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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의 대신 군복 입자”/노병들 캠페인… 300여명 동참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군복을 입고 싶습니다.” 군 예복으로 수의(壽衣)를 대신하자는 ‘군 예복 수의화운동’에 동참하는 노병(老兵)들이 늘어나고 있다. 8일 대한민국 예비역 영관장교연합회(회장 권오강·68·예비역 대령)에 따르면 지난 8월 이 운동을 시작한 이후 예비역 병장부터 장성급에 이르는 전역자 300여명이 동참 의사를 밝혀왔다.최근에는 공군 보라매회와 6·25 참전전우회를 비롯한 예비역 군인단체들도 군 예복을 주문하는 등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연합회측은 군복 전문업체에 의뢰해 동참의사를 밝힌 사람들의 수의용 군 예복을 제작해주고 있다.옷감은 일반 합성섬유가 아닌 면이나 명주이며 옷에는 전역시절 명찰과 계급장,약장 등이 그대로 부착된다. 가격은 40만원선으로 수백만원대의 안동포나 삼베 등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또 예복이 완성되면 이 옷을 입은 노병들의 모습을 찍어 영정사진도 만들어준다. 연합회측이 이 운동을 시작한 취지는 근검과 청렴을 생활신조로 살아온 제대 군인들이 한줌 흙으로 돌아갈 때 값비싼 수의를사용해 후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말자는 것.초기에는 75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주로 참여했으나 최근에는 60대 제대 군인들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장교뿐 아니라 사병으로 전역한 이들의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는 게 연합회측의 설명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매순간 산소같은 방송역할에 최선”EBS 이사장 오른 방송인 김세원

    이 순간 내가/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이 순간 내가 제 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9명 이사중 남자들 제치고 이사장에 EBS(교육방송) 이사장 김세원(58)씨를 인터뷰하면서 내내 무엇이 그를 이 자리에까지 이르게 했나 궁금했는데 말미에야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별 생각없이 어떤 시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는데,피천득의 ‘이 순간’을 암송했다. 김 이사장은 80년 초 MBC의 ‘FM 가정음악실’을 시작하면서 시를 한 편씩 읽었다고 했다.그 후 20여년간 방송에서 낭송한 시가 줄잡아 7300편.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시가 ‘이 순간’이니 그의 마음이 오롯이 투영됐을 것이다.‘이 순간’에는 이 순간 살아 있음을 감사하고,삶을 즐기고,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지난달 25일 9명의 EBS 이사 중 호선(互選)을 통해 남성을 물리치고 이사장에 뽑힌 것도 그런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김 이사장은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2학년 때인 1964년동양방송 성우 1기로 입사한 뒤 40년 동안 라디오 방송을 했다.70년대 ‘밤의 플랫폼’(동아방송) ‘안녕하세요 김세원이에요’(MBC)‘김세원의 영화음악실’(KBS),80년대 ‘FM 가정음악실’(MBC)을 거쳐 90년대부터 지난 5월까지 ‘노래의 날개 위에’(KBS)를 진행했다.그처럼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목소리 덕분.심야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저음이면서 정확하고,지적이면서 편안하고 감미롭다.그는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누군가가 ‘안개낀 날의 수은등 같은 목소리’라고 표현했는데 한동안 그대로 인용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웃었다. 그러나 오늘이 있기까지는 목소리뿐 아니라 ‘이 순간’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항상 방송의 영향력을 생각했지요.당연한 얘기이지만,방송인으로서 청취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정직하고자 했습니다.” 사회적 성취를 이룬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을 것이다. “저 때만 해도 여성들은 결혼만 하면 회사를 그만뒀습니다.이제 여성들도 못할 일이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후배들에게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부탁하고 싶어요.기회가 왔는데 준비가 없어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도 TV다큐 내레이션 맡아 김 이사장이 주목을 받는 것은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그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고,임화의 시 ‘인민항쟁가’에 곡을 붙인 월북 음악가 김순남(1917∼1983)씨다.‘해방공간의 가장 탁월한 천재 음악가’인 그는 초등학교 교사 아내와 해방둥이인 두살배기 딸 김 이사장을 남겨두고 1948년 월북했다.그가 작곡한 노래는 88년 올림픽 때에야 해금됐다.그 후 그의 ‘자장가’는 신영옥·김신자가,‘산유화’는 조수미 등이 불러 널리 알려졌다. 그는 아버지의 부재를 언제 절실하게 느꼈을까.“6·25가 나서 엄마 손을 잡고 피란을 가는데,다른 애들은 아버지가 무동을 태워 가는 거예요.피란 시절,학교에 다닐 때도 선생님이 호구 조사를 하며 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납치 또는 납북되셨는지 물었는데,‘지게꾼’이라거나 ’미국으로 유학가셨다.’고 했습니다.” 김 이사장은 연좌제에 대한 공포로 숨을 죽이며 살다가 88년 납·월북 예술인 작품 해금조치 이후 아버지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그 때 아버지 친구에게 들었던 말들이 지금도 뇌리에 각인돼 있다.“순남이는 예술가야.” “순남이는 불의를 보고는 못 참아.” 90년대 초에는 베이징을 여러차례 드나들었다.아버지의 교향악곡 악보를 찾기 위해서였다.김순남은 53년 모스크바 유학 중 소환당한 뒤 ‘사상문예투쟁’에 휘말려 숙청됐지만 김일성이 “재주가 아깝다.”며 처형은 하지 않아 주물공장 노동자 등으로 전전하며 작품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북에서 결혼도 했지만 여자 쪽에서 아이를 낳지 못해 사내 아이를 입양해 키운 것으로 전해들었다.김 이사장은 그 사내가 미공개 악보를 갖고 있을 것으로 보고 여러 경로를 통해 사본이나마 입수하려 했으나 허사였다. ●“40년 방송경험 살려 봉사할 것” 월북 예술가의 딸이 보는 북한은 어떨까.‘경계인’ 송두율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아버지는 자유주의자요,이상주의자인데 남에서는 좌익 음악가로 배척당하고 북에서는 부르주아 음악가로 숙청당했습니다.아버지는 정말 절망하셨을 거예요.90년대 초 모스크바에 갔을 때 처음으로 붉은 깃발을 봤는데 아버지를 기만한 깃발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났습니다.” 김 이사장은 햇볕정책,북한에 퍼준다는 주장 등에 대해서도 ‘노 아이디어’라고 했다.북한이 아버지를 홀대했고,아버지의 좌절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요즘도 TV 다큐 프로의 내레이션을 맡고 있는 현역인 그는 그간의 경험을 살려 봉사하고 싶다고 했다. “방송이 너무 오락성과 상업성에 치우쳐 있어요.방송의 역할을 새겨야 합니다.EBS가 대안 방송이 될 수 있습니다.산소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EBS의 1년 예산이 1000억원 정도인데 300억원만 수신료와 방송발전기금 등 공적 자금이고 700억원은 자체 광고수입입니다.전체 운영예산을 늘려야 할 뿐 아니라 공자금의 비율을 대폭 높여 공영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남편 강현두(66) 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월남한 집안.친어머니(82)를 모시고 산다.쌍둥이 남매(34) 중 아들은 영국에서 미디어 법을 공부하고 있고,일간지 기자인 딸은 해외연수 중인 언론인 가족이다. 황진선기자 jshwang@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10)박경리-물질문명 시대, 생명의 가치 회복

