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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동서 실종된 日여대생, 지방 호텔서 남자와…

    명동서 실종된 日여대생, 지방 호텔서 남자와…

    지난달 6일 서울 명동에서 실종된 일본 여대생의 행적을 쫒고 있는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실종된 A씨(21)가 지난달 말 지방의 한 호텔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2일 밝혔다. 경찰은 A씨가 찍힌 이 호텔 로비 폐쇄회로(CC)TV 자료를 확보한 뒤 호텔에 수사팀을 보내 행방을 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한 남성과 함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화면 상으로 볼때 억지로 끌려다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A씨가 납치됐을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조사를 통해 위치를 확보하고 정황파악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은 CCTV 자료 외에도 통화 및 신용카드 사용내역 등을 추적해 A씨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주한 일본영사관을 거쳐 카드 내역이 통보되는 데에 1~3일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가시적 성과를 얻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9월 26일 한국에 입국한 A씨는 10월 6일 숙소였던 명동의 한 관광호텔을 나간 뒤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A씨는 앞서 9월 19일부터 3일간 어머니와 함께 서울 관광을 하던 중 한 한국인 남성을 알게 됐다. 이에 따라 경찰은 A씨가 이 남성과 함께 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서울신문은 국내 최초의 신문 법의학 리포트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를 매주 수요일자(인터넷은 매주 화요일 오후부터 게재)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 및 일선 형사들의 자문, 치밀한 수사기록 분석 등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흔해서 더욱 잔인한 교통사고 위장 살인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살인현장 속 왠 대변(?)검사…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진실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8) 엽기살인마는 피가 다르다(?) 혈흔 속 性염색체가 ‘악마의 姓’ 을 지목하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물 마신던 A씨의 갑작스런 사망 왜?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엄마…알고보니 생활반응은 죽음의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성형수술 자국이 일러준 주검의 주민번호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20대 여성이 남긴 마지막 글씨…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바다에서 건진 토막시신의 신원찾기 18) 헤어드라이어 살인…‘전류반’은 못 숨겼네 몸에 남은 전기충격 자국이 완전범죄 밝혀내다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참혹한 죽음…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여성 시신 2구의 잔인한 진실게임…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그 남자 노리는 ‘한밤 통증’… 동양인의 저주? 청장년 급사 증후군 22) 70% 부패한 시신… 말없이 증언하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의 240㎜ 운동화…60대 노인의 트릭이었다 별무늬 자국의 비밀 24) 사회 첫발 20대女 살해한 택시기사, 흙탕물이… 돈 버리고 납치 이상한 택시 강도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DNA는 남자라고 말하는데 살인 현장에 남은 ‘그 남자’의 립스틱 26) 목졸려 숨진 60대 시신 크게 훼손됐는데…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7) 흉기에 17번 찔려 죽은 여자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28)부러진 뼈의 모양이 일러준 사고의 진실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28)부러진 뼈의 모양이 일러준 사고의 진실

     2004년 4월 28일 경기도 안성시 외곽의 도로변 산자락. 나물을 뜯던 동네 여인들이 뼈만 남은 사람 팔을 발견했다. 바로 옆 헤집어진 흙바닥 틈으로는 역시 백골이 된 머리뼈도 보였다. 주변엔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굶주린 산짐승들이 누군가의 묘소를 건드렸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추슬러 쏜살같이 산을 내려왔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동네 어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정상적으로 묘를 썼다면 그렇게 동물이 시신을 훼손할 정도로 얕게 묻을 리도, 근처에 썩는 냄새가 진동할 리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쇄골모양으로 부러진 뼈…메세레르 골절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 감식반은 엎어진 채 매장돼 있는 여성의 사체를 발견했다. 시신은 땅바닥에서 30㎝ 정도 깊이에 묻혀 있었다. 마음이 급한 누군가가 시신을 숨기려 한 정황이 역력했다. 최초 팔이 발견된 곳으로부터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서는 다른 신체의 일부도 발견됐다. 산짐승들 때문에 비록 주검은 여기저기 흩어졌지만, 결과적으로 그 덕에 여성은 억울함을 풀 기회를 얻었다. 여성은 분홍색 반소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키는 170㎝가량, 작지 않은 체구였다. 하지만 그 이상을 알아내기는 어려웠다. 신분증이나 지갑이 없었고, 손가락은 심하게 부패해 지문 채취가 불가능했다. 감식반은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긴 뒤 실종자 명단을 뒤지기 시작했다.  시신은 숨을 거둘 당시의 정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사인은 다발성 손상. 부러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갈비뼈는 무려 17곳이 나갔다. 부검의는 여성의 왼쪽 넓적다리 뼈와 아래위 팔 뼈를 유심히 살폈다. 부러진 곳은 하나같이 쐐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충격에 순간적으로 휘어지던 뼈가 더 버티지 못하고 충격의 반대방향으로 비스듬하게 갈라진 모습이었다.  메세레르 골절(Messerer´s fracture).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신체가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생기는 손상이다. 경찰은 일단 그녀가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으로 숨진 뒤 이곳에 매장된 것으로 추리했다.  그렇다면 추락과 교통사고 중 어느 것이 원인이었을까. 비밀은 부러진 넓적다리 뼈에 숨어 있었다. 부검의는 뼈를 추스러 부러진 부위의 정확한 높이를 쟀다. 사인이 교통사고였다면 그녀의 다리 뼈에는 자동차 범퍼와 부딪힐 때 생긴 골절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동차 범퍼의 높이는 차종마다 다르다. 일반 세단형 승용차는 50㎝ 안팎이고 소형트럭이나 소형버스는 60㎝,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대형트럭, 버스 등은 이보다 높다.  여기에는 물론 변수가 있다. 급제동 여부다.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는 순간, 자동차 앞부분이 아래로 숙여지기 때문에 손상 부위가 실제 범퍼의 높이보다 낮은 곳에 자리잡게 된다. 사고 당시 신발의 높이도 변수가 된다. 숨진 여성의 넓적다리 뼈는 발바닥으로부터 65㎝ 정도 높이에서 부러져 있었다. 결론적으로 여성은 승용차보다는 범퍼가 높이 달린 트럭이나 SUV 등에 부딪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여기서 잠깐, 보행자가 차와 부딪혔을 때 뼈가 견뎌낼 수 있는 강도를 따져보자. 흔히 예상하는 것보다 세지 않다. 건강한 성인 남자라도 시속 25㎞로 서행하는 경차(약 650~700㎏)와 부딪혀 뼈가 부러질 수 있다. 경차의 속도가 시속 45㎞까지 올라간다면 부딪힌 사람은 예외 없이 뼈가 부러진다. 물론 뼈가 약한 여자나 노인, 아이들은 더 작은 충격에도 뼈가 부러진다.  여성의 신원이 확인됐다. 열 달 전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인근 동네 새댁 A씨(당시 33세)였다. 이가 빠진 모양과 키, 사라질 당시 입고 있던 옷, 나이 답지 않게 많았던 새치까지 모든 것이 일치했다.  2003년 7월 초 A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구멍가게 여주인이었다.  “아마. 가게 문닫을 시간이었죠. 밤 10시 20분쯤 남편 끓여준다며 라면을 사갔어요. 아…새댁이 나간 후 쿵하는 소리가 났어요. 무슨 일이 있나 나가봤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10개월전 현장에 떨어진 손톱크기의 증거  강력반 형사들은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고, 사고차량의 운전자가 시신을 숨겼다고 판단했다. 이제 10개월 전 인적드문 시골길에서 뺑소니를 낸 범인을 찾을 차례. 막막해 하는 형사들에게 반장은 호미를 하나씩 건넸다. “다들 현장에 나가서 후딱 증거 찾아와.”  산도적 같은 덩치의 강력반 형사들은 투덜거리며 호미를 들고 A씨의 예상 경로를 따라 길가를 뒤졌다. 그렇게 현장을 뒤지기를 몇시간. 저쪽에서 “찾았다.”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두께 5㎜, 지름 2~3㎝ 정도의 엄지손톱 크기만한 플라스틱 조각 3개였다. 그곳에서는 몇년 동안 한 건의 교통사고도 없었다. 경찰은 차량정비 전문가들을 통해 그 조각들이 1991년~1996년식 SUV 갤로퍼의 방향지시등 덮개임을 알아냈다.  당시 안성과 충북 진천 등 그 일대의 해당 차종 소유자는 286명이었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A씨가 사라진 당일의 행적과 차량 보험처리 여부, 방향지시등 교체 여부 등을 조사했다.  한 명씩 용의선상 인물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범인이 먼저 움직였다. 최근 방향지시등은 물론 엔진까지 교체한 같은 동네주민 B씨(43)였다. 그가 경찰 조사를 받은 뒤 바로 잠적해 버린 것이었다. 그는 도주과정에서 가족에게 뺑소니와 암매장 사실을 시인했다. 경찰은 안성 시내를 뒤져 B씨를 검거했다.  그런 독한 짓을 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날 밤 B씨는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말했다. 앞에서 오는 대형 트럭의 전조등이 시야를 가리는 순간. 차량 오른쪽이 뭔가를 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그는 “들짐승이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차를 몰았다고 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몇 시간 후 다시 돌아와 살펴보니 논두렁에 A씨가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논두렁에서 새댁을 꺼내 차에 실은 그는 차를 몰았다. 우선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갈림길이 나왔다. 한쪽은 병원을, 다른 한쪽은 산을 향하는 길이었다. 핸들의 방향에 따라 그의 운명이 바뀌는 자리였다. 잠시 후 그의 차는 산쪽을 향하고 있었다.  유영규기자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연재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흔해서 더욱 잔인한 교통사고 위장 살인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살인현장 속 왠 대변(?)검사…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진실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8) 엽기살인마는 피가 다르다(?) 혈흔 속 性염색체가 ‘악마의 姓’ 을 지목하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물 마신던 A씨의 갑작스런 사망 왜?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엄마…알고보니 생활반응은 죽음의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성형수술 자국이 일러준 주검의 주민번호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20대 여성이 남긴 마지막 글씨…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바다에서 건진 토막시신의 신원찾기 18) 헤어드라이어 살인…‘전류반’은 못 숨겼네 몸에 남은 전기충격 자국이 완전범죄 밝혀내다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참혹한 죽음…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여성 시신 2구의 잔인한 진실게임…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그 남자 노리는 ‘한밤 통증’… 동양인의 저주? 청장년 급사 증후군 22) 70% 부패한 시신… 말없이 증언하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의 240㎜ 운동화…60대 노인의 트릭이었다 별무늬 자국의 비밀 24) 택시에 튄 흙탕물이 살인자를 뒤바뀌 놓다 돈 버리고 납치… 이상한 택시 강도 25) 담배꽁초에 묻은 립스틱 DNA 검사해보니 살인 현장에 남은 ‘그 남자’의 립스틱 26) 목졸려 숨진 60대 시신 크게 훼손됐는데…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7) 흉기에 17번 찔려 죽은 여자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8) 부러진 뼈의 모양이 일러준 사고의 진실…범퍼가 남긴 ‘메세레르 골절’
  • 토막살인 범인 잡으려 여관女에 최면 걸었더니…

