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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의 달/가족과 손잡고 고향의 봄을…

    ◎아련한 추억 되새기며 가족애도 다지고/근교 한적한 곳 나들이로 찌든 심신 ‘훌훌’ 【양산·마산=任泰淳 기자】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 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냇가의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아동문학가 李元壽씨의 동시 ‘고향의 봄’이다.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동요지만 동요의 차원을 넘어 전국민이 즐겨 부르는 애창곡이다.굳이 고향이 남쪽이 아니라도 이 노래를 들으면 누구나 고향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그래서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도 이 노래를 부르면서 눈자위가 붉어 진다.그만큼 고향의 정겨운 모습이 간단하고 평이한 언어로 잘 그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또 ‘고향’과 ‘봄’의 절묘한 배치도 이 노래의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李元壽는 1911년 경남 양산읍 북정리 660에서 태어났다.그가 이 노래를 지은 것은 15살이던 1926년.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의 명정같은 마음이 이 노래말을 탄생시켰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면 ‘고향의 봄’ 무대는 어디였을까.그의 생가터는 아직 북정리에 남아 있다.아파트와 연립주택을 지나 꼬불꼬불 샛길로 접어들면 제일 뒤편에 기와집이 나타난다.기와집 너머로는 낮은 야산이 있고 집좌우측으로는 대나무,감나무가 휘감고 있다.넓직한 마당 한켠에는 텃밭과 꽃밭이 있다.50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김복남씨(71)는 “옛날에는 마을 초입의 교리에 복숭아꽃,양산천 제방에 수양버들이 가득 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택지로 개발이 되고 도로가 뚫리면서 그 옛날 고향의 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대신 양산천 너머 강서동의 춘추공원에 그를 기리는 시비만이 남아 그와의 인연을 말해준다. 李元壽는 김해,창원,마산 등을 옮겨 다니며 소년시절을 보낸다.그는 생전인터뷰를 통해 “창원에서 서당다니던 시절을 생각하며 고향의 봄을 지었다”고 회고했다.그러나 김해,창원 등지에서도 고향의 봄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서당과 그가 기거하던 집은 없어져 버렸고 그가 다니던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학교)도 현대식 건물로 바꼈기 때문이다.양산과 마찬가지로 마산 산호공원에 그의 시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5월은 어린이날,어버이날이 이어지는 가정의 달이다.가정의 달을 맞아 자녀들을 이끌고 한번 고향집 뒷산을 찾아 보자.고향집이 사라졌으면 고향의 정취를 느낄수 있는 근교의 한적한 곳을 찾아 보자.
  • 터키 넴루트유적(세계 문화유산 순례:71)

    ◎2,150m 산 정상에 늘어선 거대 석상들/우주를 껴안은 ‘신의 테라스’/기원전 1세기 번성 코마게네왕국 ‘흔적’/로마에 대항했던 파르티아와 소멸 함께/안티오쿠스1세 묘·신상 등 곳곳에/테라스에 비친 빛의 향연 신을 만난듯 터키의 아나톨리아는 수천년 오리엔트 문명이 다양하게 중첩되고 잘 보존된 문명 박물관이다.어디를 가나 쉽게 만날 수 있는 히타이트,미타니,오라르투,바빌로니아,아시리아,메데스,페르시아,마케도니아,그리스­로마로 이어지는 일련의 인류문명들이 모두 이 지역을 지나가거나 이곳을 중심으로 꽃을 피웠다.더욱이 동방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아나톨리아는 동양과 서양이 함께 조화된 독특한 문화의 향기를 가졌다. ○페르시아 그리스 혼합 이러한 대표적인 유적지가 터키 동남쪽 아드야만을 중심으로 기원전후 1세기경 번영을 누렸던 코마게네 왕국이었다.이 왕국의 유적은 특이하게도 2천150m 높이의 넴루트 산 정상에 있는 안티오쿠스 1세의 무덤을 중심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넴루트 유적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세계 8대 불가사이의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산 정상에 이룬 정교한 도시문명과 수도 없이 펼쳐지는 10m에 달하는 거대한 석상들의 존재 때문이다.물론 코마게네 왕국의 수도는 카흐타 마을에서 남쪽으로 50㎞ 지점에 있는 유프라테스 강변의 사모사타였다.그러나 그곳은 이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었고,그나마 몰아닥친 개발의 열풍에 밀려 영원한 역사의 수수께끼가 된지 오래다. 코마게네 왕국은 기원전 69년에서 서기 72년까지 반짝했던 동서양 혼합 문명국가였다.오히려 이란을 중심으로 한 고대 파르티아 왕국과 로마군단이 대치하고 있는 경쟁의 공백지대에 생겨난 완충국가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같다.이런 상황은 동시에 주변 양 강대국의 세력판도에 따라 왕국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을 의미하였다.코마게네는 파르티아와 연계하여 로마내전의 시기에 집요한 반로마 투쟁을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결국 로마가 평정을 되찾자코 마게네 왕국도 다른 수많은 군소국가들과 함께 네로 통치하의 로마제국에 편입되었다. 코마게네 왕가의 출신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다만 기원전 2세기 소아시아의 안티오크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알렉산더의 후계국가 셀루키드 왕조의 후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유프라테스 상류에 자리잡은 코마게네 왕국의 통치권이 셀루키드 왕조와 일치하고 왕의 이름이 안티오쿠스라는 점 등이다.그러나 다방면의 연구결과 코마게네 왕국의 문화적 성격은 페르시아적인 비탕에 그리스적 요소가 가미된 혼합문화라는 점이 명확해지고 있다.더욱이 소아시아의 수많은 군소국가들이 로마의 점령과 함께 역사무대에서 사라지고 망각되었지만,코마게네는 인간의 눈을 의심케하는 위대한 문명을 남겨놓았다.그것도 2천m가 넘는 험준한 산의 정상에. ○60m 높이에 직경 150m 넴루트 산 아래에 있는 카흐타 마을에서 출발하여 산 언저리에 오르는 시간만 자동차로 한시간 가량 걸린다.우선 산 정상이라 생각되는 자그만 언덕이 눈길을 끈다.이것이 바로 코마게네 왕국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안티오쿠스 1세 왕의 거대한 무덤이다.높이 60m,직경 150m 크기의 이 왕묘는 소아시아전역에서 다른 예를 찾아 볼 수 없는 형태인데,산 정상에서 하늘로 향하고있는 독특한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하늘과 가장 가까이 감으로써 왕 자신이 다시 신으로 부활하리라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그들은 이 무덤의 정상을 중심으로 아름답게 펼쳐지는 지상의 낙원을 향해 사방으로 돌을 깎아 성벽과 테라스를 만들었다. 특히 동서 테라스에는 거대한 신의 석상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다.분명 지상이 아닌 천상에서 실제로 신을 만나는 감흥이 있다.8∼10m 높이를 가진 신들은 아폴로,행운의 여신 티케,제우스와 헤라클레스등 4개의 신들이 주류를 이룬다.그리고 이 왕국의 최고 통치자인 안티오쿠스가 지상의 인간신으로 그 거대한 불멸의 모습을 남겨놓았다.그들의 수호신인 사자와 독수리의 석상들도 훨씬 커다란 높이에서 그들을 감싸고 있다. 여기서 특기할 사항은 아폴로 신상의 의미이다.태양신 아폴로는 이 지역전통신인 빛의 신 미트라와 습합(習合)하여 나타난다.조로아스터교의 한 분파인 미트라교는 당시 오리엔트 일대에 크게 성행하여 로마의 종교는 물론 새로 태동한 기독교의 성장과 의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기독교의례에도 영향 넴루트 유적을 감상하는 최고의 시간대는 일출과 일몰이다.동서 테라스에 스며드는 황홀한 빛의 향연은 2000년전 바로 이곳에서 성대하게 행해졌던 종교적 의례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코마게네 유적과 유물이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넴루트의 동쪽 테라스로 가본다.이곳에는 바위 반석위에 나란히 앉아 있는 신들의 모습이 압권이다.아폴로와 미트라 신상이 함께 보이고,풍요의 신인 코마게네 신과 8∼9m 높이의 안티오쿠스 1세의 신상도 열을 지어 서 있다.좌우에는 사자와 독수리 상이 수호신으로 신들을 보호하고 있다. 서쪽 테라스는 신들의 회합장소를 연상케 할 정도로 많은 석상들이 테두리가 있는 다양한 모양의 모자를 쓰고 한결같이 근엄한 모습으로 나란히 서있다.서쪽 테라스에서 가장 눈길을 크는 것은 여러 신들과 악수하고 있는 안티오쿠스 신상은 물론이려니와 너무나 아름답게 조각된 사자별자리의 부조이다.이 천문도의 역법에 의하면 기원전 109년 7월14일인데 이 날은 바로 안티오쿠스의 부친인 미트리다테스 왕이 대관식을 거행하던 날이었다. 특히 동서 테라스를 연결하는 언덕에 서있는 비문에는 안티오쿠스 1세가 새긴 코마게네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당시의 사회관습과 생활상이 구체적이고 역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넴루트 산 정상에 남아 있는 유적은 코마게네왕국의 일부분이다.이 왕국의 실체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는 셈이다. ◎넴루트 가는 길/아드야만시서 차로 3시간/아레세미아모텔 등 깨끗 넴루트 산 정상 유적지로 향하기 위해서는 우선 터키 동남부의 아드야만시로 가야한다.이스탄불에서 1천228㎞,앙카라에서 770㎞ 거리에 있다.이스탄불까지는 서울에서 아시아나 직항편이 있다.아드야만에서 다시 자동차로 1시간30분을 달려 카흐타로 가서,그곳에서 약 100㎞ 거리에 있는 넴루트 정상까지는 약 2시간이 소요된다.카흐타에 코마게네 호텔과 아드야만에 아레세미아 모텔이 비교적 깨끗한 편이다.원더풀 투어(212­257­2288)와 한국계 윤투리즘(212­257­1361)이 넴루트 전문여행사이다.
  • 그리스 사모스섬(세계 문화유산 순례:68)

