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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토불이 23년」 농민 안영선씨(「2단계 개혁」을 말한다:7)

    ◎“신농정 농산물 값 안정 역점둬야”/농민자격증제로 경쟁력 제고를/도농격차 줄이게 복지·문화 지원 『개혁이란 커다란 나무는 새정부가 심었습니다.이제는 농민들을 비롯한 온 국민들이 뿌리가 되어 이 나무를 지탱하고 키워나가야 합니다』 농어민후계자 전북 연합회장인 농민 송영선씨(42)는 한여름의 뙤약볕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새정부의 개혁에 큰 희망을 걸고 있다.호미와 괭이를 들고 흙과 함께 살고 있는 농민들에게 새삼스럽게 무슨 개혁이 필요한가는 생각을 송씨는 단호히 거부하고있다.그는 오히려 「개혁은 농민부터」라며 개혁의 제1조건을 국민 모두가 「나부터」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라고 꼽는다. 서울 장충고를 졸업한뒤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전북 진안군 진안읍에 내려와 23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송씨는 『농민이라고 해서 개혁은 우리 일이 아니라며 남의 일을 보듯하여서는 개혁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농민들이 깨어야 합니다.모든 농민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정부가 잘하는 일에는 발벗고나서서 도와주고 잘못하면 목소리를 높여 바로잡아 가야 할 때입니다』 송씨는 『새 정부출범이후 면사무소나 군청·경찰서를 찾을 때마다 달라졌다는 생각을 피부로 느낀다』고 지난 6개월동안의 개혁에 상당히 후한 점수를 주었다. 『얼마전 영농자금을 대출받고 농약·비료를 사기 위해 농협에 들렀을 때 직원들이 전에 없이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개혁이 서서히 일상속으로 스며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개혁의 방향에 대해 송씨가 갖고 있는 아쉬움도 적지 않다.새 정부의 신농정 5개년계획이 과거보다 농업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것으로 돼있지만 개방등의 파고속에서 어렵게 농촌을 지키고 있는 농민들에게 새로운 의욕을 줄만큼의 조치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첫번째 지적이다. 『이농현상이 계속되고 농촌경제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까닭은 농사를 지어서는 도저히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농민들 사이에 보편화돼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농촌이 어려운 이유를 이렇게 진단한 그는농민들의 불안감을 없애주려면 『농산물 가격의 폭등과 폭락을 막는 가격지지에 정부시책의 역점이 두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덴마크처럼 「농민자격증제도」를 도입,첨단농법과 과학영농을 배워 국제 경쟁력을 갖춘 영농을 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나름대로의 방안을 제시하기까지 했다. 『쌀 시장이 개방된다면 농촌이 설 땅을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 우리 밀이 보기 힘든 것처럼 앞으로는 우리 쌀도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 것입니다』 우리쌀지키기 전북지역대책본부장이기도 한 송씨의 쌀 수입 개방에 대한 반대 의지는 확고했다. 그는 또 정부가 최근 발표한 양곡관리제도에 언급,계절별 가격진폭을 15% 이상 확대하고 수매도 계속해야 하며 담배인삼공사의 막대한 이익금을 농업안정기금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풍요롭고 살기좋은 농촌을 만들기위해서는 농촌의 복지·문화생활을 보장해야 하며 『가뜩이나 소득이 낮아 교육·의료·문화의 소외지대에서 살고 있는 농민들이 자녀학자금 지원도 받지못하고 의료보험료도 직장인들보다 많이 내고 있는 현실은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벼 다수확 전북 1위를 차지했을만큼 학위없는 「농사박사」이기도 한 송씨는 『정부가 농민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개혁에 동참 시키기위해서는 지금 농촌을 짓누르고 있는 두꺼운 먹구름을 거둬주는 노력을 더욱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인삼/산지재배가 밭보다 더 유리/산림청 임업연구원,시험결과 발표

    ◎주성분 사포닌 함량 밭의 1.3배/용지확보­장기·청정재배등 용이 산지 인삼재배가 새로운 소득작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산림청 임업연구원은 최근 산지에서 재배한 인삼이 밭에서 재배한 것보다 주성분인 사포닌의 함량이 1.3배정도로 높고 재배지 확보와 청정·장기재배등이 쉬워 농산촌 소득증대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산림청이 지난 90년부터 인삼을 산지에서 시험재배해 발표한 내용을 소개한다. ▷재배여건◁ 산지인삼 재배의 적당한 기온은 밭에서 재배하는 기온과 비슷한 20∼25도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쉽게 재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재배지는 지형이 북향 또는 동북향(서향은 피할 것)으로 배수가 양호하고 통풍이 잘되는 산록지역이 적당하며 토심이 깊고 부식질이 많은 비옥한 양토로 토양의 산도PH가 6.0내외 지역이 알맞다. 또 산림의 형태는 직사광선이 장시간 비치지 않는 지역으로 상층목 나무높이가 10m안팎,나무울폐도 90%안팎으로 하층부분의 식생이 무성하지 않은 곳이 적당하다. ▷파종시기◁ 묘삼의 식재시기는 3월하순에서 4월초순에 이식하고 심는 시기가 늦으면 묘삼싹이 터게 돼 활착률이 낮게 된다. 종자의 파종시기는 11월경에 하며 파종시기가 늦으면 발아율이 극히 낮기때문에 시기를 잘 맞추도록 한다. ▷재배방법◁ 종자의 파종은 등고선 방향으로 20㎝간격(㎡당 90립)을 벌여 호미로 지면의 흙을 정리한 다음 한곳에 2∼3립을 파종한다.이후 흙을 1.8㎝정도 덮고 손으로 가볍게 눌러준뒤 낙엽을 덮어준다. 식재한 묘삼이나 파종한 종자는 4월말이나 5월초가 되면 싹이 나온다.싹이 나온뒤 특별한 관리는 필요하지 않으나 인삼생육에 지장을 줄만한 잡목은 정리해 주어야 한다. 산지재배 인삼은 밭재배에 비해 더디게 자라 모양이 가늘고 길어 산삼과 비슷하다. 수입은 밭재배(6년근 홍삼)가 10a당 1백60여만원인데 비해 산지재배(10년근이상이어야 상품가치가 있음)는 3백60만원정도로 두배이상 높다.기타 자세한 문의는 02­961­2531(산림청 산지개발과)로 하면된다.
  • 인류 최초의 아카드제국/“화산폭발·가뭄으로 소멸”

    ◎미·불 고고학자/티그리스강 주변 발굴 유적지 조사 결론/눈부신 도시문명 이룩… BC 2천년 멸망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유역에서 번성했던 인류 최초의 제국은 화산폭발과 가뭄으로 인한 천재지변으로 소멸됐다고 타임스지가 보도했다. 타임스지는 현재 이라크와 시리아 이란 사이의 비옥했던 메소포타미아지방의 수메르·니네베·아카드·우루크·우르등 인류최초의 대도시의 발굴된 유적지를 미국과 프랑스의 고고학자들이 정밀 조사한 결과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로 인류가 살 수 없게되어 고대 문명이 계승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중동지역에서 가장 큰 두개의 강이 흐르는 비옥한 삼각주에 왕국을 건설한 아카드제국(현재 바빌론)은 밀과 보리를 경작하고 아마로 옷을 짜입으며 은으로 교역을 할만큼 번성한 인류 최초의 문명국이었다. 중국의 한나라나 알렉산더대왕이 출현하기전부터 번성했던 이 제국은 1백여년동안이나 고도의 문명 생활을 해왔으나 어느날 갑자기 소멸되어 역사의 미스터리가 되어왔다. 미국 예일 대학의 고고학자 하베이 바이스박사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지리학자 마리 아그네스 코티박사는 지난 88년에 발굴된 유적지의 흙과 유물을 정밀 조사한 끝에 터키부근에서 일어난 화산의 재가 이 지역을 덮친뒤 기원전 2200년부터 3백년간 계속된 가뭄과 극심한 먼지폭풍으로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이 된 것으로 밝혀냈다. 미국과 프랑스의 과학자들은 지하 20∼50㎝의 지층을 분석한 결과 이 지층에는 지렁이를 비롯한 벌레의 화석을 발견할 수 없었고 화산재와 흙먼지등으만 덮여있어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3백년뒤 다시 비가 내리기시작하자 이곳에 이주한 후손들은 유적지가 4∼5m의 땅에 묻혀있는 위에 바빌론 제국을 세웠으나 또 다시 망하고 이 지역은 현재 밀밭이 되었다. 지난 88년부터 범세계적으로 발굴되고있는 이 지역에는 지금부터 4천년전에 인구 1만명이상의 대도시가 12개가 넘어 앞으로 고대사연구가 활기를 띨 전망이다.
  • 가깝고도 먼 섬 대마도(일본속의 한국문화:1)

