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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오스 댐 붕괴] 국토부 자체 조사없이 “댐 유실·범람”

    [라오스 댐 붕괴] 국토부 자체 조사없이 “댐 유실·범람”

    “직접 조사권 없어… 구호 활동에 초점” 라오스 정부 “폭우 견디게 설계했어야” 자연재해 무게속 부실 등 人災 따질 듯 라오스 댐 사고 원인을 놓고 일주일째 혼선이 빚어지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유실·범람’에, 라오스 정부는 ‘자연재해’에 각각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는 29일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에게 제출한 ‘라오스 수력발전 보조댐 사고 보고’ 자료를 통해 “2주간 집중호우로 7개 댐 중 보조댐 일부가 유실·범람해 하류에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사고 원인에 대한 입장을 외부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국토부의 자체 조사가 아닌 SK건설 측의 상황 보고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국토부는 라오스 현지에 베트남 주재 국토교통관을 파견했지만 사고 원인 조사보다는 정부 차원의 구조·구호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직접적인 조사권이 우리 정부에 있는 게 아니어서 현재 시점에서 (국토부의 판단은) 효력이 없다”고 말했다. 또 신성순 주라오스대사는 이날 라오스 재해비상대책위원장인 손사이 시판돈 경제부총리 등 당국자들을 잇따라 만난 뒤 “라오스 정부는 자연재해에 비중을 두지만 시공에 문제는 없었는지, (사고 전) 제대로 전파가 됐는지 등 2가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서 “라오스 정부는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댐이) 버틸 수 있게 설계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자연재해에 비중을 두지만 부실시공 등 인재 여부도 따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앞서 지난 24일 사고 발생 이후 라오스 현지 일부 언론은 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댐이 “붕괴됐다”고 주장하는 반면, 시공사인 SK건설은 흙 댐의 일부가 “유실됐다”는 상충된 입장을 내놓았다. 발전소 운영을 맡은 한국서부발전도 “보조댐 붕괴”라며 SK건설과 온도차를 드러내기도 했다. 사고 원인이 소홀한 대처냐, 자연재해냐에 따라 시공사와 운영사 등 처벌 대상과 보상 범위 등이 달라진다. 만약 SK건설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경우 해외건설촉진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해외건설촉진법 37조는 ‘해외 공사를 부실하게 시공해 준공 전에 공사가 중단된 해외건설업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댐이 사라졌는데 붕괴는 아니라는 SK건설…처참한 라오스 사고현장

    댐이 사라졌는데 붕괴는 아니라는 SK건설…처참한 라오스 사고현장

    SK건설이 시공한 라오스 남부 아타프주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의 보조댐 사고현장이 5일만에 공개됐다. 붕괴냐 유실이냐 논란이 무색할 만큼 사고 현장은 처참했다. 해발 900~1000m 높이에 있는 보조댐을 구성하던 길이 770m, 높이 25m, 폭 5m 가량의 거대한 둑은 사실상 사라졌다. 시공사인 SK건설 측은 사고 직후 붕괴가 아니라 보조댐 상부 가운데 200m가량이 일부 유실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댐 윗부분을 포장했던 아스팔트조차 상당부분 쓸려 내려간 것으로 파악됐다. 애초 댐이 있었던 자리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흔적조차 사라진 것이다.SK건설 관계자는 “처음에는 댐 상부 200m 구간이 일부 유실됐지만, 이 댐은 돌과 흙으로 쌓은 둑과 같은 사력댐이기 때문에 한번 유실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쓸려 내려간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이면 붕괴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지 않으냐는 연합뉴스 기자의 질문에 SK건설 관계자는 “붕괴는 구조물이 내려앉은 것이고, 유실은 물에 쓸려 내려갔다는 의미”라면서 “정확한 사고 원인은 라오스 정부 차원에서 조사하고 있으니 그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 원인과 관련, 캄마니 인티라스 라오스 에너지·광산부 장관은 지난 26일 언론 인터뷰에서 “규격에 미달한 공사와 예상치 못한 규모의 폭우가 원인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그는 또 “아마도 보조댐에 금이 가 있었을 것이다. 이 틈새로 물이 새어 댐을 붕괴시킬 만큼 큰 구멍이 생겼을 것으로 본다”고 부실공사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SK건설 측은 역대 최고급 폭우로 보조댐이 유실됐다는 입장이다. 사고 전 열흘간 무려 1000㎜가 넘는 비가 내렸고, 사고 하루 전에도 438㎜의 ‘물폭탄’이 쏟아졌다는 설명이다. 한편, 이번 사고 희생자와 관련, 라오스통신(KPL)은 26일 사망자 27명, 실종자 131명, 이재민 3천60명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한 바 있으나 정확한 사망자 숫자를 놓고는 현지 정부 당국과 언론의 발표가 혼선을 빚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원시의 섬 태초의 힘

    원시의 섬 태초의 힘

    갈라파고스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출발지인 에콰도르 과야킬 공항에서부터 짐 검사가 까다로웠다. 비행기에 오르는 모든 승객들은 가방의 지퍼를 열어야 했다. 씨앗이나 과일은 섬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 백발의 외국인 아주머니는 말린 꽃차까지 빼앗아 간다며 화를 냈다. 게다가 지갑에서 돈도 쑥쑥 빠져나갔다. 입도 카드(TCT)가 무려 20달러. 여기에 입도비 100달러를 또 내야 했다. 자연에 해를 주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도 써야 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우리는 지금 갈라파고스에 가고 있잖아요.” 꽃차를 뺏겼던 백발의 아주머니는 티켓을 흔들며 웃음을 지었다.과야킬 공항을 이륙한 지 1시간쯤 지났을까, 승무원들이 수하물 선반을 모조리 열고는 소독약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착륙이 가까웠다는 신호였다. 갈라파고스의 산크리스토발섬에 착륙해서도 바다사자와의 만남은 잠시 더 시간을 미뤄야 했다. 가방 지퍼를 다시 열어젖히고 짐 검사를 다시 한 후, 탐지견이 한참 동안이나 코를 가방을 대고 킁킁거리다가 꼬리를 흔들고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갈라파고스의 흙을 밟을 수 있었다. 섬에서 가장 번화한 마을인 푸에르토바케리소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저녁이었다. 수평선 너머에서 노을이 번져 오고 있었다. 예약한 크루즈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가는 길, 여행자를 반기는 건 ‘끄으윽 끄으윽’ 하는 바다사자의 울음소리였다. 선착장 끝에는 마을 사람들과 바다사자들이 모여 보랏빛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 벤치에는 커다란 바다사자 한 마리가 누워 “어서 와, 갈라파고스는 처음이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콧수염을 찔금거렸다. 1835년 9월 15일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제도에 도착한 찰스 다윈은 제각기 부리가 다르게 생긴 새들이 모두 같은 핀치새라는 것을 알고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진화론을 세우게 된다. 에콰도르 해안에서 서쪽으로 약 1000㎞ 지점에 위치한 갈라파고스제도는 19개의 섬과 많은 암초로 이루어져 있다. 화산 폭발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정식명칭은 콜론제도다. 갈라파고스에는 산호초가 없다. 적도에 위치하지만 해저에서 솟아나는 차가운 물과 남미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한류의 영향으로 수온이 15℃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연 강수량도 1000㎜가 채 되지 않아 야자수도 자라지 않는다. 갈라파고스만의 독특한 생물상은 이런 척박한 환경과 고립된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갈라파고스에 서식하는 포유류와 조류·파충류의 80%, 고등식물의 약 40%가 고유종이고 바닷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바다이구아나는 전 세계에서 오직 갈라파고스에서만 살고 있다. 글 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 “적폐청산도 사치”… 을의 절규, 끝내 비극

    “적폐청산도 사치”… 을의 절규, 끝내 비극

    “법조타운 공사 중 2억어치 자재 빼돌려”반출 영상 증거로 냈지만 ‘불기소 처분’ “동부지법 공사 유착· 부실 수사” 주장도 檢 “두 차례 수사 모두 정상적 절차 따라”“갑질과 도둑질을 일삼는 회사는 잘사는데 힘없고 열심히 일한 국민은 억울해서 못살겠습니다.” 한 건설사 하청업체 직원 유모(52)씨는 지난 24일 이런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씨는 유서에서 “(대기업의 갑질에 대한 고발을) 밀어붙였으나 이길 수가 없었다”면서 “새벽 일찍 일어나 열심히 일한 대가가 이렇다. 적폐청산도 사치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음에는 이렇게 바보 멍청이같이 살고 싶지 않다.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달라”고 덧붙였다. 유씨는 앞서 A건설사 직원들이 송파구 문정법조타운 동부지법 신청사를 건축하는 과정에서 최소 1억 9000만원 상당의 관급 자재를 몰래 빼돌렸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해당 직원들을 검찰에 고발한 인물이다. 유씨는 지난 3년 동안 A건설사가 갑질과 횡령 등 비리를 수년간 저질러 왔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 유씨에 따르면 건설사 측은 지급해야 할 비용을 임의로 깎아버리거나 공사장의 흙 처리 비용을 하청업체에 떠넘겼다. 유씨는 A건설사의 갑질을 입증할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건설사 직원이 자재를 몰래 반출하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하고 이를 수사기관에 증거자료로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A건설사에 대한 두 차례의 수사에 대해 모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지난해 7월부터 진행된 관급자재 횡령 혐의에 대한 수사는 같은 해 11월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혐의 없음’으로 일단락됐다. 이에 유씨는 항고했고, 사건은 지난 2월 서울고검에서 서울동부지검으로 넘어오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혐의 없음’이라는 똑같은 결론이 내려졌다. 이후 유씨는 변호사와 함께 재항고 준비에 돌입했다. 유씨는 당시 “일반인이 조사할 수 있는 최대치를 모아 수사기관에 제출했는데도 검찰은 공사장 CCTV를 압수수색하거나 자재 반출 차량 번호를 추적하지도 않고 사건을 종결했다”며 검찰의 부실수사를 강하게 주장했다. 이어 “검찰·법원과 건설사 간의 유착이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유씨는 공정거래위원회 등 다른 여러 기관의 문도 두드렸지만 소용없었다. 높은 벽을 실감한 유씨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25일 “처음 수사가 진행됐을 때 증거불충분으로 마무리됐고 유씨의 항고에 따른 재수사도 모두 정상적인 절차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라오스댐 붕괴, 유감표명 없는 정부·사고 축소하는 SK건설

