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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1) 애완견과 개장국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1) 애완견과 개장국

    개가 나오는 풍속화는 여럿이 있다. 그런데 개가 주인공이 된 경우는 드물다. 그림(1)과 (2)는 확실히 생활 현실 속에서의 개를 그렸다는 점에서 여느 개 그림과는 다르다. 그림(1)은 신광현의 ‘강아지와 놀기’다. 어린아이가 앞서 달리며 강아지를 부르고 강아지는 열심히 쫓아간다. 이처럼 어린이가 좋아하는, 어린이와 어울려 노는 강아지는 애완견이다. 하지만 김준근의 ‘개백정’(그림2)을 보면 사정이 전혀 다르다. 사내, 곧 개백정이 개를 끌고 있고 개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앞발로 줄을 잡아당기고 있다. 불쌍한 생각이 왈칵 든다. 이 경우 개는 개장국의 재료일 뿐이다. 애완견과 식용견의 구분은 있지만, 그 선은 명확하지 않다. 인간의 태도에 따라 애완견이 식용견이 되기도 하고, 식용견이 애완견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림(1)의 애완견은 언제 그림(2)의 식용견이 될지 모른다. 애완견의 역사는 오래다. 동아시아의 정치교과서인 ‘서경’에는 개에 관한 글 한 편이 실려 있다.‘여오’라는 글이다.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장악하자 사방에서 공물을 바친다.‘여족’이 보낸 것은 큰 개(‘오’는 개란 뜻이다)였다. 여족이 바친 개는 식용이 아니고, 애완의 대상이었음은 물론이다. 여족의 개를 보고 소공이 무왕에게 이렇게 충고한다.“개와 말은 지금 이곳의 풍토에 맞지 않으면 기르지 마시고, 진귀한 새와 기이한 짐승은 나라에서 기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왕이 애완동물에 빠져서 국정을 게을리 하고 또 이런 것들을 구하느라 백성을 괴롭힐까 하여 하는 소리다. 어쨌거나 ‘여오’를 보면 애완견의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후기 시장에서도 개장국 많이 팔아 조선시대 문헌에 애완견의 존재를 찾기란 어렵다. 다만 연암 박지원의 ‘취하여 운종교를 거닐고 쓴 글’에서 개를 ‘애완’하는 흔적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어느 여름 날 밤 박지원은 박제도(박제가의 형)·이희경·이희명·원유진·이덕무·서유린 등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운종가 종각 아래를 걷는다. 직접 읽어 보자. “이때 3경 4점이 벌써 지나 달빛이 더욱 훤하게 비치고, 사람 그림자는 모두 열 발이나 늘어났다. 돌아보니 오싹하여 무서운 생각까지 들었다. 길거리에 개들이 어지러이 짖어댄다. 큰 개 한 마리가 동쪽에서 다가왔는데 희고 수척했다. 여럿이 둘러 앉아 쓰다듬으니, 좋아서 꼬리를 흔들고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연암은 이어서 이 개가 몽골 원산이라는 것, 말처럼 크고 사나워 길들이기 어렵다는 것, 중국에 들어간 것은 작은 종자이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더 작은 종자라는 것, 하지만 우리나라 개보다는 그래도 크다는 것, 중국에 간 사신을 따라 조선으로 들어온다는 것 등 이 개에 대한 정보를 늘어 놓는다. 재미있는 것은 개의 이름이다. 보통 이 개를 호백(胡白)이라 하고, 그 중에서 작은 종자를 ‘발발이’라고 한다는 것이다.‘발바리’란 애완견은 아마도 이 개를 지칭하는 것일 터이다. 다시 더 읽어보자. 무관(이덕무의 자)이 취하여 개에게 ‘호백(豪伯)’이란 자를 지어 주었는데, 어느 틈엔가 사라지고 없다. 무관이 서운하여 동쪽을 향해 서서 흡사 오래된 친구를 부르듯 ‘호백이!’ 하고 세 번을 불렀고, 일행이 한바탕 껄껄 웃었다. 그러자 길거리에 개떼가 마구 달리며 더욱 큰 소리로 짖기 시작하였다. 어떤가. 개에게 자까지 지어 주었으니, 이덕무가 개를 가장 ‘애완’했던 모양이다. 호백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애완’은 그날로 끝나고 개장국이 되지 않았을까? 이제 개장국 이야기를 해 보자. 정조 때 문헌인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의하면 개장국을 먹는 것은 복날 풍속이다.“개고기를 총백(파의 밑동)과 섞어 푹 찐다. 닭고기나 죽순을 넣으면 맛이 더욱 좋다. 이것을 ‘개장(狗醬)’이라 부른다. 혹 국을 끓여 고춧가루를 뿌려 흰 쌀밥을 말아서 먹기도 한다. 이것을 먹고 땀을 내면 더위를 물리치고 허한 기운을 보충할 수 있다.” 유득공은 “‘사기’에 진(秦)나라 덕공 2년 처음으로 복날 제사를 지냈다. 사대문에서 개를 잡아 충재(蟲災)를 막았다.”고 한 것을 복날에 개를 잡아먹는 풍습의 시초로 보고 있다.‘예기-내칙’에도 개고기에는 차조가 잘 어울린다고 하고 있으니, 아마도 개는 가축이 되면서부터 식용이 되었을 것이다. 유득공의 기록에 의하면 개장은 원래 개고기를 찐 것이었고, 지금의 국을 말아 먹는 스타일과는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개고기를 푹 찐다.”는 부분의 원문은 ‘훈증(燻蒸)’이다. 찐다는 의미의 ‘증(蒸)’ 자를 쓰고 있다. 그리고 “다시 국을 만든다.”(又作羹)라고 하고 있으니, 원래 개장은 찌는 요리였던 것이다. 순조 때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에도 개장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경도잡지’의 것과 동일하다. 다만 “시장에서도 많이 판다.”는 부분만 추가되어 있다. 이 자료에 의하면 개장국은 조선후기 시장에서도 많이 파는 음식이었던 모양이다.‘개백정’ 그림 역시 영업용 개장국을 끓이기 위해 개장수가 개를 끌고 가는 것을 그린 것이 아닐까? 어쨌거나 서울 시내에 개장국을 파는 집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정조실록’ 1년(1777) 이찬을 추대하려는 역모를 꾀하던 일당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개장국 이야기가 나온다. 정흥문이란 자의 자술서에 “7월 28일에 대궐 밖의 개 잡는 집에서 강용휘와 제가 개장국을 사 먹은 뒤 같이 대궐로 들어갔습니다.”라는 말이 있다. 곧 서울에 개장국을 상시적으로 파는 가게가 있었던 것이다. ●손꼽히는 개고기 마니아는 중종때 권신 김안로 개고기는 서울 시내에서 팔기까지 한 전통 식품이지만, 개고기는 먹는 사람, 안 먹거나 못 먹거나, 먹기를 반대하는 사람이 뚜렷이 갈린다. 근대 이후에 와서 분화된 것이 아니고, 조선시대에도 그랬다.19세기 문헌인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실린 ‘정승이 개장국을 즐겨 먹은 일’이란 글에는 북경에 가서까지 개고기를 삶아 대령하라고 해서 먹은 심상규와 남의 집 잔치에 나온 개장국을 보고 ‘손님에게 대접하는 음식’이 아니라며 먹지 않았던 이종성의 일화가 나란히 소개되어 있다. 개고기 마니아와 개고기를 혐오식품으로 보는 시각은 조선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개고기 마니아를 꼽자면 중종 때 권신 김안로가 있다. 이팽수란 자는 김안로의 비위를 맞추느라 봉상시 참봉이 되자, 크고 살진 개를 골라 사다가 요리해 김안로에게 올렸고, 김안로는 이팽수의 개고기 구이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이팽수는 그 공으로 승정원 주서가 되었다. 승정원 벼슬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청직이다. 이팽수는 개고기로 주서가 되었으므로 ‘가장주서(家獐注書)’란 별명을 갖게 되었다. 가장이란 ‘집노루’란 뜻인데, 개고기를 가장이라 불렀던 것이다. ●초복날 성균관 유생들에게 인기 있던 별미 개고기는 또 성균관 유생들에게 공급하는 별미이기도 하였다.19세기 초반의 윤기란 문인은 성균관에서 오랫동안 학생으로 있었는데, 그가 성균관의 풍속을 노래한 한시에 개고기에 관한 부분이 있다. 학생들에게 주는 특식을 ‘별미’라 하는데, 매달 1일 6일이 드는 날 아침에 대별미를 제공한다. 고직이는 그 날이 되기 전에 미리 유생들에게 물어보고 요구하는 것을 구해 올린다.3일 8일이 되는 날은 소별미날이다. 이 날은 생선을 올린다. 국을 끓이거나 구워서 올리는데 양이 적어서 유명무실한 것이었다. 그 외 명절 등의 별식이 있는 날이 있는데, 복날도 거기에 들어간다. 초복에는 개고기를 주었고, 중복에는 참외 2개, 말복에는 수박 1통을 주었다고 한다. 윤기는 초복의 개고기가 사소한 것 같지만, 중복의 참외보다 낫다고 말하고 있다. 국립대학에서 초복에 주는 보신탕이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이다. 개고기를 먹느냐 먹지 않느냐 하는 것은 지금도 계속되는 논쟁이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자리에 끼면 마지못해 수저를 들지만, 일부러 찾아다니며 먹지는 않는다. 집에 강아지를 키우고 난 뒤로 그렇다. 이제 아주 안 먹으려 한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중남미의 정열 서울을 녹이다