    ◎BC 2000년 미케네문명 유적 곳곳에/헤라여신 성전 흔적/6,400m 동굴터널 헬레니즘시대 빌라/계단식 노천극장에 고고박물관도 볼만 고대 그리스 영역은(기원전 6세기∼3세기경 기준) 그리스 본토를 중심으로 좌우, 아드리아해와 에게해를 사이에 끼고 이탈리아반도의 남쪽 시칠리아와 소아시아반도 그리고 지중해 곳곳에 펼쳐진 크고 작은 많은 섬들로 이루어졌었다.기원전 6세기경 즉 아카익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던 사모스는 소아시아반도쪽에 편재된 큰 섬중 하나로 도착하면 먼저 해발 1천440m에 이르는 케리키스산이 시야에 차오면서 그 봉우리 아래 크고 작은 산들이 많은 섬이다. 그리스의 땅들은 대체적으로 찬란히 햇살받아 빛나는 푸른 옥빛 바다와는 무관하게 그 바다를 바라다보며 목마른 갈증으로 메말라가는 척박한 대지,그리고 그 갈라진 땅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서있는 올리브나무 숲을 연상하게 된다.하지만 사모스섬에 도착하는 순간 한 눈에 이런 예상은 빗나가고 만다.울창한 숲의 푸르름,풍성히 피어있는 꽃들의 향연,기름진 옥토….그래서고대로부터 떡갈나무가 풍성한 땅이라는 뜻의 드루사,사프러스나무가 많은 땅이라 해서 키파라이시아,꽃으로 장식된 곳이라는 안데무사등으로 불렸다.또한 흙내음나는 그리스 특유의 포도주산지로도 유명하다. 사모스섬에서 하얀,푸르름이 함께 눈부신 에게해를 향해 포도주 한 잔을 건네면,먼 태고적 사모스의 전령이였던 헤라여신이 나타날 것만 같은 환영에 사로잡히는 듯하다. 사모스는 고대수도였던 피타고리안지역과 헤라이온지역,그리고 해안선 주변의 바티지역으로 구분되어져 있다.이 세 지역엔 그리스 선사시대부터 근세까지 다양한 유물과 유적이 존재했던 곳이라 고고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사모스엔 기원전 3000년경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으며,그리스문화가 시작되면서 헤라여신을 수호신으로 모셨다.(그리스의 각 고대도시들은 저마다 각기 수호신을 섬기었다) 때문에 헤라이온지역에 가면 기원전 2000년경 미케네인들에 의해 세워진 거대한 헤라여신의 성전흔적을 만날 수 있다.그러나 이 성전은 헤로도루스의 기록에의해 전하여질뿐,지금은 기원전 522년,아카익시대때 전성기를 누렸던 폴리크레아트 전제군주가 세운 신전의 거대한 밑 기단들만이 몇몇 포개져 흩어져 있을 뿐이다.그리고 이 기단들 사이로 기원전 7세기경의 신전 입구문 흔적이 있을 뿐이다. 헤라이온지역의 고대유적은 크게 선사시(기원전 2000년경),아카익시대(기원전 1000∼580년경),로이코스시대(기원전 580∼540년경),그리고 폴리크레아트(기원전 538∼522년경),기원전 1세기경의 유적으로 구분되어져 있다.지금은 신전과 회랑등이 부분적 파편으로만 남아있다.그러나 헤라여신의 성전앞에 기원전 50년경 로마의 유명했던 웅변가 마큐스 툴리우스 시세옹과 그의 동생인 킨티우스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어 사모스의 역사적 변천을 엿볼 수도 있다. 고대수도였던 피타고리안지역은 1955년까지 티가니로 불리다 피타고라스를 추앙하는 의미에서 피타고리안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그래서 이 작은 항구에는 그 옛날 수도임을 상징하는 폴리크레아트 신전이 서있고,옛 사모스의 유물이 전시돼 있는 고고학박물관도 있다.또한 고고학적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으로는 바티해안선을 타고 300m정도 섬 중앙쪽으로 들어오면 폴리크레아트시대에 만들어진 6천400m의 우팔리노스 동굴터널을 빼놓을 수가 없다.물론 지금은 몇몇 둘러친 벽의 조각들만 남아있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계단식 노천극장과 헬레니즘시대의 빌라들이 보존상태는 양호하지 않지만 주의깊게 관찰하면 그 잔해들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있다.사모스의 현재 수도이기도 한 바티지역은 아카익시대의 유명한 남자조각상인 쿠루스와 여자조각상인 코레,기하학시대와 아카익시대의 청동유물 및 작은 오브제들이 소장된 박물관도 명소중 하나이다. 이렇듯 사모스는 그리스역사를 골고루 담고있는 곳이기에 각 시대별 특징적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하여 누구라도 저토록 빛나는 지중해를 바라다보고 서 있노라면 옛 그리스 신들의 향연이 들려오는 듯,자신들의 귀를 의심할 터이다. ◎여행가이드/아테네서 비행기편 1시간/관광호텔 등 숙박시설 완비 사모스까지는 아테네에서 국내선 비행기편으로 1시간이걸린다.여유를 갖고 지중해와 에게해를 함께 즐기려면 아테네에서 에페소스나 로도스섬까지가서 배편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이들 섬에서 사모스로 가는 일반선박과 페리호는 매일 뜬다.사모스는 물론 관광호텔과 같은 고급숙박시설도 잘 갖추어졌으나,그리스인 인심을 맛보려면 민박을 하는 것도 좋다.그리스 본토는 멀기만 하고 터키는 지척이어서 국경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 달 남극에 유인우주기지 세운다