    라오스댐 붕괴, 유감표명 없는 정부·사고 축소하는 SK건설

    정부 긴급구호대 파견·의료품 대책만 SK건설, 범람 주장하다 “일부 유실”한국 공적개발원조(ODA)로 SK건설이 짓고 있던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의 보조댐 붕괴 사고로 라오스 국민 19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실종됐음에도 우리 정부가 사고 발생 사흘째인 25일에도 유감이나 애도의 뜻을 밝히지 않아 인간 존엄과 인권에 눈을 감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형적인 인재(人災)임에도 사고 축소에만 급급한 SK건설도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사고 원인 규명에 따라 천문학적인 피해 보상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라오스 피해 국민의 슬픔을 보듬어주는 ‘인권 정부’로서의 자세를 보이지 않은 게 아쉬운 대목이다. 정부는 긴급구호대 파견, 의료품과 구호물품 지원 대책을 내놨다. 이번 사업은 정부와 무관치 않다. ODA는 개발도상국의 경제 개발과 복지 증진을 위한 정부나 공공기관의 지원금이다. 참여연대는 이날 “댐 건설은 ODA 기금으로 지원된 만큼 정부가 사고 수습을 책임지고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운동연합도 “박근혜 정부는 민관협력사업에 정부가 최초로 지원한 사례라고 거창하게 홍보까지 했다”고 밝혔다. 이어 “2013년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해당 사업의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왔다”며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된 만큼 정부는 더욱 엄격한 환경영향평가를 시행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외교부는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유감이나 애도 표명 없이 “우리 국민은 모두 사전에 대피했고 피해가 없다”는 식으로 대처했다. 해외 순방 중인 이낙연 국무총리도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라”고 지시했지만 역시나 유감 표명은 없었다. 라오스 아타프 주 관계자는 “현재 19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고 실종자 규모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최소 수백명으로 판단한다”고 AFP통신 등에 밝혔다. 이번 사고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재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틀 전 댐의 안전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알았고, 유실이 시작된 이후에도 비상 방류를 6시간이나 지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원인을 놓고 사업자 간 엇박자를 내는 꼴불견도 드러냈다. 서부발전은 사고 원인을 “지반 침하에 따른 붕괴”라고 규정해 댐 운영 과정의 실수를 감추려는 듯했다. 반면 SK건설은 “자연적인 무너짐 과정에서 사력댐(흙과 자갈을 섞어 둑을 만든 댐) 일부가 떠내려간 유실”이라며 애써 사고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댐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상황이지만 우리 기업이 댐 건설에 참여하는 만큼 정부도 지체 없이 현지 구호 활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언급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라오스댐 붕괴 사고] 범람 위기에도 6시간 뒤 방류… ‘늑장 대응’ SK건설·서부발전 禍 키웠다

    [라오스댐 붕괴 사고] 범람 위기에도 6시간 뒤 방류… ‘늑장 대응’ SK건설·서부발전 禍 키웠다

    집중호우 지속… 수위 낮춰 댐 비웠어야 기상분석 전문가 부재로 수량조절 실패 하류 대피훈련 등 현장 위기관리 손놓아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 보조댐 사고는 집중호우에 따른 불가항력이었다고 하지만 여러 가지 의문을 품고 있다. 특히 댐의 안전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알고도 비상 방류를 6시간이나 지체했던 것으로 드러나는 등 초기 대응이 허술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 유실 징후 확인하고도 늑장조치? 댐 유실 사고 원인은 일차적으로 집중호우 이후 빗물 유입량이 급증해 댐 시설물에 부하가 걸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SK건설은 사고 현장에서 예년보다 3배 많은 비가 내렸고 하루 450㎜가 내리는 폭우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형 댐은 200~500년 빈도의 강우를 넘어 최근에는 최대 가능 홍수량(PMF)을 고려해 설계하는 추세다. 사고 댐도 PMF를 반영했다. 그렇다면, 왜 사고가 발생했을까. SK건설과 한국서부발전이 취한 조치를 보면 이미 이틀 전부터 보조댐에서 유실 징조가 나타났다. 특히 유실이 발생한 것을 확인하고도 6시간 동안 수위를 낮추지 않은 정황이 포착된다. 이 댐은 자연 월류 방식으로 설계된 사력댐(흙과 자갈을 섞어 둑을 만든 댐)이다. 물이 가득 차면 댐 둑을 타고 자동으로 흘러내려 가게 하였다. 이 때문에 수문을 별도로 만들어 언제든지 유입된 물을 방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 세심한 수량 관리가 요구된다. 자연 월류 방식으로 건설한 댐이라도 집중호우가 계속돼 수위가 상승하고, 이상 징후까지 발견됐다면 댐 안전을 위해 미리 물을 방류하는 게 댐 운영 원칙이다. 하지만 사고가 난 댐은 물이 차 넘어가도록 지었다는 이유로 유실이 이뤄질 때까지 물을 비우지 않았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2. 비상 방류 지연? 비상 방류가 지연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규모 댐은 담수 능력 이상의 물이 유입돼 범람하는 것을 막으려고 여수로(餘水路·비상 방수로)를 설치한다. 수위 및 유량이 일정량 이상이 되면 여분의 물을 배수하기 위한 수로다. 사고가 난 댐에도 여수로와 비상 방류구가 설치됐지만, 비상 방류를 시작한 것은 사고 조짐을 발견하고도 6시간이 지난 뒤였다. 비상 방류만 서둘렀어도 보조 댐의 수위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연 월류 댐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상 방류를 하지 않은 것이 화를 키웠을 수 있다. 3. 기상 분석 실패? 댐 유역 기상 분석 전문가가 없어 집중호우에 따른 댐 유입량 변화를 예측하지 못했고, 수량 조절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 대규모 댐 운영기관은 댐 주변 기상 분석 전문가를 두고 있는데, 사고 현장에는 전문 기상 분석가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댐 기상 분석 전문가는 일반 기상 분석가와 다르다. 예를 들어 기상청이 중부지방에 하루 100㎜의 비가 내린다고 예보한다면 한국수자원공사(K-water) 기상 분석 전문가는 특정 지역에서 200~300㎜가 내릴 수 있다고 분석할 정도의 전문성을 갖췄다. 4. 안이한 현장 관리·위기관리 부재? 집중호우가 계속됐고, 범람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운전이라도 담수를 시작한 만큼 완벽한 위기관리 체계를 갖췄어야 했다. 대형 댐은 ‘긴급 상황 시 행동 계획’(EAP)을 마련, 대응훈련을 하고 있다. 집중호우로 위험수위까지 물이 찼다고 가정해 비상 방류나 하류 대피 훈련을 하는데 이번 사고가 발생한 댐에서는 이런 시스템이 작동했는지 의문이 간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방류지연, 예측실패…‘SK건설 라오스댐 사고’ 4대 의문점