    ◎조선통신사 뱃길따라 전파현장을 가다/부산서 50㎞… 조선사신 유적 곳곳에/임란후 통신사 12회·역관사 50회 파견/첫 경유지… 한·일 교유의 징검다리로/최근 역관사순난비 제막… 1703년 일행 112명 익사 비극 추모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문화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흘러들어갔다.그 대표적인 경로는 한반도의 남동부에서 대마도·일기도를 통한 것이었다.특히 조선시대 우리나라가 일본에 파견한 공식외교사절인 통신사는 부산∼대마도의 이즈하라∼일기도의 가쓰모토∼시모노세키를 거쳐 오고감으로써 이 경로를 「통신사의 길」로 여기기도 했다.대마도와 일기도는 이를테면 한일문화교류의 징검다리였던 셈이다. 이 문화전파로에는 아직도 체감되는 선인들의 숨결과 흔적들이 곳곳에 살아있다.광복 48주년을 맞아 현지에 남아있는 우리문화의 모습을 되새겨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집필은 박성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맡았다. 대마도 최북단 언덕위에 서서 북쪽 바다를 건너다보면 부산 영도가 보인다.특히 밤에는 부산야경이 아름답다.불과 50㎞.우리 이수로 1백20리다.지도를 보더라도 대마도는 우리 경상남도 해안에 바짝 붙어 있다.그에 비하면 제주도는 훨씬 남쪽으로 처져 있다.이렇게 가까운 대마도를 누가 먼 섬이라 했던가. ○밤에는 영도 보여 한일회담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어떤 일본인이 한국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불렀다.그래서 지금까지도 이 아리송한 말을 일본인들이 애용하고 있다.누가 두 나라 사이를 가깝고도 먼 나라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없이 마치 한국 때문에 먼 나라가 된 것처럼 들리게 한 말이 바로 이 신조어다.그래서 필자는 이 말을 싫어한다. 그러나 대마도에 대해서만은 이 말을 사용하고 싶다.일의대수란 말이 있듯이 대마도는 띠처럼 좁은 한 줄기 바닷물을 사이에 두고 우리와 마주보고 있다.대마도의 남쪽으로는 일본 구주땅이 있으나 그 거리가 85㎞이며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단지 그 사이에 또 하나의 섬 일기도가 있을 뿐이다.이 일기도가 대마도에서 50㎞다.따라서 대마도에서 일기섬은 육안으로 보인다.대마도 최북단언덕 위에 서서 필자는 엉뚱하게 이런 생각을 했다. 「만일 한·일 양국사이에 이 대마도와 일기도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어쩌면 두 나라는 서로 남남으로 아무 애증관계 없이 지낼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서로 모르는 사이로 지냈더라면 차라리 좋았을지도 모른다.서로 가깝다느니 멀다느니 할 것도 없고 「주는 것 없이 미운 나라」니 하는 말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대마도와 일기섬 때문에 지금으로부터 2천년이나 이전부터 우리 민족이 바다를 건너 일본땅으로 이주해갔던 것이다. 이 섬이 보이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건너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보이니까 배를 타고,거친 파도를 가르고 건너갔던 것이다.차라리 대마도가 좀더 한국측에 가까이 다가서 있어 대마도에서 일기도가 보이지 않았던들 더이상 남쪽으로 가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2천년에 걸친 한일관계사를 돌이켜보면 서로 육안으로 보이는 대마도의 현재 위치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섬으로 하여금 일본쪽으로 가든지 우리쪽으로 더 다가서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단지 현재 그 위치대로 과거의 잘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두 나라가 서로 헐뜯고 싸우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서로 굳게 다짐하자는 약속할 자유밖에 없다. ○애증관계 2천년 이러한 약속을 상징이나 하듯이 대마도 최북단 언덕 위에 최근 한 비석이 세워졌다.이른바 조선국역관순란지비가 그것이다.때는 1703년2월5일(음력).지금으로부터 꼭 2백90년전의 일이다.일단의 우리나라 역관사일행이 부산항을 떠나 저녁무렵 대마도 악포에 도착했다.악포란 대마도 최북단에 자리한 작은 포구인데 실제로 악어가 살았다고 해서 악포라 이름한 것이 아니라 악어처럼 무서운 파도가 몰아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이 악어의 입에 들어서기 직전 갑자기 황파가 몰아쳐서 정사 한천석이하 1백8명의 사절단이 수장되고 말았다.배안에는 정·부사를 비롯하여 상관 28명,중관 54명,하관 24명이 타고 있었고 그밖에도 안내역을 맡은 대마도 관리 4명이 동승했다. 요즘이라도 1백12명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면 큰 사건인데 하물며 당시로서는 여간 큰 사건이 아니었을 것이다.그것도 민간인이 아닌 외교사절이었으니 대마도로서는 거국적인 참사였다고 할 수 있다.역관사란 무엇인가.임진왜란 이후 통신사가 일본에 파견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나 역관사를 보낸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누구나 대마도에 가보면 놀라는 일이지만 한마디로 산투성이의 섬이다.우리나라에 산이 많다고 하지만 대마도에 비하면 양반이다.대마도는 바위에다 엷은 흙으로 도배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바위가 많은 섬이며 손바닥만한 평지에 집들이 밀집해 있는 보기에도 각박한 고도다. 이런 외딴섬이었기 때문에 한때는 왜구의 소굴이 되지 않을 수 없었고 임란 이후에는 단절된 조선과의 무역관계를 하루속히 재개하여 우리나라 쌀을 수입해야만 했다.오징어가 잘 잡힌다고는 하지만 오징어만 먹고 살 수는 없는 것.그래서 대마도주 종가는 임란후 10년만에 가까스로 기유약조(1609년)를 맺는데 성공하여 연간 2만섬에 달하는 많은 조선쌀을 얻어내게 되었다.이 쌀을 실어가기 위해 특별히 큰 운미선을 지어서 한 척에 2백가마씩 실어날랐으니 적어도 한해에 백척이상의 운미선이 대한해협을 오간 것이다. 이 2만섬이나 되는 쌀을 대마도 사람들이 다 먹지는 않았다.많은 양을 일본 됫박으로 다시 달아서 일본으로 팔아넘겨 폭리를 취했다. 그러니 이 쌀의 전매무역만 하더라도 대마도로서는 우리나라에 큰 은혜를 입은 셈인데 후술하는 바와 같이 임진왜란때 큰 배신행위를 했다.그래서 그런지 임란후의 우리나라 통신사 기록을 보면 대마도의 노련한 뱃사공 말까지도 믿지 않고 우리나라 사공의 말을 듣고서야 부산항을 떠났다. 통신사는 임란이후 2백년동안에 모두 12번 파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그도 그럴 것이 통신사일행의 총인원이 5백명에 이르고 있는데다가 서울에서 일본의 강호(현재의 동경)까지 가는 긴 여정이었기 때문에 한번 갔다하면 그 비용이 어마어마한 것이었다.물론 이 비용을 일본측이 부담하는 것이었다고는 하나 우리측으로서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19세기초 왕래 끊겨 그래서 인원수를 대폭 줄여서 1백명으로 하고 여정도 대마도의 청중(현재의 엄원)까지로만 하는 약식사절을 파견하기로 했던 것인데 이 사절을 역관사라 이름했던 것이다.이 약식사절은 무려 50여회나 파견되었다고 하니 적어도 4년마다 한번 꼴로 대마도에 파견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대마도는 임진왜란에서 일제침략기에 이르기까지 한일 두나라의 징검다리역할을 수행하였고 그 때문에 우리나라 남해안은 평온할 수 있었다.부산쪽을 건너다보면서 서 있는 조선국 역관사지비문에는 이런 글귀가 보인다 『강호시대 엄연한 쇄국체제 하에서도 일본이 유일하게 정식국교를 맺은 나라는 조선이었다.그때의 한일외교는 양국간의 신의를 바탕으로 한 선린외교였다.이제 바야흐로 고조되고 있는 한일교류의 새로운 조류를 맞이하여 지난날 두 나라 교류의 지침이던 「성신지교린」의 이념이 되살아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지당한 말이다.한일간에 통신사와 역관사가 오가던 시절에 누구보다도 우리측에서 신의와 성신을 강조하였었다.일본측의 빈번한 불신행위로 인하여 부산에 성신대를 지어 그들에게 보이기까지했었다.그러나 1811년 마지막 통신사가 대마도를 방문한 이후 부산과 악포를 있는 해협에는 뱃길이 끊기고 다시 정한론을 부르짖는 자들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이른바 명치유신정부는 대마도의 대한외교교섭권을 박탈하고 도주 종가를 도쿄에 유폐시켰다.대마도는 다시 절해의 고도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우리를 안내해준 영류혜구씨(대만문화재협회회장)는 이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왜 대마도공항에 KAL기가 오지 못하는지 의아하다는 것이다.제주도를 일본관광객에 개방했듯이 일본도 한국을 믿고 대마도를 한국관광객에 개방해야 될 것이다.그 길만이 대마도가 가깝고도 가까운 섬이 되는 길일 것이다.
  • 영혼의 공복 채워줄 「밥」은…/김성동 소설가(일요일아침에)