    ◎ESA ‘유로문2000’ 프로젝트 추진/얼음 탐사로봇 시험주행 완료… 2001년 발사 예정/달 얼음 활용땐 수소·산소 얻고 기지비용도 절감 【朴建昇 기자】 미국 달탐사선 ‘루나 프로스펙터’가 지난 3월초 달 극지대에서 얼음 형태의 물 흔적을 발견한 이후 달에 유인(有人)기지를 건설하려는 작업이 부쩍 활기를 띠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달에는 북극 4만6천㎢와 남극의 1만8천500㎢에 걸쳐 최고 3억3천만t의 물이 얼음 형태로 흩어져 존재하고 있다.이 얼음 형태의 물은 2인 가족 1천가구가 100년이상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지구에서 2㎏의 물질을 달궤도에 올리는데 2만달러의 비용이 든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달에 매장된 얼음의 경제적 가치는 줄잡아 60조달러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달에서 물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우주탐사에는 이미 일대 혁신적 발전이 예고됐다.우선 물을 화학분해하면 상설 우주기지를 건설할 수 있는 연료와,다른 행성으로 쏘아 올리는 로켓의 추진연료를 얻을 수 있다.얼음을 녹이면 생명수가 되고,이를 전기분해하면 로켓연료인 수소와 산소가 나오기 때문이다.로켓추진제로 쓰이는 액체산소와 액체수소를 달에서 얻을 수 있으니 지구를 떠날 때 돌아올 추진제까지 싣고 갈 번거로움이 없어진다.이런 맥락에서 과학전문지 ‘뉴사언티스트’는 “달의 얼음을 활용하면 유인기지 운용비용을 적어도 60% 남짓 줄일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게다가 본격적인 달기지 건설에 나섰을 때 물에서 산소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곳에서 식물을 경작하는 방식으로 식량도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얼음이 달의 남극과 북극의 햇볕이 전혀 들지 않는 크레이터(분화구)에 매장되어 있다는 점.이 곳 대부분은 온도가 섭씨 영하 173도이상 오르지 않는 혹한지역인 데다 인간이 그동안 유력한 달기지로 꼽았던 적도부근에서 무려 3000㎞나 떨어져 있다.이론상으로는 흙을 파헤쳐 얼음덩어리를 꺼낸 뒤 적도지역으로 옮기면 되겠지만 이같은 작업에는 실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 추진하고 있는 유인기지 건설작업이 유럽우주국(ESA)의 이른바 ‘유로문 2000(EuroMoon 2000)’ 프로젝트. 유럽우주국은 달의 얼음을 가장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의 하나로 달 남극 크레이터 주변지대인 이른바 ‘만년광봉(萬年光峰)’에 유인기지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만년광봉’은 직경이 수㎞에 불과하며,남극인데도 늘 햇볕이 드는 매우 희귀한 지역.얼음덩어리가 매장된 곳과 인접해 있으며 온도는 섭씨 영하 30도 안팎으로 기후조건이 매우 양호하다.유럽우주국은 빠르면 2001년 첫 왕복선을 쏘아 올려 탐사로봇을 얼음이 매장된 근처의 크레이터에 떨어뜨려 놓을 계획이다. 얼음탐사용 로봇의 제작도 순조롭다. 미국 카네기 멜론대학 레드 휘태커 박사팀은 최근 달의 가장 깊은 지대인 크레이터에 매장된 얼음덩어리를 탐색,발굴할 수 있는 시험용 탐사로봇을 공개했다.휘태커 박사팀은 지난해 칠레아타카마 사막에서 이 얼음탐사용 로봇의 시험주행을 마쳤다. 달의 물을 이용해 유인기지에서 작물을 재배하려는 연구는 일본에서 활발하다.일본 로카쇼무라 환경과학연구소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한 끝에 최근 월면(月面) 경작용 벼품종을 개발했다.이 벼는 ‘무츠 호마레’라는 품종의 돌연변이로 실험실에서 온도·일조량·이산화탄소량을 적절히 조절,월면의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1년에 세차례 수확할 수 있으며 미질(米質)은 보통 쌀보다 떨어지지만 달에서 식량으로 쓰기에는 손색이 없다고 로카쇼무라연구소측은 설명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일본은 오는 2005년까지 달에 1만명이 거주할 수 있는 식민도시를 건설할 계획을 갖고 있다.일본의 건설회사인 시미츠사는 이를 위해 위험한 우주광선을 차단하고 극한온도(섭씨 영하 190도∼영상 137도)에서 견딜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건축기술을 연구중이다. 이와 함께 유성과 충돌하더라도 피해가 없는 나선형주택의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 “공작 문서엔 미확인 첩보 수두룩”/안기부 구 핵심 3인 반응

    ◎권영해 전 부장­본인에 모든 책임… 조기 매듭 희망/박일룡 전 1차장­국내 정치권 인사와 접촉만 했을뿐/이병기 전 2차장­북 지령 받은 인물들의 동태 등 파악 권영해 전 부장,박일룡 전 1차장,이병기 전 2차장 등 안기부 구 핵심 3인은 몸을 낮추고 있다.조용히 여권동향을 살피며 나름대로 관련자료를 챙기고 있다. 그러나 개인 견해를 물어보면 한결같이 “북풍사건을 빨리 마무리지어야지 이대로 두면 안기부 조직이 와해되는 것은 물론,대북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한다.최근 일부 공개된 안기부 문건과 관련,“대선 당시 주요 3후보측이 모두 대북문제를 표에 유리하게 연결시키려고 애쓴 흔적을 정보차원에서 수집한 내용을 모은 것”이라며 “확인 안되는 첩보차원도 많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이들은 “대선 당시 이인제 후보측의 대북접촉을 문제삼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그냥 넘어간 것이 결국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도운 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권 전 부장의 한 측근은 “권 전 부장이 자기가 총체적 책임을 지는 선에서다른 요원들을 사법처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했다”고 말했다.박 전 1차장측은 “국내정치 파트를 담당해 정치권 인사들과 접촉했을 뿐”이라고 밝혔다.이 전 2차장은 ‘흑금성’ 등의 공작활동과 관련,“북한의 지령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정치권을 교란시키는 행동을 해 동태파악을 했었다”며 ‘정치공작설’을 부인했다.
  • 박일용 전 차장 사법처리 방침/검찰 북풍수사

    ◎권영해씨 소환대신 서면조사 검토/이번주중 안기부 고위간부 7∼8명 소환 검찰은 15일 북풍공작 사건과 관련,권영해 전 안기부장을 비롯,박일용·이병기 전 차장,남영식·이청신 전 특보 등 안기부 전직 고위간부 7∼8명을 이번주 중으로 소환,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이들 가운데 재미교포 윤홍준씨(32·구속) 기자회견 등 북풍공작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박 전 차장 등 2∼3명을 혐의 사실이 확인되는 대로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러나 권 전 부장의 경우 구체적인 혐의를 포착하지 못한 데다 전직 안기부장이라는 점을 감안,소환조사하지 않고 자진출두나 서면조사,제 3장소에서의 조사 등을 검토중이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안기부 자체조사 과정에서 박 전 차장을 비롯한 일부 전직 고위간부들이 윤씨 사건 등 일련의 공작과정에 개입한 흔적을 확인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주 중으로 안기부가 자체 감찰을 통해 공작연루 의혹이 있는 전직 안기부 간부와 정치권 인사들에 대해 고발 또는 수사를 의뢰해 올 경우 즉각 수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수사의 신속한 처리를 위해 서울지검에 사건을 배당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현직 야당의원 등 일부 정치인이 개입한 혐의를 잡고 정밀 조사중이다.
  • 화천에… 가야산에 호랑이?

    ◎10∼40㎝ 발자국 수십­수백개씩 발견/“보폭­일직선 보행 보아 최소한 표범” 【화천·합천=조한종·이정규 기자】 강원도 화천군 민통선과 경남 합천군 가야산에서 호랑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이 최근 잇따라 발견돼 관심을 끌고 있다. 비디오작가 임순남씨는 “호랑이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9.5㎝ 크기의 발자국 30여개를 화천에서 촬영했다”고 3일 밝혔다. 또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마장마을 주민들은 이날 “지난달 중순 가야산 인근에 많은 눈이 내린 뒤 눈위에 큰 짐승의 발자국 수백개가 발견됐다”면서 “발자국 끌린 흔적이 30∼40㎝에 이르고 보폭도 1m∼1m50㎝에 달하는 만큼 호랑이 발자국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경남대 손성원 생물학과 교수(59)는 “일직선으로 보행하는 짐승은 고양이과가 유일하다”며 “발자국이 일직선으로 나있는데다 발자국의 크기나 보폭으로 볼때 호랑이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편 강원도산림개발원은 지난 1월과 2월 화천군 화천읍 풍산리와 동촌리 등 평화의 댐 인근 산간지역에서 호랑이 발자국을보았다는 주민들의 제보에 따라 환경부 생태조사단 야생동물 전문조사원 한상훈 농학박사와 강원도산림개발원 전문조사원 조성원씨(47) 등 조사단이 1월 16일부터 5일동안 현장조사를 실시했으나 서식 가능성에 대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조 조사원은 “풍산리와 동촌리 평화의 댐 산간계곡과 속칭 비수구미계곡에서 발견된 발자국은 폭 8㎝ 크기의 매화무늬 모양으로 표범 발자국일 가능상이 크다”고 말했다.
  • 시적 영감 풍기는 설치작품/홍수자씨 개인전

    석남미술문화재단이 수여하는 올해 석남미술상 수상작가인 홍수자씨 작품전이 17일부터 24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여숙화랑(544­7393)에서 열린다. 홍씨는 현실속에서 겪는 결핍과 좌절,또는 억압에서 비롯되는 욕망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부각시키는 실험적인 작업에 치중하고 있는 작가.동물들의 절단되거나 오그라진 다리나 가공된 피부 등 죽음의 흔적을 드러내면서 상처받은 욕망의 반증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주로 선보여왔다.즉 나약한 존재들의 꺾인 욕망을 통해 확고한 기존의 형식이나 관념·개념들에 대한 저항을 암시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이번 전시는 종전 작업해왔던 설치작품을 중심으로 사진과 평면,그리고 조각품까지 집약해 보여주는 자리.특히 구체적인 모티브를 택해 산문적으로 작품들을 보여줘 시적 상상력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는 것들이 나온다.
  • 출병의 현장 의란(흑룡강 7천리:21)