    방류지연, 예측실패…‘SK건설 라오스댐 사고’ 4대 의문점

    지난 23일 밤 라오스에서 발생한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 보조댐 사고는 집중호우에 따른 불가항력이었다고 하지만 여러 가지 의문을 품고 있다. 특히 댐의 안전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알고도 비상 방류를 6시간이나 지체했던 것으로 드러나는 등 초기 대응이 허술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 유실 징후 확인하고도 늑장조치? 댐 유실 사고의 직접 원인은 집중호우에 따른 유입량 급증으로 댐에 부하가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 SK건설은 사고 현장에서 예년보다 3배 많은 비가 내렸다고 한다. 일주일 강수량이 10000㎜, 하루 450㎜가 내리는 폭우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형 댐은 만약의 사태를 생각해 설계한다. 200~500년 빈도의 강우를 넘어 최근에는 PMF(최대 가능 홍수량)을 고려해 설계하는 추세다. 사고가 일어난 댐도 설계는 PMF를 반영했다. 그렇다면, 왜 사고가 발생했을까. SK건설과 한국서부발전이 취한 조치를 보면 보조 댐 유실 징후를 알고도 6시간 동안 수위를 낮추지 않은 정황이 포착된다. 집중호우가 계속된 만큼 댐 안전을 위해 미리 물을 빼어 수위를 낮추는 것이 댐 운영 원칙이지만, 댐을 비우지 않았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위험 발생을 알고도 6시간이 지나 비상 방류구를 가동했기 때문이다. 혹시 많은 전력을 생산하려고 물을 가두고 있다가 방류 시기를 놓쳐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는지 의심이 간다. 이 댐은 자연 월류 방식으로 설계된 사력댐(흙과 자갈을 섞어 둑을 만든 댐)이다. 물이 가득 차면 댐 둑을 타고 자동으로 흘러내려 가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수문을 별도로 만들어 언제든지 유입된 물을 방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우리나라 소양강댐이나 충주댐처럼 홍수조절을 겸한 다목적댐이 아니라는 점에서 집중호우 때는 더 세심한 수량 관리가 요구된다. 2. 비상 방류 지연? 비상 방류가 지연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규모 댐은 담수 능력 이상의 물이 유입돼 범람하는 것을 막으려고 여수로(餘水路·비상 방수로)를 설치한다. 수위 및 유량이 일정량 이상이 되면 여분의 물을 배수하기 위한 수로다. 댐에 범람할 정도의 물을 가두게 되면 수압이 많이 증가해 댐 본체의 안전에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주변 토사가 쓸려나가면서 댐 전체의 안전이 위협이 따르기 때문이다. 사고가 난 댐에도 여수로와 비상 방류규가 설치됐지만 비상 방류를 시작한 것은 사고 조짐을 발견하고도 6시간이 지난 뒤였다. 비상 방류만 서둘렀어도 보조 댐의 수위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3. 기상 분석 실패? 대규모 댐 운영기관은 댐 주변 기상 분석 전문가를 두고 있다. 이들은 댐 주변 기상을 자세하고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광범위한 지역을 담당하는 일반 기상 분석가와 다르다. 우리나라는 기상청이 일반 기상정보를 제공하면, 댐 기상 분석가는 댐 주변 유역별 기상을 촘촘하게 예측한다. 예를 들어 기상청이 중부지방에 하루 100㎜의 비가 내린다고 예보하면, K-water는 하천별 기상을 분석, 특정 지역에서는 200~300㎜가 내릴 수도 있다고 분석할 정도로 국지적인 기상정보를 분석한다. 기상 분석 이후에는 댐으로 흘러들어오는 수량과 댐 하류 하천의 수위 변화를 실시간으로 확인, 분석해 적절한 수문 개방 시기와 방류량을 결정한다. 정확한 분석을 하려면 해당 댐 주변의 축적된 강수 자료 확보와 전문가를 확보해야 한다. 사고가 발생한 댐에도 기상 분석가가 상주했는지, 기상 분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 간다. 댐 유역 기상 전문가가 없다면 집중호우에 따른 댐 유입량 변화를 예측하지 못해 댐 수량을 조절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 4. 안이한 현장 관리·위기관리 부재? 집중호우가 계속됐기 때문에 충분히 범람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댐 담수 능력 이상의 물이 유입될 것을 예상해 일찌감치 댐을 비워뒀어야 했다. 최초 범람 위기를 인지하고 곧바로 비상 방류를 결정하지 않은 것도 댐 시험 운전 과정의 실수로 보인다. 시험 운전이라도 담수를 시작한 만큼 완벽한 위기관리 체계를 갖췄어야 했다. 대형 댐은 ‘EAP(긴급 상황 시 행동 계획)’를 마련, 대응훈련을 하고 있다. 집중호우로 위험수위까지 물이 찼다고 가정해 비상 방류나 하류 대피 훈련을 하는데 현장에서 이런 시스템이 작동했는지 의문이 간다. 서부발전과 SK건설의 위기관리 부재도 비난받고 있다. 사고 원인을 놓고도 SK건설은 유실, 서부발전은 일부 침하를 거론하는 등 다른 뉘앙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책임을 떠넘기려고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적폐청산도 사치”… 을의 절규, 끝내 비극

    “적폐청산도 사치”… 을의 절규, 끝내 비극

    ‘건설사 갑질·횡령 의혹 고발’ 하청업체 직원석연찮은 수사 종결 반발 극단적 선택“법조타운 공사 중 2억어치 자재 빼돌려”반출 영상 증거로 냈지만 ‘불기소 처분’“동부지법 공사 유착·부실 수사” 주장도檢 “두 차례 수사 모두 정상적 절차 따라” “갑질과 도둑질을 일삼는 회사는 잘사는데 힘없고 열심히 일한 국민은 억울해서 못살겠습니다.” 한 건설사 하청업체 직원 유모(52)씨는 지난 24일 이런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법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씨는 유서에서 “(대기업의 갑질에 대한 고발을) 밀어붙였으나 이길 수가 없었다”면서 “새벽 일찍 일어나 열심히 일한 대가가 이렇다. 적폐청산도 사치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음에는 이렇게 바보 멍청이같이 살고 싶지 않다.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달라”고 덧붙였다.유씨는 앞서 A건설사 직원들이 송파구 문정법조타운 동부지법 신청사를 건축하는 과정에서 최소 1억 9000만원 상당의 관급 자재를 몰래 빼돌렸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해당 직원들을 검찰에 고발한 인물이다. 유씨는 지난 3년 동안 A건설사가 갑질과 횡령 등 비리를 수년간 저질러 왔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 유씨에 따르면 건설사 측은 지급해야 할 비용을 임의로 깎아버리거나 공사장의 흙 처리 비용을 하청업체에 떠넘겼다. 유씨는 A건설사의 갑질을 입증할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건설사 직원이 자재를 몰래 반출하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하고 이를 수사기관에 증거자료로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A건설사에 대한 두 차례의 수사에 대해 모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지난해 7월부터 진행된 관급자재 횡령 혐의에 대한 수사는 같은 해 11월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혐의 없음’으로 일단락됐다. 이에 유씨는 항고했고, 사건은 지난 2월 서울고검에서 서울동부지검으로 넘어오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혐의 없음’이라는 똑같은 결론이 내려졌다.하지만 검찰은 A건설사에 대한 두 차례의 수사에 대해 모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지난해 7월부터 진행된 관급자재 횡령 혐의에 대한 수사는 같은 해 11월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혐의 없음’으로 일단락됐다. 이에 유씨는 항고했고, 사건은 지난 2월 서울고검에서 서울동부지검으로 넘어오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혐의 없음’이라는 똑같은 결론이 내려졌다. 이후 유씨는 변호사와 함께 재항고 준비에 돌입했다. 유씨는 당시 “일반인이 조사할 수 있는 최대치를 모아 수사기관에 제출했는데도 검찰은 공사장 CCTV를 압수수색하거나 자재 반출 차량 번호를 추적하지도 않고 사건을 종결했다”며 검찰의 부실수사를 강하게 주장했다. 이어 “검찰·법원과 건설사 간의 유착이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유씨는 공정거래위원회 등 다른 여러 기관의 문도 두드렸지만 소용없었다. 높은 벽을 실감한 유씨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25일 “처음 수사가 진행됐을 때 증거불충분으로 마무리됐고 유씨의 항고에 따른 재수사도 모두 정상적인 절차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국민이 지뢰밟아 사망했는데 국가는 “탐지 안되는 지뢰라…”

    국민이 지뢰밟아 사망했는데 국가는 “탐지 안되는 지뢰라…”

    법원, 민북 지역 도로 공사 중 지뢰사고 사망 노동자 유족에게 3억원 배상 판결 민간인 통제선 이북지역(민북 지역) 근처에서 도로 공사를 하다가 지뢰 사고로 숨진 노동자의 유족에게 국가가 3억원대의 배상금을 물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6부(부장 김지철)는 A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3억 4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강원도 철원군은 지난 2015년 민북 지역에 인접한 구간의 도로 개선 사업을 발주했다. 군부대는 철원군의 요청으로 이듬해 4월부터 7개월간 공시 지역 내 미확인지뢰 지대에서 지뢰제거 작업을 벌였다. 이후 하도급 업체의 땅파기 공사가 시작됐는데, 그 해 11월 29일과 30일 오전 사토장(퍼낸 흙을 버리는 곳)에서 대전차지뢰와 대인지뢰 등 3점이 발견돼 군 부대가 회수해 갔다. 그런데 30일 오후 하도급 업체에 고용된 A씨가 몰던 덤프트럭이 사토장 주변을 지나다 사토에 섞여 있던 대전차지뢰를 밟았고, 지뢰가 폭발하며 A씨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정부 측은 재판에서 “지뢰 탐지기 성능 등을 고려할 때 지면에서 50㎝ 깊이의 지뢰만 탐지할 수 있다”며 “A씨가 밟은 지뢰는 지면에서 7∼8m 깊이에서 채굴한 흙 속에 있었던 것이라 국가에 과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 사고는 지뢰 위험지대에 묻혀 있던 지뢰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채 반출돼 발생한 사고”라며 “지뢰제거 작업은 군부대가 전담할 수밖에 없는 전문적이고 고유한 업무 영역”이라며 지뢰 제거작업 소홀로 사고가 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A씨가 밟은 지뢰가 지면에서 50㎝를 넘는 깊이에서 채굴된 것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며 “해당 군부대는 사고 전날과 당일 오전 지뢰가 발견돼 수거해 갔는데도 추가 제거작업을 하지 않았고, 사람이나 차량의 출입도 제지하지 않는 등 주의 의무를 게을리 했다”고 지적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납품단가 인하 거부하자 기술 빼돌린 두산인프라 중기 기술유용 첫 ‘철퇴’