    「벼는 심은지 90일이면 패고,팬지 60일이면 익는다.한낮에 꽃이 피는데 밤이슬이 줄기를 타고 포기 속으로 들어가면 머금고서 여무니,이 때에야 익는 것이다.벼꽃이 희고 화판이 작으면 쌀이 나쁘고,화판이 많고 누르면 쌀이 좋다」 옛 농서를 펼쳐보는 심정은 착잡하기 짝이 없으니,냉해(냉해)로 해서 벼가 익지 않는다는 보도 때문만은 아니다.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데에 있다.계급으로서의 농민이 이미 사라져버린 것은 물론이고,땅을 기반으로 한 문명 또는 문화 자체가 사라져버릴 상황에 와 있는 것이다.몇해 전 만났던 어떤 농촌 청년의 말이 상기도 귓전을 두드린다. ○농민은 사라지는가 『여름 한철 민박만 쳐도 일년 농사짓는 것보담 난디,워떤 시러베자슥이 농사질라고 할 것이요이!』 세상이 좋아져서 그런 것인지 요즘은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나라에서까지 역설하고 있는데,그 사람의 인격형성에 유년시절이 중요한 것이라면 그 사람이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 어디냐 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할 듯하다.필자 또래의 연배로서 사변직후인 유년 또는소년시절을 풍성하게 보낸 사람은 드물 것이고,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굶주린 인생」들인 것이라면,여기서 도시와 농촌 또는 산촌은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 같다. ○배고픔의 의미는… 모두 함께 굶는 사회에서는 다만 나 혼자서만 특별히 배가 고프지는 않을 터이다.도시 빈민촌의 아이들은 고샅길만 벗어나면 얼마든지 만나게 되고 또 보게되기 마련인 잘사는 집 아이들의 풍성한 삶에 의해서 그 배고픔이 더 늘어났던 것이라면,농촌 또는 두메의 아이들은 똑같이 매일 점심을 굶고 주전부리라고는 개떡이라고 불리는 밀기울과 쑥 버무린 것이나 산야에 널려 있는 자연식품뿐임으로 해서 그 배고픔이 평준화되고 감면되었던 것은 아닐는지. 그렇다.햇빛이며 바람이며 물이며 흙이며 나무며 풀이며 하다못해 그 풀섶에서 가냘프게 울어대는 벌레들까지도 도회지의 그 어떤 맛좋은 과자며 사탕이며 또 온갖 가공식품보다도 풍성한 유년시절의 「양식」이 되었던 것이었다.그런 의미에서,그리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세상은 갈수록 더욱 더 살아내기가고달프고 피폐할 것이므로,무슨 보석처럼 번쩍이는 도회지의 전기불빛 아래서가 아니라 눈물처럼 반짝이던 두메산골의 등잔불 아래서 유년시절을 보내었음을 필자는 얼마나 다행으로 여기고 있는지 모른다.굶주림은 그러나 반드시 육신의 굶주림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며,영혼의 굶주림이야말로 이 세상의 그 어떤 「밥」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영원한 공복일 터이고,철학이며 종교가 설 수 있는 지점 또한 바로 이 근처가 아닐 것인지…. ○문명의 역작용 경계 화학조미료와 설탕을 쓰지 않은 김치와 된장찌개와 시래기를 넣고 끓인 우거지국에 반넘어 보리가 섞인 밥을 말고,또 보리고추장에 쓱쓱 비벼서 먹은 다음 살짝 태워서 노릇노릇해진 누룽지를 끓인 눌은밥을 먹고,그리고 구수한 숭늉을 한대접 마시고 나면,비로소 밥을 먹은 것 같다.어머니의 음식인 때문이다.고향의 음식이며 「조선」의 음식인 것이다. 「조선의 음식」이라니? 마음놓고 숨을 쉬고 마음놓고 물을 마시고 마음놓고 밥을 먹을 수 없는 세상에 와 있는지 이미 오래된 세상에서 이 무슨 한갓진 소리라는 말인가.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닌 세상에서 이 무슨 사치한 감정의 허영이라는 말인가. 기러기들이 오고,제비가 돌아가고,뭇새들이 먹이를 갈무리하고,천둥이 비로소 소리를 거두고,겨울잠을 자려는 벌레들이 굴문을 좁히고,물이 비로소 마르니 8월… 이라고 옛사람은 말하였다.가을이라는 것이다.그런데… 기러기는 희귀조가 되었고,근원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준비해야 될 물은 썩어가고 있다.10장의 이 원고를 쓰기 위하여 나는 또 몇그루의 소나무를 없이하는 업을 짓고 있는가.옴 미기미기 야야미기 사바하.
  • 바캉스용품 손질후 보관해야 낭비막아

    ◎세탁소 보낼것­폐품활용등 미리 구분해두면 편리 ▷품목별 손질요령◁ 텐트:흙·오물등 털어내고 햇볕에 건조 비치용품:소금기 완전히 빼고 파우더 뿌려 돗자리:식초묻힌 천으로 한번 더 닦아줘야 수영복:중성세제로 빤후 그늘에서 말려 텐트와 튜브등 여름휴가때 피서지에서 사용했던 바캉스용품들을 정리해 넣어야 할때다.잘해야 1년에 한두번 쓰게되는 바캉스용품은 잘 손질해서 보관해야 해마다 다시 사는 낭비를 막을 수 있는 알뜰요령이다. 바캉스용품을 정리할땐 먼저 집에서 손질할 것,세탁소에 보낼 것,폐품으로 활용할 것 등 미리 손질법을 구분해서 시작해야 편리하다.각종 바캉스용품의 손질법을 품목별로 알아 본다. ▷텐트◁ 텐트는 습기가 남은 상태에서 보관하면 색상이 변질되므로 먼저 흙과 오물을 털어내고 햇볕에 말린다.또 물세탁을 자주하면 방수효과가 떨어지므로 더럽혀진 부분만 칫솔 등을 사용해 세탁하는 것이 좋다. ▷돗자리◁ 물에 약한 돗자리는 마른수건으로 닦아주되 얼룩은 중성세제를 사용해 부분세탁으로 뺀다.방법은 미지근한 물에 중성세제를 타서 낸 거품을 얼룩 부위에 얹고 천으로 문지른 다음 식초를 묻힌 다른천으로 다시 닦아준다.청소가 끝나면 그늘에서 잘 말린 후 앉는 부분을 안으로 말아서 보관한다. ▷비치용품◁ 대부분 고무로 만들어진 튜브·비치볼·비치매트 등은 소금기가 남은채 보관하면 금방 못쓰게 된다.깨끗한 물에 3∼4시간 담가 소금기를 완전히 뺀 후 그늘에서 건조시킨다.그 다음 베이비 파우더를 조금 뿌려 넣어두면 곰팡이도 슬지않고 제품수명도 오래간다. ▷수영복◁ 먼저 중성세제로 빨아 충분히 헹군 다음 색상이 바래는 것을 막기위해 그늘에서 말린다.표백제가 섞인 세제는 피하고 수영복 재질로 많이 쓰이는 폴리우레탄의 손상을 막기위해 찬물에서 빤다. ▷모자◁ 합성섬유 재질의 모자는 중성세제를 탄 물에 휘저어가며 세탁하여 헹군후 그늘에서 말린다.왕골이나 밀짚제품은 세제를 묻혀 닦아내고 삼베나 마제품은 드라이클리닝을 맡긴다.면 모자는 물빨래도 가능하나 차양이 일그러지지 않도록 솔로 문질러 빤다.
  • 일가족 5명 암장시 발견/장위동 집정원에 묻혀… 딸이 신고

    ◎30대아들 “아버지 내가 살해” 자백/“인부2명 시켜 시체처리” 진술도/사업자금 관련 범행가능성 23일 하오 2시45분쯤 서울 성북구 장위3동 203의9 이정현씨(73)집에서 이씨와 부인 조금례씨(73),아들 호창씨(39·당구장 경영),며느리 박흥분씨(34),손녀 미영양(13·석관중 1년)등 일가족 5명이 둔기로 살해된 뒤 정원에 암매장된채 발견됐다. 경찰은 숨진 이씨의 막내아들인 호성씨(33)가 다른 30대 남자 2명과 함께 지난 15일쯤 하수도를 고친다며 정원을 파는 것을 보았다는 이웃 주민 김모씨(47)의 진술에 따라 이날 호성씨를 연행,범행을 집중추궁한 끝에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자백을 받아내고 정확한 범행경위를 캐고 있다. 경찰은 호성씨가 『아버지는 내가 살해했으나 나머지 가족들은 아버지가 살해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정신이상증세가 있었다는 가족들의 진술에 따라 진술에 대한 사실여부 확인조사를 펴고있다. ▷사체 발견◁ 이씨의 맏딸 호연씨(48)는 『17일 여동생으로부터 친정집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고 22일 경찰관 한명과친정집에 가니 호성이가 「아버지와 형 부부가 싸우고 지방에 내려갔다」면서 「이집을 세놔야겠다」는 등 횡설수설하는데다 정원이 파헤쳐져 있는 점이 이상해 오늘 상오11시쯤 가출신고를 냈다』고 말했다. 경찰은 하오 2시쯤부터 정원을 파기시작,30분만인 하오 2시30분쯤 정원 1.8m 아래 흙속에서 암매장된 이씨의 사체를 발굴한데 이어 하오 7시30분쯤까지 나머지 4명의 사체를 차례로 찾아냈다. 피살자들은 이마와 머리 뒷부분등을 둔기로 맞은 상처가 나 있었고 알몸이거나 잠옷차림인 상태로 비닐에 싸여 40평규모의 정원 왼쪽에 ㄱ자모양으로 매장돼 있었다. ◎공범여부도 수사 ▷수사◁ 경찰은 범인 이씨가 『당구장을 차려달라』는 등 평소 사업자금을 요구하며 숨진 아버지 이씨와 자주 다투었다는 가족들의 진술에 따라 사업자금 문제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이씨를 추궁하고 있다. 경찰은 호성씨가 아버지만 살해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져 범행에 사용했다는 망치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사체암장을 부탁했다는 김종화·전진욱씨등 2명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이들의 연고지인 정릉에 수사관을 급파하는 한편 이들을 긴급수배했다. 또 호성씨가 최근 밤에 나가 새벽에 돌아오곤 했는데 밥을 먹지 않았다는 누나 호연씨등 가족들의 진술에 따라 호성씨가 도박에 손을 댔다 빚을 지자 돈을 구하려 범행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경찰은 호성씨가 이들 5명의 사체를 혼자 힘으로 옮기기는 어렵다고 보고 공범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이웃 주민 김씨가 『16일 상오 3시쯤 숨진 이씨의 집에서 흙을 옮기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아침 9시쯤에는 호성씨가 정원의 흙을 다 메운뒤 다지고 있었다』고 말한 점을 중시,호성씨가 이때 사체를 암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또 범인 이씨가 지난해 9월부터 술집 여주인 임모씨와 동거해왔으며 지난 22일 집 거실을 도배할때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임씨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이씨 가족◁ 숨진 이씨는 지난 75년1월 본처인 조씨와 헤어져 후처와 함께 살아 오다 87년1월 본처및 아들식구들과 재결합해 살아왔다. 이씨는 재결합 당시 이웃집 가옥 한채를 매입,헐어낸뒤 새로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시가 5억원 상당)을 지어 지하 1층은 대우전자 대리점,2층은 피아노학원에 세를 주었으며 3층의 당구장은 지체 부자유자인 맏아들 호창씨가 운영해 왔다. 호성씨는 지난 77년 고교 2년때 셋째 누나의 교통사고를 목격한뒤 충격으로 정신이상증세를 보여 학교를 자퇴,하는 일 없이 지내오다 84년 육군하사로 제대한뒤 노동판을 전전하며 아버지에게 사업자금등을 요구하면서 불화가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살해전 가족들 이미 숨져”/용의자 이씨 일문일답 범행을 자백한 호성씨와의 일문일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범행 동기는. ▲우발적이었다.안방에서 신문을 보려는데 아버지가 망치로 내려치려고해 망치를 빼앗아 아버지의 머리를 때렸다. ­다른 가족들은 살해하지 않았는가. ▲아버지가 숨진 것을 보고 형을 찾았는데 형은 머리에서 피를 흘린채 구석방에서,어머니·형수·조카등은 각자 자기방에서 피를 흘리며 숨져 있었다.나는 아버지만을 살해했을 뿐이다. ­범행뒤 무엇을 했나. ▲집에서 나와 드림랜드와 동네 등지등을 돌아다니다 밤에 집에 돌아와 잠만 잤다. ­사체는 언제 암매장했나. ▲노동을 하며 알게된 진욱이와 종화를 지난 16일 전화로 불러 5만원씩 주고 땅을 파게 했다.사체는 친구들이 돌아간뒤 혼자 묻었다. ­사업자금을 요구,아버지와 자주 다퉜다는데. ▲이달들어 당구장을 차려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했다.과일도매상을 하면 목돈을 벌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꼭 이 장사를 해보려 했다.
  • 남부 기습호우… 12명 사망·실종/남해 최고 2백89㎜

