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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열대표 “개인 유용 안했다” 檢, 보조금 사용처·계좌추적

    최열대표 “개인 유용 안했다” 檢, 보조금 사용처·계좌추적

    환경운동연합의 보조금 횡령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김광준)는 24일 환경련의 공금이 최열 환경재단 대표 명의의 계좌를 통해 거래된 흔적을 발견하고 돈의 사용처를 쫓고 있다. 검찰은 최 대표가 환경련 사무총장을 맡을 당시 개인 명의로 수십개의 계좌가 개설됐고 기업후원금과 보조금을 이 계좌로 받아 사용한 정황을 포착하고 개인적으로 유용한 부분이 있는지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최 대표는 “환경련 설립 당시 임의단체여서 법인 명의 계좌를 개설할 수 없어 내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해 자금을 운용했을 뿐이고 개인적으로 유용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올림픽공원 조각 설치 국내외 작가 10명 기획전

    올림픽공원 조각 설치 국내외 작가 10명 기획전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온나라가 통째로 흥분한 때가 있었다. 그로부터 20년. 그 시간의 흔적을 예술작품들을 빌려 생생히 확인해볼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에 ‘88올림픽 그후 20년’이 와있다.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소마미술관은 88올림픽 2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기획전을 열고 있다. 지난 17일 개막한 전시는 내년 1월11일까지 100여일에 걸쳐 이어질 예정이다. 전시 제목은 ‘8808 아웃사이더 인(Outside In)-밖에서 안으로’.1988년 올림픽공원 안에 조각작품을 설치한 작가들 가운데 10명을 엄선해 그들의 2008년 현재를 보여준다는 의미다. 공원 곳곳에 작품을 설치했던 작가들이 지금, 미술관 안으로 새 작품들을 갖고 들어온 셈이다. 이번에 공원을 다시 찾은 작가는 모두 10명. 국내 작가로는 엄태정·조성묵이 참여했다. 해외 작가들의 명단은 화려하다. 루이스 부르조아, 나이젤 홀, 귄터 워커, 브라이언 헌트, 데니스 오펜하임 등은 생존 작가. 여기에 그동안 세상을 뜬 솔 르윗, 헤수스 라파엘 소토, 조지 리키가 가세했다. 6개 전시관에 나뉘어 선보이는 작품들은 드로잉을 포함해 모두 120여점이다.20년 전 ‘전문’인 금속재료를 쓰지 않고 화강암으로 작업해 화제를 뿌렸던 원로 작가 엄태정에게 세월은 어떻게 흔적을 남겼을까. 알루미늄과 철판 지지대를 이용한 입방체 조각품과 작품 관련한 드로잉들을 내놨다. 의자 작업으로 유명한 조성묵도 예술세계의 변화가 컸다.90년대 후반 국수를 재료로 한 ‘커뮤니케이션’연작을 시도했다. 이번 전시에도 9m짜리 대형 국수 작품을 들고 나왔다. 해외 유명작가들의 대표작을 실내공간에서 줄줄이 대면하는 즐거움은 짜릿하다. 올림픽공원에서 자전거 바퀴들을 모아놓은 것 같은 작품을 본 기억이 있는지? 작품의 주인공은 영국의 세계적인 작가 나이젤 홀. 드로잉을 합해 30여점이 제2전시실을 꽉 채우고 있다. 칼 조각을 내놨던 귄터 워커는 5m가 넘는 방대한 천 작품, 시멘트 벽돌을 쌓아 입방형 모서리를 표현했던 솔 르윗은 미니멀리즘을 보여주는 소품 드로잉들로 작품세계의 스펙트럼이 어떻게 확장돼 왔는지 웅변한다. 리움미술관, 신세계백화점 본점 옥상의 거미 작품으로 더 친숙한 루이스 부르조아도 꼭 챙겨볼 작가다. 제4전시실에 드로잉 14점과 조각 1점이 소개됐다. 어렵사리 걸음한 관객들을 위해 제대로 작품공부를 해볼 수 있게끔 특별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소마미술관은 전시기간 중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와 4시에 공원 내에 설치된 참여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전문가들이 함께 돌아보며 설명해주는 투어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올림픽공원에는 현재 220여점의 조각작품들이 상설전시돼 있다. 무심히 지나쳤던 공원이 세계 어딜 내놔도 손색없는 야외 전시장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입장료는 어린이 2000원, 청소년 3000원, 일반 5000원.(02)425-1077.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골목길 미술관’에서 길을 잃다

    ‘골목길 미술관’에서 길을 잃다

    홀로 집을 지키는 누렁이, 빈 집 혹은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호시탐탐 노리는 길고양이는 호형호제하며 서로 골목의 주인을 자처한다. 골목과 골목 사이를 뛰놀던 아이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낡은 담장 어느 한 곳이 뚝 끊긴 자리에 걸어둔 대문은 녹이 슨 채 열리지 않는다. 십수 년 살이의 공간이, 개발 논리에 밀려 빗장을 잠근 채 늙어간다. 골목, 살이의 공간 하루가 다르게 번화하는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뒤편 오르막길에 이르면 낙산공원 산책길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이정표를 따라 산책길을 오르다보면 낮게 엎드린 낡은 집, 구불텅 길, 가파른 계단을 지나친다. 산책길보다는 골목길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길이다. 골골샅샅 이어긴 길은 이화동 이곳저곳을 혈관처럼 흐른다. 낙산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는 이화동은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지만 대학로와 다르게 고립되어 있는 도시 속의 섬이다. 이화동 골목의 특징은 길과 계단의 불규칙성과 낮은 담장에서 드러난다. 골목은 동선의 효율성이나 공간 활용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만들어진 길과 계단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로처럼 얽힌 길과 계단은 사람의 키보다 낮은 담을 가진 집과 집 사이를 연결한다. 그리고 불규칙한 공간 사이사이 자투리 공간에는 어김없이 세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안과 밖의 기준을 허문다. 길과 담을 기준으로 안과 밖이 구분되는 여느 마을의 풍경과 다른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화동 골목길은 생활소품들의 의미가 가장 잘 살아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한낮의 골목은 사람 구경이 힘들다.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살이의 흔적들만이 사람이 사는 마을임을 짐작케 할 뿐이다. 장마가 막 끝난 시점에 찾은 골목에는 유독 형형색색의 이불이 눈에 띈다. 이불은 낮은 담장에 몸을 기댄 채 단잠에 빠져 있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 잠결을 스치면, 자신을 덥고 밤새 뒤척였을 달동네 사람들의 꿈을 부드러운 컬러로 풀어낸다. 텅 빈 거리는 저녁이 되면 비로소 사람들이 비척비척 계단을 오르고, 좁은 길을 종종 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불을 밝힌다. 골목길 미술관 소규모 봉제, 재단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마을에는 하루 종일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지난한 가난과 하루 종일 천장 낮은 공장에서 재봉틀을 돌려야 하는 직공들의 삶은 지척의 마로니에공원에서 펼쳐지는 공연문화와는 무관해 보인다. 이렇듯 문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달동네가 최근 문화공간으로서 새로이 탈바꿈됐다. 이화동이 낡은 옷을 벗고 문화를 입기 시작한 것은 ‘소외지역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미술사업’의 시범 구역으로 선정된 2년 전의 일이다. 생활의 공간에 예술의 한 장르인 미술작품을 가미해 일정 장소에서만 접할 수 있던 미술을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공공 거리미술관’으로 만든것이다. 일명 ‘낙산 프로젝트’이다. 문화관광부 산하 공공미술추진위원회와 종로구가 주관한 공공미술프로젝트인 낙산 프로젝트는 2006년, 70여 명의 작가와 300여 명의 주민들이 ‘섞다, 잇다, 함께 어울리다’라는 주제 아래, 마을 곳곳에 그림을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하면서 시작됐다. 상대적으로 소외된 대학로와 낙산을 섞고, 잇고,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거리미술관으로 꾸민 것이다. 이들의 노력은 회색빛 일색의 마을 담장에 꽃을 피워냈고, 낙산을 알리는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들었다. 지금은 알음알음 찾아온 이들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거리미술관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미술관의 작품과 달리 자연스레 시간의 흔적을 입는다는 것이다. 무심히 그림에 이끌려 사진기에 담으려는 이들이 있다면 ‘한 발짝 더 다가가 보라’는 말을 건네고 싶다. 불과 2년 남짓한 작품들은 비와 바람에 자연스레 누그러져 시간의 결이 그대로 살아 움직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위적인 색채를 벗고 자연스러움을 입는 것이다. 골목길을 기웃거리는 동안 이정표를 놓치고 길을 잃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자. 저기 모퉁이를 돌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글·사진 임종관 《삶과꿈》기자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하편)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하편)