    두산인프라코어가 납품 단가를 깎으라는 요구를 거부한 하청업체의 기술을 빼돌려 다른 업체에 넘긴 혐의로 억대 과징금과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9월 ‘중소기업 기술유용 근절대책’을 발표한 이후 첫 처벌 사례다. 공정위는 중소기업 기술을 유용한 두산인프라코어에 3억 7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회사와 소속 직원 5명을 검찰에 고발한다고 23일 밝혔다. ●굴삭기 냉각수 저장탱크 기술 자료도 유용 공정위에 따르면 두산인프라코어는 2015년 말 굴삭기에 다는 ‘에어 컴프레셔’(압축 공기로 흙·먼지 등을 제거하는 장비)를 공급하는 이노코퍼레이션에 납품 가격을 18%나 낮추라고 요구했다. 이노코퍼레이션이 거절하자 두산인프라코어는 이 회사의 제작도면 31장을 다른 협력사에 주면서 같은 제품을 개발하도록 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협력사로부터 2016년 7월부터 기존보다 10%가량 싸게 제품을 공급받았고 이노코퍼레이션과는 거래를 끊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굴삭기 냉각수 저장 탱크를 납품하는 코스모이엔지의 기술 자료도 유용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7월 코스모이엔지가 납품 가격을 올려 달라고 하자 냉각수 저장 탱크 제작도면 38장을 다른 5개 회사에 주고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지 확인했다. 5개 업체는 거래 조건이 맞지 않아 납품하지는 않았지만 공정위는 거래가 없어도 기술 자료 유용 행위로 판단했다. ●공정위 “과징금 상한·배상 범위 확대 계획” 두산인프라코어는 2015~2017년 30개 하도급 업체로부터 서면 요구 없이 기술 자료가 들어있는 382건의 도면을 받아 하도급법을 어겼다.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하도급 업체에 기술 자료를 요구할 수 있지만 자료의 이름과 범위, 요구 목적, 비밀유지 방법 등 7개 사항을 적어 반드시 서면으로 요청해야 한다. 최무진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국장은 “기술 유용은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중대한 위법 행위”라면서 “기술 유용 과징금 상한을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배상 책임 범위는 손해액의 3배에서 10배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강진 청자축제, 3000만원 경품 받아가세요

    강진 청자축제, 3000만원 경품 받아가세요

    제46회 강진청자축제에 다양한 청자 경품 이벤트들이 마련돼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흙을 밟고·던지고·적시는 체험(투게더 점핑 소일), 나이트 팝 페스티벌을 킬러콘텐츠로 오는 28일부터 8월 3일까지 강진군 대구면 청자촌 일원에서 개최된다. 축제 기간에는 30% 청자할인 판매(일부품목 제외)를 진행해 평소보다 저렴하게 청자를 구입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로 진행하는 청자 경품이벤트는 청자구매 금액 10만원당 경품권 1매씩을 수여해 이벤트 담청자를 발표한다. 1등 상품으로 수여되는 3000만원 상당의 청자는 ‘이천학문 상감청자매병’이다. 일반적인 일천학문을 뛰어넘는 이천마리의 학을 조각상감한 특색 있는 작품이다. 2등에 500만원 상당 2점, 3등에 100만원 상당 3점, 장려상에는 식기세트 등을 경품으로 제공한다. 이승옥 강진군수는 “청자 경품이벤트는 군민에게는 소득창출에 기여하고, 소비자에게는 뜻깊은 경품을 수여하는 의미 있는 행사다”며 “많은 관광객들이 참여하는 성대한 축제다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무더위 날리는 조선 여성, 조선 무인, 조선 사람들 이야기

