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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재범 칼럼] 우리가 더 걱정이다

    [박재범 칼럼] 우리가 더 걱정이다

    끔찍했다. 쓰나미가 일본 해안 도시를 초토화시키는 장면을 보고 자연재해의 무서움을 실감했다. 칠레(2010년 2월), 아이티(2010년 1월), 중국 쓰촨성(2008년 3월), 인도네시아 해안(2004년 12월) 등 지진과 해일이 쓸고 간 흔적을 여러차례 외신 등을 통해 봤지만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TV에서 시커먼 쓰나미의 물결이 시속 700㎞로 도시를 덮치고, 달리는 차량을 집어삼키는 것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충격이 컸음에도 사태 발생 초기 일본인들은 의연함을 잃지 않아 눈길을 모았다. TV 등 언론에서도 피해 현장은 방송하되 시신은 일절 보여주지 않고 있다. 선진국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준다. 우리는 과연 어떨까라고 자문해봤다. 시민들은 이웃의 아픔을 덜어주자고 말하지만 지도층에 속하는 이들은 오히려 황당한 발언을 내뱉고 있어 개탄스러울 뿐이다. 일본의 피해를 놓고 각 분야마다 냉정한 진단과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살아남은 자들이 더 고민해야 하기에 당연하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대형 재해 대비 능력과 의식을 되돌아보는 것은 더없이 중요하다. 쓰나미 발생 다음 날인 지난 12일 정부 부처 몇곳에 전화를 걸어 일본의 재앙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물어보고는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아무래도 발등의 불이 아닌 까닭에 긴장의 강도는 떨어지겠지만 정부로서 나름대로 대응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쓰나미 발생 직후 한국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소방방재청을 중심으로 원전 등 주요시설과 해안가 등의 안전상태를 긴급점검했다는 것이다. 기존에 만든 재앙 대비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행정기관 간의 횡적인 협력 수준이 적절히 이뤄지고 있는지 등을 파악했다고 한다. 더욱이 이명박 대통령은 쓰나미 발생 이후부터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방문하기 위해 전용기에 탑승하기 직전까지도 시시때때로 화상회의 등을 갖고 관계기관을 독려했다는 것이다. 힘있는 기관들이 소방방재청의 말을 따르도록 힘을 실어준 셈이다. 그럼에도 미진하다는 인상이다. 그것은 우리의 현주소가 너무나 낙후돼 위험에 취약한 탓이다. 또 해당 전문가들 말고는 입법·행정부의 대다수는 물론 국민 일반의 의식이 너무나도 뒤떨어져 있다. 실제로 1995년 지진법이 제정됐지만, 그 이전에 지어진 노후건물이 많아 지진 무방비 건물이 서울만 해도 10채 중 9채에 이른다. 게다가 상황이 발생했을 때 피해를 직접 입을 주민의 안전불감증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해변에 설치하려던 쓰나미 안내 간판마저 주민들의 반대로 달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회와 정부 일각의 시각이다. 안전은 생명에 직결된 가장 중요한 과제임에도 관련 부서 위상은 정부 내에서 말석이다. 차관급 부처라서 장관급 부처에 밀리기 일쑤다. 국회에서도 국민의 안전은 찬밥이다. 지난해 부산의 고층아파트 화재 이후 초고층빌딩의 대피시설 의무화는 입법화됐지만, 내진설계 대상에서 빠진 3층 이하 건물에 대해 내진설계를 의무화하려던 정부입법안은 무늬만 남게 됐다. 국회는 서민 부담을 감안해 ‘의무화’를 ‘권장’으로 수위를 낮췄다고 하지만 진실로 국민을 위한다면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재원 문제는 다른 차원에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국회의 이런 안일한 습성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현상이 반복된다. 이번 쓰나미로 지진·해일 등 대형 재해 대책을 강화하려 해도 입법화의 난항, 주민의 반대, 나눠먹기식 예산 편성 등의 고질적 늪에 빠져 허송세월을 거듭하지 않을지 우려된다. 행정부에 앞서 국회가 국민 의식을 전환시키는 선도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 한반도가 상대적으로 지진 등의 안전지대에 속하지만 언제든 자연의 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jaebum@seoul.co.kr
  • [위기의 한국교회 종교개혁 현장서 길을 묻다] 500년이 지나도 살아 숨쉬는 ‘루터의 정신’

    [위기의 한국교회 종교개혁 현장서 길을 묻다] 500년이 지나도 살아 숨쉬는 ‘루터의 정신’

    마르틴 루터(1483~1546)의 흔적을 더듬는 여정 자체는 그다지 버거울 게 없다. 루터는 1483년 독일 아이슬레벤에서 태어나 광부로 생계를 꾸리려는 아버지를 따라 만스펠트로 옮긴다. 그리고 마그데부르크, 아이제나흐, 에르푸르트 등에서 유년과 청년기를 보내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방향과 토대를 착실히 닦는다. 그리고 장성한 뒤 비텐베르크, 보름스, 바르트부르크성 등에 굵직한 발자국을 찍었다. 1521년 로마 교황으로부터 마지막 파문장을 받은 보름스를 제외하면 모두 독일 동북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어느 도시에서건 차를 타고 한 시간 남짓이면 넉넉히 닿을 수 있는 만큼만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 넓지 않은 곳에서 그가 이뤄낸 업적과 생애를 따라가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종교사, 나아가 인류 역사에 광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인 까닭이다. 몇년 전 독일 정부에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인류역사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였다. 이론의 여지 없이 압도적인 1위로 루터가 꼽혔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곽교회 문에 내건 ‘95개조 명제’는 세속 권력에 대한 욕망, 금권에 대한 부패 등으로 얼룩진 중세 교회 대변혁의 신호탄이었다. 지금껏 개신교에서 종교개혁주일로 삼고 있는 이날이 2017년이면 500주년이 된다. ●신앙·믿음·개혁을 낳은 ‘정신 문화재’ 비텐베르크는 아예 ‘루터의 도시’로 통한다. 비텐베르크 교회가 대다수 루터 관광객이 찾는 첫 방문지다. 루터가 처음으로 설교를 맡아 신도들의 동의와 지지를 얻으면서 95개조 명제를 내걸고 로마 교황청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자신감을 안겨준 공간이다. 500년 전 루터 생존 당시 벽보의 흔적은 화재로 없어졌다. 대신 1857년 빌헬름 황제가 부분 재건축을 하면서 새로 철문을 만들고 거기에 ‘95개조 명제’를 촘촘하게 새겨 놓았다.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도록 루터의 개혁 정신을 영구히 남겨 놓은 것이다. 교회 안내자로 평생을 바친 베르나르트 그룰(75)은 “비텐베르크 교회는 종교개혁의 시작과 전개과정을 보여주며 신앙과 믿음, 개혁을 낳은 ‘정신적 문화재’”라면서 “이를 통해 오늘날 교회들은 내면적인 변화와 신앙을 향한 개선 등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마침 교회를 찾은 독일 신학자들 또한 그의 설명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교회당 안에 나란히 자리한 루터와, 종교개혁의 동료였던 멜란히톤의 무덤 등을 둘러보고 있었다. 교회에서 천천히 걸어 5분쯤 가면 시청 광장이 있다. 인구 2만의 도시에 찾아오는 연 20만명의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이곳에는 루터와 멜란히톤의 동상이 서 있다. 또다시 도보로 10여분쯤 떨어진 곳 ‘루터의 거리’ 작은 로터리 한구석에는 이른바 ‘루터의 참나무’가 있다. 루터는 1520년 12월 10일 교황의 파문장을 불태우면서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선언한다. 그로서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감행한 곳이다. ●민중들에게 새 길을 보여준 루터 1521년 보름스 제국회의 결과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루터는 비텐베르크로 돌아오던 도중 에르푸르트 근처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피해 기사 행세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숨어 지내며 1521년 12월~1522년 2월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독일어 성경과 성만찬 포도주의 나눔은 신과 민중들의 직접 만남을 가능하게 한 일대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종교개혁의 불씨가 활활 타올랐음은 물론이다. 그의 영향을 받은 토마스 뮌처(1490~1525)는 농민전쟁의 지도자로 떠오르고 종교개혁을 뛰어넘어 사회 변혁을 추진하는 세력으로 자리잡는다. 초기에는 이들에게 동정적 입장을 갖던 루터였지만 분위기가 급격히 변해가자 그들과 단호하게 결별하며 제후들의 편에 선다. 심지어 ‘반란을 일으키는 인간보다 더 유독하고 해롭고 악마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자신이 이뤄놓은 결과물의 영향으로 복음서를 자유롭게 읽은 농민들에 대한 폭력 진압과 학살을 정당화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루터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대목이다. 로마 교황청이라는 거대한 세력에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갓 피워낸 종교개혁의 작은 싹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동정론과, 로마 교황에서 제후들로 종교 권력이 바뀌는 ‘제후들의 종교개혁’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루터와 헤어지느니 죽는 게 낫다” 마르크스에게는 레닌이 있었고, 피델 카스트로에게는 체 게바라가 있었다. 마오쩌둥 곁에는 저우언라이가 든든히 서 있었다. 마틴 루터에게는 멜란히톤(1497~1560)이라는 최고의 조력자가 있어 개혁 반발 세력과 급진개혁 세력 사이에서 종교개혁의 깃발을 꼿꼿이 세울 수 있었다. ‘독일의 선생님’이라고 일컬어지는 멜란히톤은 빼어난 라틴어, 히브리어 실력으로 튀빙겐 대학, 비텐베르크 대학 등에서 문학, 신학, 철학, 수사학 등을 강의했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왕자와 공작 등 귀족계급들이 오로지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몰려들어 인기를 실감케 했다. 멜란히톤이 있어 성서의 독일어 번역은 더욱 신속하고 정교해 질 수 있었다. 또한 제후들과의 갈등, 개신교 내부의 숱한 논쟁 등 주요 지점마다 루터가 거칠고 과격하며 전투적인 말과 행동으로 방향을 제시하면, 멜란히톤은 학자적인 부드러운 성격을 앞세워 조정하고 중재하며 종교개혁의 잔가지를 다듬어갔다. 그가 죽음의 공간인 무덤마저 루터와 사이좋게 나누고 있고, 기념비적인 동상 또한 루터 곁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이유다. 안타깝게도 비텐베르크 대학 바로 옆건물인 멜란히톤의 생가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면서 최근 공사에 들어가 직접 둘러볼 수는 없다. ●수녀와 결혼한 애처가 루터 제후와 농민들 사이에서 평가가 엇갈렸던 루터지만 그의 인간적인 면모만큼은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 있다. 비텐베르크 루터기념관 2층 전시관에는 글 하나가 눈에 띈다. ‘케테는 프랑스나 베네치아를 줘도 바꾸지 않겠다. 1531년’ ‘케테’(Kthe)는 전직 수녀였던 그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1499~1552)의 애칭이다. 루터는 독신의 지옥으로부터 성직자를 해방시키고, 평범한 사람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 수녀원의 수녀들을 모두 탈출시켜 결혼까지 시킨다. 그리고 1525년 마지막까지 남은 수녀였던 카타리나 폰 보라와 직접 결혼한다. 루터의 나이 42세, 보라의 나이 26세였다. 루터가 절망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장례식”이라면서 장례복을 입고 나타나 루터를 깜짝 놀라게 한 뒤 “하나님이 돌아가셨기에 당신이 지금 절망하고 있지 않으냐.”고 말할 정도로, 어렸지만 당찬 여성이었기에 루터 역시 끔찍이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글·사진 비텐베르크·에르푸르트·보름스(독일)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장자연 편지’ 봉투 조작흔적

