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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집트 룩소르(세계 문화유산 순례:40)

    ◎고대 애 최대신전 ‘아몬라’ 우뚝/길이 260m 탑문너비 65m ‘거대한 궁전’/1천개의 스핑크스 좌우로 3㎞ 행렬 ‘장관’ 고대 이집트의 부와 영화는 기원전 1600년부터 기원전 1100년 사이의 신왕조때 절정에 이르렀다.이 번영기때 이집트의 영토는 북으로 유프라테스강에서 남으로는 지금의 북수단에 이르렀다.그리고 람세스왕조 때처럼 걸물의 파라오들이 등장해 태평성대를 구가했다.불세출의 파라오 람세스 2세도 이 기간중인 기원전 1279년부터 기원전 1212년까지 67년을 재위했다.그래서 아부 심벨 신전을 비롯한 숱한 신전과 기념물들을 남길수 있었다. 이 1천여년동안 왕조의 수도는 바로 나일강 상류에 위치한 테베이다.그리스의 작가 호머도 람세스 2세의 배려로 이집트에 머물렀다.호머는 대서사시 ‘일리야드’에서 테베를 ‘1천개의 출입문을 가진 도시’라고 묘사했다.파라오들은 공들여 신전을 지었다.외부의 적으로부터 왕국을 지키고 왕권을 넘보며 끊임없이 음모를 꾸미는 내부의 적들로부터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그래서 파라오들은 신전건축을 가장 중요한 국사중 하나로 삼았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해가 솟는 동쪽은 생명과 번영의 땅이었다.대신 해가 지는 서쪽은 죽음의 땅으로 여겼다.풍요와 재생의 상징인 신들의 거처를 나일강 동쪽에 세웠던 까닭도 여기 있다.파라오들의 최후의 안식처인 ‘왕들의 계곡’,‘왕비들의 계곡’,피라미드는 나일강 서안에 세웠다.수도 카이로에서 나일강 동안을 따라 남쪽으로 700㎞에 위치한 테베는 운하로 양분돼 있다.그 운하 북쪽에 신전들의 도시 룩소르가,남쪽에는 역시 신전들로 들어찬 카르낙이 자리했다. 오늘의 현대 도시 룩소르에서도 지난날 영광의 흔적을 볼 수 있다.가장 대표적인 곳은 ‘신들의 왕’인 태양신 아몬 라의 신전이다.고대 이집트인들이 ‘아몬신의 남쪽 궁전’이라고 불렀던 곳이다.출입문에서 뒷편 끝까지의 길이가 260m에 달하는 고대 이집트의 최대 신전인 것이다. 신전 출입문은 필론이라는 탑문으로 장식됐다.탑문 좌우의 너비는 65m에 달한다.탑문에는 람세스 2세를 기리는 그림과 글씨가 들어 있다.히타이트인들을물리친 유명한 카데슈 전투장면을 릴리프로 처리하면서 그의 전공을 상형문자로 새겼다.출입구 좌우에는 높이 25m의 쌍동이 오벨리스크를 나란히 세웠는데 지금은 왼편 것 하나만 남았다.1833년 나폴레옹군대가 뺏아간 오른쪽 오벨리스크는 지금 파리의 콩코드광장 중앙에 서있다.탑문 앞쪽에는 역시 람세스 2세의 거대한 대리석 석상을 세웠다.왕비 네페르타리와 공주 메리타몬의 석상도 세웠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오벨리스크가 서있는 신전 입구에서 북쪽 카르낙의 신전에 이르는 3㎞는 ‘스핑크스의 길’이다.사자의 몸에 양의 머리를 한 1천개의 스핑크스들이 좌우로 늘어섰다.양은 신들의 왕인 아몬신을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이었다.지금 이 스핑크스 거리에 나온 유물은 먼저 출토한 일부 출토품에 지나지 않는다. 카르낙의 신전도 태양신 아몬 라에 바쳐진 것이다.테베에 있는 신전들 중 가장 오래된 신전이다.거대한 돌기둥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카르낙 신전은 모두 3부분으로 구분됐다.주신전은 신들의 왕인 아몬 라의 신전,왼편으로 그의 아들 혼슈,맞은편 것은 아몬의 부인 무트신의 신전이다.고대 이집트의 주신들은 이후 탄생한 기독교 교리의 성부·성자·성신처럼 성가족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카르낙 대신전은 기둥의 숲이다.세계 최대의 기둥 신전이기도 한 카르낙 대신전은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보다도 더 큰 규모다.그 위용을 짐작할 만하다.길이 102m,너비 53m에 달하는 홀에는 높이 23m에 이르는 사암 돌기둥 134개가 서있다.활짝 핀 파피루스 꽃모양의 기둥머리 장식을 한 돌기둥들인데 기둥머리 위쪽에는 대형 돌 원판을 얹어놓았다.기둥의 웅장함과 기둥 사이를 통해 간간히 들어오는 햇빛,그리고 그 햇빛이 만들어내는 돌기둥의 그늘이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해낸다.파라오 세티 1세때 증축을 시작해 그의 아들 람세스 2세때 완성한 신전으로 8만여명이 넘는 석공들이 동원됐다고 한다. 신전의 돌기둥과 벽면을 장식한 그림들은 매우 독특한 기법으로 처리됐다.신체를 그릴때 이집트 화가들은 상형문자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신체 각부분을 하나의 독립된 상형문자처럼 그렸다.그리고신체 각부분은 화가 자신들 눈에 가장 잘 들어오는 쪽에서 그렸다.머리는 측면,어깨와 상반신은 전면,신체는 허리에서 약간 틀어져 배꼽이 보이도록 했다.다리와 발은 측면에서 바라본 행태로 그렸다.신체 각부분을 여러 면에서 보이는대로 그렸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매우 신비스런 인상을 안겨주었다. 돌기둥의 숲 옆에는 신들의 호수를 만들었다.한변의 길이가 120m에 달하는 인공호수는 창조주 아몬신이 소유한 ‘영원의 대양’을 상징한 것이다.매일 아침 신관들은 이 신들의 호수에 몸을 담그고 제의를 올렸다.신전을 축성하는데도 이 호수물을 썼다.이집트는 신들이 다스리는 왕국이었고 파라오는 신의 대리인이자 살아있는 신이었다. ◎여행 가이드/나일강변 유적 즐비… ‘왕들·왕비들의 계곡’ 볼만 나일강 상류 일대에는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유적들이 산재돼 있다.수도 카이로에서 아부 심벨사원이나 카르낙·룩소르로의 여행은 항공편을 이용하는 게 좋다.카이로 공항에서 카르낙을 왕복하는 항공편이 수시로 있다. 소요시간은카이로 공항에서 아스완까지 약 1시간 30분.다시 남으로 30분쯤 내려가면 아부 심벨이다.아부 심벨 공항에서는 약 1시간 정도 기착하는데 이 시간을 이용해 아부 심벨 신전을 구경한다.기다리는 비행기를 타고 다시 40분 정도 올라가면 룩소르 공항에 도착한다.룩소르에서는 각자의 여행 사정에 따라 주변에 산재한 유적들을 돌아보면 된다.카르낙에서 나일강 건너편 사막지대로 들어가면 ‘왕들의 계곡’ ‘왕비들의 계곡’등 수많은 무덤들이 있다.투탄카멘왕의 무덤,네페르타리 왕비의 무덤 등이 도처에 분포됐다. 여유가 있으면 아스완 하이댐과,이 댐으로 생겨난 인공호수 낫세르호의 위용을 돌아보는 것도 좋다.
  • 목성 ‘유로파’ 위성 대기층 징후 발견/저널 사이언스 보도

    【로스앤젤레스 AP 연합】 미국의 행성탐사선 갈릴레오호는 외계생명체의 포착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이는 목성의 얼어붙은 위성 ‘유로파’에서 엷은 대기층 징후를 발견했다고 저널 사이언스 최신호가 18일 보도했다. 이 잡지에 따르면 NASA 과학자들은 96년12월과 올 2월 사이에 실시된 6회의 유로파 관측활동에서 대기층 상층부에서 발견되는 이온층 흔적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패서디너에 있는 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아비다스 클리오어 무선공학팀장은 목성의 강력한 자장에서 나온 입자가 강력한 에너지로 유로파 위성 표면의 얼음층에 있는 물 분자와 충돌하면서 이온층이 형성되는 것 같다고 추정했다.
  • 위대한 여행/정양모 지음(화제의 책)