    ■몽골에서 우리의 옛 모습을 보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오고바흐타의 진단은 몽골에 체류하는 동안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몽골 입성 4일째 되는 날,의료봉사를 마친 일행은 초원으로 야유를 나섰다.말이 야유지 그것은 또다른 고행의 체험이었다.워낙 햇볕이 따가워 일행들은 함부로 초원에 나서기를 꺼려했다.그냥 차안에서 너른 초원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겠다는 투였다.그래도 몽골이라는 나라가 그리 쉽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필자는 작심하고 시원한 차량을 나섰다.더운 바람이 턱 하고 숨길을 막았고,발바닥에 밟히는 초원의 감촉은 뜨겁고 푹신했다.뜨거움은 태양에 달궈진 대지의 체온이고,푹신한 것은 빠삭하게 마른 모래흙이 밟히는 감촉이었다.걸음을 뗄 때마다 풀풀 먼지가 일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몽골과 역사·문화적 뿌리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흔적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어워’였다.초원을 가로 질러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이어진 길(나중에 지도를 보고 그 길이 러시아령 바이칼 호수 쪽으로 이어지는 간선 국도임을 알았다.)을 따라가자니 길가에 익숙한 돌무더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바로 어워였다.우리 식으로 보자면 성황당이다.모양도 성황당과 너무 닮았다.몽골인들은 길을 오가다 어워를 만나면 돌을 세개 쌓거나 주위를 세번 돈 뒤 기원을 하고 지나간다.의례까지도 우리의 성황당 의식과 너무 비슷해 놀랐다.요즘엔 차량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예전처럼 돌이 많이 쌓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몽골에는 토템이나 샤먼적 요소가 우리보다 훨씬 많이 남아 있다.예컨대 차량 운전자도 아워 앞을 지나칠 때면 경적을 세번 울리거나 아예 차로 아워 주변을 세번 돌고 지나가는 식이다.우리에게 익숙한 ‘삼세번 문화’와 흡사한 의식의 발현이다. 우리와 다른 점도 있었다.종교든 생활 관습이든 주어진 환경 조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의 원형 이탈은 불가피한 것이다.우리의 경우 큰 나무에 영성(靈性)이 깃들었다고 보고 그걸 성황당으로 삼는 데 비해 그들은 그냥 평지에 돌무더기를 쌓아 어워로 삼았다.삼림지대가 아닌 망망대해 같은 초원지대에는 나무가 거의 없어 우리처럼 노거수를 토템의 대상으로 삼기가 쉽지 않은 탓일 것이다.이 때문에 우리는 나무 등걸에 색색의 천을 걸거나 금줄과 유사한 기능의 새끼줄을 걸쳐 공간의 신성성을 표시하는데 몽골에서는 돌무더기 가운데 통나무를 박아 장소성을 나타냈다.그들은 이 나무에 예외없이 파란 천을 친친 두른다.물론 다른 색의 천도 걸려있지만 주종은 파란색 천이다. 파란 색 천은 옛적부터 몽골인들이 외경의 대상으로 삼았던 하늘을 뜻한다.그러고 보니 우리가 탄 버스의 운전석 위에도 씨름 샅바처럼 만 파란 천이 가로로 걸쳐져 있다.이런 습속은 일반인의 생활에도 깊숙히 자리잡아 게르나 현대식 주택엘 들어서도 거의 예외없이 출입문 위에 가로로 걸쳐 놓은 파란 천을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그들이 하늘을 외경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충분히 이해됐다.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태양이 터를 잡은 곳이 하늘이고,철궁으로도 뚫지 못하고,천마를 달려도 다다를 수 없으니 어찌 그들이 하늘을 경외하지 않았겠는가.비록 지상에서는 동과 서,남과 북 천하에 대적할 사람이 없는 대제국을 일궜을지라도 하늘 만큼은 그들의 발아래 꿇릴 수 없었을테니…. 그들이 하늘을 외경의 대상으로 삼은 흔적은 까마귀를 신성시하는 것에서도 확인됐다.그들도 우리처럼 까마귀를 ‘태양의 사자’라고 믿는다.그래서 사냥에 나설 때도 까마귀는 건드리지 않는다.만약 누군가가 까마귀를 해쳤다면 전쟁터로 가는 길이든,결혼식장으로 가는 길이든 모두 포기하고 돌아온다고 한다.까마귀의 영성을 대하는 이들의 시각은 이 정도다. 이런 의식은 우리와도 닮았다.지금이야 까치는 길조이고,까마귀를 그냥 기분 나쁜 새로 여기지만 이는 근대 이후 우리나라에 이입된 서구적 의식의 영향 탓일 뿐 예전 우리 조상들은 까마귀를 영물(靈物)로 여겼다.몽골과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도 까마귀를 ‘하늘의 사자’라고 여겼으며,이는 우리 신화 속에 깃든 삼족오(三足烏)의 전설이 입증해 준다.혹 어렸을 적에 할머니로부터 이런 얘기 들을 기억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아,글씨 이 망할 구미호(여우)가 어찌나 신통방통한 둔갑술을 가졌는지 도저히 어찌 해볼 요량이 없는게야.그래 그 사람이 이젠 죽었구나 하고 아예 땅바닥에 다릴 풀고 퍼질러 앉았지.그러고는 조상께 하직인사를 올렸지 뭐야.‘인자 죽게 돼 조상님들께 제사도 못 올리게 되었다고….’그랬더니 눈앞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나 이렇게 말하는 게야.‘이 눔아,게서 죽으면 못써.얼렁 내가 일러준 주문을 외워봐.그러면 삼족오허고 삼족구가 와서 널 구해줄게다.’ 그래 정신이 퍼뜩 든 이 사람이 그대로 주문을 외았드니 금시 삼족오허고 삼족구가 와서 그 구미홀 쫓아내는거야.” 여기서 삼족오는 다리가 셋인 바로 그 까마귀이고,삼족구는 다리가 셋인 개를 말한다.이처럼 우리 의식 속에서는 둘 다 잡귀를 물리치고 주인을 지켜주는 신성한 영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삼족오를 일본이 잽싸게 건져내 자국의 축구 국가대표팀 문장으로 만들었다.사실 우리 축구대표팀의 문장에 넣은 호랑이는 애당초 우리 의식 속에 늘 있었던 것이어서 놀랄 일이 아니었으나 일본이 삼족오를 내미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 때 내 속으로는 “저들이 언제 우리 할머니 이바구까지 훔쳐 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 아까웠었다.생각은 그렇더라도 까마귀에 대한 이런 의식이 동양문화의 중추를 관통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이로써 대륙의 문명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음을 확인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다른 문화의 유사성은 씨름에도 있었다.아워도 그렇지만 씨름도 우리 민족이 중국의 한족과 전혀 다른 문화적 혈통을 가졌음을 확인시키는 결정적 근거가 아닐까.씨름의 민속 벨트가 몽골-러시아 극동지역-한국-일본으로 이어져 중국이 배제되고 있다.인류문화사적으로도 중국은 우리와 전혀 다른 언어 및 인종적 경로를 갖고 있다. 몽골에서 ‘부흐’라고 부르는 씨름은 샅바를 이용하는 우리의 것과 형식적으로는 약간 차이가 있다.그러나 두 사내가 서로 맞붙어 힘과 기술을 겨룬다는 점에서는 똑같다.승패를 가르는 방식,즉 넘어뜨리면 이기는 승패 규칙도 매우 흡사하다.해마다 7월 11∼13일에 몽골 최대의 나담축제가 열리는데,이 축제의 3대 행사가 바로 부흐와 말타기,마상 활쏘기이다.여기에서 그들에게 부흐가 생활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몽골 역사상 올림픽 첫 금메달리스트가 된 유도의 투브신바야르 나이단도 원래는 부흐 선수였다.현지에서 듣기로는,그가 부흐를 배우다가 ‘세상이 바뀌어 이제는 부흐로 먹고 살기 어려우니 유도를 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유도선수가 되었단다.하기야 유도나 씨름이나 근본적인 역동의 원리는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는다. 몽골 체류 중 일행은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가장 큰 곳 중 하나라는 재래시장을 찾았다.소액(50토그르기)이지만 입장료도 내야 했다.뙤약볕 아래 제법 널찍하게 펼쳐진 재래시장은 예의 인파로 북적였다.갖가지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이 보도를 점령한 것도 우리에겐 익숙한 광경이었다.특히 냉차를 파는 노점은 옛날의 우리 모습을 다시 보는 듯 했다.온갖 잡화가 진열된 그곳은 생각과 달리 잘 정리되어 있었고,풍성했고,사람들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이 시장은 울란바토르에서도 중산층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또다른 익숙한 광경도 눈에 띄었다.식료품 가게에는 감자와 마늘,양파가 즐비했다.현지 안내원에게 물으니 몽골인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식품들이라고 했다.우리와 다른 점은 어물전이 없다는 거였다.하기야 고비사막을 깔고 앉은 내륙도시 울란바토르에 신선한 생선이 있을리 만무했다.일행중 누군가가 우스개소릴 던졌다.“어디 가서 싱싱한 회나 한 접시 했으면 좋겠구만.” 이 시장이 매력적인 것은 몽골인들의 삶을 가감없이 드러낸다는 점이었다.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거리의 악사’가 눈길을 끌었다.초로의 여인이 짙은 화장을 하고 뙤약볕 아래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아들인 듯 싶은 젊은이는 반주가 담긴 카세트를 켜들고 그 뒤에 물끄러니 서있었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의 옛날들이 스쳐 지나갔다.일제에 의해 전통적인 우리의 권번이 해체되면서 수많은 기생들이 거리로 내몰렸다.이를테면 그 이전의 관기(官妓)가 중심이었던 ‘공창 시스템’을 자본주의식 ‘사창 시스템’으로 전환시킨 조치였다.하루 아침에 일자리에서 내몰린 기생들이,그것도 ‘애기기생’들을 모두 떠나보내야 하는 늙수그레한 노털 기생들은 천상 길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었다.그들은 전국을 떠돌며 잔치집을 전전하거나 노상에서 술과 웃음을 파는 들병이로 전락했다.이 몽골 여인의 삶의 내력을 알 수는 없었으나 길거리에서 기예를 파는 처지가 딱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양 한마리를 해치우는데 고작 20여분. 몽골을 떠나기 이틀 전,몽골 현지 ACC 책임자가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몽골의 자연형 국립공원인 테일지 초원의 게르로 나가 양고기 오찬을 대접하겠다는 것이었다.정중한 초청이었기에 거절할 수는 없었지만 일행 대부분은 이미 여러번의 현지식에서 양고기의 누린 맛에 적잖이 질린 터라 서로 마주보고 눈만 꿈벅거렸다.그때 일행중 한 명이 나섰다.“너무 양고기에 기죽은 표정들 하지 맙시다.이미 초청을 받았는데 안 간다는 것도 결례이고 하니 그냥 가볍게 초원으로 산책 나간다는 생각으로 갔다 옵시다.” 그렇게 해서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1시간 쯤을 달려 테일지 자연공원에 도착했다.그곳은 아름드리 삼림이 있고 바이칼호수에서 발원했다는 맑은 강물이 흐르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산의 능선을 타고 펼쳐진 바위가 마치 금강산의 풍광 한 폭을 뚝 떼어다 옮겨놓은 듯 아름다웠다.안타까운 것은 거기에도 개발 바람이 불어 그 울창한 원시의 수림대가 차차 망가지고 훼손된다는 사실이었다.테일지로 가는 길목 곳곳에 베어넘긴 거목의 시체들이 즐비했다.그곳에서 말등에 올라타고 두개의 야트막한 하천을 건너 한참을 가니 광활한 초원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상상해 보라.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원시의 초원을 눈앞에 두고 선 나그네의 가슴 울렁거리는 희열을. 말인 즉 인공이 가해지지 않았다고 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그곳에는 양과 말,야크떼를 거느린 유목민들이 살고 있었다.양털과 젖이 그들의 주수입원이었지만 가끔 게르에서 하루,이틀 묵으며 초원을 체험하려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제법 짭짤한 수입을 올리기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그곳 유목민들은 땟국에 절은 입성 말고는 어떤 문명의 티도 내지 않았다.예약된 게르에 들어서자 주인 사내가 딱딱하게 말린 양젖 버터를 권했다.마치 고구마 절편처럼 딱딱했다.맛을 보려고 입으로 가져가니 예의 누린내가 확 끼쳐 슬그머니 내려놓고 말았다. 게르 뒷편에서는 젊은 유목민 사내가 때맞춰 능숙한 솜씨로 양을 잡고 있었다.그걸 지켜보자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살아있는 양의 네 다리를 잡고 땅바닥에 누인 뒤 고작 연필만 한 주머니칼을 꺼내 명치 부위에 10㎝ 가량의 칼집을 냈다.그때까지 양은 멀쩡하게 살아 맴맴거리고 있었다.이윽고 사내는 칼집으로 손을 쑥 집어넣더니 검지를 대동맥에 걸어 뚝 하고 잡아뗐다.그걸로 끝이었다.양은 이내 목을 축 늘어뜨렸다.양의 숨이 끊어지자 사내는 손바닥을 밀어 익숙하게 가죽과 몸통을 분리했다.칼은 발목과 목을 분리할 때만 썼다.