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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친 세상, 홀로 울며 노래하며 살아낸 ‘광주’를 위하여

    미친 세상, 홀로 울며 노래하며 살아낸 ‘광주’를 위하여

    “영암집 숙자가 죽은 사람은 있어도 죽인 사람은 없는 야속한 세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산 사람들은 사는 것이 바빠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어도 그 사람들이 언제 죽었느냐 하고서 잊어버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도 그 사람이 누구를 죽였든지 말든지 내 알 바가 아니라고 시치미 뚝 떼는 세상이라고. 이놈의 세상이 그렇게도 야속하고 무정하다고.”(166쪽) 공선옥(50)의 새 장편소설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창비 펴냄)는 시간상으로 1970년대 새마을운동부터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까지를 다루고 있다. 황석영이 1985년에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전달했던 즉각적인 충격과 분노를 이 책에서는 찾을 수 없다. 5·18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그린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과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역사를 관통하는 것은 그 사건이 아니라 개인들의 연속된 삶이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인 농촌에서 순박한 부모를 잃고 쫓겨나 도시로 이주해 콩나물을 팔면서 동생을 건사해야만 했던 15살의 어린 소녀 ‘정애’의 삶을 그저 불운했다고 하기에는 마음이 답답하다. 국가의 요구에 무차별적으로 부응하는 집단의 광기와 국가의 폭력이 없었더라면 정애의 삶은 평범하고 아름답게 늙어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몹쓸 일을 당할 때마다 노래를 불렀다. 어떤 형식이나 형태가 있는 노래가 아닌데, 무서움도 사라지고 위로가 찾아온다. 문제는 그녀가 너무 자주 노래를 불러야 했다는 것이다. 1970년대와 80년대가 여성들로 표상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비우호적이고 야만적인 사회였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소설에는 오일팔(5·18)을 겪고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해 미쳐 버린 인물이 ‘셋이나’ 나온다. 남동생을 찾으러 갔다가 군인들에게 몹쓸 일을 당한 정애를 비롯해 학생으로 오인받는 재미로 전두환이 누군지도 모른 채 얼결에 데모대에 휩쓸려 삼청교육대까지 끌려갔다가 돌아온 카센터 직원 박용재, 5·18에 공수부대 무전병으로 국난극복기장을 받았지만 제대 후 멀쩡한 팔을 기차 바퀴에 밀어 넣은 오만수다. 사실 ‘미친 사람이 셋이나’ 나온다는 기술은 정확하지 않다. 공선옥은 “자네를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도 미친 것은 다 한가지여. 세상이 미친 거여. 미치지 않은 세상은 언제였을까. (중략) 미친 세상에서 미친 사람만이 미치지 않은 거여”라고 박샌댁 입을 통해 일갈한다. 정애는 또한 말한다.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한 것보다 좋은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 것이 나는 더 무서웠다”라고. 신뢰했던 국가, 그 국가의 폭력 앞에 노출된 시민들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흔적을 입은 것이다. 그 당시 국가의 폭력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고 우리는 자신할 수 있을까. 제3세계 국가에서 배우려고 오는 새마을운동이 1970년대 이농을 부추긴 실패한 정책이었음이 공선옥의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주인공 정애는 “새마을을 만들었는데도, 새마을이 됐다는데도 어인 일인지 사람들은 자꾸자꾸 새마을을 떠났다”고 했다. 당시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농가는 빚이 늘었단다. 정부는 통일벼를 심으라고 강요하고, 통일벼로 못자리를 하지 않으면 공무원들이 와서 짓밟았고, 정부 시책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다 빨갱이라고 했단다. 통일벼는 해충에 약해서 농약이 없으면 지을 수 없었다. 키가 작고 힘이 없어 초가집의 이엉을 얹을 수도 없었단다. 그러니 농가에서는 슬레이트로 지붕을 올려야 했고, 농약을 듬뿍 친 통일 볏짚을 소의 여물로 쓸 수 없으니 비싼 수입 사료를 먹여야 했단다. 70~80%가 농부였던 대한민국은 새마을운동을 거치고 21세기에 접어들어 이제 7~8%의 농부만 농촌에 남았다. 그 많은 농부는 저임금의 도시 노동자로 전락해 일요일 아침에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를 시청하면서 겨우 고향에 대한 향수를 누그러뜨렸으니 말이다. 공선옥은 저자의 말에서 “나의 이 허술한 글을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노래하고 혼자 울었던 내 어머니에게 바친다. 그리고…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 없어 혼자 울어야 했던 그대, ‘광주’에 바친다”고 했다. 돌아보자. 광주가 아직도 홀로 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뭔 냄새야!” 발냄새 심해 붙잡힌 도둑

    발 냄새라는 지독한 흔적을 남긴 도둑이 경찰에 붙잡혔다고 13일 중국 동남망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일 오전 중국 푸젠성 싼밍시에서 16세 소년이 새벽 한 남성의 집에 침입해 휴대전화 등의 귀중품을 훔쳐 달아나다가 잠에서 깬 주인의 신고로 인근을 순찰하던 경찰의 손에 붙잡혔다. 피해 남성은 “당시 잠자고 있었으며 집에 도둑이 침입한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서도 “지독한 악취를 맡고 잠에서 깼다.”고 밝혔다. 그는 머리맡에 둔 휴대전화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큰 소리로 “도둑이야! 잡아!”라고 외쳤으며, 이때 지나가던 경찰관이 이 소리를 듣고 건물에서 뛰어 내려오는 소년을 발견해 붙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 결과, 붙잡힌 소년은 남성의 휴대전화를 훔친 것을 자백했으며 소년에게서는 비정상적으로 심한 발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씨줄날줄] 대한문 수난사/함혜리 논설위원

    1897년 10월 12일 새로 지어진 환구단 안은 향 냄새로 가득찼다. 이날 고종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의 출범을 하늘에 고하는 첫 제사를 지내고 황제에 즉위했다. 광무(光武)라는 연호도 쓰기 시작했다. 과거의 왕들은 천자의 나라 중국에서만 하늘에 직접 제를 올릴 수 있다며 제천의식을 삼갔지만 고종은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남별궁 터에 환구단을 지어 제를 지냄으로써 자주독립의 의지를 대외적으로 천명했다. 이후 민족자존의 상징인 환구단에서는 1년에 두 차례 제천의식이 거행됐다.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서 환구단으로 향할 때 고종은 정남쪽에 있는 정문 인화문이 아닌 동쪽의 대안문(大安門)을 주로 통했다. 민가가 밀집하고 외국공관이 많이 들어서 있던 인화문 쪽에 비해 대안문 쪽의 도로가 빨리 정비되면서 사람들도 대안문을 주 출입구로 사용하게 됐다. 1904년 화재로 소실된 전각들을 중건하면서 대안문을 수리한 뒤 고종은 1906년 대한문(大漢門)으로 이름을 고치고 정문으로 삼도록 했다. 대한문의 영광은 여기까지다. 원래 지금의 태평로 중앙선 부분에 위치했던 대한문은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야 했다.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병조약이 강제체결되고 8월 29일 공포됨으로써 대한제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뒤 일제는 조선의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대한제국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병탄 이듬해 조선총독부는 환구단 건물을 철거하고 총독부 건물에서 소공로까지 대로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1914년 황토현(광화문 네거리)에서 남쪽으로 환구단을 관통하는 태평정통이 개설되면서 대한문은 원래 위치에서 서쪽으로 옮겨졌다. 1926년 조선총독부는 덕수궁 땅 일부를 매각하면서 덕수궁 해체와 함께 대한문을 그 위치에서 다시 30칸 뒤로 물러나도록 했다. 1961년 서울시는 태평로 도로폭을 6m 확장했는데 이때 대한문도 6m 뒤로 물러나야 했다. 철책이던 덕수궁 돌담길이 복원되고 차도가 생기면서 대한문이 도로 한가운데 덩그맣게 남아 차량 통행을 방해하는 신세가 되자 결국 서울시는 1970년 12월 대한문을 22m 뒤로 옳겼다. 현재 위치한 곳이다. 1년 넘게 천막농성이 벌어지던 대한문 옆에서 엊그제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와 민주노총 등이 참여한 ‘희망지킴이’가 캠핑시위를 벌였다. 서울 중구청이 농성천막을 철거하고 화단을 설치했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시위대의 확성기 소리에 고궁의 고즈넉함은 꿈도 꿀 수 없다. 끝나지 않는 대한문의 시련을 바라보는 마음이 참으로 착잡하고 울적하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北, IP 역추적 막게 해외경유지 다양화

