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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작 문서엔 미확인 첩보 수두룩”/안기부 구 핵심 3인 반응

    ◎권영해 전 부장­본인에 모든 책임… 조기 매듭 희망/박일룡 전 1차장­국내 정치권 인사와 접촉만 했을뿐/이병기 전 2차장­북 지령 받은 인물들의 동태 등 파악 권영해 전 부장,박일룡 전 1차장,이병기 전 2차장 등 안기부 구 핵심 3인은 몸을 낮추고 있다.조용히 여권동향을 살피며 나름대로 관련자료를 챙기고 있다. 그러나 개인 견해를 물어보면 한결같이 “북풍사건을 빨리 마무리지어야지 이대로 두면 안기부 조직이 와해되는 것은 물론,대북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한다.최근 일부 공개된 안기부 문건과 관련,“대선 당시 주요 3후보측이 모두 대북문제를 표에 유리하게 연결시키려고 애쓴 흔적을 정보차원에서 수집한 내용을 모은 것”이라며 “확인 안되는 첩보차원도 많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이들은 “대선 당시 이인제 후보측의 대북접촉을 문제삼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그냥 넘어간 것이 결국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도운 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권 전 부장의 한 측근은 “권 전 부장이 자기가 총체적 책임을 지는 선에서다른 요원들을 사법처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했다”고 말했다.박 전 1차장측은 “국내정치 파트를 담당해 정치권 인사들과 접촉했을 뿐”이라고 밝혔다.이 전 2차장은 ‘흑금성’ 등의 공작활동과 관련,“북한의 지령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정치권을 교란시키는 행동을 해 동태파악을 했었다”며 ‘정치공작설’을 부인했다.
  • 박일용 전 차장 사법처리 방침/검찰 북풍수사

    ◎권영해씨 소환대신 서면조사 검토/이번주중 안기부 고위간부 7∼8명 소환 검찰은 15일 북풍공작 사건과 관련,권영해 전 안기부장을 비롯,박일용·이병기 전 차장,남영식·이청신 전 특보 등 안기부 전직 고위간부 7∼8명을 이번주 중으로 소환,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이들 가운데 재미교포 윤홍준씨(32·구속) 기자회견 등 북풍공작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박 전 차장 등 2∼3명을 혐의 사실이 확인되는 대로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러나 권 전 부장의 경우 구체적인 혐의를 포착하지 못한 데다 전직 안기부장이라는 점을 감안,소환조사하지 않고 자진출두나 서면조사,제 3장소에서의 조사 등을 검토중이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안기부 자체조사 과정에서 박 전 차장을 비롯한 일부 전직 고위간부들이 윤씨 사건 등 일련의 공작과정에 개입한 흔적을 확인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주 중으로 안기부가 자체 감찰을 통해 공작연루 의혹이 있는 전직 안기부 간부와 정치권 인사들에 대해 고발 또는 수사를 의뢰해 올 경우 즉각 수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수사의 신속한 처리를 위해 서울지검에 사건을 배당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현직 야당의원 등 일부 정치인이 개입한 혐의를 잡고 정밀 조사중이다.
  • 화천에… 가야산에 호랑이?

    ◎10∼40㎝ 발자국 수십­수백개씩 발견/“보폭­일직선 보행 보아 최소한 표범” 【화천·합천=조한종·이정규 기자】 강원도 화천군 민통선과 경남 합천군 가야산에서 호랑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이 최근 잇따라 발견돼 관심을 끌고 있다. 비디오작가 임순남씨는 “호랑이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9.5㎝ 크기의 발자국 30여개를 화천에서 촬영했다”고 3일 밝혔다. 또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마장마을 주민들은 이날 “지난달 중순 가야산 인근에 많은 눈이 내린 뒤 눈위에 큰 짐승의 발자국 수백개가 발견됐다”면서 “발자국 끌린 흔적이 30∼40㎝에 이르고 보폭도 1m∼1m50㎝에 달하는 만큼 호랑이 발자국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경남대 손성원 생물학과 교수(59)는 “일직선으로 보행하는 짐승은 고양이과가 유일하다”며 “발자국이 일직선으로 나있는데다 발자국의 크기나 보폭으로 볼때 호랑이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편 강원도산림개발원은 지난 1월과 2월 화천군 화천읍 풍산리와 동촌리 등 평화의 댐 인근 산간지역에서 호랑이 발자국을보았다는 주민들의 제보에 따라 환경부 생태조사단 야생동물 전문조사원 한상훈 농학박사와 강원도산림개발원 전문조사원 조성원씨(47) 등 조사단이 1월 16일부터 5일동안 현장조사를 실시했으나 서식 가능성에 대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조 조사원은 “풍산리와 동촌리 평화의 댐 산간계곡과 속칭 비수구미계곡에서 발견된 발자국은 폭 8㎝ 크기의 매화무늬 모양으로 표범 발자국일 가능상이 크다”고 말했다.
  • 시적 영감 풍기는 설치작품/홍수자씨 개인전

    석남미술문화재단이 수여하는 올해 석남미술상 수상작가인 홍수자씨 작품전이 17일부터 24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여숙화랑(544­7393)에서 열린다. 홍씨는 현실속에서 겪는 결핍과 좌절,또는 억압에서 비롯되는 욕망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부각시키는 실험적인 작업에 치중하고 있는 작가.동물들의 절단되거나 오그라진 다리나 가공된 피부 등 죽음의 흔적을 드러내면서 상처받은 욕망의 반증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주로 선보여왔다.즉 나약한 존재들의 꺾인 욕망을 통해 확고한 기존의 형식이나 관념·개념들에 대한 저항을 암시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이번 전시는 종전 작업해왔던 설치작품을 중심으로 사진과 평면,그리고 조각품까지 집약해 보여주는 자리.특히 구체적인 모티브를 택해 산문적으로 작품들을 보여줘 시적 상상력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는 것들이 나온다.
  • 출병의 현장 의란(흑룡강 7천리:21)