다음은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내는 일.가슴을 갈라 내장을 들어내고,흉곽에 그득한 피를 준비한 그릇에 담아 선지 순대를 만들었다.그의 아내인 듯 보이는 여성이 들어낸 내장을 익은 솜씨로 손봐냈다.순대와 내장,적당한 크기로 나뉜 몸통은 그대로 통속으로 들어가 삶겼다.양 한마리를 잡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20여분 정도,그러는 동안 땅바닥엔 피 한방울이 흐르지 않았다.일을 마친 사내는 풀섶에 쓱쓱 문대 손의 피를 닦았다.양 한마리를 그렇게 잡도리했다. 일행이 담소하는 동안 삶은 양고기가 가득 든 통을 든 사내가 게르로 들어섰다.건장한 사내는 순박하게 웃어보이며 통 속에서 막 삶긴 뜨거운 양고기를 꺼내 칼질을 시작했다.익숙한 솜씨였다.통속에는 양고기와 함께 돌과 감자도 들어있었다.게르에 차려진 간이 식탁위에는 금세 맛있게(?) 삶긴 양고기가 그득했다.다릿살이며 내장에 양의 선지를 채운 양순대가 모락모락 김을 피워올리고 있었다.술도 나왔다.말젖을 발효시킨 마유주였다.맛을 보니 시금털털해 아무래도 비위가 얇고 술에도 약한 필자가 감당하기엔 무리였다.일행 중 한 명이 “내 이럴 줄 알고 준비했지.”라며 술 한병을 꺼내 식탁에 올려놨다.몽골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칭키즈칸 보드카였다.독한 술이 돌자 처음엔 양고기 누린내에 고개를 모로 꺾던 사람들이 하나,둘 달려들어 안주 삼아 양고기를 맛보기 시작했다.더러는 “생각보다 먹을만 한데….”라는 후평을 내놓기도 했으나 준비해 간 고추장 맛으로 몇 점 먹어본 것이 고작이었다.30여명이 먹은 양고기가 너댓근에 불과해 보였다.남은 고기가 먹은 것보다 훨씬 많았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맞았다.벌써 며칠째 밥 다운 밥 꼴을 못 본 필자는 그걸로라도 면허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고기덩이 속에서 삶은 감자를 골라냈다.그러나 양고기와 같이 삶긴 터라 감자든 고기든 누리기는 매 한가지였다.양고기와 양순대,간 등이 있었지만 누린내 때문에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그런 필자의 옆구릴 쿡,찌르며 귀엣말을 건넸다.“아직 배가 덜 고팠구만….” ■애들아,말 달리자.저 땅 끝까지. 오찬을 마친 일행은 초원으로 나섰다.초원에서 몽골 말을 타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말을 타려니 연전 터키의 한 시골에서 말을 타다가 엉덩이 꼬리뼈 부위가 벗겨져 곪는 바람에 며칠 혼쭐이 났던 기억이 되살아났다.말안장에 쓸린 상처 부위가 덧나 나중에는 차를 타건 비행기를 타건 한시도 의자에 바로 앉지 못했던 그 끔찍한 여행의 기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그걸 아는 필자로서는 말등에 올라서도 말이 제 멋대로 달리게 할 수가 없었다.말은 과천 경마장에서 내달리는 유럽형 경주마처럼 크지 않았다.키가 작달막해 보였는데 그래도 가까이 다가가니 등이 어른 키높이만 했다.바로 이 말이 옛날 몽골 전사들이 타고 세계를 아우른 그 말이라고 했다.순식간에 내달리는 속도는 유럽산 경주마에 뒤지지만 지구력이 좋아 오래 달린다고 했다.또 먹성도 까탈스럽지 않고 병에도 잘 견딘다니 전쟁터에 타고 나갈 기마용으로는 그만인 듯 했다.그러니 유난히 말을 사랑했다는 당태종이 이곳에서 명마를 골라 준마도,백마도(百馬圖)를 그리고 그 유명한 당삼채로 완성해내지 않았을까. 그렇든 말았든 꼬리뼈의 추억 때문에 고삐를 바짝 당겨쥐어 말이 뛰지 못하게 한 뒤 게르 주변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끝냈다.그렇게 조심했는데도 나중에 보니 엉덩이 가운데 꼬리뼈 끝이 빨갛게 쓸려 있었지만 예전처럼 곪지는 않았다. 농사 유전자를 가진 한국인에게 말을 타는 일이 썩 어울려 보이지는 않았다.거북하고 어색한 몸짓이 우스꽝스러웠는지 그곳 아이들이 바라보며 키득거렸다.태어나 걸음을 떼면서부터 말등을 떠나지 않은 그곳 아이들 아닌가.아닌게 아니라 고작 예닐곱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잽싸게 말등으로 뛰어오르더니 ”츄∼츄∼”하는 입소리를 내며 가죽 고삐로 뱃골을 치자 말은 순식간에 초원 저편으로 질풍처럼 내달려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때 누군가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저 꼬마녀석들에게 뭔가 선물을 줘야 할텐데 그냥 주기도 뭐하니 말타는 모습을 좀 보여달라면 어떨까?” 그런 뜻을 게르 주인에게 전했더니 주인 사내는 한 술 더 떴다.“이 마을(마을이라야 게르 서넛이 멀찍이 자리잡은 것에 불과했다.)에 저 또래 아이들이 모두 여섯인데 그들에게 목표를 정해 말타기 경주를 시켜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모두가 동의했다.하는 김에 5달러씩 걸어 이긴 사람이 본전을 제하고 나머지를 애들 시상금으로 주자고 제안했다.주인이 제안한 터라 딱히 그 사람들이 기분 나쁘게 여길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자고 동의하자 주인이 초원을 향해 높은 톤으로 소릴 질렀다.멀리 있는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였다.잠시 후 여기저기서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그들 뿐이 아니었다.아낙들,젖먹이들도 모두 눈을 반짝이며 게르 앞으로 모여 들었다.꼬마들은 제각각 아끼는 말을 골라타고는 고삐를 바투잡고 나란히들 섰다.그들은 말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듯 했다.우리야 한번 말등에 오르내리려면 기를 써야했지만 걔들은 가볍게 말등을 오르락거렸다.말에 올라탄 꼬마들은 뭐라고 주문을 외며 우리가 든 게르 주변을 천천히 열바퀴 돌았다.몽골의 전통적인 출정의식이라고 했다.이윽고 목표가 정해지고 모두 출발선에 섰다.목측으로 2000m쯤 되는 거리였다.사내가 신호를 하자 고삐를 꼬나쥔 꼬마들이 초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옛날의 몽골 전사들이 저렇게 내달려 도버해협과 북해의 거친 해안까지 다다랐던 것은 아닐까.그들의 모습에서 영화로웠던 칭키즈칸과 그의 아들 오고타이,손자인 쿠빌라이칸의 시대를 보는 것 같았다.그 모습은 시공을 초월해 그들이 말(馬)을 매개로 엮어진 불가분의 의식공동체임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애들이 말을 몰아 목표를 돌아오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얼굴이 발그레 상기된 아이들은 사내의 지시에 따라 마상에서 뭐라고 몇 번 고함을 지른뒤 훌쩍,훌쩍 뛰어내렸다.그들이 마상에서 내지른 소리 역시 무사히 말을 타게 해 줘 감사하다는 일종의 주문이라고 했다.논의 결과 아무리 애들이 수고는 했지만 직접 돈을 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여겨 사내에게 모은 돈을 한꺼번에 건넸다.그렇게 모은 돈이 한 40 달러쯤 됐다.사내는 한 켠으로 아이들을 불러모은 뒤 뭐라고 얘기를 나눴다.아이들이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잠깐 말 타는 것을 보여줬을 뿐인데 돈은 무슨 돈이냐는 투였다.거기까진 우리가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황무지 제국에도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구름 한점 없는 하늘 한 켠이 마치 불길이라도 이는 듯 선홍빛으로 타들었다.대륙의 장엄한 노을이었다.타드는 것이 하늘 뿐만은 아니었다.하늘과 맞닿은 대지도 붉게 달아올랐다.그 노을 속으로 누군가가 말등에 지친 몸을 싣고는 하염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그의 뒤를 키 작은 양떼들이 따랐다.유목의 사내일 것이다.그 모습에서 문득 몽골의 전사들을 이끌고 천하를 휘저을 때 남긴 칭키즈칸의 말이 떠올랐다.“성벽을 쌓는 자는 망하고 이동하는 자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랬다.비록 그 말이 옛적 유목의 부정형 삶을 두둔하고 옹호하는 의미였을지라도 우리는 지금 그 의미를 결코 백안시할 수도,도외시할 수 없다.오늘날에도 그 교조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몽골의 거친 황무지,그 황무지와 하늘을 가장 단순하게 구획하는 일획의 지평선 위로 비장하게 물드는 노을.뜨겁게 달아 올랐다가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스러져 가는 그 노을에서 장대했던 몽골의 옛 제국을 보았다.참으로 비장했던 제국의 영화와 끝.그 노을을 응시하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문을 닫았다.자연이 연출한 그 무위의 파노라마 앞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전율 말고 무슨 영탄이 필요할 것인가.몇몇은 풀섶에 가만히 주저앉아 술병을 땄다.보드카였다.독한 술이 목줄기를 타고 넘어가 순식간에 흉금을 적셨다.노을에 함뿍 적신 얼굴 위로 서서히 술기운이 돌았다.노을과 사람이 함께 익어드는 것 같았다. 이윽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한 노래가 거친 풀섶으로 나즈막히 흘렀다.“천등사안 바악딸째를 울고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노래는 다시 이어졌다.“아아∼∼ 신라의 바아암이이이여 불국사의 종소리가 들리어온다 지∼나가는 나아그네에에여어 거∼얼음을 머어엄추어라 고오오요오하안 다아알빛아래….” 그 노래가 그 시각,그 자리에서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따지지 않았고,또 생각하지도 않았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장대한 자연의 섭리를 앞에 두고 터져나온 노래야말로 가장 진솔한 정서의 토로 아니었겠는가. 이윽고 맞은 저녁.몽골의 밤하늘은 별들의 천국이었다.장관이었다.요요한 풀섶에서 쳐다보는 밤하늘에는 별들이 촘촘하게 박혀 형용할 수 없는 자태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휘∼ 손을 내저으면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았다.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았던 그 광경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그 모습이 고스란히 몽골의 초원에서 재현되고 있었다.아주 오랫동안 뒤로 고개를 꺾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가슴이 울렁거렸다.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이 주는 설레임 때문이었다. 그 싱싱하고 영롱한 별들이 어느 새 술병 속에 떨어져 잠겼는지 몇 잔을 마신 보드카가 이내 목에 턱턱 걸렸다.그렇게 술과 함께 삼킨 초원의 별들이 훗날 내 속에서 어떻게 되살아날까. 봉사단원들은 모처럼 가진 초원에서의 휴식에 모두 흡족해 했다.ACC 김종구 총재가 일행과 함께 하며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꽃향기는 황홀해 보여도 산 하나를 넘지 못하지만 남에게 베푸는 봉사의 향기는 국경도 넘는다.” 사실 일상에 쫓기며 살아야 하는 갑남을녀가 ‘봉사’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그러나 김 총재의 말마따나 “봉사는 마약”인지도 모를 일이다.그렇지 않고서야 선뜻 사재를 털어 빈민에게 새 게르를 지어주기는 쉬울 것이며,자신의 직장일을 뒤로 하고 1년에 몇 차례씩 해외 봉사활동을 나서기는 또 쉬울 것인가.봉사활동 말미에 가진 한·몽 ACC 자평모임에서 김 총재는 이런 말을 했다.“재산이 많아 하는 봉사는 자선일 수는 있어도 엄밀한 의미의 봉사는 아니다.봉사는 자신의 여건을 초월해 나서는 것이다.세상에 아무 것도 잃지 않고서 할 수 있는 봉사란 없다.” 일행을 이끈 아시아 사랑나눔의 배용민씨는 현지에서 정을 나눈 안내원들과 따로 어울리며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눴다.그가 대뜸 이런 말을 꺼냈다.“고생할 때는 두번 다시 몽골엔 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초원에서 밤을 맞으니 그 생각이 틀린 것 같습니다.이걸 보고 몽골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그랬다.사실 몽골에서의 체험은 매우 특이했다.그러나 누린 먹을거리에 곤죽이 되고,태양에 주눅이 들었어도 그것이 잘 사는 나라에서 항용 겪는 무관심이나 비하와 모욕의 체험은 아니었다.사람들은 순박했고,지혜로웠다.손님을 대하는 태도도 정성스러웠다.그런 정성이 양고기의 역겨운 노린내를 지우고도 남았다. 애당초 봉사하자고 나선 길에 무슨 호의호식을 바라겠는가.그런 생각이 봉사의 취지를 훼손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지며 더 많은 땀을 쏟지 못한 아쉬움이 가슴으로 잔잔하게 배어들었다.밤이 지나면 다시 저 망망한 대지 위로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그리고 그 태양의 순환처럼 이 황무지에도 연대와 공유의 찬란한 세상이 다시 열릴 것이다.그렇게 기원했다. 글·사진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한국 사업가·탈북자 100여명 납치·북송”