    ‘장자연 편지’ 봉투 조작흔적

    경찰이 탤런트 고 장자연씨의 지인이라고 주장하는 수감자 전모(31)씨로부터 압수한 편지봉투에서 조작된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또 전씨의 수·발신 우편물을 확인한 결과, 장자연 이름으로 주고받은 내역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필적 감정 결과가 나와야 분명하겠지만 전씨가 장씨의 편지를 조작했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이 10일 공개한 편지봉투는 우체국 소인의 발신지가 가로 4㎝, 세로 1㎝ 크기로, 직사각형 형태로 예리하게 잘린 부분이 3곳에서 발견됐다. 조작 흔적이 발견된 봉투는 전씨가 장씨 사건 재판부에 제출한 것과 같은 형태의 항공우편 봉투로, 우체국 지역명과 고유번호 부분이 반듯이 잘린 채 날짜만 남아 있다. 또 봉투에 적힌 받는 이와 보낸 이의 내용과 형태는 동일하지만 우체국 소인 부분에 날짜만 남은 봉투도 함께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조작 흔적이 있는 봉투를 그대로 복사해 1심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편지를 어디에서 보냈는지 발신지를 숨기려는 목적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압수한 70여장의 신문스크랩은 다수에서 장자연 자살사건 관련 기사가 형광펜으로 빼곡히 줄 쳐져 있는 형태로 발견됐다. 신문스크랩은 A4용지에 오린 신문을 왼쪽에 붙이고 오른쪽 빈 공간에는 ‘너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등 전씨가 손으로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씨체가 적혀 있다. 경찰은 2003년 11월부터 올해 3월 7일까지 수감 중인 전씨의 수·발신 우편물 총 2439건을 확인한 결과, 장자연씨 이름이나 전씨가 임의로 불렀던 ‘장설화’란 가명으로 주고받은 내역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씨는 경찰에서 “고교 1~ 3학년 때 장씨와 친구로 지내며 편지를 주고받았고 수감 이후에도 장씨를 ‘설화’라고 칭하며 계속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편지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는 전씨의 자작극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또 2년 전 조사 당시 전씨가 정신장애 증세 등으로 약물치료를 받은 병력이 있고 주장의 상당수가 허구로 확인돼 전씨에 대한 수사를 접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전씨가 1999년부터 지금까지 5곳의 교도소를 옮겨 다니면서 수감돼 있었던 점, 장씨와 통화내역이 없던 점 등이 확인돼 장씨와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분관계가 있는지 의구심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 한국 IT 경쟁력을 걱정하다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 한국 IT 경쟁력을 걱정하다