    토막살인 범인 잡으려 여관女에 최면 걸었더니…

    “기억의 보편적 원리 중 하나는 실제 회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기억을 못하는 것은 저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재생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199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연보 중에서> 2003년 3월 23일 새벽 인천 중구의 한 무역회사 사무실. 이곳 사장 K씨(당시 46세·여)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무슨 원한에서인지 범인은 잔혹하게도 그녀의 몸을 17차례나 반복해 공격했다. 사인은 다발성 자창(刺創). 과다출혈로 말미암은 쇼크가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감식반은 몇 번이고 현장을 뒤졌지만 혈흔도, 지문도, 족적도 찾을 수 없었다. 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들 수 있는 상황에서 경찰은 어렵사리 목격자를 한 명 찾아냈다. 사건이 나던 날, 옆 건물에서 야간경비를 섰던 A씨였다. A씨는 자정 무렵 문제의 사건 현장으로 누군가 차를 몰고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았다. 차의 번호는 물론이고 종류나 색상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피곤함에 지친 야간 경비원이 옆 건물까지 챙길 이유는 없었다. 지능적인 범인은 칠흙 같은 밤 차의 미등까지 끈 채 차를 몰았다. 경찰은 A씨의 동의를 얻어 법최면(Forensic Hypnosis) 수사를 시도했다. 흐릿한 그의 기억 속에서 범인의 흔적을 끌어낼 마지막 기회였다. “시간을 5일 전으로 돌립니다. 당신은 야간근무를 서고 있습니다.” 최면상태에 들어간 A씨의 뇌는 사건에 관한 정보를 기대 이상으로 많이 담고 있었다. 언뜻 보긴 했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 뇌 한쪽에 묻어 두었던 기억들이다. 법최면은 이런 기억의 파편을 의식의 세계로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A씨는 차량이 들어온 시간을 22일 밤 11시 40분쯤으로 기억해 냈다. 주차 후 차에서 내려 회사로 들어가는 용의자의 뒷모습도 기억해 냈다. 평소에 보던 옆 회사 직원은 아니라고 했다. 최면 수사관은 다시 A씨의 기억을 23일 새벽 1시 30분으로 되돌렸다. 앞서 낯선 차가 빠져나갔다고 진술한 시간이다. 그렇게 기억의 실타래를 찾는 도중 A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남자가 황급히 나와 시동을 걸고 있어요. 화물차와 부딪힐 뻔하면서 급브레이크를 밟았어요. 어어…차의 모습이 보여요.” A씨의 뇌는 용케도 브레이크 등이 켜지는 찰나, 잠시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동차를 기억하고 있었다. 차는 빨간색, 일반 세단과는 달리 뒷 트렁크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A씨는 또 다른 목격자가 있음을 기억해 냈다. 부딪칠뻔한 화물차 운전사였다. 경찰은 해당 차량을 수배했다.   ●악마의 퍼즐 맞추기…잘못된 기억을 보정하라 법최면은 범죄수사에 최면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사건 현장에 단서는 없고 목격자나 피해자만 있을 때 최면을 걸어 희미한 기억을 구체화하고, 이를 통해 수사에 필요한 단서를 끌어내는 수사방식이다. 최면은 이렇게 뇌 어딘가에 숨어 있는 기억을 끌어내는 단서를 제공한다. 강호순과 정남규, 유영철까지 최근 초강력 흉악범죄 수사에는 모두 최면수사가 활용됐다. 아직 최면을 통해 얻어낸 목격자 진술의 법적인 증거능력은 없다. 단, 모아낸 증언을 통해 악마의 퍼즐과도 같은 사건을 재연하고 이를 통해 또 다른 증거를 잡아내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최면수사가 ‘기억의 왜곡’을 수정하는 역할도 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몽타주다. 보통 범죄 피해자들이 기억하는 범인의 얼굴은 실제보다 험상궂다. 두려움의 기억이 용의자의 인상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 법최면은 이런 오류를 최대한 보정한다. 실제 비오는 목요일의 살인자로 불린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범 정남규도 이렇게 만든 몽타주에 꼬리가 밟혔다. 2004년 2월 주택가 뒷골목에서 20대 여성이 살해됐다. 며칠 후 한 30대 남자가 현장 근처 중국집을 찾아왔다. 며칠 전 여자가 죽지 않았느냐고 물은 그는 주변을 서성이다 사라졌다. 경찰은 범행 현장을 다시 찾은 범인이라고 여겨 중국집 종업원에게 최면수사를 시행했다. 중국집 종업원의 최면 속에서 떠올린 얼굴. 2년 후 정남규를 잡은 수사관들은 깜짝 놀랐다. 몽타주가 그야말로 판박이였다. ●최면과 해리포터의 마법의 물약 그럼 최면은 누구에게나 통할까. 답은 ‘아니오’다. 최면은 무의식 속에서 기억을 찾아내는 작업이지만 그렇다고 혼수상태처럼 전혀 의식을 잃은 상황에서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최면에 절대 걸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에겐 최면을 걸 수 없는 이유다. 어렵게 최면을 거는 데 성공한다 해도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에 대해선 입을 닫는다. 이 때문에 범인 또는 경찰에게 뭔가 숨기고 싶은 사람에겐 최면수사는 무의미한 결과만을 가져온다. 10년 전인 2001년 5월 19일 서울 성동구 주택가에서 토막 난 4세 여아의 시신이 발견됐다. 9일 전 실종된 아이였다. 다시 3일 뒤 경기 광주의 한 여관에서 아이 시신의 나머지 부분이 발견됐다. 그 방에 투숙했던 손님이 놓고 갔다고 본 경찰은 범인의 인상착의를 알아내기 위해 여관 여종업원에게 최면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몇시간 후, 경찰은 최면수사를 포기했다. 최면유도가 반복됐지만 여종업원은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여종업원은 최면에 빠지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최면유도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 최면 수사관은 담당 형사에게 “여자가 뭔가 수상하다.”고 귀띔했다. 수상한 여성의 진실은 일주일 후 범인이 잡히고 나서 밝혀졌다. 종업원은 여관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성은 범인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간의 성매매 사실이 경찰에 발각될 것이 두려워 스스로 뇌를 굳게 닫은 채 최면을 거부했던 것이다. 최면유도에는 개인차도 있다. 이를 최면감수성이라고 불린다. 일반적으로 감정표현이 자유롭고 집중력이 강한 배우나 가수 등 연예인은 최면에 잘 걸린다. 반면 매사에 의심이 많고, 비판적인 판·검사, 형사, 기자 등 직업군은 최면에 잘 걸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치는 않지만 최면이 걸린 상황에서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를 속여 마음 속에 거짓을 진실이라고 각인시켜 놓은 경우다. 단언컨대 최면은 판타지 영화 ‘해리포터’ 속의 ‘베리타세움’(진실을 말하게 하는 마법의 물약)이 아니다. 오히려 더 연구하고 개발시켜야 할 ‘과학’이다. 그만큼 철저한 전문과 양성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연재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목졸려 죽은 시신의 ‘마지막 증언’ 운전석 아내 목졸라 살해하고 차는 낭떠러지로…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긴장한 범인이 현장에 남긴 대변이 결정적 증거를…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7) 여성 유린 위해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8) 핏자국 속 엽기 살인범의 족보 혈흔 속 性염색체로 ‘악마의 姓’ 찾아내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급성 수분중독으로인한 사망사건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 생활반응은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그녀가 성형수술만 안했더라도…”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죽은 여성이 남긴 데스노트…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바다에서 건진 토막시신의 신원찾기 18) 치밀한 남편 ‘전류반’은 못 숨겼네 찌릿찌릿 전기충격기 자국이 완전범죄 밝혀내다 19) 두려움이 만든 ‘자기 폭력적 자살’ 참혹한 죽음…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여성 시신 2구의 잔인한 진실게임…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그 남자 노리는 ‘한밤 통증’… 동양인의 저주? 청장년 급사 증후군 22) 70% 부패한 시신… 말없이 증언하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의 240㎜ 운동화 용의자 중엔 없는데…60대 노인의 트릭이었다 별무늬 자국의 비밀 24) 택시강도의 진실…흙탕물이 살인자를 지목하다 25) 담배꽁초에 묻은 립스틱 DNA 검사해보니 살인 현장에 남은 ‘그 남자’의 립스틱 26) 목졸려 숨진 60대 시신 크게 훼손됐는데…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 [씨줄날줄] 미꾸라지/임태순 논설위원

