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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는 공동체 트라우마… 5년 지난 지금이 치유 필요할 때죠”

    “세월호는 공동체 트라우마… 5년 지난 지금이 치유 필요할 때죠”

    ‘[속보] 진도 해상서 350여명 탄 여객선 조난신고…침수 중’ 2014년 4월 16일. 가라앉는 세월호의 모습을 생중계한 뉴스 속보를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 참사를 지켜본 우리의 상처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아프게 덧난다. 아무 기념일도 아니었던 그날은 5년이 지나면서 ‘추모일’이 됐다. 이 슬픔을 어떻게 기억하고 치유해야 하는가. ‘단원고 학생들이 의지하는 의사’ 김은지(정신과 전문의) 원장을 만나 답을 들어 봤다. 그는 2014년 7월부터 2016년 6월까지 경기 안산 단원고의 ‘스쿨 닥터’였다. 이후 안산을 떠나지 못한 채 ‘마음토닥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을 열고 생존자와 시민의 마음을 치료하고 있다. “한 빌라에 여러 명, 한 집 건너 한 집에서 아이를 잃은 상황이 발생했어요. 온 국민은 침몰 현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봤죠. 일대 사건을 넘어 우리 사회의 ‘공동체 트라우마’로 남았어요.”김 원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한국 사회를 이렇게 진단한 뒤 우리가 5년이 지난 지금 해야 할 일을 제시했다. “상처는 함께 입었는데 정작 이 상처를 공동체적으로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있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참사 이후 유가족과 생존자에 대한 관심만 지나쳤지 배려는 결여됐다. 더욱이 참사의 간접 피해자인 단원고 1, 3학년 학생들과 안산 시민은 관심에서도 배제됐다. 김 원장은 “공동체적 관점으로 모두를 보듬었다면, 그래서 이 슬픔을 통해 우리가 서로 연결돼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면, 추모관 건립 문제 등으로 서로 날을 세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누군가는 “아직도 치유가 필요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김은지 원장은 아직 치료를 끝낼 수 없다. “그만 기억하라고 하기엔 너무 중요한 일”이 됐기 때문이다. 매년 4월이면 단원고 출신 아이들이 그를 찾는다. 김 원장은 “학교 다닐 때는 어른들의 강요에 못 이겨 아이들이 수동적으로 치료에 임해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된 아이들은 한발 떨어져 참사를 겪은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지금’을 살아내 보기 위해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치료를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김 원장은 “재난 트라우마는 성격에 따라 양상이 다르다”고 했다. 불가피한 자연재난과 달리 세월호 참사, 대구 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등 누군가의 과실로 벌어진 인공재난 피해자는 심리 치료가 더 어렵다.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특히 세월호 트라우마는 젊은 세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김 원장은 “그 또래 아이들은 당시 상황을 지켜보며 ‘와 이것 봐. 아무도 안 지켜 주네. 어른들은 싸움만 하고 있네’라고 느꼈고 공공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전했다. ‘세월호 세대’가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김 원장이 안산에 남은 이유도 ‘신뢰’ 때문이다. 그는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나의 유일한 목표”라고 했다. ‘우리가 치유해 주겠다’며 갑자기 안산에 몰려들었다가 일순간에 떠나버리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아이들은 많은 상처를 받았다. 시간이 흐르자 좋지 않은 의도로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사람도 생겼다. ‘너희 몇 억원씩 받았다며?’라는 비수 같은 비아냥도 날아왔다. 아이들은 이런 사회와 사람에게 지쳤고, 마음의 벽을 쳤다. “아이들에게 ‘세상에 믿을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아’라고 말해 줘야 합니다. 사회는 그 말을 증명해 보여야 하고요.” 세월호의 과도한 상징성은 때론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짓누르기도 한다. 조금은 잊어야 일상을 살 수 있지만, 사회는 그들에게만 “잊지 말라”고 요구한다. 일부 생존 학생들은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과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을 보며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였다. 치료를 통해 아픔이 잊히는 것을, 또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잊히는 것을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감내하며 살아 내고 있다. 김 원장은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잘 견뎌 주어, 잘 살아 가려고 노력해 주어 참 고맙다”고 진심을 전했다. 김 원장이 보기엔 참사로부터 한발 떨어진 지금이 오히려 지원이 더 필요한 시기다. 그는 “참사 당시 유가족 중에는 ‘아이를 먼저 보내 놓고 내가 뭘 잘했다고 치료를 받나. 진상 규명이 더 시급하지’라는 생각에 심리치료를 받지 못하는 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5년이 흘렀다. 김 원장은 “긴 세월을 극복할 힘을 가지려면 꾸준히 치료받으며 살아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금씩 잊혀 가는 지금이야말로 유가족들과 우리 공동체에게 치유가 더 절실하다는 것이다.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시선도 지적했다. 김 원장은 “유가족들이 시위하면 눈물을 흘리는 분에게 카메라가 향하고, 이를 클로즈업하는 것은 ‘유가족은 이래야 한다’는 프레임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짚었다. “여전히 아프고 슬프지만, 어떤 날은 밥을 먹다가 웃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유가족도 생존자도 ‘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공감하고 연대해야 합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세월호 참사 5주기…“전면 재수사·책임자 처벌” 외친 촛불