    중남미의 정열 서울을 녹이다

    추적추적 장맛비가 내리던 지난 25일 오후.‘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의 개막식이 열린 덕수궁 미술관 곳곳은 라틴계 사람들이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대형 기획전이라지만, 출신국 관계자들이 그렇게까지 성원하기는 드문 일이었다. 따져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전시는 애당초 ‘그들’의 발의로 시작됐다. 한국 주재 남미권 대사들의 “유럽 미술만 미술이 아니다.”라는 제언에서 출발, 그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국립현대미술관이 작품 선정 작업에 나섰던 것. 미술계가 지나치게 서유럽 편향적으로 흘러왔다는 자성을 토대로 한 전시에는 멕시코, 브라질, 베네수엘라, 페루, 콜롬비아, 칠레 등 중남미 16개국의 거장들이 총동원됐다. 라틴 대표작가 84명의 작품이 무려 120여점. 세계미술사에 멕시코 르네상스를 이끈 트로이카로 기록된 디에고 리베라,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등이 포함됐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미술학도가 아니고서야 이 이름들을 기억할 리 만무할 터. 일반 관람객들에겐 뭐니뭐니해도 영화화되기도 했던 디에고 리베라와 그의 부인 프리다 칼로의 존재가 가장 반가울 듯하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7점이 와 있다. 라틴 현대 미술을 보여주는 전시는 크게 네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멕시코 혁명으로 불붙어 중남미 전체로 확산된 ‘벽화운동’, 서유럽 식민지 아래서 끊임없이 정체성을 고민한 흔적을 추적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정체성’, 프리다 칼로의 작품세계를 통해 널리 알려진 라틴 초현실주의 계보를 짚어보는 ‘개인의 세계와 초현실주의’,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발전과 함께 꽃핀 기하추상 운동을 살펴보는 ‘구성주의에서 옵아트까지’ 등이다. 전체 맥락을 먼저 이해한 뒤 1,2층을 둘러보면 남미 현대미술을 개괄해보는 데 크게 부족함이 없다. 남미 벽화운동의 선구자로 통하는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은 전시 초입에서부터 눈길을 끈다. 백인지배자들에 대항해 인디오와 메스티소들의 권익 옹호를 위해 일어난 멕시코 혁명은 삽시간에 새로운 민중예술을 구현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이어졌다. 벽화는 당시 변혁운동의 일환이었던 것. 옥수수 가루를 파는 멕시코 노동자 계급의 여인을 그린 디에고 리베라의 ‘피놀레 파는 여인’이 대표작이다. 황색의 군복, 청회색의 노동복 등 색채 대비를 통해 힘의 대립관계를 극명히 보여주는 시케이로스의 ‘5월1일 행진’을 비롯해 화폭 가득 굵고 단순한 선이 꿈틀거리는 오로스코의 ‘손’‘죽음과 부활’ 등도 선보인다. 고통스러운 자의식을 초현실주의 화법으로 묘사했던 프리다 칼로의 수채화 ‘코요아칸의 프리다’와 유화 ‘미겔 N. 리라의 초상’, 동글동글한 선으로 대상을 희화화시킨 콜롬비아 초현실주의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시인’ 등도 주목해볼 작품. 가벼운 붓터치보다는 원색을 쓰더라도 장중하고 역동적인 감상을 안긴다는 점이 라틴미술의 전반적인 특징이다. 유럽과 원주민 문화가 결합된 묘한 혼혈정서가 작품 곳곳에 스며 있다는 점도 챙겨볼 만하다 . 기혜경 학예연구사는 “20세기 초반부터 1970년까지의 라틴 대표작들이 엄선됐다.”면서 “식민지배의 경험, 모더니즘과 전통의 충돌과 화해 등을 거친 남미의 현대미술에서 우리의 모습을 성찰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11월9일까지. 성인 1만원, 청소년 8000원, 초등학생 6000원(덕수궁 입장료 포함).(02)368-1414.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필리핀서 한인 일가족 3명 피살

    필리핀 올롱가포시에 살던 한국인 일가족 세 명이 흉기에 찔려 숨졌다. 현지 경찰은 27일 “수도 마닐라에서 서쪽으로 80㎞ 떨어진 울롱가포시 카발란 마을 장모(54·여)씨 집에서 이날 오전 장씨와 딸,10살된 손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손자 1명은 무사했다. 경찰은 “강도들이 에어컨 환기구를 뜯고 내부로 침입해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들은 귀중품을 찾기 위해 서랍을 뜯는 등 집안 곳곳을 뒤진 흔적을 남겼다.”고 말했다. 올롱가포시는 과거 미군 해군기지가 들어서있던 곳이다. 미군 철수 이후 산업도시로 변신했고 현재 한국인들의 진출도 활발한 상태다.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편파보도와 사회분열/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옴부즈맨 칼럼] 편파보도와 사회분열/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대한민국을 한차례 뒤집어 놓았던 광우병 파동과 촛불시위 사태가 무더위와 장마의 계절 속으로 그런대로 사그라지고 있다. 대신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과 일본의 독도 도발 사건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사회 이슈들은 이처럼 한쪽이 다른 쪽을 대체하며 나아가는 법이지만, 광우병과 촛불 사건은 이를 보도하는 언론 문제와 뒤얽혀 뒷맛이 개운치 못하다. 언론들은 제멋대로 편파 보도, 공격 보도를 일삼았고, 사회는 문제의 언론을 사법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모습이 너무 후진적이어서 부끄럽다. 문제의 발단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의 통합을 지향하는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에서 비롯됐다.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국민과 살갑게 대화할 줄 모르는 정치권력은 촛불에 기름을 부은 꼴을 만들었고, 궁극적으로 사회를 분열케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언론들은 사회적 분열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드는 확성기 노릇을 했다. 소위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으로 나뉜 언론들은 더이상 편파보도를 숨기지 않는다.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애시부터 찬반 입장이 먼저 정해지고, 거기에 맞춰 사실과 정보들을 편향적으로 취사선택 편집함으로써 이슈를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가 버린다. 언론의 광우병 보도, 촛불시위 보도에는 저널리즘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 보도, 객관보도의 정신이 실종됐다. 언론들은 사실을 비틀고 축소 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는 의견과 주장이 다른 편에 대해 공격을 쏟아 붓는다. 일부 언론의 공격 저널리즘은 분노와 저주, 비난과 비아냥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동반한다. 감정으로 격해진 언론의 공격 보도는 언론들간의 한바탕 싸움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시민집단간의 분열적 다툼으로 비화된다. 광우병 보도를 놓고 MBC PD수첩과 이른바 조·중·동 신문이 한바탕 기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결국 편파적 언론들의 네탓 싸움에 불과하다. 정파적으로 편이 갈라진 언론들의 편파 보도는 지금 대한민국 사회를 심각하게 분열시키고 있다. 보수집단은 진보언론을, 진보집단은 보수언론에 대해 불신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서울신문은 지난주 창간 104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언론의 이념적 정파적 편향 조건을 경험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극복하기도 했던 서울신문은 이제 객관과 공정 언론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최근 서울신문의 광우병과 촛불시위 보도만 보아도 객관과 균형을 위해 애쓴 흔적을 엿볼 수 있다. PD수첩 관련 보도는 ‘방통심의위 결정, 해명방송 임박,PD수첩 수사 이번주 ‘분수령’’(7월15일자 9면),‘한총리 PD수첩에 손배 검토’(7월19일자 2면),‘여야 국회 긴급현안질의 무게중심 이동, 쇠고기 잠잠 촛불-PD수첩 공방’(7월19일자 4면),‘MBC,PD수첩 징계수용? 불복?’(7월19일자 9면) 등의 기사에서 사태의 추이를 객관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또한 7월18일자 9면 ‘언론자유 침해 vs MBC 신뢰 추락’,‘與6 대 野3 방통심의위원 중립 논란’ 기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16일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관련 방송에 대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란 중징계 결정을 내린 데 대한 사회적 논란을 균형감 있게 보도하고 있다.7월17일 ‘PD수첩, 완벽하진 않지만 왜곡없다고?’ 사설은 PD 수첩이 왜곡 편파 보도의 문제를 제대로 시인하지 않고 있는 점에 대해 “PD수첩 제작진의 자질을 의심하게 된다.”며 따끔하게 질타하고 있다. 편파와 분열의 언론 환경에서 객관과 공정과 사회 통합을 지향하는 정론지의 길을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104년의 전통과 역사를 근거로 하여 서울신문이 혼탁한 이 시대의 정론지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 SBS ‘일지매’ 기말고사 시험문제로 출제