    지난 4일 발생한 디도스(분산서비스거부) 공격 사태는 2009년 ‘7·7디도스’ 때와 같은 통신대란을 일으키진 않았지만, 보안 인력과 정부 간 협력체제 등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사회 보안 시스템이 여전히 취약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 줬다. 디도스 공격이 개시된 직후인 지난 5일 한국의 대표적 보안업체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한 안철수 카이스트(KAIST) 석좌교수를 찾아 디도스 등 국내 정보기술(IT)에 대한 생각을 들어 봤다. 안 교수는 ‘3·4 디도스 사태’에 대한 정부 대응과 관련한 IT 컨트롤타워 부재 논란을 의식한 듯 “정부가 하루빨리 옛 정보통신부와 같은 IT 선제대응 조직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등 의사결정권자가 열린 자세를 보여 주면 이전과 달리 정부에 참여하는 것도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안 교수와의 일문일답.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이후 한국의 IT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뜻으로 안 교수가 쓰고 있는 ‘잃어버린 3년’이란 표현이 정치권에서 공방을 야기하고 있는데. -이 말이 ‘현 정부와 대통령을 비난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풀고 싶다. ‘잃어버린 3년’은 현 정부 출범이 아닌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내놓은 2007년 시작됐다. ‘닷컴 버블’ 붕괴 후 고전하던 실리콘밸리도 징가(2007년), 그루폰·트위터(2008년) 등 거물급 벤처들이 생겨나면서 활기를 얻었다. 이런 열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클라우드 등과 맞물리면서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이런 흐름을 읽어 내지 못했다. 다른 나라보다 선제적으로 신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데 기여했던 정보통신부가 해체된 것도 주된 이유다. →하지만 안 교수가 말한 ‘잃어버린 3년’ 동안 삼성, LG와 같은 IT 기업들은 수출을 늘리며 선전하지 않았나. -결정적으로 이 시기에 우리 기업들은 IT 업계의 화두가 된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모두 실패했다. 애플이나 닌텐도가 대단한 것은 단지 매출이 많아서가 아니다. 자신들의 기기를 중심에 놓고 끊임없이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창출해 생태계의 주도권을 쥐게 됐기 때문이다. 독자적인 플랫폼이 없다면 삼성이나 LG와 같은 업체도 나중에는 플랫폼 기업에 좌지우지되는 하청업체로 전락하게 된다. 아이폰 출시를 계기로 전 세계가 플랫폼의 중요성을 깨달았지만 우리는 이런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애플이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미국 업체들이 운영체제(OS) 등 플랫폼을 장악한 현실에서 우리가 독자적인 플랫폼을 가져가려는 노력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얼마 전 미국의 유명 IT 전문매체에서 삼성의 스마트TV를 호평한 기사를 봤다. 애플과 구글이 주도하는 스마트TV 분야에서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수를 늘리며 분전하는 삼성의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글로벌 시장에서 플랫폼을 주도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시도 자체도 하지 않으면 기회는 오지 않는다. 다양한 분야에서 독자적인 플랫폼을 갖춰 선두를 부지런히 좇다 보면 역전의 기회는 오게 돼 있다. 만약 소니가 브라운관 TV 시장을 장악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업체들이 TV 기술 개발에 소홀했다면 평판 TV 시장에서 지금과 같은 점유율을 가져갈 수 있었겠나. →안 교수의 말을 요약하면 ‘IT 분야에서 플랫폼 구축 등 다양한 선제적 대응을 위해 컨트롤타워 복원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만약 정부가 컨트롤타워를 복원한다면 어떤 식으로 꾸려져야 한다고 보는지. -과거 정통부와 같은 정부 부처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위원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위원회는 상대적으로 의견 교환이 자유롭다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위원회에서 내린 결론이 해당 부처로 이관되면서 원래 내용과 다르게 해석돼 시행되는 것을 여러 번 봤다. 과거 정통부의 경우 규제기관으로서 문제가 많았던 게 사실이지만 막상 없애고 보니 국내 IT 경쟁력이 떨어지는 폐해가 생겨났다. 따라서 이제는 과거 조직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단점을 줄인 새로운 형태의 정통부 조직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간 여러 차례 입각 제의를 받았지만 모두 거절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정부가 새 컨트롤타워를 복원한다면 참여하겠는가. -국회의원 출마 제안까지 포함하면 정치권의 참여 요청을 받은 지가 10년은 넘은 것 같다. 난 살면서 뭔가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지금의 현실에서는 (나 같은) 한 사람이 정치에 뛰어들어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 바꾸지도 못할 거면서 높은 자리에만 앉아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다만 의사결정권자(대통령)가 내 말에 제대로 귀 기울여 준다는 것을 전제로 ‘십고초려’하면 (장관 등 여러 역할을) 고려해 보겠다. 하지만 (의사결정권자가) 그렇게 하기가 쉽진 않을 것이고, 정치가 아니어도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일들은 많다. →벤처 기업가 출신으로 현재 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데, 안 교수가 보기에 국내 IT 관련 창업 여건은 어떤가. -10년 전만 해도 국내 시장에서는 네이버나 다음, 싸이월드와 같은 될성부른 기업들이 생겨났지만 지금은 그런 회사들을 찾아볼 수 없다. 당시에 20명이 해야 할 일을 지금은 1명이 해 낼 수 있을 만큼 소프트웨어가 좋아지면서 창업 비용도 낮아졌지만 사회적인 여건은 오히려 척박해졌다. 창업을 돕는 정부 및 민간의 지원 인프라가 취약하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고사시키는 불공정 거래 관행도 여전하다. →최근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을 강조하는 등 상생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기업 전문가로서 대안이 있다면. -대기업의 명백한 불법적 횡포부터 근절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공정위의 전속고발권(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공정위만 검찰에 고발할 수 있게 한 제도) 조항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중소기업이 피해를 하소연해도 공정위에서 채택하는 비율이 1%도 되지 않아 오히려 대기업을 감싸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배상하게 하는 제도)도 도입돼야 한다. 상대방에게 해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단속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악용해 중소기업에 피해를 주는 것을 묵과해선 안 된다. 대전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안철수 교수는 ▲1962년 부산 출생 ▲서울대 의대-미국 펜실베이니아 공대 및 와튼스쿨 ▲단국대 의예과 학과장,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포스코 사외이사, 카이스트 석좌교수 ▲한국CEO상, 윤리경영대상 투명경영 부문 대상, 동탑산업훈장 등 다수
  • [위기의 한국교회, 종교개혁 현장서 길을 묻다] (상) 백조를 예언하고 죽은 거위…종교개혁의 서막

    [위기의 한국교회, 종교개혁 현장서 길을 묻다] (상) 백조를 예언하고 죽은 거위…종교개혁의 서막

    한국 교회가 위기다. 금권 선거 논란에 휩싸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두쪽으로 갈라져 연일 싸움이다. 전·현직 회장이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법정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교단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정부가 추진 중인 ‘수쿠크(이슬람채권)법’ 도입 결사 저지에 나서면서 종교의 심각한 정치 간섭이라는 비판에도 직면하고 있다. 기독교 내부에서조차 2011년 한국 교회에서 500년 전 부패하고 타락했던 종교의 모습을 본다는 우려를 내놓을 정도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왔던 길을 되돌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15~16세기 종교 개혁을 위해 숱한 피를 감수해야 했던, 지금의 개신교를 출발시켰던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 봤다. 그 현장에서, 한국 교회가 나아길 길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 본다. 1415년 7월 16일은 토요일이었다. 초여름 보헤미아 왕국(지금의 헝가리)의 동은 일찍 텄다. 오전 6시 미사를 시작으로 콘스탄스 회의는 얀 후스(1372~1415)를 ‘참으로 실제적이고, 공개적인 이단’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악마가 그려진 모자를 씌우고 목까지 쌓아올린 장작더미 속에서 화형시켰다. 성직자들의 부패와 면죄부 판매의 사기성을 비판하면서 로마 교황의 눈엣가시가 된, 체코 출신의 신학자이자 설교가인 후스는 그렇게 최후를 맞이했다. 그의 죽음 뒤 체코 백성들은 사제들과 대주교의 집을 공격하며 민중의 이름으로 콘스탄스 회의를 정죄했다. 200년에 걸친 종교 개혁의 신새벽이 막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후스는 목숨이 다하는 순간, 으스스한 예언을 던진다. “비록 지금 당신들은 거위 한 마리를 태워 죽이려 하지만 100년이 되지 않아 백조 한 마리가 나타날 것이다.” 자신의 이름인 ‘거위’(goose)를 빗대 한 말이었다. 예언처럼 100여년 뒤인 1517년 10월 31일, 인류 역사의 물꼬를 바꾼 마틴 루터의 ‘95개조 명제’(95개 항목에 걸쳐 면죄부 판매를 비판한 항의문)가 독일 비텐베르크성 교회 정문에 나붙었다. 그로부터 다시 500년이 흐른 2011년 3월, 체코 프라하 구(舊) 시가지 광장. 구 시청사의 500년 된 시계탑과 틴 성당 등 중세의 흔적을 간직한 건물들이 광장 주변에 즐비한 핫도그 노점상들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북적거리는 관광객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그 한가운데 후스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신성로마제국이 세운 최고(最古)의 대학인 카를대학의 학장이자 틴 성당의 사제를 지냈던 그가 늘 내려다보았거나 천천히 사색하며 걸었을 광장의 한복판에 있지만 세월의 푸르스름한 더께만큼이나 쓸쓸함이 묻어난다. 동상 아래에는 ‘백조 예언’과 함께 너무도 유명한 ‘진실의 7명제’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진실만을 찾아라, 진실만을 들어라, 진실만을 배워라, 진실만을 사랑하라, 진실만을 말하라, 진실만을 지켜라, 마지막 순간까지 진실만을 수호하라.”는 후스의 마지막 외침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박제된 듯 남아 있다. 중세 암흑기가 져야 할 책임의 상당 부분은 로마 교황청에 있다. 종교의 힘을 바탕으로 세속 권력까지 함께 틀어쥔 교황청은 1074년부터 1291년까지 200년에 걸쳐 4차례나 십자군을 보내 유대교도와 이슬람교도를 무자비하게 학살한다. 루터의 종교 개혁이 이뤄지기 전까지 500년에 걸쳐 종교와 세속 부패의 배경이 된 ‘면죄부’는 이때 발행됐다. 십자군 전쟁에서 자행한 온갖 타락과 학살, 강간, 폭력 등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나마 초기에는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갖췄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죽은 이들에게까지 적용되는 ‘사후 면죄부’가 기승을 부리면서 부패를 부추겼다. 백성들의 소외감도 컸다. 설교는 이해할 수 없는 라틴어로만 이뤄졌고, 포도주도 사제들만 마셨다. ‘무지한 평신도들이 예수님의 피인 포도주를 흘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후스는 1410년 교황에게 파문당한 뒤에도 프라하 베들레헴 교회에서 라틴어가 아닌 체코어로 설교를 계속했다. 만찬 때는 평신도들에게도 포도주를 나눠줬다. 체코 민중들의 환영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비록 그의 노력이 당대에는 실패로 끝났지만 후스의 후예들은 유럽 곳곳에서 부패한 종교에 대한 저항의 싹을 키우기 시작한다. 체코는 1000만명 남짓한 전체 인구 중 종교가 없는 국민이 63%를 차지한다. 개신교의 뿌리임에도 후스는 어느 교단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관광산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후스의 흔적을 돈 들여 추억하지도, 종교적으로 애써 후스를 기억하지도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후스는 그렇게 역사에서 잊혀 갔다. 프라하에서 만난 한 개신교 한국인 목사는 “후스를 빼고서는 종교 개혁을 논할 수 없다.”면서 “지금이야말로 종교의 부패와 타락에 저항하는 후스의 정신이 가장 필요한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글 사진 프라하(체코)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장자연 편지’ 추정 원본 조작흔적 발견

