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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의 편지, 아들의 면도기 챙기며… 세월호 가족은 10년을 버텼다

    딸의 편지, 아들의 면도기 챙기며… 세월호 가족은 10년을 버텼다

    딱 10년 전인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476명 탑승자 가운데 304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대다수는 수학여행을 떠났던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었다. 누군가는 이제 잊으라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긴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기억 덕분이었다. 아이들이 남긴 물건들 속 추억에서 아이들을 다시 만나며 남은 이들은 상실의 아픔을 견뎌 내고 문 밖으로 나왔다. 단원고 학생 37명의 가족은 그렇게 보관해 왔던 희생자들의 생전 물품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서울신문은 15일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물품 특별전 ‘회억정원’이 열리는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3명의 가족을 만나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 준 아이들의 물건을 통해 지난 10년을 돌아봤다.2학년 9반 조은정양은 사고가 난 그날 “제주도에서 엄마 생일 선물을 사 올게”라며 집을 나섰다. 엄마 박정화(57)씨는 그 후로 생일만 되면 은정이가 고1이던 2013년 마지막으로 써 줬던 편지를 꺼내 본다. 박씨가 늦게 일을 마친 뒤 집에 들어서자 케이크를 들고 나타나 노래를 부르며 딸이 건넨 편지다. “엄마, 식당 일하느라 마음도 아프고 몸도 쑤실 텐데 집에 와서 또 집안일 해야 하니까 힘들지?…나중에 취직하면 첫 월급으로 엄마한테 명품 가방 사 줄게. 효녀 은정이가.” 약사가 되어 자신은 약국을 열고 엄마는 같은 건물에 미용실을 차려 주겠다던 은정이는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표를 받으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이였다. 주말이면 식당 일을 도왔다. 장사가 어려워지자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몰래 장학금을 신청하기도 했다. 책임감이 강한 은정이는 고2 땐 부반장도 맡았다. 은정이가 떠난 후 가족들은 종교를 떠났고, 참사 이듬해 겨울엔 고향 같던 안산도 떠났다. 그러다 4년 만인 2019년 다시 안산으로 돌아왔다. 은정이의 흔적이라도 회상하며 살고 싶어서였다. 박씨는 2018년부터는 가족들과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가 고마운 사람들을 찾아갈 때”라고 생각해서였다. 공원을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고, 수해 현장 등 곳곳을 갔다가 세월호 참사 때 자원봉사자로 마주쳤던 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박씨는 말한다. “은정이와의 추억이 희미해져 가는 게 안타까워요. 다음 세대들은 생명안전공원에 보관될 이 물건들을 보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 주면 좋겠어요.”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10살이나 어린 동생의 끼니를 챙기던 이태민(2학년 6반)군. 그 영향인지 태민이의 꿈은 요리사였다. 태민이 엄마 문연옥(52)씨는 ‘불 앞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다’며 걱정했지만 아들은 “고등학교 가서도 꿈이 변하지 않으면 요리학원에 보내 달라”고 했다. 늘 동생들 먼저 챙기느라 또래들이 입는 유명 브랜드 옷에 눈길 한 번 안 주던 태민이가 처음으로 엄마에게 한 부탁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의 부탁을 들어 줬다. 고1 때부터 요리학원에 다닌 태민이는 곧바로 한식 자격증을 땄다. 어느 날 “프라이팬을 사도 되느냐”고 물었다. 조리 연습하느라 바닥이 군데군데 긁힌 프라이팬을 몇 년이나 쓰다 머뭇거리며 꺼낸 말이었다. 마음껏 지원해 주지 못해 미안한데도 꿈을 위해 노력하는 마음이 대견해 엄마는 새것을 사 주고도 그 낡은 프라이팬을 버리지 못했다. “우리가 간직한 물건들은 우리에게는 아이들 그 자체예요. 아이들을 사랑했던 부모의 마음도 여기 담겨 있어요.” 태민이가 떠난 후 엄마는 오랫동안 하던 미용실 일도 그만뒀다. 태민이 또래의 아이들 머리를 만지면 마음이 무너질까 봐서였다. 문씨는 세월호 가족끼리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나누기 위해 만든 공간인 ‘4·16공방’에서 위안을 얻고 있다. 먼저 간 자녀들 이름으로 서로를 부른다고 한다.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꽃말의 노란색 팬지도 얼마 전 심었다. 참사 후 5년 넘게 아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노력했던 문씨는 ‘안전한 사회’를 위해 다시 힘을 내겠다고 했다.친구와 놀다가도 맞벌이하는 부모님 대신 일곱 살 어린 동생을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향했던 임경빈(2학년 4반)군은 그렇게 속 깊은 아들이었다. 엄마 전인숙(52)씨는 “첫째라는 이유로 너무 강하게만 키웠나 싶다”며 울먹였다. 학년이 끝날 때마다 방을 정리하던 습관 때문에 경빈이의 방 안은 원래도 물건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도 참사 직후 가족들이 엄마가 너무 고통스러워할까 방을 깨끗이 치웠다. 하지만 전씨는 나중에 안방과 거실, 화장실에서 경빈이의 흔적을 그러모았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때 찾은 경빈이의 면도기를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지고 있다. 수학여행을 가기 전 경빈이가 아빠에게 면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 아빠를 따라 거품을 바르며 웃던 경빈이의 얼굴을, 그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서다. 전씨는 2017년 목포신항에서 세월호가 인양된 뒤 휴대전화 등 유류품과 미수습자 수습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지켜보는 감시단 활동을 하다 대상포진에 걸렸다. 2021년 초까지 청와대 앞에서 1년 이상 피켓 농성과 석 달 노숙 농성을 마치고 수술까지 했다. 경빈이가 구조되지 못한 이유를 밝힐 증거를 놓칠까 봐 교통사고를 당해도 쉬지 못했다. 단원고 4·16 기억교실에서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알리는 활동을 여전히 이어 가고 있는 전씨는 말했다.“참사 이후에 선박안전법 등도 개정됐고 안전의식도 조금은 나아졌지만 아직도 바뀌어야 할 게 많아요. 이런 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아야 아이들의 명예가 정말로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면도기·프라이팬·마지막 편지…물건에 담긴 기억과 ‘세월호 10년’

    면도기·프라이팬·마지막 편지…물건에 담긴 기억과 ‘세월호 10년’

