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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원군 두루봉동굴 조각(한국인의 얼굴:1)

    ◎20만년전 사슴뼈에 새긴 첫 인물상/높이 27㎜,가로41㎜의 예술품/짝 눈에 벌린 입… 귀여움이 가득 사람의 얼굴은 감정의 희노애락에 따라 표정이 무한하게 변한다.천의 얼굴이라 말하는 까닭도 여기있다.특히 지역과 민족,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얼굴이라고 한다.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얼굴을 가진 사람들인가.여기 해답을 던져주기 위해 유구한 역사를 더듬어가며 우리 스스로가 그려낸 얼굴들을 살펴보기로 했다.이는 역사속에 투영된 민족의 자화상이기도 한 것이다. 얼굴에는 눈·코·입이 달려있다.사람의 몸을 대표하는 부분이 얼굴이기도 하다.얼굴은 인격을 상징하거니와 저마다 독특한 특징을 갖는다.그래서 원시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얼굴을 신앙의 대상으로도 삼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20만년 이전부터 얼굴을 표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음이 밝혀졌다.그 대표적 유물이 충북 청원군 문의면 노현리 두루봉 동굴에서 나온 구석기시대 인물상이다.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이 인물상은 사슴 왼다리 위쪽뼈를 새기개로 쪼아 조각한것이다.비록 코를 만들지 못했을 지라도 눈과 입은 뚜렷이 표현되었다.귀도 어느 정도를 형상화한 두루봉 뼛조각 인물상은 한마디로 귀여운 모습이다. 처음에는 얼굴 전체를 둥굴게 만들 작정을 했던 모양이다.그러나 여의치 않자 관절부분을 다듬어 평행을 이루게 했다.왼쪽 모서리를 떼어내려고 쪼았던 흔적이 본의 아니게 귀가 되어버렸다.눈과 입은 뽀족한 새기개를 가지고 만들었는데 오른쪽 눈은 2번,왼쪽 눈은 1번을 쪼았다.입 만큼은 5번 정도를 쪼아서 벌린 입을 만들어냈다. 눈은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 차이를 보인다.입을 중심으로 해서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불균형수법이 적용되었다고나 할까….볼록한 면을 얼굴이 되도록 한 것도 다분히 의도적이다.아래턱은 약간 길쭉하게 표현했다.예술성이 분명히 들어있다.높이 27㎜,가로 41㎜,무게 49.8g에 불과한 뼛조각 인물상은 품에 넣고 다녔던 지닐 예술품인듯 싶다. 불교가 융성했던 역사시대에 작은 불상을 만들어 품에 지녔다.이같은 호신불 처럼 원시인들은 사람 얼굴을 만들어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늘 몸에 지녔을 것이다.실제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머리숭배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학설도 나왔다.이는 오스트리아의 인류고고학자 요하네스 마링거에 의해 제기되었다.특히 가족일원의 머리뼈에서는 경외심마저 느낄 정도였다는 것이다.조상의 머리뼈를 빌려 수호신의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청원 두루봉은 석회암 동굴지대.인물상 뼛조각이 출토된 동굴은 발굴 당시 명명한 제2굴이다.충북대 이융조(이융조)교수팀이 지난 1976∼8년까지 3차례에 걸쳐 발굴했다.불을 피우는 화덕자리와 숯,열매를 깨는데 썼던 돌망치,짐승의 가죽을 벗기거나 자르는데 사용한 긁개와 자르개 등의 석기도 발견되었다. 이 동굴에서는 지금은 멸종되어 사라질 젓소·쌍코뿔이·큰원숭이·사슴 등의 뼈도 나왔다.모두가 중기 홍적세 더운 시기에 살던 짐승들이다.가장 많이 잡혔던 사슴 이빨의 분석에서 사슴사냥은 9∼10월에 성행했다는 결론도 얻어냈다.인구고고학 방법으로 출토된 뼈를 분석한 결과 5식구가 이 굴에서 2천7백일 살았다는 문화모형이 만들어졌다.