    ◎청­러전 참전 조선군 함성 들리는듯/효종,청 지원요청 따라 포수부대 262명 파견/1658년 ‘송화강 전투’서 러시아군 270명 섬멸 지난해 12월 2일 나는 하얼빈에서 가목사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96년 여름 송화강 답사차 가목사로 갈 때는 장장 9시간을 밤기차를 탔고 1년 전 가목사에서 하얼빈으로 갈 때만 해도 택시로 근 10시간을 달려야 했던길이다. 그런데 이제는 국가 1급 도로가 완공돼 화장실까지 갖춰진 독일제 호화버스로 345㎞를 4시간만에 닿았다. 신나는 여행이었다.하지만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조선족역사 연구’(고영일 저)에서 인용했던 ‘이조실록’의 한 토막이 자꾸 머리에 떠오르면서 역사의 귀곡성이 가슴을 울렸던 것이다. 효종 5년(1654년) 2월 이상진이 국왕에게 상소했다. “지금 나선(러시아를 가리킴)의 정형은 걱정거리로 되었나이다.만일 강변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또 어떤 군대로써 이를 방어하겠나이까. 신하의 소견은 문신중에서 덕재를 겸비한 자에게 북노병마사의 직책을 지우고 그 지방의 백성으로 하여금 조정의염려의 덕택을 알도록 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군정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보나이다” ○영고탑서 청군과 합류 효종은 찬동을 표시했다. 1643년 외흥안령 야크츠크의 보야코브가 흑룡강을 넘어 살륙을 시작하면서부터 침략이 빈번해지자 청 정부는 경차도위 명안달례를 파견,‘송화강전투’를 발동하게 하면서 조선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청군 주력이 모두 관내에 진출한 불리한 조건이라 청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조선의 지원군은 150명.그들의 행군노선을 보면 함북 회령에서 두만강을 넘어 오늘의 연변지역을 경과하여 8일만에 영고탑(오늘의 흑룡강성 영안시)에 도착,거기서 청군과 합류하여 목단강 뱃길로 닷새만에 회통강(송화강)에 이르렀다고 한다. 목단강이 송화강과 합수하는 곳이면 바로 오늘의 흑룡강성 의란현의 소재지 의란이다.하얼빈에서 235㎞,가목사로 가는 길옆에 있는 현성인데 36만 인구중 조선족은 겨우 4천592명이 살고 있다.서쪽은 소흥안령,동과 북은 완달산,남쪽은 장광재령에 둘러싸인 분지다.만족의 조상이 거주했던곳이라 청실의 ‘조종발상중지’라고도 한다.의란을 만족어로는 ‘의란허라’라 부른다.의란은 셋,허라는 성이라는 뜻으로 의란의 원이름은 삼성이다.지금도 도시 안에는 ‘삼성전화공사’ ‘삼성관상대’ ‘삼성상점’ 등 간판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온다. 삼성이란 갈,노,호씨인데 청나라 천명원년(1616년)에 태조 고황제의 초무를 받아 기적에 든 허저족 커이거러(갈의극륵),누예러(노업륵),허리(합리)씨족을 지칭한다.이들은 만주 팔기에 들어 누르하치,황태극,순치 등을 따라 명나라를 정벌하는데 전공을 세웠다.그 공으로 천명 5년에 의란땅을 세습지로 하사받았던 바 영고탑,훈춘과 나란히 길림삼변으로 유명했다. ○오국성유적 그대로 12월 3일 의란현성에 이르자 나는 당시 청군과 조선 지원군이 러시아군과 혈전을 벌였으리라 짐작되는 목단강과 송화강의 합수목으로 달려갔다.얼어붙은 항구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봄이 오고 강이 녹으면 배들은 짐을 싣고 송화강을 거슬러 하얼빈으로 가기도 하고 또 물결을 따라 흑룡강으로 가기도 한다.그런데 애석하게도 송화강 물결을 따라 의란과 가목사로가는 항로에는 암초가 많아서 큰 배는 통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하지만작은 배는 무난히 오갈 수 있다고 했다. 조선 지원군이 적선에 불벼락을 안겼던 곳인 목단강과 송화강의 합수지점엔 오국성 유적이 남아 있다.의란진 북쪽 변두리에 ‘오국성옛터’라고 쓴 커다란 시멘트판이 서 있다.그 뒤로 세월의 흐름속에 겨우 흔적을 알아볼 수 있는 흙으로 쌓은 성벽이 낙엽진 버드나무의 쓸쓸한 형상을 띠고 언 대지위에 누워 있었다.역사의 기록에 보면 오국성 성벽의 둘레는 2천210m,높이 4m,기관 8m,정관은 1.5m였다고 한다. 오국성이 유명해진 것은 중국 역사상 ‘정강지란’이 이곳에서 있었기 때문이다.의란진에 있는 자운사의 용왕묘 옆에 세워진 시멘트 푯말에는 ‘휘흠이제유금지지’라고 적혀 있다.바로 여기서 송조 말기의 두 황제가 연금생활 끝에 1133년 한많은 생을 마쳤다. 자운사가 선 때가 1928년,바로 용왕묘 자리는 의란 부도통의 포병진지였다고 한다.1900년 러시아가 중국을 침략하면서 포격으로 이곳을 초토화시켰다고 한다.17세기 중반 조선 지원군의 포화에 쫓겨갔던 러시아는 20세기 초입에 다시 포화로 진격해왔다.역사는 톱질과 같이 밀고 당기는 것인지도 모른다.그런 와중에 인간은 애향심에 울며 세상을 떠나갔다. ○아군 8명 전사 25명 부상 1658년 6월 조선정부는 신류를 대장으로 소관 2명,포수 200명,고수와 화정 60명의 군사들에게 군량 3개월분을 휴대시켜 두만강을 넘어 영고탑으로 진군시켰다.이들은 6월 5일에 출발,10일 흑룡강에 이르렀다.전투는 도착날인 6월 10일(양력 7월 11일) 흑룡강과 송화강의 합수지점(오늘의 흑룡강성 동강시)에서 벌어졌다.싸움은 저녁까지 계속됐는데 쓰제바노브의 러시아군은 270명이 섬멸되고 47명이 겨우 도망했다.아군은 8명이 전사하고 25명이 부상했다. 그들이 이름 석자도 남기지 못하고 거친 북만주에서 시신으로 쓰러진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던 순간 나는 분명 애끓는 귀곡성을 들었다.
  • 이란 「페르세폴리스」(세계 문화유산 순례:61)