    10년 전인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476명 탑승자 가운데 304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대다수는 수학여행을 떠났던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었다. 누군가는 이제 잊으라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긴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기억이었다. 아이들이 남긴 물건 속 추억에서 아이들을 다시 만나며 남은 이들은 상실의 아픔을 견뎌내고 문밖으로 나왔다. 단원고 학생 37명의 가족은 그렇게 보관해 왔던 희생자들의 생전 물품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서울신문은 15일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물품 특별전 ‘회억정원’이 열리는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3명의 가족을 만나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준 아이들의 물건을 통해 지난 10년을 돌아봤다. 한번 밖에 쓰지 못한 경빈이의 면도기 한 학년이 끝나면 방에서 필요 없는 물건 한 아름을 꺼내 버리던 2학년 4반 임경빈군의 방에는 물건이 많지 않았다. 참사 직후 가족들은 엄마 전인숙(52)씨의 고통이 커질까 봐 방을 깨끗이 치웠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도와 친구와 놀다가도 7살 어린 동생을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가던 경빈이는 전씨에게 각별한 아들이었다. 전씨는 “첫째라는 이유로 너무 강하게 키웠나 싶다”며 기억을 더듬다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전씨가 참사 직후 안방과 거실, 화장실에서 경빈이의 흔적을 찾아모은 것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때 찾은 면도기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수학여행을 가기 전 TV를 보던 경빈이는 아빠에게 “나도 면도를 해야 해”라고 물었다. 수염이 아직 자라지 않았던 경빈이의 얼굴을 본 남편이 망설이자 전씨는 “아빠가 가르쳐주면 되겠네”라고 했다. 아빠를 따라 거품을 바르며 웃는 경빈이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고 전씨는 회상했다. 그 후로 경빈이는 이 면도기를 쓰지 못했다. 목포신항부터 광화문 광장까지엄마는 아들 위해 싸우고 연대했다 경빈이가 떠난 뒤 전씨는 지난 10년간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 2021년 초까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년 이상 피켓 농성과 세달 가까운 노숙 농성을 마친 뒤엔 수술을 받아야 했다. 2017년 목포신항에서 세월호가 인양된 뒤 휴대전화 등 유류품과 미수습자 수습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지켜보는 감시단 활동을 하다가 대상포진에 걸리기도 했다. 경빈이가 구조되지 못한 이유를 밝힐 증거를 놓칠까 봐 교통사고를 당해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수습된 유류품을 씻어 보존하는 일도 전씨를 비롯한 부모들이 도맡았다. “이렇게 오래 싸워야 할 줄 몰랐다”는 전씨는 경빈이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버티고 또 버텼다. ‘내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거리로 나왔다’며 시간을 쪼개 힘을 보내주는 이들을 만나다 보니 다른 참사 피해자들과도 연대하게 됐다.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을 때,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피해자나 장애인부모연대 소속 부모들이 거리로 나설 때면 곁에 있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분향소도 지켰다. 경빈이와 같은 반 엄마들이 경빈이의 동생을 돌봐준 덕분에 전국 곳곳을 다닐 수 있었다. 단원고 4·16 기억교실에선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알리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전씨는 “참사 이후에 선박안전법 등도 개정됐고 안전의식도 조금은 나아졌지만, 아직도 바뀌어야 할 게 많다”며 “이런 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아야 아이들의 명예 회복이 이뤄지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요리사 꿈꾸던 태민이의 첫 프라이팬 2학년 6반 이태민군의 꿈은 요리사였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자기보다 10살이나 어린 동생의 끼니를 챙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꿈이 생겼다. 태민이의 엄마 문연옥(52)씨는 ‘불 앞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다’며 걱정했지만, 태민이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꿈이 변하지 않으면 요리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늘 동생들을 먼저 챙기느라 또래들이 입는 브랜드 옷에는 눈길 한번 안 주던 태민이가 처음으로 문씨에게 한 부탁이었다. 고1 때부터 요리학원에 다닌 태민이는 곧바로 한식 자격증을 땄다. 어느날 문씨와 함께 마트에 간 태민이는 머뭇거리면서 “프라이팬을 사도 되느냐”고 물었다. 음식 만드는 연습 하느라 바닥이 군데군데 긁힌 프라이팬을 쓰다 겨우 말을 꺼낸 거였다. 태민이에게 새 프라이팬을 사준 뒤 문씨는 태민이가 원래 쓰던 프라이팬을 줄곧 간직해왔다. 꿈을 위해 노력하는 태민이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마음껏 지원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그 마음을 담아두고 싶어서였다. 어느덧 태민이만큼 자란 막내“사랑하는 마음도 전해지길” 태민이의 막냇동생은 어느덧 태민이와 같은 고2가 됐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문씨는 아직 단원고를 보는 바라보는 게 편치만은 않다. 기억교실이 단원고를 바라보는 곳에도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게 가족들에겐 상처로 남았다. 막내딸이 단원고에 떨어졌을 땐 내심 다행이라고 문씨는 생각했다. 문씨는 “태민이와 같은 교복을 입은 막내딸을 보면 태민이가 생각나 속상한 마음이 먼저 들까 봐 딸에게도 미안했다”고 했다. 오랫동안 하던 미용실 일도 그만뒀다. 문씨는 “처음엔 태민이 또래의 아이들 머리를 만지면 마음이 아플 것 같았다”면서 “손님들이 갑자기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꺼내면 대처를 못 할까 두려운 마음도 컸다”고 전했다. 요즘은 4·16공방에서 활동하면서 위안을 얻는다. 유가족들을 위로하러 찾아온 자원봉사자로부터 자수 등을 배웠던 엄마들과 함께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꽃말의 노란색 팬지를 심기도 한다. 참사 이후 5~6년 동안은 아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노력한 문씨는 안전한 사회를 위해 다시 힘을 내보겠다고 다짐했다. “우리가 간직한 물건들은 우리에게는 아이들 그 자체에요.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아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그 물건들을 꺼내 보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겠어요. 세월호의 아픔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을 사랑했던 부모의 마음도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은정이가 엄마에게 보낸 마지막 생일 편지 10년 전, 제주도에서 엄마의 생일 선물을 사 오겠다던 2학년 9반 조은정양은 돌아오지 못했다. 은정이의 엄마 박정화(57)씨는 그 후로 생일만 되면 은정이가 고1이던 2013년 마지막으로 써준 편지를 읽는다. 박씨가 늦게 일을 마친 뒤 집에 들어서자 케이크를 들고 나타나 노래를 부르며 건넨 편지다. “엄마, 식당 일하느라 마음도 아프고 몸도 쑤실 텐데 집에 와서 또 집안일 해야 하니까 힘들지?…(중략)…나중에 취직하면 첫 월급으로 엄마한테 명품 가방 사줄게. 효녀 은정이가.” 은정이는 늘 엄마와 아빠가 먼저였다. 약사가 되어 자신은 약국을 열고 엄마는 같은 건물에 미용실을 차려주겠다던 은정이는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표를 받으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이였다. 주말이면 식당 일을 도왔다. 장사가 어려워지자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몰래 장학금을 신청하기도 했다. 책임감이 강한 은정이는 고2 땐 부반장이 됐다. 안산 떠났다 은정이 찾아 돌아온 엄마봉사로 위안…“생명안전공원에서 기억하길” 그런 은정이가 사라지고 나선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믿었던 종교를 떠났고, 참사 이듬해 겨울에는 안산을 떠나기도 했다. 다니는 곳곳에서 은정이의 흔적이 남아 있어 가족 모두가 괴로워서다. 등굣길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은정이가 손을 흔들면서 “엄마!”라고 부를 것 같았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안산을 떠났다가 4년 만에 다시 안산으로 돌아왔다. 조금 남은 은정이의 흔적이라도 그리워하며 살고 싶어서였다. 박씨는 2018년부터는 가족들과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5월 안산 화랑유원지에 있던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철거된 이후 “이제는 우리가 고마운 사람들을 찾아갈 때”라고 생각해서였다. 공원을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을 하고, 수해 현장 등 곳곳을 가다 보면 세월호 참사 때 자원봉사자로 마주쳤던 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박씨는 인터뷰 중간중간 은정이가 박씨에게 썼던 편지와 학교에서 받았던 상장과 2학년 부반장 임명장이 전시된 곳을 연신 바라봤다.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은정이의 추억들이 잊힌다. 우리가 죽더라도 다음 세대들이 생명안전공원에 보관될 이 물건들을 보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면 좋겠어요.”
  • 빛바랜 팽목항 리본… 노란 물결이 살아났다