    ◎청­러전 참전 조선군 함성 들리는듯/효종,청 지원요청 따라 포수부대 262명 파견/1658년 ‘송화강 전투’서 러시아군 270명 섬멸 지난해 12월 2일 나는 하얼빈에서 가목사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96년 여름 송화강 답사차 가목사로 갈 때는 장장 9시간을 밤기차를 탔고 1년 전 가목사에서 하얼빈으로 갈 때만 해도 택시로 근 10시간을 달려야 했던길이다. 그런데 이제는 국가 1급 도로가 완공돼 화장실까지 갖춰진 독일제 호화버스로 345㎞를 4시간만에 닿았다. 신나는 여행이었다.하지만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조선족역사 연구’(고영일 저)에서 인용했던 ‘이조실록’의 한 토막이 자꾸 머리에 떠오르면서 역사의 귀곡성이 가슴을 울렸던 것이다. 효종 5년(1654년) 2월 이상진이 국왕에게 상소했다. “지금 나선(러시아를 가리킴)의 정형은 걱정거리로 되었나이다.만일 강변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또 어떤 군대로써 이를 방어하겠나이까. 신하의 소견은 문신중에서 덕재를 겸비한 자에게 북노병마사의 직책을 지우고 그 지방의 백성으로 하여금 조정의염려의 덕택을 알도록 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군정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보나이다” ○영고탑서 청군과 합류 효종은 찬동을 표시했다. 1643년 외흥안령 야크츠크의 보야코브가 흑룡강을 넘어 살륙을 시작하면서부터 침략이 빈번해지자 청 정부는 경차도위 명안달례를 파견,‘송화강전투’를 발동하게 하면서 조선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청군 주력이 모두 관내에 진출한 불리한 조건이라 청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조선의 지원군은 150명.그들의 행군노선을 보면 함북 회령에서 두만강을 넘어 오늘의 연변지역을 경과하여 8일만에 영고탑(오늘의 흑룡강성 영안시)에 도착,거기서 청군과 합류하여 목단강 뱃길로 닷새만에 회통강(송화강)에 이르렀다고 한다. 목단강이 송화강과 합수하는 곳이면 바로 오늘의 흑룡강성 의란현의 소재지 의란이다.하얼빈에서 235㎞,가목사로 가는 길옆에 있는 현성인데 36만 인구중 조선족은 겨우 4천592명이 살고 있다.서쪽은 소흥안령,동과 북은 완달산,남쪽은 장광재령에 둘러싸인 분지다.만족의 조상이 거주했던곳이라 청실의 ‘조종발상중지’라고도 한다.의란을 만족어로는 ‘의란허라’라 부른다.의란은 셋,허라는 성이라는 뜻으로 의란의 원이름은 삼성이다.지금도 도시 안에는 ‘삼성전화공사’ ‘삼성관상대’ ‘삼성상점’ 등 간판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온다. 삼성이란 갈,노,호씨인데 청나라 천명원년(1616년)에 태조 고황제의 초무를 받아 기적에 든 허저족 커이거러(갈의극륵),누예러(노업륵),허리(합리)씨족을 지칭한다.이들은 만주 팔기에 들어 누르하치,황태극,순치 등을 따라 명나라를 정벌하는데 전공을 세웠다.그 공으로 천명 5년에 의란땅을 세습지로 하사받았던 바 영고탑,훈춘과 나란히 길림삼변으로 유명했다. ○오국성유적 그대로 12월 3일 의란현성에 이르자 나는 당시 청군과 조선 지원군이 러시아군과 혈전을 벌였으리라 짐작되는 목단강과 송화강의 합수목으로 달려갔다.얼어붙은 항구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봄이 오고 강이 녹으면 배들은 짐을 싣고 송화강을 거슬러 하얼빈으로 가기도 하고 또 물결을 따라 흑룡강으로 가기도 한다.그런데 애석하게도 송화강 물결을 따라 의란과 가목사로가는 항로에는 암초가 많아서 큰 배는 통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하지만작은 배는 무난히 오갈 수 있다고 했다. 조선 지원군이 적선에 불벼락을 안겼던 곳인 목단강과 송화강의 합수지점엔 오국성 유적이 남아 있다.의란진 북쪽 변두리에 ‘오국성옛터’라고 쓴 커다란 시멘트판이 서 있다.그 뒤로 세월의 흐름속에 겨우 흔적을 알아볼 수 있는 흙으로 쌓은 성벽이 낙엽진 버드나무의 쓸쓸한 형상을 띠고 언 대지위에 누워 있었다.역사의 기록에 보면 오국성 성벽의 둘레는 2천210m,높이 4m,기관 8m,정관은 1.5m였다고 한다. 오국성이 유명해진 것은 중국 역사상 ‘정강지란’이 이곳에서 있었기 때문이다.의란진에 있는 자운사의 용왕묘 옆에 세워진 시멘트 푯말에는 ‘휘흠이제유금지지’라고 적혀 있다.바로 여기서 송조 말기의 두 황제가 연금생활 끝에 1133년 한많은 생을 마쳤다. 자운사가 선 때가 1928년,바로 용왕묘 자리는 의란 부도통의 포병진지였다고 한다.1900년 러시아가 중국을 침략하면서 포격으로 이곳을 초토화시켰다고 한다.17세기 중반 조선 지원군의 포화에 쫓겨갔던 러시아는 20세기 초입에 다시 포화로 진격해왔다.역사는 톱질과 같이 밀고 당기는 것인지도 모른다.그런 와중에 인간은 애향심에 울며 세상을 떠나갔다. ○아군 8명 전사 25명 부상 1658년 6월 조선정부는 신류를 대장으로 소관 2명,포수 200명,고수와 화정 60명의 군사들에게 군량 3개월분을 휴대시켜 두만강을 넘어 영고탑으로 진군시켰다.이들은 6월 5일에 출발,10일 흑룡강에 이르렀다.전투는 도착날인 6월 10일(양력 7월 11일) 흑룡강과 송화강의 합수지점(오늘의 흑룡강성 동강시)에서 벌어졌다.싸움은 저녁까지 계속됐는데 쓰제바노브의 러시아군은 270명이 섬멸되고 47명이 겨우 도망했다.아군은 8명이 전사하고 25명이 부상했다. 그들이 이름 석자도 남기지 못하고 거친 북만주에서 시신으로 쓰러진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던 순간 나는 분명 애끓는 귀곡성을 들었다.
  • 이란 「페르세폴리스」(세계 문화유산 순례:61)