    ◎대평원 열주로 남은 페르시아수도/2,500년 전 다리우스대제가 세운 관성대도시/‘182년 영화’ 알렉산더대왕 말발굽에 폐허로 페르세폴리스는 기원전 2천500여년 전에 건설된 페르시아제국의 수도이다.인도­아리안계인 「파르스」족의 아케메네스 가문이 이룬 국가라 하여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첫 비행기를 타고 남쪽으로 2시간을 날면 고대 도시 시라즈에 도착하고,다시 자동차로 동쪽으로 1시간을 달리면 ‘타크트 에 잠시드’에 도착한다.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 페르세폴리스의 현지명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셀 수 없는 열주와 초석, 궁전터와 성벽계단,건물의 잔해들,궁전의 규모라기 보다는 궁성 대도시였다.고도 1500m의 황량한 평원에 끝없이 펼쳐지는 폐허의 잔해에서 묻혀지고 잊혀버린 페르시아 제국의 위용을 떠올리기는 힘들었다.역사의 상처마저 풍화되어 보는 이의 가슴을 친다.페르시아는 고대 아시아의 마지막 자존심이었고, 힘만 믿고 서양을 통째로 동양에 실어 날랐던 알렉산더의 도도한 물결에 정신적 가르침을 준 마지막 스승이었다. 페르세폴리스는 바로 그 동양적 정신의 심장부였다. ○각 국어로 새긴 ‘세계의 문’ 장엄한 도시 페르세폴리스는 기원전 518년 다리우스 대제에 의해 건설되었다.그리고 그 도시의 완성은 그후 100년이 더 지난 후였다.세계정부가 있던 곳이며,당시 지구상에 번성하던 모든 문화의 집결지였다.외국사신이 빈번히 내왕하고,동서양의 상인이 북적거렸다.중앙아시아에서 연결되는 육상 실크로드와 인도에서 건너오는 해로의 요지에 위치하여 풍부한 물자와 다양한 외국의 문물이 페르세폴리스를 살찌웠다. 사치와 향락,호화로운 파티가 연일 계속되었다. 그러나 페르세폴리스의 운명은 그렇게 길지 못했다. 기원전 330년 페르세폴리스에 도착한 알렉산더는 이 놀라운 아시아의 번성을 감당할 수 없었다.철저히 파괴하고 불태웠다.182년간의 짧은 생애였다.그리고 2천260년 동안 망각속에 있었다. 1931년 부터시카고 대학의 동양연구소 고고학 팀이 본격적인 발굴과 복원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페르세폴리스의 역사적 의미는 되살아 났다. 페르세폴리스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아파다나궁이다.왕들의 대접견장이었던 이 건물은 다리우스 대제때 시작하여 세르케스 왕때 완성되었다.지금은 72개의 기둥 중에 13개만 남아 있다.기둥과 벽면에는 부조가 조각되어 있어 당시의 역사적 편린을 엿볼 수 있다.상대적으로 조그맣게 새겨진 외국사신들이 손에 진상품을 가득 들고 커다랗게 묘사된 페르시아 왕들앞에 서있는 조각은 정말 사실감을 준다.사신들의 공손한 표정이며 왕의 근엄한 태도,날리는 옷자락에서 공물로 바쳐지는 동물들의 몸부림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인 한 편의 장대한 서사시가 전개된다. 어떻게 돌을 쪼아 저토록 선연하고 감동어린 조각을 만들 수 있을까?항상 그러하듯이 수천년전의 한 역사 유물에서 인간은 숙연함과 겸손을 배우게 된다. 페르세폴리스 건물 중 또 빼놓을 수 없는 가장 화려한 건물은 세르케스궁이다. 19m 42㎝ 높이의 1백개의 열주로 꾸며졌으나,이제 몇몇 기둥만이 그 흔적을 전해줄 뿐이다. 입구의 대문을 받치는 두 개의 큰 기둥에는인간의 모습을 한 황소가 조각되어 있다.11m 높이의 대문 위에는 엘람어와 아시리아어,페르시아어로 각각 ‘전세계의 문’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페르시아 국의 위용을 엿 볼수 있다.이곳의 기둥마다에도 쐐기문자로 새겨진 역사가 숨쉬고 있다.왕은 주로 세 가지 모습으로 묘사되었다.불을 모신 신전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옥좌에 앉아 있는 모습,또는 걷고 있는 모습들이다.부조의 양식들은 아시리아의 니네베 조각의 양식을 많이 닮아 있다.그러나 자세히 보니 약간의 차이도 보인다.권력과 신분에 따라 인물조각의 크기가 다르다.커다란 왕의 위엄앞에 보일락 말락하는 이름없는 백성의 표정이 인상적이다.특히 옷자락의 묘사에서 니네베 양식은 옷이사람 몸에 찰싹 들러붙어 있으나,이곳 페르세폴리스 양식은 옷이 살아 펄럭펄럭 날리고 있다.최고의 예술적인 조각기법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아파다나관 대표적 건물 신전은 불의 신인 아후라마즈다를 모셨다. 빛과 어둠,선과 악이 엮어내는 페르시아 사람들의 이원론적인 민간신앙이 조로아스터교로 성장했다.그리고 유대교에 직접 영향을 주어,오늘날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이원론적인 세계관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종교사 이야기이다.기원전 6세기말,페르시아의 창건자인 키루스는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그곳에 포로로 잡혀있던 유대인을 무사히 이스라엘로 돌려보냈다.나아가 재정지원을 통해 예루살렘사원을 재건축하게 해주었다.그래서 히브리 성경에는 유대인 지도자에게도 좀처럼 부여하지 않았던 각별한 존경을 키루스에게 표하고 있다.신과 악마의 대결,천국의 보상과 지옥의 응징개념 등이 바빌론 유수 이후에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페르세폴리스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마케도니아의 20대 청년 알렉산더의 광풍을 견딘 세력은 아무도 없었다.페르세폴리스를 불태운 알렉산더는 전군을 풀어 다리우스 3세를 추격했다.카스피해 연안까지 쫓긴 다리우스 3세는 박트리아 총독이었으며,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던 베소스의 배반으로 비참하게 죽음을 맞는다.온 몸이 열 군데 이상 칼로 찔린 아시아의 대왕은 마케도니아의 한 병사의 눈에 발견된다.포로로 잡힌 다리우스는 그 병사로부터 한모금의 물을 받아 마신 후,조용히 눈을 감는다.기원전 330년 7월,막 해가 지는 시각이었다.대페르시아 제국도,그 수도였던 화려한 페르세폴리스도 이렇게 하여 기나긴 망각의 역사 속으로 묻혀갔다. ◎여행 가이드/테헤란∼인근 시라즈까지 비행기로 2시간 엄격한 이슬람 국가라 여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지만,의외로 친절한 이란 사람들의 인간미와 철저한 치안으로,오히려 외국인들에게는 관광의 안전지대이다. 테헤란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시라즈로 가서 그곳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페르세폴리스가 있다.현지명이 타크트에 잠시드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시라즈에는 호마호텔이 유명하다.관광안내는 이란 관광국 안내(892212)나 이란 관광정보센터(227072)로부터 얻을 수 있다.
  • 올 세계 과학계엔 무슨 일이…/생명·우주신비 규명 큰 걸음

    ◎생명공학­복제양 탄생… 윤리 논쟁 불붙여,생쥐유전자 시계 발견… 불면증 등 치료 파란불/우주탐사­패스파인더호 화성탐험사 새 장,목성위성 유로파서 빙하·화산 흔적 발견 흥분 97년 세계 과학계는 생명공학과 우주탐사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많이 냈다. 생명과 우주의 신비를 규명하려는 인류의 노력은 세계적으로 거센 윤리논쟁을 일으킨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켰고,7개월간의 항해끝에 패스파인더호를 화성에 올려 놓음으로써 우주도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이와 함께목성 위성중의 하나인 유로파에서 소금의 흔적을 발견,이 곳에 생물체가 살수 있는 대양의 존재 가능성이 높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밝혀냈다. 97년 세계 과학계의 가장 큰 이슈는 역시 복제양 ‘돌리’의 출현. 영국 스코틀랜드 로슬린연구소의 아이언 윌머트 박사팀은 지난 2월 6살짜리 암양의 유방세포에서 세포핵을 채취해 이를 다른 양의 세포핵이 제거된 난자에 주입,이 유전조작된 난자를 또다른 양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방식으로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켰다.결국 유방세포를 떼어준 양이나 난자를 제공한 양과는 모두 관계 없는 복제양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동물복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다 자란 암양의 단일세포를 이용해 다른 양을 복제하는 것은 지금까지 불가능한 일로 여겼다. ‘돌리’의 탄생은 성장한 포유동물의 생식세포가 아닌 보통 세포로도 완전한 복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지만,이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될 경우 사상 초유의 혼란스런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거센 윤리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어 로슬린연구소는 혈우병 치료에 필요한 응혈인자를 생산하는 사람의 유전자를 양의 세포에 주입하는 방법으로 또다른 복제양 ‘폴리’와 ‘몰리’를 만들어 냈다. 96년 12월4일 발사된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호는 지구와 화성간의 최단거리인 ‘호먼궤도’를 초속 32.75㎞로 날아 지난 7월5일 화성에 착륙,인류 화성탐험 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 패스파인더호는 무게 11.5㎏의 자그마한 체구에 6개의 바퀴가 달린 로봇 ‘소저너’를 통해 화성의 기후와 표면상태에 관한 생생한 정보를 지구에 전송,전세계를 흥분시켰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조지프 다카하시 박사팀은 밤에는 자장가를 들려 주고 아침이면 기상나팔을 불어 주는 ‘인체 유전자시계’를 생쥐에서 처음 발견해 냈다.이같은 유전자가 인체에서도 발견되면 불면증·시차병 등 생체리듬장애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12월 초에는 미국의 목성 탐사선인 갈릴레오호가 목성 위성중의 하나인 유로파에서 빙하와 화산의 흔적을 확인,첫 우주생명체의 발견 가능성을 열었다. 미국 국립항공우주국(NASA)은 “유로파의 표면에서 반사되는 광선을 분석한 결과,지구에서 소금이 증발할 때 형성되는 광물질중의 하나인 황산 마그네슘이 검출됐다”면서 이는 유로파에 소금성분이 풍부한 대양이 현재 존재하고 있거나,아니면 과거에 대양이 딱딱하고 얼어붙은 지표아래에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밝혔다.목성의 4개 위성중 크기가 가장 작은 유로파는 조류의 힘에 따라 생성되는 내부의 열과 물 등 생명체에 필수적인 두가지 성분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 그동안 NASA의 지속적인 탐사대상이 돼 왔다.
  • “지리산 서남부 7곳서 반달곰 서식흔적 발견”/5개단체 합동조사