    “한국 사업가·탈북자 100여명 납치·북송”

    위장 탈북 여간첩 원정화(34)는 대북 정보요원 살해, 북한 노동당 비서로 귀순한 황장엽씨의 소재 파악 등 주요 지령 수행에는 대부분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미군기지를 촬영한 사진을 넘기고, 군 장교와 교제하며 포섭을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황장엽 거처 파악 등 주요지령 실패 남한 침투지령을 받은 원정화는 2000년 중국동포 김모씨 명의로 신분을 세탁한 뒤 다음해 10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후 경기 북부 지역 등에서 미군기지 촬영 임무를 수행하다가 다시 ‘원정화’로 이름을 바꿔 탈북자로 위장귀순하고 한국 남성 최모씨와 결혼했다. 원정화가 받은 주요지령은 ▲2003년 대북정보요원 중국 유인, 남한사업가 포섭 ▲2004년 대북정보요원 2명 살해 ▲2005년 국정원·하나원·대성공사(탈북자 신문 기관) 위치 파악, 군 장교 포섭 뒤 군사기밀 탐지·중국유인 등이다. 또 ▲2006년 황장엽·부시 미국 대통령 면담 탈북자 김모씨 위치 파악, 비전향 장기수 파악, 안보강연 탈북자 인적사항 파악 등도 임무였다. 하지만 원정화는 황장엽씨 거처 파악 등 대부분의 지령 수행에 실패했다. 대북정보요원 암살 지령과 함께 독침, 독약 등의 살해도구를 받았지만, 시도도 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원정화는 “원래 알던 사람들인 데다 살인을 해본 적이 없어 차마 죽일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원정화는 군 기밀을 수집하기 위해 장교들과 교제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결혼정보업체에 “현역군인과의 만남을 원한다.”고 얘기해 여러 명의 군인을 만났으며,2005년 9월에는 김모 소령을 소개받아 동거까지 하게 됐다. 김 소령에게는 “아이를 중국에 유학보내고 싶으니 함께 가서 알아보자.”고 유인을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원정화는 국군 기무사령부의 추천으로 군 안보 강사로 발탁돼 2006년 9월부터 9개월 동안 50여차례에 걸쳐 “북핵은 자위용”이라는 등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내용의 강연까지 실시했다. 이때는 이미 1년 남짓 기무사의 내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원정화를 추천한 부서와 내사부서의 업무가 분리돼 있어 대공혐의점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기무사 쪽은 설명했다. 원정화는 이 과정에서 2006년 11월 정훈장교였던 황모(26·구속기소) 중위(대위 진급 예정)를 처음 만나 사귀게 됐다. 지난해 10월 황 중위에게 “나는 북한 보위부 소속 공작원이다. 내 임무는 탈북자 출신 안보강연 강사 신원을 확인해 북한에 보고하고 군 간부를 포섭하는 것이다. 너도 포섭했다고 조국에 보고했다.”고 말했지만 황 중위는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 기무사 관계자는 “황 중위가 원정화를 신고하지 않은 것은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6년 ‘정경학 사건’ 이후 2년여만 역대 간첩 사건으로는 ▲1995년 10월 충남 부여 무장간첩 김동식 ▲1997년 10월 최정남·강정연 부부간첩 ▲2006년 7월 정경학 사건 등이 있다. 정경학은 태국 국적으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한 뒤 울진 원자력발전소, 천안 성거산 공군 레이더기지, 용산 미8군부대, 국방부 청사 등을 촬영해 북한에 보냈다. 원정화가 실제로 북한에 넘긴 정보는 양주와 서울 등에 있는 주한미군 기지 6곳의 사진, 원정화의 하나원 동기 정보, 군 장교들 명함 100여장 및 인적사항과 사진, 군부대 위치와 부대의 지휘관들 인적사항 등이다. 합동수사본부 관계자는 “원정화가 넘긴 장교들의 명함에 기재된 이메일 IP를 추적한 결과 중국 방향에서 이메일을 해킹한 흔적을 찾아내 진상을 파악중”이라고 전했다. 원정화는 또 남파되기 전 1999∼2001년 중국 옌지, 훈춘 등에서 탈북자와 남한사업가 등 100여명을 납치했으며, 중국 공안과 협조해 이들을 북송했다. 이 가운데 한국인 7명은 모두 노래방 등에서 일하던 원정화를 만나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하려 한 사업가, 회사원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한반도最古 청동기시대 관개수로 발견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기원전 10세기 무렵 청동기시대 저수지가 발견된 경북 안동 저전리 유적에서 같은 시대 농경용 관개수로의 흔적이 확인됐다. 청동기시대 수로 유적으로는 처음이자 최고라는 점에서 한반도 선사시대 농경문화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받는다. 동양대박물관은 25일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 시행하는 국도 5호선 서호∼평은 구간에 포함된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광평리 일대 ‘저전리 유적’에 대해 제2차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청동기시대에 조성한 저수지 2곳이 계곡 상류와 하류에 서로 잇닿아 조성된 흔적을 확인했으며, 관개용 수로 유적도 발견했다고 밝혔다. 2005∼2006년에 실시한 제1차 조사에서는 계곡 하류에 위치한 ‘1호 저수지’(너비 15m 안팎, 길이 60m) 외에도 상류 인접 지점에 또 다른 ‘2호 저수지’의 일부 흔적을 확인했다. 당시에는 전체 규모가 밝혀지지 않았던 데다,1호 저수지가 폐기된 직후 그 대용으로 새로 만든 것으로 추정했다. 조사단은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 토층 양상으로 볼 때 이 두 저수지는 같은 시기에 존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저수지 평면 구조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인 것은 “물을 더 많이 가두고 물의 속도를 늦춤으로써 수온을 높여 벼의 냉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저전리 유적에서는 저수지 외에도 1차조사에서 나무로 만든 절굿공이와 목제 따비 유물이 출토됐으며,1호 저수지에서는 다량의 볍씨가 수습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관개수로가 만들어진 시기를 기원전 10세기 무렵으로 추정하는 것은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권구 계명대 박물관장은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로 볼 때 기원전 10세기가 아닌, 기원전 6∼4세기 무렵 농사에 이용하기 위해 물을 가두는 보(洑) 형태의 시설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김규환·대구 김상화기자 khkim@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4) 길쌈하는 여인들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4) 길쌈하는 여인들