    북한의 사이버 공격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다. 북한은 ‘3·20 사이버테러’를 비롯한 수차례 해킹에서 국내외 10개국을 경유지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에 주로 중국의 인터넷프로토콜(IP)을 거쳐 단순하게 공격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발전된 형태이다. 따라서 추가 공격을 받으면 국내는 다시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11일 민·관·군 합동대응팀에 따르면 북한의 공격 경유지는 49개 지점, 국가별로는 한국을 포함한 10개국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공격 경유지 49곳 중 해외는 24곳이었고, 이 가운데 과거 해킹에 사용했던 IP는 4개뿐이었다. 나머지 20개 해외 IP는 모두 과거 해킹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전날 공개된 32건의 공격 경유지 예시 자료에서도 중국 IP는 하나도 없는 대신에 미국의 IP 4종류와 홍콩의 IP 1종류가 명시됐다. 북한은 다양한 지역을 공격 경유지로 설정해 두고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공격 경유지를 다각화하려면 사전에 시간을 두고 더욱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사를 어렵게 하고 있다. 보안업계 관계자는 “역추적을 막기 위해 공격 경유지를 복잡하게 해둔 점, 8개월여 전부터 미리 잠입해 감시활동을 펼친 점, 경유지 흔적을 지우려 한 점 등에서 과거보다 지능화된 공격 방식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3·20 사이버테러에 사용된 IP의 지리적 등록 주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보통강 구역 류경동’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운영하는 ‘후이즈’ IP 검색 서비스에 따르면 IP 주소인 ‘175.45.178.xx’의 등록자 주소는 보통강 구역 류경동(Ryugyong-dong Potong-gang District)이다. 류경동은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이름을 딴 류경정주영체육관과 류경호텔 등이 있는 평양 시내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해당 IP는 이곳에 위치한 ‘스타조인트벤처’라는 회사 명의로 등록됐다. 스타조인트벤처는 2009년 12월 14일 아시아태평양정보망센터(APNIC)를 통해 ‘175.45.176.0’∼‘175.45.179.255’ 등 1024개의 IP 주소를 등록했다. 그러나 IP 주소 등록자가 기입한 지리적 주소와 IP 주소를 실제로 사용하는 지리적 주소는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실제 사이버 공격이 평양 류경동에서 실행됐는지 여부를 이것만으로 단정짓기는 어렵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3·20 사이버테러 北 IP서 직접 접속”

    지난달 20일 KBS·MBC·YTN 등 방송사와 농협·신한·제주은행·NH생명보험·NH손해보험 등 금융기관의 내부 전산망 마비 사태를 일으킨 ‘3·20 사이버테러’는 북한의 소행이라는 공식 조사결과가 나왔다. 정부는 이번 공격이 북한 정찰총국의 소행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민·관·군 사이버위협 합동대응팀은 10일 과천 미래창조과학부 브리핑실에서 “피해기관의 감염장비 및 국내 공격 경유지 등에서 수집한 악성코드 76종과 수년간 국가정보원과 군에서 축적한 북한의 대남 해킹 조사결과를 종합적으로 반영해 이렇게 추정했다”고 밝혔다. 합동대응팀에 따르면 공격자는 최소한 9개월 이전부터 목표 기관 내부의 PC나 서버를 장악해 자료를 절취하고 전산망의 취약점을 파악하는 등 지속적인 침투를 해왔다. 백신 등 프로그램의 중앙배포 서버를 통해 PC 파괴용 악성코드를 내부 전체 PC에 일괄 유포하거나 서버 저장장치 삭제 명령을 실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지난해 6월 28일부터 최소한 6대의 북한 내부 PC가 1590회의 접속을 통해 금융기관에 악성코드를 유포하고 PC에 저장된 자료를 절취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올해 2월 22일 북한 내부 인터넷프로토콜(IP)주소(175.45.178.XXX)에서 감염 PC를 원격으로 조작하는 등 국내 경유지에 시험 목적으로 처음 접속한 흔적도 발견됐다. 이는 2009년 7·7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2011년 3·4 디도스, 농협(2011년), 중앙일보 전산망 파괴(2012년) 등 북한의 이전 해킹수법과 일치한다. 또 사이버테러의 공격 경로를 추적한 결과 북한 내부의 인터넷 주소가 나왔고 접속 흔적을 제거하려고 시도한 사실도 발견됐다. 한편 정부는 11일 국가정보원장 주재로 미래부, 금융위원회 등 15개 정부기관 관계자가 참석하는 ‘국가사이버안전전략회의’를 열어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키로 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3·20 사이버테러’ 북한 소행] 9개월전 피해기관 PC 장악 악성코드 심어

    [‘3·20 사이버테러’ 북한 소행] 9개월전 피해기관 PC 장악 악성코드 심어

    국내 방송·금융사의 전산망을 마비시킨 이른바 ‘3·20 사이버테러’가 북한 소행이라고 정부가 판단한 이유는 무엇일까. 또 북한이 어떻게 국내 기업들의 방화벽을 뚫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우선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난 것은 역추적 과정에서 북한 내부 인터넷프로토콜(IP)이 발견되는 등 다양한 근거들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10일 미래창조과학부 등 민·관·군 합동대응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3·20 사이버테러 한 달 전인 지난 2월 22일 북한의 내부 IP 주소가 감염 PC 원격 조작 등 명령 하달을 위해 국내 경유지에 처음 시험 접속한 흔적이 발견됐다. 이 공격 경유지에서 안랩과 같은 보안프로그램의 패치서버 등을 통해 국내 업체에 공격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들 피해 PC에서 자료를 빼내가는 한편 전산망의 취약점을 파악해오다 지난달 20일 오후 2시를 기해 이들 PC에 위장 백신프로그램을 자동으로 설치해 중앙배포 서버를 통해 악성코드를 뿌린 것으로 확인됐다. 보안에 구멍이 뚫리기 쉬운 지점을 오랫동안 살핀 뒤 가장 취약한 곳을 노려 동시 다발적으로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3·20 사이버테러 닷새 뒤 발생한 ‘날씨닷컴’ 사이트를 통한 악성코드 유포나 지난달 26일의 14개 대북·보수단체 홈페이지 자료 삭제, YTN 계열사 홈페이지 자료서버 파괴 등도 북한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전형적인 ‘지능형 지속 해킹’(APT) 방식이다. APT는 한 그룹이 특정 대상을 정해 놓고 취약점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수법으로 조직적이고 치밀한 작전이 선행돼야 가능하다. 전길수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침해대응센터 단장은 “지난달 20일 이뤄진 첫 공격에서 대부분의 파괴가 같은 시간대에 PC 하드디스크를 ‘HASTATI’ 또는 ‘PRINCPES’ 등 특정 문자열로 덮어쓰기하는 방식으로 수행됐다”며 “악성코드 개발 작업이 수행된 컴퓨터의 프로그램 저장 경로가 일치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근거로는 최소한 6대 이상의 북한 내부 PC가 지난해 6월 28일부터 금융사에 1590회 접속해 악성코드를 유포했는데, 이 중 13회에서 북한의 IP가 드러난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미 9개월 전부터 피해 기관들의 PC를 북한이 좌우하고 있었던 셈이다. 정부도 주요 민간시설인 방송사와 금융기관의 전산망이 9개월이나 북한에 뚫려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속수무책 당한 것이다. 북한은 공격 다음 날인 지난달 21일 해당 공격 경유지를 파괴해 흔적을 제거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대응팀은 해커가 방화벽과 웹서버를 거치면서 남긴 로그를 모두 지웠지만 원격 터미널에 접속한 로그가 일부 남아 있었다고 설명했다. 통신상의 문제 때문에 최대 몇 분간 북한의 IP가 노출됐다는 것이다. 대응팀은 이 IP가 위조된 것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조사를 진행했으나 이번 공격이 단방향 공격이 아니라 양방향 통신을 바탕으로 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위조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 단장은 “위조된 IP를 쓰면 답변이 엉뚱한 곳으로 갈 수 있다”며 “IP 세탁 가능성을 0%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대응팀은 지금까지 북한 소행으로 결론이 난 과거 공격과 이번 사이버테러의 경유지와 수법이 일치하거나 상당 부분 유사하다는 점도 증거로 들었다. 이번 공격에 사용된 국내외 공격 경유지는 국내 25곳과 해외 24곳 등 모두 49곳으로, 이 중 국내 18곳과 해외 4곳 등 22곳이 과거 북한의 대남 해킹에 이미 사용된 것으로 대응팀은 파악했다. 또 대응팀은 이번 해킹에서 사용된 악성코드 76종 중 과거의 것을 재활용한 것이 30종 이상이었다고 밝혔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4000년 전 사라진 ‘잃어버린 도시’ 찾았다