    천연기념물인 반달가슴곰이 지리산 서남부지역 7군데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이 23일 민관 합동조사결과 밝혀졌다. 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존회(회장 우두성) 등에 따르면 이날 전남 구례와 전북 남원,경남 하동일대에서 서식지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곰이 올해에 3곳,지난해 2곳,3∼4년전 2곳에서 흔적을 남긴 것을 발견했다. 우회장은 “불과 3∼4일전 반달가슴곰이 삼도봉 아래 이끼가 낀 바위에서 미끌어진 흔적을 발견했으며 영신봉에서는 상수리가지를 꺾어 만든 곰선반이 8개나 무더기로 발견돼 집단서식의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 반달가슴곰/지리산 생존 확인/환경부­일 조사단

    국내 서식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었던 천연기념물 반달가슴곰에 대한 민간합동의 정밀 생태조사가 실시된다. 환경부는 환경부 생태조사단과 일본 반달가슴곰연구소(소장 마이타 가주히코 미전일언)가 지난 9월6일부터 10월23일까지 3차례에 걸쳐 지리산일대에서 반달가슴곰 생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생후 2년으로 추정되는 반달가슴곰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20일 밝혔다. 환경부는 이에 따라 오는 23일 반달가슴곰이 서식할 가능성이 높은 지리산내 20곳에서 서식 개체수를 파악하기 위해 민간합동 정밀 생태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 “집권하면 일자리 1백만개 창출”/이인제 후보 초청 TV토론중계

    ◎“내가 당선되면 정계개편 될것/경선승복 약속 못지킨것 사과/DJ지지율 구성 건강하지 못해”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대통령선거전의 3자 구도가 확립된 뒤 12일 처음 열린 한국신문협회·한국방송협회 주관의 TV토론회에 참석,정치·경제·사회 분야의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일문일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영삼 대통령의 지원이 낭설이라고 주장하는데. ▲독자출마 45일 동안 나에게는 1명의 의원도 없었다.국민 지지 없었다면 나라는 존재는 사라졌을 것이다.국민들이 현명하게 가려줄 것으로 믿는다. ­상향식 민주정당을 표방하지만 그런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은 당이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다.아직 제도가 정비되지 않았다.현재 지구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상향식이 불가능하다.선거가 끝나고 내년 봄쯤이면 체제가 정비될 것이다. ­신당은 급조된 정당이다.수권 능력이 있는가. ▲급조가 아니다.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만들어 가고 있다.국가경영은 공무원 같은 전문집단의 역할을 발현시키면 된다.나에게 부족한 것은 ‘가신’이다.그러나 통치가 아니고 경영이 필요한 이 시대에는 가신이 도움되지 않는다.또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3김시대를 끝내라는 국민의 뜻이 표현된 것이다.새로운 차원 정계개편 이뤄지고 안정적 기반을 갖게 된다. ­대통령이 된 뒤 인사 방침은. ▲각료와 수명을 같이 할 생각이다.경기도지사 시절 인사권 행사한 경험이 있다.당시 인사청탁은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지사 시절에 골프장을 몇개나 허가했나. ▲하나도 없다.신청 자체가 없었다. ­‘이인제파일’에 대한 입장은. ▲그런 것을 조직적으로 만들어내는 무슨 공장이 있는 것 같다. ­경선 불복 컴플렉스 느끼나.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그러나 경선뒤 경선승복 약속만 지키고 있기에는 더 큰 국민의 요청이 있었다.약속을 못지킨 것은 사과한다.그러나 출마해서 국민에게 선택의 기회를 늘려주는 것이 나의 가야할 길로 믿었다. ­지지율 때문에 출마했다면,지지율 1위인 김대중 후보를 청산하자고 말할수 없는 것 아닌가. ▲나는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시대가 요구하는것은 젊은 지도력이다.김대중 후보 지지율의 구성을 따져보면 건강하지 못하다. ­경선불복은 청소년들에게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 아닐까. ▲우리나라 정당은 민의에 바탕을 둔 완전한 구조 아니다.민주정치 잘 되는 상황에서 경선결과에 불복하고 출마 결심한 것 아니다. ­여권 분열로 김대중 후보만 돕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승리를 확신한다.현 상황은 여야 2분구도가 아니다.신한국당은 이미 여당을 포기했다. ­금리와 물가 정책은. ▲임기중 13%의 금리를 7%로 내리도록 하고,물가도 3%선에서 안정시키는 정책을 취하겠다. ­고임금 구조에 대한 입장은. ▲이미 올라간 임금은 낮출수 없다.앞으로는 생산성 범위내에서 올리도록 하겠다. ­무노동 부분임금을 옹호하나. ▲나도 시장경제론자다.일하지 않는데 임금이 어디서 나오나. ­실업대책은. ▲집권하면 5년이내에 1백만개 이상의 좋은 일자리 만들어 내겠다.단기적으로는 직업훈련 강화와 고용정보망 확대,고용보험의 내실있는 운영이 필요하다. ­어떻게 일자리 1백만개를 만드나. ▲벤처산업을 육성하면 관련분야의 고용이 창출된다. ­고교 평준화를 폐지할 용의는. ▲예전처럼 1,2,3류 고등학교로 돌아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 ­전교조를 합법화할 생각은. ▲무리하게 추진하기 어렵다.교원단체 통해 교사들의 복지요구가 반영되는 체제로 가고 사회적 공감대 형성될 때 노조를 인정해야 한다. ­노조의 정치 참여는. ▲노조가 직접 나서 후보를 내고 조직,자금으로 뛰어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좋다. ­현재 13%인 여성고용 할당비율에 대한 입장은. ▲집권하면 30%까지 올리겠다. ­김정일을 어떻게 펑가하나. ▲아직 잘 모르겠다.그러나 개인의 성격도 중요하지만 북한이 당면한 객관적 상황을 주의깊게 보고 있다.
  • 미국영어와 영국영어/유만근 성균관대 교수(굄돌)

    우리나라에서 영어학사를 특별히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미국영어가 옛날 것이고,영국영어는 발음·문법·의미 모든 면에서 새 것이라고 일러주면,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수가 많다.아마 그것은 영국의 보수적이고 역사 오랜 나라,미국이 진취적이고 새로운 나라라는 일반상식으로,언어까지 그러려니 하고 지레 짐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민들이 가지고 간 언어는 마치 여름날 옮겨 심어 놓은 화초처럼,처음 한동안 잘 자라지 않는다.미국영어가 17∼18세기 옛날 영어인 것처럼,남미 스페인어는 옛날 스페인어이며,북미 퀘벡 불어는 옛날 불어다.그래서 가령 200년후 미국 LA한국어는 대체로 현재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테지만,서울말은 자꾸 빨리 변해 나가서 결국 큰 차이가 날 것이라고 확실히 예언할 수 있다. 오늘날 외국어로 영어 하나쯤 아는 것은 문명국 교양인들이 으레 갖출 필수 조건처럼 되었는데,특히 발음면에서 우리가 옛날 영어와 새 영어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필리핀·한국처럼 미국과 특별히 긴밀한 관계를 가진 나라가 아니면,대개들 새 영어를 택한다.영연방 50여개국은 물론,유럽 모든 나라가 영국 영어발음을 배우고 있으며,중국과 일본도 그 쪽으로 가는 듯하다. 이제 우리도 미국에만 가는 것이 아니라,동남아시아,호주,유럽,아프리카로 마냥 뻗어 나가는데,각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개 영국식 새 영어를 배운 사람들이다.여러 나라 사람들이 참석하는 국제회의에서는 언제나 영국 표준발음을 구사할 수 있어야 편리하고 꽤 유리한 것을 나는 실제로 여러번 경험하였다.직업외교관은 물론 BBC영어 발음을 잘해야 좋다. 영어교육으로 말하면,원래 조기교육은 우리나라 같이 영어를 늘 쓰지 않는 환경에서는 별로 효과가 없는 것인데,그나마 처음에 시작을 잘못하면 나쁜 흔적을 길이 남길수 있다.조기영어교육이랍시고,미국사람이면 어중이 떠중이 아무나 모셔다 무턱대고 과외교사로 삼는 분별없는 짓은 나중에 크게 후회할 수도 있는 일이니 부디 삼갔으면 한다. 한편 우리의 당면 목표가 ‘미국화’가 아니고 ‘세계화’라면,한국인도 5·16 군사정변 이전 교과서 발음으로 돌아가,영국 표준발음을 학교에서 주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 정치적으로 이용된 풍경화/마르틴 바른케 저 ‘정치적 풍경’