    김홍도의 ‘길쌈’(그림 1)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고, 또 길쌈하는 그림인 줄은 누구나 다 안다. 그림 2는 유운홍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길쌈’이란 작품인데, 김홍도의 그림과 내용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런 길쌈하는 그림은 제법 많이 전하고 있다. 다만 이제 길쌈이란 말 자체가 거의 사어(死語)가 된 형편이다. 예순이 넘은 분들만이 이 그림을 별다른 설명 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이하의 연배, 그리고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길쌈의 과정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모르는 분들을 위해 무명 짜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다. 봄에 목화를 심어 가을에 목화꽃을 거둔다. 목화꽃이 곧 목화솜이다. 목화솜에는 씨앗이 들어 있어서 실을 그냥 뽑을 수가 없다. 씨아를 이용하여 씨를 빼내고, 활로 솜을 탄다. 탄다는 것은, 활줄로 퉁겨서 솜을 부풋하게 부풀리는 것이다. 그 다음 넓은 판대기 위에 목화를 올리고 수수깡 같은 것을 30㎝쯤 잘라 심으로 삼아 손으로 밀면 기름한 솜덩이가 된다. 이것을 물레에 걸어 실을 뽑는다. 이 실을 막 바로 베틀에 올리는 것은 아니다. 그림 1의 위쪽을 보면, 실을 길게 메고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 바르고 있다. 풀이다. 실이 엉키지 않게 풀을 먹이는 것이다. 여자의 오른손 아래쪽에 있는 것은 숯불이다. 풀을 말리는 것이다. 이렇게 풀을 먹이는 것을 베매기라 한다. ●지루하고 고된 노동 노래로 털고 씻어 베매기를 한 실이 날줄이 된다. 이 날줄을 도투마리(베틀 가장 왼쪽에 실을 묶은 부분)에 맨다. 이제 씨줄을 만들 차례다. 날줄을 둘로 나누어 엇건 뒤에 그 사이의 공간으로 씨줄을 통과시키면 천이 되는데, 이 엇건 공간으로 넣는 것이 곧 북이다. 북에 들어갈 씨줄은 따로 감아둔다. 북을 날줄 사이로 통과시키는 것은 씨줄을 넣는 것이다. 씨줄이 들어가면 바디를 내려 쳐서 천을 단단히 짠다. 조선시대의 피륙에는 비단, 삼베, 모시, 무명이 있었다. 무명은 알다시피 고려 말에 문익점이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다. 무명은 농사짓기가 쉽고 피륙을 짜기도 수월하며, 또 보온성이 뛰어나 이내 삼베나 모시, 비단을 물리치고 가장 많이 생산하는 피륙이 되었다. 여기서 무명 짜는 것을 예로 든 것도 무명이 가장 일반적인 옷감이었기 때문이다. 삼베나 모시, 비단은 실을 얻는 과정이 다를 뿐 짜는 원리는 동일하다. 그림 1과 2에 등장하는 길쌈하는 사람은 모두 여성이다. 조선시대의 수신교과서 ‘소학’은 아예 여성을 조리와 직조(織造)하는 존재로 규정하였고, 특별히 귀한 가문의 여성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여성은 두 노동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었다.‘소학’이 아니라 해도 조리와 직조를 여성이 맡았던 역사는 아마도 인류 역사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한국의 역사에서 그 기원의 흔적을 찾자면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다.‘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왕 9년 조다. 유리왕은 나라의 여자들을 두 패로 나누고 자신의 딸을 각 패의 우두머리로 삼게 한다. 그리고 7월16일부터 매일 아침 가장 큰 고을의 뜰에 모여 밤 10시 쯤까지 길쌈을 하게 한다.8월15일에 그 성적을 따져 진 패가 이긴 패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게 한다. 이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온갖 놀이를 벌인다. 이것을 ‘가배’라고 한다. 진 패의 여자는 일어나 ‘회소, 회소’ 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아름답고 구슬퍼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 ‘회소곡’이란 노래를 지어 불렀다. 이 ‘가배’가 뒷날 ‘가위’ 곧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추석의 유래는 직조와 관계가 있었던 것이고, 여성 직조의 역사는 역사의 기원까지 소급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라 길쌈대회 ‘가배´서 한가위 유래 조선시대 옷감을 짜는 것은, 심상한 행위가 아니었다. 인간의 삶은 입을 것, 먹을 것, 비바람을 피하고 잠을 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데 집이야 한 번 지어놓으면 그만이지만, 먹을 것과 입을 것은 그야말로 끊임없이 소모된다. 다시 보충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먹을 것만큼은 아니지만, 입을 것의 무게란 중세 경제에서 엄청나게 무거운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지금 값싼 옷이 지천인 세상에서의 입을 것이 갖는 의미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옷감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무엇보다 가족의 옷이 되었고, 나라에 바치는 세금이 되었으며, 집에서 만들지 못하는 물건을 사들이는 화폐의 구실을 하였다. 그리고 먼 길을 떠날 때면 노잣돈이 되었으니, 한 필 무명이야말로 지금의 현금카드와 같은 구실을 했던 것이다. 옷감을 짜는 과정은 고되고 지루하였다. 그 노동의 고통을 여성들은 노래를 불러 잊었다. 수많은 길쌈노래, 물레노래, 베틀노래가 그 증거다. 어디 베틀노래 하나를 들어보자. 경상북도 의성 지방에 전하는 노래다. “시집 갔든 사흘만에/ 과거 빈다 소문 듣고/ 과거 보러 가신 낭군/ 밤낮으로 기다리니/ 밤도 길어 해도 길어/ 길쌈이나 시작하세” 남편은 과거 보러 떠났다. 아내는 기다리기 지루하여 길쌈을 하면서 기다리는 지루함을 잊으려 한다.“송이송이 따 모아서/ 참나무쐐기에 앗아내어/ 대나무활로 타다놓고/ 수수회기로 비벼내어/ 정데정이 치은 가락/ 버드나무 물레에 미여 넣고/ 당태실 같이 뽑아내어/ 파람파람 뽑아다가/ 앞마당에 날아다가 뒷마당에 매어다가/ 베틀이나 차려보세” 목화송이를 따서 활질을 하고 실을 뽑는 과정을 그대로 서술한 것이다. 그 다음은 베틀을 차리는 과정을 길게 늘어놓고, 그 다음 베를 짜는 과정을 늘어놓는다.“바디집 치는 양은/ 광한루 높은 정자/ 신선들이 모여 앉아/ 장기 바둑 뚜는 듯다/ 북이라고 노는 양은 청학이 알을 품고/ 들락날락 하는듯다/ 잉애라고 바란 양은/ 모시국이 실묵시를/ 놋전반에 받친 듯고” 이렇게 해서 짠 것을 이제 씻어 간직한다.“앞 냇물에 씻어다가/ 줄어 너니 줄 때 묻고/ 손에 드니 손때 묻어/ 고이고이 말라내어/ 은실겅에 얹어 얹고” 남편을 기다린다. “과거 선비 오실까봐/ 동창문을 열어놓고/ 날이 날로 기다려도/ 한양 선비 자취 없네” 아무리 기다려도 한양에 간 남편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나가는 선비에게 물어본다.“말 묻기 어려우나 말 한 마디 물읍시다. 한양서 오시며는 우리 선비 안 옵디까?” 어렵게 말을 꺼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엉뚱하다.“오기사 오드마는 칠성판에 얹혀 와요” 아내는 절망한다.“아이고 답답 내 일이야/ 암행어사 하실까봐/ 고대고대 바랐드니/ 칠성판이 웬일인고” 남편은 과거를 치러 가서 무슨 사건으로 인해 죽어 시체가 되어 칠성판에 얹혀서 돌아온 것이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노동과 가혹한 운명을 이 노래를 부르면서 털고 씻고 잊었다. ●군역 대신 낸 군포… 한과 눈물의 응집물 여성들이 짜낸 무명은 그야말로 한과 눈물의 응집물이었다. 가혹한 노동의 결과라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무명이 ‘군포’란 말로 바뀌는 순간, 그것은 조선후기 사회가 앓아야 했던 거대한 모순이 되고 만다. 군포는 군역을 지는 대신 내는 무명이다. 조선은 원래 16세에서 60세까지의 장정은 모두 군역을 지게 되어 있었다.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면 남는 큰 줄거리는 이렇다. 곧 조선후기에 와서 군역의 의무는 그대로 남지만, 실제 군대는 직업군인으로 채워지기에 16세에서 60세까지의 남성들(양반은 제외)은 모두 직접 군역을 지는 대신 1인 당 2필의 군포를 납부해야만 하였다. 조선은 대가족제도다. 따라서 한 집안에 남자 장정이 6명이면 12필을 내어야 한다. 그 뿐인가. 죽은 사람에게도 군포를 물리는 백골징포, 어린아이에게도 받는 황구첨정이 있다. 군포를 못내고 달아나면 그 동네 사람에게 받거나(동징), 친척들에게 받아낸다(족징). 군포의 징수가 얼마나 가혹했던지 자살하는 사람, 달아나는 사람 등 별별 사람이 다 있었고, 급기야 마을 하나가 송두리째 없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가혹하게 거둔 군포 위에 조선이란 국가와 양반체제가 서 있었던 것이니, 저 그림 속에 보이는 여성 노동은 조선 후기의 체제모순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의사·변호사들 ‘뻔뻔한 탈세’

    의사·변호사들 ‘뻔뻔한 탈세’

    변호사 김모(56·서울지역 법무법인 대표)씨는 사건을 의뢰한 사람들에게 “수임료를 현금으로 내면 깎아 준다.”며 현금 결제를 유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산망 등재를 피함으로써 소득신고를 누락하기 위해서였다. 김씨가 이런 식으로 납세신고에서 빠뜨린 금액은 8억원이나 됐다. 김씨는 공증 업무에서도 수수료를 실제보다 낮게 신고하는 수법으로 소득 8억원을 누락시켰다. 국세청은 김씨에 대해 법인세 7억원을 추징하고 포탈세액만큼의 벌금을 부과했다. 성형외과 의사 이모(51·서울)씨는 세무신고가 이뤄진 진료차트만 병원에 두고 비보험 고액 현금결제 수술환자의 차트는 다른 장소에 별도로 보관했다. 이씨는 진료비를 친인척 명의의 차명계좌로 송금받거나 혹은 현금으로 받은 진료비를 차명계좌에 입금하는 방식으로 9억원을 탈루했다. 이씨는 소득세 4억원이 추징되고 검찰에 고발까지 됐다. 서울에서 외국어학원을 운영하는 김모(52)씨는 카드나 현금영수증 발급분만 소득으로 신고하고, 현금으로 받은 수강료 16억원은 신고에서 빼돌리는 수법을 쓰다 국세청에 적발됐다. 김씨는 세무조사에 대비해 과거 자기가 운영하던 학원에 근무했던 강사를 대표자로 내세워 명의위장 학원 두 곳을 등록한 뒤 이곳으로 6억원의 소득을 분산해 신고하는 수법도 썼다. 세무당국은 탈루소득에 대해 모두 12억원을 추징했다. ●199명 세무조사… 3017억 탈루 적발 의사·변호사·학원장 등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뻔뻔한 세금 탈루가 여전히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국세청은 올 1월부터 고소득 자영업자 199명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과세대상 소득 6688억원 중 3017억원(탈루율 45.1%)의 소득탈루를 적발했다고 21일 밝혔다. 국세청은 탈루소득에 대한 세금 1271억원을 추징하고 23명을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제재했으며 죄질이 나쁜 10명은 검찰에 고발했다.1인당 평균 15억 1600여만원의 소득을 빼돌려 6억 3900여만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것으로 계산됐다. 소득 탈루율이 2005년 조사에서 56.9%, 지난해 조사에서 47.0%였던 점을 감안하면 약간 개선된 것이지만 여전히 조사대상 소득의 절반가량이 은닉되고 있다. 국세청은 이날부터 새롭게 의혹이 제기된 고소득 자영업자 136명에 대해 강도높은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올해 종합소득세 및 법인세 신고를 분석해 탈루 혐의가 커 보이는 사람들로, 국세청이 벌이는 8번째 기획 세무조사다. 이번에 핵심 조사대상으로 선별된 분야는 현금거래를 통해 세금을 탈루한 혐의가 있는 성형외과·치과 등 개인 병·의원 및 의료법인, 성공보수 등을 소득신고에서 뺀 법무법인과 변호사들이다. 전체 조사대상의 60%가량이다. 특히 병·의원들 가운데는 연말정산 간소화 제도에 따른 의료비 자료를 아예 내지 않거나 부실하게 제출한 병·의원이 상당수 포함됐다. ●비보험 진료과정 중 건보 대상돼도 청구안해 국세청 관계자는 “새로운 소득탈루 수법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조사의 강도를 한층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서울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의사 최모(43)씨 사례를 신종수법으로 들었다. 최씨는 턱관절 환자 등 치료비가 비싼 비보험대상 환자의 진료비에 대해 소득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비보험 진료과정에 일부 건강보험 대상 시술이 이뤄져도 이를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하지 않았다. 건보대상 진료에서 약간의 손해를 보는 대신 감쪽 같이 전체 소득을 감춰 총 19억원을 탈루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최수종 주연의 신검을 둘러싼 죽음

    9년 만에 부활한 KBS 2TV ‘전설의 고향’이 한국 토종 납량물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는 가운데 13일 오후 9시 55분에는 최수종 주연의 ‘사진검의 저주´(극본 문은정·연출 김정민)가 전파를 탄다. 총 8회분의 단막극 형태로 제작된 ‘전설의 고향’은 지난 6일에 첫방송된 ‘구미호’편이 시청률 20%를 기록하며 단번에 수목 드라마 정상에 올라섰다. 제3화 ‘사진검의 저주’는 두번의 전란으로 위기에 처한 조선 왕실이 국운을 북돋우기 위해 보검인 사진검을 만들며 벌어지는 괴이한 죽음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납량물이다. 사건은 사진검 제작을 사흘 앞두고 대장장이 마을의 야장 칠복이 괴이한 모습의 시체로 발견되는 데서 시작된다. 포청 소속의 유능한 수사관인 윤인(최수종)은 포도대장에게 긴급 호출돼 칠복의 죽음에 대해 조사하라는 밀명을 받는다. 하지만 성구(이정)와 함께 수사에 착수한 윤인은 주변에 그을음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시신만 새까맣게 타버린 칠복의 시체를 보고 의구심만 늘어간다. 사건은 점점 더 미궁속으로 빠져 들고, 의문의 죽음은 계속된다. 한편 한 노파는 원귀의 저주로 인해 마을 사람 전부가 죽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성수청 무당인 무령(사강)이 등장하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는다. 1회분 단막 드라마인 ‘사진검의 저주’는 ‘해신’‘대조영’ 등 장편 사극에서 흥행을 이어온 최수종이 주인공을 맡아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최수종은 “이제는 지상파 방송사에서 사라져 버린 단막극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면서 “단막극을 통해 우리 드라마의 토양을 풍성하게 하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남현희 아! 4초

