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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9)근대 문화유산의 보고 군산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9)근대 문화유산의 보고 군산

    군산은 식민 수탈의 가장 전형적인 공간이었다. 식민공간답게 전통과 근대가 공생하고, 강요된 근대의 기형적 뒤틀림이 강한 흔적으로 남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일제시대 군산은 오쿠라, 이와사키 등 수많은 일본 토지재벌들이 지배했다. 그들은 고리대금업도 겸했으니,‘허리에 권총 차고, 손에 망원경 든’ 무장상인, 바로 약탈자였다.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시가지) 하나가 올라 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한국문학사의 금자탑인 채만식의 탁류는 이렇게 시작된다. 채만식 문학관은 소설 대목처럼 금강이 끝나면서 황해와 만나는 그 곳에 서있다. 문학관에서 조금만 서쪽으로 내려가면 ‘째보선창’이 나온다. 소설 속의 정주사는 서천땅을 처분한 뒤 똑딱선을 타고 째보선창으로 건너온다. 하지만 쌀 현물을 가지고 투기하는 미두장에서 돈을 다 날리고는 선창에서 자살을 기도한다. ●‘탁류’ 속 정주사 자살시도했던 ‘째보선창’ ‘째보선창’은 지정학적으로 ‘옆으로 째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 실제로 백마강과 금강이 합수하면서 바다로 흘러드는 길목에 자리잡아 Y자로 째진 곳이다. 구한말까지도 삼남의 농수산물이 이곳에 집산했다가 서울로 보내지던 중요한 선창이었다. 채만식 시절까지만 해도 제 몫을 다하던 선창이 금강하구언이 축조되면서 쌓일 대로 쌓인 퇴적물 때문에 항구 기능을 거의 상실해 문화원이 세운 입간판만이 그 역사를 말해줄 뿐이다. “탁류는 당연히 픽션이지만 역사적 전형성을 고스란히 획득하고 있지요. 두벰이산 정상에 있는 정주사 집터, 한창봉 쌀집, 콩나물고개 같은 소설 속의 역사현장을 짚어가면 식민지시대 군산의 풍경이 오롯이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군산 지킴이’ 이복웅 군산문화원장의 증언이다. 세종실록지리지 만경현조에 ‘군산은 병선을 정박시킨 곳으로, 섬이 둘 있는데 군산도와 망입도가 있다.’고 했다. 군산진은 본디 군산도(현재의 선유도)에 있었다. 그 후 군산진을 오늘의 군산시 영화동 해변의 진포로 옮기면서 이름도 따라와 군산으로 확정됐으며, 과거의 군산진은 고군산이 되었다. 그러니 고군산열도는 본디 군산의 원적지인 셈이다. 1899년 개항과 더불어 전혀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기 시작한다. 당시의 군산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갈대밭이 무성한 비좁은 곳이었다. 일제는 이 갈대밭을 매립하고, 시가지를 일본식 마치(町)체계로 바꾸었다. 본정통, 명치정, 강호정 따위가 그것이다. 메이지(明治), 에도(江湖) 같은 이름에서 식민지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일제는 군산을 강제로 개항시킨 뒤 대규모 항만시설을 서둘러 건설한다. 당시의 항만 흔적은 ‘뜬다리’같은 유적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수탈의 신작로’ 전주~군산가도 일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만경평야의 곡식을 군산항에 모았다가 일본으로 실어냈다. 전주~군산을 잇는 ‘전군가도’가 벚꽃으로 유명한 이유는 이런 역사적 연원을 지닌다. 일직선으로 뻗은 신작로는 수탈을 위한 토목공사의 증거였다. 오죽하면 당대 민중들이 ‘아깨나 낳는 년 갈보짓하고, 힘깨나 쓰는 놈은 목도질한다.’며 식민의 애환을 읊조렸을까. 일본 영사관이 설치되고 일본 거류민단이 세력을 확장해 갔다. 수탈은 금강을 거슬러서 상류인 부여 위쪽의 부강까지 미쳤다. 추수철이면 충청도와 전라도의 이 황금 곡창지대에서 개땅쇠처럼 일만 했던 소작인들은 피땀흘려 거둔 알곡을 바리바리 싣고 지주집으로 향했다. 소작 떼일 것을 걱정한 작인들은 굶주리면서도 정성껏 엿을 고와 받쳐야 했으니, 참으로 ‘엿 같은 세상’ 아니었을 것인가. 조선인 지주는 일본인 지주에 비하면 수나 양 모두 ‘별것’ 아니었다. 전국에서 전북처럼 일본인 농장이 많은 곳은 없었다. 전북은 일본의 기업형 농장이 가장 많이 진출한 일본 식량조달의 거점이었다. 금강, 동진강, 만경강 3대 강 유역에 펼쳐진 30만 정보의 대평원, 그 곡창의 문호인 군산 일대를 오쿠라, 이와사키 등 수많은 토지재벌들이 지배했다. 그들은 땅만 소유한 것이 아니라 고리대금업도 겸했으니,‘허리에 권총 차고, 손에 망원경 든’ 무장상인, 바로 약탈자였다. 폭력적 토지겸병 과정을 보노라면 사무라이 낭인집단의 건들거리는 풍경이 되살아난다. 가령,1904년에 이곳에 들어온 가와사키는 옥구군 서수면 일대를 자신의 향리인 일본 니가타현 모형으로 일본화할 계획을 가지고 온 골수 국수주의자였다. 일본 고향의 지주들을 서수면에 불러들여 농장설치를 권유했는가 하면 서수에는 신사까지 세웠다. 그리하여 가와사키농장이 모체가 된 이엽사농장이 탄생하는데, 이엽사는 전주의 삼례, 익산의 황등, 옥구의 서수면 일대에 논 1000정보, 밭 200정보, 소작인 1700여명을 거느린 대농장주로 군림하게 된다. 이들이 농장을 순찰할 때는 말을 타고, 승마복에 권총까지 찬 채 말채찍을 휘두르며 다녔다고 한다. 봉건시대의 영주와 다를 바 없었다. 그리하여 군산과 옥구·김제 등의 농민들은 대부분 소작인으로 전락했으며, 일본인 농장에 가족들까지 예속되어 노예 같은 삶을 이어나갔다. 보릿고개 때는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으며,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북간도 허허벌판으로 야반도주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아니면 소작쟁의를 벌여 죽기살기로 저항하는 수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934년 통계를 기준으로 무려 200만섬 이상의 쌀이 군산항에서 일본으로 반출됐다.1930년대 일본 농업공황을 계기로 조선은 완전한 일본의 식량 공급기지로 전락했다. 황금쌀은 일본으로 나가고 조선사람들은 만주에서 들여온 콩 같은 잡곡, 일제 말기에는 그것도 모자라 기름 짜고 버린 깻묵으로 연명했다. 일본인들이 끊임없이 수탈을 감행하는 동안 ‘멍청한’ 조선인 지주들은 미두장에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공인 도박장 격인 미두장에서 실의에 빠진 조선인 지주들과 자본가들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유산과 토지를 탕진했다. 탁류의 정주사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한 쪽에서는 거대한 기선에 수천 섬의 쌀이 실려나가는 동안 다른 한 쪽에서는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이 빈 밥그릇에 멍한 눈길을 주던 곳, 바로 군산이다. ●일본인은 평지 살고 조선인은 산동네 살고 일본인들이 평지에 살고 조선인은 산동네에 얹혀 살았다.‘언덕 비탈에 의지해 오막살이가 생선비늘 같이 들어박힌 개복동 그 중에서도 산꼭대기에 올라앉은 납작한 토담집, 방이라야 안방 하나 건넌방 하나 단 두 개뿐인 것을 명임이네가 도통 5원에 집주인한테서 세를 얻어가지고 건넌방은 먹곰보네한테 2원씩 받고 세를 내주었다.’고 채만식은 묘사했다. 군산은 식민 수탈의 가장 전형적인 공간이었다. 식민공간답게 전통과 근대가 공생하고, 강요된 근대의 기형적 뒤틀림이 강한 흔적으로 남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개항장은 제국주의의 의도가 적나라하게 관철되는 시험장이었다. 네덜란드가 건설한 바타이유 같은 해양 식민도시처럼 일본이 건설한 목포·군산·마산·원산 등이 그랬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이 곳은 숫자조차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숱하게 징용 나간 이들의 눈물이 넘치던 항구였다는 점이다. 쌀만 수탈당한 것이 아니라 목숨까지 수탈당한 곳이다. 해방 직후 군산항에서 노무자들의 퇴직금 요구와 귀화 노무자의 착취에 대한 격렬한 보상요구 투쟁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근자에 다시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한·일협정 과정에서의 반민족적인 협상으로 그만 영구 미제사건으로 덮이고 말았다. 재미있는 점은 조선에서 살다가 8·15 후 일본으로 되돌아간 일본인들은 ‘인양자(引揚者)’라며 일본에서도 차별대우를 받았다는 점이다. 실로 아이로니컬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식민지를 체계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경찰, 군대, 식민 경영기관, 거류민단, 금융기관 등이 필요하다 보니 으레 항구에는 이런 흔적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군산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시로서는 거대했을 조선은행 건물, 번듯한 세관건물이 지금도 남아있으니 가히 근대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뒷골목에는 이른바 왜정시대의 적산가옥도 즐비하다. ●방치된 수탈의 흔적들… 박물관 재활용해야 그러나 어쩌랴. 극장식 카바레로 쓰이던 조선은행 건물은 방치돼 있다. 안될 일이다. 식민지 시대를 비판하는 것과 별개로 그 시절의 흔적을 이런 식으로 방치해서야 되겠는가. 식민지의 역사적 교훈을 위해서라도 말끔히 복원하여 박물관이나 자료관 등으로 재활용할 일이다. 군산항의 역할은 일제시대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군산 수용소에는 진남포에서 LST를 타고 내려온 무려 5만여명의 피란민이 수용되었다. 이곳 미군기지와 공군비행장은 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증명해 준다. 항구는 이처럼 사회변동의 축소판이다. 군산은 더 이상 화려한 곳이 아니다. 서해안시대를 부르짖지만 침체한 경기는 살아날 기미가 없다. 영화롭던 영화동에는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감돈다. 항구는 먼 외곽의 신항으로 밀려났고 토사가 쌓이는 본래의 군산항은 그저 자그마한 배들만 오갈 뿐이다. 예로부터 백제의 도읍지인 부여 길목에 자리잡아 대중국 전진기지였던 천년 역사의 군산은 그렇게 정중동의 움직임만 보이고 있다. 건너편 장항에 오래된 제철소만 남아 옛날의 영화를 증명할 뿐. 개항 100년을 기념하는 백년광장에서 우리는 과연 개항 백년의 기념비적 의미를 제대로 챙기고 있는가 자문하게 된다. 또 좋든 싫든 근대 100년의 음지와 양지를 모두 지닌 군산항의 21세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말로만 서해안시대를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군산 같은 항구에서부터 그 해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 “화성에 생물체 살고있다”

    “화성에 생물체들이 살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들이 화성의 지표 밑에 생물체들이 살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를 찾아냈다고 미국의 우주관련 인터넷 매체인 ‘스페이스닷컴’이 16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NASA의 캐럴 스토커와 래리 렘크는 지난 13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 모임에서 미국의 우주정책 담당 관리들에게 이같은 발견이 과학전문지 네이처의 5월호에 실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임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두 과학자가 생물체의 증거를 직접 찾은 것은 아니지만 지구에서 최근 발견된 것과 유사한 메탄가스 및 생물체 활동의 흔적을 화성에서 발견했다고 전했다. 스토커와 렘크는 화성 표면의 극단적 환경에서 살기 위해 특이한 전략을 개발한 생물체들이 있을 것이라는 이론을 오랫동안 정립했다.2003년에는 산성 성분이 강한 스페인의 리오 틴토강의 지표 밑에서 그같은 생물체가 있음을 확인했다. 두 과학자는 화상탐사선과 지상 망원경으로 수집된 최근의 자료들과 스페인에서 찾아낸 생물체의 흔적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화성의 지표 밑에 소량의 물로 사는 생물체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화성 표면의 메탄 흔적이 변동하는 사실이 지하에서 활동하는 생물체가 있음을 반영한다고 덧붙였다. 화상탐사선인 오퍼튜너티가 최근 화성 표면에서 소금 바위를 발견, 화성에 물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NASA는 당장 지하 시추선을 보낼 계획은 없으나 2009년 이들의 연구결과를 확인할 핵추진 화성 탐사선이 발사될 것이라고 밝혔다. 1996년 과거 화성에 생물체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을 발견한 적은 있으나 현재 생물체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았다는 주장은 처음이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중국을 변화시킨 거인 장쩌민/로렌스 쿤 지음

    자연인으로서, 지도자로서의 장쩌민(江澤民)의 생애는 80여 년에 이르는 중국 근세사의 격동기와 동의어다. 일본의 침략,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혁명, 톈안먼 사태, 그리고 오늘날 놀라울 정도의 경제성장, 타이완과의 긴장관계, 중·미관계에의 기회와 대립 등의 역사가 그러하다. ‘중국을 변화시킨 거인 장쩌민’(로버트 로렌스 쿤 지음, 박범수 등 옮김, 랜덤하우스중앙 펴냄)은 오랜 세월 중국 전문가로 활동해온 저자가 장쩌민이라는 렌즈를 통해 중국의 전쟁, 혁명, 정치혼란, 사회 대변동, 경제개혁, 국가의 변신, 그리고 국제무대에서의 부활을 광대하게 조망한 역사적 서술이다. 서술에 앞서 지은이는 서문에서 ‘처음부터 장쩌민을 회의적으로 본 사람들이 오히려 그를 제대로 판단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마오쩌둥이 중국을 통일했고, 덩샤오핑이 중국을 개혁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장쩌민의 성취는 취약해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쩌민이 집권했던 10년간 중국이 미국 다음의 경제강국으로 부상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그리고 앞으로의 중국의 도전을 이해하기 위해선 장쩌민이 남긴 것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장쩌민은 1926년 장쑤성 양저우시에서 태어나 일본군 점령기에 초등 및 중등학교를 다녔다. 문학과 과학을 좋아했던 그는 대학에서 전기 및 전력 공학을 전공한 이후 기나긴 테크노크라트의 경력을 쌓게 된다.60년대 후반엔 엄격한 정치적 조사를 받고 후난성 보아이 농장의 핵심당원 교화학교에서 정치적 재교육을 받는 등 문화혁명의 악몽을 겪기도 했다. 마오쩌둥 사망후 1980년 덩샤오핑의 개혁과 개방시대가 열리면서 장쩌민은 핵심 정치가로서의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개혁·개방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신설된 국가수출입관리위원회 및 국가투자관리위원회 부주임(부주석급)으로 발탁되고, 전국인민위원회 위원으로 당선된다. 이어 1985년부터 상하이 시장과 당 부서기로 재직하면서 상하이시를 재건하고 성장과 투자 진흥에 그의 진면모를 보여줌으로써 덩샤오핑을 이을 수 있는 후계자로 낙점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다.89년 중국공산당 총서기 및 중앙군사위 주석으로 선출되고,94년 국가 주석으로 선출됨으로써 확고한 1인자로 자리잡게 된다. 필자는 장쩌민이 10대 시절 겪었던 일본의 중국 침략이 그의 전 생애와 정신세계에 어떤 흔적을 남겼으며, 어떻게 해서 그가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수십년후 어떻게 혹평속에서도 당을 개혁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통찰한다. 온정주의적이긴 하나 흔들리지 않는 비전, 일생을 통해 변하지 않았던 중국문명에 대한 사랑, 천부적인 협상 능력 등의 정치술과 오랜 테크노크라트로서의 경력에서 나온 경제적 식견 등을 통해 중국사회를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급부상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했다. 책 출간을 위해 중국이 이례적으로 장쩌민 최측근 및 고위 관리들의 인터뷰를 허락했다고 한다. 그래서 보기 드물게 내밀하면서도 포괄적으로 다가오는 장쩌민의 생애를 통해 중국 역사는 물론 오늘의 중국과 그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2만 3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여담여담] 불법복제시대의 예술/김소연 문화부 기자

    학창시절, 학교 근처엔 중고 희귀 LP 음반을 팔던 가게가 있었다. 하굣길마다 총총걸음으로 들른 그 곳엔 수입 원판들이 유리창 너머로 저마다 멋진 표지를 자랑하며 진열돼 있었다. 당시 기자는 미지의 땅을 처음 밟는 탐험가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음반들을 하나둘 훑어보며 행복한 상상에 젖어들곤 했다.10여년전 만들어졌을 음반에는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손때가 묻었을 테다. 여러 사연을 품은 채 바닷길을 건너왔을 테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눈빛은 ‘원본’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빛났다. 하지만 한 장에 5만원을 훌쩍 넘겼던 그 음반들은 ‘그림의 떡’이었다. 그러다 욕심이 나는 원판이 생겼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던 데다 두 장짜리 표지가 무척이나 탐이 났다. 힘들게 용돈을 모아 그렇게 처음으로 구입한 원판이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이었다. 몇개월 뒤 라이선스로 발매가 됐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내 건 원판이었으니까.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이 모든 것은 아스라한 추억속으로만 남았다. 아마도 컴퓨터로 다운받아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세대들은 당시 기자의 노력과 마음을 이해하기 힘들 듯싶다. 이미 1930년대에 발터 벤야민이 논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원본이 사라지는 시대의 변화를 정확히 감지했지만, 예술 마니아들은 자신들이 수집하는 복제 예술품에도 원본의 흔적을 새기려고 애써왔다. 하지만 화질이나 음질의 손상이 거의 없는 디지털 무한 불법복제는 이같은 원본의 흔적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극장이나 음반가게에 찾아가 정품에 돈을 지불하는 것조차 귀찮고 불필요한 일로 여긴다. 얼마전 회사 근처를 지나가다 최신 개봉작을 총망라한 불법 DVD를 파는 걸 본 적이 있다. 같이 있던 회사선배들은 영화담당인 기자에게 재미있는 영화의 추천을 부탁했다. 웬만하면 극장에 가라는 기자의 말에 “애가 있어서”라는 ‘편리한’ 이유를 대면서…. 문득 오래전 원판가게 앞에서 서성이던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불법복제의 편리함이 감동과 경이로움이라는 소중한 감정들을 빼앗아가 버렸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이 저릿해왔다. 김소연 문화부 기자 purple@seoul.co.kr
  • [9일 TV 하이라이트]

    ●한류체감 프로젝트 ‘아이러브 코리아’(MBC 오전 9시) 첫번째 한류 열풍지는 타이완. 현재 이곳은 2004년 대한민국 최고 드라마로 선정된 ‘대장금’이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현지 ‘대장금’의 인기 정도와 인기있는 한류 스타, 타이완 현지인들의 한국 노래자랑을 통해서 한국의 위상을 점검해 본다. ●신약특집(YTN 오후 8시30분) 미국과 스웨덴, 스위스, 독일 등의 현지 취재를 통해 선진국의 거대 제약사들이 수조원의 천문학적인 개발비용을 들여 신약개발에 나서고 있는 ‘총성없는 전쟁’의 현주소를 생생한 화면과 함께 소개한다. 불치병 치료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신약’의 개발과 임상시험 과정 등을 살펴본다. ●휴먼다큐 ‘가족’(EBS 오전 10시20분) 우리나라의 또 다른 소외계층인 혼혈가족 요셉이네. 파키스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요한, 요셉이네 가족이 살아가는 행복한 이야기를 통해 이들도 우리 사회의 이웃임을 깨닫고, 또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맛 대 맛 스페셜(SBS 오전 10시30분) 2004년 총결산편으로, 계절별로 나눠 맛의 향연을 펼친다. 최고의 맛을 만드는 장인들, 산지에서 올라온 최고의 재료들이 스튜디오에 쏟아진다. 봄 음식으로는 조개구이 대 조기구이, 된장찌개 대 김치찌개, 물냉면 대 비빔냉면, 꽃게 대 대게, 마산아귀찜 대 해물 누룽지탕 등이 소개된다. ●최고의 스펀지(KBS2 오후 4시50분) 홍록기 홍지호 권진영 김창렬 김학도 홍경민 이지현이 출연한다.‘스펀지 연구소’코너 에서는 신데렐라의 비밀, 진실을 알지 못할 때에 더욱 아름다울 수 있는 신데렐라의 속 이야기를 살핀다. 아름답기만 했던 그 이야기 속에 숨겨진 무서운 비밀은 무엇일까. ●명주기행, 술익는 마을(KBS1 오전 10시) 우리 술은 이제 우리 농촌이 새롭게 찾아야 할 과제이다. 우리만의 독특한 누룩 제조법, 이미 찾기 어려워진 전통술의 발효비법, 술과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술에 담긴 먹을거리의 철학들. 명절을 맞아 우리 술문화의 원형을 찾아 보고, 우리의 술 안에 들어있는 문화 흔적을 살펴본다.
  • [안귀옥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남편의 ‘습관성’ 외도