    ◎군주위세 나타내려 주문한 그림 등 분석 플랑드르의 화가 피터 폴 루벤스(1577∼1640)는 프랑스 왕 앙리 4세가 출전한 이브리 전투장면을 그리면서 마치 호메로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뒤엉켜 있는 것처럼 연출,고대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기병대의 전투는 전쟁사에 이른바 근대적인 쌍방의 전면적 ‘총기 기병전’으로 기록될 만큼 획기적인 것이었다.그러나 루벤스는 전쟁을 지휘자들끼리의 영웅적인 결투양상인양 변형시켜 놓았다.권력을 쥔 주문자의 요구대로 실제 전쟁상황을 은폐하고 신화화한 것이다.우리가 흔히 접하는 풍경화에서 이러한 ‘정치적으로 점거된’ 풍경의 흔적을 찾아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최근 도서출판 일빛에서 펴낸 ‘정치적 풍경’(마르틴 바른케 지음,노성두 옮김)은 풍경화의 겉 주제아래 얽혀있는 복합적인 의미의 매듭을 풀어낸 인문교양서로 독자들의 지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최근들어 부쩍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정치적 풍경’이란 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제3제국 곧 나치제국의 선전상이었던괴벨스가 하를란 감독의 영화 ‘콜베르크’를 보고 “이 영화는 정치적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다.브라질 태생의 독일 미술사가인 바른케는 이 ‘정치적 풍경’이란 말 대신 ‘정치화한 풍경’이란 표현을 쓴다.풍경화에 대한 해석법은 자연히 미학적이기기 보다는 문화사·정치사적인 데로 기운다.조그만 경계석에서 거대한 기념비에 이르기까지,바른케는 풍경에 새겨진 조형에서 정치적 신호를 읽어낸다. 15세기 초 랭부르 형제가 그린 ‘베리 공의 시력그림’에는 소박하지만 정치적인 신호가 분명하게 깃들여 있다.초기 풍경화 요람기의 작품인 이 그림은 영주가 소유지에 대한 권리를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주문해 그려진 것이다.첨탑 모양의 성체현시대처럼 서있는 ‘십자로의 실 잣는 아가씨’라는 이름의 도로표석은 군주의 위세를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또 1435년 슈테판 로흐너가 그린 ‘최후의 심판’에는 성채 풍경에 대한 정치적 평가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도시는 천국,성채는 지옥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이그림은 성채가 지배하던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은유이자 새로운 도시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일러주는 징표로 읽힌다.바른케는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정치적인 의미때문에 흐려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한층 더 명료해질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고 집필의도를 밝힌다.
  • 새로운 각성(중앙아시아를 가다:1)

    ◎중국 능가했던 주체적 고구려문화/집안 오회분의 ‘달님­해님’ 그림 독창적 솜씨/중원에 업은 샅바싸움 강건한 기상의 무예 서울신문은 민족문화 원류를 탐사하는 새 주간기획물 ‘중앙아시아를 가다’를 연재합니다.중국 동북지방에서 중원을 거쳐 중앙아시아 대초원과 사막을 찾은 서울대 윤이흠 교수(세계종교사)가 엮는 로망의 문화기행입니다.이 시리즈는 현지에서 확인한 고구려와 발해문화를 통해 고대 민족문화 루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그래서 낙양과 서안,돈황을 거쳐 천산산맥 남북 기슭을 여러 차례 넘나들며 중앙아시아 곳곳을 누볐습니다.거기에는 우리 고대문화와 유사한 흔적을 간직한 옛 소련땅 독립국가들의 문화유산 모두가 포함되었습니다.민족문화를 역동적으로 끌어올린 고대문화 통로를 찾는데 물론 역점을 두었지만,중앙아시아에서 만난 동포들의 삶도 함께 다룰 예정입니다. 만주 벌판의 광활한 땅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백두산에 이른다.그 웅비하는 산세를 접하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여기가 우리 민족의발원지려니 하는 마음을 갖는다.7년전 100명의 제천단을 이끌고 처음 백두산을 올랐을때 감격은 지금도 지울 수 없다.어째서 여기를 민족의 기원지라 믿게 되는 것일까.이 풀리지 않는 숙제를 안고 민족문화의 뿌리를 찾아 나섰다.그래서 발길을 먼저 연변지역으로 돌렸다. 우리는 흔히 문화의 뿌리와 기원에 대한 질문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본질을 찾으려 한다.기원과 본질을 동일시하는 것은 자칫 혼돈스러운 것이다.이는 아주 오래된 인간의 사유습관으로 정착했다.그 오래된 습관이 민족의 기원과 본질을 이해하는데 혼돈을 불러 일으키는 대표적 사례는 우리 문화와 중국문화의 관계에서 드러난다.그 관계를 컴퓨터용어를 빌려 설명하면,우리가 한문을 수용하면서 중국문화가 우리의 고유문화를 덮어씌운 것이다. ○중국시각서 탈피할때 그래서 모든 고유 개념어들이 중국문화 내용으로 대체되었다.이를테면 삼재사상같은 것이 그런 경우다.천지인을 말하는 삼재사상은 주대에 시작해서 한대에 와서 완성되었다.따라서 그 이전 단군조선 문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그럼에도 삼재사상이 한국문화의 뿌리이자 본질인 양 착각한다.이는 분명히 오래된 사유습관의 오류를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우리는 이제 중국 일변도의 시각에서 자유로워질 때가 되었다. 그런데 북방에서 만난 고구려와 발해의 문화는 중국 일변도의 오류에 대한 각성 그것이었다.집안 고구려 고분인 오회분 4,5호 묘에서 비는 달님 ‘여와’ 및 햇님 ‘복희’의 그림과 각저총의 격투기 및 씨름 그림은 중국문화에 예속하지 않은 고구려인의 솜씨다.두꺼비가 있는 달을 머리에 인 여와는 물론 중국 문헌에 나오는 내용이다.그러나 7세기에 그린 이 그림은 흐트러지고 유연한 당시 중국의 비천과는 전혀 다른 강건한 기상을 담았다. 그러니까 고구려인들은 중국으로부터 문헌전통을 받아들였으되,미의 감각 만큼은 자신들의 것을 버리지 않았다.그들은 고구려의 정서라는 그릇에 중국의 문화를 담았던 것이다.이는 고구려문화에 나타난 일관된 현상이다.무예대결의 그림수박도 고구려인들의 고유한 자기수련 전통이 배었다.또한 샅바를 맨 씨름은 중국에 없는 무예다.특히 고구려인과 대결중인 상대방 얼굴의 코는 유난히 높게 강조되었다.서역(서역)의 서양인이 분명했다.이는 고구려인들이 중국 밖에 사는 사막과 스텝의 민족들과도 교류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 그림이다. 중국 대륙은 한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일어서기 전까지는 북방 유목민족들에게 철저히 유린되었다.그 오합지졸의 상태였던 시기에 고구려는 대륙 동북방에서 강성한 제국을 이루었다.고구려는 당시 대륙에서 크게 봐야할 국가도 없었고,그렇게 해야할 이유도 없었다.그리고 문화적 주체성을 지녔던 고구려는 유교나 불교,도교와 같은 외래종교를 등거리에서 조정할 수 있었다.그러나 고구려의 태도는 왕조가 망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또 방대한 스텝지방에 자리한 돌궐제국의 칸들과 적극적인 접촉을 통해 서역과 활발한 물물교류를 가졌다. ○외래종교 등거리서 조정 고구려가 망하면서 발해가 대신 나서 그 고토를 차지했다.고구려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만주족을 끌어안고 나라를 세운 발해인들의 애환은 흔히 만주라 일컫는중국 동북지방 곳곳에 스며있다.그 많은 발해 무덤에서는 화려했던 문화의 흔적이 속속 드러났다.근·현대에 걸쳐 일어난 압록·두만강 건너로의 민족대이동은 어쩌면 귀소본능에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른다.그들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씨앗을 뿌리고 터전을 잡았다.항일독립전쟁에도 힘이 되어준 그들은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고구려 고토에 살고 있다. 북하의 중국쪽 두만강변 언덕에는 조선족 민족시인 이욱(1907∼1984년)의 시비가 서 있다.‘칠순/할아버지/나무를 심으며/어린 손자를 보고/싱그레 웃는/그 마음/그 마음’이라는 시다.그 시를 읊조려보며 내려다 본 강건너 무산시는 무척 적막했다.동양 제일이었다는 철광도시가 폐허로 변한 무산은 적막하다 못해 살벌했다.내일을 위해 나무를 심지않은 땅 무산.그의 시가 구구절절 절실하게 가슴을 파고 들었다. 그 암울했던 시대에 더러는 일제를 피해 블라디보스토크의 해삼위로 들어갔다.일제의 마수에서 벗어났다 했더니 스탈린은 그들을 중앙아시아로 내몰았다. ○고려인 삶도 조명 옛날 고구려인들이 칸들과 교류하던 바로 그 스텝에서 살고 있는 오늘의 고구려인이 그들이다.그래서 중앙아시아 이방인들 틈새에서 외롭게 살아온 고구려인들도 만나기로 했다.우리 민족문화의 원초적 잔영이 어슴프레 보이는 땅으로까지 역류하여 들어간 고구려인의 이주는 우연이었을까.그러나 역사는 필연적일수 밖에 없다. 어떻든 이번 ‘민족 문화의 원류’를 탐사한 여행목적은 우선 고구려인이 서역과 문화를 교류하는데 뒤따랐던 두가지 통로를 찾는 것이었다.다시 말하면 중국 서안에서 돈황을 거치는 비단길과 그 밖의 북방통로를 살피는 것으로 압축된다.이와 더불어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먼 한반도 동남쪽 끝자락 신라와 중앙아시아의 관계를 짚어본다는 의도도 깔았다.그리고 비단길이 지나던 중국 오지의 조선족과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삶에서 세계속의 한민족 위치를 발견코자 노력했다. □필자 약력 △1940년 서울생 △서울대 종교학과졸 △미 밴더빌트대 대학원석사 △미 노스웨스턴대 대학원 철학박사(종교학) △정신문화연구원연구원 △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 청춘들이여 꼼꼼해지라/이승복 홍익대 교수·시인(굄돌)