    남현희 아! 4초

    “경기 결과에는 만족한다. 그러나 조금 아쉽기도 하다.” 154㎝의 남현희(27·서울시청)가 한국 여자 펜싱 사상 처음 올림픽 메달을 일궈냈다. 남현희는 11일 베이징 올림픽그린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펜싱 여자 플뢰레 개인전 결승에서 이탈리아 발렌티나 베잘리(34)와 역전을 거듭한 혈투 끝에 5-6으로 패했지만 귀중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김영호가 남자 플뢰레 금메달을, 이상기가 사브르 동메달을 딴 적이 있지만 여자는 1964년 도쿄대회 이후 44년 만에 첫 메달이다. 29초를 견디지 못하고 패한 남현희는 올림픽 3연패를 이룬 최고의 검객을 맞아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함에 경기를 마친 뒤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으며 활짝 웃었다. 아쉬운 경기였다.3-4로 뒤진 채 3세트를 시작한 남현희는 2분1초 동안의 오랜 탐색전 끝에 59초를 남기고 4-4 동점을 만들었고, 과감한 공격을 시도,5-4로 극적인 역전을 이뤘다. 그러나 노련한 베잘리에게 허점을 찔려 29초를 남기고 5-5로 동점을 허용한 뒤 4초를 버티지 못하고 또 1점을 내줬다. 남현희는 2005년 쌍꺼풀 성형 수술 후유증으로 대표 훈련에 빠졌다는 이유로 대표 자격 정지를 받는 파문을 일으켜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14세 때 처음 검을 잡은 남현희는 펜싱을 그만둘 생각까지 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요가를 통해 마음을 달래며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급한 성격이 차분해지며 한 단계 성장했다. 개인 자격으로 나간 2006년 상하이 월드컵과 도쿄 그랑프리에서 2주 연속으로 세계를 제패했다.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도 차지했고,‘성형 파문’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낸 뒤 올림픽 은메달까지 일궈 냈다. 베이징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김봉석의 스크린 엿보기]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

    사진작가인 레온은 뉴욕의 밤거리를 찍다가 우연히 연쇄살인범을 만나게 된다. 매일 새벽 2시6분, 항상 같은 역에서 지하철을 탄 연쇄살인범은 같은 열차에 탄 승객을 무참하게 죽여 버린다. 하지만 경찰은 믿어주지 않고, 레온은 살인마의 뒤를 추적하느라 일과 연인마저 내팽개친다.‘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의 시작은 꽤 잔인한 살인 장면이 있는 스릴러 같다. 하지만 절반쯤 지나면 본색을 발견하게 된다.‘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은 논리적인 스릴러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언제나 존재해 왔던 어둠과 공포의 바닥까지 추락하는 경험을 안겨주는 끔찍한 공포영화다.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을 보고 싶다면, 원작자인 클라이브 바커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클라이브 바커는 최근 국내에도 출간된 ‘피의 책’으로 유명한 공포소설가인 동시에 핀헤드라는 무시무시한 캐릭터를 창조한 ‘헬레이저’(1987)를 만든 감독으로도 알려져 있다. 클라이브 바커의 공포 세계는 광대하다. 이유가 없는 살육을 저지르는 살인마나 복수심에 사로잡힌 원혼만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악 혹은 어둠의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다. 요괴나 악마의 세계처럼, 인간과 다른 존재로서 태곳적부터 존재했던 ‘어둠의 종족’을 창조한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세계는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원초적인 공포를 끌어낸다. 스티븐 킹이 ‘호러의 미래를 보았다.’고 절찬한 클라이브 바커의 소설은, 그런 점에서 일독할 가치가 있다. 바커의 말처럼 ‘우리 영혼에 깃든 어둠과 마주’하기 위해서.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은 클라이브 바커의 소설을 충실하게 형상화한 걸작이다. 레온은 살인마의 흔적을 쫓아가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뭔가 뒤틀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폭력적으로 변하고, 날마다 악몽을 꾸고, 살인마를 쫓는 일에만 빠져들게 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스스로 악몽의 세계에 들어선 것 같은 몽환적인 상황들이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력을 통해 탁월하게 묘사된다. 국내에도 개봉된 ‘버수스’에서 알 수 있듯이, 기타무라 류헤이는 현란한 장면 연출에 대단히 능한 대신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허술하다. 하지만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에서 기타무라 류헤이의 약점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할리우드의 치밀한 프리 프로덕션을 통해 견실한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기타무라 류헤이는 각각의 장면들을 멋지게 연출하는 것에 주력했다. 때로 유머까지 담아가면서, 클라이브 바커가 창조한 어둠의 세계를 영상으로 확실하게 재현한 것이다.‘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은 최근 아시아 공포영화와 고전 공포영화의 리메이크에 주력하면서 활력을 잃어가던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예고하는 영화다. 영화평론가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1) 애완견과 개장국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1) 애완견과 개장국

    개가 나오는 풍속화는 여럿이 있다. 그런데 개가 주인공이 된 경우는 드물다. 그림(1)과 (2)는 확실히 생활 현실 속에서의 개를 그렸다는 점에서 여느 개 그림과는 다르다. 그림(1)은 신광현의 ‘강아지와 놀기’다. 어린아이가 앞서 달리며 강아지를 부르고 강아지는 열심히 쫓아간다. 이처럼 어린이가 좋아하는, 어린이와 어울려 노는 강아지는 애완견이다. 하지만 김준근의 ‘개백정’(그림2)을 보면 사정이 전혀 다르다. 사내, 곧 개백정이 개를 끌고 있고 개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앞발로 줄을 잡아당기고 있다. 불쌍한 생각이 왈칵 든다. 이 경우 개는 개장국의 재료일 뿐이다. 애완견과 식용견의 구분은 있지만, 그 선은 명확하지 않다. 인간의 태도에 따라 애완견이 식용견이 되기도 하고, 식용견이 애완견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림(1)의 애완견은 언제 그림(2)의 식용견이 될지 모른다. 애완견의 역사는 오래다. 동아시아의 정치교과서인 ‘서경’에는 개에 관한 글 한 편이 실려 있다.‘여오’라는 글이다.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장악하자 사방에서 공물을 바친다.‘여족’이 보낸 것은 큰 개(‘오’는 개란 뜻이다)였다. 여족이 바친 개는 식용이 아니고, 애완의 대상이었음은 물론이다. 여족의 개를 보고 소공이 무왕에게 이렇게 충고한다.“개와 말은 지금 이곳의 풍토에 맞지 않으면 기르지 마시고, 진귀한 새와 기이한 짐승은 나라에서 기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왕이 애완동물에 빠져서 국정을 게을리 하고 또 이런 것들을 구하느라 백성을 괴롭힐까 하여 하는 소리다. 어쨌거나 ‘여오’를 보면 애완견의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후기 시장에서도 개장국 많이 팔아 조선시대 문헌에 애완견의 존재를 찾기란 어렵다. 다만 연암 박지원의 ‘취하여 운종교를 거닐고 쓴 글’에서 개를 ‘애완’하는 흔적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어느 여름 날 밤 박지원은 박제도(박제가의 형)·이희경·이희명·원유진·이덕무·서유린 등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운종가 종각 아래를 걷는다. 직접 읽어 보자. “이때 3경 4점이 벌써 지나 달빛이 더욱 훤하게 비치고, 사람 그림자는 모두 열 발이나 늘어났다. 돌아보니 오싹하여 무서운 생각까지 들었다. 길거리에 개들이 어지러이 짖어댄다. 큰 개 한 마리가 동쪽에서 다가왔는데 희고 수척했다. 여럿이 둘러 앉아 쓰다듬으니, 좋아서 꼬리를 흔들고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연암은 이어서 이 개가 몽골 원산이라는 것, 말처럼 크고 사나워 길들이기 어렵다는 것, 중국에 들어간 것은 작은 종자이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더 작은 종자라는 것, 하지만 우리나라 개보다는 그래도 크다는 것, 중국에 간 사신을 따라 조선으로 들어온다는 것 등 이 개에 대한 정보를 늘어 놓는다. 재미있는 것은 개의 이름이다. 보통 이 개를 호백(胡白)이라 하고, 그 중에서 작은 종자를 ‘발발이’라고 한다는 것이다.‘발바리’란 애완견은 아마도 이 개를 지칭하는 것일 터이다. 다시 더 읽어보자. 무관(이덕무의 자)이 취하여 개에게 ‘호백(豪伯)’이란 자를 지어 주었는데, 어느 틈엔가 사라지고 없다. 무관이 서운하여 동쪽을 향해 서서 흡사 오래된 친구를 부르듯 ‘호백이!’ 하고 세 번을 불렀고, 일행이 한바탕 껄껄 웃었다. 그러자 길거리에 개떼가 마구 달리며 더욱 큰 소리로 짖기 시작하였다. 어떤가. 개에게 자까지 지어 주었으니, 이덕무가 개를 가장 ‘애완’했던 모양이다. 호백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애완’은 그날로 끝나고 개장국이 되지 않았을까? 이제 개장국 이야기를 해 보자. 정조 때 문헌인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의하면 개장국을 먹는 것은 복날 풍속이다.“개고기를 총백(파의 밑동)과 섞어 푹 찐다. 닭고기나 죽순을 넣으면 맛이 더욱 좋다. 이것을 ‘개장(狗醬)’이라 부른다. 혹 국을 끓여 고춧가루를 뿌려 흰 쌀밥을 말아서 먹기도 한다. 이것을 먹고 땀을 내면 더위를 물리치고 허한 기운을 보충할 수 있다.” 유득공은 “‘사기’에 진(秦)나라 덕공 2년 처음으로 복날 제사를 지냈다. 사대문에서 개를 잡아 충재(蟲災)를 막았다.”고 한 것을 복날에 개를 잡아먹는 풍습의 시초로 보고 있다.‘예기-내칙’에도 개고기에는 차조가 잘 어울린다고 하고 있으니, 아마도 개는 가축이 되면서부터 식용이 되었을 것이다. 유득공의 기록에 의하면 개장은 원래 개고기를 찐 것이었고, 지금의 국을 말아 먹는 스타일과는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개고기를 푹 찐다.”는 부분의 원문은 ‘훈증(燻蒸)’이다. 찐다는 의미의 ‘증(蒸)’ 자를 쓰고 있다. 그리고 “다시 국을 만든다.”(又作羹)라고 하고 있으니, 원래 개장은 찌는 요리였던 것이다. 순조 때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에도 개장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경도잡지’의 것과 동일하다. 다만 “시장에서도 많이 판다.”는 부분만 추가되어 있다. 이 자료에 의하면 개장국은 조선후기 시장에서도 많이 파는 음식이었던 모양이다.‘개백정’ 그림 역시 영업용 개장국을 끓이기 위해 개장수가 개를 끌고 가는 것을 그린 것이 아닐까? 어쨌거나 서울 시내에 개장국을 파는 집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정조실록’ 1년(1777) 이찬을 추대하려는 역모를 꾀하던 일당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개장국 이야기가 나온다. 정흥문이란 자의 자술서에 “7월 28일에 대궐 밖의 개 잡는 집에서 강용휘와 제가 개장국을 사 먹은 뒤 같이 대궐로 들어갔습니다.”라는 말이 있다. 곧 서울에 개장국을 상시적으로 파는 가게가 있었던 것이다. ●손꼽히는 개고기 마니아는 중종때 권신 김안로 개고기는 서울 시내에서 팔기까지 한 전통 식품이지만, 개고기는 먹는 사람, 안 먹거나 못 먹거나, 먹기를 반대하는 사람이 뚜렷이 갈린다. 근대 이후에 와서 분화된 것이 아니고, 조선시대에도 그랬다.19세기 문헌인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실린 ‘정승이 개장국을 즐겨 먹은 일’이란 글에는 북경에 가서까지 개고기를 삶아 대령하라고 해서 먹은 심상규와 남의 집 잔치에 나온 개장국을 보고 ‘손님에게 대접하는 음식’이 아니라며 먹지 않았던 이종성의 일화가 나란히 소개되어 있다. 개고기 마니아와 개고기를 혐오식품으로 보는 시각은 조선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개고기 마니아를 꼽자면 중종 때 권신 김안로가 있다. 이팽수란 자는 김안로의 비위를 맞추느라 봉상시 참봉이 되자, 크고 살진 개를 골라 사다가 요리해 김안로에게 올렸고, 김안로는 이팽수의 개고기 구이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이팽수는 그 공으로 승정원 주서가 되었다. 승정원 벼슬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청직이다. 이팽수는 개고기로 주서가 되었으므로 ‘가장주서(家獐注書)’란 별명을 갖게 되었다. 가장이란 ‘집노루’란 뜻인데, 개고기를 가장이라 불렀던 것이다. ●초복날 성균관 유생들에게 인기 있던 별미 개고기는 또 성균관 유생들에게 공급하는 별미이기도 하였다.19세기 초반의 윤기란 문인은 성균관에서 오랫동안 학생으로 있었는데, 그가 성균관의 풍속을 노래한 한시에 개고기에 관한 부분이 있다. 학생들에게 주는 특식을 ‘별미’라 하는데, 매달 1일 6일이 드는 날 아침에 대별미를 제공한다. 고직이는 그 날이 되기 전에 미리 유생들에게 물어보고 요구하는 것을 구해 올린다.3일 8일이 되는 날은 소별미날이다. 이 날은 생선을 올린다. 국을 끓이거나 구워서 올리는데 양이 적어서 유명무실한 것이었다. 그 외 명절 등의 별식이 있는 날이 있는데, 복날도 거기에 들어간다. 초복에는 개고기를 주었고, 중복에는 참외 2개, 말복에는 수박 1통을 주었다고 한다. 윤기는 초복의 개고기가 사소한 것 같지만, 중복의 참외보다 낫다고 말하고 있다. 국립대학에서 초복에 주는 보신탕이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이다. 개고기를 먹느냐 먹지 않느냐 하는 것은 지금도 계속되는 논쟁이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자리에 끼면 마지못해 수저를 들지만, 일부러 찾아다니며 먹지는 않는다. 집에 강아지를 키우고 난 뒤로 그렇다. 이제 아주 안 먹으려 한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중남미의 정열 서울을 녹이다