    SBS ‘일지매’ 기말고사 시험문제로 출제

    SBS 수목드라마 ‘일지매’(극본 최란ㆍ연출 이용석)가 각종 시험문제와 퀴즈에 등장한 사실이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진행된 중고등학교 기말고사 시험문제를 비롯해 2008 정보처리기사, 그리고 심지어 KBS 퀴즈프로그램인 ‘퀴즈 대한민국’에서도 ‘일지매’가 등장한 것. 우선 7월 초 한 고등학교에서 진행된 기말고사의 작문문제에서 ‘일지매’가 등장해 즐거움을 선사했다. 역시 모 학교 기말고사 도덕 시험에서는 ‘다음 중 공동체(?) 운동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라는 문제에서 ‘의식개혁운동’,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일지매’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한 학교의 사회 시험 중 옳은 말을 한 사람을 골라야 하는 문제에서는 보기로 ‘일지매’ 주인공인 일지매와 시후, 은채, 겸이, 봉순이 등장해 각각 자신의 입장을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고등학교 문제와 더불어 7월 초에 ‘데이터베이스’, ‘전자계산기구조’, ‘소프트웨어공학’ 등이 문제로 출제된 2008년 제 2회 정보처리기사 시험에서 등장한 회사이름도 ‘일지매’였다. 이외에도 지난달 1일 방송된 KBS ‘퀴즈 대한민국’ 279회 방송 분중 2라운드 4단계에서도 일지매 관련 문제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조선후기의 도적 일지매는 자신이 다녀간 흔적을 ‘이 꽃’그림으로 대신했다 해서 일지매라 이름 붙여졌는데 사군자 중 하나인 이것은?’이라는 문제가 출제되었고 출연자는 ‘매화’라는 정답을 쉽게 맞췄다. 드라마 관계자는 “‘일지매’가 방송되자마자 이렇게 각종 시험문제에까지 등장한 걸 보면 역시 ‘일지매’는 국민드라마”라며 “이제 방송 4회분이 남았는데 잘 마무리해서 시청자들 가슴에 좋은 드라마로 새겨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제공=SBS 서울신문NTN 김경민 기자 star@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내가 바로 으뜸 공무원] 노원구 김석진·황인옥씨

    [내가 바로 으뜸 공무원] 노원구 김석진·황인옥씨

    지난주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노원구청장실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노원구와 관련한 소유권 보존등기 말소소송 사건을 맡고 있다.’는 강민구 부장판사가 보낸 편지였다. 내용은 투철한 사명감에 불타는 어느 공무원의 소개였다. 강 부장판사는 “국가 소송을 마치 자기의 재산 소송처럼 준비하는 구청 공무원들의 지극정성에 감동했다.”면서 “소송의 승패를 떠나 널리 알려야겠다.”고 펜을 잡은 이유를 설명했다. 또 이런 직원을 아랫사람으로 둔 이노근 구청장의 인복이 부럽다고도 했다. 편지에 언급된 주인공은 건설관리과에 근무하는 김석진(34)씨와 재무과에서 일하는 황인옥(39) 주임. 이들이 지난해 3월부터 맡고 있는 ‘소유권 보존등기 말소소송’은 ‘무주 부동산(주인 없는 토지)’ 3곳(397㎡)을 공고를 통해 국가 소유권으로 이전해 일반에 매각했지만 원주인의 후손이 나타나 토지를 다시 돌려달라는 내용이다. 원주인의 후손은 해당 토지가 1910년대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토지조사부에 증조부가 소유자로 되어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2심 담당판사 구청장에게 칭찬편지 소송이 진행되면서 원고의 주장을 깨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 전쟁으로 해방 이전의 지적 관련 공부와 등기부가 소실되거나 사라져 당초 국가 소유라는 것을 입증하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소송에서 지면 토지뿐 아니라 사용료 등의 관련 비용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40억원가량을 배상해야 한다. 황 주임과 김씨는 먼저 정부 부처의 기록보관소를 뒤지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국가 소유였거나 매입했다는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다른 업무도 맡고 있어 업무 틈틈이 시간을 냈다. 그동안 기록을 찾아 방문한 곳만도 국가기록원과 철도청, 국세청, 한국자산관리공사, 서울상업등기소와 각급 종합도서관 등이었다. 짧게는 한 나절, 길게는 열흘 이상이 걸렸다. 그러다보니 어떤 곳에서는 본의 아니게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김씨는 “해방 이전 서류를 찾는다며 바쁜 담당자에게 수시로 전화하고, 어떤 때는 서고에서 하루종일 서류를 찾고 있으니 신경이 쓰여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오히려 상대방을 두둔하기도 했다. 끈질기게 매달린 결과, 마침내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다. 서울상업등기소에 보관 중이던 1942년 당시 ‘동양운모광업회사’라는 법인 등기부 등본이었다. 해당 토지가 여러 필지로 분할되기 전 이미 처분된 정황이 나타나 지난 1월 1심에서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현재 2심 진행… 새 증거 찾기 발품 현재 원고가 항고해 2심이 진행 중이다. 지난 4일 1차 변론이 있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주어진 10분 안에 담당 판사를 설득시키기 위해 추가로 찾아낸 증거를 6장의 도면에 알기 쉽게 표시해 변론했다. 김씨 등은 “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인데 담당 부장판사님의 칭찬이 과분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건과 같은 토지 소송은 해방 전후의 혼란기와 한국 전쟁까지 겹쳐 있어 소유권 변동을 추적하기가 어렵다.”면서 “소유권 이전을 증명할 명확한 증거는 없었지만 그 땅과 연관지을 수 있는 작은 사실들을 수집해 전체적인 사실을 유추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라 조심스럽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거리 미술관 속으로] (69) 대학로 조각공원

    [거리 미술관 속으로] (69) 대학로 조각공원

    대학가는 책방이 사라진 쇼핑거리로 변했고, 예술인의 열정보다는 외국계 커피전문점과 유흥문화를 찾는 것이 더 쉽다. 그나마 벽 곳곳에 붙은 공연포스터와 거리에 놓인 조형물들이 문화·예술의 거리, 대학로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종로구가 2005년에 꾸민 ‘대학로 조각공원’이다. 혜화사거리에서 이화동 사거리까지, 마로니에공원쪽 보행로 1㎞ 구간에 조형물을 설치한 조각공원은 거리를 미술관으로 꾸미는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의 원조격이다. 종로구는 당시 5개월에 걸쳐 공모전을 진행했다.‘내일’을 주제로 국내외 작가들이 출품한 작품 436점 중 25점을 선정해 이곳에 늘어 놓은 조형물들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오가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놀이거리이다. 더러워서 피하는 ‘똥’이 이곳에선 만남의 장소로 통한다.‘엉덩이 이야기’ 정도로 해석되는 정진아 작가의 ‘더 푸프 테일(The Poop Tale)’이다. 크고 작은 세 덩이의 인분(人糞)을 초록, 파랑, 빨강, 주황 등 색색의 유리타일로 장식했다. 거부감보다는 친근감이 느껴지고, 앉아 쉴 수 있는 기능까지 갖고 있어 지역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장진연 작가의 ‘뉴스 페이퍼(News Paper)´와 이희정 작가의 ‘당신의 자리’, 김경민 작가의 ‘나른한 오후’ 등도 보는 순간 디지털카메라를 꺼내들게 한다. 투명인간이 옷을 입은 듯한 모양의 뉴스 페이퍼는 당초 게시판용으로 설치된 것이지만 원래의 역할보다는 시선을 끄는 조형물의 기능이 더 크다. 이곳을 찾은 이들은 대리석에 누워 있는 청동인간(나른한 오후)을 따라 널브러지거나, 널빤지 양 끝에 앉은 사람(당신의 자리)을 흉내내며 쉬기도 하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도 한다. 이화동 사거리쪽에 늘어선 조형물은 아이들의 놀이공간이다.‘애벌레 터널’(이병호 작가),‘토끼와 거북이’(윤기호 작가),‘산책’(이은경 작가) 등을 두고 아이들은 원통 속을 통과하거나 조형물을 타며 논다. 이제 조형물들은 대학로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몇몇 조형물들이 홍보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은 광고판이나 낙서판으로 전락해 버린 데 대한 아쉬움은 남아 있다.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승무원 출신 가수 이라,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