    기자 초년병이던 1985년 가을 남북 고향방문단·예술단 상호방문행사를 취재하게 됐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으니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때 북한대표단으로 내려온 노동신문 리길성 편집국장과 창덕궁에서 운(?)좋게 10분 남짓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강이 왜 이렇게 더러워졌느냐며 대동강 자랑을 한창 늘어놓던 그는 “용금옥이 아직도 있습네까.” 하고 물었다. 회사 선배들을 따라 가본 적이 있는 추어탕집이어서 지금도 있다고 답한 뒤 당신이 어떻게 거길 아느냐고 되물었다. 리 국장은 해방 전 서울에서 배재학교를 다닐 때 몇 번 가본 적이 있다면서 연신 입맛을 다셨다. 미꾸라지와 추어탕은 예전부터 우리와 친했다. 미꾸라지는 진흙탕이나 논바닥에서 사는데 추수를 위해 논에 고인 물을 빼면서 한편에 웅덩이를 만들어 놓으면 지천으로 잡을 수 있었다. 진흙 속으로 들어가기도 해 흙을 파헤쳐도 쉬 볼 수 있다. 미꾸라지는 단백질과 비타민A 함량이 높아 일찍부터 영양식으로 인기가 높았다. 특히 가을이 되면 살이 통통하게 올라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에는 보양식으로 그만이었다. 미꾸라지는 미끈미끈한 비늘이 있어 손으로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미끌미끌 잘 빠져나간다고 해서 미꾸라지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그런 만큼 대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남아 있다. 요리조리 살살 피해 다니거나 잘 빠져나가는 사람을 미꾸라지 같다고 하거나 별 볼일 없던 사람이 갑자기 높은 자리에 오르면 ‘미꾸라지가 용됐다’는 말을 쓴다. 한 사람이 조직 전체에 먹칠을 했을 경우에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는 속담으로 꾸짖기도 한다.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노다 요시히코 일본총리가 엊그제 저녁으로 추어탕을 먹었다고 한다. 그는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뒤 미꾸라지처럼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해 ‘미꾸라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꾸라지는 특유의 활동성으로 맑은 물을 흙탕물로 오염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고인물에 들어가 여기저기를 들쑤셔 변화와 개혁을 가져오기도 한다. 미꾸라지가 분탕질을 치면 기존 질서, 제도권에는 변화가 불가피해진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미꾸라지 같은 인물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한·일 관계에도 과거사 청산, 교과서 및 독도 문제 등 해묵은 과제가 많다. 노다 총리가 한·일 관계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미꾸라지 역할을 할 수는 없을까.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그 남자가 남긴 립스틱 자국…옷장 속의 시신

    그 남자가 남긴 립스틱 자국…옷장 속의 시신

    “301호라꼬예? 같은 신고만 벌써 5번째 아잉교? 근데 가봤더니 아무 것도 아이던데예.” “그기 아이라 사람이 죽었다니까요.” 2001년 7월 27일 경남 창원의 한 오피스텔. 결과적으로 경찰은 이틀간 같은 집에 5차례나 출동해서야 미모의 죽은 여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사망자는 인근에서 소주방을 운영하는 A씨(당시 41세)였다. 장롱 속 시신을 발견한 것은 남동생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열어 본 옷장에 그녀는 목이 졸린 채 숨져 있었다. 시신의 발견 시간을 늦추기 위해 누군가 그녀를 옷장 속에 넣어 놓은 것이었다. 이틀전 이웃들은 심하게 싸우는 소리를 들어 신고했다고 했지만, 누가 드나들었는지 본 사람은 없었다. 범인은 여성의 손과 발은 묶은 후 장롱 속에 우겨넣었다. 얼마간을 웅크려 있었는지 피가 몰린 자국인 시반이 등에 몰려 있었다. 피살자의 목에는 스타킹과 실타래가 칭칭 감겨 있었다. 손으로 목을 조른 후 스타킹 등으로 다시 한번 숨통을 조인 듯 보였다. 배꼽 위에는 6㎝ 정도 칼에 베인 상처가 나있었다. 싱크대 위 피묻은 과도가 범행 도구였다. 직장(直腸)온도 등을 통해 대략 계산한 여성의 사망추정 시간은 약 48시간 전. 하지만 경찰은 정확한 시간은 탐문수사를 통해 확인하기로 했다. 시신의 부패가 진행 중이면 과학수사반은 헨스게 도표 등 일반적인 사망시간 추정법을 쓰지 않는다. 무리한 계산으로 오차의 범위가 늘면 오히려 수사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망시간을 찾아내는 연구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여전히 미완의 단계다.   3명의 남자 DNA 범인은 그중 하나 A씨가 혼자 살았던 오피스텔은 살인현장 치고는 너무 깨끗했다. 출동한 경찰은 이 때문에 출동했다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손님이 왔었는지 방바닥엔 과일 접시와 2개의 방석이 놓여 있었다. 싱크대 속 밥공기도 2개였다. 반면 어디에도 외부침입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면식범에 의한 살인이라고 판단했다. 범인이 시가 200만원 상당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빼가지 않은 것도 이런 확신을 뒷받침했다. 4차례에 걸쳐 정밀 감식이 진행됐다. 감식반은 숨진 A씨를 덮었던 이불과 쓰레기 속 휴지, 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 지문이 묻은 생수통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청으로 보냈다. 검사 결과 현장에서 확인된 DNA는 모두 3개였다. 범인이 죽은 그녀 위에 덮어 놓았던 이불, 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 쓰고 난 휴지에서 각각 다른 세 남자의 DNA가 검출됐다. 이불에서 나온 것은 A씨의 애인 B씨 DNA였다.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그는 “애인 집에서 내 DNA가 나오는 건 당연하지 않으냐.”며 펄쩍 뛰었다. 그는 사건 전날 A씨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나마 밖에서 만났고 그 후에는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B씨는 알리바이가 확실했다. 경찰은 휴지와 담배꽁초에 흔적을 남긴 남성 2명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한달이 지나도록 DNA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 남편과 그녀가 운영하던 소주방의 단골, 이웃집 남자 등 경찰은 무려 100여명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지만 모두 DNA가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문감식 결과도 실망스러웠다. 범인을 잡았을 때 대조는 가능하지만, 해당 지문만으로는 범인이 누군지 특정 할 수 없다는 결과였다. 결국 경찰은 수사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그 남자가 남긴 립스틱 자국 사건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때 수사팀이 통신회사에 의뢰한 오피스텔 전화통화 내역이 날아왔다. 경찰은 당일 오전 8시 13분 마산의 한 지하상가 공중전화에서 걸려온 전화에 주목했다. 죽은 여성 A씨의 마지막 통화였다. 2분 49초 동안 A씨와 통화한 그는 같은 장소에서 연달아 2통의 전화를 더 걸었다. 경찰은 해당 통화내역을 따라갔다. 그곳은 M주점과 B 단란주점이었다. 두 주점과 A씨 소주방 사이에 공통점이 발견됐다. 최근 생활정보지에 여종업원 구인광고를 냈던 것이었다. M주점 사장은 수화기 너머 공중전화와의 통화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여종업원을 구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목소리가?, 어딘가 남자 같았어요.” 순간 수사관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담배꽁초에 남은 립스틱 자국이었다. “왜 그걸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범인은 트랜스젠더일 수도 있어.” 경찰은 트랜스젠더인 남자가 피해자와 구직 문제로 통화를 하고 그의 오피스텔을 방문했다가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그 일대 주점에는 트랜스젠더 한 명이 여종업원이 되고 싶다며 술집을 찾아왔다가 거부당하면 행패를 부리고 돈을 뜯어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추정연령도 인상착의도 같았다. 경찰은 이 사람을 찾는 데 총력을 다했다. 전국 경찰서를 상대로 트랜스젠더 관련 사건을 확인한 결과 제주에서 트랜스젠더 한 명이 술집 주인으로부터 돈만 챙겨 달아난 사건이 접수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이 확인한 그의 신원은 C씨(31)씨. 놀랍게도 범행 현장 생수병에 남긴 지문은 그의 오른손 지문과 일치했다. 결국 경찰은 고향으로 도주한 C씨를 검거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그는 최근 마산·창원·부산 일대를 돌며 술집 일자리를 구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8년 동안 여성으로 살아온 그였지만 성 전환자라는 것을 알아차린 주인들은 그를 내치기 일수였다. 사회가 자기를 차별한다고 생각한 C씨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행패를 부리거나 난동을 피웠다. 그렇게라도 돈을 받아내야 분이 풀렸다. 시신이 발견되기 이틀 전인 7월 25일, 아침 일찍 A씨와 전화통화를 한 그는 밤 10시쯤이 돼서 A씨의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일종의 면접이었는데 이야기가 잘 풀렸다. A씨는 마치 친언니처럼 C씨를 대했다. 저녁을 못 먹었다는 말에 선뜻 미역국에 밥까지 내줬다. 그렇게 고용 계약을 할때 쯤 C씨는 주민등록증을 내밀며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1번으로 시작하는 주민증을 본 A씨는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남자를 쓸 수는 없다고 했다.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C씨가 한바탕 악담을 퍼붓고 오피스텔을 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A씨의 최후의 한마디를 했다. “별 미친 놈 다보겠네. 세상이 참말로 말세다 말세?.” C씨는 순간의 분을 참지 못했고,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연재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목졸려 죽은 시신의 ‘마지막 증언’ 운전석 아내 목졸라 살해하고 차는 낭떠러지로…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긴장한 범인이 현장에 남긴 대변이 결정적 증거를…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7) 여성 유린 위해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8) 핏자국 속 엽기 살인범의 족보 혈흔 속 性염색체로 ‘악마의 姓’ 찾아내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급성 수분중독으로인한 사망사건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 생활반응은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그녀가 성형수술만 안했더라도…”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죽은 여성이 남긴 데스노트…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바다에서 건진 토막시신의 신원찾기 18) 치밀한 남편 ‘전류반’은 못 숨겼네 찌릿찌릿 전기충격기 자국이 완전범죄 밝혀내다 19) 두려움이 만든 ‘자기 폭력적 자살’ 참혹한 죽음…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여성 시신 2구의 잔인한 진실게임…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그 남자 노리는 ‘한밤 통증’… 동양인의 저주? 청장년 급사 증후군 22) 70% 부패한 시신… 말없이 증언하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의 240㎜ 운동화 용의자 중엔 없는데…60대 노인의 트릭이었다 별무늬 자국의 비밀 24)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4회]택시강도의 진실…흙탕물이 살인자를 지목하다
  • [영화 프리뷰] ‘괴물 3D’