    해외 연구팀이 이라크에서 4000년 전 고대의 ‘잃어버린 도시’를 발견했다고 주장해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맨체스터대학의 스튜어트 캠벨 박사 연구팀은 이라크 남부 도시 우르(Ur)에서 4000년 전 사라진 고대 도시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곳은 성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크기는 축구장 만하며, 가로와 세로가 각각 80m에 달할 정도로 비교적 규모가 크다. 캠벨 박사는 “4000년 전에 이러한 규모의 공간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놀랍다.”면서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는 장소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곳에서는 의식에 쓰이는 의복을 갖춰 입고 종교적 행사를 하는 고대 종교인의 점토 유물이 함께 출토됐다. 연구팀은 4000년 전 사라졌던 고대 도시의 터 발굴을 통해 그 당시 종교적, 사회적 환경 뿐 아니라 경제적인 상황 까지도 연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아브라함은 구약성서, 창세기 등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중 하나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 유일신 종교들의 공통조상으로 ‘믿음의 조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알려진 우르는 수메르의 도시 국가로, 구약성서는 아브라함의 고지(故地)라 표기하기도 한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기고] 대외원조 2조 시대, 전략적 고민 필요하다/함미자 경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기고] 대외원조 2조 시대, 전략적 고민 필요하다/함미자 경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대외원조는 개발도상국의 빈곤을 퇴치해 ‘다 함께 잘사는 세계 건설’을 추구한다. 글로벌 상생을 만들어가는 ‘종잣돈’인 셈이다. 올해 우리나라는 개도국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으로 총 2조원을 편성했다. 현재의 원조규모는 오는 2015년이면 3조 5000억원으로 더욱 확대된다. 대외원조는 자국의 재원을 무조건 퍼주는 게 아니라, 우리 기업을 위한 해외시장 확대다. 나아가 수원국과 공여국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상당하다. 지난 25일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2조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휴대전화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베트남은 우리나라의 유·무상 원조가 가장 많이 지원된 국가다. 이 덕택으로 구축된 인프라 환경 속에서 삼성전자와 같은 민간투자의 효율성은 더욱 높아지고, 결국 이는 베트남 국민경제에 대한 혜택으로 이어진다. 민간투자와 대외원조 간의 윈윈인 셈이다. 사실 선진국들도 원조의 이런 시너지 효과 창출에 지나치리만큼 적극적이면서도 겉으로는 순수한 원조사업으로 잘 포장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최근 일각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극빈국에 차관 형식의 유상 원조를 중단하고 무상 원조로 대체하라고 권고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쪽 분야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사람으로서 이상한 생각이 들어 OECD 관련 보고서와 자료 등을 샅샅이 뒤져봤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이런 얘기를 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필자는 우리나라 원조를 이기적인 것으로 왜곡하는 이런 편향된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 더욱이 민간부문의 해외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북유럽 국가의 무상원조 모델과 비교하여 자기비하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오히려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는 한국이 개발경험을 원조에 반영하여 공여국으로 전환한 것에 대해 높은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부에서 “유상원조가 많다, 분절화가 심하다, 이기적이다”라며 왜곡된 시각을 거두지 않는 것은 스스로의 장점을 남의 눈에 비춰 포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동료 검토 보고서’(DAC Peer Review)를 통해 DAC는 우리나라에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2015년 국민총소득(GNI)의 0.25%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소요된다”면서 “이를 이행하기 위해 지금의 견고한 유·무상 통합 추진체계를 더 강화하고,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투명성을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이런 충고에도 불구하고 한국 ODA의 진정한 선진화를 위한 정책 고민은 뒷전인 채 오직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앞세우는 일부 부처의 움직임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DAC도 인정한 한국 ODA 성과 아닌가. 복지 확대 등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예산확보가 어렵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런 와중에도 원조예산을 크게 늘리는 것은 그만큼 우리 스스로 개발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국제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갈망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간투자와 대외원조 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원조정책에 대한 정부의 전략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관가 포커스] 환경부, MB정부 흔적 지우기 부산

    [관가 포커스] 환경부, MB정부 흔적 지우기 부산

    부처들의 대통령 업무보고 일정이 잡히면서 보고안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수장이 바뀐 부처들은 일찍이 장관 업무보고를 끝낸 뒤 청와대 보고 준비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무엇보다 전 정부와 차별화된 정책과 목표를 찾아내고, 현 정부의 슬로건과 부합된 정책들을 부각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까닭에 전 정부에서 사용하던 정책 용어나 홍보 문안까지도 새로운 용어로 포장하기 위한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환경부의 경우 그동안 흔하게 사용돼 왔던 ‘저탄소 녹색성장’이나 ‘녹색생활 실천운동’ 등의 용어가 부처 홈페이지나 각종 홍보 팸플릿 등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미 대통령 보고안 등에 녹색성장이란 단어를 다른 말로 교체하는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박근혜 정부의 슬로건인 ‘국민행복시대’에 맞춰 ‘환경복지’란 단어가 부각되고 있다. 그렇다고 관련된 사업이나 예산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업은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홈페이지를 비롯, 각종 홍보 문안에 이를 대체할 용어를 찾느라 고민하는 모습이다. 일부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전 정부의 흔적을 없애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낯익은 정책 용어까지 바꿔야 하느냐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전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이 요란한 구호에만 매달려 여러 부처에서 중구난방으로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성과가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녹색생활 정책 역시 “참여와 사용 실적이 부진해 성과가 불투명하다”며 “캠페인 형태의 정책은 적절한 유인을 제공하지 못할뿐더러 소비자 선호의 변화를 유도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전 정부의 고위관료는 “흔하게 써 왔던 ‘녹색성장’이란 말 등이 ‘이명박 정부의 산물’로 해석하는 것은 문제”라며 “그동안 국제회의 등에서도 자주 언급돼 낯설지 않은 보통명사인데, 굳이 다른 말로 바꿀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세종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 中여대생, 길가다 하수구 맨홀에 빠져 실종

    中여대생, 길가다 하수구 맨홀에 빠져 실종

    중국의 한 여대생이 친구와 길을 걷다가 하수구 맨홀에 빠져 실종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2일 저녁 9시경 중국 후난성 창사시에서 친구와 대화하며 길을 걷던 베이징에 있는 한 대학에 재학중인 양 리준(21)이 열려있던 맨홀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해 실종됐다. 사고 직후 양씨의 친구가 경찰에 신고해 구조대가 출동했으나 이틀이 지난 25일까지도 여대생의 흔적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경찰은 “200명 이상이 동원돼 구조에 나섰으나 당시 폭우가 내려 수색에 어려움을 겪었다.” 면서 “45개의 맨홀 뚜껑을 열고 들어가 샅샅이 조사했으나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구조 전문가들은 실종된 여대생이 급류에 휩쓸려 인근 강에 떨어졌거나 하수구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보고있으나 사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했다. 현지언론은 “사고 당시 임시로 덮어놓은 커버가 폭우에 휩쓸려 사라져 양씨가 미처 이를 보지 못한 것 같다.” 면서 “안전 불감증이 또 한번의 사고를 낳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인터넷뉴스팀   
  • [미주통신] 아내 살해 후 시신 요리한 남성 징역 15년형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고 시신을 가마솥에 삶아 없앤 엽기적인 남편에게 결국 징역 15년형이 선고되었다고 미 언론들이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법원은 지난 2009년 아내와 다툰 후 아내의 손발을 결박해 결국 숨지자 이를 감추기 위해 자신이 일하던 식당 큰 가마솥의 끓는 물에 사흘 동안이나 삶아서 흔적을 없앤 데이비드 빈스(49)에게 2급 살인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빈스는 범행 후 아내가 가출해 실종되었다고 신고했으나 이를 이상하게 여긴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등 자살을 시도했고 결국 지난 2011년 자신의 이러한 끔찍한 엽기적인 범행을 자백하였다. 하지만 빈스는 이번 선고를 앞둔 법원 증언에서 “자신은 아내를 사랑했고 요리하지 않았다.”고 당시의 자백 일체를 부인하며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고 사고였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헨델, 통영을 걷는다 웨스트우드 옷 걸치고

    헨델, 통영을 걷는다 웨스트우드 옷 걸치고

    지난 1월 호주 시드니의 타운홀. 30m 길이의 런웨이 양쪽에 관객이 앉아있다. 조명이 켜지고 헨델의 장중한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무대 양쪽으로 모델들이 쏟아져 나온다. 화려한 타조털 머리장식과 드레스를 입고 일본 전통극 가부키 배우의 메이크업을 한 모델들의 손에는 악기가 들려 있다. 런웨이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이들이 정체를 드러내면서 관객들은 깜짝 놀란다. 백스테이지로 사라지지 않고 무대 한쪽에 앉아있던 연주자들과 연주를 시작한다. 이들은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바로크 전문 연주단체 칼라이도스코프 앙상블. 이어 모델 틈에 섞여 있던 소프라노 알렉산드라 자모스카가 ‘영원한 기쁨, 영원한 사랑’을 부른다. 헨델의 오페라 ‘세멜레’와 비비안 웨스트우드 여사의 패션쇼를 섞어놓은 이종교배 퍼포먼스 ‘세멜레 워크’다. 공연계에서 일찍부터 입소문이 난 ‘세멜레 워크’가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을 기리는 제11회 통영국제음악제(TIMF) 개막공연으로 22~23일 선보인다. 아시아 초연이다. 본래 ‘세멜레’는 헨델이 1743년 발표한 바로크 오페라다. 쾌락의 신 디오니소스의 어머니이자 매력적이지만 허영이 넘치는 세멜레가 주피터(제우스)의 아내 주노(헤라)의 꾐에 넘어가 파멸한다는 게 오페라의 얼개다. 2011년 5월 독일의 쿤스트페스트슈필레 헤렌하우젠에서 초연 당시 영국 패션의 대모 웨스트우드가 공연의상 크리에이터로 참여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전설적인 펑크밴드 ‘섹스피스톨스’의 매니저 맬컴 맥라렌을 사귀면서 1970년대 런던 펑크문화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웨스트우드의 개성은 의상뿐 아니라 음악에도 묻어난다. 펑크록의 역사에 짧지만 깊은 흔적을 남긴 여성 그룹 엑스레이 스펙스의 ‘오 본디지 업 유어스’ 노랫말을 대사로 차용하고, 듀오 유리스믹스의 ‘스위트 드림스’가 불린다. 통영에서도 시드니 공연에 참여했던 폴란드 소프라노 자모스카가 세멜레를 연기하고, 오스트리아의 카운터테너 아르민 그라머가 연인 주피터를 맡는다. 주최 측은 지난 18일 오디션을 통해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서 웨스트우드의 의상을 입을 한국 모델 10여명을 캐스팅했다. 런웨이의 길이가 20m로 짧아지고, 한국 모델이 등장하는 걸 제외하면 독일, 시드니 공연과 다를 바가 없다. 웨스트우드는 오지 않지만, 그의 스태프들이 직접 의상을 챙겨온다. 휴식시간 없이 80분 동안 이어진다. 28일까지 이어지는 음악제에는 ‘세멜레 워크’ 외에도 놓치기 아까운 공연들이 눈에 띈다. 26일에는 TIMF의 상주 아티스트인 첼리스트 고티에 카푸숑과 바이올리니스트 강주미의 듀오 리사이틀이 열린다. 드뷔시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라벨의 치간느, 브람스의 첼로소나타 등 친숙한 곡들을 자신들만의 색깔로 풀어낸다. 둘은 27~28일 화음 챔버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 카푸숑은 하이든의 첼로협주곡을, 강주미는 탱고의 거장 피아졸라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를 연주한다. 24일에는 TIMF 상주 작곡가이자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음악감독을 역임한 중국의 치강 첸과 프랑스의 작곡가 파스칼 뒤사팽의 곡들을 모았다. 최수열이 지휘하는 TIMF앙상블이 연주한다. 2011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부문 2위를 한 신예 조진주의 22일 공연도 궁금하다.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1번과 현대음악 작곡가 류재준의 바이올린 카프리스 등을 들려준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UFO 흔적 남은 고속도로, 관광명소로 떠올라