    진영은 연기가 바람에 날려 없어지는 것을 언제까지나 쳐다보고 있었다.“내게는 다만 쓰라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무참히 죽어버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진영의 깎은 듯 고요한 얼굴 위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겨울 하늘은 매몰스럽게도 맑다.잡나무 가지에 얹힌 눈이 바람을 타고 진영의 외투 깃에 날아내리고 있었다.“그렇지,내게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다.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진영은 중얼거리며 잡나무를 휘여잡고 눈 쌓인 언덕을 내려오는 것이었다.-소설 ‘불신시대’중에서 혹시라도 선생을 그냥 찾아뵙는 것이 결례가 될 것 같아 근방에서 슈퍼마켓을 찾는데 퍽이나 외진 곳이라 그런지 갖추어 놓은 게 없다.선생은 당뇨가 있다고 했던가.단 것을 드시지 못한다니 무과당 음료수 박스를 사들고 결전의 준비라도 마친 양 용감하게 토지 문화관으로 들어섰다. 선생의 집 문턱이 높은 것은 어제 오늘 소문이 아닌데 미리 약속을 얻은 탓인지 선생은 무척 친절하게 일행을 받아주신다.감읍할 지경이다. ●생태계 문제가 오늘의 중심화두 “건강이 안 좋으시다고 들었는데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소설을 쓰시다 무리하신 것은 아닌지요.” “내가 ‘현대문학’ 잡지를 참 곤란하게 하고 있어요.‘나비야,청산 가자’ 연재를 시작해서 석 달,3회까지 연재했거든요.한 회 한 회 원고 분량이 많아서 3회까지 하니까 무척 힘들었어요.재작년에 넘어져서 다친 허리가,연재 시작하면서 더 안 좋았어요.절실하게 써보려 했는데.이걸 쓰면서 혈압이 200까지 올라갔어요.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요.결국 쉬고 있어요.독자들에게 제일 죄송해요.” “…….” 나는 선생의 무릎 위에 앉은 고양이를 바라보면서 선생의 다음 말씀을 기다린다. “몸이 그러니까 의욕이 없어지고,그러면서 내 존재가 뭔가,굉장히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새삼스럽게 문학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도 들고.” 선생을 만나는 자리에서 우연히 새로운 문학지 ‘숨소리’를 편집하고 계신 연세대학교의 최유찬 교수를 만나뵙게 되었다.두 분에게 번갈아 시선을 옮기는 나로 인해 설명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셨는지선생은 ‘숨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신다. “문학이라는 것도 인류 전체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생태계 없는 문학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지요.최유찬 선생에게 부탁 드려서 ‘숨소리’라는 책을 내는 까닭도 그런 데 있어요.지금 이 토지 문화관도 다른 분들은 다 문학관으로 오해하고 있어요.내가 문학을 하니까 문학관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나는 처음부터 그건 반대고 문화관으로 하자고 했어요. 생태계,환경이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요.생태계 문제가 오늘의 중심이 되어야 해요.거기에서 문학도 있고 모든 게 있을 수 있는 거죠.작년 초엔가,‘자연과 시인’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했을 때 제가 이런 말을 했어요.시인 선생들이 환경 문제에 대해서 선도가를 불러 달라,그런 의식을 가져 주셨으면 한다고 내가 당부를 드렸어요.예술가들이 그렇게 해야 되지 않을까요? 무슨 정치적인 문제 같은 것은 사람들 임의에 따라서 참여도 하고 안 할 수도 있지만 환경문제라는 건 예외가 있을 수가 없잖아요. 모든 사람들과 관련이 되니까.하다못해벌레 한 마리나 풀 한 포기도 다 관련이 있잖아요.지구의 생명을 받은 것은 다 의무가 있는 거지요.” “예전에 손수 농사를 지으시는 걸 보았습니다.여기로 옮기고 나서도 계속하고 계신지요.” “물론이에요.여기는 농사가 더 많아요.밑에 밭뙈기가 상당히 있고 산 안에도 밭이 있어요.여기로 와서는 농사가 더 절실한 게,작가들 와서 묵는 창작실에 부식을 대야 하니까요.전부 다 댈 수는 없지만 대체로 야채는 내가 농사지어 대고 있어요.금년에는 부토를 했는데 흙이 잘 안 맞아서 농사가 좀 시원찮게 됐어요.여기 와서도 농약과 화학 비료는 절대 안 쓰고 작으면 작은 대로 땅 힘을 기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기왕이면 작가들도 공기 좋고 풍경 좋은 데서 먹거리도 무공해로 먹는 게 좋지 않겠어요. 감자와 옥수수를 많이 하는데 올해는 옥수수와 배추를 실패하고.그래서 토마토,고추,상추 이런 것 좀 더 대고 했어요.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대줄 수 있을 것 같아요.또 자연적으로 나는 것들이 있거든요.두릅이라든지.산에 도라지도 많이 심어놨어요.더덕,취나물,이름도 모르는 다른 나물들도 많아요.봄에는 냉이나 두릅 등 계속 농사지은 걸 먹죠.” 선생의 말씀에는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리듬과 흥취가 있었다. 이 글을 쓰려니 며칠 전 멕시코의 칸쿤에서 농민운동가 이경해씨가 심장에 칼을 꽂고 자결하던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우리들은 모두 땅의 자식들인데 내가 무관심하던 사이에 농민들의 삶은 나날이 수척해지고 있었던 것이다.인터뷰를 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지만 선생의 말씀과 정신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배고플 때 다이아몬드나 화폐를 먹을 순 없어 “선생님께서 농사를 지으시는 것은 자연과 접촉을 유지하기 위한 작가적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한데요.” “그게 우리 삶의 본질 아니겠어요? 땅에서 가꿔서 우리가 존재한다는.농부를 찬양하는 말이 될지도 모르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보면 생산성이 아니고 전부 소비성이거든요.땅을 가꾼다는 것은 규모가 손바닥만 하더라도 거기에는 생산이 있어요.그건 뭐냐면,생산하지 않으면 살수 없는 땅의 본질적인 속성 때문이에요.지난번에 내가 여기 중·고등학교 캠프에 갔었어요.사실은 내가 어디 나가서 얘기를 잘 못해요.어지러워서.그래도 애들이니까 한마디 필요하겠다 싶어서 나가서 이야기를 했어요.첫마디는 예절에 대한 것이었어요.예절이라는 것은 휴머니즘이다,상대방을 배려하는 거다,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정제된 데서 나오는 아름다움이다.그리고 또 하나가 이것이에요.옛날 농부들이 말하기로 내 자식 목에 젖 넘어가는 소리하고 내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가 제일 좋다고 했는데,그것은 땅도 내 자식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땅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땅을 사랑하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기본이고 본질적인 거예요.지금 지구 온난화 현상도 있고 지구가 사막화되는 현상도 나타나는데,앞으로 곡식이 참 귀하게 되면 배고플 때 다이아몬드나 화폐를 먹고 배를 불리겠어요? 한줌의 쌀이 있어야만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거죠.그런데도 없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옛날 말로 사람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한다고,많은 분들이 그저 설마 설마하면서 남은 죽어도 나는 살아남겠지,내 당대에는 괜찮을 거야,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계신데,하지만 우리 자손들이 있잖아요. 프랑스에서는 이례적인 폭염으로 사람들이 죽고 스위스에서는 만년설이 몇년도에 가면 다 녹는다고 그래요.이거 다 녹으면 노아의 홍수 일어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도 그런 소식을 들으면서 남의 일 같이 생각들 하신단 말이에요.들으면 그때뿐이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단 말이에요.일반 대중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도자들부터 인식을 해야 되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끌고 나가야 할 지도자들이 일반 대중들보다 더 못해요.대중들은 절실히 인식하는데 지도자들은 표밭만 생각하니까.사람이 먹고 사는,곡식 나는 밭 생각은 안 하고 표밭만 생각하거든요.그렇게 생존하고 관계 없는 일이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존해야 할 일은 뒷전에 밀리고 어떤 때는 그런 일이 아무 것도 아닌 무관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거든요.” 나는 연방 머리를 끄덕일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가 시장을 가봅시다.둘러보면 직접 생존하는 데 필요한 물건보다도 없어도 되는 게 더 많아요.없어도 되는 게 더 많다는 것은 말도 못할 낭비예요.낭비하면 쓰레기가 나와요.낭비와 쓰레기 이중적인 문제지요.쓰레기는 뭡니까.숨통을 막는 거예요.새만금이나 시화호,이런 문제는 그렇게 야만적일 수 없는 일이에요.나 혼자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해요.몇 사람의 이득,화폐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을 학살하는 겁니까.그렇게 많은 생명을 학살하고 그것을 영구히 없애버리면 다시 재생을 할 수도 없는 거잖아요. 대한민국이 얼마나 야만국인가를 입증하는 것이죠.지금 있는 농지도 농사 안 짓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서 새만금,그걸 죽여서 농지를 만든다는 이런 모순이 어디 있어요.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내가 살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또 사람만 살자는 이야기도 아니에요.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이 다 살아야 해요.”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면 세상 일을 소상히 알고 계신데요.어떻게 이렇게 먼 곳 원주에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다 듣고 보시는지요?” “서울이 시골보다 더 좁아요.직장이라든지 아파트라든지 하는 공간은 넓어도 좁아요.나는 공간이 없으니까 산 보고 하늘 보고,그러니 알죠.” “옛날에는 물질이 없어서 고통을 겪었다면 요즘에는 오히려 물질이 더 많아져서 고통인 것 같습니다.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생명이란 가두지 않고 풀어주는 것 “그렇죠.모든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의 순환이거든요.순환이라는 것은,먹이사슬도 하나의 순환이지만 우리 한 개인으로 보아도 일을 하고 또 그렇게 해서 먹고 하면 이게 순환이거든요.그럼 일은 뭐냐? 이렇게 물을 수 있는데,증권 주식 한다고 앉아서 하루 종일 컴퓨터 보고 있는 것,그것도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그것은 엄격히 말해서 죽어 있는 일이지 살아있는 일이 아니에요.살아 있는 생명을 다스리는 일,그것이 일이에요.예술가도 생명이 주예요,사실은.문장 하나,상황 하나,인물 성격 하나,이게 살아 있어야 하거든요.정치라는 것도 살아있는 게 보장되는 방향으로 나가야지 죽음의 방향으로 가면 안 되죠.이 시대엔 전쟁과 핵무기가 있어요.이건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에요.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모든 게 죽음으로 몰려가고 있어요.모두 다 잘 살려고 한다는데 과연 그게 잘 사는 건지 모르겠어요.농약 주고 화학비료 주고 해서 질적으로 망가진 음식을 먹는 게 잘 사는 건지……모든 걸 가둬 놓는 것…… 생명이라는 건 가두는 게 아니라 풀어주는 거예요.이런 제도 속에서 사람들이 생존한다는 게 정상일 수가 없죠. 농촌에도 얼마나 이상한 병들이 많은지 몰라요.농약 때문에 그러는지.지금 이런 상황의 먹거리가 절대 좋은 게 아니거든요.그런데도 잘 산다는 게 이게 전부 양(量)으로 말하는 거죠.사람이 원래 추구해야 하는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거든요.행복의 축이라는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에요.그런데 지금 질은 점점 나빠지고 마치 옛날의 그 질을 옆으로 펴다 보니까 얇아져서 그게 양이 된 거예요.어떤 면에서 보면 더 생겨나는 건 없어요.있는 것에서 얇아지면양이 늘어나는 거고 양이 좁아지면 질이 좋아지는 걸 보여주는 거고.” 나는 사투리 억양이 강한 선생의 말씀을 교정하는 지금의 내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선생의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은 앞으로 나갔다 뒤로 가고 중복되거나 건너 뛰면서도 살아 있는 생생한 감동이 있었다. “선생님 옛날의 초기 작품을 읽어보았습니다.창작집 ‘불신시대’,장편소설 ‘시장과 전장’…… 그런 작품들을 읽다 보면 선생님 작품의 여주인공이 아주 결백한 성격을 갖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그것은 마치 선생님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데요.”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기는 싫어요.결백하다기보다는 자유롭고 싶은 거죠.얽매이기 싫고.” 이하의 내 물음과 선생의 말씀은 생략이다.안타깝게도.그러나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그렇게 많이 서운해하지 않으셔도 된다.내가 여쭈어 본 것은 더 내밀한 선생의 과거며 인생살이 같은 것이었으니까.선생의 사상에 관한 것이 아니니까.그러나 나는 선생의 사상만큼이나 선생의 인생을사랑하는 것 같다.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다 듣고 기록하고 싶은 것은 나의 감상벽인지? 탐구벽인지?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작각 박경림 ●가혹한 운명 딛고 선 문학사 거봉 박경리는 1920년대가 낳은 가장 대표적인 한국의 작가이자 광복 후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높게 빛나는 설봉(雪峰)이다. 1927년 통영에서 출생,진주고녀를 졸업하고 잠시 후 결혼,황해도 연안에서 교사로 재직하기도 하였으며 1950년에 ‘계산’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다. 박경리를 오늘의 박경리로 만든 하나는 선생의 작중 인물만큼이나 결벽하고 의지적인 선생의 성품이며 다른 하나는 가혹한 운명이다.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남편을 잃고 이후 아들을 잃고 다시 생명의 위기를 넘기면서 여성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문학의 길을 걸어왔다.가혹한 고통은 선생 문학의 산실이다. 창작집 ‘불신시대’(1963)와 장편소설 ‘표류도’(1959),‘김약국의 딸들’(1962)‘시장과 전장’(1964),‘성녀와 마녀’(1967),‘파시’(1967) 등으로 이어지는 선생의 초기 소설은피폐하고 불순한 현실을 배경으로 결벽성 있고 의지가 강한 여성 주인공의 삶을 그려나가면서 운명과 맞서는 삶의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1969년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1995년에 이르기까지 5부작으로 완성을 본 대하소설 ‘토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선생의 대표작이자 한국소설의 한계를 시험하는 의지의 극점이다.세대를 누적하면서 생을 이어가고 새로운 생을 모색하는 ‘토지’의 인물들은 삶의 만화경이자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다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반영한다. 생명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 같은 질문에 대해 인간은 속수무책의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피안의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박경리의 근본적인 사상은 모든 살아 있는 것의 근원인 우주를 향해 열려 있는 구경적 세계관이다.그것은 종교가 아니되 감히 종교와 ‘맞먹는’ 힘을 갖는다. ●시집에 담긴 또렷한 이미지 박경리 선생 댁은 몇 년 전에 찾아 뵈었을 때는 허허벌판 가운데 있었는데 이번에는 토지문화관 바로 옆에 있어 한결 찾기가 쉬웠다.그때 허허벌판 가운데 약간 둔덕진 곳에 덩그러니 서 있는 선생의 자택을 찾아갔을 때 나는 그것이 평생 외로운 삶을 살아온 선생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었다. 보통 사람들은 선생을 소설가로 생각하고 또 인정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시인으로서의 선생의 이미지가 또렷하다.나는 선생의 시의 애독자여서 몇 권 안 되는 선생의 시집을 새책방,헌책방에서 다 사보았고,그 간결한 어휘,담담한 어조,비약의 미(美),삶의 태도를 절절한 심정으로 내 것으로 만들었다.사상가이자 소설가인 박경리가 아니라 인간 박경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생의 시집을 읽어야 하리라. 몇 년 만에 뵙는 선생은 무척 힘들어 하셨지만 연세에 비해 정정하시다.예전보다 따뜻해 보이는 실내가 나로 하여금 안도감을 갖게 한다.나는 선생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의지적이고 결벽성이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타는 한 여인을 사랑하는가 보다.
  • 소설로 살아난 ‘열사 전태일’/김정환 소설 ‘남자, 여자, 그리고 영화’