    [영화 프리뷰] ‘괴물 3D’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 3D’가 지난 9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월드 프리미어)됐다. 2006년 개봉한 영화 ‘괴물’을 3차원(3D) 입체 영상으로 변환한 작품이다. 부산영화제의 화두 중 하나가 3D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일단 영화 전반에 걸쳐 3D의 입체 효과를 잘 살렸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줄 만하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한강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한 남자가 자살하는 첫 장면부터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되는 한강 고수부지나 교각의 공간감도 잘 살아 있어 한강변에 실제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괴물에게 납치된 강두(송강호)의 딸 현서(고아성)가 갇혀 있는 대형 지하 하수구도 깊이감이 더해져 공포감을 증폭시켰다. 3D로 출현한 괴물의 모습도 크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괴물이 물을 튀기며 한강 위로 솟구치거나 한강 잔디 밭 위를 질주하는 장면은 빠른 속도감과 함께 꽤 위압적인 느낌을 준다. 다만 괴물의 형체가 이미 공개돼 신비감이 없고 컴퓨터그래픽(CG) 느낌이 나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일반영상(2D)에서 볼 수 없었던 영화적인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분명 3D의 장점이다. 강두의 굵은 눈물이나 현서의 얼굴에 튀긴 흙탕물까지 자세히 보여 괴물과 온 가족이 벌이는 사투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애초에 2D로 기획된 작품이고 3D 카메라로 촬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격 3D 영화에 비해 만족감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순수 국내 3D 기술로 제작된 ‘괴물 3D’가 한국 영화계에 시사하는 점은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라이언킹 3D’가 재개봉해 흥행을 거둔 이후 한국에서 첫 재개봉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제작사 청어람 최용배 대표는 “3D 품질에는 자신있다. 최대한 빠른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체코에서 왔다는 한 프로듀서는 “몇 년 전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괴물’을 인상 깊게 봤다.”면서 “개인의 취향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굳이 3D로 변환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고 개인적으론 2D가 더 좋았다.”고 말했다. 3D 영화 자체에 대한 전망은 대체적으로 밝은 편이었다. 쉬커(徐克) 감독은 “시장 수요에 따라 3D가 계속 발전하고 있고 앞으로 영화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산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부산영화제서 첫 공개된 ‘괴물 3D’

     영화 ‘괴물 3D’가 지난 9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월드 프리미어)됐다. 2006년 개봉한 영화 ‘괴물’을 3차원(3D) 입체 영상으로 변환한 작품이다. 부산영화제의 화두 중 하나가 3D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일단 영화 전반에 걸쳐 3D의 입체 효과를 잘 살렸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줄 만하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한강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한 남자가 자살하는 첫 장면부터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되는 한강 고수부지나 교각의 공간감도 잘 살아 있어 한강변에 실제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괴물에게 납치된 강두(송강호)의 딸 현서(고아성)가 갇혀 있는 대형 지하 하수구도 깊이감이 더해져 공포감을 증폭시켰다.  3D로 출현한 괴물의 모습도 크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괴물이 물을 튀기며 한강 위로 솟구치거나 한강 잔디 밭 위를 질주하는 장면은 빠른 속도감과 함께 꽤 위압적인 느낌을 준다. 다만 괴물의 형체가 이미 공개돼 신비감이 없고 컴퓨터그래픽(CG) 느낌이 나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일반영상(2D)에서 볼 수 없었던 영화적인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분명 3D의 장점이다. 강두의 굵은 눈물이나 현서의 얼굴에 튀긴 흙탕물까지 자세히 보여 괴물과 온 가족이 벌이는 사투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애초에 2D로 기획된 작품이고 3D 카메라로 촬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격 3D 영화에 비해 만족감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순수 국내 3D 기술로 제작된 ‘괴물 3D’가 한국 영화계에 시사하는 점은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라이언킹 3D’가 재개봉해 흥행을 거둔 이후 한국에서는 첫 재개봉 사례라 흥행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하지만 체코에서 왔다는 한 프로듀서는 “몇 년 전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괴물’을 인상 깊게 봤다.”면서 “개인의 취향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굳이 3D로 변환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고 개인적으론 2D가 더 좋았다.”고 말했다.  3D 영화 자체에 대한 전망은 대체적으로 밝은 편이었다. 3D 영화 ‘용문비갑’을 제작 중인 쉬커(徐克) 감독은 “3D는 관객에게 거리감은 물론 입체감을 주기 때문에 좀 더 진실된 느낌을 줄 수 있다.”면서 “시장 수요에 따라 3D가 계속 발전하고 있고 앞으로 영화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산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4) 살인 진실 밝혀낸 토양감정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4) 살인 진실 밝혀낸 토양감정

    “택시 강도를 당했습니다. 여자 승객이 납치됐어요….” 2003년 4월 14일 새벽 경기 부천중부경찰서 관내 한 파출소. 왼손을 감싼 택시기사 A(당시 35세)씨가 급히 안으로 뛰어들었다. 손가락을 칼에 심하게 베인 상태였다. 경찰은 A씨를 일단 병원으로 후송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방금 자기가 당한 납치 사건을 신고했다. 그는 20대 초반의 여자 손님을 태운 것은 오전 5시 30분쯤이라고 했다. “손님을 조수석에 태우고 가다가 신호에 걸려 서 있는데 남자 2명이 갑자기 뒷문으로 들어오더라고요. 합승 손님인가 했는데 난데없이 그 손님을 찌르고 저도 공격했어요. 바로 칼을 겨누곤 고가도로 밑으로 가라고 하더군요.” 그는 차를 세운 뒤 정신없이 도망쳤다고 말했다. 범인들은 칼에 찔린 여자 손님을 뒤따라온 검은색 쏘나타에 태워 달아났다고 했다. ●돈 버리고 납치… 이상한 택시 강도 A씨의 말대로 여자 손님은 조수석에서 칼에 찔린 듯했다. 흥건히 젖은 조수석은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 줬다. 무엇보다 앞좌석을 적신 출혈량이 만만치 않았다. 이대로 끌려다닌다면 납치된 여성은 한두 시간 안에 사망에 이를 수 있었다. 경찰은 관내에 비상을 걸었다. 감식반원들은 좀처럼 범인들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괴한 2명이 칼을 휘둘렀다는 뒷좌석은 앞좌석보다 깨끗했다. 콘솔박스 앞에는 현금 3만원과 여성의 신용카드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범인들이 신용카드를 빼앗으려 했다면 카드에 지문 같은 흔적이 남아 있을 터. 감식반은 가변광원기를 들이댔지만 뭉개진 몇 개의 지문만 발견됐다. 조수석 시트 밑엔 지갑이 떨어져 있었다. 납치된 여성의 것이었다. “이거 돈 훔치려던 강도들 맞아? 그냥 다 두고 갔어. 좀 이상한 놈들인데….” 택시 강도는 큰돈을 노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벌이가 뻔한 택시를 노리는지라 100원짜리 동전까지 털어가기 마련이다. 무언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운전석 바닥엔 흙이 묻어 있었다. 차량 바퀴와 휠에는 흙탕물이 튀겨 있었다. 택시를 꼼꼼히 살핀 한 베테랑 감식반원이 택시기사에게 툭 질문을 던졌다. “시 외곽에서 손님들을 받았나 보죠?” “아니요. 전 시내만 뛰는 걸요.” 몇 시간 뒤 전화가 울렸다.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현장 보고였다. 최초 택시 강도 신고가 들어온 파출소에서 불과 2㎞ 남짓 떨어진 하천변. 수사반은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가는 길은 비포장이었다. 농로로 쓰이는 곳이라 곳곳이 심하게 파인 곳이 많았다. 숨진 여인은 B(21)씨.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꿈 많은 초보 회사원에게 범인은 사정 없이 칼을 휘둘렀다. 범인은 다리 위에 차를 세우고 그녀를 끌어내려 20m가량 데려간 듯 보였다. 혈흔은 다리 위에서 아래쪽으로 이어졌다. 경찰은 혈흔과 주변 흙을 모아 담았다. 6시간가량 현장 감식을 마치고 오는 길. 감식반원은 웅덩이 앞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린 고참 감식반원은 흙탕물을 용기에 담았다. “선배 뭐해요?” “범인 잡아야지….” 며칠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감식 결과가 나오자 형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차를 몰았다. 형사들이 몰려간 곳은 신고자 A씨의 집이었다. “당신을 강도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경찰은 처음부터 A씨가 미심쩍었다. 방금 겪은 일을 말하는 사람치곤 진술 내용이 허술했다. 특히 강도를 당할 때 상황도 구체적이지 못했다. 그나마 일관성 있게 진술한 내용도 설득력이 떨어졌다. 굳이 손님까지 탄 택시를 범행 대상으로 고른 점이라든가, 돈은 놔두고 손님을 납치해 간 점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었다. 결정적으로 A씨가 범인임을 알려준 것은 흙이었다. 운전석 깔판 밑과 운전석 하부에 붙은 흙을 분석한 결과 피해 여성이 발견된 하천변 토양과 일치했다. 택시 바퀴와 뒷문 문짝에 튄 흙탕물 역시 진입로의 웅덩이 성분과 정확히 일치했다. 택시 기사는 다리 밑에 그녀를 버린 뒤 택시 강도를 당한 척 자작극을 벌인 것이다. ●똑같아 보이는 흙… 1100가지 색을 담다 흙의 성분은 어떻게 구분할까.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광물학적인 분석으로 편광현미경 등을 이용해 조암광물의 형상과 입자 상태 등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광물은 3000여종. 하지만 기본 구성물인 조암광물은 수십종뿐이다. 법과학은 이 조암광물을 분석하고 따라간다. 두 번째는 흙 속에 함유된 유·무기물 성분 등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크로마토그래프법, 열분해 분석법, X선법 등이 있다. 흙 속에 함유된 유·무기물 성분은 그것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또 그 지역에 어떤 동물과 식물이 살고 있는지 등에 따라 색상의 차이를 나타낸다. 외국 연구 결과에 따르면 토양은 색상에 따라 1100여 가지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토양 감정이라고 하면 흙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감정은 흙 속에 섞여 있는 기름이나 유리, 비료, 농약, 심지어 섬유까지 대상으로 한다. 현장에 방울져 떨어져 있던 적하(滴下) 혈흔도 A씨 검거에 큰 역할을 했다. B씨가 이미 살해당한 뒤 하천변에 버려졌다면 현장에는 다수의 적하 혈흔이 남아 있기 힘든 상황이다.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은 현장의 혈흔을 수거해 국과수에 감식을 의뢰했고, 피는 택시기사 A씨의 것으로 판명 났다. 피해자를 칼로 찌르는 과정에서 생겨난 상처였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증거에 A씨는 입을 열었다. 7개월 전부터 개인택시 영업을 했지만 돈벌이가 신통치 않았다고 했다. 무리하게 택시를 구입한 데다 이전의 카드값까지 밀리면서 빚이 1억 5000만원까지 늘어나자 자기 택시를 이용해 강도짓에 나섰다고 했다. 국과수는 또 하나의 안타까운 검사 결과를 통보했다. 숨진 B씨의 폐에서 플랑크톤이 검출됐다. 그가 죽었다고 여긴 그녀가 이곳에서 마지막 숨을 쉬고 있었던 것이다. A씨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참혹하게 살해된 20대녀…택시기사를 잡은 것은 흙탕물