  • 바그다드·암만/하트라의 축제(아랍서 지중해까지:2)

    ◎「저항의 역사」 신전을 무대로 재현/로마군 물리친 베드윈족 그려… 제사땐 양을 제물로 우리가 모술의 호텔 현관으로 들어설 때 아가씨 몇명이 나와서 일행들의 가슴에 빨간 장미 한송이씩을 달아주었다.가이드로 나온 사람,호텔 종사원들이 달려나와 박수까지 쳐줬다.우리를 환영한다는 뜻인데 이 장면은 약간 어색했다.환영하는 그들도,꽃을 받은 우리도 우리가 완전한 동지라는 확신은 아직 갖지 못했던 것이다.몇사람의 아랍계 사람을 제외하면 일행은 대부분 미국과 그 추종세력(?)인 서방세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모술시로 두시간 내겐 그 꽃선물이 「동지가 되어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기 보다 지루한 기차여행을 견디고 모술까지 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받아들여졌다.바그다드 정거장에서 모술역까지는 꼬박 9시간이 걸렸다.호텔 만수르의 어떤 가이드는 간밤에 모술까지 서너시간이면 갈 수 있다고 말해줬다.서너시간이 9시간으로 늘어난 것이다.이곳 사람들의 시간개념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은 여러곳에서 확인되었다. 바그다드 정거장은 우선 그 구역이 매우 넓고 복잡한 선로와 플랫폼이 질서정연하게 분리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었다.시설은 아주 낡았지만 최초의 설계가 매우 치밀했음을 알 수 있었다.이 정거장이야말로 독일제국이 3B 정책의 상징으로 건설한 바그다드 철도의 시발점이 아닌가.비잔티움·베를린으로 이어지는 이 노선에서 모술도 중요한 거점의 하나였다.우리는 독일제국이 식민쟁탈의 수단으로 건설해 놓은 이 고색 창연한 철도를 이용해 모술로 가는 것이다. 넓고 긴 플랫품에는 북쪽에서 귀환하는 많은 군인들과 고향으로 가는 많은 민간인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특히 군복을 느슨하게 입은 젊은 군인들이 아주 많았다.해가 진뒤 스산한 저녁나절에 군인들과 검은 차드르 혹은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른 부녀들이 한데 뒤섞여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피난길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객차 좌석에 앉아있는 부녀자들은 거의 표정이 없었다.군인들도 표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그들은 골격이 크고 윤곽이 분명해서 희노애락을 드러내기가 한층 쉬울텐데 마치님루드궁전 입구의 돌조각처럼 시종 무표정이다.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물자궁핍과 낙후된 생활환경에 잔뜩 불만을 품고 있을까? 혹은 유구한 역사가 현재와 혼재되어 그 역사의 숨결을 하루하루 생생하게 느끼며 살고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일까? 그야 어떻든 그들이 우리 이방인의 시각에서 보면 놀라울만큼 순수하고 순진하다는 것은 분명했다.그점은 그들의 투명하고 매혹적인 눈빛에서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바그다드∼모술간 철도주변은 대부분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해당되는 곳이다.밤에는 못봤지만 새벽이 되자 차창 밖으로 크게 자란 옥수수밭과 밀밭,감자밭들이 이어지고 있었다.그러나 농지관리는 산만했고 구획이 정해진 농지보다 버려진 초지가 많은걸 볼 때 경작방법은 아직 원시상태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들에는 천막 가득 모술에는 아시리아제국의 수도였던 니네베성터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이 도시 자체가 유적이었다.인구 백만을 헤아리는 북부 최대도시로 알려졌지만 현대도시란 느낌보다 역사의 시간속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 고대도시란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우리가 묵은 모술호텔은 이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었다.