    ◎바울로 흔적 좇아 지중해연안 답사 성서학자인 지은이가 사도 바울로의 발자취를 따라 쓴 문화유적 답사기.그리스도교의 박해자였던 바울로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예수의 음성을 듣고 개심한다.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열렬한 전파자가 돼 세차례에 걸쳐 전도여행을 떠난다.이 책은 이런 바울로의 흔적을 좇아 터키 그리스 등 지중해 연안국들의 문화유적을 살핀다.문화유적 탐방뿐 아니라 당대의 전설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해 눈길을 끈다.“바울로는 길리기아의 다르소 출신 유태인이다.기원전 41년,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장군은 바울로의 고향인 다르소를 내방하면서 면세혜택을 주었다.이때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아름다운 여신 비너스로 분장한 채 치드누스강으로 배를 타고 와서 안토니우스 장군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울로는 조용히 앉아서 사상을 세우는 사변가가 아니라 무언가를 깨달으면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실천가였다.바울로의 정신이 녹아있는 이 책은 고정된 액자속의 그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화면으로 다가오도록 풍부한 시각자료를 담았다.비너스 탄생의 섬 키프로스,셀주크 제국과 메블라나 신비주의의 이고니온,출애굽 시대의 파라오 람세스 2세 등이 주요 주제다.생활성서사 1만8천원.
  • 건설업자에 수뢰 혐의/이종주 전 대구시장 무죄/대법서 원심파기

    대법원 형사3부(주심 천경송 대법관)는 12일 건설업자로부터 1억5천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전 대구시장 이종주 피고인(60)에 대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1억5천2백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깨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찰이 피고인과 주변 친지들의 재산 관계를 추적했으나 뇌물을 수수했다고 인정할 만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고,신빙성이 매우 의심스로운 박모씨 등의 뇌물 공여 진술을 그대로 믿는 등 유죄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소저너’ 탐사활동 순조

    【패서디나(미 캘리포니아주) AP 연합】 미 무인 우주탐사선 패스파인더의 탐사 로봇 소저너가 6일 생명체의 필수요건인 물이 있었던 흔적을 명백히 보여주는 화성의 표면으로 굴러내려가 본격적인 탐사활동에 들어갔다. 소저너는 이날 모선에서 내려온지 수시간만에 붉은 행성 화성에서 우주 탐사활동의 새 장을 열었다. 7일 하오 소저너는 붉은 먼지로 뒤덮인 선로끝 경사램프에서 10㎝ 떨어진 곳에 자리잡았고 지질학자들은 선로들을 조사한 결과 화성표면이 마치 딱딱한 층에 밀가루가 얇게 덮인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어 소저너는 시계반대 방향으로 90도 회전한 뒤 30㎝ 후퇴해 알파 프로톤 X­선 분광계를 소저너 크기의 울툴불퉁한 암석쪽으로 위치시켰다.
  • 극관서 얼음 확인… 원시생물 존재 가능성/화성에 생명체 있을까

    ◎2003년 시료 회수… 생명체여부 규명 계획 화성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패스파인더의 화성 착륙을 계기로 생명체 존재 여부가 확인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76년 최초의 화성 탐사선 바이킹1,2호가 보내준 해답은 부정적인 것이었다.당시 촬영된 화성의 지표면 사진들은 전체적으로 다갈색 색이 지표면을 덮었고 지름 40㎝ 안팎의 돌이 뒹굴었을 뿐 황량한 대지엔 생명의 자취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지난 96년8월 화성에서 날아온 운석에서 생명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발표는 화성 생명체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번 증폭시켰다.더욱이 물의 존재 여부는 끊임없이 생명 탄생의 가능성 문제를 제기해 왔다.약 46억년전 지구와 거의 같은 시기에 형성된 원시화성에 흐르고 있던 그 많던 물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현재 화성에는 적어도 얼음의 존재는 확인되고 있다.지구의 남북극에 해당하는 화성의 극관은 이산화탄소가 응축했거나 물이 언 얼음으로 덮여 있다.극관의 지하층에는 영구 동토인 얼음층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아직까지 액체 상태 물의 존재는 보고되어 있지 않지만 화성은 지구처럼 자전축이 기울어져 4계절의 변화가 있는 만큼 얼음 주변부는 녹을 때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과학자들의 생각이다.실제로 바이킹호는 서리가 내리는 것을 관측한 바 있다.그렇다면 그 부분에는 일시적이긴 하지만 물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므로 어떤 종류의 생물이 지금도 번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은 이같은 생각아래 화성과 유사한 환경을 조성하고 다양한 생물을 집어넣어 생존에 관한 실험을 하기도 했다.그결과 고초균의 포자나 검은 누룩곰팡이의 포자,혐기성 세균이나 조류도 살아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판명됐다.또한 극관의 얼음속에 미생물 생존 가능성 확인을 위해 고초균포자를 화성 대기가스로 만든 얼음으로 덮고 2천년분의 자외선과 우주선을 쬔 결과 대부분 살아남은 것이 증명되기도 했다. 화성에 지구형 생물이 있다면 그것은 극관부분이 될 가능성이 크다.물의 존재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패스파인더가 내린 협곡지역에서 생명체를 발견할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할수 있다.다만 과거 물이 흘렀던 이 지역에서 원시 생물의 화석을 찾을수 있다면 그것만 해도 엄청난 수확이 될 것이다.NASA는 이 목표 수행을 위해 마스서베이어호(오는 9월 도착예정),마스 서베이어2호(98년 발사 예정,탐사로봇카 탐재)를 보내고 2001년쯤에는 실제 암석 시료를 채취한 무인 탐사 이동차를 보내며 2003년에는 시료를 회수해 생명체의 비밀을 밝힐 계획을 갖고 있다.이번 패스파인더는 이같은 10년계획을 위한 표면관측등 기초 조사와 소저너를 통한 화성면 차의 안정성 실험 수행이 주요 목적이다.
  • 김 국민회의 부총재 국회연설 의미