    빛바랜 팽목항 리본… 노란 물결이 살아났다

    “아직도 딸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10년이나 지났지만, 금방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요.”(세월호 참사 희생자 조은화양 어머니 이금희씨)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추모객들은 이제 빛을 잃어 색깔조차 구분이 힘든 노란 리본을 고쳐 달거나 새로 가져온 샛노란 리본에 ‘미안하다’는 문구를 적어 넣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가장 많이 목숨을 잃은 1997년생 학생들과 동갑인 자녀가 있다는 차연순(60)씨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가슴 한편이 저린데 자녀를 떠나보낸 유가족의 아픔은 감히 상상할 수도, 헤아릴 수도 없다”며 눈물을 훔쳤다. 팽목항을 찾은 추모객들은 전남도에서 연 추모제에 함께해 검푸른 빛의 바다에 하얀 국화 여러 송이를 바다에 띄우기도 했다. 인근 공터에 마련된 ‘0416팽목기억관’을 찾는 이들도 있었다. 1997년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추모객은 검은색 펜으로 ‘10년 동안 한번도 찾아오지 못해 미안하다’는 글을 적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바다에서 인양된 세월호가 2017년부터 거치 중인 전남 목포신항에도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드문드문 이어졌다. 미수습자 5명의 영정 사진 옆에는 생전 고인들이 좋아했던 음식물이 가지런히 놓였다. 지난 13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침몰 해역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주최로 선상 추모제가 열렸다. 희생자인 경기 안산 단원고 조은화 학생과 허다윤 학생의 부모는 이날 추모제에서 먼저 간 아이들을 위해 빌었다. 조은화 학생의 어머니 이금희씨는 “지금까지도 (자녀를) 찾지 못한 분들은 몹시 (마음이) 아플 것”이라면서 “어느 한 부분이라도 찾아서 ‘그래도 돌아왔구나’라는 작은 위로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년 넘게 팽목항을 지켜 딸의 주검을 찾은 그는 미수습자 가족 생각을 먼저 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서울과 진도, 광주, 인천 등 전국 곳곳에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제가 진행된다. 4·16재단은 16일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인근 참사 해역에서 유가족이 참여하는 선상 추모식을 연다. 또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노란 리본 공작소와 노란 종이배 퍼포먼스 등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부스가 마련됐다.
  • 시간의 경계선이 묻는다… 당신도 ‘표준시’가 있는가[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시간의 경계선이 묻는다… 당신도 ‘표준시’가 있는가[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경도 0 ‘본초자오선’ 지나는 장소경계선 하나가 어제·오늘의 기준혹은 ‘그날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내게도 그와 같은 전환점 있었다융 심리학 독학하면서 ‘나’를 만나타인의 인정 필요 없는 날 위한 삶트라우마 이길 ‘회복 탄력성’ 절실슬픔이 제때 해방될 수 있게 해야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곳이 치유적인 공간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을 때가 있다. 그리니치 천문대도 나에게는 그런 곳이다. 그때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기에 방문했는데, 지금은 ‘나에게도 개인적인 의미를 지닌 곳’으로 바뀐 것이다. 세계 표준시의 경계를 나누는 장소인 그리니치 천문대 이야기를 구상하다가 나는 내 삶의 ‘표준시’는 언제였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그리니치 천문대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그 유명한 ‘본초자오선’(경도 0을 가리키는 기준선)을 가리키는 금빛 라인 위에 서서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 댄다. 한 발은 ‘왼쪽’에 걸치고 한 발은 ‘오른쪽’에 걸치는 인증 샷이 가장 표준적인 포즈였다. 그 가느다란 세계 표준시의 경계선 하나가 어제와 오늘을 나누는 것이 새삼 경이로웠다. 인간의 삶은 ‘어제와 오늘’, ‘과거와 현재’, 혹은 ‘그날 이전과 그날 이후’로 나뉘는 것 같았다.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나는 내 삶을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누는 순간이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았다. 내 삶의 표준시, 그것은 ‘트라우마의 존재를 이해하기 전’과 ‘트라우마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치유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후’로 나뉘어 있었다. 내게는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기 전과 후, 융 심리학을 공부하기 전과 후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융 심리학을 공부하기 전 나는 모든 상처에 극도로 예민했다. 내 슬픔뿐 아니라 타인의 슬픔에도 극단적으로 과몰입하는 탓에 힘겨워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며칠간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하는 성격이었다. 상처를 잘 받을 뿐 아니라 상처 있는 사람에게 자석처럼 이끌리는 나였다.이렇듯 상처에 취약한 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융 심리학을 독학한 이후부터 내 인생의 시계는 다른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내 상처를 바라보는 마음에 여유가 생기게 된 것이다. ‘내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준 사람, 나에게는 스스로를 치유할 뿐 아니라 타인의 아픔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넘쳐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 사람이 바로 카를 구스타프 융이었다. 융은 ‘의식적인 차원’에서는 콤플렉스로 가득한 삶일지라도 ‘무의식의 차원’에서는 수많은 가능성과 눈부신 잠재력으로 가득한 것이 인간의 마음임을 일깨워 주었다. ‘상처 입은 의사만이 타인을 치유할 수 있으며, 그리고 그 의사가 스스로를 치료한 만큼만 타인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 융의 생각이었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이 오히려 타인의 아픈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니. 바로 이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는 개념은 내게 커다란 인식의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나는 내가 입은 모든 상처보다 더 강력한 존재라는 것, 나는 나에게 상처를 준 모든 사람들의 악행과 폭언을 다 합친 파괴적 에너지보다도 더 강력한 치유의 에너지와 창조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니치 천문대의 본초자오선이 그 얇은 선 하나만으로도 ‘어제’와 ‘오늘’을 가르듯이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개념은 내 인생에 엄청난 전환점을 선물해 주었다. 인생의 꿈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작가가 되고 싶었고, 성공도 하고 싶었고, 세상 사람들의 인정도 받고 싶었던 내가 이제는 난데없이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고 싶다니. 이런 내적인 변신은 내 삶에 커다란 평온을 안겨 주었다.나는 내가 부서지고 망가져서 나 자신은커녕 남도 돌볼 수 없는 상태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나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상처를 충분히 겪어 보았기에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었고, 상처로부터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에 ‘치유하는 마음’을 아는 사람이었으며, 트라우마 이후 오히려 예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기에 ‘상처 이후의 성장’(post-traumatic growth)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번드르르한 명함이나 성공이나 업적으로 인정받는 삶이 ‘에고’(ego:사회적 자아)를 위한 것이라면, 그 모든 상처에도 불구하고 상처에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삶을 선택하기로 한 것은 ‘셀프’(self:내면의 자기)의 결정이었다. 나는 에고보다는 셀프를, 타인의 인정보다는 나 자신과의 투명한 만남을 선택하는 충만한 존재가 되고 싶어졌다. 좁디좁았던 마음이 무진장하게 넓어지고 내 삶의 바운더리 자체가 한없이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또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이제 아무한테도 정 주지 않을 거야’라고 결심했던 딱딱한 마음이 한없이 말랑말랑해지고 촉촉해져서 이제 누구든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 되었다. 그리니치 천문대의 본초자오선을 한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타인의 눈치를 보는 에고에서 오직 나만으로도 충분한 셀프로, 사회적 자아에서 내면의 자기로 변신하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던 존재에서 ‘오직 나 자신과의 약속’을 중시하는 존재로 변신하고 싶었다. 경쟁이나 성공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믿는 가치들을 위해 싸우고 싶었다. 그리니치 천문대의 본초자오선은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었다. ‘당신의 표준시는 언제입니까’라고. 나의 표준시는 ‘내가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기 전과 후로 나뉘고 있었다. 그 수많은 트라우마들로 인해 내가 결코 망가지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 에고를 둘러싼 겹겹의 울타리들이 와르르, 기쁘게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안정된 직장도 없고 보장된 미래도 없었지만 나는 뚜렷한 목적도 없이 머나먼 이국땅을 오랫동안 떠돌면서 비로소 ‘진짜 나 자신’이 되는 해방감을 맛보았다. 그 모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이었다. ‘똑똑한 장녀’를 향한 부모님의 지나친 기대로부터, ‘서울대 박사학위까지 있는 사람이 왜 취직을 못 하나’라는 식으로 나를 바라보는 뭇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내 또래 친구들이 결혼하고 출산하고 진급하며 그 모든 인생의 속도를 비교하는 인생의 전쟁터로부터 처음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그리니치 천문대에서 나는 ‘그래,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자’라고 마음먹었다. 화려한 에고의 인생이 아닌 충만한 셀프의 인생을.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이 아니라 오직 내 안의 꿈과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는 삶을. 트라우마는 한 사람의 평생을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눈다. 자극의 강도를 조절하면 완화되는 일반적인 스트레스와 달리 트라우마는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 자체를 앗아갈 수 있다. 깊은 트라우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아주 작은 자극만으로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필요 이상으로 상처받는다. 한마디로 모든 상처에 취약해진다. 트라우마를 제때 치유하지 못하면 삶의 온갖 고통스러운 통과의례를 견뎌낼 수 있는 회복 탄력성 자체가 약해져 버린다. 남들은 무리 없이 잘 견뎌내는 상처에도 홀로 힘들어하고, 남들은 ‘상처’로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고 슬픔에 북받치게 된다. 나는 사랑받는 존재라는 믿음, 나는 희망찬 미래를 꿈꿀 자격이 있다는 자긍심, 극한의 상황에서도 내가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회복 탄력성의 근간을 이룬다. 이렇듯 개인뿐 아니라 조직이나 사회 또한 일종의 회복 탄력성을 필요로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는 매뉴얼이나 시스템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힘들 때마다 우리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다’라는 믿음, 아무리 급한 순간에도 ‘타인의 목소리’를 골고루 듣고 중대사를 결정하는 민주주의적 습관, 모든 것이 돈과 권력의 문제로 결정되어서는 안 되며 삶의 가장 소중한 주춧돌은 사랑과 우정과 신뢰로 시작되어야 한다는 집단적인 공감대가 필요하다. 일종의 사회적 회복 탄력성이 절실한 것이다. 나쁜 일이 생겨도 힘을 합쳐 이겨낼 수 있다는 공동체적 믿음이야말로 이 사회적 회복 탄력성의 근간이 된다.그렇다면 우리의 삶을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누는 집단적 트라우마의 시간은 언제였을까. 수많은 사건들이 우리의 가슴을 할퀴고 지나갔지만, 2000년대 이후의 사건들 중에서는 ‘세월호 사건’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집단적 트라우마로 남았던 것이 아닐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10년이 되었고 올해 들어 ‘세월호 10주기’를 추모하는 수많은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전국시민행진단은 세월호 희생자들이 원래 무사히 도착했어야 할 제주도에서 행진을 시작하여 진도 팽목항, 목포 신항,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안산 등을 거쳐 서울까지 무려 21일간 걷고 또 걸으며 슬픔을 함께했다. 세월호 10주기에 완공하려던 4·16생명안전공원이 아직 착공조차 못 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 뼈아픈 기억을 추모하는 장소는 우리를 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미처 다 아파하지 못한 그 상실의 고통을 위로할 장소를 필요로 하고, 다시는 그런 트라우마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를 더욱 결속시킬 장소를 필요로 한다. 추모의 장소를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집단적 회복 탄력성을 더 크게 만들 것이다.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우리를 결코 나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아름다운 추모 공간을 만들고, 슬퍼할 수 있는 공간을 주고, 그들의 아픔을 그들의 아픔에만 갇혀 있지 않게 하는 것이 진정한 추모와 애도의 열린 자세다. 그들의 슬픔이 마음껏 흘러넘칠 수 있도록, 그들의 슬픔이 오직 그들의 심장에만 갇혀 있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는 슬픔이 비로소 해방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기억하고 또 기억하는 것은 결코 나약한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제대로 기억하는 존재들만이 더 아름답고 희망찬 공동체의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문학평론가·작가
  • 노란 리본·편지에 추모담아…세월호 기억하는 서울 학교

