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흔적을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기강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은퇴자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한식당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샴페인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088
  • “닭의 발버둥이 예술작품? 학대는 예술 아냐”

    “닭의 발버둥이 예술작품? 학대는 예술 아냐”

    동물권 활동가들이 지난 8일 갤러리현대를 찾아 이강소 화백의 ‘소멸’ 전시에 대해 항의한 기습 시위를 벌였다고 밝혔다. 동물권 단체 MOVE는 “이강소 화백의 퍼포먼스 ‘무제-75031’을 재현하기 위해 전시장에 닭을 장시간 묶어두고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일부 네티즌들이 갤러리현대 측에 전시 중단을 요구하며 항의했지만, 수용되지 않아 시위를 계획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강소 화백의 ‘무제-75031’은 발목을 끈으로 묶은 닭을 석고가루가 뿌려진 전시장에 풀어놓고 자유롭게 돌아다닌 흔적을 남긴다. 앞서 갤러리현대는 이강소 화백의 닭 퍼포먼스를 재현하겠다고 밝힌 뒤, 동물권 단체와 네티즌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시위에 참여한 한 활동가는 “닭이 묶여 있어야 했던 환경은 석고가루 범벅이 되었으며, 깨끗한 물과 먹이를 받지 못한 듯 보였다. 닭의 생태적인 조건을 배려하지 않은 동물 학대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에 동물권 단체 MOVE는 “이강소 작가의 닭 퍼포먼스에 대해 지속적인 동물학대 논란이 있었음에도 전시를 추진한 현대 갤러리의 생명윤리 의식 수준이 실망스럽다”며 “시대착오적이고 후진적인 전시”라고 비판했다. 한편 MOVE는 오는 12일 오후 1시 갤러리 현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죽어가는 어머니 호소에 9년 만에 고향 돌아온 아들

    죽어가는 어머니 호소에 9년 만에 고향 돌아온 아들

    9년 동안 침묵을 지킨 아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면서 죽어가는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이 결국 이루어졌다. 3일 중국 매체 더페이퍼 보도에 따르면, 장시성 이황현 출신의 양렌룽(32)은 한때는 고향에서 가장 우수한 학교 성적을 받는 가족의 자랑거리였다. 그는 2003년 베이징항공항천대학 항공디자인과에 입학해 대학 재학 중에 부모님을 정기적으로 찾았다. 그러나 5년 뒤 아들 양렌룽을 보러 베이징을 방문한 어머니 류시누는 아들이 대학 졸업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들은 부모님께 다시 재시험을 치겠다고 약속했지만 몇 달 후 아버지는 은행으로부터 아들의 대출금 3만 위안(약 492만원)을 납부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대출금을 지불한 아버지는 전직이 잦은 아들에게 안정적인 직장을 찾으라고 타일렀다. 시간이 흘러 2009년 3월, 아버지가 아들에게 다시 연락하자 아들은 묵묵부답이었다. 대신 ‘자신은 베이징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문자만 돌아왔다. 걱정이 된 양씨의 부모는 2013년까지 수차례 아들을 찾아다녔지만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어머니 류씨는 그 사이 자궁암에 걸렸고, 죽기 전에 아들을 만나고 싶어 언론을 통해 공개적인 호소에 나섰다. 그녀는 “나는 자궁암 말기로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죽기 전 아들을 보고 싶다”면서 “아들을 다시 보지 못하면 치료도 의미가 없다. 화학요법 치료를 계속 받지 않을 것”이라고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의 공개편지를 본 아들 양씨는 경찰에 연락을 취해 가족의 전화번호를 얻었고, 9년 만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대학 졸업에 실패한 후 가족과 연락을 끊고 살아왔다. 매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했다”며 부모님께 용서를 구했다. 현지 언론은 아들의 전화를 받은 후 어머니 류씨는 자궁암 치료를 재개했고, 아들이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상하이 병원으로 오고 있는 중이라 모자가 곧 재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웨이보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대화하듯 읽히는 평범한 이들의 파란만장 인터뷰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대화하듯 읽히는 평범한 이들의 파란만장 인터뷰

    거리의 인생/기시 마사히코 지음/김경원 옮김/위즈덤하우스/364쪽/1만 6000원육성을 듣는 순간은 각별하다. 한숨, 웃음, 머뭇거리는 순간, 단어를 고르는 시간이 문장을 만든다. 생략과 부언의 조합이 성격을 드러낸다. 듣다 보면 내용의 생경함이나 친숙함과 무관하게 이 사람이 지금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공감이 번져난다. 외국인 게이, 트랜스젠더, 섭식장애인, 성 산업 종사자인 싱글맘, 노숙자라도 그렇다. 나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이들이라도 그렇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문학을 읽으라고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와는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인터뷰를 읽을 때 인간에 대한 이해는 더 깊어진다. 성공한 자의 찬양 일색 인터뷰도 인터뷰하는 이가 겹쳐지고 행간과 생략이 짐작되면 종이 너머의 사람이 더 풍부하게 다가온다. 하물며 더 많은 행간, 더 많은 생략의 흔적을 보여 주는 이 낯선 형식의 인터뷰는 어떨까.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 뒤 졸여내고 압축해서 법칙을 뽑아내는 것이 직업인 사회학자가 구술 채록의 생생함을 그대로 살려 낸 인터뷰를 묶어 책으로 냈다. 편집을 최소화했기에, 읽다 보면 그냥 내가 대화하는 것 같다. 혹은 친구들이 대화하는 것을 옆에서 나른하게 지켜보는 느낌이다. 그들이 웃으면 웃고 싶어지고, 가끔은 말참견하고 싶어진다. 그들은 유명인도 아니고 역사에 남을 만큼 성공한 이도 아니라는 점에서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삶은 흔히 볼 수 있는 삶은 아니다. 루이스는 남미에서 떠들썩한 친척에게 둘러싸여 살다가 청소년기에 일본으로 들어왔다. 외국인이자 게이인 그의 삶은 ‘이중의 소수자’라 할 만하다. 리카는 ‘뉴하프’다. 남자이지만 여성의 모습으로 유흥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일찌감치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은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생의 즐거움을 찾아낸다. 마유는 가정에 전혀 문제가 없지만, 섭식장애를 겪으면서 사회적 차별과 편견에 맞선 자신만의 견해를 가다듬는다. 요시노는 세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다. 몰락한 남편의 빚까지 떠안게 돼 어쩔 수 없이 성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니시나리 아저씨는 노숙자다. 본명조차 알 수 없는 이 남자는 순탄치 못했던 자신의 인생을 변명, 허세, 불완전한 기억으로 뒤섞어버린다. 다섯 명과 나누는 대화는 느슨하지만 깊이 귀 기울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더듬어 찾아가던 기억, 마음대로 안 되는 일들, 나 자신을 알기 위한 시간들. 그러한 삶이 겹치고 겹쳐서 지금 여기를 만든다.
  • 음표 뒤 영성을 찾아…리스트·쇼팽 앨범 낸 첼리스트 양성원