    저는 결혼한 지 5년이 되는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제 남편은 술이나 담배도 못하고 잡기에도 소질이 없습니다. 하지만 2년 전에 A씨를 알게 되면서 불화가 시작됐습니다. 남편은 처음 외도가 발각됐을 때는 잘못했다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A씨와 교제를 했고, 발각되면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비는 것은 이제 습관이 됐습니다.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듭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김윤미(가명)- 언젠가 가사법정에서 저의 재판순서를 기다리면서 다른 변호사가 진행 중인 가사사건의 증인신문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내측의 변호사가 남편측의 증인인 손아래 시누이로부터 남편의 외도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원고가 오빠의 외도 때문에 울면서 증인에게 도와달라도 한 일이 있지요.”라고 묻자, 그 여동생은 “오빠가 다른 여자와 교제를 한 것은 맞지만 그것은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지 외도가 아니예요.”라고 대답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시누이는 “오빠가 외도를 하기는 했지만 가정을 깰 의도로 다른 여성에게 빠져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남성들에게 외도는 지나가는 바람일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단 한번의 실수를 하고 그 뒤에는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혼인관계에서 신뢰를 깨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부부간 갈등으로 저를 찾아오는 사람 중에 30%정도는 외도로 고민하는 여성들입니다. 남편의 외도에 대응하는 여성들의 반응은 성격과 애정의 정도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표현됩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남편의 외도가 한번 발각된 이후에는 남편이 회사일이나 친구들의 모임으로 늦게 귀가하는 경우에도 아내는 또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합니다. 수시로 남편으로부터 외도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서 주머니를 뒤지거나 카드 사용내역 등을 꼬치꼬치 캐묻는 등 과민반응을 보입니다. 결국은 남편으로부터 의부증환자로 취급받고 갈등의 골이 깊어져 결국은 이혼을 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저의 상담경험에 따르면 외도는 처음에 발각되었을 때 다시는 재발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남편의 외도로 고민하는 많은 여성들이 남편에게 교제하고 있는 여성과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한 달안에 그 여자를 정리하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방법은 사용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외도가 나쁜 일이라면 나쁜 일은 발각되는 즉시 그만두어야지 나쁜 일을 시간을 주면서 정리하라고 한다면 그 시간 동안은 정리를 빌미로 마음놓고 만날 수 있을 것이고, 한시적이라는 것 때문에 얼마나 애절한 대화들을 할까요. 필자는 이렇게 해서 남편의 외도를 정리했다는 사람을 아직 못 봤습니다. 윤미씨도 남편의 외도를 막고 가정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남편이 용서를 빈다고 해서 쉽게 물러나서는 안 됩니다. 남편에게 A씨와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을 경우, 이혼소송이나 간통죄 고소도 불사한다거나 직장에 통보할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윤미씨가 정말로 이혼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다고 친정으로 보따리를 싸가지고 가버린다거나 하는 방법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내가 집을 비울 때 남편들이 더 밖으로 도는 것을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윤미씨의 강한 의지와 함께 의심이 아닌 진실된 마음으로 애정과 관심을 보인다면 남편의 외도를 종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6) 김제 심포갯벌과 망해사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6) 김제 심포갯벌과 망해사

    고깃배 두어척이 심포항에 닻을 내린다. 어선이 겨우 닿는 자그마한 포구가 제법 커져서 민박집, 횟집이 즐비하지만 불황 탓에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김제땅에 들어서면 늘 찾게되는 곳, 바로 심포갯벌이다. 심포갯벌은 새만금 갯벌의 깊숙한 안쪽을 말한다. 사실 ‘억만금’을 발견이라도 하 듯 억지로 지어진 새만금이라는 명칭부터 작위적이고 거북스럽다. ●심포갯벌은 새만금갯벌의 깊숙한 안쪽 군산에서 김제를 거쳐 부안까지 망망대해로 이어지는 흑갈색의 ‘바다 들판’이 펼쳐지고,‘징게멩게 외야미들’의 누런 들판이 비슷한 넓이로 뭍을 덮는다. 1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의 치수시설인 벽골제가 지척이니 예로부터 쌀농사와는 불가분인 곳이다. 지평선 없는 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그러나 일제의 수탈적 농업정책에 의해 동진 만경강이 간척되고, 가난한 농민들이 피땀을 흘리면서 일본인 농장주와 척식회사의 채찍에 내몰리면서 개간한 들판이다. 전국 각처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리면서 개딱지 같은 집에서 짐승처럼 살면서 울부짖던 통한의 땅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산된 쌀은 지금의 새만금을 빠져나가 군산에 집결돼 모조리 일본으로 실려 나갔다. 황금들판의 끝에 황금갯벌이 이어지다가 이윽고 갈색의 바다로 수렴되는 심포갯벌의 망해사를 찾아든다. 바다를 굽어보는 뛰어난 절이라면 으레 양양 낙산사, 여수 향일암 따위를 내세우리라. 바위 끝에서 그대로 부서져 내리는 낙산사의 씩씩하면서도 장엄한 우조, 미려청고(美麗淸高)하고 애원처절한 향일암의 계면조, 이 모두 빼어난 절창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망해사의 해조음(海潮音)도 그에 못지 않다. 이유는 단 하나. 망망대해로 펼쳐진 갯벌을 마주보고 있어 밀물 썰물에 따라 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는 까닭이다. ●앞마당이 갯벌인 망해사 망해사에는 앞마당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없기도 하고, 무한히 넓기도 하여 무량(無量)이다. 무망한 갯벌이 모두 앞마당인 탓이다. 그래서 망해사 앞에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바다가 절을 부르고, 절이 바다를 부르나니!” 김제땅 진봉반도의 윗자락에 자리잡은 작은 암자, 처처불불(處處佛佛)인데 초가삼간이면 어떻고, 거창한 내력이 또한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이곳에 눈발이 나부끼고 절집의 큰나무가 바다로 굽이쳐서 흔들린다. 눈발에 감싸인 낙서루에 앉아 눈을 감는다. 그 옆에는 청조헌(聽潮軒)이 있다. 말 그대로 물결의 소리를 듣는 곳. 소녀들의 시구에 등장하는 해조음보다도 청조음은 얼마나 걸찍한가. 가히 서해다운 표현이다. 계곡물이나 강물소리를 듣는 정자나 불당은 널렸지만 앞마당에서 밀물 썰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어디 흔하던가. 질퍽거리는 갯벌로 나간다.20분쯤 걸었을까. 북쪽으로 군산항이 손 끝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고군산열도의 섬들이 줄지어 서 있는 그곳에 새만금간척지의 둑방이 멀리 시야를 가로지른다. 해가 지고 있다. 망해사 앞마당 갯벌에서 마주하는 일몰, 서해 낙조의 말할 수 없는 슬픔이 갯벌 위에 깔리고 있다. 끝내 갯벌이 사라지고, 아스팔트 포장이 깔릴지 모른다. 서해는 애초부터 바다가 아니라 중국과 연륙된 뭍이었다. 빙하가 흘러내려 서해가 창조되었다. 운동은 사물을 변화시켰다. 뭍에서 실려온 미세한 퇴적물이 쌓이면서 갯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8m에 이르는 조석간만의 차이는 드넓은 조간대를 형성했다. 오랜 조석운동의 결과는 질과 양의 변화를 가져와 바닷가에 변증법의 지평을 쌓았다. 그리하여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갯벌이 형성된 것이다. 인간에게는 억겁이지만 지구 나이로 보자면 이 갯벌의 나이는 청년기에 불과한 고작 8000년. 갯벌 생성은 서해안의 조석 변화를 끊임없이 반복해 온 ‘청년운동’이라고 표현함이 어떨른지. 너무 흔하면 소중한 줄을 모르는 법일까. 영국, 독일, 네덜란드를 포함한 북해 해안, 캐나다의 동부 해안, 미국 동부의 조지아 해안, 남아메리카 아마존 하구 등 일부 지역에서만 갯벌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배운다. 수차례 새만금을 찾았던 독일 홀스타인갯벌센터의 켈러만 박사는 새만금의 종다양성에 관해 “세상에, 이런 갯벌이 있다니….”라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증산·수출·건설을 지고의 좌표로 삼고 자란 우리는 간척지가 우리를 먹여 살릴 유일한 해법인 줄로만 알았다.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 바다는 이미 결단이 나있었다. 갯벌이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다. 동죽을 캐던 심포 아낙들이 부지런히 서두르는 것을 보니 물이 들어올 시간인가보다. 망해사 불빛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다. 흡사 등대처럼 느껴진다. 갯벌을 마구 없애버리는 혼돈을 일깨우는 등대 같다. 동죽을 하나 집어든다. 나이테가 분명하다. 나무만 나이테가 있는 게 아니다. 여름 나이테는 성기고, 겨울에는 촘촘하게 선이 그어져서 삶의 흔적을 분명히 보여준다. 연륜뿐 아니라 조석에 따라 물이 들어오고 빠질 때 나타나는 성장의 결과물인 일륜까지 온몸으로 보여준다. ●토양 정화시키는 수많은 게 구멍 물이 들고 나는 매일매일의 일기를 자신의 몸에다 직접 쓰는 셈이다. 고작 생년월일, 주민등록번호, 생일잔치, 출생신고 따위의 통과의례로 연륜을 확인할 수 있는 인간과는 그런 점에서 확연히 대비된다. 하찮은 조개같은 미물 하나에도 생명의 숨겨진 역사가 각인되어 있다. 물이 들어오자 갯벌의 수많은 구멍마다 난리가 난다. 먹이의 사슬 속에서 적자생존의 삶을 체득해 살아남기 위해 갯벌에 은신처를 마련한 게. 그 구멍 깊숙이 밀물이 채워지자 마침내 그 은신처에서 몸을 뺀 미물들의 시간이 된다. 그들이 죽도록 파헤치는 노동 덕분에 신선한 물이 구멍을 통해 갯벌 지층의 썩은 흙을 정화시킨다. 구멍들의 어마어마한 정화작용은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무심코 잡는 갯벌의 게, 별다른 경제적 이득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게들을 잡아다 파는 무심한 ‘살인’은 이제 그만 둘 일이다. 심포갯벌만 하더라도 게들이 정화공장 수십개 이상의 역할을 공짜로 해준다. 갯벌전문가 서울대 고철환 교수(지속가능발전위원회위원장)는 “찬반 논란을 떠나 생명체를 살리는 것은 인간이 자연에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정리한다. 서해안 갯벌 연구의 메카로 나아가고 있는 서해수산연구소 갯벌연구센터 조영조 소장은 “만경강 동진강은 탯줄, 갯벌은 태반”이라고 말한다. 탯줄과 태반, 그보다 적절한 비유가 있을까. 새만금 일대를 샅샅이 조사하면서 찬반 논란을 넘어서 실사구시적으로 데이터를 축적, 분석하고 있는 송재희 박사는 “해수 유통만 제대로 보장된다면 새만금을 충분히, 그것도 일시에 되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천만 다행이다. 마침 법원에서 선택을 요구하고 있으니, 새만금을 살리는 문제는 이제 국민 모두의 손으로 공이 넘어온 셈이다. 해수를 유통시켜 갯벌과 생명체들을 영구히 살릴 것인가, 아니면 갯벌을 땅으로 만들어 농사라도 지을 것인가. 환경운동연합의 장지영 갯벌팀장은 “쌀이 남아도는 마당에 갯땅으로 국가적 투기판이라도 벌일 것인가.”고 되묻고 있다. 반면에 ‘새만금완공연대’라는 지역조직에서는 ‘끝까지 밀어붙이기’를 선언하고 있다. 이제 새만금을 둘러싸고 각각의 다른 시각을 보였던 이들에게 마지막 답이 제시될 시간이 착착 다가오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모든 선택 권이 양측에만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법원도 사실 최종적 결정권한이 없다고 생각된다. 인간은 왜 갯벌의 ‘망둥이거사’와 ‘조개보살’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가. 정작 그들이야말로 이 갯벌의 주인 아닌가. ●죽어가는 생태자원의 보고 완강하기만 한 ‘토건(土建)국가’에서 풍전등화의 석양을 지켜보는 망해사의 저 등대 불빛은 언제 꺼질까. 서해안의 8000년 청년운동사를 우리는 단 몇 년의 간척사로 대체시키고 있다. 법원 결정을 놓고서 사회적 논란이 재연되고 있으나 토론하고 동의를 구할 시간은 거의 없다. 죽어가는 ‘망둥이거사’와 ‘조개보살’들에게 남은 시간, 선택의 여지는 아예 없다. 문득 망해사와 인연을 맺은 진묵스님을 떠올린다. 비승비속처럼 살다간 그의 행장은 거의 알려지지 않다가 다산 정약용과 늘 마주하였던 대둔사의 초의선사가 편찬한 ‘진묵조사유적고’를 통해 겨우 세상에 알려졌을 뿐이다. 조선 중기에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한 소리를 남기고 떠난 거인. 초의는 그를 두고 ‘석가여래의 응신(應身)’이라는 헌사를 올렸다. 남은 기록이 몇 줄이라면 민중의 구전 역사책은 수십권이니 그를 생불(生佛)로 여기는 전설이 지금껏 유전되는 것 아니겠는가. 김제 만경의 심포에서 지척인 불거촌 사람으로 알려진 그는 “고기를 잡은 뒤에는 통발을 잊는 법(得魚忘筌)”이라고 했다. 토건국가를 그만 지향해도 될 법한데 여전히 토건만이 살길이라고 믿는 우리 시대의 부끄러움에 관하여 그는 무어라 했을까. 끝내 바다를 굽어보는 망해사가 아니라 어처구니없는 ‘망륙사(望陸寺)’를 택할 것인가! 잘못되면, 훗날 이곳에 다시 와 관해기가 아닌 관륙기(觀陸記)를 써야할지도 모른다. 그 얼마나 참담하고 민망한 일이겠는가.
  • 극사실주의 대가 이상원화백 러시아서 초대전

    극사실주의 대가 이상원화백 러시아서 초대전

    화단의 원로 이상원(70) 화백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극사실주의 회화의 대가다. 보풀 한 올까지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 극도의 세밀한 붓터치는 ‘사진 그 이상’이란 평을 듣는다.‘하이퍼 리얼리즘의 거장’ 이상원 화백이 리얼리즘 회화의 본고장 러시아 모스크바의 트레차코프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고 있다. ●트레차코프미술관 최초 한국인 작품전 개막일인 25일에는 발렌친 로디오노프 트레차코프미술관장, 김재섭 주 러시아대사, 현지 미술평론가 등 100여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구 소련 시절 문화부 차관을 지낸 로디오노프 관장은 “트레차코프미술관은 최근엔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소개하고 있지만 한국 작가가 이 미술관에서 작품전을 여는 것은 처음”이라며 “이 화백의 사실적인 작품은 근대 이후 리얼리즘 전통이 강한 러시아에서도 호소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2월1일까지 계속될 이번 전시에는 ‘시간과 공간’‘막(膜)’‘동해인’‘연(緣)’‘영원의 초상’ 시리즈 가운데 대표작 55점이 나와 있다. 특히 헝클어진 백발에 논두렁처럼 깊게 팬 주름살이 인상적인 노인의 표정을 담은 작품 ‘동해인’에는 유난히 많은 관람객들이 몰렸다. 삶에 대한 은유로 가득한 이 작품에서 지나간 신산한 세월의 흔적을 읽어낸 것일까. 배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 ‘풍년’도 커다란 관심을 모았다. ●서구 리얼리즘 끝에 선 수묵의 날카로움 관람객들은 하나같이 “혹시 사진을 찍어 확대한 것 아니냐.”며 이 화백의 극사실주의적인 붓질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동양의 수묵과 서구의 리얼리즘이 어떻게 한 데 어우러져 그처럼 담백하고 강렬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화백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젊은 시절 영화간판과 인물 초상화를 그리다가 불혹의 나이에 순수미술의 길로 들어선 입지전적인 작가다. 그야말로 무사자통(無師自通)인 셈이지만 이 화백은 대한민국미술대전, 동아미술제 등 공모전에 잇따라 입상하면서 순수화가로 인정받았다. ●산업사회 이후 전통에 대한 향수 표현해 이 화백의 작품세계는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혹은 소외된 존재에 대한 애정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땅속 깊이 팬 타이어 자국이나 바닷가의 폐그물, 온갖 폐수와 곰팡이로 뒤덮인 수막, 너덜너덜해진 마대, 평범한 촌로나 어부의 고단한 삶…. 이런 것들은 모두 작가의 심오한 존재론적 성찰을 통해 삶에 대한 긍정과 찬가로 승화된다. 러시아 미술평론가 페트르 푸르도프스키는 “이상원은 어부나 해녀들의 이미지 묘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회화의 예술적 본질을 드러내는 데 있어 항상 고향의 전통에 충실해 왔다.”면서 “그의 그림은 산업사회 혹은 후기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밀려난 전통적인 세계에 대한 향수라는 주제를 가장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고 평했다. 이 화백은 지난 30여년의 화업을 통해 10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네덜란드 화가 고흐가 소품까지 포함해 800여점의 작품을 그린 데 비하면 대작 위주의 작업을 하는 이 화백은 단연 다작(多作)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을 단 한 점도 팔지 않았다. 러시아 현지에서도 고가에 작품을 사겠다는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그의 입장은 단호하다.“그동안 작품을 팔아왔다면 이같은 전시가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훗날 미술관을 지어 나의 작품세계를 오롯이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화백은 오는 4월쯤에는 자신의 작품활동 여정과 그림을 담은 자서전 ‘바람의 초상’(가제)도 펴낼 예정이다. 모스크바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레차코프미술관은 19세기 러시아의 부호 파벨 미하일로비치 트레차코프 형제의 소장품으로부터 출발한 트레차코프미술관은 에르미타주미술관, 러시언미술관, 푸슈킨미술관과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미술관이다.1856년에 설립된 트레차코프미술관은 1892년 모스크바 시의회에 기증된 뒤 러시아를 대표하는 국립미술관(state gallery)으로 거듭났다. 트레차코프미술관의 소장품은 고대 러시아 성화에서부터 현대 미술까지 다종다양하다. 러시아 미술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있는 세계 미술의 보고다. 레핀, 말레비치, 칸딘스키, 샤갈 등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통의 작품과 아방가르드 작품 등 13만여점이 소장돼 있다.11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작품은 라브루쉰스키의 트레차코프미술관에,20세기 현대 미술은 주로 크림스키에 위치한 트레차코프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루블료프의 ‘삼위일체, 레핀의 ‘이반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이바노프의 ‘그리스도의 출현’, 페로프의 ‘도스토예프스키’, 수리코프의 ‘유형지로 끌려가는 마리조바 여인’ 등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품. 이 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하나인 샤갈의 ‘유대인 극장-패널화’는 현재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트레차코프미술관은 예술작품의 보존과 수복, 교육 등을 통해 명실공히 러시아 학문과 예술의 중심 역할을 다하고 있다.
  • 끝없는 세상의 끝-그랜드 캐니언