    경기지방경찰청은 10일 “장자연의 지인이라고 주장하는 수감자 전모(31)씨로부터 압수한 편지봉투에서 조작된 흔적을 다수 발견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편지봉투에 찍힌 우체국 소인의 발신지가 가로 4㎝, 세로 1㎝를 잘린 것이 3군데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조작 흔적이 발견된 봉투는 전씨가 장씨 사건의 재판부에 제출한 것과 같은 형태의 항공우편 봉투다. 우체국 지역명과 고유번호 부분이 반듯이 잘린 채 날짜만 남아 있다. 또 봉투에 적힌 받는이와 보낸이의 내용과 형태는 같지만 우체국 소인 부분에 날짜만 남은 봉투도 함께 발견돼 경찰은 조작 흔적이 있는 봉투를 그대로 복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편지를 어디에서 보냈는지 수신지를 숨기려는 목적 같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지난 2003년 11월부터 올해 3월7일까지 수감 중인 전씨의 수발신 우편물 2439건을 확인한 결과, 장자연씨 이름이나 전씨가 칭했던 ‘장설화’란 가명으로 주고받은 내역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교도소 내 편지 수발신대장은 수감자 인권을 감안해 2007년 12월부터 내용 검열을 하지 못하도록 바뀌었을뿐 수발신 내역은 기록되지만 100% 기재는 안 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필적감정을 의뢰한 원본 편지 24장이 장씨 사건 재판부에 전씨가 제출한 편지 231쪽과 내용과 형태가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찰이 전씨 감방에서 압수한 물품은 원본 편지 24장과 사본 1000장, 편지봉투 20여장, 신문스크랩 70여장, 복사비 납부영수증 70여장, 수용자 기록부, 접견표 등 29개 항목 1200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압수물품이 많은 것은 내용이 적혀 있지 않은 빈 A4용지가 다수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자연과 진정한 자유를 노래하는 시집 ‘그대, 꽃처럼’

    자연과 진정한 자유를 노래하는 시집 ‘그대, 꽃처럼’

    맑은 언어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간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법정스님 입적 1주기를 맞은 가운데 자연 속에서 찾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의미를 곱씹은 원경스님의 시집 ‘그대, 꽃처럼’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10월 발간된 ‘그대, 꽃처럼’은 심곡암 주지 원경스님(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이 펴낸 첫 시집으로 “혼자여서 외롭고 함께 있어 번거로운 것이 아니라 혼자여서 자유롭고 함께 있어 충만한 삶을 바란다.”는 스님의 소망이 시구마다 서려있다. 원경스님은 도심에서 비켜난 한적한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산사에서 메모를 하듯이 써내려간 청명한 말들을 엮었다. 애초에 시집을 낼 생각이 없었지만 우연히 들른 출판사 대표의 거듭된 요청에 시집을 내게 됐다. “꽃피면/가슴에 향기 터지고/달뜨면/가슴에 달빛 부서지네/낙엽 지니/내 마음 한가히 바람에 구르고/눈 나리니/내 마음 한없이 다복하네…”(’자유’中) 원경스님은 “나의 글들은 뜰을 쓰는 대 그림자이며 물속을 꿰뚫는 달빛과 같기를 원한다. 출판사 측에서 굳이 월인의 그림자와 달빛을 엮어 낸다 하니 무심중에 나의 젊은 날의 흔적을 이렇게 지운다.”며 겸손한 소회를 밝혔다. ‘흔들리며 피는 꽃’으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은 추천사에서 “깨달음의 경지는 어쩌면 고요하고 자유로운 마음의 상태가 지속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면서 “원경스님의 시에는 그런 고요함과 자유로움이 바탕이 돼 있다.”고 말했다.(도서출판 도반·1만원)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트위터(http://twitter.com/newsluv)
  • 외로운 도시녀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로운 도시녀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하재영(33)의 소설집 ‘달팽이들’(창비 펴냄)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대부분 도시에 사는 외로운 여성이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씨는 “한번도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 즉 안정된 여성의 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는 여성”이라고 설명한다. 작가는 “나약하고 의존적이고 기만적인, 그래서 자기애와 자기비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아이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모두 작가 자신이라고 덧붙이며, 자신의 소설에 대해 ‘부끄러움의 기록’이라고 표현한다. ‘달팽이들’에는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작품세계를 선보이는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아직 성인 여성이 되지 못한 소녀(‘타인들의 타인’), 수없이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어떤 지속적인 관계도 가질 수 없는 20대 여성(‘고도리’), 타인과의 관계 자체를 거부하는 20대 독신녀(‘달팽이들’), 30대에 접어들었지만 뚜렷한 직업도, 가정도 가질 생각을 하지 않는 여성(‘같이 밥 먹을래요?’)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내면적으로는 남성과의 지속적 관계에 대한 근원적 불신을 하고 있으며, 여성들끼리조차도 연대의 고리를 찾지 못한다. 웹디자이너로 원룸에 틀어박혀 텔레비전, 인터넷, 디자인 작업, 잠으로 사등분된 일상을 사는 ‘달팽이들’의 여주인공을 보며 많은 도시인이 자신의 흔적을 찾아낼 것이다. 어느 날 쓸쓸히 혼자 밥을 먹는 당신 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여성이 “나한테 3분만 투자하세요. 긴 시간도 아니잖아요. 무슨 볼일이냐고요? 용건만 간단히 말하라고요? 아, 바쁘군요? 요즘 사람들은 바쁘단 말이 입버릇이죠. 새치기를 하는 이유도 바빠서, 남의 발을 밟고 사과하지 않는 이유도 바빠서, 화내며 재촉하는 이유도 바빠서. 파시스트가 따로 없다고요.…죄송해요. 진짜 바쁜 것 같으니 본론을 말할게요. 오늘 같은 날 연락주세요. 조만간 우리 같이 밥 먹어요.”라고 이야기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단편 ‘같이 밥 먹을래요?’에는 같이 밥 먹어주는 신종 직업을 찾아낸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의 고객은 기러기 아빠, ‘사내 동료와 점심을 함께하지 않는다’는 사칙이 있는 신문사의 기자, 할머니 등이다. 하재영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희망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지난해 유명 연예인의 자살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스캔들’을 발표했던 하재영의 이번 소설집은 좀 더 무자비하면서도 쓸쓸한 도시 현실에 눈을 바싹 들이대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옥소리, 이혼 뒤 심경 “인생은 날씨와 비슷…”

    옥소리, 이혼 뒤 심경 “인생은 날씨와 비슷…”

    이혼 뒤 연예 활동을 자제하고 있는 배우 옥소리가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오랜만의 흔적을 남겨 눈길을 끌고 있다. 옥소리는 최근 자신의 미니홈피 대문글에 “인생은 날씨와 비슷한 것 같다. 어쩔 땐 춥고…어쩔 땐 참 따뜻하고…”라는 내용의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박철과 이혼 뒤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는 옥소리가 자신의 심경을 드러낸 것. 옥소리는 1년 전에도 미니홈피를 통해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그말. 거기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지.”라는 글을 게재했다. 옥소리는 이혼 소송을 겪은 뒤 연예 활동을 일체 중단했다. 몇몇 업체들의 CF 출연 요청을 비롯해 방송 관계자들의 출연 섭외가 있었지만 모두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대만으로 출국한 뒤 3개월간 체류해 관계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한편 옥소리는 지난 2007년 전 남편 박철에게 간통 혐의로 기소된 뒤 1년여간 법정공방 끝에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연예팀 nownews@seoul.co.kr
  • 순천시, 법정스님 열반 1주년 추모여행 마련