    무더위 날리는 조선 여성, 조선 무인, 조선 사람들 이야기

    조선시대를 다룬 신간이 잇따라 출간돼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여성, 조선시대 무인, 그리고 조선시대 특이한 이들을 다룬 책들이다. 조선의 풍속, 행정, 문화, 사람 이야기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 시대상을 보여준다. 무더운 여름, 이들의 삶을 살펴보고 당시 시대에 관한 시야도 넓혀보는 것은 어떨까.30여 년간 한국 여성사 연구에 전념한 장병인 충남대 명예교수가 쓴 ‘조선 여성의 삶’(휴머니스트)은 조선시대 혼인, 이혼, 간통, 성폭행을 둘러싼 법과 풍속을 세세하게 살핀 책이다. 그동안 잘못 알려진 인식에 관해 자료로 이를 바로 잡는다. 예컨대 조선시대 이혼에 관해 일제강점기 한국학자 이능화는 ‘조선여속고’에서 “국법에 그 내용이 없다”면서 “사대부 집안 여성이 이혼하려면 왕에게 허락 받아야 한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저자는 ‘대명률’과 ‘경국대전’ 항목을 들어 반박한다. 이에 따르면 합법적인 이혼을 가리키는 ‘이이’를 비롯해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기된 상황을 가리키는 ‘출처’, ‘기별’, ‘거처’ 등 용어가 사용됐다. 오늘날처럼 부부 합의로 이혼하는 사례를 비롯해 부부 의사와 관계없이 국가가 강제로 부부를 갈라서게 하는 ‘강제 이혼’이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저자는 또 조선시대 성폭행의 실상을 들여다보고자 가해자와 피해자의 출신 성분, 범죄 내용, 처벌 양상 등을 신분별로 조선 전·후기를 나눠 상세하게 분석한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일성록’과 재판기록인 ‘추관지’, ‘심리록’ 등을 근거로 113건의 관련 사건을 다룬다. 여기에 드러난 조선시대 강간 범죄의 양상이 생생하다. 저자는 이와 관련 “‘남존여비’ 통념이 형성된 배경에 서구중심주의적 사고, 그리고 아직도 불식되지 않은 식민사관이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부장은 조선 사회에서만이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한 모든 전근대사회에서 공통으로 나타난 현상이었으며,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고 식민사관과 결합하면서 잘못된 인식이 만연했다는 지적이 날카롭다.1600년부터 제도가 폐지된 1894년까지 무관을 뽑는 시험인 무과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조선 무인의 역사’(푸른역사)도 눈여겨볼 만하다. 임진왜란 이후 조정에서는 공로가 있는 백성을 위로하려고 이전과 달리 무과를 대규모로 시행했다. 무과에 서얼이나 노비까지 응시했고, 무과에 합격하더라도 무관이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은 나름 알려졌다. 실제로 1609년부터 1894년 시행된 무과 가운데 254번의 무과를 치렀는데, 한 번에 100명이 넘는 합격자가 나오기도 했다. 이 중에서는 실제로 활을 쏘지 못하더라도 합격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 의도 역시 순수하지만은 않았다. 저자는 그럼에도 왜 백성이 끊임없이 무과에 응시했는지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과 문·무과 합격자 명단을 가리키는 ‘방목’ 자료를 분석해 결론을 얻는다. 피지배층에게 조금씩 문호를 양보하며 체제불만이라는 충격을 흡수했다는 것이다. 저자인 재미학자 유진 Y. 박 펜실베이니아대 교수가 미국에서 2007년 낸 책에 추가 자료를 보완해 국내에 출간했다. 조사를 위해 조선시대 전체 무과급제자 5분의 1에 해당하는 3만 2327명의 무과 급제자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연구했다. 방대한 자료로 촘촘히 분석한 책이라 가치 있다.안세현 강원대 한문교육과 교수가 낸 ‘傳, 불후로 남다’(한국고전번역원)는 조선 문인이 쓴 ‘전(傳)’ 가운데 교훈을 주거나 흥미있는 글을 뽑아 주제별로 엮은 책이다. ‘전’은 인물의 선행과 미덕을 담은 문체로, 지금으로 치면 ‘전기’에 해당한다. 조선 초반에는 모범이 되는 인물에 관한 전기가 많았으나, 후대로 갈수록 삶의 양상이 복잡해지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룬다. 책은 문인들이 글로 남긴 33인의 삶을 풀어내고, 저자가 해설을 붙였다. 이 가운데 우리가 예상치 못한 독특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는 자못 흥미롭다. 예컨대 전쟁 포로 조완벽은 정유재란 때 왜군에게 잡힌 뒤 포로가 돼 일본으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노비로 일하다 주인을 따라 지금의 베트남인 ‘안남국’을 가게 된다. 죽음을 무릅쓰고 간 그가 안남국으로 향하며 항해를 기록한 이야기라든가, 머리가 긴 안남국 사람들을 묘사하는 부분이 아주 흥미롭다. 그는 ‘긴 밧줄에 철추를 매달고 그 밑에 밥을 으깨 붙여서 바다 밑으로 내려 보냈는데, 더러는 곧장 3·4백발 정도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철추 아래 묻어 나오는 흙은 검거나 희었는데, 흙 색깔로 어느 지방인지 분별하였다’고 했다. 안남국 사람에 관해서는 ‘모두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고 맨발로 다녔다. 겨울에도 봄처럼 따뜻해서 맨발로 다녀도 발에 상처가 나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특히 ‘조선에서 왔다’고 하자 ‘이지봉을 아느냐’면서 안남국 사람이 이지봉의 시를 줄줄 외는 모습도 나온다. 책은 충신, 효자와 같은 전형적인 인물부터 여군자, 기인, 은둔자, 협객, 과학자, 예술가, 골동품 수집가, 귀화인, 득음한 가수, 침술의 대가를 비롯해 다양한 인물을 다룬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에 더위가 날아갈 듯 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내가 조선의 국모다”… 명성황후의 비극 서린 산책길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내가 조선의 국모다”… 명성황후의 비극 서린 산책길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0회 홍릉산책(홍릉수목원) 편이 지난 14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과 회기동, 성북구 종암동과 하월곡동을 넘나들며 진행됐다. 정릉천을 경계로 동대문구와 성북구가 갈리고 정릉천과 중랑천 사이 천장산 자락에 홍릉수목원을 비롯해 의릉, 북서울 꿈의 숲, 배봉산 등이 안겨 서울 동북부의 허파를 형성하고 있다. 이날 홍릉수목원은 33도를 기록하는 살인적인 무더위를 피하면서 피톤치드가 충만한 삼림욕까지 즐기는 일석이조의 피서지였다.참가자들은 고려대역 3번 출구에서 만나 정릉천~한국국방연구원(KIDA)~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홍릉수목원(국립 산림과학원)~카이스트 서울캠퍼스~옛 한국농촌경제연구원~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인재캠퍼스~수림문화재단~세종대왕기념관 코스를 걸었다. 다들 “서울의 부도심에 이런 울창한 숲과 고즈넉한 시가지가 남아 있다는 게 경이롭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땅 향기가 살아 있는 홍릉수목원의 그늘은 마치 딴 세상 같았다. 다만 주말에도 개방하는 홍릉수목원과 세종대왕기념관 이외 다른 공공기관은 휴관 중이거나 공사 중이어서 볼 수 없는 점이 아쉬웠다. 서울미래유산 해설자로 첫 데뷔한 숲 전문가 임혜란 해설사는 해박한 생태지식과 구수한 입담으로 투어단을 이끌었다.홍릉수목원이 있는 청량리는 조선시대 능행과 농경 제례의 상징공간이었다. 청량리는 태조의 건원릉이 있는 왕실 최대 묘역 동구릉으로 향하는 능행길이자 능행행차를 통해 왕실의 존엄을 내보이는 홍릉 묘역이었다. 또 청량리 일대는 농경사회의 수호자인 왕이 몸소 경작의 시범을 보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례를 올리는 신성한 장소이기도 했다. 사대문을 둘러싸고 형성된 성저십리(성 밖 10리)를 뜻하는 동교, 서교, 남교, 북교 등 교외지역 중 청량리와 왕십리로 대표되는 동교지역의 위상이 다른 지역보다 높은 까닭이다. 능행은 선왕의 기억과 권위에 기대 효를 다하는 왕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고도의 정치 행위였다. 문상외교, 문상정치와 뿌리를 같이한다. 왕의 견문을 넓히고, 도성 밖 사대부나 지방 백성과 소통하는 중요 행사였다. 왕은 최대한 천천히 가면서 피지배 계층에게 권위를 보이고, 민원을 청취한 뒤 덕을 베풀었다. 민원이 있는 백성은 꽹과리를 두드리며 소란을 피워 가마를 멈추게 한 뒤 억울함을 고한다. 이때 왕은 소란죄로 가볍게 처벌한 뒤 민원을 듣고, 우선 처리해 주는 ‘능행정치쇼’를 벌였던 것이다. 정조는 배봉산(서울시립대 뒷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 영우원을 옛 수원(화성시) 현륭원으로 옮기면서 12차례 한강을 건너는 효행을 선보였다. 정조의 능행잔치는 조선 최대의 볼거리, 즐길거리였다. 이 덕분에 정조는 세종대왕과 함께 백성이 인정하는 ‘대왕’의 반열에 올랐다. 1883년 서울을 방문했다가 능행을 구경한 독일인 마예트는 ‘코리아의 수도 서울 견문기’에서 “시내가 구경꾼으로 가득 차서 왕의 행차가 지나가는 길에는 집 창문이나 대문간, 뜰에 흰옷을 입은 사람들로 메워졌다”면서 “도로는 깨끗하게 치워졌고 길 중간에는 붉은 흙이 깔려 있었다. 왕은 말을 타지 않고 지붕이 있는 가마를 탔다”고 능행 풍경을 묘사했다.홍릉이 먼저인가, 청량리가 먼저인가. 우문이지만 헛갈리는 사람이 많다. 당연히 청량리가 주인이요 홍릉은 객이다. 홍릉은 청량리에 22년간 잠깐 깃들었다가 떠났을 뿐이다. 그러나 신라의 고찰 청량사에서 유래한 청량리라는 유구한 지명은 홍릉이라는 19세기 비극의 장소성에 밀렸다. 비명에 간 명성황후는 지아비 고종을 따라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의 ‘진짜 홍릉’으로 떠나고 없지만 나라와 국모를 잃은 당대인의 가슴속에는 청량리보다 ‘빈 홍릉’이 각인됐다. 옛 홍릉의 기억이 청량리라는 장소를 지배하게 됐다. 그렇게 주객이 전도돼 이제는 홍릉이 청량리를 떠올리게 한다. 장소의 역사란 이렇게 이율배반적이다. 22년간 이뤄진 고종·순종의 숱한 홍릉능행 덕분에 청량리라는 작은 마을이 유명해지고 서울 동북방의 중심지로 떠올랐다.능행의 정치사에서 흥릉은 일개 황후 능에 불과했지만 조선 말, 대한제국 초에는 개국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능가하는 역사의 무대였다.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첫 번째 황제 고종의 황후 능이요, 마지막 황제 순종황제의 친모 능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895년 10월 8일 경복궁 건청궁에서 일본군인에 의해 비명에 간 황후의 장례식이 2년 2개월 후인 1897년 11월 22일에 치러졌다는 시간 흐름을 주목해야 한다. 국장 1개월 전인 1897년 11월 22일 최초의 근대국가이자 황제국인 대한제국으로 국호와 연호를 바꾼 점도 놓쳐선 안 된다. 명성황후의 죽음 자체보다 죽음이 몰고 온 파장이 더 컸다. 국장은 3개월을 넘기지 않는 게 관례였지만 시간을 끌면서 배일, 극일을 모색한 끝에 1896년 아관파천에 이어 1897년 대한제국 탄생 선언으로 이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명성황후의 비극적 시해와 홍릉 조성은 대한제국의 탄생 및 멸망사와 궤를 같이한다. 홍릉은 어렵게 얻은 장지였다. 안감천(성북구 안암동)과 회암(양주시 회암동) 등 모두 7곳을 놓고 의견이 갈렸다. 결국 고종의 마음에 차지 않아 다른 7곳을 골랐고 그중 연희궁 터(연희동 일대)와 청량리가 부각됐다. 권세를 누린다는 연희궁보다 ‘평안하고 길한 땅’으로 평가된 청량리가 선택됐다. 동구릉에서 멀지 않고, 참배도 쉬운 점이 점수를 땄다. ‘명성황후 발인반차도’에 따르면 상여를 따라가는 수행원은 대략 4800명이었다. 역사상 최초의 황후 장례식이기 때문에 역대 어떤 왕의 국장보다 성대했고, 수행 인원이 많았다. 상여가 가는 코스는 경운궁(덕수궁)~청계천 혜정교~흥인지문~동관왕묘(동묘)~보제원(제기동)~한천교~청량리 홍릉으로 이어졌다. 홍릉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국고를 털었다. 절과 민가 92호에 보상비 3만냥을 주고 철거했으며, 무연고 묘와 연고 묘 450총을 이장하는 비용 2만 2000냥, 홍릉 아래 전답 수용에 4만 6000냥을 지불했다고 기록돼 있다. 명성황후의 죽음을 애통해한 고종을 노국공주를 잃은 고려 공민왕에 비유한다. 3년간 국상을 치르면서 수없이 홍릉길을 오간 고종이 1919년 67세를 일기로 숨지자 금곡 홍릉에 합장했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는 사별한 지 24년 만에 저승에서 만나 해후했다. 청량리 홍릉 옛 황후능 터에는 소나무 한 그루와 비석 한 개가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홍릉은 전설로 남았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 도봉(창포원의 붓꽃) ●일시 : 7월21(토) 오전 10시~12시 ●집결 장소 : 도봉산역 2번 출구 ●신청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 (futureheritage.seoul.go.kr) *혹서기인 7월28일부터는 저녁 6 시부터 8시까지 야간에 진행됩니다.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한국 독립에 목숨 바친 베델 “대한매일신보 영원히 살아남아야”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한국 독립에 목숨 바친 베델 “대한매일신보 영원히 살아남아야”