    승무원 출신 가수 이라,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

    가수 이라(본명 엄이라ㆍ25)가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해 4월 정규 1집을 발매하고 타이틀곡 ‘이별다짐’으로 활동한 이라는 스튜어디스 출신이라는 이력으로 화제를 모았다. 故이라는 지난 6일 오전 11시께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서울 삼성동 서울의료원으로 옮겨졌다. 유족 측은 고인이 자살할 이유가 없었고 타살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 자연사로 추정하고 있다. 유족은 정확한 사인을 위해 서울 의료원에 정밀검사를 의뢰한 상태다. 故이라의 시신은 같은 병원 영안실 8호실에 안치됐으며 8일 오후 1시 발인한다. 故이라는 스튜어디스로 근무하던 중 만난 프로듀서를 통해 가수로 데뷔했으며, 데뷔한 후에는 ‘샤인’으로 음반을 발매했지만 동명의 그룹이 있어 ‘이라’라는 예명으로 활동해 왔다. 서울신문NTN 김경민 기자 star@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LG 국내최대 태양광발전소 가동

    LG 국내최대 태양광발전소 가동

    정부가 사실상 3차 오일쇼크를 선언한 6일, 충남 태안의 태양광발전소를 찾았다. 단일규모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14㎿급이다.LG그룹이 지어 지난달 말 가동에 들어갔다. 태안에 도착하니 ‘기름사고’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9만평 너른 땅에 직사각형 모양의 태양전지 모듈들이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모듈 하나의 크기는 70인치 PDP 패널만 했다. 가격은 개당 80만원. 태양광발전소는 모듈 7만 7000개로 구성됐다. 이곳에서 생산된 전력은 연간 19GW. 전체 태안 가구(2만가구)의 절반에 가까운 8000가구가 1년동안 쓸 수 있는 양이다. 강풍(순간초속 60m)과 지진(진도 5)에 견딜 수 있게 설계돼 태풍 ‘매미’가 다시 와도 끄떡없다. 생산된 전기는 한국전력공사에 1㎾당 677원에 판다. 전력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시세는 ㎾당 100원 수준이다. 차액 577원은 정부 예산으로 메운다. 정부가 이렇듯 보조금을 대가며 태양광을 키우는 것은 물론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구본무 회장 자택 비싼 전기요금이 계기 연간 예상 매출액은 130억원이다. 이산화탄소(1만 2000t) 배출권을 팔아 추가로 올릴 수 있는 수익 3억원(28만 5000달러)을 보태도 투자비 1060억원에는 한참 못 미친다.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려면 최소한 8년은 걸린다는 계산이다. 그렇다면 LG는 왜 이런 사업을 시작했을까. 계기는 오너의 관심이었다. 구본무 회장은 서울 한남동 자택의 전기요금이 너무 많이 나오자 대체에너지에 관심갖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기후여건과 LG의 기술력을 감안했을 때 그나마 도전 가능한 사업이 태양광이었다. 구 회장은 한남동 자택에 액화천연가스(LNG)를 이용한 소규모 대체에너지 시설도 설치 중이다. 태양광 발전의 최적온도는 25℃이다. 사막처럼 너무 뜨거우면 오히려 효율이 떨어진다. 적당히 열을 식힐 수 있는 바람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햇빛과 바람이 좋은 태안이 LG에 낙점된 이유다. 이곳 태양전지 셀의 효율은 17∼19%. 태양빛 100개를 받아 이중 17∼19개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한다는 의미다. 국내에서는 높은 수준이지만 셀 분야 세계 1위인 일본 샤프(25%대)에는 못 미친다. ●정부보조금 삭감에 추가투자 보류 LG는 보령 등에 태양광시설을 추가로 지으려던 투자계획을 보류했다. 정부가 지난 5월 3㎿ 이상 대형사업자의 태양전기 매입가격을 30%(677원→472원) 삭감했기 때문이다. 발전소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안성덕 LG솔라에너지 대표는 “애초 돈벌려고 시작한 사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400원대 가격에는 적자가 너무 심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양전지의 핵심소재인 폴리실리콘 가격만 해도 1년새 10배(㎏당 40달러→400달러)나 뛰었다. 전세계적으로 대체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면서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국산화가 시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LG는 내년까지 실리콘(LG화학)과 셀·모듈(LG전자) 자립을 달성, 수직 계열화를 완성한다는 목표다. 이렇게 되면 소재에서 발전소까지 ‘태양광 턴키 수출’이 가능해진다. 태안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대한민국 60돌-미래로 세계로] ‘명성황후’ ‘난타’ 세계가 감동…변방서 중심으로

    [대한민국 60돌-미래로 세계로] ‘명성황후’ ‘난타’ 세계가 감동…변방서 중심으로

    20년 전 신문 문화면에 그야말로 웃지 못할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뮤지컬 ‘캣츠’가 원작자와 계약도 하지 않고 공연을 하다 도중에 막을 내려야 했던 ‘초라한’ 뉴스다. 지금 돌아보면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해프닝이다. 하지만 거꾸로, 강산이 두 번 바뀐 뒤 국내 순수 창작 뮤지컬이 관객 100만명 동원 기록을 세우고 있을 거란 상상을 그 시절 사람들은 감히 할 수나 있었을까. 지난 60년을 돌아보자면 문화는 어느 순간에나 푸른 비늘을 튕기는 ‘생물’이었다. 한국 사회 어느 분야보다 더 뚜렷이 진화의 흔적을 읽을 수 있는 쪽이 문화계였다. ●문학, 정부 수립후 세대간 대립 초점 건국 60년 문화계를 돌아볼 때 시대 분위기에 가장 민감하고 치열하게 반응한 분야는 문학이었다. 해방공간에서 그 양상은 두드러졌다. 좌익·우익 문학으로 분열돼 있던 문단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세대간 대립으로 초점을 바꿨다.1954년 예술원(藝術院)이 발족한 이후 ‘현대문학’‘자유문학’‘사상계’ 등 문예지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문학이 시대적 발언을 가장 왕성하게 했던 시기는 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1960년대 들어 4·19혁명 등 정치적 혼돈을 겪으면서 현실참여 문제는 자연스럽게 문단의 최대 이슈가 됐다. 연극무대를 중심으로 공연계가 괄목할만한 내·외적 성장세를 자랑한 것은 1980년대였다.80년대 중반 ‘아가씨와 건달들’‘넌센스’‘캣츠’ 등의 해외 유명 뮤지컬이 공연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 90년대를 관통한 문화계의 코드는 한마디로 ‘세계화’였다. 이 시기에는 장르를 불문하고 내수용이 아닌 국제시장을 겨냥한 기획창작물들이 줄을 이었다. 그 맨앞줄에 섰던 화제작이 97년 아시아 최초로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뮤지컬 ‘명성황후’다. 그해 10월 국내 초연된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는 이후 지금까지 세계 27개국 무대를 순회하는 흥행기록을 세웠다.93년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97년 설치미술가 강익중이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을 각각 받은 것도 90년대 한국 문화계의 ‘사건’으로 꼽힌다. 광주비엔날레, 부산국제영화제 등 굵직한 국제행사들이 잇따라 기획돼 대한민국이 더이상 문화적 변방국이 아님을 웅변한 시기이기도 했다. ●90년대 드라마·가요·영화 등 한류열풍 건국 60년 문화발전사의 꽃은 뭐니뭐니 해도 ‘한류열풍’이다.90년대 말부터 TV드라마, 가요, 영화 등 한국의 대중문화에 동남아 전역이 열광한 ‘한류’바람은 한국문화 세계화의 새로운 전범을 제시했다. 한류열풍과 함께 문화산업의 장밋빛 미래를 엿보게 했던 쪽이 또한 영화계였다.‘태극기 휘날리며’‘실미도’‘왕의 남자’ 등 1000만 관객 동원의 기록을 세운 작품들이 한국영화의 역사를 거듭 고쳐 썼다. 그러나 그 뜨겁던 한류열풍, 한국영화 열기도 몇 년 새 속수무책으로 식어가고 있는 게 2008년 문화계의 안타까운 현주소다. 최근 한국영화 시장의 미래동향을 분석한 삼성경제연구소는 “향후 10년간 한국영화시장은 과거(1996∼2006년) 연평균 성장률 13.2%보다 크게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주말탐방] 꽃동네 봉사자와 수용자들