    UFO 흔적 남은 고속도로, 관광명소로 떠올라

    단단한 아스팔트 도로 위에 새겨진 이상한 흔적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상한 흔적을 남긴 게 미확인비행물체(UFO)라는 증언이 나오면서다. 관광지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곳은 아르헨티나의 국도 33번이다. 지방 도시 틴틴에서 카치로 연결되는 이 도로 7.6km 지점 바닥에는 불가사리를 연상케 하는 자국이 있다. 자국은 2cm 깊이로 아스팔트에 파여 있다. 최대 지름은 10m에 이른다. 자국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택시운전사다. 지난달 16일 승객 3명을 태우고 이 길을 가던 기사는 파란 불빛을 강렬하게 발산하는 물체를 봤다. 택시가 접근하자 물체는 빛을 발산하며 공중으로 사라졌다. 손님을 내려주고 다시 이 길을 탄 기사는 물체를 목격한 지점에 이상한 자국이 남아 있는 걸 발견했다. 이때부터 자국은 UFO의 흔적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자국이 남겨진 33도로 7.6km 지점은 카치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꼭 들려가는 명소로 떠올랐다. 한 관광버스 운전사는 “카치로 가는 길에 UFO의 자국이 있다는 말이 퍼지면서 관광객들이 꼭 이곳을 구경하고 있다.” 면서 “관광객 중에는 자국이 있는 곳에서 휴대폰이 마비됐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엘트리부노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미지의 거대산’ 화성 ‘샤프산’ 전경 사진 공개

    ‘미지의 거대산’ 화성 ‘샤프산’ 전경 사진 공개

    화성에 있는 미지의 산 ‘이올리스 몬스’(Aeolis Mons) 일명 ‘샤프산’(Mount Sharp)의 전경이 최근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의 화성 탐사 로봇 큐리오시티가 촬영한 이 사진은 메인 카메라인 마스트캠이 찍은 사진들을 모자이크해 만든 것이다. 이번에 나사 측이 공개한 사진은 실제 샤프산의 모습과 지구와 같이 태양광 아래 있는 듯한 색보정을 한 두 가지 버전.   현재 큐리오시티가 탐사 중인 게일 크레이터 중앙에 우뚝 선 샤프산은 침전물이 쌓여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높이가 땅바닥을 기준으로 1만 8000피트(5.486m)에 달해 지구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해수면 기준 8,848m)보다 실제로는 더 높다. 나사 측은 “큐리오시티는 과거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하기에 충분했다는 증거가 발견된 ‘옐로나이프 베이’(Yellowknife Bay)를 주무대로 탐사할 계획”이라면서 “최종적으로 샤프산의 낮은 경사면까지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향후 큐리오시티가 샤프산의 지질 분석에 성공하면 화성의 지층 형성 역사를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화성 토양에 대한 조사와 생명체 흔적을 찾고 있는 큐리오시티는 화성에서 1년(지구기준 687일)간 활동하며 탐사 결과를 지구로 전송할 예정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이스라엘-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①悲 로마의 구둣발에 짓밟히랴

    이스라엘-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①悲 로마의 구둣발에 짓밟히랴

    ISRAEL 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강해 보이기만 했던 이스라엘을 옆에서 바라보니 곳곳에 흉터가 선명했다. 이스라엘이 낸 ‘민족과 종교’라는 어려운 문제를 풀면, ‘사해·사막·지중해’가 들어있는 3종 선물 세트가 기다린다. 글·사진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이스라엘관광청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悲 로마의 구둣발에 짓밟히랴 Masada마사다 & Qumran쿰란 강자 앞에서 당당하고 약자 앞에선 따뜻하고 싶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지리멸렬한 싸움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팔레스타인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편향된 마음을 들킨 것인지, 이스라엘 여행은 처음부터 꼬였다. 출국을 코앞에 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 간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신문 국제면이 ‘이스라엘-하마스 교전 격화…전면전 가능’, ‘하마스 군 수장 사망’ 등 살벌한 이야기로 도배됐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안전한 나라가 그 어디 있는가. 내 나라만 하더라도 서로 남과 북으로 찢어져 으르렁거리고 있는데 말이다. 다행히 하늘이 도왔다. 출국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 현지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휴전에 합의했으니 안심하고 와도 좋다.” 100여 명을 일주일 만에 죽이고 1,000명을 다치게 했다는 이번 전쟁은 시작도 끝도 문을 여닫는 것처럼 간단해 보였다. 짧은 말다툼으로도 마음이 들들들 끓는데, 총과 칼을 내젓는 싸움이 쉬울 리 없다. 이스라엘을 여행한다는 건 피고름이 철철철 흐르는 그들의 과거사를 훑는 과정이다. 이스라엘의 조상은 신에게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아브라함1). 아브라함이 신으로부터 받은 땅은 바로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이다. 신의 간택을 받았을지언정 아브라함의 자손은 끝없는 고통 속에서 광야를 헤맸다. 그들의 수난사를 읊자면 끝도 없다. 유대인에게 행복한 과거란 노역생활을 하던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을 되찾았던 순간, 지혜로운 다윗과 솔로몬을 왕으로 삼았던 시절 정도였을 테다. 여기에 십자군전쟁의 박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의 삶까지 더하면 ‘신은 정말 있습니까’ 하고 저절로 묻게 된다. 특히 이스라엘에서 로마제국의 발길질은 악명 높았다. 이탈리아를 지도에서 찾아보면, 지중해에 발을 담근 구두 한 짝과 같은 모양새다. 신발의 높다란 굽으로 로마군은 유대인을 마구잡이로 밟아댔다. 척박한 사막을 비집고 자리한 기괴한 마사다Masada 는 로마군과 유대인의 처절한 싸움을 그 자리에서 똑똑히 지켜봤다. 450m의 높이에 들어선 이 요새는 길이 600m, 너비 320m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AD70년, 로마에서 온 디도 장군의 박해를 피하고자 유대인 960여 명이 마사다로 몰려들었다. 도망자들을 가만히 손 놓고 봐 줄 로마군이 아니다. 1만5,000여 명의 로마군은 마사다를 정복하고자 수를 쓴다.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마사다에 오르지 못해 쩔쩔매던 로마군은 요새로 들어가기 위한 경사로를 3년에 걸쳐 만들었다. 경사로가 마사다에 닿았을 때, 그곳에서 로마군을 기다린 것은 유대인의 시체 960구. 유대인들은 로마군에게 능멸을 당하는 대신 죽음을 택하기로 했던 것이다. 죽음을 도울 사람을 제비뽑기로 뽑고 최후의 1인은 자살하는 식으로 그들은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 마사다 정상에 오르면 900명이 넘는 유대인이 어떻게 3년간 마사다 꼭대기에서 생활할 수 있었는지 궁금증이 풀린다. 이곳엔 목욕탕, 창고, 채석장, 교회, 수영장 등이 아직도 남아 있다. 마사다의 본래 용도는 왕의 피난처였다. BC40년경 헤롯왕2)은 본인이 도망갈 곳으로 마사다를 지었고 온갖 시설을 갖추었다. 헤롯왕이 만든 시설을 이용하며 목숨을 부지하던 유대인은 빗방울을 모으려 도랑을 만들고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비둘기까지 길렀다고 한다. 마사다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로 금방이건만 많은 유대인은 가파른 마사다를 직접 두 발로 오르며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사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쿰란 동굴Cave of Qumran이 있다. 쿰란 동굴 역시 마사다와 마찬가지로 로마에 굴하지 않은 유대인의 삶을 증명한다.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는 쿰란 동굴에 숨어 살던 은둔주의자들이었다. 에세네파는 성경사본을 항아리에 담아 숨겨놓았는데 2,000년이 지난 1947년, 목동이 염소를 찾던 중 항아리를 발견한다. 그 속에서 사해본Dead Sea Scroll으로 불리는 양피지 두루마리 7개가 나왔다. 1)아브라함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다. 그는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올리거라’는 신의 명령을 따르려 했을 정도로 신에게 충성했다. 현재 물과 기름 같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사실 알고 보면 아브라함을 한 조상으로 삼고 있다. 2)헤롯왕 이스라엘 일대를 다니다 보면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헤롯왕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헤롯왕은 아기 예수가 두려워 ‘어린아이를 모조리 죽이라’고 지시했던 왕으로 유명하다. 악덕한 왕이긴 했지만 그는 건축에 조예가 깊었다.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전을 대대적으로 재건축했으며 자신의 피난처로 철옹성 같은 마사다를 축조했다. 1 로마의 발길질을 피하고자 발버둥친 유대인의 흔적을 이스라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국기에 새겨진 별은 ‘다윗의 별’로 불린다 2 검은 양복을 고수하는 정통 유대교인 3 ‘머리 위에 신이 있다’는 의미의 작은 모자, 키파 4 유대인은 예수의 이야기를 닮은 신약성서를 부정하고 구약성서만을 읽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그것은 누구의 사원인가 Temple Mount성전산 & Western Wall통곡의 벽 마사다와 쿰란을 돌아보던 중 고개를 들었다. 모래바람이 풀풀 날리는 사막 한가운데서 보이는 것이라곤 너른 하늘과 뜨거운 태양뿐. 왜 유대인이 ‘하나의 신’만을 숭배하는지 퍼뜩 이해가 됐다. 그들에겐 이리저리 떠돌며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잡아 줄 강력한 절대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반대로 불교는 ‘숲의 종교’라 불린다. 울창한 숲은 사막과 달리 풍요로워 수많은 식물과 동물이 살아간다. 유일신이 필요 없다. 인간이 곧 신이 될 수 있으며 그저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 된다. ‘하늘에 계신 신’을 아버지로 삼는 건 유대교뿐만이 아니다. 유대교에서 뻗어 나온 기독교, 이슬람교도 마찬가지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세 종교가 하나로 겹쳐져 보였다. 한 뿌리에서 뻗어 나왔을지언정 결코 세 종교를 같다고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 종교의 각축장인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세 종교의 정체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다. 예루살렘을 조망할 수 있는 감람산에 올랐다. 공동묘지 너머로 성전산Temple Mount이 보였다. 성전산은 유대인, 기독교인, 이슬람교인 모두 ‘성지’라 여기는 곳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산인 동시에 예수의 발길이 닿은 곳이며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말을 타고 승천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곳에 서니 세 개의 종교가 동시에 “우리가 진짜”라 외치는 것만 같아 현기증이 났다. 지금 성전산에는 황금색 모자를 쓴 황금사원Dome of Rock이 서 있다. 이슬람교도가 예루살렘을 점령하며 지은 이 사원은 오마르 모스크Mosque of Omar로도 불리며 메카와 메디나만큼이나 중요한 곳으로 여겨진다. 당연히 유대인은 이슬람교도가 축조한 황금사원을 보며 칼을 간다. 그들은 성전을 두 번이나 지었으나 두 번 모두 잃었다. 솔로몬왕 시절 지어진 첫 번째 성전은 전란 중 부서지고 말았고 두 번째 성전은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됐다. 디도 장군은 과시용으로 성전의 서쪽 부분 일부를 남겨 두었는데 그 흔적이 통곡의 벽Western Wall이다. 땅을 잃은 백성은 수천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이 벽 앞에 선다. 세우면 무너지고, 찾으면 또 뺏기고…. 약자의 역사를 이해한다. 우리의 조상도 그랬을 것이다.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유대인은 성전을 다시 세울 ‘그날’을 기다리며 통곡의 벽에 머리를 조아렸다. 키파1)를 쓰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토라2)를 읽는 그들의 모습은 생경하다. 구레나룻을 돌돌 말고 검은 양복을 입은 정통 유대교도도 여기선 흔하게 보인다. 1) 키파 유대인이 쓰는 테두리 없는 모자. ‘하느님이 내 머리 위에 있다’는 뜻으로 크기는 손바닥 크기 정도. 이스라엘 어디서든 쉽게 살 수 있으니 기념품으로 사 와도 좋다. 2) 토라Torah 유대인은 예수의 행적을 담은 신약성서를 인정하지 않고 구약성서만을 읽는다. 토라는 구약성서의 처음 다섯 권을 일컫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국내 첫 아현고가도로 ‘역사속으로’