    중남미의 정열 서울을 녹이다

    추적추적 장맛비가 내리던 지난 25일 오후.‘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의 개막식이 열린 덕수궁 미술관 곳곳은 라틴계 사람들이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대형 기획전이라지만, 출신국 관계자들이 그렇게까지 성원하기는 드문 일이었다. 따져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전시는 애당초 ‘그들’의 발의로 시작됐다. 한국 주재 남미권 대사들의 “유럽 미술만 미술이 아니다.”라는 제언에서 출발, 그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국립현대미술관이 작품 선정 작업에 나섰던 것. 미술계가 지나치게 서유럽 편향적으로 흘러왔다는 자성을 토대로 한 전시에는 멕시코, 브라질, 베네수엘라, 페루, 콜롬비아, 칠레 등 중남미 16개국의 거장들이 총동원됐다. 라틴 대표작가 84명의 작품이 무려 120여점. 세계미술사에 멕시코 르네상스를 이끈 트로이카로 기록된 디에고 리베라,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등이 포함됐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미술학도가 아니고서야 이 이름들을 기억할 리 만무할 터. 일반 관람객들에겐 뭐니뭐니해도 영화화되기도 했던 디에고 리베라와 그의 부인 프리다 칼로의 존재가 가장 반가울 듯하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7점이 와 있다. 라틴 현대 미술을 보여주는 전시는 크게 네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멕시코 혁명으로 불붙어 중남미 전체로 확산된 ‘벽화운동’, 서유럽 식민지 아래서 끊임없이 정체성을 고민한 흔적을 추적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정체성’, 프리다 칼로의 작품세계를 통해 널리 알려진 라틴 초현실주의 계보를 짚어보는 ‘개인의 세계와 초현실주의’,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발전과 함께 꽃핀 기하추상 운동을 살펴보는 ‘구성주의에서 옵아트까지’ 등이다. 전체 맥락을 먼저 이해한 뒤 1,2층을 둘러보면 남미 현대미술을 개괄해보는 데 크게 부족함이 없다. 남미 벽화운동의 선구자로 통하는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은 전시 초입에서부터 눈길을 끈다. 백인지배자들에 대항해 인디오와 메스티소들의 권익 옹호를 위해 일어난 멕시코 혁명은 삽시간에 새로운 민중예술을 구현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이어졌다. 벽화는 당시 변혁운동의 일환이었던 것. 옥수수 가루를 파는 멕시코 노동자 계급의 여인을 그린 디에고 리베라의 ‘피놀레 파는 여인’이 대표작이다. 황색의 군복, 청회색의 노동복 등 색채 대비를 통해 힘의 대립관계를 극명히 보여주는 시케이로스의 ‘5월1일 행진’을 비롯해 화폭 가득 굵고 단순한 선이 꿈틀거리는 오로스코의 ‘손’‘죽음과 부활’ 등도 선보인다. 고통스러운 자의식을 초현실주의 화법으로 묘사했던 프리다 칼로의 수채화 ‘코요아칸의 프리다’와 유화 ‘미겔 N. 리라의 초상’, 동글동글한 선으로 대상을 희화화시킨 콜롬비아 초현실주의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시인’ 등도 주목해볼 작품. 가벼운 붓터치보다는 원색을 쓰더라도 장중하고 역동적인 감상을 안긴다는 점이 라틴미술의 전반적인 특징이다. 유럽과 원주민 문화가 결합된 묘한 혼혈정서가 작품 곳곳에 스며 있다는 점도 챙겨볼 만하다 . 기혜경 학예연구사는 “20세기 초반부터 1970년까지의 라틴 대표작들이 엄선됐다.”면서 “식민지배의 경험, 모더니즘과 전통의 충돌과 화해 등을 거친 남미의 현대미술에서 우리의 모습을 성찰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11월9일까지. 성인 1만원, 청소년 8000원, 초등학생 6000원(덕수궁 입장료 포함).(02)368-1414.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필리핀서 한인 일가족 3명 피살

    필리핀 올롱가포시에 살던 한국인 일가족 세 명이 흉기에 찔려 숨졌다. 현지 경찰은 27일 “수도 마닐라에서 서쪽으로 80㎞ 떨어진 울롱가포시 카발란 마을 장모(54·여)씨 집에서 이날 오전 장씨와 딸,10살된 손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손자 1명은 무사했다. 경찰은 “강도들이 에어컨 환기구를 뜯고 내부로 침입해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들은 귀중품을 찾기 위해 서랍을 뜯는 등 집안 곳곳을 뒤진 흔적을 남겼다.”고 말했다. 올롱가포시는 과거 미군 해군기지가 들어서있던 곳이다. 미군 철수 이후 산업도시로 변신했고 현재 한국인들의 진출도 활발한 상태다.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편파보도와 사회분열/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옴부즈맨 칼럼] 편파보도와 사회분열/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대한민국을 한차례 뒤집어 놓았던 광우병 파동과 촛불시위 사태가 무더위와 장마의 계절 속으로 그런대로 사그라지고 있다. 대신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과 일본의 독도 도발 사건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사회 이슈들은 이처럼 한쪽이 다른 쪽을 대체하며 나아가는 법이지만, 광우병과 촛불 사건은 이를 보도하는 언론 문제와 뒤얽혀 뒷맛이 개운치 못하다. 언론들은 제멋대로 편파 보도, 공격 보도를 일삼았고, 사회는 문제의 언론을 사법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모습이 너무 후진적이어서 부끄럽다. 문제의 발단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의 통합을 지향하는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에서 비롯됐다.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국민과 살갑게 대화할 줄 모르는 정치권력은 촛불에 기름을 부은 꼴을 만들었고, 궁극적으로 사회를 분열케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언론들은 사회적 분열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드는 확성기 노릇을 했다. 소위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으로 나뉜 언론들은 더이상 편파보도를 숨기지 않는다.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애시부터 찬반 입장이 먼저 정해지고, 거기에 맞춰 사실과 정보들을 편향적으로 취사선택 편집함으로써 이슈를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가 버린다. 언론의 광우병 보도, 촛불시위 보도에는 저널리즘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 보도, 객관보도의 정신이 실종됐다. 언론들은 사실을 비틀고 축소 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는 의견과 주장이 다른 편에 대해 공격을 쏟아 붓는다. 일부 언론의 공격 저널리즘은 분노와 저주, 비난과 비아냥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동반한다. 감정으로 격해진 언론의 공격 보도는 언론들간의 한바탕 싸움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시민집단간의 분열적 다툼으로 비화된다. 광우병 보도를 놓고 MBC PD수첩과 이른바 조·중·동 신문이 한바탕 기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결국 편파적 언론들의 네탓 싸움에 불과하다. 정파적으로 편이 갈라진 언론들의 편파 보도는 지금 대한민국 사회를 심각하게 분열시키고 있다. 보수집단은 진보언론을, 진보집단은 보수언론에 대해 불신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서울신문은 지난주 창간 104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언론의 이념적 정파적 편향 조건을 경험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극복하기도 했던 서울신문은 이제 객관과 공정 언론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최근 서울신문의 광우병과 촛불시위 보도만 보아도 객관과 균형을 위해 애쓴 흔적을 엿볼 수 있다. PD수첩 관련 보도는 ‘방통심의위 결정, 해명방송 임박,PD수첩 수사 이번주 ‘분수령’’(7월15일자 9면),‘한총리 PD수첩에 손배 검토’(7월19일자 2면),‘여야 국회 긴급현안질의 무게중심 이동, 쇠고기 잠잠 촛불-PD수첩 공방’(7월19일자 4면),‘MBC,PD수첩 징계수용? 불복?’(7월19일자 9면) 등의 기사에서 사태의 추이를 객관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또한 7월18일자 9면 ‘언론자유 침해 vs MBC 신뢰 추락’,‘與6 대 野3 방통심의위원 중립 논란’ 기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16일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관련 방송에 대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란 중징계 결정을 내린 데 대한 사회적 논란을 균형감 있게 보도하고 있다.7월17일 ‘PD수첩, 완벽하진 않지만 왜곡없다고?’ 사설은 PD 수첩이 왜곡 편파 보도의 문제를 제대로 시인하지 않고 있는 점에 대해 “PD수첩 제작진의 자질을 의심하게 된다.”며 따끔하게 질타하고 있다. 편파와 분열의 언론 환경에서 객관과 공정과 사회 통합을 지향하는 정론지의 길을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104년의 전통과 역사를 근거로 하여 서울신문이 혼탁한 이 시대의 정론지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 SBS ‘일지매’ 기말고사 시험문제로 출제

    SBS ‘일지매’ 기말고사 시험문제로 출제

    SBS 수목드라마 ‘일지매’(극본 최란ㆍ연출 이용석)가 각종 시험문제와 퀴즈에 등장한 사실이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진행된 중고등학교 기말고사 시험문제를 비롯해 2008 정보처리기사, 그리고 심지어 KBS 퀴즈프로그램인 ‘퀴즈 대한민국’에서도 ‘일지매’가 등장한 것. 우선 7월 초 한 고등학교에서 진행된 기말고사의 작문문제에서 ‘일지매’가 등장해 즐거움을 선사했다. 역시 모 학교 기말고사 도덕 시험에서는 ‘다음 중 공동체(?) 운동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라는 문제에서 ‘의식개혁운동’,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일지매’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한 학교의 사회 시험 중 옳은 말을 한 사람을 골라야 하는 문제에서는 보기로 ‘일지매’ 주인공인 일지매와 시후, 은채, 겸이, 봉순이 등장해 각각 자신의 입장을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고등학교 문제와 더불어 7월 초에 ‘데이터베이스’, ‘전자계산기구조’, ‘소프트웨어공학’ 등이 문제로 출제된 2008년 제 2회 정보처리기사 시험에서 등장한 회사이름도 ‘일지매’였다. 이외에도 지난달 1일 방송된 KBS ‘퀴즈 대한민국’ 279회 방송 분중 2라운드 4단계에서도 일지매 관련 문제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조선후기의 도적 일지매는 자신이 다녀간 흔적을 ‘이 꽃’그림으로 대신했다 해서 일지매라 이름 붙여졌는데 사군자 중 하나인 이것은?’이라는 문제가 출제되었고 출연자는 ‘매화’라는 정답을 쉽게 맞췄다. 드라마 관계자는 “‘일지매’가 방송되자마자 이렇게 각종 시험문제에까지 등장한 걸 보면 역시 ‘일지매’는 국민드라마”라며 “이제 방송 4회분이 남았는데 잘 마무리해서 시청자들 가슴에 좋은 드라마로 새겨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제공=SBS 서울신문NTN 김경민 기자 star@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내가 바로 으뜸 공무원] 노원구 김석진·황인옥씨