    음표 뒤 영성을 찾아…리스트·쇼팽 앨범 낸 첼리스트 양성원

    첼리스트 양성원이 19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리스트와 쇼팽의 작품을 ‘커플링’한 앨범을 6일 발매한다.양성원이 이번에 발표하는 음반은 이탈리아 출신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와의 새 음반 ‘사랑의 찬가‘다. 리스트의 ‘잊힌 로망스’와 ‘슬픔의 곤돌라’, 엘리지 1·2번 등을, 쇼팽의 첼로 소나타와 ‘서주와 화려한 폴로네이즈’ 등을 각각 녹음했다. 특히 리스트의 피아노 독주곡 ‘위안’과 ‘사랑의 찬가’, 쇼팽의 ‘녹턴 20’번을 각각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이중주로 편곡한 곡도 선보였다. ‘사랑의 찬가‘는 두 연주자가 직접 편곡한 버전이다. 쇼팽과 리스트는 동시대를 살면서도 서로 전혀 다른 성격과 개성을 지닌 음악가였다. 리스트가 화려한 기교의 비르투오소로서 인기를 누린 피아니스트였던 반면 쇼팽은 내성적인 성격의 살롱 피아니스트에 가까웠다. 리스트는 쇼팽이 파리에서 정착하며 인연을 맺었다. 자신처럼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이 나타나면 경계심을 나타냈던 리스트였지만, 쇼팽에게만큼은 그의 음악성을 인정하며 존경의 태도를 보였다. 쇼팽이 39세에 세상을 뜨고 리스트는 쇼팽 전기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양성원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악보 속 음표 뒤에 숨어 있는 리스트와 쇼팽의 정수, 영적인 음악을 연주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며 두 작곡가가 변화하는 과정을 탐구했다. 그는 “리스트의 후기 작품들은 점점 ‘쇼팽화(化)’ 됐고, 내면에서 영적인 질문을 계속한다”면서 “반면 쇼팽은 세상을 떠나기 전 힘겹게 병과 싸우면서 미처 찾지 못했던 새로운 영토를 발굴하려는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두 작곡가 모두 첼로를 위한 곡을 많이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첼리스트들에게는 다소 친숙하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양성원은 쇼팽에 대해 “첼로의 편안함과 첼로라는 악기의 특징을 잘 이해하고 썼다고 보기 어렵지만, 모국(폴란드)에 대한 그리움, 그 당시 느낀 내적 투쟁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함께 연주한 파체와의 작업에 대해 “그 어느 누구보다도 진지한 음악가이고, 파체와는 하루 종일, 또는 몇 주, 몇 달을 거쳐 작업할 수도 있다”며 “우리 둘 다 같은 나이대의 두 아이가 있어 음악작업이 끝나고 나누는 얘기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양성원과 파체는 오는 10월 이번 음반에 수록된 레퍼토리로 연주회를 열 예정이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이집트서 7000년 전 ‘신석기 마을’ 발견…피라미드보다 오래돼

    이집트서 7000년 전 ‘신석기 마을’ 발견…피라미드보다 오래돼

    이집트 나일강 유역에서 약 7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의 흔적이 발견됐다. 미국 CNN 등 외신은 3일(현지시간) 이집트 고대유물부 성명을 인용해 고고학자들이 이집트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기원전 5000년 전인 신석기 시대에 형성된 이번 마을은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북쪽으로 약 140㎞ 떨어진 다칼리야주(州)의 비옥한 땅 텔 엘-사마라(Tell el-Samara)에서 발견됐다. 이집트와 프랑스의 고고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은 현지에서 발견된 저장고 터에서 동물의 뼈와 식물의 흔적을 확인했으며 도기와 석기의 파편도 발견했다. 발굴 조사는 지난 2015년부터 시작됐다. 연구팀은 “이 마을은 고대 이집트를 대표하는 기자 대피라미드의 건축이 시작된 시기보다 2500년 정도 빨리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도 발굴 작업을 계속 진행하고 출토된 유기물을 분석해 이집트 농업 역사의 기원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단서를 찾아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집트에서는 지난 7월 나일강 하구 알렉산드리아에서 뚜껑을 연 흔적이 전혀 없는 석관이 발견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었다. ‘정복왕’ 알렉산더 대왕의 무덤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집트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열린 석관 속에는 왕족이 아닌 병사로 추정되는 미라 3구만이 오수에 잠긴 채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이집트 고대유물부(위), 구글 지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보츠와나에서 상아만 쏙 빼내간 코끼리 87마리 사체 발견

    보츠와나에서 상아만 쏙 빼내간 코끼리 87마리 사체 발견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야생동물 보호구역 근처에서 87마리의 코끼리 사체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환경단체 ‘국경 없는 코끼리’는 세계적인 관광 명소인 오카방고 삼각주 근처를 항공 조사한 결과 아프리카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규모의 밀렵 흔적을 확인했다. 보츠와나는 밀렵꾼들을 엄하게 응징해 13만 마리의 코끼리가 서식할 정도로 아프리카 최후의 코끼리 천국으로 여겨졌으나 목그위시 마시시 대통령이 취임한 뒤 지난 5월 밀렵 감시 부대를 무장해제시킨 것이 이런 대량 학살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보츠와나는 이웃 앙골라, 나미비아, 잠비아 등과의 국경 통제가 엉성해 밀렵꾼들이 월경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87마리의 코끼리 사체 대부분은 상아만 쏙 빼내간 상태였다. 지난 3개월 동안 5마리의 흰색 코뿔소도 밀렵에 희생됐다. 국경 없는 코끼리의 마이크 체이스 박사는 “충격적이다. 완전 경악할 지경이다. 지금까지 아프리카에서 봐왔고 읽어왔던 것보다 훨씬 대규모로 코끼리 밀렵이 행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2015년에 수행했던 코끼리 센서스 자료와 비교했을 때 아프리카 어느 다른 지역에서보다 이곳에서 밀렵 규모가 곱절로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센서스를 통해 아프리카 코끼리들은 지난 10년 동안 3분의 1이 죽임을 당했고 탄자니아 코끼리의 60%는 5년 동안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됐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색다른 인터뷰] 열심히 독립운동했던 유일한 왕손… 아버지 의친왕은 재평가돼야 한다