    노란 리본·편지에 추모담아…세월호 기억하는 서울 학교

    서울 금천구 독산고 학생들은 오는 16일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우리는 304개의 별을 기억합니다’를 주제로 교실에서 세월호 추모 영상을 함께 보기로 했다. 또 학교 층마다 나비 메모지와 노란 리본에 추모의 글을 적고, 등굣길에는 노란 리본 가방 고리와 배지를 나누며 참사에 대한 기억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오는 26일까지 교육 공동체 안전 주간을 운영한다고 14일 밝혔다. ‘국민 안전의 날’ 주간에 서울 초·중·고등학교에 세월호 10주기 관련 교육 자료를 배포하고, 각 학교는 이달 중 자율적으로 추모 주간을 운영한다. 안전 주간에는 학생회 중심의 다양한 추모행사가 개최된다. 세월호 추모식, 추모 리본 달기, 추모 편지 쓰기, ‘인권·안전·우리가 만들어갈 더 나은 세상’을 주제로 한 토론 등이다. 서울 구로구 영림중학교의 경우 추모 문화제가 열리는 구로역 ‘평화의 소녀상’까지 전교생이 걸어가면서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갖는다. 학생회 주최로 열리는 이 행사에서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 플래시몹, 시 낭송, 합창 행사를 열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통학로 전수조사를 통해 드러난 416건의 문제점에 대해 조치하고, 893건에 대해서는 서울시와의 대응투자를 통해 조치를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시민들과 함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안전한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세월호 참사 ‘열번째 봄’ 전국 추모제…“그날을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열번째 봄’ 전국 추모제…“그날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직도 내 딸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금당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고, 또 그런 생각을 하는 제가 어처구니없을 때도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인 단원고등학교 조은화 학생의 어머니 이금희 씨는 지난 13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의 침몰해역에서 10년 전 잃어버린 딸의 이름을 외쳐 불렀다. 이씨의 곁에는 남편 조남성씨, 또 다른 희생자인 단원고 허다윤 학생의 부모인 허흥환·박은미씨 부부가 함께 했다. 조은화, 허다윤 학생은 세월호 선체가 인양된 2017년 봄 육상에서 다시 시작된 수색 끝에 뼛조각이 되어 부모의 곁으로 돌아왔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사흘 앞둔 이날 맹골수도 침몰해역에서는 조은화, 허다윤 학생의 유가족과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의 선상 추모제가 엄수됐다.유가족과 스님들은 불교식 제례와 기도회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을 애도했다. 또 단원고 양승진 선생님과 남현철·박영인 학생, 일반인 승객 권재근 씨와 아들 혁규 군 등 행방불명된 미수습자 5명의 넋을 기렸다. 제례와 기도회를 마친 유가족과 스님들은 세월호 침몰 해점을 표시하는 노란색 부표 주변에 국화를 띄우며 더이상 아픔이 없는 세상을 염원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서울과 진도 그리고 광주, 인천 등 전국 곳곳에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렸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노란 리본 공작소와 노란 종이배 퍼포먼스 등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부스가 마련됐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협)와 세월호참사10주기위원회는 13일 오후 5시 30분부터 중구 서울시청 앞 도로에서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4·16 기억문화제’를 열었다. ‘세월이 지나도 우리는 잊은 적 없다’는 주제로 열린 문화제에는 주최 측 추산 5000여명(경찰 추산 3000여명)이 참가했다.세월호 10주기를 앞두고 광주청소년기억문화제가 열린 지난 13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는 안전 사회를 염원하는 집회가 열려 노란 물결이 일었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304명의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노란 리본이 바람에 나부꼈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문화 체험 부스 10여 개도 마련됐다. 광주시봉선청소년문화의집의 청소년들이 부른 구슬픈 추모곡이 광장을 울렸다. 또래 청소년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세월호 참사 기억’ 문구가 적힌 노란 풍선을 손에 든 채 추모에 동참했다. 이날 전북 전주시 풍남문 광장에서도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세월호참사 10주기 전북 준비위원회가 주최한 문화제는 참사 희생자 304명을 추모하고 유가족과 함께 미공개 정보 공개, 추가 진상조사 실시, 국가 책임 인정과 사과, 책임자 엄벌 등을 요구했다. 인천시청 애뜰광장에서도 ‘열 번째 봄, 내일을 위한 그리움’ 이라는 주제로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인천위원회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준 과제를 시민들과 함께 되돌아보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세월호가 출항했던 인천에는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45명 중 44명의 유골과 영정이 안치된 ‘4·16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 있다. 전남 목포와 여수, 순천 등에서도 문화제와 음악회 형식의 지역 추모 행사가 잇따라 열린다.특히 천주교 단체와 성당이 대대적인 추모 행사를 연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오는 15일 오후 2시 목포 산정동성당에서 세월호 참사 10주기 미사를 봉헌한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김선태 주교가 미사를 주례하고 광주대교구장인 옥현진 대주교와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 문창우 주교 등 사제단이 공동 집전한다. 이날 미사에서는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이름으로 ‘세월호 참사 10주기 담화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또 오는 16일을 전후로 전국 교구별로 ‘세월호 참사 10주기 미사’와 추모 행사를 하고 광주대교구에서는 16일 성당별로 추모미사를 열기로 했다. 참사 당일인 16일 침몰 해역에서 4·16재단 관계자와 희생자 가족들이 선상 추모식을 열 예정이다.
  • 경기도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기간 운영…세월호기 게양