    2002년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연재할 당시 ‘읽는 영화’라는 평을 받으며 눈길을 끌었던 시인 김정환의 ‘남자,여자,그리고 영화’(웅진북스 펴냄)가 출간됐다. 이 소설은 ‘전태일에 대한 명상’이란 부제가 말하듯 청계천 피복노조를 이끌다 분신한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 전태일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다.작가는 그의 생애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운동권 대학생의 이야기와 교차시키며 입체적으로 그린다. 소설의 한 축은 학생운동으로 수배,잠행중인 서울대 법대 68학번 주인공 ‘화자’와 애인인 음대생 여자의 이야기. 고(故)조영래 변호사를 모델로 한 듯한 ‘화자’의 긴박한 도바리(수배를 피한 잠행)생활을 중심으로 암울했던 70년대의 학생운동권 풍속도를 정밀하게 재현한다.그 속에서 전태일의 삶이 학생운동권에 드리운 그림자 등 그를 통해 잊어서는 안될 역사의 물줄기를 오롯이 복원시킨다. 작품의 다른 축은 전태일의 삶이다.세 동생을 책임져야 했던 개인적 고난을 딛고 열악한 사회현실에 눈떠가는 노동운동가의 내면세계를 점진적으로생생하게 그려낸다. 두 축이 교차하는 작품은 ‘읽는 영화’라는 평에 걸맞게 파격적 묘사가 많이 등장한다.음악을 들려주는 듯한 표현 속에 시나리오 지문 같은 배경을 깔면서 전태일과 ‘화자’ 등 주인공의 움직임을 영화보듯 생동감 있게 전해준다. 지은이는 “전태일의 삶과 글은 남한 노동운동뿐 아니라 민주화운동 전체의 지도력 부재를 웅변하고 죽음으로 역전시켰다.”며 “이 작품은 전태일에게 선구자만이 아니라 현대적 인간의 전형성을 주기 위한 문학적 욕망에서 비롯했다.”고 말한다.작품에 질박한 그림을 보탠 임옥상 화가는 “김정환 소설을 그리는 것이기도 했지만 나는 ‘전태일’을 그렸다”며 “전태일 정신의 부활을 흙에서 발견했다.”는 감동을 들려준다. 이종수기자
  • 빗줄기속 報恩 땀방울/“작년 루사때 전국서 온정의 손길” 강릉 주문진 40명 이웃마을 돕기

    “지난해 많은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니 이번에 피해를 본 분들을 도와드리는 게 당연하죠.” 지난해 태풍 루사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뒤 복구공사를 통해 올해 수해를 피한 마을 주민들이 이웃 동네의 수재민 돕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태풍 ‘매미’가 할퀸 뒤 5일 만에 또다시 비가 내린 18일 오전.강릉시 주문진읍 장덕2리 주민 40여명은 빗줄기 속에서도 왕산면 대기2리 백합농장에 모여 지난 13일 농장 옆 대기천이 범람하면서 비닐하우스를 덮친 토사를 삽으로 연방 걷어내고 있었다. ●작년 루사 피해 딛고 옆 동네 수재민 돕기 나서 트럭과 승합차에 나눠 타고 1시간30분 거리인 농장에 도착한 이들은 빗줄기가 굵어지자 작업을 서둘렀다.무릎까지 차오른 흙더미를 헤쳐 가며 후텁지근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작업을 하는 주민들은 연방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장덕2리는 지난해 태풍 ‘루사’의 피해로 마을 전체가 초토화됐다. 일주일 가까이 길과 전력,상하수도가 끊기고 외부와 고립됐다.전체 104가구 가운데 80가구가침수되고,22가구가 물길에 떠내려가는 등 멀쩡한 집이 없었다.30만평의 농경지도 3분의2 이상 물에 잠기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달랐다.‘루사’ 피해 이후 주민들은 “또 당할 수 없다.”며 스스로 팔을 걷고 나서 취약지역을 보강했다. 마을 하천인 신리천의 폭을 60m로 두배 가까이 넓히고,기존의 물길을 복구해 범람 가능성도 최소화했다.이 때문에 올해는 농경지 2000여평만 유실됐다. ●거센 빗줄기에 힘든 줄 모르고 복구 도와 장덕 2리 주민들은 지난 15일 주민 회의를 통해 일손이 급한 다른 마을을 돕기로 의견을 모았다.삽,곡괭이 등 작업도구와 자체 성금으로 마련한 10㎏짜리 쌀 63부대를 이날 트럭과 승합차 9대에 나눠 실었다. 삽으로 토사를 퍼내던 부녀회장 김경자(53)씨는 “지난해 서울,경기 등 전국 각지의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마을이 루사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면서 “마을 주변뿐 아니라 더 많은 피해를 입은 남부 지역도 돕고 싶다.”고 말했다. 46채의 비닐하우스 가운데 20여채가 매몰·침수돼 3000여만원의 피해를 입은 농장 주인 최명룡(42)씨는 장덕2리 주민들이 퍼낸 흙을 트랙터에 싣고 대기천 주변에 쌓아 올렸다. 최씨는 “장덕2리 주민들이 아니었다면 땅에 묻힌 백합을 건지는 것은 꿈도 못 꿨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땜질식 복구도 문제 이날 오후 비가 이어지면서 대기천의 물줄기도 빨라졌다.오전에 내려진 호우주의보가 호우경보로 확대 발령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장덕2리 청년회 회장 함대호(51)씨는 “물난리에 시달리다 보니 이젠 빗줄기만 봐도 덜컥 겁부터 난다.”면서 “하늘이 어쩌면 이렇게 야속하냐.”고 한숨을 쉬었다.다행히 대기천의 수위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근심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주민들은 이번 피해가 천재라기보다 인재에 가깝다고 입을 모았다.지난해보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았는데도,피해 규모가 예상 밖에 큰 것은 정부의 ‘땜질식 복구공사’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장덕2리 주민 정호륭(60)씨는 “지난해 해당 관청에서 현장에 와 보지도 않고 하천 복구 공사를 하려고 해 시청까지 가서 항의했다.”면서 “지난해 복구 공사를 제대로 했다면 올해 고통이 덜했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릉 이두걸기자 douzirl@
  • [길섶에서] 절망과 희망

    과학문명은 자연을 정복했다고 자만하곤 한다.그러나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이 쌓은 문명의 탑은 얼마나 무력한가.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부산항 부두의 거대한 크레인이 맥없이 무너졌다.해일이 덮친 마산 해안지역은 폐허가 됐다.집들이 흔적조차 없어지기도 했다.어촌의 피해도 엄청나다.황금물결이 출렁이어야 할 들판은 모래와 흙으로 뒤덮였다.농부와 어민의 얼굴엔 절망의 주름이 더 늘어났다. 태풍의 피해가 너무 커 많은 사람들이 절망의 늪에 빠져 있다.그러나 지금의 상황이 절망적이라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절망의 끝은 희망이다.세르반테스도 그의 명작 ‘돈키호테’에서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라고 말했다.희망을 갖게되면 거기에는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이 존재한다. 희망은 결코 가진자만의 것이 아니다.어려움을 겪는 사람일수록 희망은 더 소중하고 필요하다.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희망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의 원천이다.인간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어내는 위대한 힘을 갖고 있다. 이창순 논설위원
  • “아이 키우기 아내만의 몫 아닙니다”/극성아빠 박기복씨 육아체험기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 남자를 아빠라 부르지 마라.”고 말하는 아빠가 있다. 31개월된 아들을 키우는 아빠,박기복(33·넥스콘파라미터 마케팅 팀장)씨는 “아이는 엄마,아빠가 함께 키우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다.그는 세상 아이들이 대부분 사용하는 일회용 기저귀를 거부하고 천 기저귀를 쓰게 했을 뿐아니라 그 빨래를 몽땅 자신이 맡았다. 그는 육아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고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아내 박현미(32·간호사·충남 아산시 음봉면)씨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심코 “남편이 잘 도와준다.”고 하는 말이다.“나는 아이를 아내와 함께 키웠습니다.육아는 아내가 주체이고,남편은 부차적인 존재라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 같은 말은 나를 가장 섭섭케 하는 말이지요.” ●아이는 함께 낳고,키워야 이 부부의 특별함은 육아에 대한 철학뿐이 아니다.한 대학병원 소아과 병동의 간호사로 근무하던 중 출산한 아내 박씨는 대학병원 대신 ‘인간적인 출산’을 위해 조산원에서 고생 끝에 4.4㎏의 아들 효원(3)을 낳았다.출산과정 23시간을 함께 한 남편에게 아내는 “절반은 당신이 낳았다.”라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또 모유가 부족해서 ‘젖동냥’을 다녔지만 두돌까지 모유 수유 원칙을 지켜낸 이 부부는 아이를 키우면서 ‘유난떤다.’는 비난을 수도 없이 들었다. 아내와 함께 임신과 출산의 전 과정을 거친 남편 박씨는 주위의 여성들에게 폭력없는 출산,행복한 출산을 강조하기 시작했고,더 나아가 천기저귀 사용과 모유 수유에 대해 알려주는 상담가가 됐다.주위에서는 자연스레 ‘전문가’ 취급을 했다. 부인 박씨는 여자후배들이 남편에게 전화해서 가슴에 멍울이 생겼다거나,아이가 엄마젖을 거부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문의한다면서 웃었다.“제가 간호사고,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느라 그렇게 고생한 당사자인데 정작 저를 밀쳐놓고 남편에게 물을 정도로 남편은 출산과 모유 수유·육아에는 전문가가 됐어요.1시간씩 상담에 응해주는,보기 드물게 따뜻한 전문가랍니다.” 맞벌이 부부의 아이키우기는 누구나 녹록지 않은 법.생후 10개월까지 아이를 돌보는 손길이 세차례나 바뀌었고,아이는 감기 떨어질 날이 없어 결국 폐렴의 위기까지 갔었다.그 와중에서 ‘아빠의 몫’을 하기 위해 남편 박씨는 육아휴직을 선택했고 그후 만 1년간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기도 했다.“주위에서 비난도,염려도 했어요.아이의 인생이 따로 있고,부모의 인생도 독립적인 것이라고 말입니다.그러나 돈도 명예도,부모의 책임과 역할보다 앞설 수 없다는 생각이기에 선뜻 육아를 택했습니다.” 이렇게 직·간접 경험을 톡톡히 쌓은 남편 박씨는 최근 출산·수유·육아 노하우를 담은 육아서적,‘효원이 잘 커요’를 펴냈다.아빠들의 ‘바짓바람’도 드문 예는 아니지만 그의 책이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것은 직접경험을 바탕에 깔고 전문서적과 신문 등에서 읽은 지식을 마치 이야기하듯 쉽게 풀어줬다는 점이다. 그에게 아이 키우기의 가장 어려운 점에 대해 물었다.“모유에 익숙한 아이가 칭얼댈 때,물릴 젖이 없었다는 것이었지요.” 그런 그도 언제나,기꺼이 육아의 주체가 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직장을 쉬면서 ‘주부(主夫)’생활하던 중,집안일을 못한다고 아내가 타박하면 섭섭했어요.또 의식적이진 않았지만 아내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긴장이 풀리고,아내에게 내맡기듯 아이돌보기도 잠깐씩 내팽개쳤어요.‘이만큼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는 자만심에 빠졌던 것이지요.그렇게 아니기를 바랐지만,스스로 도와주는 존재,부차적인 존재가 되기도 했었던 것입니다.” ●아내 역할이 따로 있나요? 그러나 이 부부에게서 특별한 것은 출산과 육아를 함께 한 것만은 아니다.1년간 남편이 직장을 쉬었던 것에 이어 요즘은 3교대 간호사 일을 잠깐 접은 아내가 집안일을 하고 있다.“인생의 중요한 가치가 뭔가를 생각해야죠.남편이 아이를 돌보고 싶을 때 제가 일했고,제가 재충전이 필요한 지금 남편이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요. 기존의 남편역할,아내역할에 고정될 필요가 없을 뿐아니라 더 멋진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도록 부부가 서로 지지해주는 게 필요하니까요.” 아이가 천식 성향이 있어 공기 맑은 아산으로 이사한 지 5개월,도시에서보다 간호사로서 더의미있는 일을 할 것이 많을 것 같다는 부인의 얼굴이 밝다.“교육을 위해 서울로 간다지만 저희는 흙을 밟으면서 아이를 키우게 된 게 너무 기뻐요.다른 사람들 기준으로는 바보 같은 행동일까요?” 부부의 새로운 삶의 계획은 ‘입양’이다.첫 아이를 임신하기 전부터 계획한 일이다. ‘따뜻한 사람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이 부부는 자신의 가정만이 아니라 아이가 함께 살아갈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육아에 있어 전통과 자연적인 삶의 태도를 주위 사람들에게도 권한다. 남편 박씨는 “육아는 물론 고된 일이지만,분명 기쁨과 즐거움이 더 큽니다.대부분의 아빠들이 그 기쁨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육아는 아빠의 의무가 아니라 ‘당당한 권리’입니다.”라고 말했다.정말 놀아줄 시간이 없는 바쁜 아빠라면 1주일에 단 10분만이라도 아빠 자신이 즐거워지도록 아이들과 함께 놀라고 권했다.“퇴근 후 파김치가 된 상태로 소파에 누워 TV를 볼 생각을 잠깐 미루고,아이들과 몸으로 부대끼면서 놀아주면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요.크게웃을 일이 없는 직장생활,아이들과 놀면 웃음이 터져나와요.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산 허남주기자 hhj@
  • 부실 복구공사 수해 키웠다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마구잡이 개발,실적에 치중한 주먹구구식 복구공사가 태풍 ‘매미’의 피해를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도로공사는 대구∼부산간 고속도로 건설과정에서 하천에 대형 교각과 교량을 무분별하게 설치(대한매일 2002년 11월9일 보도)하는 바람에 빗물 흐름에 지장물로 작용,피해를 키웠다.경북 경산시 남천면 구일리 남천(평균 하천폭 62m)에는 지난해 고속도로 교량공사가 시작돼 하천에 가로 5m,세로 6.8m의 대형 교각 4개가 설치됐다.또 이 공사를 위해 상류 50여m 지점에 폭 6m,길이 60m의 가교(假橋)가 건설됐다. 이 때문에 교량 등이 하천 흐름에 지장물로 작용,제방 80여m가 유실됨으로써 인근 주택 10여 가구와 경부선 철로가 침수되고 농경지 수만평이 유실되는 피해가 발생했다.박순원(48·구일리 이장)씨는 “주민들은 제방이 위험하다며 설계변경이나 공사중단을 요구했는데 공사측이 보강공사 없이 막무가내로 교각을 설치하더니 결국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난했다. 충북 영동과 강원도 강릉 등 지난해 태풍 ‘루사’의집중적인 피해를 입은 지역은 부실 복구공사로 화를 키웠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충북 영동군 상촌면 궁촌리는 지난해 강물이 들이닥치면서 큰 피해를 입은 뒤 10개월 가까이 복구공사가 진행됐지만 정작 주민들이 요구한 마을쪽 하천변 옹벽은 쌓지 않는 바람에 이번 태풍에 마을이 폐허가 됐다.주민들은 “당국이 지형을 감안한 옹벽을 만들지 않고 흙과 돌로 허술하게 둑을 쌓은 뒤 엉성한 돌망태를 씌운 게 화를 불렀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강원도 강릉시 경포호 주변 주민들도 수만평의 농경지가 또다시 침수된 것은 엉성한 복구공사 때문이라며 입을 모은다.농경지 상류지역에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뤄져 빗물을 흡수하지 못하는데도 하천폭을 늘리지 않았고,하천바닥이 매년 높아졌음에도 정비가 되지 않아 ‘루사’ 강수량의 3분의1 수준인 이번 태풍에 맥없이 당했다는 것이다.태백시 철암동 주민들도 3년 전 철암천에 설치한 복개시설물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복개시설물이 댐 역할을 해 물이 하류로 제대로 빠져 나가지 못했다는 것이다.시는 주민들의원성이 높아지자 철거를 검토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인재(人災)’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원상복구 원칙을 보완한 항구 및 개량복구체계 도입 ▲재해영향평가제의 내실화 ▲수해원인조사 제도화 등의 가시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대구 김상화기자 shkim@
  • 차례상 소화제 토란탕 / 궁중음식硏 한복려원장의 비법