    [색다른 인터뷰] 열심히 독립운동했던 유일한 왕손… 아버지 의친왕은 재평가돼야 한다

    “어머니인 의친왕비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조의 마지막은 늘 비극으로 끝났다. 대한제국 왕실의 비운은 당연히 겪어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살아라’라고 말씀하신 게 아흔이 다 돼서야 받아들여져요. 아버지 의친왕의 잘잘못을 역사가 정확하게 평가했으면 합니다. 그게 제 마지막 바람이에요.” 조선 왕조의 ‘마지막 왕녀’ 이해경(88) 여사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이 같은 소회를 밝혔다. 이 여사는 지금 한반도의 상황이 조선왕조 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어떤 연유에서 이 같은 생각을 떠올릴까 궁금했다. 이 여사는 고종 황제의 친손녀다. 아버지 의친왕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이다. 순종 다음 서열이었으나 일제의 견제 등으로 동생인 영친왕에게 황태자 자리를 빼앗겼다. 동생인 영친왕이 철저하게 일본식 교육을 받은 것과 달리 의친왕은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다. 독립운동가와의 접촉이 잦았으며, 1919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탈출하려고 기도했다가 만주에서 일제에 발각돼 송환되기도 했다. 의친왕은 일제로부터 도일을 강요받았지만 거부하며 항일정신을 사수한 왕족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8·15 독립 이후 이승만 정부가 망국(亡國)의 책임을 물으며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만들었다.이 여사는 “일본과 청나라, 러시아 등 세계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국가의 미래를 바로 세우려 했던 고종 황제나 의친왕과 비슷한 고민을 문재인 대통령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면서 “생각한 대로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결과’는 ‘운명’이고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의친왕의 13남 9녀 중 다섯째 딸이다. 세 살 때 생모와의 이별,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사동궁(의친왕부·義親王府) 생활, 그리고 8·15 광복, 이어진 6·25 전쟁, 1956년 가혹한 현실을 피하고자 선택했던 도미(渡美) 등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인생 여정을 보냈다. 특히 그는 순탄치 않은 노년을 보낸 아버지 의친왕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듯했다. 이 여사는 “아버지가 매일 술에 빠져서 살았다는 일제에 의한 역사적 오류가 아직도 그대로”라면서 “항일정신이 강했던 아버지는 일제의 핍박과 삼엄한 감시가 본격화되면서 매일 술집에 다니는 척해야 했다. 그래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여사는 “의친왕이 1905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이토 히로부미가 대통(大統) 계승을 권유했지만 한마디로 거절했고, 1919년 중국 상해(상하이) 임시정부로 탈출을 시도하는 등 독립운동을 열심히 했던 유일한 ‘왕손’”이라면서 “의친왕의 열정과 행동은 반드시 재평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을 떠난 지 62년, 26살의 꿈도 많고 한도 많았던 앳된 여인에서 이제 미수(米壽)를 넘긴 ‘호호 할머니’로 변한 조선의 마지막 왕녀인 그와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일제 치하에서 의친왕에 대한 기억은.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사동궁을 찾았다. 그때마다 노래와 춤으로 아버지를 즐겁게 해드린 기억이 있다. 특히 길러주신 의친왕비(이하 지밀 어머니)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궁 밖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대외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했다. 어린아이가 말을 옮길 수 있어서 조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 역사 문헌 등을 보면 퍼즐처럼 맞춰지는 일들이 있다. 어렸을 때 갑자기 일본 경찰들이 집 주변에 늘었다든지, 해방 직후 김구 선생과 김규식 선생이 사동궁을 찾았던 일 등이 기억난다. →그렇다면 의친왕의 독립운동 행적은 어떻게 아는가. -미 컬럼비아대학 한국학과 사서로 27년간 일하면서 많은 한국 역사책과 자료를 접했다. 거기서 아버지의 흔적을 많이 찾았다. 또 유학 오신 한국 학자들이 나에게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와 자료가 있는 미 도서관 등을 알려줬다. 미국에서 한국의 근대사를 공부했다. →여자로서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있었을 텐데. -맞다. 어렸을 때는 상당히 컸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시 역사 자료 등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심정과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 어쩌면 미국 생활이 아버지와 나를 연결해 준 것 같다.→누구나 인생에 굴곡이 있겠지만 특히 더 했던 것 같다. -한때는 드라마처럼 ‘궁’에서 호강하며 살았다. 어렸을 때 시녀들이 ‘공주마마’라고 부르며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 줬다. 하지만 8·15 독립 이후에 ‘왕족’이 ‘망국의 원흉’으로 인식되면서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됐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친북 인사로 몰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미국에 온 지 62년이 지났다. 한국을 몇 번 찾지 않았다고 알려졌는데. -맞다. 사실 떠나면서 다시는 한국 땅을 밟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당시 왕족이라는 굴레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 사회에 대한 반감 등 때문에 한국에서 도망치듯 미국으로 건너왔다. 정말 안 가려다 생모가 위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19년 만인 1975년 한국을 다시 찾았다. →1950년 중반에 미국 유학은 흔치 않은 일이다. 왕족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닌가. -당시 망국(亡國)의 책임을 물어 왕족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었다.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와 지밀 어머니 등 가족들이 먹을 쌀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지밀 어머니가 나의 혼수품으로 주신 비단을 팔아서 연명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8군의 도서관에서 일할 때 친하게 지냈던 데이비드 스트릿맨이라는 군인의 아버지가 도와줘서 미 유학이 가능했다. →미국 생활은 어땠나. -비행기 값을 마련하고자 지밀 어머니가 사 주신 야마하 피아노를 팔았다. 비행기 표를 사고 남은 돈 80달러를 가지고 무작정 미국으로 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무모했던 것 같다. 다행히 텍사스의 메리 하딘 베일러대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모두가 반대했던 미국행이라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한국과 연락도 끊었다. 사실 도움을 요청할 곳도, 도와줄 사람도 마땅히 없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말과 방학에는 식당과 백화점, 보육원 등 가리지 않고 일했다. 먹고살기 어려웠다.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아무도 내가 조선의 왕녀인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어도 누가 쳐다보지 않았다. →의친왕비가 자신의 호적에 이 여사만 올리는 등 총애를 받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생모, 낳아 주신 어머니는 어떤 분이었나. -3살 때 헤어진 생모를 10년 후인 13살 때 화신상회(현 종로 제일은행 본점 자리)에서 만났다. 그 이후로 또 거의 본 적이 없다가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잠시 같이 지냈다. 생모는 박금덕 여사다. 그는 당시 국회의원 선거에 나올 정도로 정·재계의 마당발로 소문난 여성이었다. 의친왕이 한눈에 반할 정도의 미모에 당찼던 것 같다. 내가 궁 생활을 힘들어 했던 것이 자유분방하고 당찬 생모의 성격을 닮아서인 듯하다. →일부에서 ‘공주’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하는데. -그건 분명히 잘못이다.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국호가 바뀌면서 고종 임금님이 황제가 되고, 왕자인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이 의친왕, 영친왕 등으로 봉작됐다. 그러니까 나는 왕자의 딸이지, 왕의 딸이 아니다. 그래서 나에게 ‘마지막 공주’라는 호칭은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내 밑으로 여동생들은 궁 생활을 하지 않았고, 위로 언니들은 돌아가셨다. 그래서 ‘마지막 왕녀’라는 표현을 쓰는 것 같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이유가 있나.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인연을 못 만나서 그런 것 같다. 물론 결혼할까 고민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릴 자신이 없었다. 망설이다 기회를 놓쳤다. 복잡했던 우리 가정사를 보면서 행복한 가정을 꿈꿨는데, 막상 선택의 순간에서 포기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내가 힘이 미약하고 나서는 것을 싫어해 숨어 있었지만, 일제에 의해 왜곡·날조된 우리의 역사를 되찾는 일에 대한민국이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좋겠다. 나도 미력이나마 돕고 싶다. 글 사진 뉴욕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이해경 여사는 누구 -1930년 고종황제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다섯 번째 딸로 출생. -1933년 생모인 박순덕씨 곁을 떠나 ‘궁’으로 거처 옮김. -1946년 경기여고 졸업 -1950년 이화여대 음악과 졸업 -1953년 미8군 사령부 도서관 사서 근무 -1956년 미국으로 유학 -1959년 미국 텍사스 메리 하딘 베일러대 졸업(성악 전공) -1969년 컬럼비아대 동양학도서관 한국학 사서 취직 -1996년 컬럼비아대 동양학도서관 한국학과장 정년퇴직 -현재 뉴욕의 컬럼비아대 근처 작은 아파트에서 독신으로 살고 있음.
  • [와우! 과학] 인류는 언제부터 살이 찌기 시작했을까?