호텔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우리는 모술 유적관람을 뒤로 미루고 축제가 열리는 하트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모술에서 하트라까지 버스로 다시 두시간 반이 소요되었다.가는 길목에서 이따금 언덕위에 설치된 포대와 군인들을 볼 수 있었다.이 포대는 아마 터키 국경부근에 출몰하는 무장 쿠르드족을 겨냥하고 있을 것이다.양떼나 놀고 있어야 할 한가로운 언덕위에 견고하게 구축된 포대와 병사들,이것은 오늘날 이라크가 처해 있는 복잡한 내외환경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상징물로 보였다. 대상도시 하트라는 AD 1세기쯤 아라비아 반도에서 흘러온 베드윈족들이 건설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유명한 하트라 성도 베드윈의 캐러밴들(대상)이 세운 신전이며 하트라 부근에는 베드윈의 분위기,그 흔적들이 도처에 널려있었다.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면 검은색 아라비아 의상을 걸치고 쿠트라란 이름의터번을 쓴,말을 탄 용감한 병사들이 많이 등장한다.골격이 뚜렷한 얼굴,멋진 수염,날카로운 눈빛이 이 용맹한 무사들의 공통된 특징이다.하트라에는 이런 복장,용모를 지닌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길가에 천막을 설치해 놓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앉아 있었다.수염을 멋지게 기른 베드윈의 촌장쯤 되어 보이는 남자들이 수십명 천막아래 나란히 앉아 축제를 기다리고 있었다.천막안에도 사담 후세인의 초상화는 한가운데 걸려있었다.한쪽에서는 산채로 양의 목을 베어 큰그릇에 그 피를 쏟아붓고 있다.사람들이 양의 피를 마시려고 주위로 몰려들었다. 축제때면 알라신에게 살아있는 양의 피를 바친다는 베드윈의 관습을 실행하고 있는 중이었다.멀리서 온 극동의 손님에게도 친절하게도 한 양푼의 양의 피를 권한다.우리가 질겁하고 뒤로 물러서자,촌장들은 점잖고 인정스런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이런 천막들 숫자가 하트라성으로 다가갈수록 점점 늘어났다.들에는 흰 천막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축제의 본무대인 신전은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물이다.헬레니즘의영향을 받은 코린트식과 이오니아식의 화려한 원기둥들이 즐비하며 벽면의 조각품에도 그리스나 페르시아의 양식이 도입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얼핏 보면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많이 닮은 꼴이었다.그리스 신화 속의 괴물인 메두사의 머리가 전면 벽에 크게 부조된 것도 좋은 증거물이었다.무대로 사용되는 신전의 회랑에는 아무런 장식물도 설치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무대가 너무 썰렁하고 보잘것이 없었다.그러나 개막프로인 「사막의 힘」(춤과 노래가 혼합된 무용음악극)이 펼쳐지면서 붉고 푸른색 조명이 비쳐지자,지금까지 그늘진 폐허로만 보였던 그 무대가 갑자기 역사의 현장을 되살린 것 같은 지극히 환상적인 무대로 돌변했다.투구와 갑옷을 입고 방패와 창을 든 고대 로마군의 진격과 거기에 맞서는 베드윈 용사들의 항전­이것은 AD 2∼3세기 로마군이 하트라 성채를 공략했으나 주민의 저항으로 퇴각했던 실제 역사를 재현한것­이같은 극의 전개와 무대배경이 된 하트라 신전의 전면 회랑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저음의 합창 장엄 이 무대는 역사물을 다룬 어떤 오페라 무대보다 더 장엄하고 더 환상적이며 더 실제적이었다.유적현장을 장식없이 그대로 무대로 사용한 착상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그러나 주최측이 심혈을 기울인 「사막의 힘」은 구성과 춤동작에서 다소 산만한 느낌을 주었다.볼쇼이의 명품 「스팔타카스」처럼 춤동작이 좀 더 다양하게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면 그 환상적인 무대는 좀 더 빛이 났을 것이다.