    대한민국이 온통 제17대 대통령 선거로 떠들썩하던 2007년 12월 초.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특별한 사연 하나가 실렸다. 외교담당 대기자로 잘 알려진 패트릭 코번(68)이 쓴 ‘헨리의 전쟁-강제 인도에 반대한 투쟁’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였다. 약 100년 전 영국의 한 외교관이 일본의 한국 탄압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다가 조기에 퇴임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는데, 그가 바로 자신의 할아버지 헨리 코번(1871~1938)이라는 것이다. 아래는 그의 기사를 요약한 것이다.“헨리 코번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3일 만인 1905년 11월 20일 주한 영국대리공사로 발령받아 1906년 2월~1908년 9월 한국총영사로 일했다. 그는 일본의 요구로 대한매일신보 사장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에 대한 두 차례의 재판에 참여했다. 주필(편집 책임자) 양기탁을 넘겨 달라는 통감부의 요구도 끝까지 거부했다. 일제의 강제 합병에 반대하는 기사를 쓴 한국 기자를 일본이 고문하려 하자 영국 정부의 반대에도 이를 막아내려고 격렬히 투쟁한 것이다. 결국 그는 영국의 동맹국인 일본과 외교 갈등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총영사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 양기탁이 일본에 송환되고 일주일 뒤인 1908년 8월 21일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갔다. 6개월쯤 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무부를 떠났는데 당시 49세였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영국인들은 그제서야 할아버지가 베델과 양기탁 사건을 통해 말하고 싶어 했던 일제의 잔혹함을 깨닫게 됐다.” 이 기사가 나간 뒤 코번은 우리 정부의 초청으로 2008년과 2013년 한국을 찾았다. 두 번째 방문 때는 할아버지 헨리 코번과 대한매일신보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이는 베델의 존재를 모르고 살던 영국인들에게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20세기 초 자신들의 선조 가운데 한 사람이 이역만리 극동 땅에서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이 이들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헨리 코번은 1908년 본국에 돌아간 뒤 다시 한국에 오지 않았다. 하지만 100년이 지나 그의 손자가 그를 다시 깨웠다. 3·1 운동 발발 100주년을 앞두고 우리에게 베델이라는 ‘큰 문’을 열 수 있도록 ‘열쇠’를 꺼내 준 것이다.1909년 5월 1일. 서울 정동 애스터하우스 호텔(현 서대문역 농협중앙회 터)에서 한 젊은 영국인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바로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를 창립한 베델이었다. 겨우 서른일곱살. 머나먼 이국땅에서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그는 마지막을 직감한 듯 ‘동반자’ 양기탁의 손을 잡고 짧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더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원히 살아남게 해 한국 동포를 구해 주세요.” 베델의 의학적 사인은 ‘심장 팽창’이었다. 앞서 그는 1908년 일제의 요구로 중국 상하이에서 3주간 금고형을 선고받아 복역했고, 일본 언론들이 “베델이 국채보상운동 의연금을 횡령했다”는 루머성 기사를 퍼뜨려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는 “1909년 당시만 해도 베델이 살던 자택(서울 종로구 홍파동 월암근린공원 터) 등 일반 가정에는 전기·수도 시설이 없었다”면서 “(수감 생활 뒤) 나빠진 건강을 회복하고자 세브란스 병원(서울역 연세재단 세브란스빌딩 터)과 가까웠던 호텔에 머물며 치료에 전념했지만 소용이 없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전국 각지에서 애도의 눈물을 흘렸다. 베델이 죽은 지 5개월이 지난 1909년 9월에도 평안북도 희천의 대명학교에서 신보사에 조의금을 보냈을 정도로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들이 많았다. 대한매일신보 주필을 역임한 박은식(1859~1925)은 만사(輓詞·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글)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하늘이 공을 보내고는 다시 데려갔구나./구주의 의혈남아 동쪽의 어둠을 씻어 내고자/삼천리 방방곡곡에 신문을 뿌렸네./꽃다운 이름 남아 다함없이 비추리.”베델의 장례식은 5월 2일 오후 3시 30분 서대문 자택에서 거행됐다. 영국 총영사관원들과 목사, 선교사, 언론인 등 수천명이 모였다. 오후 4시에 발인해 한강변에 있던 양화진 외국인 묘지(마포구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혔다. 운구 행렬에는 흰옷 입은 이들이 구름처럼 뒤를 따랐다. 신보는 이날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양화도 장지로 가는 한국인 가운데 곡하는 자들이 상당수였고, 부인들도 배설공(公)의 집 근처에서 통곡했다. 영국 목사 터너가 장례식을 인도하고 한국 목사 전덕기가 기도한 뒤 성분(관을 묻고 묘를 흙으로 쌓아 올리는 것)하였는데 많은 이들이 분상(봉분) 앞에서 절하며 그를 기렸다. 장지까지 따라온 인원은 내외국인 합쳐서 1000여명이었다.” 5일에는 동대문 밖 영도사(동대문구 안암동 개운사)에서 추도회가 열려 400여명이 그를 추모했다. 6일에는 양기탁 등 10여명이 모여 종로에 베델 동상을 세우기로 하고 모금을 시작했다. 전국에서 모두 259편의 만사(등록문화재 482호)가 모였다. 한국인들이 한 외국인의 죽음을 이토록 애도하며 안타까워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베델은 1872년 영국에서 태어나 열여섯살이던 1888년 아버지의 권유로 일본에서 무역업을 시작했다. 1904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한국으로 건너와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발행했다. 그는 당시 일본의 노골적인 한국 침략 시도를 목격하며 언론의 자유와 항일운동을 지원했다. 언론인으로서 신보와 KDN를 통해 일제 침략을 거세게 비판했다. 대한매일신보사를 국채보상운동 모금소로 활용하고 항일 비밀단체 신민회(1907~1911)의 본부 역할도 할 수 있게 했다. 일본은 영국에 그를 처벌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며 외교공세에 나섰다. 결국 그는 두 차례 재판을 받은 뒤 건강 악화로 짧은 생을 마쳤다. 살아서는 ‘깨어 있는 영국인’으로 한국 독립을 위해 싸웠고, 죽어서는 ‘영원한 한국인’으로 우리에게 다시 태어났다.영국에서 만난 베델의 손녀 수전 제인 블랙(62)은 “베델의 부인이자 내 할머니인 마리 모드 게일은 할아버지(베델)가 떠난 뒤에도 재혼하지 않고 영국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며 그를 기렸다. 할머니는 평생 그를 자랑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아래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있는 베델의 묘비문을 요약한 것이다. “아! 여기 대한매일신보 사장 배설공의 묘가 있도다. 그는 열혈을 뿜고 주먹을 휘둘러 2000만 민중의 의기를 고무하며 목숨과 운명을 걸고 싸우기를 여섯 해나 하다가 마침내 한을 품고 돌아갔으니, 이것이 공의 공다운 점이고 또한 뜻있는 사람들이 공을 위해 이 비를 세우는 까닭이로다. 드높도다 그 기개여, 귀하도다 그 마음씨여. 아! 이 조각돌은 후세를 비추어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다.” 런던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바나나가 사라진다고?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바나나가 사라진다고?

    우리가 쉽게 먹을 수 있는 바나나가 멸종될지도 모른다는 놀라운 기사가 떴다. ‘바나나 멸종’에 관한 언론사 기자들의 심도 있는 ‘팩트체크’ 덕분에 당장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바나나가 단일 유전자를 갖고 있으며 영양생식을 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단일 유전자를 가진 식물이라면 당연히 병충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윈난성 중동부는 척박한 지역이다. 그곳의 농민들은 아무리 농사를 지어 봐야 감자와 옥수수 등을 수확할 수 있을 뿐이었고, 그것은 그리 돈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사탕수수를 기르면 소득이 늘어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 왔다. 사람들은 산을 깎아 내고 사탕수수를 기르기 시작했다. 재배 면적이 늘어나면서 수토 유실이 심각해졌고, 마을에는 홍수가 일어났다. 사탕수수 가공 공장이 생겨나면서 공장 오수는 마을을 오염시켰다. 담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담배 재배는 감자를 기르는 것보다 많은 소득을 가져다주었지만, 담뱃잎을 말리기 위해서는 장작이 필요했고, 나무를 자꾸 베어 내다 보니 산은 황폐해졌다. 생산성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 다양한 작물을 포기하고 단일 품종만을 기를 때 생겨나는 문제점은 이것뿐이 아니다. 곡물학자 바빌로프는 일찍이 재배 곡물 단일화에 대해 경종을 울린 바 있다. 더 많은 곡물을 생산하기 위해 수확량이 좋은 단일 곡물만을 기르다 보면 단기간의 이익은 증대할 수 있으나, 곡물 자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환경 변화에 취약하게 만들어 결국은 곡물 생산량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윈난성에 거주하는 와족의 신화가 떠오른다. 그들은 좁쌀 한 톨, 쌀 한 톨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파종 전에도, 추수를 한 후에도 곡식을 위한 노래를 불러 준다. 또한 그들의 신화에서는 대홍수 뒤에 좁쌀과 볍씨가 깊은 물속에 숨어 버렸다고 말한다. 그것은 금, 은과 곡식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과 은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고 주장하면서 좁쌀과 볍씨를 비웃었다. 좁쌀과 볍씨는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곡식이 없으면 인간은 살 수 없다고 말했다. 다툼 끝에 금과 은이 볍씨의 뺨을 때렸다. 원래 볍씨는 둥근 형태였는데 그때 금과 은에게 뺨을 맞는 바람에 오늘날처럼 길쭉해졌다고 한다. 결국 화가 난 볍씨와 좁쌀은 물속 깊은 곳으로 숨어 버렸고, 인간들은 먹을 것이 없게 됐다. 금과 은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사라진 곡식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 먹을 양식이 없어진 인간들은 나무를 먹고 흙을 먹었으며, 더이상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자 금과 은까지 먹어 치우려 했다. 그래서 금과 은은 땅속 깊은 곳으로 숨어 버렸고, 사람들은 물속으로 사라진 곡식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인간은 물속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물속으로 들어가 좁쌀과 볍씨의 종자를 건져 올린 것은 거머리와 뱀이었다. 각각 자신들의 엉덩이에 좁쌀과 볍씨를 붙여서 갖고 올라온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 덕분에 다시 먹고살 수 있게 됐고, 그것에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뱀과 거머리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뱀은 인간들이 사는 집 근처에서 살게 해 달라고 했고, 거머리는 인간의 피 한 방울만 달라고 했다. 그래서 예전의 초가집에는 구렁이가 살았던 것이고, 사람들이 논에 일하러 나가면 거머리가 피 한 방울을 먹으러 오는 것이다. 지금 바나나의 멸종이 언급되는 것은 종의 다양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생산성을 위해 단일 품종만을 집중적으로 기르는 것은 언제나 그런 위험성을 내포한다. 금전적 이익이 아무리 귀하다고 한들 다양한 곡물의 존재보다 귀할 수는 없다.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우리에게 소수들의 신화는 작은 실마리 하나를 던져 주고 있다.
  • [애니멀구조대] ‘복날’가고 ‘봄날’ 오길…개농장 구조견 사연