    세월호 참사 5주기…“전면 재수사·책임자 처벌” 외친 촛불

    오는 16일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지난 13일 유족들과 시민들이 서울 도심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유족들과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세월호 참사 재수사 및 책임자 처벌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4·16 연대와 서울시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기억, 오늘에 내일을 묻다’라는 이름의 세월호 참사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의 장훈 운영위원장은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었을 때, 해양경찰이 선원들만 구했을 때 우리 아이들은 전부 살아 있었다. 누가 우리 아이들을 죽였느냐”면서 “국가는 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구조를 방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유족들은) 단 한가지를 요구한다. 우리 아이들, 304명의 국민을 죽인 살인자를 처벌해 달라는 것”이라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두 번이나 세월호 참사 재수사를 천명했다. 이제 그 약속을 지켜달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향해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동참을 호소했다. 박래군 4·16 연대 공동대표도 “우리는 5년 전의 참사를 보며 ‘4월 16일 이후는 그 전과 달라야 한다’고 다짐했다”면서 “(세월호 참사) 책임자들을 꼭 처벌해 보다 안전한 사회,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 이날 추모문화제는 낮부터 ‘국민참여 기억무대’로 시작됐다. 이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플래시몹, ‘세월호 참사 5주기 대회’ 등이 이어졌다.특히 이날 오후 4시 16분쯤 열린 ‘잊지 않을게’ 대학생 대회에서는 참여자들이 노란 우산을 들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뜻의 대형 리본 모양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또 이날 광화문광장에서는 각종 부스가 설치돼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가방고리 만들기 체험, 세월호 기억물품 나눔행사 등이 열렸다. 아울러 시민사회단체들은 서울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책임자 처벌과 5·18 역사왜곡 등 적폐청산을 촉구하는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 개혁 역행 저지, 사회 대개혁 시국회의’ 집회를 열었다. 4·16 연대 회원인 서지연씨는 무대에 올라 “참사 때 배가 가라앉는 것을 TV로 보면서도 ‘다 구조했다’는 말에 속아 안도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두려움에 떨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린다”면서 “(참사 당시) 위험하니까 탈출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끝까지 진실을 밝혀서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는 친박 단체가 이날 오후부터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집회를 열었다. 경찰은 105개 중대를 배치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으나 우려했던 충돌은 없었다.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미국 등이 협조하겠느냐” ICC 아프간 미군·탈레반 전쟁범죄 조사 거부

    “미국 등이 협조하겠느냐” ICC 아프간 미군·탈레반 전쟁범죄 조사 거부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부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과 아프간 반군인 탈레반의 전쟁 범죄 의혹을 조사하자는 ICC 검찰의 요청을 거부해 파문이 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대한 국제적 승리”라고 찬양한 반면,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 등은 중대한 전쟁범죄로 어려움을 겪어온 희생자들에게 엄청난 타격이 되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를 둔 ICC는 12일 발표문을 통해 “ICC 재판부는 현 시점에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세 판사로 이뤄진 재판부는 조사 대상인 미국과 아프간 당국, 반군인 탈레반 등이 협조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조사와 처벌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다만 ICC가 관할권을 갖고 범죄 여부를 따져볼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인정했다. 앞서 ICC 검찰의 파투 벤수다 검사장은 지난 2003년 5월부터 벌어진 미군과 아프간 정부, 반군인 탈레반의 성폭행, 포로 살해 등의 전쟁범죄 의혹에 대해 조사할 권한을 2017년 11월 ICC 재판부에 요청한 바 있다. ICC 검찰 쪽은 재판부의 결정에 대해 “더 분석해보고 가능한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ICC 재판부의 결정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한 달 전에 아프간이나 다른 지역에서 벌어진 미군의 전쟁범죄나 다른 인권유린 의혹 사건에 대해 조사하는 ICC 직원의 미국 방문 비자를 철회하거나 거부하겠다고 밝힌 뒤 나와 주목된다. 실제로 최근 벤수다 검사장은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를 방문하려고 했으나 미국 방문 여권이 철회돼 무산됐다고 밝힌 바 있다.벤수다 검사장은 앞서 아프간과 다른 지역에서 지난 2003~2004년에 미군 및 정보기관이 분쟁 관련 구금자들에게 강간과 성폭행, 고문,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는 잔인한 처벌 등을 저질렀다는 정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탈레반을 비롯한 반군 세력은 지난 2009년 이후 민간인 1만 7000명 이상을 살해했으며 아프간 정부군 역시 정부의 구금시설에 있는 수감자들을 고문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ICC는 전쟁·반인도적 범죄 등을 저지른 개인을 심리·처벌할 목적으로 지난 2002년 설립됐으며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123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인도, 북한 등은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많은 나라들도 이 기구가 아프리카 국가들이 불리하게 다뤄진다며 가입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국 시민들에게 뿐만 아니라 법의 지배 측면에 있어서” 승리라며 ICC는 “불법적”이라며 미국이나 동맹의 국민들을 기소하려고 노력한다면 “재빠르고 힘찬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앰네스티는 희생자들을 포기한 충격적인 결정이라며 이미 의심받아온 ICC 법정의 신뢰성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정부는 ICC를 오랫동안 비판해왔으며 존 볼턴 국가안보 보좌관은 지난해 9월 미국 시민들을 조사하려 한다면 ICC를 제재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세월호 신항 거치 기록화 SNS 수묵화전 눈길

    세월호 신항 거치 기록화 SNS 수묵화전 눈길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거치된 2년간의 과정을 수묵화로 기록한 작품이 SNS에 전시된다. 전남 목포 중견 작가인 정태관 화백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5주기를 맞아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블로그(http://m.blog.daum.net/mpngo1)에 ‘세월호 신항 거치 기록화 SNS 수묵화전’을 개최한다고 12일 밝혔다. 2017년 3월 31일부터 2여년 동안 목포 신항의 현장을 화첩 5권에 수묵으로 기록한 100점이다. 정 화백은 그동안 세월호가 목포 신항에 입항한 이후의 현장 모습을 그림으로 기록화하고 있다. 거치 200일과 세월호 4주기에는 기록화 70점의 작품을 SNS을 통해 그림전을 개최했다. 그는 2017년 7월 7일 세월호 목포 거치 100일에는 ‘세월호 304 서화 퍼포먼스’를 열었다. 목포평화광장에서 4시간 동안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써 내려가는 서화퍼포먼스 등을 통해 넋을 위로했다. 원작은 정 화백의 작업실 ‘화가의 집 무인카페’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러한 기획전은 미술관을 찾아가지 않고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존의 미술관 전시기법에서 탈피해 눈길을 모은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실시간으로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사회 관계망서비스(SNS) 매체를 활용한 독특한 그림전이다. 정 화백은 또 오는 13일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목포평화광장 일대(해양음악분수 인도)에서 304m 천에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한 자씩 써 내려가는 ‘시민 릴레이 퍼포먼스’를 연다. ‘정태관 화가의 집’ 주최로 희생자들의 넋들을 위로하는 문화제다. 퍼포먼스 진행 중에는 세월호를 되새기는 음악과 씻김굿 등이 다채롭게 진행된다. 마지막 34m는 정 화가의 서화퍼포먼스가 곁들어진다. 정 화백은 “희생자 304명을 기억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참사 원인과 규명을 촉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생명과 인간 존엄성 중시,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혼이 세상을 정화해 주는 횃불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동영상] 상원의원 머리에다 계란 깼던 청년 코놀리에 쏟아지는 격려

