턱을 괴고, 손가락으로 얼굴을 문지른다. 알코올 냄새가 올라온다. 어떤 생각을 재촉하려는 듯이. 그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있다. 관리자가 말한다. “그런데 네 동료는 지금 어디 있지?” “자기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난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왜냐하면. 사비는 말을 아낀다. 관리자는 사비에게서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사비는 부엌의 작은 문을 본다. 아무래도 누군가 더 있는 것 같다. 거기서 감각을 희롱하는 미세한 자극들이 흘러나온다. 관리자는 무릎 위로 책을 펼친다. “이 책을 알아볼 수 있나?” “전혀.” “이건 아주 형편없어. 두서없는 소리로 가득해.” 관리자는 손끝으로 문장을 긋는다. “그런데 여기. 이 대목을 봐.” 처벌에 관한 기록이다. 오래전 일이다. 여기에 선대 관리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지워졌다. 그는 기계에 관한 독특한 관점을 지니고 있다. 무차별. 그것은 경력을 망가뜨리는 불온한 생각이 될 수 있다. 어느 날 해변을 거닐던 선대 관리자는 도망쳐 나온 도시 기계를 맞닥뜨린다. 기계는 인간과 똑 닮아 있으나, 두려움의 표현이 어설프다. 도시 기계는 이보다 더 멀리 도망갈 수 없다. 헤엄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선대 관리 자는 도시 기계를 데려와 별장에 숨겨준다. 그는 거기서 인간처럼 지낸다. 먹고 읽으며, 잠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를 추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피 행각은 발각된다. 선대 관리자는 인간으로부터 원성을 듣는다. 도시 기계의 죄목은? 언급되지 않는다. 고향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선대 관리자와 인간을 중재한다. 간단하게 합의된 결과로 선대 관리자와 도시 기계가 같은 처벌을 받게 된다. 선대 관리자는 도시 기계로 이식되고, 성공적으로 결합한 그것은 도시로 보내진다. 그것을 뭐라고 부를 것인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후 관리자의 관할이 분명해진다. “뭐라고 쓰여 있는데?” “이 글은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쓰였다는군.” 관리자는 책을 덮는다. “그럼 지금 읽은 건 뭐야?” “그건 말일 뿐이지.” 너의 꿈속에 있는 것처럼 실체 없는 경험들이지. 눈이 감긴다. 사비는 희미하게, 부엌의 작은 문이 열리는 것을 본다. 배를 타고 들어온 손님이다. 그가 그물을 끌고 사비에게로 다가온다. 사비는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것은 가능성인가? 손님은 도심에 다다른다. 한낮의 공터에서, 그가 주목받을 이유는 없다. 그는 쪼그려 앉아 동그란 통을 내려놓는다. 단순하게 생긴 물건이지만, 잠금장치가 달려 있다. 그는 잠금을 풀고 뚜껑을 비스듬히 걸쳐 놓는다. 그것은 흐릿한 기운을 방출한다. 화산재가 분화되는 것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심각해진다. 바다 한가운데에 어색하게 솟은 지면이 있다. 사비는 생각하지 않고도 그것을 알아본다. 플랫폼이다. 간소하고, 누구도 이용한 적 없는 것처럼 깨끗하다. 사비는 배를 타고 있다. 배는 젓지 않아도 나아간다. 플랫폼 위로 모로와 유모차가 보인다. 모로는 배에 탄 사비가 플랫폼에 오를 수 있도록 돕는다. 사비는 아래를 본다. 수면에 비친 얼굴은 분명 자신의 것이 맞다. 그러나 그 모습은 불안정해서, 곧 다른 얼굴로 바뀌어 버릴 것 같다. 그는 수면을 내려다보지 않기로 하고 발을 디딘다. 플랫폼에 어렵게 올라선다. 그가 타고 온 배는 점점 멀어져 간다. 모로가 말한다. “저걸 타고 여기까지 온 거야?” “그래.” “재주도 많네.” 사비는 뒤돌아본다. 그것은 배가 아니라 가시 돋은 심해의 생명체다. 어떻게 날카로운 등 위로 올라탈 수 있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모로의 얼굴은 테두리가 불분명하다. 잘못 손대는 바람에 윤곽이 번진 것 같은 모양이다. 그러나 모로를 다른 무엇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모로란, 언제나 모로와 가장 근접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비가 말한다. “이상한 일을 겪었어.” “말해봐.” “배를 타고 들어온 손님을 봤어.” 그런데 사비는 이야기할 의욕을 잃어버린다. 이야기는 선형적으로 정돈될 수 없다. 어느 부분을 이야기하더라도 머리와 꼬리와 몸통이 뒤섞일 거란 확신이 든다. 사비가 무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면, 오직 그런 확신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다. 모로는 이야기를 기다린다. 