    한가위다.‘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처럼 모든 것이 풍성하다.햅쌀과 햇과일을 거둬 들이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한가위 대표 음식은 송편이지만 토란탕도 주연 송편에 못지않은 음식이다.‘흙속에서 나는 알’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사랑을 받았다.토란탕을 한가위 차례상에도 올리는 가풍을 지키는 곳이 아직도 많다.미끈거리며 물컹 씹히는 게 토란탕의 매력. 토란은 미끌거리기 때문에 꺼리는 사람들도 많지만 조리할 때 소금물이나 쌀뜨물에 삶아 전분을 처리하면 좋다.토란이 소화를 돕는 까닭에 과식하기 쉬운 한가위에 함께 상에 올리면 체하는 가족들이 없다.하지만 생으로 먹으면 두드러기가 날 수 있다. 토란 줄기도 즐겨 먹어왔다.볕 좋은 가을날 줄기를 말려 두었다가 채소류가 부족한 겨울이나 설날에 나물로 무쳐 냈다.요즘엔 얼큰한 육개장 등에 넣어 먹기도 한다. 한복려(사진) 궁중음식연구원 원장이 한가위 음식으로 ‘토란탕’과 ‘토란대 들깨즙나물’ 조리법을 보여줬다. ■ 토란탕 ●이런 재료를 준비하세요 쇠고기(양지머리) 400g,토란 200g,대파 1뿌리,마늘 2쪽,무 150g,다시마(10㎝크기) 1장. 양념:국간장 1큰술,다진 마늘 1작은술,후추·참기름 약간씩 ●이렇게 하세요 (1) 양지머리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 뒤 끓는 물에 넣어 무르게 푹 삶는다.삶는 도중 마늘과 파를 넣으면 고기의 잡내가 없어진다.(2) 무는 큼직하게 썰어 고기를 삶는 도중에 넣고 끓인다.(3) 토란은 껍질을 벗긴 다음 소금 물에 삶아 건져두고 다시마는 물에 담가 불린다.(4) (1)이 익으면 건져 적당한 크기로 도톰하게,무는 얇고 네모지게,다시마는 3∼4㎝ 크기로 썬다.(5) (4)에 분량대로 양념한다.(6) (1)의 육수에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토란을 넣고 한소끔 끓인 다음 대파를 송송 썰어 넣는다. ■ 토란대 들깨즙나물 ●이런 재료를 준비하세요 삶은 토란대 200g,깨소금 1큰술,들깨즙 ½컵,들깨 1컵,물 3컵,불린 쌀 2큰술 양념:소금 1작은술,다진 파 1큰술,다진 마늘 ⅔큰술,참기름 1½큰술,식용유 3큰술,육수(물) ½컵 ●이렇게 하세요 (1) 마른 토란대는 푹 삶아 여러 차례 헹궈 아린 맛을 우려낸다.(2) 들깨와 쌀은 찬물에 충분히 불려 분량대로 갈아 체에 밭쳐 놓는다.(3) 토란대는 껍질을 벗기고 5㎝길이로 자른다.(4) 토란대에 양념을 분량대로 하여 주무른 다음 팬에 식용유와 육수를 넣고 볶는다.(5) 나물을 볶다가 마지막에 깨소금과 들깨즙을 넣는다. 글 이기철기자 chuli@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원장 전통음식의 정수인 궁중음식의 전승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어머니이자 궁중음식 기능보유자 황혜성씨로부터 그 기능을 전수받아 1990년 궁중음식 기능보유자 후보로 지정됐다.궁중 및 전통음식 관련,전시와 강습을 했고,2000년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와 아셈정상회담 다과회 메뉴 개발에 참여하는 등 한국 음식의 국제화에도 앞장서고 있다.명지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박사과정중.27,28일 덕수궁에서 궁중음식 전시회를 연다.
  • 30년만에 다시 만나는 ‘열정’/조각가 권진규 30주기전

    한국미술사에서 근대조각을 완성하고 현대조각의 문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조각가 권진규.흙을 사용한 테라코타와 옻칠기법을 원용한 건칠(乾漆)이란 독창적인 양식을 개척하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인 그는 1973년 52세의 나이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인생은 공(空),파멸’이란 유서를 남긴 채.고뇌와 열정의 작가 권진규 30주기전이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작은 테라코타,건칠,석조,목조 등 유작 120여점.자폐적인 작가의 내면을 반영하듯 침울하면서도 부드러운 모습을 담은 테라코타 흉상 ‘지원의 얼굴’등 대표작 외에 사후 30년동안 서울 종로구 동선동 작업실에서 잠자던 20여점의 작품이 처음으로 선보였다.석고틀에서 재현한 ‘여인’이나 부조 ‘작품’ 등은 작가가 사망한 후에도 그의 작업실을 그대로 보존해온 막내 여동생 권경숙씨가 내놓은 것.또 작가가 일본 유학시절인 1950년대에 남긴 초기 스케치북 2권도 전시돼 관심을 모은다.일본 무사시노 미술학교에서 만나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던 오기노 도모 여사가 30주기를맞아 처음 공개한 것으로,권진규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작가가 죽음을 앞두고 몇몇 지인들에게 보낸 유서를 포함,손때 묻은 기물과 유품들도 전시돼 인간 권진규를 보다 진솔하게 만날 수 있다.전시는 15일까지.(02)736-1020. 김종면기자 jmkim@
  • [김영두의 그린에세이] 골프와 비즈니스

    미국의 한 사업가는 “나는 핸디캡 20으로 그리 실력 있는 골퍼는 아니지만 골프야말로 내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일등공신이다.”라고 골프를 극찬했다.한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 가운데 98%가 골프를 친다고 한다.한국에서도 대부분의 기업 경영자가 체력단련이라기보다는 사업을 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고 한다. 골프가 사업에서 가장 유용한 도구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골프는 자연과 한데 어우러져 즐기는 운동이다.흙에서 난 인간에게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회귀본능이 있다고 한다.햇빛을 걸러주는 숲과 잡풀이 무성한 러프,손발 벌리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싶은 안온한 페어웨이,여인의 부드럽고 폭신한 속살 같은 그린,코스를 휘돌아 흐르는 시내와 연못들,연못에 고스란히 들어와 있는 산과 하늘과 구름….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 안에서 사업적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처음엔 허심탄회하게 마음의 문을 열고,다음엔 원하는 목표로 향하는 대화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둘째,골프 라운드는 다섯 시간동안 친교의 장에 펼쳐지는 멍석이다.특별한 친분이 없는 사람과 한나절을 동반하며 대화를 나누게 하는 매개체가 골프이외에 또 있을까.골프는 공을 치는 순간을 제외한다면,사업으로 연결되는 대화를 다섯 시간이나 지속시켜 준다.7∼8㎞를 걸으면서 호감을 쌓고,가능성을 보태고,인간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셋째,골프는 전략적 사고를 키워준다.기업 경영에는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기록을 향상시키기 위한 골퍼의 노력은 경영 성과를 극대화하려는 경영자의 열의와 같다.홀을 공략하는 각본을 짜고 전략을 세우면서 상황에 따라 전술을 수정,보완하는 방법을 터득한 골퍼는 경영에서도 골프에서 익힌 전략을 응용하기 마련이다. 넷째,골프는 동반자의 인격을 가늠할 수 있는 경기다.골프는 신사의 스포츠다.골퍼 자신이 심판이 되는 경기다.진정한 신사라면 잘 연마되고 훈련된 언어를 사용할 것이며,몸에 밴 에티켓이 저절로 우러날 것이다.신사는 규칙에 따라 페어플레이를 할 것이며,이런 참골퍼는 다른 골퍼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골프란 18개의 구멍이 뚫린 잔디밭에서 이뤄지는 비즈니스다. 소설가·골프칼럼니스트 youngdoo@youngdoo.com
  • 기고/역할분담 차원서 핵폐기장 유치해야