    ◎실정 부각­대안 제시… 정권교체 강조/“전·노씨 조건부 사면” 보수세력에 손짓 국민회의 김근태 부총재의 3일 국회 대표연설은 김대중 총재를 위한 지원사격용이다.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향해 뛰는 김총재의 생각을 그대로 담고 있다.그래서 정권교체의 당위성 강조에 필요한 상황논리가 총동원됐다. 연설문은 크게 두가지 흐름으로 짜여져 있다.현정권의 실정부각이 첫째 흐름이다.김부총재는 경제난,독선적이고 일관성 없는 국정운영,소모적인 신한국당 경선전 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김영삼 대통령의 대선자금문제,한보사태 등을 ‘증거’로 활용했다. 그리고는 비전제시로 이어갔다.현안에 대한 진단과 대안 제시를 보다 다양화하고 구체화하는데 주력했다.교육 안보 경제 등 최근 DJ(김총재)의 ‘주제별투어’를 총정리한 것이나 다름없다.여기에는 ‘첫째 둘째 세째‘가 눈에 띈다.조목조목 짚어가는 DJ 특유의 방식을 대신해 선보인 것이다. 김부총재는 전두환·노태우씨 사면문제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본인들의 사과와 반성을 전제로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안정희구 보수세력의 ‘표‘와 ‘국민감정’의 중간에서 고민해온 흔적을 엿보게 한다. 그는 대북식량 지원과 관련해 ‘남북국회회담’이라는 카드를 던졌다.국회회담은 6공때 판문점에서 10여차례 계속되다가 90년 1월 이후 중단된 것.아울러 6·25 전쟁포로 및 유골 송환문제를 회담 의제에 포함시키고,대북식량지원 창구로 이북5도민회도 추가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모두가 보다 적극적인 대북론을 반영하고 있다. 김부총재는 정치개혁입법을 이번 국회의 최대 과제로 규정했다.특정후보에 유리한 언론보도 방지,공정한 후보토론회를 위한 중립기구 구성 등 선거법과 방송관계법 개정 방향도 제시했다.이번 대선에서 그전보다 유리한 상황을 유도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다.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서는 중립내각 구성을 촉구했다.신한국당 경선과정에서의 ‘김심개입’을 경고하기도 했다.대선자금 공개를 요구하는 압박전도 병행했다.하지만 김대통령의 ‘하야’문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 10대에 생명존엄 일깨워야(사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0대가 자신의 여자친구가 출산한 아기를 질식시킨뒤 사체를 변기에 버린 사건은 너무도 무모하여 할말을 잃게 만든다.충동적인 10대의 전형의 일면이다.새 생명을 자신의 앞길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인식한 그들은 마치 범죄의 흔적을 지우듯이 장애물을 처치해버린 것이다. 더구나 고교를 졸업한 남자의 경우는 사회통념상 청소년으로 구분짓고는 있지만 실은 사회인의 범주에 속한다.옛날 같으면 결혼했을 나이다.또 1년이상 사귀었다고 한다면 두사람은 어느정도 사랑과 신뢰가 묵계되었으리라는 짐작이다.그럼에도 출산일이 가깝도록 대책없이 숨기고 있다가 부모와 측근과 충분한 의논도 없이 단지 양육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두고 후회할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야 만 것이다.물론 임신과 출산을 눈치채지 못한 부모와 학교의 무관심도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보건복지부 입양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외 입양아의 모친 3천309명중 15∼19세가 1천490명이나 된다.학교나 사회 각기관에 청소년 성범죄 예방을 위한 상담역이있다고는 하지만 구색이나 장식일뿐 구체적인 효과를 얻고 있지 못하다는 결과인 셈이다. 학교나 사회 각기관이 좀더 친밀하고 현실적인 관심으로 카운셀링이나 상담역을 했더라면 무모한 출산과 살해유기는 예방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엄벌과 질타에 앞서 임신은 결혼생활에서오는 사랑의 결실이라는 인식,또 아기는 나자신의 제2의 탄생이라는 생명존엄을 일깨워줬어야 한다. 성인들의 범죄는 자기판단하에 저질러지기 때문에 범죄자 당사자의 책임이지만 청소년들의 범죄는 충동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러한 충동을 일으킬만한 조건을 제공한 사회의 책임일 수 밖에 없다.학교는 물론 각 가정에서 관심과 애정으로 생명존엄을 가르치는 일부터가 청소년 성범죄를 막는 길이다.
  • 이집트 피라미드:하(세계 문화유산 순례:31)

    ◎「계단식」은 고왕조 절대왕권 출현 상징/고대 이집트왕의 무덤은 흙벽돌로 쌓아 올린 꼭대기 잘린 사각뿔형태/조세르왕의 산하 암호테프가 직선·각도 등 건축개념 적용 완벽한 피라미드 탄생시켜/고왕조 수도 멤피스엔 파라오의 영화 증언하듯 신전터 주춧돌 기둥만 남아 고대 이집트 파라오(왕)의 무덤들이 처음부터 기자의 피라미드처럼 완벽한 사각뿔의 형태를 갖추었던 것은 아니다.사각뿔 피라미드가 선보이기 이전 고대 이집트의 왕들은 사각뿔에서 윗부분이 잘려나간 것같은 형태의 무덤에 묻혔다.피라미드가 이같은 미완성 형태에서 완성된 형태로 발전해 나가는 중간단계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멤피스 외곽의 모래언덕 사카라에 있는 계단식 피라미드이다.「마스타바」라고 부르는 이 꼭대기 잘린 사각뿔 무덤을 여러개 포개얹듯 만들었다.이 때문에 무덤의 외곽선이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계단 모양을 띠게 된 것이다.계단식 피라미드는 자재면에서도 흙벽돌에서 석조 건축물로 탈바꿈하는 시기를 알려주는 편년표 역할이다.이전 마스타바 무덤들은모두 흙벽돌로 지었다. 계단식 피라미드의 출현은 고대 이집트에서 본격적인 절대 왕권의 출현과 그 시기를 같이한다.왕권이 강화돼 파라오가 무제한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면서 그의 무덤도 더크고 단단하게 짓기 시작한 것이다.계단식 피라미드가 지어진 시기는 기자의대 피라미드가 만들어지기 100여년 전인 기원전 2770년경으로 알려져있다.남북으로 갈라져있던 상·하 이집트가 처음으로 통일된 뒤 세번째 왕조를 일으켰고 이집트왕국의 창시자인 조세르왕이 바로 이 계단식 피라미드에 묻힌 주인공이다.500여년간 지속된 이 고왕국 기간중 왕국의 수도는 현대 카이로 남쪽 25㎞에 위치한 멤피스였다.당시 멤피스는 나일강안의 중요한 항구였고 최고로 번창하던 도시였다.그러나 지금 멤피스의 도성이 있던 자리에는 당시 신전터의 주춧돌 흔적을 어렴풋이 볼수 있는 폐허의 유적일부가 남아있을뿐 그일대 대부분은 대추야자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숲을 이루었다.멤피스가 수도로서 역할을 못하게 된지 수천년이 흘렀고 그 사이 해마다 나일강의 홍수가 뒤덮고 지나가 퇴적토가 쌓였다.그래서 실제 왕궁터는 수십m 지하에 파묻혔을 것이라고 안내인은 설명한다. 계단식 피라미드가 있는 사카라 모래언덕은 이 폐허에서 자동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어찌보면 멤피스 시절 고대 이집트의 영화를 짐작하게 해주는 유일한 유물인 셈이다.6개의 마스타바를 차례로 얹은 듯한 이 계단식 피라미드는 총높이가 60여m에 달하고 원래는 계단 표면에 타일모양으로 매끈하게 만든 장식용 돌을 붙였다고 한다.그러나 이 장식 돌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계단식 피라미드를 만든 이는 뛰어난 예술가이며 역사에 이름을 남긴 최초의 건축가인 임호테프였다.그는 조세르왕의 재상이었고 모든 예술과 과학,특히 의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사후에는 건축가의 신으로 호칭된 사람이다.이 계단식 피라미드가 만들어지면서 직선과 각도,중량에 대한 계산이 시작됐다.계단의 미완성선들이 완벽한 직선으로 발전돼 기자의 피라미드들이 탄생된 것이다. 계단 피라미드로 올라가는 초입에서 여행객을 맞는 것은 과거 파라오가 누렸던영화의 한 편린을 엿보게 하는 거대한 돌기둥들이다.한때 신전의 기둥을 장식했음이 분명하지만 지금을 지붕은 사라지고 수십개의 기둥들만 두 줄로 늘어 서있다.이 모래언덕은 당초 귀족,왕족들의 무덤이 모여사는 「사자들의 도시」였고 주변은 수도 멤피스의 도선과 같은 모양을 한 성벽이 두르고 있었다.이 돌기둥들은 죽은 이들의 도시를 지키는 신전의 일부였던 것이다.예나 지금이나 이지브엣는 나무가 흔치 않다.석재를 쓰기 이전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 나무 묶음을 집의 기둥으로 썼다.그래서 석재르 이용한 뒤에도 이 파피루스 묶음 형태를 돌기둥 장식으로 응용한 것이다.흡사 도리안식 기둥의 원형을 보는 듯해 후일 그리스 건축에 고대 이집트가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케한다.신전에는 파피루스 돌기둥 사이로 모두 43개의 작은 방들이 만들어져 있는데 다시 이집트를 구성한 부족의 수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신전을 둘러싼 돌담의 꼭대기에는 정교한 솜씨로 코브라 뱀의 머리들이 줄이어 조각돼 있다.당시 멤피스가 위치한 북부 이집트는델타 지역으로 늪지대가 많았으며 뱀이 그곳 부족들의 상징이 됐다.반면 남쪽에서는 독수리가 부족들의 상징이었다.토템과 흡사한 이 상징들은 왕들의 왕관 이마 쪽에도 붙였고 건물의 기둥 꼭대기에도 장식됐다. 계단 피라미드 남쪽에는 제5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우나스왕의 계단 피라미드가 있다.60㎡정도의 터에 위차한 비교적 소형 무덤이지만 죽적은 상형문자를 새겼다.녹색 글씨가 무덤안 4개방의 벽면에 깨알같이 새겨져 있다.고대 이집트의융성에 크게 기여했던 통일 국가의 탄생과 문자의 발견,그리고 그와 함께 시작된 절대왕권의 출현을 한는에 보여주는 유적인 셈이다.피라미드를 탄생시킨 이집트 고왕조의 멸망을 재톨한 것은 역설적이지만 피라미드의 축조도 그 원인이 됐다.파라오들은 재위기가 시작되면 곧바로 신의 피라마드를 건설하는 일에 몰두했다.대규모 사업에의 과중한 투자는 결국 국가재정을 극도로 악화시켰고 계속된 흉작으로 번영의 기세사 꺽이기 시작했던 것이다.그리고 파라오의 권위에 숨죽이고 있던 지방 귀족들이 야금야금반기를 들었고 이어서 혼란기로 접어들었다. 이후 여러 왕족을 거쳐 기원전 16세기 남쪽의 룩소르 세력이 전국을 재통일하며 고대 이집트는 다시 한 번 최상의 전성기를 구가했다.이후 100여년 이상 룩소르가 수도 역할을 하면서 멤피스는 상징적으로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그러나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리아에 모든 역할을 빼앗겨 멤피스는 영원히 역사속으로 묻히게 된 것이다.한때 파라오의 대관식이 거행됐던 프타신전의 유적에서 발굴된 중왕조의 람세스 2세 석상 1개가 지금 카이로 철도역 앞 광장에 서있다.이 석상은 멤피스의 영화를 무언으로 전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 「매맞는 아내」의 절규/김경운 사회부 기자(현장)