    경기도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기간 운영…세월호기 게양

    경기도가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오는 17일까지 일주일간 추모 기간을 운영한다. 이에 따라 수원과 의정부에 있는 청사 국기 게양대에 각각 세월호 추모기를 게양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기로 했다. 세월호 추모기는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라는 문구와 함께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 리본 그림을 담고 있다. 아울러 경기도는 ‘1400만 경기도민 모두 별이 된 희생자들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스탠드형 배너를 각 청사 출입구와 로비 등에 설치하고 수원 청사 지하 1층 입구와 광교중앙역 4번 출구에도 추모 현수막을 설치할 예정이다. 청사 출입구에선 노란 리본 배지를 직원들에게 배부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아픔을 공유하기로 했다. 올해 1월부터 경기도 누리집 ‘기억과 연대’ 포털 내에서 세월호 10주기 온라인 추모관을 운영 중인 경기도는 누구나 추모글을 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 하나 세월호의 상흔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며 “경기도는 유가족과 생존희생자, 세월호를 기억하는 수많은 시민과 뜻을 같이하고 아픔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는 오는 16일 오후 4시 16분부터 1분간 안산시 단원구청 일대에서 추모 경보 사이렌을 울릴 예정이다. 경보 사이렌은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열리는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식’에 맞춰 희생자들을 추모기 위해서다. 경기도 관계자는 “대피 사이렌이 아닌 만큼 시민들은 동요하지 말고 추모에 동참해달라”고 당부했다.
  • ‘KBS 전국노래자랑’ 영광군편 일정 연기, 왜?

    ‘KBS 전국노래자랑’ 영광군편 일정 연기, 왜?

    전남 영광군이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4월 16일 개최하기로 했던 ‘KBS 전국노래자랑’ 전남 영광군편의 일정을 연기했다. 올해를 영광방문의 해로 정한 영광군은 전국적인 홍보를 위해 ‘KBS 전국노래자랑’을 개최하기로 했다. 하지만 녹화 방송 예정일이 4월 16일로 세월호 참사 10주기 당일과 겹치면서 영광군청 자유게시판 등에 날짜가 부적절하다는 시민들의 항의와 비난이 잇따랐다. 항의가 빗발치자 영광군은 4일 보도자료를 통해 영광스포티움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KBS 전국노래자랑’ 전남 영광군편 일정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영광군은 “‘전국노래자랑’ 전남 영광군편 녹화 방송 예정일이 4월 16일로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추모하기 위해 녹화 일정을 부득이하게 6월 11일로 변경하게 됐다”고 밝혔다. 변경된 일정은 6월 9일(일) 예비심사, 6월 11일(화) 방송녹화이며, 당초 4월 8일까지였던 예심 신청 기간은 6월 3일까지로 연장하기로 했다. 군 관계자는 “기존 일정에 따라 노래자랑 예비 심사에 참가 신청하여 주신 군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기존 신청 접수된 건에 대해서는 개별 연락해 양해를 구하고 일정 변경을 안내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객 476명 중 304명이 숨진 대형 참사로 10주기를 맞아 오는 16일 전국 곳곳에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 행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 “세월호 10주기에 ‘전국노래자랑’ 녹화”…민원 폭주에 결국

    “세월호 10주기에 ‘전국노래자랑’ 녹화”…민원 폭주에 결국

    전남 영광군에서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오는 16일 KBS 전국노래자랑 녹화를 진행하기로 하자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결국 영광군은 녹화를 연기하기로 했다. 최근 영광군은 ‘2024년 영광방문의 해’를 맞아 전국에 영광을 널리 알리는 목적으로 ‘KBS 전국노래자랑’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공개녹화 일시는 세월호 참사 10주기 당일인 이달 16일이었다. 전국노래자랑 촬영 소식이 알려지자 영광군청 자유게시판에는 날짜가 부적절하다는 시민들의 항의가 잇따랐다. 현재 영광군청 자유게시판에는 “전국노래자랑 날짜 변경해주세요”, “국가적 참사가 있었던 날에 노래자랑이라니요”, “꼭 이날 전국노래자랑 녹화를 해야 하는지요” 등 시민들이 올린 항의성 게시글이 빗발치고 있다. 한 시민은 게시글에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주년이 되는 해”라면서 “학교에서도 추모와 애도의 날을 가지면서 아이들과 안전관련 교육을 하는데, 군청에서는 노래자랑을 기획해서 개최한다니 당장 취소하거나 날짜를 변경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대구에 거주한다는 한 시민은 “피해 학생들과 같은 학년이었다”면서 “KBS도 그렇고 그걸 허락해주신 영광군청 관계자 공무원도 참 그렇다”면서 비판했다. 항의가 빗발치자 영광군은 녹화일정을 연기하기로 했다. 영광군 측은 4일 공지를 통해 “전국노래자랑 행사가 녹화 당일인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추모하기 위해, 녹화일정을 부득이 6월 11일로 변경하여 추진하게 됐다”며 “기존 일정에 따라 관심을 가져주시고, 노래자랑 예심에 참가 신청하여 주신 군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한편 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객 476명 중 304명이 숨진 대형 참사다. 10주기를 맞아 오는 16일엔 전국 곳곳에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애도·추모가 이뤄질 예정이다.
  • 한덕수 총리 “4·3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입니다”

    한덕수 총리 “4·3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입니다”

    “4·3사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입니다. 우리 정부는 4·3사건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여, 화합과 통합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3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추념광장에서 열린 제76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 직접 참석해 이같이 추도했다. 한 총리는 이어 “4·3 희생자와 유가족분들은 기나긴 세월 동안, 제대로 된 진상규명도 받지 못한 채, 숨죽이며 살아왔다. 한 분, 한 분의 무고한 희생과 아픔을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다”면서 “지난 2000년에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희생자분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길이 열렸다. 정부는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진상조사와 희생자 신고접수를 추진했다. 그리고 2022년부터는 한국전쟁 전후에 일어난 민간인 희생사건 중에서 사상 처음으로 국가보상도 시행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이 희생자와 유가족분들의 한과 설움을 씻어낼 수는 없겠지만, 진심 어린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 ‘트라우마 치유센터’의 설립과 운영에 더욱 힘쓰겠으며 ‘국제평화문화센터’ 건립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추도사를 대독했던 것과 대조를 이뤘다. 이날 추념식에는 정부 대표로 한 총리를 비롯,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 이상훈 진실화해를 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 김동연 경기도지사, 강기정 광주광역시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대표, 조국 조국혁신당대표,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 등과 유족, 전국 시도교육감 등 1만여명 가까이 참석했다.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추념광장에는 추념식이 시작되자 추적추적 내리던 봄비도 잠시 그쳐 참석자들이 자리에 앉아 추념식을 지켜볼 수 있었다. 오영훈 도지사는 “그동안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희생자에 대한 국가 보상, 직권 재심을 통한 명예 회복,뒤틀린 가족관계를 바로잡는 제도개선까지 4·3의 진전된 봄을 꽃피울 수 있었다”면서 “제주도정은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단 한 분도 소외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챙기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올해는 그동안 기억 속에 희미해진 미신고 희생자들의 영령을 보듬을 수 있었다. 바로 이곳, 4·3평화공원에 무명 신위 위패를 정성을 다해 모시고, 조형물 설치와 추모 법회를 열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잊혀왔던 외로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며 “이제 4·3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내년 4·3 역사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새로운 출발의 전환점이 될 것이고 국가폭력에 의한 통한의 역사를 화해와 상생, 해원으로 극복해 낸 제주인들의 고귀한 평화정신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고 공유하게 될 것 ”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추념식에선 유족사연을 소개할 땐 참석자들이 눈시울을 붉혔고, 하늘에는 안개가 자욱해지면서 물기를 머금었다. 더욱이 4·3 추념식 사상 처음으로 인공지능(AI)으로 복원된 희생자 김병주(당시 29세)씨가 76년 만에 딸과 상봉했다. 제주출신 배우 고두심씨의 목이 잠기고 구슬픈 목소리로 김옥자(주민등록나이 78) 할머니가 5세때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마저 잃은 사연을 전했다. “1948년 초겨울 어느날 할머니의 가족들은 곤을동으로 피신했다. 아버지는 이튿날 ‘옥자야, 아부지 집에 강(가서) 소 여물 먹이고 금방 돌아오켜(돌아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가시나물로 올라가셨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고 전하는 사이 김옥자씨의 손녀 한은빈(17)양이 나와 사연을 읽어 내려갔다. “할머니의 가장 큰 슬픔은 이제 얼굴조차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 망각입니다. 할머니께서는 꿈에서라도 보고 싶어 꿈에 나왔는데도 ‘나가 몰라 봐실지도 모르주’라고 하셨다”면서 “증조할아버지의 묘를 이장할 때 유골이 나타났는데 얼굴 뼈가 있어야 할 자리에 오목한 뒤통수 뼈 한 조각만 있었다고 해요. 할머니와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큰 아빠는 저 손바닥만한 뒤통수 뼈가 어머니가 기억해야 할 아버지의 얼굴이고 제가 기억해야 할 외할아버지 얼굴이구나예 라는 말을 하셨다”고 전했다. ‘얼굴없는 얼굴’이 기억해야 할 증조할아버지의 얼굴이라는 말과 함께 스크린 속에서 AI로 복원된 김씨의 아버지가 나왔다. AI로 복원된 사진을 들고 4·3평화공원 앞에서 “아버지 얼굴 맞수과” 라고 하자 아버지가 환생한 듯 두팔을 벌려 “딸을 안아보자”고 하는 영상이 떴다. 참석자들의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었다. 뒤이어 가수 인순이가 ‘아버지’를 불러 유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추념식은 끝을 향해 달려갔다.
  • “제주불교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바라”…조계종 제주 4·3 추모재 봉행