    참혹하게 살해된 20대녀…택시기사를 잡은 것은 흙탕물

    “택시강도를 당했습니다. 여자 승객이 납치됐어요….” 2003년 4월 14일 새벽 인천 부천중부경찰서 관내 한 파출소. 왼손을 감싼 택시기사 A씨(당시 35세)가 급히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손가락을 칼에 심하게 베인 상태였다. 경찰은 A씨를 일단 병원으로 후송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방금 자기가 당한 납치사건을 신고했다. 그가 20대 초반의 여자 손님을 태운 것은 오전 5시 30분쯤이라고 했다. “손님을 조수석에 태우고 가다가 신호에 걸려 서 있는데 남자 2명이 갑자기 뒷문으로 들어오더라고요. 합승 손님인가 했는데 난데없이 그 손님을 찌르고 저도 공격했어요. 바로 칼을 겨누곤 고가도로 밑으로 가라 하더군요.” 그는 차를 세운 후 정신없이 도망쳤다고 말했다. 범인들은 칼에 찔린 여자 손님을 뒤따라 온 검은색 소나타에 태워 달아났다고 했다. 돈을 버리고 사람을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A씨의 말대로 여자손님은 조수석에서 칼에 찔린 듯했다. 흥건히 젖은 조수석은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줬다. 무엇보다 앞좌석을 적신 출혈량이 만만치 않았다. 이대로 끌려다닌다면 납치된 여성은 한두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었다. 경찰은 관내에 비상을 걸었다. 감식반원들은 좀처럼 범인들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괴한 2명이 칼을 휘둘렀다는 뒷좌석은 앞좌석보다 깨끗했다. 콘솔박스 앞에는 현금 3만원과 여성의 신용카드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범인들이 신용카드를 빼앗으려 했다면 카드에 지문 같은 범인의 흔적이 남아있을 터. 감식반은 가변광원기를 들이댔지만 뭉개진 몇 개의 지문만 발견됐다. 조수석 시트 밑엔 지갑이 떨어져 있었다. 납치된 여성의 것이었다. “이거 돈 훔치려던 강도들 맞아? 그냥 다 두고 갔어. 좀 이상한 놈들인데….” 택시강도는 큰돈을 노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벌이가 뻔한 택시를 노리는지라 100원짜리 동전까지 털어가기 마련이다. 무언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운전석 바닥엔 흙이 묻어 있었다. 차량 바퀴와 휠에도 흙탕물이 튀겨 있었다. 택시를 꼼꼼히 살핀 한 베테랑 감식반원이 택시기사에게 툭 질문을 던졌다. “시 외곽에서 손님들을 받았나 보죠?” “아니요. 전 시내만 뛰는 걸요.” 몇 시간 뒤 전화가 울렸다.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현장 보고였다. 최초 택시강도 신고가 들어온 파출소에서 불과 2㎞ 남짓 떨어진 하천변. 수사반은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가는 길은 비포장이었다. 농로로 쓰이는 곳이라 곳곳이 심하게 팬 곳이 많았다. 숨진 여인은 B씨(21).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꿈 많은 초보 회사원에게 범인은 사정없이 칼을 휘둘렀다. 범인은 교각 옆 다리 위에 차를 세우고 그녀를 끌어내려 20m가량 데려간 듯 보였다. 혈흔은 다리 위에서 아래쪽으로 이어졌다. 경찰은 혈흔과 주변흙을 모아 담았다. 6시간가량 현장감식을 마치고 오는 길. 감식반원은 웅덩이 앞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린 고참 감식반원은 흙탕물을 용기에 담았다. “선배 뭐해요?” “범인 잡아야지.” 며칠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감식결과가 나오자 형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차를 몰았다. 형사는 몰려간 곳은 신고자 A씨의 집이었다. “당신을 강도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경찰은 처음부터 A씨가 미심쩍었다. 방금 겪은 일을 말하는 사람치곤 진술내용이 허술했다. 특히 강도를 당할 때 상황도 구체적이지 못했다. 그나마 일관성 있게 진술한 내용도 설득력이 떨어졌다. 굳이 손님까지 탄 택시를 범행대상으로 고른 점이라든가, 돈은 놔두고 손님을 납치해간 점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었다. 결정적으로 A씨가 범인임을 알려준 것은 흙이었다. 운전석 깔판 밑과 운전석 하부에 붙은 흙을 분석한 결과 피해여성이 발견된 하천변 토양과 일치했다. 택시 바퀴와 뒷문 문짝에 튄 흙탕물 역시 진입로에 웅덩이 성분과 정확히 일치했다. 택시 기사는 다리 밑에 그녀를 버린후 택시강도를 당한척 자작극을 벌인 것이다. 똑같아 보이는 흙…1100가지 색을 담다 흙의 성분은 어떻게 구분할까. 방법은 크게 2가지다. 첫번째는 광물학적인 분석으로 편광현미경 등을 이용해 조암광물의 형상과 입자 상태 등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광물은 3000여종. 하지만 기본 구성물인 조암광물은 수십종뿐이다. 법과학은 이 조암광물을 분석하고 따라간다. 두번째는 흙 속에 함유된 유·무기물 성분 등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크로마토그래프법, 열분해 분석법, X선법 등이 있다. 흙 속에 함유된 유·무기물 성분은 그것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또 그 지역에 어떤 동물과 식물이 살고 있는지 등에 따라 색상의 차이를 나타낸다. 외국 연구결과에 따르면 토양은 색상에 따라 1100여가지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토양 감정이라고 하면 흙만을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실제 감정은 흙 속에 섞여 있는 기름이나, 유리, 비료, 농약, 심지어 섬유까지 대상으로 한다. 현장에 방울져 떨어져 있던 적하(滴下) 혈흔도 A씨 검거에 큰 역할을 했다. B양이 이미 살해를 당한 뒤 하천변에 버려졌다면 현장에는 다수의 적하혈흔이 남아 있기 힘든 상황.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은 현장의 혈흔을 수거해 국과수에 감식을 의뢰했고, 피는 택시기사 A씨의 것으로 판명났다. 피해자를 칼로 찌르는 과정에서 생겨난 상처였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증거에 A씨는 입을 열었다. 7개월 전부터 개인택시 영업을 했지만 돈벌이가 신통치 않았다고 했다. 무리하게 택시를 구입한 데다 이전의 카드값까지 밀리면서 빚이 1억 5000만원까지 늘어나자 자기 택시를 이용해 강도짓에 나섰다고 했다. 국과원은 또 하나의 안타까운 검사 결과를 통보했다. 숨진 B씨의 폐에서 플랑크톤이 검출됐다. 그가 죽었다고 여긴 그녀가 이곳에서 마지막 숨을 쉬고 있었던 것이다. A씨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연재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목졸려 죽은 시신의 ‘마지막 증언’ 운전석 아내 목졸라 살해하고 차는 낭떠러지로…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긴장한 범인이 현장에 남긴 대변이 결정적 증거를…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7) 여성 유린 위해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8) 핏자국 속 엽기 살인범의 족보 혈흔 속 性염색체로 ‘악마의 姓’ 찾아내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급성 수분중독으로인한 사망사건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 생활반응은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그녀가 성형수술만 안했더라도…”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죽은 여성이 남긴 데스노트…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바다에서 건진 토막시신의 신원찾기 18) 치밀한 남편 ‘전류반’은 못 숨겼네 찌릿찌릿 전기충격기 자국이 완전범죄 밝혀내다 19) 두려움이 만든 ‘자기 폭력적 자살’ 참혹한 죽음…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여성 시신 2구의 잔인한 진실게임…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그 남자 노리는 ‘한밤 통증’… 동양인의 저주? 청장년 급사 증후군 22) 70% 부패한 시신… 말없이 증언하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의 240㎜ 운동화 용의자 중엔 없는데…60대 노인의 트릭이었다 별무늬 자국의 비밀24)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24회]택시강도의 진실…흙탕물이 살인자를 지목하다
  • “우면산사태, 산 정상 군부대와 무관”

    “우면산사태, 산 정상 군부대와 무관”