    ◎산사태로 열차탈선,집 매몰/곳곳 철로·도로 끊기고 논밭 1만4천㏊ 침수 20일 밤부터 21일 상오까지 경남 및 전남지방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집중호우가 쏟아져 산사태 등으로 12명이 사망하고 농경지 1만4천여㏊가 침수되는 등 큰 피해를 냈다. 또 경부선·경전선·여천선 및 전라선등 4개선의 선로 27곳과 도로·교량 1백11개소가 침수되거나 유실·매몰돼 한때 교통이 두절됐었다. 중앙재해대책본부는 이번 비로 남부지방에서 93가구 4백1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모두 81억여원의 재산피해가 났다고 밝혔다. 이번 호우는 특히 주민들이 잠든 상오 1시부터 7시사이에 기습적으로 쏟아져 피해가 더 컸다. 하오 9시까지 강우량은 경남 남해의 2백89.5㎜를 비롯,마산 1백88.2㎜,고흥 1백62㎜,진주 1백30.5㎜,목포 1백16.7㎜ 광주 1백.9㎜ 등이다. 기상청은 22일 하오까지 제주·호남 남해안에 20∼50㎜,영남·영동지방에 10∼30㎜,중서부지방에 5∼10㎜의 비가 더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날 상오 3시쯤 경남 남해읍 평현리 봉성마을 임채옥씨(60)집이 산사태로 매몰돼 세들어 살던 손막순씨(88·여)가 숨졌다.같은 시간 경남 사천군 용현면 용정리 박봉순씨(67·여)집이 인근 개울둑이 무너지면서 침수돼 숨졌다. 이밖에 이날 상오 6시쯤 전남 여수시 남산동 245 최재성씨(51)집이 산사태로 흙더미에 깔려 최씨의 부인 이말심씨(49)가 숨지는등 불과 6시간여만에 전남에서 7명,경남에서 4명,부산에서 1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 상오 2시27분쯤에는 전남 승주군 별량면 마산리 철도건널목 부근에서 목포발 부산행 466호 통일호열차(기관사 나원천·33)가 산사태로 선로가 흙에 묻힌 사실을 모르고 운행하다 탈선돼 기관사 나씨와 승객 등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 엑스포조직위의 침묵/백문일 경제부기자(오늘의 눈)

    엑스포조직위원회가 정작 말을 해야할 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개막 이틀째인 8일 집중호우로 각종 공연과 전시가 취소되고 일부 시설이 고장나는 등 사고가 잇따르는데도 조직위는 꿀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천재에 불과하다』『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는 말만 되풀이할뿐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개장전 모든 준비를 끝냈다고 호언장담하던 조직위의 모습과는 전혀 딴 판이다. 그동안 개회식 일정에만 신경을 쓰다 관람객의 안전이나 재해대책은 뒷전으로 돌린 탓의 대가를 톡톡이 치르고 있는 것이다. 사고의 징후는 이미 여러차례 노출됐었다.그러나 조직위측은 그때마다 미봉책으로 언론의 입막음에만 급급했을뿐 근본적인 대책에는 소홀했다. 지난 1일 종합리허설때 관람객의 혼잡 및 정전,침수 등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의 위험성이 지적됐을 때도 조직위는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여겼다. 오명 조직위원장은 3일 기자회견에서 『몇가지 문제점이 드러난 것은 사실이지만 대회를 운영하는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튿날인 4일과 5,6일 프레스 센터와 일부 국제관에서 원인모를 정전이 계속 일어나자 조직위는 「전력 점검중」이라는 말로 얼버무렸고 빗물이 대회장내에 질퍽하게 고였을 때도 「걷기에는 큰 불편이 없다」고 둘러댔다. 개장 하루전인 6일 하오 개막축제를 지켜보던 5만여명의 관람객이 대회장내로 마구 진입했을 때도 조직위는 경찰의 소관사항이라며 경비소홀의 책임에서는 발을 뺐다.이때까지만 해도 조직위는 축제의 무드에 젖어있었다. 그러나 개장 이틀만인 8일 집중호우 때문에 전시관안에 빗물이 스며들고 정전으로 모노레일 등 시설물이 고장나 대회운영에 큰 차질을 빚자 갑자기 「천재」를 운운하며 책임을 하늘로 돌렸다.부랴부랴 마련한 태풍대책 등도 교과서에 적힌 긴급 대피요령을 나열하는데 그친 빈껍데기에 불과했다. 물론 조직위의 입장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다.태풍의 진로나 영향까지 조직위가 예측하기는 능력밖이다. 그러나 천재도 막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천재를 운운하기에 앞서흙과 돌멩이로 메워진 하수관을 먼저 점검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게다.
  • 엑스포장 침수 소동/조직위,“대책 없다”

    엑스포행사가 집중호우와 각종 사고로 큰 혼란을 빚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위가 근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미봉책으로 일관,성공적인 행사진행이 우려되고 있다. 조직위는 이혼란이 호우와 낙뢰로 인한 일시적인 자연재해때문이라며 사고원인분석과 시설점검이나 8월의 집중호우 대비책등을 제대로 강구치않고있다. 한편 관람객수는 8일 10만명 9일에는 13만여명을 기록했다. ▷침수 및 사고◁ 8일 하오 행사장은 1백3㎜의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로 한빛탑주변광장과 남문등 각 출입구부근에 발목이 잠길정도로 물이 차는 등 물바다가 되었다. 또 급격히 불어오른 갑천물이 역류해 갑천변무대가 12㎝가량 잠겼다. 이 때문에 수상쇼등 이날 예정됐던 모든 공연일정이 취소됐다. 하오 4시50분쯤에는 모노레일이 전원공급장치의 고장으로 갑자기 운행중단돼 국제관부근을 지나던 모노레열차에 탄 승객 70여명이 높이 6m의 레일위에서 2시간여동안 공포에 떨어야했다.또 9일에는 전기에너지관을 관람하던 김동수군(7·서울 강서구 화곡동)이 에스컬레이터에 운동화가끼어 엄지발가락이 절단되는 첫 인사사고가 발생했다. ▷전시관폐쇄◁ 네덜란드관이 정전과 침수로 인해 9일 일시 폐쇄했다. ▷문제점◁ 엑스포행사장은 장마시 상습침수지역으로 7월에도 물난리를 겪었다.특히 배수관이 돌과 흙으로 막혀있는 등 배수시설의 미비와 문제점이 여러차례 지적돼왔으나 이번 침수에서 배수로의 어느 곳이 막혀 물이 넘쳤는지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또 인공조성된 갑천의 하류가 상류보다도 높은 구조적인 문제점도 안고있다.더욱이 1백50㎜의 강우량에 대비해 수방대책을 마련했다면서도 1백3㎜의 비에도 혼란을 빚어 재검토가 시급함을 드러냈다.소요전력에대한 계산착오로 일시적인 정전사태가 국제관과 프레스센터등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대책◁ 임풍환 조직위종합상황부장은 『침수는 집중호우로 인한 어쩔 수없는 자연현상이기 때문에 별다른 대책이 없다』면서 『모노레일사고등은 해당업체가 알아서 할 문제』라고 밝혔다.조직위는 근본적인 대책마련은 어렵다는 입장에서 호우나 태풍경보시 관람객의 입장금지나 퇴장,갑천홍수시 전원차단과 행사장폐쇄등의 조치와 함께 기존 수해방지책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 최무선함(외언내언)