    [와우! 과학] 인류는 언제부터 살이 찌기 시작했을까?

    유인원과 인류의 공동 조상은 1250만 년 전부터 체내에 지방을 축적하기 시작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독일 튀빙겐대학 연구진이 약 10년간 오스트리아 남부 카린시아(케른텐)에서 발견된 1250만년 전 선조의 치아를 분석한 결과, 당시 치아에서 충치를 비롯해 체내에 지방이 축적된 흔적을 발견했다. 1953년 발견된 이 치아는 유인원의 선조로 여겨지는 드리오피테쿠스(Dryopithecus)의 것으로 추정된다. 드리오피테쿠스는 침팬지와 오랑우탄, 고릴라, 인류의 공동 조상으로 여겨진다. 연구진이 해당 치아를 정밀 분석한 결과, 현존하는 인간이나 고릴라, 오랑우탄 등에 비해 요산분해효소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산분해효소의 결핍은 혈액 내 요산의 수치를 높이고, 이는 섭취한 당분이 체내에서 지방으로 축적되는데 영향을 미친다. 또 요산이 많으면 고혈압이나 신장병, 지방간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요산분해효소가 적으면 과당(프룩토오스)가 증가하고 이것이 체내 지방 저장 효과를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드리오피테쿠스의 치아의 충치와 체내 지방 축적을 유발한 원인을 찾기 위해 치아가 발견된 카린시아의 나무와 관목, 포도나무의 화석을 분석한 결과, 야생 체리와 딸기 등 총 9종의 고당 과일의 흔적을 발견했다. 또 꿀을 채취할 수 있는 46종의 식물(나무) 흔적도 발견했다. 연구진은 “과거 식량이 부족할 당시 살아남기 위해 우리 조상은 체내에 지방을 저장했어야 했을 것이다. 요산분해효소의 결핍이 체내 지방 축적으로 이어졌으며, 이러한 환경이 1250만 년 전 조상의 충치를 유발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농업이 싹튼 초기 신석기보다 훨씬 앞선 시점부터 충치를 가진 고대 조상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매우 놀라게 했다”고 설명했다. 또 과도한 지방 축적이 당뇨와 비만 등의 질병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이러한 과정은 유인원을 유라시아에 정착하게 하고 종의 다양성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은 상업적인 식량 생산이 이뤄지는 현대에 들어 (질병을 유발하는) 장애물이 됐다"고 지적했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30일 국제 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 최신호에 실렸다. 사진=123rf.com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애니멀구조대] 개농장 화재 현장에 방치…극적으로 살아남은 개

    [애니멀구조대] 개농장 화재 현장에 방치…극적으로 살아남은 개

    지난 2월 울산광역시 동구의 한 야산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1만 2000m²가 타버린 큰 화재였습니다. 이 야산에는 한 개농장이 있었습니다. 야속하게도 화마는 개농장을 빗겨가지 않았습니다. 화마가 덮친 개농장의 개들은 온 몸이 불에 타 끔찍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개농장주는 화상 입은 개들을 방치했습니다. 개들은 차례로 하나둘 죽어나갔습니다. 농장엔 죽은 개들의 사체가 나뒹굴었지만 개농장주는 사체조차 거두지 않았습니다. 치료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도적 조치도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기적적으로 살아 남은 한 생명 안타까운 사연은 널리 퍼져 나갔고, 쇄도한 민원을 접수한 울산 동구청은 경찰과 함께 화재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한 달여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화재 현장에는 놀랍게도 살아있는 한 생명이 있었습니다. 황구 한 마리가 기적적으로 살아 농장을 힘없이 배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굴부터 등을 지나 꼬리까지. 화마가 지난 자리마다 흔적을 남기기라도 하듯 피부는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고름과 진물로 뒤덮인 피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직관적으로 황구의 고통을 실감케 했습니다. 삐쩍 마른 몰골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겨우 숨통이 붙어 있는 가련한 생명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지역 활동가는 극적으로 살아남은 이 한 생명이라도 살려 보고자 황구를 인계해달라고 개농장주를 설득했습니다. “절대 내줄 수 없다.” 돌아오는 반응은 냉정했습니다. 밥도 물도 제대로 주지 않고, 아픈 곳을 치료해 주지도 않은 채 1달 동안 황구를 방치한 사람의 대답 치고는 참으로 강경하고 무책임했습니다. 화재는 누구에게도 좋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 남은 생명에게 이렇게 해서는 안되는 거였습니다. 동물학대를 법적으로 문제 삼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개농장주는 포기한 듯 마지못해 황구를 내주었습니다. 황구는 절차대로 먼저 시보호소로 옮긴 뒤, 이후 케어는 급히 이동봉사자를 구했습니다. 치료를 위해 울산에서 서울로 황구를 긴급 이송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녹아내린 몸 타버린 마음 황구의 몸은 녹아내렸고, 마음은 타버렸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구조대도 애가 타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너무 늦게 온 것은 아닌지, 때를 놓친 것은 아닌지 다급한 생각에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치료를 받게 해야 했습니다. 케어 동물구호팀은 황구를 서울의 한 대형 동물병원으로 급히 이송했습니다. 검진 결과, 바깥에 붙어 있는 피부층들은 이미 괴사가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귓바퀴는 완전히 녹아내렸고, 이마도 녹아 눈을 완전히 감지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털이 다시 자라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고, 전체적으로 흉터가 남을 거라고도 했습니다. 영양결핍은 물론 탈수까지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황구는 의지가 대단했습니다. 병원에 와서는 왕성한 식욕을 보였습니다. 비쩍 마른 몸과 왕성한 식욕이 보여주는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굶주림’. 치료에도 적극적으로 임해주었습니다. 황구를 치료한 수의사는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이어서 걱정을 많이 하면서 처치를 했는데 아이가 잘 버텨주었다”며, “자기 자신의 치유력이 상처 회복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처참한 환경에서 버텨준 것도 고마운데, 살아 보려는 의지까지 보이는 황구 모습에 다들 마음 한 편이 애잔해졌습니다. ‘강’하고 ‘건’강하게 황구는 사람을 잘 따르고 손길을 거부하지도 않았습니다. 케어는 이 황구에게 ‘강건’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어떤 시련 속에서도 강건하게 살아가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고통스러운 일을 겪고도, 힘차고 씩씩하게 버텨주는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대견했기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은 것입니다. 강건이의 일생을 떠올려봅니다. ‘개농장’은 그 자체로 생명에게 위협적인 공간입니다. 방금 전까지 옆에 있던 동물이 무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 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안전한 개농장’, ‘포근한 개농장’은 성립할 수 없는 표현입니다. 그런 개농장에서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런데 심지어 같이 지내던 친구들이 모두 하루 아침에 화재로 목숨을 잃고 강건이 곁을 떠났습니다. 겨우 혼자 살아 남았지만 아무도 돌봐주지 않고, 고통 가운데 하루 하루 버텨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흘러 왔을 강건이의 시간들을 떠올려봅니다. 강건이는 5개월 간 치료와 회복기를 가지고 마침내 8월 27일 동물병원에서 퇴원했습니다. 강건이는 간호사 선생님을 꼬리 흔들며 따라 다니고, 만져 달라며 얼굴을 들이 밀기도 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헤어지는 날, 강건이를 떠나 보내며 그간 강건이를 돌봐 준 의료진들도 모두 눈물을 훔쳤습니다. 일의 특성상 이별에 익숙할 법도 한데, 그간 사랑스러운 강건이와 많은 정이 들었나봅니다. 강건이의 모금 기록을 살펴 보니, 그간 2000명이 넘는 시민분들께서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주셨습니다. 그 온기가 지금까지 강건이의 치료와 회복을 도운 것입니다. 개농장에서의 기억들, 그리고 화재로 인한 좋지 않은 기억들이 모조리 잊혀지진 않겠지만, 강건이의 여생에는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같겠지요. 좋은 입양자를 만날 때까지, 케어는 계속해서 강건이 곁에 머물겠습니다. “강건아, 이름 따라 씩씩하게 꽃길만 걷자!” 동물권단체 케어 김태환PD taehwankim@fromcare.org
  • [여기는 중국] 공룡 흔적담긴 세계자연유산에 발자국 남긴 中관광객들