    “제주불교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바라”…조계종 제주 4·3 추모재 봉행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사노위)가 3일 오후 1시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 마련된 ‘4·3 76주년 추모 공간’에서 ‘제주 4·3 76주년 추모재’를 봉행한다. 제주 4·3 사건은 1948년 해방 직후 7년 7개월 동안 이어진 좌·우 이념 대립으로 무고한 제주 시민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불교계의 피해도 심각했다. 조계종 사노위에 따르면 당시 기록에 남아있는 제주 내 90여 개의 사찰 중 35개의 사찰이 전소 또는 폐허가 되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사노위는 “관음사, 백화사, 불탑사, 법화사 등의 사찰이 대피해 온 주민들을 지키려다 화를 당했고, 제주불교를 주도적으로 이끌던 스님 15명이 총살, 수장, 고문 후유증 등으로 참혹하게 희생되면서 종교 활동이 중단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조계종 사노위는 4·3 피해 사찰 현장을 찾아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추모재를 봉행해왔다. 사노위는 올해 추모재에서 ‘제주 4·3 특별법’ 개정을 촉구할 예정이다. 사노위 위원장인 지몽스님은 “특별법은 2000년 제정된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됐지만, 피해자 신원 확인을 비롯해 진상규명, 명예 회복 등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다”며 “특히 스님들의 경우에는 후손이 없는 경우가 많아, 진상규명이 더욱 미미하게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조계종 사노위 측은 “3만여 피해자들을 비롯해 부처님의 자비와 평화 사상 실천으로 희생되신 스님들과 제주 불교계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이 반드시 이뤄지길 바란다”며 “사노위는 희생된 스님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제주도의 평화를 넘어 남과 북, 그리고 전 세계의 평화를 염원할 것”이라고 전했다.
  • ‘세월호 추모’ 생명안전공원 10월 착공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자 추진 중인 ‘4·16 생명안전공원’이 참사 10주기를 맞은 올해 드디어 첫 삽을 뜰 전망이다. 4·16 생명안전공원은 4·16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정부와 경기 안산시가 공동으로 단원구 화랑유원지 내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곳에는 봉안시설을 포함한 추모 공간과 문화 및 편의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 2019년 정부 발표 당시에는 총사업비 495억원을 투입해 건축 연면적 9962㎡로, 2021년 착공해 올해 준공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행정절차 이행이 지연되면서 오랜 시간 제자리걸음이었으나 지난 2월 기획재정부와 안산시가 실시설계에 대한 총사업비 협의를 완료해 착공이 가능해졌다. 다만 이 과정에서 건축 연면적이 9962㎡에서 7377㎡로 줄었다. 사업비는 495억원에서 509억원으로 14억원 늘었다. 안산시는 총사업비 협의 절차가 완료됨에 따라 설계 내역을 변경한 뒤 오는 6월 초까지 건축허가 서류도 변경할 예정이다. 이후 공사를 발주한 뒤 10월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다.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생명안전공원은 2026년 말 준공된다. 건축 연면적의 감소에 따라 설계가 조금 바뀌지만 기본 콘셉트는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안산시 관계자는 31일 “중앙정부와 협의를 통해 행정절차를 이행하면서 착공이 조금 늦어졌다”며 “성공적으로 준공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이번엔 오실거라 믿었는데”… 4·3 희생자 추념식에 윤대통령 대신 한덕수 총리 오나

    “이번엔 오실거라 믿었는데”… 4·3 희생자 추념식에 윤대통령 대신 한덕수 총리 오나

    “이번만큼은 오실거라 기대했는데… 오보이길 바란다.” 김한규(더불어민주당 제주시을) 국회의원 후보가 지난 28일 윤석열 대통령의 제주4·3희생자 추념식 불참에 대해 SNS를 통해 도민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아쉬움을 표시했다. 김 후보는 윤 대통령의 추념식 불참 소식을 전하며 “지금이라도 일정을 조정해 4·3 희생자와 유족들의 아픔을 보듬어주시길 요청드린다”고 전했다. 이처럼 정치권에선 올해 4월 3일 봉행되는 제76주기 4·3희생자 추념식에 윤 대통령을 대신해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도민사회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학수고대하며 윤 대통령의 추념식 참석에 대한 기대감을 끝까지 내려놓지 않고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2022년 제74주년 희생자추념식에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참석한 바 있다. 당시 윤 대통령 당선인은 추념사를 통해 “우리는 4·3의 아픈 역사와 한 분, 한 분의 무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있다”며 “억울하단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소중한 이들을 잃은 통한을 그리움으로 견뎌온 제주도민과 제주의 역사 앞에 숙연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4·3의 아픔을 치유하고 상흔을 돌보는 것은 4·3을 기억하는 바로 우리의 책임이며, 화해와 상생,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대한민국의 몫”이라며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해 4·3유족들과 도민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지난해 거행된 취임 후 첫 4·3추념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한 총리가 참석해 윤 대통령의 메시지를 대독했다. 추도사는 극우단체의 4·3왜곡과 폄훼에 대한 화해와 상생 메시지를 기대했으나 그 기대에 다소 못미쳤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은 서운함에 대한 반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도 최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윤 대통령이 대통령 신분으로는 참석한 적 없기 때문에 이번 추념식에는 참석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추념식은 ‘불어라 4·3의 봄바람, 날아라 평화의 씨’를 슬로건으로 다음 달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추념식에는 4·3유족과 제주도민, 정치권 인사 등 2만여명이 참석할 전망이다. 한편 대통령 신분으로는 그동안 故 노무현 전 대통령(2006년), 문재인 전 대통령(2018년, 2020년, 2021년)이 추념식에 참석했다.
  • “록콘서트 직전 총성… 쇼 일부인 줄” “쓰러진 시신에도 확인 사살”

    “록콘서트 직전 총성… 쇼 일부인 줄” “쓰러진 시신에도 확인 사살”