사비는 모로의 기다림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끝이야?” “그건 아니지만. 이야기할수록 이상해질 거야.” “말해봐. 천천히, 한 마디씩.”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유모차의 바퀴가 앞을 향해 움직인다. 그렇게 가다간 바닷속으로 고꾸라질 것 같다. “그는 함정을 팠어.” 플랫폼이 기울면서 경사가 진다. 유모차는 빠르게 굴러간다. “어쩌면 내가 그에게 붙잡혀 있는지도 모르지.” 모로는 지면이 기울어도 휘청거리지 않고 서 있다. 모로는 사비보다 더 큰 목소리로 묻는다. “그가 원하는 게 뭔데?” 유모차가 바다에 빠진다. 사비는 모로를 밀치고 뛰어간다. 물 위로 빈 유모차만이 떠다닌다. 사비는 조금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엎드린다. 아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사비의 얼굴은 더는 수면에 비치지 않는다. 사비는 물속으로 뛰어든다. 그는 수영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다. 숨을 참는 것도 서툴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사비는 물속에서 자신의 몸이 거추장스럽다고 느낀다. 부품을 해체하듯, 그의 기관들을 하나씩 벗어던져 버리고 싶다. 유영에 매혹된 그는 모든 의지를 멈추게 하고 싶다. 사비는 바람 없는 골목을 걷는다. 길가에는 부랑자들이 누워 있거나 벽에 기대어 앉아 있다. 추위와 굶주림에 떠는 그들은, 사비의 구두를 본다. 그의 손에 들린 술병을 본다. 그들은 달그락거리며 바닥을 기어온다. 천천히 손을 뻗어서, 닿지도 않는 사비의 외투 자락을 당긴다. 아버지. 그들 가운데에서 들리는 말. 지금 뭐라고 했소? 사비는 그 말을 잡으려고 성큼 다가간다. 부랑자들의 넝마를 걷어차고 깡통을 뒤집는다. 형제여. 누구요? 사비는 그중 한 명의 머리채를 잡아 올린다. 그늘진 얼굴이 드러난다. 그는 사비다. 사비는 그 점을 단번에 알아챈다. 사비와 그를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재능, 어떤 노력을 발휘해도 알아낼 수 없다. 그는 구두를 벗어던지고, 넝마를 주워 든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 눕는다. 몸을 웅크리고 얼굴을 가린다. 모로가 이곳을 지난다면, 등을 돌리고 눈을 감으리라. 물속으로 거대한 손이 들어와 사비를 건진다. 사비는 플랫폼에 한쪽 어깨를 걸친다. 관리자가 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이제 가야 해.” 물속에서 몸을 완전히 빼내기가 힘들다. 도둑맞은 기분. 사비는 주위를 둘러본다. 플랫폼이 갈라지고, 돌덩어리가 솟아올랐다. 은은한 광택을 내는 검고 길쭉한 돌이, 누런 연기에 가려 희미해진다. 안개인가? 아니, 매캐한 냄새가 난다. 벌써 시작된 걸까. 관리자는 분주하다. 사비는 말한다. “내 동료가 여기 있었어.” 관리자는 사비를 플랫폼 위로 끌어올린다. “아니. 우리 둘뿐이야.” 관리자는 사비를 잡아끌어 그의 몸을 돌덩어리에 밀착시킨다. 돌덩어리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관리자는 긴 벨트로 사비의 몸통을 돌덩어리에 묶는다. 그가 벨트를 잡아당길 때마다 사비의 몸이 들썩인다. 플랫폼의 조각난 지면이 맥없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관리자는 돌덩어리의 반대편으로 돌아가 같은 벨트로 자신을 묶는다. 그가 돌을 두들기며 소리친다. 사비는 알아듣지 못한다. 돌덩어리가 한 뼘 정도 떠오른다. 돌의 회전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사비는 처음 이곳을 둘러본 이래로 자신이 추락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점점 수가 느는 모조들의 대열을 우려스럽게 바라본다. 이곳을 떠나게 된다면 그 느낌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돌의 깊은 곳으로부터 빛이 새어 나온다. 납빛이다. 그는 순식간에 삼켜지고, 튕겨 나간다. 지면에 부딪힐 때 그는 몸이 조각나는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사비는 홀로 엎드려 있다. 얼어붙은 해변이다. 돌덩어리는 보이지 않는다. 몸을 일으키자 이명을 느낀다. 그의 감각들이 적응하지 못한다. 그래도 그는 놀라지 않는다. 사비는 곧장 걸어간다. 해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걸음걸이에 여유를 가져야 할까. 길가에 자라난 풀들을 본다. 저택을 가리는 담벼락, 교차로에는 행상들이 있다. 사비는 그들의 생기 잃은 표정을 보고 고향에 왔음을 실감한다. 그는 단지 직관만으로 걸어갈 방향을 정한다. 이곳은 그다지 넓지 않아서 금방 목적지를 찾을 수 있다. 훼손된 집들이 눈에 띈다. 그럼에도 몇몇 구조물을 알아볼 수 있다. 그의 보금자리에는 폐기물이 쌓여 있다.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그곳이 한때는 집터였음을 어렵게 알 수 있다. 그는 쓰레기 더미에 기대어 앉는다. 그는 시간의 위력을 실감한다. 잠들길 바라지만. 축축하고, 악취가 올라온다. 빗방울의 점성이 높다. 모로는 없다. 사비는 경련을 일으키며 깨어난다. 그 아기다. 그의 발치로 아기가 기어온다. 어렴풋이 전해지는 작은 인간의 의도. 사비는 자세를 낮춘다. 아기는 귓속말로 그에게 꿈에 출석할 것을 통보한다. 흠잡을 데 없는 억양이다. 그러잖아도 사비는 위원회의 통보를 각오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는 돌아왔지 않은가. 사비는 아기를 앞장세워 꿈으로 향한다. 아기의 목덜미에는 번호가 적혀 있다.