    우리나라에 왜구가 침입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 부터였다.그러나 그때는 그 수가 별로 많지 않아 피해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그러다가 고려말에 이르러 왜구들이 준동하기 시작했다.그 중에서도 고려말 약 40년간은 왜구들에 의한 피해가 특히 컸다. 당시 무관이던 최무선은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위해 화약과 총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그는 오랜 기간 노력한 끝에 중국사람 이원으로 부터 염초를 흙에서 추출하는 방법을 배워 마침내 이를 제조하는데 성공한다.서기 13 77년(우왕 3년)10월의 일이다. 이때부터 그의 건의로 설치된 화통도감에선 화포·신포와 화전·철령전등 발사물,그밖에 질려포·철탄자와 로켓무기인 주화등 18가지에 이르는 각종 무기들을 생산했다. 그는 서기 1380년(우왕 6년)에 왜구가 5백여척의 선박을 이끌고 지금의 금강하구인 진포로 쳐들어오자 원솔 나세와 함께 이들 무기로 무장한 전함을 이끌고 나아가 싸워 격파시키는 큰 공을 세웠다.이때 놀란 왜구들은 그 후 30여년간 다시는 넘보지 못했다고 한다. 경남 거제도에서 어제 우리 해군의 세번째 잠수함이 진수됐다.배의 명칭도 고려때 국난극복에 크게 공헌한 최무선의 이름을 따 「최무선함」이라 했다.우리도 이제 본격적인 잠수함시대를 연 것이다.반갑고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독일 HDW사의 기술지원을 받아 우리나라에서 우리 기술진에 의해 건조된 「최무선함」은 1천2백t급의 현대식이다.내년 가을 실전배치될 이 배는 현재 세계 각국에 배치돼 운용중인 같은 급의 잠수함중 성능이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북한이 보유한 「W급」「R급」보다 수중속력·기동성·공격능력면에서 월등하다고 한다.우리 해군사에 크게 기록될 금자탑이다.박수를 보낸다.
  • 엑스포 개막에 부쳐/우리의 내일이 거기 있기에…(특별기고)

    ◎새로운 도약의 목표 설정하는 자리로 대전에 사는 나에겐 93대전엑스포는 파헤쳐진 길들과 뿌리를 드러내고 시드는 가로수들,때를 가리지 않는 교통체증,흙을 한껏 싣고 마구 달리는 트럭들 따위 짜증나는 일들로 먼저 다가왔다.개장까지 남은 날들을 알리는 전광판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짜증은 「이렇게 벌여놓은 공사들이 그대까지?」라는 걱정에 밀려났다. 대중매체들은 준비가 예정대로 되어간다고 보도했지만 어수선한 행사장을 지날 때마다 걱정은 되살아났다.그래서 개장을 한주일 앞두고 행사장을 찾았을 때 나는 먼저 마무리작업들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때에 끝낼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늘 거의없어 문제 잘 되어간다는 대답을 듣고 한결 느긋해진 마음으로 둘러본 행사장의 첫인상은 좀 실망스러웠다.공사가 덜 끝나서 어수선하다는 사정도 있었을 것이고 텔레비전의 화면을 통해 본 세상은 현실보다 훨씬 깔끔하고 환상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기대가 컸던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실제로 부족한 점들도 적지 않았다.전시관들은 대체로 겉모습이 속에 든 것들보다 나았다.전시관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따로 노는 듯했다. 관객들의 처지에서 살피면서 시설을 마련하려고 애쓴 자취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그늘이 거의 없다는 것이 당장 큰 문제였다.단체관람을 와서 팔월의 뙤약볕 아래 여러 시간을 보낼 학생들을 생각하면 끔찍했다).무엇보다도 마음 한구석에 늘 얹혀 있던 걱정 하나가 현실로 나타났으니 국제박람회여서 행사장의 중심인데도 국제관은 초라했다.앞선 사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음이 이내 눈에 띄어서 특히 서운했다. 그러나 부족한 점들을 꼽으면서도 나는 알고 있었다.그것들이 준비할 시간이 워낙 짧았다는 사정에서 나왔음을,그래서 기일을 맞춘 것 자체가 큰 성취임을.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맞는 행사는 얼마나 품이 많이 들고 어려운가. ○어린이프로 많아 그 사이에도 국민학교 4학년인 딸아이는 연방 탄성을 내면서 처음 보는 프로그램들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녀석이 눈썰미가 있어서 나는 어떻게 하는지 짐작하기도 어려운 프로그램들과 기구들을 제법 구슬리는 것을 보고선 기분이 문득 좋아졌다.그러고보니 거의 모든 프로그램들이 아이들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아이들을 위해서 만든 것들도 많았다.엑스포의 주제가 미래의 모습이므로 미래의 무대에서 활동할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많다는 것은 무척 흐뭇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는 그런 단편적 프로그램들에 나온 모습들을 한데 모으면 저절로 모습을 갖추고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우리는 어떤 사회를 바라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을 때 비로소 구체적 모습을 갖춘다. 시민들의 눈길이 미래를 향한 자리이므로 엑스포는 그런 물음을 던지기 좋은 곳이다.바로 그것이 1893년에 콜럼버스의 아메리카대륙 재발견 4백주년을 기려 시카고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미국 역사가 헨리 애덤스가 생각한 것이다.이제는 고전이 된 자서전 「헨리 애덤스의 교육」에서 그는 『시카고는 1893년에 처음으로 미국 사람들, 그들이 어디로 달려가는지 아느냐는 물음을 던졌다』라고 썼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그런 물음을 던질 수 있었던 기회는 88서울올림픽이었다.시민들의 희망과 도덕심이 한껏 고양되었던 그때 우리가 그런 물음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음은 어느 모로 보나 성공적이었던 그 행사가 우리 사회에 별다른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는 사실이 아프게 일깨워준다. ○서울평화상이 상징 돌아다보면 우리는 그때 열린 사회를 지향해야 했음이 또렷이 드러난다.그러나 우리는 그런 목표를 찾지 못했고 시민들의 한껏 고양된 도덕적 에너지는 스러졌다.시민들의 동의 없이 정부가 급작스레 만들어서 뚜렷한 성격조차 찾지 못한 채 표류하다가 끝내 사라지게 된 서울평화상이 그 사실을 상징한다. 이제 우리에겐 그런 물음을 던질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국제화와 정보화가 중요한 경향인 현대에서 여러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배우고 즐기는 국제박람회보다 그런 일에 더 나은 자리가 어디 있을까. 게다가 지난 봄에 도덕적 권위를 가진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회의 지속적 발전에 필요한 조건들 가운데 이전엔 채워지지 못한 중요한 조건 하나가 채워졌다.이처럼 좋은 기회를 맞아 우리가 그런 물음을 던지지 못한다면,아마도 이번 엑스포도 서울 올림픽처럼 우리 사회에 별다른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이다. 아주 짧은 기간에 마련해서 천만명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에게 배우고 즐길 자리를 내놓는 것은 대단한 성취다.그러나 이번 엑스포가 그런 성취만으로 끝나고,우리가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말로 아까운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 “선대의 한 풀었다” 벅찬 감회/유해봉환 맞는 유족 표정

    ◎중국과 수교전엔 교섭 번번이 좌절 임정요인 5인의 유해봉환을 앞둔 유족들은 모두 『독립운동과 관련된 고인들의 유해를 드디어 고국땅에 모실수 있게 돼 여한이 없다』고 입을 모으며 벅찬 감회에 젖었다. 유족들은 이미 대표를 선정,3일 중국 상해로 건너가 봉환절차에 입회할 예정이며 5일 유해와 함께 귀국할 계획이다. 유족대표로는 박은식선생의 손자 유철씨(55)를 비롯,신규식선생의 외손자 민영수씨(72),노백린선생의 손자 영훈씨(55),김인전목사의 외손자 최순성씨(64),안태국선생의 손녀사위 이의석씨(72)등이 있다. 박유철씨는 『할아버지 유해를 조국에 모셔오기 위해 수십년동안 노력해 왔다』면서 『이제 늦게나마 결실을 보게 돼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박씨는 박시창전광복회장이 선친이기도 하며,지난 86년 작고하면서 『내가 죽더라도 아버지의 유해를 꼭 조국의 흙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는데 이에대해 『선친의 유언도 이뤄져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또 신규식선생의 외손자 민영수씨는 『외조부의 유해를 고국산하에 모시게 돼 어머님의 한까지 모두 풀어드리게 됐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대만공사를 지낸바 있는 민씨는 『그동안 유해봉환노력은 중국이 미수교국이었던 문제로 번번이 성사되지 않았었다』면서 『지난 90년 중국측이 비공식으로 허락했으나 애국선열유해봉환을 비밀리에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를 거부했었다』고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털어놓았다. 신선생은 슬하에 아들이 상호씨 한명뿐이었으나 15세때 상해에서 사망,외동딸 창희씨가 민필호씨와 결혼해 2남4녀를 뒀으며 이중 큰딸 민영주씨는 김준엽전고려대총장의 부인이기도 하다. 노영훈씨 역시 『생전에 모습을 뵌 적은 없지만 내평생 자랑스럽게 생각해온 할아버지를 가깝게 모시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노씨는 지난 84년 조부의 묘소를 수소문,상해 공동묘지에 있음을 확인해 봉환케 됐는데 『단한번 정복차림에 말을 타고 조국 남대문에 입성했으면 한이 없겠다고 하셨던 조부가 이제 정말 오시게 됐다』면서 『이 기쁜 소식을 아버지께 전해도 고혈압으로 누워계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세월의 무상함을 원망하기도 했다. 김인전목사의 딸 설영여사(88)는 3살때 청력을 잃은 탓에 아들 최순성씨와의 수화를 통해 『살아 생전에 아버님 유해를 모시게 돼 여한이 없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최씨 역시 『어머님이 항상 독립운동가 후손님을 명심,몸가짐을 바르게 하라고 가르치셨는데 이제 그 어른을 모실수 있게 돼 더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안태국선생의 유일한 손녀인 효실씨 역시 『조부의 유해가 돌아오신것에 지하에 계신 선친도 기뻐하실 것』이라면서 『목숨 바친 조부의 뜻이 후손들에게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주체성 살린다” 동의학을 고려의학으로 개명(북한 이모저모)