    [여기는 중국] 공룡 흔적담긴 세계자연유산에 발자국 남긴 中관광객들

    중국을 여행하던 여행객 4명이 모래로 가득한 지역을 지나갔다가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됐다. 이들이 밟은 것이 그저 흔해 빠진 모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29일 보도에 따르면 20살의 리 씨와 17살 쉬 씨 및 일행 2명은 얼마 전 간쑤성(省) 장예(張掖)를 방문해 광활한 자연을 구경했다. 당시 이들은 마치 사막처럼 높게 쌓인 모래 위를 자유롭게 걸었고, 이를 동영상으로 담아 현지시간으로 지난 28일 동영상공유사이트에 올렸다. 하지만 해당 영상이 올라간 뒤 이들은 곧바로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리 씨와 쉬 씨 등 일행들이 밟은 것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단샤(Danxia)로 불리는 이곳 지형은 융기나 풍화, 침식 작용과 같은 내‧외적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 대륙의 붉은색 역암 및 사암에서 발달한 경관을 의미한다. 간쑤성의 간사 지형은 중생대 쥐라기부터 신생대 제3기까지의 기간에 형성된 암반 지형이며 ‘단샤지질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다. 붉은색과 노란색을 띠는 모래가 특징이며, 공룡 화석 등 공룡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 고생물학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장소다. 영상 속 여행객들은 “우리가 지금 6000년이 넘은 오래된 지형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이는 해당 장소가 역사적 가치가 높고 보호해야 하는 장소임을 알면서도 이 같은 행동을 벌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지 전문가들은 이들 여행객들에 의해 훼손된 장소는 적어도 20만~40만 년 동안 오랜 지층 활동을 통해 생겨난 것이며, 이는 값을 따지기 어려울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해당 영상을 발견한 장예시 당국은 곧장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며, 현재 대중의 출입이 금지된 지역까지 피해가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이들이 제한구역에 들어가게 된 연유를 조사하고 있으며, 시 당국은 난간을 수리하고 점검하는데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中서 4300년 된 고대 도시 발견…대규모 인신공양 만연

    中서 4300년 된 고대 도시 발견…대규모 인신공양 만연

    중국에서 약 4300년 된 고대 도시를 발견했다는 연구논문이 발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24일(현지시간) 중국 산시성 위린 선무(神木)현에 있는 스마오(石峁) 유적을 소개했다. 1976년 처음 발견된 스마오 유적은 초기에 작은 마을로 여겨졌지만, 2011년부터 대대적인 발굴 조사가 이뤄지면서 황성(皇城·황제가 있는 나라의 수도)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황토로 된 고지대에 피라미드식 층단이 만들어져 있고 그 위에 목조로 된 황궁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11층으로 된 층단의 높이는 최소 70m에 달해 당시 내성 밖 거주지는 물론 외성 밖 시골 지역에서도 황궁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는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연구팀은 유적지에서 대규모 인신공양의 흔적을 발견했다. 총 6개의 구덩이에서 유골이 나왔는데 외성 근처에 있는 구덩이에는 목이 잘려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골이 가득했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유골과 제물이 발견됐다. 발견된 유물들은 중국 신석기 시대 만기인 롱산(龍山)문화 끝무렵부터 하(夏)나라 초기까지의 문화를 보여준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기원전 2000년까지 중원이 아니라 황토로 된 고지대가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를 대표하는 복잡한 사회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면서 “중원 문명과 관련한 청동기 후기 시대의 핵심적인 상징들은 사실 스마오에서 훨씬 더 일찍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사진=Antiquity 자세한 연구 결과는 영국 고고학 학술지 ‘앤티쿼티’(Antiquity) 22일자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과천 토막살인범, 살해현장 말끔히 청소 후 얼마간 생활

    과천 토막살인범, 살해현장 말끔히 청소 후 얼마간 생활

    서울대공원 토막살해범 변씨는 손님 A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노래방을 깨끗이 청소해 흔적을 없앤 뒤 얼마간 생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 과천경찰서는 22일 노래방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현장 감식을 했다고 22일 밝혔다. 경찰 감식 결과에 따르면 끔찍한 범행이 일어났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노래방 내부는 말끔히 정돈된 상태였다. 감식결과 카운터 앞쪽과 화장실 등에서는 다량의 인혈 반응이 나타났다. A씨를 살해한 흉기는 카운터 위에, 시신 훼손 도구는 의자 위에 각각 놓여 있었다. 변씨는 노래방에서 범행 후 살균 소독재로 바닥에 묻은 혈흔을 지우고 입구에 휴가 중이라 써 붙이고 생활한 것으로 밝혔졌다. 경찰은 “유사한 사건 피의자는 통상 흉기를 버리거나 감추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변씨는 범행 도구를 말끔히 닦고 나서 그대로 현장에 뒀다”고 말했다. 또 “범행에 사용한 차량을 계속 이용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경찰은 보강수사를 거쳐 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박광현, 고가 자전거 헐값에 판매한 아내에 멘붕