    지난 22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라스노고르스크의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충격적 증언이 하나둘 전해지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외신들을 종합하면 당시 공연장에 러시아 록밴드 ‘피크닉’의 콘서트를 보려고 7000여명이 몰렸다. 그런데 공연 시작 몇 분 전 테러범들이 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아내와 함께 공연장을 찾은 안드레이(58)는 영국 더타임스에 “테러범들이 마치 산책 나온 것처럼 (1층) 공연장 로비를 침착하게 걸어 다니며 혼비백산한 관객들에게 총격을 퍼부었다”면서 “사람들이 (공연장 안으로) 몸을 피하자 따라 들어와 총격을 이어 갔다”고 전했다. 2층 카페에 있었던 안드레이 부부는 이 모습에 놀라 기둥 뒤에 숨었고 “그들이 (2층으로)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보지 않기를 기도했다”고 말했다. 이 부부는 다행히 주차장으로 몸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10대 소녀는 러시아 국영 통신사 러시아투데이(RT)에 “그들이 우릴 봤다. 한 명이 돌아와 총을 쏘기 시작했고, 나는 바닥에 엎드려 죽은 척했다”고 말했다. 그는 “테러범이 바닥에 쓰러진 시신에 ‘확인 사살’을 했다”면서 “내 옆에 누워 있던 여자아이는 죽었다”고 울먹였다. 아리나(27)는 영국 가디언에 “(콘서트 시작 직전) 총소리가 들려 쇼의 일부인 줄 알았다”면서 “그러나 어느 순간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고 실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얼마 안 있어 군복을 입은 남성이 자동소총을 들고 콘서트장에 들어왔다”면서 “(총기 난사 뒤) 사람들 모두 바닥에 누워 있었고, 옆에는 다친 사람들이 피범벅이 돼 있었다”고 전했다. 올리야 무라비요카(38)는 뉴욕타임스에 “당시 남편과 맥주를 사려고 (매점 앞에서)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공연 시작 5분 전 갑자기 총성이 들렸다”면서 “그때만 해도 피크닉 밴드가 극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곧바로 남편이 “도망쳐 숨어”라고 소리쳤고 다행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가족과 함께 피크닉 콘서트를 보러 온 아나스타샤 로디오노바는 “그들(테러리스트)은 ‘엎드려!’ 이런 말도 없이 조용히 들어와 재밌다는 듯 사람들을 향해 총을 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집에 돌아와 보니 재킷은 피범벅이 돼 있었다. 5분만 늦었어도 우리도 총에 맞았을 것”이라고 몸서리를 쳤다. 시신이 발견된 현장은 당시 그곳이 얼마나 참혹하고 혼란스러웠는지 그대로 보여 준다. 현지매체 바자에 따르면 총기 난사 당시 사람들이 몸을 피하려고 찾은 화장실에서 시신 28구가 발견됐다. 비상계단에서도 14구가 나왔다. 테러범들이 관객의 대피 동선을 추적해 총기를 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화장실에선 아이들을 꼭 껴안은 채 숨진 어머니가 발견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4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고, 이미 모스크바는 일상을 멈추고 희생자를 위로하고 있다. 이날 모스크바의 혈액센터에는 러시아 국가대표 선수들을 비롯해 희생자들을 위해 헌혈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 모스크바 테러 사망자 137명… IS는 테러 증거 영상 공개

    모스크바 테러 사망자 137명… IS는 테러 증거 영상 공개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로 인한 사망자 수가 137명으로 늘어났다고 24일(현지시간) AFP 통신이 러시아 연방 수사위원회를 인용해 보도했다. 수사위원회 성명에 따르면 현장에서 137명의 시신이 발견됐으며, 이 중 3구의 시신은 어린이들로 파악됐다. 위원회는 또 총격 용의자들이 현장에서 도주하는 데 사용한 차량에서 총기와 탄약이 모두 발견됐다고 전했다.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는 지난 22일 밤 모스크바 외곽의 ‘크로커스 시티홀’에서 일어났다. 록 그룹 ‘피크닉’(Picnic) 콘서트를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이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런 가운데 이슬람주의 극단 조직 ‘이슬람국가’(IS)와 연계된 통신사인 아마크는 공연장 테러 사건 하루가 지난 23일 총격 당시라면서 잔인하고 구체적인 비디오를 공개했다. 러시아 당국은 용의자 4명을 체포했다고 말했으며 얼마 후 IS가 아마크 통신을 통해서 자신들이 배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IS 주장을 국민에게 전하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를 계속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 이에 IS는 자신들 공격임을 입증하려고 공격 ‘전사’ 중 한 명에 의해 촬영됐다며 이 비디오를 공개했다. CNN은 자체 검증으로 비디오 장소가 콘서트홀인 것을 확인했으나 식별 메타데이터가 지워진 것을 파악했다고 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24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콘서트장 테러의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를 보내는 한편 “이 폭력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교황은 이날 성 베드로 광장에서 종려주일 미사를 집전한 후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비겁한 테러 공격의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어 “주님께서 그들을 평화로 맞이하시고, 그 가족들을 위로하시며 ‘살인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이런 비인간적인 행동을 조직하고 실행한 자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 4인4색… 4·3진상규명 여정을 기록하다

    4인4색… 4·3진상규명 여정을 기록하다

    제76주년 제주 4·3희생자 추념식이 눈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4·3 진상규명의 여정을 기록해 온 사진작가 4명의 초대전이 열려 주목받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은 오는 25일부터 제주4·3평화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제주4·3 사진작가 초대전: 4·3을 담다’를 개최한다고 22일 밝혔다. 작가 강정효, 김기삼, 박정근, 양동규의 사진 200여점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번 전시는 공개적인 첫 추모제였던 1989년 41주기 추모제부터 최근까지 유족들의 모습과 학살의 풍경, 그리고 희생자들을 위령하기 위한 故 정공철 심방의 생전 모습을 담고 있다. 작가 강정효는 199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진상규명운동 시기에 따라 변화해 가는 유족들의 표정을 클로즈업한다. 4·3 역사의 진전과 함께 어둠에서 빛으로 변모하는 유족들의 얼굴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박정근 작가는 지난 2018년 4·3 70주년부터 최근까지 진행한 ‘옛날사진관’ 프로젝트에서 담은 유족들의 사진을 선보인다. 김기삼 작가는 1989년 41주기 추모제를 시작으로 2012년 강정마을 4·3해원상생굿까지 4·3의 원혼들을 달래는 자리에 늘 함께 해 온 故 정공철 심방(무당)의 모습을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양동규 작가는 제주의 풍경 속에 남은 4·3의 흔적을 추적하며 그 땅과 바다에 아직 남아있는 아픔을 카메라에 담았다.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올해 76주년을 맞은 제주4·3을 다양한 시선을 통해 기억하며, 아직도 계속되는 제주의 아픔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이들의 노력에 대한 기억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전시는 오는 5월 5일까지 진행된다.
  • 오늘 3·15의거 기념식… 정부, 홀대 논란 씻을까

    1960년 일어난 우리나라 현대사 최초 유혈 민주주의 운동인 3·15의거를 되새기기 위한 64주년 3·15의거 기념식이 15일 경남 창원 3·15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가운데 주요 인사 참석 여부가 주목된다. 지난해 10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부마민주항쟁 44주년 기념식 때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불참해 ‘홀대’ 논란이 빚어져서다. 부마항쟁 기념식은 행안부와 국무총리 소속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가 주최하고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 주관한다.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는 참석하지 않았다. 박완수 경남지사와 박형준 부산시장도 국외출장으로 밀린 도정업무를 처리한다는 등의 이유로 불참했다. 행안부에서는 고기동 차관이 참석했다. 부마항쟁 기념식에 장관이 아닌 차관이 참석한 건 2019년 국가기념일 지정 이래 처음이었다. 고 차관은 윤석열 대통령 기념사를 대독했지만, 장관 불참에 불만을 품은 참석자들은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기념식 후 지역에서는 민주운동 성지라는 역사적 자긍심과 공감이 부족하다는 지적, 민주항쟁 위상 축소 우려도 나왔다. 3·15의거 기념식도 2018년 비슷한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기념식은 국무총리가 아닌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참석으로 치렀다. 올해 3·15의거 기념식은 ‘눈부신 큰 봄을 만들었네’라는 주제로 개최한다. 국가보훈부가 주관하는 기념식에는 3·15의거 유공자와 유족, 정부 주요 인사, 각계 대표 등 약 700명이 참석한다. 한 총리와 강정애 보훈부 장관, 박 지사 등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5개월여만에 창원에서 다시 열리는 국가기념일 행사에서 홀대 논란이 사그라질지 주목된다. 이윤기 마산YMCA 사무총장은 “국가 행사는 주요 참석 인사가 누구냐에 따라 그 격이 결정되기도 한다”며 “최근 이승만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 등 관련 논란이 재점화했다. 기념식을 계기로 민주항쟁 의미를 되새기고 희생자들 추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4·3부터 ‘이태원’까지… 그 상처 위로하고 싶었다”