    [애니멀구조대] ‘복날’가고 ‘봄날’ 오길…개농장 구조견 사연

    잔인한 ‘복날’은 가고 ‘봄날’이 올까요? 초복과 중,말복이 몰려있는 여름은 동물운동가들에게 전쟁의 계절이다. 개를 ‘고기’로 먹기 위해 죽이려는 쪽에 맞서 ‘생명’으로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염속 7,8월은 케어 활동가들에게 초비상이다. 일찌감치 2018년 황금개의 해를 ‘개식용 종식의 원년’으로 삼은 케어의 행보는 숨가빴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폐막식 퍼포먼스로 ‘FREE DOG KOREA’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고, 지속적인 불법 개농장 고발로 ‘식용 목적의 도살은 불법’이라는 국내 최초 판결을 받아냄으로써 개고기 금지를 위한 물꼬를 텄다. 동시에 불법 개농장 고발단 ‘와치독 감시단’을 발족하고, 표창원의원의 개/고양이 도살 금지법에 힘을 싣기 위해 시작한 국민청원(www.freedogkorea.com)도 13만을 넘어서며 순항중이다. 개농장 자리에 보호소를 세우자는 대규모 프로젝트 ‘개농장을 보호소로’도 시작됐다. 경기도 남양주와 충청권에 있는 개농장을 순차적으로 폐쇄한 후 적정한 장소에 보호소를 세운다는 계획이었다. 먼저 남양주의 한 개농장 페쇄 작업이 시작됐고, 케어는 후원금이 모일 때마다 작게는 서너 마리, 많게는 십수 마리씩 개들을 구조해 자체 보호소로 날랐다. 뜻을 함께 하는 케어 홍보대사들도 기꺼이 팔을 걷어붙였다. 유기견을 키우고 있는 배우 김효진은 눈물을 훔치며 20여 마리를 구조차에 실었다. 연주회를 위해 입국한 세계적 비올리스트 용재오닐은 입국 이튿날 10여 마리가 들어간 대형 케이지를 말없이 직접 옮겼다. 며칠 후 비올라를 연주할 손은 쉴새없이 온몸에 피부병이 퍼진 개들의 머리와 몸통을 쓰다듬고 물을 먹였다. 드디어 7월 초, 케어는 미국의 한 단체 도움으로 남양주 개농장 개들을 모두 구조하고 그곳을 폐쇄할 수 있게 되었다. 구조되자마자 첫번째 반가운 입양소식도 뒤따랐다. 낡은 뜬장 속에서 필사적으로 새끼를 보호하던 어미개 ‘마더’와 새끼 ‘베이비’가 강원도 모처로 입양된 것.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한 개농장 구조견들은 입양자가 나서기 쉽지 않으니 운이 좋았다. 구조 당시 도사견 ‘마더’는 뜬장 구석에 코를 박고 빙글빙글 맴을 돌며 극심한 불안증세를 보였다. 뜬장 바로 앞에 놓인 커다란 도마와 그 위쪽으로 밧줄이 매달린 큰 나무가 ‘마더’의 공포를 짐작케 했다. 하지만 ‘마더’와 ‘베이비’는 난생 처음 부드러운 흙을 밟고 신선한 물과 사료를 맛보며 평생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던 ‘마더’도 뱅뱅 맴도는 행동을 멈추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 시작했다니 안심이다. 200마리 개들을 남양주 개농장에서 케어 보호소로 옮기던 날, 이름없는 자원봉사자들은 기꺼이 냄새나는 뜬장 속에 들어가 개들을 꺼내고 맨손으로 더러워진 개들의 몸을 닦았다. 먼길 마다않고 차량 이동봉사를 나선 이는 ‘해줄 게 이것뿐이라 미안하다’며 오히려 환하게 웃었다. 케어의 힘만으로 할 수 없는 일,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 희망을 말해본다. 잔인한 ‘복날’은 가고 ‘봄날’이 올 것이라고. * 해피빈 모금함 바로가기: https://happybean.naver.com/donations/H000000147608?p=p&s=ns 조연서 케어 국장 YeonseoCho@fromcare.org  * 매주 목요일 동물권단체 케어가 구조한 위급한 동물들의 구조, 임시보호, 입양 등을 다양한 개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 부산 도시고속도로에 대형 싱크홀 발생

    부산 도시고속도로에 대형 싱크홀 발생

    부산 도시고속도로에서 원인을 알수 없는 대형 싱크홀이 발생했다. 부산경찰청은 11일 낮 12시 30분쯤 부산 도시고속도로 번영로 원동에서 서울 방향 200m 지점에 가로 2m, 세로 1m, 깊이 5m가량의 싱크홀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다행히 당시 운행 차량이 없어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경찰은 편도 2차로 중 1차로에 싱크홀이 발생하자 문현·대연·망미·원동 등 번영로 상행선으로 향하는 주요 램프(진출입로)의 차량 진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로인해 번영로 진입이 통제되면서 극심한 정체가 발생하고 있다. 부산 최초의 도시 고속화 도로이자 핵심 도로인 번영로는 총 길이가 15.7㎞이며 1980년에 개통했다. 중앙대로와 함께 부산시에서 교통량이 많은 도로 중 하나로 꼽힌다. 부산시는 긴급 복구반을 투입해 오후 3시 현재 흙을 채우는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이르면 오후 4~5시쯤 복구가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시 관계자는 “도시고속도로에 싱크홀이 발생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복구가 되는 대로 원인규명 분석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정찬주의 산중일기] 행복한 여행

    [정찬주의 산중일기] 행복한 여행

    올해는 텃밭에 아무것도 심지 못하고 말았다. 5월 초순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 6월 중순 무렵에 돌아왔으니 파종이나 모종 시기를 놓쳐 버린 탓이다. 내가 산방을 비운 사이에 웃자란 잡초들은 텃밭의 주인 행세를 하듯 의기양양 무성했다. 두 팔에 풀독이 오르고 며느리밑씻개나 덩굴풀 가시에 긁혀 약을 발라 가며 잡초를 겨우 다 뽑아냈지만 소용없었다. 늦었으나 고추 농사라도 지어 볼 요량으로 농부를 만났지만 허사였다. 멀쑥한 고추를 흙과 함께 통째로 옮겨 온다고 해도 살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이 농부의 단언이었다.내 산방 뉴스는 텃밭의 봄철 농사를 실패한 것 말고 또 있다. 한 살 된 진돗개 흰둥이를 지인으로부터 입양한 사실이다. 진돗개는 적어도 태어난 지 서너 달 안팎의 강아지가 키우기 좋지만, 궁여지책이었다. 진돗개는 한 번 정한 주인을 잘 바꾸지 않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녀석에게 정성을 들이면 되지 않을까 싶어 입양을 강행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으므로 대충이나마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긴 여행을 떠나기 닷새 전에 13살 된 검둥개 지장이가 숨을 거두었다. 산방 뒤에 봉분을 만들고 향을 피웠다. 아내는 한글로 된 ‘반야심경’을 읽어 주었다. 여행하는 우리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려고 녀석이 눈을 앞당겨 감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그렇게 주장하지만, 나는 지금도 반신반의 상태다. 녀석이 눈을 감기 전에 소나기가 오려고 해서 녀석을 안고 추녀 밑 토방으로 옮겨 주었는데 그것이 내게 위로를 줄 뿐이다. 영원한 작별 전에 가벼워진 녀석을 한 번 껴안아 주었으니까. 그런데 녀석은 내가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산방에서 여전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했다. 녀석의 그림자가 어른댔다. 특히 녀석의 빈집을 지나칠 때면 그런 느낌이 더했다. 할 수 없이 나는 지인이 키우다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떠나보내는 한 살 된 흰둥이를 맞이해 지장이를 대신하게 했다. 흰둥이의 이름은 ‘행운’이라고 지었다. ‘행운’이라고 작명한 까닭은 녀석을 만난 것이 행운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아내가 끼니를 챙겨 주던 새끼 길고양이 노랑이도 산방을 다시 찾아왔다. 어쩌면 아내가 없는 산방을 날마다 찾아왔다가 돌아갔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내에게 고양이 이름을 ‘행복’이라고 부르면 좋겠다고 제의했다. 그러자 아내는 곧 노랑이를 ‘행복’이라고 불렀다. 길고양이 노랑이를 ‘행복’이라고 부르는 순간 아내 역시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행복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각과 언행, 습관에서 생겨나는 긍정의 메아리 역시 행복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긍정의 메아리가 행복이라면 흐뭇한 여행의 추억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내와 함께 로마에서 4박5일, 중국 천안문 희생자 추모광장이 있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폴로니카 소도시에서 1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2주를 보냈는데, 그때의 인상적이었던 시간이 뭉게구름처럼 되살아나곤 하는 것이다. 로마 중심지인 코르소 거리에 조그만 괴테박물관이 있다는 것을 아는 한국 관광객은 드물 것 같다. 더구나 나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입장료를 할인받는 행운까지 얻었다.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개업한, 그러니까 1760년에 영업을 시작한 카페 그레코를 수소문해서 찾아가 달달한 카푸치노를 마셨다. 괴테나 안데르센이 자주 들렀던 명소라는 자부심에서인지 종업원들은 연미복을 입고 손님을 맞았으며 벽에는 오래된 명화들이 걸려 있다. 폴로니카에서 기차로 간 피렌체에서는 단테 하우스를 찾아가 그의 서사시 ‘신곡’(神曲) 원제가 ‘코메디아’(La Comedia)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신곡’ 가운데 예수 이전에 태어나 세례를 받지 못한 호메로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등이 지옥에 가 있는 것 자체가 희극(코메디아)인 까닭을 비로소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빈에서 보낸 2주간 역시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를 초대한 베흐너 박사와 권숙녀 부부 집으로 갔을 때 마치 내가 국빈이라도 된 듯 태극기를 게양해 주었던 것이다. 도나우 강변에 태극기가 잠시 펄럭였던 광경이 나를 오래도록 행복하게 할 것 같다.
  • 내일은 걱정 말아요, 오늘을 먼저 즐겨요