    박광현, 고가 자전거 헐값에 판매한 아내에 멘붕

    박광현이 고가의 자전거를 헐값에 판 아내의 행동에 당황했다. 지난 15일 방송된 채널A ‘아빠본색’에서는 박광현 부부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이날 박광현 아내는 중고거래할 물건을 찾았다. 이에 박광현은 “가격 진짜 괜찮은 거 있다. 내 자전거 있지 않냐”고 물었고, 아내는 “그거 팔렸다. 베트남에 있을 때 팔았다”고 말해 박광현을 당황하게 했다. 박광현이 “얼마에 팔았냐”고 묻자, 아내는 “작은 자전거는 10만원에, 큰 자전거는 70만원에 팔았다”고 말했다. 이에 박광현은 “부품만 팔아도 100만원은 받는다. 아무리 싸게 팔아도 350~400만원은 받는 자전거”라며 “핸들만 100만원”이라고 속상해했다. 이어 박광현은 “자전거를 판 돈은 어디 있냐”고 물었고, 아내는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잘 모르겠다. 돈이 뭐가 중요하냐. 그것을 팔고 내가 기분이 진짜 좋았으면 된 거 아니냐. 3년 동안 반성하겠다”고 사과했다. 한편, 박광현은 아내의 중고거래 내역을 보다가 자전거를 180만 원에 판 흔적을 발견했다. 아내는 “돈 달라고 할까 봐 70만 원에 팔았다고 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사진=채널A ‘아빠본색’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독립청년단·후퉁 신혼집… 신채호 13년 베이징 흔적이 사라진다

    독립청년단·후퉁 신혼집… 신채호 13년 베이징 흔적이 사라진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도 참여했던 독립운동가이자 걸출한 사학자였던 단재 신채호. 그의 흔적은 의외로 중국 베이징 곳곳에 새겨져 있다. 그는 1915~1928년 13년간 베이징에서 독립운동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그의 흔적이 남겨진 곳은 90여년 만에 ‘신채호 루트’로 다시 조명되고 있다. 급격한 도시화로 베이징에서 사라지는 신채호의 발자취를 찾았다.14일 신채호의 활동이 기록된 약 24곳의 베이징 유적지인 ‘신채호 루트’는 베이징의 구도심 얼환(二環) 등에 산재해 있다. 서울의 사대문 안과 비슷한 개념인 베이징의 구도심 얼환에는 좁은 골목길인 후퉁 수백개가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한때 수천개에 이르렀던 후퉁은 서민들의 보금자리지만 도심 개발에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단재는 1919년 베이징과 톈진의 대학생들이 무장 군사활동을 위해 조직한 ‘대한독립청년단’의 단장을 맡았다. 대한독립청년단 건물은 샤오시차오후퉁7호에 있었지만 현재는 철거돼 주소만 확인할 수 있다. 단재가 부인 박자혜와 신접살림을 꾸린 진스팡지에21호도 곧 철거될 처지다. 고층빌딩 한가운데 점처럼 박혀 있는 진스팡지에는 현재 9가구가 다닥다닥 붙어서 살고 있다. 사람 몸 하나를 겨우 움직일 수 있는 부엌과 작은방이 있고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전형적인 베이징의 서민 주거시설이다. 진스팡지에는 근처에 있는 병원의 증축 공사로 언제 대한독립청년단 건물처럼 헐릴지 모르는 상태다. 진스팡지에서 살고 있는 중국인 노부부는 기자의 방문에 단박 “한국인이냐”며 말을 건넸다. 단재의 흔적을 기억하려는 한국인들이 진스팡지에를 찾기 때문이다.반면 당대의 문학가인 루쉰(魯迅)의 옛집은 단재의 신혼집에서 겨우 500m 거리에 기념관으로 잘 보존되어 대조를 이룬다. 단재는 루쉰을 비롯한 중국의 지식인들과 교류했다. 특히 베이징대 교수 리시쩡(李石曾)의 배려로 베이징대 도서관에서 고서적을 열람하며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등을 출간할 수 있었다. 당시 베이징대 도서관은 베이다 훙루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 특히 1920년 베이징대에서 중국 소설 역사를 가르쳤던 루쉰의 강의실은 칠판의 글씨까지 생생하게 재연되어 전시 중이다. 15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단재와의 결혼을 감행한 박자혜는 여성 독립운동가다. 어린 시절 아기 나인으로 입궁해 10여 년간 궁녀로 일했으며 1919년 3·1운동 당시 총독부 의원 간호사로 일하다 간호사들의 독립운동단체인 ‘간우회’를 주도해 체포된다. 병원장의 신병인도로 풀려난 뒤 베이징으로 망명한 박자혜는 회문대 의예과에 입학한다. 1920년 4월 단재와의 결혼과 임신으로 학교에 다닌 기간은 일 년도 채 못 됐다. 회문대 의예과는 한국의 체 게바라로 불리는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과 고려기독교청년회를 만든 독립운동가 이용설이 수학한 곳이다. 베이징대 의예과의 전신이기도 하다. 현재는 베이징의 번화가 왕푸징 거리에서 셰허의원(協和醫院)으로 불리며 여전히 병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단재는 1910년 처음 베이징에 발을 딛는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입경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서였다. 5년 뒤 단재를 베이징으로 이끈 사람은 일가족 전체가 전 재산을 팔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우당 이회영의 동생 이시영이었다.일정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관이나 싸구려 민박을 전전했던 망명객은 1918년부터 보타암과 석등암에서 고대사 연구에 몰두하며 중국 신문에 논설을 기고했다. 당시 중국 신문사로부터 받는 원고료가 수입의 전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때도 단재의 꼿꼿했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신채호는 ‘박’(博)이란 필명으로 북경중화신보에 논설 1편, 시평 101편, 평론 17편 등 모두 119편을 기고했다. 그가 쓴 글은 모두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북경중화신보 1918년 5월 19일자의 ‘정부의 변명’이란 논설에서 단재는 ‘대가안념의’(大可安念矣)란 표현을 썼다. 하지만 신문에는 ‘의’(矣)자가 ‘일소’(一笑)로 마음대로 편집되어 나갔고 바로 다음날 정정 보도가 실렸다. 필자인 단재가 한 글자를 바꾼 것에도 강력하게 항의했기 때문이다. 글자 하나를 바꾼 것은 ‘크게 안심할 수 있다’란 뜻이 ‘크게 안심하고 한번 웃을 수 있다’로 바뀐 것이라 의미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신채호의 며느리 이덕남(74) 여사는 “얼굴 한 번 뵙지 못한 시아버지의 가족관계등록부를 2009년 창설 받아 국적을 회복했지만 사망한 이의 혼인신고는 할 수 없어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법적 부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동안 신채호는 일제가 도입한 호적제를 거부하고 무국적자의 길을 걸었기에 그의 장남 고 신수범은 어머니의 호적에 등록된 사생아로 살아야만 했다. 신채호의 국적은 회복됐지만 그의 가족관계등록부에 박자혜는 아내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신산한 삶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글 사진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朝鮮’ 지도의 나라