    지난 7월 말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집중호우’에 따른 토사 붕괴라는 결론이 나왔다.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던 산 정상 군부대는 산사태와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면산 산사태 원인조사단(단장 정형식 전 한양대 교수)은 지반이 약해진 상태에서 폭우가 계속됐고, 쓸려 내려온 토사와 나무 등이 배수로를 막고 넘치면서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15일 밝혔다. 조사단에는 방재·지질 분야 전문가 16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7월 29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우면산 산사태 피해가 큰 4개 지역에 대한 현장조사 및 대책수립 활동을 벌였다 사건 당시 래미안아파트와 신동아 아파트 지역에는 시간당 85.5㎜ 집중 호우가 내렸다. 계속된 호우로 지표면이 깎여 내려오기 시작했고, 흘러온 토사가 계곡 방향이 꺾이거나 계곡 폭이 좁아지는 구간에 잠시 머물다가 한꺼번에 아래로 흐르면서 아파트에 충격을 줬다. 시간당 112.5㎜가 내린 전원마을 지역은 산꼭대기부터 소규모로 시작된 산사태가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점 커졌고, 결국 흙탕물이 주택지 입구 배수로를 막고 넘치면서 침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시간당 85.5㎜ 비가 온 형촌마을에서는 산 위쪽 급경사와 계곡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산사태 물질이 생태공원 저수지에 모였다가 제방이 무너지고 이후 아래쪽 배수로까지 막히면서 가옥 피해가 발생했다고 조사단은 설명했다. 조사단은 주요 원인으로 꼽혔던 생태공원 저수지는 오히려 흘러내린 토사의 상당량을 가두어 두는 등 순기능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설계 당시부터 치수 기능이 없어 복원 시에는 사방댐 및 저수 기능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형식 단장은 “관할 구청에서는 우면산을 관리할 능력이 없어 시에서 구조 개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 정상 군부대가 산사태에 끼친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조사됐다. 신동아아파트, 전원마을 쪽으로는 군부대가 방류한 물이 전혀 없었고, 래미안아파트 쪽으로 방류한 물은 전체의 3.85%, 형촌마을 쪽은 3.4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부대 경계 부근에서 소규모 붕괴가 있었으나 전체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조사단은 전했다. 또 조사단은 군부대 방류구와 서울시 사방시설의 연결, 수목 솎아베기, 산사태 위험지구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서울시는 조사단이 제시한 복구대책을 참고해 내년 우기(5월) 전까지 복구공사를 완료할 계획이다. 또 전체 산에 전문가를 투입, 2012년까지 산사태 위험 요인 일제조사를 벌이고, 280억원의 재난 기금을 들여예방 사방 공사를 시행할 방침이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安風에 휘청이는 정치권] 박원순 여론조사 지지율 1위 ‘껑충’

    [安風에 휘청이는 정치권] 박원순 여론조사 지지율 1위 ‘껑충’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범야권이 ‘안철수 훈풍’에 힘입어 대여(對與) 단일 대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8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단일화를 이룬 지 이틀 만에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로 뛰어올랐다. 민주당 유력 주자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도 출마 쪽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야권은 이날 각 당 후보 선출 뒤 단일 후보를 확정하는 투트랙 경선에 합의했다. 박 이사는 조선일보와 미디어리서치 공동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51.1%로,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32.5%)을 크게 앞섰다. 삼자 대결에서도 박 이사는 19.2%를 얻어 한 전 총리(18.4%), 나 최고위원(18.3%)을 누르고 1위에 올랐다. 동아일보와 코리아리서치 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박 이사(49.8%)는 나 최고위원(33.5%)을 16.3% 포인트 차로 이겼다. 삼자 대결 역시 박 이사(19.8%)가 한 전 총리(13.2%), 나 최고위원(12.6%)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선두를 달렸다. 이날 박 이사는 한 인터넷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출마 의지를 굳힌 상황에서 안 원장의 출마설이 나와 충격을 받았다.”면서 “내 출마 의사를 주변에 알리기 전에 (안 원장의 출마설을) 알았더라면 출마를 접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이사는 출마를 결심한 배경에 대해 “원래 우리 사람의 근간이 되는 경제문제를 시민경제 관점에서 새롭게 일으켜 보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주변 관계자들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흙탕물에서 사는데 당신 혼자만 그렇게 살 것이냐며 압력을 넣었다.”면서 “겉으로는 정치진입을 거절했지만 속으로는 죄의식으로 남아 있었다.”고 고백했다. 안 원장이 더 도와주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는 “나로서는 (안 원장이) 도와주면 좋지만 염치없는 일이다. 그 일(단일화)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지원을 해줬다고 본다. 나머지는 내 책임이다.”라고 강조했다.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문제에 대해서는 “6일 만남 당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고 결정을 안 한 상태”였지만 “어쨌든 야권과 시민사회가 통합후보를 내야 한다는 것은 시대의 요구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한 전 총리는 금명간 출마 여부를 매듭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총리 측과 민주당 복수의 관계자는 “한 전 총리가 9일 오전 당 중진 회동에 참석해 출마 여부에 대한 확답을 할 것”이라면서 “현재로선 출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밝혔다. 당초 한 전 총리에게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돌출 변수였다고 한다. 한 핵심 측근은 “2012년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한 역할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지지율 1위 후보라는 결과가 발표된 뒤 한 전 총리의 고심이 시작됐다. 당 안팎의 출마 권유가 많아지면서 한 전 총리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 친노 인사, 참여정부 여성 인사들과 연쇄 회동을 가졌다. 한 전 총리는 이날 오후에도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만나 마지막 결론을 앞두고 조율 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폭우속 순직 차선우 집배원 옥조근정훈장 받았다

    폭우속 순직 차선우 집배원 옥조근정훈장 받았다

    기록적인 폭우 속에도 우편물을 동료에게 전달하고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고 차선우(29) 용인우체국 집배원에게 옥조근정훈장이 추서됐다. 집배원이 정부포상을 받은 것은 1980년 고 오기수 집배원(안면도우체국)이 폭설이 내리는 악천후를 뚫고 우편물을 배달하다 눈길에 미끄러져 순직한 이후 31년 만이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2일 용인우체국을 직접 방문해 차 집배원의 유가족을 위로하고 옥조근정훈장과 특별승진 임명장을 전달했다. 차 집배원은 지난 7월 27일 오후 1시 경기도 용인시 포곡읍 금어리에서 동료 집배원과 우편물을 배달하다 급류에 휩쓸렸다. 장대비가 쏟아져 무릎까지 불어난 빗물이 흙탕물로 변하면서 배수관의 위치가 가려진 것을 모르고 걸어가다 배수관에 빠져 실종됐다. 이후 3일 만에 현장에서 60여㎞ 떨어진 한강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동료 집배원에게 전달한 우편물 중에는 국내 M기업이 외국업체와 계약한 중요한 국제우편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외국인의 ‘나눔’

    외국인의 ‘나눔’

    현관 입구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낡은 옷가지, 흙탕물에 휩쓸려 시멘트 속살을 드러낸 벽지,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쌓여있는 이불더미까지….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신수동의 10㎡ 남짓한 단독주택 반지하 단칸방. 수마가 휩쓸고 간 권태훈(65) 씨의 작은 보금자리에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파란색 조끼를 입고 고무장갑을 낀 채 권씨의 집을 찾은 이들은 구청 공무원도, 경찰도 아닌 외국인 자원봉사단이었다. 연남글로벌빌리지센터 소속의 봉사단 10여명은 이날 하루종일 지역 곳곳을 돌며 수해를 입은 가정의 집수리와 청소 등 복구작업을 도왔다. 가장 먼저 권씨 집 대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중국인 정야리(?雅莉·36·여). 중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그는 3년 전 회사원인 노모(39)씨와 결혼하면서 한국으로 왔다. 2006년 중국 화남 지방에 상륙한 5호 태풍 ‘개미’로 많은 주민들이 피해를 겪었을 때도 발벗고 나섰다. 뉴스에서 폭우 소식을 접한 뒤 서울 방배동에서 한걸음에 달려왔다. 큰 고무 대야 안에 이불을 넣고 발로 밟으며 빨래를 하던 그는 “이사갈 때나 길을 헤맬 때 친절하게 도와주던 한국인들이 고마워 도움을 주고 싶어 나왔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온 대학생 샤넬(24·여) 역시 “한국은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라면서 “모두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아무리 퍼내도 흙탕물…” 복구중 폭우로 대피

    전날 사상 최악의 폭우와 산사태로 18명의 생명을 앗아 간 서울 우면산 일대는 28일에도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오전 8시쯤 방배2동 전원마을은 가구와 가재도구 등이 떠밀려온 토사와 나뭇가지 등으로 뒤엉켜 폭격을 맞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낮은 지대인 전원말2길 쪽 주택가에는 진흙과 쪼개진 나무조각들이 가득 들어차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을 위쪽 우면산 자락에서는 거센 흙탕물이 콸콸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주민들은 섣불리 복구작업에 나서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산기슭 아래 쪽에 사는 최기숙(58·여)씨는 새벽 6시부터 4시간이 넘도록 반지하 주차장에 가득 들어찬 진흙을 걷어내던 중이었다. 5명의 소방대원이 양동이를 들고 힘을 보탰지만 흙탕물 수위는 좀체 낮아지지 않았다. 최씨는 “이 마을에서 20년을 살았는데 이런 난리는 처음”이라면서 “작년 여름 태풍 때 위태위태하던 나무들을 뽑아달라고 했는데 그냥 둬 이렇게 화를 불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27일 오전 이 마을 주민 엄모(33)씨는 출근길에 나서다 토사와 나무에 휩쓸려 숨졌다. 임시대피소인 남태령 마을회관은 성토장이 됐다. 마을주민 손모(49·여)씨는 “산을 가만두질 않고 계속 깎아대니 안 무너지고 배기겠느냐.”면서 언성을 높였다. 이에 대해 서초구청 관계자는 “지난해 태풍 곤파스로 뽑힌 나무가 많아 지반이 완전히 안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집중호우가 쏟아져 산사태가 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오전 9시쯤 방배3동 래미안아트힐 아파트에서는 경찰·소방·군 병력 600여명이 동원돼 아파트 1~4층을 뒤덮은 진흙을 퍼내고 있었다. 한 삽씩 일일이 퍼내야 해 속도가 더뎠다. 우면산 쪽에 가까운 103·104동의 피해가 가장 컸다. 주민 홍윤상(56)씨는 “지난해에도 우면산 계곡쪽 토사가 남부순환도로 위로 넘어온 적이 있다.”면서 “이 때문에 구청이 배수로와 맨홀을 넓히는 공사를 하고 있던 것으로 알았는데 여름이 다 돼서 하면 뭘 하느냐.”고 지적했다. 이 아파트를 마주 보고 있는 예술의전당도 복구작업이 더디긴 마찬가지였다. 오전 내내 내린 비에 흙탕물 계곡은 전날에 비해 줄지 않았다. 오락가락하던 빗줄기가 오전 10시쯤 점차 굵어지자 복구작업 지원을 나온 공무원 20여명은 결국 삽을 놓고 버스정류장 밑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한편 27일 방배동 윗성뒤마을에서 산사태로 실종됐던 김모(67·여)씨가 이날 오전 10시 20분쯤 자신의 집에서 250m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또 방배동 전원마을에 매몰됐던 이모(68·여)씨와 우면동 송동마을의 김모(77·여)씨의 시신이 발견되는 등 사망자 수는 전날에 비해 3명 늘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구룡·화훼마을 520여가구 침수 “무허가 수리 엄두 못내다가 결국…”