    ◎“가정폭력 방지법 제정하라” 눈물로 호소 『아이야 어디로 가니.…험난한 산자락 휘휘 돌아 나비가 되려느냐』 21일 낮 12시.서울 여의도 신한국당사 앞에서는 한국여성의 전화(회장 신혜수) 등 여성단체 회원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매맞아 죽은 여성들을 위한 위령제」가 열렸다. 일부 피해자들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구타 흔적을 담은 사진을 가슴에 안고 눈물을 흘려 보는 사람의 눈시울을 적셨다. 특히 지난달 29일 남편의 구타로 숨진 이판순씨(45)에 대한 한풀이 춤이 시작되자 구경꾼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씨는 지난해 국무총리 효부상을 받은 현모양처였다.30여년 동안 시부모와 노환으로 누워있는 시조모를 지극히 모셨다. 고된 시집살이를 「팔자」로 돌리고 꾹 참았다.그러나 남편이 최근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툭하면 손찌검을 하는 남편의 횡포를 참을수 없었다.이를 따지던 이씨가 남편에게 매를 맞아 숨진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91년이후 남편의 구타로 목숨을 잃은 여성은 모두 27명.사인이 불분명해묻혀버리는 사건까지 합치면 가정폭력의 폐해는 심각하다는 것이 여성단체들의 지적이다. 이날 서울 관악구 신림1동의 주부 윤모씨(37)는 18년간 계속된 남편의 구타를 견디지 못하고 급기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말았다. 여성계는 지난해 10월 국회에 가정폭력방지법의 제정을 청원했으나 흐지부지되고 말았다.한국여성의 전화 정춘숙 인권부장은 『수많은 여성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매를 맞고 있으며,살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며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 국정개입 부인… “여론전달 했을뿐”/김현철 청문회­6가지 초점