    ‘朝鮮’ 지도의 나라

    대동여지도 원본 전체 전시 국립중앙박물관서 10월까지조선시대는 ‘지도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많은 지도와 지리서가 제작·편찬됐다. 중앙집권 체제였던 조선왕조에서 지도는 효율적인 통치와 전쟁 등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한 필수 자료였다. 실용적인 목적 외에 감상을 위한 용도로 제작되기도 했다. 지도에는 각 고을의 위치와 경계, 산천의 형세, 도로의 연결관계 등 기본 정보 외에도 조선시대 사람들의 국토관과 세계관이 담겨 있다. 500년 조선왕조의 공간과 시간, 인간의 흔적을 기록한 지도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4일 개막하는 특별전 ‘지도예찬’은 조선시대 지도를 새롭게 조망하기 위해 마련된 대규모 전시다. ‘동국대지도’(보물 제1582호), ‘대동여지도’ 목판(보물 제1581호) 등 중앙박물관 소장품 외에도 국내 20여개 기관과 개인이 소장한 지도와 지리지 260여점이 관객들을 맞는다. 전시 1부에서는 동아시아 중심의 세계 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했던 조선의 ‘공간’을 담은 지도가 소개된다. 조선의 국토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 주는 ‘조선방역지도’(국보 제248호), 국제 정세를 파악하려 했던 조선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보물 제1537-1호), ‘일본여도’(보물 제481-4호) 등의 자료를 볼 수 있다. 과거로부터 축적된 ‘시간’의 흔적이 담겨 있는 지도는 2부에서 만날 수 있다. 세계지도 ‘천하고금대총편람도’나 전국지도 ‘조선팔도고금총람도’에는 역대 왕조의 변천과 역사적 사건들이 함께 수록돼 있다. ‘경주읍내전도’에는 조선 사람들이 바라본 신라의 고도 경주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3부에서는 통치를 잘 하려는 바람, 국토 수호에 대한 의지, 태평성대를 추구하는 마음 등 인간의 다양한 소망이 투영된 지도를 선보인다. ‘청구관해방총도’(보물 제1582호)와 같은 국방 지도나 ‘평양성도’, ‘전라도 무장현도’ 등의 회화식 지도가 대표적이다. 지도가 널리 사용되면서 등장한 작은 크기의 ‘수진본 지도’나 ‘명당도’ 등의 풍수 지도는 일상에서 사용된 지도의 실례를 잘 보여 준다. 아울러 조선 지도의 기틀을 마련한 조선 전기 문신 정척과 양성지, 18세기 ‘동국대지도’를 만들어 대형 전국지도를 크게 개선한 조선 후기 지리학자 정상기, ‘청구도’(보물 제1594호)와 ‘대동여지도’(보물 제850호) 등 조선지도학을 집대성한 조선 후기 실학자 겸 지리학자 김정호가 만든 명품 지도들을 접할 수 있다. ‘해좌전도’, ‘천하대총일람지도’, ‘팔도도 중 경상도 지도’, ‘관동방여 중 울릉도·우산도(독도) 지도’ 등 공개된 적이 없는 중요 지도와 지리지도 대거 소개된다. 특히 아파트 3층 높이로 펼쳐진 ‘대동여지도’ 원본 전체를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도 마련돼 있다. 오는 10월 28일까지. 4000~6000원. 1699-0361.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세월호 직립 후 첫 유골 1점 수습

    세월호 직립 이후 선체 수색 과정에서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앞니)가 추가로 수습됐다. 지난 5월 옆으로 누워 있던 세월호 선체를 바로 세우는 직립 작업 이후 유골이 수습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3일 해양수산부 세월호 현장수습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15분쯤 세월호 3층 객실부 협착구역에서 사람 앞니로 추정되는 뼈 1점이 발견됐다. 이곳은 이날 수색을 위한 선체 일부절단 작업이 시작된 곳이다. 현장수습본부는 정확한 신원확인을 위해 이 뼈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으로 보내 정밀 감식을 의뢰할 계획이다. 해수부는 세월호 선체 직립 직후부터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흔적을 찾기 위한 ‘마지막 수색’을 벌이고 있다. 현재 미수습자는 단원고 남현철·박영인군,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 등 5명이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세월호 직립 후 첫 유골 1점 수습

    세월호 직립 이후 선체 수색 과정에서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앞니)가 추가로 수습됐다. 지난 5월 옆으로 누워 있던 세월호 선체를 바로 세우는 직립 작업 이후 유골이 수습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3일 해양수산부 세월호 현장수습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15분쯤 세월호 3층 객실부 협착구역에서 사람 앞니로 추정되는 뼈 1점이 발견됐다. 이곳은 이날 수색을 위한 선체 일부절단 작업이 시작된 곳이다. 현장수습본부는 정확한 신원확인을 위해 이 뼈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으로 보내 정밀 감식을 의뢰할 계획이다.  해수부는 세월호 선체 직립 직후부터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흔적을 찾기 위한 ‘마지막 수색’을 벌이고 있다. 현재 미수습자는 단원고 남현철·박영인군,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 등 5명이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허세 부리는 수컷 개들?..소형견이 더 높은 곳에 오줌을 싼다

    허세 부리는 수컷 개들?..소형견이 더 높은 곳에 오줌을 싼다

    덩치가 작은 강아지들이 소변을 통한 마킹(Marking)을 하면서 허세를 부리고 있을 수 있다는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사이언스지에 “덩치가 작은 개들은 사물 위에 소변을 볼 때, 덩치가 커 보이기 위해 모종의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게재됐다. 작은 개일수록 기둥이나 가로등, 나무 등의 사물에 마킹을 위해 소변을 볼 때 다리를 높이 치켜드는 행동을 보인다는 것. 이러한 행동은 다른 개들로 하여금 ‘이 근처에 키가 큰 개가 있나 보다’고 생각하게 하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호주 국립대 생태학자인 린다 샤프(Lynda Sharpe)는 “이번 논문은 그간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냄새 표시(동물이 영역 표시 등을 위해 남기는 것)의 측면을 드러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샤프는 항문샘에서 나오는 향기로 표시를 하는 난쟁이 몽구스 (몽구스과에 속하는 작은 아프리카 식육목 포유류)의 행동을 연구해왔는데, ‘작은 수컷일수록 과장되게 큰 표시를 남긴다’는 사실을 발견한 적이 있다. 그녀는 “개가 몽구스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말이 된다”며 “오히려 수많은 종(種)들이 냄새 표시의 높이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코넬대학 행동 생태학자인 베리 맥과이어(Betty McGuire)와 그녀가 이끄는 연구진이 수행했다. 연구진은 뉴욕에 있는 두 개의 보호소에서 45마리의 개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개들은 대부분 믹스종 수컷 성견으로, 소변을 볼 때 다리를 들어 올릴 확률이 높은 개체들이었다. 연구진은 나무와 벤치, 소화전, 그리고 개들이 오줌을 눌만한 사물들이 있는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스마트폰으로 몰래 개들이 소변을 보는 영상을 촬영했다. 개들을 중간에 방해하지 않으며 완전히 마르기 전에 소변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연구의 최대 난관이었다. 관찰 결과, 어떤 개들은 나무와 막대기에 표시를 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다른 개들은 그들의 소변을 찾기 훨씬 더 어려운 키 큰 풀을 선호했다. 냄새를 맡고 다리를 들어 올렸지만, 목표물을 완전히 빗나가는 개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맥과이너는 말했다. 연구진은 개가 흔적을 남길 때 그 높이를 측정했고, 이후 촬영된 영상에서 개가 올린 다리의 각도를 측정했다. 약 2년 동안 모두 수백 개의 다리 각도의 분석한 결과, “개들의 배뇨각(urination angles)은 약 85°에서 147°이며, 개의 덩치가 작을수록 더 극단적으로 커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에 발표했다. 맥과이어는 “작은 개들은 몸의 크기를 속이기 위해 다리를 더 높이 올릴 수 있다”며 “자신의 체구를 과장함으로써, 다른 개들에게 ‘나에게서 떨어져!’라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전문가 중에서는 “개들은 전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이들도 있다. 펜실베이니아대 수의과대 윤리학자 제임스 서펠(James Serpell)은 “개는 종종 자신의 것으로 다른 개의 소변을 가리는 것을 좋아한다”며 “작은 개들은 단순히 더 큰 개의 소변 지점에 도달하려고 하기 때문에 다리를 더 높이 들어 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또는 해부학적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며 “모든 수컷 개들은 모두 소변을 보기 위해 다리를 가능한 한 높게 드는데, 덩치가 작은 개들이 유연성이 더 뛰어나 발을 높게 드는 것을 잘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노트펫(notepet.co.kr)
  • 함께 살던 20대 여성 살해하고 두차례나 암매장