    [동영상] 상원의원 머리에다 계란 깼던 청년 코놀리에 쏟아지는 격려

    호주의 한 상원의원이 자신의 머리에 계란을 맞춰 깨뜨렸던 17세 소년에게 주먹질로 보복한 것이 정당방위였다고 경찰이 인정했다. 호주 빅토리아 경찰은 9일 성명을 내 “모든 상황을 감안했을 때 69세 어르신의 행동은 정당방위로 여겨지며 기소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69세 어르신은 지난달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가졌다가 봉변을 당한 프레이저 애닝 상원의원을 가리킨다. 그는 당시 “무슬림 이민이 너무 많아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취지로 발언했는데 뒤에서 진지하게 듣던 윌 코놀리가 갑자기 휴대전화를 켠 채 계란을 뒷머리에 부딪쳐 깨뜨렸다. 애닝 의원은 놀라울 정도로 빨리 두 차례 주먹을 날려 코놀리의 안면을 가격했다. 지지자 다섯 명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를 바닥에 나동그라지게 했다. 동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자 애닝 의원의 대응이 지나쳤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은 이날 정당방위를 인정해 애닝 의원을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 앞서 경찰은 코놀리도 공식 경고와 함께 훈방 조치했다. 다만 코놀리를 넘어뜨린 뒤 계속 발길질을 해댄 한 남성을 계속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원은 지난주 애닝 의원의 발언 경위를 조사한 뒤 9일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다만 “끔찍한 범죄의 책임을 희생자들에게 전가하면서 종교를 근거로 사람들을 모략했다”고 공식적으로 애닝 의원 발언이 잘못됐다고 인정했다. 물론 코놀리의 행동이 옳지 않다는 지적도 많지만 그는 인터넷 여론에서 “계란 소년”으로 불리며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호주 길거리에는 그의 용기가 가상했다는 벽화 등이 등장했다.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 거리에까지 번졌다. 그가 법적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며 비용을 대는 데 도움이 되라고 온라인 모금 운동이 펼쳐져 8만 호주달러(약 6500만원)가 모였다. 콘서트 티켓을 주겠다는 또래들도 많고, 유명인들의 칭찬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지난달 텐 네트워크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가 한 행동이 옳지 못했다는 점을 이해한다. 하지만 계란이 사람들을 단결시켰다”고 말했다. 애닝 의원은 의원직을 내놓으라는 온라인 청원에 140만명이 서명했지만 아직도 발언 내용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철도 사고의 위험성 알린다며 희생자들의 찢긴 옷 보여준 광고

    철도 사고의 위험성 알린다며 희생자들의 찢긴 옷 보여준 광고

    네덜란드 철도 회사가 철로 사고의 위험성을 환기시킨다며 캠페인 광고에 열차 사고 피해자들의 찢긴 옷 사진들을 등장시켜 입길에 오르고 있다. 프로레일(ProRail)이란 회사는 캠페인 광고 ‘패션 라인’을 통해 지난해 17건의 인명 사고가 발생해 2016년 이후 세 배 가까이 철로 주변 사고가 늘었다며 젊은이들에게 철도 사고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필요한 광고라고 해명했다고 영국 BBC가 5일(현지시간) 전했다. 재킷과 셔츠, 드레스, 다른 옷가지들을 죽 보여준 뒤 슬로건 “희생자의 패션, 사고로 만들어진”이 나타난다. 온라인 광고에는 옷가지를 걸친 이들이 누구이며 어떤 일로 목숨을 잃었는지까지 설명이 붙여졌다. 닳아 헤진 트레이너화 사진에는 열네 살 소녀가 선로에 떨어뜨린 휴대전화를 주우려다 열차에 치여 일년이 지난 지금도 혼수 상태로 있다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오렌지색 드레스는 열다섯 살 소녀가 친구들을 따라 철로를 건너려 했는데 장막에 가려 열차가 다가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설명돼 있다. 스티인체 판펠드호벤 네덜란드 건설부 장관은 이 캠페인 광고가 “나가도 너무 나갔다”고 공박했고, 철도 회사 NS의 마르얀 린텔 사장은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라며 “놀란 마음, 불쾌함, 공포를 느꼈다고 프로레일 경영진에게 이미 표명했다”고 말했다. 한 열차 기관사는 소셜미디어에 이 광고 때문에 충돌 사고의 악몽이 되살아났다며 “놀라울 따름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이제 극복했다고 느꼈는데 큰 실수였다. 아주 많이 고맙다”고 비아냥거렸다. 사고를 겪고 살아남은 이들도 역시 광고가 잘못됐다고 가세했다. 프로레일의 얍 아이켈붐 대변인은 “반박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며 일년 정도 논의해 만든 광고라 이렇게 의견이 갈릴 것을 알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여러분이 반박 캠페인을 벌이면 거기에서도 사람들은 긍정적인 것을 보는 이와 부정적인 것을 보는 이로 나뉜다. 사람들이 논란을 벌이기 때문에 우리 광고가 먹힌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진들로 사람들을 대립하게 만들지 않으면 계속 그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숨진 가족들 사이서 죽은 척했던 8살 소녀, 한국군 학살을 고발하다