    ◎안기부 보고/김기섭씨 정보보고 “사실무근” 주장 김현철씨가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정보를 제공받았다는 의혹도 집중 제기됐다.그러나 현철씨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여러차례 부인했다. 자민련 이인구(대전 대덕) 이상만 의원(충남 아산)은 『김 전 차장이 인사권과 예산권을 쥐고 제1·2차장 소관 정보를 취합,정기적으로 증인을 만나 보고했고 증인은 이를 기초로 대통령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료로 삼았다는 의혹이 있다』면서 『이는 통치문란과 정보누설 행위로 대통령 섭정 상황이 아니면 부통령 신분으로나 가능한 일』이라고 꼬집었다.민주당 이규정 의원(경남 울산남을)은 『국내에 파견된 미국 CIA요원들이 중학동 증인의 사무실에 김전차장이 정기적으로 들락거리는 것을 보고 청와대에 주의를 환기시킨 일이 있다』며 안기부내 「현철커넥션」을 끈질기게 추궁했다. 신한국당 박주천 의원(서울 마포을)은 『증인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시중여론은 어디서 어떻게 취합한 것이냐』면서 『김 전 차장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다양한 정보를 제공받지 않았느냐』고 거듭 물었다. 이에 대해 현철씨는 『안기부에서 정보를 제공받았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학계와 종교계·법조계·언론계 등 만날수 있는 분들을 최대한 만나 취합한 시중여론을 휴일 가족모임 등을 통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해명했다. ◎인사 개입/고위급 인물 추천 “사실 아니다” 정부 요직과 언론사 등 광범위한 인사개입과 지난해 4·11총선 당시의 공천과정 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김현철씨는 매서운 질문공세를 받았다. 현철씨는 김동진 국방장관이나 오정소 김기섭 전 안기부차장 등 정부 고위급 인사의 개입설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으나 4·11총선 당시 공천과정이나 언론사 인사에 대해서는 일부 관여사실을 시인했다.현철씨는 공천과정에서 과거 민주화투쟁을 함께 하거나 92년 대선때 고생한 인사들,명망가 등의 영입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추천했으며 당시 강삼재 당사무총장과 이원종 청와대 정무수석과 당에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대해 상의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특히 뉴스전문 TV채널인 YTN사의 사장인사를 둘러싸고 이수석과 한차례 상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신한국당 이사철 의원(경기 부천 원미을)은 『총선당시 증인이 천거한 인사들의 명단을 밝혀라』며 구체적인 공천 개입 내용을 캐물었다.자민련 이인구 의원(대전 대덕)은 『증인의 사조직 출신 인사인 정대희씨를 청와대에 무적근무시킨 것을 비롯,청와대 요소요소에 부하를 파견해 국정에 참여·감시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했다.국민회의 김민석 의원(서울 영등포을)은 『신한국당 김덕룡 의원이 최근 인터뷰를 통해 증인에게 줄서서 출세한 사람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증인의 인사개입 사실을 반증한 것』이라고 따졌다. ◎이권 개입/민방선정 개입 등 추궁… “그런 일 없다” 특위위원들은 김현철씨의 각종 이권개입 의혹과 관련해 10여건의 사례를 들어 추궁했다.지역민방 및 개인휴대통신(PCS)사업자 선정,고속도로휴게소 입찰,강원도 카지노장 건설사업 과정에서의 의혹이 집중 거론됐다.그러나 김씨는 일체의 의혹에 대해 개입사실을 부인했다. 신한국당 맹형규 의원(서울 송파을)은 『광주의 L건설 등이 지역민방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측근인 박태중씨를 통해 청탁자금을 건넨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국민회의 김경재(전남 순천갑),자민련 이인구(대전 대덕) 의원 등은 김씨와 절친한 대호건설 이성호 사장이 95년 영동고속도로 소사휴게소 영업권과 서초케이블TV 사업권을 따내고 96년 뉴코리아골프장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대가성 자금을 받았는지를 물었다.김경재 의원은 또 『지난해 미국방문때 테드 터너 CNN회장과 만나 한국내 영업권과 북한진출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민주당 이규정 의원(경남 울산남을)은 『코오롱 이웅열 회장이 박태중씨의 음식점 「파라오」를 인수하면서 준 31억원이 정치자금 아니냐』고 물었다. 김씨는 『박태중씨와는 절친한 친구이나 돈을 주고 받는 사이가 아니며 그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는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국정 개입 김현철씨는 청문회에서 본인의완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국정개입의 흔적을 곳곳에서 시사했다.김씨는 신한국당 맹형규 의원(서울 송파을)이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신분만으로 국정에 개입한 것은 아닌가』고 묻자 『자식된 도리로서 말씀드린 것』이라고 말해 측근 「정치참모」로서의 역할을 사실상 시인했다.김씨는 그러나 『아버지와 지근거리에 있긴 하지만 항간에 알려진 국정·인사개입 소문은 과장돼 있다』고 주장했다. 신한국당 이사철 의원(부천 원미을)이 『실명제같은 주요정책에 대한 여론도 대통령께 말씀을 드리냐』고 묻자 김씨는 『그런적이 있다』고 대답했다.김대통령의 치적으로 꼽히는 실명제같은 주요정책에 대해서도 간여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김씨는 이어 『아버님께는 과거 (민주화투쟁때) 고생하셨거나 대선 때 고생한 분들을 실제 아버님께 말씀드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김씨는 명망가를 대통령에게 추천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버님께 직접 얘기를 한 적이 있고 일부는 이원종 전 정무수석과도 상의를 했다』면서 『구체적 인물은 거명할 수 없다』고밝혔다.의원들이 일일이 실명을 거론하며 따지자 김씨는 그제서야 새정부 출범직후 전병민 전 정책수석과 이충범 전 사정비서관의 경우 자신이 천거,청와대에서 일하게 됐음을 시인했다. 총선에서의 공천개입도 뒤늦게 시인했다.김씨는 이사철 의원의 집요한 신문이 이어지자 『내가 추전한 인사가 있다』고 인정했다.김씨는 『민주화투쟁이나 대선때 같이 뛰어준 인사를 추천했으나 손꼽을 수준은 아니었다』면서 김영삼 대통령의 후보시절 비서를 지냈던 이성헌 위원장(신한국당 서울 서대문갑) 같은 사람을 예로 들었다. 김씨는 여론전달자로서의 「소극적」인 국정개입은 순순히 시인했다.반면 대북 정책에 간여했다거나 청와대나 정부부처의 정책을 조정했다는 의혹 등 「적극적」인 개입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한보 몸통/당진방문·대출 관련 “몸통설 억울” 김현철씨가 과연 한보 특혜대출의 몸통인지 여부도 이날 청문회의 하이라이트였다. 신한국당 맹형규(서울 송파을)·박주천(서울 마포을) 의원과 국민회의 김경재 의원(전남 순천갑),자민련 이인구 의원(대전 대덕) 등은 연속해서 현철씨와 정보근 한보회장의 관계,한보에 대한 은행대출 압력여부,한보철강 당진제철소 방문사실 등을 포괄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현철씨는 『한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부인으로 일관했다. 정보근 회장과는 딱 한번 만났다고 했다.두번 만났다는 검찰진술을 뒤엎은 것이다.지난 94년 가을 오세천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소개로 시내 중국집에서 가볍게 만났으며 유학문제나 아이들 문제 등 사적 얘기만을 주고받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강남 고급술집에서 자주 어울렸다는 항간의 「설」에 대해서도 정회장과 술자리를 함께 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또 지난해 6월 한보철강 당진제철소 준공식을 전후해 당진제철소를 방문한 적이 있느냐는 추궁에도 강하게 부인했다.한보문제로 청와대수석들에게 은행대출을 부탁한 적은 더더욱 없다고 덧붙였다. 현철씨는 대통령 아들이라는 신분때문에 기업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무척 꺼렸다고 털어놓았다.그러면서 자신이 한보사건의 몸통이라는 의혹에 대해『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홍인길 의원(부산 서)이 한보 몸통이냐』는 지적에 『답변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며 예봉을 피했다. ◎대선자금/비자금 미 유출 추궁 “그런일 없다” 92년 대선때 한보 정태수 총회장으로부터 막대한 대선자금을 받아 일부를 김현철씨가 해외로 빼돌리거나 정치자금으로 사용하지 않았느냐는 것이 핵심 추궁사항이었다. 민주당 이규정 의원(경남 울산남을)은 『전두환·노태우씨에게도 거액의 선거자금을 낸 정태수씨가 김영삼 후보에게 한푼도 바치지 않았을 리 없다』면서 박태중씨가 120여개의 통장을 통해 관리한 3백여억원의 출처를 물었다.국민회의 조순형 의원(서울 강북을)은 『증인이 주도하던 나사본이 한보사태와 대선자금문제의 근본원인이 아니냐』면서 『홍인길­박태중 나사본사무국장­백창현 나사본총무국장으로 자금의 흐름이 만들어지지 않았는가』고 추궁했다. 신한국당 맹형규 의원(서울 송파을)은 『박태중씨가 국내 비자금을 제일은행과 신한은행을 통해 미국의 이우성씨에게송금,관리토록 한 의혹이 있다』고 추궁했다.국민회의 김경재 의원(전남 순천갑)은 『이우성씨는 지난 대선후 35회에 걸쳐 한국을 방문했으며,지난 1월 증인이 미국을 방문한 것도 이씨와 만나 비자금을 빼돌리려던 것 아니었느냐』고 따졌다.신한국당 김학원 의원(서울 성동을)은 『개인사무실 운영비 등 거액의 활동자금은 한보로부터 받은 대선자금에서 나온것 아니냐』고 물었다. 김씨는 대선자금 관련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특히 『올해초 뉴욕을 방문한 것은 사실이나 이우성씨를 만난 적은 결코 없다』며 비자금 해외유출관리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 이집트 피라미드:상(세계 문화유산 순례:29)