    방사성폐기물 처분장과 관련한 부안군의 문제는 전 국민의 문제이다.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부안군의 문제로 생각하고 별 관심도 표시하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모든 에너지를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석탄·석유·LNG·우라늄을 기본 에너지원으로 수입하고,이를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한다.수입 에너지는 단순히 물을 끓여 수증기를 만들고,이 수증기가 터빈을 돌리므로 발전기에서 전기가 생산된다.따라서 터빈을 돌리는 수증기를 만들기 위해 석탄·석유·우라늄 등을 사용할 뿐이다.이를 에너지원별로 표시하면 석탄전기생산공장,석유전기생산공장,우라늄전기생산공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의 전기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원료의 수입원가는 석유 26원,석탄 22원,우라늄 6원이다.우리나라는 전기 생산을 위하여 외국에 외화를 지불해야 하므로 원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이번에 뉴욕의 정전사고를 보면서 전기의 위력이 대단한 것을 간접적으로 체험하였다.전기는 우리의 생활에서 필수적이고 반드시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18기의 우라늄전기생산공장은 안정적인 전기 공급에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방사성폐기물은 우라늄전기생산공장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로,장갑·볼트·기기 부속·작업복 세탁물 등 방사성 물질이 있는 모든 것을 전처리와 동시에 시멘트로 고형화시킨 콘크리트 드럼이다.이 콘크리트 드럼 내부에 있는 폐기물은 종류에 따라서 10년에서 100년씩 방사능을 함유하고 있다. 이것을 적절한 구조물에 보관하여 방사능이 모두 소멸될 때까지 감시하며 관리하는 시설이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다.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은 국가가 존속하는 한 전기를 생산하여야 하므로 우라늄전기생산공장이 있는 이상 계속 관리하게 된다.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방사성폐기물을 처분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고 전문가에 의하여 계속 관리하기 때문에 안전하다. 프랑스의 경우 라망시의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포화되어 흙을 덮고 잔디로 포장하여 관리하고 있으며,파리의 센강 상류 130㎞에 위치한 로브에 60만평 규모의 제2처분장을 건설하여 운영하고 있다.일본은 아오모리에 30만평 규모의 처분장을 운영하고 있으며,스웨덴은 포스마크 발전소에서 바다 밑으로 땅굴을 파서 해저동굴처분장을 건설·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과 지역의 상호 협조가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좁은 땅에서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전 국민이 함께 노력하여야 한다.전 세계가 일일 생활권으로 WTO의 자유무역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가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책사업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부안군 군수의 방사성폐기물 유치 신청 발표 후에 방영된 TV 심야토론을 모두 청취하였다.방사성폐기물의 위험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 것 같았다.그러나 왜 우리 지역에 우리와 협의 없이 추진하였나 하는 감정이 많이 남아 있었다.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매우 심각하다.에너지의 98% 수입,식량의 65%를 수입하는 우리는 외국으로 팔 수 있는 공산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많이 세워야 하며,동시에 많은 전력을 생산하여 더욱 쾌적한 생산환경을 갖춘 부강한 나라를 이루어야 한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추구하는 우리는 전 국토가 역할 분담을 잘 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단순히 “우리 지역에는 안 된다.”와 “우리와 협의가 없었다.”는 생각은 큰 아량으로 접고 전 국민과 지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적극적인 정책 제안을 간곡히 촉구한다. 박헌휘 호서대 교수 환경공학과
  • 2003 경기도 세계도자기비엔날레 / ‘흙과 불의 예술’ 지구촌 도자 한눈에

    ‘2003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가 이천·광주·여주에서 새달 1일부터 10월30일까지 열린다.2001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세계도자비엔날레는 한국 도자 문화의 전통을 세계에 알리고,세계 도자 문화의 흐름을 받아들여 한국 도자기의 세계화를 위해 마련한 것. ‘창조의 열정,전통의 격조,생활의 향기’를 주제로 지역특성에 맞는 전시회와 학술회의,워크숍이 다양하게 펼쳐져 한국과 세계의 도자 문화와 역사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도자 선진국인 중국,일본,영국을 비롯하여 68개국의 도자기와 도예작품 2400여점이 선보인다. 이천 세계도자센터에서는 ‘세계현대도자전 NOW & NOW’,이슬람의 전통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스페인 도자의 발달 과정을 보여주는 ‘스페인 도자전’이 마련된다.‘스페인 도자전’에는 바르셀로나 국립도자박물관 소장품 80점이 출품된다.테마파크 형식으로 야외에 설치되는 ‘토야랜드’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제작 과정을 직접 보여주고 관객이 제작에도 참여하는 ‘국제도자워크숍’ 등이 눈길을 끈다. ‘국제공모전 입상작 전시회’도 열린다.도자비엔날레를 주관하는 재단법인 세계도자기엑스포가 실시한 ‘국제공모전’에는 68개국 1481명의 작가가 모두 2454점을 응모했다.한국계 미국인 여선구의 ‘알프레드 서머’가 대상,미국작가 스티븐 몽고메리의 ‘이탈-C’가 조형부문 금상,일본작가 카츠코 나카시마의 그릇이 생활 부문 금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조선의 왕실도자기 생산지였던 광주의 조선관요박물관에서는 명품을 망라한 ‘조선도자 500년’과 한국도자의 전통성과 현대성의 특징적인 면을 조명하는 ‘한국도자 특별전’,중국전통도자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중국 광둥성 불산 도자인형전’이 열린다.광둥성 불산지역은 다양한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화려한 채색으로 유명한 독특한 도자기전통을 갖고 있는데 특히 도자인형으로 유명하다. 관요박물관 마당에서는 전통가마 제작 경험이 있는 작가 33명이 참여하는 ‘광주전통가마워크숍’이 준비된다.아름다운 백자를 만들었던 조선도공의 지혜를 밝혀낼 수 있도록 가마 제작의 전 과정을 더듬어 전통가마의표준을 만들어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여주세계생활도자관에서는 ‘피카소 도자전’ 등 생활도자를 추구하는 지역 특성에 맞는 행사가 다채롭게 준비되고 있다. 도자브랜드의 명품을 한자리에 모은 ‘세계 10대 도자기업명품전’은 우리 도예인들에게 도자디자인의 최신 경향을 소개한다.바우하우스의 창설자 발터 그로피우스가 독일 로젠탈사에서 생산한 식기세트 ‘TAC’를 비롯하여 오스트리아 아우가르텐,핀란드 아라비아,헝가리 헤렌드,독일 마이센,이탈리아 리차드 지노리,덴마크 로열 코펜하겐,독일 빌러로이 운트 보흐,영국 웨지우드의 도자기가 전시된다. 비엔날레 기간에는 ‘웰컴 투 세라믹월드’ ‘함께해요,토야콘서트’ ‘한가위 페스타’ 등의 공연 및 관람객 참여행사가 잇따르고,이천도자기축제와 광주분원왕실도자기축제,여주도자기박람회 같은 지역 축제도 함께 펼쳐진다.전 지역 입장권이 어른 5000원,청소년 3000원,어린이 2000원이며,1개 지역 입장권은 3000원,2000원,1000원이다.(031)631-6504∼13.www.worldceramic.or.kr. 서동철기자 dcsuh@ ■이천 ‘나우 앤드 나우전'-대륙별 대표작가 작품 63점 출품 이천세계도자센터에서 막을 여는 ‘세계현대도자전-나우 앤드 나우(NOW & NOW)’는 17개국의 작가 50명이 63점을 출품하여 세계 도예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규모 기획전이다. 한국의 권순형 서울대 명예교수와 안톤 레인더스 유럽도예센터 대표,미주의 도예평론가 매튜 캉가스,아토 이쿠타로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장이 각각 지역별 커미셔너로 각 대륙을 풍미하는 현대도자의 이념과 미학을 표현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들을 선정했다. 지역별로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작가들이 전통적인 도자의 개념에 바탕을 두고 현대적인 작품세계를 이루어나가는 반면 유럽과 미주 작가들은 도자기라는 재료를 새로운 시각에서 작품에 응용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번 전시회는 도예라는 특정 분야의 성격을 보여주면서,동시에 전통적인 경계를 뛰어넘어 그 자체로 현대미술로 받아들여지는 현대도예의 흐름을 확인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획이다. ■광주 ‘조선도자 500년전'-청화백자등 조선 명품 180점 전시 ‘조선도자 500년전’이 광주조선관요박물관에서 열리는 것은 조선도자기가 비로소 고향을 찾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광주지역에는 조선시대 수백곳의 관요(官窯)가 운영됐고,지금도 300여가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이번 전시회에는 국보 2점과 보물 5점을 포함하여 모두 180여점이 나온다.순백자와 청화백자,진사백자,철화백자,문방구 등을 망라한 출품작 대부분이 지정문화재급 명품들이다. 6개 공간으로 나눠 전시한다.제1실은 아무런 무늬도 없는 소문(素紋)백자.조용한 힘과 검소 검약의 미의식을 보여준다.제2·3실은 위엄있으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청화백자,제4실은 유약 아래 깊은 곳에서 진중한 아름다움을 이끌어내는 철화·진사·다채백자실이다.사대부의 멋이 담긴 연적과 필통 등 문방구도 여기에 자리잡는다.제5실은 풍부한 감성으로 파격의 아름다움을 담은 분청의 성격과 특징을 보여준다.제6실 ‘생활속의 격조’에서는 조선시대 사람들은 도자기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궁금증을 풀어본다. ■여주 ‘피카소 도자특별전'-피카소가만든 생활도자기 볼 기회 여주 세계생활도자관이 피카소도자전을 갖는 데는 깊은 뜻이 있다.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도예작업에서 보여준 상상력과 표현력,장식기법들을 이 지역의 생활도자기에 연결시켜 보겠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피카소가 1947년 도예작업을 시작한 이후 1960년대까지 제작한 다양한 작품들이 출품된다.인물과 형상,자유를 상징하는 새 시리즈,투우,물고기와 동물·정물 등 주제와 제작 시기에 따라 전시를 구성하여 피카소 도자기의 전모를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인간과 자연에 바탕을 둔 피카소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다양한 표현력을 확인할 수 있으며,피카소가 회화·조각·판화 등에 사용한 장식기법을 어떻게 도자기에 응용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회를 구성했다.스페인이 낳은 대가인 호안 미로(1893∼1983)의 도예 작품을 출품하여 피카소 작품과 비교할 수 있도록 한 ‘전시 속의 전시’도 눈길을 끈다.거장들의 눈을 통하여 도예의 새로운 모습과 흙이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도자기엑스포 손학규 이사장-“세계도자문화 중심지 발돋움 할 기틀 마련” “수도권 주민들에게 수준 높은 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하고,지역경제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세계도자비엔날레의 총책임자인 손학규(경기도지사) 재단법인 세계도자기엑스포 이사장은 “비엔날레를 통하여 경기도가 세계 도자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한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손 이사장은 “도자산업은 지식정보산업이자 문화산업의 중심이지만 최근 경제상황이 침체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라면서 “비엔날레가 도자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한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2001년 세계도자기엑스포는 1조 2000억원의 경제적 이익과 4만명의 고용을 늘리는 효과를 거뒀는데,비엔날레는 엑스포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내용이 충실해 버금가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 이사장은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수도권 주민들에게 문화활동을 위한 구체적인 장을 제공한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서 “중국 광둥성 불산 도자 인형전과 스페인도자전,피카소도자전 등은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기회를 폭넓게 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동철기자
  • 고구마 먹을땐 김치도 함께/모양 곱고 매끈한 것 선택 죽·떡·샐러드등으로 요리