    숨진 가족들 사이서 죽은 척했던 8살 소녀, 한국군 학살을 고발하다

    한국군이 온 가족을 처참하게 죽인 1968년 그날, 응우옌티탄은 겨우 8살이었다.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친 한국군은 방공호에 숨어 있던 가족에게 수류탄을 내보이며 던지는 시늉을 했다. 오빠가 놀라 달려나가자 총으로 쏘아 죽였다. 두려워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던 언니에게도 총알이 날아가 박혔다. 남동생은 어느샌가 이미 죽어 있었다. 한국군은 마지막으로 아기를 안고 나오던 이모를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아기도 죽였다. 죽은 척했던 응우옌티탄만 살아남았다. 베트남전 당시 퐁니 지역에서 일어났던 이 끔찍한 사건은 그의 평생을 집어삼켰다. 그날 하루에만 마을 사람 74명이 죽었다.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베트남전 때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 생존자 응우옌티탄(62)과 응우옌티탄(59·동명이인)은 4일 103명의 피해자를 대표해 청와대를 찾았다. 이들은 피해 진상조사와 희생자들에 대한 공식입장 표명, 피해 회복을 요청하며 피해자들이 서명한 청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와 유족이 한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진상조사 등을 요구하는 문서를 제출한 건 처음이다. 응우옌티탄은 기자회견에서 “8살에 불과한 어린아이였지만 그날의 기억은 너무도 선명해 한순간도 잊지 못한다”며 “제 온몸의 진실을 다 짜내서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다”고 울먹였다. 그는 “지난해 한국에서 열렸던 시민평화법정에서 모든 걸 증언했고, 베트남에 돌아가 한국 정부의 응답을 기다렸으나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면서 “1년 동안 실망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응우옌티탄 등 많은 피해자들은 지난해 4월 시민단체의 주최로 한국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 참석해 한국군의 살인, 강간 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이 법정은 대한민국 정부를 피고로 한 모의재판이었다. 주심을 맡았던 김영란 전 대법관 등 재판부 3인은 “중대한 인권침해이자 전쟁범죄의 성격을 띤다”며 대한민국 정부에 책임이 있음을 선고했다. 또 다른 피해마을 하미에서 온 응우옌티탄은 “우리 마을에 설치된 학살 피해자 135명 위령비 뒤에는 한국군이 저질렀던 범죄 사실이 낱낱이 기록돼 있었는데, 2000년 한국 정부의 압박으로 이 비문을 큰 대리석으로 가렸다”고 주장했다. 이날 청와대에 제출한 청원서에는 103명의 피해 증언록과 서명이 담겼다. 피해자들은 “한국 정부는 ‘베트남 정부가 사과를 원치 않는다’고 밝혔지만, 그 어떤 한국 공무원도 우리에게 찾아와 사과를 원하는지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정부가 일본 식민지배 당시 불법 행위에 책임을 요구하는 입장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에도 일관되게 유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피해자 서명 운동은 한국군이 파견됐던 중부 5개성 가운데 2개성 16개 마을에서만 진행됐다. 다른 지역의 피해자들도 한국 시민단체에 청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국방부 71년 만에 ‘제주 4·3’ 유감 표명 “깊은 유감과 애도”

    국방부 71년 만에 ‘제주 4·3’ 유감 표명 “깊은 유감과 애도”

    군과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최대 약 3만명의 도민들이 학살당한 ‘제주 4·3’에 대해 국방부가 71년 만에 처음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국방부는 3일 “‘제주 4·3 특별법’의 정신을 존중하며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과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제주 4·3은 1947년 3월 1일 미군정 경찰이 제주도민을 향해 발포한 사건을 시작으로, 좌익 진영 무장대가 1948년 4월 3일 일으킨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무장대와 군·경 토벌대 간 무력 충돌, 그리고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적게는 1만 4000여명, 많게는 약 3만명의 도민들이 학살당한 사건이다. 그동안 국방부는 제주 4·3은 군·경이 투입돼 무장봉기를 진압한 사건이라며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지 않고 있었다. 서주석 국방부 차관은 이날 제주 4·3 행사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을 방문해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할 예정이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이날 광화문광장 행사에 참석해 희생자들에 대해 애도를 표하며 유감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사우디 실세 빈살만, 카슈끄지 살해 대가로 자녀들에게 고가주택, 금품 지급

    사우디 실세 빈살만, 카슈끄지 살해 대가로 자녀들에게 고가주택, 금품 지급

    지난해 10월 피살된 사우디아라비아 반(反)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자녀 4명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됐던 사우디 왕실로부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대가로 각각 400만 달러(약 45억 4000만원) 상당의 집을 제공받았으며 매달 1만 달러 이상에 달하는 금액을 받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복수의 사우디 전현직 관리와 왕실 측근들을 인용해 1일(현지시간) 전했다. 생전 사우디 왕실에 대한 비판이 담긴 칼럼을 WP에 게재해온 카슈끄지는 결혼 관련 서류를 받으려고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갔다가 살해당했다. 사우디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이 사건의 배후라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사우디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터키와 미국 중앙정보국(CIA) 등은 사우디 왕실이 카슈끄지 암살을 지시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왕실의 금품 제공은 카슈끄지 자녀들이 공식 석상에서 6개월 전 일어난 사건에 대해 발언을 자제하도록 종용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사우디 관리는 밝혔다. 실제 사건 당시 사우디 왕실은 계속해서 입장을 번복해 전 세계적로부터 비난을 샀음에도 정작 카슈끄지 가족들은 왕실에 대한 비판을 자제했다. 또 다른 사우디 관리는 “지난해 빈살만 왕세자에게서 카슈끄지 자녀들에게 각각 보상을 제공하도록 승인이 났다”면서 “폭력적인 범죄 희생자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제공해온 사우디의 오랜 관행과 일치한다. 카슈끄지 자녀들은 앞으로 침묵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기고] 미세먼지와 시간복지 3종 세트/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팀장

    [기고] 미세먼지와 시간복지 3종 세트/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팀장

    요즘 우리 사회의 최대 관심사인 미세먼지를 둘러싸고 온갖 대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차량 2부제, 석탄 화력발전소 가동 중단, 인공강우 실험, 광촉매 도료 사용 등 다양한 정책들이 있지만 별무신통이다. 우리의 문명 모델을 바꾸지 않는 한 지구온난화나 미세먼지 같은 환경재앙을 막을 길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차량 2부제를 외쳐 봐야 국민들의 자발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실효성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미 우리에게 자동차 없는 삶과 생활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경감 대책은 지엽적인 미세먼지 발생 원인들과 씨름할 게 아니라 사고의 전환과 생활 패턴의 변화를 유도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차량 2부제가 소용없는 것은 경직된 출퇴근 시간과 등교 시간 때문이다. 이럴 때 사회적 규율을 조금 바꾸어 보자.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등교나 출근시간을 최소한 30분가량 늦춰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개인 차량 운행을 줄여 주는 것이다. 출근시간과 거리는 똑같고 저마다 사정이 있는데 무조건 차를 놓고 다니라며 희생을 강요하면 되겠는가. 현대사회에서 미세먼지의 주범은 우리들 바로 자신이다. 영화 ‘부산행’이 잘 보여 주듯 좀비도 원래는 정상인이었던 희생자들이다. 그런데 좀비가 된 희생자들이 다시 정상인들을 공격하는 가해자가 된다. 미세먼지에 관한 한 우리는 서로에게 가해자이며 동시에 피해자다. 이 가해ㆍ피해의 연쇄를 끊어 내기 위해 기존의 미세먼지 정책에 시간을 결합시켜 보는 것은 어떨까. 시간 문제가 나왔으니 몇 마디 더 첨언한다. 복지정책을 돈과 일자리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저마다 삶의 논리와 생활의 패턴에 따라 복지 수요가 다르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의 경우에는 점심시간을 현행 한 시간에서 30분 더 연장하거나 문화가 있는 수요일 한 달에 한 번 두 시간 일찍 조기 퇴근제를 실시하고, 모든 국민들에게는 직종과 관계없이 10년 이상 봉직했다면 1년간의 안식년을 사회와 국가가 보장해 주는 것이다. 직장과 일로 하나뿐인 인생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가. 1년이면 심신 건강의 회복과 재충전의 시간으로 충분하다. 또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고 각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 이 시간복지 3종 세트로 주 52시간 근무에 따른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고, 미세먼지도 줄이며, 국민의 행복지수와 삶의 만족도를 끌어올리면 좋겠다. 미세먼지가 심한 어느 날 문득 이런 몽상에 잠겨 본다.
  • 벨라루스 홀로코스트의 비극, 나치에 당하고 소련에 또 당하고