    국내 첫 아현고가도로 ‘역사속으로’

    1968년 9월 국내 최초로 설치된 고가차도인 서울 ‘아현고가도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서울시는 공사발주 및 교통규제 심의 등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내년 6월까지 125억원을 들여 아현고가도로를 단계적으로 철거한다고 14일 밝혔다. 길이 939m, 왕복 4차로로 시청∼아현동∼신촌을 잇는 아현고가도로는 급격한 교통량 증가에 따른 소통대책과 도심 인구의 외곽 분산을 위해 건설됐다. 현재 하루 교통량이 8만대에 이른다. 시는 현재의 차량 흐름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도시경관을 훼손하고 안전등급 C급으로 노후화가 심해 보수비만 연간 4억원을 웃돌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시는 고가도로로 단절된 지하철 2호선 이대역∼서대문 사거리 구간에 내년 6월부터 12월까지 중앙버스전용차로 2.2㎞를 설치할 계획이다. 시는 하반기에 가로수 등 지장물 이식과 교통소통을 위한 차로 확보 공사를 우선 시행한 후 겨울방학 등 교통량이 적은 겨울철에 공사를 본격 시행할 예정이다. 2009년 12월 시내 고가차도 연차별 철거계획 발표 뒤 현재까지 85개 가운데 15개를 철거했다. 김병하 시 도시안전실장은 “아현고가차도를 철거하면서 근대화와 산업화 유산의 모습을 간직하고자 표석 등 역사적 흔적을 간직하는 작업도 병행하겠다”며 “미관 개선으로 아현동 가구거리 등 주변 상권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열린세상] 문화 융성의 기초, 문화기본권/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열린세상] 문화 융성의 기초, 문화기본권/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경제 부흥, 국민 행복, 문화 융성을 국정의 3대 축으로 제시했다. 앞의 것은 이전 정권에서도 많이 들어온 것인데, 이 한 세트의 국정 목표가 전혀 다른 신세기적 비전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문화 융성’ 때문이다. 각각의 국정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한 우선 과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양극화의 해소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나 복지정책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매우 높은 반면 문화 격차에 대한 위기의식은 이상하다 할 정도로 낮다. 이는 문화예술 향유를 경제적 여유에 비례하는 잉여적 소비의 대상으로 여기는 풍토 때문이다. 서구 문화선진국의 정책은 ‘더 많은 다수’의 문화 향유에 지향점을 두어왔다. 프랑스의 전설적 문화부 장관인 앙드레 말로는 1960년대 국민에게 보편적 접근권을 부여하는 문화정책을 폈고, 문화행정가 오귀스탱 지라르가 주창한 ‘문화민주화’도 문화 확산을 지원하고 문화예술 활동에 가능한 한 다수 국민을 참여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념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모두를 위한 문화’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찍이 외환위기를 겪으며 문화예술정책의 난항을 경험했던 영국은 토니 블레어 정권 이후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가 아닌 ‘사회적 포괄’(social inclusion)의 개념을 통해 공공서비스에서 소외됐던 계층을 포함시키는 변혁을 추진했는데, 주목을 끄는 대목은 문화적 경험의 보편화와 평등화를 주요 어젠다로 삼았다는 점이다. 문화선진국의 국민은 문화를 잘 먹고살게 된 이후에 누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삶’(good life)을 위한 전제조건이자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 여긴다. 프랑스와 영국이 문화 융성의 모델국가인 것은 문화 향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천명하고 문화 접근 기회를 확대하며, 문화 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 균형 잡힌 문화복지국가의 틀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정책 발전 과정에서도 국가가 문화복지를 실현하고자 노력한 흔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문화국가의 주체를 국민에 두지 않고 문화를 국가이데올로기 확립의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향유 주체의 특수성과 자율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양적 확대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국민의 문화권을 신장하는 성과는 미미했다. 보편적 문화와 문화기본권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문화예술이 사회공공재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중심을 시민에 두지 않으면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접근으로 이어져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한 국가나 문명의 쇠락 이면에는 중산층의 붕괴, 계층 간 문화 편중과 문화 격차의 심화가 있었음을 알고 있다. 2011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중산층 비중은 64%로 외환위기 이전보다 10% 이상 감소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실제 경제상황에 비해 정서적인 궁핍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답한 주관적 중산층이 46.4%에 불과한 반면, 실질 저소득층이 15%인데도 저소득층이라고 응답한 자가 무려 50.1%나 된다.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균형과 소외의 문제가 문화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산층 복원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는 새 정부는 5년 내에 국민의 70%를 중산층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사회경제학적으로 정의되는 ‘중산층’에 사회문화적 개념이 적용돼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믿는 국민이 많을 때 통계는 의미를 얻는다. 개인의 창조적 역동성을 높여 삶을 풍요롭게 하고 문화 향유의 기회를 확대해 ‘문화적 중산층’을 두껍게 만드는 것이 문화 융성의 기초를 닦는 일이다. 사람들은 새 대통령의 ‘문화 융성’이란 키워드에서 세상의 변화를 실감했다. 문화 융성은 경제 부흥, 국민 행복의 성공을 담보하는 것이기에 국정목표 트라이앵글의 상위에 있어야 한다. 지구촌에서 한국이 남다른 국가로서 자기동일성을 갖는 것은 잘살아서가 아니라 고유의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문화만이 상대성을 주장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국가 문화 융성의 플랫폼은 ‘국민은 누구나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갖는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 말레이시아의 앨리스