    순천에서 법정 스님의 열반 1주년을 기리는 추모 여행이 마련됐다. 전남 순천시는 24일 “법정 스님과 순천 출신 정채봉 작가의 흔적을 되돌아보는 ‘순천 시티투어’와 함께 ‘무소유로 떠나는 길’을 이달 28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진행한다.”고 밝혔다. 오는 28일은 법정 스님이 열반에 든 지 1주년이 되는 음력 1월 26일이다. 시티투어는 법정 스님을 추모하며, 법정 스님과 정 작가와의 만남을 스토리로 재구성해 테마 여행 상품으로 개발한 것이다. 순천 송광사에서 출발해 17년간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실천한 불일암을 돌아보고 다비장까지 걸어 내려온 후, 순천문학관과 순천만을 둘러보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이번 여행 참가자들은 법정 스님이 정 작가를 그리며 쓴 친필 원고와 정 작가가 법정 스님에게 보낸 편지 등을 볼 수 있으며, 참가자들이 우정을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자리도 마련될 예정이다. 순천시는 행사를 위해 시티투어 버스 1대를 추가로 운행할 계획이며, 탑승 예약은 인터넷 또는 전화(061-749-3328)로 할 수 있다. 순천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조선 고종 어진화가 채용신 작품 엿보기

    조선 고종 어진화가 채용신 작품 엿보기

    조선 시대 마지막 어진(御眞) 화가로 고종의 초상화를 그렸던 석지 채용신(1850~1941)의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선생의 70주기를 맞아 국립전주박물관(관장 곽동석)이 다음 달 27일까지 ‘석지 채용신, 붓으로 사람을 만나다’ 특별전을 연다. 채용신은 무과 출신 관료였으나 그림에 탁월한 재주를 숨기지 못해 흥선대원군과 고종의 초상화를 그리는 등 많은 인물화들을 남겼다. 그림을 보면 조선시대 전통 인물화의 바탕 위에 서 있으면서도 당대에 도입된 사진술을 많이 응용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극세필을 이용해 얼굴에 드러난 주름살 같은 흔적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콧대처럼 도드라진 부분에 흰색을 칠해 빛의 느낌을 주는 기법 등이 그렇다.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기법을 많이 쓴 것이다. 말년에는 전북 지역에 낙향, 그곳에 숨어든 유학자들을 주로 그렸다. 개화를 반대하는 원흉으로 불리기도 하고 조선 최후의 정통 성리학자라 불리는 전우(1841~1922)의 초상화 등이 이때 남긴 작품들이다. ‘무이구곡도10폭 병풍’ 등 그가 남긴 산수화 등도 엿볼 수 있다. 오는 26일에는 이원복 국립광주박물관장이 ‘석지 채용신의 삶과 예술세계’를 주제로 박물관에서 특별강연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0) 영주 순흥면 금성단 압각수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0) 영주 순흥면 금성단 압각수

    사람이 한을 품으면 곁의 나무도 똑같은 크기의 한을 품는다. 더불어 살던 사람이 죽으면 따라 죽는 나무도 있다.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의 한이 풀어지면 그들과 더불어 새 삶을 살기 위해 애면글면 되살아나는 나무도 있다. 제 한 몸 죽었어도 사라져간 사람들의 억울한 한을 잊지 못하는 까닭이다. 사람의 마을에서 사람과 나무는 서로 다른 둘이 아니다. 사람보다 더 오래 살고, 제 몸 안에 사람보다 더 선명하게 사람살이의 흔적을 아로새기는 나무는 사람과 어우러지는 하나의 생명 공동체다. 나무는 거대한 몸 깊숙이 모든 삶을 담아내는 생명의 온 그릇이다. ● 죽었던 나무가 200년 만에 다시 살아나 “1100살이나 된 나무라고는 하지만, 그와 비슷한 나이의 다른 나무들에 비하면 초라한 편이지요. 기록에는 없지만, 금성대군이 이곳에서 참화를 당했을 때, 나무도 피해를 본 게 틀림없어요.” 선비의 고을로 유명한 경북 영주시 순흥면의 거대한 은행나무 바로 앞에 황토집을 짓고 사는 영주 영광고등학교 김충호(57) 교사의 이야기다. 고향 떠나 공부하고 교사가 되어 고향에 돌아와서도 나무가 좋아 나무 앞에 손수 황토집을 짓고 사는 중년의 미술 교사다. 순흥면을 스쳐 지나간 피의 역사를 알알이 기억하고 있는 이 나무는 유독 은행나무의 여러 별명 가운데 ‘압각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나이에 비해 작아 보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나무는 200년 넘게 생명 활동을 중단했다가 다시 살아난 나무로 알려져 있다. 1000년된 여느 나무에 견주어 작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나무가 죽음의 늪을 헤치고 되살아나는 신비로운 일은 600년 전,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을 폐위하고 임금 자리에 오른 지 2년 되던 1456년에 시작됐다. 당시 집현전 학자들은 왕위를 찬탈했다는 이유로 세조를 지지하지 않았다. 성삼문이 앞장서고 많은 학자들이 뒤를 따르며 단종을 임금으로 복위하려 했다. 세조의 동생인 금성대군이 그들을 뒷받침했다. 세조는 성삼문을 비롯한 여섯 학자들을 죽음으로 다스리고, 금성대군은 순흥 지역으로 보내 탱자나무에 가려진 집에 가두고 바깥 출입을 금하는 ‘위리안치’의 형벌에 처했다. 금성대군은 순흥에서 다시 또 단종 복위에 나섰다. 여기에 순흥부사를 비롯한 순흥 지역민이 힘을 합했다. 그러나 금성대군의 뜻을 먼저 알아 챈 세조는 순흥 지역을 모반의 땅, 역모지(逆謀地)로 규정하고, 피비린내 나는 숙청의 칼을 휘둘렀다. 금성대군에게 사약을 내린 세조는 그를 돕거나 역모를 막지 않았다는 이유로 순흥 지역민을 무차별적으로 참살했을 뿐 아니라 순흥을 풍기에 통합했으며, 심지어 순흥이라는 이름을 더 이상 부르지 못하게 했다. 이른바 정축지변이다. ●영욕의 세월 고스란히 담고 서 있는 나무 기록은 없지만 당시 관헌들은 마을의 상징이며, 금성대군이 머물던 유배지에 가까이 서있는 순흥 압각수라는 이름의 은행나무에 불을 질렀다고 마을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 즈음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불리던 노래가 하나 있었다고 한다. 이름 없는 한 도사가 남긴 말을 노랫말로 옮겨 부르던 것이었다. 당시 그 도사는 “순흥이 망하면 저 거대한 은행나무도 죽을 것이고, 은행나무가 살면 순흥이 회복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도사의 예언대로 순흥이 사라지자 나무는 싹을 틔우지 않고 죽음의 세월을 살았다. 순흥도 나무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막막궁산에 빠져들었다. 그로부터 200년 뒤인 1683년, 숙종이 즉위하면서 단종이 복위되고, 순흥은 잃었던 ‘순흥도호부’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다시 30년이 흐른 숙종 45년(1719)에는 금성대군을 비롯해 정축지변으로 희생된 순흥의 선비들을 기리는 제사를 올리게 됐다. 옛 지위를 되찾은 순흥 사람들은 옛 충신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금성단’이라는 이름의 제단을 쌓고, 제사를 올렸다. 그러자 이름 없는 도사의 이야기처럼 신비로운 일이 벌어졌다. 무려 200년 넘게 잎을 피우지 않고 죽음의 시간을 보내던 은행나무가 연초록의 새 잎을 피운 것이다. 영욕의 세월을 지나온 나무는 지금 30m의 키로 높이 솟아올랐다. 불에 태워지고 찢긴 상처는 여전히 제 몸에 선명하게 남긴 채다. 뿌리에서 솟아오른 줄기는 가운데에 중심이 될 줄기를 잃고 동서로 나뉜 두 개의 굵은 줄기만 남았다. 마치 두 그루처럼 보이는 얄궂은 형상으로 살아남았지만, 나무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 가는 과거의 참화를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봄 기운 따라 피워 올릴 평화의 새 잎 “새 봄에 저 큰 나무가 연초록의 앙증맞은 잎을 파릇파릇 피워 올릴 때에는 더없이 예쁩니다. 늙은 몸에서 태어나는 새 생명의 환희가 그런 거겠지요. 오랫동안 마을에서는 고유제라는 이름으로 동제를 올렸어요. 지난해에는 마을 사정으로 동제를 올리지 못했지만, 여전히 마을 사람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나무이지요.” 김 교사는 지난해에 올리지 못한 만큼 올해 고유제는 더 근사하게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나무가 지켜보았던 순흥의 피바람 따라 모반의 세월은 지나갔다. 모질게 살아남은 나무를 스쳐 지나는 바람이 실어 온 향기에 평화와 안녕의 기운이 담긴 건 지당한 노릇이다. 그렇게 순흥 압각수는 천년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봄 기운 오르면 새 잎을 피워낼 것이다. 글 사진 영주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98. 중앙고속국도의 풍기나들목을 이용하면 순흥면까지 빠르게 갈 수 있다. 나들목을 나가서 우회전하여 1㎞ 쯤 간 뒤 봉현교차로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난 북영주 방면의 931번 지방도로를 이용한다. 9㎞쯤 가면 순흥면 소재지가 나오고 순흥교차로에 이른다. 여기에서 소수서원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1.5㎞ 가면 소수서원이 나오고, 200m 더 가면 왼편으로 금성단이 나온다. 나무는 금성단 옆으로 난 골목 안쪽에 있다.
  • [15일 TV 하이라이트]