    끝없는 세상의 끝-그랜드 캐니언

    ■ 캐니언 속속 들여다보記 함부로 혀를 놀리거나 펜으로 옮길 일이 결단코 아니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맛본 밤의 열락(悅樂)이 모하비 사막의 모래바람에 씻겨나가고, 애리조나주 경계선을 넘자마자 몰아치기 시작한 비바람과 진눈깨비에 진저리가 쳐질 즈음, 겨울 그랜드 캐니언의 유일한 관문인 사우스 림(south rim)의 마테르 포인트에 올라섰다. 수백명이 함께 설 수 있는 너럭바위로 내달렸다. 휘 둘러보니 숨이 턱 막혀온다. 혀가 굳는다는 표현이 어울릴까. ●세상의 끝에 펼쳐진 색의 향연 서쪽으로 긴 걸음을 옮기던 태양이 맞은 편 노스 림(north rim)에서 밀려오는 먹구름과 숨바꼭질하는 틈틈이 캐니언의 벽을 캔버스 삼아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워 황갈색, 적갈색, 암갈색 빛의 현란한 잔치를 펼친다. 캔버스는 가을 단풍보다 더 요란한 정열로 타오른다. 색의 축제를 더욱 아연하게 만드는 것은 협곡과 단구의 오케스트라. 이곳 장관에 반해 자동차로 1시간여 거리인 플래그스태프시로 집을 옮겨 40년동안 매주 거르지 않고 찾는다는 탐험가 겸 여행작가인 스튜어트 에이치슨이 그랜드 캐니언의 장관을 ‘시간을 향해 열린 창(window of time)’이라고 노래한 것은 전적으로 옳았다. 노스 림의 카바이브 평원이 일직선으로 그려진다. 평원아래 끝모를 절벽이 쩍 벌린 아가리 속으로 내리꽂고 있다. 건너편이 2∼3㎞ 떨어진 거리라는데 믿기지 않는다. 하기야 가장 큰 대척거리가 29㎞나 된다고 하고, 이대로 서쪽으로 내달려 무려 410㎞ 이어져 미드 호수까지 이른다니 도대체 이 캐니언의 엄청난 파노라마를 일생 동안 제대로 음미할 수나 있을까. 순간 세상의 끝자락에 선 느낌이 든다. 그래 맞아. 림(rim) 자체가 테두리란 뜻이지. 마테르 포인트는 사우스 림의 서쪽 끝 허밋 레스트에서 시작된 림 트레일의 끝자락이다. 두 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이 산뜻하게 포장돼 있다. 그 길을 좇아 서쪽으로 달리니 캐니언의 모습이 조금씩 바뀐다. 마테르 포인트에서 1.2㎞ 거리에 그 유명한 야바파이 포인트가 있다. 또 다르다. 손과 발을 내저어 호흡이 가빠질 정도로 빠른 걸음을 내디디니 자연은 전혀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누워있는 산’이란 뜻을 지닌 카이바브 포레스트의 북쪽에서 뻗어나온 노스 림의 3대 장관 중 브라이트 에인절 포인트와 케이프 로열의 위용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브라이트 에인절에 이르는 노스 카이바브 트레일이 흐릿한 실선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이었다. 사위가 너무 어둡다. 관광객 모두 장탄식을 늘어놓으며 카메라를 힘없이 내려놓는다. ●범접(犯接)할 수 없는 대자연의 속살 다음날 아침, 간밤의 숱한 기원과 염원에도 여전히 하늘은 시커멓다. 묵던 호텔에선 정전(흔한 일이라고 했다.)으로 식사가 불가능해 도너츠와 요구르트를 챙겨 들고 다시 핸들을 붙잡았다. 이번에는 마테르 포인트 앞에서 우회전, 데저트뷰 드라이브로 내달렸다. 바닐라향이 난다는 판데로사 소나무 숲이 왕복 2차로 가에서 우리를 맞는다. 숲과 관목 아래 눈이 이만큼씩 쌓여있고 진눈깨비가 흩날리는데도 길은 멀쩡하다. 데저트뷰 포인트에 다다르자 자동차 문을 열 수가 없다. 강풍 탓이다.20분 기다렸다 동쪽 하늘을 보자 맑은 빛이 드러난다. 이때다 싶어 또 뛴다. 호피족이 지었다는 워치타워를 왼편으로 흘리며 전망대에 다가서자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사라진다. 마법사가 ‘훅∼’하고 입을 모아 분 것처럼. 멀리 케이프 로열과 데저트 사이로 굽이치는 콜로라도강의 위용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처럼 콜로라도강이 분명히 잡히는 곳이 없단다. 카메라 셔터를 몇번 누르자 곧 시커먼 구름이 몰려온다. 계속 서진(西進)하며 포인트마다 들렀다가 틀렸다 싶으면 다시 포인트를 옮기는 일이 되풀이됐다. 캐니언은 그때마다 속살을 감추려는 아낙네마냥 구름 속에 숨는다. 다시 선 야바파이 포인트에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강풍이 불더니 그때서야 계곡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수많은 단구는 포인트 주변에 쌓인 눈이 무색할 만큼 푸른 빛이다. 단구 위 하얀 실선, 트레일들이 거기에 미친 사람의 발길을 웅변하고 있다. 내려가보고 싶지만 야키 포인트 아래 카이바브 트레일 입구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길은 온통 눈얼음이 덮여 위험하기 짝이 없다. 자칫하면 절벽 아래 시간너머 영원으로 추락할 것 같다. ●대협곡, 위대한 미지(未知) 다른 일정 탓에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과학적 탐사의 첫걸음을 내디뎠던 존 웨슬리 파웰 소령은 그랜드 캐니언을 “위대한 미지”라며 “한눈에 이곳을 보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단언했다. 지질학자 클래런스 더튼은 “하루나 일주일, 혹은 한달안에 이곳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늘에서 경비행기를 탄 채 이 장관을 굽어보고 자동차로 몇개 포인트 들러 그랜드 캐니언을 보았다고 장담할 일이 아니다. 당장 우리에게 접근이 허용된 양대 림 지역은 캐니언의 20분의1도 되지 않는다. 도대체 뭘 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남은 건 후회요, 전날 오후부터 하나라도 더 보겠다고 미친 듯 발을 동동 구른 자신이 우습게까지 여겨진다. 우리는 무얼 볼 수 있을까. 제대로 된 눈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그랜드 캐니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그랜드 캐니언은 나이:23억세(지구 연령의 절반)*어떻게 만들어졌나*:2억5000만년 전 바다 지층이 융기되면서 협곡이 형성됐고 600만년 전부터 콜로라도강에 의해 침식 진행 길이:446㎞(경부선 철도 444.3㎞) 면적:4291㎢ 깊이:평균 1609m 대척점:최대 29㎞ 날씨:한겨울 영하 9도,한여름 40도 지질 박물관:17억년된 바닷물 침전 암괴로부터 2억 5000만년 전 형성된 맨 윗부분 지층에 이르기까지 망라 첫 탐사:1869년 존 웨슬리 파웰 소령이 보트 4대로 콜로라도강을 따라 여행,72일만에 미드호수 근처에 이르렀음 국립공원:1908년 천연기념물 보호지역으로 설정됐다가 1919년 지정 ■ 이렇게 즐겨요 그랜드 캐니언은 해발 2000m가 넘는 지역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도로가 평탄하고 곧다. 한겨울에도 웬만한 눈에는 빙판이 되지 않는다. 자동차나 셔틀 버스로 포인트에 들러 한번 쓱 둘러보고 다른 포인트로 옮기기 매우 편리하다. 그러나 여행의 참맛은 역시 몸을 움직여 땀을 흘려 걷는 데 있다. 그랜드 캐니언에서 몸을 움직여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트레일 하이킹 여섯 군데의 트레일을 발로 토담토담 걸어보자. 가장 쉬운 트레일은 역시 림 트레일. 자전거를 이용할 수도 있고 휠체어로 갈 수 있을 정도로 길이 평탄하다. 여름 한낮에는 이 지역도 40도 가까이 기온이 올라가는 만큼 체력을 감안, 돌아올 길을 미리 그려보고 출발해야 하며 일사병 등에 주의해야 한다. 브라이트 에인절 트레일(왕복 19.6㎞)은 하루종일 걸어야 하지만 트레킹족이 가장 즐겨찾는 명소다. 해뜨기 전 출발해도 해지기 전에 돌아오려면 상당한 체력이 요구된다. 따라서 충분한 물을 채우고 비상식량을 준비해 출발하는 것이 좋다. 야키 포인트에서 내려가는 사우스 카이바브 트레일은 왕복 2.4㎞의 우아 포인트와 4.8㎞ 걸어야 하는 시더 리지 트레일이 권할 만하다. 트레일 입구에 주의사항을 적은 게시판을 반드시 읽고, 주변의 정보센터에 들러 전문가에게 체력 측정이나 짐 점검 등 충분한 교육을 받고 트레일에 들어서는 것이 좋다. 한여름 오전 11시에서 오후 5시 사이에 하이킹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한해 250명 이상이 꼭 조난 당한다는 사실을 주지하자. ●인디언 레저베이션 그랜드 캐니언 주위에는 모두 3개의 레저베이션이 있다. 미드 호수 아래쪽의 후알라파이, 사우스림 바로 아래 하바수파이, 데저트뷰 포인트 서쪽의 나바호 등이다. 이들 지역에 들어가는 길은 대부분 비포장이어서 폭우가 쏟아지는 여름에는 접근하기 힘들다. 사우스 림안에도 원래 이 땅의 주인이었던 원주민의 흔적이 있다. 데저트뷰 포인트에 닿기 10분 전에 투사얀 폐허 박물관이 있는데 12세기 동안 이 지역을 호령했던 고대 푸에블로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시간에 쫓긴다면 경비행기나 헬기를 이용한 투어를 권할 만하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경비행기를 이용해 그랜드 캐니언 일대를 내려다본 뒤 공원 입구의 공항에 내려 점심을 든 후 전망 포인트에 들러 장관을 관람하고 그날 라스베이거스의 호텔로 돌아오는 프로그램(세금 포함 240달러)이 인기있다. 호텔 1박을 포함해 일출과 일몰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세금 포함 315달러)도 있다. 연간 50만명 송객 실적을 갖고 있는 시닉항공은 서울(02-3444-0900)지사를 두고 있다. 비행기 안에선 16개국 언어로 개인이 볼륨을 조절할 수 있는 헤드폰을 통해 설명을 즐길 수 있다. ●이밖에 콜로라도강의 급류를 만끽할 수 있는 래프팅 프로그램도 호텔 데스크 등에서 예약할 수 있다. 또 노새 등에 올라타 브라이트 에인절 트레일을 내려가는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그랜드 캐니언 빌리지에 있는 엘 토바르 호텔 근처에서 출발한다. ■ 이렇게 가세요 그랜드 캐니언만을 생각해 여행계획을 짤 수는 없는 노릇. 비행기 삯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 서부지역의 친지 방문 길에, 연수나 출장 길에, 혹은 라스베이거스 세계가전쇼(CES) 관람의 짬을 내 그랜드 캐니언을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 미국은 예약문화가 철저하기 때문에 미리 여행 일정과 예산을 빈틈없이 짜야만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40㎞ 떨어진 새너제이 지역을 출발, 라스베이거스에서 1박한 뒤 다음날 늦은 오후 사우스 림에 도착하는 일정은 도중에 캘리포니아 곡창지대와 광활한 지평선, 네바다 모하비 사막, 눈보라가 흩날리는 애리조나주를 달리는 맛이 남다르다. 비좁은 한반도에서 느낄 수 없는 짜릿한 멋이 있어 권할 만하다. 승용차로 첫날 10시간, 둘째날 7시간 운전했다. 편도만 1280㎞를 달려야 했지만 미국 기름값이 싼 편이어서 하루 평균 20∼25달러밖에 들지 않았다. 대도시가 훨씬 싸다는 점을 기억하자. 또 열쇠를 뺀 상태에서 차 문이 잠길 경우에 대비, 반드시 열쇠를 두 개 이상 가져가야 한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으나 다른 도시에 견줘 값이 엄청 비싼 편이다. 모하비 사막을 지날 때 돌풍이 일 수 있으므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라스베이거스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다음, 암트랙을 이용해 플래그스태프까지 온 뒤 나바 호피 투어스(왕복 40달러,1-800-892-8687)나 사우스림 트래블(왕복 35달러,1-888-291-9116)을 갈아타면 사우스림에 이를 수 있다.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이용해 플래그스태프까지 올 수도 있다. 사우스림의 그랜드 캐니언 빌리지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해 각 전망 포인트를 둘러볼 수 있다. 특히 동절기 승용차 출입이 통제되는 웨스트림은 반드시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셔틀버스가 운행되지 않는 일출, 일몰 시간대나 데저트뷰 드라이브를 순회하는 버스 투어도 있다.12∼28달러. 호텔 데스크에서 예약하면 된다. 라스베이거스나 그랜드 캐니언 모두 하루 90달러 안팎에 묵을 수 있다. 인터넷으로 예약할 경우 10∼20달러 할인받을 수 있고 미국 호텔들은 신용카드를 조회한 뒤 열쇠를 건넨다는 점을 잊지 말자. 그랜드 캐니언 빌리지안에 있는 인포메이션센터에서 ‘더 가이드’라는 정보지를 얻으면 호텔과 식사 정보 등을 얻을 수 있다. 또 엠펙 호텔 예약센터(303-29-72757,w ww.amfac.com)에선 캐니언안 모든 호텔을 예약할 수 있다. 아침은 호텔에서 해결하고 점심은 햄버거, 저녁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판다 익스프레스(중국 음식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뷔페 체인점) 등을 이용하면 하루 25∼30달러면 충분하다. 사우스림 입장권은 한번 끊으면 일주일 동안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자동차는 대당 20달러,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들은 개인당 10달러, 그외 한번 끊으면 1년동안 미국의 모든 국립공원을 무상 출입할 수 있는 50달러 입장권 등이 있다.
  • [오늘의 눈] ‘광화문’ 정치논란 안된다/임창용 문화부 차장

    문화재청이 추진중인 광화문 현판 교체사업이 엉뚱한 논란으로 비화할 조짐이 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현판 ‘광화문’을 정조대왕의 글씨를 집자한 현판 ‘光化門’으로 바꾸는 방안에 대해 일부 보수 일간지들은 ‘박정희의 흔적을 지우려는 정치적 음모’로 몰아붙이고 있다. 여기에 한글 관련 단체들까지 나서 ‘한자 숭배’ 의혹을 제기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그 자체로 큰 모순을 안고 있다. 우선 1968년 광화문을 복원할 때 박 전 대통령이 한글로 현판을 쓴 행위는 ‘원형보존’이라는 문화재 복원의 기본을 깨뜨린 어이없는 행태였다. 문화재의 생명은 원형 유지와 함께 존재할 수 있으며, 문화재 전문가들이 문화재 복원·보수시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노심초사하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굳이 정치적 음모를 거론한다면 오히려 당시 최고 권력자로서 원형을 훼손한 행위가 그 대상으로 더 어울리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은 합당치 않은 ‘정치적 음모설’에 휘말려 원형이 훼손된 또 다른 현판들이 더 이상 제 모습을 찾기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박 전 대통령은 광화문 현판 말고도 아산시 현충사 편액, 경기 파주시 ‘화석정’(花石亭) 편액, 경북 안동시 ‘영호루’(映湖樓) 편액 등 꽤 많은 현판을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 원형을 살려 문화재로서의 생명을 되찾아야 할 것들이다. 한글 관련 단체들이 현판 교체를 두고 ‘한자숭배’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생뚱맞게 들린다. 원형을 찾아 현판에 원래 씌어 있던 한자로 바꾸겠다는 것에 어떻게 ‘한자 숭배’를 개입시킬 수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현판글씨의 원형이 한글이었다면 당연히 한글로 쓸 것이고, 한글이나 한자가 아닌 제3의 글자라고 해도 해당 글자를 찾아 써야 할 것이다. 그것이 문화재의 원형이라고 본다. 이번 사안은 문화재적 원형찾기의 문제일 뿐, 결코 정치적 음모론이나 한글·한자 사용 논란으로 변질되어선 안 된다. 임창용 문화부 차장 sdragon@seoul.co.kr
  • 검사아들 기말고사 답안지 담임교사가 대리작성 파문

    한 고교교사가 현직검사 아들의 기말고사 답안지를 대신 작성해 파문이 일고 있다. 하지만 학교측은 시교육청에 이같은 사실을 보고하지 않고 숨겨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청 역시 홈페이지로 이같은 내용을 제보받았지만 일주일이 넘도록 상황 파악에 나서지 않아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시교육청측은 19일 해당 교사를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시험감독 들어가 답안지 교체… 어른 필체 탓 들통 서울의 B고교 물리교사 오모(42)씨는 지난해 12월 치른 2학기 기말고사에서 1학년 정모군의 국사와 사회 답안지를 대신 작성했다. 정군의 담임인 오씨는 해당 과목 감독으로 들어간 뒤 회수한 답안지를 담당과목 교사에게 전달하기 전 답안지를 새로 교체했다. 이같은 사실은 같은 달 20일 국사 교사 이모씨가 채점을 하던 중 주관식 답안이 어른 필체임을 의심해 정군을 불러 추궁한 끝에 드러났다. 정군은 답안을 작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종이 울리자 오씨가 “알아서 해 주겠다.”는 말을 해 교실을 나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 사회 교사 성모씨 역시 자신의 과목에서 부정이 있었던 흔적을 발견했다. 이에 대해 오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군이 국사 답안을 미처 작성하지 못해 휴게실에서 대신 작성해 주는 과정에서 반에서 성적이 가장 우수한 학생의 답안지를 보고 답을 고쳤다.”면서 “아이의 아버지가 법조계 인사라고만 알고 있었지 검사인지는 오늘에서야 알았다.”면서 학부모와의 사전 모의는 부인했다. ●“최우수 학생 답안지 보고 정답 고쳤다” 정군은 지난해 3월 미국에서 이 학교로 전입했으나 파문이 일자 지난 15일 자퇴했다. 정군의 아버지는 현직 부장 검사로 이번 사건으로 금품이 오고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학교 교장은 “유구무언이며, 너무 죄송하고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 “지난해 12월 24일과 25일 성적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대리 작성 사실을 확인하고 재단에 사실을 알려 징계위에 회부토록 했다.”고 말했다. 한 교사는 “문제의 오 교사가 평소 ‘교장·교감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물이어서 교사들 사이에 징계처리가 제대로 될지 우려하는 분위기”라면서 “하지만 이렇게 공개된 이상 공정하게 처리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이 교사는 “학생측은 부잣집이라 그런지 ‘자퇴하고 유학가면 된다.’는 식으로 쉽게 생각하더라.”고 전했다. 또다른 교사는 “문제의 학생이 외국생활을 오래 해 한국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 이 학생은 이번 사건과는 상관없이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처음 제보를 받은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측은 “지난 15일 인터넷으로 제보를 받았으나, 제보자의 신원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면서 “제보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정확하다는 점에서 학교 내부 인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최 의원측은 제보내용을 이 학교 교사로부터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교조 한만중 대변인은 “한마디로 충격적인 내용”이라면서 “전교조 차원에서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변인은 “교단에 대한 불신이 일파만파로 확산될 수 있어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군의 아버지는 “아들이 미국에서 공부하다 왔는데 학교에서 자꾸 때리고 해서 적응을 잘 못해 다시 미국으로 보내려고 자퇴시켰다.”고 말했다. 정씨는 “교사에게 답안을 대신 작성해 달라고 한 적이 없다.”면서 “우리 애는 이과에 갈 것이기 때문에 국사 점수 같은 것은 높일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시교육청은 지난 11일 홈페이지로 제보를 받았지만 경위서는 17일에야 넘겨받았다. 게다가 사건이 크게 확대되자 18일 오후 뒤늦게 장학사를 학교에 파견하는 등 늑장대응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나길회 유지혜기자 kkirina@seoul.co.kr
  • 80년 인생 회고록 펴낸 김광수 대한교과서 회장