    [내가 바로 으뜸 공무원] 노원구 김석진·황인옥씨

    지난주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노원구청장실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노원구와 관련한 소유권 보존등기 말소소송 사건을 맡고 있다.’는 강민구 부장판사가 보낸 편지였다. 내용은 투철한 사명감에 불타는 어느 공무원의 소개였다. 강 부장판사는 “국가 소송을 마치 자기의 재산 소송처럼 준비하는 구청 공무원들의 지극정성에 감동했다.”면서 “소송의 승패를 떠나 널리 알려야겠다.”고 펜을 잡은 이유를 설명했다. 또 이런 직원을 아랫사람으로 둔 이노근 구청장의 인복이 부럽다고도 했다. 편지에 언급된 주인공은 건설관리과에 근무하는 김석진(34)씨와 재무과에서 일하는 황인옥(39) 주임. 이들이 지난해 3월부터 맡고 있는 ‘소유권 보존등기 말소소송’은 ‘무주 부동산(주인 없는 토지)’ 3곳(397㎡)을 공고를 통해 국가 소유권으로 이전해 일반에 매각했지만 원주인의 후손이 나타나 토지를 다시 돌려달라는 내용이다. 원주인의 후손은 해당 토지가 1910년대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토지조사부에 증조부가 소유자로 되어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2심 담당판사 구청장에게 칭찬편지 소송이 진행되면서 원고의 주장을 깨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 전쟁으로 해방 이전의 지적 관련 공부와 등기부가 소실되거나 사라져 당초 국가 소유라는 것을 입증하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소송에서 지면 토지뿐 아니라 사용료 등의 관련 비용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40억원가량을 배상해야 한다. 황 주임과 김씨는 먼저 정부 부처의 기록보관소를 뒤지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국가 소유였거나 매입했다는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다른 업무도 맡고 있어 업무 틈틈이 시간을 냈다. 그동안 기록을 찾아 방문한 곳만도 국가기록원과 철도청, 국세청, 한국자산관리공사, 서울상업등기소와 각급 종합도서관 등이었다. 짧게는 한 나절, 길게는 열흘 이상이 걸렸다. 그러다보니 어떤 곳에서는 본의 아니게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김씨는 “해방 이전 서류를 찾는다며 바쁜 담당자에게 수시로 전화하고, 어떤 때는 서고에서 하루종일 서류를 찾고 있으니 신경이 쓰여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오히려 상대방을 두둔하기도 했다. 끈질기게 매달린 결과, 마침내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다. 서울상업등기소에 보관 중이던 1942년 당시 ‘동양운모광업회사’라는 법인 등기부 등본이었다. 해당 토지가 여러 필지로 분할되기 전 이미 처분된 정황이 나타나 지난 1월 1심에서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현재 2심 진행… 새 증거 찾기 발품 현재 원고가 항고해 2심이 진행 중이다. 지난 4일 1차 변론이 있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주어진 10분 안에 담당 판사를 설득시키기 위해 추가로 찾아낸 증거를 6장의 도면에 알기 쉽게 표시해 변론했다. 김씨 등은 “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인데 담당 부장판사님의 칭찬이 과분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건과 같은 토지 소송은 해방 전후의 혼란기와 한국 전쟁까지 겹쳐 있어 소유권 변동을 추적하기가 어렵다.”면서 “소유권 이전을 증명할 명확한 증거는 없었지만 그 땅과 연관지을 수 있는 작은 사실들을 수집해 전체적인 사실을 유추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라 조심스럽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거리 미술관 속으로] (69) 대학로 조각공원

    [거리 미술관 속으로] (69) 대학로 조각공원

    대학가는 책방이 사라진 쇼핑거리로 변했고, 예술인의 열정보다는 외국계 커피전문점과 유흥문화를 찾는 것이 더 쉽다. 그나마 벽 곳곳에 붙은 공연포스터와 거리에 놓인 조형물들이 문화·예술의 거리, 대학로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종로구가 2005년에 꾸민 ‘대학로 조각공원’이다. 혜화사거리에서 이화동 사거리까지, 마로니에공원쪽 보행로 1㎞ 구간에 조형물을 설치한 조각공원은 거리를 미술관으로 꾸미는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의 원조격이다. 종로구는 당시 5개월에 걸쳐 공모전을 진행했다.‘내일’을 주제로 국내외 작가들이 출품한 작품 436점 중 25점을 선정해 이곳에 늘어 놓은 조형물들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오가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놀이거리이다. 더러워서 피하는 ‘똥’이 이곳에선 만남의 장소로 통한다.‘엉덩이 이야기’ 정도로 해석되는 정진아 작가의 ‘더 푸프 테일(The Poop Tale)’이다. 크고 작은 세 덩이의 인분(人糞)을 초록, 파랑, 빨강, 주황 등 색색의 유리타일로 장식했다. 거부감보다는 친근감이 느껴지고, 앉아 쉴 수 있는 기능까지 갖고 있어 지역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장진연 작가의 ‘뉴스 페이퍼(News Paper)´와 이희정 작가의 ‘당신의 자리’, 김경민 작가의 ‘나른한 오후’ 등도 보는 순간 디지털카메라를 꺼내들게 한다. 투명인간이 옷을 입은 듯한 모양의 뉴스 페이퍼는 당초 게시판용으로 설치된 것이지만 원래의 역할보다는 시선을 끄는 조형물의 기능이 더 크다. 이곳을 찾은 이들은 대리석에 누워 있는 청동인간(나른한 오후)을 따라 널브러지거나, 널빤지 양 끝에 앉은 사람(당신의 자리)을 흉내내며 쉬기도 하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도 한다. 이화동 사거리쪽에 늘어선 조형물은 아이들의 놀이공간이다.‘애벌레 터널’(이병호 작가),‘토끼와 거북이’(윤기호 작가),‘산책’(이은경 작가) 등을 두고 아이들은 원통 속을 통과하거나 조형물을 타며 논다. 이제 조형물들은 대학로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몇몇 조형물들이 홍보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은 광고판이나 낙서판으로 전락해 버린 데 대한 아쉬움은 남아 있다.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승무원 출신 가수 이라,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

    승무원 출신 가수 이라,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

    가수 이라(본명 엄이라ㆍ25)가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해 4월 정규 1집을 발매하고 타이틀곡 ‘이별다짐’으로 활동한 이라는 스튜어디스 출신이라는 이력으로 화제를 모았다. 故이라는 지난 6일 오전 11시께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서울 삼성동 서울의료원으로 옮겨졌다. 유족 측은 고인이 자살할 이유가 없었고 타살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 자연사로 추정하고 있다. 유족은 정확한 사인을 위해 서울 의료원에 정밀검사를 의뢰한 상태다. 故이라의 시신은 같은 병원 영안실 8호실에 안치됐으며 8일 오후 1시 발인한다. 故이라는 스튜어디스로 근무하던 중 만난 프로듀서를 통해 가수로 데뷔했으며, 데뷔한 후에는 ‘샤인’으로 음반을 발매했지만 동명의 그룹이 있어 ‘이라’라는 예명으로 활동해 왔다. 서울신문NTN 김경민 기자 star@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LG 국내최대 태양광발전소 가동

    LG 국내최대 태양광발전소 가동

    정부가 사실상 3차 오일쇼크를 선언한 6일, 충남 태안의 태양광발전소를 찾았다. 단일규모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14㎿급이다.LG그룹이 지어 지난달 말 가동에 들어갔다. 태안에 도착하니 ‘기름사고’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9만평 너른 땅에 직사각형 모양의 태양전지 모듈들이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모듈 하나의 크기는 70인치 PDP 패널만 했다. 가격은 개당 80만원. 태양광발전소는 모듈 7만 7000개로 구성됐다. 이곳에서 생산된 전력은 연간 19GW. 전체 태안 가구(2만가구)의 절반에 가까운 8000가구가 1년동안 쓸 수 있는 양이다. 강풍(순간초속 60m)과 지진(진도 5)에 견딜 수 있게 설계돼 태풍 ‘매미’가 다시 와도 끄떡없다. 생산된 전기는 한국전력공사에 1㎾당 677원에 판다. 전력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시세는 ㎾당 100원 수준이다. 차액 577원은 정부 예산으로 메운다. 정부가 이렇듯 보조금을 대가며 태양광을 키우는 것은 물론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구본무 회장 자택 비싼 전기요금이 계기 연간 예상 매출액은 130억원이다. 이산화탄소(1만 2000t) 배출권을 팔아 추가로 올릴 수 있는 수익 3억원(28만 5000달러)을 보태도 투자비 1060억원에는 한참 못 미친다.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려면 최소한 8년은 걸린다는 계산이다. 그렇다면 LG는 왜 이런 사업을 시작했을까. 계기는 오너의 관심이었다. 구본무 회장은 서울 한남동 자택의 전기요금이 너무 많이 나오자 대체에너지에 관심갖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기후여건과 LG의 기술력을 감안했을 때 그나마 도전 가능한 사업이 태양광이었다. 구 회장은 한남동 자택에 액화천연가스(LNG)를 이용한 소규모 대체에너지 시설도 설치 중이다. 태양광 발전의 최적온도는 25℃이다. 사막처럼 너무 뜨거우면 오히려 효율이 떨어진다. 적당히 열을 식힐 수 있는 바람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햇빛과 바람이 좋은 태안이 LG에 낙점된 이유다. 이곳 태양전지 셀의 효율은 17∼19%. 태양빛 100개를 받아 이중 17∼19개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한다는 의미다. 국내에서는 높은 수준이지만 셀 분야 세계 1위인 일본 샤프(25%대)에는 못 미친다. ●정부보조금 삭감에 추가투자 보류 LG는 보령 등에 태양광시설을 추가로 지으려던 투자계획을 보류했다. 정부가 지난 5월 3㎿ 이상 대형사업자의 태양전기 매입가격을 30%(677원→472원) 삭감했기 때문이다. 발전소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안성덕 LG솔라에너지 대표는 “애초 돈벌려고 시작한 사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400원대 가격에는 적자가 너무 심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양전지의 핵심소재인 폴리실리콘 가격만 해도 1년새 10배(㎏당 40달러→400달러)나 뛰었다. 전세계적으로 대체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면서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국산화가 시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LG는 내년까지 실리콘(LG화학)과 셀·모듈(LG전자) 자립을 달성, 수직 계열화를 완성한다는 목표다. 이렇게 되면 소재에서 발전소까지 ‘태양광 턴키 수출’이 가능해진다. 태안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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