    ●책 읽는 밤(KBS1 밤 11시 40분) 당신이 아는 늑대에 대한 편견을 깨는 오늘의 책 ‘늑대 토템’. 이 작품은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에 작가가 내몽골에서 늑대와 생활하며 알게 된 늑대의 생태와 정신을 기반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내몽골 국경의 목장에서 생활하게 된 지식청년 천전이 어느 날 수십 마리의 늑대 무리와 마주치면서 시작된 늑대 이야기를 소개한다. ●희망릴레이(KBS2 오전 9시) 이주 노동자를 위한 무료 진료소 라파엘 클리닉의 탄생은 1996년 김수환 추기경에게 온 편지로부터 시작된다. 첫 진료 때 20명 남짓했던 환자 수는 현재 월 평균 1000명에 이른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환자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라파엘 사랑과 함께한다. ●아침 드라마 주홍글씨(MBC 오전 7시 50분) 진주의 실수로 혜란(김연주)이 투병 중이라는 기사가 보도되기 시작하고, 재용은 혜란의 병과 관련한 얘기를 하기 위해 경서를 만나러 간다. 경서와 재용이 함께 있는 것을 보게 된 동주는 질투하게 된다. 동주에게 결혼을 서두르자고 말하는 경서. 인서는 재용을 만나 혜란의 병이 거짓임을 밝혀내겠다고 한다. ●파라다이스 목장(SBS 밤 8시 50분) 다지(이연희)와 윤호, 동주, 진영이 호텔 재즈바의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며 연주를 감상하고 있다. 다지는 동주가 진영을 친절하게 챙기는 모습이 어색하기만 하다. 동주는 그런 다지의 모습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결국 동주는 다지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난 틈을 타 다지를 끌고 가는데…. ●세계테마기행(EBS 밤 8시 50분) 중국 윈난의 징훙을 떠난 강은 란창강이란 이름을 버리고 메콩강이 되어 인도차이나반도를 향해 남하한다. 이후 메콩강은 라오스, 미얀마의 접경지대 골든 트라이앵글을 지난다. 골든 트라이앵글은 1960년대 초 마약왕 쿤사가 양귀비 생산을 강요하면서 세계 최대의 아편 생산지가 됐다. 메콩강의 슬픈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멜로다큐 가족(OBS 밤 11시 5분) 열아홉 살 첫째 딸부터 세살배기 쌍둥이까지 남매이자 친구처럼 지내다 보니 눈만 마주치면 장난치고, 티격태격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아이들. 하지만 9남매라는 자체로 힘이 솟고, 힘든 날보다 좋은 날이 더 많아 행복한 부부. 그러나 뒤돌아서면 금세 희희낙락이다. 자연 속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9남매 가족을 만나본다.
  • “의사부인 비산흔 없어… 타살 핵심증거”

    “의사부인 비산흔 없어… 타살 핵심증거”

    ‘만삭 의사 부인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숨진 박모(29)씨가 타살된 뒤 사고사로 위장됐다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시신이 발견된 욕조에서 비산흔(飛散痕)이 아니라 욕조 벽을 타고 흘러내린 형태의 핏자국을 확보했다.”면서 “이는 외부 침입 흔적이 없는 당시의 상황을 감안할 때 남편 백모(31)씨를 범인으로 지목할 수 있는 핵심 증거”라고 주장했다. 비산흔이란 몸에 상처가 발생하면 혈액이 튀어 특정 방향으로 흩뿌려진 흔적을 말한다. 13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현장감식 및 부검을 담당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숨진 박씨의 정수리 등에서 흐른 피가 욕조 위 2곳에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모양으로 묻어 있었으며, 비산흔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분석 결과를 통보받았다. 국과수는 “이는 박씨가 다른 장소에서 외상을 입고 타살된 뒤 욕실로 옮겨졌으며, 이후 핏방울이 떨어져 욕조벽을 타고 흘러내렸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소견을 첨부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박씨가 욕실 바닥 등에 미끄러지는 사고로 사망한 것이라는 남편 백씨의 주장은 거짓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경찰은 “만일 박씨가 백씨의 주장대로 욕조에서 넘어져 사망했다면 당연히 비산흔이 욕조벽에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와 함께 숨진 박씨의 목과 머리 등에 외상이 있고, 안방 침대 이불에서 혈흔이 발견된 점 등을 들어 백씨가 박씨를 살해한 뒤 범행을 덮기 위해 시신을 욕실로 옮겼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찰은 이 같은 국과수의 소견과 추가 증거 등을 보강해 이번 주 중 살인 혐의로 백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신청할 예정이다. 또 추가 조사를 통해 박씨의 사망 시간대를 1차 영장 기각시 제출했던 ‘남편과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 약 13시간 사이’보다 더 좁혀 영장에 기재하기로 했다. 그 경우 백씨의 혐의를 더 구체화할 수 있다는 것이 경찰 설명이다. 박씨는 임신 9개월 상태인 지난달 14일 오후 5시 5분쯤 마포구 오피스텔의 욕조에서 숨진 채 남편 백씨에 의해 발견됐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남양주 19일째 ‘의문의 폭음’…정체 밝혀지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서 19일째 들리고 있는 ‘의문의 폭음’ 미스터리의 실체가 밝혀질까? 이 폭음은 지난달 24일 밤 처음 들렸다. 화도읍 묵현2리 스키장 인근 마을에서 ‘펑’ 하는 폭음이 들리며 건물이 흔들렸다. 주민들은 군(軍) 부대에 ‘혹 땅굴을 파는 것 아니냐’고 신고했지만 당시 현장을 수색한 군은 흔적을 찾지 못했다. 마을과 스키장에 공사를 하거나 폭죽을 사용한 사실도 없었다. 이후에도 폭음이 밤낮으로 10여차례 계속됐고 남양주시와 경찰이 나서 군부대와 합동으로 2차 현장조사를 벌였지만 원인은 오리무중이었다. 남양주시는 11일 오전부터 군경과 가스안전공사와 상하수도사업소 관계자가 3차 정밀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폭음의 원인을 찾는데는 실패했다. 주민들의 불안은 공포로 확산되고 있다. 11일 오후 3시 이후에도 폭음은 3차례나 계속됐다. 북한의 ’남침용 땅굴’ 파는 폭음일 가능성 주장까지 나왔다. 급기야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소장인 배명진 교수가 12일 녹음된 폭음을 정밀 분석했다. 일단 ‘폭음이 땅속이 아닌 지상에서 발생해 공기를 타고 들린다는 사실’을 확인해 ‘남침땅굴’ 주장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배 교수는 “이 폭음은 땅이 아닌 공기를 통해 전달된 소리이며 지하에서 발생했다면 땅을 통과하면서 50㎐ 이하의 저주파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분석 결과 3천㎐의 고주파 소리였다.”고 설명했다. 배 교수는 ’해안포나 곡사포 화력의 65%에 해당하는 폭발음’이라는데 무게를 실었다. 이어 배 교수는 “녹음된 소리는 80~90㏈ 세기로 발생지는 묵현리에서 반경 10㎞ 안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엽총 발사 소리라는 분석과 유난히 추웠던 올 겨울에 꽁꽁 얼어붙었던 천마산 계곡의 얼음이 깨지면서 발생한 소리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경찰은 이날 오후 묵현리와 천마산 일대에 170여명을 투입해 엽총 사용 흔적과 얼음 깨진 흔적을 찾는 수색작업을 벌였다. 또 이날 오후 엽사를 불러 묵현리 일대에서 엽총 발사 소리를 녹음해 실제 녹음된 폭음과 비교 분석중이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3년전 10일 불 탄 ‘숭례문’… 복원 어디까지 됐나