    가을 학기가 시작한다.교정에는 수줍다고나 표현해야 할 그런 바람이 분다.바람 속에는 웬지 쉽지 않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만 같다.깊은 사색을 준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여름의 그것과 달라서인지,분수의 물줄기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길도 한참을 묶여 있다.지난 여름 배낭여행의 흔적을 미처 지우지 못한채 분수곁에 앉아 유럽의 흔적을 더듬고 있기도 하고,기대보다 빨리 다가온 가을에 무엇을 준비할지 염려도 하면서 학생들은 성장하고 있다.그 모습이 때론 갸륵하리만치 소중하게 느껴진다.아이들이 성숙한다는 것은 가을을 앞둔 하늘가의 조도만큼이나 인상적이다.그래서인지 학교밖의 사람들을 만나면 학생들의 저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자랑하고 싶어 어쩌지 못할 때가 많다.저녁해가 질 양이면 교정에는 분주함과 애틋함이 뒤섞인 채 노을이 덮히고 그 아래서 청춘들은 호흡을 만들어낸다.그리고 그 무렵에 만나는 촉촉함이야말로 함께 하지 않으면 알수 없는 매력임에 틀림없다.하물며 저 아이들이 나와 닮아 있다는 것을 볼 때는 그리 정겨울 수가없다.욕하면서 닮는다더니 하지 말라는 것은 어찌 그리도 잘 따라 하는지,재미도 있고 얄밉기도 하다.하지만 선생이라선지 학기를 시작하며 사색하는 청춘에게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군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청춘들이여,모쪼록 꼼꼼해 지기를. 학생들이 한국 근대사를 말할 때마다 구호처럼 퍼붓는 말이 있다.대충주의다.청산되지 않은 역사며,위인설관의 정치현상,얼른 해치우고 쉬자는 식의 단발행정도 그렇다고 한다.뿐만 아니다.하려는 생각만 있으면 이미 다 된 것처럼 말하는 민주와 민족과 통일도 마찬가지란다.게다가 하늘의 비행기,땅에선 자동차,그리고 바다엔 배가 대충대충의 결과를 속속 보여주고 있다며 한껏 볼멘 소리를 계속해왔다.그렇다.이 모든게 대충주의의 성과다.어쩌면 대충주의야말로 우리들의 생활속에 자리하고 있는 가장 중심된 이데올로기이며,철학인지 모른다.하지만 질기디 질긴 뿌리도 끝은 있는 법.우리를 닮은 청춘들아,자네들부터는 따라하지 말았으면 싶다.
  • 경기도 연천군 원당리 구석기유적/한반도 최고유적 가능성 높다

    ◎건대 최무장 교수팀 조사/최초 선주민이 쓰던 돌연모 찍개 발굴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2리 구석기유적이 한반도 구석기시대의 표준유적일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건국대 박물관장 최무장 교수(고고학)팀이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이 유적 맨아래 문화층에서 가장 원시적인 석기를 찾아내 이를 뒷받침했다.이들 석기류 가운데는 구석기인들이 자갈돌 한쪽면을 떼어내 처음으로 만든 돌연모인 찍개가 주류를 이루었다. 원당리 구석기유적은 임진강가 높은 지대에 자리잡은 강가유적.지난해 1차 조사에서 400평을 발굴한 건국대박물관은 올해 2차 조사에서는 300평에 4개의 구덩이를 파들어갔다.그 결과 지층이 맨위의 지표층으로부터 현무암층까지 모두 9개 층위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했다.이들 지층에서 인류가 살았던 흔적을 남긴 이른바 문화층은 위로부터 2번째 심회적색 찰흙층과 4번째 홍갈색 찰흙층으로 밝혀냈다. 인류가 먼저 들어와 살았던 문화층은 4번째 지층인 홍갈색 찰흙층.이 지층에서 단순한 원시적 돌연모 찍개를 위주로 한 긁개,손톱모양 밀개,찌르개 따위의 석기류가 나왔다.이러한 석기를 만들어 썼던 구석기인들은 오늘날 임진강가 원당리유적에 첫발을 들여놓은 인류.지금으로부터 15만∼20만년전인 전기 구석기시대를 살았던 원당리 구석기인들은 한반도 최초의 선주민이기도 하다는 것이 최무장 교수의 견해다. 원당리유적을 한반도 최고의 구석기유적으로 보는 것은 4번째 홍갈색 찰흙층에서 찍개와 같은 단순한 석기가 나왔기 때문이다.돌맹이 한쪽을 다른 돌로 쳐서 떼어냈을뿐 거의 몸들연장에 가까운 걸음마 단계의 석기류인 것이다.찍개는 물론 원당리 말고 다른 구석기유적에서도 나왔다.그러나 다른 유적에서는 찍개와 함께 잘 발달한 주먹도끼 따위의 돌연모를 거느려 원당리유적에 비해 시기가 뒤진다는 것이다.원당리유적이 한반도 구석기 표준유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도 여기서 찾고 있다. 그리고 이번 발굴조사에 나타난 2번째 지층인 심회적색 찰흙층은 후기 구석기인들이 살았던 문화층,지금으로부터 2만년 전후를 원당리에 살면서 단단한 차돌을 가지고 정교하게 다듬은 석기를 남겼다.날카로운 작은 석기가 대부분이나,큰 강돌을 조개모양으로 떼어 칼처럼 사용한 대형긁개가 출토되어 주목을 끌었다. 그런데 이 유적의 두 문화층 사이에 3번째 황갈색 찰흙층과 4번째 암황갈색 찰흙층에서는 아직 유물이 나오지 않았다.따라서 전기구석기와 후기구석기 사이에 공간으로 남은 3·4번째 지층에서 유물을 찾는 일이 숙제이기도 하다.그러나 유적 이웃 밭에서 후기구석기말에서 중기구석기시대에 유행한 주먹도끼와 같은 석기류가 많이 채집되었다.이를 근거로 발굴을 계속하면 원당리유적에서 공백으로 남은 중기구석기문화를 찾아낼 확률은 얼마든지 남아있다. 원당리유적 발굴 지도위원으로 참여한 서울대 임효재 교수(고고학)는 “고형의 돌연모와 지층을 통해 전기구석기문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그리고 “지금까지 혼란을 겪었던 구석기시대 편년문제도 해결할 길이 트였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 “해킹 이젠 어림없다”/한국정보보호센터,예방·추적SW 개발