    ◎대평원 열주로 남은 페르시아수도/2,500년 전 다리우스대제가 세운 관성대도시/‘182년 영화’ 알렉산더대왕 말발굽에 폐허로 페르세폴리스는 기원전 2천500여년 전에 건설된 페르시아제국의 수도이다.인도­아리안계인 「파르스」족의 아케메네스 가문이 이룬 국가라 하여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첫 비행기를 타고 남쪽으로 2시간을 날면 고대 도시 시라즈에 도착하고,다시 자동차로 동쪽으로 1시간을 달리면 ‘타크트 에 잠시드’에 도착한다.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 페르세폴리스의 현지명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셀 수 없는 열주와 초석, 궁전터와 성벽계단,건물의 잔해들,궁전의 규모라기 보다는 궁성 대도시였다.고도 1500m의 황량한 평원에 끝없이 펼쳐지는 폐허의 잔해에서 묻혀지고 잊혀버린 페르시아 제국의 위용을 떠올리기는 힘들었다.역사의 상처마저 풍화되어 보는 이의 가슴을 친다.페르시아는 고대 아시아의 마지막 자존심이었고, 힘만 믿고 서양을 통째로 동양에 실어 날랐던 알렉산더의 도도한 물결에 정신적 가르침을 준 마지막 스승이었다. 페르세폴리스는 바로 그 동양적 정신의 심장부였다. ○각 국어로 새긴 ‘세계의 문’ 장엄한 도시 페르세폴리스는 기원전 518년 다리우스 대제에 의해 건설되었다.그리고 그 도시의 완성은 그후 100년이 더 지난 후였다.세계정부가 있던 곳이며,당시 지구상에 번성하던 모든 문화의 집결지였다.외국사신이 빈번히 내왕하고,동서양의 상인이 북적거렸다.중앙아시아에서 연결되는 육상 실크로드와 인도에서 건너오는 해로의 요지에 위치하여 풍부한 물자와 다양한 외국의 문물이 페르세폴리스를 살찌웠다. 사치와 향락,호화로운 파티가 연일 계속되었다. 그러나 페르세폴리스의 운명은 그렇게 길지 못했다. 기원전 330년 페르세폴리스에 도착한 알렉산더는 이 놀라운 아시아의 번성을 감당할 수 없었다.철저히 파괴하고 불태웠다.182년간의 짧은 생애였다.그리고 2천260년 동안 망각속에 있었다. 1931년 부터시카고 대학의 동양연구소 고고학 팀이 본격적인 발굴과 복원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페르세폴리스의 역사적 의미는 되살아 났다. 페르세폴리스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아파다나궁이다.왕들의 대접견장이었던 이 건물은 다리우스 대제때 시작하여 세르케스 왕때 완성되었다.지금은 72개의 기둥 중에 13개만 남아 있다.기둥과 벽면에는 부조가 조각되어 있어 당시의 역사적 편린을 엿볼 수 있다.상대적으로 조그맣게 새겨진 외국사신들이 손에 진상품을 가득 들고 커다랗게 묘사된 페르시아 왕들앞에 서있는 조각은 정말 사실감을 준다.사신들의 공손한 표정이며 왕의 근엄한 태도,날리는 옷자락에서 공물로 바쳐지는 동물들의 몸부림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인 한 편의 장대한 서사시가 전개된다. 어떻게 돌을 쪼아 저토록 선연하고 감동어린 조각을 만들 수 있을까?항상 그러하듯이 수천년전의 한 역사 유물에서 인간은 숙연함과 겸손을 배우게 된다. 페르세폴리스 건물 중 또 빼놓을 수 없는 가장 화려한 건물은 세르케스궁이다. 19m 42㎝ 높이의 1백개의 열주로 꾸며졌으나,이제 몇몇 기둥만이 그 흔적을 전해줄 뿐이다. 입구의 대문을 받치는 두 개의 큰 기둥에는인간의 모습을 한 황소가 조각되어 있다.11m 높이의 대문 위에는 엘람어와 아시리아어,페르시아어로 각각 ‘전세계의 문’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페르시아 국의 위용을 엿 볼수 있다.이곳의 기둥마다에도 쐐기문자로 새겨진 역사가 숨쉬고 있다.왕은 주로 세 가지 모습으로 묘사되었다.불을 모신 신전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옥좌에 앉아 있는 모습,또는 걷고 있는 모습들이다.부조의 양식들은 아시리아의 니네베 조각의 양식을 많이 닮아 있다.그러나 자세히 보니 약간의 차이도 보인다.권력과 신분에 따라 인물조각의 크기가 다르다.커다란 왕의 위엄앞에 보일락 말락하는 이름없는 백성의 표정이 인상적이다.특히 옷자락의 묘사에서 니네베 양식은 옷이사람 몸에 찰싹 들러붙어 있으나,이곳 페르세폴리스 양식은 옷이 살아 펄럭펄럭 날리고 있다.최고의 예술적인 조각기법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아파다나관 대표적 건물 신전은 불의 신인 아후라마즈다를 모셨다. 빛과 어둠,선과 악이 엮어내는 페르시아 사람들의 이원론적인 민간신앙이 조로아스터교로 성장했다.그리고 유대교에 직접 영향을 주어,오늘날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이원론적인 세계관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종교사 이야기이다.기원전 6세기말,페르시아의 창건자인 키루스는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그곳에 포로로 잡혀있던 유대인을 무사히 이스라엘로 돌려보냈다.나아가 재정지원을 통해 예루살렘사원을 재건축하게 해주었다.그래서 히브리 성경에는 유대인 지도자에게도 좀처럼 부여하지 않았던 각별한 존경을 키루스에게 표하고 있다.신과 악마의 대결,천국의 보상과 지옥의 응징개념 등이 바빌론 유수 이후에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페르세폴리스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마케도니아의 20대 청년 알렉산더의 광풍을 견딘 세력은 아무도 없었다.페르세폴리스를 불태운 알렉산더는 전군을 풀어 다리우스 3세를 추격했다.카스피해 연안까지 쫓긴 다리우스 3세는 박트리아 총독이었으며,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던 베소스의 배반으로 비참하게 죽음을 맞는다.온 몸이 열 군데 이상 칼로 찔린 아시아의 대왕은 마케도니아의 한 병사의 눈에 발견된다.포로로 잡힌 다리우스는 그 병사로부터 한모금의 물을 받아 마신 후,조용히 눈을 감는다.기원전 330년 7월,막 해가 지는 시각이었다.대페르시아 제국도,그 수도였던 화려한 페르세폴리스도 이렇게 하여 기나긴 망각의 역사 속으로 묻혀갔다. ◎여행 가이드/테헤란∼인근 시라즈까지 비행기로 2시간 엄격한 이슬람 국가라 여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지만,의외로 친절한 이란 사람들의 인간미와 철저한 치안으로,오히려 외국인들에게는 관광의 안전지대이다. 테헤란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시라즈로 가서 그곳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페르세폴리스가 있다.현지명이 타크트에 잠시드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시라즈에는 호마호텔이 유명하다.관광안내는 이란 관광국 안내(892212)나 이란 관광정보센터(227072)로부터 얻을 수 있다.
  • 올 세계 과학계엔 무슨 일이…/생명·우주신비 규명 큰 걸음

    ◎생명공학­복제양 탄생… 윤리 논쟁 불붙여,생쥐유전자 시계 발견… 불면증 등 치료 파란불/우주탐사­패스파인더호 화성탐험사 새 장,목성위성 유로파서 빙하·화산 흔적 발견 흥분 97년 세계 과학계는 생명공학과 우주탐사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많이 냈다. 생명과 우주의 신비를 규명하려는 인류의 노력은 세계적으로 거센 윤리논쟁을 일으킨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켰고,7개월간의 항해끝에 패스파인더호를 화성에 올려 놓음으로써 우주도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이와 함께목성 위성중의 하나인 유로파에서 소금의 흔적을 발견,이 곳에 생물체가 살수 있는 대양의 존재 가능성이 높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밝혀냈다. 97년 세계 과학계의 가장 큰 이슈는 역시 복제양 ‘돌리’의 출현. 영국 스코틀랜드 로슬린연구소의 아이언 윌머트 박사팀은 지난 2월 6살짜리 암양의 유방세포에서 세포핵을 채취해 이를 다른 양의 세포핵이 제거된 난자에 주입,이 유전조작된 난자를 또다른 양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방식으로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켰다.결국 유방세포를 떼어준 양이나 난자를 제공한 양과는 모두 관계 없는 복제양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동물복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다 자란 암양의 단일세포를 이용해 다른 양을 복제하는 것은 지금까지 불가능한 일로 여겼다. ‘돌리’의 탄생은 성장한 포유동물의 생식세포가 아닌 보통 세포로도 완전한 복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지만,이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될 경우 사상 초유의 혼란스런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거센 윤리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어 로슬린연구소는 혈우병 치료에 필요한 응혈인자를 생산하는 사람의 유전자를 양의 세포에 주입하는 방법으로 또다른 복제양 ‘폴리’와 ‘몰리’를 만들어 냈다. 96년 12월4일 발사된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호는 지구와 화성간의 최단거리인 ‘호먼궤도’를 초속 32.75㎞로 날아 지난 7월5일 화성에 착륙,인류 화성탐험 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 패스파인더호는 무게 11.5㎏의 자그마한 체구에 6개의 바퀴가 달린 로봇 ‘소저너’를 통해 화성의 기후와 표면상태에 관한 생생한 정보를 지구에 전송,전세계를 흥분시켰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조지프 다카하시 박사팀은 밤에는 자장가를 들려 주고 아침이면 기상나팔을 불어 주는 ‘인체 유전자시계’를 생쥐에서 처음 발견해 냈다.이같은 유전자가 인체에서도 발견되면 불면증·시차병 등 생체리듬장애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12월 초에는 미국의 목성 탐사선인 갈릴레오호가 목성 위성중의 하나인 유로파에서 빙하와 화산의 흔적을 확인,첫 우주생명체의 발견 가능성을 열었다. 미국 국립항공우주국(NASA)은 “유로파의 표면에서 반사되는 광선을 분석한 결과,지구에서 소금이 증발할 때 형성되는 광물질중의 하나인 황산 마그네슘이 검출됐다”면서 이는 유로파에 소금성분이 풍부한 대양이 현재 존재하고 있거나,아니면 과거에 대양이 딱딱하고 얼어붙은 지표아래에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밝혔다.목성의 4개 위성중 크기가 가장 작은 유로파는 조류의 힘에 따라 생성되는 내부의 열과 물 등 생명체에 필수적인 두가지 성분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 그동안 NASA의 지속적인 탐사대상이 돼 왔다.
  • “지리산 서남부 7곳서 반달곰 서식흔적 발견”/5개단체 합동조사

    천연기념물인 반달가슴곰이 지리산 서남부지역 7군데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이 23일 민관 합동조사결과 밝혀졌다. 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존회(회장 우두성) 등에 따르면 이날 전남 구례와 전북 남원,경남 하동일대에서 서식지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곰이 올해에 3곳,지난해 2곳,3∼4년전 2곳에서 흔적을 남긴 것을 발견했다. 우회장은 “불과 3∼4일전 반달가슴곰이 삼도봉 아래 이끼가 낀 바위에서 미끌어진 흔적을 발견했으며 영신봉에서는 상수리가지를 꺾어 만든 곰선반이 8개나 무더기로 발견돼 집단서식의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 반달가슴곰/지리산 생존 확인/환경부­일 조사단