    ‘부자동네의 대명사’ 타워팰리스가 내다보이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지난 27일 오전 대모산에서 흘러내려온 흙탕물이 판자촌인 이 마을을 휩쓸었다. 전체 1200여가구 가운데 513가구가 흙탕물 파도를 맞았다. 10가구 가운데 4가구꼴로 피해를 당한 셈이다. 무허가인 탓에 하수구 시설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유입된 물이 하수구로 배수되지 못하고 그대로 방안까지 들어왔다. 흙탕물이 방안에서 무릎 높이로 넘실거렸다. 28일 오락가락하는 빗속에서 주민들은 당장 입을 옷을 세탁하고, 이불에 뭍은 진흙을 털어내다 이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주민 이혜정(48·여)씨는 “어제(27일) 오후에는 집안으로 물이 허벅지까지 들어차 가전제품과 옷, 이불 등이 진흙과 뒤엉켜버렸다.”고 말했다. 이씨는 “어떻게 손을 대려 해도 댈 수가 없다.”면서 “진흙탕이 된 집을 물로 청소하고 싶어도 물이 역류할까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장지동 화훼마을 역시 이번 폭우의 직격탄을 맞았다. 나무 판자로 지붕을 막고 비닐과 차광막으로 덮어놓은 부실한 집은 시간당 100㎜ 안팎의 빗물을 견딜 수 없었다. 이 마을 10여가구의 지붕에서 빗물이 줄줄 새는 바람에 집 안이 물바다로 변했다. 주민들은 세숫대야와 양동이로 빗물을 받아내고 있지만, 집이 무너지지 않을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한 주민은 “무허가 건물이라 집을 조립식 건물로 교체하고 싶어도 구청이 허가를 내 주지 않았다.”면서 “지붕을 수리하고 싶어도 비용이 100만원은 족히 들어 엄두를 못 냈는데, 결국 이렇게 돼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주택 침수와 산사태 우려 등으로 서울 1060명(759가구), 경기 3441명(2697가구) 등 모두 4566명(34 80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농경지 645㏊가 침수됐다. 전국 11만 6716가구가 정전으로 불편을 겪었다. 경기 남양주 국도 43호선과 청계천, 한강 잠수교 등 도로 32개 구간이 통제됐고, 경원선(소요산∼신탄리역)과 경의선(문산∼도라산역) 운행이 중단됐다. 서울 한성여중 등 52개교와 강동교육지원청 등이 천장 누수, 벽체 균열, 지하실 침수, 옹벽·절개지 붕괴 등의 피해를 겪었다. 경기 일산고의 담장이 붕괴됐고, 고양 삼송초교와 고양외고는 각각 담장·음수대 붕괴, 지하 침수로 인해 접근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예술의전당과 국립국악원은 29일까지 모든 공연과 행사를 취소했다. 국립국악원은 30일 상설공연 ‘토요명품공연’부터 정상적으로 운영할 예정이고, 이날 창경궁에서 열리는 ‘국립국악원이 여는 창경궁의 아침’도 예정대로 진행된다. 한편 서울시에서 재개발·재건축 등이 벌어지는 45곳은 이번 폭우로 공사가 모두 멈춘 상태였지만 별다른 사고는 접수되지 않았다. 김진아·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토사가 쓰나미처럼…긴박했던 우면산 산사태 동영상

     지난 27일 서울 서초구 우면산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사태는 한편의 재난영화를 방불케할 만큼 강력했다. 쏟아져내려온 토사가 도로와 아파트 단지를 덮치면서 인근을 순식간에 마비시켰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산사태로 우면동과 방배동, 남태령 등에서 15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으며 20명이 다쳤다. 사망자 대다수가 쏟아진 토사에 매몰돼 숨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긴박했던 우면산 주위 주택가의 모습을 찍은 동영상이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에 속속 올라왔다.  시민들이 직접 찍어 올린 이 동영상에서 우면산 토사가 아파트와 도로를 급습하는 장면은 올해초 일본 동북부 해안을 강타했던 쓰나미를 연상시켰다. 주택가 사이로 흙탕물이 홍수가 난 계곡처럼 빠르게 흘러가는가 하면 산을 타고 내려온 토사가 숲을 덮치는 장면은 해일처럼 보일 정도였다.  한편 서울시는 인근 군 병력을 대거 투입해 복구작업에 나섰다. 28일 오전 24개 연대 6000여명이 사고 현장에 투입돼 토사제거 작업을 하고 있으며 소방당국과 함께 매몰자 수색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오후 1시 현재 집중 피해지역인 서초구 예술의 전당 앞 도로부터 사당사거리 사이 도로 통행이 양방향으로 통제되고 있다. 시와 경찰은 늦어도 오후가 지나기전 통행을 재개할 방침이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강남대로 ‘거친 계곡’ 돌변… 우면산아파트 산사태 ‘날벼락’

    강남대로 ‘거친 계곡’ 돌변… 우면산아파트 산사태 ‘날벼락’

    27일 오전 서울 전역이 최악의 물난리를 겪었다. 특히 ‘100년 만의 물 폭탄’을 맞은 관악구과 강남·서초구 등 서울 남부의 도로 곳곳은 거대한 수로로 변했다. 우면산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해 인근 마을이 토사에 파묻히면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강남] 오전 9시를 전후해 물 피해가 집중된 서울 강남 지역은 황토색 바다와 같았다. 출근길 회사원들은 버스 안에서 두려움에 넋을 잃었고, 거센 물살에 신발을 잃어버린 시민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오전 9시 30분, 지하철 2호선 강남역 4번 출구 앞 인도에는 출근 시간을 훌쩍 넘긴 회사원 십여명이 모여 망연자실 하늘만 쳐다봤다. 그들은 폭 10m의 도로 건너편에 바로 회사를 두고도 길을 건너지 못했다. 물바다를 눈앞에 둔 시민들이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인근 인도도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대학생 최유나(22·여)씨는 “영어학원에 가려고 강남역으로 왔는데 밖으로 나갈 수도, 다시 지하철을 타러 내려갈 수도 없어 40분째 꼼짝없이 갇혀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 출구 부근 인도 쪽으로 어지럽게 주차된 승용차에는 창문까지 흙탕물이 넘실댔다. 차를 끌고 나온 시민 중 일부는 차를 포기하고 빠져나와 근처 건물 안으로 대피하기도 했다. 역삼동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던 직장인 강탁주(51)씨는 “이대로 더 가다가는 차도 서고, 나도 꼼짝없이 갇힐 것만 같아 우선 몸만 빠져나왔다.”며 허탈해했다. 비슷한 시각, 서울 대치동 대치사거리는 성인 허리 높이까지 빗물이 차올랐다. 이 바람에 지하철 3호선 대치역과 인근 아파트 지하상가가 모두 물에 잠기는 등 큰 피해가 잇따랐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북쪽으로 난 출입문을 제외한 모든 출입구가 물에 잠겨 고립됐다. 대치사거리 도로가에 세워져 있던 승용차 12대가 지붕만 수면 위로 드러낸 채 잠겨 마치 ‘섬’을 연상케 했다. 강남 일대 기업들은 서둘러 직원들을 귀가시키는 등 조기 퇴근 러시도 이어졌다. 역삼동 푸르덴셜타워에 위치한 LIG넥스원은 전 직원에게 오후 3시 이후 자율 퇴근을 지시했다. 이 같은 조치로 강남권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이 분산된 데다 상당수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귀가하면서 우려했던 교통대란은 없었다. [우면산] 해발 293m의 우면산을 끼고 있는 서울 방배동·우면동 일대의 전원마을, 형촌마을, 송동마을 등은 마을 전체가 거대한 진흙탕으로 변했다. 관악구에는 100년 만에 최대인 시간당 113㎜의 국지성 호우가 쏟아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오전 8시 30분쯤 우면산에서 폭 60m, 길이 120m 규모의 산사태가 발생해 주택과 차들을 덮치면서 17명의 사망자를 냈다. 서울 방배3동 R아파트는 우면산에서 쏟아진 흙더미가 아파트 4층 높이까지 차올랐다. 이 바람에 4명의 사망자가 나고 수십채의 가옥이 파손됐다. 많은 양의 흙더미가 순간적으로 쏟아져 들어와 아파트 1층은 아예 현관문을 열 수 없었다. 피하지 못한 위층 주민들은 창문 밖으로 수건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했다. 이 아파트 2층에 사는 최모(57·여)씨는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베란다 창문이 깨지면서 흙과 나무더미가 쓸려 들어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구조에 나선 경찰과 소방 당국 관계자들은 높이 쌓인 토사 때문에 내부로 진입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오전 9시쯤 방배동 남태령 전원마을에서도 산사태가 발생해 7명이 사망했다. 오후 7시 현재 가옥 20채가 여전히 토사에 묻혀 있다.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군인 400여명과 경찰, 소방 당국은 추가 매몰자를 찾기 위해 밤늦도록 구조작업을 벌였다. 이날 수방사는 병력 1300여명과 장비 38대를, 서울경찰청은 3300여명의 경찰력을 투입해 서울 지역 재해 복구 작업을 지원했다. 서울 우면동 형촌마을도 우면산에서 쏟아져 내린 토사에 60여 가구가 파묻혔다. 우면산 산사태로 교육방송 EBS도 방송센터 스튜디오에 흙이 쏟아져 들어와 오후 1시 52분부터 약 15분가량 방송 송출이 중단되기도 했다. 또 서울과 경기의 초·중·고교 53곳을 비롯해 교육기관 60곳이 침수되거나 붕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강북] 서울 중심부와 강북 쪽에서도 크고 작은 피해가 잇따랐다. 지난해 추석 폭우 때 물에 잠겨 시민들의 비난을 샀던 광화문 일대는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물에 잠겼다. 오전 한때 광화문 일대 시청 방향 5개 차로 가운데 3개 차로가 침수돼 심각한 교통 체증이 빚어졌다. 동화면세점 앞 도로는 흙탕물이 무릎까지 차 넘쳤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측은 “피해 상황이 계속 신고되고 있어 추가 인명·재산 피해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윤샘이나·김진아기자 sam@seoul.co.kr
  • 北 수해사진 조작 의혹… “인도적 지원 노린 듯”