  • “공기가 부족해 숨 막혀”...아빠와 1시간 통화한 딸 끝내 숨져

    “공기가 부족해 숨 막혀”...아빠와 1시간 통화한 딸 끝내 숨져

    “6층인데 앞이 안 보여. 문도 안 열려”, “조금만 참아. 소방관이 왔으니까. 조금만 참아. 힘드니까 말하지 말고. 아빠 말 듣고 조금만 참아”지난 21일 오후 4시 10분 충북 제천 화재 참사가 발생한 스포츠센터에 갇힌 딸 김다애(18)양과 통화를 하던 아버지의 가슴은 타들어갔다. 아버지는 1시간 2분 15초동안 전화를 끄지 않고 계속 통화를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딸의 기침과 신음뿐이었다. 오후 5시 12분께 갑자기 전화가 끊겼다. 애가 탄 김씨가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김양은 더는 받지 않았다. 김양은 결국 8층 현관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꽃다운 나이에 대학 입시가 끝난 뒤 찾아갔던 스포츠센터에서 참변을 당한 것이다. 화마가 엄습하는 고통의 순간을 겪는 딸의 마지막 순간을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로 생생하게 느꼈던 아버지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딸 앞에서 오열했다. 제천 화재 참사가 발생했던 지난 21일 스포츠센터에 갇혔다가 숨진 희생자들과 마지막 통화를 했던 유족들의 기억에는 아직도 8일 전 참사 당시의 악몽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시뻘건 불길이 건물을 휘감고 시커먼 연기와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오던 화재 현장을 지켜보며 발만 동동거려야 했던 유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전화로 생존을 확인하고 “곧 구조되니 조금만 버텨라”라고 응원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유족대책본부는 29일 유족들의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통화 내역과 대화 내용을 공개하며 “희생자들이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것은 아닌지 진실을 규명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이 공개한 통화 내용에는 화재 당시의 긴박함, 희생자들의 절박함, 유족의 다급했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층 여성 사우나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신명남(53)씨는 지난 21일 오후 4시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여보 불났어. 빨리 119에 신고해 줘”라고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오후 3시 57분께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신씨는 생존해 있었던 것이다.한동안 통화가 안 되는가 싶더니 오후 4시 6분께 남편이 건 전화를 신씨가 받았다. 그의 첫 마디는 “죽겠어, 살려줘”였다. 그러면서 “목욕탕 화장실 쪽 흡연실에 있어. 공기가 부족해 숨이 막혀. 여보 빨리 와”라고 말했다. 이것이 신씨가 남편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전화가 끊기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들은 것은 신씨의 목소리가 아니라 “숨 막혀”, “아, 뜨거워”, “숨을 못 쉬겠어”, “문이 안 열려”, “연기가 들어와” 등 2층 여성 사우나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애타는 목소리뿐이었다. 2층에서 목숨을 잃은 채 발견된 정희경(56)씨도 오후 4시 1분께 전화로 남편에게 화재 발생 소식을 전했다. 5분 뒤인 오후 4시 6분께 다시 통화가 되자 정씨는 “빨리 와. 연기가 많아 앞이 안 보여, 숨을 못 쉬겠어”라고 말했고, 10분 뒤 “죽겠어. 빨리 어떻게 해 봐”라고 얘기한 뒤 말을 잇지 못했다. 7층 출입문 부근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최순정(46)씨가 남편의 전화를 받은 시간은 오후 3시 56분이다. 