    국내 서식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었던 천연기념물 반달가슴곰에 대한 민간합동의 정밀 생태조사가 실시된다. 환경부는 환경부 생태조사단과 일본 반달가슴곰연구소(소장 마이타 가주히코 미전일언)가 지난 9월6일부터 10월23일까지 3차례에 걸쳐 지리산일대에서 반달가슴곰 생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생후 2년으로 추정되는 반달가슴곰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20일 밝혔다. 환경부는 이에 따라 오는 23일 반달가슴곰이 서식할 가능성이 높은 지리산내 20곳에서 서식 개체수를 파악하기 위해 민간합동 정밀 생태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 “집권하면 일자리 1백만개 창출”/이인제 후보 초청 TV토론중계

    ◎“내가 당선되면 정계개편 될것/경선승복 약속 못지킨것 사과/DJ지지율 구성 건강하지 못해”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대통령선거전의 3자 구도가 확립된 뒤 12일 처음 열린 한국신문협회·한국방송협회 주관의 TV토론회에 참석,정치·경제·사회 분야의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일문일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영삼 대통령의 지원이 낭설이라고 주장하는데. ▲독자출마 45일 동안 나에게는 1명의 의원도 없었다.국민 지지 없었다면 나라는 존재는 사라졌을 것이다.국민들이 현명하게 가려줄 것으로 믿는다. ­상향식 민주정당을 표방하지만 그런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은 당이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다.아직 제도가 정비되지 않았다.현재 지구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상향식이 불가능하다.선거가 끝나고 내년 봄쯤이면 체제가 정비될 것이다. ­신당은 급조된 정당이다.수권 능력이 있는가. ▲급조가 아니다.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만들어 가고 있다.국가경영은 공무원 같은 전문집단의 역할을 발현시키면 된다.나에게 부족한 것은 ‘가신’이다.그러나 통치가 아니고 경영이 필요한 이 시대에는 가신이 도움되지 않는다.또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3김시대를 끝내라는 국민의 뜻이 표현된 것이다.새로운 차원 정계개편 이뤄지고 안정적 기반을 갖게 된다. ­대통령이 된 뒤 인사 방침은. ▲각료와 수명을 같이 할 생각이다.경기도지사 시절 인사권 행사한 경험이 있다.당시 인사청탁은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지사 시절에 골프장을 몇개나 허가했나. ▲하나도 없다.신청 자체가 없었다. ­‘이인제파일’에 대한 입장은. ▲그런 것을 조직적으로 만들어내는 무슨 공장이 있는 것 같다. ­경선 불복 컴플렉스 느끼나.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그러나 경선뒤 경선승복 약속만 지키고 있기에는 더 큰 국민의 요청이 있었다.약속을 못지킨 것은 사과한다.그러나 출마해서 국민에게 선택의 기회를 늘려주는 것이 나의 가야할 길로 믿었다. ­지지율 때문에 출마했다면,지지율 1위인 김대중 후보를 청산하자고 말할수 없는 것 아닌가. ▲나는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시대가 요구하는것은 젊은 지도력이다.김대중 후보 지지율의 구성을 따져보면 건강하지 못하다. ­경선불복은 청소년들에게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 아닐까. ▲우리나라 정당은 민의에 바탕을 둔 완전한 구조 아니다.민주정치 잘 되는 상황에서 경선결과에 불복하고 출마 결심한 것 아니다. ­여권 분열로 김대중 후보만 돕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승리를 확신한다.현 상황은 여야 2분구도가 아니다.신한국당은 이미 여당을 포기했다. ­금리와 물가 정책은. ▲임기중 13%의 금리를 7%로 내리도록 하고,물가도 3%선에서 안정시키는 정책을 취하겠다. ­고임금 구조에 대한 입장은. ▲이미 올라간 임금은 낮출수 없다.앞으로는 생산성 범위내에서 올리도록 하겠다. ­무노동 부분임금을 옹호하나. ▲나도 시장경제론자다.일하지 않는데 임금이 어디서 나오나. ­실업대책은. ▲집권하면 5년이내에 1백만개 이상의 좋은 일자리 만들어 내겠다.단기적으로는 직업훈련 강화와 고용정보망 확대,고용보험의 내실있는 운영이 필요하다. ­어떻게 일자리 1백만개를 만드나. ▲벤처산업을 육성하면 관련분야의 고용이 창출된다. ­고교 평준화를 폐지할 용의는. ▲예전처럼 1,2,3류 고등학교로 돌아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 ­전교조를 합법화할 생각은. ▲무리하게 추진하기 어렵다.교원단체 통해 교사들의 복지요구가 반영되는 체제로 가고 사회적 공감대 형성될 때 노조를 인정해야 한다. ­노조의 정치 참여는. ▲노조가 직접 나서 후보를 내고 조직,자금으로 뛰어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좋다. ­현재 13%인 여성고용 할당비율에 대한 입장은. ▲집권하면 30%까지 올리겠다. ­김정일을 어떻게 펑가하나. ▲아직 잘 모르겠다.그러나 개인의 성격도 중요하지만 북한이 당면한 객관적 상황을 주의깊게 보고 있다.
  • 미국영어와 영국영어/유만근 성균관대 교수(굄돌)

    우리나라에서 영어학사를 특별히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미국영어가 옛날 것이고,영국영어는 발음·문법·의미 모든 면에서 새 것이라고 일러주면,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수가 많다.아마 그것은 영국의 보수적이고 역사 오랜 나라,미국이 진취적이고 새로운 나라라는 일반상식으로,언어까지 그러려니 하고 지레 짐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민들이 가지고 간 언어는 마치 여름날 옮겨 심어 놓은 화초처럼,처음 한동안 잘 자라지 않는다.미국영어가 17∼18세기 옛날 영어인 것처럼,남미 스페인어는 옛날 스페인어이며,북미 퀘벡 불어는 옛날 불어다.그래서 가령 200년후 미국 LA한국어는 대체로 현재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테지만,서울말은 자꾸 빨리 변해 나가서 결국 큰 차이가 날 것이라고 확실히 예언할 수 있다. 오늘날 외국어로 영어 하나쯤 아는 것은 문명국 교양인들이 으레 갖출 필수 조건처럼 되었는데,특히 발음면에서 우리가 옛날 영어와 새 영어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필리핀·한국처럼 미국과 특별히 긴밀한 관계를 가진 나라가 아니면,대개들 새 영어를 택한다.영연방 50여개국은 물론,유럽 모든 나라가 영국 영어발음을 배우고 있으며,중국과 일본도 그 쪽으로 가는 듯하다. 이제 우리도 미국에만 가는 것이 아니라,동남아시아,호주,유럽,아프리카로 마냥 뻗어 나가는데,각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개 영국식 새 영어를 배운 사람들이다.여러 나라 사람들이 참석하는 국제회의에서는 언제나 영국 표준발음을 구사할 수 있어야 편리하고 꽤 유리한 것을 나는 실제로 여러번 경험하였다.직업외교관은 물론 BBC영어 발음을 잘해야 좋다. 영어교육으로 말하면,원래 조기교육은 우리나라 같이 영어를 늘 쓰지 않는 환경에서는 별로 효과가 없는 것인데,그나마 처음에 시작을 잘못하면 나쁜 흔적을 길이 남길수 있다.조기영어교육이랍시고,미국사람이면 어중이 떠중이 아무나 모셔다 무턱대고 과외교사로 삼는 분별없는 짓은 나중에 크게 후회할 수도 있는 일이니 부디 삼갔으면 한다. 한편 우리의 당면 목표가 ‘미국화’가 아니고 ‘세계화’라면,한국인도 5·16 군사정변 이전 교과서 발음으로 돌아가,영국 표준발음을 학교에서 주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 정치적으로 이용된 풍경화/마르틴 바른케 저 ‘정치적 풍경’