    “문예월간지 ‘현대문학’을 50여년 동안 발행해 오면서 한번도 흑자를 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문단의 발전을 위한다는 신념 하나로 이끌어 왔지요.” ‘대한교과서’하면 우리나라 교과서 출판역사의 대명사처럼 통한다. 특히 최근에 ‘현대문학 600호’를 발행할 만큼 문단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60년대에는 현재 40∼50대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추억의 어린이 잡지 ‘새소년’을 발행했다. 대한교과서의 김광수(80) 회장은 최근 이같은 ‘역사’를 담은 회고록 ‘나의 뜻, 나의 길’(대한교과서刊)을 펴냈다. 그는 “원래는 회고록 발간을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현대문학 50년, 나이 팔순, 또 대한교과서 창립 60주년을 앞둔 상황에서 기록으로 남겨 달라는 주위의 권고가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고 피력했다. “6·25때 인민군에 의해 문을 닫았던 일, 부산에 피란 가 교과서를 찍어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전쟁 중에도 교육은 멈출 수가 없지요.” 그는 1925년 전북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삭골(沙洞)마을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1938년 무풍공립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혼자서 ‘중학 강의록’을 공부하다가 가출, 서울로 올라왔다. 이때 우석(愚石) 김기오 선생을 만나 부자의 연을 맺었다. 대한교과서는 1948년 양아버지 우석에 의해 설립됐다. 김 회장도 이때 대한교과서 창립사원으로 참여했다.6·25로 서울이 함락되자 ‘대한교과서’ 기능이 중단됐고 김 회장은 의용군으로 끌려가던 중 가까스로 탈출, 위기를 모면했다. 이후 국민방위사관1기로 임관, 참전했으며 육군경리학교 보급장교로 제대했다.52년 해군 당국의 도움을 받아 부산에 교과서 공장시설을 세워 부활했다. 서울로 돌아온 창업자 우석은 54년 ‘현대문학사’를 설립한다.1961년 김 회장은 창업주의 뒤를 이어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이어 ‘어문각’사장,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한국잡지발행인협회 이사장 등의 직함을 가졌다.64년에는 ‘새소년’을 창간했다. 당시 ‘새소년’은 어린이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는 출판 인생 외에 국회의원을 다섯 차례나 지내 정계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73년 무소속을 시작으로 15대 국회의원까지 5선의원을 지내면서 한국국민당 부총재, 자민련 부총재 등을 역임했다. “정치가에서 욕심을 훌훌 털어버리고 초심의 각오로 다시 대한교과서 자리에 돌아왔지요. 앞으로 대한교과서를 상장할 계획입니다. 이제 기반을 닦아 놓았으니 출판계를 리드하는 것은 후배들의 몫이지요.” 그는 “나이 80을 넘는 동안 출판과 정치라는 험난한 두 길 가운데 부끄러움과 오욕의 흔적을 남겨왔다.”면서 ‘요가수련’이 건강유지의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3)하멜의 여정-­제주서 나가사키까지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3)하멜의 여정-­제주서 나가사키까지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다지만,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등이 해양을 통한 제국 건설에 몰두하면서 서세동점의 기세로 밀어닥친 그 때 우리가 좀 더 잘 했더라면, 조금만 생각을 고쳐 먹었더라면 하는 일말의 아쉬움은 지금도 남는다. 하멜표류의 교훈도 그 중의 하나이다. 1628년, 일본 나가사키(長岐)로 향하던 네덜란드인 벨테브레 일행 3명이 부산 근처에 표착했으니, 이 중 1명이 훗날 조선인과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고 살던 박연이다. 박연 표착 25년 뒤, 같은 네덜란드인 하멜이 제주도에 표착한다.1653년(효종 3년) 암스테르담을 출발한 스페르웨르호가 바타비아와 타이완을 거쳐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 폭풍에 밀려 이 해 8월15일 제주도에서 파선한 것. ●조선에 표류한 하멜일행 탈출 성공 선원 64명 중 28명이 익사하고 36명이 표류한다. 이듬해 이들은 서울로 호송되었다가 2년 뒤인 1654년에 다시 전라도로 분리, 이송된다. 그동안 사망자가 14인이었으며 생존자는 22인이었다.1666년 9월에 전라좌수영 소속의 하멜 이하 8인이 읍성을 탈출하여 작은 배를 타고서 극적으로 ‘조선 탈출’에 성공한다. 나가사키를 경유한 이들은 1688년 7월 네덜란드로 귀국함으로써 13년의 조선생활을 끝낸다. 바로 이들에 의해 하멜표류기가 출간되면서 ‘금단의 땅 조선’이 서구에 널리 알려진다. 이 하멜 표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할까. 이들 집단을 통하여 어떤 구체적인 서양 과학기술을 알려고 했거나 이들의 정보를 역추적하여 세계정세를 탐구하려 했다는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군부대에 배속된 하멜 일행이 약간의 전투술 전수에 참여한 것으로 짐작되나 세계정세 판단을 위한 조선 조정의 관심은 확인되지 않는다. 서양인 대집단을 13년간이나 데리고 있었으나 그들로부터 세계동향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는 증거가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세계인식이 아닐 수 없다. 하멜은 조사 과정에서 조선 조정이 파견한 박연을 만나며, 이후에 여수 좌수영 등으로 분산되기 전까지 계속 박연이 통역을 담당했다. 이로 미뤄 박연을 통해 충분히 서양의 지식정보를 빼낼 수 있었음에도 그러한 시도는 아예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중국 사신이 하멜 일행을 접하는 일은 극도로 경계하였으며, 이들을 훈련도감 소속 군인으로 배치한 것으로 미뤄 북벌에 대비한 군사적 대응으로 활용하려 한 인상은 준다. 박연과 하멜은 암스테르담에서 바타이유를 거쳐서 나가사키로 향하다 표류하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하멜 일행은 조선 체류 중 끊임없이 일본행을 꿈꾼다. 결국은 배를 구하여 규슈의 히라도(平戶)를 거쳐 나카사키로 들어가는데 일본인들은 그들이 네덜란드인임을 금세 알아차리고 친절하게 안내했다. 이들을 체포해 13년간이나 하릴없이 억류했던 조선과는 대비되는 조치였다. 이들이 나가사키에 당도했을 무렵 만에는 네덜란드배 다섯척이 정박해 있었다. 이들은 곧장 네덜란드 상관(商館)에 당도, 지휘관 빌렘 볼거에게 안내된다. 그리하여 꼭 13년 28일 만에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당시 나가사키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서방을 향해 열려진 창구였다. 하멜의 조선표착 시점보다 훨씬 이른 1543년에 포르투갈 상인이 일본에 도착했으며,1549년에는 선교사 프란시스코 사비엘이 가고시마(鹿兒島)에 발을 내딛는다. 이후 100여년 간 무역과 가톨릭 포교가 이루어지나,17세기 중엽 도쿠가와 바쿠후(德川 幕府)에 의하여 기독교가 탄압받는 쇄국이 단행된다. 주목할 것은 쇄국은 쇄국이되, 바늘 구멍은 열어놓은 쇄국이었으니 서방과의 대화는 어떤 식으로든지 계속 하고 있던 셈. ●日 바쿠후, 포교 금지하고 무역만 허용 오직 장사에만 종사하며 포교활동을 하지 않은 네덜란드인들만 일본 거류가 허용되어, 이른바 난학(蘭學)을 꽃피웠다. 서양 의술을 비롯하여 천문, 지리, 생물, 지리학 등 다양한 근대 학문체계들이 이 즈음 난학으로 정리된다. 젊은이들이 오늘날의 도쿄인 에도(江戶), 심지어는 머나먼 동북지역에서도 몰려들어 ‘난학의 길’이 활짝 열린 것. 하멜이 일본에 거류하는 상관을 찾아 귀국할 수 있었음은 또한 이같은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적어도 하멜을 통하여 서세동점의 긴급한 상황을 재빨리 읽었어야 옳았다. ‘하멜표류기’는 조선 땅에 남긴 서양인 최초의 족적이자, 조선을 세계에 알린 ‘스테디 셀러’였다. 표류인 하멜과 조선의 첫 만남, 첫 거래에서 우리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우리가 그들에게서 얻은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음에 반해, 조선을 탈출한 하멜의 기록은 수백년간 서양인의 인구에 회자되면서 열강들이 입맛을 다시게 하는 근거자료로 보급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수많은 하멜들이 찾아들었던 나가사키는 당시 어떤 여건이었을까. 예쁜 전차가 오가는 나가사키 중심통에 데지마(出島)가 있다. 말이 섬이지 도심에 포위되어 있다. 유심히 보면 바다 수로가 데지마 옆으로 흐르고 있으며 그 수로는 가까운 바다로 연결된다. 데지마는 1636년 그리스도교의 포교 금지를 목적으로 만든 인공섬. 서방을 통하여 무역 등의 이득은 취해야겠고, 문을 열자니 기독교 포교가 두려워 궁여지책으로 만든 출구였다. 나가사키라고 쉽게 말하지만 고작 손바닥 크기만 열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운동장 규모의 땅에 상관 건물을 짓고나서 다리를 놓았다. 바쿠후는 외국배가 들어올 때마다 그들로부터 정보를 얻었다. 네덜란드와 중국 상인에게 풍문보고서(風說書)를 내게 하고, 번역 내용을 바쿠후 중심 인물들이 돌려보았으니 세계 정세의 변화를 개괄적이나마 시시각각 첩보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어두운 동굴 속의 불빛처럼 창구 하나만큼은 분명히 열어놓았던 셈. 어쩌면 일본이 서방을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닫지 않았던 그 ‘바늘구멍’이 일본이 아시아에서 선두 주자로 나서게 하는 결정적 기반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꽃피운 난학, 메이지유신 토대 돼 네덜란드인들의 종교와 무역의 분리는 바쿠후의 정책과 일치하였다. 오로지 무역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바쿠후로부터 독점권을 얻게 된다. 이후 200여년 동안 이곳은 일본 유일의 해외무역 창구가 된다. 나가사키를 둘러보면 주변에 국제도시다운 면모를 지닌 도시들이 즐비함을 알 수 있다. 히라도는 일본이 대륙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견수사(遣隋使)를 파견했을 때부터 중심지였으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국제무역거점항이었다. 히라도 남동쪽의 도자기로 유명한 아리타(有田) 북쪽에는 도자기 수출입항으로 명성을 얻었던 이마리가 있다. 이곳 도자기는 19세기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럽으로 수출되면서 명성을 얻어 유럽 도자기문화 형성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현해탄이 보이는 가라쓰(唐津)도 빼놓을 수 없다. 지명이 말해주듯 중국과의 교역으로 번영한 항구도시다. 나가사키현의 사세보는 일찍이 1886년 해군기지가 들어선 이래 군항도시로 번창했다. 지금도 일본 자위대와 미군기지가 들어서 있으니 이래저래 외국과의 관계를 떼놓을 수 없는 곳.17세기 네덜란드의 모습을 복원해 놓은 100만평 규모의 하우스보텐스로 아시아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일본이 이미 많은 양의 정보를 직수입하여 서양을 이해하고 있었던 시절에도 우리의 서양을 향한 입장은 여전히 폐쇄적이었다. 훗날 메이지유신을 단행하면서 개화문명을 부르짖었음은, 비단 외국의 압력 때문만은 아니었다.‘난학’같이 장기간 축적된 서양문명의 이해에 기초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해상 문물교류로 갈린 두 나라 명암 나가사키에서 외국과의 관계를 확인할수 있는 유적은 무수히 많다. 흡사 서양인 거리로 들어가는 것 같은 그라비엔, 영국 무기상인 토머스 글러버의 자택, 고색창연한 돌길인 오란자자카, 포르투갈인의 기술로 완성된 아름다운 다리인 메가네바시(眼鏡橋), 무역상사의 의사로 일본 여인과 결혼한 독일의사 시볼트기념관, 일본 최초의 무역상사를 세운 료마의 흔적, 일본 최초의 사진가인 우에노 히코마의 묘소, 그리고 수백년 전통을 자랑하는 나가사키 가스테라 등이 그것이다. 중국 무역항답게 중국의 흔적도 숱하게 흩어져 있으니, 나가사키짬뽕이나 푸젠성(福建城) 사람들이 세운 소후쿠지(崇福寺), 중국의 국부 손문의 유허지 등이 그것이다. 일본은 15세기부터 규슈 일대를 드나들던 포르투갈인에게 입수한 조총을 자체적으로 모방, 개발해 엄청난 무기체계로 발전시킨다. 그 조총을 손에 쥐고 자신만만하게 임진왜란을 일으켰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7년전쟁을 통하여 조선에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조총을 미워하기 전에 그 조총이 어떤 바닷길을 통하여 입수, 개발됐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했어야 옳았다. 서방의 급격한 이입을 두려워한 바쿠후의 폐쇄정책은 1868년까지 계속된다. 그러면서도 데지마는 바늘구멍 같은 숨통으로 역사의 소명을 다하였다. 일본은 미국 페리의 강요에 의해 전면 개방되지만, 적어도 데지마 같은 바늘구멍을 오랫동안 열어두었고, 수백년 전통의 난학으로 대비해 왔기 때문에 서방문명에 대한 일정한 저항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흡사 숫처녀가 백주 대낮에 겁간 당하는 식의 급격한 개항을 강요당했던 우리와는 여러 모로 대비된다. 옛 데지마를 복원시켜 놓은 건물 앞에서 지난 수백년을 돌이켜보자니 느껴지는 바가 적지 않다. 일본은 정교한 기념관을 만들어 놓고 ‘왜 선조들이 바다를 통한 문물교류에 집착했던가.’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 우리 역사에 흔적을 남긴 숱한 ‘하멜’들이 바로 데지마와 연관을 맺고 있음을 고려할 때, 바다를 통해 세계로 열린 천혜의 출구를 완벽하게 닫아버렸던 지난날 우리의 해양관을 어찌 비판하지 않을 것인가. 취재협조 학술진흥재단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
  • 김지우 첫 소설집 ‘나는 날개를‘

    김지우 첫 소설집 ‘나는 날개를‘

    지난 2000년 제3회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한 여성작가 김지우(41)의 첫 소설집이 나왔다.‘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창비 펴냄)에는 등단작 ‘눈길’을 비롯해 지난 5년 동안 발표해온 단편 7편이 묶였다. 많은 여성작가들이 그렇듯 이 작가도 일상에 주목했다. 하지만 개인적 경험에 기대 지나치게 사유화한 글쓰기 흔적을 보이진 않는다. 화자의 의식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선 굵은 구어체 문장, 풍성한 대화들로써 이음새 없이 상황을 연결해가는 요령 등 필치에서는 오히려 남성적인 호흡이 감지된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강퍅한 세상살이에 치일 대로 치인 캐릭터다.‘디데이 전날’‘눈길’‘그 사흘의 남자’ 등은 경제적 결핍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이들이 꾸려가는 이야기. 사변적인 글감에 의존하는 안이한 글쓰기가 아닌, 부지런히 삶의 현장으로 다리품을 판 공력이 두드러진 작품들이다. 첫번째 단편 ‘디데이 전날’은 IMF사태 때문에 거리로 내몰려 보험사기단으로 전락한 밑바닥 인생들을 그렸다. 그러나 섣부른 동정을 보내거나 그들의 삶을 쉽게 부정하지 않는다. 닳고 닳은 일상의 풍속도에서도 눈밝은 작가는 희망의 모티프를 낚아올린다. 빚더미에 허덕이는 여자가 주인공인 단편 ‘그 사흘의 남자’에서는 벼랑에 내몰린 위기상황에서도 인간(남녀)관계에 새로운 움이 틀 수 있음을 웅변한다. 낚시꾼들을 뒷바라지하며 가까스로 생계를 잇는 한 가정을 들여다본 ‘물고기들의 집’도 마찬가지. 한 집에서 겉돌며 살던 비(非)혈연 관계의 세사람이 용케 융화의 씨앗을 찾아간다. 뭉근히 끓여낸 누룽지탕처럼 걸쭉한 입담의 주인공이 신인 여성작가란 사실이 놀랍다. 문득 책날개의 약력을 들추게 된다. 우리말을 부리는 요령에도 감칠맛이 넘친다.“칠석날에나 비가 한 줄금 했던가. 유월 중순부터 입초시에 오르내리던 장마는 꾀꾀로 장대비나 두들겨놓고 갈 뿐, 금평저수지 황토바닥이 피죽만 남은 채 쩍쩍 갈라지고 수초만 우무룩하도록 바람 한점 없이 해만 말끔했다….”(‘물고기들의 집’ 도입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천운영의 소설세계)/차미령