    내일은 걱정 말아요, 오늘을 먼저 즐겨요

    불안에 대하여/앤드리아 피터슨 지음/박다솜 옮김/열린책들/440쪽/1만6000원‘불쾌한 일이 예상되거나 위험이 닥칠 것처럼 느껴지는 정서적 상태.’ 불안의 사전적 정의다. 이런 사전적 의미보다 생활 속 불안 심리, 혹은 정신의학적 체험은 훨씬 더 심각하다. 실제로 현대인들은 점점 더 심한 불안에 노출된 채 허우적된다. 통계에 따르면 13세 이상 미국인 세 명 중 한 명이 살면서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불안 장애를 겪는다. 한 해 미국 성인 약 4000만명이 불안 장애를 겪는다. 미래에 닥칠 위험의 예측일 수 있는 이 불안은 왜 생겨나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가 쓴 책은 다양하고 위험한 불안의 모든 것을 체험에 바탕해 정리한 논픽션이다. 평생 불안 장애에 시달리며 건너온 위험한 상황과 극복의 가감 없는 소개가 실감난다.어릴 적부터 광대 공포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렸던 저자는 대학 2학년 때 처음 불안 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보험사의 보상 범위나 정부의 보조금 할당 기준 등에 활용되는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적시된 11가지의 불안 장애 중 네 가지 증상에 시달리며 살았다. 공황 장애, 범불안 장애, 특정 공포증, 광장 공포증. 진단을 받은 이후 생활은 ‘나는 죽어 가고 있어’라는 독백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고 책에서도 그런 삶은 줄곧 악전고투로 묘사된다. 25년간 불안 장애로 인해 저자가 겪었던 험로는 그야말로 애처로울 정도다. 친구와의 잇따른 이별, 연인과의 작별, 가족과의 불화, 힘겨운 직장 생활, 임신중절과 위태로운 양육…. 그 속에서 건져 낸 체험의 지혜가 실감나게 전해진다. 매 위기 순간마다 극복하기 위해 발로 뛰어 건져 낸 정신의학적 치료와 연구 사례 같은 알찬 정보가 수두룩하다. 그 교훈은 잘못 알려진 상식을 뒤집기 일쑤다.대표적인 사례는 유전과 불안 장애의 상관관계다. 집에 불을 질러 가족들을 죽게 할 뻔했던 할머니의 광기와 어머니, 형제들의 불안 상태에 대해 늘 고민했던 저자는 자신의 불안 장애 원인을 유전적인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는 불안 장애의 뿌리를 파헤치기 위해 분투한 끝에 이렇게 말한다. “정신질환은 결핵과 달라서 항상 동일한 종류의 박테리아에 의해 발병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제나 다수의 요소에서 기인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책의 특장은 역시 불안에 대응하는 자세다. 고속도로를 운전할 수도, 치과 진료를 받을 수도, 흙을 만질 수도, 영화관이나 경기장에 갈 수도 없는 불안 장애. 그런 증상들의 대응 요체는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다. 불안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미래의 부정적 사건에 지나치게 집중한다. 저자는 실체가 없는 미래를 걱정하고 다시 그 걱정거리의 실체를 찾으려는 악순환을 끊으라고 거듭 충고한다. 재난이 실제 벌어질 확률은 매우 낮다는 것을 인지하고 부정적 믿음을 버리는 연습을 하라는 것이다. 아울러 미래 지향적인 상태의 불안 장애 증상들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현재에 초점을 맞춰 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불안이 최악으로 치달으면 깊은 고통을 주고 사랑과 인생을 지워버린다. 상대적으로 가벼울 때조차 대단한 에너지와 시간을 앗아간다.” 평생을 불안 장애로 살고 있는 저자는 그 불안을 “훌륭한 헛소리 탐지기”로 정의한다. 그리고 논픽션을 역설적으로 마무리한다. “삶의 배경음으로 깔린 불안의 윙윙거리는 소음 때문에 나는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멀리 여행하고, 더 솔직히 말하고, 재미있게도 더 많은 위험에 도전할 수 있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강렬한 눈빛, 따뜻한 심장

    강렬한 눈빛, 따뜻한 심장

    메르세데스 벤츠는 자타 공인 세계 최고의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다. 판매량도 발군이다. 지난해 연간 판매량만 6만 8861대. BMW 등 경쟁자를 누르고 질주했다. 올해는 7만대를 내다보고 있다.올 비밀병기는 4년 만에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가 단행된 C클래스다. 이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지난 3월 제네바모터쇼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플래그십 세단 S클래스 수준으로 향상된 최신 주행 보조시스템과 세련미를 더한 실내외 디자인, 첨단 전자 아키텍처 등으로 무장했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더 뉴 C클래스 출시와 함께 전 세계 미디어를 상대로 한 글로벌 시승행사를 진행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고장인 독일과 룩셈부르크에서 벤츠 더 뉴 C 300 세단을 시승했다. 지난달 21일 낮 12시 룩셈부르크 공항. 더 뉴 C 300에 올라 공항을 출발했다. 공항에서 차를 인수해 독일 모젤 지역을 왕복하는 총 300㎞ 구간을 운전하는 것이다.더 뉴 C 300의 다이아몬드 라디에이터 그릴이 ‘얼굴’을 고급스럽게 보이게 했다. 보조석과 운전석 시트 공간이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등을 기대면 올록볼록한 쿠션감이 편한 느낌이었다. 초보 면허라 떨리는 심장에도 액셀을 살짝 밟자 ‘미끄러진다’는 표현 그대로 차가 조용하면서도 속도감 있게 나갔다. ●시골 흙길 지나도 노면 진동 적어 특히 코너를 돌 때 쏠림 없이 꽉 잡아 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림 같은 시골길 풍경을 보며 급경사 커브를 돌아야 했던 순간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더 뉴 C 300은 땅을 움켜쥐는 듯한 유연한 코너링 능력을 발휘했다. 흙길의 노면에서 느껴지는 진동도 적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소음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차량이 안락한가 안락하지 않은가는 잔 진동이 어느 정도 되는지에서도 판단되는데 더 뉴 C 300 세단은 고급스러운 외관만큼 바닥 소음은 물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소음마저도 잘 차단되는 느낌이었다. 왜 명차인지는 타 봐야 느낄 수 있다는 얘기를 실감했다. 단, 고성능 버전에 견줘 보면 한 번에 치고 나가는 파워는 다소 부족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속도를 줄여도 정교하게 맞춰서 차가 반응했다. 또 핸들을 꺾을 때마다 민첩하게 반응했다.메르세데스 벤츠가 자랑하는 자율주행 기능도 시험해 봤다. ‘운전자 없이 스스로 달리는 자동차’는 인류가 예전부터 꿈꿔 온 미래의 모습이다. 1980년대를 풍미한 미국의 인기 TV 시리즈 ‘전격 Z작전’의 키트만 봐도 인간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이러한 상상을 해 왔는지 가늠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떠오른 지금은 그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0단계의 경우 자율주행 기술이 없는 상태. 1단계는 시스템이 주행 기능의 일부에 보조적인 도움을 주는 수준을 말한다. 2단계는 주차 보조 또는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 등 특정 상황에서 자동차가 스스로 방향을 바꾸거나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변속이 가능한 단계다. 3단계는 부분적인 자율주행이 가능하며 시스템이 주행 환경을 인지할 수 있는 상태다. 자동차가 스스로 장애물을 감지하고 회피한다거나 길이 막힌 경우 우회할 수 있는 정도다. 다만, 특정 상황에 따라 운전자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4단계부터는 완전한 자율주행이 가능한 단계로, 시스템이 전체 이동 구간을 모니터링하며 스스로 주행할 수 있다. 마지막 5단계는 탑승한 운전자 없이도 자신 소유의 차량을 목적지에 보낼 수 있는 단계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여기서 3단계의 자율주행 수준을 갖추고 있다. 주변에 차가 없는지 한참 살피고 나서 자율주행 모드를 설정했다. 브레이크를 뗀 상태에서 세트라고 적힌 버튼을 누르면 디지털 계기판에 녹색불이 들어오면서 자율주행 상태가 시작됐음을 알린다. 핸들에서 손을 떼도 차 스스로 한참을 알아서 달렸다. 시속 60㎞ 정도로 설정했는데 앞차와 차선을 감지해 차 혼자 방향을 잡아 갔다. 이리저리 운전대가 홀로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대신 45초에 한 번씩 경고 그림이 떴다. 이때 손으로 운전대의 스위치를 건드려 줘야 한다. 이를 무시하자 90초 이상 스스로 달리다 경고음이 울렸다. 계속 반응하지 않으면 차가 스스로 속도를 줄여 멈춰 선다. 심장마비나 당뇨로 인한 쇼크 등으로 운전자가 비상 상황이 발생했다고 차가 판단해서다. 하지만 자율주행 모드로 바꿀 때 초보자라면 설정 버튼을 이것저것 누르다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주의를 당부한다. ●EQ부스터 더해 민첩·연료 소비 절감 효과 메르세데스 벤츠 관계자는 “더 뉴 C클래스에는 48볼트 통합 전기 모터인 EQ 부스터가 더해졌다”며 “48볼트 시스템과 EQ 부스터의 조합으로 더 뉴 C클래스는 좀더 민첩하고 연료 소비는 크게 줄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룩셈부르크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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