    3년전 10일 불 탄 ‘숭례문’… 복원 어디까지 됐나

    2008년 2월 10일 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소실됐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아예 더 충실하게 복원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덕분에 247억원을 들여 4년간의 복원공사가 시작됐다. 공정률 40%를 보이고 있는 복원 공사는 얼마나 어떻게 진행됐을까. ☞ [포토] 숭례문 화재 3주년 복원 현장 보러가기 ●터 다지기 막바지… 공정률 40% 문화재청은 숭례문 화재 3년이 되는 10일 복원 공사 현장에서 최광식 신임 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설명회를 연다. 현재 터 다지기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태다. 성곽과 문루 등 구조물을 세우는 작업은 올 하반기쯤 시작된다. 기초공사에서는 일제시대 흔적을 걷어냈다. 일제가 훼손한 성벽을 모두 65m 정도 복구한다. 지반은 30~50㎝ 정도 더 내려간다. 일제시대 때 복토된 부분만 거둬내고, 조선 전기때 지반은 유리판을 통해 일부 노출시킨다. 복원 공사도 중요무형문화재인 석장 이의상·이재순, 대목장 신응수, 단청장 홍창원, 번와장 이근복, 제와장 한형준 등 장인들을 동원해 최대한 옛 방식에 따른다. 현장에 목공소와 대장간을 만들어 필요한 전통작업도구를 아예 새로 만들어 쓰고 있다. 옛 제작방식에 따라 나타나는 재료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서다. 돌은 재질이나 색상이 비슷한 경기 포천석을 쓴다. 현판은 원형 보존에 이상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2009년 5월 복구작업을 마무리한 뒤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관 중이다. 복구 공사가 끝나는 대로 다시 내건다. ●조선 전기때 지반 ‘유리판 전시’ 아울러 크게 신경 쓰는 분야는 방재다. 화재로 크게 혼이 났기 때문에 복구 작업 때 폐쇄회로 TV는 물론, 열적외선 감지시설 등 첨단 방재시설을 함께 설치한다. 국제문화재보존복구연구센터와 업무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도 9일 체결했다. 올해부터 2월 10일을 아예 ‘문화재 방재의 날’로 정한데 이어, 경각심 환기 차원에서 타고 남은 숭례문 잔해를 전시하는 공간도 마련할 방침이다. 이날 문화재청 주최로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2011 문화유산 방재 국제심포지엄’도 열렸다. 조반니 보칼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아시아·환태평양 담당관은 “전통 기술을 전수한 장인들이 전통방식에 따라 숭례문을 복원하는 것은 유형문화유산과 무형문화유산이 결합한 새로운 시도로서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뻥!뻥!뻥! ‘구멍 뚫린 하늘’ UFO 선회흔적 논란

    뻥!뻥!뻥! ‘구멍 뚫린 하늘’ UFO 선회흔적 논란

    미확인비행물체(UFO)가 수직으로 이동해 흔적을 남긴 것처럼 보이는 신비로운 구름이 포착된 가운데 이 자연현상의 원인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머틀비치에 사는 IT개발자 웨슬리 타일러는 지난달 11일(현지시간) 퇴근길에 거대한 구멍이 3개가 뚜렷하게 난 구름을 보고 깜짝 놀라서 차를 세웠다. 특이한 현상은 45분이나 지속됐고, 그는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인터넷에서 이 사진은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일부 네티즌은 구름의 모습을 두고 UFO가 지나간 흔적 혹은 비밀 군사훈련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는 일반적인 기상현상 홀펀치 구름(Punch-hole clouds)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홀펀치 구름이란 얇은 구름층 사이에 얼음조각이 형성돼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하강하면서 주변의 수증기를 흡수해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구름 위를 지나가는 비행기의 프로펠러나 날개 움직임으로 주변 공기가 냉각될 경우 생성될 가능성이 더욱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과학적 설명에도 일부는 “구름의 높이가 너무 낮기 때문에 홀펀치 구름일 가능성이 적을 뿐 아니라 구멍이 3개나 동시에 나는 건 확률상 희박하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한편 2009년 10월 러시아 모스크바 상공에 홀펀치 구름현상이 목격되자 일부 언론매체가 이를 두고 “UFO가 모스크바 상공을 선회하고 있다.”고 전하는 등 소동이 인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보고서-민족에 관하여’ 전시회 연 ‘물의 작가’ 나현 인터뷰