    [주말탐방] 꽃동네 봉사자와 수용자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지난 19∼20일과 24일 두차례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사회봉사명령을 이행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지난해 12월 4일 동안 이곳에서 법무부의 봉사명령을 수행했다.‘빈자의 마을’인 꽃동네가 재벌들의 사회봉사명령 이행 단골 장소로 떠오르자 이곳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두 회장의 사회봉사명령 이행 장소는 법무부 산하 서울보호관찰소에서 사회복지시설 여러 곳을 추천받아 당사자가 결정한다. 꽃동네를 설립한 오웅진 신부의 업무상횡령 등 혐의와 관련된 재판이 끝나고 잠잠했다 두 회장의 발걸음으로 다시 관심을 끌고 있는 꽃동네를 26일 방문했다. 음성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재벌회장 사회봉사명령 단골마을 이날 오후 꽃동네는 수용자 몇명이 주변을 오갈 뿐 얼마전 ‘재벌들의 출동’과 몇년 전 오 신부 사건 때문에 어수선했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부랑인시설 ‘애덕의 집’ 앞으로 다가가자 시끌시끌한 소리를 들었다. 건물 앞에 앉아있던 한 수용자가 누군가에게 뜬금없이 “돼지야.”라고 소리를 질렀다.“학교종이 땡땡땡….”하면서 괴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이도 있고 “깽깽” 강아지 소리를 질러 깜짝 놀라게 하는 이도 있다. 여성자원봉사자 보나(세례명·38·서울 성북동)씨는 “이곳은 나를 성찰하게 한다.”면서 “이웃을 돕다보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깨닫는다.”고 말했다. 1976년 오웅진 신부가 음성 무극천 다리 밑에 거적을 치고 거지로 살아가던 최귀동 할아버지를 만나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이라며 세운 꽃동네는 현재 국내 최대의 종합사회복지시설로 성장했다. 꽃동네는 음성 본원 말고도 서울, 경기 가평과 강화, 충북 청주와 옥천 등에 시설이 있다. 총 4500명의 수용자가 가운데 2160명이 음성에 있다. 이들을 돌보는 수사, 수녀와 직원들도 800명에 이르고 있다. ●먹이고, 입히고, 받아내고… 24시간 대기 수사, 수녀와 자원봉사자들이 ‘가족’이라고 부르는 수용자는 중증장애우, 부랑인, 정신지체자, 치매환자, 행려병자 등이 있다. 증세별로 시설이 분리돼 있다. 미혼모의 신생아들과 버려진 아이들을 받아 입양시키는 시설도 있다. 자원봉사자 없이는 이들을 돌보는 일은 엄두도 못낸다. 연간 20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온다. 일본, 유럽 등에서도 견학을 온다고 한다. 기꺼이 봉사활동을 하는 외국인도 있다. 봉사활동 점수를 따려고 오는 학생이 90% 이상이기는 하지만, 장기 봉사자 중에는 퇴직한 간호사, 언론인 등 다양하다. 자원봉사자의 수용자 수발은 각양각색이다. 죽음을 앞둔 이들의 노인전문요양원에서는 밥 먹여주기는 물론 대·소변 받고 기저귀 채워주기 등을 하면서 24시간 대기한다. 음악, 미술 등을 통한 치료와 물리치료도 돕는다.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있는 특수학교에는 ‘오미란 오성아 오진호 오아라’ 등 오씨 성 가진 어린이가 많다. 신생아 때 버려져 이름을 모르는 탓에 오 신부의 성을 딴 것이란다. ●횡령은 무죄지만 후원금 줄어 오 신부는 2003년 8월 자기 친·인척 명의로 땅을 사 업무상횡령 혐의로 불구속기소됐으나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 기간에 회비와 후원금은 108억여원에서 97억원으로 줄었다. 회원이 100만명이고, 매월 1000원씩 회비를 내는 사람이 20∼30%다. 박마태오 수사는 “가끔 도둑이 꽃동네에 들어와 건축자재 등을 훔쳐가는 일도 있어 정문에 차량통제용 바리케이드를 설치했지만, 그래도 폐쇄적인 곳은 아니다.”며 웃었다.
  • [한국의 미래 위기를 희망으로] 후손까지 생각하는 독일 물 정책

    [한국의 미래 위기를 희망으로] 후손까지 생각하는 독일 물 정책

    |본(독일) 류지영특파원| “한국에서는 독일이 모든 가정에 빗물탱크를 설치해 물 재활용에 앞장서고 있는 것처럼 소개되나 보죠? 사실 그건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수자원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보다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하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라인강물이 늘 마실 수 있을 만큼 깨끗하다면 아무때나 가져다 쓰면 되잖아요?” 한국의 환경부에 해당하는 독일 본 소재 환경자연보호핵안전부 수자원관리과 디히터 벨트비슈 박사에게 ‘빗물 재활용’으로 잘 알려진 독일의 수자원정책을 묻자 이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독일 수자원정책의 핵심은 ‘수질관리’다.‘수량(水量)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는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 30여년 전만 해도 산업화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줬던 라인강과 독일의 여러 하천들이 이젠 유럽에서 손꼽힐 만큼 깨끗한 물로 변해 생명의 산실이 되고 있다. 낙동강 페놀사태 이후 매년 2조원 넘게 수질개선에 투자해 왔지만 한강 이외에는 별다른 수질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우리로서는 독일의 사례가 좋은 교과서가 되고 있다. ●검사하고 또 검사하고…깐깐하게 정화 독일 수자원정책의 핵심은 언제 어디서든 물을 쓴 사람이 오·폐수를 완벽히 처리해 내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물 이용자에게 2~3단계에 걸쳐 폐수처리를 요구하고, 수질검사를 실시한다. 공장의 경우 폐수를 중앙하수처리장(주로 생물학적 처리 담당)에 보내기 전 반드시 자체 정화시설(생화학적 처리 담당)을 거치도록 해 오염물질의 95% 이상을 제거해야 한다. 정전이나 화재 등 비상사태 발생시 폐수가 공장 정화처리장을 거치지 않고 중앙처리장으로 곧바로 흘러가는 것을 막아주는 저류조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지난 3월 경북 김천 코오롱유화공장 사태와 같은 독극물 유출사고가 이곳에선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 당국의 공장 방류수 검사도 공장 폐수 처리장 배출구와 처리장 인근 하천에서 별도로 진행된다. 공장 폐수 검사를 통과했더라도 주변 하천 수질검사에서 기준치를 넘거나 독성물질이 발견되면 평소 이 공장이 폐수를 무단 방류한 것으로 간주해 정밀조사에 착수한다. 방류수 검사는 횟수에 상관없이 불시에 이뤄진다. 독일에서는 모든 업종이 50개 직군으로 분류돼 각기 다른 배출기준을 적용받는다. 그러나 유량이 적은 지류나 소하천 주변의 공장에는 예외없이 가장 강력한 수준의 배출기준이 적용된다. 유량이 적은 곳은 미세 오염물질로도 큰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수처리장을 거치지 않은 가축분뇨 등이 뒤섞여 ‘죽음의 하천’이 된 남한강 지류 경안천 같은 곳들을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수질 유지의 핵심은 철저한 상·하수도관 정비 “그냥 마셔도 됩니다. 별도 처리를 하지 않은 여과수거든요.” 프랑크푸르트 인근 그로스시 상수도담당 공무원 잉고 마이어가 건넨 수돗물에는 아무런 냄새도, 찌꺼기도 없다. 수돗물을 틀면 야릇한 염소 냄새와 함께 간혹 수도관 노폐물까지 섞여 나오는 우리로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독일 연방 정부가 지출하는 상하수도 관련 예산 중 70%가량은 노후 상·하수도관 교체에 쓰인다. 수질개선·정화처리 등에 쓰는 비용의 2배가 넘는 금액이다. 노후 상·하수도관을 적시에 교체하면 수돗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가 높아진다는 점을 당국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수질관리와 적극적인 상·하수도관 관리 덕분에 현재 독일 전역의 하수처리율은 95%를 넘어선 상태다. 사람의 힘으로 처리할 수 있는 하수는 모두 처리하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그나마 가장 낫다는 한강유역 하수처리율이 60%선에 불과한 우리로서는 시급히 개선해야 할 대목이다. 독일의 수자원정책은 녹색당이 의회에 진출한 1970년대 본격적으로 골격을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계기로 환경보호가 경제성장보다 더 소중한 가치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벨트비슈 박사는 “수질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해 하수처리비용이 포함된 비싼 수도요금(t당 2.5유로 정도)을 감내하는 독일 국민들의 정신자세가 지금의 수질정책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superryu@seoul.co.kr ■ 케냐 등 북아프리카 온난화로 사막화 “비 언제 왔는지 기억도 안나요” 나일강 수자원 놓고 이집트와 물분쟁 |나이로비·이시올로(케냐) 이재연특파원|‘나일강의 수원(水源)’ 빅토리아 호수와 접한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북쪽으로 500여㎞ 떨어진 외딴 마을 이시올로. 랜드크루저를 타고 붉은 먼지를 날리며 북쪽으로 다시 달리기를 4시간여. 원주민인 삼부루족이 사는 적도 밑의 사막 마릴로 지역이 나타났다. 지평선에 맞닿은 초원은 바싹 말라 검은 빛깔이다. 곳곳의 ‘시즈널 리버(비올 때만 물이 흐르는 냇가)’엔 시뻘건 흙더미만 굽이져 있다. “1994년 큰 가뭄을 겪은 뒤로는 우기에도 비가 오지 않아요.” 마사이족 사촌이라는 삼부루 주민들의 하소연이다. 모래밭에 파놓은 깊이 2m가량의 우물가에 전통복장의 아낙들과 맨발의 아이들 80여명이 둥근 플라스틱 물통을 줄지어 세워놓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삼부루족과 랜딜레족이다. 겨우 발목 깊이의 물이 고여 있는 우물 주변에는 가시돋친 아카시아 울타리가 쳐져 있다. 동물들이 들이닥쳐 물을 마시지 못하도록 해놓은 것이다.1㎞ 주변에 이런 우물 11개가 모여 있다. 이 공동의 우물은 250㎞ 떨어진 마사비트까지 근방에서 유일한 식수원이다. 원래 이 지역 우기는 1년에 두 번.4∼6월 비가 내린 데 이어 10월부터 두 달간 작은 우기가 닥쳤다. 하지만 올들어선 4월에 닷새 정도 이슬비가 내린 게 전부. 졸졸 흐르던 도랑은 이내 모래바닥 밑으로 흔적을 감춰버렸다. 랜딜레족 펠리나(18·여)는 “제대로 된 비가 언제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면서 “이 우물마저 마르면 그땐 밖에서 물을 사와야 하는데 염소, 낙타젖을 팔아 연명하는 우리로선 너무 벅차다.”고 하소연했다. 이 지역에선 원래 우물 파는 데 장정을 보탠 집들만 물을 쓰는 게 불문율. 하지만 물이 워낙 부족해 남의 집 물을 몰래 길어 가다 싸우는 일도 다반사다. 지난해 10월에는 물을 긷다 랜딜레족과 삼부루족 간에 패싸움으로 3명이 숨졌다. 현재 케냐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은 개간을 위한 삼림 파괴 후유증과 지구온난화로 인해 사막화라는 혹독한 고통을 겪고 있다. 르완다, 콩고, 탄자니아, 우간다,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수단, 이집트 등 아프리카 대륙 10개국을 아우르며 6690㎞를 굽이쳐 흐르는 나일강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다. 강 유역은 한때 찬란한 이집트 문명의 발상지였다. 지금은 극심한 물부족으로 갈등이 끊이지 않는 대표적 물분쟁 지역이 됐다. 케냐도 1인당 연간 담수량이 1000㎥ 미만인 대표적 물 기근 국가지만 현재로선 속수무책이다. 나일강 유역 국가들 모두 극심한 가난과 인구 증가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집트가 나일강에 대한 역사적 기득권을 이유로 수자원의 독점적 사용을 강요해온 탓이 더 크다. 나일강 하류국인 이집트의 경우 강 의존도가 95%나 된다. 지금까지는 나일강 상류국가(케냐, 우간다, 탄자니아)들의 강물 사용량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 나라가 인구 급증으로 인해 댐 건설 등 수자원 확보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이집트와의 물 분쟁이 거세지고 있다. 나일강 유역 10개국은 1999년 ‘나일강유역 구상’(NBI)을 창립했다. 나일강 수자원 분배 비율을 놓고 싸우다 전쟁 직전까지 갔던 이집트와 수단의 전례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모든 국가들이 만족할 만한 해법이 찾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oscal@seoul.co.kr
  • ‘주가조작’ LG 3세 구본호씨 구속