대형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진 아랍인의 합창­이것은 하트라에서 내가 가장 감동을 받았던 부분이다.정치적 의미를 배제하고 단순히 소리라는 측면에서 그것은 아름답고 장엄한 합창이었다.저녁 어스름에 뒤덮인 하트라의 평원을 찌렁찌렁 울려줬던 아랍 남성들의 저음은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어떤 비원을 담고 있는 듯한 그 노래가락은 군중에게 충분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이 합창을 듣고 나는 하트라의 축제가 소기의 목적을 거두고 있음을 확인했다.왜냐하면 거기 모인 군중들­대부분이 차를 가졌거나 차에 편승이 가능한 중류층 이상이며 이들은 지배이데올로기 편에 서있을 가능성이 많지만­의 표정이 노래가 들리는 순간 하나같이 엄숙해졌기 때문이다.그들은 그 순간에 침략자를 상기하고 지도자를 중심으로 민족이 더욱 뭉쳐야 한다고 다짐한건 아닐까. 하트라 축제의 포스러를 보면 신바빌로니아 왕국의 네부 카드 네자르 2세(BC 605∼562년)와 나란히 사담 후세인의 얼굴이 나와있다.네부 카드 네자르 2세는 바빌론의 재건자이며 특히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유태인을 끌어다가 노예로 부린 장본인이다.이 포스터가 말하는 것은 후세인이 바로 그의 계승자란 사실이다.후세인은 아득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빌려 그의 통치이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그는 역사의 복원을 외치며 국민에게도 역사와의 동거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었다.
  • 기쁨과 행복의 추구방법/윤성렬 삼성중공업 기술영업팀(일터에서)

    나는 회사에서 두가지 기쁨을 찾는다.업이외의 생활에서 찾고자 하는 작은 기쁨과 업을 통해 추구하는 큰 기쁨이 그것들이다.낮12시에 직장인의 고민거리인 점심을 해결하고 사무실에 이르면 사내방송을 통해 희노애락이 가득 담긴 음악이 사물실을 에워싼다.그 음악에 도치되어 있노라면 많은 잡동사니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회사의 떠오르는 샛별이 나라고 생각하기도하고 「탈총각」하는 화려한 결혼을 공상도 한다.재산증식을 위한 아이디어 창출에 이어 몇해전 즐겁고 부끄러웠던 일들을 되새김하기도 한다. 이것은 단지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것같지만 무료함속에 웃음을 안겨주며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예행연습을 하는 것이며,과거의 반성을 통해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기에 입사이후 빼놓지 않고 하는 업이외의 작은 기쁨이 되어주고 있다. 이런 생각도 잠시뿐 근무 시작방송과 더불어 모든 것은 현실로 돌아와 열병합 발전설비의 견적을 담당하는 조직의 구성체가 된다.팀의 업무중 가장 중요한 일은 정확한 물량산출에 이은 원가 산정을 하는 것이다. 입사 1년! 아직은 배움의 입장이라 부품 한개라도 빼놓지 않으려고 일일이 도면을 보아가면서 벌이는 수작업 계산에서 행여 잘못된 것과 빼놓는 물량이 있을까 검산까지 하고 그것도 모자라 전산화된 프로그램으로 재검산까지 한다.정확한 물량과 원가를 산출하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해도 모자라는 시간을 수작업 계산으로 인해 늦어지는 것은 퇴근시간 이지만 산을 보되 나무를 보지 못한다는 우를 범하지 않기위해 오늘도 전산화된 프로그램을 거부하며 늦도록 책상에 앉아있다. 일상적인 일의 반복이 아니라 공사별 조건이 틀리기에 끊임없이 느끼는 참신,많은 국내외 공사를 통해 견문을 넓힐 수 있는 풍부한 기회 그리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견적공사가 수주됐을 때의 쾌감등에 매료되어 비록 힘들지마는 업을 통한 기쁨을 조금씩 만들어 나가고 있다. 우리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60」의 인생속에 있다면 자신에게 맞는 기쁨과 행복의 추구 방법을 개발해 내일도 작고 큰 기쁨을 느끼리라 기대하며 회사문을 나선다.