    ◎온천·공장 폐열이용한 채소 온실재배법 개발 ○한방처방 5만가지 ○…북한에서는 최근들어 『민족주체성을 살린다』는 취지에서 동의학을 「고려의학」으로 고쳐 부르고 있으며 1차진료에서 「고려진료」(한방치료)의 배합비율을 60∼70% 수준으로 높이는등 이 부문의 발전에 주력하고 있다고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 최근호가 밝혔다. 조선신보는 북한의 동의학 실태를 소개하는 글에서 이같이 밝히고 현재 북한의 고려의학에서 치료약으로 이용되는 동·식물등 광물성 약재만도 1천4백여종에 달하며 처방은 5만가지 이상이라고 전했다. ○「영양액 재배법」 보급 ○…북한은 최근 흙을 전혀 쓰지 않고 왕겨(벼껍질)와 온천·공장에서 배출되는 폐열을 이용하여 채소를 온실재배하는 「영양액재배법」을 새로 개발,전국에 보급하고 있다고 당기관지 노동신문 최근호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한의 한 지방농장에서 개발했다는 이 「영양액 재배법」의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으나 우선 자갈이나 흙을 전혀 쓰지 않기 때문에 밭갈이·김매기·거름주기·토양소독등 토양관리에 드는 노력을 크게 절감하면서 영양액공급을 위한 물·비료주기도 원격조종으로 3분이면 충분해 1인당 관리면적을 1천㎡로 늘려 종래 흙재배법에 비해 생산원가가 절반밖에 들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방 크기별 조도규정 ○…북한은 가정용 전력사용을 줄이기 위해 방의 크기에 따라 일정한 조도를 정해놓고 이의 준수를 의무화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평양에서 발간되는 월간잡지 「천리마」 최근호에 따르면 북한은 조명용 전력을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 방의 크기에 따라 조도를 규정해 놓고 있는데 방의 크기가 6∼8㎡(1.8∼2.4평)는 백열등 25w, 9∼12㎡(2.7∼3.6평)는 40w ,13∼19㎡(3.9∼5.7평)는 60w, 20㎡(6평)이상이 돼야 1백w 밝기의 전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의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 학교생활 “해방” 신나는 여름방학/여행·수련 등 기회많이 주도록

    ◎자녀들의 알찬 방학 보내기 지도는 이렇게/취미생활·가족대화시간 될수록 자주/「온실의 화초」 안되게 심신단련도 필요 15일을 전후해 전국의 초·중·고생들이 40여일의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방학은 규칙적인 학교생활의 틀에서 벗어나 각자 자유롭게 취미활동을 하며 심신을 단련하는 기간이다.따라서 부모들은 시험위주의 학교생활에 짓눌렸던 자녀들이 책도 읽고 평소 원하던 취미생활을 즐기며 또 여행이나 수련의 기회를 가져 학교생활에서 체험할 수 없던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서울 석관국민학교 차원재교장은 자녀가 중학생 이상인 경우에는 어느정도 스스로 알아서 할 수가 있지만 국민학교 어린이들의 경우엔 부모가 함께 방학계획을 세우는것이 바람직하다고 들려준다. 차교장은 먼저 방학에 앞서 어떻게 보낼것인가를 계획하고 방학이 시작되면 서둘러 중요한 숙제를 끝낸다음 다양한 방학 특별프로그램을 즐기고 마지막 며칠은 개학준비를 하도록 일정을 짜라고 일러준다. 한편 어린이들의 방학 특별프로그램은 가능하면「인간성 회복」에 초점을 맞추라고 권한다.이는 특히 자연과 흙을 모른채 자라는 도시 어린이들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부모들의 과보호속에서 온실의 화초처럼,또 나밖에 모르는 개인주의에 젖은 어린이들에게 대자연과 함께 사는 이웃을 알려주기 위한것. 예를들면 시골 나들이,친구들과 모여서 놀며 연극 해보기,친구집에 가서 잠자기등이 모두 그런것들 이다. 시골 나들이는 떨어져 사는 할머니·할아버지댁이나 농어촌에 사는 친척집을 방문,며칠 그곳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잡초를 뽑는등 힘닿는대로 일손을 도우며 맑은 공기속에서 농어촌을 배우는 산교육의 기회를 갖는 것이다. 친구들과 모여 놀며 연극 해보기는 평소엔 방과후까지 학원공부등에 시달리느라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일조차 어려웠던 아이들이 진한 우정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기 위한것. 학교 혹은 마을의 또래친구들끼리 만나 독서·토론·놀이를 즐기고 한편쯤의 연극도 꾸며보면서 재미나는 추억을 쌓는것 이다.또 친한 친구가 있는 경우엔 부모의 허락을 받아 하루쯤 번갈아 집을 오고가며 잠까지 자면서 내집과 다른점은 무엇인지,친구집의 예절을 눈여겨 배울 기회를 갖게 한다. 이밖에 부모들이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학습지도는 특별히 부족한 과목이 있으면 시간을 할애해 보충하는 계획을 세우고 그렇지않을 경우엔 규칙적인 학습태도의 리듬을 잃지않는 범위내에서 각급 학교의 공통과제물인 탐구생활및 교육방송시청 정도로 계획을 세우도록 한다.그러나 일기는 매일 반드시 쓰게하며 몇권이라도 독서를 한후 독후감을 쓰도록하고 휴가를 다녀왔거나 시골 나들이,친구집 방문처럼 특별한 행사가 있었을때도 꼭 글로 기억을 남기도록 지도한다. 자녀들이 평소 좋아하는 분야가 있으면 취미분야를 강화해주고 평소 대화의 시간이 부족하기 쉬운 중·고생들과는 접촉시간을 늘려 대화의 시간을 갖도록 하는것도 좋다.
  • 문학·문예 평론가 이어령씨(이세기의 인물탐구:32)