당시 최씨는 남편에게 “여보. 불났어 큰일 났어”라고 말했다. 2분 뒤 남편이 다시 전화를 걸자 “여보 옥상으로 가고 있어”라고 말했고, 오후 4시에도 “옥상으로 간다”는 말을 남긴 채 서둘러 계단을 올라 가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이후 오후 4시 19분까지 7차례나 남편이 건 전화를 최씨는 받지 않았다. 2분 뒤 전화가 연결됐지만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최씨의 남편은 1시간 17분 52초 동안 전화를 끄지 않고 부인의 이름을 불렀으나 전화기에서는 최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유족들은 이런 통화 내용을 토대로 당국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살 수 있었는데 늑장 대처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은 아닌지 억울한 점을 풀어달라는 것이다. 유족대책본부 관계자는 “희생자들의 사망 시점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며 “진실을 규명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망 시점과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 제천 스포츠화재 수사 난항 속 유족들 참사 규명 돌입

    제천 스포츠화재 수사 난항 속 유족들 참사 규명 돌입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건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28일 경찰에 따르면 발화 지점에서 작업을 해 화재 원인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물 관리인 김모(51)씨의 구속영장이 하루전날 “김씨의 주의의무가 있는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기각된데다, 구속된 이모(53)씨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어서다. 경찰 관계자는 “구속된 이후 이씨가 입을 열기는 했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은 적극 회피하고 있다”며 “추가로 다른 증거들을 확보해 화재 원인을 규명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를 보완해 김씨의 영장을 다시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또한 화재현장에서 탈출한 2층 여탕 카운터 직원과 여탕 세신사에 대한 조사여부도 검토중이다. 유족들은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상임위원 출신이 포함된 대한변호사협회 생명존중재난안전특별위원회에 법률 자문을 맡기기로 하는 등 본격적인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법무·조사·정보·총무·언론 등 분과로 짜인 유족대책본부를 구성해 참사 책임 규명 활동에 돌입했다. 유족대책본부는 이날 “처벌보다 재발 방지를 위해 정확한 원인 규명을 요구하는 입장이었지만 명확한 ‘인재(人災)’임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소방당국 등이 소극적 대처와 은폐를 일삼아 강경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며 “오는 30일부터 특위 변호사를 선임해 공식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변협 생명존중특위는 4.16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출범한 국가재난사고 대응 전문 위원회다. 윤창희(54) 유족대표는 “출동 당시의 소방 무전 교신 내용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으나 소방 당국은 ‘무전 교신 내용은 녹음이 안된다’는 말만 한다”며 “교신 내용은 자동 녹음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편 충북도는 유족들에게는 사회재난 구호금과 주민 성금, 보험금 등이 지원된다고 이날 밝혔다. 이는 지난 9월 제정된 ‘사회재난 구호 및 복구지원 조례’에 따른 것이다. 도는 행정안전부의 ‘사회재난 구호 및 복구비용 부담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적용해 사망자의 경우 세대주는 1000만원, 세대원은 5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41만8000원(1인 가구 기준)∼158만5000원(6인 가구 기준)의 생계비도 전달한다. 부상자에게는 입원비 등을 지급 보증한다. 