  • 프로필 유감/김재기 주택은행장(굄돌)

    말이란 참으로 중요한 의사전달의 수단으로,늘 조심하고 가려써야 함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하는 삶의 도리라 할 수 있다. 희노애락이라는 사람의 감정표현에 있어서도 맨먼저 나타나는 것이 말이기에,말은 곧 사람의 감정,사상 그리고 삶 자체일 수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너 나아가 말로써 한정된 지면과 자료를 가지고 한 인물을 평가하고 기술하는 것은 더더욱이 힘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신문,잡지,TV등 언론 매체를 통해 나오는 프로필을 보면 너무 단조롭고 천편일률적으로 인물을 평하고 있어,진실로 그 인물을 나타낼 수 있고,그가 한 일 그리고 그가 소속해 있는 환경을 바람직한 상태로 이끌 수 있는 능력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기존의 인물평들은 너무 진부하다고 느낀다. 필자의 경우만 보더라도 블도저 추진력,마당발,보스기질등으로 성격을 평가 받고 있어 다소 머쓱해진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긍정적 사고와 부단한 노력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바로 주위에 고마우신 분들과 필자를 아끼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늘 긴장되고,뛰어야 하는 이 자리에 와 있는 듯 싶다. 이러한 까닭에 지금도 필자의 인물평이 나올 때마다 다소 미흡하게 생각되는 것은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하여 주신 많은 분들과 필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은행 사람들의 고마움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프로필」의 원래 뜻이 대략적 윤곽을 잡아 인물을 소개하는 것이라고는 하나 기존의 인물평은 「단평」만을 나타내어야 하는 어원에 너무 치중함을 지적하고 싶다. 사물을 규정함에 있어 객관적 현실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인물평가는 주변환경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그리고 그 인물이 속해 있는 구성체와의 조화를 기본적 변수로 하여 인물을 평가하여야만이 진솔된 입장에서 그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권위의 시대에서 민주화라는 큰 물줄기에 맞추어 나가자면,인물중심의 사회적 풍토를 지양하고,그 인물의 속해 있는 곳에서 구성원들의 자기실현에 얼마나 도움이 되어주고,이끌어 주는지,그리고 그러한 조직이 국가와 민족발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객관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인물평이 되었으면 좋겠다.
  • “침은 기흐름 균형맞추는 과학”

    ◎전고대교수 김용옥씨,연대서 이색강연/한의학은 만병근원 복부에 있다고 인식/체질에 따라 치료… 양의학보다 과학적/6년만에 강단에… 동서양의학 균형·조화 역설 세간에 숱한 화제를 뿌려온 철학자 도올 김용옥씨(44·전고려대철학과교수)가 한의대생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수업한 한의학에 기초한 「한의학의 과학화」를 조명하는 특강을 가져 눈길을 끌었다. 지난6일 서울 연세대 대강당에서 「문화인류학 특강」으로 열린 「침은 과학이 될수 있는 가」란 강의에는 정치인·일반인·학생들이 1·2층을 가득메워 그의 한의학에 대한 특유의 접근방식·독설·기인적 행태 등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입증했다. 현재 원광대 한의대본과 1학년에서 공부하고 있는 김씨는 연세대 사회학과 문화인류학 특강 교재인 「신한국기」의 저자 자격으로 출강한 이날 강의에서 현시점의 역사적 국면을 이해하는 방법,한의학과 인연을 맺게 된 사연,동서양의학의 접근방식,침의 성립배경및 발전양태 등을 특유의 접근법으로 풀어나갔다. 그는 현재의 역사적 국면은 동양문화와 서양문화의 두축이 만나는 새로운 문화의 탄생으로 규정했다.