    말레이시아의 앨리스

    말레이시아의 앨리스 영하 10℃를 밑도는 서울의 한파를 등지고 도착한 말레이시아는 그 온도차만큼이나 다른 세계였다. 어떤 끌림이 있었는지, 회중시계를 손에 든 흰 토끼를 따라 알지도 못하는 굴 속으로 졸래졸래 따라간 앨리스처럼, 낯선 듯 평화롭고, 평범한 듯 해맑은 ‘말레이시아’를 만났다. 겨울날에 도착한 여름나라 앞으로 여섯 시간 후 나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발을 내딛는다. 여느 때와 달리 떠오르는 혹은 기대하게 되는 그림이 불분명했다.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속으로 옹알옹알. 입에 익긴 한데 막상 고개가 갸웃한다. 출근길에 바쁜 사람들을 지나쳐 공항으로 향하는 동안 본능적으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 겨울날의 여행.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하면 영하 10℃를 밑도는 겨울날과 영상 30℃를 웃도는 여름나라를 동시에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해가 떴는데도 바닥이 젖어 있다. 이 나라에서는 매일 오후 네다섯 시 즈음엔 어김없이 비가 쏟아진다고 했다. 오늘도 방금 전까지 비가 내렸다고. 공항을 나서니 바깥 공기가 그리 습하지 않았고,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까지 가는 차 안에서도 에어컨 바람이 시원했기에 아직 서울에서의 차림 그대로다. 하나둘 옷을 허물처럼 벗어낸 것은 공항과 쿠알라룸푸르 중간 즈음에 위치한 신행정도시 푸트르자야Putrajaya의 풍경이 차창에 가까워졌을 때였다. 레고 블록으로 만든 모형처럼 군더더기 없는 도시를 울울창창한 야자수 정글이 포위하고 있었다. 서울과 쿠알라룸푸르 사이 한 시간의 시차를 거슬러 오른 나는 그제야 여름나라에 들어온 것을 실감했다. 호텔방에 대충 짐을 밀어 넣고 낯선 거리로 나섰다. 하늘은 어둑하게 물들어 가지만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장 번화한, 서울로 치면 명동에 비견되는 부킷빈탕Bukit Bintang 거리와 그 지척에 노천 음식점이 즐비한 잘란알로Jalan Alor는 낮보다 더 환하고, 더더욱 북적였다. 여행 첫날의 긴장과 피로는 서울과 다르지 않은 도심풍경 때문에 잔잔해졌지만 그 속에 빠져드는 것이 아직 부담스러운 이방인은 두 거리 사이, 트렌디한 펍과 레스토랑이 늘어선 잘란창캇Jalan Changkat으로 살짝 발을 들여 놓았다. 거리가 한 눈에 들어오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펍 2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뜨거운 공기, 낯선 도시, 차가운 맥주, 관망적 자세. 취取하거나 취醉하거나. ▶travie info 잘란알로alan Alor와 잘란창캇Jalan Changkat | 잘란알로에서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대중적인 요리 사테Satay를 추천. 얇게 썬 고기를 양념해 대나무 꼬챙이에 꽂아 구운 꼬치요리이다. 달큼하고 고소한 땅콩소스에 찍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잘란창캇에서는 부러 핫한 곳을 찾기보다는 거리가 훤히 내다보이는 2층 테라스가 있는 공간에 자리를 잡는 것이 더욱 매력적이다. 위치 부킷빈탕 거리에서 모노레일이 가로지르는 대로 변 오른쪽 방향(도보 5~10분). 영업시간 늦은 오후부터 새벽녘 국립 모스크National Mosque, Masjid Negara┃주소 Jalan Perdana, 50480 Kuala Lumpur 방문객 입장시간 오전 9시~정오, 오후 3시~4시, 오후 5시30분~6시30분(단, 금요일은 오전 입장 불가) 입장료 무료 센트럴 마켓Central Market┃주소 Jalan Hang Kasturi, 50050 Kuala Lumpur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9시30분(건물 밖 노점은 오전 11시~밤 11시) 홈페이지 www.centralmarket.com.my 차이나타운China Town┃위치 Jalan Petaling, Kuala Lumpur 영업시간 오전에 문을 여는 곳도 있지만 대체로 점심 무렵부터 밤 10시까지 One for All, All for One 아무리 피곤해도 늦잠은 아까운 여행자의 아침, 좀 걷자. 걷다 멈춘 곳이 목적지가 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여름의 날씨인지라 자연스럽게 차도르Chador를 두른 여인들에게 눈길이 간다. 말레이시아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슬람을 국교로 삼고 있는 나라다.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그들에겐 당연한 것이겠지만 “안 덥나?” 결국 입 밖으로 뱉고 만다. 모스크에 가봐야겠다.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을 피해 택시를 탔다. 국립 모스크National Mosque, Masjid Negara에 가자고 했다. 안내에 따라 신발을 벗고 보라색 가운과 히잡Hijab을 둘렀다. 아무도 없는 기도실 앞에 서자 안내원인 듯한 할아버지 한 분이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대답을 듣자 지긋한 눈빛으로 <본성(피뜨라)과의 만남>이라는 한국어 책자를 건네 준다. 천장까지 닿은, 수십 개의 흰색 기둥으로 빼곡한 기도실 앞 대리석 바닥에 앉아 책자를 폈다. 맨 첫 장과 마지막 장은 같은 문구로 시작해 같은 문구로 맺어지고 있었다.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기를 바랄 수 있을 것인가?” 따라 읽는 사이 작지만 야무진 아이 모모가 떠올랐다. 누군가의 시간을 훔쳐야만 살아갈 수 있는 회색 신사들에게 홀려 잿빛이 된 모습으로 내 말만 하는 어른이 돼 버린 내 앞에.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장님에게 무지개의 고운 빛깔이 보이지 않고, 귀머거리에게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지. 허나 슬프게도 이 세상에는 쿵쿵 뛰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멀고 귀 먹은 가슴들이 수두룩하단다. (중략) 화도 내지 않고, 뜨겁게 열광하는 법도 없어. 기뻐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아. 웃음과 눈물을 잊는 게야. 그러면 그 사람은 차디차게 변해서,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단다. 그 지경까지 이르면 그 병은 고칠 수가 없어. 회복할 길이 없는 게야. 그 사람은 공허한 잿빛 얼굴을 하고 바삐 돌아다니게 되지. 회색 신사와 똑같아진단다. 그래, 그들 중의 하나가 되지. -미하엘 엔더의 <모모> 中 지난밤 잘란창캇의 펍에서 마셔 버린 시큰둥했던 첫날밤이 뜨끔했다. 그럼에도 선뜻 털고 일어나 기도실을 나서지 않고 조금 더 게으름을 피우다 못 이기는 척 다시 길을 나섰다. 그러다 뒤를 돌아봤다.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듯 맑고 파란 하늘과 그 아래 새하얀 모스크. 종교와 교리를 떠나 그곳에 잿빛을 걷어낸 나의 뽀얀 마음 한 조각을 묻어두었다. 그리곤 천천히 초록 잔디가 카펫처럼 펼쳐진 메르데카 광장Merdeka Square까지 걸었다. 딱히 구경거리가 없는 고가도로변인데도 길이 참 싱그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르데카는 말레이어로 독립이라는 뜻이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8월31일 이 광장 국기게양대에 걸려 있던 영국 국기를 걷어내고 말레이시아 국기를 내걸면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했다. 광장 너머로 우뚝 솟아오른 초고층 빌딩과 함께 광장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영국 식민지 시절의 고건축물들이 독특한 도시경관을 그려낸다. 식민지 역사의 흔적을 상당수 지워낸 우리와 달리 쿠알라룸푸르는 도심 가운데 이를 그대로 남겨두고 오늘날까지 이용하고 있다. 광장 북측, 1894년에 지은 세인트메리 성당을 시작으로 유럽과 이슬람식 건축양식이 조화를 이룬 구 시청사, 술탄압둘사마드 빌딩, 구 중앙우체국, 국립섬유박물관, 구 차터드은행 등이 시계방향으로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사람들이 말했다. 말레이시아는 오랜 세월 다양한 인종이 각기 다른 언어와 신을 믿는 가운데 함께 어울려 살아왔기에 관용의 미덕이 배어 있다고. 다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존중하는 문화. ‘1 Malaysia, truly Asia’라는 말레이시아의 캐치프레이즈를 형상화한 조형물 앞에 서 있자니 이번엔 달타냥과 삼총사가 떠올라 그들의 구호를 외친다. “One for All, All for One” 메르데카 광장에서 켈랑강Kelang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면 센트럴 마켓Central Market과 차이나타운China Town까지 다다르는데, 이곳에서 ‘1 Malaysia, truly Asia’가 허언이 아님을 체감했다. 역시나 건물 자체가 100여 년이 넘은 마켓 안에는 말레이, 차이니즈, 인디아 구역이 사이좋게 이웃하고 있었고, 역사문화도시 말라카와 페낭을 모티브로 한 거리까지,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오밀조밀하다. 