만일 건물주나 보험회사가 입원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도의 예산으로 우선 낸 뒤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장례비 역시 입원비와 비슷한 형식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적십자사도 기부금품 모집에 관한 법률에 따라 다음 달말까지 제천 화재 피해 돕기 모금을 통해 피해자를 지원한다. 이날 현재까지 모금액은 6100여만원이다. 도 관계자는 “조사과정을 거쳐 지원까지는 한달 이상의 시간이 에상된다”며 “희생자들의 합동위령제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이 난 스포츠센터는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화재배상책임보험에 가입돼 있다. 보상 한도는 사망 최고 1억원, 부상 최고 2000만원, 대물 피해 5억원이다. 제천 이천열·남인우 기자 sky@seoul.cokr
  • 배연창 작동 안 돼 집단 질식…“손으로 열선 얼음 털어” 진술도

    배연창 작동 안 돼 집단 질식…“손으로 열선 얼음 털어” 진술도

    연기·유독가스 등 역류 가능성 피복 손상 열선, 물 닿으면 합선 건물주 구속·관리인 영장 기각 CCTV 확보… 늑장 대응 조사 ‘2층 비상구 앞 창고 허가’ 논란 도소방본부 “벽 없이 물건만 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건을 수사 중인 충북경찰청 수사본부는 건물 직원 진술 등을 통해 발화 원인을 좁히고 있다.수사본부 관계자는 27일 “건물 관리인 김모(50)씨로부터 ‘1층 천장의 배관 동파방지용 열선을 손으로 잡아당겨 얼음을 털어내는 작업을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피복이 벗겨진 열선에 물이 닿으면 합선으로 불이 날 수 있는 것으로 봤다. 이 관계자는 또 “1층 천장에 배관이 얼지 않도록 설치한 보온등의 전기적 요인이나 과열로 천장의 스티로폼이나 보온용 천에 불이 붙으면서 번졌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경찰은 이 부분을 밝히기 위해 건물주 이모(53)씨의 불에 탄 휴대전화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복원을 의뢰하고 김씨 등 스포츠센터 직원 휴대전화 3대를 압수해 디지털포렌식으로 통화 내역을 분석하고 있다. 경찰은 휴대전화 분석으로 진술을 거부하는 이씨와 화재 발생 직전 천장에서 작업을 벌인 김씨 등의 발화 원인 은폐 및 말 맞추기 의혹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발부됐지만 김씨의 영장은 기각됐다. 김씨의 지위, 역할 등을 고려할 때 주의 의무가 존재했는지 불명확해 영장 발부를 기각했다는 게 법원의 설명이다. 스포츠센터 건물의 소방시설 미작동도 계속 드러나고 있다. 소방당국의 부실 대응 의혹을 규명 중인 소방합동조사단을 통해 화재 당시 건물 내 연기와 유독가스를 밖으로 배출하는 배연창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채 역류, 2층 여성 사우나에 갇혔던 20명을 비롯해 건물 내 희생자들이 집단 질식사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소방합동조사단은 스포츠센터 주변 상가의 폐쇄회로(CC)TV 등을 확보해 늑장대응 여부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한편 이날 스포츠센터 건물 2층 비상구 출입통로를 창고로 사용하도록 소방당국이 허가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었다. 자유한국당 홍철호(경기 김포을) 의원은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건물도면에 따르면 소방당국이 2층 여탕 비상구의 출입통로 앞을 창고로 사용하도록 건축허가에 동의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도소방본부 관계자는 “비상구 앞을 창고로 따로 만들어 사용한 게 아니다”라면서 “도면을 보면 창고와 휴게실 사이에 아무런 벽이 없다. 비상구 근처 한쪽에 물건을 갖다 놓겠다는 뜻으로, 비상구로 통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유족대책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최초 신고 시점인 지난 21일 오후 3시 53분보다 28분 먼저 불이 시작된 것을 본 목격자가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건물 관계자가 자체 진화를 하다 실패하자 뒤늦게 신고를 하면서 골드타임을 놓쳤다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제천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제천 참사 文 대응능력하고는” 한국당 靑 앞에서 기자회견…UAE 원전게이트 국조도 요구

    “제천 참사 文 대응능력하고는” 한국당 靑 앞에서 기자회견…UAE 원전게이트 국조도 요구