    대우그룹 구명 로비 의혹 등을 수사하고 있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박용석 검사장)는 LG가(家) 방계 3세이자 레드캡투어 대주주 구본호(35)씨를 증권거래법상 사기적 부정거래 및 미공개 정보이용 금지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22일 밝혔다. 검찰은 구씨가 선친과 대학 동문으로 어렸을 적부터 친분을 유지해온 재미교포 사업가 조풍언씨의 자금을 끌어들여 기업체를 인수하고, 마치 외국 금융기관 등이 투자한 것처럼 꾸며 주가를 끌어올리는 수법으로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고 밝혔다. 검찰은 대우그룹 구명로비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우중 전 회장이 대우의 해외 비밀 금융조직인 BFC를 통해 빼돌린 자금 일부가 로비 창구로 지목됐던 조씨를 통해 수차례 세탁된 뒤 구씨의 주가조작에 동원된 흔적을 발견하고 조씨와 구씨의 주가조작 혐의를 밝혀낸 것으로 알려졌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길섶에서] 낡은 유모차/ 최종찬 국제부차장

    남녘 고향의 풀 냄새가 그리워 정을 붙일 수 없던 아파트 9층에 살던 김씨 할머니가 한밤 대학병원 앰뷸런스에 실려 나갔을 때에도 이웃들은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김씨 할머니가 결국 눈을 감았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실려 아파트 9층을 집집마다 노크했을 때에도 이웃들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대신에 천수를 누렸으니 호상(好喪)이라고 말했다. 김씨 할머니가 종일 마을 다니던 아파트 주변 잔디에 세워진 천막에서 밤새워 화투를 치면서도 이웃들은 호상이라고 줄곧 중얼거렸다. 식구들도 덩달아 호상이라며 슬픈 얼굴을 거두어들였다. 김씨 할머니의 운구차가 털털거리며 아파트를 떠나 망우리 공동묘지로 향할 때도 이웃들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대신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식구들과 이웃들이 김씨 할머니의 기억과 흔적을 하나하나 지워나갈 때 1층 경비실의 모퉁이 재활용품 수거 코너엔 유품 하나가 놓여 있었다. 김씨 할머니의 생전의 벗이었던, 아이를 태울 수 없던 낡고 조그마한 유모차가 외롭게 떨고 있었다. 최종찬 국제부차장
  • [10일 TV 하이라이트]

    ●클래식 오디세이(KBS2 밤 12시45분) 그라베마이어 상, 아널드 쇤베르크상 수상.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통영 국제음악제의 상임작곡가 역임. 현재 서울시 교향악단의 상임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씨를 만난다.2007년 뮌헨 오페라페스티벌의 개막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초연 현장도 감상해본다.   ●다큐 프라임(EBS 오후 11시10분) 중국의 한적한 국경마을에는 중국 농부에게 팔려온 북한 여성들이 살고 있다.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그 아이들은 호적을 갖지도 못한다. 자녀를 어머니의 호적에 등록하는 중국의 호적제도 때문에 도망자 신분인 탈북여성을 어머니로 둔 아이들은 그 어디에도 존재의 흔적을 남길 수가 없는 처지인데….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7시30분) 대학가 라이브 카페에서 감미로운 재즈 기타공연을 선보이는 하타슈지. 날마다 그의 무대를 찾아오는 이가 있으니, 다름아닌 부인 현주씨다. 달라도 너무 달랐던 두 사람이 부부로 산 지도 벌써 스무해가 됐다. 자신들을 쏙 빼닮은 네 아이들과 알콩달콩 재밌게 살아가는 하타슈지 부부를 만나본다.   ●애자언니 민자(SBS 오후 7시20분) 채린은 세 아에게 20여년 전 자신의 어머니들이 한 남자를 두고 운명이 바뀌었는데, 자신들까지 한 남자를 두고 이렇게 된 걸 안다면 민자와 애자가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거라며 어른들께는 비밀로 하자고 부탁한다. 한편, 채린은 하진을 만나 반지를 돌려주고는 답답해하는 그를 뒤로하고 돌아선다.   ●흔들리지마(MBC 오전 7시50분) 병원을 찾은 강필은 민정에게 살아나 줘서 고맙다며 마음을 표현한다. 민정은 강필에게 자기가 손을 내밀면 잡아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민정의 질문에 강필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민정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며 돌아가라고 말한다. 동혁은 영아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고 찾아나서기로 결심한다.   ●YTN 스페셜(YTN 오전 10시40분) 2005년 9월, 홍콩 디즈니랜드가 문을 열었다. 홍콩의 토종 해양공원인 오션파크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예상했지만,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다. 디즈니랜드가 매년 적자를 내는 동안 오션파크의 입장객은 꾸준히 늘어 지난해에는 개장 이래 최대의 흑자를 냈다. 오션파크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찾았다.
  • “53년만에 찾은 아버지… 묘소 지켜드릴래요”