    北 수해사진 조작 의혹… “인도적 지원 노린 듯”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6일 송고한 대동강변 수해사진을 놓고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미국 AP통신은 17일(현지시간) 폭우로 완전히 침수된 대동강 주변 도로로 주민 7명이 걸어가는 장면이 담긴 사진에 대해 ‘디지털 기술로 변형됐으며 물에 비친 상이 정확하지 않다.”며 삭제 사실을 고객들에게 공지했다. 실제로 사진 속 행인들은 옷에 흙탕물이 튄 흔적이 없는 등 어색한 모습이다. 여기에 북한의 사진 조작 의혹이 이번에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AP의 분석에 무게를 실어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직후인 10월 북한 매체가 김 위원장의 축구경기 관람 사진을 공개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로 당시에는 북한 권력층 내부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로 해석됐다. 만약 이번에도 사진을 조작했다면 물난리를 근거로 국제사회 인도적 지원을 끌어내려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서울광장] 양건 감사원장께 드리는 편지/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양건 감사원장께 드리는 편지/최광숙 논설위원

    감사원장님은 기억나지 않겠지만 1980년대 대학생이던 필자가 다니던 대학에 외부 강사로 ‘헌법’을 강의하실 때 한 학기 내내 뵈었습니다. 지금까지 따로 만나 인사드린 적이 없으니 제자라고 내세울 처지도 못 되지요. 예의 없는 제자가 옛 스승께 어쭙잖게 펜을 든 것은 작금의 감사원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입니다. 검은 돈을 받고 감사 무마 청탁에 나선 감사위원(차관급), 구제역 최일선 감사 현장에서 피감기관들과 음주가무를 즐긴 감사관들, 해외출장 간 군 장성을 문책 요구 대상에 넣었다가 뺀 천안함 감사. 국민들 눈에 비친 나사 빠진 감사원의 현주소입니다. 나랏돈이 허투루 쓰이는 걸 제대로 잡아 낼는지, 공직사회의 기강을 다잡는 추상같은 영(令)을 세울 수 있을는지 걱정입니다. 여기저기서 “너나 잘하세요.”라는 조롱이나 받는 건 아닌지요. 감사원의 상징이 조선시대 암행어사의 ‘마패’인 것은 아시지요.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한 은진수 전 감사위원 구속 건은 암행어사가 도적들과 한패가 돼 선량한 백성들을 등친 것과 다를 바 없죠. 나쁜 놈들 잡아들이라 나랏님이 마패까지 내줬더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그래도 감사원 맨들은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 인사의 일”이라며 선을 그으려 합니다. 하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내부 인사라고 그리 큰소리칠 위치에 있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원내에서조차 “특정인은 운이 좋아 저축은행 사태에서 비켜난 것 같다.”는 식의 얘기가 흘러나왔던 것을 보면 평소 엄격한 자기관리와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감사원 맨들이 없진 않나 봅니다. 앞으로 정당 출신 인사는 감사위원이 될 수 없도록 한다는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내부 인사, 외부 인사 각 3명씩 땅따먹기 하듯 나눠 먹는 감사위원.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자질 검증 없이 아무나 가서야 되겠습니까. 금명간 은 전 위원의 후임과 오는 11월 퇴임할 하복동 위원 후임 등 감사위원 자리가 두 자리나 비니 그 자리를 노린 이들의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죠. 이참에 감사위원 인선을 한층 깐깐하게 스크린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 조선시대 감사원 역할을 하던 사헌부의 관료인 대관(臺官)만 하더라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4대 친족까지 ‘현미경 검증’을 했습니다. 다른 어떤 관직보다 더 엄하고 까다롭게 인선을 했지요.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규찰·탄핵해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한 인물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죠. 공정과 청빈은 기본이고, 뛰어난 식견과 강직한 성품도 필수였죠. 제약도 많았지요. 첫째, 공금횡령, 부정축재 또는 뇌물을 받은 탐관오리의 아들·후손은 대관에 임명되지 못했지요. 둘째, 정실에 흐르지 않도록 다른 관직보다 훨씬 심한 상피제(친족이 같은 관청·지역에 일하지 못하게 한 제도)의 적용을 받았지요. 셋째, 본인을 비롯해 부모와 처의 4대조(代祖) 허물까지 샅샅이 뒤졌다죠. 오늘날 총리·장관 인사청문회는 저리 가라입니다. 취임 전 일이긴 해도 사실 저축은행 사태 전부터 이미 감사원은 망가져 가고 있었습니다. 과거 정권에서 청와대에 파견 나갔던 감사원 출신들이 체급도 안 되는데 대통령과의 학연·지연으로 사무총장으로 금의환향하면서 감사원은 이미 무너졌습니다. ‘줄 잘 서면 된다.’는 정치 학습으로 감사원 기강은 해이해졌고, 출세의 처세술을 익힌 이들의 벼락 승진은 감사원 문화를 퇴행시켰지요. 실세 사무총장이 감사원장을 뒤에서 좌지우지하는 희한한 일이 생긴 것도 그리 먼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현재 작금의 사태들이 터진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닙니다. 은 전 위원만 하더라도 맑은 물을 흐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아니라 이미 감사원은 미꾸라지가 놀기 좋은 흙탕물이었던 거죠. 지금 감사원은 개원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흐트러진 내부 조직부터 다잡으셔야 합니다. 감사원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bori@seoul.co.kr
  • [日 방사능 공포] 방사능 오염수 1만1500t 방류… 바다에 펜스 설치해 가둔다

    [日 방사능 공포] 방사능 오염수 1만1500t 방류… 바다에 펜스 설치해 가둔다

    후쿠시마 제1원전 2호기 방사능 오염수를 차단하기 위한 1차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도쿄전력은 취수구 부근의 바닷물을 가두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 또 확산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착색제를 투입하고 러시아의 방사능 오염수 정화 장비를 도입하는 등 다각도로 ‘물과의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와 함께 상대적으로 방사성물질의 농도가 낮은 원전 내 ‘집중폐기물처리시설’ 오염수 1만t과 5·6호기 지하수 보관 시설의 저농도 오염수 1500t 등 총 1만 1500t을 4일 바다로 방출했다. 집중폐기물처리시설의 오염수는 오후 7시부터, 5·6호기 지하수 보관 시설의 오염수는 오후 9시부터 방출했다. 2호기 터빈 건물 지하에 고인 고농도 오염수를 저장하기 위해 저농도 오염수를 빼내기로 한 것이다. 방사성물질 농도가 법정 기준의 100배 이상이지만 인체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것이 도교전력의 주장이다. 이날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지난 2~3일 도교전력 기술자들이 콘크리트와 물을 흡수하면 팽창하는 폴리머 소재 등을 이용, 오염수가 흐르고 있는 관을 막으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원자력안전보안원은 이날 오전 7시 현재 취수구 인근의 균열 부위에서 오염수가 계속 나오고 있고 그 양도 감소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도교전력이 내놓은 두번째 카드는 오탁방지막(silt fence)이다. 오탁방지막은 부표를 이용, 해수면에서 해저까지 막을 쳐서 해수의 이동을 막는 시설로 주로 토목 공사 때 흙탕물 등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된다. 원전 인근 수심은 5~6m로 기술적으로는 설치가 가능하다. 니시야마 히데히코 원자력안전보안원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도교전력의 이 같은 계획을 전한 뒤 “방지막 설치에는 며칠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2호기 취수구에 먼저 설치하고 4호기 인근 제방에도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교도통신은 보도했다. 또 방사능 오염수가 관이 아닌 다른 곳에도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갱도 주변 땅속에 속성 건조 시멘트와 약품을 주입, 지반을 굳히는 작업도 강구하고 있다. 현재 관 아래에는 돌들이 깔려 있어 이곳이 또 다른 오염수의 이동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교전력은 오염수 유출이 멈추지 않음에 따라 오전 7시 10분쯤 13㎏의 착색 분말을 상류쪽 수직 갱도에 투입했다. 물의 속도와 양을 관찰, 오염수가 취수구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측정하고 문제가 된 전선 보관 시설 내 균열 외에 추가로 오염수가 새고 있는지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방사성물질 오염수를 정수하는 해상 장비 ‘란디시’(은방울꽃이라는 뜻)를 일본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리아노보스티 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일본 측이 먼저 장비 제공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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