    자유한국당이 26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충북 제천 화재 참사에 대해 정부의 대응 능력을 맹비난했다. 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 의혹에 대해서도 ‘UAE원전 게이트’로 규정하며 대여 공세를 강화했다.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는 이날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제천 화재참사 관련자들의 처벌과 UAE 의혹의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청와대 앞에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항의성 시위를 한 것이다. 김 원내대표는 회견문에서 “제천 화재 참사는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재난안전 대처능력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제천 참사는 전형적인 ‘인재’라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며 “무엇보다 사고 당일 최초 신고 이래 희생자들로부터 소방청으로 신고된 모든 통화 기록은 반드시 공개돼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사퇴도 촉구했다. 김 원내대표는 “소방당국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희생자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분명히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며 현장진화 책임자에 대한 검찰수사, 조종묵 소방청장 파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사퇴시키라고 말했다.김 원내대표는 임 비서실장의 UAE 방문 의혹과 관련해선 “여전히 청와대가 진실을 은폐하려 하는 ‘UAE 원전 게이트’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국정조사를 촉구한다”며 “국민적 의혹이 하루가 다르게 일파만파로 증폭되는 UAE 원전 게이트 국정조사에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은 즉각 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는 더는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관련자들의 입에 자물쇠를 채우려는 시도는 그만두기 바란다”며 “청와대가 그저 ‘쉬쉬’하면서 넘길 수 있는 사안이 결코 아니다. 더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쪽방·제천 참사 현장에도 전해진 ‘사랑의 손길’

    쪽방·제천 참사 현장에도 전해진 ‘사랑의 손길’

    “메리 크리스마스! 나눔에 동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성탄절을 맞은 25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에서 구세군 자선냄비 자원봉사에 나선 장안섭(83)씨는 활짝 웃는 얼굴로 기부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날 명동 거리에는 아빠 손을 꼭 잡은 어린아이부터 추운 날씨에 팔짱을 꼭 낀 노부부까지 성탄 휴일을 즐기러 나온 인파가 가득했다. 거리에 맑은 구세군 종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앞을 오가는 시민들은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오전 11시부터 밤 9시까지 명동성당 앞을 지킨 장씨는 “종일 봉사해야 하니 두꺼운 옷으로 꽁꽁 무장하고 나왔다”면서 “크리스마스 당일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기부하는 분들이 늘어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25일 전국에서는 예수의 탄생일을 기리며 이웃들과 사랑을 나누는 봉사의 손길이 잇따랐다.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있는 제천체육관에선 자원봉사자들이 유가족들과 관계자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등 지원 손길을 보냈다. 천주교·개신교는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계층을 찾아가 이들을 위로하는 미사와 예배를 진행했다. 이날 오전 12시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하는 성탄 대축일 미사가 진행됐다. 염 추기경은 강론에서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북녘의 동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총이 내리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천주교 각 지역 교구들은 용산구 가톨릭사랑평화의집에서 쪽방 거주민과 함께 미사를 올리고,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2007년 정리해고 후 2500일 넘게 복직투쟁 중인 콜트·콜텍 노동자와 성탄 미사를 드렸다. 