아시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마켓 2층의 푸드코트와 마켓 바깥 골목에 위치한 예술가의 거리도 시장구경의 재미를 더해 준다. 중국계가 중심이 되어 상점가를 형성하고 있는 차이나타운China Town 언저리에서도 불교 사찰과 식민지 건축물, 힌두교 사원이 자연스레 한 컷에 담긴다. 순간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나도 모르게 사진기를 들었다놨다 한다. 여행의 순간은 눈에만 담아두기 참 아쉬울 때가 많다. 찍고 싶은데 면박을 당하지 않을까 겁이 나기도 하고, 그렇다고 몰래 찍는 것도 내키지 않는. 옆에서 누군가 이야기한다. “그냥 사진 좀 찍어도 되냐고 하면 완전 좋아하면서 반가워할 거예요.” 새삼 놀라운 ‘참말’이다. 무표정하게 있다가도 사진기를 보이며 눈인사를 할 때마다 꽃보다 환하게 피어나는 그들의 얼굴빛. 차도르를 두른 여인들마저 꽃 같은 포즈를 취해 주는데 그 덕에 내 잿빛 마음이 부끄럼을 타며 조금씩 희석된다. 1 메르데카 광장에서 센트럴 마켓으로 가는 길에 만난 동화 같은 거리. 초고층 빌딩숲 아래 파스텔톤의 유럽식 건축물이 독특한 도심경관을 만든다 2 쿠알라룸푸르에 대한 모든 것을 미리보기 할 수 있는 곳, 쿠알라룸푸르 시티갤러리에 가면 말레이시아 여행이 더욱 촘촘해진다 3 강요하는 사람 없지만 열대 기후에서도 히잡을 벗지 않는 여인들. 그러나 색색 고운 히잡을 보며 여인의 마음을 짐작한다 빨간 구두 신고 램프의 요정을 따라서 쿠알라룸푸르가 다민족이 내뿜는 전통적인 색채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질릴 틈 없이 신상품으로 넘쳐나는 도심의 빼곡한 쇼핑몰이야말로 쿠알라룸푸르의 현재다. 마음이 풀어지고 나니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마술을 부린 듯 새롭고 반짝이는 것들에 현혹되기 시작했다. 쿠알라룸푸르 쇼핑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부킷빈탕 거리의 파빌리온에서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와 수리아 쇼핑몰이 위치한 KLCC까지 구름다리 형식의 통로KLCC-Bukit Bintang Pedestrian Wailkway가 연결되어 있어 주요 쇼핑 스폿을 쾌적하고도 수월하게 오갈 수 있다. 정유회사 페트로나스의 사옥이자 세계에서 가장 높은 88층의 쌍둥이 빌딩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Petronas Twin Tower에 올랐다. 쌍둥이 빌딩 한쪽 타워에서 보이는 맞은편 타워는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솟아 있었다. 멀고도 높다. 물리적인 거리와 높이만큼 일상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돌아갈 수 있을까. 우선 내려가자. 호텔 방에 들어와 가방에서 가장 예쁜 옷을 꺼내 갈아입고 스타힐 갤러리Starhill Gallery와 파빌리온Pavilion의 명품 매장 사이를 모델처럼 걷기 시작했다. 명품 매장에서 나오는 차도르 두른 여인들에게 익숙해지기까지 촌스럽게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말레이시아와 우리나라의 쇼퍼들은 선호하는 디자인과 색감이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아이템을 찾아 최근 말레이시아를 찾는 쇼퍼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주머니 가벼운 까막눈도 마냥 즐거운 윈도우 쇼핑. 걷다가 힘이 들면 쇼핑몰 곳곳의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식도락을 즐기기도 하고, 쇼핑몰 안팎에서 진행되는 버스킹 공연에 시선을 돌리기도 한다.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에 나오는 아가씨처럼 춤추듯 걷자니 지치기는 했지만 시간은 지겨울 틈 없이 흘러갔다. 램프의 요정을 따라 말레이시아의 머리 쿠알라룸푸르에서 말레이반도 최남단으로, 싱가포르와 맞닿은 도시 조호바루Johor Baharu에 도착했다. 말레이어로 조호바루는 ‘새로운 보석’이라는 뜻. 그곳에 앨리스도 혹할 만한 새로운 보석이 있었다. 정말이지 비현실적인 동화풍 색채의 레고 랜드LEGO LAND에 제대로 빨려 들어갔다. 오전 10시, 오픈시간이 가까워지면 레고 랜드 사람들이 나와 오매불망 가지런히 줄서 있는 아이들과 함께 카운트다운을 외친다. “10, 9, 8……3, 2, 1” 문이 열림과 동시에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레고 랜드 안으로 돌진. 레고 랜드를 둘러싼 자연과 그 속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레고 블록이 빚어낸 세상이다. 아이들의 쨍한 웃음이 화수분처럼 솟아난다. 아이들을 핑계 삼아 어른들 역시 수북 쌓인 레고 블록 조립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간이 모자랐다. 조호바루에도 쿠알라룸푸르 못지않게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아웃렛과 쇼핑몰이 즐비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여행자의 시간은 좀더 색다르고도 익숙한 풍경을 더듬는다. KSL 리조트 앞으로 펼쳐진 난전은 우리나라의 오일장을 떠올리게 했다. 땅의 기운을 머금고 고운 색을 발하는 식재료와 튀기거나 굽거나 볶아낸 군침 도는 먹을거리에 자꾸만 손이 간다. 여기저기 “한국에서 왔어요?” 말하며 아는 체하는 현지인들이 우리네 시장 사람들의 인심과 다르지 않았다. 싱싱하고 건강한 어투. 그들 손으로 기르고 거둔 곡물로 만든 주전부리를 오물거리며 시장 한 바퀴를 어슬렁댄다. 부디 12시를 알리는 신데렐라의 종이 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런 걸까. 천천히 빨간 구두를 벗고, 램프의 요정과도 안녕을 고했다. 한 시간만 뒤로 돌리면 말레이시아의 앨리스는 사라지고 나는 다시 영하를 밑도는 나의 현실세계, 서울 땅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나의 말레이시아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일 뿐.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전망대에 오르면 반대편 타워와 함께 쿠알라룸푸르 도심 전경을 360도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다 2 쿠알라룸푸르 도심의 주요 쇼핑 스폿 간의 이동을 더욱 편리하게 해주는 페데스트리안 워크웨이 3 레고 왕국에 들어서자 순식간 동화 속 인물이 되고 만다 4 최고급 명품은 물론 독특한 디자인과 색감을 내세운 쇼룸에 이르기까지 쇼윈도 하나하나가 발걸음을 늦춘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취재협조 말레이시아 관광청 www.mtpb.co.kr ▶travie info 말레이시아 항공 하늘 위에서부터 말레이시아의 환대Malaysian Hospitality를 경험할 수 있는 말레이시아의 국적기 말레이시아 항공을 이용하면 매일매일 인천과 쿠알라룸푸르 사이를 쾌적하게 오갈 수 있다. 특히, 오전 11시 출발이라는 스케줄은 출발과 도착에 있어 허둥대거나 허비할 수 있는 있는 여행 시작 당일의 일정을 여유롭게 해준다. 여행 후 도착 시간 역시 오전 7시 전으로 도착한 당일 바로 일상에 복귀할 수 있는 최상의 스케줄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2012년 7월 30일부터 에어버스사의 신규 A333 항공기가 인천-쿠알라룸푸르 노선에 도입되어 여유 있는 좌석 공간과 전원 공급 장치, 개인 스마트 스크린, 한국 영화와 음악을 포함한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등 한국 여행객들에게 보다 개선된 기내 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대한항공을 비롯한 타 항공사와 코드쉐어를 통해 다양한 노선에 공동 운항을 하고 있어 다양한 국가로 보다 편리한 여행이 가능하다. 2013년 2월부터는 One World Alliance 회원국의 일원으로 등록되어 보다 다양한 항공사와의 협력을 통해 더욱 스마트한 여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02-777-7761 www.malaysiaairlines.com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Petronas Twin Tower 스카이 브릿지 투어┃위치 Jalan Ampang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7시(화~일, 월요일 휴무) 입장료 성인 RM80, 어린이 RM30 홈페이지 www.petronas.com.my 파빌리온Pavilion┃위치 168 Jalan Bukit Bintang 영업시간 오전 10시~밤 10시(파빌리온 옆 카페거리는 새벽까지 운영) 홈페이지 www.pavilion-kl.com 스타힐 갤러리Starhill Gallery ┃위치 Jalan Bukit Bintang 영업시간 오전 10시~밤 10시 홈페이지 www.starhillgallery.com 레고 랜드LEGO LAND┃위치 Gelang Patah, Johor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주말과 국경일은 밤 20시까지) 입장료 성인 RM140, 3~11세 어린이와 60세 이상 RM110 홈페이지 www.legoland.com.my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갑마장 가는 길, 그린카펫 밟다