    진실이 나를 절망으로 밀어 넣으려 한다면 나는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천운영,‘포옹’ 천운영 소설에 대한 보다 정확히 말해,‘바늘’이 출간되고 난 후 이 작가의 첫 소설집을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엽기성’,‘동물성’,‘야생성’,‘야수성’,‘육식성’,‘파괴성’,‘공격성’,‘관능성’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천운영 소설에 이르러 우리 문학은 “가부장적 질서를 난도질하는 육체적 질감을 지닌 현장(김양선,‘기이하고 낯선 가족과 여성이야기’)”을 갖게 되었다는 식의, 지난 연대의 여성 소설과 천운영 소설을 구획짓고자 하는 시도가 여러 평문에서 발견되는 것은 그러므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불감증, 거식증, 불임, 도벽 등과 같은 히스테리적 징후로서만 즉, 부정으로서만 여성 소설의 위반성을 거론할 수 있었던 지난 연대와는 달리,“맹수의 이미지를 띤 여성인물들(황종연,‘탈승화의 리얼리즘’)”은 유례없이 “전복적이고 파괴적인(황도경,‘환상 속으로 탈주하라’)”힘을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작가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신선한 살과 피를 원하는 이 짐승의 다음 먹잇감은 무엇이 될 것인가(남진우,‘늑대의 후예’)”쯤으로 표현되는 것이 지금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육체적 질감”,“신선한 살과 피” 등의 앞서 인용한 비평적 수사에서 은연 중 드러나듯, 천운영 소설이 보여 주는 이러한 특징은 무엇보다 그 생생한 현장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이제는 잘 알려진 ‘발로 쓰는’ 이 작가의 스타일이나 그로 인한 생동감 넘치는 디테일의 창출에도 불구하고, 천운영이 정작 공들여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가 취재한 세계, 바로 그 곳으로부터 도출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직접 회를 뜨고, 야나기상의 문신을 보고, 소머리 가르는 접칼을 쥐어도, 작가의 시선은, 장어를 다루는 횟집 주방장의 손놀림에서 텅 빈 수족관 앞에 망연히 앉아 있는 그의 ‘아내’에게로, 남자의 육체에 수놓아진 화려한 거미 문신에서 문신사의 자살한 ‘어머니’에게로, 뼈와 살이 갈려진 소머리에서 우시장 노동자의 ‘할머니’와 ‘연인’에게로 이동한다. 한 세밀한 묘사가 담고 있는 내용이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를 좌우하는 데까지 미치지는 못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 앞에서, 우리의 포커스 또한 이동할 때가 된 듯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질문들;천운영 소설의 세밀한 묘사와 이에 기반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가려 미처 드러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저토록 야수적이고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인물들 내면에는 과연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 작가의 두 번째 창작집 ‘명랑’이 출간된 지금, 우리가 시도해야 할 작업은 엽기성과 파괴성의 이면 혹은, 공격성과 야수성의 연원을 추적해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그 그로테스크함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비평적 키워드들의 시발점의 하나가 되었던 천운영 소설 인물들의 ‘몸’으로부터 출발해 보자.“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신체를 보여(심진경,‘아름다움과 추함을 가로지르는 섹슈얼리티의 모험과 위반’)”주면서 “몸의 해부학적 묘사라 할 만큼 유난히 신체에 대한 묘사에 집착(황도경, 앞의글)”한다고 평가받는 이 작가의 소설에서, 몸, 그것으로부터 다시 시작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주목하는 몸의 일부는 얼굴이 아니다. 바로 ‘등’이다. 우리 중 누군가 자신의 ‘등’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이 있을까. 등은 인간의 육체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람들은 대개 죽을 때까지 자신의 등의 실제 모습을 모르고 산다. 심지어 거울 앞에서도. 그 실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무의식의 세계를 은유하고 있으며, 나조차 알지 못하는 이면을 타자는 볼 수 있다는 인식은 불안과 공포의 근원으로 자리한다. 만약 자신의 등이 “굽은 등”이고, 자신이 “곱사등이”이라면, 그 불안과 공포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포옹’의 ‘나(인경)’는 “평면만을 보여주는 거울의 기만성(1:213, 이하 괄호안의 표기는 수록소설집:페이지수)”을 충분히 알고 있다.“그렇게 화장을 하고 차려 입으니 너무 예쁘구나(1:213)”라는 거울 속 어머니의 말은 그러므로 거짓이라는 것도. 일찍이 멜라니 클라인이 말한 대로 거울의 드라마가 막을 내릴 때 더 이상 엄마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아이의 고통은 원초적인 것에 육박하지만, 거울이 제공하는 이 기만적인 나르시시즘은 자기정체성을 구성해 내고, 거울을 통과한 후에야 아이는 자신을 3인칭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굽은 등을 보기를 두려워하는 인경은 여전히 엄마의 일부일 때에만 완전하다고 느낀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 그것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엄마 품에 안겨 거울 속 나를 바라보(1:213)”며, 자신의 뒷모습이 “백지”로 남기를 바란다. 진실이 절망을 가져다준다면 그 진실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 그것은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믿는 그녀가 불우한 삶을 견뎌 내는 일종의 방법론이다. ‘포옹’에서 인경의 등은, 어머니를 제외한 그 누구도 손대기를 꺼려한다는 점에서는 나조차 어찌할 수조차 없는 내 안의 괴물―‘바늘’에서 곱추를 연상시키는 ‘나’의 등이나,‘숨’에서 육식동물을 연상시키는 할머니의 단단한 등뼈를 보라―이지만, 거꾸로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요구한다는 점에서 소통을 불러오는 몸의 유일한 창구가 된다.“어느 누구도 자신의 등을 쓰다듬을 수는 없는 법이며, 타인만이 그 등을 쓰다듬고 보듬어 줄 수 있”(‘등뼈’)다는 소설 속의 한 전언은 천운영 소설에서 타인과의 소통이란 것은 곧 위무의 다른 말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자신은 볼 수조차 없지만 타자는 볼 수 있으며, 자신은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없지만 타자는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있기 때문에,“아내의 굽은 등”“할멈의 굽은 등”(‘행복 고물상’)에서 번져 나오는 고독감은 남편과 이웃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지친 이를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편은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멍게 뒷맛’)이며, 위로받는 가장 좋은 방법 또한 “등을 내맡기는”(‘아버지의 엉덩이’) 것이다. 천운영 소설에서는 환상 속에 잠깐 이루어진 만남 또한 “등을 만졌던 것 만 같다”(‘월경’)라고 표현된다. 이런 식이라면 타인에 대한 분노나 타인으로부터의 외면은 등을 돌리거나, 등을 치는 것으로 그려질 성싶다. 마치 아버지를 경멸하는 아들이 제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보”고, 그 아버지의 “등짝을 후려”치고 싶어 하는 것(‘아버지의 엉덩이’)처럼, 친구들이 대항할 힘도 없는 ‘나’를 “등을 밀쳐 땅바닥에 넘어뜨리”던 것(‘세번째 유방’)처럼, 살인 장면의 마지막 기억이 “남자가 정말 당신 등을 밀었다”(‘멍게 뒷맛’)로 남게 되는 것처럼. 그러나 무엇보다 천운영 소설에서 등은 대부분 대상­타자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작중인물의 불안을 담고 있다. 등을 돌린 사람 혹은, 돌아선 사람의 등에 대한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사례들;“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남편 뒤에서 그의 아내는 “침묵하는 당신(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그 “등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왜소한 그 등을 보이고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당신의 바다’)며 견딜 수 없어 한다. 연인들의 연애의 끝은 또 어떠한가. 꿈 속에서 골목을 헤매던 여자는 길 모퉁이에서 “남자가 등을 보이고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가지만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모퉁이만 계속해서 나타날 뿐이고(‘모퉁이’), 연인에게 입 맞추던 여인은 “등을 보이고 돌아”선 후 그로부터 “점점 멀어진”다(‘세번째 유방’). 이렇듯 도저한 상실감이 등의 이미지를 빌려 가장 성공적으로 형상화된 소설은 그 표제가 아예 ‘등뼈’이다. “여자가 떠났다”라는 간결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등뼈’는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집착하던 여성이 떠난 이후 전개되는 남성의 황폐한 내면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아무런 징후나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1:138)”라는 구절에서 강조되고 있듯이, 여자의 실종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어서 남자에게 그것은 “떠난 것이 아니라 증발한 것(1:143)”에 가까우며, 남자는 당연히 여자의 그러한 증발에 대비할 수 있는 아무런 준비도 해 놓지 못한 채이다. 그러나 “그때 왜 여자의 등을 쓰다듬어주지 못했을까(1:148)”라는 소설 속의 한 구절을 제외한다면 남자가 여자의 사라짐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은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남자는 특이하게도 “여자가 떠난 뒤 살 속에 숨은 뼈에 집착하기 시작(1:150)”한다. 주위 사물들에서 뼈를 연상해 내고(1), 원인을 알 수 없는 요추디스크로 고통받다가(2), 급기야 뼈를 찍은 엑스레이 필름을 닥치는 대로 모으며(3), 결국 아무런 식욕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어 그의 몸엔 뼈만 두드러지게 된다(4). 여자가 떠난 후 이 남자가 보여주는 모든 증상((1)∼(4))은 그러니까 ‘뼈’에 대한 집착으로 수렴된다. 그런데 왜 하필 ‘뼈’일까? 등에 통증이 느껴졌다. 손을 돌려 등을 만졌다. 손끝에 등뼈 마디마디가 분명히 잡혔다. 남자는 욕조에서 기어 나와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서린 김을 걷어내자 남자의 퀭한 얼굴이 보였다. 광대뼈가 툭 튀어 나오고 눈이 쑥 들어간 낯선 사람이 거울 속에 들어 있었다. 남자는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거울에 등을 비추어보았다. 등골이 패고 뼈가 튀어나온 등이 어렴풋이 보였다.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었다.(1:158) ‘뼈’에 대한 남자의 집착은 그의 일상을 와해시키고 결국 그 자신을 말 그대로 뼈만 남게 만들어 버리는데, 사라진 여자가 등뼈는 말할 것도 없고 광대뼈, 턱뼈, 어깨뼈, 복사뼈까지 유난히 뼈가 도드라졌으며 식성도 특이해서 생선뼈, 닭갈비뼈, 조개껍데기와 같이 뼈에 붙은 살들만을 골라 먹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남자의 집착은 그녀에 대한 남자의 무의식적 동일시 즉, 사라진 대상을 불완전하게나마 보유하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동일시가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대상이 사라지면 누구나 그 대상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 유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현실적인 요구와 함께 대상에 투자되었던 리비도는 다시 회수된다(프로이트,‘애도와 우울’). 이것이 상실된 대상에 대한 상식적인 ‘애도’의 과정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에 대한 리비도가 너무나 강해서 현실에서 상실된 대상을 대체할 만한 다른 대상을 찾지 못할 때, 주체는 상실된 대상을 내면화(internalization) 혹은 합체(내적 동일화,incorporation)함으로써 계속 보유하고자 한다(J 버틀러,‘멜랑콜리적 젠더/거부된 동일시’). 결코 재현될 수 없는 상실된 대상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살아 있는 현재로 끊임없이 소환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자가 가까스로 거울에 비춰본 자신의 등에서 “여자가 그 등뼈에 숨어 남자의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환상으로 처리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러한 맥락에서 음미해 볼 만하다.“뼈가 튀어나온 등”은 현재의 환상 속에서 과거의 상실된 대상과 남자가 조우하는 장소로 공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은 이처럼 상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 저항이 지극히 위장된 형태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멜랑콜리적 주체의 성격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 상실로 인한 슬픔이 애도로 승화되지 못한 원인은 무엇보다 이들이 도저한 상실감의 원인이 된 대상에 대해 ‘의식적으로는’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환상 속에서조차 대상과의 만남이 허락되지 않을 때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난폭한 짐승(2:119)”이 출몰하게 된다. 이 “난폭한 짐승” 혹은,“광포한 짐승” 혹은,“제 속에 든 짐승”은 인물들 특히, 여성인물들을 숨이 차도록 달리게 만들기도 하고, 그녀들에게 무서운 식욕을 부추기기도 한다. 다음을 보라:애도할 만한 죽음이 나타나면 여자 속에 숨은 짐승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슬픈 일이 일어나기를, 짐승을 다스릴 만한 제물이 나타나기를 여자는 빌었다(‘모퉁이’, 강조 인용자).“애도할 만한 죽음”이 여자 속 숨은 짐승을 사라지게 하고,“무언가 슬픈 일”이 그 짐승을 다스릴 것이라는 저 여자의 내면이 가리키는 것은, 자신의 상실감의 원인이 되는 대상이 앞에 있다면 그 상실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막한 기대이다. 통제 불가능한 내면은 분명 무언가의 상실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실된 대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된 대상이 눈 앞에 있어 이를 애도할 수 있다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내면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기억-내용은 이미 소실되었으되 기억-감정이 남아 있어 유사한 심리적 기제가 주어지면 어김없이 리비도가 투자된다. 그러나 그 대상이 상실된 바로 그 대상은 아니기에 상실의 흔적은 그녀들에게 애도해야 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애초에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남자의 유골을 뿌리러 제주도로 향하는 여자(‘포옹’)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또한 바로 그것이다. 천운영의 소설들에서 누군가의 죽음 혹은 (갑작스러운) 사라짐은 서사를 이끌어 가는 가장 기본적인 모티프이다. 이 작가의 어느 작품을 들춰 보아도 이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명랑’‘아버지의 엉덩이’‘세번째 유방’에서는 할머니가,‘바늘’‘명랑’‘월경’‘당신의 바다’에서는 아버지가,‘바늘’‘멍게 뒷맛’‘월경’‘아버지의 엉덩이’에서는 어머니가,‘숨’‘그림자 상자’에서는 양친부모 모두가,‘등뼈’‘멍게 뒷맛’에서는 여자가,‘모퉁이’에서는 연인이,‘당신의 바다’에서는 남편이 죽거나, 실종되거나, 아무런 예고 없이 주인공 곁을 떠난다. 이러한 상실이 대개 가장 기본적인 삶의 단위인 가족 관계에서부터 발생한다는 것은 이렇게 열거한 목록에서도 금방 포착되는데, 그 중에서도 두드러지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할머니)의 빈자리이다. 천운영 소설이 가족관계 안에서의 갈등을 그 기본 축으로 하면서도 ‘모퉁이’‘그림자 상자’‘세번째 유방’을 제외하면 형제나 자매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소설들에서마저도 언니, 오빠, 동생은 화자를, 부모 특히 어머니 곁에 가까이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쟁자로서만 그 의미를 지닌다. 천운영 소설 속 주인공들의 어머니에 대한 집착 혹은 애증은 그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강렬하다. 최근 한 평론에서는 천운영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로 ‘부재하는 아버지’가 거론되었거니와(남진우, 앞의 글), 이 논자의 지적대로 무능하고 비루한 아버지의 초상은 이 시대 거세된 남성성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물론 아버지가 부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부재하는 아버지’는 실로 오랫동안 우리 소설의 한 테마였고,‘아비-부재’,‘아비-찾기’,‘아비-되기’,‘아비-부정’의 기나긴 순환 속에서 우리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 정체성의 근거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존재론적 불안과 함께 지금껏 성장해 왔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운영 소설에서 아버지의 죽음, 그 부재의 효과는 말 그대로 그저 ‘없음’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특징적이다. 아버지의 위치가 지극히 주변화되어 있음에도, 이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들들에게서는 그에 대한 어떠한 연민도, 이를 복권하려는 의지도, 스스로 가부장으로 전신하고자 하는 충동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천운영 소설에서 강력한 입법자로서의 아버지란 ‘세번째 유방’의 아버지를 빼고는 찾아보기 힘들며, 심지어 ‘아버지―법’은 “어머니를 닮은 부라보콘”에게까지 자리를 내준다(‘눈보라콘’);“오직 부라보콘만이 내 운명에 관여할 수 있는 존재(1:90)”다.‘∼하지 말라’가 사라진 자리에서, 가위를 든 “이발사” 아버지가 사라진 바로 그 자리에서,‘나’는 어머니를 마음껏 향유하고자 한다.‘눈보라콘’에서 부재하는 아버지는 그러므로 이후 도래할 어머니의 빈자리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그치게 된다. 또 다른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아버지의 엉덩이’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버지는 느낄 수 없을 만큼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텔레비전을 본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상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등을 쏘아 본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쇼핑호스트가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소개하고 있다. 앞치마를 두른 쇼핑 호스트는 크기가 각기 다른 밀폐용기를 쌓아놓고 얼마나 저렴한지에 대해 과장되게 말하며 전화주문을 유도한다.(……) 아버지는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조금씩 내려가는 숫자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2:172) 위 장면의 등장인물의 성(性)을 여성으로 치환시켜 놓으면 즉, 아버지와 아들의 식사장면이 아니라 어머니와 딸의 그것으로 바꾸어 놓으면, 우리 눈 앞에 매우 익숙한 광경이 펼쳐진다. 늙은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딸이 “상”을 차려 들어간다, 어머니의 모습에 “신경질”이 난 딸은 그녀를 “쏘아 본다”, 텔레비전에서는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선전하는 “홈쇼핑”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어머니는 숫자판에 넋을 놓고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의 주인공은 분명 아버지와 아들이다. 홈쇼핑 중독자인 아버지의 “게걸스런 주문과 반품”이 “외출”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히스테리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 혹은 홈드라마의 역전된 판본이라 할 만한다. 그러나 이 장면을 언급한 것은 이 시대의 ‘아버지 부재’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한다. 아버지의 ‘엉덩이’라는 발칙한 상상력이 말해 주듯이 다만,‘어머니 부재’로 세계의 중심을 잃어버린 한 “엄마”의 아들로서만, 아버지는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이 소설의 아버지와 아들, 두 남성 주인공을 움직이는 숨은 작인은 아버지가 아니라 부재하는 어머니이다. 자신의 어머니 묘소 앞에서 “이제 막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갓난아이처럼 우는(2:166)” 아버지는 물론이고, 태어나자마자 잃어버린 “따뜻한 자궁(2:167)”을 그리워하는 아들 역시 포도나무 가지에서조차 “침묵하며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2:182)”를 발견한다. 이들 부자(父子)에게 ‘부재하는 어머니(할머니)’는 모성적 초자아(maternal superego)의 형상으로 그녀의 아들들을 조종한다. 남성인물을 움직이는 모성적 초자아의 형상은 ‘숨’에서는 ‘차가운 자궁’의 이미지를 빌려 섬뜩하게 변주된다. 할머니를 설득하는 마지막 방편인 송치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 ‘나’가 불법적인 물먹이기를 감행하다가 경찰에 발각되어 도망치는 대목에서, 단속반의 추격을 피해 숨어든 장소가 높이 2미터, 영하 20도의 “거대한 냉장창고”라는 점을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 추격의 장면이 마치 사냥의 한 대목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점―할머니가 “육식동물”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이 발각으로 인해 할머니의 의사를 거스른 미연과의 결혼이 틀어질 위기에 처한다는 점, 그 안에서 ‘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숨을 죽여(1:55)”야 한다는 점 등은 이 냉동고가 ‘나’에게는 공포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얼어붙은 자궁’이 물질화된 것임을 암시한다.‘숨’에서 아들을 숨죽이게 만드는 냉동고가 이처럼 은유적 차원에서 자궁의 부정적 이면을 함축하고 있다면,‘행복고물상’에서 그것은 “유산된지도 모르고 보름 동안이나 자궁 속에 죽은 아이를 넣고 다녔던(1:162)” 아내를 빌려 실체화되고 있기도 하다. 자궁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자궁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는 천운영의 소설들에서는 빈번하게 출물하면서 작품의 기저음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당신을 둘러싼 바다 밑바닥 같은 어둠”(‘당신의 바다’)과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천운영 소설에서 어둠, 바다는 의미론적인 층위에서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 놓이는 경우가 흔하며,“깊은 어둠(1:195)”,“어두운 바닷 속으로 깊숙이(1:139)”,“바다 깊숙한 곳(1:156)”,“물 속 깊숙이(1:158)”,“깊은 바다로 침잠(1:136)” 에서와 같이 곧잘 하강 혹은 침잠의 이미지와 함께 나타나는데,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최종지점에 어머니―모체―자궁이 자리한다.“탄생 이전의 따뜻한 양수 속으로 돌아가고 있는” 할머니(‘명랑’)나,“태아처럼 몸을 구부리”고 “어머니의 자궁처럼 포근해진 어둠”을 즐기는 아이(‘유령의 집’)는 천운영 소설의 주인공들에서 발견되는 모체―자궁으로의 회귀욕을 보다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위와 같은 사례들에서 다음과 같은 해석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무력한 아버지를 대체하는 어머니에게서 아버지-법에 내포된 헤게모니의 일시적인 전복을 읽어낼 수도 있고, 성적 관계의 절대적 방해자로 나타나는 할머니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손자의 서사를 아버지―질서의 외부를 꿈꾸는 딸의 서사의 역전된 판본으로 체감할 수도 있으며, 빈번히 등장하는 자궁 회귀욕으로부터 주체―대상의 이분법에 이전하는 원초적 충동으로서의 모체 회귀욕을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 소설들에서는 그것이 의존성이건, 억압이건, 회귀이건 간에 어머니의 부재가 스토리―시간 내에서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며,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죽음(‘아버지의 엉덩이’)이나 재혼(‘눈보라콘’)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자체로 버려짐이나 내쳐짐의 쓰라린 감각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대상―타자의 상실을 ‘버려짐’으로써 격렬하게 경험하는 인물들은 무엇보다 ‘바늘’‘멍게 뒷맛’‘월경’‘모퉁이’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이다. 울음보가 터졌다.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다락 계단을 기어오르면서부터 나는 이미 울고 있었다. 코피가 나올 것처럼 콧잔등이 매큼해지고 입술은 움찔움찔 울음을 품었다. 엄마는 내 울음소리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었다. 내 울음이 엄마를 돌려세울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울음을 그칠 수는 없었다.(2:100) ‘모퉁이’는 주인공 ‘나’가 ‘엄마’와 헤어지는 인상적인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엄마를 잃어 비통한 한 소녀의 심사는,14줄에 걸쳐 집요하게 서술된다. 마치 그것을 영원한 이별이라 예감하는 듯이 소녀는 줄기차게 울어댄다. 그러나 소녀가 그토록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엄마는 단지 아빠의 공장에 밥을 가져다주러 나선 길일 뿐이다. 매일 반복되었을 이 일상적인 엄마의 떠남 앞에서 소녀는 한참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놓는다고 생각되는 존재는 “뱃속의 아이”라도 저주하는 소녀,“엄마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악을 쓰고 울었(2:112)”던 그 소녀,“우는 것만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2:105)”이었던 바로 그 소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남자”에게는 여전히 “울음소리”로 존재한다.‘멍게 뒷맛’,‘바늘’에서 역시, 어머니와의 이별은 언제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것이며, 성장한 그녀들이 겪는 모든 상실의 밑그림이 된다. 엄마들은 결국 떠난다. 엄마가 떠난 길목을 바라보며 꼼짝도 못하고 있던 그날을 기억하는 ‘나’(‘바늘’)나, 좋은 옷을 차려 입고 기차에 올랐을 때부터 이미 엄마에게 “버려질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당신’(‘멍게 뒷맛’)은, 그런 점에서는 모두 닮은 존재들이다. 이 세 작품에 비해 어머니의 비중이 미미하게 그려진 ‘월경’에서조차, 주인공 ‘나’는 어머니의 화사한 보석함에, 손톱 자른 것, 빠진 머리카락, 상처에서 떼어낸 딱정이와 같이 제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을 모아둠으로써, 뿌리깊은 분리 불안을 드러낸다. 이 소설들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들은 어린시절, 주로 어머니로 대표되는 대상-타자에게 강렬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되, 필연적으로 그 애착이 거부(혹은 금지)됨을 경험한다. 가령,‘모퉁이’에서 그것은 금지의 양상(“엄마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젖무덤을 헤치는 내 손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나는 엄마의 매정한 손이 야속했다. 엄마는 내게 동생이 생길 거라고 했다. 동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되우 맞은 사람처럼 휘청거렸다(2:109)”)으로,‘바늘’에서 그것은 거부의 양상(“엄마가 내민 보자기에는 꽤 많은 돈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스님의 옷을 들고 집을 나섰다.‘나는 그곳으로 가야겠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말이었다.(1:24)”)으로 전면화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금지/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욕망은 부인된 형태로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할머니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은 뒤 그녀의 뼛가루를 생전의 할머니가 명랑가루 먹듯 맛보는 손녀가 “내 내부에는 언제나 나를 바라보며 침묵하는 그녀가 있다(2:37)”고 고백하는 것(‘명랑’)처럼, 상실이 일어났을 때 상실을 부인하고 상실된 대상의 속성을 취하여 이를 내면화하는 것이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생존전략이라고 한다면,‘바늘’과 ‘월경’의 ‘나’는 바로 그 길을 간다. ‘바늘’과 ‘월경’은 각각 그로테스크한 인물 묘사와 도착적인 섹슈얼리티로 인해 발표된 직후부터 유독 많은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 온 작품들이다. 이 글의 관점에서 역시, 두 작품은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두 소설을 집중적으로 되짚어 보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 단서들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먼저 두 소설 모두 여성 화자들이 이미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임에도 여전히 아동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으며 또한 공히 인물이 비성적인 단계―통상적인 의미로―에서 성적인 단계로 이행하는 순간을 문제 삼고 있다는 점, 인물들은 각각 어머니(‘바늘’) 혹은 아버지(‘월경’)와의 이별을 하나의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으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반대성(性)의 부모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는 점 등이 그 단서들로, 이로부터 우리는 천운영 소설에 나타나는 도저한 공격성(/도착성)의, 이면(/연원)을 다시금 집약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왜냐하면 ‘바늘’과 ‘월경’에서는 여성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한 쪽 부모의 상실이 그녀들의 자아정체성의 형성에 결정적인 기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 ‘바늘’에서는 그로테스크한 삽화가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다음의 세 장면은 특히 문제적이다;(1)먼저, 죽어가는 새끼고양이. 간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절에서 살던 시절 ‘나’는 “어미고양이의 날카로운 울부짖음(1:20)”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새끼고양이를 변기통에 버리고는 그 변기통 속으로 고양이가 자취를 감추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2)다음으로, 전쟁기념관에서의 상상. 전쟁기념관에서 ‘나’는 전시된 무기들을 하나씩 꺼내 스님을 공격하는 불온한 상상을 해보지만 스님의 심장이 관통당하고 내장이 갈가리 찢기고 발에서 피가 솟구쳐도, 그녀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좀더 강인하면서 잔인한”“엄마가 할 수 있는 그런 방법(1:21)”이 아니었기 때문에.(3)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자살 소식 직후 행해지는 육식. 형사로부터 어머니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의연히 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기 한 점을 집어 먹으며, 바위에 찢긴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 보지만 ‘나’의 머릿속엔 “여자의 하얀 알몸만 떠오를(1:31)” 뿐이다;상식적인 수준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행위들이 무대화되고 있는 이 세 장면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러니까 ‘나’의 공격적인 행위의 메커니즘을 해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자. 첫 번째 장면에 대한 질문 하나. 어미고양이에게서 떨어져 나와 변기통 속으로 빠져 들어간 새끼고양이는 마찬가지로 버려진 ‘새끼’인 ‘나’의 분신과 다름 없을 터. 그렇다면 이 장면은 ‘나’에게 지극한 고통을 유발했을 것임에도 왜 ‘나’는 이를 스스로 자행하며 게다가 “오랫동안” 지켜 볼 수 있었던 것일까? 마조히스틱한 쾌감 때문에?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상실이 곧 결핍을 부른다는 오래된 통념은,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 앞에서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자아가 포기된 대상의 심리적 저장고이며 상실된 대상은 구성적 동일시의 하나로 자아 안에 거주하면서 자아와 함께 출몰한다는 사실은 일찍이 프로이트가 ‘자아와 이드’에서 기술한 바 있으며, 버틀러는 그러하기에 사랑하는 대상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대상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위상을 외부적인 것에서 내부적인 것으로 전이하는 것이라 지적한 바 있다(J 버틀러, 앞의 글). 즉, 상실에 대처하는 멜랑콜리적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상실 자체를 무화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나’가 새끼고양이를 변기통 속에 버릴 수 있었던 까닭으로 이미 그녀의 자아 안에, 거부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어머니가, 멜랑콜리적 동일시를 통해 그 자아의 일부로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할 수 있을 듯하다. 어머니는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숨쉰다! ‘나’의 행위에서 ‘나’의 위치와 어머니의 위치가 이중적으로 얽혀있는 것은 이러한 내면화의 결정적인 증거다. 버려짐과 버림을 동시에 구현하는 새끼고양이의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스님을 잔인하게 공격하는 상상이나, 자살 소식 직후의 육식 또한 마찬가지의 메커니즘 아래에서 작동한다. 스님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어머니를 빼앗아간 존재에 대한 응징이라는 점에서 그 일차적 의미가 있지만, 그 방식은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던 방법 혹은 어머니가 스님을 살해했던 바로 그 방법에는 미치지 못하기에 ‘나’는 그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수가 없다.‘나’가 공격으로부터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그녀의 내부에서 그녀와 함께 공존하는 어머니의 시선 바로 그것을 체현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고기 한 점을 씹어 삼키면서 찢겨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는 그녀로부터 우리는, 어머니가 여전히 ‘나’에게는 알몸의 여자로 현현하는 에로틱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유추함과 동시에,“상실하기보다는 차라리 조각내고 분해하고 자르고 삼키고 소화하고”자 하는 곧, 대상을 먹음으로써 그 대상을 제 안에서 부활시키고자 하는 멜랑콜리적 식인 행위의 환상(J 크리스테바,‘검은 태양’)의 한 풍경과 마주하기에 이른다. 정신이 아득해져온다. 가슴 한쪽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솟구쳐 올라온다. 나는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그리고 그가 했던 것처럼 팔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한다. 누구를 향해 팔을 휘둘렀는지 모른다. 푸른 모자가 튀어오른 것 같기도 하고 계집의 찢어지는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1:83) ‘바늘’에서와 같이 유년기를 통과한 이후에도 여전히 아동으로 남겨진 듯한 여성 주인공은 ‘월경’의 ‘나’로 재등장한다.‘월경’의 ‘나’는 스무살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월경(越境)하지 못한 채 바로 그 경계 위에 서 있다.‘나’의 말을 빌리자면 ‘나’의 “몸은 작정이라도 한 듯 자라기를 멈추었다(1:62).” 이 소설의 주된 관심사가 바로 그 경계를 넘어서는 한 순간에 있다는 것은 제목에서부터 암시되는 바다. 그런데 ‘바늘’과 마찬가지로 한쪽 부모의 상실을 초점화하고 있는 이 소설을 전작 옆에 나란히 놓고 따져볼 때 새롭게 부각되는 측면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그 상실이 ‘나’의 젠더 정체성 형성에 개입됨으로써 ‘나’의 젠더 정체성을 매우 불안정하게 구조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월경’에서는, 천운영 소설에서는 이례적으로, 어머니의 떠남이 아니라 아버지의 떠남이 ‘나’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나’가 떠나버린 아버지를 하나의 이성으로 욕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 또한 수차례 등장한다. 그녀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칭하지 않고 ‘그’라고 지칭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인상을 강화하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소설은 일렉트라 콤플렉스의 천운영식 판본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울 듯하다. 그러나 프로이트에게 이성부모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과 그 욕망의 금지가 여아에게 여성성을 최종적으로 선사하는 것과는 달리 이 소설에서 ‘나’의 젠더 정체성은 오히려 남성의 그것에 가깝게 드러나고 있어 차별적이다. 즉,“가슴도 가슴이지만 계집의 엉덩이는 정말 탐스럽다. 표주박 두 개를 나란히 놓은 듯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툭 불거지는 모습이 여간 아니다(1:70)”라는 구절을 비롯한 소설의 여러 대목에서 나타나듯이 ‘나’는 “은하수 계집”을 성인 남성의 시선으로 욕망하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여러 평자들로 하여금 ‘월경’을 도착적 섹슈얼리티가 전경화된 소설로 주목하게 한 주요한 요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함께 트럭 짐칸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면 온 우주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았고, 별들은 작은 이슬방울이 되어 우리의 배 위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1:63)”에서와 같이 지극히 감상적으로 또 지극히 여성적인 시선으로, 떠나버린 아버지를 기억하고 또 애타게 그리는 ‘나’가 어떻게 동시에 “은하수 계집”을, 그것도 저러한 시선으로 욕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불균형은 작가가 도발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데 몰두한 나머지 그 일관성은 신중히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함에 불과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상실한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내면화하고자 했던, 그럼으로써 상실로 인한 상처를 무의식적으로 무화하고자 했던 ‘바늘’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월경’의 ‘나’ 역시 상실한 아버지를 그러한 방식으로 제 속에 부활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즉, 그녀의 자아 안에, 상실된 애정의 대상으로서의 아버지가, 그 자아의 일부로서 공존하고 있다고 말이다.“은하수 계집”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이에 대한 한 근거가 됨은 물론이거니와,‘나‘가 “은하수 계집”을 여러모로 ‘그녀(어머니)’와 견주어 보면서 ‘그녀(어머니)’의 분신처럼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가정을 뒷받침해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의 클라이맥스에 위치하는 사건 곧,“은하수 계집”과 “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정사장면을 ‘나’가 목격하고 그들을 공격하는 그 사건에서,‘나’가 ‘그(아버지)’의 위치를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과거의 ‘그(아버지)’―‘그녀(어머니)’―“낯선 남자”의 구도를, 현재의 ‘나’―“은하수 계집”―“푸른 모자를 쓴 사내”의 구도로 전이시키고 있다는 점은 그 결정적인 증거로 제출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요컨대 ‘월경’에서 ‘나’는 아버지를 욕망하는 데서, 아버지의 욕망을 그리고 아버지가 욕망할 것이라 추정되는 대상을 욕망하게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이 ‘나’의 젠더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한 근본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의 시발점에 현실에서의 상실을 절대로 수락할 수 없는 멜랑콜리적 주체의 내면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읽는 이를 순식간에 포박하는 천운영 특유의 자질 뒤편에 도사리고 있는 상실과 박탈의 어두운 그림자……, 누군가는 사라지고 그 사라짐이 가족 내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저토록 결정적인 흔적을 남긴다. 그리하여 이 작가에게 가족은 천운영식으로 표현하자면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 같은 유령의 집(‘유령의 집’)” 즉,‘아가리(구강기)’적 욕구에 충실한 “괴물”스러운 인물들이 집 안을 떠도는 “유령”의 “어두운” 그림자와 씨름하는 전쟁터나 다름없다.“핏줄”과 얽혀진 인간 욕망의 가장 원초적인 그래서, 들여다보고 싶으면서도 그러기에는 두려운 “하수도” 속 같은 “어둠”이야말로 이 작가의 해부 대상인 것이다. 이어지는 ‘유령의 집’의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라;“보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리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 이면에 삶은 존재하니까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고 해보세요. 그건 때때로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겁니다.” 천운영이 꾸며놓은 유령의 집을 방문한 독자에게 이 보다 더 친절한 안내가 또 있을까. 천운영은 이렇게 근본적인 상실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그것도 가족 내부에서 끈질기게 문제화한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 문단에서는 매우 독특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배수아, 백민석 같은 바로 앞선 연배의 작가는 물론이고, 비슷한 연배이며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정이현이나 김윤영에 견주어 보아도 이는 이 작가 특유의 자질이다. 앞서 살펴본 작품들에서처럼 특히나 천운영은 가족 안에서의 상실을 한 인간을 배태해내는 결정적인 그 무엇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제 전환을 맞을 때가 온 것은 아닐까.‘늑대가 왔다’나 ‘그림자 상자’와 같은 비교적 근작들에서는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파괴적 욕구가 분출되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물론 가족이 부여한 운명으로부터의 탈출은 아직 환상 속에서만 가능하고 결국에는 처참한 결말을 맞지만 말이다. 앞으로 이 작가에게 “배꼽을 버리고자 하는(‘그림자 상자’)” 욕구가 앞설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운명론에 더 깊숙이 천착할 것인지, 우리는 이 작가를 계속 눈여겨 지켜볼 필요가 있다. ■ 당선 소감 하루 평균 서른 통 정도의 전화를 받고 또 그만큼의 전화를 하며 두 해를 보냈다. 맞춤법을 묻는 전화부터 부고를 알리는 전화까지. 아무리 사소하게 보이는 일도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하며 또 누군가의 수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 역시 그리 다르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누군가의 호소에 응답하는, 그러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마음껏 공부할 수 없어 애태우던 나날들이었지만 헛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부족함을 스스로 잘 알기에 당선은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응모한 글에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공이 아니라 주위 여러분들의 은덕이다. 국문과 은사님들과 조남현 지도 교수님,202호와 326호에서 동고동락했던 선후배 동료들, 이 분들께 더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다. 결점이 많은 글을 너그러이 감싸주신 김윤식 선생님과 정과리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한결같이 믿어 주시는 부모님과 언니, 동생, 오랜 벗들에게는 쑥스럽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고백하건대,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나는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 이제는 다른 길을, 그것도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론 쓸쓸하다. 그러나 약속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세상을 향한 내 새로운 수화기를 함부로 놓지 않겠노라고. 그것이 지금 주어진 이 지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길인 것 같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약력 ▲1976년 대구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 심사평 이번에도 평론의 기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이론에 대한 지식을 과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설익은 개념들이 횡행하면서 작품을 파괴하거나, 작품과 겉도는 독무를 추는 글이 적지 않았다. 이론이 문학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니 배울수록 좋다. 그러나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니 작품 분석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네 편이다. 김수영의 시를 다룬 정경은의 ‘생활의 뒤란, 시’는 엉뚱한 상상력으로 김수영의 시를 장식해가면서 시의 변주를 다룬 재미있는 글이다. 그러나 그 상상력이 김수영 시의 이해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장욱과 김행숙의 시를 다룬 송승환의 ‘청동 방패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은 동일성의 부정이라는 기본적인 전제 하에 새로운 시의 존재 가능성을 탐색한 글이다. 꼼꼼한 분석이 돋보이고 설득력도 있었다. 오랫동안 시를 써본 사람이라는 짐작이 간다. 다만 구도가 지나치게 단순한 게 흠이었다. 최윤의 세 장편을 분석한 허병식의 ‘진정성의 서사와 주체의 귀환’은 ‘기원의 부재’라는 현대 이론의 신화에 깊이 침윤된 글이다. 그래서 마치 소설이 그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씌어진 것처럼 읽었다. 그것이 약점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주체의 귀환이라는 명제를 끌어낸 것은 글쓴이만의 독창적 사유의 결과이다. 전체적으로는 대상 작품에 들어맞았지만 세목들에서는 무리한 적용이 많았다. 천운영의 소설 세계를 해부한 차미령의 ‘그로테스크 멜랑콜리, 상실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은 ‘등뼈’ 이미지를 천운영 소설의 핵심 징조로 보고 그것으로부터 소설의 무의식의 ‘작업’과 변주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파고든 글이다. 분석과 해석이 요령을 얻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기존의 상식적인 해석을 뛰어넘으려는 패기가 돋보였다. 마무리를 서둘러 처리했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글 전체가 보여준 가능성은 그런 약점을 무시해도 좋게 하였다. 당선을 축하한다. 김윤식·정과리
  • [지진 해일 대재앙] 일부지역 콜레라 발병 전염병 공포 급속확산