    ◎영생을 기다리는 파라오의 안식처/50층 건물 맞먹는 거대한 돌무덤/5천년 풍상에도 초기모습 그대로/죽음은 탄생을 향한 또다른 출발점/미이라옆에 영원으로 타고갈 목선이… 카이로 서쪽 기자에 있는 3기의 피라미드는 5천년 고대 이집트 문명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여주는 거대한 상징물들이다.이 피라미드들과 피라미드를 지키는 반인반수의 장대한 스핑크스상은 바로 고대 이집트인들이 삶과 죽음에 대한 그들의 믿음,즉 그들의 생사관을 표현한 건축물이다. 그러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도 첫번째로 꼽히는 이 피라미드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불가사의한 의문과 의미는 다른 문명의 유물들과는 분명히 특별한 데가 있다.카이로 시내에서 서쪽으로 25㎞에 위치한 기자고원 사막의 돌언덕 위에 이 거대 돌유물들이 만들어진 시기는 기원전(BC) 2680년이라는게 다수설이다.지금으로부터 4천6백여년 전이고 우리나라의 단군 건국이 있기 수백년 전의 일이다.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웅장함과 정교함,치밀함을 보노라면 사막의 정적속을 지나온 5천여년의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 기자언덕에서 남으로 멤피스를 거쳐 다흐슈르까지 이르는 30여㎞에 걸친 나일강 서안을 따라 모두 90여기의 크고작은 피라미드가 서있다.이중에서도 이 기자의 3대 피라미드가 가장 규모도 크고 완벽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나지막한 돌언덕을 오르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대피라미드로 불리는 쿠프왕의 피라미드이다.가장 크고 대표적인 것이다. 여행객들은 먼저 피라미드의 규모에 압도당한다.정확히 정사각뿔 모양을 한 이 석조 건축물은 정사각형 밑변의 한변 길이가 230m,높이는 146m에 달한다.원래 50층 건물에 맞먹는 높이였으나 꼭대기 일부가 풍화돼 현재의 높이로 줄어든 것이다.4개의 삼각형 옆면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키는데 이 방향이 현재의 방위각과 0.1도의 오차도 없다고 한다.4밑변의 길이도 서로 한뼘의 오차도 없다.6면체로 다듬은 석조 블록들을 하나하나 쌓아 올렸는데 대피라미드 하나를 만드는데 자그마치 2천3백만개의 블록이 들어갔다.사람 키 높이의 이 돌 블록들은 큰 것은 1개무게가 30t에 달하는 것도 있고 전체 t수가 6백30여만t에 이른다고 한다.로마의 성베드로 대성당보다도,밀라노의 성플로렌스 대성당보다도 더 큰 건축물인 셈이다.뒤편으로 서있는 케프론왕과 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는 규모는 쿠푸왕의 것보다 다소 작지만 하나같이 정교하고 웅장한 석조건축물들이다. 케프론왕의 피라미드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보다 3m가량 낮지만 약간 높은 지면에 서있어서 더 높아 보인다.가장 작은 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는 앞의 두 피라미드의 10분의 1크기에 불과하고 사용된 돌도 덜 다듬어져 졸속으로 완성한 흔적을 엿보게 한다.불가사의한 의문의 핵심은 왜,어떻게 5천여년 전에 이런 거대 석조물들을 만들었을까 하는 것이다.하나의 해답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가졌던 태양신에 대한 숭배에서 얻을수 있다.그래서 피라미드가 구름을 뚫고 내려오는 태양광선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보는 설도 있다.파라오(왕)들은 태양과 동일시됐고 바로 태양의 아들이었다.그들은 죽은뒤 태양과 다시 합쳐지는 살아있는 신들이었다. 해가 동에서 떠서 서로지면 이튿날 어김없이 다시 뜨듯이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은 죽으면 반드시 다시 살아난다고 믿었다.동쪽은 탄생의 장소였고 서쪽은 죽음의 장소였다.그래서 무덤은 반드시 나일강의 서안에다 만들었다. 그러나 이 죽음은 죽음으로서 끝나는게 아니라 탄생을 향한 또다른 출발점이었다.그래서 신과 같은 파라오의 무덤을 힘닿는데로 크고 웅장하게 지었던 것이고 피라미드는 무덤이 아니라 요람이었던 셈이다.죽은 파라오는 목관에 넣어져 피라미드 아래편 돌언덕을 파고 세운 신전에서 장례의식을 치렀다.그 장례의식은 다름 아닌 「영원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출발 채비였고 거대한 목선이 준비됐다.대피라미드 남쪽면 바위굴 속에서 발굴된 이 목선은 길이 43m,폭 6m를 한 전형적인 나일강의 목선이었다.일명 「태양의 배」로 불리는 이 목선을 타고 파라오의 죽은 몸은 암흑을 뚫고 영원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인들은 영혼이 몸체 없이 혼자서 이 긴 여행을 감당할수 없다고 믿었다.그래서 미이라를 만들었다.제일 먼저 내장을 들어내고 다음 머리의 골을 빼냈다.가장 중요한 것은 심장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미이라에 남겨두었다.시신은 마른 소금에 담가 절여서 탈수를 계속한 뒤 시원한 바람을 쐬며 계속 말렸다.그리고 수지같은 방부제를 피하에 채워넣고는 성형수술을 하듯 얼굴 밑에 패드를 집어넣었다.그위에 다시 수지를 입힌 린넨천을 감싸서 외기와 차단했다. 미이라 작업이 끝나면 그것을 사람 모양의 금관 혹은 나무관에 넣어서 다시 석관에 넣고 그것을 다시 여러 겹의 나무상자로 쌌다. 그 다음 이들은 태양의 아들이 영원으로의 여행을 하도록 영원히 지탱할수있는 무덤을 지을 궁리를 했다.고대 이집트인들은 일찍이 4각뿔이 가장 안정된 구조라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여기다 천혜의 조건들이 피라미드들이 수천년을 견딜수있게 도왔다.카이로 일대는 지진 안전지대이다.수천년 동안 한번도 큰지진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사철 내내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기후도 도움이 됐다.바위에 스민 수분이 얼어 동파가 되풀이됐다면 이렇게 온전히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대피라미드의 석재를 공급하기 위해 고대 이집트인들은 3곳의 채석장에서 돌을 날랐다.본바닥인 기자지역에서 나는 사막의 거친 사암은 몸체 재료로 삼았고 외벽장식으로 쌓은 매끄러운 석회암은 카이로 남쪽 650㎞에 위치한 투라의 채석장에서 운반해왔다.그리고 내부의 특별히 힘을 받는 부분과 회랑,묘실,내부장식용으로 사용된 화강암은 남쪽 1천㎞ 떨어진 아스완의 암벽에서 운반해 왔다고 한다.평균 중량이 2.5t,더러는 30t까지 나가는 거대한 돌덩이들을 운반하는 작업은 나일강이 범람하던 시기에 맞춰 거대한 거룻배를 이용해 날랐다.바퀴와 도르래가 발명되지 않았던 시절,이들은 날라온 돌을 쌓기 위해 자갈로 보도를 만들고 그위에 굴림대를 깐 다음 돌덩이들을 실은 나무썰매를 그위로 굴려서 옮겼을 것이라는게 정설이다.쿠푸왕의 피라미드를 만드는데는 연인원 10만여명이 동원돼 20여년이 걸렸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파라오들은 재위하면 곧바로 자신의 피라미드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음이 분명하다.그것은 절체절명의 가장 힘겨운 과제,즉 「죽음을 정복하기 위한 싸움」의 준비였다.그들이 이루고자했던 것은 바로 인간의 불멸에 대한 꿈이었던 것이다.
  • 진주 남강댐 상류/국내 최대 선사문화 보고

    ◎구석기∼초기철기시대 유적 발굴/토기·돌연모 등 무더기로 쏟아져/삼국시대 토착세력으로 재등장 경남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와 내촌리 일대 남강댐 상류지역이 우리나라 최대규모의 선사유적지이자 선사문화의 보고로 차츰 그 모습을 드러냈다.남강댐 확장에 따라 수몰할 이들 지역에서는 구석기에서 신석기,청동기,초기철기시대로 이어지는 여러 문화유적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현재 한양대를 비롯 동아대,건국대,동의대 등 10개 대학이 이 일대 유적에 대한 구제발굴에 나섰다. 발굴을 진행하고 있는 지역은 남강댐을 이루는 물줄기의 하나인 덕천강유역.한양대박물관팀은 이 지역에 맨 먼저 들어온 인류인 구석기인들의 생활 흔적을 찾아냈다.바로 대평면 내촌리 구석기유적이다.내촌리유적을 발굴중인 한양대팀은 차돌과 야무진 강돌로 만든 한쪽날 찍개와 양쪽날 찍개,긁개,석핵 따위의 구석기시대 돌연모 100여점을 거두었다. 한반도 남부 내륙지역에서는 처음 발견된 내촌리 구석기유적은 지금으로부터 4만∼3만5천년까지 중기구석기시대와 후기구석기시대 사이의 것으로 추정했다.그러나 발굴결과에 따라 시대가 더 올라갈 수 있다는 견해도 제시되었다. 그 다음 시대에 신석기인들이 덕천강유역에 들어와 살았던 생활 흔적은 동아대 박물관팀이 대평면 상촌리에서 찾았다.상촌리 신석기유적은 집자리 15기와 상자모양의 화덕,집자리 근처를 빙둘러 파놓은 구덩이 환호,돌무지 등으로 되어있다.집자리 유적에서는 무늬가 들어간 그릇 유문토기,돌도끼,갈돌,숯돌,돌칼 따위의 돌연모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토기의 경우 그릇무늬는 굵은 선의 물고기뼈를 나타낸 태선어골문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릇 거죽에 붉은 색을 입힌 단도토기 조각도 여러 점이 나왔다.이밖에 인골로 보이는 뼈가 담긴 뾰죽밑토기가 출토되었다.발굴팀은 밑바닥에 구멍이 뚫린 이 토기를 무덤독 매옹으로 보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옹관이라는 해석을 내려 주목을 끌었다.이러한 출토유물 성격으로 미루어 상촌리 신석기유적 연대를 기원전(BC 3000∼2500년) 사이로 잡았다. 청동기시대 사람들 역시 덕천강유역 충적평야지대인 대평면상촌리에 자리잡고 살았다.그들이 BC1000∼300년 사이에 남긴 청동기유적은 건국대박물관팀이 발굴하고 있다.집자리 유적과 그 주변에서 농경유물인 돌낫과 보습,반달모양의 돌칼과 숫돌 등 돌연모를 거두었다.이들 돌연모를 만들었던 석기제작소를 발견했는데,이는 중요한 발굴성과로 꼽혔다.이밖에 덕천강에서 고기잡이를 할 때 사용했던 어망추도 여러점이 나왔다. 건국대박물관팀은 현재 발굴중인 청동기시대 문화층 바로 위에서 초기철기시대 농사유적을 이미 발굴한 바 있다(서울신문 2월10일자 12면).이 유적과는 다른 철기시대유적인 집자리가 대평면 내촌리 덕천강가 언덕에서도 발견되어 동아대 박물관팀이 그동안 40기를 발굴했다.BC 300년에서 기원(AD)바로 전후까지 초기철기시대를 살았던 내촌리 유적의 집자리 주인공들은 삼한 사람들이었다.이들 삼한사람들은 뒷날 역사시대의 토박이 세력으로 삼국사회에 재등장했다.
  • 인권조치 진전 없을땐 대중 유엔결의안 채택/미 국무부 경고