먼저 동양권에서는 공자를 중심으로 한 유교문화와 인도의 불교문화가 합해져 위진남북조를 거쳐 당제국의 문예부흥기로 이어지다가 송·명대에 새로운 공자적 유교관인 주자학관과 양명학관으로 갈라져 현대문화를 형성해 현재에 도달했다.서양권에서는 그리스문화를 중심으로 한 헬레니즘과 기독교문화의 헤브라이즘이 합해져 중세(이때를 암흑기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잉태기로 봄)를 거쳐 문예부흥기(아랍문명의 절대적 영향을 받았다고 봄)로 이어져 경험을 중시하는 엠피리시즘과 이성중심의 레이셔니즘으로 분리됐다가 칸트가 체계화한 현대문화양식으로 발전해와 오늘날에 이르렀으므로 동시대인인 우리들의 과제는 동서양 보편자의 만남을 변증법적 통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한의학에 대해 인연을 맺은 사연도 독특하다.아버지가 세브란스의전출신의 의사로 어릴때부터 기독교의 정서와 근대적 정신속에 푹빠져 자라난 김씨는 지난 68년 관절염에 걸려 학교를 중단하기까지하는 방황을 하던중 권도원선생을 만나 침을 맞으면서 기의 운행을 체험하게 돼 한의학에 대한 인류의 보편성을 경험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동서양의학의 접근방식이 서로 다른 문화적 패러다임(이론적 체계)속에 이뤄진 산물이므로 달라야 한다는 그는 서양의학은 느낄 수 있는 오관을 통해 얻어지는 단지 계측된 사실에 불과하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한의학의 과학적 측면을 재단할 수 없다면서 한의학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식체계·인식언어로 이해해 풀어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예컨대 간과 Liver는 서로 다른 인식체계를 갖고 있으므로 동일한 대상은 될수 있지만 동일시 할 수는 없는 것인데 동일시함으로써 매우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한의학을 과학화 할수 없는 최대의 걸림돌이라고 비판한다. 한의학이 만병의 근원은 복부에 있다는 인식체계의 언어라면 서양의학의 경우는 중추신경이 있는 뇌중심 인식체계의 언어에 기인한다면서 모든 사람의 체질을 같은 것으로 인식,보편화된 치료법을 쓰는 서양의학보다는 인간의 체질은 다르므로 체질에 맞게 치료법을 적용하는 한의학이 더욱 과학화된 의학이라고 강조한다.그 대표적인 예가 인간의 체질을 희노애락과 연계해 설명하는 총체적 의학결정품인 이재마의 「사상의학」. 우리 몸속에는 팔과 다리에 오수혈(흔히 오행이라 함)의 일정한 기의 흐름이 있는데 침은 강한 부분은 약하게,약한 부분은 강하게 해 오행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라는 그는 이 균형을 맞추는 것,즉 강한 것은 약하게 약한 것은 강하게 하는 것이 바로 치료의 요체라면서 서양의학을 유선체계로 보면 한의학은 팩시밀리와 같은 무선체계라고 밝힌다.따라서 침을 과학화하는 것은 어떤 부위에 얼마나 정확하게 반복하느냐가 관건이 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현재 서양의학은 인체를 검사하는 기술이 굉장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면서 문제는 검사하는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가 꼭 치료를 해야 한다는것이므로 이러한 인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암이란 몸전체 기의 매커니즘의 불균형에서 초래된 것이므로 질병이 아니라는 그는 기는 하나의 언어이므로 무한하게 공부할수 있으며,색다른 과학화의 가능성을 던져주고 새로운 과학의 패러다임이 될수 있다고 말했다.
  • 민경배 보훈처/12·27 개각… 새 장관·청와대 비서진(얼굴)

    ◎2군사령관 지낸 외유내강형 육사 14기로 58년에 임관,30여년간 군생활을 하다 지난 1월17일 2군사령관을 끝으로 예편했다. 지휘관시절 부하들의 경조사에 항상 관심을 보여 희노애락을 함께 해왔다. 외유내강형으로 독서량이 많고 바둑을 즐겨 선비형 지휘관이라는 평도 받았다. 한양대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안보정책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 부인 나정숙여사(53)와의 사이에 2남1녀.