    |반다 아체·방콕 외신|쓰나미(지진 해일)로 인한 사망자 수가 15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염병 등으로 인한 ‘2차 재앙’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등 피해 국가의 보건당국은 생존자가 더 없을 것으로 보고 서둘러 구조작업을 중단하려 하지만 완전한 복구에는 적어도 5∼10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완전복구까진 5~10년 더 걸릴 것” 참사 9일째인 3일 현재 인도네시아 보건당국은 확인된 시신이 9만 4000여구에 이른다고 밝혀 동남아·서남아 지역에서 공식 확인된 사망자 수는 13만 7000여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현지에서 구조활동을 벌이는 국제요원들은 사망자 수를 15만여명으로 추산했으며, 피해가 가장 컸던 아체주 주민들은 실종자 수까지 합치면 인도네시아에서만 20만명이 죽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리랑카에서는 이날 콜레라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인도에서는 설사환자가 잇따르는 등 피해지역에서 수인성 전염병의 발발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유엔 특사인 마가리타 월스트롬은 스리랑카에서 아직 전염병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으나 다른 의료진들은 현지의 취약한 위생상태를 심각히 우려했다. ●WHO “질병으로 5만여명 더 희생될수도” 세계보건기구(WHO)의 데이비드 나바로 위기 담당관은 “국제적인 구호작업을 서두르고 있어 성급히 판단할 수 없으나 질병으로 추후 5만여명이 희생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반군과의 전투로 인한 접근제한과 장비 부족 등으로 구호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체주에서는 구토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이 목격된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이 3일 보도했다. 인도네시아 보건당국은 하루 3500∼4000명의 시신을 매장하고 있으나 전염병 우려가 높아짐에 따라 하루 6000명씩 매장,5일내에 방치된 시신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태국의 수윗 쿤키티 환경부 장관은 최대 피해지역인 팡아주에서의 시신 수색작업을 5일 끝내고 반 남 켐과 타쿠아 파 등 일부 지역에서만 집중 수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팡아주에서는 4700여구의 시신이 발견됐으나 사찰과 병원 등에 미확인 시신들이 방치돼 있어 보건당국은 골치를 썩이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이와 관련 WHO의 그레고리 하틀 박사는 피해 지역 대부분에서 깨끗한 식수가 부족한데다 이재민 수십만명이 열악한 수용소에서 생활하는 탓에, 이질이나 장티푸스 등과 같은 전염병이나 폐렴 등의 호흡기 질환에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설상가상으로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에서 열대성 폭우와 홍수가 닥쳐 일부 피해 지역이 침수돼 구호품과 의약품 전달에 큰 애를 먹고 있다. ●일부지역 홍수로 구호활동 차질 유엔의 한 구호요원은 “일부 지역은 홍수로 2주간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라며 “현지 위생상태는 점차 악화되고 있다.”고 걱정했다. 또 파괴된 건물더미에선 아직도 수천구의 시신이 썩어가고 있다고 구호요원들은 전했다.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중인 미 해병대가 오는 9일 스리랑카에 도착, 베트남 전쟁 이래 대규모의 구호활동에 나설 예정이며 인도네시아도 해군 함정 4척을 아체주에 파견했다. 한편 태국의 보건장관은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이고 있는 생존자가 적어도 800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으며,WHO 동남아지역사무소의 하사란 팬디 대변인은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하나 그럴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각 국의 협조를 요청했다.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빛이 스며든 자리/우승미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빛이 스며든 자리/우승미