    ◎평론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천부적 관찰력에 해박한 지식으로 언어조율/약관 22세 데뷔… 예봉·직설로 기성문단에 파문/문학의 전장르 석권… 「흙속에…」이후 한국 재발견에 몰두 전후 한국문학의 기린아·총아 타이틀과 함께 독설적 직설,명쾌의 명문으로 이어령씨가 평단에 데뷔했을 때는 온 문단은 마치 「화약고」인듯 경계의 시선으로 그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불어온 미국의 비트제너레이션이나 서구의 누보로망 앵그리영맨처럼 한국의 뉴제너레이션이던 당시 22세의 그는 「집도 가족도,그리고 그 시원찮은 문명이란 것도 학식도 없이 가진 것이라곤 분노와도 같은,자엽과도 같은 광기와 젊음뿐」이었으며 「생존하기 위하여 문관노릇을 하던 교수님들 밑에서 반세기전의 증권같은 실력없는 낡은 노트의 학설을 베끼며 인생을 배웠고」 「모든 울분과 공허를 자취방에 드나드는 늙은쥐를 두들겨 잡는 것으로나 달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문학을 하고 있는 몇몇 문단선배들을 만나보고 「기절할 정도로 실망」하여 그의 데뷔작품인 「우상의 파괴」에서 문단사에 남을 만한 중견문인들을 향해 「미몽의 우상」 「사기사의 우상」 「우매의 우상」 「영예의 우상」,이미 문단의 큰 봉우리로 우뚝선 노대가들마저도 「현대의 신라인」으로 신랄하게 통박하여 문단을 온통 긴장시키기에 이르렀다.그때 그의 눈에 비친 작가·비평가들은 그 어려운 시절에 「직무유기를 하는 한가한 문사」에 불과했으며 「불난 집에서 바둑을 두고 포탄이 터지는 전선에서 자장가를 노래하는 사람같아」 「파괴돼 마땅한 우상」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그때 「황무지」나 다름없는 문학풍토에서 「한국작가는 세계의 고아」 「현대 문명의 외곽지대에서 서식하는 뿌리없는 버섯」,이런 「불모의 상황을 영구화하려는 듯한 기괴한 권위」를 젊은 그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우상의 파괴」로 비판 그러나 예절과 겸허가 없는 그의 패기는 당연히 무례로 간주되었고 이 「맹랑한 문제아의 출현」을 놓고 문단은 한때 「일진광풍」이니 「일진청풍」으로 의견을 대립하는 사태가 일기도 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6·25전 한자어세대인 제1세대는 「식민지역사에 반항하여 망명이나 감옥으로 가든지,친일적인 식민지인으로 순응하든지」의 선택의 여지에 놓였던 것에 비해 전쟁직후의 20대,이른바 제2세대들은 일본어도 제나라 말도 서툴고 한자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는 「어중간한 허공에 매달린 역사의 기예 같은 존재」라고 또한번 꼬집었다 이제 문단은 더이상 그를 좌시하거나 간과하려 들지 않았다.일부 문인들은 그로 인해 어쩌면 이제까지 쌓았던 공든탑이 무너지고 문인으로서의 생명인 명예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느끼는 듯했다.그의 문재와 번득이는 지성이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기성문단은 한결같이 그를 냉혹하게 외면했다. 심하게는 「전생에 그리스의 소피스트케이션」이나 견석백마의 곡론가로 매도하고 그의 날카로운 필봉을 완강하게 견제하려 들었다.그때 빛나는 재능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안타깝게 몸부림치는 그의 적들을 향해 「알렉산드리아」의 작가 이병주씨는 『나는 동족으로서,동시대인으로서 우리에게 이만한 사재가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서 『이런 재능을 우리가 가지고 있음을 거침없이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나섰다. 그의 절친한 후배인 작가 최인호도 「문학이라는 삼장법사를 모시고 예술이라는 구도의 길을 가는 손오공」,문학평론가 김현도 「단군이래 순발력과 기지가 가장 뛰어난 사람」임을 여러글에서 밝히고 있다.「그는 과연 동서예술을 천의무봉으로 전개해나갔고 문학평론을 예술로 승화시킨 최초의 한국인」이라고. 이에 대해 이어령씨 자신은 「희극과도 같은 만용을 부려야 했던 성급한 과실들은 정말 나만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였던가」란 글에서 「나는 문단생활을 해오면서 많은 평론을 했다.그리고 논쟁할 때마다 옷이 찢어지고 얼굴에 흙이 묻고 코피가 흐르던 어린날의 그 주먹다짐을 생각하곤 했다.그러나 그 아픈 상처자국을 통해서 나는 그 논쟁이 실은 하나의 대화이며 문학에 대한 애정이라는 의미를 확인했다」고 부연하고 있다. ○“언어 연금술사” 찬사 그후 그는 어린시절의 추억을오늘의 문화에 비쳐본 에세이와 한국문화·문명에 눈을 돌려 「흙속에 저바람속에」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같은 주옥의 시리즈를 연달아 발표했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준 문명비평가」로서 재빠르게 부상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독일에서 돌아온 전혜린은 센세이셔널한 언어의 풍운을 몰고온 그를 보고 「놀라운 기지,번득이는 혀,해박하고 비상한 두뇌와 창의력」은 마치 아르튀르 랭보의 「언어의 연금술사」에 못지 않다고 찬탄해마지 않아 그는 다시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반짝거리면서 쏟아져 들어오는 원고청탁을 피해 신문사 캐비닛속에 숨어야 하는 행복을 누렸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흙속에…」는 1년만에 10만부,지금까지 60만부이상.한림출판사가 펴낸 영어판은 미컬럼비아대 동양학교재로 채택되는가 하면 대만 원성문화도서 공응사가 번역한 「사토사풍」표지에 쓴 영문이름자인 Lee o young으로 인해 한국에 온 중국문인들이 「이오양」을 찾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이제로부터 거칠 것도 걸릴 것도없이 이어령문학시대가 막을 올리게 되자 그는 소설 「장군의 수염」 「환각의 다리」 「무익조」,희곡 「기적을 파는 백화점」 「세번은 짧게 세번은 길게」등 소설·희곡·시·수필에까지 문학의 모든 장르를 석권해 나갔다. 그를 새삼스럽게 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노릇이다.신문에 연재되는 글 또는 강의·강연에서 보면 그는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일초일목도 놓치지 않고 그속에 깃든 심오한 뜻과 사색의 깊이를 20 00년대를 향한 민족성 구성에 치밀하게 연결시켜 나간다.그의 천부적 관찰력은 하잘것없는 단서 하나에도 외과의사의 날카로운 메스처럼 가해져 어느부분에서든지 문화의식의 실체와 만나게 되는 기쁨을 활짝 열어준다. 그의 강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사불란하게 정리되어 그 말속에는 그때마다 현목과 일총의 영롱함이 실려 있다. 그는 어떤 강연도 미리 준비하는 법이 없다.준비자체가 불편한 걸림돌이다.다만 청중의 눈빛 하나만으로 모두에서부터 결론을 예고해버린다. 이른바 「이어령문체」로 지칭되는 그의 글은 「말이 혹은 문체가 물이라면 또는 불이라면 또는 바람이라면 또는 화살」이라면 글속에서 「물은 위안과 씻김의 언어,불은 개혁과 새로운 건설의 언어,바람은 몽상과 생성의 언어」이고 「화살은 허무의 허공을 날아가서 마침내 사물의 핵심을 쏘아 떨구는 관통력 높은 사냥꾼의 언어」이며 「시정과 미사에 감싸인 지성의 광휘」로 그 명중률이 정확하다고 평받고 있다. ○「레인맨」 보고도 눈물 그의 창의력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으로 손꼽힌다.88서울올림픽때의 「벽을 넘어서」와 텅빈 그라운드에 은빛 굴렁쇠장면은 여백과 침묵속에서 팽팽하게 긴장감 감도는 매화 한송이를 그리는 동양화 이미지를 살려 신아시아 미학추구의 극치로 찬사된 바 있다. 「작은 것은 모두 아름답다」는 일본인과 일본문화를 비평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충격이후 그는 아사히,요미우리신문과 NHK방송이 주최하는 강연에 자주 초청되어 회장은 언제나 지성의 관객들로 넘치고 있다. 「독자를 시험하는 경구」 「서구에 치우친 일본으로 하여금 문화에 대한 반성」을 하게하는 그의 강연은 재치와 기발한 장단점 지적,상상치도 못한 한국 습속과의 비교론으로 언제나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는 아산의 유교적인 지주집안에서 5남2녀중 막내로 태어나 보타이에 양복,구두와 바스켓같은 가방을 들고 자주 서울나들이를 하는 도련님으로 성장하면서 막내답게 장난이 심했고 얼굴엔 노상 상처투성이,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다 두자리이상의 보태기 빼기등 숫자놀음은 딱 질색,그러면서도 컴퓨터광이라는 것은 아이로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끝없는 원고청탁으로 하루 3∼4시간 컴퓨터앞에 앉아 실은 물흐르듯 글을 쓰는 것 같지만 그처럼 어렵게,고통스럽게 글을 쓰는 사람도 드물 정도다. 집필의 산실인 보고와도 같은 서재는 수천수만권의 서적,그가 좋아하는 CD·LD,필요한 것은 다 갖춰져 있으면서도 뜸을 들이고 갑자기 쓰고 까다롭게 다듬는다. 냉기와 온기,감성과 지성을 동시에 갖춰 남보기엔 지나치게 도시적이고 세련되어 숨막힐 듯한 완벽주의로 보이지만 그는 영화 「레인맨」을 보고 눈물짓고 수많은 넥타이중에서도 강의가 잘되던 넥타이를 다시 골라낼만큼 천진한 면이 천성이다. 흘겨보는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그는 그의 책 제목인 「그래도 바람개비는 돈다」처럼 바람불지 않아도 언제나 앞을 향해서만 똑바로 달려왔다.그리고 그는 더이상 아르튀르 랭보의 언어의 연금술사이기를 원치 않는다.자신의 푸른 생명을 증명하는 언어의 슬기,그 끝이 보이지 않는 새로운 언어탐색을 위해 그는 단지 쉬지 않고 여전히 똑바로 달려나갈 뿐이다. □연보 ▲1934년1월(음력19 33년11월15일) 충남온양 출생 ▲1956년 서울대문리대 국문과 졸업 ▲1960년 서울대 대학원 졸업 ▲1958∼60년 경기고교사 ▲1960∼66년 서울대강사 ▲1966∼67년 성균관대강사 ▲1960∼72년 서울신문·한국일보·경향신문·중앙일보·조선일보 논설위원 ▲1964년 경향신문 구미지역특파원 ▲1970∼71년 미국무성초청 도미 ▲1972∼73년 경향신문 파리특파원 ▲1967∼89년 이화여대교수 ▲1972∼86년 월간「문학사상」주간 ▲1986∼89년 이대 기호학연구소장 ▲1987년 단국대 대학원(문학박사학위) 일외무성초청 동경대 비교문학과교수(81∼82년) ▲1989년 일본대 국제문화연구원교수,환기재단초청 뉴욕체류 1982∼현재 일본생산성본부,일본문화디자인협회,NHK,일본대판JC,신일본제철,독매신문,아사히신문 초청 강연 수차 ▲19 90∼91년 초대 문화부장관 ▲1956년 「비유법논고」「카타르시스 문학론」으로 월간 「문학예술」지등단.「현대문학의 위기와 출구」「문학적 혁명기를 위하여­우상의 파괴」(한국일보)발표이래 「흙속에 저바람속에」(62년 경향신문연재) 「나르시스의 학살­이상의 시와 난해성」 「모래성을 밟지 마시오­문단 선배들에게 말한다」「조롱을 여시오­시인 서정주선생에게」 「영원한 모순­김동리씨에게 묻는다」 「자유문학상을 향하여」 「잠자는 거인­뉴 제너레이션의 위치」등 화제의 비평 1백50여편. 「저항의 문학」(59년) 「지성의 오솔길」(60년) 「고독한 군중」(61년) 「오늘을 사는 세대」(63년) 「흙속에 저 바람속에」(63년) 「이어령에세이 옴니버스」(66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75년) 「이어령 신작집(12권)」(78년) 「이어령전집(20권)」(85년) 「축소 지향의 일본인」(82년 일본 학생사) 「축소 지향의 일본인」(한국어판·영어판·불어판)(82년) 「배구□ 일본□ 독□」(PHP 일본)(83년) 「하이구(배구)문학의 연구」(한국어판 홍성사)(84년)문장대백과사전 강연집「그래도 바람개비는 돈다」(92년)소설집「둥지를 나는 새」 상하권(93년) 79년 대한민국예술상 수상
  • “미술이 있는 바캉스” 눈길/피서지 무주·경주·제주서 전시회