    벨라루스 홀로코스트의 비극, 나치에 당하고 소련에 또 당하고

    홀로코스트가 막을 내린 지 칠십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벨라루스 브레스트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는 1000여구의 유대인 주검을 발굴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새 아파트의 터를 다지던 인부가 사람뼈가 나오자 놀라 당국에 신고했고, 젊은 군인들이 조심스럽게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영국 BBC가 지난 31일(현지시간) 전했다. 군인 팀을 이끌던 드미트리 카민스키는 “두개골에 총탄 자국이 선명하다”고 말했다. 그 팀은 원래 옛 소비에트 병사들의 유해를 발굴해왔는데 이곳에서는 아기를 보듬어 안은 여인, 십대 아이들의 작은 두개골 등 완전히 다른 유해들을 수습하고 있다. 희생자들은 바닥에 엎어진 채로 머리 뒤쪽에 총탄을 맞았고, 나치가 참호를 파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면 그 위에 포개듯 사람들에게 다시 총격을 가하는 식으로 처형이 진행됐다. 1차 세계대전 전에 브레스트 인구 5만명의 얼추 절반이 유대인이었다. 나치가 1941년 6월 침공하자 5000명에 이르는 남성들이 즉각 처형됐다. 남은 이들은 철조망을 두른 담장으로 에워싸인 게토에 수용됐다. 이듬해 10월 이들을 모두 없애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게토 안의 유대인들이 기차로 끌려간 곳은 100㎞ 떨어진 브론나야 고라 숲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유해가 발견된 이들은 처음에 숨는 데 성공했다가 나중에 발각돼 처형된 이들이 함께 묻힌 게토 안의 구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 현장을 지켜보던 미하일 카플란은 “우리 부모님이 돌아왔을 때 시내는 절반이 텅 비어 있었다”며 어린 시절 식탁 주변에 둘러선 고모들과 삼촌들, 조카들의 흑백사진을 보여줬다. 모두 나치에 학살된 친척들이었다.전쟁이 끝난 뒤에도 누구도 유대인 학살을 추모하지 않았다.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가 알았지만 누구도 공식적으로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독일이 우리를 의도적으로 망가뜨렸지만 소비에트는 그저 침묵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브레스트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지하 방 한 칸에 전쟁이 끝난 뒤 정착한 유대인 공동체가 꾸며놓은 것 밖에 없다. 전시된 것들은 마룻바닥이나 담 뒤에 숨어 기적처럼 살아남은 유대인 몇몇에 대한 얘기뿐이다. 1942년 10월 15일 독일은 1만 7893명의 유대인이 브레스트에 거주한다고 기록했는데 다음날 이 숫자는 지워졌다. 유대 공동체 지도자인 에핌 바신은 “게토가 언제 말살됐는지 우리가 알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사 현장에서 많은 유해를 발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했다. “우리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유대인 처형이 시내 어느 곳에서나 이뤄졌기 때문이다. 에핌은 몇년 동안 문서 보관소들을 뒤졌다. 증인들의 증언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운명은 벨라루스 전체가 맞은 총체적 재난에 섞여 들어갔다. 에핌은 “관리들은 잊지 말자는 주문만 되뇌이지만 유대인 대목은 씻겨나갔다”며 전쟁에 대한 기억은 소련 인민에게만 맞춰지고, 반유대 주의와 “한 나라”를 강조하는 소비에트 정권을 결속하는 데만 중점을 뒀다. “그러나 그건 매우 공격적이었다. 유대인들은 나치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게 아니다. 그저 유대인이란 이유로 죽어나갔다.” 유대인 시나고그 위에 극장을 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유대인 공동묘지는 나치가 파괴하고, 다음에는 소련 군대가 파괴했다. 그 위에는 스포츠 경기장을 지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끊임없는 비명으로 고통 주는 좀비들… 우리 곁에 있었네

    끊임없는 비명으로 고통 주는 좀비들… 우리 곁에 있었네

    영화와 드라마 등 대중문화의 소재로 인기를 끌고 있는 좀비물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극단 ‘고래’의 ‘비명자들 1’이다. 끊임없는 비명으로 주변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물리적 충격을 가하는 상대에게 같은 강도의 고통을 되돌려주는 비명자들.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져 나가는 ‘비명자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지난 22일부터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개막한 ‘비명자들 1’은 비명자의 탄생 배경을 그린 작품이다. ‘비명자들’ 3부작 가운데 2017~2018년 먼저 무대에 올랐던 ‘비명자들 2’의 프리퀄에 해당한다. 연극은 아프가니스탄 미군 캠프의 파병 군인들이 무대에 오르며 시작한다. 무고한 희생자들이 살해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기업가 2세 출신의 파병 군인 ‘요한’은 그날부터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한국으로 돌아와 ‘비명자’를 처단하며 이야기의 긴장감이 더욱 고조된다. 작품 속 비명자가 좀비를 형상화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대중문화의 좀비물이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처럼 이 작품 역시 비명자들의 정체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비정규직 문제, 세월호 참사, 정치권의 정쟁과 이념 대립 등 너무 많은 것을 담았다는 느낌도 들지만, 빠른 전개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연출 등은 이를 상쇄한다. 고통을 춤으로 표현한 박이표 안무가의 에너지 넘치는 안무와 박석주 음악감독이 준비한 연주팀의 라이브 음악은 무대를 풍성하면서도 깊이 있게 만든다. ‘비명자들 1’은 ‘2018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내년 예정된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비명자들 3’는 비무장지대(DMZ)를 배경으로 그 경계 위에 살고 있는 비명자 마을의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끊임없는 비명으로 고통 주는 좀비들...우리 곁에 있었네