    전분과 섬유질이 많은 고구마는 한끼의 주식으로 휼륭하다.하지만 단백질과 지방이 적게 들어있는 편이므로 동물성 식품과 함께 먹는 것이 좋다. 또 고구마를 먹을 땐 소금과 함께 먹는 것이 합리적이다.고구마는 소금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작용을 하기 때문.김치와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고구마는 생것,찐것,가루,말린것 등으로 고루 이용할 수 있어 음식에 폭넓게 쓰인다.샐러드,요구르트,떡 등으로 요리할 수 있다.고구마를 요리할 땐 찬물에 담갔다가 조리하면 전분이 우러나와 그릇에 달라붙지 않는다. 좋은 고구마를 고르려면 모양이 곱고 매끈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요령.반면 잔 털이 많은 고구마는 육질에 섬유가 많아 맛이 좋지 않다. 마른 땅에서 난 고구마가 영양도 많고 맛도 좋다.고구마에 묻어 있는 흙을 보고 습한 땅보다 마른 땅에서 캔 고구마를 고른다.고구마의 색깔이 진하고 속이 노란 고구마가 영양분도 많고 맛도 좋다.손으로 눌렀을 때 물렁물렁하거나 껍질에 반점이 있는 것은 좋지 않다. ●고구마 죽은 달큰한 맛으로 식욕을 당긴다.고구마(2개),당근(1개),호박(200g)을 깨끗이 손질해 푹 삶아 으깬 다음 풋콩(½컵)을 넣고 푹 끓인다.밀가루(½컵)를 찬물에 개어 걸쭉하게 되면 소금(1작은술)으로 간을 맞춰 끓인 고구마에 넣어 눋지 않게 끓인다.기호에 따라 설탕을 넣어도 좋다. ●고구마 칼국수는 색다른 별미이자 훌륭한 한끼 식사가 된다.고구마를 푹 찐 다음 으깨고 나서 밀가루를 넣어 반죽하면 된다.나머지는 칼국수 만드는 방법과 같다. ●고구마 양파조림은 고구마(2개)와 양파(1개)를 납작하게 썰어 기름에 볶아낸 다음 오목한 냄비에 담고 토마토 주스(2컵)를 붓고 소금으로 간을 맞춰 뭉근한 불에서 서서히 졸여 낸다. ●쇠고기 고구마찜은 고구마에 부족한 단백질을 공급받을 수 있다.양념장(간장 4큰술,다진 파·다진 마늘,참기름,깨소금,후춧가루,물 1컵)을 만들어 냄비에 넣고 잠깐 끓인 다음 한입 크기로 썬 쇠고기 400g과 고구마 2개를 넣고 약한 불에서 찌면 된다.
  • “무념무상속 옛도공 솜씨 되살리죠”/‘이도다완’ 대가 민영기 씨

    도예가 민영기(閔泳麒·56).그는 오늘을 살고 있는 옛 도공이다.임진왜란 이후 400여년간 국내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이도(井戶)다완’을 다시 탄생시킨 장본인이다.지난 78년 가마를 박은 경남 산청군 단성면 방목리 ‘산청요’에서 옛 솜씨로 요즘 그릇을 만들며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대학 졸업후 ‘늦깎이’로 도예에 입문했지만 타고난 성실함과 열정,그리고 실험정신이 오늘의 그를 가능케 했다.그는 지난 4월 일본 도쿄의 고미술화랑 ‘고주쿄(壺中居)’에서 세번째 다완전을 열었다.고주쿄는 1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화랑인 데다 당시 가져간 이도다완 30여점은 전시회가 열리기 전 모두 판매될 정도였다.일본서 다완으로는 이도를 첫째로 친다.이도다완은 아주 자연스럽고,아무렇지 않은 소박한 그릇이지만 조건은 까다롭기 그지없다.우선 굽이 듬직하게 높고,몸통이 곧게 벌어져야 하며,유약은 황백색이어야 한다.그밖에 바닥의 비짐눈 자국과 몸통의 물레 흔적,굽의 대나무마디 자국 등도 따진다.조선시대 경남 일대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도다완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건너가 소박하고 꾸밈없는 아름다움으로 일본사람들을 사로잡았고,특히 말차(抹茶)잔으로 각광받았다. 민씨는 “이도다완은 흙이나 몇가지 형태와 유약등 외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욕심없이 만들고,쳐다 봐서 마음이 편하면 그것이 바로 이도”라고 말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잘 만든 그릇을 보면 ‘황금분할’을 발견할 수 있다.”면서 “당시 상당한 기술 수준의 도공들이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일상적으로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황금분할(Golden Section)은 조형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통일의 원리로 널리 활용되는 가장 조화로운 비례(1:1.618).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로비우스’가 그리스의 건축양식에 이 비례가 적용된 것을 발견한 이래 중시돼 왔다. 민씨는 1947년 산청에서 태어났다.부산 동아대 원예과를 나온 그가 도자기와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은 남다르다.대학 시절 부산 고미술협회장을 맡은 사촌형의 영향으로 옛 도자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마침 조선도공의 후예로서 일본의 5대 도예가문으로 손꼽히는 ‘나카자토(中里)가문’의 13세손인 나카자토 다로우에몽(中里太郞右衛門)이 모국귀향전을 가졌다.나카자토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도예기술을 모국의 젊은이에게 되돌려 주려는 계획도 갖고 있었다. 민씨는 도자기에 관심은 많았지만 그때까지 물레를 돌려보지는 않았다.그러나 나카자토는 오히려 이 점을 높이 사 그를 문하생으로 거뒀다.이렇게 해서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수업은 상상 밖으로 힘들었다.일본사람에게 질 수 없다는 의지는 앞섰지만 무엇보다 그를 괴롭힌 것은 일본적인 치밀함과 완결을 위한 끊임없는 추구였다.이때 익힌 치밀함과 완전함으로 이도다완을 재현할 수 있었고,30년이 지난 지금 그에게 가장 큰 장점이 됐다.하지만 당시로서는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이를 익히는 데 당초 예정한 3년이 부족해 2년을 더 보태야 했다. 5년 만에 귀국한 민씨는 산청에 가마를 박고 분청사기를 만들었다.꾸준히 도자기를 만들었지만 ‘나카자토식’으로 훈련된 조형감각을 털어내지 못해 고민했다.자신에게 채워진 스승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그는 박물관과 국내에 흩어져 있는 옛 가마터를 답사했다.그곳에서 접하고 눈에 익힌 옛 도자기를 스승으로 삼아 무언의 가르침을 받고서 비로소 털어낼 수 있었다. 그가 다완에 관심을 갖게 된 때는 지난 90년.평소 민씨의 물레질을 아끼던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 정양모(鄭良謨·현 경기대 석좌교수)씨의 소개로 세계 제일의 다완평론가 하야시야 세이조(林屋晴三·74)를 일본서 만난 것이 계기였다.정씨는 “옛날 솜씨로 요즘 것을 만들어 보자.”면서 이도다완을 다시 만들도록 권유했다.하야시야도 “일본사람이 못 만드는 그릇을 만들면 일본서 전시회를 열어주겠다.”면서 부추겼다. 그로부터 7년간 그는 다완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씨름을 했다. 일본의 명품 이도다완을 직접 만져 보고 감을 익히며 작업을 되풀이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그 시절 그는 1년에 1만개씩 다완을 만들어 깨버려야 했다.한 해에 15번씩 가마에 불을 지피고,가마에서 나온 300여점 중 10점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부숴버렸다.민씨는 “10점을 골라내려면 눈알이 빠지고 머리가 빠개지는 듯했다.”고 고통스러웠던 당시를 떠올렸다. 방황의 세월을 보내고 이도의 모습이 드러나자 지난 96년 5월 일본 도쿄의 고미술화랑 고주쿄에서 처음 전시회를 열었다.당시 반응은 “정말 이도다완답다.”는 것이었다.이도다완의 재현을 꿈꿔온 하야시야는 “민영기의 이도다완”이라고 극찬했다.그후 2001년과 올 4월에도 같은 장소에서 전시회를 열었다.그래서 그런지 그는 국내보다 오히려 일본에서 더 유명하다. 민씨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도예는 암흑기를 맞았다.”면서 “만드는 사람이 없으니 사용하는 사람도 없고,그러니 안목이 없어져 좋은 그릇을 만들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는 작가로서 상당한 경지에 다다랐지만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고 물레를 돌리고 있다.좋은 흙을 찾아 산청 골짜기를 뒤지는 것도 모자람을 채우기 위함일 것이다. 그의 꿈은 한 차원 높은 이도다완을 만드는 일이다. 산청 글·사진 이정규기자 jeong@
  • 기고 / 우면산은 생명산이다

    우면산은 ‘생명의 산’이다.우리나라 건국의 상징이 백두산이고 서울의 중심산이 남산이라면,우면산은 우리 남부서울의 중심임에 틀림없다. 생명경시 풍조가 어디서부터 나오고 있는가를 한 번 되새겨 봐야 한다.자연은 말이 없다.다만 괴로워할 뿐이다.자연이 우리를 보호해 왔듯이 이제는 개발이익에 앞서 우리가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 우면산의 남쪽 기슭은 청동기시대 유적인 지석묘가 있어 이 지역이 오래 전부터 우리 조상들의 생명의 터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산 속의 여러 계곡에는 옹달샘이 끊임없이 솟아 산을 찾는 이들에게 신선하고 달콤한 약수를 제공한다.또한 사계절 변함없이 우리를 반기는 우면산이 아닌가? 특히 한여름철 나무 그늘에 앉아 호흡하면서 이 세상 우주만물의 생성과 변화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오묘함과 신비함을 저절로 느끼게 하며,하나뿐인 이 지구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자연을 보존하며 환경을 정화할 수 있을까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우면산이 아닌가? 레윈은 그의 저서에서 환경과 인간의 행동에 대한 모델을 B=f(E·P) 즉,행동(B)은 환경(E)과 인간·개인(P)의 상호작용 결과(f)라고 정의하고 있다.이는 신토불이(身土不二) 라는 것도 그렇게 해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우리(身)는 우면산(土)과 나누어(不二) 생각할 수 없다. 삼국지에 위나라의 조조가 지친 병사들에게 그들의 고향에서 가져온 흙을 물에 타 먹게 해 병사들의 원기를 회복시켰다는 내용이 있다.우리 옛 풍습에도 감기에는 황토로 환(丸)을 만들어 불에 태워 먹이고,각기병에는 병자가 태어난 고향의 흙을 먹였다고 전해진다. 흙은 살아있기에 많은 일을 한다.새싹을 키우며 물을 저장하고 땅에 떨어져 묻히는 온갖 유기물을 식물뿐만 아니라 모든 토양생물이 먹기 좋게 분해하여 생태계의 연속성을 유지한다.오염된 물과 온갖 물질들이 흙을 통과함으로써 걸러지고 정화되는 것이다. 우면산을 생명산이라 함은 바로 생물이 살기 좋은 살아있는 흙과 나무와 물과 고귀한 조류 등이 있으며 우리의 발자취가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우리의 명산인 우면산을 살려내야 한다.그래야만 경기도와 남부서울 사람들이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순간의 개발을 영원의 생명과 바꾸어서는 안 된다.소수인의 이익에 우리 후손의 유산을 빼앗겨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자연자원 및 문화유산을 개발 우선,또는 심한 경우 투기의 대상으로 인식한 나머지 무분별한 개발과 함께 심각한 훼손이 이루어지고 있다.이로 인하여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 서글픈 심정이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시민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통해 환경의 가치를 현실적으로 지켜갈 수 있는 시민운동의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이런 자격을 구비한 시민운동의 전형이 바로 내셔널트러스트(NT)운동이다. 영국은 1895년부터 시작해 회원 250만명이 전원지역 보호 등 NT운동을 하고 있다.일본은 1964년 풍치보존회에서 시작해 지역의 자연을 보존하는 풀뿌리 NT운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염되기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물이 우리나라의 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좋은 물,나무,흙이 있는 우면산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존했으면 한다.하루속히 우면산을 아름답게 보존하는 그 날이 NT운동을 통해 앞당겨질 수 있었으면 한다. 꿈과 희망이 끝이 없고 미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우리의 꿈나무 청소년들에게 우면산을 자연 그대로 물려주자.일시적 이득을 위해 사는 삶은 영원한 손실로 끝나게 된다. 우리의 자존심 우면산! 지킬수록 소중해지지 않을까? 오 치 선 명지대 교육대학원장
  • 정몽헌회장 어제 영결식… 각계 2000명 애도 / 역사의 짐 벗고 고이 잠드소서