    ◎무주/국내외 도예가 참여 현장작업/경주/거장 칼더 대표조각 73점 선봬/제주/중견작가 10명 50여작품 출품 바캉스의 계절.신바람나는 이 계절에 휴가도 즐기고 미술행사에도 참여할수있는 「미술이 있는 바캉스」가 꾸며져 눈길을 끈다.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지않아도 몸과 마음을 쉬는 곳에서 그 미적 체험과 향훈을 접할수 있다면 휴가의 즐거움은 배가될듯. 무주와 경주,제주도.대표적인 여름휴양지 세곳에서 피서객들을 위한 수준있는 미술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져 그같은 즐거움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행사내용은 도예잔치,조각퍼레이드,그림향연등. 오는 27일부터 8월3일까지 무주리조트에서 열리는 무주국제도예캠프는 국내외 유명도예작가와 일반인이 어우러져 흙을 다듬고 구워내는 도예제작과정으로 짜여질 예정이다.강석영 신상호등 국내작가 4명과 데이빗 하튼,사토루 호시노등 외국작가 9명이 참여한 가운데 현장작업이 이뤄진다.그리고 8월2일부터 30일까지 무주리조트 전시관에서 도예캠프에서 만들어진 프로와 아마추어 도예인들의 다양한 도자기들을 전시,이곳을 찾는 휴양객들을 맞이할 계획.도예캠프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들은 주최측인 한봉림도예연구소(0652­251­7687)와 (주)쌍방울개발 판촉부(515­6106)로 문의하면 된다. 경주 보문단지내 힐튼호텔 맞은편에 있는 선재미술관에서는 평소 접하기 힘든 현대조각의 거장 알렉산더 칼더의 대규모 조각전이 열리고 있다.9월19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미국 뉴욕의 휘트니미술관이 소장하고있는 칼더의 대표작 73점이 출품돼있다.움직이는 조각을 비롯,유화 판화 드로잉 타피스트리 귀금속등으로 구성하여 시각예술의 특수한 멋을 한껏 접할수 있는 환상적인 공간을 연출하고있다. 이 전시의 주인공 알렉산더 칼더(1898∼1976년)는 현대조각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미국의 조각가.모빌이라는 움직이는 조각의 새 장르를 탄생시켰고 스테빌이라는 대규모 구조물을 통해 현대조각과 건축을 조화시킨 거장이다.선재미술관은 특히 절정의 휴가시즌인 오는 31일과 8월7일에는 전시장을 찾은 어린이들을 위해 전시관람과 철사를 이용한 조각제작,비디오관람등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있다. 제주도의 제주신라호텔이 개최하는 행사는 「제주신라미술전」(14일∼8월15일).가나화랑이 후원하는 이 전시에는 미술 각 장르의 국내중견작가 10명의 작품50여점이 선보이게 된다. 한국화의 김병종 사석원 이왈종,서양화의 구자승 노태웅 박영남 이상국 주태석,조각의 유형택 한진섭등 가나화랑의 전속작가 중심으로 탄탄한 입지의 인물들이 출품한다. 미술작품 6백여점을 소장하고있는 신라호텔측은 평소에도 지중해식 리조트호텔에 어울리는 작품들을 호텔 곳곳에 전시하여 고객의 정취를 달래주고 있는데 이번 미술전에서는 그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가꿔 찾는 이들의 미적 감흥을 이끌어낼 계획이다.
  • 국토 요새화·무리한 개간에 산림황폐(오늘의 북한)

    ◎공해 방지시설 미비… 대도시 주변강 수질오염도/땔감으로 나무 벌목­강마다 토사 쌓여 수해우려/금강산 등 기암엔 구호·김 부자 찬양글귀로 “얼룩” 북한도 최근 뒤늦게 환경문제에 눈을 돌리고 있다. 북한은 최근 환경전담기구인 「국가환경보호위원회」를 신설하고 세계 환경의 날(6월5일)에 즈음해 평양에서 북한주재 유엔개발계획대표부 직원들을 참석시킨 가운데 기념행사를 가지는등 그동안 거의 신경을 쓰지않아 왔던 환경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환경문제가 후기 산업사회의 주된 특징이긴 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선진개방 사회의 공해문제와는 상이한 양상을 띠고 있다.다시 말해 남한을 포함한 서방 산업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기및 수질오염 문제보다 인위적 자연훼손으로 인한 자연파괴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다. 사실 고도의 대중소비단계에 접어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골머리을 앓고 있는 생활쓰레기 문제는 아직 북한에선 그다지 문제가 되지않고 있다.소비재공업이 낙후되어 생필품이 질·량 양면에서 극히 빈약한데다 쓰레기 재활용도도 비교적 높기때문이다.실제로 북한에선 외화부족으로 철·고무·비닐·폐지등을 인민반별로 철저히 수거하기때문에 연탄재와 음식찌꺼기정도 이외에는 쓰레기통에 들어갈 물건이 별로 없는 형편이다. 이처럼 생활쓰레기가 적기때문에 북한에는 쓰레기통이 도시의 경우 3백 가구당 1개씩,농촌은 반경 1㎞정도 마다 한개씩 있다고 한다.매립장은 따로 없고 도시 주변의 저지대를 선정해 1∼2ⓜ 두께로 메운 다음 흙을 덮어 공장부지등으로 사용된다고 귀순자들은 전한다. 물론 북한에서도 공장시설의 낙후와 공해방지시설의 미비로 평양·원산·청진·남포등 대도시 주변의 강이 수질오염으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등 공해문제가 날로 악화되고 있다는 귀순자들의 증언도 있다.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식량난 타개를 위한 무리한 경지확장등 북한당국의 근시안적 정책에 따른 산림의 황폐화를 비롯한 자연파괴다. 남북고위급회담이나 IPU대회에 참석한 우리측 대표단 일행이 목격한 바에 따르면 북한의 산에는 우리나라의 50년대처럼 나무가 거의 없다고한다.개성에서 평양간이나 평양에서 원산까지 도로 주변의 야산이나 마을 어귀에 이르기까지 나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웬만한 야산들은 식량증산을 위해 다락밭으로 만들어지거나 나무들이 땔감으로 베어져 황폐해지고,강에는 장마철에 토사가 쌓여 큰 문제를 낳고 있다는 소식이다. 북한의 환경파괴를 몰고온 주요정책으로는 ▲60년대 이후 추진해온 「4대군사노선」에 의한 전국토의 요새화 ▲70년대 중반부터 실시한 「자연개조 5대방침」에 따른 다락밭 건설 ▲「80년대 10대전망목표」로 추진된 새 땅찾기 사업등을 꼽을 수 있다. 백두산·금강산 등 명승지마다 새겨진 김일성부자의 친필글귀나 각종 구호들도 북한의 자연을 좀먹는 흉물들이다.김부자의 우상화와 관련된 조각사업을 북한에서는 「어휘새김전투」로 부르며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전국의 유명한 산마다 바윗돌에 김부자의 대형 글씨를 음각으로 크게 새겨 붉은 페인트를 칠한다.북한은 이 「전투」를 통해 금강산에만도 58개소에 4천3백여자의 글자를 새겼으며,지금까지 북한전역에 4만여자의 글자를 새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아라비아도 옛날엔 비옥”/미 위성

    ◎최근 6천년전의 거대한 수로 발견/미 디스커버리지 보도 현재는 불모의 아라비아 반도에 지금부터 6천년전에는 거대한 강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 있었던 것으로 고고학자들이 주장해 왔는데 최근 정밀위성 사진의 판독결과 수로를 발견하게 됐다. 과학전문잡지 디스커버리지는 미 보스턴의 리모트 센싱연구소 파로욱 엘 바즈소장등 연구팀이 랜드샛 위성이 전송해온 사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하즈 산맥에서 발원한 강이 5백30마일을 흘러 현재 쿠웨이트인 페르시아만 쪽으로 흘러가는 수로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연구팀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나후드 사막 중심부에 길이 1백10마일의 좁은 수로가 쿠웨이트 쪽으로 흐르면서는 너비 5마일,깊이 50피트의 거대한 강이 되어 아라비아반도 북쪽의 흙과 모래를 실어날라 쿠웨이트 삼각주를 형성했다며 이 사라진 강을 쿠웨이트강이라고 명명했다. 아라비아 반도는 이스라엘 남쪽에서 예멘까지는 높이 2천5백m에서 3천7백m의 높은 산맥으로 홍해와 벽을 이루고 있으나 동쪽으로는 페르시아만까지 넓이 약 50만㎦의 대사막이 전개되어 생물의 생존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반도 전체를 관통하는 큰 강이나 호수는 없고 비가 올때만 일시적으로 물이 흐르는 와디(마른 하천)가 남아있다. 보스턴대학의 엘 바즈소장은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인 지금부터 1만1천년에서 6천년전 사이에는 아라비아 반도의 기후가 지금처럼 건조하지않아 사람이 살 수 있었으며 쿠웨이트강변에서 사냥을 하고 강에서 고기도 잡아먹으며 살았다고 주장하고있다. 보스턴대학 연구팀은 내년에는 사막의 모래를 투시하는 위성의 레이더를 통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수로도를 작성할 예정이다. 수로도가 완성되면 고고학적인 발굴과 함께 잃어버린 수맥을 찾게되어 사막에 사는 사람들에게 식수를 제공하게 될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이만희작 「피고지고 피고지고」/배금주의 세태 통렬히 풍자

    ◎칠순 앞둔 세 노인의 보물탐사 묘사 연극계 화제작인 「불 좀 꺼주세요」와 「돼지와 오토바이」를 쓴 극작가 이만희씨의 또 다른 작품 「피고지고 피고지고」가 오는 20일까지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국립극단은 지난 90년부터 창작극 개발을 위해 중견극작가들에게 작품을 의뢰,공연해오고 있는데 「피고지고 피고지고」는 그 다섯번째 무대이다. 이 작품은 나이 칠십을 바라보는 왕오(이문수반),천축(김재건반),국전(오영수반)등 일확천금을 노리는 세노인의 이야기.순탄치않은 인생을 살아온 노인네들의 순진무구한 얘기로 인물성격과 극적 상황에 따른 현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대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세 노인은 왕년에 사기,절도,밀수등 한가락씩했던 전과범들.어느날 혜초여사(손봉숙반)로부터 보물이야기를 듣고 신라시대의 값진 유물이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산골짜기 옛 절터를 몰래 파기로 마음을 정한다.절터가 주요군사시설이어서 삼엄한 경비에 도굴이 쉽지 않자 궁리끝에 산아래에 화원을 만들어 오갈데 없는 노인들이 꽃을 재배하며 연명하는 것처럼 위장한다.그리고 거기서 나온 흙은 서울에서 화원을 경영하는 혜초여사에게 보내 3년동안 감쪽같이 도굴작업을 해왔다.보물이 없는 건 아닐까 의심도 하고 백만장자 꿈도 꾸며 세상과 격리된 생활을 해오던 이들 세노인은 그러나 세상일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에 젖어든다.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불 좀 꺼주세요」등에서 작가 이만희씨와 콤비를 이뤘던 강영걸씨가 연출을 맡았다.이번 공연은 국립극장의 상설공연장화라는 취지에 맞춰 국립극단 공연으로는 처음으로 20일까지 장기공연을 한다.공연시간 하오 7시30분(토·일 하오4시).문의 274­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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