    ‘보고서-민족에 관하여’ 전시회 연 ‘물의 작가’ 나현 인터뷰

    “제 작품은 미술계 관계자들만 보시거나, 보신 분들도 감상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전 살기 위해서라도 제 스스로를 잘 포장해야 하는 작가라니까요. 하하. 아, 그리고 저 그림 잘 그려요. 못 그려서 이런 작업 하는 거 아니에요.” 호쾌한 웃음을 터트리는 나현(41) 작가. 신작 ‘나현: 보고서-민족에 관하여 2008-2011’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02-737-7650, 2월 27일까지)에서 그를 만났다. 작가의 너스레가 이해될 법도 한 것이 전시장은 미술관보다 박물관 같은 풍경이다. 1층에는 작가의 예전 작품들이 걸려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치게 되는 벽면의 액자. 프랑스 병사 12명의 실종 기록이 적혀 있다. 프랑스는 한국전쟁에 3000명을 파병했다. 당초 알려지기는 7명이 실종됐다. 작가의 집요한 탐문작업 끝에 12명으로 기록을 바로잡았다. 국가를 위해 희생된 개인, 그럼에도 실종자 숫자조차 틀릴 정도로 무관심한 대상, 무심히 걸려 있는 12개의 액자는 이들의 얘기를 품고 있다. 바로 옆에 전시된 ‘다리’ 연작 시리즈는 아연판 위에 물을 채운 뒤 그 물 위에 그림을 그리고 그대로 말린 작품이다. 12개 액자와 마찬가지로 흐릿한 기억의 층위를 보여줌으로써 역사적 기억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려는 의도다. 성곡미술관의 ‘2011 내일의 작가’에 뽑힌 것을 기념해 내놓은 신작 ‘보고서-민족에 관하여’는 시베리아 바이칼호에서 출발한다. 바이칼호 올혼섬과 천일염 산지인 전남 신안군을 연결한 것. 연결고리는 질 좋은 소금을 따라 이동했다는 ‘맘모스 스텝’이다. 작가는 신안에서도 염전 물 위에 올혼섬을 그려넣는 작업을 했다. 물론 그림은 없고 영상자료로 만날 수 있다. 미술관 측은 “제한된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이 아니라 직접 몸을 세워 발로 밟고 만난 경험에 근거하여 작업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내일의 작가’ 선정 이유를 밝혔다. →홍익대 회화과 출신이니 출발은 서양화였을 것 같다. -맞다. 대학 때까지는 교수님에게 칭찬도 받고 공모전 같은 데서 상도 받아 봤다. 그런데 미술 하면 이미지로만 생각하는 게 와닿지 않았다. 다른 작업을 하고 싶었다. →특별히 물을 택한 이유가 있나. -캔버스는 물감을 고정시키기 좋은, 쉽게 말해 말 잘 듣고 다루기 쉬운 매체다. 반면 물은 물감이 흩어지는, 다루기 어려운 매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오랜 시간 풍화작용을 겪는 기억의 특성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힌트는 한석봉에게서 얻었다. 가난 때문에 먹과 종이를 구하기 어려워 물에 붓을 찍어 바위에다 글씨를 썼다고 한다. 물로 쓴 글씨는 햇볕에 말라 날아가도 한석봉의 팔은 그 필법을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사서 고생’이란 느낌이 든다. 한 작품에 2~3년은 걸리는데. -하하. 맞는 얘기다. 왜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느냐는 얘기 수없이 듣는다. 개인작업이라 비용도 부담스럽고, 주변의 이해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더욱이 물 위에 그린 그림은 비디오로나 남지, 미술품으로는 남지도 않는다. 심지어 이게 미술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내 관심은 역사를 보는 시각과 해석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다. 역사에 대한 고정 해석이 갖고 있는 견고한 틀 같은 것을 무너뜨려 시야를 틔우고 싶었다. →고고학적 작업인데 대중들이 받아들이긴 어렵지 않겠나. (이번 전시엔 퇴적물이 쌓인 신안 갯벌 사진이 있는데, 역사적 퇴적물에 집중하는 그의 작업은 이에 대해 오마주로 보인다.) -안 그래도 한국 올 때(2004년 영국 옥스퍼드대 순수미술학 과정을 마친 뒤 국내외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 교수 직을 제안하면서 말린 분도 있었다. 지금 같으면 냉큼 제안을 받았을 텐데…(웃음). 흔히 중세를 암흑기라 하지만 당시 종교그림에는 세계관과 철학이 담겨 있다. 르네상스 이후 부르주아적 근대미술이 시작되면서 이게 단절됐다. 대중들은 그림을 보며 좋군, 나쁘군 하는데 그친다. 이래서는 소통이 안 된다. 작품이란 게 결국 작가와 대중이 대화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작가의 문법을 이해해야 한다. 작가가 작품으로 한발 내밀었을 때, 대중도 그만큼 한발짝 내밀어 줬으면 좋겠다. 판단은 그 다음 문제다. →다음 작품도 비슷한 방식인가. -주제는 4대강이다. 이미 독일 뒤셀도르프 라인강변에 큰 목책 하나 박아뒀다. 이 목책에 기록되는 물결의 흔적을 응용해 볼 생각이다. 한국에서도 4대강 유역에 설치한다. 예전에 한국의 청계천 복원공사와 영국 런던의 파링던 지역 복원공사를 비교한 적이 있는데 그것과 비슷하다. 작가의 작품은 한곳에 더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미지의 틈’ 전시(02-2124-8941, 2월 13일까지)다. 반투명 슬레이트로 둘러쳐진 채 문이 잠긴 집이 그의 작품이다. 무슨 의미일까 이리저리 살펴보다 보면 “아무것도 아닐 거야. 이건 그들이 잊고 바꿔놓지 못한 역사의 한 조각이지.”라는 낙서를 발견하게 된다.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이 남긴 말이다. 작가는 한국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아니 재빨리 망각되는 게 더 충격적인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작가의 의도와 일치하든 일치하지 않든 그 충격적 사건을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흐릿한 퇴적물로 기억의 지층을 일깨우려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잘 드러난다. 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주말 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엇갈린 만남에서 시작된 운명적 사랑. 늑대인간도 변하게 만든다는 보름달이 뜬 밤. 영화의 짜릿한 연애담은 시작된다. 활기차고 귀엽지만 일할 땐 누구보다 열정적인 패션 컨설턴트 유나(엄정화)와 유머러스하고 다정다감한 호텔리어 민재(박용우)는 친구 같은 커플. 그러나 연애 4년, 결혼 3년에 뜨겁기보다는 편안한 생활형 부부다. 여자에게 무심하고 차가운 워커홀릭 영준(이동건·오른쪽)과 지적인 외모와 차분한 성격의 조명 디자이너 소여(한채영·왼쪽)는 젊고 잘난, 남부러울 것 없는 커플이다. 그러던 어느 날 패션 컨설팅을 하기 위해 찾아온 유나와 실랑이를 벌이게 된 영준. 낯선 홍콩에서 운명처럼 민재와 마주치는 소여. 소여는 민재에 흔들리고, 영준은 유나가 눈에 밟힌다. 서울과 홍콩, 두 커플, 그들끼리만 모르게 엇갈린 네 남녀. 우연한 하룻밤 사랑이 인생을 흔들어 놓는 위험한 운명으로 변하던 그날 그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국영화특선 가로수의 합창(EBS 일요일 밤 11시) 철우(신성일)는 도쿄에서 유학하며 조선 학생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한다. 함께 유학 중인 친구 창세(남성진)는 출세를 바라며, 철우의 애인인 식민지정책의원 미이케(최남현)의 딸 유미코(윤정희)를 호시탐탐 노린다. 한편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도쿄로 파견된 밀사 혜숙(김지미)은 일경에게 쫓기는 철우를 구해 상하이로 떠난다. 유미코는 고등법무관인 된 창세와 결혼해 조선으로 온다. 그리고 상하이에서 혜숙은 일경이 쏜 총에 죽게 되고, 철우는 창세가 있는 대전형무소로 이송돼 창세에게 10년형을 선고받는다. 해방이 되자 일제의 창세는 유미코를 버리고 도망치고, 철우와 유미코는 자유의 몸으로 조우한다. 그러나 둘은 함께할 수 없는 운명임을 깨닫고 각자 자신의 길을 떠난다. ●인썸니아(OBS 일요일 밤 11시 20분) 밤이 없이 낮만 계속되는 ‘백야’라는 특이한 기간에 접어든 알래스카 외딴 마을의 쓰레기 하치장에서 17세 소녀의 시체가 전라의 몸으로 발견된다. 용의자도, 단서도, 목격자도 없는 이 의문의 살인사건에 LA경찰국 소속 베테랑 형사 도머(알 파치노)가 투입되고, 도머는 그의 오랜 파트너인 햅, 알래스카 지방 경찰 앨리(힐러리 스웽크)와 함께 처음부터 사건을 다시 수사하기 시작한다. 살인이 끝난 후 시체의 구석구석을 닦아 주고, 머리도 감겨 주며, 손톱·발톱까지 다듬어 놓은 지능적이고, 여유로운 살인자의 흔적을 좀처럼 찾을 수 없던 어느 날, 도머는 쉽게 놓칠 뻔한 단서를 찾아내어 용의자를 추적하게 된다. 그러던 중 안개가 낀 어느 해변에서 용의자 대신 파트너인 햅을 사살하는 사고를 저지르고 마는데….
  • “동물원 서커스 중단하라” 中 학대국 오명 벗기 나서

    “동물원 서커스 중단하라” 中 학대국 오명 벗기 나서

    ‘외줄 타는 곰과 물구나무서는 코끼리,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호랑이’ 중국 내 동물원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아찔한 동물 묘기를 앞으로는 찾아보기 어려울 듯하다. 중국 당국이 ‘동물 학대국’의 오명을 벗기 위해 각 동물원에 ‘서커스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동물쇼 덕분에 700여개의 동물원이 매년 1억 5000만명의 관람객을 유치, 짭짤한 수입을 거두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꽤 과감한 조치다. 그러나 이번 금지령이 지칠 대로 지친 동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중국 정부가 18일 전국 관영 동물원 300곳에 동물을 학대하는 모든 행위를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이번 조치로 정부가 운영하는 동물원에서는 동물 서커스 공연이 전면 금지된다. 관람객이 안심하고 만질 수 있도록 어린 호랑이의 이빨을 뽑는 등의 가혹 행위도 일절 할 수 없게 된다. 맹수의 먹이로 사용하기 위해 동물원 안팎에서 숨이 붙어 있는 닭과 염소, 소 등을 사고팔던 행위도 금지된다. 중국 당국이 칼을 빼든 것은 동물보호단체의 지속적인 항의가 효과를 발휘한 덕분이다. 이들 단체는 공연 과정에서 동물들이 야성을 거세당한 채 잔인하게 학대당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중국 푸젠(福建)성의 샤먼(廈門)지역 동물 보호협회장인 샤오빙은 “한 유원지의 원숭이들은 매일 권투쇼를 강요받는 바람에 온몸이 상처투성이였고 다 큰 사자는 말의 등 뒤에 위태롭게 업혀 목숨을 건 채 기예를 벌이고 있다.”고 실태를 전했다. 무대 뒤에는 더 큰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지난해 홍콩의 아시아동물협회가 중국 동물원 13곳의 실태를 조사해 보니 동물들이 훈련 과정에서 쇠로 된 채찍 등으로 무참히 구타당하는 등 학대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협회의 동물복지책임자인 데이비드 닐은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가 효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요 수익원을 잃게 된 동물원들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흥분했다. 서커스에 동원된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질 좋은 먹이를 제공받는 등 오히려 윤택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 서커스가 중단되면 여러 동물원이 파산하게 될 텐데 이 경우 동물들이 갈 곳을 잃어 최악의 환경에 내몰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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