    눈을 떴다. 문밖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일까. 암실에 있으면 의식도 시간도 모두 멎었다. 이곳에 온 후 나는 주로 암실에서 지냈다. 둥글게 몸을 말고 바닥에 누워, 불필요한 감각이 퇴화된 심해의 생물처럼 눈과 귀를 닫았다.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촉각이었다. 밀폐된 공간의 공기는 아래로 가라앉았다. 공기는 욕조 속의 더운 물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내 몸을 감쌌다. 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렸다. 경쾌한 리듬의 허밍이었다. 멜로디가 귀에 익었다. 가게 안으로 누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힘겹게 팔을 들어 몸 마디마디를 주물렀다. 피가 돌면서 눌려있었던 몸 왼쪽이 저려왔다. 암실 문을 열자 빛이 쏟아졌다. 손그늘을 만들고 부신 눈을 떴다. 딱딱한 알루미늄 가방 위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햇빛 속에 앉아있는 여자는 스스로 빛나고 있는 빛 무더기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주변을 감싸고 있던 빛이 스러지면서 여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여자는 얼굴빛이 유달리 희었다. 여자가 내 쪽으로 팔을 뻗어 손을 내밀었다. 여자의 팔은 윤곽이 희미했다. 홀로그램의 영상처럼 반쯤은 투명해보였다. 악수를 청하는 것인지 자신을 일으켜 달라는 것인지 몰라 잠시 주춤거리다가 여자의 손을 맞잡았다. 여자는 손아귀 깊숙이 손을 넣고 힘차게 흔들었다. 자칫하면 못 찾고 그냥 돌아갈 뻔했어요. 초행이라면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도시에서 상가가 가장 발달한 곳이었다고 한다. 다리 건너편으로 버스터미널이 이전하면서 그쪽에 신시가지가 형성된 후로는 죽은 골목이 돼버렸다. 사진관은 옛 번화가의 뒷골목에 위치했다. 원래는 주택가였는데, 주택을 허물고 상업용 건물을 급조해 형성된 상가였다. 지금은 가게를 연 곳이 거의 없어서 대부분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이곳은 구식 양옥의 1층을 개조해 가게로 쓰던 것이어서 밖에서 보면 가정집처럼 보였다. 오기 전에 부동산에 들렀어요. 한 달 전에 이미 매매되었다고 하더군요. 혹시나 싶어 물어보는 건데 저에게 세 놓을 생각 없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임대를 목적으로 산 집이 아니었다. 여자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중고로 구입한 17분 컬러 현상기가 한 구석에 놓여있을 뿐, 가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사진관을 하려고 산 건물이지만 한 달째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암실에서 보냈다. 배가 고프면 끼니를 때우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여자는 얼룩져 더러워진 벽을 따라 걷다가 쪼그리고 앉아 바닥의 나뭇결을 들여다보았다. 곳곳의 정경들을 기억 속에 새겨두기라도 하려는 듯 천천히 세밀하게 보았다. 여긴 제가 태어난 곳이에요. 오래전에 아버지가 여기서 사진관을 했어요. 위층에 살림을 차리고요. 여자의 나이를 가늠해봤다. 캐주얼한 옷차림 때문에 언뜻 보면 어려보였지만 눈가에 옅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나와 비슷하거나 한두 살 아래쯤일 것이다. 여기서 함께 지내게 해주세요. 처음엔 그냥 둘러보고만 가려고 했어요. 막상 와보니 여기 있고 싶어지는군요. 세를 놓는 건 싫다고 하셨죠? 대신 일을 하겠어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가게를 열면 가게일도 도와드릴게요. 여자는 눈을 깜박거리며 나를 말끄러미 보았다. 여자의 눈빛 속에는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과 거절할 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한데 섞여 있었다. 어떤 말도 선뜻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어머니가 병중에 있을 때 집안일과 병간을 도맡았던 아주머니와 6개월여를 함께 지내본 적은 있지만, 나는 타인과 함께 생활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호하게 거절을 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여자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점. 자신이 태어난 곳을 찾아와 그곳에 살고 싶어 한다면 무언가 절박한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어딘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가 태어났다는 이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투병 중이었던 어머니와 묏자리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어머니는 자동차 안에서 손가락으로 도로의 모퉁이에 나 있는 골목을 가리켰다. ―저기가 느이 아버지가 사진관을 하던 자리다. 나는 자동차 속도를 줄이며 어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저녁 어스름이 내린 골목은 동굴의 입구처럼 어두웠다. 가로수에 가려 골목의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무성한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음산한 소리가 났다. ―예전에는 이 길이 번화가였지. 세가 워낙에 비싸서 느이 아버지가 저 골목 끝에 있는 집을 사서 아래층을 가게로 개조했다.2층에다 신접살림을 차렸고, 너도 거기서 낳았어. 아버지가 그렇게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저기서 오래 살았을 게야. 그때는 입구가 보이지 않는 골목 어름을 언뜻 보고 지나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진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어두운 골목 안으로 성큼 들어서고 싶어졌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생전의 아버지처럼 사진관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내 머릿속은 어두운 골목으로 가득 찼다. 그곳에 가면 지금과는 다른 종류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월의 유순한 흐름을 따라 유유히 나의 생을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49재를 치르고 어머니의 무덤에 왔다가 이곳에 들렀다. 이곳은 비어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는지 뽀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무성한 것은 지붕까지 뻗어있는 담쟁이덩굴뿐이었다. 근처의 부동산을 찾아가 가격을 흥정하지 않고 곧장 계약서를 썼다. 다니던 잡지사에 사직서를 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내 사진기자로 일하던 직장이었다. 지구 곳곳의 풍경을 주제로 하는, 사진 중심의 다큐멘터리 잡지였다. 사직서는 그날로 수리되었다. 잡지는 상업성이 강한 잡지들을 출간하는 모(母)기업의 품격을 위해 창간된 것이었다. 전문적인 사진이 실리는 잡지를 다수의 대중은 외면했다. 독자가 많지 않으니 당연 광고도 들어오지 않았다. 경기가 침체되자 모기업은 서서히 경영에 압력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내가 사직서를 내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권고사직을 당할 형편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는 동료들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어려 있었다. 내가 사무실 문을 나서자 동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각자의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했다. 통장으로 입금된 퇴직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아파트를 내놓았지만 매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보험금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내려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남긴 상자에는 어머니의 결혼 예물과 아버지의 사진 그리고 세 장의 보험증서가 있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나는 보험증서를 쥐고 오열했다. 오십 몇 년의 삶의 흔적이라기에는 세 장의 종이는 너무도 가볍고 쓸쓸한 것이었다. 2층의 방을 쓰세요. 저는 여기 암실에서 지내면 되니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혼자 있는 시간을 방해해선 안 됩니다. 어려운 조건은 아니로군요. 여자는 알루미늄 가방을 메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이곳에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처럼 밖으로 나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자연스럽게 밟고 올라갔다.2층에는 방이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반으로 접히는 휴대용 침대를 암실에 갖다놓고, 내 물건들은 거실에 놓았다. 여자가 식사준비를 했다. 여자는 냉장고 뒤쪽 구석에 쑤셔 넣어두었던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여자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자기 집에서 요리를 하는 것처럼 양념통이나 필요한 재료가 있는 곳을 단번에 찾아냈다. 무언가 도와야 할 것 같아서 주위를 서성대던 나는 머쓱해져서 1층으로 내려왔다. 여자가 차린 상은 정갈했다. 냉장고에는 맥주와 인스턴트식품만 가득했었는데, 여자가 차린 밥상에는 찌개에 윤기가 흐르는 밑반찬까지 고루 갖춰져 있었다. 여자의 음식은 어머니가 해주던 것과 맛이 흡사했다. 이 정도면 합격인가요? 여자는 소리를 내지 않고 싱긋 웃었다. 환한 빛이 얼굴 가득 퍼졌다. 이곳에 머무는 대가로는 좀 과분하군요. 시간은 고요하게 흘러갔다. 여자는 늘 조용히 움직였다. 내게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나를 의식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암실에서 보냈다. 여자는 시간에 맞춰 요리를 했다. 거실로 내어 놓은 옷장 속에는 바싹 마른 옷가지들이 반듯하게 개어져 있었다. 여자가 내게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종이에는 거칠게 그린 가게 구조도와 비용에 관한 세목이 적혀 있었다. 사진관을 열었으면 해요. 여자가 건넨 종이를 건성으로 훑어보았다. 종이 몇 장으로는 가게의 모습이 요연하게 잡히지 않았지만 내 생각보다는 훨씬 구체적이었다. 우선 가게에 있는 17분 현상기는 되팔았으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해왔지만 사진관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다. 증명사진이나 간단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작은 스튜디오를 갖추고, 현상·인화 서비스를 하면 되겠다 싶어 17분 컬러 현상기를 중고로 구입한 것이었다. 여자는 내 옆으로 바투 다가와 앉아 손끝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계획을 설명했다. 암실은 공간이 꽤 넓으니까 두 개로 나누었으면 해요. 조명기기와 카메라 장비를 구입해서 작은 스튜디오를 만들고요. 표준화된 QSS방식으로는 사진을 기록물로만 여기는 사람들의 기대만 충족시킬 수 있죠.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돼서 현상만으로는 가게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요. 암실을 개방해서 수작업을 할 수 있게 하고, 차나 맥주를 마시며 자유롭게 지식과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곳, 제가 꿈꾸고 있던 사진관이에요. 암실에서 나와 보니 벽에 호두나무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가게 구석에 있던 자동 현상기는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무릎을 대고 엎드린 채 기름걸레로 바닥의 나무를 닦고 있었다. 여자의 손이 닿는 곳마다 켜켜이 나무의 결이 살아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암실 공사하러 인부들이 올 거예요. 가벽을 세우는 거라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조금 시끄러울 거예요. 어디 잠깐 다녀오는 건 어때요? 카메라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이곳에 내려온 후로는 첫 외출이었다. 나오기는 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종착지를 알 수 없는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SLR 디지털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잡지사에서 일하는 내내 들고 다녔던 것인데, 검은 몸체의 카메라가 낯설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사진을 찍지 않았던 것처럼 아니,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카메라가 이물스러워 보였다. 마음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버스에서 내려 몇 컷의 사진을 찍었다. 내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이국의 풍경처럼 주위의 모든 것이 생경스럽게 느껴졌다. 풀조차 자라지 않는 들판에 앉아 서서히 땅에 내리고 있는 어둠을 응시했다. 구릉처럼 낮은 산의 언저리에는 스러진 햇빛이 모여 검붉은 노을로 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도 차도 없었다. 희미하게 보이던 사물의 윤곽이 어둠에 검게 물들어 보이지 않았다. 길을 따라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피로하지 않았다. 끼니를 걸렀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몸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불현듯 여자가 몹시 보고 싶어졌다. 가게에 걸려 있는 간판에 불이 환했다. 간판에는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암실카페 - 빛이 스며든 자리’라고 씌어 있었다. 공사가 끝났는지 가게 안은 조용했다. 출입문을 열자 직사각의 탁자 세 개가 보였다. 한쪽 면을 벽에 붙인 탁자에는 어림잡아 20명 정도는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암실과 스튜디오 사이의 자투리 공간에는 주방이 들어섰다. 주방은 음료와 간단한 안주를 만들 수 있는 바bar 형태였다. 주방 옆에는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여닫이 유리문이 달린 업소용 냉장고 안에는 캔음료와 몇 종류의 맥주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암실 옆의 공간에는 몇 개의 조명기구가 놓여있는 작은 스튜디오가 꾸며졌다. 스튜디오를 제외한 가게의 정경은 카페에 가까웠다. 늦은 시간에 맥주를 마시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겠군요. 사진관보다는 호프집에 더 어울리는 이름이죠. 하지만 저는 이 이름이 썩 마음에 들어요. 어두운 방에 스며든 빛의 흔적, 그게 바로 사진이니까요. 여자는 벽의 진열장을 닦고 있었다. 이곳에 카메라를 진열해 놓았으면 해요. 예전에는 사진관에 카메라 진열대가 있었지요. 집집이 가정용 카메라를 구비해놓기 이전에는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대여했으니까요. 가방 속에 묵혀두는 것보단 가게로 내오면 오래된 사진관 이미지도 풍기고, 손님들에게 쉽게 접할 수 없는 클래식 카메라도 보여주고 좋을 것 같은데요. 진열대는 애초부터 카메라를 놓으려고 만든 것 같았다. 천장에 진열대를 비추는 작은 조명이 있었다. 나무판으로 만든 선반 형식의 진열대에는 유리문이 달려 있었는데, 먼지가 새어들지 않도록 틈새에 실리콘으로 패킹 처리가 되어 있었다. 2층에서 카메라들을 가져왔다. 케이스에 넣어 상자에 보관해왔지만, 오랫동안 손을 타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서 클래식 카메라를 사용할 기회가 없어졌다. 처음에는 오토포커스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부착해 사용했고, 얼마 전까지는 디지털 카메라를 썼다. 내게는 꽤 많은 카메라가 있었다. 사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여러 대의 카메라를 보유하게 마련이었다. 클래식 카메라는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카메라는 내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되던 해 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내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아버지의 존재는 내게 그리움 따위의 정서적인 것이 아니라 사진첩에 꽂혀있는 사진이나 카메라처럼 정물적인 것이었다. 어머니는 단 한 대의 카메라도 팔지 않았다. 어머니는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카메라를 꺼내 닦았다. 그 일은 어머니에게 지난 일을 추억하게 하는 사진첩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카메라를 닦으며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듣기 싫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되풀이되는 추억은, 흐려지지 않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그림자는, 사막에 묻힌 수천 년 전의 미라처럼 영원히 썩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버리고, 좋은 남자를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바랐다. 어머, 이건 콘탁스II네요. 여자의 음성이 높아졌다. 사진 찍는 일을 업으로 삼기 전에는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어요. 처음 사진을 배울 때부터 이걸 썼어요. 사진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주로 갖고 있는 카메라는 니콘FM2였다. 가격에 비해 성능이 꽤 괜찮은 제품이었다. 간혹 클래식 기종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라이카를 들고 다녔다. 콘탁스를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 카메라는 아버지가 월남전에서 돌아올 때 구입한 것이라 들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이 카메라의 각별한 내력을 말했으나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자가 2층으로 올라가 알루미늄 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앉아있던 가방이었다. 여자가 가방을 열었다. 거기에는 콘탁스와 똑같은 디자인의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카메라 앞면에는 키릴문자로 киев라는 로고가 각인되어 있었다. 이 카메라는 1949년에 생산된 키예프 카메라예요. 생산지는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지방이지만 부품은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왔지요.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자 소비에트는 전쟁배상금으로 콘탁스 카메라의 메이커인 자이스 이콘(Zeiss Ikon)을 요구했어요. 공장의 모든 부품과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우크라이나로 이송됐지요. 파견된 드레스덴의 노동자들이 자이스 이콘의 부품을 조립해서 만들었으니 이 카메라는 콘탁스II와 완전히 똑같은 쌍둥이인 셈이지요. 여자는 수건으로 자신의 카메라를 닦았다. 카메라를 만지는 여자의 손놀림은 병든 육친의 몸을 닦아주는 손길처럼 조심스럽고 애틋해 보였다. 이 카메라는 제게 존재증명과도 같은 거예요. 아버지가 남기신 유일한 유품이거든요.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했었지요. 월남에서 번 돈으로 이 카메라를 샀어요. 지금이야 회사원의 한 달 월급밖에 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 돈이면 읍내에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해요. 어렵게 구입한 카메라지요. 아버지가 월남에서 부쳐온 돈을 큰아버지가 들고나갔었다니까요. 장사를 해보겠다고요. 그 사실을 안 어머니가 읍내의 모든 술집을 뒤졌대요. 동생이 목숨 걸고 번 돈인데 술맛이 나더냐고 꾸짖어 모셔왔대요. 정혼한 사이긴 했지만 결혼 전이고 손위 시숙인데, 어머니는 무슨 용기로 그랬을까요. 큰아버지는 하는 일 없이 술과 여자로 평생을 보냈어요. 나쁜 분은 아니에요. 어느 집안에나 그런 무능하고 호방한 큰아들이 있는 법이잖아요. 그때 만약 어머니가 큰아버지를 말리지 못했더라면 제게 유품 같은 건 남지 않았겠지요. 지금은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저 혼자니까요. 이 카메라 외에는 제 존재를 증명해줄 무엇도 남지 않았어요. 같은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일까. 나와 비슷한 삶의 내력을 갖고 있는 이 여자가 오래전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혈육처럼 가깝고도 멀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이 사진관으로 온 것도 여자가 카메라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어머니가 죽고 난 후 나는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그 막연한 불안감은, 이 세상에 나의 존재를 증명해 줄 무엇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회귀성 어류처럼 내가 태어난 이 사진관으로 흘러들었던 것인지도. 사진관에는 손님이 없었다. 몇 차례 늦은 시각에 술에 취한 사람들이 들어와 맥주를 찾았다. 여자는 암실을 이용할 수 있는 사진관이라고 가게에 대해 설명한 후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첫 손님은 세일러복을 입은 여자애였다. 주민등록증에 쓸 증명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했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로 즉석에서 사진을 올린다고 말했다. 여자애는 알고 있다며 한 음절씩 힘주어 말했다. “꼭 필름사진이어야 해요.” 여자애는 탁자에 앉았다. 움직일 때마다 유난히 검은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여자애에게 뜨거운 코코아를 주었다. 커피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여자애가 중얼거리며 코코아를 홀짝거렸다. 여자애는 기름종이로 이마와 콧등의 유분을 닦고, 콤팩트 퍼프로 꼭꼭 눌렀다. “왜 꼭 필름사진이어야 해요?” “이건 증명사진이니까요. 처음 발급받는 주민등록증이거든요. 원판이 있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사진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주민등록증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숫자와 지명과 이름과 125분의 1초 동안의 모습과 소속된 나라 외에 또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증명이라는 말이 하나의 역설처럼 느껴졌다. 증명이 목적인 플라스틱 카드는 정작 중요한 것은 증명할 수 없었다. “저는 디지털 사진을 좋아하지 않아요. 디지털 사진은 원판이 없잖아요. 디지털 사진은 곧바로 확인할 수 있고, 삭제하는 것도 복사도 고치는 것도 쉽지만, 어쩐지 그것들은 떠도는 이미지들처럼 느껴져요. 상이 음각으로 새겨진 필름의 원판은 이를테면 이미지가 깃드는 집 같은 거죠.” 여자애의 오른쪽 눈 아래에 점이 있었다. 작고 까맣고 윤기가 도는 점이었다. 나는 보정을 원한다면 점을 없애주겠다고 했다. 여자애는 고개를 저었다. “눈 아래에 있는 점은 눈물점이라고 어른들이 빼라는 말을 많이 해요. 하지만 저는 이 점이 좋아요. 점도 제 몸의 일부니까요. 사람들은 이 점 때문에 저를 쉽게 기억해요. 아마 아저씨도 그럴걸요.” “사진은 내일 찾으러 와요. 여기서 직접 현상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려요.” 사진을 담아두는 봉투를 내밀었다. 여자애는 볼펜을 꾹꾹 눌러가며 자신의 이름을 썼다. 동글동글한 귀여운 글씨였다. 여자애는 이현아라는 이름 옆에 한쪽이 지나치게 부푼 하트 문양을 그려 넣고, 내게 찡긋 윙크를 했다. 여자애가 지갑을 꺼냈다. 첫 손님이니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여기 암실도 이용할 수 있나요?” “암실에서 직접 현상할 수도 있고, 현상을 맡길 수도 있어요. 스튜디오도 사용할 수 있고요.” “좋은데요.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곧 손님이 늘어날 거예요.” 암실에 누워 있다가 몹시 갈증이 나 밖으로 나갔다. 진열대의 조명등만 켜져 있었다. 여자는 탁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들고 여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암실은 깊은 바다 속 같아요. 햇빛이 닿지 않아 어둡고 추운 곳. 암실에서는 눈을 감아도 떠도 온통 농밀한 어둠뿐이에요. 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 무서워요. 보이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요. 거기에 있으면 무섭지 않아요? 무서워요. 그런데 당신은 왜 그곳에 있나요? 거기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요? 두려움, 고독, 침묵, 약간의 위안, 그리고 나. 암실에 누워 있으면 또 다른 내가 보여요. 조금은 우울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또 하나의 나예요. 수면에 비친 모습처럼 좌우가 바뀐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해요. 암실에 누워있는 나와 나를 응시하는 나 중에 진짜 나는 누구일까. 나는 존재하는 걸까. 당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건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당신의 주변이죠. 당신이 존재할 수 있는 건 당신을 보고 있는 내가 있기 때문이에요. 불빛을 등지고 있어서 여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여자가 조금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주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이 거울 속의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어떤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물질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거울에 비친 것과 같은 구조를 가진 반물질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빅뱅 직후 물질과 반물질이 각각 우주와 반우주를 형성했으며, 이 둘은 서로 맹렬한 속도로 멀어져갔다고 추측했다. 반물질은 물질을 만나는 순간 백만 분의 1초보다 빠른 속도로 상쇄되기 때문에 물질계에 있는 우리들은 반물질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맥주잔을 쥐고 있는 여자의 손을 잡고 싶었다. 여자를 향해 뻗은 손을 거두었다. 내 손이 여자에게 닿는 순간, 물질을 만난 반물질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사진관에 온 두 번째 손님은 가게로 들어와서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는 잡은 손을 경쾌하게 흔들었다. 그는 이현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눈에 그가 이현아의 오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현아의 증명사진이 든 봉투를 건넸다. “현아 오빤 거 어떻게 아셨어요? 신기하네. 남매지만 닮은 데가 별로 없거든요.” 굳이 닮았다고 한다면 이미지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이미지로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현아가 다녀가고 난 후 그 다음 손님이 현재였기 때문이었다. 곧 손님이 늘어날 거라던 현아의 말이 불쑥 떠올랐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예요, 형.” 그는 가방에서 세 통의 필름을 꺼냈다.‘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아마추어 사진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론으로만 접했던 현상·인화 작업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두 개의 필름을 그에게 다시 건넸다. 외형발색 필름이었다. 외형발색 필름은 유제층 안에 발색제가 없어서 필름제조회사에서만 현상할 수 있었다. 암실 수납장 안에는 약품부터 액정에 불이 들어오는 디지털시계, 라텍스 장갑까지 작업에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현재가 알고 있는 것은 암실작업의 일반적 과정뿐이었다. “암실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입니다.” “말 놔요, 형.” 현재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암실 작업도 사진 찍는 것과 같아.” 나는 사람들에게 쉽게 말을 놓는 편이 아니었다. 막상 말을 놓고 보니 현재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 서글서글한 눈매 때문인지, 웃음기 많은 얼굴 때문인지 현재에게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느껴지는 거리감이 없었다. 세이프라이트를 켜자 현재가 암실 문을 닫았다. 작업을 하며 가능한 한 자세하게 설명했다. 현재는 손바닥만 한 수첩에 꼼꼼히 적었다. “열심히 이론공부를 해도 직접 찍어보기 전에는 실력이 늘지 않잖아. 암실작업도 그래. 온도와 시간을 지킨다고 발색현상이 잘 되는 건 아냐. 날씨나 환경에 따라 그날그날의 기온과 습도가 다르니까. 적절한 온도와 시간은 암기가 아니라 감이야. 감을 잡으려면 결국 많이 해보는 수밖에 없어.” 현재는 인화된 사진을 보며 뿌듯해 했다. 그의 사진은 대부분 인물사진이었다. 수준급인 사진도 더러 있었지만 사진의 노출이 대부분 오버돼 있었다. 현재는 다음 동호회 모임은 이곳에서 갖기로 했다며, 이제부터는 손님이 꽤 늘어날 거라고 했다. 동호회 사람들은 현재와 비슷했다. 제일 먼저 현재가 현아와 함께 왔고, 오후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암실에서 작업을 하거나 각자의 사진을 돌려보았고, 더러는 일찌감치 술판을 벌이는 치들도 있었다. 열 명 남짓 되는 인원이었다. 그들은 나이도 직업도 각색인 듯 보였다. 그들은 내 이름을 부르거나 현재처럼 나를 형이라고 부르며 격 없이 대했다. 그들은 원래는 풍경사진을 주로 찍는,‘미라지Mirage’라는 비교적 큰 규모의 동호회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자연 속에 있다고 믿었던 그들은 시야를 좁혔다.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내게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물었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은 밤늦도록 돌아가지 않았다. 끝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은 한 잔 더 해야겠다며 여관방을 잡아 나갔다. 현재가 가게 정리하는 것을 돕겠다고 했지만, 돌려보냈다. 가게 문을 닫고 어질러진 탁자를 그대로 놓아둔 채 암실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신데다가 몸이 몹시 피곤했다. 구석에 접어놓은 침대를 펼치자마자 나는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문소리에 잠이 깼다. 열린 문 사이로 새어든 달빛이 바닥을 은백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침대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여자는 내 쪽으로 몸을 숙였다. 내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고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여자는 내 뺨을 감싸 쥐고 내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 사이로 여자의 혀가 들어왔다. 여자는 혀로 내 잇바디를 훑었다. 여자의 혀는 복족류의 속살처럼 차고 부드럽고 미끈거렸다. 가슴이 더워졌다. 나는 팔로 여자의 등허리를 감고 입을 열어 여자의 혀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잠이 든 체하며 눈을 감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뜨거워진 가슴을 달랬다. 여자는 깊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들어올 때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걸어 나가 문을 닫았다. 늦게야 일어나 암실에서 나왔다. 여자의 둥근 등이 보였다. 여자는 암실을 등지고 탁자에 앉아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가게 안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여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몸속의 색소가 다 바랜 것처럼 여자의 얼굴빛이 창백했다. 당신의 사진에는 색이 없군요. 하나같이 흑백사진뿐이에요. 게다가 당신의 사진은 너무 어두워요. 노출이 부족해요. 노출이 모두 -2스톱이군요. 글쎄요. 저는 적정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슬라이드 필름을 쓸 때에는 노출이 오버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배웠거든요. 카메라는 어두운 방이죠. 무언가를 찍기 위해서는 빛이 들어와야 해요. 조리개를 조금만 더 열고 셔터 속도를 늦춰요. 햇빛 때문일까. 뒷면에 양면테이프를 붙인 사진을 스크랩하는 여자의 손끝이 투명하게 보였다. 물에 떠 있는 한천질의 자포생물처럼 손가락 아래로 사진이 흐릿하게 비쳤다. 여자의 얼굴은 창백한 것이 아니었다. 눈과 코와 입술의 윤곽이 희미해져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여자를 봤다.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을 감았다 뜬 사이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다시 탁자를 보자 여자는 여전히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여자를 보자 여자는 싱긋 웃었다. 여자는 자주 사라졌다. 몇 시간 또는 며칠씩 사라지기도 했다. 돌아온 여자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집안일을 하고 가게를 돌봤다. 손님이 점차 늘어서 가게일이 바빴다. 손님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자가 어딘가로 떠난 것이 아니라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가게 안에 있던 여자가 어느새 연기처럼 희미해져 실루엣으로만 넘늘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여자가 완전히 사라지던 날, 현재가 현아와 함께 찾아와 라이트 페인팅 작업을 했다. 사진 관련 잡지에서 루미노그램(Luminogram,光跡사진)에 대한 글을 보고 실제로 해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끝에 불이 들어오는 펜 모양의 라이트를 들고 온 현아는 이민 간 친구에게 라이트 페인팅으로 편지를 써서 보낼 거라며 몹시 들떠 있었다. 라이트 페인팅은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었다. 암실에서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시키고 릴리즈를 연결한 후 세이프라이트를 껐다. 셔터 속도를 Blub에 놓았다. 현아는 한 자 한 자 소리 내어 읽으며 글씨를 썼다. 제2노출에서 셔터를 Blub에 맞추고 1 스톱 부족의 노출에서 스트로보를 조사하면 글씨를 쓰고 있는 연출자의 모습이 사진에 나온다. 현아의 작업이 끝난 후 여자가 펜라이트를 들었다. 여자는 허공에 대고 천천히 글씨를 썼다. 제2노출에서 스트로보를 켜자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허공에 떠있던 라이트펜이 따닥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손님들은 여전히 가게로 찾아와 암실을 사용하고 차를 마시고 더러 늦게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누구도 여자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여자가 사라진 후로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암실로 들어갔다. 암실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나는 무기력하게 어둠 속에 누워있었다. 나는 스스로 어둠 속에 갇혔다. 시간은 여전히 흘렀고, 어두울수록 더욱 명징해지는 의식은 여자에 대한 기억을 쫓고 있었다. 문밖에서 경쾌한 멜로디의 허밍이 들려왔다. 처음 내게로 왔던 날처럼 빛에 둘러싸인 채 여자가 앉아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문을 열었다. 가게 안은 어두웠고 텅 비어 있었다. 여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 외로움이 불러낸 환영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여자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우주의 반대편에서 달려온 또 다른 나는 아니었을까. 내가 마음을 열려는 순간 물질을 만난 반물질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현상한 라이트 페인팅 사진을 꺼내보았다. 필름의 마지막 장에는 서정주의 시구가 씌어 있었다. 물 위에 뜬 유성물감처럼 글씨의 획이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었다.‘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여자가 서 있었을 사진의 오른쪽 모서리 공간은 검은 어둠만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낮은 소리로 시의 남은 구절을 읊조렸다.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바람처럼 사라진 여자는 이 사진 한 장으로 내게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여자가 택한 이별이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것이라면, 나는 조금 더 담담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 언젠가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다시 입 맞춘다면, 거리낌 없이 이를 열어 여자가 내민 혀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여자의 둥근 어깨를 감싸 안아줄 수 있다면, 그것은 꼭 지금이 아니어도 좋았다. 내 몸이 완전히 스러지고 난 후 먼먼 내생의 어느 날이어도 좋았다. 진열대에는 여자가 남기고 간 키예프 카메라가 놓여있었다. 나는 그 옆의 콘탁스를 꺼냈다. 노출을 오버스톱으로 다시 맞추고 뷰파인더에 키예프 카메라를 고정시켰다. 여자가 자신의 유일한 존재증명이라고 말했던 키예프 카메라는 내게는 여자에 대한 기억의 증거가 되었다. 이 사진은 어두운 방에 잠시 스며들었던 빛, 그 빛의 흔적을 기록한 한 장의 루미노그램으로 남을 것이다.(끝) ■ 당선소감 제게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셨다는 사진관을 스쳐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평범한 상가 2층 건물이었지요. 그 후부터였습니다. 어찌할 수 없이 사는 일이 힘들어지면 아버지의 사진관이 떠올랐습니다. 그곳에서 예전에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사진관을 열고 싶었습니다. 유리로 된 진열장에 오래된 사진기가 들어있는 곳. 증명사진을 찍으러온 나이 지긋한 노신사가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웃으세요, 한 마디에 어색한 미소를 짓는 곳. 소읍의 탄생과 죽음과 기쁨과 슬픔을 기록하는 곳. 돈을 벌어도 좋고 벌지 못해도 좋은, 그런 사진관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음속에 사진관을 넣어두고 저는 수시로 꺼내보곤 했습니다. 그러면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일들도 그럭저럭 견딜 만한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언젠가부터 사진관 안에는 허약한 식물이 자랐습니다. 제 소설은 결여의 토양에서 결핍의 양분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지닌 게 없어도 너무 지독하게는 살지 말자고 제 마음을 다독일 즈음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약한 소설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구효서 선생님!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릴 수 있어 기뻐요. 한결같이 제게 여여한 미소를 보여주셔서 마음이 든든했어요. 가족과 문우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응오씨, 당신은 제 삶에서 만난 가장 큰 행운입니다. 저를 존재하게 하는 건 당신이에요.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우승미 ●약력 1974년 강원도 양구 출생 2003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 심사평 예심을 통과한 9편의 작품은 각기 그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젊은 문학도들에게 패기와 정열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삶의 이름으로건 예술의 이름으로건 하나의 진실에 도달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소설 같은 소설’ 한 편을 적당히 꾸려내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 아닐까. 그러나 그 가운데 좋은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이 특별히 주목한 작품은 ‘소년’‘달을 보고 짖는 개’‘펑크로커 실종기’‘빛이 스며든 자리’ 등 4편이었다. ‘소년’은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난 한 소년의 미래없는 삶을 진지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호감을 샀지만,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약점이 있다. 삶에 대한 진실을 움켜 쥘때 문학적 형상화도 함께 따라올 것이다.‘달을 보고 짖는 개’는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솜씨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었지만, 주제와 구성에서 독창성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잘 만든 이야기, 그러나 너무 자주 들었던 이야기다. 반복되는 낡은 이야기에 새로운 진실이 담기기는 어렵다. ‘펑크로커 실종기’는 누아르 서사의 형식 속에 펑크족들의 생활양태를 담은 소설로 문장이 경쾌하고 구성이 치밀했다. 훌륭한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도 그만큼 많았다. 무엇보다도 한 세계의 겉과 속을 심도있게 성찰하려 하기보다는 이미 알려져 있는 문화적 코드들을 조합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펑크족은 펑크족이다.’라는 말 이상의 매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풍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시선에서 온다. ‘빛이 스며든 자리’는 구렁각시의 민담과 피그말리온의 전설을 현대의 사진예술론으로 재해석하는 가운데 현실과 환상을 정교하게 봉합해서 꾸며낸 예술가 소설이다. 새로운 창조의 자리가 아버지의 자리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었다는 주제의 설정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며, 모든 응모자들의 정진을 빈다. 현길언 황현산
  • [키워드로 풀어본 퀴즈2004]온가족이 함께 머리를 맞대보세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기습적인 신사 참배로 시작한 갑신년이 사상 초유의 희생자를 낸 남아시아 대재앙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올 한해 우리의 일상에 머문 뉴스속의 키워드를 퀴즈 형식으로 되짚어 본다. 파란과 격동의 ‘그 때 그 순간’을 곱씹어보며 희망의 을유년을 준비하자. 출제 채종규 DB팀장 jkc@seoul.co.kr 1월 1. 갑신년이 열린 첫날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가 이 곳을 기습 참배해 한국과 중국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 곳에는 중·일전쟁에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전몰자 250만여명의 위패가 안치돼 있다. 일본의 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 정부 인사의 참배를 군국주의 부활의 조짐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 곳은? 2. 4일과 25일 미 항공우주국(NASA)의 쌍둥이 탐사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니티가 이 행성의 표면에 차례로 안착, 유럽의 마스 익스프레스호와 함께 모두 3개의 탐사선이 물 흔적을 뒷받침하는 사진 자료와 광물 분석 자료를 보내왔다. 과학자들은 생명체도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 행성은? 3. 5일 국세청은 기업이 한도액 이상 접대비를 지출할 때 정규 영수증에다 접대하는 사람, 접대 받는 사람, 목적 등을 별도 기재,5년간 보관해야 비용으로 인정받게 했다. 이른바 ‘접대비 실명제’ 도입이다. 기업들은 접대 구조를 개선하기보다는 편법·불법을 부를 가능성이 높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기업 접대비의 건당 한도액은? 2월 1. 12일 한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가 복제된 인간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얻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는 미국의 저명한 과학잡지 ‘사이언스’가 선정한 올해의 ‘10대뉴스’ 3위에 올랐다. 국가로부터 요인급 경호를 받는 ‘국보급 과학자’로 떠오른 이 교수는? 2. 13일 이라크 파병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파병 규모는 3600명. 올리브를 뜻하는 아랍어인 자이툰 부대로 불린다. 극도의 보안속에 8월 3일 선발대가 파견됐다. 이후 단계적으로 배치가 완료됐다.12월 8일 노무현 대통령은 이 곳을 전격 방문, 장병들의 사기를 높였다. 자이툰 부대가 평화 재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역의 지명은? 3. 19일 강우석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개봉 58일 만에 한국영화 최초로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관람 등급인 ‘15세 이상’ 가운데 3명중 1명이 이 영화를 본 셈이다. 뒤이어 ‘태극기 휘날리며’도 1000만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안성기 설경구 등이 열연한 이 영화 제목은? 3월 1.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에 이르자 6일 정부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특히 여러 금융 기관에 빚이 있는 경우 원리금 일부를 갚으면 신용 불량자에서 해제한 뒤 이 곳을 통해 장기 저리로 대출을 해줘 금융기관에 돈을 갚아나갈 수 있도록 했다. 여러 은행의 부실채권을 모아 처리하는 이 곳을 무엇이라고 부를까? 2. 12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등 3당의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5월 14일 헌법재판소가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써 노무현 대통령은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했다.60여일에 이르는 탄핵정국 기간에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무리없이 수행해 ‘행정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국무총리는? 3. 30일 서울중앙지법은 작년에 귀국해 ‘경계인’ 논쟁을 불러 일으킨 재독 학자에 대해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의 혐의가 인정된다며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7월 21일 서울고법은 증거 미흡을 내세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현재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새해부터 서울신문에 칼럼을 집필할 예정인 이 사람은? 4월 1. 1년 4개월을 끌던 한국과 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1일 공식 발효됐다. 이로써 한국은 자동차 휴대폰 등을, 칠레는 커피 배합사료 등을 무관세로 수출하게 됐다. 그렇다면 동남아 시장 교두보 확보를 위해 한국이 11월 29일 FTA를 체결한 국가는 어디? 2. 15일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지역구 후보에 1표, 지지정당에 1표를 각각 찍는 투표방식이 실시됐다. 기존의 인물 위주에서 정당의 정책 등을 평가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된 것. 진보정당인 이 정당은 지역구에서 2석, 득표율에 따른 비례대표 8석 등 모두 10석을 확보해 창당 이후 처음으로 원내에 진출했다. 이 정당은? 3. 22일 평안북도 신의주 인근의 한 기차역에서 거대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질산암모늄을 실은 화물열차와 유조차 등이 폭발해 역 인근 소학교 학생 등 150여명이 죽고 1300여명이 다친 대형사고였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이틀 만에 사실을 발표,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해 눈길을 끌었다. 대형 참사가 일어난 이 역은? 5월 1. 1일 서울시는 자동차에 빼앗긴 도심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조성한 이 곳을 개방했다. 총 면적 3995평 중앙에 104mx76m의 타원형 잔디밭은 보름달을 상징하며,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깔린 것과 같은 ‘켄터키 블루그래스’라는 양잔디를 깔았다. 인근에 마련된 분수대와 스케이트장 등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이 곳은? 2. 23일 제57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해 한국 영화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다. 박찬욱 감독 작품으로 최민식 유지태가 주연을 맡았다. 일본만화를 각색했으며, 영문도 모른 채 15년간 사설 감옥에 갇혔다가 나온 남자와 그를 가둔 남자의 비밀을 다룬 이 영화의 제목은? 3.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28일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을 총장으로 선임했다. 지난 98년 ‘분자 양자 홀 효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으며, 최근 KAIST의 사립화를 골자로 한 ‘KAIST 비전 구상’을 발표해 과학기술계와 교육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총장 취임전에도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소장과 포항공대 석좌교수로 부임하는 등 유독 한국과 인연이 많은 이 사람은? 6월 1.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이 사람이 5일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81∼88년 대통령 재임기간 미국인들에게 자신감을 되찾아주고 냉전 종식을 가속화한 인물로 평가된다.37세때 할리우드에 진출해 5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레이거노믹스’로도 잘 알려진 이 사람은? 2. 세계 최초의 민간 우주왕복선이 2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에 무사 귀환, 민간 우주비행 시대에 성큼 다가섰다. 이후 미국의 버진갈락티카를 비롯한 우주여행 관련 회사들이 잇따라 설립돼 향후 민간에 의한 우주개발 경쟁이 본격화 될 것임을 예고했다. 순수 민간 자본으로 제작돼 타임지 선정 ‘올해의 발명품’에 선정된 이 우주 왕복선은? 3. 알 자르카위가 이끄는 이라크 무장단체 ‘유일신과 성전’에 피랍된 가나무역 직원이 22일 무참히 살해됐다. 납치범들은 비디오를 통해 이라크 주둔 한국군의 철수를 요구했고, 이틀 뒤 만행을 저질렀다. 생존을 염원한 온 국민을 비탄에 잠기게 한 이 사람은? 7월 1. 1일 이 기구 산하의 세계유산위원회는 고구려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중국과 북한의 신청을 동시에 등재시켜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킬 수 있는 나름의 근거와 논리를 제공한 셈이 됐다. 유엔을 대표하는 단체중 하나로 정식명칭은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이다. 이 기구는? 2. 미국·유럽이 공동 참여한 이 탐사선은 80개월간 35억㎞를 항해한 끝에 1일 토성 궤도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 탐사선이 보내온 영상을 통해 새로운 위성 2개를 발견, 토성 위성이 모두 33개임이 밝혀졌다. 토성고리 사이 간극을 최초로 발견한 프랑스 과학자의 이름에서 따 온 이 탐사선의 이름은? 3. 18일 2003년 9월부터 부유층 노인, 여성등 21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을 체포했다. 한 사람이 저지른 살인 숫자로는 정부수립이후 최대이다.“100명을 죽이려 했는데 빨리 잡혀 아쉽다. 시신의 일부를 먹었다.”는 등 충격적인 발언을 쏟아내 국민을 경악케 했다.12월 13일 1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희대의 살인마는? 8월 1. 제28회 아테네하계올림픽이 ‘신의 땅’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14일 막을 올렸다.1896년 제 1회 대회 개최이후 108년 만에 고향으로 귀환한 지구촌 축제에서 한국은 금 9, 은 12, 동메달 9개로 종합 9위에 올라 지난 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이후 8년만에 톱10에 복귀했다. 차기 2008년 올림픽은 어느 도시에서 열릴까? 2.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 임명동의안이 23일 국회를 통과했다.“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그의 법철학이다.‘왕따 학생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에서 소수자의 편에 섰다. 탤런트 최진실의 변론을 자청한 강지원 변호사의 부인으로도 유명한 이 사람은? 3. 24일 한국과 중국은 ’고구려사 문제의 정치화 방지’ 등 5개 구두 양해사항에 합의했다. 마찰원인은 중국이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고구려 유적이 자리잡은 지린성 일대를 중국 유적지로 홍보하는 등 역사 왜곡을 본격 시도했기 때문이다.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논거를 제공한 중국의 연구 프로젝트 명칭은? 9월 1. 11일 열린 베니스 영화제에서 ‘빈집’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지난 2월 15일 베를린 영화제에서도 ‘사마리아’로 같은 상을 받았다.‘섬’(2000년) ‘수취인 불명’(2001년) 등은 베니스영화제 본선에 진출하기도 했다. 국내 보다 해외서 높은 평가를 받아 세계와 소통하는 ‘충무로 이단아’로 불리는 이 감독은? 2. 정부는 고위 공직자가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결정을 할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보유한 주식을 매각하거나 신탁기관에 맡기는 제도를 14일 확정했다. 단 ‘직무와 관련이 없는’ 주식은 보유를 허용했다, 공직자 윤리법에 정해진 ‘재산공개대상자’ 5697명이 대상이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이 제도는? 3. 중국공산당 전당대회가 열린 19일 장쩌민의 군사위 주석자리를 전격적으로 물려받아 10여년간의 2인자 생활을 마감하고 공산당·정부·군 등 3권을 모두 장악하게 됐다. 중국은 2차대전 이후 교육받은 세대로 지도부가 전면 교체돼 본격적인 ‘테크노크라트’시대를 맞이했다. 공산당의 ‘모범생’으로 권력의 정점에 우뚝 선 이 사람은? 10월 1. 1일 국내에서 첫 번째로 현대자동차가 두가지 이상의 동력을 사용하는 자동차 개발에 성공했다. 저속 주행에는 전기 모터, 고속 주행에는 휘발유 엔진을 사용해 연료와 배출가스를 줄일 수 있다. 영어로 ‘잡종’이라는 뜻으로,2008년부터 상용화될 미래형 자동차는? 2. 일본의 야구천재인 이 선수는 2일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5타수 3안타를 때려 한 시즌 최다안타 신기록(259개)을 세웠다.1920년 조지 시슬러가 세운 257개를 84년만에 갈아 치운 대기록. 타고난 센스와 자로 잰 듯한 타격, 강한 어깨 등 완벽한 조건에 노력까지 겸비한 이 선수는? 3. 헌법재판소는 21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은 국가생활의 오랜 전통과 관습에서 확고하게 형성된 법 규범이며, 모든 헌법사항을 성문헌법으로 규율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법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문자화되지 않은 헌법적 관행 내지는 관례를 말하는 이 법은? 11월 1.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초접전 끝에 민주당 존 케리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부시 대통령은 집권 2기 국무장관으로 국가 안보보좌관을 지낸 흑인 여성을 내정했다. 미국 역사상 올브라이트에 이어 두번째 여성 국무장관이 된 이 사람은? 2. 11일 ‘중동의 큰 별’이 떨어졌다. 이스라엘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69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창설해 무장 독립투쟁을 주도한 그는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94년 이스라엘과 오슬로 평화협정에 합의, 라빈 당시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2001년부터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자치정부 청사에 연금당한 이 사람은? 3. 대입 수학능력시험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 행위가 19일 적발된 뒤 26만여건의 문자메시지를 분석하여 모두 314건의 부정행위를 밝혀낸 곳.2000년 온라인상의 범죄에 대처하기 위해 서울경찰청에 창설된 조직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범죄 정보 수집, 인터넷상의 명예훼손과 스토킹, 전자상거래 사기사건 등을 전담하는 이 곳의 이름은? 12월 1. 개성공단 시범단지에서 생산한 제품이 15일 국내에 첫 반입됐다.2000년 8월 현대아산과 북한의 조선아태평화위가 개성공단 개발에 합의한 후 4년4개월만의 첫 결실. 개성에서 만든지 8시간 만에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400세트가 판매돼 15분 만에 동이 났다. 개성공단과 더불어 민족 화해와 협력의 상징으로 떠오른 이 주방기구는? 2. 교수신문이 주요 일간지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약하는 교수 162명에게 2004년 한국을 정리하는 사자성어를 물은 결과 1위로 꼽혔다.‘뜻이 맞는 사람끼리 한패가 되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친다.’는 이 말은? 3. 사상 최악의 지진해일이 26일 동남아와 서남아를 강타했다.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는 물론 인도 스리랑카와 아프리카 소말리아까지 여파가 미쳐 사망·실종자가 1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닷속 지진이나 화산 폭발등으로 발생하는 이 지진해일을 일컫는 국제 공용어는? ■ 힌트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 기사검색란을 활용하세요(기획섹션 참조).
  • [우리동네 이야기] 동대문구 용두동