    ◎인터넷으로 시스템점검 대응조치/접속 로그파일 보존… 해커 추적 지원 인터넷으로 해킹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고 해커를 쉽게 추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소프트웨어가 국내 처음 선보였다. 한국정보보호센터(원장 이재우)는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컴퓨터시스템의 해킹취약성을 진단할 수 있는 ‘온라인 시큐어닥터(Online SecuDr)’와 해커의 해킹흔적 삭제 및 변경 행위를 막을수 있는 ‘시큐어로그(SecuLog)’등 2종의 S/W를 개발,희망기관에 보급키로 했다. 온라인 시큐어닥터는 시스템관리자가 인터넷을 통해 컴퓨터시스템에 대한 점검신청을 하면 자동으로 해당 시스템의 취약성을 점검,분석 결과와 대응방법을 전자우편으로 관리자에게 자동 통보해준다.따라서 컴퓨터시스템 관리자는 원격지에서도 간편하게 컴퓨터시스템의 취약성을 분석하고 대응조치를 취할수 있다. 시큐어로그는 시스템 접속 및 사용내역이 기록된 로그파일을 해커가 삭제 또는 변경해 해킹 흔적을 없애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해킹 발생때 해커를 손쉽게 추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다. 온라인 시큐어닥터를 활용한 온라인 안전진단서비스는 인터넷을 통해 한국정보보호센터 홈페이지(http://www.kisa.or.kr)에 접속,점검신청을 하면 곧바로 사용할 수 있다.시큐어로그는 사용희망기관이 한국정보보호센터에 신청하면 대상기관의 컴퓨터시스템을 분석한 뒤 프러그램을 주고 설치·사용을 위한 기술지원도 할 계획이다.
  • 충북 수양개유적 10만평 사적지 지정

    ◎국내 최대규모… 중기 구석기∼초기 철기 망라/현재도 발굴 계속… ‘한반도 선사문화의 보고’ 충북 단양군 적성면 매곡리 수양개유적이 최대규모의 사적으로 떠올랐다.문체부 문화재위원회가 지난 22일 사적으로 의결한 수양개유적은 모두 10만평.지금까지 규모가 가장 컸던 충남 부여군 송국리유적 4만평에 비해 2.5배가 더 넓다.이처럼 수양개유적을 대단위로 넓게 잡아놓은 이유는 점단위 유적에서 경험한 문화재보호의 한계성을 극복하기위한 조치로 풀이할 수 있다. 이 유적은 중기구석기를 비롯 후기구석기,신석기,청동기,초기철기시대를 망라했다.선사문화(의 보고로 평가받는 보기드문 복합유적이다.지난 1983년 충북대 이융조 교수(고고학) 팀이 중기구석기유적을 발굴하면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 유적은 지금까지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그만큼 여러 시대에 걸친 선사문화유적이 수양개 곳곳에 분포되어 이번에 문화재위원회가 사적지로 의결한 것이다. 이 유적에서는 중기구석기시대의 긁개,찌르개,주먹대패 따위의 석기가 출토되었다.약 2만년전에 수양개로 들어온 중기구석기인들은 강가 자갈층 위에 삶의 흔적을 남겼다.그 다음 단계에 수양개에 자리잡았던 후기구석기인들의 유적에서는 주먹도끼,찍개,좀돌날몸돌과 슴베찌르개 등의 석기류가 쏟아져 나왔다.특히 슴베찌르개는 약 1만7천년전의 수양개문화가 일본으로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국제학술회의를 통해 검증한 바 있다. 수양개에서 나온 석기류의 소재는 거의가 판암,수양개유적은 다른 구석기유적과는 달리 석기제작 흔적을 뚜렷이 남겼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돌망치와 모룻돌 같은 석기제작에 필요한 도구들이 나온 석기제작소만도 자그마치 50군데를 찾아냈다.이는 구석기인들의 석기제작행위를 복원할 수 있는 결정적 자료가 되었다. 그리고 야생동물 젖소(원우) 정강이뼈에 물고기모양을 새긴 조각품이 나와 당시 구석기인들이 지닌 사유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이 밖에 토기조각을 포함한 신석기시대 유물과 청동기시대 유물이 산발적으로 나오고 있다.더구나 지난해는 한반도에서 역사의 새벽을 연 초기철기시대의 삼한사회유적을 찾아냈다.이는 고고학계와 더불어 고대사학계가 수양개유적을 다시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모두 5만평에 이르는 삼한시대 마을유적으로 1차 발굴에서 집자리 26군데를 찾고 많은 유물을 거두었다.유물은 청동의기,철제 무기류와 생활용구,토기,옥제 치레걸이 등으로 되어 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이루어진 수양개유적은 남한강 상류의 강가유적.지금은 충주댐을 막아 유람선이 닿는다.이와 더불어 중앙선철도와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간다.또 다른 구석기 동굴유적인 금굴,구낭굴,상시가 수양개와 이웃했다.그래서 이 기회에 남한강상류 선사골화를 한눈에 바라볼 ‘수양개 선사유적발굴관’을 세워 국민교육장으로 활용하자는 여론도 높게 일고 있다.
  • ‘현대인의 인간성 회복’ 형상화/박찬갑씨 예술의 전당서 개인전

    동양사상에 바탕을 두고 물질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야기되는 현대인의 인간성 상실 등 인산 삶의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오고 있는 조형작가 박찬갑씨가 개인전을 지난 20일부터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미술관 2실(580­1610)에서 갖고 있다. 박씨는 ‘불꽃’‘혼의소리’‘흔적을 찾아서’‘하늘 새’ 연작을 통해 인간과 자연,혹은 기계문명과 환경의 공존관계를 조각으로 형상화해오고 있는 작가.이벤트나 퍼포먼스,설치작품까지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면서 최근엔 한지 부조작업과 판화에 관심을 가져 우리 고유의 전통복원 뿐만 아니라 남북분단 및 동서화합의 주제를 이질적인 소재로 접합해 한 화면에 나타내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여전히 동양사상에 뿌리를 두고 삶과 죽음 등 인간생존 문제나 인간성 회복을 주제로 한지와 나무에 채색한 근작을 선보이고 있다.28일까지.
  • 진덕여왕릉 “무사”/도굴꾼 흙 못파내 포기