    “53년만에 찾은 아버지… 묘소 지켜드릴래요”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 데 53년이 걸렸습니다. 너무 늦게 찾아 오래도록 옆에서 모시겠습니다.” 현충일인 6일 부산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의 한 묘비 앞에 은발의 한 중년신사가 깊은 상념에 잠겨 있었다. 캐나다인 레오 드메이(55). 그는 작은 목소리로 아버지 이름을 부르며 묘비를 어루만졌다.50여년간 잊고 지냈던 생부 ‘앙드레 아델라드 레짐발드’의 묘비다. ●태어난지 보름만에 의사 집안에 입양 레짐발드는 1952년 9월5일 한국전쟁에 참전한 지 두 달도 안 돼 전사했다. 당시 나이 20세. 이 와중에 드메이는 태어난 지 보름여 만에 의사 집안에 입양됐다. 그의 아버지는 파병 당시 어머니와 약혼한 상태였다. 드메이는 이후 양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고, 공직생활을 하며 가정도 꾸렸다. 하지만 생부에 관해서는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어 잊고 지냈다. 2년 전 어느 날, 캐나다에 살던 그에게 입양기관에서 전화가 왔다. 친어머니가 그를 찾고 있다는 전화였다. 친어머니를 만난 그는 아버지의 이름과 그가 한국전에서 전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生父와의 질긴 인연의 끈 드메이는 곧바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캐나다 국회의사당과 문서보관소를 뒤져 사망일, 군번 등 전사 내역을 찾아냈고 부산 유엔묘지에 아버지가 묻혀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같은 노력 끝에 그는 지난해 4월 캐나다 한국전 참전용사 재방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국을 찾았다. 처음 바라본 유엔기념공원의 아버지 영전에 장미꽃을 바쳤고, 판문점을 찾아서는 아버지가 전사한 ‘355고지’를 먼발치에서 망원경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드메이는 “자신과 아버지간에 보이지 않는 질긴 인연의 끈이 있었다.”며 아버지를 찾은 일화도 소개했다. 우연과 행운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의 흔적을 찾던 중 캐나다의 한 선술집에서 ‘KOREAN WAR VETERANS(한국전 참전용사)’라는 글씨가 적힌 모자를 쓴 70대 노신사를 발견했다. 이끌리듯 그에게 다가갔고, 한국전 참전용사인지, 그렇다면 ‘앙드레 아델라드 레짐발드’란 사람을 아는지 물었다. 놀랍게도 그 노신사는 아버지의 부대 지휘관이었고 아버지 시신을 수습해 후방으로 옮겨 준 은인이었다. 그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유엔공원 옆에서 영어 가르치며 생활 그는 아버지를 지근에서 모시기로 하고 지난해 11월 캐나다 생활을 접고 한국에 들어왔다. 지금은 아버지가 모셔진 유엔공원 인근의 한 영어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생활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는 공원관리처 직원을 도와 영문번역과 교정일을 거들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 5∼6년간 부산에 머물며 묘소를 돌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토록 찾던 아버지를 늦게나마 지근에서 모셔야 하겠다는 생각에서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통일신라시대 중원경 비밀 벗긴다

    통일신라시대 중원경 비밀 벗긴다

    충북 충주를 중심으로 하는 중원(中原)지역은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지리적 요충으로 삼국의 각축장이었다. 장미산성을 쌓은 한성백제가 물러난 뒤 고구려는 국원성을 설치하고 5세기 중원고구려비를 남겼다. 신라의 진흥왕은 557년 국원성을 빼앗아 국원소경을 두었고, 삼국통일 이후 경덕왕은 742년 오소경(五小京)의 하나로 중원경을 이곳에 설치했다. ●삼국시대 유적 반경 2㎞에 몰려 있어 특히 충주시 가금면에는 반경 2㎞도 되지 않는 좁은 지역에 장미산성과 중원고구려비, 그리고 중원경의 존재와 연결지을 수 있는 통일신라시대 7층석탑인 중앙탑이 한데 몰려 있다. 따라서 학계는 국원성과 국원소경, 중원경의 행정·군사적인 중심지인 치소(治所)도 현재의 충주 시가지와는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는 이 지역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학계는 물론 지역민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는 중원경 등의 치소를 찾는 작업이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의 출범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중원문화재연구소는 삼국시대 이후 지방행정 치소를 밝히는 것을 포함한 ‘고대 중원경 종합학술연구’에 최대 역점을 두고 있다. 연구소는 당장 가을부터 고구려의 국원성과 통일신라의 중원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원고구려비와 중앙탑 주변을 각각 시굴조사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이 지역 2만 6000㎡를 대상으로 지하에 유구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물리탐사를 벌였다. 그 결과 중앙탑 북쪽의 탑평리에서는 5칸 이상의 대형 건물터를 비롯한 인공 구조물의 하부구조가 대규모로 남아있는 흔적을 찾아냈다. 중앙탑 주변에서는 1992∼1993년 한국교원대박물관의 발굴조사에서도 규모가 큰 건물터가 여럿 확인되었고,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토기와 기와조각도 상당수 나왔다. 실제로 중원고구려비가 있는 용전리에서 중앙탑이 있는 탑평리에 이르는 남북 2.1㎞, 동서 1.6㎞의 남한강 주변을 돌아보면 탑평(塔坪)이라는 땅이름처럼 반듯하고 넓은 지역으로 상당한 규모의 도시가 들어서기에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누암리·하구암리서 신라 양식 무덤 확인 연구소는 특히 탑평의 뒷산에 해당하는 누암리와 하구암리 일대에서 신라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이 대규모로 확인된 것은 상당한 인구를 가지고 있었을 중원경의 존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누암리고분군에서는 1989∼1991년 발굴조사에서 모두 38기의 신라고분이 발견된 데 이어 후속 지표조사에서는 봉토 직경이 11m 안팎인 대형 무덤 40기를 포함하여 모두 271기의 고분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웃한 하구암리고분군에도 400기가 넘는 고분이 밀집 분포하고 있으며, 축조연대를 비롯하여 무덤의 양식과 유물의 출토양상이 모두 누암리와 거의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 신창수 중원문화재연구소장은 4일 “중원경 등의 치소를 확인하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은 최근 이 지역의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은 물론 지역의 최고 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의 존재를 하루빨리 밝혀내지 못한다면 자칫 개발의 삽날에 영원히 묻힐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충주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출범 6개월 맞은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中原문화’ 정체성 확립 주도적 역할 기대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경주와 부여, 가야(창원), 나주에 이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5번째 지역 연구소로 지난해 12월11일 출범했다. 중원연구소는 이른바 중원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활용가치를 창출하는 데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연구기관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지역에서는 ‘지역문화’ 차원에서 연구되었던 중원문화가 국가차원에서 조사·발굴·연구된다는 점에서 연구소의 출범을 누구보다 크게 반겼다. 이에 부응하듯 중원연구소는 중원경의 치소(治所)를 찾는 시굴조사와 고분군 정밀실태조사,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실태조사를 비롯한 학술 연구의 기반 조성 사업에 나서고 있다. 올해 ‘중원의 산성’을 발간하고, 중원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주제별 학술총서도 연차적으로 발간하는 등 지역 문화자원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를 체계적으로 축적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아직은 소장과 학예연구실장 등 2명의 학예연구관과 2명의 학예연구사 등 정원이 9명에 불과해 의욕만큼 현실은 따라주지 않고 있다. 충주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화성에 물 존재 가능성 커졌다

    화성에 물이 존재함을 뒷받침할 만한 새로운 증거가 제시됐다. 화성탐사 로봇 ‘피닉스’가 얼음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보내온 데 따른 것이다. 피닉스는 지난달 25일 화성 북극 평원지대인 일명 ‘얼음사막’에 안착한 뒤 생명체 흔적을 탐사 중이다. AP통신은 1일 지름 90㎝가량의 얼음덩어리로 보이는 물체가 피닉스 로봇의 다리 세 개 중 하나에 깔려 있는 사진이 지난 31일 전송됐다고 전했다. 워싱턴대 과학자인 레이 아비드슨 교수는 “화성 착륙 당시 피닉스의 자세제어로켓이 얼음을 덮고 있던 먼지층을 날려 보내면서 얼음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피닉스호 수석조사관인 애리조나 대학 과학자 피터 스미스는 “물체의 깊이가 30∼50㎝나 돼 작업이 힘들어질까봐 걱정했다.”면서 “다행히 굴착작업이 쉽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물질이 얼음인지 여부를 가려 내는 데는 수 주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초 흑백 사진에 이어 전송된 컬러 근접 사진 분석 결과 얼음이라는 과학자들의 확신이 높아졌다고 통신은 전했다. 그 동안 과학자들은 화성에서 얼음 흔적을 찾아낼 수 있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물의 존재는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했는지 판단하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피닉스에 딸린 2.4m 길이의 로봇팔은 며칠 내에 먼지와 얼음층 굴착작업을 시작한다. 발굴된 물체들은 가열 후 얼음 여부를 판명하기 위한 가스성분 테스트를 거칠 예정이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아름다운 간판 2008] (3)간판, 예술로 태어나다