    【워싱턴 연합】 미 국무부는 4일 중국이 인권 개선을 위한 추가 조치를 끝내 취하지 않을 경우 이달말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중국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공동 발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니컬러스 번스 국무부 대변인은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미국이 인권 결의안을 공동 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번스 대변인은 중국이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며 명확한 행동을』취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으나 추가 개선 조치가 취해진 흔적을 아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백제대사 옛터 일 나라현서 발견

    【도쿄 연합】 일본 왕이 7세기경 처음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구다라노 오데라(백제대사)의 거대한 금당으로 보이는 기단 옛터가 발견됐다고 일본의 나라국립문화재연구소가 27일 발표했다. 백제대사는 서명왕이 639년 국가불교를 위해 건립을 시작했으나 건물 등은 모두 없어지고 소재지에 관해서만 여러가지 설이 전해져 내려왔다. 연구소는 그러나 나라현 사쿠라이시 「기비이케하이데라」(길비지폐사)를 발굴한 결과 남북 약 27m,동서 약 36m,높이 약 2m로 지반에 50㎝ 가량 박혀 있던 견고한 기반 흔적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 “김장현씨 집 협박편지 북한측 소행은 아닌듯”/이한영씨 피격수사

    ◎용의자 러 교포와 흡사”/부산시민 제보 이한영씨 피격 사망사건을 수사중인 합동수사본부는 27일 이씨가 임시로 살던 김장현씨(44) 집에 배달된 협박 편지는 북한의 소행이 아닌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김덕순 수사본부장(경기경찰청장)은 이 날 『범인들이 협박편지를 써서 단서를 제공할 리 없고 보복 내용이 무모한데다 단체가 아닌 「구미호」라는 개인 명의로 편지를 보냈으며,「흔적을 남겨 부끄럽다」는 내용 등으로 미루어 대남 공작원의 소행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사회불안과 수사혼선을 노린 국내 불순분자나 정신병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부산경찰청은 이씨 피격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몽타주 인물과 비슷한 러시아 교포가 최근 부산을 다녀갔다는 제보에 따라 사실 여부를 확인중이다. 김모씨(41·부산시 부산진구 개금동)은 27일 부산진경찰서에 『지난 92년∼94년 사이 러시아를 오가며 무역중개상을 할때 알게된 러시아교포 이모씨(35)와 용의자의 인상착의가 비슷하고 최근에도 3차례 만났다』고 신고했다.
  • 멕시코 유카탄주 치첸이차(세계 문화유산 순례:24)

    ◎천문학에 눈뜬 마야인의 신도시 유카탄 반도의 주도 메리다의 아침은 그리 상쾌하지는 않았다.멕시코만과 카리브해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 탓에 다소 끈적한 느낌마저 들었다.과거 문명의 흔적을 더듬어가는 즐거움이 아니었다면 쉬 짜증이 날만한 기후였다. ○성채닮은 캐슬피라미드 꼭대기까지 365계단 태양력 1년 날수와 같아 마야인들은 욱스말이 점차 도시기능을 잃어가자 그 중심지를 동쪽으로 옮겼다.양과 질에서 점차 커져가는 자신들의 문명을 담아낼 새 그릇이 필요했던 것이다.오늘날로 말하면 신도시를 건설했다고나 할까.그곳이 바로 메리다에서 동쪽으로 120㎞쯤 떨어져 위치한 치첸이차(Chichen Itza)다.그래서 이 도시는 후기 마야문명(AD 900년경∼AD 1521년)의 중심지가 됐다.선대의 정신적·물질적 가치들이 보다 정제된 형태로 남아 있는 것도 이 때문인 것이다. 관광객들 틈에 섞여 입구를 지나 숲이 드리운 서늘한 그늘 길을 100m쯤 걸어 갔을까.너른 잔디밭위에 떡하니 버티고 앉은 건축물 하나가 길을 가로막았다.이름 그대로 웅장한 성채를 닮은 「캐슬 피라미드」였다.길이 55.3m의 정사각형으로,전체 높이가 23m나 되는 「캐슬 피라미드」는 모두 9개 층을 이루었다.그리고 사방 벽면에 4개의 계단 구조를 갖추었다. 피라미드 구조를 찬찬히 뜯어보면 더욱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각각 91칸인 계단수를 합치면 모두 364단이다.여기다 꼭대기의 제단을 더하면 꼭 태양력의 1년 날수와 같은 365단이 됐다.또 9개 층 계단을 의도적으로 양분해 놓아 당시의 달수(월수)인 18이라는 숫자를 나타냈다.그러고 보면 「캐슬 피라미드」는 마야인들의 예술적 건축기술과 천문학 지식수준이 한데 맞물린 문명의 집적체 그것이었다. 피라미드 북쪽 계단은 또다른 신비를 간직했다.피라미드 밑에서 꼭대기에 이르는 돌 난간이 해마다 춘분과 추분날 하오 4시만 되면 환영을 연출한다는 것이다.태양의 빛과 그림자가 오묘한 조화를 이뤄 마치 커다란 뱀이 꿈틀대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정확히 3시간22분동안 계속된다는 그 환영을 목격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뱀을 숭배했던 마야인들은 해마다 춘분이 돌아오면 엄청난 영적환희에 휩싸였을 것이다. ○인신제물의 마야인의 풍습/「착몰」신께 바친 제물은 공놀이서 이긴 자의 심장 「캐슬 피라미드」를 뒤로 한채 동쪽으로 걸어갔다.멀리서부터 촘촘히 서있는 흰색 돌기둥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그 수가 족히 1천개가 넘는다고 한다.언뜻 보기에 지붕을 떠받치던 기둥이 아닐까 했지만 그러기에는 간격이 너무 좁았다.그렇다면 이 돌기둥들은 과연 무엇에 쓰였을까? 궁금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가파른 계단이 나타났다.「전사의 피라미드」에 오르는 통로였다. 계단은 36단을 이루었다.서둘러 오르자 먼저 「착몰」(Chac Mool)신의 형상이 시야에 들어왔다.앉아있는 것도,누워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의 신은 엉덩이를 땅에 댄채 상체를 45° 각도로 들었다.그리고 발목을 엉덩이에 붙인채 두 무릎을 바로 세웠다.얼굴은 왼쪽으로 향한채 끝이 안보이는 어딘가를 직시하면서 두 손은 가지런히 모아 배위의 접시를 받치고 있다. 「착몰」신상의 쓰임새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스페인 정복 이전 마야인들이 산사람의 심장을 신에게 바치는 풍습이 곧바로 연상됐다.방금 꺼낸 사람의 심장을 신상이 두손으로 받친 접시 위에 올려 놓았을 것이다. 마야인들은 신에게 심장을 바칠 인신제물을 「후에고 데 펠로타」,즉 공놀이장에서 구했다.신성한 공놀이에서 승리한 사람은 곧 자신의 심장을 신에게 바쳤다.승자가 죽음을 영광처럼 받아들였던 마야인의 심성은 참으로 불가사의했다.「캐슬 피라미드」서쪽에 위치한 「후에고 데 펠로타」는 길이 146m,폭 36m로 중앙 아메리카 최대 규모로 밝혀졌다.그 형태가 비교적 깨끗하게 남아있는 양쪽 벽면에는 전형적인 마야의 깃털장식과 동물가면을 쓴 군인들의 모습이 선명했다.용맹스런 군인을 상징하는 「재규어의 신전」이 벽 위에 우뚝한채 공놀이장을 내려다 보고있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치첸이차 유적지에서 빼놓을수 없는 것이 북쪽에 있는 「세노테」(Cenote)다.지름이 50∼60m는 족히 넘고 깊이가 40여m에 이르는 대규모 연못이다.1924년 미국인 고고학자 에릭 톰슨이 발굴작업을 실시한 결과,각종 도자기·흑요석 등과 함께 인간의 뼈가 나왔다는 사실은 주목할만 했다.가뭄이나 흉년이 들었을때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세노테」는 농사지을 물을 대는 저수지 기능을 했을 뿐아니라 제소로도 활용했던 성지였음이 틀림없다. ○천체 관측한 「돔」탑/창문에 비친 태양각으로 춘하추분 정확히 알아 치첸이차는 마야인들이 천문학에 본격적으로 눈을 떴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또다른 증거를 간직하고 있다.「캐슬 피라미드」남쪽 300m 지점에 천문대로 사용했을 「소라의 피라미드」가 바로 그것이다.오늘날의 우주관측소에서 볼수 있는 돔(Dome)형 지붕이 뚜렷하고,내부에는 천체관측에 사용된 이중 구조물이 남아있다.마야인들은 돔탑을 둘러가며 나있는 창문에 비친 태양의 각도를 재어 춘하추분을 정확히 알아맞추었다.현대과학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그들의 문명수준이 놀라웠다. 1988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치첸이차에는 이들 유적 말고도 전쟁포로의 목을 길게 꿰어 벽면에 걸어놓았던 「솜팡틀리」와 「금성의피라미드」 등 여러 건축물이 남아있다.제사를 앞둔 제사장이나 사냥에 나설 사냥꾼들이 몸을 씻거나 출산전후의 임산부가 목욕을 하던 증기목욕탕 시설까지 갖춘 완벽한 도시 치첸이차.떠나면서 다시 돌아본 고대도시에는 마야인들은 오간데가 없고,석양을 뒤로한 문명의 그림자만이 깔려있을 뿐이었다. ▷여행가이드◁ 메리다 시내에 숙소를 정하고 관광버스나 렌터카를 이용할 수 있다.그러나 치첸이차가 메리다와 세계적인 휴양지인 칸쿤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어 유적지를 둘러본뒤 칸쿤으로 숙소를 옮기는 것이 낫다.입장료는 18페소(일요일은 10페소). 또 매일 하오 7시와 9시에는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피라미드의 야경을 버여주는 「빛과 소리의 쇼」가 열린다.7시는 스페인어로,9시는 영어로 설명을 해준다. 치첸이차로 가는 도중 우리나라의 초기 중남미 이민사를 대표하는 「에네껭 농장」
  • 국민회의/「권노갑 의원 수수」 공식사과