    함께 살던 여성을 폭행해 살해하고 시신을 두차례나 암매장한 5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전북 군산경찰서는 살인, 시신 유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A(23)씨 등 5명을 구속했다고 13일 밝혔다. A씨 등은 지난 5월 12일 오전 9시쯤 군산시 소룡동 빌라에서 B(23·여)씨를 손과 발로 무차별 폭행해 살해하고 시신을 야산에 묻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숨진 B씨 등 6명은 지난 3월부터 이 빌라에 함께 살았다. 이들 중 직장에 다니지 않던 B씨가 청소와 설거지 등 살림을 맡았다. 경찰은 이들이 사기 행각을 벌이려고 함께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씨 등 2명은 이날 B씨가 ‘살림에 소홀하다’는 이유로 5∼10분 동안 온몸을 손과 발로 폭행했고 결국 숨졌다. 이들 5명은 숨을 쉬지 않는 B씨를 방으로 옮겨 방치했다가 이날 오후 4∼5시쯤 차에 싣고 빌라에서 20㎞가량 떨어진 야산으로 가 삽으로 땅을 파고 시신을 묻었다. 경찰은 가해자 중 일부로부터 ‘신원 확인이 어렵도록 시신에 화학약품을 뿌렸다’는 일부 피의자의 진술을 확보하고 사체 훼손 여부도 조사 중이다. 시신 유기 사건의 경우 시신 부패 속도를 촉진하고 훼손 흔적을 감추기 위해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시신 부패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암매장 이후 5∼6차례 야산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군산 지역에 폭우가 쏟아진 지난달 말 야산의 토사가 유실돼 시신이 드러나자 이곳에서 20㎞가량 떨어진 야산으로 다시 시신을 옮겨 매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때 이들은 범행을 은폐하려고 김장용 비닐로 시신을 감싸고 여행용 가방에 넣은 채 매장했다. 경찰은 피의자 중 일부가 지인에게 ‘사람을 암매장했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수사에 착수, 모두 체포했다. 경찰은 추궁 끝에 ‘시신을 암매장했다’는 A씨 등의 진술을 확보했고 야산에서 심하게 부패한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은 이들의 구체적인 범행 수법과 추가 범행 여부 등을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함께 살던 여성을 살해하고 2번이나 암매장한 끔찍한 사건”이라며 “피의자들이 피해자를 살해하기 전에도 수차례 폭행한 정황이 있어 범행 동기나 수법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하겠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보이스2’측 “오늘(12일) 밤, 이진욱이 숨기고 있던 비밀 밝혀진다”

    ‘보이스2’측 “오늘(12일) 밤, 이진욱이 숨기고 있던 비밀 밝혀진다”

    ‘보이스2’ 형사들에게 연행돼 구치소에 갇힌 이진욱과 철창을 사이에 두고 서 있는 이하나 모습이 공개됐다. 12일 OCN 드라마 ‘보이스2’ 본방송을 앞두고 스틸컷이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공개된 사진에는 형사들에게 연행돼 구치소에 갇힌 도강우(이진욱)가 철창을 사이에 두고 강권주(이하나)와 마주 선 모습이 담겼다. 더불어 손에 라텍스 장갑을 쥐고 있는 강권주, 그리고 이에 충격을 받은 듯한 도강우의 표정은 어떤 상황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난 첫 회에서 검은 모자를 쓴 의문의 남성에게 살해된 골든타임팀 팀장 장경학(이해영). 3년 전 동료 형사 나형준(홍경인)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진범을 추적 중이던 도강우는 장경학 팀장 사건 현장에서 3년 전 형준을 살해한 범인의 흔적을 발견했고, 그때 그 살인마 ‘가면남’이 돌아왔다고 확신했다. 장경학 팀장의 죽음 소식에 현장으로 나온 강권주 역시 사건에 뭔가 더 있다고 직감했다. 누군가 장경학 팀장의 차량에 급발진장치가 설치해, 사건을 조작했다는 것을 알아낸 것. 이에 현장 단서를 토대로 각자 용의자를 좇기 시작했지만, 형사들의 무전을 도청하고, 도로 CCTV를 해킹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진짜 살인마는 장경학 팀장을 살해했을 때처럼 자신의 지시를 따르던 자의 차량에 급발진장치를 작동시켰다. “어떤 미친놈이든 사건 현장만 보면 그놈 마음이 다 보이거든? 근데 이상하게 이놈은 안 보이더라. 이번엔 종범 놈이 실수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라며 “그러니까 절대로 놓쳐선 안 된다”라고 의지를 보였던 도강우. 하지만 눈앞에서 종범의 차량이 급발진장치로 인해 전복되는 사고를 목격, 다급하게 달려 나왔지만 이미 차량은 불길로 휩싸인 후였다. 과연 이대로 종범과 가면남을 놓치게 되는 것일까. 이 가운데 형사들에 의해 연행되는 도강우. 지난 방송에서 도강우가 동생 나형준을 살해했다고 확신하는 나홍수(유승목)는 “내가 너 증거물 은닉죄 대신 조만간 살인죄로 반드시 처넣을 거거든”이라고 경고했다. 게다가 철창을 사이로 마주선 이하나의 손엔 라텍스 장갑이 쥐어져 있어 의문을 자아낸다. 3년 전 나형준, 그리고 현재 장경학 팀장의 살해를 지시했던 남성 역시 라텍스 장갑을 끼고 있었기 때문. 이에 오늘 밤 밝혀질 두 사람의 대화에 궁금증을 높였다. 제작진은 “오늘 2화 방송에서 강권주와 도강우의 대화를 통해, 도강우가 숨기고 있었던 과거 비밀이 밝혀진다”고 예고하며, “과연 어떤 진실이 밝혀질지, 그리고 어떤 이유로 두 사람이 공조를 시작할지, 함께 본방송으로 확인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보이스2’는 이날(12일) 오후 10시 20분 OCN에서 방송된다. 사진=OCN 연예팀 seoule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