    [아름다운 간판 2008] (3)간판, 예술로 태어나다

    현재 전국의 간판 434만개 중 절반이 넘는 220만개가 불법이다. 하지만 업주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현행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따르면 3층 이하 업소만 간판을 달 수 있다. 고층 건물이 많은 상업지역에서 4층 이상 업소는 불법·편법을 동원해 간판을 내걸 수밖에 없다. 이는 도심지역 대부분이 안고 있는 공통의 문제다. 획일적 규제가 범법자를 양산하고, 간판 크기·갯수에 대한 집착 등 왜곡된 인식도 낳고 있다. 예컨대 낯선 사람이 드물어 ‘안면 장사’가 일반적인 아파트단지 내 상가들조차 간판을 덕지덕지 붙이는 이율배반적인 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다. ●군포, 도시민의 놀이터를 리모델링하다 경기 군포시 산본은 정부의 200만호 주택공급 정책에 따라 분당·평촌·일산·중동 등과 함께 1990년대 초반 조성된 ‘1세대’ 신도시다. 산본역 주변 중심상업지역 11만㎡는 14만명에 이르는 산본 주민들의 ‘놀이터’나 다름없다. 때문에 이곳에 1500여 업소가 밀집해 과당 경쟁이 빚어지면서 건물은 5000개가 넘는 간판으로 도배됐다. 미관 저해는 물론, 안전사고에도 무방비로 노출됐다. 노점상까지 몰리며 공간의 질은 추락했다. 이같은 ‘바닥 경험’은 변화를 이끌어냈다.2000년부터 도시 미관을 좀먹는 노점상을 모두 없앴다. 노점상이 사라지자, 신도시 조성 이후 10여년간 방치되던 상업지역의 치부가 드러났다. 이에 2006년에는 가로수·가로등·보도블록 등 보행자를 위한 환경을 ‘업그레이드’했다. 가로 환경이 바뀌자 이번에는 건물을 뒤덮고 있던 볼썽사나운 간판이 ‘눈엣가시’가 됐다. 지난해 4월부터 중심상업지역 전체에 대한 간판 정비가 이뤄지고 있는 이유다. 군포시 관계자는 “간판 정비를 위한 디자인 공모 당시 17개 업체가 신청했지만, 현장설명을 들은 뒤 무모하다고 판단한 12개 업체가 공모를 자진 포기했을 정도로 쉽지 않았다.”면서 “간판의 크기와 개수 등을 엄격히 제한하는 만큼 업주들의 반발도 거셌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시는 조례를 개정, 간판을 내걸 수 있는 층수를 기존 3층에서 5층 이하로 완화했다. 높은 층일수록 간판을 크게 해 가독성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 결과, 지금은 전체 8층 이상 64개 건물 가운데 80%인 51개 건물에서 네온사인 등 혼란스런 간판은 사라지고 산뜻한 디자인의 입체형 간판으로 대체됐다. 또 간판 철거 후 지저분한 흔적을 제거하기 위해 건물 보수도 병행됐다. 나아가 간판 정비로 거리가 어두워진 만큼 보행자를 위한 야간경관조명을 올해 말까지 설치할 계획이다. 이 관계자는 “업주들도 간판을 남보다 더 크고 더 많이 달아야 장사가 잘 된다는 인식을 버려야 하지만, 그에 앞서 간판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의왕, 예술의 옷을 입히다 서울외곽순환도로 평촌IC에서 빠져나오면 의왕시 갈미상업지구와 마주한다. 평촌신도시와 갈미택지개발지구 등을 끼고 있는 탓에 2002년 상권 형성과 함께 현란한 네온사인과 초대형 원색 간판도 밀물처럼 쏟아져 흔하디 흔한 ‘유흥가’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간판 정비가 이뤄지면서 지금은 ‘별천지’가 됐다. 우선 지구를 6개 블록으로 나눈 뒤 세계적인 화가인 피카소·고흐·고갱·샤갈·마티스·미로 등 6명의 이름을 붙여 차별화했다. 각 블록에는 화가의 대표 작품을 응용한 ‘거리정보조형물’이 곳곳에 세워졌다. 또 기존 판류형 간판은 모두 떼내고, 건물 외벽의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간판게시틀’ 위에 디자인을 강조한 입체형 간판이 설치됐다. 업소별 간판 수가 줄어든 대신, 이용자들이 업소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건물별로 산뜻하게 디자인한 ‘안내표지판’ 등이 들어섰다. 때문에 업소의 이름이나 정확한 위치를 몰라도 거리와 건물 등에 대한 정보만 있으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의왕시 관계자는 “불법 간판이 양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4층 이상 업소에도 간판을 허용했다.”면서 “밋밋하고 획일적인 간판을 없애고 세련되고 개성있는 간판을 설치, 거리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업소의 광고 효과를 높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 간판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다. 일부 업소는 여전히 창문 등에 너저분한 글씨를 새겨넣어 ‘옥에 티’로 남아 있다. 이곳에서 가계를 운영 중인 김모씨는 “간판이 바뀌어서 보기는 좋지만, 홍보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용객들의 시각은 다르다. 이모씨는 “간판이 바뀌니 음식을 잘할 것 같고, 청결할 것 같은 느낌”이라면서 “더 크고 화려한 간판을 내건다고 눈에 더 잘 들어오는 것은 아니며,‘간판 끼리의 경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군포·의왕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서울의 풍경] 서울 성곽 따라 걷기

    [서울의 풍경] 서울 성곽 따라 걷기

    로마와 이스탄불, 베이징 등 동·서양 고도(古都)가 그렇듯 서울 역시 견고한 석벽으로 경계를 두른 성곽도시다. 성동(城東), 성북(城北)이라는 지금의 행정구역 명칭도 ‘도성(都城)’이라 불리던 조선 왕도(王都)의 옛 성곽에서 유래했다. 조선 태조(1396년)·세종(1422년)·숙종(1703년) 3대에 걸쳐 축조된 왕도의 성곽은 서울에 남아 있는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건립연대는 경복궁이 1년 앞서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흥선대원군 시절 중건(重建)한 탓에 건축적 연륜이 서울 성곽에 미치지 못한다. ●북악산 개방 뒤 답사객 늘어 15일 서울시에 따르면 문화재 당국과 자치단체들도 이 같은 서울 성곽의 역사성과 문화적·산업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오랜 기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던 북악산의 전 구간이 개방되면서 성곽을 답사하는 시민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서울 성곽은 서울의 주산(主山)으로 불리는 백악(북악산)에서 시작해 동쪽의 낙산과 남쪽의 목멱산(남산), 서쪽의 인왕산을 돌아 다시 백악의 능선에서 끝을 맺는다. 이른바 ‘내사산(內四山)’을 둘러 단단한 방벽을 두른 것이다. 둘레가 18㎞를 넘는다. 일제 36년 등을 거치며 많은 구간이 헐리고 훼손됐지만 축성 당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지형의 오르내림에 순응해 차곡차곡 돌을 쌓아올린 능선 구간은 은근하면서도 빼어난 곡선미를 자랑한다. 능선 구간은 시가지 확장의 영향을 받지 않은 데다 1970년대 후반에 펼쳐진 복원사업 덕분에 성곽 상태가 양호하다. 따라서 성곽답사는 능선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사직터널 위 권율 장군 집터를 출발해 창의문과 숙정문을 거쳐 서울과학고 뒤쪽으로 내려오는 인왕·북악산 구간은 산세가 빼어나고 시내 조망도 탁월해 답사와 산행을 함께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이곳에선 성곽 축조 일시와 책임자 이름 등을 석벽에 새겨놓은 ‘각자(刻字)’는 물론 태조·세종·숙종대의 성곽 축조방식이 어떻게 다른지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동대문을 출발해 이대부속병원과 낙산 정상을 거쳐 혜화문에 이르는 구간은 경사가 완만하고 거리도 짧아 산책하듯 다녀오기에 그만이다. 탐방로가 잘 정비돼 있어 어린 자녀를 동반하는 데 무리가 없다. 남산 구간은 군데군데 성곽이 끊기고 출입금지 구간이 남아 있지만 접근성이 좋다는 게 장점이다. 장충동 신라호텔 경내도 성곽이 잘 보존된 구간이다.500m 길이의 성곽 주변엔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봄에는 살구와 벚꽃이 만발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찬연하다. ●10∼12시간이면 성곽 일주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하면 전 구간 일주도 가능하다. 성인 걸음으로 10∼12시간 걸린다. 다만 도심의 서대문∼남대문 구간과 광희문∼동대문 구간은 성곽의 흔적을 찾기 어려워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마침 사단법인 ‘문화우리’가 17일 북악산 구간을 답사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오후 1시 혜화문을 출발해 숙정문을 거쳐 창의문에 이르는 4시간 코스다. 풍수지리연구가 김진동씨가 해설자로 동행한다. 문화우리는 다음달에는 일주답사를 계획하고 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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