    “4·3부터 ‘이태원’까지… 그 상처 위로하고 싶었다”

    “연극을 통해 제주4·3사건에서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까지 가슴 아픈 상처가 남아 있는 유가족과 사건을 지켜본 국민들을 위로하고, 좋은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오는 16일 오후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사난 살주’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연극이 공연된다. ‘사난 살주’는 ‘살아 있으니 살아간다’는 뜻의 제주방언이다. 해당 연극의 연출가 방은미(65)씨는 13일 서울신문과 만나 “가슴 아픈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실제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다큐멘터리 연극을 준비했다”며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이 직접 나와 증언하고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무대에는 열여덟 해를 고이 키운 딸 고 문지성 양을 세월호 참사로 잃은 아버지 문종택씨, 서른 살 아들 고 문효균씨를 이태원에서 떠나보낸 어머니 이기자씨가 직접 배우로 나섰다. 제주 출신의 현애란 배우는 4·3사건 당시 아버지를 잃은 10살 소녀로, 김호준 배우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11살 형을 잃은 8살 소년으로 등장한다. 방씨는 “13년 간 제주살이를 하다 보니 4·3사건에 대한 부채의식이 생겨났다”며 “4·3사건 희생자들을 과거가 아닌 현재 시점에서 위로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실제 방씨는 한라봉과 딸기 농사를 하는 농부이자 시인인 친구를 통해 4·3사건의 아픔을 어렴풋이 느꼈단다. 그는 “4·3사건 당시엔 선생님은 ‘빨갱이’로 낙인 찍혔고, 친구의 외조부는 교사의 사촌이라는 이유로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정방폭포에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공연은 1시간 10여분 가량 진행된다. 사전에 관람 예약을 해야 한다. 2부에선 관객과의 대화도 마련된다. 강정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와 광주인권평화재단이 제작비를 지원한다. 중견 연출가인 방씨도 자원봉사 형태로 참여했다. 방씨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겪는 좌절, 외로움과 절망을 진혼의 마당으로 풀어내고 무대의 형식을 빌려 연대와 희망을 이야기하겠다”고 덧붙였다.
  • 홀로코스트 생존자들, ‘가자전쟁 비판’ 유대인 감독 오스카 수상소감에 반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 ‘가자전쟁 비판’ 유대인 감독 오스카 수상소감에 반발

    올해 아카데미(오스카상) 시상식이 열리는 동안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린 가운데 수상 소감으로 공격 중단을 촉구했던 감독에게 유대인 단체가 비난 편지를 보냈다. 지난 10일 열린 제96회 아카데미(오스카상) 시상식에서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영국의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은 국제영화상을 받았다. 그는 상을 받으면서 “지금 우리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분쟁으로 이끈 ‘점령’과 홀로코스트를 반대하는 사람들로서 이 자리에 서 있다”며 “이스라엘의 10월 7일 희생자나 현재 진행 중인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은 비인간화의 희생자들”이라고 말했다. 시상식 참석자 가운데서도 가수 빌리 아일리시와 그의 친오빠 피니어스 오코넬을 비롯해 배우 라미 유세프, 영화감독 아바 듀버네이 등이 빨간색 바탕에 손바닥이 그려진 동그란 핀을 옷에 달고 나와 휴전을 촉구했다. 미국 홀로코스트생존자재단의 12일(현지시간) 데이비드 섀스터(94) 회장은 홈페이지에 공개서한을 올리고 “나는 아우슈비츠 지옥에서 3년 가까이, 부헨발트 지옥에서 1년 가까이 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고 밝혔다.이어 “나는 지난 일요일 밤 당신이 오스카 시상식 연단에서 무고한 이스라엘인에 대한 하마스의 광적인 잔인성과, 이에 맞선 이스라엘의 어렵지만 필수적인 정당방위를 동일시하는 것을 괴로운 마음으로 봤다”며 감독의 발언이 부정확하고 도덕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또 “당신이 말하는 ‘점령’은 홀로코스트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유대인의 존재와 이스라엘 땅에서 살 권리는 홀로코스트보다 수백 년 앞선 것으로, 오늘날의 정치·지리적 상황은 유대인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과거 아랍 지도자들이 일으킨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반박했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로 옆에 사는 수용소 지휘관 가족의 일상을 통해 수용소 내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만행의 잔혹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글레이저 감독 역시 유대인이지만, 유대인 단체는 그의 수상 소감을 두고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데 아우슈비츠를 사용한 것을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앞서 미국의 유대인 단체인 반(反)명예훼손연맹 역시 지난 11일 소셜미디어에 “글레이저의 발언은 가장 끔찍한 종류의 테러리즘을 변명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 4·3, 5·18, 세월호… “사난 살주, 슬픔과 고통에 절망 말아요”

    4·3, 5·18, 세월호… “사난 살주, 슬픔과 고통에 절망 말아요”

    “4·3에서 부터 5·18, 세월호, 이태원까지 가슴 아픈 상처로 남아있는 유가족과 그 사건을 바라본 국민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연극을 통해 슬픔과 고통에 주저앉지 말고 좋은 세상을 향해 한발짝씩 다시 나아가자는 위로와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다.” ‘사난살주’는 ‘살아있으니 살아간다’ 라는 뜻의 제주방언이다. 바로 이 제주어를 제목으로 한 다큐멘터리 연극을 오는 16일 오후 4시 제주문예회관 소극장 무대에 올리는 연출가 방은미(65)씨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다큐멘터리 연극이라고 붙인 이유에 대해 “가슴아픈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실제 이야기임을 강조하고 싶었다”면서 “그래서 멀든 가깝든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이 직접 나와 증언하고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4·3 당시 10세때 아버지를 잃은 소녀가 있고, 8세때 11세 형을 잃은 5·18 소년도 있다. 열여덟 해를 고이 키운 딸을 잃어버린 세월호 아버지가 있고, 서른살 아들을 잃은 이태원 어머니도 나온다. 제주4·3, 광주5·18,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통증을 간직하고 살아온 희생자 가족들이 실제 무대에 오른다. 제주 출신의 현애란 배우, 광주 출신의 김호준, 김은숙 배우, 세월호참사 유가족 문종택(故 딸 문지성양의 아버지)씨, 이태원 유가족 이기자(故 문효균 아들의 어머니) 씨 모두가 주연이다. 제주에 이주한 지 13년됐다는 방씨는 “제주살이하다보니 4·3에 대한 부채의식이 생겨났다”며 “4·3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과거가 아닌 현재 시점에서 위로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실제 방씨는 한라봉과 딸기 농사를 하는 농부이며, 시집을 발간한 시인인 친구를 통해 4·3의 아픔을 어렴풋이 느꼈단다. 그는 “친구의 외조부는 4·3때 (1948년 10월) 할아버지의 사촌이 교사였는데 ‘선생 = 빨갱이’ 로 낙인됐다”며 “결국 할아버지 역시 빨갱이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영문도 모른채 끌려가 정방폭포에서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공연은 1시간 10여분가량 예정돼 있고 사전에 관람 예약을 해야 한다. 2부에선 관객과의 대화도 마련된다. 다소 무거운 주제의 연극이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된 건 강정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와 광주인권평화재단이 제작비 지원, 구럼비유람단의 노개런티 덕분이다. ‘이녁’, ‘사랑 혹은 사랑법’ 등으로 제주의 아픈 역사를 무대에서 탐구해 온 중견 연출가인 방씨 역시 노 개런티다. 그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겪는 좌절, 외로움과 절망을 진혼의 마당으로 풀어내고 무대의 형식을 빌려 연대와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한편 제주 초연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서울과 광주 등 홍보를 통해 순회공연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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