    ◎군주위세 나타내려 주문한 그림 등 분석 플랑드르의 화가 피터 폴 루벤스(1577∼1640)는 프랑스 왕 앙리 4세가 출전한 이브리 전투장면을 그리면서 마치 호메로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뒤엉켜 있는 것처럼 연출,고대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기병대의 전투는 전쟁사에 이른바 근대적인 쌍방의 전면적 ‘총기 기병전’으로 기록될 만큼 획기적인 것이었다.그러나 루벤스는 전쟁을 지휘자들끼리의 영웅적인 결투양상인양 변형시켜 놓았다.권력을 쥔 주문자의 요구대로 실제 전쟁상황을 은폐하고 신화화한 것이다.우리가 흔히 접하는 풍경화에서 이러한 ‘정치적으로 점거된’ 풍경의 흔적을 찾아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최근 도서출판 일빛에서 펴낸 ‘정치적 풍경’(마르틴 바른케 지음,노성두 옮김)은 풍경화의 겉 주제아래 얽혀있는 복합적인 의미의 매듭을 풀어낸 인문교양서로 독자들의 지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최근들어 부쩍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정치적 풍경’이란 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제3제국 곧 나치제국의 선전상이었던괴벨스가 하를란 감독의 영화 ‘콜베르크’를 보고 “이 영화는 정치적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다.브라질 태생의 독일 미술사가인 바른케는 이 ‘정치적 풍경’이란 말 대신 ‘정치화한 풍경’이란 표현을 쓴다.풍경화에 대한 해석법은 자연히 미학적이기기 보다는 문화사·정치사적인 데로 기운다.조그만 경계석에서 거대한 기념비에 이르기까지,바른케는 풍경에 새겨진 조형에서 정치적 신호를 읽어낸다. 15세기 초 랭부르 형제가 그린 ‘베리 공의 시력그림’에는 소박하지만 정치적인 신호가 분명하게 깃들여 있다.초기 풍경화 요람기의 작품인 이 그림은 영주가 소유지에 대한 권리를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주문해 그려진 것이다.첨탑 모양의 성체현시대처럼 서있는 ‘십자로의 실 잣는 아가씨’라는 이름의 도로표석은 군주의 위세를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또 1435년 슈테판 로흐너가 그린 ‘최후의 심판’에는 성채 풍경에 대한 정치적 평가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도시는 천국,성채는 지옥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이그림은 성채가 지배하던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은유이자 새로운 도시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일러주는 징표로 읽힌다.바른케는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정치적인 의미때문에 흐려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한층 더 명료해질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고 집필의도를 밝힌다.
  • 새로운 각성(중앙아시아를 가다:1)

    ◎중국 능가했던 주체적 고구려문화/집안 오회분의 ‘달님­해님’ 그림 독창적 솜씨/중원에 업은 샅바싸움 강건한 기상의 무예 서울신문은 민족문화 원류를 탐사하는 새 주간기획물 ‘중앙아시아를 가다’를 연재합니다.중국 동북지방에서 중원을 거쳐 중앙아시아 대초원과 사막을 찾은 서울대 윤이흠 교수(세계종교사)가 엮는 로망의 문화기행입니다.이 시리즈는 현지에서 확인한 고구려와 발해문화를 통해 고대 민족문화 루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그래서 낙양과 서안,돈황을 거쳐 천산산맥 남북 기슭을 여러 차례 넘나들며 중앙아시아 곳곳을 누볐습니다.거기에는 우리 고대문화와 유사한 흔적을 간직한 옛 소련땅 독립국가들의 문화유산 모두가 포함되었습니다.민족문화를 역동적으로 끌어올린 고대문화 통로를 찾는데 물론 역점을 두었지만,중앙아시아에서 만난 동포들의 삶도 함께 다룰 예정입니다. 만주 벌판의 광활한 땅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백두산에 이른다.그 웅비하는 산세를 접하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여기가 우리 민족의발원지려니 하는 마음을 갖는다.7년전 100명의 제천단을 이끌고 처음 백두산을 올랐을때 감격은 지금도 지울 수 없다.어째서 여기를 민족의 기원지라 믿게 되는 것일까.이 풀리지 않는 숙제를 안고 민족문화의 뿌리를 찾아 나섰다.그래서 발길을 먼저 연변지역으로 돌렸다. 우리는 흔히 문화의 뿌리와 기원에 대한 질문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본질을 찾으려 한다.기원과 본질을 동일시하는 것은 자칫 혼돈스러운 것이다.이는 아주 오래된 인간의 사유습관으로 정착했다.그 오래된 습관이 민족의 기원과 본질을 이해하는데 혼돈을 불러 일으키는 대표적 사례는 우리 문화와 중국문화의 관계에서 드러난다.그 관계를 컴퓨터용어를 빌려 설명하면,우리가 한문을 수용하면서 중국문화가 우리의 고유문화를 덮어씌운 것이다. ○중국시각서 탈피할때 그래서 모든 고유 개념어들이 중국문화 내용으로 대체되었다.이를테면 삼재사상같은 것이 그런 경우다.천지인을 말하는 삼재사상은 주대에 시작해서 한대에 와서 완성되었다.따라서 그 이전 단군조선 문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그럼에도 삼재사상이 한국문화의 뿌리이자 본질인 양 착각한다.이는 분명히 오래된 사유습관의 오류를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우리는 이제 중국 일변도의 시각에서 자유로워질 때가 되었다. 그런데 북방에서 만난 고구려와 발해의 문화는 중국 일변도의 오류에 대한 각성 그것이었다.집안 고구려 고분인 오회분 4,5호 묘에서 비는 달님 ‘여와’ 및 햇님 ‘복희’의 그림과 각저총의 격투기 및 씨름 그림은 중국문화에 예속하지 않은 고구려인의 솜씨다.두꺼비가 있는 달을 머리에 인 여와는 물론 중국 문헌에 나오는 내용이다.그러나 7세기에 그린 이 그림은 흐트러지고 유연한 당시 중국의 비천과는 전혀 다른 강건한 기상을 담았다. 그러니까 고구려인들은 중국으로부터 문헌전통을 받아들였으되,미의 감각 만큼은 자신들의 것을 버리지 않았다.그들은 고구려의 정서라는 그릇에 중국의 문화를 담았던 것이다.이는 고구려문화에 나타난 일관된 현상이다.무예대결의 그림수박도 고구려인들의 고유한 자기수련 전통이 배었다.또한 샅바를 맨 씨름은 중국에 없는 무예다.특히 고구려인과 대결중인 상대방 얼굴의 코는 유난히 높게 강조되었다.서역(서역)의 서양인이 분명했다.이는 고구려인들이 중국 밖에 사는 사막과 스텝의 민족들과도 교류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 그림이다. 중국 대륙은 한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일어서기 전까지는 북방 유목민족들에게 철저히 유린되었다.그 오합지졸의 상태였던 시기에 고구려는 대륙 동북방에서 강성한 제국을 이루었다.고구려는 당시 대륙에서 크게 봐야할 국가도 없었고,그렇게 해야할 이유도 없었다.그리고 문화적 주체성을 지녔던 고구려는 유교나 불교,도교와 같은 외래종교를 등거리에서 조정할 수 있었다.그러나 고구려의 태도는 왕조가 망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또 방대한 스텝지방에 자리한 돌궐제국의 칸들과 적극적인 접촉을 통해 서역과 활발한 물물교류를 가졌다. ○외래종교 등거리서 조정 고구려가 망하면서 발해가 대신 나서 그 고토를 차지했다.고구려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만주족을 끌어안고 나라를 세운 발해인들의 애환은 흔히 만주라 일컫는중국 동북지방 곳곳에 스며있다.그 많은 발해 무덤에서는 화려했던 문화의 흔적이 속속 드러났다.근·현대에 걸쳐 일어난 압록·두만강 건너로의 민족대이동은 어쩌면 귀소본능에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른다.그들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씨앗을 뿌리고 터전을 잡았다.항일독립전쟁에도 힘이 되어준 그들은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고구려 고토에 살고 있다. 북하의 중국쪽 두만강변 언덕에는 조선족 민족시인 이욱(1907∼1984년)의 시비가 서 있다.‘칠순/할아버지/나무를 심으며/어린 손자를 보고/싱그레 웃는/그 마음/그 마음’이라는 시다.그 시를 읊조려보며 내려다 본 강건너 무산시는 무척 적막했다.동양 제일이었다는 철광도시가 폐허로 변한 무산은 적막하다 못해 살벌했다.내일을 위해 나무를 심지않은 땅 무산.그의 시가 구구절절 절실하게 가슴을 파고 들었다. 그 암울했던 시대에 더러는 일제를 피해 블라디보스토크의 해삼위로 들어갔다.일제의 마수에서 벗어났다 했더니 스탈린은 그들을 중앙아시아로 내몰았다. ○고려인 삶도 조명 옛날 고구려인들이 칸들과 교류하던 바로 그 스텝에서 살고 있는 오늘의 고구려인이 그들이다.그래서 중앙아시아 이방인들 틈새에서 외롭게 살아온 고구려인들도 만나기로 했다.우리 민족문화의 원초적 잔영이 어슴프레 보이는 땅으로까지 역류하여 들어간 고구려인의 이주는 우연이었을까.그러나 역사는 필연적일수 밖에 없다. 어떻든 이번 ‘민족 문화의 원류’를 탐사한 여행목적은 우선 고구려인이 서역과 문화를 교류하는데 뒤따랐던 두가지 통로를 찾는 것이었다.다시 말하면 중국 서안에서 돈황을 거치는 비단길과 그 밖의 북방통로를 살피는 것으로 압축된다.이와 더불어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먼 한반도 동남쪽 끝자락 신라와 중앙아시아의 관계를 짚어본다는 의도도 깔았다.그리고 비단길이 지나던 중국 오지의 조선족과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삶에서 세계속의 한민족 위치를 발견코자 노력했다. □필자 약력 △1940년 서울생 △서울대 종교학과졸 △미 밴더빌트대 대학원석사 △미 노스웨스턴대 대학원 철학박사(종교학) △정신문화연구원연구원 △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 청춘들이여 꼼꼼해지라/이승복 홍익대 교수·시인(굄돌)