  • 『체신의 날』한자리 모인 집배원 5형제/천안우체국 김수부씨 가족

    ◎“희노애락 배달”보람에 산다/근무연수 합치면 60년… 1천t전달/하루만 쉬어도“산더미”… 휴가 엄두못내/한밤“윤화위독”전보갖고 산길30리 달려가… 생명건져 뿌듯 22일은 제35회 체신의 날. 한집 5형제가 집배원인 김수부씨(50ㆍ충남천안우체국)형제들이 이날을 맞는 감회는 더욱 새롭다. 남의 소식을 전하는 일이 워낙 바빠 정작 형제끼리는 편지 한장 주고받지 못하다 모처럼 이날을 맞아 한자리에 모이고 보니 서로가 대견스럽기만 했다. 김씨 형제는 6형제 가운데 둘째인 태기씨(48ㆍ식당운영)만 빼고 셋째 태명씨(39)가 서울 동대문우체국에,넷째 태인씨(38)는 충남 천원군 광덕우체국,다섯째 태국씨(33)는 서울 구로전화국,여섯째 태홍씨(31)는 천원군 성환우체국에 근무하는 모법집배원들이다. 태국씨만 해도 지금 전화국에 근무하고는 있으나 지난 81년부터 86년까지 천원군 목천우체국에서 집배원으로 근무했던 체신가족으로 지금도 남의 소식을 전하기는 집배원과 다름 없는 중계전송일을 맡고 있다. 형제들이 모이는 자리에 제일 늦게 도착한셋째 태명씨가 『아이구,오늘도 쌀두가마어치나 배달하다 보니 이렇게 늦어 죄송합니다』면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는데서 이들 형제의 체취가 물씬 풍겼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생을 얼싸 안으며 『그래 서울에서는 집배원 노릇하기도 우리보단 더 어려울거야』라고 위로하는 맏형 수부씨의 구두에 묻어있는 흙먼지 또한 이들의 노고를 잘 대변해주고 있었다. 『남의 소식을 빼놓지 않고 전하면서 우리 스스로는 집안 경조사때도 갈 틈이 없잖아요』 『그게 어디 어제 오늘 일인가요. 하루만 놀아도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데요』 『체신의날 덕에 모처럼 형제가 한자리에 모였으니 이것도 참 복이네요』 형제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격려했다. 맏형인 수부씨가 지난 67년 우체국에 발을 들여놓아 24년째 근무해온 것을 비롯,이들 5형제가 집배원으로 근무한 연수를 모두 합치면 60년. 그동안 이들이 배달한 우편물량만해도 1천t이 넘는다고 했다. 이들은 『우편물은 10년전보다 몇십배 늘어났는데도 집배원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다』면서 『체신부도 이제는 과감한 투자를 해 공채집배원수를 늘려야 한다』고 내친김에 애로사항도 털어놓았다. 특히 임시직의 경우 월급이 20만원 안팎이고 다른 대우도 시원찮아 사명감을 갖기 힘들다고 했다. 『몇년전 여름이었어요. 목천우체국에 있을때 일인데 밤 12시쯤 교통사고를 당해 생명이 위독하다는 전보 한통을 받았어요. 워낙 급한 점보라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지는데도 산길 12㎞를 달려가 전해주었습니다. 다행히 조치를 빨리해 다친 사람의 생명을 구할수 있었지요』 태국씨는 지금도 그때의 감격을 잊지못하며 자랑스러워 했다. 그러나 지방 읍소재지의 경우 집배원 한사람이 하루 2천여통의 우편물을 배달해야하고 서울은 더많아 3천여통에 이르며 그무게가 80∼1백20㎏이나 된다는 얘기이고 보면 집배원이란 역시 고된 직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우편번호와 번지수도 제대로 쓰이지않은 편지1통이라도 끝까지 찾아 전해주는 정성이 집배원에게는 필요하다』고 말하는 5형제의 표정에서 남다른 사명감과 책임감을 읽을 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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