개신교에서는 부당 해고에 맞서 청와대 앞에서 농성 중인 하이디스 노동자들과 함께 성탄 예배를 열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KTX 해고 승무원의 온전한 복직을 위한 성탄 연합 감사 성찬례’를 열었다.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앞에서는 기독교사회연합 등이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연합예배’를 열고 성탄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예배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제주 강정마을, 사드가 배치된 경북 성주 소성리 마을 주민 등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한 기도가 이어졌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주먹구구 소방안전… ‘셀프 점검’이 제천 참사 키웠다

    주먹구구 소방안전… ‘셀프 점검’이 제천 참사 키웠다

    현 건물주는 외부업체에 의뢰 “행인”이라던 첫 신고자는 직원, 카운터서 신고 뒤 건물 빠져나가 경찰, 건물주 등 구속영장 신청29명의 희생자를 낸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의 소방안전관리를 화재 발생 4개월 전까지 당시 건물주의 아들이 맡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상식적으로 건물주 가족의 소방안전점검은 외부 전문 업체보다 느슨할 가능성이 커 이 건물의 소방안전관리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행법상으론 건물주 본인이나 가족이 일정한 자격만 갖추면 소방안전점검을 해도 문제가 없다. 즉, 본인이 본인을 감사하는 시스템이어서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충북도 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화재가 난 스포츠센터는 경매를 통해 지난 8월 현재 주인인 이모(53)씨로 소유자가 바뀌었는데, 그 이전까지는 당시 주인이었던 박모(58)씨의 아들이 소방안전관리자로 지정돼 건물을 관리했다. 박씨는 지난해 8월 아들 명의의 안전점검보고서를 소방서에 제출했다. 당시 보고서에는 소화기 충압 필요, 비상조명등 교체 등 비교적 경미한 지적 사항만 있다. 필수 피난시설인 간이 완강기와 경보설비, 스프링클러 등 소방설비 대부분은 ‘이상 없음’으로 기록됐다. 제천소방서는 지적사항에 대해서만 보완 조치가 이뤄진 것을 확인했다. 류광희 도 소방본부 대응과장은 “지적 사항만 확인하는 게 원칙”이라며 “건물주가 소방안전관리 자격증을 따 직접 관리자로 등록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현 소유자 이씨는 외부 전문업체에 소방안전점검을 의뢰했다. 지난달 말 점검 결과 스프링클러 배관 누수, 소화기 불량, 화재 감지기 작동 불량, 피난 유도등 불량 등 소방안전불량 ‘종합선물세트’라는 진단을 내놔 대조를 이룬다. 다만 이번 화재는 이 보고서가 소방서에 제출되기 전에 발생했다. 따라서 만약 이전부터 소방안전점검을 외부업체가 했었다면 이번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찰은 건물주 이씨와 건물관리인 김모(50)씨에 대해 보완 조사를 거친 뒤 26일 오전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이날 밝혔다. 현재 이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업무상과실치사상과 소방시설법 위반 등 2가지다. 스포츠센터 9층 불법 증축과 관련해서는 전·현 건물주가 모두 관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번 화재 사고의 첫 신고자가 이 건물 1층 사우나 카운터에서 근무하던 여성 직원 A씨인 것도 확인했다. A씨는 화재 발생 당일 오후 3시 53분쯤 “건물 1층 주차장 차량에 불이 났다”고 119에 신고했다. A씨는 카운터 전화로 신고한 뒤 건물 밖으로 빠져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 당시 A씨는 119에 자신을 행인이라고 밝혔었다. A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2층 사우나에도 불이 난 사실을 알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밖에 화재 현장에서 수거된 희생자들의 휴대전화 12개를 조사해 화재 발생 과정 등을 확인할 정보가 담겨 있는지도 알아볼 계획이다. 제천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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