    끊임없는 비명으로 고통 주는 좀비들...우리 곁에 있었네

    ‘비명자들 3부작’ 중 두번째 무대비정규직·세월호 등 사회상 반영 영화와 드라마 등 대중문화의 소재로 인기를 끌고 있는 좀비물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극단 ‘고래‘의 ‘비명자들 1’이다. 끊임없는 비명으로 주변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물리적 충격을 가하는 상대에게 같은 강도의 고통을 되돌려주는 비명자들.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져 나가는 ‘비명자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22일부터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개막한 ‘비명자들 1’은 비명자의 탄생 배경을 그린 작품이다. ‘비명자들’ 3부작 가운데 2017~2018년 먼저 무대에 올랐던 ‘비명자들 2’의 프리퀄에 해당한다. 연극은 아프가니스탄 미군 캠프의 파병 군인들이 무대에 오르며 시작한다. 무고한 희생자들이 살해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기업가 2세 출신의 파병 군인 ‘요한’은 그날부터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한국으로 돌아와 ‘비명자’를 처단하며 이야기의 긴장감이 더욱 고조된다. 작품 속 비명자가 좀비를 형상화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대중문화의 좀비물이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처럼 이 작품 역시 비명자들의 정체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비정규직 문제, 세월호 참사, 정치권의 정쟁과 이념 대립 등 너무 많은 것을 담았다는 느낌도 들지만, 빠른 전개와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연출 등은 이를 상쇄한다. 고통을 춤으로 표현한 박이표 안무가의 에너지 넘치는 안무와 박석주 음악감독이 준비한 연주팀의 라이브 음악은 무대를 풍성하면서도 깊이 있게 만든다. ‘비명자들 1’은 ‘2018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내년 예정된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비명자들 3’는 비무장지대(DMZ)를 배경으로 그 경계 위에 살고 있는 비명자 마을의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軍이 주민 체포 한 달 만에 ‘묻지마 처형’… 여순사건 진실 찾나

    軍이 주민 체포 한 달 만에 ‘묻지마 처형’… 여순사건 진실 찾나

    ‘제주 4·3’ 진압 거부한 군인 대대적 토벌 군 작전 중 반란 혐의 주민 등 1만명 희생 수사 절차·재판 관련 기록 전혀 없어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를 받고 처형된 민간인 희생자들의 재심 재판이 71년 만에 열린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인 여순사건의 진실이 드러날지 주목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는 21일 내란 및 국권문란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장모씨 등 3명의 재심 결정에 대한 재항고심에서 재심개시를 결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당시 적법한 절차 없는 군경의 민간 체포·감금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고 이를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도 이에 부합한다”면서 “원심의 재심개시 결정에 관련 법령을 위반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 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라는 명령을 거부하자 정부가 대규모로 파견한 토벌군의 진압 과정에서 1만여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장씨 등은 반란군을 도왔다는 혐의로 순천을 탈환한 국군에 체포돼 22일 만에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그해 11월 처형됐다. 어떤 절차로 수사와 재판을 받았는지 아무런 기록이 없는 데다 법원 판결문에도 혐의 외에 범죄 사실조차 없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여순사건을 직권조사한 뒤 2009년 군경이 순천 지역 민간인 438명을 반군에 협조·가담했다는 혐의로 무리하게 연행해 살해했다고 결론 냈고, 장씨 등 3명의 유족들은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 결정을 두고 법원에서는 당시 군과 경찰이 장씨 등을 불법으로 체포해 감금했다고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1심은 “판결문에 구체적인 범죄사실 내용과 증거 요지가 기재되지 않았고 순천 탈환 후 불과 22일 만에 사형이 선고돼 곧바로 집행된 점 등에 비춰 장씨 등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없이 체포·구속됐다고 볼 수 있다”며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2심도 “장씨 등은 물론 다른 희생자들에 대한 영장발부 여부를 판단할 만한 자료가 없는 점 등을 보면 불법으로 체포·구속됐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검찰은 “유족의 주장과 역사적 정황만으로 불법 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재항고했다. 다만 이날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전원합의체에 참여한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4명은 재심 결정을 하면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조희대·이동원 대법관은 수사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다는 재심 사유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장씨 등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 재심을 반대했다. 그러나 다수 의견으로 대법원은 재심 결정을 확정 지었고, 재심 재판은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리게 됐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20세기 최악의 인종청소 전범 카라지치, 유엔 항소심 40년형→종신형