    8일 현대아산 이사회 정몽헌 회장의 영결식이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렸다. 맑은 날씨 속에 열린 이날 영결식에는 정 회장의 아들 영선씨,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등 유족들과 정·관·재계 유명인사,현대 임직원 등 모두 2000여명의 조문객이 참석해 선친인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유업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세상을 뜬 ‘비운의 황태자’의 마지막 길을 눈물 속에 배웅했다. ●고인 생전모습 영상물에 눈물 이날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 동관 잔디광장에서 현대상선 노정익 사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영결식은 쇼팽의 ‘장송행진곡’이 울려퍼지는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특히 서울 청운동 자택에서 찍은 가족사진과 대북 사업에 열중인 정 회장의 생전 모습이 멀티비전을 통해 나타나자 유족 등 참석자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또 대북 사업의 ‘동지’였던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이 정 회장의 약력보고를 읽던 도중 “정 회장의 업적에 대해 남북의 7000만 겨레는 물론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인들이진심어린 축하와 존경을 보내왔다.”면서 울먹였다. 이어 손길승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믿기지 않는 비보에 황망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데 오늘 회장님의 영전 앞에 다시 서니 가슴이 미어질 뿐”이라며 애통해했다. 우인(友人) 대표로 나선 도올 김용옥씨는 “정몽헌은 하나의 추억이 아니라 슬픔이요 꿈이었다. 정몽헌의 죽음은 결코 개인의 좌절이 아니며 역사의 좌절도 아니다.정몽헌은 좌절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를 비롯해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일본 스미토모(住友)상사의 미야하라 겐지 회장,미쓰이(三井)물산의 오하시 노부오 회장,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조선민족경제협력연합회,금강산국제관광총회사 등은 조전을 보냈다. 영결식이 끝난 뒤 대형 영정사진 차량을 선두로 운구차,가족과 지인 등 800여명을 태운 버스 27대 등 장례 차량들이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잠들어 있는 경기도 하남시 창우리 선영으로 향했다. ●선영 하남 정주영회장 묘소 아래 안장고인의 영구는 오열하는 유가족들을 뒤로하고 선친 정주영 명예회장 묘에서 산 아래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10평 크기의 묘지에 모셔졌다. 하관이 끝난 뒤 상주 영선군과 정세영 명예회장,정몽구 회장 등은 눈물을 삼키며 영구 위로 흙을 뿌렸다. 이날 장례절차는 고인이 생전에 특히 좋아했다는 멜론이 얹혀진 제사상 앞에서 이어진 반혼제(返魂祭)를 끝으로 마무리됐다.한편 정 회장의 영정과 머리카락,손톱,발톱 등을 담은 유품함은 서울 북한산 근처 도선사로 옮겨져 11일 추모비 제막식을 위해 금강산으로 향할 때까지 보관된다. 김성곤 이두걸기자 sunggone@
  • ‘정회장 죽음’ 기획자살이다 타살이다 / 네티즌‘음모론’난무

    경찰이 부검 결과 등을 토대로 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타살로 의심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내렸지만 인터넷에는 이를 믿을 수 없다는 네티즌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네티즌은 특히 정 회장이 죽기 전 30분 뒤에 내려오겠다며 운전기사를 대기시켰고,성인이 간신히 빠져나갈 만한 좁은 창문을 통해 뛰어내렸다는 점,유서의 글씨체가 너무 난필이고 내용이 빈약하다는 사실 등을 들어 ‘단순자살이 아닐’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자살 음모론까지 나돌아 일부에서는 정 회장이 갑작스레 죽음을 선택할 만큼 회사 사정이 어렵지 않았고 죽기 직전까지 대북송금과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검찰의 강도높은 수사를 받았다는 점을 들어 “정권 실세가 개입된 기획 자살”이라는 근거없는 음모론까지 나돌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정 회장 추모카페(cafe.daum.netonghun)에는 5일 하루에만 정 회장의 자살에 의문을 제기하는 수십개의 글이 올랐다.‘홍보부장’이란 네티즌은 “운전수 보고 기다리라고 한 뒤 자살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면서 “대기업 총수가 마치 무엇에 쫓기는 것처럼 필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휘갈겨 쓴 이유도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킬리만자로의 표범’이란 네티즌은 “대북 사업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대북사업을 더 강력 추진하고,유해를 금강산에 뿌려달라는 말을 남겼다는 것은 너무 작위적”이라고 밝혔다. ‘안타까움’이란 네티즌도 “어떻게 어른 머리 하나 들어갈까 말까하는 문을 통해 자살을 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네티즌 하모씨는 “12층에서 투신한 정 회장에게서 아무 외상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정 회장이 타살된 뒤 옮겨졌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익논객들은 타의적 자살 주장 일부 우익 논객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정 회장의 자살이 정권에 의해 기획된 ‘타의적 자살’이란 주장을 제기했다.시스템사회운동본부 지만원 대표는 홈페이지(systemclub.co.kr)를 통해 “유서의 필적과 내용으로 미뤄 십만명이 넘는 직원을 지휘하는 총수가 남긴 글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조갑제 월간조선 대표도 홈페이지(www.chogabje.com)에 띄운 2편의 글을 통해 “정 회장의 죽음에 김정일 김대중 세력의 협박이 작용했을 수 있다.”며 ‘자살 배후론’을 제기했다. ●경찰은 각종 의혹 일축 이에 대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정 회장이 뛰어내린 창문은 완전히 열 경우 성인 남자가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크기이며,시신에 외상 흔적이 없는 것은 부러진 소나무 가지와 화단의 흙이 낙하 충격을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필적 논란에 대해서도 “정 회장의 필적이 분명하다는 게 유족과 회사 관계자들의 일치된 견해”라고 일축했다.이동연 문화사회연구소장은 “죽음을 당리당략에 이용하려는 정치세력과 독자를 자극하기 위해 의혹을 생산하는 일부 언론의 주장이 인터넷 공간의 익명성과 결합해 근거 없는 루머를 양산하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가 여전히 불신이 만연한 ‘저신뢰사회’라는 점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세영기자 sylee@
  • 세계인 - 우리는 이렇게 산다 / “느린것이 좋다”日 ‘슬로 라이프’ 바람