    ◎약점 정면돌파… 대여 공세 강화될 듯 국민회의가 권노갑 의원(전국구)의 「한보돈」수수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권의원이 정태수 한보총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시인한지 닷새만이다. 정동영 대변인은 10일 성명을 내고 『국민에게 누를 끼친데 대해 사과하며 특히 그 기업인이 부도덕한 사람이었다는데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정대변인은 『법적인 문제는 앞으로 가려야 할 일이지만 당으로서 도의적,정치적으로 국민에게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권의원도 이날 간부회의에서 「죄송」을 표시했다. 국민회의의 이같은 자세 전환은 시점과 맞물려 관심을 끈다.마침 연루 정치인에 대한 검찰 소환조사가 시작됐고,권의원은 11일 검찰에 출두할 예정이다.만일의 사법처리 가능성에도 대비하는 흔적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국민회의는 그동안 「사과」를 주저해왔다.권의원이 받은 돈이 「떳떳한 것」임을 부각시키려는 듯했다.그러나 검찰의 정치권 수사가 본격화되자 더이상 주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국민회의는 한보사태와 관련해 공세적인 자세를 취해왔다.그러나 권의원의 연루는 이런 행보에 발목을 잡고 있다.따라서 「사과」를 통해 「약점」을 정면돌파하면서 대여공세의 강도를 한단계 더 높이려는 뜻이 읽혀진다.
  • 우리나라 최고 농경유적 발굴

    ◎건물대박물관팀 진주시 남강댐상류 덕천강유역/두둑·고랑 갖춘 철기시대의 농사흔적 뚜렷/삼한사회 등장시기… 변한 세력의 터전 추정 경남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농경유적이 발굴됐다.지금까지 밝혀진 농경유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상촌리유적은 초기철기시대(BC 3,000∼0년)농사흔적을 뚜렷이 간직하고 있다.건국대박물관 최무장 교수팀이 발굴한 상촌리유적은 남강댐 상류 덕천강가 층적평야지대에 자리잡은 대규모 농경유적이다. 상촌리 농경유적은 9천600㎡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분포되었다.현재 드러난 농경지에는 이랑이 규칙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모두 3개 구역으로 나누어 발굴한 농경유적 가운데 A구역은 5m 간격으로 두둑을 만들고 50㎝너비의 고랑을 파놓았다.지금까지 확인한 이들 이랑은 남북방향으로 50m나 길게 뻗혀있다.그리고 13구역은 이랑 너비를 불규칙하게 동서방향으로 만들어 놓고,긴 고랑을 남북방향으로 내어 이랑들과 교차시켰다. 이들 농경지의 고랑은 물을 댔던 관개시설로 보았다.이랑은 두둑과 고랑의 흙색깔이 서로 달랐다.두둑의 흙색깔이 고랑의 흙색깔 보다 훨씬 더 검었는데,그 이유는 거름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됐다.특히 상촌리일대 평야의 흙은 비옥하기 이를데 없는 충적토.거기다 수량이 풍부한 강물을 끼고있는 탓에 초기철기시대 당시에도 농경조건이 대단히 좋았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이 일대의 시대층위를 가려내기 위해 판 C지구에서는 초기철기시대 층위 아래 형성되었던 청동기시대 층위도 찾아냈다.청동기시대 층위에서는 기둥구멍이 있는 움집터가 발견됐다.또 초기철기시대 생활층에서는 베를 짤때 쓰는 가락바퀴와 고기잡이 그물에 매다는 어망추,토기 등의 유물을 수습했다.이밖에 현재의 지표 아래로 하부구조가 묻혀있는 고인돌 2기가 확인됐다. 상촌리 선사농경지가 이루어진 초기철기시대는 삼한사회가 등장한 시기에 해당한다.그러니까 삼한시대인 것이다.이 지역은 농경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변한사회 한 세력집단의 터전일 가능성이 많다.중국의 사서 「삼국지」에 나오는 변진의 고자미동국 중심지로 알려진 고성이 그리멀지않은 거리에 있다.그러나 고성지방의 유적은 조개더미가 주류를 이루어 상촌리 농경유적과는 그 성격이 아주 다르다.
  • 강택민 핵폐기물 적극대응 배경

    ◎북­대만 밀월/“「하나의 중국」 위협” 판단/한반도 대결국면 중에도 부담 중국이 30일 대만 핵폐기물의 북한반출 움직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 천명하고 나서 후속조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택민 중국국가주석이 전날 방중중인 김수한 국회의장에게 『멀지 않아 적절한 표명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데 이은 발빠른 입장 표명이다. 강주석은 김의장과 만났을때 이례적으로 준비한 메모를 토대로 설명을 했다.때문에 『단순한 외교적 수사는 아닌 것 같다』는게 우리측 외교 관계자들의 분석이었다. 김의장은 『강주석이 사태를 방관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자세였다』고 소개했다.우리측 한 외교통은 『강주석의 발언은 이례적으로 강도가 높은 것으로 이해된다』고 분석했다. 「하나의 중국」을 주창하는 중국측에서 보면 이번 사태는 환영할 사안이 될 수 있다.대만의 핵쓰레기 수출은 자국의 환경보존에 보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러나 이번 사태를 그렇게 간단하게 보지 않는듯 하다.북한과 대만의 관계가 발전하게 된다면 정치적 의미의 「하나의 중국」기조가 위협을 받을수 밖에 없다. 아울러 핵폐기물 반입 강행은 남북간의 대결국면을 조성하게 된다.한반도 정세의 불안은 경제에 주력하고 있는 중국이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31일 한중간에 핵폐기물 관련 실무회담이 시작되는 것에서 보듯 중국측의 대응속도는 빨라지고 있다.중국이 나름대로 사태를 막기위해 노력하는 흔적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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