    [우리동네 이야기] 동대문구 용두동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은 요즘 모처럼의 개발 기회를 맞아 용틀임하고 있는 곳이다. 이 곳이 서울에서 장래가 밝다는 점은 용두동(龍頭洞)이란 동명에 잘 나타난다. 바로 ‘좌청룡 우백호’라는 풍수지리설과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 태조산(太祖山)인 백두대간은 중조산(中祖山)인 강원도 철령, 근조산(近祖山)인 서울 북한산으로 이어져 내려와 왼쪽으로 ‘청룡의 줄기’라고 불리는 정릉천이 자리한 곳이 용두동이다. 반면 서울의 오른쪽 백호(白虎)는 백두대간∼북악산에서 자하문을 지나 인왕산으로 이어진다. 마침 이 동네를 감싼 주변 야산의 모습이 용머리처럼 생겨서 이름이 붙었다. 용두동은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인 1894년 갑오개혁 때 한성부 인창방(仁昌坊) 소속으로 탄생했다. 그 때는 동이 아니라 리(里)였다. 이 동네는 조선시대 이후 강원도 사람들이 아침 일찍 동대문이 열리자마자 서울로 들어가기 위해 묵어가던 길목이어서 그런지 주막이나 객주집으로 생활하는 주민이 많았다. 홍릉천, 성북천, 정릉천 등에서 흘러내린 물이 너무도 맑아 물맛이 뛰어나기로 이름이 높았다.1958년까지만 해도 ‘꿀맛처럼 달아서 도성 안으로 들어가는 길손들은 너나없이 떠 마셨으며,4대문 안에 용두 물장수도 있었다.’는 기록이 보일 정도로 유명한 용두동 찬우물터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강동구 상일동에서 출발해 폭 50m, 길이가 무려 14.5㎞에 이르는 천호대로 끝자락인 하정로를 기준으로 동대문구청사 쪽은 1동, 건너편은 2동이다. 하정로에는 지하철 2호선 동대문구청역 공사가 내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한창이다. 구청 맞은편 1만 6400여㎡(4970평)에는 2006년 하반기까지 녹지는 물론 연못과 분수광장 등 편의시설을 갖춘 근린공원이 들어설 계획이다. 지하에는 최첨단 무공해 폐기물종합처리장도 설치돼 완공 뒤 환경·재활용 부문에서도 서울시내 선두적인 역할을 해낼 것으로 기대된다. 청계천 일대에 몰려 있던 수족관 업자들이 1980년대 초부터 옮겨와 형성된 ‘어항 거리’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현재 40개 가까운 업소에서 관상어 220여종을 포함, 관련 용품들을 도·소매로 팔고 있다. 옛 전통을 살려, 살고 싶은 특화지역으로 우뚝 설 꿈에 부풀어 있다. 오랜 역사의 그늘에 가려 제자리걸음을 걸어왔지만 한약전시관 등 한약을 테마로 한 고층건물 신축과 동부청과시장 등 재래시장과 주택단지 재개발, 간선도로 확장 등 굵직굵직한 사업들이 균형개발촉진지구 지정과 맞물려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작은 변화를 위한 아름다운 선택/트레이시 키더 지음

    독재와 가난에 찌든 서인도제도의 조그만 나라 아이티. 이곳 농부들은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고 한다.“밭의 경사가 너무 급해 옥수수 농사를 짓다 다리가 부러지는 농부는 세계에서 아이티 농부들뿐”이라든가,“아이티 농촌의 개들은 너무 삐쩍 말라 짖으려면 나무에 기대야 된다.”는…. 아이티의 고단한 현실은 또한 “산 너머엔 또 산이 있다.”는 아이티 속담에서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 이 나라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도와야 할까. ‘작은 변화를 위한 아름다운 선택’(트레이시 키더 지음, 박재영·김하연 옮김, 황금부엉이 펴냄)에서 소개하는 청년의사 폴 파머의 스토리는 어떤 거대한 물질의 원조보다도 따뜻한 인정의 손길이 더욱 소중한 것임을 웅변해준다. 책의 주인공 폴 파머는 하버드대 교수로 전염병학 전문가이자 인류학자. 아이티의 작은 마을 캉주에 ‘장미 라장테’라는 병원을 세우고 인술과 사랑을 베푸는 현대판 슈바이처다. 이 책은 세상의 아픈 곳을 치유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진 한 의사의 치열한 삶의 흔적을 좇는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로 ‘논픽션 서사의 대가’라는 평을 듣는 저자는 파머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는 데서부터 시작해 파머의 유년시절,‘PIH(보건을 위한 파트너들)’라는 비정부기구를 설립하게 된 이야기 등을 잔잔하게 들려준다.3인칭의 관찰자 시점이 아니라 주관이 적극 개입된 1인칭 시점으로 풀어가고 있는 것이 특징. 그런 만큼 이야기에 현장감이 넘친다. “유일한 민족은 인류뿐”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며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생각과 관습을 바꿔놓는 파머의 이상주의적 휴머니즘이 사뭇 감동적이다. 한 사람의 아름다운 선택과 작은 실천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힘이라는 게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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