    고도성장기,세계 제2의 경제대국,1인당 국민소득의 미국 추월로 절정에 달했던 자신감이 거품경제 붕괴,장기 불황으로 여지없이 추락해버린 일본 열도에 ‘천천히,천천히’의 물결이 일고 있다.당황하지 않고,서두르지 않고,천천히 살아가는 동경(憧憬)의 생활 스타일을 좇는 일본인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1980년대 패스트 푸드의 상징인 미국의 맥도널드가 로마에 진출하려는 데 대한 반발로 시작된 슬로 푸드(Slow Food)운동.빠르고 편리하고 효율적인 것보다는 조악해도 느긋하고 자연스러움에 포인트를 두는 슬로 라이프는 슬로 푸드의 ‘버전 업’인 셈이다. |도쿄 황성기특파원|“‘느린’ 쪽이 좋은 것도 있고,‘빠른’ 쪽이 좋은 것도 있다.둘 중 어느 한쪽을 택한다기 보다,예를 들어 바쁘게 일하면서도 휴일은 시골에서 지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본의 유명 뉴스캐스터인 지쿠시 데쓰야(68)는 ‘슬로 라이프(Slow Life)’의 전도사이다.곳곳에서 강연할 때면 반드시 “‘슬로’는 시간개념이 아니다.바람직한 마음의 상태”라고 강조한다.그의 강연은 언제나 슬로 라이프의 비결을 전수받으려는 일본인들로 성황을 이룬다. ●“천천히 하면 몸과 마음이 건강” 도쿄 시내 한복판에 개인 사무실을 갖고 있는 야노(52)는 출퇴근은 물론 웬만한 시내 볼일의 교통수단은 자전거이다.그는 “전철이나 택시보다는 느리지만 도쿄의 대도시 풍경 속에 느긋하게 생각할 여유를 준다.”는 것이 이점이라고 말한다.딱히 슬로 라이프를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 여유있게 사는 즐거움을 자전거를 타면서 느끼게 됐다고 덧붙였다. 아이치(愛知)현의 바닷가에 이웃한 농장인 ‘이토 그린 농원 펜펜’에서 50여명의 젊은이들이 농장주인 이토(50)의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이게 씨앗이고,땅에 떨어져서 파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파,페퍼민트 등 다양한 야채가 재배되고 있는 6000㎡의 밭에는 군데군데 잡초도 섞여 있고,천연비료로 쓰려고 베어낸 풀더미에 갖가지 벌레들도 쉽게 눈에 띈다.“지렁이나 미생물 덕분에 부드럽고 좋은 흙이 생겨났다.”고 참가자들에게 설명하는 이토는 병원에서 인공투석 기사로 일하다 6년 전 “농장에 생을 걸겠다.”고 밭을 사들이고 슬로 라이프의 길로 나섰다. 고치(高知)시는 지난 6월 젊은 직원 12명으로 ‘슬로 라이프 추진위원회’를 설치했다.추진위의 임무는 자연이나 전통문화를 살려 느긋하고 풍부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내 고장 만들기를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다.지난 4월 고치 시정의 기본방침으로 채택된 ‘슬로 라이프에 의한 인간회복의 내 고장 만들기’가 채택된 데 따른 것이다. ●잇따라 선보이는 ‘슬로 푸드’ 추진위 위원장인 나가노 이사오(33·소방국 소속)는 10월쯤 슬로 라이프 주간을 설정해 시민들에게 첫 선을 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추진위는 산중 콘서트,향토요리 강좌 등 슬로 라이프에 어울리는 행사를 중심으로 꾸민다는 계획이다. 자연과 내 고장을 강조하는 슬로 라이프를 경영의 원동력으로 삼자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16일 도치기현 상공회의소는 ‘슬로 라이프 운동추진사업’ 1차 실행위원위를 열었다.“가치관이 변화하는 가운데 종래의 경영수법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상공회의소는 도치기 이외에는 경험할 수 없는 맛,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침체 일로의 지역경제를 부흥한다는 복안이다.슬로 푸드,슬로 라이프가 일본인의 생활에 파고들 조짐을 보이자 이에 편승한 상품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식품회사인 에비스는 다음달 11일 ‘슬로 라이프 스튜’의 판매에 들어간다.조리 시간이 다른 제품보다 더 걸리고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아 자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컨셉트를 강조했다.자연을 강조한 스튜 하나로 에비스는 한해 10억엔(한화 100억원)의 매상을 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이와하우스 공업도 슬로 라이프를 실천한 경량철골 구조의 주택을 선보였다.거실의 남북쪽으로 커다란 입구를 내고 천장에도 창을 내 바람이 잘 통하게 했으며 함께 조리하고 먹을 수 있는 개방형 부엌 등이 자랑거리.공사비는 평당 58만엔이다. 슬로 라이프를 테마로 한 책방도 생겨났다.도쿄 아카사카에 지난달 문을 연 한 책방은 ‘화(和),슬로 라이프,아시아,에스닉’이라는 코너를 설치했다.슬로 푸드를 다룬 책이나 느긋한 풍경의아시아 마을을 촬영한 사진집 등 2000여 종류의 서적을 갖추고 슬로 라이프를 추구하는 일본인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노령화,도시화에 따른 주민 감소로 고민하는 산골 마을도 슬로 라이프를 재정 개선책이나 주민 이주의 유인책으로 삼고 있을 정도이다. 아이치현의 젠만초(千万町)는 초등학교가 취학아동의 감소로 폐교 위기에 놓여 있을 만큼 편의점은 물론 휴대전화도 불통인 ‘불편 그 자체’로 인구 200명의 산골 깡촌.슬로 라이프를 추구하는 도회 사람이 이주하거나 놀러올 수 있도록 300년된 농가를 개조해 농촌생활의 체험 시설로 내놓았다.개조된 농가 뒤편에는 계단식 밭이 펼쳐져 있다.이곳을 찾는 도회 사람들은 이 농가와 밭에서 농작물을 키우는 경험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로부터 된장 담그기같은 전통생활을 체험하는 것은 물론 감자 같은 산골 특산물을 맛볼 수 있다. ●자연친화 운동으로 확산 추세 얼마 전 출간된 2003년판 환경백서의 ‘슬로 라이프의 추천’이란 항목.“지구온난화나 쓰레기 같은 지구규모로 전개되고 있는환경 문제 해결의 열쇠는 지역사회에 있다.”소비자가 지역에서 생산된 지역특산물을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수입식품의 수입량에 수송거리를 계산해 식품의 환경부하를 표시하는 ‘식품 마일리지’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백서는 슬로 라이프를 권하고 있다. 기후(岐阜)시는 슬로 라이프 운동을 펼치는 개인,단체에 1개 사업당 50만엔을 지원하겠다고 지난 6월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18일자 아사히신문의 독자투고란.“여행이 황급하기만 하다.국내여행은 분 단위로 행동하고,해외여행은 버스로 하루 500㎞나 이동한다.아침부터 저녁까지 강행군이다.한곳에 며칠이라도 좋으니 느긋하게 머물며 지내고 싶다.‘아무 것도 없는’ 서비스도 이제는 괜찮지 않은가.” 6월22일 도쿄의 명물인 도쿄타워를 비롯,일본 전국의 빌딩,시설 2000여곳에 오후 8시부터 두시간 동안 일제히 불이 꺼졌다.‘느린 것이 아름답다’는 책의 저자인 쓰지 신이치 메이지대 교수 등 시민단체가 주도한 행사였다.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은 촛불을 켜들고 어둑한 도시 속에서 슬로 라이프의 뜻을 되새겼다. marry01@ ■시즈오카현 가케가와市선 |도쿄 황성기특파원|일본 중부지역의 시즈오카현 가케가와(掛川)시는 슬로 라이프를 선구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아담한 마을이다.인구 8만 2000명의 소도시 가케가와에 슬로 라이프가 본격도입된 것은 지난해 12월.‘슬로 라이프의 달’로 정하고 시 전역에서 113개의 이벤트를 치렀다. 행사의 하나인 슬로 사이클링에는 남녀노소 60여명이 참가해 30㎞의 거리를 4∼5시간에 걸쳐 천천히 달렸다.‘달렸다’기보다는 달리다,멈췄다,자전거를 끌었다 하면서 경치를 감상하고,다른 참가자들과 얘기도 나누며 느긋하게 이벤트를 즐겼다.지난 5월부터는 ‘느림보 버스’가 시내를 달리기 시작했다.시내 2개 코스 각각 12㎞를 45분에 순환하는 100엔짜리 슬로 라이프 버스는 급한 용건이 있는 사람이라면 답답해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느려터졌다. “인생을 80살까지 살 수 있다고 할 때 시간으로 환산하면 70만 800시간.그중에 일하는 시간은 7만시간에 불과하고 나머지 63만시간은 천천히 즐겨야 할 시간이라는 것이 가케가와의 제안”이라고 슬로 라이프를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는 가케가와 시청 기획인재과의 니보리 노리코는 설명한다.니보리는 “편리하고 빠른 것을 추구하는 바쁜 21세기는 물질적 풍요는 있지만 정신적 빈곤은 심화되는 시대”라면서 “슬로 라이프를 실천함으로써 마음의 풍요로움을 얻고 나누자는 것이 우리 시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전국에서 처음으로 슬로 라이프 개념을 시민생활과 행정에 도입할 것을 제안한 시는 시민들로부터 슬로 라이프 아이디어를 모집,이중 40개를 채택했다.시민들이 참가하는 슬로 라이프 행사에는 시 예산 2000만엔도 지원했다. 가케가와 시의 슬로 라이프는 7가지로 구성돼 있다.자동차를 타지 않고 천천히 걷자는 슬로 페이스,기모노,유카타 같은 전통의상을 입자는 슬로 웨어,가급적 천연식품으로 식생활을 하자는 슬로 푸드,오래된 주택에서 진정한 편리함과 멋을 찾자는 슬로 하우스,느긋하게 나이 들어 가자는 슬로 에이징,무농약·유기농을 권하는 슬로 인더스트리,죽을 때까지 배우자는 평생교육 개념의 슬로 에듀케이션. “7가지를 다 실천할 수는 없겠지만 살아가는 데 이들을 의식하고 실천하려고 할 때 삶이 보다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니보리의 낙관적인 전망이다.
  • “한국 건축예술의 美感 세계인에 펼쳐보일 터”파리 기메국립박물관서 회고전 여는 재일동포 이타미 준

    |파리 함혜리특파원|“한국은 내 마음 자체이며,나의 정신입니다.”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66·한국명 유동용)은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현대적인 통찰력으로 담아내는 작가다. 도자기 가마 모양을 본뜬 조각가의 작업실,우리 민화에 나타난 포도넝쿨을 연상케 하는 호텔,조선시대 도자기의 모양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건축물 등.돌 나무 흙 벽돌 등 자연의 소재를 통해 한국적인 정서와 이미지를 표현함으로써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이룬 이타미 준의 건축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회고전이 파리의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에서 30일부터 오는 9월29일까지 열린다. 국 일본 중국 인도 태국 등 아시아 지역 14개국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아시아 예술 전문 국립박물관인 기메 미술관에서 현존하는 건축가의 회고전이 열리는 것은 1899년 이 박물관 개관 이래 처음이다.물론 한국인으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 33년 건축인생을 대변하는 도형과 스케치,건축 모형들과 사진,예술가로서의 미학이 담긴 회화작품,가구,그리고 그가 평소 ‘교재’로 사용하는 개인 소장 고미술품 등 17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회 개막을 앞두고 만난 그는 “한국 전통예술의 미감을 세계인들에게 펼쳐 보일 수 있게 된 것이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너무 영광스럽고 행복하다.”고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이번 전시회 포스터나 도록 표지에도 자신을 ‘일본에 있는 한국인 건축가’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할 정도로 그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데에 큰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다.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이주한 한국인 부모 사이에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식 이름 ‘이타미 준’을 사용하며,사고 방식 또한 일본 사회에 완전히 통합돼 있다.하지만 정신세계의 근원은 엄연히 한국이다. 목수였던 그의 선친이 그를 포함해 칠남매 모두에게 한국 국적을 자랑스러워하고 이를 지키도록 교육시켰던 덕분이다.그는 “태어나고 자란 일본은 고향이지만 예술의 근원은 한국의 토양”이라고 말했다. 자연과 전통의 조화,자연스러움과 여백의 미가 흐르는 동양적인 건축물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들은 예술과 건축의 융화,자연 소재의 통찰을 제안하고 있다.이런 그의 작품들은 그가 30대 초반에 한반도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발견한 한국의 전통미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이다. “학교(무사시 공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작품활동을 시작한 직후,유럽을 배낭여행했습니다.그곳의 역사적 건축물들을 보고 나서 느낀 것은 내가 조국인 한국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지요.” 1968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그를 사로잡은 것은 자연스러움이 배어 있는 조선시대 대중예술의 미감(美感)이었다.투박한 흙벽돌과 초가지붕의 부드러운 곡선,보름달 모양의 도자기,선비의 절개를 연상시키는 기와지붕의 고고한 선,인간미가 배어 있는 부처의 얼굴,침묵처럼 조용한 아름다움을 지닌 차 그릇 등에서 그는 한국인의 고유한 감성을 발견했다.건축가인 그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소재의 발견이었다. 그후 그는 일본과 미국의 크리스티경매장 등에서 한국의 고미술품을 구입하며 조선시대 고미술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공부를 하면서 얻은 영감을 작품에 그대로 반영시켰고 그의 작품은 독창성을 띠며 완성도를 갖추게 됐다. “건축은 도시와 자연이 만나는 것입니다.한국적인 전통미를 어떻게 현대적인 건축과 조화시키느냐가 과제였지요.하늘 돌 나무 흙 등 자연의 소재를 인공적인 콘크리트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기 위해 대비하고,대립도 시키고,조화를 시키면서 사물의 관계에 대해 늘 생각하게 됐습니다.관계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면 좋은 조형물이 되는 것입니다.” 디아 잉크하우스(1975년·도쿄) 온양박물관(1982년·온양) 돌의 교회(1991년·홋카이도) 조각가의 스튜디오(1985년·가가와) M빌딩(1991년·도쿄) 레어나드 번슈타인 기념관(1996년·홋카이도)에서부터 최근의 포도호텔(2002년·제주)까지 자연의 소재를 현대적인 건축공간에 자연스럽게 접목시킨 그의 대표작들은 이렇게 완성됐다. 지난해 완공된 제주의 포도호텔은 그의 완성된 작품세계를 한눈에 보여준다.부드럽게 흐르는 티타늄 소재의 은빛 지붕은 제주도의 넘실대는 물결,한라산의 능선과 오름,제주 민가의 초가 모양이 녹아들어 자연 친화적인 요소가 강조됐다. “그 지역의 특성과 재료가 어우러지는 건축물이 제가 만들고 싶은 건축물입니다.포도호텔은 유구한 세월이 흘러 폐허가 되더라도 티타늄 지붕은 제주의 풍광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남아 있을 것입니다.” 도쿄의 하네기 미술관에서 수년 동안 조선시대 미술품 소장전을 갖는가 하면 지난 5월에는 도쿄에 한국고미술컬렉션 박물관을 오픈할 정도로 고미술 전문가가 됐다는 그에게 조선의 민화와 도자기들은 ‘영원한 교과서’다.작품세계의 정신적,물질적 근간이 된 ‘한국 전통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 자신의 소장품을 작품들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한국적이다,일본적이다 라는 평가를 싫어한다는 그는 “동북아시아 공통의 정서인 동양적인 철학을 담고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작품들을 역사에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한국적인 전통미가 자연스럽게 녹아 든 독창적인 작품들을 통해 세계적인 건축가로 우뚝 선 그는 지금도 일본으로부터 귀화할 것을 권유받고 있다.하지만 고집스럽게 한국 국적을 지키고 있다.오히려그의 두 딸과 아들을 한국에서 교육시키면서 자신보다 더 완벽한 한국인으로 자라도록 했다. lo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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