    문화재관리국은 지난 4일 발생한 진덕여왕릉 도굴사건과 관련,유물이 실제로 도굴됐는지 여부에 대한 조사작업을 벌인 결과 유물은 도난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했다고 18일 밝혔다. 문화재관리국 관계자는 “도굴꾼들이 왕릉의 석실벽 동쪽의 돌 일부를 드러내고석실안에 있던 흙을 몇 삽 파낸뒤 도굴을 중단한 흔적을 확인했다”면서 “석실안에 흙이 꽉 채워져 있는 만큼 도굴이 안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 이집트 룩소르(세계 문화유산 순례:40)

    ◎고대 애 최대신전 ‘아몬라’ 우뚝/길이 260m 탑문너비 65m ‘거대한 궁전’/1천개의 스핑크스 좌우로 3㎞ 행렬 ‘장관’ 고대 이집트의 부와 영화는 기원전 1600년부터 기원전 1100년 사이의 신왕조때 절정에 이르렀다.이 번영기때 이집트의 영토는 북으로 유프라테스강에서 남으로는 지금의 북수단에 이르렀다.그리고 람세스왕조 때처럼 걸물의 파라오들이 등장해 태평성대를 구가했다.불세출의 파라오 람세스 2세도 이 기간중인 기원전 1279년부터 기원전 1212년까지 67년을 재위했다.그래서 아부 심벨 신전을 비롯한 숱한 신전과 기념물들을 남길수 있었다. 이 1천여년동안 왕조의 수도는 바로 나일강 상류에 위치한 테베이다.그리스의 작가 호머도 람세스 2세의 배려로 이집트에 머물렀다.호머는 대서사시 ‘일리야드’에서 테베를 ‘1천개의 출입문을 가진 도시’라고 묘사했다.파라오들은 공들여 신전을 지었다.외부의 적으로부터 왕국을 지키고 왕권을 넘보며 끊임없이 음모를 꾸미는 내부의 적들로부터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그래서 파라오들은 신전건축을 가장 중요한 국사중 하나로 삼았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해가 솟는 동쪽은 생명과 번영의 땅이었다.대신 해가 지는 서쪽은 죽음의 땅으로 여겼다.풍요와 재생의 상징인 신들의 거처를 나일강 동쪽에 세웠던 까닭도 여기 있다.파라오들의 최후의 안식처인 ‘왕들의 계곡’,‘왕비들의 계곡’,피라미드는 나일강 서안에 세웠다.수도 카이로에서 나일강 동안을 따라 남쪽으로 700㎞에 위치한 테베는 운하로 양분돼 있다.그 운하 북쪽에 신전들의 도시 룩소르가,남쪽에는 역시 신전들로 들어찬 카르낙이 자리했다. 오늘의 현대 도시 룩소르에서도 지난날 영광의 흔적을 볼 수 있다.가장 대표적인 곳은 ‘신들의 왕’인 태양신 아몬 라의 신전이다.고대 이집트인들이 ‘아몬신의 남쪽 궁전’이라고 불렀던 곳이다.출입문에서 뒷편 끝까지의 길이가 260m에 달하는 고대 이집트의 최대 신전인 것이다. 신전 출입문은 필론이라는 탑문으로 장식됐다.탑문 좌우의 너비는 65m에 달한다.탑문에는 람세스 2세를 기리는 그림과 글씨가 들어 있다.히타이트인들을물리친 유명한 카데슈 전투장면을 릴리프로 처리하면서 그의 전공을 상형문자로 새겼다.출입구 좌우에는 높이 25m의 쌍동이 오벨리스크를 나란히 세웠는데 지금은 왼편 것 하나만 남았다.1833년 나폴레옹군대가 뺏아간 오른쪽 오벨리스크는 지금 파리의 콩코드광장 중앙에 서있다.탑문 앞쪽에는 역시 람세스 2세의 거대한 대리석 석상을 세웠다.왕비 네페르타리와 공주 메리타몬의 석상도 세웠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오벨리스크가 서있는 신전 입구에서 북쪽 카르낙의 신전에 이르는 3㎞는 ‘스핑크스의 길’이다.사자의 몸에 양의 머리를 한 1천개의 스핑크스들이 좌우로 늘어섰다.양은 신들의 왕인 아몬신을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이었다.지금 이 스핑크스 거리에 나온 유물은 먼저 출토한 일부 출토품에 지나지 않는다. 카르낙의 신전도 태양신 아몬 라에 바쳐진 것이다.테베에 있는 신전들 중 가장 오래된 신전이다.거대한 돌기둥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카르낙 신전은 모두 3부분으로 구분됐다.주신전은 신들의 왕인 아몬 라의 신전,왼편으로 그의 아들 혼슈,맞은편 것은 아몬의 부인 무트신의 신전이다.고대 이집트의 주신들은 이후 탄생한 기독교 교리의 성부·성자·성신처럼 성가족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카르낙 대신전은 기둥의 숲이다.세계 최대의 기둥 신전이기도 한 카르낙 대신전은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보다도 더 큰 규모다.그 위용을 짐작할 만하다.길이 102m,너비 53m에 달하는 홀에는 높이 23m에 이르는 사암 돌기둥 134개가 서있다.활짝 핀 파피루스 꽃모양의 기둥머리 장식을 한 돌기둥들인데 기둥머리 위쪽에는 대형 돌 원판을 얹어놓았다.기둥의 웅장함과 기둥 사이를 통해 간간히 들어오는 햇빛,그리고 그 햇빛이 만들어내는 돌기둥의 그늘이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해낸다.파라오 세티 1세때 증축을 시작해 그의 아들 람세스 2세때 완성한 신전으로 8만여명이 넘는 석공들이 동원됐다고 한다. 신전의 돌기둥과 벽면을 장식한 그림들은 매우 독특한 기법으로 처리됐다.신체를 그릴때 이집트 화가들은 상형문자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신체 각부분을 하나의 독립된 상형문자처럼 그렸다.그리고신체 각부분은 화가 자신들 눈에 가장 잘 들어오는 쪽에서 그렸다.머리는 측면,어깨와 상반신은 전면,신체는 허리에서 약간 틀어져 배꼽이 보이도록 했다.다리와 발은 측면에서 바라본 행태로 그렸다.신체 각부분을 여러 면에서 보이는대로 그렸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매우 신비스런 인상을 안겨주었다. 돌기둥의 숲 옆에는 신들의 호수를 만들었다.한변의 길이가 120m에 달하는 인공호수는 창조주 아몬신이 소유한 ‘영원의 대양’을 상징한 것이다.매일 아침 신관들은 이 신들의 호수에 몸을 담그고 제의를 올렸다.신전을 축성하는데도 이 호수물을 썼다.이집트는 신들이 다스리는 왕국이었고 파라오는 신의 대리인이자 살아있는 신이었다. ◎여행 가이드/나일강변 유적 즐비… ‘왕들·왕비들의 계곡’ 볼만 나일강 상류 일대에는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유적들이 산재돼 있다.수도 카이로에서 아부 심벨사원이나 카르낙·룩소르로의 여행은 항공편을 이용하는 게 좋다.카이로 공항에서 카르낙을 왕복하는 항공편이 수시로 있다. 소요시간은카이로 공항에서 아스완까지 약 1시간 30분.다시 남으로 30분쯤 내려가면 아부 심벨이다.아부 심벨 공항에서는 약 1시간 정도 기착하는데 이 시간을 이용해 아부 심벨 신전을 구경한다.기다리는 비행기를 타고 다시 40분 정도 올라가면 룩소르 공항에 도착한다.룩소르에서는 각자의 여행 사정에 따라 주변에 산재한 유적들을 돌아보면 된다.카르낙에서 나일강 건너편 사막지대로 들어가면 ‘왕들의 계곡’ ‘왕비들의 계곡’등 수많은 무덤들이 있다.투탄카멘왕의 무덤,네페르타리 왕비의 무덤 등이 도처에 분포됐다. 여유가 있으면 아스완 하이댐과,이 댐으로 생겨난 인공호수 낫세르호의 위용을 돌아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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