    갑마장 가는 길, 그린카펫 밟다

    이제 제주를 사다도(四多島)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돌, 바람, 여자에 ‘길’을 더해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올레길로 시작된 걷기 열풍은 제주 도처에 길을 냈습니다. 그 가운데 요즘 새로이 명성을 얻고 있는 게 ‘갑마장(甲馬場)길’입니다. 조선시대 이래 제주에서 가장 뛰어난 말들만 골라 육성하던 목장의 흔적을 좇는 길입니다. 바쁜 도시인을 위해 ‘쫄븐 갑마장길’도 마련해 뒀습니다. 원래 루트에서 절반쯤 뚝 자른 길입니다. 드넓은 초원과 삼나무길, 그리고 오름과 오름 사이를 빗겨가며 걷다 보면 올레길과는 다소 다른, 장쾌한 풍경들과 만나게 됩니다. 그 길 위에서 오래전 마소들을 호령했던 ‘테우리’(목동의 사투리)들의 단단한 삶도 엿볼 수 있지요. 사람이건 짐승이건, 무리 가운데 특출난 놈이 나오기 마련이다. 갑마는 바로 그런 말을 뜻한다. 무리 중에서 가장 튼튼하고 잘 달리는 녀석들을 일컫는다. 옛 조선의 조정에선 갑마들만 따로 모아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게 바로 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일대에 조성됐던 갑마장이다. 가시리신문화공간조성위원회에서 펴낸 ‘제주 가시리’란 책자는 “갑마장은 정조 때 제주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데, 녹산장을 중심으로 900여㏊에 이르는 규모를 자랑했다”고 적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녹산장이 갑마장길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녹산장은 조정에서 제주 곳곳에 세운 산마장(山馬場)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왜 하필 가시리였을까. 가시리는 한라산 고산지대와 해안지대를 연결시켜 주는 전이지대, 즉 중산간 지역에 터를 잡고 있다. 해발 90~570m 사이에 고르게 펼쳐진 화산평탄면은 표선면 전체 면적의 42%에 이를 정도로 드넓다. 말들이 뛰고, 오르며 훈련하기에 이만 한 곳도 드물다. ‘갑마장길’은 갑마장과 그를 품은 가시리 마을을 에둘러 지난다. 가시리 문화센터를 들머리 삼아 약 20㎞ 구간을 걷는데, 7시간 남짓 소요된다. 제주 체류 시간이 길지 않은 여행객들은 주로 ‘쫄븐 갑마장길’을 돌아본다. ‘쫄븐’은 ‘짧은’이란 뜻의 제주 사투리. 조랑말체험공원에서 따라비오름과 큰사슴이오름을 돌아본 뒤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길이는 약 10㎞. 4~5시간 정도 걸린다. 갑마장길이 제주의 목축 문화는 물론, 본향당 등 제주 고유의 습속들과 줄곧 동행한다면, 쫄븐 갑마장길은 갑마장 고유의 문화에만 초점을 맞췄다. ‘쫄븐 갑마장길’의 들머리는 조랑말체험공원이다. 공원 초입의 ‘행기머체’가 이채롭다. 소똥을 1만배쯤 튀겨놓은 듯한 돌무더기 위로 삐죽대며 나무가 자랐다. ‘머체’는 용암이 뭉친 ‘돌무더기’를 뜻한다. 화산섬 제주의 탄생 과정을 알려주는 흔적이다. 행기는 물을 담는 놋그릇이니, 머체 위에 행기물을 놓았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길은 곧 두 갈래로 나뉜다.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없으나, 오른쪽 방향으로 도는 게 일반적이다. 가시천을 따라 따라비 오름으로 향하는 길이다. 제주의 여느 하천이 그렇듯, 가시천 또한 건천이다. 다만 바싹 말라 있지는 않고, 군데군데 물이 고여 주변의 풍경들을 담아내고 있다. 가시천 주변의 숲은 깊다. 곧추선 편백나무가 수직 세상을 이루는가 하면, 이리 휘고 저리 굽은 나무들이 이끼 잔뜩 낀 바위들과 어우러져 범상치 않은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가시천 초입에서 코스를 벗어나 불쑥 초원 지대로 나가보는 것도 좋겠다. 운이 좋다면 수십마리의 노루들이 초원에서 풀을 뜯는 이국적인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갑마들이 뛰놀던 자리를 노루들이 가득 채운 형국이다. 이제 어지간히 사람들에게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녀석들은 도무지 곁을 주지 않는다. 300~400m만 접근해도 줄행랑을 놓기 일쑤다. ‘가시는 걸음마다 놓인 꽃’에도 시선을 돌려보시라. 키 작은 야생화들의 소리없는 아우성과 마주할 수 있다. 제주의 봄은 시나브로 발 아래까지 올라와 있다. 따라비오름(342m)은 ‘제주 오름의 여왕’이라 불린다. 왜 그런가. 정상에 오르면 수긍이 간다. 따라비 오름은 분화구 세 개로 구성됐다. 각각의 능선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돌아간다. 그 자태가 때론 여인의 가슴 언저리와, 때론 허리춤과 닮았다. 정상에서 굽어보는 풍경도 장쾌하다. 따라비오름과 멀리 큰사슴이오름(475m) 사이에 펼쳐진 너른 초원지대와 그 안에 조성된 풍력발전기들, 그리고 사방에서 봉긋하게 솟은 오름 등이 그림처럼 어우러졌다. 초원지대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노루 무리는 풍경의 덤이다. 이처럼 평온한 풍경속에 제주 4·3사건의 아픔이 담겨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잣성이다. 목장과 목장의 경계를 구분 짓고, 말들을 가둬두기 위해 세운 현무암 돌담이다. 가시리문화센터의 이선희 사무장은 “잣성의 길이가 한라산 허리를 두 번 돌아갈 만큼 길다”고 했다. 연륜도 600년을 헤아린다. 잣성 옆엔 삼나무 등을 심었다. 쭉쭉 뻗은 나무들과 어우러진 잣성은 초원과 오름, 그리고 풍력발전기 사이를 빗겨가며 굽이친다. 거대한 용 한 마리가 용솟음치는 듯하다. 제주의 돌담을 ‘흑룡만리’(黑龍萬里)라 한다더니, 그의 맏형이라 불러도 손색없겠다. 길은 잣성을 따라 큰사슴이오름까지 이어진다. 오래전, 이 길을 따라 수많은 말테우리(말몰이꾼의 제주 사투리)들이 삶의 여정을 이어갔을 터. 시간의 무게에 눌려 무너져내린 잣성의 돌부리마다 그들의 숨결이 배어 있는 듯하다. 큰사슴이오름에는 일제 강점기 일본군들이 파놓은 진지동굴(갱도진지)이 10여개가 있다. 50m짜리 수직갱도 등 형태와 규모도 다양하다. 다만 사고예방을 위해 개방은 하지 않는다. 글 사진 제주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제주공항에서 곧장 갈 경우 대천동사거리에서 녹산로를 따라 조랑말체험공원(070-4145-3456)까지 간다. 해안길을 따르고 싶다면 표선에서 오르는 게 좋다. 가시리마을문화센터(787-1305, www.jejugasiri.net)에서 지도를 받은 뒤 녹산로를 따라 조랑말체험공원까지 곧장 간다. →묵을 곳 해비치 호텔&리조트에서 매주 금요일 오후 ‘쫄븐 갑마장길 트레킹’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고객들의 야외 레저활동을 돕는 ‘익스플로러’들과 함께 갑마장길을 도는 프로그램이다. ‘까만 밤의 오름 트레킹과 BBQ’ 프로그램도 재밌다. 해비치 익스플로러와 함께 저녁 무렵 영주산에 올라 노을 지는 제주의 풍경을 감상한 뒤 바비큐를 즐긴다. 제주 목축이야기 등 문화 강의와 와인 클래스 등 실내 체험을 곁들인 ‘살롱드해비치’ 프로그램도 있다. 호텔과 리조트 사이에 ‘놀멍’이라는 놀이공간도 새로 만들었다. 비비탄을 이용한 사격장 등 어른들도 흥미로워할 놀이기구들이 많다. 해비치호텔은 ‘해비치 익스플로러’ 프로그램(택 1)과 객실(1박), 조식뷔페 식사권(2인)을 묶은 ‘빛나는 해비치’ 패키지를 출시했다. 주중 24만원, 주말 32만원. 780-8000. →먹을 곳 가시리는 제주도 내 대표적인 돼지고기 산지 중 하나다. 그 덕에 작은 마을인데도 가시리 마을센터 주변에만 서너곳의 식당이 성업 중이다. 대개 돼지고기와 그 부산물로 만든 순댓국을 판다. 가시리 순댓국은 뭍에서 맛보던 것과 맛과 형태가 다르다. 무엇보다 걸쭉하고 고소한 국물이 일품이다. 가시식당(787-1035)은 가시리풍의 메밀순대와 몸국을 제주도 전체로 전파한 ‘원조’로 알려져 있다. 가시마을의 옛이름을 차용한 가스름식당(787-1163)도 비슷한 메뉴를 갖췄다. 순댓국 5000원.
  • [27일 TV 하이라이트]

    ■환경스페셜(KBS1 밤 10시) 흑두루미는 전 세계에 약 1만 2000여 마리만 존재한다. 매년 겨울 대구 달성습지를 찾아왔던 흑두루미는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개발의 여파에 밀려 한반도를 떠났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흑두루미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순천만을 찾는 흑두루미의 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아이리스 2(KBS2 밤 10시) 헝가리에서 처음으로 적을 사살한 수연은 좀처럼 총을 다시 잡기 어려워지고, 이를 지켜보는 현우는 안타깝기만 하다. 반면 유건(장혁)은 아버지 흔적을 쫓던 중 그의 마지막 접촉자가 백산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혼란스러워진다. 한편, 최민 부국장의 지시로 경호팀의 시혁과 영민이 NSS에 합류하게 된다. ■7급 공무원(MBC 밤 9시 55분) 길로는 믿어 왔던 서원에 대한 배신감으로 힘들어하고, 서원의 뒤를 추적한다. 서원은 길로에게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어 더욱 괴롭다. 영순은 그런 서원을 안타까워하며 위로해 준다. 한편, 길로를 만나기 위해 찾아 온 서원은 폐주차장에서 길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뒤쫓아 간다. ■좋은 아침(SBS 오전 9시 10분) 세시봉의 멤버 윤형주와 함께한다. 친구들의 듬직한 보디가드로 자처 하는 등 윤형주가 꽁꽁 감춰두었던 세시봉의 추억이야기를 들려준다. 한편, 윤형주의 또 다른 모습을 폭로하겠다며 윤형주의 딸 윤선영과 아들 윤희원 가족들이 깜짝 방문한다. 자녀는 가수 윤형주가 아닌 아버지 윤형주의 일상을 낱낱이 공개한다. ■세계테마기행(EBS 밤 8시 50분) 우리에게 생소한 니카라과는 중앙아메리카 중앙에 위치한 나라다. 마타갈파는 니카라과 중부에 있는 비옥한 고원지대로 19세기 후반, 독일 이민자가 커피를 재배하면서 세계 커피시장에서 대표적인 명품 커피의 생산지가 되었다. 커피 수확철을 맞아 깊고 진한 커피 밭 사람들의 일상을 엿본다. ■HD 다큐월드(OBS 오후 6시 10분) 지구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환경운동을 펼치는 영웅들. 650종의 나비와 2000종 이상의 식물들이 자라는 멕시코의 숲을 보호하기 위해, 환경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57세의 여성 패티 루이즈를 만난다. 그리고 쓰레기 비료화 사업과 공해 없는 벽돌 공장을 운영하며 지구 지킴이 역할을 해내는 영웅들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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