    가을 학기가 시작한다.교정에는 수줍다고나 표현해야 할 그런 바람이 분다.바람 속에는 웬지 쉽지 않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만 같다.깊은 사색을 준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여름의 그것과 달라서인지,분수의 물줄기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길도 한참을 묶여 있다.지난 여름 배낭여행의 흔적을 미처 지우지 못한채 분수곁에 앉아 유럽의 흔적을 더듬고 있기도 하고,기대보다 빨리 다가온 가을에 무엇을 준비할지 염려도 하면서 학생들은 성장하고 있다.그 모습이 때론 갸륵하리만치 소중하게 느껴진다.아이들이 성숙한다는 것은 가을을 앞둔 하늘가의 조도만큼이나 인상적이다.그래서인지 학교밖의 사람들을 만나면 학생들의 저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자랑하고 싶어 어쩌지 못할 때가 많다.저녁해가 질 양이면 교정에는 분주함과 애틋함이 뒤섞인 채 노을이 덮히고 그 아래서 청춘들은 호흡을 만들어낸다.그리고 그 무렵에 만나는 촉촉함이야말로 함께 하지 않으면 알수 없는 매력임에 틀림없다.하물며 저 아이들이 나와 닮아 있다는 것을 볼 때는 그리 정겨울 수가없다.욕하면서 닮는다더니 하지 말라는 것은 어찌 그리도 잘 따라 하는지,재미도 있고 얄밉기도 하다.하지만 선생이라선지 학기를 시작하며 사색하는 청춘에게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군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청춘들이여,모쪼록 꼼꼼해 지기를. 학생들이 한국 근대사를 말할 때마다 구호처럼 퍼붓는 말이 있다.대충주의다.청산되지 않은 역사며,위인설관의 정치현상,얼른 해치우고 쉬자는 식의 단발행정도 그렇다고 한다.뿐만 아니다.하려는 생각만 있으면 이미 다 된 것처럼 말하는 민주와 민족과 통일도 마찬가지란다.게다가 하늘의 비행기,땅에선 자동차,그리고 바다엔 배가 대충대충의 결과를 속속 보여주고 있다며 한껏 볼멘 소리를 계속해왔다.그렇다.이 모든게 대충주의의 성과다.어쩌면 대충주의야말로 우리들의 생활속에 자리하고 있는 가장 중심된 이데올로기이며,철학인지 모른다.하지만 질기디 질긴 뿌리도 끝은 있는 법.우리를 닮은 청춘들아,자네들부터는 따라하지 말았으면 싶다.
  • 경기도 연천군 원당리 구석기유적/한반도 최고유적 가능성 높다

    ◎건대 최무장 교수팀 조사/최초 선주민이 쓰던 돌연모 찍개 발굴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2리 구석기유적이 한반도 구석기시대의 표준유적일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건국대 박물관장 최무장 교수(고고학)팀이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이 유적 맨아래 문화층에서 가장 원시적인 석기를 찾아내 이를 뒷받침했다.이들 석기류 가운데는 구석기인들이 자갈돌 한쪽면을 떼어내 처음으로 만든 돌연모인 찍개가 주류를 이루었다. 원당리 구석기유적은 임진강가 높은 지대에 자리잡은 강가유적.지난해 1차 조사에서 400평을 발굴한 건국대박물관은 올해 2차 조사에서는 300평에 4개의 구덩이를 파들어갔다.그 결과 지층이 맨위의 지표층으로부터 현무암층까지 모두 9개 층위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했다.이들 지층에서 인류가 살았던 흔적을 남긴 이른바 문화층은 위로부터 2번째 심회적색 찰흙층과 4번째 홍갈색 찰흙층으로 밝혀냈다. 인류가 먼저 들어와 살았던 문화층은 4번째 지층인 홍갈색 찰흙층.이 지층에서 단순한 원시적 돌연모 찍개를 위주로 한 긁개,손톱모양 밀개,찌르개 따위의 석기류가 나왔다.이러한 석기를 만들어 썼던 구석기인들은 오늘날 임진강가 원당리유적에 첫발을 들여놓은 인류.지금으로부터 15만∼20만년전인 전기 구석기시대를 살았던 원당리 구석기인들은 한반도 최초의 선주민이기도 하다는 것이 최무장 교수의 견해다. 원당리유적을 한반도 최고의 구석기유적으로 보는 것은 4번째 홍갈색 찰흙층에서 찍개와 같은 단순한 석기가 나왔기 때문이다.돌맹이 한쪽을 다른 돌로 쳐서 떼어냈을뿐 거의 몸들연장에 가까운 걸음마 단계의 석기류인 것이다.찍개는 물론 원당리 말고 다른 구석기유적에서도 나왔다.그러나 다른 유적에서는 찍개와 함께 잘 발달한 주먹도끼 따위의 돌연모를 거느려 원당리유적에 비해 시기가 뒤진다는 것이다.원당리유적이 한반도 구석기 표준유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도 여기서 찾고 있다. 그리고 이번 발굴조사에 나타난 2번째 지층인 심회적색 찰흙층은 후기 구석기인들이 살았던 문화층,지금으로부터 2만년 전후를 원당리에 살면서 단단한 차돌을 가지고 정교하게 다듬은 석기를 남겼다.날카로운 작은 석기가 대부분이나,큰 강돌을 조개모양으로 떼어 칼처럼 사용한 대형긁개가 출토되어 주목을 끌었다. 그런데 이 유적의 두 문화층 사이에 3번째 황갈색 찰흙층과 4번째 암황갈색 찰흙층에서는 아직 유물이 나오지 않았다.따라서 전기구석기와 후기구석기 사이에 공간으로 남은 3·4번째 지층에서 유물을 찾는 일이 숙제이기도 하다.그러나 유적 이웃 밭에서 후기구석기말에서 중기구석기시대에 유행한 주먹도끼와 같은 석기류가 많이 채집되었다.이를 근거로 발굴을 계속하면 원당리유적에서 공백으로 남은 중기구석기문화를 찾아낼 확률은 얼마든지 남아있다. 원당리유적 발굴 지도위원으로 참여한 서울대 임효재 교수(고고학)는 “고형의 돌연모와 지층을 통해 전기구석기문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그리고 “지금까지 혼란을 겪었던 구석기시대 편년문제도 해결할 길이 트였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 “해킹 이젠 어림없다”/한국정보보호센터,예방·추적SW 개발

    ◎인터넷으로 시스템점검 대응조치/접속 로그파일 보존… 해커 추적 지원 인터넷으로 해킹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고 해커를 쉽게 추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소프트웨어가 국내 처음 선보였다. 한국정보보호센터(원장 이재우)는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컴퓨터시스템의 해킹취약성을 진단할 수 있는 ‘온라인 시큐어닥터(Online SecuDr)’와 해커의 해킹흔적 삭제 및 변경 행위를 막을수 있는 ‘시큐어로그(SecuLog)’등 2종의 S/W를 개발,희망기관에 보급키로 했다. 온라인 시큐어닥터는 시스템관리자가 인터넷을 통해 컴퓨터시스템에 대한 점검신청을 하면 자동으로 해당 시스템의 취약성을 점검,분석 결과와 대응방법을 전자우편으로 관리자에게 자동 통보해준다.따라서 컴퓨터시스템 관리자는 원격지에서도 간편하게 컴퓨터시스템의 취약성을 분석하고 대응조치를 취할수 있다. 시큐어로그는 시스템 접속 및 사용내역이 기록된 로그파일을 해커가 삭제 또는 변경해 해킹 흔적을 없애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해킹 발생때 해커를 손쉽게 추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다. 온라인 시큐어닥터를 활용한 온라인 안전진단서비스는 인터넷을 통해 한국정보보호센터 홈페이지(http://www.kisa.or.kr)에 접속,점검신청을 하면 곧바로 사용할 수 있다.시큐어로그는 사용희망기관이 한국정보보호센터에 신청하면 대상기관의 컴퓨터시스템을 분석한 뒤 프러그램을 주고 설치·사용을 위한 기술지원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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