    20세기 최악의 인종청소 전범 카라지치, 유엔 항소심 40년형→종신형

    “전쟁 범죄의 심각성과 피고의 책임을 살폈을 때 1심에서 받은 징역 40년형은 너무 가볍다.” 1992∼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대규모 ‘인종 청소’를 지휘한 장본인인 세르비아계 정치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73)가 유엔 산하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항소심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ICTY는 20일(현지시간) 카라지치가 2016년 1심의 40년형 선고에 불복해 제기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그의 항소를 기각하고 오히려 형량을 늘렸다. 카라지치는 유고 연방이 유지되길 원하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내전을 일으켜 이슬람을 믿는 보스니아계, 크로아티아계 주민 등 수십 만명의 학살을 지휘했다. 그는 내전 이후 13년의 도피 생활 끝에 지난 2008년 체포된 뒤 대량학살, 전쟁범죄, 인권침해 등 11개 혐의로 기소돼 2014년 9월 종신형을 구형받았지만 2016년 3월 ICTY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40년형을 선고받았다. 카라지치는 내전 막바지인 1995년 7월 동부 스레브레니차의 네덜란드 평화유지군이 보호하는 안전지대 안에서 8000명의 남성과 소년들을 대상으로 학살을 자행했고, 수도 사라예보에 40개월 이상 포격 공격을 가하고 저격수를 배치해 민간인 1만여명을 숨지게 했다. 짙은색 정장과 붉은색 타이 차림으로 경호원에 이끌려 법정에 나온 그는 이날 주심 판사로부터 종신형을 선고받을 때 거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영국 BBC 등이 전했다. 그는 3심을 요구할 수 없어 확정됐다. 반면 이날 법정을 찾은 피해자들의 친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과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무니라 수바시치는 “그는 마땅히 그럴만하다”며 “난 아들을 다시 보지 못하는데 (카라지치는) 평생 캄캄한 구멍 안에 머물러야 한다. 난 고통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세계와 전범들에게 하나의 메시지가 돼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친구들이 오마르스카 수용소에 끌려가 처형당하는 것을 지켜봤던 사트코 무야지치는 달콤쌉싸래하다고 했다. “만족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살아 이 장면을 지켜보지 못했다. 그래서 진짜로 기쁘다고 말하기 어렵다.” 24년 전 비극의 현장인 스레브레니차의 추모센터에 모여 TV를 통해 선고 장면을 지켜보던 희생자들의 친지들도 손뼉을 치면서 눈물을 흘렸다. 한편 카라지치의 변호인은 보스니아 N1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은 법에 기반하지 않은 순전히 정치적인 판결로 보스니아 화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카라지치가 보스니아 내전 당시 자행된 전쟁 범죄에 ‘도덕적인 책임감’은 느끼고 있으나, 형사적인 책임은 없으며 “이번 판결은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체제인 ‘스르프스카 공화국’에 불리한 판결을 내리라는 서방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라도반 비스코비치 총리 역시 현지 방송에 출연해 이번 판결을 정치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아무도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를 겨냥해 저질러진 범죄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정식 국명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인 이 나라는 현재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로 구성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FBiH), 세르비아계 위주의 스르프스카 공화국(RS) 두 체제로 나뉘어 있다. 이슬람 신자가 주류인 보스니아계 주민이 전체의 절반을 이루고,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계 31%, 가톨릭 신도들인 크로아티아계 15%, 유대인과 집시 등 기타 민족 4%로 이뤄져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아우슈비츠 기념관 “수많은 이들이 스러진 레일 위에서 균형잡기 사진 웬말”

    아우슈비츠 기념관 “수많은 이들이 스러진 레일 위에서 균형잡기 사진 웬말”

    독일 나치가 죽음의 수용소로 이용했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를 보존하는 아우슈비츠 기념관이 수용소로 들어오는 철로 위에 올라가 몸의 균형을 잡으며 사진을 촬영하는 관광객들에게 희생자들을 제발 존중해 그러지 말라고 당부했다. 기념관은 19일(이하 현지시간) 트위터에 관광객들의 사진들과 함께 글을 올려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 간 역사적 상징인 이곳보다 평균대 위에서 걷는 방법을 익힐 만한 더 좋은 장소가 널려 있다”고 지적했다고 영국 BBC가 20일 전했다. 나치는 이곳에서 100만명 가까운 유대인과 주로 폴란드인 등 수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글이 게재되자 기념관의 메시지를 지지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프란세스카란 이용자는 “아주 필요한 글이다. 우리의 사진 찍는 습관은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름 휴가에 찾게 되면 기념관의 사진 촬영 정책을 따르도록 명심하겠다. 여러분이 계속 해왔던 꼭 필요한 일에 감사드린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적었다. 모란 블라이스는 “수많은 무고한 이들이 살해당한 그곳을 사람들이 사진 촬영 장소로나 기억하고 환하게 웃으며 셀피를 찍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2014년 브리애나 미첼이란 10대 소녀가 아우슈비츠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으며 셀피를 찍은 것이 온라인에서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나중에 그녀는 휴대전화를 통해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 2017년에도 샤하크 샤피라란 이스라엘계 독일 작가가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 촬영한 12장의 셀피 사진 뒷배경을 아우슈비츠의 조형물이나 사진 뒷배경으로 바꿔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유대인 밀랍인형 앞에서 손가락 제스처를 하는 사진이나 묘비명 위를 뛰어다니고, 저글링 묘기 등을 하는 사진과 합성하기도 했다. 샤피라는 “사람들이 정말로 하고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 이런 일을 했다고 둘러대 더 호된 질타를 받았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마오리족 갱단도 ‘하카춤’ 췄다…뉴질랜드 총격테러 희생자들 추모

    마오리족 갱단도 ‘하카춤’ 췄다…뉴질랜드 총격테러 희생자들 추모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 뉴질랜드 남섬 최대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이슬람사원(모스크) 두곳에서 일어난 총격테러의 사망자수가 51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사건 현장 인근 곳곳에 마련된 추모소에는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17일 호주 데일리텔레그래프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이날 첫번째 테러 현장이었던 마스지드 알누르 모스크 앞 경찰 저지선 근처에는 원주민인 마오리족으로 구성된 뉴질랜드 최대 갱단 블랙파워 회원 십여명이 모여 전통춤 하카를 선보였다.이날 이들 회원은 추모소를 찾은 수많은 시민에게 둘러싸인채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강렬한 춤사위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사건 발생 나흘째를 맞으면서 유족들은 희생자의 시신을 넘겨받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이슬람교 관습에 따르면 사망자는 24시간 이내에 수의를 입혀 매장해야 한다. 마이크 부시 뉴질랜드 경찰국장은 “시신 인도 전 사망 원인과 신원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며 “하지만 우리도 문화·종교적 필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고위 종교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아 희생자 명단을 작성하고 이를 가족에게는 공유했으나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다. 희생자 대다수는 파키스탄과 인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터키, 소말리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등 이슬람권 출신 이민자나 난민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익명을 원한 블랙파워의 한 회원은 “희생자 명단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쳤는지를 설명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갱이라고 부르는 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여기 공동체와 함께 살고 있다”면서 “당신이 무슨 옷을 입든, 피부색이 무엇이든, 혹은 어떤 종교를 가지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이 회원은 이번 테러에서 드러난 백인 우월주의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존재해왔다면서 사람들은 이들(백인 우월주의자들)을 의식해서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이 갱단의 또 다른 회원인 셰인 터너는 우리(회원들)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도 슬프고 내일도 슬플 것”이라면서 “지금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카는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위한 것으로 그들에게 힘을 줬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사건의 용의자인 호주 국적의 브렌턴 태런트(28)는 범행 직전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등에게 보낸 선언문에서 이민 정책 등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뉴질랜드 참극에 풋살 골키퍼 엘라얀도 희생, A리그 묵념, 크리켓은 취소

    뉴질랜드 참극에 풋살 골키퍼 엘라얀도 희생, A리그 묵념, 크리켓은 취소

    뉴질랜드 풋살 대표팀의 골키퍼 아타 엘라얀(33)이 총기 난사 참극에 희생됐다.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 크라이스트처치의 마스지드 알누르 모스크에서 기도를 올리던 그는 호주 국적의 브렌턴 태런트(28)가 난사한 다섯 정의 총기에서 발사된 흉탄에 스러졌다고 뉴질랜드축구협회(NZF)가 확인했다. NZF의 풋살 육성 매니저인 조시 마케츠는 쿠웨이트 출신으로 뉴질랜드 풋살 대표팀인 ‘풋살 화이츠’의 19경기에 출전한 엘라얀이 희생자 50명에 포함돼 있다며 “우리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고인은 풋살 화이츠 스쿼드와 풋살 커뮤니티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위대한 남자였다. 우리의 지금 감정을 어떻게 요약해야 할지 모르겠다. 처절하게 그리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앤드루 프래그넬 NZF 최고경영자(CEO)는 “풋살 커뮤니티와 슬픔을 함께 한다. 풋살인들은 매우 끈끈한 집단이라 아타의 죽음 소식이 이 게임에 관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절망을 안겼다.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한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프로축구 웰링턴 피닉스는 웨스트팩 스타디움에서 열린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와의 A리그 경기를 앞두고 엘라얀과 다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다만 17일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뉴질랜드와 방글라데시의 크리켓 경기는 방글라데시 선수들이 참극이 일어나기 몇 분 전 현장을 떠나 화를 모면했지만 정신적 충격이 상당해 취소됐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뉴질랜드 총기 참극에 묵념조차 올리지 않은 EPL, EFL, FA 향해 “위선적”

    뉴질랜드 총기 참극에 묵념조차 올리지 않은 EPL, EFL, FA 향해 “위선적”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와 풋볼리그(EFL), 그리거 축구협회(FA)까지 뉴질랜드 총기 난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데 동참하지 않아 이중 잣대를 지녔다는 입길에 올랐다. 130여명이 숨진 2015년 11월 파리 테러 때는 검정색 완장을 차고 프랑스 국가를 연주하는 등 애도의 묵념을 가졌는데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두 모스크에서 벌어져 50명이 숨지고 48명이 다친 총기 난사 참극 이후 주말 경기에 앞서 묵념의 시간을 갖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왓퍼드, 스완지시티, 울버햄프턴, 밀월이 FA컵 8강전을 홈에서 치렀는데 FA는 BBC 스포츠에 “묵념을 올릴지 안할지는 클럽의 결정에 따른다. 우리는 만약 묵념을 올리겠다는 구단이 있으면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풀럼은 17일 리버풀을 불러들인 리버풀과의 경기에 앞서 관중들이 1분 동안 환호했는데 지난달 세상을 떠난 풀럼 직원을 추모하는 뜻에서였다. FA 인종평등 위원회 의장을 지냈던 변호사 유뉴스 루낫은 위선적이며 이중잣대라고 비판했다. 루낫은 BBC 스포츠 인터뷰를 통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어떤 일이 벌어졌건, (인명 피해) 규모가 작냐 크냐에 관계 없이 축구는 늘 커밍아웃을 해왔고 묵념을 올려왔다. 1분 동안 묵념이라도 올리는 것이 옳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이런 종류의 일을 결정할 고위 임원들이 어떤 롤모델이 될 것이냐를 잘못 선택하기 때문”이라며 “스포츠, 특히 축구에서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무슬림 숫자가 적어서 그렇다. 우리가 무슬림들을 대변한다는 걸 보여주고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완벽한 기회였는데 놓쳤다. 풀럼은 추모를 했지만 뉴질랜드에서 일어났던 일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EPL 사무국은 BBC 스포츠의 코멘트 요청에 대해 지난 15일 참사 직후 트위터에 올린 대로 “이 끔찍한 사건에 영향받은 모든 이들과 함께 한다”고 밝혔다. EFL 사무국은 아직 이렇다 할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파리 테러가 일어난 다음주 화요일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친선경기를 벌였는데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2016년 7월 프랑스 니스의 바스티유 기념일에 모여든 군중을 향해 탱크로리가 돌진해 86명이 죽고 300명 이상이 다쳤을 때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 앞 아치는 프랑스 삼색기를 표현하고 프랑스 국민들과 연대하겠다는 뜻을 보여주기도 했다. 퀸스파크 레인저스(QPR) 선수들은 지난 2015년 1월 이슬람 무장 괴한이 프랑스의 풍자만화 잡지 찰리 헤브도와 여자 경찰관, 유대인 시장을 공격해 사람들이 희생됐을 때도 묵념을 올렸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세월호 희생자 304명 영정, 광화문광장서 떠난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 영정, 광화문광장서 떠난다

    세월호 천막 철거를 하루 앞두고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이안식이 열렸다.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는 오늘(17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희생자 304명의 영정을 옮기는 이안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희생자 가족과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해 추모했다. 먼저 불교, 기독교, 천주교 순으로 종교의식이 진행됐고,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과 장훈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의 추모 낭독이 이어졌다. 박 소장은 “304명의 영정을 빼고 분향소를 닫는 것이 끝이 아니다. 진실을 마주할 때까지 행진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훈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못 했는데 광화문 분향소를 정리한다는 것이 가족들에게는 힘이 든다”면서 “하지만 광화문광장은 시민의 공간임을 잘 알기에 이안식을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영정을 옮기는 절차가 진행됐다. 사회자가 고인을 호명하면 희생자 가족이 나와 영정을 받았다. 사회자가 단원고 반별로 희생자들을 한 명씩 호명하자 유가족들은 눈물을 터뜨렸다. 영정은 서울시청 신청사 지하 서고에 임시 보관될 예정이다. 분향소 천막 14개 동은 오는 18일 오전 10시 철거된다. 철거가 끝나면 이곳에는 ‘기억·안전 전시공간’이 마련된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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